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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s View] 생존본능에서 장르에 이르기까지의 공포
공포는 흔히 생존본능에서 만들어졌다고들 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위험한 것들을 피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우리는 위험을 보고 무서움을 느낍니다. 덕분에 살아남아 다양한 기술을 발전시킨 인류는 실존하는 위험으로부터 무서움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분리해내기에 이르렀고, 많은 예술을 통해 분리된 감정은 호러라는 장르를 만들기에 이르렀습니다. < Back [Editor's View] 생존본능에서 장르에 이르기까지의 공포 19 GG Vol. 24. 8. 10. 공포는 흔히 생존본능에서 만들어졌다고들 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위험한 것들을 피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우리는 위험을 보고 무서움을 느낍니다. 덕분에 살아남아 다양한 기술을 발전시킨 인류는 실존하는 위험으로부터 무서움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분리해내기에 이르렀고, 많은 예술을 통해 분리된 감정은 호러라는 장르를 만들기에 이르렀습니다. 디지털게임에 이르면 호러는 한층 더 강력해집니다. 게임은 플레이어를 공포의 현장 한가운데에 밀어넣기 때문에 많은 경우 게임에서의 공포는 관조가 아닌 개입과 참여를 통해 전달됩니다. 무서운 것을 보는 것과, 직접 무서운 일을 일으키거나 맞닥뜨리는 것의 차이는 결코 작지 않을 것입니다. 역대급 폭염이 덮친 2024년 8월 GG의 탐색은 호러를 향합니다. 후발 매체로서 디지털게임은 공포라는 감정을 자신이 매우 잘 다룰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상태에서 많은 기존 매체들의 문법을 학습해 왔고, 게임 특유의 호러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적지 않은 수로 쏟아지는 공포 게임들이 이 실험과정의 활발함을 보여주는 단서들일 것입니다. 한켠에서는 무서워서 공포 게임을 손도 못 대는(저를 포함합니다) 사람부터, 호러 게임을 아무렇지도 않게 늘상 붙잡고 있는 마니아까지의 다양함을 다 담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게임에서의 호러가 어떤 의미인지를 폭염 속에서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이번 19호를 기점으로 GG는 만 3년을 채웠습니다. 게임에 관한,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가 나름의 영역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끊이지 않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놀라곤 합니다. 그러나 아직 한국에서 디지털게임을 무겁게 이야기하는 일은 성에 차는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에 GG는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이 멉니다. 걸어온 길보다 더 머나먼 앞날의 길에도 독자분들과 함께 걸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는 9월 초까지 진행되는 게임비평공모전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인터뷰] 디지털게임 다양성/접근성 가이드북 제작, 스마일게이트 D&I실 이경진 실장
"이런 사람도 게이머고 저런 사람도 게이머고, 아직 게임을 하지 않은 사람들도 게이머가 될 수 있다라고 확장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우리가 대중 문화로서의 게임의 위상을 스스로 높이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에버랜드에서도 ‘게임문화축제’라고 해서 게임 IP를 가지고 행사를 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게임이 굉장히 대중적인 매체가 되어서 놀이공원에 아이들하고 함께 가서 즐길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된 거잖아요. 그렇다면 게이머라고 했을 때도 게이머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는 게 앞으로 수익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마인드셋이라고 생각해요." < Back [인터뷰] 디지털게임 다양성/접근성 가이드북 제작, 스마일게이트 D&I실 이경진 실장 20 GG Vol. 24. 10. 10. 지난 2024년 8월, <스마일게이트>는 창작자를 대상으로 게임 접근성과 콘텐츠 다양성을 주제로 한 레퍼런스북 두 권을 출간했다. <게임 접근성 개념과 사례>에서는 장애를 포함하여 다양한 조건에 처해 있는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제한 없이 즐길 수 있도록 고안된 ‘게임 접근성’에 관한 개념과 현황, 사례를 담고 있다. <콘텐츠 다양성 개념과 사례>는 ‘문화다양성’ 개념을 소개하고, 미디어와 게임 속에서 문화다양성이 구현된 사례를 다루고 있다. GG는 이번 호 인터뷰에서 스마일게이트 이경진 실장을 만나 기업이 D&I(Diversity & Inclusion)를 강조하는 맥락을 살피고, 문화로서의 디지털 게임을 만들어가는 데 있어 접근성과 다양성이라는 가치가 사회적, 상업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들어보았다. 이경혁 편집장: 이 인터뷰를 기획하게 된 것은, 한국의 게임사들이 접근성과 다양성이라는 주제 내에서 이런 모습들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좀 더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목적에서 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선제적으로 (접근성/다양성 책자라는) 결과물을 내신 거잖아요. 항상 첫 발을 내딛는 게 저는 쉽지 않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국내에 참고할 만한 사례가 많았던 것도 아닐 테고, 제로베이스에서 처음 이 작업을 하실 때 겪었던 어려웠던 점이나 생각나는 점이 있으신가요? 이경진 실장: 입사를 하고 6개월 정도 있다가 미국의 GDC(Game Developers Conference, 게임 개발자 회의)에 처음 갔어요. 전 세계의 개발자들 수만 명이 모여 컨퍼런스를 여는데, 당장 수익 증진에는 거리가 먼 주제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그거를 저희 같은 부서에서 하는 게 아니라 개발자들이 나와서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노하우를 공유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특히 접근성 같은 경우에는, 게임이 대중적인 여가 매체로서 확산되어 가고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게임을 만드는 데 있어 과연 다양한 배경을 가진 플레이어들을 직접 만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사람들이 원하는 걸 어떻게 청취하고 있는가’를 보았을 때 상당히 부족한 부분이 많더라고요. 우선적으로 장애를 가진 플레이어들이 그랬는데, GDC의 게임 접근성을 발표하는 스피커 분들은 실제로 장애를 가지고 있는 당사자들이었어요. 그리고 회사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고용하거나 커뮤니티를 연계해서 장애 당사자들의 피드백을 청취하는 채널이 있더라고요. 근데 우리는 회사에는 그게 부족하니까, ‘이 일은 우리가 해야 되는 일이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해야 될까를 고민하다가 직접 사용자를 고용하는 게 가장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장애인 게임 테스터 고용과 관련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실제로 고용 기회가 많았었나요? 이경진 실장: 오히려 그 지점에서 (직접 사용자를 고용할) 기회가 많았어요. 예를 들어, 저희 접근성 테스터 중 선천적으로 청각장애가 있는 분이 계신데, 그 분은 여섯 살 때까지 말을 못하다가 보청기를 사용하면서 말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경우였어요. 이 친구에겐 게임이 친구였고 삶 그 자체였더라구요. 비장애인들은 게임 업계에 종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게 많잖아요. 이렇게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제) 장애인의 비율만큼이라도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 기회가 더 있어야 되는 게 상식적이지 않나 싶었어요. 일례로 (보수적으로) 인구의 5%가 장애인이라고 계산했을 때 그 비율만큼의 우리 게임에 연결된 직업도 있어야 하고 그걸 원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해서 직업 공고를 낸 거죠. 이 기회에 고용을 통해 제대로 된 직업을 만들어서 (장애인 게임인력을) 전문적으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처음 시작할 때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저희의 의도나 배경을 자세히 설명했고 고용공단에서도 이걸 굉장히 의미 있게 받아들였어요. 왜냐하면 장애인 전형으로 나오는 일반 직업들은 거의 ‘네일 아트’라든지 ‘세차’라든지, 특정 산업에서 만들어내는 생산품과는 거리가 먼 서비스 관련 직업들이 많았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고용공단에서) 이거는 새로운 케이스고, 한국 게임 업계에서 적어도 이 판교 지역에서는 더 퍼져나갔으면 좋겠다고 해서 지원을 정말 많이 해주셨어요. 덕분에 저희 공고에도 막판에 지원자가 많이 들어왔어요. 면접을 보게 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로 게임을 꼽고 그걸 직업으로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었구나. 근데 그동안 기회가 없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제가 아까 말씀드린 청각장애인 테스터 친구를 오늘 만났는데 문득 이런 얘기를 하더라구요. 자기는 이 직업이 아니었으면 자기가 좋아하는 게임으로 깊게 고민을 하고 일로서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걸 생각조차 못했을 것 같다고. 이경혁 편집장: 접근성과 다양성 문제를 세팅하는 과정에 있어, 말씀하신 것처럼 회사에서는 의무적으로 해야 되는 부분도 있을 거고 사회 환원의 목적도 있지만 동시에 그냥 비즈니스의 확장이라 볼 수도 있잖아요. 조금 어려운 질문일수도 있겠습니다만, 회사 입장에서도 여러 목적이 있었을 텐데, 혹 시장적인 목적과 윤리나 도덕적 목적 두 가지로 이원화를 한다면 어느 쪽이 더 비중이 크다고 보세요? 이경진 실장: 굉장히 좋은 질문을 해주셨어요. 그런데 저도 처음에 이 가설을 가슴에 품었을 때는 사회적인 가치 추구라는 목적에 무난하게 부합하는 일이라고만 생각을 했었어요. 근데 (테스터들이) 게임을 사랑하는 유저이기도 하기 때문에, 게임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살펴보며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자에게 피드백과 리포트를 주는데, 거기서 도움이 된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어요. 결국에는 접근성 테스터들이 게임 콘텐츠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봅니다. 게임을 한 손으로 플레이하는 사람, 발가락으로 플레이하는 사람, 눈으로만 플레이하는 사람 등 신체적 조건이 굉장히 다양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을 직접 만나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아야 디테일한 문제를 잡아갈 수 있고, 결국은 접근성이라는 게 출발은 ‘소수’에서 시작하지만 그게 도착하는 곳은 ‘다수’이거든요. 그래서 ‘접근성이란 결국은 다수를 위한 품질 향상에 기여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해요. 품질 향상은 더 많은 유저들을 끌어올 수 있는 디딤돌이 되는 거고요. 이경혁 편집장: 접근성과 관련된 업무는 게임 개발보다는 테스터 쪽에 주로 방점이 찍히는 것이지요? 이경진 실장: 맞아요. 게임 내 문제를 발견하는 데 방점이 있어요. 계속 여러 게임을 테스트하면서 접근성의 맥락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발견하고, 그 문제가 강하게 보이면 보고하고요. 그리고 다른 유사한 장르 게임을 많이 플레이 하다 보니 ‘이 장르의 어떤 게임은 어떤 요소로 색각이상자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데 이 게임은 그걸 못하고 있다’ 라는 식으로 피드백하기도 해요. 그리고 청각장애 같은 경우에는 청각적 요소를 시각화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모든 소리를 시각적인 정보로 표현해 놓으면 게임을 하는 데 장애가 대부분 없어지거든요. UX/UI 디자인적으로 청각 정보를 어떻게 시각화한 여러 레퍼런스 (사례) 들은 게임 디자인시 도움이 많이 되는 부분이죠. 이경혁 편집장: 사실 그런 부분은 어떤 특정 장애의 문제가 아니라, 지하철에서 소리를 꺼놓고 게임할 때 발견할 수 있는 문제점 쪽으로도 확장될 수 있는 것 같구요. 제가 자주 하는 얘기가 ‘저상버스가 들어오면 우리 엄마 무릎이 편하다’거든요. 말씀하신 것처럼 접근성이 모두를 위한 보편성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아까 말씀주셨듯 테스터 쪽에는 소위 말하는 당사자성을 가진 테스터들이 들어오면서 이런 접근성의 문제를 보기 시작하신 거네요. 그러면 개발 부서에서는 접근성 테스터들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뭔가 변화했다라는 느낌을 받으셨을까요? 이경진 실장: 저도 사실 그게 가장 걱정됐었어요. 개발 부서의 경우 제한된 인력과 시간 때문에 (접근성 문제가) 우선순위에 밀릴 수도 있고, 개발하는 단계에서 사실은 버그 하나 더 잡는 게 맞다고 생각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처음에 이 얘기를 꺼내기가 힘들었는데, 지금은 접근성 문제가 어느 정도 인지가 된 것 같아요. 신작 개발하시는 부서에서, 우리 게임이 글로벌 유저한테 다가가려면 접근성 문제 파악이 필요할 것 같아서 접근성 리뷰를 요청드리고 싶다고 얘기를 하셨어요. 글로벌 서비스 개발 조직에 있는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면 ‘접근성 문제 때문에 우리 이거 몇 번이나 뒤집었다’ 이런 얘기들도 하고, 그래서 이제는 산업에서도 진짜 필요성을 느끼는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이런 문화가 아예 없었다가 어느 정도 정착되었다라고 했을 때,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까요? 이경진 실장: 우리가 테스터를 1월에 뽑아서 처음 접근성 리뷰 공유회를 연 게 6월이었거든요. 당시 개발자들도 많이 오셨는데, 한 팀장님께서 자기가 십수 년 동안 게임 개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이 관점에서 생각을 해보지 못했는데, 오늘 이런 관점의 필요성을 너무 느꼈고 앞으로 개발할 때 고려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대요. 개발자에게 직접 실제 적용에 대한 피드백을 듣기까지 1년 반 정도 걸렸네요. 접근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잡는데 걸린 시간인 것 같아요. 개발팀 미팅 단계에서 누군가 ‘우리 이거 접근성 측면에서 괜찮을까요’라고 말할 수 있거나, 전체 게임 개발을 리드하시는 분이 ‘이거 접근성도 고려해 보세요’라고 언급하는 단계까지요. 이경혁 편집장: 1년 반 정도 작업한 결과 그래도 이제는 성과가 나는 것 같다는 것이군요. 예상하신 만큼의 시간인가요? 저는 이 인터뷰를 다른 게임사의 관련 부서들이 좀 고려했으면 싶어서요. 선행 부서가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를 알면 대략의 가이드라인을 가져가기 쉽지 않을까, 그런 느낌으로 여쭤보는 거거든요. 이경진 실장: 저는 솔직히 생각보다 조금 빨랐어요. 아무래도 <스마일게이트> 구성원들에 이 문제에 관심도가 높으신 분들이 꽤 있어서인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또 궁금한 게, 얼마 전에 접근성 기기 전시회도 여셨지만 사실 <스마일게이트>가 하드웨어를 제작하는 회사는 또 아니지 않습니까? 근데 많은 경우에 접근성은 하드웨어 문제에 부딪히는 경우도 있잖아요. 접근성을 담당하시는 부서 입장에서 생각하시는 ‘여기까지는 가야 한다’는 수준이 있을 텐데, 소프트웨어 쪽이다 보니 우리 회사의 영역이 아닌 부분도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혹시 그런 케이스도 많이 겪어보시나요? 이경진 실장: 저희는 지금 저희가 통제 가능한 부분들에 집중을 하고 있다 보니 직접적으로 그런 상황을 겪지는 않았는데요. 그런데 보조기기가 시중에 나와 있는 곳들이 꽤 있어요. 경기도 재활공학센터와 저희가 더 긴밀하게 소통을 하고 있어 접근성 보조기기 전시도 가능했었던 거구요. 그리고 보조기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직접 더 많이 만나야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더 찾아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원데이 패널 프로그램을 통해 게임 유저들 중 보조기기 사용하시는 분들을 초청해서 만나려고 하고 있는데 아직은 이 풀(pool)이 너무 적은 상황이에요. 이경혁 편집장: 게임 회사가 아무리 스스로 접근성을 더 갖추고 싶다 하더라도 그런 기기 인프라가 없다면 어쩔 수 없는 영역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한편으로 지금 하시는 작업이 어떻게 보면 사내에서 소위 말하는 프로세스를 바꾸는 작업 이상으로 대외적으로 협업 혹은 협력을 만들어가는 과정일거고, 그런 차원에서 중요하지 않나 싶어서요. 이경진 실장: 맞아요. 접근성에 대한 저변확대를 위해 중요하다고 봐요. 그래서 저희가 경기도재활공학센터와 지금 논의하고 있는 건, 현재 센터에 장애인 유저가 대략 1천 명 정도 이용하시는 센터에 50평 정도의 공간이 있거든요. 거기에 이 책 수익금을 활용해서 컴퓨터 및 보조기기를 셋업하고, 장애인 유저들이 항시 플레이 할 수 있는 ‘게임 플레이 랩’, ‘게임 리빙룸’ 개념으로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굉장히 재밌는 얘기를 해 주셨는데요, 책을 팔아서 수익이 나셨다고 하셨습니다. 요즘 책 팔아서 수익 내기가 쉽지가 않거든요. 근데 그래도 좀 유의미한 판매가 난 것 같습니다. 이경진 실장: 수익 자체는 일단 저희가 수익을 바랐던 게 아니어서 특별히 기대하지는 않았어요. 책을 내려고 했었던 거는 사실 뭔가를 처음 할 때는 언어가 없잖아요. 이걸 뭐라고 명명을 하고 이런 콘셉트 자체를 뭐라고 명료하게 표현을 해야 될지를 모르는데, 그걸 언어로 표현을 해 놓으면 이 가치가 좀 더 확산되고 이게 뭔지를 모르는 사람들한테 우선 인식하는데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어떻게 보면 첫 발자국을 찍는다는 차원에서 책을 낸 것이었어요. 최대한 우리가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언어를 만들고, 그 다음에 더 노력을 해서 또 버전업을 해내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내게 된 거죠. 이경혁 편집장: 이번에 내신 책도 약간 연작의 일환이라 보면 될까요? 혹 그렇다면 3권과 4권에 대해서 플랜을 듣고 싶은데요. 이경진 실장: 네, 이번 책을 보시면 시리즈 개념으로 넘버링이 되어 있거든요. 3권, 4권에 대한 플랜은 아직 구체적으로 나와 있는 건 없지만, 저희가 했었던 것들이 좀 쌓이면 저희들의 내부적인 사례를 좀 더 많이 얘기 해볼까 합니다. 게임 접근성 단행본의 3챕터에 저희 사례가 좀 들어가 있거든요. 앞으로도 저희의 행보에 대한 기록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어요. 책 말고도 교육 영상을 만든 게 있어요. <다양한 플레이어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방식, 포용적 게임 디자인> 인데요. 이건 게임에 국한해서 게임 개발자들을 위해서 만든 영상으로 된 교육 콘텐츠에요. 현재는 사내에서 교육 영상을 확산하는 단계에 있고, 앞으로는 대학 및 산업 기관을 중심으로 미래의 게임 창작자들을 대상으로 확산시키려는 계획이에요, 필요성에 공감하는 기관들과 업무 협약을 맺어서 저희가 무료로 콘텐츠를 공급하고 대학에서 실습 등을 통해 이런 것들을 다뤄주는 형태를 생각하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이건 좀 사적인 질문일 수도 있는데, 다양성과 포용성 관련하여 교육할 수 있는 역량이 지금 준비가 되어 있는 상황일까요? 이경진 실장: 다양성, 포용성 문제가 사실 전통적인 패러다임의 결은 아니잖아요. 이 주제로 커리큘럼을 다루고 실습을 연계하고자 하는 국내 교육기관(대학) 이나 학회와의 협력을 생각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학회에서 <포용적 게임 디자인> 교육 콘텐츠를 토론을 위한 기초 지식으로 활용하고 해외 연사들을 초대하여 컨퍼런스를 여는 것은 가능할 것 같아요. 이 작업을 처음 할 때 미국의 비영리 게임접근성 교육기관인 <에이블게이머즈>의 전문가들, 그리고 인클루시브 게임 디자인 관련된 해외 전문가들과 협업을 했었는데 그런 분들을 초청해서 전문 포럼을 여는 거죠. 이렇게 학회나 콘텐츠 산업 쪽과 같이 만들어 나가는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저는 계속 이 작업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결국 이거는 하나의 회사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번에 접근성 전시 때도 놀랐던 게, 소위 말하는 범-회사에서 담당자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오시기도 하셨잖아요. 그러한 움직임이 지금은 좀 어떤가요? 이경진 실장: 해외의 경우 페어 플레이 얼라이언스(Fair Play Alliance) 같이 게임사들과 플레이어들이 같이 모여서 우리가 게임 산업과 플레이어들을 더 많이 늘리기 위해 어떻게 같이 서로 돕고 시장 자체를 키울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같이 하거든요. 한국에서도 서로 활발히 소통하며 교류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이경혁 편집장: 저도 전문 프로그래머는 아니지만, 사실 많은 IT들이 어떤 표준을 세팅하는 과정을 보면 보통 국제포럼을 통해 하나의 기술을 어떻게 표준으로 받아들일 것인지를 공동으로 발의하고 통과시키는 과정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접근성 쪽이 그런 국제적 협업 과정이 되게 필요하다고 보는데요. 미국 같은 경우도 미국에서 쓰는 접근성 가이드가 있고 그것을 보편화하려고 노력하지만, 희한하게 그런 것들이 국제적인 협업으로는 잘 안 나온다는 이상한 느낌이 있지요. 다른 IT 기술 표준들은 그렇게 작동을 하는데 왜 접근성 문제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경진 실장: 저도 그 생각을 되게 많이 했는데요. 일단 북미 차원에서는 이 흐름을 주도하고 협력하는 모습들이 보이는데 유독 아시아 시장과는 커넥션이 되게 약해요. 아시아 게임 시장이 굉장히 급속도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커넥션이 많이 약해서, 근데 이제는 좀 달라지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저희가 게임 접근성을 다루고 있어서 그런지 사내에서 관심 있는 개발자들이 예전보다는 좀 많아졌다는 걸 느껴요. 프론트엔드 개발자인데 이런 가치에 자기가 공감을 해서 더 공부하고 싶다던지, 개인적으로 관심을 알려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사실 그런 분들 한두 분씩 보면서 이걸 멈추지 않고 꾸준히 해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죠. 이경혁 편집장: 회사가 이 정도의 의지를 갖고 이만큼 추진을 한 거고, 성과도 난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공공은 어떤가 궁금해요. 지금 공공과 협업을 많이 하시는 것 같은데, 사실 정부에서 좀더 관심을 갖고 뭔가 더 지원하면 정부의 입장에서도 성과일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이경진 실장: 접근성 문제와 관련된 노력을 보인 게임사 대상 세액 공제 지원 정책 필요성에 대한 컨퍼런스가 지난달에 열렸었어요. 게임 접근성은 다른 콘텐츠에 비해 기술적 의존도와 난이도가 높아, 민간 업계의 주도적인 참여 없이는 공공 영역에서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고 추진하는 움직임이에요. 게임 접근성 필요성에 대한 담론은 이미 많이 이루어졌다고 보고, 공공 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다루는 움직임이라 이제는 속도가 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희는 공공에서도 실제 기업들을 움직여야 된다는 걸 인지를 하셨구나 싶어 반가웠어요. 민간을 움직이지 않으면 이게 안 되는 거라는 거를 인지를 하고, 민간을 어떻게 움직이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구나라고 느꼈었거든요. 이경혁 편집장: 저는 앞으로 각 게임사에 접근성과 다양성 관련 부서들이 더 생길 수 있을거라고 전망하고 있는데요. 사내에서 개별적으로 움직여 만드는 경우도 있겠지만, 한국 안에서 일종의 연합체 같은 형태로 나타나는 게 유의미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가끔 그런 협회들이 무의미하게 공회전하는 경우도 있다 보니 이런 질문을 드리게 됩니다. 특히 회사 단위를 넘어 좀 초월적인 협력이 필요할 때 동력을 만들 수 있는 외부 기관의 존재 필요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이경진 실장 :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보태면 좋긴 한데, 거기서 빠지면 안 되는 그룹이 개발자라고 생각해요. 실제 소비자에게 닿을 수 있는, 그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협력의 주축이 돼야 한다고 봐요. 실리콘밸리를 보면 개발자들이 자발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꺼내고 다양한 배경의 전문가들과 논의하면서 혁신이 만들어지잖아요. 그런 식으로, 저희도 접근성이라는 문제의식을 가진 개발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이 문제에 대해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확산시킨다면 공회전 가능성이 좀더 낮지 않을까 생각이 들고요. 저희의 경우 아까 말씀드린 사내 접근성 공유회를 주축으로 해서, 접근성 문제에 대해서 얘기하고 같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내 전문가들이 모이는 커뮤니티 형태로 점점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에요. 이경혁 편집장: 어떻게 보면 당사자성을 가진 사람의 게임 개발이라는 게 더 늘어나는 게 최적이겠죠. 그런데 장애를 가진 사람이 게임 개발을 하는 것 또한 그것도 일종의 학습 루트가 필요한 과정인데, 거기에 접근하는 것만 해도 사실은 지금 문제잖아요. 장애가 있지만 게임 개발을 하고 싶고 뭔가를 배우고 싶은데, 거기서만 나올 수 있는 접근성의 문제도 저는 클 거라고 생각해요. 이경진 실장: 맞아요. 당사자성이 있는 개발자들이 더 많아지는 게 저희가 보고 싶은 그림이기도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게임 접근성 테스터라는 직무 타이틀을 만들었지만, 이 일을 하다가 기획을 하고 싶거나 코딩을 배워서 개발 직무를 하고 싶다면 할 수 있게끔 지원하는게 맞다고 생각해요. 장애에 구애 없이 모두가 성장하는 문화가 정착되면 그간 한 번도 협업하지 않았던 유형의 사람들과 협업이 늘어나게 되고 이건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는 자원이 될 수 있어요.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오버랩 되어야 다름이 교차하는 시점에서 혁신이라는 게 일어나고 문제가 발견이 되거든요. 그 교차점까지 데려다 주는 게 저희의 역할인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자꾸 제가 초회사적인 기구의 필요성을 생각하는 게 그 지점이거든요. 결국 개발자 양성을 어떤 특정 회사만이 해결할 문제는 아닌데 그거를 (기업) 밖에서 누가 추진할 수 있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좀 들어서요. 예를 들어 각종 게임 교육 기관들이 있는데 거기에 일정 수준의 장애인 TO를 만든다거나, 아니면 교육 환경 분야에서 애초에 접근성 문제가 해결된 개발 환경을 구축하고 거기에 적응할 수 있는 사람들을 채용하는 등의 방안은 제가 알기로는 아직 그렇게 준비가 안 된 걸로 알고 있어서요.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이 문제의 판을 좀 더 키우려면 협의체가 필요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경진 실장 : 그것도 이 토양을 만드는 데 한 몫할 수 있겠죠. 저희는 사실 그래서 접근성 문제에 그간 관심이 없었는데 듣고 보니 필요하더라, 그러고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작은 것이지만 이거더라, 하고 느끼는 사람이 늘어나도록 노력하는게 목표입니다. 접근성 측면에서 한번 더 고민을 해봐야 되겠다라는 인식이 생기고, 개발 미팅에서도 이 언어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나와주겠죠. 그리고 사실 한국에서는 이 (접근성 문제를 수용하는) 속도가 어떻게 보면 되게 빠를 거라고도 생각하는데요, (해외에서 이슈가 되는 문제를) 따라잡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우수한 점이 있으니까 시동만 걸리면 우리가 정말 잘할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해요. 이경혁 편집장: 저는 매번 실장님 하시는 거 보고 뿌듯한 것도 있고, 한편으론 이걸 하면서 얼마나 고생이실까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그 중의 한 부분이 다양성 부분에 있어요. '접근성'하고 '다양성'은 또 조금 온도가 다르거든요. 다양성을 다루는 데 있어서 한국의 현장에서 느끼는 온도에 대해서 해주실 말씀이 있으세요? 이경진 실장: 네, 접근성과 다양성은 많이 다르죠. 우선, 접근성에 비해 다양성을 해석하는 관점은 다양합니다. 그래서 일단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대해서 매우 존중하고, 다양한 해석은 본인의 경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떤 경험을 했느냐가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결정한다고 봐요. 사실 어려운 얘기긴 한데, 너무 사상적인 내용이 주입이 되어서 실패한 게임들이 있잖아요. 게임이 재미가 본질이여야 하는데, 그 부분이 약한데 개연성이 부족한 채로 사회적 메시지를 강하게 넣으면 이슈로 번지는 케이스가 많았어요. 그래서 다양성과 게임의 성공여부는 연관성은 있지만 인과성으로 보긴 어려워요. 게임의 본질인 재미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으니까요. 거기서 좀 더 그 재미라는 요소를 한 유형으로 환원하지 말고, 즉 주류 플레이어들에게만 집중하지 말고,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있다는 거를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다양성을 다룰 때에는 글로벌 협업이든 당사자 협업이든 당사자성이 있는 사람들, 전문가들이랑 직접 협업을 하는 게 되게 중요하고 이게 약했을 때는 역효과가 있다고 봐요. 이경혁 편집장: 저희 GG에도 가끔 캐나다 연구자들이 기고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한국에 <스마일게이트> 하면 뭐가 떠오르냐 물어보니 보통 소위 말하는 'K-게임'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구요. 어떻게 보면 현재 서비스되는 게임들이 지금 로컬라이제이션이 얼마나 되고 있는지의 문제도 저는 산업적 의미에서의 다양성 문제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이번 접근성과 다양성 작업을 하시면서 사실 그런 부분에서 좀 실무적인 문제들도 많이 보시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이경진 실장: 일단 게임을 만들고 원 빌드로 글로벌하게 배포하면 효율성 측면에서 좋긴 해요. 대부분은 유니버셜하게 통용되긴 하지만 지역별로 특정 문화권의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요소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그런 부분들을 저희 책에 담기도 했고, 그래서 그렇게 특정 사람들이 불편해할 수 있는 요소들은 꼭 로컬라이제이션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피해야 할 것도 있지만 오히려 역으로 이용해서 마케팅 요소로 활용하는 부분들도 있어요.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 지역에서 선호하고 공감하는 요소를 활용하는 거죠. 이걸 잘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많이 내고 검증하는 절차가 꼭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 점에서 글로벌 프랜차이즈가 있는 회사 같은 경우 굉장히 유리하죠. 예를 들어 게임에서 일본 캐릭터를 묘사한다면 일본 오피스에 있는 동료들한테 의견을 구하면 되고, 한국 캐릭터를 구현한다면 한국에 연결해서 그 자원을 활용하면 되니까. 국내 인력 중심으로 운영하는 회사 같은 경우에 글로벌한 다양성 협업을 위한 내부 자원의 활용 면에서 글로벌 회사에 비해서 불리할 수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이제부터가 조금 어려운 이야기가 될 수 있겠는데요, 사실 지역에 대한 다양성은 쉽지만 오히려 젠더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 복잡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얘기는 좀 해봐야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젠더 문제에 대한 내외부의 반응은 어떤가요? 이경진 실장: 직접적으로 그 문제를 언급하는 사람들은 없지만, 인터넷 게시판에서 분쟁이나 토론이 나오는 등 시행착오를 겪기는 했어요. 지금에 와서는 담담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게, 다양성과 관련된 담론과 언어들을 얘기했을 때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분명히 극단적으로 싫어하거나 고개를 젓는 사람들도 있더라는 거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 양 극단을 제가 보는 것은 다양성 문제에 있어 어느 정도의 밸런스를 조정해야 되는지를 배우는 데 굉장히 큰 학습이었다고 생각해요. 이경혁 편집장: 사실 이것도 결국 스펙트럼의 문제라 할 수 있겠는데, 이런 반응이 양쪽에서 동시에 나오는 상황이었다는 거죠. 이경진 실장: 그렇지만 저는 정말 극단적으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도 서로에 대해서 더 알아보는 합리적인 대화가 가능하다는 걸 좀 느꼈거든요. 사실 우리가 단순하게 구체성이 없이 서로 싫어하는 게 많았었기 때문에 한번 얘기를 해보자. 뭐가 싫으냐 이게 싫다. 그럼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같이 따져보면서 얘기를 해보니까 대화가 되더라는 거죠.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서 저는 균형을 잡는 게 굉장히 어렵지만 되게 필요하고 노력을 해야 되는 부분이라는 걸 많이 느꼈어요. 이경혁 편집장: 그게 근데 너무 힘들잖아요. 모든 일 중에 제일 힘든 게 그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심지어 내가 어떤 노력을 한다 해도 그 결과가 이렇게 즉각적으로 돌아오는 것도 아닌 거라고 생각을 해서요. 이경진 실장: 그래서 저도 처음에는 저와 생각이 많이 다른 게이머들을 만날 때 무서웠지만, 그렇기 때문에 많이 만나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얘기를 해봤어요. 실제로 만나니 너무 흥미로운 대화를 했던 기억이 있고요, 그렇게 만나고 그렇게 교차점을 만들어내는 게 필요하구나. 그리고 웬만하면 좀더 실질적인 것을 가지고 얘기를 하려고 해요. 단순히 떠도는 관념적인 것들에서 벗어나서 뭐라도 책이라도 하나 만들고 게임이라도 하나 만들고, 실체가 있는 걸로 만들어서 대화를 하려고 하죠. 제 경우 예전에 일했던 산업하고도 환경이 다르다 보니 되게 조심하고 한마디라도 더 물어보게 되고 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그런 상황을 보니 어떻게든 더 많은 게임사들이 이 얘기를 같이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사실 또 게이머 정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보니, 남들이 게이머를 획일적으로 보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또 기분이 나빴던 사람이기도 하거든요. 사실 게이머들도 (다양성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스테레오 타입에 갇혀 있는 거고, 사실 저는 이 다양성 얘기가 게이머의 다양성 문제로도 갈 수밖에 없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이경진 실장: 제가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지금 말씀해 주셨어요. 이런 사람도 게이머고 저런 사람도 게이머고, 아직 게임을 하지 않은 사람들도 게이머가 될 수 있다라고 확장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우리가 대중 문화로서의 게임의 위상을 스스로 높이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에버랜드에서도 ‘게임문화축제’라고 해서 게임 IP를 가지고 행사를 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게임이 굉장히 대중적인 매체가 되어서 놀이공원에 아이들하고 함께 가서 즐길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된 거잖아요. 그렇다면 게이머라고 했을 때도 게이머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는 게 앞으로 수익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마인드셋이라고 생각해요. 이경혁 편집장: 게임이니까 할 수 있는 다양성이 오히려 더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면 영화가 못하는 다양성이 있을 거고, 근데 그런 것들이 어떻게 하면 게임사가 사람들로 하여금 이 다양성이 얼마나 매력적인가를 만들어내는 것도 게임 디자인의 굉장히 중요한 목표가 아닐까 싶고. 그래서 저는 다양성을 윤리로 보지 않으려 합니다. 이경진 실장: 맞아요. 규범적으로 바라보면 안 된다고 봐요. 하나의 바램이 있다면, 다양성을 얘기했을 때 ‘이거 PC 주입 아니야’라고 리액션이 나오는 사람이 적어지는 것(웃음). 나중에는 다양성의 가치는 이러이러한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자신의 관점에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발더스 게이트 3>을 보면 자유도가 엄청 높잖아요. 처음 설정 단계부터 민감한 부위에 대한 노출 여부, 외형에 대한 다양성 및 접근성에 대한 옵션들이 고도화 되어 있어요. 어떻게 보면 다양한 사람들이 원하는 취향의 폭을 최대한으로 구현을 해놨는데 게임에 이런 자유도가 있어서 좋다라는 평이 더 많았거든요. 다양성 이슈에서는 사실 그런 방향을 좀 더 추구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합니다. 사람마다 좋아하고 공감을 일으키는 아이템을 구매하는 욕구가 다 다르듯이, 게임 내 디자인적 요소들도 다양하게 표현하는 거죠. 창작의 자유와 다양성을 연결 시키면, 기업에서도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전략적으로 활용해서 성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수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변해가는 게임의 위상, 다큐의 관점도 변한다 - 〈하이스코어〉리뷰
2000년대 중반 이래 게임을 다루는 다큐 프로그램들이 간간이 등장해온 가운데 넷플릭스가 서비스 중인 〈하이스코어〉는 가장 최근에 출시된 게임 역사 다큐 프로그램이다. 큰 틀에서 볼 때 게임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주요 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게임 역사를 다룬 저술이나 다큐 프로그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그러한 가운데서도 이전까지 다뤄지지 않았던 부분들을 발굴한 점이 눈에 띈다. < Back 변해가는 게임의 위상, 다큐의 관점도 변한다 - 〈하이스코어〉리뷰 03 GG Vol. 21. 12. 10. 2000년대 중반 이래 게임을 다루는 다큐 프로그램들이 간간이 등장해온 가운데 넷플릭스가 서비스 중인 〈하이스코어〉는 가장 최근에 출시된 게임 역사 다큐 프로그램이다. 큰 틀에서 볼 때 게임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주요 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게임 역사를 다룬 저술이나 다큐 프로그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그러한 가운데서도 이전까지 다뤄지지 않았던 부분들을 발굴한 점이 눈에 띈다. 가장 먼저 이야기 할 만한 부분은 - ‘게임’만이 아니라 - ‘플레이’에도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 2000년대 들어와 본격화되는 게임에 대한 학술적 (특히 인문사회학적) 연구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게임의 특성은 ‘상호작용성’이었는데, 이는 디자이너들이 설계한 ‘게임’이 플레이어들의 ‘플레이’에 의해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었다. 일단 완결된 상태로 수용자들에게 제시되는 기존의 매체들과는 달리, 게임의 이와 같은 특성은 그것을 만든 사람의 의도와는 상이한 방식으로, 그러니까 그것을 플레이하는 사람의 의도나 취향에 따라 그 경험이 형성될 수 있도록 해준다. 이와 같은 (수용자의) ‘능동성’은 한동안 게임학 연구에 있어 주요 의제였으며 심지어는 ‘게임 세대론’이 등장하는 바탕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유독 게임의 역사 연구 분야에서는 ‘게임’에 한정되어 그 발전과정이 기술되어온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게임을 만든 개발자나 업체 또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 게임들의 개발과정 등에 초점을 맞추는 식이다. 나름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런 방식의 접근은 소위 ‘능동적’이라던 게이머들은 사라지고 소수의 천재적 개발자들이 내놓은 혁신적인 게임을 그저 열심히 소비하기만 하는 (수동적인) 게임 소비자들만 남게 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하이스코어〉 1편부터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개발한 니시카도 토모히로와 1980년 아타리배 전국 게임대회 챔피언 리베카 하이네먼을 병치시킨 것은, 그래서 눈여겨 볼 만하다. 게임을 만들어낸 개발자조차 불가능한 게이머들의 엄청난 플레이가 게임의 디자인만이 아니라 그 플레이 또한 뛰어난 창의성과 혁신의 산물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기존의 논의에서 게이머의 능동성은 대체로 모드나 머시니마 등 플레이 너머의 (생산적) 측면에 초점을 맞춰 왔는데, 사실 게임의 ‘플레이’ 자체가 단순한 소비 행위가 아니라 능동적인 창조 행위였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따른다면 플레이어들의 이와 같은 창의성이야말로 e스포츠가 발원할 수 있었던 근간이라 할 만한데, 기존 e스포츠 담론에서 이러한 측면은 소외되어온 감이 있다. 〈하이스코어〉에서 e스포츠는 메인 주제가 아니지만, 게임의 발전과정에 있어 ‘플레이’의 측면을 적극적으로 발굴함으로써 현재 산업적 측면에 치중되어있는 e스포츠 담론에서 향후 하나의 문화로서 e스포츠의 방향성을 고민할 수 있는 시사점으로 삼을 만한 지점이다. * 아타리 전국 게임대회 챔피언 출신인 리베카 하이네먼의 등장은 게임이용자라는 플레이의 또다른 한 축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깊다. 이미지: 넷플릭스 또 하나 〈하이스코어〉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다양성’이다. 게임은 전통적으로 산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젊은 (백인) 이성애자 남성’이라는 꽤나 균질한 집단적 속성을 지닌 것으로 여겨져 왔으며, 이는 최근 몇 년간 게임계에서 PC(정치적 올바름) 운동이 화두가 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균질성의 신화는 성장기 때 게임을 즐기던 게이머들이 업계에 입문하는 특성상 또래들과 게임을 즐기던 남성 청소년 중심의 하위문화적 특성이나 취향이 업계에도 고스란히 전이되면서 형성된 것인데, 게임을 플레이하는 집단이 다양해지면서 그와 같은 문화적 속성을 공유하지 않는 타 게이머들과 마찰을 겪으면서 갈등이 상당히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점에서 〈하이스코어〉가 게임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잊혀져 있던 최초의 카트리지 교환형 콘솔 채널F의 개발자 제리 로슨을 조망한 것은 눈여겨 볼 만한 부분이다. 채널F가 개발되었던 7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흔치 않았던 유색 인종으로서 초기 게임산업의 발전 과정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 그 오래된 신화에 균열을 가하기 때문이다. 사망한 인물이라 자세한 인터뷰를 담을 수 없었던 점은 아쉽지만 - 이미 많이 늦었다는 방증이겠다 - 채널F처럼 게임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콘솔의 개발자가 이처럼 까맣게 잊혀져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게임의 역사적 발전과정 속에서 그처럼 묻혀져 있을 다양한 사람들의 존재를 예상할 수 있다. 우리는 아직 모르고 있지만 그들의 유산은 게임의 발전과정 안에 오롯이 녹아있을 것이며, 그것을 발굴해낸다면 게임의 문화적 가치와 의미는 또 얼마나 풍성해질지 가늠해볼 수 있는 지점이다. * 채널 F의 개발자 제리 로슨을 향한 조명은 이 다큐가 게임산업 발전사 속에서 소외되는 누군가를 잊지 않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다. 이미지: 넷플릭스 EA의 간판 스포츠게임 〈매든 NFL〉 시리즈의 열혈팬으로서 후에 EA에 입사하여 〈매든 NFL 95〉에 사상 최초로 흑인 캐릭터를 등장시킨 흑인 남성 동성애자 게이머(이자 개발자) 고든 벨라미의 이야기 또한 게임 역사 내 다양성에 대한 화두를 이끌어낸다. “세상의 규칙이 다르게 적용된다”는 것을 평생 체감하며 살아가는 소수자들에게 있어 “모두에게 공평한 규칙이 적용되는” 게임의 세계란 그저 한낱 게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벨라미의 이야기는, 게임 문화 내 다양성이 지니는 중요성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준다. 게임 캐릭터의 짙은 피부는 물리적으로 화면 내 작은 픽셀들의 바뀐 색조합에 불과하지만, 그 작은 변화는 평생을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의 정당성을 위해 싸워야 하는 소수자들에게는 세상이 변화하고 있다는 (혹은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의 빛이란 것을. 물론 소수자들에 한해 게임이 정체성이나 의사 표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게임이 소수자들에게 중요한 소통과 표현의 수단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그것이 세상에 등장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매체였기 때문이라는 점은 생각해볼 만하다. 이미 주류의 취향과 가치관이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기성 매체와 달리, 젊은 매체는 비주류의 다양한 목소리들이 자유롭게 담길 수 있는 여지를 지니며, 그와 같은 개방성과 다양성에 기반한 ‘가능성들’이야말로 이 매체의 ‘젊음’이 지녔던 문화적 가치였던 것은 아닐까. 초기 인디 게임의 사례로서 미국 사회 내 동성애자 혐오 정서에 대항하는 패러디 게임 〈게이블레이드〉의 존재는 바로 그러한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단순한 오락물 그 이상의 어떤 것으로서의 가능성 말이다. 이처럼 게임의 ‘젊음’을 조망한 〈하이스코어〉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시절 게임의 산업과 문화를 이끌었던 주요 인물들의 노색이 완연한 모습은 역으로 게임의 ‘나이듦’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기도 했다. 이제는 현역에서 물러나 한 발 떨어진 위치에서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회상하는 그들의 모습은 그 시절 우리가 즐겨 플레이했던 게임, 그러니까 부모님과 선생님의 눈을 피해 짜릿하게 즐겼던 우리끼리의 그 오락이 더 이상 그 때의 그것이 아님을 새삼 일깨워준다. 게임이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우리가 고민해봐야 할 부분은 한 때 젊었던 게임이 지녔던 그 가능성들이 여전히 유효한지, 그렇지 않다면 어떤 다른 가능성과 가치를 지닐 수 있는지, 혹은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옳은 것인지 등이 아닐까? 다른 말로 바꾸자면 이 과거의 흔적 또는 유물들을 현재와 유기적으로 연결시키고 나아가 미래를 위한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것이다. 게임의 역사를 다루는 다큐로서 〈하이스코어〉에서 아쉬운 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기존에 다뤄지지 않았던 새로운 인물이나 사건을 발굴한 것은 주목할 만한 성과였지만, 그러한 발굴을 통해 새롭게 논의해 볼 수 있는 오늘날 게임의 가치나 의미를 끌어내는 데까지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놀런 부쉬넬, 니시카도 토모히로, 로베르타 윌리엄스, 존 로메로 등 기존 게임사의 주요 인물들과의 인터뷰 또한 기존의 게임사 다큐나 저술에서 이미 이야기했던 것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는데, 그들에게 과거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오늘날과 미래에 대해 지닌 견해를 물었다면 어땠을까? 그들이 꿈꾸고 가꿨던 그 게임이 오늘날의 게임과 얼마나 또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리하여 그 다름은 또 어떤 의미인 것인지와 같은 논의가 담겨 있었더라면, 과거에 비추어 오늘날을 돌아보고 미래를 고민하는 역사적 탐구의 궁극적인 목적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게임사를 다루는 저술이나 프로그램에서 으레 첫 장에 위치하는 놀런 부쉬넬을 맨 마지막에 배치함으로써 〈하이스코어〉는 게임의 역사가 곧 혁신의 역사라는 관점을 분명히 내비췄는데, 개인적으로는 2020년이라는 시점에 나온 게임 다큐로서 좀 안일한 (혹은 진부한) 관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의 역사가 정말로 재미를 좇는 혁신의 과정에만 한정된다면, 자동사냥이나 확률형 아이템 등이 디폴트화 되고 메타버스나 NFT, P2E 등이 대두하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러한 화두들이 북미에서는 한국 만큼 현안이 아니어서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서글프)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어쨌든 그러한 화두들이 결국엔 게임의 미래와 직결된 것들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재미를 좇는 혁신의 역사’라는 〈하이스코어〉를 비롯한 기존의 게임 역사 저술이나 다큐의 역사관에서 벗어난 작품이 나와주길 기대해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방치형게임, 누가 어떤 마음으로 운영할까? 〈어비스리움〉운영진 인터뷰
스마트폰이 상용화되면서 일상의 많은 것이 컴팩트해졌다. 손안의 기기는 지갑이 되기도 하고 영화를 찍는 촬영 장비가 되기도 한다. 게임 또한 스마트폰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다양한 갈래를 보이고 있는데, 방치형 게임이 그중 하나다. ‘지금부터 당신의 수족관이 시작됩니다.’라는 말과 함께 시작되는 〈어비스리움〉은 외로운 산호석이 친구를 찾아 힐링한다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아무것도 없던 산호석 주변에 각종 물고기와 산호가 늘어나는 모습은 한 사람의 사회적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느낌마저 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유저가 힘들여 움직이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 Back 방치형게임, 누가 어떤 마음으로 운영할까? 〈어비스리움〉운영진 인터뷰 03 GG Vol. 21. 12. 10. 스마트폰이 상용화되면서 일상의 많은 것이 컴팩트해졌다. 손안의 기기는 지갑이 되기도 하고 영화를 찍는 촬영 장비가 되기도 한다. 게임 또한 스마트폰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다양한 갈래를 보이고 있는데, 방치형 게임이 그중 하나다. ‘지금부터 당신의 수족관이 시작됩니다.’라는 말과 함께 시작되는 〈어비스리움〉은 외로운 산호석이 친구를 찾아 힐링한다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아무것도 없던 산호석 주변에 각종 물고기와 산호가 늘어나는 모습은 한 사람의 사회적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느낌마저 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유저가 힘들여 움직이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방치형 힐링 게임’이라는 타이틀로 세상에 나온 〈어비스리움〉. 〈어비스리움〉이 외로운 산호석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플레로게임즈의 최덕수 팀장, 장연정 사원과 이야기해보았다. Q. 〈어비스리움〉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나마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어비스리움〉은 올해 7월에 5주년을 맞은 게임입니다. 현재 시장에서 ‘힐링게임’이라는 키워드로 불리고 있고요. 성장 압박을 심하게 받지 않고 원할 때 켜두기만 해도 힐링 되는 형태의 게임이라고 많이들 얘기합니다. 서비스하는 입장에서는 힐링을 강요하기보다는 예쁘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게임이 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Q. ‘방치형 힐링 게임’이라는 게 나름 선구적인 포지션입니다. 회사나 직원의 관점에서 장기적으로 발전 가능하다는 확신이 있었는지요. A. 네. 회사 차원에서는 〈어비스리움〉을 하나의 IP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핀오프 작품도 이미 두 개 낸 상태고요. 앞으로도 내놓을 수 있을 거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 세계관을 확장해나갈 가능성을 계속해서 살피는 중이에요. Q. 콘텐츠로써의 게임은 이용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가 가장 중요할 것 같습니다. 5년 동안 고객들에게서 받은 피드백 중 기억에 남는 게 있을까요? A. SNS에 스크린샷 찍은 걸 포스팅해 주는 유저들이 종종 있어요. 하나같이 저희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예뻐서 항상 감탄하면서 보고 있습니다. 〈어비스리움〉 물고기 도감을 운영하는 유저들도 있는데 그 포스팅도 즐겁게 보고 있고요. 또, 대부분의 게임사가 그렇지만 저희는 매달 업데이트를 하거든요. 이 업데이트를 진행했을 때 꼭 예상을 뛰어넘는 유저들이 있어요. 한 달 치 콘텐츠를 준비했는데 세 시간 만에 완료한다던가.(웃음) 피드백이라고 말하기 어려울진 모르겠지만 유저들의 이런 플레이를 기쁘게 지켜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Q. 이번 호의 테마는 ‘보는 게임’입니다. 그 ‘보는 게임’ 안에서도 ‘방치형 게임’을 찾아오게 됐는데요, 〈어비스리움〉을 운영하시는 입장에서 ‘방치형 게임’은 뭐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A. 사실 〈어비스리움〉을 ‘유저들이 방치하도록 만들어야지’ 하고 운영하는 건 아닙니다. 물론 보는 즐거움을 위해 위젯처럼 시계가 나온다거나 하는 식으로 더 보기 좋게 만드는 건 있는데요, 따지고 보면 방치형 게임 전반의 플레이 스타일인 것 같아요. 우선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하나의 콘텐츠를 길게 늘여놓은 걸 ‘방치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장 폭 자체가 크진 않은데 숫자를 길게 늘여놓고 일종의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거죠. 그게 방치 게임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게임성이라고 봅니다. 별개로 〈어비스리움〉은 단순 방치에서 그치지 않는 형태의 콘텐츠들도 추가하는 중이에요. 그래서 방치형 게임 그 자체를 즐기는 유저들과 업데이트하고 세 시간 이내에 완수하는 유저들 모두에게 선택지를 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Q. ‘방치형 게임’이라는 단어를 사람마다 다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 같긴 합니다. 사실 ‘방치형 게임’은 소위 ‘진정한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로부터 공격받는 포지션이기도 하죠. ‘방치형 게임은 진정한 게임이 아니다’라는 의견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그들이 말하는 ‘진정한 게임’이라는 건 대부분 콘솔게임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그런 입장이거든요. 모순적이죠.(웃음) 이건 제 개인적인 경험인데, 굉장히 조작감이 많은 게임이 있었어요. 그런데 리텐션의 측면이라든가 매출 지표적인 측면에서 성적이 좋지는 않았어요. 고정 유저층이 있긴 했지만, 지금 모바일 게임에 요구되는 목소리는 그런 게 아닌 것 같았습니다. 조작하는 맛이 있는 게임을 바라는 유저와 아닌 걸 선호하는 유저가 양립하는 건 맞지만요. Q. 그럼 ‘진정한 게임’이라는 건 비판적인 목소리 크기 차원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네요. 그렇잖아도 저는 그게 항상 궁금했거든요. 왜 아직도 커뮤니티는 콘솔 쪽만 활발하고 모바일 게임 쪽은 아닌가. 혹시 이거에 관해 의견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A. 제가 게임 서비스하면서 그런 목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게임 조작하는 건 재밌는데 너무 피곤해.’ 그래서 원래 의도는 아니었지만, 오토 기능이나 한 번에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계속 넣을 수밖에 없었어요. 커뮤니티에서 의견이 잘 나오지 않는 건 그런 유저 경향도 다소 반영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Q. 그럼 질문을 확장해보죠. 예쁜 물고기들이 오가는 수족관을 디지털 액자처럼 보여줄 수 있는 뭔가가 있다고 상상해볼게요. 그러면 그것과 〈어비스리움〉은 어떤 차이를 갖고 있을까요? A. 내 폰 안에 들어있는 내 어비스리움은 내 고유의 아이디가 박혀있는 뭔가로 인지되는 것 같다고 생각해요. 유튜브 같은 데서 캡처된 캐릭터를 보여주는 것과 내 수조 안에 무언가를 넣는 건 또 다른 측면이거든요. 그래서 디지털 액자보다는 어비스리움 쪽이 ‘내 소유’라는 인식이 강하지 않나 싶어요. ‘이 게임 안에 들어가 있는 이 수조는 온전한 내 거다.’라는 전제가 깔리는 거죠. Q. 지금 말씀에서 어떤 힌트를 얻은 느낌이네요. ‘방치형’이라는 장르 안에는 ‘소유’라는 개념이 대단히 크게 들어가는 거 같습니다. A. 맞습니다. 그리고 방치형 게임이 예전에는 ‘스트레스 없는 빠른 성장’으로 많이 나왔는데 요즘 나오는 것들을 보면 주로 달고 있는 부제가 ‘키우기’예요. 그런 부분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걸 키운다.’라는 열망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남들이 보면 다 똑같은 캐릭터고 성장하는 폭도 같지만 다른 사람이 만렙을 찍은 것과 내가 찍은 건 다르니까요. Q. 말씀해주시는 중간에 ‘키우기’라는 키워드가 나왔어요. 어떻게 보면 게임 역사 속에서 ‘키우기’라는 건 전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무언가였죠. 그런데 ‘전투가 빠진 성장’이라고 하면 그게 무슨 재미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A. 전투를 통해 얻게 되는 건 결국 경험치라는 수치잖아요? 그 수치로 캐릭터 레벨업을 시키고 다른 무언가를 계속 달성해나가는 거고요. 저희 게임 같은 경우에는 전투는 빠졌지만 산호석이라는 캐릭터를 성장시킵니다. 그리고 이 산호석이 성장하면 ‘생명력’을 계속 뱉어내는데, 이 생명력은 RPG로 비유하자면 경험치나 재화랑 마찬가지예요. 그런 맥락에서 생명력은 곧 전투의 결과물과 같으니, 그게 ‘보는 게임’ 나름의 재미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성장’이라는 것도 파고들면 어려운 개념이죠. 많은 사람이 빠른 성장을 원하지만 정말로 빠르게 성장하면 할 게 없어지는 상황이 초래되기도 하고요. ‘어디서 어디까지가 적절한 성장인가’가 늘 애매한 것 같습니다. 실제 운영하시는 입장에서는 성장 밸런스를 어떻게 맞추려고 하시나요? A. 일단 성장이라는 것 자체가 PC 온라인 게임 시절이랑 많이 달라진 것 같긴 합니다. 예전에는 이렇게 극단적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게임이 없었거든요. 처음 자동 전투가 들어왔을 때도 ‘이게 무슨 재미야’라는 의견이 주류였는데 지금은 그걸 다 하고 있죠. 그래서 저희도 이 부분이 항상 숙제처럼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이게 단순히 저희 게임만의 문제도 아니고 또 모바일 게임만의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람마다 추구하는 재미 영역이 다르니까 느긋하게 방치형으로 즐기는 유저도, 업데이트 몇 시간 만에 확 크는 유저도 있는 거겠죠. 그 사이를 찾아서 모든 유저들이 업데이트 텀 동안 즐길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긴 한데, 유저들의 성향이 극단을 달리는 현상 자체는 어쩔 수 없는 추세 같습니다. Q.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볼게요. 〈어비스리움〉의 물고기들을 눌러보면 응원의 메시지가 나옵니다. 테이블 위 화초처럼 볼 수 있으면서도 응원의 메시지가 나오는, 이런 것들이 〈어비스리움〉이 추구하는 ‘힐링’이 아닐까 싶은데 혹시 ‘힐링’ 이외에도 특별히 전하고자 하는 게 있으신지요. A. 〈어비스리움〉 시리즈의 모든 스토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키워드가 우정과 애정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방치형이기에 힐링이다.’라는 걸 넘어서, 게임의 키워드 자체를 유저들에게 전달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푸시 메시지에서도 응원의 의미를 담으려 노력하고 있고요. Q. 듣다 보니 같은 힐링 계열이지만 게임과는 또 다른 영역인 명상 앱도 생각이 나네요. 〈어비스리움〉이 명상 앱과는 어떤 차이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A. 유저들이 게임을 즐겁게 플레이하는 것뿐만 아니라, 캐릭터들이 던지는 메시지를 통해서 어떤 위로 같은 걸 받길 원하고 있어요. 메시지를 작성하는 저희도 스스로를 위로하는 측면이 없잖아 있고요. ‘위로’라는 부분에서 어느 정도 차이를 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Q. 그러면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서, 아까 〈어비스리움〉이 디지털 액자 같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캔버스로 보면 또 어떤 시각일까요? 그러니까 미술 작품으로 이해해보면 어떠냐는 거죠. A. 이 게임이 미술 작품으로서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한다는 고민은 한 적이 없어 잘 모르겠습니다. ‘동세대에 같은 감성을 공유하는 제작진들이 스스로가 감동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구조다’ 정도로 답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작품적인 걸로 보자고 하면 너무 거창한 느낌이라. 그래도 굳이 이야기해보자면, ‘그냥 내 감정에 공감해주길 바라.’라고 무겁지 않은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해요. 커뮤니티에 글을 쓰는 것처럼요. 예술도 여러 종류 있겠지만, ‘미술’이라는 단어에 깔린 거창한 것들과는 확실히 거리가 느껴지긴 합니다. 물론 그런 식으로 해석 가능한 측면도 있겠지만 의도 자체는 동세대의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동세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게임인 게 크고요. 그렇게 해서 녹여낸 감성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거라 믿고 있습니다. Q. 〈어비스리움〉이 작품을 만드는 도구가 되는 거로 생각해보시는 건 어떠신지요. A. 그런 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샌드박스 같은 느낌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내가 힐링 받을 수 있는 물고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물고기를 꺼내놓고 그 풍경을 즐기는 걸 그런 식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Q. 그런 힐링을 ‘내가’ 이뤄냈다고 하는 게 핵심이 되는 것 같습니다. 미술을 할 줄 모르더라도 어느 정도 원하는 느낌을 낼 수 있고,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즐거움이 SNS 사진 공유를 하게 만드는 바탕이 되는 것 같고요. A. 네. 저희가 따로 안내는 안 했는데요, 사실 동일한 종류의 작은 물고기를 여러 마리 생성해두면 무리 지어 움직입니다. 그 풍경을 보면서 신기하다, 재밌다 하는 유저들도 많거든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도 그런 데서 나오는 게 아닐까 합니다. 이런 부분을 확장해서 보자면 말씀 해주신 거랑 같은 거죠. Q. 그런 물고기에 대해 다루려면 모든 제작진이 어류 도감 같은 레퍼런스를 많이 보시겠네요. A. 많이들 보고 있긴 합니다. 최근에는 범위를 넓혀서 포유류까지 보고 있습니다. Q. 도감 말고도 따로 특별히 참고한다거나 영감을 받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A. 저희가 매 업데이트 때마다 테마를 다르게 합니다. 그런데 이런 업데이트 콘텐츠를 꾸릴 때마다 참고할만한 데이터가 너무 없다는 것에 부딪히곤 해요. 업데이트가 잦은 편이다 보니 더 그렇죠. 그래서 어류 자체에만 집중하지 않고 매달 눈에 띄는 예쁜 거, 지금 트렌드가 되는 어류, 포유류, 새 같이 여러 가지를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방치형 게임’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짧게 짧게 플레이되던 기존의 게임들과는 다르게 느릿한 시간 속에서 느껴지는 안온한 감각도 있는 것 같고요. A. 키우기 게임의 경우에는 만렙이 되면 환생하거나 옷을 갈아입히는 것처럼 다음 단계로 넘어가잖아요? 그게 일반 RPG에서는 전투 한 번 끝난 거랑 마찬가지거든요. 다른 게임은 그런 식으로 하루면 끝날 걸 방치형은 며칠 더 늘여놨으니 기술적으로 방치될 수밖에 없죠. 그래도 그렇게 방치함으로써 느껴지는 어떤 편안함이 분명 존재하는듯합니다. 맞는 말씀 같아요. Q. 어떻게 보면 이 이야기는 현대인의 시간관, 놀이, 여가와 엮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방치 게임이 다른 놀이, 다른 게임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을 오히려 없애는 경향이 있지 않나 우려도 드네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저 게임을 플레이한다고 해서 방치형 게임을 하지 않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서로 다른 형태의 놀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제 경우에도 다른 게임을 하고 있어도 옆에서는 방치형 게임이 계속 돌아가고 있거든요. 다른 게임 하다가 죽으면 어비스리움 한 번 보고.(웃음) 그래서 이 둘은 완전한 별개의 놀이가 아닐까 합니다. 사람들한테 ‘너 온라인 게이머니, 모바일 게이머니, 콘솔 게이머니.’ 이런 식으로 물어본다면 적어도 두 개 이상은 말하지 않을까 싶고요. Q. 제가 모바일 게임 관련 인터뷰하면서 흥미롭게 본 게 있는데, 드라마를 보면서 게임을 병행하는 경우가 대다수더라고요. 드라마 시청 시간을 침범하지 않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바일 게임, 방치형 게임은 굉장히 안정적인 게임이 되는 것 같습니다. A. 아까도 한 이야기지만, 모바일 게임에 관해서 ‘무슨 게임 하는데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요.’라는 말을 종종 듣곤 합니다. 이게 다르게 표현하자면 ‘모바일 게임에 이 정도로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 ‘이 정도로 조작하고 싶지 않다.’일 수도 있거든요. 그 방면에서 방치형 게임이 요구하는 것과 패키지 게임이 요구하는 건 다를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모바일 게임에서 패키지 게임 같은 게임성을 요구하는 이들은 방치형 게임을 하지 않겠죠. 그 때문에 안정적이라는 인상이 드는 게 아닐까 싶어요. Q. 그럼 이제 마지막 질문을 던지면서 마무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어떤 게임을 만들고 싶으십니까. A. 장연정 사원: 〈어비스리움〉은 시간을 쪼개 짬짬이 플레이해 주시는 분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짧은 시간 안에서도 힐링이 될 수 있는 게임을 계속 만들어가고 싶고요. 〈어비스리움〉이 일상 속 작은 휴식 같은 게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최덕수 팀장: 개인적으로는 지금 〈어비스리움〉 시스템이 조금 복잡하지 않나 싶습니다. 구체화가 되어있는 건 아니지만 우선 고령자가 봤을 때 글자가 잘 보이도록 만들고 싶고요.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고 심플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만져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다흰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관해 관심 갖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모 온라인 게임에 복귀했습니다.
- 왜 한국 콘솔시장은 작을까? - 한국 콘솔게임에의 회상
8, 90년대에 성장한 게이머들은 아마 대부분 유사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결과 현재 한국 게임 시장에서 콘솔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다. 2020 게임백서에 따르면 4.5%인데, 사실상 명맥만 남았다고 볼 수 있는 아케이드 게임의 비율이 1.4%다. 북미의 38.4%와 유럽의 37.5%, 남미의 19.1%는 물론이고 2022년 세계 시장 비율인 25.2%와도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인다. 아시아 시장의 콘솔 게임 비율은 8.7%인데, 한국의 작은 콘솔 시장이 큰 몫을 했을 것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 반면 PC 게임과 모바일 게임은 아시아에서 각각 25.7%과 54.1%로 다른 권역에 비해 차이가 극명하다. < Back 왜 한국 콘솔시장은 작을까? - 한국 콘솔게임에의 회상 03 GG Vol. 21. 12. 10. 대충 초등학교 고학년 때인 90년대 초였던 것 같지만, 정확히 몇 년도였는지 불확실한 옛날 기억이 있다. 나에게 ‘게임기’가 생겼다. 아마 어떤 잡지에서 경품에 당첨되어 받았던 것 같다. 시대를 감안하면 어떤 기종인지 짐작할 수는 있지만, 짐작일 뿐이다. 기종 역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이 이렇게 흐릿한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그 게임기를 몇 번 만져보지 못했다. 롬팩도 게임 모음집 하나가 있었거나 아예 없어서 내장 롬의 미니게임뿐이었다. 이유는 당연히 부모님 때문이었다. 사용권을 빼앗긴 것은 아니었지만, 새 롬팩을 사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고, 집의 TV에 그 게임기를 연결하는 행위 자체로도 눈길이 곱지 않았다. 게다가 단자가 무엇인지, 선은 왜 이리 많은지, 아무런 개념조차 잡혀 있지 않았던 내게는 연결 방법을 알려줄 어른이 필요했지만, 부모님은 그런 역할을 적극적으로 거부했다. 내가 그 게임기를 돌려보려면 친구 집에 가야만 했고, 친구 부모님은 연결을 도와주긴 했으나 불편한 기색이었다. 할 만한 게임도 없는데 게임할 공간도 없으니 자연히 내 인생 최초의 게임 콘솔은 벽장과 망각 속으로 사라졌다. 8, 90년대에 성장한 게이머들은 아마 대부분 유사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결과 현재 한국 게임 시장에서 콘솔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다. 2020 게임백서에 따르면 4.5%인데, 사실상 명맥만 남았다고 볼 수 있는 아케이드 게임의 비율이 1.4%다. 북미의 38.4%와 유럽의 37.5%, 남미의 19.1%는 물론이고 2022년 세계 시장 비율인 25.2%와도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인다. 아시아 시장의 콘솔 게임 비율은 8.7%인데, 한국의 작은 콘솔 시장이 큰 몫을 했을 것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 반면 PC 게임과 모바일 게임은 아시아에서 각각 25.7%과 54.1%로 다른 권역에 비해 차이가 극명하다. * 2020 대한민국 게임백서, p. 668 그 이유는 8, 90년대의 미약한 시작에서 이어져 내려왔을 것이다. 작은 규모로 시작한 시장이, 단 한 번도 아케이드와 PC와 모바일에게서 헤게모니를 가져오는 모멘텀을 겪지 못한 채로 성장해왔다는 슬픈 스토리다. 그 슬픈 시절로 잠깐 가보자. 한국에서 처음 판매된 게임 콘솔은 오트론 텔레비전 스포츠다. 게임 내장형 콘솔로 미국의 ‘홈 퐁’과 똑같았으며, 최초 가격은 29500원, 이후 인하해서는 19800원이었다. 77년 기준으로 노동자 평균 월급이 69000원이던 시절이다. 시장 형성이나 대중화와는 거리가 먼 가격이었으니, 최초라는 점 외에는 큰 의미가 없다. 가격으로 인해 가정용 퐁과 아타리의 시대에는 한국의 콘솔 게임이 자라나지 못했고, 닌텐도를 필두로 한 80년대가 왔다. 하지만 강력한 반일 정서가 지배하는 한국에 닌텐도가 수입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어불성설이었다. 때문에 80년대 초반에는 8비트 MSX를 플랫폼으로 하는 PC 게임이 이를 대체하듯이 수입되었다. 그나마도 고가품이었으니, 82년 기준으로 국내 도입 대수는 천 대가 채 안 되었다고 한다. 8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한국은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을 유치하는 데 성공을 했고, 그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자연히 일본에 대한 반감이 어느 정도 수그러들고, 85년에 대우가 재믹스라는 자체 콘솔을 출시하면서 게임이라는 신문물에 대한 낯설음도 많이 반감되었다. 그래도 일본 기업이 현지 법인을 만들어 진출하는 것은 대중의 정서상 어려웠기에, 국내 기업이 별도의 이름으로 콘솔을 수입했다. 이제야 의미 있는 게임 콘솔이 등장하는 것이다. 삼성이 세가의 세가 마스터 시스템을 ‘겜보이’라는 명칭으로 수입해 판매했고, 이게 히트를 거뒀다. 이에 현대는 닌텐도의 NES, 즉 북미판 패미컴을 수입해 ‘현대 컴보이’로 출시했다. 이로써 재믹스, 겜보이, 컴보이의 삼국지로 시장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이 시장의 규모는 대중적이라고 부를 정도로 크지는 못했다. 히트를 했고, 대중이 존재를 알 정도의 규모는 되었지만, 매니아 위주의 시장이 되었다. 각 콘솔의 가격만 봐도 그 결과가 자명하다. * 대우 재믹스 광고, 가격이 7만 원이다. * 삼성 겜보이 광고. 가격이 11만9천 원이다. * 현대 컴보이 광고. 13만9천 원이 가격이다. * 92년 하반기의 콘솔 게임 타이틀의 가격. 따라서 게임 콘솔에 더해 이 가격까지 감안해야만 콘솔 게임을 위해 부담해야 하는 금액이 나온다. 1990년을 기준으로 잡는다면, 중등 교원과 대기업 사원의 초봉이 60만 원이 안 되던 시절이다. 이 시기부터는 빈부 격차가 벌어지면서 노동자 평균 월급을 기준으로 삼기가 좀 어려워지는데, 그나마도 150만 원이었다. 따라서 게임 콘솔은, 10년 전의 오트론과는 달리, ‘구매는 가능하지만 조금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또한 게임 시장의 헤게모니는 느리지만 아주 조금씩 아케이드에서 PC로 옮겨가고 있었다. 게임 콘솔의 경쟁자는 사실 PC였던 셈인데, 당시 싸게는 100만 원에서 비싸게는 200만 원 이상을 호가하던 PC가 20만 원 이하의 게임 콘솔과 경쟁한다는 것은 가격 경쟁력에 있어 상대가 안 될 것처럼 보이긴 한다. 하지만 PC에게는 ‘다가올 미래를 준비’한다는 맥락이 있었고, ‘교육용’도 가능한 다용도라는 강점이 있었다. 이에 비하면 게임 기능 하나만 있는 콘솔은 상대적으로 싼 가격만큼이나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콘솔과 PC에는 가장 큰 차이, 공간적 차이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콘솔의 공간은 거실, PC의 공간은 방이다. 게임 콘솔은 TV와 연결해야 하는 조건이 있다. TV는 가족 공통의 미디어이니 거실에 있다. 거실 TV의 용도는 부모 세대가 결정하니, 당시의 자녀 세대가 콘솔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거실의 권력을 얻어내야만 했다. 또한 당시의 학생들은 야간 자율학습을 겪던 세대다. 따라서 거실에 존재할 시간 자체가 없는 경우도 꽤 많았으며, 설사 야자가 없더라도 퇴근한 부모를 상대로 거실 TV의 사용권을 협상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PC라면 공간이 방으로 바뀌면서 거실 권력에 대항할 필요가 없어진다. 야자를 끝내고 와서, 혹은 부모가 TV를 시청하고 있는 시간에, 자기 방으로 들어가면 된다. 당시 게임 소프트웨어의 복사 유통이 콘솔 롬팩의 복사보다 훨씬 손쉬웠다는 점도 PC 게임 확산에 한몫을 했을 것이다. 아케이드에서 게임을 하는 시대가 집에서 게임을 하는 시대로 바뀔 때의 서사에서, 북미나 유럽은 이와 달랐다. PC의 보급이 한국보다 빨랐으며, 따라서 PC에 대한 인식은 게임용보다 다용도에 가까웠다. 즉 PC는 이미 부모 세대의 것이었다. 자녀 세대들은 학원과 야자가 없으며, 부모 세대에게는 여가 생활 선택지에 PC가 추가된 구도다. 따라서 자녀들에게 거실 권력의 일부를 내주는 여유가 가능하다. 게다가 콘솔의 보모 기능을 부모들이 깨닫게 된다. 동네 아이들 몇 명을 거실에 모아놓고 피자 한 판과 게임 콘솔을 쥐어줄 경우, 부모 세대는 시내로 영화를 보러 잠시 외출할 수 있다는 식의 계산이다. 반면 한국의 부모에게 보모 역할은 조부모나 학부모나 야자가 해주었으니 게임까지 눈을 돌릴 이유가 없었다. 다만 유럽의 경우엔 북미보다 이런 경우가 덜했는데, 그 원인을 평균 거주 공간에서 찾는 해석이 가능하다. 주거면적이 월등히 넓은 북미의 경우엔, 거실에 콘솔을 구비해도 상관없는 주거면적이지만 유럽의 경우엔 고려를 한 번 거쳐야 하는 것이다. 특히 동유럽은 과거 공산권이어서 자본주의 진영의 상품인 게임 콘솔의 수입에 대한 문턱이 높기도 했고, 주거면적 또한 다른 유럽에 비해 좁은 편이어서인지 콘솔 점유율이 가장 낮다. 이 해석에서 유일한 예외는 영어가 모국어라서 미국 문화와의 심리적 거리가 가까운 영국이다. * 2014년의 자료이긴 하지만, 북미와 호주의 평균 거주 공간이 유럽(특히 동유럽인 러시아)보다 넓음을 알 수 있다. 1990년 당시 한국의 가구당 평균 주거 면적은 이 그래프의 덴마크와 비슷한 62.94였지만, 상기한 문화적 이유로 인해 이 공간의 이점을 사용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북미와 서유럽은 게임의 헤게모니가 아케이드에서 콘솔을 거쳐 PC로 옮겨갔지만, 한국과 동유럽은 아케이드에서 곧장 PC로 이동했다고 서술할 수 있겠다. 해당 국가에서 아케이드 게임장이 갖는 위상을 고려해서 공간 위주로 서술을 요약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북미와 서유럽의 경우엔 시내에서 거실로, 다시 거실에서 방으로. 한국과 동유럽의 경우엔 동네에서 방으로. 이 공간의 서사는 이제 모바일의 득세로 인해 ‘내 손’으로 바뀌어가고 있지만, 해당 공간이 함축하는 맥락은 그 이상이다. 아케이드는 북미와 유럽처럼 시내의 번쩍번쩍한 게임 센터이건, 한국의 우중충한 동네 오락실이건, 게임을 위해 만들어진 공적 공간이니 자연히 커뮤니티의 성격 또한 갖게 된다. 고수의 플레이를 구경하고, 다른 동네의 고수와 대전하기 위해 그 동네 오락실을 갔던 이야기를 떠올려 보자. 이를 ‘아케이드는 소셜 친화적 게임 공간이다’라고 서술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 공간이 거실이라는 사적 공간으로 바뀌면 소셜의 색채는 옅어지지만 사라지지는 않는다. 거실에서의 게이밍은 누군가가 구경할 수 있고, 그에 대해 대화할 수 있고, 함께 플레이할 수도 있다. 콘솔 게임은 1인 미디어이긴 하지만 오프라인 소셜 미디어로서도 활용이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방으로 게임 공간이 바뀌자 소셜의 비중은 극도로 줄어들어버렸다. 방은 철저하게 사적 공간이며,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부모들이 TV를 볼 동안 자녀가 PC 게임을 하는 구도가 가능했다. PC라는 단어 자체가 Personal Computer의 약자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온라인 게임의 등장 이전의 한국에서 게임은 1인 미디어의 이미지였다. ‘게임을 같이 한다’의 의미가 아케이드/콘솔에서 조이스틱/패드를 각각 하나씩 잡고 게임을 하는 의미였던 시절이었다. 이를 오프라인 안티소셜 + 온라인 소셜이라고 서술할 수도 있을 것이다. PC 게임 자체의 안티소셜적 성격은 인터넷의 보급으로 인해 콘솔 수준으로 희석되었다. PC방의 경우엔 방의 공간을 다시 아케이드로 되돌리는 흐름이었고, 특히 한국에서는 스타크래프트의 아케이드화가 굉장히 큰 역사적 방점이었다. 혹은 비록 친구들끼리 모여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하러 갔던 모습은 오프라인 소셜이긴 하지만, 온라인으로도 이 모습은 가능하다. 즉 한국의 PC방 문화는 PC 게임의 오프라인 안티소셜 성격을 옅게 만들긴 했지만, 인프라의 확장으로 인해 온라인 소셜의 성격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현재 결과로는 보강의 의미 이상이 되지 못했다. MMORPG를 같이 하기 위해 오프라인에서 만날 필요까지는 없으니까. 그리하여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가 달라진다. 점유율 40%에 육박하는 북미와 유럽이라면 친구를 집으로 초대해 함께 헤일로를 하는, 게임의 오프라인 소셜적 이미지가 어느 정도 살아 있다. 미국식 영어에서 비디오 게임을 지칭하는 속어 중 하나가 nintendo game인 것은 닌텐도의 역사적 영향력을 증명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콘솔의 소셜적 측면이 영어권 사회가 갖고 있는 게임에 대한 이미지에 녹아들어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반면 한국은 아케이드를 빠져나온 후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 오프라인 소셜의 이미지는 없다시피 하다. 이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영화 속 두 캐릭터가 토르와 구경이다.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는 게임 폐인이 된 토르가 등장하는데, 그는 친구들과 함께 거실에서 포트나이트를 플레이하고 있다. 반면 드라마 ‘구경이’의 주인공 구경이는 마찬가지로 게임 폐인이지만, 자기 집에서 MMORPG를 플레이한다. 그는 게임을 통해 길드원들과 소통하고 있지만 게임 바깥에서는 은둔형 외톨이다. 토르의 거실과 포트나이트, 구경이의 집콕 MMORPG의 차이가 콘솔이 빠져있는 한국 게임의 특수성이다. * 토르는 사회와 단절한 상태지만 그의 게임은 여전히 친구들과 함께 플레이하는 게임이다. 콘솔이 가진 옅은 오프라인 소셜의 성격이 남아있는 형태로 볼 수 있다. * 구경이 또한 사회와 단절했지만 토르와 달리 그의 오프라인 공간에는 구경이 혼자만 존재한다. 온라인 소셜 위주인 PC게임의 사회적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게임 외부에서 바라보는 사회적 이미지, 게임 내부의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게이밍 경험의 차이가 이 역사적 맥락 혹은 경험의 차이에서 나오게 된다. 한국의 콘솔 게임이 극도로 적다는 의미는, 단순히 해당 플랫폼의 게임을 덜 만든다는 1차적 의미만이 아니라, 오프라인 소셜로도 활용이 가능한 게임을 덜 생산하고 덜 소비한다는 의미다. 달리 표현하면 한국에서 만들거나 유통되는 게임은 온라인 소셜을 기본으로, 혹은 아예 온라인 소셜만을 상정하고 만들어진다는 귀결도 가능하다. 그리고 시대는 이제 2022년을 바라보고 있다. 게임의 헤게모니는 아케이드-콘솔-PC 순으로 이어졌고, 그 다음인 모바일로의 이행이 진행 중이다. 모바일의 오프라인 공간은 ‘내 손’이니 매우 협소하며, PC 이상의 오프라인 안티소셜 성격을 보여준다. 이 이행 과정을 보면 오프라인 소셜의 성격은 계속 옅어지면서 온라인 소셜의 비중이 늘어나는 그래프를 상상할 수 있다. 그럼 이제 시대의 무게추는 온라인 소셜로 완전히 옮겨가는 것일까? 몇 년 전의 기억이다. 내 예전 애인 한 명은 증강현실 게임인 포켓몬고를 깊게 플레이했다. 그는 더 많은 포켓몬을 포획하고 교환하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야 했고, 비정기적으로 집 근처의 커뮤니티 사람들을 만나 함께 동네 여기저기로 몰려다녔다. 온라인 소셜이 오프라인 소셜로 바뀌는 지점이었다. 기존 온라인 게임의 ‘정모’와 비슷해 보이긴 했지만, 모여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거리의 모바일 아케이드나 모바일 PC방으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했다. 그러고 보면 포켓몬고를 플레이하려고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는 유명인과 그를 쫓아가는 팬들의 모습도 기억이 난다. 닌텐도 스위치의 마케팅 포인트 중 하나도 이 부분이었다. 거치형인 동시에 휴대형인 콘솔이므로 오프라인에서 만난 두 플레이어가 서로의 콘솔을 연동해 동반 플레이가 가능한 것이다. 이는 모바일이 사실은 오프라인 소셜의 측면을 숨기고 있음을 증명한다. 휴대가 가능하기에 오프라인 접촉이 용이한 최초의 플랫폼이 되는 역설이다. 오프라인으로 동반 플레이를 하기 위해 게임 콘솔이나 PC를 싸들고 친구 집에 가는 것에 비하면 경이적으로 편하다. AR 게임의 가능성까지 고려했을 때 모바일 게임의 소셜적 측면은 확고한 영역을 확보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콘솔 게임이 빠진 탓에 아케이드 이후로 사라졌던 한국 게임의 오프라인 소셜적 측면이 극적인 부활을 할 수 있을까? 포켓몬고가 오프라인에서도 작동하는 소셜 활동을 만들어낸 것 이상의 무엇이 생겨날 수 있을까? 답은 개발자의 상상력과 유저의 활용력에 달려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변호사의 눈으로 본 역전재판
벌써 오래 전 이야기다. 토요일 아침이면 신문을 펼쳐 TV 편성표를 살펴보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하곤 했다. 특히 “토요명화”나 “주말의 명화”에서 어떤 영화를 방영하는지가 가장 큰 관심사였는데, 넷플릭스도 IPTV도 없던 시절이니, 시간도 돈도 없는 학생에게는 영화를 볼 기회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편성표 옆에는 영화평론가들이 영화를 간단히 소개하며 별 5개 만점으로 나름의 평가를 달아두었는데, 별점이 높은 영화가 방영되는 날에는 종일 설레었던 기억이 난다. < Back 변호사의 눈으로 본 역전재판 02 GG Vol. 21. 8. 10. 벌써 오래 전 이야기다. 토요일 아침이면 신문을 펼쳐 TV 편성표를 살펴보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하곤 했다. 특히 “토요명화”나 “주말의 명화”에서 어떤 영화를 방영하는지가 가장 큰 관심사였는데, 넷플릭스도 IPTV도 없던 시절이니, 시간도 돈도 없는 학생에게는 영화를 볼 기회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편성표 옆에는 영화평론가들이 영화를 간단히 소개하며 별 5개 만점으로 나름의 평가를 달아두었는데, 별점이 높은 영화가 방영되는 날에는 종일 설레었던 기억이 난다. 어느 주말 저녁, TV에서 “어 퓨 굿맨(A few good men)”을 방영했다. 너무 오래 전 영화라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대강의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미소를 중심으로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미군 관타나모 기지에서 해병대원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쿠바를 코앞에 둔 최전방에서 해병대를 지휘하는 제섭 대령은(잭 니콜슨 분)은 부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병사에게 린치를 가하라는 명령을 내리는데, 린치를 당하던 병사가 결국 사망에 이른 것이다. 하버드 출신의 군법무관 캐피 중위(탐 크루즈 분)가 린치를 가한 해병대원들의 변호인으로 선임된다. 제섭 대령은 로스쿨을 막 졸업한 풋내기 법무관이 공판에서 자존심을 건드리자 결국 폭발하고, 자신이 린치를 명령했음을 시인한다. 탐 크루즈와 잭 니콜슨이라는 걸출한 두 배우의 불꽃 튀는 연기가 인상 깊었던 “어 퓨 굿 맨”은 필자가 법조인이라는 직업을 동경하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어찌 법조인뿐이겠는가. 필자와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이라면, 인디아나 존스(Indiana Jones)를 보고 고고학과에 진학할 계획을 세우거나 탑 건(Top Gun)을 보고 공군사관학교에 가겠다고 결심했던 친구들을 한두 명씩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변호사가 된 이후에는 영화든 드라마든 법정물은 보지 않게 됐다. 필자뿐만 아니라 주변 법조인들 중에도 법정물을 보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얘기를 들어보면 법조인들이 법정물을 보지 않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 정도인데, 법정물을 보고 있으면 분명 쉬고 있는 건데도 일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는 것과 드라마나 영화 속 법조인이나 재판의 모습이 현실과 크게 달라 감정이입이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선배 한 명은 극장에서 황당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노효정 감독의 2001년 영화 “인디언 썸머”에는 피고인이 허위 진술을 하자 판사가 훈계하는 장면이 나온다. “피고인, 법정에서 거짓말하면 위증죄로 처벌 받는 거 알죠?” 선배는 이 장면을 보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위증죄는 선서한 증인, 즉 제3자가 허위의 진술을 하는 경우에 성립하는 죄이기 때문에, 피고인은 법정에서 거짓말을 한다고 해도 위증죄로 처벌할 수 없다. 법조인에게는 아주 기본적인 상식이다. 하지만 선배가 왜 웃는지 알지 못하는 주변 관객들은 웃음을 터트린 선배를 매섭게 쏘아봤다고 한다. 물론, 현실을 얼마나 충실히 반영했는지만으로 법정 영화나 드라마의 작품성을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예술 장르에는 나름의 문법과 미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캡콤의 대표적 법정 게임인 역전재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소송”을 생각하면 머릿속에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아마도 사형이나 무기징역 같은 무서운 단어들일 것이다. 피고인의 유무죄를 판단하고 형벌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소송은 상당히 진지하고 심각한 소재다. 그렇다면 역전재판은 왜 굳이 이런 무거운 소재를 사용한 것일까? 우리는 어쩌면 요한 하위징아의 대표작 “호모 루덴스”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을 동물과 구별 짓는 특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는데, “생각하는 인간(호모 사피엔스)”이나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호모 파베르)”을 강조하는 견해도 있지만, 요한 하위징아는 “놀이하는 인간”에 주목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하위징아가 “호모 루덴스”에서 소송도 놀이로 보았다는 점이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소송은 옳고 그름, 즉 정의를 판단하는 행위가 되었지만, 고대의 소송은 놀이의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었으며, 현대의 소송에도 놀이의 요소가 상당부분 남아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예를 들면, 소송에서 당사자가 승리하기 위해 말싸움을 하는 것은 놀이의 전형적인 특징이며, 판사가 착용하는 법복이나 가발은 소송이라는 놀이를 일상적 세계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도구라는 것이다. 하위징아에 따르면, 소송은 중세의 마상시합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이처럼 소송의 놀이적 성격을 고려한다면, 소송을 소재로 게임을 만든다는 건 어색한 게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보아야 한다. 역전재판은 대표적인 법정 게임이다. 역전재판 이후 출시된 다른 법정 게임들도 역전재판의 문법을 상당 부분 차용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역전재판은 사실상 법정 게임의 전범(典範)이라고 할 수 있다. 게이머는 주인공 나루호도가 되어 의뢰인의 누명을 벗겨야 한다.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하는 패턴은 비슷하다.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용의자가 체포된다. 주인공이 증거를 수집하거나 증인을 신문하는 과정에서 피고인의 무죄를 입증하는 단서가 발견되고, 주인공은 이를 기초로 법정에서 증인을 탄핵하여 의뢰인의 무죄를 밝히고, 진범을 찾아낸다. 역전재판의 핵심적인 재미는 증인의 증언에서 모순점을 찾아내거나 증언과 반대되는 증거를 제시해 증인을 탄핵하는데 있다. 다시 말해서 증인과의 두뇌싸움에서 느끼는 게이머의 지적 희열이 게임을 계속하게 만드는 동력인 것이다. 이런 두뇌싸움이 게이머를 즐겁게 하려면 범인을 추리하는 과정에 개연성이 있으면서도 적절한 난이도가 유지되어야 한다. 추리가 너무 쉽거나 단순하면 게이머가 쉽게 지루함을 느끼며, 개연성이 없거나 주어진 단서만으로 범인을 추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면 게이머가 게임을 포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각각의 에피소드마다 약간씩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역전재판은 전반적으로 개연성과 난이도를 잘 유지하고 있다. 아마도 이것이 역전재판이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가장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물론, 지나치게 작위적인 설정으로 인해 개연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다행히 자주 발생하는 일은 아니다. 역전재판은 비주얼 노벨(Visual Novel) 장르의 게임으로 사건을 해결하려면 등장인물의 진술을 잘 기억해야만 한다. 중요 등장인물의 경우에는 진술의 양도 만만치 않다. 따라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내내 일정 수준의 집중력을 유지해야 하는데, 게이머에게는 이런 상황이 상당히 피곤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역전재판은 효과적인 연출로 텍스트 중심의 단조로운 인터페이스를 극복했다. “이의 있음”, “받아랏” 같은 음향효과와 함께 나타나는 “분노의 삿대질”은 증인을 몰아세우거나 진범을 추궁하는 재미를 배가한다. 위증이 밝혀지면 폭발하거나 땀을 흘리는 증인들의 개성 있는 모습도 무척 흥미롭다. 특히 주인공이 법정에서 이의를 제기하거나 결정적인 모순을 지적했을 때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배경음악은 역전재판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어렸을 때 “어 퓨 굿 맨”을 보며 법조인을 동경하게 된 것처럼, 누군가는 역전재판을 플레이하다가 법조인이 되겠다는 계획을 세울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증거나 증언을 바탕으로 모순을 밝혀내는 능력이 법조인의 중요한 자질인 것은 맞지만, 이는 법조인에게 요구되는 여러 가지 능력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설사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법조인이 되기 위해서는 깨알 같이 많은 법률과 판례를 공부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프로이드가 “때때로 담배는 그저 담배일 뿐이다.”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게임은 그저 게임일 뿐이다. 그러니 역전재판에서 발견한 자신의 재능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는 말자.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법조인이 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역전재판을 통해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모든 증거와 증언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한쪽 말만 듣고 판결할 수 없다.”는 유명한 법언도 바로 이런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확증편향과 편가르기가 난무하는 한국사회에서 이것만이라도 제대로 배울 수 있다면, 역전재판을 플레이할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변호사) 이병찬 어릴 때부터 게임을 사랑해 온 14년차 변호사입니다. 비디오 게임이 가져다 줄 새로운 미래에 관심이 많습니다. 보통 난이도로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 하고 있습니다.
- [인터뷰] : “중꺾마”의 장본인, 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인터뷰
흥미로운 점은 해당 표현을 처음 사용한 문대찬 기자가 ‘게임 전문지’가 아니라, 종합일간지의 기자라는 점이다. 문대찬 기자가 소속된 쿠키뉴스는 2005년에 만들어진 온라인 뉴스 서비스로,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뉴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단순히 인터넷 종합일간지가 게임을 다룬다는 점을 넘어, 게이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미디어 일반에 진출하면서 만들어지는 변화를 보게 한다. ‘중꺾마’의 대중화만 하더라도 게임과 게임 산업의 맥락을 정확히 포착할 수 있는 사람에 의해, 게임 문화가 대중적으로 확장된 사례이다. 이번 호에서 편집장은 ‘중꺾마’의 장본인인 문대찬 기자와 만나, 게임이 서브컬쳐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 Back [인터뷰] : “중꺾마”의 장본인, 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인터뷰 10 GG Vol. 23. 2. 10. 작년 한 해, 한국 사회를 관통한 밈이 있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이 밈은 2022년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일명 ‘롤드컵’에서 프로게임단 DRX의 데프트(김혁규) 선수 인터뷰로부터 기인했다. 데프트 선수가 직접 이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인터뷰를 했던 쿠키뉴스의 문대찬 기자가 인터뷰를 요약하는 과정에서 〈DRX 데프트 "로그전 패배 괜찮아,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표현하며, 해당 문구가 탄생한 것이다. 상대적 약팀이라고 평가받던 DRX가 우승을 하자 해당 표현은 일종의 사회적 밈이 되었고, 이후 다른 e스포츠나 연예계, 한국의 월드컵 16강 진출 상황에서 사용되며 전국민적인 인지도를 쌓게 되었다. 그리고 이전에 유행했던 밈인 누칼협(누가 칼 들고 협박하냐?: 누군가의 불평에 대한 반응)과 같이 부정적인 성격이 아니라, 끈기와 의지, 꿈을 희망하였기에 ‘중꺾마’는 정치권, 스포츠계, 기업을 넘어 조선일보나 KBS, MBC, SBS, JTBC 등 기성 언론에까지 사용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해당 표현을 처음 사용한 문대찬 기자가 ‘게임 전문지’가 아니라, 종합일간지의 기자라는 점이다. 문대찬 기자가 소속된 쿠키뉴스는 2005년에 만들어진 온라인 뉴스 서비스로,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뉴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단순히 인터넷 종합일간지가 게임을 다룬다는 점을 넘어, 게이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미디어 일반에 진출하면서 만들어지는 변화를 보게 한다. ‘중꺾마’의 대중화만 하더라도 게임과 게임 산업의 맥락을 정확히 포착할 수 있는 사람에 의해, 게임 문화가 대중적으로 확장된 사례이다. 이번 호에서 편집장은 ‘중꺾마’의 장본인인 문대찬 기자와 만나, 게임이 서브컬쳐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경혁 편집장: 먼저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문대찬 기자: 쿠키 뉴스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해서 이제 7년 차 기자인 문대찬입니다. 게임과 e스포츠를 취재한 지는 얼마 안 됐어요. 원래는 스포츠 기자로 들어왔는데, 저희 팀 자체가 게임 스포츠 팀이거든요. 그래서 2019년 말부터 e스포츠랑 게임 쪽 팀장울 맡게 되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그러나 그 이전부터 e스포츠를 보신 거죠? 문대찬 기자: 네. 어렸을 때 임요환 선수 팬이었거든요. 그래서 당시에는 e스포츠를 봤었고, 최근에도 후배 기자들 기사를 봐줘야 하니까 e스포츠 동향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죠. 그렇지만 본격적으로 e스포츠를 취재한 것은 작년이 첫 번째 시즌이었어요. 종합지 기자의 e스포츠 취재기 이경혁 편집장: 첫 해에 대박을 터트리신 거군요. (웃음) 스타 리그를 보시다가 이제는 LOL 리그를 취재하게 되셨는데, 그 둘 사이에는 간격과 차이가 조금 있잖아요. 어떤 부분이 조금 다르시던가요? 문대찬 기자: 간극이 있죠. 그런데 저는 오히려 기자를 하면서 (스타리그때 보다) e스포츠를 좀 더 사랑하게 된 것 같아요. 그전에는 e스포츠 보다 야구나 축구 같은 스포츠를 조금 더 좋아했었거든요. 그런데 e스포츠를 취재하다 보면 다른 스포츠보다 선수들과 1대1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보장되어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선수 한 명, 한 명을 알아가게 되고 e스포츠의 매력에 확 빠졌어요. 지금은 진짜 누구보다 e스포츠에 열광하면서 챙겨보게 되었죠. 이경혁 편집장: 선수들도 인터뷰에 협조적인가 보네요. 문대찬 기자: 네. 최근 들어서는 더더욱 그런 경향이 강해졌어요. 그리고 그중에서도 정말 프로 의식이 넘치는 선수들이 있거든요. 그중 한 명이 데프트 선수예요. (‘중꺾마’가 나온) 그 인터뷰도 정말 특별했던 게, 이번 시즌에는 패배 인터뷰가 도입됐지만, 원래 시즌 중에는 패배한 선수들을 인터뷰할 기회가 없었거든요. 롤드컵이나 국제대회에서만 허용이 되었는데, 사실 그날도 DRX가 패하면서 저는 걱정이 되었어요. 선수들 기분도 안 좋을 거고, 그러면 나올 수 있는 내용도 얼마 없을 거니까요. 그런데 데프트 선수가 너무나 프로 의식이 넘치게 인터뷰를 열심히 해줬어요. 저는 원래도 게임에 관한 이야기를 묻기보다 선수들이 성장하는 서사에 초점을 맞춰서 인터뷰를 하는 편인데, 데프트 선수가 그날 인터뷰를 적극적으로 해준 덕분에 저도 그 방향으로 더 집중해서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사실 패배 인터뷰라는 게 굉장히 부담스러우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중꺾마’는 그 상황 속에서도 선수와 미디어의 적극적인 교감에서 나온 결과물이겠네요. 그런데 궁금한 것이 ‘중꺾마’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을 때, 크레딧에 대한 욕심이 안 생기기 어려울 것 같은데, 어떠셨어요? 문대찬 기자: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처음에 이 표현이 화제가 되었을 때, 이 말이 어떻게 나왔는지 모르시는 분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래서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는데, 저는 결국 미디어와 언론이 할 수 있는 일은 해당 선수가 빛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제가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아쉬움이나 그런 건 없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그래도 문화체육부 장관이 DRX에게 표창장을 줄 때, 인간적으로 기자님도 같이 받으셔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거든요. (웃음) 문대찬 기자: 팬들도 그런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런 말씀들이 고마웠죠. (웃음) 그리고 처음에는 진짜 실감이 안 났어요. 그런데 (언론)업계 분들을 만나다 보니 이분들이 다 이야기를 해주시고, 어떤 선배 기자님은 “오늘이 너의 날이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참 감사했죠. 그리고 무엇보다 요즘은 선수들의 반응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걸 느껴요. 최근에 어떤 선수와 인터뷰를 했는데, “오늘 ‘중꺾마’ 기자님 만난다고 해서 긴장을 했다”면서 “‘중꺾마’ 같은 걸 만들려다가 말실수를 하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게임단 관계자님들도 선수들이 이번 기회를 통해서 나도 더 적극적으로 인터뷰를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이렇게 선수들한테 제가 인터뷰를 하고 싶은 기자가 된 점이 가장 뿌듯하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만족스러워요. 게이머 DNA를 가진 기자 이경혁 편집장: 정말 많이 달라졌겠네요. 선수 입장에서도 ‘기회가 왔다’고 생각할 수 있고, 요즘 기자는 부정적인 댓글을 들을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는데, 그런 걸 극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멋있습니다. 이제는 ‘중꺾마의 장본인’이 아니라, ‘인간 문대찬’에 대해서 조금 들어보고 싶은데요. 아까 말씀하신 스타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문대찬 기자: 사실 저는 딱 거기까지 봤어요. 최연성한테 결승전에서 패하고 눈물 흘렸을 때요. 그 이후로는 마음이 아파서 스타크래프트를 못 봤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어떻게 보면 ‘택뱅리쌍’으로 대표되는 후기 리그 시대는 못 보신 거군요. 스타를 직접 하기도 하셨나요? 문대찬 기자: 스타는 저도 친구들이 한창 하니까, 같이 많이 했었죠. 다만 저는 스타에서 아무래도 멀티테스킹이 어려웠어요. 롤은 곧잘 하는데, 스타는 그게 어렵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1:1 게임을 부담스러워해요. 누군가와 함께 짐을 짊어지고 하는 게임들을 좋아해서 롤이나 배틀 그라운드 같은 게임들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저는 게임을 혼자서 즐긴다기보다 어떤 사회적 커뮤니티로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그럼 어릴 적에는 어떤 게임들을 하셨어요? 처음 해보신 게임을 기억해보신다면 뭐가 될까요? 문대찬 기자: 제가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갔을 때, 지금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컴퓨터를 사주셨어요. 그때 CD가 같이 들려왔었는데,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여러 가지 고전 게임들이 들어가 있는 CD였어요. 거기에 알라딘 게임이 있었는데, 제 기억으로 그게 제 인생 첫 번째 게임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도 한 목숨 죽으면 동생이 한 목숨 하고 그렇게 플레이하는 스타일이었어요. (웃음) 이후에는 막 엄청 깊게 어떤 게임들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 번 빠지면 저는 되게 오래 하는 스타일이었어요. 마구마구를 진짜 열심히 했었거든요. 여기에도 친구들이 꽤 있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했으니까 돈을 많이 쓸 수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 덱을 맞출 정도로 했었죠. 이경혁 편집장: 그렇게 게임을 하시면서 이제는 기자가 되셨는데, 사실 중요한 점은 게임 전문 기자가 아니라 종합지 기자이신 거잖아요? 그런 점에서 궁금한 것이 있는데, 게임과 e스포츠를 다루는 스포츠 기자와 다른 정치부나 경제부 등의 기자들은 서로 어떤 관계인가요? 문대찬 기자: 사실 회사 내에서도 다른 부서 기자분들과 교류할 일이 거의 없어요. 회사에서도 사실 e스포츠나 게임을 다룬다고 하면 뭔가 큰 걸 하고 잘하는 것 같은데 (라고만 생각하시고) 잘 모르시죠. 그래서 종합 매체에서 게임을 한다는 게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어요. 장점은 일단 많은 분들이 잘 모르시는 영역이다 보니까 조금 더 자유롭게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제가 이직을 하지 않고 오래 있을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가,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걸 해야하는 사람이거든요. 저는 성장 과정에서도 학원을 안 가고 싶으면 안 갔어요. 부모님께서도 그렇게 해 주시는 편이었고요. 그런데 저희 회사는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분위기예요. 특히 게임과 e스포츠를 종합 매체에서 다루고 있는 매체가 저희랑 저희 계열사인 국민일보밖에 없어요. 그 상황에서 다른 매체 같은 경우는 (게임을 다루기에) 힘든 부분들이 있는데 저희는 배려도 많이 받고, 게임 전문지가 가지고 있는 이해관계 같은 것들도 없어요. 야간의 일정을 하더라도 다음 날 오전에 쉴 수 있게 해주고 그런 식이어서 저희도 열심히 할 수 있는 거죠. 다만, 단점도 회사의 많은 분들이 게임이라는 분야에 대해 잘 모르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기사를 쓰더라도 저희는 엄청 쉽게 썼고, 이것보다 더 쉽게 쓸 수 없는데, 어떤 분들은 너무 어려워서 모르겠다거나 하는 반응들을 보이셔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저희 팀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진다던가 그런 측면들이 있죠. 사실 ‘중꺾마’가 처음 e스포츠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을 때 보고를 했어요. 그런데 당시 사내에선 큰 관심을 못 받았거든요. 단순히 ‘게임계 유행어’ 정도로 생각하신 것 같아요. 월드컵 때 중꺾마가 큰 관심을 받으면서 뒤늦게 노를 젓기 시작했는데, 그런 부분들이 아쉽죠. * 쿠키뉴스 홈페이지 메인 배너, ‘중꺾마’가 들어가있다. 이경혁 편집장: 저는 종합지에서 게임을 다룬다는 것에 의미가 되게 크다고 생각해요. 게임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이 영역을 산업적으로만 접근한다거나 하면 같은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거든요. 이런 맥락에서 종합지에서 게임을 전문적으로 다루시는 분들이 더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전망이 좀 있을까요? 문대찬 기자: 그래도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 같아요. 최근에 롤 파크에 오시는 통신사나 언론사 기자님들이 엄청 많아졌었어요. 기자실이 부족할 정도로요. 특히 결승전에는 무조건 거의 오시고, 이제 개막전도 많이 오셔요. 실제로 경제지나 이런 곳에서도 젊은 기자들에게 e스포츠 좋아하는지 많이 물어보신대요. 좋아한다고 하면 가보라고 해서 취재하시고, 그런 기자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그런 기자들이 갈수록 성장하면 점점 더 좋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이경혁 편집장: 게임이 대중화되려면 미디어 종사자도 많이 늘어야 할 건데, 그런 부분에서 변화가 만들어지고 있군요. 마지막으로 게임 기자로의 어려움을 여쭙고 싶은데요. 기자님의 기사를 볼 때, 단편적이지 않은 게임들을 다뤄주시는 지점들이 인상 깊었거든요. 그런데 일반 독자들도 함께 볼 수 있는 기사를 쓰려는 점에서 어려움이 있으실까요? 문대찬 기자: 정말 그 부분이 가장 큰 고민이기는 해요. 게임에 대해서 잘 아는 일부 독자층을 만족시키는 기사를 쓸 것이냐? 아니면 이제 종합지의 신분으로, 모두가 다 알 수 있는 기사를 쓸 것이냐? 사실 노력도 많이 해봤어요. 가령, ‘한타’ 같은 용어들도 어려워하세요. 그런데 이걸 쉬운 용어로 바꾸기가 참 어려운 거죠. 홈런 같은 건데, 홈런을 뭐라고 다르게 표현하지는 않잖아요? 어떻게 보면 게임에 대한 배경 지식이 전혀 없으신 것이어서, 저희도 정말 많은 단어들을 바꿔봤어요. 한타는 대규모 교전이라고 쓰거든요. 그런 식의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고, MMORPG도 다중 접속 역할 분담 게임 이런 식으로 최대한 풀어서 쓰려고 하고 있어요. 그런 맥락에서 저희가 만든 기획 중에 ‘쿡기자가 해봤다’라는 기획이 있어요. 이걸 많은 분들이 좋아하세요. 왜냐하면 저희가 거기에 참석하는 기자들의 명함 같은 것들을 만들어놓았거든요. 이 기자는 어떤 게임을 선호하고, 게임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알려주고 시작을 해요. 어떤 기자가 혼자서 기사를 쓰면 그 판단은 해당 기자의 취향에 따라서 독자들에게 전달이 되는데, 각기 다른 취향을 가진 기자 셋이 모여서 한 게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니까 게임사 입장에서도, 독자들에게도 선택을 할 수 있게 정보를 전달드릴 수 있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향들로 많이 생각을 해보고 있어요.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재현, 시뮬레이션 그리고 구현이라는 꼭짓점의 버뮤다 삼각지대
게임에서의 기술 구현은 이처럼 재현과 시뮬레이션 둘 중 어느 쪽으로도 수렴되지 않으며, 둘의 합이 성공적인 구현을 담보하지도 않는다. 기술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전적으로 기술 자체의 구현에 몰두하는 것과도 다른 이야기다. 드물게 범례처럼 떠오르는 각각의 개별 작품들을 통해서 여전히 명확히 잡히지 않는 좌표를 다시 한번 확인할 따름이다. < Back 재현, 시뮬레이션 그리고 구현이라는 꼭짓점의 버뮤다 삼각지대 24 GG Vol. 25. 6. 10. * SAM이 보는 세계 찬호께이의 소설 <망내인>은 여느 추리소설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시작한다. 갑작스러운 자살로 여동생을 잃은 주인공이 은둔 해커이자 탐정인 또 다른 주인공을 찾아 나선다. 장르의 문법에 친숙한 독자라면 결말의 깜짝 반전과 같은 세부적인 디테일은 차치하고라도 이 소설이 나아가는 대략적인 방향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는 익숙한 ‘국밥’의 맛으로만 수렴되지 않는 돌출된 부분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홍콩이라는 배경이 그렇다. 일반적인 경제특구와는 다르게 특별행정구이기도 한 홍콩은 복잡한 역사적인 맥락과 민감한 정치적인 상황들이 맞물려서, 쉽사리 다른 지역으로 번역될 수 없는 특수한 지역성을 제공한다. 다른 하나는 이 소설의 핵심 요소인 해킹에 대한 묘사이다. 매체를 불문하고 픽션 내에서 특정한 기술을 재현한다는 것은 까다로운 문제일 수밖에 없다. 특히 해킹의 경우는 악명이 높은데, 어두운 방 안에 있는 여러 대의 모니터에서 알 수 없는 코드들이 마구 지나가는 동시에 해커가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식의 클리셰는 이미 다수의 밈을 통해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다. <망내인>은 마치 해커 입문 수업을 듣는 듯한 현실적이고도 상세한 해킹의 전개 과정과 그 과정 전체가 추리와 직접적으로 결부되는 영리한 플롯을 통해 그러한 함정을 피해 가는 드문 사례이다. 그렇다면 재현보다도 (유저의 인풋에서 비롯된 무수히 많은 결괏값에 의거한) 시뮬레이션에 훨씬 방점이 찍힌 미디어인 게임은 이와 같이 특정한 기술을 ‘구현 materialization’하는 문제에서도 어떤 독보적인 위치를 선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제나 그렇지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뚜렷하게 ‘당연한’ 방향으로 직진하지 않는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사실은 게임이 의도적으로 심각하게 제한된 시뮬레이션이라는 것이다. 하이테크의 사이버펑크 도시를 매우 밀도 높게 구현한 <사이버펑크 2077>의 경우를 봐도 V 가 자신의 몸에 이식하는 사이버웨어는 사이버 사이코라는 도식적인 한계 지점이 존재한다는 것이 다를 뿐, 근본적으로 여타의 판타지 게임들에서 등장하는 마법이 부여된 장비와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즉 플레이어는 사이버웨어가 사실은 살과 뼈를 찢고 들어가서 기존의 신체와 불안정하게 접합하는 매우 고어(?)한 포스트 휴머니즘적 장치라는 것과, 그것을 계속해서 추가하다 보면 통제가 완전히 불가능한 사이버 사이코에 이른다는 실존적인 불안을 체감하지 못한다. [1] 결과적으로 이 게임의 주요한 모티프이기도 한 사이버웨어 테크놀로지는 ‘간지 나는’ 성능템으로 납작하게 요약된다. 그런데 우리는 이의 경우를 두고 앞선 해킹의 사례처럼 다시금 재현의 함정에 빠진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것 또한 분명치 않다. 왜냐하면 사이버웨어는 단순히 재현된 것이 아니라 시뮬레이션 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V 의 팔에 고릴라 암즈를 장착할지 투사체 발사 시스템을 장착할지에 따라서 플레이 스타일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으며, 이는 전적으로 플레이어의 선택(인풋)에 달렸다. 그 선택 이후에도 투사체 발사 시스템을 어떤 조합으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무수히 많은 다른 결과들로 이어질 수 있다. 관건은 게임이 제공하는 시뮬레이션의 정교함이 반드시 게임 내 기술의 적절한 구현으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복잡한 시뮬레이션과의 상호작용은 (그 촉각적 ‘리얼함’으로 인해서) 그것이 실제의 기술과 부합한다는 환상을 오히려 강화한다. 그러므로 시뮬레이션과 재현이 중첩된 게임 미디어는 기술 구현의 욕망과 닿을 듯 말 듯한 기묘한 평행선을 달린다. 사려 깊은 레벨 디자인과 다양한 종류의 현실적인 제약들(일회용인 방독면 필터와 깨진 방독면을 덕 테이프로 임시로 처리하는 디테일, 제때 청소해 주지 않으면 작동이 제대로 되지 않는 총기, 에어건과 손전등을 계속해서 수동으로 펌프질해야 하는 수고로움 등등), 그리고 대부분의 HUD 를 제거한 다이어제틱한 UI 디자인이 잘 어우러져서 상당한 수준의 시뮬레이션을 가동하는 <메트로: 엑소더스>는 게임이 위치하는 미묘하게 어정쩡한 지점을 잘 드러내는 사례이다. 이 게임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꽤 비현실적인 배경을 채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총기 전문가 [2] 가 나서서 다양한 총기들의 모양과 기능을 매우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고 평가할 만큼 ‘전통적인’ 재현에도 충실하다. 다시 말해 시뮬레이션과 재현 모두 해상도 측면에서 별달리 아쉬운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정확히 바로 그러한 이유로 이 작품은 게임이라는 특정한 매체가 지닌 아포리아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한다. 총만큼 게임의 역사를 관통하는 기술도 없을 것이다. 게임 업계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극초창기의 슈팅 게임 [3] 이야기는 제외하고, 세부 장르인 FPS로만 한정해서 생각해 봐도 그 기원을 따져 올라가면 1973 년으로 가야 한다. [4] <메트로: 엑소더스>의 시점에 이르면 총을 다루는 캐릭터의 애니메이션과 총기의 반동, 총알의 궤적, 그에 따르는 부가적인 특수 효과와 음향, 총성과 총상에 반응하는 적의 움직임 등 총기의 시뮬레이션과 재현의 모든 면에서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몰입감을 플레이어에게 선사한다. 그렇다면 이로써 게임에서 총을 구현하는 작업은 특이점에 다가가고 있는 것일까? 햅틱 피드백과 적응형 트리거처럼 게임 컨트롤러에 한 스푼의 리얼함을 추가하거나 아예 VR 게임을 통해 답답한 직육면체의 모니터를 벗어난다면 언젠가는 완벽한 해상도에 (그러니까 완벽한 총싸움의 경험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런데 여기서 총과 같은 기술을 구현한다는 것은 정확히 무슨 의미인가. 총을 쏘는 사람이 방아쇠를 당기면 내부에 있는 공이가 화약이 든 총알을 타격한다. 그렇게 발생한 작은 폭발은 고막이 찢어질 듯한 (음 소거 버튼으로 없앨 수도 없는) 굉음과 어깨가 시큰할 정도의 반동, 매캐한 화약 냄새와 뜨겁게 달아오른 총신, 그리고 땀에 젖은 손을 남긴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마치 원래 없었다는 듯이 유령처럼 작동하는 총 모양의 어떤 것을 우리는 과연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운이 좋게 주요 부위를 피해서 맞는다고 해도 과다 출혈과 쇼크로 사망할 수 있는 위력적인 무기를 들고 서로 대치하는 상황에서 죽음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면 우리는 그것을 총싸움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즉 기술은 단순히 진공 상태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의 사용자와 작동하는 환경, 역사적인 맥락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유저를 끝없는 피드 속에 가두기 위한 욕망으로 추동되는 알고리즘의 구조만큼이나 2024년 옥스퍼드 사전 올해의 단어로 선정된 ‘뇌 썩음 brain rot’ 또한 소셜 미디어라는 기술의 핵심 요소인 셈이다. [5] 결과적으로 시뮬레이션과 재현이 정교해질수록 기술적 구현의 욕망이 대두되지만 동시에 이는 비디오 게임이라는 매체의 틀 안에서 선택적으로 제한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완벽한 총싸움 게임’은 영화 <배틀로얄>이나 드라마 <오징어 게임>과 비슷한 상황을 현실로 구현해 낸 생지옥에서나 가능한 ‘실재the real’로서의 한계 지점인 것이다. 따라서 기술의 구현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미래적 게임이라는 방향성은 ‘블랙 미러’적인 미래와도 다소 불안하게 겹친다. 다만 꼭 그런 방향이 아니더라도 비교적 간단(?)하게 특정한 기술을 높은 수준으로 구현할 방법이 있다. 바로 컴퓨터를 (더 구체적으로는 그것의 UI를) 재현하고, 시뮬레이션하는 것이다. 경찰의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할 수 있는 컴퓨터라는 설정으로 오래된 데스크톱 OS 바탕화면의 미학과 기능을 적극 활용한 <허스토리>나 픽셀로 구현한 스마트폰의 UI 내에서만 게임이 진행되는 <레플리카> 같은 게임들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게임들은 기술의 구현이 매체에 의해서 제약받는 정도가 훨씬 덜한데, 왜냐하면 비디오 게임 자체가 컴퓨터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비슷한 포맷의 다양한 게임들이 존재하지만 내가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작품은 <옵저베이션Observation>이다. 전작 <스토리즈 언톨드Stories Untold>에서도 컴퓨터를 직접적으로 구현해서 텍스트 어드벤쳐 게임에 대한 일종의 메타픽션을 만들어 냈던 개발사 No Code는 이 작품으로 게임에서 컴퓨터를 구현한다는 것의 의미를 한층 더 확장한다. AI 시스템인 SAM을 조종하는 플레이어는 매우 다양한 전자적 인터페이스를 경유해서 우주 정거장의 물리적 내/외부뿐만 아니라 버려진 랩탑들의 데이터, 정거장의 모듈 시스템, 그리고 자가 진단을 할 수 있는 내부 시스템까지 도달한다. 그러는 와중에 마이크와 카메라를 통해 계속되는 유일한 인간 생존자인 엠마 피셔 박사와의 대화에 이르면 우리가 에이전틱Agentic AI라고 부르기 시작한 어떤 기술적 흐름의 코스믹 호러적 완성형을 제시하는 듯이 보일 정도다. 다만 이 작품에서 AI가 곧 플레이어라는 것을 상기해 본다면, AI 자체를 구현하는 것이 게임의 지향점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 오히려 플레이어가 <옵저베이션>을 통해 경험하는 것은 SAM이 세계를 ‘감각’하는 방식이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안 우리의 AI친구 샘은 고정된 UI에 머물지 않고 부산스럽게 옵저베이션 정거장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다. 그러나 원격 드론을 조종해서 정거장 바깥의 공허한 우주를 유영하는 순간까지도 플레이어는 인터페이스로 가득 찬 스크린을 벗어나지 못한다. 즉 플레이어는 게임 내내 각기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기보다는 샘이라는 하나의 독립된 시스템에 내재한 멀티 모달리티multi modality를 체험한 셈이 된다. 키틀러가 이야기하듯 컴퓨터가 그 이전의 미디어와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지점은 다양한 종류의 서로 다른 데이터를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인코딩하고 조작할 수 있는 멀티 모달리티에 있다. 물론 컴퓨터 바탕 화면의 미학을 ‘완벽히’ 구현한다면 바탕 화면에서 영상을 본다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멀티 모달리티를 선보일 수 있다. 그런데 그토록 완벽하게 구현된 컴퓨터로서의 게임이라면 나의 윈도우 기기에서 가상 머신으로 작동하는 리눅스 OS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게임 내에서 구현하는 기술의 목표는 재현과 시뮬레이션의 해상도를 최대로 올려서 매우 비슷한 모양의 거의 같은 원리로 작동하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 될 수도 없지만, 된다고 해도 종종 우스꽝스러운 결과로 이어진다. 게임은 유틸리티 소프트웨어가 아닌 것이다. <옵저베이션>은 플레이어 가능한 캐릭터를 AI로 설정함으로써 전형적인 UI가 발산하는 모종의 피로감을 탈피하는 동시에 컴퓨터의 멀티 모달리티를 게임 전체의 플롯과 결부시키는 방식으로 ‘컴퓨터를 구현하는 것’에 성공한다. 게임에서의 기술 구현은 이처럼 재현과 시뮬레이션 둘 중 어느 쪽으로도 수렴되지 않으며, 둘의 합이 성공적인 구현을 담보하지도 않는다. 기술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전적으로 기술 자체의 구현에 몰두하는 것과도 다른 이야기다. 드물게 범례처럼 떠오르는 각각의 개별 작품들을 통해서 여전히 명확히 잡히지 않는 좌표를 다시 한번 확인할 따름이다. [1] 설령 계속해서 사이버웨어를 추가하더라도 V는 디버프를 받을 뿐 사이버 사이코로 돌변하지 않는다. 장비의 무게나 숙련도에 따른 디버프가 존재하는 다수의 판타지 게임들과 더 유사해지는 지점이다. [2] Gamology, “Firearms Expert REACTS to Post-Apocalyptic Weapons in Metro Exodus” YouTube 2021.11.19. https://www.youtube.com/watch?v=ZdgiAvc8FxE [3] 최초의 슈팅 게임 Spacewar! 은 1962년 MIT 랩에서 세 명의 연구자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https://en.wikipedia.org/wiki/Spacewar! [4] 최초의 FPS 게임인 Maze War https://www.guinnessworldrecords.com/world-records/95409-first-first-person-shooter-fps-videogame [5] 이동현, “영국 옥스포드 사전, 올해의 단어는 ‘뇌 썩음’(brain rot)” 한국일보 2024.12.02.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20221530000146 [6] 이 게임에서 SAM은 정확히 플레이어의 컨트롤에 의해서만 시뮬레이션 된다. 즉 현대의 AI 모델들이 기반한 확률적인 작동과는 궤를 달리한다. 직접 거대 언어 모델LLM을 실시간으로 게임에 연동해서 AI 캐릭터를 생성해 낸 <언커버 더 스모킹 건>과 같은 게임이 AI를 ‘구현’하는 것에 더 가까울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웜뱃 잡다한 일을 하는 프리랜서입니다. 역시 잡다한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게임에는 특히 관심이 더 많습니다.
- 보드게임에서 협력은 어떻게 장르가 되었나?
비디오게임에 아케이드 코옵, 카우치 코옵, 온라인 코옵 등 다양한 형태의 협력 게임이 존재하듯, 보드게임에도 많은 협력 게임이 있다. 그러나 보드게임을 가볍게 접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보드게임에도 협력 장르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 < Back 보드게임에서 협력은 어떻게 장르가 되었나? 28 GG Vol. 26. 2. 10. 비디오게임에 아케이드 코옵, 카우치 코옵, 온라인 코옵 등 다양한 형태의 협력 게임이 존재하듯, 보드게임에도 많은 협력 게임이 있다. 그러나 보드게임을 가볍게 접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보드게임에도 협력 장르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 한편, 보드게임 영역에서 협력 게임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후반 이후의 일이다. 그만큼 협력 보드게임은 보드게임의 역사에서 비교적 최근의 혁신이라 할 수 있다. 협력 보드게임의 역사: 주변부에서 중심으로 전 세계 보드게임 데이터베이스 보드게임긱에 따르면, 협력 보드게임의 기원은 193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데니스 휘틀리의 <마이애미 살인 사건>과 <말린세이 대학살>은 문서를 읽고 살인 사건의 진상을 추리하는 게임으로, 현대 ‘머더 미스터리’ 장르의 시초라 할 수 있다. 1967년에 출시된 <캡틴 스칼렛 게임>은 팀 전체가 공동의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구조를 갖춘, 현대적인 협력 보드게임에 가장 가까운 초기 사례로 꼽힌다 [1] .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최초의 협력 보드게임으로는 1981년에 출시된 <셜록 홈즈 컨설팅 디텍티브>를 들 수 있다. 플레이어는 각종 증거물, 증인과 용의자의 진술, 신문 기사, 런던 시내 지도 등을 종합해 사건을 해결한다. 이전에도 문서 추리 게임은 존재했지만, 이 작품은 꾸준한 재판과 다수의 속편이 출시되며 장수했고, 한국어판도 발매되었다. 이후 <사건의 재구성>, <디텍티브: 모던 크라임> 등 수많은 협력 추리 게임에도 영향을 미쳤다 1987년에는 TRPG <크툴루의 부름>을 보드게임으로 구현한 <아컴 호러>가 출시되었다. 이 게임은 2판(2005년), 3판(2018년)으로 개정되며 지금까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훗날 크툴루 테마는 2016년 ‘LCG(Living Card Game)’ 형식의 <아컴 호러: 카드게임>으로도 변주되어, 협력 게임의 또 다른 흐름을 만들어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중반까지 협력 보드게임은 오랫동안 주변부에 머물렀다. 현대 협력 보드게임의 기틀을 정립한 작품은 2008년 맷 리콕이 디자인한 <팬데믹>이다. 플레이어들은 각기 다른 역할을 맡아 전 세계로 확산되는 감염병을 막아야 한다. <팬데믹>은 공동 목표와 역할 분담, 가중되는 위기 같은 협력 게임의 표준을 제시했다. 이 작품 이후 협력 보드게임은 물밀 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 <팬데믹> (출처: 보드게임긱 @HexEncounter) 리콕은 2015년 <팬데믹 레거시: 시즌 1>을 통해 다시 한 번 보드게임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작품은 롭 다비오가 2011년 <리스크 레거시>에서 선보인 ‘레거시 메커니즘’(한 번의 플레이가 이후 게임에 영구적인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협력 게임에 결합한 결과물이다. <팬데믹 레거시: 시즌 1>은 한때 보드게임긱 전체 순위 1위를 차지했으며, 지금까지도 3위에 머물러 있고, 시퀄 시즌 2와 프리퀄 시즌 0도 인기를 끌었다. 이후 <글룸헤이븐>을 비롯해 다양한 캠페인형 레거시 협력 게임들이 등장했다. 2010년대 이후 <팬데믹 레거시> 시리즈, <글룸헤이븐>과 함께 가장 주목받는 협력 게임으로 2017년에 출시된 <정령섬>을 꼽을 수 있다. 플레이어는 섬에 깃든 정령이 되어, 외부에서 침략해 들어오는 제국주의 세력을 몰아내야 한다. 이 게임은 <팬데믹>처럼 입문자에게 친절한 작품은 아니지만, 이른바 ‘게이머스 게임’ 영역에서도 협력 게임이 충분히 깊고 복잡한 전략적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2026년 현재를 기준으로, 보드게임긱에 등록된 전체 게임 가운데 협력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5%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보드게임긱 상위 1000위 게임 중 16.7%가 협력 게임이다. 상위 100위로 범위를 좁히면 23%가 협력 게임이다. 매년 출시되는 게임 중 협력 게임의 절대적인 수는 많지 않지만, 그중 상당수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협력 게임이 단순한 유행을 넘어 중심 장르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협력 보드게임의 테마: 함께 맞서는 세계 협력 게임은 단순히 모든 플레이어가 승패를 공유하는 게임이 아니다. 협력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만이 아니라, 플레이어들이 공동의 문제에 도전하는 과정에 있다. 그 문제가 판타지 세계의 마왕일 때도 있지만, 많은 협력 게임은 현실에 존재하는 사회적 위기를 설정하고, 그 위기를 어떻게 함께 관리하고 감당할 것인지를 플레이어에게 묻는다. <팬데믹>에서 플레이어들은 감염병 확산을 막고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개인의 활약보다 팀 전체의 조율을 우선시해야 한다. 패배의 원인은 그저 운이 나빴기 때문이 아니라, 소통이 부족했거나 역할 분담이 어긋났거나 단기적 성과에 집착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정령섬>은 협력 보드게임이 다룰 수 있는 정치적 주제의 범위를 한층 확장했다. 여기에는 탐험과 건설, 문명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침략이 전제되어 있다. 이 게임은 협력 게임이 단지 위기를 관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위기 자체가 무엇이며, 누가 위기를 만들어냈는가를 질문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 <정령섬> (출처: 전쟁없는세상) 전쟁을 다룬 많은 게임이 전투와 승리에 집중하는 반면, <병사들의 귀향>과 <디스 워 오브 마인: 보드게임>은 오직 전쟁에서 살아남는 것을 목표로 한다. 플레이어는 1차 세계대전에 징집된 한 마을 출신의 병사들 내지 내전 중인 도시에서 살아가는 민간인이 되어 역경을 견뎌야 한다. 이 게임들의 목표는 적을 모두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버려지지 않도록 책임을 나누는 것이다. 기후위기를 다룬 협력 보드게임 와 <데이브레이크>에서 모든 선택에는 비용이 따른다. 어느 한 국가나 플레이어가 앞서 나가도, 전체가 따라오지 못하면 실패한다. 이는 기후위기가 협력 없이는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을 규칙 차원에서 체화하게 만든다. 협력 게임은 여기서 단순한 오락을 넘어, 집단적 무력감과 제한된 선택지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 도구가 된다. <자유: 지하철도>는 19세기 미국의 노예제 폐지 운동과 비밀 탈출망을 협력 게임으로 구현한다. 노예 사냥꾼은 끊임없이 탈주 노예를 추적하고, 자원은 늘 부족하며, 한 번의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게임에서 협력은 위험을 분산하는 선택이자, 실패를 감수하는 연대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협력 게임이 저항과 연대의 역사를 표현하는 데에도 효과적인 매체임을 보여준다. * <자유: 지하철도> (출처: 보드게임긱 @kilroy_locke) 이처럼 협력 보드게임은 특정한 사회 현상이나 문제의 해결 과정을 모사하고 재현하는 데 탁월하다. 이는 협력 게임이 본질적으로 단일한 승자를 전제하지 않고, 구조적 문제를 시스템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는 규칙 안에서 선택을 반복하며, 문제의 복잡성과 집단적 책임을 몸소 이해하게 된다. 협력 보드게임의 물성: 손에 잡히는 연대 협력 보드게임의 경험은 디지털 협력 게임과도 구분되는 측면이 있다. 보드 위에 쌓여가는 큐브, 줄어드는 덱, 공개된 정보와 숨길 수 없는 불안은 플레이어에게 물리적인 압박으로 다가온다. 이 물성은 위기를 단순한 추상적인 수치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관리해야 할 무언가로 체감하게 만든다. 많은 보드게이머가 PC나 모바일 플랫폼에 구현된 디지털 보드게임이 있음에도, 여전히 얼굴을 맞대고 테이블에 앉아 구성물의 ‘손맛’을 느끼며 플레이하는 것을 선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협력 게임에서 이러한 물성은 긴장과 연대의 감각을 증폭시키며, 플레이어 간의 소통을 더욱 직접적인 경험으로 만든다. 협력 게임에서 소통은 말로 이루어지는 대화에 국한되지 않는다. 카드를 내려놓는 타이밍, 토큰을 집는 방식, 시선과 표정, 찰나의 멈칫거림 같은 몸의 모든 움직임이 의미를 갖는다. ‘눈치 게임’을 전면에 내세운 <더 마인드>를 비롯해 다양한 파티게임을 플레이해보면, 실물 보드게임과 온라인 게임이 가장 크게 갈리는 지점이 같은 바로 같은 물리적 공간을 점유한다는 사실임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협력 게임에서 소통이 언제나 긍정적으로만 작용하지는 않는다. 특히 모든 정보가 공개된 협력 게임에서 목소리가 큰 한 사람이 게임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이른바 ‘알파 플레이어’ 현상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팬데믹> 같은 초기 협력 게임에서 이런 문제가 두드러졌고, 이 때문에 협력 게임 자체를 선호하지 않는 플레이어들도 적지 않았다. 협력 보드게임의 진화: 제약이 만드는 재미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최근의 협력 보드게임들은 의도적으로 소통에 제약을 두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일반적인 카드게임과 반대로, 각 플레이어가 자신을 제외한 모든 플레이어의 손패를 보면서 게임을 진행하는 <하나비>가 대표적이다. 플레이어는 직접적인 대화 대신 제한된 신호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의도를 추론해야 한다. ‘트릭테이킹’ 카드게임 장르를 경쟁이 아닌 협력 시나리오 게임으로 재해석한 <크루> 시리즈와 여기서 파생된 <반지의 제왕 - 트릭테이킹 게임>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기장과 부기장이 역할을 나눠 비행기를 무사히 착륙시키는 <스카이 팀>은 제한된 대화 속에서 역할 분담과 신뢰를 전면에 내세운 협력 게임이다. * <스카이 팀> (출처: 보드게임긱 @Tabletopping_Games) 협력 메커니즘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다양한 방향으로 분화되었다. <듄: 임페리움 – 봉기> 6인 모드나 <캡틴 소나> 같은 팀 기반 게임은 상대 팀과의 경쟁을 위해 팀 내부의 협력을 요구한다. <네메시스> 시리즈나 <데드 오브 윈터> 같은 반협력(세미코옵) 게임은 협력과 불신, 연대와 대립이 공존하는 불안정한 관계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반협력 게임에서 협력은 전제가 아니라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선택이다. 플레이어 개인의 이익을 위해 동맹은 언제든 흔들리고, 신뢰는 지속적으로 시험받는다. 이는 정치, 기후위기, 사회운동 등에서 나타나는 현실의 협력과도 닮아 있다. 이 점에서 반협력 메커니즘은 보드게임의 외연을 넓히며, 장르에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한편, <언락> 시리즈나 <광기의 저택> 2판처럼 디지털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한 협력 보드게임이 늘어나고, VR/AR 기술을 통해 온라인에서도 물리적 상호작용을 모사하려는 시도가 이어지면서,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경계 역시 점점 흐려지고 있다. 그럼에도 협력 보드게임의 핵심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함께 실패하고 함께 책임지는 경험에 있다. 앞으로의 협력 보드게임은 더 다양하고 더 복잡한 사회 문제를 다루게 될 것이며, 동시에 ‘함께 하는 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질 것이다. [1] Matt Montgomery(2024), A brief history of cooperative board games, Don’t Eat the Meeples, https://www.donteatthemeeples.com/history-cooperative-board-games/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활동가) 쥬 전쟁 게임을 즐기는 평화주의자. <인티파다: 팔레스타인에 자유를>, <세상을 바꾸다: 광장에서 국회까지>, <내 머릿속의 무지개> 등 반식민 투쟁과 비폭력 사회운동, 정신장애 임파워먼트 등을 주제로 보드게임을 만든 게임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 Prompt2Videogame: 더빙의 오래된 미래
이러한 맥락을 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데스티니의 ‘목소리’뿐 아니라 그 너머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볼 수 있다. 1조 개의 파라미터(매개변수)를 가질 GPT-4(혹은 그것을 뛰어넘는 모델)에 연동된 데스티니는 플레이어와 어떤 대화를 하게 될까? 모르긴 몰라도 그녀는 앵무새처럼 똑같은 대사를 반복해서 중얼거리진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녀가 말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은 ‘잠재적인 사운드’에 대해서도 알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미리 녹음을 했거나 혹은 기계적으로 만들어 놓은 사운드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플레이어의 대답에 따라 반응이 3가지 정도로 나뉘는 고전적인 NPC처럼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 역시 우리의 선택에 따라서 대화의 분기가 한 10가지쯤 될 것이라고 쉽게 추측할 수도 없다. 그녀는 플레이어의 대답에 긴밀하게 반응하고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하며, 그에 따라 즉흥적으로 행동에 나설 것이다. 따라서 적어도 대사나 대화에 있어서 데스티니에게 기존 게임 사운드의 특성들을 적용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 Back Prompt2Videogame: 더빙의 오래된 미래 10 GG Vol. 23. 2. 10. 그것은 운명의데스티니 2018년에 출시한 〈갓 오브 워〉와 그 후속작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는 흠잡을 데 없는 높은 완성도로 명성이 높다. 장점들을 열거하면 끝이 없겠지만, 특히 크레토스와 그의 아들 아트레우스를 둘러싼 캐릭터 서사는 이 시리즈가 어째서 그저 ‘손맛이 찰진’ 훌륭한 액션 게임에 머무를 수 없는지 명확히 드러낸다. 이와 같이 감정적 울림이 큰 서사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좋은 글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런데 갓 오브 워 시리즈처럼 대규모 예산이 투여된 트리플 A 게임들은 그에 못지않게 성우들의 연기 또한 큰 변수로 작용한다. 계속해서 Boy!를 외쳐대는 크레토스의 낮게 깔리는 걸걸한 목소리를 통해 우리는 그가 어떤 유형의 캐릭터인지 단번에 파악할 수 있다. 1)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두 게임 모두에서 크레토스의 목소리를 담당했던 배우 크리스토퍼 저지Christopher Judge는 얼마 전에 열린 ‘더 게임 어워드 2022’에서 연기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시상식에서 예의 그 Boy!를 시전하는 순간, (〈갓 오브 워〉를 무척 즐겁게 플레이했음에도) 나는 약간의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크리스토퍼는 크레토스와 전혀 닮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인종도 달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목소리는 내가 기억하는 스파르타 출신 상남자의 것이 틀림없었다. 미디어 철학자 곽영빈이 지적하듯 “상업적으로 유통되는 거의 대부분의 영상들 속에서 우리가 보고 듣는 이미지와 사운드의 조응correspondence은, 대개 이처럼 ‘사실’이 아니라 스크린에 띄워진 이미지를 중심으로 우리가 사운드에 투사하는 ‘기대’에 부합하는 것일 뿐이다.” 2) 즉, 크레토스의 캐릭터가 크리스토퍼 저지의 목소리를 가져야 할 필연적인 이유는 없지만, 우리는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이 노회한 전쟁의 신에게서 바로 그와 같은 목소리를 기대한다. 이처럼 사운드의 ‘주체’와 사운드 사이의 자의적인 관계를 시각적인 정보에 의지한 기대를 투사하는 방식으로, 마치 필연적인 관계인양 유도하는 역학은 스크린 바깥에서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보고 목소리가 진짜 ‘깬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외모에 꼭 들어맞는 다른 어떤 ‘최적화된’ 목소리가 이미 존재하는 듯이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개개인들의 목소리가 그러한 암묵적인 기대에 부합해야 한다는 넌센스적인 주장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대는 차치하고라도, 몸과 목소리의 관계는 정말 자의적이기만 한 것일까? 그 답은 여전히 불분명하다. 다만 이와 관련한 한 흥미로운 연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9년 MIT의 컴퓨터 공학, AI 랩(CSAIL)은 자신들이 새로 개발한 AI 모델 Speech2Face 3) 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이름이 암시하듯이 이 모델을 기반으로 ‘훈련’된 알고리즘은 짧은 분량의 목소리 데이터 만으로도 그 사람의 얼굴을 ‘예측’해낼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들은 때로는 실제 목소리들의 주인들과 놀랄 만큼 흡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연구자들이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한 사용한 방법은 최근 거의 모든 인공지능 분야에서 사용되는 딥러닝의 방법론 중 하나인 자기주도학습(Self-supervised learning)인데, 여기서 유념해야 할 점은 잘 알려진 지도학습(Supervised learning)과는 달리 이 방식은 데이터를 일일이 레이블링하는 작업이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Speech2Face 모델은 자신이 받아먹은(?) 대량의 데이터(수백만 개의 유튜브 비디오 세그먼트들) 속에서, 서로 대응하는 각각의 목소리와 얼굴이 가지는 어떤 공통된 상관관계를 스스로 ‘발굴’해낸다. 물론 이 모델을 창시한 연구자들조차 그 ‘상관관계’가 정확히 어떤 식으로 구조화되어 있는지 혹은 이 관계가 상관관계를 넘어선 인과관계인지 단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 결과가 목소리와 몸 사이의 자의성을 필연성으로 바꾸었다고 이야기한다면 과장 섞인 거짓말이 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설령 우리가 그것이 정확히 어떠한 관계인지 끝내 알 수 없더라도) Speech2Face가 앞으로도 끊임없이 보완되어서 정말로 실제 얼굴과 거의 동일한 이미지들을 일관되게 예측해 낸다면 어떨까. 그때에도 우리는 목소리와 몸의 연결이 완전히 랜덤 하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 Speech2Cartoon의 예시 더 나아가서 이 가능성은 다시 스크린 안으로 스며든다. Speech2Face의 연구자들은 직접 그들의 페이퍼 4) 말미에서, 이 모델은 실사 이미지뿐 아니라 (안드로이드폰의 Gboard와 같이 매우 간단한 키보드 앱을 이용해서) 특정한 목소리에 ‘적합한’ 이모지emoji를 만들어 내는 방식(Speech2Cartoon)으로 응용이 가능하다고 밝힌다. 그렇다면 점점 더 실사 이미지와 구분이 되지 않는 불쾌한 골짜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게임 캐릭터들의 얼굴 역시 목소리를 통해 예측된 이미지를 바탕으로 디자인할 수 있을 것이다. 즉, Speech2Videogame은 사실 매우 가까운 미래가 아닐까. 그리고 이 과정을 전제한다면, (여전히 블랙박스로 괄호 쳐져 있지만) 매우 정제된 수준의 목소리-얼굴 상관관계를 이용해서 역순으로 Videogame2Speech를 구성하는 일 또한 당연히 가능하다. 5) 게임 캐릭터(앞으로 이 캐릭터를 데스티니라고 부르도록 하자)의 외양에 걸맞은 목소리를 추측해 내는 것이다. 여기에 ‘자연스러운’ 목소리를 만들어 주는 생성모델Generative AI의 도움까지 받는다면 어색한 기계음의 뉘앙스마저 지워버릴 수 있을 것이다. 이때, 폴리곤으로 빚어진 데스티니는 비로소 ‘그럴싸한’ 목소리의 자의성으로부터 벗어난다. 그 목소리는 비록 우리가 기대한 음색과 톤은 아닐지 모르지만, (바로 우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유사 필연적인 상관관계를 통해 이어진 그녀만의 것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어떤 배우도 흉내 낼 수 없는 고유한 파장을 갖게 될 것이다. 이렇듯, 목소리는 ‘운명적’이다. 순수게임사운드 비판 그렇다면 데스티니의 목소리를 더빙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언뜻 생각하면 간단해 보인다. 더빙은 (가장 건조하게 이야기하면) 포스트 프로덕션 과정에서 기존 사운드에 새로운 사운드를 믹싱 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것이 인간 배우의 목소리인지 아니면 알고리즘이 생성해 낸 목소리인지, 혹은 캐릭터와 목소리의 관계가 자의적인지 필연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관건이 되는 것은 그 목소리가 앞서 언급한 간결한 정의에 들어맞는지의 여부다. 문제는 이 정의가 특정한 대립쌍들을 매우 명확하게 부각한다는 사실이다. ‘포스트’ 프로덕션 과정은 프로덕션 과정 이후이기 때문에 프로덕션 과정을 전제한다. 새로운 사운드는 기존 사운드에 대응하는 말이다. 후시녹음은 동시녹음의 대척점에 위치한다. 다만 게임 개발에는 (영화와 달리) 동시녹음 과정이 없다. 게임에 들어가는 모든 사운드는 ‘포스트 프로덕션 과정’에서 ‘기존 사운드’ 없이 믹싱 된다. 결국 우리는 게임 매체에서는 모든 게임에 들어가는 모든 사운드가 더빙된 것이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6) 그러나 이 결론은 게임 더빙에 대해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 방식으로 단어를 빈 껍데기로 만들어 버린다. 여기서 캐릭터들이 내뱉는 대사들만으로 더빙을 한정 짓는 인위적인 범위 조절을 시도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내 ‘모든 대사들은 더빙되었다’라는 식으로 똑같은 함정에 빠진다. 이쯤 되면 ‘게임 더빙’은 범위range의 대상이 아니라 범주category의 대상이라는 것이 명확해진다. 그리고 그것의 범주를 알기(혹은 새롭게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다른 매체와 구별되는 게임 더빙의 특수성을 더 들여다봐야 한다. 게임의 (더빙된) 사운드는 무엇보다도 디지털 오브젝트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갖는다. 이는 기술철학자 Yuk Hui가 주장하는 광의의 개념으로서 뿐 아니라, 실제적으로 게임 엔진이 서로 다른 맥락에 따라서 모아둔 데이터셋의 집합을 지칭하는 말이 오브젝트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7) 많은 경우 사운드 데이터는 다른 오브젝트들에 귀속되어서, 플레이어의 상호작용과 같은 ‘의미 있는’ 트리거를 기다린다. 〈갓 오브 워〉에서 종종 등장하는 ‘종 3개 빨리 치기’ 퍼즐을 생각해 보자. 여기서 플레이어가 리바이어던 도끼를 날려서 종 하나를 맞추는 한 동작만으로도 이미 많은 트리거가 활성화된다. 먼저 도끼를 날리면서 크레토스가 내뱉는 기합은 크레토스의 캐릭터 오브젝트에서 나온다. 도끼 오브젝트는 날아가면서 또 특유의 사운드를 실행한다. 도끼 오브젝트와 충돌한 종 오브젝트 역시 마찬가지다. 그 후 다시 크레토스에게로 날아온 도끼가 그의 손에 감기는 순간 또 다른 사운드가 실행된다. 그렇다면 이 간단한 퍼즐을 끝내기 위해서 얼마나 더 많은 트리거가 발동되어야 하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 게임 사운드의 확산 모양과 범위는 다양하게 설정 가능하다 사운드 데이터는 다른 오브젝트에 속하지 않고 스스로 오브젝트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전투가 시작될 때의 긴박한 배경음악은 갑자기 어디서 흘러나오는 것일까? 바람 소리 혹은 빗소리는? 길게 흐르는 하천의 물소리는? 이처럼 물리적 실체나 그 소리의 진원지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도, 플레이어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오브젝트는 그 세계 내에 ‘물리적으로’ 존재한다. 이와 같은 사운드 시스템에서 사운드는 매우 구체적인 트리거의 조건과 범위를 지닌 채 게임 세계 곳곳에서 공간적인 위치를 점유한다. 이 배치는 일차적으로 플레이어의 인터페이스적 개입을 전제하지만, 종종 (플레이어와는 관계없이) 여러 오브젝트들의 루틴이 충돌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식으로 예상치 못하게 풍부한(?) 사운드를 발동시키기도 한다. 8) 결과적으로 일직선의 게임플레이를 채택한 아주 선형적인 게임에서조차 사운드는 (많은 경우의 수에 따라 조합하는 방식으로) 비선형적으로 작동한다. 이처럼 모듈화된 비선형적 사운드 조각들은 게임 사운드의 몇 가지 중요한 특징들을 위한 인프라적 토대가 된다. 그중 하나가 반복이다. 반복이라는 행위/상황(플레이어가 누르는 키, 캐릭터의 모션 등등)은 게임과 같은 프로그램 전반에 걸쳐서 광범위하게 벌어진다. 사운드 역시 예외는 아니다. 플레이어는 종종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수많은 반복적인 사운드에 노출된다. 〈더 위쳐 3: 와일드 헌트〉의 본편과 두 확장팩을 전부 클리어하는 동안 우리가 듣게 되는 로취의 말발굽 소리는 횟수로 따지면 얼마나 될까? 일일이 세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의 양일 것이다. 이러한 예는 수없이 많다. 게롤트가 약공격으로 휘두르는 칼소리는 몇 번이나 될까? 쿠엔 표식의 발동 사운드는? 그런데 캐릭터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부터 우리는 반복을 좀 더 의식하게 된다. 게롤트의 유명한 방백(?)인 “Wind’s howling”은 바람이 심한 언덕 같은 곳에 가게 되면 혼잣말로 할 법한 대사이긴 하다. 그러나 매번 완전히 똑같은 톤과 페이스로 이 대사를 계속해서 읊는 그를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이 문장이 어째서 인터넷 밈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혼잣말 정도가 아니라 더 나아가서 같은 대화를 그대로 반복한다는 것은 명백히 어색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 역시 게임에서는 그리 드문 일도 아니다.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 2〉의 메인 거점 중 하나인 드리프트우드 마을에는 여러 종류의 상인들이 모여 있는 큰 광장이 있다. 처음 이곳에 도착한 플레이어는 아마 많은 대화들과 외침들이 중첩되어서 만들어 내는 활기에 취할 것이다. 그런데 그 광장을 이후로도 최소 수십 번은 방문하게 된다면? 어느 순간 광장에서 들리는 모든 대사를 외워서 읊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정확한 톤까지 머릿속에서 재생할 수 있게 된다. 9) 반복되는 대사들은 종종 이처럼 밈으로 고착화되는 방식을 통해 기존 맥락에서 탈구되는데, 어쩌면 이 현상은 게임 사운드의 중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10) 게임 사운드의 반복이 반복적인 트리거의 결과라면, 반대로 단 한 번도 트리거 되지 않는 사운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즉, 가능성에 머물 수 있음은 게임 사운드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이다. 위쳐 3에서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는 몇몇 중요한 사이드 퀘스트들과 멀티 엔딩들을 떠올려 보자. 100시간이 넘는 플레이 타임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어는 아마도 몇몇 중요한 대화들은 구경도 못한 채 게임을 끝낼 것이다. 이 부분을 더 밀고 나간 것은 흥미롭게도 그 전작인 〈더 위쳐 2: 왕들의 암살자〉이다. 위쳐 2에서 플레이어의 선택은 메인 내러티브의 중대한 분기점을 촉발한다. 그에 따라 그다음 챕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선택에 따라 플레이어는 그중 하나만을 경험할 수 있다. 2회 차를 통해서 두 부분을 모두 경험해 본 바에 따르면, 이 두 가능성은 적어도 이 기나긴 챕터에서 완벽히 다른 2개의 평행세계를 구축한다. 하나를 선택함에 따라 경험이 불가능해지는 다른 하나는 그저 어떤 씁쓸한 결말이라든가 짧은 엔딩 같은 것이 아니라, 커다란 지역을 누비며 다양한 캐릭터들과 상호작용하는 디테일한 이야기와 모험이다. 물론 플레이어가 다른 쪽을 선택했기 때문에, 이 모든 풍부한 사운드는 가능성으로만 남는다. 그런데 이와 같은 특징이 언제나 내러티브의 분기 과정에서 서브루틴으로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디스아너드〉의 사례는 환원되지 않는 그 지점을 잘 포착해 낸다. 이 게임은 플레이어가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스텔스 플레이를 하도록 종용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실력과 운이 잘 맞아떨어진다면, 적들에게서 단 한 번의 의심조차 사지 않고 미션을 클리어하는 것이 가능하다. 혹은 반대로 완전히 난장판을 만들면서 모두를 죽이고 미션을 클리어할 수도 있다. 이 두 개의 극단적인 시나리오 사이에는 둘을 각기 다른 비율로 조합한 수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이 경우의 수들은 메인 내러티브 분기와는 독립적으로, 전적으로 플레이어의 계속되는 작은 선택들에 따른 분기로 인해 발생한다. 그리고 각각의 시나리오는 모두 고유한 사운드 스케이프를 갖는다. 따라서 플레이어가 특정한 방식으로 한 미션을 클리어할 때, 실현되지 못하고 잠재적으로 존재했던 다수의 사운드 스케이프들은 저장 장치 속에서 분절된 사운드 데이터의 형태로 다시 잠든다. 오래된 미래 앞서 제기했던 질문은 다음과 같이 다시 물을 수 있다. 데스티니의 목소리는 (더빙된) 게임 사운드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너무나 명백한 답이 있는 것처럼 보임에도, 우리는 여기서 이 질문을 다시 뒤로 미뤄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제외하고는 다른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녀가 정말로 게임 캐릭터라면, 그 캐릭터가 어떻든 혹은 그 게임이 무엇이든 간에 앞서 서술한 게임 사운드의 특징들을 그대로 가져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데스티니가 기존의 방식대로 만들어질 게임에 속하는 캐릭터라면, 그 말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래야만 할 이유가 있을까? 그녀는 ‘고유의 목소리’까지 얻어낸 캐릭터가 아닌가. 그 목소리로 계속해서 같은 대사를 읊는다면, 그 광경은 좀 기괴하고 슬플 것이다. 11) 더 다른 가능성을 상상해 보아야 한다. 때마침 (그녀에게는 다행히도) 게임 업계는 개발 프로세스의 엄청난 변화를 목전에 두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휩싸여 있다. * 생성모델을 이용해서 게임 에셋들을 만들기 시작한 기업들 실리콘 밸리의 유력한 벤처 투자 회사인 안드레센 호로위츠Adreessen Horrowitz는 생성모델Generative AI에 관한 최근의 보고서 12) 에서 게임 분야야말로 이 새로운 기술에 의해서 가장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There hasn’t been a technology this revolutionary for gaming since real-time 3D.”) 더빙을 포함해 게임에 들어가는 모든 에셋들은 달리(DALL·E), 미드저니, 스테이블 디퓨전, ChatGPT와 같은 생성모델에 의해서 이미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받고 있으며, 그 영향력은 점차 확대될 것이다. 종국에는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통합적인 솔루션의 등장을 암시하며 보고서는 끝을 맺는다. 과장되었다거나 혹은 먼 미래의 일이라고 치부할 의심 많은 독자들을 위해서 이 보고서는 친절하게도 아소보 스튜디오가 개발을 맡은 〈플라이트 시뮬레이터 2020〉의 사례를 든다. 잘 알다시피 이 시뮬레이션 게임의 맵은 (농담이 아니라) 지구 전체다. 이 정도 스케일의 맵을 만든다는 것도 상상이 잘 안 가지만, 비행기를 운전하면서 지상을 내려다보면 마치 특정 도시를 그대로 옮긴 듯한 디테일 함에 또 놀라게 된다. 이와 같은 맵을 기존의 방식대로 만들려고 했다면 아마 불가능한 스케줄 덕분에 개발을 시작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을 것이다. 답은 퍼블리셔인 마이크로소프트가 소유한 (위성사진을 포함한) 다양한 지리적 데이터에 있다. 13 ) 그들은 2D 이미지를 실제와 같은 3D 모델링으로 바꿔주는 AI 모델을 이용해서, 엄청난 양의 지리 데이터로부터 말 그대로 ‘또 하나의 지구’를 만들어 냈다. 플라이트 시뮬레이터가 출시한 시점(2020년)과 여기에 쓰인 AI 모델이 본격적인 생성모델이 아니라는 것을 고려해 보면,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이러한 맥락을 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데스티니의 ‘목소리’뿐 아니라 그 너머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볼 수 있다. 1조 개의 파라미터(매개변수)를 가질 GPT-4(혹은 그것을 뛰어넘는 모델)에 연동된 데스티니는 플레이어와 어떤 대화를 하게 될까? 모르긴 몰라도 그녀는 앵무새처럼 똑같은 대사를 반복해서 중얼거리진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녀가 말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은 ‘잠재적인 사운드’에 대해서도 알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미리 녹음을 했거나 혹은 기계적으로 만들어 놓은 사운드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플레이어의 대답에 따라 반응이 3가지 정도로 나뉘는 고전적인 NPC처럼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 역시 우리의 선택에 따라서 대화의 분기가 한 10가지쯤 될 것이라고 쉽게 추측할 수도 없다. 그녀는 플레이어의 대답에 긴밀하게 반응하고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하며, 그에 따라 즉흥적으로 행동에 나설 것이다. 따라서 적어도 대사나 대화에 있어서 데스티니에게 기존 게임 사운드의 특성들을 적용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렇다면 관건은 그녀의 목소리가 더빙인지의 여부 따위가 아니라, 생성모델로 만들어질 (그녀가 속한) 게임의 ‘사운드 스케이프’를 그려 보는 것이 아닐까. 좀 진부하지만 고전적인, 광활한 판타지 오픈월드 RPG의 세계를 상상해 보자. 규모에 걸맞게 수 백명의 캐릭터가 배정될 것이다. 그들 모두는 고유한 목소리를 할당받고, 역시 어마어마한 개수의 파라미터를 가진 AI 모델에 연동되어서 각기 특정한 ‘개성’을 갖는다. NPC끼리도 서로 자유롭게 상호작용이 가능할 것이다. 마치 이 영상 14) 이 보여주는 것처럼 대화를 전개한다면, 곧 대화의 홍수로 인해 로그 데이터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할 것이다. 곧이어 전 세계의 플레이어들이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관계는 더욱 복잡해진다. 게임에는 점점 더 많은 트래픽이 몰리고,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음성을 포함한) 로그 데이터를 감당하지 못하게 된 게임사는 노로그no-logs 정책을 표명할 것이다. 이제 누구의 말도 기록되지 않는다. 그렇게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다. 어느 밤에, 플레이어는 데스티니와 그리고 다른 동료들과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데스티니는 마치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음유시인처럼 서사시를 노래할지도 모른다. 모두가 이야기를 멈추고 조용히 경청할 것이다. 끝난 뒤에는 박수가 터져 나오고, 누군가는 휘파람을 불 것이다. 그녀의 서사시는 함께 있었던 동료들의 입을 통해 훨씬 더 오랜 시간 뒤까지 전해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전해주는 억양과 분위기, 그리고 시의 특정한 운율은 그날 밤, 그곳에서 폴리곤의 대기 속으로 흩어질 것이다. 1) https://www.youtube.com/watch?v=Pobwy_es2uc Boy! 부분만을 따로 모아 편집한 몽타주 영상이다. 크레토스가 아들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고 계속해서 Boy!라고 외치는 데에는 개발사 산타 모니카 스튜디오가 〈갓 오브 워〉 제작 중반까지도 아트레우스의 이름을 두고 고민을 했다는 어른의 사정(?)이 숨어 있다. 2) 곽영빈 외, 『블레이드 러너 깊이 읽기』, (경기 파주: 프시케의숲, 2021), p.192. 3) https://speech2face.github.io/ 4) https://arxiv.org/abs/1905.09773 5) 예상하다시피 Speech2Face의 논문이 발표된 이후에, Face2Speech를 구현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등장했다. 6) 실제 배우들의 연기를 촬영하고 편집해서 게임 내에 녹여내는 몇몇 인터랙티브 무비 게임들은 예외가 될 것이다. 이 장르의 가장 독창적인 개발자로 평가받는 샘 발로우Sam Barlow의 대표작으로는 〈허스토리〉, 〈텔링 라이즈〉, 〈이모탈리티〉 등이 있다. 7) 엔진에 따라 지칭하는 용어가 조금씩 다르다. 예를 들어, 언리얼 엔진에서는 오브젝트를 액터actor라고 부른다. 8) 드물게 발생하지만, 〈데이즈 곤〉에서 프리커 호드가 약탈자 캠프를 덮치는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플레이어는 덤불에 숨은 채로 느긋하게 그 ‘시끄러운’ 전투를 관람할 수 있다. 9) https://www.reddit.com/r/DivinityOriginalSin/comments/ex0kic/driftwood_square_in_a_nutshell/ 그 대화들을 아무 맥락 없이 이어가는 것은 디비니티 레딧에서 하나의 밈/놀이로 자리 잡았다. 10) 민속놀이 〈스타크래프트〉와 〈리그 오브 레전드〉의 많은 대사들과 용어들이 한국에서 현지화의 형태로 밈화 되는 것 역시 이러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11) 호러 영화에서 자주 쓰이는 장치로, 등장인물이 (마치 로봇처럼) 같은 간격으로 계속 똑같은 대사를 중얼거리는 기믹을 떠올려 보자. 그 반대로 똑같은 말을 반복하도록 설정된 기계나 사물이 갑자기 등장인물의 말에 반응해서 특정한 대답을 하는 경우도 비슷한 효과를 갖는다. 12) James Gwertzman and Jack Soslow, “The Generative AI Revolution in Games” Adreessen Horrowitz, 2022.11.17. https://a16z.com/2022/11/17/the-generative-ai-revolution-in-games/ 13) 마이크로소프트는 Bing Maps를 소유하고 있다. 14) Jack Soslow, “Two AIs talking to each other [Original]” YouTube 2021.04.13. https://www.youtube.com/watch?v=jz78fSnBG0s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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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미국을 묻는다면 패드를 들어 GTA를 플레이하게 하라
이토록 GTA는 찬사와 공격, 열광과 거부를 동시에 받아왔다. 한편에서는 미국 사회를 가장 정확하게 묘사한 문화적 기록물로 평가받고, 다른 한편에서는 국가·도덕·질서에 대한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공격받았던 것이다. 2기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통치가 점입가경으로 치닫는 지금, 미국이라는 지리적, 문화적 배경 속에서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쉬지 않고 꺼내온 GTA 시리즈가 지니는 의미는 남다르다 할 수 있겠다. < Back 누가 미국을 묻는다면 패드를 들어 GTA를 플레이하게 하라 28 GG Vol. 26. 2. 10. This Is America [1] 그랜드 테프트 오토(Grand Theft Auto, 이하 GTA) 시리즈는 디지털게임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 아니다. 1997년 첫 작품 이후, GTA 시리즈는 세계적으로 4억 장 이상 판매되었다. 이는 비디오게임 역사상 최상위권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30년 가까운 기간 동안 기록한 누적 4억 장의 판매고는 시리즈가 나타낸 미국의 욕망과 폭력이 전 세계 이용자들에게 하나의 공통 기억이자 문화적 표준으로 자리 잡았음을 시사한다. 특히 13년 전 출시된 는 출시 72시간 만에 매출 10억 달러를 돌파하며, 영화·음악·게임을 통틀어 가장 빠른 엔터테인먼트 흥행 기록을 세웠다. 이 작품은 이후 10년이 넘도록 꾸준히 판매되며, GTA에서 비롯된 문화적 공통기억은 을 통해서 인터넷 공간으로 진출했다.평단 역시 GTA의 새 작품이 나올 때마다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리메이크판 트릴로지 제외) , (이하 GTA VC), (이하 GTA SA), , 는 모두 주요 매체에서 연속적인 ‘올해의 게임(Game of the Year)’ 수상과 90점대 메타크리틱 점수를 기록했다. 의 메타크리틱 점수는 97점이다. 학계에서도 GTA 시리즈를 미국 사회와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풍자물로 인정하고 있다. [2] 이러한 시리즈의 위상은 차기작을 향한 집단적 열광에서도 확인된다. 2023년 12월 공개된 의 첫 공식 트레일러는 공개 24시간 만에 9천만 회 이상 조회되며, 유튜브 역사상 가장 빠르게 확산된 게임 트레일러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의 발매가 2025년 가을에서 2026년 11월로 연기되자마자 락스타게임즈의 모회사 테이크투인터랙티브의 주가는 8% 떨어졌다. GTA는 현대 디지털게임 '씬' 전체를 대표하는 '킬러 타이틀'이라고 볼 수 있다. 앞서도 짧게 언급했지만, 이 시리즈는 단순한 상업적 성공작이 아니라 지난 30여 년간 미국 사회의 욕망·폭력·자본·권력 구조를 노골적으로 재현해 온 대중문화의 거울이었다. 당장 이번 트레일러도 과잉 SNS 문화와 기이한 범죄, 노골적인 사회 불평등, 마약 범죄와 총기 문제에 대한 은유가 가득하다. GTA는 게임 안팎으로 사회적 해석의 대상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GTA는 대중적 찬사와 기대를 받는 동시에 출시 이래 줄곧 보수 진영과 정치권의 집중적인 공격 대상이기도 했다. 락스타게임즈가 3D 게임을 표방하고 게임에 스토리라인을 강조하기 시작한 [3] 이래 "범죄를 조장하는 시뮬레이터"나 "사회 악"이라는 비판을 마주해야 했다. 미국 정가에서는 GTA는 '살인 훈련 프로그램'으로 규정하고 온갖 총기 사고의 원흉으로 GTA를 지목했다. 2005년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은 '핫 커피 스캔들'이 터지자 연방거래위원회에 락스타게임즈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락스타게임즈의 공동 창립자의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인데, 댄 하우저는 2018년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임 기간 중 GTA 시리즈 신작을 출시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사람들이 얼마나 화를 낼지 상상도 안 된다"라며 자신들의 게임이 “2분 만에 구식이 될 풍자”가 될까 우려했다. 오늘날 뉴스를 보면 알 수 있듯 극단으로 치닫는 정치적 상황 속에서 게임은 현실을 풍자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광기를 뒤늦게 쫓아가는 것에 대한 걱정인 것이다. [4] 이토록 GTA는 찬사와 공격, 열광과 거부를 동시에 받아왔다. 한편에서는 미국 사회를 가장 정확하게 묘사한 문화적 기록물로 평가받고, 다른 한편에서는 국가·도덕·질서에 대한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공격받았던 것이다. 2기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통치가 점입가경으로 치닫는 지금, 미국이라는 지리적, 문화적 배경 속에서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쉬지 않고 꺼내온 GTA 시리즈가 지니는 의미는 남다르다 할 수 있겠다.이 글은 GTA 시리즈를 단순한 범죄 게임으로 보지 않는다. GTA는 지난 30여 년간 미국과 미국의 도시 [5] 가 폭력을 조직하고, 배분하며, 정당화하는 방식을 플레이 가능한 구조로 구현해 온 시뮬레이터다. 본문은 에서 에 이르기까지, 이 시리즈가 어떻게 갱스터 서사에서 국가 권력의 관리 체계로 이행했는지를 탐구해본다. 의 티저 이미지 Concrete Jungle [6] 본격적인 출발에 앞서 두 가지를 밝혀두려 한다. 하나, 분량 문제상 등 외전격의 타이틀에 관해서는 논하지 않는다. 둘, 이 글은 와 를 건너뛰고 락스타게임즈가 오픈월드 게임의 형태를 채택하기 시작한 부터 시작한다. 오픈월드와 여기에 따라붙는 굵고 가는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형식은 부터 시작되어 발전했다. 그리고 이 오픈월드는 언제나 미국의 특정 도시를 변주한 가상 공간 위에서 전개되어 왔다. 이 지리적 선택은 단순한 배경 설정이 아니다. 락스타게임즈는 오픈월드 가상 도시를 통해서 미국 사회가 처한 문화적 병리와 권력 구조를 꼬집는다. 2001년작 의 무대인 리버티 시티는 뉴욕을 모티프로 한 최초의 3D 오픈월드 도시다. ‘알곤퀸’은 맨하탄, ‘브로커’는 브루클린, ‘듀크’는 퀸즈가 떠오른다. 플레이어는 범죄자로서 이 도시를 떠돌며, 마피아와 야쿠자, 카르텔 등 여러 범죄 조직과 관계를 맺는다. 3편은 여러 조직의 이권 다툼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2001년의 시공간 [7] 보다는 갱스터 무비의 관습적 답보에 가깝다. 또 3편 주인공 클로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침묵하는 주인공(Silent Protagonist)으로 등장하는 데다, 클로드와 그를 배신한 전 여자친구 카탈리나와의 복수전에 많은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럼에도 주요인물의 배신, 배금주의와 부패한 공권력, 자동차 도둑질과 도로에서 추격전 등을 비롯한 오픈월드 GTA 시리즈의 골격이 되는 요소는 3편에서부터 시작됐다. . 사진은 리마스터 버전. 2002년작 는 2001년부터 15년 전인 1986년으로 돌아간다. 무대는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한 바이스 시티. 해당 작품 또한 전편처럼 갱스터 무비를 향한 오마주가 강하게 느껴진다. 특히 저택에서 펼쳐지는 총격전 미션과 캐릭터의 옷차림 등은 <스카페이스>나 <칼리토> 같은 브라이언 드 팔마 영화가 강하게 연상된다. 디스코클럽, 아날로그 전자기기 등등 개발진의 15년 전에 대한 향수 또한 만날 수 있다. 자동차 추격전에 그쳤던 전작과 달리 보트, RC 헬기 등의 탈것 옵션이 추가되었다. 디스코 음악, 파스텔톤 건물, 네온사인, 야자수가 가득한 에서 인물들의 탐욕은 보다 본격적으로 전시된다. 전작에서 침묵의 클로드와 그의 새 파트너는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엔딩 장면처럼 곡절 끝에 새로운 길을 향해 걸어간다. 리버티 시티를 떠나가면서 이야기를 맺는 것이다. 토미 버세티는 자신들을 괴롭히는 범죄 조직으로부터 탈출하는 대신, 그들에 맞서 자기 패밀리를 세워 바이스 시티를 접수하려 한다. 의 토미 버세티는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락스타게임즈는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신화가 어떻게 폭력과 착취로 전환되는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메인 미션 폭동(Riot)을 그 예로 들 수 있을 텐데, 토미가 수행하는 파업 진압 미션은 아메리칸 드림의 밑바닥에 깔린 추악한 공식을 폭로한다. 그의 성공을 향한 자유의지는 기득권의 이익을 위해 약자를 파괴하는 ‘용병술'로 변모한다. 락스타게임즈는 에 쿠바계와 아이티계 이민자를 등장시키며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실제 마이애미에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던 이민자 문제를 게임에도 반영한 것이다. 쿠바 갱들과 아이티 갱들은 각각 리틀 아바나와 리틀 아이티를 거점으로 이권 다툼을 벌이는데, 버세티는 아이티 갱의 부두술에 세뇌당해 쿠바 갱을 공격한다. 이 퀘스트에서 “모든 아이티인을 죽여라”라는 대사가 노출되고, 공분한 재미(在美) 아이티 교민사회는 2003년 락스타게임즈를 고소했다. 이뿐 아니라 리틀 아이티의 정육점에서 사람의 내장(Human Organ) [8] 을 판매 중이라는 정보까지 확인되면서 락스타게임즈는 적잖은 비판을 마주해야 했다. 이 일로 락스타게임즈는 사과하고 게임 내 일부 표현을 수정했다. 는 쿠바 갱과 아이티 갱의 갈등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이 어떻게 타락하는지를 고발하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는 뒤에 소개할 에 이르러 성취된다. Killing In The Name [9]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2004)의 배경은 미국 서부로 확장됐다. 로스 산토스는 LA, 산 피에로는 샌프란시스코, 라스 벤투라스는 라스베이거스로 구성됐다. 지금 플레이해도 광대한 규모의 맵은 1990년대 미국 전체를 하나의 사회적 단면도로 압축한다. 특히 로스 산토스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LA 폭동, 갱 전쟁, 인종 차별, 그리고 경찰 조직의 구조적 부패를 정면으로 소개한다. 여기서 도시는 더 이상 추상적 범죄 공간이 아니라, 인종·계급·공권력이 충돌하는 정치적 장이 됐다. 주인공 칼 존슨(CJ)의 여정은 개인적 성공담이 아니라, 부패한 도시 시스템 속에서 ‘후드’를 지키기 위한 방어전이다. 고향(리버티 시티)에서 버림받은 토미 버세티가 새 터전(바이스 시티)의 왕이 되기를 바랐다면, CJ는 동고동락한 형제들과 함께 스트리트의 부활을 꿈꾼다. 이는 GTA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보기 드문 태도다. 범죄를 통해 도시를 점유해 나가던 이전 작품들과 달리, 는 공권력에 의해 해체될 위기에 놓인 집단을 부활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많은 저작이 지적하듯이 갱스터 문화를 미국 도시 빈민의 자기 방어로 연결지은 것이다. [10] 그러나 CJ의 시도는 이 시리즈가 꾸준히 보여준 배신에 의해, 그리고 이런 배신을 막후에서 종용하는 공권력에 의해 좌절된다. 의 세 지역을 지배하는 실질적 권력은 갱이 아니라 경찰이다. 사무엘 잭슨이 목소리를 연기한 프랭크 텐페니를 중심으로 한 부패 경찰 서사는 90년대 미국의 가장 불편한 진실을 드러낸다. 부패 경찰 조직 ‘C.R.A.S.H'의 텐페니 경관은 CJ에게 살인 누명을 씌워 협박하며, 갱단 간의 유혈 사태를 방조하거나 오히려 부추긴다. 이는 당시 실제 사회적 지탄을 받았던 LAPD의 부패 스캔들을 직접적으로 투영한 설정이다. 플레이어로 하여금 "법과 질서"라는 명분이 어떻게 권력의 도구로 전락하는지 추체험시킨다. 경찰들은 범죄와 적극적으로 싸우지 않는다. 대신 이들은 <블랙 앤 화이트>를 플레이하듯이 필요에 따라서 범죄를 관리하고, 조절하고, 필요할 때 특정 집단을 희생시킨다. 게임에는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지만, 1994년의 폭동도 경찰측 개입에 의해 ‘유색인종’간 갈등으로 비화됐다. 에서도 마약은 단속되지 않고 유통 경로만 바뀌며, 갱들의 전쟁은 경찰이 요리하기 좋은 균형 상태로 유지된다. CJ는 이 과정에서 범죄자이면서 동시에 국가 폭력의 희생자-실행자가 된다. 법 바깥에서 움직이지만, 그가 저지르는 폭력은 공권력의 묵인과 지시에 의해 정당화된다.요컨대 는 국가폭력이 어떻게 개인의 선택이라는 형태로 위장되는가를 플레이 가능한 구조로 구현한 게임이다. CJ는 경찰의 협박을 "부당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폭력을 내면화하고 동시에 타인에게 실행한다. 게임의 컷씬들은 그렇게 CJ 지역의 질서를 지키는 하청노동자가 되어가는 과정과, 그 속에서 후드를 향한 대의 또한 위협을 받는 모습을 두루 비춘다.게임 중반 이후 맵이 도시를 벗어나 사막과 시골, 군사 기지로 확장되는 이유도 바로 이 부분에서 설명된다. 로스 산토스의 문제는 로스 산토스 안에서 해결되지 않는다. 마약은 월경(越境)하고, 가장 강력한 폭력이 숨쉬는 곳은 스트리트가 아니라 경찰서나 군사기지 Area 69 [11] 다. 카지노 산업은 검은 돈을 세탁하게 된다. 이때부터 CJ는 라이벌 갱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거대하고도 추상적인 시스템의 내면과 싸우게 된다. 후반부에 이르러 CJ는 명백한 성공을 거둔다. 그는 돈을 벌고, 조직을 확장하며, 도시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이 성공은 해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갱은 기업처럼 운영되고, 충성은 계약으로 대체되며, 폭력은 효율의 문제로 환원된다. CJ는 더 이상 후드를 지키는 청년이 아니라, 자신이 증오하던 시스템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마름에 가까워진다. Flashing Lights [12] 를 기점으로 GTA 시리즈는 본격적으로 미국이라는 국가가 폭력을 조직하고 분배하며 정당화하는 방식을 해부하는 정치적 텍스트로 기능한다. (기존의 톤, 유머는 유지하면서 말이다.)그리고 이 문제의식은 다음 작품인 에서 이민자와 아메리칸 드림, 금융자본, 9.11 테러 이후의 미국이라는 보다 노골적인 형태로 이어진다. 는 리버티 시티로 돌아온다. 의 리버티 시티는 의 그것보다 훨씬 더 잔혹하다. 플레이어는 ‘자유’가 아닌 총성과 배신, 그리고 무차별적 자본 논리만이 작동하는 세계를 체험하게 된다. 여기서 도시는 기회의 공간이 아니라, 개인을 끊임없이 소외시키고 폭력으로 내모는 구조 그 자체로 제시된다. 이민자·마피아·부패한 정치와 자본이 뒤엉킨 “포스트산업 도시”의 축소판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게임이 영국인의 시선에서 제작되었다는 점은 흥미를 더한다. [13] 2008년 는 다시 리버티 시티로 돌아오지만, 그 톤은 이전과 현격히 다르다. 9·11 테러 이후의 뉴욕을 반영한 이 도시는 불안과 감시, 냉소로 가득 차 있다. 동유럽 이민자 니코 벨릭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미국은 더 이상 약속의 땅이 아니다. 이민자들은 값싼 노동력으로 착취되거나 범죄 세계로 흡수되며, 합법과 불법의 경계는 무의미해진다. 의 도시는 “기회의 땅”이라는 신화를 해체하고, 아메리칸 드림이 정상적으로 작동 불가능해진 풍경을 우울하게 전시한다. 니코 벨릭은 GTA 시리즈에서 가장 명확하게 외부자로 설정된 인물이다. 그러므로 그가 접하는 리버티 시티 또한 완전히 낯선 이국이다. 게임에서는 유고슬라비아에서 온 니코 벨릭의 슬라브 억양 영어를 비웃는 컷씬을 왕왕 만날 수 있다. 토미 버세티와 CJ는 감옥에서 갓 나왔지만 일단은 미국인이었던 반면, 니코 벨릭의 는 그가 미국인화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리하여 는 세계화 시대의 뉴욕을 드러내고 있다. 리버티 시티에는 이탈리아계 이주민, 러시아계 이주민, 한국계 이주민 등등이 어울리는 메트로폴리탄이다. 리버티 시티는 더 이상 시절 놀이터가 아니다. 금융자본, 부동산 개발, 이민 노동, 정치 로비, 범죄 조직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얽힌 공간으로 제시된다. 소년병 출신으로 유고슬라비아 전쟁에서 살아남은 설정으로 역대 시리즈 주인공 중 가장 강력한 전투력을 자랑하는 그를 위협하는 것은 총이 아니라 밀입국자라는 신분이다. 촘촘하게 짜여진 사회 시스템에서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 니코는 도시의 청소부, 살인청부업자의 역을 자임한다. 사람을 죽이는 행위에 있어서는 거리낌이 없는 니코지만, 정작 게임에서는 인정(人情)을 중요한 포인트로 내세운다. 게임에서는 관계도가 퍼센트의 확률로 제시되어 친밀도가 높은 NPC에게는 게임을 유리하게 만드는 여러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니코는 몇 명 주요 NPC에게서 결정적인 배신을 당하게 된다. 게임 내내 배신을 당하는 니코 벨릭은 엔딩에 들어서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 두 갈래 길 중에 어느 것을 골라도 범죄와 그리 연관이 깊지 않은 NPC가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두 개의 엔딩 모두 미국과 미국의 자유를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을 비추며 막을 내린다. 거래 엔딩은 여인상의 뒷면을 비추면서, 배신 엔딩은 여신상을 양각으로 비추면서 마무리된다. 니코 또한 전작의 CJ처럼 대도시에서 폭력의 하청을 맡고 그로 인해 얻은 보상으로 많은 돈을 벌지만,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아메리칸드림을 박살난 것에 따른 보상이었다. 니코 벨릭은 그렇게 미국인이 되었다. 의 자유의 여신상. 전작에서 락스타를 괴롭혔던 당시 상원의원 힐러리 클린턴과 똑 빼닮은 모습. 모드가 아니라 바닐라 버전에 이렇게 나온다. I Fought the Law [14] 2013년작 의 로스 산토스는 이러한 모든 층위를 집대성한 공간이다. 이 도시는 의 로스 산토스가 지녔던 인종 갈등과 부패한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그대로 가져오되, 국가에 대응하는 갱 스트리트의 역할은 약화시켰다. 2010년대에 들며 국가행정은 스트리트를 완벽하게 통제하게 됐다. 대형 갱 전쟁은 사라졌으며, 소규모 마찰만이 도시의 새벽을 시끄럽게 만들 뿐이다. 아울러 의 리버티 시티가 은유한 금융자본, 이민자의 미국은 ‘스마트’한 현대 사회상에 맞게 발전했다. 이 방식은 이전보다 훨씬 냉소적이고 파편화되어 있는데, 스마트폰의 사용, 소셜네트워크, 모바일 주식 트레이딩 등의 기능은 로스 산토스 위에 샌드박스적 재미를 더했다. 락스타게임즈는 시리즈 최초로 에 세 명의 주인공을 등장시켰다. 마이클 드 산타, 프랭클린 클린턴, 트레버 필립스는 각각 현대 미국이 배출한 세 가지 주체 모델을 상징한다. 이들은 협력하지만 결코 하나로 수렴하지 않으며,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도 경멸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필요에 따라서 연대한다. 세 명의 인물이야말로 가 말하려는 핵심이다. 마이클은 신자유주의 시대 백인 중산층의 정신적 빈곤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은퇴한 은행 강도” 설정을 가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금융 위기 이후 미국 사회에서 정체성을 상실한 가장의 초상에 가깝다. (중년 가장의 애처로움은 어딜 가나 비슷하겠으나 한국에는 없는) 증인 보호 프로그램의 비호 속에서 락포드 힐즈(GTA판 베버리 힐즈)의 대저택에 살고 있지만, 가족과의 관계는 붕괴 직전이고, 소비로 유지되는 평온은 꺼림칙하고 불안하다. 마이클의 집은 미국적 부르주아의 완성처럼 보이지만, 정작 이 자리를 일군 마이클은 공허를 느끼며 심리상담사를 찾는다. 마이클이 느끼는 이 공허는 범죄의 위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합법적 성공”에 완벽히 편입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살아 있음을 느끼지 못한다. 백약이 무효하던 마이클은 대도시 안에서의 범죄를 벌이면서 비로소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남성성의 위기를 폭력과 모험으로부터 보충하려는 것이다. 게임 속 마이클은 대저택에서 홀로 서부극이나 갱스터 무비를 감상하고, 총기에 대한 집착을 보인다. 마이클의 특수 능력은 시간을 느리게 흐르게 만들어 상대 명중률을 높이는 불릿 타임이다. 프랭클린은 의 CJ와 비슷한 듯 다른 선상에 서있는 인물이다. 그는 스트리트 갱 문화에 속해 있지만, 완벽한 통제(와 여전한 방치) 속에서 그 세계는 사실상 무너졌다. 그러므로 프랭클린 또한 더이상 갱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다. 프랭클린에게 후드는 더 이상 지켜야 할 공동체가 아니라, 탈출해야 할 출발점이다. 그는 범죄를 계급 이동의 사다리로 인식하며, 마이클을 통해 상위층의 세계로 진입하기를 꿈꾼다. 프랭클린은 운전에 각별한 재주가 있고, Theft Auto, 차 도둑에서 출발해 로스 산토스를 주름잡는 대도로 거듭난다. 그러나 는 ‘뒷골목을 벗어나고 싶다’는 프랭클린의 성공욕이 얼마나 집요한지를 계속 보여준다. 프랭클린은 마이클, 그리고 트래버와 함께 은행과 보석상을 털며 성공궤도에 안착한다. 고급 주택을 손에 넣고, 부동산 사업을 벌이고, 스포츠카를 구매하면서 눈부신 성공을 거둔다. 그에게 더 이상의 후드는 없다. 프랭클린은 국가 공권력이 강력하게 막고 있는 범죄를 통해서 밑바닥에서 상류층에 올라가는 데 완벽히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트레버 필립스는 이 두 인물의 대척점에 위치한다. 그는 규범, 소비, 국가, 가족이라는 모든 제도를 거부한다. 그는 환경 변화에 척수 반응하는 동물처럼 행동한다. 공군 비행기조종사 후보생이었던 그는 사적 쾌락을 위해서 전쟁을 벌이고자 하는 정신이상자로 묘사된다. 일반적인 인간상의 틀거리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그는 현대 미국에서 괴물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과장해서 보여준다. 트레버는 GTA 시리즈 캐릭터 중 유일하게 교외(Suburb)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촌뜨기(영어 버전에서는 Redneck으로 표현)다. 트레버는 니코 벨릭처럼 미국인으로 편입되려는 나름의 시도를 했지만 (각각 공군장교 임관과 불법 이민으로) 과거에 대한 죄책감이나 가족에 대한 애정 따위는 하나도 없다. 트레버는 시스템이 배설한 찌꺼기들이 모여 만들어진 괴물처럼 묘사되며,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시스템이 가장 효율적으로 부려 먹을 수 있는 '사냥개'가 된다. 국가 권력은 도덕적 금기를 거리낌 없이 위반하는 그의 광기를 빌려 자신들의 추악한 목적을 달성한다. 트레버는 스스로를 자유로운 존재라 믿지만, 실제로는 시스템이 차마 직접 수행하지 못하는 지저분한 폭력을 대행하는 역할을 맡는다. 몇 번의 예외 빼고. [15] 이 세 인물을 하나로 묶는 것은 FIB(연방수사국의 패러디)다. 에서 국가는 더 이상 부패한 경찰 몇 명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국가는 기업화되었고, 정보기관은 회사처럼 운영된다. FIB는 범죄를 단속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기획하고, 배분하고, 필요에 따라 제거한다. 플레이어가 수행하는 대형 미션 대부분은 정보기관의 사적 목적을 위한 것이다. 주목할 점은 가 이 모든 비판을 웃음과 패러디로 포장한다는 것이다. 토크쇼, 라디오 광고, SNS 패러디는 날카롭지만 동시에 무력하다. 비판은 소비 가능한 콘텐츠로 전환된다. 이 점에서 는 가장 현대적이다. 엔딩 시점에서 프랭클린에게 주어지는 선택은 배신, 복종, 혹은 제3의 길이다. 그러나 어느 선택도 근본적인 변화를 낳지 않는다. “모두 살린다”는 선택은 플레이어 사이에서 정답처럼 여겨지고 있는데, 이들은 자신들을 감시하던 FIB 요원들을 제거하고 자유를 얻은 것처럼 나타난다. 그렇다고 그것이 곧 세 주인공이 겪은 범죄나 자신들이 근거한 도시문명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의 엔딩 부분 End Of The Road [16] GTA 시리즈가 지난 30여 년간 구축해 온 범죄의 연대기는 그것도 세계 제일의 자리를 차지한 미국의 도시가 어떤 방식으로 자기 파괴적인 욕망을 잉태하는지를 드리우는 서사시다. GTA의 시공간은 헐리우드 영화의 느와르적 오마주로부터 출발해, 도시가 유지하기 위한 어두운 폭력을 범죄자들이 대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역대 시리즈를 관통하는 가장 도드라진 공통점은 자동차를 훔쳐서 달아나고 그것으로 돈을 버는 설계다. 이는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교통을 통해 완성되며, 신호를 위반하고 역주행하면서 경찰을 따돌리는 경험이야말로 이 시리즈가 과거의 GTA부터 추구하는 재미의 기본이다. 가까운 훗날 이 게임의 이동 시스템에 대해서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찾아오기를 기대해본다. 이러한 기본 위에서 락스타게임즈는 외부자의 시선에서 미국의 총기 문화와 과도한 애국주의, 기복 신앙에 가까운 자본주의를 기괴한 코미디로 치환하여 보여주는 날카로운 풍자 정신을 유지해 왔다. 이들은 뿌리 깊은 수직적 불평등과 공권력의 시스템적 부패, 그리고 아메리칸 드림의 해체 과정을 집요하게 파헤치고 있다. 도시의 마천루, 쥐가 끓는 슬럼가, 그리고 버림받은 교외지역은 서로 극명하게 대비되며 법과 질서는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그 상위층에 끼지 못한 외부자이며 범죄를 통해 폭력을 대행하면서 계급 상승의 경로를 확보한다. 게임사의 같은 시리즈인 레드 데드 리뎀션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정부와 국가는 무법자와 별 다를 게 없다. 공권력이 범죄를 소탕하기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관리하고 조절하는 모습을 통해 국가가 거대한 범죄 조직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GTA 시리즈는 미국 사회의 시대적 병리를 정조준하며, 미국 도시문명의 민낯을 게임이라는 미디어로 마주하게 하는 시뮬레이터다. 출시를 앞둔 는 트럼프 행정부 재집권기라는 독특한 시대적 배경 속에 등장한다. 현실이 이미 풍자를 초월해버린 '풍자 불가능한 시대'의 게임이 아닐까? 락스타게임즈가 선보이는 레오니다(플로리다)는 얼마나 광기로 가득 차있을까?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 미국의 현실과 겨루었을 때 경쟁력이 있을까? 오늘날 미국 이민세관단속국의 행패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현실이 GTA 속 세상과 얼마나 다른지 묻게 된다. 아직 가 출시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지금까지 이룩한 성과만 보아도 GTA 시리즈는 미국의 허상을 폭로하는 가장 지독한 텍스트라고 단언할 수 있다. [1] Childish Gambino - This Is America (Official Video) | 해당 곡의 히트 이후, 미국에서 벌어지는 여러 상황을 개탄하는 밈(Meme)으로 쓰이고 있다. 한국 인터넷에서 왕왕 사용되는 ‘이게 나라냐’와 유사한 결의 유행어. [2] 가 대표적인 저작으로 꼽힌다. [3] 의 스토리는 디스토피아 도시에서 주인공이 범죄를 저지르면서 돈을 모으는 것이 사실상 전부였다. [4] 현재 댄 하우저는 락스타게임즈를 떠났다. 댄 하우저의 앱서드 벤처스라는 회사를 창업하고 ‘Absurdaverse’라는 제목의 SF 어드벤처를 개발 중이다. 는 하우저 형제 중 형 샘 하우저만 참여한 첫 신작인 셈이다. [5] GTA 시리즈에 한정하여 논의를 전개하는 본고에서는 미국, 국가, 공권력, 사회, 도시문명, 시스템 등등을 하나의 개념으로 보고 섞어서 쓰고 있다. 이 모든 개념어들은 각기 다른 대상을 지칭하지만, 필자는 적어도 GTA 시리즈에서는 이 모든 것이 하나의 대상이라고 본다. [6] Bob Marley & The Wailers - Concrete Jungle (Live at The Old Grey Whistle, 1973) | 의 12번째 메인 미션 이름이기도 하다. [7] 은 북미에 2001년 10월 최초 출시됐다. 그리고 그해 리버티시티의 모델이 되는 뉴욕에서 9.11 테러가 있었기 때문에 마케팅 과정을 준비하던 락스타게임즈는 강도 높은 막판 수정을 가해야만 했다. [8] 놀랍게도 락스타게임즈의 게임에서 인육에 대한 묘사는 이것이 유일한 사례가 아니다. 에는 버스에 사람들을 태워서 핫도그 공장에 판매해버리는 미션(Hot Dog Homicide!)이 존재했다. 의 트레버 필립스도 취미로 인육을 먹는 듯한 대사가 몇 차례 나온다. 레드데드리뎀션 시리즈에도 식인에 대한 간접 묘사(돼지농장, 머프리 패거리)를 확인할 수 있다. [9] Rage Against The Machine - 'Killing in the Name' [HD] | Live at Pinkpop 1993 | 수록곡이기도 하다. [10] 엘리야 앤더슨이 아틀랜틱誌에 기고한 <거리의 코드>(The Code of the Streets)는 흑인 커뮤니티를 관찰하면서 공권력이 닿지 않는 곳에서 리스펙(Respect)이 어떻게 생존을 위한 방어수단이 되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경찰을 믿을 수 없는 환경에서 '강해 보여야 살아남는다'는 압박을 가지게 됐고 여기서 폭력은 타인의 공격을 차단하는 억제력으로 작동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수디르 벤카티쉬의 <괴짜사회학>(Gang Leader for a Day)은 시카고 갱단을 10년 동안 추적 관찰한 책이다. 이 책에서는 벤카디쉬는 갱단이 단순히 마약을 파는 집단이 아니며 국가가 포기한 지역 사회에서 치안, 복지, 일자리 제공 등의 유사 정부 역할을 수행한다고 주장했다. [11] 미국의 네바다 Area 51을 패러디한 군사 기지. CJ 이 지역에 발만 걸쳐도 바로 최고 범죄 단계로 간주되어 군인과 일전을 겨뤄야 한다. 스토리상 제트팩을 얻기 위해 CJ는 반드시 이 군사기지에 침입해야 한다. [12] Kanye West - Flashing Lights ft. Dwele | 삽입곡 [13] GTA를 개발하는 락스타 노스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본사를 둔 영국 기업이다. 이 외부적 배경은 게임의 미국 풍자가 가지는 객관성과 과감함을 설명한다. 락스타게임즈의 공동 창립자인 댄과 샘은 모두 영국인으로 태어나 미국인이 되었다. GTA 시리즈에 영국식 블랙 유머가 깊게 녹아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14] The Clash - I Fought the Law (Official Video) | 의 미션 이름이기도 하다. [15] 트레버 필립스와 관련한 흥미로운 서브 미션 줄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시민 국경 수비대(The Civil Border Patrol)와의 이벤트다. 트레버는 마을에서 불법이민자로부터 미국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활동한다는 두 사람의 순찰대를 만난다. 이내 이들과 함께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어오는 멕시코인을 단속하는 미션을 수행하게 된다. 그러나 정작 붙잡은 사람들 상당수는 캘리포니아가 멕시코 영토이던 시절부터 거주하던 사람들이었다. 격분한 트레버는 언제나처럼 국경 수비대원들을 사살하며 이 서브 퀘스트는 종료된다. 락스타게임즈는 수비대원 중 한 명을 영어조차 할 수 없는 러시아 이민자로 등장시켜 이민자가 세운 나라에서 이민자를 단속하는 행위가 결국 인종차별적 목적을 내포하고 있음을 풍자한다. [16] Boyz II Men - End Of The Road | 의 마지막 미션 이름이기도 하다. Tags: 락스타, GTA, 미국, 범죄, 느와르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김재석 8년 동안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서브컬처 스타트업에서 대외협력을 맡고 있다.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 [논문세미나] <하스스톤>에서 플레이어들은 왜 감정 표현을 오용하는가?
저자들은 위의 요소를 모두 고려해 비매너 상호작용의 다섯 가지 형태를 정리한다. 제시된 유형들은 가장 일반적으로 지적되는 것으로, 모든 플레이어가 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항복(concede)’은 여기서 가장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모순점인데, 항복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모두가 비매너 플레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 Back [논문세미나] <하스스톤>에서 플레이어들은 왜 감정 표현을 오용하는가? 14 GG Vol. 23. 10. 10. Text: Arjoranta, J., & Siitonen, M. (2018). Why Do Players Misuse Emotes in Hearthstone?: Negotiating the Use of Communicative Affordances in an Online Multiplayer Game. Game Studies: the international journal of computer game research, 18 (2). 1. 들어가며 누가 뭐라 해도 멀티플레이어 게임의 가장 큰 매력은 ‘사람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해진 수 만을 두는 컴퓨터와 달리, 변칙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사람 플레이어는 게임에서 큰 재미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플레이어간 커뮤니케이션은 언제나 여기서의 큰 축을 담당해 왔다. 게임이라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가상 세계에서 플레이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새로운 사람과 만나 인연을 맺는다. 이에 대한 기대는 정말 대단한데, 다수의 플레이어들에게 소통과 사교는 항상 게임을 플레이하게 하는 결정적 동기로 이야기 된다(Yee, 2005). 한편 , 게임에서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이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마찬가지로 온라인 게임은 악성 채팅으로 가득 차있다. 소소하게는 도배부터 심각하게는 욕설까지 게임 내 공격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발견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은 게임의 스트레스이며 가장 큰 이탈의 원인이 된다. 따라서, 대부분의 게임 회사들은 공격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고안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라이엇게임즈(Riot Games)는 인 게임 내 부정적인 텍스트를 신고를 통해 검토하고 친 사회적인 행동에 보상을 주며, <콜오브듀티>(Call of Duty) 팀은 음성 채팅 중재 기술을 적극적으로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나아가, 텍스트 기반 의사소통이 언제나 반사회적 행동의 여지를 남긴다는 인식과 함께 게임 디자인적으로 채팅 기능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기도 하는데 <하스스톤>(Hearthstone)은 이의 대표적인 예시이다. 이번 호에서 다루는 은 <하스스톤>에서 이루어지는 비매너 의사소통 행위(BM)를 추적하는 논문이다. 앞서 살펴보았듯 <하스스톤>은 채팅이 배제된 게임이기에 이는 ‘텍스트 기반 의사소통이 제한된 상황에서도 공격적인 의사소통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분석한 글이라 할 수 있겠다. 저자들이 언급한 것과 같이, 이와 같은 접근은 플레이어들이 제한된 자원을 통해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의미를 협상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의 문제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인 게임 커뮤니케이션’을 다루는 이번 호에 맞추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2. <하스스톤>이 소통을 제한하는 방법 본론에 들어가기 전 <하스스톤>이 어떻게 의사소통을 제한하는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사실, 커뮤니케이션을 제한하는 온라인 멀티플레이어 게임은 <하스스톤>만은 아니다. 그의 의도 역시 다양한데, 게임 디자이너들은 공격적인 행동을 줄이고자 할 뿐만 아니라, 게임의 스토리라인이나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의사소통의 가능 방식을 설정한다. 대표적으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에서 한 플레이어는 적대 세력의 플레이어와 채팅을 할 수 없으며, <저니>(Journey)에서 플레이어는 버튼으로 소리를 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하스스톤>에서 사용하는 의사소통 전략은 ‘감정 표현’이다. 기본적으로 <하스스톤>에서는 채팅이 금지되어 있으며, 플레이어 간 의사소통은 여섯 가지의 감정 표현으로 제한되어 있다. 한편, 게임 내 채팅이 완전히 금지된 것은 아닌데 친구추가를 한 상대와는 텍스트 기반의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럼에도 채팅 기능은 로비에 한정되며 게임을 당장 함께하는 상대와 나눌 수 있는 것은 감정 표현 뿐이다. 그림1. <하스스톤>에서의 감정표현 연구가 시작된 2015년까지 감정표현은 ‘감사’, ‘칭찬’, ‘인사’, ‘사과’, ‘이런!’, ‘위협’으로 구성되었으나 2016년 4월 24일 ‘사과’가 삭제되고 그 자리에 ‘감탄’이 추가되었다. 1) 이에따라 데이터 수집도 두 차례 이루어졌는데, 연구자들은 ‘사과’가 ‘감탄’으로 대체된 이전과 이후의 데이터를 비교해보며 디자인의 변화에 따른 차이를 살폈다. 사용 가능한 감정 표현은 여섯 종류가 있으나 각각의 대사는 플레이어가 선택한 캐릭터에 따라 약간씩 달라진다. 이를테면 같은 ‘위협’ 표현에 대하여 사제 캐릭터 란두인이 “빛이 당신을 태울 것입니다!”라 한다면, 사냥꾼 캐릭터인 렉사르는 “네놈을 추격해주마!”라고 말한다. 위와 같은 감정 표현은 여러 상황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는데, 방해 받고 싶지 않은 플레이어를 위해 상대방의 감정표현을 차단하는 기능도 있다. 표 1. 하스스톤: 오리지널 영웅과 영웅 별 감정표현 한편 , 유저의 커뮤니케이션이 마냥 주어진 감정 표현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플레이어는 커서(터치스크린일 경우 손가락)의 위치, 카드 검토나 주문 선택의 과정을 통해 상대방과 암묵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 3. < 하스스톤> 플레이어들이 (잘못된)의사소통을 하는 방법 그렇다면 <하스스톤>의 플레이어들은 실제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 그들은 주어진 기능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아니면 기능을 벗어나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 내는가? 저자들은 <하스스톤> 포럼인 ‘Hearthpwn’ 2) 의 글을 수집하여 이를 살핀다. 그에 따르면, 플레이어들의 비매너 소통에는 ‘감정표현을 사용하는 방식’과 ‘그 외의 방식’이 있다. 1) 감정표현을 사용하기 플레이 중 이루어지는 감정 표현은 주어진 그대로의 의미만을 전달하지 않는다 . 모든 의사소통 행위는 그것이 발화되는 특정 맥락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게임이 시작할 때 하는 인사는 인사로 받아들여지지만 고민으로 시간이 지체되고 있을 때의 인사는 재촉의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또한, ‘고맙습니다’는 정말 감사를 표할 수도 있지만 상대의 실수를 조롱하는 데에도 사용 가능하다. 즉, 같은 표현이라도 타이밍이나 상황의 단서에 따라 수많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캐릭터마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은 의미의 범위를 더욱 확장한다. 이를테면, 같은 ‘감사’인사라도 우서가 하는 ‘고맙네’는 안두인 린의 ‘감사합니다!’는 서로 다른 느낌을 준다. 그리고 플레이어들은 각 캐릭터의 어조를 살려 감정표현을 사용하는데, 이 과정에서 ‘특히’ 상대방을 약 올릴 수 있는 캐릭터의 대사가 드러난다. 실제로, 본문에 언급된 한 플레이어에 따르면, 제이나의 ‘이런!’은 특히나 얄밉다. 그림 2. 한국 커뮤니티에서 밈(meme)으로 자리잡은 안두인의 감정표현(욕설은 블러처리) 3) 이처럼 , <하스스톤>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는 그 자체의 의미에 한정되지 않는다. 여섯 종류의 감정 표현은 그보다 훨씬 많은 의미를 만들어 내며 상대방을 괴롭히는 것에 사용된다. 따라서, 몇몇 플레이어들은 문맥적 해석을 제거함으로써 합의된 어휘를 개발하고자 하였는데, 그에 따르면 감정 표현은 각각이 의도된 대로 동일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즉, ‘인사’ 표현은 인사를 하는 의미로 발화되고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감정 표현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입장 역시 존재했다. 그들은 채팅을 제한하는 것이 오히려 공격적인 행동 가능성을 높인다고 주장한다. 감정 표현을 통한 비매너 소통은 겉으론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제제할 방법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한편 , 모두가 감정 표현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플레이어들은 감정 표현의 확장된 사용을 재미의 일부로 수용했다. 그들은 각각의 감정 표현이 가지는 미묘한 느낌에 흥미를 가지고 감정표현을 확장시키는 것 자체를 ‘놀 거리’라 생각했다. 2) 플레이를 통하기 <하스스톤 >에서 상대방과 소통하는 방식은 감정표현 뿐만이 아니다. 해당 게임에선 그보다도 훨씬 많은 비언어적 표현이 가능하다. 이를테면 플레이어어는 의도적으로 천천히 플레이하며 시간을 끄는 ‘로핑(roping)’을 할 수 있으며, 승리가 확실해진 상태에서 불필요한 행동을 하며 플레이를 지속할 수도 있다. 심지어는 캐릭터나 덱의 선택 을 통해 의미를 표현할 수 있다. 이처럼, 게임의 가장 단순한 기능도 여러 방식으로 사용되고 다양한 뜻을 전달한다. 플레이어의 창의성이 개입된다면 어떤 것도 소통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저자들은 위의 요소를 모두 고려해 비매너 상호작용의 다섯 가지 형태를 정리한다 . 제시된 유형들은 가장 일반적으로 지적되는 것으로, 모든 플레이어가 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항복(concede)’은 여기서 가장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모순점인데, 항복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모두가 비매너 플레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① 의도적으로 시간을 지연시키는 경우 . 플레이어의 차례가 끝나려 할 때 천천히 타는 밧줄을 가리켜 ‘로핑(roping)’이라고도 함 ② 스패밍 (spaming)을 비롯한 감정 표현을 특정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행위. ③ 항복을 하지 않고 게임을 종료하는 행위 . ④ 승리가 확실 해졌음에도 불필요한 공격으로 플레이를 연장시키는 행위 ⑤ 게임이 끝난 후 , ‘친구 요청’을 보내 상대방에게 공격적인 메시지를 보내는 행위. 4. 나가며: 비매너라는 회색 지대 한국의 위키피디아 사이트인 ‘나무위키’에는 ‘인성질(하스스톤)’이라는 문서가 있다. 그에 따르면, 인성질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게임 하스스톤에서 제공하는 의사 표현 기능을 이용하여 상대를 희롱하는 행위’ 4) 로 본 논문에서 확인한 비매너 소통에 해당한다. 웬만한 논문보다 긴 길이의 위 문서는 여섯 가지의 감정표현만을 가지고 어떻게 상대를 화나게 할 수 있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여기서 언급된 전략들은 본문의 것과 거의 일치한다. 텍스트가 영미권 커뮤니티를 분석한 것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때 나타나는 유사성은 놀라운 수준이다. 현상이 유사한 만큼 본문에서 나타나는 문제의식 또한 공유해볼 수 있을 것이다 . 텍스트의 중심 주제인 비매너 플레이는 매우 다층적으로 나타나는 흐릿한 개념이다. 저자들은 비매너 플레이의 다섯 가지 양상을 정리하지만, 항목들에 논쟁의 여지가 있음을 밝힌다. 가령 게임 종료 직전 남은 카드를 모두 사용하는 것은 어떤 플레이어에겐 불필요한 플레이의 연장으로 해석되었으나, 다른 플레이어는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동일한 맥락의 같은 행위라도 그것을 수용하는 사람에 따라 비매너인지 아닌지가 결정됨을 시사한다. 비매너 상호작용이란 깔끔히 떨어지는 명료한 개념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하스스톤>에서 감정표현을 오용하는 것은 비의도적인 차원을 포함한다. 발화자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감정 표현은 비매너인 것으로 판단될 수 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직접적인 욕설 만이 비매너 플레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 텍스트 기반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에도 상대를 향한 공격적인 표현은 언제나 가능하다. 즉, 단순한 감정 표현 몇가지라도 충분히 상대를 괴롭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비언어적 소통의 공격성은 회색 지대에 위치한다. 무엇이 비매너인지 아닌지는 주관적이며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회색 지대야 말로 본 논문 제시하는 주목해볼만한 지점일 것이다. 게임에서 비매너 플레이는 어떤 것인가? 우리는 여기서의 모호함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참고문헌 Call of Duty Staff. (2023, 8, 30). 유해성 근절 진행 보고서 – 음성 채팅 중재. URL: https://www.callofduty.com/blog/2023/08/call-of-duty-modern-warfare-warzone-anti-toxicity-progress-report Yee, N. (2005, June). Motivations of Play in MMORPGs. In DiGRA Conference. Riot Games. (2022, 8, 29). 플레이어 관계분석 현황. URL: https://www.riotgames.com/ko/news/an-update-on-player-dynamics-ko 1) https://hearthstone.blizzard.com/ko-kr/news/20097359 2) https://www.hearthpwn.com/ 3) https://www.inven.co.kr/board/hs/3509/2037951 . 인벤 유저의 게시 글. 여기서 저자는 안두인 린의 한국 대사가 성우의 음성 녹음으로 인하여 훨씬 짜증이 난다고 이야기한다. 4) https://namu.wiki/w/%EC%9D%B8%EC%84%B1%EC%A7%88(%ED%95%98%EC%8A%A4%EC%8A%A4%ED%86%A4) Tags: Arjoranta, siitonen, 콜오브듀티, 하스스톤, 비매너, 커뮤니케이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이연우 함께하는 게임에 관심을 가지고 게임의 관계성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게임으로 다함께 즐거워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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