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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 속의 타자, 게임 속의 동유럽

    서구, 오늘날 세계 문화의 중심이라 불리는 이 말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북미와 유럽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근대를 이루는 많은 기술적, 정치적, 문화적 배경들의 원산지로서 서구는 일종의 기원으로 여겨지며, 그 중에서도 특히 근대적 의미로서의 북미가 사실상 유럽으로부터의 문명 이주를 통해 만들어졌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현대 세계의 많은 부분은 유럽으로부터 나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 Back 06 GG Vol. 22.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불멍을 넘어, 소비자본주의 너머: 게임 〈리틀 인페르노〉 비평(우수상)

    물건을 태워서 종잣돈을 늘리고 새로운 물건을 해금한다. 그리고 일종의 업적이기도 한 특정 물건의 조합을 찾아 태우는 재미는 분명 게임으로서의 즐거움을 플레이어에게 제공한다. 그렇지만 이 게임은 주된 게임성을 경험하게 하는 시스템을 플레이어로 하여금 회의하고 그 밖을 사유하기를 적극적으로 재촉한다. 이러한 점에서 게임 〈리틀 인페르노〉는 전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메세지가 게임적 시스템과 충돌한다. < Back 불멍을 넘어, 소비자본주의 너머: 게임 〈리틀 인페르노〉 비평(우수상) 07 GG Vol. 22. 8. 10. 장르를 막론하고 게임에서 재미를 주는 가장 주요한 시스템 중 하나는 바로 자본의 재투자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튜토리얼에서 주어진 초기 자금을 가지고 물건을 구매하고 재판매하여 차익을 만들고, 그것을 더 큰 자본으로 불리는 경험은 게임에서 재미와 성취감을 고양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틀이다. 여기 게임 〈리틀 인페르노 (Little Inferno)〉가 있다. 이 게임은 바로 이 과정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여 게임의 구성이 끊임없는 재화의 소비와 재투자의 연속으로만 구성되어있으며 그 밖에 플레이어가 누릴 수 있는 여타의 콘텐츠는 전무하다. 이러한 형태의 게임 플레이 경험은 자본의 투자가 더 많은 자본을 만들어내는 ‘클리커’류 게임과도 비견될 수 있다. 그러나 게임 〈리틀 인페르노〉는 투자한 자본으로 더 많은 자본을 벌어들인다는 쾌감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돈이 더 많은 돈을 불러온다는, 어떻게 보면 현실의 자본주의 구조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는 게임 시스템을 차용하는 게임 〈리틀 인페르노〉는, 동시에 그러한 시스템이 과연 지속가능한지를 묻는다. 태워라! 애태워라! 그리고 다시 태워라! 게임의 배경이 되는 어느 도시는 끊임없이 퍼붓는 눈과 수천 개의 굴뚝에서 내뿜는 연기로 가득하다. 흰 눈과 검은 연기로 얼룩진 흑백의 도시는 흡사 산업혁명이 막 시작된 19세기 영국을 연상케 하지만, 정작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도시의 모습을 직접 보는 일은 없다. 플레이어는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자신의 맞은 편에 놓인 화덕을 바라보게 되며, 개인용 화덕인 ‘리틀 인페르노’의 구매를 축하한다는 ‘투모로우 코퍼레이션’ 회장의 축하 편지를 받게 된다. 회장은 ‘리틀 인페르노’에 물건을 태움으로써 플레이어가 바깥의 음산한 날씨로부터 차단되어 ‘따뜻하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 약속한다. 그러나 곧 그 편지는 바로 화덕으로 올려진 다음 플레이어가 일으킨 불꽃으로 태워져 동전 두어 닢을 뱉어낸다. 이것이 바로 앞으로 이어질 게임 플레이의 시작이다. 플레이어는 주어진 자금을 바탕으로 물건 카탈로그에서 온갖 잡동사니를 -액자, 토끼 인형, 누군가의 신용카드, 커피 컵, 상한 초밥, 접시 뿐만 아니라 작은 달과 행성, 심지어 태양까지- 구매한다. 그리고 그 잡동사니는 오로지 태워지기 위해 구매되는 것이다. 플레이어가 구매한 물건은 배송이 끝나면 박스 형태로 화면 하단에 도착하게 되며, 플레이어는 포장을 풀고 물건을 화덕에 올려놓은 다음 불꽃을 만들어 물건이 타는 모습을 지켜본다. 이때 다 타고 난 물건은 처음 구매했을 때 지불했던 자금보다 더 많은 양의 동전을 남기며, 플레이어는 이 돈을 모아 다시 카탈로그를 살펴 새로운 물건을 구매한다. 게임 ‘리틀 인페르노’는 어떻게 보면 이처럼 단순한 게임 경험을 기반으로 설계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임 〈리틀 인페르노〉는 물건을 태우는 경험 자체의 심미성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이를테면 옥수수를 태우면 팝콘이 되어 터져나온다던가, 은행 모형을 태우면 지폐가 마구 튀어오른다던가, 상한 초밥을 태우면 벌레떼가 날아오른다던가 하는 식으로 태우는 물건의 특성을 고려한 섬세한 애니메이션과 사운드 효과가 돋보인다. ‘불멍’의 즐거움과 안전하게 파괴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음에 빠져든 플레이어는 곧 카탈로그를 펼치고 신나는 음악에 맞춰 또 어떤 물건을 구매하여 태울지 즐거운 고민을 하게 된다. * 태우는 물건들마다 고유의 시각적, 청각적 효과가 있다. 게임플레이의 쾌락을 만들어내는 또 다른 요소는 구매한 물건이 바로 배송되지 않는 시스템이다. 게임 초반에는 배송까지 약 5초에서 10초가 걸리던 물건들이, 게임 중후반으로 넘어갈 수록 2분에서 5분까지도 기다려야 주문한 물건들을 받아볼 수 있다. 물건이 배송되길 기다리면서 태울 물건이 있다면 모르되, 게임을 해나갈수록 플레이어는 어느 순간 물건 배송을 기다리며 텅 빈 화덕에 의미없는 불꽃만을 일으키며 초조해할 뿐이다. 보통 대기시간으로 인한 패널티라는 시스템은 모바일 게임에서 주로 차용된다. 마냥 기다리기엔 지루한 대기시간이라는 패널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광고 시청을 제공하고 대기시간을 없애주는 식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스템이 혼자 플레이하는 콘솔 게임에 차용되었다는 것은 특기할만한 지점이다. 실제로 우리는 이러한 경험을 일상적으로 하지 않던가? 물건을 주문하고 그 물건이 택배로 도착하기까지 며칠의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비슷한 초조함을 느낀다. 그리고 마침내 인고의 시간이 지나 물건이 도착했을 때 기다리던 물건을 받아본다는 쾌락은 비로소 극대화된다. * 본격 택배 기다리기 시뮬레이터 그런데 게임플레이가 제공하는 ‘불멍’과 ‘안전한 파괴’, 더 나아가 ‘구매행위’ 자체가 주는 쾌락은 어느 순간 의문으로 바뀐다. 이 의문은 카탈로그의 모든 아이템을 구매하고 불태운 것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 또 다른 상품 카탈로그라는 점에서 시작된다. 물건의 구매와 소비는 연쇄적이다. 이 굴레에는 시작도 끝도 없다. 플레이어는 어느 순간 묻게 된다. 언제까지 불태우기 위해서만 물건을 사고 거기서 더 많은 돈을 얻어 다시 물건을 사는 짓을 반복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게임 초반부터 의미심장하게 제기된 ‘끝은 나게 되어있다 (There’s bound to be an end)’라는 대사에서 암시된다. 계속 사는(buy) 것으로 살아갈 (live) 수 없다 2005년작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등장하여 반짝 인기를 끌었던 미하엘 엔데의 동화 〈모모〉는, 그것이 상품화된 양상과는 정 반대되는 메세지를 보내는 작품이다. 작중 주인공인 모모는 조개껍데기와 빛나는 돌 조각, 낡은 천으로 만들어진 텐트만 가지고도 어린이다운 제약없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누구보다 즐겁게 놀 줄 아는 소녀이다. 그런데 모모를 회유하기 위해 나선 악당인 ‘시간도둑’은 그런 초라한 장난감 대신 크고 화려한 바비 인형을 가지고 놀 것을 제안한다. 이 인형을 가지고 노는 방식은 조개 껍데기를 갖고 노는 방식과는 다르다. 바비 인형을 제대로 갖고 놀기 위해서는 일상복과 파티용 드레스, 운동을 위한 테니스복을 사주어야 한다. 어느 순간 바비 인형과 그 모든 물건이 질린다면 바비 인형의 남자친구인 부비 보이가 있다. 부비 보이에게도 마찬가지로 그만을 위한 향수와 신발, 갖은 옷들을 살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끊임없는 구매와 질림의 연쇄 속에서 길들여진 어린이들은 특유의 상상력이 제약당한 채 모든 일에 지루함만을 느끼는 어른이 되고 만다. 게임 〈리틀 인페르노〉 역시 동화 〈모모〉가 사유한 인간의 소비주체화라는 문제의식을 같은 선상에서 공유한다. 그것은 게임 안에 삽입된 개인용 화덕 장난감 ‘리틀 인페르노’ 광고를 봐도 알 수 있다. ‘리틀 인페르노’ 광고는 끊임없이 사들인 장난감에 질린 아이들이 그 잡동사니를 불태우는 쾌락을, 그리고 다시 다른 물건들을 사들이는 쾌락을 제공한다는 것을 우스꽝스러운 블랙코미디로 묘사한다. 검은 두 손은 얼어붙은 지구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을 가리고 입술을 올려 웃는 얼굴을 만들어준다. 이에 안심한 아이들은 여지껏 사들였다 질려버린 장난감을 박스채 가져와 화덕 안에 던져넣는다. 이처럼 게임 안에서 ‘리틀 인페르노’ 화덕 장난감이 ‘어린이’들을 겨냥한 ‘개인용’ 장난감이라는 점은 특기할만하다. 물건을 구매하는 행위를 통해 ‘리틀 인페르노’를 소유한 어린이들을 전인격적 주체가 아닌 소비주체로 호명한다. 동시에 자본을 투자해 더 많은 자본을 얻은 다음 그 잉여 자본을 (물건 구매를 통해) 재투자한다는 시스템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자본가가 자본의 양을 불리는 방식이라 지적했던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리틀 인페르노’를 소유한 어린이들은 소비자본주의 체제에서 구매를 위한 구매와 투자를 위한 투자라는 체제의 원칙을 자연스레 주입당하는 셈이기도 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0TniR3Ghxc * 구매에 이은 파괴에서 오는 쾌락 소비자본주의가 주조한 개인에게는 오로지 눈앞에 놓인 화덕과 구매할 물건이 실린 카탈로그만이 주어져 있을 뿐이다. 몇 년째 이유도 모른 채 지속되는 폭설을 경고하는 날씨 알림 편지도, 바로 옆집에서 말을 걸어오는 이웃의 편지도 화덕에 올라 불태워질 뿐이다. 플레이어로서는 구매와 파괴와 더 많은 구매라는 일련의 행위가 만들어낸 결과로 발생한 기후변화도 인지할 수 없을 뿐더러, 구매와 파괴라는 구조가 과연 맞는 것이냐는 질문을 해오는 이웃과도 연대는 커녕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수조차 없다. 따라서 변화는 자신의 화덕을 폭발시키고 만 이웃으로부터 먼저 찾아온다. ‘투모로우 코퍼레이션’의 회장은 이 사건을 그저 안전문제로 치부하고 말지만, 처음으로 방 안의 화덕에서 벗어나 바깥을 보게 된 이웃은 자신이 겪은 일은 사고가 아니었다며, 자신은 햇빛이 좋은 해변가에 있다며 플레이어로 하여금 자신과 같이 화덕을 폭발시키고 밖으로 나오길 종용한다. 이웃과 같이 자신의 화덕도 폭발시킨 플레이어는 이웃과 마찬가지로 처음으로 화덕에서 눈을 떼고 집 밖으로 나가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사람들은 각자 집에 틀어박혀 수천 개의 굴뚝으로 검은 연기를 내보내는데 열중하느라 길거리는 텅 비어있다. 불태울 물건들을 배송하느라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단 한 명의 집배원을 제외하면 말이다. * 텅 빈 거리를 처음으로 나선 주인공 발걸음을 옮기던 주인공은 ‘리틀 인페르노’를 판매하는 회사인 ‘투모로우 코퍼레이션’에 도달하게 되고, ‘리틀 인페르노’를 기획하고 판매한 회장조차 ‘끝은 나게 되어있다 (There’s bound to be an end)’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자신만의 로켓을 타고 지구를 떠난다. 2012년에 처음 출시된 이 게임은 약 10년 만에 현실이 된 전지구적 기후위기, 일론 머스크와 같은 세계적 부호와 ‘지구를 버리고 화성을 식민화하자’라는 구호까지 예견한다. 그리고 이 예견은 바로 ‘지속불가능한 소비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다. 마침내 플레이어는 열기구를 타고 다니며 기상정보를 전해주던 기상 캐스터를 만나게 된다. 기상 캐스터는 열기구를 태워줄 수 있다며, 원하는 만큼 나아갈 수는 있겠지만 한번 떠나기로 결정하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고 경고한다. 게임은 기상 캐스터와 함께 열기구를 탄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며 엔딩 크레딧을 올린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란 무슨 뜻인가? 당연하게 여겨졌던 구매-투자-더 많은 돈-재투자라는 소비자본주의의 굴레를 한 번이라도 의심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일으키는 어마어마한 기후위기와 사람들간의 고립, 소외, 연대 불가능성을 인식하게 된다면 다시는 물건을 불태우며 ‘불멍’과 ‘물건 구매’에서 안락한 즐거움을 누릴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 열기구를 탄 기상캐스터의 ’다시는 돌아갈 수 없어’ 이 서늘한 불꽃을 응시하라 물건을 태워서 종잣돈을 늘리고 새로운 물건을 해금한다. 그리고 일종의 업적이기도 한 특정 물건의 조합을 찾아 태우는 재미는 분명 게임으로서의 즐거움을 플레이어에게 제공한다. 그렇지만 이 게임은 주된 게임성을 경험하게 하는 시스템을 플레이어로 하여금 회의하고 그 밖을 사유하기를 적극적으로 재촉한다. 이러한 점에서 게임 〈리틀 인페르노〉는 전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메세지가 게임적 시스템과 충돌한다. 넘어선다. 따라서 〈리틀 인페르노〉는 자신의 게임성을 뛰어넘는 일종의 메타성을 가진다. 이 게임은 자신의 게임성을 구성하는 시스템을 의심하고 회의하도록 플레이어들을 이끎으로써 게임성과 반대되는 메세지를 전하기 때문이다. 눈을 가리고 당장의 쾌락에 매몰되도록 사람들을 이끄는 소비자본주의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이 게임은, 따라서 소비자본주의로 인한 기후위기가 닥친 현실 세계에 대한 일종의 알레고리이기도 하다. 당장 지구 곳곳에 산불, 가뭄과 식량난, 전염병이 창궐하는데도 소비주의적 삶의 방식이 영원하리라는 믿음이 지배적인 사회적 분위기에 위화감을 한 번이라도 느꼈다면, 그런 당신에게 게임 〈리틀 인페르노〉를 추천한다. 물건을 태우는 불꽃을 바라보면서도 그 불꽃이 일기까지의 과정과 불꽃이 만들어내는 결과를 떠올리며 서늘함을 느끼게 될테니 말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운 인디음악 씬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예술사회학 연구와 (공연)사진 촬영에 매진중이다. 라캉 정신분석 철학서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영번역을 맡았다.

  • Can “Black Myth: Wukong” Be Truly Understood Beyond Chinese Cultural Borders?

    As a cultural epicentre of East Asia for centuries, China has consistently brought its classical literature to games. From the earliest days of video games, Chinese developers have adapted their classic literature like “Investiture of the Gods (Fengshen Yanyi)” and “Strange Tales from a Chinese Studio (Liaozhai Zhiyi)” into virtual worlds. < Back 24 GG Vol. 25.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 Ordinary Corrupted Dungeon Love: ‘플레이어블’을 구하지 못한 서사와 갈등, <디아블로4>

    다만 지난 10년간의 행보를 돌아볼 때 걱정되는 것은 그 장엄한 세계관을 구축했던 블리자드 기획진의 에고다. < Back 16 GG Vol. 24.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yunJae Lee Researcher at the K-Culture & Story Contents Research Institute, Kyung Hee University. Researches trends and policy in the content and IT industries, and works as a critic across the content field broadly. Has contributed to projects including "A Survey and Analysis of AI and Digital Policy Trends in Major Countries" (National Information Society Agency), "A Survey and Analysis of Digital Security Trends" (Korea Internet & Security Agency), and "Global Game Industry Trends" (Korea Creative Content Agency). Began working as a critic after winning the Dong-A Ilbo Spring Literary Contest in film criticism, the Korea Manhwa Contents Agency's New Critic Award in comics criticism, and the Game Generation Criticism Award.

  • 무엇이 이스포츠팀을 팀으로 만드는가

    2021년 10월말, 이스포츠 업계에서는 전기가 될만한 일이 일어났다. 북미의 명문 이스포츠 구단인 페이즈 클랜이 SPAC을 통해서 내년 상반기에 나스닥 상장을 노린다는 뉴스가 나온 것이다. 사실 이스포츠 구단들의 성장세는 가팔랐고 증권시장에 상장하는 것이 최초도 아니다. 덴마크의 이스포츠 구단 아스트랄리스는 2019년 나스닥 코펜하겐 거래소에 상장됐고 영국의 길드 이스포츠는 2020년에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하지만 사람들이 놀란 것은 페이즈 클랜 측이 밝힌 기업 가치는 10억 달러였다. < Back 무엇이 이스포츠팀을 팀으로 만드는가 03 GG Vol. 21. 12. 10. 2021년 10월말, 이스포츠 업계에서는 전기가 될만한 일이 일어났다. 북미의 명문 이스포츠 구단인 페이즈 클랜이 SPAC을 통해서 내년 상반기에 나스닥 상장을 노린다는 뉴스가 나온 것이다. 사실 이스포츠 구단들의 성장세는 가팔랐고 증권시장에 상장하는 것이 최초도 아니다. 덴마크의 이스포츠 구단 아스트랄리스는 2019년 나스닥 코펜하겐 거래소에 상장됐고 영국의 길드 이스포츠는 2020년에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하지만 사람들이 놀란 것은 페이즈 클랜 측이 밝힌 기업 가치는 10억 달러였다. 10억 달러는 지나친 고평가라는 지적은 앞다투어 나왔다. 이스포츠 산업의 장래가 유명한 것은 누구나 아는 것이지만 2020년 500억에도 못미치는 매출을 올린 회사가 조단위의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페이즈 클랜의 가치에 대한 논의가 나올 때 가장 뼈아픈 지적은 페이즈 클랜이 결국 ‘후디 조직’이라는 것이었다. 후디 조직. 영어로 하면 Hoodie Organization이다. 이는 인기가 높은 이스포츠 구단들에 자주 붙는 멸칭이다. 이스포츠 자체로 내는 수익은 그다지 많지 않고 ‘후디’ 등의 의류를 비롯한 굿즈 판매로 돈을 버는 구단을 비하하는 것이다. 실제로 캐나다의 게임매체 더게이머의 제임스 트로튼은 페이즈 클랜의 전체매출 중 이스포츠로 올리는 수익은 20%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스포츠 구단임에도 불구하고 스포츠로 버는 수익의 규모가 작다는 것은 과연 구단이라는 조직의 존재의의가 뭔지를 생각하게 된다. 스포츠에서 발생하는 수익이 20프로에 미친다면 과연 이들에게 스포츠가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스트리밍과 같은 미디어 활동과 브랜딩을 통한 수익창출이 주요수입원이라면 스포츠는 그저 그들에게 액세서리에 불과할 수도 있다. 스포츠적인 측면에서 퍼포먼스를 보여주면 자연스럽게 팬베이스가 늘어나게 되고 이를 통해서 수익을 창출하는 기존 스포츠 구단들의 공식이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누군가는 페이즈 클랜이 이스포츠 리그에서 우승을 해서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사진은 그저 후디가 몇천장 더 나가는 식의 마케팅 캠페인의 일환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스트리머들이 모인 집단과 이스포츠 구단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스트리머들이 모인 집단도 브랜딩을 할 수 있고 대회에도 참가를 할 수 있다. 프로로서 이스포츠 판에서 경쟁을 하는 선수들도 스트리밍을 자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둘의 차이점은 더 모호해진다. 두 개의 조직은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이 보인다. 이런 차이점에 대해서 가장 잘 대답해 줄 수 있는 인사들을 인터뷰했다. 북미의 사정을 듣고나서는 한국의 사정도 궁금해져서 인터뷰를 했다. 예상치 못하게 같은 답을 들었다. 게임을 잘 하는 사람이 프로게이머가 되려면 인터뷰에 응한 사람은 조나단 판이었다. 라이엇 게임스의 직원으로 일하던 그가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 구단의 창립자이자 CEO로 일해줄 것을 제안 받은 것은 2015년 이었다. 그가 창단하게 된 팀 엠버는 리그 오브 레전드 챌린저스 리그에 도전을 했다. 성적을 내지 못하고 1년도 안 돼 구단 자체가 해산됐지만 그 이후로도 그는 이스포츠 과목을 가르치는 교수로, 이스포츠에 투자하는 투자자로, 아마존 게임스와 지금은 메타가 된 페이스북의 전략담당으로 일을 했다. 이스포츠의 짧은 역사를 생각할 때 이 표현이 적확할지는 미지수지만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국내 이스포츠 업계에서는 샌드박스 게이밍의 정회윤 단장이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아직도 현업에서 선수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날카로운 인사이트를 제공했다. 그의 대답은 매우 간단했다. 스트리머가 모이면 스트리머 집단이고 선수들이 모이면 구단이다.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이 든다. 게임을 잘하는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미 엘리트 스포츠인들이 받아야 하는 훈련과 거쳐야 하는 과정들이 성립돼 있는 전통적인 스포츠와 달리 이스포츠는 아직 이런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 따라서 정말 게임을 잘하는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의 실력 차이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적은 편이다. 실력에서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의 차이를 찾기는 쉽지 않다. 인사이더들이 이야기하는 ‘프로와 아마의 차이’는 멘탈이었다. 그저 게임을 잘하는 아마추어 시절에는 수 틀리면 게임을 놓아버려도 되고 욕을 해도 된다. 한 개인으로서 인성에 대한 비판은 들을 수 있겠지만 거기까지다. 하지만 프로 선수가 되면 상황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언행에 대한 주목이 높아지고 미디어에 노출된다. 공인의 정의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말들이 있지만 프로 선수가 된 이상 그저 게임을 즐기고 잘하던 시절과는 다른 언행을 보여야 하고 이런 언행들이 모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그들은 공인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프로 선수가 되면 아마추어 선수들 때와는 전혀 다른 수준의 압박이 가해지게 된다. 간단하게 말해서 책임감이 생기고 ‘짜증난다고 때려칠’ 수 있는 상황과는 멀어진다. 게임 한 판을 할 때마다의 압박도 전혀 다르다. 조나단 판은 “프로 선수로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멘탈적인 부분이다. 강도높은 훈련과 경기에서의 압박을 버텨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그래서 모든 게임을 잘하는 사람들이 훌륭한 선수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스트레스와 압박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전했다. 정 단장 또한 “실제로 선수들을 이해하기 위해 몇일간 합숙한 적이 있는데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굉장히 따라가기 힘든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외적인 측면에서도 논란거리를 만들면 안 되기 때문에 개인으로서의 소양도 중요한 부분이다. 한국에서도 많은 선수들이 온라인 상에서 논란이 될만한 용어를 쓰면서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북미에서도 선수들의 발언 때문에 논란이 생긴 사례를 쓰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이런 선수들이 모두 인성을 비판받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소양이 부족해서 생긴 실수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논란거리를 만들지 않고 더 나아가서는 누군가에게 영감이 될 만한 언행을 경기 외적으로도 보여주는 것은 개인적 소양에서 나온다. 구단의 역할에 대해 강한 멘탈과 소양이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의 차이. 그렇다면 여기서 바로 따라오는 것이 구단의 역할이다. 단순히 선수를 모아놓는 것이 구단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이 이스포츠 또한 선수는 항상 완성돼 있는 존재가 아니라 키워지는 존재기도 하기 하다. 그래서 구단은 선수들의 멘탈 케어에 만전을 기해야 하며 소양을 길러주려는 노력도 해야 한다. 조나단 판은 엠버에서의 1년을 다큐멘터리로 남겨놓았다. 그들이 챌린저스 리그에서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At All Cost〉는 이스포츠 구단의 영광스러운 부분이 아닌 실패와 좌절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독특한 지점이 있다. 조나단 판은 구단을 운영하면서 선수들의 멘탈 케어를 매우 중요하게 여겨서 이를 위한 시간을 따로 배분하고 체력적 부분과 정신력의 연결고리 또한 지적하면서 선수들에게 운동세션도 제공했다. 시즌이 진행되면서 긴 시즌을 버텨내게 하는 정신력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닫고 스포츠 심리학자인 웰던 그린을 헤드 코치로 영입한 적도 있다. 물론 이런 노력들이 현재 완벽한 것은 아니며 결실을 맺기에는 아직 먼 것이 현실이다. 정 단장은 “기본적으로 우리는 선수들이 스포츠 선수들의 멘탈리티나 소양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어린 연령대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성숙함이나 노련미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스포츠 선수들의 멘탈 관리는 결국 10대-20대 청년들을 케어하는 역할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단순히 스포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업군 - 학원, 아이돌, 심지어 바둑에서까지 많은 케이스를 연구하고 벤치마킹하려 한다”고 전했다. 할리우드 리포터에 따르면 비공식적인 통계가 말하는 프로 게이머의 선수생명은 5년 안팎이라고 한다. 일반적인 스포츠 선수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짧은 ‘생명’이다. 이스포츠 구단이 스트리머 집단과 다른 점에 대한 짧은 연구는 전세계 이스포츠 업계에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스트리머 집단이 아니고 구단으로 불리고 싶다면 제대로 된 지원체계를 확립해서 구단이 구단다워져야 한다고.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나성인) 홍영훈 캘리포니아에서 살면서 게임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에 출연하고 매체에 기고를 하며 많은 분들에게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패션부터 게임까지 분야에 상관없이 재밌는 글을 평생 쓰고 싶습니다.

  • [논문세미나] No homosexuals in Star Wars? BioWare, ‘gamer’ identity, and the politics of privilege in a convergence culture

    콘디스는 <스타워즈: 구 공화국>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진정한’ 게이머의 조건은 무엇인지, 그것을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은 누구인지 살핀다. 콘디스는 ‘진정한’ 팬 또는 게이머 무리가 미디어 환경을 장악했으며, 이들이 유토피아적 공간을 이룩하고 게임 내 특권적 지위를 이루고자 한다고 설명한다. < Back 16 GG Vol. 24.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ahin Park Interested in the boundary between the real and the virtual. Recently returned to a certain online game.

  • [공모전수상작] 기계장치의 우주: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의 불능감에 대해

    2022년 만우절 주간, 레딧의 거대한 땅따먹기 픽셀아트 프로젝트인 r/place에서 <레인 월드 (Rain World, 2017)>와 <아우터 와일즈 (Outer Wilds, 2019)>의 서브 레딧끼리 자그마한 동맹을 맺었다. ‘아우터 와일즈 원정대’의 로고를 중앙에 두고 양 게임인 플레이어 캐릭터인 슬러그캣과 화로인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으로 예쁘게 공유된 캔버스를 보고 있자면, 임시적이거나 느슨하게 맺어졌을 몇몇 r/place 동맹들에 비해 두 게임 간의 연합이 제법 어울리게 느껴졌다. 어쩌면, 필연적일지도 모를 만큼? < Back 20 GG Vol. 24.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Wonyoung Na Began writing popular music criticism in 2016 through the webzine weiv, and in 2022 published Alternate Reality Ghost through the webzine ma-te-ri-al. Tends to play small games in short sessions on a laptop. To be continued.

  • 일본의 보는 게임: 같은 듯 다른 일본의 상황들

    일본의 ‘보는 게임’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보는 게임은 확실히 기존의 하는 게임과는 구별되는 현상이지만 완전한 새로운 것은 아니며 이전에도 존재했다. 특히 가정용 콘솔과 함께 일본의 게임 문화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아케이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임센터에서는 이러한 ‘보는 게임’은 흔하게 일어나는 광경이었다. < Back 03 GG Vol. 21.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uhyung Shin Conducts research mainly on serious games and the places where serious games are played. Also takes part in the game archiving project at the Ritsumeikan Center for Game Studies (RCGS).

  • 보는 요리, 플레이하는 서바이벌: 요리 서바이벌 예능과 게임 사이의 빈 자리

    요리하는 게임은 많다. 손님의 주문을 받고, 재료를 조합하고, 제한 시간 내 접시를 완성하는 게임 말이다. 그런데 정작 텔레비전 방송이 오랫동안 다듬어 온 ‘요리 서바이벌’은 디지털 게임 안에서 좀처럼 장르로 자리 잡지 못했다. 이 비대칭이 이 글의 출발점이다. 왜 요리는 방송에서 그토록 잘 작동하는 게임이 되었는데, 게임에서는 요리의 질을 두고 겨루는 경연의 중심에 서지 못할까? < Back 보는 요리, 플레이하는 서바이벌: 요리 서바이벌 예능과 게임 사이의 빈 자리 30 GG Vol. 26. 6. 10. 요리하는 게임은 많다. 손님의 주문을 받고, 재료를 조합하고, 제한 시간 내 접시를 완성하는 게임 말이다. 그런데 정작 텔레비전 방송이 오랫동안 다듬어 온 ‘요리 서바이벌’은 디지털 게임 안에서 좀처럼 장르로 자리 잡지 못했다. 이 비대칭이 이 글의 출발점이다. 왜 요리는 방송에서 그토록 잘 작동하는 게임이 되었는데, 게임에서는 요리의 질을 두고 겨루는 경연의 중심에 서지 못할까? 요리 프로그램의 경우 흔히 정보 예능이나 먹방의 변주로 묶이지만, 적어도 서바이벌형은 그렇게만 보기 어렵다. 규칙이 분명하고, 자원과 시간이 제한되며, 판정과 탈락이 따른다. 관전의 재미도 갖춘다. 형식의 골격만 떼어놓고 보면 이미 (보는) 게임에 매우 가깝다. 그 중에서도 <냉장고를 부탁해>는 요리의 게임 메커닉을 가장 압축적인 형태로 드러내는 사례고, <흑백요리사>는 그 메커닉 위에 인물과 서사를 쌓아 이야기의 밀도를 끌어올리는 사례라 하겠다. 냉장고는 어떻게 게임판이 되는가 <냉장고를 부탁해>의 영리함은 요리를 둘러싼 조건을 극단까지 단순화한 데 있다. 출연자의 냉장고라는 제한된 자원 풀, 15분이라는 짧은 조리 시간, 두 (팀의) 셰프가 동시에 맞붙는 대결 구도, 긴박감 넘치는 중계, 그리고 즉각적인 시식과 판정. 한 회 안에서 이 요소들이 폐쇄적으로 완성된다. 요리 프로그램이라기보다 한 판짜리 대전 격투 게임 쪽에 가까워 보인다. * <냉장고를 부탁해>. 이미지출처: JTBC 이 때 핵심은 요리 자체가 아니라 요리를 둘러싼 규칙의 설계다. 재료는 무한하지 않고, 시간은 늘 부족하다. 두 셰프는 같은 조건에서 출발하되, 서로 다른 전략과 숙련도로 우위를 만들어야 한다. 방송은 셰프의 손맛이나 철학을 길게 설명하기보다, 그것이 제한 조건 안에서 어떤 선택의 조합을 통해 드러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그 결과 시청자는 요리의 결과보다 경기의 흐름을 읽게 된다. 이런 구조는 게임 연구에서 흔히 말하는 규칙 기반 플레이의 즐거움과 통한다. 자유롭게 무엇이든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선택이 의미를 획득하고 긴장을 발생시킨다.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냉장고는 일종의 인벤토리이자 맵이다. 셰프들은 재료의 희소성과 조합 가능성을 즉석에서 계산하고, 상대보다 먼저 핵심 재료를 선점하거나 우회 경로를 택한다. 냉장고의 주인이자 출연진처럼, 시청자는 그 흐름을 따라가며 머릿속에서 채점을 한다. 직접 조리하지는 않지만 이미 규칙을 이해한 관전자가 되어 있다. 매회의 대결은 분명 한 명의 승리로 끝나지만, 시청 경험 전체는 그렇게 간단히 누적되지 않는다. 각 셰프의 스타일, 반복되는 전술, 즐겨 쓰는 식재료, 편집이 강조하는 리액션과 캐릭터성이 회를 거듭하며 쌓인다. 시청자는 그 항목들을 가지고 자기 안에 일종의 셰프 캐릭터 풀을 만든다. 누구는 안정형, 누구는 모험형, 누구는 초반보다 후반 운영이 강한 선수 같은 식이다. 이 지점에서 <냉장고를 부탁해>는 요리 프로그램이면서 동시에 관전형 게임의 문법을 획득한다. 흑과 백, 캐릭터와 서사 <흑백요리사>는 같은 요리 서바이벌이나 설계 단위가 좀 다르다. 한 판의 대결을 넘어 시즌 전체를 하나의 장기전으로 끌고 간다. 이 프로그램의 강점은 요리 실력의 비교보다 실력 차이를 인물의 차이로 번역하는 능력에 있다. * <흑백요리사>. 이미지출처: 넷플릭스 흑수저와 백수저라는 명명 자체가 이미 캐릭터 슬롯처럼 보인다. 시청자는 참가자를 셰프만으로 기억하는 대신, 어떤 배경에서 올라온 사람인지, 누구와 라이벌 구도를 이루는지, 어떤 순간에 흔들리고 또 어떤 순간에 힘을 발휘하는지 등을 따라가며 시리즈를 본다. 게임 메커닉이 전면에 드러나는 <냉장고를 부탁해>와 달리, <흑백요리사>는 그 메커닉이 만들어 낸 차이를 인물 서사로 재포장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서바이벌 예능 전반에서 나타나는 게임화 경향도 이와 닿아 있다. 규칙, 미션, 탈락, 승급이 뼈대라면, 그 위에 더해지는 부분은 대체로 감정 이입 가능한 캐릭터와 성장 서사다.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임무뿐 아니라 역할까지 부여하듯, 서바이벌 예능 역시 참가자에게 서사적 포지션을 나눠준다. 누군가는 압도적 강자, 누군가는 이변의 가능성, 누군가는 끝내 살아남지 못해도 오래 기억되는 변수가 된다. <흑백요리사>가 흥미로운 이유는 요리의 맛을 직접 전달할 수 없는 근본적 한계를 캐릭터와 대결 서사의 과잉으로 메운다는 데 있다. 맛을 보여주지 못하는 대신, 맛을 둘러싼 드라마를 최대한 증폭하는 것이다. <흑백요리사>의 시청 경험은 요리의 승패를 확인하는 과정에 머물지 않는다. 시청자는 누가 이번 라운드의 서사적 중심에 설지, 탈락자의 패배가 어떻게 극복 혹은 이변의 발판으로 전환될지를 추적하며 몰입한다. 음식의 맛을 감각할 수 없는 화면 밖 우리에게 제공되는 진짜 미식은 다름 아닌 캐릭터들이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파열음이다. <흑백요리사>는 경연의 규칙이라는 뼈대 위에서, 대중이 열광할 수 있는 인물 서사를 끊임없이 생산해 내는 정교한 스토리텔링 공장인 셈이다. 요리 서바이벌의 메타게임 요리 서바이벌과 게임 간 관계를 좀 더 입체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메타게임(metagame) 개념에 주목해볼 만하다. 메타게임은 좁게는 게임의 승패를 둘러싼 상위 전략이지만, 더 넓게는 게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해석, 관전, 예측, 재맥락화의 실천 전체를 가리킨다. 필자는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게임 보기’가 게임 안과 밖을 잇는 독립된 행위이며, 게임 플레이 확장과의 관련 속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논의한 바 있다. 이 관점을 빌리면 요리 서바이벌 예능을 보는 일은 단순 시청이 아니라, 규칙과 인물과 결과를 둘러싸고 시청자가 수행하는 메타게임의 연속 같기도 하다. <냉장고를 부탁해>를 볼 때 시청자는 셰프의 선택을 실시간으로 채점하고, 자신이라면 어떤 조합을 택했을지 상상하며, 방송이 끝난 뒤 레시피를 검색해 자기 부엌에서 재현해 볼 수 있다. <흑백요리사>에서는 메타게임의 층위가 한층 두꺼워진다. 누가 편집의 수혜를 입는지, 어떤 대결 구도가 다음 회차를 위해 설계되는지, 특정 참가자의 생존이 시즌 전체 서사에 어떤 효과를 낳는지에 대해 시청자들은 방송 밖에서 끝없이 토론한다. 소셜 미디어, 유튜브 클릭, 기사 댓글, 출연 셰프의 식당 방문 후기까지 그 토론의 일부로 흘러 들어간다. 스튜디오 안의 판은 끝나도, 그 결과를 가지고 노는 놀이는 스튜디오 밖에서 계속 이어진다. 요리라는 소재는 메타게임 증폭에 특히 잘 어울린다. 전략이나 아이템 빌드는 대개 그 게임을 직접 해보지 않으면 따라가기 어렵지만, 요리는 누구든 어느 정도는 알거나 따라할 수 있다고 느끼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냉장고 속 재료, 익숙한 조리법, 식당 경험, 입맛의 기억은 이미 시청자의 일상과 삶 안에 있다. 그래서 요리 서바이벌은 전문성의 경기인 동시에, (전문가만큼의 퀄리티를 따라잡기 어렵다 하더라도) 아마추어의 참견을 허용하는 영역이 된다. 덕분에 시청자가 판정자와 코치와 플레이어 사이를 오가는 일이 가능해진다. 왜 게임 속 요리는 대개 서바이벌이 아닌가 그렇다면 왜 텔레비전은 요리를 이토록 훌륭한 게임으로 만들었는데, 게임은 요리를 부가 시스템이나 생활 콘텐츠 수준에 묶어 둬왔을까? 일단, 두 매체의 요리를 다루는 방식이 아예 다르다. 방송은 실제 맛을 전달할 수 없는 대신 경쟁의 형식과 인물의 드라마를 전면화함으로써 맛에 대한 상상력을 키운다. 반면 게임은 플레이어가 직접 조작해야 하는 매체다. 요리를 정교한 심사와 취향의 문제로 끌고 가는 순간, 규칙화와 피드백 설계가 어려워진다. 게임에서 좋은 시스템은 대체로 입력과 결과의 관계가 명확해야 한다. 공격 버튼을 누르면 피해량이 나오고, 회피 타이밍을 맞추면 더 큰 공격 기회가 돌아온다. 그러나 요리의 맛은 단일 수치로 환원하기 어렵다. 같은 미디엄 굽기의 스테이크라도 누군가에게는 완벽한 굽기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과한 익힘으로 다가갈 수 있다. 방송은 이 난점을 심사위원의 권위와 편집의 리듬, 참가자의 표정·행동과 서사로 덮을 수 있다. 그러나 게임은 플레이어가 납득할 만한 일관된 판정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많은 게임이 요리를 버프와 회복, 제작 시스템으로 우회 처리하는 까닭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 본다. 맛의 질적 차이를 다투기보다, 요리를 기능적 결과로 환산하는 편이 설계상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물론 요리의 질을 두고 직접 겨루는 게임이 아예 없지는 않다. <프린세스 메이커 2(Princess Maker 2)>에서는 10월마다 수확제가 열리는데, 요리 실력으로 요리를 만들어 승부를 가리는 대회를 포함했다. 요리와 감수성 수치가 평가 기준이다. 좀 더 본격적으로는 <배틀 셰프 브리게이드(Battle Chef Brigade)>가 식재료 사냥과 매치-3 퍼즐, 심사위원 판정을 엮어 요리 토너먼트를 게임의 메인 플롯으로 끌어올린 예가 있다. 그러나 이런 사례들은 어디까지나 예외에 가깝다. <오버쿡드(Overcooked)> 시리즈처럼 협동과 혼란의 물리적 코미디로 가거나, <쿠킹 마마(Cooking Mama)>처럼 조리 동작 중심의 미니게임으로 가는 쪽이 흔하다. 물론 모두 충분히 재미있는 게임들이지만, 요리의 질을 두고 권위와 서사와 탈락이 맞물리는 요리 서바이벌 예능과는 결이 다르다. 요리 서바이벌 예능이 맛 자체보다 맛을 둘러싼 사회적 드라마를 소비하는 장르라는 점도 짚을 필요가 있다. <흑백요리사>에서 누가 어떤 배경에서 올라왔고 어떤 위기 앞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가 중요하다면,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역시 냉장고 재료 조합 못지않게 셰프의 캐릭터와 입담, 상대와의 심리전이 재미를 만든다. 방송이 요리를 게임화할 때 중심에 놓는 재료는 음식이 드러내는 사람과 계급, 취향, 전문성, 즉흥성이다. 이때 작동하는 재료들은 본질적으로 일회적·우연적이며, 무엇보다 참가자가 방송 바깥에 가지고 있는 실제 삶에 뿌리를 둔다. 한 셰프가 오랫동안 운영해 온 식당의 이름, 또 다른 셰프가 업계에서 쌓아 온 평판, 패배 이후 그가 마주할 다음 날의 영업 등이 한 라운드의 무게를 만든다. 방송은 이 외재적 무게를 그대로 끌어와 편집과 심사로 의미화하지만, 게임은 그 모든 무게를 처음부터 내재해야 한다. 게임이 이 재료들을 옮겨오려면 플레이어가 그것을 반복 가능한 규칙으로 체험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바로 그 반복 가능성의 설계가 요리라는 소재에서는 의외로 까다롭다. 그래서 아직 혹은 여전히 비어 있는 자리는 요리 게임이 아닌 것이다. 맛을 직접 재현하지 못하면서도 맛에 대한 사회적 판정과 관전을 시스템화하는 게임의 형식, 더 정확히는 그런 형식이 들어설 자리다. 이 빈 자리는 게임의 한계라기보다 방송의 강점이 위치한 지점에 가깝다. 방송은 일회적인 대결 위에 권위와 편집과 인물 서사를 덧입혀 시청자에게 ‘게임 같은’ 경험을 매번 새로 제공한다. 게임이 같은 일을 해내려면, 일회성을 반복 가능성으로 번역해 줄 별도의 장치(실시간 시청자 투표나 시즌제 운영, 외부 평판 시스템과의 연동 같은)를 매체 안에 끌어안아야 한다. 그 작업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요리 서바이벌은 당분간 방송이 가장 잘하는 게임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요리 서바이벌 예능의 성공은 게임이 아직 완전히 흡수하지 못한 영역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며, 동시에 방송이 점점 더 게임을 닮아 가는 흐름 속에서도 방송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여전히 무엇인지를 가장 또렷한 형태로 보여 준다. 보는 요리는 어떻게 놀이가 되는가 여기까지 오면, 요리 서바이벌 예능을 ‘게임 같은 방송’이라 칭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것은 보는 행위 자체가 놀이가 되는 텍스트다. 시청자는 요리를 직접 하지 않더라도 규칙을 읽고, 캐릭터를 선택하며, 결과를 예측할 뿐 아니라, 방송 밖에서까지 판을 계속 이어 간다. <냉장고를 부탁해>가 한 판의 설계와 즉각적 승부의 묘미를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면, <흑백요리사>는 같은 승부를 장기 서사로 늘려 관전의 지속성을 높인다. 둘 다 메타게임으로서의 방송이라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흥미로운 부분은, 방송이 만든 이 놀이가 다시 현실의 식생활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이다. 시청자는 레시피를 따라 하고, 셰프의 식당을 찾아가고, 특정 재료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매직 서클 바깥에서 계속 이어지는 이러한 실천은 게임을 보고 이야기하고 흉내 내는 행위가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가 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결국 요리 서바이벌 예능은 요리를 둘러싼 경쟁과 판정과 관전, 그리고 그 이후의 모방과 관련 소비까지 통째로 묶어내는 거대한 메타게임 장치라 할 수 있다. 텔레비전은 여기서 요리를 방송한 것이 아니라, 요리라는 행위를 가장 대중적인 방식을 통해 플레이 가능한 이야기로 바꾸어 놓았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강신규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게임, 방송, 만화, 팬덤 등 미디어/문화에 대해 연구한다. 저서로 <흔들리는 팬덤: 놀이에서 노동으로, 현실에서 가상으로>(2024), <서브컬처 비평>(2020), <아이피, 모든 이야기의 시작>(2021, 공저),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2020, 공저), <게임의 이론: 놀이에서 디지털게임까지>(2019, 공저) 등이, 논문으로 ‘이기지 않아도 재미있다: 부모-자녀 게임 플레이의 사회성과 행위성, 그리고 분투형 플레이’(2024), ‘커뮤니케이션을 소비하는 팬덤: 아이돌 팬 플랫폼과 팬덤의 재구성’(2022), ‘‘현질’은 어떻게 플레이가 되는가: 핵납금 게임 플레이어 심층인터뷰를 중심으로’(2022, 공저), ‘게임화하는 방송: 생산자적 텍스트에서 플레이어적 텍스트로’(2019) 등이 있다.

  • Assessing Genshin’s Soft Power Impact on Southeast Asia

    At the Anime Festival Asia (AFA) held in Singapore in November 2023, miHoYo assumed the prime spot at the exhibition—squarely at the entrance of the convention centre. Consequently, fans flocked to the booth for physical merchandise, resulting in three days of traffic slowdown. The booth had photo corners and character goods from the game Genshin Impact (GI), miHoYo’s ticket to global fame since its publication in 2020. < Back Assessing Genshin’s Soft Power Impact on Southeast Asia 29 GG Vol. 26. 4. 10. At the Anime Festival Asia (AFA) held in Singapore in November 2023, miHoYo assumed the prime spot at the exhibition—squarely at the entrance of the convention centre. Consequently, fans flocked to the booth for physical merchandise, resulting in three days of traffic slowdown. The booth had photo corners and character goods from the game Genshin Impact (GI), miHoYo’s ticket to global fame since its publication in 2020. In the past few years, there has been an uptick of events in the region featuring the company, including soundtrack concerts and production collaborations with the likes of Singaporean bubble tea chain LiHoTEA, the regional branch of American cable channel Discovery Channel, and American pizza chain Dominos (Yan, 2023; Genshin.Global , 2022; Lojo, 2024). In 2023, miHoYo held their annual flagship event, HoYoFest, in six Southeast Asian countries, combining all their game titles, including GI, into one event. The expansion of miHoYo can be directly credited to the rise of GI to global fame. By March 2021, GI hit US$1 billion in player spending globally, becoming the fastest game to hit the milestone on both Google Play and the App Store (Chapple, 2021). In the same year, it became the first Chinese game to win the Best Mobile Game award at The Game Awards (TGA), considered the Oscars of the gaming industry (Bankhurst, 2021). To handle their international accounts, miHoYo established a global subsidiary in Singapore in 2022, called Cognosphere. Due to the phenomenal and unexpected global popularity of GI, discourse on whether the game can be a source of Chinese soft power has been rife (Song, 2023; Li and Li, 2023). Soft power is defined as power cultivated through a country’s culture, political values and foreign policies to achieve desired outcomes in external perceptions and relations (Nye, 2004). Soft power may be orchestrated by institutions, but there are instances where soft power is cultivated independently, beyond the agency of the state. miHoYo, then, can be seen as an example of a non-state entity that has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of Chinese soft power. How GI is Surveyed Domestically in China Domestically, GI is a source of national pride. In an article assessing the international outreach of GI, Fan Yanchen (2024) notes that “in the current background that Chinese games are striding from ‘export’ to ‘globalization’, [GI] is not only a simple means of entertainment, but also a good carrier for exporting Chinese stories”, reflecting the familiar call from the Chinese authorities for “telling China’s story well” (讲好中国故事) (Liu, 2018). Another article, written by Song Tang (2023), observes that Chinese netizens have been translating reactions of international players into Chinese for locals, “endors[ing] the game’s global impact as a reflection of Chinese cultural influence”. The high quality of the game, in the view of netizens, serves to reverse stereotypes about China being “backward”. It instead displays the “high modernisation” of the country, thereby contributing to the “collective vision of a culturally rising China”. The consensus is that GI has contributed to improving the cultural image of China. The Chinese government has reportedly acknowledged this, with miHoYo being one of the key enterprises designated for national cultural export in 2021 and 2022 (Ministry of Commerce, 2021) and subsequent games developed by miHoYo being endorsed by Beijing for production (Cao, 2023). This positive discourse centres, however, on impressions of GI’s global performance among Western and Chinese audiences. Discussing videos created by Chinese fans of the game, Song (2023) notes that one creator claimed GI encouraged Americans to learn Chinese and understand China. This preference for Western perspectives is also observed in another article about the “Chineseness” of GI. Li and Li (2023) note that, regardless of the opinions that netizens have towards GI, the particular weight placed on Western reactions “revealed Chinese players’ anxiety over acceptance by foreigners, particularly Western consumers in developed countries”. The fixation of Chinese netizens on international responses does not extend to East or Southeast Asia. There are two possible reasons for this lack of attention to East and Southeast Asian responses and the focus on Western responses. The first is the relative success that other Chinese products already have in the region, such as education, food and, in the case of Southeast Asia, popular culture. The second is that the competition between China and the United States has fuelled anti-China sentiments in the West, especially since Covid-19. Hence the enthusiastic uptake of the game—with the United States being the third-largest revenue generator for GI in 2022 (Chapple, 2022)—may be taken as a sign of changing Western sentiments towards the Chinese. Nevertheless, sentiments towards the game from other countries cannot be neglected, especially those of Southeast Asia. According to “The State of Southeast Asia: 2024 Survey Report”, China, with 50.5 per cent of respondents’ votes, became the preferred strategic choice to align with in the US-China rivalry, edging out the United States (49.5 per cent). This contrasts with the previous year, when China scored only 38.9 per cent of the votes (Seah et al., 2024). With China’s unexpected surge in popularity over the past year, it is increasingly important to understand how Chinese cultural products—such as GI—are influencing audiences in Southeast Asia. To address this gap, I surveyed 264 players from Singapore, Malaysia and Indonesia regarding their impressions of the game and its influence on their perspectives of Chinese culture. At the peak of the game’s popularity, GI topped sales charts in Singapore, Malaysia and the Philippines, while the game came in second in Indonesia and Vietnam (Bashir, 2022). It therefore stood to reason that the survey sample be selected from those five countries because of the high number of players. To ensure consistency in results, Singapore and Malaysia were identified as key countries to study on account of the strong presence of ethnic Chinese communities there. Indonesia was also chosen as there is a large local Chinese community in the country too, making it suitable for comparison alongside Singapore and Malaysia. Vietnam and the Philippines were excluded as they possess smaller ethnic Chinese populations in comparison, and the population dynamics may be quite different. Southeast Asian Attitudes towards Genshin Impact Conducted between 1 February 2024 and 20 February 2024, the survey showed that the soft power reach of the game in Southeast Asia is limited for two reasons. First, players in the region are already exposed to Chinese culture through their ethnic Chinese neighbours and friends, minimizing the impact the game would have. Second, players do not regard GI as exclusively Chinese; instead, they perceive it as a global game, thereby diluting the soft power potential it has. The survey involved 264 respondents, with 37 per cent from Indonesia, 33 per cent from Malaysia and 30 per cent from Singapore. Positive but Limited Reach Based on the survey results, GI has a positive but limited soft power reach in Singapore, Malaysia and Indonesia (see Figure 1). * Figure 1: To what extent do you agree with the following statements? According to this figure, most respondents remained neutral about Chinese culture in general. However, the proportion who said the game increased their interest in Chinese culture after playing it (35.5 per cent) exceeded those who disagreed that the game had increased their interest (18.2 per cent). These findings point therefore to a limited but positive soft power reach of the game in Southeast Asia. But what were the possible reasons for this overall neutral effect of GI on local audiences? For the statement, “I am more open to products influenced by Chinese aesthetics after playing GI”, the respondents were asked to explain their perspective. From the answers, two major camps could be discerned among those who took neutral stances: (1) the first camp involved players who did not regard games as important influencers in cultural dissemination and therefore were not in the habit of actively seeking out games for cultural value, and (2) the second camp involved the ethnic Chinese population of Southeast Asia, which is already locally exposed to Chinese culture, blunting the soft power influence of GI. Players from the first camp noted that, so long as the game was fun, they would play it. The cultural influence that the game carries was secondary for them and did not affect their perspectives of China. The second camp comprised Chinese participants or non-Chinese participants who had Chinese friends. As they were already exposed to Chinese culture, they did not view GI as particularly influential on their perspectives. However, while the existing Chinese culture in Southeast Asia limits the soft power influence of GI, the game still seems to have had a positive influence in the region. Among those who answered “Agree” and “Strongly Agree”, there was a higher proportion of non-Chinese than Chinese respondents. This suggests that GI had a slightly greater influence on non-Chinese players than on Chinese players (see Figures 2.1, 2.2 and 2.3). * Figure 2.1 "I am more curious about Chinese Culture after playing GI". * Figure 2.2 "I am keen to visit the places in China that inspired the locations within GI in the next few years". * Figure 2.3 "I am more open to products influenced by Chinese aesthetics after playing GI". A Chinese-Made Global Game Aside from rating the influence of GI on their perspective of Chinese culture, the survey also attempted to assess the respondents’ perceptions of the game as a global one (see Figure 3). * Figure 3 GI is a Global Game The results showed that 51.9 per cent “Strongly Agree” that GI is a global game, followed by 38.6 per cent who “Agree”. Only 0.16 per cent of the respondents “Disagree” and “Strongly Disagree”, with 8 per cent remaining “Neutral”. The reasons for this overwhelming consensus that GI is a global game include (1) it introduces other types of cultures, (2) the game is global in reach and (3) the game allows players from around the world to connect. The next question that the respondents were asked was whether they viewed GI as a Chinese product (see Figure 4). * Figure 4 Do you view GI as a Chinese product? The results showed 85 per cent of the respondents responding “Yes”, while 15 per cent stated “No”. Many among those who answered in the affirmative were straightforward, stating that the game is Chinese in origin since it is produced by a Chinese company. Some respondents stated that the game is Chinese because of the prominent emphasis on “Chineseness” within the game. The minority who indicated that they did not see the game as a Chinese product pointed to the incorporation of Japanese art styles as a key reason for their conclusion, reflecting current debates on the Chineseness of GI. Despite the differing views on whether GI can be regarded as a Chinese or global game, an intriguing perspective emerges upon comparison of the two questions— the game is seen as simultaneously Chinese (local) and global. An explanation arrives in “worlding multiculturalism”(Goh, 2015) where cultural commodities (like GI) are created by corporations (like miHoYo) by infusing the new or relatively unknown (traditional Chinese culture and aesthetics) with both local (Southeast Asian) and familiar (Japanese anime art styles) content, thereby creating interesting new cultural products for consumption (Otmazgin and Ben-Ari, 2015). By maximizing the aesthetics of Chinese culture within a game that is designed to be at once local and global, the developers had unwittingly drawn on the dynamics of worlding multiculturalism to their advantage. It is unsurprising, therefore, that players in the region regard the game as both Chinese and global. Conclusion From the responses, we can conclude that GI has indeed been successful in improving the impression of China’s ability to produce a popular cultural product with global appeal, but this impression does not necessarily lead to the kind of political impact corresponding to Nye’s concept of soft power. Thus, through the respondents’ view of GI as both a Chinese and a global game, the survey reveals that the soft power impact of GI in Southeast Asia is ultimately limited because of the perception that its globality far outweighs the emphasis on Chineseness within the game. *This article is a shortened version of “Assessing Genshin’s Soft Power Impact on Southeast Asia” previously published in SOJOURN: Journal of Social Issues in Southeast Asia Vol.39, No. 3 (Nov 2024). References Bashir, Dale. 2022. “Southeast Asians Spend Most Time, Money on Genshin Impact”. IGN Southeast Asia, 14 January 2022. https://sea.ign.com/genshin-impact/180800/news/southeast-asians-spend-most-time-money-on-genshin-impact . Cao, Ann. 2023. “Shanghai Names Genshin Impact Creator miHoYo and US Sanctioned AI Firm SenseTime among City’s 40 Tech Champions”. South China Morning Post, 5 December 2023. https://www.scmp.com/tech/ policy/article/3243954/shanghai-names-genshin-impact-creator-mihoyo-andus-sanctioned-ai-firm-sensetime-among-citys-40-tech. Chapple, Craig. 2021. “Genshin Impact Races Past $1 Billion on Mobile in Less Than Six Months”. Sensor Tower, March 2021. https://sensortower . com/blog/genshin-impact-one-billion-revenue. Fan, Yanchen. 2024. “The International Communication of Chinese Culture in the Context of Games: The Case of Genshin Impact”. SHS Web of Conferences 187, no. 04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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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모전수상작] 〈Ib〉: 미술관이라는 공포 체험

    2022년은 〈Ib〉의 공개로부터 10주년이 되는 해였다. 제작자kouri는 스팀을 통해 기존 〈Ib〉에 새로운 기능이나 디테일을 더한 리메이크판을 공개했다. 이듬해 2023년에는 닌텐도 Switch 용 〈Ib〉의 발매 소식이 공개되었고, 게임 홍보를 목적으로 게임의 전시를 재현한 ‘게르테나전’이 도쿄 시부야에서 열리기도 했다. < Back [공모전수상작] 〈Ib〉: 미술관이라는 공포 체험 20 GG Vol. 24. 10. 10. “어서오세요 게르테나의 세계에”: 미술관 나라의 이브 2022년은 〈Ib〉의 공개로부터 10주년이 되는 해였다. 제작자kouri는 스팀을 통해 기존 〈Ib〉에 새로운 기능이나 디테일을 더한 리메이크판을 공개했다. 이듬해 2023년에는 닌텐도 Switch 용 〈Ib〉의 발매 소식이 공개되었고, 게임 홍보를 목적으로 게임의 전시를 재현한 ‘게르테나전’이 도쿄 시부야에서 열리기도 했다. 〈Ib〉는 여러 가지 장르로 설명될 수 있다. RPG 만들기 툴(RPG Maker)로 만들어진 롤플레잉 어드벤처 게임이기도 하고, “프리호러게임” [1] 에 들어가기도 하고, 캐릭터 간의 대화 횟수나 대사 선택지에 의해 엔딩이 갈린다는 점이나 캐릭터의 매력을 살린 2차 창작으로 입소문을 탔다는 점에서는 미소녀 게임의 일종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개념미술가 다니엘 뷔랑은 “전시회의 주제가 더 이상 전시된 미술 작품들이 아닌, 미술 작품의 전시 그 자체로 바뀌는 추세”라고 주장했다. [2] 이러한 주장에 따른다면, 〈Ib〉에 등장하는 미술 작품들은 대부분 배경 소품이나 ‘모브 캐릭터' 정도로 등장하는 데에 그치더라도 ‘게르테나전’이라는 전시회 자체가 〈Ib〉의 주제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전시회 체험’으로서의 〈Ib〉에 주목한다. 〈Ib〉에서 ‘게르테나전'은 크게 서너가지 시공간을 가리킨다. 첫번째로 이브가 처음에 부모님과 함께 도착한 미술관이자 비일상적인 호러 세계를 빠져나와 돌아가야 할 장소인 작중 일상 세계의 “게르테나전”이다. 두 번째는 이브가 홀로 뛰어들어 게리와 메리와 함께 탐험하게 되는 위험천만한 “상상화의 세계”이다. 그 안에서도 메리의 세계인 “스케치북의 세계"는 나머지 “상상화의 세계"와는 다소 궤를 달리하는, 어느정도 독자적인 공간으로서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Ib〉의 세계에 등장하는 모든 작품을 포함하는, 제작자 kouri의 전시라고도 할 수 있을 2022년판 〈Ib〉의 “진 게르테나전”이 있다. 다양한 ‘게르테나전’을 탐험하는 〈Ib〉라는 어드벤처 게임에서, 플레이어 캐릭터는 ‘이브’인 동시에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 자신의 분신이다. 게임 도중 특수한 조건을 만족시키면 일정 부분을 다른 캐릭터의 시점에서 플레이할 수 있기는 하지만, 플레이어는 대체로는 이브를 통해, 이브가 되어 ‘게르테나전’을 경험한다. 플레이어/이브에게 있어서 ‘게르테나전’이 어떤 식으로 ‘신비롭고도あやしくも 아름다운’ 경험이 되는가 살펴보자. * 이미지 1: “게르테나가 생전에 그린 신비롭고도 아름다운 작품들을 부디 마음껏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일본어로 あやしい는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것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수상하고 불길한 것을 가리키는 형용사이기도 하다. “작품에 손을 대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게르테나전이라는 ‘화이트 큐브’ 〈Ib〉에서 새 게임을 시작한 플레이어는 부모님과 함께 미술관에 가는 장면 속에 놓인다. 플레이어의 분신이자 게임의 주인공인 ‘이브’는 미술관을 처음 경험하는 아홉 살 소녀이다. 블라우스에 붉은 치마와 리본, 구두 차림에 “진짜 레이스"와 자수로 장식된 손수건을 가지고 있다. 미술관에 도착한 플레이어/이브는 티켓 접수에 시간이 걸리고 있는 부모님에게 먼저 들어가서 전시를 보고 싶다고 표현한다. 게임의 진행을 위해서라도 ‘엄마'는 허락하면서도, 다른 관람객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조용히 관람해야만 한다며 거듭 주의를 준다. 아무튼 잔소리를 다 들었다면, 비로소 플레이어는 자유롭게 이브를 움직일 수 있게 된다. 게르테나전에 발을 들이는 순간 가장 의식하게 되는 세 가지는 흰 벽, 액자 그림, 그리고 BGM ‘코렐리 라 폴리아'다. 테이트 미술관 홈페이지는 “화이트 큐브"란 “사각형 공간, 희게 칠한 벽, 그리고 천장에서 내려오는 광원으로 대표되는 전시회들의 특정한 미적 형식"이라고 요약한다. 바로크 클래식 음악과 관객으로부터 동떨어져(야만 하는) 흰 배경에 놓인 값비싼 예술품들은 ‘화이트 큐브’를 구성하는 요소들 그 자체이다. “게르테나전”과 같은 ‘화이트 큐브’는 지금도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익숙한 미술 전시의 형태일 것이다. 이브/플레이어는 전시장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관람객에게 말을 걸 수 있다. 대뜸 작품에 대한 감상을 물어봤으면서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면 어린애라고 무시하는 관람객이 있으면, 작품의 일부를 먹어보고 싶다는 식욕 왕성한 관람객도 있고, 조각 작품이 조금만 건드려도 무너질 것 같다며 배상금을 상상하며 두려워하는 관람객이 있기도 하다. 그런 관람객들이 넌지시 드러내는 공통된 두려움에 끄떡이듯, 조각상 근처의 벽에는 “작품에 손을 대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하는 경고문이 걸려있다. 게임의 도입부의 “게르테나전”은 플레이어에게 달려드는 초상화나 접촉하면 ‘게임 오버’가 되는 조각품 같은 것들이 등장하지 않는 ‘안전한’ 공간이다. 그러나 아홉 살 어린이 이브에게 있어서, 어쩌면 ‘호러 게임’ 〈Ib〉의 ‘호러’는 이미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느껴졌다. 전시장은 여자 어린이 이브에게 있어서, 그리고 아홉 살 소녀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면에서 이브와 비슷한 면이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결코 편안한 장소가 아니다. 미술관이란 손을 대면 때가 탈 것만 같은 새하얀 벽에 둘러싸여 있고, 실수로라도 만졌다가는 무시무시한 금액을 물어내야 할 성스러운 미술품들이 걸려있는 데다, 기침이라도 했다가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엄격한 공간이다. “게르테나전” 2층에는 “고양이다-! 엄마아-! 고양이 그림이 있어-!” 하며 작품에 대한 열의를 공유하려고 했으나 “알겠으니까 조용히 하렴! 큰 소리 내면 안돼!”하고 꾸중만 듣고 마는, 이브보다 어려 보이는 (작은 도트로 표현되는) 어린이 관람객이 있다. 같은 층의 다른 관람객의 말( “으…… 역시 너 같은 아이한테는 아직 이해하기 어려우려나……” )처럼, 미술관은 때로는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술적 조예’나 ‘똑똑한 머리’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어려운 곳이기도 하다. 이브는 한자로 표기된 작품 라벨을 거의 읽지 못한다. 이브가 혼자서 읽을 수 없는 어려운 한자는 모두 물음표로 표현되고, 라벨이 물음표로 표시되는 작품의 제목을 알기 위해서는 어른 동료와 동행해야만 한다. 미술관에서 실수하기는 너무나 쉽고 미술을 이해하기는 너무 어렵다. “상상화의 세계": 미증유의 ‘그레이 존'에 뛰어들기 이런 게르테나전을 헤매던 이브 앞에 불현듯 나타난, 읽기 쉬운 히라가나로 된 “이 리 오 렴 이 브”는 ‘화이트 큐브’에서 꺼내주겠다고 하는 유혹과 같았을지도 모른다. 불가항력처럼 뛰어든 “상상화의 세계”는 원래 세계의 게르테나전과는 사뭇 다른 미술관의 모습을 보여준다. 벽은 붉고 푸르고 초록색이며, 미술 작품은 자유롭게 만질 수 있고 가격이 매겨져 있지도 않다. 라벨이 없는 작품도 여러 점 있으며, 작품은 반드시 벽에 걸려있지도 않고, 심지어 자아를 가지고 자유롭게 돌아다니기도 한다. * 이미지 2: 먼 곳의 높은 벽에 걸려있는 자신의 초상화에 접근할 수 없는 개미를 위해 액자를 벽에서 떼어 들고 가서 보여줄 수도 있다. 눈높이에서 보고 싶은 작품을 마음대로 떼어서 볼 수 있는 초록색 전시관은, 하얗고 고요한 “게르테나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이러한 점에서는 “상상화의 세계”는 원래 세계의 게르테나전에 대한 대안의 상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디지털 문화 이론가 레브 마노비치는 20세기부터 미술관과 극장theatre은 반대되는 개념이었으며, ‘화이트 큐브’인 미술관은 고급문화로, 그리고 ‘블랙 박스’인 극장은 저급문화로 여겨졌다고 설명했다. [3] 한편, 현대예술에서는 공연의 거처가 ‘블랙 박스’에서 ‘화이트 큐브’로 옮겨진 경우도 있다. 극장에서와 달리, 미술관에서의 공연은 유동적인 관객을 상정하기에 관객이 없어도 계속될 수 있으며, 동시에 극장 공연에 비해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기에 용이하다는 특징을 가졌다. 클레어 비숍은 이와 같이 ‘블랙 박스’와 ‘화이트 큐브’의 특성이 혼재된 공간을 ‘그레이 존’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4] 이브나 게리가 뛰어들기 전부터 존재했던 듯이 보이며, 작품이 자아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관람객/플레이어와 교류하는 “상상화의 세계”는 ‘그레이존’이라는 설명에 딱 들어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상화의 세계”는 안전하지 않다. RPG 게임 〈Ib〉에서, “상상화의 세계”에서 자아를 가진 작품들은 플레이어를 향해 달려들며 목숨을 노리고, 그러면서도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지 말고 영원히 남으라고 종용한다. 이것은 확실히 호러다. 그렇다면 작중 서사에서 “상상화의 세계”가 공포스럽게 작용하는 방식을 배제하고, 하나의 전시로서의 “상상화의 세계”는 어떨까? 안타깝게도 “상상화의 세계”라고 해서 “게르테나전”보다 모두에게 안전하고 재미있는 전시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들은 흰 벽에 불안과 강박을 느끼지만, 대안으로써 알록달록한 벽을 채택한다면 과잉된 시각적 자극에 감각 과민을 경험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관람객이 미술품을 만질 수 있게 하면 시각장애인이나 신경다양인 등이 다양한 방법으로 전시를 즐길 수 있게 되지만, 감염의 위험이 커져서 면역이 취약한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안전하지 못한 공간이 될 수도 있다. [5] 전통을 거스르는 대안적 시도는 필연적으로 다면적인 복잡함과 어려움을 마주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상상화의 세계”는 ‘화이트 큐브’를 벗어나려고 하는 시도의 불확실성, 그리고 실패 가능성에 대한 불안의 은유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상상화의 세계”는 “게르테나전”의 한계를 타파하고 극복한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게르테나전”에서 느낀 공포의 연장선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 예시로, 작중 이브가 꾸는 악몽에서는 “게르테나전”의 공포와 “상상화의 세계”의 공포가 하나로 합쳐지기도 한다. * 이미지 3: 이브가 “상상화의 세계”에서 정신력이 다해 쓰러졌을 때 꾼 악몽. “상상화의 세계”에 비해 “게르테나전”은 안전하다. 비록 부모님이 데리러 오지 않으면 떠날 수 없고, 큰소리도 내면 혼나고, 쉽게 이해할 수도 없는 데다, 전시품을 건드리면 변상해야 하지만 목숨이 간당간당한 “상상화의 세계”보다는 무한히 안전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상상화의 세계”에 비해서 안전하다고 해서, “게르테나전”이 모두에게 있어서 가장 안전하다는 주장은 ‘화이트 큐브’가 내세우는 이데올로기 그 자체 같다. 미술관에 ‘화이트 큐브’를 처음 적용하기 시작한 데 스틸과 바우하우스와 같은 예술가 그룹들은 ‘화이트 큐브’에 둘러싸여 있을 때 미술이 가장 돋보이고, 방해받을 여지 없이 안전하게 관람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6] 정말 그럴까? 만약 그렇다면, ‘화이트 큐브’에서 ‘안전하게’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브는 거기에 포함될 수 있을까? “스케치북의 세계”: ‘화이트 큐브’에 대한 메리의 도전 큐레이팅이란 무엇일까? 폴 오닐은 저서 『동시대 큐레이팅의 역사』를 통해 큐레이터가 단순히 작품을 관리하고 요구에 따라 꺼내어 전시하는 위치에 있었던 과거와 달리, 현대의 큐레이터는 전시라는 예술적 경험을 총괄하는 비평가이자 일종의 메타적인 예술가라고 주장한다. ‘게르테나전’이 크게 서너 가지 존재하는 것과 짝을 맞추어, 〈Ib〉에는 크게 서너명의 큐레이터가 존재한다. 이브와 부모님이 사는 세계의 ‘게르테나전’을 만든 작중에 등장하지 않는 가상의 큐레이터, “상상화의 세계”의 근본에 있는 바이스 게르테나 (그는 의식적으로는 존재할 수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스케치북”의 세계를 만들어낸 메리, 그리고 물론 ‘진 게르테나전’은 〈Ib〉를 제작한 kouri와 〈Ib〉를 플레이해서 완성하는 플레이어의 합작이다. * 이미지 4: 미술관이 어린이를 환대하는 공간이 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할까? “상상화의 세계” 안에서도 “스케치북”은 메리가 직접 그리거나 모은 오브제들로 구성된 맵이다. 메리가 즐겨 쓰는 그림 도구인 크레용으로 그려진 세계에는 집, 사람, 나무 외에도 백조가 있는 호수, 나비들의 공간, 커다란 푸딩 등이 그려져 있다. 검은 공간은 여백이기에 만지거나 걸을 수 없으며, 색이 칠해져 있는 부분만 물성을 지닌다는 자체적인 물리법칙도 있다. “스케치북 안에는 “장난감 상자”가 있고, “장난감 상자”에는 스토리의 진행에 필요한 열쇠 외에도 그림, 인형, 조각 등… 요컨대 메리의 ‘친구들’이 흩어져 있다. 뉴욕 브루클린의 미술재단 Recess에서 발행한 미술관 접근성 가이드 “Accessibility in the Arts: A Promise and a Practice”에서는 아이들을 동반한 관람객을 위해 미술관에서 놀이방이나 장난감과 그림 도구로 채운 상자를 마련할 것을 제안한다. [7] 이 제안의 모습과 유사한 메리의 “스케치북"은 꼭 어린이 관람객을 위한 놀이공간 같다. * 이미지 5: “스케치북” 속 “장난감 상자” “스케치북” 세계는 그림은 액자 안에 존재해야 하며 액자는 미술관에 걸려 있어야 한다는 전제 자체를 무시한다. 밟고 있는 길, 들어갈 수 있는 집, 호수와 백조와 나무와 과일은 모두 캔버스 바깥에 존재하는 물체인 동시에 그림으로 인식된다. 이런 자유로움은 어린 시절 바닥에 분필로 그림을 그려서 즐겼던 땅따먹기 놀이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평면에 그린 그림을 컴퓨터나 스마트 기기의 카메라로 인식해 3D 영상으로 렌더링하던 초기 AR(증강현실) 애플리케이션들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미술관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화이트 큐브’를 벗어나 놀이 공간에 가까워지려고 더 자주 시도한다면, 메리와 같이 에너지가 많고 집중력이 짧은 어린이 관람객에게도 덜 무섭거나 지루한, 심지어 신나는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억의 미술관 이브의 다사다난한 미술관 경험에서도 비추어지듯, ‘화이트 큐브'로 대표되는 미술관은 어린이 혹은 그 밖에도 신경다양인, 장애인, 티켓을 살 돈이 없는 사람들, 조용하게 걸을 수 있는 신발이 없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썩 환대의 공간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너무나 오랫동안 미술관의 전통으로 굳어져 온 ‘화이트 큐브'의 대안을 고안하고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새로운 방식의 전시는 저마다 모두 나름의 의의와 한계들이 있고, 때로 전시의 한계는 상업성과 자본이라는 맥락에 의해 결정되기도 한다. ‘게르테나전’은 지난 2023년, 닌텐도 Switch 판 〈Ib〉의 발매를 기념해 현실로 옮겨오기도 했다. 2023년의 게르테나전은 시부야 PARCO백화점 지하 1층의 전시공간인 GALLERY X BY PARCO에서 열렸다. [8] 150점이나 되는 게르테나의 작품이 모두 전시되지는 못했지만, 특히 조각 작품은 제작과 운반에 투자할 여력이 없었는지 한 점도 전시되지 못했다. 흰 사각형 벽에 액자가 걸려있는 모습은 전형적인 ‘화이트 큐브’였지만, 그러면서도 프로젝션 매핑을 통해 그림의 ‘움직이는’ 요소를 재현하고 흰 벽을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VR헤드셋을 쓰고 ‘파란 인형의 방’을 체험할 수 있는 ‘블랙 큐브’도 있었다. 그렇지만 프로젝션 매핑이나 VR 등의 기술적인 시도보다도, 가장 기억에 남은 체험은 ‘세이브 포인트’였다. 〈Ib〉 작중 세이브 포인트인 노트와 펜을 재현한 방명록에는 노트를 전부 채우고도 앞, 뒤표지까지 흘러넘칠 정도로 빽빽한 ‘세이브’가 기록되어 있었다. 전시를 관람했을 뿐만 아니라, 게르테나의 세계에 참여했다는 경험의 기록을 남기고자 한 사람들의 열망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 흔적은 방명록뿐만아니라 수많은 관람객의 휴대폰의 카메라 롤과 SNS의 미디어함에도 기록되었다. ‘그레이 존’ 개념을 제안한 클레어 비숍은 관객이 동원할 수 있는 모바일 기기와 네트워크 기술이 늘어나, 기존에는 촬영을 금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미술관에서 SNS를 통한 전시의 공유와 확산을 권장하게 된 현상이 ‘그레이 존’의 예시라고 보았다 [9] . 그렇다면 ‘화이트 큐브’, ‘블랙 박스’와 ‘그레이 존’의 요소가 모두 존재한 현실의 게르테나전은 아홉 살 이브에게 조금은 더 친절하고 마음 놓이는 공간이 될 수 있었을까?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미술관이 그저 무섭고 끔찍한 공간일 뿐이라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를 ‘호러’라고 정의한다고 해서 그것이 즐거움이나 다른 의미를 줄 수 있는 여지가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Ib〉라는 게임도 그렇다. 어쩌면 이브/〈Ib〉가 그렇듯이, 어린 시절의 ‘호러’의 경험은 곧잘 ‘모험’과 연결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 〈스탠 바이 미〉는 사이가 좋은 어린 소년들이 함께 철길을 따라 걸으며 자라는 성장 영화라고 요약되곤 하지만, 호러적인 위험이 가득한 모험을 통해 묻혀있는 시체를 찾는다는 시놉시스는 영락없는 공포 영화이기도 하다. 이러한 〈스탠 바이 미〉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비디오 게임 〈MOTHER〉 역시 어드벤처 RPG의 교과서적인 고전 작품이지만, 최종 보스 ‘기그’의 공포성은 〈MOTHER〉에서 인상깊은 부분으로 손꼽히는 구성요소 중 하나이다. 첫 〈포켓몬스터〉 게임들 역시 유령이 등장하는 ‘보라타운’이나, 엔딩 후 동굴 깊은 곳에서 플레이어를 기다리는 강력한 ‘뮤츠’는 많은 게이머들의 어린 시절 강렬한 공포 경험으로 남아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오즈의 마법사』도, 『피터 팬』도…… 어린이가 훗날에는 마치 꿈과 같은 기억으로만 남게 되는 흥미진진한 모험을 떠나는 내용의 명작들은 모두 어딘가 공포스러운 면이 있다. 이브의 미술관 모험 역시 공포스러운 동시에 흥미진진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화이트 큐브’는 분명 무서운 공간이고, 특히 이브와 같은 어린이 관람객을 환대하는 것에는 아직 실패하고 있음도 분명하다. 그러한 사실은 ‘화이트 큐브’의 변화를 재촉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 대부분의 미술관이 ‘화이트 큐브’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브가 흥미진진한 미술의 세계를 즐길 여지는 언제든 있다고 믿고 싶다. [1] 〈유메닛키〉, 〈아오오니〉 등 RPG 만들기 툴로 제작된 호러게임 중 제작자의 개인 홈페이지 등을 통해 무료로 배포된 게임 전반을 이르는 장르명으로, 〈Ib〉의 유행 시기를 중심으로 2010년대 초 한국 인터넷에서 자주 사용되었다. [2] “Écrits - Conférences / Les Écrits : Quelques Textes Daniel Buren,” 1972. https://danielburen.com/bibliographies/2/8 . [3] Lev Manovich, “The Poetics of Augmented Space,” Visual Communication 5, no. 2 (June 1, 2006): 219–40, https://doi.org/10.1177/1470357206065527 . [4] Dancing Museums, “Black Box / White Cube - Dancing Museums,” April 16, 2022, https://www.dancingmuseums.com/artefacts/black-box-white-cube/ . [5] Carolyn Lazard, Accessibility in the Arts: A Promise and a Practice (Reading PA: The Standard Group, 2019), 28. [6] Tate, “White Cube | Tate,” n.d., https://www.tate.org.uk/art/art-terms/w/white-cube . [7] Lazard, Accessibility in the Arts, 27. [8] “Nintendo Switch版『Ib』 発売記念『ゲルテナ展』 | GALLERY X BY PARCO | PARCO ART,” PARCO ART, 2023, https://art.parco.jp/galleryx/detail/?id=1160 . [9] Dancing Museums, “Black Box / White Cube - Dancing Museums,” April 16, 2022.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 윤수빈 2007년부터 시작된 포켓몬스터 시리즈와의 인연으로 게이머가 되었으나, 2023년에 결별을 선언하였다. 그래도 여전히 포켓몬 게임 시리즈의 출력 텍스트인 "햇살이 강해졌다!"가 삶의 모토. 좋아하는 게임이 생기면 동인지를 만드는 삶을 살아왔지만, 2024년부터는 게임 비평이라는 새로운 감상의 언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종종 '룬츠'라는 닉네임으로 2차 창작을 쓰고 그린다.

  • [논문세미나] 즐거움과 죄책감 사이에서 게임하기: 인도 남성 청년들의 게이밍 하위문화와 문화적 불협화

    이번 글에서 다룰 논문은 인도 라자스탄 주의 우다이푸르라는 소도시에서 성인모색기(emerging adult, 유년기와 성인기 사이의 과도기적 단계)에 있는 남성 청년들의 게이밍 하위문화를 풀어내고자 하는 글이다. <대항문화로서 인도 게이밍 존(Indian Gaming Zones as Oppositional Subculture)>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글은 온라인 게임 플레이가 우다이푸르 청년들에게 어떻게 게이머라는 대안적 하위문화 정체성을 제공하는지, 그리고 이들은 즐거움과 죄의식 속에서 왜 게임을 그토록 중독적으로 경험하는지를 탐색한다. < Back [논문세미나] 즐거움과 죄책감 사이에서 게임하기: 인도 남성 청년들의 게이밍 하위문화와 문화적 불협화 30 GG Vol. 26. 6. 10. TEXT: Snodgrass, J. G., Dengah, H. F., Upadhyay, C., Else, R. J., & Polzer, E. (2021). Indian Gaming Zones as Oppositional Subculture: A Norm Incongruity “Cultural Dissonance” Approach to Internet Gaming Pleasure and Distress. Current Anthropology , 62(6), 771-797.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순간’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온다.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일치하지 않을 때, 그리고 후자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될 때 특히 그렇다. 아마 게임을 사랑하며 성장해 온 젊은 게이머들에게 이러한 양가감정은 낯설지 않을 것이다. 과거 팬덤, 펑크, 오타쿠 문화가 그러했듯 게임 역시 누군가에게는 가장 강렬한 즐거움과 소속감을 제공하는 문화적 실천이다. 그러나 바로 그 즐거움은 게임을 둘러싼 사회적 편견과 충돌하며 불안과 죄책감을 낳기도 한다. 이처럼 게임은 즐거움과 낙인, 소속감과 불안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역으로 더더욱 강한 중독적 몰입을 추동하기도 했으며 그 결과 게이머들만의 규범과 정체성을 공유하는 하나의 하위문화를 형성해 왔다. 이번 글에서 다룰 논문은 인도 라자스탄 주의 우다이푸르라는 소도시에서 성인모색기(emerging adult, 유년기와 성인기 사이의 과도기적 단계)에 있는 남성 청년들의 게이밍 하위문화를 풀어내고자 하는 글이다. <대항문화로서 인도 게이밍 존(Indian Gaming Zones as Oppositional Subculture)>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글은 온라인 게임 플레이가 우다이푸르 청년들에게 어떻게 게이머라는 대안적 하위문화 정체성을 제공하는지, 그리고 이들은 즐거움과 죄의식 속에서 왜 게임을 그토록 중독적으로 경험하는지를 탐색한다. 배경 설명 및 문화적 불협화(cultural dissonance) 관점 이 연구는 특정한 사회적 집단의 질병이나 고통을 물리적 맥락을 넘어 문화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연구하는 의료인류학적 관점으로 ‘게임 중독’ 현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글이다. 연구진은 우다이푸르 청년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면서도 게임에 열광적으로 점점 몰입하는 양가적인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의료인류학자 드레슬러의 개념을 일부 사용했다. 드레슬러는 한 개인의 육체와 정신건강을 결정하는 것은 소득, 영양, 의료접근성 같은 물질적 요인뿐 아니라 그 개인이 가진 문화적 가치와 이를 둘러싼 사회적 기대 사이의 관계를 포함한다고 보았다. 이를 위해 그는 한 개인이 자신의 문화적 가치에 기반한 신념/행동을 사회에서 공유하는 문화적 모델에 얼마나 근접하게 일치시키는가를 보여주는 문화적 합치(cultural consonance) 개념을 개발했다. 즉 문화적 합치 개념은 개인의 건강이 ‘자신이 중요하다고 믿는 문화적 삶을 실제로 실현할 수 있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문화적 합치가 일어나지 못해 자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사회의 기대가 엇갈린 상황에 놓인 개인은 어떻게 되는가? 이를 위해 연구진은 문화적 합치 개념에 심리학의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개인의 신념과 태도가 양립 불가능성을 제거할 수 없을 때 개인이 고통을 겪는 경향) 개념을 더해 문화적 불협화(cultural dissonance)라는 관점을 개발한다. 이러한 개념을 통해 이 연구는 우다이푸르 청년들의 게임 하위문화를 단순한 병리화 담론에서 말하는 중독이나 반사회적 회피 현상으로 읽는 것을 넘어 온라인에서의 삶과 오프라인에서의 삶 사이에 있는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심리-사회적 협상으로 읽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 글의 배경이 되는 인도 우다이푸르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 연구의 참여자들은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이거나 대학을 다니는 20대 초반의 남성 인도인들이다. 저자들의 언급에 따르면 25세 이전까지의 인도 남성 청년들은 기본적으로 학생 브라마차리아(brahmacharya)로서, 한 가정의 가장이 되기 위한 준비 단계에 있는 위치로 여겨진다. 우다이푸르의 청년 대부분은 중매혼을 거쳐 결혼하며, 그 이전까지는 가장으로서의 생계능력과 좋은 신부를 얻을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살아간다. 대부분이 결혼 후에도 부모와 함께 살거나 독립을 하더라도 부모와 가까이 지내며, 이들을 부양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예비) 가장의 역할이 강하게 각인된 이러한 사회에서, 게임을 즐기는 행위는 청년들의 평판을 쉽게 깎고 미래 직업이나 결혼 전망을 어렵게 하는 ‘중독’으로 쉽게 규정된다. 한편 우다이푸르는 휴대전화와 와이파이, 인터넷 기술의 보급으로 SNS나 게임에 대한 접근성이 어느 정도 갖추어진 곳이다. 때문에 많은 연구참여자들은 게이밍 존과 같은 오프라인 공간에서 <카운터 스트라이크> 같은 온라인 게임을 무리없이 즐길 수 있었다. ‘게이밍 존’이란 인도의 대면 게이밍 카페로, 고사양의 네트워크와 PC장비가 구비된 한국의 PC방과 비슷한 곳이다. 연구참여자들은 대부분 중산층이거나 집에 따로 PC를 갖고 있음에도 친구들과 이곳을 함께 방문하며, 텍스트와 음성 채팅을 통해 온라인 유저들과 교류하며 게임을 한다. 대부분의 청년 게이머들은 게이밍 존에 매일같이 출근하면서 ‘진정한 게이머(true gamer)’가 되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매주 일요일은 ‘풀 러시의 날’로 하루종일 게임을 하는 유저도 있을 정도였다. 연구 방법 이 연구는 대상을 분석하기 위해 최소 3가지 이상의 연구방법을 결합했다. 첫째로, 우다이푸르 남성 청년들이 게임에 몰입하고 게이머 정체성을 획득해 가는 과정을 탐색하기 위해 3개의 게이밍 존에서 6주간 참여관찰이 동반된 에스노그라피를 수행했다. 일반적으로 각 존에 12-15명 정도 있는 정기 플레이어들이 연구의 초점이 되었고, 아침과 저녁 최소 1시간 반-최대 3시간 가량 필드노트를 동반한 관찰이 진행되었다. 둘째로, 게이밍 존에 정기적으로 등장하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비공식 인터뷰를 수행했다. 인터뷰에서는 게이밍과 게이머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이들이 삶에서 받는 직업과 결혼에 대한 압박의 문제까지 다루고자 했다. 셋째로, 설문조사를 통해 이들이 추구하는 ‘진정한 게이머’ 정체성 모델의 네 가지 핵심 구성 요소를 식별했고, 이 요소들이 어떻게 이들의 긍정적/부정적 게이밍 경험과 연결되는지 파악하고자 했다. 네 가지 핵심요소는 아래 서술할 에스노그라피에서 드러난 4가지 요소(가까운 게이머 친구들 보유, 글로벌 게이머 공동체와의 연결감, 프로 게이머에 대한 꿈, 게이머 하위문화 소속감)이며, 긍정적/부정적 게이밍 경험은 드레슬러의 방법론에 따른 21문항 측정도구를 이용했다. 이 과정에서 연구진은 우다이푸르 청년들이 진정한 게이머 정체성에 가까워진다고 느낄수록, 긍정적 게이밍 경험(즐거움) 뿐 아니라 부정적 게이밍 경험(이에 수반되는 고통) 또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가설을 내렸다. 마지막으로, 위 3가지 분석 결과에 기반한 측정을 시행하여 우다이푸르 청년들이 갖는 긍정적 게이밍과 부정적 게이밍에 대한 문화적 모델을 도출했으며 이것이 개인의 건강 결과와 어떻게 일치하는지를 분석하고자 했다. 에스노그라피 연구 방법과 결과 "모두가 모두를 안다(Everybody knows everybody)" 먼저, 인도의 게이밍 존은 우다이푸르 청년들에게 강력한 우정의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게임하기 좋은 환경을 찾아 이곳에 왔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모두 알게 될 정도로 가족 같은 관계가 되었다. 이들은 게이밍 존에서 자기 시간의 절반 이상을 플레이어가 아닌 ‘관전자’로 보내는 시간에 쓴다. 관전하는 동안 팀원들이나 온라인 친구들에게 지시나 명령을 외치며, 휴식 시간에는 차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며 다음 전략을 논의한다. 게이밍 존에서 이들은 욕설을 하거나 시끄럽게 외치고, 놀리거나 장난스럽게 때리며 상호작용한다. 그간 공공장소에서는 쉽게 용납되지 않았던 행위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자기 담배에 마커로 이름을 적어 게이밍 존 주인의 서랍에 보관한다. 게이밍 존에서 거래되는 담배, 차, 간식 역시 비공식적인 ‘우정의 화폐’로 자리한다. 글로벌 게이머 공동체 우다이푸르 청년들은 글로벌 게임 플랫폼 스팀(Steam)을 통해 전세계의 다양한 플레이어들과 친분관계를 맺고 소통했다.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카운터 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를 플레이했는데, 여기서 접한 글로벌 네트워크는 그들의 국가적·종교적 정체성을 초월하게 만들었다. 이라크에 사는 길드 친구가 게임에 들어와 자국의 전투가 소강됐다는 소식을 전해 주기도 했고, 파키스탄 무슬림들과 자연스럽게 팀을 맺고 플레이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게임을 하는 동안만큼은 이들은 그저 ‘게이머’였으며, 카스트나 종교, 지리와 같은 다른 소속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연구참여자들은 플레이 도중 힝글리시(hinglish, 힌디어 모어 화자의 인도식 영어)를 활용해 본인의 영어 실력과 게임 지식의 능숙함을 드러내기를 즐겼다. 이들이 자신들을 ‘진정한 게이머’로서 타인들과 구별짓는 지점은 게이밍에 대한 열정과 글로벌한 소속감을 만들어내는 영어 구사 능력, 그리고 (담배, 에너지음료, 정크푸드로 상징되는) 자신을 ‘중독자’로 규정할 수 있는 특정한 소비 패턴이었다. 디지털 시대의 꿈 연구참여자들이 느끼는 게임의 이점은 무엇이었을까? 이들은 게이밍이 자신에게 인생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열정이나 동기, 경쟁심을 제공해주었다고 답변했다. 특히 이들은 게임 실력을 연마하여 꾸준하게 향상시키는 과정에서 큰 즐거움을 얻었다. 이를 위해 유명 팀들 사이의 매치 라이브 방송을 꾸준하게 시청했으며, 장시간 깨어 있기 위해 담배와 에너지음료를 필수로 챙겼다. 게이밍 존 소유주들도 이들의 열정을 알고 존들 간의 지역 매치를 조직하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우다이푸르의 ‘진지한 게이머’ 청년들 대부분은 프로 게이머로 데뷔하는 것을 꿈꾸었다. <도타 2> 플레이로 유명해진 ‘인디언 울브즈’ 같은 인도의 프로 e스포츠 팀들은 이런 꿈을 꾸는 데 큰 영감을 주었다. 프로가 된다는 것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데다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진짜 게이머’의 타이틀을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동시에 자신들이 게임에 대한 지원이 거의 없고 인터넷이 불안정한 소도시 출신이기에, 이러한 꿈이 비현실적이라는 점을 일정 부분 인식하고 있었다. 하위문화적 도피로서의 게이밍 앞서 언급했듯이, 게이밍 존에서 우다이푸르 청년들은 사회의 다른 곳에서는 용납되지 않던 일종의 자유를 얻었다. 게이밍 존에서만큼은 비명을 지르고, 싸우고, 욕하고, 거칠게 굴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먹고 마실 수 있는 모든 활동이 허용되었다. 때문에 많은 연구참여자들은 게임의 즐거움을 현실 세계에서 도망쳐 내 문제들을 잊고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찾았다. 이러한 답변은 우다이푸르의 실업률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청년들이 ‘미래가 없다’고 느끼는 현실 인식에 근거한다. 좋은 직업은 얻기 어렵고 결혼 또한 어차피 부모가 주선하는 중매로 이미 예정되어 있는데, 결혼을 하고 가장이 되면 자기의 게임 생활은 완전히 끝나 버리기 때문이다. 때문에 게이밍 존이라는 공간은 사회적 규범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분리된 일종의 매직 서클(magic circle)과 같은 장소로서, 연구참여자들이 도피하고 싶은 압박적인 상황으로부터 해방이나 문화적 대안을 제공할 수 있었다. 바로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이 공간은 연구참여자들이 다시 맞닥뜨려야 할 실제 세계의 공간 및 관심사와 중요하게 연결된 채로 남아 있었다. 사회적 도덕 공황: 기술 중독(a technical addiction)이라는 담론과 정서적 고통 앞서 언급했듯 힌두교의 브라마차리아 담론에서 게임은 중요한 인생의 준비 시기를 망칠 수 있는 행위로 간주된다. 남자들이 가정으로 들어가기 전 자신의 ‘동물적’ 충동을 최대한 통제하고 관리해야 할 시기에 게임을 하는 것은 무절제한 시간낭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이는 우다이푸르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연구진들에게도 내재화된 관점이었다. 전통적인 브라만 출신인 한 연구진은 참여관찰 단계에서 연구참여자들의 무절제한 욕설과 줄담배 흡연에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다). 또한 인도 우다이푸르 사회에서 게임이 비난받는 맥락은 남성 가장의 역할규범 외에도 ‘기술에 대한 (세대적) 비난’과 결합되어 있다. 우다이푸르 기성세대의 일부는 인터넷이 인도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며, 청년들의 90%가 쓸데없는 인터넷 중독에 빠져 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기성의 젠더규범 인식과도 연결된다. 인터넷이 청년 남성과 여성을 부적절한 관계로 끌어들이고, 서구 라이프스타일을 베껴서 혼전 성관계의 유행과 강간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이들 사회가 제시하는 적절한 인터넷 사용의 예시는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미래 직업을 배우기 위해 인터넷을 사용할 때로 한정되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에 둘러싸인 상태에서, 연구참여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어떤 형태로든 게임에 중독되어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먹지도 자지도 않고 100시간 연속으로 플레이한 연구참여자들도 많았으며, 게임으로 인해 성적이 떨어지거나 출석률을 못 지켜 수업 참여가 금지되는 등 학업을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들은 끊임없이 게이밍에 대해 “우리는 그것을 해야 해요(karna to hai)”라 설명하면서도 재빨리 자신과 친구들을 중독자 혹은 시간 낭비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명명하는 데 스스럼이 없었다. 설문조사 및 측정 분석 결과 먼저 설문조사 표본에 대한 기술통계 분석 결과, 응답자들에게서는 긍정적 게이밍 경험이 부정적 게이밍 경험보다 조금 더 높게 나타났다. 이들은 온라인 공동체를 통해 적절한 사회적 소속감과 지원감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프라인 삶에서 크게 외로움을 느끼지도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설 검증 단계에서는 진정한 게이머 행동 모델의 4가지 요소 (가까운 게이머 친구들 보유(H1), 글로벌 게이머 공동체와의 연결감(H2), 프로 게이머에 대한 꿈(H3), 게이머 하위문화 소속감(H4)) 들이 긍정적/부정적 게이밍 경험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파악했다. 응답자들에게서는 앞의 세 가지 변수가 강할수록 긍정적 게이밍 경험 보고가 증가했다. 반대로 게이머 하위문화 소속감의 경우 부정적 게이밍 경험이 높아질수록 강하게 드러났다. 이는 응답자들이 느끼는 게이밍의 즐거움이 주류 인도 사회의 규범에서 벗어난 게이머 대항문화에 소속된다는 점에서도 비롯됨을 보여준다. 이 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전반적인 분석 결과 긍정적 게이밍 경험과 부정적 게이밍 경험은 강하게 양의 상관관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높은 긍정적 플레이 경험을 갖는 플레이어들은 대다수가 동시에 높은 부정적 플레이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긍정적 플레이 경험을 추동했던 변수들은 각각 더 높은 부정적 게이밍 경험과 연결되었다. 즉, 우다이푸르 남성 청년의 게이밍 경험에서 양자는 기본적으로 대립되는 경험이 아니라 밀접하게 상호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결론 이처럼 게임 플레이에 대한 우다이푸르 청년들의 양가적인 감정은 게임의 긍정성과 부정성이 대립되는 관점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들이 게이머 하위문화와 주류 사회 속에서 경험하는 ‘문화적 불협화’의 두 가지 얼굴로 해석할 수 있다. 하위문화와 주류 사회라는 두 세계가 가지는 양립 불가능성이야말로 연구참여자들의 정체성과 의식을 이중적이고 분열화시키는 기제이다. 이들이 게임을 하면서도 내재된 위험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은, 이들이 단순히 게임 속 세상에만 고립되어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외부 세계와의 연결을 전제로 플레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시에 연구진은 우다이푸르 청년들이 자기 게이밍을 ‘중독’이라 의미화하는 것은 자신들이 처한 인지적, 정서적 불협화를 최소화하는 또 다른 하나의 방안이라고 설명한다. 진정한 게이머 정체성과 인도 사회의 일부로서 남성화된 규범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 사이에서 이들은 전자를 일시적 중독으로 의미화함으로써, 자기의 미래의 삶을 상대적으로 우월한 것으로 올려놓고 현재에 자신이 겪는 고통이나 스트레스, 불화하는 감각을 최대한 줄이고자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연구진은 우다이푸르 청년들의 하위문화로서 게이밍 경험에 대한 분석이 기존 게이머들에 대한 분석적 시선을 확장해 준다고 본다. 그간 게임 중독이라는 문제는 생체의학적 관점에서 약물이나 도박 중독과 같은 정신질환의 문제로 다루어졌거나, 혹은 문화적 관점으로 갈 경우 소비주의를 조장하고 청/소년의 도덕성을 위협하는 ‘도덕적 공황(Moral panic)’의 유발 기제 정도로 다루어져 왔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 연구의 참여자들이 ‘자기 스스로가 위험하게 온라인 게임에 중독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상황이야말로 게이밍 중독에 대한 사회적 공황 이론을 불완전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정리하며 우다이푸르 청년들에 대한 ‘문화적 불협화’라는 저자들의 관점은, 특정한 하위문화 집단을 저항과 복종이라는 이분법에 근간해서 판단하지 않으려는 연구진의 지적 노력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게이밍 존에서 이들이 보여준 문화는 주류 인도 사회가 가정하는 지배적 남성성의 규범들에 일정 부분 대항하고도 있지만, 동시에 이들은 스스로가 주류 집단에서 벗어난 사회적 거부자 혹은 ‘루저’ 라는 낙인을 일정 부분 내재화하고도 있다. 주류 규범에 완전히 동화되지도, 완전히 벗어나지도 못한 이들의 이중적인 상황은 (미래에는 어차피 게임 생활을 포기할 것이기 때문에) 지금 자신의 위치를 일시적인 중독자로 격하하는 행동으로 현상되어 나타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게임 중독의 문제를 어떻게 기존의 문화적 접근과 다른 방향에서 논의할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글이기에, 우다이푸르 청년의 하위문화가 갖는 대항성에 대한 분석이 심화되지 못한 것은 한계로 남는다. 그런 점에서 이 논문의 주요 리뷰어 중 하나인 레슬리 조 위버의 지적은 매우 유의미하다. 논문에서 더 논의되어야 했을 사항은 청년들이 단순히 중독 사실을 인정하는 것 외에도 이러한 불협화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고 어떻게 구체적으로 불협화를 해소하려 노력하는지, 나아가 게이머 공동체는 궁극적으로 인도 가부장제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라는 좀더 심층적인 분석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논문이 이런저런 맥락에서 폴 윌리스의 <학교와 계급 재생산>을 떠올리게 하는 만큼, 이들의 문화적 불협화가 인도 사회의 더 큰 문화적 맥락에서 작동하는 남성 중심성과 마초성에 대한 광범위한 규범을 어떻게 재생산하거나 혹은 벗어나는지를 본격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수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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