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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임제너레이션 GG

    < Back GG Vol. Tags: 게임비평공모전, 운빨겜, 운게, 엘든 링, 말레니아, 구키 슈조, 우연성의 문제, 프롬 소프트웨어, Elden Ring, FromSoftware, Luck in Games, Randomness in Game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 완벽히 이해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들 - <잇 테이크 투>로 본 게임 플레이어의 조건

    2021년 상반기의 최대 화제작이자, 신데렐라를 뽑자면 첫번째로 나올 게임은 바로 <잇 테이크 투> 다. 아직도 영화 <깝스>에서 사타구니에 총을 끼우고 발사하던 장면을 연출한 장본인이라는 사실부터 떠오르는 영화 감독이자, 배우이자, 게임 제작자인 요제프 파레스의 이 최신작은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결과물이다. < Back 완벽히 이해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들 - <잇 테이크 투>로 본 게임 플레이어의 조건 01 GG Vol. 21. 6. 10. 2021년 상반기의 최대 화제작이자, 신데렐라를 뽑자면 첫번째로 나올 게임은 바로 <잇 테이크 투> 다. 아직도 영화 <깝스>에서 사타구니에 총을 끼우고 발사하던 장면을 연출한 장본인이라는 사실부터 떠오르는 영화 감독이자, 배우이자, 게임 제작자인 요제프 파레스의 이 최신작은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결과물이다. <잇 테이크 투>는 그 특유의 보편성이 빛나는 게임이다. 이 게임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자면 ‘보편적 플레이의 집합체’ 라고 할 수 있다. 어느하나 완전히 새롭거나 원전을 찾기 어렵게 변용된 것이 없으며, 새로움 보다는 잘 편집되고 조율된 플레이의 연결이 빛이 나는 게임이다. 마치 순서대로 차려지는 가정식 백반 같다고나 할까. 이 게임에서 가장 탁월한 부분은 역시 다채로운 레거시 게임 플레이의 끝없는 연결이다. 이 게임은 2인 협동 게임이면서도, 기존 게임들의 장르적 메커니즘을 하나씩 따와 채워넣었다. 전체적으로는 2인 협동 퍼즐이라는 구도를 유지하면서도 TPS, 비행 슈팅, 대전 격투, 리듬 액션, 플랫포머 등 수많은 클래식 메커니즘을 도구로 삼았다.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지만, 이 기존의 플레이 메카닉을 자유자재로 섞어넣은 탁월한 감각이 돋보인다. 이는 또한 게임의 한계점을 교묘히 가리는 효과도 낳는데, 앞서 말했듯 이 게임의 플레이 메카닉은 대부분 이미 있었던 클래식한 요소이기 때문에 반복하면서 피로를 느끼거나 자루함을 느끼기 쉽다. 그러나 이 게임은 그런 시기가 오기 직전에 새로운 플레이 메카닉으로 갈아치운다. 즉 잘 편집된 게임 플레이의 나열은, 익숙함을 신선함으로 전환하는 역설적 효과를 가져다 준다. 즉, 이 게임의 플레이는 계속해서 ‘적응->숙련->응용’ 의 반복이다. 보통 하나의 핵심 메카닉을 추구하는 게임은 해당 플레이 메카닉에 플레이어가 충분히 익숙해지면 플레이 하기 위한 문턱, 허들을 높이는 식으로 대응한다. ‘레벨’ 로 대표되는 RPG적 성장 요소가 대표적이다. 이는 닌텐도 스위치로 나온 최근작 <페이퍼 마리오 종이접기 킹>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때문에 이 게임은 기존의 게이머들, 특히 대중 게이머들에게 폭넓게 받아들여질만 하지만, <잇 테이크 투>는 반대로 플레이에 걸림돌이 되는 특징 또한 가지고 있다. 플레이 자체에 이런 저런 조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임을 빛나게 하는 보편성, 하지만 반대로 그 보편성을 가로막는 플레이의 조건’ 의 대조는 다소 아이러니하다. <잇 테이크 투>를 플레이하는 와중에 든 생각은 이 게임이 왜 대단하고, 얼마나 천재적인가 하는 것이었지만, 플레이를 마무리짓고 나서 든 생각은 ‘이렇게 훌륭한데도 왜 국내에서는 폭넓게 플레이되고, 널리 알려지지 못했나?’ 하는 의문이었다. 그리고 그 원인을 ‘플레이의 조건’ 에서 찾아보게 됐다. 지난해 직접 올해의 게임으로 뽑았던 게임, <하프라이프: 알릭스> 는 이런 맥락의 논란을 몰고 다녔다. 즉, VR이라는 기기가 필요한 게임이 어떻게 올해의 게임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게임의 평가는 대중성 혹은 범용성을 꼭 포함해야 하는 것은 아니기에 쉽게 반박이 가능한 것이었지만, 어찌되었건 플레이의 ‘조건’, 그것이 하드웨어이든, 아니면 플레이어가 갖춘 다른 어떤 여건이든 그 조건이 다소 높다면 과연 그 게임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은 남겼다. 비록 VR이라는 특수한 사례를 제쳐두고서라도, 모든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게임을 플레이 하기 위한 조건을 요구한다. 사소하게는 기기 스펙에서부터, 나아가서는 플레이어의 실력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하여 몇몇 게임들은 특유의 게임 플레이나 감각적 요소를 이해하고 향유하기 위한 문화적 기반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 조건이 필수적일 수도, 그저 더해지면 좋은 요소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잇 테이크 투>는 다른 게임에 비해 이례적으로 그 요구 선이 독특하다. 이는 ‘카우치 코옵(Couch Co-Op)’ 이라는 특성과 제작자의 전작과 달리 ‘가족’ 을 다루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 게임은 기본적으로 카우치 코옵 문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카우치 코옵은 아직 가정 인터넷이 보급 되지 않은 2000년대 이전 가정용 콘솔 기기 중심으로 형성된 문화로서, 콘솔 게이밍 기반이 2000년대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한국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2000년대 이후부터 콘솔 게이밍 기기는 네트워크 기능을 막 탑재하고 네트워크를 통한 코옵을 확장하였기에, 한국에서는 하나의 기기 앞에 여럿이 모여 분할 화면과 여러 개의 컨트롤러로 함께 플레이하는 문화가 흔치 않았던 것. 있더라도 <위닝 일레븐> 같은 스포츠 대결 게임 위주의 경험이 고작일 것이다. 한국에서 카우치 코옵과 가장 비슷한 문화를 찾아 보자면 한대의 PC로 다자가 한 게임을 공유하며 플레이하던 경험, 또는 오락실의 클래식 아케이드를 찾을 수 있다. 다행히도 21세기 들어 카우치 코옵을 중시하는 콘솔 게이밍 기기인 닌텐도의 Wii, 스위치 등이 저변을 넓히면서 오히려 한국에서는 Wii 방, 그리고 이후 닌텐도 스위치 커뮤니티를 통해 ‘추억의로서의 카우치 코옵’ 이라는 감각을 간접적으로 조립하여 이해할 수 있는 인식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즉, 한국인에게 ‘카우치 코옵’ 은 내가 스스로 겪고 자란 문화라기 보다는, 수입된 문화에 가깝다. 이 카우치 코옵의 감성은 <잇 테이크 투> 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동서를 막론하고 카우치 코옵의 경험은 주로 청소년기에 형성되며, 일종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기재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한 경험이 청소년기에 부재한 한국 게이머들에게는 훨씬 덜 개인적으로 다가온다. 이와 더불어, 게이밍 문화에 아직 짙게 남아있는 남성 중심적 기조는 <잇 테이크 투> 를 온전하게 창작자의 주제의식 그대로 받아들여 체험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들게 한다. 아직까지도 한국, 그리고 세계에서 청년-청소년이 아닌 기성세대에게 게임은 남성의 문화라는 인식이 뿌리깊게 박혀있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가 들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 게임이 2인 협동 게임일 뿐만 아니라 ‘자식을 가진 부부’ 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 게임은 각각 이혼 위기를 맞이한 아내와 남편을 플레이하도록 한다. 또한 감정적으로 매우 풍부한 과정을 플레이에 담아두었다. 즉 대리체험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그래서 이 게임의 가장 이상적인 플레이어 구성은 역시 ‘부부’ 게이머가 함께 플레이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잇 테이크 투> 는 생각보다 일정 수준 이상의 게이머 경력을 요구한다. 각종 기존 게임들의 레거시 플레이가 순간적으로 교체되고, 즉각적인 적응이 이 게임의 미덕이다. 비행 슈팅, 대전 격투, TPS 슈팅, 클래식 RPG 등 이 게임이 계속해서 변환하는 게임 메카닉은 코어 게이밍의 영역이며, 캐주얼 게임에 익숙한 게이머는 재미를 느끼기 전에 여러 자잘한 장벽으로 방해받을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코어 게이머였던 여성을 찾기 힘든 현재 한국의 기혼 세대에게는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 자체가 또다른 분란의 원인(?)이 될 가능성도 있다. 즉, 여성들이 게임을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수많은 레거시 게임에 대한 선험적인 경험이 필요한 이 게임에서 ‘코어 게이머로서의 경력’ 이 부족하거나 없다는 것은 상당히 치명적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주변에서 부부가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례는 많이 찾아볼 수 없었다. 아직까지 현재 부모 세대(40대 이상)에게 게이밍이란 전적으로 남성의 문화, 또는 남성적 게임과 여성적 게임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는 인식, 그리고 행동 양식이 깊게 베어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지만, 훨씬 그 빈도가 높아보였다. 실제로 부부가 함께 플레이 했다는 감상, 후기의 절대적인 수가 해외가 더 높았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여성들도 어렸을 때부터 비디오 게임을 접하는 기회가 남성만큼이나 많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세대를 불문하고 ‘여성 게이머’ 에 대한 멸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에 불거진 특정 여성 스트리머의 <리그 오브 레전드> 챌린저 논란이 대표적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 <오버워치>, 등 대중적 게이머층을 형성한 경쟁 게임을 중심으로 게이밍은 점점 더 보편적인 문화가 되어가고 있는데도, 여전히 대부분의 코어 게이밍 문화는 여전히 남성 중심적이다. 그나마 닌텐도 스위치를 위시로 한 보다 대중적이고 보다 보편적인 게임들을 중심으로 점점 더 여성 코어 게이머 층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 희망적이다. 이 자리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나 적극적인 문제 해결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말하고 싶은 부분은 결국 그런 게이머 성별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우리 모두에게 불이익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이다. 게이밍이 어떤 기본 교양, 소양으로 여겨지는 문화였다면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카우치 코옵이라는 장벽에 가로 막히지도 않고, 또는 부부 사이에 좋은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로서 이 게임을 플레이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카우치 코옵이라는 플레이 방식이 주는 노스탤지어, 그리고 ‘부부의 갈등 해소’ 라는 중심 사건이 플레이어에게 깊이 천착하는 감성은 역으로 한국의 게이머들에게는 거리감을 두게 만든다. 이 두가지가 이 게임의 가장 큰 장점임을 고려할 때, 게임의 완성도에 비하여 그에 상응하는 대중적 인기를 얻지 못한 요인이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잇 테이크 투>가 올해의 최고의 게임이 될만한 가장 강력한 후보라는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올해 상반기 출시작 중 이만큼 강렬한 게임 플레이를 보인 사례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의의는 순수하게 ‘게임 플레이’, 즉 직관적인 놀이로서의 재미를 극대화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게임 플레이라는 핵심이 아닌 캐릭터의 외관, 이야기에 삽입된 전형적 요소, 마케팅 같은 외적 요인에 기댄 게임들에게 ‘본질적으로 재미있는 게임이란 이런 것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논한 ‘플레이의 조건’ 은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 태초의 게임 ‘퐁’ 역시 2인이 아니면 플레이 할 수 없는 게임이었다. 물론 어떤 한 문화의 시작점이 수십년이 지나도 절대적인 잣대로 남아있을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한편으론 꾸준히 요제프 파레스는 2인 플레이 게임을 만들어왔고, 때문에 전작과 동일한 플레이 저변의 한계를 지니고 있음에도 <잇 테이크 투>가 전작과 달리 널리 화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대중적 접근 덕분이라고 할 수도 있다. 비록 다른 대중적 게임에 비해서는 후퇴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전작에 비해서는 훨씬 진일보했다는 이야기다. 결국 우리가 자리잡은 게이밍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또는 그 변화가 충분히 급격하지 못하다면, 여기서 필요한 덕목은 폭넓은 이해의 관점이다. 협소한 사건 그 자체나 자신의 1차적 경험에만 의존한 해석이 아니라 좀더 광의에서의 이해, 근본적으로 그 감정이 내게는 어떤 식으로 치환될 수 있는지 찾아보는 수용의 자세 말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불완전 연소한 게임의 가치를 곱씹을 수 있다면 된게 아닐까. 아마 올해 내내, <잇 테이크 투>가 고평가를 받는데 있어서 이 플레이의 조건은 내내 발목을 붙잡을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또한 이 게임은 카우치 코옵, 그리고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었기 때문에 얻은 것이 더 많다고 보기 때문에 충분히 가치있는 시도였다고 평하겠다. 더불어, 게임을 평가할 때마다 하는 말로 마무리 하고자 한다. “세상에는 완벽히 이해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이명규 게임 기자(2014~), 글쓴이(2006~), 게이머(1996~)

  • 산업의 트리플A, 이용자의 트리플A

    한 때 트리플A가 상징했던 것들을 더욱 소중히 간직하기 위해서, 그 이상의 신성함을 게임에서 꿈꿔보자. 하나의 통일된 지향을 추구하기 보다는, 여러 방향의 주변화된 상상력이 각자의 방식으로 누적될 때 인류에게 진정으로 울림을 주는 더욱 경이로운 경험을 우리는 협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이 지닌 무한한 잠재력을 통해 가능한 것의 경계를 계속 확장하고, 그 진화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달려있다. < Back 산업의 트리플A, 이용자의 트리플A 10 GG Vol. 23. 2. 10. 트리플A(AAA)에 관하여 얼마전 게임과학연구원에서 20대 연구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트리플A라는 단어가 더 이상 보편적으로 쓰이지 않는 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몇일 후, 이경혁 편집장에게서 트리플A 개념에 대한 원고 제안 전화를 받았다. 연달아 찾아온 우연이 운명같이 느껴진 걸까, 덥석 퀘스트를 수락하고 나서야 미련하게 후회가 밀려왔다. 고민의 끝에 나는 트리플A에 대해서, 나와 그 단어의 아주 사적인 관계를 벗어나 그에 대해 고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우선 고백부터 하고 싶다. 지금 하려는 트리플A의 이야기는 어떠한 학술적인 개념에 대한 분석이기 보다는, 오롯이 나의 존재-제약적 위치성(positionality)에 기반한 개인적인 심중소회라는 점을 말이다. 한때 나라는 개인의 삶에 의미를 지녔던 ‘존재’로서 그 용어가 퇴색되거나 희미해 져가는 과정을 이해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중 이자, 또 그 과정속에서 의미를 찾아보려는 노력에 대한 글이다. 트리플A가 상징했던 것들 2010년 경만 해도, 게임 산업의 일원들은 누구나 트리플A를 꿈꿨다. 적어도 내가 만난 이들은 그랬다. 조금 과장하자면, 당시 "AAA"라는 레이블은 탁월함과 위신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많은 개발자들은 명성을 얻을 게임을 만들기를 열망했다. 당시 말단 주임이었던 나는, 그저 AAA 개발에 참여한다는 사실만으로 괜스레 혼자 자긍심에 벅차오르곤 했다. 게임의 세계에서 트리플A는 1990년 대 후반, 야심 찬 생산 가치를 지닌 게임의 유형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 사용되었다. 당시 주요개발자들에게 트리플A는 가능한 한계를 확장하고, 훌륭한 게임은 어떤 것인지 정의하는 것을 칭했다. 실제 당시의 트리플A 게임들은 대체로 주요 스튜디오의 대표 타이틀로, 뛰어난 기술 활용을 바탕으로 그래픽, 사운드, 플레이어 경험 측면에서 매번 업계 표준의 진화를 쉼없이 이끌었다. PC게이머로서 나의 게임 경험은 플로피디스크와 비트 그래픽과 함께 시작되었는데, 도스화면에서부터 광케이블 인터넷까지 지나오는 동안 나에게 게임의 지속적인 변태(metamorphosis)를 지켜보는 일은 큰 즐거움이었다. 기술적 발전과 더불어 진화하는 게임의 세계와 경험은 늘 기대 이상이었다. 잔디 잎이 한 올 한 올 바람에 실랑이는 넓은 들판에 서서 노을이 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감성에 잠긴 때, 오픈월드를 산책자처럼 거닐 때 슬며시 다가와 말을 걸던 NPC AI가 더 이상 사물처럼 느끼지 않아졌을 때, 그리고 수천명의 사람들과 물러설 수 없는 전투를 벌이던 중 그 부하를 버텨내는 서버의 안전성을 새삼 인지했을 때, 매 순간이 ChatGPT를 만나던 순간만큼 경이로웠다. 그래서 늘 궁금했다. 이 디지털 게임이라는 것의 한계라는 것이 있을까? 앞으로 얼마나 더 대단한 경험을 하고, 또 함께 게임을 하는 사람들과 즐거울 수 있을까? 그리고, 절실히 바랬다. 누구나 열망해왔지만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그런 경험을 만드는 여정에 동참할 수 있기를. 어쩌면 잊혀지고 변질되고 있는 이름 라떼 감상이 조금 길었는데 현재 시점으로 복귀해보자. 트위터 투표를 진행해봤다. “당신의 경험에 기반했을 때, 트리플A라는 용어가 최고 품질 게임 프로덕션의 의미로 여전히 자주 사용되나요?”라는 질문에 57.1%만이 ‘그렇다’, 그리고 18.6%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70여명의 소규모의 샘플임에도 나의 트위터 친구들이 대부분 게임, 이스포츠 관련 종사자, 연구자, 혹은 열정적인 게이머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적잖이 놀라웠다. 그리고 여전히 주변에서 용어 자체는 쓰이지만, 품질 보다는 개발비 규모의 표현이라도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친절한 댓글을 보았다. 이 어설픈 사전조사는 트리플A라는 용어는 보편적이지 않고, 트리플A 레이블은 ‘훌륭한 게임’ 즉 예술적 또는 기술적 성과보다는 높은 제작 예산과 마케팅 비용을 들여 얻는 상업적 성공과 산업 가시성의 수준을 나타낼 때 더 자주 사용된다는 결론을 지었다. 게임의 세계에서 트리플A의 개념이 인식되는 방식은 수년간 역동적인 변화를 거치면서 추억속의 소중한 의미는 퇴색되었나 보다. 안타까움과 함께 궁금해진다. 이 개념적 변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 트리플A의 기원과 변천: 산업의 트리플A, 게이머의 트리플A 사실 AAA라는 용어의 기원을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원래 AAA는 가장 높은 기준의 신용도를 보이는 채권에 부여되는 등급으로, 가장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낮은 채권을 의미했다. 어떤 이유에서 인지, 90년대말 미국의 게임쇼에서 일부 개발사들이 사용하면서 게임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 용어가 게임을 수식하게 되었을 때, 그 관계로부터 중의적인 의미가 발생하게 되었다. 하나는 기원의 의미 그대로의 경제적 측면에서 ‘높은 신용’이다. 즉, 개발사나 투자자들에게 그들의 재무 목표 달성을 위해 가장 안전한 투자 및 사업 기회를 의미했다. 그와 동시에 게이머들에게도 트리플A는 높은 게임퀄리티에 대한 ‘신뢰’의 약속을 의미했다. 일례로 전설적인 게임디자이너 시드마이어(Sid Meyer)는 ‘승인 표시(Seal of approval)’를 비디오 게임 역사 상 가장 주요한 혁신 3가지 중의 하나로 꼽은 적이 있다(Arendt, 2000). 패키지 박스에 ‘시드마이어’의 이름이나 닌텐도의 ‘품질보증표시(Seal of Quality)’가 있을 때, 게이머들은 특정 수준 이상의 게임 경험을 보장받는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이러한 관행이 대충 만들어서 쉽게 돈을 벌기 위한 ‘셔블웨어(Shovelware)’ 게임으로부터 게이머들을 보장하는 게임 퀄리티’의 기준을 설정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고 보았다. 한국이 온라인 게임의 제국으로 불리던 시절(Jin, 2010) NCSOFT에서도 게임이 출시되기 위해서는 ‘NC Quality’의 높은 벽을 넘어야했다. * 시드마이어의 <문명>(1991) 시작화면과 닌텐도의 품질보증표시 즉, 트리플A는 경제적 가치와 게임적 가치를 모두 지닌 게임, 그래서 모든 이해관계자가 신뢰할 수 있는 게임을 의미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이 나아가야할 방향의 이정표를 제시하는 기준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용어가 지닌 경제적 가치와 게임적 가치의 균형 상태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경계선은 전자의 방향으로 점점 기울어갔다. 경제적 ‘생산가치’로서 트리플A는 초기에는 흥행이 보장된 ‘상품’을 그 자체만을 의미했으나, 게임이 비즈니스 모델이 확장팩을 비롯한 여러 방식으로 다각화 되는 과정에서 한 게임의 지속가능한 자산화(assetization) 역량까지 표현하게 되었다(Bernevega & Gekker, 2021). 이 과정에서 AAA+나 AAAA와 같은 변형된 용어도 등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인디 게임이 더욱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그 반대 극부에서 기존 흥행 사례를 따라 표준화된 개발 방식을 통해 만들어지는 위험도 낮은 게임개발시스템(Folléa, 2020)이나, 그로 인해 극도로 동질화 되어버린 게임 산업을 의미하기도 한다(Keogh, 2015). 마치 영화계의 ‘블록버스터’라는 용어가 진부해진 헐리우드식 흥행 공식에 갇혀버린 상업 영화를 의미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어쨌든 오늘날, 트리플A라는 용어는 반쪽짜리 지향으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의미변화로 인해 트리플A라는 존재는 ‘훌륭한 게임’이라는 지향으로서 신성한 상징성, 즉 이정표적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상징적 빈곤의 극복을 위하여 그렇다면 트리플A가 한때 지니던 상징적 기능의 상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개인적으로는 그 상징적 빈곤은 현 시대의 인류가 게임에 대해 지닌 사회적, 공동체적 상상력의 빈곤이 아닐까 생각한다. 게임산업의 규모는 점차 방대해지고 있지만, 게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방향감각을 상실한 혼미한 상태에 처해있다. 나아가 게임에 대한 인식론적 간극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의 빈곤이 아닐까 생각한다.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지만, 많은 경우에 그들이 말하는 ‘게임’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게임연구자로서 참 부끄러운 일이지만, 현행법의 ‘게임물’의 정의를 수없이 읽었지만 여전히 아리송하다. 게임의 ‘등급’을 제시하는 사람들, 개발하는 사람들, 그리고 플레이 하는 사람들 사이의 인식론적 간극과 그로 인한 갈등은 점점 심화된다. 이 빈곤의 시대에, 여전히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일이지만, 오히려 그 원래부터 그 실체가 모호했던 트리플A라는 존재의 쇠퇴 과정을 적극적으로 환영하고 싶다. 왜냐하면, 여전히 트리플A는 그 개념의 상징적 몰락, 즉 어떠한 ‘신비로움’이 탈착되는 과정을 통해서 여전히 미래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이정표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먼저, 트리플A의 의미변화는 경제적 가치가 게임적(미학적, 기술적, 플레이경험적) 가치와 분리될 수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가시적으로 드러낸다. 이를 통해 우리는 게임에 대한 ‘(오락)상품’ 혹은 ‘엔터테인먼트 서비스’ 관점을 벗어나 그 매체적 잠재력에 대해 본질적으로 차원에서 고민해 볼 수 있는 틈을 얻는다. 지금까지 게임은 좁은 의미에서 여가를 위한 문화(엔터테인먼트)산업으로 기존 사회의 존재하는 것들 중에 가장 비슷한 개념들에 빗대어 표현되어왔다. 이러한 규범적, 인식론적 경계는 게임을 고정관념 속에 가둬왔다. 트리플A의 상징적 몰락은 이 틀을 인식함을 통해 약화시킬 수 있는 계기, 즉 사회가 게임을 인식하는 방식을 변혁할 수 있는 계기를 시사한다. 게임이라는 고유한 예술 혹은 기술 형식에 깃든 가치들은 그 고정관념 속에서는 도무지 드러나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우리는 ‘트리플A’ 혹은 그 이름이 상징했던 것에 대한 재정의 혹은 대안의 탐색을 추구할 수 있다. 이것은 생산자-소비자의 이분법적 경계를 넘어서, 게임에 대한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추구할 수 있는 미래 게임에 대한 사회적 상상력을 다시 모색하는 것이다. 게임의 가치가 예산이나 생산 가치가 아니라 플레이어에게 제공하는 경험과 감정에 있다는 것을 되새기자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트리플A의 쇠퇴는 게임이 더 이상 하위문화가 아니라 보편적 지위를 획득하였다는 점도 나타낸다는 점에서 또 한번 우리에게 어떠한 인식적 프레임을 부여한다. 최근 게임과학연구에서 ‘포스트게이머 전회’ 담론은 게이머라는 집단이 기존의 ‘젊은 백인 남성’의 하위문화적 스테레오타입에서 각각의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발현되는 다양한 인간-게임의 관계에 따라 다원화된 여러 집단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을 논의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트리플A는 당대의 상황속에서 비교적 동질성을 지닌 초기 게임 커뮤니티는 ‘훌륭한 게임’을 유사하게 상상할 수 있었다는 점과, 동시에 다원화된 현 시대의 여러 ‘게이머 유형’들에게는 공통된 이정표가 존재하기 어렵다는 점도 드러낸다. 그렇다면, 환하게 빛나던 트리플A는 양초처럼 녹아내려 초라해짐으로써 우리에게 새로운 빛의 설계를 구체화하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아닐까. 예를 들어, 포괄성과 접근성과 같은 새로운 유형의 플레이어 중심 가치를 반영하거나 새로운 기술적 발전에 걸맞은 더 실험적이고 더 야심 찬 열망과 이상을 반영한 이정표 말이다. 그리고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경제적 생산 가치와의 협상에 있어, 더욱 윤리적이거나 지속가능한 방식에 대한 사회적 상상력을 구축할 시점이라는 것을 인식하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트리플A를 기리며 게임에 대한 경제적 가치와 게임적 가치의 경계가 재협상되는 과정에서 정든 이름은 서서히 잊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대변하던 가치들과 의미변화 과정은 게임이라는 존재와 그 가치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그만의 프레임을 우리에게 남긴다. 그리고 그에 따르면, 게임의 가치는 게이머와 개발자, 혹은 그 사이의 모호한 정체성의 여러 이해관계자의 모두의 변화하는 우선순위와 욕구를 반영하여 계속해서 변화하고 진화하는 역동적인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는 이제 인간-기술의 본질적인 관계성이 재고되는 패러다임의 전회기에 서있다. 지난 몇 십 년에 걸친 디지털 시대가 디지털 기술을 기존 사회의 경제적 효율성의 논리속에서 활용하던 시기라면, 이제 우리 일상을 구성하던 대부분의 ‘물질적인 것’들이 디지털로 구현된 포스트디지털 시대는 미래의 규범들이 새롭게 쓰일 수 있다. 그리고 한 때 ‘쓸모없는 것’이었던 게임은 그 모든 가능성들의 테스트베드이다. 이스포츠나 디스코드의 예시에서 드러나듯, 게임과 관련 문화는 그 자체로 머무르지 않고 외부의 것들 것 혼성적으로 결합하면서, 기존 사회의 규범들을 무력화시키거나 변형시키고 있다. 한 때 트리플A가 상징했던 것들을 더욱 소중히 간직하기 위해서, 그 이상의 신성함을 게임에서 꿈꿔보자. 하나의 통일된 지향을 추구하기 보다는, 여러 방향의 주변화된 상상력이 각자의 방식으로 누적될 때 인류에게 진정으로 울림을 주는 더욱 경이로운 경험을 우리는 협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이 지닌 무한한 잠재력을 통해 가능한 것의 경계를 계속 확장하고, 그 진화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달려있다. 참고문헌 Arendt, S. (2000, March 4). Civilization Creator Lists Three Most Important Innovations in Gaming | WIRED. Wired. https://www.wired.com/2008/03/sid-meier-names/ Bernevega, A., & Gekker, A. (2021). The Industry of Landlords: Exploring the Assetization of the Triple-A Game. Https://Doi.Org/10.1177/15554120211014151, 17(1), 47–69. https://doi.org/10.1177/15554120211014151 Folléa, C. (2020). Experiencing, Experimenting with, and Performing Visual Narratives. Http://Journals.Openedition.Org/Inmedia, 8.1. https://doi.org/10.4000/INMEDIA.2031 Jin, D. Y. (2010). Korea’s online gaming empire. MIT Press. https://mitpress.mit.edu/books/koreas-online-gaming-empire Keogh, B. (2015). Between triple-a, indie, casual, and diy: Sites of tension in the videogames cultural industries. In K. Oakley & J. O’Connor (Eds.), The Routledge Companion to the Cultural Industries (1st ed., pp. 152–162). Routledge. https://doi.org/10.4324/9781315725437-21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Ph.D. 게임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 University of Jyväskylä 박사후연구원) 진예원 게임·이스포츠를 통해 기술-인간(문화)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관심이 많다. 게임과학연구의 글로벌, 다학제간, 오픈사이언스 접근을 지지한다. DiGRA 한국 지부의 창립 멤버이고, 현재 Esports Research Network Board Member, 한국e스포츠학회 이사, APRU Games and Esports Research Working Group member로 활동하고 있다. 한동안 NCSOFT와 RiotGames Korea에서 근무했다. 저서로는 (2021, 챕터공저), ‘이스포츠의 기술성 분석을 통해본 포스트디지털 문화연구’(2022, 박사논문), ‘게이밍 경험에서의 일상과 게임 세계의 개념적 혼성’(2018, 논문) 등이 있다.

  • 즐기는 사람들을 지켜라 - 만화는 어떻게 멸시와 비하를 딛고 일어섰는가

    1972년 6월 29일 동아일보에선 “불량만화 화형식”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불량만화는 사회악의 근원이다”라는 플래카드를 앞세운 ‘한국아동도서보급협회’는 서울 남산 야외음악당(서울애니메이션센터가 위치한 자리다!)에서 ‘어린이 악서 추방대회’를 열고 만화책을 모아 불태웠다. 이 단체는 만화를 두고 ‘유소년의 정서발달을 해친다’, ‘제대로 된 지식을 전달하지 못한다’, 그리고 ‘맞춤법과 띄어쓰기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주류의 시선에서, 당시 만화는 ‘악서’였던 셈이다. < Back 01 GG Vol. 21.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aeMin Lee Has run the comics/webtoon review podcast "Webtoonista" since 2013. Received the Award of Excellence in the 2017 Korea Manhwa Contents Agency comics criticism competition and in the professional division of the 2019 Korea Creative Content Agency comics criticism competition. Has worked as an editor at the webzine "Webtoon Insight" since 2019. Reads comics, writes about them, and digs into the many things underlying the market built around comics. The novel Children of the Rune, StarLeague, the LCK, and countless webtoons made me who I am today.

  • [북리뷰] 도망쳐 도착한 곳의 낙원: 가브리엘 제빈,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심지어 게임을 업으로 삼은 이에게도. 그때 게임이 경이로웠던 것은 삶의 고통과는 무관한 신비 그 자체였기에 노스탤지어는 더욱 짙은 그리움을 부른다. 그럼 지금의 당신에게 게임은 어떤 경험인가. 지금 다시 플레이하면 분명 지루하게 느낄 그 시절의 게임들과 비교하면 오늘의 게임은 어떤 의미인가. 여전히 신비로운가, 혹은 신비를 잃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내게는 이 소설이 그렇게 묻는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 Back 23 GG Vol. 25. 4. 10. Tags: 북리뷰, 소설, 게임개발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Eol Jo Started out as a terrestrial broadcasting producer and now creates a wide range of content. Mainly plays console games—an introvert who dislikes multiplayer.

  • 대항해시대 2 한글 폰트 구합니다 ─ 비제도권 게임 로컬라이제이션의 짧은 역사

    90년대 정식 퍼블리셔를 통해서 게임들이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들어오면서 당시 게이머들은 이전보다 풍족하게 한국어로 된 게임을 누릴수 있게 되었다. 다만 그 이전에도 게임의 한국어화 시도도 존재했으며 당시를 살아온 게이머들은 기억하고 있겠지만 당시에도 정식으로 출시되기 힘든 게임들의 비공식적인 이용자 한국어 패치가 존재했다 < Back 29 GG Vol. 26.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oungWook Oh Game enthusiast, game programmer, and historian of games. A growing interest in Korean games turned into a hobby of collecting and organizing materials, and has been steadily gathering and archiving them since 2006. Co-authored books including The History of Korean Games and Mario, Born in '81, and contributed as a developer to games such as Dungeon & Fighter, Acropolis, Pony Town, and Timeline Dungeon.

  • 똥겜 리뷰를 보는 즐거움

    똥겜 전문 리뷰어에 대해 언급하기에 앞서 ‘똥겜’과 혼용되서 사용되는 ‘망겜’, ‘쿠소게(クソゲー)’와의 용례를 통한 차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혹자는 망겜과 똥겜을 동의이음어와 같이 분류하기도 하지만 흥행에 실패한 게임을 총칭하는 망겜과 똥겜을 사용하는 맥락은 다른 지점이 있다. 똥겜의 번역어인 쿠소게와도 똥겜이 활용되는 지점은 상이한 부분이 존재한다. < Back 똥겜 리뷰를 보는 즐거움 05 GG Vol. 22. 4. 10. 정식 발매 이전부터 올해의 게임이 될 것이라 기대를 모았던 타이틀도 막상 플레이해보니 기대 이하인 경우가 있다. 역으로 잘해야 범작 혹은 괴작에 가까우리라는 예상을 뒤엎고 플레이어 수가 늘어서 흥행하는 게임도 있다. GOTY 여부가 구매의 기준이 되는 이유는 위와 같은 실패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함이다. 특정 스튜디오의 시리즈는 믿고 구매한다는 말의 맥락도 게임이라는 상당한 시간을 소진하는 활동에서 선택의 중요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러나 게임을 둘러싼 즐거움이라는 경험이 소위 갓겜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속칭, ‘똥믈리에’라고 지칭되는 게이머로서의 정체성을 보다 뾰족하게 다듬었기에 회자되는 이들도 있다. 똥겜 전문 리뷰어에 대해 언급하기에 앞서 ‘똥겜’과 혼용되서 사용되는 ‘망겜’, ‘쿠소게(クソゲー)’와의 용례를 통한 차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혹자는 망겜과 똥겜을 동의이음어와 같이 분류하기도 하지만 흥행에 실패한 게임을 총칭하는 망겜과 똥겜을 사용하는 맥락은 다른 지점이 있다. 똥겜의 번역어인 쿠소게와도 똥겜이 활용되는 지점은 상이한 부분이 존재한다. * 검색엔진에 뜨는 ‘망겜’에 관한 연관검색어(좌)와 한국인 게이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짤(우) ‘망겜’과 관련된 연관 검색어 중 루리웹에서 파생된 짤, “망겜이 다 그렇죠 뭐”가 가장 상위에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 경우 망겜은 처음부터 흥행에 실패한 게임이라기보다 ‘고인물’이 잔존하지만 더 이상 신규 업데이트가 이뤄지지 않거나 신규 유저의 유입이 없는 상태에서 비슷한 루틴으로 게임을 진행하는 사용자만 남은 경우를 의미한다. 과거 〈팡야〉를 샷 한 번으로 홀인원하는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사용하는 아이언의 종류와 각도, 바람의 세기와 거리를 엑셀로 계산했던 사용자들이 생각나는 지점이다. 〈뿌요뿌요〉의 치가 떨리는 효과음 ‘빠요엔’을 상기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 검색엔진에 ‘쿠소게’를 쳤을 때 나오는 연관검색어(좌)와 ‘똥겜’과 관련된 연관검색어(우) 쓰레기 게임을 뜻하는 ‘쿠소게(クソゲー)’는 반대인 ‘카미게(神ゲー)’가 함께 거론되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 통칭 갓겜의 반대로 사용된다. KOTY(Kusoge Of The Year)가 매해 진행되기도 하고, 잡지 소년매거진에서는 역대 쿠소게를 세 부분으로 나눠서 별도로 수상하기도 했다. 이처럼 최악의 쿠소게를 꼽는 것에는 일련의 기준점이 존재한다. 그러나 쿠소게가 그 게임의 형편없음을 성토하는 멸칭인 것에 비해, ‘똥겜’의 관련 검색어는 해당 게임을 골라서 플레이하기 위한 ‘추천’이나 ‘소믈리에’와 결합되어 하나의 단어처럼 활용되는 경우가 눈에 띤다. 별칭 ‘똥겜 메이커’로 더 많이 불리는 〈마인크래프트〉의 맵 256도 연관 검색어에 올라가 있다. 이는 똥겜과 이를 둘러싼 영역이 탐사의 대상이 됨을 의미한다. 똥겜은 단순히 선택지에서 회피하고자 사용하는 수식어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플레이어는 똥겜과 관련된 직간접적인 경험을 추구한다. 물리엔진을 무시하거나 기존 게임 디자인의 법칙으로 봤을 때 말도 안 되는 게임을 만드는 일, 그리고 그런 게임을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도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다. 전자의 예시로 〈염소 시뮬레이터〉를 위시한 몇몇 타이틀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후자의 경우로 손꼽히는 스트리머나 리뷰어 역시 적지 않다. 〈슈의 라면가게〉와 같은 쥬니버게임(네이버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만들었던 플래시 게임) 플레이로 흥한 유튜버 ‘선바’는 어른의 관점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설정으로 인해 괴로워하면서도 게임을 계속한다. 플레이어의 괴로움이라는 대주제로 웹툰연재를 이어가는 〈노8리뷰〉는 괴로워하는 ‘노동8호’의 모습 자체로 독자에게 즐거움을 준다. 앞서 언급된 똥믈리에의 대표 시리즈인 〈AVGN(The Angry Video Game Nerd)〉은 유튜브라는 매체 자체의 역사에 비등할 정도로 오래되었다. ‘너드(nerd)’를 화나게 만드는 비디오게임이라는 시리즈 명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플레이어가 어떤 방식으로 게임의 법칙을 습득했고 취향을 만들어 가는가를 반대지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생명력을 표시하는 파라미터가 배경색과 구분되지 않는 기상천외한 인터페이스, 배경으로 활용될 것이라 예측했던 벽이나 계곡이 닿기만 해도 죽는 장애물로 디자인됐을 때, 스테이지의 구분이 무의미하거나 갑작스럽게 난이도가 올라가는 경우, 저장이 되지 않아 지루하게 처음 스테이지를 반복하게 만드는 안일한 게임 디자인으로 플레이 시간을 늘리는 경험마다 너드는 단말마의 비명과 같은 욕을 내뱉으며 맥주를 들이킨다. 〈AVGN〉을 시청하는 즐거움의 맥락은 복합적이다. 초창기 가정용 게임기 시절부터 콘솔게임을 즐겨온 플레이어는 다양한 콘솔기기와 주변 기기를 함께 소개하면서 당시 게임 플레이의 경험과 유통된 플랫폼, 콘텐츠로서 소비했던 문화를 상기한다. 게임다운 게임을 즐길 줄 아는 진정한 게이머라면 사야한다고 광고했지만 주변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콘솔에 대한 리뷰나 최악의 게임을 구분할 때 거론되는 똥겜지수(Shit Scale) 레드에 이름을 올린 〈배관공은 넥타이를 매지 않는다〉, 〈홍콩 97〉에 대한 리뷰는 게임 문화사의 야사(野史)에 해당한다. 영화와 같은 연애시뮬레이션을 표방했으나 동영상 오프닝을 제외하고는 배우가 연기한 스크린샷만 감상하게 만드는 〈배관공은 넥타이를 매지 않는다〉는 게임이라는 매체가 횡크스롤에 도트방식으로 디자인된 재현 방식에서 벗어나,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을 이식하기까지 실패 과정을 보여준다. 이 똥겜을 플레이하는 너드를 보면서 웃을 수 있는 것은 의식했든 의식하지 못했든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게임 문화사가 누적해 온 게임다움이라는 척도를 시청자가 충분히 내재화했기 때문이다. 리뷰를 보는 즐거움은 단순히 똥겜을 ‘똥’이라고 표현하는 것에서 오기도 한다. PS4용으로 만들어졌지만 500메가의 용량을 자랑하는 슬림한 게임 〈라이프 오브 블랙 타이거〉에 대해 너드는 대나무와 하이에나 똥 같은 것으로 만든 컴퓨터로 제작한 것이 아니라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농담을 한다. 그가 게임의 형편없음에 분노할 때 사용하는 비유에서도 똥은 다양한 변주로 활용된다. 오프닝 화면에서도 콘솔에 똥을 붓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것은 구독자에게 단순히 웃기는 요소일 수도 있고 불편한 방식의 재현일 수도 있다. 똥을 언급하는 농담과 욕설뿐만이 아니라 똥이라는 물질 자체를 다루는 방식도 이중적인 차원에서 이뤄진다. 혐오와 은닉하기, 숭배와 카타르시스의 경험으로서 배설을 다룬 역사는 유구하다. 하지만 의학과 약학, 신앙과 같은 큰 범주에서 똥이 활용되던 양상이 어떻게 변모했는지는 거론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영아는 부모에게 자신의 호의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똥을 선사하고, 양육자는 그 행위를 기뻐하고 칭찬한다. 그러나 의무 교육기관에서 용변을 보는 용도로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놀림의 대상이다. 이는 위생을 학습하고 관리, 감독한다는 명목으로 학교 화장실 문의 형태가 위아래 공간을 비워둔 모양이라는 점도 요인일 것이다. 놀림을 피하기 위해 의지력을 발휘해가며 학교 화장실을 사용하지 않는 이라도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맥락 없이 거론되는 똥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웃는다. 사회인이 된 커뮤니티 애호가는 회사 화장실을 쾌변의 장소로 사용하는 상황을 트위터나 익명 게시판에 올린다. 혹은 이와 같은 트윗이 게시된 것을 읽으며 실소한다.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을 넘나들며 똥은 농담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관리의 대상이다. 똥겜 리뷰를 보는 것에서 오는 즐거움 역시 양가적이다. 똥겜 리뷰를 보는 사람은 똥겜을 플레이하지 않는다. ‘본다’는 행위는 ‘구경’의 요소와 ‘관음’의 요소를 상호적으로 환기한다. 구경이 집합적이고 비관여적인 시각 행동이라면 관음은 개별적으로 이뤄지며 적극적으로 시각을 내재화한다. 이 두 요소는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유튜브를 통해 전시되는 게임 리뷰는 플레이어의 거듭되는 실패와 이로 인한 분노를 극적인 요소로 분절해서 표현한다. 이를 시청하는 경험이 즐겁다면 그것은 똥과 같은 용어를 거침없이 내뱉는 너드의 (비유적 의미로서의)배설을 시청하는 이의 감각과 병치하는 것에서도 오는 쾌감일 수도 있다. 동시에 과장되게 표현하는 너드의 좌절을 관여하지 않고 조망하는 것에서 오는 폭소이기도 하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과 게임 플레이를 보면서 향유하는 즐거움의 영역이 다르다는 것은 총체적인 상으로서 게임을 정의할 수 없다는 지점과 상당히 닮았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성균관대학교 강사) 홍현영 패미콤을 화목한 가족 구성원의 필수품으로 광고한 덕분에 게임의 세계에 입문했다. <저스트댄서> 꾸준러. 『81년생 마리오』, 『게임의 이론』, 『미디어와 젠더』 등을 함께 썼다.

  • 게임제너레이션 GG

    < Back GG Vol. Tags: 게임비평공모전, 제5회 게임비평공모전, 심사평, 게임비평, 스타크래프트, 소버린 타워, 운빨겜, Game Criticism Contest, Game Criticism, StarCraft, Sovereign Tower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 [북리뷰] 게임콘솔 2.0: 현대 게임기의 계보와 궤적을, 사진으로 읽다

    어린 시절을 비디오 게임을 벗 삼아 왔기에 게임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그는, 2000년대 중반쯤 위키백과를 뒤적거리다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위키백과 문서에 실린 고전 게임기들의 사진 퀄리티가 너무 조악했다는 점이었다. 지금의 웹도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당시 웹 문서들의 사진자료는 디지털카메라 보급 초기이기도 해서 개인이 형편 되는 대로 찍어 자가 제공한 사진들 일색이었으므로, 그때 눈으로 봐도 거개가 저해상도 저퀄이기 일쑤였다. 물론 하드웨어 제작사가 말끔하게 찍은 공식 사진자료가 있기는 하나, 당연히 제작사에 저작권이 있는데다 언론사 등에나 한정적으로 제공되기에, 공공자료로 개방되어 인용용으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고퀄리티 사진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 Back [북리뷰] 게임콘솔 2.0: 현대 게임기의 계보와 궤적을, 사진으로 읽다 11 GG Vol. 23. 4. 10. 한 남자의 자원봉사에서 시작된 ‘디지털 박물관’ 에반 아모스(Evan Amos)라는, (북미 게임기 시장 대붕괴 시기로 유명한) 1983년에 태어난 한 미국인 남자가 있다. 어린 시절을 비디오 게임을 벗 삼아 왔기에 게임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그는, 2000년대 중반쯤 위키백과를 뒤적거리다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위키백과 문서에 실린 고전 게임기들의 사진 퀄리티가 너무 조악했다 는 점이었다. 지금의 웹도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당시 웹 문서들의 사진자료는 디지털카메라 보급 초기이기도 해서 개인이 형편 되는 대로 찍어 자가 제공한 사진들 일색이었으므로, 그때 눈으로 봐도 거개가 저해상도 저퀄이기 일쑤였다. 물론 하드웨어 제작사가 말끔하게 찍은 공식 사진자료가 있기는 하나, 당연히 제작사에 저작권이 있는데다 언론사 등에나 한정적으로 제공되기에, 공공자료로 개방되어 인용용으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고퀄리티 사진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이건 내가 기여할 수 있겠다’라는 점에 눈뜬 아모스는, 독학으로 사진기술을 배운 후 자신의 Wii를 피사체로 삼아 DSLR과 전문장비로 깔끔하게 고화질 사진을 찍어 2010년 8월 28일 영어 위키백과에 공공재(public domain) 형태로 공개 했다. 그의 첫 ‘기여’였다. 이 ‘무료봉사’는 점점 가속도가 붙어, 온라인 중고장터에 공고를 내기도 하고 사설 수집가들에게서 기기를 제공받기도 하고 뜻있는 사람의 기부까지도 받아가며 일종의 ‘사회활동’으로까지 발전해, 2015년이 되자 위키백과 산하의 디지털 자료 아카이브 사이트인 위키미디어 공용 에 자신의 사진이 모인 대규모 저장소인 바나모 온라인 게임 박물관 을 만들기에 이른다. 현재 영어판을 포함한 각국 위키백과의 고전 게임기·컴퓨터 본체 사진은 거의 전부가 이 아모스의 자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심지어 모든 사진의 라이선스가 공공재라 마음껏 갖다 써도 문제없다. 서양권 및 일본에 공식 발매된 어지간한 게임기·컴퓨터라면, 여기에서 아모스가 찍은 인쇄물 퀄리티의 초고화질 사진자료(유명 기기라면 내부구조와 기판 사진까지 있다)를 손쉽게 다운로드받아 상용·비상용을 막론하고 자유롭게 가공하거나 인용·사용할 수 있다. 고전 게임기나 컴퓨터에 관련된 정보글이나 기사, 책 등을 (특히 직업적으로) 만들어온 사람이라면, 많은 경우 아마도 직간접적으로 아모스의 사진자료 신세를 졌을 것이다. 심지어는 아모스의 이름조차 여태껏 몰랐더라도. 10년 이상에 걸쳐 구축된 아모스의 귀중한 사진 라이브러리는 이제 전 세계의 수많은 박물관·출판사·저작자·웹사이트 등에서 절찬리에 활용되고 있으며, 필자 역시 다년간 비디오 게임 관련 기사·특집·컬럼 등을 저작하는 과정에서 ‘기기 사진이 필요할’ 때마다 방문하여 애용해 왔다. 이 계열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저작물에 필요할 때마다 자유롭게 인용하거나 가져다쓸 수 있는 사진자료 라이브러리가 존재한다 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잘 알 것이다. 그래서, 아모스에게는 오랫동안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느낌을 항상 갖는다. 그 ‘디지털 박물관’의 공식(?) 도록 지난 12월 29일 한국어판이 출간된 「게임 콘솔 2.0 : 사진으로 보는 가정용 게임기의 역사」는 이 아모스가 자신이 그간 찍어온 사진들을 소재로 삼아 2018년 북미에서 첫 출간한, 말하자면 바나모 온라인 게임 박물관의 공식 도록 에 가까운 느낌의 책이다(‘2.0’이 붙은 이유는, 기기 및 내용을 증보하여 2021년 재출간한 개정판을 번역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모스는 사진가 겸 비디오 게임 아키비스트로 활동하면서 2013년 킥스타터 크라우드펀딩을 열어 1,018명의 투자자와 $17,493의 자금을 모아 신규 기기들(덕분에 일본 게임기·PC 상당수가 추가될 수 있었다)을 확충했는데, 「게임 콘솔」은 그 크라우드펀딩 덕분에 탄생한 결과물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단순한 사진자료집에 그치지 않고 ‘1970년대 초창기부터 현 시점(2021년 기준)에 이르기까지, 비디오 게임의 역사를 하드웨어 사진 중심으로 훑는 가벼운 역사서’처럼 꾸민 것이 이 책의 최대 특징으로서, 기기마다 기본적인 발매시기, 하드웨어 사양, 간단한 소개글, 발매 당시의 의의와 시대상황 등을 정리해 깔끔한 사진과 함께 넣었고, 중요한 기기의 경우 분해하여 내부 기판 및 구조까지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1972년의 마그나복스 오디세이부터 2020년의 Xbox Series S/X와 플레이스테이션 5에 이르기까지 근 40년 9세대에 걸친 하드웨어 발전사의 온퍼레이드로서, 패미컴이나 메가 드라이브처럼 충분히 유명한 기기들뿐만 아니라 페어차일드 채널 F나 벡트렉스처럼 북미 비디오 게임 역사에 관심을 가진 독자여야 알까 말까한 마이너한 게임기까지 풍부하게 소개하고 있다. 말미에는 일종의 부록으로서, 지금 시대에 고전 게임을 즐기는 데 있어 발생하는 애로사항 및 대처법에 대한 간단한 안내와, 지면·자료 관계성 등의 문제로 누락됐지만 언급할 가치가 있는 마이너 기종ㆍ파생기종들에 대한 사진 및 소개문도 실려 있다. 꾸준히 개정판이 나올 수 있기를 바라며 기본적으로는 사진 위주의 도록 컨셉이고 방향성 자체도 워낙 확고하고 유니크한 책인지라 장점과 의의가 압도적이고, 고전 비디오 게임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모든 독자에게 일독을 추천할 만한 훌륭한 입문서라 할 수 있다. ‘사진으로 보는 가정용 게임기의 역사’라는 부제부터가,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을 잘 압축해낸 문장인 셈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일단 (미국 책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한계이겠으나) 서술의 중점이 결국 미국 및 영미권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게임 콘솔의 역사에서 미국만큼이나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일본의 하드웨어 및 그 사회상·사정이라, 영미권 중심의 서술로는 아무래도 한계가 보인다는 것은 분명한 한계점이다(비단 이 책뿐만이 아니라 서양 저자가 쓴 일본 게임 역사서나, 반대로 일본 저자가 쓴 서양 게임 역사서에서 흔히 보이는 빈틈이기도 하다). 특히 일본 등 비영미권의 하드웨어 중 누락된 것이 제법 있어(예를 들어, MSX는 일본은 물론 유럽권에서도 수많은 기종이 발매되었으나 책에는 단 한 기종만 수록했다) 아쉬움을 더한다. 또한, 비디오 게임의 역사에서 ‘게임기’만큼이나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컴퓨터’ 쪽의 누락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도 아쉽다. 코모도어 64나 ZX 스펙트럼처럼 서양권 8비트 컴퓨터 계보 초기의 인기 기종들이 실려 있긴 하나 비중이 크지는 않으며, 애플 Ⅱ나 IBM PC처럼 빼놓고 지나가면 안될 법한 기종의 누락도 있다. 저자의 서문에는 ‘책 내의 세대 구분에 제대로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컴퓨터를 포함시키기 어려웠다’라는 대목이 있고, 바나모 온라인 게임 박물관의 라이브러리 내에서도 레트로 컴퓨터 쪽은 상대적으로 구색이 불충분한 편이라, 이쪽은 고전 컴퓨터 쪽을 다루는 별도의 책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일단 책 제목이 ‘게임 콘솔’이기도 하니까). 소소하게는 영미권 외 국가의 오리지널 기종들의 빈자리가 큰 것도 단점이라면 단점인데, 예를 들어 한국 오리지널 기종의 경우 이 책에서는 유이하게 GP32와 삼성 엑스티바(‘누온’ 제하로 실려 있다)가 들어가 있다. 모두 북미에 시판된 적이 있는 기종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이 의의만큼이나 한계점도 큰 책이라는 점은 짚어두지 않을 수 없겠으나, 고전 컴퓨터·게임기를 다루는 외서가 예나 지금이나 한국어판으로 원활히 번역 소개되는 경우가 드문 현실을 고려하면 이 책의 한국어판 정식 발간은 큰 의미가 있다. 아모스의 활동이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지기를 기원하며, 혹시 후일의 「게임 콘솔」 개정판에 한국의 오리지널 하드웨어가 추가될 수 있다면 전 세계의 애호가들에게도 새로운 발견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가져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월간 GAMER'Z 수석기자) 조기현 ‘국민학교’ 때 친구 집에서 금성 FC-150과 패미컴을 처음 접했고, APPLE II+ 호환기종으로 컴퓨터에 입문했다. 중·고교 시절을 16비트 PC 게이머로 보낸 후 플레이스테이션을 접하며 가정용 게임기 유저로 전향, 게임으로 영어와 일본어 독해법을 익혔다. 이후 2002년부터 현재까지 (주)게임문화의 월간 GAMER'Z 수석기자로 재직중이다. 8~90년대 한국 게임 초창기의 궤적을 텍스트로 복각해보고 싶어 한다. 저서로는 〈한국 게임의 역사〉·〈우리가 사랑한 한국 PC 게임〉(모두 공저), 감수로는 〈페르시아의 왕자 : 개발일지〉와 〈여신전생 페르소나 3·4 공식설정자료집〉 등이 있으며, 2019년부터 레트로 게임기의 하드웨어·소프트웨어를 해설하는 무크집 〈퍼펙트 카탈로그〉 시리즈 연작의 한국어판을 번역·감수하고 있다. 최신간은 〈패미컴 퍼펙트 카탈로그〉와 〈세가 초기 게임기+겜보이 퍼펙트 카탈로그〉(근간 예정)다.

  • 〈세계건설〉, 게임 방법론의 새로운 예술적 적용

    무한한 가짓수를 만들어내는 작품과 함께 영화의 스토리텔링 기법을 활용해 수많은 이야기 중 단 하나, 찰리스라는 소녀가 겪은 이야기 한 줄기를 최적경로로 뽑아낸 애니메이션 작품이 놓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게임이었다면 무언가 관객의 상호작용을 유도했을 법한 장치를 동원했으리라고 여겼을 진부함을 넘는 도발적인 태도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들 속에 단 한줄기로 이어진 세계선으로서의 애니메이션이 놓인 의미는 인류가 오랫동안 탐구해 왔지만 여전히 미답의 경지에 놓여있는 그 카르마와 다르마의 문제에 대한 작가의 새로운 접근경로에의 제시로 읽힌다. < Back 〈세계건설〉, 게임 방법론의 새로운 예술적 적용 06 GG Vol. 22. 6. 10. 게임 뒷면, NPC들의 세계 웹소설, 웹툰과 같은 분야에서 디지털게임을 소재로 삼는 경우를 자주 만난다. 주인공이 게임 속에 들어가 전형적인 성장 서사를 풀어내기도 하고, 이른바 ‘먼치킨’이 되어 게임 속이라는 이세계이자 가상세계를 평정해 나가는 카타르시스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콘텐츠 중에서는 주인공이 아닌 게임 세계의 다른 측면에 포커스를 맞추는 사례들도 적지 않은데, 이른바 NPC에 초점을 맞춘 경우들이다. 플레이어가 떠나면 한숨을 돌리며 몬스터 연기를 접고 자기 삶으로 돌아가는 NPC의 일상을 다루는 작품들이 보여주는 주인공의 시점에서 펼쳐져 왔던 오늘날까지의 여러 시도들과는 사뭇 다른 무언가를 보여주는데, 이런 흐름은 계속 확장되는 추세다. * 영화, 웹툰, 웹소설 등 전반에서 게임적 세계관, 나아가 게임 속 대상으로만 그려졌던 NPC의 시점을 중심에 두는 흐름은 이제 꽤나 대중적이다. 리움미술관에서 2022년 7월까지 전시중인 이안 쳉의 작품 〈세계건설〉에서 가장 주요한 구성요소는 인간의 개입 없이 스스로 주변과 상호작용하는 오브젝트들이다. 작품에 달린 설명처럼 이들은 시작시각과 종료시각을 갖고 동일한 내용을 반복해서 재생하는 영상물이 아닌, 서로 얽히고 부딪히며 각자의 속성을 유지한 채 다른 객체들과 네트워크를 이루는 과정 자체를 무한히 반복한다. 대본과 스크립트로 구성되는 영상물과 달리 이 전시는 각자의 속성을 부여받아 행동하는 개별 객체들이 상상된 세계 안에서 상호작용하는 과정 전체를 그려낸다. 영화로 대표되는, 서사 중심으로 이어지는 작품들과의 차이는 단지 이러한 작동의 기전에 머무르지 않는데, 애초에 서사라는 방식 자체가 존재하는 현실을 압축적으로 추상해 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두 시간 남짓의 상영시간으로 10년의 이야기를 다룰 때 영화는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건 대신 서사에 필요한 사건과 순간들을 발췌하여 편집하는 방식을 취한다. 무한대에 이르는 사건의 개수 중에서 이 서사에 연관된 사건만을 추려내는 영화의 방식과 이안 쳉의 작품은 기초부터 다른 입장에 선다. 영화에서는 이미 현실이 존재하고 그로부터 가상의 서사 재료를 뽑아내는 반면 이안 쳉의 작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발췌와 추상으로서의 ‘서사’다. 그저 가상의 세계를 상상하고, 그 상상을 각각의 객체가 알아서 작동하고 상호작용하게끔 설계할 뿐이다. 이런 면에서 이안 쳉의 작품은 영상을 기반으로 하지만 영화보다는 디지털 게임과 닮아 있다. 플레이어의 개입이 없는, 객체들만의 세계 초창기 게임과 달리 요즘의 게임은 오로지 알고리즘에 의한 상호작용만으로 모든 텍스트가 구성되지는 않는다. 모든 매체가 그 이전 매체의 재현이듯, 게임 또한 순수한 연산 과정에 머물지 않고 영화와 텔레비전, 만화와 소설 같은 그 이전의 모든 매체를 참고하고 재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매체에는 존재하지 않는 게임만의 특유한 방식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게임적인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게임적인 방식은 이안 쳉의 작품이 세계를 재구성하는 방식과 무척 닮아 있다. 이를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례가 ‘문명’ 시리즈다. ‘문명’ 에는 관전모드가 존재한다. 플레이어가 개입하지 않고 이번 게임에 참가한 모든 문명의 조종을 AI에게 맡겨버린 채 역사의 진행 과정을 그저 구경만 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각 문명의 AI들은 각자 주어진 행동양식에 맞게 주변 지형과 자원, 타 문명과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역사를 이어 나가고, 이 과정은 별도의 대본이 없기에 같은 조건으로 플레이해도 매번 다른 양상과 결과로 이어진다. 앞서 말한 것처럼, NPC 간의 상호작용이 디스플레이 너머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플레이어의 개입을 통한 상호작용은 누락되었지만, 여전히 가상세계 안에서는 각자의 의미를 부여 받은 오브젝트들이 알아서 주변과 관계 맺으며 디지털 연산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작동하는 무언가로 만들어낸다. 〈세계건설〉 전시에 등장한 〈사절〉 삼부작이 모두 이와 동일한 방식을 통해 각자의 디스플레이에 오브젝트 간의 합의되지 않은 상호작용을 별도의 서사를 위한 압축 없이 날 것 그대로 펼쳐낸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전시에 녹아있는 디지털 게임의 방법론을 체감한다. 스스로 존재하는 오토마타들의 온전하게 닫힌 계 시작도 끝도 짐작하기 어려운 이 무한한 시간을 향한 관조는 그러나 여러 면에서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는 아니다. 이를테면, 네모난 프레임 안에서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세계를 향한 관찰의 시선은 아이들의 교구로 많이 알려진 개미집 관찰 도구를 연상케 한다. 투명한 아크릴판 안에 채워진 흙 속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개미들의 모습은 네모난 아크릴 프레임을 통해 관찰자에게 그대로 전시된다. 먹이를 주는 정도의 개입은 할 수 있지만(이번 전시 출품작 중 〈BOB(신념이 담긴 가방)〉 을 보라!) 근본적으로 관찰자의 개입은 배제된 상태다. 비슷한 맥락으로 우리는 수족관이나, 동물원을 상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개미집, 동물원의 예시가 이미 현존하는 ‘작동하는 세계’에 대한 관찰이라면 의외로 디지털을 통해 창조된 관찰도 오랫동안 우리의 일상에 자리한 적도 있는데, 바로 PC의 화면보호기다. 이 프로그램에도 내부의 객체가 알아서 화면에 이미지를 렌더링하여 무한하게 랜덤한 결과물을 생성하고, 사용자는 그 생성에 개입하지 못한 채 관조하게 되는 과정을 향한 의도가 담겨 있다. 전시작들처럼 세부적인 관계의 네트워크까지는 아니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윈도우 화면보호기 속의 3차원 파이프와, 계속 개체수를 늘려나가며 굴을 파고 방을 만들며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개미집과, 어딘지 알 수 없는 세계 속에서 신을 찾아 떠나는 것 같은 〈사절〉 삼부작에는 스토리텔링을 위한 압축과 추상이 없고, 관찰자의 개입이 없는 대신 내부의 객체들이 정해지지 않은 상호작용으로 세계를 완성해 나간다는 공통점이 자리한다. * 어린이들의 자연학습용으로 활용되는 교구인 개미집은 투명한 아크릴로 완전히 닫힌 계 너머에서 관찰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스스로 움직이는 대상의 모습을 관조하게끔 한다. 사용자, 플레이어로서의 인간이 개입하지 않는, 그러면서도 내부의 객체들이 알아서 끊임없이 작동하며 움직이는 가상의 세계는 말 그대로 객체들의 세계다. 프로그래밍이라는 공학적 측면에서는 객체지향프로그래밍이라는 이름으로 기존의 절차적 프로그래밍과 궤를 달리하고, 철학적으로는 객체지향 존재론을 통해 주체 혹은 인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사고의 틀을 바꾸는 흐름을 만들어낸다. 분명 디지털 게임을 구성하는 방법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세계건설〉의 출품작은 한편으로는 이것이 정말 게임스러운가? 라는 질문 앞에 마주 선다. 적지 않은 게이머들은 아마도 플레이어 개입이 불가능한 작품을 두고 존재론적 논쟁을 벌일 것이다. 이를테면, 오락실의 오락기기는 동전을 넣지 않은 상태에선 데모 플레이로 캐릭터들이 알아서 전투를 벌이는 장면을 무료로 선보인다. 하지만 이때 플레이는 동전을 넣고 스틱을 직접 조작해 난관을 돌파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며, 앞의 데모 플레이는 ‘본게임’이 아닌 것으로 간주된다. 데모 플레이는 게임 텍스트의 일부이지만, 사람들이 이를 가리켜 게임이 아니라고,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플레이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의 의미는 데모 플레이와 게임의 연관성을 부정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플레이라는 상호작용의 이면에 존재하는, 플레이어의 개입 없는 객체들만의 상호작용을 플레이로 부르지 않는 것에 있다. 달리 말하면 이안 쳉의 ‘세계건설Worlding’ 개념은 게임 그 자체라기보다는 게임이라는 매체 형식의 이면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고 건설하는 방식이라는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게임에서 비롯된, 각각의 객체들이 자신의 속성대로 움직이고 상호작용하며 맞물리는 일종의 프로그램화된 오토마타Automata가 인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지는 플레이를 위한 전제로서의 세계를 구성하는 방식으로부터 플레이어를 떼어냄으로써 비로소 게임을 구성하는 각각의 객체만으로 구성된 온전히 닫힌 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존재 자체가 인간에 대한 상호작용을 위해 만들어졌던 객체들이 인간의 손을 떠나 스스로 동작하는 개미집으로 온전하게 독립할 수 있음이 이 과정을 통해 드러난다. 카르마와 다르마, 전시와 애니메이션의 질문들 인간으로부터 독립된, 닫힌 계로서 각각의 작품은 진행의 결과에서 무한한 경우의 수를 갖는다. 어느 누구도 이 작품을 바라보면서 똑같은 전개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작가의 관심은 여기서 한 갈래를 더 뻗어 각각의 결과들이 구성해 온 경로들이 비교가 가능해지는 평행우주 속 시간을 향한다. 이른바 세계선이라고 부를 수 있을, 상대성이론과 연관된 개념보다는 게임 ‘슈타인즈 게이트’에서 사용된 시간여행을 통해 분기되며 달라지는 미래에 대한 개념이다.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전시된 〈BOB 이후의 삶: 찰리스 연구〉가 이를 드러낸다. 〈BOB 이후의 삶〉에서 중심적으로 다뤄지는 개념인 ‘최적경로’는 BOB이라는 생체 결합형 인공지능을 통해 개인의 삶이 특정한 루트에 도달하기 위한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삶의 경로를 가리킨다. 마치 내비게이션의 그것처럼, BOB은 자신과 하나가 된 인간의 삶과 행동을 통제하여 목표한 삶에 이를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루트를 제시하는 것으로 이야기된다. 그러나 정작 이 인공지능을 만든 회사의 설립자인 Z는 무한한 삶의 경로에서 최적의 루트를 찾아내어 인간을 인도하는 BOB의 최적경로와 동시에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영원의 시간 속을 무의미하게 유영하는 ‘신의 시간’을 거론한다. Z가 와불의 얼굴에 비춰진 프로젝트 맵핑으로 등장하는 부분은 다분히 최적경로의 문제가 불교적인 모티프와 무관하지 않음을 드러낸다. 최적경로는 불변하는 숙명으로서의 카르마로, 그 모든 숙명적 경로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선택으로 채워나가는 시간으로서의 최적경로 바깥은 다르마로 이어진다. 현대 디지털 기술의 극의極意라고 불릴 수 있을 인공지능을 통해 마침내 찾아낸 인간 삶의 최적경로는 한편으로는 인간해방의 기술이면서 동시에 정해진 시간선을 따라가며 벗어날 수 없는 일종의 카르마로 기능한다. BOB에 의해 주어진 삶을 사는 것은 목표 달성에 있어 부인할 수 없는 최적경로이겠지만, 그렇게 사는 것은 동시에 자신의 삶이 아닌 것이 된다. 인공지능 BOB은 무한대의 인생경로 중 최적의 경로를 뽑아내 제시하지만, 삶의 경로가 애초에 수학 기반의 가치판단이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물음 또한 동시에 드러난다. * 〈BOB 이후의 삶〉 은 수학적으로 계산가능한 최적경로를 따르는 삶과, 그 차원을 넘어서서 무위하게 시간 속을 유영하는 삶을 대비시킨다. 이는 스크립트 없는 전시작과 대본에 의해 기승전결로 달려나가는 애니메이션의 방법론적 대비이기도 하다. 〈BOB 이후의 삶〉은 그래서 다른 출품작과 함께 놓이며 그 질문을 전시 전체로 확장해 낸다. 각각의 작품이 구축한, 각각의 닫힌 계들 안에서 객체들이 무한히 상호작용하며 만들어가는 무량대수의 경로는 〈BOB 이후의 삶〉이 제시하는 질문과 만나며 하모니를 이룬다. 무한한 가짓수를 만들어내는 작품과 함께 영화의 스토리텔링 기법을 활용해 수많은 이야기 중 단 하나, 찰리스라는 소녀가 겪은 이야기 한 줄기를 최적경로로 뽑아낸 애니메이션 작품이 놓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게임이었다면 무언가 관객의 상호작용을 유도했을 법한 장치를 동원했으리라고 여겼을 진부함을 넘는 도발적인 태도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들 속에 단 한줄기로 이어진 세계선으로서의 애니메이션이 놓인 의미는 인류가 오랫동안 탐구해 왔지만 여전히 미답의 경지에 놓여있는 그 카르마와 다르마의 문제에 대한 작가의 새로운 접근경로에의 제시로 읽힌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프리 포 올에서 협력을 유도하기 – 아크 레이더스

    멀티플레이어 게임이라는 틀 안에서도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은 정말이지 천차만별의 형태를 보인다. 게임이 추구하는 바에 따라 서로 적대적인가, 우호적인가, 규모는 얼마나 되는가, 실시간인가 비동기인가 같은 각종 요소에 따라 어떤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가의 큰 틀이 정해지곤 한다. < Back 28 GG Vol. 26. 2. 10. Tags: 익스트랙션슈터, 코옵, 슈터, 1인칭, FFA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MyungKyu Lee Game journalist (2014–), writer (2006–), gamer (1996–).

  • 서구의 관점에서 본 〈로스트 아크〉와 한국 게임

    3일간의 얼리 억세스 기간이 지난 2022년 2월 11일 〈로스트 아크〉가 서구의 백만명이 넘는 플레이어들을 대상으로 출시되었다. 한국의 개발사 스마일게이트(Smilegate)가 제작하고 서구의 아마존 게임 스튜디오(Amazon Game Studios)가 배급을 맡은 〈로스트아크〉는 서구 게이머들의 한국 게임에 대한 인식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지난 20여년 간 몇몇 한국산 게임이 서구 시장에서 성공을 거뒀음에도, 게임 분야에서 뚜렷한 일본산 게임에 대한 인식과는 달리, '한국 게임'에 대한 개념은 아직 서구권 게이머들 사이에서 명확하게 형성되어 있지 않다. 서구권에서의 성공을 도모하기 위한 게임의 운영관리 방침, 유명 콘텐츠 제작자들의 참여, 그리고 한국의 〈로스트 아크〉 커뮤니티의 역할 등을 통해 〈로스트 아크〉는 한국의 게임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서구 게이머들의 기대를 형성할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 놓여있다. < Back 05 GG Vol. 22.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Researcher) Marc Lajeunesse Marc is a PhD candidate in Concordia University's department of communication studies in Montreal, Canada. Marc’s research focuses on toxicity in online games. He is driven to understand toxic phenomena in order to help create more positive conditions within games with the ultimate hope that we can produce more equitable and joyful play experiences for more people. He has published on the Steam marketplace and DOTA 2, and is a co-author of the upcoming Microstreaming on Twitch (under contract with MIT Press). (Game Researcher) Cortney Blamey Courtney is a Communication PhD student and game designer at Concordia University, Montreal, Canada. Her doctoral research concentrates on the process of meaning-making in games tackling serious themes and exploring this relationship between player and designer in her own critical game design process. Her previous research unpacked Blizzard’s approach to community moderation in Overwatch by investigating both developer and community inputs on forums. She is a member of the mLab, a space dedicated to developing innovative methods for studying games and game players and TAG (Technoculture Arts and G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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