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요리, 플레이하는 서바이벌: 요리 서바이벌 예능과 게임 사이의 빈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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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6. 6. 10.
요리하는 게임은 많다. 손님의 주문을 받고, 재료를 조합하고, 제한 시간 내 접시를 완성하는 게임 말이다. 그런데 정작 텔레비전 방송이 오랫동안 다듬어 온 ‘요리 서바이벌’은 디지털 게임 안에서 좀처럼 장르로 자리 잡지 못했다. 이 비대칭이 이 글의 출발점이다. 왜 요리는 방송에서 그토록 잘 작동하는 게임이 되었는데, 게임에서는 요리의 질을 두고 겨루는 경연의 중심에 서지 못할까?
요리 프로그램의 경우 흔히 정보 예능이나 먹방의 변주로 묶이지만, 적어도 서바이벌형은 그렇게만 보기 어렵다. 규칙이 분명하고, 자원과 시간이 제한되며, 판정과 탈락이 따른다. 관전의 재미도 갖춘다. 형식의 골격만 떼어놓고 보면 이미 (보는) 게임에 매우 가깝다. 그 중에서도 <냉장고를 부탁해>는 요리의 게임 메커닉을 가장 압축적인 형태로 드러내는 사례고, <흑백요리사>는 그 메커닉 위에 인물과 서사를 쌓아 이야기의 밀도를 끌어올리는 사례라 하겠다.
냉장고는 어떻게 게임판이 되는가
<냉장고를 부탁해>의 영리함은 요리를 둘러싼 조건을 극단까지 단순화한 데 있다. 출연자의 냉장고라는 제한된 자원 풀, 15분이라는 짧은 조리 시간, 두 (팀의) 셰프가 동시에 맞붙는 대결 구도, 긴박감 넘치는 중계, 그리고 즉각적인 시식과 판정. 한 회 안에서 이 요소들이 폐쇄적으로 완성된다. 요리 프로그램이라기보다 한 판짜리 대전 격투 게임 쪽에 가까워 보인다.

* <냉장고를 부탁해>. 이미지출처: JTBC
이 때 핵심은 요리 자체가 아니라 요리를 둘러싼 규칙의 설계다. 재료는 무한하지 않고, 시간은 늘 부족하다. 두 셰프는 같은 조건에서 출발하되, 서로 다른 전략과 숙련도로 우위를 만들어야 한다. 방송은 셰프의 손맛이나 철학을 길게 설명하기보다, 그것이 제한 조건 안에서 어떤 선택의 조합을 통해 드러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그 결과 시청자는 요리의 결과보다 경기의 흐름을 읽게 된다.
이런 구조는 게임 연구에서 흔히 말하는 규칙 기반 플레이의 즐거움과 통한다. 자유롭게 무엇이든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선택이 의미를 획득하고 긴장을 발생시킨다.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냉장고는 일종의 인벤토리이자 맵이다. 셰프들은 재료의 희소성과 조합 가능성을 즉석에서 계산하고, 상대보다 먼저 핵심 재료를 선점하거나 우회 경로를 택한다. 냉장고의 주인이자 출연진처럼, 시청자는 그 흐름을 따라가며 머릿속에서 채점을 한다. 직접 조리하지는 않지만 이미 규칙을 이해한 관전자가 되어 있다.
매회의 대결은 분명 한 명의 승리로 끝나지만, 시청 경험 전체는 그렇게 간단히 누적되지 않는다. 각 셰프의 스타일, 반복되는 전술, 즐겨 쓰는 식재료, 편집이 강조하는 리액션과 캐릭터성이 회를 거듭하며 쌓인다. 시청자는 그 항목들을 가지고 자기 안에 일종의 셰프 캐릭터 풀을 만든다. 누구는 안정형, 누구는 모험형, 누구는 초반보다 후반 운영이 강한 선수 같은 식이다. 이 지점에서 <냉장고를 부탁해>는 요리 프로그램이면서 동시에 관전형 게임의 문법을 획득한다.
흑과 백, 캐릭터와 서사
<흑백요리사>는 같은 요리 서바이벌이나 설계 단위가 좀 다르다. 한 판의 대결을 넘어 시즌 전체를 하나의 장기전으로 끌고 간다. 이 프로그램의 강점은 요리 실력의 비교보다 실력 차이를 인물의 차이로 번역하는 능력에 있다.

* <흑백요리사>. 이미지출처: 넷플릭스
흑수저와 백수저라는 명명 자체가 이미 캐릭터 슬롯처럼 보인다. 시청자는 참가자를 셰프만으로 기억하는 대신, 어떤 배경에서 올라온 사람인지, 누구와 라이벌 구도를 이루는지, 어떤 순간에 흔들리고 또 어떤 순간에 힘을 발휘하는지 등을 따라가며 시리즈를 본다. 게임 메커닉이 전면에 드러나는 <냉장고를 부탁해>와 달리, <흑백요리사>는 그 메커닉이 만들어 낸 차이를 인물 서사로 재포장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서바이벌 예능 전반에서 나타나는 게임화 경향도 이와 닿아 있다. 규칙, 미션, 탈락, 승급이 뼈대라면, 그 위에 더해지는 부분은 대체로 감정 이입 가능한 캐릭터와 성장 서사다.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임무뿐 아니라 역할까지 부여하듯, 서바이벌 예능 역시 참가자에게 서사적 포지션을 나눠준다. 누군가는 압도적 강자, 누군가는 이변의 가능성, 누군가는 끝내 살아남지 못해도 오래 기억되는 변수가 된다. <흑백요리사>가 흥미로운 이유는 요리의 맛을 직접 전달할 수 없는 근본적 한계를 캐릭터와 대결 서사의 과잉으로 메운다는 데 있다. 맛을 보여주지 못하는 대신, 맛을 둘러싼 드라마를 최대한 증폭하는 것이다.
<흑백요리사>의 시청 경험은 요리의 승패를 확인하는 과정에 머물지 않는다. 시청자는 누가 이번 라운드의 서사적 중심에 설지, 탈락자의 패배가 어떻게 극복 혹은 이변의 발판으로 전환될지를 추적하며 몰입한다. 음식의 맛을 감각할 수 없는 화면 밖 우리에게 제공되는 진짜 미식은 다름 아닌 캐릭터들이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파열음이다. <흑백요리사>는 경연의 규칙이라는 뼈대 위에서, 대중이 열광할 수 있는 인물 서사를 끊임없이 생산해 내는 정교한 스토리텔링 공장인 셈이다.
요리 서바이벌의 메타게임
요리 서바이벌과 게임 간 관계를 좀 더 입체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메타게임(metagame) 개념에 주목해볼 만하다. 메타게임은 좁게는 게임의 승패를 둘러싼 상위 전략이지만, 더 넓게는 게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해석, 관전, 예측, 재맥락화의 실천 전체를 가리킨다. 필자는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게임 보기’가 게임 안과 밖을 잇는 독립된 행위이며, 게임 플레이 확장과의 관련 속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논의한 바 있다. 이 관점을 빌리면 요리 서바이벌 예능을 보는 일은 단순 시청이 아니라, 규칙과 인물과 결과를 둘러싸고 시청자가 수행하는 메타게임의 연속 같기도 하다.
<냉장고를 부탁해>를 볼 때 시청자는 셰프의 선택을 실시간으로 채점하고, 자신이라면 어떤 조합을 택했을지 상상하며, 방송이 끝난 뒤 레시피를 검색해 자기 부엌에서 재현해 볼 수 있다. <흑백요리사>에서는 메타게임의 층위가 한층 두꺼워진다. 누가 편집의 수혜를 입는지, 어떤 대결 구도가 다음 회차를 위해 설계되는지, 특정 참가자의 생존이 시즌 전체 서사에 어떤 효과를 낳는지에 대해 시청자들은 방송 밖에서 끝없이 토론한다. 소셜 미디어, 유튜브 클릭, 기사 댓글, 출연 셰프의 식당 방문 후기까지 그 토론의 일부로 흘러 들어간다. 스튜디오 안의 판은 끝나도, 그 결과를 가지고 노는 놀이는 스튜디오 밖에서 계속 이어진다.
요리라는 소재는 메타게임 증폭에 특히 잘 어울린다. 전략이나 아이템 빌드는 대개 그 게임을 직접 해보지 않으면 따라가기 어렵지만, 요리는 누구든 어느 정도는 알거나 따라할 수 있다고 느끼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냉장고 속 재료, 익숙한 조리법, 식당 경험, 입맛의 기억은 이미 시청자의 일상과 삶 안에 있다. 그래서 요리 서바이벌은 전문성의 경기인 동시에, (전문가만큼의 퀄리티를 따라잡기 어렵다 하더라도) 아마추어의 참견을 허용하는 영역이 된다. 덕분에 시청자가 판정자와 코치와 플레이어 사이를 오가는 일이 가능해진다.
왜 게임 속 요리는 대개 서바이벌이 아닌가
그렇다면 왜 텔레비전은 요리를 이토록 훌륭한 게임으로 만들었는데, 게임은 요리를 부가 시스템이나 생활 콘텐츠 수준에 묶어 둬왔을까?
일단, 두 매체의 요리를 다루는 방식이 아예 다르다. 방송은 실제 맛을 전달할 수 없는 대신 경쟁의 형식과 인물의 드라마를 전면화함으로써 맛에 대한 상상력을 키운다. 반면 게임은 플레이어가 직접 조작해야 하는 매체다. 요리를 정교한 심사와 취향의 문제로 끌고 가는 순간, 규칙화와 피드백 설계가 어려워진다.
게임에서 좋은 시스템은 대체로 입력과 결과의 관계가 명확해야 한다. 공격 버튼을 누르면 피해량이 나오고, 회피 타이밍을 맞추면 더 큰 공격 기회가 돌아온다. 그러나 요리의 맛은 단일 수치로 환원하기 어렵다. 같은 미디엄 굽기의 스테이크라도 누군가에게는 완벽한 굽기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과한 익힘으로 다가갈 수 있다. 방송은 이 난점을 심사위원의 권위와 편집의 리듬, 참가자의 표정·행동과 서사로 덮을 수 있다. 그러나 게임은 플레이어가 납득할 만한 일관된 판정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많은 게임이 요리를 버프와 회복, 제작 시스템으로 우회 처리하는 까닭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 본다. 맛의 질적 차이를 다투기보다, 요리를 기능적 결과로 환산하는 편이 설계상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물론 요리의 질을 두고 직접 겨루는 게임이 아예 없지는 않다. <프린세스 메이커 2(Princess Maker 2)>에서는 10월마다 수확제가 열리는데, 요리 실력으로 요리를 만들어 승부를 가리는 대회를 포함했다. 요리와 감수성 수치가 평가 기준이다. 좀 더 본격적으로는 <배틀 셰프 브리게이드(Battle Chef Brigade)>가 식재료 사냥과 매치-3 퍼즐, 심사위원 판정을 엮어 요리 토너먼트를 게임의 메인 플롯으로 끌어올린 예가 있다. 그러나 이런 사례들은 어디까지나 예외에 가깝다. <오버쿡드(Overcooked)> 시리즈처럼 협동과 혼란의 물리적 코미디로 가거나, <쿠킹 마마(Cooking Mama)>처럼 조리 동작 중심의 미니게임으로 가는 쪽이 흔하다. 물론 모두 충분히 재미있는 게임들이지만, 요리의 질을 두고 권위와 서사와 탈락이 맞물리는 요리 서바이벌 예능과는 결이 다르다.
요리 서바이벌 예능이 맛 자체보다 맛을 둘러싼 사회적 드라마를 소비하는 장르라는 점도 짚을 필요가 있다. <흑백요리사>에서 누가 어떤 배경에서 올라왔고 어떤 위기 앞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가 중요하다면,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역시 냉장고 재료 조합 못지않게 셰프의 캐릭터와 입담, 상대와의 심리전이 재미를 만든다. 방송이 요리를 게임화할 때 중심에 놓는 재료는 음식이 드러내는 사람과 계급, 취향, 전문성, 즉흥성이다. 이때 작동하는 재료들은 본질적으로 일회적·우연적이며, 무엇보다 참가자가 방송 바깥에 가지고 있는 실제 삶에 뿌리를 둔다. 한 셰프가 오랫동안 운영해 온 식당의 이름, 또 다른 셰프가 업계에서 쌓아 온 평판, 패배 이후 그가 마주할 다음 날의 영업 등이 한 라운드의 무게를 만든다. 방송은 이 외재적 무게를 그대로 끌어와 편집과 심사로 의미화하지만, 게임은 그 모든 무게를 처음부터 내재해야 한다. 게임이 이 재료들을 옮겨오려면 플레이어가 그것을 반복 가능한 규칙으로 체험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바로 그 반복 가능성의 설계가 요리라는 소재에서는 의외로 까다롭다.
그래서 아직 혹은 여전히 비어 있는 자리는 요리 게임이 아닌 것이다. 맛을 직접 재현하지 못하면서도 맛에 대한 사회적 판정과 관전을 시스템화하는 게임의 형식, 더 정확히는 그런 형식이 들어설 자리다. 이 빈 자리는 게임의 한계라기보다 방송의 강점이 위치한 지점에 가깝다. 방송은 일회적인 대결 위에 권위와 편집과 인물 서사를 덧입혀 시청자에게 ‘게임 같은’ 경험을 매번 새로 제공한다. 게임이 같은 일을 해내려면, 일회성을 반복 가능성으로 번역해 줄 별도의 장치(실시간 시청자 투표나 시즌제 운영, 외부 평판 시스템과의 연동 같은)를 매체 안에 끌어안아야 한다. 그 작업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요리 서바이벌은 당분간 방송이 가장 잘하는 게임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요리 서바이벌 예능의 성공은 게임이 아직 완전히 흡수하지 못한 영역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며, 동시에 방송이 점점 더 게임을 닮아 가는 흐름 속에서도 방송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여전히 무엇인지를 가장 또렷한 형태로 보여 준다.
보는 요리는 어떻게 놀이가 되는가
여기까지 오면, 요리 서바이벌 예능을 ‘게임 같은 방송’이라 칭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것은 보는 행위 자체가 놀이가 되는 텍스트다. 시청자는 요리를 직접 하지 않더라도 규칙을 읽고, 캐릭터를 선택하며, 결과를 예측할 뿐 아니라, 방송 밖에서까지 판을 계속 이어 간다. <냉장고를 부탁해>가 한 판의 설계와 즉각적 승부의 묘미를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면, <흑백요리사>는 같은 승부를 장기 서사로 늘려 관전의 지속성을 높인다. 둘 다 메타게임으로서의 방송이라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흥미로운 부분은, 방송이 만든 이 놀이가 다시 현실의 식생활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이다. 시청자는 레시피를 따라 하고, 셰프의 식당을 찾아가고, 특정 재료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매직 서클 바깥에서 계속 이어지는 이러한 실천은 게임을 보고 이야기하고 흉내 내는 행위가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가 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결국 요리 서바이벌 예능은 요리를 둘러싼 경쟁과 판정과 관전, 그리고 그 이후의 모방과 관련 소비까지 통째로 묶어내는 거대한 메타게임 장치라 할 수 있다. 텔레비전은 여기서 요리를 방송한 것이 아니라, 요리라는 행위를 가장 대중적인 방식을 통해 플레이 가능한 이야기로 바꾸어 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