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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모전수상작] 시야 바깥에 거주하는 법: 〈스타크래프트〉의 단축키가 분할한 감각
이 몸은 나 혼자 만들지 않았다. 화면 지정을 어깨너머로 익힌 연습실은 배움터이자 치열한 노동 현장이었다. 승리하는 동료의 기술은 즉각 모두의 기술이 되었고, 단 몇 판의 승패가 연봉 계약과 다음 시즌의 생존을 결정지었다. 그런 환경에서 감각 분할 훈련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두 번 설계된 몸이다. 한 번은 브루드 워의 제한적인 인터페이스가, 또 한 번은 연습실의 가혹한 일상이 빚어냈다. < Back [공모전수상작] 시야 바깥에 거주하는 법: 〈스타크래프트〉의 단축키가 분할한 감각 32 GG Vol. 26. 10. 10. 교전 중인 〈스타크래프트〉 플레이어의 손놀림은 기이하다. 시선은 모니터에 고정된 채 한 번도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다. 그동안 왼손은 보이지 않는 건반을 연주하듯 여러 개의 키를 오간다. 시선과 조작의 분리다. 나는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저그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며 이 손을 직업으로 썼다. 실력은 예전만 못해도 감각은 남아, 지금도 취미로 게임을 할 때면 이 조작을 그대로 쓴다. 이것은 회고가 아니다. 그 손이 지금도 수행하는 일에 대한 기록이다. 비디오 게임은 대부분 플레이어에게 단일한 몸을 부여한다. 대전 액션 게임의 캐릭터, 1인칭 슈팅 게임의 총구가 그렇다. 화면 속 아바타의 위치가 곧 나의 위치다. 플레이어는 그 몸을 빌려 가상 세계에 머문다. 반면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RTS)의 전장에는 그런 몸이 없다. 플레이어는 한 화면에 담기지 않는 거대한 지도 위에서 기지와 병력 전체를 지휘한다. 동일시할 아바타가 없는 이 세계에서 플레이어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최근 연구는 그래도 머문다는 데까지 답했다 [1] . 그런데 머문다면 어딘가에는 몸이 있다는 뜻이다. 그 몸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답은 손에 있다. 한 번에 한 곳만 보는 감각이 게임 안에서 어떻게 해체되고 재조립되는지, 저 손놀림에 모두 드러난다. 플레이어는 감각을 분할해 진영 전체를 몸으로 삼는다. 이 몸을 해부할 메스는 작은 조작 하나, 화면 지정 단축키다. 단축키의 해부학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에서 시야를 옮기는 보편적인 방법은 셋이다. 방향키 누르기, 마우스를 화면 가장자리로 밀기, 미니맵 클릭하기다. 여기에 경고음이 울린 위치로 화면을 옮기는 스페이스바가 더해진다. 넷 모두 한계가 명확하다. 앞의 둘은 화면이 목적지까지 밀려가는 시간을 견뎌야 하고, 미니맵은 시선으로 위치를 찾아 정확히 클릭해야 하며, 스페이스바는 게임이 마지막으로 경고한 곳으로만 향한다. 시각에 의존하지 않고 손가락만으로 원하는 곳에 화면을 옮기는 방법은 둘뿐이다. 부대 지정 번호 연타, 그리고 F2·F3·F4에 할당된 화면 지정 단축키다. 둘 다 화면을 순식간에 옮기지만, 어디에 도달하는지도, 쥐고 있던 병력이 손에 남는지도 정반대다. 부대 지정 번호를 연타하면 화면이 해당 부대 위치로 이동하며 유닛이 선택된다. 시선과 조작 대상이 함께 이동하므로, 직전까지 쥐고 있던 병력의 통제권을 잃는다. 유닛이 이동하면 도착지도 따라 변하니, 목적지를 미리 정해둘 수도 없다. 화면 지정 단축키는 반대다. Shift와 함께 누르면 현재 화면 위치가 저장되고, 이후 해당 키를 누르면 그 자리로 화면이 즉각 도약한다. 유닛 선택 상태는 그대로다. 병력은 손안에 남고 시선만 이동한다. 지정해 둔 자리로 단숨에 도달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나는 선수 시절 F2에 본진, F3에 앞마당(첫 확장 기지), F4에 랠리 포인트 수렴 지점에 지정해 두고 경기했다. 이 차이를 처음부터 아는 이는 없다. 초보자는 마우스만 쓴다. 조작 대상을 시선으로 좇아야 하니 시선과 조작 위치가 늘 일치한다. 이후 생산 단축키를 익히고, 부대 지정을 배운다. 건물과 유닛에 번호를 부여한 뒤에야 시선은 교전에 둔 채 손은 기지를 관리할 수 있게 된다. 시선과 조작 사이에 처음으로 틈이 벌어지는 순간이다. 화면 지정은 이 틈을 반대 방향으로 벌린다. 이번에는 손이 남고 시선이 이동한다. 이 학습 순서에는 이유가 있다. 시선을 교전에 두고 손만 기지로 보낼 때는 감각이 기지만 통제하면 된다. 반면 시선을 기지로 보내고 손을 교전에 남길 때는 감각이 교전 상황 자체를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 시선을 내보내는 쪽이 훨씬 까다롭기에 가장 늦게 습득한다. 나는 팀 연습실에서 동료들의 조작을 모방하며 이를 익혔다. 매뉴얼이나 공략집 없이 프로들 사이에서 어깨너머로 전수되던 기술이었다. 게임 연구자 클레비어(Klevjer)는 전략 게임의 공간을 어항이나 레고 마을 같은 미니어처에 빗댄다. 3D 게임의 카메라는 플레이어의 몸을 화면 안으로 이끌지만, 전략 게임의 플레이어는 현실에 머문 채 바깥에서 안을 내려다보는 것이다 [2] . 유닛만 보면 타당한 설명이다. 유닛은 명령을 수행할 뿐, 플레이어의 물리적 개입이 세계 내부로 침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면 지정 단축키를 쥔 플레이어는 어항 밖의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다. 이 키 위에서 유닛을 통제하는 조작과 시점을 옮기는 시선이 교차한다. 때로는 이 키로 시선만 다녀오기도 한다. 교전 중인 부대를 통제하며 본진을 빠르게 훑고 돌아온다. 이때 시선의 위치와 조작의 위치는 철저히 분리된다. 한 번에 한 곳만 보는 몸이 눈과 손을 분할해 여러 곳에 동시에 존재한다. 귀와 가장자리와 시계 중계진과 커뮤니티는 이를 통칭해 ‘멀티태스킹’이라 부른다. 굳어진 말이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멀티태스킹이 여러 작업을 번갈아 수행하는 것이라면, 플레이어는 여러 곳을 오가는 대신 여러 곳에 편재한다. 시선이 한 곳에 머무는 동안에도 나머지 공간은 비지 않는다. 비워둘 수도 없다. 상대의 공격은 대개 시선이 비운 자리를 파고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야 밖의 기지와 유닛은 무엇이 통제하는가. 귀와 시야의 가장자리, 그리고 신체에 각인된 시간이다. 귀는 ‘무엇’이 일어났는지 알린다. 유닛 생산, 업그레이드 완료, 인구수 한계 도달 등이다. 이 소리들은 지도 위 특정 위치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화면 속 공간에 얽매이지 않고 게임 밖 플레이어에게 직접 도달한다. 저그의 유닛 부화음이 대표적이다. 소리를 끄고 게임을 해보면 이 청각적 연결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깨닫게 된다. 시야 밖을 통제하던 감각의 밧줄이 끊어지고, 시각 하나가 모든 부담을 떠안은 채 고립된다. 시야의 가장자리는 사건이 ‘어디서’ 일어났는지 알린다. 미니맵 위를 스치는 점, 피격 위치에서 깜빡이는 경보 등이다. 미니맵은 읽는다기보다 느낀다. 시선의 중심이 교전에 집중하는 동안, 주변부는 지도 전체를 파악한다. 귀와 시야의 가장자리는 정보를 찾아 나서지 않는다. 다가오는 신호를 수동적으로 감각할 뿐이다. 가장 결정적인 채널은 신체의 리듬이다. 수천 번의 경기가 퇴적되어 굳어진 이 시계는, 머리로 세는 초와 다르다. 프로의 하루는 수십 판의 연습 경기고, 그 하루가 수년간 누적된다. 같은 타이밍에 같은 조작을 수만 번 반복하면, 시간은 측정하지 않아도 몸에 깃든다. 화면의 알림이나 청각적 경고가 없어도, 특정 시점이 되면 건물을 짓고 일꾼을 생산해야 한다는 충동이 몸에서 먼저 일어난다. 다가올 사건이 빈칸으로 몸에 미리 새겨져 있다. ‘언제’는 오직 이 신체의 시계만이 안다. 소리는 그 빈칸을 채우러 온다. 부화음은 예상된 사건의 도착을 알리는 신호다. “Spawn more overlords.” 인구수가 막혔으니 오버로드를 생산하라는 이 경고는 신체의 시계가 지연되었다는 질책으로 다가온다. 귀가 반응할 때쯤이면 이미 몸의 일정표에 예정된 일이다. 그러므로 엘리트 플레이어의 눈이 지도를 훑고 상황을 판단해 결정을 내린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눈은 끌려간다. 청각과 시야 가장자리, 신체의 시계가 시야 밖을 감시하다 개입이 필요한 순간 시선을 호출하고, 시선은 불려 가 실행만 마치고 돌아온다. 설계자들의 의도도 같았다. 스페이스바는 소리 난 곳으로 시선을 이동시키는 단일 기능 키다. 플레이어의 시선이 적재적소에 머물지 못하리라 예견했기에, 청각이 시각을 호출하는 직통로를 마련해 두었다. 배는 닻을 내린 곳에 머문다. 그러나 이 감각의 몸은 여러 개의 닻을 내린다. 시선이 내린 닻은 하나뿐이며 끊임없이 이동하지만, 나머지 세계는 다른 감각 채널들이 내린 닻으로 고정되어 있다. 시선이 본진을 향한 짧은 순간에도 몸은 직전의 교전 상황을 근육의 긴장으로 장악하고 있다. 눈 없이 도는 회로 시계가 당긴다고 늘 화면을 옮길 수 있지는 않다. 유닛의 생사가 걸린 정밀한 조작이 벌어질 때는 시선도 몸도 전장에 결박된다. 본진의 작업이 밀려도 시선을 거둘 수 없으며, 교전은 소강상태에 접어들 때만 2초 남짓한 왕복을 허락한다. 교전의 틈에 F2를 눌러도 원거리를 오가는 감각은 없다. 기지를 1~2초간 눈앞에 소환해 일꾼을 붙이거나 건물을 짓고 즉시 치워버리는 감각에 가깝다. 시선이 이동하는 게 아니다. 기지가 잠시 나타났다 사라질 뿐이다. 이 왕복의 전형은 이렇다. 매복한 러커의 사거리 앞에서 상대 마린 부대가 멈칫하는 순간을 응시할 때, 보이지 않는 본진에서 부화음이 들린다. 왼손이 F2를 짚으면 본진이 눈앞에 펼쳐진다. 갓 깨어난 일꾼을 마우스로 미네랄에 붙이고, 애벌레를 오버로드로 변태시킨 뒤 부대 번호를 두 번 연타한다. 화면은 곧장 교전으로 돌아온다. 그사이 전장은 근육의 긴장과 미니맵을 스치는 곁눈에 남아 있었고, 마린은 반걸음도 전진하지 못했다. 이 감각의 분할을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종족이 저그다. 테란과 프로토스는 인구수를 늘리려면 화면을 이동해 빈 땅을 눈으로 찾고 건물을 지어야 한다. 저그는 인구수 확장마저 오버로드라는 유닛이 담당하므로, 지정된 해처리에서 키보드 조작만으로 생산이 끝난다. 해처리는 저그의 전부를 잉태하는 건물이다. 부대 번호, 애벌레(라바) 선택, 유닛 지정 키. 단 세 번의 타건에 애벌레는 병력, 일꾼, 오버로드로 변태한다. 모든 유닛이 같은 애벌레에서 나오므로, 세 종족 중 생산을 위해 시야를 이동할 일이 가장 적다. 인구수가 막힐 때 테란은 건설 위치를 띄우고 일꾼을 보내야 하지만, 저그는 익숙한 타건 리듬에 애벌레 하나를 추가로 할당하면 그만이다. 저그의 경제는 영토 확장이기 이전에 조작 회로를 순환하는 일이며, 이 회로는 시각의 개입 없이 작동한다. 감각의 분할은 시스템 설계에서 비롯되었고, 설계가 바뀌면 사라질 수도 있다. 후속작 〈스타크래프트 2〉는 화면 지정 키를 계승하면서도 시각 없이 조작을 돕는 장치를 대거 도입했다. 부대 선택 제한을 없애고, 여러 건물을 번호 하나로 묶었으며, 유휴 일꾼 호출 버튼을 추가했다. 플레이어들은 이를 “손이 덜 간다”라고 평가했다. 브루드 워에서 시선을 본진으로 돌리던 F2가 후속작에서는 전체 병력을 통제하는 키로 변모했다. 이 글이 추적하는 몸은 게임 일반의 몸이 아니라, 특정 시대의 시스템이 직조해 낸 몸이다. 감각 분할은 의식에만 머물지 않는다. 양손에 물리적으로 새겨진다. 오른손이 쥔 마우스는 화면에 종속된다. 표적이 모니터에 있으므로, 마우스의 정밀함은 시각에 의존한다. 반면 왼손은 다른 공간에 속한다. 생산과 화면 이동을 전담하는 왼손은 경기 내내 시각의 검증을 거치지 않는다. 시선이 교전에 고정된 와중에도 손가락은 F2와 해처리 번호를 오차 없이 두드린다. 건반을 보지 않고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의 정확성이다. 이 손은 키보드 배열이 아니라, 손가락을 뻗어야 할 거리를 암기했다. 감각의 분할이 양손에 그대로 투영된다. 다만 손이 증명해 주는 사실은 여기까지다. 조작의 절반은 시각 없이 수행된다. 통제되는 세계 자체는 손에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도 이 절반의 사실만큼은 주관적 기억에 기댈 필요가 없다. 손 위에 카메라 한 대만 놓으면 누구든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프로게이머 이윤열이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하고 양손으로 게임을 자유자재로 조작하고 있다. 전장에서 유닛을 컨트롤하던 중 단축키를 눌러 생산 건물을 확인한 순간을 캡쳐했다. Razer, ‘The Hax Life: Actions per Minute (APM)’, 2010, 캡처. [ https://youtu.be/zmYhX8fjmo8?si=8OKQYJ0dZt9CCQ9p&t=7 ] 한 곳을 보며 여러 곳에 존재하는 법 이 분할은 정교한 만큼 쉽게 무너진다. 시선 밖의 감각 채널들은 의식의 변두리에 방치할 때만 정상 작동한다. 장기전에 피로가 쌓이거나 상대의 맹렬한 공세가 조여 오는 순간, 신체에 새겨진 리듬은 침묵한다. 신체가 생산 주기를 통보하지 않으면, 자원과 인구수를 눈으로 확인하고 기지를 주시하며 시간을 계산해야 한다. 청각과 신체의 시계가 맡던 몫까지 시각이 떠안는다. 이제 시선은 필요가 호출하지 않는다. 불안에 쫓겨 맹목적으로 떠돈다. 호출이 없어도 기지로 향하고, 새로운 정보가 없어도 화면을 반복 전환하며, 조작 시점을 놓친 뒤에야 뒤늦게 도달한다. 이 세 가지가 붕괴의 징후다. 관전자의 눈에도 드러난다. 중계 화면이 개인 시점을 비출 때, 패색이 짙은 선수의 화면은 본진을 강박적으로 호출하고 같은 지점을 맴돈다. 해설진은 흔들린다고 평하고, 화면에는 그 붕괴가 고스란히 담긴다. 이를 ‘시야 협착’이라 부르기로 하자. 프로게이머의 감각 체계는 이렇게 수만 관중 앞에서 실시간으로 해부되는, 보이는 노동이기도 하다. 시야 협착이라는 말은 시각의 범위가 좁아진다는 뜻으로 들리지만, 실제 과정은 다르다. 시각 자체는 온전하다. 눈앞의 교전 상황은 파악되며 조작도 가능하다. 청각과 신체의 시계가 먼저 마비되고, 시야 밖을 고정하던 감각의 닻들이 차례로 풀리며 시각의 닻만 남는다. 다중 공간에 편재하던 플레이어의 존재가 단일 공간으로 축소된다. 역설적이게도 이 감각 채널들은 의식하는 순간 정지한다. 부화음에 집중하거나 생산 주기를 의식적으로 셈하는 순간, 시야 밖 공간을 장악하던 힘을 잃는다. 숙련도란 곧 이 감각 채널들을 무의식의 영역으로 밀어낼 줄 아는 능력이다. 화면 지정 단축키로 기지를 확인하는 1~2초. 이 찰나의 조작에 아바타 없는 세계에서 플레이어가 존재하는 방식이 응축되어 있다. 시선은 교전이 허락하는 틈에만 짧게 개입하고, 나머지는 시야 밖의 감각들이 분담해 통제한다. 플레이어는 한 곳을 응시하며 여러 곳에 동시에 존재한다. 〈스타크래프트〉는 단일한 몸을 제공하지 않았기에, 플레이어는 스스로 감각을 분할하여 가상 세계에 뿌리를 내렸다. 그렇다면 존재한다는 것은 본다는 것과 다르다. 흔히 시선이 머무는 곳에 자신의 존재가 있다고 믿지만, 이 게임은 그것이 초보적인 환상임을 증명한다. 마우스 조작에만 의존하던 시절, 나는 시선이 닿는 곳에만 존재했다. 그러나 화면 지정을 체화한 이후, 시선이 닿는 곳과 실제 존재하는 곳은 갈라졌고, 존재하는 영역은 훨씬 광활해졌다. 이 영역에서 손의 속도를 측정하는 단위는 APM(Actions Per Minute)이다. 그러나 속도보다 먼저 물어야 한다. 감각이 얼마나 많은 공간에 뻗어 있는가. 승패의 기저에서 우위를 가르는 요소도 이 넓이다. 이 넓이를 얻는 데는 수천 번의 경기가 들지만, 잃는 데는 압박 한 번이면 족하다. 이 게임이 특출난 지점은 따로 있다. 공간을 장악하는 행위가 키 조작 하나하나로 쪼개져 부품처럼 눈에 보인다. F2를 누르는 손과 그렇지 않은 손, 소리를 켠 경기와 끈 경기, 도착을 알리는 부화음과 지연을 경고하는 음성. 감각 체계가 무너질 때는 이 부품들이 해체되는 순서조차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 몸은 나 혼자 만들지 않았다. 화면 지정을 어깨너머로 익힌 연습실은 배움터이자 치열한 노동 현장이었다. 승리하는 동료의 기술은 즉각 모두의 기술이 되었고, 단 몇 판의 승패가 연봉 계약과 다음 시즌의 생존을 결정지었다. 그런 환경에서 감각 분할 훈련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두 번 설계된 몸이다. 한 번은 브루드 워의 제한적인 인터페이스가, 또 한 번은 연습실의 가혹한 일상이 빚어냈다. 다시 첫 장면으로 돌아가자. 모니터를 응시하는 눈, 그리고 시선이 단 한 번도 향하지 않는 왼손. 그것은 내 손이었다. 시선이 교전을 좇는 동안 그 손은 본진에 머물렀고, 앞마당에 도달했으며, 아직 알에서 깨어나지 않은 유닛 곁을 지켰다. 시야 바깥에 거주하는 법이란 결국, 손이 어디 있는지를 시각에 묻지 않는 감각의 자립이다. 그리고 그 손이 뻗어 나가는 모든 공간이, 곧 가상 세계 속 내가 실존하는 자리다. [1] Lee, Y.-T., Rolla, G., & Edwards, C. (2025). “Body as battlefield: Rethinking avatarhood in real-time strategy games.” Phenomenology and the Cognitive Sciences. https://doi.org/10.1007/s11097-025-10121-3 [2] Klevjer, R. (2012). “Enter the avatar: The phenomenology of prosthetic telepresence in computer games.” In J. R. Sageng, H. Fossheim, & T. M. Larsen (Eds.), The Philosophy of Computer Games (pp. 17–38). Springer. Tags: "게임비평공모전",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단축키", "프로게이머", "RTS", "APM", "게임과 신체", "StarCraft", "Real-Time Strategy", "Embodiment in Games", "Esport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 작가) 박신영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로 뛰었고, 이후 NHN과 EA코리아에서 게임을 설계했다. 지금은 게임과 e스포츠에 관해 글을 쓴다. 버나드 슈츠의 게임철학 고전 『베짱이』(연암서가, 2026년 10월 말 출간)를 우리말로 옮겼다. 이 책에서 슈츠는 게임의 규칙을 짓는 이를 ‘게임 작가(gamewright)’라 부른다.
- [Editor's View]
GG 13호는 1년만에 돌아온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 특집입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많은 분들의 응모가 있었지만, 모든 글을 함께 읽을 수 없어 아쉬운 마음입니다. 첫 회 공모전과 달리 올해부터는 수상작 안에서 별도의 등급을 나누지 않았습니다. 최우수, 우수보다도 게임비평과 담론에 참여하는 사람의 존재가 더 우선이라고 생각한 결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번 호 메인 테마에서 당선작 7편을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 Back [Editor's View] 13 GG Vol. 23. 8. 10. GG 13호는 1년만에 돌아온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 특집입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많은 분들의 응모가 있었지만, 모든 글을 함께 읽을 수 없어 아쉬운 마음입니다. 첫 회 공모전과 달리 올해부터는 수상작 안에서 별도의 등급을 나누지 않았습니다. 최우수, 우수보다도 게임비평과 담론에 참여하는 사람의 존재가 더 우선이라고 생각한 결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번 호 메인 테마에서 당선작 7편을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공모전을 진행하면서 편집장으로서는 나름의 인사이트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첫 해에는 저도 처음 해보는 일이라 정신이 없었는데, 두 번째 해보니 공모전과 비평이라는 흐름 안에서 일련의 특징도 존재함을 볼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는 오늘날의 공모전이 일련의 정례화 단계에 와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요즘은 공모전 홍보 전문 사이트와 커뮤니티가 있고, 특히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공모전 참여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다만 그러다보니 GG의 게임비평공모전도 게임문화담론에 대한 관심이 없는 분들 또한 지나치게 단순화된 글이 투고되는 일이 적지 않았습니다. 일련의 스펙 쌓기를 위한 스팸성 투고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공모전을 주최하는 입장에선 조금 씁쓸한 일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일반적인 게임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정도의 이야기만을 비평으로 담고자 하는 글의 수가 적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현재의 게임비평에서 저는 어떤 특정한 양식만이 '진정한' 비평이 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만,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이야기를 다시 반복하는 것이 유의미한 비평의 주제가 된다고도 보지 않습니다. 아무리 비평을 넓게 잡는다고 해도 고유한 관점과 그를 설명하기 위한 충분한 논거는 우리가 게임비평의 장을 넓히고 사람을 늘려가는 과정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대전제라고 생각합니다. 전업으로 글을 쓰고 말하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갑자기 '각 잡고 글쓰기'를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모전에 지원해 주신 많은 분들의 원고를 보며 아직 제가 해야 할 일이 많고 많다는 사실을 체감합니다. GG는 내년에도 제3회 공모전을 진행하고, 공모전을 통해 만난 새로운 사람들과 계속 게임문화를 이야기해 나갈 것입니다.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분들께서도 늘 GG가 가고자 하는 게임비평의 길에 함께 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The Coevolution of Arcade Games, Gamers, and Interfaces
As such, interfaces may evolve to accurately construct the ideals projected on the design, but that design can easily change based on coincidental chance. The modified interface also brings about transformation to one’s gameplay itself, and this change in gameplay can change the experience provided by the game, thus bringing about an effect that makes the game itself feel different. Therefore, the interface is not merely a simple input device nor a factor that does not bring any fundamental changes to the game, but rather is the very hardware that constitutes the game and simultaneously the “physicalized” mechanical object connected to the gamer. The interface does not evolve or progress according to the game’s design; it lies in the process of ever-changing co-evolution while interacting with the game, the gamer, and all environments tied to the self. < Back 10 GG Vol. 23.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 [Editor's View] 게임과 소수자, 소수자와 게임
그런 고민의 결과로 ‘GG’ 4호는 ‘소수자들의 게임’을 다뤄보고자 했습니다. 소수자라는 건 단지 숫자가 적은 집단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주류’가 아닌, 주류로부터 스스로가 아닌 ‘대상’으로 취급받는 많은 존재들을 우리는 소수자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게임은 그런 소수자와 얽히는 부분에서 아직까지 짧은 역사 때문인지 고민을 오래 해 오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 Back [Editor's View] 게임과 소수자, 소수자와 게임 04 GG Vol. 22. 2. 10.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게임은 매우 당연하게 서브컬처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좀더 짧게 잡아 10년 전의 분위기도 게임은 서브컬처를 다루는 경우에 자주 거론된 바 있죠. 하지만 요즘의 분위기라면 어떨까요? 여전히 서브컬처로서의 속성을 강하게 띠고 있는 부분들이 있지만, 이제는 대중문화라고 불러도 딱히 이견을 달기 어려운 분위기가 게임 전반을 강하게 지배합니다. 본격적인 대중문화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관문이 몇 가지 더 있을텐데, 그 중의 하나는 모두에게 가 닿는 문화로서 매체가 가져야 할 범용성일 것입니다. 사회구성원 모두를 불편부당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하고, 그 이용과 재현에 있어 누구도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목표. 물론 지금의 범용성있는 다른 대중문화들도 이를 완벽히 구현하는가를 물으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 있지만, 핵심은 결과보다도 그 지향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고민의 결과로 ‘GG’ 4호는 ‘소수자들의 게임’을 다뤄보고자 했습니다. 소수자라는 건 단지 숫자가 적은 집단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주류’가 아닌, 주류로부터 스스로가 아닌 ‘대상’으로 취급받는 많은 존재들을 우리는 소수자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게임은 그런 소수자와 얽히는 부분에서 아직까지 짧은 역사 때문인지 고민을 오래 해 오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는 크게 재현의 문제와 접근의 문제로 게임과 소수자의 맥락을 조망하고자 합니다. 핀란드에서 보내온 이다 요르겐슨의 글은 유럽에서 진행중인 게임의 소수자 재현 문제에 대한 소고를 담고 있습니다. 김겸섭이 소개하는 곤잘로 프라스카의 접근은 게임연구의 한 축을 이루는, 억압적 현실을 다룰 수 있는 매체로서의 가능성을 드러냅니다. 게임기획자로도 참여중인 시각장애인 당사자로서의 강신혜 작가는 시각정보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디지털게임에 관한 접근성의 문제를 직접 제기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나아갈 바를 모색케 합니다. 게임 속 여성의 대상화 문제를 직접적으로 미소녀 게임이라는 장르를 통해 다루는 박다흰의 글 또한 게임에서의 재현 문제가 대중문화 시대에서 안게 될 이슈들을 잘 함축합니다. 최근의 트렌드를 다루는 섹션 B에서는 애플, 구글이라는 모바일 대형플랫폼들이 보여주는 인앱결제의 현황을 점검하고, 부분유료라는 수익모델의 부상 앞에서 오랜 게이머로 살아온 게임기획자가 마주하는 고민들을 들어봅니다. 최근 몰락이라는 단어가 붙기 시작한, 하지만 한때 한국 게임문화의 중심이었던 아케이드의 변화에 관한 이야기도 주목할 만 합니다. 섹션 C에서는 게임이 다루는 사회를 엿보는 글들을 모았습니다. ‘폴아웃’을 통해 오늘날의 미국을 돌아보고, ‘사이버펑크 2077’을 통해 SF로 드러나는 동시대 사회를 생각합니다. ‘디스코 엘리시움’ 속의 디스코가 갖는 의미, ‘동물의 숲’이 드러내는 여가와 자본주의의 문제 등을 다루고, ‘북리뷰’ 코너에서는 ‘리니지’ 바츠해방전쟁을 다뤄 주목받은 소설 ‘유령’에 대한 탈북자라는 소수자 관점으로의 접근을 시도합니다. 인터뷰 두 꼭지는 소수자라는 테마에 맞게 준비했습니다. 국립재활원에서 진행한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 현장에 직접 다녀왔습니다. 난민 문제를 다룬 게임 ’21 Days’를 직접 난민 당사자인 압둘 와합과 함께 플레이한 내용을 정리한 인터뷰 또한 소수자와 게임의 관계를 돌이켜보는 데 좋은 기회를 제공합니다. 4호를 기획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생각보다 소수자 – 게임 문제의 이슈가 잡지 한 권으로 다 담아내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하다는 점이었습니다. ‘GG’는 창간사에 담았던 대로 게임의 문화적 실천을 고민하는 잡지입니다. 4호의 기획은 GG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맛보기에 불과한 것이라고 느낍니다. 한국 사회에서 게임이 가질 의미를 향한 더 힘 실린 실천이 되기 위한 길에서 4호의 기획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나아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이정표이지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논문세미나] 즐거움과 죄책감 사이에서 게임하기: 인도 남성 청년들의 게이밍 하위문화와 문화적 불협화
이번 글에서 다룰 논문은 인도 라자스탄 주의 우다이푸르라는 소도시에서 성인모색기(emerging adult, 유년기와 성인기 사이의 과도기적 단계)에 있는 남성 청년들의 게이밍 하위문화를 풀어내고자 하는 글이다. <대항문화로서 인도 게이밍 존(Indian Gaming Zones as Oppositional Subculture)>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글은 온라인 게임 플레이가 우다이푸르 청년들에게 어떻게 게이머라는 대안적 하위문화 정체성을 제공하는지, 그리고 이들은 즐거움과 죄의식 속에서 왜 게임을 그토록 중독적으로 경험하는지를 탐색한다. < Back [Journal Club] Gaming Between Pleasure and Guilt: The Gaming Subculture and Cultural Dissonance of Young Indian Men 30 GG Vol. 26. 6. 10. TEXT: Snodgrass, J. G., Dengah, H. F., Upadhyay, C., Else, R. J., & Polzer, E. (2021). Indian Gaming Zones as Oppositional Subculture: A Norm Incongruity "Cultural Dissonance" Approach to Internet Gaming Pleasure and Distress. Current Anthropology , 62(6), 771–797. "The moment of feeling guilty while doing what you love" arrives more often than one might think. Especially when what you have to do and what you want to do do not coincide, and when the latter is regarded as socially undesirable. For young gamers who have grown up loving games, this ambivalence is probably no stranger. As fandom, punk, and otaku cultures once were, games too are, for some, a cultural practice that offers the most intense pleasure and sense of belonging. Yet that very pleasure also collides with the social prejudice surrounding games, breeding anxiety and guilt. In this way games have, at the intersection where pleasure and stigma, belonging and anxiety cross, conversely driven an even stronger addictive immersion—and as a result have formed a subculture that shares norms and an identity all its own. The paper this piece takes up sets out to unpack the gaming subculture of young men in emerging adulthood (the transitional stage between childhood and adulthood) in the small city of Udaipur, in the Indian state of Rajasthan. Bearing the title "Indian Gaming Zones as Oppositional Subculture," it explores how online game play offers Udaipur's youth an alternative subcultural identity as gamers, and why they experience games so addictively amid pleasure and guilt. Background and the Cultural Dissonance Perspective This study sets out to view the phenomenon of "game addiction" through the lens of medical anthropology, which studies a particular social group's illness or suffering within a cultural and social context beyond the merely physical. To explain the ambivalent phenomenon of Udaipur's youth becoming ever more fervently immersed in games even while wracked by anxiety about the future, the researchers draw in part on the concepts of the medical anthropologist Dressler. Dressler held that what determines an individual's physical and mental health includes not only material factors such as income, nutrition, and access to care, but also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ultural values an individual holds and the social expectations surrounding them. To this end he developed the concept of cultural consonance, which shows how closely an individual matches the beliefs and behaviors grounded in their own cultural values to the cultural model shared in society. That is, the concept of cultural consonance shows that an individual's health can vary according to "whether they can actually realize the cultural life they believe to be important." So what becomes of an individual placed in a situation where cultural consonance fails to occur—where the values they hold important and society's expectations diverge? For this, the researchers add to cultural consonance the psychological concept of cognitive dissonance (the tendency of an individual to suffer when they cannot remove the incompatibility between their beliefs and attitudes), developing the perspective of cultural dissonance. Through this concept, the study seeks to read Udaipur youth's gaming subculture not as the addiction or antisocial avoidance of a simple pathologizing discourse, but as a psychosocial negotiation that tries to minimize the conflict between online and offline life. Next, it is worth noting the sociocultural background of Udaipur, India, against which this piece is set. The study's participants are Indian men in their early twenties, either in their final year of high school or attending university. According to the authors, young Indian men up to the age of twenty-five are basically regarded as student- brahmacharya —occupying a stage of preparation for becoming the head of a household. Most of Udaipur's youth marry through arranged marriage, and until then they live under pressure to acquire both the means to provide as a head of household and the ability to secure a good bride. Most, even after marriage, live with their parents or, even if they move out, stay close to them and are positioned to support them. In such a society, where the role of the (prospective) head of household is strongly imprinted, the act of enjoying games is readily defined as an "addiction" that easily diminishes a young man's reputation and jeopardizes his future career or marriage prospects. Meanwhile, Udaipur is a place where access to social media and games is reasonably well established, thanks to the spread of mobile phones, Wi-Fi, and internet technology. Many participants could therefore enjoy online games like Counter-Strike without difficulty in offline spaces such as gaming zones. A "gaming zone" is an in-person gaming café in India, similar to a Korean PC bang, equipped with high-spec networks and PC hardware. Most participants, though middle class or owning a PC at home, nonetheless visited these places together with friends, playing while interacting with online users through text and voice chat. Most young gamers showed themselves struggling to become "true gamers," clocking in at the gaming zone daily—to the point that some treated every Sunday as "Full Rush day" and played all day long. Methods To analyze its subject, the study combined at least three research methods. First, to explore the process by which Udaipur's young men become immersed in games and acquire a gamer identity, the researchers conducted an ethnography accompanied by participant observation over six weeks across three gaming zones. The regular players—generally about twelve to fifteen at each zone—became the focus, with observation accompanied by field notes carried out in the morning and evening for at least an hour and a half and at most about three hours. Second, they conducted informal interviews with the youth who regularly appeared at the gaming zones. The interviews sought to cover not only their accounts of gaming and gamer identity but also the pressures of career and marriage they faced in life. Third, through a survey they identified the four core components of the "true gamer" identity model these youth pursued, and sought to grasp how these components connected to their positive and negative gaming experiences. The four core components are the four elements revealed in the ethnography described below (having close gamer friends, a sense of connection to the global gamer community, the dream of becoming a pro gamer, and a sense of belonging to the gamer subculture), while positive and negative gaming experiences were measured using a 21-item instrument following Dressler's methodology. In this process the researchers hypothesized that the closer Udaipur's youth felt to the true-gamer identity, the more they could experience not only positive gaming experiences (pleasure) but also negative ones (the distress that accompanies it). Finally, performing a measurement based on the three analyses above, they derived a cultural model of the positive and negative gaming held by Udaipur's youth and sought to analyze how it aligned with individual health outcomes. Ethnographic Methods and Findings Everybody Knows Everybody First, India's gaming zones had settled in as powerful spaces of friendship for Udaipur's youth. They came at first in search of a good environment for gaming, but over time they became so close as to be like family, each knowing everyone else. They spend more than half their time at the gaming zone not as players but as "spectators." While spectating they shout instructions and commands to teammates or online friends, and during breaks they drink tea or smoke and discuss the next strategy. At the gaming zone they interact by cursing, shouting loudly, teasing, and playfully hitting one another—behaviors not easily tolerated in public spaces until now. Most of them write their names on their cigarettes with a marker and keep them in the gaming-zone owner's drawer. The cigarettes, tea, and snacks traded at the gaming zone likewise serve as an informal "currency of friendship." The Global Gamer Community Udaipur's youth formed friendships and communicated with diverse players around the world through the global game platform Steam. Most participants played Counter-Strike: Global Offensive , and the global network they encountered there made them transcend their national and religious identities. A guildmate living in Iraq might come into the game and relay the news that fighting in his country had quieted down; they might naturally team up and play with Pakistani Muslims. For as long as they played here, they were simply "gamers," and other affiliations such as caste, religion, or geography were secondary. Participants enjoyed using Hinglish (the Indian English of native Hindi speakers) during play to display their command of English and their fluency in game knowledge. The points at which they distinguished themselves as "true gamers" from others were their passion for gaming, the English ability that created a global sense of belonging, and a particular pattern of consumption (symbolized by cigarettes, energy drinks, and junk food) by which they could define themselves as "addicts." Dreams of the Digital Age What benefits did participants feel games offered? They answered that gaming gave them passion, motivation, and a competitive drive that could help them in life. They took particular pleasure in the process of honing and steadily improving their skills. To this end they regularly watched live broadcasts of matches between famous teams, and stocked up on cigarettes and energy drinks as essentials for staying awake long hours. The gaming-zone owners, too, knew their passion and even organized local matches between zones. Intriguingly, most of Udaipur's "serious gamer" youth dreamed of debuting as pro gamers. Indian pro esports teams—like the "Indian Wolves," who became famous for playing Dota 2 —were a great inspiration for such dreams. To go pro is to be able to do what you love and, on top of that, to win the very title of "true gamer" you had so wanted. Yet at the same time they were partly aware that, coming from a small city with almost no support for games and an unstable internet, such a dream was unrealistic. Gaming as Subcultural Escape As mentioned earlier, at the gaming zone Udaipur's youth gained a kind of freedom not tolerated elsewhere in society. At the gaming zone alone, every activity was permitted—screaming, fighting, cursing, behaving roughly, and eating and drinking whatever they wanted. Many participants therefore located the pleasure of games in being able to flee the real world, forget their problems, and pass the time. Such answers are grounded in a perception of reality in which most youth feel they "have no future," as Udaipur's unemployment rate soars sky-high. Good jobs are hard to come by, marriage is in any case already foreordained through a parent-arranged match, and once they marry and become heads of household, their gaming life ends entirely. The space of the gaming zone, therefore, functioned as a kind of magic circle—temporarily separated from social norms—able to offer participants liberation or a cultural alternative from the oppressive circumstances they wished to flee. And precisely for that reason, paradoxically, this space remained importantly connected to the real-world spaces and concerns that participants would have to face again. Social Moral Panic: The Discourse of "Technological Addiction" and Emotional Distress As noted earlier, in the Hindu discourse of brahmacharya , games are regarded as an act that can ruin an important period of life-preparation. To play games during the time when men ought to be controlling and managing their "animal" impulses as much as possible before entering the household is, in itself, an unrestrained waste of time. (This was a view internalized even by the researchers, who had lived in Udaipur for decades; one researcher of traditional Brahmin background felt discomfort, during the participant-observation stage, at participants' unrestrained cursing and chain-smoking.) Moreover, the context in which games are condemned in Udaipur society is bound up, beyond the role norms of the male head of household, with a "(generational) condemnation of technology." Some of Udaipur's older generation remarked that the internet exerts a harmful influence on Indian society and that ninety percent of youth are mired in pointless internet addiction. This connects, too, with established perceptions of gender norms: that the internet draws young men and women into inappropriate relationships and, by copying Western lifestyles, has induced a trend of premarital sex and rape. The examples of proper internet use this society offered were limited to using the internet to prepare for certification exams and to learn a future trade. Surrounded by such social perceptions, most participants recognized that they were, in some form, addicted to games. Many had played a hundred hours straight without eating or sleeping, and many failed to keep up their studies—their grades falling because of games, or being barred from class for failing to meet attendance requirements. Even as they constantly explained their gaming with "we just have to do it" ( karna to hai ), they were quick and unhesitating to label themselves and their friends addicts or time-wasters. Survey and Measurement Analysis First, descriptive statistical analysis of the survey sample showed that respondents' positive gaming experiences were slightly higher than their negative ones. They felt an adequate sense of social belonging and support through the online community, but this did not mean they felt greatly lonely in their offline lives either. At the hypothesis-testing stage, the researchers examined how the four elements of the true-gamer behavioral model—having close gamer friends (H1), a sense of connection to the global gamer community (H2), the dream of becoming a pro gamer (H3), and a sense of belonging to the gamer subculture (H4)—connected to positive and negative gaming experiences. Among respondents, the stronger the first three variables, the more positive gaming experiences were reported. By contrast, a sense of belonging to the gamer subculture emerged more strongly as negative gaming experiences increased. This shows that the pleasure of gaming respondents feel also derives from belonging to a gamer counterculture that departs from the norms of mainstream Indian society. The most important point in this analysis is that, overall, positive and negative gaming experiences were strongly positively correlated. The majority of players with high positive play experiences had, at the same time, high negative play experiences, and each variable that drove positive play experiences was linked to higher negative gaming experiences. That is, in the gaming experience of Udaipur's young men, the two are not fundamentally opposed experiences but closely interrelated. Conclusion In this way, the ambivalent feelings of Udaipur's youth toward game play show that the positivity and negativity of games are not opposed perspectives, and at the same time can be read as the two faces of the "cultural dissonance" these youth experience within the gamer subculture and mainstream society. The incompatibility of the two worlds—subculture and mainstream society—is the very mechanism that splits participants' identity and consciousness in two. That they acknowledge the inherent risks even as they play shows that they are not simply isolated and sunk in the world of games, but always play on the premise of a connection to the outside world. At the same time, the researchers explain that Udaipur youth's signifying their own gaming as "addiction" is yet another way of minimizing the cognitive and emotional dissonance they face. Between the true-gamer identity and the performance of the masculinized normative role expected of them as part of Indian society, by signifying the former as a temporary addiction, they raise their future life to a relatively superior position and seek to minimize as much as possible the suffering, stress, and discordant sensations they undergo in the present. Finally, the researchers hold that the analysis of Udaipur youth's gaming experience as subculture expands the analytical lens on gamers. Until now, the problem of game addiction has been treated from a biomedical perspective as a matter of mental illness like drug or gambling addiction, or, when treated from a cultural perspective, as something like a triggering mechanism of a "moral panic" that fosters consumerism and threatens the morality of youth. But the authors argue that the very situation in which this study's participants insist "I am dangerously addicted to online games myself" renders the social-panic theory of gaming addiction incomplete. In Closing The authors' "cultural dissonance" perspective on Udaipur's youth shows, I think, the researchers' intellectual effort not to judge a particular subcultural group on the basis of a resistance-versus-submission binary. The culture these youth displayed at the gaming zone does in part oppose the norms of dominant masculinity that mainstream Indian society assumes, but at the same time they also partly internalize the stigma of being social outcasts, or "losers," who have strayed from the mainstream. Their doubled situation—neither fully assimilated into mainstream norms nor fully escaping them—manifests as the act of demoting their present position to that of a temporary addict (since they will give up gaming life in the future anyway). That said, since this is fundamentally a piece focused on how to discuss the problem of game addiction in a direction different from existing cultural approaches, it remains a limitation that the analysis of the oppositional character of Udaipur youth's subculture is not deepened. In that respect, the observation of Lesley Jo Weaver, one of the paper's principal reviewers, is highly meaningful. What the paper should have discussed further is a deeper analysis: beyond youth simply acknowledging the fact of their addiction, what they actually think about this dissonance and how concretely they try to resolve it, and further, what relationship the gamer community ultimately forms with India's patriarchal society. In particular, inasmuch as this paper recalls Paul Willis's Learning to Labour in various contexts, there is a need to take up in earnest how their cultural dissonance reproduces—or escapes—the broad norms of male-centeredness and machismo operating in the larger cultural context of Indian society.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isu Kim Studies a range of fields—culture and knowledge, space, and the academic field. Also interested in the history of games and the lives of gamers.
- 게임과 예술 : 게임은 무엇으로 사는가?
우문에 현답을 하기는 쉽지 않다. 게임이 일정한 미적인 속성을 체계적이고 인공적으로 구성한 형식이 아니면 무엇일까. 너무나 당연했다. 사진과 영화가 아날로그 기술적 혁신에 대응하는 형식이었다면, 게임은 디지털 혁신에 대응하는 고도의 예술형식이라고 보는 게 당연하고 타당했다. “모든 예술형식의 역사를 보면 거기에는 위기의 시기가 있기 마련인데, 이러한 위기의 시기에는 이들 예술형식은 변화된 기술수준, 다시 말해 새로운 예술형식을 통해서만 비로소 아무런 무리 없이 생겨날 수가 있는 효과를 앞질러 억지로 획득하려고 한다. < Back 12 GG Vol. 23. 6. 10. Tags: 예술 미술 비평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angwoo Kim Studied philosophy and aesthetics. Has gazed at the world through three lenses—art, media, and games—working in art curating and writing. Curated exhibitions including The Age of Sin (2010) and Just One More Round (2009), co-wrote Game and Cultural Studies, and translated books such as Intimate Murder and Turing's Man.
- 우리의 UX를 찾아서: 오락실 코옵을 추억하다
그 시절 같은 학교 친구들에게는 일종의 의식이 있었다. 무슨 게임을 하든 가장 마지막 코스는 <갈스패닉 S2>로 플레이하기로 한 것이었다. <갈스패닉>이란 쉽게 말해 땅따먹기 게임으로 상하좌우에 대각선까지 8방향으로 기체를 조작해 구역을 확보하면 승리하는 게임이다. 여기까지만 설명하면 거짓말에 가깝다. <갈스패닉>에서는 땅을 따먹으면 그 구역에는 ‘갈’이 등장했고, 특정 퍼센테이지를 완수하면 온전한 일러스트를 볼 수 있었다. 이 게임의 핵심 인기 요인은 일러스트였다. < Back 08 GG Vol. 22.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aeseok Kim Worked for eight years as a reporter at ThisIsGame. Now handles external relations at a subculture startup. Loves editors and the power of cheat codes.
- In Search of Our UX: Remembering Arcade Co-op Play
Back then, there was a kind of ritual among my schoolmates. No matter what games we played, the final stage of the night was always . Gals Panic, put simply, was a territory-capture style game where you control your marker in 8 direntions-up, down, left, right, and diagonally-to claim areas and win. < Back In Search of Our UX: Remembering Arcade Co-op Play 28 GG Vol. 26. 2. 10. ***You can see the Korean version of this article at: www.gamegeneration.or.kr 우리의 UX를 찾아서: 오락실 코옵을 추억하다 그 시절 같은 학교 친구들에게는 일종의 의식이 있었다. 무슨 게임을 하든 가장 마지막 코스는 <갈스패닉 S2>로 플레이하기로 한 것이었다. <갈스패닉>이란 쉽게 말해 땅따먹기 게임으로 상하좌우에 대각선까지 8방향으로 기체를 조작해 구역을 확보하면 승리하는 게임이다. 여기까지만 설명하면 거짓말에 가깝다. <갈스패닉>에서는 땅을 따먹으면 그 구역에는 ‘갈’이 등장했고, 특정 퍼센테이지를 완수하면 온전한 일러스트를 볼 수 있었다. 이 게임의 핵심 인기 요인은 일러스트였다. Every evening, the arcade was filled with passionate cheering Back then, there was a kind of ritual among my schoolmates. No matter what games we played, the final stage of the night was always . Gals Panic , put simply, was a territory-capture style game where you control your marker in 8 direntions-up, down, left, right, and diagonally-to claim areas and win. But stopping the explanation there would be almost a lie. In , once a territory was claimed, a “gal” appeared within that space, and upon reaching a certain percentage, a complete illustration was revealed. The game’s core appeal lay precisely in those illustrations. That was why, at the machine tucked away in the far corner of the arcade, cooperative play emerged as a means of meeting the game’s requirements. Whoever happened to have the most spare change that day became the sponsor, while the friend with the best control took the seat. Others called out incoming bullet patterns or the remaining time; some explained the next pattern, others how to trap enemy monsters. Since this was an era when you couldn’t photograph the finished result with a phone camera, the only option was to take the illustration in with your eyes. Everyone tried their hardest to store the image in their memory. This user experience (UX) is precisely the intriguing story I wish to tell. The arcade was, in every sense, a space optimized for cooperative play (Co-op). Beyond the previously mentioned Gals Panic, many other games also featured Co-op play. By virtue of the arcade’s nature—a place where many people gathered in the same physical space—even those who were not seated at the machine could participate, communicating with one another and collectively working through puzzles. In Search of Our UX In retrospect, the arcade was a space especially suited to two-player games. Most arcade machines were equipped with two seats, which naturally led to many games structured around competition between Player 1 and Player 2—but there were just as many that emphasized working together toward a shared goal. The first game that comes to mind is . Although the game was designed to allow players to choose from four characters—snow, lightning, water, and wind—in arcades it was typically limited to two-player play due to hardware constraints. Much of the fun lay in each player trapping monsters into balls and then bursting them at precisely the right moment. Belt-scrolling action games like the arcade versions of and could be said to represent the very essence of Co-op play. Two players would sit shoulder to shoulder at a cramped machine, bumping into one another as they frantically mashed the buttons. A quiet ethic of generosity was at work: yielding health recovery items to each other, or giving up buff items—or weapons—that would better suit the other player’s character. We would exchange high fives after clearing a mission, and at times, even if I had survived, I would gladly drop another 100 won to revive Player 2 rather than continue alone. Yes—paying money for someone else’s play was considered an undeniably cool thing to do in the arcade. Unless one resorted to unacceptable behavior—taking over someone else’s game, extorting money in a nearby shady alley, or secretly adding credits with a coin-up trick—everyone had to insert a 100-won coin into the machine to play. Within this strict 100-won rule, the reciprocity of sharing one’s single credit can occasionally be found in the online gaming era, in practices like quietly slipping help to newcomers. Even then, the weight of the gesture is different—it is often merely a veteran player distributing a fraction of their surplus resources. The Happiness of 100 Won With a bit of humor, the rule that everyone had to put in 100 won per game can be directly linked to what we now call P2W—Pay to Win. Because players who kept feeding more coins into a given machine naturally became more skilled, those who invested heavily in a game held a clear advantage in PvP. Once a player’s skill surpassed a certain threshold, however, they became a kind of “monster” who could see an entire game through on a single coin—earning the wary glances of the arcade owner. There was someone who would insert just one 100-won coin and spend the entire day playing , defeating everyone who challenged him. Soccer games were popular then, as they are now, so many people were waiting to play, but because he dominated the machine, its turnover rate was extremely low. In the end, what stopped him was an anonymous tip reporting that he was skipping mandatory evening self-study to be at the arcade. Friends much younger than him speculated that it was probably the arcade owner who had made the call. My personal favorite arcade game was , a shooter developed by Psikyo. I was completely absorbed by its distinctive Japanese look and feel and its thrilling gameplay. I would often walk with a close friend to a neighboring district’s arcade that had a cabinet, and that journey itself feels incomparable to anything today. In 2022, who would walk twenty minutes just to pay 100 won for a single round of a game? Game magazines existed, but it was difficult to find arcade strategies in them at the time, so during those twenty minutes on foot, my friend and I would discuss which characters to choose and how we might clear each stage. In , there was a hidden character named Ain. By inputting the command up, up, up; down, down, down; up, up, up, up, up, up, up on the selection screen, the character could be unlocked. Choosing such a hidden character for someone who didn’t know the command could itself be seen as a form of cooperation. In that sense, Co-op also functioned within PvP games like . Much like selecting “Orochi Iori” for a friend in KOF ’97—officially known as Insane Iori with Blood of Orochi Under the Night of the Moon. 3 Meters to a ‘Real-Life fight’ Couples often played games like or at the arcade. The sound of laughter, mixed with the rapid pounding of domed buttons, remains part of the memory. In many ways, feels like it presented a prototype for , which was named Game of the Year by multiple outlets in 2021. Both are two-player games, and both carry the risk that excessive immersion in play can result in damage to the relationship itself. Back when I was a regular arcade-goer, I once witnessed a couple arguing while playing , with one accusing the other of not going easy on them—“Why won’t you let me win?” In truth, fights between couples were usually just playful affirmations of affection, often endearingly minor in scale. But during competitive fighting games, there were occasions when disputes between two burly men escalated to the point that all gameplay in the arcade came to a halt. At the arcade in my neighborhood, there was once a physical fight during after one player repeatedly used Devil’s laser attacks, prompting the other to shout, “Stop using cheap tactics.” In arcade fighting games, after all, your opponent’s face sits directly across from your own. What Does Offline Co-op Mean to Us Today? We now live in an online era. Even to play —a game often regarded as a tribute to offline Co-op, with its many embedded mini-games—two people no longer need to meet in the same physical space. With a single click on an online “invite friend” button, they can depart together into the game world. So what meaning does offline cooperative play still hold for us? To be sure, the Nintendo Switch still offers many excellent party games, and even without software, solving puzzles together at an escape room café could also be considered a form of Co-op. Yet offline Co-op seems to have been pushed out of the mainstream, relegated to the realm of nostalgia. The experience of multiple people reacting together to a single screen is becoming a special event rather than an everyday occurrence. When offline Co-op in arcades was at its peak, access to the internet for new information was (relatively) scarce. Few households had consoles or PCs capable of running games, and of course, not everyone carried a phone in their pocket. The only way to leave a record of one’s play was to inscribe one’s initials on the leaderboard. In offline Co-op, each and every game mattered. In the online era, access to “a single game” has improved beyond comparison. Yet alongside this, we also see people who, shielded by the veil of anonymity during gameplay, unleash words they would otherwise hesitate to utter. In online random matchmaking, people sometimes insult casually—and disappear just as casually. Having lived through both eras, this is not an attempt to claim that “the arcade days were better.” The offline Co-op culture of old arcades also included various abuses carried out by so-called neighborhood toughs. Nevertheless, if we take the term UX literally—as the totality of user experience—then the distinctive environment of the arcade explored here deserves to be recorded as a special chapter in the history of game UX.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김재석 8년 동안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서브컬처 스타트업에서 대외협력을 맡고 있다.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문화연구자) 김지수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공모전] 모바일 리듬 게임에서 ‘엄지러’를 선택하기-‘프로젝트 세카이 컬러풀 스테이지! feat.하츠네 미쿠’를 중심으로
‘엄지족’이라는 신조어가 있었다. 2000년대 폭발적으로 보급된 스마트폰이 사회 전 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을 때였다. 엄지를 이용해 스마트폰의 화면을 누르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청년을 일컬어 ‘엄지족’이라 불렀다. M으로 시작하는 것에 착안해 이들 세대를 모바일 세대, M 세대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무도 그런 말을 쓰지 않는다. 모두가 ‘엄지족’이자 모바일 세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 Back [공모전] 모바일 리듬 게임에서 ‘엄지러’를 선택하기-‘프로젝트 세카이 컬러풀 스테이지! feat.하츠네 미쿠’를 중심으로 13 GG Vol. 23. 8. 10. ‘엄지러’는 선택을 해야 한다 ‘엄지족’이라는 신조어가 있었다. 2000년대 폭발적으로 보급된 스마트폰이 사회 전 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을 때였다. 엄지를 이용해 스마트폰의 화면을 누르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청년을 일컬어 ‘엄지족’이라 불렀다. M으로 시작하는 것에 착안해 이들 세대를 모바일 세대, M 세대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무도 그런 말을 쓰지 않는다. 모두가 ‘엄지족’이자 모바일 세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바일 리듬 게임의 세계에서 ‘엄지족’, 다른 말로 ‘엄지러’는 여전히 실존한다. 스마트폰 리듬 게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00년대 후반 이후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모두가 ‘엄지러’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모바일 리듬 게임의 세계에서 ‘엄지러’의 위치는 다소 미묘하다. 노트를 정확한 타이밍에 터치해야 하는 일반적인 포맷의 모바일 리듬 게임을 상상했을 때, 분명히 모바일 리듬 게임의 유저 대다수는 엄지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엄지러’다. 그러나 노트가 더 많이, 빨리 등장하며 고난도의 플레이가 요구될수록 뚱뚱한 엄지 두 개만을 움직이는 플레이는 명확한 한계를 가진다. 이론상 발로도 플레이할 수 있는 <지오메트리 대시Geometry Dash>나 엄지가 누비기 비교적 수월한 세로형 인터페이스의 <피아노 타일 2Piano Tiles 2>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기에 모바일 리듬 게임의 ‘엄지러’는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한계가 있음을 알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엄지로 플레이하거나, 지금부터라도 낮은 레벨부터 다른 손가락을 사용하는 연습을 하며 플레이 스타일을 ‘교정’하는 방법이다. 전자를 선택한 이용자라도 이걸 엄지로 하라고 만든 것이 맞는지 의심되는 곡을 만나면 다시 갈등을 시작한다. 이 필연적인 고민은 하나의 의문을 낳는다. 리듬 게임의 ‘엄지러’는 바뀌어야만 하는가? 인터페이스의 전환과 ‘엄지러’의 탄생 ‘엄지러’는 원래 리듬 게임에 존재하지 않는 계층이었다. 리듬 게임은 이전까지 감각적인 콘트롤러를 탑재한 아케이드 기기를 무기로 이용자를 매혹시켰다. 이용자는 강렬한 음악이 귓가를 때리는 오락실에서 버튼을 누르고, 돌리고, 발판을 밟고, 북을 치고, 기타를 치는 식으로 리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2000년대부터 오락실이 쇠퇴함에 따라 온라인과 콘솔, 모바일 등 각각의 형태를 기반으로 리듬 게임이 분화되었다. 모바일 리듬 게임으로 넘어오며 리듬 게임은 기존의 무기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각양각색의 감각적인 콘트롤러 대신 게임사가 활용할 수 있는 것은 피처폰의 조악한 버튼, 조금 더 나아가서는 스마트폰의 작은 터치스크린뿐이었다. 이 터치스크린 속에서 특정한 버튼을 누르면 여전히 소프트웨어는 우리의 입력에 반응하지만, 과거와 같이 게임 소프트웨어 바깥에서 주어지는 ‘눌렸음’의 촉각적 신호는 사라진다.1) 이 물리적 제약은 감각적인 콘트롤러를 내세웠던 리듬 게임에 엄청난 도전이었다. 대신 스마트폰은 리듬 게임에게 휴대성과 대중성을 가져다주었다. 게임사는 모바일 환경에 맞춰 ‘엄지족’이 엄지로 간편하게 플레이할 수 있게끔 리듬 게임을 설계했고, ‘엄지족’은 엄지로 플레이를 했다. ‘엄지러’의 탄생이었다. 2000년대 후반부터 리듬스타 등의 피처폰 모바일 리듬 게임이 인기를 끌었으며, 2010년부터는 고사양의 스마트폰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아이폰, 안드로이드와 같은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한 리듬 게임들이 개발되었다.2) 형태의 전환은 새로운 규범을 만들었다. 스마트폰으로 리듬 게임을 한다는 것은 게임사가 더는 이용자가 리듬 게임을 하는 방법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케이드 리듬 게임을 플레이할 때는 정해진 장소로 가 정해진 콘트롤러를 정해진 방식으로 조작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모바일 리듬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용자들에게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그들은 불특정한 장소에서 불특정한 기기를 불특정한 방식으로 조작한다. 이용자는 카페에서 태블릿을 눕혀놓고 모든 손가락을 활용해 게임을 플레이할 수도 있고, 핸드폰을 들고 집에 누워서 엄지로 플레이할 수도 있으며 최신형 접히는 핸드폰을 산 것을 후회하며 접히지 않도록 조심하며 검지로 플레이할 수도 있다. 이 새롭고 다양한 사용자 경험 위에서 이전과 다른 플레이 문화가 축적됐다. 인터페이스의 전환이 새로운 장르적 전통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바일 리듬 게임에게 ‘어느 정도 엄지 플레이를 가능하게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은 필수적인 동시에 중요하다. 이 질문에 어떤 답을 내리느냐에 따라 해당 리듬 게임의 방향성이 결정된다. 캐릭터 IP를 내세운 대중적인 모바일 리듬 게임인 처럼 이론상 엄지로만 플레이 가능한 게임이 있는 한편, 아예 어려운 리듬 게임을 테마로 한 <다이나믹스Dynamix>처럼 엄지 플레이가 거의 불가능한 게임도 있다. <칼파KALPA>처럼 엄지 플레이 난이도와 다지 플레이 난이도를 이원화하는 선택을 하거나, 특정 레벨 이상부터 다지 플레이를 필수로 만드는 등의 절충안을 내놓은 경우도 존재한다. “모든 곡은 두 손가락으로 풀 콤보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중 ‘프로젝트 세카이 컬러풀 스테이지! feat.하츠네미쿠’(이하 프로세카) 또한 이론상 엄지로만 플레이가 가능한 모바일 리듬 게임이었다. 주식회사 세가와 컬러풀 파레트, 크립톤 퓨처 미디어가 공동 개발한 프로세카는 보컬로이드 IP를 이용한 캐릭터 수집 요소를 결합해 만든 대표적인 모바일 리듬 게임 중 하나다. 이 리듬 게임이 호명된 이유는 이 게임이 더 이상 엄지로만 플레이 가능한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 서버에서 개최된 창작 콘테스트 ‘초고난이도 프로세카 ULTIMATE’의 당선작 3곡이 게임 내 최고 레벨을 경신하는 37레벨로 수록되며 이 명제가 깨진 것이다. 이는 게임의 프로듀서인 콘도 유이치로의 “모든 곡은 두 손가락으로 풀 콤보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는 과거 발언을 번복하는 문제로써 이용자들 사이에 논란이 되었다. 이에 게임사는 37레벨은 번외 레벨로 예외적인 경우이며, 이하의 레벨에서는 앞서 말한 원칙을 지키겠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사실 프로세카가 이론상으로 엄지로만 플레이가 가능했을 때에도 높은 난이도의 곡들은 거의 엄지로 플레이하기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실제로 프로세카에는 엄지만 사용하여 올 퍼펙트를 달성한 것이 확인되지 않은 곡이 다수 존재하며, 같은 난이도의 곡이라도 엄지로 플레이할 때 압도적으로 어려운 곡도 존재한다. 높은 난이도의 곡을 엄지로 플레이하는 이용자가 있더라도 그것은 극히 소수일 뿐이다. 그리고 가능과 불가능의 영역을 넘어, 여러 손가락으로 플레이하는 것은 엄지로만 플레이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그런데 왜 ‘엄지러’는 그렇게 하지 않는가? 물론 여러 손가락을 사용하려면 태블릿과 같은 일정 크기 이상의 터치스크린을 눕혀야 한다는 제약이 존재한다. 하지만 높은 난이도의 곡을 시도할 정도로 열성적인 이용자가 단지 그것 때문에 엄지를 고수한다는 점은 이상하다. 더 이상한 점은 여러 손가락으로 플레이하는 이용자조차 37레벨 곡 업데이트에 대하여 ‘엄지 배려’를 하라고 목소리를 낸다는 점이다. 높은 난이도의 곡 플레이가 가능한 ‘엄지러’는 원래도 거의 없었는데, 그들은 무엇을 위해 이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는가? ‘엄지러’라는 전통 이 모든 반응은 ‘엄지 플레이’와 ‘다지 플레이’의 구분이 단순한 플레이 방식의 차이 그 이상을 함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만약 이 구분이 단순한 플레이 방식의 차이였다면 엄지로 32레벨까지 클리어하고 막히면 33레벨부터는 다지로 플레이 해 클리어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용자들은 33레벨 ‘엄지’ 클리어와 33레벨 ‘다지’ 클리어를 다른 것으로 구분한다. 게임 내적 시스템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클리어하든 아무 구분 없이 표기되는 데도 말이다. 이용자들은 대신 게임 외적으로 엄지로 특정 레벨까지 클리어 한 사실을 자랑한다거나, 엄지로 특정 곡을 클리어 한 영상을 공유하며 그들만의 전통을 축적한다. ‘엄지러’를 기준으로 한 비공식 곡 난이도 표를 만들고, ‘다지러’가 엄지로 어디까지 플레이가 가능한지 도전하기도 한다. 이렇게 축적된 전통 위에서 ‘엄지러’의 높은 난이도 도전은 몇몇 이용자의 기행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런 모습은 플레이 방식의 차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여러 직업이 있는 RPG 게임에서 상이한 난이도의 직업 루트를 선택하는 것과 더욱 유사해 보인다. 하나의 직업으로 최종 보스를 처치했다는 사실이 인정받으면서도 그것이 곧 다른 직업의 성취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다른 매체와 구분되는 게임의 특징을 논할 때 공통적으로 거론되는 점이 바로 게임과 이용자 간의 상호작용으로 생성되는 새로운 맥락과 이용자의 창조성이다. 이경혁3)은 게임 매체의 수용이 일종의 창조 행위라는 것을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로 오락실의 <펌프 잇 업> 고수가 펼치는 두 발 외의 몸을 사용하는 펌프 퍼포먼스를 들었다. 이런 예시는 개별 이용자의 창조적 수용을 보여준다. ‘엄지러’의 전통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게임사를 포함한 모바일 리듬 게임이라는 장르의 구성원은 모두 이 암묵적인 장르적 전통을 공유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게임 외적으로 구축된 전통은 개별적인 창조적 행위가 아닌 인터페이스의 특징에서 촉발되어 장르의 구성원이 새롭게 창조한 ‘규범’에 가깝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앞선 프로세카 같은 리듬 게임은 특히 게임 내적 시스템의 영향으로 다른 모바일 리듬 게임보다 ‘엄지러’의 규범이 강하게 작용한다. 실제로 엄지 플레이를 염두에 두고 설계된 것뿐만 아니라, 대중성을 위해 양적 랭킹 시스템을 도입하였기 때문이다. 프로세카에는 일정 기간 동안의 플레이 횟수에 따른 양적 랭크인 이벤트 랭킹과 실력을 겨루는 질적 랭크인 랭크 매치가 동시에 존재한다. 그리고 양적으로 순위를 매길 때 더 유리한 플레이 방법은 당연히 엄지를 이용한 플레이다. 이러한 이원화는 엄지 플레이에 확실한 효용을 부여함으로써 엄지 플레이의 지위를 보장한다. ‘엄지러’를 선택하기 단순한 플레이 방식 이상의 ‘엄지러’ 전통을 고려했을 때, 프로듀서의 발언을 차치하고서라도 이론상 엄지로만 칠 수 없는 곡의 등장이 강한 논란을 불러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RPG 게임의 비유를 다시 가져오면,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지 여부와 별개로 하나의 직업 루트에만 번외 콘텐츠가 개방된 셈이니 말이다. 혹여 ‘다지러’로 전직하더라도, 모바일 리듬 게임을 하는 한 ‘엄지러’의 전통은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있다. 다시 질문해보자. 리듬 게임의 ‘엄지러’는 바뀌어야만 하는가? 무의미한 질문이다. 바꾼다 해도 내가 선택해 키운 ‘엄지러’는 사라지지 않으니까. 1) 이경혁 (2023.04.05.), 플레이어의 숙련도가 머물렀던 곳은 어디였을까: 터치스크린 시대의 숙련도, <게임제너레이션>, URL: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152d8082-f4a1-486d-875d-a05088a28625 2) 강현구 (2019), 스마트폰을 위한 리듬게임 User Interface Design 연구, 석사학위,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3) 이경혁 (2019), <(놀이에서 디지털 게임까지) 게임의 이론>, 문화과학사.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대학원생) 손민정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현대문학과 문화를 공부 중입니다. 글과 함께한 만큼 게임과 늘 함께 해왔습니다. 별별 게임 다 합니다.
- [4회공모전수상작] 게임은 어떻게 우리를 소외시키는가
소외는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하나는 인간 집단에서 배제되어 외로움을 느낀다는 뜻으로, 일상생활에서 소외라고 말하면 대체로 이를 의미한다. 반면 다른 하나는 철학 특히 마르크스가 주로 사용한 의미로, 한 인간이 특정 대상에 대한 주권을 상실하여 더 이상 주체로 있지 못 하고 오히려 그 대상의 객체로 전락해, 결국에는 자기 자신의 권리와 정체성이 외부 요소에 의해 좌우되는 상태를 뜻한다. < Back 26 GG Vol. 25.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oJun Ryu A gamer. Values games as entertainment, games as art, and games as experiment—all alike.
- 게임, 전쟁, 격리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 검투사 몇이 경기장에 있다. 다른 검투사 하나가 무기를 들고 입장한다. 새로 입장한 검투사는 적절하고 신속한 동작으로 상대 검투사들을 하나씩 도륙낸다. 이따금 불필요하지만 화려한 동작도 섞어준다. 관중들이 환호한다. 만신창이가 된 마지막 상대는 이미 전투 능력을 잃고 선 채로 죽어가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승자는 화려한 기술로 그를 두 동강 내버린다. 홀로 남은 승자가 된 검투사는 신이 나 있는 관중들에게 분노를 담아 외친다. “Are you not entertained?” < Back 게임, 전쟁, 격리 25 GG Vol. 25. 8. 10. 장면 하나.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 검투사 몇이 경기장에 있다. 다른 검투사 하나가 무기를 들고 입장한다. 새로 입장한 검투사는 적절하고 신속한 동작으로 상대 검투사들을 하나씩 도륙낸다. 이따금 불필요하지만 화려한 동작도 섞어준다. 관중들이 환호한다. 만신창이가 된 마지막 상대는 이미 전투 능력을 잃고 선 채로 죽어가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승자는 화려한 기술로 그를 두 동강 내버린다. 홀로 남은 승자가 된 검투사는 신이 나 있는 관중들에게 분노를 담아 외친다. “Are you not entertained?” 2000년의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한 장면이다. 장면 둘. 한 남자가 공항 출국 게이트에 있다. 게임 쇼에 참가해 우승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참여를 했다. 게임 종목은 어린이들의 골목 놀이였지만 패배의 대가는 죽음이었기에 남자는 다른 참가자들이 모두 죽는 지옥을 경험했다. 홀로 남아 우승한 남자는 거금을 갖고 미국에 있는 가족에게 갈 참이다. 하지만 게임의 주최측과 연결된 마지막 통화를 끊자 그는 뒤돌아 걸어간다. 그는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말이 아니야. 인간이야.” 2021년의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이다. 두 장면의 두 인물은 목숨을 건 게임을 했고 승자가 되어 살아남았다. 그들이 경험한 것은 전쟁과 흡사하다. 이들이 일종의 선수로서 게임을 수행했듯, 전쟁은 군인이 선수로서 싸운다. 싸움 바깥에서 싸움을 지켜보는 관중이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다만 전쟁의 승패는 그 관중들에게도 영향을 미치지만, 이들의 게임은 관중에게 영향이 없다. 그래서 전쟁은 일종의 사업으로서 해석되지만, 이들의 게임은 관중에게 유희다. 전쟁과 유희의 관계에 대해 고찰하다 보면, 어떤 네덜란드 사람을 만나게 된다. 호이징가 혹은 하위징어로 불리는 이 네덜란드 학자는 자신의 저서 ‘호모 루덴스’에서 문명의 근간은 놀이성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분석한 놀이성, 놀이의 특징 중 하나는 규칙으로 시공간을 제한하는 것이다. 저녁 먹을 때까지, 여기 이 놀이터 내에서, 얼음땡 규칙으로 게임을 한다는 식이다. 그 시공간을 벗어나면 놀이가 끝나고 놀이의 규칙은 아무런 권위를 갖지 못한다. 이 특징이 확대되어 제의, 법률, 행정 등 문명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 모두가 놀이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이 네덜란드 아저씨의 고찰이었다. 경쟁과 협동은 놀이의 두 축이 되는 원리이고, 이는 자연에 대해, 인간 서로에 대해 투쟁하는 생존 추구의 상태를 극복하는 방법이었다. 이를 제한적인 규칙 속으로 집어넣자 놀이가 되었다. 일상과는 다른 어떤 시공간을 가정하고 거기에서만 통하는 규칙을 만든다는 점은, 인간이 일상의 생존이 아닌 다른 가치를 추구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놀이성은 생존 너머의 문명을 만드는 근간이 되는 원리다. 현대인으로서 완전히 동의하기 어려워지는 대목은, 그래서 자본에 포섭되어 시장화한 스포츠는 삶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놀이가 아니게 되었다는 해석이다. 놀이는 직접 수행하는 방법 외에도 타인의 놀이를 구경하는 방법이 있다. 콜로세움, 오징어 게임, 스포츠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는 생사를 거는지 아닌지를 제외하면 타인에게 게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자본으로 해석되었다 하여, 관중이 즐기게 되는 ‘보는 게임’으로서 놀이의 본질이 사라졌는지는 더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 콜로세움에서 스타디움까지. 검투사에서 프로 선수까지. 관중을 대신해 게임을 하며 보는 게임을 제공하는 경우는, 싸움-전투-전쟁을 모사하긴 하지만 한 가지 한계가 있다. 소규모 전투의 모사라는 점이다. 격투기가 아니어도 양편이 나뉘어 싸우는 구기 종목이 그 경우다. 축구는 기병과 보병 전술과 유사하다. 농구는 흔히 기병과 궁병 전술에 비유된다. 핸드볼의 전술은 투창 전투와 많이 닮았다. 그렇다면 야구는 포병과 유사할까? 피겨 스케이팅과 같은 점수 경쟁 스포츠는? 하카처럼 전투 전의 의식을 겨루는 모습와 유사하다고 갖다댈 수 있겠다. 유희(遊戲)의 희(戱)는 중국 고대의 전장에서 전투 전에 위세를 겨루기 위해 호랑이 머리를 장식한 기물(䖒)을 창(戈)으로 치는 행위에서 만들어진 글자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여전히 ‘태극 전사’니 ‘상암 대첩’이라는 식으로 전쟁의 용어를 스포츠에 갖다 쓴다. 팀 단위의 경쟁 스포츠는 전쟁에 대한 욕구를 대리 해소하는 용도 또한 갖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적용되는 전쟁의 국면은 전략이 아닌 전술이다. 소규모 전투가 아닌 대규모 전쟁을 경기장 안에서 구현해 전략을 게임화하려면 상당히 많은 권력-자본이 필요해진다. 압도적으로 많은 선수가 필요할 테니까. 혹은 ‘이 말 하나가 사람 천 명이다’라는 식으로 추상화되어 전술과 전투의 재미가 사라진다. 전략을 보는 지적 재미는 추가되지만, 이래선 흥행이 맞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무리 왕이고 부족장이라도 이런 이벤트를 만들었다간 재미없음 이유로 권좌에서 내쫓길 수 있다. 그래서 대규모 전쟁은 추상화되어 보드 위에 자리잡았다. 바둑, 체스, 장기와 같은 게임은 기물을 선수로 대체한다. 그래서 검투사의 유혈을 보고 공감 능력이 발휘되어 몰입이 깨져버리는, 콜로세움 입장료가 아까운 경우도 없다. 현실에선 불가능한 조감도 시야도 제공한다. 게다가 ‘보는 게임’에 특화된 가까운 경기장과 달리 보드는 ‘하는 게임’이 우선이다. 기술과 장르를 옮겨서 디지털 게임으로 오면, 앞서 있었던 많은 제약이 해제된다. 디지털 게임은 보드 게임의 추상성과 경기장 게임의 구체성을 모두 추구할 수가 있다. 프로세서의 연산 기능을 늘리기만 한다면 소규모 전투와 대규모 전쟁을 각각 혹은 한꺼번에 모사해낼 수 있다. 그렇게 전쟁은 게임이 가장 자주 다루는 소재가 된다. 병사 하나가 되어 전장을 누비는 개인 액션부터 10만 단위의 부대가 점 몇 개로 표시되는 전략까지 가능하다. 모두 바둑, 체스, 장기의 후예들이다. 여러모로 전쟁과 게임은 닮았다. 전쟁의 추동력은 전쟁을 수행하는 두 집단의 목표가 충돌하는 상황이니, 결국 경쟁이 핵심이다. 이기기 위해 군대는 계급에 따른 수직적 분업과 보직에 따른 수평적 분업을 수행한다. 분업이 수직-수평으로 직조하는, 협동의 체계가 군대 체계의 핵심이다. 전쟁을 요약하면, 협동하여 적과의 유혈 경쟁을 이기는 것이다. 유혈 부분을 빼면 게임과 동일하다. 게임에서는 1인 플레이의 경우에는 협동이 빠지기도 하고, 역으로 협동이 크게 강조되어 경쟁 요소가 옅어지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전쟁의 저 두 핵심을 그대로 매체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결국 차이점은 유혈의 유무다. 싸움-전투-전쟁은 생명을 잃게 한다. 잘 기능하는 사회 구성원 하나를 키우는 데에 사회가 들이는 비용은 시간만 보아도 20여 년 이상이다. 게다가 인간의 공감 능력은 피 색깔만 비슷해도 그 죽음을 안타까워 할 수 있는데, 종까지 같은 인간의 죽음이기도 하다. 아무리 증오스러운 적이라 하더라도 죽음을 보고 직접 죽이는 것은 인간의 정신에 좋지 않다. 그러면서 아무 가치도 생산하지 않고 가치를 사용하기만 하니 문명 전체의 손해이기도 하다. 한편 전쟁은 전쟁을 수행하는 사회의 경제, 기술, 행정, 정치의 과실이 그대로 반영된다. 그 찬란한 과실을 갖고 하는 것이 조직적 살인이라는 점에서 철학적인 자괴감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서 전쟁은 추악하고 또 아름답다. 문명의 정수와 실력이 발휘되는 시공간이기 때문이다. 추악함을 최대한 제거하고 아름다움을 가능한 부각시키려면, 죽음을 무시할 수 있으면 된다. 콜로세움에서 죽는 검투사에게서 공감을 거두면 그 게임은 재미있다. 하지만 전쟁에서 죽음을 제거하기란 어렵고 모두가 공감 스위치를 끄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대의 전쟁은 그래서, 호이징거 혹은 하위징어의 해석을 따르자면, 놀이성이 강화되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전쟁에 규칙을 두는 것이다. 선전포고를 해야 정식 전쟁이고, 민간 피해는 최소화해야 하고, 전쟁 중의 약탈과 민간인 학살 같은 것을 ‘전쟁 범죄’로 규정하고, 포로를 정식 신분으로 만드는 등등, 전쟁에 놀이성이라는 족쇄를 채우려고 애를 쓰고 있다. 생사를 건 전투가 오직 전시에만 일어나게 하는 시도다. 새로운 시도는 아니다. 놀이성의 특징인 시공간 제한에 의해 게임 안과 밖은 엄격히 구분된다. 콜로세움의 선수, 전장의 병사가 대신 생명의 위협을 받는 대신 제한된 시공간 바깥의 관중은 면제된다. 이미 검투사들을 관중 대신 데스 게임에 밀어넣으면서 인간 문명은 싸움에 놀이성을 부여해봤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약간 불편한 가설도 도출할 수 있다. 전쟁 게임이란 안전해진 사람들의 안도감을 흥분으로 바꾸는 것이 본질일 수도 있다. 게임 안에서 벌어지는 액션의 쾌감, 전술의 합, 전략의 수려함은 결국 게임 밖의 나에게는 해를 가하지 않으므로. 저 사람들이 내 재미를 위해 죽어도, 나는 잠깐 마음이 불편하고 나머지 시간은 즐거우니까. 그래서 보훈은 국가의 중요한 사업 중 하나가 된다. 타인 대신 전장에서 목숨을 걸겠다고 나선 직업인들에 대한 예우다. 그럼 인간은 왜 전쟁을 게임에서 재현하고 있을까? 구성원 대다수가 전쟁에서 벗어나 안전한 문명 영역에 도달했으면서, 자꾸 그 특수한 지옥을 가져와 가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은 이렇게 뒤집어 볼 수도 있다. 인간은 전쟁을 게임 안으로 가두려 하는 걸까? 인류 문명이 전쟁을 국제 사회 질서의 한 부분으로 가두어가는 한편, 인간은 게임 규칙 속으로 전쟁을 가져오면서 콜로세움을 졸업했다. 현재의 스포츠에서 경기 도중 죽는 선수는 격투기 종목에서조차 극단적으로 적다. 오징어 게임은 어디까지나 은유이지 실제 현실에서 유사한 경기가 열리는 일은 없다. 이제 과거의 검투사 대신 뛰는 현재의 스포츠 선수는 전쟁과 유사한 활동을 할 뿐이다. 따라서 ‘대신 놀아주기’는 전쟁을 가두는 행위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앞선 질문에 대한 답은 만들기가 어렵다. 인간이 전쟁을 게임 안에 가두는 중이라면, 오히려 전쟁을 잊거나 제거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고 재현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저 질문을 다르게 바꿔보면, 전쟁은 정말 그렇게 매력적인가? 인간의 내면에는 사실 전쟁의 유혈과 광기를 동경하는 부분이 있는 걸까? 그러고 보면 인간은 모순을 사랑한다. 전쟁은 찬란한 동시에 추악하다. 어쩌면 인간은 전쟁, 전투, 싸움, 죽음을 끊을 수 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혹은 끊기 위해 게임 속에서 전쟁, 전투, 싸움, 죽음을 죽이는 중이라고 서술할 수도 있다. 혹은, 삶에서 아주 특정한 때에만 있는 이벤트라면 질병이라고 치환해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군인은 전쟁 속에서 전쟁을 해소하려 하는 의사로 비유할 수도 있고, 전쟁을 다루는 게임은 예방용 백신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개인의 인생관과 세계관에 따라 답은 달라질 수 있으니 답은 아직 없다. 다만 우리 인류가 전쟁이라는 특정 시공간 상황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기를 소망한다. Tags: 재현, 전쟁, 워게임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영상기술, 매체, 도구, 방법론으로서의 머시니마에 대한 소고
도입부에 적어둔 것처럼 머시니마는 1990년대 비디오게임 녹화기술의 등장으로 인해 가능해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디즈니의 스턴트 시뮬레이터 게임 [스턴트 아일랜드 Stunt Island](1992)에서 인게임 기능으로 처음 도입된 것이 그 출발점이다. 해당 게임은 가상의 섬에서 다양한 스턴트 시퀀스를 제작하고, 그것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녹화해 보여주는 것이 주된 플레이였다. < Back 영상기술, 매체, 도구, 방법론으로서의 머시니마에 대한 소고 26 GG Vol. 25. 10. 10. 머시니마(machinima)는 머신(machine)과 영화(cinema)의 합성어로, 비디오게임을 통해 제작된 영화를 부르는 용어다. 머시니마는 1990년대 비디오게임 녹화 기술이 일반화되며 출발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영화 분야에서 CGI를 활용한 VFX 기술이 도입되며 이미 맹아를 싹틔우고 있었다. <트론 Tron >(1982)을 통해 본격적으로 CGI가 도입된 이래, 3D 애니메이션과 VFX의 기술적 발전사는 게임엔진의 발전사와 궤를 함께한다. 게임엔진은 실시간 랜더링이 가능하다는 지점에서 영화제작에 있어 프리비주얼 단계에 사용되거나, 버추얼 프로덕션으로서 활용된다. 이 과정에서 언리얼이나 유니티 등의 게임엔진이 활용된다 [1] . 이를테면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 Ready Player One >(2016) 제작과정을 담은 블루레이 부가영상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마치 영화 속 ‘오아시스’에 접속하듯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 기기를 쓴 스필버그는 버추얼 프로덕션으로 제작된 영화 세트장을 살펴보며, 마치 VR 게임을 하듯 카메라 동선을 짜고 세트장의 디테일을 변경한다[ 링크 ]. 라이브 스크린을 활용한 <오블리비언 Oblivion >(2013)이나 디즈니+ 드라마 <만달로리안 Mandalorian >(2019~) 또한 게임엔진을 적극 활용해왔다. 비슷한 방식으로, 미술관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미디어아트 작업들 또한 게임엔진을 적극 활용한다. 국내에선 여러 전시와 영화제 등을 통해 소개된 미디어 아티스트 루양의 <물질 세계의 위대한 모험>(2020)과 <도쿠_환상을 뒤엎는 이분법적 충돌>(2023)은 자신을 직접 3D 스캐닝한 젠더리스 아바타 ‘도쿠’를 사용한 여러 작품을 내놓았다. 국내 미디어 아티스트 안가영은 (2021)을 통해 예술가들이 아바타를 사용해 도피한 세계를 그려낸다. 이들 작품은 게임엔진인 유니티로 제작되었다. 이처럼 영화, 그리고 무빙이미지 기반의 미디어아트 작업에서 게임엔진이 도입된 사례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으며, 국내외 영화/애니메이션 전공에서 게임엔진을 활용한 실기 강의도 개설되어 있다. 머시니마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글에서 게임엔진을 사용한 작업을 왜이리 길게 이야기하는가? 이는 게임과 영화 모두 움직이는 이미지에 기반해 있다는 점에서 비교되는 매체이며, 앞서 언급한 것처럼 CGI의 기술적 발전사를 공유하고 서로의 프로덕션에 서로가 활용된다는 점을 말하고자 했다. 허나 이보다 중요하게, 머시니마로 지칭되는 작품의 유형이 너무나도 다양하다는 문제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루양이나 안가영의 작업은 특정한 게임을 통해서 제작된 작품이 아니다. 게임적인 특징들, 이를테면 아바타나 메타버스와 같은 용어들로 지칭되는 디지털 가상세계의 묘사를 위해 게임의 이미지가 채택된 것에 가깝다. 이는 게임엔진으로 가상의 게임을 제작한 뒤 그 플레이영상을 토대로 제작된 송민정의 <악사라 마야 AKSARA MAYA>(2019), 김경묵의 <폐쇄회로>(2020) 등을 정말로 ‘머시니마’로 부를 수 있는가의 문제로 연결된다. 때문에 본 글에서는 머시니마를 이미 출시된 게임을 통해 제작된 영화들로 한정하고자 한다. 머시니마의 짧은 역사 머시니마의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도입부에 적어둔 것처럼 머시니마는 1990년대 비디오게임 녹화기술의 등장으로 인해 가능해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디즈니의 스턴트 시뮬레이터 게임 [스턴트 아일랜드 Stunt Island ](1992)에서 인게임 기능으로 처음 도입된 것이 그 출발점이다. 해당 게임은 가상의 섬에서 다양한 스턴트 시퀀스를 제작하고, 그것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녹화해 보여주는 것이 주된 플레이였다. 게임 안에서 영화의 한 시퀀스를 직접 만들어 보는, 전-머시니마(pre-machinima) 형태를 의도치 않게 취했던 게임이랄까. 이러한 녹화 기술은 이후 [둠 Doom ](1993)이나 [퀘이크 Quake ](1996) 등의 FPS 게임에서 리플레이를 기록하는 데모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주로 공략 영상이나 스피드런을 남기기 위한 목적에서 사용되던 녹화 기술이 머시니마로 만들어진 최초의 사례 중 하나는 < 캠퍼의 일기 Diary of a Camper >(1996)이다. 이 작품은 [퀘이크]의 클랜 레인저스(Rangers)가 제작한 것으로 100초 분량의 멀티플레이를 자유 시점의 카메라로 담아낸다. 제목의 ‘캠퍼’는 FPS 게임에서 맵 구석에 엎드려 누군가 오길 기다리는 플레이어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 작품 또한 그러한 게임플레이를 내용으로 삼는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다양한 ‘퀘이크 영화’가 등장하며 인기를 끌게 된다. 같은 해인 1996년, 또 다른 최초의 머시니마 중 하나라 불리는 < 기적 Miracle >(1996)이 갤러리를 통해 공개된다. 전투기 시뮬레이터 [F/A-18 Hornet](1996)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전투기가 물 위를 활주로처럼 달리는 모습을 담은 100초 가량의 영상이다. 이 작품의 경우 미술작가 밀토스 마네타스(Miltos manetas)의 작품으로, ‘퀘이크 영화’와 달리 작가의 개인전을 통해 갤러리에서 공개되었다. 다시 말해, 머시니마는 그 출발점부터 게이머와 미술가라는 두 주체에 의해 온라인과 갤러리라는 두 플랫폼을 통해 공개되던 예술형식이라 할 수 있다. [스턴트 아일랜드] 플레이 화면 레인저스 <캠퍼의 일기> 스틸컷 이 시기에 머시니마라는 용어가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머시니마라는 용어는 ‘퀘이크 영화’에 매료된 휴 행콕(Hugh Hancock)이 영화제작자인 고든 맥도널드(Gordon McDonald)와 함게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트레인지 컴퍼니(Strange Company)를 설립한 이후 만들어낸 용어이다. 1999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행콕과 스트레인지 컴퍼니는 몇 편의 머시니마를 제작했고, 2000년 머시니마 제작자를 위한 온라인 허브 웹사이트 ‘머시니마 닷컴’ [2] 을 오픈한다. 2002년에는 머시니마 예술과학 아카데미(Academy of Machinima Arts & Sciences)를 설립하기도 하고, 이 단체를 통해 최초의 머시니마 영화제를 개최하기도 한다. 휴 행콕은 [퀘이크]로 제작한 < Eschaton - Darkening Twilight >(1997)나, 게임사 모놀리스 프로덕션(Monolith Productions)에서 개발한 게임엔진 ‘리스테크’를 활용한 독립적인 머시니마 제작을 위한 프로젝트 리스테크 필름 프로듀서(Lithtech Film Producer)를 통해 제작한 < 오지만디아스 Ozymandias >(1999) [3] 등을 제작하기도 한다. 2006년에는 최초의 장편 머시니마 < 블러드스펠 Bloodspell > 또한 공개한다. 다른 한편으로 P2P 플랫폼과 유튜브의 등장을 통해 머시니마는 일종의 팬 무비의 지위를 갖기 된다. 루스터 티스(Rooster Teeth)가 [헤일로 Halo ](2001)을 통해 제작한 < Red vs. Blue >(2003) [4] 는 ‘편가르기’가 중심인 게임 내 전쟁 상황에서 병사들이 “우리는 왜 싸우지?”라는 의문을 갖는다는 내용의 블랙코미디로, P2P 서비스를 통해 배급/배포된 이후 2006년부터는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다. 이후 18개 시즌에 한편의 장편으로 구성된 장기 시리즈로 연재된다. 코리 아켄젤 <슈퍼마리오 무비> 스틸컷 필 솔로몬 <엠파이어> 스틸컷 다만 이렇게 대중적인 주목을 받아 온, 혹은 팬 무비로서 인기를 얻은 머시니마는 최근 힘을 잃고 있다. 머시니마 닷컴은 워너에 인수된 이후, 2019년 1월 워너에 의해 폐쇄된다. 그곳에서 운영하던 머시니마 유튜브 채널 ‘Machinima Inc.’ 또한 폐쇄된다. 2024년에는 루스터 티스가 폐업 소식을 알려 왔다. 물론 [하프라이프 2 Half-Life 2 ](2004), [카운터스트라이크: 소스 Counter-Strike: Source ](2004), [블랙 메사 Black Mesa ](2012) 등의 에셋을 활용한 머시니마 스키비디 토일렛(Skibidi Toilet)과 같은 시리즈가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기는 하다. 다만 2014년 트위치의 등장 이후 게임 스트리밍 시장이 활성화된 이후 다양한 방식의 게임플레이 영상이 유튜브 등지에 업로드되는 상황에서 ‘팬 무비’로서의 머시니마는 힘을 잃는다. 이를테면 팬 무비로서의 ‘퀘이크 영화’는 있지만 ‘GTA 영화’나 ‘마인크래프트 영화’는 (물론 존재는 하지만) 팬 무비보다는 실험영화나 미술의 영역에서 소화되는 상황이다. 영국의 작가 듀오 래리 아키암퐁(Larry Achiampong)과 데이빗 블랜디(David Blandy)가 함께 제작한 <파농을 찾아서 Finding Fanon > 시리즈(2015~2016)와 그것의 외전인 시리즈(2016)는 [GTA V](2013)의 촬영용 모드를 활용하여 제작되었는데, [GTA V]가 풍자하는 백인중심적이며 폭력적인 세계관 속에서 탈식민주의 사상가 프란츠 파농의 유실된 희곡을 선보인다는 컨셉의 작품이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Super Mario Bros. ](1983)의 카트리지를 임의로 조작해 글리치를 일으키고 그것을 통해 제작한 코리 아켄젤(Cory Arcangel)의 < 슈퍼 마리오 클라우드 Super Mario Cloud >(2002)나 <슈퍼 마리오 무비 Super Mario Movie >(2005) 또한 갤러리를 위해 제작된 작품이다. 특히 <슈퍼 마리오 클라우드>의 경우 마치 회화와 같은 방식으로 전시되었다. 그 밖에도 [GTA V](2013), [마블 스파이더맨 Marvel’s Spider-man](2018), [어쎄신 크리드 오리진 Assassin’s Creed Origins ](2017) 등 다양한 게임에서 글리치로 인해 한없이 추락하는 캐릭터들을 담은 <페더폴 Featherfall>(2019)나 필름 작업을 이어오던 실험영화 감독 필 솔로몬(Phil Sonomon)이 [GTA IV](2008)로 앤디 워홀의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한 <엠파이어 Empire>(2008)와 같은 작품들은 미디어아트와 실험영화의 교차점에서 머시니마를 실험하며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비디오에세이, 다큐멘터리로서의 머시니마 도입부에서 완성된 게임이 아니라 게임엔진을 활용한 작업들을 머시니마로 부를 수 있는가라는 하나의 의문을 제시했다. 또 하나의 의문을 제기하자면, 게임플레이의 녹화 장면을 기록하여 만든 모든 영상물을 머시니마로 부를 수 있는가의 문제다. 2021년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에서 진행된 기획전 ‘GAME x CINEMA’ [5] 는 네 개의 섹션으로 여러 ‘게임 영화’를 구분했다. <트론>이나 <레디 플레이 원> 등 ‘게임 소재’의 영화들, <슈퍼 마리오>(1993)나 <반교: 디텐션>(2019) 등의 ‘게임 원작’ 영화들, 게임과 플레이어, 제작자와의 관계를 다룬 여러 편의 ‘게임 다큐멘터리’들, 그리고 마지막이 머시니마다. 극장 대신 온라인 상영으로 진행된 이 기획전에서 머시니마로서 소개된 작품들의 구성은 꽤나 다양하다. 앞서 언급한 나 <오지만디아스>, <캠퍼의 일기>, <페더폴> 등 P2P, 유튜브, 머시니마 닷컴, 혹은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소개된 여러 작품들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유튜브를 통해 주로 소개된 여러 비디오 에세이들이 있다. 1세대 유튜버라 할 수 있는 AVGN의 [ 캐슬바니아 2: 사이먼의 원정 Castlevania II: Simon's Quest ](1987) 리뷰부터, 비디오게임 스피드런에 관한 유튜버 서머닝 솔트(Summoning Salt)의 비디오에세이, <4-2: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가장 악명 높은 레벨의 역사 4-2: The History of Super Mario Bros.' Most Infamous Level >(2018), 역시 비디오게임에서 카메라 시점의 문제를 다룬 유튜버 닉 로빈슨(Nick Robinson)의 비디오에세이 < 이것이 '2인칭' 게임의 모습이다 This Is What a 'Second Person' Video Game Looks Like >(2019) 등이 머시니마로서 소개되었다. 이들은 머시니마인가? 혹은 아닌가? 닉 로빈슨 <이것이 ‘2인칭’ 게임의 모습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다큐멘터리 영화제들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킨 <우리는 가상현실에서 만났다 We Met in Virtual Reality >(2022), <니트 아일랜드 Knit’s Island >(2023), <그랜드 테프트 오토의 햄릿 Grand Theft Hamlet >(2024) 등은 각각 [VR Chat](2014), [데이즈 DayZ ](2013), [GTA V] 등을 통해 제작된 다큐멘터리이며, 이들 작품은 일종의 메타버스로서 기능하는 멀티플레이 게임 안에서의 생활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다큐멘터리적 성격을 갖는다. 특히 이들 작품은 별도의 모드를 사용하는 대신 게임 내 캐릭터의 시점을 그대로 녹화해 사용하는데, 때문에 영화의 감독은 촬영감독이자 게임 플레이어로 활동하게 된다. 일종의 자기민속지(Auto-Ethnography)적 성격을 갖는 문화인류학적 머시니마 다큐멘터리랄까. 이와 같은 자기민속지적 맥락은 영화의 적지 않은 부분을 넥슨의 MMORPG [일랜시아](1999)의 게임플레이 녹화화면이 차지하는 <내언니전지현과 나>(2020)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World of Warcraft ](2004) 속 녹화되지 못한 순간들을 애니메이션으로 재연(reenactment)한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2024) 등과도 연결된다. 다만 <내언니전지현과 나>가 게임플레이 녹화화면을 적극 활용한다는 점에서 머시니마적 성격을 갖는, 게임을 ‘통해서’ 제작된 성격을 갖는다면,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머시니마보단 부분적으로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의 성격을 갖는다. 머시니마는 결국 영화제작의 도구이자 배경으로서 게임을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올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온라인 기획전 ‘이것은 가상이 아니다’를 통해 소개된 머시니마 다큐멘터리와 비디오 에세이들은 게임이 메타버스로서, 재연의 방식으로서 갖는 민속지적 성격과 미학적 실험을 드러낸다. 앞서도 언급한 필 솔로몬의 <엠파이어>나 토탈 리퓨절(Total Refusal)의 <근무 중 이상 무 Hardly Working >(2022)와 같은 작품은 플레이어의 개입 없이도 게임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를 그려낸다. 전자가 알고리즘에 따라 변화하는 게임 내 날씨, 빛, 소음, NPC 움직임의 기록이라면, 후자는 정해진 일과를 수행하는 [레드 데드 리뎀션 2 Red Dead Redemption II ](2018) 속 NPC들을 쫓는다. 마리 풀스턴(Marie Foulston)의 <더 그래니즈 The Grannies >(2021)처럼 게임 내 글리치를 찾아다니는 게임개발자 클랜을 담아내는 사례도 있다. 혹은 자기표현의 수단으로서 [세컨드 라이프 Second Life ](2003)나 [마인크래프트 Minecraft ](2009)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담은 <메이드 인 세컨드 라이프 Made in Second Life: The Movie >(2023)과 <유토피아를 찾아서 Tracing Utopia >(2021)가 있다. 혹은 없어진 이민자 마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해당 마을의 풍경을 [마인크래프트]로 재현한 프로젝트 <쏘텔 재팬 타운의 기억 Redefining Community: The Evolution of Sawtelle Japantown >(2018)처럼 다큐멘터리에서 재연의 영역을 머시니마로 구현한 작품 또한 존재한다. 이들 작품은 각자의 방식대로 게임을 다큐멘터리적 대상으로, 혹은 다큐멘터리 스토리텔링을 위한 도구로서 활용하고, 머시니마는 그곳에 개입하는 하나의 방식이 된다. 해당 기획전의 프로그래머 강진석은 머시니마 다큐멘터리들을 “가상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우리 세계의 일부이며 기록할 만한 것으로 재설정하는 작업” [6] 으로 정의한다. 즉, 이들 작품은 게임을 다큐멘터리가 다룸직한 세계로, 우리가 생활하고 살아가는 세계의 일부이자 확장으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발언하는 머시니마이다. 토탈 리퓨절 <근무 중 이상 무> 스틸컷 조셉 드라페 <이라크에서의 죽음> 스틸컷 그렇다면 비디오 에세이로서의 머시니마는 어떠한가? 시네마테크KOFA의 기획전에서 상영된 유튜버들의 비디오 에세이와, 미술관이나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상영된 비디오 에세이/다큐멘터리로서의 머시니마들은 서로 다른 차이를 갖는가? 물론 유튜브의 비디오 에세이들 또한 게임과 세계, 그리고 (머시니마)영화 관한 충분한 비평적 함의를 갖는다. 다른 한편으로 <이라크에서의 죽음 dead-in-Iraq >(2007)이나 <나만의 풍경: 미군이 되는 법 My Own Landscapes >(2020)처럼 게임의 군사적 활용이나 <몬도 카네 Mondo Cane >(2018)처럼 디지털 윤리에 관한 문제를 던지는 머시니마 작업, 다시 말해 하룬 파로키(Harun Faroki)의 <시리어스 게임 Serious Game >(2009~2010)이나 <평행 I-IV Parallel I-IV >(2012~2014)에서 던진 문제의식과 공명하는 작업은 하나의 경향성을 이룬다. 혹은 <구성된 순간 The Constructed Moment >(2017)이나 <말로우 드라이브 Marlowe Drive >(2017), <지옥으로의 하강 Descent into Hell >(2021)처럼 게임플레이 경험을 사적 감정의 에세이로 풀어내는 일련의 경향 또한 발견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 영화적 비디오 에세이로 여겨지는 일련의 머시니마와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는 머시니마 사이의 차이라면 그것이 영화제나 미술관 등 제도적 승인을 받았느냐 아니냐의 차이만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AVGN처럼 밈이나 격한 말투로 남기는 리뷰가 되었건, 게임의 디자인이나 스피드런 같은 특정한 방식의 게임플레이에 관한 탐구이건, 마치 영화의 숏과 몽타주를 분석하고 사조를 탐구하는 일련의 영상 비평들과 같은 비평적 행위다. 그러한 의미에서, 오디오비주얼 필름 크리틱 [7] 혹은 비디오 에세이가 비평적 성격이 강한 영화의 한 장르라고 할 수 있다면, 게임에 관한 비디오 에세이 또한 머시니마의 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 경계는 매우 흐릿하다. 다른 한편으로, 이는 게임이 영화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분석하고 리뷰할 수 있는 대상이자, ‘클래식’으로 여겨지는 작품들이 존재하며, 하나의 예술이자 문화의 형식이며, 접근이 용이한 예술적 도구로 자리잡았음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샘 크레인, 피니 그릴스 <그랜트 테프트 오토의 햄릿> 스틸컷 머시니마의 한계와 미래? 재차 도입부의 문장으로 되돌아가서, 머시니마는 게임(machine)과 영화(cinema)의 합성어다. 다만 살펴본 것처럼 머시니마는 태생부터 영화관(cinema)이 아니라 온라인이나 갤러리/미술관에서 출발했다. 게임의 이미지를 영화관의 스크린 환경에서 실험하고자 한 필 솔로몬의 실험영화와 같은 사례들이 있지만, 최초의 장편 머시니마인 <블러드스펠>은 극장이 아닌 온라인 혹은 DVD를 통한 배급만을 진행했을 뿐이다. <니트 아일랜드>나 <그랜드 테프트 오토의 햄릿>과 같은 최근의 장편 머시니마 다큐멘터리들 또한 몇몇 영화제에서만 극장상영 되었을 뿐, 일반 배급은 VOD나 무비(MUBI) 같은 OTT 플랫폼을 통해 진행되었다. 그렇다면 머시니마는 영화(cinema)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가? 아니면 단순한 영화(movie)이거나 미술관을 위한 무빙-이미지이거나 그저 또 하나의 콘텐츠인가? 물론 영화의 지위과 예전과 같지 않지만, 우리는 머시니마가 정말로 영화의 지위를 가져본 적은 없음을 생각해야 한다. 머시니마 제작을 위해 동원되는 게임의 가짓수가 생각보다 협소하다는 지점 또한 하나의 한계다. 초창기 머시니마가 [둠], [퀘이크], [헤일로] 등 녹화 기능과 멀티플레이를 지원하는 FPS 게임을 주된 플랫폼 삼았다면, 현재에 이르는 시점 동안에는 주로 [세컨드 라이프], [심즈 The Sims ] 시리즈(2000~2014), [마인크래프트]처럼 자유롭게 상황과 배경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샌드박스형 게임, 혹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GTA V], [레드 데드 리뎀션]처럼 광활한 공간과 다양한 NPC, 멀티플레이 기능과 여러 모드를 동원할 수 있는 게임들이 주로 사용되곤 한다. 이는 멀티플레이나 오픈월드 게임의 특징, 다양한 인물과 상황이 창출되거나 설정될 수 있으며 그것을 다양한 카메라 시점으로 기록할 수 있다는 지점에서 이들 작품이 채택되는 것일테다. 그렇다면 다른 머시니마를 떠올려 볼 수는 없을까? 이를테면 [프로젝트 좀보이드 Project Zomboid ](2013)로 제작해 쿼터뷰만으로 구성된 머시니마 픽션이라던가, [스타듀 밸리 Stardew Valley ](2016)나 [모여봐요 동물의 숲 あつまれ どうぶつの森 ](2020)으로 제작된 머시니마, 혹은 선명한 세계관과 내러티브를 지닌 [마블 스파이더맨]이나 [호라이즌 제로 던 Horizon Zero Dawn ](2017), [데스 스트랜딩 Death Stranding ](2019)의 머시니마 팬 무비는 불가능한 것일까. 휴 행콕 <오지만디아스> 스틸컷 어떤 면에서 지금의 게임과 게임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가 게이머들에게 새로운 공간, 그들이 게임의 구성요소들을 가지고 유희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갈 공간을 충분히 제공하지 않는다는 지점이 새로운 머시니마 플랫폼으로서의 게임을 불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머시니마의 사례는 아니지만, 과거 [메이플스토리](2001) 공식 가이드북에 ‘싸비’라는 유저가 인게임 스크린샷을 활용해 제작한 스크린툰 기억하는가? 게임 전체의 내러티브와 관계없이 한 길드의 이야기를 써내려 갔던 그러한 만화가, 지금의 [메이플스토리]에서 가능할까? 때문에 최근 게임들의 팬 무비가 자체적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 [8] 으로 유튜브에 업로드되거나, 시청자와 대화하며 개별적인 맥락의 이야기를 게임플레이와 함께 써내려가는 스트리머의 영상이 하나의 장르로 인식됨으로써 ‘이야기 기계’로서의 머시니마가 힘을 잃은 것일 수 있다. <캠퍼의 일기>나 처럼 게임플레이에서 이야기를 길어 올리던 초창기 머시니마는 머시니마의 예술적/영화적 가능성을 점쳐보고자 했던 <오지만디아스>나 <블러드스펠>과 같은 작품들과 공존했다. 하지만 현재 영화제나 미술관에서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머시니마는 게임을 창작 도구로 활용한 작품들이 아니라 게임이 자체적으로 갖는 사회적/예술적 기능에 관심을 둔 작품들이다. 유튜버들의 게임 리뷰, 스트리머의 게임플레이 영상, 게임에 관한 비평적 비디오 에세이, 게임 내에서 촬영된 다큐멘터리 등의 경계가 흐려지고, 게임에서 촬영한 무수한 콘텐츠가 오르내리는 지금, 머시니마의 방향은 영화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황을 직면하는 것을 향한다. 게임은 영화의 재료이자 도구라기보단 영화의 대상이 되었고, 그 안에서 머시니마라는 장르는 비디오 에세이와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으로 자연스레 이행한다. 일종의 메타비평으로서의 머시니마가 현재의 모습이라면, 미래의 머시니마는 어떤 모습일까? 혹은, 새로운 머시니마 극영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무수한 머시니마 속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머시니마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는 새로운 작품의 출현을 기대해본다. 언급된 머시니마 리스트 <캠퍼의 일기 Diary of a Camper> 1996 <기적 Miracle> 1996 1997 <오지만디아스 Ozymandias> 1999 <슈퍼 마리오 클라우드 Super Mario Cloud> 2002 2003 <슈퍼 마리오 무비 Super Mario Movie> 2005 <블러드스펠 Bloodspell> 2006 <이라크에서의 죽음 dead-in-Iraq> 2007 <엠파이어 Empire> 2008 <시리어스 게임 Serious Game> 2009~2010 <평행 I-IV Parallel I-IV> 2012~2014 <파농을 찾아서 Finding Fanon> 2015~2016 2016 <구성된 순간 The Constructed Moment> 2017 <말로우 드라이브 Marlowe Drive> 2017 <쏘텔 재팬 타운의 기억 Redefining Community: The Evolution of Sawtelle Japantown> 2018 <몬도 카네 Mondo Cane> 2018 <4-2: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가장 악명 높은 레벨의 역사 4-2: The History of Super Mario Bros.' Most Infamous Level> 2018 <페더폴 Featherfall> 2019 <이것이 '2인칭' 게임의 모습이다 This Is What a 'Second Person' Video Game Looks Like> 2019 <나만의 풍경: 미군이 되는 법 My Own Landscapes> 2020 <더 그래니즈 The Grannies> 2021 <유토피아를 찾아서 Tracing Utopia> 2021 <지옥으로의 하강 Descent into Hell> 2021 <우리는 가상현실에서 만났다 We Met in Virtual Reality> 2022 <근무 중 이상무 Hardly Working> 2022 <니트 아일랜드 Knit’s Island> 2023 <메이드 인 세컨드 라이프 Made in Second Life: The Movie> 2023 <그랜드 테프트 오토의 햄릿 Grand Theft Hamlet> 2024 [1] 김철현, 「게임 엔진과 영화 제작 현황」, 『방송과 미디어』, 30(1), 2025. 35-43쪽. [2] http://machinima.com/ . 머시니마 닷컴은 워너에 인수된 이후 2019년 1월 폐쇄된다. [3] 퍼시 비시 셀리의 동명 시를 원작 삼는 작품으로, “게임은 예술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영화평론가 로저 이버트가 이 작품을 호평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4] 링크의 영상은 2015년 ‘리마스터’된 영상으로, 2014년 [헤일로]의 리마스터 게임이 출시됨에 따라 머시니마 또한 리마스터가 가능해졌다. 이러한 ‘리마스터’의 가능성은 머시니마가 갖는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하다. [5] 프로그램 상영작과 소개는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koreafilm.or.kr/cinematheque/programs/PI_01337 [6] 강진석, 「다큐멘터리로서의 머시니마」, 『다큐멘터리 매거진 DOCKING』, 2025, http://www.dockingmagazine.com/contents/40/340/ [7] 오디오비주얼 필름 크리틱은 영상을 글로 비평하는 것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로, 영화에 대한 비평을 영화로서 시도하는 하나의 장르다. 비디오를 통해 영화의 수집과 편집이 용이해진 1980년대 출발하였으나, 디지털 영화로의 전환과 유튜브/비메오 등의 플랫폼 이후 더욱 활발해졌다. 자세한 설명은 다음 논문을 참조할 수 있다. 이선주,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형식’과 ‘활동’으로서 영화비평: 시네 토크, 팟캐스트, 비디오 비평을 중심으로」, 『프리뷰』, 20(2). 2023. 83-120쪽. [8] 이를테면 [스타듀 밸리]나 [할로우 나이트 The Hollow Knight ](2018), [발더스 게이트 3 Baldur’s Gate 3 ](2023) 등 인기 인디게임의 팬 무비들은 머시니마가 아니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곤 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박동수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했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하고 있다. 영화에 관한 글을 주로 쓰고, 미술, 게임, 방송 등 시각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영화평론가, 팟캐스트 [카페 크리틱] 진행자, 공동체상영 기획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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