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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은 언제 시작할까 - 북미 최대의 게임쇼, E3가 맞이한 변화와 도전

    미국에는 100일간의 여름(100 days of summer)라는 개념이 있다. 5월의 마지막 월요일에 자리잡고 있는 공휴일인 메모리얼 데이를 여름의 시작으로 본다. 한국으로 치면 현충일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 메모리얼 데이는 가진 의미와는 상관 없이 그렇게 한국의 절기로 치면 입하같은 날이다. 그리고 여름의 끝은 9월의 첫째 월요일인 레이버 데이다. 노동절 연휴가 되면 이제 여름이 끝났음을 실감한다. 대략 이 기간이 100일이기 때문에 이 때를 100일간의 여름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도 소소한 인기를 끈 영화 500일의 썸머 또한 이런 개념에서 제목을 빌려온 것이다. 여름에 특별한 시작과 끝이 있다는 개념. 이 개념에 입각해서 보자면 게이머들에게 여름의 시작과 끝은 뭘까? 게이머들에게 여름의 시작은 E3고 끝은 게임스컴이다.  < Back 01 GG Vol. 21.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ounghoon Hong Lives in California and works in the game industry. Aims to offer insight to as many people as possible through podcast appearances and contributions to various outlets. Hopes to spend a lifetime writing engaging pieces across every field, from fashion to games.

  • 비디오 게임이라는 강신술의 세계에서(장려상)

    미래의 비디오 게임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구차한 물음에 수많은 미디어들은 상당량 유사한 패턴으로 반응한다. 이를테면 어니스트 클라인의 소설이자 해당 작품을 영화화한 작품 〈레디 플레이어 원〉은 육체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아바타 캐릭터로 이루어진 초대형 MMORPG라는 형태로 구현되는데, 지금 시점에서는 구태의연한 표현에 가깝다. 1994년 방영을 시작한 〈기동무투전 G 건담〉에서도 이미 플레이어의 육체를 트레이싱해 반응하는 아케이드 대전 액션 게임이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가 주장하는 미래의 비디오 게임은 통상 플레이어 육체의 즉시적 피드백, VR을 기반으로 하는 가상세계의 확립, 대체 육체가 활동할 수 있는 사이버 스페이스적 환경이라는 3개의 요소를 고정된 표징처럼 다루는 경향이 있다.  < Back 비디오 게임이라는 강신술의 세계에서(장려상) 07 GG Vol. 22. 8. 10. 미래의 비디오 게임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구차한 물음에 수많은 미디어들은 상당량 유사한 패턴으로 반응한다. 이를테면 어니스트 클라인의 소설이자 해당 작품을 영화화한 작품 〈레디 플레이어 원〉은 육체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아바타 캐릭터로 이루어진 초대형 MMORPG라는 형태로 구현되는데, 지금 시점에서는 구태의연한 표현에 가깝다. 1994년 방영을 시작한 〈기동무투전 G 건담〉에서도 이미 플레이어의 육체를 트레이싱해 반응하는 아케이드 대전 액션 게임이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가 주장하는 미래의 비디오 게임은 통상 플레이어 육체의 즉시적 피드백, VR을 기반으로 하는 가상세계의 확립, 대체 육체가 활동할 수 있는 사이버 스페이스적 환경이라는 3개의 요소를 고정된 표징처럼 다루는 경향이 있다. 이 세가지 요소가 주장하는 것은 플레이어와 캐릭터의 일체화된 움직임으로 정확히 환원된다. 이러한 미디어가 보통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자면, 진보된 기술이 플레이어와 캐릭터라는 두 육체간에 발생하는 근원적인 ‘막(barrier)’을 제거해 줄 것이라는 상상에서 기인한 셈이다. 이는 역으로 그러한 막의 제거, 그러니까 일체적 경험을 제공하는 게임이 마치 ‘루두스적 이데아’로 인지되는 경향이 있음을 시사한다. 손가락으로 조작하는 컨트롤러, 플레이어와 캐릭터의 시점과 시간성의 분리 등은 기술이라는 한계로 인해 구현하지 못하는 일체화의 우회적 시뮬레이션에 그친다는 인식이다. 하지만 이는 비디오 게임이라는 매체에 대한 잘못된 신화에서 기인한 인식이다. 공교롭게도 우리는 비디오 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안 캐릭터와의 일체화에 대해 끝없는 미끄러짐을 경험한다. 요컨데 처음 게임 컨트롤러를 잡아본 사람의 행위를 감상할 때에, 우리는 캐릭터의 움직임을 끝없이 트레이싱하려는 이상한 율동성을 구경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게임에 익숙해질 때가 오면 그러한 율동은 금새 사라지고 마는데, 이는 어떠한 허들을 넘어가는 순간에 자신과 캐릭터가 분리된 육체라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많은 게이머들에게 여전히 골칫거리로 분류되는 3D 멀미의 경우 또한 이런 미끄러짐의 정확한 예시가 된다. 3D 멀미의 주요 골자는 플레이어와 캐릭터의 감각을 하나로 융합시켰을 때-요컨데 두 육체가 하나인 것으로 다룰 때- 양자가 느끼는 감각의 틀이 어긋남에 따라 발생한다. 공교롭게도 많은 경우 3인칭 모드로 변경하면 해소된다는 점에서 우리의 육체는 캐릭터와의 분리에 더 편안함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애당초 2D 플랫포머의 안정적인 플레이 감각이 이러한 모든 문제에 대한 정확한 해답을 주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랍 풀롭Rob Fulop의 그 유명한 문장, “그는 나예요. 마리오는 하나의 커서입니다.He’s me. Mario is a cursor.”에서 오직 후자의 문장만을 취할 생각이다. 마리오는 커서이며, 그렇기에 내가 아니다. 하지만 플레이어의 명령(command)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을 통해 하나의 총체적 현실을 도출하는 매체에서 양자의 연결을 무시한다는 것은 비교적 간단하지 않다. 때문에 두 육체간의 일체성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일정량 불가능한 문제다. 여기서 부정해야 하는 것은 두 육체가 완전한 합일을 지향한다는 목적론적 요청이다. 플레이어와 캐릭터는 확실히 일체화한다. 단, 그것은 완전한 합일을 지향하지 않는다. 애당초 플레이어와 캐릭터는 완전히 다른 감각, 시점, 정보들로 게임 내부의 세계를 바라본다. 그런 점에서 둘은 근본적으로 완전히 일체화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예를 들어 일련의 대전 액션 게임들은 상당히 단순한 현실-적과 나라는 일대일의 상황-만을 시뮬레이트하며, 플레이어는 캐릭터가 설정적으로 ‘숙달했을 것’이 당연한 동작들을 발생시키기 위해 특정한 조작을 필요로 한다.. 플레이어가 동작과 그 속성을 더 많이 익힐수록 캐릭터 역시 자신의 숙달성을 더 돋보이게 표출할 수 있기에 둘은 다소의 일체성을 지닌다. 하지만 여기서 양자간에는 완전히 다른 정보의 값을 갖는다. 플레이어는 캐릭터의 좌측면에서 상황을 바라보며-이를 통해 두 인물 간의 거리에 대해 객관적 정보를 얻는다-, 자신 뿐만이 아닌 ‘상대편 캐릭터’의 체력과 기력이라는 정보를 모두 확인할 수 있다. 게임 내부의 현실에서는 결코 가시화될 수 없는 정보다. 그 외에도 RPG의 레벨, 장비의 전투력, 스테이터스 이상이나 각 스킬의 수치화된 정보 역시 결코 캐릭터들의 현실에선 정량화될 수 없는 정보값들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플레이어와 캐릭터가 일체의 위계를 형성한다는 결론으로 연결된다. 요컨데 플레이어는 캐릭터에 비해 월등히 초월적 존재이며 그러한 초월성을 가지지 못한 캐릭터와 분리된 채 현존한다. 물론 이 초월성이 영속적 전능성을 말하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플레이어는 유대교적 신성이 아니라 그리스적 신성에 가깝다. 소위 말하는 갓 게임(God Game) 조차도 그 권능은 명백한 한계를 지닌다. (피터 몰리뉴의 〈파퓰러스〉나 〈가더스〉가 이러한 사실을 명백히 해준다.) 때문에 그 권능의 표출을 위해서는 권능을 현현할 그릇이 필요하며, 많은 경우 이는 캐릭터의 역할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의 영웅들은 플레이어라는 초월적 신성을 담기 위한 그릇, 단어 그대로의 ‘아바타(Avatar)’로 기능한다. 플레이어-캐릭터의 관계는 부분적 혹은 일시적 일체화이며 이는 강신(降神)의 메커니즘으로 이해한다면 오히려 더 명확해진다. 공교롭게도 조지프 캠벨은 영웅을 ‘신의 세계에 뛰어들어 현실의 대안을 찾아 돌아오는 자’로 규정하고, 전근대 종교에서 무당들이 행하던 사회적 역할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피력한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의 캐릭터들은 게임 내적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플레이어라는 신성에게 일시적으로 몸을 빌려주는 강신술사(Channeler)에 더 가까운 존재인 셈이다. 이러한 사실을 게임 내 컷씬(Cut-Scene)의 문제에 대입해보면 흥미롭게 읽힌다. 컷씬은 플레이어로부터 명령권을 회수하는 불능의 시간이며, 때문에 캐릭터는 충분히 자아를 되찾은 듯 행동한다. 많은 비디오 게임 플레이어들은 이 컷씬에서 캐릭터가 너무 쉽게 죽어버린다는 사실을 종종 지적하는데(게임 내부에는 명백히 회복이나 부활의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일시적 권능의 해제로부터 발생한 일이라고 상상한다면 납득할 수 있는 문제가 된다. 캐릭터의 초월성은 오로지 초월적 존재-플레이어-의 강신을 이어나가고 있을 때에 국한된다. 죽음이란 필멸자의 문제이며 애석하게도 불멸자의 위치는 오직 플레이어에게만 허용된 위치인 것이다. 절벽에 떨어진 마리오가 지정된 숫자만큼 다시 체크 포인트로 되돌아올 수 있는 건, 그 시간동안 플레이어라는 초월자에게 그 몸을 맡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디오 게임의 세계는 근본적으로 관념론적일 수 밖에 없다. 물론 각각의 게임 캐릭터들은 그들이 플레이어를 받아들이는 정도에 있어 어떠한 차이를 보이는데, 크게 상이하다 말할 만큼 세분화되지는 않는다. 그러한 관점에서 캐릭터를 다음과 같은 유형화가 가능하다. 1-신성(Deity) : 갓 게임, 건설/경영 시뮬레이션, 전략 시뮬레이션 등의 장르에서 발생하는 유형이다. 플레이어는 게임을 진행하는 와중에 특별한 아바타를 필요로하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게임에서 제공하는 권능을 육체의 제약 없이 사용할 수 있다. 2-피그말리온 아바타(Pygmalion Avatar) : 캐릭터의 커스터마이징 기능을 탑재한 일부의 게임들에서 발견되는 유형이다. 단 이 유형에서의 핵심은 인물의 조물성 그 자체라기 보다는, 근본적으로 캐릭터의 위치가 공백임을 전제한다는 점으로 특징된다. 말하자면 이 유형의 아바타는 캐릭터의 생성과 동시에 그 육체가 세계에 출현한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준다. 다수의 MMORPG의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이에 해당한다. 3-퍼펫 아바타(Puppet Avatar) : 이 유형은 피그말리온 아바타와는 달리 그 존재가 이미 세계의 내부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명백하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게임의 진행 시간 전체에서 꽤 밀도 높은 ‘자아의 공백’ 상태가 유지된다. 캐릭터는 말을 하지 않거나, 혹은 정확한 대화의 내용이 생략된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한다. 말하자면 게임의 세계가 플레이어라는 신성을 강림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직조해낸 ‘비어있는 몸’에 가까운 존재다. 초기 아케이드 게임에서부터 〈드래곤 퀘스트〉 스타일의 JRPG까지 비교적 초기 게임에서는 보편적인 유형이었다. 4-샤먼 아바타(Shaman Avatar) : 이 유형은 서사적인 관점에서 명백한 자아를 갖추고 있다. 게임의 플레이 시간의 대부분 플레이어에게 육체를 내어주지만, 주체적으로 발언이 가능하다. 때로는 완전히 육체의 권리를 되찾아 일시적인 행위를 행한다.(컷씬) 플레이어는 이 육체가 허용하는 시점에 한해서만 그 육체를 점거하고 명령을 내릴 수 있다. 때문에 이 유형의 플레이어는 특히 자주 관객의 시점으로 게임을 지켜보게 된다. 내러티브 중시의 게임들에는 일상적인 유형이다. 물론 이러한 구분이 모든 게임의 일체화의 패턴을 포용하지는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요컨데 피그말리온 아바타 혹은 퍼펫 아바타 수준의 게임들도 때로는 ‘말하지 않는 컷씬’이라는 독특한 패턴을 통해 자아의 수복을 진행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그들은 자아가 비어있기 때문에 언어를 잃었다기 보다는, 과묵한 존재라는 특정한 캐릭터리티로 설명되기도 한다. 이는 비디오 게임이 가지는 양상이 복잡해짐에 따라 플레이어의 개입이라는 패턴 역시 지나치게 다면화된 탓이다. 그런데 여기서 묘한 문제의 제기가 가능해진다. 비디오 게임 플레이가 신성한 외적 자아(플레이어)와 강신을 바라는 육체(캐릭터)의 합일의 결과라고 한다면, 이 때에 강신을 주도하는 것은 누구인가. 물론 강신이란 기본적으로 그것을 바라는 술사가 신의 허락을 취득하였기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하지만 이미 허락이 완료되었다면 이후 현상을 주도하는 것은 강신술을 다루는 술사의 몫이 되어버린다. 때문에 비디오 게임에서의 두 주체간의 주도권이란 매우 복잡한 양태로 발전된다. 캐릭터의 육체에 명령을 내리는 건 외적 자아인 플레이어이지만, 그러한 명령을 적극적으로 세계 내부에 소환하는 것은 캐릭터의 의지에 가깝다. 이 관념론적 개념을 현실의 언어로 다시 해석한다면, 플레이어는 어떠한 외삽(Mod 등)이 작동하기 전 까지는 게임 디자이너가 준비한 육체를 사용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가 된다. 때문에 종종 비디오 게임에 있어서는 원치 않는 자아와 원치 않는 육체라는 이중의 트러블이 발생하기도 한다. 불응하는 신성, 〈라스트 오브 어스 2〉 먼저 원치 않는 자아, 강신의 결과를 의도적으로 거부하려는 신성의 몸부림에 가장 근접한 예는 너티독의 〈라스트 오브 어스 2〉(이하 〈라오어2〉)일 것이다. 이 게임은 수많은 이슈를 표층으로 가져오며 순식간에 태풍의 눈으로 작동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문제가 바로 게이머 집단과 평단이라는 양자간의 가시화된 충돌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물론 그러한 일이 다른 예술의 영역에서는 일상화된 문제라고 해도 말이다. 〈라오어2〉의 양 집단간 균열에 있어서 핵심을 정치적 공정성에 관한 해석 정도로 묶는 것은 문제를 지엽적으로 만든다. 사실 이 게임의 서사와 메시지는 수정주의 이후 웨스턴으로 수십번 반복된 헤묵은 것인데, 오직 그것을 양 인물에 대한 대리 체험으로 전달한다는 면에서만 특별하다. 플레이어는 서로간에 증오를 가진 두 인물-앨리와 애비-의 플레이를 번갈아 반복하면서 양자간의 입장을 밝히는 구조로 가지고 있다. 이 게임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은 갑자기 달려들어 별 수 없이 칼로 찔러 죽였던 한마리 개가, 이후 애비와의 공놀이를 위해 다시 등장하는 파트이다. 게임적으로 설정된 소규모 안타고니스트가 상호반응이 가능한 대상이었다는 사실과 마주하게 되었을 때에 디자이너가 상정하는 이상적 구조가 대번에 파악되기 때문이다. 혹자는 여기서 개를 죽이지 않는 선택지를 삽입함으로써 플레이어가 맞이하게 될 정신적 충격을 완화할 수 있게 되기를 요청하곤 하지만, 아마 내가 시간을 돌려 최초의 플레이로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그 개를 죽이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라오어2〉의 플레이 구조에 어떠한 탁월함이 있다면 아마도 이런 구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단 이 탁월함이란 어떠한 명백한 전제를 요청하고 있다. 이 게임의 핵심과 접촉하려면 플레이어가 두 인물 모두와 ‘일체화’해야만 한다. 이 평행한 구조의 두 서사는 두 인물 모두의 입장을 체험의 형태로 제공하며, 두 인물이 가진 상이함와 동일성을 인지시키기 위해 구축되어 있다. 때문에 플레이어는 적극적으로 두 인물과 일체화해야 하는데 〈라오어2〉의 작동은 많은 경우(특히 게이머 집단들의 경우에) 이 지점에서 정지한다. 바로 신성한 자아의 적극적인 불응이다. 이 게임을 기다려온 많은 플레이어들, 그러니까 전작 〈라스트 오브 어스〉의 주인공 조엘과 ‘일체화’를 겪었던 신성들은 감정적으로 애비라는 육체를 밀어낸다. 앞서 말했듯 플레이어라는 신성은 그리스적 신성이며, 그 초월성과 더불어 매우 감정적인 존재로 특화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프로듀서라는 강신술 메커니즘의 설치자에 의해 선택의 여지가 없이 앨리/애비라는 육체로 강림하지만 그들의 감정은 이러한 강신술의 결과를 수용하지 못한다. 때문에 육체의 활동은 정확한 경험으로 치환되지 못하고 그 시점에서 정지하거나(게임을 그만 두거나), 불편한 기억으로 남는다(게임을 계속 진행하거나). 이 합일이라는 현상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조건 중 하나를 만족해야 한다. 첫째, 조엘이라는 육체와의 합일을 감정적 문제로 남기지 않는다. 둘째, 그 합일의 기억을 의식적으로 잊을 수 있다. 셋째, 혹은 모든 합일을 흐릿하게 바라본다. 즉, 강림의 정도를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애석하게도 플레이어가 가지는 초월성이란 캐릭터에 대비해 상대적인 위치에서 그럴 뿐이다. 개별의 플레이어는 자신의 삶에서 결코 초월적이지 못하기에 이러한 조건의 내부에 들어가는 것은 극히 간단하지 않다. 때문에 〈라오어2〉의 메커니즘은 부분적으로 실패를 겪는다. 이 실패의 연유는 극히 간단하다. 닐 드럭만은 앞서 언급했던 ‘완벽한 일체성의 신화’로 게임의 메커니즘을 바라본다. 말하자면 플레이어는 게임을 플레이 하는 것만으로 완벽하게 일체화하며, 스스럼없이 그 체험을 추종한다는 전제로 게임을 만들어낸 것이다. 때문에 신성이 육체에 불응할 것이라는 상상을 가지지 못한 채 현상을 바라본다. 그가 이를 윤리적 부재의 문제로 치환하는 것 역시 이러한 사실에 기준한다. ‘당연한 합일’을 이루고도 이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지성의 문제(실제로 그는 그러한 뉘앙스의 트윗을 게시했다.)이거나 윤리의 문제일테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러한 자연스러운 일체화의 신화는 환상에 불과하다. 비디오 게임의 세계에서 신성한 자아와 육체가 빈번히 불화한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것은 커다란 실수다. 이는 완벽하지 않은 강신술의 가장 주요한 사례가 된다. 거부하는 육체, 〈라이브 어 라이브〉 하지만 때로 육체가 순수한 자아를 되찾기 위해 신성을 거부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슈퍼패미콤으로 발매된 스퀘어의 RPG 〈라이브 어 라이브〉(이하 〈LAL)는 이러한 보기 드문 현상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샘플이다. 본 게임의 8번째 시나리오인 ‘중세편’은 퍼펫 아바타의 유형으로 플레이어와 관계를 가지는데, 앞선 7개의 시나리오가 샤먼 아바타였다는 사실과 비교하자면 꽤나 흥미로운 변경점이다. 이 ‘중세편’은 전적으로 에닉스의 RPG 〈드래곤 퀘스트〉의 패러디이다. 왕과 공주, 마왕, 용사 등의 표상 조합을 통해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드래곤 퀘스트〉의 세계를 상상하게 되며, 주인공 올스테드가 자아가 비어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화룡점정을 맺는다. 앞선 시나리오들과의 차이에 불구하고 의문 없이 플레이할 수 있는 것 역시 이러한 장치의 배치에 기인한다. 〈LAL〉은 철저하게 장르 중심적 시나리오를 제공하기에 중세편의 장치 역시 〈드래곤 퀘스트〉의 컨벤션을 따를 뿐이라 굳게 믿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중세편의 종반에 모든 사건을 겪은 올스테드는 퍼펫 아바타의 한계를 스스로 깬다. 그는 자신의 입을 통해 처음으로 ‘내 이름은 오디오, 마왕 오디오다!’라는 선언을 던진다. 퍼펫 아바타의 특성이 자아의 공백이라는 것을 전제한다면, 이 장면은 의도적으로 비워져있던 육체가 자아를 ‘생성해낸’ 장면으로 해석된다. 올스테드는 그 순간 자신의 육체를 점거하던 외적 자아(플레이어)를 밀어내고 그 위치에 자신의 자아를 안치시킨다. 플레이어가 일체화를 거부했던 〈라오어2〉와 반대의 역학이다. 올스테드는 비어있는 육체라는 정체성을 깨부수고 신성한 자아와의 합일을 스스로 거부한다. 때문에 이렇게 태어난 마왕 오디오는 9번째 시나리오 ‘통합편’에서 보스로 등장한다. 이 놀라운 반전은 얼핏 보면 서사적 구축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러톨로지적 관점으로는 결코 해석해낼 수 없다. 이 구성에는 캐릭터와 플레이어의 관계라는 근본적 역학에 대한 질문이 묻어있기 때문이다. 올스테드의 각성이 왜 놀라운가? 단순히 그의 수동성이라는 설정을 반전시켰기 때문인가? 중세편 시나리오 자체에 도사리는 배신의 서사 때문인가? 가장 중요한 장치는 올스테드가 말을 했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서 올스테드가 왜 말을 ‘하지 않는가’에 대해서도 답을 내어야 하는 구조다. 때문이 이 장면이 플레이어-캐릭터라는 분화된 자아-육체의 역학으로 환원되는 것이며, 캐릭터 자아의 공백은 오직 루두스적 목적에 복무하는 장치이다. 이 장면은 결코 서사적 동학의 결과물이라 말할 수 없다. 〈LAL〉의 이 사건이 가져다주는 효과는 두가지다. 첫째, 플레이어-캐릭터라는 이분화된 구조를 분명히한다. 그 둘이 분리되는 것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이 이벤트는 결코 성립하지 않는다. 둘째, 또한 플레이어의 권능을 무력화한다. 플레이어는 영구적으로 조종자라는 권능을 박탈 당하고(사실 마왕이 된 올스테드를 컨트롤할 수 있는 새드 엔딩의 선택지가 존재하기는 한다. 하지만 여기서의 그는 퍼펫 아바타가 아니라 샤먼 아바타로 기능함으로써 박탈의 기능을 일정량 유지한다.), 강신술의 압력을 통해 스스로의 손으로 그 마왕을 해치우는 길로 내몰린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초월성에 대해 의심을 가진 채 게임의 남은 부분을 진행해야 한다. 말하자면 〈LAL〉은 초월적 권능을 가시화한 뒤 그 한계를 시험한다. 〈LAL〉은 플레이어 초월성에 대한 일정량의 실험이다. 물론 이는 소위 말하는 게임 시스템에 관한 실험은 아니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서사적인 실험도 아니다. 차라리 이는 마르쿠스 가브리엘이 「예술의 힘」에서 언급한 신실재론적 예술론의 개념에 가깝다. 게임이라는 콤포지션이 그 수용자와 어떤 장(場)을 이루는지 확고히 하려는 실험이라는, 매체 그 자체에 대한 실험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정신과 육체는 더욱 불화해야 한다. 비디오 게임은 완전한 합일이라는 신화로부터 가급적 빨리 탈피해야 한다. 곤살로 프라스카가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비디오 게임」에서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언급하듯이 비디오 게임과 소격효과는 훌륭한 한쌍이다. 반응하기 때문에 몰입에 근간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관계를 간소화한 맥락의 도출이다. 비디오 게임의 메커니즘은 두 육체가 근본적으로 불화한다는 사실을 직시할 때 더 확고히 작동한다. 그렇다면 비디오 게임의 의미망은 결코 합일의 신화에 있지 않을 것이다. 〈바이오 쇼크〉에서 합일의 거짓이 폭로될 때에 비로소 의미망이 작동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정신(플레이어)과 육체(캐릭터)는 더욱 불화해야 한다. 그것만이 의미의 오작동을 멈추고, 우리에게 사유의 기쁨을 가져다 줄 지름길일 수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평론가) 이선인 만화와 게임, 영화를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합니다. MMORPG를 제외한 <파이널 판타지> 전 시리즈 클리어가 라이프 워크입니다. 스팀덱을 주로 사용합니다.

  • 게임에서 고통과 피로는 어떻게 사회적 재현이 되어왔는가?: 게임의 스트레스 재현과 스토리지의 관계에 대한 간략한 역사

    고통과 피로로서 게임에서 재현한 스트레스는 UI를 통한 연장된 체현을 넘어 시뮬레이션으로 적극 활용된다. 이는 무엇보다 시뮬레이션으로서 높은 품질의 몰입을 제공하는데, 이러한 게임에 대한 감상과 이해는 어떤 세계로 그 시뮬레이션을 이해할 것인가와 같은 문제로 이어진다. < Back 게임에서 고통과 피로는 어떻게 사회적 재현이 되어왔는가?: 게임의 스트레스 재현과 스토리지의 관계에 대한 간략한 역사 22 GG Vol. 25. 2. 10. 게임과 고통을 비평할 때 빠지지 않는 레퍼런스들이 몇가지 있다.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과 같은 책들이 그러하다. 이러한 레퍼런스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할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비평하는 것 역시 필요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고통의 역사는 뿌리깊고 도도하게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왔다. 무엇보다 비평으로 매만지기 어려운 수준으로 실재적인 현상이며, 현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없이 레퍼런스만을 빌려 주장을 펼치는 일은 인문학과 게임 비평을 풍성하게 만들기는커녕 비평의 빈곤을 야기할 수 있고, 심각한 경우 비평과 현상의 간극을 벌리는 맹아를 심는 일이 될 수 있다. 더불어 고통과 피로는 대중적으로 익숙하지만, 그 맥락과 역사는 중요도에 비해 상세하게 조명된 사례가 극히 적다. 조금 더 지면을 할해하고, 주장을 돌고 늘어뜨리더라도 인류를 훝어온 고통과 피로의 역사를 간단하게라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외재인(外在因)에 내재인(內在因)으로, 고통과 피로에 대한 이해의 역사 오랜 시간 인류는 고통과 피로를 외재적 요인에 의한 감정 변화로 믿어왔다. 물론, 그 믿음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왔다. 동양(최소한 한글)에서 말하는 고통의 경우, 먹는 것으로 인한 감정의 변화를 배경으로 두었다고 여겨진다. 국립국어원 표준대국어사전은 고통을 ‘몸이나 마음의 괴로움과 아픔’으로 정의한다. 이때 의미의 중추를 이루는 ‘괴롭다’는 ‘고(苦)+롭다’를 어근으로 하고 있다. 苦(쓸 고)는 풀 초(艹) 부수를 사용하는 한자로, ‘(맛이) 쓰다’ ‘괴롭다’ 뿐만 아니라 ‘쓴맛’ ‘씀바귀’와 같이 먹는 것과 직접 연결되는 묘사를 뜻으로 가지고 있다. 즉, 고통의 괴로움은 무엇을 먹을 때 느끼는 쓴맛을 바탕에 둔 단어라 할 수 있다. 피로의 경우에도 외재적 요인을 변화의 원인으로 본다. 疲‘지칠 피’와 勞‘일할 노’가 합쳐진 피로는 ‘지칠 때까지 일한 상태’를 의미한다. 疲(지칠 피)의 부수가 질병을 의미하는 병질 염(疒)을 부수로 두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병들 때까지 일한 상태’라는 점에서 ①[지칠 때까지 일한 상태] ②[지칠 때까지 일할 수밖에 없는 상태] 정도로 여길 수 있다. 서양에서도 고통의 원인이 외부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믿어왔으며, 이를 언어화해왔다. 결과된 사건으로 인한 고통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는 Pain의 경우, ‘처벌 또는 범죄로 인한 고통 또는 손실’ 혹은 ‘신체적 또는 신체적 고통, 지속적이고 강하게 불쾌하거나 고통스러운 신체 감각’로 정의한다. Pain보다 범용적으로 사용되는 고통인 Suffer 또한 외재적 요인을 원인으로 하는 결과로 지칭하는 데 쓰인다. Suffer의 경우 ‘고통이나 괴로움 또는 해로움이 가해진 것, 고통이나 괴로움 또는 슬픔으로 따르게 된 것’으로 정의되는데, 가해지(inflicted)거나 따르게 된(submit) 것으로 인한 감정 결과라는 점에서 외재적 요인을 고통의 원인으로 지목한다고 볼 수 있다. Suffer의 경우에는 12~13세기에 기록된 사례들을 바탕으로 정의되어 전승된 것으로, 이 시기가 중세 후기라는 점에서 ‘to submit to god’과 같이 신의 의지 하에서 벌어진 필연적 우연의 증후로 고통을 이해했다고 유추해볼 수 있다. 고통과 피로는 동서양 간에 필연과 우발 혹은 의지의 문제 등 작지 않은 차이를 가지고 있으나, 핵심적으로는 내재적 요인으로 인해 고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달리 말해, 인류는 고통과 피로가 내재적으로 발명되거나 발견되는 요인이 아니라고 믿어왔다. 더 나아가 넓은 의미에서는 그 이유가 외부에서 기인한 내부의 변화를 지칭한다는 것이다. 고통과 피로에 대한 이해는 관찰과 귀납을 바탕으로 현상을 이해한 근대의 20세기에 이르며, 스트레스라는 단어로 취합되는 경향을 보인다. 20세기에도 스트레스 역시 외재적 요인을 바탕으로 하는 것으로 이해되었으며, 이는 1936년 오스트리아 출신의 내분비학 교수 한스 셀리에(Hans Selye, 1907~1982)가 네이처지에 개재한 「다양한 유해 자극으로 생긴 증후군(A syndrom Produced by Diverse Nocuous Agents)」이라는 기념비적인 논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외재에 대항하는 내재의 고통, GAS와 스트레스 *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축 (출처: 위키피디아) 1936년 오스트리아 출신의 내분비학 교수 한스 셀리에는 네이처지에 「다양한 유해 자극으로 생긴 증후군(A syndrom Produced by Diverse Nocuous Agents)」이라는 기념비적인 논문을 출판한다. 한스 셀리에는 위 논문에서 실험군 쥐들을 ‘한겨울에 옥상 지붕 위에 올려놓기’ ‘고의로 상처 내기’ ‘극심하게 더운 보일러실에 가두기’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유해 자극(Nocuous Agents)을 가한 뒤, 실험군 쥐에서 생긴 신체적 반응과 일반 쥐의 신체 반응을 비교 측정했다. 그 결과, 다양한 유해 고통을 가한 쥐들에게서는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연속 반응 과정이 공통적으로 관찰되었다. 이 과정은 유해 자극이 들어오면 뇌의 시상하부가 코르티코트로핀 방출호르몬(corticotropin-releasing hormone, ‘CRH’)을 분비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CRH는 뇌하수체로 이동해 부신겉질자극호르몬(adrenocorticotropic hormone, ‘ACTH’)으로 불리는 코르티코트로핀을 방출시킨다. 이때 ACTH는 혈관을 통해 부신으로 이동하여 코르티솔 등의 당질코르티코이드를 분비한다. 그리고 당질코르티코이드는 부신속질을 포함해, 체내로 퍼진다. 체내로 퍼진 당질코르티코이드는 지방세포에서는 지방산을 생산하고 근육세포에서는 단백질을 분해하게 만들어 포도당 대사를 높인다. 한편 부신속질에서는 아드레날린과 노르아드레날린을 분비해 혈압 상승과 심장 박동 증가에 관여하는 등 교감 신경이 지배하는 기관의 작용을 촉진한다. 이렇게 생산된 포도당과 빠르게 돌아가는 혈류들은 뇌 등으로 에너지를 공급하여 유해 자극에 대한 대항을 촉진하고 일시적인 에너지 대사를 높인다. 이는 과정은 ‘투쟁-도피 반응(Fight or Flight Response)’으로 불리며, 한스 셀리에는 이 과정의 연속을 ‘일반 적응 증후군(General Adaptation Syndrome)’이라고 발표한다. * GAS의 3단계 (출처: 위키피디아) ‘일반 적응 증후군(General Adaptation Syndrome, GAS)’은 크게 [경계(Alarm)→저항(Resistance)→소진(Exhaustion)] 3단계로 분류되지만, 한스 셀리에는 주요한 현상은 3단계인 소진에서 나타난고 보았다. 1단계와 2단계는 투쟁-도피 반응의 강도 차이가 있을 지언정 스트레스 자극에 반응해 신체 보호를 유지하려는 항상성이 주요한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1단계와 2단계 실험군 쥐의 경우 흉선・비장・임파선이 수축했으며, 체온이 내려가고 소화기가 손상되는 공통 반응을 보였으며, 그 후 48시간이 지나면 부신이 커지고 성장과 생식선이 위축되는 2단계 반응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러나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유해 자극에 노출된 실험군 쥐의 경우 소화계·심혈관계 장애를 비롯해 궤양・우울증 등을 보였다. 이는 만성적인 상태로 신체가 신체 보호를 포기하는 상태로 해석할 수 있는 결과였다. 특히 다양한 유해 자극에 대한 공통반응이라는 점에서 ‘만원 지하철’ ‘찜통 더위’ ‘살을 애는 추위’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게되는 고통과 피로를 ‘스트레스’라는 단어로 묶어서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한스 셀리에는 위 과정이 모두 자율 교감 신경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이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과정에 의한 것으로, 통제할 수 없는 외재인에 의해 발생된 신체의 반응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대신 한스 셀리에는 외재인을 우리가 어떻게 수용하냐에 따라 우리의 행복과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믿었다. 즉, 변화하는 환경에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가 우리의 행복과 건강을 결정하는 요소라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이 주장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는 믿음이기도 하다. 누적된 내재의 피로, CSR과 사회 자본 * 셸쇼크를 겪고 있는 군인 (출처: 위키피디아) 한스 셀리에가 발표한 주장의 직관성만큼이나, 산업계는 발표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며 치료나 의료 활동에 한스 셀리에의 발표를 적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즉각적 반응에도 불구하고 한스 셀리에의 스트레스라는 개념은 처음부터 통용되진 않았었다. 오늘날 우리가 스트레스라고 부르는 개념이 통용되기 시작한 것은 양차 세계대전, 특히 세계 2차 대전의 그림자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양차 세계 대전은 대규모 사상자와 함께 급진적으로 많은 임상 데이터를 남겼는데, 그 중 하나가 전투 피로 반응(Comabat Stress Responce, ‘CSR’)에 관한 것이었다. 전투 피로(Combat Fatigue)로 불리기도 하는 CSR이란 전투 스트레스로 인해 전투 효율성을 감소시키는 다양한 행동을 포괄하는 급성 반응으로, 우선순위를 정하기 못하거나 느린 반응을 보이는 등 군사 작전의 누적 스트레스로 인한 일시적인 반응을 포괄한다. CSR는 세계 1차 대전에서 있었던 임상 데이터를 바탕으로 구축된 연구 분야다. 미국의 의료 장교 토마스 셀만(Thomas W. Salmon, 1876~1927) 등이 출판한 「영국군의 정신 질환 및 전쟁 신경증(셸쇼크) 치료와 구호」와 같은 자료를 바탕으로 발전했으나, 이러한 자료들이 세계 2차 대전으로 인해 대규모 살육을 재현하기 전까지 올바르게 활용되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일례로 셀만이 세웠다고 여겨지는 PIE원칙의 활동 등이 그러하다. PIE원칙은 ①사상자를 전투 소리가 들리는 전장에서 가까운 곳에서 치료 할 것(Proximity) ②즉각적 치료를 시행하되 특정 환자의 부상 완치를 기다리지 않을 것(Immediacy) ③모든 사람이 휴식과 보충을 거친 후 전선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도록 만들 것(Expectancy)을 요구한다. 그러나 PIE원칙은 휴식이 필요한 군인을 참호로 밀어넣는 근거로 활용되며 수많은 PTSD환자와 ‘비겁함을 보인다’는 이유로 즉결처형되는 피해자들을 양상했다. 세계 2차 대전에 이르러서야 스트레스라는 개념을 통해 ‘셸쇼크(Shell Shock)’와 같은 반응이 누적된 스트레스로 인한 것임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피묻은 경험을 통해 스트레스는 본격적으로 사회 전반에 걸쳐 의료 개념으로 통용되기 시작했으며, 학계에서 신호체계로 받아드려지던 스트레스 반응 또한 누적되면 실생활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영구적인 신체 손상을 줄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파급은 단순히 스트레스가 신체를 망가뜨린다는 데 그치지 않고, ‘외재인을 우리가 어떻게 수용하냐에 따라 우리의 행복과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믿음’을 뒤집어놓았다. 이는 오늘날 스트레스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일컫어지는 신경 내분비학자 로버트 새폴스키(Robert Morris Sapolsky, 1957~)에 의해 학제화 되었다. 새폴스키는 『왜 얼룩말은 위궤양에 걸리지 않는가(Why Zebras Don't Get Ulcers, 1994)』에서 원숭이와 같이 사회성을 가진 포유류를 연구하며, 사회성이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요소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 로버트 새폴스키 새폴스키는 종교나 사회경제적지위(Social Economic Status, SES)와 같은 지수가 스트레스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며, 그 바탕에는 사회성을 가진 포유류가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을 발전시켜 온 진화적 경향이 있다고 지목한다. 간략하게 설명하면, 사회성을 가진 포유류들은 자신의 생존확률을 높이기 위해 구체적인 시공간과 상황에 대한 출처를 기억할 수 있는 일화기억(Episodic memory)을 발전시켜왔다. 그리고 나아가 일화기억의 누적을 통해 복잡한 통계적 규칙을 의미 기억(Sementic memory)으로 가공시키고, 이를 말 그대로 ‘육체화’ 시켜왔다. 스트레스는 이러한 생존 전략에 따른 육체화 시스템의 일종이다. 이는 사회성을 가진 포유류는 통제할 수 없는 외부환경에 대항하기 위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자율신경계를 진화시켜왔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스트레스라는 말이 된다. 즉, 인간은 통제할 수 없는 환경에 쉽게 노출되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스트레스 과정을 밟을 확률이 높아진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일화기억을 누적하여 의미기억으로 넘길 때 벌어지는 상상(Imagination)을 겪을 때도 동일하게 발생한다. 새폴스키는 이 과정에서 SES지수와 같은 사회성이 스트레스와 결합된다고 주장하며, 그 과정을 예시를 통해 설명한다. 우리가 부자 동네에서 원활한 치안 서비스를 제공받으며 산다면 카페에서 화장실 갈 때 노트북과 같은 고가품을 잃어버릴 염려를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가난한 동네에서 살기 때문에 치안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면, 카페에 노트북을 가져가는 것은 도난을 경험할 확률을 높이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좀 더 쉽게 이야기하기 위해 한국적인 상황으로 번안하면, 강남에 살면 좋은 교육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자녀가 높은 미래 가치를 얻을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환경에서 살지 못한다는 사실은 ‘남들이 자신의 가치를 높일 때, 나는 그럴수 없다’를 상상하게 만들기 때문에 스트레스로 작동할 수 있다. 이는 상대적 가난이 스트레스를 높인다는 이야기가 된다. 자연히 비교가 쉽고 소통이 활발한 환경은 스트레스를 받을 확률 또한 높인다. 스토리징 시스템 역량에 따라 내재화된 시스템 지금까지 아주 거칠고 간략하게 고통과 피로가 어떻게 스트레스로 이해되었고, 스트레스에 대한 인지는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알아보았다. 그 과정을 한마디로 줄인다면 고통과 피로에 대한 인지와 이해는 외재인에서 내재인으로 변해왔다는 것이다. 컴퓨터 게임에서도 비슷한 과정이 일어나는데, 그 배경을 지목하자면 컴퓨터의 변화는 가소성(Plasticity)을 높이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왔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가소성이 높다는 것은 복잡한 프로토콜 시스템을 완성해 왔다는 뜻이며, 더 깊게는 그 프로토콜은 (적정엔지니어링이라는 전제 하에) 대용량 스토리지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대용량 스토리징이 가능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실제로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uman–Computer Interaction, ‘HCI’)의 관점에서 고통과 피로의 재현은 컴퓨터 게임에서 스토리징 시스템의 역량이 높아질수록 내재적으로 변하는 과정을 보였다. 게임 이야기를 하기 전에 아주 간략하게 스토리징의 역사를 훝으면, 스토리지는 인간의 힘을 빌리는 방식을 통해 (거의 완전히) 외재적으로 존재해왔으나, 점차 컴퓨터 시스템 안으로 내재화되며 비가시적으로 변해왔다. HCI의 관점에서 초기 컴퓨터의 스토리징은 인간의 수기를 바탕으로 이루어졌었다. 이는 최초의 컴퓨터로 호명되곤하는 애니악과 같은 경우에도 오늘날 컴파일링(Compiling)에 해당하는 과정에 인간이 동원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즉, 컴퓨터의 높은 추상 수준을 인간 언어로 표현하는 데에는 인간이 동원될 수 밖에 없었다. 이는 점차 마그넷 테이프인 플로피 디스크와 같은 자기장 방식에서 광학 방식의 CD로 발전되며 차차 가소성을 높여갔다. 그리고 SSD와 같은 반도체 수준에 이르러서는 높은 수준의 가소성을 확보했다. 더불어 하드웨어 수준의 스토리지를 넘어서, 데이터센터 바탕의 클라우드 프로토콜 단계까지 제어할 수 있는 블록체인과 같이 소프트웨어 수준의 스토리지로 발전했다. 외재성을 빌린 형식적 고통, * 테니스 포 투 (출처: 위키피디아) 스토리지가 컴퓨터 시스템 안으로 내재화된 과정은 컴퓨터 시스템을 통해 기록을 외주화하여 인간의 피로를 줄이기 위한 시도였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기록이라는 인산의 피로가 컴퓨터 안으로 스토리지가 녹아들어갔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나, 한편으로는 컴퓨터의 시뮬레이션 역량을 높여온 결과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역시 고통과 피로를 인간의 영역에서 시뮬레이션의 영역으로 옮기며 고통과 피로를 내재화하는 방식으로 변화해왔다. 게임의 고통과 피로는 초창기 게임들에서도 (굉장히) 옅은 방식으로라도 관찰할 수 있는 요소다. 그만큼 초창기 게임들에서는 스트레스의 영역에 있다고 정의하는 게 확실하지 않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추상성으로 고통과 피로를 재현했었으며, 초창기 게임에서 재현된 고통과 피로는 현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시 말해, 외재성을 통해야만 의미를 확보할 수 있는 수준으로, 고작해야 상징 수준의 고통과 피로를 재현한 셈이다. 이러한 상징으로는 승리와 패배라는 아주 기초적인 단위의 고통과 피로가 있었다. 종종 최초의 게임으로 지목되곤 하는 (1958)의 경우에 고통과 피로를 염두해두고 기획되었을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패의 개념은 명확했는데, 이는 게임의 디자인 자체가 테니스를 재현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는데, 는 원자력이 핵개발만으로 쓰이지 않으며, 평화로운 사용에도 기여할 수 있는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한 일종의 프로파간다로 제작된 매체였다는 점이다. 대중을 설득하기 위해 기획된 게임이었다는 말인데, 이는 를 디자인한 히긴보텀이 의식했든 하지 않았든 ‘놀이의 투기성’을 활용했다는 의미일 수 있다. ‘놀이의 투기성’이란 네덜란드의 인류학자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 1872~1945)의 『호모 루덴스』에서 소개되는 놀이의 본성 중 하나로, 하위징아에 따르면 사행성을 내포하는 투기는 단순히 금전적 사행성을 넘어 고대 인도의 서사시 《마하바라타》에 등장한 운명을 결정하는 주사위 게임의 사례와 같이 주술적 의미를 바탕으로 한다. * IBM 305 RAMAC (출처: 위키피디아) 놀이의 투기성은 놀이의 4가지 원칙 중 하나인 강한 경쟁성과 쉽게 혼합될 수 있으며, 놀이의 이 두 가지 요소는 놀이의 참여자로 하여금 몰입을 강하게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추측컨대 히긴보텀은 놀이가 가져오는 몰입효과를 겨냥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놀이의 투기성은 사행성이 내재한 것처럼 사적으로든 형이상학적으로든 손실이라는 고통을 창출할 수 있는 맹아이기도 하다. 따라서 가 승/패를 전제하고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UI를 통해 만들어진 가상의 경기장에서 승/패라는 일회적인 제로섬을 통해 고도로 추상적이며 형식적인 고통을 생산한다. 이는 일회적이라는 점에서 그 외재성이 더 강해지는데, 여기에는 보다 현실적인 문제들도 껴 있다. 최초의 하드디스크(HDD)로 불리는 IBM 305 RAMAC의 경우, 보조 저장장치임에도 1톤이 넘는 장치였다. 즉, 애초에 기록으로 결과를 누적시킨다는 개념 자체가 에는 심각한 오버엔지니어링이었을 수 있다. 누적과 고통의 현실적 재현, 헬스바 시스템과 그 후예들 * 퐁 (출처: 위키피디아) 을 통해 형식적 고통이 재현된 이후 게임은 고통을 누적시키는 방식으로 지 않았다. 이는 현실적인 문제로 여겨지는데, 를 계승하여 게임을 대중적으로 보급시켰다고 여겨지는 아타리의 (1972) 또한 만큼이나 간단한 그래픽과 규칙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역시 전용콘솔을 통해 보급되었다. 다만, 이를 단순히 스토리지의 용량과 크기 문제 등 하드웨어적인 문제만으로는 보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IBM이 8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상업적으로 출시한 해는 1971년이며, 이때 생산된 플로피 디스크들이 IBM370의 부품으로 사용되었다치더라도 소량의 데이터를 이동시키는 방법으로 정착된 것은 1973년 즈음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보다는 가소성을 시스템에 프로토콜화 하는 방식에 있어서 편의성을 확보하지 못했으며, 그 결과 유의미한 HCI 가치를 창출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러한 흔적은 이나 가정용으로 출시된 (1975)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당시 에 사용된 RAM을 포함해 회로 기판의 분석을 차치하더라도, 과 에서 재현되는 승/패의 형식적 고통은 이 재현한 것을 횟수로 누적하는 방식에 그쳤기 때문이다. 고통의 재현에 있어 혁신은 오히려 아타리의 <가라테>(1979)와 같이 격투 시스템을 가진 게임을 통해 진행되었다고 보인다. 그러나 격투를 통한 직접적인 가격의 고통을 기호적으로 재현하고는 있으나 원리적으로는 의 수준에서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 고통을 누적의 개념으로 바라본 사례는 ‘아타리 쇼크’를 2년 흘러보낸 뒤에야 이뤄졌다. 남코의 <드래곤 버스터>(1985)는 헬스바 시스템을 도입하며 누적된 스트레스를 게임에 내재된 UI의 형태로 구현하며 누적된 고통을 재현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러한 혁신의 바탕에는 PC의 보급과 같은 사건들 역시 한 몫했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xI284D4y1q4 * <스트리트 파이터2> 롱플레이 (출처: https://youtu.be/xI284D4y1q4?feature=shared ) 이러한 헬스바 시스템이 이용자에게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HCI로 활용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스트리트 파이터2>(1991)부터다. <스트리트 파이터2>에서는 헬스바가 일정부분 줄어들면 패배를 뜻하는 K.O.가 깜빡이는 방식으로 시각적 요소를 통해 긴박감을 전달한다. 이러한 긴박성의 연출까지 오는 데에는 <페르시아의 왕자>(1989)와 같이 플레이 시간을 60분으로 제한하고 이를 “60 MINUTE LEFT”와 같은 경고문구를 통해 시간을 한정 자원으로 제시하는 등의 플레이 디자인의 발전 또한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다만, 게임 내에서 헬스바의 상태에 따라 K.O.가 깜빡이는 형태로 가소성을 적극적으로 시스템 안으로 끌고 들어오며 피로의 누적과 고통을 엮는 방식의 스트레스를 제시하며 대중적인 호응을 얻은데 <스트리트 파이터 2>의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피로의 누적과 고통을 엮어 게임의 플레이 디자인에 가소성을 추가하는 방식은 가소성 스토리지가 어느 정도 완성된 PC들이 가정에 보급이 완료되어가며 더 각광받기 시작한다. <블러디 로어>(1997)의 경우에는 공격과 피해가 어느 정도 누적되면 동물로 캐릭터를 변신시킬 수 있는 수화 시스템으로 가소성을 내재화하기도 했다. 이렇게 특정한 값이 누적된 결과, 높은 공격성을 갖추게 되는 형태의 가소성 내재는 스트레스를 단순히 손상의 성질로 보는 것이 아닌, 변화의 성질로 해석했다는 데에서 독창성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의 현대적 사례로는 프롬소프트의 <세키로: 새도우 다이 트와이스>(2019)의 체간 시스템을 생각해볼 수 있다. <세키로>의 체간은 캐릭터의 현 상태와 피해의 누적과 방어 정도 등을 상세하게 고려하여 GAS로 해석할 수 있을 정도의 핍진성 높은 스트레스를 재현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fV_dJx5TRTQ * <세키로> 체간 시스템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fV_dJx5TRTQ ) <토탈워>, 예측하는 유닛과 스트레스 경험으로서 HCI <세키로>와 같이 플레이어 캐릭터(유닛)의 상태를 고려하여 스트레스를 플레이에 내재한 사례는 21세기 초반부터 대중화 되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세가의 <토탈워>시리즈(2000~)를 생각해볼 수 있다. <토탈워>시리즈에는 사기(Moral) 시스템이 내재되어 있는데, 물론, <토탈워> 초기작인 <쇼군: 토탈워>(2000)의 경우, 사기가 떨어지면 깃발의 색이 변하며 패주(敗走) 등으로 결과가 구현되는 스트레스 재현의 양상을 보인다. <쇼군>에서 독특한 점은 처형을 통해서 사기를 충전할 수 있게 시스템화 해놓았다는 점이다. 이는 전장에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교육을 재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나름의 윤리를 새우는 행위를 플레이에 직접 재현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게임 내에서 사건에 따라 사회성을 구성할 수 있다는 것으로, 사기 시스템을 통해 유닛이 처벌이라는 교육을 통해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학습했다고 여기는 HCI로 볼 수도 있다. <토탈워>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인 <미디블: 토탈워>에 이르면, 사건에 따른 사회성 구성이 더욱 구체화 된다. <미디블>에서는 포로의 몸값을 받는 것을 통해 사기가 충전되기도 하는데, 이는 경제적 가치를 확인하는 사건이 사기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토탈워>는 내재된 가소성에 따라 단순히 게임의 UI요소를 변경시키는 것이 아닌, 스트레스를 시뮬레이션 플레이할 수 있게 구현해 높은 수준의 HCI를 구성해간다. 더불어 높은 수준으로 구현된 HCI는 당대 전쟁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들을 보다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들고, 이를 통해 당시를 상상하게 만드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데 내지된 스트레스 시스템을 통해 <로마2 : 토탈워>를 지나치게 플레이어블하게 만든 점, 그리고 그 직후 <토탈워: 아틸라>처럼 내지된 스트레스 시스템을 내러티브를 풀어내는데 적극 활용했을 때 그 체험이 크게 다르다는 점은 곱씹어볼만한 감상을 제공한다. 이처럼 고통과 피로로서 게임에서 재현한 스트레스는 UI를 통한 연장된 체현을 넘어 시뮬레이션으로 적극 활용된다. 이는 무엇보다 시뮬레이션으로서 높은 품질의 몰입을 제공하는데, 이러한 게임에 대한 감상과 이해는 어떤 세계로 그 시뮬레이션을 이해할 것인가와 같은 문제로 이어진다. 이는 게임의 이용자가 게임에 내재된 스트레스 시뮬레이션을 통해 어떤 사회를 구성하느냐로 귀결될 수 있다. 특히 나 <리니지>와 같은 복잡한 MMORPG의 경우, (본지에서는 분량과 허락된 시간 상 패키지로 제한하여 언급된 타이틀들과 달리) 보다 생생한 가상의 SES를 구성하며 게임 내에서 체험하는 장소와 사건에 대한 해석을 의도치 않았던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를 위해서는 (통계라도 다루면 다행인) 사회학의 차원이 아닌, 심도있는 의료학적 이해와 폭넓은 컴퓨터 공학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분명 고되고 지난하며 큰 보상을 바랄 수 없는 작업이겠으나, 넓은 확장성이 기대되는 만큼 많은 관심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1] “Punishment, penalty, suffering or loss inflicted for a crime or offence.” Oxford English Dictionary, s.v. “pain (n.1), sense 1.a,” September 2024, ( https://doi.org/10.1093/OED/3543292423 ) [2] “Physical or bodily suffering, a continuous, strongly unpleasant or agonizing sensation in the body” Oxford English Dictionary, s.v. “pain (n.1), sense 3.b,” September 2024, ( https://doi.org/10.1093/OED/9428204415 ) [3] “To have (something painful, distressing, or injurious) inflicted or imposed upon one; to submit to with pain, distress, or grief.” Oxford English Dictionary, s.v. “suffer (v.), sense I.1.a,” September 2024, ( https://doi.org/10.1093/OED/7485489281 .) [4] Thomas W. Salmon,(1917). 「The Care and Treatment of Mental Diseases and War Neuroses ("Shell Shock") in the British Army」 ( https://archive.org/details/caretreatmentofm00salmrich/page/8/mode/2up ) [5] H. Matson (2016). 「The treatment of “shell shock” in World War 1: Early attitudes and treatments for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and combat stress reaction」 (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abs/pii/S0924933816023981 ) [6] 국내에는 『스트레스: 당신을 병들게 만드는 스트레스의 모든 것』(사이언스북스)로 번역되어 있다. [7] Tristan Donovan(2010). 『Replay : the history of video games』 ( https://archive.org/details/replayhistoryofv0000dono ) [8] Edwin Zschau.(1973). "The IBM Diskette and its Implications for Minicomputer Systems". ( https://ieeexplore.ieee.org/document/6536793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원) 이현재 경희대학교 K컬쳐・스토리콘텐츠연구소 연구원. 콘텐츠와 IT 산업의 동향과 정책을 연구하며, 콘텐츠 전반에 대한 비평 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국 AI 및 디지털 정책 동향 조사·분석」(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디지털 보안 동향 조사 및 분석」(한국인터넷진흥원)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한국콘텐츠진흥원) 등에 참여했으며,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문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평론 신인상 △게임제네레이션 비평상에 당선되어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

  • [인터뷰] 시뮬레이션이라는 말에 대한 동시대의 감각들 - GG필진 대담회

    이번 GG의 대담에서는 게임연구자 김규리, 평론가 이선인, 그리고 이경혁 편집장이 함께 시뮬레이션 장르의 확장과 변주 과정을 짚으며, 쉽사리 정의하기 어려운 시뮬레이션의 다층적 의미를 통해 우리가 게임 비평자로서 도달해야 할 질문은 무엇인지 탐색해 본다. < Back [인터뷰] 시뮬레이션이라는 말에 대한 동시대의 감각들 - GG필진 대담회 27 GG Vol. 25. 12. 10. 게임에 대한 무수한 분류 중 ‘시뮬레이션’ 만큼 넓고 모호한 개념도 드물 것이다. 모의 전투부터 시작해서 탑승기에 대한 모사, 역사 재현, 도시 건설과 운영에 이르기까지 시뮬레이션은 다양한 메커니즘과 재현 방식을 넘나들며 서로 다른 의미로 호출되고 있다. 장르로서의 시뮬레이션이 점차 모호해지는 상황 속에서, 현실에 대한 재현과 재미 사이에서 시뮬레이션 게임의 핵심 요소가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도 점차 여러 갈래로 나뉘어지고 있다. 이번 GG의 대담에서는 게임연구자 김규리, 평론가 이선인, 그리고 이경혁 편집장이 함께 시뮬레이션 장르의 확장과 변주 과정을 짚으며, 쉽사리 정의하기 어려운 시뮬레이션의 다층적 의미를 통해 우리가 게임 비평자로서 도달해야 할 질문은 무엇인지 탐색해 본다. -------------------------------------------------------------------------------- 시뮬레이션, 그 정의의 모호함 이경혁 편집장 : 의 대담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의 대주제로는 ‘시뮬레이션’이라는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사실 모든 게임이 시뮬레이션이라지만, 광의의 의미를 차치하고 ‘시뮬레이션은 왜 장르명이 되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면 좋겠습니다. 왜 어떤 게임은 시뮬레이션이라 부르고, 다른 게임은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보는가. 결국 우리 필진 중에 누구를 데려다 놔도 ‘시뮬레이션’이라는 의미를 각자 다르게 쓰고 있을 확률이 높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그동안 시뮬레이션은 어떤 의미였을까? 이 서로 다른 시뮬레이션을 어떻게 좀 묶어서 얘기를 해볼 수 있을까? 이런 얘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먼저 각자가 좋아하는 시뮬레이션 게임이 무엇이었는지 얘기를 시작해 볼까요? 김규리 게임연구자: 저는 <유로 트럭>을 좋아했거든요. 그냥 차를 운전하는 것뿐 아니라 (거기서 등장하는) ‘사고’가 재밌었어요. 한 번은 제가 염소 치즈를 싣고 운반지에 배달해야 했는데, 운전 경험도 없고 내비게이션을 보면서 가는데 앞길이 도로 보수 중이라 다른 길을 찾아야 했어요. 그걸 모르고 저는 한 곳만 뱅뱅 돌고 뒤에서 치즈는 다 녹고 있고(웃음) 그러다 너무 길을 못 찾는 이 상황이 화가 나서 그냥 길에 정박해서 잠을 자버렸거든요. 그렇게 했더니 날짜가 지나면서 도로 공사도 끝나고 해서 배달을 완료했는데, 제품은 손상이 되었고 결국 적자를 떠안게 된 일이 있었어요. 근데 저는 그 경험이 너무 재밌더라고요. 이경혁 편집장: 규리님은 ‘탈것 시뮬레이션’ 자체의 재미보다도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드러나는 다른 시간이나 유통 데이터에서 나오는 재미를 보신 거네요. 듣다 보니 ‘사고’가 없는 운전은 재미가 없기에 사고 자체가 탈것 시뮬레이션에서도 되게 중요한 부분이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 선인님은 어떤 걸 재밌게 하셨나요? 이선인 평론가 : 저는 <세틀러 2>가 역시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인 것 같아요. <듄 2>도 그렇구요. RTS 초기작들인데 몇 번을 클릭을 했는지 몰라요. 그 멍청한 CPU와 몇 번씩을 (싸우고) 한 번씩 클리어를 다 해보고 했네요. 이경혁 편집장: 소위 말해 탑뷰로 하는 시뮬레이션들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재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상황을 내가 보고 통제할 수 있다는 전지전능감이라고 할까요? <심시티>부터 시작되는 그 느낌이 있죠. 제 얘기도 해보자면, 저는 여러 게임 장르 중에서도 시뮬레이션을 전문으로 합니다. <산소미포함>, <드워프 포트리스>, <파밍 시뮬레이터>, <투 포인트> 시리즈, 최근에는 <캡틴 오브 인더스트리>라고 섬에서 하루 종일 자원만 파는 게임도 있네요. 그러다 <림월드>로 넘어가고요. 완전히 시뮬레이션 매니아로 인생을 살았는데 이번 주제를 하면서 생각보다 제가 좋아하는 장르가 되게 마이너했다는 걸 깨닫기도 했어요. 혹시 처음으로 해본 시뮬레이션 게임은 무엇이셨나요? 이선인 평론가: 제가 처음 해 본 시뮬레이션은 <듄>보다도 더 앞으로 가네요. <삼국지 1>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시부사와 코우가 만드는 코에이 역사 시뮬레이션 시리즈가 제일 기억에 남지 않을까요? <노부나가의 야망>이나, 나폴리를 다루는 <랑펠로>, 몽골을 다루는 <원조비사> 같은 게임들이 있었죠. 그러면서 <대항해시대> 시리즈로 넘어가게 되네요. 이경혁 편집장: 역사 시뮬레이션이라고 하니 저는 최근에 <크루세이더 킹즈> 동아시아 패치가 나와서 이 바쁜 와중에 해봤거든요. 기본적으로 봉건제 시뮬레이션을 표방하고 있는데, 동아시아에는 봉건제가 없으니까 중세의 백작, 남작 같은 걸 어떻게 구현할까 싶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공부만 하더라고요. 중간중간 결정도 ‘이번 과거시험에서 컨닝을 할까 말까’였어요(웃음) 나름 시뮬레이션 게임이니까 중국 역사를 다뤄야겠다는 고민을 한 것 같은데 그 철저한 고증의 결과가 이런 거죠. 중국의 사대부라는 건 공부가 답인 거고. 또 서양은 자기 영지와 장원이 있잖아요? 근데 여기는 관료제니까 시험을 잘 보면 자꾸 다른 데로 발령을 내더라고요. 이선인 평론가: 그게 뭔가 ‘시뮬레이션을 해야 된다’는 자의식이 그런 것들을 자꾸 만들어내는 느낌이 있네요. 이경혁 편집장: 그 부분이 재미있습니다. ‘시뮬레이션을 해야 재미있다’는 얘기가 여러 방식으로 변주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시뮬레이션 게임 평가를 잘 들어보면 고증에 맞지 않는다는 평가와 고증을 너무 심하게 해서 재미가 없다는 평가가 같이 나오잖아요. 아까 말한 탈것 시뮬레이션의 맥락이 아니라 정말 어떤 메카닉 자체를 재현하는 방식의 시뮬레이션에 있어 재미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되는 듯합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에게 보편적인 시뮬레이션이 뭐였을까 생각해 봤을 때 딱 하나가 떠오르는데요. <심즈>입니다. <심즈>가 그렇게 인기가 많은 이유는 뭘까요? 즉 일상생활의 시뮬레이션이 어떻게 게임이 될 수 있을까의 문제입니다. 엄밀하게 정의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 이유를 얘기하다 보면 우리는 시뮬레이션이 게임으로서 이런 의미다를 좀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이선인 평론가: 원래 일상생활이 제일 재미없는 것들 중 하나인데, (<심즈>류는) ‘햄스터’의 대용물 같다는 뉘앙스가 있긴 해요. 내가 완전히 플레이 캐릭터로서의 삶을 대행하는 느낌이라기보다는 내가 누군가의 삶을 관리해 준다는 느낌이 좀 강하게 들다 보니까요. 그런데 실은 시뮬레이션의 정의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제가 이번에 에 청탁을 받고 <테라 닐>을 보내긴 했는데, 다시 (플레이)하면서 이게 시뮬레이션이 맞나 싶더라고요. 아무리 봐도 이건 퍼즐 게임이에요. 그러면서 근래 했던 게임들을 다 짚어봤는데 모두 시뮬레이션이라고 하면 할 수 있고 아니라고 하면 또 아닐 수 있겠더라고요. 심지어는 <쥬라기 월드 에볼루션>도 그래요. <어쌔신 크리드>의 디스커버리 모드 같은 것도 시뮬레이션 쪽인데 이 게임은 시뮬레이션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도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고요. 그렇게 되니 이제 와서 이걸 시뮬레이션이라고 부르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고. 그걸 장르로 불러야 되는지도 좀 막막해진 상태입니다. 김규리 게임연구자: 게임도 광의의 의미에서 그렇고 시뮬레이션은 정말 다양한 범주의 의미화가 가능하잖아요. 그런데 시뮬레이터라고 부르는 게임이나 소프트웨어를 보면 저는 뭔가 정밀한 숙련 조작을 할 수 있는 기술처럼, 어떤 차갑고 중립적인 이미지가 늘 뇌리에 떠오르더라고요. 역사라든가 내러티브 혹은 재현의 외피를 덜어낸 가장 기계적인 메카닉이 시뮬레이션 장르에서 핵심이 된다는 인상이 항상 있었어요. 그래서 외피나 재현 같은 건 분할 가능하지만, 핵심적인 조작은 어디든 적용이 될 수 있게끔 하는 (메커니즘을) 시뮬레이터라고 부르는 게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방금 시뮬레이션이 차갑고 중립적인 느낌이 있다고 하셨지만, 역으로 <염소 시뮬레이터> 같은 경우엔 또 다른 의미가 되지 않나요? 하지만 그 게임도 보면 시뮬레이터라고 부르죠. 이선인 평론가: 그렇죠. 심지어는 최근에 나온 <크라임 씬 클리너>도 청소 시뮬레이터에 속하지만 서사가 쫀쫀하게 들어가 있고, 어떤 범죄적 세계로부터 이탈하려는 주인공의 강력한 욕망 같은 게 항상 이 밑에 도사리고 있거든요. 그렇다면 이처럼 강력한 내러티브를 품고 있는 게임은 시뮬레이션이 아니라고 해야 되는가라는 문제에도 봉착한 것 같아요. 장르가 아닌 선언으로서 시뮬레이션 이경혁 편집장: 결국 ‘시뮬레이션이 정말 장르일까?’ 라는 문제로 들어가게 되네요. 장르로 시뮬레이션을 얘기한다면 그래도 지금보다는 좀더 두터운 정의를 해야 될 것 같은데, 장르로서 이 게임은 시뮬레이션이고 저 게임은 아니다를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 생각도 들긴 하네요. 이선인 평론가 : SRPG라고 하는 장르도 예전엔 Simulation RPG의 줄임말이었는데, 요즘은 Strategy RPG로 쓰더라고요. RTS(Real-Time Strategy)도 원래는 리얼타임 시뮬레이션이었잖아요. 시뮬레이션이라는 용어들이 게임 분류에서도 다 탈각되고 있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맞습니다. 실제로 Simulation이 Strategy로 바뀌는 순간에 ‘이 게임이 왜 시뮬레이션이냐’는 방식의 여러 논쟁과 반발들이 있었던 게 기억나요. 예전에 우리는 <스타크래프트>를 시뮬레이션으로 받아들였지만, 후대에는 어딜 봐서 시뮬레이션이냐는 반응이 있죠. 이선인 평론가: 제가 정리를 좀 해봤는데, 그렇다면 왜 과거의 Simulation에서 Strategy가 되었느냐를 생각해 보니 복잡계의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삼국지>라고 하면 아케이드, RPG 같은 당대의 (다른) 삼국지 게임들에 비해 코에이 삼국지의 복잡계가 높다는 느낌을 받아요. 즉 복잡하니까 더 다양한 뭔가를 수행할 수 있고 그게 ‘시뮬레이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은데. 다른 장르들의 복잡계가 상승하면서 기존의 시뮬레이션 장르들과 매우 유사한 지점에 온 것 같거든요. <삼국지 2>와 <마운트 앤 블레이드>를 비교하면 후자의 복잡계가 압도적으로 높아요. 전자는 이미 시뮬레이션으로서의 가치가 좀 없어 보이는 느낌도 있죠. 이경혁 편집장: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봐도 재밌을 것 같아요. 복잡계라고 표현해 주신 게 어떻게 보면 연산의 양과 연산에 활용되는 데이터의 수, 연산 노드 자체의 개수라고 말해 본다면, 옛날 <삼국지 2> 돌리는 PC로는 <마운트 앤 블레이드>를 돌릴 수가 없죠. 그런데 특히 그래픽 같은 외적인 것 말고 순수하게 게임 안에서 작동하는 메커니즘 자체에 들어가는 연산 수가 결국은 시대의 평균이 있는 거잖아요. 그 시대의 평균을 가지고 우리가 똑같이 존재하는 현상 자체를 모사하고 재현하는 과정에서, 메커니즘 자체에 들어가는 연산의 양이 (어느 정도 있다면) 실제 연산결과와 무관하게, 이렇게 방대한 데이터의 연산을 통해 가상 세계를 구현해냈다고 말할 수 있는 일종의 외피로서 ‘시뮬레이션’이라는 용어가 활용되었던 건 아닌가. 이렇게도 얘기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본다면 시뮬레이션은 장르라기보다는 선언에 가까울 수도 있겠네요. 그렇다면 요즘 저런 식으로 시뮬레이션을 표방하는 게임이 있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김규리 게임연구자: 그리고 애초에 거기서 전제되는 시뮬레이션과 게임 간의 일종의 우열 관계가 있잖아요. 시뮬레이션이 (다른 게임보다) 좀 더 현실적인 거고 좀 더 정밀하게 재현한 것이라는 함의가 계속 개입이 되는데, 지금은 그것 자체가 와해된 지경에 이르지 않았나. 그래서 더 이상 그런 부분이 작동을 하지 않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혹시 손갑철이라는 분을 아실까요? 그 분이 거의 30년 전부터 하이텔 시뮬레이션 게시판에서 활동한 것을 바탕으로 <마이크로소프트 플라이트 시뮬레이터>에 대한 해설서를 집필하셨어요. 엄청난 두께인데, 이게 내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항공에 대한 모든 것을 숙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사명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작업이잖아요. 시뮬레이션을 대할 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굉장히 진지하고 일종의 사명 의식까지 느낄 정도의 마음가짐일 수도 있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이경혁 편집장: 아까의 얘기가 개발자가 선호하는 시뮬레이션이었다면, 규리님 말씀은 이용자가 받아들이는 시뮬레이션의 차원인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가 와닿는 게, <크루세이더 킹즈>를 할 때도 저는 어쨌든 과거를 열심히 봤단 말이에요. 이 시스템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기보단 주어진 대로 과거에 급제해야겠다, 내가 급제를 못하면 아들을 잘 키워서 급제시키겠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 게임에 빠져들었거든요. 그냥 한 사람의 일생이라는 걸 계속 그렇게 만들어 가려고 했으니까 저는 그걸 시뮬레이션으로 받아들인 거죠. 시뮬레이션은 중립적일 수 있는가? 이경혁 편집장: 그렇다면 시뮬레이션이라는 건 두 축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개발자가 연산을 통해 세계를 구현하려고 했다는 선언, 그리고 그 선언을 진짜 나의 플레이로 받아들이려는 일종의 태도. 이 둘을 같이 얘기할 수 있겠네요. 개발자와 소비자가 같이 만들어가고, 그 두 개가 일치되는 지점이 있으니까 시장에서 상품으로 기능하는 게 아닐까요. 혹시 이런 지점에서 정말 재미있게 하신 시뮬레이션 게임이 있으실까요? 게임 메카닉도 잘 만들었고, 개발자들 선언에 동의하며, 나도 정말 즐겁게 플레이했던 게임이. 이선인 평론가: 저의 경우 재미있게 하면 보통 시뮬레이션의 느낌을 좀 덜 갖는 느낌이 있습니다. 아까 <세틀러 2> 얘기를 했는데 이게 시뮬레이션인가 싶으면 그런 세계가 어디 있나요, 말도 안 되긴 해요(웃음) 이경혁 편집장: 저는 <세틀러> 류 중에는 옛날에 로마가 나오는 <시저 3>을 재밌게 했었는데, 그것도 누군가가 시뮬레이션의 관점으로 접근을 하면 말이 안 되긴 해요. 그 게임은 도로를 건물에 효율적으로 붙여야 작동을 하는 게임인데, 시뮬레이션과는 무관해 보이지만 사람들은 그걸 가지고 로마 시대를 굉장히 재미있게 만든 시뮬레이션으로 받아들입니다. 또 처음엔 다 날음식만 먹다가 로마 액젓이나 와인이 공급되고 집을 업그레이드하면서 점점 재밌어지죠. 그러면 사람들은 (게임에서) 그 길의 문제를 본 게 아니에요. 그게 어떻게 보면 우리가 시뮬레이션에서 디테일을 크게 보지 않아도 납득할 수 있는 지점인 것 같기도 합니다. 김규리 게임연구자: 이 경우는 오히려 게임 메카닉 자체는 로마랑 관계가 없는 건데 어떤 장식적인 요소를 통해 역사 시뮬레이션이라고 느끼게 되는 경우 같네요. 이경혁 편집장: 사실 게임 메카닉 자체는 <심시티>가 한 번 확립한 운영 건설 시뮬레이션 메커니즘이 계속 변주되는 거라 생각합니다. ‘시티 빌더’ 얘기 쪽으로 들어가볼까요? 이게 왜 재미있을까. 사실 <심시티>가 갖고 있는 독특한 메커니즘 하나가 배제이긴 합니다. 기본적으로 시장 행정가의 시점으로 게임을 운영하기 때문에 게임 목적에서 이미 자기가 보유한 토지의 가치를 올린다는 방향이 설정되어 있죠. 빈 땅에 인프라를 깔고 산업을 늘려서 세금을 걷고 재투자를 해서 마천루가 가득한 스카이라인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재미있는 게, 이 게임엔 원래 땅에서 살던 사람들에 대한 얘기가 빠져 있습니다. 결국 젠트리피케이션 얘기로 갈 수밖에 없는거죠. 제가 보기에 <심시티>가 설계하고 재현하는 세계는 어떻게 보면 주류 상업경제의 세계인 거죠. 김규리 게임연구자: 실제로 <심시티> 제작자 윌 라이트가 도시 경영 메커니즘을 꾸리기 위해 제이 포레스터의 도시계획이론서 <어반 다이나믹스(Urban Dynamics)>를 참고했다고 하더라구요. 이경혁 편집장: 그렇다면 아까 얘기한 대로 ‘시뮬레이션’이 굉장히 차갑고 기계적이고 중립적인가? 에 대해 아니라는 반례를 댈 수 있겠네요. 이 얘기는 요즘 사회과학 쪽에서 많이 얘기하는 기술의 중립성 문제와도 맞닿는 게 아닌가 싶어요. 시뮬레이션이라는 것이 중립적일 수 있을까? 우리가 특히 어떤 정치 사회 문제를 다루는 시뮬레이션을 이야기할 때는 이 얘기를 꼭 같이 해야하지 않을까 해요. 그래서 사실 비평하기 제일 좋은 장르가 시뮬레이션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김규리 게임연구자: 앨피 본이 <게임, 사랑, 정치>에서도 계속 미연시를 공격하죠. 문화적으로 잘못된 아이들의 관계맺기 방식이라는 식으로 좀 나쁘게 이야기를 하는데. 그러니까 시뮬레이션이 마치 아케이드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그 자체의 메커니즘을 플레이어의 오감 속으로 그냥 편입시켜 버리는 방식으로서의 시뮬레이션 자체를 (얘기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결국 그게 우리가 살고 있는 구조랑 착종되어 있고 그 구조가 평탄하지 않다면 비판의 대상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선인 평론가: <심시티> 시리즈가 나올 때 실제로 북미에서 비판적인 의견이 많았던 것 같아요. 제가 찾아보니 심지어 도나 해러웨이도 책의 한 꼭지로 글을 쓴 게 있네요. <심시티>를 다룬다는 건 지도를 그리는 것과 같다는, 말하자면 문명의 통치로 전환시키는 국면이라는 논조의 비판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게이밍 기술로서의 시뮬레이션이 결국 세계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가상의 데이터로 설계해서 그 가상 공간 안에서도 작동하게 만드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당연히 이 기술을 갖고 뭔가 표현하는 건 굉장히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거죠. 저는 <대항해시대> 게임의 영문 표현이 , 차트가 되지 않은 바다라는 것도 흥미로워요. 지도상의 발견이라는 게 아직 미개척된 세계를 다 차트화하는 과정인 건데, 그렇다면 시뮬레이션이라는 게임이 우리가 존재하는 세계를 다루는 과정도 결국 일종의 ‘차팅’이 아닐까요? 우리 사회에는 그냥 불연속적이고 자연적으로 있는 어떤 현상과 사건들을 디지털 게임 안에 넣으려면 이거를 필연적으로 그리드화해야 하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일종의 깎여 나감들이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가 (시뮬레이션에서) 봐야 될 건, 무엇이 깎여 나갔는가? 혹은 무엇을 어떻게 연산했길래 우리는 저것이 매우 자연스럽다고 이해하게 되는가? 이런 과정일 것 같습니다. 이선인 평론가: 사실 곤잘로 프라스카 이후 우리가 게임은 시뮬레이션이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현실로부터의 선별이 있을 수밖에 없을 텐데요. 우리가 구태여 시뮬레이션이 더 정치적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도 결국 이게 현실의 모사임을 전제하게 되는 측면이 있어서 그런 것 같거든요. 예를 들면 우리가 <진삼국무쌍>을 할 때 병사 얼굴이 안 나오는 것에는 신경을 안 쓰는데, <어게인스트 더 스톰>을 할 때 노동자들 얼굴이 안 나오는 것에는 신경 쓰곤 하잖아요. 어떤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다'라는 것이 우리에게 현실을 자꾸 비추게 만드는 근간이 되는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SF 시뮬레이션은 어떻습니까? <갤럭틱 시빌라이제이션>이나 아니면 <문명>을 이야기해보아도 좋겠네요. <문명>을 다루는 비평의 방식도 사실은 세대가 좀 바뀐 것 같습니다. 초창기1세대에 <문명>이 극찬받은 이유는 일종의 대본이 없이 AI들에게 상황과 조건만을 부여했더니 이들이 역사를 만들어가는 방식이 실제 역사랑 유사했기 때문이었거든요. 2세대에 들어오면 이 게임의 근간에 자리하는 제국주의 이데올로기 비판이 나옵니다. 실제 등장하는 대부분의 문명들이 전근대적 제국주의건 근대적 제국주의건 ‘확장성’에 기반한 문명들이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 피드백을 받아서 <문명> 4편 이후부터는 제3세계와 비서구, 비남성을 다루기 시작합니다. <문명> 같이 실존하는 역사의 시뮬레이션을 다루는 것도 재미 측면에서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선인 평론가 : 하지만 여전히 어떤 문명을 고르더라도 (게임 내에서) 지정된 테크트리는 서유럽 중심으로 이미 짜여져 있기 때문에 어떻게 가도 (진행이) 똑같아지는 부분은 비판받고 있지요. 말씀하신 제국주의나 비서구, 비남성 문제를 <문명>이 일종의 스킨의 측면에서 돌파하려고 했었던 게 오히려 위화감을 줬던 것 같아요. 김규리 게임연구자: 맞습니다. 기존의 똑같은 서사와 구도에 캐릭터 스킨만 바꿔서 ‘여성도 지배자야’라고 이야기하는 게 도대체 어떤 임파워링이 될 것인가에 대한 회의도 있었죠. 이경혁 편집장: 그렇죠. 실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메이저한 인류의 역사라는 원전 자체가 굉장히 남성 중심적이고 전쟁과 전복, 확장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왔기에, 역사 시뮬레이션을 만들 때 다른 얘기를 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을 겁니다. 이에 앞선 선결 과제가 ‘대안 역사’일 텐데, 결국 전쟁과 갈등 없이 게임이라는 디자인이 가능한가? 라는 질문에 도달하게 돼요. 대부분의 게임들이 충돌과 갈등과 극복을 핵심 메커니즘으로 삼다보니 여기서부터는 좀 어려워지더라고요. ‘도구’로부터 ‘놀이’로, 시뮬레이션의 이행 이경혁 편집장: 지금까지의 얘기를 정리해 보자면, 재현하려는 오브제가 눈에 보이는 뭔가가 아니라 그 뒤에서 작동하는 일종의 구조나 메커니즘일 경우 대부분 시뮬레이션이라는 방법을 사용해 재현하려고 하는 거겠죠. 예를 들어 <심시티>에서는 도시 자체보다도 도시와 세상이 돌아가는 메커니즘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 거고요. 그럴 경우 현실의 문제를 외피를 넘어 한 겹 더 볼 수 있는 도구로서의 시뮬레이션은 충분히 유의미할 겁니다. 어떻게 보면 비판적 게이밍이나 사회 참여적 게이밍을 할 때 ‘시뮬레이션’은 굉장히 효과적인 방법론으로도 이해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뮬레이션을 우리가 이것만 가리키진 않지요.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운전 시뮬레이션은 또 완전히 다른 얘기입니다. 우리는 이것도 시뮬레이션이라고 부르는데 이건 다른 시뮬레이션이잖아요? 김규리 게임연구자: 제가 사실 이번 취재를 하면서, 운전에 문외한이라 익혀볼 겸 운전면허 시뮬레이션도 알아봤는데요(웃음). 물론 시뮬레이션 운전이 효과가 있느냐에 대한 이견들도 많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비용 절감의 문제가 제일 클 거에요. 이경혁 편집장: 아니 저는 그 얘기를 듣고 진짜 놀랐는데, 요즘은 면허 시험을 직접 운전이 아니라 시뮬레이터를 하고 딴다면서요? 많이 싼가요? 김규리 게임연구자: 운전 시뮬레이션은 40시간 정도 연습권이 한 50만 원 정도인데 일반적으로 그냥 운전면허 준비장에 가는 것의 반값 정도에요. 훨씬 더 싸고 체험도 많이 할 수 있어서 다들 간다고 하더라구요. 현실을 쉽게 모조하고 대체하면서 비용까지 절약해 주는 이점이 확실히 큰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이 얘기야말로 게임의 방법론이 되기 이전의 시뮬레이션의 방법론이네요. 예를 들어 전쟁을 직접 하면 너무 많은 비용이 드니 모의 게임으로 효과를 보자. 이런 차원의 시뮬레이션은 지금도 많이 쓰지 않을까요? 전투기 조종사들 시뮬레이션도 있을 거고요. 김규리 게임연구자: 네. 마이크로소프트가 프로그램화하기 이전에도 ‘플라이트 시뮬레이션’은 역사적으로 계속 존재했는데, 미국에서 양차 대전 사이에 항공기 운송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비행사 양성 비용 문제 때문에 그전까지는 유원지에나 처박혀 있었던 조종 시뮬레이션이 본격적으로 훈련에 도입됐다는 얘기가 있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 확실히 어떤 정형화된 환경을 만들어 놓고 이 사람이 이런 환경 안에서 충분히 조작을 숙지하면 그 이후에 현실에서 어떤 변수가 오더라도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어떤 항상성에 대한 일종의 평균치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자체가 이 영역 전반에서 크게 작동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번에 조사하다가 신기했던 게, 한국에서 나온 어떤 논문은 아예 인공지능 주행 자동차의 AI 알고리즘을 에 박아 놓았더라구요. 아예 연구논문을 이렇게 구성한 걸 보면서, 이런 구성이 게임 밖 세계에서도 그대로 통용되리라는 믿음이 작동하고 있고. 그 믿음을 통해서 이것이 학술 장에 등록이 되고 학계의 지식 자체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가 됐구나 하는, 너무도 당연스럽겠지만 저에게는 새로웠던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이선인 평론가: 약간 옆으로 뛰는 얘기지만,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명에 나름대로 영향을 준 전봉 같은 곳이 있는데요. 옛날에 SSI(Strategic Simulations, Inc.)에서 나온 <컴퓨터 비스마르크>라는 전략 시뮬레이션이 있는데, 아발론 힐의 보드게임 <비스마르크>와 유사했죠. 처음 이 시뮬레이션이라고 하는 용어는 어느 정도는 ‘테이블 게임을 시뮬레이트한다’는 의미에서 썼던 것 같아요. 그 후 이 용어가 일반론으로 넘어오면서, 예를 들면 시스템 소프트의 <대전략> 같은 게임들을 시뮬레이션이라고 부르면서 정착된 느낌이 있는 듯해요. 이경혁 편집장: 그래서 저 또한 시뮬레이션이라는 단어가 정체불명이라고 생각하는 순간들이 있어요. 예전에 군대에 있을 때 BCTP(Battle Command Training Program)이라는 걸 해본 적이 있었어요. 우리 사단과 어느 사단을 지정해서 이 두 사단이 모의 전투를 벌이는 거예요. 그런데 이때의 시뮬레이션은 재미 용도가 아니잖아요. 특히 직업군인들은 진급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 성과의 문제고 일종의 실제 용도에 가까운 시뮬레이션이었는데 우리 부대 단장은 그 전투를 즐기더라고요. 그래서 아까 얘기했던 시뮬레이션이 현실의 도구에서 ‘재미’로 넘어오는 어떤 순간에 좀 이런 것도 있었던 게 아닐까 해요. 이선인 평론가: 생각해 보면 그렇네요. 시뮬레이션이라고 하는 게 본질적으로 어느 정도 재미를 담지하고 있는 거라면, 결국에는 실패의 가능성이 적다는 것. 현실적으로 실패에 대한 피드백이 극도로 낮기 때문에 이걸 즐김으로써만 빠져나올 수 있는 부분이 되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이 실패는 나를 죽이지 못하잖아요. 그러니까 재미있는 거죠,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심지어 게임 오버가 되어도 사람들은 세이브 로드를 하면서 그 삶과 경계를 왔다 갔다 하는 거니까요. 시뮬레이션이 가격이 싸서 발전한 놀이라고 하지만, 사실 플레이를 생각했을 때는 절대 싼 가격은 아니에요. 비행 시뮬레이션 매니아들은 이 장비를 다 갖추잖아요. 제 친구는 한 4-500을 썼는데, 기종이 하나 바뀌면 이 세팅 장비를 전부 다 바꿔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흥미로운 건 그 친구가 비행 시뮬레이션을 하다가 관제에 흥미를 갖게 되서 언제부턴가 게임에서 관제만 하기 시작하더라구요. 게임사도 그런 플레이어들의 수요를 아니까 그 관제 기능을 추가해 준 거죠. 여기서는 뭐가 재미가 될지 모르는 거에요. 이선인 평론가: 근데 이쯤 오면 시뮬레이션과 롤플레잉에도 어느 정도의 상당한 섞임이 생기네요. 어떻게 보면 롤 플레잉이라는 장르명은 잘못 뺏긴 것 같아요. 이쪽이 롤 플레잉이란 장르가 되어야 했던 건 아니었을까? (웃음) 이경혁 편집장: ‘롤플레잉’도 두 가지로 구분한다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추상화된 형태로 롤 플레이를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과 오히려 추상적이지 않은 구체적인 걸로 롤 플레이를 시키는 것, 이 둘의 차이로 갈라지는 거 아닐까요? 김규리 게임연구자 : ‘쉽 시뮬레이터’ 같은 것도 엮어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사실 플라이트에 비하면 쉽 시뮬레이터는 좀 발달이 늦긴 했거든요. 여러 이유가 있긴 하겠지만 제가 알기로 전쟁을 배경으로 해서 비로소 쉽 시뮬레이터가 대중화된 형태로 나왔다고 들었어요. 내가 이 망망대해에서 하염없이 바뀌지도 않는 파도를 보며 플레이하려면 결국 어떤 종류의 목적의식을 계속 고취해야 되잖아요. 그런 맥락에서 전쟁이라는 뒷설정 같은 것들이 활용되면서 훨씬 그 상황에 이입하게 만들어 주는 거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일종의 롤 플레잉을 하면서 배의 조정 자체에 내가 사명감을 지니고 동화될 수 있도록 그렇게 작용하는 기제가 있는 것 같아요. 이선인 평론가: 결국 게임으로서의 시뮬레이션은 이러한 서사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는 측면이 있네요. 이경혁 편집장 : 우리가 시뮬레이션이라는 말이 좀 모호하다는 얘기로 시작을 해서, 이런저런 의미를 하나씩 잡고 연원도 찾아보고 지금 사람들은 어떻게 쓰는지도 생각해 보았는데요. 결과적으로 시뮬레이션이 무엇인지 정의내릴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만은 명확해지는 것 같습니다. ‘시뮬레이션’의 의미 자체는 매우 불명확하지만, 이 불명확하다는 것은 시뮬레이션을 반드시 엄밀하게 정의해야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 말이 가리키고 있는 행위가 품고 있는 더 많은 다양성들을 개별적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도로 오늘 얘기를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시뮬레이션이라는 단어로 사용되는 다양한 게임 플레이와 게임 제작의 의미들을 꺼내보다 보면 우리가 말한 것 이외에도 다른 이야기들도 충분히 나올 수 있겠지요? 의 이번 호에서도 필자마다 조금씩 다른 시뮬레이션을 얘기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모신 두 분께서 관련 아티클을 쓰시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봅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수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 현실과 가상의 구분을 없앴던 비범함에 대해서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2024년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로, 노르웨이의 ‘마츠 스틴’라는 게이머의 삶에 주목한다. 작품은 작년 한 해 동안 선댄스 영화제에서의 수상과 더불어 여러 영화제에 이름을 올리며 유명세를 얻었고, 현재는 OTT서비스 ‘넷플릭스’와 계약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다큐멘터리에 접근할 수 있도록 공개되어있다. < Back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 현실과 가상의 구분을 없앴던 비범함에 대해서 23 GG Vol. 25. 4. 10.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2024년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로, 노르웨이의 ‘마츠 스틴’라는 게이머의 삶에 주목한다. 작품은 작년 한 해 동안 선댄스 영화제에서의 수상과 더불어 여러 영화제에 이름을 올리며 유명세를 얻었고, 현재는 OTT서비스 ‘넷플릭스’와 계약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다큐멘터리에 접근할 수 있도록 공개되어있다. 하지만 제목만 봤을 때, 이것이 게임에 관한 다큐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울 것이다. 그동안 게임을 소재로 한 다큐들이 <하이 스코어>(2020), <낫 어 게임>(2020), <프리 투 플레이>(2014), <인디 게임: 더 무비>(2012)처럼 제목에서부터 ‘게임’에 대한 내용임을 알려왔다는 점과 다르게, 이 다큐는 게임 다큐라는 사실보다는 ‘이벨린’이라는 인물에 방점을 찍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벨린은 누구이길래 주목받게 되었는가? 걸을 수 없는 소년에게 쥐어진 게임기 다큐는 1990년대 홈 캠코더로 촬영된 한 소년의 어린 시절 영상으로 시작된다. 이 소년의 이름은 ‘마츠 스틴’. 노르웨이에서 태어나 가족의 사랑 속에서 자라났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의 몸 상태에 이상이 감지된다. 거동할 때마다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의지하거나, 늘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반복된다. 이 의자는 점점 휠체어로 대체되고, 화면 너머로 마츠가 중증 질환을 앓고 있음을 암시한다. 마츠가 앓은 병은 ‘듀센 근이영양증’이라는 희귀 질환이다. 어린 시절 발병해 시간이 지날수록 근육이 점차 소실되는 병으로, 걷거나 음식을 먹는 등 일상적인 신체 활동이 서서히 불가능해진다. 점점 불편해지는 몸은 사회생활을 가로막았고, 대인 관계 또한 큰 장벽에 부딪혔다. 다른 아이들이 운동을 하거나 어울려 놀 때, 마츠는 그들을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곤 했다. 그러나 이 시기의 홈비디오 속에서 유난히 자주 포착되는 물건이 있다. 바로 게임기다. 마츠는 게임보이, 닌텐도64와 같은 콘솔 게임기를 즐겨 사용했다. 일반적으로 아이가 게임에 지나치게 몰두하면 부모가 이를 제지하기 마련이지만, 마츠의 부모는 달랐다. 게임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던 마츠에게, 그가 원하는 만큼 게임을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 가족들과 휴양지 여행을 떠난 어린시절 마츠의 두 손에는 게임 보이가 들려있다.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Official Trailer | Netflix”) 아제로스 대륙을 여행한 마츠 2000년대에 들어서며 블리자드의 온라인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가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켰다. 수많은 사람들은 판타지 세계관 ‘아제로스’ 대륙으로 접속해, 아바타의 몸을 빌려 또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다. 마츠도 이에 동참하여 노트북으로 와우 세계에 접속했고,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한다. 마츠는 <와우> 세계에서 굉장히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가 <와우>를 플레이한 10년 동안 총 플레이 타임은 약 2만 시간 가까이에 달했다. 아제로스의 방대한 대륙을 여행하며 그는 다양한 국적의 유저들과 교류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의 신체는 점점 움직이기 어려워졌고, 게임을 플레이하는 데에도 제약이 따랐다. 처음에는 키보드와 마우스를 사용해 조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마츠는 특수 장비의 도움을 받게 된다. 게임에 필요한 조작키가 원형으로 배치된 이 맞춤형 장치는 마츠를 위해서 특별하게 제작된 것이었고, 이 덕분에 다른 유저들과 함께 게임 플레이를 지속할 수 있었다. * 마츠가 사용하는 컴퓨터 조작 장치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Official Trailer | Netflix”)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알린 마츠의 죽음 듀센병 환자의 평균 수명은 보통 20대에 머무른다. 마츠 역시 병세가 악화된 끝에, 2014년 가족들의 깊은 슬픔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계속 재생되던 홈비디오 테이프는 멈추었고, 가족들은 애통스러운 감정으로 그를 추억한다. 그리고 마츠가 오랜 시간을 보냈던 온라인 세계에도 이 사실을 알리고자, 가족들은 그가 생전에 운영했던 온라인 블로그에 부고 소식을 게시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츠를 추모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메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츠를 ‘이벨린’으로 부르고 있었다. 이벨린이 <와우> 세계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던 인물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에 대한 추모 메시지를 전해온 것이다. 다큐 제목에 등장한 ‘이벨린’은 마츠의 <와우> 캐릭터명이다. 긴 머리를 가진 건장한 남성 도적. 이벨린의 모습은 휠체어 위의 왜소한 현실의 마츠와는 전혀 달랐다. 그러나 마츠는 이벨린으로서, <와우>의 길드 ‘스타라이트’에 오래 몸담으며 수많은 사람들과 폭넓은 관계를 맺었다. 유가족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활발한 사회적 삶이 그 안에 있었다. * 게임에서 다른 유저들과 활발하게 사회생활했던 이벨린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Official Trailer | Netflix”) 현실에서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기 어려웠던 마츠는, 이벨린으로서 연인을 만나 사랑을 경험하기도 했다. ‘루머’라는 캐릭터와 숲속에서 데이트를 하며 첫사랑을 나눴고, 루머의 현실 인물인 ‘리세트’가 가족과 갈등을 겪었을 땐 직접 편지를 써 그녀의 부모와 화해의 길을 터주기도 했다. 또 한 명의 길드원이 자녀와 소통에 어려움을 겪자, 마츠는 그 아이와 함께 게임을 하도록 주선해 관계를 회복하도록 도왔다. 그는 단지 도움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이들을 진심으로 돕고 응원하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마츠 덕분에 삶이 더 나아졌다”고 말했다. 겉으로는 게임만 하며 고립된 삶을 산 듯 보였던 마츠. 그러나 그는 언제나 연결되어 있었다. 이벨린이라는 이름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깊은 삶을 살아냈다. 이러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가족은, 마츠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이전에는 제한된 삶으로 여겼던 그 생애가 사실은 너무도 풍성하고 비범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장례식은 슬픔보다는 뒤늦은 기쁨과 안도 속에서 치러진다. * 홈비디오 속의 마츠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Official Trailer | Netflix”) 채팅으로 기록된 과거의 시간들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이 과거를 다시 그려내는 방법은 매우 독특하다. 일반적인 다큐멘터리가 과거에 기록된 영상이나 사진을 편집하거나, 당시 인물들을 인터뷰를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하는 반면, 이 작품의 핵심 기록물은 다름 아닌 ‘채팅 기록’이다. 마츠는 음성 채팅 없이 텍스트로만 대화를 나눴기 때문에 그가 나눈 모든 의사소통은 대화 로그로서 기록되어 있었다. 일부러 아카이브 하지 않아도, 이미 보존되고 기록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보존된 이벨린의 문장들은 사후에도 그의 삶을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흔적이 되었다. 제작진은 이 채팅 기록을 대역 성우가 낭독하도록 하여 현재 시점에서 재구성했다. 성우들이 읽은 대본은 모두 이벨린이 나눴던 채팅과 동일한 문장이었고, 이 음성은 애니메이션에 더빙되어 영상으로 제작되었다. 재연 애니메이션은 실제 게임 내 캐릭터와 주변 사물, 배경, 다른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표정으로까지 장면 하나하나로 연출되어 게임 속에서 녹화되었다. * 이벨린의 목소리를 맡은 에드 라킨(Ed Larkin)외에도 모든 성우가 장애인이다.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Behind The Scenes | Netflix”) 여기에 제작진은 마츠의 삶을 더욱 면밀하게 재현하기 위해 또 다른 층위를 더했다. 채팅을 읽는 성우들을 모두 장애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한 것이다. 이벨린과 이벨린의 첫사랑 루머, 주변 길드원, 친구들 모두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로 입혀졌다. 루머를 연기한 성우는,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이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가상 캐릭터’가 아닌, 실제 사람이 뒤에 있는 ‘아바타’였기 때문에 깊은 존중감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들이 실제로 이 상황에 어떤 기분을 느꼈을지, 섬세하게 고려하면서 연기해야만 했다고 인터뷰에서 덧붙였다. 연극 대본처럼 남은 채팅 기록 덕분에 게임 속 캐릭터로 과거를 재현하는 이 방식은 게이머의 삶을 다큐로 풀어내는 방식 중에서 매우 신선하고 도전적인 시도로 보인다. 다만 그 과정에서 ‘재현’과 ‘재연’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약간의 아쉬움도 남는다. 다큐로서의 과거를 충실히 복원했다기보다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처럼 감정적으로 과장된 재연이 되는 듯한 느낌이 남기 때문이다. 특히 이벨린이 루머와 숲속 호숫가에서 연애하며 첫키스를 나눴던 사건을 정면 카메라로 촬영하여 보여줄 때는, 마츠의 매우 사적인 기록, 그러니까 원치 않는 사춘기 소년의 일기장을 억지로 들춰보는 듯한 기분을 안겨주기도 했다. 물론 마츠가 살아생전에 이 다큐멘터리 제작에 관여했기 때문에, 이 역시 그가 의도한 연출일 수도 있겠다. * 데이트를 즐기는 이벨린과 그의 첫사랑 루머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Official Trailer | Netflix”) 현실 도피라는 오해 마츠는 매일 아침, 이벨린으로 접속해 아제로스 대륙(게임 속 세계)을 달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현실에선 달릴 수 없었지만, 게임 속에서는 원 없이 달릴 수 있었다. 현실의 제약이 닿지 않는 가상 세계는 마츠에게 해방의 공간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그는 이벨린이라는 존재로 살아가며 자유로운 신체로 움직였고, 장애인이라는 사회적 정체성을 넘어서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능동적인 주체로서 자신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은 자칫 ‘게임은 현실 도피처’라는 식의 해석으로 단순화되기 쉽다. 실제로 마츠는 자신의 블로그에 “게임은 탈출구이고, 모니터는 자유로운 공간으로 향하는 관문”이라고 썼다. 게임을 탈출 혹은 도피의 수단으로 보는 관점은, 현실의 고통과 결핍에서 심리적으로 벗어나기 위한 몰입이나 위안으로만 게임을 설명하곤 한다. 이때 현실은 그대로 남아 있고, 억압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잠시 보류될 뿐이다. 더 나아가 장 보드리야르의 시각에서 보자면, 이러한 가상 세계는 실재를 대체하는 이미지에 불과하며, 우리는 그 안에서 ‘해방의 감정’만을 소비하게 된다. 이 관점에서 보면, 다큐가 게임을 낭만화하고, 단선적인 감동 구조로만 재현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 매일 30분씩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대륙을 뛰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이벨린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Behind The Scenes | Netflix”) 그러나 마츠의 사례는 단순한 현실 도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가상 세계에서 새로운 의미를 창출했고, 사람들과의 대화와 연대를 통해 현실로도 울림을 확장시켰다. 게임 속에서 나눈 말과 관계는 다시 현실에서 목소리가 되었고, 그 메아리는 여전히 강하게 울리고 있었다. 이벨린의 첫사랑 루머의 목소리 역을 맡은 켈시(Kelsey Ellison)는 자신도 장애인으로서 가상 세계로의 탈출이 주는 자유를 공감하는 한편, 마츠가 도피주의(escapism)를 잘 활용했다고 평가했다. 하루 종일 누워 봉사자들의 도움을 받는 마츠를 수동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게 아니라, 적어도 자신이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능동적인 힘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고,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고무시키는 데에 노력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마츠가 단지 억압된 현실의 신체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었다고 해석하는 것은 부족하다. 자유/억압의 이분법적인 규정보다, 완전히 새로운 문법 안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존재했던 인물로 바라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존재의 전환, 존재의 확장으로서 바라봄이 더 정교하고 정당할 것이다. 마츠는 생전 이렇게 말했다. “이벨린은 저의 확장판이에요. 저의 다른 면모이죠” 존재의 확장이라는 비범함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단순한 감동 서사를 넘어, 가상 세계 안에서의 삶이 어떻게 존재를 확장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츠는 게임으로 도피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확장했고, 새로운 문법을 통해 타인과 연결되었다. 가상 세계가 현실의 억압을 완전히 지워주진 않았지만, 그는 그 안에서 한계를 넘는 관계를 만들고, 사회적 의미를 생산하는 능동적인 존재로 살아갔다. 그렇기 때문에 이 다큐가 보여주는 진짜 이벨린의 ‘비범함’이라는 평가는 마츠가 이벨린으로서 보여줬던 활약뿐만이 아니라, 게임이라는 조건 속에서 여전히 현실을 향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보냈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채팅 기록, 함께 시간을 보낸 동료들, 그리고 이 다큐를 본 사람들이 기억하는 ‘이벨린’은 마츠가 단지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현실을 구성했던 하나의 주체였음을 증명한다. * 이벨린이 죽은 이후, 블리자드는 이벨린이 자주 다니던 엘린 숲 한켠에 이벨린을 추모하는 비석을 세웠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 그곳에 모여 그를 다시금 기억했다. 그리고 블리자드는 이벨린의 캐릭터에 관한 유료 아이템 판매하고 그 수익을 듀센 치료를 위해 기부하기도 했다. (출처: 유튜브 영상 “Rest in Peace, ibelin) Tags: 다큐멘터리, WOW, MMORPG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이선 사회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연구합니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결국 인간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 [논문세미나] <하스스톤>에서 플레이어들은 왜 감정 표현을 오용하는가?

    저자들은 위의 요소를 모두 고려해 비매너 상호작용의 다섯 가지 형태를 정리한다. 제시된 유형들은 가장 일반적으로 지적되는 것으로, 모든 플레이어가 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항복(concede)’은 여기서 가장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모순점인데, 항복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모두가 비매너 플레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 Back 14 GG Vol. 23. 10. 10. Tags: Arjoranta, siitonen, 콜오브듀티, 하스스톤, 비매너, 커뮤니케이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eonwoo Lee Interested in games played together, and studies the relationality of games. Hopes that games can bring joy to everyone, all at once.

  • ‘후원 경제’는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스타필드>와 <발더스 게이트 3>를 중심으로

    2023년 비디오 게임계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RPG 게임을 꼽으라면, 대다수가 <스타필드>와 <발더스 게이트 3>를 꼽을 것이다. 여론은 <발더스 게이트 3> 쪽이 우세다. <스타필드>는 전반적으로 나쁘진 않고 홍보에 힘입어 많은 판매량을 올렸지만, 게임 디자인에서 실망스러운 지점도 있어, 베데스다식 RPG 게임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평을 받았다면 <발더스 게이트 3>는 풍부한 상호작용과 롤플레잉으로 RPG 장르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는 평을 받으며,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과 함께 올해의 게임으로 거론되고 있다. < Back ‘후원 경제’는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스타필드>와 <발더스 게이트 3>를 중심으로 15 GG Vol. 23. 12. 10. 2023년 비디오 게임계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RPG 게임을 꼽으라면, 대다수가 <스타필드>와 <발더스 게이트 3>를 꼽을 것이다. 여론은 <발더스 게이트 3> 쪽이 우세다. <스타필드>는 전반적으로 나쁘진 않고 홍보에 힘입어 많은 판매량을 올렸지만, 게임 디자인에서 실망스러운 지점도 있어, 베데스다식 RPG 게임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평을 받았다면 <발더스 게이트 3>는 풍부한 상호작용과 롤플레잉으로 RPG 장르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는 평을 받으며,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과 함께 올해의 게임으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 글은 게임 그 자체보다는, 두 게임이 대표하고 있는 2020년대 RPG 게임, 나아가 ‘전통적인 자본’이 지배하는 고예산 AAA 게임과 킥스타터와 얼리 액세스 같은 ‘후원 경제’에 기반한 중저예산 게임 개발 과정과 자본 경제 현상을 다루고자 한다. 게임 커뮤니티 내 여론을 살펴보면, <발더스 게이트 3>를 마치 <스타필드>를 위시한 AAA 게임과 똑같은 제작 과정을 거친 게임인 것처럼 비교하는 의견이 많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발더스 게이트 3>의 창의성과 풍부한 디테일 칭찬하면서, <스타필드>를 위시해 어딘가 부족하게 나온 AAA 게임이 <발더스 게이트 3>보다 태만했으며 최종적으로 AAA 게임 제작진이 책임을 회피했다고 비판하는 의견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발언들이 좋은 게임에 대한 갈증이라던가, ‘좀 더 잘 나올 수 있었는데’라는 아쉬움이라는 당연한 감정에서 비롯된 발언이겠지만 이렇게 비교하고 비판하는 것엔 논리적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같은 장르에 속하고, 화제작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스타필드>와 <발더스 게이트 3>는 전혀 다른 방법론으로 만들어진 게임이다. 세부적인 게임 디자인 역시 1대 1로 비교할 수 없는 게임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스타필드>는 거대 투자 자본의 지원으로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방향성으로 구축된 생산품이라면 <발더스 게이트 3>는 활성화된 후원 경제에 힘입어 만든 소수 취향을 노린 공예품에 가깝다. 물론 생산품과 공예품에는 어떤 우열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취향에 기반한 ‘후원 경제’의 개입 여부가 어떤 중요한 차이점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스타필드>는 대자본의 투자로 거대한 상품을 만들려는 성격이 강한, 전형적인 AAA 게임이다.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 25년 만의 새 IP라는 점을 강조한 토드 하워드의 인터뷰라던가 마이크로소프트가 게임 쇼 등지에서 보여준 강력한 홍보 정책은 <스타필드>가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 제니맥스 미디어, 마이크로소프트에 어떤 가치를 지닌 ‘상품’이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월 가의 투자자들 역시 이 게임에 거는 기대가 컸을 것이다. 한편 <스타필드> 제작진은 정보 공개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이는 디벨롭 컨퍼런스 2020에서 이뤄진 토드 하워드의 인터뷰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인터뷰에서 그는 “<스타필드>의 정보 공개와 홍보는 출시 직전 짧고 빠르게 이뤄질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를 반대로 말하자면 <스타필드>가 폐쇄적인 환경에서 제작되고 피드백을 받아왔다는 걸 보여준다. 이처럼 대다수의 AAA 게임은 개발 과정을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으며, 피드백을 받는 과정 역시 내부 QA라던가 체험판 같은 곳으로 한정시켜 자신을 신비화한다. 그리고 발매일이 다가올수록 이런 신비화를 풀어가는 방식으로 게임에 대한 호기심과 구매 의사를 증폭시키고자 한다. 하지만 이런 전략은 동시에, 오해와 실망을 낳을 수 있는 전략이기도 하다. <스타필드> 발매 후 이어진 거센 실망과 비판의 목소리는, AAA 게임이 취하는 일방적인 개발이 개발진 (내지는 임원진과 주주)의 내부 예측과 수요층의 기대랑 어긋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스타필드>를 기대하고 구매한 유저 대부분은 풍부한 요소들로 가득한 우주 탐사와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 특유의 노련한 RPG 디자인과 결합한 게임을 기대했다. 그러나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는 우주라는 공간에서 가능한 콘텐츠를 전부 구현하기엔 AAA 게임 제작 체계상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대대적으로 단순화하고 가지치기하는 방법을 취했다. 게임의 핵심이자 가장 논란이 되었던 우주 탐사 디자인이 대표적이다. <스타필드> 제작진은 행성 지형의 절차적 생성이라던가, 이착륙/이동 과정의 간소화 같은 다양한 ‘간소화’를 동원해 우주라는 공간의 크기는 유지하되, 만들어야 할 콘텐츠 가짓수는 줄이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선택은, <스타필드>를 기대한 사람들이 원했던 방법론이 아니었고, 게임에 대한 멸칭과 제작진에 대한 비난과 조롱이 돌아왔을 뿐이다. 사실 <스타필드>는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의 유일한 예측 실패작은 아니다. 이미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는 <폴아웃 76>에서 오픈 월드와 온라인 게이밍, 기존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 RPG 게임 간의 결합이라는 무리한 전략과 현장 관리의 실패로 발매 초기 거센 비판을 받은 전력이 있다. <스타필드>는 <폴아웃 76> 때보다는 비교적 긴 시간과 공력을 들여 개발된 게임이라 상황이 낫긴 하다. 하지만 굳어진 AAA 게임의 일방적이고 효율을 추구하는 개발 과정이 유저의 기대와 얼마나 괴리될 수 있는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그럼에도 그런 과정을 쉽게 바꿀 수 없는 딜레마를 보여주고 있다. <스타필드>에 대한 밋밋한 반응은 그 점에서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의 개발 노선에 재고가 필요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발더스 게이트 3>는 반대로 ‘후원 경제’의 지원받아 개발 과정을 공유하면서 진행한 게임이다. 우선 이 게임은 발매일까지 베타 테스트가 이뤄지던 얼리 액세스로 구매할 수 있었던 게임이었다. 킥스타터 같은 크라우드펀딩이 동원된 게임은 아니지만 (라리안 스튜디오는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이 성공한 이후 크라우드펀딩 방식을 채택하지 않았다), 라리안 스튜디오는 완성될 때까지 이뤄질 게임 개발 과정을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 팬덤에게 공개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 베타 테스트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공식 커뮤니티에서 게임 유저로서 제작진에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었고, 제작진 역시 커뮤니티 업데이트를 통해 개발 진척과 변경 사항을 공개하기도 했다. 요컨대 <발더스 게이트 3>의 개발 과정은 커뮤니티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지 가능한 과감한 개발 과정이다. 여기다 라리안 스튜디오는 얼리 액세스 3년 동안, TRPG가 제공하는 풍부한 자유도와 콘텐츠를 할 수 있는 한계치 내에서 최대한 구현하려고 애썼다. 이런 노력으로 완성된 높은 자유도는 이미 많은 리뷰와 플레이 영상들이 소개하고 있기에,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중요한 점은 <발더스 게이트 3>는 후원자들이 원하는 게임 디자인을 위해 모든 자원이 총동원되었고, 그 결과물에 대다수가 흡족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쉽지 않은 결정이며, 흥미로운 결과다. 게임이 제공하는 시스템 내에서 플레이어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개발 노선은 매혹적이지만, 동시에 게임을 만드는 쪽이나 플레이하는 쪽이나 복잡하게 여길만한 구석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스타필드>랑 달리 주류화된 CRPG가 아닌 (시점 변환을 제공하지만) 고전적인 탑다운 RPG 게임이라는 점 역시 거대 자본한테서는 근심을 샀을 요소였을 것이다. 여기다 라리안 스튜디오 전작들보다도 더욱 방대해진 이야기와 세계관, 많은 이벤트 신을 요구하는 게임이었기에 개발 난도가 만만치 않았음을 쉬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와 라리안 스튜디오는 명백히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게임을 개발했으며, 성장 과정 역시 시대적 차이점도 있다.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는 (개발 과정에서 유추할 수 있겠지만) 1990년대부터 정착한 전통적인 게임 스튜디오의 발전 과정과 거대 IT 기업에서 볼 수 있는 월가 투자자본과 연계된 인수합병 과정을 밟아오면서 커진 회사다. 베데스다가 RPG 제작사로 시작한 1990년대 초중반은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는 ‘경제’를 형성할 정도는 아니었고, ‘셰어웨어’로 대표되는 대안적인 유통/발매 체계는 물리 매체와 게임 소매점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인터넷 환경의 한계로 ‘셰어웨어’는 게임이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일방적으로 게임 일부를 보여주고, ‘정식판’의 구매를 유도하는 방식에 가까웠다. 유저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게임을 개발하는 방식은 어디까지나 개인 제작에 머물고 있던 시절이었다.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가 본격적으로 성장하게 된 계기 역시 기존 회사 경영/재정 관리 방식에 통달한 CEO 로버트 올트먼과 제니맥스 미디어가 개입하면서였다. 지금의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월가로 대표되는 거대 기업과 투자자본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상태다. 반대로 라리안 스튜디오는 기존 회사 경영이나 상장하고는 관련 없이 설립되고 운영되는 회사다. 우선 제이슨 슈라이어의 기사 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라리안 스튜디오는 최고경영자이자 디렉터인 스벤 빈케와 그의 아내가 소유한 개인 회사에 가깝다. 그렇기에 라리안 스튜디오는 게임의 방향성을 정하는데 주주들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슈라이어는 동시에 이런 구조의 회사는 위험 부담 역시 크다는 점도 지적했다. 실제로 디비니티 시리즈 첫 작품인 <디바인 디비니티>는 그럭저럭 성공했지만,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후속작 <비욘드 디비니티> 개발 당시엔 회사 인원이 3명 밖에 없을 정도로 궁지에 몰렸다는 비화가 있다. 그럼에도 라리안 스튜디오는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 성공 이후로도 개인 기업 체제하에 특정 장르와 취향의 게임을 만들고 있다. 이 점에서 있어서 라리안 스튜디오는 중소기업 규모 하에 꾸준히 특정 취향의 JRPG를 만들어 흑자를 내는 니혼 팔콤하고도 비슷하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상장 회사 체제하의 다작하는 니혼 팔콤과 달리, 라리안 스튜디오는 크라우드펀딩 같은 ‘후원 경제’의 도움이 컸다는 큰 차이점이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라리안 스튜디오를 견인한 ‘후원 경제’의 양태다: 라리안 스튜디오의 지지 기반은 흔히 볼 수 있는 과거의 영광 재현보다는 순수한 장르 매니아들의 입소문과 지지에 가까웠다. 사실 라리안 스튜디오는 과거의 영광이라고 할만한 게 별로 없었던 회사였다. <디비니티> 초기작은 소소하게 성공한 편이었다. 따라서 이들의 지지 기반은 미약했던 편이다. 출세작이라 할 수 있는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은 킥스타터로 대표되는 ‘후원 경제’ 형성기였던 2010년대 초중반에 등장한 프로젝트였지만, 정작 펀딩 당시엔 (<발더스 게이트>를 배급한 인터플레이 출신도 포함된) 기존 선점자들에게 밀려서 눈에 띄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은 결과적으로 고전 RPG에 대한 수요를 충족하는 데 성공하면서, 선점자들보다 훨씬 더 ‘후원 경제’ 붐을 적극적으로 타고 고유의 팬층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팬층 형성은 여타 크라우드펀딩을 받은 과거 영광을 누렸던 개발자들과 달리 영광스러운 과거가 없었기에, 더욱 과감하게 재해석할 수 있었다는 점도 컸다. 요컨대 라리안 스튜디오는 과거에 가진 게 별로 없었기에, 시대의 조류에 얻을 게 많았던 포지션이었다. 사실 <발더스 게이트 3>는 ‘후원 경제’로 성장해 어느 정도 체급을 키운 회사의 거대 프로젝트에 가깝다. 새로 설립된 지사를 제외하고도 본사 인원만으로 200명이나 동원했으니,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을 만들던 시절의 라리안 스튜디오하고 같다고도 볼 수 없다. 이렇게 보면 많은 게임 커뮤니티의 조롱감이 되었던 “그들은 운이 좋았다”로 요약할 수 있는, 제이슨 슈라이어나 자비에 넬슨 주니어 를 비롯한 업계 사람들의 주장도 틀린 것도 아니다. 슈라이어의 지적대로 개발 방향성에 비교적 자유로운 인디 게임 제작사는 라리안 스튜디오만큼 자본이나 인력을 투입할 수 없을 것이며, 반대로 라리안 스튜디오 이상으로 자본과 인력을 동원할 수 있는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 같은 개발사에서는 이런 기획이 통과될 가능성이 극히 낮다. 통과되더라도 상업적 타협을 해야 할 것이다. 어떤 지점에서는 <발더스 게이트 3>는 프랜차이즈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위저드 오브 더 코스트가 라리안 스튜디오의 방법론에 신뢰를 보냈기에 가능했던 게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이랑 비교해보면 명확해진다.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의 얼리 액세스는 거의 완성된 게임을 다듬어가고 보충해가는 비교적 전형적인 얼리 액세스였다면, <발더스 게이트 3>의 얼리 액세스는 무모할 정도로 긴 시간을 들여 팬들과 함께 게임을 만들어 간 쪽에 가깝다. 물론 얼리 액세스 스케줄을 무한정 늘릴 수는 없었는지 발매 후 내정되어 있던 콘텐츠가 삭제된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지만, 이 정도면 프랜차이즈 소유주자 투자자로서 위저드 오브 더 코스트가 라리안 스튜디오에 많은 신뢰와 편의를 봐줬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발더스 게이트 3>의 ‘후원 경제’를 신뢰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바를 수용한 개발론이 대대적으로 성공했다는 점은 2023년 비디오 게임계에서 주목해야 할 ‘현상’이라 생각한다. 주지하다시피 <발더스 게이트 3> 개발 과정에 적극적으로 돈을 내고 참여한 계층은, 거대 투자자본의 냉정한 시장 분석에 따르면 시대에 뒤떨어졌거나 거금을 투자하기엔 손실이 따른다고 판단한 게임 장르의 팬들이었다. 이 팬들은 단순히 고전 RPG 장르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하이퍼 FPS, 2D 플랫포머, 공룡 시뮬레이터 등… 2000년대 말부터 본격화된 ESD와 얼리 액세스, 크라우드펀딩의 등장, 인디 게임 시장의 체계화는 거대 투자자본에 소외당한 ‘팬덤’들이 대안적으로 자본과 경제를 형성하고 지원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왔다. 얼리 액세스를 기반으로 커뮤니티와 소통하며 진행하는 개발 방법도 프론티어 디벨롭먼트의 <플래닛 코스터>를 비롯해 사례들이 나오고 있었다. <발더스 게이트 3>의 대대적인 성공은 (자신들을 믿고 원하는 게임을 만들어달라는) ‘후원 경제’의 파급력이 인디와 팬덤의 영역을 넘어서 주류의 영역으로 올라왔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거대 자본의 투자와 베테랑 제작사의 야심에 차 보이지만 실은 안전하게 검증된 개발 노선으로 구성된 <스타필드>가 좋은 평을 듣지 못한 것과 대조해보면, 게임 유저들이 AAA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거대 자본이 판을 짠 안전한 AAA 게임 개발론에 진력을 내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후원자들은 르네상스 시절 귀족들이 예술가나 공예가들에게 수공예품을 주문 제작하듯이, 게임 개발사가 돈 걱정하지 않고 후원자 자신들의 취향을 반영해준 게임을 만들어주길 원한다. 다만 르네상스 귀족 후원자들의 후원이 계급 권력을 통해 예술품이나 공예품을 독점하면서 특권을 누리기 위한 도구였다면, 이 새로운 후원자들의 후원은 공통된 취향을 지닌 익명의 소비자들이 기존 자본 권력에서 소외된 취향을 복권하고자 한다. 물론 이런 후원 경제가 항상 긍정적인 현상을 만들어낸 것도 아니며, <발더스 게이트 3>의 개발 과정은 근래 비디오 게임 개발 역사 중에서도 보기 드문 실험이자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리고 라리안 스튜디오가 향후 만들 게임에서 이 실험을 계속 택할지는 알 수 없다. 차기작 개발에 6년이나 투자하고 싶지 않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동시 개발을 하고 싶다는 스벤 빈케의 인터뷰 를 참조하면, 라리안 스튜디오의 차기작은 <발더스 게이트 3> 같은 개발 노선을 취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그저 운과 상황이 좋았던 짧고 행복했던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작품을 보고 싶어 하는 ‘후원 경제’가 만들어낸 욕망의 투자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발더스 게이트 3>의 성공은 2023년 비디오 게임계의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게임 산업 전체가 <발더스 게이트 3>와 같은 길을 가긴 힘들겠지만, 적어도 몇몇 혁신가들에게는 탐구해볼 만한 사례로 남을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이이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전문사 졸업 후 영화•게임 비평 기고 활동중. 어드벤처 게임 좋아함. (antistar23@gmail.com )

  • 공포라는 감각, 낙차라는 설계도, 림보하는 질문  - <위니언 바이러스>에 나타난 호러 연출, 언캐니와 리미널 스페이스를 중심으로

    영화 <언프랜디드:다크웹(2018)> 속 ‘다크웹’은 사이버 공간일 뿐임에도 그곳을 실제 존재하는 공간처럼 연출했다. 나룻배를 타고 벽마다 희미한 횃불이 붙은 좁은 동굴 통로를 따라 한참을 깊숙이 들어가야만 닿는 곳. 해당 장면은 앞서 나온 어떤 잔인하고 폭력적이던 장면보다 오싹한 공포감을 일으켰는데, 꼭 그 미지의 공간이 실제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엔딩 크레딧 이후 세트장은 철거되고, 배우들은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그 공간만은 계속 그곳에 남아 손짓하는 것 같았다. < Back 24 GG Vol. 25.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eongeun Kim Loves all things that carry a story. Studied Korean literature; the game of a lifetime is Life is Strange. After glimpsing the moment when "life is a kaleidoscope" turned into "life is strange," has been falling deep into the world of games too.

  • 기억의 조작술: 사건의 컨벤션으로부터 벗어나기로서 인디게임

    장르는 게이밍에서 오랜 논쟁의 주제 중 하나다. 디지털게임의 매커닉과 외형은 무궁무진하지만 소설이나 영화, TV쇼와 마찬가지로 어떤 약속된 경로들이나 재현의 양태가 축적되고 있음다. 컨벤션(convention)은 창작자와 텍스트, 그리고 수용자 사이에 형성되는 하나의 묵시적인 관습으로 우리는 무수히 많은 텍스트들이 생산되고 반복적으로 읽히는 과정에서 공통의 컨벤션을 체화한다. 장르가 계약을 통해 창작자-수용자 모두 텍스트의 진행 과정을 사전에 공식화한다면, 컨벤션은 비공식적으로 모두가 따르는 불문율이다. 장르는 헌법처럼 작동하지만 컨벤션은 그 안의 관습법 혹은 윤리처럼 흐른다. 장르는 끌어당기는 반면, 컨벤션은 대류한다. 장르는 포뮬러(정형화된 공식)와 컨벤션을 만들고, 스타일과 결합하는 과정에서 스테레오타입과 클리셰를 생산한다.  < Back 기억의 조작술: 사건의 컨벤션으로부터 벗어나기로서 인디게임 11 GG Vol. 23. 4. 10. 게이밍의 컨벤션 장르는 게이밍에서 오랜 논쟁의 주제 중 하나다. 디지털게임의 매커닉과 외형은 무궁무진하지만 소설이나 영화, TV쇼와 마찬가지로 어떤 약속된 경로들이나 재현의 양태가 축적되고 있음다. 컨벤션(convention)은 창작자와 텍스트, 그리고 수용자 사이에 형성되는 하나의 묵시적인 관습으로 우리는 무수히 많은 텍스트들이 생산되고 반복적으로 읽히는 과정에서 공통의 컨벤션을 체화한다. 장르가 계약을 통해 창작자-수용자 모두 텍스트의 진행 과정을 사전에 공식화한다면, 컨벤션은 비공식적으로 모두가 따르는 불문율이다. 장르는 헌법처럼 작동하지만 컨벤션은 그 안의 관습법 혹은 윤리처럼 흐른다. 장르는 끌어당기는 반면, 컨벤션은 대류한다. 장르는 포뮬러(정형화된 공식)와 컨벤션을 만들고, 스타일과 결합하는 과정에서 스테레오타입과 클리셰를 생산한다. 이러한 과정은 추리물에서 특히 투명하게 나타난다. 화려하고 어두운 대도시, 연쇄 살인사건과 무능한 경찰, 괴팍한 성격에 방대한 지식과 촉을 가진 탐정, 사건의 추적 과정에서 드러나는 구조의 모순과 지적 유희는 관객에게 편안하고 즐거운 긴장을 선사한다. 트렌치코트와 모자를 쓴 인물들의 하드보일드한 묘사와 혈흔이 낭자하는 폭력은 복잡함이 아니라 스타일로서, 이는 느긋하게 목적지까지 타고 가는 교통수단처럼 느끼게 만든다. 망설이며 입고 나온 옷이 튀지 않고 길거리 군중의 패션에 녹아듦을 느낄 때 우리는 안도한다. 사람들은 이 탑승 경험에서 특별한 것들을 기대하게 되는데, 그 집합적인 요구들 속에서 컨벤션이 나온다. 영화와 TV쇼는 모두 편안한 컨벤션을 만들기 위해 공식화된 장치들을 사용한다. 필름누아르 영화에서 총격전이나 살인 장면, 로맨스물에서 주인공들이 사랑에 빠지는 장면 등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고속촬영 연출 등이 대표적인 예다. * 좌측부터 윈스턴 처칠, 필립 말로(빅슬립), 닉 발렌타인(폴아웃4), 릭 데커드(2019블레이드러너). 컨벤션은 무수한 스테레오타입과 스타일들 사이의 점들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지만 공유된 관습의 선분들이다. 검은 양복에 톰슨 기관총을 든 남자가 나타났을 때, 중절모에 트렌치코트를 입은 남자가 담배에 불을 붙일 때 우리는 그 뒤에 일어날 사건들을 기시감처럼 느낀다. 기관총 난사 장면은 교차 편집이나 고속촬영으로 연출되거나, 담배 연기가 자욱한 어둠 속에서 권총이 무심히 발사될 것이다. 그렇다면 게이밍에서 컨벤션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될까? 기존의 루돌로지(ludology)의 논의들은 디지털게임을 텍스트라고 부를 수 있는지부터 의심했다. 이는 서사가 게이밍의 토대가 아니라는 단호한 부정에서 출발한다. 그렇다. 테트리스나 팩맨 같은 게임에서 어떤 서사를 읽을 수 없으며, 때때로 방대한 서사를 갖춘 게임에서도 종종 서사가 부재한 플레이 행위성이 출현한다. 올셋(Espen Aarseth)이 지적하듯이 게이밍은 해석이 아니라 탐색이 근간이 되는 실천이다. 이는 플레이의 행위성이 서사와 플롯의 시학을 읽어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공간을 탐험하고, 오브젝트를 만지면서 변화시키는 조형행위에 훨씬 기대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게이밍에서는 컨벤션이 포뮬라에 앞서고, 조작이 문법에 우선한다. 인터페이스, 매커닉, 조작 디자인이 생각보다 훨씬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경로들을 만들 뿐 아니라 행위성을 창조함으로써 게이밍을 생산한다. 영화나 TV쇼에서 장르가 형성되는 순간은 포뮬러가 우선한다. 탐정이 살인사건을 수사하면서 마주하는 공권력 사각지대와 현실의 모순, 카우보이가 방랑 중에 들린 마을에서 악당들을 혼내준 뒤 석양 너머로 떠나는 구조(포뮬러)는 광활한 황야의 풍광, 12시 정각 고독한 두 남자의 권총결투, 질주하는 열차 위에서의 아찔한 몸싸움, 톰슨 기관총을 난사하는 갱스터들의 폭력(컨벤션) 등을 자아낸다. 반면 게임에서는 이 도식이 변주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실시간 전술 시뮬레이션 게임이라는 공통의 플레이 암묵지가 있고, 플레이를 만들기 위한 요소들(자원, 생산, 유닛)을 덧붙이고, 그 위에 두 진영 간의 전쟁이라던가 외계인-지구인 간의 투쟁 같은 구조가 덧씌워진다. 똑같은 어드벤처 게임이라도 그것이 정지된 평면의 포인트앤클릭으로 이루어지는지 1인칭의 시점에서 공간을 탐험하는 방식인지에 따라 상반된 포뮬러가 형성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흐름에는 정형화된 항로가 따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인디아나 존스〉나 〈원숭이섬의 비밀〉은 포인트앤클릭 어드벤처의 대명사이지만, 〈검은방〉 시리즈처럼 하드보일드하고 어두운 미스터리물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횡스크롤 슈터는 〈던전앤 드래곤〉 이나 〈황금도끼〉, 〈너구리〉, 〈소닉〉, 〈록맨〉 같은 호쾌하고 캐주얼한 스테이지클리어 게임이이나 캐슬바니아 게임에 최적화된 것처럼 여겨지지만 〈반교: 디텐션〉처럼 역사적 트라우마를 다루거나, 〈림보〉가 보여주듯 그로테스크한 기억의 알레고리 공간이 되기도 한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는 화끈한 전쟁의 스펙터클을 선사하지만, 〈스펙옵스: 더 라인〉은 전쟁의 스펙터클을 해체해 전쟁의 모순을 재조립한다. 요컨대 게이밍에서 장르와 컨벤션의 관계는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하는 것이 아닌 상부구조가 토대에 협상을 제안하는 관계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사건의 역사화, 기억의 조작술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고도로 노동 집약적이고 창의의 분업이라는 성격을 띠는 문화산업 자장에서 장르는 익숙한 산책로가 되기도 하지만 종종 뻔한 보물찾기가 되기도 한다. 게이밍은 이런 난점이 특히 두드러지는 분야일 것이다. 수많은 1인칭 슈터 게임, 롤플레잉 게임, 시뮬레이션 게임들이 있지만 우리는 이 다양하게 획일적인 난립 가운데서 어떤 환멸을 느낀다. 체육관에 가서 매일 똑같은 무게로, 똑같은 회수로 정해진 세트만큼 운동하면서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처럼 아주 균질적인 작용 반작용이 유희감각을 소구시킨다. 이 지난한 컨벤션의 루프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다양한 시도들이 지금까지 있어왔지만 중요한 것은 크게 두 가지다. 나는 게이밍의 핵심을 절차적 수사학이나 에르고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조작술’로 보기를, 그리고 확고하기 짝이 없는 컨벤션으로부터 벗어나는 경로로서 ‘인디’의 이념을 다르게 전유하기를 제안한다. 보고스트(Ian Bogost)가 정의하듯 게이밍은 ‘절차적 수사학(procedural rhetoric)’에 크게 기대고 있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인터페이스와 컨트롤러에 연동시킨 자신의 신체를 움직여 게임속의 공간·오브젝트를 조작한다. 플레이어는 탐색하고, 탐험할 뿐 아니라 조형하면서 스케일된 게임 시공간의 점들에 선을 연결해 나간다. 이 프로세스는 과정 추론적이고, 로지컬한 사고를 동반하며, 다분히 공학적이다. 게임은 기본적으로 텍스트이기 이전에 행위성(혹은 텍스트)을 출력하는 무형의 기계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풋이 있고, 아웃풋이 있으며 반드시 피드백을 동반한다. 따라서 인터페이스를 조작해 게임 내 디자인과 조응하는 과정들, 이를 설계하는 방식을 절차적 수사학이라 부른다. 절차적 수사학은 영화에서 몽타주, 소설에서 서술기법과 같은 위상으로 게임만의 독특하게 담화 요소이기도 하다. * 〈소닉〉(좌상), 〈더블드래곤〉(우상), 〈반교:디텐션〉(좌하), 〈림보〉(우하). 인디 게임의 래디컬한 상상력은 사건의 시간으로부터 벗어나 기억의 시간들을 재배치하고자 하는 어셈블리지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동일한 매커닉, 축적된 컨벤션을 전유하면서 기억을 조작하고, 나아가 자율적인 역사 인식의 계기들을 생성하는 ‘기억의 조작술’은 게임이 존재론적 한계(에르고딕 또는 절차적 수사학이라 여겨지던)로부터 벗어나 자율적이고 실천적인 행위성의 순간과 조우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절차적’ 혹은 ‘에르고딕’ 이라는 수사는 다분히 결정론적으로 들린다. 디지털게임이 컴퓨터와 알고리즘의 산물이라고 해서 반드시 계량적인 측면만 그 본질로 정의될 이유는 없다. 역사의 지형은 언제나 불연속적이고 위상학적이다. 마르크스의 오랜 전통이 가르쳐주듯이, 역사는 물질대사의 과정이지 추상이나 관념의 구성물이 아니다. 아주 촘촘히 수학적으로 짜여진 사고야말로 번번히 이데올로기라는 기만적 재현계를 만들어왔음을 우리는 안다. 사회진화론이 제국의 팽창 과정에서 우생학이라는 결과물을 만든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게이밍이 우리 두뇌의 어떤 로지컬한 뉴런들을 자극하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로직이 어떤 역사를 상상하게끔 만드느냐다. 우리는 파블로프의 개나 꼭두각시 인형이 아니다. 디지털 게임이 데이터 처리의 절차들로 이뤄졌다고 해서 역사를 떠올리지 못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이는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무의지적 기억의 의미를 비선형적인 의식 흐름 속에서 발견하는 과정과 연동된다. 절차적 수사학 또는 에르고딕의 개념은 게임이라는 유희공간 안에서 사건을 다루는 기술이라 할 수 있으며, 우리는 산업적 컨벤션으로 벗어나기 위해 사건 너머의 숭고를 다루는 조작술을 필요로 한다. * 〈언폴디드: 동백이야기〉(좌), 〈페치카〉(우) 즉 사건은 역사가 될 필요가 있는데, 이 과정을 나는 ‘인디’ 의 개념으로부터 재전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건의 연속에서 엔딩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닌 사건의 배치 속에서 어떤 역사를 획득하는 것이다. 대만의 반세기 철권통치기를 응시하는 〈반교:디텐션〉, 독립운동가들의 고난과 투쟁을 그리는 〈페치카〉, 제주 4.3 대량학살의 파편들을 퍼즐풀이로 재구성하는 〈언폴디드: 동백이야기〉 등은 대문자 역사를 그린다. 좌우의 공간이동만이 허용되는 이들 게임의 공간을 탐색하면서 플레이어는 지금까지 알았던 과거가 2차원적인 평면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물을 조작하고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스테이지들이 바뀌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인물들의 상념과 의식을 가로지르며 우리는 2차원에 강탈당한 에피스테메의 복잡성을 되돌려 받는다. 여기서 역사는 반드시 대문자 역사일 필요는 없다. 역사는 오랜 시간 잊고 지냈지만 가끔 섬광처럼 떠오르는 얼굴들 속에서 그 윤곽을 드러낸다. 그것은 집합적인 기억일 수도, 개인의 소중한 일상일 수도 있다. 대문자와 소문자 역사 사이에서 기억의 조작술은 파편적인 무의지적 기억들을 별자리로 만든다. 개인적인 것은 한편으로 정치적인 것이며, 중요한 것은 단순히 사건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로 하여금 참여하고, 스스로의 로직 속에서 퍼즐풀이를 하도록 기억의 조작술을 고무하는 것이다. 기억의 조작술은 한계지워진 게임의 절차들과 에르고딕에서 벗어나 역사의 위상학적인 시공간으로 행위자를 승급시킨다. 기억의 조작술은 공허하고 선형적인 컨벤션의 진형을 해체하고 우리를 역사의 물질 대사로 초대하는 게이밍의 강력한 전략이 된다. 우리는 인디 게임의 탈주적이고 실험적인 상상력 속에서 이를 발굴하고, 하나의 숭고로 기록해야 함을 깨닫게 된다. * 잊혀진 과거의 기억들을 재조립하고, 지양된 현재를 환대하는 기억의 조작술. 〈A Memoir Blue〉(좌)는 대사나 이야기 대신 마임과 음악으로만 어머니와의 추억을 연출하며, 〈Lieve Oma〉(우)는 할머니와 함께 숲을 걸으며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만 게임이 진행된다. “가장 개인적인 것(the personal)들이 가장 역사적인 것(the historical)”이다. 방법이자 프레임워크로서의 ‘인디펜던트’ 대다수 게임의 천편일률적인 컨벤션은 사건을 단지 흘러갈 뿐인 연속적인 것으로 제시하며, 그 가운데 불구화된 행위성을 주조한다. 플레이어는 관성적으로 게임을 조작하고 예측 가능한 결말을 본 뒤 그것을 잊어버린다. 사건의 끝은 망각이다. ‘인디’ 는 사건들을 재배치해 우리의 기억을 오래 지속되는 미래로 인도하는 방법 중 하나다. 나는 인디 게임을 비상업적, 소규모 개발이라는 유형학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하나의 방법이자 프레임워크로 보기를 주장한다. 인디펜던트는 단순히 아마추어리즘이나 1인 개발, 크라우드펀딩 등으로만 정의될 수 없다. 대규모 자본으로부터 독립한다는 것은 경제적인 심급을 포함해 창작의 인습으로부터도 탈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스팀, 에픽게임즈 등 메이저 게임 플랫폼들과 대형 개발사들이 인디게임 개발과 판매를 지원하면서 게이밍 생태계에서 인디의 개념은 기술적으로 변해버린 감이 있다. 공고한 사회질서에 도전하는 반문화 정신, 문화 창조의 자율성과 현실 변혁을 촉구하는 메시지, 상업적 관습을 깨트리는 형식파괴 및 새로운 미학을 제시하는 작가주의는 역사의 어느지점에서나 인디펜던트의 덕목이었다. 불행히도 게이밍은 여전히 산업적 이해와 인디 사이의 어느 과도기적 지점에 있다. 물론 경제적 요인은 여기에 큰 영향을 미치기는 한다. 접근성이 뛰어난 유니티와 언리얼엔진, 오픈소스 제작환경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게임 개발은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적어도 현재의 상태를 본다면 아직 인디게임이 까이에 뒤 시네마나 펑크, 미학적 대중주의라는 특이점에 도달하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현재 인디게임의 환경은 사실상 산업예비군이나 스타트업, 혹은 포트폴리오 연습의 장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매년 관성적으로 열리는 인디 게임 전시나 비평은 개발자들로 하여금 산업의 컨벤션을 지양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동조되도록 강요한다. 이 틀을 깨야만 할 때다. ‘인디펜던트’는 자본의 출구전략이나 편리하게 부르는 콜택시가 아니다. 한정된 자원 속에서 경로와 로직 사이에 발걸음들을 만들어내는 인디의 급진적인 노력들을 사려 깊게 관찰하고, 그것들이 온연히 발휘될 수 있도록 고무할 필요가 있다. ‘인디펜던트’는 하나의 이념이고, 망설이는 조작 가운데 기억이 역사가 되는 과정이며, 그 안에서 우리는 다른 삶의 잠재태를 건져 올려 인기척으로 소묘한다. 발터 벤야민이 적었듯이, “인식의 진보는 결을 거슬러 역사를 솔질하는 행위에서부터 출발한다.” 인디 게임의 번득이는 아이디어들을 세계를 인식하는 한 프리즘으로서 주목해야만 하는 이유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디지털 문화연구/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신현우 문화연구자, 문화평론가이며 기술비판이론과 미디어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다. 게이밍, 인공지능, 플랫폼, 블록체인을 둘러싼 문화현상을 연구하며 서울과기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한다.

  • 왜 스네이크는 들개가 되었는가

    1987년 코지마 히데오(小島秀夫, Hideo Kojima) 감독이 제작한 〈메탈 기어(Metal Gear)〉는 여러 가지 의미로 특이한 게임이었다. 한 명의 캐릭터로 적진을 돌파한다는 점은 같은 제작사의 〈콘트라(Contra)〉 시리즈, 그 외 많은 게임들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경험이다. 그러나 스테이지를 헤쳐나가는 방식은 당시로서는 사뭇 새로운 감각이었다. < Back 왜 스네이크는 들개가 되었는가 03 GG Vol. 21. 12. 10. 1987년 코지마 히데오(小島秀夫, Hideo Kojima) 감독이 제작한 〈메탈 기어(Metal Gear)〉는 여러 가지 의미로 특이한 게임이었다. 한 명의 캐릭터로 적진을 돌파한다는 점은 같은 제작사의 〈콘트라(Contra)〉 시리즈, 그 외 많은 게임들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경험이다. 그러나 스테이지를 헤쳐나가는 방식은 당시로서는 사뭇 새로운 감각이었다. 코지마 히데오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게이머라면, 그가 작품에서 시도하고 있는 여러 연출이 영화적이라는 사실과 그 이유도 간단하게나마 알고 있을 것이다. 코지마 감독은 어린 시절 온 가족이 모여 매주 1편씩 영화를 감상하며 성장했고, 본래 영화감독이 되려고 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게임 제작자의 삶을 살게 되었고, 그가 전개하고 싶었던 이야기와 여러 문제 의식은 그가 개발한 게임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재미있게도 시리즈의 첫 작품인 〈메탈 기어〉는 영화의 영향을 크게 받아 탄생했다. 1985년 일본에서 [람보 2]가 흥행하자, 코나미(Konami) 경영진은 개발팀에게 MSX에서 실행할 수 있는 전쟁 소재 게임 제작을 지시한다. 베트남 전쟁으로 고통받은 개인의 아픔을 그려냈던 전작 [퍼스트 블러드(1982, ‘람보’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와 달리, [람보 2]는 다른 전개를 선보인다. 지휘관 사무엘 트라우트먼 대령의 설득으로 람보가 단신으로 적진을 돌파하는 모습을 선보인 것이다. 적진을 종횡무진하며 선보인 총격전과 액션은 [람보 2]의 흥행요소로 작용하여 관객의 눈을 사로잡았다. 코나미는 아마도 이런 흥행요소에 주목했던 것 같지만, 코나미가 원하는 화려한 효과를 구현하기엔 당시 MSX의 컴퓨팅 파워가 부족했다. 코지마 히데오 이하 개발팀은 역발상으로 총탄과 적병이 적게 등장해도 되는 방향으로 게임을 구상하기 시작했으며, 그 해결책으로 잠입을 게임의 핵심 요소로 도입하였다. 그렇게 〈메탈 기어〉는 원안이 되었던 [람보 2]의 요소 - 단독 침투한 요원과 무전을 통한 지휘관의 작전 지시 – 에 잠입이 더해져 탄생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하게 살펴봐야 하는 부분은 기술적 한계로 인해 의도치 않게 게임 스테이지, 즉 공간에 대한 색다른 감각이 발생하였고 그것이 재미의 영역으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이다. 〈메탈 기어〉 의 배경은 용병 집단이 세운 가상 국가, ‘아우터 헤븐(Outer Heaven)’인데, 주인공 솔리드 스네이크(Solid Snake)는 선임 대원 ‘그레이 폭스’가 남긴 정체불명의 무전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아우터 헤븐으로 잠입한다. 〈메탈 기어〉의 공간 경험은 일종의 ‘방’과 같은 감각을 준다. 아우터 헤븐이라는 거대한 배경을 구성하는 각각의 공간은 지형지물, 적병의 배치, 아이템 등의 차이를 두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연결된 방을 따라가다 보면 목표 지점에 도달하게 되고 거기서 주인공은 스토리의 분기점이 되는 이벤트를 맞닥뜨린다. 이런 아우터 헤븐의 공간 감각은 17,000여개의 정육면체 방으로 구성된 거대한 시설을 탈출하려 헤매는 영화 〈큐브(Cube, 1997)〉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컴퓨팅 파워의 한계 때문에 게임의 내용과 공간 감각은 각각 제한된 환경 아래에서 최선의 방향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적과의 교전을 최소화해야하는 잠입 상황을 연출하게 되었고 여기에 거대한 스테이지를 세분화하여 큐브적인 방식으로 공간을 인식하도록 요구하며 게임이 설계된 것이다. 이런 성격은 후속작으로 발전하면서 서서히 강화된다. 컴퓨팅 파워가 차츰 증가하면서 교전 시의 효과, 배경 등을 묘사하는 그래픽 효과는 향상되었지만 여전히 게임의 본질은 잠입에 있었다. 항상 긴장한 상태로 최적의 잠입을 수행하기 위해선 적의 주의를 돌리고, 마취총이나 격투전으로 경비병을 무력화해야 하며, 골판지 상자 같은 사물을 이용한 은/엄폐를 통해 플레이어의 존재감을 숨겨야 했다. 이 때의 게이머는 철저히 스네이크에게 이입하여, 그야말로 ‘뱀’과 같이 최대한 엎드린 채 적의 시선을 피해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했다. 스네이크는 후방의 지휘관/조력자와는 최소한의 연결만을 유지한 채 최전선에서 단독으로 움직인다. 항상 작품의 도입부에는 왜 스네이크가 홀로 움직여야만 하는지 나름의 당위성을 부여하는 설명이 등장한다. 〈메탈 기어 솔리드(Metal Gear Solid, 1998)〉는 폭스하운드(Foxhound) 부대를 제대하고 은거하던 솔리드 스네이크에게 옛 상사인 로이 캠벨 대령이 찾아오며 시작된다. 캠벨 대령은 스네이크가 복무했던 폭스하운드 부대가 반란을 일으켜 알래스카 쉐도우 모세스 기지를 무단 점거하고 요인 2명을 구속, 메탈 기어 렉스(REX)를 탈취했다는 사실을 전하며 이들을 제압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스네이크는 거절하지만, 거듭된 대령의 설득 끝에 결국 홀로 적진으로 숨어들어간다. 〈메탈 기어 솔리드 2 선즈 오브 리버티(MGS 2 Sons of Liberty, 2001)〉에서 스네이크는 완전히 군을 떠나 반(反) 메탈 기어 활동을 하는 비정부기구 필란스로피(Philanthropy)의 민간인 활동가로 등장한다. 스네이크의 동료 ‘오타콘(본명 할 에머리히)’은 미 해병대가 비밀리에 신형 메탈 기어를 개발했다는 익명의 제보를 받고, 신형 메탈 기어의 존재와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스네이크가 해병대의 수송선에 직접 잠입하며 게임이 시작된다. 이후의 작품들 역시 스네이크가 왜 혼자 잠입 작전을 수행해야 하는지 설명하며 시작하는데, 이런 초반부 서사는 사실상 시리즈의 전통으로 정착했다. 최전선에 배치된 실행요원이 후방의 지휘관/조언자와 무전으로 연결되어있는 MGS 시리즈의 작전 구조는 항상 유지되지만, 〈메탈 기어 솔리드 3 스네이크 이터(MGS 3 Snake Eater, 2004)〉를 계기로 스네이크의 소속감에 변화가 생긴다. 스네이크가 더이상 미국을 위해 움직이는 병사이자 요원이기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세력으로 거듭나고자 시도하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이걸 파악하기 위해 MGS 시리즈를 작품 속 타임라인 순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메탈 기어 라이징 리벤전스(2013)는 MGS 시리즈의 타임라인에는 포함되지만 라이덴이 단독 주인공이고, 잠입보다는 액션 중심의 게임으로 본문의 맥락과 무관하여 위 표에서는 생략했다. 네이키드 스네이크와 솔리드 스네이크 모두 일정 시기는 미군 소속으로 지내다 민간인이 되는 패턴을 보인다. 특별히 집중해야 할 부분은 〈스네이크 이터〉를 계기로 변하는 네이키드 스네이크의 소속이다. 〈스네이크 이터〉 이후 미군을 떠난 네이키드 스네이크는 〈포터블 옵스〉에서 FOX부대에 납치당하는데, 게임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반군을 조직할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이어지는 〈피스 워커〉에서 스네이크는 자신이 조직한 반군에 ‘국경 없는 군대(Militaires Sans Frontières)’ 라는 이름을 붙이고 미소 냉전의 양강 구도에 개입할 수 있는 제3세력을 자처한다. 특히 스네이크의 동료이자 MSF의 부사령관인 카즈히라 밀러는 MSF를 용병 비즈니스 집단이라고 거리낌 없이 말할 정도다. 용병은 의뢰를 받아 움직이지만, 계약이 끝나면 의뢰주와의 관계도 끝난다. 이들을 구속할 수 있는 공적인 권력은 사라졌으며, 이들 스스로가 기득권과 맞설 수 있는 힘을 갖추게 되면서 스네이크 이하 병사들은 목줄을 끊고 야생으로 돌아간 들개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공교롭게도 들개로 돌아간 스네이크가 부각되는 시점은, MGS 시리즈가 가장 기술적으로 진보한 시점(현실의 2014년 경)인 의 시대(스토리 상 1975-1982년)와 겹치게 된다. 코지마 감독이 〈메탈 기어 솔리드 V〉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MGS의 세계에 오픈 월드를 도입하게 된 것이다. MGS V는 코지마 감독의 의도와 달리 각각 〈그라운드 제로즈(Ground Zeroes, 2014)〉와 〈더 팬텀 페인(The Phantom Pain, 2015)〉으로 분할 출시되었는데, 게이머들은 를 통해 코지마 식의 오픈 월드를 일부 맛보게 되었다. 는 MGS V 시리즈의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게임으로, 1개의 메인 미션과 6개의 사이드 옵스(콘솔 별 특전 미션 포함)로 구성되었으나 배경은 모두 쿠바에 위치한 미 해병대 기지 ‘캠프 오메가(Camp Omega)’ 이다. 바다로 둘러싸인 이 기지로 잠입하기 위해 스네이크는 해안 절벽을 맨손으로 거슬러 오르거나, 기지와 외부를 오가는 수송 트럭의 짐칸에 숨어드는 방식을 택한다. 하나뿐인 배경을 총 7개의 미션에 재활용해버린 이 게임의 분량에 대한 불만은 차치하더라도, 확실히 의 시점부터 종래의 큐브적 감각의 파괴가 감지된다. 더 이상 큰 공간이 여러 개의 방 형태로 분절된 것이 아니라, 큰 공간을 그대로 인식하도록 만든 것이다. TPP는 GZ와 마찬가지로 오픈 월드를 유지하되, 파괴된 큐브적 감각을 다시 불러오려고 시도한다. TPP의 넓어진 전장은 플레이어에게 아프가니스탄과 아프리카 앙골라-자이르 국경지대를 오가게 만든다. 이 넓은 전장을 동분서주하게 하면서 큐브적 감각을 되살리려는 시도는 메인 미션을 실행할 때 나타나는 ‘핫 존(Hot Zone)’에서 발견할 수 있다. 메인 미션의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플레이어는 도보 또는 차량을 이용해 핫 존을 이탈하거나, 아군 헬기 피쿼드(Pequod)를 불러 기지로 돌아가면 되는데, 이 때 핫 존이라는 개념은 광활한 필드의 일부를 미션 영역으로 제한하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핫 존 경계는 큐브와 달리 구속력이 낮고, 이 경계를 넘으면 자연스레 작전구역 이탈로 인한 임무포기 또는 임무실패 상태로 이행된다. 컴퓨팅 파워의 발전이 불러온 게임 속 공간의 확장과 스네이크의 들개화(化)는 어쩌면 피하기 어려운 숙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이러한 변화 과정은 화려한 전쟁 액션 게임을 개발하라고 했던 코나미의 지시와 MSX의 성능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고 했던 역발상과 마찬가지로, 의도치 않게 나타난 결과에 가까울 것이다. MSX 환경에서 출발한 MGS 시리즈는 첫 번째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의 등장으로 인해 극적인 컴퓨팅 파워 변화를 맞이했고, 3D 폴리곤 그래픽으로 보강된 게임 환경을 확보했다. 도트로 구현된 전장을 오가던 스네이크는 이제 3D 그래픽으로 구현된 전장을 누비게 되었고, 스네이크가 마주한 큐브적 공간은 차츰 확장되어갔다. 그러나 실내외를 막론하고 3차원으로 구성된 전장을 활보할 수 있는 컴퓨팅 파워의 등장은 차츰 큐브적 공간을 이탈하고 싶게 하는 욕구도 함께 불러왔다. 전장 환경 묘사가 세밀해질 수록 플레이어들은 정해진 경로 외의 환경으로 진출을 시도했고, 게임 제작사들이 여기에 응답하면서 차츰 오픈 월드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경쟁작들의 공간 인식이 차츰 발전하는 현실에 맞춰 MGS 시리즈 또한 종래의 큐브적 공간을 탈출해야만 했다. 시리즈의 확장은 동시에 솔리드 스네이크 한 명만으로는 서사를 확장하기 어려운 상황을 직면하게 했다. 게임 속의 1995년부터 2014년을 아우르는 솔리드 스네이크의 서사를 보강하기 위해 코지마 히데오는 1970년대 냉전기로 세계관 확장을 꾀한다. 냉전 속 MGS 시리즈의 서사를 이끌 주인공으로 과거의 영웅이자, 〈메탈 기어〉에서 솔리드를 지휘한 빅 보스(=네이키드 스네이크)를 소환하며 작품의 타임라인을 보강한다. 와 〈포터블 옵스〉, 〈피스 워커〉는 냉전 시대를 헤쳐나가는 네이키드 스네이크를 그려내며 전체 세계관의 확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결국 작품의 타임라인이 차츰 탈냉전의 시대, 즉 〈메탈 기어〉와 솔리드 스네이크의 시대로 다가가면서 냉전 구도를 탈피해야만 하는 지점에 도달한다. 큐브적 공간의 탈출과 냉전 서사의 탈피라는 두 가지 요구는 새로운 MGS 시리즈에 동시에 수용되어야 했다. 특히 로의 이행은 빅 보스를 중심으로 한 서사에서 두 가지 요구가 모두 극에 달하였으며, 가장 기술적으로 발전하였지만 이를 마지막으로 전체 시리즈가 종료되어야 함을 뜻했다. 큐브적 공간의 탈피로 넓어진 공간을 인식하는 동시에 구속을 거부하고 독자세력화된 스네이크는 결국 제한된 공간을 밀착 돌파하는 뱀의 쾌감을 잃어버리고 목줄을 끊고 탈출한 들개로 변하는 것이다. MGS 시리즈가 가졌던 뱀의 은밀함은 경쟁작인 〈스플린터 셀(Tom Clancy’s Splinter Cell)〉 시리즈, 〈히트맨(Hitman)〉 시리즈〉 등으로 넘어가 버리게 된다. 그렇다면 가 들개의 자유로움이라도 확보했는가? 안타깝게도 들개의 자유로움마저도 온전히 확보하지 못한 걸로 보인다. 들개의 자유로움을 잘 구현한 게임을 찾자면 다른 오픈 월드 장르 게임을 예시로 드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락스타 게임즈의 , 〈레드 데드 리뎀션 2(Red Dead Redemption 2)〉를 플레이할 때 21세기 미국의 도시와 18-19세기 서부 황야를 활보하며 그 시대를 살아가는 구성원이 느꼈을 법한 생동감과 자유로움을 체험하게 된다. MGS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에서 뱀의 은밀함, 들개의 자유로움 어느 하나라도 온전히 확보하지 못한 것이 시리즈 전체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결함이 되진 않는다. 5편에서 시도된 오픈 월드의 세계관은 코지마 히데오 특유의 영화적 스펙타클과는 잘 어우러졌고, 자연스러운 컷씬과 화면 전환 등의 효과로 플레이어가 게임의 그 순간에 확실히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전체 스토리 라인에서 전반부에 해당하는 빅 보스의 시대를 마감하는 역할 또한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완결성을 확보하려고 한 노력 또한 여실히 드러난다. 냉전 시대 미국의 요원으로 소련의 핵병기를 성공적으로 저지한 네이키드 스네이크의 활약상은 결국 그를 바탕으로 한 복제인간 병사를 만들어내는 계획으로 발전한다. 3편 〈스네이크 이터〉에서 전체 MGS 스토리가 시작되고, 5편인 〈그라운드 제로즈〉와 〈더 팬텀 페인〉, 그리고 〈선즈 오브 리버티〉를 거쳐 〈건즈 오브 패트리어트〉에서 완결을 맞는다. 이 흐름에서 자연스럽게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고 아버지(네이키드 스네이크)의 행로를 따라가는 아들(솔리드 스네이크)의 이야기가 된다. 냉전 속에서 국가의 도구에 불과했던 아버지는 도구로서의 운명을 거부하고 독자세력이 된다. 그러자 그의 아들이 다시 국가의 도구가 되어 아버지를 제압한다. 시리즈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아들은 여태까지의 삶이 아버지의 흔적을 따라 온 것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는다. 메탈 기어의 위협, 같은 복제인간 형제인 리퀴드 스네이크와의 갈등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뒤에야 솔리드 스네이크는 얼마 남지 않은 삶이라도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고자 결의하며 뱀의 임무를 모두 내려놓는다. MGS 시리즈는 기술의 한계로 큐브적 공간 속에서 국가의 통제 하에 임무를 수행하던 사냥개이자 뱀이었던 ‘스네이크’가, 기술의 발전으로 큐브적 공간에서 방출되는 동시에 통제를 거부하고 들개가 되어 홀로 서는 이야기로도 해석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스네이크의 변화와 함께 그 창조자였던 코지마 히데오 감독 역시 코나미와의 갈등 끝에 홀로 서게 되는 얄궃은 운명을 마주한다. 28년이라는 전통과 충성심 높은 팬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코나미에게 최신 MGS 시리즈란 투자비용 대비 수익이 낮은 상품이었고, 이 때문에 결국 코나미와 코지마 히데오는 결별의 수순을 밟는다. 이 과정에서 코나미는 의 2015 플레이스테이션 어워즈 수상, TGA 2015 시상식에 코지마 히데오가 출연하지 못하도록 저지하기까지 했다. 코나미와 코지마 히데오가 결별한 바로 다음 날, 코지마 히데오는 본인의 이름을 딴 독립 개발사 ‘코지마 프로덕션(Kojima Productions)’ 출범을 발표하는 동시에 소니(Sony)와의 파트너십 체결 사실도 공개한다. 팬의 입장에선 정말로 반가운 소식이었다. 또한 코지마 히데오 없는 MGS 시리즈를 상상할 수 없는 전 세계의 팬들 덕분에 2018년 출시된 코나미의 〈메탈 기어 서바이브(Metal Gear Survive)〉는 결국 흥행에 참패하고 MGS 시리즈의 이름과 명성, 게임 엔진만을 가져다 쓴 완전히 별개의 게임으로 남았다. 다행인 것은 〈서바이브〉 출시 이전에 이미 코지마 히데오 감독은 MGS의 이야기를 모두 완성해서 시리즈에 담아냈기 때문에, 코나미가 개입하여 주제의식을 흔들어버릴 가능성은 완전히 차단되어 있다. 또한 〈데스 스트랜딩(Death Stranding, 2019)〉를 통해 새롭게 제기한 ‘연결’의 주제도 2021년 현재 COVID-19 팬데믹을 맞아 큰 공감을 사면서, 코지마 프로덕션은 MGS를 즐겨 온 팬들과 새롭게 그의 서사에 공감한 팬들과도 성공적인 연결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코나미와의 불쾌한 결별에도 불구하고 들개로 전락하지 않은 코지마 히데오는 〈메탈 기어 솔리드〉와 〈데스 스트랜딩〉 이후 앞으로 어떤 작품으로 우리에게 설렘을 선사할지 기대해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장민호 한양대학교 대학원 장르 테크놀로지와 서브컬처학과 박사과정. 미국소설 연구로 석사를 받았고 인간의 정체성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 최근 관심사는 SF문학 속 비인간의 정체성 문제와 공존의 가능성 등이다.

  • 온라인으로 코옵할 수 있는가? 그럼 깍두기는?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벌어지던 놀이에는 깍두기라는 게 있었음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인생 경력이 그다지 길지 않은 어린이들의 사회에서는 한 두 살의 차이가 체력과 경험, 지혜 면에서 막대한 차이를 만들어냈고, 경우에 따라선 같은 놀이판에 끼기 어려울 정도의 격차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동네 놀이터의 멤버라는 건 늘 정해진 숫자였고, 원활한 놀이를 위해선 때로는 룰을 비틀어가며 경험이 부족한 친구에게 어드밴티지를 줘야 했다. < Back 온라인으로 코옵할 수 있는가? 그럼 깍두기는? 28 GG Vol. 26. 2. 10. 깍두기라는 룰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벌어지던 놀이에는 깍두기라는 게 있었음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인생 경력이 그다지 길지 않은 어린이들의 사회에서는 한 두 살의 차이가 체력과 경험, 지혜 면에서 막대한 차이를 만들어냈고, 경우에 따라선 같은 놀이판에 끼기 어려울 정도의 격차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동네 놀이터의 멤버라는 건 늘 정해진 숫자였고, 원활한 놀이를 위해선 때로는 룰을 비틀어가며 경험이 부족한 친구에게 어드밴티지를 줘야 했다. * 어린이들 사이에서 한 두살 차이는 어마어마한 피지컬 차이다. 보통은 경험과 피지컬이 부족한 막내들이 깍두기로 들어오곤 했다. 비단 놀이터에서만이 아니라 디지털게임 이전에 존재했던 많은 놀이에서 우리는 깍두기 개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수 천년의 경력과 팬덤을 보유한 바둑에는 하수에게 몇 점 깔고 두도록 하는 접바둑이 있었고, 고수가 기물 하나를 떼고 두는 오드 체스 같은 개념들도 로컬에선 보편적이었다. 중년들의 골프에도 멀리건(실패 타수를 빼주는 방식), 컨시드(홀컵에 공이 붙으면 넣은 것으로 인정)와 같은 깍두기 룰이 일반적이라는 점은 적당히 수준이 맞는 게임 파트너를 현실에서 만나고 엮이는 일이 예나 지금이나 말처럼 쉽지는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혼자 하는 놀이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놀이는 최소한의 파트너를 요구한다. 소꿉놀이, 병정놀이부터 바둑, 장기, 체스와 카드게임, 놀이터의 오징어게임까지 놀이는 대체로 타인과의 상호작용이다. 놀이의 전제에 파트너가 있다는 사실은 <테니스 포 투>나 <스페이스 워>, <퐁>같은 초창기 비디오게임들 또한 2인용에서 시작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말은 놀이의 대전제이기도 했다. 초기 컴퓨터를 활용한 디지털게임의 발전은 그래서 어느 정도는 같이 게임할 상대라는 대전제를 기계로 대체하는 데 집중되기도 했다. 2인용의 <퐁>은 공 튀기기의 상대를 사람에서 쌓인 블록으로 바꾸며 1인용인 <브레이크아웃>이 되었고, 기계 한 대에 동전 하나로 두 사람이 놀던 게임은 1대에 1명, 1코인으로 변화하며 수익률과 회전률 개선에도 영향을 주었다. <퐁>과 같은 2인용 게임은 상호 경쟁의 구조이지만 90년대에 등장하는 경쟁형 게임인 <스트리트 파이터 2>를 위시한 대전격투 게임과 비교한다면 이는 코옵에 가깝다. 둘의 차이는 두 플레이어가 서로 대결하느냐 아니냐에 있기보다는 투입한 코인의 가치를 두고 현실에서도 승패의 결과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있기 때문이다. <퐁>이 마치 테니스 코트를 대여료를 내고 빌려 함께 노는 것과 같다면, <스트리트 파이터 2>는 좀더 본격적으로 코인을 걸고 벌이는 투기장에 가깝다. 분명 놀이를 위해 대전격투 게임의 두 참여자는 상호 조응하지만, 우리는 이를 코옵이라 부르지 않는다. 오락실의 코옵은 두 참여자가 같이 코인을 넣고 동일한 목표를 향해 플레이하며 실패시 둘 다 게임오버가 되는 상황을 가리키는 플레이였다. 따라서 코옵은 이뤄지지 않는다. 오락실에서 일어나는 실질적 코옵과 경쟁형 멀티플레이 모두 딱히 깍두기 개념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앞서도 지적했듯이, 플레잉 파트너가 될 사람을 모으고 넓히는 기능으로 깍두기 룰이 작동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경쟁이 아니라 함께 힘을 합치는 코옵이라면 깍두기가 아니라 그냥 패널티 플레이가 되고, 동전의 가치가 걸린 격투게임에서 깍두기 따위는 누가 허용하겠는가? (물론 친구라면 짠발을 안쓴다 정도의 동네 룰 안에 들어가긴 할 것이다.) 놀이 파트너를 모으는 일의 고단함 온라인게임 시대의 등장은 놀이의 오랜 고민 중 하나인 함께 할 파트너 문제를 대단히 놀라운 방식으로 해결해버렸다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대전 상대를 찾아주는 기본적인 매칭 시스템은 누적된 플레이어의 전적을 점수화해 적당한 긴장감이 감도는 비슷한 실력의 대결로 만들어내는 형식으로 진화했다. 함께 5인용 던전을 돌아야 하는 MMORPG는 초기에는 사람 구하느라 광장에서 하루종일 외치기만 날리며 점프만 뛰는 구조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동매칭 시스템이 도입되며 손쉽게 원하는 던전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열었다. * 파티찾기는 전용 채팅 채널에 올라오는 구인구직 글을 텍스트 필터링하는 애드온의 방식으로 시작했다. 이미지출처: 와우인벤 애드온게시판 이는 특히 <리그 오브 레전드>나 <오버워치>같이 게임의 기본적인 규칙이 고정된 팀원 수를 요구하는 게임에 이르면 매우 중요해진다. PC방 상황을 중심으로 그 앞 세대 게임일 <스타크래프트>의 플레이 양상과 비교해 보자. 세 명의 친구가 모여 PC방에서 놀기로 한다. <스타크래프트>시대였다면 이 셋의 선택은 대부분 세 사람이 한 팀이 되어 배틀넷의 모르는 세 사람과 대결하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3:3 헌터 초보만요”가 이들이 만드는 방제였고, 셋은 오프라인의 지인이 협력해 익명의 팀 하나에 맞서는 플레이를 밤새 즐겼을 것이다. * <스타크래프트> 멀티플레이에서 고수는 설 자리가 없다. 모든 방은 초보만 찾는다. 같은 인원수가 <오버워치>와 <리그오브레전드>에 이르면 이 코옵은 조금 이상해진다. 다섯 명이 한 팀이어야 하는 것이 대전제인 <리그오브레전드>에서 이들은 게임을 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세 사람이 대전에 뛰어들고, 이름도 실력도 모를 온라인의 두 사람을 팀원으로 받아들인다. 같은 세 명이지만, 게임의 대전제가 바뀌면서 이들의 놀이는 코옵에서 코옵이 아닌, 혹은 절반만 코옵인 어떤 상황으로 넘어간다. 같이 앉은 세 사람은 계속 목소리로 “정글 어디갔냐!”를 외치겠지만, 그 목소리는 같은 팀의 나머지 두 명에겐 닿을 리 없기 때문이다. 인원 수가 달라지면 상황은 좀더 극적으로 변한다. 네 명이라면 같은 두 상황에서 이들은 <스타크래프트>를 2:2로 구성할 것이다. 이 팀 매칭에는 꽤 많은 정보들이 들어간다. 참가한 네 사람의 게임실력, 경험, 친밀도가 팀 구성에서 검토된다. 하지만 <리그오브레전드>에서는 세 사람과 동일하게 그저 5인 팟의 한 자리를 용병으로 받는 구조가 된다. 물론 지인팟이 네 명이 된다는 점에서 패배의 책임을 좀더 용병에게 몰기 쉽다는 안정감은 발생할 것이다. 다섯 명의 상황은 <스타크래프트>에서는 다시금 깍두기 룰을 부활시키도록 만든다. 2:3의 팀 매칭을 위해서는 고수 2명과 하수 3명을 나누어 불균형한 팀을 짜야 하기 때문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가 완벽한 5인팟을 짜는 기쁨을 누리는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깍두기 룰의 원인이었던 파트너 찾기가 온라인에서 손쉬워지면서 깍두기는 없어져야 했겠지만, 우리는 5인팟에서 여전히 깍두기 룰이 살아남는 것을 보았다. 왜냐하면, 5인팟에서 파트너는 온라인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스타크래프트> 5인 플레이는 정확히는 온라인 게임이 아니다. 네트워크를 사용해 여러 대의 PC를 연결했지만 우리는 이를 온라인게임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이 글 안에서 쓰는 온라인게임의 의미는 정확히 ‘파트너를 온라인에서 찾는 게임’이고, 이는 좀더 구체적으로는 온라인에서 익명의 게임 파트너를 찾는 과정을 가리킨다. MMORPG의 던전 찾기라면 조금 다른 부분이 있을 것이다. 길드 같은 공간에서 5인팟을 찾는 것은 위의 구분으로라면 오프라인 파트너 매칭에 가깝고, 실제로 깍두기 룰과 유사한 방식, 이를테면 고렙 유저의 저렙 버스 태워주기가 횡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10인, 25인을 넘어 40인에 이르는 대규모 공격대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대형 콘텐츠를 플레이하려면 지인팟만으로 팀을 꾸리기 불가능하며, 이때부터는 구인공고를 날리고 면접을 보는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 다만 그렇게 구한 공대원은 정규 공격대일 경우 정기 출석과 채널 활동을 통해 서로 친목을 다지며 지인 혹은 준지인이 되며 다시금 오프라인 매칭에 가까운 인원이 되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렇지 않은 공격대원의 사례다. 이른바 ‘막공’, 딱히 아는 네트워크가 아니지만 힐러가 모자라(힐러는 항상 모자라니까) 자리를 채워야 할 사람을 모으는 경우가 있고, 아예 이것이 정규화된 던전 찾기, 공격대 찾기와 같은 본격적인 온라인 익명매칭 시스템의 경우가 있다. 앞서 이야기한 지인, 혹은 준 지인의 사례와 이 둘은 완전한 대조를 이루는데, 그 결정적 차이는 이 관계가 매우 인스턴트하다는 점에 있다. 공격대 찾기나 막공 지원으로 들어온 플레이어와도 죽이 잘 맞으면 친구가 될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그렇게 만난 관계는 일회적이다. 우리는 지난주 파티에서 함께 한 플레이어를 ‘전우’로 느낄 수 있는가? 그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 관계는 일회적이고 찰나적이며, 두 번 다시 마주칠 일이 없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그렇기에 MMORPG 코옵의 온라인 매칭은 <리그오브레전드>의 그 팀 매칭과 인스턴트하다는 점에서도 동일하다. 온라인게임의 등장이 함께 할 파트너를 손쉽게 찾아준다는 변화를 가져왔다고 앞서 설명한 말에 이제 의미 하나를 덧붙일 수 있겠다. 그 새로 찾은 파트너가 온라인이 아닌 매칭과 갖는 가장 큰 차이는 인스턴트함이다. 동네 놀이터에서 만난 놀이상대는 언젠가 나의 친구가 될 수 있지만(물론 그렇기에 원수가 되는 일도 흔하다), 온라인 매칭은 그 목적이 코옵이건 아니건간에 대체로 일회적이며, 다분히 ‘게임을 같이 한다는’ 목적성만에 오롯이 부합하는 관계에 집중된 인스턴트 파트너 관계다. 합리화되는 놀이 속의 코옵 온라인게임의 인스턴트한 파트너 관계로 이뤄지는 코옵의 문제를 살펴보다 보면 베버가 이야기한 도구적 합리성 이야기에 매우 닿아 있다는 점을 깨닫는다. 목적의 효율적 달성을 위해 수단을 계산하고 선택하는 행위로서의 도구적 합리성은 게임이라는 놀이를 할 때 순수하게 그 놀이 자체를 위해 필요한 항목들에 집중된 연산으로 구성되는 온라인 인스턴트 매칭으로 나타난다. 고레벨 아이템을 주는 레이드몹 사냥을 위해 최저 아이템렙과 공략경험을 필터링해 멤버를 구성하건, 개개인이 가진 게임 기록에 의거해 비슷한 점수대의 플레이어들을 한 팀으로 모아 비슷한 평균점수의 상대와 매칭시키건 상관없이 온라인게임에서의 코옵은 기본적으로 도구적 합리성의 결과에 가깝다. 베버의 논지를 곱씹어보면, 결국 깍두기란 매우 전근대(!)적인 놀이문화라는 결론에 닿게 된다. 게임이라는 규칙이 제시하는 승리나 대결의 우위보다 팀과 파트너를 구성하고 그 상호작용 자체, 혹은 그 놀이를 통해 매직 서클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놀이 결과와는 무관한 상호관계를 바라보는 깍두기 룰은 아마도 베버가 오늘날 온라인게임을 플레이했다면 지적하지 않고는 못 배겼을 전근대적 요소였을 것이다. 베버는 언제나 분석에서 가치중립성을 강조하는 양반이었고 그의 근대, 전근대에 대한 분석은 딱히 어떤 가치판단이 들어간 결과물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온라인의 도입으로 인해 달라진 코옵과 팀매칭의 사례를 두고 무엇이 더 좋았다 나쁘다를 비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편으로는 친목과 우애가 만들어지는 오프라인의 팀매칭 코옵을 그리워하면서도 동시에 지인 베이스로는 4인팟도 꾸리지 못하는 현실에 낙담하며 온라인 매칭의 편리함을 즐기기도 하는 것이 나다. 하지만 정말 어느 순간 규칙의 사이를 메꾸던 윤활유로서의 깍두기가 모든 종류의 온라인 코옵에서 말라붙어버리는 것은 오래 묵은 게이머 입장에서는 그 매끄러움이 남긴 향수 때문이라도 아쉬움을 만드는 것만큼은 사실이라고 고백할 수 있겠다. 다시금 돌아보면 온라인 시대에 이뤄지는 온라인 기반의 코옵이라는 건 오래된 코옵의 방식을 대체했다기보다는 그 중의 일부를 더욱 매끄럽고 정밀하게 가다듬은 결과에 가까워 보인다. 그 과정에서 휘발된 오프라인 기반의 어떤 관계들은 결함이라기보단 기술과 제도에 의한 선택의 결과로서 어쩔 수 없이 놓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날아간 아쉬움이 무엇인지 정확히 짚지는 못해도, 적어도 온라인게임을 굳이 PC방에 모여서 함으로써 아쉬운 무언가를 붙잡으려고들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PC방도 예전같지 않다는 말을 듣다보면, 그 PC방 시대와 함께 휘발되는 되게 오래된 무언가도 함께 예전같지 않다는 말에 묶여 있음을 어렴풋이 직감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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