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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움직이는 게임: 방치형 게임에서의 플레이들

03

GG Vol. 

21. 12. 10.

“게임을 한다”라고 하면 무슨 이미지가 떠오를까? 컴퓨터 앞에 앉아 역동적으로 게임을 즐기는 모양새를 “게임을 한다”라고 칭하던 시절이 있었다. “타닥타닥”(키보드), “딸깍딸깍”(마우스), “삐걱”(의자). PC방이라면 “웅성웅성”까지. 사람들은 기계 앞에 올곧이 앉아서 게임에 몰두한다. 누가 봐도 게임을 하는 모습은 티가 났다. 그래서 게임을 할 때 방, 거실, 피시방, 플스방 같이 분리된 공간으로서 게임의 장소가 중요했고, 사람들은 게임을 하기 위해 그곳에 방문을 해야 했다.


그 풍경은 바뀌고 있다. “게임을 한다”를 상상하면 이제는 여러 이미지가 떠오른다. 모니터 앞에 앉아 몰두하는 장면도 있지만,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모습도 있다. 그 스마트폰은 손에 붙어있기도 하지만, 책상 한쪽에 덩그러니 놓여있기도 한다. 플레이어가 일이나 학업에 바빠 터치를 할 수 없는 상황에도 스마트폰 화면 안에는 스스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 심지어 대중교통 속 인파에 꽉 끼어 팔을 움직이지 못할 때도, 눈을 감고 밤에 잠을 청할 때도 게임은 혼자서 돌아간다. ‘자동’과 ‘방치’라는 이름 아래서.


2020년, 모바일 게임 매출 순위 3위에 갑자기 오르면서 이목을 끌었던 게임이 있었다. 릴리스 게임스의 〈AFK 아레나〉이다. AFK(Away From Keyboard)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 게임은, 제목 그대로 플레이어의 부재를 허용한다. 자동과 방치를 적극적으로 표방하는 게임. 앱스토어에 등록된 모바일 게임 홍보문구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손가락 하나로 지배", "접속하지 않아도 저절로 강해지는"이라는 말들이 눈에 띈다. 이 게임은 특히 자신을 “바쁜 현대인을 위한 게임”이라고 소개한다. 지상파와 유튜브에도 게임 광고가 송출되었는데, 광고는 게임의 다양한 ‘맛’을 거론하며 ‘손 떼는 맛’을 게임의 새로운 스타일로 소개한다.


“게임은 뭐니 뭐니 해도 손맛이라고? 이제 모두들 손 떼! 하루 종일 메어있지 않아도, 가끔씩만 만져줘도, 보는 맛, 뽑는 맛, 키우는 맛, 깨는 맛이 최고! 게임은 원래 이 맛이야.”


모바일 게임에서 자동 기능은 이제 없으면 허전한 존재가 되었다. 보조적 장치가 아닌 주요 장치가 된 것이다. 2013년 모바일 게임 〈몬스터 길들이기〉는 자동 타격, 자동 이동 기능을 게임에 도입했다. 모바일에서 캐릭터 조작이 힘들기 때문에 전투 메커닉의 일부를 자동 실행되도록 한 것이다. 캐릭터의 수집과 성장이 더욱 중요해졌고, 플레이어의 조작은 전투에서 스킬 실행 정도로 한정되었다. 이후 이 게임은 매출과 평가에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면서 모바일 플랫폼에서 RPG의 가능성을 보인 사례가 된다. 그리고 일종의 모바일 RPG 템플릿이 생성된다. 모바일 게임을 이용하는 틈새 시간과 맞물리는 단편적 구조가 정착되었고, 이동과 타격, 스킬 사용 전반을 모두 최적 알고리즘으로 자동화하여 플레이어의 조작 스트레스를 낮추었다.


2010년대 중반부터는 ‘방치형 게임’이라고 불리는 장르가 새로운 플레이 장르로 자리 잡았다. 피시 플랫폼에서 클리커(clicker) 게임, 아이들(idle) 게임으로 불리던 이 장르는 가만히 있어도 재화가 자동으로 증가하는 것이 특징이다. 플레이어는 재화가 더욱더 빠르게 쌓일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시스템을 성장시키고, 자원을 순환시킨다. 부재중 동안 재화가 증식하는 속도를 높여라. 이러한 투자 행위는 금융 자본을 다루는 〈어드벤처 캐피탈리스트〉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난다. 비슷한 장르의 〈중년기사 김봉식〉, 〈오늘도 환생〉, 〈거지 키우기〉, 〈어비스리움〉 등 국내 개발사의 방치형 게임은 길게는 5년이 넘도록 단단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그런데도 많은 게이머는 방치되고 자동 진행되는 게임을 보며 “이것이 게임인가” 하는 반응을 보인다. 실시간 조작을 우선시하는 게임의 일반적 범주 안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이러한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셀 수 없이 많다. 온라인 담론에서 쉽게 보이지 않을 뿐이다. 같은 장르의 신규 게임들이 매일 앱스토어에 출시되고 있다. 화면을 실시간으로 쳐다보고, 캐릭터를 직접 움직여야만 게임일까? 어찌 보면 “게임을 한다”는 의미가 그동안 너무 좁았던 것일 수도 있다.


면밀히 들여다보면, 자동 진행되고 방치되는 게임은 플레이어의 행동을 마냥 박탈하지 않았다. 다른 행동으로 변화했다는 것이 포인트. 나는 이러한 게임들에 주목하고, 자동화된 알고리즘이 어떻게 새로운 게임 플레이를 만들어내는지, 그리고 플레이어들은 어떤 감각을 느꼈는지 알아봤다.


* 사진: 〈AFK 아레나〉


자동화된 게임들


나는 자동 전투, 방치형 게임이라고 불리는 장르의 게임들을 모두 합쳐 ‘방치’ 문화의 게임으로 묶었다. 물론 게임은 모두 달랐지만, 플레이어가 부재한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방치된다는 사실은 같았다. 자동화된 게임의 양상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방치되는 시간을 기준으로 간헐적 방치, 장기적 방치, 항시적 방치로 묶었다.


우선 간헐적으로 방치되는 게임은 여러 개의 스테이지로 분기가 형성된 것이 특징이다. 하나의 스테이지는 1분에서 3분 정도로, 일과의 틈새 시간에 짧게 즐길 수 있다. 전투 화면에 동영상 재생 기능이 도입된 것이 특징인데, 전투가 진행되는 속도에 배속을 높여 빠르게 넘어가거나 정지 버튼을 눌러 캐릭터의 상황을 점검하기도 한다. 또다른 범주인 장기적 방치는 짧게는 몇 분에서 길게는 몇 시간까지 게임을 켜두어야 하는 것이 특징이다. 스마트폰을 끄거나 다른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면 게임이 정지한다. 따라서 배터리 소모가 필수적이며, 화면 보호 모드를 켜두거나 피시 화면에 게임을 연결해 플레이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항시적 방치의 분류에서 게임은 가입한 이래로 캐릭터가 무한하게 전투를 하고 아이템을 수집한다. 게임은 항상 진행되고 있으며, 플레이어는 접속하여 게임 진행에 가속 운동을 한다. 물론 이러한 게임들도 너무 오래 플레이어의 부재를 허용하진 않아서 최대 24시간이 지나면 더는 진행되지 않게 하기도 한다.


이렇게 임의로 세 개의 큰 카테고리를 분류했지만, 사실 이들 사이는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으며 서로의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쿠키런: 킹덤〉에는 수 분 내로 끝나는 스테이지가 있으나, 동시에 최대 8시간까지 초당 몇 개의 속도로 지속해서 재화가 발생하는 '풍요의 샘'이 있다. 〈AFK 아레나〉도 마찬가지로 두 시스템을 동시에 가진다. 게임에서 구현된 것과 별개로, 플레이어에 따라서 스타일이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항시적으로 방치되는 〈꿈의 마을〉에 길게 접속해 오랫동안 플레이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쿠키런: 킹덤〉


일과에 녹은 게임의 시간


게임이 스스로 가동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잠을 자는 시간에도 직장에서 일을 하는 동안에도 게임을 하게 되었다.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노동 시간은 게임을 방치해두기 좋은 시간인데, 사람들은 업무 책상 위에서 스마트폰을 충전기에 연결하고 화면 보호 모드를 켜두거나 화면 밝기를 낮추어 게임이 계속 진행되도록 했다. 이는 주어진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여러 행위를 동시에 하는 멀티태스킹에 속한다. 게임을 켜둔 상태에서 유튜브를 보거나, 회사에서 업무를 처리하거나, 자기 계발을 하거나, 집안일이나 식사를 같이하기. 시간을 이중으로 사용하여 조금이라도 가치를 더 창출하려는 의지다. 아무 쓸모 없는 시간이 될 수 있는 묵묵히 일하거나 머리를 말리거나 양치하기, 빨래하기, 대중교통 이동할 때 게임을 켜두면 또 하나의 생산물이 발생하는 것이다.


“밤에 게임을 켜 놓고 자요. 충전기를 끼고 켜 놓고 자면, 아침에 일어났을 때 콘텐츠가 쌓여있거든요. 핸드폰 보고 처리하고, 화장실 가서 씻습니다. 출근 지나서 제일 먼저 김봉식 다시 켜서 충전기에 꽂아 넣고요. 퇴근 후에 운동하고, 샤워하고 컴퓨터 하거나 영상을 보는데, 한 쪽에 김봉식을 켜놓고 15분에서 많게는 20분에 한 번씩 다시 봐줍니다.”


방치되는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생각을 덜 빼앗는다. 즉, 집중, 몰입, 관심이라는 인지적 자원을 덜 사용하면서 절약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높은 몰입을 요구하며 인지 자원을 빼앗는 게임은 중독적이라고 보게 되는 경향이 있었다. 하루 종일 업무를 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소소하게 플레이 할 수 있는 게임. 그 게임은 나의 일상을 잡아먹지 않는다. 다양한 게임 중에서 자동화된 플레이의 게임들은 너무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은 세상에서 나타나는 여가 실천이다.



'게임하기'의 변화: 기계 관리자로서 플레이어


사람들은 게임을 "돌려놓는다"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이러한 표현은 보통 기계를 다룰 때 쓰는 말이다. 오랜 시간 방치했던 게임에 복귀하여 "쌓여있는" 것들을 "처리"하고 "정리"한다는 점 역시도, 게임 진행을 일종의 과업으로 생각하는 것과 같았다. 마치 세탁기나 식기세척기처럼 기계에 힘든 일을 맡기고 일정 시간 뒤 작업이 완료되면 결과물을 획득하는 것처럼, 알고리즘에게 게임을 맡기고 일정 시간 뒤의 결과물을 확인하는 지금의 자동화된 게임 양상은 인간의 정신적 유희 활동으로 게임을 정의하는 것에 대한 근원적인 고찰을 일으킨다.


오늘날 방치되는 게임에서 인간은 아바타 당사자가 아닌, 기계의 관리자로서 위치가 변화했다. 다시 말해, 기계를 조작하는 일과 기계가 가져온 결과물을 재배치하는 일이 게임하기가 된 것이다. 기계에게 명령을 내린 플레이어는 이제 직접 고단한 일을 하지 않고, 일을 하고 있는 게임을 지켜보는 관리자가 되었다. 게임 〈고양이 식탁〉은 고양이들이 방문하는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끝없이 방문하는 고양이 손님에게 주문을 받고, 바닥을 청소하는 등의 일을 한다. 처음에는 직접 화면 터치를 통해 이러한 응대를 모두 처리해야 하지만, 어느 정도 게임의 메커니즘이 익숙해졌을 즈음 플레이어는 게임에서 거리가 멀어져 관리자가 되기 시작한다. 레스토랑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직접 처리하지 않고 그 일을 처리할 직원 캐릭터를 배치하며, 그 캐릭터가 일을 밀리지 않고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역할로 변모하는 것이다.


플레이어는 캐릭터에 몰입하는 위치에서 벗어나고 기계 행위자인 캐릭터(알고리즘)를 관리하는 위치가 되었다. 캐릭터와의 거리는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당사자에서 제3자가 되며, 게임 상황을 관망하게 된다. 여기에서 보기로서의 게임하기가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관리자이자 시청자, 양육자, 혹은 수학자


이렇게 변화한 역할에서 발생하는 감각은 어떤 게임을 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어떤 이는 '게임 방송 시청'과 비슷하다고 답했다. 나의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화려한 전투 장면을 즐거이 감상하는 것이다. 전투가 끝나면, 다음 방송이 재생되듯 다음 전투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하물며 캐릭터가 도중에 사망하기라도 하면, 장면에 감정이입 하면서 탄식을 보였다. 또 다른 집단은 자동 전투하는 캐릭터를 0과 1로 이루어진 데이터 조각에 불과하다고 언급하면서, 캐릭터 군단과 인간 플레이어 본인과의 거리가 멀어 이입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냉정하게 드러냈다. 캐릭터와 거리가 계속 멀어지다 못해 무덤덤한 관찰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반면 눈앞에서 성장하는 캐릭터를 자식이나 반려동물로 느끼는 부류도 있었다. 〈중년기사 김봉식〉을 즐기는 플레이어는 캐릭터가 자신과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거리감은 있지만, 오랜 시간 애정을 가지고 키운 반려동물과 같은 존재라고 언급했다. 이는 과거의 육성 게임기 〈다마고치〉와도 연결되는 지점이다. 귀여운 캐릭터가 알 모양의 기계 안에서 플레이어의 보살핌을 받고 자라는 다마고치는, 배설물을 치우거나 잠을 잘 때 불을 꺼줘야 하는 생물학적 리듬을 표방한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가 행복하고 건강을 유지하도록 플레이해야 했고, 디지털 반려동물로 여기면서 캐릭터에게 정서적으로 가까움을 느꼈다.


"더 멋진 기계 관리자"가 되는 일로 플레이어의 지향점이 설정되기도 했다. 게임 커뮤니티에서 많은 유저들은 캐릭터 육성법을 공유한다. 이들은 도표를 그려 수치를 분석하고, 각 선택에 따르는 최적의 효율을 찾는다. 이러한 행위를 띠어리크래프트(theorycraft)라고 부르는데, 2000년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커뮤니티에서 유저들이 게임 세계의 작동 연산을 밝혀 더 좋은 플레이를 하도록 실천한 것으로 기록된다. 띠어리크래프트를 즐기는 유저는 관리자가 된 동시에 최적의 루트, 최적의 성장법을 찾아 수학자가 된 것과 같은 즐거움을 느낀다.


이렇듯, 게임은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방치를 허용하고, 사람들은 방치 행위를 일상에 녹여낸다. 과거 피시 온라인 게임에서 불법으로 규제했던 자동 플레이가 모바일 게임으로 오면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5분, 1시간, 24시간 등 원하는 시간을 선택하여 방치할 수 있는 오늘날 자동과 방치의 게임들은 마치 여가 시간을 채우는 상품의 여러 가짓수를 제공하는 듯싶다. 이제 플레이어는 기계 관리자로서, 게임 기계가 잘 굴러가도록 보살핀다. 같은 관리자라도 요란하게 전투하는 캐릭터를 지긋이 감상하는 사람들, 감정 이입하는 사람들, 혹은 감정 없이 냉정하게 대하는 사람도 있지만, 친밀성을 가지고 '반려 캐릭터'로 보는 경우, 게임 내 메커니즘을 간파하고 그 수를 이해하는 것에 충실한 나머지 수학자가 되어버린 관리자도 존재하기도 한다.


아직 모바일 MMORPG에서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인공지능이 적극적으로 도입이 되면, 여태까지 말한 '관리'의 속성이 다르게 변할 수도 있다. 정해진 기능을 마냥 수행하지 않는 캐릭터가 나타날까? 그것이 어떤 방향이든, 게임하기의 범위를 확장할 것 만은 확실하다.




*이 글은 필자의 석사논문 〈플레이어 없는 게임들: 모바일 게임의 ‘방치’ 문화 연구〉에 기반하여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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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문화연구자)

사회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연구합니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결국 인간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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