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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디오게임과 기이한 유령들의 세계

    비디오게임에서 유령이란 존재할 수 있는가? 물론 다들 이것이 꽤나 이상한 질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유령은 수많은 비디오게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슈퍼 마리오」시리즈의 부끄부끄부터 「F.E.A.R.」 시리즈의 알마까지, 비디오게임에는 다양한 아이코닉한 유령 캐릭터들이 존재한다. < Back 비디오게임과 기이한 유령들의 세계 19 GG Vol. 24. 8. 10. 비디오게임에서 유령이란 존재할 수 있는가? 물론 다들 이것이 꽤나 이상한 질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유령은 수많은 비디오게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슈퍼 마리오」시리즈의 부끄부끄부터 「F.E.A.R.」 시리즈의 알마까지, 비디오게임에는 다양한 아이코닉한 유령 캐릭터들이 존재한다. 다만 질문은 단순히 ‘유령 캐릭터가 있느냐’로 한정해 묻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들이 과연 ‘유령성’이라는 개념을 가질 수 있는가의 문제다. 가령, 「홈 스위트 홈」의 악령 ‘벨’과 「파피 플레이 타임」의 괴물 ‘허기우기’는 구분되는가? 이들이 각기 다른 개념의 존재로 인식되는가? 두 존재는 큰 틀에서 동일한 메커니즘으로 움직인다. 둘 모두 플레이어 캐릭터를 인식하고, 추적하며, 접촉하면 사망에 이르게 만든다. 말하자면 비디오 게임에서의 유령은 대체로 물리적 존재인 괴물과 크게 구분되지 않는다. 이들은 엄밀히 말해 가장 오래된 유령, 「팩맨」의 네 유령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바꿔말하면 비디오게임의 유령은 그 탄생부터 ‘접촉’을 기반으로 하는 물리적 오브젝트로 규정되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질문은 크게 우회해 이렇게 바꿔볼 수 있다. 비디오게임에서 유령은 괴물과 구분될 수 있는가? 또는 비디오게임은 유령성을 가질 수 있는가? 마지막으로, 비디오게임에서의 유령성은 어떻게 규정될 수 있는가? 유령과 접촉의 모순적 메커니즘 유령이란 물질과 비물질의 중간 지점, 접촉과 접촉 불가능성의 사이에 존재해야 한다. 우리가 인식하는 유령이란 물질적corporeal이면서도 비실체적incorporeal인 존재들이다. 그들은 벽을 투과하고 공중을 날아다니지만, 때때로 물건을 건드리고 소리를 발생시킨다. 유령이란 볼 수 있지만 만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물성을 초월한다. 앞서 말했듯 비디오게임의 유령이란 이 지점에 도달하지 못하는 모순적 개체들이다. 이 유령들은 언제나 플레이어 캐릭터를 향해 돌진하고, 그들과의 접촉을 위해 활동한다. 그들은 엄밀히 실존한다. 카메라로 악령을 퇴치하는 「령~제로~」 시리즈의 가장 대표적인 전략은 ‘공격당하기 전에 쓰러뜨린다’이다. 여기서 악령의 공격이란 접촉의 메커니즘을 전제한다. 플레이어는 그들이 ‘접촉해오기 전’에 촬영이라는 비실체적 공격으로 쓰러뜨려야 한다. 이는 전적으로 아이러니다. 여기서 물질성을 초월하는 존재는 악령이 아니라 (물질인) 카메라다. 「F.E.A.R.」 시리즈에서도 이러한 구조는 동일하다. 플레이어는 알마가 생성해낸 유령Ghost들을 총을 쏴 제거할 수 있다. 여기서도 차라리, 거리라는 물리적 한계를 넘어선다는 의미에서, 총이 유령보다 훨씬 초월적이다. *「제로 : 월식의 가면」 비디오게임의 메커니즘은 (히트박스로 규정되는) 충돌을 전제한다. 결국 이 내부에서 물질성을 완전히 초월한다는 것은 게임적 구조를 뛰어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플레이어에게 있어 그런 조건은 전적으로 ‘글리치’적으로 다가오게 된다. 벽이라는 구조를 뚫고 들어오는 것은 유령적이라기보다는 ‘벽뚫는 버그’를 연상시키며 따라서 불공정의 감각을 초래한다. 비디오게임에서의 물질성의 초월은 그 한계지점의 돌파가 아니다. 오히려 물리적 위력의 일방적인 우위성에서 온다. 「화이트 데이」의 공포의 핵심은 일방적인 물리력을 행사하는 수위에게서 나타난다. 오히려 물리적 한계지점을 뛰어넘는, 구조와 무관하게 천천히 접근해오는 머리 귀신은, 그 시청각적 특성을 통해 아찔함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머리 귀신은 플레이어에게 직접적 위해를 가하지 못하기에 그다지 초월적인 존재로 여겨지지 못한다. 차라리 그들이 공포스러운 것은 접촉을 통해 수위라는 물리적 주체를 불러들인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 머리 귀신조차 아찔한 감각과 그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접촉이라는 조건을 달성해야 한다. 따라서 비디오게임의 유령은 전적으로 현존presence한다. 있는듯 하지만 없거나 또는 없는듯 하지만 있는 존재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그 존재를 가진다는 의미다. 이를 정확히 보여주는 게임이 바로 「파스모포비아」다. 이 게임은 다양한 방법론과 조건들로 어떠한 유령이 있는지를 밝혀내야 한다. 말하자면 이 게임의 목적은 유령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시키는 것이다. 물론 유령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한편 명백히 오브젝트로써 그 공간에 ‘존재한다’. 게다가 이 게임의 팬덤은 유령이 가진 감각 패턴을 밝혀냈는데, 재미있게도 그 가시범위는 물체에 의해 일정량 차단될 수 있다. 심지어는 유령의 종류에 따라 이동속도나 가속도 여부까지 부여되어 있다. [1] 이 게임에서 유령은 투명invisible하지만 비실체적incorporeal이지는 않다. 앞서 설명한대로 이 유령이 초월적으로 느껴진다면 그것은 철저히 일방적인 실체라는 정도일 것이다. *「파스모포비아」에서 유령의 감지 범위를 설명하는 이미지 (출처: 레딧) 데리다의 유령론으로부터 한편 유스티나 야닉Justyna Janik은 2019년의 에세이 《Ghosts of the Present Past: Spectrality in the Video Game Object》에서 비디오게임의 유령에 달리 접근한다. 야닉이 끌어들이는 것은 데리다의 유령론hauntology이다. 데리다는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존재론ontology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개념들을 설명하기 위해 이 유령론을 도입한다. 그의 정리에 있어 유령은 가시적이면서 비가시적인 존재, 과거의 존재이면서 현재까지 영향을 주는 그리고 미래까지 예시하는 존재다. 야닉은 특히 유령의 몰시간성anachronie [2] 을 중심으로 유령론의 적용을 시도한다. 하지만 그의 설명을 차용한다면, 비디오게임에는 오히려 유령을 탄생시킬만큼의 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 야닉은 이렇게 적는다. ‘게임 세계의 과거, 현재, 미래는 거의 동시에 제작되는 것 같다.It seems that the game world’s past, present, and future are produced almost simultaneously(...)’ [3] 즉 「F.E.A.R.」의 악령 캐릭터 알마는 유령이지만 그에게 주어진 과거는 어디까지나 게임 외적으로 설정되어진 과거에 불과하다. 알마는 플레이어가 게임에 뛰어들고 마주친 그 순간에 형성된 현재 시제의 존재임이 분명하다. [4] 물론 야닉은 이러한 시간 형성의 동시성을 유령론의 몰시간성과 어느정도 동일시한다. 하지만 선형적 시간의 인과개념이 없다는 것은 압축할만한 시간의 원본도 없다는 의미가 된다. 알마가 몰시간성의 존재인 것은 사실이나, 애초에 과거조차 없는 존재다. 이것은 비디오게임의 유령 일반에서 반복되는 성질이다. 이 유령들에게 부여된 ‘유령이 된 배경’이라는 사건들은 (야닉이 규정한) 게임 세계 내부의 사건이 아니라 오직 허구적으로 구성된 이유에 불과하다. 결국 플레이어는 과거에 대한 증언, (「바이오쇼크」 등에서 볼 수 있는) 환영, 기록, 때로는 명백히 시각적인 컷씬 등을 통해 그들이 허구적 과거로부터 온 존재임을 인지할 수 있을 뿐이다. 실질적으로 마주치는 그들은 플레이어가 게임을 시작함과 동시에 발생한 현재의 존재다. 만약 플레이어가 과거를 지시하는 허구적 기록들과 마주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영영 현재라는 시간에 묶일 수 밖에 없다. [5] *「룸」에 등장하는 러스티의 유령 물론 게임 세계의 과거를 통해 생성되는 유령들도 존재한다. 루카스아츠의 「룸」에서 주인공 보빈은 대장장이들의 도시 ‘포지’에 들어가기 위해 포지의 소년 러스티와 모습을 뒤바꾼다. 보빈이 포지에서 활동하던 중, 직전 이벤트에서 보빈에 의해 꼬리에 불이 붙은 검은 용이 포지의 앞에 나타난다. 용은 보빈의 모습을 한 러스티를 발견하고는 잡아먹어 버린다. 나중에 포지에서 나온 보빈은 러스티의 뼈 위에 떠오른 유령과 만난다. 그리고 이 유령은 생전과 달리 분노에 찬 표정으로 대사를 내뱉는다. 이 장면은 당대 기술적 한계 때문에 썩 공포스럽게 묘사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플레이어의 행동이 가져온 하나의 비극으로써 강렬히 각인된다. 물론 러스티의 안타까운 경험은 전적으로 스크립트로 만들어진 것으로 결코 바꿀 수 없는 운명적인 사건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스티의 유령은 명백히 게임 세계의 인과가 만들어낸 존재이다. 조금 더 내밀한 유령은 「메탈기어 솔리드 3」에서 마주하는 병사들의 유령이다. 보스 중 하나인 ‘더 소로우’는 주인공 네이키드 스네이크에게 죽음의 환영을 보여준다. 플레이어는 더 소로우를 따라 어두운 강을 거슬러 오르며 지금까지 자신이 죽인 모든 병사들의 유령과 마주친다. 병사들은 플레이어가 그들을 살해한 방식의 상처를 그대로 지니고 있으며 그에 따른 원통함의 대사를 내뱉는다. 러스티의 유령이 결코 회피 불가능한 인과가 만들어낸 유령이라 한다면, 병사들의 유령은 전적으로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른 결과물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유령들은 지난한 역사의 표출물이 아니라 단기적인 감각적 대상물로써 순식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6] 이것은 야닉이 말한대로 비디오게임의 게임 세계에서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나타나기 때문일 것이다. 즉 이들이 표출하는 게임 세계의 역사란 극도로 짧기에 무언가의 기표가 되기엔 지나치게 순간적인 셈이다. 그 정도의 역사는 그저 현재라는 시간에 귀속되어 버린다. 기이한 유령들 이렇듯 비디오게임의 유령이란 (1) 물성을 가진 실체의 존재이며 (2) 과거로부터 오지 않은 현재의 존재다. 따라서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란, 비디오게임의 유령은 괴물의 또 다른 버전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마크 피셔가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에서 제시한 기이함과 으스스함의 개념을 가져올 수도 있다. 마크 피셔는 이렇게 적는다. “나는 기이한 것The weird이란 특정한 형태의 동요라고 말하고 싶다. 여기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감각이 포함된다. 기이한 존재 혹은 대상은 너무나 이상해서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고, 혹은 적어도 여기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느끼게 한다.” [7] “으스스한 것The eerie은 인간이 던질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질문들, 존재와 비존재에 대한 질문들과 관계가 있다. 아무것도 없어야 하는 때에 여기 어째서 무언가 있는가? 무언가 있어야 하는 때에 어째서 여기 아무것도 없는가?” [8] 우리의 관점에서 기이함이란 괴물의 것이며 으스스함이란 유령의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비디오게임의 유령은 어째선지 계속 기이한 것으로 수렴되어 버린다. 비디오게임의 유령들은 움직여서는 안되지만 어째선지 움직이는 「프레디의 피자가게」의 인형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들은 어딘가 잘못된 존재들이지만(「슈퍼 마리오」의 부끄부끄는 다른 적들과는 다른 메커니즘을 가진다.) 철저히 존재감을 가진다(킹 부끄부끄의 존재감은 지나치다.). 비디오게임의 유령은 왜 기이한 존재일 수 밖에 없는가? 가장 쉬운 답이라면 비디오게임이 직관적 감각의 영역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비디오게임에는 실재하지 않는 것은 쉬이 존재할 수 없다. 그곳은 설령 보이지 않는 유령이라 하더라도 그 데이터가 공간 내부를 떠돌아다녀야 하는 곳이다. 결코 없어야 하는 것이 존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오히려 이 규정을 넓혀본다면 다른 결론과 마주할 수도 있다. 진정 없어야 하는데 존재하는 것, 있어야 하지만 아무 것도 없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혹시 비디오게임의 본질적 속성이지 않는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존재하는 세계, 만져지지 않음에도 만져지는 디지털의 물성은 그 자체로 으스스한 것에 속한다. 즉, 비디오게임이 바로 으스스한 것이다. 그리고 비디오게임의 세계가 으스스한 세계라면, 그 내부에서 따로 으스스한 것이 존재할 수는 없다. 비디오게임의 내부에서는 모두가 유령이다. 그곳에서 따로 유령적인 것이 존재하는 지 묻는 것 자체가 곤란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하다가 사망했을 때, 혹은 「어몽어스」를 하다가 빠르게 처형당했을 때, 즉시 유령의 모습으로 뒤바뀌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지는 않는다. 이 전환이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여기에는 어떤 신묘한 영적 세계의 탐구 같은 것은 없다. 전의 존재와 후의 존재 사이에서 어떠한 상태의 전환이 발생한 것일 뿐이라면, 사망하기 전에도 유령이었다고 규정하는 것이 그다지 이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 애초에 비디오게임의 세계가 근본적으로 영적 세계다. 우리가 컨트롤러를 조작하지 않는다면, 그 껍데기(=플레이어 캐릭터)는 마치 영혼없는 골렘처럼 우두커니 서있을 뿐이다. 플레이어 주체가 그들의 육체에 들어가는 영적 존재나 다름 없다. 적의 육체에 빙의해 싸우는 아케이드 게임 「판타즘」이나 다양한 물체에 빙의해 퍼즐을 풀어가는 「고스트 트릭」은 어떤 면에서 메타적 비디오게임처럼도 보인다. *「고스트 트릭」 결국 비디오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 영적인 세계에 뛰어드는 것이다. 그곳에는 존재하지 않아야 하지만 존재하는 오브젝트로 가득 차 있다. 활기찬 NPC들로 가득찬 오픈월드 게임의 도시를 보는 것은 허크 하비의 「영혼의 카니발」을 관람하는 것과 같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직접적으로 유령의 세계를 보는 것이다. 이 곳에는 인간 육체를 통해 만들어진 유령은 없으며, 이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유령이다. 여기서 특별히 더 유령으로 규정될 존재는 없다. 차라리 이곳, 비디오게임의 세계를 유령과 괴물의 세계라고 부르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1]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순간이동같은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2] 단어 anachronie의 번역은 《마르크스의 유령들》의 역자인 진태원의 번역을 따른다. [3] Justyna Janik, 《Ghosts of the Present Past: Spectrality in the Video Game Object》, Journal of the Philosophy of Games, 2019, p9 [4] 야닉은 이 개념의 설명을 위해 게임의 세계를 두 개의 층위로 나눈다. 하나는 게임의 서사 부분을 결정하는 허구적 세계fictional world이며 또 하나는 플레이어가 게임 플레이를 통해 접촉하는 게임 세계game world이다. ‘첫 번째 층위는 게임으로 표현되는 캐릭터, 사물, 장소, 사건의 디제이시스적 영역인 허구의 세계다. 두 번째 층위인 게임 세계는 비디오 게임 오브젝트의 물성에서 비롯된다.The first layer I will consider is the fictional world – the diegetic domain of characters, objects, places and events that is represented by the game. The second layer, the game world, emerges from the materiality of the video game object.’ (같은 책, p2) [5] 야닉은 허구적 세계와 게임 세계라는 두 층위의 긴장이 데리다적인 효과를 낳는다고 주장한다. 시간의 개념 뿐만 아니라 허구적 세계에서 의미론적인 효과가, 게임 세계에서 디지털 물성의 효과가 나타나 중간자적 개념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야닉이 서술하는 효과를 만족하기 위해서는 허구적 세계의 층위가 긴장을 형성할 만큼 충분히 도드라지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디지털 물성을 감각하면서 의미론적 층위와 마주하지 못하는 일도 충분히 가능하며, 그 경우 과거는 없는 것과도 같다. [6] 「룸」에서 보빈은 러스티를 되살린다. 러스티의 유령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7] 마크 피셔,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 구픽, 2019, p20 [8] 같은 책, p15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평론가) 이선인 만화와 게임, 영화를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합니다. MMORPG를 제외한 <파이널 판타지> 전 시리즈 클리어가 라이프 워크입니다. 스팀덱을 주로 사용합니다.

  • 플레이할 결심: 공포 게임을 못_잘_안 하는 이유에 대한 성찰적 자기반성을 토대로

    나는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공포 게임이 무섭기 때문이다. 무서워하라고 만든 게임을 무서워해서 하지 않으니 자연스럽긴 한데 뭔가 아쉽긴 아쉽다. 바로 내가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공포 게임에도 명작이 참 많다. < Back 19 GG Vol. 24.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iwoong Kang Senior researcher at the Institute for Social Development Studies, Yonsei University. Has written for various game outlets, including Gamers. Books include Game and Cultural Studies (co-authored) and The History of Korean Games (co-authored). Writes a regular game column for the children's magazine Goraega Geuraesseo. Believes that games are a culture that walks alongside us, touching countless moments of our lives.

  • 지구를 다시 지구로, 지금을 다시 지금으로 만들기: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를 즐기며

    테라포밍(Terraforming)이라는 말을 점점 더 자주 듣게 된다. 특히 최근에는 기이한 행동으로 구설수에 오르는 자본가 일론 머스크(Elon Musk)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가 화성을 테라포밍하는 것을 사업의 최종적인 목표로 여긴다는 이야기가 동시대 자본주의 세계의 신화처럼 전해진다. 테라포밍은 말 그대로 어떤 행성을 ‘지구의 형태로 만드는’ 작업을 말한다. 보통은 지구 바깥의 다른 행성을 지구처럼 만들어 인간이 이주하거나, 식민지로 삼기 위한 계획을 이야기할 때 등장하는 개념이다. < Back 05 GG Vol. 22.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Taehyun Kwon Writes and plans a range of projects. Works in the art world, yet is always more drawn to things not readily regarded as art. Explores how things outside art might be thought through as objects within it. Continues researching with weight placed on a perspective that grasps the political as a matter of the sensory. (7000eichen@gmail.com )

  • 리그 오브 레전드의 채팅 비활성화와 게임 커뮤니티 문화

    2019년 브리아나 우는 게임이 단순한 모방 범죄와 폭력성을 유발하고 있다는 담론에서 벗어나 이제는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와 문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 또한 사회 문제가 생겼을 때 게임을 모방한 사건이나 게임 중독자의 일탈 행동 등 개인의 책임을 묻는 단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게이머 문화와 커뮤니티의 유해성을 인지하고, 그것을 최소화 시키기 위해서 어떤 일들을 해야 할 지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 Back 03 GG Vol. 21.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ilute Enjoys analyzing the virtual worlds and stories that others have built with such care. Favorite genre is the RPG, and lately has been enjoying board games.

  • 그래서, 제 민첩은 몇 점인가요?

    RPG의 규칙은 수치의 미학이다. 이 규칙이 고도화될수록, 플레이어들이 교감해야 하는 수치와 수식도 고도화된다. 플레이어들은 더욱 강한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계산한다. 디자이너들이 사용하는 전문적인 개발용 어들을 가져오며, 각종 수치를 분석하고, 차트를 만들고, 성장 공식을 유추한다. 적 또는 다른 플레이어를 압도할 수 있는 더욱 빠르고 효율적인 경로와 해결책을 찾는다.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RPG에서는 플레이어 본인의 신체적 능력도 중요하겠지만, 기본적으로 RPG에서 캐릭터를 강력하게 성장시키는 것은 플레이어의 전략적 사고, 소위 ‘뇌지컬’이다. < Back 22 GG Vol. 25.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aein Park A gamer who searches games for inspiration in life. Keenly interested in analyzing the ways games convey their intentions and concepts.

  • 온라인으로 코옵할 수 있는가? 그럼 깍두기는?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벌어지던 놀이에는 깍두기라는 게 있었음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인생 경력이 그다지 길지 않은 어린이들의 사회에서는 한 두 살의 차이가 체력과 경험, 지혜 면에서 막대한 차이를 만들어냈고, 경우에 따라선 같은 놀이판에 끼기 어려울 정도의 격차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동네 놀이터의 멤버라는 건 늘 정해진 숫자였고, 원활한 놀이를 위해선 때로는 룰을 비틀어가며 경험이 부족한 친구에게 어드밴티지를 줘야 했다. < Back 온라인으로 코옵할 수 있는가? 그럼 깍두기는? 28 GG Vol. 26. 2. 10. 깍두기라는 룰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벌어지던 놀이에는 깍두기라는 게 있었음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인생 경력이 그다지 길지 않은 어린이들의 사회에서는 한 두 살의 차이가 체력과 경험, 지혜 면에서 막대한 차이를 만들어냈고, 경우에 따라선 같은 놀이판에 끼기 어려울 정도의 격차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동네 놀이터의 멤버라는 건 늘 정해진 숫자였고, 원활한 놀이를 위해선 때로는 룰을 비틀어가며 경험이 부족한 친구에게 어드밴티지를 줘야 했다. * 어린이들 사이에서 한 두살 차이는 어마어마한 피지컬 차이다. 보통은 경험과 피지컬이 부족한 막내들이 깍두기로 들어오곤 했다. 비단 놀이터에서만이 아니라 디지털게임 이전에 존재했던 많은 놀이에서 우리는 깍두기 개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수 천년의 경력과 팬덤을 보유한 바둑에는 하수에게 몇 점 깔고 두도록 하는 접바둑이 있었고, 고수가 기물 하나를 떼고 두는 오드 체스 같은 개념들도 로컬에선 보편적이었다. 중년들의 골프에도 멀리건(실패 타수를 빼주는 방식), 컨시드(홀컵에 공이 붙으면 넣은 것으로 인정)와 같은 깍두기 룰이 일반적이라는 점은 적당히 수준이 맞는 게임 파트너를 현실에서 만나고 엮이는 일이 예나 지금이나 말처럼 쉽지는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혼자 하는 놀이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놀이는 최소한의 파트너를 요구한다. 소꿉놀이, 병정놀이부터 바둑, 장기, 체스와 카드게임, 놀이터의 오징어게임까지 놀이는 대체로 타인과의 상호작용이다. 놀이의 전제에 파트너가 있다는 사실은 <테니스 포 투>나 <스페이스 워>, <퐁>같은 초창기 비디오게임들 또한 2인용에서 시작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말은 놀이의 대전제이기도 했다. 초기 컴퓨터를 활용한 디지털게임의 발전은 그래서 어느 정도는 같이 게임할 상대라는 대전제를 기계로 대체하는 데 집중되기도 했다. 2인용의 <퐁>은 공 튀기기의 상대를 사람에서 쌓인 블록으로 바꾸며 1인용인 <브레이크아웃>이 되었고, 기계 한 대에 동전 하나로 두 사람이 놀던 게임은 1대에 1명, 1코인으로 변화하며 수익률과 회전률 개선에도 영향을 주었다. <퐁>과 같은 2인용 게임은 상호 경쟁의 구조이지만 90년대에 등장하는 경쟁형 게임인 <스트리트 파이터 2>를 위시한 대전격투 게임과 비교한다면 이는 코옵에 가깝다. 둘의 차이는 두 플레이어가 서로 대결하느냐 아니냐에 있기보다는 투입한 코인의 가치를 두고 현실에서도 승패의 결과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있기 때문이다. <퐁>이 마치 테니스 코트를 대여료를 내고 빌려 함께 노는 것과 같다면, <스트리트 파이터 2>는 좀더 본격적으로 코인을 걸고 벌이는 투기장에 가깝다. 분명 놀이를 위해 대전격투 게임의 두 참여자는 상호 조응하지만, 우리는 이를 코옵이라 부르지 않는다. 오락실의 코옵은 두 참여자가 같이 코인을 넣고 동일한 목표를 향해 플레이하며 실패시 둘 다 게임오버가 되는 상황을 가리키는 플레이였다. 따라서 코옵은 이뤄지지 않는다. 오락실에서 일어나는 실질적 코옵과 경쟁형 멀티플레이 모두 딱히 깍두기 개념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앞서도 지적했듯이, 플레잉 파트너가 될 사람을 모으고 넓히는 기능으로 깍두기 룰이 작동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경쟁이 아니라 함께 힘을 합치는 코옵이라면 깍두기가 아니라 그냥 패널티 플레이가 되고, 동전의 가치가 걸린 격투게임에서 깍두기 따위는 누가 허용하겠는가? (물론 친구라면 짠발을 안쓴다 정도의 동네 룰 안에 들어가긴 할 것이다.) 놀이 파트너를 모으는 일의 고단함 온라인게임 시대의 등장은 놀이의 오랜 고민 중 하나인 함께 할 파트너 문제를 대단히 놀라운 방식으로 해결해버렸다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대전 상대를 찾아주는 기본적인 매칭 시스템은 누적된 플레이어의 전적을 점수화해 적당한 긴장감이 감도는 비슷한 실력의 대결로 만들어내는 형식으로 진화했다. 함께 5인용 던전을 돌아야 하는 MMORPG는 초기에는 사람 구하느라 광장에서 하루종일 외치기만 날리며 점프만 뛰는 구조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동매칭 시스템이 도입되며 손쉽게 원하는 던전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열었다. * 파티찾기는 전용 채팅 채널에 올라오는 구인구직 글을 텍스트 필터링하는 애드온의 방식으로 시작했다. 이미지출처: 와우인벤 애드온게시판 이는 특히 <리그 오브 레전드>나 <오버워치>같이 게임의 기본적인 규칙이 고정된 팀원 수를 요구하는 게임에 이르면 매우 중요해진다. PC방 상황을 중심으로 그 앞 세대 게임일 <스타크래프트>의 플레이 양상과 비교해 보자. 세 명의 친구가 모여 PC방에서 놀기로 한다. <스타크래프트>시대였다면 이 셋의 선택은 대부분 세 사람이 한 팀이 되어 배틀넷의 모르는 세 사람과 대결하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3:3 헌터 초보만요”가 이들이 만드는 방제였고, 셋은 오프라인의 지인이 협력해 익명의 팀 하나에 맞서는 플레이를 밤새 즐겼을 것이다. * <스타크래프트> 멀티플레이에서 고수는 설 자리가 없다. 모든 방은 초보만 찾는다. 같은 인원수가 <오버워치>와 <리그오브레전드>에 이르면 이 코옵은 조금 이상해진다. 다섯 명이 한 팀이어야 하는 것이 대전제인 <리그오브레전드>에서 이들은 게임을 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세 사람이 대전에 뛰어들고, 이름도 실력도 모를 온라인의 두 사람을 팀원으로 받아들인다. 같은 세 명이지만, 게임의 대전제가 바뀌면서 이들의 놀이는 코옵에서 코옵이 아닌, 혹은 절반만 코옵인 어떤 상황으로 넘어간다. 같이 앉은 세 사람은 계속 목소리로 “정글 어디갔냐!”를 외치겠지만, 그 목소리는 같은 팀의 나머지 두 명에겐 닿을 리 없기 때문이다. 인원 수가 달라지면 상황은 좀더 극적으로 변한다. 네 명이라면 같은 두 상황에서 이들은 <스타크래프트>를 2:2로 구성할 것이다. 이 팀 매칭에는 꽤 많은 정보들이 들어간다. 참가한 네 사람의 게임실력, 경험, 친밀도가 팀 구성에서 검토된다. 하지만 <리그오브레전드>에서는 세 사람과 동일하게 그저 5인 팟의 한 자리를 용병으로 받는 구조가 된다. 물론 지인팟이 네 명이 된다는 점에서 패배의 책임을 좀더 용병에게 몰기 쉽다는 안정감은 발생할 것이다. 다섯 명의 상황은 <스타크래프트>에서는 다시금 깍두기 룰을 부활시키도록 만든다. 2:3의 팀 매칭을 위해서는 고수 2명과 하수 3명을 나누어 불균형한 팀을 짜야 하기 때문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가 완벽한 5인팟을 짜는 기쁨을 누리는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깍두기 룰의 원인이었던 파트너 찾기가 온라인에서 손쉬워지면서 깍두기는 없어져야 했겠지만, 우리는 5인팟에서 여전히 깍두기 룰이 살아남는 것을 보았다. 왜냐하면, 5인팟에서 파트너는 온라인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스타크래프트> 5인 플레이는 정확히는 온라인 게임이 아니다. 네트워크를 사용해 여러 대의 PC를 연결했지만 우리는 이를 온라인게임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이 글 안에서 쓰는 온라인게임의 의미는 정확히 ‘파트너를 온라인에서 찾는 게임’이고, 이는 좀더 구체적으로는 온라인에서 익명의 게임 파트너를 찾는 과정을 가리킨다. MMORPG의 던전 찾기라면 조금 다른 부분이 있을 것이다. 길드 같은 공간에서 5인팟을 찾는 것은 위의 구분으로라면 오프라인 파트너 매칭에 가깝고, 실제로 깍두기 룰과 유사한 방식, 이를테면 고렙 유저의 저렙 버스 태워주기가 횡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10인, 25인을 넘어 40인에 이르는 대규모 공격대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대형 콘텐츠를 플레이하려면 지인팟만으로 팀을 꾸리기 불가능하며, 이때부터는 구인공고를 날리고 면접을 보는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 다만 그렇게 구한 공대원은 정규 공격대일 경우 정기 출석과 채널 활동을 통해 서로 친목을 다지며 지인 혹은 준지인이 되며 다시금 오프라인 매칭에 가까운 인원이 되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렇지 않은 공격대원의 사례다. 이른바 ‘막공’, 딱히 아는 네트워크가 아니지만 힐러가 모자라(힐러는 항상 모자라니까) 자리를 채워야 할 사람을 모으는 경우가 있고, 아예 이것이 정규화된 던전 찾기, 공격대 찾기와 같은 본격적인 온라인 익명매칭 시스템의 경우가 있다. 앞서 이야기한 지인, 혹은 준 지인의 사례와 이 둘은 완전한 대조를 이루는데, 그 결정적 차이는 이 관계가 매우 인스턴트하다는 점에 있다. 공격대 찾기나 막공 지원으로 들어온 플레이어와도 죽이 잘 맞으면 친구가 될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그렇게 만난 관계는 일회적이다. 우리는 지난주 파티에서 함께 한 플레이어를 ‘전우’로 느낄 수 있는가? 그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 관계는 일회적이고 찰나적이며, 두 번 다시 마주칠 일이 없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그렇기에 MMORPG 코옵의 온라인 매칭은 <리그오브레전드>의 그 팀 매칭과 인스턴트하다는 점에서도 동일하다. 온라인게임의 등장이 함께 할 파트너를 손쉽게 찾아준다는 변화를 가져왔다고 앞서 설명한 말에 이제 의미 하나를 덧붙일 수 있겠다. 그 새로 찾은 파트너가 온라인이 아닌 매칭과 갖는 가장 큰 차이는 인스턴트함이다. 동네 놀이터에서 만난 놀이상대는 언젠가 나의 친구가 될 수 있지만(물론 그렇기에 원수가 되는 일도 흔하다), 온라인 매칭은 그 목적이 코옵이건 아니건간에 대체로 일회적이며, 다분히 ‘게임을 같이 한다는’ 목적성만에 오롯이 부합하는 관계에 집중된 인스턴트 파트너 관계다. 합리화되는 놀이 속의 코옵 온라인게임의 인스턴트한 파트너 관계로 이뤄지는 코옵의 문제를 살펴보다 보면 베버가 이야기한 도구적 합리성 이야기에 매우 닿아 있다는 점을 깨닫는다. 목적의 효율적 달성을 위해 수단을 계산하고 선택하는 행위로서의 도구적 합리성은 게임이라는 놀이를 할 때 순수하게 그 놀이 자체를 위해 필요한 항목들에 집중된 연산으로 구성되는 온라인 인스턴트 매칭으로 나타난다. 고레벨 아이템을 주는 레이드몹 사냥을 위해 최저 아이템렙과 공략경험을 필터링해 멤버를 구성하건, 개개인이 가진 게임 기록에 의거해 비슷한 점수대의 플레이어들을 한 팀으로 모아 비슷한 평균점수의 상대와 매칭시키건 상관없이 온라인게임에서의 코옵은 기본적으로 도구적 합리성의 결과에 가깝다. 베버의 논지를 곱씹어보면, 결국 깍두기란 매우 전근대(!)적인 놀이문화라는 결론에 닿게 된다. 게임이라는 규칙이 제시하는 승리나 대결의 우위보다 팀과 파트너를 구성하고 그 상호작용 자체, 혹은 그 놀이를 통해 매직 서클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놀이 결과와는 무관한 상호관계를 바라보는 깍두기 룰은 아마도 베버가 오늘날 온라인게임을 플레이했다면 지적하지 않고는 못 배겼을 전근대적 요소였을 것이다. 베버는 언제나 분석에서 가치중립성을 강조하는 양반이었고 그의 근대, 전근대에 대한 분석은 딱히 어떤 가치판단이 들어간 결과물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온라인의 도입으로 인해 달라진 코옵과 팀매칭의 사례를 두고 무엇이 더 좋았다 나쁘다를 비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편으로는 친목과 우애가 만들어지는 오프라인의 팀매칭 코옵을 그리워하면서도 동시에 지인 베이스로는 4인팟도 꾸리지 못하는 현실에 낙담하며 온라인 매칭의 편리함을 즐기기도 하는 것이 나다. 하지만 정말 어느 순간 규칙의 사이를 메꾸던 윤활유로서의 깍두기가 모든 종류의 온라인 코옵에서 말라붙어버리는 것은 오래 묵은 게이머 입장에서는 그 매끄러움이 남긴 향수 때문이라도 아쉬움을 만드는 것만큼은 사실이라고 고백할 수 있겠다. 다시금 돌아보면 온라인 시대에 이뤄지는 온라인 기반의 코옵이라는 건 오래된 코옵의 방식을 대체했다기보다는 그 중의 일부를 더욱 매끄럽고 정밀하게 가다듬은 결과에 가까워 보인다. 그 과정에서 휘발된 오프라인 기반의 어떤 관계들은 결함이라기보단 기술과 제도에 의한 선택의 결과로서 어쩔 수 없이 놓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날아간 아쉬움이 무엇인지 정확히 짚지는 못해도, 적어도 온라인게임을 굳이 PC방에 모여서 함으로써 아쉬운 무언가를 붙잡으려고들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PC방도 예전같지 않다는 말을 듣다보면, 그 PC방 시대와 함께 휘발되는 되게 오래된 무언가도 함께 예전같지 않다는 말에 묶여 있음을 어렴풋이 직감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Beyond the K-Game

    우리의 게임 실력이 가장 빛을 발할 때가 있다. 원코인, 즉 마지막 기회가 주어진 상황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플레이 할때다. 다양한 BM을 도입하고 새로운 시도들을 해야 한다. 다행히 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마일게이트는 인디 게임을 위한 플랫폼을 만들었다. 넥슨은 참신한 도전을 위해 서브 브랜드를 만들었다. 심지어 여기서 만들어진 ‘데이브 더 다이브’는 스팀 인기 순위 1위에도 등극했다. 네오위즈 ‘P의 거짓’은 게임스컴 어워드 3관왕에 올랐다. 하면 된다. ‘Here comes a new challenger’어린 시절 오락실에서 거듭된 패배에 굴하지 않고 다시 동전을 넣던 정신이 필요한 시기다.   < Back 09 GG Vol. 22.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Kyung Lee My proudest achievement is having proposed and passed more game-related bills than anyone in the history of the National Assembly. But an even greater source of pride is landing the server-first kill on Lich King hard mode in WoW, and having played the shaman in RoMg, the famous Chaos clan...

  • 유보된 이야기와 넓어진 유희공간- <용과 같이 8>

    이 글에서 다루는 <용과 같이>는 전통적으로 자유도가 높은 게임으로 취급되진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카무로쵸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공간이 수두룩하고, 선형적인 이야기 속에서 선택지는 주어지지 않으며, 무수한 미니게임이 게임의 공간을 채우고 있을 뿐이다. < Back 유보된 이야기와 넓어진 유희공간- <용과 같이 8> 17 GG Vol. 24. 4. 10. <용과 같이 8>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게 돼?” 작년 한 해 무수한 게임 스트리머가 내뱉었던 말이다. <발더스 게이트 3>의 기상천외한 전략, 프랜차이즈를 다시 한번 쇄신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원더>, 전작의 아성을 매혹적인 자유도의 시스템으로 돌파한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킹덤>, 유사-포켓몬들을 잡아 노동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고기와 가죽 등으로 해체(!)까지 할 수 있었던 <팰월드>…. 이것은 (상당히 자의적으로 해석 가능한) 게임의 자유도가 소위 ‘갓겜’이 되기 위해 중요한 기준 중 하나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해진 내러티브를 어떠한 방식으로 따라갈 것인가, 특유의 직선적 구조를 어떻게 달릴/우회할 수 있는가, 게임의 메인 플롯을 우회하며 즐길 수 있는 유희도구가 존재하는가. * <용과 같이 8> 플레이 화면 이 글에서 다루는 <용과 같이>는 전통적으로 자유도가 높은 게임으로 취급되진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카무로쵸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공간이 수두룩하고, 선형적인 이야기 속에서 선택지는 주어지지 않으며, 무수한 미니게임이 게임의 공간을 채우고 있을 뿐이다. 게이머가 택할 수 있는 자유도란 스토리를 진행할 것인지, 100% 클리어를 목표로 모든 미니게임을 정복할 것인지 정도였다. <용과 같이 제로>에서 <용과 같이 6: 생명의 시>까지 7편의 정식 넘버링에서 키류 카즈마의, 그리고 <용과 같이 7: 빛과 어둠의 행방>의 새로운 주인공 카스가 이치반의 이야기를 따라온 게이머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쫓아가는 것 이외의 선택지는 주어지지 않았다. 다만 이 기나긴 시리즈가 게임들에게 제공해주는 하나의 자유가 있다. 바로 키류/카스가의 이야기를 한없이 유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카무로쵸/이진쵸 등 시리즈의 배경이 되어 온 공간은 단순히 신주쿠와 요코하마의 재현을 넘어 무수한 놀거리로 가득한 유희공간이다. 가라오케나 아케이드, 장기와 포커 등 다른 게임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는 미니게임부터, 포켓 서킷이나 곤충여왕 메스킹, ‘물장사’처럼 일본과 야쿠자라는 특징을 살린 콘텐츠까지, 물론 그에 대한 평가나 호불호는 갈리겠으나 각각의 미니게임이 그 자체로 단독 게임이라는 인상을 줄 정도로 다양한 놀거리를 제공해준다. 8편에 이르러서 본편 바깥의 콘텐츠는 더욱 큰 분량을 갖는다. 전편의 ‘야쿠몬 도감’은 수집한 야쿠몬으로 경쟁할 수 있는 ‘야쿠몬 배틀’로 진화하였고, 하와이라는 새로운 배경에 걸맞은 음식을 배달하는 ‘크레이지 딜리버리’, 본편의 지역을 벗어난 섬에서 진행되는 ‘쿵더쿵 섬’과 같은 다양한 서브 콘텐츠가 등장한다. * <용과 같이 8>의 ‘쿵더쿵 섬’ <용과 같이>의 무수한 놀거리들이 무언가의 패러디다. 우리는 게임을 플레이하며 이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용과 같이 8>에만 한정해보자면, ‘야쿠몬 배틀’은 <포켓몬스터>의, ‘쿵더쿵 섬’은 <모여봐요 동물의 숲>의, ‘크레이지 딜리버리’는 <크레이지 택시>의 패러디에 가깝다. 제작사인 SEGA가 보유한 IP를 넘어선 패러디의 대상들은, 한편으로 <드래곤 퀘스트>의 영향을 숨기지 않는 전편에서부터 조금 더 본격화된다. 물론 앞선 시리즈에서 기타노 다케시나 후쿠사쿠 긴지 등의 거장이 연출한 일본 야쿠자 영화의 대표작들을 직간접적으로 인용해온 사례가 있지만, 카스가 이치반이 주인공을 맡은 두 시리즈에선 패러디와 인용의 대상이 ‘내수용’을 벗어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한 지점에서 <용과 같이 8>을 플레이하다보면 다른 의미의 “이게 돼?”를 외치게 된다. 첫 문단에서 짧게 언급한 <팰월드>가 어떤 논란을 불러일으켰는지 떠올려보자. 게임이 발매되자마자 <포켓몬스터>와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러스트> 등 여러 게임을 ‘표절’했다는 논란이 들끓었고, 다양한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여기서 <팰월드>가 표절인지 아닌지, 혹은 그 게임이 만들어진 방식이 윤리적인지 등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포켓몬스터>, <모여봐요 동물의 숲> 등의 컨셉을 거의 그대로 들여온 <용과 같이 8>의 서브 콘텐츠에 관해서 표절 논란은 없었다. 시리즈 대대로 진지한 톤의 메인 스토리와 B급 감성의 서브 콘텐츠를 다른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인상을 줄 정도로 분리시켰기 때문일까? 혹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껍데기가 판타지 RPG 게임 속 몬스터들에 버금가는 (캠피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과장된 이미지들이기 때문일까? * <용과 같이 8>의 ‘야쿠몬 배틀’ 잠깐 언급한 것처럼 <용과 같이> 시리즈, 특히 카스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7, 8편의 경우 서브 콘텐츠가 메인 스토리를 지연할 자유를 제공하는 요소로써 작동한다. 전작들의 포켓 서킷이나 물장사가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라거나 서브 스토리를 보기 위한 수단에 가까웠다면, 야쿠몬 배틀이나 쿵더쿵 섬은 그것을 넘어 독자적인 시스템을 지닌 게임 속 게임에 가깝다. 물론 이들을 통해 메인 스토리 진행을 위한 돈이나 강화 아이템을 습득할 수 있지만, 두 서브 콘텐츠는 메인 스토리와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진행되는 플롯을 지니고 있으며 심지어 상호보완적인 시스템을 갖추기까지 했다. 이를테면 수집한 야쿠몬을 쿵더쿵 섬의 노동력으로 삼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훈련 및 강화한 야쿠몬을 배틀에 활용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이는 <드래곤 퀘스트>를 비롯한 JRPG의 전통을 <용과 함께>의 전투 시스템에 녹여내면서 등장한 새로운 렌즈, 즉 턴제 전투에 돌입함에 따라 카스가의 관점에서 ‘몬스터’로 변하는 적들의 모습과 조금 더 강하게 결부된다. 전작들에서 단순히 ‘길거리 양아치’나 ‘술 취한 회사원’과 같은 식으로 명명되었던, 길거리 인카운터로 마주치는 적들은 '자칭 마법사', '장난꾸러기 코코넛', '시티 웜'과 같은 이름으로 바뀌었다. 카스가의 눈으로 보게 된 <용과 같이>의 세계는 한편으로 선혈이 낭자한 야쿠자의 세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모험으로 가득한 게임적 가상으로 가득한 세계다. 키류의 실시간 전투가 ‘야쿠자’라는 소재가 주는 폭력의 쾌감을 강조했다면, 카스가의 턴제 전투는 카스가의 규칙을 받아들인 동료들과 형성한 일종의 ‘매직 서클’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야쿠몬 배틀이나 쿵더쿰 섬처럼 명백히 다른 게임의 시스템을 차용한 서브 콘텐츠를 정당화할 수 있다. 카스가의 <용과 같이>는 더 이상 야쿠자의 세계를 진지하게 묘사해낼 수 없는 게임 외적인 어려움(2010년대 이래로 야쿠자의 수는 급격히 감소하는 추세다)을 다분히 게임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야쿠자 대해산’으로 마무리된 7편과 언더커버 요원으로 암약하는 키류의 이야기를 다룬 <용과 같이 7 외전: 이름을 지운 자>를 떠올려본다면, 8편의 이야기는 배신과 의리 사이를 맴도는 전형적인 야쿠자 이야기로 지속될 수는 없다. 때문에 시리즈가 눈을 돌린 곳은 게임 그 자체이며, 8편은 그간 시리즈가 쌓아둔 에셋을 재료 삼은 온갖 게임의 혼성모방으로 완성되었다. 그것이 이 게임에 가져다준 거대한 유희공간은 기존에 “자유도가 높다”라는 평가를 받았던 게임들과는 다른 양상의 자유도를 선사한다. * <용과 같이 8>의 ‘엔딩노트’ 메인 스토리를 끝없이 유보하는 <용과 같이 8>의 자유에는 혼성모방적 서브 콘텐츠 이외의 것도 포함된다. 친어머니를 찾아 나선 카스가의 이야기에서 출발하는 이야기이지만, 어쨌거나 이 게임은 카스가와 키류를 모두 주인공으로 채택했다. 6편에서 일단락되었던 키류의 일대기는 7편 외전에서 잠시 다른 방향으로 선회한 뒤 본작에서 다시 전개된다. 게임 중반부부터 키류가 암에 걸려 죽어간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이야기는 카스가가 이끄는 하와이 그룹과 키류가 이끄는 이진쵸 그룹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이 시점부터 새로 해금되는 서브 콘텐츠가 있다. 바로 키류의 ‘엔딩노트’다. 엔딩노트는 키류를 간호하던 난바가 지난 삶을 정리해보라고 조언하는 장면을 통해 해금된다. 마치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아서 모건이 무법자들로 가득한 서부극의 시대가 끝나감을 알리며 죽어간 것처럼, 키류 카즈마는 야쿠자의 시대가 끝나감을 자신의 몸으로 드러내듯 죽음을 향해 간다. 키류는 이진쵸와 카무로쵸 곳곳을 돌아다니며 지난 삶을 회상하고, 종종 간단한 전투가 벌어진 뒤 이전 시리즈의 장면이 엔딩노트에 기록된다. 여기에는 본편 넘버링 이외에도 <용과 같이 유신!>이나 <용과 같이 OF THE END>과 같은 외전 또한 꿈의 형태로 포괄된다. 이윽고 누군가 키류를 찾아오는데, 시리즈 전체를 키류의 이야기에 함께 해온 형사 다테 마토코다. 키류는 다테와 함께 전작들에서 함께 해온 인연들을 마주한다. 이 과정을 통해 포켓 서킷 파이터나 의사 에모토부터 시리즈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하루카까지, 그간의 시리즈를 수놓은 등장인물과 재회하게 된다. 이 재회는 키류의 것만이 아니다. 지난 20년 동안 <용과 같이>를 플레이하며 키류의 여정을 쫓아온 게이머들 또한 키류의 엔딩노트 위에 자신의 추억을 포개어 놓을 수 있다. * <용과 같이 8> 속 키류의 죽음과 관련된 장면 이경혁은 게임제너레이션 16호에 수록된 글 “ '이코'에서 '갓오브워'까지: 사랑의 대상과 게이머의 나이듦에 대하여 ”를 통해 스탠드얼론 게임에서 다뤄지는 서사가 게이머와 함께 나이듦을 지적한다. 로스 산토스를 누비는 범죄자는 중년의 위기를 겪고, 혈기 왕성했던 크레토스는 사춘기의 아들을 이해해야 하며, 이혼와 육아는 GOTY 수상작의 중심 소재가 되었다. 게임의 주인공이 죽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찾아볼 수 있었다. 다만 그것이 늙음과 질병, 한 시대의 종언과 함께 이야기되는 것은, 이경혁의 지적처럼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된 스탠드얼론 게임 유저들의 연령과 연동되며 발전한다. 어느덧 20년의 역사를 지는 프랜차이즈가 된 <용과 같이>가 키류의 마지막(일지 아닐지는 아직 모르지만)을 그려내는 방식은 시리즈의 한계와 나이듦을 직면하는 것과 같다. 규모의 확장과 한계의 쇄신이라는 이중의 임무를 지닌 <용과 같이 8>은 우리에게 게임의 주역들과 한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한다. 메인 스토리를 유보하면서 카스가와 놀고 키류를 추억할 거대한 놀이공원, 이로써 <용과 같이>라는 게임의 경계는 한층 넓어졌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박동수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했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하고 있다. 영화에 관한 글을 주로 쓰고, 미술, 게임, 방송 등 시각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영화평론가, 팟캐스트 [카페 크리틱] 진행자, 공동체상영 기획자이기도 하다.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스팀펑크적 제작 기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는 전투가 메인 컨텐츠인 MMORPG 게임이다. 세부적으로는 테마파크 유형이다. 작중의 세계에서 유저는 온갖 다양한 활동을, 현실의 그것을 모사한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약초나 광물을 채집할 수 있고, 낚시를 할 수 있고, 전투와 낚시를 통해 얻은 재료로는 요리를 할 수 있다. < Back 24 GG Vol. 25.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eonggap Hong Freelance writer—a job title suspected of being a synonym for "unemployed." Started out as a reporter at Ddanzi Ilbo, where broke the first story exposing the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s comment-manipulation operation. A lifelong gamer who wrote a first piece of game criticism in 2001—and is very glad it has since been lost.

  • Lost Ark and the Impression of Korean Games from the Western Perspective

    Lost Ark and the Impression of Korean Games from the Western Perspective On February 11th, 2022 after three days of early access, Lost Ark officially released in the west to over one million players. Produced by Smilegate, a Korean developer, and distributed in the west by Amazon Game Studios, the release of Lost Ark is an opportunity to consider the impression that Korean games have made among western audiences. Despite several successful Korean games launching in the West over the last 20 years, the idea of a ‘Korean game’ hasn’t really taken hold in the public consciousness of western players in the same way Japanese games have dominated the gaming landscape. Through a combination of Lost Ark’s management, the engagement of high-profile content creators, and the role of the Korean Lost Ark community in helping the game succeed among the western playerbase, Lost Ark is in a unique position to configure western player expectations about what a Korean game can be. < Back 05 GG Vol. 22.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Researcher) Marc Lajeunesse (Game Researcher) Cortney Blamey

  • [인터뷰] 쥐와 함께 6년을 살아 온 인디게임사, <카셀게임즈> 황성진 대표

    올해로 창립 6년 차를 맞은 카셀게임즈의 황성진 대표를 만나, 그의 창작 철학과 개발 과정에 대한 고민, 인디게임사 운영의 현실, 그리고 다음 프로젝트를 향한 구상까지 진솔하게 들어보았다. < Back 25 GG Vol. 25. 8. 10. Tags: 인디게임, 인터뷰, 게임산업, 래토피아, 래트로폴리스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isu Kim Studies a range of fields—culture and knowledge, space, and the academic field. Also interested in the history of games and the lives of gamers.

  • 공명하는 사무라이: 역사적 정확성과 시장성 사이에서

    이제 어느 정도 피로감마저 느껴질 만큼 야스케라는 인물이 게임 주인공으로 등장한 사실에 대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반발은 이미 잘 알려진 논란이 되었다. 이 논란은 2024년 처음 불거졌는데, 사실 2022년의 유비포워드Ubifoward 행사에서 <어쌔신크리드: 섀도우스>가 ‘코드네임 레드’라는 이름으로 등장할 당시에는 야스케의 존재가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았다. < Back 공명하는 사무라이: 역사적 정확성과 시장성 사이에서 24 GG Vol. 25. 6. 10. ***You can see an English version of this article at this URL: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3b16cb9b-4ee8-4852-86b0-0147005c11c6 ***원문의 상세 각주는 원문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야스케, 프랜차이즈에 합류하다 이제 어느 정도 피로감마저 느껴질 만큼 야스케라는 인물이 게임 주인공으로 등장한 사실에 대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반발은 이미 잘 알려진 논란이 되었다. 이 논란은 2024년 처음 불거졌는데, 사실 2022년의 유비포워드Ubiforward 행사에서 <어쌔신크리드: 섀도우스>가 ‘코드네임 레드’라는 이름으로 등장할 당시에는 야스케의 존재가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았다. 2024년 5월 15일 공개된 시네마틱 트레일러에서 처음 유비소프트는 야스케라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렸는데, 논란은 이때부터 불붙었다. 캐릭터 공개 이후 두 달 넘게 서구와 일본 양 쪽의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이 캐릭터의 디자인 선택을 둘러싼 비판이 이어졌다. 특히 서구의 일부 보수적 성향을 지닌 게이머층은 야스케의 등장에 초점을 맞추어 격렬한 토론을 벌였으며, 일부는 개발팀 멤버들을 향한 사이버불링도 시도했다. 유비소프트는 2024년 7월 23일 다소 모호한 성명을 발표했는데, 명목상으로는 일본 커뮤니티를 향한 메시지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전세계 이용자층을 겨냥해 자신들의 진정성Authenticity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는 내용이었다. *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스>의 주인공 중 하나인 야스케. 이 성명은 야스케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을 보여준다. 표면적으로 이는 역사적 정확성에 관한 문제로 보이지만, 사실 이 문제의 핵심은 지금까지 어쌔신크리드라는 프랜차이즈가 특정한 관객층들을 어떻게 만족시켜 왔는가에 더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2021년 de wildt, Auspers의 연구에 따르면(이 연구는 유비소프트의 전직 게임디렉터 및 고위개발자 수십 명의 인터뷰를 포함하고 있다)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는 전반적으로 어떤 시대적 배경을 선택하느냐는 결정에서 시장성Marketability을 우선시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비소프트는 ‘마케팅-브랜드-에디토리얼 버거’라는 모델을 사용한다. 이는 프랜차이즈의 핵심 요소는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소스(문화적 배경)’는 그때그때 바꿔 새로운 고객층을 유입시키거나 기존 고객층의 재구매를 유도하는 전략이다. 이러한 전략에 따라 <어쌔신 크리드> 프랜차이즈 대부분의 게임은 핵심 고객층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주인공을 내세워 왔다. 예를 들어 <어쌔신 크리드: 블랙 플래그>의 주인공인 에드워드 켄웨이는 유럽인의 시각에서 나소Nassau(역주: 바하마의 최대도시)와 카리브해 인근의 식민주의 역사를 경험케 한다. <어쌔신 크리드 2>와 <어쌔신크리드: 브라더후드>에서는 에지오 아우디토레라는 주인공을 통해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문화를 체험케 하고, <어쌔신크리드: 레벨레이션>에서는 에지오를 매개로 하여 비교적 (서구인들에게) 낯선 이스탄불이라는 공간을 탐험하게끔 한다. 주인공이 좀더 복잡한 경우(예를 들어 <어쌔신크리드 3>의 코너 켄웨이, <어쌔신크리드: 프리덤 크라이>의 아드왈레 등)에도, 게임의 중심 구조는 여전히 유럽 및 미국의 관점으로 구성된다. 왜 이처럼 <어쌔신크리드> 시리즈는 서구 중심의 디자인을 지속해 왔을까? 그리고 이번 야스케 논란은 이러한 디자인 경향으로부터 어떠한 단절 혹은 연속성을 보여주는가? 이에 대한 해답은 정확성보다는 ‘공명Resonance’, 즉 관객의 기대와 감정적 반응을 우선하는 전략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정확성의 문제: 역사적 정확성과 게이머의 기대 사이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는 18년간 꾸준히 역사적 정확성이라는 주제를 둘러싼 논의의 중심에 있어 왔다. 관련한 게임 매체들의 기사만 해도 수 천 건에 달하고, 이를 다룬 학술논문과 단행본의 챕터들도 무수하게 출판된 바 있다. 초창기 논의에서는 주로 게임이 교육의 도구로서 활용되거나 혹은 고고학적 모델, 과거 사건에 대한 충실한 재현의 사례로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역사적 정확성은 필수적이라는 요구가 제기되었다. 이러한 요구들은 게임 디자인에서의 여러 요소들, 이를테면 다루는 지역, 시간적 배경, 게임 서사가 집중하는 주요 사건들에 걸쳐 투영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게이머들이 게임의 중심을 끌고 가는 주인공이 그 시대적 배경과 조화를 이루는 인물이기를 기대한다는 점이다. 배경, 이야기, 캐릭터가 일관된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가 강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화가 실제 역사적 진실과 부합하는지는 또 다른 문제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 게임에서 다뤄지는 역사적 정확성이란 언제 어떤 지점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일까? 일정 수준의 허용 가능한 왜곡은 존재하는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아담 채프먼Adam Chapman은 플레이어가 자신의 사전지식과 게임 속 역사적 요소가 일치한다고 느끼는 순간, 그 게임은 비로소 ‘역사적으로 공명historically resonant’한다고 본다. 실제 플레이어들은 일반적으로 게임이 역사적 사실에 대해 어느 정도 변형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며, 특히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처럼 암살단, 기사단과 같은 비밀조직 뿐 아니라 외계인 음모론까지 등장하는 경우에는 이를 좀더 관대하게 받아들인다. 이번 작품에서도 암살단과 기사단에 대응하는 일본 내 조직인 카쿠시바 잇키, 신바쿠후와 같은 설정이 있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러한 구조적 왜곡은 시리즈 전반에서 나타나며, 실존 인물들을 게임 속에서 틀에 맞게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야스케에 대해 가해진 각색 역시 다른 주요 인물들에 비해 특별히 과도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어쌔신크리드: 오딧세이>의 소크라테스와 아스파시아, <어쌔신크리드: 오리진>의 클레오파트라 역시 높은 수준의 각색을 거친 사례다. 이 시리즈는 역사 그 자체라기보다는 언제나 ‘역사적 픽션’이었으며, 이는 제작사인 유비소프트 또한 오랫동안 공식적으로 인정해 온 사실이었다. 유비소프트는 2025년 발표한 공개 메시지에서 야스케가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시리즈의 공식에 적합한 인물이라고 설명하며 그의 독특하고 신비로운 삶이 이 프랜차이즈의 패턴과 잘 부합한다고 밝혔다. 이는 앞서 언급한 de Wildt와 Aupers의 분석과도 일치한다. 마케팅적 고려가 언제나 주요한 판단 기준이며, 모든 서사적, 표상적 결정은 ‘시장에서 가장 많은 이용자층’을 우선한다는 것이다. 프랜차이즈 책임자인 장 게스동Jean Guesdon 또한 대중적 유행을 반영해 프랜차이즈 판매를 강화한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한 바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20여년 간 점점 대중문화콘텐츠 내에서 가시성이 높아진 야스케라는 인물을 기용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타당한 선택이다. <고스트 오브 쓰시마>에서 다양한 시각적 기호들과 색채 감각을 차용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즈>는 야스케를 단순한 유색인종 캐릭터로서가 아니라 일본사회에 접근하는 외부자로서의 캐릭터로 설정한다. 그는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나름의 정당성을 지니고 있으며, 플레이어(역주: 서구권 플레이어를 가리킨다)와 마찬가지로 외부자의 시선에서 접근해 일본을 서서히 이해해 가는 서사를 경험하게 된다. 이는 플레이어가 상상할 수 있는 다른 유명한 사무라이들, 이를테면 미야모토 무사시나 사사키 코지로 같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는 것과는 다른 전략적 접근이다. * 야스케는 일본의 전쟁에 난반(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한 유럽) 개념을 사용한는 점에서 비판을 받았다. 이와 같은 게임사의 이상적 대상 선정 기준과 역사적 정확성에 부합하는 선택 사이에 발생하는 긴장은 최근 몇 년 사이에 학계에서도 주목받은 바 있었다. 필자의 기존 연구에서는 이 결정과정을 ‘대표성representation과 동일시identification 사이의 긴장’으로 분석한 바 있다. 영화연구자 찰스 애클랜드Charles Acland는 영화의 맥락에서 ‘동일시’란 관객이 자신의 현실에서 벗어나 다른 시간과 장소, 다른 인물의 상황 속으로 몰입하는 복잡한 과정임을 지적했다. 이와 반대로 ‘대표성’은 관객이 자신의 경험들에 쉽게 흡수할 수 있는 인물과 관점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관객으로부터 ‘나에게 와닿는다’는 반응을 유도하는 방식이며, 지난 10여년간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 대한 학술적 비평의 주요 주제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이 시리즈는 항상 이와 같은 쉬운 동일시가 가능한 경험을 제공하도록 설계되어 왔다. 비록 주인공이 그 시대와 문화에 강하게 결부되어 있더라도 서구권의 핵심 게이머층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상황, 혹은 이데올로기적 배경이 마련되어 있어 왔다. 그런 점에서 야스케는 매우 독특한 사례다. 그는 봉건시대 일본에 외부자의 시각으로 접근하는 인물이지만, 동시에 지금까지 시리즈가 제공해온 주체적인 주인공으로서의 포지션과는 다른 결을 지닌다. 그의 등장은 분명 혁신적이고 새롭다는 평가를 받을 만 하지만, 연구자 키쇼나 그레이Kishonna Gray가 아이티를 배경으로 삼았던 <어쌔신크리드: 프리덤 크라이>의 아드왈레 사례에서 지적했듯, 게임의 기본 틀이 여전히 백인 중심의 미국, 유럽을 기준으로 한 사회구조를 반영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비백인 캐릭터라 할지라도 그들의 사회적 위치와 게임 내 서사가 결국 서구 중심의 관객 시선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테면, <어쌔신크리드: 섀도우즈>에서 흑인 이방인인 야스케는 또다른 주인공인 일본 태생의 나오에와 비교했을 때 게임 내 여러 공간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아무런 제한을 갖지 않는다. 실제였다면 좀더 강한 충돌과 도전적인 상황이 나왔을 많은 요소들은 게임 속에서 상당히 부드럽게 처리된다. 앞서 언급한 대로 ‘게이머와의 공명’을 최우선 목표로 한다면, 야스케라는 캐릭터가 전면에 나선 선택은 충분히 논리적이겠지만, 이번 경우에는 기존 10여 년간 게임이 우해대 온 이용자층과는 다른 새로운 이용자층을 겨냥하고 있다는 차이가 존재한다. 좀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야스케가 DEI(다양성, 평등성, 포용성)에 기반한 채용이라고 비난받은 사례는 해당 캐릭터의 서사가 역사적으로 정확한 것인지에 대한 철저한 분석에서 나왔다기보다는 유색인종과 동일시하기 어렵다는 이용자층이 가진 인종적 편협성으로부터 나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어쌔신크리드> 가 보여준 그간 어떠한 주인공이라도 그 이야기가 역사적 진실에 철저히 부합한다고 주장하기는 어렵기에 이러한 비판은 모순적이기도 하다. 이번 반발 사태는 적어도 서구권에서는 인종과 성별이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일어났으며, 그에 반해 일본측의 반응은 좀더 절제된 양상이면서 게임 플레이에서 볼 수 있는 일본의 성스러운 장소(역주: 이를테면 신사의 토리이 같은 곳의 훼손 가능성 문제 등)에 대한 훼손 요소를 향한 우려가 주된 쟁점이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어쌔신크리드: 섀도우즈>에서 표출된 논란은 과연 서구권 전체 게이머층의 의견을 반영한 것인가? 아니면 단지 일부 특정한 소비자집단의 목소리가 과도하게 부각된 것인가? 보상의 국면: 상품으로서의 야스케 야스케에 대한 게이머들의 반응이 실제로 뜨거웠는지 차가웠는지를 단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른바 ‘성공’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목소리가 큰 일부 게이머층의 반응이 기준이 되어야 할까? 아니면 좀더 국제적이고 넓은 범주에서의 게이머 수용 양상을 고려해야 할까? 혹은 비평적 평가를 참고하되 이를 고립된 사례로 볼 것인지, 아니면 최근 시리즈 작품들과의 비교 맥락 속에서 평가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현재까지 평론가와 게이머들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플랫폼으로는 메타크리틱을 꼽을 수 있다. 비록 이번 작품에 대한 평가도 일부 조직적인 리뷰 테러 시도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말이다. 메타크리틱을 통해 보면 실제로 오픈월드 기반 시리즈들 사이에서의 비교에서는 꽤 안정적인 패턴을 볼 수 있다. 평론가 평점에서 <섀도우즈>는 81점, <발할라>가 80점, <오디세이>는 83점, <오리진>은 81점으로 대체로 유사한 수준이다. 이용자 평점의 경우 전체적인 비율에서 부정적 리뷰가 많다는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섀도우즈> 62점, <발할라> 60점, <오디세이> 68점, <오리진> 73점으로 <섀도우즈>에 대한 평가는 기존 시리즈에 대한 평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흐름 안에 놓인다. 종합해보면 비평가들의 평가는 대체로 이번 작품이 전반적인 품질 면에서 기존 시리즈와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고, 이용자 평가에서는 직전 작품에 비해 소폭 개선된 반응이 나타난다.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섀도우즈>에서 ‘극단적으로 낮은 점수’의 비중이 훨씬 높게 나타난다는 점인데, 이는 리뷰 테러의 영향을 시사하는 지표일 수 있다. 메타크리틱 역시 다른 리뷰 플랫폼과 같이 적극적으로 로그인해 리뷰를 남길 만큼 깊숙하게 개입하는 게이머층의 의견이 과대표현되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타나는 평가점수의 일관성은 시리즈가 가지고 있는 전반적인 상대적 안정성을 드러내고 있고, <섀도우즈>또한 이 흐름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야스케를 둘러싼 논란은 실제 판매 실적에도 동일하게 반영되었는가? 산업적 차원에서 게임이 보이콧되거나 판매실적 부진으로 이어졌는지 또한 중요한 지표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 판매량을 보면, <섀도우즈>는 이 프랜차이즈의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출시 첫 날 판매량을 기록했다. 1위는 코로나 팬데믹 시기의 외부효과에 힘입어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린 <발할라>임을 감안하면 고무적인 수치다. * 모든 오픈월드 기반 <어쌔신크리드> 타이틀에 대한 리뷰 점수 집계(미라지 제외). 장기 판매량 분석에 따르면 현재까지 <섀도우즈>는 플레이스테이션5 플랫폼에서만 약 170만장이 판매되었다(Alinea, 2025). 아직은 장기 판매 성과를 평가하기에는 이른 시점이며 더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점은 감안하자. 참고로 <오디세이>는 첫 달동안 약 2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한 바 있다. 또한 현재의 경제상황 속에서 가처분소득에 대한 압박을 고려할 때, 이번 작품이 과거를 아우르는 역사적 대성공에 가까울 정도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상업적 성공으로 평가할 만한 수치는 기록했다고 볼 수 있다. 결론: 문제의 본질은 정확성 이슈가 아니었다 언제나 그렇듯 학계의 반응이란 상대적으로 시간이 더 걸리는 법이다. 질적연구와 비판적 담론은 좀더 긴 출판 주기를 가지고 있어 아직까지 뚜렷한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시점이다. 하지만 필자의 판단으로는 이번 작품이 프랜차이즈의 기존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는 결과가 아니었음을 고려한다면 학계의 후속 결과 또한 지난 10년간의 의견과 유사한 합의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즉, <섀도우즈>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시장적 선택’을 따랐으며, 적절히 기능하는 캐릭터들을 통해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게임의 핵심 공식을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다. 어떤 면에서 이번 작품은 우리가 2007년부터 익히 알아온 그 <어쌔신 크리드>이며, 특히 2017년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오픈월드 형태로의 전환 이후의 방향성을 그대로 이어가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본적인 틀의 유지 속에서도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반응을 보였다는 점은 새로운 국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게임과 같은 가상세계에서 발생한 의례 공간의 훼손 문제에 대한 비판은 주로 학술 담론장 안에 국한되어 왔지만, 이번 작품의 경우 국가 차원의 대응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다. 이는 <어쌔신크리드> 시리즈가 파리 노트르담 성당 화재 이후 복원 지원을 통해 파리 올림픽 개막식을 장식하며 공식 찬사를 받은 것과 같이 서구권 국가들이 유비소프트의 콘텐츠와 상호작용하는 모습과 대비된다. 야스케 논란은 출시 초기 이후 점차 온도가 식어가고 있으며, 프랜차이즈 전반에 걸쳐 존재해 왔던 인종과 성별 문제와의 미묘한 관계 속으로 흡수되는 추세다. 그럼에도 이 논란이 여전히 흥미로운 점은, 이번 사례에서 이용자들의 정서가 어떤 방향으로 나타났는가 하는 점에서다. 야스케는 현대적 감수성과 이용자 수요에 영합하는 기업적 행보로 비판받았지만, 기존과는 다른 사례였다. <오디세이>에서 알렉시오스가 서브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제공되었을 때는 별다른 논란이 없었고, <오리진>의 개발 기획에서 최초에는 여성 캐릭터 아야Aya가 주인공으로 내정되어 있었으나 실제 출시 후에는 남성 바예크가 진주인공격으로 구성된 사실이 드러났을 때도 큰 논란이 되지는 않았다. 결국 이용자들이 이른바 ‘정확성’에 대해 보이는 경직성은 실제 정확성이라기보다는 언제나 개인적 취항에 의해 만들어져 왔다. 만약 이번 논란이 정말로 특정 캐릭터가 가진 역사적 정확성에 관한 문제였다면, 그동안의 시리즈 속에서도 유사한 사례들에 대해 이번과 같은 격렬한 논쟁이 나타났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Researcher) 안드레이 자네스쿠 캐나다 몬트리올에 위치한 콩코르디아 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와 인류학·사회학과에서 박사후 연구원 및 시간강사로 재직 중이다. AAA 게임 스튜디오의 문화적 적응 관행에서 '공명(resonance)'을 기업 전략으로 활용하는 방식과, 영화 및 텔레비전의 문화 자본과 연결된 시상 기관 형성을 통한 게임의 정당화 과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Assassin’s Creed, Magic: The Gathering, DOTA 2 등 다양한 게임과 시상 기관에 관한 게임 및 플랫폼 연구를 활발히 발표하고 있으며, 《New Media & Society》(2021), 《Games & Culture》(2024), 《The Journal of Consumer Culture》(2021), 《Convergence》등에 논문을 발표한 바 있으며 또한 『Streaming by the Rest of Us: Microstreaming Videogames on Twitch』(MIT Press, 2025)의 공동 저자이기도 하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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