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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보된 이야기와 넓어진 유희공간- <용과 같이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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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4. 4. 10.



<용과 같이 8>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게 돼?” 작년 한 해 무수한 게임 스트리머가 내뱉었던 말이다. <발더스 게이트 3>의 기상천외한 전략, 프랜차이즈를 다시 한번 쇄신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원더>, 전작의 아성을 매혹적인 자유도의 시스템으로 돌파한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킹덤>, 유사-포켓몬들을 잡아 노동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고기와 가죽 등으로 해체(!)까지 할 수 있었던 <팰월드>…. 이것은 (상당히 자의적으로 해석 가능한) 게임의 자유도가 소위 ‘갓겜’이 되기 위해 중요한 기준 중 하나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해진 내러티브를 어떠한 방식으로 따라갈 것인가, 특유의 직선적 구조를 어떻게 달릴/우회할 수 있는가, 게임의 메인 플롯을 우회하며 즐길 수 있는 유희도구가 존재하는가.


* <용과 같이 8> 플레이 화면

이 글에서 다루는 <용과 같이>는 전통적으로 자유도가 높은 게임으로 취급되진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카무로쵸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공간이 수두룩하고, 선형적인 이야기 속에서 선택지는 주어지지 않으며, 무수한 미니게임이 게임의 공간을 채우고 있을 뿐이다. 게이머가 택할 수 있는 자유도란 스토리를 진행할 것인지, 100% 클리어를 목표로 모든 미니게임을 정복할 것인지 정도였다. <용과 같이 제로>에서 <용과 같이 6: 생명의 시>까지 7편의 정식 넘버링에서 키류 카즈마의, 그리고 <용과 같이 7: 빛과 어둠의 행방>의 새로운 주인공 카스가 이치반의 이야기를 따라온 게이머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쫓아가는 것 이외의 선택지는 주어지지 않았다.


다만 이 기나긴 시리즈가 게임들에게 제공해주는 하나의 자유가 있다. 바로 키류/카스가의 이야기를 한없이 유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카무로쵸/이진쵸 등 시리즈의 배경이 되어 온 공간은 단순히 신주쿠와 요코하마의 재현을 넘어 무수한 놀거리로 가득한 유희공간이다. 가라오케나 아케이드, 장기와 포커 등 다른 게임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는 미니게임부터, 포켓 서킷이나 곤충여왕 메스킹, ‘물장사’처럼 일본과 야쿠자라는 특징을 살린 콘텐츠까지, 물론 그에 대한 평가나 호불호는 갈리겠으나 각각의 미니게임이 그 자체로 단독 게임이라는 인상을 줄 정도로 다양한 놀거리를 제공해준다. 8편에 이르러서 본편 바깥의 콘텐츠는 더욱 큰 분량을 갖는다. 전편의 ‘야쿠몬 도감’은 수집한 야쿠몬으로 경쟁할 수 있는 ‘야쿠몬 배틀’로 진화하였고, 하와이라는 새로운 배경에 걸맞은 음식을 배달하는 ‘크레이지 딜리버리’, 본편의 지역을 벗어난 섬에서 진행되는 ‘쿵더쿵 섬’과 같은 다양한 서브 콘텐츠가 등장한다.


* <용과 같이 8>의 ‘쿵더쿵 섬’

<용과 같이>의 무수한 놀거리들이 무언가의 패러디다. 우리는 게임을 플레이하며 이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용과 같이 8>에만 한정해보자면, ‘야쿠몬 배틀’은 <포켓몬스터>의, ‘쿵더쿵 섬’은 <모여봐요 동물의 숲>의, ‘크레이지 딜리버리’는 <크레이지 택시>의 패러디에 가깝다. 제작사인 SEGA가 보유한 IP를 넘어선 패러디의 대상들은, 한편으로 <드래곤 퀘스트>의 영향을 숨기지 않는 전편에서부터 조금 더 본격화된다. 물론 앞선 시리즈에서 기타노 다케시나 후쿠사쿠 긴지 등의 거장이 연출한 일본 야쿠자 영화의 대표작들을 직간접적으로 인용해온 사례가 있지만, 카스가 이치반이 주인공을 맡은 두 시리즈에선 패러디와 인용의 대상이 ‘내수용’을 벗어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한 지점에서 <용과 같이 8>을 플레이하다보면 다른 의미의 “이게 돼?”를 외치게 된다. 첫 문단에서 짧게 언급한 <팰월드>가 어떤 논란을 불러일으켰는지 떠올려보자. 게임이 발매되자마자 <포켓몬스터>와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러스트> 등 여러 게임을 ‘표절’했다는 논란이 들끓었고, 다양한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여기서 <팰월드>가 표절인지 아닌지, 혹은 그 게임이 만들어진 방식이 윤리적인지 등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포켓몬스터>, <모여봐요 동물의 숲> 등의 컨셉을 거의 그대로 들여온 <용과 같이 8>의 서브 콘텐츠에 관해서 표절 논란은 없었다. 시리즈 대대로 진지한 톤의 메인 스토리와 B급 감성의 서브 콘텐츠를 다른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인상을 줄 정도로 분리시켰기 때문일까? 혹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껍데기가 판타지 RPG 게임 속 몬스터들에 버금가는 (캠피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과장된 이미지들이기 때문일까?


* <용과 같이 8>의 ‘야쿠몬 배틀’

잠깐 언급한 것처럼 <용과 같이> 시리즈, 특히 카스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7, 8편의 경우 서브 콘텐츠가 메인 스토리를 지연할 자유를 제공하는 요소로써 작동한다. 전작들의 포켓 서킷이나 물장사가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라거나 서브 스토리를 보기 위한 수단에 가까웠다면, 야쿠몬 배틀이나 쿵더쿵 섬은 그것을 넘어 독자적인 시스템을 지닌 게임 속 게임에 가깝다. 물론 이들을 통해 메인 스토리 진행을 위한 돈이나 강화 아이템을 습득할 수 있지만, 두 서브 콘텐츠는 메인 스토리와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진행되는 플롯을 지니고 있으며 심지어 상호보완적인 시스템을 갖추기까지 했다. 이를테면 수집한 야쿠몬을 쿵더쿵 섬의 노동력으로 삼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훈련 및 강화한 야쿠몬을 배틀에 활용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이는 <드래곤 퀘스트>를 비롯한 JRPG의 전통을 <용과 함께>의 전투 시스템에 녹여내면서 등장한 새로운 렌즈, 즉 턴제 전투에 돌입함에 따라 카스가의 관점에서 ‘몬스터’로 변하는 적들의 모습과 조금 더 강하게 결부된다. 전작들에서 단순히 ‘길거리 양아치’나 ‘술 취한 회사원’과 같은 식으로 명명되었던, 길거리 인카운터로 마주치는 적들은 '자칭 마법사', '장난꾸러기 코코넛', '시티 웜'과 같은 이름으로 바뀌었다. 카스가의 눈으로 보게 된 <용과 같이>의 세계는 한편으로 선혈이 낭자한 야쿠자의 세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모험으로 가득한 게임적 가상으로 가득한 세계다. 키류의 실시간 전투가 ‘야쿠자’라는 소재가 주는 폭력의 쾌감을 강조했다면, 카스가의 턴제 전투는 카스가의 규칙을 받아들인 동료들과 형성한 일종의 ‘매직 서클’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야쿠몬 배틀이나 쿵더쿰 섬처럼 명백히 다른 게임의 시스템을 차용한 서브 콘텐츠를 정당화할 수 있다. 카스가의 <용과 같이>는 더 이상 야쿠자의 세계를 진지하게 묘사해낼 수 없는 게임 외적인 어려움(2010년대 이래로 야쿠자의 수는 급격히 감소하는 추세다)을 다분히 게임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야쿠자 대해산’으로 마무리된 7편과 언더커버 요원으로 암약하는 키류의 이야기를 다룬 <용과 같이 7 외전: 이름을 지운 자>를 떠올려본다면, 8편의 이야기는 배신과 의리 사이를 맴도는 전형적인 야쿠자 이야기로 지속될 수는 없다. 때문에 시리즈가 눈을 돌린 곳은 게임 그 자체이며, 8편은 그간 시리즈가 쌓아둔 에셋을 재료 삼은 온갖 게임의 혼성모방으로 완성되었다. 그것이 이 게임에 가져다준 거대한 유희공간은 기존에 “자유도가 높다”라는 평가를 받았던 게임들과는 다른 양상의 자유도를 선사한다.


* <용과 같이 8>의 ‘엔딩노트’

메인 스토리를 끝없이 유보하는 <용과 같이 8>의 자유에는 혼성모방적 서브 콘텐츠 이외의 것도 포함된다. 친어머니를 찾아 나선 카스가의 이야기에서 출발하는 이야기이지만, 어쨌거나 이 게임은 카스가와 키류를 모두 주인공으로 채택했다. 6편에서 일단락되었던 키류의 일대기는 7편 외전에서 잠시 다른 방향으로 선회한 뒤 본작에서 다시 전개된다. 게임 중반부부터 키류가 암에 걸려 죽어간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이야기는 카스가가 이끄는 하와이 그룹과 키류가 이끄는 이진쵸 그룹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이 시점부터 새로 해금되는 서브 콘텐츠가 있다. 바로 키류의 ‘엔딩노트’다.


엔딩노트는 키류를 간호하던 난바가 지난 삶을 정리해보라고 조언하는 장면을 통해 해금된다. 마치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아서 모건이 무법자들로 가득한 서부극의 시대가 끝나감을 알리며 죽어간 것처럼, 키류 카즈마는 야쿠자의 시대가 끝나감을 자신의 몸으로 드러내듯 죽음을 향해 간다. 키류는 이진쵸와 카무로쵸 곳곳을 돌아다니며 지난 삶을 회상하고, 종종 간단한 전투가 벌어진 뒤 이전 시리즈의 장면이 엔딩노트에 기록된다. 여기에는 본편 넘버링 이외에도 <용과 같이 유신!>이나 <용과 같이 OF THE END>과 같은 외전 또한 꿈의 형태로 포괄된다. 이윽고 누군가 키류를 찾아오는데, 시리즈 전체를 키류의 이야기에 함께 해온 형사 다테 마토코다. 키류는 다테와 함께 전작들에서 함께 해온 인연들을 마주한다. 이 과정을 통해 포켓 서킷 파이터나 의사 에모토부터 시리즈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하루카까지, 그간의 시리즈를 수놓은 등장인물과 재회하게 된다. 이 재회는 키류의 것만이 아니다. 지난 20년 동안 <용과 같이>를 플레이하며 키류의 여정을 쫓아온 게이머들 또한 키류의 엔딩노트 위에 자신의 추억을 포개어 놓을 수 있다.


* <용과 같이 8> 속 키류의 죽음과 관련된 장면

이경혁은 게임제너레이션 16호에 수록된 글 “'이코'에서 '갓오브워'까지: 사랑의 대상과 게이머의 나이듦에 대하여”를 통해 스탠드얼론 게임에서 다뤄지는 서사가 게이머와 함께 나이듦을 지적한다. 로스 산토스를 누비는 범죄자는 중년의 위기를 겪고, 혈기 왕성했던 크레토스는 사춘기의 아들을 이해해야 하며, 이혼와 육아는 GOTY 수상작의 중심 소재가 되었다. 게임의 주인공이 죽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찾아볼 수 있었다. 다만 그것이 늙음과 질병, 한 시대의 종언과 함께 이야기되는 것은, 이경혁의 지적처럼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된 스탠드얼론 게임 유저들의 연령과 연동되며 발전한다.


어느덧 20년의 역사를 지는 프랜차이즈가 된 <용과 같이>가 키류의 마지막(일지 아닐지는 아직 모르지만)을 그려내는 방식은 시리즈의 한계와 나이듦을 직면하는 것과 같다. 규모의 확장과 한계의 쇄신이라는 이중의 임무를 지닌 <용과 같이 8>은 우리에게 게임의 주역들과 한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한다. 메인 스토리를 유보하면서 카스가와 놀고 키류를 추억할 거대한 놀이공원, 이로써 <용과 같이>라는 게임의 경계는 한층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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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했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하고 있다. 영화에 관한 글을 주로 쓰고, 미술, 게임, 방송 등 시각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영화평론가, 팟캐스트 [카페 크리틱] 진행자, 공동체상영 기획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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