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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인듯 인간아닌 인간같은 너: 좀비의 과거와 오늘
좀비물은는 비단 디지털게임에서만 붐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앞선 매체들인 영화나 소설 등에서도 좀비는 매력적인 소재로 특히 호러물에서 자주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마도 게임에서의 좀비 또한 앞선 매체들의 영향 아래 놓였을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게임에 등장하는 좀비의 의미는 다른 매체의 의미를 포괄하면서도 동시에 게임 특유의 요소들로 인해 조금 더 두드러진다. 이 글에서는 좀비에 관한 긴 이야기는 과감히 생략하고, 디지털게임에서의 좀비라는 보다 좁은 주제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 Back 19 GG Vol. 24.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논문세미나] 디지털게임에 나타나는 알레아의 세 층위
연구자인 임해량, 이동은은 알레아를 주술적 알레아, 시스템적 알레아, 영웅적 알레아 세 층위로 나누고, 그를 <하스스톤>의 일부 상황과 연결해 바라본다. 연구자들은 놀이가 가지는 우연성이 사행성 담론에 매몰되어 있음을 지적하며, 이것이 가지는 긍정적인 측면을 발굴해 내고자 한다. 즉 이 연구는 알레아를 새로이 탐색하려는 시도이다. < Back [논문세미나] 디지털게임에 나타나는 알레아의 세 층위 17 GG Vol. 24. 4. 10. 1. 들어가며 어린 시절 자주 했던 놀이들을 생각해 보면 그 결과가 상당 부분 운에 좌우되지 않았나 싶다. 가위바위보에서 손을 내고 희비를 오가게 되는 순간이나 공기놀이하다가 손을 삐끗하는 찰나 등, 노력만으로는 이기기 어려운 때가 간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놀이들은 결과를 종잡을 수 없는 만큼 더 몰입하게 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때때로 단순한 놀이의 형태를 넘어, 내기나 겨루기와 같은, 다소 복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놀이에 대한 속성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이들이 있는데, 바로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와 로제 카이와(Roger Caillois)다. 이 중 하위징아는 오늘날 놀이와 유희를 논할 때 빠트릴 수 없는 이로 인식되며, 카이와는 하위징아의 놀이 개념을 보다 유형화해 계승한 인물로 언급된다. 이번 논문 세미나는 후자의 인물, 카이와가 명명한 개념에서 출발한다. 카이와의 놀이는 대체로 아곤(Agon), 알레아(Alea), 미미크리(Mimicry), 일링크스(Ilinx)로 분류된다. 이 네 가지 항목은 각각 경쟁, 우연(운), 모방, 현기증이라는 속성을 지닌다. 경쟁의 아곤은 축구나 권투 등 승부를 겨룰 수 있는 놀이를 말한다. 알레아는 사다리 게임, 제비뽑기로 설명할 수 있고 미미크리는 역할극을, 일링크스는 코끼리 코를 하고 빙글빙글 돈 뒤 느껴지는 혼란스러움이나 흥분감으로 예를 들 수 있겠다. 이 네 가지 외에도 루두스(Ludus)와 파이디아(Paidia)라는 개념이 있지만,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바로 운, 우연을 뜻하는 ‘알레아’다. 연구자인 임해량, 이동은은 알레아를 주술적 알레아, 시스템적 알레아, 영웅적 알레아 세 층위로 나누고, 그를 <하스스톤>의 일부 상황과 연결해 바라본다. 연구자들은 놀이가 가지는 우연성이 사행성 담론에 매몰되어 있음을 지적하며, 이것이 가지는 긍정적인 측면을 발굴해 내고자 한다. 즉 이 연구는 알레아를 새로이 탐색하려는 시도이다. 2. 카이와와 알레아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놀이는 다소 복합적인 형태를 보이는데, 그것이 우연성과 연결되었을 때 도박이나 사행성 관련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여기서 몇 가지 질문이 도출된다. 게임에서 마주하게 되는 우연성은 곧장 도박과 통하게 되는가? 어느 정도 우연성을 의지하게 되는 게임은 사행성에 연관될 수밖에 없는가? 그렇다면 알레아라는 개념은 결국 룰렛 머신 부류의 게임을 통해서만 설명될 수 있는가? 이에 연구자들은 알레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알레아는 규칙을 통해 승패를 겨루지만 놀이하는 자가 그 과정에 자신의 의지를 행사할 수 없는 놀이를 일컫는다. 알레아의 승패는 오로지 우연을 통해 갈리는 것이 특징이며 그 즐거움의 본질이란 우연이 선사하는 절대적 평등을 통해 서로의 운명을 겨루는 데 있다.”(66쪽) ‘우연이 선사하는 절대적 평등’이란 특권을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겨루기로 했을 때, 그 승부에서 발생한 운만으로도 특권을 가지지 못한 자가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한다. 한 마디로 “우연이 선사하는 위험과 기회는 공정하게 분배”(66쪽)된다. 이것이 연구자들이 강조하는 알레아의 실질적인 속성이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알레아 논의는 카이와를 의존해 왔기에 상당히 저평가되어 온 감이 있다. 카이와에 의하면 알레아는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어렵고, 그로 인해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 창조적인 역할로 거듭나기 힘들다. 특히 카이와는 알레아와 아곤을 모순적이면서도 결속적이라고 했는데, 그러면서도 알레아가 아곤보다는 보조적이라고 보았다(Caillois, 1967/2018). 이런 카이와의 주장은 사람에 따라 운의 힘이 달라지는, 어떠한 모순에 주목하면서 나타난다. 자수성가한 이에게는 큰 축복처럼 여겨지는 운이 날 때부터 권력자였던 사람에게는 부인 받게 되는 게 그 예다. 한 마디로 카이와는 운과 우연이 노력을 배제시키는 경향이 있고, 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을 환상에 빠트린다고 본 것이다. 3. 알레아-우연이 가지는 의미 연구자들은 카이와의 의견에서 한층 더 나아가고자 한다. 이들은 카이와가 우연의 비창조적인 부분에만 주목했으며, 우연을 다층적으로 보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이를테면 우연은 고대 철학에서 부정적인 개념으로 인식되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긍정적인 의미로 변화하였다. ‘운명’과 ‘천운’을 비롯해, ‘천체’, ‘정의’, ‘징벌’, ‘미신’, ‘요행’, ‘행운’, ‘불행’, ‘행복’, ‘신’, ‘섭리’, ‘계시’, ‘기회’, ‘미래’, ‘가능’, ‘희망’, ‘기대’, ‘역설’, ‘반전’, ‘돌발’, ‘돌출’, ‘변수’ 등 역사의 흐름에 따라 다양화된 것이다(최성철, 2016). 가령 ‘운명’ 속 우연은 본래 신의 의지를 설명하기 위한 요소였다. 따라서 인간은 신을 의심할 수 없고 그저 믿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즉 우연과 함께하는 ‘운명’은 신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며 인간을 신에게 속박하는 요소였다. 그러나 우연은 근대에 들어서면서 해방을 불러오는 ‘자유’의 의미도 띠게 되었다. 한 마디로 진리(운명)를 거스르는 상징에서 언젠가 자유를 가져다줄지도 모르는, 긍정적인 가능성으로 자리 잡았다는 이야기다. 그 결과 우연은 ‘운명’과 ‘자유’라는, 다소 상반된 두 개념에 깃들게 되었다. 그렇다면 카이와가 이야기한 알레아는 운명과 자유 중 어떤 부분에 더 가까웠을까? 연구자들은 두 개념 모두 그렇다고 설명한다. 카이와가 서술한 우연이 부정적인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는 데에서 ‘운명’이 나타나지만, 결국 알레아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점에서 ‘자유’도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물론 투쟁과 경쟁을 의미하는 아곤이 ‘자유’라는 개념에 훨씬 근접할 수 있겠으나, 연구자들은 알레아를 아곤으로부터 독립시키고자 하였다. ‘운명’을 곧 ‘통제’로 단정해 온 이제까지의 알레아 논의를 ‘자유’가 공존하는 개념으로 확장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알레아를 세 층위로 나누면서 드러난다. 4. 알레아의 세 층위와 <하스스톤> 1) 주술적 알레아 연구자들은 알레아의 세 층위를 주술적 알레아, 시스템적 알레아, 영웅적 알레아로 이름 붙였다. 그리고 이 세 층위를 <하스스톤>에서 마주할 수 있는 상황들로 설명한다. 여기서 첫째로 주술적 알레아란 ‘주술’이라는 단어에서 추측할 수 있듯, 어떠한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 ‘존버(존나 버티기)’라는 말을 간단한 예시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주술적 알레아는 신에 대한 의구심을 죄악시했던 중세 기독교 인식(최성철, 2016)을 계승해, 승리를 위한 노력이나 적극성을 생략시킨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면에서 주술적 알레아의 핵심을 맹신과 더불어 “어떠한 개연성과 상관없이 누구든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비이성적 즐거움”(70쪽)이라고 정리한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주술적 알레아의 힘이 현대에 들어서면서 약해졌다고 언급한다. 과학을 기반으로 한 이성적 가치관은 현대인들을 변화시켰고, 이들이 맹목적인 믿음을 갖고 놀이하는 일도 적어지게 된 것이 이유다. 이에 연구자들은 순수한 의미의 주술적 알레아는 사라졌지만, 알레아 그 자체에 잠재된 주술성이 플레이어에 따라 발현될 가능성은 존재한다고 말한다. <하스스톤>은 주술적 알레아를 발현시킬 가능성이 있는 게임이다. 연구자들은 ‘무작위 효과 카드’를 사례로 드는데, 이 카드들은 범용성이 낮고 불안정하다는 단점을 안고 있다. 다만 이 중 일부는 역전의 열쇠로써 사용된다. 여기서 연구자들이 지목한 카드는 ‘난투’다. 난투 카드는 ‘무작위 하수인 하나를 제외한 모든 하수인을 처치’하는 효과가 있어서 승기를 다시 잡기 위해 애용되곤 한다. 연구자들이 주술적 알레아와 난투 카드를 함께 이야기한 것도 그 때문이다. 난투 카드를 통해 승리할 수 있길 바라는 상황이 종종 나타나는 것이다. 이렇듯 주술적 알레아는 역전을 바라는 이들로부터 재현된다. 2) 시스템적 알레아 자본주의 체제가 성장하게 된 17세기는 화폐 사용이 활발해지고 개인과 사회 모두가 격변했던 때다. 투기, 도박 등이 대중적 공간에 나타나기도 한 이 시기는 알레아의 상업화도 함께 이루어졌다(Reith, 2006). 이후 19세기에 활성화된 카지노는 알레아의 변화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카지노에 설계된 교묘한 시스템이 사업자들에게는 막대한 이득을 안겨주고, 그 안의 플레이어들에게는 자신이 ‘놀이’를 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곳의 알레아는 믿음이라는 것이 침투할 수 없을 만큼 완전히 시스템화 되어있다. 이런 시스템적 알레아는 ‘우연이 선사하는 절대적 평등’이 아닌, 플레이어와 사업주 간의 수직적 관계를 상징한다. 현대 디지털 게임에서 나타나는 시스템적 알레아의 대표적인 예로는 랜덤박스가 있다. <하스스톤>은 카드 팩이 곧 랜덤박스다. 연구자들은 이 랜덤 카드 팩이 카지노의 수익 창출과 유사한 모습을 띤다고 분석한다. 철저히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기에 좋은 아이템이 나올 확률은 낮고, 플레이어에게는 ‘놀이’라는 환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랜덤 카드 팩은 개선된 성능의 아이템이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돼서, 승률이 중요한 플레이어는 특히나 끊어내기 어렵다. 언급한 것처럼 랜덤박스는 여타 게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시스템적 알레아가 속속들이 침투해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알레아가 사행성과 도박만을 뜻한다는 오해로도 이어진다. 3) 영웅적 알레아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고 투쟁하는 영웅적 알레아는 고대 시절부터 ‘내기’의 형태로 명맥을 이어왔다. 내기는 특히 17~19세기의 기득권 사회에서 잘 이용됐는데, 이는 내기가 가치를 부여하는 수단으로 작용했던 탓이 크다. 내기(betting)가 가치 부여의 수단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도박(gambling)과 달리 뛰어난 판단과 노력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이것을 19세기에 발표된 쥘 베른의 소설, <80일 간의 세계일주>를 통해 설명한다. 해당 소설 속에서 전개되는 내기는 선택(guessing)과 증명(proving)이라는 단계를 거친다. 이 선택과 증명은 극복해 내기만 하면 세상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절차로 기능한다. 이걸로 짐작할 수 있는 영웅적 알레아의 핵심은 ‘자유의지를 기반 삼아, 운명에 저항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가?’다. <하스스톤>에서 영웅적 알레아가 잘 드러나는 건 모험모드다. 이 모드는 한 번 죽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로그라이크 형식을 띠는데, 플레이어가 각각의 난이도와 도전 방식을 ‘선택’하고 이를 클리어함으로써 가치를 ‘증명’해 낼 수 있다. 이런 영웅적 알레아는 단순히 승리하거나 클리어하는 걸 넘어, 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다양한 가치에 중심을 둔다. 5. 나가며 물그릇에 기도하는 심정으로 게임을 하고, 랜덤박스에 지른 큰 금액을 재밌었으니 됐다며 합리화하고, 어려운 게임을 클리어하면서 스스로의 가치가 향상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아마 대부분의 게이머라면 이런 경험 한 번쯤은 있지 않을까. 그래서 주술적 알레아, 시스템적 알레아, 영웅적 알레아에 대한 내용은 개념적으로 접근하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다만 현대 디지털 게임에 알레아가 형성될 자유도가 존재하는지 고민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몰입해 있을 때는 잊게 되는 사실이지만, 사실 게임은 정해진 설정을 기반으로 동작한다. 이는 시스템적 알레아에서 언급된 카지노의 체계와 동일하다. 반면 주술적 알레아와 영웅적 알레아는 본래 무엇 하나 정해진 것이 없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미래에 운을 걸면서 나타난 개념이다.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떠오른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게임 공간 안에서, 주술적 알레아와 영웅적 알레아는 결국 시스템적 알레아에 귀속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다시 말해 게임에는 제작자들의 계산과 기술이 개입되어 있는데, 두 알레아의 가치를 순수하게 누릴 수 있느냐는 소리다. 물론 연구자들도 두 알레아를 한정된 사례에만 적용하긴 했으나, 그래도 게임이 애초 만들어진 세계, 자본에 의해 통제되는 세계라는 점에서 맹점이 드러난다. 이를테면 오락실 기기에 코인을 추가하는 행위나 모바일 게임에서 이루어지는 캐릭터 육성 등에도 시스템적 알레아의 흔적은 남는다. 그러면 게임 안의 알레아들은 시스템적 알레아에 귀속되는 방식으로만 존재할 수 있는 걸까? 본문에 서술되지는 않았지만, 연구자들은 관람적 알레아라는 개념을 결론부에 언급한다. 관람적 알레아는 게임 스트리밍이나 e스포츠 방송을 관람할 때 발현된다. 이 알레아는 타인을 매개로 하기에 상당히 간접적이다. 즉 게임을 즐기면서도 시스템적 알레아에 귀속될 확률이 낮다. 이러한 측면에서 관람적 알레아를 주목할 필요성을 함께 제시하고 싶다. 연구자들이 문제를 제기한 것처럼 우연성에 관한 논의는 상당히 좁은 의미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게임이라는 매체와 알레아에 대해 더 많은 토론이 오가면 사행성이나 도박 담론에 치우치지 않는, 순수한 ‘우연놀이’ 또한 논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참고문헌 Caillois, R. (1967). Les jeux et les hommes. 이상률 (역) (2018). <놀이와 인간>. 서울: 문예출판사. Reith, G. (2005). The Age of Chane: Gambling in Western Culture. New York: Routledge 최성철 (2016). <역사와 우연>. 서울: 도서출판 길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다흰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관해 관심 갖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모 온라인 게임에 복귀했습니다.
- 온라인 시대에서 ‘PC방’이 살아가는 법
게임은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우리들과 함께한 놀이 문화로 통한다. 처음에는 간단한 오락이 가능한 값비싼 콘솔기기로 시작해, PC 보급이 본격화됨에 따라 가정 내 기초 게임 환경 구축이 가능해졌고, 지금에 와서는 거리와 관계없이 편하게 온라인으로 게임을 즐기는 시대가 열렸다. < Back 08 GG Vol. 22.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Chanjung Lee Alongside enjoying games across a range of genres, taking a multifaceted look at what PC bangs look like today.
- 고전 명작과 현대 테크놀로지의 해후: 『검은 신화 : 오공』과 중국 AAA게임의 상상
2017년부터 중국 게임산업의 실제 매출은 확고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이것이 곧 중국 게임산업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AAA게임이야말로 한 나라의 게임산업의 종합적인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게이머들에게 뼈아픈 점은 중국이 내내 자체적인 3A게임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고, 심지어 관련된 시도조차 부족하다는 사실에 있다. 다시 말해, 상업적 성장 측면에서 중국 게임산업은 ‘최고의 시대’이지만, 문화예술과 창조성의 측면에서는 ‘최악의 시대’라는 것이다. < Back 10 GG Vol. 23.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Activist, Writer) Deng Jian (邓剑) Associate Professor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Soochow University. Focuses on digital game cultural studies as a primary research interest, and writes a column on games, among other pieces, for The Paper. (Activist, Writer) Myeonggyo Hong Activist and writer. Works at the social movement organization Platform C on East Asian international solidarity and social movements. Author of To My Vanished Chinese Friend and A Ghost Throws a Punch at the World, and translator of Xinjiang Uyghur Dystopia and Dying for an iPhone (co-translated).
- Lost Ark and the Impression of Korean Games from the Western Perspective
Lost Ark and the Impression of Korean Games from the Western Perspective On February 11th, 2022 after three days of early access, Lost Ark officially released in the west to over one million players. Produced by Smilegate, a Korean developer, and distributed in the west by Amazon Game Studios, the release of Lost Ark is an opportunity to consider the impression that Korean games have made among western audiences. Despite several successful Korean games launching in the West over the last 20 years, the idea of a ‘Korean game’ hasn’t really taken hold in the public consciousness of western players in the same way Japanese games have dominated the gaming landscape. Through a combination of Lost Ark’s management, the engagement of high-profile content creators, and the role of the Korean Lost Ark community in helping the game succeed among the western playerbase, Lost Ark is in a unique position to configure western player expectations about what a Korean game can be. < Back 05 GG Vol. 22.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Researcher) Marc Lajeunesse (Game Researcher) Cortney Blamey
- 영상기술, 매체, 도구, 방법론으로서의 머시니마에 대한 소고
도입부에 적어둔 것처럼 머시니마는 1990년대 비디오게임 녹화기술의 등장으로 인해 가능해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디즈니의 스턴트 시뮬레이터 게임 [스턴트 아일랜드 Stunt Island](1992)에서 인게임 기능으로 처음 도입된 것이 그 출발점이다. 해당 게임은 가상의 섬에서 다양한 스턴트 시퀀스를 제작하고, 그것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녹화해 보여주는 것이 주된 플레이였다. < Back 영상기술, 매체, 도구, 방법론으로서의 머시니마에 대한 소고 26 GG Vol. 25. 10. 10. 머시니마(machinima)는 머신(machine)과 영화(cinema)의 합성어로, 비디오게임을 통해 제작된 영화를 부르는 용어다. 머시니마는 1990년대 비디오게임 녹화 기술이 일반화되며 출발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영화 분야에서 CGI를 활용한 VFX 기술이 도입되며 이미 맹아를 싹틔우고 있었다. <트론 Tron >(1982)을 통해 본격적으로 CGI가 도입된 이래, 3D 애니메이션과 VFX의 기술적 발전사는 게임엔진의 발전사와 궤를 함께한다. 게임엔진은 실시간 랜더링이 가능하다는 지점에서 영화제작에 있어 프리비주얼 단계에 사용되거나, 버추얼 프로덕션으로서 활용된다. 이 과정에서 언리얼이나 유니티 등의 게임엔진이 활용된다 [1] . 이를테면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 Ready Player One >(2016) 제작과정을 담은 블루레이 부가영상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마치 영화 속 ‘오아시스’에 접속하듯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 기기를 쓴 스필버그는 버추얼 프로덕션으로 제작된 영화 세트장을 살펴보며, 마치 VR 게임을 하듯 카메라 동선을 짜고 세트장의 디테일을 변경한다[ 링크 ]. 라이브 스크린을 활용한 <오블리비언 Oblivion >(2013)이나 디즈니+ 드라마 <만달로리안 Mandalorian >(2019~) 또한 게임엔진을 적극 활용해왔다. 비슷한 방식으로, 미술관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미디어아트 작업들 또한 게임엔진을 적극 활용한다. 국내에선 여러 전시와 영화제 등을 통해 소개된 미디어 아티스트 루양의 <물질 세계의 위대한 모험>(2020)과 <도쿠_환상을 뒤엎는 이분법적 충돌>(2023)은 자신을 직접 3D 스캐닝한 젠더리스 아바타 ‘도쿠’를 사용한 여러 작품을 내놓았다. 국내 미디어 아티스트 안가영은 (2021)을 통해 예술가들이 아바타를 사용해 도피한 세계를 그려낸다. 이들 작품은 게임엔진인 유니티로 제작되었다. 이처럼 영화, 그리고 무빙이미지 기반의 미디어아트 작업에서 게임엔진이 도입된 사례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으며, 국내외 영화/애니메이션 전공에서 게임엔진을 활용한 실기 강의도 개설되어 있다. 머시니마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글에서 게임엔진을 사용한 작업을 왜이리 길게 이야기하는가? 이는 게임과 영화 모두 움직이는 이미지에 기반해 있다는 점에서 비교되는 매체이며, 앞서 언급한 것처럼 CGI의 기술적 발전사를 공유하고 서로의 프로덕션에 서로가 활용된다는 점을 말하고자 했다. 허나 이보다 중요하게, 머시니마로 지칭되는 작품의 유형이 너무나도 다양하다는 문제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루양이나 안가영의 작업은 특정한 게임을 통해서 제작된 작품이 아니다. 게임적인 특징들, 이를테면 아바타나 메타버스와 같은 용어들로 지칭되는 디지털 가상세계의 묘사를 위해 게임의 이미지가 채택된 것에 가깝다. 이는 게임엔진으로 가상의 게임을 제작한 뒤 그 플레이영상을 토대로 제작된 송민정의 <악사라 마야 AKSARA MAYA>(2019), 김경묵의 <폐쇄회로>(2020) 등을 정말로 ‘머시니마’로 부를 수 있는가의 문제로 연결된다. 때문에 본 글에서는 머시니마를 이미 출시된 게임을 통해 제작된 영화들로 한정하고자 한다. 머시니마의 짧은 역사 머시니마의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도입부에 적어둔 것처럼 머시니마는 1990년대 비디오게임 녹화기술의 등장으로 인해 가능해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디즈니의 스턴트 시뮬레이터 게임 [스턴트 아일랜드 Stunt Island ](1992)에서 인게임 기능으로 처음 도입된 것이 그 출발점이다. 해당 게임은 가상의 섬에서 다양한 스턴트 시퀀스를 제작하고, 그것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녹화해 보여주는 것이 주된 플레이였다. 게임 안에서 영화의 한 시퀀스를 직접 만들어 보는, 전-머시니마(pre-machinima) 형태를 의도치 않게 취했던 게임이랄까. 이러한 녹화 기술은 이후 [둠 Doom ](1993)이나 [퀘이크 Quake ](1996) 등의 FPS 게임에서 리플레이를 기록하는 데모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주로 공략 영상이나 스피드런을 남기기 위한 목적에서 사용되던 녹화 기술이 머시니마로 만들어진 최초의 사례 중 하나는 < 캠퍼의 일기 Diary of a Camper >(1996)이다. 이 작품은 [퀘이크]의 클랜 레인저스(Rangers)가 제작한 것으로 100초 분량의 멀티플레이를 자유 시점의 카메라로 담아낸다. 제목의 ‘캠퍼’는 FPS 게임에서 맵 구석에 엎드려 누군가 오길 기다리는 플레이어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 작품 또한 그러한 게임플레이를 내용으로 삼는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다양한 ‘퀘이크 영화’가 등장하며 인기를 끌게 된다. 같은 해인 1996년, 또 다른 최초의 머시니마 중 하나라 불리는 < 기적 Miracle >(1996)이 갤러리를 통해 공개된다. 전투기 시뮬레이터 [F/A-18 Hornet](1996)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전투기가 물 위를 활주로처럼 달리는 모습을 담은 100초 가량의 영상이다. 이 작품의 경우 미술작가 밀토스 마네타스(Miltos manetas)의 작품으로, ‘퀘이크 영화’와 달리 작가의 개인전을 통해 갤러리에서 공개되었다. 다시 말해, 머시니마는 그 출발점부터 게이머와 미술가라는 두 주체에 의해 온라인과 갤러리라는 두 플랫폼을 통해 공개되던 예술형식이라 할 수 있다. [스턴트 아일랜드] 플레이 화면 레인저스 <캠퍼의 일기> 스틸컷 이 시기에 머시니마라는 용어가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머시니마라는 용어는 ‘퀘이크 영화’에 매료된 휴 행콕(Hugh Hancock)이 영화제작자인 고든 맥도널드(Gordon McDonald)와 함게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트레인지 컴퍼니(Strange Company)를 설립한 이후 만들어낸 용어이다. 1999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행콕과 스트레인지 컴퍼니는 몇 편의 머시니마를 제작했고, 2000년 머시니마 제작자를 위한 온라인 허브 웹사이트 ‘머시니마 닷컴’ [2] 을 오픈한다. 2002년에는 머시니마 예술과학 아카데미(Academy of Machinima Arts & Sciences)를 설립하기도 하고, 이 단체를 통해 최초의 머시니마 영화제를 개최하기도 한다. 휴 행콕은 [퀘이크]로 제작한 < Eschaton - Darkening Twilight >(1997)나, 게임사 모놀리스 프로덕션(Monolith Productions)에서 개발한 게임엔진 ‘리스테크’를 활용한 독립적인 머시니마 제작을 위한 프로젝트 리스테크 필름 프로듀서(Lithtech Film Producer)를 통해 제작한 < 오지만디아스 Ozymandias >(1999) [3] 등을 제작하기도 한다. 2006년에는 최초의 장편 머시니마 < 블러드스펠 Bloodspell > 또한 공개한다. 다른 한편으로 P2P 플랫폼과 유튜브의 등장을 통해 머시니마는 일종의 팬 무비의 지위를 갖기 된다. 루스터 티스(Rooster Teeth)가 [헤일로 Halo ](2001)을 통해 제작한 < Red vs. Blue >(2003) [4] 는 ‘편가르기’가 중심인 게임 내 전쟁 상황에서 병사들이 “우리는 왜 싸우지?”라는 의문을 갖는다는 내용의 블랙코미디로, P2P 서비스를 통해 배급/배포된 이후 2006년부터는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다. 이후 18개 시즌에 한편의 장편으로 구성된 장기 시리즈로 연재된다. 코리 아켄젤 <슈퍼마리오 무비> 스틸컷 필 솔로몬 <엠파이어> 스틸컷 다만 이렇게 대중적인 주목을 받아 온, 혹은 팬 무비로서 인기를 얻은 머시니마는 최근 힘을 잃고 있다. 머시니마 닷컴은 워너에 인수된 이후, 2019년 1월 워너에 의해 폐쇄된다. 그곳에서 운영하던 머시니마 유튜브 채널 ‘Machinima Inc.’ 또한 폐쇄된다. 2024년에는 루스터 티스가 폐업 소식을 알려 왔다. 물론 [하프라이프 2 Half-Life 2 ](2004), [카운터스트라이크: 소스 Counter-Strike: Source ](2004), [블랙 메사 Black Mesa ](2012) 등의 에셋을 활용한 머시니마 스키비디 토일렛(Skibidi Toilet)과 같은 시리즈가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기는 하다. 다만 2014년 트위치의 등장 이후 게임 스트리밍 시장이 활성화된 이후 다양한 방식의 게임플레이 영상이 유튜브 등지에 업로드되는 상황에서 ‘팬 무비’로서의 머시니마는 힘을 잃는다. 이를테면 팬 무비로서의 ‘퀘이크 영화’는 있지만 ‘GTA 영화’나 ‘마인크래프트 영화’는 (물론 존재는 하지만) 팬 무비보다는 실험영화나 미술의 영역에서 소화되는 상황이다. 영국의 작가 듀오 래리 아키암퐁(Larry Achiampong)과 데이빗 블랜디(David Blandy)가 함께 제작한 <파농을 찾아서 Finding Fanon > 시리즈(2015~2016)와 그것의 외전인 시리즈(2016)는 [GTA V](2013)의 촬영용 모드를 활용하여 제작되었는데, [GTA V]가 풍자하는 백인중심적이며 폭력적인 세계관 속에서 탈식민주의 사상가 프란츠 파농의 유실된 희곡을 선보인다는 컨셉의 작품이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Super Mario Bros. ](1983)의 카트리지를 임의로 조작해 글리치를 일으키고 그것을 통해 제작한 코리 아켄젤(Cory Arcangel)의 < 슈퍼 마리오 클라우드 Super Mario Cloud >(2002)나 <슈퍼 마리오 무비 Super Mario Movie >(2005) 또한 갤러리를 위해 제작된 작품이다. 특히 <슈퍼 마리오 클라우드>의 경우 마치 회화와 같은 방식으로 전시되었다. 그 밖에도 [GTA V](2013), [마블 스파이더맨 Marvel’s Spider-man](2018), [어쎄신 크리드 오리진 Assassin’s Creed Origins ](2017) 등 다양한 게임에서 글리치로 인해 한없이 추락하는 캐릭터들을 담은 <페더폴 Featherfall>(2019)나 필름 작업을 이어오던 실험영화 감독 필 솔로몬(Phil Sonomon)이 [GTA IV](2008)로 앤디 워홀의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한 <엠파이어 Empire>(2008)와 같은 작품들은 미디어아트와 실험영화의 교차점에서 머시니마를 실험하며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비디오에세이, 다큐멘터리로서의 머시니마 도입부에서 완성된 게임이 아니라 게임엔진을 활용한 작업들을 머시니마로 부를 수 있는가라는 하나의 의문을 제시했다. 또 하나의 의문을 제기하자면, 게임플레이의 녹화 장면을 기록하여 만든 모든 영상물을 머시니마로 부를 수 있는가의 문제다. 2021년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에서 진행된 기획전 ‘GAME x CINEMA’ [5] 는 네 개의 섹션으로 여러 ‘게임 영화’를 구분했다. <트론>이나 <레디 플레이 원> 등 ‘게임 소재’의 영화들, <슈퍼 마리오>(1993)나 <반교: 디텐션>(2019) 등의 ‘게임 원작’ 영화들, 게임과 플레이어, 제작자와의 관계를 다룬 여러 편의 ‘게임 다큐멘터리’들, 그리고 마지막이 머시니마다. 극장 대신 온라인 상영으로 진행된 이 기획전에서 머시니마로서 소개된 작품들의 구성은 꽤나 다양하다. 앞서 언급한 나 <오지만디아스>, <캠퍼의 일기>, <페더폴> 등 P2P, 유튜브, 머시니마 닷컴, 혹은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소개된 여러 작품들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유튜브를 통해 주로 소개된 여러 비디오 에세이들이 있다. 1세대 유튜버라 할 수 있는 AVGN의 [ 캐슬바니아 2: 사이먼의 원정 Castlevania II: Simon's Quest ](1987) 리뷰부터, 비디오게임 스피드런에 관한 유튜버 서머닝 솔트(Summoning Salt)의 비디오에세이, <4-2: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가장 악명 높은 레벨의 역사 4-2: The History of Super Mario Bros.' Most Infamous Level >(2018), 역시 비디오게임에서 카메라 시점의 문제를 다룬 유튜버 닉 로빈슨(Nick Robinson)의 비디오에세이 < 이것이 '2인칭' 게임의 모습이다 This Is What a 'Second Person' Video Game Looks Like >(2019) 등이 머시니마로서 소개되었다. 이들은 머시니마인가? 혹은 아닌가? 닉 로빈슨 <이것이 ‘2인칭’ 게임의 모습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다큐멘터리 영화제들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킨 <우리는 가상현실에서 만났다 We Met in Virtual Reality >(2022), <니트 아일랜드 Knit’s Island >(2023), <그랜드 테프트 오토의 햄릿 Grand Theft Hamlet >(2024) 등은 각각 [VR Chat](2014), [데이즈 DayZ ](2013), [GTA V] 등을 통해 제작된 다큐멘터리이며, 이들 작품은 일종의 메타버스로서 기능하는 멀티플레이 게임 안에서의 생활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다큐멘터리적 성격을 갖는다. 특히 이들 작품은 별도의 모드를 사용하는 대신 게임 내 캐릭터의 시점을 그대로 녹화해 사용하는데, 때문에 영화의 감독은 촬영감독이자 게임 플레이어로 활동하게 된다. 일종의 자기민속지(Auto-Ethnography)적 성격을 갖는 문화인류학적 머시니마 다큐멘터리랄까. 이와 같은 자기민속지적 맥락은 영화의 적지 않은 부분을 넥슨의 MMORPG [일랜시아](1999)의 게임플레이 녹화화면이 차지하는 <내언니전지현과 나>(2020)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World of Warcraft ](2004) 속 녹화되지 못한 순간들을 애니메이션으로 재연(reenactment)한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2024) 등과도 연결된다. 다만 <내언니전지현과 나>가 게임플레이 녹화화면을 적극 활용한다는 점에서 머시니마적 성격을 갖는, 게임을 ‘통해서’ 제작된 성격을 갖는다면,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머시니마보단 부분적으로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의 성격을 갖는다. 머시니마는 결국 영화제작의 도구이자 배경으로서 게임을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올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온라인 기획전 ‘이것은 가상이 아니다’를 통해 소개된 머시니마 다큐멘터리와 비디오 에세이들은 게임이 메타버스로서, 재연의 방식으로서 갖는 민속지적 성격과 미학적 실험을 드러낸다. 앞서도 언급한 필 솔로몬의 <엠파이어>나 토탈 리퓨절(Total Refusal)의 <근무 중 이상 무 Hardly Working >(2022)와 같은 작품은 플레이어의 개입 없이도 게임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를 그려낸다. 전자가 알고리즘에 따라 변화하는 게임 내 날씨, 빛, 소음, NPC 움직임의 기록이라면, 후자는 정해진 일과를 수행하는 [레드 데드 리뎀션 2 Red Dead Redemption II ](2018) 속 NPC들을 쫓는다. 마리 풀스턴(Marie Foulston)의 <더 그래니즈 The Grannies >(2021)처럼 게임 내 글리치를 찾아다니는 게임개발자 클랜을 담아내는 사례도 있다. 혹은 자기표현의 수단으로서 [세컨드 라이프 Second Life ](2003)나 [마인크래프트 Minecraft ](2009)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담은 <메이드 인 세컨드 라이프 Made in Second Life: The Movie >(2023)과 <유토피아를 찾아서 Tracing Utopia >(2021)가 있다. 혹은 없어진 이민자 마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해당 마을의 풍경을 [마인크래프트]로 재현한 프로젝트 <쏘텔 재팬 타운의 기억 Redefining Community: The Evolution of Sawtelle Japantown >(2018)처럼 다큐멘터리에서 재연의 영역을 머시니마로 구현한 작품 또한 존재한다. 이들 작품은 각자의 방식대로 게임을 다큐멘터리적 대상으로, 혹은 다큐멘터리 스토리텔링을 위한 도구로서 활용하고, 머시니마는 그곳에 개입하는 하나의 방식이 된다. 해당 기획전의 프로그래머 강진석은 머시니마 다큐멘터리들을 “가상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우리 세계의 일부이며 기록할 만한 것으로 재설정하는 작업” [6] 으로 정의한다. 즉, 이들 작품은 게임을 다큐멘터리가 다룸직한 세계로, 우리가 생활하고 살아가는 세계의 일부이자 확장으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발언하는 머시니마이다. 토탈 리퓨절 <근무 중 이상 무> 스틸컷 조셉 드라페 <이라크에서의 죽음> 스틸컷 그렇다면 비디오 에세이로서의 머시니마는 어떠한가? 시네마테크KOFA의 기획전에서 상영된 유튜버들의 비디오 에세이와, 미술관이나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상영된 비디오 에세이/다큐멘터리로서의 머시니마들은 서로 다른 차이를 갖는가? 물론 유튜브의 비디오 에세이들 또한 게임과 세계, 그리고 (머시니마)영화 관한 충분한 비평적 함의를 갖는다. 다른 한편으로 <이라크에서의 죽음 dead-in-Iraq >(2007)이나 <나만의 풍경: 미군이 되는 법 My Own Landscapes >(2020)처럼 게임의 군사적 활용이나 <몬도 카네 Mondo Cane >(2018)처럼 디지털 윤리에 관한 문제를 던지는 머시니마 작업, 다시 말해 하룬 파로키(Harun Faroki)의 <시리어스 게임 Serious Game >(2009~2010)이나 <평행 I-IV Parallel I-IV >(2012~2014)에서 던진 문제의식과 공명하는 작업은 하나의 경향성을 이룬다. 혹은 <구성된 순간 The Constructed Moment >(2017)이나 <말로우 드라이브 Marlowe Drive >(2017), <지옥으로의 하강 Descent into Hell >(2021)처럼 게임플레이 경험을 사적 감정의 에세이로 풀어내는 일련의 경향 또한 발견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 영화적 비디오 에세이로 여겨지는 일련의 머시니마와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는 머시니마 사이의 차이라면 그것이 영화제나 미술관 등 제도적 승인을 받았느냐 아니냐의 차이만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AVGN처럼 밈이나 격한 말투로 남기는 리뷰가 되었건, 게임의 디자인이나 스피드런 같은 특정한 방식의 게임플레이에 관한 탐구이건, 마치 영화의 숏과 몽타주를 분석하고 사조를 탐구하는 일련의 영상 비평들과 같은 비평적 행위다. 그러한 의미에서, 오디오비주얼 필름 크리틱 [7] 혹은 비디오 에세이가 비평적 성격이 강한 영화의 한 장르라고 할 수 있다면, 게임에 관한 비디오 에세이 또한 머시니마의 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 경계는 매우 흐릿하다. 다른 한편으로, 이는 게임이 영화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분석하고 리뷰할 수 있는 대상이자, ‘클래식’으로 여겨지는 작품들이 존재하며, 하나의 예술이자 문화의 형식이며, 접근이 용이한 예술적 도구로 자리잡았음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샘 크레인, 피니 그릴스 <그랜트 테프트 오토의 햄릿> 스틸컷 머시니마의 한계와 미래? 재차 도입부의 문장으로 되돌아가서, 머시니마는 게임(machine)과 영화(cinema)의 합성어다. 다만 살펴본 것처럼 머시니마는 태생부터 영화관(cinema)이 아니라 온라인이나 갤러리/미술관에서 출발했다. 게임의 이미지를 영화관의 스크린 환경에서 실험하고자 한 필 솔로몬의 실험영화와 같은 사례들이 있지만, 최초의 장편 머시니마인 <블러드스펠>은 극장이 아닌 온라인 혹은 DVD를 통한 배급만을 진행했을 뿐이다. <니트 아일랜드>나 <그랜드 테프트 오토의 햄릿>과 같은 최근의 장편 머시니마 다큐멘터리들 또한 몇몇 영화제에서만 극장상영 되었을 뿐, 일반 배급은 VOD나 무비(MUBI) 같은 OTT 플랫폼을 통해 진행되었다. 그렇다면 머시니마는 영화(cinema)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가? 아니면 단순한 영화(movie)이거나 미술관을 위한 무빙-이미지이거나 그저 또 하나의 콘텐츠인가? 물론 영화의 지위과 예전과 같지 않지만, 우리는 머시니마가 정말로 영화의 지위를 가져본 적은 없음을 생각해야 한다. 머시니마 제작을 위해 동원되는 게임의 가짓수가 생각보다 협소하다는 지점 또한 하나의 한계다. 초창기 머시니마가 [둠], [퀘이크], [헤일로] 등 녹화 기능과 멀티플레이를 지원하는 FPS 게임을 주된 플랫폼 삼았다면, 현재에 이르는 시점 동안에는 주로 [세컨드 라이프], [심즈 The Sims ] 시리즈(2000~2014), [마인크래프트]처럼 자유롭게 상황과 배경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샌드박스형 게임, 혹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GTA V], [레드 데드 리뎀션]처럼 광활한 공간과 다양한 NPC, 멀티플레이 기능과 여러 모드를 동원할 수 있는 게임들이 주로 사용되곤 한다. 이는 멀티플레이나 오픈월드 게임의 특징, 다양한 인물과 상황이 창출되거나 설정될 수 있으며 그것을 다양한 카메라 시점으로 기록할 수 있다는 지점에서 이들 작품이 채택되는 것일테다. 그렇다면 다른 머시니마를 떠올려 볼 수는 없을까? 이를테면 [프로젝트 좀보이드 Project Zomboid ](2013)로 제작해 쿼터뷰만으로 구성된 머시니마 픽션이라던가, [스타듀 밸리 Stardew Valley ](2016)나 [모여봐요 동물의 숲 あつまれ どうぶつの森 ](2020)으로 제작된 머시니마, 혹은 선명한 세계관과 내러티브를 지닌 [마블 스파이더맨]이나 [호라이즌 제로 던 Horizon Zero Dawn ](2017), [데스 스트랜딩 Death Stranding ](2019)의 머시니마 팬 무비는 불가능한 것일까. 휴 행콕 <오지만디아스> 스틸컷 어떤 면에서 지금의 게임과 게임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가 게이머들에게 새로운 공간, 그들이 게임의 구성요소들을 가지고 유희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갈 공간을 충분히 제공하지 않는다는 지점이 새로운 머시니마 플랫폼으로서의 게임을 불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머시니마의 사례는 아니지만, 과거 [메이플스토리](2001) 공식 가이드북에 ‘싸비’라는 유저가 인게임 스크린샷을 활용해 제작한 스크린툰 기억하는가? 게임 전체의 내러티브와 관계없이 한 길드의 이야기를 써내려 갔던 그러한 만화가, 지금의 [메이플스토리]에서 가능할까? 때문에 최근 게임들의 팬 무비가 자체적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 [8] 으로 유튜브에 업로드되거나, 시청자와 대화하며 개별적인 맥락의 이야기를 게임플레이와 함께 써내려가는 스트리머의 영상이 하나의 장르로 인식됨으로써 ‘이야기 기계’로서의 머시니마가 힘을 잃은 것일 수 있다. <캠퍼의 일기>나 처럼 게임플레이에서 이야기를 길어 올리던 초창기 머시니마는 머시니마의 예술적/영화적 가능성을 점쳐보고자 했던 <오지만디아스>나 <블러드스펠>과 같은 작품들과 공존했다. 하지만 현재 영화제나 미술관에서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머시니마는 게임을 창작 도구로 활용한 작품들이 아니라 게임이 자체적으로 갖는 사회적/예술적 기능에 관심을 둔 작품들이다. 유튜버들의 게임 리뷰, 스트리머의 게임플레이 영상, 게임에 관한 비평적 비디오 에세이, 게임 내에서 촬영된 다큐멘터리 등의 경계가 흐려지고, 게임에서 촬영한 무수한 콘텐츠가 오르내리는 지금, 머시니마의 방향은 영화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황을 직면하는 것을 향한다. 게임은 영화의 재료이자 도구라기보단 영화의 대상이 되었고, 그 안에서 머시니마라는 장르는 비디오 에세이와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으로 자연스레 이행한다. 일종의 메타비평으로서의 머시니마가 현재의 모습이라면, 미래의 머시니마는 어떤 모습일까? 혹은, 새로운 머시니마 극영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무수한 머시니마 속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머시니마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는 새로운 작품의 출현을 기대해본다. 언급된 머시니마 리스트 <캠퍼의 일기 Diary of a Camper> 1996 <기적 Miracle> 1996 1997 <오지만디아스 Ozymandias> 1999 <슈퍼 마리오 클라우드 Super Mario Cloud> 2002 2003 <슈퍼 마리오 무비 Super Mario Movie> 2005 <블러드스펠 Bloodspell> 2006 <이라크에서의 죽음 dead-in-Iraq> 2007 <엠파이어 Empire> 2008 <시리어스 게임 Serious Game> 2009~2010 <평행 I-IV Parallel I-IV> 2012~2014 <파농을 찾아서 Finding Fanon> 2015~2016 2016 <구성된 순간 The Constructed Moment> 2017 <말로우 드라이브 Marlowe Drive> 2017 <쏘텔 재팬 타운의 기억 Redefining Community: The Evolution of Sawtelle Japantown> 2018 <몬도 카네 Mondo Cane> 2018 <4-2: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가장 악명 높은 레벨의 역사 4-2: The History of Super Mario Bros.' Most Infamous Level> 2018 <페더폴 Featherfall> 2019 <이것이 '2인칭' 게임의 모습이다 This Is What a 'Second Person' Video Game Looks Like> 2019 <나만의 풍경: 미군이 되는 법 My Own Landscapes> 2020 <더 그래니즈 The Grannies> 2021 <유토피아를 찾아서 Tracing Utopia> 2021 <지옥으로의 하강 Descent into Hell> 2021 <우리는 가상현실에서 만났다 We Met in Virtual Reality> 2022 <근무 중 이상무 Hardly Working> 2022 <니트 아일랜드 Knit’s Island> 2023 <메이드 인 세컨드 라이프 Made in Second Life: The Movie> 2023 <그랜드 테프트 오토의 햄릿 Grand Theft Hamlet> 2024 [1] 김철현, 「게임 엔진과 영화 제작 현황」, 『방송과 미디어』, 30(1), 2025. 35-43쪽. [2] http://machinima.com/ . 머시니마 닷컴은 워너에 인수된 이후 2019년 1월 폐쇄된다. [3] 퍼시 비시 셀리의 동명 시를 원작 삼는 작품으로, “게임은 예술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영화평론가 로저 이버트가 이 작품을 호평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4] 링크의 영상은 2015년 ‘리마스터’된 영상으로, 2014년 [헤일로]의 리마스터 게임이 출시됨에 따라 머시니마 또한 리마스터가 가능해졌다. 이러한 ‘리마스터’의 가능성은 머시니마가 갖는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하다. [5] 프로그램 상영작과 소개는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koreafilm.or.kr/cinematheque/programs/PI_01337 [6] 강진석, 「다큐멘터리로서의 머시니마」, 『다큐멘터리 매거진 DOCKING』, 2025, http://www.dockingmagazine.com/contents/40/340/ [7] 오디오비주얼 필름 크리틱은 영상을 글로 비평하는 것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로, 영화에 대한 비평을 영화로서 시도하는 하나의 장르다. 비디오를 통해 영화의 수집과 편집이 용이해진 1980년대 출발하였으나, 디지털 영화로의 전환과 유튜브/비메오 등의 플랫폼 이후 더욱 활발해졌다. 자세한 설명은 다음 논문을 참조할 수 있다. 이선주,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형식’과 ‘활동’으로서 영화비평: 시네 토크, 팟캐스트, 비디오 비평을 중심으로」, 『프리뷰』, 20(2). 2023. 83-120쪽. [8] 이를테면 [스타듀 밸리]나 [할로우 나이트 The Hollow Knight ](2018), [발더스 게이트 3 Baldur’s Gate 3 ](2023) 등 인기 인디게임의 팬 무비들은 머시니마가 아니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곤 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박동수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했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하고 있다. 영화에 관한 글을 주로 쓰고, 미술, 게임, 방송 등 시각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영화평론가, 팟캐스트 [카페 크리틱] 진행자, 공동체상영 기획자이기도 하다.
- 예술이 되기 전에, 현실의 주인이 될 각오를 해야 한다
오로지 게임애호가일 뿐인 입장에서 게임과 예술에 대해 생각하면 “게임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외침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다들 아는대로 이러한 클리셰적 항변은 예술과 게임의 본질이나 실제로 게임이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는 조건 등을 따지는 것과는 큰 관계가 없다. ‘게임을 하는 나’에 대한 정당화 시도가 핵심이다. < Back 예술이 되기 전에, 현실의 주인이 될 각오를 해야 한다 12 GG Vol. 23. 6. 10. 오로지 게임애호가일 뿐인 입장에서 게임과 예술에 대해 생각하면 “게임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외침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다들 아는대로 이러한 클리셰적 항변은 예술과 게임의 본질이나 실제로 게임이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는 조건 등을 따지는 것과는 큰 관계가 없다. ‘게임을 하는 나’에 대한 정당화 시도가 핵심이다. 하지만 이게 생산적 의미를 가지려면 게이머 스스로가 ‘인정투쟁’을 넘어 게임과 예술의 본질에 가 닿는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예술이 예술일 수 있는 조건은 뭘까? ‘비평 가능한가’를 기준으로 제시해본다면 어떤가? 가령 “예술을 논한다”고들 하는데, 그게 뜻하는 바는 뭔가? 모나리자든 벽에 붙여 둔 바나나든 뭐든 ‘얼마나 팔렸느냐’, ‘쓸모가 있느냐’를 넘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의 가치평가를 둘러싼 논의가 가능하다는 것 아니겠는가? 만약 “예술을 논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게임을 논한다”고 할 수 있다면, 게임을 예술의 일종이나 그 비슷한 뭔가로 취급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렇다면 게임이 게임일 수 있는 조건은 뭘까? 게임이라는 매체의 가장 큰 형식적 특징은 ‘인터랙티브’에 있을 것이다. 물론 ‘인터랙티브에 기반한 게임이 아닌 것’들도 세상엔 많이 있다. ‘인터랙티브’를 게임만의 고유한 특징으로 볼 순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인터랙티브 하지 않은 것’을 게임이라 정의하는 것은 어렵다. 무언가가 게임이기 위해서는 선택이든 조작이든 입력이든 어떤 수단을 통해서건 사용자의 행위가 게임을 통해 형성된 공간 내 사건을 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게임은 일반적으로 불특정다수의 사용자 즉 대중을 전제한다. 대중이 매체를 통해 가상적 환경의 변화를 경험하고 거기에 적응하도록 한다. 즉, 예술의 그것에 비견될만한 것으로서 게임 비평의 정수는 그 게임이 무엇을 통해서 어떤 세계의 변화를 사용자에게 경험하게 하느냐, 그것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그리고 그게 현실 인식의 무엇으로 이어지느냐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닌텐도의 최근 신작인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은 상당히 인상적인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전작에서 오픈월드의 물리엔진을 응용력을 발휘해 활용하도록 한 것에 ‘조나우 기어’라는 장치를 더해 ‘놀이’로서의 재미를 배가시켰다. 널판지에 팬과 배터리, 조종기를 달고 물에 띄우면 간이 보트로 활용할 수 있어 체력 소모 없이도 강을 건널 수 있다는 식이다. 기구를 만들고 불을 피워 하늘을 날 수도 있다. 이 덕에 퍼즐의 난이도가 하락했다는 지적도 있지만, 게이머 입장에서 당장 눈 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할 수단을 보다 쉽고 다양하게 고려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상당히 의미있다. ‘오픈월드’를 표방한 게임이라도 게이머의 사용자 경험은 제작자가 그어 놓은 선 밖으로 벗어날 수 없다. ‘오픈월드’ 또한 가상의 환경에 불과한 탓에 제작자가 설계된 영역 밖으로 사용자가 나가는 것까지 보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보통 이러한 한계는 지형지물의 배치나 ‘보이지 않는 벽’ 등을 매끄럽게 배치하는 것으로 사용자 경험의 훼손을 자연스럽게 최소화 하는 포장을 거치기 마련이다. 그런데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은 이러한 ‘포장’을 훨씬 더 그럴듯하게 해내고 있다. ‘조나우 기어’들의 등장에 더해 천장을 뚫고 올라가는 ‘트레루프’ 능력의 존재는 ‘오픈월드’의 한계를 상정하지 않은 듯한 인상을 준다. 아주 조그만 부분이라도 천장에 해당하는 부분을 게이머가 찾아낼 수만 있다면 하나로 이어지는 구조물의 꼭대기까지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기에, 애초에 제작자가 어느 정도 의도한 대로 움직이도록 해야 할 ‘레벨 디자인’ 단계에서 고려해야 할 바가 대단히 많아 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실제로 게임을 해보면 모든 천장을 다 뚫고 올라갈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조나우 기어’로 만든 비행기 역시 일정 거리 이상 날아가면 사라지게 설계된 등의 한계는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앞서의 수단을 통해 사용자가 게임으로 형성된 세계에 대한 훨씬 더 강한 개입력을 확보한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는 점은 누구나 놀라워할만한 대목이다. 이런 요소는 사용자 경험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전작인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부터 새로 시작된 젤다의 전설 시리즈는 본질적으로 멸망한 세계를 재건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세계를 재건하기 위해 서는 우선 그 세계의 주인이 되는 일이 필요하다. 집 청소를 예로 들어 보자. 내가 가진 예산의 한도 내에서 알맞은 청소용구 구매를 계획하고 실행한 후 그 도구로 청소를 하고 성과를 스스로 평가하는 것은 집 주인의 일에 가까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로지 제공된 청소도구를 활용해 구체적인 지시사항을 따르며 청소를 해야 한다면 그것은 집 주인의 경험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대개의 게임은 아무리 ‘오픈월드’를 표방한다 하더라도 후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킹덤’은 최소한 전자에 가까워진 느낌을 주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게임이 주는 사용자 경험은 ‘세계의 주인이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형식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분명히 그렇지만 ‘이야기’로 보면 좀 다르다. 자연럽게 생길 수 있는 의문을 두루뭉술하게 넘어 간다. 눈 앞에서 바닥을 뚫고 나오는 주인공에 잠시 놀라기만 할뿐 곧바로 이런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듯 무덤덤한 게임 내 등장인물의 존재 등이 그렇다. ‘게임적 허용’을 고려하더라도, 외양과 생태가 판이하게 다른 민족 간의 갈등이나 이해관계의 충돌이 묘사될 법도 한데, 잘해야 몇 번 튕기는 게 전부고 대개는 다들 속없이 주인공을 기꺼이 도와주기로 한다. 1차원적 감동이 있긴 하지만 현실과의 괴리는 크다. 아마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첫째, 닌텐도는 ‘온 가족의 닌텐도’이다. 지위와 자격을 얻기 위해 온갖 권모술수를 감수하는 중세 정치를 묘사한 ‘크루세이더 킹즈 3’의 패러독스 인터랙티브가 아니다. 소년 소녀들의 세계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둘째, 이게 일본의 방식이다. 불편한 얘기는 뒤에서 하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는 누구나 수긍할만한 아름다운 얘기를 남기길 원한다. 되도록이면 문제를 직면하거나 직시하지 않으려 한다. 최근의 한일관계 개선 논의에서 논쟁거리로 등장하는 과거사에 대한 태도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오해하지 마시라. 일본이 불편한 주제를 오로지 외면만 한다는 뜻이 아니다. ‘온 가족의 닌텐도’의 이면에는 가히 세계 최대 수준이라고 볼만한 성인물 시장과 PC-98시리즈 등 자체 규격 컴퓨터 시절 성인용 어드벤처 게임 범람의 역사가 있다. 즉, 불편한 얘기를 하는 공간은 따로 있다. 하지만 거기가 ‘닌텐도’의 ‘젤다의 전설 시리즈’ 일 수는 없다는 거다. 그럼에도 이 얘기를 덧붙이는 건 ‘이야기’에 해당하는 요소까지 ‘주인이 되는 경험’에 결합시킬 수 있었다면 비평적으로 더 나은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으리라 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이야기’로부터 발생하는, 그러니까 우리가 실제로 살면서 겪을 법한 갈등을 뭔가 방법을 강구해 해결해 나갈 수 있다면? 현실에서도 ‘조나우 기어’와 오른팔 능력에 비할만한 뭔가를 찾아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 나가자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사는 현실엔 이미 ‘조나우 기어’와 오른팔 능력이 존재한다. 그것을 문제 해결을 위해 사용하자며 머리를 맞대자고 말하는 사람이 극소수일 뿐이다. 그나마 일본과 같은 ‘게임 선진국’이 만든 게임을 소재로 한다면 최소한 이런 얘기는 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인 한국의 게임 이슈를 생각하면 슬퍼진다. 코인과 결합한 수익 모델 얘기라든가, 여성 캐릭터의 신체 부위라든가, 사기나 다름없는 사건과 같은 얘기들만 떠오르지 않는가? 이것이야 말로 다들 주인이 되기를 거부하는 현실의 반영이다. 대개의 정치 사회와 관련된 이슈에서 이러한 풍경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똑같이 펼쳐지고 있다. 날이 갈수록 그 정도가 더 심해지는 느낌이다. 예술로 인정받고 싶다는 우리의 욕망은 이러한 현실의 주인이 될 각오를 하고 있는가? ‘무엇이 어떤 것을 통해 예술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일단 그 각오가 된 다음에야 가능할 것 같다. Tags: 예술, 전시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시사평론가) 김민하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시사평론가로 활동하지만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게이머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냉소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돼지의 왕』이 있고,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우파의 불만』, 『트위터, 그 140자 평등주의』 등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최근작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있다.
- 게이머로서의 경험이 미술의 근간이 될 때, 〈게임사회〉 리뷰
현대미술을 볼 때마다, 스스로가 현대 미술을 향유하는 이들과 관심이 거의 없는 일반 관객들 사이의 회색분자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딱히 현대미술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도, 어렸을 때부터 향유해온 것도 아니지만 뒤늦게 재미를 붙였고,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그래서 꿈보다 제법 마음에 드는 해몽이 나오면 그걸 감상으로 삼아 마음에 두기. 그게 나름의 현대 미술을 즐기는 방식이었다. < Back 게이머로서의 경험이 미술의 근간이 될 때, 〈게임사회〉 리뷰 12 GG Vol. 23. 6. 10. 현대미술을 볼 때마다, 스스로가 현대 미술을 향유하는 이들과 관심이 거의 없는 일반 관객들 사이의 회색분자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딱히 현대미술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도, 어렸을 때부터 향유해온 것도 아니지만 뒤늦게 재미를 붙였고,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그래서 꿈보다 제법 마음에 드는 해몽이 나오면 그걸 감상으로 삼아 마음에 두기. 그게 나름의 현대 미술을 즐기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현대 미술을 보기 시작한 때부터 비디오 게임 아트는 항상 있어왔고, 자연스레 관심의 대상이 됐다. 그게 본업과 연결이 되어서일까? 아니면 그저 게임 자체가 흥미로운 소재여서일까? 어쨌거나 ‘미술관에 게임을 집어넣기’ 는 마치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미술관에 적합한 게임이란 무엇인가?” 이라는 질문은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 밖에 없었다. 일단 “굳이 구분지어야 할까?” 같은 번외격 논제는 차치하고 “정말로 게임의 바운더리는 한계가 없어서 미술관에도 적합한, 딱 알맞은 게임의 형태가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하는 질문은 마치 우주를 향한 궁극의 질문처럼 달콤하면서도 답답한 명제였다. 물론, 그동안 게임을 소재로 한 미술 작업은 이미 많았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히토 슈타이얼이나 하룬 파로키 등을 비롯해 국내에서도 김희천, 강정석 등 많은 이들이 이미 비디오 게임, 그리고 게임 플레잉을 가지고 여러 작업을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 거기서 더 나아가는 건 게임 자체의 형태, 게임이라는 미디어 자체를 미술관에 들이려고 하는 시도들이다. 즉 이는 개인이 상호작용하는 예술이 어떻게 전시 예술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근래에는 각종 상용 게임 엔진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지고, 또 게임 플레이 경험을 가진 세대가 작가가 되기 시작하면서 그런 경향이 더 늘어났다고 생각해왔다. 시도는 정말 많았다. 보는 게임을 소재로 한 영상 작업, 아니면 아예 보는 게임의 형태로 실제 플레이 가능한 게임을 피처링 하는 작품, 김희천의 작품처럼 VR을 끼고 가상현실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들, 하물며 아예 게임 엔진으로 제작되어 직접 플레이어가 되어볼 수 있는 작품들까지. 수많은 작품들이 미술관에 적합한 게임을 찾는 과정에서 전시관을 들락거렸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게임사회〉 는 그런 시도의 종합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플레이 가능한 게임, 그리고 게임의 형태를 한 미술 작업, 게임을 소재로 한 영상 작업, 해킹한 게임기 기판으로 실시간으로 작동하는 작품, 또는 게임을 비롯한 서브컬처를 특집처럼 다룬 작품들까지.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에서 위의 그 질문, “미술관에 적합한 게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의 답을 찾았는가 하면, 오히려 그 명제 자체를 뒤집어버리게 됐다. 〈게임사회〉 의 적지 않은 작품들은 그 형식 자체가 ‘비디오 게임’이라는 익숙한 형태를 띄고 있다. 그러나 각 작품을 해석하고 이해하는데에는 그런 ‘게이머로서의 경험’ 또는 기반지식이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는 각 작품의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몇몇 전시 작품들이 ‘게이머적인 경험’ 의 연장선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 컸다. 게이머로서의 경험과 결합하여 이 작품을 이해했을 때 그 깨달음이 매우 특별하게 느껴진 것은 코리 아칸젤의 〈/로데오/ 할리우드 플레이하기〉 였다. 이 작품은 코리 아칸젤이 얼마나 게이머적 경험을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작업이기도 했다. AI툴 또는 자동화 매크로를 통해 양산형 P2W 게임을 플레이하도록 함으로서 비인격적으로 변한 게임을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소모시킴으로서 나오는 해학이 이 작업의 재미였다. 이는 게이머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무분별한 결제유도와 반복적이고 재미없는 플레이로 가득 찬 양산형 모바일 게임에 대한 비판으로서 게이머들에게 매우 천착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또다른 좋은 예는 재키 코놀리의 〈지옥으로의 하강〉 이었다. 이 작품은 두가지의 보편적 경험에 기반하는데 먼저 코로나 판데믹으로 인한 사회봉쇄, 그리고 ‘GTA5’ 라는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게임의 경험이다. 우리가 ‘GTA5’ 를 플레이하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파괴적이고 소모적이다. ‘무엇이든 가능한 오픈월드’ 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며, 좀더 정확히 정의하자면 ‘각종 금기가 해제된 오픈월드’ 라고 할 수 있다. 즉, 가장 먼저 이 게임에서 생각하게 되는 건 살인과 약탈, 방화, 파괴 같은 현실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는 행위들이다. 형식적으로는 그보다 많은 행위가 가능하지만, 금기가 없다는 점 덕분에 자연스럽게 그런 비일상적 일탈로 플레이가 귀결된다. 하지만 〈지옥으로의 하강〉 은 그런 파괴적이고 소모적인 플레이에서 벗어나 그 무대 자체를 보여준다. 얼마나 일상과 닮아있는지, 어떻게 이 세상이 대리세계로 인정받고 있는지를 비춘다. 고속도로 옆 편의점, 발전소 옆 철길, 이곳을 정처없이 걷는 주인공. 마치 플레이어들에게 묻는 것 같다. 당신이 살인과 약탈, 기타 파괴적 플레이로 물들였던 이곳이 사실은 판데믹 같은 우울한 시기에 우리가 조용히 묻어 지낼 수 있는 안식처가 아니었냐고. 개인적으로 가장 나쁜 예는 〈노텔 (서울 에디션)〉 이었다. 전시 작품 중 가장 비디오 게임 그 자체의 형태를 하고 있다. 겉으로 보면 이 작품을 실망스럽다고 한 것이 의외일 수도 있다. 전시된 작품 중 우리가 알고 있는 ‘비디오 게임’ 의 형태와 가장 닮아있는 작품이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오히려 기대치와 작품의 실제가 어긋나는 현상이 발생한다. 〈노텔 (서울 에디션)〉은 말그대로 비디오 게임 컨트롤러를 쥐고 인게임 3D 공간을 탐험하는 작품이다. 비주얼적으로도 훌륭하고, 흔히 미술가들이 만든 게임에서 발생하는 기술적인 문제도 크게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특성 때문에 관객은 이 작품을 그 자체로 게임으로 인식하게 되고, 흔히 알고 있는 게임의 기준으로 이 작품을 보게 된다는 점이다. 결국 그렇게 되면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한계, 즉 어디까지나 공간을 구현하고 그 안에서 이동할 수 있도록 했을 뿐, 그 어떤 상호작용이나 탐험의 목적성이 결여되어 있음이 크게 다가온다. 그러한 이유로 〈노텔 (서울 에디션)〉은 전시장에서 가장 오래 시간을 보낸 작품이기도 했는데, 과연 비 미술인 또는 미술 관객으로서의 경험이 없는 이들, 또는 게이머들이 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리고 작품을 이해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인지 궁금해서였다. 작품은 누군가 플레이하면 그 주변에 둘러앉아 그걸 지켜볼 수 있게 되어 있었고, 많은 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컨트롤러를 이어 받아가며 플레이했다. 하지만 그 반응은 대체로 한결같았다. “그래서 뭐지?”, “왜 아무 것도 없지?” 흥미롭게도 〈노텔 (서울 에디션)〉 그 형태적으로는 가장 게이머적 경험의 연장선에 있었지만 직접 컨트롤러를 쥐고 플레이하며 겪게되는 경험은 ‘게임’ 이라고 하기엔 너무 황량한 것이었다. 굳이 이 작품을 게임의 장르적 해석으로 보자면 어드벤처 게임에 가까울 것이지만, 이 작품은 탐험의 이유와 목적, ‘왜’ 와 ‘무엇’ 이 결여되어 있었다. 물론 현대 미술 시조에서 그런 명확한 목표 지점을 설정하는 건 불필요한 일로, 또 작가가 관객의 이해를 제한하는 행동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결정적으로 이 작품은 ‘게임’ 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면서 동시에 좋은 미술 작업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해졌다. 오히려 정말로 디스토피아의 풍경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비효율적인 장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작업들의 긍정과 부정을 정리해보면, 실상 게임을 미술관에 들여놓는데에 중요한 건 ‘형태’ 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지난해 보았던 이안 쳉의 〈세계건설〉 전시에서도 동일한 느낌을 받았다. 이안 쳉의 〈사절〉 연작은 무한한 길이를 가진 일종의 자동화 시뮬레이션이다. 그러나 ‘무한한 길이’ 라고 되어있었지만 그 무한한 길이는 그 안에서 유의미한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적절히 하이라이트하지 못한다면 순간 만큼의 가치를 가지기 오히려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BOB 이후의 삶: 찰리스 연구〉 는 스크린 뒤에서 PC를 통해 실시간 렌더링으로 보여주는 일종의 게임 라이브 컷씬의 연장선에 있었지만, 정작 그것이 관객에게 보여지는 방식은 폐쇄된 공간 안의 스크린 하나에서 상영되는 것이었기에 오히려 더 넓게 향유되고 더 깊이 플레이될 수 있는 작품이 이 공간에 갇혀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과적으로, 꼭 게임이라는 형태 자체에 집착할 필요는 없고, ‘게임플레이’ 라는 경험을 어떻게 미술관에서 재현하거나 또는 활용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작가와 전시 관계자들이 ‘게이머로서의 경험’ 을 가지고, 이를 ‘게이머’ 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작품을 만들고 구성하는게 더 중요하다는, 어쩌면 너무 정석적이면서도 원점회귀적인 결론에 다다르고 말았다. 또 한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었던 부분은 이전의 어떤 전시들보다도 영유아, 중년층, 20대 남성 같은 기존의 현대 미술 전시의 주 소비층이 아니었던 이들이 많이 보인 전시였다는 점이다. 그만큼 게임이라는 소재 자체가 더 많은 이들을 현대 미술관이라는 장소로 이끌어낸 것만은 분명했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들 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많은 관심이 갔다. 하지만 그 안에서 목격한, 그리고 간단히 이야기 해본 관객들에게서는 확실히 조금은 아쉬운 반응들을 얻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게이머들이 비디오 게임 아트라는 좋은 가교를 두고도 현대 미술로 넘어오기 어렵게 할까. 이번 전시를 통해 가장 크게 느낀, 비디오 게임과 현대 미술의 불협화음은 ‘친절함’, 좀더 포괄적으로 말하면 UI/UX 였다. 일반 관객들의 시선에서 현대미술은 기본적으로 불친절함을 소양으로 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는 어느정도 오해와 편견이라는걸 알고 있다. 단순히 의미파악 자체에 여러모로 복합적인 사유와 다양한 의식의 단계가 필요한 것 자체로 불친절함이라고 부르는 건 다소 부적절한 표현이다. 많은 현대의 명시, 명작 영화들이 이해에 난점이 있다고 해서 ‘불친절’ 하다고 비판받지는 않는 것과 같은 이유다. 그러나 미술관의 미술은 기본적으로 작품 외의 정보 전달을 극히 줄이고 설명이라고 할만한 것은 오직 스테이트먼트 하나만을 남겨 놓는다. 영상 작품들은 이미 상영되고 있고, 관객이 영상의 중간에 들어오게 되면 문맥을 파악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즉 이해를 돕기 위한 도구도 적고, 관람환경도 그렇지 않다. 그래서 어떤 전시 또는 작품을 이해하려면 충분한 시간을 두고 계속 ‘수용’ 하면서, 이를 머리속에서 정제하고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고난한 정신적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비디오 게임이 필수적으로 가져야 하는 UI/UX 의 덕목과 상충되는 면이 있다. 비디오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항상 일련의 튜토리얼이나 툴팁을 통해 게임을 이해하고 ‘이 게임을 플레이 하기 위해 지켜야하는 룰, 그리고 필요한 덕목’ 을 학습받는다. 심지어 명시화된 튜토리얼이 존재하지 않는 게임이라도 그런 학습 곡선을 고려해 게임의 구조를 만들기 마련이다. 그리고나서 플레이어는 비로소 게임을 이해해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현대미술은 바로 이 과정이 결여되어 있다. 수많은 비디오 게임 아트 전시가 시도되어 왔지만 충분히 상호작용성을 바탕으로 한 게임적 경험을 주었다는 생각이 든 전시가 적었던 이유는 바로 이 UI/UX 가 관객과 전시/작품 사이의 게임적 상호작용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모든 것이 가이드라인과 튜토리얼과 툴팁으로 채워져야 한다면 우리가 가지는 이해의 폭은 극도로 좁을 것이고 특정 가치관에 편향된 이해를 다수가 공유하게 되는 다소 위험한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너무 결여된다면 이해 자체를 가로막는 장벽으로 기능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걸 하나의 재미로 여기고 있지만, 더 많은 이들에게 이해받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현대미술이 소수의 향유자들이 아닌 일반 대중으로부터 유리된 이유는 이 부분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슬프게도 일반 대중에게 이제 미술관은 모던한 카메라 세트장처럼 쓰이고 있다. 즉 미술관은 비디오 게임처럼 ‘개인화된 경험’ 을 완전히 얻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환경이자 풍조를 가지고 있다. 이를 이번 전시에서 단적으로 느낀 지점은 바로 각종 ‘불편한’ 컨트롤러와 연결된 게임들을 사람들이 직접 플레이할 때였다. 많은 사람들은 왜 익숙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불편하게 배치된 컨트롤러로 자신에게 이미 익숙한 게임을 플레이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스테이트먼트에는 그 의도가 써있기는 했지만 일목요연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필자가 나름의 해석을 곁들여 “장애인을 위해 만들어진 적응형 컨트롤러 또는 비직관적인 컨트롤러로 게임을 함으로서, 장애인이 일반적인 컨트롤러로 게임을 할 때의 불편함을 비장애인들이 체험한다.” 라는 의도를 덧붙이자 그제서야 이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결국 현대 미술관 내에서 이루어진 정규 전시이기에 기존에 잡혀있는 미술 전시의 틀을 바꿀 수는 없었고, 그것이 더 많은 이해를 원하는 이들에게 장벽처럼 작용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안타까운 점은 분명 게이머로서의 경험이 잘 녹아있는 좋은 작품들이 많았음에도 이를 수용하기 꽤 버거워하는 이들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게임사회〉 전시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게이머적인 경험이 베이스가 되었을 때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는, 특별한 작품이 많았기 때문이다. MOMA 소장 게임 컬렉션은 그냥 평범하게 전시되었다면 오히려 플레이 되기 어려운 환경에 가져다 놓은, 죽은 게임이 되었을테지만 적절한 컨트롤러의 변형으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았다. 앞서 언급한 코리 아칸젤의 작품, 그리고 재키 코놀리의 작품은 그 형태는 분명 평범한 영상 전시의 폼을 하고 있음에도 게이머로서의 경험과 천착되어 새로운 이해의 지평을 열어주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번 전시에서 얻은 또다른 깨달음은 게임은 확실히 사람들을 미술관으로 모을 힘이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다녀갔지만 그동안 지켜 본 비 미술인 관객들의 행태는 딱 둘 중 하나였다. 그냥 슥 보고 지나가거나, 배경으로 두고 사진을 찍을 뿐. 하지만 이번 전시는 사뭇 달랐다. 많은 이들이 직접 게임을 플레이하려고 했고, 작품을 보며 자신의 게임 경험을 떠올려 이야기하고, 직접 작품을 체험하고자 컨트롤러를 움직였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가진 힘, 그리고 동시에 오프라인 공간이라는 한계는 이중적인 면이 있다. 〈게임사회〉 전시 또한 기존의 미술 전시들이 가진 일종의 딜레마를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그 작품의 면면에서 느낀 ‘게이머로서의 경험’ 은 즐거웠다.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더 들러서 마음에 들었던 작품들을 더 느긋하게, 지긋이 관람하고 싶다. Tags: 게임사회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미술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이명규 게임 기자(2014~), 글쓴이(2006~), 게이머(1996~)
- 서울을 걷는 작은 이유, 피크민 블룸 서울 투어
이 사람들의 정체는 바로 <피크민 블룸> 플레이어들이었다. 이들이 쓰고 있단 머리에 쓴 모자는 닌텐도의 유명 캐릭터인 ‘피크민’을 본뜬 것으로, ‘피크민 블룸 투어 2025: 서울’ 행사 참여자들을 나타내는 표식이었다. 각기 다른 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도심을 누비던 그들은, 사실 같은 게임 속에서 도시를 탐험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 Back 서울을 걷는 작은 이유, 피크민 블룸 서울 투어 24 GG Vol. 25. 6. 10. 들어가며 2025년 가정의 달인 5월 첫 주말, 서울 도심에 수상한 집단이 출현했다. 이들은 머리 위에 두 개의 큰 눈과 잎사귀 또는 꽃 모양의 장식이 달린 모자를 쓰고, 충무로에서 창덕궁까지의 거리를 누비며 서울 곳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선가는 노란 잎사귀 모자를 쓴 사람이 광장시장에서 호떡을 집어 들고, 다른 한 편에서는 빨간 꽃 모자를 쓴 사람이 카페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종묘 돌담길을 따라 천천히 걷는 파란 봉우리 모자를 쓴 사람들도 보였다. 이들은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도,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도 않았다. 독특한 생김새의 모자를 제외하면 서로를 묶는 뚜렷한 공통점은 없어 보였다. 이 사람들의 정체는 바로 <피크민 블룸> 플레이어들이었다. 이들이 쓰고 있단 머리에 쓴 모자는 닌텐도의 유명 캐릭터인 ‘피크민’을 본뜬 것으로, ‘피크민 블룸 투어 2025: 서울’ 행사 참여자들을 나타내는 표식이었다. 각기 다른 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도심을 누비던 그들은, 사실 같은 게임 속에서 도시를 탐험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 피크민 블룸 투어 이벤트 포스터 ‘피크민 블룸 투어(Pikmin Bloom Tour)’는 AR 모바일 게임 <피크민 블룸>의 현장 이벤트이다. 이 행사는 평균 하루에서 이틀 동안 진행되며, 개최되는 지역의 특정 장소들을 방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개별 진행이기 때문에 소요 시간은 참여자들에 따라 천차 만별이고, 동선 역시 개인의 재량에 달려 있다. 참여자들에게는 피크민 모자와 행사 지도, 특별 꽃 정수와 황금모종 등이 보상으로 지급된다. 행사는 무료이지만 인앱을 통한 추첨에 당첨되어야지만 참여 가능하다. 피크민 블룸 투어의 간략한 역사 지금까지 피크민 블룸 투어는 총 5회 개최되었다. 투어는 2023년 삿포로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는데, 이는 벚꽃 시즌을 맞아 사람들이 거리의 꽃과 게임을 함께 즐기게 만들고자 하는 시도로 추측할 수 있다. 이후 2년 동안 서로 다른 일본의 3가지 지역에서 투어가 개최되었으며, 각각은 시기에 맞는 이벤트 꽃과 함께 전개되었다. 이름 일자 지역 계절 이벤트 꽃 특징 Pikmin Bloom Tour 2023: Sapporo 2023년 4월 23일 삿포로 봄 벚꽃 첫 시도 Pikmin Bloom Tour 2023: Yokosuka 2023년 7월 23일 요코스카 여름 해바라기 인앱 패키지 도입 Pikmin Bloom Tour 2023: Kyoto 2023년 11월 12일 교토 오카자키 지역 가을 빨란 패랭이꽃 Pikmin Bloom Tour 2024: Fukuoka 2024년 3월 30일-31일 후쿠오카 봄 벚꽃 2일로 연장 Pikmin Bloom Tour 2025 : Seoul 2025년 5월 3일-4일 서울, 한국 봄 하얀 히비스커스 첫 일본 밖 개최 * 피크민 블룸 투어 요약 같은 이름의 프로그램인 만큼 5가지의 행사는 모두 같은 골격을 지니고 있다. 먼저, 참여자들은 정해진 선물 증정 장소에 방문하여 피크민 모양의 선 바이저, 지도를 수령한다. 그리고 지도에 표시된 지역을 찾아가며 이벤트 꽃 정수와 피크민 모종을 획득한다. 이벤트 장소에 들어서면, 세 가지 미션이 인앱에 표시되는데, 이는 이벤트 스팟을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모두 달성할 수 있다. 모든 투어는 “(1) 7천보 이상 걷기 > 선물스티커(금색) 피크민 (2) 이벤트 꽃 3000송이 심기 > 선물스티커(금색) 피크민 (3) 이벤트 스팟 7개 방문하기 > 이벤트 뱃지”라는 유사한 미션과 보상 구조를 공유한다. * 피크민 블룸 투어 이벤트와 보상 두 번째인 요코스카 투어부터 참여자들만 살 수 있는 인앱 패키지가 추가되었다. 여기에는 현장 이벤트에서 수령하는 것과 비슷한 모양의 인앱 코스튬이 포함되어 있다. 구매한다면 ‘나’와 같은 패션을 한 피크민과 함께 걸어다닐 수 있다. * 요코스카 투어에서 판매된 Mii 코스튬 가장 최근에 개최된 피크민 블룸 투어: 서울은 이전의 행사들과 비교했을 때 약간의 특이점을 지닌다. 우선, 이는 처음으로 일본을 벗어난 개최된 투어이다. 비교적 작은 볼륨인 ‘미니워크’는 일본 밖에서도 이루어진 바가 있지만, ‘투어’가 일본 밖에서 이루어진 것은 처음이었다. 또한, 제철에 맞지 않은 꽃이 이벤트 꽃으로 선정되었다. 이번 피크민 블룸 투어 서울의 이벤트 꽃은 ‘하얀 히비스커스’였는데, 히비스커스의 일반적인 개화 시기는 6월에서 10월 (7~9월이 절정)이다. 대개 ‘시즌의 맞는 꽃’을 선보이던 <피크민 블룸> 운영진이 여름 꽃인 히비스커스를 봄에 선보인 이유는, 한국의 국화인 무궁화가 이와 같은 속(genus)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행사가 일본 밖에서 개최된 만큼 ‘한국’이라는 나라의 특수성에 맞추어 이벤트 꽃을 선보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 인게임 하얀 히비스커스의 모습: 무궁화와 상당히 닮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섯 차례의 투어가 진행되는 동안, ‘피크민 블룸 미니 워크(Pikmin Bloom Mini Walk)’와 ‘피크민 블룸 저니(Pikmin Bloom Journey)’라는 두 종류의 또다른 현장 이벤트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먼저, 피크민 블룸 미니 워크는 투어를 간단하게 축약해놓은 버전으로, 지역 축제나 행사와 연결된 것이 특징적이다. 따로 신청이 필요하지 않고, 특정 지역에 들어가면 바로 참여가 가능하다. 이름 일자 지역 이벤트 스팟 행사 Pikmin Bloom Mino Washi Akari Walk 2023 2023년 10월 8일-21일 미노시, 일본 7종류 미노와시아카리전 Pikmin Bloom MINI WALK: Nagano Tomyo Festival 2024년 2월 9일-12일 나가노, 일본 9종류 나가노 등불 축제 Pikmin Bloom MINI WALK: Japan-Tag Düsseldorf/NRW 2024년 6월 1일 뒤셀도르프, 독일 6종류 일본의 날 Pikmin Bloom MINI WALK: Tainan City 2024년 10월 26일-11월 10일 타이난, 대만 8종류 대만 디자인 엑스포’24 Pikmin Bloom MINI WALK: Lucca Comics & Games 2024 2024년 10월 15일 루카, 이탈리아 9종류 루카 코믹스 & 게임스 Pikmin Bloom MINI WALK: San Diego Zoo 2024년 11월 16일-29일 샌디에고, 미국 4종류 없음, San Diego Zoo Wildlife Alliance와 협업 * 피크민 블룸 미니 워크 요약 투어나 미니 워크와 달리, 피크민 블룸 저니는 유료로 진행된 이벤트이다. 이벤트 티켓은 인앱 결제를 통해 구매할 수 있었다. 2024년에 1회 개최되었으며, 현장 이벤트인 ‘피크민 블룸 저니 2024: 도쿄 돔 시티(Pikmin Bloom Journey 2024: Tokyo Dome City)’와 온라인에서 참여할 수 있는 ‘피크민 블룸 저니 2024: 어디서나 챌린지(Pikmin Bloom Journey 2024: Challenge Anywhere)’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현장 이벤트와 온라인 이벤트를 동사에 진행한 특이 사례이다. 온라인 이벤트의 경우 장소와 상관 없이 5개의 빅 플라워를 흔들고, 2000송이의 파란 장미를 심으면 보상을 주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특별 이벤트 피크민과 투어에서 유료로 판매하던 패키지 보상 코스튬을 제공했다. 피크민 블룸 투어 서울 피크민 블룸 투어 서울은 이벤트 지역에 입장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참가 자격을 얻은 플레이어들이 행사 지역에 입장하면 다음과 같은 인앱 이벤트가 발생하는데, 이를 기점으로 ‘현재 이벤트’란에 투어 미션이 추가된다. * 피크민 블룸 투어 서울 이벤트 화면 본격적인 이벤트 참여를 위해서는 정해진 선물 수령장소에 방문해야 한다. 이번 행사의 수령 장소는 현대 아울렛 동대이었는데, 여기에서 참가자들은 피크민 모자와 이벤트 지도, 엽서를 수령할 수 있다. 건물 안에서는 특별 AR 사진과 영상을 찍을 수 있는 이벤트 부스가 준비되어 있었다. * 이벤트 수령 장소 몇 기념품의 모습 제공된 모자를 착용했다면, 남은 일은 지도를 따라 곳곳을 방문하는 것이다. 이번 투어에서 탐험해야 했던 장소는 총 12곳으로, 모두는 하나의 동선 안에 배치되어 있다. 각 장소는 저마다의 공간적 특징을 갖추고 있으며, 참여자들은 이에 맞는 피크민을 획득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충무로 극장에서는 영화관 피크민을, 청계천에서는 물가 피크민을, 그리고 광장시장에서는 김치(한식) 피크민을 획득할 수 있다. * 피크민 투어 서울의 이벤트 지도. 실물 지도가 주어졌지만, 참여자들이 따라 움직일 수 있는 표지는 두 가지가 더 있었다. 첫째는 인게임 화면이다. 게임 화면에는 각 이벤트 스팟이 범위와 함께 표시되어 있었고, 참가자가 이 범위 안으로 들어가면 붉은 빛이 들어와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는 거리에서 마주치는 다른 참가자들이다. 모든 참가자들이 같은 모자를 쓰고 있었기에 유저들은 서로를 손쉽게 찾을 수 있었는데, 가는 길에 확신이 없을 때 같은 모자를 쓴 사람을 따라가면 다음 장소로 쉽게 도착할 수 있었다. * 투어 플레이 화면 디지털 게임은 점차 개인적인 경험으로 변모해왔다. 동네 아이들이 화면을 기웃거리며 훈수를 두던 오락실 시절에서, PC방에서 자신의 모니터에 집중하는 시기를 거쳐, 이제는 손 안의 기기로 혼자만의 화면을 들여다보면 모바일 게임의 시대로 넘어왔다. 오늘날 디지털 게임은 무엇보다도 철저하게 개인적인 취미가 되었다. 피크민 블룸 투어 역시 마찬가지이다. 참가자들은 각자 자신만의 동선을 정하고, 시간을 알아서 조절하며, 개인의 속도에 맞추어 플레이한다. 사람마다 관심 있는 장소도 다르고, 걷는 속도도 다르기에 누구나 자기만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같은 투어에 참여하고 있다 해도 다른 참가자와 상호작용할 필요도 없다. 미션은 오로지 개인 화면에서 독립적으로 진행되며, 여기에는 어떤 다른 참가자들과의 상호작용도 필요로하지 않는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참가자들이 투어에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이 감각은 모자로부터 나왔는데, 색색의 피크민 모자를 쓰고 같은 도시를 누비는 사람들을 마주칠 때, 말 한 마디 나누지 않았더라도, 같은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는 작은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피크민 블룸) 투어의 장소성 장소는 단순히 지리적 위치나 물리적 공간을 넘어선다. 장소는 인간에 의해 특정한 목적으로 사용되고, 그 과정에서 고유한 가치와 분위기가 형성된 공간이다. 어떤 장소는 역사, 이야기, 상징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다른 곳과는 분명히 구분되며, 이러한 의미는 사회적이면서도 개별적으로 부과된다. 따라서, 특정 장소에 대한 개인의 감각은 그가 속한 집단이나 축적한 경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투어’는 장소(성)을 공유하는 역할을 한다. 투어는 개별 장소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 프로그램화한 것으로, 참가자들에게 각 장소의 정체성, 관계, 역사를 전달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피크민 블룸 투어도 이와 같은 기능을 한다. 앱에는 특정한 이벤트 스팟들이 설정되어 있으며, 그 위치에 도착하면 장소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간략한 설명이 제공된다. 다만, 피크민 블룸 투어는 매우 느슨하다. 일반적인 투어는 엄격한 시간과 동선을 요구하곤 하지만, 피크민 블룸 투어에는 몇 가지 ‘스팟’들이 지정되어 있을 뿐, 나머지는 참여하는 유저의 자유에 맡겨진다. 설명 역시 매우 간결한 수준으로 제공되어 있어 참가자들은 직접 장소를 둘러보며 의미를 확장해나갈 수 있다. 곧, 피크민 블룸 투어가 제공하는 것은 장소에 대한 대략적인 스케치이다. * 이벤트 스팟 화면 여기에 피크민 블룸 투어가 특별하게 덧붙이는 것은 ‘피크민’의 존재이다. 어떤 장소의 의미는 그곳을 함께 했던 사람에 따라 달라지곤 한다. 같은 레스토랑이라도 가족과 갔을 때와 연인과 갔을 때의 기억은 전혀 다른 것처럼, 피크민 블룸 투어 참가자들은 ‘피크민’들과 함께 걸으며 추가적인 의미를 획득한다. 더욱이, 방문한 장소에 따라서 획득한 특정 피크민들은 기억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참가자들은 이벤트 도중 장소의 특징에 맞는 피크민들을 획득하는데, 여기에는 공간의 이름이나 일자 등이 포함되어 있어 장소에 대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반년 넘게 <피크민 블룸>을 플레이하면서, 나는 내 지도가 조금씩 확장되고 있는 걸 느꼈다. 이 게임을 통해서 나는 단순히 길을 걷는 것을 넘어, 새로운 공간을 발견하고, 때로는 발명하듯 내 동선을 만들고 있었다. 예를 들어, 꽃을 더 심기 위해 일부터 평소에 걷지 않던 길로 돌아가기고 하고, 엽서를 얻기 위해 모르는 길목을 탐험하기도 했다. 특별한 모종을 찾기 위해 낯선 동네를 헤매고, 일종의 보물찾기처럼 숨겨진 장소를 찾아다니는 날도 많았다. 심지어, 이 원고를 쓰기 바로 전 날에도 커뮤니티 데이 배지를 얻기 위해 평소보다 먼 길을 돌아 집에 왔다. 라이프로그 상에서 새로운 곳이 푸르게 빛나는 것이 뿌듯함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 피크민 블룸 라이프로그 화면. 자주 간 곳은 초록빛이, 꽃을 심은 자리에는 꽃이 표시 되어있다. 내게 이번 피크민 블룸 투어 역시 이 연장선상에 있었다. 서울 도심을 배경으로 제공된 장소들을 돌아다니며 나는 익숙한 도시를 다시 탐험했다. 서울 거주자로서 대부분의 장소가 낯설지는 않았지만, 아예 모르는 골목을 찾아 새로운 엽서를 발견하는 일은 여전히 즐거웠다. 단순히 걸음을 기록하고, 가상의 식물을 심고, 작은 캐릭터를 모으는 행위가 어떻게 사람들을 거리로 이끌 수 있는 걸까? <피크민 블룸>에서 정확히 무엇이 ‘보상’이 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이 작은 피크민들은 분명 사람들에게 동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 동력이 계속하여 우리의 삶과 공간에 활기를 불어넣길 바란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이연우 함께하는 게임에 관심을 가지고 게임의 관계성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게임으로 다함께 즐거워지길 바랍니다.
- [공모전] 현 시대의 택티컬 FPS 게임은 무엇을 담고 있는가: Ready or Not 비평을 중심으로
이 말은 ‘레드 스톰 엔터테인먼트’의 CEO이자 영국 해군 출신이기도 한 리틀 존스가 한 말이다. 90년대말 ‘레드 스톰 엔터테인먼트’에서 택티컬 FPS의 시초인 ‘레인보우식스’가 탄생한다. 톰 클랜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이 게임은 지금은 당연시되는 밀리터리 택티컬 FPS의 기본 공식들이 대부분 정립하여 FPS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되었다 봐도 과언이 아니다. < Back [공모전] 현 시대의 택티컬 FPS 게임은 무엇을 담고 있는가: Ready or Not 비평을 중심으로 13 GG Vol. 23. 8. 10. “당신 앞에 움직이는 모든 걸 총으로 쏘는 게임들은 성공적이었지만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반면 전략 위주의 게임들은 속도가 너무 느려서 지루했죠. 우린 두가지를 적절히 섞어 놓고 싶었습니다.” 이 말은 ‘레드 스톰 엔터테인먼트’의 CEO이자 영국 해군 출신이기도 한 리틀 존스가 한 말이다. 90년대말 ‘레드 스톰 엔터테인먼트’에서 택티컬 FPS의 시초인 ‘레인보우식스’가 탄생한다. 톰 클랜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이 게임은 지금은 당연시되는 밀리터리 택티컬 FPS의 기본 공식들이 대부분 정립하여 FPS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되었다 봐도 과언이 아니다. 택티컬 FPS의 조건 택티컬 FPS의 조건은 ‘레인보우 식스’가 출시되면서 정립된 밀리터리 택티컬 FPS의 공식이나 요소가 많기 때문에 ‘레인보우 식스’에 들어간 요소를 보면 그 특징을 알 수 있다. 첫번째로는 현대 특수전이 나오게 된 점. 그 당시 게임은 미래의 첨단 무기를 쏘면서 싸우거나 우주 해병이 악마들을 찢어 죽이는 게임같이 ‘하이퍼FPS장르’가 활약했지만 ‘레인보우식스’에서는 처음으로 인질극, CQB등 대테러 특수전을 본격적으로 다루게 되었다. 특히 인질과 테러범이 뒤섞이는 상황은 게이머들에게 참신하게 다가왔고, 위에 ‘리틀 존스’의 말처럼 보이는 타겟을 마음대로 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두번째로는 현대적인 군용 장비. 전투복, 주무장, 부무장, 보조장비를 구분해서 착용할 수 있게 하며, 이 장비들 역시 실제 군용 장비들로 구현이 되어 현실감을 불러일으킨다. 세번째는 피격판정에 대해서 세세하게 나눠진 부분도 ‘레인보우 식스’가 가져온 차별성이라 볼 수 있다. 팔, 다리, 머리를 맞았을 때 몸의 상태가 달라지며, 팔에 총탄을 맞았을 경우 명중률이 떨어지게 되고, 다리에 총탄을 맞을 경우엔 속도가 느려지게 되고, 머리는 즉사인 현실적인 표현으로 더욱 긴장감 있는 전투를 하게 하였다. 마지막은 분대전술로 총알 한발만 맞아도 전투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작전 수행을 위해 분대원들과 함께 전략적(tactical)으로 움직여야 한다. 도어브리칭, 엄호사격, 사주경계, 은엄폐같은 실제 특수작전에서 볼 수 있는 전략적 요소들이 구현되었고 이동 지시는 BLITZ(전력질주), NORMAL(기본 이동 상태), SAFETY(천천히 조용하게)를 선택하여 분대원들을 이동시킬 수 있고 교전상황에서의 명령은 CLEAR(거점 확보 후 사주경계), ENGAGE(선제 사격 및 제압), ADVANCE(일렬로 진입), ESCORT(인질 호송)로 나뉘어 분대원들이 상황에 맞는 할 일을 시킬 수 있었다. 현 시대의 택티컬 FPS 게임 Ready or Not은 Void Interactive에서 21년도 12월 중반 출시하여 이틀만에 ‘스팀 전 세계 최고 인기 제품’ 1위에 오른 뒤 오랫동안 선두를 지켰다. 이는 그 당시의 ‘헤일로인피니트’와 ‘포르자호라이즌 5’ 그리고 ‘레드데드리뎀션2’등 다수의 트리플A급 게임들을 넘었다는 점에서 놀랍고, 출시 후에도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계속 받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2000년대 이후로 레인보우 식스 시리즈의 초기작들과 SWAT 4와 같은 현실성을 지향하는 택티컬 슈팅 게임들은 사실상 명맥이 끊겨 Ready or Not이 이러한 게임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현대적인 감각으로의 재탄생을 목표로 하여 최초 공개 이후로 많은 게이머들이 관심을 갖고 지지한 부분도 있겠지만 결국 게임이 성공하기 위해선 게임의 화려한 마케팅 말고도 게임 속 내용이 중요하다. 마케팅이 성공적이면 게임 판매량은 높을 수 있겠지만 유저들의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선 게임 속에 담긴 내용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케팅만 잘 되고 게임이 가지고 있는 것이 없다면 포장지만 그럴싸한 빈 껍데기였다 생각한다. 요즘은 dlc라던가 업데이트를 통해 사후지원을 해주는 게임도 많지만 처음 기대를 갖고 구매한 유저들은 실망하고 평가는 좋지 않을 것이다. Ready or Not이 택티컬 FPS로써 가지고 있는 것 Ready or Not은 택티컬 FPS 게임으로써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앞에 말한 ‘레인보우 식스’의 택티컬 FPS 조건을 따라가며 현대적인 감각으로 발전이 되어 있어야 한다. 일단 택티컬 FPS니 당연시하게 현대 특수전은 기본. Ready or Not은 여러 상황의 장소를 선택할 수 있고 주택, 주유소, 호텔, 나이트클럽 등 다양한 상황이 있다. 이는 장소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장소마다 용의자가 일으킨 사건, 행동이 다르다. 맵 선택 시 미션의 타입을 선택할 수 있는데 첫번째로는 RAID(습격). 교전 수칙이 느슨하고, 일반적으로 더 많은 용의자와 적은 민간인들이 존재한다. 말그대로 습격이기 때문에 용의자들을 체포해도 좋지만 다른 미션에 비해 굳이 체포할 필요는 없다. 두번째로는 ACTIVE SHOOTER(총기 난사). 총기 난사범이 모든 시민들을 죽이기 전에 그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시간과의 싸움을 해야 하는 미션이다. 세번째로는 BOMB THREAT(폭탄 해체)로 폭탄의 위치를 파악하고 해제가 목적. 또한 용의자들과 민간인들도 폭발물 근처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네번째로는 HOSTAGE RESCUE(인질 구출)로 인질 구역의 위치를 파악하고 진입해야 하며, 용의자가 팀과 플레이어를 감지할 경우 인질범들이 시민들을 사살하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에 용의자가 눈치채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하는 미션. 특수작전을 위해선 역시 장비를 갖추고 가야 하는데 Ready or Not도 최근 나온 택티컬 FPS답게 무기 및 장비 폭이 넓다. 주무기(PRIMARY WEAPON)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대응이 가능한 돌격소총(ASSAULT RIFLE)과 CQB에 특화된 연사 화기인 기관단총(SUBMACHINE GUN) 그리고 강력한 산탄을 사용하는 산탄총(SHOTGUN). 그 외에도 투척물 발사기나 비살상 플레이를 위한 저살상(LESS LETHAL)무기도 있다. 주무기 폭만 넓은 것이 아니라 보조무기도 357 매그넘, M45A1, 테이저등 여러 총기가 있고, 주무기와 보조무기에서 총기 모딩으로 전방 손잡이, 총열 부착물 등 선택하여 작전에 맞게 준비할 수 있게 된다. 화기 준비가 되었다면 전술 장비도 갖추고 상체 보호 장비(예시로 방검복)와 장갑재(예시로 케블라), 머리장비(예시로 NVG)까지 임무 환경에 맞게 준비하여 다양한 장비를 고르기만 해도 만족스러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레인보우식스’과 유사한 부상 페널티의 차이가 구현되어 있다. 다리가 부상당했다면 속도가 느려지고 문을 차지를 못하게 될 것이며, 팔을 부상당했다면 반동이 심해져 사격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 플레이어가 부상을 치료하지 않는다면, 출혈할 수도 있기 때문에 출혈 시에는 꼭 붕대를 감고 다시 교전해야 한다. 택티컬 FPS로써의 여러 요소가 있지만 제일 중요하다 생각되는 건 역시 분대전술. Ready or Not은 문에 시점을 보고 있는 쪽에 따라 다르게 활성화된다. 문 아래를 보고 미러건 장비 시 문 너머를 확인할 수 있고, 도어웨지 장비 시 문을 막을 수 있어 변수를 차단 효과를 볼 수 있다. 문 가운데를 보고 상호작용키를 누를 시 90도로 그대로 열리지만, 손잡이 쪽을 상호작용할 경우 문을 살짝 열고 문 엿보기가 된다. 문 엿보기의 필요성은 문을 열었을 때 안쪽에서 용의자 반응 유무를 통해 인원파악과 용의자가 무엇을 하고 있는 지, 함정이 있는 지 확인할 수도 있고 섬광을 넣고 진입을 할 때도 문을 다 열고 섬광을 던지면 용의자를 마주칠 수 있기 때문에 살짝 열린 틈으로 섬광탄을 넣고 진입하는 게 효과적이기 때문. 솔로 플레이일 경우에도 마우스 가운데 버튼으로 AI 팀원에게 지시를 다양하게 내릴 수 있는데 CLEAR WITH FLASHBANG을 선택할 경우 AI가 문을 살짝 열고 섬광을 집어넣은 다음 섬광이 터지면서 대열을 갖추어 진입하게 된다. 또한 섬광 외에도 폭발물을 이용해 돌입할 수도 있고 산탄총을 사용하여 안전하게 문을 정리하는 방법 등 다양하다.멀티 플레이어일 경우는 서로 합을 맞추면 재미있게 할 수 있지만, 솔로 플레이어일 경우 마우스 가운데 버튼으로 지시하게 되는데 클릭 시 해당 명령을 행동할 인원을 금색일 경우 전체 분대가 수행하고 파란색일 경우 분대의 반, 빨간색도 나머지 분대의 반 인원이 행동하게 나눠져 있어 편리하다. 행동의 경우에는 1, 2, 3번의 명령이 나눠져 있는데 1번 명령은 스택업, 미러건으로 체크, 트랩 제거, 웨지도어 설치가 있고 2번 명령은 그냥 돌입과 섬광탄, 스팅어, CS가스 투척 후 돌입이 있다. 3번은 브리칭으로 발로 차서 브리칭, 샷건으로 브리칭, C2로 브리칭이 있다. 내가 완전한 택티컬 FPS 경험은 많지 않아서 어렵다 느끼기에 혼자 잘 할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그러한 두려움에도 AI 플레이어들이 잘 커버해주고 수집해야 하는 증거도 알아서 수집하여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초반에 맘 편하게 게임할 수 있었던 점은 혼자서도 멀티 플레이어만큼은 아니지만 분대전술을 할 수 있게 잘 되어 있고, SWAT4의 정신적 후속작인 Ready or Not이 SWAT4보다 아군AI가 뛰어나다고 평가할 수 있다. Ready or Not이 가지고 있는 현실성과 메시지 위에서 Ready or Not에 기존 택티컬 FPS의 규칙이나 요소가 잘 담겨있는 지 보면서 ‘이미 현실성이나 고증이 잘 되어 있는 거 아니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더 말할 부분이 있다. 현 시대의 택티컬 FPS가 Ready or Not이외에도 Zero Hour나 Ground Branch가 있지만 그것들보다 Ready or Not이 가지고 있는 차별성과 메시지가 있기 때문에 내가 Ready or Not을 중심으로 택티컬 FPS 장르에 대해 비평하는 이유이다. ‘그럼 얘네가 가진 차별성과 메시지가 무엇인데?’라는 질문이 올 것이고 나는 역시 내용물, 게임 속에 담긴 배경과 사건에 주목한다. “로스 수에뇨스의 거리는 무법지대입니다. 거리에는 노숙자들이 배회하며,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법을 어기고 있습니다. 이 도시는 범죄 발생률이 최고조에 달할 정도로 치안 공백이 심각합니다. 게임의 스토리 배경은 연속 강력범죄로 큰 혼돈에 빠진 가상 미국의 항만 대도시 ‘로스 수에뇨스시’의 SWAT 팀이 범죄자들을 소탕하는 내용으로 작전은 다른 대원들과 함께 최대 5명으로 진행하게 된다. 게임 로비에 들어가게 되면 경찰서의 모습이 보이고 로비 각 위치에서 위에서 말한 장비 착용이나 미션 선택 등을 해볼 수 있다. 임무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첫번째로 신규 플레이어가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하기 좋은 파크 213번지 주택 맵으로 얘기를 해보겠다. 이 임무는 약물 유통에 직접적으로 개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파크의 213번지를 수색하는 임무이다. The detectives have been following a new lead to locate source of methamphetamine storage in Los Suenos, tracing a potential "affordable housing" development in 213 Park. 메스암페타민은 흔히 히로뽕, 필로폰이라 불리는 마약으로 투약 시 얻는 극단적 쾌락과 심한 중독성, 부작용을 근거로 마약으로 분류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에서 각성제로 애용되었으나 부작용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에서 현재 제조, 판매, 복용이 금지되어 있다. 약물의 효과는 각성 효과, 성욕 증가, 집중력 증가, 인지능력 증가, 육체적인 행복감, 사고 가속, 사교성 및 실행 동기 증가 등이 있지만 약효 때문에 식욕 상실, 배뇨 장애, 폭력적 충동과 분노조절장애를 동반한다. 하지만 진짜 무서운 점은 약효 종료 시의 후유증과 금단증상이라 한다. "필로폰 같은 경우는 한번 투약하게 되면 의존성, 내성이 아주 강해요. 그런 식으로 1회, 2회, 3회 투약했을 경우에는 중독성으로 변해서 상습으로 변하는 거죠." 윤흥희/한성대학교 마약알코올학과 교수(前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 팀장) 우리는 이 메스암페타민을 2개를 증거로 확보하고 모든 민간인을 구출하고, 2명의 용의자(마약범)를 체포하는 것이 목표이다. 주택을 수색하는데 게임 속에서 마약중독자들의 비참한 삶이 잘 표현되어 있다. 주택안은 어둡고 더러운 분위기다.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려 있고 매트릭스 위에는 인분이나 오줌의 흔적이 남아있다. 위에 말한 부작용인 배뇨 장애가 나타나 있는 것이다. 또, 용의자들과 시민들의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는 디테일과 진행을 하다 보면 2층에 아이방이 있는데 마약중독자인 부모 혹은 보호자의 방치인 지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상태로 침대에 누워 꺽꺽소리를 내며 구토를 한다. 이 아이를 구조할 수 있지만 2층까지 주택을 클리어하는데 체포한 수많은 중독자나 혹은 사살한 사람들 중 아이의 보호자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착잡하다. Having taken down a distribution center for an illegal child-pornography ring operating out of Los Suenos, the LSPD cyber-crime team has now located the man profiting from its sales. LSPD SWAT have been sent to his home on a warrant service. 앞서 말한 임무 외에도 아동 포르노 조직과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포르노 남배우 겸 감독 아모스 볼의 저택을 급습하는 고위험 영장 집행 임무에서 마당 한구석 위치한 계단을 타고 지하실에 진입해보면 아동 프로필을 수집한 장소가 있다. 이름, 성, 나이가 적혀 있으며 제일 어린 나이는 4살이다. 지하의 다른 장소에는 무언가로 가득 찬 드럼통엔 아이들의 시체가 들어있을 지 아니면 체액이 묻은 옷가지나 신발 혹은 관련된 기구나 기록물인 지 알 수 없지만 드럼통과 같이 어린아이들의 옷가지나 인형 등을 지하실 바닥에 파묻다가 만 흔적은 분명히 증거인멸을 하려한 흔적이고, 촬영장으로 보이는 장소는 앞에서 말한 프로필을 보다가 본인이 세트장으로 데려와 성관계를 맺었다는 범죄 사실, 붉은 조명 아래에서 어린 아이들의 사진을 인화하는 방이 있는 등. 이런 끔찍한 묘사는 현실의 암울한 범죄를 잘 나타낸다. Void Interactive, 그들이 담고 싶어하는 것 Developer AMA에서 나는 개발 비화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다. Void Interactive의 CEO인 율리오는 사촌이 있었는데 1984년 캘리포니아주 산 이시드로의 한 맥도날드 매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평소처럼 일하고 있는 와중 갑자기 한 괴한이 매장으로 들어오더니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적 총기를 난사했다고 한다. ‘맥도날드 대학살 사건’로 불리며 이 당시 총기난사로 무려 34명이 사망하고 22명이 부상을 입었다. 당시 용의자인 제임스 휴버티는 UZI 기관단총, 윈체스터 엽총을 사용해 보이는 족족 쏴 죽였다고 한다. 그의 사촌은 다행히도 총격전에서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극심한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렸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2014년 당시 호주에도 한 사건이 발생하는데 바로 유명한 ‘시드니 인질극’이다. 이때 당시 율리오는 dayz 게임을 통해 서로 친해지게 된 3명의 10대 학생이 있었는데 이 중 한명이 스털링이였고 호주인이였던 스털링은 사건 발생 직후 뉴스로 소식을 접하고는 굉장히 충격을 받았으며, 몇년후 스털링과 친구들이 율리오에게 찾아와 SWAT같은 게임을 만들자는 제안에 율리오는 수락하고 Ready or Not이 개발되게 되었다. CEO인 율리오와 COO인 스털링은 서로 공감될 만한 사건을 겪고 이를 게임에 나타나게 한 것이다. 택티컬 FPS 게임은 현실적인 고증이 매우 중요하지만 Ready or Not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와 개발목적성이 현재에 다른 택티컬 FPS와 차별성을 가지고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가 디지털 게임을 할 때 큰 장점은 우리는 게임 속 플레이어가 되고 상상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안전하다. 실제 대테러 상황을 마주하면 큰일나겠지만 현대의 택티컬 FPS인 Ready or Not을 해보면서 암울한 범죄 상황과 그러한 현실들을 마주하는 경험을 할 수 있고 이 게임에 담긴 인지적 가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대학생) 이규연 어릴 적 프로그래밍을 배운 후, 여러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아 게임 기획자(Game designer)를 목표로 하게 되었다. 대학을 다니며 게임업계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음과 동시에 게임 관련 전시, 축제, 대회(E-Sport)를 즐겨 찾고 있다.
- [Editor's View] 생존본능에서 장르에 이르기까지의 공포
공포는 흔히 생존본능에서 만들어졌다고들 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위험한 것들을 피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우리는 위험을 보고 무서움을 느낍니다. 덕분에 살아남아 다양한 기술을 발전시킨 인류는 실존하는 위험으로부터 무서움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분리해내기에 이르렀고, 많은 예술을 통해 분리된 감정은 호러라는 장르를 만들기에 이르렀습니다. < Back 19 GG Vol. 24.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넷마블 게임 박물관에 느꼈던 게임의 과거와 미래
2025년 3월 넷마블 게임 박물관이 정식으로 일반 공개를 시작했다. 넷마블 게임 박물관은 아직 정확하게 공지는 되지 않았지만 현재(2025년)기준으로 한국에서 최초로 정부에 등록된 게임을 테마로 한 박물관이 될 가능성이 높다.(국내에서 이름에 컴퓨터가 들어간 등록박물관은 2023년 기준으로 넥슨 컴퓨터 박물관이 유일하다.) < Back 23 GG Vol. 25. 4. 10. Tags: 넷마블, 아카이빙, 박물관, 학예연구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oungWook Oh Game enthusiast, game programmer, and historian of games. A growing interest in Korean games turned into a hobby of collecting and organizing materials, and has been steadily gathering and archiving them since 2006. Co-authored books including The History of Korean Games and Mario, Born in '81, and contributed as a developer to games such as Dungeon & Fighter, Acropolis, Pony Town, and Timeline Dungeon.


![[논문세미나] 디지털게임에 나타나는 알레아의 세 층위](https://static.wixstatic.com/media/d03518_224bac6e2e6445bcb36f2d2dcd44ae18~mv2.jpg/v1/fit/w_176,h_124,q_80,usm_0.66_1.00_0.01,blur_3,enc_auto/d03518_224bac6e2e6445bcb36f2d2dcd44ae18~mv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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