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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러를 즐기는 보통의 방식
사실 호러 게임은 꽤 마이너한 장르에 속한다. 물론 좀비물의 성격을 차용한 <더 라스트 오브 어스>처럼 장르적 요소를 가져오거나,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나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처럼 본격적으로 호러 게임을 표방하는 AAA 게임이 없던 것은 아니다. < Back 19 GG Vol. 24.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ngsoo Park Majored in art studies as an undergraduate and is currently studying media cultural studies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Yonsei University. Writes primarily about film, while keeping a curious eye on visual culture broadly—art, games, and broadcasting among them. Also a film critic, host of the podcast Café Critique, and an organizer of community film screenings.
- Oldies But Goodies - 클래식 게임의 조건
그래서 다시 클래식 게임이다. 그의 분투는 눈물겹다. 이 보다 더 순수할 수 없을 그 시대만이 줄 수 있는 순정의 게임 경험과 이를 통한 자수성가형 성취감을 제공한 클래식 게임은 게임 미디어의 '형식'으로서 명예의 전당에 봉인되는 순간, 수 많은 아류작과 온전한 장르의 모태가 됨으로써 태를 바꾸어 '미디어'로 존재한다. 이렇게 미디어로 명명된 클래식 게임은 상징으로 일반화되고, 상징을 통해 제시된 '기대'는 클래식 게임 고유의 경험을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재현하고 확장한다. < Back Oldies But Goodies - 클래식 게임의 조건 02 GG Vol. 21. 8. 10. 안타깝지만 게임은 나이에 우호적이지 않다. 생각보다 손이 늦게 움직일 때, 초점이 맞지 않아 어둠 속의 적을 보지 못할 때, 무엇보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적에 스릴보다 심장이 더 걱정되기 시작할 때, 게임은 더 이상 친숙한 존재가 아니다. 이럴 땐 나도 모르게 신랄한 비평으로 게임을 탓하며 나이를 감춘다. 그래픽만 근사하고 코어가 약하다는 둥, 영혼 없는 모방작이라는 둥, 그 다음은 어김없이 화려한 '라떼'의 기억, 고통스럽지만 보람찼던 모험을 회상한다. 모눈종이에 매핑하던 순간들, 계단 반 칸에서 떨어져도 죽던 세상 허약한 주인공의 모험담, 늘 그렇듯 어디론가 납치된 여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쏟아부은 수 많은 시간들, 고독한 모험의 유일한 동반자 개 한 마리를 포기해야 하는 사악한 선택지로 인한 딜레마, 그리고 그 혹독한 시험에서 결국 만나게 되는 엔딩의 충만함까지. 잠깐의 플래시백으로 '라떼'의 영광을 찾아 여전히 생생한 기억 속 게임에 다시 한 번 말을 건넨다. 그런데 과거와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몇 가지 기술적 단계가 필요하다. RF 단자밖에 없는 콘솔 게임기를 RGB 단자 TV로, 나아가 hdmi 단자의 TV에까지 연결한다. 물론 권하고 싶지는 않다. 8bit 게임기를 대형 TV에 연결시켜 실시간 시력테스트를 하는 기분은 결코 유쾌한 플레이 경험일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과거의 유명한 게임들은 휴대용 게임기, 스팀이나 콘솔 온라인몰에서 리마스터 버전 등으로 출시된다. 내게는 심전도 검사와 같은 최신 게임을 포기하고, 이제야 ‘진짜’ 게임을 플레이한다. 하지만 1시간 남짓, 우리의 대화에 노이즈가 발생한다. 본질에 충실하다 보니 최신 게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불편함이 눈에 거슬리고, 군더더기 없다 보니 뼈대만 있는 게임 구조와 단순한 스토리에 지루하고, 더 이상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운 도트 그래픽의 조악함이 걸림돌이 된다. 이쯤되면 우리가 하는 것이 대화일 수 있을까. 게임 잡지나 웹진에서 다룰 법한 '역사에 남을 100대 게임', '놓쳐서는 안될 고전 게임' 같은 특집도 약효는 일시적이다. 클래식 게임의 역사적 의미, 장점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개인사적 경험담에 공감하면서도 적극적인 플레이 경험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클래식에 대한 존중이 게임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영화 잡지를 들춰도 비슷한 취지의 기사는 널려 있다. 문학이나 음악도 예외는 아니다. 리스트를 꼼꼼히 적으며 영화들을 찾아보는 씨네필이나 클래식 음악 매니아는 흔하다. 문학에서는 고전 읽기가 일반 대학의 교양과목일 정도로 자연스럽다. 그에 비해 공감과 행위의 괴리가 게임만큼 분명한 장르가 또 있을까. 물론 이러한 차이는 컨텐츠가 의존하는 기술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원형적 기술은 가장 오래 전에 등장했지만 지금도 차이가 없는 반면, 파생되어 발전한 기술은 등장한 지도 오래되지 않았지만 지금도 그 변화가 급격하다. 의존하는 기술이 변화함에 따라 컨텐츠 변화 속도도 상이하다. 소설은 수백 년 동안 큰 변화가 없지만, 영화는 몇 십년만에, 게임은 몇 년 만에 그 큰 변화를 겪는다. 결국 기술적 변화가 크면 클수록 컨텐츠의 라이프 사이클은 짧아진다. 게임은 의존 기술과 변화에 있어 가장 격렬한 컨텐츠다. 당연히 게임에도 고전 혹은 클래식 게임이 존재한다. 그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만한 게임들의 리스트는 쟁쟁하다. 하지만 영광은 거기까지다. 여전히 현역으로 자부하지만, 환호하는 관중은 없다. 이유는 많다. 최신 게임이 더 접근하기 편하고, 더 진화된 시스템의 경이가 있고, 황홀한 그래픽과 스토리의 스케일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클래식 게임은 게이머들에게 많은 추억을 남겼으며, 지금도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하지만, 더 이상 플레이를 통해 소통할 수 없는, 그저 우리 모두의 첫사랑일 따름이다. 한때 우리의 모든 시간과 정열을 바쳐 연모했으나, 이제 다시 만나 뭘 해볼 수 없는 까마득한 과거의 연인이다. 문학과 영화가 빛바랜 소설을 읽고, 흑백 영화를 보면서 클래식에 대해 바치는 실천적 존중이, 클래식 게임에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플레이되지 않는 무용담은 공소한 '라떼의 영광'일 뿐일까. ‘로그라이트’라는 명명(命名) 2017년 스팀에서 ‘앞서 해보기’로 처음 등장한 〈Dead Cells〉(Motion Twins)은 여러모로 화젯거리였다. 8bit나 16bit 시절을 떠올리는 도트 그래픽, 몇 개의 키로 가능한 플랫폼 액션의 경쾌함, 단순하게 느껴질 정도로 직관적이지만 진행할수록 매력적인 게임 시스템 등 클래식 게임 요소가 강한 동시에 최신 게임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스타일, 조작 그리고 편의성을 갖추고 있었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OB들에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완벽한 클래식 게임의 플레이 경험을 제공하는 한편, 게임에 입문한 NB들에게는 새로운 감각의 경험을 제공했다. 이런 특색 때문에 이런 류의 게임을 ‘레트로 게임’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레트로 게임의 등장은 무엇을 의미할까. 레트로 게임은 클래식 게임을 현대라는 거울에 비춘 하나의 상(象), 즉 존재할 수 없는 클래식 게임에 대한 회고적 경험을 거울을 통해 현전으로 구성한 상이다. 따라서 레트로 게임은 시간의 퇴화를 견딘 여전히 건재하는 영광이 아닌, 영광을 추억하는 이를 위한 아카이브이며, 과거에 머물던 영광의 부활이 아닌, 그 영광은 과거에만 존재할 수밖에 없음을 역설하는 레퍼런스 없는 시뮬라끄르다. * 〈Dead Cells〉. 이미지출처: 스팀 공식페이지. 물론 〈Dead Cells〉의 가치는 클래식 게임을 재현함으로써 그 위상을 확인 사살했다는 데에 있지만은 않다. 〈Dead Cells〉은 장르적으로 로그라이트(Roguelite)에 해당된다. 이러한 장르명은 21세기 초반까지 널리 사용되고 우리에게 익숙한 액션, RPG, 전략 등과는 현저히 이질적이다. 로그라이트 장르의 명명은 1980년 출시된 〈Rogue〉(Michael Toy & Glenn Wichman)에서 출발한다. 〈Rogue〉는 당시 유행한 던전 크롤러(dungeon crawler)를 기반으로 두 가지 놀라운 시스템을 시도했다. 플레이 캐릭터의 ‘영구적 죽음(permadeath)’과 시작할 때마다 달라지는 맵 시스템이 그것이다. 그로 인해 기존의 모눈종이 지도 제작 실력은 도움이 될 수 없었으며, 플레이 시간이 길어질수록 캐릭터 사망에 대한 중압감은 가중되는 가혹한 시스템이었다. 금지옥엽 키운 캐릭터가 죽는 매 순간, 키보드와 함께 게이머의 영혼도 파괴되곤 했다. PTSD를 극복하려면 상당한 치유의 시간이 필요한 〈Rogue〉와 같은 스타일의 게임을 이후 '로그라이크(Roguelike)’라 불렀으며, 이후 캐릭터의 죽음과 함께 아이템이나 스테이터스를 완전히 압수하는 대신, 약소하지만 남겨주는 적선(積善)의 형태로 변화하면서, 'like' 대신 ‘lite’를 붙여 ‘로그라이트’라는 장르로 자리잡는다. 그런데 '로그라이트’라는 장르명은 개발사의 마케팅 기믹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사회학자 루만(Niklas Luhmann)은 조직 이론의 ‘느슨한 커플링’, ‘조여진 커플링’ 개념을 빌어 반-본질주의 미디어(media)/형식(form) 개념을 제시했다. 모래사장의 모래와 그 위를 걷는 이의 발자국처럼 루만의 미디어/형식은 ‘느슨함/조여짐’의 상대적 정도를 통해 규정된다. 모래사장에 있는 느슨한 모래들이 '미디어'라면, 그 위를 걸어 조금 단단하게 결합된 발자국이 '형식'이다. 다만 이 개념쌍은 상대적으로, 자신보다 '느슨한 커플링' 앞에서는 '형식'이 되고, 더 '조여진 커플링' 앞에서는 '미디어'가 된다. 루만의 미디어/형식 개념을 이제 문학과 게임에 적용해 보자. 문학과 『햄릿』, 게임과 〈Rogue〉. 문학과 게임을 문화콘텐츠로서 기여하는 '미디어'라 할 때, 개별 작품 『햄릿』과 〈Rogue〉는 각 미디어의 요소를 더 조여 커플링한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햄릿』은 여전히 다양한 방식으로 직ㆍ간접소비되지만, 〈Rogue〉는 대개 -이 글에 인용되는 방식처럼- 간접소비될 따름이다. 즉, 게임기자들이 특집 기사를 쓰고, 평론가들이 클래식 게임의 화려한 영광에 열변을 토하지만, 영광의 게임을 애써 플레이하려는 이는 적다. 그래서 클래식 게임은 게임이라는 '미디어' 안에서 '형식'으로 존재하지만, 소비되지 않는 한 존재 의의는 없다. 그렇다고 클래식 게임의 참패(慘敗)는 아니다. 대신 '로그라이크/라이트'가 있다. 〈Rogue〉는 더 이상 플레이되지 않지만, 그를 모태로 하는 '로그 같은' 혹은 '쉬운 로그'들이 여전히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OB와 NB는 기꺼이 그들을 소비한다. 게임이라는 모래사장에서 〈Rogue〉는 모래를 단단하게 해준 첫 발자국이라면, 이제 더 많은 게임들이 그 위에 자신의 발자국을 보태어 보다 단단한 발자국의 결합을 만든다. 결국 게임이라는 미디어에서 형식으로서의 〈Rogue〉는 더 이상 소비되지 않음으로써 존재 의의를 상실했지만, 수많은 '로그라이크/라이트' 게임들이라는 '형식'과 새로운 쌍을 이루며 '미디어'로서 화려하게 부활한다. 왜 게임에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게임은 소프트웨어라는 '미디어'에 대해 '형식'인 만큼, 기능에 대한 창의성 대신, 코딩에 대한 원천 가치를 존중한다.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통한 기능의 재현은 게임에서도 가능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해커 문화라는 지평 위에서 게임은 저작권보다는 코드를 공유하고, 경쟁적으로 코드를 개선해서 양질의 게임을 만드는, 게임만의 독특한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태도를 지닌다. 그 결과 게임은 여전히 90퍼센트 이상의 레거시와 10퍼센트 안팎의 독창성 위에 존재한다. 하나의 형식으로서 개별작품이 또 다른 형식의 결합 요소를 수용할 때 잘하면 ‘오마주’ 잘못하면 ‘표절’이 되는 다른 미디어와 달리, 게임 미디어에서 레거시의 수용은 또 다른 명작의 시발점이 된다. 그래서 게임은 다른 모든 미디어에 비해 자유롭다. 여전히 모든 어른으로부터 필요한 것들을 흡수하여 더 빨리 성장하려는 아이처럼 본능적이며 원초적이다. 모든 원초적인 것들은 경외의 대상이 되기 쉽다. 한때 생존경쟁에 밀려 아프리카 북단에서 쓸쓸히 멸종되었다는 네안데르탈인 대해 매료된 적이 있으나, 사실 그들은 멸종이 아닌, 호모 사피엔스와의 혼종 교배를 통해 여전히 우리 유전자 속에 남아있다고 한다. 결국 사라졌다고 믿었으나 사실은 여전히 존재하는 네안데르탈인의 노스탤지어처럼, 다양한 언술 속에 재배치되는 작금의 클래식 게임은 '형식'이 아닌, '미디어'로서 새롭게 경험될 수 있다. 기대와 커뮤니케이션 개별 게임이라는 '형식'은 기술 발전과 함께 빠르게 소비 영역에서 이탈한다. 소비되지 않는 게임은 대화의 소재가 되기 어렵고, 커뮤니케이션은 쉽게 중단된다. 루만의 이론에 따르면 커뮤니케이션은 자아와 타아가 마주해 발생하는 '이중 우발성(double contingency)' 위에서 구축된다. 자아는 타아가 어떻게 대응할 지 확정할 수 없는 우발성의 조건에서 발신하고, 타아 역시 이 발신이 지닌 가능한 의미의 확정 없이 수신한다. 양쪽에서 발생하는 우발성 속에서 각자에게 기대되던 피드백이 돌아올 때에만 커뮤니케이션은 성립한다. 이중 우발성이 만드는 가능성의 확장 속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성립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가능성의 확장에서 발생하는 복잡성에 대한 감축이다. 개별 작품이라는 형식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역시 복잡성의 감축을 요구한다. 사회학자 파슨스(Talcott Parsons)에 따르면, 이중 우발성의 복잡성 감축은 공통의 경험과 지평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Rogue〉를 플레이한 경험이 있다면, 커뮤니케이션 성립은 수월하다. 하지만 만일 한쪽의 경험과 다른 한쪽의 간접 체험만으로 이뤄진다면, 커뮤니케이션에서 이 복잡성의 감축은 불충분하다. 경험자가 던진 경험의 감정들이 간접 체험자에게는 이해될 수 없으며, 간접 체험자의 표면적 기술(description)은 경험자에게는 공소한 반응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서 복잡성 감축을 위한 장치가 등장한다면 어떻게 될까. 타아의 대응을 완전한 우발성의 영역에 두지 않고, 비록 아직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가능한 결정의 범위를 예상하는 것이다. 타아에 의한 피드백에 대한 자아의 대응 역시 마찬가지로 아직 결정되지 않지만, 어느 정도 정해진 범위 안에서 이뤄지길 기대한다. 많은 유사한 커뮤니케이션이 시도되고, 성립하고, 실패하는 과정에서 가능성을 한정하는 의미에 대한 반복적 지시가 등장한다. 즉, 반복적 지시에 따른 감축을 통해 ‘상징’이 사용되고, 상징에 따른 일반화를 통해 자아와 타아 모두 가능성의 영역에 대해 ‘기대’를 통한 복잡성의 감축이 가능해진다. 1994년부터 개발된 〈Ancient Domains of Mystery〉를 플레이한 게이머와 2006년 등장한 〈Dungeon Crawl–Stone Soup〉를 플레이한 게이머가 마주한 경우를 가정해 보자. 각기 상대 게임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커뮤니케이션은 각자의 경험 위에서만 시도된다. 커뮤니케이션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복잡성을 줄여야 하기에 각기 상대의 발신과 수신에서의 탐색 과정을 거치게 되고, 이 과정이 수월하지 않을 때 커뮤니케이션은 실패한다. 만일 이들이 상대가 어떤 범위 내에서 발신 및 수신할 지를 한정하는 기대가 있다면, 복잡성의 감축을 위한 탐색 과정은 한결 단축된다. 이 역할을 하는 것, 즉 커뮤니케이션이 성립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미디어로 기능하는 ‘로그라이크’이다. 각자 상대의 경험이 ‘로그라이크’라는 범위 위에서 의미를 가질 것임을 기대하고 행위하기 때문에, 상대 게임을 정확히 알지 못해도 ‘로그라이크’라는 명명이 가진 의미의 한정을 통해 수신/발신 과정에서 생산된 복잡성을 감축하고 형식인 게임에 대해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다. * 〈Ancient Domains of Mystery〉(왼쪽)와 〈Dungeon Crawl–Stone Soup〉(오른쪽). 이미지출처: 게임 공식 홈페이지. '형식'이 아닌, '미디어'로서 역할하는 클래식 게임의 존재 양상은, 이처럼 새로운 명명에 따른 기대를 통해 게임을 둘러싼 커뮤니케이션이 성립할 수 있도록 복잡성의 감축을 유도한다. 게임을 둘러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형성된 의미 시스템이 곧 게임 문화다. 문화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현현하고, 그를 통해서만 유지된다. 다양한 문화적 소재들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커뮤니케이션'될 때만 문화로서 의미가 정위(定位)된다. 따라서 우발성의 복잡성 감축을 유도하는 미디어로 존재 양식을 갖춘 클래식 게임은 게임문화의 유지와 확장에 기여하는 새로운 위상을 확립하게 된다. 게임문화와 클래식 게임 지금까지 클래식 게임을 통해 '기대'가 커뮤니케이션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았다. 물론 ‘기대’는 클래식 게임을 통해서만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클래식 게임이 게임에 대한 긍정적 값을 지닌 커뮤니케이션의 기대로 존재한다면, 역으로 부정적 값을 지닌 기대도 존재할 수 있다. 비호감 게임리뷰에 자주 등장하는 ‘한국형 양산게임’이라는 표현은 원래 사전적 의미에서는 '한국 게임개발사에서 대량생산된 게임'을 중립적으로 통칭할 뿐이지만, 커뮤니케이션에 작동하는 양상은 이와 달리 매우 부정적이다. 한국형 양산게임이 커뮤니케이션에 제공하는 '기대'는, 장르의 개성이나 세계관의 고유성은 없고, 비즈니스 모델만 강조된, 개발사의 수익률을 위해 고도의 사행성을 장착한 게임이다. 즉, 한국형 양산게임에 대한 '부정적 기대' 역시, 로그라이크의 '긍정적 기대’처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존재하는 우리 게임문화의 또 다른 양상을 규정한다. 한국형 양산게임만이 아니다. 게임과는 어울리지 않는 ‘작업장’이라는 표현이나 경험이라는 게임의 본원적 규정과 어울리지 않는 ‘자동전투’ 시스템, 그리고 온라인 게임을 매개 및 무대로 하여 벌어지는 커뮤니케이션에서 발견되는 차별적이고 공격적이며 상호혐오로 가득한 언술 등 이 모든 것은 부정적 값을 지닌 '기대'로서 커뮤니케이션을 성립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며, 그렇게 성립하는 커뮤니케이션 또한 우리 게임문화의 일면이다. 게임문화는 단순히 세기의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 게임평론가의 극찬을 받는 소외된 걸작들, 독특한 세계관을 보여주는 몇 편의 인디게임을 통해 형성될 수는 없다. 게임을 둘러싼 커뮤니케이션과 그러한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하는 ‘기대’의 지형이 게임문화의 현 주소를 규정한다. 게임과 관련한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게임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이 원인이라 말하곤 한다. 게임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문제의 산물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게임문화도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까. 게임문화는 오직 게임을 둘러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존재한다. 여기에는 긍정적 '기대'도 물론 존재하지만, 동시에 부정적 '기대', 심지어 독소(毒素)의 '기대' 또한 포함된다. 면피의 가능성이 존재의 양상을 바꿀 수는 없다. 변화는 오직 커뮤니케이션에서 복잡성의 감축과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대'의 성쇠에 의해서만 규정된다. 그래서 다시 클래식 게임이다. 그의 분투는 눈물겹다. 이 보다 더 순수할 수 없을 그 시대만이 줄 수 있는 순정의 게임 경험과 이를 통한 자수성가형 성취감을 제공한 클래식 게임은 게임 미디어의 '형식'으로서 명예의 전당에 봉인되는 순간, 수 많은 아류작과 온전한 장르의 모태가 됨으로써 태를 바꾸어 '미디어'로 존재한다. 이렇게 미디어로 명명된 클래식 게임은 상징으로 일반화되고, 상징을 통해 제시된 '기대'는 클래식 게임 고유의 경험을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재현하고 확장한다. 폭넓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클래식 게임과 만나고, 긍정하고, 새롭게 다른 방식으로 욕망한다. 이렇게 클래식 게이머의 첫사랑은 라떼의 '추억팔이'가 아닌, 우리 모두의 첫사랑이 되고, 게임의 원형적 경험으로서 게임문화의 일부가 된다. 화려한 영광의 수사로 치장되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순간, 무대에서 퇴장만이 남은 순리에 따르는 대신, 클래식 게임은 '미디어'로서 자신을 추종하는 수많은 '형식'들을 이끌고, 독소의 '기대'와 싸우며 새로운 희망의 기대를 세상에 퍼뜨린다. 그렇다면 나도, 최종 보스까지는 아득하지만, 나이에 우호적이지 않은 게임세상에 사자후를 토하며 그 오랜 세월을 버틴 클래식 게이머의 노익장을 과시하련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평론가) 박상우 몇몇 대학과 대학원에서 게임관련 강의를 했으며, 몇몇 잡지와 신문에 게임 관련 칼럼을 연재했고, 몇 권의 게임관련 책을 썼으나, 내가 산 책이 더 많다. 게임제작 및 퍼블리싱 관련 개발사 컨설팅을 하다가 막판에는 게임회사 대표직도 맡았고, 이제는 은퇴했다. 게임 평론가나 게임 전공 교수, 게임 컨설턴트나 게임회사 대표가 아닌 '게임을 참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 게임의 조건 : 게임은 스포츠 종목이 될 수 있는가?
예들 들어 ‘대통령배 전국 아마추어 이스포츠 대회’, ‘이스포츠 대학리그’, ‘동호인대회’, ‘전국장애학생e페스티벌’, ‘한중일 이스포츠대회’,‘세계이스포츠대회’의 공식 종목들이 궁극적으로 국내 게임 산업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는지 살펴봐야 할 일이다. < Back 15 GG Vol. 23.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Eunkyung Choi Currently Head of the Graduate School of Esports Convergence and Professor of Visual Content Studies at the College of Peace and Liberal Arts, Hanshin University. PhD in Communication, Loughborough University, UK. Formerly Assistant Professor, Department of Esports, Chonnam Techno University.
- [논문세미나] 옛날 전쟁 비디오게임이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해 알려주는 것 : <환경을 위한 역설적 투쟁으로서 레트로 폭력>
최근 우리는 게임의 문제를 기후/환경 문제와 연결짓는 담론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게임장비와 콘솔에 물질적 자원이 투입될수록 전자폐기물(E-waste) 문제가 더 많이 발생하고, 게이머의 플레이 시간이 늘어날수록 탄소배출량이 늘어난다는 기사들이 적잖이 나오고 있다. 이제 게임 플레이는 거의 환경오염의 문제와 불가분이 되었고, 게임회사 또한 게임을 개발한다면 필연적으로 지속가능성의 문제를 고려해야만 하는 상황이 오게 된 것이다. < Back [논문세미나] 옛날 전쟁 비디오게임이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해 알려주는 것 : <환경을 위한 역설적 투쟁으로서 레트로 폭력> 31 GG Vol. 26. 8. 10. TEXT: Fernandes, A. (2026). Retro violence as a paradoxical fight for the environment: The nostalgic circular video games economy. Media, War & Conflict , 17506352261421845. 들어가며 최근 우리는 게임의 문제를 기후/환경 문제와 연결짓는 담론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게임장비와 콘솔에 물질적 자원이 투입될수록 전자폐기물(E-waste) 문제가 더 많이 발생하고, 게이머의 플레이 시간이 늘어날수록 탄소배출량이 늘어난다는 기사들이 적잖이 나오고 있다. 이제 게임 플레이는 거의 환경오염의 문제와 불가분이 되었고, 게임회사 또한 게임을 개발한다면 필연적으로 지속가능성의 문제를 고려해야만 하는 상황이 오게 된 것이다. 이번에 소개할 논문 <환경을 위한 역설적 투쟁으로서 레트로 폭력: 향수에 기반한 비디오게임 순환경제>은 이러한 배경에서 최근 ‘레트로 비디오게임의 재유행 현상’이 역설적으로 기후환경의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에 주목한다. 통상적으로, 전쟁이나 폭력을 소재로 한 비디오 게임을 한다는 것은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처럼 인식된다. 선행연구 또한 이러한 게임들이 인간의 공격성을 얼마만큼 유발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반복해 왔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이전 연구를 통해, 레트로 비디오 게임이 최신 콘솔로 재출시되거나 스마트폰으로 이식되는 현상이 최소한 ‘물질적 차원’에서는 새로운 게임이나 콘솔의 구매비용을 절감하고 전자폐기물 축적을 낮추는 효과가 있음을 주장한다. 이는 ‘향수의 순환경제(circular economy of nostalgia)’라는 용어로도 요약된다. 겉보기에 환경적으로 유해하게 보이는 (게임에 대한) ‘향수’는 정말 환경보전이나 지속가능성의 가치와 상충할까? 아니면 역으로 해당 가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까? 레트로 비디오게임의 순환경제 구조를 분석해야 하는 시점이다. 그런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게임 밖에서 벌어지는 물질적 효과와 게임 내에서 이루어지는 가상적 실천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이 연구는 폭력적 레트로 비디오게임 안에서 자연이 재현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어, 자연에 어떠한 의미와 행위성이 부여되는지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연구방법과 자료 분석을 위해 이 연구는 브루노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ctor-Network Theory, ANT)을 접근법으로 하며, ‘비디오게임 연구의 객체지향적 접근(object-oriented approach in videogame studies)'을 지향한다. ANT는 자연, 기술, 사회가 갖는 복잡한 관계를 환원주의적으로 설명하지 않기 위해 세 층위 중 어느 영역에도 우선권을 두지 않는데, 이는 전쟁과 비디오게임, 환경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에도 유용한 방법이다. ANT의 주요 특성 중 하나는 기존의 전통적 사회학이 ‘사회적이지 않은’ 요인으로 간주해 왔던 비인간(non-human)적 요소를 사회적 관계형성의 행위자로서 분석하는 것이다. 본디 사회과학에서 ‘행위자(actor)’는 ‘인간 주체’의 행위성을 전제로 한 개념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라투르는 기호학의 행위소(actant)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하면서, “행위하거나, 다른 존재들에 의해 행위성을 부여받는 어떤 것(something that acts or to which activity is granted by others)” 즉 고정된 속성이 아닌 관계적 속성을 가진 개념으로서의 행위자 개념을 제안한다. 라투르의 도식 아래에서 행위성(agency)의 범위는 사회를 넘어 기술과 자연으로 확장되며, 행위자 개념 역시 인간을 넘어서는 관계론적 차원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그간의 비디오게임 연구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인간’만을 중심에 두어 왔다. ANT를 활용한다면, 게임은 (인간에게 플레이될 뿐만 아니라) 플레이어에게 일정한 힘을 행사하는 행위자의 위상을 가질 수 있게 된다. 특히 저자는 ANT의 관점으로 게임을 볼 때, 비디오게임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는 공간(저자는 이것이 신자유주의적 문화의 재생산 기제이기도 하다고 설명한다)’으로 이해되는 차원을 넘어설 수 있으며, 게임 내 난이도나 승리 기회 같이 가치중립적으로 보이는 요소들도 문제시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한다. 게임에 대한 ANT적 분석은 게임/플레이어 사이의 구체적인 상호작용 과정은 이 과정에서 어떠한 행위자들이 구성되는지를 주목하는 데 초점을 둔다. 따라서 게임 내적 요소뿐 아니라 게임 외부의 물질적 환경, 게임 플랫폼, 플레이어의 인간관계 같은 게임 외부적 요소까지 모두 포함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 연구는 비디오게임 속 ‘자연’의 출현 방식을 분석하기 위해, 비디오게임 자체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파악한다. 이 ‘네트워크’는 미리 주어지거나 게임의 외부 조건 또는 인간 행위자에 의해서만 일방적으로 결정되어서 게임 속에 재현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게임은 색채, 게임플레이, 시점, 게임에서 능동적으로 작동하는 요소나 수동적으로 배치된 요소, 위계적으로 강조되는 요소, 주변화되는 요소 등 게임을 구성하는 다양한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연과 기술의 의미를 형성한다. 한편 이 연구는 과학기술학(STS)의 특정 맥락에서 형성된 개념인 ANT의 연합(associations), 필수통과지점(obligatory passage points), 기입 장치(inscription devices) 같은 고전적 개념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이들이 서로에게 무엇을 하는가를 통해 어떠한 방식으로 구성되는지를 기술하려는 ANT의 수행적(performative) 요구를 따르고자 한다. 이 연구는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전쟁 서사를 전개하는 대표적 레트로 비디오게임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으며, 분석 대상은 다음 요건 아래서 선정했다: 1) 16비트 이하 콘솔용 레트로 게임(32비트/64비트 기반 게임에 비해 생태적 가치가 높음) 2) 레트로 게임 사이트에서 플레이 횟수가 높은 게임 3) 군사, 총기, 무력 충돌을 주 소재로 하는 게임 4) ‘인간을 넘어서는 자연(more-than-human nature: 생태철학과 인문학에서 인간을 비인간 존재와 동등한 관계망 속 요소로 보는 관점)’의 요소를 포함하는 게임(즉 실내 공간이나 우주를 배경으로 하거나, 지속가능성이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지 않는 포스트아포칼립스 배경 게임은 분석에서 제외). 한편, 본 연구에서 선정한 ‘레트로(retro)’는 개념적 차원에서는 선형적이고 목적론적 시간관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ANT에서는 문제시되는 개념일 수 있으나, 이 연구에서는 ‘오래 전에 제작된 비디오게임’이라는 사전적인 용도로만 사용하고자 한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선정된 분석 대상 게임은 <콘트라(Contra)(1987)>, <배틀 시티(Battle City)(1985)>, <리버 레이드(River Raid)(1982)>의 3가지다. 먼저, 레트로 비디오게임 중 가장 플레이횟수가 높은 <콘트라>는 두 명의 특공대원이 남아메리카의 이름 없는 섬에서 외계인의 침략을 저지하는 컨셉의 런 앤 건(Run and Gun) 액션 게임이다. 스테이지명과 화면 구성 요소는 모두 초원, 설원, 강, 산, 숲 등 자연환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러한 자연환경 속에 군사 장비가 배치된 컨셉이다. <배틀 시티>는 플레이어가 전차를 조종하여 적 전차를 파괴하고 자기 기지를 방어하는 방식의 전방향 탑뷰 슈팅 게임이다. 이름에 ‘시티’를 표방하고 있지만 일반적인 도시를 연상시키는 도로, 인도, 창문 같은 요소는 없다. 게임에서는 파괴 가능한 벽돌 벽, 파괴되지 않는 철벽, 수풀 속에 숨겨진 전차, 이동을 방해하는 빙판 등 여러 자연지형과 장애물이 배치되어 있고 플레이어의 기지가 파괴되거나 목숨을 소진하면 게임이 종료된다. <리버 라이드>는 플레이어가 전투기를 조종하여 강둑이나 적의 공격을 피하면서 적들을 공격하는 스크롤 슈팅 게임으로, 전투기가 추락하거나 연료가 모두 소진되면 게임이 종료된다. 분석: 비자연적인 자연(the unnatural nature)? 먼저 세 가지 게임 중 <콘트라>의 경우를 살펴보자. <콘트라>에서 플레이어의 임무는 자연환경 속에 설치된 적의 기계들을 제거하여 공격적인 인간/기술 행위자들을 정화(cleansing)하는 역할이지만, 플레이어가 적의 장치를 파괴할 때 그것이 놓인 자연환경은 결코 파괴되지 않는다. 자연은 그저 플레이어가 서고 달리고 점프하게 만들어 주는 부동의 지반처럼 보인다. 예외적으로 절벽이나 낭떠러지처럼 플레이어가 점프해야 하는 끊어진 지형이나 낙하하는 바위를 피해야 하는 상황이 등장하는데, 동식물이 아니라 ‘자연’이 이런 상황을 주도한다는 점 또한 인간의 행위가 자연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러한 불변의 자연은 결말부에 모든 적을 처치하고 플레이어가 탈출할 때 폭발에 휘말려 불타게 된다. 자연의 파괴란 곧 인간 입장에서 모든 악을 처치했을 때 나오는 긍정적인 결과로 제시되는 셈이다. <콘트라>는 적과 자연을 묶어놓음으로써, 자연 자체의 도덕적 가치가 그곳에 거주하는 존재들의 도덕성과 상호의존적이라는 인식을 구성한다. 결국 <콘트라>에서의 자연은 인간의 목적을 위해서는 쉽게 파괴되지만 다른 순간에는 어떤 공격에도 영향받지 않는, 인간중심성을 위해 취약성과 불변성을 동시에 부여받은 존재로 프로그래밍된 셈이다. <배틀 시티>의 자연은 좀더 적극적인 역할로 나타난다. 이곳의 자연요소 중 수풀은 적이 숨어있는 위장 요소이고 물과 얼음은 플레이어의 전차 이동을 방해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플레이어가 이들을 피해서 적군을 처치해야 하는 한편, 이들 자연은 결코 플레이어에 의해 파괴되거나 영향받지 않는다. 즉 자연은 인간의 전쟁 목적과 무관하게 존재하면서도 게임 속에서 끊임없이 제약으로 등장하면서 인간 플레이어의 능력이 지니는 한계를 드러내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게임에서 인간이 자연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상황은 벽돌 벽으로 이루어진 도시를 해체하는 것이지만 그 경우 적의 공격에 더 쉽게 노출되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배틀 시티>에서 자연은 인간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중립적 행위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자연은 인간과 전쟁의 목적에 길들여지지 않으며 오히려 전쟁의 결과, 즉 게임의 승패를 결정하는 힘을 일방향적으로 행사한다. <리버 레이드>는 명확한 결말 없이 영원히 반복되는 루프 구조로 무한히 플레이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사실상 플레이어는 무한정 자연 속에 머물 수 있지만, 강둑과 충돌하거나 연료가 다 소진되는 순간 즉시 게임 오버가 되기 때문에, 무한성을 얻기 위해선 조건이 주어진다. 비디오게임이라는 기술은 자연이 인간과 무관하게 영원히 지속되는 것처럼 상상하게 만들지만, 결국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유한성을 드러내는 셈이다. 또한 강둑 충돌이 보여주듯이 <리버 레이드>에서 자연환경은 플레이 진행을 직접적으로 규정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플레이어가 죽어버리면 그 이후 자연을 결코 목격할 수 없다는 점에서 무한한 자연은 본질적으로 유한한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존재처럼 제시된다. 이러한 자연 속에 플레이어가 계속 머무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연료가 소진되지 않도록 계속해서 전투기에 연료를 보급하는 것 뿐이다. 즉, 인간이 자연과 영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직 다른 자연을 착취해야만 하는 상황이 주어지는 것이다. * 왼쪽부터 <콘트라>, <배틀 시티>, <리버 레이드>의 게임 플레이 장면. (출처: 구글 이미지) 논의: 비디오게임의 인간을 넘어서는 자연(more-than-human nature) <콘트라>, <배틀 시티>, <리버 레이드>에서 등장한 게임 속 자연은 모두 ‘죽은 자연(dead nature)’, 즉 현실에서 경험하는 자연과 같은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자연을 의미하고 있다. 게임 속의 자연은 수동적으로 프로그래밍된 배경이면서, 게임 속 게이머의 행위에 따라 변화되거나 파괴되지 않는다. 즉, 이들 게임의 자연은 모두 플레이어와의 어떤 ‘상호작용’이 불가능한 형태로 남아 있다. 왜 그렇게 만들어져 있었으며, 이 점이 보여주는 것은 무엇일까? 물론 세 게임은 1980년대에 나왔고 당대 프로그램 기술의 제약 때문에 자연을 이런 식으로 재현할 수밖에 없었다는 반론이 가능할 것이다. 또 이 게임들이 환경친화 슬로건을 걸지 않는 단순 슈팅 게임이기 때문에 자연의 재현 방식은 게임사의 관심사가 아니었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콘트라>에서 바위가 낙하하는 모습이나 <리버 레이드>에서의 강둑 충돌 사례처럼 당시의 기술로도 역동적 자연을 만드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했다. 저자는 이 게임들에 나온 자연을 당시의 단순한 기술적 결함의 문제를 넘어서 철학적 관점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저자는 세 비디오게임에 드러나는 ‘인간과 충분히 상호작용하지 않는 자연’, ‘인간이 언제나 이해가능한 방식으로 응답하지 않는 자연’은 오히려 인간을 넘어서는 자연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게임 속에서 인간이 자연과 제한적으로만 관계맺을 수 있다는 사실은, 애초에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 자체에 내재하여 프로그램된 한계다. 또한 이러한 자연의 접근 불가능성과 무한성 자체는 유한한 기술적 행위자들과 인간 행위자들의 어셈블리지(assemblage)를 통해서만 구성된 결과다. 이러한 점에서 기술을 통해 인간은 인간을 넘어서는 관점을 획득하게 되며 비디오 게임 또한 인간의 경험으로 완전히 포착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해 인간이 어떠한 한 관점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게 하는, (들뢰즈의 표현을 빌자면) ‘관계 맺을 수 없는 것과 관계를 맺게 하는’ 매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비디오게임이 칸트가 구분한 물자체(noumenon)와 현상(phenomenon)의 차이, 즉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자연 그 자체로서의 물자체와 인간이 이해가능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비디오게임이 제시하는 현상으로서의 자연을 구분해서 보여준다고 말한다. 인간이 비록 사물(자연)의 물자체(au sich)를 인식할 수는 없지만 (게임을 통해) 형이상학적으로 이를 사유해 볼 수는 있다. 비디오게임 또한 자연을 인간의 관점으로 환원되지 않는 존재로 제시함으로써 인간이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자연이라는 개념을 사유하게끔 하는 것이다. <배틀 시티>에서 자연이 ‘물자체’의 차원에서 파괴될 수 없는 존재인 반면 인간이 만든 ‘현상계’로서 도시는 그 게임에서 인간이 유일하게 파괴 가능한 것으로 드러나듯이 말이다. 인간을 넘어서는 자연의 사례는 <리버 레이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리버 레이드>에서 플레이어가 무한한 자연에 참여하기 위해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연료)를 소모해야만 하는 사례를 생각해 보자. 연료를 소비하고 오염을 발생시킴으로써 역설적으로 인간은 자연의 무한성 스스로를 소멸시켜야만 하는 입장에 있다. “즉 자연의 무한성을 목격하기 위한 [인간의] 조건은 바로 그 무한성을 파괴하는 조건과 동일하다”는 역설이 발생하고야 만다. 무한히 결말 없이 플레이 가능한 게임 구조 또한 영원히 게임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플레이어 자신이 불멸의 존재여야 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즉 이 게임을 종료하는 것은 다름아닌 인간 자신의 유한성이라 할 수 있는데, 바로 그 유한성이 비디오게임 속에 프로그램된 자연을 무한히 응시하거나 경험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는 자연을 완전히 인간적으로 이해하거나 인간의 통제 아래 두려는 시도가 본질적으로 한계를 지닌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비디오게임에서 인간과 환경의 관계는 선행연구(Abraham & Jayermanne, 2017)에서 제시한 네 가지 고전적 유형만으로는 설명되기 어렵다. 본 연구는 환경이 인간 플레이어를 위한 배경이나 자원의 원천, 인간의 적대 대상, 탐색 대상일 뿐만 아니라 ‘back-ground’로서 또 다른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이 때의 ‘back-ground’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간이 발 닿은 기반(ground)이자 동시에 그 기반을 끊임없이 흔들어서 인간중심성을 해체하는 존재를 뜻한다. 즉 비디오게임은 인간의 행위 가능성의 한계를 수행적으로 드러내는 인간을 넘어서는 또 다른 행위자인 것이다. back-ground 개념은 인간에게 게임 속 환경이 드러내는 한계를 단순히 넘어설 수 없는 장벽으로 경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 자체로서 경험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비디오게임이 상호작용적/사실적 자연을 구현하는 데 실패한 것이라고만은 볼 수 없으며, 오히려 탈인간중심적 자연의 관점에서는 진실인 세계를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저자는 이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점으로, ‘레트로 비디오게임을 단순히 자연을 비현실적으로 재현하는 매체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공들여 환경친화적 디자인을 갖춘 전쟁 게임을 만들고 그 게임에서 인간과의 상호작용에 따라 자연환경이 실제로 파괴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해도 게임을 리셋하는 순간 레트로 게임에서 드러났던 자연의 파괴불가능성은 반복될 것이다(반대로 플레이어의 행위에 따라 자연환경이 결코 복원되지 않는 게임을 구현한다면 인간이 오랜 시간 플레이하지 못하는 게임이 될 것이다). 최신 비디오게임들이 자연과의 상호작용을 더 풍부하게 만든다 하더라도, 오히려 그것은 자연을 인간이 조작하고 이해가능한 대상으로 바라보는 인간중심주의적 관점을 더 강화할 것이다. 언제나 인간에게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만 응답하는 자연을 제시할 것이기에 결과적으로 자연이 본질적으로 인간에게 접근 불가능하다는 관점은 오히려 가려지게 될 수 있다. 자연에는 침묵(silence)과 비응답성(unresponsiveness)이 포함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비디오게임의 무의식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본질적으로 한계에 의해 규정되는 관계임을 현실적으로 수행하면서도, 동시에 기술을 통해 그 한계를 넘어서는 포스트휴먼적 인간-자연 관계를 가능하게 한다. 비디오게임이라는 기술을 통해 자연은 완전히 총체화될 수 없는 존재로 모습을 드러내며, 비디오게임은 인간이 자연과 맺는 한계를 드러냄과 동시에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경계를 넘어 자연과 관계를 맺도록 한다. 저자는 이같은 관계에 대해 비디오게임이 최소한 접근 불가능함을 접근 불가능한 것으로서 경험하게 만든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인간은 한계를 완전히 넘어설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한계를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는 도달할 수 있다. 정리하며 비디오게임에 대한 ANT적 분석을 수행하는 이 연구는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해 기존의 통상적인 방식과는 다른 형태로 생각해 보게 해 준다는 의의가 있다. 게임 속에서 자연이 파괴될 수 없는 대상, 혹은 플레이어에게 응답하지 않는 대상으로 주어진다는 것이 겉보기엔 단순한 기술의 한계나 재현의 결핍처럼 보이지만 실은 게임을 하는 인간 플레이어에게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그 게임이 굳이 환경문제나 지속가능성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아도, 심지어 전쟁이나 폭력을 소재로 한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나 인간(사회)-기술-자연에서 한 항에 쏠리는 환원주의를 피하기 위한 인상이 커서인지는 몰라도, 논문의 구체적인 접근방식과 논의는 과잉되었다는 인상을 피하기 힘들었다. 크게 다음과 같이 이 글의 한계가 읽힌다. 첫째, 이 연구는 기본적으로 레트로 게임의 재유행과 리플레이가 비디오게임 산업의 지속가능한 순환경제를 위한 유효한 필수 조건이라고 보고 있다. 저자의 이전 연구결과를 토대로 한 주장이긴 하지만 ‘레트로 게임을 하면 결과적으로 친환경적’이라는 전제에 의문을 제기해 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의 소비는 레트로 게임도 사고 콘솔도 사고 에뮬레이터도 하는, ‘대체’보다는 ‘확장’된 소비에 가까울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레트로 게임이 순환경제에 기여한다’는 서론부 논의와 ‘레트로 게임이 자연을 인간을 넘어서는 존재로 그린다’는 본문 논의 사이의 연결고리는 대단히 약하다. 마치 후자의 결과 때문에 전자의 문제를 더 주목해야 한다는 방식의 주장처럼 읽히는데, 서론부는 사실상 별도의 분석과 연구문제를 요하는 것이기에 이러한 인과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둘째, 이 연구가 정말 ANT적 분석을 수행했는지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ANT 분석에 시도되는 기본적인 고전적 개념들을 쓰지 않으면서 ANT의 수행적 접근에 동의한다는 식의 요지는 ANT 분석이라는 이 글의 주장을 약하게 만든다. 비디오게임을 ANT로 분석한다면, 저자가 지적했듯 게임 내적 요소뿐 아니라 이를 연결하는 다양한 외부 요소가 필요하다. 자연환경이나 지형지물을 만들 때 들어갔어야 할 기술들, 게임개발자들의 문제, 게임이 이식될 당시의 하드웨어 특성, 게임 시장과 산업 등 수많은 구성요소들의 행위성이 있어야 하고, 이러한 행위자들을 따라감으로써 네트워크를 파악해 실체를 드러내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연구는 게임 내적 요소에 분석의 영역을 한정하고, 행위소들의 구체적인 네트워크 분석보다는 게임 텍스트에 비인간중심주의를 기반으로 한 기호학적, 철학적 독해를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연구는 ANT를 수행한 연구라기보다는 객체지향적 접근에 기반한 포스트휴먼 비평으로 봐야 하지 않는가가 발제자로서 나의 생각이다. 셋째, 게임 속의 ‘응답하지 않는 자연’을 둘러싸고 저자와 나의 해석이 너무나 다르다. 저자는 응답하지 않는 자연이 인간을 넘어서는 자연을 보여주고 그 접근 불가능성을 인간에게 감각할 수 있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응답하지 않는 자연은 오히려 기술적 제약 때문이든 자연을 고려하는 인식이 없기 때문이든간에 자연을 말 그대로 배경으로 객체화한 결과가 아닐까? 이 경우 게임 속에 재현된 자연은 더 강한 인간중심주의로 읽어낼 수 있다. 관련 이론에 과문한 탓에 더 깊게 들어가기 어렵지만, 객체지향 존재론이나 ANT이 가정하는 존재론적 접근에서는 게임 개발자나 연구자의 인식 및 의도와 무관하게 행위자들의 네트워크가 존재론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설명하고 그를 (역설적이게도 인간 행위자인 연구자의 인식론으로) 풀어내는 것처럼 보여진다. 게임이 인간을 넘어서는 자연을 보여준다는 해석이 인간 행위자에게서 발생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왜인지 모순으로 다가온다. 어찌되었든, 이 연구는 게임 제작 기술이 발달하면서 인터랙티브 요소를 확장해야 하고 그 요소로 자연을 고려해야 하는 개발자들이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한 흥미로운 지점을 제시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더 많은 인터랙티브를 만들어낼수록 이는 인간의 응답대로만 움직이는 세계를 만들어내는, 즉 인간중심성을 강화하는 게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Tags: 레트로 게임, 게임과 환경, 행위자-네트워크 이론, 포스트휴머니즘, 콘트라, 배틀 시티, 리버 레이드, 논문세미나, Retro Games, Actor-Network Theory, Games and Ecology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수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인터뷰] EBS ‘다큐프라임-게임에 진심인 편’ PD-자문위원의 코멘터리 대담
지난 10월 10일, EBS에서 만든 게임 다큐멘터리 〈게임에 진심인 편〉이 게이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참조: https://youtu.be/5LWXpmdV_BU) 일반적인 게임 다큐멘터리처럼 게임의 산업적 측면을 강조하지 않고 게임의 본질과 가치를 다루고 있으며, 트렌디한 연출에서부터 방송 직후 유튜브에 즉시 공개한 것까지, 제작과정과 유통과정 모두 평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공개된 유튜브의 댓글에는 ‘제작자가 게임에 진심’이라는 시청자들의 호평이 잇따랐다. < Back [인터뷰] EBS ‘다큐프라임-게임에 진심인 편’ PD-자문위원의 코멘터리 대담 09 GG Vol. 22. 12. 10. 지난 10월 10일, EBS에서 만든 게임 다큐멘터리 〈게임에 진심인 편〉이 게이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참조: https://youtu.be/5LWXpmdV_BU ) 일반적인 게임 다큐멘터리처럼 게임의 산업적 측면을 강조하지 않고 게임의 본질과 가치를 다루고 있으며, 트렌디한 연출에서부터 방송 직후 유튜브에 즉시 공개한 것까지, 제작과정과 유통과정 모두 평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공개된 유튜브의 댓글에는 ‘제작자가 게임에 진심’이라는 시청자들의 호평이 잇따랐다. 그러나 기존의 게임 다큐멘터리와 궤를 달리한다는 것은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가 뒤따른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다큐멘터리의 제작과정은 어땠을까?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으며, 어떠한 관점으로 게임을 보고자 했던 것일까?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이번 호에서는 박진우 PD와 자문위원 이경혁 편집장의 대담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Q. 마침 다큐멘터리의 PD와 자문위원을 모시게 되었는데요. 이 다큐멘터리에 관한 논의를 처음 시작하신 것은 언제인가요? 이경혁 자문위원: 제가 기억하는 첫 만남은 한예종에서 열었던 크리티컬 플레이어 행사였어요. ‘게임 비평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주제의 행사에서 제가 특강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끝나고 찾아오신 거예요. 게임 다큐를 만들고 싶다고. 그때 앉은 자리에서 2시간을 더 이야기했었던 기억이 나요. 그때 굉장히 반가웠던 것이 ‘이제는 게임을 하던 세대가 제작자의 위치로 가는 순간이구나’는 생각이 들어서, 좋은 다큐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아 반가웠어요. 그래서 한참 이야기를 했는데 그다음에는 서로 바빠서 잊고 있었어요. (웃음) 박진우 PD: 그렇죠. 서로 바빴죠. 이경혁 자문위원: 그러다가 몇 년이 지났는데 다시 또 연락이 와서 예산이 생겼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 다큐의 시작이라고 하면 5년 전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다큐멘터리가 본격적으로 제작을 시작한 것은 3년 정도이지만, PD님은 예전부터 이 주제를 다루고 싶어하셨으니까, 마치 배추를 절이는 데 2년, 양념에서 묻히는 데 3년 같이 5년을 고민하셨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박진우 PD: 맞아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좋아했었고, 대학 졸업할 때도 졸업 논문을 게임에 관해 썼거든요. 그러다 보니 뭔가 나름대로 파보고 이것저것 읽게 되잖아요. 그러면서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일차적으로 관심이 생겼고, 이차적으로는 이러한 작업을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PD가 된 다음에도 ‘내가 어떤 프로그램을 할 것이냐’라고 했을 때 게임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 과정에서 편집장님이 말씀하셨던 한예종 행사에 갔는데, 게임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필드가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큰 위안과 용기를 얻었어요. ‘이 정도의 콘텐츠가 있으면 다큐를 하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사실 아이템만 가지고는 다큐멘터리가 될 수 없거든요. 그게 2018년 겨울이었어요. Q. 5년이라는 시간이 짧지 않은데, 그 과정에서 생각이 변하거나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박진우 PD: 개인적으로는 약간의 조바심이 있었어요.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게임에 관한 감각을 잃어버리기 전에 게임 다큐멘터리를 두 개는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어린이 프로그램을 한 3, 4년 정도 제작했는데, 1년, 1년이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제 어릴 적 기억이 조금씩 희미해지는 것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런 것처럼 제가 게임을 엄청 좋아하고, 가장 열성적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던 그 시절과 조금씩 멀어지는 것 같아서 더 빨리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게다가 게임의 주 소비층을 2030이라고 봤을 때, 이 문화에서 제가 조금씩 멀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거든요. 인터넷 상에서 사람들이 어떤 문화를 좋아하면 예전에는 100% 다 알았는데, 조금씩 모르는 것들이 생기면서 이걸 완전히 놓치기 전에 만들어야겠다고 서둘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 나왔던 다큐도 어떻게 생각해 보면 2년 후에 저라면 이런 방식과 이런 드립을 넣는 형태로 만들지 못했을 것 같아요. 이경혁 자문위원: 드립 이야기가 나와서 말씀드리는 건데, 저는 인터넷 상의 반응을 보면서 굉장히 ‘성공했구나’라는 마음과 함께 한편으로는 씁쓸함이 있었어요. 박진우 PD: 어떤 씁쓸함이었을까요? 이경혁 자문위원: 유튜브에 댓글이 달리는 데, 이런 댓글인 거죠. ‘이 다큐가 훌륭한 이유는 밈을 잘 쓴 것이다, 이말년이 나왔다, 전용준이 나왔다.’ 그러나 이 다큐의 의미가 그거 하나는 아닌 거죠. 밈이 잘 사용된 것은 맞지만, 한편으로는 이 다큐의 핵심은 결국 게임의 본질에 관한 질문들인데, 이것이 주목받지 못하는 점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있어요. 박진우 PD: 그렇죠. 그 부분이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처음에 선생님과 함께 다큐 기획을 할 때도 고민을 많이 한 부분이고, 방송 나간 결과물을 보면서도 어렵다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말씀하신 타겟에 관한 문제예요. 시청자들의 게임 이해가 각기 다르고, 어떤 것을 원하는가 했을 때, 이런 부분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것 같아요. 이경혁 자문위원: 물론 다큐의 본질이 별로였으면, 밈에 대한 반응도 안 나왔겠죠. 그렇지만 저희가 2년 반 동안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거든요. 찍어놓은 것도 많았고, 무엇보다 리서치를 굉장히 길게 했어요. 그런 지점에서 오는 아쉬움이죠. 박진우 PD: 사실 내용적인 부분에 있어서 반응이 많이 나왔던 것은 3부였거든요. 전체 기획의 측면에서 봤을 때, 1부가 기본적인 내용이라면 2부에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고, 3부가 일종의 심화편으로, 시청자들이 다큐프라임이나 다큐멘터리에 기대하는 정보량과 깊이는 3부의 온도였을 것 같아요. 다만, 제작과정에서 너무 심층적인 논의들은 의도적으로 많이 뺐어요. 핵심적인 내용만 남기고 많이 덜어내고자 했는데, 그래서 어떻게 보면 게임을 해왔던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이야기들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나 공중파 다큐멘터리라는 미디어는 일종의 공인 효과를 만들잖아요? 저희는 그런 지점에 더 초점을 맞추고자 했어요. 다들 느끼고 있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그걸 언어화해서 공유하는 것은 결국 사회적으로 담론을 만든다는 의미가 있잖으니까요. 그렇게 족적을 남김으로써 다음을 준비할 수 있는 디딤돌을 마련하기 위해서 가급적 최대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밈이나 인터넷 문화를 많이 가져온 것도 이런 맥락이에요. 재밌어야 더 많은 사람들이 볼 테니까요. *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다큐프라임-게임에 진심인 편’ 시청자 반응. 이경혁 자문위원: 그래서 그런 후속 효과도 굉장했죠. 계속 커뮤니티에 돌았고, 소위 말하는 ‘짤’로 ‘EBS가 이런 것을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죠. (웃음) 그런데 말씀하신 것처럼 ‘게임을 하나의 매체로서 다루는 시금석’이라는 방향성은 확실히 기존 문법이랑 다른 지향점을 가지게 했는데요. 저희가 시작할 때부터 배제하고 싶은 이야기가 분명했거든요. 처음에 저희가 기존 다큐들이 무엇을 다루었는지 쭉 훑었어요. 그러면서 게임 산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게임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고 방향을 정했었죠. 다른 이야기지만, 어려움이라고 했을 때는 그런 것도 있을 것 같네요. 이전에 방영되었던 다큐멘터리들을 보니까 미국의 경우에는 비디오 게임 연구의 장이라는 것이 이미 있는 거죠. 거기서 자신들이 쌓아놓은 역사들이 있고, 대학의 전공도 있으며, 전문가들이 있어요. 그러면 다큐 제작진들이 누군가를 컨택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웠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전문가가 없으니까 어려웠죠. 박진우 PD: 맞아요. 그게 되게 어려운 부분 중에 하나였습니다. 자료도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었고 리서치에 동원될 수 있는 인력에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Q. 그러면 자료나 전문가를 구하기 어려운 문제가 다큐의 방향성을 바꾸셨던 지점도 있을까요? 이경혁 자문위원: 저는 기억나는 게, 초기에 기획했던 콘텐츠 중에는 백인의 인터뷰가 있었어요. 게임계의 100명을 선정해서 가장 좋았던 게임에 대한 인터뷰를 모으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했었죠. 박진우 PD: 저는 여전히 그 기획이 재미있는 기획이라고 생각을 하고, 나중에라도 해보고 싶은데, 당시에 캔슬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두 가지 정도가 있었어요. 하나는 여태까지 나왔던 게임 중에서 최고의 걸작을 꼽는다고 하면, 걸작이라는 말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정해진 답이 있는 느낌이랄까요? 온라인 게임이나 모바일 게임을 배제하기가 너무 쉬운 거예요. 결국, 작품론적 관점으로 질문이 흐르게 되죠. 저희 내부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볼 때도 기껏해야 와우(WoW) 정도? 그렇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이 두 가지 매체의 게임을 포기하게 되니까 세팅을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하나 있었고요. 두 번째로 다큐를 기획할 때는 판데믹 시국이었기 때문에, 해외로 못 나갔었거든요. 그래서 해외의 게임 관련자들을 만날 수 없었다는 요인이 작용했어요. 물론 이 기획 과정에서 프린세스 메이커의 아카이 타카미씨를 만날 수 있게 되어 이번 다큐에 나오시긴 했지만요. Q. 두 분은 그 5년 사이에 어느 정도로 만나신 건가요? 박진우 PD: 처음에 만나 뵙고 그 이후로는 저도 이제 다른 프로그램 한참 제작을 하다가, 다큐프라임 기획안 공모가 떠서 올해는 게임을 본격적으로 다루어야겠다고 생각을 했고요. 정리를 하다 보니 한계가 있는 거예요. 이전에 정리해놓은 자료들 중에서는 유실된 것도 있고, 그 사이 지형이 많이 바뀌면서, 전문가 선생님의 도움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때 경혁님께 연락을 드렸는데, 흔쾌히 나와주셨어요. 이경혁 자문위원: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장소가 그렇게 멀지 않아서요. (웃음) 동네 카페에 앉아서 이야기했어요. 우연찮게 작가분도 근처에 사셔서, 초창기에는 거의 하루종일 이야기를 하는 모임들을 꽤 자주 가졌던 것 같아요. 어떤 결론이 나기보다는 탐색을 엄청 많이 했었죠. 박진우 PD: 그래도 꽤 많은 가능성들을 펼쳐놓고 시뮬레이션을 돌렸어요. 그러다가 기획을 다듬어서 지금의 1, 2, 3부 형식을 잡기까지 한 1년 걸렸던 것 같아요. 이경혁 자문위원: 제작이라는 과정이 그런 것 같아요. 완성된 작품은 150분이지만, 할 이야기는 정말 많은데 제한된 150분 안에 무엇을 넣어야 우리의 목표에 들어갈 것인가 하고 훨씬 많은 시간을 고민했죠. 이런 식으로 걸러내는 과정들이 제일 힘든 것 같아요. 박진우 PD: 맞아요. 전체 50분짜리 다큐멘터리에서 내러티브가 전개되는데 필수 불가결하게 쓰이는 시간들이 있어요. 거기서 시간을 더 줄이면 몰입이 안 되거나, 캐릭터가 설명이 안 되거나, 상황이 인지가 안 되거나 이렇게 되거든요. 그러면 구조 자체가 무너지는 거고, 구조가 무너지면 알맹이들은 더 머릿속에 안 들어오는 거죠. 게다가 내용적인 면에서도 깊게 다루거나 더 들어가기는 어려운 부분도 있거든요. 그래서 진짜 핵심만 남기고 버리는 과정이 힘들었어요. 이경혁 자문위원: 결국은 다 필요없고 재밌게 보면 좋겠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남겨줄게! 같은 식으로 만들어지죠. (웃음) 박진우 PD: (웃음) 맞아요. 정확하게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욕심으로는 약간 그런 것도 있었습니다. 특히나 1부에서는 다큐 중에서 규칙이나 상호작용을 어느 정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하고 싶었었어요. 그치만 사실 동영상은 일방향 콘텐츠니까 상호작용을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그나마 최대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느낌이라도 줄 수 있게 중간중간 퀴즈나 퀘스트 같은 것들을 넣으려 했습니다. 그런 것들을 짜는 것도 시간이 오래 걸렸죠. 추가적으로 그런 어려움도 있었네요. 인터뷰이들을 어렵게 모셨는데, 제한된 시간에서는 모든 이야기를 담기가 어렵잖아요. 50분 다큐에 한 두 세문장 정도 나오실 수 있는데, 저희가 조사를 할 때에는 평균적으로 3시간 정도 인터뷰를 했거든요. 진짜 좋은 말씀이 많았는데, 그걸 다 못 담아내서 너무 아쉬워요. 다만, 저희가 그래도 최대한 모든 분들의 인터뷰를 담아내려고 노력했어요. 이번 작업에서 낭비가 거의 없었거든요. 인터뷰 등을 나갔던 모든 자료들을 다 썼고, 한두 컷이라도 담으려 했죠. 근데 딱 한 분 전반적인 톤과 약간 달라서 못 쓴 분이 있었어요. 방송 나가기 직전까지 어떻게든 녹여내려 고민했는데, 안 돼서 방송 전에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어요. Q. 말씀하신 것처럼 세 부가 사실 각기 다른 성격으로 구성되어 있다보니까 에피소드 별 비하인드도 다를 것 같은데요. 이경혁 자문위원: 맞아요. 저도 궁금했던 것이, 1부에서 인트로가 충격적이었잖아요? (웃음) 사람들이 말로만 하던 ‘고인의 생전 최고의 플레이를 보시겠습니다’를 직접 그려내니까. 그런데 해당 장면을 촬영하는 배우들은 자기가 뭘 찍는지 아나요? 예를 들어 목사님은 이게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아시는 걸까? 그런 점에서 저는 PD님이 어떻게 디렉팅을 했을까 궁금하더라고요. 박진우 PD: 저희가 앞부분 대본을 드리고, 감추는 것은 없었어요. 있는 그대로 다 이야기를 했는데, 다만 밈에서 출발했던 것까지 정확하게 이해하신 분들은 많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특히 어르신 출연자들도 있고 했었으니까. 한 30대 중후반쯤 되시는 남자 배우 분만 아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디렉팅은 그런 거죠. ‘상상도 못했던 걸 봤다고 생각하고 놀래 달라’ 이경혁 자문위원: 아무래도 다 알고 연기하시긴 어렵겠죠. 아, 그 ‘전용준 게임’은 따로 외주 제작한 건가요? 박진우 PD: 네 맞아요. 따로 게임 개발하시는 분을 컨택해서 제작을 했죠. 저희 나름 그 게임 진짜 신경 많이 썼습니다. (웃음) 다큐멘터리가 그냥 한 편의 다큐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체험을 할 수 있는 다큐였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의 확장선이었던 거죠. 영상이라는 일방향적인 매체의 한계를 벗어나보고 싶었고, 그 안에는 나름 많은 비밀과 다큐에서 나왔던 내용을 곱씹어 볼 수 있는 장치들 등을 세밀하게 조정을 하고자 했습니다. 진짜 공을 많이 들였죠. * 다큐프라임의 ‘게임의 신’ 게임 출시 공지. 전용준 게임은 http://www.ebsgodofgame.com에서 바로 접속할 수 있다. 이경혁 자문위원: 이게 진짜 이스터에그가 많더라고요. 박진우 PD: 네. 그런 비밀을 감춰놓음으로써, '게임이 재미를 발생시키는 원리'를 직접 느껴보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만들었거든요. 처음에 화면을 켜면 튜토리얼이 짧게 한 장으로 나오는데, 진짜 미니멀하게만 짜놨고, 어떻게 해야 고득점을 하는지, 고득점을 받으면 어떻게 집계가 돼서 뭘 하는지 이런 규칙은 일부러 다 감춰놨어요. 그걸 찾아내는 게 일종의 재미를 발생시킨다고 봤기 때문이죠. 이경혁 자문위원: 나도 그 의도를 보고 그게 게시판이 좀 올라오길 바랐어요. ‘이 게임 고득점 뽑는 법’ 뭐 그런 걸로요. 이런 게 어디에 글이 올라와야 재밌는 거니까요. 그래서 기회가 되면 사람들이 더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아직도 액티브 되어 있죠? 박진우 PD: 네. 한 3년 정도 서버비를 내놨습니다. 제 사비로... (웃음) 그리고 이야기 나온 김에 3부 마지막에 가상의 미술관도 실제로 둘러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놨거든요. 그런데 그것도 공들인 것에 비해서 사람들이 많이 안 보셨더라고요. 이경혁 자문위원: 그것도 3년치 서버비를 넣어뒀나요? 사비로? 박진우 PD: 네 (웃음) (가상 미술관은 https://www.ebsgamedocu.co.kr 주소로 접속할 수 있다) 이경혁 자문위원: 그리고 1부에서는 ‘바람의 나라’가 메인이 되고, 송재경씨가 거울에 나오잖아요? 세 게임 중에서 맨 처음으로 바람의 나라를 배치한 이유가 있나요? 박진우 PD: 음. 아무래도 제 유년 시절의 일부분을 책임졌던 게임에 대한 리스펙이 크죠. 이경혁 자문위원: 그래서 저는 바람의 나라 세대가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바람의 나라와 송재경씨가 가지는 의미가 또 특별하겠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지점에서 또 중요한 것이 거울에 관한 지점일 것 같은데요. 거울은 왜 쓰셨나요? 박진우 PD: 우선은 인터뷰 공간에 대한 고민이 좀 있었어요. 인터뷰 샷이라는 게 사실 다양하게 보이지만, 한국에서 전문가들이 나온다고 했을 때 한정적이거든요. 사무실 혹은 집무실, 교수님 방 이런 공간이 가지고 있는 넓이나 장면이 너무 뻔하고, 각도도 제한적이어서 어쨌거나 좀 다르게 구성하고 싶다는 게 출발이었어요. 다만 저희가 전문가 선생님들을 직접 찾아 뵙고 촬영을 하는 형태니까, 인터뷰 샷에 통일감을 줄 수 있는 공통의 오브제가 하나 있어야 되겠다 싶었고요. 그게 게임에 대한 무언가면 더욱 좋겠죠. 다만 뻔하게 콘솔 패드나 키보드 마우스 모니터 등을 쓰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굉장히 고민을 하다가 떠올린 게, 게임에 대한 메타포로서의 거울이었어요. 거울이 우리를 비추듯, 게임이 우리 자신을 반영하기도 하고, 거울에 우리를 투영하기도 하고... 일상에 함께하면서도 저 너머의 현실과 꼭 닮았지만 완전히 현실이라고도 할 수 없는 무언가. 그런게 게임이라고 봤기 때문에 거울이 굉장히 잘 어울린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사각의 프레임이라는게 시각적으로 활용하기도 좋았고요. 자막을 넣는다거나, 거울에 비친 인물에 게임의 일부를 합성한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쓰기에 좋았죠. 아울러 지금 생각해보니, 이런 ‘사각 프레임’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경혁 선생님이 쓰신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이라는 책의 제목과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네요. 매체로서 게임을 바라본다는 차원에서 더더욱 그렇네요. 이경혁 자문위원: 무대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2부의 세팅이 또 굉장히 재밌잖아요. 제가 볼 때에는 온스테이지 공간의 느낌이 들던데, 어떤 기획이었나요? 박진우 PD: 온스테이지와 같은 공간이냐고 물어보시면, 완전히 같은 공간은 아니고요. 요새 호리존트(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음새 없이 만들어 놓은 세트 벽면)에 조명을 넣는 방식으로 공간을 채우는 영상들이 되게 많아요. 아마 처음에는 공중파의 세트 규모를 소규모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이 따라가기는 힘들어서 차용한 방법일 것 같은데, 그런 것들이 이제는 오히려 역으로 공중파에 영향을 많이 미치죠. 왜냐하면 그것들이 일종의 공통감이라는 걸 만들어내거든요. 예를 들면 90년대 영상들을 보면, 편집의 호흡이나 샷의 크기 이런 것들이 미묘하게 지금 되게 다르거든요. 이런 감각이 결국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공통감에 기반을 둔다고 하면, 유튜브 콘텐츠에서 나오는 배경들이 지금 공통감의 영역에 올라섰고, 그런 지점에서 온스테이지 같은 느낌을 좀 받으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저도 온스테이지의 팬입니다. 제가 예전에 뮤직박스라고 어린이 프로그램을 했었는데, 거기에 음악 공연을 보여주는 구성이 있었거든요. 당시에 온스테이지를 많이 참고했고 훈련된 면들이 있지요. 이번 다큐에서는 최대한 심플하게 가면서도, 인상적인 비주얼을 만들고자 했고요. 거기도 이제 보면 사람들을 상징할 수 있는 요소들을 하나씩, 가령, 집이라든지 음표라든지 이런 것들을 넣기로 했었어요. 사실 그 거울도 되게 비싼 겁니다. (웃음) 거의 한 100만 원 되는 거울인데, 인터뷰를 위해서 샀어요. 사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다 말렸었고, 제가 귀가 얇은 편이라 웬만하면 사람들이 말리면 안 하거든요. 그런데 그거는 해야 한다고 우겨서 넣었어요. (웃음) 그래도 결과물을 보고 다들 만족해서 다행이에요. 이경혁 자문위원: 저는 2부 마지막에 4명 부감 잡는 장면에서 무대 세팅에 놀라움을 느꼈는데요. 아마 저만 그렇게 느끼진 않았을 것 같아요. * 위에서 찍었을 때, Game을 나타낸 무대효과. 이경혁 자문위원: 3부서는 예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사실은 결론을 명확하게 내리지는 않잖아요. 결론을 강하게 가져가지 않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까요? 박진우 PD: 부담이 없었다고 하면 사실이 아니겠죠. 근데 그게 결론을 굳이 내리지 않아도 되는 종류의 이야기라고 생각을 했어요. 물론, 강하게 이야기 해볼 수는 있었겠죠. 예를 들어, 다큐에 나왔던 표현을 좀 빌리자면 “게임의 상호작용이 예술이다”, “우리는 그렇다고 생각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걸 보면서 반대 의사를 가지신 분들의 말씀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무엇보다 저는 이 주제가 논리적으로 설득할 게 아니라, 그냥 다름을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분들이 자연스럽게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런 생각의 단초들을 제공하는 것만으로 우리 다큐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을 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고, 그런 면에서는 이루려고 했던 소기의 성과들을 조금 이뤘던 것 같아요. 이경혁 자문위원: 또 절묘하게도 화두를 던지는 엔딩이 더 의미가 있었던 모종의 시대적 배경이 있었잖아요? 사실 우리가 논의할 때만 해도 그런 이야기가 없었죠? 박진우 PD: 맞아요. 9월 7일에 ‘문화예술’의 범위에 게임을 추가하는 내용의 문화예술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죠. 8월 초부터 뉴스에 ‘이번에 국회 본회의 통과가 유력하다’고 나왔던 것 같은데, 그걸 처음에 봤을 때는 약간 식은 땀이 흘렀죠. (웃음) 지금은 게임이 최소한 법적으로는 예술의 영역 바깥에 있다는 걸 가정하고 이미 다 만들어 놨는데, 갑자기 그 안에 들어온다니요. 반갑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몇 년을 고민한 걸 엎을 수도 없고, 이거를 모른 체하는 것도 이상하고. 그래서 어떡할까 하다가, 생각해보니 오히려 좋은 거예요. 이런 상황을 살리자. 그게 3부에서 다루는 ‘게임과 예술의 관계’라는 게 먼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당장 우리가 마주하고 있고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질문이라는 게 확 와닿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그래서 방송 말미에 자막으로 덧붙였습니다. 박진우 PD: 때가 다행히 잘 맞았죠. 그것도 방송 나가기 직전까지 몰랐던 게 국회 본회의에 법안이 통과되고 나면 그다음에 행정상의 절차라고 보통 얘기를 하는데, 그 이후에 행정부로 이관하고 공포하는 그 두 가지 단계가 남아 있더라고요. 물론 거기서 파기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긴 한데, 그래도 확정이 되어야지 법적으로 효력을 갖는 거니까. 근데 그게 방송 3일 전인가 막 이랬거든요. 그래서 일단 다 써놓고 처리가 되었는지 계속 새로고침하고 그런 초조했던 게 기억이 납니다. Q. 마지막으로 이후에 하시고 싶은 작업을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박진우 PD: 기획하고 있는 여러 가지 아이템 중 하나는 인디 게임 제작기거든요. 한 케이스로 쭉 따라갈 수도 있겠지만, 여러 케이스를 같이 엮어서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고, 이외에도 게임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더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경혁 자문위원: 이번 다큐를 책으로 만들거나 하는 후속 작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박진우 PD: 사실 지금의 3부작만으로는 책으로 출간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아카데믹한 작업들이 진행된 경우가 조금 더 책으로 발간하기 적합할 것 같은데, 그런 의미에서 게임에 관련된 다양한 주제들을 더 탐닉하고 싶어요. 책을 만들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게임 다큐를 하다 보면, 작업물들이 충분히 쌓인다면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소망이 있습니다. 결국 게임 다큐로 좀 더 많은 걸 해보고 싶어요.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비주얼노벨의 미디어믹스 : 무대 위로 소환된 텍스트
하지만 이처럼 익숙한 미디어 믹스의 이동 방식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단순히 인기 IP를 다른 형식으로 재포장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이동 방식에서 중요한 것은 ‘게임의 어떤 요소가 건너가는가’, ‘무엇이 남고 무엇이 새로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이동하는 매체의 형식에 따라 달라지는 층위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 Back 비주얼노벨의 미디어믹스 : 무대 위로 소환된 텍스트 29 GG Vol. 26. 4. 10. 게임의 미디어믹스, ‘슈퍼 마리오’에서 ‘8번 출구’까지 게임은 때로 다른 미디어의 언어를 빌려왔다. 소설의 서사 구조, 영화의 연출 문법, 만화의 이미지와 컷 분할 등 다양한 매체의 언어로 구현되곤 했다. 그렇다면 게임이 다양한 형태의 다른 매체로 건너가는 모습은 어떠한가? 사실 우리는 이러한 풍경을 이미 자주 경험했다. 흔히 말하는 ‘미디어 믹스’가 그렇다.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 애니메이션은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이러한 게임의 변용은 하나의 산업적 흐름으로 자리잡은지도 오래다. 하지만 이처럼 익숙한 미디어 믹스의 이동 방식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단순히 인기 IP를 다른 형식으로 재포장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이동 방식에서 중요한 것은 ‘게임의 어떤 요소가 건너가는가’, ‘무엇이 남고 무엇이 새로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이동하는 매체의 형식에 따라 달라지는 층위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슈퍼 마리오가 극장 애니메이션이 된다고 했을 때, 아무도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마리오는 이미 오래전부터 아이들의 티셔츠나 장난감에도 있어왔고, 유니버설 스튜디오라는 물리적 공간에도 등장하여 게임 바깥에 존재할 수 있는 게임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2023년 개봉한 『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무비』가 전 세계에서 13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며 역대 게임 원작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을 때도, 그것은 놀라운 일이라기보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다. 마리오는 처음엔 단순한 8비트 횡스크롤 방식의 플랫폼 액션 게임이었지만, 마리오라는 IP는 게임의 경계를 넘어 이미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잡아 있었고, 영상화는 그 아이콘의 자연스러운 확장이었기 때문이다. 이보다 꽤 오래 전 실사 영화화 되었던 캡콤의 서바이벌 호러 게임 『바이오하자드』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복잡한 세계관과 인물 관계, 기업의 음모와 생물 병기라는 묵직한 서사를 가진 이 게임은 2002년 실사 영화화 과정에서 원작의 줄거리를 그대로 가져오는 대신 ‘세계관의 차용’이라는 전략을 취했다. 영화는 게임의 세부적인 서사에 얽매이지 않고, 원작이 구축해둔 호러 환경과 설정을 토양 삼아 오리지널 서사를 만들어낸 것이다. 즉, 스토리가 건너간 것이 아니라 원작 게임이 설계해둔 ‘세계관’ 자제가 새로운 이야기의 무대가 된 것이다. 2025년 일본 실사 영화 시장을 뒤흔든 『8번 출구(8番出口)』의 사례는 게임의 미디어믹스의 또 다른 가능성을 시사했다. 명확한 스토리도, 입체적인 캐릭터 서사도 없이 무기질한 지하 통로를 걷는 ‘규칙’과 ‘이변’이 전부였던 이 인디 게임을 실사화한 영화가 어떻게 개봉 3일 만에 흥행 수입 9억 5천만 엔을 돌파하며 2025년 일본 실사 영화 1위에 오르고, 칸 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될 만큼 강력한 영상 매체로 변모할 수 있었을까? 오히려 영화는 원작에서 가져올 서사가 없었기 때문에 게임이 설계한 ‘무한 루프의 공포’와 ‘공간적 압박감’이라는 순수한 감각에 집중했다. 미디어믹스가 원작에서 가져온 것은 텍스트나 서사가 아니라, 게임이라는 형식이 만들어내는 감각 그 자체였던 셈이다. 반대로, ‘스토리가 전부’인 게임은 어떠한가? 비주얼노벨은 게임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플레이어가 실제로 하는 일의 대부분은 읽는 것이다. 그 본질은 텍스트의 향유에 있다. 화면을 채우는 텍스트와 배경 이미지, 표정 정도만 변화하는 고정된 캐릭터 일러스트, 장면의 정서를 받쳐주는 음악과 효과음 등이 스토리를 이끌어나가는 게임. 『8번 출구』와는 정반대의 자리에 있는 장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비주얼노벨의 미디어믹스는 전혀 다른 질문을 만들어낸다. 이미 완성된 텍스트를 다른 매체로 옮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만약 그 도달지가 영상 매체가 아니라, 현장에서 배우와 관객의 호흡이 실재하는 연극 같은 오프라인 무대라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읽는 게임, 경계 위의 장르 비주얼노벨은 다소 기묘한 위치가 있는 장르다. 플레이어의 조작은 최소화되어 있고, 게임 경험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이야기다. 그래서 비주얼노벨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종종 “이것이 과연 게임인가” 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곤 한다. 하지만 이 질문이야말로 비주얼노벨이라는 장르의 본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비주얼(Visual)과 노벨(Novel), 비주얼노벨이라는 이름 자체가 이미 경계의 모호함을 안고 있다. ‘이미지’와 ‘소설’이라는 이질적인 문법을 동시에 차용한 이 형식은 게임과 문학, 만화 사이의 '경계적 공간'에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복합적인 정체성이 역설적으로 비주얼노벨을 미디어믹스에 가장 최적화된 장르로 기능하게 한다. 이야기를 중심에 두고 있는 장르는 서사 자체가 매체의 중심축을 단단히 붙잡고 있기 때문에, 그 서사를 다른 형식으로 옮기는 것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소설 ‘해리포터’의 서사가 영화 ‘해리포터’를 낳고,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테마파크를 만든 것처럼. 2000년대 이후 일본의 비주얼노벨들은 실제로 활발한 미디어믹스를 전개해왔다. 그 경로는 대체로 일정했다. 원작 게임이 인기를 얻으면 만화화, 이른바 코미컬라이즈(comicalize)가 이루어지고, TV 애니메이션화로 이어지는 방식이다. 동인 게임으로 출발한 『쓰르라미 울 적에(ひぐらしのなく頃に)』는 만화와 TV 애니메이션을 거쳐 실사 영화까지 제작됐다. 마찬가지로 『Fate/stay night』는 애니메이션 시리즈와 극장판, 수십 종의 파생 미디어를 아우르는 거대한 프랜차이즈로 성장했다. 『CLANNAD』와 『Steins;Gate』 역시 애니메이션화를 통해 원작 게임을 접하지 않은 관객들에게까지 그 이름을 알렸다. 이 작품들의 팬 중 상당수는 게임이 아니라 애니메이션을 먼저 접한 사람들이다. 이 일련의 흐름에는 공통된 방향성이 있다. 텍스트에서 영상으로, 정지된 이미지에서 움직이는 이미지로 옮겨가는 것이다. 독자가 상상하던 장면이 실제로 움직이고, 영상 매체의 문법에 맞는 연출을 통해 화면 위에서 구체화된다. 비주얼노벨이 이미 갖추고 있던 요소들, 캐릭터, 세계관, 서사 구조를 영상 매체가 충실히 계승하면서 새로운 감각적 완성도를 더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경로는 아주 자연스러워서, 비주얼노벨의 미디어믹스란 곧 애니메이션화라는 등식이 거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텍스트가 영상으로 ‘진화’하는 것이라는, 텍스트보다 영상이 고차원적인 매체라는 사고가 장르의 문법에 깊게 박혀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등식은 비단 비주얼노벨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게임이라는 매체 전반에 걸쳐, 미디어믹스는 영상화라는 방향으로 수렴해온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미디어믹스를 조금 더 넓은 시야로 조망해보면, 이 당연해보이는 공식에도 예외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매체가 다른 형태의 매체로 건너가는 모습은 다양한 국가의 산업구조와 문화적 토대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개된다. 나라마다 다른 미디어믹스의 풍경 ‘텍스트에서 영상으로’의 이행은 현대 미디어믹스의 가장 지배적인 문법이다. 서구권에서 게임 미디어믹스의 중심축은 단연 거대 자본을 투입한 OTT 플랫폼 기반의 영상화에 있다. HBO의 『더 라스트 오브 어스』를 필두로 넷플릭스의 『아케인』, 『사이버펑크: 엣지러너』, 그리고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의 『폴아웃』에 이르기까지, 최근 수년간 우리는 게임 IP가 고예산 드라마 시리즈와 애니메이션으로 변모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무비』가 거둔 기록적인 흥행 역시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 작품의 공통점은 게임 IP를 하나의 콘텐츠 자산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탄탄한 세계관과 매력적인 캐릭터를 갖춘 게임은, 이미 검증된 서사적 토대를 지닌 원작으로서 영상 제작자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지가 된다. 서구권의 미디어믹스는 게임이 가진 시네마틱한 연출과 서사 구조를 극대화하여, 게임을 하지 않는 일반 대중에게까지 그 경험을 확장하는 '판타지의 완성'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한국의 미디어믹스 지형은 사뭇 다른 양상을 띤다. 한국 또한 세계적인 콘텐츠 강국이지만, 미디어믹스의 시발점은 게임이 아닌 웹툰과 웹소설에 집중되어 있다. 『신과함께』, 『이태원 클라쓰』, 『나 혼자만 레벨업』 등 성공 가도를 달리는 수많은 영상 콘텐츠의 뿌리는 웹소설의 디지털 활자와 웹툰의 칸 만화에 있다. 한국 게임이 IP로서 미디어믹스의 중심에 서는 사례는 상대적으로 희소하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한국 게임 산업의 특수한 구조가 자리한다. 한국은 오랜 기간 온라인·모바일 게임을 중심으로 성장해 왔으며, 이들은 게임 자체의 서사나 캐릭터의 깊이보다는 '플레이어 간의 경쟁'과 '성장의 시스템'에 최적화된 문법을 지니고 있다. 미디어믹스의 재료가 될 만한 '이야기'보다는 '룰'이 강조되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했던 것이다. 최근 한국도 콘솔 시장의 성장과 함께 스토리 중심 게임의 시도가 늘고 있으나, 여전히 한국에서 게임은 미디어믹스의 '출발지'보다는 웹소설이나 웹툰 같은 다른 IP가 도달하는 '목적지'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나 혼자만 레벨업』이나 『신의 탑』 같은 웹툰 IP가 게임으로 만들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위의 사례들과는 전혀 다른 궤적을 그리는 일본의 사례가 있다. 게임의 애니메이션화와 만화화라는 경로는 일본에서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다른 문화권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산업적 영역이 확고히 구축되어 있다. 바로 게임과 만화,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를 실제 현실 공간인 무대로 소환하는 '2.5차원 무대화'다. 일본에서 무대화는 단순히 팬들을 위한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았다. 이는 연출, 자본, 팬덤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하나의 독립된 산업 체계로 확립되어 있다. 원작의 평면적 이미지를 배우의 육체와 무대라는 입체적 공간으로 번역해내는 이 독특한 공정은, 일본의 미디어믹스 풍경을 다른 나라와 구분 짓는 가장 결정적인 변별점이다. 그리고 이 지점이야말로, 비주얼노벨이라는 '텍스트 매체'가 왜 영상화라는 자명한 경로를 이탈해 무대라는 아날로그적 현장으로 향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무대 위로 소환된 텍스트 일본의 미디어믹스 지형에서 가장 독특한 구획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 ‘2.5차원’이라 불리는 공연 문화다. 만화나 게임 속 평면적인 2차원 캐릭터를 3차원의 실재하는 무대 위에 재현하는 이 형식은, 2015년 ‘2.5차원 뮤지컬 협회’가 설립될 만큼 일본 내에서 견고한 문화적 위상을 점하고 있다. 이 흐름의 기점으로 자주 언급되는 작품은 2003년 초연된 『뮤지컬 테니스의 왕자(テニスの王子様)』다. 만화적 허용이 가득한 스포츠 연출을 무대적 문법으로 번역해낸 이 작품은, 만화 원작의 캐릭터들을 배우가 직접 연기하는 형식으로 독자적인 팬덤을 형성했고, 이후 수많은 만화·애니메이션·게임 IP가 무대화의 길을 따랐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비주얼노벨이 이러한 흐름 안에서 무대화와 특히 잘 맞는 장르라는 점이다. 연극의 최소 단위가 인물과 대사라면, 비주얼노벨 역시 인물 간의 관계성과 텍스트 중심의 서사 구조를 뼈대로 삼는다. 다른 게임 장르들에서 돋보이는 화려한 시네마틱 영상이나 복잡한 물리 엔진 대신, 정지된 배경 위로 흐르는 대화와 심리 묘사에 집중하는 비주얼노벨의 장르적 특성은 무대의 언어로 번역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실제로 최근 도쿄에서 공연된 『괭이갈매기 울 적에』 무대판은 비주얼노벨의 무대화가 영상 매체의 무대화와 어떻게 다른 문법으로 작동하는지 보여준다. 연극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풀어야 했던 가장 중요한 문제가 관객이 기억하는 애니메이션의 ‘동적인 이미지를 물리적으로 어떻게 재현(Representation)할 것인가’에 있었다면, 비주얼노벨 원작의 무대는 그 방향이 사뭇 다르다. 여기서는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를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평면적인 텍스트와 정지된 일러스트로만 존재하던 가상의 존재에게 처음으로 구체적인 신체와 시간성을 부여(Enactment)하는 작업이 핵심이 된다. 이러한 무대화는 다른 미디어믹스와 근본적으로 다른 조건 위에 서 있다. 애니메이션화가 원작의 감각적 경험을 시각적으로 확장하여 보편적 향유를 돕는다면, 무대화는 오히려 디지털의 가변성을 아날로그의 일회성으로 되돌린다. 게임에서는 세이브와 로드를 통해 언제든 실패를 교정하고 서사를 재시작할 수 있지만, 무대 위의 공연은 막이 오르고 내리는 그 찰나의 시간 안에서만 존재하며 끝나면 소멸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에서 가오나시가 괴물로 변해가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애니메이션에서는 그 변화가 유려한 작화와 매끄러운 프레임으로 표현됐다. 무대 위에서는 검은 옷을 입은 배우 여럿이 검은 천 안에서 천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펄럭이며 그 부피를 점점 불려갔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역시 검은 옷의 배우들이 작은 하얀 종이 새를 연 날리듯이 천장을 향해 밀어 올리고, 날갯짓 하나하나를 사람의 손으로 구현해냈다. 비주얼노벨의 무대화는 방향이 반대다. 정지된 텍스트와 이미지로만 존재하던 것에 처음으로 신체와 시간성을 부여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괭이갈매기 울 적에』 무대에서 원작 게임의 추리 대결 장면은 이렇게 구현됐다. 원작 게임에서는 그저 두 캐릭터가 붉은 텍스트와 파란 텍스트로 추리를 주고 받던 장면이었다. 무대에서는 검은 옷을 입은 배우들이 종이판을 들고 무대 위를 빠르게 이동하며 종이판 위로 붉은 글씨와 파란 글씨를 빔으로 쏘고, 텍스트가 총알처럼 공간을 날아가 서로를 공격하는 연출로 재구성됐다. 화면 속에서 눈으로만 읽던 언어가 배우의 몸을 빌려 공간 안에서 물리적인 속도와 무게를 얻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IP를 널리 알리는 ‘확산’의 논리보다는, 원작의 서사를 이미 내면화한 팬들에게 그 이야기를 다른 차원의 감각으로 재경험하게 하는 ‘전환’의 논리에 가깝다. 비주얼노벨의 무대화는 영상화가 제공하는 시각적 쾌감과는 또 다른, 배우의 육체와 관객의 호흡이 부딪히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현장감의 마찰’을 활용한다. 더 많은 관객에게 퍼져나가는 확산성보다는, 기존 경험의 층위를 다각화하려는 시도로서 무대화는 기능한다는 것이다. 마치며 : 매체의 경계 너머에서 미디어믹스의 성공 여부는 그 결과물이 원작의 명성을 얼마나 소비했느냐가 아니라, 관객으로 하여금 다시 원작 게임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게 만들었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극장을 나서며 다시 게임을 켜고 싶어졌다면, 그것은 새로운 미디어의 언어가 원작이 가진 가치를 훌륭하게 재발견해냈다는 증거다. 슈퍼 마리오가 애니메이션 영화가 되고, 스토리 없는 인디 게임의 실사 영화가 칸 영화제의 스크린에 걸리고, 텍스트와 일러스트로만 존재하던 캐릭터가 무대 위에서 실제 몸을 얻어 걷고 말하는 시대다. 가장 디지털화된 게임 속 상상력의 공간이 가장 아날로그적인 현실의 무대가 되고, 게임 속 캐릭터가 실제 인물이 되어 관객들에게 말을 거는 시대인 것이다. 이제 게임은 더 이상 하나의 매체 안에 고립된 섬이 아니다. 게임은 타 매체의 언어를 빌려 스스로를 증명하고, 어떤 매체들은 게임이 가진 몰입의 문법을 활용하기 위해 다시 게임의 형태로 돌아온다. 이러한 순환 안에서 미디어믹스는 단순히 IP를 반복 소비하는 산업적 전략을 넘어, 하나의 이야기가 서로 다른 매체적 환경 속에서 얼마나 다양한 형식으로 생존하고 변주될 수 있는지를 묻는 끊임없는 실험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다시 게임을 켜고, 미디어의 경계를 넘어 계속해서 살아남을 이야기의 힘을 발견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콘텐츠연구자) 이미몽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닌텐도 게임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몇 개월 전 스팀덱을 할부로 구매하여 열심히 즐기고 있습니다. 경희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선 문화매개를 전공했고, 현재는 일본의 리츠메이칸 대학교 첨단종합학술연구과 박사과정에 재학중 입니다. 게임과 웹툰 등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와 문화를 연구합니다.
- 리눅스와 함께 춤을: 시뮬레이션에 체증 유발하기
그렇다면 한 줌도 안 되는 리눅스 데스크톱 점유율이 뭐가 중요하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웹 브라우징을 넘어서 결제까지도 클라우드에 기반한 LLM 에이전트에 맡기라고 압박하는 바야흐로 총체적 ‘ 자동 사냥’ 의 시대 아니던가. 에이전틱agentic OS를 부르짖으며 너의 컴퓨터는 그저 LLM이 수행한 결과들을 출력해 주는 단말기에 불과하니 잔말 말고 코파일럿의 세례를 받으라는 ‘ 권유’ 를 사실상 명령처럼 따라야 하는 현실 아닌가. < Back 리눅스와 함께 춤을: 시뮬레이션에 체증 유발하기 29 GG Vol. 26. 4. 10. 그날이 오면 * 드디어 리눅스의 해가 밝았다 리눅스 유저들 사이에는 오래된 농담이 하나 있다 . 바로 올해야말로 리눅스 데스크톱의 해라는 것이다 . 하지만 ‘ 진정한’ 리눅스 데스크톱 생태계의 현현은 마치 영원히 도래하지 않는 메시아처럼 계속해서 지연된다. 그리하여 2025년은 (윈도우 10의 지원 중단 여파와 함께 ) 리눅스 보급률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리눅스 데스크톱의 해임이 틀림없었지만, 2026년이야말로 진정한 리눅스 데스크톱의 해라고 봐야 한다. 당연히 2027 년 역시 매우 강력한 후보다. 아니, 어쩌면 2028년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비로소 리눅스 데스크톱의 해에 이르렀음을 사후적으로 깨달을지도 모른다. 관건은 그날이 반드시 (언젠가는) 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농담에는 또 다른 한 겹의 아이러니가 덧대어 있다. 데스크톱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면 이미 전 세계는 리눅스가 ‘ 돌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클라우드 서비스인 (윈도우 서버를 보유한) 마이크로소프트의 Azure마저 자사 고객의 61.8%가 리눅스를 이용한다고 답한다. 세계 최대의 서비스인 AWS(아마존 웹 서비스)와 3위인 구글 클라우드의 경우 각각 83.5%와 91.6% 라는 압도적인 비율을 선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최상위 500개의 슈퍼컴퓨터는 전부 리눅스 생태계에 기반한다. i 물론 리눅스의 음모(?)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제는 거의 필수 공공 인프라의 대명사가 되어서 집이든 상업시설이든 어디에나 한 대씩은 꼭 배치되어 있는 인터넷 라우터의 펌웨어들 대부분은 리눅스 커널 ii 에 기반한다. 스마트 티비를 위시한 온갖 자잘한 ioT 디바이스들 역시 대부분 리눅스라고 봐야 한다 . 클라우드를 제외하고라도 사람들이 무심코 이용하는 인터넷 서비스의 서버들 상당수는 리눅스일 확률이 높다. 무엇보다도 전 세계 모든 스마트폰의 OS 중 70%를 담당하는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 자체가 (수정된) 리눅스 커널에 기반한 시스템이다. 즉 리눅스는 우리 일상의 백엔드 backend 프로세스를 완벽히 장악했다. 그렇다면 한 줌도 안 되는 리눅스 데스크톱 점유율이 뭐가 중요하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웹 브라우징을 넘어서 결제까지도 클라우드에 기반한 LLM 에이전트에 맡기라고 압박하는 바야흐로 총체적 ‘ 자동 사냥’ 의 시대 아니던가. 에이전틱agentic OS를 부르짖으며 너의 컴퓨터는 그저 LLM이 수행한 결과들을 출력해 주는 단말기에 불과하니 잔말 말고 코파일럿의 세례를 받으라는 ‘ 권유’ 를 사실상 명령처럼 따라야 하는 현실 아닌가. 그럼에도 그 모든 프로세스의 뒤에 리눅스가 있다면 그것은 FOSS(Free and Open Source Software)의 승리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러한 즉각적인 반문들을 다시 즉각적으로 튕겨내지 않고 끌어안은 채 새로운 지점으로 가기 위해서는 오픈 소스 생태계의 현 상황을 잠시 경유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게임은 이 맥락에서 뜻밖의 병목을 야기한다. 클라우드라는 건 없습니다. 그건 그저 다른 사람의 컴퓨터일 뿐이죠 * ???: 코파일럿 어택! IT에 관심이 많다면 위의 그림 iii 과 같은 밈을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밈마다 조금씩 디테일은 다르지만, 핵심은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거의 모든 디지털 인프라의 (주로 빅테크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들이 사실은 매우 불안정한 기반 위에서 유지되어 왔으며, 그 기반에는 (많은 경우) 별다른 금전적 대가 없이 일하는 수많은 오픈 소스 개발자들이 있다는 이야기다. 오픈 소스 생태계 특유의 강한 자유지상주의적libertarian 색채는 많은 사람이 자유롭게 그 기반 위에서 실험할 수 있는 토양과 함께 열려 있는 생태계를 악용하는 비지니스적(?) 자유 iv 마저 허용하는 관대함으로 현재의 거대한 IT 산업을 촉발했지만, 동시에 이미 첨예한 노동의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이러한 긴장 관계를 가장 압축적으로 잘 보여주는 사례가 최근에 불거진 오픈 소스 프로젝트 FFmpeg의 운영자들과 구글의 보안 전문가들(Project Zero팀) 사이의 다툼이다 .v 발단은 프로젝트 제로 팀이 바꾼 두 가지에서 시작한다. 하나는 Big Sleep이라는 새로운 AI 버그 헌터를 가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찾아낸 버그를 공개하는 시기를 좀 더 타이트time-sensitive하게 바꾼 일이다. 이는 소프트웨어의 취약점이 발견되는 속도를 (그 취약점이 실제로 타당한가 와는 별개로) 훨씬 가속했을 뿐만 아니라 그 리포트를 받은 오픈소스 개발자들이 버그를 고치는 작업과 관련해서 인위적으로 촉박한 마감 시한을 새로 만들어내는 효과를 창출한다. 문제는 구글이 버그를 리포트하고 빨리 고치라고 압박할 뿐, 이미 대부분이 무보수로 불철주야 일하고 있는 FFmpeg의 운영자들에게 별다른 기여를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FFmpeg은 비디오/이미지/음악 트랜스코딩에 관한 한 유튜브뿐만 아니라 크롬 브라우저에서도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프레임워크이다. 즉 구글은 자사의 주요한 서비스들이 완전하게 의존하고 있는 오픈 소스 프로젝트를 마치 악랄한 플랫폼 기업이 긱gig 노동자들 부리듯이 대하고 있는 셈이다. 당연하지만 FFmpeg의 운영자들은 화가 나서 버그를 리포트하려면 패치도 같이 배포하는 식으로 프로젝트에 기여를 하든가 , 수천조 원 규모의 기업이 지금 이게 무슨 짓거리냐고 공개적으로 저격을 했다. 그런데 이러한 명확한 대립 구도 만으로 이 밈을 ‘ 해석’ 해 버리고 만다면 우리는 여기서 좀 다른 방향으로 가지를 뻗을 기회를 놓치게 된다. 이미지는 언제나 언어를 초과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층층이 쌓여 올려진 각기 다른 레이어들이 점점 가중되는 추상화abstraction의 연쇄로 재배치되는 어떤 수직적 감각이 있다. 바꿔 말하면 해저 광케이블의 레이저로부터 주머니 속 스마트폰 앱까지의 여정에는 수많은 단절 /재배치의 순간들이 존재한다고 표현해 볼 수도 있다. 이 구조는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려는 자연스러운 행위를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따라서 그림의 최상단에 위치하는 (하지만 생략된) ‘유저’ 들은 기이한 착취 구조 속에 던져진 오픈 소스 개발자들과 거울상처럼, 추상화가 더해질수록 조금씩 더 자신을 둘러싼 (디지털) 환경에서 소외된다. 추상화는 IT를 포함한 디지털 인프라의 스케일과 안정적인 작동을 고려해 볼 때 어느 정도 불가피한 과정이다. 당장 하드웨어/소프트웨어의 분리부터가 추상화의 결과다.vi 그러나 빅테크 중심의 클라우드 생태계 재편에 더해서 LLM이라는 터보 엔진을 장착한 최근의 가속화된 추세는 단순하게 스와이핑할 수 있는 스크린 인터페이스마저 유저들의 ‘ 경험’ 에 반하는 방해물로 인식한다. vii 이 시점에서 이상적인 유저란 초보적인 UI와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당한 채로 새로운 AI 모델의 훈련과 매우 정교한 광고 타게팅에 쓰일 사적인 데이터를 추출 당하는 개별적인 노드node로서만 존재할 수 있다. 시뮬레이션 가설 viii 과 같은 흥미로운 사고 실험이 가지는 가장 큰 역설은 그러한 인위적인 가설을 세울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이미 고도로 추상화된 시뮬레이션으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이다 . 어느 날 갑자기 FFmpeg의 운영자들이 모두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겠다는 발표 ix 를 하더라도 매일 같이 유튜브를 시청하는 수억 명의 사람 중 대다수는 ‘ 어쩌라고’ 와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 시뮬레이션을 렌더링하는 기계 자체에서 벌어지는 문제에 대해서 시뮬레이션 내부의 대상이 뭘 어찌 할 도리는 없으니까 . 관건은 거듭되는 추상화로 인한 심리적/물리적 거리감과 시뮬레이션의 주도권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림에서 가장 아랫단에 자리 잡고 있는 리눅스 서버를 설령 윈도우 서버로 바꾸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다. 그저 다음 AI 쇼츠가 딜레이 없이 재생되는 한 모두가 행복할 것이다. 소화 불량에 걸린 시뮬레이션 Welcome to the real world. * 산 넘어 산 흥미로운 것은 그 자체로 시뮬레이션이기도 한 게임이 또다른 거대한 시뮬레이션이 되어 가고 있는 디지털인프라 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유발하는 병목이다. 이는 게임에 어떤 고귀한 목적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기술적인 한계로 인한 부수 효과에 가깝다. 클라우드 게이밍이 아무리 계속해서 발전한다고 해도 빛의 속력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기술이 등장하지 않는 이상 유저가 입력한 인풋이 서버로 전송됐다가 출력으로 다시 돌아오는 그 길고 긴(?) 여정에 걸리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근미래에 (6G를 넘어서) 7G 통신이 등장하거나, 우연히도 클라우드 게임 서버가 위치한 데이터 센터 바로 옆 동네에 산다고 해도 마찬가지의 이야기다. 그 어떤 것도 로컬에서 내 클릭이 바로 앞에 있는 기기로 전달되는 엄청나게 짧은 시간으로부터 산출되는 인풋렉input lag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그뿐만 아니라 클라우드 게이밍은 수많은 조건절에 의해서 제약받는다. 일단 유저가 게임을 하는 공간에 매우 일관되게 높은 대역폭의 안정적인 인터넷이 요구된다. 이 첫 번째 조건을 만족하는 지역부터가 세계적으로 손에 꼽을 정도다. 만약 예고도 없이 장기간에 걸쳐 서버에 문제가 생긴다면? 구독료를 지불한 유저들은 꼼짝없이 인질이 된다. 혹은 구독료가 갑자기 심각한 수준으로 오른다면? x 구독을 끊는 순간 그 방대했던 게임 라이브러리는 (엔비디아 지포스나우의 경우) 그림의 떡만도 못한 애물단지로 전락하거나 (게임 패스의 경우)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2026년인 지금도 대부분의 게이머는 마치 원시인들처럼 기기의 열을 배출하는 시끄러운 팬 소리를 들으며, 게임을 로컬에서 직접 돌린다. 게임을 로컬에서 실행한다는 말은 필요하다면 하드웨어 레벨에서라도 직접 개입해서 게임이 왜 잘 안 돌아가는지 문제점을 찾는 식으로 어느새 끊임없는 ‘ 돌봄’ 에 익숙해진다는 의미다. 팬에 쌓여 있는 먼지를 털어 내는 소소한 행위조차 그저 내가 말만 하더라도 모든 것이 알아서 작동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 고도로 추상화된 세계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우리가 배달앱을 누르는 순간 밑도 끝도 없이 허공에서 음식이 3D 프린팅 되는 것이 아니듯이, 게임을 실행하는 순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그저 화면이 켜지면서 게임이 마법처럼 작동한다고 믿는 것은 클라우드 사업자의 망상wet dream일 뿐이다. 게이머들은 오로지 게임이 좀 더 원활히 실행됐으면 하는 일념 하나로 자신이 다루는 기기를 거의 무의식적으로 구석구석 체화한다. 어쩌면 그 단순함이 우리를 추상화의 늪에 완전히 빠지지 않도록 지탱해 주는 버팀목일지도 모른다. 믿기지 않겠지만 리눅스 데스크톱 역시 정확히 같은 원리로 디지털 인프라가 구현하는 시뮬레이션에 변비를 초래한다. (어떤 배포판이든) 리눅스 운영 체제가 인스톨이 끝나자마자 아무런 이슈도 없이 매끄러운 동작을 선보여야 한다는 나이브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면 지금 당장 macOS한테나 뛰어가서 울먹이며 안아 달라고 찡찡대길 바란다. 물론 (반쯤은) 농담이다. 하지만 게임과 마찬가지로 돌봄에 익숙해질수록 리눅스는 추상화가 남기고 간 단절/재배치의 흔적들을 좀 더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것에 있어서 매우 큰 도움을 준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DNS 네임 서버부터 게임 내 AI 어시스턴트 UI에 이르는 마치 주술 같은 경로들을 실제로 작동하는 지도로 그려보기 시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리눅스와 게임은 개별적으로만 존립할 필요가 없다. 리눅스 게이밍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 리눅스콘LinuxCon에서 게이브 뉴웰은 그의 연설 도중 리눅스는 게이밍의 미래라고 선언했다. xi 홍보 활동의 일환으로 선언만 하고 곧바로 잊어버리는 여타의 CEO들과는 다르게 게이브는 그의 사업적 비전에 진심이었고, 그 결과물은 리눅스 게이밍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밸브가 직접 그 분야와 관련된 오픈 소스 개발자들을 조직해서 (넉넉한 임금을 주면서) 전폭적으로 지원했던 프로톤Proton xii 은 출시 직후부터 리눅스 게이밍에 관한 한 없어서는 안 될 핵심적인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또한 그 과정 전체가 기업이 오픈 소스 프로젝트와 어떤 방식으로 협업해야 하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모범 사례가 되었다 . 프로톤은 여전히 오픈 소스이다. 자연스럽게 밸브 이외에도 다양한 개발자들이 그들만의 프로톤을 발전시킨 덕에 현재는 매우 활발한 하나의 생태계로 진화하였다. 2026년의 현시점에서 프로톤이 실행하지 못하는 게임은 커널 레벨 안티치트kernel-level anti-cheat xiii 가 적용된 몇몇 멀티 플레이어 게임들 정도로 매우 제한적이다. 게임과 관련해서는 언제나 주도권을 쥐던 어떤 회사의 OS가 점점 더 어떻게 하면 유저들이 원치도 않는 AI를 억지로 떠먹일 수 있을까만을 고민할수록 xiv 리눅스 데스크톱은 게이머들 사이에서 더욱더 매력적인 대안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xv 안타깝지만 리눅스 커뮤니티에는 가식적인 미소를 띤 macOS가 주는 “ 더 스마트하게 일하고, 더 열심히 노세요” 따위의 격려는 존재하지 않는다 . 오히려 리눅스는 ‘ 환불의 심판자, 군다’ 가 지키고 있는 <다크 소울 3>의 황량한 튜토리얼 지역을 떠올리게 한다. 이곳은 가혹한 공간이지만 어쨌든 당신이 튜토리얼을 클리어한다면 나도 당신에게 ‘ 세계’ 를 보여주겠다고 약속하는 그 묘한 방식의 공평함 말이다. 군다를 클리어한 이후라고 해서 갑자기 게임의 배경이 화사한 꽃밭으로 변하는 기적은 벌어지지 않는다. 이어지는 길은 우중충하고 매우 다크하며, 또 여전히 가혹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나아간다. 그리고 정말 세계를 보게 될 것이다. 리눅스에 온 것을 환영한다. i Robert A. Lee, “Linux Statistics 2026: Desktop, Server, Cloud & Community Trends” SQ Magazine 2025.11.18. https://sqmagazine.co.uk/linux-statistics/ ii 리눅스에 대한 흔한 오해 중 하나는 리눅스가 단일한 운영 체제라는 말이다. 리눅스 커널kernel에 기반하는 거의 모든 배포판 distribution, distro은 리눅스라고 불린다. 바꿔 말하면 리눅스 생태계에는 수 천개에 달하는 각기 다른 운영 체제가 공존한다는 것이다. 제법 이름이 알려진 우분투, 데비안, 페도라, 아치 등등은 각각 고유한 특색이 있는 서로 다른 운영 체제이지만 모두가 같은 (물론 커널 버전은 제각기 다를 수 있다) 리눅스 커널을 공유한다는 의미에서 리눅스이다. iii RelativeMagazine9902 , “The most accurate one so far” Reddit 2025.11.20. https://www.reddit.com/r/ITMemes/comments/1p1j13f/the_most_accurate_one_so_far / iv Synopsys의 2025년 OSSRA(Open Source Security and Risk Analysis)에 따르면 전 세계 상업용 소프트웨어의 97% 이상이 오픈 소스 프로그램 디펜던시를 가진다. 즉 오픈 소스 없이는 현재의 IT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백조 원에 달하는 상업용 소프트웨어를 소유한 회사들은 필수적인 오픈 소스 프로젝트들에 생색내기 수준의 기부를 하는 것에 그친다. Steven J. Vaughan-Nichols, “Open source isn't a tip jar – it's time to charge for access” The Register 2026.03.25. https://www.theregister.com/2026/03/25/open_source_bill_opinion/ v Hillary Keverenge , “Google vs. FFmpeg — an open-source showdown over AI-found bugs and who must fix them” PiunikaWeb 2025.11.06. https://piunikaweb.com/2025/11/06/google-vs-ffmpeg-open-source-big-sleep-ai-bugs-and-who-must-fix-them/ vi 웜뱃, “불투명한 인터페이스: 연결과 차단 사이” 게임제너레이션 2025.02.10.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071d1e88-2413-4268-b870-7aca7f493876 vii Reece Rogers, “I Let Google’s ‘Auto Browse’ AI Agent Take Over Chrome. It Didn’t Quite Click” Wired 2026.01.30. https://www.wired.com/story/google-chrome-auto-browse-hands-on/ viii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사실은 누군가에 의한 시뮬레이션일지도 모른다는 가정에서 출발하는 철학적 사고 실험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Simulation_hypothesis ix 지금과 같은 불합리한 압력이 계속된다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x Georgia Levy-Collinsand and Peter Gillibrand, “Xbox Game Pass price increase angers players” BBC 2025.10.02. https://www.bbc.com/news/articles/ckgepkwpkg4o xi The Linux Foundation, “LinuxCon & CloudOpen North America 2013 - Linux & Gaming - Gabe Newell, Valve” YouTube 2013.09.18. https://www.youtube.com/watch?v=rCGMiT0CQAI xii 프로톤은 윈도우로 포팅된 게임들을 리눅스에서 실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호환성/번역compatibility/translation 레이어다. 에뮬레이터로 착각하기 쉽지만, 에뮬레이터와는 달리 리눅스와 윈도우 모두 동일한 하드웨어(x86)에 기반하는 것을 전제로 윈도우 API를 리눅스 API로 번역하는 기능을 주로 담당한다. 가상 머신을 통한 추상화가 동반되지 않기 때문에 프레임 하락 폭이 훨씬 미미하며, 때때로 윈도우보다 오히려 더 높은 프레임을 과시한다. Gardiner Bryant, “Is Proton an emulator?” YouTube 2021.08.21. https://www.youtube.com/watch?v=Budl40WgkA0 xiii 커널 레벨 안티치트는 커널 레벨에서 관리자 권한을 행사하면서 거의 말웨어malware처럼 작동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커널에 대한 보안을 중시하는 리눅스와는 이 지점부터 어긋나기 시작한다. Low Level, “i was right (again).” YouTube 2025.08.12. https://www.youtube.com/watch?v=VtHlMTc8lR4 xiv AJ Dellinger, “Microsoft Forced Copilot Into Your Life. Now It Can Accidentally Drain Your Bank Account” Gizmodo 2026.01.08. https://gizmodo.com/microsoft-forced-copilot-into-your-life-now-it-can-accidentally-drain-your-bank-account-2000707721 xv Ethan Gach, “People Are Turning This $1,000 Windows Handheld Into A Super Steam Deck And Getting Way Better Performance” Kotaku 2025.10.23. https://kotaku.com/rog-xbox-ally-x-bazzite-steamos-linux-performance-2000638543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웜뱃 잡다한 일을 하는 프리랜서입니다. 역시 잡다한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게임에는 특히 관심이 더 많습니다.
- 피카츄는 나와 함께 잠드는 것이 기대되는 모양입니다....-<포켓몬 GO>와 <포켓몬 슬립>의 현실 침투 작전
왜 포켓몬 컴퍼니는 ‘수면 엔터테인먼트’라는 처음 들어보는 단어의 조합으로 우리의 수면 습관을 관리하고 싶어 하며, 왜 이 수면 측정 앱은 흥행에 성공했는가? < Back 16 GG Vol. 24.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Minjung Son Studying modern literature and culture at the Graduate School of Sungkyunkwan University. Has always been with games as much as with writing. Plays all sorts of games—every kind there is.
- 나는 아직까지도 현역 게이머 - 레트로게이머 꿀딴지곰 인터뷰
네이버 지식인을 통해 기억에서 희미해진 4,000여 개의 고전 게임을 찾아주고 이제는 유튜브로 영역을 넓혀 꾸준히 활동을 이어온 그는 국내 몇 없는 ‘레트로 게이머’이자 ‘레트로 게임 컬렉터’다. 그를 만나 레트로 게임의 현주소와 그가 생각하는 과거, 현재 게임의 접점을 물었다. 쉼 없이 흘러나오는 전문용어와 자세한 게임의 예시들 그리고 이제 중년이 된 그가 회고한 어린 날의 추억 이야기로 현장엔 웃음이 마를 새가 없었다. 그날의 대화를 정리한다. < Back 나는 아직까지도 현역 게이머 - 레트로게이머 꿀딴지곰 인터뷰 02 GG Vol. 21. 8. 10. 세상에 게임은 많다. 또한 각자가 생각하는 게임의 종류 역시 다르다. 누군가는 스마트폰이 한창 보급화될 때 유행한 ‘후르츠 닌자’를 떠올릴 것이고 또 누군가는 ‘오버워치’, ‘서든어택’과 같은 온라인 총싸움을 제일 먼저 그릴 수도 있다. 9월 9일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오후, 지방의 한 카페에서 만난 레트로 게이머 꿀딴지곰은 “그럼에도 게임은 순환 한다”, 보다 자세히는 “다르지만 같다"라고 말했다. 네이버 지식인을 통해 기억에서 희미해진 4,000여 개의 고전 게임을 찾아주고 이제는 유튜브로 영역을 넓혀 꾸준히 활동을 이어온 그는 국내 몇 없는 ‘레트로 게이머’이자 ‘레트로 게임 컬렉터’다. 그를 만나 레트로 게임의 현주소와 그가 생각하는 과거, 현재 게임의 접점을 물었다. 쉼 없이 흘러나오는 전문용어와 자세한 게임의 예시들 그리고 이제 중년이 된 그가 회고한 어린 날의 추억 이야기로 현장엔 웃음이 마를 새가 없었다. 그날의 대화를 정리한다. * 꿀딴지곰의 활동 캐릭터. Q: 네이버 지식인에서 오랜 시간 활동한 걸로 안다. A: 지금은 유튜브로 넘어간 지 3년쯤 됐다. 지식인은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알게 된 서비스다. 인터넷을 하고 있었는데 누가 게임을 찾아 달라고 글을 올렸더라.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이건 답을 달아줄 수 있으니까 답을 해줬다. 상투적인 문구로 감사를 전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정말로 고마워하는 사람도 많았다. ‘내 인생을 찾아줬다’ ‘잃어버린 나의 무엇을 찾아줬다’ 하는 식으로 아주 고마워하는 마음에 감동을 먹었다. 그때부터 눈에 불을 켜고 답을 달기 시작했다. Q: 그렇게 찾아준 고전 게임이 4,000여 개가 넘는다고... A: 채택된 것만 4,000개가 넘는다. (웃음) 하면서 깨닫게 된 거는 질문하는 사람의 요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다. 보면 질문이 굉장히 주관적이고 중구난방이다. 예를 들어 ‘저 어렸을 때예요’, ‘저 중학교 때예요’ 하는데 나는 그 사람들의 나이를 모르지 않나. 그게 많은 질문자들의 공통점이다. 내가 게임을 많이 안다고 해도 세상의 모든 게임을 알 수는 없다. 다만 머릿속에 어느 정도 정리된 게 있으니까 그 데이터베이스랑 비교해서 비슷한 건 빨리 찾아주고 아니면 구글링을 하고 거기에 여타 힌트들을 더해서 찾아준다. (탐정 같다고 하니) (웃으며) 내 유튜브 이름이 ‘꿀딴지곰의 게임 탐정사무소’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하하. Q: 레트로 게임을 많이 혹은 오래 했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걸 다 기억하는 게 더욱 신기하다. A: 다른 건 기억력이 좋지 않다. 그냥 내 관심사만 기억하는 것 같다. 사람마다 선택적 기억력이 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게임, 서브컬쳐, 애니메이션 이런 거에만 유독 기억력이 좋다. Q: 유튜브 얘기를 좀 해보자. 꽤 많은 영상이 쌓여 있던데. A: 일주일에 하나씩 그래도 100개까지는 올려보자 했고 얼마 전에 100개를 넘었다. 생업 때문에 시간이 좀 오래 걸렸다. 다루고 싶은 주제는 많은데 시간이 안 되다 보니까 자주 올리지 못한다. 유튜브가 또 업로드를 자주 안 하면 노출을 안 시켜준다. 그동안 꾸준히 하긴 했는데 너무 지쳐서 요즘은 살짝 슬럼프다. 충전 시간이 있으면 좋은데 그럴 새가 없었다. 자료조사도 하고 할 게 많으니까... 시간이 좀 필요하다. Q: ‘고전 게임 속 표절 특집’을 재밌게 봤다. 영상에 등장하는 예시들을 다 어떻게 찾았나? A: 게임 영상은 다 내가 직접 플레이해서 캡처 한다. 언급한 표절 특집은 사운드 효과음에 대한 표절을 다룬 건데 원본의 영화나 기타 등등의 영상 자료를 찾느라 시간이 꽤 걸렸다. 예를 들어 ‘골든 액스(Golden Axe)’라는 게임이 있다. 적을 때리면 적이 비명을 지른다. 어느 날 영화 <람보>를 우연하게 보다가 영화 속에서 게임에서 났던 소리와 똑같은 소리가 나더라. 듣고 깜짝 놀랐다. 누가 들어도 저건 골든 액스에서 졸개가 죽을 때 나는 소리였다. 관련 자료를 열심히 구글링을 했다. 그렇게 차츰 자료를 모아서 주제로 다루게 됐다. Q: 어려서부터 게임을 정말 열심히 한 것 같다. A: 기억하는 제일 처음의 게임은 ‘브레이크아웃(Breakout)’, ‘스피드 레이스(Speed Race)’ 그리고 퐁(Pong)의 아케이드 버전이다. 퐁은 스피너 두 개를 돌려서 서로 대전할 수 있는 대전 게임이다. 너무 어렵고 그래서 오래 할 수 없으니까 ‘돈 아깝다’고 생각했었다. (웃음) Q: 현역으로 퐁 오리지널로 실제로 플레이해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은데... A: 나는 내가 게임을 남들보다 많이 했는지도 몰랐다. 그냥 그만큼 세월이 흘러갔다. 나이가 어느 정도 있다 보니까 그 세월 동안 빠짐없이 게임이 채워졌다. 다만 게임에 대해 정리된 어떤 아카이빙이 없는 건 참 답답하다. 특히 학술적인 논문은 거의 없다. 있다 해도 그놈의 게임 중독 사례에 대한 게 대부분이다. 아니면 게임은 유해한 거다, 아니다 하는 뭐 그런 거랑... 게임의 기획적 측면이나 게임 자체의 분석에 대한 자료는 많이 부족하다. 게임을 인문학적으로 분석한 것도 적고. * 꿀딴지곰이 직접 아카이빙한 게임 자료들. 레트로 게임기부터 게임 CD까지 벽장 한 면이 가득 차 있다. Q: 게임 자료의 아카이빙 문제가 꽤 큰 거 같다. A: 국내에 아카이빙은 안타깝게도 없다. 오히려 국산 게임 아카이빙을 외국 사람들이 해놓은 게 있다. 그 자료가 전 세계에 유일무이할 거다. 왜냐하면 굉장히 귀찮은 일이고 자료가 태부족이기도 하고.. 한국 사람들이 정작 이 일을 안 한다. 물론 관심 있는 사람이 몇몇 있다. 언론사에도 있고 기자도 있고. 하지만 책을 쓰려 하지 않고 또 아카이빙까지는 엄두도 안 낸다. 여기저기서 하겠다는 생각은 많이 하지만 아직까지 결과물을 본 적은 없다. Q: 게임 아카이빙에 관한 펀딩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 않나? A: 심지어 대기업에서도 계속 이와 관련된 걸 진행하고 있는걸로 알고 있다. 게임 박물관을 만들겠다고 하는 곳도 있다. 근데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자사 내에 없는 게 문제다. 외부 인력을 고용해서 해야 하는데 전문가가 드물다. 결국 전문가라고 해서 게임 제작 전문가를 초빙하곤 하는데 오히려 이런 일은 게임 제작 전문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차라리 나와 같은 게이머이자 콜렉터가 이런 일을 잘 할 수 있을 거다. 근데 이쪽(콜렉터)으로 잘 접근을 하지 않으니까. Q: ‘마메(MAME, 오락실 게임을 PC에서 즐길 수 있게 만든 에뮬레이터 소프트웨어)’를 보면서 우리가 게임 아카이빙을 한다면 이런 방식이 가장 합리적이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A: 나도 디지털 아카이빙에 관심이 많다. 물론 아직까지 저작권자가 존재하는 게임들의 경우 저작권 문제까지 동시에 해결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아카이빙은 사실상 고전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최후의 보루처럼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나는 실기 유저지만, 실기는 무한하지 않다. 특히 실물 아케이드 자료 같은 경우는 다 망가지게 돼 있다. 기판이 녹슬고 부서져서 결국 못 하게 되는 날이 온다. 영원히 게임을 지속할 수 있도록 디지털로 복원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한때 기판을 모았는데 그러면서 ‘마메’ 같은 디지털 자료의 소중함을 더욱 느꼈다. 예전에는 (마메) 재현율이 약간 떨어졌지만 지금은 90% 이상 똑같다. 그게 너무 소중하다. 어렸을 때 기억에 들어있는 BGM이 똑같이 흘러나올 때의 추억 같은 거. 기판은 상태에 따라 화면이 아예 안 나오거나, 오류가 잦다. 어쩔 때는 갑자기 사운드가 안 나올 때도 있다. 일부 불법 복제 기판은 사운드를 아예 날리고 루프 사운드로 대체하기도 한다. 효과음도 한가지를 돌려 쓸 때도 있다. 모든 적이 같은 소리로 죽는 거지.(웃음) Q: 게임을 모은 건 아카이빙을 위해서였나? A: 아니다. 다 어려서부터 가지고 있던 게임들이다. 팩이나 게임기 일부는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거고 본격적으로 모을려고 맘 먹었을 땐 CD류부터 모았다. 처음에는 플레이스테이션1 게임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이터가 크니까 이걸 디지털로 아카이빙 하는 건 힘들지 않나. 그래서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레트로 자료가 점점 귀해지는 거다. 어느 날 내가 하고 싶은 게임을 못 할 수도 있겠다 싶어 자료를 다시 모으게 됐다. 대략 2000년 초반 즈음? Q: 어릴 땐 어떻게 다양한 게임들을 접했나? A: 미디어가 없을 때는 오락실을 돌아다녔다. 자기네 동네 오락실만 가는 사람은 진성 아케이드 게이머가 아니다. (웃음) 나는 자전거를 타고 다른 동네로 원정을 다녔다. 지나가다가 모르는 동네에 오락실이 보이면 무조건 들어간다. 안 들어가면 게이머가 아니다. 그래서 출시된 게임을 연도 별로 알고 있는 거다. 매년 오락실에 갔으니까. 지금은 대한민국의 오락실들이 다 사라지고 있는 시점이다. 대형 오락실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남았다. 부산에는 삼보 게임랜드, 여기는 아직 남아있다. 이런 곳도 없어지면 이제 결국 대한민국의 역사 깊은 오락실은 (거의 다) 사라지는 거다. 삼보가 어느 정도 대형이냐 하면 디스코 팡팡이 실내에 있다. 삼보 게임랜드에서 제일 유명한 게 디스코 팡팡이다. Q: 그렇다면 ‘진성 게이머’로서, 또 레트로 게이머로서 요즘 날의 게임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생각하나? A: 나는 약간 반반이다. 우리 세대랑 요즘 세대는 접하는 게임 자체가 다르다. 간단하게 우리는 동전을 넣으면 그 게임을 정말 잘하지 않고서는 반드시 끝이 있다. 너무 잘해서 엔딩을 보든 아니면 못해서 중간에 끝내든 동전이 떨어지면 집에 가야 한다. 한계가 있는 거다. 근데 요즘은 게임을 시작하면 엔딩이 없다. MMORPG 같은 것도 그렇고 ‘마인크래프트’는 오픈 월드에 샌드박스형 게임이라 끝이 없다. 계속 끝없이 즐기는 무한 콘텐츠. 이걸 초등학생이 즐기면 어떨 거 같은가. 우리 초등학교 때는 기껏해야 겔러그나 보글보글 이런 걸 했다. 해봤자 얼마 못하고... 중독될 새가 없었다. 가정용 게임기가 있다 하더라도 한계가 있고. 요즘은 핸드폰 한 개만 있으면 끝없이 즐길 수 있다. ‘브롤스타즈’, ‘어몽 어스’ 같이 게임으로 끝없이 대전한다. 가뜩이나 학교도 안 가는 코로나 시대에. 그래서 이거에 질린 부모들이 게임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어렸을 때 오픈 월드 게임을 만났다면 나도 중독됐을 거 같다. 아이들이 이런 무한한 콘텐츠를 접하게 되면 얼마나 신세계일까. 그래서 문제인거다. Q: 10대들의 경우 콘솔이나 피시 게임의 가격이 비싸니 쉽게 구매하지 못한다. 그래서 유튜브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걸 본다고 들었다. A: 게임을 하는 게 아니라 ‘보는 세대’가 된 거다. 내가 오락실에서 돈이 없을 때 뒤에서 손가락 빨면서 형들이 하는 게임을 봤던 것처럼. 그 형들이 이제는 유튜버가 되는 거다. 오락실 심리라고 보면 된다. 내가 하고 싶은데 형들은 이미 하고 있고 나는 동전이 없고. * 꿀딴지곰이 직접 모은 게임 슬롯 중 하나를 후후 불어 꽂자 각종 고전 게임들이 선명하게 플레이됐다. Q: 최신 게임도 좀 하는 편인가? A: 안타깝게도 내가 대중적인 게임을 안 좋아한다. 그거 말고도 즐길 게 많으니까... 나는 한 번 하면 승부욕이 많아서 가급적 이겨야 한다. 그래서 시작할 엄두가 안 난다. 마지막으로 했던 게임은 ‘스트리트 파이터2’, ‘킹오파(킹 오브 파이터즈)’ 정도였다. 그때 투자했던 시간을 기억해보면 (새 게임을 시작하면) 안 될 것 같다. 아마 유튜브도 포기해야 할 거다. 요새 하는 게임은 그냥 유튜브를 위한 게임이다. 그래서 일부러 유튜브 주제도 하고 싶은 게임 위주로 하고 있다. Q: 레트로 게이머로서 신작 게임을 보면 이건 어디서 가져왔다 하는 게 느껴지는지. A: 그건 모든 게임에서 느껴진다. 요즘 게임에서 사실 나는 참신함을 못 느낀다. 옛날 게임에 다 있던 거다. 단지 그래픽이 더 좋아지고 3D로 바뀌었을 뿐이다. 옛날 3D 게임에서 가져온 것도 아주 많고 그런 것들이 자기 카피가 되고 있다. 특히 일본이나 미국에서 나왔던 것에 독특하고 참신한 게 많았기 때문에 좋은 장점만 따와서 새롭게 런칭하는 게임들이 다수다. 결과적으로 게임이 주는 원초적인 재미는 옛날 게임 하고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단지 그래픽이 좀 더 좋아졌다는 거랑 인터페이스가 친절해졌다. 이 두 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을 거 같다. Q: 레트로 게임이라 말하기는 하지만. 음악, 영화 등에 클래식이라는 표현이 있지 않나. 레트로 게임의 클래식을 꼽아줄 수 있는가? A: 어디까지가 레트로인가 하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근데 그건 각자 다를 거 같다. 내 기준으로 얘기하자면 비디오 게임 기준으로 아케이드 게임을 일 순위로 봤을 때, 거기서부터 연도를 따지고 싶다. 오락실을 기준으로. 오락실이 대중화된 게 79, 80년 그때라고 보면 거기가 원년이고. 가정용 게임기 중에는 ‘패미컴’이 일 세대이고. 그 다음이 16비트 ‘슈퍼패미컴’, ‘메가드라이브’. 카트리지 문화 중에서도 슈퍼패미컴 까지가 레트로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CD부터는 그때 당시에도 32비트 이러면서 차세대 기종 느낌으로 나왔기 때문에. CD 기종이 나왔던 시기가 96~7년 이때니까, 80년부터 따지면 그 시기까지 대략 17년 정도 됐으니(오락실부터 CD가 대중화되기까지) 그 17년 동안을 나는 레트로 라고 부르고 싶다. 가정용 기준으로는 카트리지. 오락실 기준으로는 90년대까지고.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나오는 오락실 게임들은 약간 체감형 게임부터 리듬 게임 이런 것들 위주로 나왔기 때문에 그쪽은 레트로 게임이라는 느낌이 나한테는 없다. 단어를 좀 압축하면 클래식은 팩이 있으면 훅 불어서 딱 꽂는, 이것이 클래식이지 않을까. CD는 후 불지 않으니까. Q: 레트로 게임에 대한 걸 계속 수집하고 영상으로 만드는 이유나 목적이 있는지? A: 목적은 뚜렷하다. 내 기억을 남기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의 기억은 언젠가 휘발된다. 그래서 유튜브에 박제하기 시작했다. 처음 지식인을 열심히 했던 건 내 흔적을 남기고 아카이빙을 하려고 했던 거다. 어느 순간 네이버를 못 믿겠더라. 스크린 샷도 자꾸 날려 먹고 서버도 위태위태한 느낌? 영상은 움직이는 거니까 더 기억이 또렷하게 난다. 그래서 그런 것도 정리도 할 겸 내 얘기도 하고 싶고 내 기억을 남기고 싶어서 제작하는 것이다. Q: 남을 위한 게 아니라 나를 위한 활동으로 보면 될까? A: 내 영상의 특징은 내가 보고 내가 재미있어야 한다. 그래서 가끔 내 영상도 찾아본다. 어렸을 때 내가 다녔던 오락실을 그대로 만들고 싶은 게 가장 큰 목표였다. 근데 그러려면 공간도 필요하고 기판도 필요하고 관리도 필요하고.. 그래서 이거를 디지털로 아케이드 아카이빙을 해주면, 오락실을 구현해주면 어떨까 생각했다. 예를 들어 82년도 83년도 연도를 넣을 때마다 게임이 바뀌는 걸 상상을 하곤 했다. 실제로 이거랑 비슷한 아이디어를 구현해서 해외 제작사에서 만든 게임이 스팀(Steam, 전제 게임 유통망)에 있다.(New Retro Arcade: Neon) 근데 한국판은 없다. 한국 스타일의 8090 오락실을 구현한 것은 없으니까. Q: 끝으로 마지막 질문이다. 활동명이 ‘꿀딴지곰’인 이유가 무엇일까? A: 예전에 나우누리를 했었다.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가 3대 피시통신이었다. 원래 나우누리는 도스에서 운영되는 인터넷 서비스였다. 그래서 한글 ID를 지원 안 했고 영어만 됐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한글로 ID를 만들 수 있다는 거다. 그런데 4자까지만 됐다. 이것저것 해보다가 그때 내 별명이 ‘푸우’였다. 그래서 그냥 푸우를 한국말로 해볼까 하다가 ‘꿀딴지곰’이라고 정했다. 중요한 건 가운데가 ‘단’이 아니라 ‘딴’이다. ‘단지’가 아니라 ‘딴지’인 거지. 왜 그렇게 정했는지는 모르겠다. ‘꿀딴지곰’이나 ‘꿀단지곰’을 치면 어쨌든 내가 뜬다. 지금까지 닉네임을 한 번도 바꾸지 않았다. 하하하.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프리랜서) 박수진 ‘여성 인디 뮤지션’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음악에 관한 글을 주로 쓰며 현재는 대중음악 웹진 이즘의 필자로 활동 중이다.
- 게임커뮤니티가 걸어온 지난 25년과 오늘
한 세기를 농구 한 경기로 본다면 이제 1쿼터의 막판이다. 쿼터나 25년이라고 하면 엄청 긴 세월은 아닌 것 같지만 사반세기로 지칭해 세기 개념이 오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묵직함이 있다. 한 쿼터도 긴 시간이고 역사의 한 두께다. < Back 23 GG Vol. 25. 4. 10. Tags: 커뮤니티, 디시, 루리웹, 펨코, 인벤, 게임웹진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eonggap Hong Freelance writer—a job title suspected of being a synonym for "unemployed." Started out as a reporter at Ddanzi Ilbo, where broke the first story exposing the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s comment-manipulation operation. A lifelong gamer who wrote a first piece of game criticism in 2001—and is very glad it has since been lost.
- 우크라이나 사태의 de jure와 de facto
러시아 안에서 차르가 된 푸틴은 그렇게 러시아 바깥까지 제패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부디 그런 장면은 역사 다큐멘터리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만 보면 좋겠다. 현실에서는 진짜로 사람이 죽고 다치기 때문이다. < Back 우크라이나 사태의 de jure와 de facto 06 GG Vol. 22. 6. 10. 역사가 매력적인 게임 소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시드 마이어의 〈문명〉, 크리에이티브 어셈블리의 〈토탈 워〉, 지금은 엑스박스 게임 스튜디오가 배급하는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모두 우리 인류의 역사에서 빚을 진 게임이다. 코에이의 에리카와 요이치(가명 시부사와 코우)는 〈삼국지〉, 〈대항해시대〉, 〈신장의 야망〉 등 동서의 역사를 시뮬레이션으로 만들었다. 동명의 전략 시뮬레이션으로 대표되는 '대전략'(Grand Strategy) 부류의 게임들은 보다 넓은 시점에서 역사 속 국가들을 조망한다. 이런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주로 유라시아 대륙, 또는 아메리카까지 포함한 '전 지구' 위에서 한 국가를 선택하여 플레이한다. 플레이어는 그 나라를 경영하며 내정을 살피고 다른 국가들과 외교적, 군사적인 행동을 펼쳐나가며 특정한 목표를 이뤄나가게 된다. 2020년 출시된 〈크루세이더 킹즈 3〉는 대전략 장르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게임은 전략 시뮬레이션 전통의 국가 경영, 내정, 건설, 전쟁 등의 기능이 충실하게 반영된 가운데, 가문의 계보를 이어가는 재미도 준다. 플레이어가 선택한 가문의 '막장 드라마' 급의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최근 종영한 사극 〈태종 이방원〉의 캐치프레이즈에서 표현을 빌려오자면, 〈크루세이더 킹즈 3〉는 국(國)과 가(家)가 두루 담겨있는 게임이다. 이렇게 오늘날 〈크루세이더 킹즈 3〉의 스팀 평가는 '매우 긍정적', 메타크리틱 점수 91점을 기록하며 선전 중이다. 이번 글에서는 〈크루세이더 킹즈 3〉와 우리 현실 세계에서 발생 중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1000여년 전 중세 봉건사회와 오늘날을 일 대 일로 비교하는 것에는 분명 무리가 있다. 예를 들어 2022년에는 국가지도자의 2세끼리 결혼을 시키지 않으며, 만에 하나 결혼을 한다고 해서 동맹이 형성되지는 않으며, 지도자의 자리도 (북한이나 가봉 같은 나라들을 빼고는) 세습되지 않는다. 게임 전문지에서 일하는 기자로서 게임을 현실에 빗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필자 개인의 지정학에 대한 이해 또한 부박한 수준이다. 하지만 주로 논하려는 〈크루세이더 킹즈 3〉가 어떻게 국경이 만들어지고, 유지되며, 뒤바뀌는지(국경을 ‘되찾기’ 위한 액션에 나서는지) 잘 풀어낸 게임이므로 조심스럽게 글을 써보려 한다. 두 개의 권역이 충돌할 때 전쟁은 시작된다 〈크루세이더 킹즈〉(이하 크킹) 시리즈에서는 역사적으로 아일랜드가 게임 학습의 ‘스타팅 포인트’로 제시된다. 〈크킹 3〉에서도 마찬가지. 플레이어는 랭커스터, 얼스터에서 활동하던 공작들을 복속시키고 아일랜드 왕국을 선포한다. 그 다음,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대치 중인 브리튼 섬으로 넘어가 접수가 완료되면, 플레이어는 브리튼 제국의 황제에 오르게 된다. 정복전쟁이 완료된 후에는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이 플레이어를 기다리고 있다. 아일랜드에서 게임을 시작한다고 가정했을 때,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물리력으로 아일랜드 다른 지역 공작들을 자기 밑으로 끌어들이기는 쉽지 않다. 전쟁에는 언제나 명분이 필요하며, 그 명분을 만들어나가는 활동이 〈크킹3〉 플레이에서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한다. 명분을 충족하기 위한 일차적인 조건으로는 ‘권역의 불일치’가 있다. 〈크킹3〉에는 규범 권역(de jure)과 실질 권역(de facto)이 있다. 규범 권역이란, 어떤 공작에게 이 지역부터 이 지역까지, 어떤 왕에겐 이 공국들을 아우른다는 일종의 관습적 권역이다. 신조어 ‘국룰’이 실제로 ‘국가의 룰’은 아니지만, ‘그 정도로 통용된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처럼 ‘jure’를 이해하면 될 듯하다. 그러나 게임 속 유럽에서 국경은 칼로 딱 자르듯이 나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공작의 나라(공국)이 내 공국 영토를 침범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렇게 실제 지도 위에 그어진 지역을 실질 권역이라고 부른다. 규범 권역과 실질 권역이 일치하지 않을 때, 플레이어는 전쟁의 명분을 얻게 된다. 이 권역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사실상 〈크킹3〉의 플레이가 불가능하다. 왜 나의 봉토에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인지, 왜 내 땅을 침범하고 있는지 같은 것들이 전쟁의 일차적인 명분이 된다. 해당 국가가 다른 종교를 채택했다면, ‘성전’을 벌일 수 있다. 중세 사회에서 성전이야말로 전쟁을 선포할 가장 좋은 구실이며, 바티칸의 교황은 틈만 나면 근동(Near East) 사회에 십자군을 보내려 든다. 게임의 권역들은 만고불변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게 되고, 이 변화는 플레이어의 유불리에 작용하게 된다. ‘이 규범 권역은 우리 왕국의 것’이라고 유럽 국가들 사이에 널리 인정받을 수 있고, 플레이어의 폭정으로 인해 봉토를 받은 공작들이 독립을 선언한다면 결과적으로 규범 권역은 줄어든다. 그러나 게임을 하면서 규범 권역이 바뀌는 것을 보려면, 브리튼 왕국이 프랑스의 노르망디 공작령을 지배하는 것으로 이해되려면 100여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의 제(諸) 세력들은 호시탐탐 플레이어가 빼앗아간 고토(古土)를 수복하려 들 것이다. 이때, 플레이어에게는 여러 옵션이 있다. 교황의 든든한 지지를 뒤에 업고 적들을 이단으로 꾀어내던가, 일부 프랑스 공작들을 자신의 말을 잘 듣도록 만들던가, 규범 권역으로 돌아가 집안 살림이나 잘 신경쓰거나, 공국이 감히 설칠 수 없도록 더 강력한 제국을 선포하거나… 그리고 〈크킹3〉가 어려운 까닭은 그 작전이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후계자가 갑자기 죽어버리거나, 왕이 며느리로부터 대시를 받거나, 합스부르크에 시집보내려던 딸이 매독에 걸리면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다. ‘국’에 지나치게 신경쓴 나머지 ‘가’에 소홀하게 되면, 플레이어가 선택할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 〈크킹3〉의 규범 권역과 실질 권역은, 실제 역사가 보여준 모습을 훌륭하게 게임으로 빚어냈다. 역사에서도 규범 권역과 실질 권역이 불일치할 때 전쟁은 벌어졌다. 유대인들에게 이스라엘은 마땅히 되찾아야 할 땅이었으나, 팔레스타인 아랍인에게는 대대로 뿌리내리고 살던 터전이었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알라의 뜻을 받아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자신들이 이끌어야 하는 땅이라고 주장하며 성전을 선포한 조직이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ISIS다. 전쟁은 어떻게 끝나는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규범 권역과 실질 권역 이야기로 풀어볼 수 있다. 이러고 싶지 않지만, 악마의 변호인이 되어보자는 심산으로 러시아의 입장에서 두 권역 이야기를 해보자. ―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규범 권역을 침범하고 있다. 우리는 소련 시절 우크라이나인들의 자치를 보장해주었으며, 오랜 기간 물적·인적 교류를 맺어왔다. 그런데 ‘키예프’ 루스 한 뿌리였던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어 금지 법안을 발의하는 등 우크라이나 내 인구 17% 비중을 차지하는 러시아인들을 박해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실질 권역과 국경을 그대로 유지한 채 역내 안보에 위협이 되는 국제 기구에 가입하려 들고 있다. 우선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탄압 선봉엔 ‘네오나치’ 세력들이 있으므로, 이들을 축출하기 위한 ‘일부 군사작전’을 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아마도 우크라이나는 이렇게 답변할 것이다. 물론 다음과 같이 쓴다고 해서 필자가 ‘천사의 변호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규범, 실질 권역을 모두 침범하고 있다. 1991년 우크라이나는 공식적으로 소비에트연방으로부터 독립했으며, 별개의 주권을 가지게 되었음에도 역내 평화를 위해 가지고 있던 핵탄두를 하나도 남김 없이 모두 소련으로 보내주었다. 오늘날 우리는 유럽이고자 하는 욕망이 크고, (근시일 내 불가능하겠지만) 그를 위한 조약 기구에도 합류하고 싶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인은 차별받지 않고 공존하고 있으며 독립을 선포한 두 곳의 공화국 역시 모두 러시아의 공작에 의한 것이다. 무엇보다 현재 러시아군은 ‘키이우’를 비롯한 전국에 포격과 비인도적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있으므로 방어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양측이 서로 평행선에 가까운 주장을 하고 있으므로, 그 조율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크킹3〉에서는 전쟁을 끝내는 4가지 조건이 있다. ― (a) 승전은 전쟁에서 상대를 압도한 것이 확인될 때 플레이어가 자신이 내건 명분이 맞다며 ‘요구압박’을 하고, 열세에 놓인 상대방이 이를 승인하면서 이루어진다. 게임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다. (b-1) 무조건 평화는 상대방에게 지금까지의 전쟁을 ‘없었던 일로 하지 않을래’라고 묻는 것으로 개전의 명분에 따라서 다른 조건의 협상을 벌이게 된다. 주로 전쟁 중에 나라에 변고가 생겼을 때 사용하는 커맨드다. (b-2) 기독교 국가로 플레이하는 경우, 전쟁이 끝나기 전에 교황이 성전을 선포해도 전쟁은 없었던 일이 된다. (b)의 결과는, 개전 이전 상태(Status Quo Ante Bellum)다. (c) 패전은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상대방이 이 전쟁이 끝났다고 선언하고, 플레이어는 그 사실을 무조건 인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때 플레이어는 잘못된 전쟁을 선포했음을 인정하는 배당금을 상대에게 보내야 하며 휘하의 신하들은 왕을 불신하게 된다. (b-2)를 빼고 보자면, (a), (b), (c)를 단순히 승무패로 나눌 수 있을 듯하며 현실에서 벌어지는 충돌의 결과 또한 승무패로 분류할 만하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는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러시아로부터 군대를 모두 물려내고 나토를 가입하고, 푸틴으로부터 배상금까지 얻어낸다면 (a), 러시아와 협상 테이블에서 어디까지가 ‘개전 이전 상태’인지를 합의한다면 (b), 나라의 운명을 러시아에게로 맡기기로 한다면 (c)가 될 것이다. 동맹은 동맹국의 전쟁에 참가하는 것이 의무이며, 〈크킹3〉에서도 마찬가지다. 전쟁 중인 동맹국에 파병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으면 플레이어의 위신이 훼손될 수 있다. 게임에서 선전을 포고할 때 쓰이는 자원이 바로 위신이므로, 한동안 전쟁 명분을 잃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늘날 현실에서도 국제사회에서 동맹은 매우 중요한데, 벨라루스 또한 러시아와 함께 ‘군사작전’에 나섰다. 두 나라가 동맹을 맺고 있는지 주종 관계를 맺고 있는지는 사람에 따라 의견이 갈릴 듯하다. 반면에 미국과 유럽은 우크라이나가 동맹국이 아니기 때문에 무기를 보내고 경제제재를 가하지만, 직접적인 액션은 취하지 않고 있다. 이런 와중에 나토의 또다른 핵심 축인 독일은 패전 이후 처음으로 재무장을 선언했다. 새로운 국경을 만들겠다는 욕망은 게임에서나 〈크킹3〉으로 현대 사회의 국가 관계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결정적 이유는 제국주의와 냉전이 세계지도에 한 일을 중세 배경 게임에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시대를 플레이하고 싶다면 같은 개발사(패러독스 인터랙티브)의 〈빅토리아〉를 찾으면 된다.) 아프리카의 ‘자로 잰 듯한’ 국경은 실제로 자로 잰 것이며, 이후 숱한 아프리카의 민족 분쟁이 그 줄긋기의 영향을 받았다. 아프리카의 숱한 민족분쟁에 관해서 〈르몽드 세계사〉는 “아프리카는 종족 자체가 사회를 구성하고 나아가 국가를 만들기도 한다 (중략) 중앙집권 정부를 중심으로 하는 서구식 모델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설명한다. 태국의 라마 5세는 ‘국가의 지도’를 편찬해 국민성을 만들려고 했지만, 국가의 가장자리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국가에 행정력이 전파되기 전까지 국가가 뭔지 관심이 없었다. 태국 정부는 냉전 시대에서야 산악지대를 넘나드는 공산주의자들에 맞서기 위해 주민들을 명부에 등록했다. 국경은 산맥과 강줄기에 따라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통치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원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듯하다. 러시아는 제국 때나 소련 때나 지금에나 부동항을 면한 흑해 연안의 도시들을 노리고 있다. 푸틴의 도박은 수많은 명분들로 포장되어있지만, 어찌 보면 본질은 러시아식 부동항 공략의 재현이다. 더 멀리 나갈 수 있는 새로운 국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러시아 안에서 차르가 된 푸틴은 그렇게 러시아 바깥까지 제패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부디 그런 장면은 역사 다큐멘터리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만 보면 좋겠다. 현실에서는 진짜로 사람이 죽고 다치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부, 「르몽드 세계사」, 권지현 옮김, 휴머니스트, 2008 통차이 위니짜꾼 , 「지도에서 태어난 태국 – 국가의 지리체 역사」, 이상국 옮김, 진인진, 2019 CK3 Wiki, “Titles”, (2022-05-27) Steam, “Crusader Kings III”, (2022-05-27) Wikipedia, "Grand strategy wargame", (2022-05-27)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김재석 8년 동안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서브컬처 스타트업에서 대외협력을 맡고 있다.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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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문화웹진 ‘게임제너레이션’은 디지털게임의 문화적 접근 폭을 넓히고 게임문화를 선도적이고 실천적으로 이끌어갈 새로운 필자의 발굴을 위해 아래와 같이 게임비평공모전을 개최하고자 합니다. 게임과 게임문화를 사랑하고 연구하는 많은 분들의 참가를 부탁드립니다. < Back 제1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안내 06 GG Vol. 22. 6. 10. 게임문화웹진 ‘게임제너레이션’은 디지털게임의 문화적 접근 폭을 넓히고 게임문화를 선도적이고 실천적으로 이끌어갈 새로운 필자의 발굴을 위해 아래와 같이 게임비평공모전을 개최하고자 합니다. 게임과 게임문화를 사랑하고 연구하는 많은 분들의 참가를 부탁드립니다. - 아 래 – 1. 공모명: 제1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2. 공모 주제: 디지털게임에 대한 비평(자유주제) 3. 공모기간 및 접수마감: 2022. 07. 08.(금) 23:59까지 email 도착분에 한함 4. 공모형식 및 참여방법: - 형식: hwp, doc, odt 형식 중 택일하여 제출. 제목, 저자명 포함. - 분량: 한글 4,000자 ~ 8,000자 내외. 이미지삽입 5개 이하. - 제출방법: 공모전 전용 email을 통해 제출( ggcriticcomp@gmail.com ) 5. 시상내역 최우수상(1명): 상금 100만원(세전), GG 7호 게재 우수상(3명): 상금 50만원(세전), GG 7호 게재 장려상(5명): 상금 30만원(세전). GG 7호 게재 * 수상자는 응모한 메일을 통해 심사완료후 개별 통보합니다. 6. 일정 2022. 07. 08(금) 접수마감 (23:59까지 도착분 기준) 2022. 07. 29(금) 심사완료 및 결과통지 2022. 08. 10(수) GG 7호 수상작 게재 2022. 08. (미정) 시상식 7. 기타 유의사항 - 공모전 참가는 1인 1개 글에 한하며, 중복응모는 불가합니다. - 응모는 블로그 등 개인매체를 포함한 타 매체에 공개되지 않은 작품이어야 하며, 중복게재 및 표절이 밝혀질 경우 수상이 취소될 수 있습니다. - 수상작 선정 후 개인정보 취득을 위해 당선자분들께 개별 연락이 진행되며, 이 과정에서 연락이 되지 않을 경우 당선이 취소될 수 있습니다. - 관련한 문의사항은 공모전 공식 메일계정( ggcriticcomp@gmail.com )을 통해 문의해 주십시오. 게임의 문화적 의미를 탐구하는 많은 여러분의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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