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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세미나] 옛날 전쟁 비디오게임이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해 알려주는 것 : <환경을 위한 역설적 투쟁으로서 레트로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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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6. 8. 10.

TEXT: Fernandes, A. (2026). Retro violence as a paradoxical fight for the environment: The nostalgic circular video games economy. Media, War & Conflict, 17506352261421845.

 


들어가며

     

최근 우리는 게임의 문제를 기후/환경 문제와 연결짓는 담론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게임장비와 콘솔에 물질적 자원이 투입될수록 전자폐기물(E-waste) 문제가 더 많이 발생하고, 게이머의 플레이 시간이 늘어날수록 탄소배출량이 늘어난다는 기사들이 적잖이 나오고 있다. 이제 게임 플레이는 거의 환경오염의 문제와 불가분이 되었고, 게임회사 또한 게임을 개발한다면 필연적으로 지속가능성의 문제를 고려해야만 하는 상황이 오게 된 것이다.

     

 이번에 소개할 논문 <환경을 위한 역설적 투쟁으로서 레트로 폭력: 향수에 기반한 비디오게임 순환경제>은 이러한 배경에서 최근 ‘레트로 비디오게임의 재유행 현상’이 역설적으로 기후환경의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에 주목한다. 통상적으로, 전쟁이나 폭력을 소재로 한 비디오 게임을 한다는 것은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처럼 인식된다. 선행연구 또한 이러한 게임들이 인간의 공격성을 얼마만큼 유발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반복해 왔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이전 연구를 통해, 레트로 비디오 게임이 최신 콘솔로 재출시되거나 스마트폰으로 이식되는 현상이 최소한 ‘물질적 차원’에서는 새로운 게임이나 콘솔의 구매비용을 절감하고 전자폐기물 축적을 낮추는 효과가 있음을 주장한다. 이는 ‘향수의 순환경제(circular economy of nostalgia)’라는 용어로도 요약된다.

     

  겉보기에 환경적으로 유해하게 보이는 (게임에 대한) ‘향수’는 정말 환경보전이나 지속가능성의 가치와 상충할까? 아니면 역으로 해당 가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까? 레트로 비디오게임의 순환경제 구조를 분석해야 하는 시점이다. 그런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게임 밖에서 벌어지는 물질적 효과와 게임 내에서 이루어지는 가상적 실천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이 연구는 폭력적 레트로 비디오게임 안에서 자연이 재현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어, 자연에 어떠한 의미와 행위성이 부여되는지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연구방법과 자료

     

  분석을 위해 이 연구는 브루노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ctor-Network Theory, ANT)을 접근법으로 하며, ‘비디오게임 연구의 객체지향적 접근(object-oriented approach in videogame studies)'을 지향한다. ANT는 자연, 기술, 사회가 갖는 복잡한 관계를 환원주의적으로 설명하지 않기 위해 세 층위 중 어느 영역에도 우선권을 두지 않는데, 이는 전쟁과 비디오게임, 환경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에도 유용한 방법이다.

     

 ANT의 주요 특성 중 하나는 기존의 전통적 사회학이 ‘사회적이지 않은’ 요인으로 간주해 왔던 비인간(non-human)적 요소를 사회적 관계형성의 행위자로서 분석하는 것이다. 본디 사회과학에서 ‘행위자(actor)’는 ‘인간 주체’의 행위성을 전제로 한 개념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라투르는 기호학의 행위소(actant)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하면서, “행위하거나, 다른 존재들에 의해 행위성을 부여받는 어떤 것(something that acts or to which activity is granted by others)” 즉 고정된 속성이 아닌 관계적 속성을 가진 개념으로서의 행위자 개념을 제안한다. 라투르의 도식 아래에서 행위성(agency)의 범위는 사회를 넘어 기술과 자연으로 확장되며, 행위자 개념 역시 인간을 넘어서는 관계론적 차원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그간의 비디오게임 연구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인간’만을 중심에 두어 왔다. ANT를 활용한다면, 게임은 (인간에게 플레이될 뿐만 아니라) 플레이어에게 일정한 힘을 행사하는 행위자의 위상을 가질 수 있게 된다. 특히 저자는 ANT의 관점으로 게임을 볼 때, 비디오게임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는 공간(저자는 이것이 신자유주의적 문화의 재생산 기제이기도 하다고 설명한다)’으로 이해되는 차원을 넘어설 수 있으며, 게임 내 난이도나 승리 기회 같이 가치중립적으로 보이는 요소들도 문제시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한다. 게임에 대한 ANT적 분석은 게임/플레이어 사이의 구체적인 상호작용 과정은 이 과정에서 어떠한 행위자들이 구성되는지를 주목하는 데 초점을 둔다. 따라서 게임 내적 요소뿐 아니라 게임 외부의 물질적 환경, 게임 플랫폼, 플레이어의 인간관계 같은 게임 외부적 요소까지 모두 포함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 연구는 비디오게임 속 ‘자연’의 출현 방식을 분석하기 위해, 비디오게임 자체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파악한다. 이 ‘네트워크’는 미리 주어지거나 게임의 외부 조건 또는 인간 행위자에 의해서만 일방적으로 결정되어서 게임 속에 재현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게임은 색채, 게임플레이, 시점, 게임에서 능동적으로 작동하는 요소나 수동적으로 배치된 요소, 위계적으로 강조되는 요소, 주변화되는 요소 등 게임을 구성하는 다양한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연과 기술의 의미를 형성한다. 한편 이 연구는 과학기술학(STS)의 특정 맥락에서 형성된 개념인 ANT의 연합(associations), 필수통과지점(obligatory passage points), 기입 장치(inscription devices) 같은 고전적 개념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이들이 서로에게 무엇을 하는가를 통해 어떠한 방식으로 구성되는지를 기술하려는 ANT의 수행적(performative) 요구를 따르고자 한다.

 

 이 연구는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전쟁 서사를 전개하는 대표적 레트로 비디오게임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으며, 분석 대상은 다음 요건 아래서 선정했다: 1) 16비트 이하 콘솔용 레트로 게임(32비트/64비트 기반 게임에 비해 생태적 가치가 높음) 2) 레트로 게임 사이트에서 플레이 횟수가 높은 게임 3) 군사, 총기, 무력 충돌을 주 소재로 하는 게임 4) ‘인간을 넘어서는 자연(more-than-human nature: 생태철학과 인문학에서 인간을 비인간 존재와 동등한 관계망 속 요소로 보는 관점)’의 요소를 포함하는 게임(즉 실내 공간이나 우주를 배경으로 하거나, 지속가능성이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지 않는 포스트아포칼립스 배경 게임은 분석에서 제외). 한편, 본 연구에서 선정한 ‘레트로(retro)’는 개념적 차원에서는 선형적이고 목적론적 시간관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ANT에서는 문제시되는 개념일 수 있으나, 이 연구에서는 ‘오래 전에 제작된 비디오게임’이라는 사전적인 용도로만 사용하고자 한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선정된 분석 대상 게임은 <콘트라(Contra)(1987)>, <배틀 시티(Battle City)(1985)>, <리버 레이드(River Raid)(1982)>의 3가지다. 먼저, 레트로 비디오게임 중 가장 플레이횟수가 높은 <콘트라>는 두 명의 특공대원이 남아메리카의 이름 없는 섬에서 외계인의 침략을 저지하는 컨셉의 런 앤 건(Run and Gun) 액션 게임이다. 스테이지명과 화면 구성 요소는 모두 초원, 설원, 강, 산, 숲 등 자연환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러한 자연환경 속에 군사 장비가 배치된 컨셉이다. <배틀 시티>는 플레이어가 전차를 조종하여 적 전차를 파괴하고 자기 기지를 방어하는 방식의 전방향 탑뷰 슈팅 게임이다. 이름에 ‘시티’를 표방하고 있지만 일반적인 도시를 연상시키는 도로, 인도, 창문 같은 요소는 없다. 게임에서는 파괴 가능한 벽돌 벽, 파괴되지 않는 철벽, 수풀 속에 숨겨진 전차, 이동을 방해하는 빙판 등 여러 자연지형과 장애물이 배치되어 있고 플레이어의 기지가 파괴되거나 목숨을 소진하면 게임이 종료된다. <리버 라이드>는 플레이어가 전투기를 조종하여 강둑이나 적의 공격을 피하면서 적들을 공격하는 스크롤 슈팅 게임으로, 전투기가 추락하거나 연료가 모두 소진되면 게임이 종료된다.

     


분석: 비자연적인 자연(the unnatural nature)?

     

 먼저 세 가지 게임 중 <콘트라>의 경우를 살펴보자. <콘트라>에서 플레이어의 임무는 자연환경 속에 설치된 적의 기계들을 제거하여 공격적인 인간/기술 행위자들을 정화(cleansing)하는 역할이지만, 플레이어가 적의 장치를 파괴할 때 그것이 놓인 자연환경은 결코 파괴되지 않는다. 자연은 그저 플레이어가 서고 달리고 점프하게 만들어 주는 부동의 지반처럼 보인다. 예외적으로 절벽이나 낭떠러지처럼 플레이어가 점프해야 하는 끊어진 지형이나 낙하하는 바위를 피해야 하는 상황이 등장하는데, 동식물이 아니라 ‘자연’이 이런 상황을 주도한다는 점 또한 인간의 행위가 자연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러한 불변의 자연은 결말부에 모든 적을 처치하고 플레이어가 탈출할 때 폭발에 휘말려 불타게 된다. 자연의 파괴란 곧 인간 입장에서 모든 악을 처치했을 때 나오는 긍정적인 결과로 제시되는 셈이다. <콘트라>는 적과 자연을 묶어놓음으로써, 자연 자체의 도덕적 가치가 그곳에 거주하는 존재들의 도덕성과 상호의존적이라는 인식을 구성한다. 결국 <콘트라>에서의 자연은 인간의 목적을 위해서는 쉽게 파괴되지만 다른 순간에는 어떤 공격에도 영향받지 않는, 인간중심성을 위해 취약성과 불변성을 동시에 부여받은 존재로 프로그래밍된 셈이다.

     

 <배틀 시티>의 자연은 좀더 적극적인 역할로 나타난다. 이곳의 자연요소 중 수풀은 적이 숨어있는 위장 요소이고 물과 얼음은 플레이어의 전차 이동을 방해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플레이어가 이들을 피해서 적군을 처치해야 하는 한편, 이들 자연은 결코 플레이어에 의해 파괴되거나 영향받지 않는다. 즉 자연은 인간의 전쟁 목적과 무관하게 존재하면서도 게임 속에서 끊임없이 제약으로 등장하면서 인간 플레이어의 능력이 지니는 한계를 드러내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게임에서 인간이 자연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상황은 벽돌 벽으로 이루어진 도시를 해체하는 것이지만 그 경우 적의 공격에 더 쉽게 노출되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배틀 시티>에서 자연은 인간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중립적 행위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자연은 인간과 전쟁의 목적에 길들여지지 않으며 오히려 전쟁의 결과, 즉 게임의 승패를 결정하는 힘을 일방향적으로 행사한다.

     

 <리버 레이드>는 명확한 결말 없이 영원히 반복되는 루프 구조로 무한히 플레이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사실상 플레이어는 무한정 자연 속에 머물 수 있지만, 강둑과 충돌하거나 연료가 다 소진되는 순간 즉시 게임 오버가 되기 때문에, 무한성을 얻기 위해선 조건이 주어진다. 비디오게임이라는 기술은 자연이 인간과 무관하게 영원히 지속되는 것처럼 상상하게 만들지만, 결국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유한성을 드러내는 셈이다. 또한 강둑 충돌이 보여주듯이 <리버 레이드>에서 자연환경은 플레이 진행을 직접적으로 규정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플레이어가 죽어버리면 그 이후 자연을 결코 목격할 수 없다는 점에서 무한한 자연은 본질적으로 유한한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존재처럼 제시된다. 이러한 자연 속에 플레이어가 계속 머무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연료가 소진되지 않도록 계속해서 전투기에 연료를 보급하는 것 뿐이다. 즉, 인간이 자연과 영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직 다른 자연을 착취해야만 하는 상황이 주어지는 것이다.

    

* 왼쪽부터 <콘트라>, <배틀 시티>, <리버 레이드>의 게임 플레이 장면. (출처: 구글 이미지)

    

 

논의: 비디오게임의 인간을 넘어서는 자연(more-than-human nature)

     

 <콘트라>, <배틀 시티>, <리버 레이드>에서 등장한 게임 속 자연은 모두 ‘죽은 자연(dead nature)’, 즉 현실에서 경험하는 자연과 같은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자연을 의미하고 있다. 게임 속의 자연은 수동적으로 프로그래밍된 배경이면서, 게임 속 게이머의 행위에 따라 변화되거나 파괴되지 않는다. 즉, 이들 게임의 자연은 모두 플레이어와의 어떤 ‘상호작용’이 불가능한 형태로 남아 있다. 왜 그렇게 만들어져 있었으며, 이 점이 보여주는 것은 무엇일까? 물론 세 게임은 1980년대에 나왔고 당대 프로그램 기술의 제약 때문에 자연을 이런 식으로 재현할 수밖에 없었다는 반론이 가능할 것이다. 또 이 게임들이 환경친화 슬로건을 걸지 않는 단순 슈팅 게임이기 때문에 자연의 재현 방식은 게임사의 관심사가 아니었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콘트라>에서 바위가 낙하하는 모습이나 <리버 레이드>에서의 강둑 충돌 사례처럼 당시의 기술로도 역동적 자연을 만드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했다. 저자는 이 게임들에 나온 자연을 당시의 단순한 기술적 결함의 문제를 넘어서 철학적 관점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저자는 세 비디오게임에 드러나는 ‘인간과 충분히 상호작용하지 않는 자연’, ‘인간이 언제나 이해가능한 방식으로 응답하지 않는 자연’은 오히려 인간을 넘어서는 자연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게임 속에서 인간이 자연과 제한적으로만 관계맺을 수 있다는 사실은, 애초에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 자체에 내재하여 프로그램된 한계다. 또한 이러한 자연의 접근 불가능성과 무한성 자체는 유한한 기술적 행위자들과 인간 행위자들의 어셈블리지(assemblage)를 통해서만 구성된 결과다. 이러한 점에서 기술을 통해 인간은 인간을 넘어서는 관점을 획득하게 되며 비디오 게임 또한 인간의 경험으로 완전히 포착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해 인간이 어떠한 한 관점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게 하는, (들뢰즈의 표현을 빌자면) ‘관계 맺을 수 없는 것과 관계를 맺게 하는’ 매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비디오게임이 칸트가 구분한 물자체(noumenon)와 현상(phenomenon)의 차이, 즉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자연 그 자체로서의 물자체와 인간이 이해가능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비디오게임이 제시하는 현상으로서의 자연을 구분해서 보여준다고 말한다. 인간이 비록 사물(자연)의 물자체(au sich)를 인식할 수는 없지만 (게임을 통해) 형이상학적으로 이를 사유해 볼 수는 있다. 비디오게임 또한 자연을 인간의 관점으로 환원되지 않는 존재로 제시함으로써 인간이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자연이라는 개념을 사유하게끔 하는 것이다. <배틀 시티>에서 자연이 ‘물자체’의 차원에서 파괴될 수 없는 존재인 반면 인간이 만든 ‘현상계’로서 도시는 그 게임에서 인간이 유일하게 파괴 가능한 것으로 드러나듯이 말이다.

     

 인간을 넘어서는 자연의 사례는 <리버 레이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리버 레이드>에서 플레이어가 무한한 자연에 참여하기 위해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연료)를 소모해야만 하는 사례를 생각해 보자. 연료를 소비하고 오염을 발생시킴으로써 역설적으로 인간은 자연의 무한성 스스로를 소멸시켜야만 하는 입장에 있다. “즉 자연의 무한성을 목격하기 위한 [인간의] 조건은 바로 그 무한성을 파괴하는 조건과 동일하다”는 역설이 발생하고야 만다. 무한히 결말 없이 플레이 가능한 게임 구조 또한 영원히 게임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플레이어 자신이 불멸의 존재여야 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즉 이 게임을 종료하는 것은 다름아닌 인간 자신의 유한성이라 할 수 있는데, 바로 그 유한성이 비디오게임 속에 프로그램된 자연을 무한히 응시하거나 경험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는 자연을 완전히 인간적으로 이해하거나 인간의 통제 아래 두려는 시도가 본질적으로 한계를 지닌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비디오게임에서 인간과 환경의 관계는 선행연구(Abraham & Jayermanne, 2017)에서 제시한 네 가지 고전적 유형만으로는 설명되기 어렵다. 본 연구는 환경이 인간 플레이어를 위한 배경이나 자원의 원천, 인간의 적대 대상, 탐색 대상일 뿐만 아니라 ‘back-ground’로서 또 다른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이 때의 ‘back-ground’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간이 발 닿은 기반(ground)이자 동시에 그 기반을 끊임없이 흔들어서 인간중심성을 해체하는 존재를 뜻한다. 즉 비디오게임은 인간의 행위 가능성의 한계를 수행적으로 드러내는 인간을 넘어서는 또 다른 행위자인 것이다. back-ground 개념은 인간에게 게임 속 환경이 드러내는 한계를 단순히 넘어설 수 없는 장벽으로 경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 자체로서 경험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비디오게임이 상호작용적/사실적 자연을 구현하는 데 실패한 것이라고만은 볼 수 없으며, 오히려 탈인간중심적 자연의 관점에서는 진실인 세계를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저자는 이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점으로, ‘레트로 비디오게임을 단순히 자연을 비현실적으로 재현하는 매체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공들여 환경친화적 디자인을 갖춘 전쟁 게임을 만들고 그 게임에서 인간과의 상호작용에 따라 자연환경이 실제로 파괴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해도 게임을 리셋하는 순간 레트로 게임에서 드러났던 자연의 파괴불가능성은 반복될 것이다(반대로 플레이어의 행위에 따라 자연환경이 결코 복원되지 않는 게임을 구현한다면 인간이 오랜 시간 플레이하지 못하는 게임이 될 것이다). 최신 비디오게임들이 자연과의 상호작용을 더 풍부하게 만든다 하더라도, 오히려 그것은 자연을 인간이 조작하고 이해가능한 대상으로 바라보는 인간중심주의적 관점을 더 강화할 것이다. 언제나 인간에게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만 응답하는 자연을 제시할 것이기에 결과적으로 자연이 본질적으로 인간에게 접근 불가능하다는 관점은 오히려 가려지게 될 수 있다. 자연에는 침묵(silence)과 비응답성(unresponsiveness)이 포함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비디오게임의 무의식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본질적으로 한계에 의해 규정되는 관계임을 현실적으로 수행하면서도, 동시에 기술을 통해 그 한계를 넘어서는 포스트휴먼적 인간-자연 관계를 가능하게 한다. 비디오게임이라는 기술을 통해 자연은 완전히 총체화될 수 없는 존재로 모습을 드러내며, 비디오게임은 인간이 자연과 맺는 한계를 드러냄과 동시에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경계를 넘어 자연과 관계를 맺도록 한다. 저자는 이같은 관계에 대해 비디오게임이 최소한 접근 불가능함을 접근 불가능한 것으로서 경험하게 만든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인간은 한계를 완전히 넘어설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한계를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는 도달할 수 있다.

     


정리하며

     

 비디오게임에 대한 ANT적 분석을 수행하는 이 연구는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해 기존의 통상적인 방식과는 다른 형태로 생각해 보게 해 준다는 의의가 있다. 게임 속에서 자연이 파괴될 수 없는 대상, 혹은 플레이어에게 응답하지 않는 대상으로 주어진다는 것이 겉보기엔 단순한 기술의 한계나 재현의 결핍처럼 보이지만 실은 게임을 하는 인간 플레이어에게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그 게임이 굳이 환경문제나 지속가능성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아도, 심지어 전쟁이나 폭력을 소재로 한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나 인간(사회)-기술-자연에서 한 항에 쏠리는 환원주의를 피하기 위한 인상이 커서인지는 몰라도, 논문의 구체적인 접근방식과 논의는 과잉되었다는 인상을 피하기 힘들었다. 크게 다음과 같이 이 글의 한계가 읽힌다.

     

 첫째, 이 연구는 기본적으로 레트로 게임의 재유행과 리플레이가 비디오게임 산업의 지속가능한 순환경제를 위한 유효한 필수 조건이라고 보고 있다. 저자의 이전 연구결과를 토대로 한 주장이긴 하지만 ‘레트로 게임을 하면 결과적으로 친환경적’이라는 전제에 의문을 제기해 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의 소비는 레트로 게임도 사고 콘솔도 사고 에뮬레이터도 하는, ‘대체’보다는 ‘확장’된 소비에 가까울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레트로 게임이 순환경제에 기여한다’는 서론부 논의와 ‘레트로 게임이 자연을 인간을 넘어서는 존재로 그린다’는 본문 논의 사이의 연결고리는 대단히 약하다. 마치 후자의 결과 때문에 전자의 문제를 더 주목해야 한다는 방식의 주장처럼 읽히는데, 서론부는 사실상 별도의 분석과 연구문제를 요하는 것이기에 이러한 인과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둘째, 이 연구가 정말 ANT적 분석을 수행했는지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ANT 분석에 시도되는 기본적인 고전적 개념들을 쓰지 않으면서 ANT의 수행적 접근에 동의한다는 식의 요지는 ANT 분석이라는 이 글의 주장을 약하게 만든다. 비디오게임을 ANT로 분석한다면, 저자가 지적했듯 게임 내적 요소뿐 아니라 이를 연결하는 다양한 외부 요소가 필요하다. 자연환경이나 지형지물을 만들 때 들어갔어야 할 기술들, 게임개발자들의 문제, 게임이 이식될 당시의 하드웨어 특성, 게임 시장과 산업 등 수많은 구성요소들의 행위성이 있어야 하고, 이러한 행위자들을 따라감으로써 네트워크를 파악해 실체를 드러내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연구는 게임 내적 요소에 분석의 영역을 한정하고, 행위소들의 구체적인 네트워크 분석보다는 게임 텍스트에 비인간중심주의를 기반으로 한 기호학적, 철학적 독해를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연구는 ANT를 수행한 연구라기보다는 객체지향적 접근에 기반한 포스트휴먼 비평으로 봐야 하지 않는가가 발제자로서 나의 생각이다.

     

 셋째, 게임 속의 ‘응답하지 않는 자연’을 둘러싸고 저자와 나의 해석이 너무나 다르다. 저자는 응답하지 않는 자연이 인간을 넘어서는 자연을 보여주고 그 접근 불가능성을 인간에게 감각할 수 있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응답하지 않는 자연은 오히려 기술적 제약 때문이든 자연을 고려하는 인식이 없기 때문이든간에 자연을 말 그대로 배경으로 객체화한 결과가 아닐까? 이 경우 게임 속에 재현된 자연은 더 강한 인간중심주의로 읽어낼 수 있다. 관련 이론에 과문한 탓에 더 깊게 들어가기 어렵지만, 객체지향 존재론이나 ANT이 가정하는 존재론적 접근에서는 게임 개발자나 연구자의 인식 및 의도와 무관하게 행위자들의 네트워크가 존재론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설명하고 그를 (역설적이게도 인간 행위자인 연구자의 인식론으로) 풀어내는 것처럼 보여진다. 게임이 인간을 넘어서는 자연을 보여준다는 해석이 인간 행위자에게서 발생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왜인지 모순으로 다가온다.

     

 어찌되었든, 이 연구는 게임 제작 기술이 발달하면서 인터랙티브 요소를 확장해야 하고 그 요소로 자연을 고려해야 하는 개발자들이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한 흥미로운 지점을 제시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더 많은 인터랙티브를 만들어낼수록 이는 인간의 응답대로만 움직이는 세계를 만들어내는, 즉 인간중심성을 강화하는 게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Tags:

레트로 게임, 게임과 환경, 행위자-네트워크 이론, 포스트휴머니즘, 콘트라, 배틀 시티, 리버 레이드, 논문세미나, Retro Games, Actor-Network Theory, Games and Ec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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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구자)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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