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눅스와 함께 춤을: 시뮬레이션에 체증 유발하기
29
GG Vol.
26. 4. 10.
그날이 오면

* 드디어 리눅스의 해가 밝았다
리눅스 유저들 사이에는 오래된 농담이 하나 있다 . 바로 올해야말로 리눅스 데스크톱의 해라는 것이다 . 하지만 ‘ 진정한’ 리눅스 데스크톱 생태계의 현현은 마치 영원히 도래하지 않는 메시아처럼 계속해서 지연된다.
그리하여 2025년은 (윈도우 10의 지원 중단 여파와 함께 ) 리눅스 보급률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리눅스 데스크톱의 해임이 틀림없었지만, 2026년이야말로 진정한 리눅스 데스크톱의 해라고 봐야 한다. 당연히 2027 년 역시 매우 강력한 후보다. 아니, 어쩌면 2028년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비로소 리눅스 데스크톱의 해에 이르렀음을 사후적으로 깨달을지도 모른다. 관건은 그날이 반드시 (언젠가는) 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농담에는 또 다른 한 겹의 아이러니가 덧대어 있다. 데스크톱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면 이미 전 세계는 리눅스가 ‘ 돌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클라우드 서비스인 (윈도우 서버를 보유한) 마이크로소프트의 Azure마저 자사 고객의 61.8%가 리눅스를 이용한다고 답한다. 세계 최대의 서비스인 AWS(아마존 웹 서비스)와 3위인 구글 클라우드의 경우 각각 83.5%와 91.6% 라는 압도적인 비율을 선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최상위 500개의 슈퍼컴퓨터는 전부 리눅스 생태계에 기반한다.i 물론 리눅스의 음모(?)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제는 거의 필수 공공 인프라의 대명사가 되어서 집이든 상업시설이든 어디에나 한 대씩은 꼭 배치되어 있는 인터넷 라우터의 펌웨어들 대부분은 리눅스 커널 ii에 기반한다. 스마트 티비를 위시한 온갖 자잘한 ioT 디바이스들 역시 대부분 리눅스라고 봐야 한다 . 클라우드를 제외하고라도 사람들이 무심코 이용하는 인터넷 서비스의 서버들 상당수는 리눅스일 확률이 높다. 무엇보다도 전 세계 모든 스마트폰의 OS 중 70%를 담당하는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 자체가 (수정된) 리눅스 커널에 기반한 시스템이다. 즉 리눅스는 우리 일상의 백엔드 backend 프로세스를 완벽히 장악했다.
그렇다면 한 줌도 안 되는 리눅스 데스크톱 점유율이 뭐가 중요하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웹 브라우징을 넘어서 결제까지도 클라우드에 기반한 LLM 에이전트에 맡기라고 압박하는 바야흐로 총체적 ‘ 자동 사냥’ 의 시대 아니던가. 에이전틱agentic OS를 부르짖으며 너의 컴퓨터는 그저 LLM이 수행한 결과들을 출력해 주는 단말기에 불과하니 잔말 말고 코파일럿의 세례를 받으라는 ‘ 권유’ 를 사실상 명령처럼 따라야 하는 현실 아닌가. 그럼에도 그 모든 프로세스의 뒤에 리눅스가 있다면 그것은 FOSS(Free and Open Source Software)의 승리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러한 즉각적인 반문들을 다시 즉각적으로 튕겨내지 않고 끌어안은 채 새로운 지점으로 가기 위해서는 오픈 소스 생태계의 현 상황을 잠시 경유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게임은 이 맥락에서 뜻밖의 병목을 야기한다.
클라우드라는 건 없습니다. 그건 그저 다른 사람의 컴퓨터일 뿐이죠

* ???: 코파일럿 어택!
IT에 관심이 많다면 위의 그림iii과 같은 밈을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밈마다 조금씩 디테일은 다르지만, 핵심은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거의 모든 디지털 인프라의 (주로 빅테크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들이 사실은 매우 불안정한 기반 위에서 유지되어 왔으며, 그 기반에는 (많은 경우) 별다른 금전적 대가 없이 일하는 수많은 오픈 소스 개발자들이 있다는 이야기다. 오픈 소스 생태계 특유의 강한 자유지상주의적libertarian 색채는 많은 사람이 자유롭게 그 기반 위에서 실험할 수 있는 토양과 함께 열려 있는 생태계를 악용하는 비지니스적(?) 자유iv마저 허용하는 관대함으로 현재의 거대한 IT 산업을 촉발했지만, 동시에 이미 첨예한 노동의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이러한 긴장 관계를 가장 압축적으로 잘 보여주는 사례가 최근에 불거진 오픈 소스 프로젝트 FFmpeg의 운영자들과 구글의 보안 전문가들(Project Zero팀) 사이의 다툼이다.v 발단은 프로젝트 제로 팀이 바꾼 두 가지에서 시작한다. 하나는 Big Sleep이라는 새로운 AI 버그 헌터를 가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찾아낸 버그를 공개하는 시기를 좀 더 타이트time-sensitive하게 바꾼 일이다. 이는 소프트웨어의 취약점이 발견되는 속도를 (그 취약점이 실제로 타당한가 와는 별개로) 훨씬 가속했을 뿐만 아니라 그 리포트를 받은 오픈소스 개발자들이 버그를 고치는 작업과 관련해서 인위적으로 촉박한 마감 시한을 새로 만들어내는 효과를 창출한다.
문제는 구글이 버그를 리포트하고 빨리 고치라고 압박할 뿐, 이미 대부분이 무보수로 불철주야 일하고 있는 FFmpeg의 운영자들에게 별다른 기여를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FFmpeg은 비디오/이미지/음악 트랜스코딩에 관한 한 유튜브뿐만 아니라 크롬 브라우저에서도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프레임워크이다. 즉 구글은 자사의 주요한 서비스들이 완전하게 의존하고 있는 오픈 소스 프로젝트를 마치 악랄한 플랫폼 기업이 긱gig 노동자들 부리듯이 대하고 있는 셈이다. 당연하지만 FFmpeg의 운영자들은 화가 나서 버그를 리포트하려면 패치도 같이 배포하는 식으로 프로젝트에 기여를 하든가 , 수천조 원 규모의 기업이 지금 이게 무슨 짓거리냐고 공개적으로 저격을 했다.
그런데 이러한 명확한 대립 구도 만으로 이 밈을 ‘ 해석’ 해 버리고 만다면 우리는 여기서 좀 다른 방향으로 가지를 뻗을 기회를 놓치게 된다. 이미지는 언제나 언어를 초과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층층이 쌓여 올려진 각기 다른 레이어들이 점점 가중되는 추상화abstraction의 연쇄로 재배치되는 어떤 수직적 감각이 있다. 바꿔 말하면 해저 광케이블의 레이저로부터 주머니 속 스마트폰 앱까지의 여정에는 수많은 단절 /재배치의 순간들이 존재한다고 표현해 볼 수도 있다. 이 구조는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려는 자연스러운 행위를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따라서 그림의 최상단에 위치하는 (하지만 생략된) ‘유저’ 들은 기이한 착취 구조 속에 던져진 오픈 소스 개발자들과 거울상처럼, 추상화가 더해질수록 조금씩 더 자신을 둘러싼 (디지털) 환경에서 소외된다.
추상화는 IT를 포함한 디지털 인프라의 스케일과 안정적인 작동을 고려해 볼 때 어느 정도 불가피한 과정이다. 당장 하드웨어/소프트웨어의 분리부터가 추상화의 결과다.vi 그러나 빅테크 중심의 클라우드 생태계 재편에 더해서 LLM이라는 터보 엔진을 장착한 최근의 가속화된 추세는 단순하게 스와이핑할 수 있는 스크린 인터페이스마저 유저들의 ‘ 경험’ 에 반하는 방해물로 인식한다.vii 이 시점에서 이상적인 유저란 초보적인 UI와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당한 채로 새로운 AI 모델의 훈련과 매우 정교한 광고 타게팅에 쓰일 사적인 데이터를 추출 당하는 개별적인 노드node로서만 존재할 수 있다.
시뮬레이션 가설viii과 같은 흥미로운 사고 실험이 가지는 가장 큰 역설은 그러한 인위적인 가설을 세울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이미 고도로 추상화된 시뮬레이션으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이다 . 어느 날 갑자기 FFmpeg의 운영자들이 모두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겠다는 발표ix를 하더라도 매일 같이 유튜브를 시청하는 수억 명의 사람 중 대다수는 ‘ 어쩌라고’ 와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 시뮬레이션을 렌더링하는 기계 자체에서 벌어지는 문제에 대해서 시뮬레이션 내부의 대상이 뭘 어찌 할 도리는 없으니까 . 관건은 거듭되는 추상화로 인한 심리적/물리적 거리감과 시뮬레이션의 주도권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림에서 가장 아랫단에 자리 잡고 있는 리눅스 서버를 설령 윈도우 서버로 바꾸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다. 그저 다음 AI 쇼츠가 딜레이 없이 재생되는 한 모두가 행복할 것이다.
소화 불량에 걸린 시뮬레이션 Welcome to the real world.

* 산 넘어 산
흥미로운 것은 그 자체로 시뮬레이션이기도 한 게임이 또다른 거대한 시뮬레이션이 되어 가고 있는 디지털인프라 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유발하는 병목이다. 이는 게임에 어떤 고귀한 목적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기술적인 한계로 인한 부수 효과에 가깝다. 클라우드 게이밍이 아무리 계속해서 발전한다고 해도 빛의 속력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기술이 등장하지 않는 이상 유저가 입력한 인풋이 서버로 전송됐다가 출력으로 다시 돌아오는 그 길고 긴(?) 여정에 걸리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근미래에 (6G를 넘어서) 7G 통신이 등장하거나, 우연히도 클라우드 게임 서버가 위치한 데이터 센터 바로 옆 동네에 산다고 해도 마찬가지의 이야기다. 그 어떤 것도 로컬에서 내 클릭이 바로 앞에 있는 기기로 전달되는 엄청나게 짧은 시간으로부터 산출되는 인풋렉input lag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그뿐만 아니라 클라우드 게이밍은 수많은 조건절에 의해서 제약받는다. 일단 유저가 게임을 하는 공간에 매우 일관되게 높은 대역폭의 안정적인 인터넷이 요구된다. 이 첫 번째 조건을 만족하는 지역부터가 세계적으로 손에 꼽을 정도다. 만약 예고도 없이 장기간에 걸쳐 서버에 문제가 생긴다면? 구독료를 지불한 유저들은 꼼짝없이 인질이 된다. 혹은 구독료가 갑자기 심각한 수준으로 오른다면?x 구독을 끊는 순간 그 방대했던 게임 라이브러리는 (엔비디아 지포스나우의 경우) 그림의 떡만도 못한 애물단지로 전락하거나 (게임 패스의 경우)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2026년인 지금도 대부분의 게이머는 마치 원시인들처럼 기기의 열을 배출하는 시끄러운 팬 소리를 들으며, 게임을 로컬에서 직접 돌린다.
게임을 로컬에서 실행한다는 말은 필요하다면 하드웨어 레벨에서라도 직접 개입해서 게임이 왜 잘 안 돌아가는지 문제점을 찾는 식으로 어느새 끊임없는 ‘ 돌봄’ 에 익숙해진다는 의미다. 팬에 쌓여 있는 먼지를 털어 내는 소소한 행위조차 그저 내가 말만 하더라도 모든 것이 알아서 작동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 고도로 추상화된 세계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우리가 배달앱을 누르는 순간 밑도 끝도 없이 허공에서 음식이 3D 프린팅 되는 것이 아니듯이, 게임을 실행하는 순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그저 화면이 켜지면서 게임이 마법처럼 작동한다고 믿는 것은 클라우드 사업자의 망상wet dream일 뿐이다. 게이머들은 오로지 게임이 좀 더 원활히 실행됐으면 하는 일념 하나로 자신이 다루는 기기를 거의 무의식적으로 구석구석 체화한다. 어쩌면 그 단순함이 우리를 추상화의 늪에 완전히 빠지지 않도록 지탱해 주는 버팀목일지도 모른다.
믿기지 않겠지만 리눅스 데스크톱 역시 정확히 같은 원리로 디지털 인프라가 구현하는 시뮬레이션에 변비를 초래한다. (어떤 배포판이든) 리눅스 운영 체제가 인스톨이 끝나자마자 아무런 이슈도 없이 매끄러운 동작을 선보여야 한다는 나이브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면 지금 당장 macOS한테나 뛰어가서 울먹이며 안아 달라고 찡찡대길 바란다. 물론 (반쯤은) 농담이다. 하지만 게임과 마찬가지로 돌봄에 익숙해질수록 리눅스는 추상화가 남기고 간 단절/재배치의 흔적들을 좀 더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것에 있어서 매우 큰 도움을 준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DNS 네임 서버부터 게임 내 AI 어시스턴트 UI에 이르는 마치 주술 같은 경로들을 실제로 작동하는 지도로 그려보기 시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리눅스와 게임은 개별적으로만 존립할 필요가 없다. 리눅스 게이밍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 리눅스콘LinuxCon에서 게이브 뉴웰은 그의 연설 도중 리눅스는 게이밍의 미래라고 선언했다. xi 홍보 활동의 일환으로 선언만 하고 곧바로 잊어버리는 여타의 CEO들과는 다르게 게이브는 그의 사업적 비전에 진심이었고, 그 결과물은 리눅스 게이밍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밸브가 직접 그 분야와 관련된 오픈 소스 개발자들을 조직해서 (넉넉한 임금을 주면서) 전폭적으로 지원했던 프로톤Protonxii은 출시 직후부터 리눅스 게이밍에 관한 한 없어서는 안 될 핵심적인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또한 그 과정 전체가 기업이 오픈 소스 프로젝트와 어떤 방식으로 협업해야 하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모범 사례가 되었다 . 프로톤은 여전히 오픈 소스이다. 자연스럽게 밸브 이외에도 다양한 개발자들이 그들만의 프로톤을 발전시킨 덕에 현재는 매우 활발한 하나의 생태계로 진화하였다. 2026년의 현시점에서 프로톤이 실행하지 못하는 게임은 커널 레벨 안티치트kernel-level anti-cheatxiii가 적용된 몇몇 멀티 플레이어 게임들 정도로 매우 제한적이다.
게임과 관련해서는 언제나 주도권을 쥐던 어떤 회사의 OS가 점점 더 어떻게 하면 유저들이 원치도 않는 AI를 억지로 떠먹일 수 있을까만을 고민할수록xiv 리눅스 데스크톱은 게이머들 사이에서 더욱더 매력적인 대안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xv 안타깝지만 리눅스 커뮤니티에는 가식적인 미소를 띤 macOS가 주는 “ 더 스마트하게 일하고, 더 열심히 노세요” 따위의 격려는 존재하지 않는다 . 오히려 리눅스는 ‘ 환불의 심판자, 군다’ 가 지키고 있는 <다크 소울 3>의 황량한 튜토리얼 지역을 떠올리게 한다. 이곳은 가혹한 공간이지만 어쨌든 당신이 튜토리얼을 클리어한다면 나도 당신에게 ‘ 세계’ 를 보여주겠다고 약속하는 그 묘한 방식의 공평함 말이다. 군다를 클리어한 이후라고 해서 갑자기 게임의 배경이 화사한 꽃밭으로 변하는 기적은 벌어지지 않는다. 이어지는 길은 우중충하고 매우 다크하며, 또 여전히 가혹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나아간다. 그리고 정말 세계를 보게 될 것이다. 리눅스에 온 것을 환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