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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임회사는 NFT의 꿈을 꾸는가 : ‘튤립’과 ‘국민템’ 사이에서

    새로움은 한계가 눈에 보일 때 도드라진다. 게임에 블록체인을 접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는 것만으로도 주목을 받는 배경에는 그 시도가 만들 새로운 결과에 대한 기대 못지않게 그러한 새로움을 필요로 하는 현재에 대한 불만이 함께 놓여있다. 이를 생각하면 게임에 블록체인을 접목한다는 아이디어는 어떤 변화를 의도하는가와 더불어 그 변화가 왜 필요한지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지는 지금의 위치를 이해하고 그로부터 나아갈 위치가 어디쯤일지 더 분명하게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 Back 게임회사는 NFT의 꿈을 꾸는가 : ‘튤립’과 ‘국민템’ 사이에서 05 GG Vol. 22. 4. 10. NFT, 현상인가 징후인가? 새로움은 한계가 눈에 보일 때 도드라진다. 게임에 블록체인을 접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는 것만으로도 주목을 받는 배경에는 그 시도가 만들 새로운 결과에 대한 기대 못지않게 그러한 새로움을 필요로 하는 현재에 대한 불만이 함께 놓여있다. 이를 생각하면 게임에 블록체인을 접목한다는 아이디어는 어떤 변화를 의도하는가와 더불어 그 변화가 왜 필요한지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지는 지금의 위치를 이해하고 그로부터 나아갈 위치가 어디쯤일지 더 분명하게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블록체인을 접목한 게임에 대한 논의는 현재보다는 미래에 대한 논의에 집중되는 양상이다. 연관된 주제인 ‘P2E’나 ‘NFT’등에 대해서도 현재보다는 미래, 그중에서도 그동안 시도된 사례나 앞으로의 구상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루고 있다. 무언가 빠진 것 같으면서도 일련의 다양한 시도들이 종횡무진 펼쳐진 다음 지속되는 것들이 다음 패러다임을 이루게 될 것을 생각하면, 지금은 일단 결과에 대한 검증보다는 가능성의 좌표를 최대한 넓히는 과정으로 이해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게임에서의 NFT를 사회적인 관점과 기술적인 관점으로 헤아리고자 한다. 대체불가능성과 탈중앙화를 중심으로 게임의 현재와 NFT를 통해 제기되는 미래상을 연결하면서, 연관된 기술적 과제는 무엇인지, 이러한 시도가 게임에 남기게 될 의미는 무엇일지 가늠하고자 한다. 대체불가능성의 여러 맥락 ‘대체불가능한 토큰(Non Fungiable Token)’이라는 뜻의 ‘NFT’는 기술적 맥락보다는 ‘고유성이 강력히 보장되는’ 소유권이 강조된 가상자산의 맥락으로 사용되는 경향이 짙다. 이로 인해 ‘대체불가능한’이라는 속성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것을 전제로 두고 그것의 가치가 어느 정도일 수 있을지, 어떻게 활용할지 등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둔다. 한국 현행법상 아직까지 게임 서비스에 NFT를 본격적으로 도입하는 것은 불가능해서, 활용에 대한 논의가 실질적으로 실현되기까지 여러 제약과 시간이 따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본격적으로 도입하게 되면 초기비용이 큰 가상자산에 비해 게임은 조금 더 수월하게 가상자산에 접근하는 경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게임이 수월한 경로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게이머들은 게임을 하기 위해 어느 정도 부담을 감수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게이머는 게임의 팬이 되는 경우가 많고 팬에게 블록체인에 접근하는 비용은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 금액으로 여겨질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많은 블록체인들에게 게임과 블록체인을 접목하는 시도의 계기를 제공한 〈크립토키티(CryptoKitties)〉의 사례를 주목할 만하다. 게임 내 거래를 가상화폐인 ‘이더리움’을 통해서만 결제하게 한 이 게임은 희귀한 고양이를 만들수록 비싼 금액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이 게임의 재미는 어디에서 발생했을까? 희귀한 고양이를 만드는 과정일까? 아니면 고양이가 희귀할수록 금액이 치솟는 과정일까? 고양이에게서 느끼는 귀여움, 그리고 고양이를 수집하고 교배하는 과정이 이 게임의 속성으로 제시되지만, 게임 바깥에서 활용될 수 있는 화폐가 결합되었기 때문에 게임의 온전히 기본적인 재미만이 발휘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는 이 게임에서 희귀한 고양이를 만든 상황을 가정해보는 것으로 좀 더 살펴볼 수 있다. 만일 수집과 교배를 통해 희귀한 고양이를 얻는 데 성공했다면, 그것이 즐거운 이유는 무엇일까? 나만의 캐릭터를 얻었다는 만족일까, 아니면 높은 금액으로 거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일까. 아마 이 두 가지 모두일 것이다. 실제로 거래할 생각이 없더라도 캐릭터에 평가되는 높은 금액은 소장하는 만족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재미는 기존 온라인 게임에서 경험하던 만족과 닮은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을 것이다. 관건은 NFT를 통해 새로워질 수 있는 측면이 무엇이냐일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게임회사와 게이머의 관점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대체불가능성에 대한 상반된 관점 먼저 게임회사는 NFT를 도입하는 것이 게임의 재미와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지, 어떤 변화를 계획하는지 뚜렷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나인크로니클 (Nine Chronicles)〉과 같은 게임이 모든 로직과 데이터를 블록체인에 올려 탈중앙화함으로써 블록체인의 특성을 게임에 전면적으로 적용한 사례도 분명 있지만, “왜 블록체인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실행하면서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러한 경향은 비즈니스 모델에서도 드러나는데, 현재 가장 유효한 비즈니스 모델은 아이템을 미리 판매하는 것이며, 이는 블록체인만의 특징을 활용했다기보다는 기존의 모델에 블록체인을 접목한 것에 가깝다. 그렇다 보니 게임에 가상자산을 접목하는 개연성이 선명하지 않다. 플랫폼의 수수료나 이용자 간의 거래를 회사가 직접 중개할 수 없는 법적인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의도가 더 큰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제시된 아이디어 대부분이 게임에 블록체인을 접목하는 것보다는 게임회사가 직접 발행한 가상자산을 화폐로 사용하면서 그 과정은 게임회사가 완전히 통제하려는 의도를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짐작할 수 있다. 게임회사의 NFT가 (아직) 상품으로서의 가치에 치중해 있다면 게이머들에게 NFT는 상반된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투자상품으로서의 게임 아이템이고, 다른 하나는 (게임 서비스가 종료되어도 남아 있는) 소장품으로서의 게임 아이템이다. 후자를 주목할 만한데, 서비스 중심으로 운영되는 게임이 종료될 경우 게임이 서비스되는 동안 게이머들이 게임에서 소비한 시간과 재화가 함께 소멸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동안 게이머가 직접 남긴 스크린샷 외에 이용자가 게임에 대해 느끼는 가치를 기록으로 남길 방법이 뚜렷하게 없는 상태에서 NFT는 게임에 대한 고유한 기록을 남기는 방법의 새로운 유형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NFT는 ‘애정’의 차원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기존에 존재하는 게임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여러 방법들 외에 새로운 표현 경로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대체불가능성’은 게임에 대한 애정, 팬심을 뚜렷하게 각인한다는 맥락으로 사용될 수 있다. 기술적으로 정말 대체 불가능함을 달성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게임에 대한 애정을 입증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식으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용자의 의지와 관계없이 서버 종료를 통해 이루어지는 온라인 게임의 결말을 경험하면서 이용자들은 플레이하는 동안 충분히 누리고 즐기는 것으로 게임의 영속성에 대한 나름의 감각을 체득했다. 서버 종료가 되면 그것이 사라질 수 있음을 알면서도 과금을 하는 것에는 영속성에 대한 기대보다는 현재의 만족을 지향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지만 언젠가 서버 종료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시기를 알 수 없다는 것은 여전히 게이머에게는 위험 요소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NFT는 소멸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면서도 게임에 대한 애정을 가장 뚜렷하게 입증하는 기록이 될 수 있다. 탈중앙화를 둘러싼 배경과 맥락 대체불가능성과 관련하여 현재 블록체인이 보장하는 것은 데이터이다. 작업증명(PoW)이나 용량 제한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관련 기술이 발전하고 있지만, 현재로서 게임의 모든 체계를 블록체인에 올리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게임 자체는 블록체인의 바깥인 아웃체인에 두고 게임회사가 게임을 관리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게임 서비스가 사라지고 아이템을 소유했다는 데이터가 남게 된다. 데이터가 있기는 한데 활용할 수는 없으니 대체불가능성이 덜 유효해진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데이터를 추가할 수 있지만 그럴수록 블록체인에 담을 수 있는 게임 데이터의 양은 줄어들고 비용은 커진다. 게임의 콘텐츠가 줄어들고 이용자의 활동을 기록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려 게임을 플레이하기 힘들어지기도 할 것이다. 한편으로 전력 문제나 거래 비용, 거래시간과 같이 현재 블록체인이 지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새로 시도되고 있는 방법들은 증명을 위임하는 등 효율화를 추구하면서 블록체인이 지향하는 탈중앙화에 배치되는 경향이 있다. 현재 많은 블록체인 거래들이 실제로는 거래소 중심으로 일어나서 블록체인이 지향하고 있는 탈중앙화와는 거리가 있기도 하다. 모든 것을 통제하는 중앙화된 방식을 게임회사가 의도한 것이라면 그것이 굳이 블록체인일 필요는 없다. 지금의 시스템에서 데이터와 아이템의 가치를 보장해주면 되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이 아닌 기존의 데이터베이스를 사용하는 것이 속도와 비용 면에서 훨씬 효율적이기도 하다. 이런 배경 때문에 블록체인을 사용하는 개연성이 크게 보이지 않는 게임은 블록체인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을 표방하더라도 법과 수수료를 피하기 위해 보장할 수 없는 가치를 보장한다고 주장하는 일종의 기만행위라는 의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게임의 탈중앙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시도는 게임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중앙서버를 두지 않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게임회사와 이용자 관계의 새로운 전환을 떠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흥미롭다. 기존 게임에서 중앙화된 서버를 중심으로 게임회사와 이용자의 관계가 형성되었다면, 탈중앙화된 게임에서는 게임회사와 이용자의 관계가 보다 수평적이고 개방적으로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계가 성립될 경우, 게임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과 수익모델 등에 두루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캐릭터의 ‘성장’과 ‘우위’를 지향하면서 발생한 기존 게임의 문제들이 ‘탈중앙화된 관계’를 지향하는 게임에서는 해소되거나 다른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이것과 저것 사이 혹은 너머의 그것 게임에서의 NFT는 어떤 결과를 만들어나가게 될까. 다음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것보다는, 새로운 시도와 지금까지의 경험이 서로 병합되거나 절충되면서 확장되된 형태의 결과를 만들 가능성을 고려해볼 수 있다. 먼저 앞서 지적한 블록체인의 문제를 기술의 발전을 통해 해결할 가능성을 꼽을 수 있다. 블록체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작업증명(PoW)에 지나치게 많은 전력량을 사용한다는 것인데, 요즘은 이 방법을 채택하지 않는 블록체인 기술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미 작동하고 있는 블록체인이 새롭게 이 방법을 채택할 가능성은 낮지만 대체불가능성과 탈중앙화에 대해 제기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의 기술적 대안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는, 법과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길 원하는 게임회사의 욕망을 블록체인에 담으려는 것은 기술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게임 속 화폐와 실제 화폐가 연계된다는 아이디어가 새롭진 않다. 이를 되짚어 생각해보면 게임 속 화폐가 실제 화폐와 연계되지 않아 온 이유가 있는 것이다. 블록체인이 새롭다고 해서 연계될 수 없는 이유를 단번에 뛰어넘을 수는 없다. 만일 특히 거래 시스템에서 블록체인 활용도가 높아진다면 그 방식은 기존 시스템에 블록체인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방식일 것이다. 자연히 가상자산과 실제 화폐의 연계는 기존의 법안을 충족시키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질 것이 요청된다. 게임 회사와 이용자의 새로운 소통 면에서도 블록체인 활용을 고려해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이브 온라인(EVE Online)〉의 사례를 짚어 볼 만하다. 게임을 서비스하는 CCP 게임즈는 해마다 ‘이브 팬 페스트’를 개최한다. 이브 온라인 이용자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데, 부대행사 중 ‘플레이어 프레젠테이션’은 신청한 게이머에게 40분의 프리젠테이션 기회 또는 원탁회의 주관 기회를 제공한다. 이 게임은 전 세계 단일 서버로 운영되어서 이용자들의 참여가 중요한데, 이 행사에서 여러 가지 정치적인 관계에 대한 협의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게임회사가 이용자들의 의견을 청취할 수 있는 다양한 장을 만들고 또 실제로 그 의견을 수용해 게임에 반영함으로써 이용자의 피드백이 게임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는 게임회사가 의사결정을 주도하여 발생할 수 있는 문제로부터 벗어날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블록체인은 이 과정에서 게이머의 의견을 기록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며, 의사소통과 의사결정 과정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을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서비스가 오래 지속될 경우 게임회사와 이용자 사이의 의사소통 아카이브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신뢰가 낮아진 게임과 이용자 간의 관계를 블록체인으로 보완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게임 안에서 생성되는 아이템에 대한 기록을 블록체인에 기록하고 이용자들이 누구나 블록체인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면 확률 문제 등을 검증할 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도 많은 우려와 문제가 제기되지만 블록체인 기술이 신뢰와 깊이 연관된다면, 신뢰를 회복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을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의 토대 위에서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게임회사가 NFT를 통해 꾸는 꿈은 무엇인가? 다가올 미래를 암시하는 징후인가, 현재의 한계가 중첩된 현상인가? 분명한 것은 그것이 현상인지 징후인지 확인하기 위해 성큼 나아가는 시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발걸음이 어떤 자취를 남기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 발걸음의 경로와 좌표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출발점을 중심으로 한 지형을 파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좌표를 확장하는 앞으로에 대한 논의에 집중하면서 그동안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은 질문들을 살펴야 한다. “게임의 목적이 재미 추구가 아닌 다른 것이 될 때 그것을 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부터 말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사회학자) 강지웅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게이머즈〉를 비롯한 여러 게임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했다. 저서로 〈게임과 문화연구〉(공저), 〈한국 게임의 역사〉(공저)가 있다.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에서 게임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게임이 삶의 수많은 순간을 어루만지는, 우리와 동행하는 문화임을 믿는다. (게임개발자, 연구자) 오영욱 게임애호가, 게임프로그래머, 게임역사 연구가. 한국게임에 관심이 가지다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2006년부터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있다. 〈한국게임의 역사〉, 〈81년생 마리오〉등의 책에 공저로 참여했으며, 〈던전 앤 파이터〉, 〈아크로폴리스〉, 〈포니타운〉, 〈타임라인던전〉 등의 게임에 개발로 참여했다.

  • GGOTY 2025: 2025년 GG가 뽑은 올해의 게임과 사건들

    게임제너레이션(GG)은 2025년을 돌아보며 총 27명의 필자를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습니다. ‘올 한해 출시된 게임 중 가장 주목했던 게임’(최대 3개까지 중복 답변 가능)과 그 선정 이유, ‘2025년에 접하신 사건, 책, 논문, 보고서, 영상 중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2025년 GG에서 가장 인상깊게 본 글’과 그 이유 등을 물었습니다. 우리는 2025년을 어떤 시간으로 기억할까요? < Back 27 GG Vol. 25.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aeseok Kim Worked for eight years as a reporter at ThisIsGame. Now handles external relations at a subculture startup. Loves editors and the power of cheat codes.

  • Can “Black Myth: Wukong” Be Truly Understood Beyond Chinese Cultural Borders?

    As a cultural epicentre of East Asia for centuries, China has consistently brought its classical literature to games. From the earliest days of video games, Chinese developers have adapted their classic literature like “Investiture of the Gods (Fengshen Yanyi)” and “Strange Tales from a Chinese Studio (Liaozhai Zhiyi)” into virtual worlds. < Back 24 GG Vol. 25.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 효율, 계산 가능성 그리고 민맥싱

    테크 전문 월간지인 와이어드WIRED는 지난 3월 [1](효과/효율적 이타주의의 종언)이라는 장문의 칼럼을 게재했다. 그리고 즉각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어째서 특정한 철학 사조를 비판하는 철학자의 글이 기술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잡지에 실리게 됐으며, 이토록 큰 관심을 유도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효과/효율적 이타주의(통칭 EA)가 처한 특수한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 EA는 실리콘 밸리의 유력한 엔지니어들과 테크 억만장자들(이 두 그룹은 종종 겹친다.) 사이에서 이미 실질적인 종교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Back 18 GG Vol. 24. 6. 10. Tags: 민맥싱, 최적화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Wombat A freelancer who does odd jobs of all kinds. Interested, fittingly, in all kinds of odds and ends. With games, the interest runs especially deep.

  • 리눅스와 함께 춤을: 시뮬레이션에 체증 유발하기

    그렇다면 한 줌도 안 되는 리눅스 데스크톱 점유율이 뭐가 중요하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웹 브라우징을 넘어서 결제까지도 클라우드에 기반한 LLM 에이전트에 맡기라고 압박하는 바야흐로 총체적 ‘ 자동 사냥’ 의 시대 아니던가. 에이전틱agentic OS를 부르짖으며 너의 컴퓨터는 그저 LLM이 수행한 결과들을 출력해 주는 단말기에 불과하니 잔말 말고 코파일럿의 세례를 받으라는 ‘ 권유’ 를 사실상 명령처럼 따라야 하는 현실 아닌가.  < Back 29 GG Vol. 26.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Wombat A freelancer who does odd jobs of all kinds. Interested, fittingly, in all kinds of odds and ends. With games, the interest runs especially deep.

  • [논문세미나] 즐거움과 죄책감 사이에서 게임하기: 인도 남성 청년들의 게이밍 하위문화와 문화적 불협화

    이번 글에서 다룰 논문은 인도 라자스탄 주의 우다이푸르라는 소도시에서 성인모색기(emerging adult, 유년기와 성인기 사이의 과도기적 단계)에 있는 남성 청년들의 게이밍 하위문화를 풀어내고자 하는 글이다. <대항문화로서 인도 게이밍 존(Indian Gaming Zones as Oppositional Subculture)>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글은 온라인 게임 플레이가 우다이푸르 청년들에게 어떻게 게이머라는 대안적 하위문화 정체성을 제공하는지, 그리고 이들은 즐거움과 죄의식 속에서 왜 게임을 그토록 중독적으로 경험하는지를 탐색한다. < Back [논문세미나] 즐거움과 죄책감 사이에서 게임하기: 인도 남성 청년들의 게이밍 하위문화와 문화적 불협화 30 GG Vol. 26. 6. 10. TEXT: Snodgrass, J. G., Dengah, H. F., Upadhyay, C., Else, R. J., & Polzer, E. (2021). Indian Gaming Zones as Oppositional Subculture: A Norm Incongruity “Cultural Dissonance” Approach to Internet Gaming Pleasure and Distress. Current Anthropology , 62(6), 771-797.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순간’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온다.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일치하지 않을 때, 그리고 후자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될 때 특히 그렇다. 아마 게임을 사랑하며 성장해 온 젊은 게이머들에게 이러한 양가감정은 낯설지 않을 것이다. 과거 팬덤, 펑크, 오타쿠 문화가 그러했듯 게임 역시 누군가에게는 가장 강렬한 즐거움과 소속감을 제공하는 문화적 실천이다. 그러나 바로 그 즐거움은 게임을 둘러싼 사회적 편견과 충돌하며 불안과 죄책감을 낳기도 한다. 이처럼 게임은 즐거움과 낙인, 소속감과 불안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역으로 더더욱 강한 중독적 몰입을 추동하기도 했으며 그 결과 게이머들만의 규범과 정체성을 공유하는 하나의 하위문화를 형성해 왔다. 이번 글에서 다룰 논문은 인도 라자스탄 주의 우다이푸르라는 소도시에서 성인모색기(emerging adult, 유년기와 성인기 사이의 과도기적 단계)에 있는 남성 청년들의 게이밍 하위문화를 풀어내고자 하는 글이다. <대항문화로서 인도 게이밍 존(Indian Gaming Zones as Oppositional Subculture)>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글은 온라인 게임 플레이가 우다이푸르 청년들에게 어떻게 게이머라는 대안적 하위문화 정체성을 제공하는지, 그리고 이들은 즐거움과 죄의식 속에서 왜 게임을 그토록 중독적으로 경험하는지를 탐색한다. 배경 설명 및 문화적 불협화(cultural dissonance) 관점 이 연구는 특정한 사회적 집단의 질병이나 고통을 물리적 맥락을 넘어 문화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연구하는 의료인류학적 관점으로 ‘게임 중독’ 현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글이다. 연구진은 우다이푸르 청년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면서도 게임에 열광적으로 점점 몰입하는 양가적인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의료인류학자 드레슬러의 개념을 일부 사용했다. 드레슬러는 한 개인의 육체와 정신건강을 결정하는 것은 소득, 영양, 의료접근성 같은 물질적 요인뿐 아니라 그 개인이 가진 문화적 가치와 이를 둘러싼 사회적 기대 사이의 관계를 포함한다고 보았다. 이를 위해 그는 한 개인이 자신의 문화적 가치에 기반한 신념/행동을 사회에서 공유하는 문화적 모델에 얼마나 근접하게 일치시키는가를 보여주는 문화적 합치(cultural consonance) 개념을 개발했다. 즉 문화적 합치 개념은 개인의 건강이 ‘자신이 중요하다고 믿는 문화적 삶을 실제로 실현할 수 있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문화적 합치가 일어나지 못해 자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사회의 기대가 엇갈린 상황에 놓인 개인은 어떻게 되는가? 이를 위해 연구진은 문화적 합치 개념에 심리학의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개인의 신념과 태도가 양립 불가능성을 제거할 수 없을 때 개인이 고통을 겪는 경향) 개념을 더해 문화적 불협화(cultural dissonance)라는 관점을 개발한다. 이러한 개념을 통해 이 연구는 우다이푸르 청년들의 게임 하위문화를 단순한 병리화 담론에서 말하는 중독이나 반사회적 회피 현상으로 읽는 것을 넘어 온라인에서의 삶과 오프라인에서의 삶 사이에 있는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심리-사회적 협상으로 읽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 글의 배경이 되는 인도 우다이푸르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 연구의 참여자들은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이거나 대학을 다니는 20대 초반의 남성 인도인들이다. 저자들의 언급에 따르면 25세 이전까지의 인도 남성 청년들은 기본적으로 학생 브라마차리아(brahmacharya)로서, 한 가정의 가장이 되기 위한 준비 단계에 있는 위치로 여겨진다. 우다이푸르의 청년 대부분은 중매혼을 거쳐 결혼하며, 그 이전까지는 가장으로서의 생계능력과 좋은 신부를 얻을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살아간다. 대부분이 결혼 후에도 부모와 함께 살거나 독립을 하더라도 부모와 가까이 지내며, 이들을 부양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예비) 가장의 역할이 강하게 각인된 이러한 사회에서, 게임을 즐기는 행위는 청년들의 평판을 쉽게 깎고 미래 직업이나 결혼 전망을 어렵게 하는 ‘중독’으로 쉽게 규정된다. 한편 우다이푸르는 휴대전화와 와이파이, 인터넷 기술의 보급으로 SNS나 게임에 대한 접근성이 어느 정도 갖추어진 곳이다. 때문에 많은 연구참여자들은 게이밍 존과 같은 오프라인 공간에서 <카운터 스트라이크> 같은 온라인 게임을 무리없이 즐길 수 있었다. ‘게이밍 존’이란 인도의 대면 게이밍 카페로, 고사양의 네트워크와 PC장비가 구비된 한국의 PC방과 비슷한 곳이다. 연구참여자들은 대부분 중산층이거나 집에 따로 PC를 갖고 있음에도 친구들과 이곳을 함께 방문하며, 텍스트와 음성 채팅을 통해 온라인 유저들과 교류하며 게임을 한다. 대부분의 청년 게이머들은 게이밍 존에 매일같이 출근하면서 ‘진정한 게이머(true gamer)’가 되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매주 일요일은 ‘풀 러시의 날’로 하루종일 게임을 하는 유저도 있을 정도였다. 연구 방법 이 연구는 대상을 분석하기 위해 최소 3가지 이상의 연구방법을 결합했다. 첫째로, 우다이푸르 남성 청년들이 게임에 몰입하고 게이머 정체성을 획득해 가는 과정을 탐색하기 위해 3개의 게이밍 존에서 6주간 참여관찰이 동반된 에스노그라피를 수행했다. 일반적으로 각 존에 12-15명 정도 있는 정기 플레이어들이 연구의 초점이 되었고, 아침과 저녁 최소 1시간 반-최대 3시간 가량 필드노트를 동반한 관찰이 진행되었다. 둘째로, 게이밍 존에 정기적으로 등장하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비공식 인터뷰를 수행했다. 인터뷰에서는 게이밍과 게이머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이들이 삶에서 받는 직업과 결혼에 대한 압박의 문제까지 다루고자 했다. 셋째로, 설문조사를 통해 이들이 추구하는 ‘진정한 게이머’ 정체성 모델의 네 가지 핵심 구성 요소를 식별했고, 이 요소들이 어떻게 이들의 긍정적/부정적 게이밍 경험과 연결되는지 파악하고자 했다. 네 가지 핵심요소는 아래 서술할 에스노그라피에서 드러난 4가지 요소(가까운 게이머 친구들 보유, 글로벌 게이머 공동체와의 연결감, 프로 게이머에 대한 꿈, 게이머 하위문화 소속감)이며, 긍정적/부정적 게이밍 경험은 드레슬러의 방법론에 따른 21문항 측정도구를 이용했다. 이 과정에서 연구진은 우다이푸르 청년들이 진정한 게이머 정체성에 가까워진다고 느낄수록, 긍정적 게이밍 경험(즐거움) 뿐 아니라 부정적 게이밍 경험(이에 수반되는 고통) 또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가설을 내렸다. 마지막으로, 위 3가지 분석 결과에 기반한 측정을 시행하여 우다이푸르 청년들이 갖는 긍정적 게이밍과 부정적 게이밍에 대한 문화적 모델을 도출했으며 이것이 개인의 건강 결과와 어떻게 일치하는지를 분석하고자 했다. 에스노그라피 연구 방법과 결과 "모두가 모두를 안다(Everybody knows everybody)" 먼저, 인도의 게이밍 존은 우다이푸르 청년들에게 강력한 우정의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게임하기 좋은 환경을 찾아 이곳에 왔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모두 알게 될 정도로 가족 같은 관계가 되었다. 이들은 게이밍 존에서 자기 시간의 절반 이상을 플레이어가 아닌 ‘관전자’로 보내는 시간에 쓴다. 관전하는 동안 팀원들이나 온라인 친구들에게 지시나 명령을 외치며, 휴식 시간에는 차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며 다음 전략을 논의한다. 게이밍 존에서 이들은 욕설을 하거나 시끄럽게 외치고, 놀리거나 장난스럽게 때리며 상호작용한다. 그간 공공장소에서는 쉽게 용납되지 않았던 행위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자기 담배에 마커로 이름을 적어 게이밍 존 주인의 서랍에 보관한다. 게이밍 존에서 거래되는 담배, 차, 간식 역시 비공식적인 ‘우정의 화폐’로 자리한다. 글로벌 게이머 공동체 우다이푸르 청년들은 글로벌 게임 플랫폼 스팀(Steam)을 통해 전세계의 다양한 플레이어들과 친분관계를 맺고 소통했다.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카운터 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를 플레이했는데, 여기서 접한 글로벌 네트워크는 그들의 국가적·종교적 정체성을 초월하게 만들었다. 이라크에 사는 길드 친구가 게임에 들어와 자국의 전투가 소강됐다는 소식을 전해 주기도 했고, 파키스탄 무슬림들과 자연스럽게 팀을 맺고 플레이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게임을 하는 동안만큼은 이들은 그저 ‘게이머’였으며, 카스트나 종교, 지리와 같은 다른 소속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연구참여자들은 플레이 도중 힝글리시(hinglish, 힌디어 모어 화자의 인도식 영어)를 활용해 본인의 영어 실력과 게임 지식의 능숙함을 드러내기를 즐겼다. 이들이 자신들을 ‘진정한 게이머’로서 타인들과 구별짓는 지점은 게이밍에 대한 열정과 글로벌한 소속감을 만들어내는 영어 구사 능력, 그리고 (담배, 에너지음료, 정크푸드로 상징되는) 자신을 ‘중독자’로 규정할 수 있는 특정한 소비 패턴이었다. 디지털 시대의 꿈 연구참여자들이 느끼는 게임의 이점은 무엇이었을까? 이들은 게이밍이 자신에게 인생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열정이나 동기, 경쟁심을 제공해주었다고 답변했다. 특히 이들은 게임 실력을 연마하여 꾸준하게 향상시키는 과정에서 큰 즐거움을 얻었다. 이를 위해 유명 팀들 사이의 매치 라이브 방송을 꾸준하게 시청했으며, 장시간 깨어 있기 위해 담배와 에너지음료를 필수로 챙겼다. 게이밍 존 소유주들도 이들의 열정을 알고 존들 간의 지역 매치를 조직하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우다이푸르의 ‘진지한 게이머’ 청년들 대부분은 프로 게이머로 데뷔하는 것을 꿈꾸었다. <도타 2> 플레이로 유명해진 ‘인디언 울브즈’ 같은 인도의 프로 e스포츠 팀들은 이런 꿈을 꾸는 데 큰 영감을 주었다. 프로가 된다는 것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데다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진짜 게이머’의 타이틀을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동시에 자신들이 게임에 대한 지원이 거의 없고 인터넷이 불안정한 소도시 출신이기에, 이러한 꿈이 비현실적이라는 점을 일정 부분 인식하고 있었다. 하위문화적 도피로서의 게이밍 앞서 언급했듯이, 게이밍 존에서 우다이푸르 청년들은 사회의 다른 곳에서는 용납되지 않던 일종의 자유를 얻었다. 게이밍 존에서만큼은 비명을 지르고, 싸우고, 욕하고, 거칠게 굴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먹고 마실 수 있는 모든 활동이 허용되었다. 때문에 많은 연구참여자들은 게임의 즐거움을 현실 세계에서 도망쳐 내 문제들을 잊고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찾았다. 이러한 답변은 우다이푸르의 실업률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청년들이 ‘미래가 없다’고 느끼는 현실 인식에 근거한다. 좋은 직업은 얻기 어렵고 결혼 또한 어차피 부모가 주선하는 중매로 이미 예정되어 있는데, 결혼을 하고 가장이 되면 자기의 게임 생활은 완전히 끝나 버리기 때문이다. 때문에 게이밍 존이라는 공간은 사회적 규범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분리된 일종의 매직 서클(magic circle)과 같은 장소로서, 연구참여자들이 도피하고 싶은 압박적인 상황으로부터 해방이나 문화적 대안을 제공할 수 있었다. 바로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이 공간은 연구참여자들이 다시 맞닥뜨려야 할 실제 세계의 공간 및 관심사와 중요하게 연결된 채로 남아 있었다. 사회적 도덕 공황: 기술 중독(a technical addiction)이라는 담론과 정서적 고통 앞서 언급했듯 힌두교의 브라마차리아 담론에서 게임은 중요한 인생의 준비 시기를 망칠 수 있는 행위로 간주된다. 남자들이 가정으로 들어가기 전 자신의 ‘동물적’ 충동을 최대한 통제하고 관리해야 할 시기에 게임을 하는 것은 무절제한 시간낭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이는 우다이푸르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연구진들에게도 내재화된 관점이었다. 전통적인 브라만 출신인 한 연구진은 참여관찰 단계에서 연구참여자들의 무절제한 욕설과 줄담배 흡연에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다). 또한 인도 우다이푸르 사회에서 게임이 비난받는 맥락은 남성 가장의 역할규범 외에도 ‘기술에 대한 (세대적) 비난’과 결합되어 있다. 우다이푸르 기성세대의 일부는 인터넷이 인도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며, 청년들의 90%가 쓸데없는 인터넷 중독에 빠져 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기성의 젠더규범 인식과도 연결된다. 인터넷이 청년 남성과 여성을 부적절한 관계로 끌어들이고, 서구 라이프스타일을 베껴서 혼전 성관계의 유행과 강간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이들 사회가 제시하는 적절한 인터넷 사용의 예시는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미래 직업을 배우기 위해 인터넷을 사용할 때로 한정되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에 둘러싸인 상태에서, 연구참여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어떤 형태로든 게임에 중독되어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먹지도 자지도 않고 100시간 연속으로 플레이한 연구참여자들도 많았으며, 게임으로 인해 성적이 떨어지거나 출석률을 못 지켜 수업 참여가 금지되는 등 학업을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들은 끊임없이 게이밍에 대해 “우리는 그것을 해야 해요(karna to hai)”라 설명하면서도 재빨리 자신과 친구들을 중독자 혹은 시간 낭비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명명하는 데 스스럼이 없었다. 설문조사 및 측정 분석 결과 먼저 설문조사 표본에 대한 기술통계 분석 결과, 응답자들에게서는 긍정적 게이밍 경험이 부정적 게이밍 경험보다 조금 더 높게 나타났다. 이들은 온라인 공동체를 통해 적절한 사회적 소속감과 지원감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프라인 삶에서 크게 외로움을 느끼지도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설 검증 단계에서는 진정한 게이머 행동 모델의 4가지 요소 (가까운 게이머 친구들 보유(H1), 글로벌 게이머 공동체와의 연결감(H2), 프로 게이머에 대한 꿈(H3), 게이머 하위문화 소속감(H4)) 들이 긍정적/부정적 게이밍 경험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파악했다. 응답자들에게서는 앞의 세 가지 변수가 강할수록 긍정적 게이밍 경험 보고가 증가했다. 반대로 게이머 하위문화 소속감의 경우 부정적 게이밍 경험이 높아질수록 강하게 드러났다. 이는 응답자들이 느끼는 게이밍의 즐거움이 주류 인도 사회의 규범에서 벗어난 게이머 대항문화에 소속된다는 점에서도 비롯됨을 보여준다. 이 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전반적인 분석 결과 긍정적 게이밍 경험과 부정적 게이밍 경험은 강하게 양의 상관관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높은 긍정적 플레이 경험을 갖는 플레이어들은 대다수가 동시에 높은 부정적 플레이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긍정적 플레이 경험을 추동했던 변수들은 각각 더 높은 부정적 게이밍 경험과 연결되었다. 즉, 우다이푸르 남성 청년의 게이밍 경험에서 양자는 기본적으로 대립되는 경험이 아니라 밀접하게 상호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결론 이처럼 게임 플레이에 대한 우다이푸르 청년들의 양가적인 감정은 게임의 긍정성과 부정성이 대립되는 관점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들이 게이머 하위문화와 주류 사회 속에서 경험하는 ‘문화적 불협화’의 두 가지 얼굴로 해석할 수 있다. 하위문화와 주류 사회라는 두 세계가 가지는 양립 불가능성이야말로 연구참여자들의 정체성과 의식을 이중적이고 분열화시키는 기제이다. 이들이 게임을 하면서도 내재된 위험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은, 이들이 단순히 게임 속 세상에만 고립되어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외부 세계와의 연결을 전제로 플레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시에 연구진은 우다이푸르 청년들이 자기 게이밍을 ‘중독’이라 의미화하는 것은 자신들이 처한 인지적, 정서적 불협화를 최소화하는 또 다른 하나의 방안이라고 설명한다. 진정한 게이머 정체성과 인도 사회의 일부로서 남성화된 규범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 사이에서 이들은 전자를 일시적 중독으로 의미화함으로써, 자기의 미래의 삶을 상대적으로 우월한 것으로 올려놓고 현재에 자신이 겪는 고통이나 스트레스, 불화하는 감각을 최대한 줄이고자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연구진은 우다이푸르 청년들의 하위문화로서 게이밍 경험에 대한 분석이 기존 게이머들에 대한 분석적 시선을 확장해 준다고 본다. 그간 게임 중독이라는 문제는 생체의학적 관점에서 약물이나 도박 중독과 같은 정신질환의 문제로 다루어졌거나, 혹은 문화적 관점으로 갈 경우 소비주의를 조장하고 청/소년의 도덕성을 위협하는 ‘도덕적 공황(Moral panic)’의 유발 기제 정도로 다루어져 왔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 연구의 참여자들이 ‘자기 스스로가 위험하게 온라인 게임에 중독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상황이야말로 게이밍 중독에 대한 사회적 공황 이론을 불완전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정리하며 우다이푸르 청년들에 대한 ‘문화적 불협화’라는 저자들의 관점은, 특정한 하위문화 집단을 저항과 복종이라는 이분법에 근간해서 판단하지 않으려는 연구진의 지적 노력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게이밍 존에서 이들이 보여준 문화는 주류 인도 사회가 가정하는 지배적 남성성의 규범들에 일정 부분 대항하고도 있지만, 동시에 이들은 스스로가 주류 집단에서 벗어난 사회적 거부자 혹은 ‘루저’ 라는 낙인을 일정 부분 내재화하고도 있다. 주류 규범에 완전히 동화되지도, 완전히 벗어나지도 못한 이들의 이중적인 상황은 (미래에는 어차피 게임 생활을 포기할 것이기 때문에) 지금 자신의 위치를 일시적인 중독자로 격하하는 행동으로 현상되어 나타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게임 중독의 문제를 어떻게 기존의 문화적 접근과 다른 방향에서 논의할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글이기에, 우다이푸르 청년의 하위문화가 갖는 대항성에 대한 분석이 심화되지 못한 것은 한계로 남는다. 그런 점에서 이 논문의 주요 리뷰어 중 하나인 레슬리 조 위버의 지적은 매우 유의미하다. 논문에서 더 논의되어야 했을 사항은 청년들이 단순히 중독 사실을 인정하는 것 외에도 이러한 불협화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고 어떻게 구체적으로 불협화를 해소하려 노력하는지, 나아가 게이머 공동체는 궁극적으로 인도 가부장제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라는 좀더 심층적인 분석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논문이 이런저런 맥락에서 폴 윌리스의 <학교와 계급 재생산>을 떠올리게 하는 만큼, 이들의 문화적 불협화가 인도 사회의 더 큰 문화적 맥락에서 작동하는 남성 중심성과 마초성에 대한 광범위한 규범을 어떻게 재생산하거나 혹은 벗어나는지를 본격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수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울기 싫은 플레이어의 애도하기: <마이 리틀 퍼피>

    애도는 개와 인간의 관계만큼이나 <마이 리틀 퍼피>의 중요한 주제다. 봉구에 대한 애도는 재회에 대한 염원에서 시작해 게임에 등장한 모든 영혼에게 각자의 해피엔딩을 쥐어주는 것으로 발전했다. 이 과정에서 봉구와 ‘아빠’는 개와 인간, 죽은 자와 산 자로 관계맺으며 서로를 변화시켰을 것이다. < Back 울기 싫은 플레이어의 애도하기: <마이 리틀 퍼피> 28 GG Vol. 26. 2. 10. 인간사의 비극에는 꿈쩍 않던 사람이 을 볼 때는 눈물을 참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꼭 반려동물을 키우거나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렇다. 동물의 감정은 언어로 표현될 수 없기 때문일까. 그 순수함에 감응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리하여 동물이라는 소재는 보편적인 ‘눈물버튼’으로 쓰인다. ‘마이 리틀 퍼피’는 명백히 동물이 ‘눈물버튼’인 사람들을 겨냥한 게임이다. 견종 중에서도 귀여움으로 이름 높은 웰시코기 ‘봉구’가 사후세계에서 ‘아빠’를 마중나가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 반려동물을 먼저 보낸 게이머라면 아마 천국의 강아지들이 주인과 재회하는 도입부부터 눈물을 훔쳤으리라. 필자 또한 반려견을 잃어버려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은 경험이 있기에 그리웠던 강아지를 만나자마자 무너지는 사람들을 보고 휴지를 찾아 일어서야 했다. 무지개 다리를 내달리는 봉구의 치명적인 뒷태와 다리가 짧아 높은 턱을 오르지 못해 바둥거리며 낑낑대는 모습에 앓는 소리를 내는 것은 무조건 반사적인 행동이다. 게임은 반려견과 죽음이라는 소재에서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충실하게 보여준다. 생전에 보호소에서 주인을 만나고 먼저 떠나기까지의 사연과 주인을 향한 맹목적인 사랑, 여기에 섬세하게 구현한 강아지의 움직임이 더해져 애틋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필자는 <마이 리틀 퍼피>에 쉽게 마음을 열어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눈물은 ‘눈물버튼’이 눌린 결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신파에 울지 않으려는 소비자 특정 소재에 ‘눈물버튼’이 눌리는 현상은 해당 창작물에 대한 평가와 무관하다. 신파의 서사를 접했을 때 발생하는 감정은 기계적인 반사작용으로 여겨진다. 이에 정형화된 신파에 익숙해진 소비자는 흔히 감정적으로 완전히 무감해지거나, 여전히 눈물을 흘리면서도 창작물과 심리적 거리를 두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곤 한다. 전형적인 한국식 신파 영화를 보고 나와 벌건 눈으로 ‘눈물이 나서 자존심이 상한다’며 성을 내는 관객이 좋은 사례일 것이다. <마이 리틀 퍼피>의 플레이 중반까지 나는 예시로 든 관객과 같이 이중적인 반응을 보였다. 신파에 냉담해진 소비자는 신파의 냄새를 맡는 순간부터 이러한 태도를 보이며 감정적 반응을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슬픈 영화를 보며 울지 않기 위해 일부러 촬영장의 모습을 상상하거나 배우의 연기일 뿐이라고 거듭 생각하는 식이다. 이는 특정 형식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자신의 감정적 반응을 통제하려는 태도와 연결되어 있다. 정형화된 형식에는 진정성이 부족하며, 이에 감응하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문화비평가 에밀리 부틀이 주장하듯 진정성은 21세기의 시대정신이다. 사람들은 창작물의 진정성에 천착하며 그것에 자신이 감동할 가치가 있는지 추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눈물버튼’이라는 표현의 유행을 해석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부틀에 의하면 진정성은 자신의 가식을 인정하는 개념으로 팔린다. ‘눈물버튼’을 탓하는 이는 자신의 감정적 반응은 자동반사적인 것일 뿐 진정으로 감동하진 않았다며 진정성의 결여를 인정하고, 이를 통해 진정성을 획득할 수 있다. 이러한 반응 때문에 신파의 소재로 인지되는 순간부터 그 소재의 확장성은 제한된다. 특정 소재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는 뻔하다고 생각하는 소비자는 실제 이야기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의외성을 적극적으로 간과하고, 재해석의 필요를 무시하곤 한다. 설사 99%가 전형적 신파의 반복이라 하더라도, 수용자의 상황에 따라 유의미한 감정의 승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 신파의 힘을 빌렸다는 것만으로 작품을 평가절하할 수는 없다. 신파라는 말에 갇혀 소재가 가진 힘이 소실되는 것은 창작자에게도, 소비자에게도 손해이다. 필자 역시 ‘눈물버튼’이 눌리길 거부하는 소비자이기에 <마이 리틀 퍼피>와 거리를 두기 위해 노력했다.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하며 위험천만한 맵을 지나게 하고 있자니 봉구를 고생시키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던 탓도 있었다. 감동적인 재회를 위해 나의 컨트롤 미스로 강아지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봐야 한다는 것에 의아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반부를 넘어서며 <마이 리틀 퍼피>의 잔인함은 이 게임이 재현하려는 세계의 중요한 성격으로 드러난다. ‘힐링 게임’에 어울리지 않는 잔인함 전형적 신파의로 소비되기 쉬운 주제에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지점은 연출과 재현이다.‘마이 리틀 퍼피’의 제작진은 강아지 시점에서 전개된다는 점을 특징으로 내세웠으나 이는 이미 다양한 매체의 창작물에서 시도된 바 있다. 고양이의 행동양식을 사실적으로 구현해 화제가 된 게임 <스트레이>와 비교해 보면 그와 같은 수준의 본격적인 시점 전환이 의도된 것은 아니다. <마이 리틀 퍼피> 역시 강아지의 행동을 매력적으로 구현해 냈지만, 인간의 언어는 완전히 배제된 <스트레이>와 달리 <마이 리틀 퍼피>는 그림과 자막을 통해 강아지들의 의사를 인간의 언어로 해석해준다. 그보다 눈에 띄는 건 게임이 재현하기로 선택한 인간과 개의 모습이다. 봉구가 천국에서 처음 만나는 인물들을 자세히 보면 심상치 않다. 갓난아기와 아기를 지키는 허스키, 교복을 입은 학생, 헤진 옷을 입은 노인까지 각자의 사연이 있으리라 짐작되는 이들이 등장한다. 게임의 배경이 사후세계이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게임 내 모든 캐릭터가 망자임을 인식하고 그들이 세상을 떠난 배경을 유추하게 된다. 평화롭지 못한 죽음을 맞은 것이 분명해보이는 천국의 인물들은 플레이어의 감성을 자극하기 위한 일회적인 장치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아기자기한 천국의 풍경에서 이들이 등장했을 때 플레이어가 느끼는 위화감은 게임 중반부의 사막 맵에서 진돗개 가족과 들개 무리를 마주했을 때 다시 찾아온다. 어미 진돗개와 새끼 세 남매는 봉구 이외에 처음으로 생전의 사연이 소개되는 캐릭터들이다. 보호소에서 지내던 어미 개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새끼들은 입양을 기다리다 안락사되었다. 입양 공고에서 예쁘게 보이기 위해 둘렀던 장식을 사후에도 하고 있다. 이들의 등장을 통해 게임이 조명하는 세계는 봉구와 아빠라는 개체 간 관계를 넘어서, 개와 그들이 생전에 속했던 세계의 관계로 확장된다. 봉구와 진돗개 가족을 위협하는 들개 무리의 등장은 이를 더욱 분명히 한다. 들개 무리는 실험견, 투견 등 인간에 의해 학대당한 개들로 구성되어 있다. 학대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은 들개들의 모습은 게임의 동화적인 디자인과 어긋나며 위화감을 불러일으키고, 그 감각은 대자연만이 펼쳐진 사후세계와 대비되는 잔인한 이승의 세계, 인간의 세계를 가리킨다. 들개 무리와의 추격전이 펼쳐지는 미니게임에 실패할 경우, 들개들이 봉구와 진돗개 가족을 위협하는 장면이 나오며 게임이 종료된다. 마냥 사랑스러운 게임을 기대한 플레이어라면 이 장면에서 분명 당황했을 것이다. 처참한 모습의 들개들이 공격성을 표출하는 모습은 게임의 메인 빌런인 악령들의 공격과 달리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게임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잔인한 재현은 수의사 캐릭터가 등장하며 절정에 이른다. 수의사는 저승의 은신처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거나 아직 천국으로 가지 못한 개들을 돌보고 있다. 생전에 보호소에서 일하며 수많은 강아지를 안락사시켜야 했던 그녀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죽음을 택했다. 안락사된 개들과 정신적으로 무너진 수의사는 게임 전체에서 가장 어둡고 잔인하게 묘사된다. 시커멓게 칠해진 수의사의 눈은 공포게임 연출을 연상케 할 정도로 이질적이다. 예고없이 나타나는 잔인한 재현과 게임의 동화적 미학이 불화할 때의 이질감은 익숙한 신파의 구조에서 플레이어를 미끄러트린다. 잔인함의 구체성이 현실을 호출해 냉소를 유지하게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이 미끄러짐을 통해 플레이어는 신파로부터의 거리두기를 중단하고 게임이 ‘개’라는 종을 다루는 방식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로써 신파에 갇힌 ‘펫 로스’라는 소재의 확장이 가능해진다. 이질적 연출의 등장과 동시에 이야기의 중심은 봉구에게서 진돗개 가족, 들개 무리, 수의사로 이동하며, 게임은 인간과 개의 양면적인 관계를 전면에 내세우게 된다. 이들의 사연을 통해 그려지는 두 종의 관계는 긴밀하고도 일방적이다. 개에게 사랑을 주는 것도 상처를 주는 것도 사람이다. 사랑과 상처의 흔적은 미련이 되어 개들이 죽어서도 저승을 떠돌게 한다. 이처럼 귀여움과 잔인함이 병존하는 이질적인 재현 방식은 불편한 진실에 대한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바로 인간에게 종속된 개의 삶에는 태생적으로 잔인한 측면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 표현형이 사랑이든, 상처이든 간에 말이다. 개와 망자라는 타자와의 관계 게임을 플레이하며 필자가 느낀 잔인한 일방적 관계는 생물학자이자 페미니즘 이론가 도나 해러웨이가 <반려종 선언>에서 지적한 바 있다. 해러웨이는 개들의 ‘무조건적 사랑’의 능력이 있다는 믿음은 그 자체로 개와 인간 모두에게 가학적이며, 이 사랑이 소중하다면 오히려 무조건적인 사랑의 담론에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과의 사랑의 관계에 종속된 개는 이 사랑의 환상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버려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개라는 개체와 종 전체에 대한 종합적 이해를 시도하지 않고 사랑의 관점으로 개를 보는 것은 “종류와 개체 모두를 무조건적으로 죽이게 된다.” <마이 리틀 퍼피>는 봉구를 통해 무조건적 사랑의 담론을 충실히 재생산하는 한편, “개 자신의 가치-와 삶-는 개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인간의 인식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해러웨이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재현을 보여준다. 들개 무리는 게임의 마지막까지 인간과 함께하지 않고 저승을 떠돌길 선택한다. 과거 자신들을 받아줬던 수의사에게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들개들은 유유히 길을 떠난다. 이들의 존재는 저승에서 주인을 기다리며 ‘무조건적 사랑’을 실천하는 다른 개들 역시 사랑의 담론에 종속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플레이어는 그간 함께한 봉구와의 여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이러니하게도, 개의 입장이 되어보길 권하는 이 게임을 통해 필자는 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음’을 이해하게 됐다. 인간은 개를 관찰해 가상의 개를 모델링할 수 있지만 개를 완전히 이해할 순 없다. 그러나 해러웨이에 따르면 이와 같은 ‘이해할 수 없음’에 대한 인식, ‘부정의 방식으로 아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다. “핵심은 타자나 자신에 대해 알 수 없지만, 관계 안에서 누구와 무엇이 출현하고 있는지를 항상 질문하는 것이다.” 개와 인간은 함께 관계를 구성하며 그 속에서 서로를 변형시키고 있다는 것만이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관계를 통해 존재한다. 해러웨이는 이 관계를 통해 개와 인간에게 서로에 대한 ‘권리’가 구축되며, 그에 대해 이야기하고 책임을 지는 것이 윤리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개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인간의 무지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인간을 위한 이야기이다. 이는 산 자와 죽은 자의 관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산 자는 죽은 자를 알 수 없으며, 애도의 목적으로 쓰여지는 모든 이야기는 산 자를 위한 것이다. 하지만 해러웨이가 말하는 개와 인간의 관계에서처럼, 산 자와 죽은 자의 관계는 상호적이다. 산 자가 죽은 자의 흔적을 만질 때에 죽은 자도 산 자를 변화시킨다. 애도는 개와 인간의 관계만큼이나 <마이 리틀 퍼피>의 중요한 주제다. 봉구에 대한 애도는 재회에 대한 염원에서 시작해 게임에 등장한 모든 영혼에게 각자의 해피엔딩을 쥐어주는 것으로 발전했다. 이 과정에서 봉구와 ‘아빠’는 개와 인간, 죽은 자와 산 자로 관계맺으며 서로를 변화시켰을 것이다. 더불어 봉구가 생전에 ‘아빠’라는 개인을 어떻게 구성했는지도 되돌아보게 된다. 이야기는 신파에 대한 냉소로 되돌아온다. <마이 리틀 퍼피>는 감정의 과잉이라는 신파의 문법을 적극 활용한다. 그러나 이 감정은 들개 무리와 수의사의 이야기를 통과하며 개인 간의 애틋함이라는 전형적 서사의 감정에서 인간과 개의 관계가 지닌 비대칭성과 책임에 대한 고찰이 남기는 감상으로 변모한다. 이때 플레이어가 느끼는 감정은 ‘눈물버튼’이 눌린 결과를 넘어서, 개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윤리적 재고를 거친 것이 된다. 역설적으로 봉구와 아빠의 이야기 역시 이 과정을 통해 다시금 힘을 얻게 된다. 애도의 진정성조차 평가의 대상이 되는 사회에서 <마이 리틀 퍼피>는 감정을 솔직하게 밀어붙이며 플레이어에게 ‘아빠’의 애도에 동참하길 요청한다. 꼭 반려동물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떠나보내거나 사랑한 적 있는 플레이어라면 이 여정을 함께하며 그 솔직함에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다. Tags: 건조, 강아지, 반려동물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에디터) 박유진 시사 유튜브·팟캐스트를 만드는 직장인이자 평범한 게이머. 시사를 녹여낸 게임 이야기를 전하는 일에 종종 함께합니다.

  • [인터뷰] 쥐와 함께 6년을 살아 온 인디게임사, <카셀게임즈> 황성진 대표

    올해로 창립 6년 차를 맞은 카셀게임즈의 황성진 대표를 만나, 그의 창작 철학과 개발 과정에 대한 고민, 인디게임사 운영의 현실, 그리고 다음 프로젝트를 향한 구상까지 진솔하게 들어보았다. < Back 25 GG Vol. 25. 8. 10. Tags: 인디게임, 인터뷰, 게임산업, 래토피아, 래트로폴리스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isu Kim Studies a range of fields—culture and knowledge, space, and the academic field. Also interested in the history of games and the lives of gamers.

  • 제1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안내

    게임문화웹진 ‘게임제너레이션’은 디지털게임의 문화적 접근 폭을 넓히고 게임문화를 선도적이고 실천적으로 이끌어갈 새로운 필자의 발굴을 위해 아래와 같이 게임비평공모전을 개최하고자 합니다. 게임과 게임문화를 사랑하고 연구하는 많은 분들의 참가를 부탁드립니다. < Back 06 GG Vol. 22.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변호사의 눈으로 본 역전재판

    벌써 오래 전 이야기다. 토요일 아침이면 신문을 펼쳐 TV 편성표를 살펴보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하곤 했다. 특히 “토요명화”나 “주말의 명화”에서 어떤 영화를 방영하는지가 가장 큰 관심사였는데, 넷플릭스도 IPTV도 없던 시절이니, 시간도 돈도 없는 학생에게는 영화를 볼 기회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편성표 옆에는 영화평론가들이 영화를 간단히 소개하며 별 5개 만점으로 나름의 평가를 달아두었는데, 별점이 높은 영화가 방영되는 날에는 종일 설레었던 기억이 난다. < Back 변호사의 눈으로 본 역전재판 02 GG Vol. 21. 8. 10. 벌써 오래 전 이야기다. 토요일 아침이면 신문을 펼쳐 TV 편성표를 살펴보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하곤 했다. 특히 “토요명화”나 “주말의 명화”에서 어떤 영화를 방영하는지가 가장 큰 관심사였는데, 넷플릭스도 IPTV도 없던 시절이니, 시간도 돈도 없는 학생에게는 영화를 볼 기회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편성표 옆에는 영화평론가들이 영화를 간단히 소개하며 별 5개 만점으로 나름의 평가를 달아두었는데, 별점이 높은 영화가 방영되는 날에는 종일 설레었던 기억이 난다. 어느 주말 저녁, TV에서 “어 퓨 굿맨(A few good men)”을 방영했다. 너무 오래 전 영화라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대강의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미소를 중심으로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미군 관타나모 기지에서 해병대원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쿠바를 코앞에 둔 최전방에서 해병대를 지휘하는 제섭 대령은(잭 니콜슨 분)은 부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병사에게 린치를 가하라는 명령을 내리는데, 린치를 당하던 병사가 결국 사망에 이른 것이다. 하버드 출신의 군법무관 캐피 중위(탐 크루즈 분)가 린치를 가한 해병대원들의 변호인으로 선임된다. 제섭 대령은 로스쿨을 막 졸업한 풋내기 법무관이 공판에서 자존심을 건드리자 결국 폭발하고, 자신이 린치를 명령했음을 시인한다. 탐 크루즈와 잭 니콜슨이라는 걸출한 두 배우의 불꽃 튀는 연기가 인상 깊었던 “어 퓨 굿 맨”은 필자가 법조인이라는 직업을 동경하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어찌 법조인뿐이겠는가. 필자와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이라면, 인디아나 존스(Indiana Jones)를 보고 고고학과에 진학할 계획을 세우거나 탑 건(Top Gun)을 보고 공군사관학교에 가겠다고 결심했던 친구들을 한두 명씩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변호사가 된 이후에는 영화든 드라마든 법정물은 보지 않게 됐다. 필자뿐만 아니라 주변 법조인들 중에도 법정물을 보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얘기를 들어보면 법조인들이 법정물을 보지 않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 정도인데, 법정물을 보고 있으면 분명 쉬고 있는 건데도 일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는 것과 드라마나 영화 속 법조인이나 재판의 모습이 현실과 크게 달라 감정이입이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선배 한 명은 극장에서 황당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노효정 감독의 2001년 영화 “인디언 썸머”에는 피고인이 허위 진술을 하자 판사가 훈계하는 장면이 나온다. “피고인, 법정에서 거짓말하면 위증죄로 처벌 받는 거 알죠?” 선배는 이 장면을 보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위증죄는 선서한 증인, 즉 제3자가 허위의 진술을 하는 경우에 성립하는 죄이기 때문에, 피고인은 법정에서 거짓말을 한다고 해도 위증죄로 처벌할 수 없다. 법조인에게는 아주 기본적인 상식이다. 하지만 선배가 왜 웃는지 알지 못하는 주변 관객들은 웃음을 터트린 선배를 매섭게 쏘아봤다고 한다. 물론, 현실을 얼마나 충실히 반영했는지만으로 법정 영화나 드라마의 작품성을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예술 장르에는 나름의 문법과 미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캡콤의 대표적 법정 게임인 역전재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소송”을 생각하면 머릿속에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아마도 사형이나 무기징역 같은 무서운 단어들일 것이다. 피고인의 유무죄를 판단하고 형벌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소송은 상당히 진지하고 심각한 소재다. 그렇다면 역전재판은 왜 굳이 이런 무거운 소재를 사용한 것일까? 우리는 어쩌면 요한 하위징아의 대표작 “호모 루덴스”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을 동물과 구별 짓는 특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는데, “생각하는 인간(호모 사피엔스)”이나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호모 파베르)”을 강조하는 견해도 있지만, 요한 하위징아는 “놀이하는 인간”에 주목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하위징아가 “호모 루덴스”에서 소송도 놀이로 보았다는 점이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소송은 옳고 그름, 즉 정의를 판단하는 행위가 되었지만, 고대의 소송은 놀이의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었으며, 현대의 소송에도 놀이의 요소가 상당부분 남아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예를 들면, 소송에서 당사자가 승리하기 위해 말싸움을 하는 것은 놀이의 전형적인 특징이며, 판사가 착용하는 법복이나 가발은 소송이라는 놀이를 일상적 세계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도구라는 것이다. 하위징아에 따르면, 소송은 중세의 마상시합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이처럼 소송의 놀이적 성격을 고려한다면, 소송을 소재로 게임을 만든다는 건 어색한 게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보아야 한다. 역전재판은 대표적인 법정 게임이다. 역전재판 이후 출시된 다른 법정 게임들도 역전재판의 문법을 상당 부분 차용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역전재판은 사실상 법정 게임의 전범(典範)이라고 할 수 있다. 게이머는 주인공 나루호도가 되어 의뢰인의 누명을 벗겨야 한다.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하는 패턴은 비슷하다.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용의자가 체포된다. 주인공이 증거를 수집하거나 증인을 신문하는 과정에서 피고인의 무죄를 입증하는 단서가 발견되고, 주인공은 이를 기초로 법정에서 증인을 탄핵하여 의뢰인의 무죄를 밝히고, 진범을 찾아낸다. 역전재판의 핵심적인 재미는 증인의 증언에서 모순점을 찾아내거나 증언과 반대되는 증거를 제시해 증인을 탄핵하는데 있다. 다시 말해서 증인과의 두뇌싸움에서 느끼는 게이머의 지적 희열이 게임을 계속하게 만드는 동력인 것이다. 이런 두뇌싸움이 게이머를 즐겁게 하려면 범인을 추리하는 과정에 개연성이 있으면서도 적절한 난이도가 유지되어야 한다. 추리가 너무 쉽거나 단순하면 게이머가 쉽게 지루함을 느끼며, 개연성이 없거나 주어진 단서만으로 범인을 추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면 게이머가 게임을 포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각각의 에피소드마다 약간씩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역전재판은 전반적으로 개연성과 난이도를 잘 유지하고 있다. 아마도 이것이 역전재판이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가장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물론, 지나치게 작위적인 설정으로 인해 개연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다행히 자주 발생하는 일은 아니다. 역전재판은 비주얼 노벨(Visual Novel) 장르의 게임으로 사건을 해결하려면 등장인물의 진술을 잘 기억해야만 한다. 중요 등장인물의 경우에는 진술의 양도 만만치 않다. 따라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내내 일정 수준의 집중력을 유지해야 하는데, 게이머에게는 이런 상황이 상당히 피곤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역전재판은 효과적인 연출로 텍스트 중심의 단조로운 인터페이스를 극복했다. “이의 있음”, “받아랏” 같은 음향효과와 함께 나타나는 “분노의 삿대질”은 증인을 몰아세우거나 진범을 추궁하는 재미를 배가한다. 위증이 밝혀지면 폭발하거나 땀을 흘리는 증인들의 개성 있는 모습도 무척 흥미롭다. 특히 주인공이 법정에서 이의를 제기하거나 결정적인 모순을 지적했을 때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배경음악은 역전재판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어렸을 때 “어 퓨 굿 맨”을 보며 법조인을 동경하게 된 것처럼, 누군가는 역전재판을 플레이하다가 법조인이 되겠다는 계획을 세울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증거나 증언을 바탕으로 모순을 밝혀내는 능력이 법조인의 중요한 자질인 것은 맞지만, 이는 법조인에게 요구되는 여러 가지 능력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설사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법조인이 되기 위해서는 깨알 같이 많은 법률과 판례를 공부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프로이드가 “때때로 담배는 그저 담배일 뿐이다.”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게임은 그저 게임일 뿐이다. 그러니 역전재판에서 발견한 자신의 재능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는 말자.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법조인이 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역전재판을 통해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모든 증거와 증언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한쪽 말만 듣고 판결할 수 없다.”는 유명한 법언도 바로 이런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확증편향과 편가르기가 난무하는 한국사회에서 이것만이라도 제대로 배울 수 있다면, 역전재판을 플레이할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변호사) 이병찬 어릴 때부터 게임을 사랑해 온 14년차 변호사입니다. 비디오 게임이 가져다 줄 새로운 미래에 관심이 많습니다. 보통 난이도로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 하고 있습니다.

  •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 현실과 가상의 구분을 없앴던 비범함에 대해서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2024년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로, 노르웨이의 ‘마츠 스틴’라는 게이머의 삶에 주목한다. 작품은 작년 한 해 동안 선댄스 영화제에서의 수상과 더불어 여러 영화제에 이름을 올리며 유명세를 얻었고, 현재는 OTT서비스 ‘넷플릭스’와 계약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다큐멘터리에 접근할 수 있도록 공개되어있다. < Back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 현실과 가상의 구분을 없앴던 비범함에 대해서 23 GG Vol. 25. 4. 10.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2024년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로, 노르웨이의 ‘마츠 스틴’라는 게이머의 삶에 주목한다. 작품은 작년 한 해 동안 선댄스 영화제에서의 수상과 더불어 여러 영화제에 이름을 올리며 유명세를 얻었고, 현재는 OTT서비스 ‘넷플릭스’와 계약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다큐멘터리에 접근할 수 있도록 공개되어있다. 하지만 제목만 봤을 때, 이것이 게임에 관한 다큐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울 것이다. 그동안 게임을 소재로 한 다큐들이 <하이 스코어>(2020), <낫 어 게임>(2020), <프리 투 플레이>(2014), <인디 게임: 더 무비>(2012)처럼 제목에서부터 ‘게임’에 대한 내용임을 알려왔다는 점과 다르게, 이 다큐는 게임 다큐라는 사실보다는 ‘이벨린’이라는 인물에 방점을 찍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벨린은 누구이길래 주목받게 되었는가? 걸을 수 없는 소년에게 쥐어진 게임기 다큐는 1990년대 홈 캠코더로 촬영된 한 소년의 어린 시절 영상으로 시작된다. 이 소년의 이름은 ‘마츠 스틴’. 노르웨이에서 태어나 가족의 사랑 속에서 자라났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의 몸 상태에 이상이 감지된다. 거동할 때마다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의지하거나, 늘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반복된다. 이 의자는 점점 휠체어로 대체되고, 화면 너머로 마츠가 중증 질환을 앓고 있음을 암시한다. 마츠가 앓은 병은 ‘듀센 근이영양증’이라는 희귀 질환이다. 어린 시절 발병해 시간이 지날수록 근육이 점차 소실되는 병으로, 걷거나 음식을 먹는 등 일상적인 신체 활동이 서서히 불가능해진다. 점점 불편해지는 몸은 사회생활을 가로막았고, 대인 관계 또한 큰 장벽에 부딪혔다. 다른 아이들이 운동을 하거나 어울려 놀 때, 마츠는 그들을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곤 했다. 그러나 이 시기의 홈비디오 속에서 유난히 자주 포착되는 물건이 있다. 바로 게임기다. 마츠는 게임보이, 닌텐도64와 같은 콘솔 게임기를 즐겨 사용했다. 일반적으로 아이가 게임에 지나치게 몰두하면 부모가 이를 제지하기 마련이지만, 마츠의 부모는 달랐다. 게임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던 마츠에게, 그가 원하는 만큼 게임을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 가족들과 휴양지 여행을 떠난 어린시절 마츠의 두 손에는 게임 보이가 들려있다.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Official Trailer | Netflix”) 아제로스 대륙을 여행한 마츠 2000년대에 들어서며 블리자드의 온라인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가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켰다. 수많은 사람들은 판타지 세계관 ‘아제로스’ 대륙으로 접속해, 아바타의 몸을 빌려 또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다. 마츠도 이에 동참하여 노트북으로 와우 세계에 접속했고,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한다. 마츠는 <와우> 세계에서 굉장히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가 <와우>를 플레이한 10년 동안 총 플레이 타임은 약 2만 시간 가까이에 달했다. 아제로스의 방대한 대륙을 여행하며 그는 다양한 국적의 유저들과 교류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의 신체는 점점 움직이기 어려워졌고, 게임을 플레이하는 데에도 제약이 따랐다. 처음에는 키보드와 마우스를 사용해 조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마츠는 특수 장비의 도움을 받게 된다. 게임에 필요한 조작키가 원형으로 배치된 이 맞춤형 장치는 마츠를 위해서 특별하게 제작된 것이었고, 이 덕분에 다른 유저들과 함께 게임 플레이를 지속할 수 있었다. * 마츠가 사용하는 컴퓨터 조작 장치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Official Trailer | Netflix”)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알린 마츠의 죽음 듀센병 환자의 평균 수명은 보통 20대에 머무른다. 마츠 역시 병세가 악화된 끝에, 2014년 가족들의 깊은 슬픔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계속 재생되던 홈비디오 테이프는 멈추었고, 가족들은 애통스러운 감정으로 그를 추억한다. 그리고 마츠가 오랜 시간을 보냈던 온라인 세계에도 이 사실을 알리고자, 가족들은 그가 생전에 운영했던 온라인 블로그에 부고 소식을 게시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츠를 추모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메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츠를 ‘이벨린’으로 부르고 있었다. 이벨린이 <와우> 세계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던 인물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에 대한 추모 메시지를 전해온 것이다. 다큐 제목에 등장한 ‘이벨린’은 마츠의 <와우> 캐릭터명이다. 긴 머리를 가진 건장한 남성 도적. 이벨린의 모습은 휠체어 위의 왜소한 현실의 마츠와는 전혀 달랐다. 그러나 마츠는 이벨린으로서, <와우>의 길드 ‘스타라이트’에 오래 몸담으며 수많은 사람들과 폭넓은 관계를 맺었다. 유가족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활발한 사회적 삶이 그 안에 있었다. * 게임에서 다른 유저들과 활발하게 사회생활했던 이벨린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Official Trailer | Netflix”) 현실에서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기 어려웠던 마츠는, 이벨린으로서 연인을 만나 사랑을 경험하기도 했다. ‘루머’라는 캐릭터와 숲속에서 데이트를 하며 첫사랑을 나눴고, 루머의 현실 인물인 ‘리세트’가 가족과 갈등을 겪었을 땐 직접 편지를 써 그녀의 부모와 화해의 길을 터주기도 했다. 또 한 명의 길드원이 자녀와 소통에 어려움을 겪자, 마츠는 그 아이와 함께 게임을 하도록 주선해 관계를 회복하도록 도왔다. 그는 단지 도움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이들을 진심으로 돕고 응원하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마츠 덕분에 삶이 더 나아졌다”고 말했다. 겉으로는 게임만 하며 고립된 삶을 산 듯 보였던 마츠. 그러나 그는 언제나 연결되어 있었다. 이벨린이라는 이름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깊은 삶을 살아냈다. 이러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가족은, 마츠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이전에는 제한된 삶으로 여겼던 그 생애가 사실은 너무도 풍성하고 비범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장례식은 슬픔보다는 뒤늦은 기쁨과 안도 속에서 치러진다. * 홈비디오 속의 마츠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Official Trailer | Netflix”) 채팅으로 기록된 과거의 시간들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이 과거를 다시 그려내는 방법은 매우 독특하다. 일반적인 다큐멘터리가 과거에 기록된 영상이나 사진을 편집하거나, 당시 인물들을 인터뷰를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하는 반면, 이 작품의 핵심 기록물은 다름 아닌 ‘채팅 기록’이다. 마츠는 음성 채팅 없이 텍스트로만 대화를 나눴기 때문에 그가 나눈 모든 의사소통은 대화 로그로서 기록되어 있었다. 일부러 아카이브 하지 않아도, 이미 보존되고 기록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보존된 이벨린의 문장들은 사후에도 그의 삶을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흔적이 되었다. 제작진은 이 채팅 기록을 대역 성우가 낭독하도록 하여 현재 시점에서 재구성했다. 성우들이 읽은 대본은 모두 이벨린이 나눴던 채팅과 동일한 문장이었고, 이 음성은 애니메이션에 더빙되어 영상으로 제작되었다. 재연 애니메이션은 실제 게임 내 캐릭터와 주변 사물, 배경, 다른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표정으로까지 장면 하나하나로 연출되어 게임 속에서 녹화되었다. * 이벨린의 목소리를 맡은 에드 라킨(Ed Larkin)외에도 모든 성우가 장애인이다.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Behind The Scenes | Netflix”) 여기에 제작진은 마츠의 삶을 더욱 면밀하게 재현하기 위해 또 다른 층위를 더했다. 채팅을 읽는 성우들을 모두 장애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한 것이다. 이벨린과 이벨린의 첫사랑 루머, 주변 길드원, 친구들 모두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로 입혀졌다. 루머를 연기한 성우는,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이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가상 캐릭터’가 아닌, 실제 사람이 뒤에 있는 ‘아바타’였기 때문에 깊은 존중감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들이 실제로 이 상황에 어떤 기분을 느꼈을지, 섬세하게 고려하면서 연기해야만 했다고 인터뷰에서 덧붙였다. 연극 대본처럼 남은 채팅 기록 덕분에 게임 속 캐릭터로 과거를 재현하는 이 방식은 게이머의 삶을 다큐로 풀어내는 방식 중에서 매우 신선하고 도전적인 시도로 보인다. 다만 그 과정에서 ‘재현’과 ‘재연’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약간의 아쉬움도 남는다. 다큐로서의 과거를 충실히 복원했다기보다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처럼 감정적으로 과장된 재연이 되는 듯한 느낌이 남기 때문이다. 특히 이벨린이 루머와 숲속 호숫가에서 연애하며 첫키스를 나눴던 사건을 정면 카메라로 촬영하여 보여줄 때는, 마츠의 매우 사적인 기록, 그러니까 원치 않는 사춘기 소년의 일기장을 억지로 들춰보는 듯한 기분을 안겨주기도 했다. 물론 마츠가 살아생전에 이 다큐멘터리 제작에 관여했기 때문에, 이 역시 그가 의도한 연출일 수도 있겠다. * 데이트를 즐기는 이벨린과 그의 첫사랑 루머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Official Trailer | Netflix”) 현실 도피라는 오해 마츠는 매일 아침, 이벨린으로 접속해 아제로스 대륙(게임 속 세계)을 달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현실에선 달릴 수 없었지만, 게임 속에서는 원 없이 달릴 수 있었다. 현실의 제약이 닿지 않는 가상 세계는 마츠에게 해방의 공간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그는 이벨린이라는 존재로 살아가며 자유로운 신체로 움직였고, 장애인이라는 사회적 정체성을 넘어서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능동적인 주체로서 자신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은 자칫 ‘게임은 현실 도피처’라는 식의 해석으로 단순화되기 쉽다. 실제로 마츠는 자신의 블로그에 “게임은 탈출구이고, 모니터는 자유로운 공간으로 향하는 관문”이라고 썼다. 게임을 탈출 혹은 도피의 수단으로 보는 관점은, 현실의 고통과 결핍에서 심리적으로 벗어나기 위한 몰입이나 위안으로만 게임을 설명하곤 한다. 이때 현실은 그대로 남아 있고, 억압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잠시 보류될 뿐이다. 더 나아가 장 보드리야르의 시각에서 보자면, 이러한 가상 세계는 실재를 대체하는 이미지에 불과하며, 우리는 그 안에서 ‘해방의 감정’만을 소비하게 된다. 이 관점에서 보면, 다큐가 게임을 낭만화하고, 단선적인 감동 구조로만 재현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 매일 30분씩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대륙을 뛰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이벨린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Behind The Scenes | Netflix”) 그러나 마츠의 사례는 단순한 현실 도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가상 세계에서 새로운 의미를 창출했고, 사람들과의 대화와 연대를 통해 현실로도 울림을 확장시켰다. 게임 속에서 나눈 말과 관계는 다시 현실에서 목소리가 되었고, 그 메아리는 여전히 강하게 울리고 있었다. 이벨린의 첫사랑 루머의 목소리 역을 맡은 켈시(Kelsey Ellison)는 자신도 장애인으로서 가상 세계로의 탈출이 주는 자유를 공감하는 한편, 마츠가 도피주의(escapism)를 잘 활용했다고 평가했다. 하루 종일 누워 봉사자들의 도움을 받는 마츠를 수동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게 아니라, 적어도 자신이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능동적인 힘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고,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고무시키는 데에 노력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마츠가 단지 억압된 현실의 신체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었다고 해석하는 것은 부족하다. 자유/억압의 이분법적인 규정보다, 완전히 새로운 문법 안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존재했던 인물로 바라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존재의 전환, 존재의 확장으로서 바라봄이 더 정교하고 정당할 것이다. 마츠는 생전 이렇게 말했다. “이벨린은 저의 확장판이에요. 저의 다른 면모이죠” 존재의 확장이라는 비범함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단순한 감동 서사를 넘어, 가상 세계 안에서의 삶이 어떻게 존재를 확장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츠는 게임으로 도피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확장했고, 새로운 문법을 통해 타인과 연결되었다. 가상 세계가 현실의 억압을 완전히 지워주진 않았지만, 그는 그 안에서 한계를 넘는 관계를 만들고, 사회적 의미를 생산하는 능동적인 존재로 살아갔다. 그렇기 때문에 이 다큐가 보여주는 진짜 이벨린의 ‘비범함’이라는 평가는 마츠가 이벨린으로서 보여줬던 활약뿐만이 아니라, 게임이라는 조건 속에서 여전히 현실을 향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보냈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채팅 기록, 함께 시간을 보낸 동료들, 그리고 이 다큐를 본 사람들이 기억하는 ‘이벨린’은 마츠가 단지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현실을 구성했던 하나의 주체였음을 증명한다. * 이벨린이 죽은 이후, 블리자드는 이벨린이 자주 다니던 엘린 숲 한켠에 이벨린을 추모하는 비석을 세웠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 그곳에 모여 그를 다시금 기억했다. 그리고 블리자드는 이벨린의 캐릭터에 관한 유료 아이템 판매하고 그 수익을 듀센 치료를 위해 기부하기도 했다. (출처: 유튜브 영상 “Rest in Peace, ibelin) Tags: 다큐멘터리, WOW, MMORPG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이선 사회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연구합니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결국 인간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 유럽 속의 타자, 게임 속의 동유럽

    서구, 오늘날 세계 문화의 중심이라 불리는 이 말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북미와 유럽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근대를 이루는 많은 기술적, 정치적, 문화적 배경들의 원산지로서 서구는 일종의 기원으로 여겨지며, 그 중에서도 특히 근대적 의미로서의 북미가 사실상 유럽으로부터의 문명 이주를 통해 만들어졌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현대 세계의 많은 부분은 유럽으로부터 나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 Back 유럽 속의 타자, 게임 속의 동유럽 06 GG Vol. 22. 6. 10. 서구, 오늘날 세계 문화의 중심이라 불리는 이 말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북미와 유럽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근대를 이루는 많은 기술적, 정치적, 문화적 배경들의 원산지로서 서구는 일종의 기원으로 여겨지며, 그 중에서도 특히 근대적 의미로서의 북미가 사실상 유럽으로부터의 문명 이주를 통해 만들어졌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현대 세계의 많은 부분은 유럽으로부터 나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동아시아에 위치한 우리에게도 유럽에 관한 지식과 관심은 상당한 비중으로 다가온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청소년 필독서로 오르내리고, 세계사에의 접근 또한 상당부분 유럽의 변화를 중심으로 기술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그 유럽이라는 말도 사실은 서유럽이라는 좀더 좁은 범주를 가리키는 말임을 떠올리게 된다. 이를테면 동유럽이라고 불리는 지역은 유럽이라는 말로부터 조금은 동떨어져 있다. 이는 디지털게임에서 이루어지는 어떤 재현과 묘사에서도 자주 드러난다. 동유럽을 다룬 두 개의 게임 출입국관리소에서의 여권 심사라는 독특한 소재를 게임화한 루카스 포프의 작품 〈페이퍼스, 플리즈〉(2013)는 그 지리적 배경으로 아스토츠카라는 가상의 국가를 설정하지만, 우리는 현실에서 아스토츠카가 동유럽 어디쯤을 가리키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깨닫는다.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이름이나 국가명, 국가 상징이나 경직된 관료제로 드러나는 보수화한 공산주의 체제 등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이 게임이 한창 분쟁을 겪고 있던 시기의 동유럽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어수선한 한 장면임을 떠올리게 한다. 11비트 스튜디오의 화제작 〈디스 워 오브 마인〉(2014)은 내전 상황 속에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에서 휴전의 날까지를 버티는 과정을 윤리와 생존의 딜레마로 풀어내며 큰 화제를 모은 바 있었다. 이 게임 또한 가상의 국가인 그라츠나비아의 도시 포고렌을 배경으로 삼는데, 같은 국가를 구성한 두 민족의 갈등과 분리주의 움직임이 내전으로 격화된 상황 또한 동유럽 어딘가에서 벌어진 내전을 모티프로 삼고 있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애초에 개발사가 폴란드인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 〈페이퍼스, 플리즈〉와 〈디스 워 오브 마인〉은 각기 다른 주제를 다루지만, 전쟁과 같은 문제로 사회가 어수선한 동유럽이라는 유사한 배경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두 게임은 모두 현실적인 주제로부터 아이디어를 가져와 게임화한 사례다. 〈페이퍼스, 플리즈〉는 이상과는 달리 현실에서 관료제가 더욱 고착화하면서 기이한 독재 체제로 바뀌어버린 공산주의 사회가 만드는 모순으로부터 플레이어가 넘어서야 할 역경을 이끌어낸다. 국가로부터 배정받은 공동주택에 대가족이 모여살지만, 플레이어의 낮은 연봉으로는 난방과 식비조차 해결하기 쉽지 않은 상황은 출입국 사무에서의 부정부패를 자연스럽게 촉발한다. 이로부터 벌어지는 온갖 밀입국은 경우에 따라 국가의 존립을 흔들기도 할 정도의 여파를 갖는다. 〈페이퍼스, 플리즈〉의 플레이를 간단히 요약한다면 ‘실패한 현실공산주의를 향한 개인적, 사회적 차원에서의 도전’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디스 워 오브 마인〉 또한 플레이어가 넘어서야 할 과제들은 현실적인 배경으로부터 시작된다. 국가의 거대한 분열이 갈등으로 치닫고, 이로 인해 벌어진 내전은 사회 전반의 질서를 흔들며 물리적, 제도적인 모든 안전망을 무력화했다. 수도와 전기마저도 끊어지는 상황에서 생존을 요구받은 플레이어의 분투 또한 동유럽 – 내전이라는 의미 연결을 통해 현실의 뉴스를 차지하던 동유럽 내전에서의 생존기라는 현실적인 주제로 게임의 이야기를 맞춰나간다. 실패한 공산주의에서 파생한 독재, 민족과 인종대립에 의한 내전상태는 그런데 사실 꼭 동유럽이어야만 하는 이유는 없다. 이런 사회적 이슈들이 벌어지는 곳은 따지고 본다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문제다. 아프리카의 앙골라에서 벌어진 공산주의 독재 장기화에 의한 부패나 내전 문제, 르완다 학살과 같은 민족, 인종간의 갈등과 내전처럼 오히려 같은 이슈라면 아프리카 쪽이 더 크고 위험하며 극단적인 경우들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게임에서 아프리카 내전이나 독재 문제 등은 잘 다뤄지지 않는다. 〈파크라이〉 시리즈처럼 마약밀매나 독재, 사이비 종교 같은 이슈를 다루는 게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럴 때 게임의 자세는 그 이름만큼이나 ‘먼’ 스탠스를 취한다. 게임 안에서 벌어지는 잔악무도한 양상들은 그 무대가 ‘우리’의 세계가 아닌 ‘머나먼’ 세계로 그려진다. 여기서 ‘우리’의 범주는 상당히 좁아 보인다. 〈파크라이 5〉가 다룬 사이비 종교의 세계에서 플레이어의 관점은 ‘도시민’이다. 이 이상한 일들은 ‘머나먼 시골’로 그려진다. 도심에서의 범죄를 다루는 〈GTA〉같은 시리즈가 있긴 하지만, 여기는 사회적 이슈를 접근하는 방식이 〈페이퍼스, 플리즈〉나 〈디스 워 오브 마인〉과는 아예 다른 방향이라 함께 묶이기는 어렵다. 아프리카의 독재 문제는 〈재기드 얼라이언스〉 처럼 플레이어를 외부인이자 제3자 개입의 시점으로 게임에서 다뤄지곤 한다. 반면 경우에 따라 유럽, 서구라는 범주 안에 포함되면서도 서유럽 중심의 선진국과 달리 정치적 불안요소를 높게 가지고 있는 동유럽은 한편으로는 서구라는 동질선상에 놓이면서도 사회적 불안이라는 요소 측면에서는 좁은 서구의 바깥 범주에 놓이는 독특한 위치다. 플레이어가 게임 내에서 발생한 사건에 직접 휘말리고 그로부터 여파를 받아 넘어서야 할 과제들 앞에 놓이는 〈페이퍼스, 플리즈〉 류의 게임에서 제3자적인 접근은 오히려 난이도 – 숙련도 간의 길항을 약화시키게 될 것이다. 아프리카처럼 머나먼 곳의 이야기도 아닌, 같은 유럽이라는 의식 안에서 발생한 문제에 개입해야 하는 상황은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많은 게임들로 하여금 동유럽의 불안한 정치상황이라는 소재를 택하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서구'라는 시점의 문제 ‘왜 동유럽인가?’ 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그래서 ‘플레이어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이 선행되어야 한다. 디지털게임은 다른 매체에 비해 접근에 필요한 인프라에의 요구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게이밍 PC라고 불리는 쾌적한 게이밍을 위한 장비는 범용 PC에 비해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며, 사용하는 전력도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콘솔게임기도 만만한 가격은 아니며, 특히 온라인 시대 이후로는 쾌적한 게임을 위해서는 플레이 뿐 아니라 게임소프트웨어의 구매와 패치 등에도 충분한 속도와 용량의 네트워크 인프라가 요구된다. 안정적인 전력과 인터넷이 공급되고 고가의 디지털장비를 구하는 일이 어렵지 않은, 디지털게임 플레이어의 위치는 어쩔 수 없이 서구를 포함하는 선진국에 자리하게 된다. 현실의 문제를 게임 플레이를 통해 플레이어에게 전달하기 위한 게임 디자인들은 디지털게임 플레이어의 보편적 위치가 ‘서구’라는 전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입장에 선다. 같은 이슈라도 유럽권에 가까운 곳을 배경으로 삼을 때 이 문제는 비로소 플레이어의 문제로 좀더 받아들여지게 된다는 것이다. 외양도 문화도 ‘먼 타자’일 수 밖에 없는 지역보다 ‘서구’라는 시선의 위치에 가깝게 자리하는 듯한 동유럽의 사례가 성공적인 메시징을 수행한 게임으로 거론되는 배경은 플레이어와 재현된 세계가 갖는 그 거리감으로부터 무관하지 않다. 현실사회의 문제를 다루는 게임에 있어 동유럽은 유럽이면서도 ‘서구’로부터 타자화된 대상이 된다. 그리고 ‘서구’가 아님에도 선진국의 범주 안에 들어가기 시작한 한국 게이밍 문화는 플레이어의 물리적 시점 면에서는 ‘서구’의 범주와 겹치는 부분들을 갖는다. 디지털게임들이 현실사회의 문제를 좀더 많이, 더 다양하게 다루는 시대가 온다면, 이 시선과 대상의 거리감은 좀더 중요한 문제로 작동할 수도 있다. 영화의 카메라와는 또다른 게임매체의 접근방식이 만드는 재현대상과의 거리감 문제를 좀더 고민해 볼 이유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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