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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류는 최소로, 이해랑 오해는 풍부할 수 있도록 – 게임 번역의 역할
주로 원문의 의미를 제대로 담지 못한 번역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는 ― 게임 몰입을 방해받았다는 ― 표현이 주를 이루지만, 넓은 범위에서 이 불만 토로는 게임에서 공통된 경험을 했다는 동질감을 확인하고, 나아가 게임에 대한 정보와 의견을 공유하고 개진하는 유희와 교류 행위로 확장된다. < Back 오류는 최소로, 이해랑 오해는 풍부할 수 있도록 – 게임 번역의 역할 29 GG Vol. 26. 4. 10. 모든 번역은 어렵다. 아무리 인공지능 도구를 활용해 다른 언어를 대하는 부담이 줄어든 시대가 되었다고 해도 그렇다. 번역은 글자의 뜻을 그대로 옮기는 것만이 아니라 그 뜻의 주위와 너머를 두루 살펴 옮기려는 언어에 알맞은 자리를 만드는 것까지 포함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고스러운 일이기에 번역은 원래(그래서 앞으로도) 어렵다. 번역가 홍한별은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에서 번역의 수고로움을 “이쪽을 붙들면 저쪽을 놓치고, 저쪽을 잡으면 이쪽이 사라지는 단어를, 의미를 고정하는 순간 무수한 틈이 생겨버리는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라고 짚는다 [1] . ‘번역의 투명함’을 통해 번역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번역은 투명해야 한다는데, 마치 우리말로 쓰인 것처럼 잘 읽히는 것도 투명한 번역이고, 매끄럽지 않더라도 번역된 표현임이 명확하게 드러나서 번역 너머의 원문을 들여다보게 하는 것도 투명한 번역이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생각해보면, ‘발 번역’이나 ‘초월 번역’이라고 하는 표현은 되도록 신중하게 쓰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번역의 ‘어떤’ 투명함을 선택하느냐는 번역가에게도 그러하겠지만 선호라는 측면에서 수용자에게도 상관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게임 번역’에 대해 회자되는 대표적인 사례 몇 가지가 있다. ‘왈도체’로 불리는 〈마이트 앤 매직 6〉(Might and Magic Ⅵ)의 “힘세고 강한 아침”이나, 〈어쌔신 크리드 3〉(Assassin’S Creed Ⅲ)의 “불이야!”가 오역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사례라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의 아이템 ‘서리한’(frostmourne)이나 〈오버 워치〉의 캐릭터 ‘맥크리’의 대사 “석양이 진다”는 좋은 번역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사례다 [2] . 오역은 분명 문제다. 몰입을 방해할 수 있고 원문의 본래 의도를 오해하게 만들 수 있다. 특히 게임에서 세계관에 적극 뛰어드는 걸 방해하거나 엉뚱한 플레이를 하게 만들어 게임 플레이 경험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힘세고 강한 아침”이나 “불이야!”를 앞서 언급한 ‘번역의 투명함’에 비추어 보거나 번역의 좋고나쁨을 이야기하는 사례로 다루기엔 아쉽다. 두 사례 모두 번역가의 고민과 선택을 거친 의도된 결과라기보다는 제한적인 작업 환경으로 인해 빚어진 사고에 가깝다는 것이 공식·비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을 감안한다면, 검수 절차가 충분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해프닝으로 양해하면 더 좋을 일이기 때문이다 [3] . 그보다 이 사례들을 게이머들 간의 게임 플레이 경험 공유와 표현의 맥락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주로 원문의 의미를 제대로 담지 못한 번역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는 ― 게임 몰입을 방해받았다는 ― 표현이 주를 이루지만, 넓은 범위에서 이 불만 토로는 게임에서 공통된 경험을 했다는 동질감을 확인하고, 나아가 게임에 대한 정보와 의견을 공유하고 개진하는 유희와 교류 행위로 확장된다.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의 게임 번역 관련 게시물을 대상으로 게임 번역에 대한 게이머들의 반응을 분석한 김홍균과 김순영 [4] 은 플레이와 스토리 이해에 필요한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때, 오탈자, 맞춤법 오류, 번역어 불일치 등 번역문의 전반적인 완성도가 낮을 때 게이머들이 게임 번역에 불만을 느꼈으며, 상대적으로 우리말에 원문 그대로 옮길 표현이 마땅치 않아 의역을 하거나, 원문에는 없지만 게임 플레이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추가로 제공하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반응했음을 제시했다. 번역에 대한 문제 제기나 호응은 게임 제작자 측에 피드백으로 작용해서 오류를 정정하거나 게임의 요소로 반영되어 활용되기도 한다 [5] . 앞서 언급한 ‘번역의 투명함’에 비추어 볼 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게임 플레이를 돕는 번역은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읽히는 전자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게임에서 매끄럽지 않아 원문을 보이게 하는 후자의 투명함은 무엇일까. (비판 혹은 비난을 감수하고)원문의 문화적 맥락에만 충실하게 번역해 해석의 제한이나 오류가 발생할 여지를 두는 것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번역의 투명함이 꼭 옮겨진 결과로만 비춰질까? 매끄럽지 않아 원문을 보이게 하는 투명함이 옮겨지는 과정에서 발휘될 수는 없는 걸까? 게임 번역 팀 ‘팀 왈도’(Team Waldo)의 〈드래곤 에이지 인퀴지션〉(Dragon Age: Inquisition) 번역 작업을 참여관찰하고 번역 프로젝트 참가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유저 게임 번역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연구한 박수진 [6] 과 번역 프로젝트 참가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스타필드〉(Starfield) 번역 작업을 주요 사례로 팀 왈도의 번역 작업을 연구한 이현표 [7] 는 게임 번역 작업에서 번역의 투명함이 드러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두 연구에서 확인할 수 있는 팀 왈도 게임 번역 작업의 특징은 자발적인 참여, 참여자들 간의 토론과 투표를 통해 최적의 번역어를 찾고 이를 작업에 반역하는 협업, 번역 결과물에 대한 피드백 수집과 반영이다. 번역의 투명함은 최적의 번역어를 찾는 협업 과정에서 주로 발휘된다. 게임에서 반복적으로 다루어지거나 플레이 경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단어나 표현에 대해 자율적으로 논의하고 필요에 따라 투표로 결정해 작업에 적용한다. 시간을 들여 절차를 이어가는 과정이기에 이는 분명 수고로운 작업이다 [8] . 이 작업에서 투명함을 발휘되게 하는 것은 번역을 활용해 게임을 플레이할 다른 게이머가 자신이 느낀 재미를 잘 경험하기를 바라는 동료의식이다. 두 연구는 번역 프로젝트의 참가자들이 공통적으로 자신이 게임에서 경험한 즐거움을 더 많은 사람이 경험하기를 바라는 문화 매개자로서의 동기가 크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는 ‘유저 한국어 패치 [9] ’ 작업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초창기부터 정품으로 구매해 패치를 사용할 것을 독려하고 [10] , 많은 공을 들였기에 애정이 있을 것임에도 번역 결과물의 유효기간을 게임 제작자 측이 공식적으로 언어를 지원하기 전까지로 두고, 실제로 이를 실천하는 맥락과도 연결된다. 더 나은 게임 생태계를 만들자는 이러한 게이머들의 우정과 환대는 게임의 재미와 경험을 옮겨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보다 잘 경험하도록 이끌고 밀어준다. 게임 플레이를 돕는 정확한 정보 전달을 추구하고, 번역에 대한 평가를 게임 플레이의 일환으로 다루며, 주관적인 만족이 주된 보상일지라도 수고로운 번역 작업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모두 게임을 잘 경험하도록 돕는 일이다. 이것을 게임 번역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는 없다. ‘미국 드라마’ 열풍을 이끌었던 미드족 [11] 의 자막 제작은 게임 팬 번역과 유사하게 이루어졌고, 출판 분야에서 산업과 문화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번역에 대한 토론과 시도 역시 작품을 잘 경험하는 것에 연관된다. 오히려 다른 매체와 비교해 게임 번역이 갖는 차이는 번역이 닿지 않는 영역이 분명하게 있다는 점이다. 게임 번역은 게임의 세계관과 게임에서 해야 하는 역할을 이해하고 파악하도록 돕는다. 그러나 그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부딪칠지는 게이머의 선택에 달려있다. 게이머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과정에서 게이머는 제작자의 제안 또는 요구를 수행하거나 거부한다. 그리고 게임에 대한 게이머의 이해와 오해 모두 게임을 플레이한 경험으로서 받아들여진다. 이를 고려하면 게임 번역은 제작자와 수용자의 의도가 조응하거나 충돌하는 과정이 잘 이루어지도록 하는 토대이기도 하다. 하여 게임 번역은 ‘이쪽을 잡으면 저쪽이 사라지는’, ‘고정하면 틈이 생기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는 딜레마는 동일해도 그 너머에 대한 기약의 범위가 넓다. “힘 세고 강한 아침”과 “불이야!”가 플레이를 방해할 수 있지만(강조하지만 오역은 문제다 분명히), 게임에서 정의와 자유, 현실과 환상을 마주하며 경험하고 고민하는 경험은 게이머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비어있는/쓰이지 않은/채워지게 될 경험이 더욱 다양하게 이야기될수록 게임 번역이 더 나아질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이 기약을 여백이라고 불러야 할까 희망이라고 불러야 할까 아님 다르게 불러야 할까.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이 더욱 더 많아질수록 무어라 부를지도 점차 선명해질 것이다 [12] . [1] 홍한별,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 위고, 2025년. [2] 게임에서 번역이 헤아리는 자리에 대한 기초적인 논의는 이경혁(2018)의 “게임 번역, 왈도체와 단순 현지화를 넘어서”를 참조. https://www.newstopkorea.com/news/articleView.html?idxno=713 [3] 게임 번역 전문가들은 좋은 번역이 이루어지려면 충분한 일정이나 절차 못지 않게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거나 개발진과의 충분한 의사소통 등 게임에 대한 정보에 더 많이 접근하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 두 인터뷰를 참조. “어쩌다 ‘발번역’이 나오는 걸까?” https://www.inven.co.kr/webzine/news/?news=283861 , “라이엇게임즈 현지화 팀이 말하는 ‘좋은 번역’이란?” https://www.gameinsigh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220 [4] 김홍균·김순영(2023). “국내 게임 이용자들의 게임 번역 평가 사례 연구—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게시된 게임 번역 관련 이용자 게시글을 사례로.” 『번역학연구』 24(4), 91-128. [5] 〈하스스톤〉(Hearthstone)의 캐릭터 ‘데스윙’의 대사 “나는 힘 그 자체다”를 “나는 임금 잡채다”로 들었다는 디시인사이드 하스스톤 갤러리의 글(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hearthstone&no=827575) 이 화제가 되었고, 게임 제작사인 블리자드는 게임 내 업적을 새로 추가하면서 ‘임금 잡채’를 업적 이름으로 사용했다. [6] 박수진(2021). “게임 팬 번역가들은 어떻게 번역하는가? - ‘드래곤 에이지 인퀴지션(Dragon Age: Inquisition)’의 현지화 사례를 통해 -.” 『한국게임학회 논문지』 21(5), 115-132. [7] 이현표(2025). “디지털 환경에서의 게임 유저 번역과 수용 : 팀 왈도 사례 연구.” 『통역과 번역』 27(1), 131-160. [8] 번역어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을 때 토론 과정에서 해당 텍스트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처럼 이 과정에서 번역 작업 참여자들의 이해도 깊어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맥락들이 기록되고 공유된다면 거기서 출발하는 이야기들도 많아질 것이라 기대한다. [9] 게임에서 한국어로 번역되는 작업을 주로 ‘한글화’로 팬 번역 작업의 결과물을 ‘유저 한글 패치’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번역은 문자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옮기는 것이므로 ‘한국어화’가 바른 표현이다. 이를 적용하면 ‘한글판’, ‘유저 한글 패치’ 대신 ‘한국어판’, ‘유저 한국어 패치’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다. 2010년, 한국 게임 잡지 《게이머즈》의 조기현 기자가 바로잡기를 제안한 이래 더디지만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https://x.com/kinophio/status/15316181741?s=46 [10] ‘유저 한국어 패치’는 한국어를 지원하지 않는 게임을 더 많은 게이머들이 플레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특히 스팀을 중심으로 인디 게임이 많이 알려지는 기회가 되었다. 패치를 배포하는 게이머들은 정품 게임을 구매해서 패치를 활용할 것을 적극 강조했고, 실질적으로 한국어로 플레이할 수 있는 인디 게임의 판매량이 높아지는 결과로 이어져 세계 인디 게임 개발자들이 한국 게임 시장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도록 도왔다. https://www.thisisgame.com/articles/73396 [11] 미드 동호회 ‘자막팀’이 자막을 제작하는 협업 방식은 게임 번역 작업과 큰틀에서 유사하다. 특히 더 나은 번역을 위해 잘 할 수 있는 역할을 자발적으로 맡는 호혜적 참여를 주목할 만하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entertainment/196544.html [12] 게임을 포함해 한국어로 제작된 문화콘텐츠가 외국어로 옮겨지는 사례가 늘면서 그동안 다른 언어를 한국어로 옮기면서 고민했던 번역의 투명함을 반대 방향으로 살피는 기회도 많아질 것이다. 이에 대한 성찰과 토론이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사회학자) 강지웅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게이머즈〉를 비롯한 여러 게임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했다. 저서로 〈게임과 문화연구〉(공저), 〈한국 게임의 역사〉(공저)가 있다.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에서 게임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게임이 삶의 수많은 순간을 어루만지는, 우리와 동행하는 문화임을 믿는다.
- [인터뷰] 쥐와 함께 6년을 살아 온 인디게임사, <카셀게임즈> 황성진 대표
올해로 창립 6년 차를 맞은 카셀게임즈의 황성진 대표를 만나, 그의 창작 철학과 개발 과정에 대한 고민, 인디게임사 운영의 현실, 그리고 다음 프로젝트를 향한 구상까지 진솔하게 들어보았다. < Back [인터뷰] 쥐와 함께 6년을 살아 온 인디게임사, <카셀게임즈> 황성진 대표 25 GG Vol. 25. 8. 10. 이번 호 GG는 서강대학교 게임교육원 출신 학생들이 설립한 인디 게임 개발사 카셀게임즈를 주목한다. 카셀게임즈의 첫 작품 <래트로폴리스(Ratropolis)>는 카드 게임과 디펜스 장르의 요소를 결합하여 쥐들의 도시를 지키는 게임으로, 스팀 ‘탑셀링’ 카테고리 1위를 차지하며 게임 팬들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뒤를 이은 차기작 <래토피아(Ratopia)>는 쥐들을 통치하여 사회를 건설하는 샌드박스-던전형 도시 경영 시뮬레이션이며 2023년 경기게임오디션에서 2위를 수상하는 등 가능성을 입증했다. 올해로 창립 6년 차를 맞은 카셀게임즈의 황성진 대표를 만나, 그의 창작 철학과 개발 과정에 대한 고민, 인디게임사 운영의 현실, 그리고 다음 프로젝트를 향한 구상까지 진솔하게 들어보았다. 중소 인디게임사의 살아남기 이경혁 편집장: GG의 인터뷰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게임사 소개를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황성진 대표: ‘카셀게임즈’는 서강대학교 평생교육원이라는 게임 교육 전문기관에서 교육받던 학생들이 창업해서 만든 게임 개발사입니다. 대학생 때 만든 <래트로폴리스>에 많은 분들께서 사랑과 응원을 주셔서 창업 기반을 다졌고, 지금은 차기작 <래토피아>를 개발하고 있구요. 회사 규모도 조금씩 키워나가면서 생존하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한국에서 중소형 인디 개발사로 6년을 무사히 헤쳐나온 게 쉬운 일은 아니셨을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중견급이라 할 수도 있을텐데요, 출시하신 작품 2개가 나름 시장에서 성과를 유의미하게 보이고 있는데 소회가 어떠신지요. 황성진 대표: 주변에 개발자 모임 가면 뵙고 싶었던 분들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는 걸 보며 마음이 아픈데요. 저희도 응원해 주신 국내 팬 분들이나 정부나 기업체 지원이 아니었으면 현상 유지가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렇게까지 주변에서 좋게 평가해 주시는데도 중소 개발자들의 어려움이 크다는 걸 깨달았어요. 아직 더 발전해야 된다는 걸 느끼고, ‘다음 작품은 더 대박나지 않으면 정말 힘들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하게 됩니다. 이경혁 편집장: 인터뷰는 카셀게임즈라는 회사 얘기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실제로 6년간 중소 게임사를 이끌며 겪었던 여러 가지 힘든 일이 있었을 텐데요. 가장 힘들었던 점이나, 정부나 기관에서 개선해야 한다고 느끼는 문제점들이 있었을까요? 황성진 대표: 팀원들도 회사 생활이 처음이었고 저 역시 비슷하다 보니, 조직 내부에서 운영방향이나 비전, 체계를 정립하는 법을 배우고 서로 맞춰나가는 부분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대외적 차원에서 어려웠던 점은 법 이슈나 해외 사이트의 심의절차 정도가 생각나구요. 아니면 보험이나 퇴직금 문제들. 이런 것들을 저도 잘 모르다 보니 갑자기 지출이 확 나가면 대응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어요. 전부 무지에서 비롯된 것들인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이곳을 창업하기 전에 다른 회사 경험은 없으셨던 거군요. 황성진 대표: 네. 제 경우 단기 인턴이나 지인 회사 일을 도와드린 수준의 경험만 있었고, 저희 다른 팀원들도 거의 다 알바생이었습니다. 그나마 같이 오래 협업했던 프로그래머 분이 회사나 사업 운영경험이 있으셔서, 공부를 따로 해서 회사처럼 운영하기 위한 노력들을 공유해 주셨어요. 지금 제가 대표직이긴 하나 경영 쪽은 그분이 좀 더 주도적으로 얘기해 주시고 협의하는 식으로 맞춰가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사람들이 ‘청년 창업’이라는 얘기를 쉽게 하지만 기업 경험을 많이 못 해 본 청년에게 창업 지원만 하는 게 과연 충분한가 싶어요. 특히 게임 개발사는 콘텐츠를 만들고 운영하는 능력과 기업을 운영하는 능력이 모두 필요한데, 이 둘은 서로 성격이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기업 운영과 관련된 교육이나 지원을 따로 받은 경험이 있으셨을까요? 황성진 대표: 그렇진 않았어요. 경기콘텐츠진흥원 등에서 창업교육 관련 프로그램들이 있긴 하지만 저희는 그 단계는 좀 건너뛴 상태였구요. 멤버들도 어떻게 보면 사원보다는 팀원의 형태에 가깝다보니, 경직된 회사 문화보다는 서로의 피드백을 통해 바꿔나가는 능동적인 운영형태를 원하기도 했어요. 기존의 일반적인 기업이 갖는 체계에 저희 개발자들을 맞추는 게 쉽지만은 않았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지금 팀원이 7명 정도인데, 앞으로 회사가 더욱 커진다면 이런 문제가 더 복잡해질 수도 있을 텐데 계속 규모를 확장할 계획이 있으신 거죠? 황성진 대표: 추후 회사가 확장될 여지가 있다고 보지만, 아무래도 체계를 정립하고 규칙을 만들 때 생기는 문제들이 우려되긴 합니다. 기존의 멤버들을 설득시켜야 하는 부분도 있고, 규칙을 만드는 순간 그걸 관리해야 하는 관리자의 코스트도 있고. 없었던 게 규칙으로 생기면 그걸 지켜야 된다는 문제도 있을거구요. 이경혁 편집장: 동아리와 회사의 경계에 있는 조직들이 겪는 문제 같네요. 소규모일 때는 별 문제가 안 되다가 조직이 커지고 원래 우리 그룹이 아니었던 사람이 들어올 때 새로 생기는 문제에 대한 감각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황성진 대표: 네. 그렇다보니 신규 채용을 하고 나서도 자체적으로 조직 체계를 정리하는 시간도 한번 가져보고 이런 식으로 진행해 왔던 것 같아요. 저희 팀 운영을 하면서도 이런 점들이 쉽지 않은데, 다른 인디 개발사 대표님들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더라고요. 다른 게임사는 팀원 간 조율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어떤 리더쉽을 발휘하는지 궁금하기도 해요. 이경혁 편집장: 여러 고민이 많으시겠지만, 반대로 카셀게임즈가 6년간 회사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한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게임 개발 지망생들에게 이런 이야기가 도움이 많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떠신가요? 관련 강연도 좀 하셨던 것 같은데요. 황성진 대표: 강연에서는 주로 저희가 게임을 어떤 식으로 개발해 왔고 그 과정에서 제가 느끼고 배운 점에 대해 얘기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느낀 점이나 배운 점들 모두 맥락은 똑같았어요. ‘우리는 가진 게 하나도 없으니까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된다’. 워낙 열악한 상황이니 남들보다 어떻게든 돈이 덜 드는 선에서 홍보 효과를 보려 노력하고, 꾸준히 개발 일지를 써서 공유하고 네트워킹에 열심히 참여하고 공모전 유저 피드백 같은 소통도 더 열심히 해야지 발전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취지로 얘기한 기억이 나네요. IP가 된 '쥐' 이야기 이경혁 편집장: 카셀게임즈의 작품 이야기로 넘어가볼까 합니다. <래트로폴리스>가 대표님의 첫 작업이신가요? 황성진 대표: 제게는 팀을 결성해 만든 게임으로서는 여덟 번째 작품이구요. 다른 팀원들의 경우에도 세 번째 프로젝트쯤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프로젝트를 만들 때마다 단순히 학교에서 배운 프로세스를 적용해서 평가받고 끝내는 형태가 아니라 실제 유저에게 어떻게 재미를 줄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만들곤 해요. <래트로폴리스>는 마지막 학기에 했던 프로젝트였고,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이 어느 정도 갖춰진 상황에서 상용화 가능한 버전으로 도전하고 싶어 만든 게임이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고 팀원들이 출시까지 함께 해주어 진행하게 됐습니다. 래트로폴리스 이경혁 편집장: 국내도 그렇지만 <래트로폴리스>는 특히 해외 반응이 좋았던 걸로 기억해요. 황성진 대표: 저도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어요. 사실 국내에서도 잘 만든 인디 게임들이 굉장히 많지만 노출이 안 되어 묻히는 경향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희는 공모전 수상으로도 도움을 받았고, 국내 스트리머들이 많이 플레이해 주시다 보니 한국 유저의 게임 구매율이 높아지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스팀에서 상위권을 유지해서 해외 유입도 지속될 수 있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겸손하게 말씀해 주셨지만, 해외 반응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가 이 게임의 장르적 특이성 때문이라고도 생각했거든요. <래트로폴리스>는 한국의 소규모 개발사가 보통 만드는 장르들과는 차별화된 점도 있으니까요. 이 장르를 선택하게 된 배경이 있었나요? 황성진 대표: 인디 게임을 좋아하다보니 매번 출시작들을 탐구하곤 하는데, <슬레이 더 스파이어>가 워낙 인기였잖아요. 저도 정말 재미있게 한 게임인데 이 게임의 특성이 심플한 2D 위주라는 점에 주목해서 이런 시스템을 사용해서 게임을 만들어보려 했어요. 우리가 만들기에 기술력이 너무 뛰어난 모델은 (모티브로) 어렵지만, 노력해서 어느 정도는 따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면 용기가 생기거든요. 또 저희만의 차별점을 챙겨야 하기에 제가 즐겨했던 다른 게임들과도 조합해 봤어요. 처음엔 <문명>과 조합했더니 템포가 좀 느리고 요즘 트렌드에 잘 안 맞는 느낌이었어요. 이후 <킹덤>이라는 또 다른 게임을 참고해 실시간 전투나 디펜스를 참고해 조합했더니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대성공했던 해외 인디 게임 2개를 버무렸다 보니 운이 좋게도 해외 반응도 따라왔던 것 같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그래도 턴제 게임인 <슬레이 더 스파이어>를 <킹덤> 류의 실시간 액션으로 녹여낸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두 게임이 근본적으로 가진 차이도 있고요. 황성진 대표: 저희만의 차별성은 실시간과 피지컬 요소를 포함하는 것이었어요. 다만 <킹덤>에 있는 뷰를 가져왔지만 그곳의 조작 방식이나 주인공 캐릭터를 등장시키지는 않을 거고, <슬레이 더 스파이어>의 시스템을 가져왔지만 거기서 발생하는 턴제의 신중한 결정 같은 걸 포함하지는 않겠다. 그 게임에서 호평받는 시스템들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걸 따라가면 (게임이) 완전히 비슷해질 수 있기 때문에 겹치지 않는 쪽으로 가려고 노력했어요. <슬더스>나 <킹덤>의 특정 부분들을 참고했으면 좋겠다는 유저 의견도 많았는데, 처음 이 게임을 만드려 했던 우리의 취지에 벗어나지 않도록 재고를 많이 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가로선상에서 일어나는 전투는 <팔라독> 같은 당시 유행하던 모바일 횡스크롤 디펜스 게임의 영향도 크지 않았나 싶었어요. 황성진 대표: 오히려 <팔라독>이나 <냥코 대전쟁> 같은 게임은 거의 참고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얘기를 주변에서 많이 듣긴 했는데 서로 비슷했던 부분이 있었다면 우연이거나 개발자들의 생각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이경혁 편집장: 두 게임을 베이스로 하여 새로운 메카닉을 만들어낸 건데, 이 메카닉의 외피가 ‘쥐’인 것도 흥미로워요. 캐릭터로 쥐를 선택하신 배경도 있을까요? 황성진 대표: 세 가지 이유가 있는데 제가 평소에 이 얘기를 워낙 많이 해서 신선도는 떨어질 것 같지만요(웃음). 예전에 기획했던 게임 중 쥐들의 도시인 탑을 올라가서 보스를 잡는 리듬액션 게임이 있었습니다. 그런 컨셉이 마음에 들어서 이번 작품에서도 쥐가 주인공인 게임을 하고 싶었구요. 또 당시 모바일에서 고양이 컨셉 게임이 많이 나오는 상황이라 고양이보다 쥐로 가면 이목을 끌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마지막으로 실험쥐 자체의 느낌이 참 인디게임과 비슷한 것 같아요. 신약 실험시 많은 실험쥐들에게 약을 투여하고 검사해서 그 중에 하나가 효과가 있으면 디벨롭해서 상용화된 약품으로 전 세계에 배급을 하잖아요. 인디 게임 또한 게임성에 대한 여러 실험들을 하고, 그게 <슬더스>처럼 잘 되면 대기업에서도 활용하게 되고 전 세계 사람들이 플레이할 기회가 생겨나는 거죠. 그런 부분 때문에 쥐라는 컨셉에 빠져들게 됐어요. 이경혁 편집장: 출시한 게임 두 가지가 모두 쥐를 디자인으로 한 것도 재미있었어요. 황성진 대표: 두 번째 게임까지 꼭 쥐로 캐릭터를 할 필요는 없었겠지만 저희의 생존 전략이기도 했어요. 전작에서 어느 정도 유저 풀이 생기다 보니 어떻게든 이 유저분들도 차기작까지 하게끔 끌고 가게 하는 게 우리가 전략적으로 좀 더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해서요. 캐릭터의 모습은 더 예쁘고 귀엽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쥐들이 뭐랄까 전작보다 좀더 다양한 표현을 하더라고요. 카셀게임즈의 두 번째 게임으로 <래토피아>라는 게임이 나왔는데 전작과 장르가 완전히 다릅니다. <래토피아>는 어떤 게임일까요? 간단히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황성진 대표: <래토피아>는 도시를 건설하고 경영하는 샌드박스 게임입니다. 플레이어가 쥐들의 도시의 지도자가 되어 마음대로 도시를 통치하면서 통치자의 고충도 한번 느껴보고, 쥐들의 도시가 발전하는 걸 보며 대리만족을 하기도 하는 그런 평화로운 게임이에요. <래토피아> 이경혁 편집장: 게임을 해보면 정말 쥐들이 굴을 파잖아요. 굴을 파서 도시를 만들고 운영하는 컨셉의 게임들도 적지 않을텐데, <래토피아> 제작 과정에서는 어떤 레퍼런스를 많이 보셨을까요? 황성진 대표: 가장 많이 참고한 게임은 클레이사의 <산소미포함>이었고 <크래프트 더 월드>라는 게임도 많이 참고했습니다. 그 외 2D 어드벤처 게임인 <스팀월드 디그>나 <테라리아>도 있고, 땅을 파는 게임들이 워낙 많다보니 그런 것들도 은연 중에 많이 참고한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개인적으로 그런 장르를 참 좋아하고 저 같은 경우 <캡틴 오브 인더스트리>도 많이 하는 편입니다. <래토피아>도 처음 데모판을 해보며 국내에서 이런게 나와 참 반가웠던 기억이 있었어요. 이쪽 장르는 사실 처음 만들어 보셨을 텐데 이 장르에 처음 손을 댔을 때는 어떠셨나요? 황성진 대표: 저도 <산소미포함>도 원래 좋아했고 시뮬레이션 게임의 광팬이거든요. 학교 처음 들어갈 때부터 시뮬레이션을 만들고 싶었구요. 그런데 전에도 주변에 말해보면 “뭔 소리냐, 우리는 테트리스 만드는 데도 세 달이 걸린다”는 얘기를 듣곤 했어요(웃음). 시뮬레이션은 개발이 그만큼 어려운 장르라 나중에 성공했을 때 도전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래트로폴리스> 이후 차기작 장르 논의할 때 <산소미포함>을 공유해 드렸더니 팀원들이 마음에 들어하셨어요. 게임이 워낙 어렵고 한두 시간 플레이해서는 알 수 없는 게임이지만, 저희가 자신감도 있었고 하다 보니 그렇게 개발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당시에 제가 완전 몰입해서 빠져들었던 게임 장르를 선택했고, 그 게임에서 더 개선했으면 재미있게 했었을 것 같은 부분을 녹여내려고 했어요. 이경혁 편집장: <래토피아>를 <산소미포함>처럼 어떤 기계공학적인 스타일로 만들지는 않으셨던 것 같아요. 황성진 대표: 그렇죠. 그거는 저조차도 너무 어려웠고, 유저 평가나 팀원들과 회의에서 그 부분이 취향에 안 맞는 것 같다는 분들이 많으셔서 좀 더 가벼운 스타일로 만들려 노력했습니다. 전투 시스템이 있으면 재밌겠다는 의견도 있어서 <래트로폴리스>에서 했던 전투 디펜스를 섞어보려 했구요. 이경혁 편집장: 메카닉 자체는 라이트해지되, 전투나 실시간 액션이 좀더 들어간 형태로 결과물이 나온 셈이네요. 현재 <래토피아>의 시장 반응은 어떻습니까? 황성진 대표: 아직은 기대했던 것보다는 조금 차가운 것 같아요. 어느 정도 성과는 있었기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뭔가 저희가 크게 성장하거나 팀원 증원이나 사무실을 저희가 스스로 구할 수 있을 정도의 그런 성공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전작의 경우에는 게임 스트리머들의 푸시도 좀 있었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번에는 어땠나요? 황성진 대표: 이번 작품은 아무래도 저희 출시 직전에 <33 원정대>가 워낙 이목을 끌기도 했고, 스트리머 시장 자체도 많이 바뀌었다 보니 주목을 크게 받지는 못했습니다. 다행히 유튜버 풍월량님이 나중에 한 번 플레이하셔서 한국에 좀 알려졌던 것 같아요. 저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저희만의 착각이었고(웃음) 실제 국내 매출은 풍월량님 유튜브가 올라간 시점부터이지 싶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래트로폴리스>와 <래토피아>를 비교해보면 전작은 스테이지 기반이라 스트리밍으로 보여주기가 확실히 편할 것 같거든요. 후자는 특별한 엔딩이 없는 스타일이다보니 중간에 들어가서 보기도 애매하고 시작부터 쭉 긴 시간을 따라가기도 애매한 문제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황성진 대표: 그것도 큰 것 같아요. <래토피아>가 스트리머 분들이나 아니면 전시회 같은 데서 하기에 적합한 게임은 전혀 아니거든요. 이번 작품 같은 경우에는 그래서 홍보적인 측면에서도 어려움이 있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해외 반응은 어떤가요? 이 게임 장르는 국내보다 해외가 더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요. 황성진 대표: 7월부터 저희가 정부지원으로 해외 인플루언서 대상 마케팅을 진행해보고 있는데요. 초창기 <래트로폴리스>처럼 스팀 탑 차트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서 유입되는 효과는 얻지 못하다 보니 그렇게 드라마틱한 효과는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얼리액세스 때는 해외 반응이 높았지만 정식 출시 이후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나고 있지 않아서요. 다만 <래토피아>는 저희가 서비스하고 유저분들을 더 만나면서 길게 지켜봐야 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시뮬레이션 게임 플레이어들이 성향 자체가 신중하기도 하고 게임도 출시 직후보다 어느 정도 안정화된 게임을 선호하시는 영향이 있을 거라고도 생각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아까 미처 생각을 못했는데 <33 원정대>와 출시 시점이 겹쳤었군요. 알고 내셨던 걸까요? 이런 걸 다 피해 갈 수도 없는 거고 어렵네요. 황성진 대표: 네, 원래는 작년 말에 내려고 했다가 계속 부족한 부분들이 밟혀서 개선하다 보니 밀리게 됐거든요. 4월 말까지 갔다가 <33> 소식을 듣고 또 미루었지만 출시 약속은 지켜야겠다 싶어 5월 초로 잡은 건데. 어떻게든 여러 요인을 생각해본다면 그렇지만, 실은 <33>과 저희 유저 풀이 그렇게 겹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해서 그냥 저희가 부족했던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래토피아> 같은 게임을 만들 때 제일 어려운 게 규모의 연산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식량을 얼마를 먹고 얼마간 활동할 수 있고 피로도가 얼마가 쌓이는지 처음에 설정한 기본적인 변수들이 후반으로 갈수록 개체가 늘고 공간이 넓어지면서 방대한 연산을 필요로 하게 되잖아요. 그때부터 기획자가 이 복잡한 연산의 결과를 얼마나 일일이 피드백을 해서 고쳐나갈 수 있는가가 제일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하고 <산소미포함>이 그런 걸 되게 잘해냈다고 봐요. 실제 기획할 때 그 규모의 경제라 부르는 부분에서 마주했던 어려움 같은 건 없으셨어요? 황성진 대표: 제가 기술적인 담당은 아니다 보니 팀원분들의 의견을 듣고 그에 맞춰 기획 갈무리를 했거든요. 개체 수가 100명이 넘는 도시를 지향하기 때문에 지원하지 못하는 기존 게임의 기능을 어떻게 돌릴 수 있을지도 많이 논의했어요. 여러 아이디어를 건의하긴 했지만 기술적 검토 결과 최적화에 문제가 생기거나 구현이 어려운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거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최적화가 안 좋아지면 결국 부정적인 유저 경험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반적인 경험에서도 최대한 최적화에 영향 없이 콘텐츠를 추가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정말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요즘 인디게임 개발사에서는 그런 점 때문에 AI를 넣어서 해결하자는 얘기를 하시는 대표님들이 좀 계십니다. AI가 참 효율적인데 어떻게 좀 붙여볼까라는 고민들을 다들 하시다보니 어떻게 생각하시나 싶은데, 카셀게임즈도 AI에 대한 검토를 하시는 편인가요? 황성진 대표: <래토피아>의 경우 AI가 활성화되기 이전 기반 시스템들을 만들어서 잘 접목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AI 답변을 믿고 수정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AI가 아예 저희 시스템 전체를 이해를 해야 거기에 적합한 솔루션을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물론 인디게임에서 실험적인 시도들이 나오고 결과가 좋으면 대기업이나 다른 팀들에서 그걸 활용하고 발전시킬 텐데요. 아무래도 결국 연산이나 최적화 규모가 커지는 문제다 보니 저희 입장에서 얼리 어댑터처럼 적용하기에는 형편이 그렇게 여유가 있지는 않을 것 같구요. 이경혁 편집장: 슬슬 마지막 얘기로 가야 될 것 같은데, 향후 <래토피아>는 어떤 업데이트 방향을 보고 계신지 궁금하고 차기 신작에 대한 고민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황성진 대표: <래토피아>는 일단 계속 유지보수를 하면서 후속 업데이트를 준비 중입니다. 제가 작성해 놓은 업데이트 리스트에만 몇백 개가 있고 실은 오늘도 10개 정도를 추가하긴 했는데(웃음) 너무 많은 수치라 유저들의 니즈가 큰 것들 위주로 선별해서 진행하려 합니다. 차기작 같은 경우에는 제가 출산을 했고 육아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프로그래머 분께서 총괄 핸들을 맡아서 진행하고 계세요. 장르는 다키스트 던전류의 턴제 RPG가 되었고, 오토 배틀러 형태도 약간 고려를 하고 있습니다. 개발 속도는 빠르게 되고 있어서 올해 말쯤 데모 버전이나 프로토타입 정도가 완성될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카셀게임즈의 세 번째 작품도 ‘쥐 시리즈’로 가게 될까요? 황성진 대표: 맞아요. 그리고 아트 담당자님들의 역량도 더 커졌기 때문에 더 귀엽고 애니메이션이 더욱 발전된 형태로 나갈 것 같습니다. 늘 유저분들이 보내주시는 응원에 감사하고, 저희들이 열심히 개발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많은 기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Tags: 인디게임, 인터뷰, 게임산업, 래토피아, 래트로폴리스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수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비주얼노벨의 미디어믹스 : 무대 위로 소환된 텍스트
하지만 이처럼 익숙한 미디어 믹스의 이동 방식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단순히 인기 IP를 다른 형식으로 재포장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이동 방식에서 중요한 것은 ‘게임의 어떤 요소가 건너가는가’, ‘무엇이 남고 무엇이 새로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이동하는 매체의 형식에 따라 달라지는 층위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 Back 29 GG Vol. 26.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Mimong Lee From childhood to now, always in the company of Nintendo games. A few months ago, bought a Steam Deck on installment and has been enjoying it to the fullest. Studied business administration at Kyung Hee University and cultural mediation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Yonsei University, and is currently a doctoral student in the Graduate School of Core Ethics and Frontier Sciences at Ritsumeikan University in Japan. Researches digital media content and culture, including games and webtoons.
- '이코'에서 '갓오브워'까지: 사랑의 대상과 게이머의 나이듦에 대하여
게임 주인공 캐릭터를 둘러싼 가족관계에서 나타나는 트렌드 변화가 주로 PC, 콘솔 기반의 스탠드얼론 게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또한 곱씹어볼 여지를 남긴다. < Back '이코'에서 '갓오브워'까지: 사랑의 대상과 게이머의 나이듦에 대하여 16 GG Vol. 24. 2. 10. 게임 규칙을 넘어선 감정 투영 대상으로서의 등장인물 초창기 게임의 역사 속에서 가족은 게임 안이 아니라 게임 밖의 존재였다 . 플레이어 캐릭터는 대체로 혼자 위험천만한 스테이지들을 돌파해 나갔지만 , 그런 게임을 플레이하는 환경은 게임사의 광고에 의해 늘 가족적인 무언가로 일컬어지곤 했다 . 닌텐도 등의 가정용 콘솔 기기는 항상 텔레비전 광고를 통해 거실에서 온 가족이 함께 게임하는 장면을 보여주고자 했다 . 게임 안에서 플레이어와 함께 하는 이들은 가족이라기보단 주로 ‘ 동료 ’ 라는 이름으로 호명되었다 . 롤플레잉 게임의 파티 시스템 , 여러 게임에 등장하는 조력자 등은 나름의 끈끈함을 가지고 있지만 어쨌든 기능적인 관계맺음을 플레이어와 이어나가는 동료로서의 존재였다 . 2000 년대 들어와 출시된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 이코 ’ 는 그런 점에서 눈에 띄는데 ,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블 캐릭터와 시작부터 끝까지 모험을 함께 하는 요르다는 ‘ 동료 ’ 라는 이름으로 부르기엔 사뭇 이질적인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 플레이어는 딱히 공격력이 없는 요르다의 손을 붙잡고 게임을 이끌어나가야 하는데 , 분명 퍼즐과 같은 요소들에서의 해결을 돕는 조력자의 포지션이지만 실제로 ‘ 이코 ’ 를 플레이한 이들이 요르다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동료보다는 조금 더 진한 무엇이었다 . 함께 싸우면서도 플레이어가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존재로서의 요르다는 동료이자 퍼즐의 열쇠라는 기능적 관계 이상의 존재로 플레이어들에게 각인된 바 있었다 . 유사가족 관계의 조엘과 엘리 ‘ 이코 ’ 로부터 대략 10 여 년이 지난 뒤에 출시된 게임 ‘ 라스트 오브 어스 ’ 는 유사 가족 관계에 놓인 두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며 모험을 풀어가는 새로운 시점을 선보였다 . 중년의 남성 주인공 조엘은 게임 프롤로그에서 딸을 잃었고 , 그런 그에게 임무로서 맡겨진 엘리라는 아이는 잃었던 딸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십대 소녀다 . ‘ 이코 ’ 처럼 둘은 서로 도와 가며 험난한 세계를 헤쳐나가지만 , ‘ 이코 ’ 에 비해 좀더 엘리는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변화 혹은 발전이 있었다 .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한 무대 속에서 조엘과 엘리의 이야기는 단순히 모험의 기승전결을 풀어가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 잘 맞지 않았던 두 사람이 일종의 유사 가족 관계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진한 감동을 만들어낸 바 있었다 .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 라스트 오브 어스 ’ 로부터 받은 감정은 삭막하고 외로운 좀비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감정을 함께 기댈 수 있는 존재라는 유사 가족 관계가 유독 더 따뜻하게 빛났기 때문이었다고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 '갓오브워'에 이르러 혈연 가족으로 등장하는 조연 2001 년 ‘ 이코 ’ 에서 동료를 넘어선 무언가로 , 2013 년 ‘ 라스트 오브 어스 ’ 에서는 유사 가족 관계라고 이름붙여도 좋을 , 플레이어와 함께 모험을 떠나는 존재는 2018 년의 ‘ 갓 오브 워 ’ 에서는 본격적으로 혈연관계로 맺어진 가족으로 등장한다 . 전쟁의 신으로 그리스 신화 시대를 휩쓸었던 주인공 크레토스는 후속작에서 아들을 둔 중년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 크레토스의 캐릭터는 이러한 관계설정의 변화를 통해 크게 바뀌는데 , 전작에서는 가족을 잃은 뒤 신의 아들로서 자녀의 포지션을 맡았던 크레토스가 후속작에서는 가족관계 안에서의 아버지 포지션을 중심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 실제로 게임 안에서 크레토스와 아들 아트레우스의 관계는 철모르는 아이의 육아를 도맡는 크레토스의 관점으로 그려진다 . 아트레우스는 나름의 전투력은 갖추고 있지만 여전히 보호해야 할 대상이며 , 내러티브를 통해 크레토스는 아들의 성장을 돕는 역할을 풀어낸다 . 후속작 ‘ 갓 오브 워 : 라그나로크 ’ 에 이르면 본격적으로 사춘기를 맞아 방황하는 아트레우스의 옆에서 자녀의 성장과 함께 부모가 맞는 새로운 도전들이 함께 그려지는 것을 보면 , ‘ 갓 오브 워 ’ 의 북유럽 시리즈는 상당부분 자녀라는 새로운 가족관계를 맞았지만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될 지는 모르는 부모의 입장을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나이들어가는 게이머 게임 안에서 기능적 조력자 이상의 감정을 담아내는 캐릭터와 주인공 캐릭터 사이의 관계는 ‘ 이코 ’ 의 2001 년부터 ‘ 갓 오브 워 ’ 의 2018 년 사이 근 20 여년 속에 점차 변화해 왔다 . 이 변화는 지켜야 할 동료에서 ‘ 라스트 오브 어스 ’ 의 유사 가족관계를 거쳐 마침내 혈연관계로 점차 가족이라는 구성을 향해 움직였는데 , 이는 특히 주인공 자체의 변화와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 명확하게 ‘ 소년 ’ 의 포지션이었던 ‘ 이코 ’ 의 주인공과 달리 ‘ 갓 오브 워 ’ 의 크레토스는 명백하게 중년 남성으로 그려진다는 점에서다 . 현실의 시간 변화를 함께 생각해 보면 게임 속 주인공 캐릭터의 나이듦은 마치 현실의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2001 년에 소년이었던 주인공은 2018 년이 되면 열 일곱 살을 더 먹게 되는데 , 만약 2001 년 당시 20 세였던 플레이스테이션 이용자가 2018 년이 되면 37 세가 되는 것이다 . 단순한 생물학적인 나이 변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 이 20 년 사이의 간극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가 갖는 주변 인간관계를 크게 변화시키고도 남을 시간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 ‘ 이코 ’ 를 플레이하던 청년은 20 년 후 중장년이 되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 20 년 전의 게이머들이 지금보다 젊은 세대였다면 , 이제 게이머 집단은 과거보다 조금 더 폭넓은 연령층이 되었다 . 디지털게임 이용자층은 연령과 성별 , 지역과 같은 여러 측면에서 과거보다 보편화되며 넓어졌고 , 과거 단지 어린이들의 놀잇감으로만 여겨졌던 게임은 적어도 ‘ 갓 오브 워 ’ 에 이르면 명백하게 중년기 게이머들을 타겟으로 삼는다 . ‘ 갓 오브 워 : 라그나로크 ’ 에서 다루는 사춘기 자녀의 방황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을 게임 주인공 캐릭터에 덧씌우는 일은 간접적으로 오늘날의 게이머들이 갖는 평균 연령이 어디쯤에 위치하는지를 의미한다 . 게임이 등장하는 인물들의 관계를 통해 일련의 유대관계와 사랑을 표현한다고 한다면 , 이 사랑은 게이머 집단의 나이듦에 따라 다른 형태로 묘사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 20 년 전의 게이머들은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젊고 남성중심인 집단이었고 , 그런 그들에게 사랑은 가족보다는 신비함을 간직한 여성 캐릭터에게 투영된다 . 그리고 시간이 흘러 중장년이 된 그들에게 사랑의 투영 대상은 이제 자녀라는 , 가족이라는 새로운 테두리 안에서 바라보는 대상이 된다 . 이러한 변화는 꽤 곳곳에서 감지된다 . 2023 년 출시된 ‘ 디아블로 4’ 에서는 기존 시리즈에서 보지 못했던 수많은 서브 퀘스트들이 등장하는데 , 이 중 적지 않은 분량이 자녀를 둔 등장인물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 자녀의 훈육을 위해 감옥에 보낸 부모가 결국 자식을 잃은 뒤 후회하는 내용이라거나 , 집나간 아이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해오는 등 ‘ 디아블로 4’ 에는 적지 않은 분량으로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감정을 다루고자 하는 퀘스트들이 포함된다 . 비슷하게 2020 년대에 출시된 게임 중 ‘ 잇 테이크스 투 ’ 또한 게이머 집단의 세대 변화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사례다 . 어린 자녀를 가진 중장년기 부부의 이혼 위기를 코믹하게 풀어낸 이 게임 또한 사실상 중년 부부가 만날 수 있는 삶의 시기를 스케치한 결과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오늘날 스탠드얼론 게이머의 중심은 중장년이다 게임 주인공 캐릭터를 둘러싼 가족관계에서 나타나는 트렌드 변화가 주로 PC, 콘솔 기반의 스탠드얼론 게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또한 곱씹어볼 여지를 남긴다 . 태블릿과 스마트폰을 거치면서 점차 PC 는 가정의 필수 가전제품이어야 할 이유를 상실하기 시작했고 , 게임을 하기 위해 구비해야 하는 게임전용 PC 는 이제 꽤나 고가품의 영역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 콘솔게임기는 상대적으로 저렴하다지만 , 일정 수준 이상의 디스플레이가 기본적으로 요구되고 , 타이틀 가격이 8~10 만원을 오가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더 이상 아이들의 문화활동으로만 보기 어려운 비용 장벽을 가진 셈이기도 하다 . 아이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부분유료 기반의 온라인게임들과 달리 , 일정 수준 이상의 공간과 시간 , 비용을 요구하는 PC/ 콘솔 기반의 스탠드얼론 게임들은 이제 확실히 중장년을 메인으로 삼는 활동이 되었다 . 게이머가 나이를 먹어 가는 과정과 함께 게임 콘텐츠 또한 나이를 먹었고 , 나이들어간다는 변화 속에서 게임을 통해 표현되는 게이머와 주인공 주변의 인간관계 또한 다르게 그려진다 . 모두가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연애 – 결혼을 거치는 이른바 ‘ 정상가족 ’ 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 적어도 기술복제를 통해 대량유통되는 미디어 콘텐츠인 디지털게임은 산업적 관점에선 정상가족 안에서 부모라는 위치 혹은 그와 비슷한 세대가 겪게 되는 감정의 과정들을 다루고 싶어한다 . 지난 수십 년간 게임에 일어난 변화는 그래서 단지 기술의 발전과 이용자층의 확대만이 아니라 , 이 매체가 다루고자 하는 감정과 관계에도 나타난다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마우스워싱>: 노스탤지어가 흐물거릴 때
자본주의적 체인 안에서 상품이 개별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과정은 세세하게 분할되어 실체는 추상적인 절차로 파편화되고 프로세스는 우연적인 집합에 불과할 때, 블랙 박스 속 물건을 통해 주권을 재확인하고자 하는 지미의 시도는 실패로 끝난다. < Back <마우스워싱>: 노스탤지어가 흐물거릴 때 21 GG Vol. 24. 12. 10. -이 글에는 <마우스워싱>에 대한 전반적인 스포일러가 들어있습니다.- 노스탤지어적 로우 폴리곤 역사학자인 애그니스 아널드포스터는 저서인 『노스탤지어, 어느 위험한 감정의 연대기』에서 다양한 시대와 형태의 노스탤지어를 소개한다. 디즈니의 영화 리부트나 N64와 같은 1990년대의 미디어가 2020년대에 각광받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 아널드포스터는 세대론적 관점을 제시한다. 2020년대 초반에 성년이 된 사람들이 1990년대에 태어났으며, 이 시기는 또한 “21세기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모든 것이 나오기 전의 마지막 시기”라는 설명이다 [1] . 실제로 itch.io와 같은 인디 플랫폼에 제출된 로우 폴리곤 기반의 게임들, N64나 PS1을 키워드로 게임의 제작자와 향유자는 노스탤지어를 적잖이 인용한다. 그러므로 이들 90년대생이 유년기에 향유하던 게임의 추억을 현재로 데려오고자 하는 시도로써 이러한 현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관점이 그렇게까지 이상한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 이런 양식의 게임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배경으로는 제작에서의 이점을 간과할 수 없다. 호러 인디 게임 컴필레이션 을 엮은 브레오간 해케트는 90년대의 저해상도 3D로 게임을 제작하는 동기로 접근성을 언급한다. “텍스처에 4K 해상도가 필요하지 않고 캐릭터 모델이 수천 개가 아닌 수십 개의 폴리곤으로 계산될 때 솔로 크리에이터가 3D로 전환하기가 훨씬 쉽다”는 것이다 [2] . 그렇게 빚어낸 이미지는 AAA 게임과 직관적인 차이를 구획하고, 와 같은 작품이 드러내듯 아예 스스로를 실패작으로, 인디한 것으로 천명하며 등장하기도 한다 [3] . 무엇보다도 이런 종류의 기하학적인 신체와 저해상도 텍스처가 지속적으로 향유되는 데에는 특유의 매력이 있을 것이다. 3D로의 이행은 명백히 기술적 한계에 직면하는 가운데서 이루어졌다. 평면적이면서도 블록 같은 질감은 투박하지만 분명 구체적인 신체성을 지닌 무엇이다. 그 위에 기입된 엉성한 텍스쳐는 계속해서 미끄러지므로 인식의 혼란을 초래하며 불안을 자아낸다. “때때로 게임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을 선사하는 이러한 그래픽은 따라서 호러 장르와 밀접하게 얽히게 된다. 이렇게 레트로 호러 게임이 향유되는 동기를 살펴봤을 때, 지난 9월에 출시된 심리 호러 어드벤처 게임인 <마우스워싱Mouthwashing>은 설명에 모범적으로 들어맞는 사례처럼 읽힌다. 롱 올간Wrong Organ 스튜디오의 멤버들은 스웨덴 게임 개발 교육 기관에서 만나 팀을 이뤘다. 거기서 그들은 전작인 <하우 피쉬 이즈 메이드How Fish is Made>를 완성했고, 확장팩에서 후속작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마우스워싱>의 핵심 인물인 ‘컬리’는 이 게임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아이코닉한 이미지를 머릿속에 각인시킨다. 그가 운행하던 우주선 ‘툴파르’ 호는 천체와 충돌하는 사고를 겪게 되는데, 폭발은 컬리의 전신을 강타하며 흔적을 아로새겼다. 작중에서 컬리는 사지와 눈꺼풀을 잃고 극심한 화상으로 인해 신음한다. 게임의 1인칭의 카메라는 플레이어블 아바타와 플레이어의 시점을 융합시키며 가상의 신체로부터 비롯되는 감각을 끊임없이 의식하게 한다. 격통이 화면 너머 플레이어에게 전달되지는 않기에 끔찍한 몸에 접속했다는 사실 자체가 어떤 특별한 감각을 일깨우지는 않는다. 그보다 더 두드러지는 공포는 가상의 육신 내외부에서 일어나는 붕괴와 결합에서 파생된다. 어떤 퀘스트는 컬리의 살을 자르고 섭취할 것을 종용한다. 딱딱한 플라스틱 덩어리나 다름없어 보이는 저화질의 벌건 살은 가상의 신체가 언제든 인접한 다른 환경으로 무너져 내릴 가능성을 자극한다. 9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이 되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그리워하며 “21세기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모든 것이 나오기 전의 마지막 시기”를 향유한다는 게이머 노스탤지어에 관한 설명은 “추억 소환 섹션”에 놓여 있는 대상에 한정한다면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4] . <마우스워싱>은 로우 폴리곤이라는 장치가 범연히 1990년대적인 것의 부흥이라고 설명한 바와 다소간의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상상적으로 구현된 미디어적 참조는 현재적으로 “풍부한 시청각적 라이브러리를 구축”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5] . <마우스워싱>이 엮어내는 영상 소스(뤼미에르 형제의 <유쾌한 해골>부터 1950년대 반공주의 프로파간다 애니메이션인 을 거쳐 가글액의 광고 화면으로 이어진다)는 로우 폴리곤이 표방하는 1990년대 게임 하드웨어 이전의 시기까지 소급해 가며 현재화를 시도한다. 주권성에 대한 노스탤지어 노스탤지어로 상상되는 과거는 현재를 인식하는 방식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노스탤지어는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시간에 속한 순간들”에서 촉발되는데, 결국 “현재 우리가 보유한 가치나 윤리, 자기감에 더욱 부합하게끔 정보를 재구성”하는 과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6] . 이 지점에서 90년대와 지금 사이의 연속성을 되짚어보게 된다. <마우스워싱>의 내러티브가 디디고 있는 역사적 토대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인식과 밀접하다. 80~90년대 워싱턴 컨센서스를 통해 구현된 신자유주의는 “사사화privatiation와 개인의 책임”을 핵심으로 한다. “부와 의사 결정이 대중과 어느 정도 책임을 지는 정책 결정 기구에서, 개인이나 기업과 같은 책임지지 않는 자들의 손으로 넘어” 가는 것이다 [7] . 그 결과 구조 조정과 노동유연화, 고용 불안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풍경이 삶을 위협하기에 이른다. <마우스워싱> 속 툴파르 호는 마지막으로 남은 유인 우주 화물 서비스를 전문 기업인 포니 익스프레스의 소속이다. 열악한 근무 조건 속에서 승무원들이 화물을 운반하는 와중에 툴파르 호가 소행성과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부함장인 ‘지미’는 구조가 올 때까지 다른 동료들을 책임지고 건사하고자 한다. 한편 비선형적으로 이어지는 게임의 내러티브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사고의 전후를 퍼즐처럼 재구성하도록 요청한다. 작중에서 상기의 영상 콜라주는 한 장의 메일을 트리거삼아 재생된다. 그 메일이란, 본사는 이번 배송을 완료한 후에 툴파르 호의 인원이 전원 해고될 것이며 포니 익스프레스의 서비스가 무인 체제로 전환될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컬리가 함장의 자격으로 그 메일을 수신하는 장면은 잠시 중지되고, 구시대의 애니메이션들이 흘러나오며 경제적 주체로서의 가장과 같은 자본주의의 유익한 삶을 역설한다. 이미지의 잡동사니가 멎은 자리에는 끄트머리가 꺾여버린 사다리들이 놓여 있다. 사다리는 컬리가 지미와 나누었던 대화를 환기하는 요소다. 컬리 : ...최근 이런 생각을 좀 해 봤어. 이걸로 충분한 건가? 지금까지 잘해 왔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이대로 살아도 되나? 좋은 장거리 화물선 함장으로 말이야. 지미 : 그게 안 좋은 건가요? 컬리 : 내가 하려는 말이 바로 그거야. 안 좋지는 않아. 하지만... 아주 무서운 일이지. 이런 생각이 들어. “이게 내 최선인가? 앞으로도 평생 이렇게 살아가야 하나?” … 지미 : 이 사다리의 꼭대기에 올랐는데... 애초에 잘못된 사다리를 오른 건 아닐까 생각하신다는 거죠. 그래도 어떤 관점에서 보든, 한참 위까지 올라가셨잖아요. ...전 아직도 그 사다리를 끝없이 오르고 있는데 말이죠. 『잔인한 낙관』을 저술한 로런 벌랜트는 신자유주의 문화에서 ‘좋은 삶’이라는 환상을 구성하는 애착심에 관해 이야기한다.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내는 위험하고 불안정한 삶 속에서 우리는 소진되거나 마모되면서도, 더 좋은 삶이라는 환상에 애착을 품는다.“잔인한 낙관은 심각하게 문제가 되는 대상에 애착심을 유지하는 상태”이며 또한 “우리에게 ‘좋은 삶’이라고 호명하는 대상에 대한 정동적 애착심 속에 기거하면서 ‘좋은 삶’을 살펴보게 하는 자극제”이기도 하다 [8] . 위의 대사에서 컬리는 지금껏 유지해 왔던 삶의 형식이 어느 정도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는 정황을 감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벌랜트 식으로 표현하자면 마모된 주체인 그는 ‘좋은 장거리 화물선 함장’이 주는 낙관이 불능에 처했음을 미묘한 어휘로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허무감을 공유받는 지미는 그것이 어디까지나 사다리의 ‘한참 위’에 있기에 가능한 토로라고 일축한다. 그러므로 사고 이후 임시 함장이 된 지미는 지속적으로 “책임을 질 수 있다”고 되뇌며, 부상으로 불능 상태가 된 컬리를 대신하려 한다. 지미는 선원들의 안위와 툴파르 호의 위기를 책임지려 한다. 더 나아가서 이 위기를 성공적으로 수습함으로써 불안정한 고용 상태를 다시 되돌릴 수 있다는 희망을 품기도 한다. 지미는 생존 물품을 찾아보기 위해 운송 창고 개방을 결단한다. 창고를 개방할 수 있는 열쇠는 함장만이 소지 가능하다. 그가 의기양양하게 휘두른 주권은 곧 미끄러진다. 영상의 콜라주로 이어진 시퀀스가 종료되면 마침내 플레이어는 창고에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 내용물은 생존에는 하등 쓸모없는 가글액에 불과하다. 이 가글액은 포니 익스프레스가 직접 생산하지 않은 물건일뿐더러 1950년대의 애니메이션과 병치된 광고 형식은 시대착오적이다. 요컨대 목전으로 닥친 자동화와 무인화의 미래를 절대 극복해 주지 못할 물건이다. 자본주의적 체인 안에서 상품이 개별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과정은 세세하게 분할되어 실체는 추상적인 절차로 파편화되고 프로세스는 우연적인 집합에 불과할 때, 블랙 박스 속 물건을 통해 주권을 재확인하고자 하는 지미의 시도는 실패로 끝난다. 그는 자신이 의지를 가지고 노력해 함선의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고 믿었다. 결국 “주권성이란 객관적 상태라고 오인된 환상”으로 “개인적, 제도적 자기 정당화의 수행성을 열망하는 입장이며, 그 입장이 안전과 능률성을 제공한다는 환상과의 관계 속에서 통제권을 갖는다는 정동적 느낌”이다 [9] . 일반적으로 법에서는 주체를 행위하고 그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존재로 상정한다. 이는 범박한 의미에서의 게임이 플레이어의 개입을 통해 상호작용 하는 미디어로 정의된다는 지점을 환기한다. 지미의 행위를 견인하는 동기는 플레이어가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로우 폴리곤 아바타를 꾸역꾸역 붙들고 있는 이유와도 일치한다. 툴파르 호와 승무원을 건사하는 것이다. <마우스워싱>의 게임 플레이는 정해진 루트를 따라 나가는 일방적인 워킹 시뮬레이터식 진행에 가깝다. 이 같은 구성은 전권을 휘두르는 주권성으로부터 비껴 나간다. 사고 당시를 재연하는 프롤로그는 이어질 전개의 메타포다. 소행성이 눈앞으로 들이닥치는 가운데, 조종간을 오른쪽으로 돌리라는 경고문이 주어지지만 플레이어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오직 왼쪽으로 꺾는 일뿐이다. 여기서 주권성은 실패한 선택지를 고르는 데에 발휘된다. 그렇게 지미는 툴파르 호를 온전히 책임지지 못하고, 플레이어는 지미의 ‘업보’를 책임지지 못한다. 1인칭 카메라를 활용한 시점 트릭은 여태껏 플레이어가 불완전한 책임을 붙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킨다. 그렇게 플레이어는 시점으로부터 미끄러져 나가며 공포를 경험하게 된다. 이처럼 <마우스워싱>은 노스탤지어적 장치를 활용하며 신자유주의에 대한 짤막한 역사적 라이브러리를 구축하고 있다. 잔인한 낙관이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구현해 내는 것은 <마우스워싱>의 마지막 장면이 아닐까 싶다. 모든 관계가 파탄 난 상황 속에서 지미는 부상당한 컬리를 수면 장치에 밀어 넣는다. 비록 컬리는 망가진 신체와 고통으로 잠 못 드는 신세임에도 일단 수십 년간 냉동 수면 상태에 있다 보면 언젠가는 구조되리라는 일방적인 기대에 내걸린다. 훗날 컬리가 어색하게 눈을 떴을 때, 그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1] 애그니스 아널드포스터. 손성화 역. 『노스탤지어, 어느 위험한 감정의 연대기』. 서울: 어크로스. 2024. 273쪽. [2] Natalie Clayton, “The horror games harking back to the PSone era”, 2019.10.31.등록, 2024.11.05.접속, WhyNowGaming, [3] 이 게임은 닌텐도 64를 위한 게임을 “야심넘치게 개발하다가 프로젝트를 폐기할 위기”에 놓인 일련의 이야기로 소개된다. https://l4ndo.itch.io/abandoned-64 [4] 애그니스 아널드포스터. 273쪽. [5] Natalie Clayton, 위의 글. [6] 애그니스 아널드포스터. 15쪽. [7] 리사 두건. 한우리·홍보람 역. 『평등의 몰락-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하는가』. 현실문화. 2017. 57쪽. [8] 로런 벌랜트. 윤조원·박미선 역. 『잔인한 낙관』. 서울: 후마니타스. 2024. 48·55쪽. [9] 로런 벌랜트. 184쪽.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김규리 게임이 이야기를 경험시키는 방식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것저것 기웃거리다가 최근에는 <마라톤>을 플레이했습니다.
- 플레이시간의 자본주의적 상품관계 - 탕진의 재미와 축적의 재미
온라인게임 시대가 만들어낸 이 변화는 놀이 역사에서 보기 드문 전환을 만들어냈다. 노는 일이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무언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놀이의 본질은 일종의 무용함, 생산의 시간에 맞선 시간 탕진의 즐거움에 가까웠지만,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는 그 무용함의 효용마저도 상품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이기도 하다. < Back 플레이시간의 자본주의적 상품관계 - 탕진의 재미와 축적의 재미 21 GG Vol. 24. 12. 10. 놀이로서의 디지털게임: 생존, 노동, 여가의 세 분류 안에서 디지털게임을 플레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즐거움을 찾기 위한 유희, 놀이로서의 게임 플레이 행위 안에 디지털게임 플레이가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놀이는 근본적으로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행위라고 이야기하는데, 이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다는 말에는 한 가지 중요한 전제가 숨어 있다.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무언가를 특정한 행위에 들임에도 불구하고 딱히 행위의 결과로서 무언가 (경제적으로) 유의미한 산출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말을 다시 새겨보면, 결국 놀이를 정의하는 데 있어 전제되는 것은 놀이하는 사람이 무언가를 놀이 행위에 투여하고 있다는 사실임을 알 수 있다. 이 때 투여되는 것은 다름아닌 시간이다. 물리학적인 시간일 수도 있고, 혹은 인간의 24시간 일상이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가능성의 범주일 수도 있다. 생명유지를 위해 필수로 써야 하는 먹고 마시고 잠자는 시간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생산에 투여하는 노동시간이 아닌 제 3의 시간 사용으로 우리는 예술, 문화, 놀이와 같은 영역에 시간을 쓴다. 인간의 시간을 아주 크게 세 덩이로 나눈다면, 생존 – 노동 – 여가라는 세 가지 분류를 적용해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매체와 비슷하면서도 독특한 상품으로 자리잡은 디지털게임 디지털게임 플레이를 포함한 놀이와 여가 전반은 기본적으로 시간을 소비하지만, 기존의 놀이, 여가와 달리 디지털게임에서는 많은 경우 시간과 함께 돈을 써야 한다는 전제가 덧붙는다. 최초의 디지털게임을 이야기할 때 수많은 초창기 프로토타입 중에서도 <퐁>이 거론되는 이유는 이 게임이 본격적인 상업적 게임이고, 그 상업성을 딛고 생산과 유통 양 측면에서 유의미한 대중화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디지털게임의 대중화는 디지털게임의 상업적 성공을 딛고서야 가능한 부분이다. 물론 여러 놀이 중 시간과 돈을 함께 써야만 하는 것이 오직 디지털게임만의 특징은 아니며, 이는 상업성에 기반한 현대의 많은 대중문화들이 공통적으로 딛고 있는 전제다. 놀이문화 전체를 큰 역사적 범주에서 본다면, 시간을 쓴다는 공통전제 안에서 우리는 경제적 소비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놀이가 등장하는, 이른바 자본주의적 여가의 시대를 놀이의 두 번째 시대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돈과 시간을 함께 쓰는 자본주의 시대 놀이로서 디지털게임은 그러나 다른 대중문화의 놀이와 매체 자체의 특성을 통해 차별화되는데, 바로 돈과 시간이 독특하게 어우러지며 서로 등가교환할 수 있는 위치에 선다는 점에서다. 구매나 대여를 통해 접하는 책이나 영화, 광고시청과 같은 간접적 방식의 돈/시간 소비를 활용하는 텔레비전이나 신문 같은 매체에서는 금액을 지불한 만큼의 향유시간을 구매한다고 볼 수 있는 패턴이 나타나지만, 디지털게임에서는 그와 더불어 경우에 따라서는 놀이시간 자체를 현금지불을 통해 대체할 수 있는 방안도 제시되기 때문이다. 아케이드 시절의 디지털게임: 숙련도와 현금의 교환관계 디지털게임에서의 시간/돈 소비는 초창기에는 극장에서의 영화 상영과 유사한 맥락으로 나타났다. <퐁>은 공공장소에 설치된 게임기에 동전을 투입하고 일정한 플레이 기회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는데, 이는 공공 기기에 대해 일련의 임대료를 지불하고 사용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가깝게는 그 이전의 놀이기구들이었던 핀볼이나 주크박스와, 조금 더 멀고 넓게는 공공장소의 기기 대여라는 의미에서 영화 상영의 방식과 유사했다. 초창기 아케이드를 중심으로 시작된 디지털게임 문화는 한국의 경우 21세기 전까지 이어진 오락실 문화를 중심으로 디지털게임의 일반적인 소비방식을 돈과 시간을 결합해 사용하는 형태로 대중 및 소비자들에게 인식시켰다. 그런데 다른 매체와 달랐던 점은, 이러한 지불방식은 디지털게임에서는 소비자/이용자의 숙련도에 따라 1코인당 플레잉타임이 가변적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는 이른바 가성비, 일정한 금액을 투여한 뒤 얼마만큼의 시간동안 기기를 점유해 플레이할 수 있느냐가 다른 매체와 달리 플레이어의 숙련도에 의해 좌우되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이 때 돈과 시간의 관계는 매우 독특하게 결합했다. 기계에 코인을 넣는 일은 일정한 기회를 대여하는 방식이었지만, 그 기회의 시간은 숙련도에 의해 좌우되었다. 그리고 숙련도를 키우는 길은 개인차를 떠나 더 많은 동전을 투입하여 실력을 쌓는 길이었다. 개인차가 있다고는 하지만 대체로 많은 돈을 지불하고 오랫동안 기계를 점유할수록 1코인당 점유시간은 늘어나는 구조라는 것이다. 책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읽는다고 책값에 변동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물론 만화대여점 같은 경우 시간 단위로 이용하게 되는데, 이런 경우는 매체의 유통채널이라기보다는 공간대여로서의 의미가 더 크니 예외로 두자) 게임의 경우에는 효율적인 플레이를 숙달할수록 1코인의 가치가 올라가는 구조였다. 게임에서 시간과 돈이 엮이는 독특한 형태는 이미 아케이드 시절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온라인시대의 현질은 시간과 돈을 맞교환하는 과정이다 1970년대 말부터 이뤄진 가정용 콘솔과 PC의 보급을 통해 디지털게임의 소비는 공공기기 대여에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를 직접 구매해 소유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게임기기를 개인이 소유하게 되면서부터는 다시금 다른 매체와 유사한 형태로 돈과 시간의 문제가 얽힌다. 한 번의 구매로 영원히 소유하는 게임에서 플레이어의 숙련도는 더 이상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른바 스탠드얼론 패키지라는 형태로 콘솔, PC를 중심으로 게임의 구매가 이루어지던 시절의 시간 / 돈 관계는 온라인게임으로 디지털게임의 중심이 옮겨오면서부터 다시금 큰 변화를 맞이한다. 소프트웨어가 서버상에 위치하게 되고, 사용자는 소프트웨어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소프트웨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구매 혹은 대여하게 되면서 게임에서의 시간 / 돈 관계는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냈다. 가장 대표적인 시간 / 돈 관계의 변화는 아이템의 현금 구매가 가능해졌다는 사실이다. 게임이 만든 가상공간 안에서만 도구적으로 유의미한 물질로서 인식되는 아이템은 대체로 게임 안에서의 플레이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며, 이 때의 플레이는 상당부분 시간의 소모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를테면 일정 수준 이상의 공격력을 가진 검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평균적으로 들여야 하는 사냥, 혹은 레벨업에의 시간 소비가 필수적이다. 그런 게임 아이템을 현금으로 구매 가능하게 만들 경우, 게임 플레이에 들어가는 시간은 현금으로 교환가능한 가치로서 다시금 의미지어진다. 기존에는 직접적 교환이 불가능했던 플레이 시간이 현금과 등가교환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게임사가 직접 아이템 – 현금의 교환 창구를 만들기 전부터도 시작된 바 있었다. 200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서버상에서 작동하는 온라인 MMORPG가 대세가 된 이후, 이용자들은 스스로 특정한 아이템을 현금을 대가로 거래하는 사례들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른바 ‘쌀먹’이라 불렸던, 게임 아이템을 팔아 현금을 확보하는 사례들은 게임에서의 시간 / 돈 관계가 변화했음을 드러내는 중요한 사례였다. 자동사냥과 아이템거래: 숙련도를 벗어난 새로운 유희적 시간의 의미 이후 2010년대 들어 스마트폰의 대중화가 이뤄지면서 상호 교환이 가능해진 플레이시간과 현금의 관계는 보다 본격화되는데, 여기에는 터치스크린 인터페이스라는 한계도 일정부분 영향력을 발휘했다. 과거의 스틱, 키보드/마우스처럼 세밀한 컨트롤을 구사하기 어려워진 터치스크린 환경에서 플레이어의 숙련도는 과거만큼의 의미를 플레이 안에서 갖추기 어려워졌고, 이에 따라 플레이의 결과물은 개인의 숙련도보다 한 플레이어가 얼마나 오랫동안의 시간을 사용해 서버에 접속해 활동했느냐의 질문에 가까워졌다. 이 변화의 끝에는 자동사냥이 서있다. 굳이 플레이를 ‘직접’ 하지 않아도, 단지 서버에 접속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시말해 플레이어가 자신의 숙련도를 활용해 개입하는 전통적 의미의 플레이를 하지 않아도 단지 서버에 접속한 시간만을 인증해주면 게임 플레이가 자동으로 이루어진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접속 플레이의 효율을 올려줄 수 있는 권한, 이를테면 자동사냥 효율 부스트라던가, 애초에 자동사냥 자체의 접근을 가능케 해주는 아이템들이 현금으로 구매가능한 대상이 되면서 게임플레이에서의 돈과 시간은 완벽히 상호 교환이 가능한 형태로 안착하기 시작했다. 탕진의 재미와 축적의 재미가 혼용되는 시대 온라인게임 시대가 만들어낸 이 변화는 놀이 역사에서 보기 드문 전환을 만들어냈다. 노는 일이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무언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놀이의 본질은 일종의 무용함, 생산의 시간에 맞선 시간 탕진의 즐거움에 가까웠지만,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는 그 무용함의 효용마저도 상품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이기도 하다. 정말 그 무용함은 돈으로 살 수 있는가? 내가 생산하지 않는 시간에 만들어냈던 즐거움, 난해한 퍼즐을 돌파하는 과정과 그 결과에서 얻을 수 있었던 희열과, 생산하지 않는 활동임에도 충분한 성취감을 만들어냈던 수많은 가상세계에서의 모험들은 정말 돈으로 사서 대체할 수 있는 무엇이었는가? 라는 질문을 끝없이 스스로에게 던지다보면, 혹여 이 돈으로 산 즐거움은 과거 시간의 탕진을 통해 얻었던 즐거움과는 다른 무엇은 아닌지에 대한 의심이 올라온다. 오히려 이 즐거움은 탕진의 즐거움이 아니라, 축적의 즐거움이다. 서버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나의 플레이 시간 기록이 현실의 재화와 교환가능한, 혹은 교환되지 않더라도 가상의 그 무언가가 축적되어 가고 있음을 확인할 때의 즐거움. 사실 우리가 눙쳐서 게임의 재미라고 부르는 효용의 순간은 적어도 시간이 돈과 교환되기 시작한 온라인게임 이후에는 본질적으로 다른 두 가지의 재미가 섞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비평공모전 4년을 거쳐 온 편집장의 회고
그렇게 시작한 게임비평공모전을 네 번째 거쳐오는 동안 나에게도 적지 않은 경험이 쌓였고, 어쩌면 게임비평을 보는 시각도 바뀌었을 듯 싶다. 이 글은 어찌 됐건 2020년대 이후 꾸준하게 게임비평의 새로운 자원을 발굴하고자 뛰어 왔던 한 개인의 회고록일 것이지만, 그 경험은 단지 개인 혼자 되새기는 것 이상의 의미가 될 것이라 생각해 지면 한 켠을 빌어 이야기를 새겨두고자 한다. < Back 비평공모전 4년을 거쳐 온 편집장의 회고 26 GG Vol. 25. 10. 10. 크래프톤, 게임문화재단과 게임비평잡지를 창간하면서 반드시 함께 하겠다고 넣은 아이템이 게임비평공모전이었다. 게임비평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의하기보다, 비평임을 자처하는 글들을 뭉쳐 가면서 천천히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고, 그 과정이 있어야만 편집장이 가진 특정한 비평에의 고집이 좀더 다양한 지평에 선 비평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게임비평공모전을 네 번째 거쳐오는 동안 나에게도 적지 않은 경험이 쌓였고, 어쩌면 게임비평을 보는 시각도 바뀌었을 듯 싶다. 이 글은 어찌 됐건 2020년대 이후 꾸준하게 게임비평의 새로운 자원을 발굴하고자 뛰어 왔던 한 개인의 회고록일 것이지만, 그 경험은 단지 개인 혼자 되새기는 것 이상의 의미가 될 것이라 생각해 지면 한 켠을 빌어 이야기를 새겨두고자 한다. 모든 종류의 사고와 글쓰기에 뛰어들기 시작한 AI에 대한 고민 4회 공모전 응모작에서 뚜렷하게 나타난 트렌드가 AI의 개입이었다. 절반은 의심이고 절반은 확신이다. 응모작들은 예년에 비해 기초적인 글쓰기의 기술적 측면에서 큰 폭의 질적 향상을 이루었다. ‘글을 못 썼다’라는 이유로 예심을 통과하지 못하는 사례가 크게 줄었다는 측면에서 확실히 오늘날의 글쓰기, 특히 공모전과 같이 심사가 곁들여지는 형식의 글쓰기에는 AI의 강한 개입이 나타난다. 나는 글쓰기에 있어 도구로서의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것에 반대하는 원론적 입장은 아니다. 두 가지 이유로부터인데, 첫 번째는 더 나은 정보와 전달력을 위해 향상된 효율의 도구를 활용하는 것에는 오히려 적극적일 필요도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설령 인공지능과의 협업에 의한 글쓰기를 반대하더라도 이를 공모전과 같은 심사 체계에서 완벽하게 필터링할 방법도 없다는 점이다. 다만 말그대로 심사가 이뤄지는 공모전이기에 이는 단순히 합격 – 불합격의 문제를 떠나 애초에 이 공모전을 시작했던 이유까지를 거슬러 되짚어야 할 순간을 만들어낸다. 게임비평웹진에서 개최하는 공모전의 목적은 당연하게도 신진 필자 발굴과 육성이다. 그런데 이는 단지 주최측의 목적일 뿐, 응모자 입장에서도 반드시 ‘내가 게임비평을 쓰겠어!’라는 동일한 목적을 지향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누군가는 그저 상금과 스펙을 위해, 누군가는 연습삼아 참가할 수 있는 것이고 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 AI가 개입할 경우 주최측의 고민은 조금 더 깊어진다. 우리가 찾는 것은 게임에 대한 비평적 관심을 꾸준하게 가져갈 수 있는 필자이지만, 그 꾸준한 관심과 통찰을 AI라는 도구를 통해 충분히 가장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우수한 작품을 선정하고 시상할 수는 있지만, 이것이 반드시 해당 필자를 지속적으로 게임비평 담론을 생산해내는 사람이라고 짚어내기는 어려워진다. 이런 고민은 비단 게임비평 뿐 아니라 아마도 다른 모든 류의 글쓰기 공모전에서 공통적으로 떠안게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GG 공모전은 적어도 GG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계속 지속될 예정인데, 앞으로 모든 심사에서 AI가 던진 이 새로운 고민인 지속가능한 게임비평 필자의 발굴이라는 고민은 더욱 심사를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한 응모자 집단 4년째 비평공모전을 이어 오면서 확인한 또 하나의 변화는 헛스윙이 줄어들고 있다는 흐름이다. 1회 공모전에서는 상당수의 응모작이 GG의 정체성과 잘 맞지 않거나, 혹은 아예 게임비평과 무관한 글들이었다. 이를테면 가장 많이 나온 주제는 “게임을 마약으로 치부하는 한국사회”, “확률도박이나 만드는 한국게임”, “페미가 게임을 망친다” 였다. 이런 주제들은 주최자의 기운을 빼곤 한다. 애초에 GG가 뭐하는 곳인지 글 하나도 보지 않고 응모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4회째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주제의 응모가 거의 없는 정도에 이르렀다. 나름 길다면 긴 역사에 탑승해 흘러온 결과일 것이다. 적어도 게임제너레이션이라는 웹진이 어떤 글을 쓰고 있고, 어디를 지향하는지를 더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음을 어느 정도 짐작케 해 주는 변화로 보인다. 일반적인 리뷰가 아니라 비평이라는 관점을 견지한다는 점에서 비평웹진의 독자 수는 아무래도 대중적이기는 어려우며, 이런 경우 독자층은 상당부분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 혹은 의지를 가진 집단과 겹치기도 한다. 그런 이들에게 GG는 과거보다는 좀더 올라간 인지도를 갖게 되었고, GG의 방향에 맞춰 글을 쓰거나, 혹은 GG와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 아예 응모를 피하는 흐름이 나타난 것이 이번 4회 공모전의 결과다. 아직 시작했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수준의 게임비평의 문제를 넘어 모든 종류의 비평 자체가 과거보다 허약한 대중성으로 인해 사그라드는 추세 속에서 이러한 흐름이 나타난다는 것은 나름 긍정적인 신호다. 아직 사회적으로 다수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러한 흐름에 공감하고 게임비평의 필요성에 동의하며 같은 방향을 지향하고자 하는 일련의 그룹이 존재하고, 그 존재감이 다소 뭉툭하지만 하나의 덩어리로 만져지기 시작한다는 것은 지난 4년의 작업이 무의미하지는 않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당장의 게임비평이 활성화되고, 대중문화 담론에서 갑작스럽게 높은 비중을 차지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지금 당장 비평의 필요성을 말하는 입장에서 추구해야 할 과제는 큰 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작은 불씨 하나를 죽이지 않고 살려 나가는 일이다. 언젠가 시기가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왔을 때, 지금 살려낸 불씨 하나로 비로소 유의미한 불을 지펴낼 수 있는 불지킴이로서의 역할이 비평 전반이 죽어가는 시대에 비평을 생각하는 이들이 첫 손으로 꼽아야 할 일일 것이다. 과도한 무거움 언제가 될 지 모를 시기를 위해 비평의 불씨를 살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현재까지의 게임제너레이션과 게임비평공모전에 남는 다소간의 아쉬움은 필요보다 과하게 무겁다는 점에 있다. 이는 좀더 엄밀하게 이야기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그냥 무겁다는 것이 아니라 ‘필요보다 과하게’에 방점을 찍은 무거움이다. 나는 어떤 현상이나 사건을 설명하는 데 있어 간혹 불필요하게 두꺼운 학술의 옷을 걸치려 하는 일련의 글쓰기 습관을 경계하곤 한다. 그러나 생각보다 이 학술의 옷이라는 건 말그대로 옷처럼 대중 앞에 설 때 쉽게 발가벗기 어려운 일종의 습관이 함께 따라붙는다. 비평이라는 글쓰기가 상당부분 학술적 글쓰기가 일반적인 학계를 통해 학습되는 문제도 있고, 애초에 ‘진지하게 글쓰기’라는 방식에 묻은 스타일 자체가 그러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비평이 꼭 학술적이어야 할까?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GG와 공모전의 글들은 학술적인 글이라기보다는 학술적인 스타일의 글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대중성과 학술성의 가운데를 자임한다고 늘 이야기하는 웹진이지만 막상 거기 실리는 글들의 논지에 대한 근거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어떤 학자의 주장을 각주로 다는 것으로 갈음하곤 한다. 특정한 게임이 우리에게 주는 일련의 메시지와 감정들을 재해석하고 설명하는 데 반드시 다른 ‘학자’의 주장이 동반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저 손쉽게 남들의 동의를 얻기 위해, 일종의 잘 갖춰진 우상을 등 뒤에 두고 자신의 해석을 풀어가는 것은 아닐지 경계해야 한다. 필요 이상으로 무거운 글의 문제는 앞서 이야기한 ‘불씨를 살리는’ 일과 맞닿는다. 정작 게임비평의 확산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순간이 왔을 때, 대중적으로 퍼져나가기 어려운 그들만의 리그 같은 글들만이 쌓여 있다면 우리는 그 순간에 필요한 일을 해 나갈 수 있을까? 그것이 정말 적절한 순간을 위해 대비해 온 결과가 맞을까? 이론과 근거를 쌓아나가는 일은 솔직히 말하면 GG같은 웹진이 할 일이 아니라, 별도의 재정과 인력을 굴리며 그런 일을 하도록 사회적으로 자리매겨진 ‘학계’가 해야 할 일이다. GG는 아카데미가 아니며, 아카데미어야 할 이유도 없고, 아니 더 나아가 아카데미가 되어서도 안 된다. 모든 비평은 결국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아주 단순하고 과감하게 요약하자면 결국 모든 비평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지금 세상의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이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며, 더 나은 세상으로 나갈 방안을 찾아낸 뒤 이를 세상 모두에게 알리며 공감을 얻어가는 과정이다. 비평은 때로는 텍스트를, 때로는 수용자를, 때로는 씬 전반을 주목하지만, 그 주목의 대상이 무엇이건간에 원론적 의미에서의 목적인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이라는 속성 자체는 달라지지 않는다. 디지털게임에 대한 비평도 같은 맥락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게임이라는 매체가 등장하고 나름의 영향력을 확보하는 과정을 겪으며 인간과 사회는 게임을 통해 소통하고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몇몇 사례들을 통해 게임이 인간을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나 변화시킨 과정을 목격했고, 반대로 인간이 게임을 새롭게 만들며 더 나은 세계, 혹은 더 어두운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 또한 동시에 목격했다. 게임비평의 근본적 목적이라면 이 변화가 보다 인간과 사회 전반을 위한 방향으로 향할 수 있는 방향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있을 것이다. 고작 게임 비평 가지고 무슨 거창한 이야기냐고 할 사람들이 있겠지만, 본래 모든 비평의 목적은 그리로 향하는 법이다. GG가 지향한다고 늘 말하는, 학술성과 대중성 사이라는 지향은 사실 이 근본적인 목적을 향하는 일종의 방법론이다. 깊은 성찰을 요하면서도 그 결과가 단지 소수의 그룹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모두에게 향할 수 있는, 깊이와 넓이를 모두 갖춘 통찰이 게임, 그리고 게임을 넘은 세상 전반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것이 GG 창간의 목적이었고, 아마도 이런 입장에 공감하는 많은 필진들의 목적과도 유사할 것이며, 이런 작업들과 함께 나아가는 비평공모전의 지향과도 총론의 입장에서는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내년에 열릴 제 5회 공모전에서도 이런 지향이 좀더 많은 동지들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눈 먼 돈 사냥: 멈춰버린 메타버스와 살아있는 메타버스 진흥법
그 시절의 보도자료 중 대부분은 메타버스-NFT&P2E 소식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모든 기업이 '메타버스'를 선언했다. 게임사는 물론이고 통신사, 제조사, 심지어 은행까지 너도나도 메타버스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그들의 보도자료는 놀랍도록 비슷했다. 실체가 모호한 가상공간 그림 몇 장에 'MOU 체결', '생태계 확장', '미래 선도' 같은 단어들이 버무려져 있었다. 블록체인 기술은 메타버스를 완성할 열쇠처럼 여겨졌다. < Back 눈 먼 돈 사냥: 멈춰버린 메타버스와 살아있는 메타버스 진흥법 25 GG Vol. 25. 8. 10. 지금으로부터 대략 5년 전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자. 코로나19 팬데믹 탓에 모두가 집 밖을 나가기 꺼리던 시절, 필자가 재직 중인 회사에서도 유례없는 재택근무를 실시했다. 콩나물시루처럼 사람으로 가득 찬 출근길 지하철을 탈 수 없다니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하릴없이 침대에 누워 보도자료를 읽던 때였다. 필자는 또렷이 기억한다. 잠옷 바지에 와이셔츠를 챙겨 입고 화상인터뷰를 했던 나날들을. 공교롭게도 그 시절에는 읽을 만한 보도자료가 그리 많지 않았다. 야외활동 대신 집에서 게임을 즐기라는 세계보건기구의 조언 덕인지 게임 유저는 날로 늘어갔고 매출도 잘 나왔지만, 모두가 원격으로 일을 해야 하는 시기여서 정작 다룰 만한 신작 소식은 드물었다. 여러 주요 기업들은 개발자들에게 파격적인 연봉 인상을 제안하면서 화제가 됐고, '단군 이래 최대 연봉 인상 직종'이라는 농담까지 돌았다. 그 시절의 보도자료 중 대부분은 메타버스-NFT&P2E 소식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모든 기업이 '메타버스'를 선언했다. 게임사는 물론이고 통신사, 제조사, 심지어 은행까지 너도나도 메타버스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그들의 보도자료는 놀랍도록 비슷했다. 실체가 모호한 가상공간 그림 몇 장에 'MOU 체결', '생태계 확장', '미래 선도' 같은 단어들이 버무려져 있었다. 블록체인 기술은 메타버스를 완성할 열쇠처럼 여겨졌다. 과문한 필자의 눈에는 대단히 기이한 광경이었다. 수십 년간 'MMORPG' 또는 '가상세계' 내지는 그냥 '게임'이라고 불러온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메타버스'라는 이름표를 달고 미래를 구원할 신개념으로 등장한 것이다. 필자와 비슷한 공감대를 가진 이들이 결코 적지 않았으나, 이 광풍은 수년간 꺼질 줄 몰랐다. 돌이켜보면 좋지 않은 어감의 게임 대신에 '메타버스'라는 비전을 판매하는 것이 더 쉽고 빠르게 투자를 유치하는 길이었다. 그리고 이 소란스러운 시장의 움직임을, 정치권에서는 '새로운 기회'의 신호로 읽었다. 기업들이 열광하고 언론이 떠드는 이 '메타버스'라는 것을 국가적 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조급증이 퍼져 나갔다. 2025년, 지금 미디어에서 메타버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극히 줄어들었다. 그때 메타버스가 온다던 분들은 지금 인공지능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당혹스럽다. 물론 인공지능과 메타버스의 결합을 추구할 수 있을 일이지만, 이렇게도 하나의 개념이 반짝였다가 수그러들 수 있는 것인지. 하지만 지금부터 필자가 하려는 이야기는 제법 씁쓸하다. 기술 유행어에 편승한 보여주기식 정책이 어떻게 산업 생태계를 왜곡하고 '눈먼 돈'의 향연을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소극이자 비극이다. 메타버스의 홍보에는 이런 이미지가 왕왕 쓰였다. (출처: 블록체인어스) # 눈 먼 돈 사냥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기왕 과거로 온 김에 시계를 조금만 더 돌려보자. '4차 산업혁명'이라는 유행어가 널리 유포되던 2016년 10월, 정부는 VR을 '9대 국가전략 프로젝트' 중 하나로 선정하며 본격적인 육성에 나섰다. 2020년까지 VR 전문기업 50개 육성, 1조 원 규모의 신시장 창출과 같은 구체적인 목표가 제시됐다. 언론은 연일 VR이 게임과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국방, 의료,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쏟아냈다. 이에 발맞춰 과기정통부와 문체부는 수천억 원의 R&D 및 콘텐츠 제작 지원 예산을 편성했다. 전국의 지자체들은 앞다퉈 VR 체험관을 구축하며 미래 산업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듯한 모양새를 취했다. 예산 편성 소식에 전국의 연구자들과 기업도 발빠르게 반응했다. '다누리 엔진'도 그중 하나였다. 2015년부터 7년간, 357억 원의 세금이 투입된 국책 사업이다. 국산 VR 엔진과 저작도구를 개발해 외산 기술에 대한 종속을 끊고, 'K-VR' 생태계를 자립시키겠다는 것을 목표로 사업을 벌여왔다. 그러나 오늘날 이 VR 엔진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며, 실제로 현장에서 사용하는 사람도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 6월,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의 감사 결과로 이 모든 것은 사기극이었음이 드러났다. 감사를 해봤더니 연구를 주관하는 기관이었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실제로 엔진을 개발하지 않았다. 이들이 일을 맡긴 민간 기업이 가지고 있던 외산 엔진(아마 두 엔진 중 하나일 것이다)의 소스코드를 거의 그대로 복사해 '다누리'라는 이름만 붙여놓고는 "자체 개발한 국산 엔진"이라며 허위로 보고했다. 이뿐 아니라 이 엔진은 실사용이 불가능한 미완성 상태였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책임연구원은 자신의 제자가 창업한 업체에 7억 원 규모의 용역을 몰아주고, 공동연구기관으로부터 1천만 원의 현금을 받는 등 개인 비리까지 저지른 정황이 포착됐다. 국산화라는 대의명분 아래, 기술 사기와 부패가 공공연하게 벌어진 것이다. 이 '다누리 엔진' 사건은 뒤늦게 알려져 충격을 주었으나 어떻게 보면 수면 위로 드러난 하나의 관행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서 특별하거나 일회적인 일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모습은 필자가 반복적으로 목격해 온, 기술 유행을 좇는 '눈먼 예산'이 만들어내는 왜곡된 산업 생태계의 단면에 불과하다. 팬데믹 시절, 필자가 메일로 받은 무수히 많은 보도자료는 대체로 그 유행을 만들어내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었다. 눈 먼 돈 사냥 생태계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필자가 지켜본 바에 따르면 ‘눈먼 돈 사냥’에는 일종의 패턴이 있다. — 과제가 뜰 수 있도록 외곽에서 부채질을 한다. VR나 메타버스는 거기에 동원된 중요한 개념어였다. 공무원들이 설득되고 정부 과제 공고가 뜬다. 이때 일을 쉽게 만들기 위해 산학협력단 또는 컨소시엄을 조직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사업계획서에는 온갖 유행어가 삽입된다. 때로는 내부자의 비호 아래 기술도 경험도 없는 업체가 수억 원의 용역을 수주하기도 한다. 이렇게 선정된 기업들은 단기 결과물 납품에만 집중할 뿐, 지속적인 서비스 운영이나 고도화에는 관심이 없다. 만들어서 납품하면 시쳇말로 ‘땡’이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인력은 흩어지고, 결과물은 방치된다. 전국적으로, 장기적으로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 지금부터 하나씩 그 예를 불러드리겠다. 오세훈 시장이 65억 원을 투입하고도 하루 이용자 수백 명을 넘기지 못한 채 사라진 <메타버스 서울>, 10억 원을 들여 만들었으나 조악한 품질로 외면받은 <잼버리 메타버스>와 새만금의 실물 체험관, 통영 VR존, 광주 VR/AR 제작거점센터, <메타버스 대구>, <부산 메타버스>, <전주·익산 도서관 메타버스>, <강원 청소년 동계올림픽 메타버스>, 이밖에 셀 수 없이 많은 각종 VR, 메타버스 제작 지도 자격증과 '가상현실 콘텐츠 제작지원' 사업들… 정부의 VR 사업 진흥 정책으로 본격화된 업계의 관행은 코로나19라는 새로운 흐름을 타고 메타버스라는 유행을 만나게 됐다. 수십억 규모의 메타버스 지원 사업이 전국적으로 진행되었다. 팬데믹이 끝난 지금도 활발하게 서비스되는 메타버스는 사실상 없다. 돈만 쓰고 활용도가 지극히 낮은 결과물만 남게 된 것이다. 소프트웨어로 제작된 프로젝트는 소리 소문없이 사라져 이제 그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다누리 엔진이라는 것이 있었다. 2016년 정부는 VR을 미래 먹거리로 제시했지만,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다누리 엔진은 특별한 먹거리를 만들어주지 못했다. (출처: 다누리 엔진) # 후일담이 되었어야 할 이야기 ‘가상현실’을 만들려는 움직임도 이제는 잠잠해졌다. 우리는 일상을 회복했고, 메타버스는 빠르게 잊혀져 갔다. 팬데믹도, 메타버스 유행도 끝났지만, 지금은 법이 남게 됐다. 후일담으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른바 '메타버스 진흥법'이 통과되어 법전에 명문화됐다. 미증유의 아이러니다. 2024년 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같은 달 8월 시행을 시작한 가상융합산업 진흥법은 전 세계 최초의 메타버스 진흥 법률이다. 과기정통부 장관으로 하여금 3년마다 '가상융합산업 진흥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관련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전담 기관을 지정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또한, '우선 허용, 사후 규제' 원칙을 적용해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에 대해 법령이 없거나 불분명할 경우, 일단 허용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나중에 규제하는 원칙을 명문화했다. 또 정부 주도의 직접 규제보다는 민간 중심 자율규제를 지원하는 체계를 구성했다. 이 법은 논의 단계에서부터 현행 '게임산업법'과의 중복 및 충돌 문제를 안고 있었다. 문체부는 메타버스 안에 게임이 있다면 당연히 게임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펼쳤다. <제페토>와 <이프랜드> 등의 메타버스가 등급분류를 피하게 되고, P2E의 뒷문을 열어버리면 또 다른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네이버제트를 포함한 업계와 과기부는 메타버스를 게임과 다른 새로운 산업으로 보고, 게임법의 엄격한 규제를 피하려 했다. 결국 접점은 '메타버스 안에 게임이 있다면 게임법의 적용을 받는다'라는 애매한 지점에 형성되었고, 혼란이 해결되기 전에 네이버제트를 제외한 다수의 사업자들이 메타버스에서 한 발 빼면서 지금의 애매한 형국이 나타나게 됐다. 업계는 메타버스가 무엇인지 설명하다가, 자신이 설명하려던 사업을 접어버렸고, 법은 남아서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꼴이 되었다. 과기부 장관의 기본계획 정도가 거의 유일한 쟁점인데, 정부가 의지가 있다면 전문인력 양성과 연구 개발 기반 조성을 위한 국책사업을 펼칠 수 있다. 그동안 필자는 이 국책사업이라는 것이 어떻게 진행됐는지에 관해서 길게 설명해드렸다. 여기서는 그만 이야기하겠다. 지난 상반기, 서울회생법원은 메타버스 플랫폼 개발사 컬러버스에 파산을 선고했다. 컬러버스는 카카오가 주도하던 프로젝트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사라졌다. SKT의 <이프렌드>도 조용히 모습을 감추었다. 국내 주요 게임사들의 여러 메타버스 프로젝트도 거의 빛을 보지 못했다. 미래를 예견하기는 어려운 일이나, 지금까지의 메타버스는 명백히 실패했다. 과거를 점검하고 미래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포스트모템이나 백서라도 잘 남아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업자들은 그런 일도 하지 않았다. 공공의 지원사업은 물론이요 사기업의 메타버스가 얼마나 근시안적인 프로젝트였는지 보여주는 방증이다. 하긴 페이스북도 메타로 사명을 바꾸었으니 국내 기업만 탓할 일은 아니다. 혹자는 생성형 인공지능과 메타버스의 조합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 예견했으나 그 물꼬도 좀처럼 트이지 않고 있다. 화려한 구호와 넘치는 지원사업 대신에 냉철한 평가와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 모두가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한국형 인공지능을 다누리 엔진처럼 만들 수는 없을 일 아닌가. 정부가 추진 중인 가상융합세계 분야 규제 개선방안 도출 과정표. 과기정통부는 아직 이 계획에 대해 입장을 업데이트하지 않고 있다. (출처: 과기정통부) Tags: 게임산업, 정책, 공공기관, 메타버스, 산업진흥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김재석 8년 동안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서브컬처 스타트업에서 대외협력을 맡고 있다.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 [논문세미나] 데이터가 만든 신화: ‘동남아 성장 신화’를 주도하는 게임 시장 분석 보고서 비판
그러나 동남아시아 시장의 전망에는 비판도 따른다. 게임 시장 전망을 내놓는 글로벌 데이터 분석 기업들이 사실은 시장 담론을 주도한다는 것이다. 홍콩과학기술대학교 웡(K.T. Wong) 교수는 2022년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며, 뉴주(Newzoo)와 같은 글로벌 데이터 분석 기업이 만들어낸 “동남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게임 시장”의 서사가 이 지역의 복잡성을 무시하고 자본주의적 시각으로만 구성된 분석이라고 지적한다. < Back 26 GG Vol. 25.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Leesun Park Studies games from a social perspective. Believes that games, as a tool, ultimately offer a way to explore what it means to be human. These days, mainly writing.
- 제3회 게임비평공모전 심사위원장 심사평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이 올해로 벌써 세 번째를 맞이했다. 세 차례 모두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응모작들의 전반적인 수준이 계속 좋아졌다는, 어쩌면 뻔한 총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상향평준화라는 표현이 정확할텐데, 이는 ‘좋은 비평’의 요소에 대한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되었다는 징표이기도 하겠다. 응모작들의 평균적인 형식적 완성도가 높아졌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 Back 제3회 게임비평공모전 심사위원장 심사평 20 GG Vol. 24. 10. 10.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이 올해로 벌써 세 번째를 맞이했다. 세 차례 모두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응모작들의 전반적인 수준이 계속 좋아졌다는, 어쩌면 뻔한 총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상향평준화라는 표현이 정확할텐데, 이는 ‘좋은 비평’의 요소에 대한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되었다는 징표이기도 하겠다. 응모작들의 평균적인 형식적 완성도가 높아졌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하지만 형식적 완성도가 높다고 모두 훌륭한 비평문이 될 수는 없다. 비평문이 단순 경험담이나 감상문과 구별된다는 것은 대부분 아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소화되지 않은 이론적 개념에 매몰되어 갈 길도 할 말도 잃은 글쓰기 역시 좋은 비평문이 될 수 없다. 게임 비평가는 게임 애호가와 게임 연구자의 중간에 서서 애정과 이론을 한꺼번에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이번 공모전에 출품된 48편 가운데 아쉽게 당선권에 들지 못한 글들 중 상당수는 거창한 문제의식으로 시작했으나 추상적인 과잉 개념 사이를 떠돌다가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채 엉거주춤 글을 닫은 경우들이었다. 다섯 명의 심사위원들이 개별심사와 집단 토론을 거쳐 최종 당선작으로 선정한 네 편의 비평문은—물론 완전하진 않지만—자기만의 분명한 시각을 유려하게 풀어가는 한 편 위와 같은 함정들을 잘 피한 수작들이었다. 각 당선작에 대한 간단한 심사평을 접수번호 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 평가는 다섯 심사위원의 의견을 종합하여 요약한 것이다. 나원영의 “ 기계장치의 우주 - 레인월드와 아우터와일즈의 불능감에 대해 ”는 무엇보다 게임에 대한 애정이 돋보이는 글이었다. 게임에 대해 잘 알고 많이 하는 저자가 즐겁게 쓴 흔적이 뚜렷했고, 독자로 하여금 비평문 속 게임에 대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글이라는 것도 강점이었다. 개념의 투박함이 아쉽고 친절하지 않은 글쓰기 방식도 마이너스 요인이었지만, 저자 나름의 시각이 분명하고 앞으로 좋은 비평가가 될 수 있는 잠재력 또한 높다고 판단했다. 박정서의 “ 크리퍼가 부수고 간 자리 ”는 인문학적 관심과 지식을 기반으로 하되 독창적인 시각으로 게임을 바라본 수작이었다. 많은 사람들에 의해 회자되고 비평 대상이 되었던 게임 <마인크래프트>를 신선한 관점에서 새롭게 접근했다는 점이 놀라웠으며, 제목의 압축성이 비평의 핵심 내용과 잘 조응한 글이기도 했다. 군데 군데 현학적 문장들이 독이성을 떨어트리는 점과 결론이 다소 흐지부지되었다는 점이 작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윤수빈의 “ 미술관이라는 공포 체험 ”은 보기에 따라 엉뚱한 비약으로 읽히기도 하고 독창적인 시각으로 보이기도 하는 흥미로운 글이었다. RPG 게임 과 전시회 <게르테나전>을 넘나들면서 시각성과 장소감을 게임에 연결지어 설명한 시도는 다른 글과의 분명한 차별성을 보인다. 반면 자신의 이야기를 깔끔하게 마무리하진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럼에도, 비평문의 기능 중 하나가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훌륭한 비평문의 요소를 갖춘 글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김성은의 “ 게임으로부터의 선택, 선택으로부터의 풍경 ”은 게임에 대한 오랜 애정과 비평이라는 장르에 대한 이해도를 둘 다 보여준 좋은 사례이다. 문장과 문체 또한 유려하여 독이성이 높았다. 하지만 모범적인 구조와 내용이라는 긍정적 평가는 안전한 (비교)구도 속에서 전형적인 내용을 도식적으로 나열했다는 비판적 평가를 낳기도 한다. ‘제 4의 벽’ 개념적 도구로 삼은 <언더테일> 비평을 독창적이라 평가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글의 높은 완성도만으로도 당선작으로 선정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이상 네 편 외에도 딱 한 두 개의 흠결 때문에 당선작에 포함되지 못 한 응모작이 다수 있었다. 이 창의적이고 흥미로운 글들을 쓴 예비 게임 비평가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앞서 두 차례의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을 통해 이미 좋은 비평가들이 배출되었으나, 우리나라 게임 평론의 토양이 갑자기 비옥해졌을 리는 없다. 이번 3회 공모전을 위해 글을 썼던 저자들, 특히 당선의 영예를 안은 네 분의 새내기 비평가들은 앞으로도 게임 및 게임 비평, 그리고 게임 연구를 향한 애정을 잃지 않고 꾸준한 활동을 통해 우리나라 게임계 전반의 발전에 기여해주기를 기대한다. 제 3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심사위원장 윤태진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세대학교 교수) 윤태진 텔레비전 드라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지금까지 20년 이상 미디어문화현상에 대한 강의와 연구와 집필을 했다. 게임, 웹툰, 한류, 예능 프로그램 등 썼던 글의 소재는 다양하지만 모두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활동들”을 탐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몇 년 전에는 『디지털게임문화연구』라는 작은 책을 낸 적이 있고, 요즘은 《연세게임·이스포츠 연구센터(YEGER)》라는 연구 조직을 운영하며 후배 연구자들과 함께 여러 게임문화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 〈디아블로3〉는 왜 ‘똥3’, ‘수면제’가 되었는가?
누구든 이 글의 제목이 표시하고 있는 의문에 현혹되어 본문을 읽기 시작한 독자라면 그의 추억 속에서 디아블로가 스타크래프트와 마찬가지로 ‘민속놀이’에 준하는 반열에 올려져 있음직하다.1) 특정 게임을 민속놀이에 비유하는 표현은, 물론 오래도록 익숙해진 대상에 대한 게이머들의 애정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진 밈 중 하나이다. 그러나 어느 로맨스도 항상 분홍빛으로만 채색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 애정은 옅어지고 힐난과 혐오의 감정이 찾아오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때마다 변하게 된 것은 ‘나’와 대상이거나 양자가 달라지면서 마땅히 뒤따른 관계의 양상이지 ‘사랑했다는 사실’이 아니다. < Back 05 GG Vol. 22.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Philosophy Researcher) Jiyoung Jang Majored in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studying chiefly modern criticism and cultural history, and has continued research in intellectual history concerning scholarship of the colonial and post-liberation periods. A "game boy" who only belatedly realized he hadn't played, known, or been good at games all that well. (Philosophy Researcher) Geon Choi Drawing on identities both as a philosophy researcher and as a game enthusiast and researcher, has engaged in teaching, lecturing, research, writing, and translation, and currently enjoys the pleasure of sharing thought with students at Inha University and elsewhere.
- 하이파이러시: 같은 뿌리의 리듬과 액션 사이에서
리듬은 사전적 정의에서 ‘일정한 박자나 규칙에 따라 장단과 강약이 반복될 때의 규칙적인 음의 흐름’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음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것에 있다. 박자에 따라서 음이 일정하게 반복될 때. 음의 덩어리를 리듬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게임에서 리듬 게임이라 부르는 장르 자체는 연주하는 행위. 혹은 건반을 정확한 타이밍에 수행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 리듬 그 자체보다는 음악 연주를 모사하는 것에서 시작하므로 날아오는 노트를 처리하는 형태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 Back 하이파이러시: 같은 뿌리의 리듬과 액션 사이에서 11 GG Vol. 23. 4. 10. 리듬은 사전적 정의에서 ‘일정한 박자나 규칙에 따라 장단과 강약이 반복될 때의 규칙적인 음의 흐름’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음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것에 있다. 박자에 따라서 음이 일정하게 반복될 때. 음의 덩어리를 리듬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게임에서 리듬 게임이라 부르는 장르 자체는 연주하는 행위. 혹은 건반을 정확한 타이밍에 수행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 리듬 그 자체보다는 음악 연주를 모사하는 것에서 시작하므로 날아오는 노트를 처리하는 형태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리듬 게임 장르의 대부분이 노트를 처리하는 메커닉으로 구성되기는 했지만, 여기에 다른 시각을 더한 타이틀도 있다. 리듬 천국의 개발자 ‘층쿠’ PD가 ‘리듬 천국 골드’ 발매 시점에 진행했던 인터뷰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이와타 사토루 사장과의 대담을 통해 “최근 소위 음악 게임(리듬 게임)이란 것이 유행했었잖아요. 조금 해보고 있습니다만, 음악을 하는 입장에서는 좌절을 느끼게 됩니다. 리듬보다는 눈으로 보고 누르는 것을 강요하는 것을 강요하는 거죠”라고 이야기를 전한 바 있다. 층쿠 PD가 갖는 의문은 결국, 음악에서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는 리듬이라는 존재를 타이밍에 맞춰 노트를 누르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한 물음이었다. 그렇기에 층쿠가 제작한 ‘리듬 세상’이라는 타이틀은 플레이어들이 박자와 규칙을 ‘느끼고’ 조작하는 형태로 시리즈가 이어졌다. 그간 공포 게임을 만들었던 ‘탱고 게임웍스’가 갑작스레 선보인 타이틀, ‘하이파이 러쉬’도 비슷한 측면에서 접근한다. 보고 정확한 타이밍에 버튼을 입력하는 것. 그리고 거기서 액션이 시작되는 형태가 아니라, 플레이어인 사람 안에 자리한 박자에 집중하고 이를 메커닉 측면에서 액션으로 구성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이파이 러쉬는 액션 게임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리듬 그 자체를 드러낸다. 그렇기에 ‘리듬 액션’이라는 장르적인 측면에서의 정리보다는 액션이라는 행위가 가지고 있는 가치와 박자에 주목했다는 표현이 옳을 듯하다. 즉, 동작이 가지고 있는 리듬이 더욱 두드러지도록 게임 메커닉을 구성한다는 아이디어가 더해진 것이며, 이는 모든 액션 장르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극대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게임에 있어서 음악을 의미하는 ‘리듬’이 아니라, 박자와 규칙의 반복이라는 사전적 정의의 리듬이 앞선다. 잠시 예를 들어보자. 어떠한 동작에서 ‘리듬’이라는 것은 중요하게 다뤄진다. 축구에서 공을 차는 데에도 선수 개인마다 동작에 리듬을 찾아볼 수 있다. 어디서 어떤 타이밍에 공을 슈팅할 것인지. 어떤 템포와 타이밍에 행위를 진행하고 결과를 얻어나가는 것이다. 야구 또한 마찬가지다. 투수가 던지는 공을 타자가 때릴 때에는 모든 동작이 하나의 리듬을 보여준다. 타격을 위해 발을 들어 올리는 동작부터 무게중심의 이동. 배트를 휘두르기까지 이어지는 흐름 자체가 하나의 리듬이 된다. 액션 장르에 있어서 이 ‘리듬’은 플레이어 캐릭터의 동작을 버튼으로 치환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동작과 동작을 이어나가는 과정은 단발성 공격에서 시작해 하나의 콤보와 새로운 액션으로 파생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버튼을 누르는 것은 캐릭터가 보여주는 동작을 통해 표현되며, 전체적으로 보면 리듬을 구성하는 요소로 자리한다. 하이파이 러쉬는 이 부분에 주목했다. 액션 게임은 결국 버튼으로 플레이어 캐릭터가 동작을 수행하고 이를 통해서 적을 제압하는 플레이로 귀결된다. 따라서 버튼을 어떻게 누르느냐. 언제 누르느냐의 플레이 형태를 보이기 마련이다. 타악기를 연주하듯이 버튼을 누르는 것 -이는 버튼 입력형 리듬 게임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에서 착안한 메커닉이다. 리듬을 구성하는 요소는 ‘비트’와 ‘템포’로 다시금 나눌 수 있다. 이에 비추어보면 액션 장르에서의 비트는 버튼의 연속적인 입력과 동작의 반복이 되고 플레이어 캐릭터가 버튼 입력을 수행하는 액션의 속도와 템포가 되는 셈이다. 이 비트와 템포는 하이파이 러쉬가 아닌 그간의 액션 타이틀도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부분이다. 특히, 빠른 공격의 속도감과 콤보를 테마로 삼은 타이틀에서 두드러진다. 하이파이 러쉬는 액션 장르에서 표면에 에 드러나지 않았던 이 ‘리듬’이라는 개념을 가장 위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이를 중심으로 게임 내의 모든 요소가 구성되도록 했다. 버튼을 누르는 과정 전반이 리듬을 구성할 수 있도록 플레이어를 유도하는 형태다. 이를 위해서 비트에 플레이어 캐릭터의 액션을 접목하고 속도감인 템포를 더하는 것으로 특유의 리듬이 느껴지도록 플레이어를 이끈다. 말 그대로 타격한다는 의미의 비트(beat)는 플레이어 캐릭터의 공격 액션이 되며, 비트와 비트의 조합이 콤보 그리고 액션으로 이어진다. 게임 시스템적으로는 공격을 쉬는 ‘레스트’ 버튼을 길게 누르는 것으로 약간의 변주를 가한다. 버튼을 누르는 행위 자체가 변경되기는 하지만, 누르는 것을 쉬거나 장시간 누르는 것도 비트를 기반으로 실행되도록 구성했다. 잘 살펴보면, 하이파이 러쉬의 플레이 자체는 드럼을 연주하는 것과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타격이라는 점에서도 정체성이 맞물리지만, 플레이어의 박자감을 유도하는 것이 베이스 드럼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의도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공격 시에 나오는 효과음 등이 하이햇과 스네어라는 점을 생각하면, 개발진의 의도는 분명해진다. 동시에 하이파이 러쉬의 메커닉은 플레이어들이 ‘같은 간격으로 버튼을 입력하는 것’을 유도한다. 즉, 해당 타이틀은 일정한 템포(BPM)의 틀 안에서 게임 플레이가 이루어지도록 했다. 이는 액션 장르의 문법에서 보자면 이질적이며 쉽지 않은 결정이다. 속도감을 내세우는 타이틀을 몇 가지 떠올려보자. 이들의 경우 다양한 패턴을 가진 적들을 선보이는 것이 일반이다. 이를 통해서 플레이어가 서로 다른 리듬을 가진 적들을 상대하고 파훼하며 극복하는 재미를 이끌어낸다. 하지만 하이파이 러쉬는 게임 플레이를 구성하는 모든 것을 같은 박자로 구성하는 결정을 내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이파이 러쉬가 보여주는 공격의 템포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나마 변화가 있는 것은 배경음악인데, 배경음악의 템포가 130~160 정도로 설정되어 있고 그 안에서도 베이스 드럼이 보여주는 연주의 템포는 변화가 없다. 플레이어가 수행하는 액션. 그리고 적들의 모든 공격은 바로 이 고정된 템포 위에서 진행된다. 비슷한 속도와 비슷한 간격. 이 두 가지를 통해 적들의 패턴이 구성되며, 일정한 템포는 독특한 플레이를 만들어낸다. 플레이어의 액션과 적의 패턴 모두를 하나의 리듬으로 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하이파이 러쉬에는 엇박자 패턴을 사용하는 적이나 플레이어가 유지 중인 리듬을 뒤흔들 수 있는 적의 패턴이 존재하지 않는다. 적의 종류도 많지 않으며 대응 방식도 큰 틀에서는 변화가 적용되어 있지 않다. 일부 적들의 QTE 상황을 제외하면 상황에 따라서 누르는 버튼 조합이 달라질 뿐, 비트와 템포는 같은 악보 위에서 연주되는 셈이다. 따라서 서로 다른 속도 / 프레임으로 구성된 액션을 조합하고 적을 파훼하는 것이 아니라, 시기적절하게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액션을 즐기는 것에 무게가 실린다. 일정한 속도로. 자신의 리듬을 잃지 않고 비트를 연주하는 것. 게임으로 치면, 일정한 속도로 버튼을 누르는 것과 같다. 이는 공격을 해도 마찬가지고 패링이나 잡기를 통해서 변주를 가할 때도 마찬가지다. 물론, 전투 도중 플레이어가 가지고 있는 본인의 리듬을 잊을 수도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개발진은 게임 내의 모든 오브젝트를 같은 템포로 만들어버리는 결단을 내렸다. 주인공인 ‘차이’가 활동하는 게임 내의 장소들. 배경음악. 효과음 모두가 같은 템포 위에서 함께 리듬을 맞춘다. 심지어 차이가 손가락을 튕기는 것도 일정한 속도와 박자를 따라가게 하기 위함이며, 걷는 동작까지 포함해 모든 액션이 개발진이 의도한 레일 위로 플레이어를 유도한다. 다른 모든 것들이 하나의 비트와 템포. 더 나아가 하나의 리듬을 구성하고 있으므로, 플레이어는 자연스레 여기에 따라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여기에 비트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보조 기능을 지원하는 한편, 박자를 놓치더라도 개발진이 의도한 속도감과 리듬 위로 올라탈 수 있도록 해뒀다. 적과 아군 모두 일정한 속도감과 리듬 위에서 진행되고 있는 만큼, 다소 단조로울 수 있다는 단점도 따라오기 마련이다. 개발진은 이를 액션을 구성하는 조합을 수를 늘리는 것. 그리고 플레이어가 비트를 따르지 않는(버튼을 입력하지 않는) 사이에 이용할 수 있는 것들로 채운다. 다양한 적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 적이 나왔을 때에는 동료를 불러 도움을 받거나 패링을 하는 것으로 대체한다. 이를 통해서 게임 초반부에 그저 버려야만 했던 비트들은 후반부에 들면서 정체성이 확립된다. 적들의 패턴에 익숙해지더라도 다수의 적이 조합을 이뤄 등장하기에 버려지는 비트가 점차 사라진다. 궁극적으로 모든 비트에 플레이어가 버튼 입력을 할 수 있게 되며 하이파이 러쉬의 메커닉은 개화한다. 연주라는 게임 플레이가 꽉 채워질 수 있도록 모든 비트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의미없이 버려지는 비트가 점차 사라지고 액션으로 연주되는 리듬이라는 개념이 점차 단단하게 자리를 잡는다. 그간 리듬에 다른 장르의 문법을 접목한 타이틀이 여럿 나왔음에도 하이파이 러쉬가 발상 측면에서 고평가를 받은 것은 이러한 이유다. 기존에 있던 장르의 문법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근본적인 부분까지 한 번 해체하는 것에서 개발을 시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해체를 통해 액션 게임이 가지고 있는 일면을 다시금 파악했고 이를 하나의 목적에 맞춰서 재조립하는 과정을 거쳤다. 여느 리듬 액션 타이틀처럼 리듬 장르 위에 액션 메커닉을 얹어두고 조율한 것이 아니라, 액션 게임이 가지고 있는 리듬 측면을 비트와 템포로 다시금 규정하는 과정을 거치고 이후에 재조립으로 하이파이 러쉬라는 작품을 완성한 셈이다. 그 결과, 하이파이 러쉬는 리듬 혹은 노트에 맞춰서 플레이어가 행동하는 것을 강제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액션이라는 장르가 함유하고 있던 리듬 그리고 플레이어의 조작에서 오는 반복적 리듬을 일깨우는 것에 있다. 게임 내에서 박자가 심장에서 시작되듯이, 노트가 아닌 박자 자체가 리듬의 시작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이를 통해서 액션 장르가 가지고 있었던 리듬이라는 측면은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됐다. 그리고 버튼을 누르는 것에서 나오는 리듬감을 강조하기 위해 게임 내의 모든 요소는 같은 비트와 템포에 맞췄다. 하나의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작품을 구성하는 세부적 요소들이 뻗어 나가면서 하이파이 러쉬는 일관되고 집중력이 있는 경험으로 맺어지기 시작한다. 리듬과 액션을 더했다고 일축할 수도 있을 테지만, 아이디어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구축할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 그리고 액션이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던 요소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임은 틀림없다. 액션의 버튼 입력을 비트로. 오브젝트와 배경음악을 포함한 액션 외적인 것 일체를 템포로 치환한 이들의 발상이 이채를 발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하이파이 러쉬는 발상하나가 얼마나 다른 느낌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타이틀과 같다. 게임이라는 매체가 작은 발상하나로 얼마나 큰 경험적 변화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증거이며, 장르 측면에서 내재적으로 가지고 있던 가치를 다르게 바라볼 기회를 제공하는 단초가 되지 않을까 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정필권 농부이자 제빵사이자 바리스타. 현재는 게임 기자로 글을 쓴 지 8년차 입니다. 한정된 시간 안에서 최대한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바라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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