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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에서 '갓오브워'까지: 사랑의 대상과 게이머의 나이듦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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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4. 2. 10.

게임 규칙을 넘어선 감정 투영 대상으로서의 등장인물


초창기 게임의 역사 속에서 가족은 게임 안이 아니라 게임 밖의 존재였다. 플레이어 캐릭터는 대체로 혼자 위험천만한 스테이지들을 돌파해 나갔지만, 그런 게임을 플레이하는 환경은 게임사의 광고에 의해 늘 가족적인 무언가로 일컬어지곤 했다. 닌텐도 등의 가정용 콘솔 기기는 항상 텔레비전 광고를 통해 거실에서 온 가족이 함께 게임하는 장면을 보여주고자 했다.


게임 안에서 플레이어와 함께 하는 이들은 가족이라기보단 주로 동료라는 이름으로 호명되었다. 롤플레잉 게임의 파티 시스템, 여러 게임에 등장하는 조력자 등은 나름의 끈끈함을 가지고 있지만 어쨌든 기능적인 관계맺음을 플레이어와 이어나가는 동료로서의 존재였다.


2000년대 들어와 출시된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이코는 그런 점에서 눈에 띄는데,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블 캐릭터와 시작부터 끝까지 모험을 함께 하는 요르다는 동료라는 이름으로 부르기엔 사뭇 이질적인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플레이어는 딱히 공격력이 없는 요르다의 손을 붙잡고 게임을 이끌어나가야 하는데, 분명 퍼즐과 같은 요소들에서의 해결을 돕는 조력자의 포지션이지만 실제로 이코를 플레이한 이들이 요르다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동료보다는 조금 더 진한 무엇이었다. 함께 싸우면서도 플레이어가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존재로서의 요르다는 동료이자 퍼즐의 열쇠라는 기능적 관계 이상의 존재로 플레이어들에게 각인된 바 있었다.



유사가족 관계의 조엘과 엘리


이코로부터 대략 10여 년이 지난 뒤에 출시된 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는 유사 가족 관계에 놓인 두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며 모험을 풀어가는 새로운 시점을 선보였다. 중년의 남성 주인공 조엘은 게임 프롤로그에서 딸을 잃었고, 그런 그에게 임무로서 맡겨진 엘리라는 아이는 잃었던 딸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십대 소녀다. ‘이코처럼 둘은 서로 도와 가며 험난한 세계를 헤쳐나가지만, ‘이코에 비해 좀더 엘리는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변화 혹은 발전이 있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한 무대 속에서 조엘과 엘리의 이야기는 단순히 모험의 기승전결을 풀어가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 잘 맞지 않았던 두 사람이 일종의 유사 가족 관계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진한 감동을 만들어낸 바 있었다.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라스트 오브 어스로부터 받은 감정은 삭막하고 외로운 좀비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감정을 함께 기댈 수 있는 존재라는 유사 가족 관계가 유독 더 따뜻하게 빛났기 때문이었다고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갓오브워'에 이르러 혈연 가족으로 등장하는 조연


2001이코에서 동료를 넘어선 무언가로, 2013라스트 오브 어스에서는 유사 가족 관계라고 이름붙여도 좋을, 플레이어와 함께 모험을 떠나는 존재는 2018년의 갓 오브 워에서는 본격적으로 혈연관계로 맺어진 가족으로 등장한다.


전쟁의 신으로 그리스 신화 시대를 휩쓸었던 주인공 크레토스는 후속작에서 아들을 둔 중년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크레토스의 캐릭터는 이러한 관계설정의 변화를 통해 크게 바뀌는데, 전작에서는 가족을 잃은 뒤 신의 아들로서 자녀의 포지션을 맡았던 크레토스가 후속작에서는 가족관계 안에서의 아버지 포지션을 중심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실제로 게임 안에서 크레토스와 아들 아트레우스의 관계는 철모르는 아이의 육아를 도맡는 크레토스의 관점으로 그려진다. 아트레우스는 나름의 전투력은 갖추고 있지만 여전히 보호해야 할 대상이며, 내러티브를 통해 크레토스는 아들의 성장을 돕는 역할을 풀어낸다. 후속작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에 이르면 본격적으로 사춘기를 맞아 방황하는 아트레우스의 옆에서 자녀의 성장과 함께 부모가 맞는 새로운 도전들이 함께 그려지는 것을 보면, ‘갓 오브 워의 북유럽 시리즈는 상당부분 자녀라는 새로운 가족관계를 맞았지만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될 지는 모르는 부모의 입장을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이들어가는 게이머


게임 안에서 기능적 조력자 이상의 감정을 담아내는 캐릭터와 주인공 캐릭터 사이의 관계는 이코2001년부터 갓 오브 워2018년 사이 근 20여년 속에 점차 변화해 왔다. 이 변화는 지켜야 할 동료에서 라스트 오브 어스의 유사 가족관계를 거쳐 마침내 혈연관계로 점차 가족이라는 구성을 향해 움직였는데, 이는 특히 주인공 자체의 변화와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명확하게 소년의 포지션이었던 이코의 주인공과 달리 갓 오브 워의 크레토스는 명백하게 중년 남성으로 그려진다는 점에서다.


현실의 시간 변화를 함께 생각해 보면 게임 속 주인공 캐릭터의 나이듦은 마치 현실의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2001년에 소년이었던 주인공은 2018년이 되면 열 일곱 살을 더 먹게 되는데, 만약 2001년 당시 20세였던 플레이스테이션 이용자가 2018년이 되면 37세가 되는 것이다. 단순한 생물학적인 나이 변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20년 사이의 간극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가 갖는 주변 인간관계를 크게 변화시키고도 남을 시간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코를 플레이하던 청년은 20년 후 중장년이 되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20년 전의 게이머들이 지금보다 젊은 세대였다면, 이제 게이머 집단은 과거보다 조금 더 폭넓은 연령층이 되었다. 디지털게임 이용자층은 연령과 성별, 지역과 같은 여러 측면에서 과거보다 보편화되며 넓어졌고, 과거 단지 어린이들의 놀잇감으로만 여겨졌던 게임은 적어도 갓 오브 워에 이르면 명백하게 중년기 게이머들을 타겟으로 삼는다.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에서 다루는 사춘기 자녀의 방황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을 게임 주인공 캐릭터에 덧씌우는 일은 간접적으로 오늘날의 게이머들이 갖는 평균 연령이 어디쯤에 위치하는지를 의미한다.


게임이 등장하는 인물들의 관계를 통해 일련의 유대관계와 사랑을 표현한다고 한다면, 이 사랑은 게이머 집단의 나이듦에 따라 다른 형태로 묘사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20년 전의 게이머들은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젊고 남성중심인 집단이었고, 그런 그들에게 사랑은 가족보다는 신비함을 간직한 여성 캐릭터에게 투영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중장년이 된 그들에게 사랑의 투영 대상은 이제 자녀라는, 가족이라는 새로운 테두리 안에서 바라보는 대상이 된다.


이러한 변화는 꽤 곳곳에서 감지된다. 2023년 출시된 디아블로 4’에서는 기존 시리즈에서 보지 못했던 수많은 서브 퀘스트들이 등장하는데, 이 중 적지 않은 분량이 자녀를 둔 등장인물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자녀의 훈육을 위해 감옥에 보낸 부모가 결국 자식을 잃은 뒤 후회하는 내용이라거나, 집나간 아이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해오는 등 디아블로 4’에는 적지 않은 분량으로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감정을 다루고자 하는 퀘스트들이 포함된다.


비슷하게 2020년대에 출시된 게임 중 잇 테이크스 투또한 게이머 집단의 세대 변화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사례다. 어린 자녀를 가진 중장년기 부부의 이혼 위기를 코믹하게 풀어낸 이 게임 또한 사실상 중년 부부가 만날 수 있는 삶의 시기를 스케치한 결과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스탠드얼론 게이머의 중심은 중장년이다


게임 주인공 캐릭터를 둘러싼 가족관계에서 나타나는 트렌드 변화가 주로 PC, 콘솔 기반의 스탠드얼론 게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또한 곱씹어볼 여지를 남긴다. 태블릿과 스마트폰을 거치면서 점차 PC는 가정의 필수 가전제품이어야 할 이유를 상실하기 시작했고, 게임을 하기 위해 구비해야 하는 게임전용 PC는 이제 꽤나 고가품의 영역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콘솔게임기는 상대적으로 저렴하다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디스플레이가 기본적으로 요구되고, 타이틀 가격이 8~10만원을 오가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더 이상 아이들의 문화활동으로만 보기 어려운 비용 장벽을 가진 셈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부분유료 기반의 온라인게임들과 달리, 일정 수준 이상의 공간과 시간, 비용을 요구하는 PC/콘솔 기반의 스탠드얼론 게임들은 이제 확실히 중장년을 메인으로 삼는 활동이 되었다.


게이머가 나이를 먹어 가는 과정과 함께 게임 콘텐츠 또한 나이를 먹었고, 나이들어간다는 변화 속에서 게임을 통해 표현되는 게이머와 주인공 주변의 인간관계 또한 다르게 그려진다. 모두가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연애 결혼을 거치는 이른바 정상가족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기술복제를 통해 대량유통되는 미디어 콘텐츠인 디지털게임은 산업적 관점에선 정상가족 안에서 부모라는 위치 혹은 그와 비슷한 세대가 겪게 되는 감정의 과정들을 다루고 싶어한다. 지난 수십 년간 게임에 일어난 변화는 그래서 단지 기술의 발전과 이용자층의 확대만이 아니라, 이 매체가 다루고자 하는 감정과 관계에도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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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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