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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걸 누가 읽는다고.” ─ 카라테카,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와 기록에 관하여

    아마 슬슬 건강검진이 필요한 나이의 게이머 중에 페르시아의 왕자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1989년에 나온 게임이니 젊은 게이머에게는 낯선 게임일 수도 있겠다. 가장 위대한 게임을 고르라면 1등이 아니더라도 100개 안에는 거의 반드시 들어갈 게임이고, 7세대 콘솔까지는 정규 시리즈가 계속 나왔으며, 2025년에도 외전인 “로그: 페르시아의 왕자”가 나왔고, 흥행 성적은 아쉬웠지만 제이크 질렌할이 출연한 영화도 있으니 아직도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IP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 Back “이걸 누가 읽는다고.” ─ 카라테카,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와 기록에 관하여 30 GG Vol. 26. 6. 10. 1990년 3월 5일 ... 애플판 「페르시아의 왕자」는 지난달에 150장도 팔리지 않았다. 저기서 그렇게 죽어가고 있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로리는 내게 마케팅 매니저이신 라트리샤 T. 가 했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그냥 아케이드 게임이잖아. 원래 아케이드 게임은 안팔린다고."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 (스타비즈, 297p) 아마 슬슬 건강검진이 필요한 나이의 게이머 중에 페르시아의 왕자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1989년에 나온 게임이니 젊은 게이머에게는 낯선 게임일 수도 있겠다. 가장 위대한 게임을 고르라면 1등이 아니더라도 100개 안에는 거의 반드시 들어갈 게임이고, 7세대 콘솔까지는 정규 시리즈가 계속 나왔으며, 2025년에도 외전인 “로그: 페르시아의 왕자”가 나왔고, 흥행 성적은 아쉬웠지만 제이크 질렌할이 출연한 영화도 있으니 아직도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IP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페르시아의 왕자 시리즈 중 1,2는 조던 메크너가 직접 개발에 참여했고, 당시의 게임 개발은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노력이 거의 온전히 담겨 있기도 하다.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는 페르시아의 왕자 1, 2의 개발 당시 조던 메크너가 기록해놓은 개발일지를 기초로 나온 책이다. 어떤 분들은 이 책을 이미 본 기억이 있을 수도 있다. 파란 표지일 수도 있고, 검정 표지일 수도 있는데,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의 탄생 배경을 먼저 설명해야 한다.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가 나오게 된 것은 물론 조던 메크너가 당시 일지를 잘 작성해 놓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첫 번째 서적이 자비 출판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장희재님이 이 책에 흥미를 가지고 조던 메크너에게 허락을 받아 국내 번역을 진행했다. 당시 기준으로는 생소했던 크라우드 펀딩으로 진행했던 이 책은 지금 보기엔 적지만 당시에는 꽤 큰 금액이었던 목표치 120만원을 넘어 366만원을 달성했고, 성공한 펀딩의 사례로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당시 펀딩을 진행했던 굿펀딩이란 서비스는 남아있지 않다. * 좌측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첫 번째 원서, 굿펀딩판 국내 번역판, 30주년 기념판 미국판 원서, 느낌이있는책판 한국어 번역판 고백하자면 필자가 이 책의 리뷰를 객관적으로 하기 힘든 이유가 있는데, 이 무렵에 펀딩 작업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기묘한 인연으로, 당시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GDC의 고전 게임 강의에서 조던 메크너가 자신의 경험을 발표할 일이 있었고, 필자는 아마존에서 미리 주문해 샌프란시스코 친구의 숙소(예약한 숙소에서는 배송을 받을 수가 없었다)로 배송받은 책을 들고 가 사인을 받아 펀딩에 사용했다. 답장이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소통이 마무리돼서 책은 무사히 나오고, "느낌이 있는 책" 출판사에서 새 표지로 책이 나오기도 했다. 한국어로 된 검정색 표지라면 아마 펀딩에 참여한 경우고, 파란 표지라면 이후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일 것이다. 다이피아에서 지금 기준의 품질로 보기에도 훌륭한 epub 버전 역시 존재한다. 전자책 시장이 충분히 자리 잡기 전이어서 초기에는 애플의 iBooks 서비스에만 출시하고 국내 서비스에는 나중에야 출간하게 되었지만, 책에는 담지 못했던 당시 개발 자료들을 사진과 영상 등으로 집어넣은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힘을 모아 나온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는 아시아권에서는 아마 유일하게 한국어로만 번역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국내 출판계약은, 특히 외국 서적의 경우 대부분 5년 단위인데, 5년 후에는 보통 추가로 돈을 내고 계약을 연장하거나, 아니면 절판시키는 흐름으로 진행된다. 특히 요즘 출판시장에서 그때그때 나왔던 책을 사두지 않는다면 구할 수가 없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이 계약기간이다.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 역시 그런 식으로 절판되었고, 많은 좋은 책들이 그렇듯이 프리미엄이 붙어 중고서점에 5만원이 넘게 올라와 있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를 출간할 무렵 이 책이 잘 팔려서 카라테카 개발일지(2012년 출간) 역시 출간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지는 못했다. 그리고 2026년이 되어서야 게임서적 전문 출판사인 스타비즈에서 그동안 꾸준히 준비하고 있던 페르시아의 왕자, 카라테카 개발일지가 출간되었다. 이미 원문이 존재하는 일기를 책으로 만든 것이다 보니 2013년에 출간된 판과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사이에 조던 메크너가 게임 개발에 사용했던 자료들을 미국의 스트롱뮤지엄에 기증했고, 30주년 기념판이 그러한 자료와 일기에 조던 메크너가 주석을 달아 새로 출간되었다. 덕분에 이번에 출간된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 한국어판은 30주년판을 기초로, 조던 메크너가 당시 상황을 설명한 가필과 당시를 볼 수 있는 추가 시각자료들을 넣고, 뒤에 30주년 기념 원고를 추가했다. * 새로 출간된 카라테카,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 책의 표지는 원판 게임의 그것을 사용했다. 그럼 21세기도 1/4이 지난 지금 우리가 1982년부터 1993년까지의 일기장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이야기하기 어렵다. 명작게임을 만든 개발자의 개발일지니까 뭔가 중요한 게임 개발의 비밀이 담겨 있지 않을까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아마 그런 목적을 가지고 이 책을 본다면 실망할 것 같다. 소프트웨어 개발 현장에서 자주 다뤄지는 것이 회고(retrospective)이다. 회고라는 단어를 소프트웨어 공학 쪽에서만 쓰는 건 아닌데, 국내에는 애자일 개발방법론이 소개되면서 자리 잡은 경향이 있다. 적어도 프로그래머인 필자에게는 그전까지 회고라는 단어가 그렇게 익숙하지 않았는데, 소프트웨어 공학에서 하는 회고는 이전 작업을 돌아보고 다음 작업을 더 잘할 수 있게 검토하는 방법론이란 뜻이 더 강하다. 미국의 게임 산업에는 좋은 문화가 하나 있는데 바로 포스트모텀(Postmortem, 부검)이다. 단어를 보면 바로 느껴지겠지만 의료 용어인데, 이 역시 회고처럼 게임 개발이 마무리된 후 개발에서 잘한 것과 잘못한 것에 대해 정리해서 공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포스트모텀의 경우 형식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어느 정도 공유되는 양식이 있는데, 전체적인 프로젝트 설명과 함께 프로젝트에서 잘한 점 3~5가지, 프로젝트에서 잘못한 점 3~5가지 정도를 정리하는 것이다. 이러한 양식은 누가 특별히 제시했다기보다는 미국의 게임 개발사이트 GameDeveloper(구 Gamasutra)에 올라오던 형식이었는데, 컨퍼런스와 출간 잡지에서도 해당 양식을 주로 사용했다. 이렇게 쓰인 포스트모텀은 "Postmortems from Game Developer" 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한국에서는 "성공으로 이끄는 게임 개발 스토리"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 Postmortems from Game Developer 의 표지 국내에는 90년대 말부터 특히 2000년대 중반까지 서양의 게임 개발 이론들이 많이 수입되었는데, 포스트모텀 문화도 같이 들어오면서 게임산업진흥원에서는 가마수트라에 실린 포스트모텀을 한글로 번역하는 한편, 국내의 게임 개발자들도 자체적으로 포스트모텀을 작성해서 공유하기도 했다. 이러한 문화는 성공으로 이끄는 게임 개발 스토리 이외에도 국내에 번역된 "위대한 게임의 탄생"의 뒷부분에 추가로 국내 게임의 포스트모텀이 실리는 데도 영향을 주었으며, 이후 2, 3권은 국내 게임만으로 나왔다. 그 외에도 넥슨 내부에만 공개되었던 마비노기 개발완수 보고서 같은 케이스도 존재한다. * 2019년 <게임을 게임하다 /invite you_>에 전시된 마비노기 프로젝트 완수보고서 내용은 외부 공개가 되어있지 않다. 이러한 포스트모텀에 대해서 가장 고려해야 할 부분이라면 포스트모텀은 그 부검이라는 의미처럼 프로젝트가 끝나고 쓰이는 문서라는 점이다. 실제로 온라인 게임 중심으로 넘어간 게임 시장에서는 우리 게임은 아직 안 죽었는데 어떻게 부검을 하죠 같은 이야기도 농담처럼 하고는 했는데, 이렇게 프로젝트가 끝나고 복기하면서 잘한 점과 못한 점을 정리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지만 살아남은 프로젝트만이 이러한 포스트모텀을 할 기회를 얻는 경우가 많은 데다가, 사건이 끝나고 하는 복기에는 아무래도 편향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개발일지라는 기록은 미래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써나간 온전한 의사결정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당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우리는 미래를 알지만, 당시엔 알 수 없으니까. 2012년 GDC에서 스프라이 폭스의 개발자 다니엘 쿡은 게임기획서 대신 일기를 남기라는 급진적인 주장을 한 적이 있다. 어차피 기획은 바뀔 것이기 때문에 아이디어에 대한 반응과 자신의 생각을 적어놓으라는 주장인데, 당시에 인상 깊게 보았던 기억이 있다. 이 지침은 포스트모텀에서 놓칠 수 있는, 당시에 어떤 의도로 의사결정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을 남겨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기억보다 더 정확하게 당시의 상황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일본에서 2025년 치쿠마쇼보(筑摩書房)에서 나온 “RPG를 만드는 법 - 하시노 카츠라와 『메타포: 리판타지오』”(RPGのつくりかた——橋野桂と『メタファー:リファンタジオ』)는 지금까지 나온 책 중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새로운 타입의 아카이빙이란 지점에서 주목해 볼 만한 서적이다. 메타포: 리판타지오가 메타포란 이름을 얻기 전 「PROJECT Re-FANTASY」 라는 프로젝트 이름으로 개발이 발표될 무렵부터 일본의 작가, 비평가 겸 만화 스토리 작가인 사야와카(さやわか)가 아틀러스 내부의 개발자들과 게임이 개발되는 기간 동안 인터뷰해 가면서 작성한 이 책은 개발일지와 아카이빙의 중간지점이라는 독특한 시도이기도 하다. 카라테카,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는 포스트모텀과 달리 당시 기록이 거의 그대로 담겨있다는 점에서 당시 분위기와 사회를 살펴볼 수 있는 훌륭한 기록물이다. 아카이브적인 측면에서는 그렇다. 그래도 이 개발일지의 가치를 단순히 당시의 기록에 두고 싶지는 않다. 1983년 8월 29일 ... 지금부터는 일기를 더 품위있게 쓸 것 아, 젠장할 이걸 누가 읽는다고. 카라테카 개발일지 (스타비즈, 164p) 우리는 2026년 게임 산업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있다. 1980년대 미국에서 한차례 게임산업의 성장세가 꺾일 무렵 대학생이던 조던 메크너는 시험을 망치고, 수업을 째고, 가끔 개발을 하나도 못하고, 영화 일을 할지 컴퓨터 일을 할지 고민한다. 자신이 게임으로 백만장자가 될 거라는 꿈도 가끔씩 꾸고, 다른 게임의 결과를 보며 자신도 저만큼 게임을 팔 수 있을 거라 낙관하고, 결과에 실망하며 계속 게임을 만들어 나간다. 애플 2판 페르시아의 왕자는 잘 안 팔렸지만 다른 매체로 컨버전되면서 인기를 끌었다. 덕분에 우리는 게임역사에 괜찮은 IP를 하나 얻었고, 이렇게 개발일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복간된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는 30주년 기념판답게 조던 메크너의 자료 외에도 당시의 개발자료와 사진들이 추가되어, 당시를 추억하는 게이머에게는 게임의 뒷이야기를 볼 수 있는 즐거움을 주고, 젊은 독자들에게는 당시의 개발 환경을 추측해 볼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아카이브나 게임 개발의 지식과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떠나서, 미래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막막하게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것은 대가이든 아니든 누구에게나 힘든 시간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는 점에서, 이 개발일지들은 당신에게도 위로를 줄 것이다. 소개한 책과 기사들 *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 (2026, 스타비즈) * 카라테카 개발일지 (2026, 스타비즈) * 위대한 게임의 탄생 1,2,3 (2011~2013, 한빛미디어) * 성공으로 이끄는 게임 개발 스토리 (2004, 에이콘출판사) * RPGのつくりかた ――橋野桂と『メタファー:リファンタジオ』 (2025, 筑摩書房) * “혁신을 원하는가? 게임 기획서를 버려라” (2012, 디스이즈게임, https://www.thisisgame.com/articles/31448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개발자, 연구자) 오영욱 게임애호가, 게임프로그래머, 게임역사 연구가. 한국게임에 관심이 가지다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2006년부터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있다. 〈한국게임의 역사〉, 〈81년생 마리오〉등의 책에 공저로 참여했으며, 〈던전 앤 파이터〉, 〈아크로폴리스〉, 〈포니타운〉, 〈타임라인던전〉 등의 게임에 개발로 참여했다.

  • 왜 스네이크는 들개가 되었는가

    1987년 코지마 히데오(小島秀夫, Hideo Kojima) 감독이 제작한 〈메탈 기어(Metal Gear)〉는 여러 가지 의미로 특이한 게임이었다. 한 명의 캐릭터로 적진을 돌파한다는 점은 같은 제작사의 〈콘트라(Contra)〉 시리즈, 그 외 많은 게임들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경험이다. 그러나 스테이지를 헤쳐나가는 방식은 당시로서는 사뭇 새로운 감각이었다. < Back 왜 스네이크는 들개가 되었는가 03 GG Vol. 21. 12. 10. 1987년 코지마 히데오(小島秀夫, Hideo Kojima) 감독이 제작한 〈메탈 기어(Metal Gear)〉는 여러 가지 의미로 특이한 게임이었다. 한 명의 캐릭터로 적진을 돌파한다는 점은 같은 제작사의 〈콘트라(Contra)〉 시리즈, 그 외 많은 게임들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경험이다. 그러나 스테이지를 헤쳐나가는 방식은 당시로서는 사뭇 새로운 감각이었다. 코지마 히데오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게이머라면, 그가 작품에서 시도하고 있는 여러 연출이 영화적이라는 사실과 그 이유도 간단하게나마 알고 있을 것이다. 코지마 감독은 어린 시절 온 가족이 모여 매주 1편씩 영화를 감상하며 성장했고, 본래 영화감독이 되려고 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게임 제작자의 삶을 살게 되었고, 그가 전개하고 싶었던 이야기와 여러 문제 의식은 그가 개발한 게임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재미있게도 시리즈의 첫 작품인 〈메탈 기어〉는 영화의 영향을 크게 받아 탄생했다. 1985년 일본에서 [람보 2]가 흥행하자, 코나미(Konami) 경영진은 개발팀에게 MSX에서 실행할 수 있는 전쟁 소재 게임 제작을 지시한다. 베트남 전쟁으로 고통받은 개인의 아픔을 그려냈던 전작 [퍼스트 블러드(1982, ‘람보’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와 달리, [람보 2]는 다른 전개를 선보인다. 지휘관 사무엘 트라우트먼 대령의 설득으로 람보가 단신으로 적진을 돌파하는 모습을 선보인 것이다. 적진을 종횡무진하며 선보인 총격전과 액션은 [람보 2]의 흥행요소로 작용하여 관객의 눈을 사로잡았다. 코나미는 아마도 이런 흥행요소에 주목했던 것 같지만, 코나미가 원하는 화려한 효과를 구현하기엔 당시 MSX의 컴퓨팅 파워가 부족했다. 코지마 히데오 이하 개발팀은 역발상으로 총탄과 적병이 적게 등장해도 되는 방향으로 게임을 구상하기 시작했으며, 그 해결책으로 잠입을 게임의 핵심 요소로 도입하였다. 그렇게 〈메탈 기어〉는 원안이 되었던 [람보 2]의 요소 - 단독 침투한 요원과 무전을 통한 지휘관의 작전 지시 – 에 잠입이 더해져 탄생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하게 살펴봐야 하는 부분은 기술적 한계로 인해 의도치 않게 게임 스테이지, 즉 공간에 대한 색다른 감각이 발생하였고 그것이 재미의 영역으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이다. 〈메탈 기어〉 의 배경은 용병 집단이 세운 가상 국가, ‘아우터 헤븐(Outer Heaven)’인데, 주인공 솔리드 스네이크(Solid Snake)는 선임 대원 ‘그레이 폭스’가 남긴 정체불명의 무전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아우터 헤븐으로 잠입한다. 〈메탈 기어〉의 공간 경험은 일종의 ‘방’과 같은 감각을 준다. 아우터 헤븐이라는 거대한 배경을 구성하는 각각의 공간은 지형지물, 적병의 배치, 아이템 등의 차이를 두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연결된 방을 따라가다 보면 목표 지점에 도달하게 되고 거기서 주인공은 스토리의 분기점이 되는 이벤트를 맞닥뜨린다. 이런 아우터 헤븐의 공간 감각은 17,000여개의 정육면체 방으로 구성된 거대한 시설을 탈출하려 헤매는 영화 〈큐브(Cube, 1997)〉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컴퓨팅 파워의 한계 때문에 게임의 내용과 공간 감각은 각각 제한된 환경 아래에서 최선의 방향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적과의 교전을 최소화해야하는 잠입 상황을 연출하게 되었고 여기에 거대한 스테이지를 세분화하여 큐브적인 방식으로 공간을 인식하도록 요구하며 게임이 설계된 것이다. 이런 성격은 후속작으로 발전하면서 서서히 강화된다. 컴퓨팅 파워가 차츰 증가하면서 교전 시의 효과, 배경 등을 묘사하는 그래픽 효과는 향상되었지만 여전히 게임의 본질은 잠입에 있었다. 항상 긴장한 상태로 최적의 잠입을 수행하기 위해선 적의 주의를 돌리고, 마취총이나 격투전으로 경비병을 무력화해야 하며, 골판지 상자 같은 사물을 이용한 은/엄폐를 통해 플레이어의 존재감을 숨겨야 했다. 이 때의 게이머는 철저히 스네이크에게 이입하여, 그야말로 ‘뱀’과 같이 최대한 엎드린 채 적의 시선을 피해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했다. 스네이크는 후방의 지휘관/조력자와는 최소한의 연결만을 유지한 채 최전선에서 단독으로 움직인다. 항상 작품의 도입부에는 왜 스네이크가 홀로 움직여야만 하는지 나름의 당위성을 부여하는 설명이 등장한다. 〈메탈 기어 솔리드(Metal Gear Solid, 1998)〉는 폭스하운드(Foxhound) 부대를 제대하고 은거하던 솔리드 스네이크에게 옛 상사인 로이 캠벨 대령이 찾아오며 시작된다. 캠벨 대령은 스네이크가 복무했던 폭스하운드 부대가 반란을 일으켜 알래스카 쉐도우 모세스 기지를 무단 점거하고 요인 2명을 구속, 메탈 기어 렉스(REX)를 탈취했다는 사실을 전하며 이들을 제압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스네이크는 거절하지만, 거듭된 대령의 설득 끝에 결국 홀로 적진으로 숨어들어간다. 〈메탈 기어 솔리드 2 선즈 오브 리버티(MGS 2 Sons of Liberty, 2001)〉에서 스네이크는 완전히 군을 떠나 반(反) 메탈 기어 활동을 하는 비정부기구 필란스로피(Philanthropy)의 민간인 활동가로 등장한다. 스네이크의 동료 ‘오타콘(본명 할 에머리히)’은 미 해병대가 비밀리에 신형 메탈 기어를 개발했다는 익명의 제보를 받고, 신형 메탈 기어의 존재와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스네이크가 해병대의 수송선에 직접 잠입하며 게임이 시작된다. 이후의 작품들 역시 스네이크가 왜 혼자 잠입 작전을 수행해야 하는지 설명하며 시작하는데, 이런 초반부 서사는 사실상 시리즈의 전통으로 정착했다. 최전선에 배치된 실행요원이 후방의 지휘관/조언자와 무전으로 연결되어있는 MGS 시리즈의 작전 구조는 항상 유지되지만, 〈메탈 기어 솔리드 3 스네이크 이터(MGS 3 Snake Eater, 2004)〉를 계기로 스네이크의 소속감에 변화가 생긴다. 스네이크가 더이상 미국을 위해 움직이는 병사이자 요원이기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세력으로 거듭나고자 시도하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이걸 파악하기 위해 MGS 시리즈를 작품 속 타임라인 순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메탈 기어 라이징 리벤전스(2013)는 MGS 시리즈의 타임라인에는 포함되지만 라이덴이 단독 주인공이고, 잠입보다는 액션 중심의 게임으로 본문의 맥락과 무관하여 위 표에서는 생략했다. 네이키드 스네이크와 솔리드 스네이크 모두 일정 시기는 미군 소속으로 지내다 민간인이 되는 패턴을 보인다. 특별히 집중해야 할 부분은 〈스네이크 이터〉를 계기로 변하는 네이키드 스네이크의 소속이다. 〈스네이크 이터〉 이후 미군을 떠난 네이키드 스네이크는 〈포터블 옵스〉에서 FOX부대에 납치당하는데, 게임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반군을 조직할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이어지는 〈피스 워커〉에서 스네이크는 자신이 조직한 반군에 ‘국경 없는 군대(Militaires Sans Frontières)’ 라는 이름을 붙이고 미소 냉전의 양강 구도에 개입할 수 있는 제3세력을 자처한다. 특히 스네이크의 동료이자 MSF의 부사령관인 카즈히라 밀러는 MSF를 용병 비즈니스 집단이라고 거리낌 없이 말할 정도다. 용병은 의뢰를 받아 움직이지만, 계약이 끝나면 의뢰주와의 관계도 끝난다. 이들을 구속할 수 있는 공적인 권력은 사라졌으며, 이들 스스로가 기득권과 맞설 수 있는 힘을 갖추게 되면서 스네이크 이하 병사들은 목줄을 끊고 야생으로 돌아간 들개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공교롭게도 들개로 돌아간 스네이크가 부각되는 시점은, MGS 시리즈가 가장 기술적으로 진보한 시점(현실의 2014년 경)인 의 시대(스토리 상 1975-1982년)와 겹치게 된다. 코지마 감독이 〈메탈 기어 솔리드 V〉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MGS의 세계에 오픈 월드를 도입하게 된 것이다. MGS V는 코지마 감독의 의도와 달리 각각 〈그라운드 제로즈(Ground Zeroes, 2014)〉와 〈더 팬텀 페인(The Phantom Pain, 2015)〉으로 분할 출시되었는데, 게이머들은 를 통해 코지마 식의 오픈 월드를 일부 맛보게 되었다. 는 MGS V 시리즈의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게임으로, 1개의 메인 미션과 6개의 사이드 옵스(콘솔 별 특전 미션 포함)로 구성되었으나 배경은 모두 쿠바에 위치한 미 해병대 기지 ‘캠프 오메가(Camp Omega)’ 이다. 바다로 둘러싸인 이 기지로 잠입하기 위해 스네이크는 해안 절벽을 맨손으로 거슬러 오르거나, 기지와 외부를 오가는 수송 트럭의 짐칸에 숨어드는 방식을 택한다. 하나뿐인 배경을 총 7개의 미션에 재활용해버린 이 게임의 분량에 대한 불만은 차치하더라도, 확실히 의 시점부터 종래의 큐브적 감각의 파괴가 감지된다. 더 이상 큰 공간이 여러 개의 방 형태로 분절된 것이 아니라, 큰 공간을 그대로 인식하도록 만든 것이다. TPP는 GZ와 마찬가지로 오픈 월드를 유지하되, 파괴된 큐브적 감각을 다시 불러오려고 시도한다. TPP의 넓어진 전장은 플레이어에게 아프가니스탄과 아프리카 앙골라-자이르 국경지대를 오가게 만든다. 이 넓은 전장을 동분서주하게 하면서 큐브적 감각을 되살리려는 시도는 메인 미션을 실행할 때 나타나는 ‘핫 존(Hot Zone)’에서 발견할 수 있다. 메인 미션의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플레이어는 도보 또는 차량을 이용해 핫 존을 이탈하거나, 아군 헬기 피쿼드(Pequod)를 불러 기지로 돌아가면 되는데, 이 때 핫 존이라는 개념은 광활한 필드의 일부를 미션 영역으로 제한하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핫 존 경계는 큐브와 달리 구속력이 낮고, 이 경계를 넘으면 자연스레 작전구역 이탈로 인한 임무포기 또는 임무실패 상태로 이행된다. 컴퓨팅 파워의 발전이 불러온 게임 속 공간의 확장과 스네이크의 들개화(化)는 어쩌면 피하기 어려운 숙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이러한 변화 과정은 화려한 전쟁 액션 게임을 개발하라고 했던 코나미의 지시와 MSX의 성능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고 했던 역발상과 마찬가지로, 의도치 않게 나타난 결과에 가까울 것이다. MSX 환경에서 출발한 MGS 시리즈는 첫 번째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의 등장으로 인해 극적인 컴퓨팅 파워 변화를 맞이했고, 3D 폴리곤 그래픽으로 보강된 게임 환경을 확보했다. 도트로 구현된 전장을 오가던 스네이크는 이제 3D 그래픽으로 구현된 전장을 누비게 되었고, 스네이크가 마주한 큐브적 공간은 차츰 확장되어갔다. 그러나 실내외를 막론하고 3차원으로 구성된 전장을 활보할 수 있는 컴퓨팅 파워의 등장은 차츰 큐브적 공간을 이탈하고 싶게 하는 욕구도 함께 불러왔다. 전장 환경 묘사가 세밀해질 수록 플레이어들은 정해진 경로 외의 환경으로 진출을 시도했고, 게임 제작사들이 여기에 응답하면서 차츰 오픈 월드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경쟁작들의 공간 인식이 차츰 발전하는 현실에 맞춰 MGS 시리즈 또한 종래의 큐브적 공간을 탈출해야만 했다. 시리즈의 확장은 동시에 솔리드 스네이크 한 명만으로는 서사를 확장하기 어려운 상황을 직면하게 했다. 게임 속의 1995년부터 2014년을 아우르는 솔리드 스네이크의 서사를 보강하기 위해 코지마 히데오는 1970년대 냉전기로 세계관 확장을 꾀한다. 냉전 속 MGS 시리즈의 서사를 이끌 주인공으로 과거의 영웅이자, 〈메탈 기어〉에서 솔리드를 지휘한 빅 보스(=네이키드 스네이크)를 소환하며 작품의 타임라인을 보강한다. 와 〈포터블 옵스〉, 〈피스 워커〉는 냉전 시대를 헤쳐나가는 네이키드 스네이크를 그려내며 전체 세계관의 확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결국 작품의 타임라인이 차츰 탈냉전의 시대, 즉 〈메탈 기어〉와 솔리드 스네이크의 시대로 다가가면서 냉전 구도를 탈피해야만 하는 지점에 도달한다. 큐브적 공간의 탈출과 냉전 서사의 탈피라는 두 가지 요구는 새로운 MGS 시리즈에 동시에 수용되어야 했다. 특히 로의 이행은 빅 보스를 중심으로 한 서사에서 두 가지 요구가 모두 극에 달하였으며, 가장 기술적으로 발전하였지만 이를 마지막으로 전체 시리즈가 종료되어야 함을 뜻했다. 큐브적 공간의 탈피로 넓어진 공간을 인식하는 동시에 구속을 거부하고 독자세력화된 스네이크는 결국 제한된 공간을 밀착 돌파하는 뱀의 쾌감을 잃어버리고 목줄을 끊고 탈출한 들개로 변하는 것이다. MGS 시리즈가 가졌던 뱀의 은밀함은 경쟁작인 〈스플린터 셀(Tom Clancy’s Splinter Cell)〉 시리즈, 〈히트맨(Hitman)〉 시리즈〉 등으로 넘어가 버리게 된다. 그렇다면 가 들개의 자유로움이라도 확보했는가? 안타깝게도 들개의 자유로움마저도 온전히 확보하지 못한 걸로 보인다. 들개의 자유로움을 잘 구현한 게임을 찾자면 다른 오픈 월드 장르 게임을 예시로 드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락스타 게임즈의 , 〈레드 데드 리뎀션 2(Red Dead Redemption 2)〉를 플레이할 때 21세기 미국의 도시와 18-19세기 서부 황야를 활보하며 그 시대를 살아가는 구성원이 느꼈을 법한 생동감과 자유로움을 체험하게 된다. MGS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에서 뱀의 은밀함, 들개의 자유로움 어느 하나라도 온전히 확보하지 못한 것이 시리즈 전체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결함이 되진 않는다. 5편에서 시도된 오픈 월드의 세계관은 코지마 히데오 특유의 영화적 스펙타클과는 잘 어우러졌고, 자연스러운 컷씬과 화면 전환 등의 효과로 플레이어가 게임의 그 순간에 확실히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전체 스토리 라인에서 전반부에 해당하는 빅 보스의 시대를 마감하는 역할 또한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완결성을 확보하려고 한 노력 또한 여실히 드러난다. 냉전 시대 미국의 요원으로 소련의 핵병기를 성공적으로 저지한 네이키드 스네이크의 활약상은 결국 그를 바탕으로 한 복제인간 병사를 만들어내는 계획으로 발전한다. 3편 〈스네이크 이터〉에서 전체 MGS 스토리가 시작되고, 5편인 〈그라운드 제로즈〉와 〈더 팬텀 페인〉, 그리고 〈선즈 오브 리버티〉를 거쳐 〈건즈 오브 패트리어트〉에서 완결을 맞는다. 이 흐름에서 자연스럽게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고 아버지(네이키드 스네이크)의 행로를 따라가는 아들(솔리드 스네이크)의 이야기가 된다. 냉전 속에서 국가의 도구에 불과했던 아버지는 도구로서의 운명을 거부하고 독자세력이 된다. 그러자 그의 아들이 다시 국가의 도구가 되어 아버지를 제압한다. 시리즈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아들은 여태까지의 삶이 아버지의 흔적을 따라 온 것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는다. 메탈 기어의 위협, 같은 복제인간 형제인 리퀴드 스네이크와의 갈등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뒤에야 솔리드 스네이크는 얼마 남지 않은 삶이라도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고자 결의하며 뱀의 임무를 모두 내려놓는다. MGS 시리즈는 기술의 한계로 큐브적 공간 속에서 국가의 통제 하에 임무를 수행하던 사냥개이자 뱀이었던 ‘스네이크’가, 기술의 발전으로 큐브적 공간에서 방출되는 동시에 통제를 거부하고 들개가 되어 홀로 서는 이야기로도 해석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스네이크의 변화와 함께 그 창조자였던 코지마 히데오 감독 역시 코나미와의 갈등 끝에 홀로 서게 되는 얄궃은 운명을 마주한다. 28년이라는 전통과 충성심 높은 팬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코나미에게 최신 MGS 시리즈란 투자비용 대비 수익이 낮은 상품이었고, 이 때문에 결국 코나미와 코지마 히데오는 결별의 수순을 밟는다. 이 과정에서 코나미는 의 2015 플레이스테이션 어워즈 수상, TGA 2015 시상식에 코지마 히데오가 출연하지 못하도록 저지하기까지 했다. 코나미와 코지마 히데오가 결별한 바로 다음 날, 코지마 히데오는 본인의 이름을 딴 독립 개발사 ‘코지마 프로덕션(Kojima Productions)’ 출범을 발표하는 동시에 소니(Sony)와의 파트너십 체결 사실도 공개한다. 팬의 입장에선 정말로 반가운 소식이었다. 또한 코지마 히데오 없는 MGS 시리즈를 상상할 수 없는 전 세계의 팬들 덕분에 2018년 출시된 코나미의 〈메탈 기어 서바이브(Metal Gear Survive)〉는 결국 흥행에 참패하고 MGS 시리즈의 이름과 명성, 게임 엔진만을 가져다 쓴 완전히 별개의 게임으로 남았다. 다행인 것은 〈서바이브〉 출시 이전에 이미 코지마 히데오 감독은 MGS의 이야기를 모두 완성해서 시리즈에 담아냈기 때문에, 코나미가 개입하여 주제의식을 흔들어버릴 가능성은 완전히 차단되어 있다. 또한 〈데스 스트랜딩(Death Stranding, 2019)〉를 통해 새롭게 제기한 ‘연결’의 주제도 2021년 현재 COVID-19 팬데믹을 맞아 큰 공감을 사면서, 코지마 프로덕션은 MGS를 즐겨 온 팬들과 새롭게 그의 서사에 공감한 팬들과도 성공적인 연결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코나미와의 불쾌한 결별에도 불구하고 들개로 전락하지 않은 코지마 히데오는 〈메탈 기어 솔리드〉와 〈데스 스트랜딩〉 이후 앞으로 어떤 작품으로 우리에게 설렘을 선사할지 기대해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장민호 한양대학교 대학원 장르 테크놀로지와 서브컬처학과 박사과정. 미국소설 연구로 석사를 받았고 인간의 정체성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 최근 관심사는 SF문학 속 비인간의 정체성 문제와 공존의 가능성 등이다.

  • 보드게임에서 협력은 어떻게 장르가 되었나?

    비디오게임에 아케이드 코옵, 카우치 코옵, 온라인 코옵 등 다양한 형태의 협력 게임이 존재하듯, 보드게임에도 많은 협력 게임이 있다. 그러나 보드게임을 가볍게 접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보드게임에도 협력 장르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 < Back 28 GG Vol. 26.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u A pacifist who enjoys war games. Also a game designer who has made board games on themes such as anti-colonial struggle, nonviolent social movements, and psychiatric empowerment, including Intifada: Freedom for Palestine, Change the World: From the Square to the National Assembly, and The Rainbow in My Head.

  • : 공포의 세계에서 배회한다는 것

    선형적 서사에 있어 반복은 매혹의 대상이 아니다. 그 세계에서 무한한 반복이란 오직 탈출해야 할 환경에 불과하다. 이야기들은 그 사실을 붙잡고는 ‘사실 진짜 생은 반복의 바깥에 있어’라고 끝없이 주장한다. <팜 스프링스>가 흥미로웠던 것은 두 주인공이 일시적으로나마 반복에 매혹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결국 탈출의 의지가 발생하고, 두 사람은 또다시 ‘진짜 삶’과 마주하기 위해 바깥으로 탈출한다. < Back : 공포의 세계에서 배회한다는 것 15 GG Vol. 23. 12. 10. "에너지 상자에 갇힌 거예요. 3.2초 만에 상자에서 탈출하면 타임 루프에서 나갈 수 있어요." (...) "현실 세계로 뭐하러 돌아가요? 죽음과 가난과 괴로움 가득한 세상인데. 그나마 여기에선 함께할 수 있잖아요." (...) "여긴 진짜가 아니에요. 여기서 하는 모든 건 의미가 없다고요." <팜 스프링스>(맥스 바바코우, 2020) 선형적 서사에 있어 반복은 매혹의 대상이 아니다. 그 세계에서 무한한 반복이란 오직 탈출해야 할 환경에 불과하다. 이야기들은 그 사실을 붙잡고는 ‘사실 진짜 생은 반복의 바깥에 있어’라고 끝없이 주장한다. <팜 스프링스>가 흥미로웠던 것은 두 주인공이 일시적으로나마 반복에 매혹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결국 탈출의 의지가 발생하고, 두 사람은 또다시 ‘진짜 삶’과 마주하기 위해 바깥으로 탈출한다. 이러한 사실은 명백히 운명적이다. 말하자면 선형 서사는 언젠가 종말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무한한 반복은 불가능하다. 예외적인 상황이라고 해봐야 작품 외적인 활동, 관람자가 다시 읽기 혹은 되감기-다시 재생을 시도할 때 정도다. 로라 멀비는 영화에서의 이러한 지향이 영화의 운명임을 논한 적이 있다. 장 뤽 고다르의 1963년 작 <작은 병정>에 나온 대사(“영화는 1초에 24번의 진실이다.”)를 뒤집은 제목의 저서 『1초에 24번의 죽음』에서, 멀비는 서사 영화는 암전이라는 죽음을 향해 달려 나간다고 저술한다. “서사의 정지, 비유기체적인 형태로 돌아가는 비유로서의 죽음은 마치 스틸 프레임과 죽음의 결합이 이야기의 죽음으로 용해되는 것처럼 (...) 영화로 확장된다.”(『1초에 24번의 죽음』, 로라 멀비, 현실문화, 2007) 필름이 모두 돌아가면 그곳에 도사리는 것은 아무것도 투사되지 않는 검은 장막이다. 여기에 도사리는 것은 죽음의 이미지뿐이다. 이때 매체 그 자체뿐만 아니라 그것이 담지하는 서사 역시 죽음과 마주한다. 아니 오히려, 이것은 서사를 다루기 때문에 그 활동이 정지한다 봐도 무관하다. 서사는 시작하는 곳과 멈춰 서는 곳을 결정하는 지시로서의 제약이다. 더 이상 세계가 변혁할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서사의 운동은 끝난다. 그것이 행복한 결말이든 불행한 결말이든 그것은 서사의 죽음이나 다름없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논의를 그대로 비디오 게임에 적용할 수 없다. 게임은 반복의 매혹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초기의 아케이드 비디오 게임에 있어서 ‘결말’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무한히 루프 하는 게임들(이를테면 타이토의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목표는 그 안에서 무한히 생존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며 따라서 비디오 게임에서의 ‘끝’은 ‘죽음’과 현상적으로 연결되었다. 이것은 지시적 죽음이 아니라 진짜 의미에서의, 세계 내부에서의 죽음을 뜻한다. GAME OVER는 멀비가 지정한 의미에서 암전-죽음과 연결된다. 하지만 비디오 게임이 지시된 ‘끝’을 담지하면서부터 상황은 변모한다. 여기서 끝은 두 단위로 분화된다. 하나는 GAME OVER로 표상되는 죽음의 끝=암전, 그리고 또 하나는 CLEAR로 표상되는 완결화된 끝이다. 때로 (특히 고전적 아케이드 게임들은) CLEAR를 GAME OVER라는 기표로 표기하긴 하지만, 그 누구도 양자를 동일한 결말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때 CLEAR가 GAME OVER와 대비되는 존재라고 한다면 이것은 명백히 암전에 대비되는 존재로서 ‘표백’에 위치한다. (‘깨끗이 한다’는 의미의 CLEAR와 표백은 마치 운명 된 짝처럼 들어맞기까지 한다.) 표백의 결말은 엄밀히 말해 서사와 등치되지 않으며, 정확히는 게임이 추구하는 목표(objective)와 결부한다. 하지만 서사는 목표를 지시하기 가장 적합한 형식이다. 이를테면 캡콤의 <파이널 파이트>는 범죄조직 매드 기어가 시장의 딸을 납치했다는 컷씬으로부터 시작되고, 인질이었던 제시카가 연인 코디와 함께 떠나는 컷씬으로 종결된다. <파이널 파이트>를 플레이하는 동안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인질 제시카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매드 기어의 야욕을 꺾는다면 게임이 전제하는 목표를 해결했다는 사실과 함께 목표와 연결되는 서사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이 인지는 정확히 이 게임이 여기서 ‘끝’났다는 사실을 이해시킨다. 여기서 더는 새로운 것이 없다. 물론 플레이어에 따라서는 다른 캐릭터를 사용하거나 혹은 조금 색다른 플레이 방식을 시험해 보거나 아니면 다른 친구와 함께 해보기 위해 반복해서 게임을 플레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플레이어에게 한 번 표백의 결말(=CLEAR)이 찾아왔다는 사실은 지울 수 없다. 이 사실은 코디가 제시카와 함께 돌아가는 장면을 본 그때에 명백해진 것이다. 브라이언 업튼은 게임의 플레이어를 세 가지 분류(목표 중심적 플레이, 일관 중심적 플레이, 종결 중심적 플레이)로 나눈다. 이때 종결 중심적 플레이를 ‘서사주의적 의제’로 분류하며 이들의 목표란 ‘향후의 행동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지는 지점에 이르는’ 것이라 말한다. (『플레이의 미학』, 브라이언 업튼, 에이콘, 2019) 비디오 게임이 고도화되고 다수의 서사적 매개를 담지하게 되면서 일관 중심적 플레이는 대체로 표백의 결말(=CLEAR)을 향한 목표의식과 등치되었다. 이것은 표층적 단위에서의 하나의 끝, 더 플레이한다고 해도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에서의 ‘표백’적 목표 지정이다. 물론 한 번의 CLEAR로 서사의 진위를 모두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고, 촘촘한 변곡점들 탓에 다른 방향의 서사를 즐기기 위해 루프를 감행하는 경우도 충분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들 모두 완전히 표백시키기 위한 반복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따라서 서사가 있는 비디오 게임 플레이를 암전과 표백이라는 관점에 놓고 정리한다면, 플레이어가 상정하는 완전한 표백을 위해 수없는 암전을 거쳐 가는 구조가 된다. 이때 암전은 부정적이며 불완전한 결말로서의 장애가 된다. 좀 더 명백히 하자면 표백은 매혹하지만, 암전은 매혹하지 않는다. 설령 몇 번의 루프를 더 반복하고자 하는 플레이어라고 하더라도 그가 원하는 것은 추가적인 표백일 뿐 추가적인 암전은 아니다. 이러한 게임 언어에서 암전을 향하는 충동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로그라이크 : 암전 충동과 표백 충동의 충돌 지점 다만 로그라이크(혹은 로그라이트)는 이 두 개의 충동이 다른 상관관계를 보인다. 이 장르는 절차적 생성, 캐릭터의 영구적 죽음이라는 두 기조를 통해 수많은 플레이를 생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는 매회의 플레이에서 마주하게 되는 장애와 다뤄야 하는 기술이 일정량 상이해진다는 것을 뜻한다. 말하자면 플레이어가 한 번의 암전을 경험한 뒤, 다시 게임의 내부에 들어가면 직전의 암전과 차이 있는 경험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 물론 이전의 경험으로부터 학습한 지식은 의미 있게 작동하지만 때로는 그러한 것들로는 돌파하기 난해한 국면이나 상황과도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한 번의 표백에 아무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로그라이크는 자신이 무한히 다른 가면을 쓸 수 있다는 사실로 플레이어를 유혹하기 때문이다. 로그라이크에서의 모든 플레이는 업튼이 규정하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뛰어드는 ‘눈먼 점프’와 같으며, 플레이어들은 ‘눈먼 점프’의 연속이기 때문에 즐긴다. 따라서 로그라이크는 암전의 충동을 가지는 장르다. 이 장르가 매혹의 무기로 휘두르는 무한성이란 캐릭터가 죽음을 맛봐야 작동시킬 수 있다. 플레이어는 로그라이크의 적극적 참여자가 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죽음을 스스로 즐겨야만 한다. 캐릭터의 영구적 죽음이라는 고통을 감내하며 획득해 낸 지식을 시험하기 위해, 또다시 ‘죽을 수도 있는’ 세계로 직접 뛰어드는 것이다. 특히나 이러한 암전의 지식을 수치화시키는 로그라이트는 더욱더 죽음에 능동성을 준다. 플레이어에게는 임시적 강화와 영구적 강화라는 두 개의 트랙이 존재한다. 한 번의 플레이에서 경험한 임시적 강화는 죽음과 함께 모조리 사라지지만, 그 플레이의 결과물은 영구적 강화의 재료가 된다. 이때 영구적 강화의 재료를 획득하는 방법은 캐릭터가 ‘죽는 것’이다. (혹은 게임에 따라서는 지정된 시간 동안 무사히 생존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만 이러한 형식의 대표 격인 <뱀파이어 서바이버즈>를 떠올려 보자. 이 게임은 지정된 시간 동안 살아남더라도 결국 사신 형태의 캐릭터가 나타나 캐릭터를 죽여버리고, GAME OVER의 결말을 남긴다. 이후 등장한 <뱀파이어 서바이버즈>의 유사 게임들은 대체로 이런 경우의 죽는 결말을 제거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로그라이크는 언제 ‘표백’되는가? 그저 암전의 충동으로 가득 찬 게임이라면 플레이어가 이 루프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불가능한가? 그런데 공교롭게도, 로그라이크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로그>에도 공식적으로는 엔딩이 존재한다. 지하 22층 이하의 층에서 “Amulet of Yendor”를 습득한 뒤 다시 지상층으로 올라오면 화면에 성공을 축하하는 텍스트가 출력된다. 게임이 표백 상태에 도달한 것이다. 물론 플레이어가 다시금 지하 던전에 내려가겠다 마음먹는 순간 이전과는 다른 구조의 던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플레이어가 <로그>에서 ‘표백의 결말’에 도달했다는 사실은 변화하지 않는다. 어떤 이에게는 이 표백의 경험이 게임의 종료 시점일 수 있다. 한편, 그러한 플레이어에게는 이전까지 경험했던 암전은 매혹의 대상임과 동시에 장애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설령 암전의 충동을 느끼는 플레이어에게도 그 충동을 유지하기 위한 장기적인 동력이 필요했을 수 있다. 표백의 충동은 이러한 장기적인 동력에 영향을 준다. 하지만 그러한 플레이어들은 표백의 충동을 해결한 뒤에도 암전의 충동을 느끼며 다시 뛰어들 수 있다. 로그라이크 내부에서 표백과 암전은 서로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지만, 하나의 충동이 다른 충동을 소멸시키지는 않는다. 두 충동은 생생한 형태로 그곳에 자리 잡고 있다. 로그라이크와 서사의 문제 따라서 로그라이크에는 두 개의 결말 충동(암전과 표백)이 충돌하는 장르다. 플레이어들은 경험과 지식의 양을 늘리기 위해, 또한 그렇게 습득한 경험과 지식을 다시 활용하기 위해 끝없는 죽음(=암전)을 바란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게임들과 마찬가지로 어디까지나 완결(=표백)에 이르기 위한 과정과도 같다. 이때, 앞서 말했듯이 표백을 지향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서사주의적 의제’에 해당한다. <로그>의 케이스도 게임이 제공하는 서사적 완결과도 일치한다. 하지만 암전 충동이 끝없이 들끓는 로그라이크에서 서사를 선형적으로 진행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로그라이크는 순환의 바깥으로 나가기를 일정량 거부시키는 장르이지 않은가. 로그라이크에서의 체험은 결코 선형적인 감각으로 치환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시작된 뒤, 끝이 나기 전까지 같은 자리를 뱅글뱅글 돌아간다. 결국 이것을 하나의 거대한 완결 서사로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순환 그 자체를 선형적 서사의 내부에 집어넣을 수밖에 없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암전의 보상물로서 표백으로의 진행을 꾸준히 제공하는 <하데스>일 것이다. 이 게임에서는 표백에의 충동은 보상으로만 존재하기에 암전의 충동을 건드리는 일은 없다. 따라서 양자는 서로를 위배하지 않은 채 점진적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또는 이나 <서울 2033>처럼 암전에의 도전이 서사 형식의 텍스트로 진행되는 방식이 있다. 이들은 로그라이크 게임들이 매번의 플레이에서 던지는 장애물과 도전을 서술의 방식으로 치환한다. 상황이 텍스트로 주어지고, 플레이어는 자신에게 부여된 선택지를 탐색하고 결정함으로 그 결과를 확인한다. 다만 이러한 방식이 하나의 선형적 서사를 완전히 이룰 수 있는지는 의문이 따른다. 모든 파편화된 상황들은 그저 단기적인 판단능력을 요하는 인카운터에 지나지 않는다. 개별의 상황 내에서는 특정한 인과가 발생하지만, 상황과 상황 사이에서의 인과는 작동하지 않는다. 선형 서사라는 것은 거시적 관점에서의 구조화된 모델을 뜻한다. 게임을 플레이한 뒤 서사를 인식한다는 것은, 자신의 플레이 경험 내에서 하나의 서사 모델로 응축할 수 있는 경험들을 선별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개별의 경험들은 그것이 선형적으로 나열될 수 있는 일종의 연결점(nod)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그것이 바로 고전적 의미에서의 플롯이 된다. 이나 <서울 2033> 등의 파편화된 텍스트들은 하나의 모델로 응축되지 않을뿐더러, 동일한 이벤트가 반복되면 서사적 가치도 상실한다. 플레이어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담지하는 서술된 내용이 아니라 개별의 선택지가 가져다주는 혜택 혹은 페널티다. 물론 이 작품들에 있어서 이런 구성이 특별히 문제시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로그라이크의 순환 구조 내 장애물들을 의도해서 텍스트 적 형식으로 치환해 놓은 것뿐, 하나의 거시적이고 강렬히 직조된 드라마를 전달하기 위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로그라이크의 양립되는 결말 충동을 기반으로, 경험 내부에 고전적 서사를 집어넣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증명할 뿐이다. 또 다른 예시로서는 비주얼 노벨 로그라이크를 표방하는 <노베나 디아볼로스>가 있다. 악마에 의해 단절된 마을에 고립된 주인공은 다섯 명의 여성 중에서 누가 악마인지를 밝혀낸 뒤, 인간인 캐릭터와 함께 마을을 빠져나와야 한다. 매 플레이마다 누가 인간 캐릭터인지 무작위로 설정되며, 그들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는 사건 현장 기록 역시 무작위로 배치된다. 이는 표백 충동의 내부에 변수를 작동시킨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도전이지만, 한 번의 플레이를 끝낸 뒤에는 서사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사건이 표백화되어 버린다는 약점이 있다. 이를테면 마을로 진입하는 장면, 각 인물과 조우하는 장면, 악마에게서 현 상황을 설명받는 장면 들은 두 번 이상 조우할 가치를 느끼기 어려운 요소들이다. 결국 플레이어가 원하는 것은 ‘특정 인물이 인간일 때 서사가 어떻게 변화하는가’에 국한되며 이는 명백히 암전 충동을 배제한다. 따라서 게임은 플레이어의 표백 충동을 돕기 위해 거시 서사만을 확인시키는 ‘엔딩 모드’를 탑재해 이러한 충동을 제어한다. 하지만 그 순간 <노베나 디아볼로스>는 로그라이크가 가지는 양립된 충동 개념에서 크게 벗어난다. ‘공포의 세계’에서 배회한다는 것 폴란드의 pantastaz가 제작한 는 2020년에 얼리 억세스를 시작해, 2023년 10월에 정식 출시 되었다. 일본의 공포 만화가 이토 준지의 아트와 러브크래프티안적 세계관, 20세기 후반 일본의 도시 전설적 서사를 규합해 2-bit 레트로 스타일이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구축한 본 게임은 그 분위기만으로도 상당히 많은 관심을 받았다. 스팀의 소개 페이지에는 ‘괴물과의 턴제 전투, 가차 없는 선택으로 만들어지는 지옥 같은 로그라이트 RPG’라고 소개된 만큼 본 작품의 장르를 로그라이트로 규정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말하자면 역시 표백과 암전의 두 충동 사이에서 진동하는 게임이라는 의미다. 2023년 11월 기준 게임의 평가는 7,599개의 평가를 통해 매우 긍정적으로 표시되고 있지만, 평가의 면면을 살펴보면 게임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부정적 평가를 남기고 이탈한 플레이어들을 꽤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UI의 불친절함이나 지나치게 부적절한 난이도를 지적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게임이 예상과는 다르다는 지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특히 게임이 제공하는 이야기들이 지나치게 편린적이라 하나로 응축되지 않는다는 평가들은 매우 흥미로운 측면이 있다. 의 메커니즘은 기본적으로 테이블 탑 보드게임 <아컴 호러>의 디지털 스탠드 얼론 버전에 가깝다. 이를테면 행동에 따른 강제 이벤트, 능력치를 기반으로 하는 성공과 실패의 체크, 한 번의 게임 플레이에 배정되는 초월적 신의 존재, 캐릭터의 자원으로 양분되는 체력과 이성의 존재가 그러하다. 하지만 사실상 로그라이트 장르로서의 진행 양상은 큰 틀에서 을 연상시킨다. 플레이어는 랜덤하게 배정되는 5개의 ‘미스터리’를 돌파하여 마을 등대를 열 열쇠를 모아야 한다. 최종적으로는 등대에 들어가 사악한 존재의 부활을 막는 것이 목적이다. 이 최종적으로 엔딩을 보기 위해 총 8개의 ‘섹터’를 진행해야 하는 것과 5개의 ‘미스터리’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은 게임 진행의 절차성에서 연결된다. 개별의 미스테리(=섹터)에서는 진행을 위해 맵이 제공되며, 플레이어는 맵에서 자신의 다음 이동 경로를 눌러 행동을 수행한다. 특별한 능력이 있는 장소(=상점 등)에서 필요한 행동을 할 수도 있고, 장소를 탐색해 벌어지는 이벤트를 해치우고 미스터리의 마무리를 향해 나아갈 수도 있다. 무엇을 하든 사악한 존재의 부활을 알리는 ‘파멸’ 게이지가 상승하며 이 게이지가 100%가 된다면 게임은 실패한다. (이는 의 추격과 유사한 메커니즘이다.)다만 의 섹터와 의 미스터리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섹터는 아무것도 제약하지 않는 공간이다. 물론 해당 공간에 대한 기초적인 규정은 존재하며, 그 규정을 통해 등장하는 이벤트의 속성이 달라지긴 하지만 각 섹터 간의 개념적 차이는 없다. 섹터는 플레이어가 활약할 수 있는 ‘너른 공간’이며, 그 공간을 한 번 거쳐 갔다고 해서 무엇인가 ‘표백’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의 미스터리는 명백히 서사적인 개념이다. 미스터리는 도입의 서사, 진행을 위해 거쳐야 하는 장소들의 순서, 그리고 플레이어의 행동에 따라 달라지는 몇 가지 엔딩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미스터리는 공간화된 개념이 아니다. 전적으로 선형적 서사의 개념이며 이는 곧 ‘표백’이 가능하다는 의미가 된다. 물론 동일한 미스터리라고 해도 반복해서 도전할 때의 양상은 달라진다. 미스터리를 진행하기 위해 선택하는 ‘탐색’ 행동은 무작위적인 사건들을 가지고 오며, 이나 <서울 2033>과 마찬가지로 선택과 판정을 통해 결과가 도출된다. 하지만 앞서 이 두 게임의 형식을 통해 이야기한 바 이러한 인카운터 이벤트들은 하나의 노드로 연결되는 선형적 경험이 아니다. 따라서 이는 미스터리의 시작과 끝을 규정하는 인트로와 엔딩의 늘어선 노드의 배열에 들어가지 않는다. 말하자면 여기서 미스터리를 하나의 응축된 서사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무작위 인카운터들은 모두 탈각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문제는 미스터리는 어디까지나 표백의 대상이라는 점이다. 미스터리는 통상 2~4개의 엔딩을 가지고 있으며 대체로는 A 엔딩이 가장 이상적인(그러나 모든 것이 깔끔하게 해결되지는 않는) 결말이다. 플레이어가 한 번 A 엔딩으로의 길을(혹은 플레이어에 따라 해당 미스터리의 모든 엔딩을) 확인한다면, 해당 미스터리를 통섭하는 선형적 서사를 향한 욕망을 잃어버리고 만다. 즉 그 시점에서, 미스터리는 이미 ‘표백’되어 버린 셈이다. 플레이어가 이미 특정한 엔딩을 향하는 방법을 완전히 체득하고 나면 더 이상 이 미스터리는 매혹의 힘을 드러내지 않는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는 미스터리가 기초적으로 품고 있는 서사적 개념 보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무작위적 인카운터가 더 중요해진다. 그렇다, 오히려 암전의 충동이 더 강력해지는 것이다. 를 플레이할 수록, 무엇인가 잃어버리는 감각과 마주한다. 강력한 아트의 힘과 모호함으로 사람을 빨아들이는 미스터리들의 내용이 존재하지만, 게임의 플레이가 반복을 이룰 때마다 매혹의 힘을 점차 잃어만 간다. 그런데 애초에 본래의 미스터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본질이 감추어져 있는 일종의 퍼즐이며 그 매혹은 진위를 알고 싶다는 호기심에서 나온다. 미스터리는 가장 강력히 표백의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개념이며 따라서 표백에 의해 가장 빠르게 힘을 잃어버린다. 미스터리야말로 구조화된 서사의 형태를 가장 강력히 요구하는 포맷이다. 따라서 우리는 무한히 미스터리에 붙잡혀 있을 수 없다. 무한히 마주쳐야 하는 암전의 충동 앞에서 미스터리는 쉽사리 힘을 잃는다. 는 스스로가 가진 메커니즘으로 인해 가장 강력한 매혹의 힘을 퇴진시켜 버리고 마는 기이한 게임이다. 물론 공포의 매혹과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불안을 하나로 규합하는 것은 매우 훌륭한 실험이다. 하지만 빠져나올 수 없다는 불안은,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희망이 전제되었을 때 더 강력히 기능한다. 에 무엇인가 부재한 게 있다면 바로 그 희망인지도 모른다. 미스터리들이 너무나 빠르게 표백되어 버린 세계에서 하염없이 헤매는 것은 오히려 불안하지 않다. 어쩌면 그 세계에 영원히 반복하길 바랐던 기대의 작용이, 오히려 이 ‘공포의 세계’로부터 쉽사리 빠져나오게 만든 것은 아닐까.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평론가) 이선인 만화와 게임, 영화를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합니다. MMORPG를 제외한 <파이널 판타지> 전 시리즈 클리어가 라이프 워크입니다. 스팀덱을 주로 사용합니다.

  • 구독 서비스의 대두 앞에서 떠올리는 생각들

    구독 서비스의 미래는 예단하기 어렵지만, 과거 부분유료결제와 확률형아이템이라는 결제방식의 변화가 가져온 게임 내부까지의 변화를 겪으며 우리는 다음에 올 결제양식의 변화에 대해서는 그저 시장의 흐름에 맡기기만 하는 것이 최선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노동과 생산의 영역에서 가격의 결정이 그저 시장의 힘에 의해서만 이루어짐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은 오늘날 최저임금제와 같은 여러 보완책들을 이끌어낸 바 있다. 아주 같은 맥락은 아니겠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소비와 이용의 차원으로 들어온 여가의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는 일련의 ‘여가의 정치경제학’과 같은 생각을 떠올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 Back 구독 서비스의 대두 앞에서 떠올리는 생각들 09 GG Vol. 22. 12. 10. 구독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책이나 신문, 잡지 따위를 구입하여 읽음’이다. 애초에 단어 자체에 購讀, 읽을 ‘독’자가 들어가는 상황이니 당연한 말이겠지만, 최근에 이 단어는 읽는다는 행위를 떠나 다른 쪽에 주안점을 찍고 있음을 우리는 보고 있다. 지금의 구독은 개별 단위의 구매가 아닌, 정기적으로 일정 수량 이상의 상품 혹은 서비스를 결제하여 사용하는 일을 가리킨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정작 단어의 출전에 가까웠던 신문과 잡지의 구독은 이제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지만, 확장된 의미의 구독은 신문, 잡지를 넘어선 온라인 미디어의 구독에 머물지 않고 이제는 신선식품이나 생필품의 정기배송까지도 묶어 부를 수 있는 말이 되어가고 있다. 그 와중에 게임 또한 구독이라는 이름으로 묶이기 시작했다. 플레이스테이션, XBOX같은 전통적인 콘솔 플랫폼 뿐 아니라 게임 구독 서비스는 애플 아케이드나 구글과 같은 스마트폰 기반의 범용 플랫폼에서도, 심지어 넷플릭스 같은 비게임 플랫폼에서도 출시하는 보편적인 흐름이 되었다. 디지털게임은 상품으로서의 속성을 강하게 띠고 있는 매체고, 구독과 같은 결제방식에서의 중대한 변화는 당연히 게임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밖에 없다. 변화는 함부로 예측하기 어렵겠지만, 조금씩 다가오고 있는 새로운 결제방식에 대한 고민들을 시작해 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1. 구독 방식은 일정한 지분을 가진 결제방식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인가? 적어도 유통사나 플랫폼 입장에서는 구독 서비스에 거는 희망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로 하여금 정기 번들링의 형태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더 많은 게임을 제공한다는 슬로건 안에는 불확실한 매출 볼륨을 정기적이고 고정적인 형태로 바꿈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구독 서비스의 확대가 개별 소프트웨어 판매와 상충하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특히 플랫폼 단위의 구독 서비스는 소비자의 결제를 플랫폼 단위에서 배타적으로 자사의 고정적 현금흐름으로 묶어낸다는 점에서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는 선택일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유통사가 제시하는 이득을 확인하기 어렵지 않다. 정기결제를 통해 출시되는 더 많은 게임들을 폭넓게 만나볼 수 있는 방식은 특히 다양한 게임들을 이른바 ‘찍먹’하고자 하는 게이머 입장에선 갈수록 개별가격대가 만만치 않게 올라가는 개별구매에 비해 효율적일 수 있다. 다만 이는 개별 게이머들의 성향에 의해 크게 호오를 탈 수 있는데, 이를테면 게임 하나에 집중하는 스타일의 게이머들에게는 별다른 메리트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용자들이 호/오라는 두 개의 입장으로 갈리는 상황에서 개별 판매와 구독이 동시에 존재하는 플랫폼 스토어는 그래서 한편으로는 소비자에 대한 세부 분류를 강화하는 가격 마케팅의 일환으로 판매정책이 세밀해지는 효과를 얻는다. 그 결과가 소비자로 하여금 어떤 게임을 선택하기 쉽게 하고, 또 제작자로 하여금 어떤 게임을 더 많이 / 더 오래 만들도록 하는지를 떠나서라면, 구독 서비스의 도입과 보편화는 게임결제양식의 한 축으로 나름의 자리를 구축할 수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2. 구독 서비스를 통해 게임제작자들은 기존보다 나은 개발환경을 얻게 될 것인가? 다만 제작자 입장에서라면 이야기는 조금 더 무거워질 수 있다. 당장 구독 서비스는 현재 한국에서 게임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결제방식인 부분유료결제 방식과 크게 상충하기 때문이다. 이미 게임 내에서 별도의 월정액 결제방식 등을 도입하고 있지만, 플랫폼 단위의 ‘구독’은 정기결제라는 방식보다는 이용자로 하여금 게임 선택의 폭 자체를 키워버리는 효과를 낳는다는 점이 핵심이기에 방식만 같을 뿐 다른 의미를 가진 개념이 된다. 게임을 선택한 뒤 그 게임에 정기결제를 넣는 방식은 일종의 매몰비용을 지속적으로 누적시키면서 이용자를 특정 타이틀에 고정시키는 효과를 낳지만, 정기결제가 먼저 이루어진 뒤에 서로 다른 게임제작사의 게임을 취사선택하는 방식은 정기결제로 만들어지는 이윤을 게임사가 아닌 플랫폼에 집중시킨다는 측면에서 부분유료결제와는 다른 효과를 낳는다. 적어도 부분유료결제로 운영되는 게임들이 구독 서비스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일은 보기 어려울 것이다. 제작자의 입장은 단지 부분유료결제라는 기존의 방식 하나에만 영향을 주는 것으로 국한되지는 않는다. 앱스토어 등을 통해 타이틀 판매 단위로 플랫폼으로부터 수익을 정산받는 개별판매에서도 수익구조의 변화에 따라 개발사들의 제작방식 또한 달라질 거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카테고리 내에서 다운로드/스트리밍되는 횟수나 총 플레잉타임을 기준으로 수익을 배분하는 방식이라면 구독서비스에 들어가는 게임들의 경우에는 카테고리 내에서 최초 선택될 수 있는 게임규칙이 무엇인가에 대한 심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아직 속단하기 이르지만, 적어도 이런 변화가 머지않아 여러 게임들에 나타날 것이라는 예상은 가능할 것이다. 대규모 부분유료결제가 아니더라도 소소한 인앱결제가 도입된 게임들의 경우에는 구독 서비스 안에서 비즈니스모델에 대한 재검토도 이루어질 것이다. 이용자가 사실상 무료라고 여기고 접근한 게임 안에서 추가적인 결제를 요구하는 순간을 맞을 때, 그는 기존의 다른 방식 – 그것이 free-to-play이건, 개별판매 방식이건간에 – 에 비해 더 쉽게 지갑을 열 것인가, 아니면 빠르게 다른 게임으로 갈아탈 것인가? 이런 고민들 또한 머지않아 게임규칙 안에 녹아들 것이고, 그 결과 또한 금새 시장에 출력될 것이다. 3. 구독 서비스는 게임플랫폼이라는 독자적인 양식에 변화를 일으킬 것인가? 주문형 비디오 플랫폼으로 구독결제 방식의 대명사가 되기도 한 플랫폼인 넷플릭스가 게임 구독 서비스에 도전한다는 소식은 여러모로 흥미로운데, ‘구독’이라는 개념을 게임과 TV라는 매체보다 더 상위에 있는 개념으로 이해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좀 뭉뚱그려보자면, 영상물을 시청하는 것과 게임을 선택해 플레이하는 것은 결국 정기결제를 통해 제공받는(큐레이션을 포함한) 범주 안에서 동일한 소비행위로 볼 수 있다는 결론이다. 이 지점에 대해서는 그러나 통일된 의견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영상물 시리즈나 영화 한 편을 지속적으로 반복해 시청하는 경우와 게임 하나를 붙잡고 업적 100%를 찍는 일을 같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적어도 게임에 비해서는 서로 다른 콘텐츠라도 비슷한 시청시간으로 구성되는 영화, 드라마에 비해 게임은 소비시간 측면에서도 게임마다 큰 진폭을 보인다. 이런 차이는 정말 ‘구독’이라는 결제방식 안에서 하나로 불릴 수 있는 만큼의 차이일까? 만약 충분히 구독이라는 이름으로 게임이 다른 매체와 묶일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때부터는 게임전용 플랫폼이라는 특수성이 보편성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이를테면 역으로 플레이스테이션 스토어 안에서 영상물 시리즈를 구독하거나 하는 일은 왜 또 불가능할 것인가? (한편으로는 컨트롤러라는 부가 인터페이스가 이미 마련되어 있는 게임플랫폼이 되려 범용성 측면에서도 나을 수도 있겠다.) 결국 여가시간의 활용이라는 공통의 시장을 두고 영상과 게임이라는 두 플랫폼이 격돌할 가능성이 앞선 가정으로부터 나오는 환경을 고려해볼 수 있게 된다. 방향은 예단하기 어렵지만, ‘여가의 정치경제학’을 고민해 볼 필요도 있다 부분유료결제라는, 한때는 뭐 이런게 있나 싶었던 결제방식이 보편화한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 방식의 도입은 모바일 디바이스와 같은 흐름을 타고 한편으로는 게임 대중화의 길을 트기도 했지만 동시에 pay-to-win이라는 지금까지도 많은 게이머들의 뒷목을 붙잡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음을 우리는 지난 몇 년간 경험해온 바 있다. 구독 서비스의 미래는 예단하기 어렵지만, 과거 부분유료결제와 확률형아이템이라는 결제방식의 변화가 가져온 게임 내부까지의 변화를 겪으며 우리는 다음에 올 결제양식의 변화에 대해서는 그저 시장의 흐름에 맡기기만 하는 것이 최선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노동과 생산의 영역에서 가격의 결정이 그저 시장의 힘에 의해서만 이루어짐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은 오늘날 최저임금제와 같은 여러 보완책들을 이끌어낸 바 있다. 아주 같은 맥락은 아니겠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소비와 이용의 차원으로 들어온 여가의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는 일련의 ‘여가의 정치경제학’과 같은 생각을 떠올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지연시간을 두고 벌이는 개발자와 이용자의 개선과 적응

    현대 게임 서버의 개발자들은 0.3초 지연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가정하고 게임 서버를 개발한다. 이부분을 명시적으로 정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0.2초~0.5초에서 지연이 발생했을 때도 자연스럽게 게임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설계해야 한다는 부분은 경험을 통해서나 혹은 선배 개발자들의 조언을 통해 이어져 내려오기도 한다. < Back 21 GG Vol. 24.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oungWook Oh Game enthusiast, game programmer, and historian of games. A growing interest in Korean games turned into a hobby of collecting and organizing materials, and has been steadily gathering and archiving them since 2006. Co-authored books including The History of Korean Games and Mario, Born in '81, and contributed as a developer to games such as Dungeon & Fighter, Acropolis, Pony Town, and Timeline Dungeon.

  • 문예진흥법 개정: 게임이 예술 되어 돈이라도 있고 없고

    예술인복지법이 언제 어떻게 개정될지는 알 수 없다. 앞서 말했듯 구체적인 논의가 아직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게임의 예술화에 있어서 한국은 이제 첫 번째 페이지를 연 것이고, 단순히 법 한두 개를 개정하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지속적인 업계 모니터링과 철학적 담론 탐색이 있어야 하며, 그 결과는 향후 여러 번의 개정으로 나타날 것이다. < Back 09 GG Vol. 22.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eonggap Hong Freelance writer—a job title suspected of being a synonym for "unemployed." Started out as a reporter at Ddanzi Ilbo, where broke the first story exposing the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s comment-manipulation operation. A lifelong gamer who wrote a first piece of game criticism in 2001—and is very glad it has since been lost.

  • [논문세미나] 디지털게임에 나타나는 알레아의 세 층위

    연구자인 임해량, 이동은은 알레아를 주술적 알레아, 시스템적 알레아, 영웅적 알레아 세 층위로 나누고, 그를 <하스스톤>의 일부 상황과 연결해 바라본다. 연구자들은 놀이가 가지는 우연성이 사행성 담론에 매몰되어 있음을 지적하며, 이것이 가지는 긍정적인 측면을 발굴해 내고자 한다. 즉 이 연구는 알레아를 새로이 탐색하려는 시도이다. < Back 17 GG Vol. 24.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ahin Park Interested in the boundary between the real and the virtual. Recently returned to a certain online game.

  • [Editor's View] 작동하는 세계를 곱씹는 놀이로서의 시뮬레이션

    장르로서의 시뮬레이션은 무엇인가? 를 정의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이자면, 저는 그것을 엄밀히 정의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다소 의문입니다. 시뮬레이션이라는 말은 애초에 모든 장르의 디지털게임에 녹아있는 원천 요소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2025년 GG의 마지막 테마로 선정된 시뮬레이션이라는 단어에 대해 우리는 개념어로 접근하기보다는 경험적으로 접근하고자 했습니다. < Back [Editor's View] 작동하는 세계를 곱씹는 놀이로서의 시뮬레이션 27 GG Vol. 25. 12. 10. 장르로서의 시뮬레이션은 무엇인가? 를 정의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이자면, 저는 그것을 엄밀히 정의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다소 의문입니다. 시뮬레이션이라는 말은 애초에 모든 장르의 디지털게임에 녹아있는 원천 요소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2025년 GG의 마지막 테마로 선정된 시뮬레이션이라는 단어에 대해 우리는 개념어로 접근하기보다는 경험적으로 접근하고자 했습니다. 이번 호는 게임분야에서 활용되는 시뮬레이션이라는 말의 여러 의미를 다각도로 탐색합니다. 아무래도 중심은 장르로서의 시뮬레이션을 표방한 게임들에 대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애초에 편집회의에서는 "왜 '미연시'에 시뮬레이션이 붙지?"와 같은 고민들이 오가곤 했습니다. 게임 제작자와 플레이어들은 왜 어떤 게임 디자인을 두고 시뮬레이션이라고 부르는가? 다른 매체들에서는 같은 고민을 하지는 않는가와 같은 개념들이 이번 호 기획의 기저에 깔려 있는 생각들이었습니다. 시뮬레이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여러 게임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자동화 시뮬레이션, 체험형 시뮬레이션, 운영과 연산의 재현이라는 디자인 그 자체, 혹은 그 디자인을 통해 재현된 무엇이 놀이로서의 순간과 놀이 이후의 삶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지를 고민하고자 했습니다. 더불어 올해부터는 게임제너레이션 필진들과 함께 하는 연말결산을 진행해 보기로 했습니다. GGOTY라는 조금은 유머섞인 이름으로 시작하지만, 한국어로 된 게임비평지가 전무한 상황에서 이 작은 시작이 몇년 뒤 어떻게 자리잡을지는 저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GG는 미약하게나마 시작했지만, 어느새 햇수로 5년차를 맞이하며 적어도 비평담론에의 시도가 짧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았음까지는 증명했습니다. 2021년에 처음 만들었던 1호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GG도 많은 변화들을 거쳤겠지요. 앞으로의 미래도 예상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이 흐름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내년 한 해도 GG와 함께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게임 인터페이스로서의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게임사회》 전시 리뷰

    ‘게임은 예술인가?’라는 질문이 다양한 담론장을 떠돌고 있다. 게임과 예술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행정과 법의 영역에서도 게임의 위상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히 오가는 중이다. (물론 예술가, 행정가, 정치인, 사업가, 그리고 게이머 각각의 입장과 목표는 모두 다르겠지만) 이러한 정세에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게임 주제전은 중요한 기점이 될 것이기에 일단 《게임사회》라는 전시는 주목할 만하다. < Back 게임 인터페이스로서의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게임사회》 전시 리뷰 12 GG Vol. 23. 6. 10. ‘게임은 예술인가?’라는 질문이 다양한 담론장을 떠돌고 있다. 게임과 예술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행정과 법의 영역에서도 게임의 위상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히 오가는 중이다. (물론 예술가, 행정가, 정치인, 사업가, 그리고 게이머 각각의 입장과 목표는 모두 다르겠지만) 이러한 정세에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게임 주제전은 중요한 기점이 될 것이기에 일단 《게임사회》라는 전시는 주목할 만하다. 국가가 운영하는 미술 기관에서 게임을 예술적 대상으로 직접 다루고, 나아가 게임 그 자체를 전시하는 것은 공식적인 선포가 아닐지라도 담론적 차원에서 어떠한 인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변기라도 미술관에 가져다 놓으면 미술 작품이 된다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처럼 게임을 미술관에서 전시했다는 것은 분명히 그것만으로도 중요한 사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미술관에 전시되지 않더라도 게임은 이미 예술(적)이다. 사실 더 중요한 질문은 ‘왜 게임이 예술이 되어야 하는가’ 같은 것이 아닐까. 예술이라는 영역에 게임을 받아들이는 것은 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예술의 입장과 게임의 입장은 또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전시 《게임사회》를 돌아보면서 이러한 질문에 답을 찾아보려한다. * 《게임사회》 전시 포스터 지금은 당연히 예술의 영역이라고 여겨지는 사진이나 영화 같은 매체들도 예술의 범주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저항이 있었다. 사진의 경우를 언급하고 넘어가면, 사진은 예술가 주체보다 기계가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사진 이미지의 기계적인 뚜렷함이 회화에 비하여 사진을 예술적이지 못하게 만든다는 인식이 팽배하기도 했다. 그래서 예술적 목적으로 사진을 다루는 작가들은 사진을 그림처럼 보이게 만들기 위해 연초점으로 사진의 선명도를 낮추거나 일부러 번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잘 알려져 있듯 사진은 회화와 결부된 특성들을 끊어내면서 독자적인 예술의 영역으로 인정받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장르의 고유성과 구분 자체가 모더니즘적이라는 것이지만) 그런 시기를 거쳐 사진이 예술의 맥락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지기 시작한 중요한 계기는, 지금 이 글에서 다루는 ‘전시’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사진이 미술관에 전시될 수 있는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시를 위해서 사진은 그 인터페이스의 구조를 변화시켰다. 사진은 원래 손에 들고 볼 수 있는 작은 액자나 책자 같은 인터페이스를 통해서 감상하는 매체였다. 그러나 사진이 예술로 편입되는 과정과 함께 기술이 발달하여 대형 필름을 통한 대형 인쇄가 가능해졌고, 그로 인해 사진도 다른 예술 매체들처럼 크게 벽에 걸어서 전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손에 들고 혼자 보는 사진이 아니라, 벽에 걸어 함께 볼 수 있는 사진이라는 인터페이스 차원의 변화는 사진이 예술로 받아들여지는 중요한 계기 중 하나가 된다. 무엇이든 미술관에 전시하면 다른 존재로 인식되는 레디메이드식의 위상 변화뿐만 아니라, 이렇게 실제로 인터페이스 차원의 변화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짚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점은, 그런 변화가 그 매체를 미술관에 전시하면서 발생하는 인터페이스 차원의 불화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손에 들고 보는 사진은 전시하기 적합하지 않은 매체였기 때문에 변화가 촉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게임이 미술관에 전시될 때는 어떠한가. 오락실이나 PC방, 혹은 집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경험과 전시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경험은 크게 다르다. 애초에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의 목적이 다른 점도 짚어야겠지만, 게임을 ‘전시’하였을 때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점들이 있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과 보는 것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근본적인 관람성의 문제부터, 플레이 시간의 문제, 나아가 게임 컨트롤러 차원의 인터페이스를 관객들에게 어떻게 제시할 것인가 등등. 이런 것들은 단지 화이트큐브 전시장을 오락실이나 PC방을 연상시키는 공간으로 디자인해서 해결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다. 애초에 미술관은 게임을 전시하기에 적합한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있지 않다. 더 근본적으로 게임은 전시되기 위해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전시에 적합하지 않은 매체를 전시하려고 하면서 발생하는 인터페이스 차원의 문제를 단순한 불화로 보지 않고, 예술과 게임 각각에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으로 파악할 수는 없을까. 여기에서 인터페이스는 단지 게임 컨트롤러 같은 하드웨어 장치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서로 다른 것이 마주한 면(face) 사이(inter-)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생각해 보자. 《게임사회》는 이러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장을 열어낸다. 게임과 게임적인 예술 작업을 함께 전시하고, 무엇보다 하나의 게임을 전시할 때에도 서로 다른 인터페이스 사이를 오갈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전시는 인터페이스 차원에서 단지 보기 좋고, 가장 편안하고, 잘 작동하는 방식을 선택하지 않는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대부분의 전시된 게임에 키보드와 마우스, 게임패드, 조이스틱 같은 전형적인 게임 인터페이스와 함께 접근성 컨트롤러를 함께 배치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실질적인 배리어프리 차원에서도 중요하겠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그런 문제에만 머물지 않는다. 일반적인 게임 컨트롤러가 익숙한 사람들에게 접근성 컨트롤러는 오히려 불편한 인터페이스가 된다. (아예 게임 컨트롤러가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일반적인 게임패드 역시 조작이 쉽지 않은 무언가라는 점도 짚어야 한다.) 이런 불편함이 오히려 인터페이스라는 문제 자체를 다시 감각할 수 있는 전시의 중요한 형식이 되는 것이다. 《게임사회》의 〈심시티 2000〉 전시 전경 게임과 게임적인 예술 작업을 오가는 전시 구성도 비슷한 맥락에서 서로 다른 것들 사이의 교차(inter-)의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플라워〉 같은 제노바 첸의 게임을 플레이하다가 이어지는 공간 안쪽으로 들어서면 하룬 파로키의 〈시리어스 게임〉과 〈평행〉 시리즈를 만나게 되는 식이다. 하룬 파로키는 게임과 현실의 관계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포착하고 있기에 그 작업의 내용에서도 전시의 기획적 맥락을 심화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지금 글의 맥락에서 파로키가 더욱 중요한 지점은, 그가 영화라는 매체를 미술관에 들여오면서 발생하는 인터페이스 차원의 변화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수 있게 만든 주요 작가 중 한명이라는 점이다. 하나의 영상을 하나의 스크린을 통해 단선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직접 서로 다른 화면들 사이를 오가면서 감상하는 멀티채널 작업은 영화를 극장이 아니라 전시장에 옮겨오면서 가능해진 인터페이스 차원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전시된 파로키의 작업들도 시리즈를 멀티 채널처럼 설치했고, 특히, 그의 또 다른 작업 〈인터페이스〉의 경우에는 자신이 찍었던 영상과 그것을 편집하는 인터페이스의 모습을 2채널 영상으로 담아내면서 무빙이미지에서 인터페이스 문제를 본격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영역을 열어내었다. *하룬 파로키, 〈시리어스 게임 I-IV〉, 2009-2010, 다채널 비디오 설치, 컬러, 사운드, Harun Farocki GbR 소장. 영상스틸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게임은 예술인가’ 당연히 예술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질문에 그냥 답을 해버리는 것보다 이러한 질문을 통해서 예술이라는 범주와 게임이라는 범주를 함께 성찰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게임적인 것을 통해서 예술의 범주와 그 규정에 균열이 일어나야 이러한 질문에 의미가 있을 것이다. 사진과 미술이 교차되면서 제도적 분열뿐만 아니라, 인터페이스 차원의 변화가 발생했던 것처럼. 게임 역시 미술과 교차되고, 미술 제도가 게임을 받아들이면서 서로의 영역에 변화를 촉발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게임의 인터페이스로서의 미술관의 문제는 게임과 미술 각각의 형식적인 문제에서 더 나아갈 지점이 있다. 미술관 제도가 게임이라는 기존과 다른 형식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업데이트되어야 하는 측면들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술관은 전시뿐만 아니라 소장을 위한 기관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게임이 미술계에서 중요하게 논의되기 시작한 기점은 이번 전시 맥락에서도 중요하게 언급되는 2010년 뉴욕 현대미술관이 게임을 소장품으로 받아들인 사건이다. 그러나 역사로 기록할 만한 문화적 산물로서의 게임을 소장하려면, 단지 담론적 차원의 투쟁뿐만 아니라, 기존의 미술관 소장품 시스템에 큰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구체적인 물질이 아니라, 코드로 이루어진 소프트웨어를 소장하는 문제는 미술관의 기존 소장품 시스템과 불화한다. (심지어 게임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인터페이스의 결합인 경우가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더) 이렇게 게임은 미술관이라는 인터페이스 자체를 성찰하고 업데이트할 계기를 만들 타자가 될 수 있다. 게임을 통해서 변화하는 미술관의 모습을 계속 상상한다. Tags: 전시, 미술관, 게임사회, 국립현대미술관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큐레이터, 미술비평가) 권태현 글을 쓰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예술계에서 활동하지만 쉽게 예술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것들에 항상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예술 바깥의 것들을 어떻게 예술 안쪽의 대상으로 사유할 수 있을지 탐구한다. 정치적인 것을 감각의 문제로 파악하는 관점에 무게를 두고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7000eichen@gmail.com )

  • [논문세미나] ‘We Will Take Your Heart’: Japanese Cultural Identity in Persona V

    본 논문은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의 게임, 젠더 연구자인 로렌스 허프스(Laurence Herfs)가 일본 학술지 ‘Replaying Japan’에 2021년에 투고한 논문이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외부자의 시선(특히 서양)에서 일본 게임을 일본 학술지에서 다룬다는 점에서 흥미로웠기에 소개해보고자 한다. < Back [논문세미나] ‘We Will Take Your Heart’: Japanese Cultural Identity in Persona V 18 GG Vol. 24. 6. 10. ‘We Will Take Your Heart’: Japanese Cultural Identity in Persona V 본 논문은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의 게임, 젠더 연구자인 로렌스 허프스(Laurence Herfs)가 일본 학술지 ‘Replaying Japan’에 2021년에 투고한 논문이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외부자의 시선(특히 서양)에서 일본 게임을 일본 학술지에서 다룬다는 점에서 흥미로웠기에 소개해보고자 한다. 본 논문은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의 정치 부패, 사회문화적 문제와 불안으로 시작하여 국가 브랜딩으로 이어지는 문화적 정체성을 <페르소나 5>(이하 페르소나 5)를 통해 살펴본다. <페르소나> 시리즈는 <진여신전생> 시리즈의 외전에 해당하는 작품이었지만, 사회문화, 철학, 심리학적 소재를 테마로 청소년이자 학생인 캐릭터를 내세워, 이들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조로 인기를 얻어 시리즈가 된 JRPG 작품이다. 이러한 특징처럼 페르소나 5 또한 도쿄를 배경으로 자경단이자 학생인 주인공 일행이 일본 내 사회문화적 불안과 부패를 상징하는 적들을 물리치고 국가를 개혁하는 상당히 무거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가볍고, 스타일리쉬하고, 위트있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본격적으로 현실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은 이 논문이 나올 수 있던 중요한 배경이기도 하다. * 페르소나5, 출처 – 플레이스테이션 스토어 일본의 부패를 탐험하며 페르소나 5는 주인공(플레이어)이 유력 정치인의 여성 폭행을 막았다는 이유로 보호 관찰을 받은 후 도쿄로 전학 가게 되며 시작된다. 이후 플레이어는 ‘죄수(しゅうじん; 囚人)’와 동음이의어인 ‘슈진(しゅうじん; 秀尽)’ 학원 고교에 전학을 가게 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슈진 학원 고교는 마치 어두운 현실을 학교라는 작은 사회로 압축하고 있는데, 여기서 처음으로 학생들을 언어, 신체적으로 학대하는 도덕적으로 부패한 교사(어른)인 ‘카모시다 스구루’를 마주한다. 페르소나5는 이전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특정 개인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이형의 인지 공간(팰리스)을 통해 현실 세계를 표현한다. 이러한 장치들을 통해 작중 튜토리얼 파트인 도입부에서 플레이어는 부패한 현실 속 두 명의 희생자인 ‘사카모토 류지’(학생 체벌)와 ‘타카마키 안’(성폭행과 자살)과 팀을 이루어 카모시다의 팰리스로 들어가 반항 정신의 인지적 표현인 ‘페르소나’와 계약을 맺고 카모시다와 싸우게 된다. 이러한 도입부처럼 게임 스토리는 부패 인물을 제시하고, 게임은 일본 사회 속 다양한 형태의 부패, 학대, 불의 등을 팰리스로 표현하고 이곳을 탐험하고 문제가 되는 부패 인물을 타도하는 구조로 진행된다. 또한 플레이어는 학교가 위치한 도쿄 도심을 탐험하면서 사람들의 생각과 대화를 엿볼 수 있는데, 여기서도 사회에 대한 불안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저자가 주목한 페르소나 5 속 비판점은 ‘자본주의의 과잉’이다. 부패 인물들은 더 많은 부, 명예, 권력을 얻기 위해 집착한다. 페르소나 5는 사회적 긴장과 불안에 대한 이미지를 부패 인물에 위치시킴으로써 다루고 있다. 페르소나5는 이를 해소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극복의 서사를 제공한다. 이처럼 페르소나 5는 일본 수도 도쿄의 사회적 불안과 부패한 인물상을 이미지와 서사로 제시하며, 이를 극복하여 일종의 해방감을 제공한다. 순응하는 침묵 문화 속 일본 청년 문제 페르소나 5는 일본 사회의 관습적 규범인 ‘일본다움’에 대한 메시지나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다. ‘일본다움’은 집단적이고, 조화를 추구하며, 위계적 관계를 통해 ‘높은 의식 사회’로 묘사된다. 달리 말하면, ‘올바른 것’으로 규정된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압박은 게임 곳곳에 존재한다. 그러나 게임은 순응, 위계질서와 같은 ‘일본다움’이 실제로 부패와 고통으로 이어질 뿐이라고 주장한다. 즉, 개인주의와 반항을 상징하는 ‘마음의 괴도단’은 일본식 순응주의와 이 사고방식의 정반대를 상징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페르소나 5의 중요한 시스템은 플레이어가 게임 속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그들의 어려움을 도와야 하는 ‘코옵(Co-op)’이다. 모든 코옵은 어떤 식으로든 착취, 괴롭힘, 무시당하는 것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모든 이야기에서 일본인은 자신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자 고군분투하고, 순응하는 침묵 속에서 고통받으며, 타인이 자신을 이용하도록 허락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여기서 침묵을 깨기 위한 은유적 장치가 ‘페르소나’이다. 새로운 멤버가 ‘마음의 괴도단’에 합류할 때마다 반항 정신의 인지적 표현인 ‘페르소나’와 계약을 맺고 깨어난다. 가면을 뜯는 ‘페르소나’ 등장 연출은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자아의 정체화를 반영하기도 한다(Lopez & Marquez, 2023). 그러나 저자는 이것이 일본의 순응적인 페르소나 구조인 ‘혼네(本音; 속마음)-타테마에(建前; 겉마음)’의 분열적 알레고리로 보았다. 즉, 페르소나 5는 ‘혼네’를 받아들여야 억압 구조 안에서 진정한 자아실현이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페르소나 5는 청년들이 어른들의 순응 압박과 그에 따른 ‘타테마에’에 고통받는 것으로 묘사하지만, 진정한 병리는 청년들의 부담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중 등장하는 정치인 ‘요시다 토라노스케’는 불안정한 일본 청년들에 대해 “우리 사회가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많은 청년이 조용히 고통받고 있습니다. 일자리, 안전, 저축이 부족합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2010년대 초 일본 언론이 제시한 ‘청년 문제(若者問題)’라는 개념에서 비롯된 일본 청년층의 ‘도덕적 공황’을 둘러싼 대중 담론을 의미한다. 페르소나 5에서는 이런 문화적 불안을 서사로 풀어내고 있다. 예를 들어, 주인공 일행인 ‘사쿠라 후타바’는 후술할 ‘시도 마사요시’에 의한 어머니의 죽음 이후,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된 오타쿠이자 히키코모리이다. 그러나 후타바는 어머니의 복수를 하는 코옵과 ‘마음의 괴도단’과의 유머러스한 인터랙션과 에피소드를 통해 구원받고 점차 다시금 사회에 적응해 간다. 페르소나 5는 이러한 방식을 통해 일본 청년 문제를 둘러싼 문화적 불안을 풀어나간다. * 사쿠라 후타바 연출, 출처 – https://bbs.ruliweb.com/game/1074/read/9408327 ? 페르소나 5는 ‘순응하는 일본인 스테레오타입’을 극한까지 드러냄으로써 문화적 불안을 비판한다. 이는 스토리 막바지에 이르면서, 일본인들의 순응과 침묵을 통해 국민이 다시는 스스로 생각할 필요가 없도록 집단적 전체주의를 주장하는 흑막 정치인 ‘시도 마사요시’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이처럼 게임에서 나타나는 ‘일본다움’의 담론적 이미지는 문화적 스테레오타입을 따른다.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본 사회를 묘사하는 이 게임은 미디어 속 일본의 스테레오타입과 일치시키며 동시에 비판한다. 이러한 점에서 ‘마음의 괴도단’은 청년 문제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개성과 ‘혼네’인 페르소나를 통해 ‘타테마에’를 거부하는 성취자로 그려진다. 쿨 재팬 브랜딩으로서의 페르소나 5 페르소나 5의 중요한 배경 중 하나는 제작 초기 시기인 2011~2014년 사이의 미디어 열풍 속 동일본 대지진과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재등장을 다룬다는 점이다. 이는 흑막인 ‘시도 마사요시’로 그려진다. ‘마음의 괴도단’이 초기에 만난 부패 인물 중 상당수 또한 현 체제를 전복하려는 시도의 정치적 의도와 관련되어 있다. 그는 이 과정에서 국가 개혁에 몰두하며 민족주의를 표출한다. 이는 실제 일본 최대 극우 단체인 일본회의가 주장하는 민족주의와 유사하다. 페르소나 5는 시도를 일본 정치의 랜드마크인 국회의사당과 같은 형태의 팰리스로 표현하여 일본 정치의 상징으로 묘사한다. 나아가 시도의 팰리스는 붉은 바다 속 침수된 도쿄를 항해하는 호화 크루즈를 배경으로 한다. 이러한 이미지는 동일본 대지진에 의한 쓰나미를 은유한다. 이처럼 페르소나 5는 두 가지 재해를 혼합하여, ‘시도 마사요시’를 당시 동일본 대지진 시기의 아베 신조의 정치적 이미지와 수사를 강조한다. * 시도 마시요시의 팰리스, 출처 – https://macco-poke.hateblo.jp/entry/persona5R/7_1에서 수정·사용 그러나 저자는 페르소나 5가 반드시 일본 정치의 비판만을 내포하진 않는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일본의 기업 상품 측면에서 동일본 대지진 이후 정부의 국가 재건을 위한 ‘소프트 파워’로서의 ‘쿨 재팬’ 정치 의도로 보았다. 일본은 ‘쿨’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생산하고 강화하기 위해 애니메이션이나 게임과 같은 미디어 문화 산업에 의존해왔다(Tamaki, 2019). 이 맥락에서 페르소나 5는 일본과 ‘일본다움’ 브랜딩에 기여한다. 플레이어는 페르소나 5를 플레이함에 따라 일종의 가상 여행을 하며, 도쿄를 체험하게 된다. 이를 통해 플레이어는 ‘일본다움’의 물질적 형태에 익숙해진다. 즉, 페르소나 5의 정치, 권력 구조에 대한 비판, 권위에 대한 반항적 태도, 사회적 개혁에 대한 요구는 단순한 사회 비판이 아닌, 그 자체로 쿨 재팬 상품이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페르소나 5에서는 국가 브랜딩이 추구하는 것처럼 이미지에 맞지 않는 불편한 요소는 배제되었다. 일본 내 인종, 젠더, 퀴어 문제이다. 특히 밀러(Miller, 2011a)가 쿨 재팬이 추구하는 이미지가 소프트 포르노그라피적 표상에 의존한다고 지적했듯이, 게임 내에서 성적 대상화한 것을 비판하면서도 게임 내 불필요한 성적 대상화가 계속해서 존재했다. 안의 괴도복이나 관련된 서사는 불필요한 성적 대상화의 대표적 사례다. 이러한 측면은 쿨 재팬 이데올로기의 상품화된 여성성을 보여준다. 쿨 재팬의 재현은 여성을 가부장적 통제와 욕망의 대상으로 환원시킨다(Miller, 2011b). 즉, 여전히 페르소나 5는 여성들이 자신을 억압하는 사람들에게 반항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는 동시에, 여전히 일본의 가부장적이고 성적인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 타카마키 안 괴도복, 출처 – https://asia.sega.com/persona-remaster/p5r/kr/ 마지막으로 페르소나 5는 쿨 재팬의 비서양적(non-Western)이면서도 비아시아적(un-Asian)인 독특한 이중 정체성을 반영한다. 게임은 일본 사회를 배경으로 하지만, ‘마음의 괴도단’의 페르소나는 유럽 문학 속 영웅 또는 무법자에 기반한다. 서구 영웅의 반항적 개인주의라는 서양적 가치는 일본이라는 비서구적 세계에 통합된다. 이처럼 페르소나 5가 제시하는 일본이라는 브랜드는 서양적 가치와 일치하는 아시아지만 아시아가 아닌 역설적이고 독특한 존재이다. 결국 이 게임은 극우주의에 반대하면서도 동시에 여전히 일본에 대한 신화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려는 쿨 재팬에 공모하고 있다. 결론을 대신하여 저자는 결론적으로 페르소나 5가 예술로서 사회적 비판과 기업의 이익 사이에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즉, 페르소나 5는 정치적 부패, 사회적 불안 등을 문화적 표현으로 제시하면서도, ‘쿨 재팬’ 국가 브랜딩의 원천이 된 문화적 인공물이기도 하다. 페르소나 5가 찬사를 받은 이유 중 하나는 이전 시리즈들보다 직설적으로 일본 사회의 현실을 비추고, 비판하는 상징과 스토리, 은유에 있다. 물론 게임 내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문제(청년 문제, 정치 부패 등)가 단순히 일본에 국한된 것이 아니기에, 많은 타국 게이머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페르소나 5는 이 문제들에 대해 진보적이고, 성찰적인 스탠스를 보여준다. 그러나 본 논문은 일본 밖 외부자의 시선에서 더 깊은 곳을 조명하고 있다. 이 게임이 갖는 정치적 의미, 의도는 일본 외부, 즉, 타자에게 보이는 일본의 국가 정체성을 함축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게임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여전히 ‘혼네-타테마에’ 정체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저자가 지적하듯이, 페르소나 5는 여전히 ‘일본다움’을 내포한다. 다시금 타국 게이머들에게 일본의 보수적 가치를 강조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게임을 즐기는 데에 있어, 이러한 측면을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모든 게임이 이러한 가치를 띠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 논문이 주장하는 궁극적인 바는 아마 게임은 여전히 ‘국경’에서 벗어나지는 못하는 미디어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참고문헌 Herfs, L. (2021). “‘We Will Take Your Heart’: Japanese Cultural Identity in Persona V”. REPLAYING JAPAN, 3, 43-54. Lopez, A.A.L. & Marquez, L.P. (2023). Persona 5 Royal as Philosophy: Unmasking (Persona)l Identity and Reality. In: Kowalski, D.A., Lay, C., S. Engels, K. (eds) The Palgrave Handbook of Popular Culture as Philosophy. Palgrave Macmillan, Cham. Miller, L. (2011a). Cute Masquerade and the Pimping of Japan. International Journal of Japanese Sociology. 20. 18 – 29. Miller, L. (2011b). Taking girls seriously in ‘cool Japan’ ideology. Japan Studies Review. Florida: Florida International University, 15, 97-106. Tamaki, T. (2019). Repackaging national identity: Cool Japan and the resilience of Japanese identity narratives. Asian Journal of Political Science, 27(1), 108–126. Tags: 페르소나, 쿨재팬, 오리엔탈리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수진 게임연구에 발을 들인 대학원생입니다. 지금은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첨단종합학술연구과에서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최근엔 게임을 매개로 한 다양한 게임 경험과 일본 내 서브컬처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글 쓰는 건 여전히 어렵습니다.

  • ‘보는 게임’ 제작의 현장을 찾아서 - ‘LCK’ 세계화의 주역, 라이엇게임즈 코리아 진예원 프로듀서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압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이스포츠 리그는 라이엇 게임즈의 LCK (League of Legends Champions Korea)일 것이다. LCK는 국내와 해외 등지의 LOL 게이머들과 프로 선수들의 팬덤을 아우르는 최대의 축제이다. 이 축제에서 관객들은 경기를 관전하는 짜릿함과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린다. 이렇게 LCK는 게임이 가져다 주는 재미를 끊임없이 확장해나가고 있다. 특히 지난 2020년 롤드컵 결승은 미국 방송계의 아카데미상이라고 할 수 있는 에미 (Emmy) 상을 거머쥐어 그 저력을 톡톡히 증명해내었다. 이번 기사에서는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에서 LCK 프로듀싱 전반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진예원 PD를 만나 LCK 제작의 비화를 듣는 것은 물론 이스포츠의 전망까지 살펴보도록 할 예정이다. < Back ‘보는 게임’ 제작의 현장을 찾아서 - ‘LCK’ 세계화의 주역, 라이엇게임즈 코리아 진예원 프로듀서 01 GG Vol. 21. 6. 10.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압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이스포츠 리그는 라이엇 게임즈의 LCK (League of Legends Champions Korea)일 것이다. LCK는 국내와 해외 등지의 LOL 게이머들과 프로 선수들의 팬덤을 아우르는 최대의 축제이다. 이 축제에서 관객들은 경기를 관전하는 짜릿함과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린다. 이렇게 LCK는 게임이 가져다 주는 재미를 끊임없이 확장해나가고 있다. 특히 지난 2020년 롤드컵 결승은 미국 방송계의 아카데미상이라고 할 수 있는 에미 (Emmy) 상을 거머쥐어 그 저력을 톡톡히 증명해내었다. 이번 기사에서는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에서 LCK 프로듀싱 전반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진예원 PD를 만나 LCK 제작의 비화를 듣는 것은 물론 이스포츠의 전망까지 살펴보도록 할 예정이다. 편집장: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진예원: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에서 이스포츠 브로드캐스터 및 글로벌 프로듀서를 담당하고 있는 진예원이다. 주요 업무는 LCK 글로벌 영문 방송을 총괄하는 것이다. LCK는 중국어나 영어 이외로도 6개 국어로 진행되고 있다. 각 방송이 원활하게 제작, 상영될 수 있도록 관련 업무를 조율하는 코디네이터 일을 함께 담당하고 있다. 편집장: 현재 이스포츠가 대중문화로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은 무엇인가? 또 이스포츠만의 독특한 특색이라면 어떤 것이 있나? 진예원: 이제 이스포츠는 단순히 게임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종합적인 미디어 엔터테인먼트로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관객층의 변화에서 가장 뚜렷이 읽어낼 수 있다. 과거 롤드컵의 주 시청자는 리그 오브 레전드를 플레이하고 있는 실제 게이머가 많았다. 이 시청자들은 게이머이자 시청자이다. 프로 선수의 수준 높은 게임 플레이를 보면서 열광하는 동시에 프로 선수의 플레이를 자신의 게임에 접목시켜 보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리그 시청에 새로 유입되는 층은 좀 다르다. 이 시청자들은 본인이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지 않고도 리그 자체를 즐겨 보시는 분들이다. 축구를 직접 하지 않아도 월드컵 시청을 즐길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월드 챔피언십 같은 대형 이벤트를 제작할 때는 이 점을 특히 유의한다. 게임 중계라는 기본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스펙터클한 연출을 통해 시각적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한다. 이스포츠의 또 다른 독특한 점이라면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흐려졌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선수분들도 스트리밍과 다큐 제작 등 콘텐츠 생산을 하고 있고 이런 콘텐츠들을 기반으로 2차, 3차 생산을 하는 열정적인 팬분들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여 만들어내는 콘텐츠 또한 이스포츠 콘텐츠의 일부로 포함할 수 있겠다. 편집장: 국내와 해외 방송을 동시에 관리하며 양쪽의 방송 콘텐츠와 팬덤의 반응을 꾸준히 지켜보고 계시다. 국내와 해외 방송에 차이가 있는지? 각 방송에 대한 반응은 다른 편인지? 진예원: 국내 시청자들의 경우 주로 LCK를 시청하기 때문에 LCK 중심의 피드백이 많다. 그런데 해외 시청자들은 LCK뿐만 아니라 여러 리그를 함께 시청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대형 커뮤니티인 레딧(reddit)같은 경우 리그 오브 레전드 커뮤니티에서 모든 리그에 대한 정보며 하이라이트 영상, 게임 분석 등을 전부 수용한다. 팬덤의 성향 또한 차이가 나는 편이다. 국내 팬덤의 경우 자신이 응원하는 특정한 팀이나 선수를 보러 경기를 시청한다. 해외 팬덤은 프로 게임 경기 자체의 수준높은 플레이 자체를 즐기는 경향이 있다. 캐스팅에서도 국내와 해외의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캐스터들은 플레이에서 주목하는 요소가 각각 다르다. 동일한 플레이를 봐도 다른 관점에서 플레이를 보기 때문이다. POG 노트를 할 때 한국과 중국 등 다양한 해설자가 참여하고 있다. 영어 방송 캐스터는 게임 플레이의 흐름에 집중해서 승리로 가는데 실질적인 기여를 한 선수에 주목한다. 반면 국내 캐스터는 슈퍼플레이나 한타 싸움에서의 영웅적인 활약에 좀 더 집중하는 편이다. 또 해외 캐스터분들은 국내 시청자들이 보기에 당연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부분에 코멘트를 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겨울 시즌 게임에서 날이 너무 건조해서 커다란 가습기를 몇 대씩 가동했던 적이 있었다. 국내 팬분들은 ‘큰 가습기를 쓰는구나’, 하고 넘어가는걸 해외 팬분들은 ‘저 증기는 뭐냐’, ‘선수 귀에서 김이 나온다’, 하면서 정말 재밌어하셨다. 이런 한국만의 맥락을 캐스터분들께서 설명해준다. 국내 선수들이 하나같이 이마를 가리는 앞머리 모양을 하고 뿔테안경을 쓰는데, 왜 한국 사람들은 스타일이 비슷한지에 대한 코멘트를 해주시기도 한다. 팬의 입장에서 궁금하고 또 따라해보고 싶은, 그런 흥미로운 문화로서 한국 문화가 자연스럽게 섞여서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이스포츠 종주국이 갖는 장점이 아닐까? 편집장: 이스포츠 방송 제작에 대해 좀 더 묻겠다. 이스포츠에 있어 게임 화면을 구현한다는 것이 게임 종목에 따라 달라지나? 이를테면 리그 오브 레전드와 배틀그라운드를 연출하는 것에 있어서 차이가 있나? 진예원: 리그 오브 레전드의 경우, 초창기와 현재의 관전 모드는 많이 다르다. 초창기 중계가 다양한 카메라 각도를 활용하여 게임을 생동감 있게 보여주었다면 현재 중계는 챔프의 등 뒤에서 게임을 보는 구도를 쓰는 등, 마치 애니메이션 같은 연출을 하고 있다. 배틀그라운드와 같은 FPS 게임은 총과 칼을 쓰는 등 게임의 룰을 몰라도 누구나 상황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을 만큼 직관적이다. 반면 리그 오브 레전드는 다양한 챔프와 스킬, 아이템이라는 요소가 있어 직관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그 요소들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운용하는 과정에서 선수 개인의 게임 플레이 특징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이스포츠로서의 배틀그라운드는 접근성은 좋되 스펙터클은 약한, 넓고 얕은 게임이라 할 수 있겠다. 또 옵저버의 영향도 있겠다. LCK에는 옵저버 팀이 있는데 한 게임을 여럿이서 지켜보며 적절한 화면을 나누는 방식으로 운영 중이다. 옵저버 팀은 준프로급 실력을 갖춘 분들로 구성되어있다. 옵저버 팀은 맵 곳곳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싸움을 추적하고 경기의 큰 흐름에서 승패에 결정적인 기점이 되는 장면을 잡아내야 한다. 이를 해내려면 반드시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한다. LCK 옵저버 팀의 실력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한다. *진PD는 2020 WORLDS FINAL 제작에 참여하며 에미상 스포츠부문을 수상하는 커리어를 쌓기도 했다. 편집장 : 지난 LCK 결승전은 코로나 감염 방지를 위해 무관중으로 진행되었다. LCK의 결승 무대가 중요한 행사인 만큼 제작자로서 많이 허전하지는 않았나? 진예원: 코로나 이후로 대규모 현장 행사에 제약이 걸린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지난 LCK 결승전을 돌이켜보면 오로지 무관중 상황이어서만 할 수 있는 다양한 연출을 새로이 시도해볼 기회가 되었다. 이를테면 AR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하면서 도시에 떠있는 스튜디오에서 경기를 하는 연출을 했다. 가상과 현실이 절묘하게 섞여있는 독특한 연출을 새로 시도해볼 수 있었다. 또 지난 결승에서는 LCK 영어방송 최초로 분석 방송과 프리쇼를 진행하고, 프리쇼에도 조영길 캐스터를 섭외하는 등 콘텐츠를 다양하게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다. 결승 게임이라는 스펙터클을 제공하기는 어려웠지만 보다 풍성해진 콘텐츠 통해 시청자에게 새로운 종류의 만족감을 드릴 수 있었다. 오히려 무관중 상황이었기에 제작 측면에서 다르게 생각하고 시도할 수 있는 부분이 늘어나기도 했던 셈이다. 특히 지난 LCK 결승 오프닝 무대에서는 TFT 모바일 광고였던 ‘두둥등장’ 영상을 방영하기도 했는데, 국내와 해외 안팎으로 많은 분들께서 좋아해주셨다. 편집장: 다음은 조금 씁쓸한 질문일 수도 있겠다. 현재 이스포츠에서 부동의 1위는 LCK지만 그 위상이 예전같지 않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현장에서도 이런 반응을 느끼는지? 진예원: 전반적으로 다른 리그의 퀄리티가 상향평준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LCK의 위상이 예전같지 않다는 평가가 타당한지는 잘 모르겠다. 재작년까지도 그런 위기감이 있었지만 작년 경기때는 LCK만의 위상을 잘 보여주었다. 다른 지역, 특히 중국의 자본력이나 지원에 비하면 우리는 단일 국가 단위이다.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이만한 성과를 거둬나가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편집장: 이스포츠 산업에서는 리그 오브 레전드가 명실상부한 1위이다. 그런데 리그 오브 레전드의 독주도 벌써 10년이 넘어가고 있다. 게임에도 수명이 있다. 이 인기는 얼마나 갈 것이라고 예상하나? 진예원: 참 어려운 문제다. 이스포츠와 게임 업계의 특성상 변화가 빠르고 또 변화의 양상을 예측하기도 어렵다. 모바일 이스포츠도 성장하는 중이고 모바일이 언제 PC를 넘어설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떤 장르의 게임이 언제 개발되는지, 그리고 그 게임이 이스포츠 종목으로 적합한지 여부에 따라서도 이스포츠 시장은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에 대한 위험은 언제나 짊어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리그 오브 레전드 안팎으로 이 게임을 오래 지속하려는 노력들이 끊임없이 있어왔다. 라이엇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게임에 지속적인 리뉴얼을 해나가고 있다. 새로운 챔프들을 업데이트하는가 하면 리그 오브 레전드 세계관에 기반한 여러 파생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만화 등으로 확장을 도모하고 있다. KDA는 리그 오브 레전드 아이피를 확장하여 케이팝과도 연계한 좋은 사례이다. TFT와 같은 전략적 팀전투도 이스포츠화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 바깥을 살펴보면 이스포츠를 기반으로 한 여러 제도들이 해외를 중심으로 생겨나고 있다. 대학에 이스포츠 전공이 생기는가 하면 칼리지 이스포츠의 형태로 지역 리그가 형성되기도 한다. 이러한 기반들이 리그 오브 레전드, 더 나아가 이스포츠의 확고한 자리매김을 도울 원동력이 될 것이다. 편집장: 마지막 질문이다. 조금 뻔한 질문일 수도 있겠다. 이스포츠 문화의 현장에서 이스포츠라는 단어를 어떻게 평가하나? 진예원: 이스포츠만의 독특한 시간 감각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입사 초기에 있었던 일이다. 우리는 오후 2시에 출근을 하는데 캐스터분들이 ‘좋은 아침!’ 이라고 인사를 해주셨다. 아침이 아니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이건 이스포츠식 시간이라면서 다들 밤을 새고 이제 일어나지 않느냐고 말씀하셨다. 또 시간 감각 자체가 무척 빠른 것도 있다. 중계 메인 캐스터들의 일정도 바쁘게 돌아가지만 그 사이 유튜브나 커뮤니티 등지에서 끊임없이 생산되는 콘텐츠를 따라가고 사건사고를 체크하느라 하루가 무척 빠르게 지나간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운 인디음악 씬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예술사회학 연구와 (공연)사진 촬영에 매진중이다. 라캉 정신분석 철학서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영번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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