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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누가 읽는다고.” ─ 카라테카,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와 기록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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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6. 6. 10.

1990년 3월 5일

...

애플판 「페르시아의 왕자」는 지난달에 150장도 팔리지 않았다. 저기서 그렇게 죽어가고 있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로리는 내게 마케팅 매니저이신 라트리샤 T. 가 했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그냥 아케이드 게임이잖아. 원래 아케이드 게임은 안팔린다고."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 (스타비즈, 297p)

     

     

아마 슬슬 건강검진이 필요한 나이의 게이머 중에 페르시아의 왕자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1989년에 나온 게임이니 젊은 게이머에게는 낯선 게임일 수도 있겠다. 가장 위대한 게임을 고르라면 1등이 아니더라도 100개 안에는 거의 반드시 들어갈 게임이고, 7세대 콘솔까지는 정규 시리즈가 계속 나왔으며, 2025년에도 외전인 “로그: 페르시아의 왕자”가 나왔고, 흥행 성적은 아쉬웠지만 제이크 질렌할이 출연한 영화도 있으니 아직도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IP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페르시아의 왕자 시리즈 중 1,2는 조던 메크너가 직접 개발에 참여했고, 당시의 게임 개발은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노력이 거의 온전히 담겨 있기도 하다.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는 페르시아의 왕자 1, 2의 개발 당시 조던 메크너가 기록해놓은 개발일지를 기초로 나온 책이다.

     

어떤 분들은 이 책을 이미 본 기억이 있을 수도 있다. 파란 표지일 수도 있고, 검정 표지일 수도 있는데,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의 탄생 배경을 먼저 설명해야 한다.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가 나오게 된 것은 물론 조던 메크너가 당시 일지를 잘 작성해 놓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첫 번째 서적이 자비 출판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장희재님이 이 책에 흥미를 가지고 조던 메크너에게 허락을 받아 국내 번역을 진행했다. 당시 기준으로는 생소했던 크라우드 펀딩으로 진행했던 이 책은 지금 보기엔 적지만 당시에는 꽤 큰 금액이었던 목표치 120만원을 넘어 366만원을 달성했고, 성공한 펀딩의 사례로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당시 펀딩을 진행했던 굿펀딩이란 서비스는 남아있지 않다.

     


* 좌측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첫 번째 원서, 굿펀딩판 국내 번역판,
30주년 기념판 미국판 원서, 느낌이있는책판 한국어 번역판

     

     

     

고백하자면 필자가 이 책의 리뷰를 객관적으로 하기 힘든 이유가 있는데, 이 무렵에 펀딩 작업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기묘한 인연으로, 당시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GDC의 고전 게임 강의에서 조던 메크너가 자신의 경험을 발표할 일이 있었고, 필자는 아마존에서 미리 주문해 샌프란시스코 친구의 숙소(예약한 숙소에서는 배송을 받을 수가 없었다)로 배송받은 책을 들고 가 사인을 받아 펀딩에 사용했다. 답장이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소통이 마무리돼서 책은 무사히 나오고, "느낌이 있는 책" 출판사에서 새 표지로 책이 나오기도 했다. 한국어로 된 검정색 표지라면 아마 펀딩에 참여한 경우고, 파란 표지라면 이후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일 것이다. 다이피아에서 지금 기준의 품질로 보기에도 훌륭한 epub 버전 역시 존재한다. 전자책 시장이 충분히 자리 잡기 전이어서 초기에는 애플의 iBooks 서비스에만 출시하고 국내 서비스에는 나중에야 출간하게 되었지만, 책에는 담지 못했던 당시 개발 자료들을 사진과 영상 등으로 집어넣은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힘을 모아 나온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는 아시아권에서는 아마 유일하게 한국어로만 번역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국내 출판계약은, 특히 외국 서적의 경우 대부분 5년 단위인데, 5년 후에는 보통 추가로 돈을 내고 계약을 연장하거나, 아니면 절판시키는 흐름으로 진행된다. 특히 요즘 출판시장에서 그때그때 나왔던 책을 사두지 않는다면 구할 수가 없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이 계약기간이다.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 역시 그런 식으로 절판되었고, 많은 좋은 책들이 그렇듯이 프리미엄이 붙어 중고서점에 5만원이 넘게 올라와 있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를 출간할 무렵 이 책이 잘 팔려서 카라테카 개발일지(2012년 출간) 역시 출간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지는 못했다. 그리고 2026년이 되어서야 게임서적 전문 출판사인 스타비즈에서 그동안 꾸준히 준비하고 있던 페르시아의 왕자, 카라테카 개발일지가 출간되었다.

     

이미 원문이 존재하는 일기를 책으로 만든 것이다 보니 2013년에 출간된 판과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사이에 조던 메크너가 게임 개발에 사용했던 자료들을 미국의 스트롱뮤지엄에 기증했고, 30주년 기념판이 그러한 자료와 일기에 조던 메크너가 주석을 달아 새로 출간되었다. 덕분에 이번에 출간된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 한국어판은 30주년판을 기초로, 조던 메크너가 당시 상황을 설명한 가필과 당시를 볼 수 있는 추가 시각자료들을 넣고, 뒤에 30주년 기념 원고를 추가했다.

     

* 새로 출간된 카라테카,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
책의 표지는 원판 게임의 그것을 사용했다.

     

그럼 21세기도 1/4이 지난 지금 우리가 1982년부터 1993년까지의 일기장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이야기하기 어렵다. 명작게임을 만든 개발자의 개발일지니까 뭔가 중요한 게임 개발의 비밀이 담겨 있지 않을까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아마 그런 목적을 가지고 이 책을 본다면 실망할 것 같다.

     

소프트웨어 개발 현장에서 자주 다뤄지는 것이 회고(retrospective)이다. 회고라는 단어를 소프트웨어 공학 쪽에서만 쓰는 건 아닌데, 국내에는 애자일 개발방법론이 소개되면서 자리 잡은 경향이 있다. 적어도 프로그래머인 필자에게는 그전까지 회고라는 단어가 그렇게 익숙하지 않았는데, 소프트웨어 공학에서 하는 회고는 이전 작업을 돌아보고 다음 작업을 더 잘할 수 있게 검토하는 방법론이란 뜻이 더 강하다. 미국의 게임 산업에는 좋은 문화가 하나 있는데 바로 포스트모텀(Postmortem, 부검)이다. 단어를 보면 바로 느껴지겠지만 의료 용어인데, 이 역시 회고처럼 게임 개발이 마무리된 후 개발에서 잘한 것과 잘못한 것에 대해 정리해서 공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포스트모텀의 경우 형식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어느 정도 공유되는 양식이 있는데, 전체적인 프로젝트 설명과 함께 프로젝트에서 잘한 점 3~5가지, 프로젝트에서 잘못한 점 3~5가지 정도를 정리하는 것이다. 이러한 양식은 누가 특별히 제시했다기보다는 미국의 게임 개발사이트 GameDeveloper(구 Gamasutra)에 올라오던 형식이었는데, 컨퍼런스와 출간 잡지에서도 해당 양식을 주로 사용했다. 이렇게 쓰인 포스트모텀은 "Postmortems from Game Developer" 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한국에서는 "성공으로 이끄는 게임 개발 스토리"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 Postmortems from Game Developer 의 표지

     

국내에는 90년대 말부터 특히 2000년대 중반까지 서양의 게임 개발 이론들이 많이 수입되었는데, 포스트모텀 문화도 같이 들어오면서 게임산업진흥원에서는 가마수트라에 실린 포스트모텀을 한글로 번역하는 한편, 국내의 게임 개발자들도 자체적으로 포스트모텀을 작성해서 공유하기도 했다. 이러한 문화는 성공으로 이끄는 게임 개발 스토리 이외에도 국내에 번역된 "위대한 게임의 탄생"의 뒷부분에 추가로 국내 게임의 포스트모텀이 실리는 데도 영향을 주었으며, 이후 2, 3권은 국내 게임만으로 나왔다. 그 외에도 넥슨 내부에만 공개되었던 마비노기 개발완수 보고서 같은 케이스도 존재한다.


* 2019년 <게임을 게임하다 /invite you_>에 전시된 마비노기 프로젝트 완수보고서
내용은 외부 공개가 되어있지 않다.

     

이러한 포스트모텀에 대해서 가장 고려해야 할 부분이라면 포스트모텀은 그 부검이라는 의미처럼 프로젝트가 끝나고 쓰이는 문서라는 점이다. 실제로 온라인 게임 중심으로 넘어간 게임 시장에서는 우리 게임은 아직 안 죽었는데 어떻게 부검을 하죠 같은 이야기도 농담처럼 하고는 했는데, 이렇게 프로젝트가 끝나고 복기하면서 잘한 점과 못한 점을 정리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지만 살아남은 프로젝트만이 이러한 포스트모텀을 할 기회를 얻는 경우가 많은 데다가, 사건이 끝나고 하는 복기에는 아무래도 편향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개발일지라는 기록은 미래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써나간 온전한 의사결정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당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우리는 미래를 알지만, 당시엔 알 수 없으니까.

     

2012년 GDC에서 스프라이 폭스의 개발자 다니엘 쿡은 게임기획서 대신 일기를 남기라는 급진적인 주장을 한 적이 있다. 어차피 기획은 바뀔 것이기 때문에 아이디어에 대한 반응과 자신의 생각을 적어놓으라는 주장인데, 당시에 인상 깊게 보았던 기억이 있다. 이 지침은 포스트모텀에서 놓칠 수 있는, 당시에 어떤 의도로 의사결정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을 남겨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기억보다 더 정확하게 당시의 상황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일본에서 2025년 치쿠마쇼보(筑摩書房)에서 나온 “RPG를 만드는 법 - 하시노 카츠라와 『메타포: 리판타지오』”(RPGのつくりかた——橋野桂と『メタファー:リファンタジオ』)는 지금까지 나온 책 중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새로운 타입의 아카이빙이란 지점에서 주목해 볼 만한 서적이다. 메타포: 리판타지오가 메타포란 이름을 얻기 전 「PROJECT Re-FANTASY」 라는 프로젝트 이름으로 개발이 발표될 무렵부터 일본의 작가, 비평가 겸 만화 스토리 작가인 사야와카(さやわか)가 아틀러스 내부의 개발자들과 게임이 개발되는 기간 동안 인터뷰해 가면서 작성한 이 책은 개발일지와 아카이빙의 중간지점이라는 독특한 시도이기도 하다.

     

카라테카,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는 포스트모텀과 달리 당시 기록이 거의 그대로 담겨있다는 점에서 당시 분위기와 사회를 살펴볼 수 있는 훌륭한 기록물이다. 아카이브적인 측면에서는 그렇다. 그래도 이 개발일지의 가치를 단순히 당시의 기록에 두고 싶지는 않다.

     

     

1983년 8월 29일

...

지금부터는 일기를 더 품위있게 쓸 것

아, 젠장할 이걸 누가 읽는다고.

카라테카 개발일지 (스타비즈, 164p)

     

우리는 2026년 게임 산업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있다. 1980년대 미국에서 한차례 게임산업의 성장세가 꺾일 무렵 대학생이던 조던 메크너는 시험을 망치고, 수업을 째고, 가끔 개발을 하나도 못하고, 영화 일을 할지 컴퓨터 일을 할지 고민한다. 자신이 게임으로 백만장자가 될 거라는 꿈도 가끔씩 꾸고, 다른 게임의 결과를 보며 자신도 저만큼 게임을 팔 수 있을 거라 낙관하고, 결과에 실망하며 계속 게임을 만들어 나간다.

     

애플 2판 페르시아의 왕자는 잘 안 팔렸지만 다른 매체로 컨버전되면서 인기를 끌었다. 덕분에 우리는 게임역사에 괜찮은 IP를 하나 얻었고, 이렇게 개발일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복간된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는 30주년 기념판답게 조던 메크너의 자료 외에도 당시의 개발자료와 사진들이 추가되어, 당시를 추억하는 게이머에게는 게임의 뒷이야기를 볼 수 있는 즐거움을 주고, 젊은 독자들에게는 당시의 개발 환경을 추측해 볼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아카이브나 게임 개발의 지식과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떠나서, 미래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막막하게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것은 대가이든 아니든 누구에게나 힘든 시간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는 점에서, 이 개발일지들은 당신에게도 위로를 줄 것이다.

     

     

소개한 책과 기사들
*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 (2026, 스타비즈)
* 카라테카 개발일지 (2026, 스타비즈)
* 위대한 게임의 탄생 1,2,3 (2011~2013, 한빛미디어)
* 성공으로 이끄는 게임 개발 스토리 (2004, 에이콘출판사)
* RPGのつくりかた ――橋野桂と『メタファー:リファンタジオ』 (2025, 筑摩書房)
* “혁신을 원하는가? 게임 기획서를 버려라” (2012, 디스이즈게임, https://www.thisisgame.com/articles/314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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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개발자, 연구자)

게임애호가, 게임프로그래머, 게임역사 연구가. 한국게임에 관심이 가지다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2006년부터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있다. 〈한국게임의 역사〉, 〈81년생 마리오〉등의 책에 공저로 참여했으며, 〈던전 앤 파이터〉, 〈아크로폴리스〉, 〈포니타운〉, 〈타임라인던전〉 등의 게임에 개발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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