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검색 결과

공란으로 1280개 검색됨

  • 편집장이 답하는 제5회 게임비평공모전 Q&A

    ***응모를 고민하는 분들이 자주 묻는, 혹은 묻고 싶었을 질문들에 편집장이 직접 답합니다*** < Back 편집장이 답하는 제5회 게임비평공모전 Q&A 31 GG Vol. 26. 7. 13. ***응모를 고민하는 분들이 자주 묻는, 혹은 묻고 싶었을 질문들에 편집장이 직접 답합니다*** Q1. 게임비평공모전은 왜 하는 건가요? 한국에서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는 언어는 아직 충분히 풍부하지 않습니다. 게임은 이미 이 시대의 가장 큰 대중문화가 되었지만, 그 문화를 읽어내는 말과 글은 산업 뉴스와 별점 리뷰 사이 어딘가에 오래 머물러 있었습니다. 게임제너레이션(GG)은 그 사이의 공백을 메우는 매체이고, 이 공모전은 그 공백을 함께 메울 새로운 필자를 찾는 자리입니다. 2022년 첫 회를 시작해 올해로 다섯 번째입니다. 지난 회차에는 77편의 응모작이 들어왔고, 역대 당선자 중 일부는 이후 GG 필진으로 합류해 함께 지면을 만들어 왔습니다. 상금을 드리고 끝나는 이벤트가 아니라, 게임에 대해 계속 쓸 사람을 만나는 자리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Q2. '비평'이라고 하니 어렵게 느껴집니다. 리뷰와 뭐가 다른가요? 리뷰는 "이 게임을 살 만한가"에 답하는 글입니다. 비평은 "이 게임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나아가 "이 게임을 통해 우리는 세계의 무엇을 볼 수 있는가"를 묻는 글입니다. 가령 어떤 게임의 전투가 재미있다고 말하는 것은 리뷰입니다. 그 전투 시스템이 왜 그렇게 설계되었는지, 그 설계가 플레이어에게 어떤 태도를 요구하는지, 그 요구가 게임 바깥의 어떤 감각과 맞닿아 있는지를 파고드는 순간 비평이 시작됩니다. 게임의 재미는 그냥 생겨나지 않습니다. 누군가 만든 규칙과 구조가 만들어내는 것이고, 그 규칙과 구조에는 언제나 어떤 관점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을 읽어내는 일이 비평입니다. Q3. 심사에서는 무엇을 보나요? GG가 원하는 비평은 어떤 글인가요? 심사기준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게임분석 및 이해의 탁월성 . 분석 대상 게임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가 글에서 드러나는가. 직접 오래 플레이하며 붙들고 있었던 글은 몇 문단만 읽어도 티가 납니다. 게임을 겉핥기로 훑고 쓴 글도 마찬가지로 금방 티가 나고요. 둘째, 해석과 분석의 창의성 . 색다른 관점에서 제시되는 비평인가. 이미 모두가 한 이야기의 요약이 아니라, 응모자 본인의 눈으로 발견한 무언가가 있는 글을 찾습니다. 셋째, 설득력 있고 유려한 문장력 . 아무리 좋은 발견도 독자에게 가닿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자신이 본 것을 독자에게 수월하게 전달하는 소통력까지가 비평의 완성입니다. 글의 방향은 열려 있습니다. 게임의 시스템과 플레이 경험 자체를 깊게 파고드는 글도 좋고, 게임을 경유해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해 말하는 글도 당연히 좋습니다. 다만 후자의 경우 순서가 중요합니다. 게임에서 출발해 세계로 나가야지, 하고 싶은 세계 이야기에 게임을 끼워 맞추면 게임도 이야기도 다 어색해집니다. Q4. 이론을 많이 알아야 하나요? 저는 그냥 게임을 오래 한 사람인데요. 매 회차 심사에서 흔하게 아쉬운 유형 하나는 '이론 과잉'입니다. 유명한 이론가의 이름과 개념을 줄줄이 인용했는데, 정작 그 개념이 왜 이 게임에 필요한지는 설명하지 못하는 글. 이론은 게임을 더 잘 보게 해주는 도구일 때만 의미가 있습니다. 도구가 글의 주인이 되면 게임도 이론도 다 죽습니다. 그런데 반대편의 함정도 그만큼 흔합니다. "나는 이 게임을 이렇게 플레이했고, 재미있었다"에서 멈추는 글. 경험은 비평의 소중한 출발점이지만, 그 경험이 왜 그러했는지, 무엇이 그 경험을 만들어냈는지에 대한 사유가 이어지지 않으면 감상문에 머뭅니다. 결국 필요한 것은 이론과 경험의 절충점입니다. 자신의 플레이 경험에서 출발하되, 그 경험을 한 걸음 떨어져 들여다보고 해석할 수 있는 관점 — 그 관점이 꼭 유명한 이론일 필요는 없지만, 경험을 경험 이상의 것으로 만들어주는 사유의 틀은 있어야 합니다. "이게 왜 이렇지?"라는 질문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Q5. 어떤 게임을 다뤄야 유리한가요? 최신 대작이어야 하나요? 전혀 아닙니다. 다루는 게임의 인지도나 규모는 심사와 무관합니다. 수십 년 된 고전이든, 아무도 모르는 인디게임이든, 모바일 방치형 게임이든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게임에서 무엇을 읽어냈는가입니다. 오히려 모두가 아는 화제작을 다룰수록 부담은 커집니다. 이미 나온 이야기가 많으니, 그 위에 무엇을 얹을 수 있는지가 더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주목하지 않은 게임, 혹은 유명한 게임의 남들이 주목하지 않은 구석 — 그런 곳에서 좋은 비평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Q6. 매 회차 떨어지는 글들의 공통점이 있다면요? 몇 가지 패턴이 반복됩니다. 줄거리 요약이 절반 이상인 글. 독자가 그 게임을 모른다는 가정 아래 소개에 지면을 다 쓰고 나면, 정작 본인의 이야기를 할 자리가 없습니다. 소개는 논의에 필요한 최소한으로 충분합니다. 감상문에서 멈춘 글. "감동적이었다", "몰입감이 대단했다"는 비평의 출발점이지 도착점이 아닙니다. 왜 감동적이었는지, 그 감동은 어떤 장치가 만들어낸 것인지까지 가야 합니다. 이론을 나열하기 위해 게임을 동원한 글. 순서가 뒤집힌 경우입니다. 게임을 읽기 위해 이론을 쓰는 게 아니라, 이론을 자랑하기 위해 게임을 가져다 쓴 글은 게임에 대한 애정도 이해도 담기지 않습니다. 대중 독자가 읽을 수 없는 글. 각주와 전문용어로 무장해 해당 분야 연구자가 아니면 읽어낼 수 없는 글이라면, 그 글이 가야 할 곳은 학술지입니다. GG는 대중교양지입니다. '학술지보다 가볍게, 웹진보다 무겁게'라는 슬로건 그대로, 깊이 있되 읽히는 글을 찾습니다. 게임을 안 하고 쓴 티가 나는 글. 영상 몇 편과 위키 문서로 쓴 글은 반드시 어딘가에서 어긋납니다. 직접 플레이한 사람만 아는 마찰과 지루함과 우회로가 비평의 재료입니다. Q7. 분량과 형식에서 유의할 점이 있나요? 공고에 명시된 분량 규정을 지켜주시는 것이 기본입니다. 분량이 짧다고 불리하지는 않습니다만, 분량을 채우기 위해 늘어진 글은 금방 표가 납니다. 하고 싶은 말이 하나라면 그 하나를 깊게 파는 편이, 여러 논점을 얕게 훑는 것보다 언제나 낫습니다. 제목도 신경 써 주세요. 응모작이 수십 편씩 쌓이는 심사 테이블에서 제목은 글의 첫인상입니다. 다루는 게임과 글의 관점이 드러나는 제목이 좋습니다. Q8. 심사는 어떻게 이뤄지나요? 별도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전 응모작을 대상으로 서류심사를 진행하고, 이후 심사위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오프라인 최종심사를 거쳐 당선작을 선정합니다. 개별 평가와 집단 토론이 함께 이뤄지는 방식입니다. Q9. 당선되지 못하면 제 글이 부족했다는 뜻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당선작 편수는 제한되어 있고, 심사는 결국 상대적인 선택입니다. 매 회차 심사 테이블에는 당선작 못지않게 좋은 글들이 올라오고, 근소한 차이로 아쉽게 내려놓는 글이 늘 있습니다.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오래 논쟁이 붙었던 글이 결국 낙선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러니 낙선을 "내 글은 안 된다"는 판정으로 받아들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이번에 다듬은 관점과 문장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음 회차에 다시 도전하셔도 좋고, 다른 지면을 두드리셔도 좋습니다. 실제로 여러 번 응모 끝에 당선된 사례도 있습니다. 게임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한국 게임비평의 저변입니다. Q10. 마지막으로, 응모를 망설이는 분들께 한마디 해주신다면. 게임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어디에 해야 할지 몰랐던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매 회차 응모작들을 읽으며 확인합니다. 완성도에 대한 걱정으로 망설이고 계시다면, 일단 쓰고 보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심사위원들은 매끈한 글보다 자기 질문이 있는 글에 반응합니다. 거칠어도 자기 눈으로 본 것이 담긴 글이, 매끄럽지만 아무 데서나 읽을 수 있는 글보다 언제나 멀리 갑니다. 당신이 수백 시간을 보낸 그 게임에 대해, 아직 아무도 하지 않은 이야기가 당신 안에 있을 겁니다. 그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접수 방법, 마감 일정 등 세부 사항은 공모전 공고를 참조해 주세요.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 게임문화 비평 평론 웹진 | 게임제너레이션 GG

    게임문화담론을 선도하는 게임문화웹진 게임제너레이션은 게임문화재단이 만들고 (주)크래프톤이 후원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게임비평과 주제탐구를 통해 오늘날의 게임문화담론을 진단하고 비평합니다. GameGeneration, a Korean game criticism webzine, is a magazine that seeks to be lighter than a journal and heavier than a popular magazine. GameGeneration, which explores the social context of contemporary digital games from a critical perspective, is published bimonthly and has an English-language page for overseas readers. [논문세미나] <에이지 오브 원더스 4>의 다양성 이면에 있는 위계적 구조 서도원 26. 8. 10. 이러한 논의는 게임의 특성에 대해 도발적인 질문을 남긴다.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설령 게임의 내용이 아무리 진보적인 가치를 담으려 해도 게임 메커니즘이 보수적 가치를 재생산한다면 사실상 게임은 대안우파적 속성을 내재한 것이 아닌가?’하는 질문으로 연결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More SNS에서 게임제너레이션의 새로운 소식을 받아보세요. 게임제너레이션 메일 구독하기 새로운 업데이트와 뉴스를 등록하신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Enter your email here Sign Up Thanks for submitting!

  • 메인테마

    이번호 메인테마 Main Theme 기억이 게임에서 다뤄지는 방식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탐색합니다. 게임 경험의 외재화 역사와 기억의 재전유 양상 이정엽 디지털 게임은 처음 등장 당시 며칠을 두고 길게 플레이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1970년대에 등장한 아케이드 게임은 짧은 시간 동안 동전 투입이 여러 번 반복되어야 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었기에 게임 플레이 역시 짧고 직관적으로 구성되는 것이 미덕이었다. 반면 가정용 컴퓨터와 콘솔 게임은 아케이드와는 다른 조건 위에 있었다. 아케이드 기판은 개별 게임에 특화된 전용 하드웨어를 쓸 수 있어서 그래픽과 사운드가 훌륭했던 반면, 가정용 컴퓨터와 콘솔은 범용성을 추구해야 했기 때문에 물리적인 표현력에서 오랫동안 아케이드에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데이터화된 기억은 무슨 꿈을 꾸는가?- 사이버펑크를 통해 본 게임에서의 기억 이지용 사이버네틱스(1948)의 저자인 노버트 위너(Nobert Wienner)는 그의 저서를 통해 인간의 두뇌와 기계가 질료적으로만 차이를 보일 뿐 구조적으로는 동일하다는 가설을 토대로 인간 뇌의 신경계의 작용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이 그대로 기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가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이론을 토대로 1980년대 미국에서는 인간의 두뇌와 기계가 적극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세계를 상상의 기반으로 하는 ‘사이버펑크(Cyberpunk)’ 장르가 유행했다. 기억을 구성하는 다양한 방법 : 게임에서 기억을 다루는 이유 - When The Past Was Around 장민지 이별은 사랑이 지나간 자리다. 어떤 이는 이별 후 그 사랑의 기억을 영원히 지우고 싶어 하지만, 어떤 이는 기억 속에서 그 사랑이 어땠는지를 끊임없이 되짚는다. 신기하게도 그 기억들은 언제나 정서와 함께 남는다. 그래서 명확하지 않고, 사실과 다를 수도 있다. 어쩌면 모든 기억은 '데이터화되지 않았기에' 살아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감정과 기억이 늘 함께 떠오르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기억은 데이터가 아니고, 명확하지 않으며, 감정과 함께이기에 비로소 추억이 된다. 죽음이라는 기억, 죽음이라는 기록 : 『리턴 오브 디 오브라 딘』 이선인 회중시계의 이름은 플레이어에게 내리는 일종의 명령이다. 죽음이라는 사건을 기억하라(memento mortem). 그리고 기억하기 위해, 죽음이라는 개념을 상상하라. ‘기록’될 죽음 위에서 죽음의 ‘기억’을 상기하라. 그러므로 결국, 죽음의 장면(mortem)이 아닌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 게임 속의 일지: 대리하는 기억, 보충하는 기억, 통치하는 기억 최건 나는 망설임 없이, 하지만 큰 기대도 없이, J키를 누른다. 일지. 저널. 혹은 퀘스트 로그 등등. 퀘스트와 이야기 전개를 중심으로 삼는 게임들에는 하나같이 일지 기능이 포함되어 있다. 일지에는 내가 잊은 모험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어느 마을에서 누구를 만났고, 무슨 이야기를 들었으며, 어떤 부탁을 수락했는지. 그리고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이 적혀 있다. 『관을 가진 신의 손』,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이 감추는 기억 이미몽 『프린세스 메이커』를 플레이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경험이 있다. 시간을 들여서 정성껏 딸을 키웠는데, 마지막에 도착한 엔딩이 기대와 전혀 다른 것이었던 경험이다. 게임자체에서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어느 수치가 모자랐는지, 어느 계절의 일정이 문제였는지, 아니면 무심코 고른 선택지 하나가 모든 것을 갈랐는지에 대해 게임은 침묵한다.

  • [인터뷰] 게임 내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만들어내는 게임 문화: PUBG UX 유닛 한수지 실장, UI 디자인팀 문휘준 팀장

    그러나 오늘날 게임 내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단순하지 않다. 보이스 채팅이 생기고, 다양한 방식의 전술적 소통 방식이 도입되기도 하였다. 이런 변화는 게임 문화에 어떤 영향을 줄까? 게임 내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변화가 게임의 재미와 플레이 방식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이번 호에서는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PUBG의 UI 디자인팀 문휘준 팀장과 UX 유닛 한수지 실장을 만나고 왔다. < Back [인터뷰] 게임 내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만들어내는 게임 문화: PUBG UX 유닛 한수지 실장, UI 디자인팀 문휘준 팀장 14 GG Vol. 23. 10. 10. 2005년 스타리그 듀얼 토너먼트 , 임요환과 문준희의 경기는 스타리그에 채팅을 금지시켰던 경기로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 본진이 좁았던 포르테 맵에서 임요환이 몰래 멀티를 한 뒤 , “좁아 ㅠㅠ”라고 채팅을 쳐서 상대의 방심을 유도했던 것이다 . 이 경기는 당시 게임 문화의 일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텍스트 채팅은 오랜 기간 우리의 게임 문화를 만들어 온 수단이자 , 커뮤니케이션 방식이었다 . 그러나 오늘날 게임 내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단순하지 않다 . 보이스 채팅이 생기고 , 다양한 방식의 전술적 소통 방식이 도입되기도 하였다 . 이런 변화는 게임 문화에 어떤 영향을 줄까 ? 게임 내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변화가 게임의 재미와 플레이 방식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 이번 호에서는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 PUBG 의 UI 디자인팀 문휘준 팀장과 UX 유닛 한수지 실장 을 만나고 왔다 . 특히나 텍스트 채팅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배틀그라운드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담당하는 실무진들은 위와 같은 고민을 심도 깊게 하고 있었다 . 이경혁 편집장 :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를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 한수지 실장 : 안녕하세요 . 저는 PUBG 스튜디오에서 배틀그라운드 인게임 , 아웃게임 두 공간에서의 유저 경험을 설계하는 조직을 이끌고 있는 한수지라고 합니다 . 이경혁 편집장 : 말씀하신 지점에서 인게임 , 아웃게임이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요 ? 한수지 실장 : 저희는 아웃게임이랑 인게임을 구분하고 있어요 .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공간을 저희는 인게임이라고 부르고 있고 , 로비나 상점 이런 것들이 있는 곳을 아웃 게임이라고 말을 하고 있고요 . UX 유닛은 그런 공간을 책임지고 설계하고 , 구현하는 곳이에요 . 문휘준 팀장 : 네 . 저는 UX 유닛에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환경을 디자인하고 있는 문휘준 팀장입니다 . 이경혁 편집장 : 반갑습니다 . 그러면 저희가 그래픽을 하는 팀과 화면 설계를 하는 팀으로 이해하면 될까요 ? 한수지 실장 : 네 . 크게는 UX 와 UI 로 팀이 나뉘어있고 , 그 팀들이 하나의 유닛으로 묶여있는 단위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 이경혁 편집장 : 오늘은 저희가 게임 내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영역들에 대해 질문을 좀 드리고 싶은데요 .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인게임과 아웃게임을 구분했을 때 , 아웃게임에서는 상대적으로 유저들의 소통이 좀 적은 편일까요 ? 한수지 실장 : 보이스 채팅 기준으로만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는데요 . 하지만 로비에서도 텍스트 채팅이 있어서 그것을 이용할 수도 있고요 . 모르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은데 , 로비에서도 같이 이모트로 소통을 할 수 있어요 . 그래서 한 명이 춤을 추면 따라 춘다거나 박수를 치는 이모트를 통해서 상호작용을 할 수가 있어요 . 이경혁 편집장 : 그렇군요 . 배그를 즐겨 했는데도 그건 몰랐네요 . 이모트 이야기가 나왔으니 , 그 이야기를 좀 먼저 여쭤보고 싶은데 , 사실 저는 플레이를 하면서 돈 주고 샀을 때 가장 기뻤던 순간이 아이돌 댄스였거든요 . 그냥 혼자 춤을 추는 게 아니라 따라서 출 수 있잖아요 . 이건 어떤 의도로 기획을 하셨을지 좀 들어볼 수 있을까요 ? 문휘준 팀장 : 그 영역이 다른 회사랑 조금 다른 것 같아요 . 다른 게임은 팀원끼리만 인터랙션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경우가 많거든요 . 그런데 저희는 이모트를 구매하지 않았더라도 근처에 있는 누구나 바로 인터랙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서 , 경험을 좀 나눌 수 있게 하려 했던 점이 특이사항일 것 같아요 . 이경혁 편집장 : 그런 이모트로 이용자들이 상호 소통을 할 때 , 제작자의 의도와는 굉장히 다르게 쓰이는 경우들도 좀 있을까요 ? 예를 들어 상대를 모욕하는 데 쓰인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 문휘준 팀장 : 좀 민망하지만 , 슈팅 게임에서 티배깅 ( 죽은 상대 앞에서 앉았다 일어서는 동작을 반복하는 것 ) 은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잖아요 ? ( 일동 웃음 ) 그래서 저희는 이모트나 의사소통 수단을 ‘이렇게 써주세요’하고 절대 제한하지는 않고요 . 다만 , 실제로 너무 도발성이 강한 자세들은 제작 과정에서 보류되었어요 . 이경혁 편집장 : 제작할 때 그런 고려가 들어가는군요 . 문휘준 팀장 : 네 . 그래도 게임의 재미 역시 중요하고 , 상대 팀이 죽었을 때 막 기뻐하는 것도 재미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 그 정도는 사람들끼리 그냥 웃으면서 즐길 수 있도록 만들고 있어요 . 이경혁 편집장 : 어떻게 보면 그 적당한 선이라는 게 참 애매하잖아요 . 어디까지는 괜찮고 어디까지는 아닌지 내부에서 논의를 할 때 기준을 두기가 어렵진 않으세요 ? 문휘준 팀장 : 확실히 조금 모호하죠 . 그래서 가장 먼저 성적인 표현이나 너무 잔인한 살인 행위처럼 법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도를 벗어난 표현은 최대한 배제하고 , 거기서부터 ( 논의를 ) 시작하고 있습니다 . 이경혁 편집장 : 그러면 감정 표현을 만드실 때 , 여러 기준을 고려하면서 레퍼런스를 수집하는 것도 쉽진 않으시겠네요 . 문휘준 팀장 : 네 . 그리고 아까 아이돌 이야기를 하셨는데 , 사실 저작권이 굉장히 복잡해요 . 일반적으로 소속사에 전화해서 저작권료를 지불하면 될 거라고들 생각하시지만 , 실제로 들여다보면 춤 저작권은 이 회사에 있고 , 노래 저작권은 저 회사에 있고 , 가수에 대한 저작권은 또 다른 곳에 있는 식의 케이스가 많은 거죠 . 그래서 하나를 사오려면 여러 군데랑 협의를 해야 하는데 , 그 과정에서 엎어진 케이스도 굉장히 많습니다 . 이경혁 편집장 : 그렇군요 . 그럼 만들어진 결과물 중에서 제작자로서 뿌듯했던 것이 있을까요 ? 문휘준 팀장 : 제가 이모트를 많이 담당해서 할 말이 많은데요 . 이전에 ‘그랜절’의 아이디어를 기획팀에 전달드렸었거든요 . 그런데 ‘아이디어는 좋은데 너무 한국 한정 콘텐츠라서 이것이 적절할지 모르겠다’는 답변을 받았어요 . 그래서 재차 설득을 할 때 , “요가 자세 중에서도 비슷한 자세가 있으니 , 한국은 ‘그랜절’로 하고 외국은 요가로 나가면 재밌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해서 , 저희 그랜절을 보시면 이모트 이름은 ‘최고의 예의’지만 , 요가랑 섞어놨어요 . 그렇게 만들었더니 호응도 굉장히 좋았고 , 유튜버들도 많이 좋아했어요 . * 배그 이모트 중 하나인, ‘최고의 예의’. 이후 다리를 벌려 내려오는 동작이 요가 동작과 흡사하다. 이경혁 편집장 : 그런 것을 만드시려면 사실 레퍼런스도 많이 보시고 , 스터디도 엄청나게 하셔야 하잖아요 ? 주로 뭐를 보세요 ? 문휘준 팀장 : 저희가 동작을 직접 기획하고 디자인하는 부서는 아니지만 , 그래도 옆에서 봤을 때 , 가장 요즘 핫한 댄스나 쇼츠 같은 것들을 많이 보는 것 같아요 . 한수지 실장 : 아무래도 쇼츠나 틱톡 같은 데서 유행하는 것들을 모션화 하는 것이 제일 인기도 많고 사람들도 많이 알고 있더라구요 . 이경혁 편집장 : 쇼츠 같은 경우는 굉장히 트렌드가 짧기 때문에 제작 기간의 압박 같은 것도 느끼실 것 같은데요 . 문휘준 팀장 : 그렇죠 . 그래서 이건 나가면 좋겠다 싶은 것들은 좀 타이트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 이경혁 편집장 : 그런 제한은 없습니까 ? 배틀그라운드 같은 경우에는 신체가 결국 총 맞는 피격 부위다 보니까 이모트 동작이 실제 게임에 영향을 주게 되는 지점들에 대한 제한이요 . 문휘준 팀장 : 히트박스라 하잖아요 . 이게 완벽하게 인간의 신체처럼 돼 있지는 않거든요 . 그래서 예전에 포트나이트에서 문제가 됐던 영상이 막 허리를 양쪽을 흔들면서 총알을 피하는 영상이었거든요 . 그런 맥락에서 저희 내부에서도 미팅이 있었는데 , 그건 진짜 우연으로 겨우겨우 만들어낸 상황이고 , 설령 그걸 성공한다고 해도 게임의 재미 중 일부라고 결론을 냈어요 . 이경혁 편집장 : 그런 것들이 또 게임이 주는 재미가 될 수 있죠 . 다음으로는 이모트 외에 다른 커뮤니케이션 방식들에 대해서도 좀 여쭤보고 싶은데요 . 초창기에는 3D 핑이 없었던 걸로 제가 기억을 하는데 , 어느 날부터 업데이트가 되었잖아요 ? 그런 기능을 만드시게 된 과정에서의 고민을 좀 들어볼 수 있을까요 ? 한수지 실장 : 사실 ‘퀵 마커’라고 하는 3D 핑 같은 경우에는 , 내부적으로 많은 고민이 이루어지고 만들어진 기능인데요 . 그런데 아무래도 이 기능이 생기면 게임의 난이도에 영향을 많이 주기 때문에 , 처음에는 바로 적용해도 될까 ? 라는 측면에서 고민이 다들 컸죠 . 그런데 이제는 게임이 출시된 지 시간이 좀 지나서 , 기존 유저들도 많이 익숙해졌고 해서 , 이 기능이 들어가도 게임의 난이도에 많은 영향을 주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 또 신규 유저들 같은 경우에는 게임의 방위나 ( 지도상에 찍는 ) 핑 같은 개념을 인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 그분들에 대한 허들을 낮추는 용도로 사용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도입된 이유도 있어요 . 이경혁 편집장 : 비슷한 맥락에서 물건을 팀원에게 던져주는 기능도 언젠가 업데이트가 되었잖아요 ? 그것은 상호작용을 좀 더 늘리기 위함에서의 목적이셨는지 아니면 리얼리티에 대한 추구였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 기능 자체로는 보이스 채팅으로 ‘탄약을 떨어뜨려 줘’라고 이야기하면 되는데 , 요청하고 던져주는 재미를 일부러 넣으신 걸까요 ? 한수지 실장 : 사실 두 개 다죠 . 재미도 재미지만 , 저희 게임이 물건을 짚고 다시 자기한테 장착하는 과정이 다른 게임이랑 다르게 어렵잖아요 . 엄청 급박한 상황에서 둘 다 화면을 가려야 되고 . 그러느니 필요한 게 있으면 그냥 바로 던지기로 전달해주자고 해서 전투에서 좀 유리하게끔 하는 것도 있고 , 실제랑 같게 하려고 하는 것도 있었어요 . 이경혁 편집장 : 그렇군요 . 여러 이유로 커뮤니케이션적 요소들을 고민하고 계시네요 . 확실히 배그의 경우에는 난이도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커뮤니케이션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요 . 그런 맥락에서 인게임 상황에 텍스트 채팅이 안 되게 하신 것도 특정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 한수지 실장 : 텍스트 채팅은 어느 게임이나 다 있는데 , 저희의 특수성 같은 경우에는 이제 긴급한 상황 속에서 긴박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잖아요 ? 그래서 보이스 챗으로 해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첫 번째로 했었고 , 두 번째로는 저희가 엄청 다국어를 많이 지원을 하고 있어요 . 그렇다 보니까 언어가 다른 상황에서는 채팅기능을 지원해봤자 소통이 안 되잖아요 .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소통하게 할까 하다가 그러면 그냥 자주 쓰는 언어를 라디오 메시지로 만들어서 쓰게 하자 . ( 라는 판단이 있었어요 ) 그리고 라디오 메시지로 빠르게 소통하게 만들어서 플레이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자는 목적에서 어떻게 보면 텍스트 채팅을 제한한 것도 있어요 . 이경혁 편집장 : 배그가 인게임에서 상대 팀하고 할 수 있는 상호작용은 사실 조금 더 제한적이잖아요 . 라디오 메시지 같은 것도 상대 팀에게는 가지 않고요 . 그렇게 디자인하신 이유 같은 것들도 있을까요 ? 문휘준 팀장 : 게임 초기에 기획되었던 기능이라 의도를 단언하긴 어렵지만 , 좀 더 전투나 팀원들에 대한 협업에 더 집중하게 만들기 위해서지 않았을까 싶어요 . 그리고 어뷰징 요소도 있었을 것 같아요 . 솔로인데도 팀전처럼 하시는 분들도 예전에는 있었거든요 . 거기서 커뮤니케이션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수단이 제공된다면 그것도 굉장히 큰 차이가 있을 수 있거든요 . 이경혁 편집장 : 음성 채팅이 되면서 사실 저는 텍스트 채팅의 의미가 사라졌다고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 음성 채팅을 하려면 물리적인 인터페이스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잖아요 . 예전에 MMO RPG 초창기를 생각해보면 , 인터페이스가 들리기도 하고 , 안 들리고 하면 어떡하냐는 걱정이 많았었거든요 . 실제로 그런 어떤 민원들이나 이슈들이 좀 있었나요 ? 한수지 실장 : 저희가 지금 제공하는 보이스 솔루션 같은 경우에는 그런 문제는 잘 없기는 했어요 . 다만 , 이용자에 따라서 디스코드 같은 방식을 더 편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 그래서 저희는 인게임 보이스는 제공을 하되 , 편한 솔루션이 따로 있다면 그것을 쓰셔도 상관이 없다는 취지로 양쪽 다 허용을 하고 있죠 . 이경혁 편집장 : 저도 사실 디스코드를 중심으로 게임을 하고 있고 , 특히 아는 사람끼리만 할 때에는 디스 코드가 훨씬 편한 것 같아요 . 다만 , 실제로 저 같은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니까 , 모르는 사람과 함께 플레이를 할 때도 있을 건데 , 이럴 땐 이모트 같은 수단만으로는 배틀그라운드의 팀플레이를 정확히 할 수 없는 거잖아요 . 그래서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고민하고 계시는 것 같아요 . 문휘준 팀장 : 네 . 그래서 인터페이스 장치를 좀 더 보완해서 커뮤니케이션을 커버해 줄 수 있도록 계속 만들고 있고요 . 아까 라디오 메시지랑 또 연계되는 게 텍티컬 맵마커 (Tactical map marker: 핑의 종류를 구분하여 찍을 수 있는 전술 맵마커 ) 라고 , 이런 것도 라디오 메시지랑 연동해서 좀 더 연동성 있는 UX 환경을 제공하려고 하고 있어요 . 한수지 실장 : 웨이포인트 ( 맵에 경로를 표시하여 공유하는 기능 ) 도 유저분들이 많이 쓰시는데 , 그 장점은 그런 것 같아요 . 방향이라든가 화살표가 나오니까 언어가 꼭 같지 않아도 전략을 짜고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저희도 괜찮은 기능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 유저들도 거의 필수적으로 쓰시고 있는 것 같아요 . 이경혁 편집장 : 말씀을 들어보면 그게 되게 큰 것 같네요 . 기본적으로 게임 규칙 자체는 비언어니까 모두가 공용으로 쓸 수 있는데 , 팀 플레이를 하려면 언어가 필요하고 , 거기서부터는 서로 차이가 나오니까 그걸 맞춰주는 작업이 굉장히 두꺼울 수밖에 없겠네요 . 이경혁 편집장 : 조금 재밌는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은데 , 배틀그라운드라는 게임에서 즐겁게 하려는 목표가 있고 , 승리의 목표도 있을 건데 , 이 둘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 총을 잘 쏘는 것과 팀원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는 것의 비중을 본다면 뭐가 더 중요하다고 보시나요 ? 문휘준 팀장 : 옛날에는 커뮤니케이션 기능이 굉장히 중요했거든요 . 왜냐하면 다들 잘하지 못했고 , 맵도 크고 하니까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토론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 그런데 이제 저희가 서비스를 오래 하면서 , 맵도 익숙해지고 . 어느 정도의 황금 루트 같은 것들이 공유되면서 요즘에는 그냥 잘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 것도 같아요 . 다만 , 모든 총기 게임이 그런 고민들을 하면서 유저분들을 헷갈리게 하는 요소를 넣으려고 하거든요 . 예를 들어 맵의 위치를 조금씩 바꾼다든가 , 너무 유리한 고지를 없애버린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 저희도 그런 고민을 하면서 총기 밸런싱을 하기도 하고 , 유저들이 너무 고이지 않게 장치들을 고민하고 있어요 . 이경혁 편집장 : 그런 지점은 확실히 배틀그라운드가 다른 게임에 비해서는 덜 보이는 것 같아요 . 문휘준 팀장 : 왜냐하면 저희는 우연성이 굉장히 큰 장르여서요 . CS:GO( 카운터 스트라이크 : 글로벌 오펜시브 ) 같은 거 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 유명한 철문 있잖아요 . 그냥 빼꼼하면 죽는 거거든요 . ( 일동 웃음 ) 저희는 우연성이 중요하다 보니까 그 정도는 아니고 , 실제로 유명 유튜버들의 영상을 봐도 낙하산 타고 내려오자마자 죽는 경우도 있어요 . 이경혁 편집장 : 배그는 그 재미죠 . ( 웃음 ) 다른 게임 이야기가 나와서 드리는 질문인데 , 우리 게임에 뭘 넣을지 고민하다 보면 다른 게임의 케이스를 공부하셔야 하잖아요 ? 실무자의 입장에서 인상 깊었던 커뮤니케이션 인터페이스가 있으실까요 ? 문휘준 팀장 : 제가 느끼기에 가장 멋있었던 사례를 이야기해드리자면 , 데이즈 (DayZ) 같은 경우에는 리얼리티 서바이벌 오픈 월드 장르를 표방하는 게임인데 , 메타버스적인 그런 요소를 하고 싶었나 봐요 . 그래서 보이스 채팅도 게임의 리얼한 월드의 일부라고 생각을 하고 접근을 했고 , 그런 걸 요즘은 전문용어로 프록시미티 챗 (Proximity chat: 근접 채팅 ) 이라고 하더라고요 . 그런 맥락에서 이 게임은 근방 2m 안에 있는 사람만 직접적인 보이스 채팅을 할 수 있다든가 , 멀리 있는 사람한테 말을 건네고 싶으면 확성기를 구해서 말을 한다든가 , 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헬멧을 쓰고 있으면 목소리가 뭉개져서 나간다든가 하는 설정이 굉장히 리얼리티함을 더해서 멋있었어요 . 이경혁 편집장 : 그런 지점에서 배그라는 게임이 갖고 있는 장르적 특성 때문에 인게임 커뮤니케이션 수단들에 대한 고민이 또 달라지실 것 같아요 . 그렇다고 팀원이랑 소통을 막는 것도 어려울 것이고 , 반대로 게임이 시작되었는데 MMORPG 처럼 전체 외치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어렵잖아요 ? 이 공간은 리얼한 게임 공간이어야 하기에 , 어떤 커뮤니케이션은 제한되어야 하는 경우도 있으실 것 같은데 , 관련해서는 어떤 고민들이 있으셨어요 ? 한수지 실장 : 그런 지점에서는 ‘시작 섬’ 같은 곳이 저희의 특이한 케이스인 것 같아요 . 저희는 게임에 접속하면 그냥 바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 시작 섬에 일단 모여 있다가 비행기를 타고 , 그 다음에 낙하산으로 내려서 각자도생을 하는데 , 시작 섬 같은 경우에는 비행기 타기 전이니까 예전에는 저희가 보이스 채팅을 다 열어놨어요 . 그때는 본격적으로 배틀 로얄을 하기 전에 스몰 토크를 하면서 긴장을 풀 수 있었는데 , 이게 의도랑은 다르게 핵 광고를 한다거나 욕을 무차별적으로 한다거나 하는 행위들 때문에 유저분들의 피로감이 높아져서 그걸 없애게 되었어요 . 이경혁 편집장 : 그래서 시작 섬이 고요해진 것이군요 . 한수지 실장 : 대신에 이제 재미를 주려고 , 축구공을 넣는다든지 , 비켄디에 가면 눈덩이를 던질 수 있게 한다든지 , 요새는 차 스킨을 내고 있어서 맥라렌이나 애스턴마틴 차를 타게 해본다든지 그런 식으로 좀 긴장도 풀고 스쿼드 원의 옷 스킨을 입어본다던가 할 수 있는 인터랙션 요소들을 넣고 있어요 . 이경혁 편집장 : 어떻게 보면 시작 섬의 1 분이라는 시간이 이 게임의 가장 평화로운 순간일 텐데 , 그 안에서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제한하거나 제공하면서 게임의 분위기를 만드시는 지점이 있으신 거군요 . 한수지 실장 : 한 번 게임을 시작하면 한 40 분 정도는 긴장을 하고 , 마우스를 잡고 있어야 하니까 , 그전에 좀 릴렉스하면서 팀원들이랑 지도를 보며 , 어디서 내릴지 , 동선은 어떻게 할지 이야기하는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구요 . 그때까지만이라도 마음 놓고 편하게 이야기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의도도 있는 거구요 . 이경혁 편집장 : 그런데 한편으로 저는 맥라렌이 나오면서 게임 섬 분위기가 조금 바뀐 지점도 있거든요 . 이전에는 말씀해 주신 것처럼 친구들이랑 같이 계획하고 , 평화로웠는데 , 맥라렌이 나오는 순간부터 워낙 시끄럽다보니까 오히려 전투 의지를 불태우는 그런 변화도 있었는데요 . ( 웃음 ) 그런 지점도 커뮤니케이션의 맥락에서 의도하신 것인가요 ? 문휘준 팀장 : 사실 그건 커뮤니케이션의 맥락이라기보단 상품 쪽에서 담당한 거예요 . 부분 유료화로 저희가 전환을 하면서 아무래도 유료 상품에 대한 홍보의 차원이 들어간 것이기도 하고요 . * 시작점에서 팀원들이 함께 군무를 추고, 다른 사람들이 엄지를 날리며 구경하고 있는 모습. 2초 뒤에 이들은 서로 총을 겨눈다. 이경혁 편집장 : 다음으로는 게임 안에서의 소통을 좀 여쭤보고 싶은데 , 실제 게임에 들어갔을 때의 보이스 채팅을 보면 사람들이 반드시 게임에 필요한 이야기만 하지는 않더라고요 . 특히 저 같은 경우에는 워낙 친한 사람들끼리 하다 보니까 , 애 키우는 이야기나 일상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 문휘준 팀장 : 맞아요 . 유튜브 콘텐츠가 흥하는 게 , 다른 게임의 경우 너무 빠르니까 , 말을 하고 싶어도 눈만 매섭고 클릭 소리밖에 안 들리는데 , 저희는 진짜 5 페이지 정도 가기 전까지는 자신이 뭘 먹었는지 등등 가벼운 이야기들을 하면서 유저들과 소통하는 시간이 있고 , 지루할 때쯤부터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기 때문에 , 그런 호흡들도 유튜브 콘텐츠들과 잘 맞는 재미도 있는 것 같아요 . 실제 유저들도 초반에는 그냥 친구들이랑 스몰 토크하면서 놀다가 , 후반에 집중해서 싸우고 그런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 이경혁 편집장 : 배그라는 게임 자체의 텐션이 선형으로 올라가기보다는 특정 텀이 있는 것 같아요 . 낙하산 떨어져서 잠깐 되게 긴장했다가 소강되면 흩어져서 서로 안 보이고 . 그런 사이사이에 게임의 텐션이 떨어지는 순간을 어떻게 보면 커뮤니케이션을 좀 메운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이렇게 게임 밖으로 빠져 있지 않은데 , 텐션은 내려와 있는 상황이 배그 말고 다른 게임에서도 보신 적이 있으세요 ? 한수지 실장 : 마비노기가 좀 비슷한 것 같아요 . 수다노기 시절에 던젼 들어가서 친구들이랑 모닥불 피워놓고 놀고 . 문휘준 팀장 : 그런 케이스도 있었던 것 같네요 . WoW 시절에 팀보이스로 소통을 하는데 , 당시에는 커뮤니티에서 같이 게임하실 분을 소집했었어요 . 그러면 유명하신 분들이 있어요 . 유튜브가 없던 시절인데 , 그분이랑 게임을 하면 거의 유튜브 하나 찍는 거예요 . 그분이 와서 계속 떠들어요 . 자기가 살아왔던 썰을 풀고 , 웃겼던 썰 풀고 하니까 게임하는데 , 라디오 들으면서 게임하는 재미가 있었대요 . 이경혁 편집장 : 일종의 엠비언트이면서 게임하고 붙어있지만 또 떨어져 있는 순간들 . 그런 게 오디오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한 포인트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드네요 . 운전하면서 라디오 듣듯이 게임하면서 반드시 게임에 관련된 커뮤니케이션만 있는 게 아닌 커뮤니케이션 . 그런 게 배그의 보이스 채팅이 아닌가 싶어요 . 그런데 아무래도 다른 게임보다 오디오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배그에서 오디오 커뮤니케이션을 악용하는 사례들도 있을까요 ? 문휘준 팀장 : 저희가 사례나 지표 같은 걸 보는 부서는 아니지만 , 그런 사례가 나타났을 때 어떤 식으로 UX/UI 측면으로 커버할 수 있을까를 기획팀과 같이 고민하는 역할이거든요 . 그래서 비슷한 사례로는 불필요한 커뮤니케이션을 싫어하시는 분들을 볼 수 있었어요 . 그리고 그런 것들을 막을 수 있는 옵션도 제공을 하고 있어요 . 크게는 두 가지가 있는데 , 하나는 어떤 대화도 하지 않을거라고 체크할 수 있는 기능이 있어요 . 다만 , 다른 팀원들이 그런 의사를 알 수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아예 아이콘으로 유저들한테 보여줘요 . 마이크 차단 버튼이 떠서 ‘나는 소통을 할 생각이 없습니다’라고 이렇게 명확하게 알려주는 그런 기능을 넣었어요 . 그렇게 해도 핑을 찍거나 포인트를 잡는 것으로 소통을 하고 있고요 . 두 번째로 라디오 메시지 같은 경우에는 불필요한 데이터를 악용할 수 있다는 걸 내부 테스트로 사전에 확보를 했거든요 . 그것도 굉장히 게임이 진행이 안 좋아요 . 게임 프레임에 영향을 줄 수 있고요 . 예전에 오버워치에도 그런 핵이 있었어요 . 불필요한 데이터를 날려서 사람들을 굳어지게 하고 , 나는 더 유리한 위치로 가는 핵도 있었거든요 . 저희는 그런 걸 방지하기 위해서 너무 많은 양의 불필요한 매크로 채팅이 올라오면 차단하는 기능이 있고 아예 꺼버리는 옵션도 제공을 하고 있습니다 . 이경혁 편집장 : 트래픽을 일으켜서 그걸 핵으로도 쓰는군요 . 정말 연구들을 정말 많이 하네요 . 한수지 실장 : 상상력이 뛰어나죠 . ( 웃음 ) 이경혁 편집장 : 다른 수단들도 좀 그렇게 악용되는 케이스가 있나요 ? 예를 들어 맵에 포인트 찍는 이런 기능을 갖고 악용을 한다거나 . 문휘준 팀장 : 웨이포인트도 내부에서 테스트를 할 때 처음에 의견을 내신 분은 좀 자유롭게 찍었으면 좋겠다고 했었거든요 . 그런데 테스트를 해보니까 그걸로 욕을 쓴다거가 , 이상한 그림을 그린다거나 , 무의미하게 화면을 꽉 채운다든가 그런 행동이 가능한 걸 감지를 했고 , 그래서 서비스할 때는 개수를 제한을 해놓은 상태입니다 . 이경혁 편집장 : 결국 인간이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니까 , 예측할 수 없는 사용 방안이 나올 것 같은데 , 인터페이스를 만들고 운영하실 때 고민이 많으실 것 같아요 . 문휘준 팀장 : 그렇죠 . 회사마다 방침이나 의지가 틀릴 건데 저희 회사는 그런 거를 좀 명확하게 제재하는 쪽이 더 좋다고 생각하있기 때문에 , 아까 말씀드린 기능들이나 보안 장치들을 사전에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이경혁 편집장 : 배그라는 게임을 이제 중심으로 좀 얘기를 해보다 보니 , 텍스트 채팅이 없다라는 특이점이 굉장히 재밌는데요 . 두 분 다 텍스트 채팅하는 게임의 시대를 겪어보셨을 텐데 , 지금 담당하고 있는 게임에서 텍스트 채팅이 빠졌다는 것에서 느끼는 좀 차이점이 있으실까요 ? 문휘준 팀장 : 제가 느끼기에는 이제 예전 게임에서는 채팅으로 정말 재밌게 많이 놀았어요 . 재밌는 얘기도 많이 하고 , 인간미 넘쳤던 사례들도 많았던 것 같아요 . 그런데 거꾸로 다짜고짜 욕을 한다든가 , 부적절한 얘기도 굉장히 많았었던 걸로 기억해요 . 그런데 그때랑 지금이랑 좀 다른 것은 그때는 게임을 즐기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고 , 부적절한 상황들도 ‘그냥 게임이니까 그런 거야’하고 넘어가는 경우들이 있었는데 , 이제는 사회가 발전되었고 , 또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도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아졌기 때문에 온라인에서 행해지는 행위도 법적으로도 제재가 되고 인정이 되는 세상까지 왔잖아요 . 그래서 온라인 세상에서도 그런 행위를 하면 안 되는 것에 대해 유저들도 자각을 하게 되고 , 게임사도 방지책을 준비하고 운영해야 되는 시대가 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이경혁 편집장 : 그런 지점에서 클랜 서비스 같은 걸 업데이트 하신 것도 방지책의 일환일까요 ? 문휘준 팀장 : 네 . 있을 것 같아요 . 왜냐하면 좋은 클랜이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많이 들어갈 거고 , 여기서 나쁜 짓을 하면 쫓겨날 거기 때문에 서로 젠틀하게 게임을 하는 걸 유도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이경혁 편집장 : 한편으로는 이런 걱정도 좀 드는데 , 회사 입장에서는 결국 몇몇 이용자들의 무분별한 행위를 막기 위해 뭔가를 만드는 것도 비용이잖아요 . 회사 입장에서는 손해가 아닌가요 ? 문휘준 팀장 : 그쵸 . 그거에 들어가는 개발 비용도 있을 거고 , 유지 비용이 제일 클 수 있죠 . 한수지 실장 : 텍스트 채팅만 있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저희가 다른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좀 많기 때문에 더 복잡도가 있는 거는 맞는 것 같아요 . 이경혁 편집장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느끼는 베틀그라운드의 재미는 50% 이상이 커뮤니케이션이었거든요 . 제작하시는 쪽에서도 그런걸 기획하시는 거죠 ? 한수지 실장 : 네 . 소통도 있고 , 이제 경치가 좋다보니 구경하면서 맵을 탐험하는 재미도 저희 회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경험 중 하나예요 . 이경혁 편집장 : 요즘에는 AI 도 많이 늘었잖아요 ? 어떻게 보면 한 게임에 들어올 수 있는 실제 사람 플레이어의 숫자는 예전보다 좀 줄었을 수 있는데 , 그러면 커뮤니케이션의 문제가 확실히 빈도가 좀 떨어지게 되는 걸까요 ? 한수지 실장 : 그런데 캐주얼 매치라고 해서 12 명의 일반유저와 88 명의 AI 가 섞여서 싸울 수 있는 맵에서는 오히려 더 좋아하시는 것 같기는 해요 . 왜냐하면 나랑 같이 하는 친구들이랑 계속 얘기를 하면서 이제 교전하는 재미도 같이 느낄 수 있으니까 . 난이도도 조금 낮기도 하고 . 그래서 그걸 두 개를 다 좋아하시는 분들은 그 캐주얼 매치에서 그 재미를 많이 찾으시는 것 같아요 . 이경혁 편집장 : 마지막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 , 두 분 다 텍스트 채팅 시절을 다 경험해 보셨잖아요 . 세이클럽이나 하늘사랑 (skylove) 같은 곳에서 텍스트 채팅의 설레임을 느껴본 세대이실 것 같은데 , 어떻게 보면 텍스트 채팅이 점점 없어지고 있잖아요 . 배틀그라운드가 되게 중요한 포인트가 되고 있기도 하고요 . 그런 지점에서 텍스트 채팅 시절을 좀 기억한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 문휘준 팀장 : 저의 경우에 , 예전에는 그런 게 굉장히 신기했고 , 신문물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만 한정되어 소통했던 분위기였는데 , 이제는 온라인 채팅의 영역이 굉장히 커졌잖아요 . 지금은 채팅 공간이 너무 당연한 공간이고 , 좋은 글도 써주는 사람도 있지만 나쁜 글도 굉장히 많고 , 그런 지점에서 스트레스를 겪는 사람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 그래서 이제는 다음이라든가 네이버에서도 일부는 아예 댓글을 막는 솔루션도 제공을 하잖아요 . 그런 차원까지도 왔다고 생각해요 . 게임도 그렇고 . 즐기러 왔는데 욕을 들으면 굉장히 기분이 나쁘잖아요 . 그런 것들을 피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가 좀 어느 정도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 이경혁 편집장 : 그런 변화 속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하시는 분들은 정말 어렵겠구나 생각이 드네요 . 혹시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 문휘준 팀장 : 제일 중요한 게 있습니다 . 저희 배그를 많이 사랑해주세요 . ( 웃음 ) 한수지 실장 : 그리고 저희가 이번 12 월에 굉장한 업데이트와 콘텐츠들이 준비되어있으니 많이 즐겨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 ( 웃음 ) Tags: PUBG, 배틀그라운드, 크래프톤, 의사소통, 감정표현, 이모티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게임과 예술: 게임 플레이 경험을 깊이있게 만드는 것은 가능한가

    ‘게임은 예술인가’라는 질문은, 그 질문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합리적인 대답을 기대한다면 생산적일 수 없다. 나는 이 글을 통해 그 이유를 설명하고,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얻게 되는 “미적 경험(aesthetic experience)”에 대한 사유가 게임을 예술 또는 비예술로 분류하는 것보다 더 나은 접근 방법임을 주장하려고 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 Back 게임과 예술: 게임 플레이 경험을 깊이있게 만드는 것은 가능한가 12 GG Vol. 23. 6. 10. You can see this article's english version at below URL: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match=id:229 ‘게임은 예술인가’라는 질문은, 그 질문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합리적인 대답을 기대한다면 생산적일 수 없다. 나는 이 글을 통해 그 이유를 설명하고,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얻게 되는 “미적 경험(aesthetic experience)”에 대한 사유가 게임을 예술 또는 비예술로 분류하는 것보다 더 나은 접근 방법임을 주장하려고 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술적 작품이란 곧 미적 경험의 주입과 같은 것이 아닌가요?” 이에 대한 대답은 ‘당연하다’겠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와 같은 ‘경험’의 유형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만약 게임이 다양한 감정을 지닌 주인공이 겪게 되는 복잡다단한 내면의 상태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면, 우리는 게임을 문학이나 철학적 작품과 비교(하고 또 그에 따라 판단)하고자 할 것이다. 나의 제안은 (게임의) 예술적 지위 여부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벗어나 그 경험을 조망함으로써 관심의 초점을 (기껏해야 미심쩍을 뿐인 목표인) 게임의 고급 문화로의 편입으로부터 보다 심오한 게임플레이 경험으로 옮기자는 것이다. 이처럼 게임플레이 경험 깊이의 심화라는 목표는, 우리로 하여금 그 경험에 보다 많은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면서 게임이 기존의 경험적 한계를 넘어서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미학’ 그리고 ‘경험’ 게임은 멀티미디어 작업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게임은 숙련된 개인들의 협업으로 만들어져 단일 매체의 경계를 가뿐히 넘어서는 종합예술(Gesamstkunstwerks)라 부를 수 있다. 게임을 플레이할 때 우리는 그 초점을 전체적인 경험에 맞추거나, 또는 시각적 재현이나 애니메이션, 레벨 디자인, 대사, 음악 등 보다 협소한 부분에 맞출 수 있다. 여기서 내가 ‘경험’이라 칭한 것의 개념은 ‘미학(또는 미적인 것)’의 개념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통해 드러날 수 있는데, 그 의미는 다원적이다. 서양 미학은 일반적으로 아이스테시스(aísthēsis, 감각 및 그로부터 얻는 분별력)과 노에시스(noesis, 순수하게 지적인 이해 또는 이성의 적용)을 구분해왔다. ‘미학’은 종종 ‘감각(sensation)’, ‘지각(perception)’ 및 ‘판단(judgement)’의 개념이 중첩되어 확장된 방식으로 이해되곤 하는데, 여기서 감각이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감각적 경험을 통해 얻는 것이고, 지각에서는 관찰자의 활동이 대상을 인식하거나 인지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며, 판단의 경우 미학적 판단이 개념이나 이성의 적용에 의해 매개되지 않는다는 특성을 지닌다. ‘게임 미학’이란 컴퓨터게임, 디지털게임 또는 비디오게임이 지니는 특별한 독특성을 함의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게임 미학은 ‘게임의 플레이란 어떤 느낌인가’와 같은 게임플레이 경험의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감각을 통해 특정한 유형의 경험이나 인식을 얻을 수 있도록 해주는데, 미학적 관점에서 연구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철학자 존 듀이(John Dewey)는 지속적으로 소위 ‘고급’ 문화(high culture)와 대중문화(popular culture)간의 연속성을 주장해왔다. 듀이의 생각은 인간이 분열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와 같은 분열은 우리의 (감정적, 지적, 감각적) 능력이 서로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하지 못하도록 구획되거나 분리될 때 발생한다. 이 분열은 ‘예술’의 영역이 ‘생활’의 영역과 분리된 것으로 여겨지는 순간에 발생하는데, 예컨대 미술 갤러리나 오페라 하우스 같은 지정된 공간에 진입할 때에만 미적 경험이 가능하다고 가정하는 (그리고 그 외부에서는 미적 경험이 불가능하다고 가정하는) 그 순간에 발생한다. 이러한 인식은 결국 그 외의 다른 모든 경험들을 비(非)미적인 것으로 방치하는 것이자, 심지어는 임금을 벌거나 집 청소하기, 건강 유지, 친구와의 대화 등 다양한 여타의 경험들을 직접적인 목적을 위한 수단적인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거기에는 다른 어떤 가치도 없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우리의 즉각적인 경험(immediate experiences)이 향상되면서 미적 경험이 개인의 주요 관심사와 삶에 통합될 때 가능한 풍요로움을 놓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술가, 큐레이터, 비평가들을 탓하자는 뜻은 아니며, 예술세계에 우리의 경험을 깊이 있게 발전시킨 작품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다 - 그러한 작품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예술세계를 분리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을 원하는 금전적 이해관계가 실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비/예술의 구분을 짓는 권력을 공고히 하고 ‘이것이 예술이다’라는 상징적 지위를 부여하는 권능은 현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게임은 예술인가?’라는 질문에는 다양한 중요 가정들이 내재하는데, 이러한 가정들이 게임 플레이 경험에 대한 세밀한 주의력을 발전시키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우선 어떤 것이 예술 작품인지 아닌지를 추정할 때 적용되는 ‘예술’의 개념에 대한 가정이 있다. 이러한 가정은 이분법적으로 분류함으로써 질문의 확장을 억압할 수 있다. 둘째, ‘게임’을 단일한 카테고리로 묶는 가정이 있다. 이는 단일한 장르에서도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는 게임플레이를 분석하는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게임을 (대부분의) 다른 예술 작품들의 방식을 통해 식별이 가능한 객체 또는 작품이라고 보는 가정이 있다. 이러한 인식틀에서 (게임의 미적) 가치는, 게임플레이의 경험을 최대한 활성화하기 위해 플레이어가 게임플레이에 들여오는 과정보다는, 개발자의 예술적 통찰이 담긴 표현에 존재한다고 여겨진다. 〈다크 소울(Dark Souls, 2011, From Software)〉 같은 게임이 우울증에 대해 도움이 된다는 보고가 있는데, 그와 같은 플레이어의 경험적 변화를 만들어낸 것은 긴 과정 동안 형성된 플레이어와 게임 간의 연결 속에서 플레이어가 가지게 된 심리적 상태(와 게임플레이에 대한 전념)였다. 비평가의 미학적 기준 지난 2005년 영화 평론가 로저 에버트(Roger Ebert)는 저자의 통제를 필요로 하는 문학이나 영화 등의 진지한 예술과는 달리, 본래적 속성상 플레이어의 선택을 요하는 게임은 예술의 위상에 도달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후에 이와 같은 발언이 바보같은 짓이었다고 언급하긴 했지만, 에버트의 주장은 게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관점 - 게임은 유치하고, 세련되지 못하며, 즉각적인 만족을 충족시킬 뿐이며, 화려한 시각효과만 가득하고, 모호성을 배제하기 위해 정량화되고, 저속한 감정에 영합하는 것이라는 - 에 부합하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수행했던) 로저 에버트의 주장에 대한 해체나 반박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주장의 본질을 강조하려 한다. 그 주장이란 예술의 지위를 진지하게 다투려면 게임이 다른 예술 형식들과 같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 이와 같은 주장은 논쟁의 여지조차 없을 정도로 당연한 것이며, 심지어 일부 게임 철학연구자들조차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예술 철학자인 그랜트 태비노어(Grant Tabinor)는 주로 게임을 예술로 간주할 수 있을지와 같은 존재론적 문제를 연구해왔다. 이 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음에도, 그는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일부 비디오게임만이 예술로 간주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의 접근 방식은 예술에 대한 기존의 정의에 기반하여, 게임이 해당 조건을 충족시키는지 여부를 분석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어떤 단일한 이론에만 의존하는 접근은 피하는 대신, 미적인 속성이 목록화된 ‘클러스터 이론(cluster theory)’의 방식을 취했다. 즉 목록의 미적인 속성 중 충분한 수를 충족시킨 게임은 예술작품이라 간주되는 것이다. 2009년의 저작 〈The Art of Videogames〉의 177페이지에서 태비노어는 미학자 베리스 거트(Berys Gaut)가 제시했던 클러스터의 정의를 언급하는데, 이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속성들에 부합하는 것을 예술 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은 것들은 예술 작품이 아니다: (1) 아름다움이나 우아함 등(감각적인 즐거움의 기반이 되는 속성)과 같은 긍정적인 미적 속성을 지닐 것, (2) 감정을 표현할 것, (3) 지적으로 도전적인 것(예를 들어 기존의 견해나 사고 방식에 대한 질문을 던질 것), (4) 형식적으로 복합적이되 일관될 것, (5) 복잡다단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을 것, (6) 개별적인 관점을 보여줄 것, (7) 창의적인 상상력을 수행할 것(독창적일 것), (8) 숙련된 고도의 기술로 생산된 인공물 또는 퍼포먼스일 것, (9) 기존 예술 형식(음악, 회화, 영화 등)에 속할 것, (10) 예술작품을 만들겠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산물일 것 태비노어는 베리스 거트가 예술 작품이라면 이와 같은 10개의 조건을 전부 충족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예술에 대한 군집적인 정의를 구성하는 조건을 제시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태비노어가 기존의 클러스터 이론이 제시한 이와 같은 조건들이 광범위하게 옳다는데 동의하는 것 - 그러한 이론이 세부 사항에 대한 수정 권한을 보유하고 있을지라도 - 은 명백해 보인다. 이러한 접근 방식에 따라 그는 〈스페이스 인베이더(Space Invader, 1978, Taito)〉나 〈레드 데드 리뎀션(Red Dead Redemption, 2010, Rockstar San Diego)〉 등 게임계에서 클래식으로 인정받은 게임들을 예술적 지위에서 배제했는데, 왜냐하면 이 게임들은 클러스터 이론과 매우 부분적으로만 중첩되었기 때문이다. 〈Routledge Companion to Game Studies(p. 60)〉의 한 챕터에서 태비노어는 〈레드 데드 리뎀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레드 데드 리뎀션〉은 최신 게임 예술의 정점으로서 자주 거론되지만, 게임의 드라마나 내러티브는 섣부르게 흉내낸 파생적인 서부극에 가깝다. 영화로 치면 단호하게 B급이다. 많은 경우 게임의 서사나 캐릭터, 연기, 각본 등에서 낮은 수준이 발견된다. 뿐만 아니라 승인된 예술에서 나타나는 세련됨의 정도에 도달하는 경우를 게임 중에서 찾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상기의 글은 결국 〈레드 데드 리뎀션〉에 대해 ‘내러티브, 캐릭터, 연기, 각본’에 따라 판단했음을 보여준다. 그와 같은 요소들은, ‘상호작용(또는 그 고유한 속성을 지칭하는 다른 프레임)’에 의해 생성되는 게임플레이 경험의 리듬이나 느낌보다는, 클러스터 이론에 더 부합하는 것들이다. 결국 태비노어는 게임이 단순히 기존 예술형식의 파생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하나의 예술 형식이라고 보는 입장임에도, 클러스터 이론을 적용한 그의 주장은 기존의 예술 이론에서 나온 (미적) 속성의 목록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러한 속성들은 게임이 예술로서의 자격 - 심지어는 게임이 미학적으로 고려할만한 가치가 있는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 에 대한 진정성 있는 고려가 이루어지지 않은 문화적, 역사적 맥락 속에서 수립된 것들이다. 결국 태비노어의 철학적 방법론은 이와 같은 결과로 이어져 버렸다. 게임으로 작업하는 예술가들은 게임플레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기존의 철학 분야만 게임플레이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술계는 중립적인 역사적 맥락 내에서 게임을 소개함으로써 게임플레이의 속성에 관한 문제를 우회하는 경향이 있다. 영국에서 최초로 열렸던 게임 전시는 2002년 바비칸 아트 갤러리(the Barbican Art Gallery)에서 열렸던 〈Game on: the History and Culture of Video Games〉였다. 미국의 스미소니언 미술관(The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또한 2012년 The Art of Video Games 전시를 통해 〈컴뱃(Combat, 1977)〉에서부터 〈리틀 빅 플래닛(Little Big Planet, 2011)〉까지의 과정을 역사적으로 접근했다. 또 다른 (우회) 전략으로는 게임의 아바타나 가상세계 거주의 개념, 게임의 표상적 측면 등 게임에 대한 이해에 있어 보편적인 측면들을 앞세우는 것이 있다. 미국의 아티스트 코리 아켄젤(Cory Arcangel)은 게임의 시각적 측면에 관념적으로 접근하는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들은 ‘게임-관련 예술(game-related art)’ 가운데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현대미술 박물관, 휘트니 박물관, 시카고 현대 미술 박물관 등지에서 전시되었다.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1983년의 게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를 모딩하여 푸른 하늘과 8비트의 하얀 구름만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없앤 비디오 설치 작품 〈슈퍼마리오 클라우드(Super Mario Clouds)〉가 있다. 여기에는 마리오도, 쿠파도, 굼바도 없다. 이 작품에서 게임플레이는 시각적 명상(visual contemplation)을 위해 퇴치되었다. 아켄젤은 또한 2011년 바비칸에서 〈Beat the Champ〉라는 전시를 선보였는데,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시간 순서대로 14개의 볼링 게임을 정렬한 이 설치 작품에서도 게임플레이는 배제되었다 . 전시 공간을 걸어가면서 관객은 볼링공이 핀에 부딪히는 소리가 아닌 거터볼(gutter ball) 소리를 듣게 되는데, 이는 점수를 낼 수 없도록 아켄젤이 볼링 게임들을 프로그래밍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갤러리의 관객들은 로저 에버트가 찬양했던 작가적 통제(authorial control)와 조우하게 된다. 연이어 발생하는 상황(실패)에 대한 사유를 유도하기 위해 디자인된 실패한 볼링 게임의 상황을 관객들이 오디오-비주얼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게임플레이의 경험적 측면에서 볼 때 이는 실패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사회적 및 게임의 맥락이 거세된 (미리) 결정된 실패다. 전시회장에 전시된 콘솔의 존재는 - 해당 전시에서 게임 플레이는 단순한 녹화본이 아니었다 - 관객이 게임을 직접 플레이할 수 없다는 불능성(inability)을 강조한다. 이 불능성은 게임플레이와 연계되어 발생하는 긴장과 불안, 춤을 추듯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의 움직임, 게임 리듬에 적응해가는 과정, 피할 수 없는 좌절, 그리고 어떤 게임이 가장 매력적인 게임플레이를 제공했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등에 대한 판단을 경험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아켄젤은 게임을 가지고 이 작품을 만들었으며, 이는 또한 그가 게임을 전시한 방식이기도 하다. 〈수퍼마리오 클라우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 예술성은 전시의 개념적이고 시각적인 측면에 놓여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는 예술 세계에서 익숙한 언어다. 하지만 이는 분명 게임이 아니다. 하나의 경험으로서 게임플레이의 신체적 도전 또한 다뤄지지 않았다. * Image from: https://coryarcangel.com/shows/beat-the-champ 한편, 로비 쿠퍼(Robbie Cooper)의 설치작품 〈Immersion(2008)〉은 게임플레이를 핵심적인 관심사로 둔다. 이 작품은 전세계 디지털 미디어 이용자들의 신체적인 반응을 기록한 것 인데, 아이들의 게임 플레이로 구성된 부분이 눈에 띈다. 플레이어 얼굴의 고화질 캡쳐는 플레이어들의 순간적인 마음 상태를 우리가 엿보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이 작품에서 카메라는 마치 플레이어들이 우리를 똑바로 바라보는 듯한 위치에 놓여있다). 비록 바뀌는 게임 화면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대신 게임에서 들려오는 사운드와 플레이어의 얼굴 표정 및 신체 자세 간의 대응을 볼 수 있다. 한 소녀가 격투 게임인 〈철권5: 다크 레저렉션(Tekken 5: Dark Resurrection)〉을 플레이하고 있다. 타격이 이어지면서 캐릭터들의 신음소리나 고함소리 등과 함께 특수 효과가 곁들어 진 사운드가 들린다. 우리는 게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맞출 수 있는데, 왜냐하면 〈철권〉을 플레이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움직임이 어떤 사운드를 내는지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쿠퍼의 주체들이 신체적으로, 감정적으로, 인지적으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볼 수 있으며, 또한 플레이어에 의해 어떤 행동이 수행되었으며 이후 그러한 행위가 플레이어-게임 간의 장치적 루프(machinic loop) - 즉 게임플레이 - 내에서 플레이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볼 수 있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겪는 경험의 복잡성 및 그러한 경험이 플레이어의 신체적 존재감과 어떤 식으로 엮여들어가는지에 대해 우리가 주의를 집중시키는 데 성공한 쿠퍼지만, 그 너머를 밝히는 것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거울을 들어 보여주기는 했지만 관련해서 주석은 달지 못한 셈이다. * Image from: https://robbiecooper.com/project/immersion 게임 경험을 발전시키기 위해 기존의 게임플레이 규범에 도전하는 인디 게임개발자들은 플레이어와 개발자들이 ‘좋은 게임플레이’ 모델로서 수용하여 일반화된 장르 경험을 인식시킴으로써 우리의 게임 경험을 발전시켜왔다. 그에 따라 그들은 현재의 게임 디자인에 있어서 진부해진 것은 무엇이며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다른 대안적인 경험은 무엇일 수 있는지에 대해 자신들의 의견을 제시해왔다. 물론 보다 규모가 큰 개발사들도 이러한 시도를 해왔다. 나는 여기서 그와 같은 혁신의 역사를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와 연관된 인디 게임의 사례들은 수없이 많고, 이에 대해서 다른 곳에서도 많이 논의가 되어왔으므로, 여기서는 간결하게 정리하고 넘어가려 한다. 우선 〈언더테일(Under Tale, 2015, Toby Fox)〉은 어떤 상황에서 우리가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유일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그리고 그것이 게임플레이가 생성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플레이어로 하여금 RPG라는 장르가 지녀온 가정을 대면하도록 만들었다. 〈브레이드(Braid, 2008, Number None)〉는 시간-기반 메카닉의 가능성을 열어젖히면서 많은 게임들에 영향을 미쳐왔던 인과성에 대한 생각을 재고토록 했다. 〈스탠리 패러블(Stanley Parable, 2013, Galactic Cafe)〉는 게임 내 반복성의 한계를 통해 선택과 자유의 문제를 다루면서 게임 속 자유가 궁극적으로 제한적이라는 문제를 다뤘다. 〈항아리 게임(Getting Over It with Bennett Foddy, 2017, Bennett Foddy)〉는 플레이어가 ‘(스스로를) 이겨내는 것’이 가능한지, 아니면 그 자신의 자아 또는 ‘하드코어 게이머’로서의 정체성을 위해 자신에 대한 가혹한 기대 속에 갇히게 되는지를 통해 플레이어와 그 자신 간의 관계를 시험하게 한다. 그 밖에도 다양한 게임들이 게임플레이 경험에 대한 성찰을 유발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신중한 제안들을 기다려야 한다거나 게임의 예술로서의 지위나 미학적 경험을 그러한 게임들에 온전히 의지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깊이 있는 게임플레이 경험을 위해 일상의 삶과 예술을 통합하자는 존 듀이적 프로젝트는 우리가 하나의 커뮤니티를 이루어 예술적인 관심을 일상으로 가져올 때에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이는 결코 쉬운 도전이 아니다. 이번 글에서 나는 게임플레이 ‘경험’ 및 그 경험을 깊이 있게 만들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각 개인들이 자신만의 고유한 게임 경험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그리고 그러한 능력을 고양시키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규범에 맞춰 자신들의 능력을 구획하지 않는 공동체를 만들자는 듀이적 이념과 부합한다. 다양한 범주의 게임들이 공유하는 게임플레이 경험이 지니는 보편적인 측면들에 대해 개괄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그와 같은 기술적인 일반화(descriptive generalization)는 개인들이 특정 상황에서 겪게 되는 특정한 경험들에 대한 희미한 그림자일 뿐임을 인정해야 한다. (게임 플레이 경험에는) 게임의 메카닉을 내재화하고, (게임에) 적응해가면서 추론해낸 원칙에 따라 행동하고 대응하면서 점진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기술이 발전하는 것에는 기쁨이 존재한다. 또한 다양한 선택에 대한 전략적 평가와 그 선택에 따른 결과에 대한 추측이 존재한다. 관련성 여부에 따라 정보의 조각들이 선택적으로 기억되거나 잊혀지는 긴장이 존재한다. 또한 (게임플레이 경험에는) 움직이는 특정 자극에 대해서 지적이지만 무의식적인 주의 집중 - 다른 것에는 향하지 않는 - 이 존재하는데, 이는 복잡다단하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기회와 위협을 추적하는 것이다. 그리고 휴식과 패배 또는 승리가 걸린 순간들이 흘러들어왔다가 나가는 흐름에 대한 감상도 존재한다. 일부 레벨 같은 특정 맥락에서는 찰나의 행동이 일부 가능성을 응축시키고 다른 가능성을 차단하는 공간과 시간에 대한 예리한 인식이 존재한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으로, 콘트롤이 포기되면서도 행사되는 고요한 순간에 자동적이고, 직관적으로, 그리고 원숙하게(능수능란하게) 행동할 수 있는 능력에서 느껴지는 즐거움이 존재한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게임플레이 경험과 관련해서 기억상실을 겪곤 한다. 게임을 플레이한 경험을 우리 자신의 머리 속에서 단순한 '재미'의 경험으로 치부하고는 나중에 잊어버리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예술’이라 여기지 않는 것에 대해 미학적 관점을 적용하지 않는 탓이다. 그렇지 않으면, 게임을 보다 나아지거나 도전을 이기는 유형의 훈련으로 여겨, 그 진척의 정도에 따라 가치를 측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방식 대신, 게임플레이의 윤곽과 질감에 대해 곰곰히 곱씹어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게임플레이가 어떤 식으로 펼쳐졌고, 어떻게 발전해갔으며, 어떤 부분이 다를 수 있었을지, 그리고 그 가운데서 우리를 매료시켰던 점 또는 그렇지 못했던 점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물론 게임플레이 중에는 수행해야 하는 일들이 많기 때문에 플레이하는 그 순간에 그와 같은 성찰을 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게임에 능숙해질수록 그와 같은 성찰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월해질 것이다. 그와 같은 성취(게임 내에서의 성취와 게임플레이 경험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에 대한 성취 모두)를 이루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습관의 철학자인 클레어 칼라일(Clare Carlisle)은 생각, 신체적 감각 및 감정적 반응에 대한 우리의 주의력이 행동을 통해 습관화할 수 있으며 감정적 감수성을 함양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실천을 통해 복잡다단한 게임플레이 경험 속에서 우리는 그 경험의 미학적 가치에 대한 이해를 고양시킬 수 있을 것이며, 그에 따라 우리의 경험에 깊이를 더함으로써 게임이 잠재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포용성을 키울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Tags: 예술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펑 주 펑 주 박사(Dr. Feng Zhu)는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King’s College London)의 디지털 인문학부에서 게임과 가상환경(Games and Virtual Environment)을 가르치고 있으며, 권력, 주체성, 놀이의 교차점으로서 게임플레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주로 우리가 게임플레이를 통해 어떤 식으로 습관화되는지에 초점을 맞춘 연구를 수행하며, 특히 반영성과 주의력의 양가적 형태를 심어줄 수 있는 종단적 자아 형성으로서 게임플레이 형식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이 가운데서 일부는 존재의 미학적인 측면에서 해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아케이드가 할 수 있는 미래의 역할

    오락실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아케이드 게임장은 1980~1990년대의 많은 게이머에게 여전히 소중한 존재로 남아있다. 점차 가정용 게임기와 PC가 보급되며 집에서 게임을 즐기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어가는 환경에서도, 집에서 절대 즐길 수 없는,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게임을 동전 하나로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단순히 게임을 즐기는 의미를 넘어 게임 환경의 선두를 달린다는 이미지마저 주는 곳임을 뜻했고, 실제 게임 산업의 선두를 달리는 분야가 아케이드 게임이기도 했다. < Back 04 GG Vol. 22.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ngHun Lee Began writing about games in 1999, starting with the monthly magazine Gameline. After spending a fair stretch of time at game development studios, and wishing to contribute to game culture through writing rather than as a game maker, has been running IGN Korea since 2018.

  • 모든 게임의 확률은 여전히 주사위다

    비록 이제는 멀티코어를 활용하거나 별도의 알고리즘, 하드웨어를 이용해 진정한 의미의 난수를 디지털에서도 생성할 수는 있지만, 여전히 그 벽은 높다. 주사위라면 단 몇백원 만에 유의미하게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확률놀음을 할 수 있는데, 그 이상의 것이 왜 필요하단 말인가? < Back 모든 게임의 확률은 여전히 주사위다 17 GG Vol. 24. 4. 10. 주사위 ? 이제 퇴물 아닌가 ? 개인적으로 주사위라는 물건 자체를 매우 좋아한다 . 워낙 게임용으로 많이 써서도 있지만 , 주사위라는 물건 자체가 상징하는 ‘ 행운 ’ 의 느낌이 좋기도 했다 . 기본적으로 오프라인의 게임들은 주사위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한다 . 인생게임의 룰렛 같은 다른 도구들도 있지만 , 범용적으로 게임을 불문하고 적용되는 것들은 대부분 주사위 , 그리고 카드 묶음이다 . 특히나 TRPG 와 미니어처 워게임 같은 보다 클래식한 쪽은 주사위의 영향력이 굉장히 짙다 . 게임을 확률과 선택의 문제라고 압축한다면 주사위는 아주 오랫동안 , 어쩌면 게임이라는 개념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그 핵심을 책임지고 구축해온 존재다 . 우리에게 보통 가장 익숙한건 정육면체 주사위지만 , 필요에 따라 많은 주사위가 만들어지고 쓰여왔다 . 가장 작은건 정사면체 , 거기서 정육면체 , 정팔면체 , 십면체 , 정십이면체 , 실질적으로 쓰이는 것 중 가장 큰건 정이십면체다 . 많은 게임들은 이중 하나의 주사위를 위주로 구성되어 있지만 , 이중 여러가지 주사위를 동시에 쓰는 경우도 있다 . 이럴 경우 각각의 주사위는 단일 주사위로 창출할 수 있는 확률의 가짓수에 따라서 그 특성에 맞는 용도로 쓰인다 . 이들은 쉽게 각각의 면 개수를 토대로 d4, d6, d8, d10, d12, d20 으로 표현된다 . 이중에서 가장 익숙한건 역시 d6 과 d20 이다 . d6 은 가장 전통적인 주사위이고 , d20 은 요즘 TRPG 의 트렌드인 주사위다 . 널리 알려진 비디오 게임 ‘ 발더스 게이트 3’ 도 , 그리고 그 기반이 되는 ‘ 던전 앤 드래곤 ’ 최신판도 d20 을 기반으로 한다 . 하지만 이 모든 게임들을 그저 ‘ 주사위를 굴린다 ’ 하나로 공통되게 묶기에는 저마다의 게임이 주사위를 이용하는 방법은 세세한 면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 그로 인해 벌어지는 양상도 꽤 다르다 . TRPG 와 테이블탑 미니어처 게임 , 그리고 ‘ 아캄 호러 ’ 등으로 유명한 TRPG 의 형태를 빌린 보드 게임의 주사위 굴림은 기본적으로 스테이터스를 기반으로 한 게임을 위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스테이터스들이 분명한 이점 또는 패널티가 되어주되 , 이것이 고정값이 아니도록 하기 위해서 스테이터스를 기반으로 각 주사위들이 정해진 범위 내에서 이를 보정하는 역할을 맡은 셈이다 . 이런 개념에서 Roll for XX, Beat XX 라는 용례가 파생된다 . 즉 , 기본적으로 TRPG 나 미니어처 게임 , 이 방식을 채용한 보드 게임들의 기본 작용은 수치 대 수치의 싸움이다 . 타겟이 되는 수치가 있고 , 해당 수치에 대응되는 자신의 스테이터스 + 주사위 굴림값이 이를 넘겨야 하는지 , 이보다 낮아야 하는지 , 이상인지 이하인지 같은 목표 수치가 정해진다 . Roll for XX 는 그 XX 라는 수치를 목표로 굴린다는 뜻이며 , Beat XX 는 XX 를 초과한 값이 나와야만 한다는 뜻이다 . 이런식으로 주사위 굴림은 어떤 목표값을 가지게 되고 , 여기서부터 확률과 그 중간값 등을 계산할 수 있게 된다 . 이런 주사위 굴림이 가장 직접적으로 , 또 많이 쓰이는건 근현대적인 게임이라는 개념의 원류 중 하나인 워게임 , 그리고 그 워게임을 체계화하고 보다 재미와 흥미 위주로 변화시킨 테이블탑 미니어처 게임과 TRPG 다 . 국내에서 TRPG 뿐만 아니라 테이블탑 미니어처 게임은 정말 희귀한 취미이지만 , 필자는 그런 취미를 접하면서 여러가지 용례의 주사위를 써보곤 했다 . 흥미로운 건 주사위라는 확률 체계가 가지는 한계를 저마다의 게임이 뛰어넘는 방식이었다 . 주사위는 분명 시인성이 좋고 쓰기 편한 등 여러 장점도 있었지만 한계가 명확한 방식이기도 했으니까 . 가장 많이 플레이했던 미니어처 게임 ‘ 워머신 & 호드 ’ 의 경우 2d6(d6 주사위 두개 굴림 ) 이 거의 모든 대면 굴림의 기본이었는데 , 주사위 한 개가 아닌 2d6 이 기본이 됨으로서 가지는 이점은 확률 중앙값이 아주 명확하다는 점이다 . 최소가 2, 최대가 12 이므로 7 이 정확히 가장 나올 확률이 높은 중앙값이 된다 . 즉 , 이를 기반으로 플레이어들은 수많은 대면 굴림에 맞추어 게임을 준비할 때 7 이라는 주사위값을 기준삼아 전체적인 확률을 계산을 하게 된다 . 주사위 굴림에서 나오는 기본 확률이 게임 전체의 확률을 제어하는 것이다 . 여기에 가장 낮은 확률인 2 와 12 에 각각 펌블 ( 확정적인 실패 ) 와 크리티컬 ( 설명이 필요한가 ?) 를 부여함으로서 낮은 확률에서 생기는 변수를 추가한다 . 반면에 d20 주사위를 쓰게 되면 1 에서 20 까지의 숫자가 각각 똑같은 확률로 나오게 된다 . 즉 , 요구값에 따라 확률이 정직하게 비례 / 반비례하게 된다는 뜻이다 . 이 점에서 직접 대조할 수 있는건 2d6 과 d12, 또는 20 면체를 개조한 d10 인데 , 2d6 은 정확하게는 11 개의 가짓수가 나오는 셈이긴 하지만 ( 최소값이 1+1=2 이므로 ) 전체적인 확률의 가짓수 자체는 비슷하다 . 그러나 확률의 분포상 7 이 나올 확률이 1/6 으로 가장 높으며 6 과 8 은 5/36, 5 와 9 는 1/9 이런식으로 점점 확률이 우산형태로 낮아진다 . 그러므로 비슷하게 10 가지 정도의 확률수를 사용하는 게임에서는 각각 다른 주사위를 채용함에 따라 다른 플레이 양상을 이끌어낼 수 있다 . 2d6 을 쓴다면 전체적으로 게임에서 7 을 중앙값으로 하여 성공 확률이 훨씬 더 높으므로 평균적인 성능치를 쉽게 형성할 수 있다 . 반면에 d10 이나 d12 등을 사용한다면 균등한 확률 분포를 이용해 굴림에 요구하는 값이 낮을수록 성공 확률도 높아지는 식으로 보다 스탯 베이스의 강세를 이끌어낼 수 있다 . 이러한 각각의 주사위 값의 종류 , 그리고 주사위 굴림의 방식에 따라 게임마다 굴림의 양상이 조금씩 달라짐에도 , 매개로 하는 주사위라는 방식 자체가 매우 직관적이기 때문에 덕분에 플레이어들은 다소 복잡할 수 있는 확률과 그 확률들의 분포를 상당히 직관적으로 바라보고 계산할 수 있게 된다 . 워해머 40k, 워머신 & 호드 , 인피니티 , 서로 다른 세 미니어처 워게임의 주사위 놀음 이런 확률 특성에 따라 , 으레 비슷한 게임방식을 띄는 미니어처 게임들도 서로 다른 감각을 가지곤 했다 . 국내에서 가장 인지도 있는 테이블탑 미니어처 게임은 단연 ‘ 워해머 40k’ 이고 , 그 다음으로는 필자가 가장 많이 플레이했던 ‘ 워머신 & 호드 ’, 그리고 ‘ 인피니티 ’ 정도가 있다 . 이 세개의 게임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주사위를 사용한다 . 일단 ‘ 워해머 40k’ 와 ‘ 워머신 & 호드 ’ 는 d6 기반이고 ‘ 인피니티 ’ 는 d20 기반이다 . 그렇다면 앞의 둘과 뒤의 하나의 차이는 당연히 클텐데 , 앞의 둘은 같은 주사위를 쓰는데 어떻게 차이가 있는가 ? 하는 부분이다 . ‘ 워해머 40k’ 가 다른 미니어처 게임과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 개별 유닛의 확률 디테일을 좀 떨어트리는 대신 대단위 전투에 적합한 방식을 골랐다는 점이다 . 이는 다른 메인스트림 미니어처 게임과 비교하면 크게 체감할 수 있는데 , ‘ 워해머 40k’ 는 대부분의 경우 하나의 유닛에 1 개를 초과하는 주사위를 잘 쓰지 않게 된다 . 그러나 ‘ 워머신 & 호드 ’ 는 기본 대면 굴림이 대부분 2d6 이고 한판의 스케일 자체가 훨씬 작은 편이다 . 전체적인 스케일로 보자면 ‘ 워해머 40k’ 는 기본적으로 최소 수십 , 많게는 100 단위의 유닛을 굴리는 게임이고 , ‘ 워머신 & 호드 ’ 는 많아야 20~30, ‘ 인피니티 ’ 는 그보다 더 작게 돌릴 수도 있다 . 따지자면 ‘ 워머신 & 호드 ’ 와 ‘ 인피니티 ’ 는 스커미시 게임이라고 부르는 좀더 소규모 스케일의 게임이다 . 이런 게임적인 특징 , 그리고 주사위의 사용법은 전반적으로 비슷한 게임임에도 분명한 차이를 만든다 . 미니어처 게임 , TRPG 등의 전투는 결국 스테이터스와 스테이터스 간의 주사위 대면 굴림이다 . 모든 캐릭터와 유닛은 스테이터스와 각종 특수한 규칙이 적힌 시트가 있기 마련이고 이게 게임의 원천이 된다 . 쓰이는 주사위 값에 따라 각 게임이 취하는 스테이터스의 평균값은 당연히 달라진다 . ‘ 워해머 40k’ 는 아머 관련 수치 같은 일부를 제외하면 캐릭터의 기본 능력은 한자릿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 그건 전체 게임이 캐릭터별로 하나의 주사위를 굴리는걸 기본 기조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 명중률을 결정하는 WS, BS 라는 스테이터스가 존재하는데 , 여기에 적힌 숫자는 d6 을 하나 굴려서 그 이상이 뜨면 명중한다는 뜻으로 낮을수록 좋다 . 당연히 최소 및 최대치는 주사위 하나의 값에 제한되므로 , 2 에서 6 까지 있을 수 있다 . 수치가 4 일 경우 명중률이 50% 가 되니 , 가장 평균적인 값인 셈이다 . 스테이터스상으로 상대의 회피 수치가 존재하는 게임이 아니므로 이 하나의 굴림만 통과하면 맞는 아주 간단한 방식이다 . 반면에 2d6 을 기반으로 하는 ‘ 워머신 & 호드 ’ 와 d20 을 기반으로 하는 ‘ 인피니티 ’ 는 스테이터스 값과 명중시키는 공식이 다르다 . 같은 명중률을 볼 때 , ‘ 워머신 & 호드 ’ 의 명중률인 MAT, RAT 는 기본 수치에 2d6 을 굴려 나온 값이 상대의 회피수치인 DEF 이상이 나와야 명중한다 . 이런 방어 스탯의 활용은 ‘ 워해머 40k’ 에도 방어력이나 세이브 개념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 ‘ 인피니티 ’ 는 기본적으로 상대의 수치와 상관없이 유닛의 명중률인 CC, BS 을 d20 굴림으로 성공하면 되는 식이지만 , 여기서는 직관적인 스테이터스를 위해 스테이터스 이하가 나와야 한다 . 즉 여기서는 스테이터스가 높을수록 성공률이 높다 . 또한 ‘ 워머신 &’ 호드 ’ 의 DEF 처럼 회피에 대응하는 값은 없으나 각종 모디파이와 특수룰로 상대의 명중률을 일괄적으로 낮추는 식으로 영향을 미친다 . 한편으로는 ‘ 워해머 40k’ 에는 재미있는 주사위도 있다 . 그건 바로 숫자가 아닌 화살표와 불스아이가 그려진 주사위다 . 보통 스캐터 다이스라고 하는 이 주사위는 포격을 할 때 얼마나 빗나가는지 또는 정확하게 명중하는지를 결정하는 주사위다 . 포격을 선언한 뒤 이 주사위를 던져서 불스아이가 나오면 목표한 지점에 명중하지만 , 화살표가 나온다면 포격 지점을 중심으로 주사위가 가리키고 있는 그 화살표의 방향으로 빗나가게 되며 , 빗나간 거리를 측정하기 위해 또다른 숫자 주사위를 던진다 .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 세개의 게임은 한눈에 보기에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플레이하게 된다 . ‘ 워해머 40k’ 를 플레이하는 걸 보게 된다면 단연 눈에 들어오는 건 한명의 플레이어가 준비해 놓은 수십개의 d6 주사위다 . ‘ 워해머 40k’ 는 기본적으로 분대 단위로 기동하기 때문에 한 번에 다회의 , 많게는 수십번의 공격을 가하는 것도 종종 일어나며 그래서 한번에 스무개 서른개씩의 주사위를 던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분대의 스테이터스는 동일하기 때문에 , 그렇게 한꺼번에 던진 후 굴림을 통과한 주사위만을 건져내 개수를 새고 그만큼의 명중탄을 상대에게 분배하면 되는 것이다 . 반면에 ‘ 워머신 & 호드 ’ 에서는 훨씬 세밀하게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 또한 2d6 이기에 확률 분포가 다른 만큼 평균적으로 7 이라는 확률 중앙값에 더 크게 의존하며 , 특유의 강화 시스템으로 부스트라는걸 사용한다 . 부스트는 쉽게 말해 자원을 소모해 주사위를 하나 더 굴리는 것이다 . 2d6 을 굴릴걸 3d6 굴리는 식 . 게임 특유의 세세한 스테이터스 분배상 이 수치가 크게 다가올 수도 있다 . ‘ 인피니티 ’ 는 d20 을 사용하기 때문에 확률의 분포가 넓고 , 동시에 게임의 근간 자체가 강력한 몇몇의 정예 유닛과 이를 보조하는 전열 보병의 자원 분배 형식을 띄기 때문에 스테이터스에 따른 유닛의 차이가 상당히 크게 다가온다 . 이처럼 , 분명 같은 주사위를 굴리고 주사위에는 어떤 변형도 가해지지 않았음에도 굴리는 상황 , 굴리는 방식 , 적용하는 룰 등에 따라서 각각의 주사위 굴림의 느낌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게 된다 . 전자적인 작동 없이 난수를 생성하기 위한 장치는 여럿 고안되었지만 주사위는 여전히 그중에서도 가장 쓰기 편하며 공정하다 . 주사위는 그 어떤 작동부도 없는 단순한 조각품인데 반해 룰렛 같은 경우는 회전축이 있는 구동장치여야 하고 , 카드는 셔플이라는 한계 때문에 항상 확률이 동일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 주사위도 물론 정입방체라 하더라도 각인에 따라 면의 무게가 달라지는 등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다른 장치에 비하면 매우 사소하고 , 또한 각인을 파내는 양을 동일하게 맞춤으로서 조절할 수 있는 문제다 . 그리고 이는 상당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 ‘ 주사위 굴림 ’ 만이 주는 감성적인 만족감 , 그리고 재미가 있다 . 필자를 포함해 미니어처 게이머들이 공을 들였던 부분 중 하나는 자신만의 주사위를 만들거나 수집하는 것이었다 . 이쪽의 유명 회사로 Chessex 가 있는데 여기서 각자 원하는 크기 , 디자인의 주사위들을 사모아서 용도별로 쓰는게 일반적이었다 . 이는 플레이어 간의 주사위 굴림 혼동을 줄인다는 실용적인 목적도 있었고 , 무엇보다 ‘ 운 ’ 에 관해서라면 당연히 붙게되는 일종의 미신 , 어떤 주사위를 쓰면 수치가 잘 붙더라 하는 등의 이야기도 있었다 . 결국 오프라인 게이밍에서의 주사위는 그게 실질적인 최선의 방책이면서 동시에 감성적인 만족감을 주는 방식이기에 그렇게 오랫동안 주류로 자리잡아왔다고 설명할 수 있다 . 사실 전자 뇌는 진정한 난수를 만들 수 없어요 그렇다면 비디오 게임에서는 어떨까 ? ‘ 발더스 게이트 ’ 같은 직접적으로 TRPG 의 주사위 시스템을 가져온 게임들이 아닌 다른 게임들은 어떻게 독자적인 확률 체계를 만들어낸 걸까 ? 그 근간이 물리적인 도구의 1/n 이 아닌 직접적으로 난수를 생성하는 방식이기에 , 디지털 비디오 게임에서의 확률은 언뜻 보면 주사위와는 전혀 무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 하지만 좀더 파고들면 , 결국 비디오 게임도 이 주사위의 확률놀음의 지대한 영향 하에 있다는걸 새삼 느끼곤 한다 . 일단 가장 먼저 짚어볼 점은 , 본래 디지털 프로세서는 진정한 의미의 난수 생성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 기본적으로 프로세서는 오직 입력된 값을 계산하여 출력하는 구조 그 자체이다보니 입력되지 않은 랜덤한 값을 뽑아낼 수는 없는 것 . 이 때문에 많은 난수 생성기는 일정한 난수표를 가지고 조작자 = 플레이어가 입력할 때 생기는 이런저런 변수들 ( 입력 타이밍 , 순서 등등 ) 을 가지고 그에 대응하는 난수표에 있는 값을 뽑아주는 것이다 . 그래서 보이기에는 난수처럼 보이지만 , 사실은 플레이어가 그 때마다 조금씩 자기도 모르는 다른 디테일로 정해진 값을 불러내는 셈이다 . 즉 , 난수표 = 주사위의 전체 눈 값 , 출력값 = 주사위를 굴려 위로 향한 면의 값으로 볼 수 있는 것 . 난수표는 그저 모수가 좀 많이 큰 주사위라고 할 수 있다 . 주사위 또한 던지는 위치 , 패턴 , 스냅의 방식 등으로 어느 정도 확률을 통제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처럼 , 재미있게도 이 난수표를 가지고 특정값을 유도해내는 것도 유사한 느낌을 준다 . 이러한 문제들이 대표적으로 드러나는 것들이 이를 테면 과거 ‘ 몬스터 헌터 ’ 시리즈에서 ‘ 랜덤한 ’ 결과물을 뱉어내는 연금술의 시드값을 파악해내어 다음에 나올 연금 결과물을 알게 해주는 치트엔진 같은 것이다 . ‘ 몬스터 헌터 : 월드 ’ 의 마카 연금은 캐릭터마다 고유의 연금술 시드가 있었고 , 치트엔진을 설치하고 몇 번 연금을 해주면 치트엔진이 그 캐릭터의 시드를 알아내고 , 원하는 아이템이 몇번째 순서에 있는지 알려주었다 . 사실 , 정말 많은 게임들이 이 방식을 채용하고 있고 , 그때마다 항상 벌어지는 사태이기도 하다 . 단순히 기술적인 방식 뿐만 아니라 구조적인 면에서도 주사위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 MMORPG 에서 많이 사용되는 캐릭터 전투 로직 중 하나로 프록 (PROC) 방식이 있다 . 프록은 간단하게는 기술 시전시 일정 확률로 더 강한 공격을 하거나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방식을 말한다 . 플레이어들은 일명 로또 딜이라고 부르는 그 방식이다 . 하지만 대부분의 프록에 쓰이는 확률을 보면 그 수치는 상당히 상징적이다 . 50%, 33%, 25%, 10% 처럼 발동 확률을 몇분의 일 , 이런식으로 쉽게 치환할 수 있는 수치를 가지는게 보통이다 . 즉 , 이미 디지털 게임에서는 100 분위로 표시하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주사위의 1/n 방식을 따르고 있는 셈이다 . 그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일단 일반적으로 사람이 한 눈에 보고 발동 확률을 계산하고 DPS 의 상승 기대값을 쉽게 치환할 수 있을 정도의 수치는 결국 주사위에서 많이 쓰이는 십수분의 일 정도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 수치의 값이 지나치게 낮아도 , 만약 그 확률이 나뉘지 않는 소수로 되어 있거나 한다면 더더욱 계산은 어려워진다 . 물론 게임 상의 각종 수치들은 밸런스를 위해 조정될 수 있는 유동값이지만 , 대체로 프록 직업들의 밸런싱은 프록 확률보다는 그 위력과 발동 방식 개선 위주로 이루어지는게 주요 추세다 . 이 확률을 건들게 되면 플레이어들은 또다시 복잡한 계산을 돌려야만 하니까 . 결국 디지털 프로세서를 이용한 비디오 게임은 무한대의 확률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 그걸 활용하는 건 결국 사람이기에 사람이 인지하기 쉬운 범위 내에서만 쓰이게 된다는 이야기다 . 한편으로는 이 프록 방식이 다름 아닌 주사위 굴림 게임에서의 ‘ 크리티컬 ’ 방식을 완전히 똑같이 채용한 개념이기에 더더욱 그렇게 보이는 면이 있다 . 여기까지 생각하다보면 , 시대가 많이 발전했음에도 주사위라는 방식과 체계를 이용하는게 오히려 가장 공정하고 효율적인 확률놀음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 비록 이제는 멀티코어를 활용하거나 별도의 알고리즘 , 하드웨어를 이용해 진정한 의미의 난수를 디지털에서도 생성할 수는 있지만 , 여전히 그 벽은 높다 . 주사위라면 단 몇백원 만에 유의미하게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확률놀음을 할 수 있는데 , 그 이상의 것이 왜 필요하단 말인가 ? 즉 , 주사위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방식을 불문하고 거의 모든 난수 생성의 기초 형태이면서 , 사람이 놀이에서의 확률 사용을 인지하도록 하는 , 일종의 기초 언어와도 같은 개념이다 . 물리적으로도 개념적으로도 주사위는 확률 놀음에서 대체되기 힘들다 . 그 아성을 위협할 수 있는 건 카드묶음이 거의 유일할 정도다 . 심지어 디지털 환경에서는 카드묶음도 앞서 말한 방식 그대로 난수표 그 자체가 되기에 , 주사위와 동일한 방식을 취하는 셈이다 . 어쩌면 보드 게임 , TRPG, 테이블탑 미니어처 게임 등 오프라인 게임에서 주사위를 던질 때 느껴지는 그 긴장감이 독보적인 이유는 그 어느 난수 생성보다 가장 공정하고 , 가장 진실된 방식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너무 억지 같은가 ? 당신도 단 한 번이라도 주사위 굴림에서 다이스 갓의 은총을 받아보게 된다면 조금은 다르게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 정말 날 것의 주사위 굴림 , 그걸 한 번쯤 체험해 보시는건 어떠실지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이명규 게임 기자(2014~), 글쓴이(2006~), 게이머(1996~)

  • 노년게이머에에게 경외와 동료애를 - 그레이게이머 연구의 필요성에 대하여

    <리그 오브 레전드>가 처음 들어와 국내에서 조금씩 바람을 일으키던, 아직 프로씬은 만들어지기 전이었던 그 시절 전국구 고수로 이름을 떨치던 사람 중에는 ‘황충아리’라는 게이머가 있었다. 챔피언 ‘아리’ 장인으로 유명한 그였지만 ‘아리장인’ 보다 그는 ‘황충아리’로 더 이름을 떨쳤는데, 이유는 그가 노장 게이머였기 때문이었다. ‘삼국지연의’에서 노장 캐릭터로 유명한 황충의 이름이 그에게 붙었지만, 그의 당시 나이는 겨우 30대 중반이었다. < Back 노년게이머에에게 경외와 동료애를 - 그레이게이머 연구의 필요성에 대하여 02 GG Vol. 21. 8. 10. 나이들면 게임하기 어려운가? <리그 오브 레전드>가 처음 들어와 국내에서 조금씩 바람을 일으키던, 아직 프로씬은 만들어지기 전이었던 그 시절 전국구 고수로 이름을 떨치던 사람 중에는 ‘황충아리’라는 게이머가 있었다. 챔피언 ‘아리’ 장인으로 유명한 그였지만 ‘아리장인’ 보다 그는 ‘황충아리’로 더 이름을 떨쳤는데, 이유는 그가 노장 게이머였기 때문이었다. ‘삼국지연의’에서 노장 캐릭터로 유명한 황충의 이름이 그에게 붙었지만, 그의 당시 나이는 겨우 30대 중반이었다. 일반적인 사회문화에서라면 창창한 나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시원치 않을 30대 중반이 ‘황충’이라는 별명을 달고 살게 되는 곳이 게임공간이다. 이는 편견이나 농담이 아니라 일정 부분 사실에 가깝다.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임요환 선수가 갓 제대했을 즈음 이야기한 목표가 ‘30대에도 프로게이머로 살아남겠다’ 였고, 수많은 프로게이머들이 20대 중반만 지나도 신체적인 한계를 느낀다며 은퇴를 선언하는 경우를 우리는 심심치 않게 보곤 한다. 이렇게 보면 게임이라는 매체는 확실히 젊은이들의 공간인 것 같다. 그러나 또 고개를 돌려 보면 꼭 피지컬만이 게임의 전부는 아니라는 점도 생각해봐야 한다. <심시티>를 하는 데 동체시력과 반사신경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아니 심지어 신체적인 반응능력이 정말 좋아야 하는 <철권> 의 영원한 황제 ‘무릎’ 배재민 선수는 2021년 기준으로 36세고, <스트리트 파이터>로 EVO 2003에서 전설적인 명경기를 만들어냈던 우메하라 다이고는 올해 나이로 마흔을 넘겼지만 여전히 현역 게이머로 활동중이다. 격투 게임과 RTS 같은 장르 안에서의 피지컬 문제를 일일이 따지기는 어렵겠지만, 디지털게임이 상당부분 신체적인 능력치를 요구하는 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모든 게이머가 나이가 들었다고 게임으로부터 멀어진다고만 보기도 어렵다. 그레이게이머의 두 가지 의미 전자오락이라는 이름으로 디지털게임 문화가 한국에 처음 등장한 1970년대 말로부터 계산해보면 어느새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80년대 오락실에서 동전 하나로 몇 시간을 쓸 수 있을지를 고민하던 꼬마 아이들은 이제 중장년의 나이가 되었고, 20대에 담배연기 자욱한 오락실 안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갤러그>로 시간을 때우던 청년들은 어느새 노년의 초입에 접어들었다. 1980년대 오락실에 앉아있던 20세 청년인 1960년생은 올해부터 60세를 넘기며 인구통계학적으로 노년의 범주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반세기라는 시간의 흐름은 한동안 우리에게 일종의 고정관념이었던 어떤 부분에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게임은 애들이나 하는 무언가라고 생각했던 순간은 어느새 훌쩍 지나가버렸다. 노년 세대라면 그저 ‘하여간 요즘 것들은 게임 같은거나 하고’라고만 영원히 말할 것 같았지만, 이제는 <테트리스>와 <팩맨>, <갤러그>를 즐기던 오락실 세대가 노년의 범주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중장년을 생각한다면 이 변화는 좀더 성큼 우리에게 다가온다.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가 출시되었을 때 아이들에게 빌드오더를 가르치는 부모와, 과거의 추억으로 <리니지>에서 혈맹 뛰던 이야기를 나누는 4-50대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만나보는 시대를 맞았다. 그레이게이머greygamer라는 말의 첫 번째 의미는 그렇게 게임과 함께 나이를 먹어 온, 좀더 경의를 붙여 표현하자면 ‘인류 최초의 디지털게임 세대’라고 일컬을 수 있는 어떤 세대를 담는다. 초창기 디지털게임의 역사를 문헌이 아니라 자신의 플레이로 겪은 노년 세대의 등장은 노년층을 이른바 ‘겜알못’으로 부를 수 있는 시기가 끝나감을 보여주는 단서다. 그리고 이는 게이머라는 구분이 더 이상 특정 연령, 특정 세대만의 경험을 기준으로 한 구분이 아니라 전연령대에 걸친 보편적인 경험이면서도 동시에 시대별로 그 양상을 매우 뚜렷한 차이로 갖게 되는 어떤 문화 전반을 통한 구분으로 옮겨가게 만드는 흐름이다. 그레이게이머라는 말이 가진 첫 번째 의미가 이른바 레트로 세대를 가리키는 과거 경험을 향했다면, 두 번째 의미는 디지털 네트워크와 모바일 시대가 열어낸 새로운 환경으로부터 보편화를 시작한 게임저변의 확장으로부터 만들어진 또다른 변화를 향한다. 지하철 안을 둘러보면 이제 쉽게 스마트폰을 꺼내 게임을 하고 있는 노년층을 발견할 수 있는 시대다. 게임하는 노년의 배경은 반드시 유년기의 게임경험을 전제로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뒤늦게 잡아보게 된, 이제는 시대의 필수품이 된 스마트폰으로부터 손쉬운 게임으로의 접근성을 얻게 된 이들 또한 게이머의 이름을 달 수 있게 되었고, 그로부터 두 번째 의미로서의 그레이게이머가 출현한다. 2020년에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게임문화연구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직접 심층인터뷰를 통해 만난 노년층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노년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정착하기 시작한 디지털게임 문화의 일면을 보여준 바 있었다. 은퇴한 노년 여성이 주시청자를 이루는 평일 저녁의 지상파 텔레비전 일일연속극 시청은 이제 게임플레이와 섞이기 시작했다. 인터뷰 대상자는 텔레비전을 켜 놓고 TV는 귀로만 들으며 스마트폰으로 간단한 퍼즐 게임을 즐기곤 했다. 어차피 드라마의 진행은 큰 줄기를 벗어나지 않으니 귀로 상황만 들으며 게임에 집중하다가, 드라마에서 중요한 장면이 나오면(대부분의 드라마는 이런 순간에 시청자로 하여금 집중을 유도하기 위해 별도의 음악을 깔거나 배우의 대사톤이 높아지는 등의 포인트를 만들곤 한다) 비로소 눈을 스마트폰에서 텔레비전으로 옮기는 식이었다. 그레이게이머의 존재는 그래서 유년기의 경험을 가진 1세대 게이머로서, 동시대의 게이머로서 나타난다.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산업적으로나 유의미할 수 밖에 없는 이들의 존재는 그러나 현재의 게임담론 하에서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의 게이머들보다 더 치열하게 게임했을 그 세대는 정말 이제는 게임과 담쌓고 지내는 것일까? 백발이 성성한 사람이니 당연히 게임을 모를 것이라고 전제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정말 제대로 된 판단인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게이머라는 집단을 너무 좁게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노년 게이밍에 대한 이해는 아직까지 부족하다 노년 게이머의 양적, 질적 증대가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에 대한 인식, 그리고 산업과 제도의 변화는 아직까지 잘 나타나지 않는 편이지만, 서구권에서는 2010년대부터 게이머 노년화에 관한 주목들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게임은 젊은 사람들만의 매체라는, 그래서 노년층은 아예 거론되지 않는 고정관념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는 연구(Facer & Whitton, 2010), 실제로 늘어나고 있는 노년 게이머에 비해 그에 대한 사회적 관심, 산업과 제도의 변화는 크게 뒤쳐지고 있다는 지적(Quandt & Grueninger, 2009)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들 연구 또한 결국 서구권에서도 노년 게이머가 잘 조명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점에서 한국이나 서구권 모두 상황은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일부 연구들은 노년 게이밍이라는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는 실제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들과도 유사한데, 이를테면 노년의 게임하는 이유를 치매예방과 같은 신체노화에 대한 기능적 대안으로만 바라보거나(Schutter & Brown), 자녀세대와의 교감만을 위한 용도로 활용된다고 보거나(Pearce, Lee) 하는 기능주의적 접근들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다. 이는 단지 비노년이 노년의 게이밍을 ‘두뇌 트레이닝’의 일환으로 인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노년층 스스로도 ‘늙지 않으려면 고스톱이라도 쳐야지’라고 마음먹는 모습까지를 포함한다. 그러나 이런 기능주의적인 접근만이 실제로 노년층의 게임하는 이유를 다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한국에서도 노년 게이밍에 대한 접근은 주로 기능주의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치매예방을 위한 게임개발과 플레이, 독거노인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게임과 같은 방식은 그러나 한편으로는 게이머라는 큰 범주로부터 노년 게이머를 매우 타자화된 대상으로 분리시켜버리는 시선으로 굳어질 수 있는 우려를 내포한다. 나이가 들어 예전만큼의 반응속도를 낼 수 없어 <다크소울>이 어렵다 할지라도 그가 여전히 <저니>를 하고 있다면,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을 클리어하고 감상에 젖어 있다면, 혹은 과거 동네 오락실에서 <갤러그> 하이스코어 1위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본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굳이 우리는 특정 기능의 향상을 위해서만 게임을 만지는 사람으로 분류해야 하는 것인가? 경의와 동료애를 동시에 품을 수 있는 노년 게이머에의 이해를 위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이라는 매체는 보거나 듣는 것만으로도 가능한 수용양식을 넘어 반응이라는 행위를 요구하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기에 분명한 접근에의 장벽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사실이다. 2012년에 <리그 오브 레전드>를 곧잘 하던 나는 이제는 방송경기의 리플레이를 봐도 한타싸움이 어떻게 마무리되는지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신체나이에 직면했다. 그러나 그런 장벽에도 불구하고 모든 게임이 반드시 높은 반사신경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진정한 의미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게이머들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음을 생각할 때가 되었다. 아니 다른 의미로라면 오히려 과거 레트로 게임 시절에는 동네 오락실을 휘어잡았을지도 모를, 왕년의 용사들에 대한 경의를 가져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플레이를 통해 완성되는 디지털게임의 경험은 단지 특정한 프로그램을 보존한다고 해서 후대에 그 경험이 온전하게 복원되는 것은 아님을 우리는 여러 고전게임의 리마스터를 통해 겪은 바 있다. 그런 경험을 가진 이들과 함께 그들의 게임경험을 이야기하고, 그 시절의 게임과 플레이어에 일련의 존경을 표하는 것이 ‘치매예방 게임’을 하는 세대로 바라보는 것보다 오히려 노년 게이머를 제대로 이해하는 방식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같은 시대에 살면서 같은 게임을 하고 있는, 인종과 성별로의 구분과 마찬가지로 나이를 통해 누군가를 대상화하려는 어떤 흐름을 넘어서서 게이머로서의 동료애를 품을 수 있는 대상으로 그레이게이머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날 노년층 게이머에 대한 이해와 그로부터 시작될 변화들을 미리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게이머라면 함께 플레이할 노년 게이머를 이해해야 하고, 게임사라면 늘어나는 노년 게이머들에게 필요한 게임과 인터페이스를 고민해야 하며, 정부와 공공단체라면 변화하는 게임문화 향유층에 필요한 제도와 인프라를 생각해야 할 시기다. 최초의 레트로 게임을 경험한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일 것이다. 디지털게임이 본격적으로 대중문화의 범주에 들어가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제 이 매체가 보편적인 모두에게 다가갈 수 있는 매체가 되었다는 의미다. 이 보편성에는 인종과 젠더, 계급과 장애유무 뿐 아니라 연령대라는 요소도 넘어설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보편 대중문화로 외연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노년 게이머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필요한 이유다. * 기네스북 공인 세계 최고령 비디오게임 유튜버 하마코 모리. 2019년 89세로 등재되었다. https://www.guinnessworldrecords.com/world-records/457124-oldest-videogames-youtuber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보편과 토착의 긴장 속에 도사리는 지정학적 미학: 〈7인의 사무라이〉에서 〈고스트 오브 쓰시마〉에 이르기까지

    〈라스트 사무라이〉가 일본 대중문화에 심취한 와패니즘의 대명사인 반면, 〈킬 빌〉은 오리엔탈리즘을 전유하는 대중주의다. 무사도와 신성한 사무라이 공동체를 이야기하는 〈라스트 사무라이〉의 상당 부분은 뉴질랜드 로케이션으로 촬영되었고, 〈킬 빌〉은 이소룡과 사무라이를 섞고 중국계 미국인 배우 루시 리우에게 기모노를 입혀 대문자 오리엔탈(The Oriental)을 혼성모방한다. < Back 06 GG Vol. 22.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yunwoo Shin A cultural researcher and cultural critic, specializing in critical theory of technology and the political economy of media. Researches cultural phenomena surrounding gaming, artificial intelligence, platforms, and blockchain, and teaches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and the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

  • [논문세미나] ‘We Will Take Your Heart’: Japanese Cultural Identity in Persona V

    본 논문은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의 게임, 젠더 연구자인 로렌스 허프스(Laurence Herfs)가 일본 학술지 ‘Replaying Japan’에 2021년에 투고한 논문이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외부자의 시선(특히 서양)에서 일본 게임을 일본 학술지에서 다룬다는 점에서 흥미로웠기에 소개해보고자 한다. < Back 18 GG Vol. 24. 6. 10. Tags: 페르소나, 쿨재팬, 오리엔탈리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ujin Park A graduate student who has stepped into game studies. Currently taking courses at the Graduate School of Core Ethics and Frontier Sciences at Ritsumeikan University in Japan. Lately, exploring the varied game experiences mediated by games, as well as subculture within Japan. Writing is still hard.

  • 2025 게임이용자 실태조사 리뷰: 이용률 급락의 구조적 맥락과 데이터가 말하지 않는 것들

    게임을 떠난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답은 “동영상 시청으로 갔다”다. 게임 대신 선택한 여가활동의 86.3%가 ‘OTT·영화·TV·애니메이션 시청’이었다. 이 항목이 나타내는 범위가 너무 포괄적이고 중첩적임은 차치하고, 그 수치가 압도적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 Back 28 GG Vol. 26.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hinKyu Kang Editorial board member of Culture/Science, a journal specializing in cultural theory. Researches media and culture, including games, broadcasting, comics, and fandom. Books include Fandom in Flux: From Play to Labor, From the Real to the Virtual (2024), Subculture Criticism (2020), IP: The Beginning of Every Story (2021, co-authored), Third Life: New Lifestyles in the Age of Technological Revolution (2020, co-authored), and The Theory of Games: From Play to Digital Games (2019, co-authored). Papers include "Fun Without Winning: Sociality, Agency, and Striving Play in Parent-Child Game Play" (2024), "Fandom That Consumes Communication: Idol Fan Platforms and the Reconfiguration of Fandom" (2022), "How Does 'In-Game Spending' Become Play?: Focusing on In-Depth Interviews with Whale Game Players" (2022, co-authored), and "Gamifying Broadcasting: From Producerly Text to Playerly Text" (2019).

  • 레트로를 다시 소환하는 인디게임의 방식들

    이런 점에서 레트로 장르를 계승하는 인디 게임들이 평론가와 대중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자명하다. 올드 게이머와 뉴 게이머를 이어주는 인디 게임들을 통해 세대를 아우르는 팬덤은 게이머의 확장된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올드 게이머에겐 추억을, 뉴 게이머에겐 신선함을 말이다. 어찌 보면 레트로 게임, 장르라는 말이 어색하게 들린다. 누군가에겐 레트로일 수 있지만, 다른 이들에겐 새로운 게이밍일 수 있다. 인디 개발자들의 레트로 장르 경의와 찬사는 게임 과거 게이밍과 현대 게이밍을 이어주는 가교를 만들어 주고 있다. < Back 레트로를 다시 소환하는 인디게임의 방식들 02 GG Vol. 21. 8. 10. 개인적인 이야기로 운을 띄우자면 어릴 적 게임보이 어드밴스로 〈포켓몬스터 실버〉를 처음 접했을 때 컬러 도트 그래픽으로 서로를 마주보며 배틀하던 포켓몬들, 사각 타일의 마을에서 움직이는 2등신 도트의 주인공 캐릭터를 움직이던 경험은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다. 당시 시리즈의 8비트 OST는 게임을 더욱 즐겁게 해준 일등공신이었다. 휴대용 게임기는 필자를 새로운 취미의 영역으로 이끌었다. 게임보이, 닌텐도DS, 닌텐도 3DS를 거쳐 닌텐도 스위치까지 가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GBA 도트 그래픽 기반의 〈젤다의 전설: 이상한 나무열매 - 대지의 장〉과 같은 탑다운 어드벤처와 횡스크롤 슈팅 게임 〈다라이어스 R〉 처럼 2차원 평면 구조의 게임들만 접해 온 어중간한 게이머의 눈에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3차원 오픈월드 기반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은 발전한 게임기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고, 기술의 위력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다크소울〉을 휴대용 게임기로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라도 했을까. 고품질 텍스처들은 생동감을 강조해주었고, 수려한 파티클 이펙트와 사운드는 캐주얼과 코어 게이머를 아울렀다. 돌이켜보면 시대의 흐름이었다. 컴퓨팅 능력은 끊임없이 발전했고, 경쟁적 기술 사회에 발맞춰 게임 성능도 점점 좋아졌다. 보다 높은 퀄리티의 현실 같은 그래픽에 기반한 게임 경험에의 요구는 당연했다. 게임은 상품이었고, 소비자의 욕구를 만족시켜야 하는 산업이었다. 게임사들이 주도하던 게임 시장은 거대자본이 들어오면서 더욱 기술발전에 가까워져 갔다. 물론 단순히 2차원에서 3차원으로의 그래픽 변화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높아진 메모리 용량으로 더 많은 게임 시스템을 처리할 수 있었다. 기술의 발전 속에서 다양한 장르들이 이를 통해 분화하고 깊어졌다. 각각의 게임 시리즈는 다채롭게 진화하며 게이머를 사로잡아 왔다. 발전하는 거치형 콘솔과 PC를 만나면서 재현된 게임 속 세계는 현실과 견주는 것에 모자람이 없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게임을 고르는 것에 고해상도의 현실적인 그래픽, 뛰어난 상호작용성을 가진 게임 시스템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며 동시에 대다수의 게이머들에게 안정적인 게임 경험을 선사한다. 그렇기에 다수의 메이저 게임사들은 보장된 수익을 올리기 위해 이러한 기술발전의 결과들을 새로운 게임 개발에 지속적으로 가져온다. 기술의 발전으로 나날이 '고퀄'화되는 게임을 이야기했지만, 정작 올해 접한 게임 중 가장 즐거웠던 게임을 꼽자면 〈오모리(OMORI)〉와 〈이온 퓨리(Ion Fury)〉다. 메이저 게임사들이 만들어 낸 AAA급 퀄리티의 게임들이 아닌, 개인 또는 작은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진 오히려 초기 기술에 가까운 시각적 재현을 보여주는 게임들이다. 〈오모리〉는 2020년 12월 출시한 레트로 스타일의 탑다운 어드벤처 RPG 게임으로, ‘OMOCAT’이라는 일본계 미국인 만화가가 동명의 인디 게임회사에서 킥스타터 펀딩을 통해 개발한 게임이다. 게임 툴 ‘RPG 쯔꾸르(RPG 만들기, RPG Maker)’를 통해 개발된 게임은 전형적인 레트로 형식의 2D 도트 그래픽이며, 시나리오는 닌텐도의 〈마더〉 시리즈에서 볼 수 있는 분위기를 풍긴다. 〈이온 퓨리〉는 2018년 2월 스팀 얼리 엑세스를 통해 2019년 8월 정식 발매한 ‘보이드포인트(Voidpoint)’라는 인디 게임회사에서 개발된 올드 스쿨 FPS 게임으로, 배급사인 ‘3D렐름(3D Realms)’의 1990년대 FPS 게임 엔진인 ‘빌드 엔진’으로 개발해 고전 〈듀크 뉴켐 3D〉과 같이 90년대 FPS 문법을 활용한 게임 시스템과 2D 캐릭터와 3D 배경 디자인으로 경쾌한 슈팅 액션을 엿볼 수 있다. * 〈오모리〉 스크린샷. 출처: 스팀 공식 페이지. 게임 장르를 설명하는 고전, 레트로, 클래식, 올드 스쿨 등 단어들은 최근 인디 개발자들이 자신의 게임을 설명하는데 사용되곤 한다. 게임 장르에서 경계를 나누어 구식과 신식을 나누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몇 가지 특징과 스타일을 통해 레트로라는 이름의 장르화를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인데, 예를 들면 올드 스쿨 FPS, cCRPG(Classic Computer RPG), 고전 JRPG, 고전 2D 플랫포머 등을 거론해볼 수 있을 것이다. 레트로 장르라고 부를 수 있을, 기술이 지금보다 낮은 단계에 있을 때 구현된 특유의 스타일을 동시대 인디 게임들이 다시 가져오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스팀'과 같은 플랫폼의 등장은 인디 게임 시장과 가능성을 확장했고, 인디 개발자들로 하여금 시장에 구애받지 않을 수 있는 개성있는 장르의 게임 개발을 가능케 했다. 2010년대 이후 시작된 스마트폰 기반의 모바일 게임 시장 확대 또한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같은 개방적 게임 플랫폼, '구글 인디 게임 페스티벌'과 같은 지원정책 등에 힘입어 인디 게임의 개발과 유통에 새 루트를 만들며 인디 게임 생태계를 재편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인디 게임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함을 강조하기 위해, 인디의 자율성을 적극 활용한다. 시장의 대세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환경은 다양한 장르의 활용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레트로 문법의 차용이 어색하지 않은 개발 환경이 되었다. 레트로 장르를 인디 게임들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이유는 여러가지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현실적인 이유를 꼽자면 개발 관점에서 필요한 (자본이 크게 드는)기술에 대한 요구치가 높지 않다는 점일 것이다. 기술적 한계로 오브젝트를 지금보다 더 강하게 추상화했다는 점은 그래픽 리소스와 같은 측면에서 오늘날에도 가장 저렴하게 구현해볼 수 있는 개발방법론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미 앞서 출시된 과거의 게임들을 레퍼런스 삼아 개발하는 과정의 용이성 또한 장점으로 거론될 것이다. 이런 장점들을 토대로 레트로 게임에 대한 오마주, 창조적 모방, 벤치마킹 등을 통해 현대의 인디 게임들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리소스 상황에서도 충분한 창의적 결과물을 낼 수 있는 환경을 맞게 되었다. 그렇게 레트로 게임들이 만들어낸 결과물들은 오늘날의 인디 개발자들을 통해 레트로 장르 자체의 재현(Representation)으로 나타난다. 레트로 게임들이 예전 모습 그대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근원적인 측면에서 게임 장르에 대한 재현의 양상으로 드러난다는 이야기다. 이는 단순히 레트로 장르에 대한 모방으로서의 재현이 아니며, 레트로 장르가 현대적 상황과 감각에 맞도록 각 개발자들의 관점과 역량에 의해 재구성된 결과물이다. 레트로 장르를 답습하는 것이 아닌, 지속적인 변주와 재해석을 통해 레트로 게임들의 의미는 현대에서도 다시금 받아들여질 수 있게 된다. 인디 올드 스쿨 FPS 퍼블리셔인 ‘뉴블러드 인터렉티브(New Blood Intertactive)’는 인터뷰에서 자신들을 통해 재현된 올드 스쿨 FPS 장르가 사라졌다가 부활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존재했지만 누군가 새로이 원하게 되어 다시 등장한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레트로 장르는 사라지거나 단절되는 것이 아니고 역사 속에서 순환적으로 재현되고 있다. 현대 인디게임에서의 레트로 재현이 장르적 융합과 변주를 통해 재해석되는 과정과 결과는 2018년 출시한 리듬 게임 〈올드 스쿨 뮤지컬〉의 사례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게임은 레트로 게임 장르들에 대한 패러디와 오마주를 통한 장르적 융합의 한 사례다. 8비트 칩튠 사운드와 레트로 장르의 게임 플레이를 BGA(BackGround Animation)로 재현하여 리듬 게임 장르와 결합한 〈올드 스쿨 뮤지컬〉 의 메인 디렉터인 프랑수아 베르트랑(Francois Bertrand)은 이전 기획작인 〈8Bit The Musical〉이 자신이 좋아하던 리듬 게임을 통해 레트로 게이밍에 대한 러브레터가 되기를 바랬다고 회고한다. 비디오 게임을 통해 힘든 어린 시절을 버틸 수 있게 해준 레트로 게임들에 대한 감사와 추억이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 속에서 우리는 레트로 장르에 대해 인디 게임 개발자이 갖는 자신들의 과거 게임 경험이 주었던 즐거움과 추억이 게임 개발의 주요한 동기로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이 또한 레트로 장르가 인디 개발자들에 의해 다시금 활용되는 이유다. * 〈올드 스쿨 뮤지컬〉. 이미지출처: 스팀 공식 페이지. 이러한 점들을 돌이켜보면 인디게임에서 레트로 장르를 활용하는 사례들을 우리는 레트로 장르의 현대적 계승으로 불러볼 수 있을 것이다. 완결된 게임 시리즈, 다양한 이유로 후속 작품이 더 이상 나오지 않거나 오랜 기간 개발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시리즈들을 인디 게임 씬(Scene)에서 장르 혹은 게임 디자인을 가져와 계승하는 경우가 종종 존재한다. 계승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인디게임 개발자들이 가진 경험과 시각 - 고전 게임의 계승을 시도하는 이유가 자신들이 가졌던 게임 경험에 대한 추억과 헌정이라는 점에서 - 에 의해 융합과 변주를 거친 재해석의 결과물로서 의미지어진다. 인디 게임들이 ‘정신적 계승작’, ‘정신적 후속작’과 같은 대담한 표현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레트로 장르에 대한 실천적 계승이라고 볼 수 있다. 레트로 장르의 계승은 인디 게임의 장르를 풍부하게 함과 동시에 고전 명작을 다시 현대로 불러오고 장르의 대중화를 장려한다. 물론 이는 전체 게임 생태계에서 보자면 비약적인 해석일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디 개발자들의 작업이 단순히 낡은 것으로 치부될 수 있는 게임디자인과 장르를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다양한 시도를 해왔고, 이를 통해 올드 게이머와 뉴 게이머에게 각각 추억과 새로움을 선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메트로배니아(Metroidvania)’ 장르는 이러한 레트로 - 인디 트렌드의 수혜자이자 결과물이다. 인디 게임의 저변이 상대적으로 늘어나면서 고전 게임의 규칙은 동시대의 보편 장르로도 의미지어지기 시작하며 캐주얼 게이머들의 입에까지 오르는 상황을 맞았다. 해당 장르의 원류인 〈메트로이드〉 2D 시리즈와 〈캐슬배니아〉 시리즈는 메이저 게임 시장의 주류 장르들이 교체되는 시대적 유행에서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메트로배니아는 현재 AAA급 게임들에 비하면 꽤나 단순한 구조의 게임 디자인과 2D 횡스크롤이라는 특징에서 낡아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충실히 이 장르를 현대적으로 계승한 〈액시옴 버지(Axiom Verge)〉, 〈할로우 나이트〉, 〈데드 셀〉 등과 같은 인디 게임들이 성공적인 결과물을 이끌어냄으로써, 2010년대 이후 메트로배니아는 여전히 유효한 장르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들은 과거 메트로배니아 팬덤과 현재의 새롭게 진입한 게이머 모두에게 레트로 장르가 가지고 있던 규칙을 다듬고, 새로운 해석과 재현의 문법과 결합시키며 장르를 일신했다. * 19년만에 〈메트로이드〉 시리즈 정식 후속작이 나온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레트로 장르에 대한 현대적 계승은 비판적 수용을 통한 계승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조건적인 수용으로서의 장르적 재현은 찾아볼 수 없다. 분명한 점은 레트로 장르는 시초(Beginning)와도 같은 오래된 문법이라는 점으로, 어떤 식으로 든 동시대에 대중적으로 의미지어지기 위해서는 결국 현재 인디 개발자의 관점을 통해 새롭게 다듬어져야 하는 부분이 있다. 비판적인 접근을 통해 과거 장르가 가진 오늘날에는 불필요한 낡은 지점들을 걷어내고, 새로운 현대적 문법을 통한 변주나 타 장르와의 융합이 필연적으로 나타난다. 이런 측면을 두드러지게 표현한 작품이 〈디스코 엘리시움〉일 것이다. 게임의 외형은 cCRPG의 기본적인 게임 디자인을 통해 나타나지만, 마냥 cCRPG의 클래식을 답습하고 있지는 않다. 고전적인 불편한 요소들을 버리고 편의성을 현대적으로 수정했지만, cCRPG의 비선형적인 레벨 디자인은 훌륭하게 재현했다. 이뿐 아니라 cCRPG의 강점인 내러티브 경험을 위해 다시 레트로 장르인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스타일이 플레이 내러티브에 결합했다. 이러한 요소들의 누적은 〈디스코 엘리시움〉이 가지고 있는 레트로로서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에서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편의성을 구현해냈다. * 〈액시옴 버지(Axiom Verge)〉와 〈디스코 엘리시움〉. 인디게임이 다루는 레트로 게임의 가장 큰 의미는 앞서도 언급한 바처럼 고전을 활용한 융합과 계승을 통해 장르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순환시킨다는 점이다. 인디 게임 시장이 커짐에 따라 각각 게임들의 유사성을 피하기는 정말 어려워졌다. 이러한 이유로 인디 게임 개발자들은 레트로 장르를 계승하여 돌파를 꾀했다. 레트로 장르는 게임 장르의 시작과도 같다. 게임들이 정말 재밌다고 느낄 수 있는 것에는 장르의 즐거움 또한 클 것이다. 그러므로 게임 본연의 재미 같은 원초적인 레트로 장르들이 현대에도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레트로 장르를 계승하는 인디 게임들이 평론가와 대중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자명하다. 올드 게이머와 뉴 게이머를 이어주는 인디 게임들을 통해 세대를 아우르는 팬덤은 게이머의 확장된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올드 게이머에겐 추억을, 뉴 게이머에겐 신선함을 말이다. 어찌 보면 레트로 게임, 장르라는 말이 어색하게 들린다. 누군가에겐 레트로일 수 있지만, 다른 이들에겐 새로운 게이밍일 수 있다. 인디 개발자들의 레트로 장르 경의와 찬사는 게임 과거 게이밍과 현대 게이밍을 이어주는 가교를 만들어 주고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수진 게임연구에 발을 들인 대학원생입니다. 지금은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첨단종합학술연구과에서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최근엔 게임을 매개로 한 다양한 게임 경험과 일본 내 서브컬처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글 쓰는 건 여전히 어렵습니다.

​게임세대의 문화담론 플랫폼 게임제너레이션은 크래프톤의 후원으로 게임문화재단이 만들고 있습니다.

gg로고
게임문화재단
KRAFTON_Horizontal_Logo_Black.jpg
드래곤랩 로고

Powered by 

발행처 : (재)게임문화재단  I  발행인 : 유병한  I  편집인 : 조수현

주소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로 114, 2층(방배동)  I  등록번호 : 서초마00115호  I  등록일 : 2021.6.28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