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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임의 확률은 여전히 주사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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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4. 4. 10.

주사위? 이제 퇴물 아닌가?


개인적으로 주사위라는 물건 자체를 매우 좋아한다. 워낙 게임용으로 많이 써서도 있지만, 주사위라는 물건 자체가 상징하는 행운의 느낌이 좋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오프라인의 게임들은 주사위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한다. 인생게임의 룰렛 같은 다른 도구들도 있지만, 범용적으로 게임을 불문하고 적용되는 것들은 대부분 주사위, 그리고 카드 묶음이다. 특히나 TRPG 와 미니어처 워게임 같은 보다 클래식한 쪽은 주사위의 영향력이 굉장히 짙다. 게임을 확률과 선택의 문제라고 압축한다면 주사위는 아주 오랫동안, 어쩌면 게임이라는 개념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그 핵심을 책임지고 구축해온 존재다.



우리에게 보통 가장 익숙한건 정육면체 주사위지만, 필요에 따라 많은 주사위가 만들어지고 쓰여왔다. 가장 작은건 정사면체, 거기서 정육면체, 정팔면체, 십면체, 정십이면체, 실질적으로 쓰이는 것 중 가장 큰건 정이십면체다.


많은 게임들은 이중 하나의 주사위를 위주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중 여러가지 주사위를 동시에 쓰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각각의 주사위는 단일 주사위로 창출할 수 있는 확률의 가짓수에 따라서 그 특성에 맞는 용도로 쓰인다. 이들은 쉽게 각각의 면 개수를 토대로 d4, d6, d8, d10, d12, d20 으로 표현된다.


이중에서 가장 익숙한건 역시 d6  d20 이다. d6 은 가장 전통적인 주사위이고, d20 은 요즘 TRPG 의 트렌드인 주사위다. 널리 알려진 비디오 게임 발더스 게이트 3’ , 그리고 그 기반이 되는 던전 앤 드래곤최신판도 d20 을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게임들을 그저 주사위를 굴린다하나로 공통되게 묶기에는 저마다의 게임이 주사위를 이용하는 방법은 세세한 면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양상도 꽤 다르다.


TRPG 와 테이블탑 미니어처 게임, 그리고 아캄 호러등으로 유명한 TRPG의 형태를 빌린 보드 게임의 주사위 굴림은 기본적으로 스테이터스를 기반으로 한 게임을 위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테이터스들이 분명한 이점 또는 패널티가 되어주되, 이것이 고정값이 아니도록 하기 위해서 스테이터스를 기반으로 각 주사위들이 정해진 범위 내에서 이를 보정하는 역할을 맡은 셈이다.


이런 개념에서 Roll for XX, Beat XX 라는 용례가 파생된다. , 기본적으로 TRPG 나 미니어처 게임, 이 방식을 채용한 보드 게임들의 기본 작용은 수치 대 수치의 싸움이다. 타겟이 되는 수치가 있고, 해당 수치에 대응되는 자신의 스테이터스+주사위 굴림값이 이를 넘겨야 하는지, 이보다 낮아야 하는지, 이상인지 이하인지 같은 목표 수치가 정해진다. Roll for XX 는 그 XX 라는 수치를 목표로 굴린다는 뜻이며, Beat XX  XX를 초과한 값이 나와야만 한다는 뜻이다.


이런식으로 주사위 굴림은 어떤 목표값을 가지게 되고, 여기서부터 확률과 그 중간값 등을 계산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주사위 굴림이 가장 직접적으로, 또 많이 쓰이는건 근현대적인 게임이라는 개념의 원류 중 하나인 워게임, 그리고 그 워게임을 체계화하고 보다 재미와 흥미 위주로 변화시킨 테이블탑 미니어처 게임과 TRPG .


국내에서 TRPG 뿐만 아니라 테이블탑 미니어처 게임은 정말 희귀한 취미이지만, 필자는 그런 취미를 접하면서 여러가지 용례의 주사위를 써보곤 했다. 흥미로운 건 주사위라는 확률 체계가 가지는 한계를 저마다의 게임이 뛰어넘는 방식이었다. 주사위는 분명 시인성이 좋고 쓰기 편한 등 여러 장점도 있었지만 한계가 명확한 방식이기도 했으니까.


가장 많이 플레이했던 미니어처 게임 워머신&호드의 경우 2d6(d6 주사위 두개 굴림)이 거의 모든 대면 굴림의 기본이었는데, 주사위 한 개가 아닌 2d6 이 기본이 됨으로서 가지는 이점은 확률 중앙값이 아주 명확하다는 점이다. 최소가 2, 최대가 12이므로 7이 정확히 가장 나올 확률이 높은 중앙값이 된다. , 이를 기반으로 플레이어들은 수많은 대면 굴림에 맞추어 게임을 준비할 때 7이라는 주사위값을 기준삼아 전체적인 확률을 계산을 하게 된다. 주사위 굴림에서 나오는 기본 확률이 게임 전체의 확률을 제어하는 것이다. 여기에 가장 낮은 확률인 2 12에 각각 펌블(확정적인 실패) 와 크리티컬(설명이 필요한가?)를 부여함으로서 낮은 확률에서 생기는 변수를 추가한다.


반면에 d20 주사위를 쓰게 되면 1에서 20까지의 숫자가 각각 똑같은 확률로 나오게 된다. , 요구값에 따라 확률이 정직하게 비례/반비례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 점에서 직접 대조할 수 있는건 2d6  d12, 또는 20면체를 개조한 d10 인데, 2d6 은 정확하게는 11개의 가짓수가 나오는 셈이긴 하지만(최소값이 1+1=2 이므로) 전체적인 확률의 가짓수 자체는 비슷하다. 그러나 확률의 분포상 7이 나올 확률이 1/6 으로 가장 높으며 6 8 5/36, 5 91/9 이런식으로 점점 확률이 우산형태로 낮아진다.


그러므로 비슷하게 10가지 정도의 확률수를 사용하는 게임에서는 각각 다른 주사위를 채용함에 따라 다른 플레이 양상을 이끌어낼 수 있다. 2d6 을 쓴다면 전체적으로 게임에서 7을 중앙값으로 하여 성공 확률이 훨씬 더 높으므로 평균적인 성능치를 쉽게 형성할 수 있다. 반면에 d10 이나 d12 등을 사용한다면 균등한 확률 분포를 이용해 굴림에 요구하는 값이 낮을수록 성공 확률도 높아지는 식으로 보다 스탯 베이스의 강세를 이끌어낼 수 있다.


이러한 각각의 주사위 값의 종류, 그리고 주사위 굴림의 방식에 따라 게임마다 굴림의 양상이 조금씩 달라짐에도, 매개로 하는 주사위라는 방식 자체가 매우 직관적이기 때문에 덕분에 플레이어들은 다소 복잡할 수 있는 확률과 그 확률들의 분포를 상당히 직관적으로 바라보고 계산할 수 있게 된다.



워해머 40k, 워머신&호드, 인피니티, 서로 다른 세 미니어처 워게임의 주사위 놀음


이런 확률 특성에 따라, 으레 비슷한 게임방식을 띄는 미니어처 게임들도 서로 다른 감각을 가지곤 했다. 국내에서 가장 인지도 있는 테이블탑 미니어처 게임은 단연 워해머 40k’ 이고, 그 다음으로는 필자가 가장 많이 플레이했던 워머신&호드’, 그리고 인피니티정도가 있다.



이 세개의 게임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주사위를 사용한다. 일단 워해머 40k’ 워머신&호드 d6 기반이고 인피니티 d20 기반이다. 그렇다면 앞의 둘과 뒤의 하나의 차이는 당연히 클텐데, 앞의 둘은 같은 주사위를 쓰는데 어떻게 차이가 있는가? 하는 부분이다.


워해머 40k’ 가 다른 미니어처 게임과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개별 유닛의 확률 디테일을 좀 떨어트리는 대신 대단위 전투에 적합한 방식을 골랐다는 점이다. 이는 다른 메인스트림 미니어처 게임과 비교하면 크게 체감할 수 있는데, ‘워해머 40k’ 는 대부분의 경우 하나의 유닛에 1개를 초과하는 주사위를 잘 쓰지 않게 된다.


그러나 워머신&호드는 기본 대면 굴림이 대부분 2d6 이고 한판의 스케일 자체가 훨씬 작은 편이다. 전체적인 스케일로 보자면 워해머 40k’ 는 기본적으로 최소 수십, 많게는 100단위의 유닛을 굴리는 게임이고, ‘워머신&호드는 많아야 20~30, ‘인피니티는 그보다 더 작게 돌릴 수도 있다. 따지자면 워머신&호드인피니티는 스커미시 게임이라고 부르는 좀더 소규모 스케일의 게임이다.


이런 게임적인 특징, 그리고 주사위의 사용법은 전반적으로 비슷한 게임임에도 분명한 차이를 만든다. 미니어처 게임, TRPG 등의 전투는 결국 스테이터스와 스테이터스 간의 주사위 대면 굴림이다. 모든 캐릭터와 유닛은 스테이터스와 각종 특수한 규칙이 적힌 시트가 있기 마련이고 이게 게임의 원천이 된다.


쓰이는 주사위 값에 따라 각 게임이 취하는 스테이터스의 평균값은 당연히 달라진다. ‘워해머 40k’ 는 아머 관련 수치 같은 일부를 제외하면 캐릭터의 기본 능력은 한자릿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건 전체 게임이 캐릭터별로 하나의 주사위를 굴리는걸 기본 기조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명중률을 결정하는 WS, BS 라는 스테이터스가 존재하는데, 여기에 적힌 숫자는 d6 을 하나 굴려서 그 이상이 뜨면 명중한다는 뜻으로 낮을수록 좋다. 당연히 최소 및 최대치는 주사위 하나의 값에 제한되므로, 2에서 6까지 있을 수 있다. 수치가 4일 경우 명중률이 50%가 되니, 가장 평균적인 값인 셈이다. 스테이터스상으로 상대의 회피 수치가 존재하는 게임이 아니므로 이 하나의 굴림만 통과하면 맞는 아주 간단한 방식이다.


반면에 2d6을 기반으로 하는 워머신&호드 d20 을 기반으로 하는 인피니티는 스테이터스 값과 명중시키는 공식이 다르다. 같은 명중률을 볼 때, ‘워머신&호드의 명중률인 MAT, RAT 는 기본 수치에 2d6을 굴려 나온 값이 상대의 회피수치인 DEF 이상이 나와야 명중한다. 이런 방어 스탯의 활용은 워해머 40k’ 에도 방어력이나 세이브 개념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인피니티는 기본적으로 상대의 수치와 상관없이 유닛의 명중률인 CC, BS  d20 굴림으로 성공하면 되는 식이지만, 여기서는 직관적인 스테이터스를 위해 스테이터스 이하가 나와야 한다. 즉 여기서는 스테이터스가 높을수록 성공률이 높다. 또한 워머신&’호드 DEF 처럼 회피에 대응하는 값은 없으나 각종 모디파이와 특수룰로 상대의 명중률을 일괄적으로 낮추는 식으로 영향을 미친다.



한편으로는 워해머 40k’ 에는 재미있는 주사위도 있다. 그건 바로 숫자가 아닌 화살표와 불스아이가 그려진 주사위다. 보통 스캐터 다이스라고 하는 이 주사위는 포격을 할 때 얼마나 빗나가는지 또는 정확하게 명중하는지를 결정하는 주사위다. 포격을 선언한 뒤 이 주사위를 던져서 불스아이가 나오면 목표한 지점에 명중하지만, 화살표가 나온다면 포격 지점을 중심으로 주사위가 가리키고 있는 그 화살표의 방향으로 빗나가게 되며, 빗나간 거리를 측정하기 위해 또다른 숫자 주사위를 던진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세개의 게임은 한눈에 보기에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플레이하게 된다.  ‘워해머 40k’ 를 플레이하는 걸 보게 된다면 단연 눈에 들어오는 건 한명의 플레이어가 준비해 놓은 수십개의 d6 주사위다. ‘워해머 40k’ 는 기본적으로 분대 단위로 기동하기 때문에 한 번에 다회의, 많게는 수십번의 공격을 가하는 것도 종종 일어나며 그래서 한번에 스무개 서른개씩의 주사위를 던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분대의 스테이터스는 동일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꺼번에 던진 후 굴림을 통과한 주사위만을 건져내 개수를 새고 그만큼의 명중탄을 상대에게 분배하면 되는 것이다.


반면에 워머신&호드에서는 훨씬 세밀하게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또한 2d6 이기에 확률 분포가 다른 만큼 평균적으로 7이라는 확률 중앙값에 더 크게 의존하며, 특유의 강화 시스템으로 부스트라는걸 사용한다. 부스트는 쉽게 말해 자원을 소모해 주사위를 하나 더 굴리는 것이다. 2d6 을 굴릴걸 3d6 굴리는 식. 게임 특유의 세세한 스테이터스 분배상 이 수치가 크게 다가올 수도 있다.


인피니티 d20을 사용하기 때문에 확률의 분포가 넓고, 동시에 게임의 근간 자체가 강력한 몇몇의 정예 유닛과 이를 보조하는 전열 보병의 자원 분배 형식을 띄기 때문에 스테이터스에 따른 유닛의 차이가 상당히 크게 다가온다.


이처럼, 분명 같은 주사위를 굴리고 주사위에는 어떤 변형도 가해지지 않았음에도 굴리는 상황, 굴리는 방식, 적용하는 룰 등에 따라서 각각의 주사위 굴림의 느낌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게 된다.


전자적인 작동 없이 난수를 생성하기 위한 장치는 여럿 고안되었지만 주사위는 여전히 그중에서도 가장 쓰기 편하며 공정하다. 주사위는 그 어떤 작동부도 없는 단순한 조각품인데 반해 룰렛 같은 경우는 회전축이 있는 구동장치여야 하고, 카드는 셔플이라는 한계 때문에 항상 확률이 동일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주사위도 물론 정입방체라 하더라도 각인에 따라 면의 무게가 달라지는 등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다른 장치에 비하면 매우 사소하고, 또한 각인을 파내는 양을 동일하게 맞춤으로서 조절할 수 있는 문제다.


그리고 이는 상당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주사위 굴림만이 주는 감성적인 만족감, 그리고 재미가 있다. 필자를 포함해 미니어처 게이머들이 공을 들였던 부분 중 하나는 자신만의 주사위를 만들거나 수집하는 것이었다. 이쪽의 유명 회사로 Chessex 가 있는데 여기서 각자 원하는 크기, 디자인의 주사위들을 사모아서 용도별로 쓰는게 일반적이었다. 이는 플레이어 간의 주사위 굴림 혼동을 줄인다는 실용적인 목적도 있었고, 무엇보다 에 관해서라면 당연히 붙게되는 일종의 미신, 어떤 주사위를 쓰면 수치가 잘 붙더라 하는 등의 이야기도 있었다.


결국 오프라인 게이밍에서의 주사위는 그게 실질적인 최선의 방책이면서 동시에 감성적인 만족감을 주는 방식이기에 그렇게 오랫동안 주류로 자리잡아왔다고 설명할 수 있다.



사실 전자 뇌는 진정한 난수를 만들 수 없어요


그렇다면 비디오 게임에서는 어떨까? ‘발더스 게이트같은 직접적으로 TRPG 의 주사위 시스템을 가져온 게임들이 아닌 다른 게임들은 어떻게 독자적인 확률 체계를 만들어낸 걸까?


그 근간이 물리적인 도구의 1/n 이 아닌 직접적으로 난수를 생성하는 방식이기에, 디지털 비디오 게임에서의 확률은 언뜻 보면 주사위와는 전혀 무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좀더 파고들면, 결국 비디오 게임도 이 주사위의 확률놀음의 지대한 영향 하에 있다는걸 새삼 느끼곤 한다.



일단 가장 먼저 짚어볼 점은, 본래 디지털 프로세서는 진정한 의미의 난수 생성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프로세서는 오직 입력된 값을 계산하여 출력하는 구조 그 자체이다보니 입력되지 않은 랜덤한 값을 뽑아낼 수는 없는 것. 이 때문에 많은 난수 생성기는 일정한 난수표를 가지고 조작자=플레이어가 입력할 때 생기는 이런저런 변수들(입력 타이밍, 순서 등등)을 가지고 그에 대응하는 난수표에 있는 값을 뽑아주는 것이다.


그래서 보이기에는 난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플레이어가 그 때마다 조금씩 자기도 모르는 다른 디테일로 정해진 값을 불러내는 셈이다. , 난수표=주사위의 전체 눈 값, 출력값=주사위를 굴려 위로 향한 면의 값으로 볼 수 있는 것. 난수표는 그저 모수가 좀 많이 큰 주사위라고 할 수 있다. 주사위 또한 던지는 위치, 패턴, 스냅의 방식 등으로 어느 정도 확률을 통제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처럼, 재미있게도 이 난수표를 가지고 특정값을 유도해내는 것도 유사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문제들이 대표적으로 드러나는 것들이 이를 테면 과거 몬스터 헌터시리즈에서 랜덤한결과물을 뱉어내는 연금술의 시드값을 파악해내어 다음에 나올 연금 결과물을 알게 해주는 치트엔진 같은 것이다. ‘몬스터 헌터: 월드의 마카 연금은 캐릭터마다 고유의 연금술 시드가 있었고, 치트엔진을 설치하고 몇 번 연금을 해주면 치트엔진이 그 캐릭터의 시드를 알아내고, 원하는 아이템이 몇번째 순서에 있는지 알려주었다. 사실, 정말 많은 게임들이 이 방식을 채용하고 있고, 그때마다 항상 벌어지는 사태이기도 하다.


단순히 기술적인 방식 뿐만 아니라 구조적인 면에서도 주사위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MMORPG 에서 많이 사용되는 캐릭터 전투 로직 중 하나로 프록(PROC) 방식이 있다. 프록은 간단하게는 기술 시전시 일정 확률로 더 강한 공격을 하거나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방식을 말한다. 플레이어들은 일명 로또 딜이라고 부르는 그 방식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프록에 쓰이는 확률을 보면 그 수치는 상당히 상징적이다. 50%, 33%, 25%, 10% 처럼 발동 확률을 몇분의 일, 이런식으로 쉽게 치환할 수 있는 수치를 가지는게 보통이다. , 이미 디지털 게임에서는 100분위로 표시하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주사위의 1/n 방식을 따르고 있는 셈이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일단 일반적으로 사람이 한 눈에 보고 발동 확률을 계산하고 DPS 의 상승 기대값을 쉽게 치환할 수 있을 정도의 수치는 결국 주사위에서 많이 쓰이는 십수분의 일 정도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수치의 값이 지나치게 낮아도, 만약 그 확률이 나뉘지 않는 소수로 되어 있거나 한다면 더더욱 계산은 어려워진다. 물론 게임 상의 각종 수치들은 밸런스를 위해 조정될 수 있는 유동값이지만, 대체로 프록 직업들의 밸런싱은 프록 확률보다는 그 위력과 발동 방식 개선 위주로 이루어지는게 주요 추세다. 이 확률을 건들게 되면 플레이어들은 또다시 복잡한 계산을 돌려야만 하니까.


결국 디지털 프로세서를 이용한 비디오 게임은 무한대의 확률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걸 활용하는 건 결국 사람이기에 사람이 인지하기 쉬운 범위 내에서만 쓰이게 된다는 이야기다. 한편으로는 이 프록 방식이 다름 아닌 주사위 굴림 게임에서의 크리티컬방식을 완전히 똑같이 채용한 개념이기에 더더욱 그렇게 보이는 면이 있다.


여기까지 생각하다보면, 시대가 많이 발전했음에도 주사위라는 방식과 체계를 이용하는게 오히려 가장 공정하고 효율적인 확률놀음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비록 이제는 멀티코어를 활용하거나 별도의 알고리즘, 하드웨어를 이용해 진정한 의미의 난수를 디지털에서도 생성할 수는 있지만, 여전히 그 벽은 높다. 주사위라면 단 몇백원 만에 유의미하게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확률놀음을 할 수 있는데, 그 이상의 것이 왜 필요하단 말인가?



, 주사위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방식을 불문하고 거의 모든 난수 생성의 기초 형태이면서, 사람이 놀이에서의 확률 사용을 인지하도록 하는, 일종의 기초 언어와도 같은 개념이다. 물리적으로도 개념적으로도 주사위는 확률 놀음에서 대체되기 힘들다. 그 아성을 위협할 수 있는 건 카드묶음이 거의 유일할 정도다. 심지어 디지털 환경에서는 카드묶음도 앞서 말한 방식 그대로 난수표 그 자체가 되기에, 주사위와 동일한 방식을 취하는 셈이다.


어쩌면 보드 게임, TRPG, 테이블탑 미니어처 게임 등 오프라인 게임에서 주사위를 던질 때 느껴지는 그 긴장감이 독보적인 이유는 그 어느 난수 생성보다 가장 공정하고, 가장 진실된 방식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너무 억지 같은가? 당신도 단 한 번이라도 주사위 굴림에서 다이스 갓의 은총을 받아보게 된다면 조금은 다르게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정말 날 것의 주사위 굴림, 그걸 한 번쯤 체험해 보시는건 어떠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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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게임 기자(2014~), 글쓴이(2006~), 게이머(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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