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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폴아웃〉의 미국, 오늘날의 미국

    중요한 것은 어떤 선택지를 고르더라도 그 결과는 앞서 본 것처럼 미국 역사의 어떤 장면을 재현하는 것에 그칠 거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같은 하늘 아래 있을 수 없는 듯 보이는 트럼프와 바이든의 미국 역시도 길게 보면 동일한 미국 역사의 반복에 불과하다. 바이든은 트럼프를 불러 들이고, 트럼프는 다시 바이든을 되살려 내며 끝도 없이 갈등한다. < Back 04 GG Vol. 22.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aeSeok Kim Kim is known for his activities as a critical expert on current affairs in various press media. But he is also an active gamer who never let go of games. Some of his publications includes 『a cynical society』, 『Otaku Loved Lenin』, as well as a co-author of 『Now, Here, Far-Rightism』, 『right-wing discontent』, 『Twitter, that 140-character egalitarianism』. His latest publication is 『Democracy where you vote because you don't like that side』.

  • 뱀서라이크 - 게이머와 게임의 생존전략

    ‘서바이버즈-라이크’ 장르가 주는 재미는 단순히 간단하고 쉬운 반복 플레이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인간의 생존 본능을 자극하고 다양한 생존전략을 취할 수 있게 하는 기본적인 욕망으로부터 즐거움을 끌어내고 있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즐거움은 게이머가 게임을 어떻게 즐기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 장르가 10, 20년 후까지 존재하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많은 표절, 모방 게임이 쏟아지고 있고, 게이머들은 이 행태에 반감을 갖기도 한다. 특히 무분별한 장르의 남용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 Back 뱀서라이크 - 게이머와 게임의 생존전략 09 GG Vol. 22. 12. 10. 2021년 겨울, 게임 ESD 플랫폼 스팀에 혜성처럼 등장한 인디게임이 있다. 흔히 ‘뱀파이어 서바이벌(이하 뱀서)’이라고 불리는 〈뱀파이어 서바이버즈(Vampire Survivors)〉이다. 당시 ‘앞서 해보기’로 단돈 3,300원에 출시한 이 게임은 저렴한 가격과 더불어 저사양, 간단한 게임 플레이로 전문 유튜버나 게임 스트리머뿐만 아니라 일반 게이머들 사이까지 유행했다. ‘뱀서’는 투박한 도트 그래픽과 2D 탑 다운(Top-down) 뷰를 이용한 고전 아케이드 슈팅 스타일을 채택하고 있다. 이는 마치 팩 인 비디오가 개발한 〈람보〉 시리즈나 〈GTA〉 시리즈 1, 2편과도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게임은 2021년 말~2022년 초 사이에 나온 게임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어떻게 보면 전통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고전적인 형태를 보여준다. 고전 게임에 추억이나 경험이 있는 혹은 레트로 스타일의 인디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에게는 즐겁게 게임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그런 게임에 추억이나 경험이 없는 그 밖의 게이머에게는 매력적으로 어필되기 힘들다. 그런데도 다양한 게이머에게 이토록 인기를 얻게 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지금도 ‘뱀서’의 인기는 식지 않는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비슷한 게임들이 올 한 해 쏟아져 나왔다는 점이다. 〈20 Minutes Till Dawn〉과 같은 도트 스타일, 〈Brotato〉와 같은 카툰풍, 〈Beautiful Mystic Survivors〉와 같이 미소녀 3D 버전의 유사 게임도 출시되고 있다. ‘뱀서’ 스타일의 시작은 한국의 1인 개발사 LEME가 만든 모바일 게임 〈매직 서바이벌〉이다. 종종 게이머들은 〈매직 서바이벌〉같은 장르는 예전부터 있어 왔다고 이야기한다. 필자도 게임에서 등장하는 시스템이나 표현들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유사한 것 같은 느낌의 원인은 〈매직 서바이벌〉의 장르적 특징이 복합적인 장르의 집합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게임 틀은 고전 아케이드 슈팅이다. 적이 발사하는 탄막을 피하고 적을 처지하는 구조가 기본적인 게임 플레이 방식이다. 결국 ‘이런 스타일과 장르의 원조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고전 게임 계보까지 살펴야 한다. 그렇다면 고전 게임과는 〈매직 서바이벌〉은 어떠한 차별점이 있는 것일까? * 〈매직 서바이벌〉 인 게임 화면. 겉으로 보이는 고전 게임 스타일과는 다르게 〈매직 서바이벌〉에서 현대 게임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는 시스템을 종종 확인할 수 있다. 그 중심은 ‘로그라이트’와 ‘캐주얼’이라는 키워드가 자리 잡고 있다. ‘로그라이트(Rogue-lite)’ 장르는 1980년 출시된 최초의 2D 그래픽 RPG인 〈로그(Rogue)〉가 지닌 영구적인 죽음, 절차적 생성과 같은 핵심 원칙을 적용하되, 죽더라도 다음 게임 플레이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일정량의 보상을 가져가게 된다는 특징을 가진다. 게이머는 다음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자신의 캐릭터를 강화하거나, 새로운 아이템을 미리 장착하는 등의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다. 캐릭터가 죽을 때마다 여전히 게임을 다시 시작하지만, 진정으로 0에서 다시 시작하지 않는다는 점이 핵심이다. 〈매직 서바이벌〉은 로그라이트를 채택했다는 점에서 〈로그〉를 단순 수용이 아닌 변용 했다. 이러한 점이 레트로 장르에 대한 실천적 계승이라고 볼 수 있다. 나아가 이 게임은 간단한 게임 플레이 방식과 쉬운 접근성을 바탕으로 한 캐주얼을 중심으로 두고 있다. 그럼에도 파고들 수 있는 요소가 가득하다. 이는 어떻게 보면 ‘하드코어’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캐주얼게임을 ‘하드코어’의 반대급부로 보는 것은 캐주얼의 단편적인 면만 강조한다. 예스퍼 율(Juul, 2010)은 캐주얼 게임이 일반적으로 ‘하드코어’ 게임과 상반되는 형태의 게임이라는 관점과 달리, 초창기 게임의 ‘단순함’으로부터 재발견된 범주로 본다. 이러한 점에서 단순히 〈매직 서바이벌〉이 캐주얼게임이기에 고전 게임과 같다고 주장하는 것은 ‘캐주얼’의 의미를 퇴색시킬 수 있다. 즉, 〈매직 서바이벌〉은 단순한 고전 게임의 모방과 무분별한 수용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조금 더 자세한 게임 플레이 메카닉은 후술하겠지만, 〈매직 서바이벌〉과 같은 게임은 그 자체로 새로이 등장한 장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실제로 ‘뱀서’의 제작자도 장르와 스타일의 기반이 〈매직 서바이벌〉이라는 점을 언급한 바 있다 . ‘뱀서’는 〈매직 서바이벌〉을 참고하면서도 해당 게임이 가진 문제점을 개선하여 출시되었다. 개발사는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통해 장르를 탄탄하게 개량하고 있다. 게이머나 커뮤니티 혹은 게임 웹진에서도 ‘like vampire survivors’라는 용어를 쓸 정도이니 말이다. 이른바 뱀파이어 ‘서바이버즈-라이크’라 불리는 장르는 기존 장르와 어떤 부분이 차별화되는 것일까? ‘서바이버즈-라이크’에서 살아남는 방법 * 〈뱀파이어 서바이버즈〉 메인 메뉴와 인 게임 화면. 그렇다면 게임을 조금 더 살펴보자. 〈뱀파이어 서바이버즈〉는 제작사에서 “로그라이트 요소를 갖춘 고딕 호러 케주얼 게임” 이라 밝히고 있다. 소개 문구만 보면 감이 잘 안 온다. 게임을 처음 시작하면 레트로 비트 사운드와 함께 단순한 메인 메뉴가 반겨준다. 처음 시작하는 게이머는 콜렉션, 강화나 잠금 해제 메뉴 모두 아무것도 이용할 수 없다. 이것들 전부 잠금 되어있거나 메뉴 상단에 보이는 돈은 0이기 때문에 강화도 할 수 없다. 결국 게이머는 어쩔 수 없이 시작 버튼을 누르고 캐릭터를 골라서 시작한다. 캐릭터는 풀밭에 놓이게 된다. 어떤 튜토리얼도 주어지지 않지만, 캐릭터는 자동으로 채찍질하고 있고, 멀리서 박쥐가 캐릭터를 향해 날아온다. 이후 게이머는 WASD나 방향키로 캐릭터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것과, 공격이 캐릭터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게임은 일련의 과정을 설명해주지 않지만, 게이머는 경험적으로 알아차리고 터득하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제작사가 밝힌 “케주얼”의 의미를 알 수 있다. 그레고리 트레프리(Trefry, 2010)는 〈Casual Game Design〉에서 캐주얼 게임의 몇 가지 속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뱀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캐주얼 게임의 속성은 “규칙과 목표가 명확해”야 하고, “게이머가 빠르게 게임 플레이에 숙련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Trefey, 2010). 이처럼 ‘뱀서’는 게임에서 분명하게 플레이 방식을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게임 메커니즘은 감각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도록 손쉬운 접근성을 제공한다. 게이머는 그저 방향키를 움직여 캐릭터를 조작하고, 자동 공격을 몬스터에 맞추기만 하면 된다. 이걸 반복적으로 하기만 하면 충분하다. 즉, 게임을 계속해서 플레이하기 위해 몰려오는 적들을 물리치거나 피한다는 단순 명쾌한 목표가 제시된다. * 레벨업 메뉴와 보물상자 연출 화면.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캐릭터는 박쥐, 언데드와 같은 몬스터를 처치하면서 보석을 습득하면 경험치를 얻게 된다. 이를 통해 레벨이 올라간 캐릭터는 세 가지의 선택지를 골라서 무기를 강화하거나 새로운 능력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주인공은 RPG 게임의 캐릭터처럼 성장한다. 이 과정을 어느 정도 반복하다 보면 기존 몬스터와 색이 다른 몬스터를 볼 수 있다. 열심히 색이 다른 적의 공격을 피하고 반격하면 처치할 수 있다. 여기서 색이 다른 보석 혹은 보물 상자가 나타난다. 보물상자를 습득하게 되면 특별한 연출이 나오면서 돈과 강화 아이템이 나오게 된다. 이는 랜덤하게 더 많은 돈과 아이템을 얻게 되는 기회가 된다. 게이머는 이 과정을 마치고 나면 또 하나 발견하게 되는 것이 있다. 바로 가운데 상단에 표시된 시간이다. 시간이 지나게 되면 빛나는 몬스터가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일정 시간이 되면 다음 단계의 스테이지로 넘어가듯이 보스가 등장한다. 난도가 높은 탄막들이 날아오고, 캐릭터는 이를 피하면서 보스를 공격한다. 하지만 초반 플레이에서 보스를 쓰러뜨리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캐릭터는 결국 죽게 되고, 게이머가 게임 오버 화면을 보고 나면 다시 메인 메뉴로 돌아온다. 하지만 메인 메뉴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 바로 돈이 생겨서 캐릭터 강화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몇몇 요소들이 해금된다. 게이머는 다음 게임에서 이것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즉, 우리는 처음부터 더 강해진 캐릭터로 게임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서바이버즈-라이크’ 플레이는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면서 실천된다. 반복적으로 플레이하면서 조금씩 얻게 되는 돈을 통한 업그레이드와 새로이 얻게 되는 해금 요소들로 캐릭터는 오랜 시간 버틸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러한 요소들이 스테이지를 도전하는 게이머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게이머는 처음에 몇 가지 안 되는 무기들만 고를 수 있지만, 해금되는 요소들을 통해 다양한 무기와 아이템, 그리고 진화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닿는다. 이를 통해 캐릭터는 더 많은 적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이 점점 쌓이면서 캐릭터는 강해진 적과 보스를 물리칠 수 있다. 게이머는 이를 반복하며 일정 시간까지 버티게 되면 승리한다. 하지만 게임이 끝났다고 완전히 클리어한 것은 아니다. 다음 맵이 해금되면서 게이머에게 새로운 도전을 제시한다. 게이머도 새로운 무기, 캐릭터와 함께 새 스테이지에 도전한다. ‘로그라이트’ 메커니즘은 게이머에게 계속해서 플레이할 수 있도록 하는 동기를 제시하면서 다양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게이머는 항상 캐릭터와 무기의 선택을 고민하면서,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고자 한다. 랜덤하게 제시되는 선택지는 판마다 신선함을 제공한다. 그렇지만 게임은 게이머의 조작과 캐릭터 강화로 운을 극복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었다. 순전히 운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점이 게이머에게 실질적인 플레이를 요구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기존 로그라이크, 로그라이트 게임과 차별화되는 부분이 아주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타 장르와 차이점은 ‘서바이벌’에 있다. ‘서바이버즈-라이크’ 게임은 분명하게 생존 게임의 정체성을 부여하고 있다. 흔히 생존 게임이라 부르는 장르는 현실감을 부여한 시뮬레이션 장르나 오픈 월드 액션 어드벤처 장르의 ‘하드코어’ 게임을 떠올린다. 하지만 생존 게임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는 생존전략에 있다. 생존 게임 게이머는 생존하기 위해 맵 곳곳에 있는 자원과 물자를 모으고, 새로운 무기와 아이템을 만들거나 습득하며 앞으로의 위험에 대비한다. 생존주의가 생존 게임 장르의 기초 문법이다. ‘서바이버즈-라이크’는 생존전략을 핵심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게이머는 캐릭터를 조작해서 어느 방향이든 갈 수 있다. 맵을 돌아다니다 보면 무작위로 생성된 다양한 오브젝트가 존재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캐릭터는 자동으로 공격하기 때문에 근처에 가기만 해도 오브젝트를 공격하게 된다. 이윽고 오브젝트가 파괴되고 아이템들이 나온다. 여기서 게이머는 적을 처치하는 것뿐만 아니라 맵에 배치된 아이템들을 통해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 알게 된다. 이를 알게 된 게이머는 더 많이 맵을 돌아다니게 되고 다양한 지형을 발견한다. 게임별로 재단, 집터, 건물, 거목 등과 같이 다양한 지형으로 배치된다. 여기서 게이머는 랜덤하게 강화용 아이템이나 특수한 이벤트들을 마주치게 된다. 즉, 더욱 강한 무기나 아이템들을 얻을 기회는 단순히 적을 처치하는 것 외에도 맵에 배치된 오브젝트를 통해 제공된다. 맵에서 자원과 물자를 모아 더욱 강한 캐릭터를 만드는 행위는 시간이 지나고 등장하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준비이다. 비록 질병이나 자연재해와 같은 시뮬레이션 된 현실성은 없지만, 게이머는 살아남기 위해 자원을 모으고 새로운 무기를 손에 넣는다. 이는 게임 방식과도 연관이 있다. 게이머는 능동적으로 게임을 클리어할 수 없다. 일정 시간을 채워야만 게임을 클리어할 수 있다. 즉, ‘서바이버즈-라이크’는 주어진 생존환경에서 살아남아야만 클리어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한다. 게임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내러티브를 통해 생존 본능을 자극한다. 혼자 남아 있는 캐릭터와 나만 공격하는 적은 일종의 ‘배틀로얄’ 구도와 같다. 우리는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갈구한다. 게임 내 아이템이 됐든, 캐릭터를 조작하는 게이머의 손가락이 됐든 살기 위한 움직임이 존재한다. 이러한 점이 게이머에게 생존 본능과 함께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킨다. 다양한 게이머가 이 장르를 좋아해 주는 데에는 단순히 레트로 인디게임이라는 점 때문은 아니다. 게임 기반에는 다양한 레트로 장르에 대한 각색과 생존주의가 깃들어 있다. 이 같은 지점이 기존 레트로 인디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뿐만 아니라 캐주얼 게이머, 하드코어 게이머까지 어필할 수 있는 ‘서바이버즈-라이크’가 가진 재미 요소이다.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더 재밌는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후속 게임들은 〈뱀파이어 서바이버즈〉를 모방한다. 특히 일부 게임이 ‘서바이벌’이 아닌 ‘서바이버즈’라는 제목을 달고 출시한다. 분명하게 원조는 〈매직 서바이벌〉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데도 몇몇 게임은 ‘뱀서’에 새로운 요소를 더하거나 불편한 부분을 제거하여 출시되기도 한다. 사뭇 달라진 게임 스타일은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즉, 많은 후속 게임이 ‘뱀서’에서 영감을 얻고 있지만, 그 형태는 미묘하게 다르다. 또 하나는 〈매직 서바이벌〉은 본래 모바일 게임이었지만, 상당수의 게임이 PC 플랫폼으로도 출시되었다는 점이다. 간단한 조작법과 짧은 플레이 타임은 모바일에 적합했지만, PC로 넘어오게 되면서 더 많은 연산이 가능해진 점은 많은 적과 큰 규모를 강조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게이머는 게임 플레이를 위해서 컴퓨터 앞에 앉아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이처럼 후속 게임들은 ‘뱀서’에서 틀을 가져와서 지금 상황에 알맞게 바꾼다. 어째서 이들은 모방을 넘어 변화하는가? 이는 당연한 논리이다. 게임 시장은 급격하게 변하는 환경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게임이 개발되고 있고, 일주일만 해도 수십 개의 PC게임이 출시한다. 모바일 환경을 포함하면 더욱 많아진다. 이 중에서 ‘서바이버즈-라이크’ 게임 또한 분명하게 존재할 것이다. 필연적으로 대다수 게임은 흥행에 실패할 것이다. 장르를 선점하고 있는 게임들이 이미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환경에 맞게 변해야 한다. 우리는 이를 ‘진화’라 부른다. 진화는 진보가 목적이 아니다. 진화는 생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변화, 즉, ‘변이’다. 변이가 바로 진화의 제1 조건이다 . 개발자들은 ‘서바이버즈-라이크’가 우후죽순 나오는 지금 시장에서 모범이 되는 게임을 모방하고 변이하는 생존전략을 실천하고 있다. 이들에게 장르의 진화는 생존을 위한 것이다. 게임들은 어떤 변이가 게임 시장에 더 잘 맞을지 이리저리 모습을 바꾸고 있다. 그리고 결국 유리한 형질을 가진 게임은 살아남아 장르를 확립할 것이다. 마치 자연 선택의 원리처럼 말이다. * 〈탕탕특공대〉 인 게임 화면. 이 생존전략이 어느 정도 성공한 사례가 바로 〈탕탕특공대〉이다. 이 게임은 ‘서바이버즈-라이크’가 지향하는 바를 실천함과 동시에 게임이 오랫동안 플레이 될 방법을 고안해냈다. 모바일 환경에 맞게 플레이할 수 있는 횟수를 제한하는 ‘스태미나 시스템’을 도입했다. 또한 게임 내의 육성 시스템은 간소화했지만, ‘장비 가챠 시스템’을 도입하여 캐릭터가 영구적으로 들고 갈 수 있는 업그레이드 요소는 오히려 강화했다. 게이머는 캐릭터의 능력치를 올리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비를 착용함으로써 시작 무기를 바꾸거나 더욱 높은 공격력과 방어력을 통해 이점을 갖고 시작할 수 있다. 그런데도 게이머는 ‘서바이버즈-라이크’ 게임이 주는 즐거움과 게임 플레이 경험을 온전히 얻을 수 있다. 오히려 〈탕탕특공대〉는 라이브 게임 서비스를 통해서 더 오랫동안 게임을 즐길 수 있게 유도하고 있다. 이것이 기존 후속 게임과는 다른 생존전략이다. 나가며 ‘서바이버즈-라이크’ 장르가 주는 재미는 단순히 간단하고 쉬운 반복 플레이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인간의 생존 본능을 자극하고 다양한 생존전략을 취할 수 있게 하는 기본적인 욕망으로부터 즐거움을 끌어내고 있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즐거움은 게이머가 게임을 어떻게 즐기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 장르가 10, 20년 후까지 존재하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많은 표절, 모방 게임이 쏟아지고 있고, 게이머들은 이 행태에 반감을 갖기도 한다. 특히 무분별한 장르의 남용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그러나 다양하고 창의적인 인기 게임이 많이 출시하고 있는 현 게임 시장에서 ‘서바이버즈-라이크’가 짧은 시간이지만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들은 게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름의 생존전략을 세우고 변화하는 환경에 대비하고 있다. 앞으로의 추이가 기대된다. 참고문헌 Trefry, G. (2010). Casual Game Design: Designing Play for the Gamer in ALL of Us (1st ed.). CRC Press. Juul J. (2010). A casual revolution : reinventing video games and their players. MIT Press.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수진 게임연구에 발을 들인 대학원생입니다. 지금은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첨단종합학술연구과에서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최근엔 게임을 매개로 한 다양한 게임 경험과 일본 내 서브컬처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글 쓰는 건 여전히 어렵습니다.

  • Collaborate, Compete, and Broadcast: Gaming’s 21st Century Cultural Shifts from MMOs to Live Streaming and Online Platforms

    If you’re a video game enthusiast born after the year 2000, chances are good that you grew up with relatively easy access to video game media. Though gaming still maintains some of its countercultural reputation, it has simultaneously become a facet of mainstream culture, and the sheer volume of player-produced video game content has done a lot of legwork to keep our favorite games alive in our eyes and ears long after we’ve signed off for the night. For even some of the most obscure games, it feels like there is a limitless amount of game content available for players to consume without even needing to play. Video gaming’s cultural spaces now weave in and out of games, online communities, and numerous digital platforms like Steam and Discord.  < Back Collaborate, Compete, and Broadcast: Gaming’s 21st Century Cultural Shifts from MMOs to Live Streaming and Online Platforms 23 GG Vol. 25. 4. 10. ***You can see the Korean version of this article at below URL: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caffe7a3-6d3f-40e0-9c16-99fb33d9ee75 The Same as it Never Was If you’re a video game enthusiast born after the year 2000, chances are good that you grew up with relatively easy access to video game media. Though gaming still maintains some of its countercultural reputation, it has simultaneously become a facet of mainstream culture, and the sheer volume of player-produced video game content has done a lot of legwork to keep our favorite games alive in our eyes and ears long after we’ve signed off for the night. For even some of the most obscure games, it feels like there is a limitless amount of game content available for players to consume without even needing to play. Video gaming’s cultural spaces now weave in and out of games, online communities, and numerous digital platforms like Steam and Discord. At the turn of the millennium the situation was very different. As a young Canadian gamer in 1999, I have fond memories of waiting every week for two 30-minute television shows - Video and Arcade Top Ten and The Electric Playground - which were the only consistently available televised media about games in my area. * Canadian video game television show Video and Arcade Top Ten - Credit to videoandarcade YouTube channel. [1] To get our fix of game-related content outside of these programs we’d largely turn to monthly gaming magazines which came in three main varieties: proprietary magazines like Nintendo Power which essentially functioned as long-form commercials for recently released or upcoming products, review magazines like GamePro , or magazines directed at hobbyists looking for the latest hardware or industry details, like Next Generation . So how did we get from a handful of publications and two blink-and-you’ll-miss-them television shows a week that largely served to sell the newest games to players, to a vast repository of video game media that serves as a platform for numerous ongoing debates about various issues across gaming culture? The consumption environment of video games and their cultural spaces didn’t evolve on their own. Games are one facet of what Henry Jenkins dubbed “Convergence Culture” – effectively a whirlpool that unstoppably pulls disparate segments of culture together in new ways as our media technologies develop. [2] Video games are part of a complex media environment that involves film, television, magazines, and most critically, the emergent and novel forms of media content and game design affordances that the internet made possible. The first quarter of the 21st century saw an immense shift in how we experience games together, and the development of video game culture is a byproduct of the convergence era made possible by ‘web 2.0,’ and the democratization of the internet. Players became central figures as culture producers, and took on a more active role in publicly shaping culture through increased connectivity both in and out of game worlds. Consider that the current market leaders for game-related media consumption - Twitch and YouTube - didn’t even exist until 2006; two years after World of Warcraft launched and popularized an already flourishing subculture of online gaming across the globe. It may seem unthinkable now that millions of players could congregate together without myriad videos explaining all the new class changes, metagame concerns, and boss strategies, but at the time players were experimenting with new ways of interacting with each other online, and improvised new ways to communicate complex ideas about how to successfully overcome challenges together, all while learning new social contracts and ways of interacting with fellow players. Players were participating in the construction of a new online society; one where play served as the connective thread that linked disparate people together. At the same time, esports was a novelty with some aspiring gamers and organizers in the West turning to Korea’s impressive StarCraft [3] scene both for inspiration, and to validate burgeoning aspirations that one day the hobby or passion project of gaming could become a profession at the level of play, and not just at the level of game production. These forces collided with legacy media and emergent internet-driven media production – alongside the continuing trend originally propelled by reality television in the late 1990s of ordinary people becoming increasingly worthy of celebrity status in the public eye – to propel us towards a new gaming cultural landscape. MMOs and the New Normal of Connectivity and Sociality Though multiplayer gaming wasn’t a new phenomenon at the turn-of-the-millenium, the MMO boom of the early 2000s was foundational for bringing players together. In the same way that arcades were the central gaming spaces of the 1970s and early 1980s, [4] and home consoles and their respective brand wars were the focus of the 1990s, the 2000s became the era of the MMO. Earlier online multiplayer games like MUDs (Multi-user Dungeons) connected players together through largely text-based RPG systems, and though these proto-MMOs connected hundreds of players, they were still a relatively niche gaming subculture. While games like EverQuest [5] and Ultima Online [6] achieved some popularity in the late 1990s, World of Warcraft [7] brought a new level of popular appeal through its graphical style and smooth, approachable gameplay. Though World of Warcraft built a strong following on its own, the South Park episode “Make Love Not Warcraft” in 2006 put a formerly niche genre into the public sphere in previously unprecedented ways. Not only was this an unparalleled promotional moment for a game of this kind, but it signalled a new kind of cultural presence for the MMO genre that countless companies would strive to achieve through their own massively multiplayer games. * A congregation of players in World of Warcraft await a boat to travel to new lands - Author’s Screenshot. The most important takeaway from WoW ’s success and all the competing MMOs that followed would naturally be that MMOs were the next big thing – but MMOs afforded easier access to large-scale playful connection in a way that only a handful of MUD enthusiasts were able to access before. MMOs put both competitive and collaborative multiplayer opportunities in front of players, and most importantly they served as some of the first points of avatar-based online connectivity in play spaces for an entire generation of players. This kind of playful connectivity was a floodgate that could not be closed, and the DNA of MMO connection worked its way into countless genres as social media and mobile gaming leveraged the appeal of play for their own platforms. We could now join our friends, make new friends, and compare and share ourselves with others. More than ever before, it started to matter what and how our friends were playing, even on social media games like Farmville [8] , or as we chased achievements in our single-player console games. Video Game Broadcasting and Live Streaming as the Next MMO At the same time, in the mid 2000s, most websites were continuing to release short editorials focused on industry issues or technological developments , alongside a steady stream of video game reviews. Nearing the end of the first decade of the 2000s, there was a visible pivot – particularly visible in the creation and development of the website Giant Bomb, following Jeff Gerstman’s departure from Gamespot, which was a more conventional games journalism outlet. Giant Bomb’s content was more focused on discussions between members of the website team as informed players and experienced games journalists, without much of the pretense or artifice of traditional reviews or articles. The visible authenticity of the individuals who were broadcasting together, and the unplanned moments that would arise within segments, became as central to the overall experience of video game media consumption as the game content itself. In each of these cases, community is central to the audience experience. Twitch and similar live streaming sites aren’t the same without an active chat, and YouTube ‘Let’s Plays’ and Giant Bomb videos are a site for comment, discussion, and community. People identify with the personalities on screen and those who make themselves seen as members of these communities. This is often more important than the game that is being played or discussed – but that there is a game at all is an integral glue to that early 2000s connectivity: a society under construction linked together by play. While the MMO boom peaked in North America between 2008 and 2010, players of all kinds still clamored for the kind of communities that MMOs fostered, but now external sites had developed the infrastructure to support a play-based sociality outside of the confines of a fantastically rendered digital world. Celia Pearce wrote about the closure of the game Myst Online: Uru Live [9] and its players as a video game diaspora – as players maintained a strong sense of communal identification among one another even after they migrated to other games like Second Life and There.com . [10] Similarly, Mia Consalvo and Jason Begy found that players of the now defunct game Faunasphere stayed in touch and felt connected to each other as ‘ Faunasphere players,’ finding new games to play together or ways to stay in touch. They noted that players “actively work to form groups and relocate their play activities elsewhere, often investing great energy in the search for a new virtual ‘home.’” [11] This “new virtual home” isn’t necessarily a game even if the content might be play-related. Watching someone else play could be as satisfying as - sometimes more satisfying - than playing a game yourself, especially when this act of spectatorship is undertaken communally with friends and acquaintances from one’s own social network of prior gaming relationships. [12] Not only are viewers invested in the broadcaster’s success in the game they’re playing, but in their meta-success as a streamer trying to establish a career. Instead of trying to help our guildmates by providing them supplies or doing our part in a challenging boss fight, we’re now invested in the success of our favorite streamers. MMOs pulled players into shared social spaces through games, and once a similar playful connectivity was established outside the boundaries of virtual worlds, players and game fans alike were able to chase that connection and sociality without being tethered to a particular game and its digital geography. The growth of live streaming also affected what kinds of games would become popular. The idea of a “streamable” game is just as important as a playable game, and games that are just as fun to watch as they are to play became a key segment of the market. Games like League of Legends , [13] PUBG [14] , and Among Us [15] have tension built into every moment of gameplay through competition, and that tension is what makes experiencing these games vicariously as part of a collective audience their own pivotal gaming experiences. The success of Elden Ring , [16] for example, isn’t something we can attribute solely to the quality of the game, as streamers produce a bounty of viral moments of struggle through each challenging encounter attempted in front of thousands of viewers each, while the audience bonds as we share in our favorite streamer’s failures and (hopefully) eventual success. In a moment of peak convergence, esports and live streaming were perfect partners as Twitch served as a new centralized platform for putting competitive gaming in front of interested players. In my prior work, I note that this connection helped both sectors grow: "Esports grew from having “about 10 tournaments in 2000 to 696 in 2012,” [17] to have an estimated 523 million viewers across the globe. [18] While gaming has had a competitive element for decades, it reached new levels of saturation. Live streaming itself grew substantially during this time, as individual personalities began to broadcast their own gameplay for others, forming participatory audience-communities [19] and parasocial relationships. [20] [21] " The Platform Era and Uncertain Futures Taking a page out of the tech sector playbook, companies with a foothold in online gaming began to operate as ecosystems, such as Valve developing Steam into an all-encompassing market for games and cosmetic goods crossed with a social platform. In my work on toxic game culture, I outline the cultural impact and shape of gaming’s platform era: "Early voice communication software that players used like Ventrilo and Teamspeak were barebones VoiP programs, a far cry from the user-friendly multi-server social media-like hub that Discord has become since its release in 2015. There were fewer channels for players to connect to one-another across games, fewer broadcasters of gaming content circulating ideas about what the culture should look like, and there were also fewer online games overall for players to move between. Now, following in the footsteps of larger media companies like Disney and HBO, video game companies like Valve and Blizzard have become less interested in keeping players within individual games, instead opting to invest players in various games that are housed in their proprietary platforms (Steam for Valve, Battle.net for Blizzard). [22] [23] " Players are now living through the effects of platformization, which are still developing and ongoing. What is clear at this point is that over twenty-five years, players have been pulled much closer together across game, platform, and genre. We have been conditioned to socialize online, but we have done so through a combination of internet culture and a social environment whose very language has developed out of the online gaming lexicon. There has never before been more access to vast libraries of games, and an even greater number of players with whom to share our gaming passions. In many ways the linked networks that run through Twitch, Steam, and Discord, alongside all our favorite games, have connected us in a second-level persistent virtual world. This world is one made up of live streams, YouTube videos, esport team fandoms, and other subcommunities, each with different stakes in what gaming means, and who the cultural space should belong to. Is our current gaming landscape of unprecedented online proximity set to pull us even closer together in even more realistic and immersive environments through VR, or are we primed in what many are calling gaming’s “culture wars,” to be driven apart? As of now there is no clear answer. The only thing that can definitively be said, is that the future of gaming culture is as unpredictable as its past. [1] Videoandarcade YouTube Channel. https://www.youtube.com/watch?v=OWFm2qU0k5o&ab_channel=videoandarcadetop10 (accessed March 26th, 2025). [2] Jenkins, Henry. Convergence Culture: Where Old and New Media Collide. New York: NYU Press, 2006. [3] Jin, Dal Yong. “Historiography of Korean Esports: Perspectives of Spectatorship.” International Journal of Communication 14 (2020): 3727-3745. [4] Kocurek, Carly A. Coin-Operated Americans: Rebooting Boyhood at the Video Game Arcade.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15. [5] Sony, 1999. [6] EA, 1997. [7] Blizzard Entertainment, 2004. [8] Zynga, 2009. [9] Ubisoft, 2003. [10] Pearce, Celia. Communities of Play. Cambridge: The MIT Press, 2009, 7. [11] Consalvo, Mia, and Begy, Jason. Players and their Pets: Gaming Communities from Beta to Sunset.”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15, 91-92. [12] Consalvo, Mia, Marc Lajeunesse, and Andrei Zanescu. Streaming by the Rest of Us: Microstreaming on Twitch. Cambridge: MIT Press, 2025. [13] Riot Games, 2009. [14] Krafton, 2017. [15] Innersloth, 2021. [16] FromSoftware Inc., 2022. [17] Hiltscher, Julia. “A Short History of eSports.” eSports Yearbook 2013/2014 (2014): 9-15. [18] “Esports Ecosystem in 2023: Key Industry Companies, Viewership Growth Trends, and Market Revenue Stats.” Insider Intelligence article. January 1st, 2023. [19] Hamilton, William A., Garretson, Oliver, and Kerne, Andruid. “Streaming on Twitch: Fostering Participatory Communities of Play within Live Mixed Media.” CHI ‘14: Proceedings of the SIGCHI Conference on Human Factors in Computing Systems. April 14th, 2014, 1315-1324. [20] Sherrick, Brett, et al. “How Parasocial Phenomena Contribute to Sense of Community on Twitch.” Journal of Broadcasting and Electronic Media 67, no 1 (2023): 47-67. [21] Lajeunesse, Marc. “Transgressive Positivity in Four Online Multiplayer Games.” PhD Dissertation, Concordia University, 2023. [22] Zanescu, Andrei, Lajeunesse, Marc, and French, Martin. “Gaming DOTA Players: Iterative Platform Design and Capture.” Proceedings of DiGRA 2019. Kyoto, Japan, August 6-10, 2019, 1-3. [23] Lajeunesse, Marc. “Transgressive…”, 2023. Tags: NorthAmerica, MMORPG, Online Game, live streaming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Researcher) Marc Lajeunesse Marc is a PhD candidate in Concordia University's department of communication studies in Montreal, Canada. Marc’s research focuses on toxicity in online games. He is driven to understand toxic phenomena in order to help create more positive conditions within games with the ultimate hope that we can produce more equitable and joyful play experiences for more people. He has published on the Steam marketplace and DOTA 2, and is a co-author of the upcoming Microstreaming on Twitch (under contract with MIT Press).

  • 곤잘로 프라스카, 공감과 공환의 매체를 꿈꾸다

    앞으로 소개할 곤잘로 프라스카(Gonzalo Frasaca)는 참으로 특이한 이력을 지닌 사람이다. 게임 개발자이며 사업가이기도 한 그는 게임 규칙과 놀이 행위 자체를 중시하는 ‘게임론’(ludology)의 주요 이론가이다. 게임을 스토리텔링 미디어로 보며 서사로서의 게임 연구를 고수한 ‘서사론’(narratology)에 대립각을 세운 셈이다. ‘놀이냐 서사냐’를 둘러싸고 벌어진 이 논쟁도 이제는 옛일이 되었지만 프라스카는 게임 연구에 나름 중요한 족적을 남겼다. < Back 곤잘로 프라스카, 공감과 공환의 매체를 꿈꾸다 04 GG Vol. 22. 2. 10. 앞으로 소개할 곤잘로 프라스카(Gonzalo Frasaca)는 참으로 특이한 이력을 지닌 사람이다. 게임 개발자이며 사업가이기도 한 그는 게임 규칙과 놀이 행위 자체를 중시하는 ‘게임론’(ludology)의 주요 이론가이다. 게임을 스토리텔링 미디어로 보며 서사로서의 게임 연구를 고수한 ‘서사론’(narratology)에 대립각을 세운 셈이다. ‘놀이냐 서사냐’를 둘러싸고 벌어진 이 논쟁도 이제는 옛일이 되었지만 프라스카는 게임 연구에 나름 중요한 족적을 남겼다. 나아가 우르과이 출신 게임 개발자로서 그는 상업적인 게임과 실험적인 게임들을 넘나들면서 독창적인 게임들을 개발하기도 했다.『억압받는 자들의 비디오게임』이라는 학위논문을 쓰기도 한 그의 관심은 게임을 통해 억압과 폭력, 차별, 전쟁과 같은 사회의 현실 문제와 씨름하는 게임들을 만들어 왔다. 프라스카가 제안하고 실천한 ‘시리어스 게임 serious games’, ‘뉴스게이밍 newsgaming’, ‘교육적 게임 educational games’, ‘다큐게이밍 docugaming’ 같은 프로젝트들은 상업적 성공을 향한 오락 일변도의 주류 게임을 넘어 게임의 사회적 효용성과 실천적 잠재성을 확장하려는 시도들이다. 물론 게임이 교육과 사회적 인식이라는 목적을 강조하다 보면 재미라는 게임의 핵심 요인을 소홀히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나날이 다양해져온 게임의 장르와 콘텐츠, 그리고 게임 테크놀로지와 게이밍 환경의 꾸준한 진화 속에서 프라스카의 제안과 실험은 일정한 시의성을 갖는다. 우리는 누구나 게임을 만들고 누구나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의 민주화’에 값하는 ‘놀이 정보계’(ludic infosphere)의 도래를 맞이하고 있다. 그동안 게임생태계의 발전 과정을 돌아보면 사회적 억압과 차별에 대해 다시 생각하며 토론하고, 나아가 사회 인식과 공감의 상승을 시도하는 프라스카의 꿈은 ‘몽상’만이 아니게 된 것이다. 여전히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게임들만이 주로 기억되고 이야기되는 현실이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의미 있는 문제작들이 발표되고 있기도 하다. ‘재미’와 ‘인식’의 균형을 향해 아직 나아갈 길은 멀지만 말이다. 여기서는 ‘시리어스 게임’, ‘임팩트 게임’의 초기 제안자라 할 만한 프라스카의 게임관과 실험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정치적 에듀테인먼트와 시사 게임 프로젝트 프라스카의 게임 철학은 “비디오게임이 반드시 오락적일 필요는 없다”는 다분히 논쟁적인 선언에서 잘 나타난다. 사실 이러한 진술은 다분히 정치적인 발언이다. 프라스카 역시 게임의 오락성과 재미를 중시하고 그가 만든 게임들 역시 재미적 요소를 강화하고자 노력해왔다. 그렇기에 그의 게임인 는 1천 300만 카피를 팔 수 있었고 “역사상 가장 거대한 성공을 거둔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프라스카의 게임관과 실험은 세계적인 독일 극작가이자 연극이론가이며 실천가였던 브레히트(B. Brecht)와 그를 계승한 실험적 연출가 보알(Augusto Boal)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이들은 재미라는 것이 주류 대중문화와 오락산업의 관행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재미와 오락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며, 굳이 시끌벅적한 스펙터클 속에 순간적 쾌감이 아닌 주변 현실을 돌아보고 인식하는 가운데서도 재미와 오락을 찾을 수 있음을 모색하는 것이다. 브레히트가 말하는 ‘배움의 재미’ 혹은 ‘깨달음의 재미’는 프라스카에게도 이론적ㆍ실천적 화두였던 셈이다. 프라스카에 따르면 비디오게임은 원래 비오락적인 용도로 탄생했다. 군사훈련을 위해 도입된 각종 시뮬레이터들이나 명시적으로 교육적 목표를 표방하는 게임들이 그것을 입증한다. 오래전부터 ‘디지털 에듀테인먼트’(Digital Edutainment)라는 이름으로 불려온 교육용 게임들을 우리도 잘 알고 있다. ‘에듀테인먼트’는 ‘교육’(education)과 ‘오락’(entertainment)를 결합해서 만든 신조어로서 학생들의 참여와 흥미를 유발하는 새로운 교육 방식이나 수단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된 바 있다. 특히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가능해진 학습자의 능동적 상호작용과 참여 가능성은 주입식 교육의 대안으로까지 여겨졌다. 곤잘로 프라스카 역시 학습 플랫폼으로서 디지털 미디어가 갖는 요소들을 인정하며 이러한 장점들을 비디오게임의 사회적 기능전환에 유용한 장치로 활용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는 기존의-대체로 오늘날에도- 비디오게임의 교육적 활용이 순전히 수학이나 과학, 어학 교육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비판한다. 왜냐하면 프라스카의 관심은 유저들이 상호 토론과 공감을 통해 비판적 사고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비디오게임의 디자인에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가장 이상적인 비디오게임의 모델은 다음과 같은 사회심리학자 셰리 터클(Sherry Turkle)의 구상에 기반한 게임이다. “하지만 우리는 제3의 반응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는 더욱 복잡한 사회적 비평을 계발하기 위한 하나의 도전으로서 시뮬레이션의 문화적 파급력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비평이 모든 시뮬레이션들을 일괄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 사이의 차이를 식별할 수는 있다. 이는 모델 고유의 가정들에 대한 플레이어의 도전을 실질적으로 도와주는 시뮬레이션의 발전을 그 목표로 삼을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비평은 시뮬레이션을 의식-상승의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여기서 시뮬레이션은 비디오게임으로 바꾸어 읽어도 무방하다. 하지만 프라스카의 말처럼 그의 실험이 이루어지던 당시는 물론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게임들은 우리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혐의에서 완전 자유롭지는 못하다. 이는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괴물이나 몬스터, 트롤들 일색이거나 인간이 등장하더라도 일상인들과 거리가 먼 캐릭터라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심시티〉나 〈심즈〉 등 현실을 시뮬레이션하는 게임들의 등장하고 멜로, 역사물, 갱스터 등의 장르들로 게임의 소재와 주제가 다양해지면서 상황이 많이 변하기는 했다. 하지만 인간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현실을 재현하는 게임들 다수는 현실의 문제나 모순들을 회피하고 ‘디즈니랜드 같은 방식’으로 삶을 이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프라스카가 보기에 더 심각한 문제는 다수의 게임 연구자들에 의해 게임에 대한 무비판적 동일시를 의미하는 ‘에이전시’(agency)와 ‘몰입’(immersion)이 게임의 바람직한 효과들로 당연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플레이어-주체가 게임 규칙과 그 세계를 자신의 것으로 완벽하게 받아들이는 환경의 창조야말로 게임 개발자의의 미덕이라고 보는 사이 인종/젠더/민족(국민)/종교 등의 차별 의제들은 살며시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프라스카는 주류 게임들이 상업적 성공에 꽂혀 현실의 억압과 차별을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미지 재현과 플레잉 규칙을 통해 차별과 폭력의 구조를 고착화하는 점을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문제는 단순히 게임의 판타지적 설정이 아니라 게임 대상들과 게임 규칙에 담긴 차별과 억압에 대한 무감각 혹은 그에 대한 암묵적 동의이다. 우리는 비디오게임의 플레이가 연극이나 영화의 감상과 분명 다른 경험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게임 플레이어와 비디오게임 캐릭터 사이의 거리는 다른 예술의 수용자-캐릭터 사이보다 훨씬 더 밀접하다. 프라스카의 지적처럼 우리는 게임을 하면서 라라 크로프트가 혹 신장병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마리오가 편집증 증세를 지닌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하지 않는다. 이들 캐릭터나 게임상의 괴물들은 모두 수단이고 커서일 뿐이다. 게임의 캐릭터들은 대체로 평면적 캐릭터로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왜 그 캐릭터가 그런 식으로 행동했을까”가 아니라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슈퍼맨, 스파이더맨, 제임스 본드 등의 영웅이고 싶지만 게임의 경우 그런 욕망을 가질 필요가 없다. 게임에서 우리가 바로 그 영웅들이기 때문이다. 가령 게임에서 마리오는 영웅이 아니다. 내가 바로 영웅이고 마리오는 하나의 커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플레이어에게 자유도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게임의 캐릭터는 플레이어의 행위를 위한 커서가 되고 플레이어는 스스로를 게임의 영웅 혹은 신으로 자각한다. 게임의 자유도와 상호작용성에 따른 게임의 몰입은 게임 이면의 규칙에 묻어나는 차별과 억압의 이데올로기를 ‘자연화’(neutralization)하기 쉽게 만든다. 프라스카는 주류 컴퓨터게임들의 이러한 한계들을 비판하면서 플레이어에게 자신이 당면한 현실을 탐색하게끔 허용하는 캐릭터 중심의 비디오게임, 더 나아가 게임의 행동 규칙을 플레이어 스스로 변경할 수 있는 컴퓨터게임을 구상한다. 이를 위해 그는 아우구스또 보알이 연극을 통해 실험했던 것을 컴퓨터게임으로 전유하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에서 관건은 “재미 경험을 유지하는 가운데서도 이데올로기적 이슈들과 사회적 갈등들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강화하는 비디오게임”의 개발이다. 이러한 인식은 〈9ㆍ12〉나 〈마드리드 Madrid〉와 같은 프라스카 본인의 게임의 개발로도 이어진 바 있다. 하지만 프라스카의 작업에서 더 중요한 것은 게임 창작이 어려운 이들이 기존의 게임들을 비판적으로 ‘재매개’하여 자기 이야기를 만들도록 제안하는 것이다. 특히 그는 대중적으로 크게 인기를 끈 고전 게임들을 활용할 경우 유저들 사이에서 광범위한 참여와 대화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근에야 게임 창작 도구나 제작 엔진의 수준이나 직관성이 크게 향상되고 ‘로블록스’나 ‘디토랜드’ 등과 같은 양질의 플랫폼이 발표되어 프라스카의 실험 제안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무척 커졌다. 프라스카의 실험은 일종의 게임 모드(mod)에 대한 제안으로 볼 수 있는데 그 수준도 비약적으로 향상되기도 했다. 문제는 플레이어-주체들의 의지와 인식에 달린 셈이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게임들이 드문드문 인디 게임씬에서 발표되는 중이다. 게임 유저의 게임 모딩이나 창작의 환경이 지금보다 원활하지 않았던 시절 〈심즈〉를 이용하여 프라스카가 상상한 ‘억압받는 사람들의 비디오게임’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억압받는 자들의 비디오게임’ 프라스카의 ‘억압받는자들의 비디오게임’은 소설이나 영화처럼 억압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억압을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보알의 ‘억압받는 자들의 연극’이 그랬듯이 프라스카의 게임은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차별과 억압들에 대해 ‘쟁점들을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보알의 연극 실험처럼 ‘과정 속의 작업’(work-in-progress)으로서 비판적 사유와 논쟁을 위한 포럼(forum)의 역할만으로도 유의미하기 때문이다. 프라스카의 말처럼 모든 게임들은 늘 제한적이고 이념적으로 편향적일 수 있다. 그리고 게임들은 개발자들도 예견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고 플레이될 수도 있다. 프라스카는 문학이나 영화 못지않게 게임들도 훌륭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는 세리 터클의 주장에 동의한다. 터클에 따르면 게임과 시뮬레이션들에 있어 “시뮬레이션의 기저에 깔린 이데올로기적 가설들에 대한 이해는 정치권력의 핵심 요소이다. 시뮬레이션들에 강요된 왜곡들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더욱 직접적인 경제적ㆍ정치적 피드백과 새로운 종류의 재현, 더욱 많은 정보의 채널들을 요구할 만한 위치에 있다.” 프라스카는 이 정도로 게임 사용자들의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대안적인 게임 창작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개발자들이 한데 힘을 모으고 실천적인 사례들을 창안하고 확산시켜 나갈 것을 촉구한다. 이처럼 프라스카의 ‘억압당하는 자들의 비디오게임’은 브레히트의 영향을 받은 보알의 ‘억압당하는 자들의 연극’ 이념과 테크닉들을 비디오게임으로 전유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관객-배우’가 직접 경험한 억압적 상황을 무대에서 소개하고 그에 대해 배우와 동료 관객들이 참여하여 대안적 해결책들을 연기할 수 있는 것처럼, 이 게임은 플레이어들에게 자신의 게임들을 디자인하도록 허용함으로써 기존 게임의 이데올로기적 가정들에 도전할 수 있는 도구들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물론 당시로서는 주류 게임을 이용하여 그 게임의 이데올로기를 문제 삼는 게임을 디자인한다는 것이 비현실적인 일로 여겨질 수 있었다. 최근에야 소극적이나마 플레이어들 스스로 개작한 모드 게임들을 공유하고 플레이하는 일이 낯설지는 않다. 〈로블록스〉를 통해 게임들을 만들고 그것들을 직접 구매하여 플레이하며 동료 플레이어들 상호 간에 소통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하지만 프라스카는 대략 20여년 전의 기술적 조건과 환경 속에서 난해해 보이는 실험들을 제안한다.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는 그의 작업과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사례이다.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 프라스카의 첫 실험은 게임 역사상 매우 성공했고 중요한 게임이었던 윌 라이트(Will Wright)의 〈심즈〉를 기능전환하는 것이었다. 〈심시티〉의 개발자이기도 한 윌 라이트는 〈심즈〉에서 일상의 삶과 생활을 시뮬레이트함으로써 다양한 인간관계를 경험하도록 해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심(Sim)이라고 불리는 캐릭터를 만들어 삶을 살며 주변을 관찰하고 다양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원래 윌라이트는 이 게임의 아이디어를 버클리 대학 건축학과 교수인 크리스토퍼 알렉산더(Christopher Alexander)의 책『패턴 랭귀지』로부터 얻었다고 한다. 이것은 건축이 인간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256가지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 책이라고 한다. 윌 라이트는 비디오게임을 통해 이러한 다양한 패턴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인간의 생활을 시뮬레이션하는 게임을 만든 것이다. 〈심즈〉에서 우리는 인간관계나 가족관계, 혹은 인간관계가 어떻게 상호반응하는지를 추체험할 수 있다. 플레이어들은 스스로 디자인한 ‘심’들을 통해 인생을 계획하고 인생의 의미를 만들어나간다. 우리가 원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캐릭터들을 보며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끼고 동일시에 가까운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는 게임이 바로 〈심즈〉인 것이다. 플레이어가 ‘스킨 Skin’ 기능을 통해 직접 캐릭터를 디자인할 수 있다는 사실, 벽지나 바닥재 등의 재료들로 집을 꾸미고 가족의 삶을 설계하는 일은 현실에 대한 시뮬레이션의 재미를 만끽하게 해주었다. 그중 단연 즐거운 것은 각종 게임 정보, 각 플레이어들의 캐릭터들과 심들의 삶 등에 대해 공유하고 토론할 수 있는 유저 커뮤니티가 있어 게임을 사회적 활동으로 승화시킬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커뮤니티 기능은 게임에 쉽게 싫증나지 않게 해주고 인간사의 여러 우발적인 사건들을 통해 색다른 재미를 주기도 한다. 회사가 계속해서 확장 팩을 내놓으면서 게임 세계와 행동 영역을 확장해나간 것도 게임의 주요 성공 요인이었다. 프라스카가 〈심즈〉를 시뮬레이션의 기반으로 삼은 것은 이 게임이 플레이어의 게임 변형, 즉 ‘모드’(mod, modification)의 자유를 허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에야 많은 게임들이 플레이어의 플레이 영상이나 그 경험물들을 게임의 일부로 수용하고 그것들을 집단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별로 신선하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심즈〉의 발표 당시 이는 매우 신선한 것이었다. 프라스카는 〈심즈〉의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 기능에 주목한다. 그는 플레이어들이 선호하는 영웅이나 스타, 혹은 자신들처럼 보이도록 캐릭터를 디자인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영감을 받아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를 구상한다. 물론 프라스카의 출발점은 원작 〈심즈〉의 규칙과 메커닉에 내재된 이데올로기에 대한 의문이다. 이 게임은 가족의 삶과 인간을 시뮬레이션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게임 산업에서 분명한 약진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소비주의적 원리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플레이어들의 소유가 늘면 늘수록 친구가 늘어나는 식의 규칙을 내장하고 있는 점은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이 게임은 도시 근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시뮬레이트하면서 전형적인 ‘와스프’(WASP, White Anglo-Saxon Protestant), 즉 백인중상층의 이데올로기를 바탕에 깔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플레이어들에게 캐릭터들의 겉모습만을 바꿀 수 있는 자유만 주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게임 개발자의 설정이나 규칙, 이미지 재현 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어찌해볼 도리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프라스카가 게임 규칙의 전폐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면 게임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심즈〉가 비판적 사유의 촉진을 위한 실험의 마중물이 되기 위해서는 게임 규칙들이 플레이어들의 다양한 접근을 허락하도록 충분히 개방적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는 캐릭터의 겉모습을 바꾸는 식의 변화가 아니라 시뮬레이션 자체의 이데올로기적 가설들에 대한 도전과 변형을 허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플레이어에게 게임의 자질구레한 규칙들을 변형하고 보태고 토론하는 것을 가능하기 위해서는 시중에 발매된 〈심즈〉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특히 캐릭터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규칙들에는 게임 혹은 게임을 만든 개발자의 이데올로기가 반영되기 마련이므로, 이러한 규칙에 대한 변경을 실험하도록 하는 것이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의 목적이다. 우선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외양 skins’ 다운로드 기능에 추가로 다양한 개성의 캐릭터 디자인과 이에 대한 플레이어 상호 공유 시스템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기존의 심즈는 6가지의 행동 스타일 혹은 인물 성향에 따라서만 게임을 진행하도록 제한함으로써 게임의 현실감을 떨어뜨렸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반면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는 동료 플레이어들이 어떤 플레이어가 디자인한 캐릭터들을 비판하고 이에 대해 그들 각각의 대안들을 디자인할 수 있다.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는 플레이어들 서로 서로에게 더욱 현실감 있는 캐릭터로의 개선을 요구하고 토론할 수 있는 ‘디자인 툴’을 제공할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는 보알의 연극 처럼 ‘과정 속의 작업’(work-in-progress)이다. 즉 어떤 억압적 상황에 대해 해답이 될 만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그 상황에 대한 훌륭한 논쟁과 토론을 얻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물론 〈심즈〉에 대한 기능전환이 비디오게임 자체의 위상을 바꾸지는 않는다. 다만 최대의 가능성들을 현실화하기 위해 기존의 캐릭터 커스터마이징보다 더 많은 변형의 자유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프라스카가 아그네스(Agnes)라는 가상의 소녀를 통해 소개하는 사례를 통해 그의 생각을 구체화해보자. 아그네스 Agnes는 지금 한 동안 〈심즈〉를 플레이해오고 있는 중이다. 그녀는 이 게임의 규칙과 기본 메커니즘을 알고 있고 그것을 즐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가족 관계가 보다 현실적이었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는 ‘캐릭터 교환 Character Exchange’ 사이트로 가서 다양한 캐릭터들을 검색한다. 그녀는 흥미 있어 보이는 한 캐릭터를 발견한다. 이것은 ‘데이브의 알콜 중독 어머니 버전 0.9 Dave's Alcholic Mother version 0.9’라고 이름 붙여져 있는데 그 게임을 설계한 플레이어는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이 어머니는 많은 시간을 일로 보내고 집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너무 피곤하다. 여전히 그녀는 저녁을 조리할 것이고 약간의 청소도 할 것이다. 그녀의 가혹한 삶에서 도피하기 위해 어머니는 많은 양의 위스키를 마신다. 그녀는 아이들과 애완동물 때문에 매우 화가 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래서 폭력적이 될 수도 있다.” 아그네스는 이 캐릭터를 시험해볼 생각을 하고 그녀가 이전에 플레이해왔던 집 안으로 그 캐릭터를 다운로드한다. 이 가정은 부부와 세 아이들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로 구성되어 있다. 다운로드 이후 어머니는 ‘데이브의 알콜중독 어머니 버전 0.9’로 대체된다. 이 캐릭터는 흥미롭다. 한동안 그 캐릭터를 가지고 플레이하고 난 후 아그네스는 그 캐릭터가 어느 정도의 피로에 도달하면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가 마시면 마실수록 가족에 대해서는 덜 관심을 가질 것이다. 아그네스는 이 캐릭터가 꽤 잘 묘사되어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녀가 동의할 수 없는 디테일들이 있음을 느낀다. 이를테면 이 캐릭터의 배경은 낮은 교육 수준을 가진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에 덧붙여 이 캐릭터의 직업은 형편없다. 그리고 일들을 더 나쁘게 만들기 위해 ‘알콜 중독 어머니’는 거실의 작은 바에서 계속해서 퍼마신다. 아그네스의 생각에 알콜 중독에 걸린 사람은 빈약한 교육을 받았고 형편없는 직업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아그네스는 일반적으로 알콜 중독자는 집 주위에 술병을 감추지 공개적으로 마시려 하지 않음을 안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 ‘캐릭터 교환’ 사이트로 가서 다른 알콜 중독 어머니를 찾아본다. 그녀는 유망해 보이는 ‘도로시의 알콜 중독 감리교도 어머니 버전 3.2 Dorothy's Alcholic Methodist Mother version 3.2’를 발견한다. 그것을 실험한 후 그녀는 이 캐릭터의 행동이 그녀가 그것에 대해 가졌던 생각보다 훨씬 더 적합함을 깨닫는다. 그녀는 엄마가 감리교도일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이 버전의 디자이너가 고집한 이유에 매료된다. 그 사실은 엄마의 알콜 중독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시 캐릭터 디자이너의 웹 페이지를 체크하고, 이 캐릭터가 감리교도였던 어떤 실제 인물의 실제 이야기에 근거해서 만들어 진 것임을 말해주는 짧은 내러티브를 발견한다. 아그네스는 이 스토리를 흥미롭게 생각하고 알콜 중독의 행동 부분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녀에게 감리교도 부분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캐릭터의 코드를 변경하기 위해 ‘에디터 editor’ 기능을 이용하고 종교와 관련된 언급들을 삭제한다. 그녀는 또한 몇몇 작은 디테일들을 추가한다. 가령 엄마가 어떤 브랜드의 위스키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덧붙이기도 한다. 그런 후 그녀는 그것을 ‘아그네스의 알콜 중독 어머니 1.0-도로시의 알콜 중독 감리교도 어머니 버전 3.0에 의거함 Agnes' Alcholic Mother 1.o-Based on Dorothy's Alcholic Methodist Mother version 3.2’이라는 제목으로 온라인에 탑재하고, 주요 행동 규칙에 대한 짧은 설명을 덧붙인다. 몇 주 후 아그네스는 알콜 중독 어머니의 플레이에 약간 싫증을 느끼고 그녀에게 약간 더 많은 개성을 부여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녀는 엄마가 생태론자 ecologist가 되면 더욱 좋아질 것이라고 판단한다. 아그네스는 ‘피터의 급진 그린피스 활동가 버전 9.1 Peter's Radical Greenpeace activist version 9.1’을 다운로드한다. 그녀는 자신의 알콜 중독 어머니에 약간의 부수적인 변형들과 더불어 피터 버전의 코드를 편집하고 그것을 카피하고 짜깁기한다. 이제 어머니는 식물들을 더욱 조심스럽게 다루고 술에 취했을 때도 고양이를 차거나 하지 않는다. 이렇게 여러 차례 변형을 거친 후 아그네스는 스스로 설계한 게임을 사이트에 탑재한다. 이 게임에 대해 다른 플레이어들의 비평과 토론이 이어지고, 어떤 이들은 이것을 변형하여 새로운 게임을 제작하고 탑재한다. 다른 플레이어도 아그네스나 다른 동료 플레이어들의 게임들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 변형 작업을 반복할 수 있다. 이처럼 누군가의 게임에 대해 크고 작은 규칙들을 변경하고 보태고 토론하는 과정은 보알의 ‘포럼연극’(forum theatre)처럼 어떤 억압적 상황에 대한 참여자들 각자의 생각들을 피력하는 가운데 다양한 대안을 모색하는 공감과 협력의 과정이다. 이는 전설적인 비디오게임 〈스페이스 워〉의 완성을 위해 서로 협력하고 품을 팔던 스티브 러셀(Steve Russell)과 그의 MIT 동료 해커들을 떠올리게 한다. 플레이어들은 크고 작은 정치적ㆍ사회적 억압들을 반영한 새로운 게임들을 디자인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의 게임에 비판적인 자기 의견을 반영하여 규칙이나 설정을 변경할 수도 있다. 어느 누군가의 게임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보태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업그레이드 버전들이 이어진다. 여기서 문제적 상황에 대한 해결책이나 합의 도출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각자의 생각들을 담아 스스로 만들고 보탠 게임들로 어떤 문제들을 공유하고 업그레이드하면서 서로의 생각들을 발전시켜 나가며 인식의 확장과 상승을 경험하는 것이 프라스카의 구상이기 때문이다. 프라스카는 이러한 창작 플랫폼을 ‘메타 시뮬레이션’(meta-simulat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는 적극적이건 소극적이건 다양한 사람들의 다채로운 참여와 소통을 도와주는 게임 창작 시스템을 가리킨다. 하지만 사실은 ‘너 자신의 행동을 디자인해라’라는 기능이 윌라이트의 〈심즈〉 원작 게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원작에서는 다만 캐릭터를 커스터마이징하는 것만 허용할 뿐이기 때문이다. 원래의 〈심즈〉에서는 플레이어들의 행동 폭 역시 무척 제한적인데, 그들 캐릭터는 ‘단정’, ‘사교적’, ‘활동적’, ‘쾌활’, ‘섬세한’이라는 주어진 성격 안에서만 활동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을 시뮬레이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복잡한 결들과 인간관계의 다층적 갈등들을 담아내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프라스카가 보기에도 〈심즈〉는 다른 게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자유도에도 불구하고 규칙의 제한에 갇혀 있는 게임이고, 부자가 더 많은 친구를 갖는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에 포획되어 있는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게임 개발자가 마련해둔 규칙과 행동 패턴에서 드러나는 이데올로기에 딴지를 걸 수 없다. 그래서 프라스카는 〈심즈〉에 캐릭터의 부분적인 변경 이외에 게임 규칙 혹은 행동 규칙의 변경의 자유를 플레이어에게 허용하게 될 때 생길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고 있다. ‘PMO’ 프로젝트: 나의 억압을 플레이하라! ‘억압받는 자들의 비디오게임’의 또 하나의 사례로 프라스카는 ‘나의 억압을 플레이하기’(Play my Oppression, PMO)를 제안한다. 이 프로젝트 역시 보알의 연극 테크닉인 ‘이미지 연극’(Image Theatre)에 바탕을 둔 실험이다. 이미지 연극에서 ‘관객-배우’들은 본인들의 억압적 상황이나 차별적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들이나 다른 사람들의 몸 혹은 간단한 소품들을 ‘빚고’ ‘조각하여’ 하나의 이미지로 표현해 볼 것을 요청받는다. 이 실험에서 ‘관객-배우’들은 절대로 말을 하면 안 된다. 그들은 다른 참가자들의 몸만을 이용하여 어떤 ‘이미지’를 조각해내야 한다. 어떤 이상적인 이미지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반복해서 이미지를 수정하는 ‘이미지 연극’의 작업은 ‘몸으로 하는 포럼연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극의 목표는 우리의 일상적이고 관습적인 행위와 몸짓들을 통해 억압과 차별이 재생산되고 있고 가장 기본적인 육체적 수준에서 우리의 편향적 정체성이 형성되어 왔음을 반성하는 것이다. 다른 인종, 종교, 젠더, 국적 등에 대한 우리의 (무)의식은 몸을 통해 드러난다. 그런데 보알의 ‘이미지 연극’을 통해 참여자들은 뿌리 깊은 차별의 원인이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사회구조와 제도 및 권력에서 비롯된 것임을 몸을 통해 체험하고 사유한다. 프라스카는 보알의 실험을 통해 처음 한 사람이 몸을 통해 제시한 자신의 ‘억압 이미지’에 대해 참여자들이 서로 그 이미지를 수정하며 일종의 ‘대안 이미지’를 형성하는 과정을 거쳐 상호 공감과 이해의 폭을 넓히고 참여자들 스스로 차별과 억압에 대한 인식의 개선을 이루어나가는 점에 주목한다. 프라스카의 말처럼 ‘PMO’ 비디오게임은 몸이 아니라 마우스와 자판, 조이스틱을 가지고 하는 작업이다. 그는 연극에서의 몸이 아니더라도 비디오게임의 특별한 기능을 활용하면 보알의 퍼포먼스와 동일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본다. 그는 다시 〈심즈〉의 ‘포토앨범’ 기능에서 그 해법을 찾는다. 물론 ‘포토앨범’ 기능이 게임 규칙의 설계를 허용하는 것은 아니고 플레이어 자신의 선형적인 내레이션의 창작만 허용한다. 이 기능을 이용하여 플레이어는 게임 플레이의 다양한 순간을 담은 스냅 사진들을 활용하여 그것에 설명을 달고 자기만의 ‘가족앨범’을 설계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스스로 재구성한 이 앨범은 인터넷에 마련된 사이트에 올릴 수 있고 다른 플레이어들과 공유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 기능을 자기만의 스토리를 구성하는 장치로 활용하고 있다. 물론 〈심즈〉를 플레이하는 주된 이유는 그래픽 이미지를 통해 게임 상황을 연출하기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주요한 장면을 캡쳐하고 거기에 주석을 붙임으로써 자기만의 이야기를 창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심즈〉의 디자이너 윌 라이트가 소개한 포토 앨범 중에는 폭력 남편과 살던 여성의 동생이 올린 글이 있었다. 인터넷 심즈 사이트에 올라온 이 콘텐츠에는 언니와 동생의 관계, 언니가 폭력 남편과 결혼하게 된 경위, 남편이 더욱 폭력적으로 되어가면서 파경에 이르게 된 사연 등을 실감나게 보고하고 있다. 물론 허구적일 수도 있는 이 스토리는 무척 현실감이 있는 것이었고 다른 플레이어들과 활발한 토론의 계기를 제공했다. 윌 라이트는 게임의 토론 유발과 공감대 형성 과정에 주목하면서 플레이어들의 스토리텔링 구성 기능을 강화하기도 한 바 있다. 하지만 프라스카가 생각하는 프로젝트의 이행을 위해서는 〈심즈〉의 ‘포토앨범’ 기능이 더욱 확장될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에게 중요한 것은 만화나 영화 같은 정적인 내러티브 시퀀스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플레이어들이 경험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즉 게임을 창조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즈〉의 원래 ‘포토앨범’ 기능에서 플레이어는 어떤 ‘완결적’ 사건을 묘사할 수밖에 없었다. 즉 그가 작성한 스토리는 고정된 것이고 닫힌 결말로 끝나기 때문에 다른 플레이어에 의한 이야기 변경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 스토리를 경험한 다른 플레이어들은 그저 이에 대해 댓글만 올릴 뿐 상황 자체의 변경을 통한 대안 제시로까지 나아가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프라스카는 ‘폭력남편’ 이야기를 올린 플레이어의 진짜 의도가 또 다른(‘대안적인’) 게임의 창조였다는 가정하에서 일종의 기능전환을 시도한다. 만일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다른 플레이어들은 다양한 관점에서 이 사건을 경험하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다른 행동 모델들을 실험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플레이어들은 다양한 인간 관계들과 물질적 상황들을 직접 체험할 수 있고 상호토론을 통해 인간과 현실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으며 자신들이 직면해 있는 억압적 현실에 대한 반성과 사회적 인식의 강화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는 것이 프라스카의 기대이다. ‘나의 억압을 플레이하라’, 즉 ‘PMO’의 실행을 위해서는 우선 한 참여자가 직접 겪거나 경험한 개인적 문제와 고민을 모델화한 게임을 창조할 수 있다. 이후 다른 참여자들은 그것을 플레이해보고 그에 대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으며, 심지어 어떤 플레이어들은 그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개인적 입장을 반영한 새로운 버전의 게임을 창조할 수도 있다. 이 시뮬레이션 게임에 대한 플레이와 토론, 수정은 모두에게 열려 있다. 이 과정에서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는 사회ㆍ정치적 대화의 차원으로까지 발전될 수 있다. 물론 플레이어들 스스로 시뮬레이션 게임을 만드는 것이 어려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많은 게임들이 플레이어의 참여를 위한 다양한 툴과 공간을 제공하고 있고, 그리고 비교적 쉽게 게임을 변경하거나 디자인할 수 있는 방편들이 주어지고 있다. 프라스카 역시 앞으로 컴퓨터게임이 더욱 대중화될수록 ‘시뮬레이션의 처리능력'(simulation literacy) 역시 더욱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실제로 오늘날의 시뮬레이션 창작 환경은 프라스카의 기대와 상상 그 이상으로 진화를 해오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 곤잘로 프라스카가 제시한 사례를 통해 ‘PMO’의 과정을 구체화해보자. 프라스카는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부모나 주변에 ‘커밍아웃’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터(Peter)라는 주인공을 가정하여 샘플 시나리오를 짠다. 일단 게임 커뮤니티에서 피터의 시나리오가 승인되고 나면 그는 이 문제를 토론하려고 하는 방에 게임을 만들어 놓는다. 프라스카는 이를 ‘옵 게임’(op-games, oppressive games), 즉 억압을 시뮬레이션 해놓은 게임으로 부른다. 이 게임에는 피터의 주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극복할 필요가 있는 특수한 문제들이 재현되어 있다. ‘옵-게임들’의 경우에도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보알의 연극처럼 성소수자 피터가 겪을 수 있을 문제들을 시뮬레이션으로 만드는 것이다. 피터의 경우에도 부모에게 자신의 동성애적 취향을 밝히는 데 있어서 겪는 어려움들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든다. 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지는 고전 게임의 레벨 디자인처럼 말이다. 여기서 피터는 자신이 대결해야 할 세 가지 과제, 혹은 꼭 극복해야 할 세 개의 난제를 비디오게임으로 시뮬레이션하고 각각의 게임에 〈모욕〉, 〈나는 누구인가?〉, 〈사회〉라는 제목을 달아주었다. 〈모욕〉은 이상한 놈 취급을 당하는 주인공 피터가 주변 사람들, 특히 학교 친구들에게 어떻게 집단 따돌림과 구타를 당하는지를 보여준다. 피터는 우선 이 문제의 시뮬레이션에 적당한 고전 비디오게임을 선택한다. 피터는 손수 제작한 그래픽을 업로드하거나 이전에 누군가 제작해놓은 것을 수정하여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비디오게임의 기능 향상을 위해 몇몇 기능들을 추가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일단 고전 게임들에 기반하여 다양한 모드들을 창조해보고 그중 피터의 사건을 재현하는 데 유용한 것들을 선별하여 게임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사건에 대해 다른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다양한 가능성들을 체험하도록 하는 것이고 보다 숙련된 플레이어들에게는 피터의 버전을 더욱 정교하게 개선하거나 수정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프라스카의 피터는 다음과 같은 일러스트로서 자신의 첫 번째 게임을 표현한다. 이 일러스트에서 알 수 있듯이 피터는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게임 모딩의 템플릿으로 선택했는데 외계인의 우주선 그래픽을 자신을 괴롭히는 동료 학생들의 모습으로 설정해 놓았다. 하지만 원작 게임에서와는 달리 피터의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총을 발사할 수 없다. 피터가 지금 겪고 있는 곤란은 동료학생들의 집단 이지매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른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스페이스 인베이더〉에서처럼 행동을 통해 사태를 해결해버린다면 다른 플레이어들은 그저 이 게임을 즐기면 그만일 뿐 그 이상의 토론과 작업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피터는 이 시뮬레이션에 첨부해 놓은 ‘디자인 노트’에 이러한 사정을 밝혀 놓았고, 이 문제에 대해 다른 플레이어들은 집단 토론과 참여를 통해 사태에 대한 해결책이나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물론 몇몇 플레이어들은 피터의 게임을 수정하여 다른 버전의 게임을 디자인함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다음 그림은 플레이어들이 제안한 또 다른 해결책을 보여주는 게임 그래픽들이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이 주제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을 촉진할 수 있는 예술작품(가령 노래나 시)을 창조하고 반 아이들과 이를 공유함으로써 진지하게 의견을 나누다보면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하고 있다. 또 다른 플레이어는 귀를 막고 있는 캐릭터를 통해 주변 학생들의 모욕스러운 공격들을 무시해버리라고 제안한다. 피터의 게임들에 대한 이러한 변형은 무척 간단한 것이지만 플레이어의 능력에 따라 다양한 수준의 변형이 가능하다. 플레이어들은 ‘다중 선택’(multiple-choice) 매뉴얼을 활용함으로써 원작 게임의 모든 그래픽을 변경할 수 있고 자신의 사진이나 UCC 그래픽들을 업로드할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탑재된 게임들을 매개로 오고 가는 다양한 의견들은 개인적 수준의 소박한 해결책부터 동성애나 소수자, 왕따 문제 등에 대한 사회ㆍ정치적 구조 분석과 원인 진단에 이르기까지 다양할 수 있을 것이다. 프라스카는 이 과정에 참여하면서 플레이어들의 사회적 인식이 상승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게임의 다음 모형은 대전게임의 고전 〈스트리트 파이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여기서 피터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반영하여 게임을 디자인해 놓았다. 그는 거울에 반사된 자기를 볼 때마다 ‘괴물’을 본다. 내면의 성적 성향과 이성애 중심적인 사회적 시선이 충돌하는 가운데 성적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모습이 기괴한 ‘괴물’의 모습으로 드러난 것이다. ‘디자인 노트’에 피터는 이러한 일이 가끔 일어나는 일이며 그때마다 ‘나는 전혀 다른 두 사람’이라는 분열적 감정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이 게임에서 승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한 사람 두 정체성’이 계속해서 치고 박는 싸움을 벌이는 일이 전부다. 여기서도 플레이어들은 이러한 피터의 문제를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도 궁극적인 해결책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문제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쟁점이기도 하고, 중요한 것은 게임들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해 치열한 토론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해답보다는 좋은 대화가 우리를 성장시키는 법이니 말이다. 마지막 게임인 〈사회〉의 실물 모형은 〈테트리스〉를 바탕으로 만든 게임이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소년과 소년, 소녀와 소녀 커플을 짝지을 수 있다. 만일 플레이어가 소녀-소년 커플로 짝을 지우면 그 커플은 계속 재생산되거나 복제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이 게임에서도 어떤 커플이 가장 이상적인 커플인지를 찾아내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에 대해서는 플레이어들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고 역시 게임의 목표는 엔딩을 맛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제시되는 게임들은 모두 ‘열린 게임’이고 이는 참여자들의 토론과 참여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플레이어는 성적 취향이라는 것이 지니는 다양한 사회적 의미들을 토론할 것이고, 모든 커플의 차이는 그저 차이에 불과한 것일 뿐 차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알지도 모를 일이다. 이른바 ‘정상가족’이라는 사회의 통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일단 세 게임이 모두 온라인에 탑재되고 난 후 모든 참여자들은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가운데 다양한 참여를 할 수 있다. 그저 게임만 플레이해 볼 수도 있고 자신의 게임 소감부터 피터의 상황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해결책들을 댓글의 형태로 올려놓을 수도 있다. 어떤 참여자들은 피터의 세 게임들에 자극을 받아 게임을 모딩함으로써 수정된 버전의 게임을 탑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그림은 〈팩맨〉에 기반하여 다른 플레이어(일명 ‘캐시’)가 디자인한 대안적 게임이다. 물론 ‘포럼’은 피터의 게임들을 중심으로 전개되겠지만 다른 플레이어들의 게임들이 토론의 대상으로 추가되면서 더욱 많은 크고 작은 토론들이 가능할 것이다. 캐시(Cathy)라는 여성은 〈사이먼이 말하기를〉이라는 게임을 이용하여 몬스터 게임을 디자인한다. 이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는 몬스터를 때려잡는 것이 아니라 그의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1등 따라하기〉 놀이처럼 말이다. 플레이어가 그것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그 이미지는 서서히 변할 것이다. 캐시는 예전에 피터와 동일한 경험을 했었고 스스로 감내하고 맞서야 했던 수많은 차별적 상황들을 게임에 담아놓았음을 밝혀둔다. 그리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난 후 그녀는 친구의 도움으로 이 문제에 대처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이를 자기 게임의 테마로 삼았다고 보고한다. 결국 게임의 플레이와 토론 과정을 통해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의 성적 소수자에 대한 연대의 마인드가 중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될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연대의 방안들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이 개진될 수 있을 것이다. 마치며 코로나 19의 상황을 거치며 우리의 삶이 무척이나 각박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중의 억압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종, 젠더, 민족, 종교, 장애 등의 이유로 차별을 당하고 있는 소수자들이 그들이다. 가진 자들과 힘 있는 자들은 이른바 정상과 비정상을 갈라치며 사적인 이익을 얻으려 혈안이 되어 있다. 하지만 역사는 억압과 차별의 철폐를 향한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최근의 경우처럼 퇴행적인 ‘갈라치기’의 흐름이 강고한 모습으로 나타나더라도 우리 사회도 결국에는 동료 시민들과 ‘같이 살며 같이 즐기는’ 공환(共歡, conviviality)의 공동체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물론 이러한 미래는 그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깨어 있는’ 시민들의 공감과 연대, 공동체의 미래를 걱정하는 ‘우리 아무개’들의 협력은 억압과 차별 없는 미래의 필요조건일 것이다. 게임에 앞서 문학과 연극, 영화, 만화 등은 소수자들의 고난과 상처를 감싸 안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오고 있다. 그렇다면 강력한 ‘상호작용’의 매체인 게임은 더욱 효과적으로 우리를 공감과 인식의 장으로 초대하며 연대의 매개자가 되어줄 것인가? 아직은 이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할 만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다른 매체들도 그랬던 것처럼 게임 역시 다양한 사회적 억압과 차별을 주제로 즐기며 배우는 기회들을 보다 많이 제공할 것이다. 이미 의미 있는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보알의 연극에 영감을 받은 곤잘로 프라스카는 비디오게임 역시 억압적 현실을 재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현실을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보알의 연극 테크닉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적극적인 연기자가 되게 함으로써 개인적ㆍ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과 해결책들을 표현하게 한다. 물론 그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는 ‘이상적 결론’이 아니다. 프라스카의 목표는 주류 비디오게임들의 당연시되는 규범들을 해체하고 게임을 사회적 의제(agenda)에 대한 토론의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개개인들에게 벌어지는 다양한 사태들을 게임에 담아내고 그 게임을 같이 플레이하며 토론하고 숙의하며 저마다의 대안들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프라스카의 게임 프로젝트는 구체적 실천의 필수적 전 단계인 반성과 인식의 과정을 의미한다. 개인적ㆍ사회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은 타자에 대한 공감과 현실 인식의 과정으로부터 시작된다. 아직 대세는 아니지만 게임은 그러한 가능성을 충분하게 가지고 있다. 물론 주류 게임산업이 주도하는 현실에서 프라스카의 비전들은 ‘몽상’에 가까운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점점 더 발전하고 있는 게임 창작 환경, 게임의 플레이를 넘어 ‘보기’와 ‘만들기’로 확장되고 있는 ‘게임하기’의 실천들은 게임의 다양성 환경 구축에 유리한 기회를 조성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주류 게임과 ‘다른’ 게임들에 대한 수요도 있다. 필요한 것은 게임 사용자들의 의지이며 전환적 사고이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게임의 다양한 사회적 실천들과 향유를 위한 발판이 되어줄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경상국립대학교 교수) 김겸섭 독일공연예술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마쳤다. 공연예술과 문화연구 관련 공부와 함께 공연 및 축제 연출과 기획일을 하였다. 이후 공연학 공부를 확장하려는 욕심으로 디지털게임 연구를 시작하였다. 『억압받는 사람들의 비디오게임』,『컴퓨터게임의 윤리』를 번역하였고 『모두를 위한 놀이 디지털게임의 재발견』,『노동사회에서 구상하는 놀이의 윤리』를 썼다. 지금은 독일공연예술과 문화콘텐츠 관련 강의와 연구를 하고 있다.

  • 확률형 아이템 확률공개 법제화 : 진정한 이용자 보호를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

    지난 대선에서 유력 후보들의 공약이기도 했던, 확률형 아이템 확률공개 법제화가 2023년 2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위 법은 1년 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4년 3월 1일부터 시행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잘 알 것으로 예상되지만, 확률형 아이템은 구입 당시에는 그 종류나 효과가 명확하지 않고, 일정한 행위 (요컨데 뽑기를 한다거나, 특정 장비를 강화를 하는 등의 행위) 를 할때 확률에 따라 그 종류나 효과가 정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 Back 11 GG Vol. 23.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yunsoo Na

  • “개발자는 자기 자신을 향해 끝없이 질문해야 한다” - 죄책감 3부작의 개발자 somi 인터뷰

    세계에서 마주하게 되는 죄책감을 느슨한 연결로 풀어낸 SOMI의 ‘죄책감 3부작’이 막을 내렸다. 전의 두 작품이 세상 밖으로 닿는 길을 터주었다면, 2020년 신작 <더 웨이크>는 한 개인의 과거와 깊은 내면으로 안내한다. 암호를 해독하며 엔딩에 이르렀을 때, 눈 앞에 펼쳐진 가장 개인적인 삶은 나를 뒤돌아보게 한다. < Back 01 GG Vol. 21.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yejeong Park Curious about the "people" who enjoy media and culture. Studies K-pop fandom, and finds joy in the work.

  • 축소 지향 헌터들 연대기:<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어떻게 손 안에 축소되었다가 혼종적으로 변모하려고 하는가

    작년에 20주년을 맞이하게 된 캡콤 제작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2000년대 초부터 대두되고 있던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이라는 새로운 형식에 대한 일본 게임계의 대답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게임이 처음 등장했던 2004년 일본 게임업계는 2002년 성공적으로 MMORPG를 콘솔 게임에 이식한 <파이널 판타지 XI>를 제외하면 마땅한 청사진이 없었다. < Back 25 GG Vol. 25. 8. 10. Tags: 몬스터헌터, 프랜차이즈, 액션롤플레잉, 일본게임, 헌팅액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ihwan Lee After completing the Master of Fine Arts in Cinema Studies at the School of Film, TV & Multimedia,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 currently contributes film and game criticism. Loves adventure games. (antistar23@gmail.com )

  • 부분 화면 게임 플레이는 어떻게 게임 플레이를 재규정하는가

    그러나 방치형 게임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관습화된 감이 있다. 초창기의 시도가 장르 규칙으로 굳어지면서, 메커니즘(부재 시간의 플레이 편입, 실감 가능한 성장을 가시화하는 대시보드형 인터페이스, 자동화의 단계적 해금 등), 과금·보상 구조(보상형 광고, 프리미엄 가속재 혹은 패스, 온보딩 메타 등), 이용 행태(백그라운드 혹은 세컨드 스크린 소비, 효율 중시 공략 문화 등) 차원 모두에서 자유도 강화나 새로운 실험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보긴 어려운 실정이다. < Back 26 GG Vol. 25.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hinKyu Kang Editorial board member of Culture/Science, a journal specializing in cultural theory. Researches media and culture, including games, broadcasting, comics, and fandom. Books include Fandom in Flux: From Play to Labor, From the Real to the Virtual (2024), Subculture Criticism (2020), IP: The Beginning of Every Story (2021, co-authored), Third Life: New Lifestyles in the Age of Technological Revolution (2020, co-authored), and The Theory of Games: From Play to Digital Games (2019, co-authored). Papers include "Fun Without Winning: Sociality, Agency, and Striving Play in Parent-Child Game Play" (2024), "Fandom That Consumes Communication: Idol Fan Platforms and the Reconfiguration of Fandom" (2022), "How Does 'In-Game Spending' Become Play?: Focusing on In-Depth Interviews with Whale Game Players" (2022, co-authored), and "Gamifying Broadcasting: From Producerly Text to Playerly Text" (2019).

  • 나는 짤렸다: 미국 게임계의 해고 붐 한복판의 현장 스케치

    2023년 11월 나는 짤렸다. 상사가 예정에도 없는 짧은 미팅을 제안했고 그 때 부터 뭔가 좀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맡고 있던 큰 클라이언트가 계약을 해지했다는 뉴스를 들었기 때문이다. 불안함은 현실이 됐다. 상사가 나에게 절대 퍼포먼스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고 얘기해줬지만 기분이 좋아지진 않았다. < Back 나는 짤렸다: 미국 게임계의 해고 붐 한복판의 현장 스케치 18 GG Vol. 24. 6. 10. 나는 짤렸다 2023년 11월 나는 짤렸다. 상사가 예정에도 없는 짧은 미팅을 제안했고 그 때 부터 뭔가 좀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맡고 있던 큰 클라이언트가 계약을 해지했다는 뉴스를 들었기 때문이다. 불안함은 현실이 됐다. 상사가 나에게 절대 퍼포먼스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고 얘기해줬지만 기분이 좋아지진 않았다. 그래도 나는 인간적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퇴사하기 1달 전에 알려주면서 회사의 많은 사람들이 나의 재취업을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내가 그 동안 들어오던 미국의 정리해고는 준비할 시간 조차 주지 않고 이메일이 와서 “30분 후 부터 너는 그 어떤 회사 정보에도 접속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아니 사실 나는 이런 분위기를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2023년과 2024년은 미국의 게임업계에 전례없이 차가운 겨울이었다. 역대급 정리해고 2023년 3월부터 2024년 3월까지. 게임업계에 있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악몽같은 시간을 보냈다. 겉잡을 수 없는 정리해고의 바람이 불었던 것이다. 글로벌 팬데믹 시기 정점을 맞이하면서 엄청난 돈잔치를 벌였던 게임업계는 코로나 만큼이나 갑작스럽게 다가온 불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몸집줄이기에 나섰다. 미국 게임업계에서 일하며 흉흉한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 것은 2023년 봄쯤이었던 것 같다. 개인적인 기억으로 이 모든 정리해고들의 시작을 끊은 것은 EA였다. EA는 2023년 3월 전체 인원의 6%에 달하는 800여명을 해고했다. 5월에는 유니티가 600여명을 해고했다. 이 뉴스가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유니티가 이미 1월에 300여 명을 해고했기 때문이었다. 6월에는 포켓몬으로 유명한 나이안틱이 200명 이상을 해고하고 LA 스튜디오를 폐쇄했다. 8월에는 정말로 큰 건이 터졌다. 중동측과 20억 달러에 달하는 투자계약을 맺기로 한 유럽 게임계의 거인 엠브레이서 그룹이 투자유치에 실패하면서 자사 스튜디오들을 폐쇄해 나갔다.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은 곳은 세인츠 로우 시리즈로 유명한 볼리션이었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나오는 이름들은 커져만 갔다. 9월에는 에픽 게임스가 800명이 넘는 직원을 해고했는데 이는 전체 직원의 16%에 달하는 것이었다. 데스티니 시리즈로 유명한 게임사 번지가 100명을 해고한 것은 놀랍지도 않은 수준이었지만 지인이 해고에 영향을 받아서 나에게는 좀 더 피부로 느껴졌다. 해고를 당한 내 지인은 본인이 데스티니 시리즈에 정말 ‘영혼을 갈아넣었’는데 해고를 당해서 도저히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내가 건넬 수 있는 위로의 말은 별로 없었다. ‘금방 다시 직업을 찾을거야’라는 말이 너무나 거짓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유비소프트는 대규모 해고보다는 각 스튜디오를 폐쇄하는 등으로 지속적으로 해고를 했다. 전체를 보면 이미 500여 명이 해고당한 수준이었다. 게임에 대한 전폭적 투자를 해왔던 아마존 게임스는 11월 아예 한 부서를 없애며 180여 명을 해고했다. 가장 정리해고 규모가 컸던 달은 2024년 1월이었다. 직원을 계속 짜르던 유니티는 1800명을 추가로 짜른다고 발표했고 트위치는 500명을 해고했다. 라이엇 또한 500명 이상을 해고했고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무려 2000여 명에 가까운 사람을 해고했다. 한 통계에 따르면 1월에 해고된 사람의 숫자가 5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재취업을 위한 노력 나는 재취업을 위한 노력을 시작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다들 짜르기 바쁜 와중에 채용을 하는 곳이 별로 없었고 그나마 있는 곳도 내가 일하던 곳보다 훨씬 더 큰 개발사/퍼블리셔 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지원을 해 서류통과도 못하고 있었다. 매일 매일 거절을 당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힘든 나날을 보내던 나에게 재미있는 현상이 보이긴 했다. 테크나 게임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떻게든 본인들의 자구책을 ‘협동’을 하면서 만들어내고 있었다. 일단 커리어 전문 소셜미디어인 링크드인을 중심으로 해서 해고현황을 공유하고 업종별로 올라온 채용공고들을 공개된 구글시트에 모아놓는 등의 움직임이 있었다. 정리해고의 아카이브를 보면 정말 들어본 적 없는 인디게임개발사의 정리해고까지 빼곡히 차있었다. 구직자들은 서로를 경쟁자로 생각하기 보다는 서로 도와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 링크드인에서도 서로를 태그해주는 등 ‘상부상조’하는 모습들이 많이 보였다. 게임업계 사람들 답게 디스코드 채널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보통 직군별로 정보를 공유하는 디스코드 채널이 있는데 그 곳에서 채용공고나 팁을 공유했다. 본인이 다니는 회사에 열려있는 채용공고는 본인이 ‘리퍼럴’을 해주겠다고 먼저 나서는 사람도 많았다. 아예 본인 팀에 자리가 있다고 다른 곳에 공개적으로 게시하지 않지만 여기서 먼저 이력서를 받아보고 싶다고 한 사람도 봤다. 업계의 내부결속력은 어려운 시절에 더 잘 발휘됐다. 해고자의 모임 심지어 그들은 위로조차 모여서 했다. 블리자드가 해고를 발표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1월말 블리자드 본사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한 카페에서 게임계 정리해고자들의 모임이 있었다. 모임 공지를 보고 같이 갈 사람을 찾았다. 낯선 사람과의 대화는 내 특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마침 모바일 전문 개발사에서 해고를 당한 친구가 있었다. 그는 운영부서에 있었는데 본인이 담당하던 게임이 운영을 중단했고 회사 측에서는 회사 내 다른 팀에 자리를 찾으면 고용을 유지해줄 수 있지만 아니면 나가라고 통보했다. 그는 회사 내부에서 본인이 받아줄 곳을 찾느라 정신이 없어 모임에 나갈 수 없다고 했다. 나중에 알게됐지만 그 노력은 허사였고 그는 정리해고를 피할 수 없었다. 판타지한 배경으로 꾸며져 있는 카페에 혼자 들어서니 이미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음료를 한잔씩 들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가운데 있는 넓은 테이블에는 전지가 있었고 원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연락처를 교환할 수 있는 게시판 같은 역할을 했다. 이미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용기를 짜내서 말문을 열었다. 대부분이 블리자드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이었고 대부분이 한다리 건너면 아는 사이었다. 직종은 다양했다. 대부분은 프로그래머나 아티스트 같은 개발직군이었지만 IT 인프라부터 마케팅까지 거의 모든 직종이 망라됐다. 우울함은 전혀 없었다. “20년 블리자드에서 일을 했는데 내 후임 교육 잘 시켜놨더니 나는 짤리고 그 후임이 내 자리 차지하더라”같은 자조적인 농담들은 있었지만 그것 또한 웃음의 재료일 뿐이었다. 서로 어디 면접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업계 전체적으로 해고의 바람이 불자 자연스럽게 생겨난 대처방법의 단면을 보았다. 겨울에 대처하는 방법 미국 게임업계가 얼어붙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겪었던 미시적 경험들을 통해서 알게 된 업계에 대한 몇가지의 통찰이 있다. 과도한 인재영입 경쟁과 개발비용의 상승이 이러한 사태를 불렀다는 것이다. 코로나 시기 게임계는 전에 없는 호황을 맞이했고 따라서 엄청난 규모의 채용을 진행했다. 채용 중 일부는 필요한 채용이기도 했지만 경쟁업체에 인재를 뺏기지 않기 위한 채용이기도 했다. 실제로 지인들 중 게임회사에 뽑혔음에도 불구하고 몇달 동안 아무런 프로젝트도 배정받지 못한 경우도 들어봤다. 이는 채용이 단순히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였다는 말. 결국 이런 기형적 형태는 개발비용의 엄청난 상승으로 이어졌다. 영국의 경쟁시장국(CMA)이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종래 5000만 달러에서 1억5000만 달러 정도였던 AAA 게임의 개발비용은 이제 2억 달러를 훌쩍 넘어가고 있다. 콜 오브 듀티나 GTA 같은 프랜차이즈는 개발비용으로 3억 달러를 넘게 쓰기도 한다. ‘인건비’가 전체 비용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게임업계에서 상승하는 개발비용은 정리해고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특히나 프로젝트가 ‘접힐 시’에는 더 그렇다. 실제로 대형 모바일 게임회사에서 일하던 지인은 본인이 맡은 게임이 서비스 종료를 하면서 실직상태가 됐다. 포스트 펜데믹이라는 경제적 상황 또한 게임업계에 좋지 못하게 작용했다. 야외 활동이 극도로 자제되는 코로나 기간에 올랐던 매출은 이미 2021년부터 상승세가 둔화됐다. 2022년 들어서는 외려 떨어지기도 했다. 세계적 컨설팅 회사 프라이스워터쿠퍼하우스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모바일 게임의 전체 매출은 2022년과 2023년에 3.1%와 3.3%가 떨어졌다. PC게임시장도 2022년에는 1.4%가 쪼그라들었다. 비용은 늘고 매출은 떨어지는 시장이 할 수 있는 선택이란 단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비디오 게임은 오래된 산업이 아니다. 산업으로서 자리를 잡고 나서 역사를 보면 전체적으로 우상향을 그려왔다. 그리고 그 상승세는 코로나 시기에 정점을 찍었다. 이후에 찾아온 겨울은 어쩌면 산업으로서의 게임계가 몇번 겪지 못한 것이었을 수 있다. 미시적 시점과 거시적 시점에서 풍파를 겪어낸 나의 체험은 결국 업계에 대해서는 차가움을 커뮤니티에 대해서는 따듯함을 느끼며 마무리 됐다. Tags: 북미, 미국, 해고, AAA게임, 게임산업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나성인) 홍영훈 캘리포니아에서 살면서 게임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에 출연하고 매체에 기고를 하며 많은 분들에게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패션부터 게임까지 분야에 상관없이 재밌는 글을 평생 쓰고 싶습니다.

  • 스팀의 ‘양식화된’ 태그를 통해서 본 예술로서의 게임, 혹은 게임으로서의 예술

    지금으로부터 자그마치 12년 전, 그러니까 2014년에 ‘태그’ 기능이 스팀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스팀은 스스로 이 기능을 “새롭고 강력한 게임 구매 방법”이라 설명한다. “지속적으로 부착된 태그는 독립적인 부류로 나누어지고, 모두가 함께 정의한 장르, 주제, 특징으로 나누어진 상품들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 즉 여기서 ‘태그’는 “장르, 주제, 특징”과는 다른 제4의 분류법이다. 나아가 스팀의 ‘태그’ 기능 소개 페이지는 “어떤 단어로도 태그를 달 수 있”음을 명시한다. < Back 스팀의 ‘양식화된’ 태그를 통해서 본 예술로서의 게임, 혹은 게임으로서의 예술 29 GG Vol. 26. 4. 10. “예술이 의지가 펼치는 궁극의 게임이라면 ‘스타일’은 이 게임을 하는 일련의 규칙으로 구성된다.” [1] 지금으로부터 자그마치 12년 전, 그러니까 2014년에 ‘태그’ 기능이 스팀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스팀은 스스로 이 기능을 “새롭고 강력한 게임 구매 방법”이라 설명한다. “지속적으로 부착된 태그는 독립적인 부류로 나누어지고, 모두가 함께 정의한 장르, 주제, 특징으로 나누어진 상품들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 즉 여기서 ‘태그’는 “장르, 주제, 특징”과는 다른 제4의 분류법이다. 나아가 스팀의 ‘태그’ 기능 소개 페이지는 “어떤 단어로도 태그를 달 수 있”음을 명시한다. “장르를 분류할 때는 ‘퍼즐’을, 주제를 분류할 때는 ‘군사’를, 특징을 보여주고 싶으면 ‘어려움’을 쓰시면” 되지만, “제품에 걸맞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는 것도 좋”을 때도 있다 [2] . 이 문장을 읽자마자 예상할 수 있듯이, 이러한 임의적 민주주의는 해당 기능이 본래 의도한 대로 작동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는다. 실제 게임 내용과 “장르”적으로도 “주제”적으로도 “특징”적으로도 전혀 무관한 ‘밈’, ‘심리적 공포’, ‘LGBTQ+’ 등의 태그를 다는 장난질은 꾸준히 성행해 왔다. 그리고 이처럼 명백한 악용 사례를 넘어, 그 뒤에 숨겨진 의도조차 알기 힘든 태그도 있다. 바로 ‘양식화된’이다. 사실적인과 양식화된 ‘양식화된’은 영어 태그 ‘Stylized’를 번역한 것으로, 원본 단어를 보아도 그 뜻은 다소 아리송하다. ‘양식 (Style)’을 ‘스타일’로 직접 음차한 표현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자주 사용하지만, 그럼에도 보통 무언가의 맵시가 멋지거나 뛰어날 때는 ‘스타일리쉬’하다는 형용사를 자주 쓰지, ‘스타일라이즈드’되었다는 수식어는 익숙하지 않다. 이 스타일라이즈드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대표적인 사례는 시각적 게임 디자인의 두 갈래 중 하나로 ‘리얼리스틱’, 즉 ‘사실적인’의 반대편을 일컬을 때이다. <호라이즌 제로 던>과 <배틀필드> 시리즈 등 개발에 참여한 3D 디자이너 킴 아바 (Kim Aava)는 게임 디자인에서 사실주의가 실사를 모방하는 그래픽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양식화된 디자인은 현실을 굳이 재현의 기준으로 삼지 않은 채 자유로운 표현을 목표로 하는 방법론이라 규정한다. 그런데 이렇게 구분하는 도중에 아바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지점을 강조한다. 바로 사실주의도 결국엔 양식에 속한다는 것이다. 사실주의는 어디까지나 더 ‘사실적’으로 보이기 위해 이상화된 현실의 이미지를 참조할 뿐이며, 무엇보다 “우리가 10년 전에 사실적으로 보인다 믿었던 것들이 오늘날엔 사실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으며, 그것들은 누군가에겐, 당시에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내렸던 선택들로 인해 심지어 양식화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3] .” 즉, 현실을 과장한 표현이든, 현실을 단순화한 표현이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최대한 모방하려 한 표현이든 전부 어떠한 ‘양식’을 이룬다는 점에서는 다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충실한 모방과 재현은 마치 예술가의 표현적 선택에서 면제되는 듯한 인식이 퍼져 있어, 사실상 ‘사실주의, 그리고 나머지’ 모든 작품이란 범주가 통용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는 미국의 작가 수전 손택 (Susan Sontag)이 1965년도 에세이 <스타일에 관하여>에서 ‘리얼리즘도 하나의 스타일 관습에 지나지 않는다’ 가정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4] . 그렇다면 ‘양식화된’ 태그엔 ‘현실적’ 태그 바깥의 모든 게임이 들어가 있는 것일까? 현재 이 글을 쓰고 있는 2026년 3월 16일 오전 5시 43분 시점에 해당 태그를 클릭해 들어갔을 시 가장 상위에 뜨는 3편의 게임은 중세 타워 디펜스 게임 <쓰론폴 (Thronefall)>, 아니메 확률형 아이템 수집 RPG 게임 <소녀전선2: 망명>, 코스믹 호러 낚시 게임 <드레지 (DREDGE)>이며, 조금 더 밑으로 내리면 <바둑>이란 제목의 아주 직설적인 바둑 게임도 있다. 확실히 네 편의 게임 모두 시각적 현실 재현이 목표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점 외에 별다른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사실주의가 아닌 표현주의적 양식을 지니고 있음에도 ‘양식화된’이란 태그가 붙지 않은 게임들이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울트라킬 (ULTRAKILL)>, <멈추지 마, 걸리팝! (Don’t Stop, Girlypop!)>, <스프롤 (SPRAWL)>의 세 작품은 전부 극도로 강조된 색채나 한 알 한 알이 두드러지는 픽셀, 투박하게 각진 로우 폴리곤 등, 현대 기술 수준에서 재현할 수 있는 현실성과 아주 거리가 멀어 보이는 표현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양식화된’ 페이지에 기재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쓰론폴>과 <울트라킬> 사이를 나누는 그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쓰론폴>을 분류하는 태그인 ‘양식화된’은 <울트라킬>, <멈추지 마, 걸리팝!>, <스프롤>에 붙어 있지 않지만, 마찬가지로 이 세 게임도 <쓰론폴>에게 없는 공통적인 태그를 하나 달고 있다. 바로 ‘부머 슈팅’이다. ‘부머 슈터’는 1990년대를 풍미했던, 다시 말해 베이비부머 세대가 즐겼던 ‘복고풍’ FPS 게임 양식을 일컫는 표현이다. ‘부머 슈팅’ 말고도 <울트라킬>이 속한 태그인 ‘복고풍’, <멈추지 마, 걸리팝!>을 장식하는 ‘1990년대’, <스프롤>을 부연하는 ‘올드 스쿨’이 이를 확인해 준다. 물론 정말 90년대 PSX 부머 슈터 게임을 표방하고 있는 <울트라킬>과 달리 <멈추지 마, 걸리팝!>과 <스프롤>은 Y2K 2000년대 미학을 자칭하고 있으므로 저 태그들이 정확한 설명을 해주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대한 근접하게라도 이들이 지향하는 바를 일컬을 어휘가 스팀 상에 입력돼 있다는 얘기다 (어쩌면 ‘당시에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내렸던 선택들로 인해 심지어 양식화된 것으로 보’이게 된 양식을 말하는 ‘복고풍’이 저 셋을 더 잘 묶어줄 수 있겠지만, 스팀 사용자들의 임의성은 복고 ‘FPS’라는 특징에 더 주목을 해 ‘부머 슈팅’으로 퉁쳐 버린 듯하다). <쓰론폴>과 <드레지>의 경우엔 색채의 과장과 세부 묘사의 생략, 형상의 단순화 등을 통해 독특하고 고유한 양식을 이루고 있음에도, 이들이 구현하고 있는 양식을 일컬을 기존의 태그가 스팀에 존재하지 않는다. 분명히 이 두 게임에선 ‘양식이 두드러지지만’, 그 양식을 뭐라 따로 분류할 범주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소녀전선 2: 망명>에겐 이미 ‘애니메이션’이란 태그가 존재하고, <바둑> 같은 경우는 배경 공간을 추상화하거나 생략했을 뿐 오히려 바둑판 자체는 꽤나 현실의 물건과 유사하게 구현된 듯하며 전체적으로 시각적 창의성과도 거리가 멀어 보이는데 어째서 ‘양식화된’ 태그가 아래 있는 것인지 다소 아리송하다. 양식과 양식화된 태그의 최신 분류는 앞서 말한 사용자 중심 운영 체제의 임의성에 영향을 많이 받아 범주도 작품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수 있으니, ‘양식화된’ 태그 아래 ‘최고 평가’를 들어가 보자. 여기선 그나마 조금 그림이 명확해지는 듯한데, <펜티먼트 (Pentiment)>, <슬러지 라이프 (SLUDGE LIFE)>, <에코 포인트 노바 (Echo Point Nova)> 등 기존 장르 바깥의 고유한 양식이 확연히 두드러지는 게 보이는 게임들이 모여있다. 그런데 말이 쉽지, 이 ‘양식이 두드러진다’라는 건 애초에 무엇인가? 양식을 이해하기 위해선. 앞서 리얼리즘을 당연시하는 풍조에 경종을 울렸던 수전 손택의 <스타일에 관하여>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손택은 우선 양식 혹은 스타일을 “작품의 인상 또는 리듬”이라고 표현한다 [5] . 그리고 단연 예술을 넘어 “어떤 말이나 움직임, 행동이나 사물이 직접적이고 실용적이고 무감한 표현이나 존재에서 벗어난 특질을 보인다면, 그것에 ‘스타일’이 있다” 말한다 [6] . 결국 이러한 개념과 사고의 확장과 전개는, 현실과의 관계에서 “스타일이 곧 예술”이라는 감격스러운 정의로 향한다 [7] . 이미 예술이 곧 스타일, 다시 말해 양식이라면, ‘양식화되었다’는 건 무슨 말인가? 손택은 예술가가 “주제와 형식 사이에서 굳이 필요하지 않은 구분을 지을 때”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즉 “스타일과 주제가 서로 대척할 때, 주제가 어떤 스타일로 다루어졌다”, 또는 ‘양식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8] . “‘스타일’과 ‘스타일화’을 나눈 것이 의지와 고집의 차이와 유사하다” [9] 그러니까 원론적으로 보면 ‘양식화된’은 비판적 표현이다. 이미 근본적으로 내용도 표현도 모든 것이 구분 없이 총체적으로 양식인 예술에서, 굳이 불필요하게 양식이라는 분리된 범주에 집착해 “조화가 부족한 과잉의 예술”이란 결과를 낳게 되는 경향을 질타하기 위해 사용된 단어이니 말이다 [10] . 다만 스팀 페이지에서 게임에 부착된 ‘양식화된’이라는 태그가 해당 게임이 스타일을 실험하다 자기 복제에 빠져 상상력이 소진된 결과물을 낳았다고 비판하기 위해 적용된 것은 아니리라 믿어진다. 애초에 스팀이 자신 있게 알려주듯이, 태그 기능은 게임을 “구매”하라고 발명된 장치이지 않은가. 이 시점에서 손택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영역은 ‘양식화된’ 자체보단 그 안의 ‘양식’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단서에 그친다. 그럼 다시 태그의 실제 사례들로 돌아가 보자면, <펜티먼트>, <슬러지 라이프>, <에코 포인트 노바>는 전부 각각이 고유한 “인상 또는 리듬”을 전면에 부각하고 있다. <펜티먼트>는 목판화를 차용한 2D 그래픽, 펜으로 직접 쓰이는 듯 서서히 나타나며 그 과정에서 밑줄 강조나 오타 수정들까지 애니메이팅되는 대사 글씨, 맵을 이동할 때 책 페이지가 넘겨지는 효과로 전환되는 화면 등, 게임 전체가 16세기 근세 유럽의 양식을 구현하고 있다. <슬러지 라이프>의 화면 전체에 색조 및 저해상도 필터가 강하게 들어가 있으며, 모델링은 전부 둥글둥글하고, 텍스처는 색조 필터 아래로도 가려지지 않을 만큼 또 더 대비가 뚜렷하고 강한 단색을 기용하고 있다. 따라서 텍스처에선 (텍스처는 의미상 질감을 뜻함에도 불구하고) 질감이 느껴지지 않고, 이는 모델링의 곡선과 공명해 그 ‘둥근’ 효과를 증폭시킨다. 하지만 화면 전환 및 UI 상의 VHS 효과, 맵 공간을 채우고 있는 녹색의 스모그, 그리고 담배, 캔, 팝업 창과 같은 일상 사물들의 반복 등은 필터로 잔뜩 왜곡되어 침침한 시야와 다시 만나 ’지저분한’ 감각을 생생히 느끼게 해주고, 이 상반되는 두 감각, 즉 ‘마찰 없는 더러움’은 제목인 ‘진흙탕 인생’을 하나의 고유하고 완결된 양식으로 구현한다. <에코 포인트 노바>에선 모든 것이 매끄럽게 빛나는 미래적 기술에 대한 예측이, 산산이 부서져 부유하는 자연 및 폐허와 만나, 마치 천상에 대한 환상과 같은 신비로운 감각을 준다. 그리고 이 감각을 앰비언트/드럼 앤 베이스 음악이 하나로 묶어, 빠르고 복잡한 이동 기술과 사격을 중심으로 하는 소위 ‘스타일리쉬’한 액션과 융합한다. 그리고 이 세 게임은 <쓰론폴>, <드레지>와 마찬가지로, 각 작품의 양식을 설명해 줄 ‘부머 슈팅’과 같은 기존 범주가 존재하지 않는다. <펜티먼트>의 경우 시대적으로도 근세 배경에 ‘중세’ 태그는 부정확하고, <크루세이더 킹즈 (Crusader Kings)>나 <마운트 앤 블레이드 (Mount & Blade)> 같은 또 다른 ‘중세’ 게임들도 해당 시대를 그저 재현하는 데 치중하는 장르를 이룰 뿐이지 ‘중세 미학’ 그 자체를 재현하거나 재해석하는 양식을 선보이진 않는다. 나아가 <슬러지 라이프>와 <에코 포인트 노바>는 기존의 여타 어떤 양식에도 속하지 않는 독특한 미학을 체화하고 있으니 당연히 스팀에 이들의 양식을 일컬을 범주가 없다. 단 하나의 항목만을 지니는 범주는 범주가 아니라 그저 그 개체 자체의 이름일 뿐이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여기서 ‘양식화된’은 어떠한 게임이 돋보이는 양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 양식을 일컬을 기존의 다른 태그가 스팀 내에 없을 때 포괄해주는 분류 항목으로서 가장 일차적인 목적을 성취하는 듯 보인다. 양식과 플레이, 그리고 의지 ‘양식화된’이 그저 기존 분류에 담기지 않는 게임들을 위한 잔여 항목들의 모음집으로서 형성된 것이라 하더라도, 이 ‘기타 등등’들의 구심점으로 ‘양식화’라는 키워드가 선택되었어야 했던 이유엔 아직 더 파고들 구석이 남아 있는 듯하다. 어째서 태그 체계는 사실주의를 기준으로 삼아 그 나머지를 비교 대상으로 삼는 ‘양식화된’의 구도를 빌려와 분류 범주를 구성해야 했을까? 바꿔 말하자면, 어째서 게임은 하나의 양식과 나머지 양식으로 망라되어야 했으며, 양식이 이 모든 걸 나누는 윤곽이 되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니까 왜, 태그 분류 체계 안에 ‘양식화된’은 있는데 ‘내용화된’은 없는가?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선 먼저 태그 범주가 어떻게 양식과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스팀 내 태그들엔 ‘장르’, ‘하위 장르’, ‘비주얼 및 관점’, ‘테마 및 분위기’, ‘특징’이라는 상위 대분류가 있어 각 범주들을 또 한 차례 나눠 담고 있는데, 예를 들어 ‘양식화된’은 ‘비주얼 및 관점’에 속한다. 그뿐 아니라 시청각적 미학의 양식은 거의 ‘비주얼 및 관점’에 속하고 스토리나 주제의 내용적 특징은 주로 ‘테마 및 분위기’를 구성한다. 문제는 에코 포인트 노바에서 ‘스타일리쉬’하게 구사되는 액션, 즉 플레이 형식 같은 경우에 ‘장르’와 ‘하위 장르’를 오롯이 독차지하면서도 ‘비주얼 및 관점’과 ‘테마 및 분위기’, 그리고 ‘특징’에도 섞여 들어가 있어, 분류 체계 안에서 양식과도 혼재하고 내용과도 범주를 같이 쓴다는 것이다. ‘귀여운’이라는 미적 양식과 ‘1인칭’이라는 플레이 형식이 ‘비주얼 및 관점’ 아래 함께 들어가 있고, ‘포스트아포칼립스’나 ‘감정적인’이란 주제적 성질과 ‘낚시’나 ‘암살’의 플레이 형식이 ‘테마 및 분위기’ 아래 같이 속한다. ‘특징’은 오히려 또 다시 ‘장르’들처럼 플레이 형식 위주의 범주이지만 ‘PvP’와 ‘퍼마 데스’ 사이에 ‘풍부한 스토리’가 끼어 있다. 결국 플레이 형식은 태그를 양식과 내용으로 분류할 수 없도록 그 구분을 흐리는 주범이다. 그리고 게임 측에서 제공하는 플레이 형식에 더해 플레이어가 취하는 플레이 방식, 다시 말해 소위 ‘플레이스타일’이라 불리는 작품 향유 양식까지 고려하면 분류는 더욱 요원해진다. RPG 게임 등에서 가능한 한 모든 선택지를 보거나 최선의 선택지를 얻기 위해 세이브 파일 저장과 불러오기를 반복하는 ‘세이브 스커밍 (save scumming)’은 플레이어가 내용과 관계하는 방식을 일컫고, FPS 게임에서 컨트롤러를 흔들며 조준해 반동을 조절하는 ‘지터 에임 (jitter aim)’은 형식과 관계하는 방식을 말하지만 둘 모두 플레이스타일에 속한다. 예술 작품 자체가 본래 “경험하는 사람의 협력에 크게 의존”하지만, 그중에서도 독자를 더 가까이, 깊게 끌고 들어오는 게임이란 갈래에서 그 협력의 양식이 플레이어에게 수용되는 내용에든 양식에든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은 명백하다 [11] . 실로, ‘테마 및 분위기’ 아래 있는 ‘공포’, ‘귀여운’, ‘유머’ 등 정동을 중심으로 한 태그들은 게임에서뿐 아니라 다른 예술 장르에서도, 양식을 기술할 때도 사용될 수 있고 내용을 수식할 수도 있는 단어들이다. ‘양식이 두드러지는 게임’들, 그러니까 <펜티먼트>, <슬러지 라이프>, <에코 포인트 노바>의 ‘양식화된’ 삼총사든, <울트라킬>, <멈추지 마, 걸리팝!>, <스프롤>의 ‘복고풍’ 삼총사든, “직접적이고 실용적이고 무감한 표현이나 존재에서 벗어난 특질”을 첨예하게 구성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들이 특별히 다른 게임에 비해 “주제와 형식 사이에서 굳이 필요하지 않은 구분을” 지으며 내용을 경시하거나 도구화하는 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 작품들 내에서 “스타일과 주제가 서로 대척”하긴커녕, 양식과 내용은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고 상승시키며 “조화”를 이루고, 근본적으로 자신들 사이의 “굳이 필요하지 않은 구분”을 삭제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최종적으로 묶는 건 ‘플레이’라는 기제다. 애초부터 게임을 다른 예술 장르와 구분하며, 기타 예술이 동경해 마지않는 그 궁극의 관객 참여 장치 말이다. 게임의 모든 예술적 요소들은 놀이라는 게임의 본색에 전적으로 징용된다. 그러니 플레이라는 대의 아래 양식이든 내용이든 나눠 봤자 하등 의미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양식과 내용의 구별이 그렇게나 의미가 없다면, 왜 제3의 명칭이 아닌 ‘양식’이 아직도 태그의 이름에 포함되어 있는가? “스타일이 곧 예술”이라면, 플레이는 그 양식이 본격적으로 향유되어 작동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 플레이 또한 그만의 고유한 양식을 갖는다. 게임에서 양식과 플레이는 서로가 서로를 작동시키고, 서로가 서로의 필요 조건인, 같은 진실의 두 화신 데미우르고스 [12] 다. 이 둘 모두를 발생시키는 공통된 진리는 바로 의지이다. “예술은 의지를 구현하고, 또 자극하거나 일깨우는 사물이나 공연이다. 예술가의 관점에서 보면 예술은 의지를 구현하는 것이며, 관객의 관점에서는 의지를 구현할 가상의 배경을 창조하는 것이다. [13] ” 양식은 의지가 발현되는 그 모습을 일컫는 것이지만, 게임에서 양식은 플레이라는 관객과 작품 간 상호작용에서 마침내 현현하고, 또 플레이가 자신의 양식을 가짐으로써 분리할 수 없는 영혼을 구성한다. 그리고 모든 예술이 “관객의 관점에서는 의지를 구현할 가상의 배경을 창조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일컬을 뚜렷하고 자연스러운 이름이 없어 ‘관객 참여형’과 같은 부자연스러운 접두사의 이식을 필요로 하는 반면, 게임은 플레이를 본원적으로 내재한다. “스타일은 예술 작품에서 결정의 원칙이자 예술가의 의지를 드러내는 특징적 표식이다. [14] ” 게임의 플레이에선 개발자의 의지뿐 아니라 플레이어의 의지도 춤을 추며, 플레이스타일은 그 춤선을 일컫는다. 그러니, 양식과 내용 모두 게임에서 플레이에 복무함에도 양식이 갖는 동등한 협업자적 위치와 내용의 순수한 기능적 위치는 다르다. “예술에서 ‘내용’이란 본질적으로 형식적 인 변형 과정에 의식을 끌어들이는 구실이며, 목적이자 미끼다. [15] ” 이 지점에서 내용과 양식 중 후자만이 그 두드러짐의 이름을 태그 분류 속에서 따로 얻게 된 연유는 분명해 보인다. 아무리 사실주의에 많은 환상이 덮어 띄워져 있다 하더라도, 그 사실주의조차 여전히 하나의 양식으로서 내용에 비해선 예술의 본질에 가까운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이다. “쾌감이 예술 작품의 유일하게 타당한 목적이며 그 자체로 충분히 정당화된다”면 게임에서 플레이는 그 쾌의 발생을 일컫고, 양식은 쾌가 발생되는 형태와 배경을 아우르는 관념이다 [16] . 그리고 내용은 양식에 속하는 한 부품에 불과하다. 만일 태그에 ‘내용이 두드러지는’ 게임을 담는 항목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양식화된’ 아래 하위 범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변화하는 미적 경험의 현장으로서 ‘양식화된’ ‘양식화된’의 정체를 추적하기 위해 손택의 지도를 따라간 자리엔, 우리가 ‘좋은 게임’이라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통찰도 자리한 듯하다. 우리가 훌륭한 양식이라 부르는 것은 쾌를 탁월하게 제공하는 것이며, 게임에서 양식을 호명해야 했던 이유도 쾌 창출의 배경을 뛰어나게 구성하는 작품을 검색할 수 있어야 하는 필요에 의해서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좋은 게임은 어디까지나 쾌를 잘 주는, 재미있는 게임인 것이다. 예술이 그렇듯이. “세상은 궁극적으로 미적 현상이다. [17] ” 태그 체계의 작동은 재밌는 게임, 좋은 게임을 찾기 위한 플레이어들의 십시일반 노력이다. “작품이 어떻게 반복되는지를 파악하지 못하면 그야말로 지각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된다. 반복을 인식해야만 예술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 [18] ” 이런 면에서 시청각적 양식을 넘어 향유 양식까지 모든 양식에 이름을 붙이는 태그 체계는 제품으로서 게임을 구매하기 위한 방법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작품의 패턴을 따라 그 궤적을 그리고자 하는 향유자의 태도를 나타낸다 할 수 있다 (이쯤 되면 명백하겠지만, 모든 태그는 각각이 곧 양식이다). 태그 체계는 때로 임의성이라는 예측 불능의 부산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것은 향유자들이 자신의 감상을 기록하고 또 다른 잠재적 향유자에게 공유하는 이 미적 경험의 최전선이 얼마만큼의 열정과 혼돈을 (이 둘도 상호불가결하다) 품고 있는지 드러내는 지표일 뿐이다. 또 태그 체계가 스팀 측에서 제공한 장치임에도 각 항목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 또한, 사용자 책임 전가를 넘어, 결코 고정되는 일 없이 계속되는 과정인 열렬한 미적 경험의 한 양태였던 것이다. ‘양식화된’ 아래 게임들은 언제든지 자기 양식의 이름을 얻어 이사 나갈 수 있다. 어디까지나 ‘양식화된’은 당장 갈 곳 없는 게임들을 위한 임시 거처이니 말이다. <크루얼티 스쿼드 (Cruelty Squad)>, <마마의 잠든 천사들 (Mama‘s Sleeping Angels)>, <잼는 라쿤 게임 (Funi Raccoon Game)> 등 2020년대에 폭발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이 ‘눈 아프고 머리 아프고 정신 없는’, ‘추함’의 미학을 선보이는 게임들은 지금은 그 미학을 일컬을 이름이 없지만 이렇게 점점 그 흐름을 쌓아나가다 보면 이름을 얻게 되는 것도 눈 깜짝할 사이이리라. 하지만 그들이 성장해 독립한다 해도 ‘양식화된’이란 집은 그 이후의 또 다른 이단아들과 새로운 흐름의 탄생을 위한 경계 공간으로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결국 ‘양식화된’은 사실주의의 단순한 안티 테제를 넘어, 게임이란 예술의 유동성을 대표하는 태그라 할 수 있다. [1] 수전 손택, 『해석에 반하여』 (서울: 윌북, 2025), 62쪽. [2] https://store.steampowered.com/tag/steam/?l=koreana [3] https://80.lv/articles/realistic-vs-stylized-technique-overview [4] 수전 손택, 『해석에 반하여』, 42쪽. [5] 위의 책, 56쪽. [6] 위의 책, 67쪽. [7] 위의 책, 58쪽. [8] 위의 책, 42쪽. [9] 위의 책, 63쪽. [10] 위의 책, 44쪽. [11] 위의 책, 46쪽. [12] 데미우르고스는 본래 유일신 신앙인 기독교에서 갈라져 나온 한 분파, 즉 영지주의에서 그 신의 또 다른 현현을 일컫는다. [13] 위의 책, 60쪽. [14] 위의 책, 61쪽. [15] 위의 책, 51쪽. [16] 위의 책, 57쪽. [17] 위의 책, 55쪽. [18] 위의 책, 65쪽.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영이 폭력과 고통, 분열의 상관관계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쓴다. 『정서 지도 그리기』, 『밑 빠진 독(毒)에 물 붓기』, 『월간 종이』 등을 제작하고 연극 <오페라 샬로트로니크>, <벼개가 된 사나히> 드라마터지를 맡았다. 『호르몬 일지』와 『게임 코러스』를 썼고, 『미친, 사랑의 노래』를 함께 썼다.

  • [인터뷰] 플래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퍼포먼스와 그 이후: RIP Flash 팀

    많은 사람들이 인생 첫 게임을 ‘플래시 게임’으로 접했고, ‘마시마로’나 ‘졸라맨’ 등 ‘플래시 애니메이션’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는 등 플래시는 2000년대 문화 전반에서 사용되었다. 따라서 플래시 서비스의 종료는 단순히 하나의 소프트웨어가 단종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인 문화의 단절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에 R.I.P. 플래시 프로젝트는 플래시의 ‘죽음’을 기리며, 그 문화적 산물을 돌아보고자 하였다. < Back [인터뷰] 플래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퍼포먼스와 그 이후: RIP Flash 팀 05 GG Vol. 22. 4. 10. 게임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최근에 진행되었던 ‘R.I.P. 플래시 프로젝트’를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https://www.thisisgame.com/webzine/special/nboard/5/?n=127359 ‘디스이즈게임’ 기사 참조) 어도비(Adobe)사의 플래시는 2020년 12월 31일부로 서비스가 종료되었고, R.I.P. 플래시 프로젝트는 이러한 플래시의 흔적들을 기억하고 그 죽음을 추모하려 했던 프로젝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 첫 게임을 ‘플래시 게임’으로 접했고, ‘마시마로’나 ‘졸라맨’ 등 ‘플래시 애니메이션’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는 등 플래시는 2000년대 문화 전반에서 사용되었다. 따라서 플래시 서비스의 종료는 단순히 하나의 소프트웨어가 단종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인 문화의 단절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에 R.I.P. 플래시 프로젝트는 플래시의 ‘죽음’을 기리며, 그 문화적 산물을 돌아보고자 하였다. 이러한 R.I.P. 플래시 프로젝트가 지난 2월 말,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에서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종료되었다. 그러나 ‘장례’가 과거에 잠재된 미래를 살피는 행위인 것처럼 이 프로젝트의 의의 역시 과거형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에 이번 호에서 편집장은 R.I.P. 플래시 프로젝트를 기획한 박이선 게임문화연구자와 권태현 미술 큐레이터를 만나 프로젝트에 대한 소회를 묻고, 앞으로의 방향을 듣고자 했다. 편집장 : 오늘 인터뷰에서는 R.I.P. 플래시 프로젝트의 결과와 소회를 여쭙고 싶어요. 스스로 평가를 해보셨을 때, 프로젝트의 성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권태현: 작업을 처음 시작할 때에는 자신감이 높았어요. 시의적절하기도 하고, 나름 글로벌한 반응이 있었기에 기쁜 마음으로 시작을 했죠, 그런데 실제로 작업을 진행하면서 스스로 의심하게 되더라고요. 기본적으로 플래시라는 것 자체가 글로벌한 플랫폼이고, 그 쓰임이라는 것도 굉장히 광범위한 거였기 때문에. ‘우리가 너무 거대한 것을 건드린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업은 너무 일부인데, 과대표 되는 방식으로 다루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죠. 박이선: 실제로 처음에 기획을 할 때에는 반응이 되게 좋았거든요. 처음에는 한예종에서 시작했다가, 반응이 좋아서 인천문화재단으로 옮기고, 그다음에는 텀블벅 펀딩으로 마무리를 했는데, 그 과정 내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줬어요. 그런데 말씀하신 것처럼 연구를 하다 보니까 저희가 소프트웨어의 주체들, 그러니까 플래시를 만들었던 사람들까지 다 다루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플래시를 향유했던 사람들과 그 틀을 이용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담았지만, 정작 어도비나 매크로미디어(Macromedia)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데 한계가 있었기에 그때는 반쪽짜리 잔치라고도 생각했어요. 권태현: 그런데 결론적으로 원고를 조금씩 취합하고, 편집을 해나가고, 대담을 진행하면서 오히려 이 프로젝트에 대한 확신이 생겼어요. 분명히 우리의 방법론이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학문적 베이스, 우리의 연구 역량으로 가닿을 수 없는 지점들이 있었고, 소프트웨어 생산자에 관한 연구는 기술 문화나 IT 연구하시는 분들이 훨씬 더 잘 정리할 수 있는 분야이지만, 우리는 오히려 그런 연구에서 누락 되기 쉬운 ‘사용자의 목소리’, ‘구술사’, ‘역사가 아닌 계보’를 봐야겠다는 목표를 잡았거든요. 이로써 프로젝트의 정체성이 확실해졌어요. 그래서 ‘플랫폼 스터디스(Platform Studies)’나 혹은 기술적으로 연구하시는 분들이 잘 정리해 놓은 것들이 있지만, 우리의 독창성은 한국이라는 맥락이나 게임이라는 맥락, 미술이라는 맥락과 같이 특정한 맥락 속에서 그것의 위치를 찾아가는 지점에 의미가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박이선: 결과적으로 그런 정체성을 명확히 잡고 프로젝트도 잘 되었어요. 소프트웨어 장례식을 한다는 게 특이하고, 플래시에 대한 감각도 공감이 된다면서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고, 특히나 텀블벅에서 만났던 분들은 학계나 미술계, 게임계가 아니라 단순히 플래시 게임과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던 사람들로서 저희를 지지해주셨어요. 게다가 그분들은 저희가 아직 홍보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자기가 속한 커뮤니티에 자발적으로 홍보를 해주셨거든요. 그런 점들이 너무 감사하고, 이런 지지가 저희 책을 만드는 데 힘이 되었어요. 그래서 결과물도 저는 굉장히 만족해요. 책의 구성에서도, 그러니까 플래시에 대한 간결한 소개부터 주변 인터뷰도 싣고, 거기에 학계에 계시는 분들이 각각 포인트에 맞는 견해들을 주셔서 전반적인 구성이 좋게 나올 수 있었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주셔서 프로젝트가 잘 되었다고 생각해요. 편집장: 말씀 중에 궁금한 것이 생겼는데요. 관련 자료를 많이 보셨을 것 같은데, 매크로미디어나 어도비 같은 회사에 대한 연구는 북미 등 해외에서 진행이 많이 됐을까요? 권태현: 일단 기본적으로 MIT Press에서 나오는 플랫폼 스터디스(Platform Studies) 시리즈에 플래시가 있어요. 그게 저희도 가장 많이 참조했던 텍스트인데, 거기 보면 유저(user) 문화 같은 것도 물론 있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기술적인 맥락이 어떻게 반영되는지와 인프라스트럭쳐(infrastructure) 자체에 대한 분석이 주(主)가 되기 때문에 그런 연구가 나름 정리가 되어있다고 볼 수 있고요. 그리고 기술적이고 산업적인 것에 대한 분석이라기보다는 플래시가 가지는 산업적 위상에 대해서는 이선 씨가 저희 책 초반부에서 정리한 것이 있어요. 어도비가 플래시 단종하겠다고 발표한 바로 다음 날부터 2, 3일 동안 페이스북, 모질라 등 거대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성명을 발표했어요. 디렉터나 혹은 웹 브라우저 담당자 정도 되는 헤드(head)급 인사들이 편지를 썼거든요. 그것들을 저희가 전체를 번역해서 실었어요. 그런 것을 통해서 ‘기술적’인 산업이 아니라 그 산업 안에서의 관계, 그리고 거기서 플래시라는 것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그리고 그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플래시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어요. 재미있는 건 그러면서도 플래시의 시대가 지났기 때문에 이제는 ‘자기네들이 짱이다’는 (웃음) 메시지를 던지고 있어요. 박이선: 예를 들어 유니티 같은 경우는 “우리는 개발의 민주화 잃지 않을 거예요.” 이런 식으로 자기네 사명 다시 한번 외치는 거로 마무리하죠. (웃음) 권태현: 결과적으로 산업에 대한 연구는 이미 있는 것이 맞고, 저희의 프로젝트 안에서도 산업을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인간적이고 조금은 관계 중심적인 차원으로 다루었어요. 그런 면들이 이 책의 기획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방식으로 드러났다고 생각해요. 편집장: 해외에도 이용자 수용 양상에 관련된 연구나 프로젝트가 많이 있나요? 왜냐하면, 말씀하신 대로 이용자들의 경험과 문화적 산물을 본다는 것은 지역적인 측면이 중요해지거든요. 그래서 다른 지역에 좀 비슷한 프로젝트들이 있었는가도 궁금해요. 박이선: 저희가 처음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는 아까 말씀드린 MIT Press의 플래시 책이 사실상 유일했어요. 그 책은 2014년에 나왔던 책이거든요. 그때는 ‘플래시가 죽겠다’는 소식이 나오기 전이었고 저자는 그냥 플래시에 관심 있어서 플랫폼을 연구했던 거예요. 거기 안에는 수용자 연구도 있었지만, 기술 자체에 코드 분석 같은 것이 많이 담겨있었고 그 책 외에는 플래시에 대한 연구를 찾기가 힘들었어요. 권태현: 어딘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저희랑 유사한 콘셉트의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었고, 오히려 유저들의 문화에서 눈에 띄는 프로젝트들은 ‘아카이브 프로젝트’였어요. ‘내가 재밌게 했던 플래시 게임이 없어지니까 일단 아카이브를 만들어야 된다’라고 생각하는 유저들은 굉장히 많았던 것 같아요. 박이선: 그런 맥락에서 제가 생각하는 비슷한 프로젝트는 이거였어요. 미국에 두 명의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운영하는 재단이 있어요. 웹 디자인 뮤지엄이라고, 운영자 둘 다 웹 디자이너로서 나이 많은 개발자들이 운영하는 곳이 있는데요. 우리가 90년대 구글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해도 볼 수가 없잖아요? 그런 것들을 어떻게 복원을 해서 다 사진을 찍어두는 프로젝트예요. 그런 일들을 사비로 해오고 있었고, 그중에 하나로 플래시가 있었던 거죠. 이분들이 플래시의 원형들을 굉장히 잘 보존한 걸 webdesignmuseum.org에 게시해놨어요. 저희 작업도 이분들의 작업을 많이 참조했죠. 그리고 그분들이 재단 페이트리언(Patreon, 모금 후원 사이트)을 하시거든요. 저희도 후원을 하면서 열심히 해 달라고 응원을 해드렸어요. 그리고 추가로 웹 아카이브( web.archive.org ) 재단, 그러니까 미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모인 웹 재단이 저희가 그나마 참조했던 프로젝트였어요. 편집장: 제가 이 질문을 드리는 이유에는 이런 측면이 있습니다. 만약 이 프로젝트가 해외에서도 보기 드문 프로젝트였다면, 해외로 나가야 하는 의무도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권태현: 번역에 대한 이야기를 저도 몇 번 들었어요. 프로젝트에 참여하신 분들 중에서 외국에 계신 분들도 많았는데, 그분들이 “외국 친구들 보여주고 싶은데, 혹시 번역 계획이 있냐”는 연락을 두세 명한테 받았어요. 근데 저희가 일단 돈이 없어서 모르겠다고 말씀드렸죠. (웃음) 박이선: 재밌는 게 저희 프로젝트에 웹사이트가 있는데요. 그 웹사이트에 외국인들이 내용을 다 읽고 댓글을 다는 거예요. 거기 한글밖에 없는데 아랍어로도 댓글이 달리고. 그래서 ‘많은 분들이 공감을 해주시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권태현: 그런데 사실 말씀해 주신 것처럼 어떤 연구를 하더라도 사실 지역적인 연구가 될 수밖에 없잖아요. 근데 프로젝트를 하다 보니까 플래시 프로젝트보다는 한국 웹문화사의 성격이 되게 강해졌거든요. 그러니까 사실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까지의 한국 웹문화사에서 플래시는 당시 웹 문화의 조건이었기 때문에, 플래시에 대한 문화연구를 하면 그냥 당시의 웹문화사가 나와요. 그래서 이 프로젝트는 당대의 한국 웹문화사의 성격이 강할 것 같고, 한국 웹문화사가 궁금한 외국인들이 읽었을 때 오히려 더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플래시 일반에 대한 연구는 훨씬 더 좋은 콘텐츠들이 영문으로 있을 텐데, 만약에 저희 프로젝트를 번역했을 때 가치가 있다고 한다면, 90년대 후반 한국 웹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생길 것 같아요. 편집장: 그런 확장성을 생각해 보면 이 프로젝트가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이 프로젝트에서 가지를 쳐서 뭔가를 더 할 수 있는, 그런 계획이나 움직임이 있을까요? 박이선: 지금은 우선 이 책을 서점에 납품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전시에 대한 기획들도 고민을 했는데, 코로나 19로 상황이 어려워졌죠. 권태현: 저희가 인천문화재단 펀딩을 받을 때, 인천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랑 콜라보를 하는 필수 요건이 있었어요. 그때 저희가 리스트를 봤는데, 국악을 하시는 분이 있는 거예요. 장례식 때 국악을 하는 드렁갱이(동해안별신굿에서 반주로 쓰이는 장단: 한국민속대백과사전)라는 것이 있거든요. 또 마침 연락을 해보니 그분이 드렁갱이 전문가였어요. 그래서 저희가 저희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드리고, 드렁갱이 음악도 받았어요. 그 음악을 틀어놓고 장례식을 한다거나 하는 계획들이 있었는데, 코로나 19로 어려워졌어요. 박이선: 당장은 어렵겠지만, 발전시키고 싶은 프로젝트는 있어요.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자발적으로 아카이브를 하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국내에 ‘와플래시’나 ‘플래시아크’처럼 아카이브 웹사이트를 만들어서 최근의 기술로 과거의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는 분들이나 해외에 그런 단체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그분들께 “왜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이런 아카이브를 하는 거냐”고 물으면 그분들의 과거 이력이 나오겠죠. 그런 부분이 궁금하고, 아카이브를 통해서 뭘 하고 싶은지 묻고 싶어요. 물론 ‘광고를 달기 위해서 한다’는 답변을 할 수도 있지만, 노력이 워낙 많이 가는 일이기 때문에 그 동기가 궁금해요. 권태현: 이런 맥락에서 저도 아카이브나 마이그레이션 같은 문제를 확장시키고 싶어요. 미술계의 뮤지올로지, 이 ‘미술관학’이라는 학제를 기반으로 제가 작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재난과 치유》 라는 전시의 위성프로젝트로 〈영구소장〉( https://youtu.be/WQ7takHNmTg)이라는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요. 그것과 연동되어서 저희 프로젝트 후반부에 ‘소프트웨어의 피라미드’가 만들어졌거든요. 그런 차원에서 방금 이선 씨가 말씀해 주신 ‘아카이브 피버’, 이 아카이브 열망에 소프트웨어 버전을 연작처럼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어 ‘쿠키런’이라고 해도, 박물관이 단순히 ‘쿠키런’의 최신 버전을 그냥 다운받은 형태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쿠키런’의 인터페이스나 캐릭터, 디테일한 게임 디자인, 빌드 등 소프트웨어의 아카이브는 그 형태나 필요성이 또 다른 거죠. 물론, 미술품 아카이브도 물리적인 보존의 측면에서 어려움이 있지만, 소프트웨어는 전혀 다른 어려움이 있기에, 소프트웨어의 아카이브라는 것 자체가 되게 흥미롭고, 박물관학적으로도 연구할 가치가 굉장히 높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소프트웨어의 아카이브를 미술관학이나 박물관학에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특히나 요즘 작품들은 이제 다 디지털 작업이기 때문에, 데이터로 미술관이 그걸 보관해야 하기 때문에 플래시나 게임의 아카이브 방법론에서 배울 점이 너무 많았어요. 편집장: 그런 부분이 참 아쉽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프로젝트가 생각보다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있거든요. 특히, 한국의 메이저 미디어에서 많이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프로젝트가 끝났지만 조금 더 회자될 수 있는 영역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이선: 저희가 서울경제 등의 일간지에 나오긴 나왔어요. 그런데 저희한테 먼저 연락을 주신 기자분들의 나이대가 2, 30대세요. 그러니까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지시는 분들은 어렸을 때 졸라맨이나 마시마로를 봤던, 공감대가 있으신 분들인 거죠. 편집장: 그런 문제가 있을 수 있겠네요. 그러면 혹시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공공 기관이나 박물관 등으로 이관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을 하시나요? 권태현: 그런 가능성은 열려있는 것 같아요. 저희가 작년에 넥슨 컴퓨터 박물관 측과 관련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거든요. 비록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전시를 하지는 못했지만, 굉장히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셨어요. 박이선: 만약 20년 넘게 한국 게임을 만들었던 회사와 협업을 하면 저희 시각 외에도 훨씬 더 많은 얘기를 끌어낼 수 있겠죠. 넥슨의 경우에는 저희 연표에도 나오듯이, 애초에 플래시 부흥기 때 〈바람의 나라〉가 성장한 딱 그 시기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회사 측 견해가 들어가면 저희가 못 보던 시각이나 기술적인 측면 등이 추가적으로 들어가면서 유저 문화도 훨씬 더 깊이 있게 기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비단 넥슨뿐 아니라 그런 제안이 들어오면 소수의 사람이 할 때 보다 더 풍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기에 저희는 이 프로젝트가 확장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어요. 편집장: 결국 이 프로젝트는 끝난 게 아닌 거잖아요. 그렇다면 이 프로젝트는 언제 끝날 것 같다고 생각하십니까? 지난번에 종료했던 것은 크라우드 펀딩에 대한 종료였던 거고, 실질적으로 이 프로젝트의 종료는 언제, 어떻게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박이선: 저는 저희 ripflash.net의 방명록에 더 이상 글이 달리지 않을 때, 프로젝트가 종료될 것으로 생각해요. 지금도 매일 어느 나라 말인지도 모르겠는 댓글이 달리고 있는데, 아마 구글에 플래시를 검색해서 들어오시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더 이상 플래시를 검색하지 않으면 이 프로젝트가 끝나는 것이겠죠. * R.I.P. 플래시 프로젝트의 홈페이지, ripflash.net 편집장: 인터뷰가 거의 끝나가는데요. 개인적인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프로젝트가 일단 일단락 되었는데, 소회를 좀 말씀해주세요. 박이선: 일단 굉장히 힘들었어요. (웃음) 어떤 것의 역사를 정리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잖아요. 과거의 소프트웨어를 날짜별로 돌려가면서 그것의 의미를 찾는 일은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고, 지금 그 플래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찾는 것이나 그들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적는 것도 사실 굉장히 힘든 일이었죠. 더 나아가서 이것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홍보까지 해야 되는 상황에서 어려운 일이었어요.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시도를 해봤고 유의미한 결과를 얻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워요. 권태현: 저희가 이 프로젝트를 오래 끌고 온 만큼 기다려주시는 후원자님들도 있었고, 초기부터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있었기에 지속적으로 힘을 받고, 추동력을 받아가면서 마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희 홈페이지를 만들어주신 개발자분도 프로젝트가 너무 재미있다고 자발적으로 참여해주신 분들이거든요. 그분들처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확장된 관계들이 일단 너무 소중하고 행복했어요. 결과적으로 책 말고도 남은 것들이 너무 많아요. 편집장: 마지막으로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한국 사회에 어떤 변화를 만들고 싶었는지, 혹은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박이선: 개인적으로는, ‘어떤 기술’을 이야기할 때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던 ‘사용자’들을 가시화했던 작업인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의 목소리를 싣고 그 사람들을 찾고 그 사람들의 과거들을 아카이빙 해놓음으로써, “기술이라는 것은 탑-다운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플래시 문화가 보여줬던 것처럼 커뮤니티가 기술을 만들고 선도했다”는 메시지를 던지려 했어요. 실제로 그런 기록도 있었어요. 플래시 초기에 매크로미디어가 커뮤니티에서 업데이트 되어야 할 사항들을 많이 가져왔다는 기록이 있었는데, 이처럼 커뮤니티와 개발자들이 사업 관계로서 협력했었거든요. 그래서 결국 사용자와 커뮤니티를 가시화했다는 의의가 있을 것 같아요.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재현, 추상, 그리고 시뮬레이션의 정치

    자동으로 움직이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일에는 묘한 즐거움이 있다. 물을 아래가 아니라 위로 쏘아 올리던 고대 로마의 분수부터 폭포 아래에서 쉼 없이 돌아가는 거대한 물레방아까지, 우리는 스스로 ‘작동(作動)’하는 대상에서 일종의 희열을 느낀다. 그리스의 헤론이 만든 회전하는 증기 장치에서 근대 산업기술 사이를 비집고 등장한 다양한 오토마타까지, 작동하는 무언가가 주는 즐거움은 기술의 고도화 여부와 관계없이 인류 문화 한켠을 차지해 왔다. < Back 재현, 추상, 그리고 시뮬레이션의 정치 27 GG Vol. 25. 12. 10. 오토마타와 시뮬레이션 사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일에는 묘한 즐거움이 있다. 물을 아래가 아니라 위로 쏘아 올리던 고대 로마의 분수부터 폭포 아래에서 쉼 없이 돌아가는 거대한 물레방아까지, 우리는 스스로 ‘작동(作動)’하는 대상에서 일종의 희열을 느낀다. 그리스의 헤론이 만든 회전하는 증기 장치에서 근대 산업기술 사이를 비집고 등장한 다양한 오토마타까지, 작동하는 무언가가 주는 즐거움은 기술의 고도화 여부와 관계없이 인류 문화 한켠을 차지해 왔다. 디지털게임의 한 장르로 자리 잡은 ‘시뮬레이션’은 이러한 작동의 세계를 한발 더 밀고 나간 개념이다. 단순히 작동을 바라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작동에 직접 개입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 시뮬레이션의 독특한 즐거움이다. 무언가를 원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게 만든다는 말은, 동시에 그 과정에서 언제든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뮬레이션’이 본래 게임 장르가 되기 이전에는 현실 세계의 현상과 질서를 모델링을 통해 재현하는 기술적 행동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실제 장치나 제도를 구현하는 데 드는 비용—경제적 비용뿐 아니라 실패가 낳는 기회비용까지—을 절감하기 위한 방식이었다. 다시 말해 “작동의 실패는 언제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셈이다. 단순히 작동을 구경하는 즐거움은 게임화된 시뮬레이션 속에서는 실패의 위험을 관리하고 극복해 ‘성공적으로 작동하는 무엇’을 만들어냈다는 성취의 즐거움으로 확장된다. * 골드버그 장치(위)와 <요절복통 기계>(1992)는 겉보기엔 비슷하지만, 전자가 완성된 작동 장면을 감상하는 데 초점이 있다면 후자는 장치를 ‘만드는 과정’ 자체의 즐거움에 집중한다. 우리가 즐기는 시뮬레이션 게임에는 이 두 가지 즐거움이 나란히 담겨 있다. <팩토리오>에서 플레이어가 설계한 자동화 공장이 오차 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풍경은 시각적 쾌감을 넘어서는 스펙터클이다. 동시에 그 완성된 체계를 직접 만들었다는 뿌듯함도 있다. 오토마타를 바라보는 즐거움과, 그 오토마타를 스스로 설계했다는 즐거움이 하나의 장르 안에서 조우한다. 완성된 레고 테크닉을 바라보는 기쁨과 레고를 조립하는 과정의 기쁨이 함께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즐거움은 시뮬레이션 장르의 고유한 지점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대전격투 게임을 떠올려보자. <철권>에서 플레이어는 복잡한 프레임 사이로 움직이며 상대의 체력을 깎아나간다. 여기서도 실패의 가능성이 전제되어 있고, 이를 넘어 승리했을 때의 기쁨은 분명 크다. 하지만 기술과 기술이 매끄럽게 연계되는 순간은 게임 속에 실시간으로 ‘존재’하기보다는 짧은 리플레이를 통해 스쳐 지나간다. 완성된 순간 자체를 오래 관조하는 구조가 아니다. 때로는 컷신처럼 게임 외부로 튀어나오거나, e스포츠나 영상 콘텐츠의 형태로 아예 바깥에 존재한다. 반면 <산소미포함>에서 완성된 지하도시가 철컹거리며 돌아가는 광경을 바라보거나, <롤러코스터 타이쿤>에서 자체적으로 굴러가는 완성된 공원을 지켜보는 즐거움은 시뮬레이션 장르의 플레이어들에게 매우 중요한 경험이다. 완성물을 관조한다는 것은 ‘복잡성을 장악했다’는 증명과도 같다. 복잡한 체계를 단순화된 규칙으로 조정해 낸 결론이 단순히 ‘승리!’라는 순간이 아니라, 그 완성된 작동이 펼쳐 보이는 논리적 풍경 전체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조금 현실적인 비유를 들자면, 제국을 완성한 권력자가 느끼는 ‘잘 돌아가는 제국’의 감각에 가깝다. 화폐와 도량형을 통일하고, 인프라를 하나의 질서 하에 묶어낸 진시황이 느꼈을 법한 그 만족감—시뮬레이션 게임이 겨냥하는 지점은 어쩌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시뮬레이션에서 추상되는 것들 시뮬레이션 게임에 ‘제국의 지배자’가 되는 즐거움이 있다면, 조금 뜬금없게 들릴 수도 있다. 물론 시뮬레이션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들이 모두 권력지향적일 리 없다. 현실에서 권력을 행사하려면 엄청난 리스크와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타인을 억압하거나 제거하는 폭력의 문제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회적 법과 제도를 통해 이러한 욕망을 통제해 왔다. ‘게임’으로서의 시뮬레이션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본래의 시뮬레이션이 그랬듯이 현실의 비용—물리적·경제적·윤리적 비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놀이를 위한 시뮬레이션은 제한된 가상세계 안에서 적당한 성취를 맛보게 하고, 그 과정은 현실보다 훨씬 가볍다. 이 가성비 높은 즐거움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이 바로 ‘추상화’다. 현실에서 어떤 욕망을 구현하려면 수많은 조건들이 따라붙지만, 놀이로서의 시뮬레이션은 그중 많은 요소를 과감히 생략한다. 전략 시뮬레이션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를 보자. 플레이어는 군웅할거의 시대에서 천하통일을 목표로 한다. 영토는 인구와 생산력 같은 기본 스탯을 가지고 있고, 내정을 통해 수치를 끌어올린다. 군대를 징병하려면 농업·상업 개발과 인구 증가를 통해 얻은 금과 식량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내정’이라는 복잡한 개발 과정은 게임 안에서 그저 장수에게 하나의 커맨드를 실행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렇게 간단히 처리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현실의 토지개발 과정을 그대로 모사하면 게임의 주제—군웅할거의 경쟁—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시뮬레이션이 주는 즐거움에 방해가 되는 요소는 현실과의 대응 여부가 아니라, 재미를 기준으로 무엇이 남고 무엇이 사라지는지가 결정한다. <심시티>도 마찬가지다. 이 게임은 도시의 성장과 번영을 탁월하게 그려내지만, 그 우상향 그래프의 바탕에는 경제력, 특히 땅값과 세금 구조가 놓여 있다. 그렇기에 디테일을 구현하면서도, 예컨대 땅값 상승으로 기존 주민이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현실의 복잡한 요소들은 과감히 추상한다. 결국 시뮬레이션 게임을 평가하는 하나의 질문은 “무엇이 추상되었는가?”다. 이 기준을 플레이어마다 다르게 받아들이기에 장르 안에서도 다양한 논점이 발생한다. 실제 전투기와 흡사한 디테일이 ‘진정한 시뮬레이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에이스 컴뱃>이 납득되지 않는다. 반면 <팰콘 4.0>의 <자본론>보다 두꺼운 매뉴얼 앞에서 좌절한 이들에겐 정도면 충분히 ‘현실적인 시뮬레이션’이다. 추상과 정치 이 지점에서 ‘시뮬레이션’과 ‘시뮬레이션 게임’은 분리되어야 한다. 양자는 정치적으로 다른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무엇을 추상하고 무엇을 남겼느냐가 즐거움의 기준이 되는 순간, 게임은 의도치 않은 정치적 해석에 휘말릴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심시티>의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도 여기에 속한다. <문명> 시리즈는 이런 문제가 훨씬 더 첨예하게 드러나는 사례다. 이 게임은 인류사를 데이터와 연산을 기반으로 재구성하며 플레이어에게 ‘다른 시간선’을 만들어낼 기쁨을 준다. 실존 역사와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 자체가 즐거움의 원천이다. 하지만 제작사는 이 현실과 가상 사이의 간극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 왔다. 서구 백인 남성 중심으로 쓰인 기존 역사 서술의 한계를 보완하고자 지도자의 성비를 조정하고, 말리·하와이·폴리네시아 같은 비서구 문명을 적극 편입했다. 최근 시리즈일수록 점령과 정복 중심의 승리 조건에서 벗어나 과학·문화·종교·외교 승리 등 다양한 엔딩을 제시하며 제국주의적 서사의 편향을 완화하려 노력한다. 그럼에도 “역사에 승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따라붙는다. 이는 결국 ‘추상’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시뮬레이션 게임은 고정된 서사를 보여주는 대신 여러 요소를 배치해 플레이어가 조합하도록 설계한다. 이 과정에서 재미를 위해 무엇을 추상할지 결정하는 순간, 의도와 다르게 정치적 메시지가 발생할 수 있다. 재미를 위한 삭제가 ‘의도적 누락’으로 읽힐 때, 게임은 본래의 목적을 떠나 새로운 의미를 낳는다. 플레이어가 만들어내는 이야기와 세계를 구성하는 데이터의 일부가 빠져 있다는 사실은, 그 세계가 이미 정치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현실 모사와 재미, 혹은 즐거움의 문제로서의 시뮬레이션 게임 커뮤니티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 중 하나는 “게임은 재미가 최우선!”이다. 하지만 나는 이 말에 온전히 동의하진 않는다. 게임만이 재미를 추구하는 매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뉴스나 다큐멘터리도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재미’를 준다. 특히 현실의 논리를 재현하는 시뮬레이션 장르에서는 이 문제가 더욱 복잡해진다. 시뮬레이션 게임은 현실의 구조를 기반으로 삼되, 재미를 위해 일부 요소를 추상해야 한다. 이는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요구와 ‘재미있어야 한다’는 요구가 충돌하는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시뮬레이션 게임은, 앞서 언급한 오토마타 비유를 조금 바꿔 말하면 마치 건프라 조립 세트에 가깝다. 완성품을 감상하는 즐거움과 만드는 과정의 즐거움이 하나의 패키지로 묶여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은 결국 현실의 특정 논리를 어떤 방식으로든 모사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현실의 모든 요소를 담아내는 시뮬레이션은 이미 게임이 아니라 실제 시뮬레이션 시스템이다. 게임으로 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추상이 필요하고, 그 추상은 곧 ‘무엇을 빼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는 선택을 포함한다. 이 선택이 바로 정치다. 따라서 시뮬레이션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것은, 어쩌면 상당히 정치적인 행위다. 무엇이 빠져 있고, 무엇이 강조되었는지, 그 결과로 만들어진 세계가 어떻게 ‘완전한 작동’처럼 느껴지는지를 살펴보는 일. 이러한 감상과 이해는 시뮬레이션 게임을 보다 비평적으로 즐기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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