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의 ‘양식화된’ 태그를 통해서 본 예술로서의 게임, 혹은 게임으로서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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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6. 4. 10.
“예술이 의지가 펼치는 궁극의 게임이라면 ‘스타일’은 이 게임을 하는 일련의 규칙으로 구성된다.”[1]
지금으로부터 자그마치 12년 전, 그러니까 2014년에 ‘태그’ 기능이 스팀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스팀은 스스로 이 기능을 “새롭고 강력한 게임 구매 방법”이라 설명한다. “지속적으로 부착된 태그는 독립적인 부류로 나누어지고, 모두가 함께 정의한 장르, 주제, 특징으로 나누어진 상품들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 즉 여기서 ‘태그’는 “장르, 주제, 특징”과는 다른 제4의 분류법이다. 나아가 스팀의 ‘태그’ 기능 소개 페이지는 “어떤 단어로도 태그를 달 수 있”음을 명시한다.
“장르를 분류할 때는 ‘퍼즐’을, 주제를 분류할 때는 ‘군사’를, 특징을 보여주고 싶으면 ‘어려움’을 쓰시면” 되지만, “제품에 걸맞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는 것도 좋”을 때도 있다[2]. 이 문장을 읽자마자 예상할 수 있듯이, 이러한 임의적 민주주의는 해당 기능이 본래 의도한 대로 작동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는다. 실제 게임 내용과 “장르”적으로도 “주제”적으로도 “특징”적으로도 전혀 무관한 ‘밈’, ‘심리적 공포’, ‘LGBTQ+’ 등의 태그를 다는 장난질은 꾸준히 성행해 왔다. 그리고 이처럼 명백한 악용 사례를 넘어, 그 뒤에 숨겨진 의도조차 알기 힘든 태그도 있다. 바로 ‘양식화된’이다.
사실적인과 양식화된

‘양식화된’은 영어 태그 ‘Stylized’를 번역한 것으로, 원본 단어를 보아도 그 뜻은 다소 아리송하다. ‘양식 (Style)’을 ‘스타일’로 직접 음차한 표현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자주 사용하지만, 그럼에도 보통 무언가의 맵시가 멋지거나 뛰어날 때는 ‘스타일리쉬’하다는 형용사를 자주 쓰지, ‘스타일라이즈드’되었다는 수식어는 익숙하지 않다.
이 스타일라이즈드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대표적인 사례는 시각적 게임 디자인의 두 갈래 중 하나로 ‘리얼리스틱’, 즉 ‘사실적인’의 반대편을 일컬을 때이다. <호라이즌 제로 던>과 <배틀필드> 시리즈 등 개발에 참여한 3D 디자이너 킴 아바 (Kim Aava)는 게임 디자인에서 사실주의가 실사를 모방하는 그래픽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양식화된 디자인은 현실을 굳이 재현의 기준으로 삼지 않은 채 자유로운 표현을 목표로 하는 방법론이라 규정한다.
그런데 이렇게 구분하는 도중에 아바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지점을 강조한다. 바로 사실주의도 결국엔 양식에 속한다는 것이다. 사실주의는 어디까지나 더 ‘사실적’으로 보이기 위해 이상화된 현실의 이미지를 참조할 뿐이며, 무엇보다 “우리가 10년 전에 사실적으로 보인다 믿었던 것들이 오늘날엔 사실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으며, 그것들은 누군가에겐, 당시에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내렸던 선택들로 인해 심지어 양식화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3].” 즉, 현실을 과장한 표현이든, 현실을 단순화한 표현이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최대한 모방하려 한 표현이든 전부 어떠한 ‘양식’을 이룬다는 점에서는 다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충실한 모방과 재현은 마치 예술가의 표현적 선택에서 면제되는 듯한 인식이 퍼져 있어, 사실상 ‘사실주의, 그리고 나머지’ 모든 작품이란 범주가 통용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는 미국의 작가 수전 손택 (Susan Sontag)이 1965년도 에세이 <스타일에 관하여>에서 ‘리얼리즘도 하나의 스타일 관습에 지나지 않는다’ 가정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4].
그렇다면 ‘양식화된’ 태그엔 ‘현실적’ 태그 바깥의 모든 게임이 들어가 있는 것일까? 현재 이 글을 쓰고 있는 2026년 3월 16일 오전 5시 43분 시점에 해당 태그를 클릭해 들어갔을 시 가장 상위에 뜨는 3편의 게임은 중세 타워 디펜스 게임 <쓰론폴 (Thronefall)>, 아니메 확률형 아이템 수집 RPG 게임 <소녀전선2: 망명>, 코스믹 호러 낚시 게임 <드레지 (DREDGE)>이며, 조금 더 밑으로 내리면 <바둑>이란 제목의 아주 직설적인 바둑 게임도 있다.
확실히 네 편의 게임 모두 시각적 현실 재현이 목표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점 외에 별다른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사실주의가 아닌 표현주의적 양식을 지니고 있음에도 ‘양식화된’이란 태그가 붙지 않은 게임들이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울트라킬 (ULTRAKILL)>, <멈추지 마, 걸리팝! (Don’t Stop, Girlypop!)>, <스프롤 (SPRAWL)>의 세 작품은 전부 극도로 강조된 색채나 한 알 한 알이 두드러지는 픽셀, 투박하게 각진 로우 폴리곤 등, 현대 기술 수준에서 재현할 수 있는 현실성과 아주 거리가 멀어 보이는 표현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양식화된’ 페이지에 기재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쓰론폴>과 <울트라킬> 사이를 나누는 그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쓰론폴>을 분류하는 태그인 ‘양식화된’은 <울트라킬>, <멈추지 마, 걸리팝!>, <스프롤>에 붙어 있지 않지만, 마찬가지로 이 세 게임도 <쓰론폴>에게 없는 공통적인 태그를 하나 달고 있다. 바로 ‘부머 슈팅’이다. ‘부머 슈터’는 1990년대를 풍미했던, 다시 말해 베이비부머 세대가 즐겼던 ‘복고풍’ FPS 게임 양식을 일컫는 표현이다. ‘부머 슈팅’ 말고도 <울트라킬>이 속한 태그인 ‘복고풍’, <멈추지 마, 걸리팝!>을 장식하는 ‘1990년대’, <스프롤>을 부연하는 ‘올드 스쿨’이 이를 확인해 준다.
물론 정말 90년대 PSX 부머 슈터 게임을 표방하고 있는 <울트라킬>과 달리 <멈추지 마, 걸리팝!>과 <스프롤>은 Y2K 2000년대 미학을 자칭하고 있으므로 저 태그들이 정확한 설명을 해주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대한 근접하게라도 이들이 지향하는 바를 일컬을 어휘가 스팀 상에 입력돼 있다는 얘기다 (어쩌면 ‘당시에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내렸던 선택들로 인해 심지어 양식화된 것으로 보’이게 된 양식을 말하는 ‘복고풍’이 저 셋을 더 잘 묶어줄 수 있겠지만, 스팀 사용자들의 임의성은 복고 ‘FPS’라는 특징에 더 주목을 해 ‘부머 슈팅’으로 퉁쳐 버린 듯하다).
<쓰론폴>과 <드레지>의 경우엔 색채의 과장과 세부 묘사의 생략, 형상의 단순화 등을 통해 독특하고 고유한 양식을 이루고 있음에도, 이들이 구현하고 있는 양식을 일컬을 기존의 태그가 스팀에 존재하지 않는다. 분명히 이 두 게임에선 ‘양식이 두드러지지만’, 그 양식을 뭐라 따로 분류할 범주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소녀전선 2: 망명>에겐 이미 ‘애니메이션’이란 태그가 존재하고, <바둑> 같은 경우는 배경 공간을 추상화하거나 생략했을 뿐 오히려 바둑판 자체는 꽤나 현실의 물건과 유사하게 구현된 듯하며 전체적으로 시각적 창의성과도 거리가 멀어 보이는데 어째서 ‘양식화된’ 태그가 아래 있는 것인지 다소 아리송하다.
양식과 양식화된

태그의 최신 분류는 앞서 말한 사용자 중심 운영 체제의 임의성에 영향을 많이 받아 범주도 작품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수 있으니, ‘양식화된’ 태그 아래 ‘최고 평가’를 들어가 보자. 여기선 그나마 조금 그림이 명확해지는 듯한데, <펜티먼트 (Pentiment)>, <슬러지 라이프 (SLUDGE LIFE)>, <에코 포인트 노바 (Echo Point Nova)> 등 기존 장르 바깥의 고유한 양식이 확연히 두드러지는 게 보이는 게임들이 모여있다.
그런데 말이 쉽지, 이 ‘양식이 두드러진다’라는 건 애초에 무엇인가? 양식을 이해하기 위해선. 앞서 리얼리즘을 당연시하는 풍조에 경종을 울렸던 수전 손택의 <스타일에 관하여>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손택은 우선 양식 혹은 스타일을 “작품의 인상 또는 리듬”이라고 표현한다[5]. 그리고 단연 예술을 넘어 “어떤 말이나 움직임, 행동이나 사물이 직접적이고 실용적이고 무감한 표현이나 존재에서 벗어난 특질을 보인다면, 그것에 ‘스타일’이 있다” 말한다[6]. 결국 이러한 개념과 사고의 확장과 전개는, 현실과의 관계에서 “스타일이 곧 예술”이라는 감격스러운 정의로 향한다[7].
이미 예술이 곧 스타일, 다시 말해 양식이라면, ‘양식화되었다’는 건 무슨 말인가? 손택은 예술가가 “주제와 형식 사이에서 굳이 필요하지 않은 구분을 지을 때”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즉 “스타일과 주제가 서로 대척할 때, 주제가 어떤 스타일로 다루어졌다”, 또는 ‘양식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8]. “‘스타일’과 ‘스타일화’을 나눈 것이 의지와 고집의 차이와 유사하다”[9] 그러니까 원론적으로 보면 ‘양식화된’은 비판적 표현이다. 이미 근본적으로 내용도 표현도 모든 것이 구분 없이 총체적으로 양식인 예술에서, 굳이 불필요하게 양식이라는 분리된 범주에 집착해 “조화가 부족한 과잉의 예술”이란 결과를 낳게 되는 경향을 질타하기 위해 사용된 단어이니 말이다[10].
다만 스팀 페이지에서 게임에 부착된 ‘양식화된’이라는 태그가 해당 게임이 스타일을 실험하다 자기 복제에 빠져 상상력이 소진된 결과물을 낳았다고 비판하기 위해 적용된 것은 아니리라 믿어진다. 애초에 스팀이 자신 있게 알려주듯이, 태그 기능은 게임을 “구매”하라고 발명된 장치이지 않은가.
이 시점에서 손택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영역은 ‘양식화된’ 자체보단 그 안의 ‘양식’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단서에 그친다. 그럼 다시 태그의 실제 사례들로 돌아가 보자면, <펜티먼트>, <슬러지 라이프>, <에코 포인트 노바>는 전부 각각이 고유한 “인상 또는 리듬”을 전면에 부각하고 있다. <펜티먼트>는 목판화를 차용한 2D 그래픽, 펜으로 직접 쓰이는 듯 서서히 나타나며 그 과정에서 밑줄 강조나 오타 수정들까지 애니메이팅되는 대사 글씨, 맵을 이동할 때 책 페이지가 넘겨지는 효과로 전환되는 화면 등, 게임 전체가 16세기 근세 유럽의 양식을 구현하고 있다. <슬러지 라이프>의 화면 전체에 색조 및 저해상도 필터가 강하게 들어가 있으며, 모델링은 전부 둥글둥글하고, 텍스처는 색조 필터 아래로도 가려지지 않을 만큼 또 더 대비가 뚜렷하고 강한 단색을 기용하고 있다. 따라서 텍스처에선 (텍스처는 의미상 질감을 뜻함에도 불구하고) 질감이 느껴지지 않고, 이는 모델링의 곡선과 공명해 그 ‘둥근’ 효과를 증폭시킨다.
하지만 화면 전환 및 UI 상의 VHS 효과, 맵 공간을 채우고 있는 녹색의 스모그, 그리고 담배, 캔, 팝업 창과 같은 일상 사물들의 반복 등은 필터로 잔뜩 왜곡되어 침침한 시야와 다시 만나 ’지저분한’ 감각을 생생히 느끼게 해주고, 이 상반되는 두 감각, 즉 ‘마찰 없는 더러움’은 제목인 ‘진흙탕 인생’을 하나의 고유하고 완결된 양식으로 구현한다. <에코 포인트 노바>에선 모든 것이 매끄럽게 빛나는 미래적 기술에 대한 예측이, 산산이 부서져 부유하는 자연 및 폐허와 만나, 마치 천상에 대한 환상과 같은 신비로운 감각을 준다. 그리고 이 감각을 앰비언트/드럼 앤 베이스 음악이 하나로 묶어, 빠르고 복잡한 이동 기술과 사격을 중심으로 하는 소위 ‘스타일리쉬’한 액션과 융합한다. 그리고 이 세 게임은 <쓰론폴>, <드레지>와 마찬가지로, 각 작품의 양식을 설명해 줄 ‘부머 슈팅’과 같은 기존 범주가 존재하지 않는다. <펜티먼트>의 경우 시대적으로도 근세 배경에 ‘중세’ 태그는 부정확하고, <크루세이더 킹즈 (Crusader Kings)>나 <마운트 앤 블레이드 (Mount & Blade)> 같은 또 다른 ‘중세’ 게임들도 해당 시대를 그저 재현하는 데 치중하는 장르를 이룰 뿐이지 ‘중세 미학’ 그 자체를 재현하거나 재해석하는 양식을 선보이진 않는다. 나아가 <슬러지 라이프>와 <에코 포인트 노바>는 기존의 여타 어떤 양식에도 속하지 않는 독특한 미학을 체화하고 있으니 당연히 스팀에 이들의 양식을 일컬을 범주가 없다. 단 하나의 항목만을 지니는 범주는 범주가 아니라 그저 그 개체 자체의 이름일 뿐이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여기서 ‘양식화된’은 어떠한 게임이 돋보이는 양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 양식을 일컬을 기존의 다른 태그가 스팀 내에 없을 때 포괄해주는 분류 항목으로서 가장 일차적인 목적을 성취하는 듯 보인다.
양식과 플레이, 그리고 의지

‘양식화된’이 그저 기존 분류에 담기지 않는 게임들을 위한 잔여 항목들의 모음집으로서 형성된 것이라 하더라도, 이 ‘기타 등등’들의 구심점으로 ‘양식화’라는 키워드가 선택되었어야 했던 이유엔 아직 더 파고들 구석이 남아 있는 듯하다. 어째서 태그 체계는 사실주의를 기준으로 삼아 그 나머지를 비교 대상으로 삼는 ‘양식화된’의 구도를 빌려와 분류 범주를 구성해야 했을까? 바꿔 말하자면, 어째서 게임은 하나의 양식과 나머지 양식으로 망라되어야 했으며, 양식이 이 모든 걸 나누는 윤곽이 되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니까 왜, 태그 분류 체계 안에 ‘양식화된’은 있는데 ‘내용화된’은 없는가?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선 먼저 태그 범주가 어떻게 양식과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스팀 내 태그들엔 ‘장르’, ‘하위 장르’, ‘비주얼 및 관점’, ‘테마 및 분위기’, ‘특징’이라는 상위 대분류가 있어 각 범주들을 또 한 차례 나눠 담고 있는데, 예를 들어 ‘양식화된’은 ‘비주얼 및 관점’에 속한다. 그뿐 아니라 시청각적 미학의 양식은 거의 ‘비주얼 및 관점’에 속하고 스토리나 주제의 내용적 특징은 주로 ‘테마 및 분위기’를 구성한다. 문제는 에코 포인트 노바에서 ‘스타일리쉬’하게 구사되는 액션, 즉 플레이 형식 같은 경우에 ‘장르’와 ‘하위 장르’를 오롯이 독차지하면서도 ‘비주얼 및 관점’과 ‘테마 및 분위기’, 그리고 ‘특징’에도 섞여 들어가 있어, 분류 체계 안에서 양식과도 혼재하고 내용과도 범주를 같이 쓴다는 것이다. ‘귀여운’이라는 미적 양식과 ‘1인칭’이라는 플레이 형식이 ‘비주얼 및 관점’ 아래 함께 들어가 있고, ‘포스트아포칼립스’나 ‘감정적인’이란 주제적 성질과 ‘낚시’나 ‘암살’의 플레이 형식이 ‘테마 및 분위기’ 아래 같이 속한다. ‘특징’은 오히려 또 다시 ‘장르’들처럼 플레이 형식 위주의 범주이지만 ‘PvP’와 ‘퍼마 데스’ 사이에 ‘풍부한 스토리’가 끼어 있다.
결국 플레이 형식은 태그를 양식과 내용으로 분류할 수 없도록 그 구분을 흐리는 주범이다. 그리고 게임 측에서 제공하는 플레이 형식에 더해 플레이어가 취하는 플레이 방식, 다시 말해 소위 ‘플레이스타일’이라 불리는 작품 향유 양식까지 고려하면 분류는 더욱 요원해진다. RPG 게임 등에서 가능한 한 모든 선택지를 보거나 최선의 선택지를 얻기 위해 세이브 파일 저장과 불러오기를 반복하는 ‘세이브 스커밍 (save scumming)’은 플레이어가 내용과 관계하는 방식을 일컫고, FPS 게임에서 컨트롤러를 흔들며 조준해 반동을 조절하는 ‘지터 에임 (jitter aim)’은 형식과 관계하는 방식을 말하지만 둘 모두 플레이스타일에 속한다. 예술 작품 자체가 본래 “경험하는 사람의 협력에 크게 의존”하지만, 그중에서도 독자를 더 가까이, 깊게 끌고 들어오는 게임이란 갈래에서 그 협력의 양식이 플레이어에게 수용되는 내용에든 양식에든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은 명백하다[11]. 실로, ‘테마 및 분위기’ 아래 있는 ‘공포’, ‘귀여운’, ‘유머’ 등 정동을 중심으로 한 태그들은 게임에서뿐 아니라 다른 예술 장르에서도, 양식을 기술할 때도 사용될 수 있고 내용을 수식할 수도 있는 단어들이다.
‘양식이 두드러지는 게임’들, 그러니까 <펜티먼트>, <슬러지 라이프>, <에코 포인트 노바>의 ‘양식화된’ 삼총사든, <울트라킬>, <멈추지 마, 걸리팝!>, <스프롤>의 ‘복고풍’ 삼총사든, “직접적이고 실용적이고 무감한 표현이나 존재에서 벗어난 특질”을 첨예하게 구성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들이 특별히 다른 게임에 비해 “주제와 형식 사이에서 굳이 필요하지 않은 구분을” 지으며 내용을 경시하거나 도구화하는 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 작품들 내에서 “스타일과 주제가 서로 대척”하긴커녕, 양식과 내용은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고 상승시키며 “조화”를 이루고, 근본적으로 자신들 사이의 “굳이 필요하지 않은 구분”을 삭제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최종적으로 묶는 건 ‘플레이’라는 기제다. 애초부터 게임을 다른 예술 장르와 구분하며, 기타 예술이 동경해 마지않는 그 궁극의 관객 참여 장치 말이다. 게임의 모든 예술적 요소들은 놀이라는 게임의 본색에 전적으로 징용된다. 그러니 플레이라는 대의 아래 양식이든 내용이든 나눠 봤자 하등 의미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양식과 내용의 구별이 그렇게나 의미가 없다면, 왜 제3의 명칭이 아닌 ‘양식’이 아직도 태그의 이름에 포함되어 있는가? “스타일이 곧 예술”이라면, 플레이는 그 양식이 본격적으로 향유되어 작동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 플레이 또한 그만의 고유한 양식을 갖는다. 게임에서 양식과 플레이는 서로가 서로를 작동시키고, 서로가 서로의 필요 조건인, 같은 진실의 두 화신 데미우르고스[12]다.
이 둘 모두를 발생시키는 공통된 진리는 바로 의지이다. “예술은 의지를 구현하고, 또 자극하거나 일깨우는 사물이나 공연이다. 예술가의 관점에서 보면 예술은 의지를 구현하는 것이며, 관객의 관점에서는 의지를 구현할 가상의 배경을 창조하는 것이다.[13]” 양식은 의지가 발현되는 그 모습을 일컫는 것이지만, 게임에서 양식은 플레이라는 관객과 작품 간 상호작용에서 마침내 현현하고, 또 플레이가 자신의 양식을 가짐으로써 분리할 수 없는 영혼을 구성한다. 그리고 모든 예술이 “관객의 관점에서는 의지를 구현할 가상의 배경을 창조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일컬을 뚜렷하고 자연스러운 이름이 없어 ‘관객 참여형’과 같은 부자연스러운 접두사의 이식을 필요로 하는 반면, 게임은 플레이를 본원적으로 내재한다. “스타일은 예술 작품에서 결정의 원칙이자 예술가의 의지를 드러내는 특징적 표식이다.[14]” 게임의 플레이에선 개발자의 의지뿐 아니라 플레이어의 의지도 춤을 추며, 플레이스타일은 그 춤선을 일컫는다.
그러니, 양식과 내용 모두 게임에서 플레이에 복무함에도 양식이 갖는 동등한 협업자적 위치와 내용의 순수한 기능적 위치는 다르다. “예술에서 ‘내용’이란 본질적으로 형식적인 변형 과정에 의식을 끌어들이는 구실이며, 목적이자 미끼다.[15]”
이 지점에서 내용과 양식 중 후자만이 그 두드러짐의 이름을 태그 분류 속에서 따로 얻게 된 연유는 분명해 보인다. 아무리 사실주의에 많은 환상이 덮어 띄워져 있다 하더라도, 그 사실주의조차 여전히 하나의 양식으로서 내용에 비해선 예술의 본질에 가까운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이다. “쾌감이 예술 작품의 유일하게 타당한 목적이며 그 자체로 충분히 정당화된다”면 게임에서 플레이는 그 쾌의 발생을 일컫고, 양식은 쾌가 발생되는 형태와 배경을 아우르는 관념이다[16]. 그리고 내용은 양식에 속하는 한 부품에 불과하다. 만일 태그에 ‘내용이 두드러지는’ 게임을 담는 항목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양식화된’ 아래 하위 범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변화하는 미적 경험의 현장으로서 ‘양식화된’

‘양식화된’의 정체를 추적하기 위해 손택의 지도를 따라간 자리엔, 우리가 ‘좋은 게임’이라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통찰도 자리한 듯하다. 우리가 훌륭한 양식이라 부르는 것은 쾌를 탁월하게 제공하는 것이며, 게임에서 양식을 호명해야 했던 이유도 쾌 창출의 배경을 뛰어나게 구성하는 작품을 검색할 수 있어야 하는 필요에 의해서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좋은 게임은 어디까지나 쾌를 잘 주는, 재미있는 게임인 것이다. 예술이 그렇듯이. “세상은 궁극적으로 미적 현상이다.[17]”
태그 체계의 작동은 재밌는 게임, 좋은 게임을 찾기 위한 플레이어들의 십시일반 노력이다. “작품이 어떻게 반복되는지를 파악하지 못하면 그야말로 지각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된다. 반복을 인식해야만 예술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18]” 이런 면에서 시청각적 양식을 넘어 향유 양식까지 모든 양식에 이름을 붙이는 태그 체계는 제품으로서 게임을 구매하기 위한 방법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작품의 패턴을 따라 그 궤적을 그리고자 하는 향유자의 태도를 나타낸다 할 수 있다 (이쯤 되면 명백하겠지만, 모든 태그는 각각이 곧 양식이다). 태그 체계는 때로 임의성이라는 예측 불능의 부산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것은 향유자들이 자신의 감상을 기록하고 또 다른 잠재적 향유자에게 공유하는 이 미적 경험의 최전선이 얼마만큼의 열정과 혼돈을 (이 둘도 상호불가결하다) 품고 있는지 드러내는 지표일 뿐이다. 또 태그 체계가 스팀 측에서 제공한 장치임에도 각 항목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 또한, 사용자 책임 전가를 넘어, 결코 고정되는 일 없이 계속되는 과정인 열렬한 미적 경험의 한 양태였던 것이다.
‘양식화된’ 아래 게임들은 언제든지 자기 양식의 이름을 얻어 이사 나갈 수 있다. 어디까지나 ‘양식화된’은 당장 갈 곳 없는 게임들을 위한 임시 거처이니 말이다. <크루얼티 스쿼드 (Cruelty Squad)>, <마마의 잠든 천사들 (Mama‘s Sleeping Angels)>, <잼는 라쿤 게임 (Funi Raccoon Game)> 등 2020년대에 폭발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이 ‘눈 아프고 머리 아프고 정신 없는’, ‘추함’의 미학을 선보이는 게임들은 지금은 그 미학을 일컬을 이름이 없지만 이렇게 점점 그 흐름을 쌓아나가다 보면 이름을 얻게 되는 것도 눈 깜짝할 사이이리라. 하지만 그들이 성장해 독립한다 해도 ‘양식화된’이란 집은 그 이후의 또 다른 이단아들과 새로운 흐름의 탄생을 위한 경계 공간으로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결국 ‘양식화된’은 사실주의의 단순한 안티 테제를 넘어, 게임이란 예술의 유동성을 대표하는 태그라 할 수 있다.
[1] 수전 손택, 『해석에 반하여』 (서울: 윌북, 2025), 62쪽.
[2] https://store.steampowered.com/tag/steam/?l=koreana
[3] https://80.lv/articles/realistic-vs-stylized-technique-overview
[4] 수전 손택, 『해석에 반하여』, 42쪽.
[5] 위의 책, 56쪽.
[6] 위의 책, 67쪽.
[7] 위의 책, 58쪽.
[8] 위의 책, 42쪽.
[9] 위의 책, 63쪽.
[10] 위의 책, 44쪽.
[11] 위의 책, 46쪽.
[12] 데미우르고스는 본래 유일신 신앙인 기독교에서 갈라져 나온 한 분파, 즉 영지주의에서 그 신의 또 다른 현현을 일컫는다.
[13] 위의 책, 60쪽.
[14] 위의 책, 61쪽.
[15] 위의 책, 51쪽.
[16] 위의 책, 57쪽.
[17] 위의 책, 55쪽.
[18] 위의 책, 65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