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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점 게임의 새 지형도: 많이 목마른 소니, 아직 배고픈 MS
2D 횡스크롤 플랫폼 게임의 역사에 기념비적인 족적을 남긴 '록맨' 시리즈. 보스의 무기를 빼앗아 쓴다는 기믹과 대단히 어려운 난이도, 그리고 귀엽고 다부진 주인공 록맨으로 출시와 함께 게임 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캡콤은 1987년부터 30년 넘는 세월 동안 이 프랜차이즈를 이끌고 있다. < Back 독점 게임의 새 지형도: 많이 목마른 소니, 아직 배고픈 MS 09 GG Vol. 22. 12. 10. 독점? 그땐 그랬지… 2D 횡스크롤 플랫폼 게임의 역사에 기념비적인 족적을 남긴 '록맨' 시리즈. 보스의 무기를 빼앗아 쓴다는 기믹과 대단히 어려운 난이도, 그리고 귀엽고 다부진 주인공 록맨으로 출시와 함께 게임 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캡콤은 1987년부터 30년 넘는 세월 동안 이 프랜차이즈를 이끌고 있다. 〈록맨〉(1987)은 닌텐도 패미컴(ファミコン)의 독점 게임이었다. 클래식 록맨의 정식 넘버링 타이틀 기준, 록맨은 패미컴으로 6편, 슈퍼 패미컴으로 1편(록맨 7, 1995), 플레이스테이션(PS)으로 1편이 출시됐다. 2년 터울을 두고 출시한 〈록맨 2〉(1988)와 〈록맨 3〉(1990)은 나란히 100만 장 넘는 판매고를 넘기며 '캡콤 플래티넘 타이틀'에 올랐다 . 1987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록맨은 패미컴의 킬러 타이틀 중 하나였다. 클래식 록맨 시리즈가 PS에 이식된 것은 1999년의 일이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들 게임을 해볼 방법은 패미컴을 구하는 길밖에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가디언 히어로즈〉(1996)나 〈그란디아〉(1997)를 하려면 세가 새턴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이런 게임들이 시간에 흘러 타 플랫폼에도 이식되거나 리메이크되면서 (특정 기기를 소유하지 않은) 소비자는 아쉬움을 덜고, 공급자는 (이미 재미를 본) 타이틀의 재발매를 통한 경제적 효과를 보는 일이 예사였다. 그리고 어느 한편에서는 '늘 그렇듯이' 답을 찾으려는 몇몇 긱(Geek)들은 에뮬(Emulator)이라는 괴물을 창조하는 등의 방식으로 콘솔 없이 고전게임을 구동했다. 아무튼 오늘날까지 일본 주요 게임사들은 기간 한정 독점 발매 전략을 잘 쓰고 있다. 앞서 록맨 시리즈의 예를 든 캡콤이 대표적이다. 〈몬스터 헌터: 월드〉(2018)는 PS4, XBO 독점작으로 1월 발매되어 큰 인기를 누렸다. 캡콤은 콘솔 독점 발매 7개월 만에 스팀(PC)에서 게임 판매를 시작했고, 그 해 스팀에서 1,000만 장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스팀에서는 동시접속자가 투명하게 공개되는데, 출시 첫날 〈몬스터 헌터: 월드〉에 접속한 사람들은 24만 명을 넘겼다. 10년에서 7개월로 짧아진 독점 기간은 오늘날 게임 생태계의 시계가 얼마나 빠르게 흘러가는지를, 그리고 좋은 게임에 대한 대중적 요구가 얼마나 강력한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판매해야 할 물건이 소프트웨어만 있는 것이 아닌 회사들은 계산법이 다르다. 오늘날에도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2017)이나 〈모여봐요! 동물의 숲〉(2020)을 플레이하려면 필수적으로 닌텐도 스위치(NS)를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닌텐도는 서드파티의 게임이 자사 생태계에 입점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자신들의 킬러 타이틀이 다른 게임기에서 실행되는 부분에는 극도로 보수적이다. 〈포켓몬스터 소드·실드〉(2019), 〈파이어 엠블렘 풍화설월〉(2019)처럼 닌텐도가 유통하는 게임들도 좀처럼 스위치 바깥을 나가지 않는다. 오늘날 NS 바깥의 닌텐도 게임은 모바일게임 〈슈퍼 마리오 런〉(2016)이나 〈피크민 블룸〉(2021)처럼 소수 사례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NS는 5년 만에 1억 대가 팔렸다. 오늘의 주인공 소니는 어떨까?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PS에도 강력한 독점작 파이프라인이 작동한다. 최근 PS 독점으로 나온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2022)가 대표적이다. 전작 〈갓 오브 워〉(2018)의 PS4 독점이 풀린 것은 최초 발매로부터 약 4년이 지난 2022년이다. 〈호라이즌 제로 던〉(2017)이 PC로 간 시점은 3년이 지난 2020년 8월이다. 리메이크작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1〉(2022)에서도, 지난 10월 PC 버전으로 발매된 ‘언차티드’ 합본판에서도 소니가 여타 게임사보다는 긴 호흡의 기간 한정 독점을 가져간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최근 소니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베데스다가 포함된 제니맥스를 인수한 데 이어 액티비전블리자드(AB)까지 가져가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니는 MS의 인수가 성사되면 〈스타필드〉(2023)는 물론 북미 지역 현세대 최고 인기 게임 ‘콜 오브 듀티’를 PS에서 서비스하지 못하게 될까 우려하고 있다. MS Xbox의 필 스펜서는 "콘솔 독점권은 점점 더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시에 MS는 ‘콜 오브 듀티’에 대한 소니의 권리를 계속 보장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독점 게임과 시장 독과점 사이 MS가 벌이고 있는 공격적인 인수전에 대해서는 이미 좋은 자료가 많이 나와 있다. 이 글에서는 짧게 짚고 넘어가자. 요약하자면, MS는 우리 돈으로 90조 원이 넘는 금액을 100% 현금으로 지불하면서 AB를 사려 한다. 그러나 MS는 이미 게임 시장에 지배자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 규제 기관들은 이 딜을 검토해야만 한다. 현재 약 30여 개의 국가 규제당국이 MS의 AB 승인 건을 검토 중이다. 22년 9월, 영국 경쟁시장청(CMA)측은 시장 경쟁 하락의 이유로 인수를 일차 기각했으며,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도 11월 초 집중 조사를 개시했다. 미화 687억 달러가 오가는 역대급 인수합병을 반대하는 선봉에는 소니가 있다. 지난 8월 브라질 경제보호행정위원회(CADE)에 "MS의 인수는 독점 행위", "'콜 오브 듀티'는 유저 커뮤니티의 충성도가 높기 때문에 비슷한 예산으로 비슷한 작품을 만들어도 경쟁이 불가하다"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보냈다. 또 지난 11월, 영국 CMA는 소니와 MS가 제출한 서한 일부를 공개했다. 이때 소니는 "인수가 완료되면 Xbox는 콜 오브 듀티, 헤일로, 기어즈 오브 워, 둠, 오버워치 등 베스트셀러 FPS를 모두 살 수 있는 상점이 되면서 경쟁의 압박이 줄어들게 될 것"이라며 강력한 우려를 표했다. MS는 "PS의 월 사용자는 Xbox의 두 배에 달한다. 약 6천만 명 정도 더 많다", "소니는 MS보다 많은 독점 게임을 가지고 있다", "많은 콘솔 게이머가 ‘콜 오브 듀티’를 플레이하지 않는다"라며 CMA에 방어 논리를 전개했다. 명실상부 ‘콜 오브 듀티’는 서양, 특히 북미 시장에서 파괴적인 프랜차이즈다.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II〉(2022)는 지난 10월 28일 출시 이후 전 세계 매출 8억 달러(약 1조 1천 368억 원)를 벌었다. 액티비전은 보도자료를 내고 “영화 〈탑건: 매버릭〉과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의 박스오피스 오프닝 성적을 합친 것보다 높은 수치”라고 자찬했다. 영화를 ‘콜 오브 듀티’ 흥행 비교 대상으로 사용하기는 액티비전이 자주 쓰는 방식인데, 지난 2019년에도 액티비전은 "'콜 오브 듀티' 프랜차이즈의 전체 매출은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 시리즈 전체보다 많고 영화 '스타워즈'의 2배나 된다"라고 이야기한 적 있다. MS의 독점작이었던 ‘헤일로’, ‘기어즈’, ‘포르자 호라이즌’은 상업적으로 소니에게 절실한 타이틀이 아니었다.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SIE)이 거느리는 강력한 개발사군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흥행 보증 수표 ‘콜 오브 듀티’는 이야기가 다른 듯하다. 소니는 이 프랜차이즈를 계속해서 PS 생태계에 남겨둘 필요가 있다. 이번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II〉에서도 재차 확인되듯, '콜 오브 듀티'의 싱글플레이 분량은 점점 줄고 있다. 일각에서는 "멀티를 위한 튜토리얼로 전락했다"라는 비판이 나오지만, 게임의 멀티플레이 모드는 상당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현재 '콜 오브 듀티' 멀티플레이의 핵심 BM은 스킨인데, 앞으로 ‘콜 오브 듀티’가 PS에서 빠지면 소니는 인 게임 결제 수수료 30%를 잃게 된다. 더구나 MS는 토드 하워드의 신작 〈스타필드〉 출시 플랫폼에 PS를 제외했다. 많이 목마른 소니, 아직 배고픈 MS MS의 AB 인수에 소니는 적잖은 부담감을 느끼고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최근 소니의 게임 분야 실적도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다. 지난 2분기 소니의 게임 분야 영업이익은 421억 엔(약 4,051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9.1% 감소했다. 소니의 실적을 이끈 쪽은 카메라, 영상 장비, 반도체 분야와 음악사업이었다. 그래서 소니는 목이 많이 마르다. 오랜 기간 독점 게임을 서비스하며 성과를 냈던 소니가 이제는 MS 독점 게임에 대응해야 하는 반대 입장에 서게 됐다. 우려를 불식하려는 듯 MS는 소니에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10년 계약 연장을 제안했다. 소니와 액티비전 사이에 맺어진 이전 계약은 2024년에 만료된다. MS에 급한 사안은 세계 규제기관의 승인이므로, 자신들이 시장 독과점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낼 필요가 있다. 애플과 에픽게임즈가 서로에게 소장을 날리며 인앱결제 수수료를 놓고 법률 다툼을 하는 것과는 다르게 MS와 소니는 규제기관에 보내는 ‘입장문’과 투자로 상대적으로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소니의 투자를 보면 독점 게임 철학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소니는 한때 MS 산하에 있던 ‘데스티니’ 시리즈의 번지를 인수했고, 지난 31일에는 〈엘든 링〉(2022)의 개발사 프롬 소프트웨어의 지분 14.09%를 확보했다. MS는 아직 배가 많이 고프다. 이미 윈도우라는 설명이 필요 없는 OS를 보유하고 있고, Xbox 기기를 판매 중이며, 월 구독 모델인 Xbox 게임패스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 중이다. 게이머에게 확실히 그 존재를 각인시킨 게임패스는 독점 게임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스타필드〉나 〈엘더 스크롤 6〉가 게임패스에 입점한다면, 자사 콘솔과 PC를 아우르는 독점 게임 모델이 출현하게 된다. MS는 게임패스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서라면 일부 콘솔, DL 매출을 포기하고 게임패스에 게임을 포함할 수 있다. 캡콤의 〈몬스터 헌터: 월드〉 사례처럼 짧은 독점 기간을 가져갈 가능성도 있다. 소비자는 더이상 독점 게임을 해보기 위해 콘솔을 구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을 피할 수 있다. 국제적인 반도체 수급난이 계속되거나, Xbox 하드웨어 보급이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판단된다면, MS는 게임패스에 힘을 더 실어줄 것이다. 콘솔 사용이 주는 고유한 재미가 변함이 없다면, MS의 ‘하드웨어 + 게임패스’ 투 트랙 전략으로 일어날 자기잠식효과도 치명적인 수준으로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필 스펜서는 ‘클라우드 게임 등으로 콘솔 시장이 위축되지 않겠느냐’라는 물음에 "모바일과 태블릿 등 일부 주요 기기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지만, 가정용 콘솔이 게임을 경험할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이야기한 적 있다. 최근 필 스펜서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꺼냈다. 그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콘솔 독점 게임은 갈수록 보기 힘들어질 것"이라며 "유저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사용 기기에 상관없이 친구들을 만나 플레이하도록 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이 발언 이후, 〈스타필드〉의 PS 출시가 배제되었기에 일각에서는 기업의 언행 불일치를 지적했다. 필자는 싱글플레이가 중요한 게임은 (기간 한정) 독점으로 가져가고, 멀티플레이가 중요한 게임은 여러 플랫폼에 열어놓겠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MS의 AB 인수가 성사되면, MS는 다음 사냥감을 찾아 나설 것으로 보인다. 게임 애널리스트 다니엘 아흐메드는 "게임패스가 이제 Xbox 생태계의 중심에 서면서 MS가 서비스 가치를 높이고, 새로운 유저 유입으로 이어지는 독점 콘텐츠와 IP에 투자하는 게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이에 지지 않으려 소니는 열정적으로 파트너를 찾고 있다. 바로 3주 전 흥미로운 보도가 나왔다. 바로 소니가 한국의 엔씨소프트와 손을 잡고 〈호라이즌 제로 던〉 기반 MMORPG를 개발 중이라는 소식. 엔씨소프트는 "현재 개발 중인 미공개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는 확인이 어렵다"라는 입장이다. 지난 11일, 엔씨소프트는 컨퍼런스콜에서 "아주 훌륭한 글로벌 파트너와 저희가 협력하는 내용이 많이 진행됐다. 회사 이름 공개를 할 순 없으나 곧 사업 쪽에서 발표드릴 것"이라고 말한 적 있는데, 이 '아주 훌륭한 파트너'는 소니일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콘솔 삼국지’에서 닌텐도는 독야청청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닌텐도의 독점 게임 정책은 전통적이면서 일관된 면이 있다. 게이머에게 닌텐도의 기조는 이미 ‘당연한 조건’처럼 인식되기 때문에, 닌텐도의 독점 정책을 힐난하는 소비자는 드문 듯하다. 그렇게 〈포켓몬 스칼렛·바이올렛〉(2022)은 출시 3일 만에 천만 장을 팔았고, 〈스플래툰 3〉(2022)도 출시 사흘 만에 일본에서만 345만 장 판매됐다. 그러나 하드웨어 판매 실적이 부진한 탓에 닌텐도의 연 매출은 소폭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도 닌텐도의 소프트파워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듯하다. 독점 게임에 새 지형도가 펼쳐져도 닌텐도 월드는 굳건할 것만 같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김재석 8년 동안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서브컬처 스타트업에서 대외협력을 맡고 있다.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 [논문세미나] From geek masculinity to Gamergate: The technological rationality of online abuse
이 논문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플랫폼을 중심으로 자행되는 사이버 폭력의 배경을 밝히기 위해 우선 기술 또는 게임로 정체성을 유지하는 오타쿠 남성성이 있음을 짚어낸다. < Back 16 GG Vol. 24.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보라무 사회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연구합니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결국 인간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 게임과 시신경제 (Necronomics)
시신경제 (Necronomics)는 아킬레 음벰베 (Achille Mbembe)의 시신정치 (Necropolitics)에서 영감을 받은 개념이다. 시신정치는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의 생명정치 (Biopolitics)가 권력이 생명의 영역을 지배하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지만 정작 동시대의 현실은 죽음을 단지 생명권력 (Biopower)을 위한 수단으로 경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으로서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 Back 게임과 시신경제 (Necronomics) 22 GG Vol. 25. 2. 10. * <엘든 링>의 대표적 룬 노가다 장소 시신경제 (Necronomics)는 아킬레 음벰베 (Achille Mbembe)의 시신정치 (Necropolitics)에서 영감을 받은 개념이다. 시신정치는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의 생명정치 (Biopolitics)가 권력이 생명의 영역을 지배하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지만 정작 동시대의 현실은 죽음을 단지 생명권력 (Biopower)을 위한 수단으로 경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으로서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1] . 즉, 생명정치의 관점에서라면 제도적 폭력이나 전쟁이 발생시키는 죽음은 결과적으로 생명권력을 극대화하는 데 기여하는 장치여야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이미 죽음으로 권력이 이양되었고 따라서 생명보다도 죽음 그 자체의 극대화가 목표라는 것이 시신정치의 전망이다 [2] . 시신경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생명이 가치를 띠고 교환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곧 재화가 되는 체계에 주목한다. 즉, 살아있는 인간의 목숨보다 죽은 뒤 그 신체의 교환 가치가 더욱 높게 매겨지는 현실인 것이다. 게임 속에서 시신경제는 이미 가장 보편적인 체계 중 하나로 기용되고 있다. 적과의 전투를 주 플레이 내용으로 삼는 액션 게임에서 적의 죽음은 경험치뿐만 아니라 화폐의 축적에도 계산된다. 우리는 흔히 ‘노가다 (farming)’라는 어휘로 불리는, 획득 화폐의 극대화를 위한 적 살해의 최적 효율 전략을 잘 알고 있다. 물론 보통 적 살해 자체가 금전의 획득을 보장하지는 않고 시체의 인벤토리를 뒤져 적이 생전에 가지고 있던 금품을 노획하거나 장비를 장물로 팔아넘기는 행위를 통해 부차적으로 경제 활동을 일삼긴 한다. 그러나 대표적으로 프롬소프트웨어 (FromSoftware)의 게임들과 같은 경우엔 추가적 노획 행위 없이도 죽음 그 자체가 화폐의 획득을 보장한다. <소울> 시리즈에서는 ‘소울’의 형태로, <엘든 링>에서는 ‘룬’의 형태로, <아머드 코어> 시리즈에서는 현상금의 형태로 보상이 들어온다. 특히 소울 (soul)은 말 그대로 영혼 그 자체로, <소울> 시리즈에선 플레이어가 죽인 자의 영혼을 재화로 획득하며 사용한다. <엘든 링>의 룬은 <소울> 시리즈의 보상 시스템을 그대로 계승함에 따라 조금 덜 직관적으로 되지만, 세계관 내 우주적 존재의 ‘축복’이라는 점에 따라 존재와 생명에 아주 핵심적인 요소를 살해 행위에서 얻는다는 점에선 마찬가지이다. <아머드 코어>에선 보상 금액의 형태보다 그것이 사용되는 방향이 시신경제에 접촉해 있는데, 현상금은 전부 주인공 파일럿 신체의 연장이나 마찬가지인 작중 기체 AC (Armored Core)의 부품들을 구매하고 강화하는 데에 투자된다. 특히 <아머드 코어 VI 루비콘의 화염>에서 주인공은 몸을 오로지 AC 탑승 및 조종에만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개조 받은 ‘강화인간’으로, 대신 그 외의 모든 신체 기능을 희생하는 수술의 부작용으로 인해 ‘뇌가 익어버려’ 기체 바깥에선 제대로 된 생활이나 거동을 영위할 수 없다. 따라서 작중 주인공이 살해하는 적들은 현재 사실상 그의 진정한 신체라고 말할 수 있는 AC의 활동 역량을 확장하는 금액으로 환산되고, 종국에는 재수술을 받아 AC 바깥에서도 그 자체로 활동할 수 있는 몸을 되찾는 것이 목적이다. 게임 내에서 정확히 어떤 연유에서 이름도 없는 주인공 강화인간 ‘C4-621’이 그런 극단적인 수술을 받게 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지만, 결국 <아머드 코어 VI 루비콘의 화염> 내에서 플레이어가 임하는 모든 전투와 파괴, 살해의 용도는 저당 잡힌 주인공의 신체를 되찾기 위해 채무 를 상환 하는 과정으로 귀결된다. 신체를 저당 잡는 튜토리얼 채무는 시신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 중 하나로 ‘죄와 벌’이라는 인간 법과 도덕 세계의 발생지이다. 니체는 독일어로 ‘죄 (Schuld)’가 ‘채무 (Schulden)’에서 유래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 죄에 대한 벌은 언제나 등가물 을 가정하고 죄인을 고통 스럽게 해서라도 실제로 배상받을 수 있는 것이라는 관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이 극히 경제적인 법을 각인시키기 위한 기억술 의 원형으로 고문을 꼽는다 [3] . “기억 속에 남기기 위해서는, 무엇을 달구어 찍어야 한다: 끊임없이 고통을 주는 것 만이 기억에 남는다. (중략) 인간이 스스로 기억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여길 때, 피나 고문, 희생 없이 끝난 적은 없었다. 가장 소름끼치는 희생과 저당, 가장 혐오스러운 신체 훼손, 모든 종교 의례 가운데 가장 잔인한 의식 형태 – 이 모든 것의 기원은 고통 속에 가장 강력한 기억의 보조 수단이 있음을 알아차린 저 본능에 있다. (중략) 예를 들면 돌로 쳐 죽이는 형벌, 수레로 사지를 찢어 죽이는 형벌, 말뚝으로 꿰뚫어 죽이는 형벌, 말로 찢어발기거나 밟아 죽게 만드는 형벌, 범인을 기름이나 포도주로 삶는 형벌, 인기 있었던 살가죽 벗기는 형벌, 가슴에서 살점을 저며내는 형벌, 그리고 또 범죄자에게 꿀을 발라 이글대는 태양 아래 파리떼가 우글거리게 놓아두는 형벌 등 고대 독일의 형벌을 생각해보라.” [4] 그러므로 플레이어에게 게임의 규칙이라는 법을 전부 제대로 각인시켜야만 하는 의무를 가진 튜토리얼에서 가장 효율적인 예시로 시신경제가 등장하는 것 또한 우연은 아니리라. 2007년도 게임 <어쌔신 크리드>에선 주인공이 튜토리얼 이후 계급을 강등당하고 가지고 있던 모든 장비를 빼앗기는데, 어째선지 전투 및 이동 기술 등 각종 다양한 신체 능력마저 덩달아 잃어버리고 만다. 마찬가지로 2016년작 <용과 같이: 극>의 튜토리얼에선 가장 강한 ‘도지마의 용’ 전투 스타일을 모두 갖고 시작하지만 정작 튜토리얼이 끝나고 난 뒤엔 주인공이 10년이라는 세월을 감옥에서 보낸 터라 해당 신체 기술들을 전부 잊어버리고 만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이 게임들에서 계급과 인연 등을 차차 되갚아가며 다시 찾아야만 한다. 플레이어 캐릭터인 주인공은 분명 이 모든 신체 역량들의 원래 소유주였음에도 불구하고 튜토리얼이 끝난 직후 어느새 몸의 기능들을 저당 잡힌 채무자로 전락하고 만다. 이때 캐릭터의 신체는 외적인 시각에선 훼손되지 않은 채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 기능들이 ‘죽은’ 것이다. 물론 이는 기본적으로 튜토리얼에서 해당 게임 중 플레이 가능한 능력의 최대치를 맛보게 해주고 얼마만큼의 액션과 재미가 가능한지 미리 알려주려는 연출 전략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플레이어에게 주인공의 신체를 ‘죽여’ 앞으로 하나하나 갚아 나가야 하는 채무의 대상으로 각인시키는 것이 그 무엇보다 게임 내 규칙에 자연스럽게 복속시킬 것이란 점에는 이견이 없으리라. 죽은 신체의 교환 가치 * <폴아웃: 뉴 베가스>에서 잘라 온 머리가 훼손되었다는 이유로 현상금을 깎는 다트리 소령 (Major Dhatri) 채무자는 자신이 되갚을 것이라는 약속에 신용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자신이 한 약속의 진지함과 성스러움을 보증해주기 위해서,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는 상환을 의무나 책임으로 자신의 양심에 새기기 위해서, 계약의 효력은 그가 상환하지 못할 경우 채권자에게 그가 그 외에 ‘소유’하고 있는 어떤 것, 그 밖에 그의 권한에 있는 것을, 예를 들면 자신의 육체나 혹은 자신의 자유, 또는 자신의 생명 역시 저당 잡히는 것이다. 더구나 특히 채권자는 채무자의 육체에 온갖 종류의 능욕과 고문을 가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부채 액수에 적합해 보이는 크기만큼 그의 육체에서 살로 도려낼 수 있었던 것이다: -오래전부터 곳곳에서는 이러한 관점에서 사지 하나하나와 신체의 각 부분을 정확하게, 부분적으로는 무서울 정도로 세세하게, 합법적으로 가격을 산정해왔다.” [5]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채무자가 자신의 신체를 저당 잡힐 때 자기 자신 외에 ‘소유’하고 있는 것을 내놓고 있는 것이란 점이다. 즉, 니체의 채무법에서 채무자의 신체는 채무자 그 자신이 아니며 철저히 분리된다. 따라서 저당 잡힌 몸은 그 순간 생명을 가진 인간이 아닌 시체로서 죽은 물건이 된다. 시신경제에서 시체를 “돈벌이가 되는 물건”으로 만드는 건 죽음 그 자체이다 [6] . 즉, 단적으로 말해 시신경제는 장기매매라는 명백한 형태의 신체 부위 교환 형태를 굳이 띠지 않더라도 죽음 그 자체로 재화를 교환한다. 1755년 4월 24일 매사추세츠 영국령 식민지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머릿가죽 하나당 70파운드의 현상금을 달았다 [7] . <폴아웃 3> (2008)에선 바로 매사추세츠에서 대략 683킬로미터가량 떨어진 수도 황무지에서 손가락 하나당 5에서 10병뚜껑으로, 귀 하나당 10에서 15병뚜껑으로 보상받는다. <폴아웃: 뉴 베가스> (2010)에선 매사추세츠에서 4348킬로미터 떨어진 모하비 황무지에서 머리 하나당 250병뚜껑을 보상받는다. 특히 <폴아웃: 뉴 베가스>의 머리는 해당 부위가 파손되었을 시 가격이 50병뚜껑으로 줄어든다. 단순히 죽음과 부위의 차원에 가격을 매기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신체의 보존도마저 산정하는 것이다. “채무자에게 가해지는 형벌에서 채무의 상환량은 단순히 채무자가 입는 고통만이 아니라 채권자가 느끼는 쾌감까지 계산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고통을 보는 것은 쾌감을 준다.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더욱 쾌감을 준다.’” [8] 게임 속 시신경제는 게임 내에서 금전적 형태로 보상을 제공하지 않을 때조차 신체의 죽음을 교환한다. 정확히는 오히려 게임 속 인물들의 신체에 아무런 부차적 가치가 부여되지 않았을 때만 작동하는 시신경제가 있다. 바로 죽음과 웃음의 교환이다. 가장 잔인한 고어 액션 게임에서마저 적의 죽음은 플레이어가 구가하는 살해 행위에서 느낄 수 있는 역동적 쾌감 이상의 보상을 항상 제공한다. 최소한 얼마만큼 잔인하게 더 많은 적을 더 효율적으로 빠르게 죽였는지를 추산하여 점수나 등급으로라도 보여주어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게 일반적으로 게임이 시신경제를 작동시키는 방법이지만 그마저도 없이 플레이어로 하여금 신체를 훼손시키도록 만드는 게임들이 바로 고어 코미디 게임들이다. 2008년 플래시 게임 <해피 휠스 (Happy Wheels)>부터 2019년 <피플 플레이그라운드 (People Playground)>, 2024년 <헬다이버즈 2>까지, 유구하게 이어져 내려오는 래그돌 (Ragdoll) [9] 고어 게임들은 공통적으로 플레이어 캐릭터와 적의 구분 없이 그 어떤 죽음에도 고집스러우리만치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이는 경직된 래그돌 신체가 웃음을 자아내는 원리처럼 생명적인 것에 덧붙여진 기계적인 것 이라는 희극의 기본 명제에 부합하도록 만들기 위해 해당 캐릭터들의 신체에서 죽음이 응당 가져야만 할 의미마저 의도적으로 박탈하는 것이다 [10] . 심지어 적의 죽음에 가치가 없을 뿐 아니라 플레이어 캐릭터의 죽음에 이렇다 할 페널티마저 크게 부여되지 않아, 죽이는 행위뿐만 아니라 죽는 행위마저 권장된다. 따라서 모든 신체는 지킬 이유도 없고 언제든지 교체되어도 무방하다. 다시 말해 양陽의 가치도 음陰의 가치도 아무 의미도 없이 날아다니는 사지들, 육편들, 내장들은 피아의 구분도 없고 재화로서도, 그리고 당연히 인격으로서도 기능하지 않는다. 다만 그 ‘생명으로서 응당 있어야 할 것들이 없음’이라는 성질이 래그돌 고어 게임들 속 죽음에서 발견되고 결국 죽음은 웃음이라는 쾌락과 교환되며 역시나 또 다시 시신경제를 작동시키는 행위 목적이 되는 것이다. 하나의 장르로서 시신경제: 과잉과 음의 미학 * <크루얼티 스쿼드>의 플레이 화면 지금까지 다룬 시신경제는 장르를 불문하고 게임이 신체를 기용하는 방식 전반을 관통하는 하나의 체계로서 등장했지만, 대주제이자 장르로서 이 개념에 투신하는 게임이 있다. 앞서 언급한 프롬소프트웨어의 게임들도 세계관 전반을 시신경제가 감싸고 있고, <사이버펑크 2077> (2022)의 세계 속에서도 직접적으로 편재한다. 우선 장기매매가 주 생계 수단인 ‘스캐빈저 (Scavengers)’라는 집단이 등장하고 <사이버펑크 2077>의 배경 ‘나이트 시티 (Night City)’ 사람들은 주인공과 NPC를 막론하고 거의 모두가 <아머드 코어> 시리즈에서 그러했듯이 ‘일을 하기 위한 몸을 사기 위해 일을 한다.’ 나이트 시티에선 강화인간의 수준을 넘어 모두의 일상적 신체 자체가 유기체보다는 무기물의 영역으로 대거 이동한지 오래지만 그럼에도 거진 인형人形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모습을 유지하고는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시신경제를 작동시키는 잔인함, 잔인함을 보장하는 인격은 신체의 죽음에 유지된다. 하지만 <사이버펑크 2077>조차 주제이자 내용으로서만 시신경제를 다룰 뿐 매체적 차원에서는 시신경제를 딱히 반영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려한 그래픽의 AAA게임의 정반대편에서 ‘최악’, ‘최흉’의 디자인으로 만들어졌다고 감히 말해도 어폐가 없을 <크루얼티 스쿼드> (2021)의 경우에는 게임의 모든 면이 전적으로 시신경제를 말하고 있다. 마치 누군가가 와서 망막에다가 직접 형광펜을 칠하고 썩은 찰흙을 덕지덕지 바르는 듯한 고채도 고대비 저-폴리곤 (Low-Polygon)의 끔찍한 비주얼과 누군가가 사용 중인 화장실을 그대로 공사하는 중 장비가 망가진 순간이 영원히 반복되는 듯한 극악스러운 음향은 처음 마주했을 시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게임을 일정 시간 이상 플레이하면 진짜로 시청각적으로 고통스럽기 시작하게 되는 것을 넘어 두통마저 느껴진다. 메뉴 버튼의 기괴한 아이콘들은 정확히 뭐가 뭐를 가리키는지 눌러보기 전까진 알 수 없다. 나아가 듣도 보도 못한 HUD 프레임이 존재하는데, 다시 말해 정말로 1인칭 화면의 테두리를 상시 뒤틀린 이미지가 덮고 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프레임의 상부 가운데에는 게임의 제목인 ‘CRUELTY SQUAD’가 계속 떠 있다. HP는 바의 형태도 아니고 게이지의 형태도 아니고 알 수 없는 방울-뭉치-덩어리의 형태로 정말 불필요하게 크게 화면에 부유한 채 꿈틀거리며 그 위엔 마찬가지로 생명 (LIFE)이란 글자가 굳이 쓰여 있다. 총알과 탄창 개수를 가리키는 숫자 사이에는 어째선지 웃는 얼굴이 그려져 있고 총알을 발사하거나 무기를 바꾸는 등의 행위를 할 때에 이 얼굴은 전혀 알 수 없는 이유로 회전한다. 즉, 이 게임은 그래픽, 음향, UI를 불문하고 전력을 다해 실용성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다. 총을 장전할 때 R키와 같은 버튼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마우스를 위아래로 직접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때는 기가 찰 지경이다. 문제는 이 흉물스럽고 황당한 디자인이 게임 속 극대화된 기업 자본주의 바이오펑크 디스토피아 사회의 끔찍한 동시에 우스꽝스러운 면면과 더할 나위 없이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해당 디스토피아는 과장되어 있기는 해도 당장 아무 인터넷 플랫폼이나 들어가 봐도 맞닥뜨릴 수 있는 주식 및 자기 계발 신봉자들처럼 NPC들이 ‘CEO 마음가짐 (CEO Mindset)’을 중언부언 읊어대고 펀코팝 (Funko Pop)의 패러디 천코팝 (Chunkopop)이 등장하는 등 작금의 현실이 지배받고 있는 체제와 크게 다르지도 않으므로 게임 속 세계가 어느 지점까지 ‘있는 그대로’ 생긴 것인지, 아니면 그 세계에 살며 해리되고 분열된 주인공의 정신 상태에 이러한 형태로 인식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물론 이는 또한 현실에서도 개인들의 세계 인식 자체에 던질 수 있는 이미 고루한 실존적 질문이다. 구태여 인식과 세계의 현실을 분리할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애초에 분리가 가능하지도 않을 만큼 이미 주인공은 정신뿐만 아니라 몸까지 철저히 뒤틀려 있다. 그의 두개골에는 총이 달려 있고 등에서는 가속을 위한 액체가 분비되며 내장은 밧줄처럼 사용된다. 그의 몸에는 살 위에 더 많은 살이, 내장 위에 더 많은 내장이 부착되어 있으며, 임계점을 넘은 생명 공학 그 자체가 구토하고 있다. 주인공은 회사 청산을 주 업무로 맡는 보안 업체 ‘크루얼티 스쿼드’의 청부업자로 <아머드 코어>, <사이버펑크 2077>의 연장선에서 번 돈으로 또 자신의 신체를 개조하고 개조한 신체로 더 많은 돈을 번다. 죽음이 삶을 위해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죽음을 위해 매진된다. 게임을 켜면 짧게 지나가는 도입 장면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여 있다. “삶에의 권위... (The Authority on life...)” 그리고 주인공의 수입원은 암살 의뢰의 보상이기도 하지만 임무 수행 중 암살 대상 외에 아무런 처벌도 손해도 없이 아주 자유롭게 죽일 수 있는 민간인들의 장기를 수확해 실시간으로 암시장에서 거래하는 것 또한 포함된다. 게임 내 실시간 시장에선 주식과 장기가 나란히 거래되며 노골적으로 시신이 경제의 부富라는 것을 가리킨다. 나아가 말 그대로 시신경제에서 죽음이 최종적이며 궁극적 목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발표하기 위해 주인공은 고용주를 죽이고 신마저 죽일 수 있다. 그리고 ‘생의 요람 (Crade of Life)’에 도달해 그 자신이 신이 되는 결말에선 조르주 바타유 (George Bataille)의 『저주받은 몫』을 직접 인용하며 도대체 그래서 시신경제는 왜 죽음을 추구하며 작동하는 기계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지구 표면에서 에너지의 작용들이 결정하는 상황 속에서, 살아 있는 유기체는 원칙상 자신의 삶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 (부)를 수용한다. 이러한 과잉의 에너지는 어떤 체계 (예를 들어 어떤 유기체)의 성장에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그 체계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게 되면, 또는 에너지의 과잉이 그 성장에 전적으로 흡수될 수 없다면, 자발적이든 아니든, 영광스러운 방식으로든 아니면 파국적인 방식으로든, 필연적으로 그러한 과잉은 이득 없이 상실되고 소비되어야 한다.”[ 11] 즉, <크루얼티 스쿼드>는 생의 과잉과 포화가 곧 죽음이라는 그 자체로서는 음의 가치를 경제의 방향타로 잡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시신 경제에서 부富와 부腐는 하나이다. 모든 사회가 아무런 의심 없이 성장을 테제로 삼고 있는 현실과 상승 지향의 영적 전파가 시신경제를 이 땅에 소환하는 의식의 제단이다. <크루얼티 스쿼드> 게임으로서 정확히 그 반대 방향으로 달려나감으로써, 효율, 실용, 세련, 편안에 반대되는 음의 가치를 매체의 모든 자원을 다해 표현함으로써 시신경제의 현실을 고발한다. [1] Achille Mbembe. “Necropolitics.” Public Culture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2003), vol. 15, no. 1, pp. 11–12. [2] Ibid., pp. 39-40. [3]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 (서울: 책세상), 402~406쪽. [4] 위의 책, 400~401쪽. [5] 위의 책, 404쪽. [6] 장-피에르 보. 『도둑맞은 손』 (서울: 이음, 2019), 50쪽. [7] Massachusetts. Acts and Resolves, Public and Private, of the Province of the Massachusetts Bay (Boston: Wright & Potter, 1869-1920), vol. 15, p. 308. [8] 프리드리히 니체. 앞의 책, 407쪽. [9] 래그돌은 본래 헝겊 인형이라는 뜻으로 게임 속 물리 엔진 상에서 관절에 힘이 없이 축 늘어진 채 허우적허우적 휘둘리는 신체 모델들을 일컫는다. [10] 앙리 베르그송. 『웃음』 (파주: 도슨트, 2022) 37쪽. [11] 조르주 바타유. 『저주받은 몫』 (파주: 문학동네, 2022), 29~30쪽.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영이 폭력과 고통, 분열의 상관관계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쓴다. 『정서 지도 그리기』, 『밑 빠진 독(毒)에 물 붓기』, 『월간 종이』 등을 제작하고 연극 <오페라 샬로트로니크>, <벼개가 된 사나히> 드라마터지를 맡았다. 『호르몬 일지』와 『게임 코러스』를 썼고, 『미친, 사랑의 노래』를 함께 썼다.
- 온라인 시대의 살아있는 화석, 보드게임 이야기
1938년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되어 그 존재가 알려진 실러캔스라는 어류 개체가 있다. 실러캔스는 약 3억 7천 5백만년 전 지구상에 출현하여, 약 7천 5백만년 전 절멸했다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실러캔스는 살아있었다. < Back 온라인 시대의 살아있는 화석, 보드게임 이야기 08 GG Vol. 22. 10. 10. 1938년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되어 그 존재가 알려진 실러캔스라는 어류 개체가 있다. 실러캔스는 약 3억 7천 5백만년 전 지구상에 출현하여, 약 7천 5백만년 전 절멸했다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실러캔스는 살아있었다. 실러캔스를 통해서 연구자들은 어류가 어떤 과정을 거치며 양서류가 되어 가는지 그 과정을 추론할 수 있었다. 나는 보드게임을 보고 있으면 문득 떠오르곤 한다. 몇 천년 전 인류 중 하나가 땅바닥에 놓인 돌멩이를 가지고 재밌게 노는 장면을 말이다. 놀이의 역사 속 보드게임 게임의 역사는 곧 보드게임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 사실 그럴 수 밖에 없다. 지금 흔히 말하는 비디오 게임은 전기가 발견되고도 한참 후에나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 전부터 게임을 즐겨왔던 인류는 보드게임을 게임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요한 하위징아 ‘호모루덴스’라는 책에서 문명은 놀이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좀 더 급진적으로 그는 문명의 모든 것이 놀이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고도 한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논란이 있다. 하지만 ‘놀이 문화’가 인류의 역사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건 부정하기 힘들다. 통일 신라 시대 유물로 알려진 안압지 14면체 주사위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일상에서 게임을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종이가 발명되고 나서 나타난 카드의 존재는 게임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중국에서 발명된 종이 덕분에 사람들은 정보를 이전보다 쉽게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종이는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다는 이점도 가졌다. 당나라에서는 종이 화폐, 즉 지폐에 해당하는 ‘지전(紙錢)’이 생겨났다. 이 때 지전을 활용하거나 혹은 비슷하게 따라한 종이돈을 만들어서 게임에 썼다고 한다. 이게 흔히 아는 트럼프 카드의 시초이다. 이런 카드는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이슬람에 전해지고, 이슬람에 전해진 제지 기술과 카드는 유럽까지 전해진다. 각 지역에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바꾸던 카드 정보와 그림은 인쇄기술을 만나면서 점차 통일되어 간다. 인쇄 기술의 발달은 다양한 게임 관련 서적 발행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를 통해서 카드게임 룰이 정리되고,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된다. 지금 한국의 보드게임은 어떠할까?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매년 산업의 전반적인 상황을 알려주는 ‘게임백서’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한다. 2021년에 발간된 게임백서에서는 보드게임 동향에 대해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1. 수집으로의 보드게임 취미 확대 2. 소그룹 플레이 양상 3. 디지털 플랫폼에서 플레이 4. 코로나 19 방역조치로 인한 보드게임 카페의 저성장 5. 물류비 및 제조 원가 상승 6. 온라인 유통 채널의 급상승 7.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기반으로 한 온라인 광고, 홍보 플랫폼 강화 2020년 당시엔 코로나 여파로 인해 대면활동이 매우 힘들었다. 이런 상황은 게임 산업 전반에 여러 가지 영향을 미쳤는데, 이는 보드게임 산업계에도 다르지 않았다. 보드게임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플레이를 하는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업계 대부분은 매출이 줄지 않았을까 예상했다. 하지만 2021 게임백서에 따르면 국내 보드게임 시장 1위인 코리아보드게임즈의 경우 전년 대비 32.7 %의 높은 성장률을 보여주었다. 코리아보드게임즈 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들의 매출도 전년대비 상승했다. 게임백서를 바탕으로 현재 보드게임 상황에 대해서 나름의 추측을 해보았다. 1. IP 컬러배러이션 등으로 비(非)보드게이머의 유입을 통한 매출 증대 2020년에는 위쳐, 워크래프트 등 보드게이머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는 IP를 기반으로 한 보드게임이 출시되었다. 컨텐츠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일종의 굿즈 느낌으로 보드게임을 소유하기 위해서 구매했다. 이를 기반으로 보드게임에 관심 없던 ‘비보드게이머’가 보드게이머가 되기 시작했다. 2. 매니아 취미로만 인식되던 보드게임, 코로나 19로 인한 가족 중심 소비 증가 코로나 19로 인해 어린이집 또는 학교에서 대면 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워졌고 아이의 보육과 교육을 온전히 가정에서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 때문이었는지 캐주얼 게임이라 할 수 있는 ‘루미큐브(Rummikub)’ 등의 보드게임 판매가 늘었다. 이를 통해 보드게임에 대해 거의 모르던 사람들이 보드게임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3. 코어 게이머의 증가와 함께 코어 게임 매출 증가 코로나 19 유행 이전부터 보드게임을 즐겼지만 난이도 있는 유로 게임까지는 즐기지 않은 게이머들이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 19 유행 이후로 다양한 온라인 유통 채널을 통한 게임 홍보와 함께 보드게임 매니아(‘게임백서’에서는 이를 ‘코어 게이머’라 칭한다)를 위한 보드게임이 많이 출시되었고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서 많이 바이럴 되었다. 심지어 ‘글룸헤이븐(Gloomhaven)’은 두 번째 인쇄판이 나오기 전까지 리셀러들에 의해서 정가보다 비싼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다. 위와 같은 세 가지 추론을 종합해보면 보드게임 시장이 코로나 19가 유행한 상황에서도 매출이 커진 현상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일단 IP 컬러배레이션 등과 같은 이유로 보드게임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보드게임을 접한 사람들 중 보드게임에 관심이 커지는 사람들은 온라인을 통한 여러 홍보채널을 통해 이전보다 더 다양하게 발매되는 보드게임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커뮤니티를 통해 ‘꼭 플레이 해봐야 하는 보드게임’에 대한 정보를 얻은 후에는 품절되는 일이 잦은 매니아용 보드게임은 거의 대부분 구매까지 이어진다. 보드게이머들 중에는 보드게임을 모으는 것 자체가 게임이 되었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보드게임 출시 주기가 짧아지고 그 종수가 점차 많아지고 있으며 심지어 제조 원가와 물류비용 증가로 인해 보드게임 가격이 비싸지고 있는데도 구매를 주저하기는 커녕 오히려 지갑을 더 열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이 데뷔하는 실험장 게임. 그리고 보드게임 게임은 언제나 새로운 기술의 실험장이 되곤 했다. 컴퓨터와 관계된 기술은 게임을 위해서 개발된 기술이 아님에도, 이를 가장 먼저 활용하는 곳은 높은 확률로 게임이고는 했다. NPC의 다양한 행동을 위해서 내부적으로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기도 하고 메타버스라는 개념 역시도 게이머들에겐 매우 익숙한 개념이었다. 증강현실도 마찬가지였다. 증강현실을 활용한 여러 어플리케이션이 등장했지만 대중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건 게임인 ‘포켓몬 GO’였다. 이처럼 게임은 언제나 새로운 기술에 관심이 많았고 가장 빨리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보드게임은 어떨까? 보드게임은 만질 수 있고, 실제 움직일 수 있는 제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다양한 기술의 접목으로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면 ‘한밤의 늑대인간’ 이라는 마피아 류 보드게임에서는 진행자 없이도 게임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어플리케이션이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언락(Unlock)’ 이라는 게임 시리즈는 카드에 담겨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추리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게임인데, 문제의 답과 판정을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확인 할 수 있다. ‘광기의 저택’이라는 게임은 더 특이하다. 게임을 구매하면 이를 진행할 수 있는 피규어와 모듈 형 게임 판을 제공할 뿐이다. 스팀이나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통해서 스토리를 확인하고 실제 플레이를 진행할 수 있다. 코로나 19 이후에 게임 홍보 역시도 온라인 채널을 활발히 활용하는 추세로 바뀌었다. 보드게임 콘 등 보통 신작 보드게임을 홍보하던 오프라인 채널을 운영하기 힘들어지면서 많은 유통사들이 온라인을 통해서 홍보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하기 시작했다. 온라인 소통 채널은 비단 유통사만 활용한 것은 아니다. 많은 보드게이머들이 보드라이프 등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고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서 기존에 보드게임에 친숙하지 않던 이들이 정보를 찾기 쉬워졌으며, 여러 공략방법 역시 얻을 수 있었다. 점차 증가하는 코어 유저 수와 그들이 바라보는 보드게임 보드게임은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수고스러워진다. 많은 부분이 자동으로 실행되는 비디오 게임과 달리 보드게임에서는 플레이어 스스로가 해결해야하는 부분이 많다. 보드게임을 플레이한다고 하면 먼저 룰을 익혀 공부를 해야 한다. 게임에 따라서는 공간 자체도 필요하다. 혼자서 가능한 게임도 있지만, 대부분의 게임은 사람들과 함께 한다. 보드게임 하나를 플레이 하기 위해서는 신경 써야 할 일이 정말 많다. 다시 말하자면 대부분의 보드게이머는 스스로 게임을 행사해야만 한다. 보드게임과 비디오 게임을 가르는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보드게임에 참여하는 모두는 룰북에 있는 룰을 숙지하고, 익숙해져야만 한다. 그 룰에 대한 판정은 플레이어 스스로가 감시하는 특징 역시 가진다. 이는 매우 번거로운 작업이다. 다른 놀이와 비교해도 그렇다. 비디오 게임과도 그렇기에 다르다. 비디오 게임에서는 정해진 룰을 벗어나게 되면 게임 자체가 오류를 일으키거나, 플레이어를 막아 세운다. 하지만 보드게임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 룰북이 모든 걸 다 정해줄 수 없는 부분도 있어서 어떠한 경우에는 참여한 플레이어들간 합의를 이루는 과정이 필요할 때도 있다. 뿐만 아니라 보드게임 중 대부분은 그 게임을 펼칠 공간과 같이 플레이할 사람이 필요하다. 모바일을 통해서 언제든지 실행하여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현재의 비디오 게임과는 다른 상황이다. 그래서 보드게임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면 코어 유저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다. 이렇게 변화한 보드게이머는 점차 더 다양한 게임적 경험에 대해 욕망하게 된다. 특히 함께 게임을 할 플레이어가 필요한 보드게임 특성상 커뮤니티나 모임활동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실러캔스는 과연 실러캔스인가? 지금 발견되는 실러캔스는 과연 예전에 절멸했다고 말하는 실러캔스인걸까? 아무리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말을 하고,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러캔스는 그때의 실러캔스가 아니다. 보드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게임의 역사와 보드게임 역사는 거의 함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보드게임은 게임이 가지는 본래의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중요한 장르이다. 한편으로는 가장 실험적인 게임일 수 있다. 킥스타터 등의 펀딩 사이트를 통해 다양한 상상력을 시도해 볼 수 있다. 앞으로는 소량제작이 원활해지고, 국내에도 더욱 다양한 작가가 나타나길 기대한다. 보드게임 시장의 크기가 커짐과는 별개로 다양한 재미를 가진 게임이 발표되고 많이 플레이 될 수 있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더 흥미롭고 재밌어질 보드게임을 바란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께도 많은 응원과 관심을 부탁드린다. 참고문헌 & 자료 1. 호모루덴즈 (요한 하위징아 지음) 2. 게임의 역사와 이해 (김정태 지음, 도서출판 홍릉) 3. 카드 게임의 기원: 플레잉 카드(aka 트럼프 카드)의 역사 1편 - 카드 게임은 어디서 왔을까? (데굴데굴 studio 코리아보드게임즈 유튜브채널) 4. 2021 대한민국 게임백서 (한국콘텐츠진흥원) 5. 실러캔스 항목 (위키백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보드게임기획자) 윤창환 보드게임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보드게임을 만드는 재미를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항시 보드게임 게이머 모집 중입니다. @imakeboardgames 인스타그램 으로 연락주세요.
- Pings, Parley, and Pictures - How Players Communicate
Games are inherently social. In the wake of MUDs (Multi-User Dungeons) in the late 1970s to MMORPGs in the early 90s, playing games has been heralded as an opportunity to socialise and be social - antithetical to the usual “loner” gamer stereotype that is so pervasive in popular media. More recently, during the COVID-19 pandemic, games offered a pre-existing framework for keeping in touch and hanging out with friends when regions in Canada and the U.S. were facing mandatory lockdowns and curfews to stem the infection rates. Many turned to their headsets and keyboards to play games and catch up with friends when they could not see them face-to-face. However, a caveat to being a social space, is the potential for anti-social behaviours. This is not formed in the lack of socialising, a typical tenant of being anti-social, but rather in the deploying of modes of communication to have a different kind of social “fun”. < Back Pings, Parley, and Pictures - How Players Communicate 14 GG Vol. 23. 10. 10. Games are inherently social. In the wake of MUDs (Multi-User Dungeons) in the late 1970s to MMORPGs in the early 90s, playing games has been heralded as an opportunity to socialise and be social - antithetical to the usual “loner” gamer stereotype that is so pervasive in popular media. More recently, during the COVID-19 pandemic, games offered a pre-existing framework for keeping in touch and hanging out with friends when regions in Canada and the U.S. were facing mandatory lockdowns and curfews to stem the infection rates. Many turned to their headsets and keyboards to play games and catch up with friends when they could not see them face-to-face. However, a caveat to being a social space, is the potential for anti-social behaviours. This is not formed in the lack of socialising, a typical tenant of being anti-social, but rather in the deploying of modes of communication to have a different kind of social “fun”. So, how do players communicate in games? Not only how, but what do players communicate while playing? Games have encouraged socialisation through various communication channels, both inside and outside of the game world, as a way to organise, chat and, more often than not - to troll. The breadth of research into communicating in games parallels understanding and unpacking the age-old phrase of “toxicity”. Both authors of this article have studied different gaming communities ( Overwatch, DOTA2, World of Warcraft, Lost Ark, and MtG Arena ), to look at how and what they communicate. Text Chat and Talking Back The best place to start is text chat, the longest-standing way to communicate in games. A channel for conversation and information in MMORPGs like World of Warcraft , where players can recruit, sell, chat, and more. Historically, it was the only way to communicate in games, until the introduction of voice chat, and since that point, it is regarded as a more restrictive way to chat in games. 1) Text chat evolved in response to this. Players generated and built their own game-specific lexicon and abbreviations to make using text chat efficient once more for instantaneous conversations. A simple example of this can be found in League of Legends (Riot Games, 2009). When players load into their team screens, they typically head to the text chat to claim a “lane”, typing “mid”, “bot”, or “top” for top, middle, and bottom lane. A quick way to allocate yourself to a particular lane. A similar example of text chat being used to convey a message efficiently is in MMORPGs like Lost Ark when a world boss appears (a large enemy that appears on a particular schedule and needs multiple players to take down). In this case, a player might type that the world boss is “up” and what channel to join to fight it. Text chat can scale, from the micro to the macro, from one-to-one up to the entire server’s worth of players. This reach comes with consequences. Hate speech can be easily spread via text chat. Whether it is racist, sexist, or homophobic slurs, aimed at no one or everyone, they are regularly spotted in text chat. This problem has become so pervasive that many game companies have automated filters to block out hateful terms. The issue arises further when players get creative in how they write these words. Devin Connors, a community manager at Psyonix, discussed Rocket League’s language ban and chat filter system at GDC 2018 (Image 1). 2) The team initially had a list of 20 bannable words, which has since grown exponentially to include misspelling variants and swears or slurs found in other languages. * Image 1 - Devin Connors presenting the Rocket League Language Ban system at GDC 2018 (author screenshot) Blizzard manages poor sportsmanship displayed in text chat in a more tongue-in-cheek approach. When players type “GG EZ” at the end of a match in Overwatch , insinuating that the game was no challenge to beat the oppositional team, the acronym is swiftly corrected into one of many silly phrases (e.g. “ It's past my bedtime. Please don't tell my mommy.” Or “Gee whiz! That was fun. Good playing!”) . This is done as a way to de-escalate a micro-moment of toxicity without having to bring in the threat of a ban for behaving in poor taste. However, even seeing GG EZ replaced with messages like these, players will be aware of what was initially written, regardless of the appropriate veneer that was placed over it. Obviously, this type of behaviour is low on the threshold of toxicity compared to what the Rocket League team has to filter out, but is equally present in Overwatch matches. This all solely focuses on the use of just text in text chat, ignoring the considerable use of emoticons, emojis, and stickers that we use to communicate in our day-to-day texting, let alone during gameplay. Emotes and emoticons have been a staple of more complex communication systems in games, but they have become common as the sole method of inter-player communication in popular online card games like Legends of Runeterra (Riot Games, 2020), Magic: The Gathering Arena (Wizards of the Coast, 2018), and Marvel Snap (Nuverse, 2022). While Magic has text-based emotes, players are more likely to use any of the numerous animated stickers available in each of these games (Image 2). * Image 2 - A Collection of Emotes from Magic: The Gathering Arena - Authors’ Screenshot While it might first appear that limiting communication to a reasonably small set of phrases and animated images would limit player toxicity, this is not the case. Players are actually able to do quite a lot with very little - often going beyond what the intended function of these emotes might be. In Magic for example, one way to greet an opposing player at the start of a match is with an emote that depicts one of the game’s characters, Gisa, waving at you using the hand of a zombie (Image 3). While this purpose is a quirkier, possibly more fun alternative to the standard ‘hello’ emote, this emote can have other, more sinister uses. * Image 3 - Gisa Waves in Magic: The Gathering Arena - Author’s Screenshot Imagine a common scenario in a game of Magic : two players have been filling the board with creatures over several minutes, incrementally trying to beat the other. The game is a close one, with each player seeking to get just enough of an advantage with each new card played on the field. But then one of the players drops what is known as a ‘board wipe’ - a card that removes a massive number of cards from the battlefield that a player has spent an entire game establishing. And then the player who destroyed the board uses the Gisa emote, not to say hello, but to say “Goodbye to all your cards, and goodbye to all your fun.” This is but one way that players use these emotes. The important thing to take away from this example is that players develop their own use cases and interpretations of these emotes over time, and not all of them are positive and friendly, even if designers intend them to be. Some players will find a way to use them to troll players and these uses can pick up steam throughout a game community. It isn’t just the players acting alone here, however. One final point on these emotes is that they are often riffs on popular memes. For example, one Magic emote depicts the character Saheeli eating from a bowl of popcorn, inspired by the gif of Michael Jackson eating popcorn in a movie theater and other related images of popcorn ingestion (Image 4). * Image 4 - Saheeli the Emote and Michael Jackson Enjoying Popcorn. 3) The memes these emotes are inspired from often have the purpose of poking fun at something - particular rules and use cases that are often meant to turn a situation into a joke. The popcorn-eating Michael Jackson is often used when reading a lot of gossip in a forum thread, or when observing a social disaster or drama, for example. Emotes based on these meme formats come preloaded with meaning, not often positive, with only a player’s opponent as the possible audience for the message that the emote sends when it is used. While basing emotes off of memes creates a shared language between players that makes them more easily readable as artifacts of in-game communication, they also skew towards antagonism because of the way memes make a joke out of most situations. As often as the silliness of these emotes might defuse hostile or negative feelings during play, they are just as likely to produce them because of how they are used and their established associations. This is not an argument for or against emotes one way or another, but is instead meant to highlight that the culture of communication that games are nested within affects even the most limited forms of interplayer communication used in online games. Pinging to Point and Pout Sometimes, words and images just don’t cut it for conveying messages quickly during gameplay. Typically found in MOBAs like League of Legends or DOTA 2, “pinging” is where a player clicks on a map area, item, or character, and it lights up to notify other players. These pings can be signified with an exclamation point or question mark to draw the eye to the area. 4) These quick signifiers can be used for strategising, planning a route as a team, pointing out important items for teammates to collect, or as a warning system to avoid certain areas. 5) . An anecdotal example of the layers involved in pinging comes from one author’s experience playing DOTA 2 for the first time not with the AI but real fellow players. While playing one of their first matches, they noticed that another player was pinging the area around them. Only because someone familiar with the game was supervising was it made evident that this other player was trying to get their attention, flagging that they were making an incorrect choice, or they were in the wrong spot for that moment in play. More can be said about the lack of a tutorial preparing a new player for all the nuanced ways that players might communicate with you during a match, but that is down to community-constructed modes of communication, which is hard to cover within a game’s onboarding tutorial. Aggressive pinging, where a player will spam click the ping button, is often a signifier of frustration 6) for whatever another player is doing. It can also be a way to distract a player if a fellow teammate has opted to throw away the game and bother their teammates instead. A New Player in Voice Chat Moderation Voice chat is still a staple feature in many online games from first-person shooters, to multiplayer survival games, to large-scale group play in numerous MMORPGs. Voice communication affords players more opportunities for complex sequences of expression, which are often necessary for fast-paced online play. The catch is that the use of voice often produces in-game environments where players are able to say whatever they want to teammates and random players, which includes a substantial amount of toxicity 7) . Voice chat brought a more real-time way to communicate in games; a technological revolution in how players could coordinate and socialise. However, in doing so, voice chat removed a level of anonymity to players, exposing their identity (race, gender, sexuality) through what Kishonna Gray calls “linguistic profiling” 8) . Players are very quickly reminded of these intersections of their identities through hateful terms and treatment from other players in response to using their voice in voice chat. Compared to moderating text chat voice has been a difficult facet of online play to manage 9) , no doubt due to the amount of voice chat happening in games and the speed at which it occurs. It is no secret that players have requested some kind of integrated voice chat moderation, with some doing so since 2017 10) . Even though the moderating voice is a lofty task, one company, Modulate, is at the forefront of this endeavor. Modulate are the creators of ToxMod, a voice moderation technology designed to help game companies identify, triage, and proactively manage instances of toxicity that happen in the voice communications of their games. This past August, Modulate partnered with Activision to implement ToxMod in the upcoming Call of Duty: Modern Warfare III (Activision, 2023). In a conversation with Modulate COO Terry Chen, he expressed the importance of keeping in-game communication healthy: “Our overall intent is not only to protect people that are suffering from this marginalization, but also to make gaming and its spaces more fun. I think fun is at the forefront of what we do. [...] Voice chat, which has become more critically important in esports, especially for games like Valorant, where you need [voice chat] for a tactical advantage against the enemy opponents, there’s just this level of toxicity that makes it impossible to enjoy the game that you’re trying to love, and also improve.” To accomplish these goals, ToxMod uses machine learning technology to detect and rate toxicity, but ToxMod does not ban and punish users on its own. Instead, Terry views ToxMod as “a collaborator, kind of an additional player in the game that can listen and help out if necessary.” This is because the toxicity that ToxMod detects is flagged for moderators who have the job of making the final decision on what actions need to be taken against players, so ToxMod operates in partnership with developers and moderators to address the issue of toxic communication. To close this article, I asked Terry, as someone who is on the front lines of addressing toxicity, what more could be done by companies and players alike to work towards a solution? We’ve seen how toxicity is common across each of the in-game communication mechanisms we’ve explored, so what are we to do that isn’t being done? Terry offered two important solutions: 1) Listening to players from across a game’s player base rather than focusing on the needs of the most skilled or highest profile players as there is valuable feedback from more than the pros. In fact, most players are not playing at the highest skill levels and can provide a lot of valuable information about what is happening throughout the most densely populated segment or rank of a game. 2) To think about detecting and rewarding positivity. According to Terry, “The truest action would be implementing tools, whether it’s Modulate ToxMod, whether it’s something developed internally to detect bad behavior, but also reward positive behavior.” As players, developers, and researchers we find ourselves so confronted with the negative aspects of in-game communication that we take our eyes off the players who are setting good examples - and more work should go into refining and implementing systems that encourage more positive interaction - not just mechanically, but in the ways we communicate with one another in-game. On the other side of the avatar, we are real people after all. As we can see, there are two important facets to consider when discussing communication and social systems in games. The first is how to moderate them. It is a trepidatious task that requires people power, tech power, and clear guidelines to enact any form of governance in a social space. When introducing a competitive angle to gameplay (whether as an aspiring pro player or as a player who simply enjoys competing in the game space) - the stakes go up, and so there is more on the line for players to care about. In the same space, we have players who are just there for the vibes. To play with their friends, regardless of the outcome (though they would like to win). The second facet is “trolling” and toxicity via all these different modes of communication. Players will find ways to get creative with any system, to subvert it to their own wishes and enact toxicity however they see fit. Ultimately though, it goes back to the very start of this article; that games are inherently social. It is not the sole aim of most players to go online and be toxic, but rather to join into the collective and have a good time with others who enjoy the same play space. Turning to the future of communication in games, voice chat has more recently become somewhat fragmented with the success of Discord. Many players have shifted their voice communication from the dedicated game servers to their own personal, curated community Discord servers, where they hang out as a collective with friends instead of strangers in a game lobby. Though some game-specific Discord servers exist, they are less for communicating during play and more for marketing and building a community around the game. Virtual reality could yet revolutionise how players embody communication during play, though right now they are awkward half-bodied avatars with nausea-inducing equipment for some. There is potential on the horizon, and yet one thing is for certain - where there is a will, there is a way to subvert social spaces. *For more on modulate you can visit their website, https://www.modulate.ai/ . 1) 2) Wadley, G., Carter, M., & Gibbs, M. (2015). Voice in Virtual Worlds: The Design, Use, and Influence of Voice Chat in Online Play. Human–Computer Interaction, 30(3–4), 336–365. https://doi.org/10.1080/07370024.2014.987346 3) Saheeli image from draftsim.com. https://draftsim.com/mtg-arena-emotes/ (accessed September 24th, 2023). Michael Jackson image from knowyourmeme.com. https://knowyourmeme.com/memes/popcorn-gifs . 4) Leavitt, Alex, Brian C. Keegan, and Joshua Clark. ‘Ping to Win? Non-Verbal Communication and Team Performance in Competitive Online Multiplayer Games’. In Proceedings of the 2016 CHI Conference on Human Factors in Computing Systems, 4337–50. CHI ’16. New York, NY, USA: 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 2016. https://doi.org/10.1145/2858036.2858132 5) Wuertz, Jason, Scott Bateman, and Anthony Tang. ‘Why Players Use Pings and Annotations in Dota 2’. In Proceedings of the 2017 CHI Conference on Human Factors in Computing Systems, 1978–2018. CHI ’17. New York, NY, USA: 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 2017. https://doi.org/10.1145/3025453.3025967 . 6) ibid. 7) Reid, Elizabeth, Regan L. Mandryk, Nicole A. Beres, Madison Klarkowski, and Julian Frommel. “‘Bad Vibrations’: Sensing Toxicity From In-Game Audio Features.” IEEE Transactions on Games 14, no 4 (2022): 558-568. 8) Gray, K. L. (2014). Chapter 3 - Deviant Acts: Racism and Sexism in Virtual Gaming Communities. In K. L. Gray (Ed.), Race, Gender, and Deviance in Xbox Live (pp. 35–46). Anderson Publishing, Ltd. https://doi.org/10.1016/B978-0-323-29649-6.00003-0 9) Märtens, Marcus, Siqi Shen, Alexandru Iosup and Fernando Kuipers. “Toxicity Detection in Multiplayer Online Games.” Proceedings of the 2015 International Workshop on Network and System Support for Games (NetGames). 03-04 December, 2015, Zagreb, Croatia, 1-6. 10) Blamey, Courtney. ‘One Tricks, Hero Picks, and Player Politics: Highlighting the Casual-Competitive Divide in the Overwatch Forums’. In Modes of Esports Engagement in Overwatch, edited by Maria Ruotsalainen, Maria Törhönen, and Veli-Matti Karhulahti, 31–47. Cham: Springer International Publishing, 2022. https://doi.org/10.1007/978-3-030-82767-0_3 . Tags: ping, voicechat, MTG, emote, toxicity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Researcher) Cortney Blamey Courtney is a Communication PhD student and game designer at Concordia University, Montreal, Canada. Her doctoral research concentrates on the process of meaning-making in games tackling serious themes and exploring this relationship between player and designer in her own critical game design process. Her previous research unpacked Blizzard’s approach to community moderation in Overwatch by investigating both developer and community inputs on forums. She is a member of the mLab, a space dedicated to developing innovative methods for studying games and game players and TAG (Technoculture Arts and Games). (Game Researcher) Marc Lajeunesse Marc is a PhD candidate in Concordia University's department of communication studies in Montreal, Canada. Marc’s research focuses on toxicity in online games. He is driven to understand toxic phenomena in order to help create more positive conditions within games with the ultimate hope that we can produce more equitable and joyful play experiences for more people. He has published on the Steam marketplace and DOTA 2, and is a co-author of the upcoming Microstreaming on Twitch (under contract with MIT Press).
- 한국 게임비평의 궤적과 방향
세계 최초의 게임잡지는 1981년 영국에서 발간된 <컴퓨터와 비디오게임(Computer & Video Games: CVG)>이다. 2004년부터 온라인으로만 발행되다, 2015년에는 온라인사이트까지 폐쇄하고, (www.gamesradar.com)로 리디렉션됐다. Gamesradar+는 여전히 기대작이나 신작 리뷰, 업계동향뿐 아니라 알찬 내용의 작품비평을 제공해 주고 있다. 한국에서 게임잡지가 등장한 것은 그로부터 약 10년 뒤인 1990년대 초반이다. 1980년대 PC 보급시기와 맞물려 닌텐도(Nintendo)의 ‘패미콤(Famicom)’을 국산화한 ‘현대 컴보이’가 소개됐다. 이후 세가(Sega)의 16비트 ‘메가 드라이브(Mega Drive)’를 삼성전자가 국내버전으로 바꾼 ‘수퍼 겜보이’가 발매되고, 콘솔게임에 대한 관심 급증이 게임전문잡지의 탄생을 추동했다. < Back 한국 게임비평의 궤적과 방향 01 GG Vol. 21. 6. 10. 1. 세계와 한국 최초의 게임잡지 세계 최초의 게임잡지는 1981년 영국에서 발간된 <컴퓨터와 비디오게임(Computer & Video Games: CVG)>이다. 2004년부터 온라인으로만 발행되다, 2015년에는 온라인사이트까지 폐쇄하고, ( www.gamesradar.com )로 리디렉션됐다. Gamesradar+는 여전히 기대작이나 신작 리뷰, 업계동향뿐 아니라 알찬 내용의 작품비평을 제공해 주고 있다. * 〈CVG〉(왼쪽)와 〈Gamesradar+〉(오른쪽) 한국에서 게임잡지가 등장한 것은 그로부터 약 10년 뒤인 1990년대 초반이다. 1980년대 PC 보급시기와 맞물려 닌텐도(Nintendo)의 ‘패미콤(Famicom)’을 국산화한 ‘현대 컴보이’가 소개됐다. 이후 세가(Sega)의 16비트 ‘메가 드라이브(Mega Drive)’를 삼성전자가 국내버전으로 바꾼 ‘수퍼 겜보이’가 발매되고, 콘솔게임에 대한 관심 급증이 게임전문잡지의 탄생을 추동했다. * <게임월드> 창간호 한국 최초의 게임잡지는 1990년 8월에 발간된 <게임월드>로 알려져 있다(조기현, 2012, 58쪽). 이어 <게임뉴스>(1991), <겜통>(1992), <게임챔프>(1992), <게임정보>(1993) 등이 발간되면서 게임잡지들의 각축전이 시작됐다. 당시 플레이어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정보는 신작소개나 발매일정, 공략이었지만, 게임잡지는 게임의 긍정적 면모나 문화적 성격을 부각하는 기사를 싣는 등 게임 인식전환에도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게임을 분석할 필자를 모집해 그들의 글을 싣거나(1992년 <게임월드>, 1993년 <게임정보> 등), 미국이나 일본 게임저널의 기사를 번역하거나(1994년 <게임채널> 등), 게임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글들을 연재(1996년 박병호의 <경향신문> 연재, 1999년 박상우의 <시네21> 연재 등)하는 등, 유사비평 혹은 비평의 초기형태라 할 수 있는 시도들이 다양하게 이뤄진 것 역시 특기할 부분이다. 2. 번들 CD에 집중했던 PC게임 잡지들 1990년대 중반부터 PC게임이 급격히 성장함에 따라 대부분의 게임잡지들도 PC게임에 집중했다. 당시 잡지들의 대표적 특징으로 번들(bundle) CD 제공을 들 수 있다. 초기 번들 CD는 시류지난 게임의 재고털이를 위해 제공된 것으로, 플레이어들에게 호응을 얻고 산업전반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게임잡지의 판매부수를 결정하는 주된 변수로 자리매김했다. 경쟁심화 속에서 잡지사들은 고전 명작게임 위주로 제공하던 번들 CD에 조금씩 최신작을 담게 됐다. 1980년대 게임잡지들이 차별화된 게임정보와 공략을 내세워 고정 독자층을 확보·유지했다면, 1990년대 게임잡지들은 번들 CD로 독자층을 나눠 먹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신작을 유치하기 위한 잡지사들의 과도한 경쟁은 번들 CD 구매비용의 증가로 이어졌고, 이는 잡지사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이후 PC게임 복사가 확산되고, 네트워크 환경발달과 함께 온라인게임이 태동하면서 PC게임 시장은 내리막길을 걷는다. 동시에 게임잡지에도 시련이 찾아왔다(김득렬, 2012. 1. 4.). 3. 종이잡지에서 웹진으로 종이잡지에서 웹진으로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약 10년간 이어온 게임잡지 역사는 2000년대 들어 비디오게임 및 PC게임 산업과 함께 쇠퇴했다. 게임잡지는 힘을 잃어 갔지만 게임 산업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게 되는데, 온라인게임의 인기가 그것이다. 게임잡지들도 이에 편승해 온라인 기반 게임관련 잡지들로 변모해 갔다. 그러나 전문적인 게임비평보다는 상대적으로 다소 가벼운 비평, 게임 자체와 공략에 대한 정보제공, 부록 중심이었던 게임잡지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자리를 내주면서 대부분 폐간됐다. 인터넷의 발달은 기존 출판잡지에 좌절과 시련을 부여했지만, 플레이어들에게는 오히려 정보 공유와 전달을 가속화하는 기반으로 작용했다. 물론 플레이어들이 게임정보를 걸러내 원하는 것만 소화하기는 쉽지 않았다. 보다 전문적인 접근에 대한 수요도 모두 채울 수는 없었다. 이는 방대한 게임정보를 체계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채널을 찾는 계기로 작용했고, 게임웹진의 탄생으로 이어졌다(김득렬, 2012. 1. 4). 2021년 6월 기준 오프라인을 통해 발간되고 있는 게임전문지로는 <게이머즈(Gamer’z)>가 유일하다. 물론 온라인상으로는 <인벤>, <게임메카>, <디스이즈게임>, <포모스>, <게임조선>, <게임포커스>, <데일리게임>, <게임어바웃>, <게임동아>, <경향게임스>, <더게임스> 등 많은 게임웹진이 존재한다. 하지만 <게이머즈>뿐 아니라 다른 웹진들도 여전히 전문적인 비평보다는 리뷰와 공략 중심의 정보제공에 치중하고 있다. 4. 게임비평 확산을 위한 여러 시도들 오히려 게임의 안과 밖을 보다 꼼꼼히 들여다보려는 시도는 게임전문지가 아닌 다른 공간을 통해 더 활발히 이뤄져 왔다. 물론 그조차도 전문성과 안정성을 가진 것이라 보긴 어렵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런 시도가 지속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문, 영화 잡지나 기타 대중문화 잡지, 컴퓨터 잡지 등이 게임비평에 종종 지면을 할애하긴 했지만, 단편적인 기획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민간재단인 게임문화재단에서 2012년 3월부터 월간지 <게임컬처(Game Culture)>를 발간, 업계나 학계 등에서 활동하는 편집진들을 활용해 양질의 게임 관련기사와 비평을 게재했으나, 2012년 12월호를 마지막으로 폐간 수순을 밟았다. 한편, 게임비평의 궤적을 살핌에 있어 ‘게임비평공모전’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게임에 대한 인문·사회학적 관심을 증대시켜 문화적·학술적 가치를 제고한다는 취지 아래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 NHN(주), 더게임스가 공동 주관하여 2008년부터 ‘게임비평상’을 제정했다. 전경란(2013)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게임비평공모전에서 가작 이상의 상을 받은 30편의 비평들을 분석, 비평들이 게임의 다양한 측면에 관심을 두고 있지만, 그 영역 및 접근방식은 제한적이라는 결론을 도출한 바 있다. 게임의 내용과 형식적 특징, 즉 게임 플레이에서부터 게임 구조, 게임 세계 등을 중심으로 고루 비평을 행한 반면, 기존의 문화 장르를 분석하기 위한 이론과 방법론을 적용한 탓에 제반 게임 현상을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공모전은 아마추어 게임비평가들을 발굴하고 게임비평 저변을 확대한 국내 최초의 시도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2012년 제5회를 끝으로 더 이상 개최되지 않고 있다. * 제1회 게임 비평상 공모전 포스터 비평가들의 단행본 작업도 의미가 적지 않다. 박상우의 <게임, 세계를 혁명하는 힘(2000)>과 <게임이 말을 걸어올 때(2005)>, 이상우의 <게임, 게이머, 플레이: 인문학으로 읽는 게임(2012)>, 이경혁의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인문학협동조합 조합원들의 <81년생 마리오: 추억의 게임은 어떻게 세상물정의 공부가 되었나?(2017)>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경유해 게임이 우리 일상과 사회·문화에서 갖는 의미를 비교적 새롭게, 다각도로 포착했다는 장점을 갖는다. 하지만 상호참조 없이 본격 비평서임을 자처하며 게임인문학에 대한 다분히 기초적인 논의(특히, 내러톨로지나 루돌로지와의 연관 속에서)를 유사하게 반복하고 있다는 점, 이후 보다 발전적이면서 지속적인 작업으로 연결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은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 (왼쪽부터) 박상우, 이상우, 이경혁, 인문합협동조합의 게임비평서 현재진행형이라 아직 그 성과를 말하기엔 이른 감이 있지만, 게임비평에 대한 주목할 만한 시도들이 있다. 이경혁은 2014년 11월 미디어 비평지 <미디어스>에 게임비평 ‘Play the Game’의 연재를 시작으로, 여러 온라인신문, 게임사 블로그, 잡지 그리고 <국방일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비평작업을 하고 있다. 개별 게임 텍스트에서부터 한국 게임문화의 역사적 유물로서의 오락실과 e스포츠(e-Sports), 게임산업, 플레이/어, 게임을 둘러싼 부정적인 담론, 그리고 게임 텍스트에 담긴 사회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논의범위 또한 넓다. 2021년 6월 기준 비슷하게 활동하는 비평가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그가 보일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5. 게임비평의 문제점 한국 게임비평의 외재적 문제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게임에 대한 강한 규제와 부정적 담론 확산으로 산업이 위축됨에 따라 게임비평이 활성화될 수 있는 토대도 척박해졌다. 강한 규제와 부정담론은 게임을 ‘나쁜 것’,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 없는 것’으로 만든다. 둘째, 게임전문지가 다수 존재함에도 전문적인 비평을 행하고 있지 못하다. 해외는 상황이 크게 다르다. 영국의 ( www.pcgamer.com )나 미국의 <컴퓨터 게이밍 월드(Computer Gaming World)>( computergamingworld.com )과 같은 게임전문지는 단순한 리뷰나 공략보다 심층적인 정보나 비평을 제공한다. 게임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이 이뤄지는 웹진 <코타쿠(Kotaku, kotaku.com )>, 개발자와 연구자들이 게임 제작취지와 게임에 대한 비평, 연구결과 등을 게재하는 <가마수트라(gamasutra)>( www.gamasutra.com )등도 전문적인 게임비평공간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물론 국내외의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플레이어의 성향, 게임에 대한 비평토양 등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한국 게임전문지들이 보이는 리뷰나 공략에의 지나친 집중은 전문지들이 주된 광고주인 게임 퍼블리셔나 게임사들의 홍보매체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게 만든다. 내재적 측면의 문제점으로는 게임만이 가진 텍스트적 특징으로 인한 비평의 어려움을 꼽을 수 있다. 기호와 서사로 구성되기 때문에 다른 문화장르와 유사한 것 같지만, 게임은 독특한 향유구조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 향유구조가 텍스트 자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게임은 사전에 모두 제작된 상태로 향유자에게 제공되는 다른 문화장르와 달리 플레이어가 그것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불완전한 텍스트인 채로 남는다. 플레이어는 불완전한 게임 텍스트에 참여해 게임과 상호작용하는 주체이며, 플레이어의 참여는 곧 완전한 텍스트로서의 게임을 가능하게 만드는 필요조건이다. 때문에 게임에서는 창작주체와 수용주체의 구분이 애매해진다. 게임 텍스트는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이다. 이는 게임이 단순히 알고리즘의 구현물이 아니라 플레이어에게 스토리 및 허구적 상황을 경험하게 하는 서사 환경을 지님을 의미한다(강신규, 2016). 따라서 게임비평은 텍스트 자체만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어떤 경험이 제공되는지, 경험이 이뤄지고 나면 다음 플레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등까지를 논의 범위에 포함(김연희, 2012. 12. 12)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게임은 플랫폼별·장르별로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갖는 경우가 많아 그것을 비평하는 데 하나로 모으기 어려운 다양한 관점과 방법들이 요구된다. 다른 문화장르들이 ‘봐야’ 알 수 있는 것이라면 게임은 ‘해 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게임전문가나 수준급의 플레이어라 해도 접해 보지 않은 게임을 비평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게임은 전문가 수준의 정보와 지식을 가진 향유자들이 너무 많은 문화 장르이기도 하다. 게임을 하려면 대체로 같이 즐길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크게는 장르나 플랫폼, 작게는 개별 타이틀에 따라 향유 공동체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경험 제공’이라는 특성은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정보를 공유하고 평가하는 것이 게임 플레이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한다. 요컨대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들은 다른 사람의 플레이나 관련 정보를 ‘접하고’ 그것을 다시 게임‘하는’ 데 활용한다(강신규·채희상, 2011). 직접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들이 다른 누구보다도 더 많은 정보와 경험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 정보와 경험 바깥에 위치하거나 안으로 깊이 들어와 있지 못한 게임비평 주체가 그것을 온전히 읽어 내기 어려운 이유다. 6. 게임비평의 조건들 ‘게임비평’이란 게임의 가치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작업을 말한다. 이 때 ‘비평’은 기존의 문학, 미술, 음악, 무용, 연극, 영화 등의 비평에서 사용하는 개념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하지만 각 비평이 그런 것처럼, 게임비평 역시 다른 비평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비평의 대상과 조건에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때문에 게임비평의 조건을 살피기 위해서는 비평 일반조건과 게임의 변별적 특성을 반영한 조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또, 비평의 조건은 고유하게 존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비평대상의 형질변화와 비평에 요구되는 역할에 따라 다르게 구성되는 것이다. 비평하는 사람에 따라 비평조건에 대한 인식이 다를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그 조건에 대해 최소한의 합의 가능한 지점들을 모색하는 일은 가능할 듯하다. 1) 비평의 일반조건 기본적으로 비평은 비평주체(비평가), 비평대상(넓은 의미의 작품), 창작주체(제작자/창작자/작가), 수용주체(향유자/수용자/독자)라는 네 요소를 필요로 한다. 창작주체에게는 창작에 피드백을 주는 반응으로 작용하고, 수용주체에는 수용 선택여부나 수용방법 등을 알려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 비평이다. 비평주체는 비평을 통해 비평대상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확인해볼 기회를 얻는다. 비평주체/대상, 창작/수용주체가 비평을 구성하는 기본요소들이라면, 비평의 조건으로 다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비평은 감상문 수준을 넘어서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둘째, 비평가에 대한 공인절차고 요구된다. 셋째, 전문학술지, 일간지, 잡지, 웹진 등 비평이 발표될 매체가 필요하다. 매체는 비평활동의 안정성을 보장하고, 신뢰할만한 것이어야 한다(김봉석·박정숙·박기수·한상정, 2015. 5. 8). 세 조건은 각각 비평의 전문성, 안정성, 지속성과 관련된다. 이를 종합했을 때, 비평이란 ‘비평주체가 신뢰할 만한 매체를 발표공간으로 삼아, 비평대상과 관련된 사안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을 한 뒤 평가를 내리는 전문적인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다른 무엇보다 비평의 힘은, 대상이 지닌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열어주는 수준을 넘어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지닌 사회적 함의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해나가는 과정에서 나온다. 게임비평도 마찬가지다. 게임이 주는 단순한 즐거움만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기능과 게임이 보일 수 있는 비전을 이야기하고, 나아가 그것을 통해 일상의 변화와 시대흐름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결국 비평은 비평대상의 성취를 읽어내고, 그런 읽기를 통한 생생한 인식을 사회로 확산하는 작업인 셈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 전제들이 요구된다. 먼저, 게임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토론을 위한 비판적 풍토를 조성한다. 다음으로, 게임과 게임비평을 지지하고 체계화한다. 마지막으로, 개인 혹은 사회의 게임 향유경험을 이해할 수 있도록 비판적 도구·해석·평가를 제공한다. 2) 변화의 고리와 게임비평 하지만 비평의 일반조건은 게임비평이 당면한 상황과는 꽤 거리가 있다. 특히, 한국에서 게임비평은 느슨하게 형성돼 있고, 기존의 예술·문화장르에서처럼 고정된 형태로 제도화돼 있는 수준까지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비평은 대상이 무엇이 됐든 본질적으로 유연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게임과 사회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게임비평이라면, 그것은 게임의 변화, 그리고 사회의 변화에 따라 출렁거리는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 게임 개념도 계속 재구성된다. 메타버스(metaverse) 시대 게임은 온라인게임 태동 이전 게임과 다를 수밖에 없다. 기존 예술이나 문화장르에 비해 접근성이 높고 폐쇄성이 강한 게임문화의 경우, 전문가 집단의 체계적인 비평이 형성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개별 게임의 향유가 향유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관련된다는 점도 게임비평의 제도적 형성을 어렵게 하는 큰 요인 중 하나다.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게임비평은 없는 게 아니라 어쩌면 너무 많은 곳에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제도화된 비평이 미미할 뿐, 제도 바깥의 비평열기는 그야말로 상상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전통적 관점에서 제도화된 비평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게임비평은 그야말로 ‘넘쳐난다’. 블로그,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 소셜 미디어 등 온라인 공간을 기반으로 게임비평을 자처하는 작업들이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다. 다양한 플랫폼과 디바이스를 통해 게임 향유경험이 축적되고 그로 인한 일정 수준의 커뮤니티가 형성됨으로써 플레이어들은 이제 전문가 수준의 정보와 지식을 갖게 됐다. 이는 플레이어들을 준 비평가로 만드는 계기가 됨과 동시에, 플레이어들을 골고루 만족시킬 만한 고유의 비평체계가 이뤄지기 어려운 이유가 되기도 한다. 적극적인 향유=비평을 통해 비평의 저변이 넓어졌다거나 비평이 민주화됐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상황은 게임비평의 수준을 떨어뜨리고 그 정체를 모호하게 만든다. 기존 예술·문화 장르의 비평 장(場)이 이미 제도화된 전문적 비평영역과 온라인을 중심으로 새롭게 구성된 아마추어 비평영역 사이의 갈등과 연대가 교차하는 역동적 공간이 되고 있다면, 제도화된 비평영역의 부재로 인해 가뜩이나 분명하지 않았던 게임비평의 정체는 더욱 불분명해진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게임비평의 조건과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 연결된다. 기존의 비평개념으로는 작금의 현상에 대한 이해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과연 전문적인 비평을 위한 체계를 마련하는 일이 게임담론의 생산주체가 되는 일, 그리고 게임발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능동성을 발휘하는 일로 기능할 수 있을까? 제도화돼 있지 않다면 그 자체로 가능성이 될 수는 없을까? 비평의 민주화를 통해 제도권 내 비평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낯선 상상력을 발굴할 여지가 열리게 된 것은 아닐까? 이 질문들에 대해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제도화되지 않은 비평의 장에서 쏟아지는, 이른바 ‘중심 없는 주변부’의 비평들을 규정하는 조건이 새롭게 구성돼야 한다. 비평의 장 자체를 흔드는 변화 속에서 비평과 비평 아닌 것을 구분하는 것보다, 새로운 조건 마련을 통해 비평의 외연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게임 향유자는 수동적으로 비평을 소비하던 역할에서 벗어나, 온라인 공간을 통해 능동적으로 비평을 생산·배포·공유하는 새로운 비평주체로 인식될 필요가 있다. 그들이 비평을 행하는 온라인 공간 역시 해당 공간에 들어오는 비평독자들이 비평을 읽고 소감을 밝히는 새로운 비평의 장이자 역동적인 비평공간으로 자리매김한다. 남은 것은 그들의 비평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비평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냐의 문제다. 하지만 애초에 ‘고급/좋은’ 비평과 ‘저급/나쁜’ 비평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전통적 비평이 추구해온 것처럼 고급독자만을 위한 전문적 의미의 비평만이 비평은 아니다. 게임의 특성, 그리고 그 향유자를 감안한다면 전통적 비평개념의 수정 혹은 확장은 필연적이다. 그 명확한 기준과 범위를 제시하는 일은 더 이상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성질을 지니며, 비평주체와 독자 간 갈등과 연대 속에서 성립한다. 물론 그럼에도 그 과정에서 비평 고유의 목적과 역할은 지켜져야만 한다. 그것이 아니면 비평이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강신규, 2016). 7. 게임비평이 나아갈 방향 그렇다면, 게임비평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할 수 있을까? 첫째, 독창적인 이론과 방법론의 발굴이다. 게임비평만을 위한 이론과 방법론을 찾는 일이 쉽지 않음에도, 게임이 처한 현실과 그것을 둘러싼 사회 맥락에 가 닿을 수 있도록 하는 비평이론과 방법론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는 반드시 필요하다. 비평대상이 다르면 비평의 언어도 달라져야 한다. 게임이 가진 고유속성에의 천착을 통하 스스로의 정체와 역할을 구성했을 때, 비로소 게임비평의 변별성이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정신분석 비평, 마르크스주의 비평, 여성주의 비평, 신비평, 독자반응 비평, 구조주의 비평, 해체 비평, 신역사주의와 문화 비평, 레즈비언·게이·퀴어 비평 등 텍스트를 풍성하고도 심도 깊게 살필 수 있는 기존의 비평이론과 방법론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게임의 미학 안에서 통합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함께 이뤄져야 함은 물론이다. 게임 플랫폼이나 장르에 따라 비평을 세분화·전문화함으로써 전체 비평의 틀을 다지는 일도 고려해볼 만하다. 매체전환(media transformation)과 미디어믹스(media mix)가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새로운 비평의 양식이나 형식을 발굴하는 일 역시 매우 중요하다. 둘째, 비평의 역할 재/정립이다. 흔히 발견되는 비평의 자의식 부재, 해설이나 주례사 비평으로의 쏠림은 비평의 역할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데 기인한다. 비평은 비평대상을 흡수하거나 투과시키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 시선과 함께 배출하거나 반사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비평의 주된 역할은 ‘먹음’이 아니라 ‘되먹임’이다. 비평주체와 대상 사이에 이뤄지는 되먹임의 반복을 통해 비평을 둘러싼 주체가 공진화(coevolution)하는 것이 비평의 효과다. 하지만 게임비평의 역할은 여기서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특정 텍스트에 대한 치밀한 해독에서, 장 내 주요 행위자들이 직면한 문제들, 그리고 해당 장에 제기되는 도전과 응전의 방향성들을 보다 긴 호흡으로 치밀하게 조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향후 게임비평이 창작주체와 수용주체가 형성하는 문화의 변화를 탐구하는 동시에, 기민하게 변화하는 텍스트들의 정립상과 사회적 활용, 그리고 산업으로서 게임이 당면하고 있는 변화까지도 아우를 수 있는 구체적인 전망과 대비책을 마련하고, 이를 두껍게 읽어내는 역량까지 배양해야 함을 시사한다. 비평이 이차적인 글쓰기로서의 지위에 만족하는 한, 비평이 비평대상을 이끌어가는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게임비평은 텍스트를 넘어 텍스트화되지 않은 현실에까지도(물론 게임과의 관계 속에서)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게임비평의 역할은, 비평으로서 타개해나가야 할 문제와 게임적 사회와 삶에 대한 반성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그것과 함께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문제까지 폭넓게 다루는 것이다. 셋째, 제도권/비제도권을 막론하고 이제 비평논의에 대해 있어 요구되는 것은 ‘총체적’ 통합의 불가능성 혹은 불필요성에 대한 인식이다. 비평과 비평 아닌 것, 비평공간과 비평공간 아닌 곳, 비평가와 비평가 아닌 사람 사이를 구분하는 선은 수명을 다했다. 전문가 수준의 향유자, 전문가에게 없는 경험치를 지닌 향유자, 어디서나 격전이 벌어지는 비평공간, 기존의 정형화된 비평을 넘어서는 비평이 넘쳐난다. 더 이상 서로를 구분하는 선 자체가 의미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게임비평이 나아갈 방향 논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돼야 한다(강신규, 2021). 하지만 문제는 게임비평에 잘 된 비평과 그렇지 못한 비평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게임비평을 할 줄 모른다는 말은, 더 정확히 지적하자면 잘된 비평을 쓸 줄 모른다는 말이다. 비평을 할 바에야 잘 된 비평을 쓰고 싶은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처음부터 그런 비평을 쓰는 일은 쉽지 않다. 처음부터 잘 된 비평을 쓰려고 하는 욕망은 내내 문제가 된다. 하나의 창조적 작업임에도 창조하는 즐거움보다 결과만 탐하게 되어, 남의 것을 모방하게 되고, 얻어들은 지식을 체계없이 나열하게 되고, 허황되게 꾸미게 되는 것이다. 나만의 게임경험과 그 경험과정에서 얻게 된 지식들이 잘된 비평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비평이 잘된 비평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전통적인 것이든 새로운 것이든 먼저 나름의 체계와 전문성을 갖춰야만 한다. 다른 비평에 대한 필요이상의 냉소함도 지양할 필요가 있다. 비평의 총체적 통합이 가능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비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아니라, (어디서든, 그리고 그게 누구든) 타인의 비평을 주의 깊게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자신의 관점이 지닌 타당성을 물으면서, 타인과 자신의 비평에 새로운 의미를 덧입히려는 노력이다. * 이 글은 저자의 저서 <서브컬처 비평(2021)> 내용을 중심으로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참고문헌 강신규 (2016). 하위문화 비평의 궤적과 방향: 만화·애니메이션·게임비평을 중심으로. <문화과학>, 85호, 128~158. 강신규 (2021). <서브컬처 비평>. 커뮤니케이션북스. 강신규·채희상 (2011). 문화적 수행으로서의 e스포츠 팬덤에 관한 연구: 팬 심층인터뷰 분석을 중심으로. <미디어, 젠더 & 문화>, 18호, 5~39쪽. 김득렬 (2012. 1. 4). 게임잡지 연대기 2부–게임잡지 몰락에서 웹진탄생까지. <게임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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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소 지향 헌터들 연대기:<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어떻게 손 안에 축소되었다가 혼종적으로 변모하려고 하는가
작년에 20주년을 맞이하게 된 캡콤 제작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2000년대 초부터 대두되고 있던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이라는 새로운 형식에 대한 일본 게임계의 대답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게임이 처음 등장했던 2004년 일본 게임업계는 2002년 성공적으로 MMORPG를 콘솔 게임에 이식한 <파이널 판타지 XI>를 제외하면 마땅한 청사진이 없었다. < Back 25 GG Vol. 25. 8. 10. Tags: 몬스터헌터, 프랜차이즈, 액션롤플레잉, 일본게임, 헌팅액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이이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전문사 졸업 후 영화•게임 비평 기고 활동중. 어드벤처 게임 좋아함. (antistar23@gmail.com )
- 게임의 문화담론 정착을 위한 발걸음, ‘게임제너레이션’
1998년 이후 한국은 스스로나 해외로부터의 평가로나 자타공인 게임 강국으로 불려 왔다. 그러나 게임 강국 한국이라는 단어의 이면에는 다소 불균등한 지점이 존재하는데, 여기서의 게임강국이라는 말은 말그대로 ‘플레이’의 강국이라는 점에만 집중되기 때문이다. < Back 게임의 문화담론 정착을 위한 발걸음, ‘게임제너레이션’ 14 GG Vol. 23. 11. 5. 게임의 문화담론 정착을 위한 발걸음, ‘게임제너레이션’ 이경혁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그토록 많은 이들이 플레이하지만 왜 아직도 문화라는 말에 의문부호가 붙는가? 1998 년 이후 한국은 스스로나 해외로부터의 평가로나 자타공인 게임 강국으로 불려 왔다 . 그러나 게임 강국 한국이라는 단어의 이면에는 다소 불균등한 지점이 존재하는데 , 여기서의 게임강국이라는 말은 말그대로 ‘ 플레이 ’ 의 강국이라는 점에만 집중되기 때문이다 . 한국에서 제작된 게임 중 전세계적 흥행을 이끌어낸 게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적어도 2017 년의 ‘ 배틀그라운드 ’ 이전까지는 마땅한 작품을 꺼내들기 힘들었다 . 산업의 규모나 소비자시장에서라면 압도적일지 몰라도 , 씬을 대표할 특정한 타이틀 하나를 뽑아들기 어려운 형국은 e 스포츠 선수 풀이나 소비자 시장규모 , 제작산업 규모가 보이는 강세와 비교해볼 때 의아스럽다 . 탄탄한 소비자층과 시장을 보유하면서도 마땅히 내세울 타이틀이 드물었던 한국 게임계에는 다양한 사회적 배경이 작용했겠지만 , 이를 하나로 통틀어 말해 본다면 아무래도 게임문화의 부재라고 부를 수 있을 어떤 상황일 것이다 . 게임을 잘 하고 많이 하지만 , 막상 그 게임을 두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그저 수출액이 얼마 , 어느 대회에서 몇 위를 이야기하는 것 이상의 문화를 우리는 유의미한 규모로 가져 본 적이 드물다 . 그러나 디지털게임의 가능성은 산업적 규모나 플레이로서의 성취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 많은 게임들은 다른 예술장르처럼 인간과 사회 전반에 대한 밀도있는 통찰을 각자의 방식으로 담고 풀어냈으며 , 이를 향유하는 대중들은 작품에 담김 함의를 읽어내고 이를 다시 사회로 재환원시키는 과정을 거쳐 왔다 . 그리고 우리는 이 과정을 통틀어 문화라는 이름으로 부르곤 한다 . 충분히 발달한 게임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한국에는 게임을 문화로 소화할 인프라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 웹진 ‘ 게임제너레이션 ’ 의 시작은 바로 이 고민으로부터 출발했다 . 노는 것을 터부시해온 산업화 일변도의 한국에서 게임비평은 쉽지 않았다 왜 게임을 문화로 다루지 못해왔는가 ? 이 질문에는 다양한 사회적 맥락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 한국 특유의 강한 교육열은 디지털게임 초기에 주대상이었던 청소년층으로 하여금 이 새로운 매체에 대한 손쉬운 접근을 불허한 바 있었다 . 학교와 정부 , 사회는 오락실이라는 공간을 불량청소년들의 집합지로 낙인찍었고 , 게임하는 이들을 사회낙오자에 준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 한참 산업화에 열을 올리던 8-90 년대에는 비단 청소년 뿐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노는 일은 시간의 낭비 , 게으름의 영역에 속했다 . 2000 년대 들어와서야 한국은 일주일에 이틀의 휴일을 얻을 수 있었고 , 직장 노동자들에게 질병이나 가정사가 아닌 이유로 휴가를 내고 쉰다는 건 게으름뱅이라는 낙인을 부르는 일이었다 . 노는 일을 터부시하던 급속한 산업발전기의 경험을 가진 한국인들에게 놀기 위해 장비를 사고 시간을 내야 하는 디지털게임이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었다 . 그러나 적어도 21 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놀이에 대한 터부는 과거와 같은 규모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 우리는 주 5 일제의 도입이 오히려 여가부문의 산업을 촉진시키고 노동자로 하여금 충분한 휴식을 통해 더 나은 생산성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 노는 일 playing 이 그저 쉬는 일 resting 이 아닌 , 또다른 의미의 창발성임을 터득한 바 있다 . 산업자본주의에서 이른바 인지자본주의 시대로 전환하면서 쏟아지는 고부가가치의 무형 콘텐츠산업의 중심은 언제나 노는 일이었다 . 영화를 보고 , 만화를 보고 , 음악을 즐기는 과정이 한국 산업의 중심을 차지함에 따라 노는 일의 중요성은 과거와 다르게 인식되었고 , 디지털게임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인식의 변화를 겪어 왔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다른 매체와 비교할 때 게임에서는 그 문화적 영향력을 이야기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인지한다 . 여기에 개입하는 또다른 원인은 오랫동안 서브컬처의 영역에서 단지 ‘ 그들만의 이야기 ’ 로 치부되던 게임이 대중문화의 영역으로 위치를 옮겼지만 여전히 담론장에서는 이를 소화할 상황을 만들지 못했다는 점이 있다 . 간단히 말하자면 , 평론의 부재다 . 음악 , 영화 , 미술 , 문학 등 기존의 많은 매체양식들이 예술 혹은 문화라는 이름으로 일련의 씬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평론의 역할은 지대했다 . 작품의 의미를 해설하고 널리 알리며 , 완성된 작품을 단지 그 작품 하나만의 의미에 두지 않고 동시대와 과거 , 현재 , 미래를 엮으며 다른 모든 사회요소와의 관계망 속에서 다시 읽어내는 일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의 작품이 곧 우리가 사는 세계와 동떨어지지 않은 , 혹은 우리 자신이 투영된 어떤 모습임을 알게 되었다 . 만약 디지털게임에서도 이와 같은 평론의 장이 형성된다면 우리는 그때부터 비로소 게임문화라는 새로운 담론을 유의미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 페다고지, 담론, 그리고 실천: 게임문화담론을 위해 필요한 방법들 2021 년 8 월 ‘ 게임제너레이션 ’ 이 첫 호를 내면서 선택한 주제가 그래서 ‘ 문화로서의 게임 ’ 이었다 . 그동안 한국에서 게임은 ‘ 게임은 문화다 ’ 라는 선언으로는 존재했지만 , 실천방안으로서의 문화적 개입은 사실상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이었다 . 게임을 문화담론으로 가져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 우리는 문화입니다 !’ 라는 선언이 아니라 실제로 게임을 중심에 두고 문화를 이야기하는 실천이다 . 그러한 실천을 수행할 장으로서 ‘ 게임제너레이션 ’ 은 만들어졌다 . 지난 14 개 호 동안 ‘ 게임제너레이션 ’ 은 디지털게임을 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 그리고 해야 하는 이야기들을 발굴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 네트워크 , 게임 결제와 같은 디지털게임을 구성하는 인프라가 얼마나 사회적 상황과 맞물리는지를 살펴보았고 , 과거의 게임과 사뭇 다른 양상으로 발전하는지를 보여주는 현상인 방치형 게임 , 온라인 / 오프라인의 구분이 어떤 의미인지를 살펴보고자 했다 . 예술과 게임의 관계 , 게임이 가지고 있는 지역성과 같은 주제 뿐 아니라 ‘ 게임제너레이션 ’ 은 게이머 , 특히 그 중에서도 소수자들이 게임 안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 , 그리고 그런 소수자들은 오늘날의 디지털게임에 얼마나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는지를 살피며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에 주목해 왔다 . 문화담론의 장 구축을 위해 ‘ 게임제너레이션 ’ 은 이러한 주제들을 다룸에 있어 세 가지 방법을 통해 접근하고자 했다 . 첫째는 ‘ 페다고지 Pedagogy’ 다 . 디지털게임에 대해 그동안 축적된 다양한 관점에서의 연구결과들을 취합하고 , 이를 일반 대중들에게 접근하기 쉽게 가공하여 대중화함으로써 전문지식에의 접근성을 높여 담론장의 기초를 구축하는 작업이다 . 둘째는 담론 Discourse 의 구축이다 . 다양한 전문가집단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각각의 디지털게임이 만들어낸 결과를 관찰 , 분석하고 , 이를 통해 비평이라는 방식으로 게임과 사회의 관계를 고찰하여 디지털게임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의미를 되새기는 작업이다 . 셋째는 실천 Implementation 이다 . 준비된 담론장에서 활동할 수 있는 다양한 연구자와 필진을 육성하기 위해 매년 게임비평공모전을 진행하고 , 새로운 필자 확보를 위해 폭넓은 연구결과들을 리뷰하며 동시에 국내에 머물지 않고 글로벌 트렌드와의 보조를 맞추기 위해 북미 , 유럽 , 일본 , 중국 등의 주요 게임선진국과 네트워크를 구축 , 강화하는 작업을 ‘ 게임제너레이션 ’ 은 이어가고 있다 . 전문성과 대중성 사이를 메꿔나가며 만드는 게임문화담론의 가능성을 위해 서브컬처로 오랜 세월을 지내 온 디지털게임이 대중문화의 영역으로 넘어오면서 마주하는 문화적 빈곤은 비단 한국에만 국한되는 현상은 아니다 . 디지털게임에 대한 무거운 인문사회적 접근은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지만 이러한 성과들은 대중적으로 널리 퍼져나가고 있지 못하고 , 대중적인 인지도를 확보함 많은 게임웹진들은 플레이 바깥에 존재하는 게임과 사회의 관계를 다루지 못한다 . ‘ 게임제너레이션 ’ 은 게임 담론이 가진 전문성과 대중성 사이의 간극을 채워나감으로써 비로소 디지털게임을 문화예술의 한 영역으로 안착시키는 데 이바지하고자 한다 . ‘ 웹진보다 무검게 , 학술지보다 가볍게 ’ 라는 ‘ 게임제너레이션 ’ 의 슬로건은 곧 문화담론으로서 게임을 위치시키는 데 가장 시급한 방법론에의 선언이기도 하다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온라인 시대의 살아있는 화석, 보드게임 이야기
1938년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되어 그 존재가 알려진 실러캔스라는 어류 개체가 있다. 실러캔스는 약 3억 7천 5백만년 전 지구상에 출현하여, 약 7천 5백만년 전 절멸했다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실러캔스는 살아있었다. < Back 08 GG Vol. 22.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보드게임기획자) 윤창환 보드게임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보드게임을 만드는 재미를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항시 보드게임 게이머 모집 중입니다. @imakeboardgames 인스타그램 으로 연락주세요.
- 보다 책임감 있는 재현을 실천하는 게임을 향해
어떤 매체에 대한 담론은 해당 매체가 겨냥하는 수용자 또는 이용자가 어떤 존재이며 그들이 매체와 맺는 관계에는 어떤 의도들이 담겨있는 것인지에 대한 여러가지를 드러낸다. 북미와 유럽의 게임 관련 공공 담론에 있어 오랫동안 게임은 - 거칠게 말해 - 번쩍이는 컴퓨터 화면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빠져들 수 있는 오락에 하릴 없이 시간을 소비하는 십대 소년들을 위한 것으로서 인식되어왔다. < Back 보다 책임감 있는 재현을 실천하는 게임을 향해 04 GG Vol. 22. 2. 10. - You can see the english version in this URL: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pageNum=1&match=id:86 어떤 매체에 대한 담론은 해당 매체가 겨냥하는 수용자 또는 이용자가 어떤 존재이며 그들이 매체와 맺는 관계에는 어떤 의도들이 담겨있는 것인지에 대한 여러가지를 드러낸다. 북미와 유럽의 게임 관련 공공 담론에 있어 오랫동안 게임은 - 거칠게 말해 - 번쩍이는 컴퓨터 화면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빠져들 수 있는 오락에 하릴 없이 시간을 소비하는 십대 소년들을 위한 것으로서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이 정형화 되어있는 게이머에 대한 인식에 의문을 표하면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는 실제 사람들의 다양성에 대한 탐색을 시작했다. 여기에는 부모의 스마트폰으로 처음 게임을 접하게 된 유아들, 〈워드퓨드(Wordfeud)〉 같은 게임에 빠진 은퇴한 여성, 손주와 〈카운터 스트라이크〉 게임을 함께 하는 할머니 게이머 등이 포함된다. 또한 〈포트나이트〉를 배회하며 함께 어울리는 것을 즐기는 게이 게이머나 잠든 아기 옆에서 닌텐도 스위치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젊은 엄마도 포함될 수 있다. 게임 문화의 규범 비평 디지털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당연히 - 정형화된 유형의 플레이어들이 아니라 - 나름의 개별적인 방식으로 게임을 경험하는 실제 플레이어들이다. 지난 십 년간 게임 저널리스트, 문화 비평가, 학자들은 주류 게임 내 젠더와 인종, 장애, 나이, 신체에 대한 재현의 문제에 대해 논의해왔다. 이러한 논의가 밀도 있게 시작된 것은 북미였지만, 이제는 유럽에서도 규범 비평(norm critique)이라는 이름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게임 내 재현에 대한 논의는 기본적으로 3가지로 나뉜다. 첫째, 게임이 사람들의 다양한 정체성 또는 정체성의 여러 측면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둘째, 게임의 이용자층에서 주변화되어있는 사람들에 대한 재현이 어떠한가, 셋째, 게임 업계 내 주변화된 사람들이 어떠한 양상으로 나타나며 그들의 업무 환경은 어떠한가. 이 세 가지 요소는 공공 담론상에서 상호적으로 얽혀서 나타나곤 한다. 예를 들어 어떤 게임에서 여성이 부정적으로 재현될 경우 여성 플레이어들이 그 게임으로부터 등을 돌릴 것이라고 여겨지며, 게임 업계 내 주변화된 사람들의 양상이 개선되면 게임 내에서도 그러한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개선될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이 어느 정도 사실일지라도, 현실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점을 게임학자들은 지적한다. 진지한 주제를 다루는 게임들 게임에서 여성 캐릭터가 수적으로 적고, 그 역할과 기능에 있어서 한정되는 등 오랫동안 불균형이 존속되어왔으며, 여성 캐릭터들의 외모가 시각적으로 성적인 매력이 지나치게 부각되어왔음은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1983-2014년 사이에 출시된 5백편이 넘는 게임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90년대 후반에 정점을 찍은 여성 신체의 성적 대상화는 2006년 이후부터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감소 추세는 업계 전반적으로 자신들이 만들고 있는 게임이 진지한 주제에 대한 자각을 일깨울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인지하면서 시작된 느린 변화를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예를 들어 2017년 〈헬블레이드: 세누아의 희생(Hellblade: Senua’s Sacrifice)〉를 출시한 영국의 게임사 닌자씨어리(Ninja Theory)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타밈 안토니아데스(Tameem Antoniades)는 인터뷰를 통해 이 게임이 단순한 오락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정신병으로 인한 고통이 어떠한 경험인지 플레이어들이 진정으로 느낄 수 있도록 노력했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2018년 덴마크에서 인디게임 데모로 출시된 〈포가튼(Forgotten)〉은 알츠하이머로 인한 고통이 어떠한지를 표현했다. 이 게임은 현재 오토스코피아 인터랙티브(Autoscopia Interactive)에서 개발 중이다. 유럽의 인디게임 업계 또한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되고 주변화된 인물들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게임개발사 픽셀 헌트(The Pixel Hunt)가 개발한 〈Bury me, My love〉는 유럽을 횡단해서 프랑스 파리까지 이동하는 한 시리아 난민의 이야기를 다룬다. 2021년 가을에는 영국의 AAA 게임사 플레이그라운드 게임즈(Playground Games)가 인기 레이싱 게임 〈포르자 호라이즌(Forza Horizon)〉의 다섯번째 판을 내놓으면서, 게임 내에서 의수나 의족을 찬 캐릭터를 생성하는 것과 성 중립적인 대명사를 선택하는 것이 가능해졌음을 주류 언론의 헤드라인을 통해 알렸다. 많은 논쟁이 게임 캐릭터에 대한 재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가운데, 포용적인 게임 디자인이 이 특정한 문제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부상하고 있는 인디게임 산업은 AAA 산업의 잘 다듬어진 모델 너머에 존재하는 경험들을 전달하고자 하는 게임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러한 게임들은 또한 컴퓨터 앞에서 오랜 시간을 꼼짝 않고 앉아 있을 수 없는 플레이어들에 맞는 플레이 모드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러한 양상은 IO인터랙티브(IO Interactive) 같은 소수의 거대 스튜디오를 제외하고 대부분 소규모의 인디 게임 개발자들로 구성되어있는 덴마크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 〈포가튼(Forgotten)〉은 알츠하이머를 앓는 경험을 전달하고자 하는 짧은 게임이다. 기억 상실과 왜곡의 감각을 주기 위해서 게임 캐릭터들의 얼굴이 흐려져 있다. 플레이어층의 확장 이처럼 느리게나마 진행되고 있는 변화상은 플레이어층의 다양화라는 두번째 문제로 부분적으로 설명 가능하다. 게임산업은 새로운 수용자층을 찾아내기 위해 다양한 플레이어들에 호소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게임 내 주변화된 정체성에 대한 재현과 플레이어층의 다양성 간에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없으며, LGBTQ 등 주변화된 집단의 사람들은 게임 내 LGBTQ 캐릭터가 부정적으로 재현될지라도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주류 매체조차 게임 내 주변화된 사람들에 대한 문제적 재현에 관심을 가지면서, 게임사들이 그와 같은 부정적인 정형화를 반복 재생산하는 것은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그와 같은 공공 담론 그 자체가 게임업계로 하여금 강력한 구매력을 지닌 집단을 겨냥하여 새로운 이용자층으로 포섭하도록 장려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게임 내 주변화된 정체성에 대한 부정적 묘사의 문제는 상황의 한 단면을 설명하는데 그칠 뿐이다. 많은 주변화된 집단들은 여전히 괴롭힘과 차별, 폭력을 경험하고 있는데, 특히 온라인 게임을 플레이할 때 심각하게 나타난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플레이어의 주변화 문제를 다루는 유럽 내 담론이 주로 (젊은) 여성 플레이어의 경험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종이나 사회·경제적으로 주변화된 사람 등 여타의 주변화된 집단의 상황은 여전히 공공 담론에서 배제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주변화된 정체성을 지닌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들을 존중하면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음에도, 게임 업계가 여전히 그러한 집단이 지닌 플레이어로서의 가능성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대를 통한 노동 조건의 개선 지난 수년 간 게임 업계 내 주변화된 사람들의 문제는 상당한 주목을 받아왔다. 업계 내 주변화된 노동자들, 특히 여성 노동자들이 #1ReasonWhy 해쉬태그를 통해 업계 내 차별과 성차별주의, 괴롭힘에 대해 알리기 시작하면서 십년 전부터 주목 받아온 이 문제는, 지난 몇년 동안 유럽의 AAA 업체 내 유해 업무 문화나 성적 부정행위 문제들이 드러나면서 다시 헤드라인에 오르기 시작했다. 북유럽에서는 아직 이와 유사한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여러 매체에서 폭력이나 가해 행위의 몇 가지 사례를 다룬 바 있다. 노동조합은 명백히 이와 같은 문제에 대처하는 기관으로서 주변화된 노동자들을 위한 환경의 개선에 힘쓰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강력한 노동조합의 전통을 지닌 스칸디나비아 반도임에도 이 권역 내 게임 업계의 노동자 조합은 아직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은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에 따라 주변화된 인물에 대한 책임감 있는 게임 내 재현이나 남성 게이머라는 정형화된 규범의 바깥에 놓인 플레이어들을 포용할 수 있는 문화의 조성 등과 같은 다양한 논의들이 벌어지고 있는 공공 담론의 다른 한편에서는 업계 내 조직의 변화를 요청하는 목소리도 여전히 울려퍼지고 있는 상황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이다 요르겐센 이다 요르겐센은 덴마크의 코펜하겐 IT 대학(IT University of Copenhagen)에서 게임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주로 젠더 재현, 게임 문화, 매체로서의 게임 등과 관련된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는 서던 덴마크 대학(the University of Southern Denmark)에서 박사후 과정 중에 있다.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논문세미나] Horror Video Games and the “Active-Passive” Debate 호러 비디오 게임과 “능-수동” 토론 / 데이비드 크리스토퍼 & 에이단 로이즐러
결론적으로 저자들은 위의 작품들을 루돌로지적 상호작용성으로 명명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루돌로지적 행위성을 강조하는 이분법으로는 위 작품들이 발휘하는 특유의 효과를 온전히 담아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모든 호러 게임을 루돌로지적 상호작용성의 원리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 Back [논문세미나] Horror Video Games and the “Active-Passive” Debate 호러 비디오 게임과 “능-수동” 토론 / 데이비드 크리스토퍼 & 에이단 로이즐러 19 GG Vol. 24. 8. 10. 시각문화 연구자인 버나드 페론은 2009년 『Horror Video Games: Essays on the Fusion of Fear and Play』라는 책을 출간한다. <바이오 하자드>나 <암네시아> 시리즈와 같은 호러 게임이 향유층을 탄탄히 다져가며 인기를 끌고 있지만 정작 학계에서는 호러 비디오 게임에 대한 논의가 소외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작업이었다. 현장 종사자와 연구자를 아우르는 다양한 필자가 호러라는 장르와 게임의 접합에 관한 아이디어를 개진했다. 페론은 영화와 게임을 비교하며 생존 호러 게임이 어떻게 특유의 공포를 전달하는지 설명한다. 영화 관객은 화면을 통해서 주어지는 감각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네스틱’ 주체다. 관객의 몸은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몸이 겪고 있는 황홀한 감각을 느끼고자 한다. 생존 호러 게임도 그와 비슷한 메커니즘으로 공포를 전달할 수 있다. 플레이어의 몸 역시 영화 관객과 마찬가지로 “화면 속 신체의 감정이나 감각을 무의식적으로 모방”한다 [1] . 그런데 게임의 경우에는 매체 고유의 ‘루돌로지적’ 메커니즘이 플레이어와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융합을 촉진한다는 것이 페론의 주장이다. 게임에서는 플레이어의 입력이 캐릭터의 표현으로 게임 내부 공간에 매핑되고, 그렇게 구현된 효과는 곧 플레이어의 의도, 지각, 행동이 융합된 결과물이다. 요컨대 플레이어가 주관적으로 느끼기에 ‘살아있는 몸’을 만듦으로써 공포를 더욱 생생하게 전달한다는 것이다. 책의 다른 저자들 역시 유사한 전제를 공유하고 있다. 2009년에 출간된 책이 위 같은 방식으로 호러 게임을 설명한다면, 과연 10여 년이 지난 현시점에선 어떤 방식의 해설이 가능할까? 또, 페론의 책에서 주요하게 다루던 호러 게임은 주로 생존 호러에 치중해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분명 <사일런트 힐>과 같은 게임들은 호러 게임의 대표격으로 인용되지만, ‘호러’를 보다 다양하게 구성할 수는 없을까? 여기서 다루는 데이비드 크리스토퍼와 에이단 로이즐러의 글은 『Horror Video Games: Essays on the Fusion of Fear and Play』의 가정들을 해부한다. 그 가정이란 초기의 루돌로지가 취하던 순진한 이분법-능동적인 게임 플레이 vs. 수동적인 영화 관람-이다. 두 저자는 다양한 이론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며 호러와 미디어가 결합하는 미묘한 방식을, 더 나아가 게임과 호러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확장하고자 한다. (*논의에 앞서서 호러라는 주요 개념에 대해 정리하고자 한다. 이 글에서 논하는 호러 개념은 예술평론가인 노엘 캐럴의 정의를 잇는다. 노엘 캐럴은 호러가 “괴물이 등장하는 허구적 서사”로, “이때의 괴물은 그 잠재적인 위협과 불순함으로 감상자에게 공포감과 혐오감, 불안감이 복잡하게 뒤얽힌 감정적 반응(이 반응은 대개 괴물과 마주하는 작품의 중심인물이 드러내는 감정적 반응이기도 하다)을 끌어낼” 수 있다고 설명한다 [2] . 장르로서의 호러는 관객들이 호러라고 직관적으로 인식하게끔 하는 일련의 미학적, 내러티브적 관습으로 구축된다. 시각적으로는 기괴하거나, 혐오스러운 체액이 떨어지는 등의 모습으로 구현되며, 내러티브적으로는 주인공들이 몸을 숨긴 안전지대를 서서히 좁히는 방식으로 장르 문법을 따르곤 한다. 두려움은 바로 그런 종류의 호러에 노출되었을 때 일어나는 수용자의 심리적이고 본능적인 반응이다.) ‘능동 대 수동’의 오류 화면 속의 인물이 좁고 캄캄한 공간에 떨어졌다고 가정해 보자. 이 화면이 영화라면 관객은 인물의 움직임을 조용히 지켜보며 불안한 감정을 공유할 것이다. 게임이라면 플레이어는 컨트롤러를 쥐고 캐릭터를 직접 조작할 것이다. 캐릭터가 처한 상황에 공감하며 더 깊은 동일시를 느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즉 호러 영화를 시청하는 관객은 화면 내에서 벌어지는 행위에 영향을 미칠 수 없고 수동성으로 말미암아 호러의 효과를 경험하지만, 게임은 인물을 직접 조종하며 디제시스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호러에 몰입할 수 있다. 이것이 『Horror Video Games: Essays on the Fusion of Fear and Play』에서 다양한 저자들이 공유하는 전제다. 그러나 크리스토퍼와 로이즐러는 이러한 방식의 가정이 ‘루돌로지적 불안(ludic anxiety)’을 드러낸다고 바라본다. 루돌로지적 불안이란 스카이 라렐 앤더슨이 정의한 개념이다. 앤더슨은 흔히 내러톨로지 vs. 루돌로지로 요약되던 게임학의 흐름이 어떤 궤적으로 진행되었는지 요약하는 과정에서 초기의 게임학자들이 “게임과 다른 미디어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드러내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이들은 게임을 “프로세스, 시스템, 또는 행위에 의존하는 매체로 구성”하며, “게임의 특성에 대한 결론을 일반화”하려 했다. 루돌로지적 특질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게임학 이론을 정립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긍정적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디어의 특질이 다양한 설명을 압축해버릴 수도 있다 [3] . ‘어떻게 게임이 기술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가’에 담론의 초점이 쏠려버리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게임은 그 자체로 능동적이라는 명제가 자연화된다. (여기서 더 나아간다면 어떤 매체가 더 ‘무서운지’ 겨루는 논의로 이어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크리스토퍼와 로이즐러는 아만다 코트의 『Gaming Sexism』를 든다. 코트는 자신의 책에서 게임 문화에 광범위하게 퍼진 남성 중심적 헤게모니를 분석하고 있지만, 정작 그 분석의 언어가 또 다른 헤게모니에 굴절되어 있다. 아케이드 게임 문화를 다룬 장에서 코트는 여성이 주로 남성을 응원하거나 관전하는 롤에 국한되어 있었다고 설명함으로써 어떻게 여성들이 게임 플레이에서 소외되었는지 서술한다. 하지만 관전을 온전히 수동적이라고 구분 지을 수 있을까? “게임을 직접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거나 즐거운 경험이라 하더라도, 남이 게임하는 모습을 보는 것 역시 충분히 흥미롭고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일”로 긍정할 수 있지 않을까? [4] 게임을 보는 사람 또한 플레이어의 긴장감과 흥분을 함께 공유하고, 놀이의 매직 서클 안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와 로이즐러는 코트가 게임 플레이를 능동적이고 관전을 수동적인 것으로 나누어 관전의 메커니즘에 관해 유의미한 고찰을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또한 게임 플레이의 능동성을 핵심 주장으로 삼아 호러의 효과를 설명하려 경우, 곤혹스러운 모순이 발생하기도 한다. <암네시아>의 개발자 토마스 그립은 게임의 ‘재미’에 너무 몰두할 경우, 호러의 아우라가 파괴된다고 이야기하는 반면, <더 서퍼링>의 리처드 라우스 3세는 플레이어가 게임 세계에 완전히 몰입하면 공포가 훨씬 더 강렬해진다고 말한다. 두 상반된 의견은 행위성을 호러와 직결하는 아이디어를 정밀하게 해부해야 할 필요성을 드러낸다. 이어지는 장에서 저자들은 호러 미디어와 수용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상호작용을 두 가지로 구분하여 논의를 정교화하고자 한다. 이는 각각 ‘참여의 호러(participation)’와 ‘전송의 호러(transportation)’다. 참여의 호러 이 장에서 다루는 ‘참여’는 자넷 머레이가 고안한 ‘에이전시(agency)’ 개념과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 에이전시란 “참여자가 의미 있는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고, 또 그 자신이 내린 결정과 선택의 결과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만족스러운 능력”을 의미한다 [5] . 플레이어와 생리적으로 연결된 캐릭터가 맞는 죽음은 이전에 그가 취했을 선택의 결과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더욱 각별해진다. 플레이어는 무언가 선택함으로써 주체성을 행사하고, 캐릭터의 죽음을 통해 주체성의 상실을 경험하는 것이다. 특히 호러 게임의 상황이라면 플레이어는 불안감이나 압박을 느끼며 주체성을 상실하는 과정에서 공포를 생생히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에이전시가 두려움의 절대적인 기제는 아니다. 사실 호러 장르를 표방하는 다수의 게임이 시각적 요소에 더 의존한다. 저자들은 예시로 <마리오 게임>을 든다. 화면 속의 마리오는 데미지를 입기도 하고, 체력을 다 소진하면 죽음을 맞는다. 마리오를 조작하는 플레이어는 줄어드는 생명을 보며 게임 오버의 불안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마리오 게임>이 호러가 되기는 어렵다. 즉 호러가 되기 위해서는 괴물에게 쫓기는 등, 불안하고 기괴한 경험이 동반되는 맥락을 필요로 한다. 또한 플레이어가 게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사실 그 자체로 인해 호러의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 게임에 적응한다는 것은 게임이 유희적으로 제시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고와 행동을 자동화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플레이어가 언제까지고 괴물과 어둠을 무서워할까? 더군다나 일반적으로 게임은 실패해도 괜찮고 고통스럽지도 않고 불쾌하지도 않은 안전한 공간으로 체험된다. 이곳에서의 불쾌란 그다지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도 있다. 설령 괴물에게 살해당하더라도 재시작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블 캐릭터에게 제공되는 무제한 ‘생명’ 같은 안전장치는 공포의 경험을 퇴색시킨다. 분명 플레이어는 게임에 성공적으로 적응했지만, 그 결과로 본래 호러가 성취하려던 효과는 상실한 셈이다. 결국 호러 게임의 가장 큰 한계는 게임 플레이의 메커니즘 그 자체가 된다. 이 지점에서 많은 호러 게임 기획자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영구적인 죽음이 불가능해지거나 무의미해지면서 죽음에 대한 불안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일반적으로 영화에서는 캐릭터의 죽음이 절대적인 상실이나 단절로 그려지지만, 부활은 오히려 내러티브의 설득력을 떨어뜨린다는 특성과 대비된다. 이 지점에서 공감의 문제가 대두된다. 플레이어가 게임의 루돌로지적 목표에 매몰됨에 따라 화면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처한 상황에 공감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는 어떻게 자신이 조작하는 플레이어블 캐릭터에게 공감할 수 있을까? 페트리 란코스키는 플레이어가 플레이어블 캐릭터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목표적 참여(goal-related engagement)’와 ‘공감적 참여(empathic engagement)’를 분류한다 [6] . 목표적 참여란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준, 근본적으로 플레이어 자신의 경험이다. 반면에 공감적 참여는 캐릭터의 행동에 반응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게임 디자이너들은 내러티브 상의 목표와 게임에서의 목표를 일치시켜 두 참여의 방식을 조화하고자 한다. 그러나 전술한 이야기는 그러한 조합이 까다롭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란코스키는 특히 플레이어가 의사를 결정하거나 전투를 벌이는 등 인지 능력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 플레이어블 캐릭터에 대한 공감이 어려워지며, 게임 플레이의 흐름은 전적으로 목표 중심적으로 배열된다고 설명한다. 이 맥락에서 플레이어가 플레이어블 캐릭터와 감정적 동일시를 효과적으로 이룰 수 있기에 공포를 더욱 크게 느낀다는 주장은 반박된다. 그러나 참여는 여전히 매력적으로 호러를 이끌어낸다. 크리스토퍼와 로이즐러는 플레이어블 캐릭터 헤더 메이슨을 주인공으로 하는 <사일런트 힐 3>의 사례를 든다. 작중에서 플레이어-헤더는 악몽과 같은 비현실적인 세계에서 괴물들을 죽이게 된다. 한 NPC는 헤더가 죽인 것은 괴물이 아니라 사람이었다고 이야기하자 헤더는 경악하는데, 그 반응을 본 NPC는 농담이라며 재빠르게 둘러댄다. NPC의 대사의 진위를 가릴 수 없다는 점에서 과연 정당하게 괴물을 살해해온 것인지 확신하기 어렵다. 헤더가 저지른 살인에 참여해온 플레이어는 이 순간 섬뜩함을 느낀다. 전송의 호러 원문에서 크리스토퍼와 로이즐러는 그린과 브록의 ‘전송(transportation)’ 개념을 빌려 호러가 미치는 심리적 영향을 해설하려 한다. 전송은 “내러티브의 설득적 효과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수용자들이 소설이나 영화와 같은 내러티브에 노출되면 전송이라고 하는 과정을 통해 현실세계에서 내러티브로 묘사된 세계로의 심리적 이동을 경험”한다고 하여, 몰입과 같은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다 [7] . 정의가 드러내듯, 전송의 호러는 심리적 영역에서 논의된다. 그런데 이 장에서 저자들은 화면 바깥의 현실에서 게임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전송을 묘사함으로써 호러 게임이 어떻게 특유의 효과를 자아내는지, 그리하여 루돌로지적 상호작용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설명하고 있다. 사례로 언급되는 게임은 2002년에 출시된 닌텐도의 <이터널 다크니스>와 2017년에 출시된 <두근두근 문예부!>다. <이터널 다크니스>는 정신력 수치(sanity meter)을 도입해 효과적으로 연출한 작품으로 비평가들의 호의적인 반응을 이끈 바 있다. 이 게임에서는 정신력의 상태가 어떠한가에 따라 40가지 효과와 이벤트를 겪을 수 있다. 저자는 가장 인상적인 효과로 게임 볼륨이 갑자기 줄어들거나 소거 되는 현상을 꼽는다. 이러한 연출은 게임 소프트웨어가 스피커라는 외부 하드웨어로 뻗어 나가 간섭한 것처럼 느끼게 하여 현실과 게임의 경계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작품을 경유하며 호러의 전송을 겪은 플레이어의 심리, 그리고 게임 속 화면에서 현실로 뻗어 나가는 전송이 일치하는 셈이다. 흔히 제4의 벽으로 요약되는 수용자와 텍스트 사이의 벽을 허무는 시도는 이와 같은 메커니즘을 통해 의도한 바를 성취한다. 정신력 수치 메커니즘은 이후 게임 개발자들이 루돌로지적 메커니즘으로 채택하게 되었다. <두근두근 문예부!>는 이런 종류의 심리적 공포를 성공적으로 구현한 사례로 일컬어진다.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을 표방하며 출시된 이 게임은 남성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문예부 동아리에 들어가 다수의 소녀 캐릭터와 교분을 나누며 연애 대상을 공략하는 척한다. 그러나 작중의 인물 ’모니카‘는 게임 시스템에 접근해 미연시의 틀을 기괴하게 왜곡한다. 모니카가 게임 내 저장이나 설정과 같은 소프트웨어 권한을 통제하는 이상, 종내에 플레이어는 모니카의 파일을 삭제해 상황을 모면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 점에서 <두근두근 문예부!>는 플레이어가 심리적으로 화면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고차원의 호러를 빚어내는 작품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들은 위의 작품들을 루돌로지적 상호작용성으로 명명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루돌로지적 행위성을 강조하는 이분법으로는 위 작품들이 발휘하는 특유의 효과를 온전히 담아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모든 호러 게임을 루돌로지적 상호작용성의 원리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참여의 호러와 전송의 호러를 나누어 살펴보긴 했으나, 두 속성을 배타적이라고 단언하기 역시 어렵다. 원문은 페론의 글을 보완해서 독해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사실 페론의 에세이는 생존 호러가 발하는 액션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쫓고 쫓기는 공포스러운 상황 속에서 컨트롤러의 키네틱은 액션의 에이전시를 반영한다. 하지만 비주얼 노벨인 <두근두근 문예부!>는 그와 같은 조작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충분히 괴기스럽고 끔찍한 연출을 빚어낼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하게 조합 가능한 호러의 원리를 적용해보며, 새롭게 놀라고 떨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1] Bernard Perron(2009), 『Horror Video Games: Essays on the Fusion of Fear and Play』,, MIT Press, 124p. [2] 이해완(2017), 『노엘 캐럴』, 커뮤니케이션북스, 77쪽. [3] Sky LaRell Andersoon(2013), “Start, Select, Continue: The Ludic Anxiety in Video Game Scholarship”, The Review of Communication 13(4), 291p. [4] 강신규·원용진·채다희(2019). 메타/게임(meta/game)으로서의 ‘게임 보기’: 전자오락 구경부터 인터넷 게임방송 시청까지, 한국방송학보 33(1), 7쪽. [5] 자넷 머레이, 한용환·변지연 역(2001),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147쪽. [6] Petri Lankoski(2011), “Player Character Engagement in Computer Games”, Games and Culture 6(4), 291-311p. [7] 황유리·정세훈(2014),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의 설득적 효과: 애드무비(ad movie)를 중심으로, 광고학연구 25(6), 87쪽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김규리 게임이 이야기를 경험시키는 방식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것저것 기웃거리다가 최근에는 <마라톤>을 플레이했습니다.
- 게임플레이의 영화화에서 게임-보기의 영화화로
“치킨 조키!” 주인공 스티브가 외치자 영화관의 관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팝콘을 집어 던진다. 영화 <마인크래프트 무비>(2025)가 개봉한 미국 영화관의 풍경이다. 틱톡 등 숏폼 플랫폼을 타고 바이럴된 컬트적 현상은 지난해 예고편이 공개되자 거센 조롱이 뒤따랐던 것에서 출발한다. 스티브역의 잭 블랙은 게임 팬들이 생각하던 이미지와 큰 괴리가 있었고, CGI로 ‘실사화’된 마인크래프트 특유의 네모난 이미지가 언캐니 밸리를 자극했다. < Back 게임플레이의 영화화에서 게임-보기의 영화화로 24 GG Vol. 25. 6. 10. “치킨 조키!” 주인공 스티브가 외치자 영화관의 관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팝콘을 집어 던진다. 영화 <마인크래프트 무비>(2025)가 개봉한 미국 영화관의 풍경이다. 틱톡 등 숏폼 플랫폼을 타고 바이럴된 컬트적 현상은 지난해 예고편이 공개되자 거센 조롱이 뒤따랐던 것에서 출발한다. 스티브역의 잭 블랙은 게임 팬들이 생각하던 이미지와 큰 괴리가 있었고, CGI로 ‘실사화’된 마인크래프트 특유의 네모난 이미지가 언캐니 밸리를 자극했다. 2019년 <수퍼 소닉>(2020)의 예고편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어글리 소닉’의 모습에 충격받은 게임 팬들과 같은 상황이었달까. 소닉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마인크래프트 무비> 예고편은 정식 개봉 전부터 다양한 짤로 분해된 밈이되었다. 전혀 스티브 같지 않은 모습의 잭 블랙이 “나는 스티브야!”라고 말하거나, 컬트적 밈의 대상이 된 ‘치킨 조키’처럼 말이다. * <마인크래프트 무비>(2025) 속 ‘치킨 조키’ 어쩌면 이 현상은 원작 게임은 물론 영화 자체와도 관련이 없을지도 모른다. 영화관에서 소리 지르고 팝콘을 던지며 날뛰는 관객들은 단지 그 순간을 즐길 뿐, 영화의 나머지 장면을 즐기지 않는다. 원작의 이미지를 실사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어색함과 불쾌함에서 출발한 조롱이 밈의 근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밈을 생산하고 즐기는 이들이 모두 게임의 팬이라 볼 수도 없다. 아이코닉한 게임의 이미지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불일치가 이들의 향유 대상이다. 게임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들의 계보에서 이 불일치를 살펴보는 것은 꽤나 흥미롭다. 불일치를 먼저 이야기했지만, 사실 이미지의 측면에서 게임과 영화는 점차 닮아가고 있다. 게임엔진이 영화의 VFX 작업에 활용된 역사는 사실상 CGI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그뿐 아니라 게임과 영화는 대중문화라는 큰 맥락 속에서 상호참조의 대상이다. <레이더스>(1981)를 모티프 삼아 제작된 게임 [툼 레이더](1996)는 그것의 영화판인 <툼 레이더>(2001)의 개봉 이후 게임 속 라라 크로프트의 모델링이 안젤리나 졸리의 모습과 유사하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 제작되어 인기를 끈 ‘트레저 헌트’ 장르의 어드벤쳐 영화들, 이를테면 <미이라>(1999)나 <내셔널 트레져>(2004) 또한 툼 레이더의 자장 안에 있다. [툼 레이더]의 성공은 [언챠티드]라는 새로운 게임 프랜차이즈 탄생에 영향을 주었고, [언차티드 3: 황금 사막의 아틀란티스](2011)에서는 아예 해리슨 포드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광고가 등장하기에 이른다. 다른 한편으로,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2023)의 후반부 추락하는 기차를 기어오르는 톰 크루즈의 액션은 [언차티드 2: 황금도와 사라진 함대](2009)의 초반부를 오마주한다. 영화사의 맥락에서 톰 크루즈와 기차를 보고 버스터 키튼의 <제네럴>(1927)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물건들을 붙잡고 등반하듯 추락하는 기차에 매달려 있는 모습은 [언차티드 2]를 명백한 레퍼런스로 삼고 있다. *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1993)의 포스터(위), 영화 속 쿠파와 굼바(아래) 다만 이러한 일치와 상호참조는 게임과 영화 사이의 관계가 역사적으로 누적됨으로써 성립된 것이다. 1993년 개봉한 최초의 게임 원작 영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에서는 원작 게임과 영화 사이의 불일치를 강력하게 보여준다. 영화는 “This Ain’t No Game”이라는 문구를 포스터에 내세운만큼 게임과 전혀 다른 이미지를 보여준다. 브루클린에 거주하는 이탈리아계 이민자 마리오 형제는 배관공으로 일하던 중, 도시 한 가운데 유적지를 조사하던 데이지가 쿠파에 의해 잡혀간 것을 목격하고 뒤쫓는다. 그들은 숨겨져 있던 지하도시 ‘디노하탄’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데이지를 구하기 위한 모험을 택한다. 영화의 줄거리는 “쿠파에게 납치된 공주를 구한다”라는 원작의 큰 맥락을 그대로 따라간다. 하지만 영화가 구현하는 이미지는 게임과 영 딴판이다. 버섯왕국은 브루클린 지하의 공룡도시로 바뀌었고, 거북이를 모티프 삼았던 쿠파는 인간화된 티라노사우루스가 되었으며, 버섯 몬스터 굼바는 퇴화한 공룡인간이라는 기묘한 설명으로 바뀌었고, 요시는 작은 벨로시랩터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버섯이나 꽃을 먹고 파워업된다는 설정은 남아 있으나, 게임에서의 파워업보다는 각성제에 가깝게 묘사된다. 마리오와 루이지의 의상과 직업 정도를 제외한다면 원작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당연하게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혹평과 함께 흥행 참패를 겪었다. 연출자들은 본래 원작과 유사한 동화풍의 비주얼로 영화를 제작하고자 하였으나, 제작비의 문제로 1980~90년대 유행하던 디스토피아 풍의 비주얼로 변경되었다. 그 과정에서 원작 게임의 요소들이 큰 변화를 겪은 것이다. 여기에는 원작 게임이 가진 세계를 영화로 옮겨오는 것, 마리오와 루이지가 아이템을 먹고 파워업하거나 점프로 벽돌을 부수는 등의 행위들을 곧장 실사영화로 옮겨왔을 때의 문제점도 동반될 것이다. 2023년 닌텐도와 일루미네이션 스튜디오의 합작으로 제작된 극장판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애니메이션 혹은 TV판 애니메이션에서는 어색하지 않았을 행위들이 ‘실사’라는 맥락에서 구현되기엔 무리가 있다. 나아가 1993년의 시점까지 출시된 [슈퍼 마리오] 게임들에는 “쿠파에게 납치된 공주를 구한다”라는 이야기의 뼈대만 존재할 뿐 디테일한 서사가 없다. 그러한 상황에서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으로 각색된 실사영화의 실패는 필연적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어쩌면 이 영화는 원작 게임을 철저하게 배반했기에 컬트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기도 하다. 극장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디스토피아적 세계관과 제멋대로 변형된 캐릭터들은 (물론 퀄리티의 조악함은 있으나) 컬트적 인기를 끌었다. 또한 이후의 작품들, 이를테면 브루클린에 거주하는 마리오 형제와 그곳을 침공한 쿠파 일당을 격퇴한다는 설정이 2023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애니메이션에서 반복되고,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2017)의 ‘도시 왕국’ 스테이지 또한 이 영화의 영향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원작 게임과 영화 사이의 불일치는 기묘한 상호참조로 이어지기도 함을 보여준다. *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2023, 위)와 <명탐정 피카츄>(2019, 아래) 스틸컷. 극장용 장편영화에 어울리는 내러티브가 결여된 ‘슈퍼 마리오’이니 다른 게임 원작 영화의 예시를 들어보자. <명탐정 피카츄>(2019)는 포켓몬 IP를 활용한 동명의 추리게임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에서 중후한 탐정의 목소리였던 피카츄의 목소리를 영화에서는 라이언 레이놀즈가 맡으며 캐릭터 성격의 변화가 발생하지만.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찾기 위해 라임시티에 온 주인공, 우연히 피카츄와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는 설정, 이상행동을 보이며 난폭하게 폭주하는 포켓몬 등 주요 설정과 이야기 전개는 동일하다. 다만 포켓몬 세계의 영화화에서 중점이 되는 것은 이야기의 문제가 아니다. <명탐정 피카츄>는 포켓몬 팬들이 상상하던 포켓몬과 공존하는 도시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데 전력을 다한다. 비슷한 시기 공개된 <슈퍼 소닉> 예고편의 ‘어글리 소닉’에 쏟아진 혹평과 반대로, 영화 속 포켓몬의 모습은 (다소 과하게 리얼하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팬들이 상상하던 ‘실사화된’ 포켓몬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구현했고, 게임 속 평면적인 도시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다른 포켓몬 게임이 아닌 명확한 내러티브를 지닌 [명탐정 피카츄](2016)을 경유하여, 충분한 핍진성을 가진 세계로서 이를 구현했기에 가능하다. 동시에 ‘포켓몬’이라는 대상이 지닌 환상성과 가상성은 현실 세계를 베이스 삼은 게임들의 영화화와 다른 방향의 영화화를 가능케 한다. 이를테면 영화판 <히트맨>(2007), <맥스 페인>(2008), <언차티드>(2022) 등은 게임플레이나 게임이 그려낸 세계가 지닌 가상성을 소거한 채 전형적인 ‘액션영화’, ‘범죄영화’, ‘어드벤쳐 영화’가 되었을 뿐이다. * 왼쪽부터 <모탈 컴뱃>(1995), <레지던트 이블>(2002), <수퍼 소닉>(2020), <더 라스트 오브 어스>(2024) 내러티브의 차원에서 원작 게임을 영화로 충실히 번역하는 것만이 정답인 것만은 아니다. 원작의 방대한 세계관을 열심히 옮겨온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2016)이나 <어쌔신 크리드>(2016)는 그것의 일부만을 부족하게 옮겨왔을 뿐이다. <사일런트 힐>(2006) 같은 소수의 사례를 제외하면, 폴 W. S. 앤더슨의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2002~2016)나 <슈퍼 소닉>처럼 원작의 몇몇 설정만을 따오고, 오리지널 캐릭터를 추가하며, 원작의 캐릭터가 지닌 성격을 팝콘무비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재구성한 사례가 더욱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HBO 드라마 <더 라스트 오브 어스>(2024)의 첫 시즌에서 가장 호평받은 에피소드는 게임에서 그저 우연히 습득할 수 있는 편지를 읽어야 캐치할 수 있는 ‘로어’를 서브플롯으로 확장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영화들에서도 원작 팬들의 플레이 경험을 자극할 수 있는 요소는 필수적이다. <레지던트 이블> 1편에는 [바이오하자드](1996)의 주요 무대인 아크레이 저택이 등장한다. <둠>(2005)은 내러티브상의 설정에선 원작과 큰 차이가 있지만, 1인칭 시점의 롱테이크 액션 시퀀스를 삽입함으로써 FPS 게임의 감각을 가져온다. <수퍼 소닉>의 속도감은 슈퍼히어로 영화 속 스피드스터의 액션과 별반 다르지 않게 연출되지만, 게임의 시그니처 같은 몸통박치기를 액션에 추가한다. 이러한 방식은 원작의 일부만을 가져와 장편영화의 내러티브로 각색했음에도 게임플레이를 연상시킴으로써 게임과의 연결고리를 유지한다. 영화평론가 V. F. 퍼킨스는 영화가 그려내는 세계를 관객이 수용하는 것은 그것이 현실을 그대로 복제한 리얼리즘에 기반하기 때문이 아니라, 관객에게 영화 속 세계의 존재에 대한 신뢰를 줄 수 있는 연출로 인해 가능하다고 말한다 [1] . 게임이 영화로 각색되는 과정에서 원작과의 불일치가 발생하지만, 게임플레이의 영화적 구현을 시도함으로써 게임의 가상성을 영화의 핍진성 속에 기입하는, 지난 30여 년간의 게임 원작 영화가 누적되며 형성된 하나의 전략이랄까. 이들 영화는 관객이 이미 알고 있는 세계가 영화 안에서도 존재하고 작동한다는 신뢰성을 얻어내기 위한 전략을 개발하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액션, 호러, 어드벤쳐 등 익숙한 장르영화의 문법에 게임플레이적 순간을 기입하는 전략은, 비록 장르적 전형성 속에서 비평가들의 호평을 얻진 못해도 게임을 즐겨온 대중의 호응을 얻는 데는 성공한다. 1990년대의 <스트리트 파이터>(1994)와 <모탈 컴뱃>(1995)이 그랬고, <사일런트 힐>이나 <명탐정 피카츄>가 그랬으며, 2023년의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성공한 전략이다. <마인크래프트 무비> 또한 이 같은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특히 “납치된 공주를 구한다” 수준의 단순한 로그라인조차 존재하지 않는 [마인크래프트]의 영화화는 이러한 전략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다. 드라마 <더 라스트 오브 어스>나 <반교: 디텐션>(2019) 같은 스토리텔링은 불가능하거니와, 게임 내적으로 부재한 내러티브를 그 바깥의 사건으로 대신한 <그란 투리스모>(2023)나 <테트리스>(2023)와 같은 방식 또한 불가능하다. [팩맨]이나 [갤러그](1981), [테트리스](1985)의 형상을 한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한다는 이야기의 <픽셀>(2015) 같은 방식을 도입하기에도 어렵다. 물론 ‘스토리 모드’가 존재하지만, 별도의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제작되거나 유튜브의 무수한 팬 무비의 영역에 놓일 뿐이다. 사실 가장 히트한 샌드박스 게임으로서 [마인크래프트]는 머시니마(machinima) 팬 무비의 대표적인 재료가 된다. 이 게임 안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마인크래프트 무비>에서도 강조되듯 ‘창의성’이 게임플레이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 ‘오버월드’가 관객에게 신뢰받는 세계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의 이미지뿐 아니라 창의성이라는 키워드가 하나의 세계로서 작동하는 방식을 그려내야 한다. * <마인크래프트 무비> 속 스티브(좌)와 마을(우) 하지만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창의성과 거리가 멀다. 익숙한 ‘이세계’ 판타지물의 배경이 ‘오버월드’와 ‘네더’로 바뀌었으며, 스티브 일행을 제외한 모든 것이 네모난 큐브 혹은 픽셀 형태의 그래픽으로 표현될 뿐이다. 게임적 가상세계를 배경삼은 최초의 영화 <트론>(1982)부터 스필버그의 야심작 <레디 플레이어 원>(2016)에 이르는 게임 배경의 영화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게임의 가상세계와 현실 사이의 이분법을 고스란히 따른다. 영화 속 ‘마인크래프트’ 세계는 현실과 다른 세계일 뿐 게임이 내세웠던 ‘자유로운 창의성의 세계’가 아니다. 그저 현실과 다른 규칙이 적용되고 다른 존재들이 살아가는 어딘가일 뿐이다. 이는 <마인크래프트 무비>가 택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였을 것이다. 때문에 영화는 게임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장면들을 영화 속에 욱여넣는다. 투병생활 중 세상을 떠난 [마인크래프트] 유튜버 ‘테크노블레이드’를 등장시키며 “저건 전설이야”라고 언급하고, 추락 도중 물 블록을 까는 ‘물 낙법’, 레드스톤의 힘으로 움직이는 광차 트랙, 앤더맨으로 가득한 저택 등의 순간을 영화 내내 선보인다. ‘치킨 조키’ 장면도 이러한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게임플레이적 순간을 영화에 기입하는 것을 넘어, 그것이 숏폼으로 전파되는 밈으로 빠르게 자리 잡길 잠재적으로 요청한다. (실제 제작과정이 그러하진 않았겠지만) 영화의 1차 예고편에서 “나는 스티브야!”라는 대사가 흘러나오는 순간,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한편의 영화라기보단 산산히 분해되고 밈으로 재생산되는 콘텐츠로서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마치 게임 유튜버들이 10~20분짜리 본영상의 하이라이트를 다시금 숏츠로 뽑아내듯이. 2023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와 같은 작품이 관객 개인의 게임플레이 경험을 연상시킨다면,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타인의 게임플레이를 시청하던 경험을 연상시킨다. 내러티브가 부재한 게임의 내러티브는 게임의 디렉터나 디자이너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들의 경험이 누적되며 생성된다. 출시로부터 어느덧 16년이 흐른 [마인크래프트]는 그 시간만큼 많은 플레이가 누적되어 있고, 각각의 플레이는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유튜브나 트위치의 시청자들은 그 내러티브를 게임의 내러티브로서 수용한다. 게임이 내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게임을 매개로 펼쳐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마인크래프트] 뿐 아니라 [시티즈: 스카이라인](2015)이나 [플래닛 코스터](2016) 같은 건설·경영 시뮬레이션 게임, [심즈](2000~2014) 등의 라이프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내러티브 없는 게임의 스트리머·유튜버들이 플레이 과정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 * <마인크래프트 무비> 상영 당시 팝콘을 던지지 말라는 극장 안내문 이러한 맥락에서, 서두에 언급한 ‘불일치’는 게임플레이를 통해 형성된 내러티브와 그것의 영화화 사이의 간극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그것의 향유는 ‘게임’의 향유와 ‘영화’의 향유 사이에 놓인 틈새, 플레이와 시청 사이에 놓인 게임 소비 패턴의 연장선상에 있다. 사실 우리는 10년 전 장난감 원작의 영화 한 편이 ‘놀이’를 영화에 기입함으로써 성공한 바 있음을 알고 있다. <레고 무비>(2014)는 그저 평범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그의 모험이 사실은 레고를 가지고 노는 어린이에 의한 것이었음을 영화 후반부에 드러낸다. 디지털 게임을 원작 삼은 영화에서도 그것이 가능할까?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그것을 정교한 영화적 내러티브 속 메타적 장치로 활용하진 못한다. 다만 이 영화의 관객들은 영화관에 방문하지만, 그들이 관람하길 바라는 것은 정교한 세계가 아니라 자신들이 게임과 가진 경험 속에서 기억하는 이야기와 순간들의 재현이다.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하나의 완성된 영화로 만들어지는데 실패했지만, 원작과의 불일치 속에서 의도치 않게 지금의 게임 소비 환경을 영화 외적인 방식으로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원작 게임을 멀찍이 벗어나 괴상망측한 장르영화로 향했던 우베 볼의 영화들이나 내러티브의 부재를 게임 바깥의 사건으로 대리한 <그란 투리스모>, <테트리스>와도 다르다. 제작이 예정된 무수한 게임 원작 영화들이 방대한 세계관의 영화화를 예고하고 있을 때,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게임의 세계관이나 게임플레이가 아니라 게임-보기의 영화화가 하나의 방식일 수 있음을 예측할 수 없던 방식으로 보여준다. [1] V. F. 퍼킨스. 『영화로서의 영화』. 임재철 옮김. 서울: 이모션북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박동수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했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하고 있다. 영화에 관한 글을 주로 쓰고, 미술, 게임, 방송 등 시각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영화평론가, 팟캐스트 [카페 크리틱] 진행자, 공동체상영 기획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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