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문화담론 정착을 위한 발걸음, ‘게임제너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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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3. 11. 5.
게임의 문화담론 정착을 위한 발걸음, ‘게임제너레이션’
이경혁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그토록 많은 이들이 플레이하지만 왜 아직도 문화라는 말에 의문부호가 붙는가?
1998년 이후 한국은 스스로나 해외로부터의 평가로나 자타공인 게임 강국으로 불려 왔다. 그러나 게임 강국 한국이라는 단어의 이면에는 다소 불균등한 지점이 존재하는데, 여기서의 게임강국이라는 말은 말그대로 ‘플레이’의 강국이라는 점에만 집중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제작된 게임 중 전세계적 흥행을 이끌어낸 게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적어도 2017년의 ‘배틀그라운드’ 이전까지는 마땅한 작품을 꺼내들기 힘들었다. 산업의 규모나 소비자시장에서라면 압도적일지 몰라도, 씬을 대표할 특정한 타이틀 하나를 뽑아들기 어려운 형국은 e스포츠 선수 풀이나 소비자 시장규모, 제작산업 규모가 보이는 강세와 비교해볼 때 의아스럽다.
탄탄한 소비자층과 시장을 보유하면서도 마땅히 내세울 타이틀이 드물었던 한국 게임계에는 다양한 사회적 배경이 작용했겠지만, 이를 하나로 통틀어 말해 본다면 아무래도 게임문화의 부재라고 부를 수 있을 어떤 상황일 것이다. 게임을 잘 하고 많이 하지만, 막상 그 게임을 두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그저 수출액이 얼마, 어느 대회에서 몇 위를 이야기하는 것 이상의 문화를 우리는 유의미한 규모로 가져 본 적이 드물다.
그러나 디지털게임의 가능성은 산업적 규모나 플레이로서의 성취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게임들은 다른 예술장르처럼 인간과 사회 전반에 대한 밀도있는 통찰을 각자의 방식으로 담고 풀어냈으며, 이를 향유하는 대중들은 작품에 담김 함의를 읽어내고 이를 다시 사회로 재환원시키는 과정을 거쳐 왔다. 그리고 우리는 이 과정을 통틀어 문화라는 이름으로 부르곤 한다.
충분히 발달한 게임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한국에는 게임을 문화로 소화할 인프라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웹진 ‘게임제너레이션’의 시작은 바로 이 고민으로부터 출발했다.
노는 것을 터부시해온 산업화 일변도의 한국에서 게임비평은 쉽지 않았다
왜 게임을 문화로 다루지 못해왔는가? 이 질문에는 다양한 사회적 맥락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한국 특유의 강한 교육열은 디지털게임 초기에 주대상이었던 청소년층으로 하여금 이 새로운 매체에 대한 손쉬운 접근을 불허한 바 있었다. 학교와 정부, 사회는 오락실이라는 공간을 불량청소년들의 집합지로 낙인찍었고, 게임하는 이들을 사회낙오자에 준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한참 산업화에 열을 올리던 8-90년대에는 비단 청소년 뿐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노는 일은 시간의 낭비, 게으름의 영역에 속했다. 2000년대 들어와서야 한국은 일주일에 이틀의 휴일을 얻을 수 있었고, 직장 노동자들에게 질병이나 가정사가 아닌 이유로 휴가를 내고 쉰다는 건 게으름뱅이라는 낙인을 부르는 일이었다. 노는 일을 터부시하던 급속한 산업발전기의 경험을 가진 한국인들에게 놀기 위해 장비를 사고 시간을 내야 하는 디지털게임이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21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놀이에 대한 터부는 과거와 같은 규모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주5일제의 도입이 오히려 여가부문의 산업을 촉진시키고 노동자로 하여금 충분한 휴식을 통해 더 나은 생산성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노는 일playing이 그저 쉬는 일resting이 아닌, 또다른 의미의 창발성임을 터득한 바 있다. 산업자본주의에서 이른바 인지자본주의 시대로 전환하면서 쏟아지는 고부가가치의 무형 콘텐츠산업의 중심은 언제나 노는 일이었다. 영화를 보고, 만화를 보고, 음악을 즐기는 과정이 한국 산업의 중심을 차지함에 따라 노는 일의 중요성은 과거와 다르게 인식되었고, 디지털게임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인식의 변화를 겪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다른 매체와 비교할 때 게임에서는 그 문화적 영향력을 이야기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인지한다. 여기에 개입하는 또다른 원인은 오랫동안 서브컬처의 영역에서 단지 ‘그들만의 이야기’로 치부되던 게임이 대중문화의 영역으로 위치를 옮겼지만 여전히 담론장에서는 이를 소화할 상황을 만들지 못했다는 점이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평론의 부재다. 음악, 영화, 미술, 문학 등 기존의 많은 매체양식들이 예술 혹은 문화라는 이름으로 일련의 씬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평론의 역할은 지대했다. 작품의 의미를 해설하고 널리 알리며, 완성된 작품을 단지 그 작품 하나만의 의미에 두지 않고 동시대와 과거, 현재, 미래를 엮으며 다른 모든 사회요소와의 관계망 속에서 다시 읽어내는 일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의 작품이 곧 우리가 사는 세계와 동떨어지지 않은, 혹은 우리 자신이 투영된 어떤 모습임을 알게 되었다. 만약 디지털게임에서도 이와 같은 평론의 장이 형성된다면 우리는 그때부터 비로소 게임문화라는 새로운 담론을 유의미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페다고지, 담론, 그리고 실천: 게임문화담론을 위해 필요한 방법들
2021년 8월 ‘게임제너레이션’이 첫 호를 내면서 선택한 주제가 그래서 ‘문화로서의 게임’이었다. 그동안 한국에서 게임은 ‘게임은 문화다’라는 선언으로는 존재했지만, 실천방안으로서의 문화적 개입은 사실상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이었다. 게임을 문화담론으로 가져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우리는 문화입니다!’라는 선언이 아니라 실제로 게임을 중심에 두고 문화를 이야기하는 실천이다. 그러한 실천을 수행할 장으로서 ‘게임제너레이션’은 만들어졌다.
지난 14개 호 동안 ‘게임제너레이션’은 디지털게임을 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 하는 이야기들을 발굴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네트워크, 게임 결제와 같은 디지털게임을 구성하는 인프라가 얼마나 사회적 상황과 맞물리는지를 살펴보았고, 과거의 게임과 사뭇 다른 양상으로 발전하는지를 보여주는 현상인 방치형 게임, 온라인/오프라인의 구분이 어떤 의미인지를 살펴보고자 했다. 예술과 게임의 관계, 게임이 가지고 있는 지역성과 같은 주제 뿐 아니라 ‘게임제너레이션’은 게이머, 특히 그 중에서도 소수자들이 게임 안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런 소수자들은 오늘날의 디지털게임에 얼마나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는지를 살피며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에 주목해 왔다.
문화담론의 장 구축을 위해 ‘게임제너레이션’은 이러한 주제들을 다룸에 있어 세 가지 방법을 통해 접근하고자 했다. 첫째는 ‘페다고지Pedagogy’다. 디지털게임에 대해 그동안 축적된 다양한 관점에서의 연구결과들을 취합하고, 이를 일반 대중들에게 접근하기 쉽게 가공하여 대중화함으로써 전문지식에의 접근성을 높여 담론장의 기초를 구축하는 작업이다.
둘째는 담론Discourse의 구축이다. 다양한 전문가집단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각각의 디지털게임이 만들어낸 결과를 관찰, 분석하고, 이를 통해 비평이라는 방식으로 게임과 사회의 관계를 고찰하여 디지털게임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의미를 되새기는 작업이다.
셋째는 실천Implementation이다. 준비된 담론장에서 활동할 수 있는 다양한 연구자와 필진을 육성하기 위해 매년 게임비평공모전을 진행하고, 새로운 필자 확보를 위해 폭넓은 연구결과들을 리뷰하며 동시에 국내에 머물지 않고 글로벌 트렌드와의 보조를 맞추기 위해 북미, 유럽, 일본, 중국 등의 주요 게임선진국과 네트워크를 구축, 강화하는 작업을 ‘게임제너레이션’은 이어가고 있다.
전문성과 대중성 사이를 메꿔나가며 만드는 게임문화담론의 가능성을 위해
서브컬처로 오랜 세월을 지내 온 디지털게임이 대중문화의 영역으로 넘어오면서 마주하는 문화적 빈곤은 비단 한국에만 국한되는 현상은 아니다. 디지털게임에 대한 무거운 인문사회적 접근은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지만 이러한 성과들은 대중적으로 널리 퍼져나가고 있지 못하고, 대중적인 인지도를 확보함 많은 게임웹진들은 플레이 바깥에 존재하는 게임과 사회의 관계를 다루지 못한다.
‘게임제너레이션’은 게임 담론이 가진 전문성과 대중성 사이의 간극을 채워나감으로써 비로소 디지털게임을 문화예술의 한 영역으로 안착시키는 데 이바지하고자 한다. ‘웹진보다 무검게, 학술지보다 가볍게’라는 ‘게임제너레이션’의 슬로건은 곧 문화담론으로서 게임을 위치시키는 데 가장 시급한 방법론에의 선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