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플레이의 영화화에서 게임-보기의 영화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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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5. 6. 10.
“치킨 조키!” 주인공 스티브가 외치자 영화관의 관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팝콘을 집어 던진다. 영화 <마인크래프트 무비>(2025)가 개봉한 미국 영화관의 풍경이다. 틱톡 등 숏폼 플랫폼을 타고 바이럴된 컬트적 현상은 지난해 예고편이 공개되자 거센 조롱이 뒤따랐던 것에서 출발한다. 스티브역의 잭 블랙은 게임 팬들이 생각하던 이미지와 큰 괴리가 있었고, CGI로 ‘실사화’된 마인크래프트 특유의 네모난 이미지가 언캐니 밸리를 자극했다. 2019년 <수퍼 소닉>(2020)의 예고편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어글리 소닉’의 모습에 충격받은 게임 팬들과 같은 상황이었달까. 소닉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마인크래프트 무비> 예고편은 정식 개봉 전부터 다양한 짤로 분해된 밈이되었다. 전혀 스티브 같지 않은 모습의 잭 블랙이 “나는 스티브야!”라고 말하거나, 컬트적 밈의 대상이 된 ‘치킨 조키’처럼 말이다.

* <마인크래프트 무비>(2025) 속 ‘치킨 조키’
어쩌면 이 현상은 원작 게임은 물론 영화 자체와도 관련이 없을지도 모른다. 영화관에서 소리 지르고 팝콘을 던지며 날뛰는 관객들은 단지 그 순간을 즐길 뿐, 영화의 나머지 장면을 즐기지 않는다. 원작의 이미지를 실사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어색함과 불쾌함에서 출발한 조롱이 밈의 근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밈을 생산하고 즐기는 이들이 모두 게임의 팬이라 볼 수도 없다. 아이코닉한 게임의 이미지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불일치가 이들의 향유 대상이다. 게임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들의 계보에서 이 불일치를 살펴보는 것은 꽤나 흥미롭다.
불일치를 먼저 이야기했지만, 사실 이미지의 측면에서 게임과 영화는 점차 닮아가고 있다. 게임엔진이 영화의 VFX 작업에 활용된 역사는 사실상 CGI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그뿐 아니라 게임과 영화는 대중문화라는 큰 맥락 속에서 상호참조의 대상이다. <레이더스>(1981)를 모티프 삼아 제작된 게임 [툼 레이더](1996)는 그것의 영화판인 <툼 레이더>(2001)의 개봉 이후 게임 속 라라 크로프트의 모델링이 안젤리나 졸리의 모습과 유사하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 제작되어 인기를 끈 ‘트레저 헌트’ 장르의 어드벤쳐 영화들, 이를테면 <미이라>(1999)나 <내셔널 트레져>(2004) 또한 툼 레이더의 자장 안에 있다. [툼 레이더]의 성공은 [언챠티드]라는 새로운 게임 프랜차이즈 탄생에 영향을 주었고, [언차티드 3: 황금 사막의 아틀란티스](2011)에서는 아예 해리슨 포드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광고가 등장하기에 이른다. 다른 한편으로,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2023)의 후반부 추락하는 기차를 기어오르는 톰 크루즈의 액션은 [언차티드 2: 황금도와 사라진 함대](2009)의 초반부를 오마주한다. 영화사의 맥락에서 톰 크루즈와 기차를 보고 버스터 키튼의 <제네럴>(1927)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물건들을 붙잡고 등반하듯 추락하는 기차에 매달려 있는 모습은 [언차티드 2]를 명백한 레퍼런스로 삼고 있다.


*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1993)의 포스터(위), 영화 속 쿠파와 굼바(아래)
다만 이러한 일치와 상호참조는 게임과 영화 사이의 관계가 역사적으로 누적됨으로써 성립된 것이다. 1993년 개봉한 최초의 게임 원작 영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에서는 원작 게임과 영화 사이의 불일치를 강력하게 보여준다. 영화는 “This Ain’t No Game”이라는 문구를 포스터에 내세운만큼 게임과 전혀 다른 이미지를 보여준다. 브루클린에 거주하는 이탈리아계 이민자 마리오 형제는 배관공으로 일하던 중, 도시 한 가운데 유적지를 조사하던 데이지가 쿠파에 의해 잡혀간 것을 목격하고 뒤쫓는다. 그들은 숨겨져 있던 지하도시 ‘디노하탄’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데이지를 구하기 위한 모험을 택한다.
영화의 줄거리는 “쿠파에게 납치된 공주를 구한다”라는 원작의 큰 맥락을 그대로 따라간다. 하지만 영화가 구현하는 이미지는 게임과 영 딴판이다. 버섯왕국은 브루클린 지하의 공룡도시로 바뀌었고, 거북이를 모티프 삼았던 쿠파는 인간화된 티라노사우루스가 되었으며, 버섯 몬스터 굼바는 퇴화한 공룡인간이라는 기묘한 설명으로 바뀌었고, 요시는 작은 벨로시랩터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버섯이나 꽃을 먹고 파워업된다는 설정은 남아 있으나, 게임에서의 파워업보다는 각성제에 가깝게 묘사된다. 마리오와 루이지의 의상과 직업 정도를 제외한다면 원작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당연하게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혹평과 함께 흥행 참패를 겪었다. 연출자들은 본래 원작과 유사한 동화풍의 비주얼로 영화를 제작하고자 하였으나, 제작비의 문제로 1980~90년대 유행하던 디스토피아 풍의 비주얼로 변경되었다. 그 과정에서 원작 게임의 요소들이 큰 변화를 겪은 것이다. 여기에는 원작 게임이 가진 세계를 영화로 옮겨오는 것, 마리오와 루이지가 아이템을 먹고 파워업하거나 점프로 벽돌을 부수는 등의 행위들을 곧장 실사영화로 옮겨왔을 때의 문제점도 동반될 것이다. 2023년 닌텐도와 일루미네이션 스튜디오의 합작으로 제작된 극장판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애니메이션 혹은 TV판 애니메이션에서는 어색하지 않았을 행위들이 ‘실사’라는 맥락에서 구현되기엔 무리가 있다.
나아가 1993년의 시점까지 출시된 [슈퍼 마리오] 게임들에는 “쿠파에게 납치된 공주를 구한다”라는 이야기의 뼈대만 존재할 뿐 디테일한 서사가 없다. 그러한 상황에서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으로 각색된 실사영화의 실패는 필연적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어쩌면 이 영화는 원작 게임을 철저하게 배반했기에 컬트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기도 하다. 극장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디스토피아적 세계관과 제멋대로 변형된 캐릭터들은 (물론 퀄리티의 조악함은 있으나) 컬트적 인기를 끌었다. 또한 이후의 작품들, 이를테면 브루클린에 거주하는 마리오 형제와 그곳을 침공한 쿠파 일당을 격퇴한다는 설정이 2023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애니메이션에서 반복되고,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2017)의 ‘도시 왕국’ 스테이지 또한 이 영화의 영향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원작 게임과 영화 사이의 불일치는 기묘한 상호참조로 이어지기도 함을 보여준다.


*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2023, 위)와 <명탐정 피카츄>(2019, 아래) 스틸컷.
극장용 장편영화에 어울리는 내러티브가 결여된 ‘슈퍼 마리오’이니 다른 게임 원작 영화의 예시를 들어보자. <명탐정 피카츄>(2019)는 포켓몬 IP를 활용한 동명의 추리게임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에서 중후한 탐정의 목소리였던 피카츄의 목소리를 영화에서는 라이언 레이놀즈가 맡으며 캐릭터 성격의 변화가 발생하지만.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찾기 위해 라임시티에 온 주인공, 우연히 피카츄와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는 설정, 이상행동을 보이며 난폭하게 폭주하는 포켓몬 등 주요 설정과 이야기 전개는 동일하다. 다만 포켓몬 세계의 영화화에서 중점이 되는 것은 이야기의 문제가 아니다.
<명탐정 피카츄>는 포켓몬 팬들이 상상하던 포켓몬과 공존하는 도시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데 전력을 다한다. 비슷한 시기 공개된 <슈퍼 소닉> 예고편의 ‘어글리 소닉’에 쏟아진 혹평과 반대로, 영화 속 포켓몬의 모습은 (다소 과하게 리얼하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팬들이 상상하던 ‘실사화된’ 포켓몬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구현했고, 게임 속 평면적인 도시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다른 포켓몬 게임이 아닌 명확한 내러티브를 지닌 [명탐정 피카츄](2016)을 경유하여, 충분한 핍진성을 가진 세계로서 이를 구현했기에 가능하다. 동시에 ‘포켓몬’이라는 대상이 지닌 환상성과 가상성은 현실 세계를 베이스 삼은 게임들의 영화화와 다른 방향의 영화화를 가능케 한다. 이를테면 영화판 <히트맨>(2007), <맥스 페인>(2008), <언차티드>(2022) 등은 게임플레이나 게임이 그려낸 세계가 지닌 가상성을 소거한 채 전형적인 ‘액션영화’, ‘범죄영화’, ‘어드벤쳐 영화’가 되었을 뿐이다.

* 왼쪽부터 <모탈 컴뱃>(1995), <레지던트 이블>(2002), <수퍼 소닉>(2020), <더 라스트 오브 어스>(2024)
내러티브의 차원에서 원작 게임을 영화로 충실히 번역하는 것만이 정답인 것만은 아니다. 원작의 방대한 세계관을 열심히 옮겨온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2016)이나 <어쌔신 크리드>(2016)는 그것의 일부만을 부족하게 옮겨왔을 뿐이다. <사일런트 힐>(2006) 같은 소수의 사례를 제외하면, 폴 W. S. 앤더슨의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2002~2016)나 <슈퍼 소닉>처럼 원작의 몇몇 설정만을 따오고, 오리지널 캐릭터를 추가하며, 원작의 캐릭터가 지닌 성격을 팝콘무비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재구성한 사례가 더욱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HBO 드라마 <더 라스트 오브 어스>(2024)의 첫 시즌에서 가장 호평받은 에피소드는 게임에서 그저 우연히 습득할 수 있는 편지를 읽어야 캐치할 수 있는 ‘로어’를 서브플롯으로 확장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영화들에서도 원작 팬들의 플레이 경험을 자극할 수 있는 요소는 필수적이다. <레지던트 이블> 1편에는 [바이오하자드](1996)의 주요 무대인 아크레이 저택이 등장한다. <둠>(2005)은 내러티브상의 설정에선 원작과 큰 차이가 있지만, 1인칭 시점의 롱테이크 액션 시퀀스를 삽입함으로써 FPS 게임의 감각을 가져온다. <수퍼 소닉>의 속도감은 슈퍼히어로 영화 속 스피드스터의 액션과 별반 다르지 않게 연출되지만, 게임의 시그니처 같은 몸통박치기를 액션에 추가한다. 이러한 방식은 원작의 일부만을 가져와 장편영화의 내러티브로 각색했음에도 게임플레이를 연상시킴으로써 게임과의 연결고리를 유지한다.
영화평론가 V. F. 퍼킨스는 영화가 그려내는 세계를 관객이 수용하는 것은 그것이 현실을 그대로 복제한 리얼리즘에 기반하기 때문이 아니라, 관객에게 영화 속 세계의 존재에 대한 신뢰를 줄 수 있는 연출로 인해 가능하다고 말한다[1]. 게임이 영화로 각색되는 과정에서 원작과의 불일치가 발생하지만, 게임플레이의 영화적 구현을 시도함으로써 게임의 가상성을 영화의 핍진성 속에 기입하는, 지난 30여 년간의 게임 원작 영화가 누적되며 형성된 하나의 전략이랄까. 이들 영화는 관객이 이미 알고 있는 세계가 영화 안에서도 존재하고 작동한다는 신뢰성을 얻어내기 위한 전략을 개발하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액션, 호러, 어드벤쳐 등 익숙한 장르영화의 문법에 게임플레이적 순간을 기입하는 전략은, 비록 장르적 전형성 속에서 비평가들의 호평을 얻진 못해도 게임을 즐겨온 대중의 호응을 얻는 데는 성공한다. 1990년대의 <스트리트 파이터>(1994)와 <모탈 컴뱃>(1995)이 그랬고, <사일런트 힐>이나 <명탐정 피카츄>가 그랬으며, 2023년의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성공한 전략이다. <마인크래프트 무비> 또한 이 같은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특히 “납치된 공주를 구한다” 수준의 단순한 로그라인조차 존재하지 않는 [마인크래프트]의 영화화는 이러한 전략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다. 드라마 <더 라스트 오브 어스>나 <반교: 디텐션>(2019) 같은 스토리텔링은 불가능하거니와, 게임 내적으로 부재한 내러티브를 그 바깥의 사건으로 대신한 <그란 투리스모>(2023)나 <테트리스>(2023)와 같은 방식 또한 불가능하다. [팩맨]이나 [갤러그](1981), [테트리스](1985)의 형상을 한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한다는 이야기의 <픽셀>(2015) 같은 방식을 도입하기에도 어렵다. 물론 ‘스토리 모드’가 존재하지만, 별도의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제작되거나 유튜브의 무수한 팬 무비의 영역에 놓일 뿐이다. 사실 가장 히트한 샌드박스 게임으로서 [마인크래프트]는 머시니마(machinima) 팬 무비의 대표적인 재료가 된다. 이 게임 안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마인크래프트 무비>에서도 강조되듯 ‘창의성’이 게임플레이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 ‘오버월드’가 관객에게 신뢰받는 세계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의 이미지뿐 아니라 창의성이라는 키워드가 하나의 세계로서 작동하는 방식을 그려내야 한다.

* <마인크래프트 무비> 속 스티브(좌)와 마을(우)
하지만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창의성과 거리가 멀다. 익숙한 ‘이세계’ 판타지물의 배경이 ‘오버월드’와 ‘네더’로 바뀌었으며, 스티브 일행을 제외한 모든 것이 네모난 큐브 혹은 픽셀 형태의 그래픽으로 표현될 뿐이다. 게임적 가상세계를 배경삼은 최초의 영화 <트론>(1982)부터 스필버그의 야심작 <레디 플레이어 원>(2016)에 이르는 게임 배경의 영화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게임의 가상세계와 현실 사이의 이분법을 고스란히 따른다. 영화 속 ‘마인크래프트’ 세계는 현실과 다른 세계일 뿐 게임이 내세웠던 ‘자유로운 창의성의 세계’가 아니다. 그저 현실과 다른 규칙이 적용되고 다른 존재들이 살아가는 어딘가일 뿐이다.
이는 <마인크래프트 무비>가 택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였을 것이다. 때문에 영화는 게임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장면들을 영화 속에 욱여넣는다. 투병생활 중 세상을 떠난 [마인크래프트] 유튜버 ‘테크노블레이드’를 등장시키며 “저건 전설이야”라고 언급하고, 추락 도중 물 블록을 까는 ‘물 낙법’, 레드스톤의 힘으로 움직이는 광차 트랙, 앤더맨으로 가득한 저택 등의 순간을 영화 내내 선보인다. ‘치킨 조키’ 장면도 이러한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게임플레이적 순간을 영화에 기입하는 것을 넘어, 그것이 숏폼으로 전파되는 밈으로 빠르게 자리 잡길 잠재적으로 요청한다. (실제 제작과정이 그러하진 않았겠지만) 영화의 1차 예고편에서 “나는 스티브야!”라는 대사가 흘러나오는 순간,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한편의 영화라기보단 산산히 분해되고 밈으로 재생산되는 콘텐츠로서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마치 게임 유튜버들이 10~20분짜리 본영상의 하이라이트를 다시금 숏츠로 뽑아내듯이.
2023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와 같은 작품이 관객 개인의 게임플레이 경험을 연상시킨다면,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타인의 게임플레이를 시청하던 경험을 연상시킨다. 내러티브가 부재한 게임의 내러티브는 게임의 디렉터나 디자이너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들의 경험이 누적되며 생성된다. 출시로부터 어느덧 16년이 흐른 [마인크래프트]는 그 시간만큼 많은 플레이가 누적되어 있고, 각각의 플레이는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유튜브나 트위치의 시청자들은 그 내러티브를 게임의 내러티브로서 수용한다. 게임이 내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게임을 매개로 펼쳐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마인크래프트] 뿐 아니라 [시티즈: 스카이라인](2015)이나 [플래닛 코스터](2016) 같은 건설·경영 시뮬레이션 게임, [심즈](2000~2014) 등의 라이프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내러티브 없는 게임의 스트리머·유튜버들이 플레이 과정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

* <마인크래프트 무비> 상영 당시 팝콘을 던지지 말라는 극장 안내문
이러한 맥락에서, 서두에 언급한 ‘불일치’는 게임플레이를 통해 형성된 내러티브와 그것의 영화화 사이의 간극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그것의 향유는 ‘게임’의 향유와 ‘영화’의 향유 사이에 놓인 틈새, 플레이와 시청 사이에 놓인 게임 소비 패턴의 연장선상에 있다. 사실 우리는 10년 전 장난감 원작의 영화 한 편이 ‘놀이’를 영화에 기입함으로써 성공한 바 있음을 알고 있다. <레고 무비>(2014)는 그저 평범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그의 모험이 사실은 레고를 가지고 노는 어린이에 의한 것이었음을 영화 후반부에 드러낸다.
디지털 게임을 원작 삼은 영화에서도 그것이 가능할까?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그것을 정교한 영화적 내러티브 속 메타적 장치로 활용하진 못한다. 다만 이 영화의 관객들은 영화관에 방문하지만, 그들이 관람하길 바라는 것은 정교한 세계가 아니라 자신들이 게임과 가진 경험 속에서 기억하는 이야기와 순간들의 재현이다.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하나의 완성된 영화로 만들어지는데 실패했지만, 원작과의 불일치 속에서 의도치 않게 지금의 게임 소비 환경을 영화 외적인 방식으로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원작 게임을 멀찍이 벗어나 괴상망측한 장르영화로 향했던 우베 볼의 영화들이나 내러티브의 부재를 게임 바깥의 사건으로 대리한 <그란 투리스모>, <테트리스>와도 다르다. 제작이 예정된 무수한 게임 원작 영화들이 방대한 세계관의 영화화를 예고하고 있을 때,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게임의 세계관이나 게임플레이가 아니라 게임-보기의 영화화가 하나의 방식일 수 있음을 예측할 수 없던 방식으로 보여준다.
[1] V. F. 퍼킨스. 『영화로서의 영화』. 임재철 옮김. 서울: 이모션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