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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모전] 모바일 리듬 게임에서 ‘엄지러’를 선택하기-‘프로젝트 세카이 컬러풀 스테이지! feat.하츠네 미쿠’를 중심으로
‘엄지족’이라는 신조어가 있었다. 2000년대 폭발적으로 보급된 스마트폰이 사회 전 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을 때였다. 엄지를 이용해 스마트폰의 화면을 누르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청년을 일컬어 ‘엄지족’이라 불렀다. M으로 시작하는 것에 착안해 이들 세대를 모바일 세대, M 세대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무도 그런 말을 쓰지 않는다. 모두가 ‘엄지족’이자 모바일 세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 Back [공모전] 모바일 리듬 게임에서 ‘엄지러’를 선택하기-‘프로젝트 세카이 컬러풀 스테이지! feat.하츠네 미쿠’를 중심으로 13 GG Vol. 23. 8. 10. ‘엄지러’는 선택을 해야 한다 ‘엄지족’이라는 신조어가 있었다. 2000년대 폭발적으로 보급된 스마트폰이 사회 전 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을 때였다. 엄지를 이용해 스마트폰의 화면을 누르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청년을 일컬어 ‘엄지족’이라 불렀다. M으로 시작하는 것에 착안해 이들 세대를 모바일 세대, M 세대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무도 그런 말을 쓰지 않는다. 모두가 ‘엄지족’이자 모바일 세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바일 리듬 게임의 세계에서 ‘엄지족’, 다른 말로 ‘엄지러’는 여전히 실존한다. 스마트폰 리듬 게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00년대 후반 이후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모두가 ‘엄지러’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모바일 리듬 게임의 세계에서 ‘엄지러’의 위치는 다소 미묘하다. 노트를 정확한 타이밍에 터치해야 하는 일반적인 포맷의 모바일 리듬 게임을 상상했을 때, 분명히 모바일 리듬 게임의 유저 대다수는 엄지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엄지러’다. 그러나 노트가 더 많이, 빨리 등장하며 고난도의 플레이가 요구될수록 뚱뚱한 엄지 두 개만을 움직이는 플레이는 명확한 한계를 가진다. 이론상 발로도 플레이할 수 있는 <지오메트리 대시Geometry Dash>나 엄지가 누비기 비교적 수월한 세로형 인터페이스의 <피아노 타일 2Piano Tiles 2>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기에 모바일 리듬 게임의 ‘엄지러’는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한계가 있음을 알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엄지로 플레이하거나, 지금부터라도 낮은 레벨부터 다른 손가락을 사용하는 연습을 하며 플레이 스타일을 ‘교정’하는 방법이다. 전자를 선택한 이용자라도 이걸 엄지로 하라고 만든 것이 맞는지 의심되는 곡을 만나면 다시 갈등을 시작한다. 이 필연적인 고민은 하나의 의문을 낳는다. 리듬 게임의 ‘엄지러’는 바뀌어야만 하는가? 인터페이스의 전환과 ‘엄지러’의 탄생 ‘엄지러’는 원래 리듬 게임에 존재하지 않는 계층이었다. 리듬 게임은 이전까지 감각적인 콘트롤러를 탑재한 아케이드 기기를 무기로 이용자를 매혹시켰다. 이용자는 강렬한 음악이 귓가를 때리는 오락실에서 버튼을 누르고, 돌리고, 발판을 밟고, 북을 치고, 기타를 치는 식으로 리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2000년대부터 오락실이 쇠퇴함에 따라 온라인과 콘솔, 모바일 등 각각의 형태를 기반으로 리듬 게임이 분화되었다. 모바일 리듬 게임으로 넘어오며 리듬 게임은 기존의 무기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각양각색의 감각적인 콘트롤러 대신 게임사가 활용할 수 있는 것은 피처폰의 조악한 버튼, 조금 더 나아가서는 스마트폰의 작은 터치스크린뿐이었다. 이 터치스크린 속에서 특정한 버튼을 누르면 여전히 소프트웨어는 우리의 입력에 반응하지만, 과거와 같이 게임 소프트웨어 바깥에서 주어지는 ‘눌렸음’의 촉각적 신호는 사라진다.1) 이 물리적 제약은 감각적인 콘트롤러를 내세웠던 리듬 게임에 엄청난 도전이었다. 대신 스마트폰은 리듬 게임에게 휴대성과 대중성을 가져다주었다. 게임사는 모바일 환경에 맞춰 ‘엄지족’이 엄지로 간편하게 플레이할 수 있게끔 리듬 게임을 설계했고, ‘엄지족’은 엄지로 플레이를 했다. ‘엄지러’의 탄생이었다. 2000년대 후반부터 리듬스타 등의 피처폰 모바일 리듬 게임이 인기를 끌었으며, 2010년부터는 고사양의 스마트폰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아이폰, 안드로이드와 같은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한 리듬 게임들이 개발되었다.2) 형태의 전환은 새로운 규범을 만들었다. 스마트폰으로 리듬 게임을 한다는 것은 게임사가 더는 이용자가 리듬 게임을 하는 방법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케이드 리듬 게임을 플레이할 때는 정해진 장소로 가 정해진 콘트롤러를 정해진 방식으로 조작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모바일 리듬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용자들에게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그들은 불특정한 장소에서 불특정한 기기를 불특정한 방식으로 조작한다. 이용자는 카페에서 태블릿을 눕혀놓고 모든 손가락을 활용해 게임을 플레이할 수도 있고, 핸드폰을 들고 집에 누워서 엄지로 플레이할 수도 있으며 최신형 접히는 핸드폰을 산 것을 후회하며 접히지 않도록 조심하며 검지로 플레이할 수도 있다. 이 새롭고 다양한 사용자 경험 위에서 이전과 다른 플레이 문화가 축적됐다. 인터페이스의 전환이 새로운 장르적 전통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바일 리듬 게임에게 ‘어느 정도 엄지 플레이를 가능하게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은 필수적인 동시에 중요하다. 이 질문에 어떤 답을 내리느냐에 따라 해당 리듬 게임의 방향성이 결정된다. 캐릭터 IP를 내세운 대중적인 모바일 리듬 게임인 처럼 이론상 엄지로만 플레이 가능한 게임이 있는 한편, 아예 어려운 리듬 게임을 테마로 한 <다이나믹스Dynamix>처럼 엄지 플레이가 거의 불가능한 게임도 있다. <칼파KALPA>처럼 엄지 플레이 난이도와 다지 플레이 난이도를 이원화하는 선택을 하거나, 특정 레벨 이상부터 다지 플레이를 필수로 만드는 등의 절충안을 내놓은 경우도 존재한다. “모든 곡은 두 손가락으로 풀 콤보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중 ‘프로젝트 세카이 컬러풀 스테이지! feat.하츠네미쿠’(이하 프로세카) 또한 이론상 엄지로만 플레이가 가능한 모바일 리듬 게임이었다. 주식회사 세가와 컬러풀 파레트, 크립톤 퓨처 미디어가 공동 개발한 프로세카는 보컬로이드 IP를 이용한 캐릭터 수집 요소를 결합해 만든 대표적인 모바일 리듬 게임 중 하나다. 이 리듬 게임이 호명된 이유는 이 게임이 더 이상 엄지로만 플레이 가능한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 서버에서 개최된 창작 콘테스트 ‘초고난이도 프로세카 ULTIMATE’의 당선작 3곡이 게임 내 최고 레벨을 경신하는 37레벨로 수록되며 이 명제가 깨진 것이다. 이는 게임의 프로듀서인 콘도 유이치로의 “모든 곡은 두 손가락으로 풀 콤보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는 과거 발언을 번복하는 문제로써 이용자들 사이에 논란이 되었다. 이에 게임사는 37레벨은 번외 레벨로 예외적인 경우이며, 이하의 레벨에서는 앞서 말한 원칙을 지키겠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사실 프로세카가 이론상으로 엄지로만 플레이가 가능했을 때에도 높은 난이도의 곡들은 거의 엄지로 플레이하기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실제로 프로세카에는 엄지만 사용하여 올 퍼펙트를 달성한 것이 확인되지 않은 곡이 다수 존재하며, 같은 난이도의 곡이라도 엄지로 플레이할 때 압도적으로 어려운 곡도 존재한다. 높은 난이도의 곡을 엄지로 플레이하는 이용자가 있더라도 그것은 극히 소수일 뿐이다. 그리고 가능과 불가능의 영역을 넘어, 여러 손가락으로 플레이하는 것은 엄지로만 플레이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그런데 왜 ‘엄지러’는 그렇게 하지 않는가? 물론 여러 손가락을 사용하려면 태블릿과 같은 일정 크기 이상의 터치스크린을 눕혀야 한다는 제약이 존재한다. 하지만 높은 난이도의 곡을 시도할 정도로 열성적인 이용자가 단지 그것 때문에 엄지를 고수한다는 점은 이상하다. 더 이상한 점은 여러 손가락으로 플레이하는 이용자조차 37레벨 곡 업데이트에 대하여 ‘엄지 배려’를 하라고 목소리를 낸다는 점이다. 높은 난이도의 곡 플레이가 가능한 ‘엄지러’는 원래도 거의 없었는데, 그들은 무엇을 위해 이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는가? ‘엄지러’라는 전통 이 모든 반응은 ‘엄지 플레이’와 ‘다지 플레이’의 구분이 단순한 플레이 방식의 차이 그 이상을 함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만약 이 구분이 단순한 플레이 방식의 차이였다면 엄지로 32레벨까지 클리어하고 막히면 33레벨부터는 다지로 플레이 해 클리어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용자들은 33레벨 ‘엄지’ 클리어와 33레벨 ‘다지’ 클리어를 다른 것으로 구분한다. 게임 내적 시스템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클리어하든 아무 구분 없이 표기되는 데도 말이다. 이용자들은 대신 게임 외적으로 엄지로 특정 레벨까지 클리어 한 사실을 자랑한다거나, 엄지로 특정 곡을 클리어 한 영상을 공유하며 그들만의 전통을 축적한다. ‘엄지러’를 기준으로 한 비공식 곡 난이도 표를 만들고, ‘다지러’가 엄지로 어디까지 플레이가 가능한지 도전하기도 한다. 이렇게 축적된 전통 위에서 ‘엄지러’의 높은 난이도 도전은 몇몇 이용자의 기행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런 모습은 플레이 방식의 차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여러 직업이 있는 RPG 게임에서 상이한 난이도의 직업 루트를 선택하는 것과 더욱 유사해 보인다. 하나의 직업으로 최종 보스를 처치했다는 사실이 인정받으면서도 그것이 곧 다른 직업의 성취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다른 매체와 구분되는 게임의 특징을 논할 때 공통적으로 거론되는 점이 바로 게임과 이용자 간의 상호작용으로 생성되는 새로운 맥락과 이용자의 창조성이다. 이경혁3)은 게임 매체의 수용이 일종의 창조 행위라는 것을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로 오락실의 <펌프 잇 업> 고수가 펼치는 두 발 외의 몸을 사용하는 펌프 퍼포먼스를 들었다. 이런 예시는 개별 이용자의 창조적 수용을 보여준다. ‘엄지러’의 전통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게임사를 포함한 모바일 리듬 게임이라는 장르의 구성원은 모두 이 암묵적인 장르적 전통을 공유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게임 외적으로 구축된 전통은 개별적인 창조적 행위가 아닌 인터페이스의 특징에서 촉발되어 장르의 구성원이 새롭게 창조한 ‘규범’에 가깝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앞선 프로세카 같은 리듬 게임은 특히 게임 내적 시스템의 영향으로 다른 모바일 리듬 게임보다 ‘엄지러’의 규범이 강하게 작용한다. 실제로 엄지 플레이를 염두에 두고 설계된 것뿐만 아니라, 대중성을 위해 양적 랭킹 시스템을 도입하였기 때문이다. 프로세카에는 일정 기간 동안의 플레이 횟수에 따른 양적 랭크인 이벤트 랭킹과 실력을 겨루는 질적 랭크인 랭크 매치가 동시에 존재한다. 그리고 양적으로 순위를 매길 때 더 유리한 플레이 방법은 당연히 엄지를 이용한 플레이다. 이러한 이원화는 엄지 플레이에 확실한 효용을 부여함으로써 엄지 플레이의 지위를 보장한다. ‘엄지러’를 선택하기 단순한 플레이 방식 이상의 ‘엄지러’ 전통을 고려했을 때, 프로듀서의 발언을 차치하고서라도 이론상 엄지로만 칠 수 없는 곡의 등장이 강한 논란을 불러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RPG 게임의 비유를 다시 가져오면,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지 여부와 별개로 하나의 직업 루트에만 번외 콘텐츠가 개방된 셈이니 말이다. 혹여 ‘다지러’로 전직하더라도, 모바일 리듬 게임을 하는 한 ‘엄지러’의 전통은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있다. 다시 질문해보자. 리듬 게임의 ‘엄지러’는 바뀌어야만 하는가? 무의미한 질문이다. 바꾼다 해도 내가 선택해 키운 ‘엄지러’는 사라지지 않으니까. 1) 이경혁 (2023.04.05.), 플레이어의 숙련도가 머물렀던 곳은 어디였을까: 터치스크린 시대의 숙련도, <게임제너레이션>, URL: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152d8082-f4a1-486d-875d-a05088a28625 2) 강현구 (2019), 스마트폰을 위한 리듬게임 User Interface Design 연구, 석사학위,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3) 이경혁 (2019), <(놀이에서 디지털 게임까지) 게임의 이론>, 문화과학사.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대학원생) 손민정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현대문학과 문화를 공부 중입니다. 글과 함께한 만큼 게임과 늘 함께 해왔습니다. 별별 게임 다 합니다.
- 분투형 게임과 전쟁: 행위성의 뒤집힌 거울상
이와 같은 현상은 지난 세기 걸프전 이후 더욱 가속화된 ‘전쟁의 게임화’에 관한 분석에서 거울상을 발견한다. 게임의 한 장면처럼 보도되는 폭격의 현장에서부터 게이미피케이션을 통한 병사 훈련, 그리고 드론을 동원한 전쟁에 이르기까지. 게임이 전쟁을 재현(mimesis)할 때, 전쟁은 게임을 모사(mimesis)한다. < Back 분투형 게임과 전쟁: 행위성의 뒤집힌 거울상 25 GG Vol. 25. 8. 10. 블리자드 사(社)는 전쟁을 사랑했다 아니, 이름부터 ‘워’ 크래프트(Warcraft)였으니까. <워크래프트>는 한때는 게이머들에게 숭앙의 대상이었던 블리자드 사의 실시간 전략(Real-Time Strategy, RTS) 게임이자,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 인간과 오크 사이의 전쟁을 그린 <워크래프트> 친구 집에서 처음 접하고 머릿속에서 도무지 떠나지 않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플레이하다가 밤을 새운 게 아니다. 머릿속에서 게임 플레이를 회상하고 상상하고 시뮬레이션하다가 불현듯 아침을 맞았다. 우주 전쟁, 그러니까 <스타크래프트(Starcraft)>가 출시되었을 때, 또 그랬다. 블리자드는 악마와도 싸운다. 액션 롤플레잉 게임 <디아블로(Diablo)>는 주인공이 겪는 고투의 후경에 성전(聖戰)을 배치한다. 한국의 올드 게이머들로서는 KOEI를 빠뜨릴 수 없다. KOEI의 <삼국지 2(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Ⅱ)>는 워크래프트보다도 먼저 심취했던 게임이었다. 삼국지가 소재인 게임에서 무얼 하겠는가? 전쟁이지. 조부모님 댁에 있는 삼촌의 컴퓨터에 설치해 두고, 몰래 밤새워 플레이하곤 했다. 몰래는 무슨 몰래. 연로한 분들의 이마에 주름을 늘게 하는, 앞날이 걱정되는 손자가 되었다. 심지어 ‘대항해시대 2’의 해전조차 좋았다. 그때는. <콜 오브 듀티(Call of Duty)>, <배틀필드(Battlefield)>, <메달 오브 아너(Medal of Honor)>, <월드 오브 탱크(World of Tanks)>, <월드 오브 워쉽(World of Warships)>, ,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Company of Heroes)>, <토탈 워(Total War)> 등등. 연극, 영화, 드라마, 소설 등 다른 매체들도 전쟁과 전투를 소재로 삼는다. 그런데 게임계에는, 정말 많다. 왜 그렇게 전쟁을 재현하는 데 진심이냐고 게임 개발자들에게 묻는 건 아예 당위적이기까지 하다. 대체 게임과 전쟁 사이에 어떤 접점이 있길래. 이런 마당에 전쟁을 재현하는 게임에 대한 윤리적, 정치적 분석이 게임 연구의 한 흐름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건 짝사랑이 아니었음을 이와 같은 현상은 지난 세기 걸프전 이후 더욱 가속화된 ‘전쟁의 게임화’에 관한 분석에서 거울상을 발견한다. 게임의 한 장면처럼 보도되는 폭격의 현장에서부터 게이미피케이션을 통한 병사 훈련, 그리고 드론을 동원한 전쟁에 이르기까지. 게임이 전쟁을 재현(mimesis)할 때, 전쟁은 게임을 모사(mimesis)한다. * 게임과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였던 걸프 전쟁 당시 바그다드 공습 보도 화면 * 서로 거의 흡사한 실제 전투기에서의 폭격 화면과 게임 화면 그런데 정말 게임이 전쟁을 재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전쟁 역시 게임을 모사한다면, 분석은 게임을 전쟁의 재현물로 보는 것에 국한할 수 없다. 양자의 접점은 어느 한쪽의 일방적 접근을 통해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은 서로를 향해 점근(漸近)한다. 게임과 전쟁이 집결하는 공간의 성격은 하나로 귀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곳은 싸우는 공간이다. 물론 조용한 전쟁이 존재하는 것만큼이나 ‘싸움’의 범주 바깥에 자리한 게임들도 많다. 하지만 다툼, 쟁투, 분투, 고투가 게임과 전쟁 양쪽 모두에서 대주주의 지위를 점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 점에 있어서 게임과 전쟁을 일방적 관계가 아닌 상호-참조적 관계를 맺고 있다. 분투형 플레이와 목표의 지위 게임과 전쟁이 분기를 이루는 것처럼 보이는 지점은 그 싸움의 목표다. 전쟁의 목적이나 목표는, 당신이 이데올로기 비판을 수행하거나 배면의 진의를 의심하는 이가 아니라면,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명확하다. 모든 위정자는 그들의 전쟁의 목표와 이유를 다중에게 선명히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그 목표는 실질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게임에서는 그게 좀 어려운 경우가 있다. 친구와 <스트리트 파이터(Street Fighter)>를 함께 플레이한다고 해보자. 달뜬 얼굴로 내 캐릭터를 두들겨 패는 친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왜 이렇게까지 때리는 거야?”라고 묻는 것이다. 속 깊고 다정하며 사회적 지능 뛰어난 우리의 실제 친구는 내가 기분이 상했다고 생각하고 장난스러운 위로와 함께 기분을 풀어주려 할 테지만, 반사실적 가정을 이어가 보자. * 대전 격투 게임의 플레이 과정은 정말 분투 그 자체다. 가상의 이 친구는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래야 이기지.”라고 답할 것이다. 친구와 즐겁게 게임을 하다 패색이 짙다는 이유로 기분이 상한 우리는, 행위의 근본적 성격을 묻는 것으로 옹색함을 감출 수 있다. 친구에게 진지한 탐구자의 얼굴을 하고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이기려는 거야?”라고 묻도록 하자. 아니, 정말로, 그들은 왜 그렇게까지 할까? 격투 게임에서 승리하면 하늘에서 뭐라도 떨어지나? 뭔가 이득을 얻는 것도 아닐 텐데 내 친구는 대체 무엇을 위해 내 캐릭터를 그렇게 열심히 때릴까. 철학자 C. 티 응우옌 (C. Thi Nguyen)은, 게임 외적 보상이 관건이 아니라면, 그 목적이 둘로 나뉜다고 본다. 하나는 승리다. 승리하고 성취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며 그것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다. 내 친구는 나의 캐릭터를 두들겨 패고 나를 이겼다는 사실에서 행복감을 느낀다. 다른 목적도 있다. 바로 ‘싸움 그 자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철학자 버나드 슈츠(Bernard Suits)는 그의 저서 The Grasshopper: Games, Life and Utopia 에서 게임 플레이를 “불필요한 장애물을 극복하려는 자발적인 시도”로 정의한다. 골프를 생각해 보자. 골프 공을 홀에 넣는 것이 관건이라면 우리는 그냥 손으로 공을 들고 홀에 넣으면 된다. 하지만 우리는 굳이 클럽이라는 비효율적인 도구를 사용해 온갖 규칙 속에서 공을 치려 애쓴다. 어째서일까? 슈츠에 따르면, 바로 그 ‘비효율성’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고투와 분투의 과정 자체가 게임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목표 달성이라는 결과보다, 그 과정의 고군분투가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이때 장애물 너머에 있는 목표는 사실 무의미하다. 그것은 장애물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즐기기 위해 가정된 목표에 불과하다. 고투하는 그 과정을 위해 마련된 가상의 목표와 비효율적인 도구, 각종 규칙은 게임을 벗어나기만 하면 실제로는 불필요한 장애물이다. 그것은 고투 자체를 즐긴다는 목적에 의해서 의미와 필요를 획득한다. 성취, 보상, 승리보다는 그 싸우는 과정 자체가 즐거움과 의미의 원천이다. 응우옌은 이러한 슈츠의 게임 이론을 수용한다. 응우옌에 의하면, 유희를 위한 일시적 목표를 상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분투하는 과정을 즐기는 것은 게임에 존재하는 고유한 플레이 방식 중 하나다. 그리고 이러한 유형의 게임 플레이를 ‘분투형 플레이(striving play)’라고 응우옌은 명명한다. 분투형 플레이를 즐기는 게이머들은 승리에 뒤따르는 외적 보상이나 게임에서의 승리보다 분투, 고투, 싸움 그 자체를 즐긴다. 따라서 이제 우리의 친구는 다음과 같이 답할 수 있다. “친구야, 내가 너를 그저 이겨 먹으려는 게 아니야. 승리라는 일시적 목표를 수용함으로써 너와 겨루는 과정 자체를 즐기려는 거야.” 게임과 전쟁의 분기(였던 것) 어색하게 문어체로 말하면서도 어딘가 포용력 있어 보이는 이 친구의 풍모와 달리, 응우옌의 이론은 모든 게임을 아우르는 포괄적, 일반적 설명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게임이라는 매체에서 유독 고유하게 나타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에 대해 논할 뿐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목적, 목표, 성취, 결과보다는 과정과 수행 중심적 참여를 가능케 하는 매체적 특성에서 발생한다. 이때 중요한 점은, 게임이 이러한 매체로서 기능할 때 그것이 전쟁과 확실하게 분기한다는 점이다. 특히 이 목표의 차원에서 그러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실제 전쟁과 전투에선 실질적 목표를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그저 분투를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주조된 일회적 목표 따위가 아니다. 저기 어딘가에 실제로 방공 포대가 존재하고 이라크의 대통령인 사담 후세인이 존재하며 그를 호위하고 있는 적군이 존재한다. 그것이야말로 실질적이고 명확한 목표다. 그것들은 미군의 전쟁 수행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형편 좋게 마련된 도구가 아니다. 분투형 플레이를 가능케 하는 게임 내에 설정된 목표는, 전쟁의 그것과 명확하게 구별된다. 군인들에게 주어지는 실제 전쟁의 목표와 달리, 분투형 게임의 목표는 본질적으로 불필요한 것이자 언제든 폐기할 수 있는 것이며 일회적인 것이면서 가상의 것이다. 전쟁의 목표가 전쟁 중의 행위를 성립시키기 위해 마련된 도구가 아닌 것에 비하여, 분투형 게임의 목표는 처음부터 끝까지 게임 내의 행위성을 조형하기 위해 마련된 도구의 일환이다. 그렇기에 그 게임의 행위성을 버리는 순간, 분투를 즐기려는 ‘유희적 태도’를 버리는 순간, 게임의 목표는 의미를 상실한다. 양자의 차이는 목표를 달성하고 마주하는 순간 더욱 돌출한다. 분투형 게임의 경우, 목표의 달성은 유희의 종식을 의미한다. 분투형 플레이를 성립시키는 것에서 의미를 부여받았던 목표였기에, 분투형 플레이가 중단되는 순간 그 목표는 의미를 상실한다. 논리적 귀결일 뿐이다. 성취 지향적 플레이의 경우라면 다르겠지만, 분투형 플레이에서는 목표가 달성되는 순간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건 어떤 현재성이 아니라 지난 분투 과정을 곱씹을 시간이다. 달성되는 순간 그것은 투명해진다. *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한 장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씬 레드 라인’ 같은 영화는 서로의 목표물이 되는 병사들이 얼마나 적나라하고 구체적인 존재인지 보여준다. 전쟁에서 달성된 목표는 더 붉다. 화염의 붉음이든 선혈의 붉음이든, 전쟁에서 달성된 목표는 진하고 구체적인 감각적 결과물을 행위자의 눈과 손 앞에 차려 놓는다. 목표가 달성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접근한 이가 마주하는 결과물의 감각적 구체성은 전혀 가볍지 않다. 쉽게 윤리적 무게로 치환되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그간의 분투 과정을 반추하고 곱씹을 여유 같은 것은 주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행위가 초래한 결과물이 어떠한 것인지, 그것이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그리고 이러한 결과일 것이라고 정말 인지하고 각오하고는 있었는지, 그 결과물은 빨갛고 무겁고 구체적인 모습으로 물어온다. 그리고 이제 이 분기가 사라지는 것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행위성의 정제, 예술, 그리고 정교한 야만 이러한 게임과 전쟁의 분기점은 현대의 전쟁이 게임의 면모를 닮아감에 따라 희미해진다. 이는 단순히 전쟁에서 수행되는 행위성이 게임에서의 그것과 유사하다든가, 아니면 유사한 인터페이스와 조작을 통해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행위가 수행된다는 점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태는 목표의 추상화와 그로 인한 행위성의 부각에 있다. 응우옌은 그의 저서 『게임: 행위성의 예술』에서 게임을 Art of Agency, 즉 행위성의 예술이라고 명명한다. 게임에는 유희적 목표, 전-유희적 목표, 유희적 태도, 규칙, 불필요한 장애물 등이 다양하게 배치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게임에서 특정한 행위성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분투형 플레이는 바로 이 행위성을 경험하는 최적의 플레이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게임은 이 행위성의 구현에서 미적 가치를 창출함으로써 행위성을 소재로 삼는 예술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게 응우옌의 주장이다. 게임이 목표와 성취로부터 해방되고 분투 행위에서 의의를 발견함으로써 그것은 행위성의 예술이 된다. 목표로부터 해방된 게임이 예술의 가능성을 획득하는 것에 비하여, 전쟁에서는 다른 양상이 관찰된다. 전쟁이 게임의 수행성을 닮아가는 것은 여러 방식으로 나타나지만, 그 행위성이 목표와 유리되는 것을 빠뜨릴 수 없다. 전투기 조종사는 목표 대상을 육안으로 관찰하지도 않은 채, 레이더를 보고 버튼을 눌러 미사일을 발사한다. 목표 대상의 구체적이고 적나라한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드론 전쟁은 더욱 노골적이다. 드론 조종사는 게임 컨트롤러와 유사한 장비로 ‘스크린 속’ 목표를 제거한다. 자폭형 드론이 목표에 적중하는 순간, 공포와 고통에 비명을 질렀을 법한 적군 병사는 스크린에서 사라진다. 이러한 방식의 전쟁을 수행하는 자는 목표에 접근할 기회로부터 면제되거나, 또는 그것을 박탈당한다. 면제와 박탈 사이의 모호성 속에서 그에게 주어지는 것은 ‘정밀 타격률’, ‘효율적 자원 운용’과 같은 데이터다. 즉, 그의 행위성에 대한 반추를 수치화하고 정돈한 것들이다. 그렇게 본디 구체적인 목표물들은 추상화된다. 그것은 모니터 안의 영상, 명멸하는 신호, 수치화된 데이터 등으로 추상화된다. 목표물이 추상화되는 곳에서 전쟁 수행자에게 더 분명하게 남는 것은 그의 행위성이다. 비로소 전쟁의 수행자는 데이터들을 바탕으로 분투와 전투에서 성립하는 행위성을 더욱 정교하게, 합리적으로 다듬어 간다. 그들은 마치 ‘분투형 플레이어’와 흡사한 조건에 놓이게 된다. 더 나아가, 이때 사상되는 것은 전쟁 목표물의 빨갛고, 무겁고, 뜨끈하고도 축축한 구체성이다. 죽음, 파괴, 트라우마는 스크린 속 데이터나 수리에 담기지 못하는 구체적이고 참혹한 현실이다. 그리고 앞서 지적했듯이 이러한 구체성은 전쟁 행위의 당사자에게서 여하한 윤리적 무게로 치환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면제인지 박탈인지 모를 공백의 정체가 확연해진다. 목표물과 거리가 멀어지는 현대의 전쟁 수행자는 이 피 튀기는 사후 정산서로부터 눈을 돌릴 수 있게 된다. 그들에게선 목표를 달성하고 결과를 야기한 행위자로서의 윤리적 ‘책임’은 증발하고 행위성의 정교한 도야만이 남는다. 그것은 정교하고도 섬세한 야만이다. * 드론 공격을 성공시키고 환호하는 병사의 모습 분투형 게임과 전쟁: 행위성의 뒤집힌 거울상 지금까지의 논의는 게임과 전쟁이 거울상의 관계에 놓여있음을 보여준다. 게임과 전쟁은 행위성의 뒤집힌 거울상으로서 서로를 비춘다. 분투형 게임에서는 실제로는 무의미한, 무가치한 목표를 설정한다. 그리고는 그것을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처럼 일회적인 가장과 유희적 태도를 취한다. 이를 통해 분투에서 즐거움을 느끼게 하거나 행위성을 조형한다. 목표가 일회적, 유희적 대상으로 왜소화되었기에 오히려 게임은 행위성의 예술적 가능성을 표현하는 매체가 될 수 있었다. 현대의 전쟁에서는, 무의미한 것이 유희적 태도를 통해 의미를 일시적으로 획득하는 것과 정반대의 사태가 벌어진다. 전장에 선 군인들은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는 척 가장하지 않는 것에 그칠 수 없다. 생사가 오고 가는 현장에서 그들의 목표를 진정으로 추구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이한다. 목표를 달성한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 역시 적나라한 구체성이었다. 하지만 현대의 전쟁에서 목표물은 굳이 접근하고 목격하고 손에 쥘 필요가 없는 것으로 유리되고 추상화된다. 그 목표가 무엇인지 알 수 없거나 상관없게 되어버림으로써, 분투형 게임에서와 마찬가지로, 군인들에게도 점차 분투와 행위성만이 남는다. ‘목표’와 ‘결과’와 ‘책임’이 휘발되어 가는 이러한 사태는, 예술적 가능성을 마련했던 분투형 게임에 대하여, 실로 행위성의 뒤집힌 거울상으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Tags: 응우옌, 행위성, 전쟁, 예술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철학연구자) 최건 철학연구자로서의 정체성과 게임애호가 및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강의, 강연, 연구, 저술, 번역 활동에 임해왔으며, 현재는 인하대 등에서 학생들과 사유를 공유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 표절이라는 확고부동하지 않은 선
요 몇 년 부쩍 게임기자라는 부담스러운 직함을 달고서 듣기에 더더욱 부담이 가는 질문들이 있다. “이 게임이 저 게임을 베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건 표절이 맞지 않나요?” 마치 녹음기를 켠 채 내 커리어를 끝장내고 싶어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질문들인데, 그때마다 대처하는 방법은 같다. ‘예/아니오’ 로 답하는게 아닌, 상대방과 열띤 토론을 시작하는 것이다. < Back 24 GG Vol. 25.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MyungKyu Lee Game journalist (2014–), writer (2006–), gamer (1996–).
- 공명하는 사무라이: 역사적 정확성과 시장성 사이에서
이제 어느 정도 피로감마저 느껴질 만큼 야스케라는 인물이 게임 주인공으로 등장한 사실에 대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반발은 이미 잘 알려진 논란이 되었다. 이 논란은 2024년 처음 불거졌는데, 사실 2022년의 유비포워드Ubifoward 행사에서 <어쌔신크리드: 섀도우스>가 ‘코드네임 레드’라는 이름으로 등장할 당시에는 야스케의 존재가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았다. < Back 24 GG Vol. 25.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Editor-in-Chief in GameGeneration) Andrei Zanescu Andrei Zanescu is a postdoctoral fellow and part-time faculty member in Communication Studies, and Anthropology & Sociology, at Concordia University, in Montreal, Canada. He specializes in AAA studio cultural adaptation practices involving resonance as a corporate strategy, as well as the legitimation of games through the formation of awards bodies tied to film and television cultural capital. He regularly publishes game and platform studies concerning a range of games (Assassin's Creed, Magic the Gathering & DOTA 2) and awards bodies, and in New Media & Society (2021), Games & Culture (2024), The Journal of Consumer Culture (2021) and Convergence (Forthcoming). He is also a co-author of Streaming by the Rest of Us: Microstreaming Videogames on Twitch (MIT Press, 2025). (Editor-in-Chief in GameGeneration)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지금 우리는 무엇을 '롤플레이'하는가
21세기의 사반세기를 돌아 마주한 것은 언어의 순수에 대한 갈망 하나만이 아니다. 70년대에 탄생하고, 90년대에 완숙하여, 2000년대에 끝없이 분화한 이 장르를 태초의 조건으로만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RPG’라고 부르던 조건은 이제, 수많은 가능성들에 의해 취사적으로 선택되고 조립되고 분화되었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제 비디오 게임의 세계에 순수한 RPG라는 것은 규정 불가능하다. < Back 23 GG Vol. 25. 4. 10. Tags: 롤플레잉, 장르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unin Lee Writes and lectures freely across comics, games, and film. A lifework: clearing every Final Fantasy title except the MMORPGs. Mainly plays on the Steam Deck.
- 남성향 연애 게임에서의 '사랑'
사랑을 게임 속에 재현해보고자 처음 시도됐던 남성향 연애 게임은 사랑 그 자체보다도 점차 게이머의 즐거움을 유발할 수 있도록 ‘게임성’에 집중하고자 했고, 이는 어느 정도 연애 게임의 진화된 모습으로 정착될 수 있었다. < Back 16 GG Vol. 24.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ujin Park A graduate student who has stepped into game studies. Currently taking courses at the Graduate School of Core Ethics and Frontier Sciences at Ritsumeikan University in Japan. Lately, exploring the varied game experiences mediated by games, as well as subculture within Japan. Writing is still hard.
- 플레이어들은 왜 ‘한글패치’를 하고 있을까?
이른바 ‘한글패치’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구였다. 해당 연구를 진행하면서 여러 커뮤니티 게시글이나 코멘트, 심지어 인터뷰 참여자에게 꾸준하게 보고 들었던 이야기의 대명제는 “게임은 항상 균등하게, 지역에 관계없이 생산/소비되진 않는다”였다. 우리는 일방향적 콘텐츠 전사, 서구 중심 문화적 동질화 등 미디어 제국주의가 팽배한 시대가 아닌, 능동적 미디어 수용자에 의한 재해석과 전유의 시대에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으니, 적어도 미디어는 각 지역의 수용자들에 의해 서로 다른 문화적 맥락 속에서 다양하게 해석되고 전유되는 양상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 Back 29 GG Vol. 26.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ujin Park A graduate student who has stepped into game studies. Currently taking courses at the Graduate School of Core Ethics and Frontier Sciences at Ritsumeikan University in Japan. Lately, exploring the varied game experiences mediated by games, as well as subculture within Japan. Writing is still hard.
- <바이페즈(双相)>와 게임의 신체화
2022년 11월 중순, 랩시드(西山居SEED实验室, 시산쥐SEED실험실)에서 인큐베이팅한 중국산 공익게임 <바이페즈>가 정식 출시됨으로써, 국내 최초 게임 형식으로 양극성 장애[역주: 조울증]를 다룬 게임이 됐다. 조증과 우울증이 번갈아 나타나는 정신질환인 양극성 장애는 전 세계에 약 6천만 명의 환자가 있다. < Back <바이페즈(双相)>와 게임의 신체화 13 GG Vol. 23. 8. 10. 2022년 11월 중순, 랩시드(西山居SEED实验室, 시산쥐SEED실험실)에서 인큐베이팅한 중국산 공익게임 <바이페즈>가 정식 출시됨으로써, 국내 최초 게임 형식으로 양극성 장애[역주: 조울증]를 다룬 게임이 됐다. 조증과 우울증이 번갈아 나타나는 정신질환인 양극성 장애는 전 세계에 약 6천만 명의 환자가 있다. <바이페즈>는 수평 액션의 2D 플랫폼 점프게임이다. 게임이 처음 시작되면 다양한 액션 규칙을 통해 플레이어가 백색 피에로를 컨트롤해 빨간색과 검정색이 교차한 블록과 기호 사이를 점프할 수 있도록 한다. 레벨을 통과하려면 플레이어는 태양과 유사한 백색의 기하도형을 터치해야 한다. 이 게임의 플레이 메커니즘은 1990년대 ‘소패왕 학습기(小霸王学习机)’[역주: 1980년대 말, 재미 화인기업가가 창립한 소패왕문화발전유한공사(小霸王文化发展有限公司)에서 만든 컴퓨터 학습도구] 카세트(팩)에서 볼 수 있었던 < 콘트라(魂斗罗)> 나 < 모험섬(冒险岛)> , < 슈퍼마리오> 등 평범한 오락게임을 연상시키지만, <바이페즈>의 플레이는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구체적인 인지를 통해 양극성 장애의 기본 증상인 조증 위주의 조울증을 번갈아가며 경험할 수 있다. 필자 역시 게임을 하는 동안 다른 플레이어들보다 훨씬 더 많이 같은 느낌을 받았다. 조울증 환자였던 필자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다양한 치료를 받은 후에야 서서히 정신 상태가 개선된 경험을 한 바 있다. 정신장애 : 게임의 신체화 게임 디자인의 관점에서 볼 때, 이와 같은 양극성 장애의 게임 체험은 ‘스크린 안쪽에 표시되는 가상의 신체를 가진 캐릭터’와 ‘스크린 바깥에 구성된 물리적 신체를 가진 플레이어' 1) 사이의 관계 간극을 인위적으로 강화함으로써 게임의 말단 설계에서 실현된다. 캐릭터와 플레이어의 두 가지 ‘나’ 사이엔 ‘은폐된 비대칭성’이 존재하며, 게임 플레이의 메커니즘은 일시적이나마 이 둘의 동일화와 주체 전환시 발생하는 현기증의 인지를 온 힘을 다 해 완성하고자 한다. 나아가 플레이어의 실제 공간과 게임의 3D 공간이 스크린 공간(screen space)에 겹쳐지면서 게임의 시점이 분산되고, 플레이어는 자신의 주체성을 의식하지 않은 채 복수의 캐릭터들의 미션 시점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닐 수 있게 된다. 현대 정신병리학 이론에 따르면 게임은 본질적으로 정신분열증 증상으로 플레이어가 여러 인칭과 시각, 주체 사이를 반복적으로 넘나들고, 상징화된 게임세계는 진정한 깊이가 없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스스로 깊이 있는 체험을 복구해야만 한다. 게임이 만드는 신체화(somatization)는 자기 인지의 보완 과정에서 성공적으로 보류된다. 게임은 시뮬레이션의 투사라는 측면에서 이미 주체를 분열시키는 구조이지만, 게임에서 조울증 환자의 감정을 재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면식이론(acquaintance theory)’ 상의 ‘타자 마음의 문제(Problem of other minds)’를 더더욱 복잡하게 포함되기 때문이다. ‘타자 마음의 문제’의 핵심은 다른 사람들도 우리와 비슷한 마음을 경험한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에 있다. 통속심리학에서는 두 유형의 방법론을 선호하는데, 추리추측을 통한 이론론(the theory theory)과 자신이 상대방의 시야에 있다고 가정하는 가장론(the simulation theory) 2) 이 그것이다. 스포츠 게임의 시뮬레이션(룰 기반, 세계 기반, 액션 기반 등)은 가장론의 방법론에 보다 기울어져 있다. 하지만 가장론은 자신과 상대가 사용하는 사적인 감각이 정상적이고, 같은 언어에 의해 서로 통하고 표현될 수 있다는 전제를 갖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정신장애환자의 문제가 있다. 질환을 갖는 시기 동안 개인의 사적 감정은 분열되고 가변적이며, 불안정한 정신상태로 인해 표현력이 쇠퇴하거나 심지어 사라지는 증상을 보이게 된다. 일상생활에서도 신체의 증상화 징후가 형성된다. 즉, 장애의 문제가 심리적인 증상으로 나타나지 않고, 신체적인 증상으로 대체되며, 정신적 수준의 피해와 고통이 억제되어 신체로 전이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증상은 낙인찍기의 심리화(psychologization)가 이뤄지는 사회환경에서 더 가혹하게 나타나고,신체 경험의 궤적도 더욱 강하게 형성된다. 3) 이렇게 하면 환자는 심리적 증상의 생리학적인 성분을 더 많이 인정하고, 심리적인 영향은 부인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가장론의 인지적인 기초는 정신장애 환자가 타자 마음을 증명하는 것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고, 정상인은 환자의 경험이나 감정을 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정신장애를 소재로 한 여러 게임들은 플레이어가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이 어떤 경험을 해야 하는지, 시청각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이론론의 방식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타운 오브 라이트(The Town of Light)>에서 플레이어는 정신분열증 환자 르네(Renèe)의 안내를 받아 정신병원을 돌아다니며 미지의 세계를 탐색하고, 환각을 경험하며, 마지막에는 그녀와 함께 전두엽 절제술의 과정에 의해 각종 고통을 직접 맞닥뜨리는 것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때로 게임은 상호작용을 통해 시청각적 감각을 강화하기도 한다. 게임 <에디스 핀치의 유산(What Remains of Edith Finch)> 속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는 루이스 핀치(Lewis Finch)는 해리 장애를 앓고 있는데, 편지를 읽을 때 플레이어는 루이스의 정신 상태를 모방함으로써 미로를 걷고 생선을 자르는 이중적인 행위를 수행해야 한다. <아웃 오브 핸즈(Out of Hands)>에선 정서 장애를 겪는 ‘나’의 육체가 무수히 많은 손들이 그러모은 모조품이 되어버리고, 플레이어가 수행하는 카드 게임은 다양한 부정적 정서와의 싸움이 된다. 하지만 <바이페즈>의 게임 설계는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내러티브를 포기하고 감정적인 독백을 통해 내러티브의 존재 가능성을 돌이켜 본다. 이 게임의 제작자 쉬루이샹(徐瑞翔)은 내러티브보다는 구조에 무게 중심을 두었다고 말한다. 심지어 게임 데모 시연 당일에도 현장에 있던 모든 이들은 처음에 게임 메커니즘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바이페즈>는 조울증 환자의 신체화된 증상을 플레이어에게 전달하기 위해 보다 가장론적인 접근 방식을 활용하는 경향이 있으며, 스포츠 게임의 현실 세계 모방에 매우 가깝기도 하다. 하지만 고작 하나의 모방은 시청각적 경험에 기반하고, 다른 한 가지는 정신적인 감정에 기반한다. 이 두 모방은 시점이 동일하지 않은데, 마츠모토 켄타로은 이것이 1인칭 시각과 3인칭 햅틱을 결합한 것이라고 한다. <바이페즈>에서 빨간색과 검정색이 교차되는 시각은 조울증 환자의 1인칭 시점을 시뮬레이션한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색상과 기호 블록 사이를 오가는 조작된 하얀 피에로의 햅틱은 3인칭이기 때문에, 결국 플레이어는 둘 간의 조율되지 않은 지각의 부조화를 회복할 방법이 없다. 플레이어는 분열 속에서 둘 사이의 지각 부조화를 고칠 수 없고, 그 분열 속에서 정신 부조화의 세계로 빠져들 수밖에 없게 된다. 그 때문에 이것은 일부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더욱 고통스러운 신체화 게임 경험을 갖게 한다. 빨간색과 검정색의 교차 : 시각의 신체화 스포츠 게임이나 피지컬 게임이 아닌 게임의 경우, 신체화는 표현하기 어렵고 통증 연상을 통해서만 시청각적인 감각으로 전환될 수 있다. 하지만, 시청각 감각은 하나의 실험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는 정신장애를 겪는 환자의 눈에 비친 세상이 두 차례에 걸쳐 전환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감지하는 것이다. 에드바르드 뭉크(Edvard Munch)의 <절규>가 그 예시다. 이 작품은 불안장애 증세를 보이는 환자의 눈으로 바라본 왜곡된 세계만이 아니라, 불안장애 환자 자신의 모습도 담고 있다. 그 스스로 심각한 불안장애를 겪었던 뭉크는 모더니즘 하에서 소외된 이의 감정에 대한 공감대를 느끼기 위해 독립적이고 빙빙 도는 색채의 상호작용을 그렸다. <절규>에서 감상자는 타인의 눈에 비친 절규만이 아니라, 그림 속 인물의 절규에 영향을 받은 주변세계, 즉 1인칭 시점이 3인칭 시점으로 재조명되는 것을 마주하게 된다. 정신장애인 역시 이와 마찬가지다. 심미적 주체로서 자아는 자기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동시에 ‘정상인’의 체험에 의해 비교하면서 바라보는 대상이 된다. 또, 만약 게임이 정신장애인이 바라보는 세상을 그대로 재현한다면, 이와 같은 핍진성은 ‘정상인’의 체내에 잠복하고 있는 정신장애를 촉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바이페즈>는 반드시 양자 사이에서 균형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바이페즈>에서 컨트롤하는 하얀색 피에로는 고도로 기하화(geometrization)된 캐릭터다. 플레이어는 이어지는 퍼즐 해석 속에서 그것이 양극성 장애를 앓는 ‘열여섯 여름의 그녀’라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 하지만 게임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플레이어가 캐릭터의 정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공감대 형성이 어렵고, 오직 시청자의 관점에서만 캐릭터를 컨트롤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빨간색과 검정색이 교차되는 시각적 세계는 양극성 장애를 가진 사람의 눈에 보이는 1인칭 시점으로, 캐릭터가 바운스할 때마다 스크린이 빨간색과 검정색으로 색깔들이 점프한다. 바운스는 게임 플레이를 끝내기 위해 계속해서 수행해야 하는 동작이기 때문에 플레이어 눈의 게임 인터페이스는 빨간색과 검정색 전환이 수행되는 동안 계속해서 인터레이스된다. 이 때문에 광과민성 간질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광과민성 간질의 신체화 증상은 조증 발작시의 증상과 일부 유사하며, 이는 양극성 증상 을 유발할 가능성을 높인다. 따라서 게임을 시작하는 화면에는 “양극성 장애가 있는 분은 게임 플레이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이 게임은 광과민증이 있는 분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으며,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라는 명시적 알림 메시지가 뜬다. 이 알림은 사실상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조울증 환자는 관찰의 대상이 되고, 그들/우리는 구경꾼들의 눈에 비친 세계가 진정으로 그들이 느끼는 그대로 인지 아닌지 느낄 수가 없다. 게임 속 여기저기에서 강렬한 생산 전환을 볼 수 있는데, 특히 해와 달이 번갈아가며 나타나는 장면에서 더욱 그렇다. 붉은색 백야와 검정색의 밤이 과도기적인 전환 없이 나타나고, 시각 체험에 있어서도 심각한 불연속성(discontinuity)이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잠은 사람들로 하여금 낮과 밤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도록 돕는다. 하지만 양극성 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수면만으로는 그렇지 못하다. 각성 요법과 같은 어떤 의학 치료방식들은 수면 박탈이라는 방식을 통해 정서와 인지능력의 즉각적인 보상을 촉진하도록 설계됐다. 물론 수면 보상을 시행한 이후 재발 확률은 급격하게 증가한다. 4) 게임에서 하얀 피에로가 하는 하는 일은 빨간색 블록과 검정색 블록을 끊임없이 돌리면서 게임으로부터 탈출하거나 통과하는 것이다. 이는 치료의 한 형태이기도 한데, 수면 박탈, 리튬, 빛을 결합한 3중 생체시계 치료법(필자도 경험한 바 있음)이 게임에서 모두 표현되어 있다. 검정색은 수면 박탈, 리튬은 약물 복용, 빨간색은 빛을 강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얀 피에로는 계속해서 탈출을 시도하는데, 이는 수면을 박탈하면서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 빛을 지속하는 방식으로 깨어 있는 것이다. 게임을 통과하기 위해 태양을 터치할 수 있는지 여부는 덜 중요해진다. 이 1인칭 시점은 게임의 3인칭 햅틱에 의해 끊임없이 상기되고 강화되어, 플레이어의 시야는 빨간색과 검정색의 시차적 변화, 바운스하는 동작의 시각적인 동선, 그리고 접점을 오가는 단조로운 경험이라는 3중 간섭을 받게 된다. 이와 같은 3중 간섭 하에서 하얀 피에로는 더 이상 조울증의 화신이 아니며, 대신 실시간 화면(screen of real time)에서 역동적인 빛의 한 지점이 된다. 5) 그렇기에 플레이어는 화면의 위계와 의학적인 관찰을 통해 새로운 시간적 감각을 얻게 된다. 이 때 전자(화면의 위계)는 레이더 추적 방식의 체험인데, 플레이어가 하얀 피에로를 컨트롤하는 것은 광선총(lightgun)을 사용해 광점을 추적하는 과정이 된다. 후자는 한계 뇌파의 동적인 궤적이 된다. 이와 동시에 체크포인트의 ‘왕복’과 ‘순환’에는 뇌파도계(encephalofluctuograph)와 유사한 구조가 대량으로 등장한다. 뇌전도나 뇌파도계는 모두 ‘정상인’이 정신이상자를 판단하는 척도 중 하나이기 때문에, 1인칭 시점으로 보이는 시각성은 더더욱 ‘과학적으로 관찰된’ 타자의 시야에 의해 사라져버리고, 조울증 환자는 게임 인터페이스에서 광점으로 소외된 채 남루하게 배치되어 탈출하는 것이 점점 더 험난해진다. 컨트롤의 불균형 : 감정의 신체화 “악의 문학적 표현양식" 6) 인 반복은 지옥 신화에서 연이어 묘사된 고통의 영구 형벌로 존재하며, 지옥은 언-오르트(Un-Ort)가 된 순환 공간이다. 또한 지옥 속의 개체는 신체화된 형벌의 대상이 된다. 사르트르는 희곡 <닫힌 방(Huis clos)>에서 실존주의적 해답을 제시한다. 그것은 곧 무한한 것(ad infinitum)의 모방으로 단조로움과 반복을 가져와, 그 속의 주체를 끊임없이(마치 업보를 태우는 불처럼) 불 태워버리는 느낌을 만든다. [역주: 원문의 业火(업화)는 불교 용어로, 죄인을 태우는 지옥불을 가리킨다.] 이와 같은 불타는 감각은 플레이어의 자의식을 괴롭히는 조증과 매우 유사하다. <바이페즈>에서 플레이어는 게임을 통해 하얀 피에로를 컨트롤하는데, 이 과정에서 3인칭 햅틱이 더해져 플레이어는 과잉 시각화(overvisual)의 평면에 현혹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게임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플레이어를 강렬한 양극성 정서(특히, 조증 정서)으로 이끌어내는 것은 캐릭터가 아니라, 게임 속의 여러 반복 행동들이다. 이 게임의 메커니즘은 루트를 끝내는 것, 플레이 경험, 시야의 확산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감정의 신체화를 악화시키도록 의도적으로 설계되었다. 루트를 끝내는 과정에서 게임 프로세스엔 반복적인 작업들이 많이 나타난다. 제작자 쉬루이샹(徐瑞翔)에 따르면 이는 “양극성 장애가 재발하는 현실을 반영하기 위한 것인데 (…) 이는 바로 외출을 하고 싶다면 이곳에서 빙빙 돌기만 해야 한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세 번째 스테이지가 시작되면 플레이어는 레벨을 완료하기 위해 메커니즘을 지렛대로 삼기 위해 동일한 인터페이스를 반복해야 한다. 여섯번째 스테이지 이러한 경험이 더욱 두드러진다. 하얀 피에로는 촉발된 기관 여러 차례 중복해 통과해야 할 뿐만 아니라(전략 가이드를 참고한다는 전제 하에), 어떤 특수 장면에서는 능동적으로 추락해 게임 인터페이스로 다시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만 빨간색과 검정색 두 가지 색상으로 만들어진 파손된 통관 루트를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중복(too repetitive) 메커니즘은 계속해서 플레이어들의 인내심을 낭비하고, 게임의 플레이가능성을 계속 희생시켜, 1인칭 시각성의 자극으로 불안과 무료함을 이중적으로 체험하는 걸 강화한다. 게임 체험에서 이러한 느낌은 더욱 확대된다. 스마트폰 컨트롤 인터페이스에서 이 게임의 조이스틱(摇杆) 체험성은 매우 엉망이다. 손이 시야를 일부 가리게 되어 터치 오류가 날 확률이 매우 높고, 이는 하얀 피에로가 스마트폰에서의 점프 컨트롤이 데스크탑에서보다 더 어렵도록 만든다. 이는 또한 캐릭터가 추락해 죽을 확률도 크게 높인다. 만약 기관을 반복해 오고가는 게 수평적인 불안의 체험이라면, 죽음이 거듭된 뒤 게임을 재개하는 것은 수직적인 불안 경험이 된다. 종횡으로 교차해 만들어진 불안의 장력은 끊임없이 플레이어의 시각과 청각에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플레이어가 자신의 손가락 컨트롤에 대해 짜증을 느끼게 만든다. 게임 인터페이스는 색깔 블록 말고도 메커니즘이 작동할 때 움직임의 궤적을 바꾸는 대량의 선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선들은 신체 바깥에 있는 기호의 표본을 만드는데, 이는 하얀 피에로의 빨강-검정 색상 전환과 메커니즘이 촉발하는 컨트롤과 관련되어 글자들의 춤(written dance)을 만든다. 순수하게 물리적인 특성, 즉 비생명의 객체가 생명의 활력(élan vital)을 갖추는 방식으로 형성된다. 그런 다음 “업무 중 지령이 암시하는 억압의 정도에 따라 점차적으로 약화”된다. 7) 시청각적인 경험이든 컨트롤의 감각이든, 모두 게임의 신체화를 통해 정신장애의 신체화를 모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바이페즈> 플레이어의 지각은 여러 인칭들에 의해 분열되고, 동시에 투시체험은 여러 각도로 분리된다. 그래픽이 중첩되는 방식(즉, 4인칭 단수 시점) 8) 을 통해 각기 다른 카메라의 시선이 마치 뒤샹의 <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역주: Nude Descending a Staircase (No. 2)] 과 같은 어지러움에 도달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와 같은 하이퍼 시각화된 평면은 스크린 공간에 투사되어, 응시의 단일한 초점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인지조화가 이뤄진 ‘정상인’은 게임 도중 초점이 인터페이스의 도처를 조급하게 돌아다니게 되고, 이미 신체화된 양극성 정서장애 환자는 게임을 더욱 어려워 하게 된다. 내러티브 독해 : 결말의 신체화 게임 체험 말고도 <바이페즈>의 숨겨진 결말은 또 다른 의미로 신체화된 독해의 가능성을 제공하는데, 그것은 곧 전두엽이 절제된 미래이다. 게임 속에서 빨간색-검정색이 교차하는 것은 단순히 양극성의, 낮/밤이 교착된 이미지가 아니다. 게임의 다섯번째 스테이지 <미궁>에선 빨간색-검정색이 직접적으로 접점을 이루는 교착점의 조합이 바로 의약품인데, 이는 게임 플레이 영상에서 언급된 바 있는 리튬이다. 바꿔 말해, 또 다른 의미에서 플레이어는 스테이지를 통과하도록 캐릭터를 컨트롤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캐릭터에 의해 컨트롤당하고 있는 셈이다. 플레이어는 약을 복용하는 캐릭터가 가져다주는 보다 평평한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 두 개의 색깔만으로 이뤄져 있고, 구체성이 없으며, 도처에 함정과 추락으로 가득 찬 평평한 세계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환각제(LSD)를 복용한 후 올더스 헉슬리(Aldous Leonard Huxley)는 <인식의 문>에서 가장 행복했던 경험이 바로 다양한 색깔들이 뒤엉킨 평면적인 세계를 체험한 것이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게임이 말하고 있듯, 약물 치료는 사실 단지 정신질환을 일시적으로 보류할 뿐, 진정으로 치료할 수는 없다. 9) 오랫동안 비판받아온 완치에 대한 또 다른 설명은 바로 전두엽 절제술이다. “의사들은 가벼운 우울증과 불안증부터 조현병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다양한 사람들에게 전두엽 절제술을 시행했다. 한마디로 그 당시 의료 전문가들은 전두엽 절제술을 ‘영혼을 위한 수술’이라고 여겼고, 가벼운 우울증부터 심각한 정신분열증까지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0)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언제라도 추락할 수 있는 하얀 피에로(양극성 장애 환자)는 당연히 비정상적이다. 전두엽 절제술 이후 환자는 다시는 양극성 장애를 앓지 않지만, 완전히 순종적인 좀비가 되어버린다. 이 역시 ‘완치’의 결과일 수 있다. 많은 영화 및 TV프로그램들에서, 정신질환자의 경험을 심도 깊게 보여주는 작품일수록 결말은 점점 더 전두엽 절제로 수렴되는 경향을 보인다. <시계태엽 오렌지(A Clockwork Orange)>(1971), <판의 미로(Pan's Labyrinth)>(2006), <서커 펀치(Sucker Punch)>(2011), <니하오, 미친놈(你好,疯子)>(2016) 등 모든 영화들이 그렇다. <바이페즈>에 대한 또 다른, 좀 더 자기 구속적인(self-imposed) 해석도 존재한다. 플레이어는 자신이 하얀 피에로의 치유를 돕고 있다고 여길 수도 있다. 사실 하얀 피에로는 ‘전두엽 절제술’이 이뤄질 미래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하얀 피에로는 이 운명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데, 플레이어가 줄곧 피에로를 컨트롤하고 있고, 태양을 향해 그녀를 컨트롤하고 있기 때문이다. (빨간색과 검정색이 중첩된 흰색은 전두엽 절제술이 이뤄질 테이블의 흰색 전등을 상징한다.) 피에로는 (철창 안에 갇힌 채)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자신이 완치되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미로에 갇힌 채) 적극적으로 약물을 복용하며, 심지어 (반복에 갇힌 채로) 다시 또 다시 이뤄지는 치료에 계속해서 협조한다. 하지만 플레이어(사회 또는 가족)는 결코 믿지 않고, 전과 다름없이 컨트롤하며 태양을 향해 컨트롤한다. 이렇게 해서 마지막에 피에로는 아홉번째 스테이지를 통과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에 나타나는 영상은 피에로가 플레이어에게 한걸음씩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2차원 이미지였던 피에로는 3차원의 주체적 사람이 되고는 “고생했어요”라고 말한다. 이는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플레이어에게 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이제부터는 더 이상 발병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게임의 아홉번째 스테이지의 숨겨진 결말은 플레이어가 하얀 피에로를 컨트롤해 태양이 없는 또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해석에 의해 뒷받침된다. 따라서 태양 뒤에 치유의 문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피에로가 전두엽 절제술을 받지 않고도 치료될 수 있다는 것은 완전히 가능한데, 플레이어는 그 대가로 게임에 대한 길고 지루한 해설을 볼 수 없고, 하얀 피에로가 조울증 환자라는 사실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한병철은 정신질환의 치유가 본질적으로 일종의 살해라고 여긴다. 그것은 인간성을 죽이며, 그것을 통해 고도로 자기 훈련된 의식의 산업으로 되돌려 놓는다. 여기서 ‘정상인’으로서 우리는 ‘우애로운 빅브라더’를 맞닥뜨리게 되는데, 그(빅브라더)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자기 착취와 자기 계몽(Selbstauslechtung)을 통해 더더욱 원자화되도록 교도한다. “더 높은 생산성을 창출하기 위해 감정의 자본주의(Kapitalismus der Emotion)는 또 다른 형태의 노동(das Andere der Arbeit)인 게임을 배우게 됐다. 감정 자본주의는 일상과 일터를 모두 게임화(Gamifizierung)한다." 11) 어떤 면에서 <바이페즈> 역시 게임화의 산물인데, 게임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신체화된(소외된) 자아를 볼 수 있다. 끊임없이 죽고 또 부활하는 게임적 리얼리즘(ゲーム的リアリズム)은 죽음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특히 모바일 체험이 엉망인 상황에서 그것은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인상을 더욱 배가했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소외의 경험은 플레이어를 감정 자본주의의 함정으로 돌아가게 하고, 그러한 경험들은 자기계발의 방식으로 게임을 완성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빨간색과 검정색이 교차하는 게임 인터페이스를 비플레이어와 비캐릭터의 4인칭 관점에서 본다면,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이 영화 <모던 타임즈(Modern Times)>에서 보여준 엇갈린 톱니바퀴가 다시 우리 앞에 떠오른다. 훈육 사회에서 집중 교정된(konzertierte Orthopädie) 화면들이 꼭 양극성 정신장애 환자의 세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가 느끼는 강한 조급증(emotionszustand)의 정서 상태는 양극성 장애 환자의 체험이 아니라, 개체로서의 존재의 흔적이다. 필자 주 1 ) 마츠모토 켄타로(松本健太郎), 「스포츠 게임의 구성 : 현실의 무엇을 모방하는가?」, 덩지안(邓剑) 번역, 천즈난(陈梓楠) 교정, 『게임 왕국의 보물을 탐험하다(探寻游戏王国里的宝藏)』, 상하이서점출판사(上海书店出版社), 2020. 12. 2 ) 이론론은 마음과 행동의 관계에 대한 일련의 이론들을 바탕으로 타인의 심리를 추측하는 것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내가 내 몸의 일부를 긁는 행위는 그 부분에 가려움을 느낀다는 신호라고 보면, 타인이 자신의 다리를 긁는 것이 다리가 가려운 상태라고 추정할 수 있다는 것. 이는 우리의 추리(reasoning)를 통해 이뤄진다. 가장론은 상대방의 위치(place)와 관점(perspective)에서 자신을 상상함으로써 행동을 예측하고, 가설을 세워 이를 테스트하는 등의 방식으로 행동을 해석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론론과 가장론은 모두 서로 다른 내용을 가진 다양한 구체적 주장을 포함하는 큰 부류의 이론틀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즈후(知乎)에 게시된 이 내용을 참고하라. 3 ) Karen Hanson. Social Origins of Distress and Disease: Depression, Neurasthenia, and Pain in Modern China by Arthur Kleinman. New Series, Vol. 1, No. 3, Obstetrics in the United States: Woman, Physician, and Society (Sep., 1987), pp. 343-345 4 ) Linda Geddes. Staying awake: the surprisingly effective way to treat depression. https://mosaicscience.com/story/staying-awake-surprisingly-effective-way-treat-depression/ 5 ) 레프 마노비치, 『뉴미디어의 언어(新媒体的语言)』, 구이저우인민출판사(贵州人民出版社), 2020. 6 ) 피터 앙드레 알터, 『악의 미학적 여정: 낭만적 읽기(恶的美学历程:一种浪漫主义解读)』, 닝잉(宁瑛)·왕더펑(王德峰)·종창성(钟长盛) 번역, 중앙편역출판사(中央编译出版社), 2014. 7 ) 클라우스 피아스, 『비디오 게임의 세계(电子游戏世界)』, 숑슈어(熊硕) 번역, 푸단대학출판사(复旦大学出版社), 2021. 8 ) 황원다(黄文达), 「제4인칭 단수: 영화 이미지의 자율성에 대하여(第四人称单数——论电影影像的自主性)」, 베이징전영학원학보(北京电影学院学报), 2010. 9 ) 올더스 헉슬리, 『지각의 문(众妙之门)』, 천창두어(陈苍多) 번역, 베이징옌산출판사(北京燕山出版社), 2016. 10 ) John Kuroski, 「The Twisted History Of The Widely Misunderstood Lobotomy」 https://allthatsinteresting.com/lobotomy-walter-freeman 11) 한병철, 『심리정치 - 신자유주의의 통치술』, 문학과지성사, 2015. 필자가 참고한 중국어 번역본은 『精神政治学』, 관위홍(关玉红) 번역, 중신출판사(中信出版社), 2019.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단위안, 但愿 쓰촨사범대학(四川师范大学) 문학원 문예미학 박사. (활동가, 작가) 홍명교 활동가, 작가.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에서 동아시아 국제연대와 사회운동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를 썼고, <신장위구르 디스토피아>와 <아이폰을 위해 죽다>(공역) 등을 번역했다.
- Three Trends in Western AAA Games Research: Creators, Culture, and Cash.
The AAA space continues to be one where art, industry, and culture coalesce. What games research attunes us to most is that each of these elements, while moving forward, seems to be stuck in stasis where the problems of the past remain unresolved. In the pleasure of the next big release, the anticipation of the next hype cycle, and the excitement of the next awards ceremony, it’s clear that AAA development is no-doubt heading full-bore into a future of even greater artistic heights, but these heights come with even more troubling extremes. Despite interventions on the part of games journalists and academics, and mobilization attempts from game workers, long-standing and pervasive issues with the legitimacy of games, and the exploitation of workers and players alike, persist. Academic work on the AAA space shines a spotlight on the issues that continue to go unresolved while major gaming studios propel forward in the perpetual quest for artistic recognition, prestige, and the almighty dollar. < Back 10 GG Vol. 23.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Researcher) Marc Lajeunesse (Game Researcher) Bora Na A game researcher. Game-playing goes back quite a long way, but the first encounter with game studies came by chance, through a game course taken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Since graduating, has carried out research and writing centered on game history and culture, here and there. Contributed to The History of Games, The Theory of Games, and Mario, Born in '81, among others.
- 묘를 파헤치면 주검이 나올까 –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의 로어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가 몰두하는 대상은 <다크소울> 시리즈의 로어를 관통하는 그윈과 그 친인척들로 엮인 주요 서사로부터 거리가 멀고, 다른 항목과 접점을 만들어 내기에도 희박해보인다. Hawkshaw는 굴하지 않고 꾸준히 <다크소울 1>로 되돌아가, 끝이 명시적으로 선언된 세계 안에서 여백을 ‘착즙’해내고 있다. < Back 31 GG Vol. 26. 8. 10. Tags: 게임 로어, 프롬 소프트웨어, 다크 소울, 블러드본, 플레이버 텍스트, 팬덤 해석, 암시된 디자이너, FromSoftware, Dark Souls, Video Game Lore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yuri Kim Interested in the ways games let us experience stories. After poking around here and there, lately played Marathon.
- 뱀서라이크 - 게이머와 게임의 생존전략
‘서바이버즈-라이크’ 장르가 주는 재미는 단순히 간단하고 쉬운 반복 플레이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인간의 생존 본능을 자극하고 다양한 생존전략을 취할 수 있게 하는 기본적인 욕망으로부터 즐거움을 끌어내고 있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즐거움은 게이머가 게임을 어떻게 즐기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 장르가 10, 20년 후까지 존재하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많은 표절, 모방 게임이 쏟아지고 있고, 게이머들은 이 행태에 반감을 갖기도 한다. 특히 무분별한 장르의 남용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 Back 09 GG Vol. 22.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ujin Park A graduate student who has stepped into game studies. Currently taking courses at the Graduate School of Core Ethics and Frontier Sciences at Ritsumeikan University in Japan. Lately, exploring the varied game experiences mediated by games, as well as subculture within Japan. Writing is still hard.
- 「주류 게임 내 우익 극단주의: 문헌 검토」 의 검토
2021년 11월, <로블록스>는 한 콘텐츠 제작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당한 루벤 심(Ruben Sim)이라는 인물은 사이버 폭력 집단을 조직해 플랫폼과 플레이어, 개발자들을 위협했다. 이미 수년 전 우익 극단주의적 수사법 사용과 플레이어 괴롭힘으로 차단된 바 있지만, 루벤은 타인의 계정을 빌려 계속 <로블록스>에 접속해왔다. < Back 29 GG Vol. 26.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yunyoung Hong Entered the world of games thanks to ads pitching the Famicom as a must-have for the happy household. A steady devotee of Just Dance. Co-wrote Mario, Born in '81, The Theory of Games, and Media and Gender, among others.

![[공모전] 모바일 리듬 게임에서 ‘엄지러’를 선택하기-‘프로젝트 세카이 컬러풀 스테이지! feat.하츠네 미쿠’를 중심으로](https://static.wixstatic.com/media/d03518_d7b2758a51c7467cb550da0d64068a8f~mv2.png/v1/fit/w_176,h_124,q_85,usm_0.66_1.00_0.01,blur_3,enc_auto/d03518_d7b2758a51c7467cb550da0d64068a8f~mv2.p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