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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화 불량 커비의 사물 머금기
커비는 왜 인간이 사물을 쓰던 방식과 다른 접근을 취할까? 커비가 사물과 상호 작용하게 된 배경에는 이번 〈디스커버리〉가 펼쳐지는 무대에 있다. 〈디스커버리〉에서 커비가 도착한 곳은 커비의 세계와 인간 세계가 충돌한 곳이다. 이제까지 커비의 모험이 주로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우주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별 모양의 행성 팝스타에서 이루어졌다면, 〈디스커버리〉에서 커비가 종횡무진하는 이 세계는 플레이어에게 어딘가 익숙하다. < Back 소화 불량 커비의 사물 머금기 06 GG Vol. 22. 6. 10. 신세계에서 발견한 물건을 베어 물면 커비가 변형! 다양한 액션으로 대모험! 1) * 커비의 다양한 머금기 변형 종류 〈별의 커비 디스커버리〉는 2022년 3월 25일 커비 시리즈의 30주년을 맞이하여 발매된 게임으로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커비를 소개한다. 횡스크롤 게임 플레이에서 벗어난 첫 번째 전방향 3D 액션 게임으로 큰 화제가 된 〈디스커버리〉는 출시 2주만에 210만 장이 판매되는 등 현 시점까지도 인기를 끌고 있다. 난이도를 고려하여 섬세하게 개발된 플레이 시점, 이전과는 차별화된 스테이지 디자인 등 여러 요소들이 이목을 끌고 있으나 그중에서도 괄목할 만한 것은 이번 게임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커비의 머금기 변형이다. 영어로는 ‘마우스풀 모드(Mouthful Mode)’, 한국어로는 ‘머금기’라고 불리는 상호 작용은 커비가 사물을 빨아들이다 반 머금을 때 특정한 행동이 가능해지는 특수한 능력이다. * 물건을 반만 머금기 직전 자동차를 다 소화하려고 노력하는 커비의 모습 게임은 평화롭게 자신의 행성을 산책하던 커비가 하늘에 난 구멍이 만든 푸른색의 폭풍에 휘말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포털을 통해 미지의 세계에 도착한 커비는 스테이지를 활보하다가 길 한가운데에 뒹굴고 있는 사물을 만나게 된다. 다른 것과 달리 반짝이는 이 사물은 커비의 접근을 유도한다. 사물 앞에서 커비는 관성적으로 자신이 늘 하던 빨아들이기를 사용한다. 그런데 한 입에 모두 삼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커비는 이내 반 정도를 뱉어낸다. 자동차, 꼬깔콘, 고리, 전구, 계단, 지게차 등을 만나며, 우주와 같은 자신의 위장 속에 사물을 삼키지 못한 커비의 입과 몸은 사물의 형태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형된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고안되어 특정한 능력을 보유하지 않는 사물을 머금으면 그다음에는 무슨 일이 발생할까? 불, 물, 칼, 폭탄 던지기와 같은 명확한 정체성이 없는 사물이 커비와 접촉하면 커비는 이를 어떻게 사용하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사물과 커비가 맺는 특별한 관계가 생성된다. 이는 더 나아가 게임 내에 사물이 존재하는 양상에 대한 재고찰을 돕고 플레이어와 사물이 주체와 객체로 고착화되는 공식을 뒤집으면서 다른 상호 작용의 가능성을 제안한다. 머금기 변형이 등장한 배경에는 2D에서 3D로의 전환이 있다. 2020년, 닌텐도 스위치용으로 발매된 전작 〈커비 파이터즈 2〉만 해도 횡스크롤 스타일을 고수하였다. 개발진들은 2D 커비의 귀여운 특성을 살리면서도 이를 어떻게 3D 액션 플레이로 연계할 것인가 고민하였고, 이 과정에서 머금기 변형이 새로운 능력으로 등장하였다. 2) 다양한 것을 먹고 늘어났다 줄어드는 모습은 자유자재로 변화하는 기묘한 커비의 개성을 3D로 구현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3D에서는 2D와 달리 상하좌우의 부피감을 인지할 수 있기에 넘어지기, 가속하기, 늘어나기, 사방으로 움직이기 등 다양한 방식의 움직임을 플레이 요소에 더하는 것이 장려되며, 이러한 움직임을 가능하게 해 주는 장치로 사물이 사용된 것이다. 제작진의 의도와 다르게 머금기 변형은 단순히 3D 효과를 부각하는 것을 넘어 게임 내에서 사물의 위상을 바꾸었다. 사물은 커비의 능력을 경유하여 본래의 목적과는 다르게 번역되고, 주변 환경을 연결하기도, 또 해체하기도 한다. 이러한 특성을 자세히 들여다보기에 앞서 짚어야 할 것은, 커비의 머금기 변형은 변신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커비의 위장은 흔히 우주와 같이 무한하다고 알려져왔으나 이번 시리즈에서는 사물을 온전하게 흡수하지 못하며, 대상을 완전히 모방하고 변신하려는 커비의 시도는 실패한다. * 캡처 능력을 활용하여 굼바에 빙의한 마리오 〈디스커버리〉가 참고하여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와 비교하면 변신과 변형의 차이가 더 명확해진다. 커비의 3D 월드는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로부터 스테이지 구성 혹은 시점 변화 등의 요소를 계승하였다. 머금기 또한 마리오의 ‘캡처’ 능력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사물을 이용하여 퍼즐을 해결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캡처는 마리오가 자신의 모자인 캐피를 던져 특정한 대상에 맞추면 그 대상으로 빙의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나 이 기술은 주로 적에 빙의했을 뿐 아니라 마리오가 본래 지니고 있던 고유한 특성에서 기인한 움직임은 아니었다. 또한 완전한 빙의로 인해 마리오스러운 플레이를 운용하는 것에 실패한다. 실제로 이 캡처 능력은 마리오의 캐릭터성을 중시 여기는 이들에게는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반면 커비의 머금기는 커비의 정체성과도 같은 흡입하기와 뱉기를 활용하면서도 더 나아간다. 사물을 ‘머금었다’라는 제약은 커비의 사물-되기를 방지한다. 사물을 머금은 커비는 커비도 사물도 아닌, 커비-사물 혹은 사물-커비의 중간 상태를 계속해서 유지하게 된다. 애매모호한 존재가 되어 버린 커비의 상태는 커비 본래의 특성을 플레이어에게 이해시키면서도 오히려 역으로 플레이에 재미를 부여한다. 사물을 뱉고 나면 다시 탄력적으로 원래의 크기와 능력으로 돌아가는 커비를 통해 이 일시적인 결합은 사물과 관계 맺는 방식을 강조한다. 커비의 번역은 새로운 관계 맺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커비는 처음 보는 사물을 낯선 방식으로 쓴다.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사물의 용도에 새로운 쓰임을 부여하고 커비만의 방식으로 사물들을 번역한다. 이는 더 나아가 플레이어에게 새로운 쓰임을 익히게 하고 게임 내의 필수적인 요소로 이해하게 만든다. ‘플레이어 - 사물 - 커비’의 삼자관계는 플레이어가 커비를 조종하는 일방향적인 관계를 다각화한다. 커비는 왜 인간이 사물을 쓰던 방식과 다른 접근을 취할까? 커비가 사물과 상호 작용하게 된 배경에는 이번 〈디스커버리〉가 펼쳐지는 무대에 있다. 〈디스커버리〉에서 커비가 도착한 곳은 커비의 세계와 인간 세계가 충돌한 곳이다. 이제까지 커비의 모험이 주로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우주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별 모양의 행성 팝스타에서 이루어졌다면, 〈디스커버리〉에서 커비가 종횡무진하는 이 세계는 플레이어에게 어딘가 익숙하다. 커비가 마주치는 잔해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즉 인류 문명이 멸망한 뒤 자연이 울창해진 세계이기 때문이다. 곳곳에는 허름한 쇼핑몰, 놀이 기구만 살아남은 놀이공원, 폐공장, 빈 도심 등이 배경으로 펼쳐진다. 인류가 사라진 자리에는 자동차, 토관, 자판기 등 여러 사물만이 남아 있다. 커비의 세계에는 부재한 사물들이다. 따라서 커비는 본래의 용도를 모르는 상태에서 사물을 조우하며,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빨아들이기를 통해 이용한다. 사물은 정해진 능력이 없고 목적에 따라 달리 사용되기 때문에 커비가 사물을 빨아들이면 능력을 복사하는 대신 사물의 일부 특성이 소환된다. 커비는 이를 자신의 쓰임새에 맞게 용도를 전환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 머금기는 가속의 기능을 활용하여 막힌 곳을 뚫는 데에 사용하고, 삼각 머금기로는 파열된 수도관이나 금이 간 바닥에 구멍을 뚫고, 돔 머금기는 저수 탱크 열기, 로커 머금기는 버둥거려서 길 만들기, 고리 머금기는 풍력을 이용한 동력원으로 사용하거나 바람으로 적 날리기, 자판기 머금기는 캔을 뱉어 길을 뚫는다든지 적 물리치기, 계단 머금기는 옆 혹은 앞으로 넘어지기, 토관 머금기는 데굴데굴 구르기, 작업차 머금기는 높은 곳에 닿기, 아치 머금기는 글라이더로 변형하여 비행하기 등이 있다. * 간판에서 떨어진 철자 O를 고리로 머금기 위해 다가가는 커비 * 트래픽콘 외에도 삼각형 모양의 아이스크림 조각상 하단부도 삼각 머금기의 대상이다 본래 트래픽콘이 차량을 통제하거나 위험을 표시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것과 달리, 커비는 이를 원뿔로 인식하고 금이 간 바닥이나 수도관을 터트려 길을 만든다. 또한 커비는 트래픽콘을 도움닫기 삼아 높은 지형물에 올라가기 위해 활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높게 점프하는 커비의 본래 능력의 연장선상에서 새롭게 번역된 사물의 쓰임이다. 한편 고리 머금기의 경우에는 보다 다양한 사물로부터 비롯되는데 바닥에 떨어진 글자, 시계 또한 그 대상이 된다. 본래의 용도가 무엇이었든 커비는 고리 모양이라면 이를 머금어 바람을 불어 보트를 움직이거나 적을 날려버리며, 이러한 고리의 사용법은 커비의 내뱉는 능력에서 파생된다. 시계의 기능이나 철자 O로 읽는 것은 커비의 능력이나 필요와는 무관하기 때문에 무용지물이다. 마찬가지로 트래픽콘과 아이스크림 콘은 본래 사물의 목적, 기능과 관계없이 커비에게는 동일한 물체로 인식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의 언어로 이해되었던 사물은 커비의 언어로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지고 끝없이 새로운 질서를 만들며 역할을 부여받는다. 번역은 다른 체계의 대상을 같게 만드는 동시에 차이를 형성하는 과정이며 네트워크를 건설한다. 3) 기존의 연결 고리를 끊고 다른 요소들과 결합한다는 점에서 커비와 사물의 만남은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는 게임에서 사물로 변형된 커비가 도달할 수 있는 곳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디스커버리〉에는 커비가 스테이지를 돌파하는 목적 외에도, 더 좋은 설계도를 획득하거나 실종된 웨이들 디를 구하는 미션 등이 주어진다. 숨겨진 보물을 찾기 위해서는 여러 장치들을 통과해야 하는데, 사물을 머금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는 길들이 여럿 있다. 사물을 머금을 때 비로소 위로 도달할 수 있고, 막혔던 길이 뚫리거나 숨겨졌던 길을 발견하는 등의 과정은 특정한 사물로 인해서 발생하는 네트워크를 가시화한다. 유니티의 매뉴얼에 따르면 게임 내 사물은 그 개체 자체로는 ‘아무것도 이루어 낼 수 없는’ 것이다. 4) 사물은 게임에서 항상 몰입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특히 사물과의 상호 작용성은 플레이어의 몰입을 이끄는 요소로 여겨졌다. 몰입을 더하기 위해 게임의 사물들은 주로 현실의 형태와 물리 엔진을 모사하는 방식으로 재현되어 왔다. 플레이어의 몰입과 관심을 계속해서 붙잡기 위해 최대한 우리 세계에 가까운 방식으로 작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직관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플레이어가 게임의 주요한 서사에서 이탈하지 않게 하고자 하는 위함도 있다. 따라서 게임 그래픽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사물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은 여전히 고전적인 측면이 있다. 한편 〈디스커버리〉에서 사물의 문법을 번역하고 비틀어 상이한 질서를 부여하는 방식은 우리로 하여금 사물을 중심으로 두고 어떻게 관계 맺을지를 고안하게 한다. 우연히 길을 걷다가 발견한 아이템을 인벤토리에 넣고 360도 돌려 글귀를 읽는 방식과는 상이하다. 이를 테면 게임에서 다양한 종류의 사물과의 상호작용은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 블랙박스(black-box)를 빗겨나갈 수 있게 해 준다. 블랙-박스는 사람들이 외부의 입-출력에만 의존하여 내부의 네트워크를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며 다종의 행위자들이 연루된 네트워크를 인식하지 못하게 되면서 네트워크에 점점 무관심해지는 것을 일컫는다. 5) * 머금기에 익숙해진 플레이어는 트래픽콘을 내려 찍는 감각으로 인식하게 된다 연결과 해체의 연속적인 과정을 통해 게임 내에서 사물은 단순히 퍼즐의 한 요소가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가능하게 하는 전체이자 요소로 등장한다. 게임이 기묘하게 비트는 현실의 규칙들은 오히려 사물과의 관계를 재고하고 이에 대한 새로운 사용법을 익히도록 한다. 이처럼 사물의 관계 맺기 양식을 다양화하는 게임들은 플레이어의 몰입을 창의적인 방식으로 이끈다. 특히 이번 커비 게임에서 사물의 지위는 단순히 부차적인 힌트나 아이템과 같은 보관의 용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머금어 창조적으로 이용하여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방식을 통해 재고찰된다. 계단이 높은 곳을 걸어서 올라가는 곳이 아니라 옆으로 쓰러져 눕는 사물이 되었을 때 계단 끝의 모서리, 딱딱함, 둔탁함은 다른 감각으로 찾아온다. 트래픽콘을 통행 금지의 표식이 아닌 뒤집은 모서리가 내리찍을 지면과 연결하여 인식하게 된다. 소화 불량 상태를 벗어난 커비의 모습이 괜히 아쉬워지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는 동료 멜트미러와의 대화 속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음을 밝힙니다. 1) “Kirby Speical Ability” 『星のカービィ』公式ポータルサイト, https://www.kirby.jp/ability/special/mouthful-mode.html. 2022년 5월 30일 접속. 2) “개발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닌텐도, 2022년 3월 24일. https://www.nintendo.co.kr/interview/arzga/03.php 2022년 5월 29일 접속. 3) 브뤼노 라투르, 『인간·사물·동맹』, 홍성욱 역 (서울: 이음, 2010), p. 25. 4) “Unity Manual: GameObjects”. Unity Documentation, 2021년 3월. https://docs.unity3d.com/Manual/GameObjects.html 2022년 5월 30일 접속. 5) 브뤼노 라투르, 『인간·사물·동맹』, 홍성욱 역 (서울: 이음, 2010), p. 24.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획자) 박유진 시각 문화의 경계 안과 밖에서 읽고, 쓰고, 상상한다. 다른 시간과 공간이 교차하는 방법론에 관심이 많으며 플랫폼을 만들고 매개자로부터 배우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자 한다. 현재는 상상력을 통해 현실에 균열을 내는 실천에 관심을 두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아레시보 Arecibo》를 기획했다. (@_ehpark)
- [논문세미나] 평행하다가도 뒤엉키는 게임과 현실의 시간: "Introduction to Game Time". In First Person: New Media as Story, Performance, and Game
게임에 열중하다가 시계를 봤을 때 몇 시간이 훌쩍 흘러가있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반대로 온라인 게임을 할 때면 많은 양의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해 몬스터가 다시 리젠되기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우두커니 한 자리에 서있는 그 순간은 몇 초밖에 되지 않더라도 어느 때보다 지난하게 흘러간다. 시간은 어떤 플레이를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체감되기 때문에 게임의 시간은 상대적으로 흘러가는 면이 있다. < Back [논문세미나] 평행하다가도 뒤엉키는 게임과 현실의 시간: "Introduction to Game Time". In First Person: New Media as Story, Performance, and Game 21 GG Vol. 24. 12. 10. 게임에 열중하다가 시계를 봤을 때 몇 시간이 훌쩍 흘러가있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반대로 온라인 게임을 할 때면 많은 양의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해 몬스터가 다시 리젠되기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우두커니 한 자리에 서있는 그 순간은 몇 초밖에 되지 않더라도 어느 때보다 지난하게 흘러간다. 시간은 어떤 플레이를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체감되기 때문에 게임의 시간은 상대적으로 흘러가는 면이 있다. 온라인 게임이 보편화된 지금, 공통의 시간을 다시금 다르게 쪼개는 것은 네트워크 환경이다. 네트워크가 원활하지 않는 사람의 게임 세계는 상대적으로 느리게 흘러간다. 시차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캐릭터가 갑자기 몇 보 순간이동을 하기도 하고, 팀 플레이에 지장을 주거나 대화를 할 때 갑자기 뒷북을 치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 이렇듯 현실 세계와 게임 세계의 시간이 서로 똑같이 흘러가지 않는데, 굉장히 흥미롭고 독특한 지점이다. 어떤 게임에서 두 세계의 시간은 평행하게 흘러가지만, 어떤 게임에서는 서로 뒤엉켜서 영향을 주고 받는다. 과학과 철학에서 시간이라는 개념이 오랫동안 탐구의 대상이 되었듯 게임학에서도 시간을 본질적으로 개념화해볼 수 있지 않을까? 게임 시간에 대한 소개 오늘 소개할 글은 2000년대 초반에 쓰여진 “게임 시간에 대한 소개”(2004)로, 게임 시간의 개념화를 시도했던 초기 논의에 해당된다. 이 글이 쓰여진 시기는 게임학이 막 학문의 한 분야로 정립되기 시작했을 무렵이다. 그 당시는 게임이 소설 및 영화와 무엇이 다른가에 대해 질문하기 바빴던 때였고, 이 글의 저자인 예스퍼 율은 다른 문화와 다르게 게임만이 가지는 독특한 특징이 무엇일까 고심했다. 하여 독자적인 이론 구축의 시도로서 게임의 시간성에 대해 논의를 더했다. 게임의 시간성이란 수치화되거나 구조화된 시간만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경험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까지 포함한다. 특히 게임 저장이라는 기능은 한 시점을 고정하로 계속 회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매체에서 관찰되지 않는 독특한 지점이기도 하다. 글의 전문은 예스퍼 율의 개인 웹사이트에서 무료로 열람할 수 있다. ( http://www.jesperjuul.net/text/timetoplay/ ) 게임 시간성의 기본 개념: 플레이 시간, 이벤트 시간, 매핑 저자에 따르면, 게임에서 시간은 두 가지 주요 차원으로 작동한다. 첫째는 플레이 시간(play time)으로, 플레이어가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물리적이고 실제적인 시간이다. 둘째는 이벤트 시간(event time)으로, 게임 세계 안에서 발생하는 서사적 또는 메커니즘적 시간이다. 게임 세계 안과 밖의 이 두 가지 시간. 이들의 관계는 게임 장르와 설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체스나 테트리스 같은 게임은, 플레이어가 게임 세계에 몰입하기보다 규칙에 따른 게임 상태의 변화에 주의를 기울이는 게 중요하다. 저자는 이러한 게임을 ‘추상적 게임’이라고 부르는데, 추상적 게임에서 시간은 플레이어가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 시간’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단순하게 게임를 한 수 한 수 두는 지금 이 순간이 시간성인 것이다. 반면 퀘이크3이나 언리얼 토너먼트(오늘날 게임으로 따지면 배틀그라운드 또는 발로란트)와 같은 실시간 FPS에서 플레이어가 발사 버튼을 누르면 즉시 총이 발사된다. 현실과 게임의 시간은 동기화되어 있고 마치 평행 세계처럼 작동한다. 앞서 언급한 개념을 가져오면 플레이 시간과 이벤트 시간이 서로 1:1 매칭되는 것이다. 심시티 같은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는 또 다르게 시간이 흘러간다. 현실 플레이에서 몇 분 남짓한 시간이 게임에서 1년이 되어버리기도 하는 이런 게임에서 시간의 속도를 조정하는 버튼을 빠르게 돌리면 더 빨라질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를 플레이 시간과 이벤트 시간이 각각 다른 속도로 흘러간다고 볼 수 있고, 아니면 다른 단위의 척도로 작동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플레이 시간과 이벤트 시간 간 매칭되는 현상을 매핑(mapping)이라고 부른다. 액션 게임에서는 플레이 시간과 이벤트 시간이 1:1로 매핑되어 실시간으로 동일하게 작동하지만,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는 플레이어가 게임 속도를 선택함으로써 플레이 시간과 이벤트 시간 간의 관계를 조정할 수 있다. 매핑되는 시간은 단순히 기술적인 동기화에 그치지 않고, 게임의 설정에 따라 중세 시대나 근미래 등 다양한 시공간으로 확장된다. 예를 들어,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에서는 15세기를 배경으로 플레이어가 시간 속도를 가속해 이벤트 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 지금의 1분이 1400년대 배경의 10일이 될 수 있는 매핑의 개념은 게임의 경험과 세계관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시간의 단절과 역행: 컷신, 레벨, 유물 게임에서 컷신이란, 이야기 설정을 설명하거나 미션을 제시하기 위해 중간에 재생되는 영상이다. 종종 미션을 완료했을 때 보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컷신이 재생되고 있을 때 플레이어는 작동을 멈추고 감상을 하게 되며, 그 사이에 서사는 진행되기 때문에 이벤트 시간은 흘러간다. 컷신은 플레이 시간에서 이벤트 시간을 분리하는 역할을 한다. 이벤트 시간을 플레이어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하며, 플레이어가 능동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동안에도 서사를 전달함으로써 컷신은 게임 경험에 몰입감을 부여하면서도 플레이어에게 잠시 쉬어갈 틈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으며, 시간의 단절은 게임의 서사와 메커니즘 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고도 볼 수 있다. 컷신과 함께 게임이란 매체의 독특한 특성인 게임의 레벨 구조는, 게임에서 시간의 흐름을 재편성한다. 플레이 시간과 이벤트 시간이 일치하더라도, 레벨 전환 시점이나 로딩 중에는 두 시간이 모두 멈추게 된다. 때에 따라 로딩 시점을 컷신으로 대체하여 시간이 멈추는 느낌을 미연에 방지하기도 하는데, 아케이드 게임 ‘펭고’는 레벨 사이의 전환을 컷신으로 매꾼 최초의 사례로 알려져 있다. 레벨을 완료하면 펭귄들이 춤을 추며 축하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시간의 흐름을 끊기지 않도록 했다. 저자는 레벨 구조가 소설이나 영화 같은 전통적인 내러티브 구조에는 없는 불연속적인 구조라고 하머, 어떻게 보면 스포츠의 라운드 개념과도 비슷하기도 하면서, 또 다른, 독특한 매체적 특징인 점을 어필한다. 아무래도 2000년대 초반은 아직 게임학이 성립이 안되었던 때라서 이런 지점들이 계속 등장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레벨은 게임 속에서 경험의 단위로 작용하며, 플레이어에게 새롭게 설정된 시간과 공간을 탐험하도록 독려한다. 그 외에도 게임에서는 플레이어가 스스로 특정 유물과 상호작용하기를 선택하여 시간을 이동하거나 과거를 들여다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저자가 예로 드는 90년대 게임 <미스트>에서도 그랬듯, 최근의 게임 <오브라딘 호의 귀환>에서 플레이어는 타임머신 같은 장치를 사용해 과거의 사건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방식은 과거라는 시간대를 플레이어가 직접 탐험하게 하면서, 시간의 흐름이 일차원적인 요소가 아니라 게임의 핵심 메커니즘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밖에도 저자가 언급하진 않았지만, 턴제 방식으로 진행되는 게임의 경우, 플레이 시간이 지속적으로 흘러가지만 턴을 종료하기 전까지 게임의 이벤트 시간은 중단되기 때문에 플레이 타임과 이벤트 시간 간의 단절이 발생하는 또 하나의 장치로 볼 수 있다. 게임 저장: 시간을 조작하는 행위 게임 저장 기능은 플레이어가 특정 순간으로 돌아가 이전의 실패를 극복하거나 게임 진행을 반복할 수 있게 함으로써, 게임 경험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통제력을 부여한다. 플레이어는 이를 통해 플레이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게 하거나 게임의 긴장감을 낮추고 난이도를 조정할 수 있다. 저자는 게임 저장을 게임의 시간성에 대한 중요한 설계 요소로 거론하면서, 이는 마치 ‘시간을 조작하는 행위’와 같다고 설명한다. 또한, 온라인 게임에서는 전통적인 의미의 게임 저장 기능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버와 항시 소통하여 매 상태가 저장되는 케이스이고, 플레이어는 온라인 게임에서 저장된 것을 다시 로드하거나 하는 통제 가능성은 없다. 온라인 게임들은 시간을 되돌리는 옵션을 허용하지 않으며, 플레이어는 현재의 시간을 기반으로만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대신, 게임 내에서 저장 가능한 것은 플레이어가 획득한 아이템뿐이다. 저자는 추가로, 저장을 반드시 시켜야만 하는 게임 디자인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보이면서 게임 디자이너 크리스 크로포드의 말을 인용한다. 크로포드는 정상적인 게임 디자인이라면 중간에 죽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플레이어는 게임을 잘하든 못하든 끝까지 통과할 수 있어야 하며, 숙련도가 높아질수록 더 빠르게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 반면, 플레이 도중에 죽음을 강요하고 ‘재장전’을 반복하게 만드는 게임은 디자인적으로 미흡하다는 것이다. 경험으로서의 시간: 죽은 시간, 몰입된 시간 마지막으로 저자는 플레이어가 게임의 시간을 어떻게 주관적으로 경험하는지를 논의한다. 그는 ‘죽은 시간’처럼 느껴지는 현상을 분석하며, 무언가를 얻기 위해 의미 없이 기다리거나 반복 작업에 시간을 들이는 상황을 비판적으로 바라봤다. 게임에서 시간이란 단순히 플레이 시간과 이벤트 시간의 관계를 넘어서, 플레이어가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방식에서도 중요하다. 이러한 시간은 게임의 맥락에서는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 있지만, 플레이어에게는 종종 즐겁지 않은 경험으로 남는다. 몰입(flow)과 같은 심리학적 개념이 게임 시간 경험의 중요한 측면을 설명한다고 주장하지만, 게임 시간의 복잡성을 완전히 포착하지는 못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몰입 상태란 플레이어가 시간의 흐름을 잊어버릴 정도로 몰입한 상태로, 몇 시간이 몇 분처럼 느껴지는 경험을 말한다. 이 경험은 플레이어의 능력과 게임 난이도가 적절히 조화를 이룰 때 발생하는데, 너무 어려운 게임은 좌절과 불안을 유발하고, 너무 쉬운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죽은 시간으로 느껴지게 한다. 물론, 플로우 개념이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공하더라도, 게임의 모든 시간 경험을 완벽히 정의할 수는 없다. 게임은 때로는 의도적으로 죽은 시간을 설계해 몰입을 조율하거나 긴장감을 높이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결국, 시간은 게임이 제공하는 경험의 가장 본질적인 층위에서 작동하며, 그 주관성과 다양성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게임 시간 논의의 과거와 현재 문학에서 채트먼이 스토리 시간과 담화 시간을 나누며 서사구조를 설명했듯, 게임학이 한창 성립될 때 문학과 다른 논의를 펼치기 위해 저자 예스퍼 율은 이 글을 통해 게임 시간을 개념화했다. 게임의 시간성은 플레이어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경험과 게임 설계의 메커니즘적 구조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에서 비롯된다. 현실과 평행하게 흘러가는 시간도 있고, 게임 속 독특한 방식으로 왜곡되거나 단절되는 시간도 있다. 이벤트 시간과 플레이 시간의 매핑, 저장 기능과 시간 조작, 죽은 시간과 훌쩍 지나가버리는 몰입된 시간 경험은 모두 게임의 시간성이 얼마나 유연하고 다양하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20년이 지난 지금 새롭게 예를 들 수 있는 장르들이 많이 출현한 상태에서, 저장이란 것이 없는 상태에서의 과거 시간으로 회귀를 보여주는 ‘로그라이크’ 장르나, 게임의 맺고 끊음이 분명하지 않고 항상 플레이되고 있는 모바일의 ‘방치형 게임’ 장르, 새로운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을 것이다. 또는 현실 시간과 똑같이 400일이 흘러야 게임이 진행되는 이나, 문학처럼 12분이라는 사건의 스토리 시간을 긴 시간으로 늘려 곱씹어보고 반복하는 게임 , 시간을 거꾸로 돌려서 퍼즐을 푸는 게임 의 내러티브 장치는 시간을 게임의 주된 메커니즘으로 활용한 사례로 논의를 연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이선 사회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연구합니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결국 인간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 시각장애인에게 지하철역은 미로 던전이다 - <사운드스케이프> 제작사 오프비트 황재진 대표
지난 11월 29일 개최된 ‘버닝비버 2024’는 인디게임 창작자들의 다양한 열정과 실험정신을 드러내기 위해 열린 인디게임 컬처&페스티벌이다. 사흘간 총 83개의 인디게임 부스가 열리고 1만여 명의 관람객이 참여한 이 행사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작품 중 하나는 <사운드스케이프>다. 시각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 이 게임은 전맹 시각장애인의 경험을 구현한 탈출 게임으로, 게임의 독특한 시각화 방식과 그 속에 담긴 사회적 메시지로 인해 호평을 받았다. 그간 유사한 컨셉의 게임이 소수 있었지만 특히 대학생으로 구성된 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이는 더욱 새롭다. < Back 시각장애인에게 지하철역은 미로 던전이다 - <사운드스케이프> 제작사 오프비트 황재진 대표 22 GG Vol. 25. 2. 10. 지난 11월 29일 개최된 ‘버닝비버 2024’는 인디게임 창작자들의 다양한 열정과 실험정신을 드러내기 위해 열린 인디게임 컬처&페스티벌이다. 사흘간 총 83개의 인디게임 부스가 열리고 1만여 명의 관람객이 참여한 이 행사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작품 중 하나는 <사운드스케이프>다. 시각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 이 게임은 전맹 시각장애인의 경험을 구현한 탈출 게임으로, 게임의 독특한 시각화 방식과 그 속에 담긴 사회적 메시지로 인해 호평을 받았다. 그간 유사한 컨셉의 게임이 소수 있었지만 특히 대학생으로 구성된 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이는 더욱 새롭다. 이번 호에서는 <사운드스케이프>의 개발자이자 인디 게임 개발팀 ‘오프 비트’에서 활동하는 황재진 팀장을 만나, 게임의 제작 과정과 출시 계획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게임 씬의 젊은 게임 개발자 개인이 겪게 되는 다양한 궤적과 어려움에 대해서도 조명해 보았다. -------------------------------------------------------------------------------- 이경혁 편집장: GG의 인터뷰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안녕하세요, 현재 아주대학교 디지털미디어학과에 재학 중이고 ‘오프비트’라는 인디 게임 개발팀에서 팀장을 맡고 있는 황재진이라고 합니다. <플레이리스트>라는 리듬 게임을 시작으로 2023년부터 팀을 꾸려서 개발을 시작했고 2024년 여름부터는 <사운드스케이프>라는 게임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저희가 처음 버닝 비버에서 서로 만났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런 게임이 나온다는 사실에 놀랐고 또 굉장히 젊은 분들이 만드셨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사운드스케이프>에 대해서도 간단히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사운드스케이프>는 플레이어가 전맹 시각장애인의 입장이 되어 지하철 내 점자블록 같은 장애인 편의 시설을 실제로 활용해 보면서, 지하철을 타러 가거나 역을 나오는 과정을 직접 체험해 보는 게임입니다. 게임 내 배경인 대한민국 지하철 역을 최대한 현실과 동일하게 만들었고, 편의시설들도 기능적으로 모두 구현해서 최대한 시각장애인의 경험을 생생하게 살리자는 목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사실 게임을 위한 아이디어 기획 단계에서 시각장애인이 아닌 사람들이 이 생각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고 봤거든요. 그래서 기획 단계에서 어떤 계기가 있어 이 아이템을 선택했는지 궁금합니다.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우선 제가 재미있게 했던 게임 중 <스캐너 솜브레>라는 게임이 있었어요. 지금 저희 게임에서 가지고 있는, 지팡이를 짚으면 점이 찍히며 소리가 시각화되는 시스템의 모티브가 된 게임입니다. <스캐너 솜브레>에는 라이다 스캐너라는 게 있는데 화면을 대고 클릭하면 그 공간에 점이 주르르 찍히거든요. 그런 식으로 공간을 파악해 가며 길을 찾는 걷기 시뮬레이션 공포 게임인데요. 처음 그 게임을 했을 때 이런 식으로도 게임의 비주얼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신기해서 그거를 유니티로 똑같이 구현해 봤거든요. 주변 지인들에게 한번 보여줘 봤더니 어느 선배가 이거 시각장애인이 체험하는 느낌 같다는 피드백을 줘서 염두에 두게 됐어요. 그러다가 제가 다니는 대학교의 학점 인정 프로그램을 활용해 이 프로젝트를 해보기로 했는데, 기획을 위해 좀더 조사를 해 보니 생각보다 시각장애인 편의시설인 점자나 점자블록 상태가 좋지 않더라고요. 제 기억으로 점자블록 설치율은 50%였고 그 중에서도 제대로 설치된 적정 설치율은 45% 정도였어요. 이런 부분을 게임으로 녹여내면 일종의 소셜 임팩트를 줄 수 있겠다 싶어서 <사운드스케이프>의 초기 기획안이 만들어졌고, 그걸로 계속해서 개발을 해온 상태입니다. 이경혁 편집장: 실제로 <사운드스케이프>를 여러 대회에 출품을 좀 하셨잖아요, 저도 버닝 비버를 포함해 적어도 두 군데서 본 것 같은데 좋은 반응이 많았고 인터뷰도 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반응들에 대한 느낌이 어떠셨나요?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게임을 개발했을 때 첫째로 걱정이 되었던 부분은 소셜 임팩트 측면에서 저희가 생각한 ‘시각 장애인 체험’이라는 의도가 플레이어에게 확실히 전달될까였고, 둘째는 이 게임이 ‘게임’으로서 재미있을까 였어요. 버닝 비버는 저희가 큰 규모로는 처음 참여하는 전시회였는데 거기서 사람들 피드백도 받아보며 질문을 드렸거든요. 첫 번째 고민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생각보다 게임의 의도가 아주 잘 전달된 것 같다고 느꼈어요. 두 번째 고민에 대해서는 반응이 두 부류로 갈렸던 것 같아요. 이 게임 자체가 비주얼적으로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다 보니까 새롭고 신기해서 재밌다는 분들도 있었고, 게임 자체가 재밌다는 분들도 있었어요. 그래서 나름의 어느 정도 특색은 갖추고 있는 게임이 아닐까라고 저희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사운드 스케이프>와 비슷한 컨셉 게임들이 있잖아요. 저는 반향정위를 응용한 VR 게임들이 생각나기도 했는데, 제작과정에서 <스캐너 솜브레>를 비롯해 다른 레퍼런스로 말씀해 주실 수 있는 게임들이 더 있을까요?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첫 번째 레퍼런스가 <스캐너 솜브레> 였다면, 두 번째는 <다크 에코>라는 2D 게임인데 걸어 다니면 발소리와 함께 주변으로 선 같은 게 퍼지다가 벽에 튕기며 공간이 파악되는 공포 게임이었어요. 발소리를 통해서 공간을 보여주는 거다 보니 소리 시각화 컨셉과 어느 정도 일치해서 레퍼런스로 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구요. 전체적으로 오픈월드 게임들도 봤는데, 시스템을 완전히 가져오지는 않았고 오픈월드가 플레이어를 유도하는 방식을 참고했어요. 예를 들어 <젤다의 전설>에서 빛을 밝게 만들어놔서 그쪽으로 플레이어가 가게 하거나, 게임을 시작하면 넓은 전경을 보여줘서 탐험하고 싶은 욕구를 만들게 하는 등 심리적으로 유도하는 부분들에 주목했습니다. 그래서 <사운드스케이프>도 점자 시스템이 플레이어 주변에 있으면 밝게 만들어서 플레이어를 유도하도록 구현했구요. 초기에는 튜토리얼도 만들어서 게임 내에 공간의 UI를 띄워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관심을 끌어 보려고도 했습니다. 사람들의 유도가 잘 안 되서 실패하긴 했지만요. 이경혁 편집장: 지하철 역을 게임 안 플레이 공간으로 만든다면 실제로도 지하철 역을 많이 가보셔야 했을 것 같습니다. 가장 많이 방문하셨던 곳이 어딘가요?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지하철 역을 선정할 때, 우리 스테이지로 만들기 적합한 곳을 찾기 위해서 네이버 지도 거리뷰와 교통공사 홈페이지의 편의시설 분포도를 확인했어요. 단계별로 스테이지가 점점 어려워지게 만들고 싶어서 스테이지 1은 나름 시각장애인 편의시설이 잘 구축된 역, 스테이지 2는 적당하고 애매한 상태, 스테이지 3은 좀더 열악한 곳으로 고르려 했어요. 자료 찾아보고 거리뷰에서 출구 쪽 주변 상황은 어떤지도 보면서 그때 거의 1호선부터 수인분당선까지 대부분의 역을 찾아봤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첫 번째 스테이지로 선정한 곳이 신분당선의 청계산입구 역이었어요. 교통공사 측에 촬영 허가를 받고 데이터 수집을 하면서 거의 네 번 넘게 방문을 했고요. 그 외에 수인분당선의 보정역과 매교역 등 추가적인 스테이지도 선정한 상태입니다. 이경혁 편집장: 사실 어려운 스테이지라고 하면 떠오르는 역들이 있는데(웃음) 오래된 역들이 확실히 편의시설이 구축이 덜 돼 있는 느낌도 있고요. 역들을 다니시다 보면 시각장애인들에게 이 공간이 어떤 의미였을지에 대한 여러 가지 느낌도 좀 받으실 것 같아요.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어떻게 보면 사람들마다 직업병이라는 게 있잖아요. <사운드스케이프>를 계속 만들다 보니 지하철을 타면 여기는 점자블록이 왜 이렇게 생겼지, 아 여기는 점자블록 깔려 있고 점자랑 음성유도기도 있네 이런 식으로 계속 눈에 밟히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이건 저도 이유를 모르겠지만, 전반적으로 역 내부는 시설이 잘 되어 있는데 역 외부가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청계산입구 역 같은 경우도 게임 내에서는 구현되지 않았지만 역 바깥으로 조금 걷다 보면 점자 블록이 끊기거든요. 제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역 내부까지는 교통공사의 관할이지만 밖은 아니어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리고 가장 문제가 많았던 역은 인천 쪽 지하철역들이었어요. 저희가 대구나 부산 같은 곳까지는 가지 못하고 수도권 역만 조사한 것이긴 한데, 인천은 확실히 좀 오래된 것 같긴 하더라고요. 이경혁 편집장: 부천 출신으로서 공감합니다. 저는 되게 재밌는 게, 애초에 게임을 제작하실 때 뭔가 사회적인 메시지를 만들려고 시작하셨던 것은 아니지만, 하다 보니까 스스로도 자꾸 그게 눈에 밟히게 되신 거잖아요. 혹시 <사운드스케이프>를 하면서 이 팀이 준비하고 있는 게임에 대한 방향이 사회적 메시지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좀 바뀌게 되신 걸까요? 아니면 여러 가지 제작 경험 중의 하나 정도로 생각하고 계신가요?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일단 팀원 분들께서 각자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사회적 메시지를 강조하는 게임에 치중하겠다는 생각까지는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게임을 만들어 보며 느낀 건데, 사회적 메시지에 100% 치중하지 않더라도 이를 게임에 어느 정도 넣어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표적인 예시로 게임 스토리에 사회적 풍자를 넣을 수도 있는 거고, 아니면 블랙 코미디처럼 연출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런 식으로 게임에 사회적 메시지를 한 스푼 넣는다는 느낌으로는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국내에서는 그런 시도는 거의 인디 쪽에서만 일어나고 있다고 봅니다. 혹시 국내 인디 게임 중에서 좀 임팩트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작품이 있을까요?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제가 인디 씬에서 게임을 개발하겠다고 마음 먹는데 영향을 크게 준 게임들이 있어요. 대표적인 게 유명한 <스컬>입니다. 고등학교 입학 면접 전형날에 <스컬> 데모 플레이 영상을 봤는데 이런 게임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아직도 나요. 저희 게임과는 장르가 좀 멀고, 지금은 게임이 커져서 인디를 벗어난 것 같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인디 게임 중 하나에요. 그리고 <그리스>라는 스토리 형식의 퍼즐 게임이 있는데, 텍스트가 한 개도 없는데도 스토리가 전달되더라고요. 조작에 대한 튜토리얼 정도는 있지만 퍼즐 메카닉 설명도 없거든요. UI가 이렇게 없는데도 연출만으로도 게임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 감명깊었어요. 또 좋아하는 게임이 <리듬 닥터>라는 리듬게임입니다. 크레딧이 나오는 스테이지가 있는데, 게임 크레딧까지 스토리에 전부 녹여버린다는 게 신기했어요. 보통 리듬게임이라 하면 위에서 노트가 내려와 치는 건데 실제로 리듬을 타야 하는 게임 시스템도 재미있고요. 이경혁 편집장: 이제 이야기가 슬슬 개발자 개인으로 향하고 있는데요, 2004년생이신데 게임 개발자 치고는 굉장히 젊은 나이이십니다. 언제 처음 게임을 만들겠다고 다짐을 하셨나요?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제가 게임은 초등학생 때부터 계속 해왔었는데 중학생이 되면서 PC방을 가게 됐어요. <리그 오브 레전드>랑 <오버워치> 두 개를 거의 몇 천 시간을 했던 것 같아요. 이제 너무 질리는데 PC방에 있는 <바람의 나라>, <리니지> 같은 다른 게임들은 하고 싶지가 않은 거에요. 그때는 스팀의 존재를 아예 몰랐거든요. 그런 플랫폼이 있을 거라고도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럼 이제 도대체 무슨 게임을 하지 하다가 그냥 내가 게임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할 게임이 없었던 게 게임을 만드는 계기가 됐습니다. 게임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아보다가 SBS 같은 게임 학원을 알게 되서 직접 문의도 드렸어요. 나중에는 학교 다니면서 학원에 주말반으로 들어가서 유니티랑 게임 기획 과정을 배웠고 그렇게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게임 관련 진로를 잡으시는 데 집에서 반대가 있지는 않았나요?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게임 학원 등록할 때만 해도 반대를 정말 많이 하셨어요. 일반적인 케이스는 아니잖아요. 보통 고등학교 졸업 뒤에 대학 가서 진로 찾아서 취업하는 게 수순일 것 같은데, 중학생 때부터 갑자기 아이가 게임 만들고 싶다고 하면 부모님 입장에서 당황하시는 게 당연했을 것 같아요. 게임 관련 진로를 잡으면서 고등학교도 특성화고를 선택하게 됐는데, 자랑은 아니지만 중학생 때 성적이 나쁘진 않았어서 갑자기 특성화고를 가버린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엄청 반대했어요. 교장 선생님께서 따로 부르실 정도로…. 그래서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했죠(웃음). 이경혁 편집장: 고등학교도 특성화 고등학교로 가신 거군요. 게임 관련 분야로 가신 것이지요? 본인과 비슷한 입장의 학생들이 많았나요?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제가 다녔던 곳에는 컴퓨터 게임 개발과와 e-스포츠 학과가 있었어요. 즉 게임을 하는 사람과 게임을 만드는 사람으로 나뉘어지는데, 게임을 만들려고 온 경우 제 기대와는 좀 다르게 게임 개발에 대한 큰 의지를 갖고 오진 않은 것 같았어요. 생각보다 예상과 많이 달라서 1학년 때는 무작정 애들을 모아서 게임을 만들어 보기도 했지만 무산이 됐어요. 그 이후부터는 적당히 팀 프로젝트 하면서 거의 원맨 팀으로 게임 만들고, 그런 식으로 게임 개발 공부하고 고등학교 나와서 대학 다니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제가 그쪽 커리큘럼을 잘 몰라서 궁금해서 드리는 질문이지만, 사실 게임 개발하려면 수학적인 기반이 되게 중요하지 않습니까. 특성화고에서 그런 수학에 대한 강의가 좀 충분하게 제공이 되나요?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다른 학교들은 잘 모르겠지만 저희 학교는 사실 많이 부족했어요. 제가 들어올 때만 해도 커리큘럼은 1학년 때는 그냥 다양한 진로가 있다는 거를 보여주려고 자바스크립트나 웹 서버, C 프로그래밍,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밍 등등 이것저것 많이 해보는 식이었어요.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유니티배우면서 개발에 들어가는데, 정말로 수학적으로 베이스가 되는 부분은 알려주지 않고 대부분 툴 쓰는 법이나 언어 기초 위주였던 것 같아요. 다행히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저한테 엔진 프로그래밍 쪽에 눈을 뜨게 해준 좋은 선생님이 한 분 계셨어요. 그분께서 벡터 부분이라든지 행렬 연산 자원수 같이 게임에 필요한 수학들을 많이 알려주셨고 그 덕에 게임 개발에서 수학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서 공부를 했었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주니어 개발자들이 기초 수학에 대한 이해가 너무 없는 상황이고 회사들 입장에서 신입을 뽑아 수학을 가르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커리큘럼에 대한 전면적 재개발이 필요하지 않냐는 얘기가 많아 한번 여쭤봤습니다. 특성화고를 나올 경우 그냥 취업하시는 분들도 있고, 대학에 가는 분들도 있으실 텐데요. 대학을 선택한 이유가 특별히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디지털 관련 학과 소속이라고 하셨는데 세부전공에 게임이 있는 것이지요?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네, 대표적인 전공들이 영상이랑 게임 쪽이에요. 일단은 저희 고등학교는 다른 특성화고와 달리 대학 진학이 일반적인 케이스였고 취업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그런 분위기도 있고, 개인적으로도 고등학생 때 배우면서 아직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꼈었어요. 이대로 취업하면 회사 생활을 배울 수는 있겠지만 기술을 갈고닦기는 어렵겠다 생각해서 좀 더 배우기 위해 대학을 갔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오프비트’라는 팀에 대한 것으로 옮겨볼까 합니다. 오프비트를 구성하게 된 계기와 팀의 첫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부탁드립니다.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오프비트는 지금은 저를 포함해 5명이 함께하고 있지만 2년 전 처음 결성했을 때는 2명으로 시작했습니다. 대학교 개강총회 자리에서 모션 그래픽이나 아트워크 영상을 정말 잘 만드는 친구를 만났는데, 게임에 이런 아트워크를 넣고 싶어서 제가 납치를 했어요(웃음). 그렇게 함께 만든 첫 작품이 <플레이리스트>라는 마우스로 플레이하는 리듬 게임이었어요. 이후에 그 친구가 생각보다 너무 유명해지고 바빠져서 그 작업은 마무리하고, <사운드스케이프> 기획안을 구성하고 팀원을 모아 지금에 이르게 됐어요. 팀원들도 같은 대학교의 비슷한 전공 사람들이에요. 이경혁 편집장: 아직 학교에 계시다 보니 어느 정도 팀이 유지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사실 오프비트 활동이 지금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는 상황은 전혀 아닐 것 같습니다. 작업 동력은 어떤 식으로 생겨나나요?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지금 팀 활동에 대한 경제적 이득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저도 사람들과 개발을 하려면 이 동기를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꼈는데, <플레이리스트>를 만들 때는 그걸 잘 몰랐을 때라 충돌도 있었어요. 그때 이후로는 저희가 (오프비트 활동에 대해) 돈을 줄 수는 없는 상황이니까 개발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선 '내가 만든 게 실제로 게임에서 이렇게 동작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면 좋지 않을까 싶었어요. 일례로 3D 작업을 할 때는 3D 모델이 나오면 최대한 게임에 바로 적용시킬 수 있게 만들어서 바로 팀원에게 결과물을 보여줄 수 있게끔 했구요. UI 디자인을 하시는 분이 가져오면 제가 최대한 애니메이션화하여 게임에 들어갈 수 있게 해서, 팀원이 자신이 만든 리소스 활용에 대해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워크 플로우를 구성했어요. 그리고 물론 가장 큰 동력은 버닝 비버에 선정되어 출품한 거였어요. 저희가 다같이 가서 전시를 했는데 실제 사람들의 반응을 바로 느낄 수 있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 팀원 분들이 제일 많이 동력을 얻었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사운드스케이프>가 버닝 비버에 나간 뒤 여러 게임회사에서도 굉장히 관심이 있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전시회에서의 반응들이 여러 가지로 동기나 감흥을 주셨을 것 같은데, 한편으로 이런 커리어를 쌓아 게임사에 취업하는 진로 방향을 생각하신 적은 있나요?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다들 창업을 하기 전에 취업은 꼭 해봐야 된다라고 말씀을 하시기도 해서 회사도 한번 들어가 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작업을 어떻게 하며 아트 부서랑 개발 부서가 있다면 협업이나 소통 같은 것은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그런 것들을 배우려면 회사에 들어가는게 맞다고 생각해서요. 일단 이 팀은 제가 곧 군대를 가기 때문에 추가적인 개발이 어려운 상황이고, 팀원 중에는 4학년에 올라가는 분들도 있다 보니 다들 취업을 생각하는 상황이에요. 이경혁 편집장: 그렇다면 <사운드스케이프>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향후의 출시 계획이 어떻게 되는지 듣고 싶습니다.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사운드스케이프>는 1월 31일자에 출시를 예정해두고 개발 중인 상황이에요. 원래는 얼리 억세스도 생각을 해봤지만, 아무래도 복무기간인 1년 반 동안 소식이 사라지는 거라 일단은 정식 출시를 먼저 해 놓고 군입대를 할 계획에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스팀 플랫폼에 정식 출시하는 게 1순위이고요, 버닝 비버에 출품했으니 스토브 쪽도 연락이 올 수도 있다고는 생각하고 있어요. 별도의 퍼블리셔는 없고 개인 사업자 단위로 출시할 것 같아요. 1.99달러 정도의 싼 가격의 유료 패키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기존에는 오프비트가 동아리 같은 느낌으로 작업하다가 결국 출시라는 상황을 맞게 되면 ‘사업자’가 되는 것이고, 실제로 수익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와는 결이 다른 새로운 고민 앞에 서시게 될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게임 제작이라는 커리어를 쌓는 과정에서 그 고민이 진짜 고민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그래서 지금도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아는 것이 없으니까 정말 고민이긴 합니다. 제가 배웠던 아카데미에서는 기획 관련 부분에서는 도움을 받을 수 있어도, 그런 운영이나 사업적인 부분은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요. 근데 막상 게임 제작을 해보면 이 사업적인 부분과 떼려야 뗄 수 없다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프비트도 지금까지는 동아리였다고 생각을 해요. 영업 수익이 0원이었고 전시회 가는 교통비나 전시회 준비비까지 포함하면 마이너스였으니까요. 그런데 실제로 게임을 출시해서 어느 정도 수익을 내려면 진짜로 회사 의 영역까진 아니어도 팀의 영역으로는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제작 과정에서 따로 클라우드 펀딩을 받거나 이런 것은 없었나요?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네, 일단 <사운드스케이프>는 시각장애인분들에 대한 인식에 도움을 주고 장애인 환경에 대한 개선을 도모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게임이에요. 제가 게임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컨셉에 잡아먹히는 것인데요. 그래서 소셜 임팩트 차원에서 강조하는 목적의 게임이라면 우리는 어차피 돈 벌 생각 없으니까 전부 기부하자고 해서, 실제로 수익이 얼마나 발생할지 모르겠지만 이 게임을 통해 판매 수익이 나온다면 전액을 기부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원래는 펀딩도 해보면 좋겠다 싶어서 텀블벅 쪽에 문의를 드렸더니 기부 목적의 펀딩은 안 된다고 하여 일단 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경혁 편집장: 어쨌든 그걸로 지금 당장 돈을 벌겠다라는 입장은 아니신 거군요.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네, 저희로서는 이 게임을 만들고 출시해서 실제로 수익이 났다는 거에 좀 의의를 두고 싶은 그런 상황입니다. 이경혁 편집장: <사운드스케이프>를 출시할 경우 해외로도 나가게 될텐데요, 인터페이스도 전부 영어 버전으로 나가는 걸까요?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그렇습니다. 일단 출시일에는 한국어만 출시를 하고 입대가 2월 17일이니까 2주 안에 번역해서 업데이트할 계획에 있습니다. 고민이 많은 게, 원래는 영문 대응을 하고 싶었는데 가장 큰 문제가 시각장애인들의 음성유도기 문제였어요. 영문 버전으로 출력을 하면 한국 지하철인데 영문 TTS가 나오는 상황도 좀 이상한가 싶으면서 고민이 생기더라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고증적인 측면에서도 고민이 됩니다. 저희가 그래도 나름 실제 지하철역을 동일하게 최대한 동일하게 구현한다는 컨셉을 가지고 있는데, 한국 지하철에서는 영어 TTS를 실제로는 이용하지 않으니까 컨셉과 안 맞지 않을까, 그냥 TTS에 영문 자막을 달까 등등의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쉽지 않겠지만, <사운드스케이프>의 컨셉은 오히려 해외에서 먹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아마 이번에 겪어보셨겠지만 국내는 장애인 접근성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지만 외국은 좀 다르다 보니 커리어상으로도 굉장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고요. 이런저런 얘기를 쭉 했는데 오늘 이야기를 정리해 본다면, 처음부터 장애라는 사회적 메시지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고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여러 결과로 나름의 파급력과 재미를 만드는 어떤 게임이 나오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여러모로 이 프로젝트가 나중에도 좀 생각이 많이 나게 되실 것 같은데요. <사운드스케이프>라는 게임 하나와, 이 게임을 만들기 위해 모였던 사람들의 소통들, 그리고 실제로 물리적으로 떨어지는 소프트웨어의 빌드 등 여러 경험들이 묶여 한 덩어리가 되어 있는 거잖아요. 이 덩어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은 어떠세요?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제가 아무래도 팀장이고 팀 활동의 거의 모든 일에 관여를 하다 보니까 아무래도 장단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일례로 3D 만들 때의 방향이나 디자인을 게임에 가져왔을 때, UI 아트 부분의 애니메이팅. 게임 기획, 프로그래밍에 다 제가 얽혀 있다보니 제가 없으면 팀이 안 굴러가고 게임이 안 만들어지는 것 같기도 해요. 비록 몸은 힘들지만 그래도 좋은 결과물이 나온 것 같아서 굉장히 좋게 생각하고 있고 다음부터는 조금 내 일을 덜자라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군입대를 통해서) 멈췄어요(웃음). 지금 정식 출시 버전에서는 총 4개 스테이지가 나오는데 원래는 버닝 비버 때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어서 여러 개를 더 만들어볼까 했지만 안 될 것 같더라고요. 너무 욕심을 내면 오히려 기획이 무산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이 조금은 아쉽더라도 딱 적절하게, 할 수 있는 만큼은 한 것 같습니다 저의 최종적인 목표는 나중에 어떤 형식으로든 창업을 해서 게임 회사를 만드는 것인데요. 지금까지 여러 사람을 만나 같이 개발을 해왔는데 이 과정을 앞으로는 제가 창업을 할 때 정말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실제로도 개발 과정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정말 귀중한 경험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수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엘든 링: 황금 나무가 솟은 정원
게임을 하다 보면 어떤 순간에 도달한다. 완성한 지도에서 더 이상 가지 않은 장소는 없으며, 무한한 탐험을 약속하던 세계는 더 이상 광야가 아니다. 그때 〈엘든 링〉은 그림 같은 정원에 가까워진다. 자연물과 폐허를 포함한 정원은 “열정적인 기억, 회한, 달콤한 멜랑콜리를 더 잘 자극할 목적으로 새로이 부재를 만들어낸다.”16) 설령 엔딩이 일종의 종말을 선언한 이후에도, 플레이어들은 불완전한 총체성을 해소할 길 없이 꿈꾸며 정원을 헤맨다. < Back 엘든 링: 황금 나무가 솟은 정원 10 GG Vol. 23. 2. 10. 조지 R. 마틴을 협업자로 병기한 첫 트레일러가 공개되며 기대를 모았던 〈엘든 링〉은 메타크리틱 97점을 기록하며 출발했다. 2022년 11월 15일을 기준으로 1,700만 장 이상이 판매되며 화제 되었고, 2022년의 최다 GOTY수상작으로 꼽혔다. 1) 〈엘든 링〉이 매끄럽게 GOTY의 궤도에 안착했는지 확언하기는 어려우나, 적어도 GOTY로 꼽은 언론들은 그에 호의적으로 일단락하는 듯하다. 디지털트렌드는 “프롬 소프트웨어의 어려운 게임을 처음 접하는 사람도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하며 탐험할 수 있다”며 2) , 폴리곤은 “섬세한 게임 디자인이 별도의 첨언 없이도 즐거운 탐험을 경험하게 해준다”고 3) 서술한다. 한편 이러한 코멘트는 〈엘든 링〉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일련의 토론을 환기한다. 이전 작과 매우 흡사한 스타일로 출시된 〈엘든 링〉에게 과연 신작으로서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대표적일 것이다. 조지 R. 마틴이 골격을 짰다는 〈엘든 링〉의 설정은 〈다크 소울〉 시리즈나 〈블러드본〉과 확연히 다르지만, 그러한 작품들의 연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태껏 스튜디오가 쌓아 올린 역량을 총합하여 게임을 제작했다는 디렉터 인터뷰는 이를 솔직하게 드러낸다. 4) 조언이나 혈흔과 같은 온라인 플레이 요소부터 시작해, 게임을 규정하는 근본적인 메커닉까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요컨대 “도처에 치명적인 함정을 배치하고 죽으면 여태껏 모은 자원을 잃는다는 페널티를 부과하며, 맵 탐색의 종착지에 보스전을 지정”하는 기획은 “세계를 근본적으로 추동하는 원리의 타락, 등장인물의 유산과 역사” 등의 요소와 맞물리며 특유의 효과를 자아낸다. 〈데몬즈 소울〉에서 유래한 스타일은 ‘소울본’ 게임의 문법을 확정한 것처럼 보인다. 5) 기존 다크 소울 시리즈는 엄격한 구성을 취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한정된 공간 내에 밀집한 함정을 파훼하며 길을 찾아야 한다는 과제가 플레이어에게 주어진다. 무사히 다음 세이브 지점으로 도달하는 과정에서 숱한 죽음을 겪으며 일종의 모범 답안을 찾아 나가야 하는 셈이다. 맵의 특정한 요소들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조율하며 일정한 질서를 형성한다. 잠긴 문과 같은 장치는 별도의 동선을 요구하며, 위험한 구간을 생략할 수 있게 해주는 숏컷은 맵의 구조를 상기시킨다. 반면에 〈엘든 링〉은 단선적인 길을 우회할 수 있는 선택지를 여러 갈래로 제공한다. 그러나 〈엘든 링〉이 오픈 월드라는 사실은 이전 작과의 차이를 직관적으로 부각한다. 오픈 월드는 열려 있다는 의미의 ‘오픈(open)’과 게임 공간을 의미하는 ‘월드(world)’의 합성어로, 플레이 과정에 있어 고정된 순서가 존재하지 않아 공간 이동에 대한 제한이 없는 게임의 형식을 일컫는 용어다. 6) 초반에 배치된 보스인 트리 가드는 이를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일반적으로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에서 보스전을 치르는 때는 맵 탐색을 완수했을 때이다. 보스전을 무사히 클리어하면 세이브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으며, 다음 맵으로 넘어가는 관문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림그레이브 초입에 튀어나온 트리 가드의 존재는 난데없다는 인상을 안긴다. 더불어 트리 가드를 처치하면 획득할 수 있는 아이템인 황금 할버드는 까다로울 만큼 높은 근력 수치를 요구한다. 이제 막 게임을 시작한 플레이어가 실제로 활용하기까지 시차가 발생한다. 따라서 트리 가드 보스전에서 승리의 보상은 서버에 저장되지 않는 플레이어 고유의 경험을 강조하며, 정서 패턴을 구축한다. 설령 보스를 쓰러뜨리지 않더라도 엘레의 교회에서 세이브 포인트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전 작에서 학습한 메커닉과 배치되기도 한다. 물론 〈엘든 링〉에서 등장하는 모든 보스가 트리 가드처럼 새로운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프롬 소프트웨어는 기존의 문법을 연장하여 보스를 활용한다. 림그레이브에서 호수의 리에니에로 넘어가는 길목에는 접목의 고드릭이 놓여 있고, 도읍 로데일에 들어서려면 최소한 두 명의 데미갓을 제패해야 한다. 동선을 제한하는 조건을 둠으로써 플레이어의 행로를 조절하는 것이다. 이는 플레이어에게 시기에 따라 제한된 정보를 제공하여 광범위한 정보나 상황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유도하는 활성 제약이기도 하다. 7) 그러나 다양한 우회로가 존재하는 한, 이러한 조건은 이전만큼의 당위성을 갖지 못한다. 플레이어는 반드시 고드릭 보스전을 거치지 않더라도 스톰 빌 성벽의 외곽을 통해 호수의 리에니에로 진출할 수 있으며, 아예 림그레이브 남부에서 함정 포탈을 타고서 도읍 로데일로 이동하는 것도 가능하다. NPC들은 우회로의 존재를 넌지시 알려주기도 한다. 이는 단선의 우회라는 방식을 학습하게 하며, 우회로의 존재는 필드가 품은 넓은 역량을 상상하게끔 유도한다. 그 외에도 간편해진 시스템은 그 자체로 풍부한 선택지를 확보한다. 〈엘든 링〉에서는 지도를 통해 축복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으며, 기동성이 뛰어난 영마를 쉽게 소환하고 해제하여 공간을 용이하게 정복한다. 위의 언론들에서 일컫던 ‘다양한 전술’에 기여하는 셈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자유도’라는 표현으로 압축되는, 게이머들이 오픈 월드라는 수사에 기대하는 가치를 고려해보았을 때 〈엘든 링〉이 이를 충족하는지 확언하기는 조금 어렵다. (비록 자유도라는 용어는 명확하게 정의된 바 없이 맥락마다 다른 의미를 갖지만) 놀이는 본질적으로 교란이며, 무언가의 정상적 상태를 교란하기 때문에 자유에 대한 기대는 근본적이다. 마인 크래프트와 같은 샌드박스 형 게임이 아니더라도, 플레이어는 그가 선택한 행위에 관해서 게임이 유의미한 피드백을 되돌려 주기를 원한다. 유원지로서 기대되는 오픈 월드는 다양한 행위를 수행하는 포괄적인 장이다. 그렇게 플레이어가 속한 세계에 대한 이해를 확충하게끔 해준다. 그러나 〈엘든 링〉에서 플레이어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그다지 넓지 않다. 플레이어가 게임에 개입하는 방식이 비/적대로 간소화되기 때문이다. 대면하는 거의 모든 것은 전투 가능한 상태이다. 언제든 죽음으로 정복될 여지를 가진다. 접촉 메커니즘은 적대와 평화를 가르는 한 번의 칼질로 규명된다. 그런 점에서 〈엘든 링〉에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포함해 게임 세계에 놓인 구조물이 단순하다는 지적 역시 유효하다. NPC들은 원자화된 개인의 이합집산에 불과하며, 대사의 자막은 썰렁하기 그지없다. 이는 “실존적 복잡성에서 잠시 피난하여 적절한 행위를 산출하는 행위적 유형을 체득하게 한다”는 티 응우옌의 게임에 관한 정의를 떠올리게 한다. 8) 최종 보스전은 〈엘든 링〉의 성격을 함축적으로 구현한다. 라다곤의 육체는 녹아내려 한 자루의 칼로 빚어진다. 뒤이어 등장한 엘데의 짐승은 생명체라기보다 관념에 가까워 보이며, 이를 무엇인가로 확정해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보스전이라는 형태를 통해 플레이어의 이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상호작용하게 된다. 그렇게 플레이어는 때리고 구르고 피하는 일련의 행위로 그를 해석한다. 세계성을 구축하려는 게임들은 플레이어가 그 스스로 인식하는 범위 이상으로 넓은 세계가 펼쳐져 있다는 인상을 받길 바란다, 〈엘든 링〉의 메커니즘은 그러한 역량을 소거할 위험을 안긴다. 다크 소울 1에서는 게임 플레이의 장과 주변의 플레이 불가능한 공간을 흩뜨리는 방식으로 공간감을 높였다. 9) 플레이어는 숏컷을 뚫고, 현재 상호작용 불가능한 문 너머에서 반짝이는 아이템을 보며 공간에 관한 상상을 확장할 수 있다. 그 배후로 늘어진 배경 이미지는 비록 탐험 불가능한 영역일지라도 공간에 대한 경험을 통합해준다. 대신에 〈엘든 링〉은 풍경을 활용함으로써 플레이어가 탐구할 여백을 확보한다. NME는 〈엘든 링〉을 GOTY로 선정하며 풍경의 매력을 언급한다. 10) 확실히 풍경은 섬세한 오브젝트나 아름다운 색채 등을 통해 심미적 경험을 안긴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NME는 스톰 빌 성, 레아 루카리아와 같은 레거시 던전의 전체 윤곽이 포괄되는 시야로 이를 언급하고 있다. 공기원근법은 이전 작에 비해 약화하여 멀리 떨어진 대상을 눈앞으로 가져온다. 그렇게 풍경은 단순히 보고 읽는 배경이 아니라 실제로 플레이어가 횡단하며 상호작용하는 주된 장이라는 점에서 각별하게 다가오며, 경험을 정교하게 부연하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11) 〈엘든 링〉에서 튜토리얼을 마치면 어두운 지하에서 승강기를 타고 올라와 림그레이브에 들어서게 된다. 위로 상승하는 동선은 널찍이 펼쳐진 바깥의 필드 중앙에 우뚝 선 황금 나무와 일치한다. 찬란하게 빛나는 나무는 틈새의 땅에서 살아가는 한갓 미물과 대비를 이룬다. 나무 아래 나열된 신수탑은 한눈에 포착된다. 주요 보스를 격파하고 방문하는 장소인 신수탑은 앞으로 진행할 여정을 집약적으로 제시한다. 그렇게 풍경은 플레이어가 사건을 겪고 맥락을 형성하게 될, 의미로 가득 찬 공간이 된다. 한편 필드에 늘어선 폐허는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며 플레이어의 경험을 입체적으로 부연한다. H. 루에젠과 푹스는 폐허의 재현이라는 관점에서 언리얼 엔진 5 공개 영상을 독해한다. 그에 따르면 포토리얼리즘의 사실적 구현이 몰두하는 주요한 부분은 어떻게 더 사실적으로 몰락과 폐허를 그려낼 것인가의 문제다. 12) 폐허는 과거에 존재했던 거대한 무언가의 일부면서 동시에 그 단절을 드러낸다. 유적석이나 신전석과 같은 재료는 한때 거기에 파편이 아닌 총체가 남아 있음을 주지시킨다. 설령 소멸이나 죽음이라 할지라도. 13) 이 때 게임이 플레이어의 내면에 불러일으키는 감상은 경외심과 공포를 함께 아우르는 낭만주의적 정서인 숭고와 닮았다. 지각과 감성의 한계를 넘어선 것을 표상하면서 숭고는 생겨난다. 벨라는 게임에서 “닫힌 가능성의 광대한 공간을 드러냄으로써” 유희적 숭고가 작동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14) 이는 로어에서도 유사하게 발견 가능하다. 아이템 로어는 플레이어에게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황금시대를 부분적으로 상상하게 한다. 〈엘든 링〉에서는 몹이나 지역에 관한 이해를 도와줄 별도의 코덱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도감이나 백과사전 따위를 기대하기 어렵다. 대상과 관련한 이야깃거리는 장비 아이템의 설명란에 짤막하게 붙어 있을 따름이다. 수많은 아이템에 산개된 정보를 일일이 재조합해야 한다. NPC의 대사나 비석과 같이 특정한 국면에서 상호작용 가능한 정보는 플레이어가 별도로 스크린샷을 찍어두어야만 저장할 수 있다. 불친절한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사실상 정보의 폐허이기도 하다.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 특유의 불분명한 스토리텔링은 그러한 로어를 짜 맞춰 ‘프롬뇌’를 굴리며 이야기를 추론하는 집단적 움직임을 활성화했다. 부재하려는 것을 되살리려는 고고학적 시도인 셈이다. 고고학자 빌 팔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Archaeology Tube가 Video Game Archaeology 카테고리를 통해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을 그러한 시선으로 다루는 게 대표적이다. 15) 수직 요소를 적극적으로 가시화하는 〈엘든 링〉은 미스터리의 탐구를 종용하는 듯하다. 게임에서는 지도 후면을 통해 지하를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지상의 이미지가 겹치며 선명하게 드러나는 지저는 그 자체로 비밀을 품은 땅이다. 추레한 몰골의 고드윈이나 드넓게 펼쳐진 붉은 부패의 늪은 미스터리의 탐구를 흥미롭게 만든다. 이처럼 〈엘든 링〉은 가지 않은 장소에 대한 환상을 유지함으로써 유지되는 플레이 동기를 지속한다. 그 세계는 적대의 원리에 의해 고독하고 적의에 차 있으나 동시에 그 특유의 부동성으로 기억과 경험을 수용해준다. 게임을 하다 보면 어떤 순간에 도달한다. 완성한 지도에서 더 이상 가지 않은 장소는 없으며, 무한한 탐험을 약속하던 세계는 더 이상 광야가 아니다. 그때 〈엘든 링〉은 그림 같은 정원에 가까워진다. 자연물과 폐허를 포함한 정원은 “열정적인 기억, 회한, 달콤한 멜랑콜리를 더 잘 자극할 목적으로 새로이 부재를 만들어낸다.” 16) 설령 엔딩이 일종의 종말을 선언한 이후에도, 플레이어들은 불완전한 총체성을 해소할 길 없이 꿈꾸며 정원을 헤맨다. 1) Statistia, “Lifetime unit sales generated by Elden Ring worldwide as of November 2022”, https://www.statista.com/statistics/1300663/elden-ring-sales-worldwide/ 2) Mike Mahardy and Polygon Staff, “The 50 best video games of 2022”, 2022.12.06., https://www.polygon.com/what-to-play/22956981/best-games-2022-list 3) Giovanni Colantonio and Tomas Franzese, “The 10 best video games of 2022”, 2022.12.05., https://www.digitaltrends.com/gaming/best-video-games-2022-top-10/ 4) “Elden Ring is based on a culmination of everything we've done with the Dark Souls series and with our games thus far.” Will Nelson, “‘Elden Ring’ is the “culmination” of FromSoftware’s games says Miyazaki“, 2021.12.30., https://www.gamesradar.com/elden-ring-fromsoftware-hidetaka-miyazaki-interview/ 참고. 5) Florence Smith Nicholas and Michael Cook, The Dark Souls of Archaeology: Recording Elden Ring. 2022. In Proceedings of the 17th International Conference on the Foundations of Digital Games. 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 1p. 6) 김정선, 오픈월드 게임의 레벨디자인 및 시스템 요소 연구 : ‘젤다의 전설 : 야생의 숨결’을 중심으로, 2019 한국게임학회 추계학술발표대회, 2019, vol.20(3), 300쪽. 7) 윗글, 301쪽. 8) C. 티 응우옌, 게임: 행위성의 예술, 이동휘 역, 서울: 워크룸프레스, (2022), 86쪽. 9) Daniel Vella, No mastery without mystery: Dark Souls and the ludic sublime, Game Studies, 2015. vol.15(1). 10) “Best Bit: The way Elden Ring uses stunning vistas to show your objectives: Stormveil looming over Limgrave, the reveal of Liurnia and Raya Lucaria afterwards, the descent to Siofra River, the dragon in Leyndell…”, NME, “The 20 best games of 2022”, 2022.12.06., https://www.nme.com/features/gaming-features/the-20-best-games-of-2022-3360445 11) Paul Martin, The pastoral and the sublime in Elder Scrolls IV: Oblivion, Game Studies, 2011, vol.11(3). 12) Eduardo H Luersen, Mathias Fuchs, Ruins of Excess: Computer Games Images and the Rendering of Technological Obsolescence, Games and Culture, 2021. vol. 16(8), 1091p. 13) 장 스타로뱅스키, 자유의 발명/이성의 상징, 이충훈 역, 파주: 문학동네, (2018) 202쪽. 14) Daniel Vella, No mastery without mystery: Dark Souls and the ludic sublime, Game Studies, 2015. vol.15(1) 15) Archaeology Tube, An Archaeologist Plays Elden Ring (FIRST IMPRESSIONS), 2022.02.27., https://www.youtube.com/watch?v=Imtkh8B3U2Q 16) . 장 스타로뱅스키, 224쪽.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김규리 자기 소개 :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데스티니2를 오래 즐겨왔고, 다음 작인 마라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익숙한 게임이 주는 재미와 낯선 경험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보려 고민하고 있습니다.
- 게임에서 고통과 피로는 어떻게 사회적 재현이 되어왔는가?: 게임의 스트레스 재현과 스토리지의 관계에 대한 간략한 역사
고통과 피로로서 게임에서 재현한 스트레스는 UI를 통한 연장된 체현을 넘어 시뮬레이션으로 적극 활용된다. 이는 무엇보다 시뮬레이션으로서 높은 품질의 몰입을 제공하는데, 이러한 게임에 대한 감상과 이해는 어떤 세계로 그 시뮬레이션을 이해할 것인가와 같은 문제로 이어진다. < Back 게임에서 고통과 피로는 어떻게 사회적 재현이 되어왔는가?: 게임의 스트레스 재현과 스토리지의 관계에 대한 간략한 역사 22 GG Vol. 25. 2. 10. 게임과 고통을 비평할 때 빠지지 않는 레퍼런스들이 몇가지 있다.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과 같은 책들이 그러하다. 이러한 레퍼런스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할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비평하는 것 역시 필요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고통의 역사는 뿌리깊고 도도하게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왔다. 무엇보다 비평으로 매만지기 어려운 수준으로 실재적인 현상이며, 현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없이 레퍼런스만을 빌려 주장을 펼치는 일은 인문학과 게임 비평을 풍성하게 만들기는커녕 비평의 빈곤을 야기할 수 있고, 심각한 경우 비평과 현상의 간극을 벌리는 맹아를 심는 일이 될 수 있다. 더불어 고통과 피로는 대중적으로 익숙하지만, 그 맥락과 역사는 중요도에 비해 상세하게 조명된 사례가 극히 적다. 조금 더 지면을 할해하고, 주장을 돌고 늘어뜨리더라도 인류를 훝어온 고통과 피로의 역사를 간단하게라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외재인(外在因)에 내재인(內在因)으로, 고통과 피로에 대한 이해의 역사 오랜 시간 인류는 고통과 피로를 외재적 요인에 의한 감정 변화로 믿어왔다. 물론, 그 믿음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왔다. 동양(최소한 한글)에서 말하는 고통의 경우, 먹는 것으로 인한 감정의 변화를 배경으로 두었다고 여겨진다. 국립국어원 표준대국어사전은 고통을 ‘몸이나 마음의 괴로움과 아픔’으로 정의한다. 이때 의미의 중추를 이루는 ‘괴롭다’는 ‘고(苦)+롭다’를 어근으로 하고 있다. 苦(쓸 고)는 풀 초(艹) 부수를 사용하는 한자로, ‘(맛이) 쓰다’ ‘괴롭다’ 뿐만 아니라 ‘쓴맛’ ‘씀바귀’와 같이 먹는 것과 직접 연결되는 묘사를 뜻으로 가지고 있다. 즉, 고통의 괴로움은 무엇을 먹을 때 느끼는 쓴맛을 바탕에 둔 단어라 할 수 있다. 피로의 경우에도 외재적 요인을 변화의 원인으로 본다. 疲‘지칠 피’와 勞‘일할 노’가 합쳐진 피로는 ‘지칠 때까지 일한 상태’를 의미한다. 疲(지칠 피)의 부수가 질병을 의미하는 병질 염(疒)을 부수로 두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병들 때까지 일한 상태’라는 점에서 ①[지칠 때까지 일한 상태] ②[지칠 때까지 일할 수밖에 없는 상태] 정도로 여길 수 있다. 서양에서도 고통의 원인이 외부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믿어왔으며, 이를 언어화해왔다. 결과된 사건으로 인한 고통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는 Pain의 경우, ‘처벌 또는 범죄로 인한 고통 또는 손실’ 혹은 ‘신체적 또는 신체적 고통, 지속적이고 강하게 불쾌하거나 고통스러운 신체 감각’로 정의한다. Pain보다 범용적으로 사용되는 고통인 Suffer 또한 외재적 요인을 원인으로 하는 결과로 지칭하는 데 쓰인다. Suffer의 경우 ‘고통이나 괴로움 또는 해로움이 가해진 것, 고통이나 괴로움 또는 슬픔으로 따르게 된 것’으로 정의되는데, 가해지(inflicted)거나 따르게 된(submit) 것으로 인한 감정 결과라는 점에서 외재적 요인을 고통의 원인으로 지목한다고 볼 수 있다. Suffer의 경우에는 12~13세기에 기록된 사례들을 바탕으로 정의되어 전승된 것으로, 이 시기가 중세 후기라는 점에서 ‘to submit to god’과 같이 신의 의지 하에서 벌어진 필연적 우연의 증후로 고통을 이해했다고 유추해볼 수 있다. 고통과 피로는 동서양 간에 필연과 우발 혹은 의지의 문제 등 작지 않은 차이를 가지고 있으나, 핵심적으로는 내재적 요인으로 인해 고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달리 말해, 인류는 고통과 피로가 내재적으로 발명되거나 발견되는 요인이 아니라고 믿어왔다. 더 나아가 넓은 의미에서는 그 이유가 외부에서 기인한 내부의 변화를 지칭한다는 것이다. 고통과 피로에 대한 이해는 관찰과 귀납을 바탕으로 현상을 이해한 근대의 20세기에 이르며, 스트레스라는 단어로 취합되는 경향을 보인다. 20세기에도 스트레스 역시 외재적 요인을 바탕으로 하는 것으로 이해되었으며, 이는 1936년 오스트리아 출신의 내분비학 교수 한스 셀리에(Hans Selye, 1907~1982)가 네이처지에 개재한 「다양한 유해 자극으로 생긴 증후군(A syndrom Produced by Diverse Nocuous Agents)」이라는 기념비적인 논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외재에 대항하는 내재의 고통, GAS와 스트레스 *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축 (출처: 위키피디아) 1936년 오스트리아 출신의 내분비학 교수 한스 셀리에는 네이처지에 「다양한 유해 자극으로 생긴 증후군(A syndrom Produced by Diverse Nocuous Agents)」이라는 기념비적인 논문을 출판한다. 한스 셀리에는 위 논문에서 실험군 쥐들을 ‘한겨울에 옥상 지붕 위에 올려놓기’ ‘고의로 상처 내기’ ‘극심하게 더운 보일러실에 가두기’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유해 자극(Nocuous Agents)을 가한 뒤, 실험군 쥐에서 생긴 신체적 반응과 일반 쥐의 신체 반응을 비교 측정했다. 그 결과, 다양한 유해 고통을 가한 쥐들에게서는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연속 반응 과정이 공통적으로 관찰되었다. 이 과정은 유해 자극이 들어오면 뇌의 시상하부가 코르티코트로핀 방출호르몬(corticotropin-releasing hormone, ‘CRH’)을 분비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CRH는 뇌하수체로 이동해 부신겉질자극호르몬(adrenocorticotropic hormone, ‘ACTH’)으로 불리는 코르티코트로핀을 방출시킨다. 이때 ACTH는 혈관을 통해 부신으로 이동하여 코르티솔 등의 당질코르티코이드를 분비한다. 그리고 당질코르티코이드는 부신속질을 포함해, 체내로 퍼진다. 체내로 퍼진 당질코르티코이드는 지방세포에서는 지방산을 생산하고 근육세포에서는 단백질을 분해하게 만들어 포도당 대사를 높인다. 한편 부신속질에서는 아드레날린과 노르아드레날린을 분비해 혈압 상승과 심장 박동 증가에 관여하는 등 교감 신경이 지배하는 기관의 작용을 촉진한다. 이렇게 생산된 포도당과 빠르게 돌아가는 혈류들은 뇌 등으로 에너지를 공급하여 유해 자극에 대한 대항을 촉진하고 일시적인 에너지 대사를 높인다. 이는 과정은 ‘투쟁-도피 반응(Fight or Flight Response)’으로 불리며, 한스 셀리에는 이 과정의 연속을 ‘일반 적응 증후군(General Adaptation Syndrome)’이라고 발표한다. * GAS의 3단계 (출처: 위키피디아) ‘일반 적응 증후군(General Adaptation Syndrome, GAS)’은 크게 [경계(Alarm)→저항(Resistance)→소진(Exhaustion)] 3단계로 분류되지만, 한스 셀리에는 주요한 현상은 3단계인 소진에서 나타난고 보았다. 1단계와 2단계는 투쟁-도피 반응의 강도 차이가 있을 지언정 스트레스 자극에 반응해 신체 보호를 유지하려는 항상성이 주요한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1단계와 2단계 실험군 쥐의 경우 흉선・비장・임파선이 수축했으며, 체온이 내려가고 소화기가 손상되는 공통 반응을 보였으며, 그 후 48시간이 지나면 부신이 커지고 성장과 생식선이 위축되는 2단계 반응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러나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유해 자극에 노출된 실험군 쥐의 경우 소화계·심혈관계 장애를 비롯해 궤양・우울증 등을 보였다. 이는 만성적인 상태로 신체가 신체 보호를 포기하는 상태로 해석할 수 있는 결과였다. 특히 다양한 유해 자극에 대한 공통반응이라는 점에서 ‘만원 지하철’ ‘찜통 더위’ ‘살을 애는 추위’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게되는 고통과 피로를 ‘스트레스’라는 단어로 묶어서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한스 셀리에는 위 과정이 모두 자율 교감 신경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이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과정에 의한 것으로, 통제할 수 없는 외재인에 의해 발생된 신체의 반응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대신 한스 셀리에는 외재인을 우리가 어떻게 수용하냐에 따라 우리의 행복과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믿었다. 즉, 변화하는 환경에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가 우리의 행복과 건강을 결정하는 요소라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이 주장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는 믿음이기도 하다. 누적된 내재의 피로, CSR과 사회 자본 * 셸쇼크를 겪고 있는 군인 (출처: 위키피디아) 한스 셀리에가 발표한 주장의 직관성만큼이나, 산업계는 발표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며 치료나 의료 활동에 한스 셀리에의 발표를 적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즉각적 반응에도 불구하고 한스 셀리에의 스트레스라는 개념은 처음부터 통용되진 않았었다. 오늘날 우리가 스트레스라고 부르는 개념이 통용되기 시작한 것은 양차 세계대전, 특히 세계 2차 대전의 그림자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양차 세계 대전은 대규모 사상자와 함께 급진적으로 많은 임상 데이터를 남겼는데, 그 중 하나가 전투 피로 반응(Comabat Stress Responce, ‘CSR’)에 관한 것이었다. 전투 피로(Combat Fatigue)로 불리기도 하는 CSR이란 전투 스트레스로 인해 전투 효율성을 감소시키는 다양한 행동을 포괄하는 급성 반응으로, 우선순위를 정하기 못하거나 느린 반응을 보이는 등 군사 작전의 누적 스트레스로 인한 일시적인 반응을 포괄한다. CSR는 세계 1차 대전에서 있었던 임상 데이터를 바탕으로 구축된 연구 분야다. 미국의 의료 장교 토마스 셀만(Thomas W. Salmon, 1876~1927) 등이 출판한 「영국군의 정신 질환 및 전쟁 신경증(셸쇼크) 치료와 구호」와 같은 자료를 바탕으로 발전했으나, 이러한 자료들이 세계 2차 대전으로 인해 대규모 살육을 재현하기 전까지 올바르게 활용되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일례로 셀만이 세웠다고 여겨지는 PIE원칙의 활동 등이 그러하다. PIE원칙은 ①사상자를 전투 소리가 들리는 전장에서 가까운 곳에서 치료 할 것(Proximity) ②즉각적 치료를 시행하되 특정 환자의 부상 완치를 기다리지 않을 것(Immediacy) ③모든 사람이 휴식과 보충을 거친 후 전선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도록 만들 것(Expectancy)을 요구한다. 그러나 PIE원칙은 휴식이 필요한 군인을 참호로 밀어넣는 근거로 활용되며 수많은 PTSD환자와 ‘비겁함을 보인다’는 이유로 즉결처형되는 피해자들을 양상했다. 세계 2차 대전에 이르러서야 스트레스라는 개념을 통해 ‘셸쇼크(Shell Shock)’와 같은 반응이 누적된 스트레스로 인한 것임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피묻은 경험을 통해 스트레스는 본격적으로 사회 전반에 걸쳐 의료 개념으로 통용되기 시작했으며, 학계에서 신호체계로 받아드려지던 스트레스 반응 또한 누적되면 실생활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영구적인 신체 손상을 줄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파급은 단순히 스트레스가 신체를 망가뜨린다는 데 그치지 않고, ‘외재인을 우리가 어떻게 수용하냐에 따라 우리의 행복과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믿음’을 뒤집어놓았다. 이는 오늘날 스트레스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일컫어지는 신경 내분비학자 로버트 새폴스키(Robert Morris Sapolsky, 1957~)에 의해 학제화 되었다. 새폴스키는 『왜 얼룩말은 위궤양에 걸리지 않는가(Why Zebras Don't Get Ulcers, 1994)』에서 원숭이와 같이 사회성을 가진 포유류를 연구하며, 사회성이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요소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 로버트 새폴스키 새폴스키는 종교나 사회경제적지위(Social Economic Status, SES)와 같은 지수가 스트레스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며, 그 바탕에는 사회성을 가진 포유류가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을 발전시켜 온 진화적 경향이 있다고 지목한다. 간략하게 설명하면, 사회성을 가진 포유류들은 자신의 생존확률을 높이기 위해 구체적인 시공간과 상황에 대한 출처를 기억할 수 있는 일화기억(Episodic memory)을 발전시켜왔다. 그리고 나아가 일화기억의 누적을 통해 복잡한 통계적 규칙을 의미 기억(Sementic memory)으로 가공시키고, 이를 말 그대로 ‘육체화’ 시켜왔다. 스트레스는 이러한 생존 전략에 따른 육체화 시스템의 일종이다. 이는 사회성을 가진 포유류는 통제할 수 없는 외부환경에 대항하기 위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자율신경계를 진화시켜왔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스트레스라는 말이 된다. 즉, 인간은 통제할 수 없는 환경에 쉽게 노출되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스트레스 과정을 밟을 확률이 높아진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일화기억을 누적하여 의미기억으로 넘길 때 벌어지는 상상(Imagination)을 겪을 때도 동일하게 발생한다. 새폴스키는 이 과정에서 SES지수와 같은 사회성이 스트레스와 결합된다고 주장하며, 그 과정을 예시를 통해 설명한다. 우리가 부자 동네에서 원활한 치안 서비스를 제공받으며 산다면 카페에서 화장실 갈 때 노트북과 같은 고가품을 잃어버릴 염려를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가난한 동네에서 살기 때문에 치안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면, 카페에 노트북을 가져가는 것은 도난을 경험할 확률을 높이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좀 더 쉽게 이야기하기 위해 한국적인 상황으로 번안하면, 강남에 살면 좋은 교육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자녀가 높은 미래 가치를 얻을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환경에서 살지 못한다는 사실은 ‘남들이 자신의 가치를 높일 때, 나는 그럴수 없다’를 상상하게 만들기 때문에 스트레스로 작동할 수 있다. 이는 상대적 가난이 스트레스를 높인다는 이야기가 된다. 자연히 비교가 쉽고 소통이 활발한 환경은 스트레스를 받을 확률 또한 높인다. 스토리징 시스템 역량에 따라 내재화된 시스템 지금까지 아주 거칠고 간략하게 고통과 피로가 어떻게 스트레스로 이해되었고, 스트레스에 대한 인지는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알아보았다. 그 과정을 한마디로 줄인다면 고통과 피로에 대한 인지와 이해는 외재인에서 내재인으로 변해왔다는 것이다. 컴퓨터 게임에서도 비슷한 과정이 일어나는데, 그 배경을 지목하자면 컴퓨터의 변화는 가소성(Plasticity)을 높이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왔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가소성이 높다는 것은 복잡한 프로토콜 시스템을 완성해 왔다는 뜻이며, 더 깊게는 그 프로토콜은 (적정엔지니어링이라는 전제 하에) 대용량 스토리지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대용량 스토리징이 가능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실제로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uman–Computer Interaction, ‘HCI’)의 관점에서 고통과 피로의 재현은 컴퓨터 게임에서 스토리징 시스템의 역량이 높아질수록 내재적으로 변하는 과정을 보였다. 게임 이야기를 하기 전에 아주 간략하게 스토리징의 역사를 훝으면, 스토리지는 인간의 힘을 빌리는 방식을 통해 (거의 완전히) 외재적으로 존재해왔으나, 점차 컴퓨터 시스템 안으로 내재화되며 비가시적으로 변해왔다. HCI의 관점에서 초기 컴퓨터의 스토리징은 인간의 수기를 바탕으로 이루어졌었다. 이는 최초의 컴퓨터로 호명되곤하는 애니악과 같은 경우에도 오늘날 컴파일링(Compiling)에 해당하는 과정에 인간이 동원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즉, 컴퓨터의 높은 추상 수준을 인간 언어로 표현하는 데에는 인간이 동원될 수 밖에 없었다. 이는 점차 마그넷 테이프인 플로피 디스크와 같은 자기장 방식에서 광학 방식의 CD로 발전되며 차차 가소성을 높여갔다. 그리고 SSD와 같은 반도체 수준에 이르러서는 높은 수준의 가소성을 확보했다. 더불어 하드웨어 수준의 스토리지를 넘어서, 데이터센터 바탕의 클라우드 프로토콜 단계까지 제어할 수 있는 블록체인과 같이 소프트웨어 수준의 스토리지로 발전했다. 외재성을 빌린 형식적 고통, * 테니스 포 투 (출처: 위키피디아) 스토리지가 컴퓨터 시스템 안으로 내재화된 과정은 컴퓨터 시스템을 통해 기록을 외주화하여 인간의 피로를 줄이기 위한 시도였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기록이라는 인산의 피로가 컴퓨터 안으로 스토리지가 녹아들어갔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나, 한편으로는 컴퓨터의 시뮬레이션 역량을 높여온 결과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역시 고통과 피로를 인간의 영역에서 시뮬레이션의 영역으로 옮기며 고통과 피로를 내재화하는 방식으로 변화해왔다. 게임의 고통과 피로는 초창기 게임들에서도 (굉장히) 옅은 방식으로라도 관찰할 수 있는 요소다. 그만큼 초창기 게임들에서는 스트레스의 영역에 있다고 정의하는 게 확실하지 않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추상성으로 고통과 피로를 재현했었으며, 초창기 게임에서 재현된 고통과 피로는 현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시 말해, 외재성을 통해야만 의미를 확보할 수 있는 수준으로, 고작해야 상징 수준의 고통과 피로를 재현한 셈이다. 이러한 상징으로는 승리와 패배라는 아주 기초적인 단위의 고통과 피로가 있었다. 종종 최초의 게임으로 지목되곤 하는 (1958)의 경우에 고통과 피로를 염두해두고 기획되었을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패의 개념은 명확했는데, 이는 게임의 디자인 자체가 테니스를 재현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는데, 는 원자력이 핵개발만으로 쓰이지 않으며, 평화로운 사용에도 기여할 수 있는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한 일종의 프로파간다로 제작된 매체였다는 점이다. 대중을 설득하기 위해 기획된 게임이었다는 말인데, 이는 를 디자인한 히긴보텀이 의식했든 하지 않았든 ‘놀이의 투기성’을 활용했다는 의미일 수 있다. ‘놀이의 투기성’이란 네덜란드의 인류학자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 1872~1945)의 『호모 루덴스』에서 소개되는 놀이의 본성 중 하나로, 하위징아에 따르면 사행성을 내포하는 투기는 단순히 금전적 사행성을 넘어 고대 인도의 서사시 《마하바라타》에 등장한 운명을 결정하는 주사위 게임의 사례와 같이 주술적 의미를 바탕으로 한다. * IBM 305 RAMAC (출처: 위키피디아) 놀이의 투기성은 놀이의 4가지 원칙 중 하나인 강한 경쟁성과 쉽게 혼합될 수 있으며, 놀이의 이 두 가지 요소는 놀이의 참여자로 하여금 몰입을 강하게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추측컨대 히긴보텀은 놀이가 가져오는 몰입효과를 겨냥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놀이의 투기성은 사행성이 내재한 것처럼 사적으로든 형이상학적으로든 손실이라는 고통을 창출할 수 있는 맹아이기도 하다. 따라서 가 승/패를 전제하고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UI를 통해 만들어진 가상의 경기장에서 승/패라는 일회적인 제로섬을 통해 고도로 추상적이며 형식적인 고통을 생산한다. 이는 일회적이라는 점에서 그 외재성이 더 강해지는데, 여기에는 보다 현실적인 문제들도 껴 있다. 최초의 하드디스크(HDD)로 불리는 IBM 305 RAMAC의 경우, 보조 저장장치임에도 1톤이 넘는 장치였다. 즉, 애초에 기록으로 결과를 누적시킨다는 개념 자체가 에는 심각한 오버엔지니어링이었을 수 있다. 누적과 고통의 현실적 재현, 헬스바 시스템과 그 후예들 * 퐁 (출처: 위키피디아) 을 통해 형식적 고통이 재현된 이후 게임은 고통을 누적시키는 방식으로 지 않았다. 이는 현실적인 문제로 여겨지는데, 를 계승하여 게임을 대중적으로 보급시켰다고 여겨지는 아타리의 (1972) 또한 만큼이나 간단한 그래픽과 규칙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역시 전용콘솔을 통해 보급되었다. 다만, 이를 단순히 스토리지의 용량과 크기 문제 등 하드웨어적인 문제만으로는 보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IBM이 8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상업적으로 출시한 해는 1971년이며, 이때 생산된 플로피 디스크들이 IBM370의 부품으로 사용되었다치더라도 소량의 데이터를 이동시키는 방법으로 정착된 것은 1973년 즈음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보다는 가소성을 시스템에 프로토콜화 하는 방식에 있어서 편의성을 확보하지 못했으며, 그 결과 유의미한 HCI 가치를 창출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러한 흔적은 이나 가정용으로 출시된 (1975)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당시 에 사용된 RAM을 포함해 회로 기판의 분석을 차치하더라도, 과 에서 재현되는 승/패의 형식적 고통은 이 재현한 것을 횟수로 누적하는 방식에 그쳤기 때문이다. 고통의 재현에 있어 혁신은 오히려 아타리의 <가라테>(1979)와 같이 격투 시스템을 가진 게임을 통해 진행되었다고 보인다. 그러나 격투를 통한 직접적인 가격의 고통을 기호적으로 재현하고는 있으나 원리적으로는 의 수준에서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 고통을 누적의 개념으로 바라본 사례는 ‘아타리 쇼크’를 2년 흘러보낸 뒤에야 이뤄졌다. 남코의 <드래곤 버스터>(1985)는 헬스바 시스템을 도입하며 누적된 스트레스를 게임에 내재된 UI의 형태로 구현하며 누적된 고통을 재현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러한 혁신의 바탕에는 PC의 보급과 같은 사건들 역시 한 몫했을 것이다. * <스트리트 파이터2> 롱플레이 (출처: https://youtu.be/xI284D4y1q4?feature=shared ) 이러한 헬스바 시스템이 이용자에게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HCI로 활용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스트리트 파이터2>(1991)부터다. <스트리트 파이터2>에서는 헬스바가 일정부분 줄어들면 패배를 뜻하는 K.O.가 깜빡이는 방식으로 시각적 요소를 통해 긴박감을 전달한다. 이러한 긴박성의 연출까지 오는 데에는 <페르시아의 왕자>(1989)와 같이 플레이 시간을 60분으로 제한하고 이를 “60 MINUTE LEFT”와 같은 경고문구를 통해 시간을 한정 자원으로 제시하는 등의 플레이 디자인의 발전 또한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다만, 게임 내에서 헬스바의 상태에 따라 K.O.가 깜빡이는 형태로 가소성을 적극적으로 시스템 안으로 끌고 들어오며 피로의 누적과 고통을 엮는 방식의 스트레스를 제시하며 대중적인 호응을 얻은데 <스트리트 파이터 2>의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피로의 누적과 고통을 엮어 게임의 플레이 디자인에 가소성을 추가하는 방식은 가소성 스토리지가 어느 정도 완성된 PC들이 가정에 보급이 완료되어가며 더 각광받기 시작한다. <블러디 로어>(1997)의 경우에는 공격과 피해가 어느 정도 누적되면 동물로 캐릭터를 변신시킬 수 있는 수화 시스템으로 가소성을 내재화하기도 했다. 이렇게 특정한 값이 누적된 결과, 높은 공격성을 갖추게 되는 형태의 가소성 내재는 스트레스를 단순히 손상의 성질로 보는 것이 아닌, 변화의 성질로 해석했다는 데에서 독창성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의 현대적 사례로는 프롬소프트의 <세키로: 새도우 다이 트와이스>(2019)의 체간 시스템을 생각해볼 수 있다. <세키로>의 체간은 캐릭터의 현 상태와 피해의 누적과 방어 정도 등을 상세하게 고려하여 GAS로 해석할 수 있을 정도의 핍진성 높은 스트레스를 재현한다. * <세키로> 체간 시스템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fV_dJx5TRTQ ) <토탈워>, 예측하는 유닛과 스트레스 경험으로서 HCI <세키로>와 같이 플레이어 캐릭터(유닛)의 상태를 고려하여 스트레스를 플레이에 내재한 사례는 21세기 초반부터 대중화 되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세가의 <토탈워>시리즈(2000~)를 생각해볼 수 있다. <토탈워>시리즈에는 사기(Moral) 시스템이 내재되어 있는데, 물론, <토탈워> 초기작인 <쇼군: 토탈워>(2000)의 경우, 사기가 떨어지면 깃발의 색이 변하며 패주(敗走) 등으로 결과가 구현되는 스트레스 재현의 양상을 보인다. <쇼군>에서 독특한 점은 처형을 통해서 사기를 충전할 수 있게 시스템화 해놓았다는 점이다. 이는 전장에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교육을 재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나름의 윤리를 새우는 행위를 플레이에 직접 재현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게임 내에서 사건에 따라 사회성을 구성할 수 있다는 것으로, 사기 시스템을 통해 유닛이 처벌이라는 교육을 통해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학습했다고 여기는 HCI로 볼 수도 있다. <토탈워>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인 <미디블: 토탈워>에 이르면, 사건에 따른 사회성 구성이 더욱 구체화 된다. <미디블>에서는 포로의 몸값을 받는 것을 통해 사기가 충전되기도 하는데, 이는 경제적 가치를 확인하는 사건이 사기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토탈워>는 내재된 가소성에 따라 단순히 게임의 UI요소를 변경시키는 것이 아닌, 스트레스를 시뮬레이션 플레이할 수 있게 구현해 높은 수준의 HCI를 구성해간다. 더불어 높은 수준으로 구현된 HCI는 당대 전쟁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들을 보다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들고, 이를 통해 당시를 상상하게 만드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데 내지된 스트레스 시스템을 통해 <로마2 : 토탈워>를 지나치게 플레이어블하게 만든 점, 그리고 그 직후 <토탈워: 아틸라>처럼 내지된 스트레스 시스템을 내러티브를 풀어내는데 적극 활용했을 때 그 체험이 크게 다르다는 점은 곱씹어볼만한 감상을 제공한다. 이처럼 고통과 피로로서 게임에서 재현한 스트레스는 UI를 통한 연장된 체현을 넘어 시뮬레이션으로 적극 활용된다. 이는 무엇보다 시뮬레이션으로서 높은 품질의 몰입을 제공하는데, 이러한 게임에 대한 감상과 이해는 어떤 세계로 그 시뮬레이션을 이해할 것인가와 같은 문제로 이어진다. 이는 게임의 이용자가 게임에 내재된 스트레스 시뮬레이션을 통해 어떤 사회를 구성하느냐로 귀결될 수 있다. 특히 나 <리니지>와 같은 복잡한 MMORPG의 경우, (본지에서는 분량과 허락된 시간 상 패키지로 제한하여 언급된 타이틀들과 달리) 보다 생생한 가상의 SES를 구성하며 게임 내에서 체험하는 장소와 사건에 대한 해석을 의도치 않았던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를 위해서는 (통계라도 다루면 다행인) 사회학의 차원이 아닌, 심도있는 의료학적 이해와 폭넓은 컴퓨터 공학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분명 고되고 지난하며 큰 보상을 바랄 수 없는 작업이겠으나, 넓은 확장성이 기대되는 만큼 많은 관심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1] “Punishment, penalty, suffering or loss inflicted for a crime or offence.” Oxford English Dictionary, s.v. “pain (n.1), sense 1.a,” September 2024, ( https://doi.org/10.1093/OED/3543292423 ) [2] “Physical or bodily suffering, a continuous, strongly unpleasant or agonizing sensation in the body” Oxford English Dictionary, s.v. “pain (n.1), sense 3.b,” September 2024, ( https://doi.org/10.1093/OED/9428204415 ) [3] “To have (something painful, distressing, or injurious) inflicted or imposed upon one; to submit to with pain, distress, or grief.” Oxford English Dictionary, s.v. “suffer (v.), sense I.1.a,” September 2024, ( https://doi.org/10.1093/OED/7485489281 .) [4] Thomas W. Salmon,(1917). 「The Care and Treatment of Mental Diseases and War Neuroses ("Shell Shock") in the British Army」 ( https://archive.org/details/caretreatmentofm00salmrich/page/8/mode/2up ) [5] H. Matson (2016). 「The treatment of “shell shock” in World War 1: Early attitudes and treatments for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and combat stress reaction」 (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abs/pii/S0924933816023981 ) [6] 국내에는 『스트레스: 당신을 병들게 만드는 스트레스의 모든 것』(사이언스북스)로 번역되어 있다. [7] Tristan Donovan(2010). 『Replay : the history of video games』 ( https://archive.org/details/replayhistoryofv0000dono ) [8] Edwin Zschau.(1973). "The IBM Diskette and its Implications for Minicomputer Systems". ( https://ieeexplore.ieee.org/document/6536793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원) 이현재 경희대학교 K컬쳐・스토리콘텐츠연구소, 리서치앤컨설팅그룹 STRABASE 뉴미디어・게이밍 섹터 연구원. 「한류 스토리콘텐츠의 캐릭터 유형 및 동기화 이론 연구」(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한국콘텐츠진흥원) 「저작권 기술 산업 동향 조사 분석」(한국저작권위원회) 등에 참여했다. 2020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문, 2021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평론부문 신인평론상, 2023 게임제네레이션 비평상에 당선되어 다양한 분야에서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김지운
인디음악 씬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예술사회학 연구와 (공연)사진 촬영에 매진중이다. 라캉 정신분석 철학서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영번역을 맡았다. 김지운 김지운 인디음악 씬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예술사회학 연구와 (공연)사진 촬영에 매진중이다. 라캉 정신분석 철학서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영번역을 맡았다. Read More 버튼 읽기 모든이에게 게임을! 국립재활원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 인터뷰 그 중에서도 국립재활원 재활연구소 자립생활지원기술연구팀은 보조기기의 국산화를 위해 2020년부터 노인·장애인 보조기기연구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해당 사업은 경제적 가치 부문과 사회적 가치 부문으로 나뉜다. 전자가 개인이 부담하기에 지나치게 비싼 해외 보조기기를 국내에서 연구개발하고 상용화하는 프로젝트라면, 후자는 장애인과 노인에게 꼭 필요한 보조기기 수요를 공모를 통해 파악하여 수요자와 함께 개발하고 오픈소스로 공유하는 프로젝트이다. 버튼 읽기 ‘보는 게임’ 제작의 현장을 찾아서 - ‘LCK’ 세계화의 주역, 라이엇게임즈 코리아 진예원 프로듀서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압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이스포츠 리그는 라이엇 게임즈의 LCK (League of Legends Champions Korea)일 것이다. LCK는 국내와 해외 등지의 LOL 게이머들과 프로 선수들의 팬덤을 아우르는 최대의 축제이다. 이 축제에서 관객들은 경기를 관전하는 짜릿함과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린다. 이렇게 LCK는 게임이 가져다 주는 재미를 끊임없이 확장해나가고 있다. 특히 지난 2020년 롤드컵 결승은 미국 방송계의 아카데미상이라고 할 수 있는 에미 (Emmy) 상을 거머쥐어 그 저력을 톡톡히 증명해내었다. 이번 기사에서는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에서 LCK 프로듀싱 전반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진예원 PD를 만나 LCK 제작의 비화를 듣는 것은 물론 이스포츠의 전망까지 살펴보도록 할 예정이다. 버튼 읽기 불멍을 넘어, 소비자본주의 너머: 게임 〈리틀 인페르노〉 비평(우수상) 물건을 태워서 종잣돈을 늘리고 새로운 물건을 해금한다. 그리고 일종의 업 적이기도 한 특정 물건의 조합을 찾아 태우는 재미는 분명 게임으로서의 즐거움을 플레이어에게 제공한다. 그렇지만 이 게임은 주된 게임성을 경험하게 하는 시스템을 플레이어로 하여금 회의하고 그 밖을 사유하기를 적극적으로 재촉한다. 이러한 점에서 게임 〈리틀 인페르노〉는 전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메세지가 게임적 시스템과 충돌한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Henry Korkeila
PhD, MSc, is postdoctoral researcher whose recent work has focused on the avatarization of our analog cultures as they inevitably turn into digital cultures. Special focus has been on avatars themselves, usage of avatars in their different contexts including multiple online video game genres. He has approached avatars through the types of capital, or resources, they have. His recent works in progress continue to explore the cultures of MMOs, and game accessibility and inclusivity at large. Henry Korkeila Henry Korkeila PhD, MSc, is postdoctoral researcher whose recent work has focused on the avatarization of our analog cultures as they inevitably turn into digital cultures. Special focus has been on avatars themselves, usage of avatars in their different contexts including multiple online video game genres. He has approached avatars through the types of capital, or resources, they have. His recent works in progress continue to explore the cultures of MMOs, and game accessibility and inclusivity at large. Read More 버튼 읽기 <앨런 웨이크2> - 화려하게 돌아온 고전 컬트작의 속편 앨런이 갇혀있는 어둠의 장소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에 앞서, 앨런 웨이크 시리즈의 개발사인 레메디 엔터테인먼트(Remedy Entertainment, 이하 ‘레메디’) 및 이 개발사가 핀란드 게임업계 미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한다. 버튼 읽기 Alan Wake 2 – The brilliant sequel to a cult classic Before we delve a bit deeper into the Dark Place that has Alan trapped, I shall talk more about the developers of the Alan Wake series, Remedy Entertainment (henceforth Remedy), and their impact on Finnish games industry.
- 변해가는 게임의 위상, 다큐의 관점도 변한다 - 〈하이스코어〉리뷰
2000년대 중반 이래 게임을 다루는 다큐 프로그램들이 간간이 등장해온 가운데 넷플릭스가 서비스 중인 〈하이스코어〉는 가장 최근에 출시된 게임 역사 다큐 프로그램이다. 큰 틀에서 볼 때 게임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주요 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게임 역사를 다룬 저술이나 다큐 프로그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그러한 가운데서도 이전까지 다뤄지지 않았던 부분들을 발굴한 점이 눈에 띈다. < Back 변해가는 게임의 위상, 다큐의 관점도 변한다 - 〈하이스코어〉리뷰 03 GG Vol. 21. 12. 10. 2000년대 중반 이래 게임을 다루는 다큐 프로그램들이 간간이 등장해온 가운데 넷플릭스가 서비스 중인 〈하이스코어〉는 가장 최근에 출시된 게임 역사 다큐 프로그램이다. 큰 틀에서 볼 때 게임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주요 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게임 역사를 다룬 저술이나 다큐 프로그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그러한 가운데서도 이전까지 다뤄지지 않았던 부분들을 발굴한 점이 눈에 띈다. 가장 먼저 이야기 할 만한 부분은 - ‘게임’만이 아니라 - ‘플레이’에도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 2000년대 들어와 본격화되는 게임에 대한 학술적 (특히 인문사회학적) 연구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게임의 특성은 ‘상호작용성’이었는데, 이는 디자이너들이 설계한 ‘게임’이 플레이어들의 ‘플레이’에 의해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었다. 일단 완결된 상태로 수용자들에게 제시되는 기존의 매체들과는 달리, 게임의 이와 같은 특성은 그것을 만든 사람의 의도와는 상이한 방식으로, 그러니까 그것을 플레이하는 사람의 의도나 취향에 따라 그 경험이 형성될 수 있도록 해준다. 이와 같은 (수용자의) ‘능동성’은 한동안 게임학 연구에 있어 주요 의제였으며 심지어는 ‘게임 세대론’이 등장하는 바탕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유독 게임의 역사 연구 분야에서는 ‘게임’에 한정되어 그 발전과정이 기술되어온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게임을 만든 개발자나 업체 또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 게임들의 개발과정 등에 초점을 맞추는 식이다. 나름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런 방식의 접근은 소위 ‘능동적’이라던 게이머들은 사라지고 소수의 천재적 개발자들이 내놓은 혁신적인 게임을 그저 열심히 소비하기만 하는 (수동적인) 게임 소비자들만 남게 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하이스코어〉 1편부터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개발한 니시카도 토모히로와 1980년 아타리배 전국 게임대회 챔피언 리베카 하이네먼을 병치시킨 것은, 그래서 눈여겨 볼 만하다. 게임을 만들어낸 개발자조차 불가능한 게이머들의 엄청난 플레이가 게임의 디자인만이 아니라 그 플레이 또한 뛰어난 창의성과 혁신의 산물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기존의 논의에서 게이머의 능동성은 대체로 모드나 머시니마 등 플레이 너머의 (생산적) 측면에 초점을 맞춰 왔는데, 사실 게임의 ‘플레이’ 자체가 단순한 소비 행위가 아니라 능동적인 창조 행위였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따른다면 플레이어들의 이와 같은 창의성이야말로 e스포츠가 발원할 수 있었던 근간이라 할 만한데, 기존 e스포츠 담론에서 이러한 측면은 소외되어온 감이 있다. 〈하이스코어〉에서 e스포츠는 메인 주제가 아니지만, 게임의 발전과정에 있어 ‘플레이’의 측면을 적극적으로 발굴함으로써 현재 산업적 측면에 치중되어있는 e스포츠 담론에서 향후 하나의 문화로서 e스포츠의 방향성을 고민할 수 있는 시사점으로 삼을 만한 지점이다. * 아타리 전국 게임대회 챔피언 출신인 리베카 하이네먼의 등장은 게임이용자라는 플레이의 또다른 한 축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깊다. 이미지: 넷플릭스 또 하나 〈하이스코어〉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다양성’이다. 게임은 전통적으로 산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젊은 (백인) 이성애자 남성’이라는 꽤나 균질한 집단적 속성을 지닌 것으로 여겨져 왔으며, 이는 최근 몇 년간 게임계에서 PC(정치적 올바름) 운동이 화두가 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균질성의 신화는 성장기 때 게임을 즐기던 게이머들이 업계에 입문하는 특성상 또래들과 게임을 즐기던 남성 청소년 중심의 하위문화적 특성이나 취향이 업계에도 고스란히 전이되면서 형성된 것인데, 게임을 플레이하는 집단이 다양해지면서 그와 같은 문화적 속성을 공유하지 않는 타 게이머들과 마찰을 겪으면서 갈등이 상당히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점에서 〈하이스코어〉가 게임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잊혀져 있던 최초의 카트리지 교환형 콘솔 채널F의 개발자 제리 로슨을 조망한 것은 눈여겨 볼 만한 부분이다. 채널F가 개발되었던 7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흔치 않았던 유색 인종으로서 초기 게임산업의 발전 과정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 그 오래된 신화에 균열을 가하기 때문이다. 사망한 인물이라 자세한 인터뷰를 담을 수 없었던 점은 아쉽지만 - 이미 많이 늦었다는 방증이겠다 - 채널F처럼 게임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콘솔의 개발자가 이처럼 까맣게 잊혀져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게임의 역사적 발전과정 속에서 그처럼 묻혀져 있을 다양한 사람들의 존재를 예상할 수 있다. 우리는 아직 모르고 있지만 그들의 유산은 게임의 발전과정 안에 오롯이 녹아있을 것이며, 그것을 발굴해낸다면 게임의 문화적 가치와 의미는 또 얼마나 풍성해질지 가늠해볼 수 있는 지점이다. * 채널 F의 개발자 제리 로슨을 향한 조명은 이 다큐가 게임산업 발전사 속에서 소외되는 누군가를 잊지 않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다. 이미지: 넷플릭스 EA의 간판 스포츠게임 〈매든 NFL〉 시리즈의 열혈팬으로서 후에 EA에 입사하여 〈매든 NFL 95〉에 사상 최초로 흑인 캐릭터를 등장시킨 흑인 남성 동성애자 게이머(이자 개발자) 고든 벨라미의 이야기 또한 게임 역사 내 다양성에 대한 화두를 이끌어낸다. “세상의 규칙이 다르게 적용된다”는 것을 평생 체감하며 살아가는 소수자들에게 있어 “모두에게 공평한 규칙이 적용되는” 게임의 세계란 그저 한낱 게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벨라미의 이야기는, 게임 문화 내 다양성이 지니는 중요성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준다. 게임 캐릭터의 짙은 피부는 물리적으로 화면 내 작은 픽셀들의 바뀐 색조합에 불과하지만, 그 작은 변화는 평생을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의 정당성을 위해 싸워야 하는 소수자들에게는 세상이 변화하고 있다는 (혹은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의 빛이란 것을. 물론 소수자들에 한해 게임이 정체성이나 의사 표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게임이 소수자들에게 중요한 소통과 표현의 수단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그것이 세상에 등장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매체였기 때문이라는 점은 생각해볼 만하다. 이미 주류의 취향과 가치관이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기성 매체와 달리, 젊은 매체는 비주류의 다양한 목소리들이 자유롭게 담길 수 있는 여지를 지니며, 그와 같은 개방성과 다양성에 기반한 ‘가능성들’이야말로 이 매체의 ‘젊음’이 지녔던 문화적 가치였던 것은 아닐까. 초기 인디 게임의 사례로서 미국 사회 내 동성애자 혐오 정서에 대항하는 패러디 게임 〈게이블레이드〉의 존재는 바로 그러한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단순한 오락물 그 이상의 어떤 것으로서의 가능성 말이다. 이처럼 게임의 ‘젊음’을 조망한 〈하이스코어〉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시절 게임의 산업과 문화를 이끌었던 주요 인물들의 노색이 완연한 모습은 역으로 게임의 ‘나이듦’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기도 했다. 이제는 현역에서 물러나 한 발 떨어진 위치에서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회상하는 그들의 모습은 그 시절 우리가 즐겨 플레이했던 게임, 그러니까 부모님과 선생님의 눈을 피해 짜릿하게 즐겼던 우리끼리의 그 오락이 더 이상 그 때의 그것이 아님을 새삼 일깨워준다. 게임이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우리가 고민해봐야 할 부분은 한 때 젊었던 게임이 지녔던 그 가능성들이 여전히 유효한지, 그렇지 않다면 어떤 다른 가능성과 가치를 지닐 수 있는지, 혹은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옳은 것인지 등이 아닐까? 다른 말로 바꾸자면 이 과거의 흔적 또는 유물들을 현재와 유기적으로 연결시키고 나아가 미래를 위한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것이다. 게임의 역사를 다루는 다큐로서 〈하이스코어〉에서 아쉬운 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기존에 다뤄지지 않았던 새로운 인물이나 사건을 발굴한 것은 주목할 만한 성과였지만, 그러한 발굴을 통해 새롭게 논의해 볼 수 있는 오늘날 게임의 가치나 의미를 끌어내는 데까지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놀런 부쉬넬, 니시카도 토모히로, 로베르타 윌리엄스, 존 로메로 등 기존 게임사의 주요 인물들과의 인터뷰 또한 기존의 게임사 다큐나 저술에서 이미 이야기했던 것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는데, 그들에게 과거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오늘날과 미래에 대해 지닌 견해를 물었다면 어땠을까? 그들이 꿈꾸고 가꿨던 그 게임이 오늘날의 게임과 얼마나 또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리하여 그 다름은 또 어떤 의미인 것인지와 같은 논의가 담겨 있었더라면, 과거에 비추어 오늘날을 돌아보고 미래를 고민하는 역사적 탐구의 궁극적인 목적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게임사를 다루는 저술이나 프로그램에서 으레 첫 장에 위치하는 놀런 부쉬넬을 맨 마지막에 배치함으로써 〈하이스코어〉는 게임의 역사가 곧 혁신의 역사라는 관점을 분명히 내비췄는데, 개인적으로는 2020년이라는 시점에 나온 게임 다큐로서 좀 안일한 (혹은 진부한) 관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의 역사가 정말로 재미를 좇는 혁신의 과정에만 한정된다면, 자동사냥이나 확률형 아이템 등이 디폴트화 되고 메타버스나 NFT, P2E 등이 대두하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러한 화두들이 북미에서는 한국 만큼 현안이 아니어서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서글프)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어쨌든 그러한 화두들이 결국엔 게임의 미래와 직결된 것들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재미를 좇는 혁신의 역사’라는 〈하이스코어〉를 비롯한 기존의 게임 역사 저술이나 다큐의 역사관에서 벗어난 작품이 나와주길 기대해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검은 신화: 오공>의 성취는 중국 문화권 바깥에서도 충분히 이해되는 것인가?
이를테면 많은 한국 게이머들은 매 챕터가 끝날 때 등장하는 ‘다음 회에서 알아보자’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어려운데, 이는 회본 형태로 챕터가 정리되는 서유기 원전의 끝 문장을 그대로 차용해 온 부분이고 원전 ‘서유기’가 한국에서는 널리 읽히는 편은 아니라는 문제에서 기인한다. 그나마 친연성이 있는 한국에서도 이런 상황인데, 서구권까지 넘어가게 되면 사실상 <오공>을 이해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 < Back <검은 신화: 오공>의 성취는 중국 문화권 바깥에서도 충분히 이해되는 것인가? 21 GG Vol. 24. 12. 10. 오랜 시간 동안 동아시아 문화권의 중심을 차지해 온 지라, 중국의 디지털게임을 향한 도전에서 중국 고전은 언제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온 바 있었다. GG의 지난 칼럼(참조)에서처럼, 중국의 디지털게임 제작은 초창기부터 <봉신연의>, <료재지이> 같은 중국의 고전 소설들을 디지털게임으로 가져오는 작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서유기>는 매우 자주 디지털게임으로의 시도가 이어져 온 작품이다. 8비트 게임 시절부터 중국에서는 <대화서유>, <서유기>, <서전취경>과 같은 여러 회사에 의한 다양한 게임 장르로의 시도가 서유기를 딛고 이루어졌다. (관련내용은 GG 2호, " 중국의 레트로 게임: 8비트 시대의 흔적들 " 참조) 비단 중국에만 국한되었다기보다는 <서유기>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판타지성은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 전반에서 현대적 대중문화 콘텐츠로의 잦은 시도를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이루어진 <손손>과 같은 아케이드 디지털게임화, <서유기>를 초기 모티프로 삼아 만들어졌지만 이제는 아예 서구권 전반에서 ‘손오공’이 아닌 ‘손 고쿠’를 고유명사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성공한 <드래곤볼>과 같은 사례와 함께 한국에서도 <날아라 슈퍼보드>를 기반으로 한 ‘사오정 시리즈’의 성공이나, <마법천자문>과 같은 사례들이 서유기라는 고전 판타지의 확장성을 증명한다. 동아시아 고전 판타지라는 강한 배경을 가진 게임 <검은 신화: 오공(이하 <오공>)의 제작 발표가 있은 뒤부터 이 게임에 대한 관심은 그래서 한편의 기대와 한편의 걱정을 동시에 이끌어냈다. 티저 트레일러에서 보여준 액션 어드벤처 게임으로서의 상당한 완성도가 오래도록 다시 익혀 내어 온 고전의 새로운 게임적 재해석에 빛나는 성과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그리고 ‘또 서유기?’라는, 다소 진부할 수 있는 주제에 안이하게 천착해버릴 지도 모르겠다는 우려는 시장 규모에 비해 오랫동안 이렇다 할 ‘문화적 업적’으로서의 대표작을 보여주지 못한 중국 게임제작 씬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한 배경이었다. 높은 장르적 완성도는 세계관과 결부되며 빛을 발한다 <오공>의 성과는 액션 어드벤처라는 장르적 측면에서도 상당하다. 곤술과 창술이라는 우슈에 기반한 무기 액션은 특유의 부드러운 초식 연격을 통해 매끄러운 전투 흐름을 완성했고, 사실상 전투 액션의 핵심이 되는 강공격은 천지를 울리는 과장법을 무리없이 연출해내내는 데 성공했다. 전투 액션에서의 성공은 게임 시작부터 이어지는 주인공 캐릭터의 완성도 이상으로 다채로운 기믹을 자랑하는 수많은 보스 몹들을 통해 이뤄지는데, 이른바 ‘복붙’으로 만들어지는 장면들 대신 풍성한 파훼법을 고민하게 만드는 다양한 전투 도전이 게임의 중심을 놓치지 않고 이끌어냈다. 난이도 설정이 별도로 없다는 점은 일부 게이머들에게는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이 또한 고전적인 방식인 ‘시간을 들이면 해결된다’는 기믹을 살려둠으로써 완화점을 두었다. 초반부는 소울라이크를 방불케 할 만큼 확실히 도전적인 난이도를 보여주지만, 특정 구간들을 지나면서 열리는 도술과 특성이 누적되면서 난이도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일정 수준 이상의 시간을 들이면 못 넘어설 것은 아니라는 일련의 안도감을 부여한다. 소울라이크 느낌을 내면서도 게임 오버에도 경험치를 흘리지 않게 만들어진 디자인은 난이도 설정이 없다는 점을 보완하는 디자인이었고, 게임은 전반적으로 쉽다고 말하기 어려운 느낌을 주지만 그렇다고 초심자를 완전히 내팽개친다고만은 볼 수 없는 타협점을 보여주었다. 디지털게임의 성취를 바라볼 때 메카닉만을 뚝 떼어 보는 것은 게임을 온전히 파악하기 어려운 방법이다. 단순히 막대기를 돌리고 휘두르는 공격 액션이 훌륭하다고 하면 굳이 ‘서유기’라는 배경과 이야기라는 스킨을 덧씌운 게임에서 우리가 받는 감상을 정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오공>의 성취 또한 상당히 공들인 전투 액션이 어떤 세계관 하에서 어떤 목적을 향하고 있는지와 결부될 때 비로소 본격적인 의미를 드러내는데, 기본적으로는 ‘서유기’의 세계관을 활용하되, 손오공의 서역 여정길 당시가 아닌 그 다음의 이야기라는 배경 설정을 통해 게임은 이 세계관을 21세기에 디지털게임으로 재현할 때 필요한 많은 자유로움을 끌어낸다. 신분제 시절의 판타지가 못다 한 이야기의 현대적 재구성 중국의 또다른 판타지 소설인 ‘봉신연의’와 마찬가지로 ‘서유기’ 또한 요괴라는 이름의 다양한 캐릭터들이 총출동한다. <오공>은 ‘서유기’에 등장한 수많은 요괴들 중 액션 어드벤처 게임에서 도드라지는 기믹이 될 수 있는 요괴들을 서유기 원작의 순서와 관계없이 적절하게 배치함으로써 고전 판타지 소설이 액션 어드벤처 게임으로 재구성될 때의 장점을 유감없이 발휘하고자 했는데, 이를 위해서 <오공>은 주인공인 손오공의 서역 행보를 되새기는 것이 아닌, 그가 죽은 뒤 그의 후계를 자임하는 주인공 ‘천명자’의 행보를 그려낸다. <오공>이 그려낸, 삼장법사 일행의 고행이 끝난 뒤의 세계는 원작이 그려내지는 않았지만, 원작의 상상력을 이어 간다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 어떤 세계의 후속담이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공>의 세계는 그렇지 않다. 서역에서 가져온 대승의 불경이 중국에 도착했다면 이 세계는 부처의 대자대비심으로 이전보다 나은 세계가 되었어야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오공>은 끊임없이 보여주고자 한다. 원작 소설에서 주인공 일행이 지났던 마을들은 폐허가 되었고, 아예 원작에서 투전승불의 지위에 올라 해탈에 이른 것으로 결론지어진 손오공은 게임 시작부터 죽었다고 나온다. 관세음보살이 현장법사에게 일러 주었던, 중생을 구제할 대승의 새 불경은 딱히 별다른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것이 <오공>이라는 게임의 출발점이다. 더욱 의뭉스러운 것은 세계의 남은 자들이 그런 세계를 구하기 위해 불경을 다시 가져온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죽어버린 손오공의 부활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주인공 천명자는 부처의 지위를 버리고 다시 원숭이 왕으로 살고자 했다 죽게 된 손오공이 세상에 남긴 육근을 모아 손오공의 부활을 시도한다. 세상을 더 낫게 만들 방법이 서역에서 가져온 불경이 아니라 손오공의 부활이라는 점은 언제나 다음에 이어질 세상을 보다 낫게 만드는 것을 암묵적 전제로 삼는 디지털게임의 구조 안에서 매우 중요한 변화다. 원전 ‘서유기’가 그려낸 세계는 신격 존재들과 인간들, 그리고 요괴들이라는 구분이 엄격한 세계였다. 일종의 신분제라고도 볼 수 있을 이 구분은 한편으로는 엄격하면서도 아예 고정불변인 것은 아닌데, 이를테면 원래 요괴 출신이었던 손오공이 천계의 부름을 받아 옥황상제와 겸상하거나 투전승불이 될 수도 있고, 천계의 군인이었던 천봉원수와 권렴대장이 잘못을 저질러 요괴로 환생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신분은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지만, 그 오름과 내림이 명확한 격차를 갖는다는 점에서 이 세계의 신분제는 태생적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상벌적 개념에 가깝다. <오공>의 시작부분에서 손오공은 천계로 부름받은 투전승불이라는 지위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고 울부짖는다. 그리고 그 외침에 대해 천계는 군대를 보내 손오공의 목소리를 지우는 것으로 화답한다. 이는 고전 소설 ‘서유기’가 시대적 한계로 그려내지 못한 지점을 21세기의 디지털게임이 다시 가져올 때 살려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그리고 사실 이러한 고전 판타지의 게임을 통한 현대적 재해석은 이미 크게 시도된 바 있는데, <오공>의 제작진들이 직접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언급한 바 있는 <갓 오브 워> 리부트 시리즈다. 원작이 되는 북유럽 신화가 오딘과 토르라는 주신들의 관점에서 진행된 바 있다면, 게임으로 등장한 <갓 오브 워>의 북유럽 신화는 실제 신화 속에서 반영웅의 위치에 있었던 로키의 시각에서 신화를 풀어나가고자 했다. 시점을 바꾸면 이야기는 크게 달라지는데, 오딘의 지혜는 게임 안에서 교활함으로 재해석된다. 신들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세계 전체를 지배하려 들고, 그 신의 범주에 들지 못한 이들의 저항은 주신들의 관점에서는 세계의 멸망, 라그나뢰크인 것이다. 라그나뢰크가 예언한 세계의 종말은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결국 ‘그들만의 세계’에 찾아오는 종말이라는 해석은 고전적 신분제 사회를 벗어난 현대에 들어 신화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주요한 관점이다. 그리고 <오공>은 같은 맥락으로 ‘서유기’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에 나선다. 신분제가 명확했던 시절에는 자연스러웠을 신계가 인간계를 관리하고(혹은 보호하고) 있는 모습은 신분제가 사라진 현대에 들어서는 그 자체로 이미 억압적인 무언가가 된다. 로키라는 악신의 존재를 활용한 <갓 오브 워>의 방식 대신, <오공>은 원작의 주인공이었던, 요괴 출신이지만 천계의 명령에 순순히 복무했던 이가 받은 의심과 실망을 부각시킴으로써 고전적 신분제 하에서의 평화와 행복이 가진 모순을 정면으로 끌어내는 방식을 사용했다. 각론은 다르지만, 두 게임 모두 고전 사회에서 만들어진 신화와 판타지가 현대 관점에서는 여전히 모순일 어느 지점을 향해 이야기의 방향을 바꿔냈다는 점에서 신화의 현대적 해석이라는 평을 받을 만 하다. 중국 문화권 바깥에서 이 게임의 의미에 다가가는 어려움에 대해 고전 소설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이 성공적일 수 있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만큼 제작진들이 고전 소설로서의 ‘서유기’를 깊고 풍부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한국과 달리 중국에서 ‘서유기’는 원전 자체가 보편적 교양 소설로 취급받으며, 한국에 비해 폭넓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실제 <오공> 안에 등장하는 원작 출신의 많은 캐릭터들은 원작에서 보여줬던 성격과 캐릭터를 게임 특성에 맞게 변형한 상태로 등장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특성이 게임 메커닉과 강하게 결부되며 게임을 말그대로 살아움직이는 ‘서유기’로 만드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원작에 대한 깊은 이해로 만들어진 2차창작 콘텐츠로서의 <오공>은 이 점 때문에 오히려 ‘서유기’에 익숙하지 않은 중국 바깥의 게이머들에게는 미처 다 전달되지 않는 지점 또한 적지 않다. 이를테면 많은 한국 게이머들은 매 챕터가 끝날 때 등장하는 ‘다음 회에서 알아보자’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어려운데, 이는 회본 형태로 챕터가 정리되는 서유기 원전의 끝 문장을 그대로 차용해 온 부분이고 원전 ‘서유기’가 한국에서는 널리 읽히는 편은 아니라는 문제에서 기인한다. 그나마 친연성이 있는 한국에서도 이런 상황인데, 서구권까지 넘어가게 되면 사실상 <오공>을 이해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 * 다음 회에서 풀어보자는 말의 의미는 중국 문화권이 아니면 이해가 어려울 것이다. 충분히 잘 만들어진 게임이지만 <오공>에 대한 아쉬움은 역으로 이 게임이 원전에 너무나 충실했다는 점에서 원전이 보편적이지 않은 이들에겐 미처 그 정교함이 다 드러나지 않는다는 문제 때문에 온다. 원전에 대한 세심한 재해석에 경탄하면서도 내내 이걸 서구권 게이머들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를 떠올린 것은, 게임의 기저에 흐르는 ‘서유기’라는 원전에 대한 추가적인 이해를 도울 수 있을 여러 서브 컨텐츠들이 충분히 갖춰지지는 않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 사천왕과의 전투라는 것도 아마 서양권 이용자들에겐 '멋진 거대 몬스터와의 박력있는 전투'까지만 전달될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디지털 연산장치와 확률이라는 조합의 아이러니
디지털게임에 관한 가장 흥미로운 아이러니는 이 매체의 물적 기반인 컴퓨터의 시작이다. 빠르고 정확한 계산을 위해 설계된 이 전자장치는 애초에 암호해독이나 탄도 계산 같은 전쟁 기술을 보조하는 도구로 만들어졌는데, 그런 도구로 사람들은 놀이하는 방법을 찾아내 즐기고 돈을 번다. 전쟁용 전자장비를 활용해 만든 놀이들의 상당수가 전쟁과 전투를 재현하려 든다는 점까지를 생각한다면 꽤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된다. < Back 디지털 연산장치와 확률이라는 조합의 아이러니 17 GG Vol. 24. 4. 10. 디지털게임에 관한 가장 흥미로운 아이러니는 이 매체의 물적 기반인 컴퓨터의 시작이다 . 빠르고 정확한 계산을 위해 설계된 이 전자장치는 애초에 암호해독이나 탄도 계산 같은 전쟁 기술을 보조하는 도구로 만들어졌는데 , 그런 도구로 사람들은 놀이하는 방법을 찾아내 즐기고 돈을 번다 . 전쟁용 전자장비를 활용해 만든 놀이들의 상당수가 전쟁과 전투를 재현하려 든다는 점까지를 생각한다면 꽤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된다 . 컴퓨터 – 디지털게임이라는 물적 기반과 콘텐츠 사이의 관계에는 또 하나의 재미있는 아이러니가 있는데 , 난수 random number 다 . 디지털 기술 기반의 컴퓨터는 근본적인 의미에서의 난수 생성이 불가능한 장치다 . 요즘은 듀얼코어 이상에서 몇 가지 방법으로 난수를 만드는 법이 나왔다고는 하지만 , 애초에 주어진 데이터를 신속정확하게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기에서 외부 입력 없이 자체적으로 랜덤한 수를 뽑아낸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 하지만 그 컴퓨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디지털게임이라는 매체에서 난수는 결정적이라고 불러도 할 말이 없을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 난수를 만들 수 없는 기계를 딛고 성립한 매체에서 난수가 필수요소에 가깝다는 점은 이 매체의 근본에 운과 확률이라는 요소가 얼마나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 달리 정리해보면 , 결국 운과 확률로 만들어지는 게임의 흐름을 보조하기 위해 일련의 전자 연산장비가 도구로 활용된다고 표현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 모든 디지털게임이 무작위의 결과물들만을 가지고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 오히려 최근의 이른바 AAA 급 게임에 이르면 영화의 작법을 따라 이미 정해진 시나리오를 쭉 따라가게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으며 , 이런 영역에서 디지털 주사위는 정해진 결론을 향하는 과정에서의 우연을 만드는 정도로 역할을 줄여나가는 추세다 . 하지만 우리가 이른바 ‘ 게임만의 독특한 재미 ’ 를 이야기할 때는 대부분 이 주사위의 힘이 개입한다 . ‘ 테트리스 ’ 에서 다음 블록이 예측되는 순간 , 이 게임은 상황대처가 아닌 암기력의 게임이 되고 말 것이다 . 액션 게임 등에서 확률로 표기된 치명타가 일정 타격 수마다 반복될 때 , ‘ 하스스톤 ’ 같은 카드게임 류에서 카드 덱이 랜덤이 아니라 순서를 지정할 수 있게 될 때 이들이 가진 재미는 사라진다 . 이런 맥락에서라면 주사위의 개입을 통해 다양해진 상황을 통제하는 것이 곧 플레이어의 플레이 행위가 된다 . 실재하는 우주와 세계에서 발생하는 무수한 경우의 수를 가상공간 안에 그대로 구현할 수는 없겠지만 , 적어도 통제된 환경 안에서 디지털게임은 무작위 확률을 통해 상황을 ‘ 흩뜨러뜨린다 ’. 그리고 이를 정렬하고 재구성하여 주어진 과제를 클리어할 수 있을 만큼의 정돈을 만들어내는 것이 확률 개념을 상대할 때의 플레이가 갖는 역할이다 . 이 때 디지털 주사위가 만드는 확률의 역할은 ‘ 모르는 영역 ’ 의 창조다 . 확률을 통해 표현되는 디지털게임의 규칙들은 모두 ‘ 모름 ’ 의 영역을 만들어낸다 . 테트리스에서 다음 블록이 무엇이 나올지 , ‘ 다크 소울 ’ 에서 보스가 다음 순간에 어떤 패턴으로 공격해 들어올지에 대해 디지털 주사위는 각 순간별로 플레이어에게 다음 순간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을 연출한다 . 디지털게임 소프트웨어는 끊임없이 엔트로피를 증가시키고 , 늘어난 엔트로피를 줄여나가는 것이 플레이의 목적이 된다 . 온라인 네트워크가 보편화된 이후의 디지털게임에서는 이 엔트로피값의 증가에는 주사위 이상으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추가되는데 , 바로 플레이어다 . 싱글 플레이 시절에는 불가능했던 ,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와 맞상대하게 되는 대전형 멀티플레이의 순간에는 디지털 주사위가 제공하는 것 이상의 새로운 ‘ 모름 ’ 이 덧붙는다 . 상대가 어떤 패턴을 익숙하게 쓰는지 , 선호하는 캐릭터나 스타일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온라인 익명 매치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게임을 시작하게 된다 . 이 때의 랜덤성은 아마도 매치메이킹이 되는 순간일 것이다 . 어느 정도 게임 결과에 따라 매기는 랭킹에 의해 기대승률 50% 를 맞추는 보정이 이뤄진다고는 하지만 , 여전히 멀티플레이에서 내가 누구와 게임하게 될 지는 ‘ 모름 ’ 의 영역이다 . 이 랜덤한 매치메이킹의 효과는 랜덤을 애초부터 잘 만들 줄 모르는 디지털 연산장치의 확률 제시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 모든 모르는 영역을 파훼하고자 하는 플레이어의 힘은 멀티플레이 영역에 들어오면서 사실상 영원히 상대적인 극복의 굴레에 들어앉는다 . CPU 가 만들어내는 제한된 랜덤 상황은 결국 고정되어 있고 , 이는 어떻게든 파훼된다 . 수많은 게임 플레이 경험이 누적되며 플레이어의 숙련도는 계속 향상되지만 , 소프트웨어의 난이도는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 그러나 그 난이도 – 숙련도 경합에서 난이도의 제시가 상대방 플레이어라는 주사위보다 더한 경우의 수를 가진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 끝없이 향상되는 두 사람의 숙련도 덕택에 이 경합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순환의 고리를 돌게 된다 . 이런 상황에서 디지털 연산장치는 굳이 ‘ 모름 ’ 을 만들기 위해 억지로 일을 더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맞는다 . ‘ 모름 ’ 이라는 엔트로피를 기준으로 정리해 본다면 , 그래서 디지털 주사위는 사실 사람 혹은 사건이라는 실제로는 훨씬 더 예측불가능한 세계를 매우 낮은 레벨에서 재현해 낼 뿐이라고 이야기해볼 수 있겠다 . 랜덤을 만들 줄 모르는 기계는 다른 매체와 마찬가지로 존재하는 현실의 일부를 프로그래밍된 가상공간 안에 일부 재현할 뿐이다 . 다만 통제된 환경 안에서 펼쳐지는 아주 작은 수준의 경우의 수는 오히려 그 엔트로피를 충분히 낮출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은 ‘ 모름 ’ 이며 , 덕분에 플레이어들은 이 ‘ 모름 ’ 에 도전할 가치가 충분함을 느낄 수 있게 된다 . 이른바 ‘ 공략 ’ 이라고 불리는 많은 패러텍스트들이 플레이와 동떨어지지 않은 맥락에서 생산되는 것이 바로 이 이유에서다 . 게임 공략들은 게임 텍스트가 제시하는 ‘ 모름 ’ 의 상황에 펼쳐진 전장의 안개를 걷어내기 위한 활동의 결과물들이다 . 어떤 이는 랜덤하게 떨어지는 아이템의 드랍률을 수집 , 분석해 최종적인 아이템 루팅 테이블을 만들고 이를 확률로 정리해 정례화한다 . 누군가는 주사위의 결과물에 다양한 수식적 치장을 가한 공격 / 방어의 메커니즘을 분석해 수식의 구조를 밝히고 , 이를 통해 최적의 공략 루트를 도식화한다 . 확률이라는 이름으로 온 사방에 분산된 채 높은 엔트로피를 지니고 있던 게임의 주사위가 만들어낸 세계는 공략이라는 정리된 장 앞에서 질서정연하게 정리된다 . 같은 맥락은 디지털 주사위가 아닌 사람과의 플레이에서도 나타난다 . ‘ 리그 오브 레전드 ’ 의 랜덤 매칭이 갖던 높은 엔트로피는 op.gg 와 같은 전적 사이트를 통해 체계적으로 나의 상대나 아군이 어떤 전적과 승률을 가지고 있는지를 일목요연한 데이터로 가공되며 해소된다. 게임 텍스트 내부에서의 플레이와는 별개로 , 확률이 만들어내는 ‘ 모름 ’ 의 영역에 존재하는 수많은 경우의 수는 텍스트 밖에서도 다양한 방식을 통해 줄어든다 . 결국 , 디지털게임이 만들어내는 재미도 요약해 보면 1,000 피스 퍼즐과 같은 메커니즘으로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 완성된 그림을 무질서한 1 천개의 조각으로 쪼갠 뒤 , 이를 다시 맞추는 일에 재미라는 의미를 붙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 우리는 확률 기계가 제한적으로 생성해 낸 수많은 경우의 수 사이를 헤매며 다시금 이를 정리하고픈 욕망에 휩싸인다 . 게임 텍스트 안에서는 클리어와 엔딩 도달이라는 결과로 , 게임 텍스트 밖에서는 진행되는 모든 과정을 체계화하는 방식으로 우리는 연산장치가 만들어낸 가상세계의 데이터 엔트로피가 분명 정리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사실에 흥분하며 또 도전한다 . 설령 이 기계가 근본적으로 랜덤값을 만들기 어려운 장치라 해도 , 마치 화투장 48 개를 가지고 흩어놓은 뒤 다시 맞추는 패 떼기 놀이와 같이 , 그 한계가 명확하다는 사실은 엔트로피 놀이에서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 아니 , 오히려 그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우리는 마치 윤상의 노래 ‘ 달리기 ’ 에서처럼 , 언젠가는 끝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더욱 흥분하며 게임에 달려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Editor's View] 시간 속의 게임, 게임 속의 시간
좋으나 싫으나 우리는 시간 속을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우리 존재들이 살아온 시간의 시간의 누적을 기록해 역사라고 부르기도 하죠. 그 누적 속에서 놀이는 사실 오랫동안 잉여시간 취급을 받아온 것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 Back [Editor's View] 시간 속의 게임, 게임 속의 시간 21 GG Vol. 24. 12. 10. 좋으나 싫으나 우리는 시간 속을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우리 존재들이 살아온 시간의 시간의 누적을 기록해 역사라고 부르기도 하죠. 그 누적 속에서 놀이는 사실 오랫동안 잉여시간 취급을 받아온 것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21세기 들어 놀이에 들어가는 많은 시간들은 더 이상 잉여에 머물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놀이는 그 자체로 돈이 드는 일이 되었고, 놀이를 만들어내는 기업은 상품으로서의 놀이를 팔아 이윤을 얻습니다. 생산의 체계 안에서 작동하는 것이 21세기의 놀이이고, 아마도 그 대표적인 도구가 디지털게임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시간 속에서 게임은 이제 꽤나 공식적인 시간의 통제 안에 놓입니다. 게임하는 시간을 통제하고 단속하는 모습들은 PC방과 온라인게임사의 정액제 요금, 셧다운제, 일정 시간동안 플레이하면 경고문이 뜨는 것과 같은 직접적 제도 뿐 아니라 게이머들 스스로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내재적 규율로서도 작동합니다. 게임 시간은 어떤 이들에겐 생산의 잉여시간이 아니라 생산시간과 경합하는 시간이 되기도 하죠. 시간 속의 게임만이 게임과 시간의 전부 또한 아닙니다. 우리는 게임 안에서 작동하는 시간도 목도합니다. 하드웨어의 한계 속에서 발생하는 여러 종류의 시간 지연, 누적된 플레이시간이 계량화되는 아이템이라는 개념의 발흥은 이제 게임과 시간이 대단히 복잡한 방식으로 얽히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GG 21호는 게임과 시간이 얽히는 여러 모습들의 일부를 포착하고자 했습니다. 이 때의 시간은 물리량으로서일 수도 있고, 다분히 철학적인 개념일 수도 있고, 혹은 산업화와 표준화의 틀 안에서 작동하는 객관적 기준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게임과 시간의 관계를 들여다보는 일이 디지털게임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사실임을 다시금 체감합니다. GG 21호가 발행되는 2024년 12월의 시간은 사회적으로는 좀더 급박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빠르게 째깍거리는 엄혹한 시간을 빨리 벗어나 따뜻하고 행복한 연말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북유럽 레트로: 핀란드의 레트로게임 문화
핀란드에서 컴퓨터게임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이 1970년대부터 였고 80년대부터는 상업화 되었으니 그 역사는 꽤 긴 편이다. 최초의 e스포츠 토너먼트 - 당시에는 “이스포츠”가 아니라 “핀란드 컴퓨터게임 챔피언십”이라 불렸다 - 가 1983년에 이미 개최되었으며, 90년대 초반에 이르면 게임플레이가 청소년들의 주요 여가활동으로 자리잡는다. < Back 북유럽 레트로: 핀란드의 레트로게임 문화 02 GG Vol. 21. 8. 10. - 편집자 주: 이 글은 해외에서 투고한 원고를 번역한 글입니다. 원문은 아래에 병기하였습니다. 핀란드에서 컴퓨터게임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이 1970년대부터 였고 80년대부터는 상업화 되었으니 그 역사는 꽤 긴 편이다. 최초의 e스포츠 토너먼트 - 당시에는 “이스포츠”가 아니라 “핀란드 컴퓨터게임 챔피언십”이라 불렸다 - 가 1983년에 이미 개최되었으며, 90년대 초반에 이르면 게임플레이가 청소년들의 주요 여가활동으로 자리잡는다.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은 코모도어64(Commodore 64)로, 1980년대의 인기가 1990년대에도 이어지면서 그 이름이 사실상 핀란드의 게임세대와 동의어가 될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는데, 당시 코모도어 64는 다른 유형의 디지털 플레이와 프로그래밍으로 연결되는 일종의 관문과 같은 것이었다. 동아시아의 경제 위기가 1997년 한국을 크게 덮쳤던 것처럼, 핀란드도 1990년에서 1993년 사이에 심각한 경제적 불황을 겪었다. 이후 컴퓨터와 고급 (가정용) 테크놀로지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투자가 이어지는데, 노키아 휴대폰이 부상하는 게 바로 이 시기다. 가정용 컴퓨터 또한 널리 보급되었는데, 핀란드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집에서 자신의 PC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지극히 낮은 인구 밀도 때문일 것이다(핀란드 인구는 5백만명이지만 지리적 크기는 한반도의 3배 이상이다). 이와 같은 문화적 맥락을 통해 알 수 있는 핀란드 레트로게임문화의 지역적 특색은 다음과 같이 크게 3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핀란드의 오랜 게임 개발의 역사 그리고 PC 중심적 플레이의 역사로 인해 상대적으로 많은 수의 지역 취미가들이 게임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게임과 컴퓨터들을 수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핀란드의 지리적 특성상 공간적 구조가 상대적으로 넓은데, 이는 사람들이 과거의 테크놀로지를 수집, 저장하는 것을 가능케 해준다. 이와 같은 게임플레이의 기억에 대한 아카이빙과 수집, 그리고 (물리적, 가상적) 공유는 핀란드의 레트로게임 문화에 있어 핵심적인 측면 중 하나다. 둘째, 핀란드의 컴퓨터게임 개발 및 플레이의 역사에 주된 영향을 끼친 플랫폼은 PC지만, 1990년대 및 2000년대 초반에 청소년기를 보낸 많은 사람들이 PC로 넘어가기 전(핀란드의 인구가 적기 때문에 PC 인터페이스는 결코 핀란드어로 번역되지 않는다. 그래서 PC를 사용하려면 먼저 영어에 능숙해져야 한다) 보다 어렸을 적에 콘솔을 소유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1980년대 후반 이래 거의 모든 콘솔들이 핀란드에 출시되었고, 오늘날 많은 성인들은 자신이 성장기에 플레이했던 콘솔을 가지고 레트로 게임을 즐기면서 어린 시절의 경험을 재현하기를 즐긴다. 셋째, 가정용 컴퓨터(와 콘솔)이 2000년대 초반 노키아의 모바일 테크놀로지 붐과 함께 갈수록 많은 인기를 모으면서, 핀란드의 아케이드 게임 문화가 거의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게임 아케이드는 핀란드의 도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오락 문화였지만 사람들이 가정 내 게임 인프라에 보다 많이 투자하고 옮겨가면서 아케이드 게임을 향한 관심이 떨어졌고 업계의 수익성은 크게 하락했다. 오늘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예전의 아케이드 경험을 되살릴 수 있는 레트로 게임공간으로서 게임 아케이드를 방문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을 돌이켜볼 때, 핀란드의 레트로 게임문화가 여러 시대를 횡단하며 등장했던 특정 콘솔들과 다양한 개인용 컴퓨터 등 넓은 범주를 아우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양한 레트로게임 집단과 기업가들, 심지어는 박물관마저도 레트로 게임과 하드웨어를 중심으로 구축되고 있다. 레트로 게이머를 다루는 특집기사들, 레트로 게임을 수용하면서 즐기는 집단이나 그것을 통해 수익을 추구하는 집단을 소셜미디어에서 마주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다음은 “핀란드의 레트로게임 문화에 있어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세 집단의 답변을 통해 그 역사를 구체적으로 이해해보고자 한다. 먼저 템페레에 위치한 핀란드 게임박물관에서 일하는 니클라스 닐룬드(Niklas Nylund) 박사에게 그 질문을 던졌다. 이 박물관은 템페레시와 루프리키 매체 박물관(Media Museum Rupriikki), 사설 게임 박물관 펠리코네주니트(game collective Pelikonepeijoonit), 그리고 템페레 대학이 핀란드 게임문화의 발전상을 보여주기 위해 설립되었다. 2017년 개관한 이 박물관은 10만 유로를 크라우드 펀딩으로 기부한 핀란드 게임열정가들에 힘 입어 게임 역사를 위한 공공의 아카이브 시설로 구축되었다. 이 곳은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공간으로 지역주민과 방문객들 모두 게임문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닐룬드 박사에 따르면 핀란드 레트로게임에 있어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개방성과 협업, 그리고 민주적 의사 결정에 있어 타인에 대한 존중이다. 소규모 국가인 핀란드 특유의 대화하는 문화를 통해 상위 문화 유산 기관들이 처음부터 레트로 게이머들과 대화하면서 그들로부터 배우고자 했다는 것이다(레트로 게이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닐룬드는 게임 보존에 관심이 있는 단체들이 핀란드 게임박물관 설립과 같은 프로젝트와 “게임 보존을 위한 토론회”를 함께 한 경험이 긍정적이었다고 덧붙였다. 두번째 응답은 투르쿠 대학 ANC(Academic Nintendo Club)의 회장인 이에로 피칼라(Eero Pihkala)로부터 얻을 수 있었다. ANC는 1980년대의 콘솔부터 e스포츠에 이르는 다양한 레트로 게임 여가활동을 제공하는 단체다. 이러한 유형의 클럽은 - 학술적이든 비학술적이든 - 핀란드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특정한 콘솔이나 컴퓨터에서부터 특정 장르에 이르기까지 그 전문성과 형태에 있어 다양하다. ANC를 대표하는 피칼라는 “핀란드 레트로게임 문화에 있어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서로 상이한 여러 세대들이 - 최신 AAA 게임 시장을 추종하는 대신 - 동등하게 게임을 향유한다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게임문화의 역사를 보존하고 그 역사 내의 다양성의 유산을 찬양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들은 또한 레트로 게임이 “유동적인 개념”이긴 하지만 핀란드인들에게 있어서는 MS-DOS와 PC 기반의 게임 활동이 핵심적이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는 1990년대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대개 일본산) 아케이드 게임의 수집으로 잘 알려져 있는 헬싱키 소재의 아케이드 홀 스고이(Sugoi)의 소유주인 마르쿠스 아우티오(Markus Autio)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핀란드의 레트로게임 문화는 노스탤지어에 관한 것이다. 사람들은 어렸을 때나 청소년기에 접했던 게임을 다시 접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러한 게임이 반드시 직접 플레이했던 것일 필요도 없다. 그저 쇼핑센터의 어두컴컴한 구석에서 보았던 게임에 대해 남은 인상일 뿐이어도 상관 없다. 또는 당시 비디오게임 잡지에서 읽었던 게임일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레트로 게임문화에 있어 핵심은 어떤 식으로든 그 게임에 친근감을 느낌으로써 노스탤지어적인 흥미를 일으키는 것”이다. 동일한 연장선에서 노스탤지어적 아케이드들이 현재 핀란드의 도시 풍경에 되돌아오면서 취미가들을 위한 (종종 사교를 위한) 레트로 게임용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핀란드 레트로 게임문화의 세 가지 특성에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독특한 특성을 추가할 수 있겠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핀란드에서는 PC용 DIY 게임(대개 MS-DOS용 게임) 만들기 붐이 일었는데, 이러한 게임들은 대개 블랙코메디 등 풍자적이고 패러디 같은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게임들은 대체로 비영리적이었고 그 개발자들도 대개 익명으로 남아있다. 그들의 셰어웨어식 유통은 디스크 교환이나 게시판 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그러한 활동들은 핀란드 게임 역사의 작은 부분을 형성하고 있는데, 레트로 게이머들이 그러한 게임들의 플레이를 실시간 방송으로 내보내거나 온라인 비디오를 만들어 소환하고 있다. 이러한 게임 가운데 다수는 의도적으로 도발적이거나 공격적인 콘텐츠를 담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존재를 거부하는 것보다는 그와 같은 레트로 게임 활동을 알리는 것이 그 발생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며, 그것들이 후기의 문화적 발전에 끼친 영향 또한 밝혀줄 수 있을 것이다. Retrogaming in Finland Finland has a long and established history of computer game development, starting from the late 1970s and commercializing in the 1980s. The first esports tournament – which was not called “esport” at the time but “Finnish Computer Game Championships” – was held already in 1983, and gaming quickly evolved into one of the key leisure activities of adolescents by the early 1990s. The Commodore 64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this development, as its popularity in the 1980s and still in the 1990s became synonymous with the Finnish gaming generation as a gateway to other types of digital play and programming. Just as the Asian financial crisis hit Korea in 1997, Finland suffered a deep financial depression between 1990 and 1993, which was soon followed by further interest and investing in computers and high-class (home) technology, especially with the rise of Nokia mobile phones. Unlike in many other countries, home computers became standard household products across the population and people still play mostly at home with their own PCs – perhaps due to the scarce density of the population (Finland has only 5M people but is geographically more than three times larger than Korea). This cultural context has marked the Finnish retrogaming scene with local characteristics, which can be divided into three distinct domains. First, due to the long history of Finnish game making and PC driven play, a relatively large number of the local hobbyists are curious about game history and many people have personal game and computer collections. The geographic nature of Finland supports relatively spacious architecture, thus allowing people to store legacy technologies. This archiving, collecting, and sharing (physical and digital) gaming memories is one of the key aspects of Finnish retrogaming. Second, despite the PC having had a major impact on the history of Finnish computer game development and play, many adolescents of the 1990s and early 2000s had game consoles in their childhood years before moving to use PCs (PC interfaces were never translated to Finnish due to the small population so using one required fluent in English). Almost all international consoles have been released in Finland since the late 1980s and today many adults like to revisit their childhood by retrogaming with the consoles that formed a part of their childhood. Third, due to the increasing boom of home computers (and consoles) in the early 2000s with the Nokia mobile technology boom, the Finnish arcade gaming culture vanished almost entirely. Until the late 1990s, gaming arcades were still a common particle of Finnish cities and entertainment culture, but as people moved to invest (even) more on their home gaming infrastructures, the interest toward arcade games dropped and the business became unprofitable. Today, many people visit arcades as retro game spaces to relive former arcade experiences. Reflecting upon this historical background, retrogaming in Finland ranges from specific consoles to various personal computers across different decades. There are different active retrogaming groups, entrepreneurs and even museums set around retrogaming and hardware. It is not uncommon to stumble upon a news feature about retro gamers or various social media groups embracing or seeking to profit from retro games. Below, we elaborate on this history via three parties from whom we asked one simple question: What is the most distinct feature of Finnish retrogaming? Our first response comes from PhD Niklas Nylund who works for the Finnish Game Museum in the city of Tampere. The Finnish Game Museum is a collaboration between the city of Tampere, Media Museum Rupriikki, game collective Pelikonepeijoonit and the University of Tampere set to represent Finnish gaming culture and how it has developed over the years. The Museum was opened in 2017 and was crowdfunded by Finnish gaming enthusiasts who donated 100,000€ to establish a public archive of game history. It is a meeting place for the past and the present, offering low-threshold participation in gaming culture for both locals and visitors. According to Nylund, the most distinct feature of Finnish retrogaming is its openness, collaboration, and respect for other people in democratic decision making. Finland is a small country, and its conversation culture is open to an extent that high cultural heritage institutions were from the start interested in having a dialogue with retro gamers and learning from them (and vice versa). Nylund adds that experiences have been positive with parties interested in preserving games through projects such as the Finnish game museum and having a shared “round table of game preserving.” Our second response is credited to Eero Pihkala, the president of Academic Nintendo Club (ANC) in Turku University. ANC is a hobby group offering free-time retrogaming activities around old and new games ranging from the 1980s consoles to retro esports. These kinds of clubs, academic and non-academic, are common in Finland and differ in format as well as specialization from specific consoles and computers to genre-based groups. According to Pihkala, representing ANC, “the most distinct feature of Finnish retrogaming is appreciating games equally from all different generations. That’s how we can preserve the history of gaming culture(s) and celebrate the legacy of diversity in it as opposed to chasing the latest trends in the AAA-market.” They also add that retrogaming is a “fluid concept,” but for the Finns the MS-DOS and PC-based gaming activities form its core. Finally, we talked to Markus Autio who is the owner of Sugoi, an arcade hall in Helsinki known for its collection of (primarily Japanese) arcade games from the 1990s to this day. In Autio’s view, “Finnish retrogaming is about nostalgia. People love to revisit games that they knew as kids or teens. And it doesn't even have to be a game they remember playing, but maybe something they just saw in some darkened corner of a mall, having left a lasting impression. Or maybe they read about it in a videogame magazine at the time. The key of this retrogaming is to be familiar with the game in one way or another, which sparks nostalgic interest.” Along these lines, nostalgic arcades are currently making a small comeback to the Finnish cityscapes and provide a space for (often social) retro game sessions for more and less active hobbyists. In addition to the above three domains of retrogaming, one more unique feature can be noted as an endnote. From the 1980s to late 1990s, a wave of DIY-games for the PCs (usually MS-DOS) emerged in Finland, often representing satiric and parodic themes with dark humor. These games were primarily nonprofit, and the designers were standardly left anonymous. Their shareware distribution occurred via traded disks and early bulletin board systems, ultimately forming a small piece of Finnish gaming history that retro gamers summon by playing them in live-streams and creating online videos of them. Many of these games include content that is intentionally provocative or hostile; however, instead of refusing to acknowledge their existence, informed retrogaming activities can help understanding their historical context of emergence and to shed further light on their influences on later cultural developments. Ville Malinen is a PhD Candidate at University of Jyväskylä. His research is focused on the historical development of F1 racing and motor esports. He has written several journalistic articles about gaming in Finnish magazines and newspapers, and is interested in the philosophical issues arising from simulation games. Veli-Matti Karhulahti is Senior Researcher at University of Jyväskylä and holds Adjunct Professorship in University of Turku. His research tackles gaming, play, and technology use in many ways, and he is the author of the book Esport Play: Anticipation, Attachment, and Addiction in Psycholudic Development (Bloomsbury, 202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유베스퀼라대학, 연구자) 벨리 마띠 카훌라티, Veli Matti-Kahulathi 유베스퀼라 대학교의 시니어 연구자이자 투르투 대학(University of Turku)에서 겸임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게임과 플레이, 그리고 테크놀로지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으며 최근 〈Esports Play: Anticipation, Attachment, and Addiction in Psycholudic Development(Bloomsbury, 2020〉 를 저술했다. (Game Researcher) Bora Na I'm a game researcher. I've been playing games for a long time, but I happened to take a game class at Yonsei University's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fter graduation, I sometimes do research or writing activities focusing on game history and culture. I participated in , , and so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