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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든 링: 황금 나무가 솟은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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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3. 2. 10.

조지 R. 마틴을 협업자로 병기한 첫 트레일러가 공개되며 기대를 모았던 〈엘든 링〉은 메타크리틱 97점을 기록하며 출발했다. 2022년 11월 15일을 기준으로 1,700만 장 이상이 판매되며 화제 되었고, 2022년의 최다 GOTY수상작으로 꼽혔다.1)  


〈엘든 링〉이 매끄럽게 GOTY의 궤도에 안착했는지 확언하기는 어려우나, 적어도 GOTY로 꼽은 언론들은 그에 호의적으로 일단락하는 듯하다. 디지털트렌드는 “프롬 소프트웨어의 어려운 게임을 처음 접하는 사람도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하며 탐험할 수 있다”며2), 폴리곤은 “섬세한 게임 디자인이 별도의 첨언 없이도 즐거운 탐험을 경험하게 해준다”고3) 서술한다. 


한편 이러한 코멘트는 〈엘든 링〉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일련의 토론을 환기한다. 이전 작과 매우 흡사한 스타일로 출시된 〈엘든 링〉에게 과연 신작으로서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대표적일 것이다. 조지 R. 마틴이 골격을 짰다는 〈엘든 링〉의 설정은 〈다크 소울〉 시리즈나 〈블러드본〉과 확연히 다르지만, 그러한 작품들의 연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태껏 스튜디오가 쌓아 올린 역량을 총합하여 게임을 제작했다는 디렉터 인터뷰는 이를 솔직하게 드러낸다.4)


조언이나 혈흔과 같은 온라인 플레이 요소부터 시작해, 게임을 규정하는 근본적인 메커닉까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요컨대 “도처에 치명적인 함정을 배치하고 죽으면 여태껏 모은 자원을 잃는다는 페널티를 부과하며, 맵 탐색의 종착지에 보스전을 지정”하는 기획은 “세계를 근본적으로 추동하는 원리의 타락, 등장인물의 유산과 역사” 등의 요소와 맞물리며 특유의 효과를 자아낸다. 〈데몬즈 소울〉에서 유래한 스타일은 ‘소울본’ 게임의 문법을 확정한 것처럼 보인다.5)

 

기존 다크 소울 시리즈는 엄격한 구성을 취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한정된 공간 내에 밀집한 함정을 파훼하며 길을 찾아야 한다는 과제가 플레이어에게 주어진다. 무사히 다음 세이브 지점으로 도달하는 과정에서 숱한 죽음을 겪으며 일종의 모범 답안을 찾아 나가야 하는 셈이다. 맵의 특정한 요소들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조율하며 일정한 질서를 형성한다. 잠긴 문과 같은 장치는 별도의 동선을 요구하며, 위험한 구간을 생략할 수 있게 해주는 숏컷은 맵의 구조를 상기시킨다. 반면에 〈엘든 링〉은 단선적인 길을 우회할 수 있는 선택지를 여러 갈래로 제공한다.



그러나 〈엘든 링〉이 오픈 월드라는 사실은 이전 작과의 차이를 직관적으로 부각한다. 오픈 월드는 열려 있다는 의미의 ‘오픈(open)’과 게임 공간을 의미하는 ‘월드(world)’의 합성어로, 플레이 과정에 있어 고정된 순서가 존재하지 않아 공간 이동에 대한 제한이 없는 게임의 형식을 일컫는 용어다.6)


초반에 배치된 보스인 트리 가드는 이를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일반적으로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에서 보스전을 치르는 때는 맵 탐색을 완수했을 때이다. 보스전을 무사히 클리어하면 세이브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으며, 다음 맵으로 넘어가는 관문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림그레이브 초입에 튀어나온 트리 가드의 존재는 난데없다는 인상을 안긴다. 더불어 트리 가드를 처치하면 획득할 수 있는 아이템인 황금 할버드는 까다로울 만큼 높은 근력 수치를 요구한다. 이제 막 게임을 시작한 플레이어가 실제로 활용하기까지 시차가 발생한다. 따라서 트리 가드 보스전에서 승리의 보상은 서버에 저장되지 않는 플레이어 고유의 경험을 강조하며, 정서 패턴을 구축한다. 설령 보스를 쓰러뜨리지 않더라도 엘레의 교회에서 세이브 포인트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전 작에서 학습한 메커닉과 배치되기도 한다. 


물론 〈엘든 링〉에서 등장하는 모든 보스가 트리 가드처럼 새로운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프롬 소프트웨어는 기존의 문법을 연장하여 보스를 활용한다. 림그레이브에서 호수의 리에니에로 넘어가는 길목에는 접목의 고드릭이 놓여 있고, 도읍 로데일에 들어서려면 최소한 두 명의 데미갓을 제패해야 한다. 동선을 제한하는 조건을 둠으로써 플레이어의 행로를 조절하는 것이다. 이는 플레이어에게 시기에 따라 제한된 정보를 제공하여 광범위한 정보나 상황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유도하는 활성 제약이기도 하다.7) 


그러나 다양한 우회로가 존재하는 한, 이러한 조건은 이전만큼의 당위성을 갖지 못한다. 플레이어는 반드시 고드릭 보스전을 거치지 않더라도 스톰 빌 성벽의 외곽을 통해 호수의 리에니에로 진출할 수 있으며, 아예 림그레이브 남부에서 함정 포탈을 타고서 도읍 로데일로 이동하는 것도 가능하다. NPC들은 우회로의 존재를 넌지시 알려주기도 한다. 이는 단선의 우회라는 방식을 학습하게 하며, 우회로의 존재는 필드가 품은 넓은 역량을 상상하게끔 유도한다. 그 외에도 간편해진 시스템은 그 자체로 풍부한 선택지를 확보한다. 〈엘든 링〉에서는 지도를 통해 축복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으며, 기동성이 뛰어난 영마를 쉽게 소환하고 해제하여 공간을 용이하게 정복한다. 위의 언론들에서 일컫던 ‘다양한 전술’에 기여하는 셈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자유도’라는 표현으로 압축되는, 게이머들이 오픈 월드라는 수사에 기대하는 가치를 고려해보았을 때 〈엘든 링〉이 이를 충족하는지 확언하기는 조금 어렵다. (비록 자유도라는 용어는 명확하게 정의된 바 없이 맥락마다 다른 의미를 갖지만) 놀이는 본질적으로 교란이며, 무언가의 정상적 상태를 교란하기 때문에 자유에 대한 기대는 근본적이다. 마인 크래프트와 같은 샌드박스 형 게임이 아니더라도, 플레이어는 그가 선택한 행위에 관해서 게임이 유의미한 피드백을 되돌려 주기를 원한다. 유원지로서 기대되는 오픈 월드는 다양한 행위를 수행하는 포괄적인 장이다. 그렇게 플레이어가 속한 세계에 대한 이해를 확충하게끔 해준다. 그러나 〈엘든 링〉에서 플레이어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그다지 넓지 않다. 플레이어가 게임에 개입하는 방식이 비/적대로 간소화되기 때문이다. 대면하는 거의 모든 것은 전투 가능한 상태이다. 언제든 죽음으로 정복될 여지를 가진다. 접촉 메커니즘은 적대와 평화를 가르는 한 번의 칼질로 규명된다. 그런 점에서 〈엘든 링〉에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포함해 게임 세계에 놓인 구조물이 단순하다는 지적 역시 유효하다. NPC들은 원자화된 개인의 이합집산에 불과하며, 대사의 자막은 썰렁하기 그지없다. 이는 “실존적 복잡성에서 잠시 피난하여 적절한 행위를 산출하는 행위적 유형을 체득하게 한다”는 티 응우옌의 게임에 관한 정의를 떠올리게 한다.8) 

 

최종 보스전은 〈엘든 링〉의 성격을 함축적으로 구현한다. 라다곤의 육체는 녹아내려 한 자루의 칼로 빚어진다. 뒤이어 등장한 엘데의 짐승은 생명체라기보다 관념에 가까워 보이며, 이를 무엇인가로 확정해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보스전이라는 형태를 통해 플레이어의 이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상호작용하게 된다. 그렇게 플레이어는 때리고 구르고 피하는 일련의 행위로 그를 해석한다. 


세계성을 구축하려는 게임들은 플레이어가 그 스스로 인식하는 범위 이상으로 넓은 세계가 펼쳐져 있다는 인상을 받길 바란다, 〈엘든 링〉의 메커니즘은 그러한 역량을 소거할 위험을 안긴다. 다크 소울 1에서는 게임 플레이의 장과 주변의 플레이 불가능한 공간을 흩뜨리는 방식으로 공간감을 높였다.9) 플레이어는 숏컷을 뚫고, 현재 상호작용 불가능한 문 너머에서 반짝이는 아이템을 보며 공간에 관한 상상을 확장할 수 있다. 그 배후로 늘어진 배경 이미지는 비록 탐험 불가능한 영역일지라도 공간에 대한 경험을 통합해준다. 


대신에 〈엘든 링〉은 풍경을 활용함으로써 플레이어가 탐구할 여백을 확보한다. NME는 〈엘든 링〉을 GOTY로 선정하며 풍경의 매력을 언급한다.10) 확실히 풍경은 섬세한 오브젝트나 아름다운 색채 등을 통해 심미적 경험을 안긴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NME는 스톰 빌 성, 레아 루카리아와 같은 레거시 던전의 전체 윤곽이 포괄되는 시야로 이를 언급하고 있다. 공기원근법은 이전 작에 비해 약화하여 멀리 떨어진 대상을 눈앞으로 가져온다. 그렇게 풍경은 단순히 보고 읽는 배경이 아니라 실제로 플레이어가 횡단하며 상호작용하는 주된 장이라는 점에서 각별하게 다가오며, 경험을 정교하게 부연하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11)


〈엘든 링〉에서 튜토리얼을 마치면 어두운 지하에서 승강기를 타고 올라와 림그레이브에 들어서게 된다. 위로 상승하는 동선은 널찍이 펼쳐진 바깥의 필드 중앙에 우뚝 선 황금 나무와 일치한다. 찬란하게 빛나는 나무는 틈새의 땅에서 살아가는 한갓 미물과 대비를 이룬다. 나무 아래 나열된 신수탑은 한눈에 포착된다. 주요 보스를 격파하고 방문하는 장소인 신수탑은 앞으로 진행할 여정을 집약적으로 제시한다. 그렇게 풍경은 플레이어가 사건을 겪고 맥락을 형성하게 될, 의미로 가득 찬 공간이 된다. 


한편 필드에 늘어선 폐허는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며 플레이어의 경험을 입체적으로 부연한다. H. 루에젠과 푹스는 폐허의 재현이라는 관점에서 언리얼 엔진 5 공개 영상을 독해한다. 그에 따르면 포토리얼리즘의 사실적 구현이 몰두하는 주요한 부분은 어떻게 더 사실적으로 몰락과 폐허를 그려낼 것인가의 문제다.12)


폐허는 과거에 존재했던 거대한 무언가의 일부면서 동시에 그 단절을 드러낸다. 유적석이나 신전석과 같은 재료는 한때 거기에 파편이 아닌 총체가 남아 있음을 주지시킨다. 설령 소멸이나 죽음이라 할지라도.13) 이 때 게임이 플레이어의 내면에 불러일으키는 감상은 경외심과 공포를 함께 아우르는 낭만주의적 정서인 숭고와 닮았다. 지각과 감성의 한계를 넘어선 것을 표상하면서 숭고는 생겨난다. 벨라는 게임에서 “닫힌 가능성의 광대한 공간을 드러냄으로써” 유희적 숭고가 작동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14)

 

이는 로어에서도 유사하게 발견 가능하다. 아이템 로어는 플레이어에게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황금시대를 부분적으로 상상하게 한다. 〈엘든 링〉에서는 몹이나 지역에 관한 이해를 도와줄 별도의 코덱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도감이나 백과사전 따위를 기대하기 어렵다. 대상과 관련한 이야깃거리는 장비 아이템의 설명란에 짤막하게 붙어 있을 따름이다. 수많은 아이템에 산개된 정보를 일일이 재조합해야 한다. NPC의 대사나 비석과 같이 특정한 국면에서 상호작용 가능한 정보는 플레이어가 별도로 스크린샷을 찍어두어야만 저장할 수 있다. 불친절한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사실상 정보의 폐허이기도 하다.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 특유의 불분명한 스토리텔링은 그러한 로어를 짜 맞춰 ‘프롬뇌’를 굴리며 이야기를 추론하는 집단적 움직임을 활성화했다. 부재하려는 것을 되살리려는 고고학적 시도인 셈이다. 고고학자 빌 팔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Archaeology Tube가 Video Game Archaeology 카테고리를 통해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을 그러한 시선으로 다루는 게 대표적이다.15) 



수직 요소를 적극적으로 가시화하는 〈엘든 링〉은 미스터리의 탐구를 종용하는 듯하다. 게임에서는 지도 후면을 통해 지하를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지상의 이미지가 겹치며 선명하게 드러나는 지저는 그 자체로 비밀을 품은 땅이다. 추레한 몰골의 고드윈이나 드넓게 펼쳐진 붉은 부패의 늪은 미스터리의 탐구를 흥미롭게 만든다. 이처럼 〈엘든 링〉은 가지 않은 장소에 대한 환상을 유지함으로써 유지되는 플레이 동기를 지속한다. 그 세계는 적대의 원리에 의해 고독하고 적의에 차 있으나 동시에 그 특유의 부동성으로 기억과 경험을 수용해준다. 


게임을 하다 보면 어떤 순간에 도달한다. 완성한 지도에서 더 이상 가지 않은 장소는 없으며, 무한한 탐험을 약속하던 세계는 더 이상 광야가 아니다. 그때 〈엘든 링〉은 그림 같은 정원에 가까워진다. 자연물과 폐허를 포함한 정원은 “열정적인 기억, 회한, 달콤한 멜랑콜리를 더 잘 자극할 목적으로 새로이 부재를 만들어낸다.”16) 설령 엔딩이 일종의 종말을 선언한 이후에도, 플레이어들은 불완전한 총체성을 해소할 길 없이 꿈꾸며 정원을 헤맨다. 



1) Statistia, “Lifetime unit sales generated by Elden Ring worldwide as of November 2022”, https://www.statista.com/statistics/1300663/elden-ring-sales-worldwide/
2) Mike Mahardy and Polygon Staff, “The 50 best video games of 2022”, 2022.12.06., https://www.polygon.com/what-to-play/22956981/best-games-2022-list
3) Giovanni Colantonio and Tomas Franzese, “The 10 best video games of 2022”, 2022.12.05., https://www.digitaltrends.com/gaming/best-video-games-2022-top-10/
4) “Elden Ring is based on a culmination of everything we've done with the Dark Souls series and with our games thus far.” Will Nelson, “‘Elden Ring’ is the “culmination” of FromSoftware’s games says Miyazaki“, 2021.12.30., https://www.gamesradar.com/elden-ring-fromsoftware-hidetaka-miyazaki-interview/ 참고.
5) Florence Smith Nicholas and Michael Cook, The Dark Souls of Archaeology: Recording Elden Ring. 2022. In Proceedings of the 17th International Conference on the Foundations of Digital Games. 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 1p. 
6) 김정선, 오픈월드 게임의 레벨디자인 및 시스템 요소 연구 : ‘젤다의 전설 : 야생의 숨결’을 중심으로, 2019 한국게임학회 추계학술발표대회, 2019, vol.20(3), 300쪽. 
7) 윗글, 301쪽. 
8) C. 티 응우옌, 게임: 행위성의 예술, 이동휘 역, 서울: 워크룸프레스, (2022), 86쪽.  
9) Daniel Vella, No mastery without mystery: Dark Souls and the ludic sublime, Game Studies, 2015. vol.15(1).  
10) “Best Bit: The way Elden Ring uses stunning vistas to show your objectives: Stormveil looming over Limgrave, the reveal of Liurnia and Raya Lucaria afterwards, the descent to Siofra River, the dragon in Leyndell…”, NME, “The 20 best games of 2022”, 2022.12.06., https://www.nme.com/features/gaming-features/the-20-best-games-of-2022-3360445 
11) Paul Martin, The pastoral and the sublime in Elder Scrolls IV: Oblivion, Game Studies, 2011, vol.11(3). 
12) Eduardo H Luersen, Mathias Fuchs, Ruins of Excess: Computer Games Images and the Rendering of Technological Obsolescence, Games and Culture, 2021. vol. 16(8), 1091p. 
13)  장 스타로뱅스키, 자유의 발명/이성의 상징, 이충훈 역, 파주: 문학동네, (2018) 202쪽.
14) Daniel Vella, No mastery without mystery: Dark Souls and the ludic sublime, Game Studies, 2015. vol.15(1) 
15) Archaeology Tube, An Archaeologist Plays Elden Ring (FIRST IMPRESSIONS), 2022.02.27., https://www.youtube.com/watch?v=Imtkh8B3U2Q
16). 장 스타로뱅스키, 2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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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소개 :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데스티니2를 오래 즐겨왔고, 다음 작인 마라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익숙한 게임이 주는 재미와 낯선 경험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보려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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