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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안세계를 향한 미래고고학: 반문화의 문제계로서 〈사이버펑크2077〉

    〈2077〉은 한계와 단점이 뚜렷한 게임이다. 수많은 구매자들이 비난했듯이 이 게임은 수 년간 홍보해온 수많은 시스템과 기능들을 대부분 폐기처분 했으며, 짜임새 있는 트리형 서사구조 구축에는 성공했지만 플레이어의 자유라는 측면에서는 실패했다. < Back 대안세계를 향한 미래고고학: 반문화의 문제계로서 〈사이버펑크2077〉 04 GG Vol. 22. 2. 10. 1. 미래는 널리 ‘분배’되지 않았다 사이버펑크의 효시가 되는 소설 『뉴로맨서』의 저자인 윌리엄 깁슨은 이렇게 적었다. “The future is already here – It’s just not evenly distributed.” 새로운 전자기기, 혁명적인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등장할 때마다 수많은 IT기업가들과 평론가들, 테크노크라트들이 이 문구를 인용해 왔다. 기술혁신이 사회를 이끌고, 정체된 삶을 질적으로 향상시킬 것이라는 산업적 낙관주의에 기인한 인용들이다. 이들의 발언에는 두 가지의 의미심장한 암시가 내포되어 있다. 하나는 기술의 진보를 사회의 진보와 동일시하는 기술결정론적 믿음이고, 다른 하나는 이러한 흐름을 선도하는 하이테크 전문가집단과, 신산업을 소비하는 대중들을 분리하려는 엘리트주의적 관점이다. 우리 엘리트들이 열심히 개발하고 제도화할테니, 무지몽매한 당신들은 초개처럼 동참하기나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마법과 구분되지 않는 새 기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해마다 스마트폰을 바꾸고 있지만 이를 직접 분해해 들여다 본 사람은 거의 없다. 알파고가 도대체 어떻게 인간을 이겼는지 자세히 이해하는 사람도 거의 없으며, 유튜브와 피드에서 엄청난 콘텐츠 소비를 하고 있지만 그것들이 왜 내 앞에 추천되는지 의구심을 품는 사람도 별로 없다. 얼리어댑션과 진보의 상징인 아이폰이 계획적 노후화의 산물이라는 사실이 공유되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우리는 깁슨의 계시록적 문구를 “미래는 이미 여기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있지 않을 뿐이다.” 라고 섣불리 해석한다. 그러나 깁슨이 왜 ‘spread’ 가 아닌 ‘distribute’라는 단어를 선택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그가 실제 전달하고 싶었던 뉘앙스는 “미래가 이렇게 널리 퍼져있는데도, 적절히 사람들에게 분배되지 않았다.” 였을 것이다. 신기술은 역사적으로도 사회적 부의 불평등과 그에 따른 불만을 조절하는 장치로 기능해 왔다. 증기기관과 전기·화학 및 소재공학이 눈부시게 발전하던 19세기, 서구 사회는 전에 없던 엄청난 생산력을 획득했지만 절대 다수의 노동인구는 최악의 빈곤에 시달렸다. 카를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당시 실태를 조사한 문헌을 인용하면서(특히 1850년대의 정부 보고서들) 산업도시 노동자들의 평균 수명(20세보다도 짧았다!)과 영양상태가 선사시대 수렵·채집을 하던 인류보다 나빴다고 기록했을 정도다. 괜히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찰스 디킨스가 『위대한 유산』같은 책을 쓴 게 아니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표현했다. “최신 기술은 우리를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조야한 공구로 노동하는 야만인들보다 더 오래 노동하도록 강요한다. 그것은 가진 자들에게는 궁전을, 빈자들에게는 움막을 생산한다.” 2. 사이버펑크라는 반문화적 문제계 따라서 사이버네틱스 제어혁명이 일어난 당시, 선구적인 컴퓨터기술자들과 시민운동가들은 신기술에 대한 엄청난 우려와 낭만주의의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헤게모니를 선점하기 위한 행동주의를 선포했다. 이들의 논리는 간단했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개발하는데 천문학적인 국민 세금이 들어갔는데, 왜 소수의 거대기업들이 그 권리를 독점하는가?’였다. 실제로 그러했다. 그저 그런 타자기나 생산하던 IBM, 뜨내기 대학생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가 벼락부자가 된 것은 정부에서 주어진 특혜와 넘쳐나는 세금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자아내는 새로운 세계를 자본주의의 공간이 아닌, 자유로운 시민들의 공통계(commons)로 만들기 위해서는 신기술들을 널리 ‘분배’할 필요가 있었다. 기업과 국방성이 독점한 컴퓨터·인터넷을 만인이 조건 없이 향유할 수 있도록 공공재화 하는 것이다. 월드와이드웹(WWW)이라는 공통의 네트워크는 이러한 이념 속에서 자유와 평등을 확장시키는 정신적 통로들인 간-네트워크(inter-network), 인터넷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급진적인 정보기술 사상가인 존 페리 발로우는 1996년, 미국 독립선언문의 공리주의이념을 월드와이드웹에 적용한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문」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는 인종, 경제, 군사, 지역에 따른 특권과 편견 없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있다. 침묵과 동조를 강요당하지 않으면서 누구나 어디에서나 자신의 믿음을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세상. 현실의 재산, 표현, 정체성, 운동, 맥락에 관한 법적인 개념들은 우리에게 적용되어선 안 된다. 그것들은 물질에 기반하지만 사이버스페이스에는 물질이 없다. 사이버스페이스는 휴머니티의 모든 감정과 표현이 연속적인 전체의 부분이며 비트의 전 지구적인 대화이다…우리는 사이버스페이스에 마음의 문명을 건설할 것이다. 그것은 너희 정부가 이전에 만든 것보다 더 인간적이고 공정한 세상이 될 것이다.” - 존 페리 발로우,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문」(1996) 사이버스페이스를 여전히 형이상학적인 공간으로 상상하던 시기, 깁슨과 발로우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이 대안적인 세계가 평등과 해방의 공동체로 건설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들의 기대처럼 초기 사이버스페이스에는 환대와 존중이 공통윤리로 자리 잡았고, 다양한 민주주의 실험과 참여가 꽃피우는 영토로 거듭났다. 개인홈페이지와 정보공유가 미덕이던 초창기 PC통신과 웹 1.0 시대는 실제로 그랬다. 누구나 익명 게시판에서 애정이 듬뿍 담긴 글과 답변을 주고받고, 선망하는 마음으로 채팅방에서 타인을 기다리며 서로 연결되는 순간을 꿈꾸던 그런 때가 있었다. 비록 오늘날 인터넷은 분노와 언설, 비아냥과 혐오로 점철되어 있긴 하지만 말이다. 핵티비스트와 진보주의자들은 ‘물질이 아닌, 정신만이 존재하는’ 이 신세계에 새로운 문화를 건설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기존의 사회관계들(인종, 젠더, 지역, 세대 등)에 기반한 구 문화는 이곳에 들어와서는 안 되었다. 따라서 사이버스페이스라는 광대한 성간을 채워 넣기 시작한 것은 지배질서 문화가 아닌 반문화(counter culture)였다. 배타적 소유와 일방적 상품 생산-소비문화가 아니라 공유와 연대의 문화를 창조할 당위가 요청됐다. 가부장제, 자본주의 임금노동, 인종주의로부터 인류의 정신을 해방하고자 하는 반문화. 선택된 시민들만의 교양에 반대하는 재즈와 록음악, 폭력과 억압에 저항하는 힙합·레게, 부르주아의 패션을 비웃는 노동계급의 데님패션, 인간의 내면과 감정을 어루만지는 뉴에이지와 히피이즘 등이 그것이다.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서구의 합리주의가 초래한 결과가 무엇이었는가? 제국주의 전쟁과 범국가적 폭력, 홀로코스트, 주기마다 반복되는 경제대공황, 빈곤, 항구적 실업이었다. 사람들은 더 나은 세계를 향한 반문화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사이버-펑크’는 이와 같은 테크노 진보주의와 반문화 시대정신이라는 두 역사적 실타래가 엮이면서 등장한 문제계라 할 수 있다. 야심차게 장르명을 제목으로 차용한 〈사이버펑크 2077〉은 깁슨의 『뉴로맨서』를 필두로 해서 닐 스티븐슨의 『스노크래시』, 브루스 스털링의 『스키즈 매트릭스』, 영화 〈블레이드러너〉와 〈트론〉, 〈매트릭스〉,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와 〈아키라〉가 수놓은 사이버펑크의 별자리들을 하나의 은하계로 집대성한 게임이다. 〈2077〉은 그간 우리가 목겨해온 사이버펑크의 디스토피아적 살풍경과 반문화적 열광에 대한 모든 노스탤지어가 망라되어 있다. 〈2077〉은 크게 세 가지의 문제적 시공간을 내포하고 있는데, 여기에 어떤 유포리즘의 상상력이 결부되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3.1. 오딧세이적 활극의 간-경계 시공간 〈2077〉은 세 가지의 시작점으로부터 출발한다. 스트릿 키드, 노마드, 기업하수인이 그것이다. 이 배경 설정은 찰스 디킨스를 비롯한 19세기 대중소설에 자주 등장했던 거리 부랑아의 SF적 재매개화라는 문제를 던진다. 거리를 비참하게 떠도는 부랑아가 자신의 특별한 능력(해킹)을 무기삼아, 뒷골목 정보거래와 갱들과의 경쟁에서 성장해온 인물군상이다. 크게 한탕 해서 성공을 꿈꾸는 얼치기 현상금사냥꾼이 거대 기술기업-권력의 음모와 연루되어 고난을 맞이하는 구도다. 이는 『뉴로맨서』 이후 사이버펑크가 하나의 장르문법으로 구축해 온 서사에 조응한다. 『뉴로맨서』의 주인공 케이스와 몰리가 거의 동일한 설정으로부터 출발하고, 이 설정은 〈공각기동대〉의 모토코와 바토로 차용되었으며, 『스노크래시』에서는 히로와 와이티라는 인물로 반복해서 나타난다. 일본도를 쓰는 한국계 피자배달부인 히로와 스케이트 배달부인 와이티는 메타버스(사이버스페이스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지만 요즘엔 PVE나 NFT로 돈벼락을 맞을 수 있다며 온갖 사기가 판치는 그 메타버스가 맞다)에서는 잘 나가는 해커로, 유행하는 사이버 약물 ‘스노크래시’를 추적하는 의뢰를 맡고 그 과정에서 해커 갱단-거대기업의 권력 암투에 휘말리게 된다. 『뉴로맨서』의 주인공 케이스는 한때 이름을 날렸던 사이버스페이스 카우보이(해커)였지만, 의뢰인의 정보를 빼돌린 댓가로 독극물 주사를 맞아 몰락한 인물이다. 케이스는 수수께끼의 인물 아미티지로부터 거대 다국적 기업이 운영하는 ‘센스/넷’에 침투해 전설적인 카우보이의 영혼이 복제된 데이터 ROM을 빼내면 대가로 신경복원술을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받게 되고, 미녀 카우보이 ‘몰리’와 함께 침투극에 발을 내딛는다. ROM은 카우보이의 침입을 차단하는 방벽 ‘아이스’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블랙아이스’에 침투했다가 죽음을 당한 전설적인 카우보이 ‘딕시-플래트론’의 인격이 담겨진 데이터 집합체이다. 〈2077〉의 현상금사냥꾼 주인공 V와 사고로 그의 인격에 빙의되는 전설의 현상금사냥꾼 조니 실버핸드, 그리고 픽서의 영혼을 가두는 사이버감옥 ‘미코시’와 ‘소울킬러’ 흑막인 거대 군벌기업 아라사카는 사이버펑크의 문법을 고스란히 계승하며 오딧세이적 활극을 연출한다. 그렇다면 왜 ‘활극’인가? 활극은 탈영토적이고, 대안적인 상상으로 재구축된 시공간에서 펼쳐지는 모험담이다. 물리적 현실의 제약이나 관습에 구애받지 않고, 국경과 민족을 넘나들며 초월적인 모험을 펼치는 시공간으로서 활극은 하나의 공통계이다. 활극은 기존의 법이나 사회계약이 작동하지 않고, 자유를 추종하는 사람들의 정의와 공동선이 우선시되는 장소다. 무협의 ‘강호’, 웨스턴의 ‘황야’, 스페이스오페라의 ‘우주’는 이러한 활극 공간의 무정부성과 자유를 펼치는 무대다. 국경과 민족, 인종과 성별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활극에는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예컨대 웨스턴의 문법은 다양한 지리적 맥락에 따라 새로 번역되고 재조립된다. 한국의 만주웨스턴은 〈쇠사슬을 끊어라〉(1971),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2008) 등에서 보듯이 ‘황야’를 미국 서부가 아닌 만주로 옮겨놓는다(마찬가지로 커리웨스턴, 스파게티웨스턴, 스시웨스턴 등 각 지역마다 웨스턴을 차용한다). 김용의 무협소설에서 강조되는 ‘강호’에는 한족, 몽골족, 거란족, 여진족, 한민족까지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넘나드는 공간으로 그려진다. 〈스타트렉〉과 〈스타워즈〉의 우주는 인간과 다양한 외계인 종족들이 만나고 협상하는 광활한 공통 공간으로서, 문화다양성이 자리잡은 대안세계에 대한 상상적 메타포가 도입된다. 요컨대 해안선과 산맥을 넘어 비물질의 신대륙을 건설한 사이버스페이스를 재현하는 문제로서 활극만큼 적절한 형식은 없을 것이다. 사이버펑크의 디스토피아적 도시공간에서 벌어지는 활극은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문』의 이념을 역설적으로 재현하는 안티테제적 서사다. 〈2077〉의 나이트시티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모험담은 사이버펑크의 활극을 고스란히 전유하는 동시에, 점점 악화되고 있는 자유와 기술 기축사회의 빅브라더적인 성격을 드러내는 훌륭한 장치로 작동한다. 3.2. Turn on, Tune in, Drop out! 사이키델릭의 반자본주의적 시공간 〈2077〉이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은 화려했던 사이버펑크의 반문화 흔적들이 사려 깊게 재현된다는 데에 있다. 선글라스와 가죽패션, 할리데이비슨과 메탈음악, 모히칸머리와 LSD, 프리섹스, 유체이탈과 화끈한 총격전, 일본도를 쓰는 테크노-사무라이, 말끝마다 은어와 욕설을 붙이는 쿨한 길거리 언어, 사랑 한 큰 술까지… 조니 씨발핸드와 나이트시티는 사이버펑크의 모든 문법들이 통하는 교과서 자체다. 일본도를 등에 맨 채, 마음에 맞는 라디오채널을 골라 들으며 유유자적 바이크를 타고 도시를 질주하는 경험은 다른 어떤 사이버펑크들보다 유의미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특히 ‘브레인댄스’ 라는 게임 속 영상기록매체(사실상 『멋진 신세계』의 촉감영화의 오마주인)에 들어가 재현을 만지고 조작하는 경험은 디지털 게임만의 고유한 매체성인 능동적 탐색과 조형행위를 십분 활용한 연출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제작사가 거창하게 광고했던 것과는 달리 한정적인 시퀀스에서만 플레이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브레인댄스, 블랙월(현상금사냥꾼들을 막는 사이버 방벽) 너머의 초월적 이계에 대한 갈망이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은 무엇인가? 〈2077〉은 여타의 사이버펑크가 그러하듯 이 대안적 시공간을 충실히 재현한다. 〈공각기동대〉의 네트와 2501, 〈매트릭스〉의 매트릭스와 요원이 그렇듯 〈2077〉 또한 물질/관념, 육체/정신이 탈주하는 이데아로서 ‘사이버스페이스’를 묘사한다. 여기에서는 현실의 어떤 물리적 및 사회적 제약도 한계로 작용하지 않는다. 신체는 죽었지만 영혼이 살아남아 사이버스페이스의 지성체가 된 넷러너 알트 커닝햄은 대표적인 알레고리다. 니체는 육체가 정신의 감옥이라고 했지만, 사이버스페이스에서는 정신이 육체를 초월하는 대탈주가 가능해진다. 1966년, 히피들의 성자이자 반문화의 선구자였던 티모시 리어리는 “전원을 켜고, 조율하고, 이탈하라!(turn on, tune in, drop out!)”라고 선동했다. 서구사회 전역에서 발발한 68혁명을 기점으로, 시민사회는 수세기간 이어진 합리적 이성 중심 세계관에 신물이 난 터였다. 그 산물인 자본주의 시스템은 계속된 경제공황과 양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로 파산을 선고받았다. 반대편 진영의 소련과 중국도 전체주의 감시국가로 변모하던 중이었다. 전 지구적 노동착취와 식민지 수탈, 감시국가, 전쟁에 사람들은 더 이상 동의하지 않았으며, 이지적이고 무능한 인간을 양산하는 시스템을 혁파하길 열망했다. 이 열망을 동력삼아 다양한 운동들이 전개되었다. 여성해방, 생태주의, 탈성장, 노동거부, 마을공동체, DIY, 프리섹스 등이 주요 골자였는데 이는 앙시앙 레짐(구 체계)의 사고방식과 전부 단절해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즉 냉철한 이성을 통해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감성을 해방시켜 물질의 굴레로부터 이탈하는 영성혁명이 새 방법으로 대두된 것이다. 서구 사람들이 요가를 배우고 인도와 중국, 터키에서 내면을 발견하는 여행을 하는 것도 이 시기부터다(한국은 90-2000년대). 아메리카 선주민들의 전통 직물을 입고, 밥 말리의 드레드헤어를 백인들도 따라한다. 이른바 ‘정신줄을 놓은 채 몽상과 꿈의 원천의식을 좆는’ 사이키델릭은 리어리를 위시한 당대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이 그랬듯이, LSD나 마리화나의 환각을 통해 더욱 이상적으로 형상화될 수 있다고 여겨졌다. 반문화를 추종하던 청년들과 이상주의자들은 거리가 아닌 내면으로부터 혁명이 시작된다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주 52시간 노동, 보편적 복지, 차별금지법, 지속가능경제 등은 이 시대 영성혁명의 맹아에서 발아할 수 있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당연히 자본주의 사회의 공고한 노동윤리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근면성실하게 노동하는 프로테스탄트 자본주의 정신, 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아낌없이 쓰는 소비사회의 레짐은 이들 반문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정부는 즉각 법을 입안시켜 LSD와 환각제를 불법으로 규제하고(한국에서 마약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도 이 시기이다), 미디어는 내면을 좆는 사람들을 게으르고 무능하면서 사회 탓만 하는 싸이코들, 성스러운 노동을 거부하는 이교도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반문화의 옹호자들은 이런 사회적 낙인을 비웃고 뒤틀었다. 이들은 구체제가 경멸적으로 표현하는 그 ‘펑크’가 되길 스스로 택했다. 외모를 괴이하게 꾸미고, 메탈 밴드를 결성하고, 사회구조의 모순을 고발하는 가사를 욕설처럼 내뱉으며, 튜닝한 오토바이로 도로를 질주하는 폭주족되기를 스스로 자청한 것이다. 사이버펑크는 반체제적 사이키델릭의 이념적 파편들이 장르의 문법 속에서 재결정화된 문장들인 동시에, 노동을 둘러싼 헤게모니 투쟁이 ‘힙하게’ 재현되는 대중문화 장소이기도 하다. 메탈 밴드 ‘사무라이’를 이끌며 군벌 기업들의 폭정을 비판하던 조니 실버핸드가 아라사카로 쳐들어가 화끈한 파장을 일으키고, V에 탑승해 반문화의 환등도시 나이트시티를 거니는 플레이경험에는 이러한 역사적 긴장들이 아로새겨져 있다. 나이트시티는 사이키델릭의 어둡지만 섹시한, 좌절된 이상향들이 펼쳐지는 그런 시공간이다. 3.3. Becoming with: 기술적 탈신체화의 시공간 자유로운 외형 커스터마이징과 신체개조 시스템, 등장인물들의 개성 넘치는 기계신체 구현들은 〈2077〉의 탈신체화된 마음이라는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플레이어는 남성/여성의 외형과 성기를 교차 선택해서 캐릭터를 창조할 수 있다. 젠더와 신체의 횡단을 시스템에서 구현한 것도 재미있지만, 이에 따라 달라지는 서사 상호작용 및 게임이 진행됨에 따라 크게 네 명의 인물들과 연애를 할 수 있는 분기들도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다. 플레이어가 남성인 경우 게이 인 ‘캐리’와 여성 조력자 ‘팬앰’과 로맨스를 진행시킬 수 있으며, 여성인 경우 히스패닉 레즈비언인 ‘주디’와 남성 마초 ‘리버’와 연애를 선택할 수 있다. 남/녀라는 생물학적 성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경로들을 플레이어가 만들어갈 수 있으며, ‘탈 신체화’의 기술적 마법을 조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부분은 개발자들의 선견지명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데,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강박때문에 억지로 끼워 넣은 설정이 아니라 사이버펑크 세계관을 다각적으로 이해했다는 징표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물질계의 질서가 해체되는 사이버펑크에서 신체는 더 이상 제약으로 작동하지 않으며 무엇인가 될 수 있는 ‘becoming with ~’의 계기가 된다. 물질과 신체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리퍼닥(사이보그 외과의)에게 인공 인지기관과 신체부위를 시술받으니, 더 이상 신체의 물리적 강도나 유전된 외형이라는 선험성이 무의미해진다. 사회적으로 구성된 자아인 마음의 신체 또한 변화한다. 사이버펑크에서는 여성을 얕잡아본다거나 인종에 편견을 가지는 것이 오히려 더 문제적이다. 메레디스, 레지나, 로그, 다코타 스미스 같이 카리스마 넘치고 위험한 기계신체 여성들이 즐비한 나이트시티에서 그/녀 누구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반면 미스티나 마마 웰즈, 이블린 같은 전통적인 성향의 여성들도 존재한다. 교조주의적 정체성 정치를 우회해 탈신체화된 판타지를 적절한 균형 속에서 실현하고 있기에, 〈2077〉은 사이버펑크의 장르적 유연성을 잘 전유했다 볼 수 있다. 포스트휴먼 철학자인 도나 해러웨이는 1985년 『사이보그 선언문』에서 “여신이 되기보다는 사이보그가 되겠다.” 라고 선언했다. 이 시대의 다른 사람들처럼 해러웨이 또한 사이버네틱스 과학기술이 인간 정신의 진보와 공진화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사이보그’는 신체의 한계에서 탈코드화되는 상생의 미래에 대한 고고학적 은유다. 해러웨이에 따르면 외형과 물리적 차이, 성역할에 따른 사회권력의 관계망은 유사성의 원리로부터 기인한다. 근대의 자연과학과 생물학은 외형과 진화의 유사 정도에 따라 세세한 분류학을 만들어냈다. 개과, 고양이과, 파충류, 포유류 등의 분류는 유사성과 더불어 차이 또한 만들어낸다. 백인과는 다른 흑인, 남성과는 다른 여성, 아리아인과는 다른 하류인종, 유럽인과는 다른 아시아인, 위대한 한족과 야마토민족과 구분되는 야만족 등… 이분법에 기반해서 사회적 권력(너를 차별할 수 있는 나)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 권력은 차이와 호혜를 허용하지 않는다. 고래·고양이와 협력하는 인간, 아시아인과 흑인 친구, 서로 협조하는 LGBT와 이성애자들, 서로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남성과 여성 등. 주어진 신체의 날인으로부터 벗어나는 ‘탈 신체화’의 순간에야 차이를 넘어서서 ‘다른 누군가가 되어 함께하는 경험, 즉 더불어 되기(becoming with)’을 상상을 하게 된다. 자본주의의 병폐와 파괴된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개별의 상상을 연결하는 강력한 은유(사이보그)가 필요하다. 사이보그가 된다는 것, ‘사이버 펑크’의 탈 신체적 사회공간을 상상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다름’을 넘어서 연대하는 경험이다. 인간, 개, 고양이 뿐 아니라 바이러스, 인공지능, 퇴비, 곤충, 유전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객체들과 반려종이 될 준비가 되어야 우리는 진정으로 평등과 자유로 나아갈 수 있을 테다. 기술은 미래에 그것을 가능할 수 있게 만들지도 모른다.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사이보그들이 활극을 펼치는 무정부적 시공간, 사이버펑크는 그렇게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한 고고학적 발굴 현장이 된다. 4. 극단의 시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고고학 〈2077〉은 한계와 단점이 뚜렷한 게임이다. 수많은 구매자들이 비난했듯이 이 게임은 수 년간 홍보해온 수많은 시스템과 기능들을 대부분 폐기처분 했으며, 짜임새 있는 트리형 서사구조 구축에는 성공했지만 플레이어의 자유라는 측면에서는 실패했다. 상호작용할 수 있는 NPC는 몇 안되고, 엄청난 고층 빌딩들이 늘어서 있지만 들어가 볼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이처럼 물리적 자유의 공간이 협소하다 보니 사이버펑크의 팬이 아니라면 메인서사 진행과 큰 상관관계가 없는 대부분의 사이드퀘스트들이 지루하게 느껴질 것이다. 수많은 어처구니 없는 버그는 화룡점정을 찍으며, 갑자기 영향력을 잃는 캐릭터들(대체 메레디스는 V를 불러내 질펀하게 즐긴 다음 어디로 사라진 걸까?), 서사 진행을 위해 소모되는 팩션(부두보이즈는 블랙월에 들어가기 위한 과정에 불과한가?) 등 미숙한 게이밍 설계들도 눈에 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77〉은 사이버펑크 장르를 여러 방면에서 집대성한 정점으로 추켜세우기 아까움이 없는 작품이다. 사이버펑크가 제기하는 반문화, 탈신체화, 초월이라는 문제들을 체계적으로 쌓아올린 점, 그리고 각 주제들이 조화롭게 플레이어의 조형행위들과 조응한다는 점이 그러하다. 특히 오늘날처럼 극단적인 분열과 적대가 판치는 하수상한 시대, 철로에서 이탈하지 않고 새롭게 ‘사이버스페이스’라는 뉴 클래식의 정류장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사이버스페이스와 사이보그 그 이후는 무엇이 도래할까? 인간 사회의 진보와 자유를 꿈꿨던 초창기 사이버펑크의 기획은 오늘날 종언을 고하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인터넷을 대안적인 공간이라거나 새로운 민주주의 실천의 장이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그것은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지, ‘사이버 공간’의 해프닝이 아니게 되었다. 인터넷은 더 이상 공통계(commons)도 아니다. 카피레프트도, 자유소프트웨어 운동도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이들의 빈 자리를 꿰찬 것은 거대 플랫폼 기업들이다. 콘텐츠 생산과 유통을 독점하고, 전지구에서 납세를 회피하며, 고용은 거의 하지 않는 다국적 IT 자본들. 어떻게 보면 〈2077〉과 같은 사이버펑크가 다시 귀환하는 것이 필연적인 일일지도 모르겠다. 〈2077〉의 멀티 엔딩 중 하나인 ‘악마’ 엔딩에는 거대기업 ‘아라사카에 완전히 항복하기’라는 선택지가 나온다. 말 그대로 그토록 죽어라 싸웠던 군벌독재 기업 아라사카에 백기투항하고, 생존을 위해 정신을 디지털 감옥인 미코시로 전송해 영원한 사이버 유령이 되어버리는 결말이다. 지금 여기, 우리는 어떻게 그때처럼 다시금 반문화를 일으키고 자유를 꿈꿀 수 있을 것인가. 다만 그 발자국들이 만들어낸 길들을 따라 가다보면 어느 순간 샛길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2077〉이 제시한 사이버펑크라는 문제계는, 오래된 스토리텔링과 미래지향적 매체기술을 버무려 메타버스와 인공지능이 도래할 우리의 미래에 다시금 묵시록적 개연성을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디지털 문화연구/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신현우 문화연구자, 문화평론가이며 기술비판이론과 미디어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다. 게이밍, 인공지능, 플랫폼, 블록체인을 둘러싼 문화현상을 연구하며 서울과기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한다.

  • 현황점검: 플랫폼 인앱결제의 오늘

    카메라 앞에 선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청바지 주머니에서 아이폰을 꺼내든 것이 2007년의 일이다. 사람들 주머니에 통화도 되고, MP3 플레이어도 되고, 동영상 재생기도 되는 스마트폰이 담기기까지 채 10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유저들은 ‘그 작은 기계로 무슨 게임이냐’라는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즐기고 있다. < Back 현황점검: 플랫폼 인앱결제의 오늘 04 GG Vol. 22. 2. 10. 카메라 앞에 선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청바지 주머니에서 아이폰을 꺼내든 것이 2007년의 일이다. 사람들 주머니에 통화도 되고, MP3 플레이어도 되고, 동영상 재생기도 되는 스마트폰이 담기기까지 채 10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유저들은 ‘그 작은 기계로 무슨 게임이냐’라는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즐기고 있다. 과일을 썰고(프루트 닌자), 새를 날리는(앵그리 버드) ‘스내커블’한 게임을 넘어서 스마트폰에는 수백 명 이상의 유저들이 모여 공성전을 펼치는 MMORPG와 <원신> 같은 3D 오픈월드 액션 어드벤처까지 플레이되고 있다. (물론 3-매치-퍼즐 등 캐주얼 게임은 아직도 유력한 모바일 게임 분야다) 플랫폼을 넘나드는 크로스플레이를 넘어, 클라우드 기술로 모바일에서 PC 게임을 구동시키겠다는 원대한 아이디어도 현실의 영역에 다가섰다. 조사 업체 뉴주(Newzoo)의 데이터를 보면, 전 세계 게임산업 내 소비자 지출은 1,803억 달러(약 213조 6,900억 원)를 기록했고, 그 가운데 모바일 게임 분야가 52%에 해당하는 932억 달러를 차지했다.1) 이밖에 ‘지난 10년간 모바일 게임 시장은 줄곧 우상향 그래프를 그려오고 있다’는 명제를 근거하는 분석은 곳곳에 널려있다. 이러한 시장 상황 속에서 엔씨소프트, 넷마블, 크래프톤 등 한국 게임사들도 모바일 게임 시장에 진출해 대단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최근 모바일 게임 시장에는 거대한 의문부호가 떠올랐다. 스마트폰의 운영체제, 그리고 앱 마켓을 서비스 중인 구글과 애플이 매기고 있는 30%의 인앱결제 수수료가 과연 온당한 수준이냐는 것이다. 현재 게임을 비롯한 모바일 앱에서는 인앱결제가 사실상 강제 중이며 결제가 발생할 ‘때마다’ 30%의 이용 수수료가 부과되고 있다. 이 30%는 왜 부과하는 걸까? 왜 이 수수료가 너무하다는 까닭은 무엇일까? 누가 구글과 애플을 상대로 도전장을 내밀었을까?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될까? 옛날에는 혁신적이었던 30%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앞서 시계를 과거로 돌려보자. 디지털 플랫폼 사업자가 30%의 수수료를 가져가기로 약속이 된 것은 언제일까? 애플은 2003년 음악 플랫폼 아이튠즈를 출시했다. 애플은 당시 음악사에게 앱스토어에 인앱결제를 필수적으로 적용하며, 중앙 통제적인 서버를 관리하고 보안 문제를 책임지는 비용으로 30%의 수수료를 받겠다고 발표했다. 이 30%는 '우수리'를 뗀 금액으로 이해됐다. 그 무렵 애플은 99센트의 노래를 판매할 때마다 큰 음반사에 72센트, 독립 음반사에 62센트를 지급했다.2) 이러한 기조는 2008년 앱스토어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3) 앱에 대한 개념도 희미하던 시절, 일정 부분의 수수료만 내면 전체 애플 이용자를 대상으로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을 소개할 수 있는 혁신적인 시스템으로 여겨졌다. 이전에는 결제가 이뤄질 때마다 카드사 별 대행 수수료나 통신사별 호스팅 비용이 발생했는데 모든 금액을 30%로 일원화해 책정한 것이다. 개발사는 통신사를 거치지 않고 애플을 통해서 소비자들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초창기 애플이 내세운 인앱결제 의무 + 30% 정책은 비교적 합리적인 정책으로 평가됐다. 애플에 복귀해서 앱스토어의 얼개를 짠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잡스가 30%의 수수료에 대해서 "우리는 (CP들의)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려는 게 아니라 아이폰을 더 많이 파는 것이 목표다"라고 발언한 바 있다.4) 놀이터를 제공한 뒤 최소한의 관리 비용만 걷을 뿐이지, 중요한 것은 자사 스마트폰을 더 많이 보급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 30%는 구글플레이 스토어, 아마존 앱스토어, MS 스토어는 물론 엑스박스, 소니, 닌텐도, 스팀도 책정 중인 비율이다. 규모있는 콘텐츠 제공자(CP)들에게 30%의 수수료는 '국룰'이 아닌 전자 소프트웨어 유통망(ESD)의 '국제 표준'이었다. 향후 자신의 ESD에 더 많은 CP를 유치하기 위해서 연매출을 기준으로 영세한 규모의 회사들에겐 수수료를 15%나 20%로 깎아주었다. 거의 모든 ESD 사업자들이 생태계 관리를 위해서 수수료를 매기고 있다. * 플랫폼 사업자별 수수료 요율.5) 낮은 효능감, ‘갑질’... 수수료 30%는 적당한 걸까? 시간이 흐를수록 CP들은 30%에 의문을 품었다. 비즈니스모델(BM)이 고도화되면서 30%씩 구글과 애플에 납부하는 것에 불만이 발생했던 것이다. 다이아와 루비 같은 인게임 재화에 대한 결제가 이뤄지는 순간마다 30%의 수수료를 물리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냐는 주장이다. 애플이 초기 30%를 설정할 때는 통신사마다 따로 진행되는 빌링 시스템에서 벗어나 애플 생태계를 통해 전 세계에 자신의 앱을 알릴 수 있는 혁신이었지만, 시장이 성장세를 거쳐 안정세에 진입한 오늘날까지 플랫폼 사업자가 30%나 거둬가는 것은 무리라는 해석이다. 2020년 애플 앱스토어에는 2,800만 명의 개발자가 활동 중이고 등재된 앱은 180만 개에 이른다.6) 플랫폼 사업자들은 거대해진 생태계를 관리하는 데 30%의 수수료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대역폭 처리, 거래 관리, 악성코드 식별에도 비용이 들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앱결제가 '갑질'이라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기업과 창작자들은 자신들이 제공한 앱을 통해서 생태계를 키운 구글과 애플이 자신의 지위를 남용하고 있다며 반기를 들었다. 양대 기업에 반발하는 이들에게 '30%의 룰'은 인앱결제로 강제된다. 네이버, 카카오, 넥슨, 엔씨소프트 등이 가입된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인기협)은 "앱 마켓의 독점이 콘텐츠 서비스의 독점으로 이어질 것이며 (구글, 애플은) 시장 지배적 지위를 악용해 앱 사업자와 이용자 모두를 자신에게 종속시키려 한다"고 날을 세우고 있다.7) 창작자들로 구성된 한국웹소설산업협회, 한국만화가협회, 한국웹툰작가협회도 인앱결제 수수료가 부당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창작자들에게는 30%로 이루어지는 생태계에 대한 효능감이 느껴지지 않고 있다는 목소리가 크다. 게임 개발사들에게도 수수료를 내고 있지만 앱 심사 지연, 서비스 중단 등에 관한 안내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있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구글과 애플이 몇몇 플레이어에게는 편의를 봐주고 있다는 비판까지 제기되고 있다. 2018년, 넷플릭스는 앱스토어가 아닌 웹브라우저로 회원을 모객했다. 앱스토어의 정기구독 앱은 첫 번째 해에 30%, 두 번째 해에 15% 수수료를 떼어가는 데 이 돈을 내기 싫었던 넷플릭스는 우회책을 사용했다. 넷플릭스 앱에서는 신규 가입을 등록할 수 없게 한 것이다. 양대 기업은 다른 곳에게는 절대 허용하지 않는 이 방법을 사실상 용인해줬다. 에픽게임즈는 <포트나이트>에서 자체 빌링 옵션을 추가했다가 양대 스토어에서 퇴출된 적 있다. 엔진사, 게임사, 스토어 사업자 등 다종의 아이덴티티를 가진 에픽게임즈는 퇴출을 준비라도 한 듯 구글과 애플에게 “반 독점법 위반”이라며 고소장을 날렸고, 기나긴 법정 투쟁을 시작했다. 현재 에픽게임즈는 대표 팀 스위니를 중심으로 양대 산맥의 지위에 균열을 내고 있다. 스팀은 매출이 1,000만 달러(약 119억 원) 미만이면 30%, 1,000만 달러 이상은 금액에 따라 25%, 20% 순으로 수수료를 매긴다. 이들과 달리 에픽 스토어는 12%를 떼간다. 지난한 소송 투쟁을 통해서 에픽게임즈가 원스토어, 갤럭시스토어와 같이 써드 파티 스토어를 기획 중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애플은 이같은 써드 파티 스토어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에픽게임즈는 인기 데이팅 앱 ‘틴더’의 매칭그룹과 함께 CAF(앱 공정성 연대)을 만들었다. 현재 CAF는 구글, 애플에 조직적으로 맞서고 있다. 한국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한 CAF 임원들은 코로나19 시국에도 한국을 찾아 국회 토론회, 인터뷰 등에 참석하며 한국의 ‘구글갑질방지법’을 높이 평가8)하며, 구글과 애플의 행위를 "자사의 이익만을 위해 일하며 혁신이나 경쟁, 공정성을 위한 노력을 지향하는 회사는 아니다"라며 비판하고 있다. (‘데이팅 앱’의 존재는 뒤에서도 한 번 더 등장할 것이다.) 30%의 벽은 무너졌다 이미 영세 규모 기업에는 낮은 요율을 적용했던 플랫폼 사업자들, 에픽게임즈의 행보 등을 통해 구글, 애플이 고수하던 30%의 벽은 무너졌다고 볼 수 있다. 이뿐 아니라 구글와 애플은 여러 나라 규제 당국의 도전을 받고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구글과 애플을 감시할 수 있도록 법을 고쳤다. 전기통신사업자 일부개정안, 이른바 ‘구글갑질방지법’에는 특정 결제방식 강제, 부당한 앱 심사 지연 및 삭제, 타 앱마켓 등록 방해 등을 할 수 없으며,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해당 업무를 담당케 했다. 방통위는 앱마켓 사업자의 의무 이행 실태를 점검하는 한편, 자료 제출과 시정을 '명령'할 수 있다. 법 체계에서 요구와 명령은 무게가 다르다. 아직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상당히 강력한 법안이 통과된 셈이다. 이 법 통과를 바라본 팀 스위니 대표는 “나는 한국인”이라며 기뻐하기도 했다. 새 법이 통과되자 구글 한국 지사는 4%p 낮은 결제 수수료를 부과하는 외부 결제를 허용하기로 발표했다. 이 조치에 대해 국내 업계는 ‘꼼수’라는 비판을 내놓았다.9) 공개적인 액션을 취하는 구글에 비해 애플 한국 지사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연초 애플 코리아는 한국 법을 지키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서한을 방통위에 전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본 원고를 제출하는 지금까지도 전해지지 않고 있다. 애플코리아 서비스 최고 책임자 한수정은 새 법에 대한 구체적인 회의를 전개하던 시점, 미국으로 건너가 직접 논의에 참가하지 않았다.10) 한 가지 흥미로운 부분은 한 총괄이 EA코리아 대표 등을 역임한 게임 업계 출신이라는 점이다. 이뿐 아니라 네덜란드 당국은 애플에게 틴더, 범블 등 데이팅 앱에서 인앱결제 외 써드파티 결제를 이용할 수 있도록 명령했다. 애플은 이에 따라서 지난 1월 14일부터 특정 애플리케이션에 외부 결제 시스템을 적용했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애플에게 벌금을 물렸다. 제3자 결제를 도입하면서 일부 앱스토어 기능을 차단시키는 식으로 꼼수를 부렸다는 것이다. 개발자에게 외부 결제를 위한 별도 앱을 개발하도록 지시했으며, 외부 결제를 이용할 경우 애플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만들었다. 이뿐 아니라 애플은 제3자 결제 도입 후에도 수수료를 징수했는데, 네덜란드는 이것을 명령 위반으로 보고 신속하게 애플에게 벌금을 부과시켰다.11) 유럽의회는 빅 테크에 대한 규제·감시를 강화하는 디지털 시장법을 추진 중이며, 호주에서는 애플과 구글의 행위들이 반경쟁적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인도, 영국, 프랑스 당국이 양대 기업의 인앱결제 강제 등에 대해서 주시하고 있다.12) 결제 규모, 본사의 위치 등을 복합적으로 보았을 때 대마(大馬)는 미국에 있다고 볼 수 있다. 2020년 10월, 미국 민주당이 주도하는 하원 반독점 위원회는 구글과 애플의 행동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해당 문건에는 "한때 기존 질서(Status Quo)에 도전했던 산만한 언더독 스타트업들은 이제 석유 부호나 철도 거물들의 시대에나 봤던 독점자(Monopolies)가 되어버렸다"라는 강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들 기업은 사회에 분명 혜택을 주었지만, 이제 대가를 치를 때가 됐다"며 "다른 회사들도 그들의 규칙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문구도 있다.13) 강력한 어조의 보고서가 발간된 뒤, CAF는 미국 현지에서 결코 무시 못할 수준의 로비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후문이 들려온다. 이와 별개로 에픽게임즈와 애플의 소송전이 어떻게 진행되는지가 이 사안에 중요한 쟁점이 될 것으로 평가한다. 2021년 9월 1심에서 재판부는 인앱결제 외 직접 구매로 연결할 수 있는 링크를 포함시키지 못하게 하면 안 된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10개의 쟁점 사안 중 1개에만 에픽게임즈의 손을 들어주었다. 인정된 1개의 쟁점은 이미 애플이 영세 규모 개발자들과 소송에서 합의한 내용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1심 재판부는 현상 유지를 선택했고, 2심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에 따라 새로운 국면이 마련될 것이다. 지난 1월 21일, 미국 상원 법사위원회는 구글과 애플을 규제 대상으로 규정하고 이들 기업의 지배력 남용을 막는 법안을 16:6으로 통과시켰다. 자사 상품 우대를 규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데, 인앱결제가 유튜브 등 자사 앱을 우대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으므로 이 법에 따라서는 금지의 대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법이 장기적으로 30%의 수수료에도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 법안은 곧 본회의에 올라갈 예정이다.14) 1) The Games Market and Beyond in 2021: The Year in Numbers (Newzoo, 21-12-22) 2) 2000년대 애플의 아이튠즈 수수료에 대한 뒷이야기는 <콘텐츠의 미래>(바라트 아난드 저)에 잘 정리되어있다. 3) How Apple’s 30% App Store Cut Became a Boon and a Headache (NYT, 20-08-14) 4) Apple’s Latest Opens a Developers’ Playground (NYT, 08-07-10) 5) Apple's App Store and Other Digital Marketplaces (Analysis Group, 20-07-22) 6) Apple, 세계 개발자 컨퍼런스(WWDC)를 전체 온라인 포맷으로 다시 가져오다 (Apple Newsroom, 21-03-30) 7) 구글 “네이버·카카오 웹툰 日 성공, 인앱 결제 덕분”... 인기협 “구글만 좋은 불공정 정책” (아주경제, 20-09-29) 8) [단독] "이러다 다 죽는다", 팀 스위니가 말하는 앱 생태계와 독점 (TIG, 21-11-18) 9) 구글, 4%p 수수료 낮춘 ‘꼼수’ 논란 여전…방통위는 ‘골머리’ (뉴스1, 22-01-12) 10) 인앱결제법 이행 논의 헛도는데…애플코리아 경영진은 '부재중' (연합뉴스, 21-11-24) 11) 네덜란드, 애플에 67억 벌금…"외부결제 허용 불충분" (ZDNet Korea, 22-01-25 )12) 美 앱공정성연대 "한국 구글갑질방지법 기념비적…강제화 중요" (연합뉴스, 21-11-15) 13) 미국 하원 반독점위원회 "구글·애플 마켓 수수료 30% 너무해 (TIG, 20-10-08) 14) 구글, 위치 추적 설정 꺼놔도 몰래 추적…미국 지자체 '줄소송' (경향신문, 22-01-25)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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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G Vol. 2 게임의 역사도 반세기에 이르면서 레트로 게임에 대한 선호가 일련의 마니아적 현상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레트로, 복고라고 불리는 이들 현상은 한편으로는 게이머 세대의 나이듦을 보여주며, 동시에 게임연구자들에게는 이제 게임에서 '클래식'이란 무엇인지를 정의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왔음을 알려준다. 8bit era in china This article looks to the 8 bit gaming history in China to illuminate the Chinese gaming industry of today, one that earned 2786.87 billion yuan in 2020 (GPC et al. ) . While becoming the world's largest game market, Chinese gaming industry has also attracted worldwide attention. However, despite our fascination with the great success of the Chinese gaming industry in the 21st century, we should not forget the road ahead. Looking back on the early challenges that China's 8 bit gaming industry ever faced is an essential prerequisite for us to understand the industry’s current success. Therefore, this paper will analyze the Chinese 8 bit game and its history. Read More Inside BIC 2021- 감염병 시대의 인디게임페스티벌 참관기 부산행 전날, 병원에 들러 코로나 PCR 진단검사를 받았다. 부산인디커넥트 페스티벌(BIC Festival)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입구에서 PCR 음성 확인증(혹은 백신 접종 완료증)을 제시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작년 BIC-2020은 전 세계적인 코로나감염병 상황으로 인해 온라인으로만 진행되었지만, 올해는 철저한 방역 절차 아래 오프라인에서도 행사가 개최되었다. 이렇듯,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의 대표적인 정서를 하나 꼽아보자면 ‘불안’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감염자가 내 주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혹은 모르는 사이에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다닐 수 있다는 불안감이 어딜 가든 짙게 깔려 있다. Read More [Editor's view]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근래들어 출시되는 많은 게임들을 묶을 수 있는 하나의 키워드는 ‘복고’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이 넘은 게임들이 새로운 플랫폼과 형식으로 다시 현역 복귀 신고를 줄줄이 하고 있는 분위기다. 왕년의 인기 게임들은 함께 성장해 이제는 중장년에 이른 게이머들에게 추억을 앞세우며 다시금 인기를 몰았다. 가장 최근 출시한 <디아블로 2: 레저렉션>은 20여년 전 게임규칙을 그대로 가져왔지만 PC방 게임순위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Read More [북리뷰] 스테이지를 전환하자는 제안, 〈모럴컴뱃〉 따라서 필요한 것은 ‘컨트롤러를 집어들고 게임을 계속 즐기면서’(246쪽) 게임에 대해 계속 대화하는 것이다. 〈모럴컴뱃〉은 게임에 대한 대화를 하기에 아주 좋은 책이다. 310개에 달하는 각주는 게임에 대한 긍정적인 연구와 부정적인 연구를 포함하면서 게임에 관한 주요한 사건에 관한 자료들을 포함하고 있다. 게임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든 이 책의 자료를 통해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호기심이 찾는 여정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Read More Oldies But Goodies - 클래식 게임의 조건 그래서 다시 클래식 게임이다. 그의 분투는 눈물겹다. 이 보다 더 순수할 수 없을 그 시대만이 줄 수 있는 순정의 게임 경험과 이를 통한 자수성가형 성취감을 제공한 클래식 게임은 게임 미디어의 '형식'으로서 명예의 전당에 봉인되는 순간, 수 많은 아류작과 온전한 장르의 모태가 됨으로써 태를 바꾸어 '미디어'로 존재한다. 이렇게 미디어로 명명된 클래식 게임은 상징으로 일반화되고, 상징을 통해 제시된 '기대'는 클래식 게임 고유의 경험을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재현하고 확장한다. Read More ‘인디게임’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반지하게임즈 이유원 대표 인디게임의 범주에 관해서는 여러 행위자의 관점과 이해관계가 얽혀있는바, 모두를 만족시킬 온전한 합의점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관념적인 개념어의 범주와 상관없이 지금도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며 인디게임의 가능성을 확장시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 호에서는 ‘반지하게임즈’의 이유원 대표를 만나 그가 정체화하고 있는 인디게임은 어떤 개념이며 지향점은 무엇인지 살피고자 한다. 2021년 9월,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이 직접 반지하게임즈 스튜디오를 찾아갔다. Read More 〈디아블로〉 시리즈의 역사로 바라보는 블리자드의 변화 2021년 2월 20일에 시작된 블리즈컨라인(BLIZZConline)의 분위기는 어수선하기만 했다. 2005년 10월 처음 개최된 블리즈컨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이하 블리자드)가 자신들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는 팬들을 위한 축제로써 기획되었다. 하지만 지난 몇년간의 블리즈컨의 분위기는 분명 예전과 달랐다. 제작자와 게임 팬의 화합의 장이었던 블리즈컨이 끝나면 항상 팬들의 열화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지만, 최근 들어 함성은 잦아들고 작은 수근거림이 더 많이 들리기 시작했다. Read More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단절을 넘어서-퀘이크 리마스터 최근 다수의 리마스터 타이틀이 얼굴을 비추고 있다. 과거 발매되었던 게임의 비주얼이나 시스템을 조정해 다시금 선보이는 리마스터 / 리메이크들이 예다. ROM 혹은 디스크 등의 형태를 넘어서 디지털로 복각되고 라이브 서비스를 진행하는 MMORPG 또한 ‘클래식’이라는 이름을 달고 과거의 빌드를 그대로 서비스하는 사례도 여럿이다. Read More 나는 아직까지도 현역 게이머 - 레트로게이머 꿀딴지곰 인터뷰 네이버 지식인을 통해 기억에서 희미해진 4,000여 개의 고전 게임을 찾아주고 이제는 유튜브로 영역을 넓혀 꾸준히 활동을 이어온 그는 국내 몇 없는 ‘레트로 게이머’이자 ‘레트로 게임 컬렉터’다. 그를 만나 레트로 게임의 현주소와 그가 생각하는 과거, 현재 게임의 접점을 물었다. 쉼 없이 흘러나오는 전문용어와 자세한 게임의 예시들 그리고 이제 중년이 된 그가 회고한 어린 날의 추억 이야기로 현장엔 웃음이 마를 새가 없었다. 그날의 대화를 정리한다. Read More 노년게이머에에게 경외와 동료애를 - 그레이게이머 연구의 필요성에 대하여 <리그 오브 레전드>가 처음 들어와 국내에서 조금씩 바람을 일으키던, 아직 프로씬은 만들어지기 전이었던 그 시절 전국구 고수로 이름을 떨치던 사람 중에는 ‘황충아리’라는 게이머가 있었다. 챔피언 ‘아리’ 장인으로 유명한 그였지만 ‘아리장인’ 보다 그는 ‘황충아리’로 더 이름을 떨쳤는데, 이유는 그가 노장 게이머였기 때문이었다. ‘삼국지연의’에서 노장 캐릭터로 유명한 황충의 이름이 그에게 붙었지만, 그의 당시 나이는 겨우 30대 중반이었다. Read More 레트로 시대 한국 게임비평의 흔적들 지금의 한국에서 게임 평론 시도들은 일부 웹진의 기자들을 통해 이루어지거나, 일부 게임평론가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꾸준히 평론을 지면에 생산하는 게임평론가는 매우 적다. 이렇다 보니 국내에 게임 평론계는 의미 있게 존재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25년 동안 한국 게임계는 대체 무얼 한 걸까. 이렇다 보니 실제 게임평론을 생산하지 않는 자칭 평론가들은 자신들이 최초의 게임평론가라고 이야기하는 웃지 못할 상황들도 벌어지고는 한다. 이런 점을 정리하려면 먼저 과거에 있었던 게임비평에의 시도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Read More 레트로를 다시 소환하는 인디게임의 방식들 이런 점에서 레트로 장르를 계승하는 인디 게임들이 평론가와 대중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자명하다. 올드 게이머와 뉴 게이머를 이어주는 인디 게임들을 통해 세대를 아우르는 팬덤은 게이머의 확장된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올드 게이머에겐 추억을, 뉴 게이머에겐 신선함을 말이다. 어찌 보면 레트로 게임, 장르라는 말이 어색하게 들린다. 누군가에겐 레트로일 수 있지만, 다른 이들에겐 새로운 게이밍일 수 있다. 인디 개발자들의 레트로 장르 경의와 찬사는 게임 과거 게이밍과 현대 게이밍을 이어주는 가교를 만들어 주고 있다. Read More 모험가들은 다시 고향을 찾을 수 있을까? : 게임과 노스탤지어 2015년 9월 1일 게임 개발자 론 길버트(Ron Gilbert)는 자신의 블로그에 ‘Happy Birthday Monkey Island(원숭이 섬 생일 축하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다. 그가 1990년에 개발한 어드벤처 게임 〈원숭이 섬의 비밀〉의 25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글이었다. 그는 글의 마지막에서 〈원숭이 섬의 비밀〉을 함께 만들었던 당시의 팀과 ‘이 게임이 25년간 살아 있을 수 있게 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 후, 오래전에 받은 한 통의 팬레터 사진1)을 첨부한다. 당시 12살이라고 밝히고 있는 크레이그 톰슨(Craig Thompson)이 그에게 보낸 것이다. Read More 모험은 그곳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 게임 속 여성 캐릭터들의 모험에 대하여 게임을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모험가가 된다. 평범한 일상을 벗어난 주인공이 되어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고 숨겨진 비밀을 파헤쳐 나가며 때로는 자신 안의 영웅적 면모를 깨워 세상을 구하기도 한다. 플레이어는 게임 속 세계 곳곳에 산재된 난제를 해결하는 모든 여정에 기꺼이 뛰어들며 게임을, 모험을 이어왔다. 게임과 모험은 그 궤적을 함께하며 게임을 경험하는 친숙한 방법론을 구축해왔다. 게임의 역사 자체가 일종의 모험기처럼 계속해서 쓰여지는 것처럼도 보인다. 이 글은 ‘게임’이라는 오래된 모험기를 다른 방향에서 펼쳐 본다. 거꾸로 펼친 모험기는 모험의 바깥에서 주인공의 모험이 무사히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여인들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 Read More 변호사의 눈으로 본 역전재판 벌써 오래 전 이야기다. 토요일 아침이면 신문을 펼쳐 TV 편성표를 살펴보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하곤 했다. 특히 “토요명화”나 “주말의 명화”에서 어떤 영화를 방영하는지가 가장 큰 관심사였는데, 넷플릭스도 IPTV도 없던 시절이니, 시간도 돈도 없는 학생에게는 영화를 볼 기회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편성표 옆에는 영화평론가들이 영화를 간단히 소개하며 별 5개 만점으로 나름의 평가를 달아두었는데, 별점이 높은 영화가 방영되는 날에는 종일 설레었던 기억이 난다. Read More 북유럽 레트로: 핀란드의 레트로게임 문화 핀란드에서 컴퓨터게임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이 1970년대부터 였고 80년대부터는 상업화 되었으니 그 역사는 꽤 긴 편이다. 최초의 e스포츠 토너먼트 - 당시에는 “이스포츠”가 아니라 “핀란드 컴퓨터게임 챔피언십”이라 불렸다 - 가 1983년에 이미 개최되었으며, 90년대 초반에 이르면 게임플레이가 청소년들의 주요 여가활동으로 자리잡는다. Read More 역사적 트라우마와 유령의 소환술: 〈반교: 디텐션〉의 역사주의 이처럼 애매하고, 역설적이고, 공백으로 가득 찬 대안적 역사인식의 상징극장(학교)을 탐색하며 퍼즐 열쇠들을 수집하는 플레이어는, 유령이 된 채 부재하는 현재의 표식들을 이어붙이고, 역사의 버려진 시신을 가르는 부검의가 된다. “너는 나고, 나는 너다” 며 자신의 그림자에게 읊조리는 주인공의 대사처럼, 파편화된 상흔들은 수집과 탐색행위로 이뤄진 이 부검에 의해 점차 진혼된다. 플레이어의 부검은 사망 원인 추적에 그치지 않고, 망자의 부릅뜬 눈을 감기는 의식으로 연동되는 것이다. Read More 전자오락, 게이머, 인터페이스의 공진화 인터페이스는 설계에 투영된 이상을 정확히 구사하기 위해 발전할 수도 있지만, 우연한 계기들에 의해 손쉽게 그 설계가 변형되기도 한다. 변형된 인터페이스는 게이머들의 게임 실천 자체를 변형시키기도 하며, 이런 변화된 게임실천은 게임이 제공하는 경험의 변형을 가져오고, 게임성 그 자체를 다르게 느끼게 하는 효과도 가져온다. 이처럼 인터페이스는 단순한 입력장치이고,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 없는 게임의 요소라기보다는 게임을 구성하고 있는 하드웨어이면서 동시에 게이머와 연결되어 신체화된 기계적 대상물이다. 인터페이스는 게임의 설계에 따라 발전하거나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과 게이머는 물론이고 자신과 연결된 모든 환경과 함께 상호작용하며 변화무쌍하게 공진화(co-evolution)하는 과정 안에 놓여있다. Read More 중국의 레트로 게임: 8비트 시대의 흔적들 21세기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산업 규모를 구축하고 있는 중국이지만, 그 이전의 상황이나 흐름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저자는 그 이전의 역사, 그러니까 ‘8비트 게임 시대’를 고찰함으로써 오늘날 중국 게임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라 이 글은 중국의 8비트 게임 시대를 조망하고 그 역사가 지닌 함의를 논한다. 이 글은 또한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중국의 초기 게임사를 다룬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 Read More 초기 3D 그래픽의 미학, 인지적인 디지털 물성에 관하여 2010년대를 중심으로 다시 반짝였던 포스트 디지털 담론에서 이어지는 미술 작업의 비쥬얼은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최신의 리얼한 그래픽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차라리 그들의 작업에서 나타난 비쥬얼적 특징은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중반까지 볼 수 있었던 낮은 품질의 3D 그래픽에 가까웠다. 이는 보다 리얼하고 현대적인 3D 그래픽 이미지를 미술 작가 개인이 구현하기에는 소요되는 자본과 기술의 한계가 따른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자면 적당한 수준의 3D 그래픽을 구현하는 데에 있어서는 굉장히 접근성이 용이해졌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그들은 로우-파이하고 한편으로는 레트로, 노스탤지어적인 기억과 선명함이 억압되는 특정한 디지털 이미지의 미학에 기대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Read More

  • <마우스워싱>: 노스탤지어가 흐물거릴 때

    자본주의적 체인 안에서 상품이 개별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과정은 세세하게 분할되어 실체는 추상적인 절차로 파편화되고 프로세스는 우연적인 집합에 불과할 때, 블랙 박스 속 물건을 통해 주권을 재확인하고자 하는 지미의 시도는 실패로 끝난다. < Back <마우스워싱>: 노스탤지어가 흐물거릴 때 21 GG Vol. 24. 12. 10. -이 글에는 <마우스워싱>에 대한 전반적인 스포일러가 들어있습니다.- 노스탤지어적 로우 폴리곤 역사학자인 애그니스 아널드포스터는 저서인 『노스탤지어, 어느 위험한 감정의 연대기』에서 다양한 시대와 형태의 노스탤지어를 소개한다. 디즈니의 영화 리부트나 N64와 같은 1990년대의 미디어가 2020년대에 각광받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 아널드포스터는 세대론적 관점을 제시한다. 2020년대 초반에 성년이 된 사람들이 1990년대에 태어났으며, 이 시기는 또한 “21세기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모든 것이 나오기 전의 마지막 시기”라는 설명이다 [1] . 실제로 itch.io와 같은 인디 플랫폼에 제출된 로우 폴리곤 기반의 게임들, N64나 PS1을 키워드로 게임의 제작자와 향유자는 노스탤지어를 적잖이 인용한다. 그러므로 이들 90년대생이 유년기에 향유하던 게임의 추억을 현재로 데려오고자 하는 시도로써 이러한 현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관점이 그렇게까지 이상한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 이런 양식의 게임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배경으로는 제작에서의 이점을 간과할 수 없다. 호러 인디 게임 컴필레이션 을 엮은 브레오간 해케트는 90년대의 저해상도 3D로 게임을 제작하는 동기로 접근성을 언급한다. “텍스처에 4K 해상도가 필요하지 않고 캐릭터 모델이 수천 개가 아닌 수십 개의 폴리곤으로 계산될 때 솔로 크리에이터가 3D로 전환하기가 훨씬 쉽다”는 것이다 [2] . 그렇게 빚어낸 이미지는 AAA 게임과 직관적인 차이를 구획하고, 와 같은 작품이 드러내듯 아예 스스로를 실패작으로, 인디한 것으로 천명하며 등장하기도 한다 [3] . 무엇보다도 이런 종류의 기하학적인 신체와 저해상도 텍스처가 지속적으로 향유되는 데에는 특유의 매력이 있을 것이다. 3D로의 이행은 명백히 기술적 한계에 직면하는 가운데서 이루어졌다. 평면적이면서도 블록 같은 질감은 투박하지만 분명 구체적인 신체성을 지닌 무엇이다. 그 위에 기입된 엉성한 텍스쳐는 계속해서 미끄러지므로 인식의 혼란을 초래하며 불안을 자아낸다. “때때로 게임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을 선사하는 이러한 그래픽은 따라서 호러 장르와 밀접하게 얽히게 된다. 이렇게 레트로 호러 게임이 향유되는 동기를 살펴봤을 때, 지난 9월에 출시된 심리 호러 어드벤처 게임인 <마우스워싱Mouthwashing>은 설명에 모범적으로 들어맞는 사례처럼 읽힌다. 롱 올간Wrong Organ 스튜디오의 멤버들은 스웨덴 게임 개발 교육 기관에서 만나 팀을 이뤘다. 거기서 그들은 전작인 <하우 피쉬 이즈 메이드How Fish is Made>를 완성했고, 확장팩에서 후속작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마우스워싱>의 핵심 인물인 ‘컬리’는 이 게임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아이코닉한 이미지를 머릿속에 각인시킨다. 그가 운행하던 우주선 ‘툴파르’ 호는 천체와 충돌하는 사고를 겪게 되는데, 폭발은 컬리의 전신을 강타하며 흔적을 아로새겼다. 작중에서 컬리는 사지와 눈꺼풀을 잃고 극심한 화상으로 인해 신음한다. 게임의 1인칭의 카메라는 플레이어블 아바타와 플레이어의 시점을 융합시키며 가상의 신체로부터 비롯되는 감각을 끊임없이 의식하게 한다. 격통이 화면 너머 플레이어에게 전달되지는 않기에 끔찍한 몸에 접속했다는 사실 자체가 어떤 특별한 감각을 일깨우지는 않는다. 그보다 더 두드러지는 공포는 가상의 육신 내외부에서 일어나는 붕괴와 결합에서 파생된다. 어떤 퀘스트는 컬리의 살을 자르고 섭취할 것을 종용한다. 딱딱한 플라스틱 덩어리나 다름없어 보이는 저화질의 벌건 살은 가상의 신체가 언제든 인접한 다른 환경으로 무너져 내릴 가능성을 자극한다. 9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이 되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그리워하며 “21세기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모든 것이 나오기 전의 마지막 시기”를 향유한다는 게이머 노스탤지어에 관한 설명은 “추억 소환 섹션”에 놓여 있는 대상에 한정한다면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4] . <마우스워싱>은 로우 폴리곤이라는 장치가 범연히 1990년대적인 것의 부흥이라고 설명한 바와 다소간의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상상적으로 구현된 미디어적 참조는 현재적으로 “풍부한 시청각적 라이브러리를 구축”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5] . <마우스워싱>이 엮어내는 영상 소스(뤼미에르 형제의 <유쾌한 해골>부터 1950년대 반공주의 프로파간다 애니메이션인 을 거쳐 가글액의 광고 화면으로 이어진다)는 로우 폴리곤이 표방하는 1990년대 게임 하드웨어 이전의 시기까지 소급해 가며 현재화를 시도한다. 주권성에 대한 노스탤지어 노스탤지어로 상상되는 과거는 현재를 인식하는 방식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노스탤지어는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시간에 속한 순간들”에서 촉발되는데, 결국 “현재 우리가 보유한 가치나 윤리, 자기감에 더욱 부합하게끔 정보를 재구성”하는 과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6] . 이 지점에서 90년대와 지금 사이의 연속성을 되짚어보게 된다. <마우스워싱>의 내러티브가 디디고 있는 역사적 토대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인식과 밀접하다. 80~90년대 워싱턴 컨센서스를 통해 구현된 신자유주의는 “사사화privatiation와 개인의 책임”을 핵심으로 한다. “부와 의사 결정이 대중과 어느 정도 책임을 지는 정책 결정 기구에서, 개인이나 기업과 같은 책임지지 않는 자들의 손으로 넘어” 가는 것이다 [7] . 그 결과 구조 조정과 노동유연화, 고용 불안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풍경이 삶을 위협하기에 이른다. <마우스워싱> 속 툴파르 호는 마지막으로 남은 유인 우주 화물 서비스를 전문 기업인 포니 익스프레스의 소속이다. 열악한 근무 조건 속에서 승무원들이 화물을 운반하는 와중에 툴파르 호가 소행성과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부함장인 ‘지미’는 구조가 올 때까지 다른 동료들을 책임지고 건사하고자 한다. 한편 비선형적으로 이어지는 게임의 내러티브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사고의 전후를 퍼즐처럼 재구성하도록 요청한다. 작중에서 상기의 영상 콜라주는 한 장의 메일을 트리거삼아 재생된다. 그 메일이란, 본사는 이번 배송을 완료한 후에 툴파르 호의 인원이 전원 해고될 것이며 포니 익스프레스의 서비스가 무인 체제로 전환될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컬리가 함장의 자격으로 그 메일을 수신하는 장면은 잠시 중지되고, 구시대의 애니메이션들이 흘러나오며 경제적 주체로서의 가장과 같은 자본주의의 유익한 삶을 역설한다. 이미지의 잡동사니가 멎은 자리에는 끄트머리가 꺾여버린 사다리들이 놓여 있다. 사다리는 컬리가 지미와 나누었던 대화를 환기하는 요소다. 컬리 : ...최근 이런 생각을 좀 해 봤어. 이걸로 충분한 건가? 지금까지 잘해 왔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이대로 살아도 되나? 좋은 장거리 화물선 함장으로 말이야. 지미 : 그게 안 좋은 건가요? 컬리 : 내가 하려는 말이 바로 그거야. 안 좋지는 않아. 하지만... 아주 무서운 일이지. 이런 생각이 들어. “이게 내 최선인가? 앞으로도 평생 이렇게 살아가야 하나?” … 지미 : 이 사다리의 꼭대기에 올랐는데... 애초에 잘못된 사다리를 오른 건 아닐까 생각하신다는 거죠. 그래도 어떤 관점에서 보든, 한참 위까지 올라가셨잖아요. ...전 아직도 그 사다리를 끝없이 오르고 있는데 말이죠. 『잔인한 낙관』을 저술한 로런 벌랜트는 신자유주의 문화에서 ‘좋은 삶’이라는 환상을 구성하는 애착심에 관해 이야기한다.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내는 위험하고 불안정한 삶 속에서 우리는 소진되거나 마모되면서도, 더 좋은 삶이라는 환상에 애착을 품는다.“잔인한 낙관은 심각하게 문제가 되는 대상에 애착심을 유지하는 상태”이며 또한 “우리에게 ‘좋은 삶’이라고 호명하는 대상에 대한 정동적 애착심 속에 기거하면서 ‘좋은 삶’을 살펴보게 하는 자극제”이기도 하다 [8] . 위의 대사에서 컬리는 지금껏 유지해 왔던 삶의 형식이 어느 정도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는 정황을 감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벌랜트 식으로 표현하자면 마모된 주체인 그는 ‘좋은 장거리 화물선 함장’이 주는 낙관이 불능에 처했음을 미묘한 어휘로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허무감을 공유받는 지미는 그것이 어디까지나 사다리의 ‘한참 위’에 있기에 가능한 토로라고 일축한다. 그러므로 사고 이후 임시 함장이 된 지미는 지속적으로 “책임을 질 수 있다”고 되뇌며, 부상으로 불능 상태가 된 컬리를 대신하려 한다. 지미는 선원들의 안위와 툴파르 호의 위기를 책임지려 한다. 더 나아가서 이 위기를 성공적으로 수습함으로써 불안정한 고용 상태를 다시 되돌릴 수 있다는 희망을 품기도 한다. 지미는 생존 물품을 찾아보기 위해 운송 창고 개방을 결단한다. 창고를 개방할 수 있는 열쇠는 함장만이 소지 가능하다. 그가 의기양양하게 휘두른 주권은 곧 미끄러진다. 영상의 콜라주로 이어진 시퀀스가 종료되면 마침내 플레이어는 창고에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 내용물은 생존에는 하등 쓸모없는 가글액에 불과하다. 이 가글액은 포니 익스프레스가 직접 생산하지 않은 물건일뿐더러 1950년대의 애니메이션과 병치된 광고 형식은 시대착오적이다. 요컨대 목전으로 닥친 자동화와 무인화의 미래를 절대 극복해 주지 못할 물건이다. 자본주의적 체인 안에서 상품이 개별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과정은 세세하게 분할되어 실체는 추상적인 절차로 파편화되고 프로세스는 우연적인 집합에 불과할 때, 블랙 박스 속 물건을 통해 주권을 재확인하고자 하는 지미의 시도는 실패로 끝난다. 그는 자신이 의지를 가지고 노력해 함선의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고 믿었다. 결국 “주권성이란 객관적 상태라고 오인된 환상”으로 “개인적, 제도적 자기 정당화의 수행성을 열망하는 입장이며, 그 입장이 안전과 능률성을 제공한다는 환상과의 관계 속에서 통제권을 갖는다는 정동적 느낌”이다 [9] . 일반적으로 법에서는 주체를 행위하고 그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존재로 상정한다. 이는 범박한 의미에서의 게임이 플레이어의 개입을 통해 상호작용 하는 미디어로 정의된다는 지점을 환기한다. 지미의 행위를 견인하는 동기는 플레이어가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로우 폴리곤 아바타를 꾸역꾸역 붙들고 있는 이유와도 일치한다. 툴파르 호와 승무원을 건사하는 것이다. <마우스워싱>의 게임 플레이는 정해진 루트를 따라 나가는 일방적인 워킹 시뮬레이터식 진행에 가깝다. 이 같은 구성은 전권을 휘두르는 주권성으로부터 비껴 나간다. 사고 당시를 재연하는 프롤로그는 이어질 전개의 메타포다. 소행성이 눈앞으로 들이닥치는 가운데, 조종간을 오른쪽으로 돌리라는 경고문이 주어지지만 플레이어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오직 왼쪽으로 꺾는 일뿐이다. 여기서 주권성은 실패한 선택지를 고르는 데에 발휘된다. 그렇게 지미는 툴파르 호를 온전히 책임지지 못하고, 플레이어는 지미의 ‘업보’를 책임지지 못한다. 1인칭 카메라를 활용한 시점 트릭은 여태껏 플레이어가 불완전한 책임을 붙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킨다. 그렇게 플레이어는 시점으로부터 미끄러져 나가며 공포를 경험하게 된다. 이처럼 <마우스워싱>은 노스탤지어적 장치를 활용하며 신자유주의에 대한 짤막한 역사적 라이브러리를 구축하고 있다. 잔인한 낙관이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구현해 내는 것은 <마우스워싱>의 마지막 장면이 아닐까 싶다. 모든 관계가 파탄 난 상황 속에서 지미는 부상당한 컬리를 수면 장치에 밀어 넣는다. 비록 컬리는 망가진 신체와 고통으로 잠 못 드는 신세임에도 일단 수십 년간 냉동 수면 상태에 있다 보면 언젠가는 구조되리라는 일방적인 기대에 내걸린다. 훗날 컬리가 어색하게 눈을 떴을 때, 그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1] 애그니스 아널드포스터. 손성화 역. 『노스탤지어, 어느 위험한 감정의 연대기』. 서울: 어크로스. 2024. 273쪽. [2] Natalie Clayton, “The horror games harking back to the PSone era”, 2019.10.31.등록, 2024.11.05.접속, WhyNowGaming, [3] 이 게임은 닌텐도 64를 위한 게임을 “야심넘치게 개발하다가 프로젝트를 폐기할 위기”에 놓인 일련의 이야기로 소개된다. https://l4ndo.itch.io/abandoned-64 [4] 애그니스 아널드포스터. 273쪽. [5] Natalie Clayton, 위의 글. [6] 애그니스 아널드포스터. 15쪽. [7] 리사 두건. 한우리·홍보람 역. 『평등의 몰락-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하는가』. 현실문화. 2017. 57쪽. [8] 로런 벌랜트. 윤조원·박미선 역. 『잔인한 낙관』. 서울: 후마니타스. 2024. 48·55쪽. [9] 로런 벌랜트. 184쪽.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김규리 자기 소개 :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데스티니2를 오래 즐겨왔고, 다음 작인 마라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익숙한 게임이 주는 재미와 낯선 경험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보려 고민하고 있습니다.

  • 보는 게임의 한복판에서 보는 현재: 게임유튜버 김성회

    ‘보는 게임’을 게임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 이를 두고 일부 근본주의자들은 ‘실제로 조작하지 않는 것은 게임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특별한 조작 없이도 진행되는 ‘방치형 게임’은? 아예 참여하지 않고 관전만 하는 그러니까, 게임 스트리머의 방송을 보는 것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게임을 둘러싼 시선과 그것을 향유하는 방법이 변해가는 오늘날 ‘보는 게임’을 이끄는 유튜브 ‘김성회의 G식백과’의 진행자 김성회를 만났다. 변화의 과정을 생생히 느끼고 있는 만큼 양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Back 보는 게임의 한복판에서 보는 현재: 게임유튜버 김성회 03 GG Vol. 21. 12. 10. ‘보는 게임’을 게임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 이를 두고 일부 근본주의자들은 ‘실제로 조작하지 않는 것은 게임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특별한 조작 없이도 진행되는 ‘방치형 게임’은? 아예 참여하지 않고 관전만 하는 그러니까, 게임 스트리머의 방송을 보는 것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게임을 둘러싼 시선과 그것을 향유하는 방법이 변해가는 오늘날 ‘보는 게임’을 이끄는 유튜브 ‘김성회의 G식백과’의 진행자 김성회를 만났다. 변화의 과정을 생생히 느끼고 있는 만큼 양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밤 10시가 다 된 시간 명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유독 지쳐 보였다. 방금 막 마지막 일정인 프로그램 녹화를 마쳤다고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또렷했고 무엇보다 씬 내부에서 오랫동안 고민한 주관과 신념으로 번뜩였다. 덧붙일 의견이 생기면 몇 번이고 양해를 구하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편집장과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다는 인사로 문을 연 대화는 그래서 유독 깊게 찌르고 더 깊게 찌른 호흡으로 가득했다. 한 편의 장대한 대담과도 같던 현장이었다. #1 . ‘보는 게임’으로의 변화? “정반합의 과정일 뿐” e스포츠, 방치형 게임, 게임 스트리밍 등이 비슷한 트렌드로 엮인 것 같다. 큰 줄기 세 개를 잘 잡아줬다. 우선 방치형 게임의 경우 나는 이게 진화나 퇴화라기보다 진폭이 있는 정반합의 과정이라고 본다. 손으로 직접 컨트롤하는 것만이 진정한 게임이라고 보는 시기가 지났다는 거지. 예를 들어 디아블로2. 자룬(게임 아이템)을 먹기 위해 카우방을 천 바퀴, 만 바퀴를 돈다고 치자. 이게 과연 내가 컨트롤하는 게임일까? 무아지경으로 슬롯머신 당기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실제로 디아블로의 디렉터도 슬롯머신의 몰입구조를 염두에 두고 게임을 기획했다고 밝히기도 했고. 처음에는 컨트롤의 재미와 공략의 성취감을 느끼더라도 이후에는 점점 파밍의 소유욕만 남게 되며 그마저도 빈도가 낮아진다. 그러다가 이런 ‘과정’의 지루함을 덜어 주기 위해 오토모드가 추가된 게임들이 등장했고 나중에는 ‘혁신적 24시간 오토 시스템’이라는 광고 문구가 나오기까지 했다. 자동화가 고도화 되면서 게임의 영역이 넓어졌다. 컨트롤 뿐 아니라 육성 관리 ‘분재 게임’까지 게임 플레이의 영역에 들어왔다. 유행이 돌고 돌 듯 게임 하는 방법도 돌고 돈다. 자동화 경향이 과도해지자 게임 플레이 본연의 컨트롤 손맛, 모험가들의 협동을 원하는 니즈가 많아진다. 전자는 디아블로2 레저렉션, 후자는 WOW(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클래식이 좋은 사례다. 2019년에 와우 클래식이 출시됐을 때 인기가 엄청났다. 정반합에서 반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한동안 개인화되고 자동화되었던 와우에 지루함을 느낄 때쯤 클래식을 하니까 예전의 그 재미가 느껴지는 거다. 확장팩보다 클래식의 동시 접속자가 더 많은 경우까지 생기지 않았나. 디아블로 2도 마찬가지다. 인벤토리 정렬 기능조차 없는 20년 전 게임을 불편해서 어떻게 하냐 했지만 막상 해보니까 잊었던 즐거움을 맛본다. 불편함 마저 추억이 된다. 오토, 관리형 게임에는 없는, 예전 플레이 방식으로의 회귀에 재미를 느낀다. 근본주의자들은 직접 하는 게임만을 진성으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도 e스포츠, 그리고 게이머 임요환, 페이커를 통해 ‘보는 게임’을 인정한다. 왜냐? 내가 할 수 없는 높은 경지의 플레이를 보여주기 때문에. 오락실 시절에는 동네 최고가 되기 위해 수련하는 게 의미가 있었다. 실제로 최고의 자리가 내 눈에 보이니까. 하지만 게임 방송이 나오고 무대가 확장되자 프로게이머란 압도적 존재와 부딪힌다. 아무리 노력해도 다다를 수 없는 경지가 있음을 깨닫는다. 그러면 ‘이들의 플레이를 봐보자’, ‘그 정도 경지는 내가 인정해 줄 수 있다’ 하며 e스포츠가 ‘보는 게임’으로서 받아들여졌다. 내 손으로 직접 하지 않아도 게임의 영역으로 인정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실력이 좋지 않더라도 고정 팬층이 있는 게임 스트리머도 있다. 이것도 일종의 정반합의 과정이다. 프로게이머가 스트리밍하는 경우도 있고 게임을 잘 못해서 재미있는 코믹형 스트리머도 있다. 또한 시청자 참여형 콘텐츠나 단체 플래시몹처럼 동시에 같은 서버에 들어가서 스트리머와 함께 즐기는 경우도 있고. 이런 것들이다 ‘하는 게임’과 ‘보는 게임’의 사이에 놓여있는 형태라고 본다. 앞으로는 하는 것과 보는 것이 적절하게 융합된 형태로 계속 새 콘텐츠가 나오지 않을까. #2 . ‘보는 게임’. “경제적, 세대적 측면에서도 해석이 가능...” 지금은 게임을 하려면 돈을 꽤 들여야 한다. 100원만 있으면 게임 한판을 하던 때가 있었는데... 게임을 ‘제대로’ 하려면 돈을 꽤 들여야 하는 시대다. ‘보는 게임’이 젊은 층에서 유행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된다. 경제적 측면. 콘솔 게임의 경우 시작을 위해 적어도 50만 원은 있어야 한다. 모바일의 경우 ‘프리 투 플레이(Free-to-play, 부분 유료화 게임)’형의 많은 게임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제대로’ 즐기려면 적지 않은 돈을 들일 수밖에 없다. 이 때 ‘맹독성 과금 체계’가 문제가 된다. 컨트롤 실력, 소위 피지컬이 받쳐줌에도 고과금 유저의 (게임적) 강함을 따라잡지 못하는 게 스트레스가 된다. 따라서 그런 플레이 형태의 공정성에 불만을 갖게 되고 애착을 갖지 못한다. 특히나 요즘 Z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다. 수저론이 휩쓴 세대다. 현실의 경제적 요인 때문에 내 게임 컨트롤 실력이 평가 절하되는 것이 스트레스일 거다. 확률 뽑기는 말초적 재미가 있지만 직접 내 돈을 들이기엔 너무 과금 요구량이 높다. 이런 현실들이 스트리머 방송 등 ‘보는 게임’으로 대리 만족하는 경향에 일조할지도 모른다. 요즘 시대에 ‘보는 게임’은 무시할 수 없는 큰 흐름이다. 그런 면에서 게임을 보는 것이 ‘게임의 확장’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문화 콘텐츠 중에서 게임만큼 범주가 넓은 콘텐츠가 또 없다. 맞고, 애니팡부터 시작해서 전문가들도 감탄할 정도의 ‘(마이크로 소프트)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비행 시뮬레이션 게임)’까지 모두 게임이라고 불린다. ‘하는 게임’의 범위가 넓어지면 ‘보는 게임’의 범위 역시 마찬가지로 넓어진다. 넓이가 넓어지면 밀도가 낮아지듯이 ‘하는 게임’과 ‘보는 게임’ 사이의 경계선도 점점 희미해지며 그라데이션 형태가 될 것이다. 미래에는 둘의 구분이 무의미해질 수도 있고 게임 플레이는 한 판도 안 하면서 내 취미는 게임이라고 말 할 수 있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진행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 ‘김성회의 G식백과(이하 G식백과)’에서 게임 스트리밍은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보는 게임’하고 더 거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근데 거기서 더 범주를 넓히면 내 채널도 ‘보는 게임’에 속하는 것 같기도 하다. 유튜브 설문조사 기능으로 알게 된 사실인데, 내 채널에 오시는 분들의 게임 플레이 비율이 생각보다 높지 않았다. 직접 손으로 플레이해서 즐기지 않아도 게임에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을 듣는 것만으로도 게이머로서 소속감을 느끼신다. 내 채널에는 게임 산업이나 게임 문화적으로 논평을 구하고 같은 목소리를 내주기를 바라는 시청자분들이 많다 보니까 확실히 더 그렇다. 예전처럼 게임을 안 해도 충분히 게임이라는 취미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는 걸 내 구독자 성향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3 . 게임의 확장과 대체제의 등장. “게임, 편하게 누워서도 즐길 수 있는 것!” 초등학생인 아들이 ‘와, 샌즈(‘언더테일’이란 게임의 캐릭터)’라는 말을 하길래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샌즈가 밈이 됐더라. 플레이를 통해 게임이 대중화가 되는 게 아니라 밈이나 혹은 다른 매체를 통해 2차 전파가 되는 거다. 20년 전 스타크래프트 때도 비슷한 걸 느꼈다. 황제, 콩, 영웅, 천재, 폭군 등 인기 프로게이머들의 별명이나 코믹한 사진을 밈화 시켜서 향유했다. 딱히 마린과 질럿의 공격력이나 사정거리에는 관심 없어도 이런 e스포츠 밈들 만으로도 게임 친구들과의 대화에 충분히 낄 수 있었다. PC방에서 절반 이상이 스타를 하던 때가 아득하게 지났지만 그럼에도 스타크래프트의 수명이 다 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스타를 더 이상 하지는 않지만 ‘보는 게임’이라고 말하며 임요환, 이윤열, 박정석의 시대를 지나 이제동, 송병구, 허영무에 열광하던 시기가 꽤 오래가기도 했고. 지금은 아예 ‘민속놀이’화 되어 중장년층 시청자들이 젊은 세대 스트리머에게 스타 훈수를 두는 콘텐츠까지 인기를 끈다. 이제 와서 스타를 직접 하는 건 피곤해서 엄두가 안 나지만 남이 하는 걸 보는 건 아직도 재미있다는 정서다. 아까 젊은 층이 ‘보는 게임’을 원하는 이유 중 하나가 경제력이라고 했는데, 반면 중장년층이 ‘보는 게임’을 원하는 이유 중 하나는 노쇠한 체력이다. (웃음) 콘솔, PC 게임은 특정한 시간, 공간, 재력이 있어야만 한다. 반면 요즘의 모바일 게임은 말 그대로 모바일, 즉 이동성이 있다. 누워서도 할 수 있고. 휴대형 콘솔인 닌텐도 스위치는 큰 인기를 끌고 있다. PC 게임 플랫폼의 대장인 스팀(Steam)이 계속 휴대형 게임기에 도전하는 이유도 맥락이 비슷하다. 딱딱한 컴퓨터 책상에서 게이머를 해방시키고자 하는 노력이다. 책상보다는 소파가, 소파보다는 침대가 편하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편해지고 싶다는 인간의 기본 욕망을 공략하는 것이다. 예전엔 게임을 하다 피곤하면 누웠다. 지금은 모바일로 게임을 누워서도 할 수 있고, 방치형 게임을 ‘누워서 하는 게임’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시사적이지 않나? LOL을 한 때 정말 재밌게 했었다. 지금은 칼바람 협곡(정식 게임보다 간략화 된 게임모드) 두세 판만 해도 지친다. 처음 만나는 타인과 호흡을 맞춰 싸워야 한다는 게 너무 피곤하다. 롤드컵 결과와 하이라이트 영상만 보는 정도다. 그것만 봐도 충분히 욕구 해소가 되더라. 게이머의 평균 연령대가 점점 높아지면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형태도 점점 노화되어 간다. 게임과 인구, 연령 계층의 연결성 역시 중요하다. 게임사의 입장에서 돈 되는 유저층에 더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경제력이 있는 중장년층까지 판매 타겟층의 범위가 계속 높아진다. 그 결과 신체적 피로도가 덜 한 방치형 게임, 오토 게임에 성인향 과금구조를 결합 시키기도 한다. 트럭시위 등 열정적으로 개선 요구의 목소리를 내는 젊은 층보다, 스피커는 작으면서 과금력은 높은 중장년층을 공략하는 게 사업적 메리트가 크다는 게임사의 정서가 느껴지기도 한다. 성회와 비슷한 나이대의 인터뷰어 경혁은 이즈음에서 게이머 세대가 나이 들었음에 크게 공감했다. 젊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보는 게임’을 선택했다면 반대로 중장년층의 게이머는 튜토리얼을 안 봐도 게임의 맥락을 예상할 수 있다. 즉, 직접 하는 게임의 재미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직접 할 만큼의 체력이나 새로움이 없는 것. 경혁은 “최초로 게임 하는 것을 피곤해하는 늙은 세대가 등장”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성회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198-90년대 게임을 즐기던 윗세대가 그래 봐야 20대 후반 정도였다면 지금은 그 나이대가 상당히 올라갔음을 지적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다 체력적으로 힘든 걸 버티면서 며칠씩 밤새워 게임을 하고 그랬는데. 요즘에는 저희가 다 같이 늙은 거죠.” 게임도 같은 콘텐츠이나 드라마 혹은 만화 등에 비해 체력 소모의 등급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성회는 힘주어 반복했다. #4 . ‘보는 게임’의 시대, 유튜버로 살아남기 혹은 살아가기 게임 유튜브 채널 ‘G식 백과’를 개설 한지 어느덧 4년 차가 됐다. 콘텐츠 제작의 신념이 있다면? 흥미든 분노든 감동이든 ‘내’가 어떤 감정을 느낀 소재를 택하려고 한다. 민심은 뜨겁지만 정작 ‘나’는 그다지 흥미 없는 주제라면 되도록 피하고 싶다. 물론 항상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간혹 등 떠밀리다시피 콘텐츠를 제작하게 되면 회의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를 움직이는 감정들 중 가장 강한 연료는 역시나 ‘분노’다. (웃음) 셧다운제는 ‘내’가 진심으로 분노했던 소재다. 또 하나 2019년 인디게임 규제. 민원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6만여 건의 어린이 플래시 게임을 날려 버린 기계적 행정은 참기 힘들었다. 그래서 그때 국회의원을 직접 만나서 호소하기도 했던 거고. 특히 게임과 아무런 접점이 없던 자들이 우리를 계도, 계몽, 치료 해주겠다며 접근할 때 가장 분노한다. 나는 유치원 들어가기 전 문방구 오락기 시절부터 게임을 시작했는데, 항상 ‘전자오락’을 무시하고 폄하하는 기성세대의 인식을 참기 힘들었다. 나는 소위 유리멘탈에 귀도 얇고 의지도 박약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 ‘신념’이라는 게 하나 있다면 맹목적 게임 혐오, 게임 하대 인식에 대한 저항이다. 현재 72만 정도의 구독자를 가졌다. 이 정도의 성취를 예상했었는지. 2014년쯤 아프리카TV BJ를 할 때 유튜브도 같이 겸해서 했었다. 그때 구독자가 4, 5천 정도 됐었고. 한동안 쉬었다가 다시 유튜브를 시작했고 지금은 샌드박스 네트워크라는 소속사에 들어와 있다. 여기서 첫 미팅을 할 때 나한테 구독자 몇만이 목표냐고 묻더라. 그때 나랑 같은 카테고리의 유튜버 중에 제일 잘나가는 채널의 구독자가 20만 정도였다. 그 채널을 따라잡는 게 가능할지 자신이 없었다. 3년을 해서 한 15만? 더 잘해서 3년 뒤에 구독자 20만을 찍으면 대성공일 것 같다고 답했다. 지금 그럼 ‘대대대성공’을 이룬 거다. 그때 샌드박스 쪽에서 뭐라 그랬냐면 “원대한 포부를 갖고 계시네요. 열심히 노력하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겁니다” (웃음) 사실 당연한 덕담을 해주신 거고 나도 그게 현실성 낮은 원대한 포부가 맞다고 생각했다. 이 일 시작하고 의식적으로라도 항상 입에 달고 사는 게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말이다. 특별한 재주도 없는 내가 구독자 70만을 넘었다는 건 정말 기적적인 성공이고 인생의 행운이다. 구독자가 확 늘게 된 콘텐츠가 있을까? 초기에 가시적으로 확 늘었던 건 ‘그린 게임랜드 폐업’ 편. 철권의 성지라고 불렸던 오락실인데 2018년에 문을 닫았다. 오락실 키드이자 대전격투게임 마니아로서 너무 안타까웠다. 오락실 주인아저씨의 업적 등을 취재해서 많은 공감을 받았다. 정말 기뻤다. 그다음이 ‘임요환 VS 페이커’. “팬분들이여 싸움을 멈추소서. 페이커의 만개한 꽃 같은 플레이에 감동하면서 임요환이라는 깊은 뿌리를 기억해 주면 될 일입니다.” 라고 클로징멘트를 했었다. 그 구절 때문에 구독한 분들이 되게 많았다. 그렇게 초기 구독자가 확 늘었고 외부 섭외도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끝으로 ‘보는 게임’이 앞으로 어떻게 흐를 것 같은가? ‘보는 게임’이 이제 어느 정도 키워드화 됐다. 공중파 혹은 대기업 홍보 마케팅 문구로 사용할 정도로. 그러다 보니 사어화 돼가고 있다고 느낀다. 유행어는 뉴스에 소개되며 수명을 다 한다고 하지 않던가. (웃음) 얼마 전에 IPTV에서 ‘보는 게임관’을 신설했다고 들었다. 스트리머의 방송을 사다가 몇 시간 짜리를 통으로 틀어주는 건데 솔직히 회의적이다. 10대 20대가 열광할 콘텐츠를 4, 50대가 주력인 플랫폼에 틀다니. 인터넷 유행어가 뉴스에 소개되는 걸 보는 느낌이다. 구독자분들에게 내 별명은 ‘김펠레’다. 미래 예측을 항상 틀린다는 이유로. (웃음) ‘보는 게임’이라고 굳이 표현하는 게 점점 촌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보는 게임’은 게임 향유의 한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유저가 만드는 콘텐츠라는 게 전혀 신기하지 않은 세상이 되자 UCC라는 말이 사어가 됐듯이 ‘보는 게임’이라는 표현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보편화 되어 왔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게임 향유의 형태가 될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프리랜서) 박수진 ‘여성 인디 뮤지션’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음악에 관한 글을 주로 쓰며 현재는 대중음악 웹진 이즘의 필자로 활동 중이다.

  • 북미의 루트박스: 한국과 다르면서 또 같은

    관계자 A는 “미국게임업계의 모바일 게임을 경시하는 풍조는 오히려 업계관계자들 특히나 게임개발자들 사이에서 더욱 심하다”고 말하며 “모바일 게임을 만드는 개발사들은 좋은 개발자를 영입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작이 아니면 거들떠도 안보는 사람들이 많다. 인게임 결제가 있는 게임 자체에 대한 반감이 크다보니 오히려 수가 적고 따라서 로트박스 문제는 관심 밖이라는 느낌이 있다”고 말하며 루트박스가 커뮤니티 안에서 크게 회자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 Back 북미의 루트박스: 한국과 다르면서 또 같은 16 GG Vol. 24. 2. 10. 세계의 루트 박스, 루트 박스의 세계 온라인이 보편화된 이후의 비디오 게임에 대해 사행성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미 새삼스러울 정도로 많이 제기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사행성의 가장 큰 부분으로 지목되는 것은 뽑기. 우리에게는 가챠라는 이름으로 익숙하지만 익숙하지만 영미권에서는 이를 루트 박스 (Loot Box)라고 부른다. 아예 모든 종류의 루트 박스를 금지하고 있는 벨기에와 같은 극단적인 케이스가 아니라도 유럽의 국가들은 루트박스에 대해서 공적인 제재를 선호하고 있다. 루트 박스에 대해서는 엄격한 나이 제한을 두고 있는 독일, 일부 루트 박스에 대해서는 불법 도박으로 규정하고 있는 오스트리아, 아예 EU 전역에서 루트 박스가 금지되는 법안을 준비 중인 네덜란드 등이 대표적인 예다. 유럽 내의 큰 시장에서 그나마 가장 약한 제재를 가하는 곳은 영국이다. 루트 박스가 포함되어 있다는 경고문구를 붙이는 선에서 처리되고 있다. 한국처럼 확률공개를 통해서 루트 박스를 규제하려는 국가도 있다. 2017년 5월 전세계 최초로 게임사들에게 확률공개를 의무화 했던 중국과 이를 따라 2023년부터 확률공개를 의무화한 대만이 대표적이다. 이탈리아와 네덜란드 또한 확률공개를 의무로 만드려는 법안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루트 박스의 문제점에 대해서 인식하고 이에 대해서 제재를 가하려고 하는 국가들은 대부분 공적인 제재를 통해서 루트 박스를 통제하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논의의 주변에 있는 미국의 루트 박스 압도적인 규모의 게임시장을 자랑하는 미국에서도 루트 박스는 논의의 대상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202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의 게임시장은 주로 싱글플레이 패키지 게임 위주로 돌아갔기 때문에 루트 박스에 대한 논의는 많지 않았다. 물론 매출의 규모만 보면 모바일 게임들이 몸집을 계속 키워가고 있었지만 게이머 커뮤니티를 주도하는 여론 층은 콘솔에서 즐기는 스토리 위주의 게임에 대해서 고평가하고 논의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가챠가 포함된 모바일 게임이 시장을 완전히 주도하고 있던 한국과는 모양새가 달랐다. 미국의 게이머 커뮤니티의 여론을 주도하는 층은 여전히 콘솔에서 플레이하는 싱글플레이어 게임에 대한 선호가 굉장히 높고 게임을 사서 즐기는 행위를 일종의 책이나 영화 같은 전통적인 문화상품과 비슷하게 생각한다. 작품을 하나 사서 ‘클리어’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이렇다 보니 게임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돈을 써야하는 ‘인게임 결제’에 대해서 극도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게임의 스토리를 완결성 있게 즐기는 것을 선호하기에 DLC 또한 ‘인게임 결제의 다른 이름’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보니 아직 루트 박스에 의한 피해가 한국에서처럼 게이머 커뮤니티 안에서 가장 중요한 논의거리까지는 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루트 박스 자체가 화제의 중심에 올랐던 사건이 바로 2021년에 있었던 EA 내부문서 유출이었다. EA의 한 관계자가 내부문서를 캐나다의 공영방송 CBC에 제공하면서 누군가에게는 경악을 금치 못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했던 사실들이 드러났다. 54페이지의 프레젠테이션 안에는 현재는 EA FC로 이름을 바꾼 축구게임 FIFA 시리즈에 대한 내용이 많았다. 매출을 견인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거대 프랜차이즈에 대한 EA의 내부 평가는 명확했다. 루트 박스를 통해서 원하는 축구선수를 뽑아야 하는 FIFA 얼티밋 팀(FUT)이라는 컨텐츠가 사실상 게임의 시금석이라고 평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는 플레이어들을 FUT로 인도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 있다”고 기술해 놨다. 내부문서를 유출한 관계자는 루트 박스가 포함된 프로젝트를 위해서는 기쁘게 일할 수 없다고 내부고발을 한 이유를 밝혔다. 2024년 현재의 북미의 게임 커뮤니티를 봐도 루트 박스가 가장 뜨거운 주제라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여론을 주도하는 층이 피부로 느끼는 문제는 아닐지언정 루트 박스가 게이머들의 경험을 망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하는 분위기다. 사적인 제재에 나서다 미국사회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 저변에는 항상 국가의 역할과 개인의 자유가 서로를 견제하면서 발전해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미국 건국 초기 있었던 연방주의 논쟁부터 남북전쟁을 거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충돌했고 정부와 개인이 충돌해왔다. 그 과정에서 미국 사회는 정부의 공적인 행위를 통한 문제해결에 대한 기피와 불신을 품고 있게 됐다. 예를 들어 차상위계층에 대한 경제적 도움을 줄 때도 유럽은 세금을 많이 내 정부가 주도하는 복지를 강조하는 반면 미국은 개인의 기부가 모여서 서로가 서로를 돕는 그림을 선호한다. 그리고 이게 미국시장이 루트 박스를 대하는 흥미로운 지점을 만들어낸다. 미 연방거래위원회는 이미 2019년 루트 박스 판매에 대해서 소비자 보호 기능이 더 강화되야 한다고 의견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딱히 공적인 제재를 하지는 않았다. 상술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루트 박스가 문제임을 인식하고 이를 공적 제재에 나서려고 하지만 미국은 아직까지도 사적 제재를 통해서 이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보인다. 집단소송을 통해서 루트 박스에 대한 견제가 들어가는 형국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에픽게임즈에 대한 소송이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제기 된 집단 소송에 따르면 에픽게임즈는 포트나이트의 한 모드인 ‘포트나이트: 세이브 더 월드’에서 루트 박스를 판매했다. 소송을 진행한 측에서는 에픽게임즈가 루트 박스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아이템이 게임에 필수적인 요소였으며 미성년자들도 어떤 상품이 나올지 모르는 채 구매를 하는 등의 ‘착취’를 당했다고 밝혔다. 에픽게임즈는 이후 패치를 통해서 루트 박스를 구매할 때 안에 있는 상품을 확인할 수 있게 바꾸었지만 이미 지금까지 구매했던 플레이어로부터 제기된 소송을 피할 수는 없었다. 에픽게임즈사는 2021년 집단소송에서 합의에 이르렀고 2650만 달러 규모의 게임 내 재화를 지급했다. 루트 박스 상품인 ‘라마’를 구입한 모든 플레이어에게 8달러 상당의 V-Bucks를 지급했다. 로켓 리그에서도 같은 일이 있어 루트 박스를 구매한 플레이어들에게 1000 크레딧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서 게임 내 재화를 받은 플레이어는 각각 650만 명과 29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에픽게임즈는 발표했다. 소송은 효과적인 루트박스 규제인가 물론 성공적으로 합의에 이른 소송만 있는 것은 아니다. 캐나다에서는 EA를 상대로 FIFA 시리즈의 루트 박스에 대한 소송이 제기됐다. 원고인 마크 서덜랜드 측은 EA가 소비자를 기만해왔으며 루트 박스는 불법도박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 측은 EA가 기만적인 판매방법을 썼을 수 있지만 루트 박스 판매가 일종의 도박이며 따라서 불법이라고 규정한 서덜랜드 측의 주장에는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2023년 공개한 판결문에서 캐나다의 법정은 게임 내에서 통용되는 재화나 아이템은 ‘현금화’를 할 수 없기 때문에 현실에서도 사용 할 수 있는 재화를 걸고 하는 도박과는 다르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물론 EA 측은 이런 판결에 대해서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논리를 전개한 소송이 있었지만 결과는 거의 비슷했다. 모바일 게임 브롤 스타즈의 루트 박스가 미성년자에게 판매된 것은 불법도박이라고 주장한 레베카 테일러는 브롤 스타즈의 제작사인 슈퍼셀을 고소하지 않고 이러한 루트 박스 판매를 용인한 애플 앱스토어 측을 고소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루트 박스를 구매할 때 쓰는 게임 내 재화인 ‘보석’은 도박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애플은 게임 내 재화 구매까지만 책임이 있고 이후에 게임 내 재화를 이용해서 하는 것들은 애플보다는 제작사 측에 책임이 있다고 명백히 밝힌 것이다. 물론 애플과 함께 양대 앱마켓을 이루고 있는 구글 플레이 스토어 측에도 비슷한 소송이 있었다. 같은 로펌에 의해서 제기 된 이 소송은 게임의 종류가 브롤 스타즈에서 파이널 판타지 브레이브 엑스비어스로 바뀌었을 뿐이다. 당연하게도 이 소송 또한 상술한 것과 같은 이유로 기각됐다. 실패한 소송을 보면 루트 박스에 대한 규제를 주장하는 측이 루트 박스가 불법도박이라는 점을 입증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보인다. 따라서 루트 박스를 판매하는 게임들이 현재의 갑자기 게임 내부에서 현금을 가져갈 수 있는 ‘환전소’를 만들지 않는 이상 소송은 효과적인 제재가 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미국 게임업계의 의견 업계 내부에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미국 게임업계에 현직으로 일하고 있는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익명으로 들어보았다. 관계자 A는 “미국게임업계의 모바일 게임을 경시하는 풍조는 오히려 업계관계자들 특히나 게임개발자들 사이에서 더욱 심하다”고 말하며 “모바일 게임을 만드는 개발사들은 좋은 개발자를 영입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작이 아니면 거들떠도 안보는 사람들이 많다. 인게임 결제가 있는 게임 자체에 대한 반감이 크다보니 오히려 수가 적고 따라서 로트박스 문제는 관심 밖이라는 느낌이 있다”고 말하며 루트박스가 커뮤니티 안에서 크게 회자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BM과 관련한 업무를 하고 있는 관계자 B는 “현재 게이머 커뮤니티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30대 이상은 루트박스를 이용하는 일이 많지 않다. 하지만 모바일 네이티브인 10대들은 거부감 없이 루트박스를 이용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우려할 만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면서 “루트박스와 관련한 소송을 거 주체들이 대부분 10대 자녀를 둔 부모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부모도 모르는 사이에 루트박스에 돈을 탕진하는 일이 소송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나성인) 홍영훈 캘리포니아에서 살면서 게임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에 출연하고 매체에 기고를 하며 많은 분들에게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패션부터 게임까지 분야에 상관없이 재밌는 글을 평생 쓰고 싶습니다.

  • 게임 디자이너, 수익모델의 변화 앞에서

    결국 온라인 게임의 수익 모델이 부분유료화로 귀결되는 것은 필연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부분유료화로 뭉뚱그려 취급되는 과금 모델 내에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 Back 게임 디자이너, 수익모델의 변화 앞에서 04 GG Vol. 22. 2. 10. 어떤 게임 디자이너의 시작 때는 바야흐로 스타크래프트와 리니지의 투탑이 한국 게임 시장을 견인하던 시기. 인터넷의 대중화와 더불어 두 게임이 워낙 잘나가고 있을 때이므로, 한국의 다른 게임 개발사들도 이 둘을 벤치마크하여 기회를 엿보곤 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대다수 개발사들은 단품으로 팔 때에만 매출이 발생할 뿐 이후에는 별도의 비용을 받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서비스를 유지해줘야하는 RTS, 즉 스타크래프트보다는 리니지처럼 월정액제를 통해 꾸준히 매출을 올릴 수 있는 mmorpg를 대체로 선호했고, 나 또한 그런 mmorpg를 서비스 중인 회사들 중 하나에 게임 디자이너 (게임 기획자)로 입사했다. 오래 하는 게임 만들기 당연하지만 같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들도 서로 바라는게 매우 다르다. 각자 다른 취향의 플레이어들을 만족시키려는 노력은 다양한 시도들을 하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한 가지 공통된 점은 유지해야만 했다.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자주 찾고 오래 플레이하도록 만들 것’ . 온라인 게임 이전 세대의 단품 게임들은 대체로 멋지고 훌륭한, 강력하고 기억에 남는 경험을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얼마나 오래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느냐는 그다지 중요한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사업적 관점에서 본다면 그때의 게임은 한 번 팔면 그걸로 끝이니 플레이 타임과 매출의 관계는 데면데면한 것이었고, 따라서 그다지 비중이 높지 않았다. 그러나 온라인 게임은 다르다. 사람들이 게임에 더 오랜 기간 머물수록 더 많은 매출을 기대할 수 있다. 과금모델이 단품 판매가 아닌 월정액제이기 때문에. 한달 만에 모든걸 경험하고 돌아보지 않아도 될 게임을 만든다면 1개월치 월정액 밖에 받을 수 없다. 하지만 몇 개월, 몇 년을 플레이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만큼 더 많은 매출을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재밌는걸 만들자’라는 기본 위에, ‘오래 플레이하게 한다’라는 요소가 중요하게 고려된다. 지금도 일반적으로 mmorpg들은 수십 시간에서 수백 시간, 때로 수천 시간까지도 플레이하는걸 전제로 한다. 가능하다면 평생 게임을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으로. 그렇다면 일종의 ‘가성비’를 찾아볼 수 있게 된다. 가격 대 성능비. 여기서 가격이란 ‘개발에 소요되는 비용’이다. 성능은? ‘플레이어가 얼마나 오랜기간 게임을 플레이하느냐’하는 것이다. 요약하면 이런 식이다 “얼마나 적은 비용을 들여 만든 컨텐츠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랜 시간을 플레이하게 만들었는가?” 이것이 월정액제 시대에 만들어지던 게임에 대해 주어지던 가장 중요한 질문들 중 하나이다. 그렇게, ‘주어진 시간과 비용 내에 만들어진 컨텐츠로 최대의 플레이타임’을 달성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채택된 방법은 게임에 단순 반복적 플레이, 즉 ‘노가다’를 많이 넣는 것이었다. 물론 일부러 지루한 컨텐츠를 만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같은 컨텐츠를 만들더라도 언제나 ‘가능한한 오래 플레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캐릭터의 게임과 플레이어의 게임 이게 가능한 이유는 mmorpg가 플레이어의 게임이기보다는 캐릭터의 게임이기 때문이다. 게임의 승패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아주 큰 범주에서 두 가지로 나눠보자면, 플레이어의 실력이 좋아서 승리하는 게임과 캐릭터에 쏟은 시간이 더 많아서 승리하는 게임으로 나눌 수 있다. 편의상 전자를 플레이어의 게임, 후자를 캐릭터의 게임이라고 하겠다. 플레이어 게임에서 소위 말하는 ‘재능충’은 10시간의 플레이만으로도 남들에 비해 월등한 솜씨를 자랑하게 되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100시간을 플레이해도 아주 조금 발전하는데 크치고 만다. 그러나 캐릭터의 게임에서는 노력의 효율이 대체로 모두에게 비슷하다. 같은 시간을 플레이한다고 할 때, 남들은 50레벨까지 키웠는데 혼자만 100레벨로 키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모든 게임이 무 자르듯 플레이어의 게임과 캐릭터의 게임으로 깔끔하게 나뉘는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대부분의 게임들은 플레이어의 게임과 캐릭터의 게임 중간 어딘가에 있다. 그러나 두드러지게 플레이어 게임의 비중이 매우 높은 장르가 있는데 대전격투 게임, FPS, RTS 등이 여기에 속한다. 반대로 캐릭터 게임의 비중이 아주 높은 대표적인 장르가 mmorpg이다. 플레이어의 게임은 승리했다는 사실 자체가 플레이어에게 보상이 된다. 나의 실력이 이정도나 대단해! 또는 이 어려운걸 해냈어! 라는 기쁨이 게임을 더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캐릭터의 게임은 그렇지 않다. 캐릭터의 게임에서 주어지는 장애물들의 난이도는 일반적으로 시간을 많이 들인다면 누구나 성취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다. 그리고 장애물을 극복하면 게임 내에서 아이템, 경험치 등 뭔가가 주어진다. 아이템과 경험치에 부여된 일련의 ‘숫자’들은 내 캐릭터를 강하게 만들어주고, 그렇게 아이템과 경험치를 모아 점점 더 강해진다. 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라는 기분이 캐릭터 게임을 지속하게 하는 주된 동기부여 장치이다. 플레이어의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플레이어 본인이 연습을 통해 자신의 실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캐릭터의 게임은 시간을 들여 과제를 해결하고 그 결과 주어지는 보상을 통해 캐릭터를 강하게 만들면 된다. 캐릭터 게임의 대표적 장르인 mmorpg에서, 플레이어는 ‘강해졌다’라는 느낌을 즐긴다. 그리고 그런 느낌은 게임 내에서 ‘보상’의 형태를 통해 제공된다. 단순반복 플레이가 지루하다면 플레이어가 캐릭터의 게임을 지속해야 할 동기는 어디에 있는가? 그건 노가다의 끝부분에 배치된 보상 때문이다. 다소 지루한 플레이를 일정정도 마치고 나면 얻게될 보상. 그 보상을 통해 내 캐릭터는 더 강해질 것이라는 기대감. 이런 메커니즘이 가장 많이 쓰인 장르들 중 하나가 mmorpg이다. 앞서 말한대로,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 대비 매출의 관계는 결국 mmorpg 만들기를 ‘얼마나 노가다를 더 잘 만드느냐’의 문제로 바꾸었다. 더 잘 만들어진 노가다란 대체로 플레이어가 게임이 지겨워 떠나가기 직전까지 단순반복 플레이를 시켜 시간을 끌다가,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멋지고 근사한 보상을 획득케함으로써 다시 게임을 지속할 의지를 불태우게 만드는 것이다. 노가다가 낳은 현질 그리고 부분유료화 보상은 좋다. 그건 명백한 동기부여장치이다. 하지만 노가다는 싫다. 그래서 플레이어들은 노가다를 피할 방법을 찾아냈다. ‘돈을 주고 남에게 시키는 것’이다. 획득하기까지 지난한 시간이 걸리는 아이템이 있다면? 그걸 이미 얻은 누군가에게 돈 – 즉 현금 – 을 주고 구입하면 된다. 캐릭터를 성장시키는게 어렵다면? 누군가에게 돈을 주고 내 캐릭터를 대신 플레이하여 레벨을 올리게 한다. (부주副主. 캐릭터의 본래 주인인 본주本主 에 대비되는, 대신 키워주는 이들을 일컫던 당시의 용어) 게임 내 화폐가 더 많이 필요한데 플레이를 통해 얻을 시간이 없거나 귀찮다면 마찬가지로 현금 거래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대로 mmorpg는 ‘캐릭터의 게임’ 속성이 매우 강한 게임이고, 그렇기에 시간을 투자한만큼 강해진다. 이 시간의 대부분이 단순 반복적 플레이, 즉 노가다로 채워진다는 것은 지금까지 설명한 바와 같다. 그렇다면 강해지고 싶지만 노가다를 하고 싶지는 않다면? 사려는게 아이템이든 캐릭터이든, 돈을 주고 구입하면 된다. 당시 mmorpg에서는 지금과는 달리 모든 아이템은 거래 가능한 것이 기본이었기에 가능했던 일들이다. 다양한 게임에서 유사한 현상을 찾아볼 수 있겠지만 특히 mmorpg에서 이러한 거래는 광범하게 일어났다. 인기가 높은 게임일수록 현질 – 아이템을 현금거래를 통해 매매하는 것 – 의 빈도와 비중이 높았다. 게임 속의 아이템 또는 고레벨 캐릭터와 현금을 서로 거래하기 위해 아이템 베이를 위시한 아이템 거래 전문 사이트까지 생겨났고 한동안 상당한 성업을 이루기도 했다. 아이템 거래 사이트의 활황은 게임 개발사들에게는 꽤 배아픈 일이었다. 내가 만들고 서비스하는 게임의 아이템과 재화와 캐릭터가 다른 서비스 (아이템 거래 서비스)를 통해 거래되면서 높은 중개수수료를 먹고 있다니? 심지어 개발사에게 아무런 라이선스나 로열티에 대한 합의도 없이? 물론 ‘배가 아팠다’라고 하면 너무 저속해보이니까 회사 입장에서는 점잖게 ‘새로운 사업 기회가 열렸음을 깨닫게 되었다’라고 해야겠지만. 바로 이 ‘새로운 사업 기회’는 결국 mmorpg들이 월정액제 중심에서 부분유료화 중심으로 옮겨가게하는 계기가 되었다. 초기에는 ‘들인 시간 대비 캐릭터의 성장은 모두에게 같아야 한다’라는 유저들의 믿음으로 인해 부분유료화에 대한 저항이 매우 강했으나, 수년간에 걸친 인식 변화를 통해 지금은 ‘월정액제만으로 서비스되는 mmorpg’는 찾아보기 어려울정도로 보편화되었다. 한편, 한국 캐주얼 게임은 또 다른 이야기로 들어가기에 앞서 ‘캐주얼 게임’이라는 용어에 대해 잠시 부연하고자 한다. 명확한 조어는 아닐지언정 당시 한국 게임 시장에서 ‘mmorpg가 아닌 장르의 게임들’은 모두 ‘캐주얼 게임’으로 통칭되곤 했다. 게임 자체만 놓고 보면 전혀 캐주얼하지 않았음에도 그랬는데, 적절한 단어라는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들지 않지만 어쨌건 그것이 널리 쓰이는 용어였으므로, 이 글에서도 ‘캐주얼 게임’이라는 것은 ‘mmorpg가 아닌 다른 장르의 게임들’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하겠다. mmorpg가 한국 게임 시장에서 탄탄한 위치를 차지하고 그걸 꾸준히 유지하는동안에도, 소위 ‘국민 게임’이라 불리우는 게임들은 mmorpg가 아니었다. BnB나 카트라이더, 포트리스 블루 등이 대표적이다. 이 게임들은 모두 mmorpg와 선명히 대비되는 특징이 있다. mmorpg가 ‘캐릭터의 게임’인데 비해 이들 게임은 모두 ‘플레이어의 게임’이라는 점이다. 이런 게임들은 월정액제 도입이 어렵다. 흔히 말하는대로 ‘남는게 없’기 때문이다. 캐릭터의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게임에 투자한 시간은 게임 내의 캐릭터나 캐릭터가 장비한 아이템 등의 형태로 남는다. 그것은 이후에 다시 그 게임에 접속할 경우 내가 여전히 강력한 위치에 있을 것임을 보장해준다. 심지어 아이템 거래 사이트에 내다 팔아서 현금화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캐주얼 게임은 플레이어의 실력에 의존하는 게임이고 그렇기에 지금 내가 고수에 해당하는 실력을 가졌더라도 이후에도 그러리라는 보장이 전혀 없다. 이 장르에서 게임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게임 내의 그 무엇도 아닌 내 실력을 높이는 것이다. 결국 게임 내에 남는건 없는 셈이다. mmorpg에서 승리하기 위해 내 캐릭터가 필요하다면 그걸 이용하기 위해 플레이어들은 기꺼이 월정액을 지불한다. 하지만 캐주얼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게임 내에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 자신의 실력이다. 그렇다면 월정액을 지불할 이유도 없다. 플레이어의 게임이기에 게임에서 거둔 승리의 기쁨 등은 분명 게임을 지속하게 하는 동기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과금을 유도할 수는 없었다. 단순히 ‘재미있었다’만으로 게임이 유저들의 결제를 이끌어내기엔 부족했다. 이런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이 퀴즈퀴즈 초기의 월정액제 도입 실패 사례이다. 퀴즈퀴즈는 1999년 오픈 베타 테스트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바 있다. 초기 베타 테스트 기간이 어느정도 지나 상용화를 시도할 즈음이 되어 넥슨은 퀴즈퀴즈에 월정액제를 도입했다. 가격은 월 16,500원으로 당시 다른 게임들에 비해 낮은 편이었고, 그때는 게임 = 월정액제가 너무 자연스러웠기에 이 결정이 현명한 것이지는 못했을지언정 당시 관점에서 얼토당토 않은 수준의 이상한 결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월정액제 퀴즈퀴즈는 게이머들에게 철저히 외면받는다. 놀란 넥슨이 곧바로 가격을 인하했음에도 상황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기대 이하의 성적을 보이던 퀴즈퀴즈의 인기를 반전시킨 것은 게임 본편을 무료 플레이로 전환하되 부분유료화의 초창기 모델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부분유료화 도입 이후 퀴즈퀴즈는 상용화 이전에 보이던 인기를 회복하게 된다. 이후 “mmorpg는 월정액제, 캐주얼 게임은 부분유료화” 구도가 한동안 유지되었다. 그러면 결국은 …? 지금까지 얘기를 정리하면 이렇다. 캐릭터 게임에서 요구하는 긴 플레이 타임은 필연적으로 상당한 양의 단순 반복적 플레이를 수반하게되고, 이를 우회하려는 유저들의 니즈는 초기의 반발을 딛고 부분유료화로의 전환을 대체로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 플레이어 게임에서는 어차피 월정액제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렇기에 부분유료화가 태어났으며, 당시로서는 새로웠던 이 수익 모델은 시장에 환대받으며 안착했다. 그렇다면 결국 온라인 게임은, 캐릭터 게임이건 플레이어 게임이건 관계없이 어차피 나중엔 부분유료화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게이머로서의 나는 월정액제를 선호하는 편이다. 부분유료화가 요구하는 다양한 상품들을 살펴보고 내게 맞는 상품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필요할 때마다 잦은 빈도로 이것저것 결제한 다음에도 남들보다 내가 뭔가 손해본게 아닐까? 같은 돈을 게임에 써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걸 고민하고 가끔 후회하는게 피곤하다. 게임에만 집중할 수 있기를 바라고, 그런 측면에서 월마다 자동결제 해두고 컨텐츠에만 집중하면 되는 월정액제가 내게 맞다고 느낀다. 게임의 가장 코어한 부분까지 가서 가장 깊은 부분에 있는 핵심 컨텐츠까지 맛보기 위해 필요한 비용 또한 부담된다. 월정액제 게임에서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건 월정액 요금이 전부였다. 부분유료화 게임에서 그렇게 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은 아무리 적어도 월 수십만원인 경우가 보통이며, 많게는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이 필요한 경우조차 있다. 하지만 어쨌건 게임 디자이너이자 게임 개발자로서 나는, ‘서비스 형태의 게임이 대체로 부분유료화로 쏠리는 것’에 대해 지금까지 설명한 바와 같은 생각을 거쳐 꽤 납득하게 되었다. 잘 모르면서 어떻게든 만들던 월정액제 게임 시대 게임 개발 경험 상에서 월정액제 게임과 부분유료화 게임은 다른 점들이 꽤 있다. 월정액제 게임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고 살펴보게 되는건 동시 접속자수이다. 특히 mmorpg는 동기화 플레이가 필수적이고, 그렇기에 동시 접속자수는 매우 중요한 지표로 취급된다. 그럼 다른 수치들은? 아쉽게도 월정액제 게임을 서비스하던 시기에는 그러한, 지표에 의해 유저의 행동을 살피는 일은 흔치 않았다. 왜냐면 … 그게 가능하다는걸 몰랐기 때문이다. 당시 함께 게임을 만들던 이들은 대체로 단품으로 구성된 게임을 즐기며 성장한 이들이다. 한 번 구입해서 엔딩을 볼 때까지 플레이하는 형태의 게임들. 계속해서 서비스되는 형태의 게임에 대해 만드는 입장에서도 처음인 것들이 많았다. 아울러 이 시기는 인터넷 문화 자체가 새로운 것이었기에, 지금처럼 서비스측에서 여러 유저 지표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교차해서 살피는 일들 자체가 아직 보편화되기 전이었다. 게임의 형태 자체도 지표를 뽑아 분석하기에 까다로운 지점들이 많았다. 전술했듯 이 시기의 게임들은 많은 경우 단순반복 플레이로 메워져있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 알게된 다른 이들과 때로는 우호적인 때로는 적대적인 관계를 맺곤 했으며 그 자체가 게임이 제공하는 컨텐츠의 일부로 여겨질 때이다. ‘커뮤니티는 온라인 게임 서비스에 매우 중요한 것’이라는 말은 금과옥조로 여겨지긴 했지만, 그래서 그걸 자극하고 증진시키기 위해 어떤 일들이 가능한지를 게임 플레이에서 알수 있는 숫자만 가지고 짐작하기는 쉽지 않았다. 전세계적으로 거대한 임팩트를 던졌던 게임인 World of warcraft가 나오면서 mmorpg를 컨텐츠로 채워넣는다는 개념이 보편화되기 시작했고, 플레이어들은 노가다를 하면서 다른 이들과 교류를 즐기던 시절에서 벗어나 게임이 제공하는 여러 피쳐들을 플레이하게 되었으며, 이런 일종의 정형화된 플레이 패턴이 정립되면서 비로소 ‘분석하기에 좋은 행동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전의 mmorpg 게임들이 널따란 운동장에 축구공 몇 개 던져놓고 ‘재밌게들 노세요’하는 편이었다면, 와우는 운동장을 미끄럼틀, 시소, 그네, 정글짐, 철봉 등 다양한 놀이기구로 채워놓고 ‘뭐 하고 노실래요?’하는 식이다. 뭔가 좀 알게 된 부분유료화 게임 시대 그리고 대략 2010년 정도를 기점으로 모바일 게임 이슈가 PC 온라인 게임을 앞서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때 이후로 나온 게임들은 대부분이 와우가 제시했던 ‘컨텐츠로 가득한 놀이공간’의 개념을 따른다. 나는 와우의 임팩트가 던진 충격이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고 그게 새로 개발되는 게임에 보편화된 시점을 그 즈음으로 보고 있다. 이전 세대의 게임들에 비어 있는 공간이 많고 그 공간을 ‘커뮤니티 활동’이라 통칭되는 유저간의 상호작용이 메워주는 모양새였다면, 와우 이후에 나온 게임들은 플레이어들이 다른 플레이어에 주목하기보다는 게임 자체에 좀더 시선을 주길 원했고, 그 과정은 다양한 경로의 플레이 경로를 만들어냈고, 그 모든 플레이 경로에서 플레이어들이 하는 일들은 수치로 환산되어 관찰과 분석의 대상이 된다. 아무 것도 없는 빈 운동장에 축구공과 함께 놓여진 이들이 누군가는 축구공과 관계없이 혼자 담벼락 옆에 서있을 뿐이고 또 누구는 축구는 안하고 스탠드에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고 그 중 일부는 축구공으로 축구는 안하고 발야구를 하고 있을 때, 다들 왜 그러는지를 짐작하는건 얼추 가능하겠지만 정확한 이유를 알아내는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다양한 놀이기구로 채워진 운동장에서 그네가 시소보다 유저가 머무르는 시간이 32%가량 길다거나, 어딘가에는 줄이 너무 길어 불편함을 겪고 있다거나, 정글짐에서 유난히 부상자 발생율이 높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취해야 할 조치가 좀더 분명해진다. 이를 게임에 대입하면, 대부분의 퀘스트를 대다수의 플레이어들이 잘 수행하고 있지만 327번 퀘스트에서 유독 퀘스트 포기 확률이 15%를 넘는다면? 이 퀘스트에 뭔가 문제가 있으므로 살펴봐야 한다는 의미이다. 37레벨까지 모든 클래스의 레벨업 속도가 일정하지만 37레벨 이후부터 마법사의 성장 속도가 유난히 느려진다면? 37레벨 직후의 퀘스트나 던전 플레이에 마법사를 어렵게하는 뭔가가 있으므로 찾아서 고쳐야한다는 뜻이 된다. 이런 많은 것들을 알아내고 조치하기 위해 다양한 지표들이 개발되어 쓰인다. Organic user와 non-organic user, UV/NRU/ARU, DAU/WAU/MAU, PU/NPU/PUR, Retention Rate과 Bounce Rate, ARPPU 등등. 이들은 말하자면 게임 개발의 도구이다. 월정액제 시대에는 모호해서 분석하기 난해했던 여러 측면들을 자세히 뜯어보기 위한, 우리가 만든 게임이 어떻게 플레이되고 있는지를 자세히 살펴보기 위한 도구. 어차피 게임 개발 게임 디자이너를 포함하여 게임 개발자들은 원래가 다양한 제약과 함께 일하는 이들이다. 월정액제 시대에는 그게 동시 접속자수라는 지표와 다양하게 해석이 가능한 여러 현상들이었다면, 부분유료화 시대에는 게임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가급적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해 분석 도구들이 더욱 정교해졌다. 월정액제 시대에는 플레이어들이 게임에 더 오래 머무르도록 해야한다는 제약 아래에서 일했고, 지금은 더 많은 상품을 팔면 좋다는 제약 아래에서 일한다. 둘은 언뜻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시야를 넓혀보면 결국 매출이라는 같은 목표에 다름아니다. 이왕 제약이 주어진다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더 정교한 도구와 방법을 쓸 수 있는 쪽이 더 좋다. 한때는 모바일 게임들이 다들 너무 엇비슷하다는 생각도 했었다. 내 가설은 이러했다. 먼저 수익 모델은 고정된다. 가장 검증된 모델만을 쓰는게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익 모델이 안정을 추구하면, 수익 모델에 엮인 게임 디자인도 거기에 호응해야만 한다. 둘은 너무 긴밀하게 엮여있어서 따로 다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게임 디자인에 변화를 줄 여지가 적어지면, 게임 자체가 다른 게임들과 엇비슷한 것만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여러 모바일 게임들을 직접 플레이해보면 모두 조금씩 다른 구석을 가지고 알고 있다는걸 알게 된다. 장르 내에서 플레이 패턴이 상당히 비슷한건 부인할 수 없겠지만, 원래가 ‘장르’라는건 비슷한 핵심 요소를 공유하는 것들끼리 모아둔 것을 칭하는 말이다. 월정액제 mmorpg들을 만들던 시기 게시판에 모여든 유저들이 입을 모아 ‘요새 mmorpg들은 어차피 다 천편일률적이지 않나요?’하는 의견이 큰 호응을 얻었던 것도 기억한다. 난 그 ‘천편일률적’이라 불리우는 게임들 중 하나를 만들면서 같은 장르 내의 다른 게임들과 차별화를 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는데. 이후의 수익 모델에 기대하는 것 결국 온라인 게임의 수익 모델이 부분유료화로 귀결되는 것은 필연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부분유료화로 뭉뚱그려 취급되는 과금 모델 내에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기초적인 치장 아이템으로부터 게임 진행에 필수적으로 여겨지는 경험치 획득 효율 향상 효과 상품까지.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 기간제 아이템이 한때는 높은 매출을 올리는 상품이었던 것도 주목할만 하다. 그리고 최근에 이 분야에서 가장 핫한 이슈는 아마도 확률형 아이템일 것이다. 그러나 확률형 아이템조차 적절한 선에서 형성된 소위 ‘천장’과 공들여 만든 캐릭터가 연계하여 컨텐츠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그 대상을 구입하게 하는 게임이 있는가하면, 더 우월한 효과를 갖기 위해 컴플리트 가챠를 완성해야하는 형태까지 자세히 살펴보면 다름이 눈에 들어온다. 전자의 경우 자신이 구입한 컨텐츠에 만족하는 경우가 많지만, 후자는 다른 이들에게 지지 않기 위해 해야하는 경우도 있다. 부분유료화 상품들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계속 변화해나가겠지만, 가능하다면 ‘구입한 후에 후회하지 않는’ 방향을 지향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이머, 디자이너) 김주용 30+년차 게이머, 20+년차 게임 디자이너. 게이밍 컬쳐 전반에 걸쳐 관심이 많습니다. 요새는 스탠드 얼론으로 게임을 시작한 오래된 세대와 멀티 플레이가 디폴트인 요즘 세대 사이의 게임을 대하는 관점 차이에 관심이 많습니다. 종종 기고나 강연에 나서기도 합니다.

  • [Interview] The Story of Digital Game Diversity & Accessibility and Making Books About it – Kyung-jin Lee, Diversity & Inclusion Director at Smilegate

    In August 2024, Smilegate – one of the best-known South Korean game developers & publishers, published two books aimed at game developers, focusing on game accessibility and diversity. The first book, “게임 접근성 개념과 사례 (Concepts and Cases of Game Accessibility)”, explores the concept and current state of accessibility and diversity in South Korean games and case studies. It also delves deep into design approaches to ensure all players can fully enjoy games without restrictions. Smilegate’s second book, “콘텐츠 다양성 개념과 사례(Concepts and Cases of Content Diversity)”, introduces the idea of "cultural diversity" and examines how it has been implemented in South Korean media and games. < Back [Interview] The Story of Digital Game Diversity & Accessibility and Making Books About it – Kyung-jin Lee, Diversity & Inclusion Director at Smilegate 23 GG Vol. 25. 4. 10. ** You can see the Korean version of this article at this URL: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181117cd-bed7-427a-bc3c-ecba6413a629 In August 2024, Smilegate – one of the best-known South Korean game developers & publishers, published two books aimed at game developers, focusing on game accessibility and diversity. The first book, “게임 접근성 개념과 사례 (Concepts and Cases of Game Accessibility)”, explores the concept and current state of accessibility and diversity in South Korean games and case studies. It also delves deep into design approaches to ensure all players can fully enjoy games without restrictions. Smilegate’s second book, “콘텐츠 다양성 개념과 사례(Concepts and Cases of Content Diversity)”, introduces the idea of "cultural diversity" and examines how it has been implemented in South Korean media and games. For this special issue of GG, we spoke with Kyung-Jin Lee, Director of Smilegate’s Diversity & Inclusion (D&I) department, to discuss why the company emphasizes D&I and what this means for socially and commercially in game productions. Editor: Thank you for coming. One of the reasons we wanted to interview you was to highlight what Korean game companies are taking action regarding game accessibility and diversity. Smilegate has taken a proactive approach to this topic by publishing these guidebooks. We all agree that taking the first step is never easy, especially when there are only a few known cases to reference here in Korea – yet. So, thank you for taking the initiative. So, our first question is, were there any challenges you faced when initiating this accessibility and diversity project at Smilegate? What’s your thought on this? Lee: About six months after I joined Smilegate, I attended the GDC (Game Developers Conference) in the US for the first time. Seeing tens of thousands of developers gather to discuss a wide range of topics—many of which weren’t directly tied to the profitability of the games—was eye-opening for me. What caught my eye was that those topics were not isolated within specialized teams within each company. Instead, they were discussing these topics with various stakeholders between the team and companies. It was astonishing to see that game developers were organically sharing various insights and know-how on making games better for the future. The issue of game accessibility, in particular, stood out to me the most. Considering that video games continue to grow as a mainstream entertainment medium, I wondered, ‘Are we truly considering players from diverse backgrounds when designing our games? Are we listening to their needs?’ And the reality was that we had a long way to go. One of the biggest hurdles pointed out at the GDC that year was accessibility for players with disabilities, presented by actual people with physical challenges. It was also insightful to see that some game companies actively hire people with physical challenges while developing a game or establish community channels to gather feedback directly from those people to achieve better game accessibility. So, that visit to the US was a pivotal experience for me. Upon coming back to Korea, we realized that this was something that we needed to do here at Smilegate. So, after a series of discussions, we decided to hire game developers with disabilities – as we thought that would be the most effective way to tackle the issue of our game accessibility. Editor: Right. So, if I understood correctly, your team hired several game testers to work on accessibility together? Can you tell us more about how it went? Was it easy to find candidates? Lee: Hiring was not the biggest issue. For example, one of our current game accessibility testers is an active game player born with a hearing impairment. They told us that until the age of six, they were unable to speak. Thankfully, after getting a hearing aid, their language skills developed rapidly. For this person, video games were both a friend and a way of life. Opportunities for people with disabilities were relatively sparse. If we do a rough estimation, say roughly 5% of the population has some form of disability, then it would make sense to have that amount of job opportunities in game-related fields for those individuals. The reality is, apparently not. So, we thought there would be enough people to join our initiative and start posting job listings looking specifically for game accessibility testers. We also worked closely with the Korea Employment Agency for the Disabled (KEAD) to explain our intentions and goals. KEAD also saw great potential in this because most jobs often offered to people with disabilities in Korea are primarily concentrated in the service sector, like nail polish art or car washing jobs, but have little to do with the creative industry. So KEAD was like, ‘This is a new thing for us,’ and provided significant support in the recruitment, which resulted in a surge in applicants. During interviews, I realized something profound: many people love games and want to turn that passion into a career, yet they have never been given the opportunity to do so. One of our testers, who I mentioned earlier, the one with hearing impairment, later told me, ‘If not for this job, I would never have imagined myself being able to engage deeply and think about games that I love in this professional manner’. Editor: When implementing game accessibility and diversity initiatives, companies often view business objectives as their natural pursuit of profitability while perceiving ethical responsibilities as something they ‘have to’ do because of rules. This could be a bit of a sensitive question, but if we were to categorize Smilegate’s motivations into game accessibility and diversity, which one would hold greater weight? Business or ethical considerations? Lee: That’s a great question. Initially, I approached this initiative purely from social and ethical responsibility, believing it aligned well with Smilegate’s corporate values. However, as more testers came in, we received incredibly detailed feedback about the games we were developing. Since they were passionate gamers, they analyzed the games meticulously and reported their experiences to the developers. I can confidently say that their input significantly improved our games’ quality. We also acknowledge that people play games in many different ways—some use one hand, some use their feet, and others rely entirely on their eyes. Meeting and talking with these players who use ‘diverse’ ways to play games helped us pinpoint the issue more in-depth and iterate our game designs. While game accessibility may be seen as an initiative to improve the game for the ‘few,’ what it does is that it benefits the ‘many.’ That’s why we now consider improving accessibility means improving our overall game quality, which in turn attracts more players. Editor: Would you say Smilegates’ accessibility-related tasks primarily focus on testing but not so much on the actual game development process? Lee: That is correct. Our current primary focus is identifying issues within games. We try constantly testing our various game titles, pinpoint problematic areas from an accessibility standpoint, and report them to the development team. Since our testers play many games across genres, they provide us with how different each game is, good or bad, in terms of accessibility. For instance, one game might include colorblind-friendly features, while another in the same genre might completely lack such a thing. Such insights allow us to provide constructive feedback to developers, with actual references for them to benchmark on. For players with hearing impairments, visualizing audio cues in games is quite crucial. If all in-game sounds can be represented as visual indicators, the barriers to their playing games will be significantly improved. So we try to provide as many references to our game developers, on how to iterate UX/UI design solutions that can effectively translate audio into visual elements. Which serves as a good guide for our developers to iterate their designs. Editor: Solutions like that seem like not just an isolated issue for players with disabilities. For instance, such visualized audio cues would also be helpful for those playing games in the metro or other public spaces without audio devices. I also often say, “Low-floor buses are not just for those with wheelchairs; in fact, they also help my mom and her knees.” In the same way, accessibility doesn’t just help usability for minorities; it enhances usability for everyone. So, in your case, having testers with firsthand experience with game accessibility challenges has been crucial in identifying where and what to improve Smilegate’s games. Then, have you noticed any changes within the development teams due to their feedback? Lee: Frankly speaking, that was one of my biggest concerns at the beginning of this initiative. Game development teams are often under tight deadlines and limited resources, so game accessibility issues might not always be a priority compared to, let’s say, fixing critical bugs in the game. So, it wasn't easy to bring up the topic at first. But thankfully, over time, I sense that our game development teams’ overall awareness of game accessibility has significantly improved. For example, one of our Smilegate teams working on new game projects has proactively approached us, saying, ‘Since we’re targeting a global audience, we want to make sure our game meets accessibility standards. Could you test our game?’ I think there’s certainly a market demand here. I was in discussion with some game projects at Smilegate that aim for a global launch. And we hear things like, ‘We had to make several revisions because our game lacked game accessibility issues’. This shift in mindset shows that the industry is starting to recognize the need for accessibility. Editor: How long did it take for your development teams to recognize these needs for accessibility efforts? Lee: We hired accessibility testers in January and then held our first game accessibility review open session in June. Many game developers attended, and one lead developer told me that despite working in games for over a decade, they had never considered accessibility in this way. They also said that they have felt deeply about the need for game accessibility and will consider it when making games. I’d say it took us about a year and a half until we started receiving proactive requests from teams to review game accessibility in their projects. That was also the amount of time we needed to raise awareness of the issue to take root; if we do not consider game accessibility now, the game will end up in trouble. One and a half years was the time that we needed to reach the point where, in development team meetings, it became natural to have someone asking, ‘Is this okay from an accessibility standpoint?’ or where a project lead would say, ‘let’s make sure to consider accessibility as well’ to their team. Editor: Okay, so one and a half years, until you noticed changes. Was it shorter or longer than you anticipated? I’m asking because I also hope to interview other game companies in Korea and their relevant departments on what we can learn from this experience. So, it would be nice to provide some hope to teams out there who are working on similar issues that you’ve faced. Lee: I think things improved quicker than I thought. Perhaps it’s because quite a few people at Smilegate were already interested in game accessibility, which helped us spread the idea faster. Editor: We’re also interested in hearing about the game accessibility in gameplay devices, aka, hardware. You’ve recently showcased a gameplay device accessibility exhibition as well. But Smilegate isn’t particularly a hardware company; it’s a company that develops and publishes games. So, are there any challenges you face regarding game accessibility due to limitations coming from gameplay hardware rather than software? From your game accessibility department’s perspective, are there any unsolvable challenges you might have that come from the physical limitations of the gameplay devices? Something that is beyond game software developers’ control? Lee: So far, we have only tackled areas that we can control and haven’t caught up with such hardware issues. There are vendors that provide various assistive devices for living and gaming. We worked closely with the Gyeonggi Assistive Technology and Rehabilitation Assistant Center (GGATRAC), which allowed us to showcase various assistive equipment at the exhibition. However, we still need to talk with players using those types of equipment in daily life to pinpoint what we can do to iterate our games. That’s why we expect a one-day panel session with these individuals to hear their needs and discuss what we could do. Unfortunately, we are having difficulty finding enough participants for this session. Editor: Even if a game company is committed to improving their games’ accessibility, there are still limits to the limited hardware infrastructure. So, in that sense, perhaps your work goes beyond just enhancing Smilegate’s internal game development process. It seems more about fostering a dialogue and external collaboration. Lee: Absolutely. Expanding accessibility requires a broader foundational work. That’s why we’ve been discussing a project with GGATRAC to install some gameplay devices for people with disabilities. The center has around 1,000 members and is equipped with about 165 square meters of available space. So perhaps we could use profits from our two books to set up some computers and assistive devices there, transforming the space into a place where people with disability could play games freely at any time. And call it a ‘Game Play Lab’ or ‘Game Living Room’—something like that. Editor: Funny that you mentioned the profit from the books. Making profits by selling books is not always easy these days. I guess the books have sold decently well? Lee: True. It’s not easy. But honestly, we never aimed to profit from these book projects, so we didn’t have high expectations. We mainly released these books because, when pioneering something new, we have to develop a cohesive language (vocabulary) for it, too. Without a clear terminological framework, it’s challenging to articulate ideas and concepts or define them in a way that would resonate with many people. By putting these ideas into words, we hoped to spread awareness and help people understand the value of accessibility. In many ways, this book is our first step. It is about establishing language and providing a foundation for future works before it’s too late. Our next goal is to refine these concepts further to continue evolving our work. Perhaps we can publish more books in the future. Editor: Oh, so would there be follow-ups? If so, what are the plans for the next publications? Lee: Yes. If you take a look closely at our books “Concepts and Cases of Game Accessibility” and “Concepts and Cases of Content Diversity,” you’ll notice that they are labeled as books number 1 and 2. We don’t have concrete plans for a third or fourth book just yet, as we’re still in work progress. Our current aim is to document more of our internal case studies and investigate more case examples in future volumes. In fact, the third chapter of “Concepts and Cases of Game Accessibility,” already includes some of our real-case examples. We want to continue recording and sharing our journey onwards. In addition to book publishing, we also have some educational videos titled "An Alternative Perspective on Diverse Players: Inclusive Game Design (다양한 플레이어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방식, 포용적 게임 디자인)", which is specifically designed as an educational video for game developers. Right now, we are in the process of distributing the video internally within our company—to game developers here in Smilegate. But of course, our long-term goal is to expand its reach to universities and industry organizations, exposing them to future game developers. We plan to collaborate with institutions that recognize the importance of this topic, providing the content for free and integrating it into their pedagogical coursework. Editor: This might be a bit sensitive question, but do you feel that our industry and education have the necessary expertise to effectively educate people on diversity and inclusion? Lee: Surely diversity and inclusion haven’t been part of the mainstream agenda of our conventional paradigm in Korean society. That’s why we are exploring potential partnerships with universities and academic organizations in Korea that align with our vision to incorporate the topic of diversity and inclusion. The aim here is to tackle the issue in a more structured way, such as curricula and practical pedagogical implications for future game devs. For example, we could organize an academic conference with both domestic and international speakers while also discussing with these experts the “Concepts and Cases of Game Accessibility” book. When we first started this work, we collaborated with experts from the AbleGamers Foundation, a US-based nonprofit organization focused on game accessibility, and professionals specializing in inclusive game design worldwide. We envision one day inviting these experts here and hosting a forum where we could foster industry and education-wide conversations. We look forward to joint collaboration with academia and industry experts in the future. Editor: The issue of game accessibility is not the one-game-company problem, and Smilegate cannot tackle this alone. We were particularly struck by, during the recent accessibility exhibition, how many representatives from different companies were present, indicating a growing industry-wide interest in this topic. What’s your thought on this? Lee: There are outside cases like the Fair Play Alliance. It’s the place where game companies and players meet and collaborate to make gaming more inclusive. I think these kinds of cross-industry conversations help not only improve accessibility but also grow the game market itself. I believe Korea would greatly benefit from similar open discussions and exchanges of ideas among game developers. Editor: IT sectors tend to establish industry standards through international dialog, where companies and academia work together to discuss certain new terminologies and technologies. And eventually, establish universal standardized protocols across the industry. I see that we perhaps also need such cross-regional cross-sectional collaboration for games. Some countries already do have some game accessibility guidelines, but they aren’t always shared or discussed outside their comfort zone. What’s your thought on this? Why does game accessibility still struggle to achieve broad dialog? Lee: I’ve been contemplating this issue, too. For instance, North America has proactively driven game accessibility initiatives, but those initiatives’ connection to Asia remains weak. This is a bit surprising for me, given how rapidly the Asian gaming industry has grown in the past years. However, I also sense that we’re living in a moment of change. I see that things are different now. Within our company, I’ve noticed a shift in the atmosphere. More game developers are expressing interest in game accessibility. For instance, I’ve met a front-end developer who has reached out to us, saying they resonate with these values and want to learn more. Seeing this kind of naturally emerging engagement motivates us to keep pushing forward. Even if it starts with just a handful of individuals, sustaining this momentum is key to long-term progress. Editor: It’s remarkable to see how your company has made significant strides in promoting game accessibility. And we’re starting to see some tangible results. But what about the public sector? You seem to be actively collaborating with public organizations—do you think greater government involvement and support could accelerate progress? Lee: Last month, there was a conference discussing tax benefits for game companies investing in game accessibility. Unlike other media, games rely heavily on complex technology, making accessibility solutions particularly challenging to implement without the private sector’s effort. There’s certainly a growing discourse about the need for game accessibility, and that is also true even in the public sector. So, I believe things will move faster from now on, as both public and private sectors are on board. What stood out to me was their shift in focus—not just recognizing the importance of accessibility but actively considering how to encourage companies to take action rather than the government trying to approach this top-down. Editor: Perhaps we will see more game companies that have dedicated accessibility and diversity teams in the future. Some may take individual initiatives, but do you think there’s value in forming an industry-wide coalition in Korea for game accessibility initiatives? Like an overarching organization to drive progress beyond each company and its teams working individually that could perhaps help foster further external collaboration. Lee: Surely, it would be nice to have a diverse group of people contributing to this effort in their ways. But then, I firmly believe that game developers must be at the center of these efforts. They are the creators. They are the ones developing games that directly reach their consumers (players), so their engagement will be crucial to making meaningful changes. In Silicon Valley, developers take the initiative to identify challenges, collaborate with experts from various backgrounds, and drive innovation. If developers who are passionate about accessibility come together, discuss these issues, and work toward solutions, we can avoid stagnation and create real impact. That’s why we’ve been building an internal accessibility community—bringing game developers together, at least within our company, to nurture knowledge-sharing and problem-solving and gradually expand our efforts. Editor: The ideal situation would be to have people with actual experience, with needs for game accessibility and inclusive design, to work on game development. But the reality is that you would need education and training to develop games, and accessible game education barely exists in Korea. One could be willing to learn about game development, but with a physical disability, entering a game career itself can be challenging. Lee: Absolutely. We also want to see more and more game developers with various backgrounds, including those with disabilities, join the industry. That’s why I think, despite the fact that we are currently hiring accessibility testers, their career journey shouldn’t stop there. Instead, we need to create pathways for them to become game designers, programmers, etc. And supporting them if necessary. In the end, establishing a culture where everyone, regardless of disability, has the opportunity to develop their game development skills will benefit the entire industry. When people from different backgrounds collaborate, they bring new perspectives that spark innovation. Our role is to help create those intersections—where diversity leads to fresh ideas and meaningful progress. Editor: I fully agree. That’s also the reason why I keep coming back to the idea that we need something beyond individual companies tackling accessibility on their own. Because game development education—especially in areas like accessible game design—shouldn’t fall solely on one company’s shoulders. It makes me wonder if there would be any external organization that could take the lead on this. For example, game education institutions could introduce designated intake quotas for people with disabilities or create development environments designed with game accessibility and hire people who are fit for such workspace. But as far as I know, we’re not quite there yet. That’s why I feel that we need to scale up these efforts, such as a designated organization or consortium. What’s your thought on that? Lee: That could certainly play a role in laying the groundwork. Our current goal is to open up a conversation. If someone says, ‘Accessibility is not my major focus in game development’ but later says, ‘Thanks to your effort, now I know why and how it is needed’ – then we did our job. That’s what we’re aiming for. What we’re striving for now is to create more moments where people realize, ‘Yeah, game accessibility is something I can contribute to.’ That way, I believe more and more people would be actively discussing game accessibility as one of the main agenda items in the design meetings. Also, I think that Korea, in particular, could adopt accessibility measures at a much faster pace. Because the game industry here tends to be quick to catch up with global trends, and Korean game companies’ technical capabilities are in a strong position – they can implement solutions effectively. So, I believe that once we gain momentum, we can excel in this area. Editor: Watching you and your team’s efforts as it unfolds has been inspiring. But I can’t help but think about how challenging this must be for you. One of the toughest aspects, I imagine, is addressing not just game accessibility but also the issue of diversity. The two issues overlap but are not quite precisely the same. How would you describe the current attitude toward diversity in Korea’s game industry? (Translator’s note: The issue of “diversity,” more specifically the topic of gender diversity and equality, is a highly debated topic in the South Korean game scene since post-#gamergate.) Lee: Yes, accessibility and diversity are not identical concepts. One key distinction is that diversity is interpreted in a much broader range of ways, often shaped by personal experiences, and thus, how someone perceives diversity is largely influenced by their experiences. It’s a delicate subject, but we’ve seen cases where some games received negative reception because they pushed certain ideological messages too forcefully without a strong foundation in gameplay. At the core, I believe a game must be fun to play. We’ve seen games that fail because their fundamental foundation for fun gameplay is weak but instead leans too heavily on a social message that does not correspond to its core design. Although diversity and a game’s success can be linked, they are not directly causal with each other. Because if you cannot separate “fun” from game design, it would break the fundamental equation of games. Of course, another aspect here is that we must not isolate the “fun”-ness of the game targeting one specific target audience, the so-called ‘core gamers.’ Instead, we need to acknowledge the wide variety of gamer profiles and their broad range of games out there in the world. When addressing diversity, regardless of global collaboration or direct engagement with stakeholders, the crucial thing here is to bring in people with disabilities and experts who know about accessibilities to join. Having those direct stakeholders to get involved. Without that, efforts can backfire. Editor: We GG sometimes receive articles from Canadian researchers. And I asked them what comes to mind when they think of Smilegate. Many have answered “K-games,” which makes me wonder…beyond accessibility, how much of your work on diversity intersects with localization? Have you encountered practical challenges in this area? Lee: Well, of course, developing a game with a single build for global distribution has its advantages in terms of business efficiency. However, we have to acknowledge that certain elements may be universally accepted, while some cannot. Awareness of cultural nuances that specific regions may find problematic is vital in global game service. We also tried to emphasize such cultural aspects of it in our book. I consider localization shouldn’t be treated as an afterthought. Recognizing and addressing elements that could be sensitive or provocative to people in different parts of the earth is essential to game service. However, localization isn’t just about avoiding pitfalls; it is something that can also be used as a powerful marketing tool. For example, we’ve seen success in Indonesia when games incorporate elements that resonate with local audiences. Companies that have access to diverse groups of people and a channel to discuss such cultural aspects have the advantage of it. Game companies with a global presence, like subsidiary offices around the earth, have an advantage here. If a game features a Japanese character, their Japanese office can provide insights on attracting their game to the local audience. And the same applies to Korean players. Therefore, companies that primarily operate with homogenous groups of talents and domestically isolated pipelines would face more challenges in maintaining a global approach to diversity and localization. Without direct access to diverse perspectives, there’s a higher risk of missing core elements that could either alienate or engage different audiences. Editor: This might be a more challenging topic. Regional cultural diversity is a relatively less sensitive topic to discuss in games compared to, let’s say, gender diversity in games. We still consider gender issues, and gender representation in games is something that we should pay attention to. So, in terms of gender diversity, what is Smilegate’s approach? Lee: No one (in Smilegate) has brought up that issue (about gender diversity) with us face-to-face until this moment. But few people brought it up online, and we have seen fearsome debates and conflicts emerge on social media and web forums. (Translator’s note: The issue of gender diversity and equality has been a highly debated topic in the South Korean game scene since post-# #gamergate .) Over time, I’ve come to realize that whenever we talk about diversity, whether in discourse or terminology, there are always supporters but also people who strongly reject it. Witnessing this wide range of spectrum of reactions coming from both in and out of our company has been a valuable learning experience for me, particularly in understanding how to navigate and balance this discourse. Editor: So, it sounds like you’re saying that reactions tend to exist on both ends of the spectrum? And you’ve witnessed reactions from both sides? Lee: Exactly. But I’ve realized that even people with vastly different perspectives, even those with extreme points of view, can all engage in conversations to learn more about each other. The problem is that, in many cases, people dislike something without fully articulating why they don’t like each other’s thoughts. So, I’ve taken the approach of simply asking: What exactly don’t you like? What would be acceptable to you? And surprisingly, it worked. It’s certainly not easy, but I’ve come to see that the effort to balance the dialog is incredibly difficult but also absolutely necessary. Editor: It is certainly not easy. Communication is arguably one of the most complicated aspects of mankind. And even when you put in the effort, you don’t always see immediate results. What do you think of that? Lee: That’s true. To be honest, I was intimidated to talk with gamers whose views were very different from mine. But instead of avoiding those conversations, I tried to meet with them and talk to them if possible. And some of the discussions turned out to be incredibly insightful. I realized that these conversations and efforts to find a common ground are essential for conflict management. From there, I also try to navigate the discussions with tangible example cases or topics. Like, rather than debating abstract concepts, I prefer to create something – whether it’s a book, a game, or another concrete project. And use that as a basis of conversation. I came from a non-game development background and worked in different sectors before joining the game industry. I’ve also learned to be extra careful and always ask more questions before assuming anything. Editor: I feel even more strongly that more game companies should be engaging in these conversations. As someone who personally identifies as a gamer, I’ve always been frustrated by the way gamers are often stereotyped in one particular profile. Ironically, even gamers themselves are trapped in this idea that they are supposed to resist diversity to secure their ground. But when it comes to the topic of diversity in games, it also extends to the issue of diversity of gamers. Lee: You just pointed out one of the essential things that I think about when it comes to diversity in games; the diversity of gamers. Anyone can be a gamer. This person can be a gamer, that person can also be a gamer, and even people who haven’t yet played a game can become gamers. We need to broaden our view and definition of gamers. I believe that is the way to elevate the societal view towards gaming in Korean society in a more positive direction and recognize a mainstream cultural activity – instead of being neglected as a nerdy activity for a deserted few. We are getting there. Everland (Translator’s note: one of Korea’s largest amusement parks) recently hosted a Game Culture Festival featuring popular game IPs, targeting family visitors. That tells us that gaming has become a widespread, accessible form of entertainment. If that’s the case, then we need to move beyond outdated stereotypes about games and gamers about who qualifies as a real gamer. Shifting that mindset isn’t just about inclusivity. It’s also an important mindset for game production and business standpoints as well. Editor: Games have the potential to achieve the aspect of diversity that no other conventional media can do. For example, games could do something that films cannot do. But the key part of game design is making players see diversity as inherently fun – and align with the core gameplay. Making the topic of diversity attractive and fun to play is a matter of game design. It’s a game design challenge, which is why I don’t see diversity as a sole issue of game ethics. Lee: I agree. If we frame diversity purely as a moral obligation, it can feel forced. What I’d really love to see is gamers engaged in thoughtful discussions about why diversity matters instead of blunt negative reactions like ‘Oh! I hate this political correctness…’ blah blah blah. (Laugh). Look at “Baldur’s Gate 3”. The level of freedom in gameplay there is extraordinary. The game allows players to freely customize their experience, adjusting everything from the visibility of sensitive content to detailed character appearance options. The game offered gameplay for diverse people to enjoy the game in the most diverse way possible, and in turn, received an overwhelmingly positive response. Perhaps that’s the direction we should be leaning toward when it comes to diversity in games. Just like players have different game preferences, they also have unique aesthetic and narrative tastes. By embracing that diversity in game design, companies can turn diversity into a strategic asset, not just a social responsibility. Tags: Diversity, DEI, D&I, smilegate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Researcher in Cultural Studies) Jisu Kim I am interested in a variety of topics concerning culture, knowledge, space, and learning environment. The history of games and the life of gamers are also something that fascinates me. (Doctoral researcher at Aalto University, Finland) Solip Park Born and raised in Korea and now in Finland, Solip’s current research interest focused on immigrant and expatriates in the video game industry and game development cultures around the world. She is also the author and artist of "Game Expats Story" comic series. www.parksolip.com

  • Ordinary Corrupted Dungeon Love: ‘플레이어블’을 구하지 못한 서사와 갈등, <디아블로4>

    다만 지난 10년간의 행보를 돌아볼 때 걱정되는 것은 그 장엄한 세계관을 구축했던 블리자드 기획진의 에고다. < Back Ordinary Corrupted Dungeon Love: ‘플레이어블’을 구하지 못한 서사와 갈등, <디아블로4> 16 GG Vol. 24. 2. 10. 세계관 집착이 가져온 엔드 콘텐츠의 부재 <디아블로4>는 초반의 성과를 이어가지 못한 채, 이견을 다는 것이 민망할 정도로 객관적으로 실패했다. <디아블로4>의 실패에는 다양한 요인이 작동했겠으나, 그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패착을 뽑자면 장르적 소구점을 견고히 세우지 못한 점을 뽑을 수 있을 것이다. <디아블로4>는 초반의 흥행과 기대감조차 무색하게 시즌3 ‘피조물의 시즌’ 공개에도 게임에 대한 평가는 박하다. 게임메카를 포함한 주요 매체는 <디아블로4>가 MMORPG와 핵앤슬래쉬, 온라인 게임과 패키지 게임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렸다고 입을 모았다. 플레이의 패키징 방향을 놓쳐버린 콘텐츠 기획은 개발의 방향마저 잃어버린 듯 보였고, 플레이어들은 <디아블로4>의 플레이에서 어떤 재미를 느끼고 기대감을 걸어야 할지 난감해야 했다. 그나마 자랑으로 삼을 수 있던 탄탄한 스토리는 완결을 보고 난 뒤, 2회차 3회차 플레이는 소비의 역치를 충족하지 못하고 그 힘을 잃어버렸다. 이 모든 난관을 한 줄로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을 찾는다면, 아마 ‘앤드 콘텐츠의 부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블리자드 개발진의 눈을 어둡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디아블로4>의 엔드 콘텐츠를 부재하도록 만들게 되었나? 혹자는 블리자드가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Activision과 <캔디 크러쉬>의 King을 인수한 뒤, 게임 개발사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사업에 눈이 멀어 게으른 기획과 방만한 운영 끝에 현 상황에 이르게 만들었다고 지적할 것이다. 또는 컴퓨터 게임을 만드는 업을 짊어지고 있었음에도 컴퓨터를 존중하지 않는 방식으로 뜬구름을 잡더니 결국 스토리와 같은 허무맹랑하고 현학적인 소구점에 집착한 나머지 현 상황에 이르렀다고 지적하는 평자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두 의견 모두 블리자드가 지난 10년간 <스타크래프트2> <디아블로3>를 공개하며 직면해야 했던 비판이다. 위의 비판 모두 경영진의 방심이라고 지적되어왔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두 비판 모두 다소 지나친 면이 없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두 비판 중 조금 더 타당해 보이는 쪽은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나는 <디아블로4>는 서사, 그것도 애정 서사에 지나치게 집착한 것이 게임으로서 갖추어야 할 장르적 소구를 크게 흔들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그동안 블리자드가 10년이라는 긴 시간에도 불구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해온 것은 경영진의 방만한 태도 때문이 아니라, 블라자드가 본인들의 장점이라고 여겨왔던 세계관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궁극적으로 개선해야 할 플레이의 재미를 혁신시키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디아블로의 실패 요인, ‘엔드 콘텐츠의 부재’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블라자드가 집착한 세계관에 대한 집착이 어떤 패착을 가져왔는지 톺아보아야 할 것이다. 주인공은 반드시 플레이어블해야 한다 <디아블로> 시리즈에 있어 중세기독교의 역사와 톨킨을 떠올리게 만드는 중간계를 섞어놓은 세계관은 그 자체로 <디아블로>의 정체성이었다. <디아블로>가 구축한 장엄한 세계관은 독창적이라고 할 순 없지만, 널리 알려진 요소들을 적절한 위치에 배치하여 걸출한 IP를 형성하는 바탕이 되었다. 더불어 플레이어는 우수하게 조율된 타격감을 통해 <디아블로>가 구축한 매력적인 세계관을 탐방하는 재미에서 시리즈에 대한 기대를 걸 수 있었다. 이는 블리자드가 빠르게 팬덤을 끌어모으는 바탕이 되었다. 다만, 여기서 주의해야 하는 특징은 블리자드가 <스타크래프트1> <디아블로2>에서 플레이어블 캐릭터에게 서사적 주인공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은 적이 없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게임으로서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플레이의 미덕이 있다. 게임은 플레이하는 플레이어의 것이며, 플레이어는 어떤 방식으로든 플레이에 개입되어야만 한다는 점이다. 조금 더 쉽게 풀어보기 위해 시리즈 중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받는 <디아블로2>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디아블로>라는 게임 내에서 주인공의 지위는 어디까지나 ‘소서리스’ ‘네크로멘서’ ‘바바리안’ 등 플레이어가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캐릭터에 집중되어 있었다. 플레이어는 게임이 마련한 서사를 경험하기 위해서 플레이어블한 캐릭터를 플레이해야만 했다. 주인공은 단순히 서사를 탐험하고 전달하는 매개가 아닌, 선택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결과를 만들어가는 존재에 가깝다. <디아블로2>의 이러한 특징을 대변하는 요소를 뽑자면 많은 플레이어가 <디아블로> 시리즈를 넘어 핵앤슬래시 역사 내에서도 손꼽히는 명장면으로 회자하곤 하는 “Act 5: Lord of Destruction”를 생각해볼 수 있다. “Act 5: Lord of Destruction”까지 <디아블로> 세계관에서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앞서 언급했던 서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플레이어블 한 존재로 보기는 어렵다. 차라리 이야기를 전승하기 위해 던전을 돌아다니는 캐릭터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디아블로2>의 마지막, 다시 말해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플레이어는 자신이 던전을 돌아다니며 레벨을 올리는 수련을 수행해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 자각하며 ‘끝판왕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소명을 부여받는다. 이는 게임을 플레이한 이유에 대해 단순하고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며 그동안 플레이어가 겪었을 서사적 경험을 하나의 소구로 정리한다. 더불어 “Act 5: Lord of Destruction”에서 이용된 시네마틱 시퀀스는 그러한 플레이어의 기대를 배가시키며 게임 서사로서 날카롭고도 뾰족한 소구점을 만들어낸다. 게임에 어울리는 서사, 게임에 어울리는 갈등 여기서 중핵이 되는 것은 <디아블로2>가 가지고 있는 소구의 바탕이 ‘운명을 바꾸기 위한 숙명적 결투’와 같이 커다랗고도 직접적으로 체감이 가능한 갈등 위에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갈등을 십분 활용하며 선형적이며 결말이 정해진 서사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쾌감을 만들어내는 또 다른 작품으로는 이드 소프트웨어의 <둠 리부트>(2016)와 <둠: 이터널>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게임에서 스토리란 포르노의 그것과 같다”는 존 카맥의 격언 아닌 격언으로 유명한 둠 시리즈이지만, <둠>은 게임 스토리로서 갖추어야 할 명료하고 직관적인 이야기의 갈등 구조를 갖추고 있다. 던전에 악마와 갇히게 되었으니 악마들을 죽어야 한다는 이야기의 단순한 소구는 둠가이라는 인상적인 먼치킨 캐릭터를 구현하는 바탕이 되었고, 그 바탕 위에서 플레이어는 둠가이를 컨트롤하며 경쾌한 악마 대학살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이야기 자체에 무심한 듯 보이지만, 갖추어야 할 기본기는 <둠>과 달리 <디아블로4>는 이야기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콘텐츠에 어울리는 갈등’이라는 기본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디아블로4>는 릴리트와 이나리우스의 어긋난 사랑이라는 갈등을 중심으로 두고 있다. 때문에 플레이어는 릴리트와 이나리우스가 어쩌다가 갈등을 겪게 되었고, 무엇을 지키려고 하는지 관찰할 수는 있지만, 사실상 그들의 행위에 유의미하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 결말조차 그들의 어긋난 사랑을 담는 그릇으로 남겨지는 식으로 귀결되고 만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게임으로서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플레이의 미덕’이 부재해 있다. 플레이어가 무엇을 플레이하든, 릴리트와 이나리우스는 그들의 선택을 한다. 여기서 고민해봐야 하는 것은 <디아블로4>가 가지고 있는 애정서사 그 자체가 아니라 애정 서사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릴리트-이나리우스 간에 벌어진 사실상의 부부 갈등이 게임에 적합한 갈등이었냐는 것이다. 물론, 릴리트와 이나리우스의 애정 서사는 <디아블로>라는 IP의 세계관을 두텁게 만들었다. 때문에 <디아블로4>의 시네마틱 시퀀스들은 그 어느때보다 강렬했으며, 그 자체로 게임의 소구점이 되었다. 그 세계관에 대한 ‘감상’이 소구점이 되다 보니, 가장 플레이어블한 엔드 콘텐츠 역시 방향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블리자드는 플레이어가 시네마틱 시퀀스를 보기 위해 던전을 통과하는지, 아니면 서사의 주인공을 되는 경험을 위해 던전을 통과하는지 (최소한 본편에서는) 심도 있게 피드백하지 않은 것으로 보일 정도다. 이 때문에 <디아블로>는 장엄한 서사시를 경험하게 만들기 위해 던전을 통과해야 하는 값비싼 예술 게임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쉽게는 이는 일반적인 플레이어가 대중을 상대로 세일즈하는 텐트폴 상업 게임에서 기대하는 바가 아니다. 블리자드 역시 세계관에 집착하며 벌여놓았던 문제들을 수습하고 극복하기 위해 서사의 주요한 인물들을 릴리트와 이나리우스가 아닌 메피스토로 두는 등 세계관 내에서 인물들의 배치를 바꿔가는 식의 스토리 이동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다시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주인공의 자리로 옮겨놓기 위한 시도들이라고 기대해본다. 다만 지난 10년간의 행보를 돌아볼 때 걱정되는 것은 그 장엄한 세계관을 구축했던 블리자드 기획진의 에고다. 플레이어가 플레이어인 이유는, 플레이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게임은 게임이다. 나아가 영화가 되려는 게임의 욕망은 그다지 독특하지 않다. 많은 개발자와 기획자들은 영화스러운 게임을 꿈꾸고, 플레이어 역시 영화스러운 플레이를 기대한다. 그러나 영화인 게임이 영화스러운 게임인 것은 아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원) 이현재 경희대학교 K컬쳐・스토리콘텐츠연구소, 리서치앤컨설팅그룹 STRABASE 뉴미디어・게이밍 섹터 연구원. 「한류 스토리콘텐츠의 캐릭터 유형 및 동기화 이론 연구」(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한국콘텐츠진흥원) 「저작권 기술 산업 동향 조사 분석」(한국저작권위원회) 등에 참여했다. 2020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문, 2021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평론부문 신인평론상, 2023 게임제네레이션 비평상에 당선되어 다양한 분야에서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

  • [북미통신] 트럼프 정부 출범과 함께 변화하는 북미 게임계의 DEI 기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하자마자 한 달안에 70개가 넘는 행정명령을 쏟아냈다. 그 중에서도 취임 첫 날 바로 서명하고 공포한 행정명령들은 향후 정책적 방향을 가늠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 중 하나가 백악관 행정명령 14151호다. 행정명령의 제목은 ‘급진적이고 낭비적인 정부 DEI 프로그램의 종료’다. < Back [북미통신] 트럼프 정부 출범과 함께 변화하는 북미 게임계의 DEI 기조 23 GG Vol. 25. 4. 1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하자마자 한 달안에 70개가 넘는 행정명령을 쏟아냈다. 그 중에서도 취임 첫 날 바로 서명하고 공포한 행정명령들은 향후 정책적 방향을 가늠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 중 하나가 백악관 행정명령 14151호다. 행정명령의 제목은 ‘급진적이고 낭비적인 정부 DEI 프로그램의 종료’다. DEI는 Diversity, Equity, Inclusion의 약자로 다양성, 평등, 포용을 이야기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성소수자나 소수인종과 같은 비주류 계층에 대한 차별하지 않고 나아가서 배려를 해주는 모든 정책을 의미한다. 행정명령은 정부기관 내에서 이 DEI 정책들을 폐기하는 방법에 대해서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다양성과 관련한 직책은 모조리 없애고 인종이나 성적 지향이 고려되서 지급되던 보조금 등은 다 폐지한다. 정부기관 채용을 할 때나 수의계약을 맺을 때도 인종이나 성적지향에 대한 고려를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사실 게임계에서도 DEI는 논쟁적인 주제 중 하나였다. 일부 게이머들은 게임 내용에 하등 상관없이 DEI적인 요소를 게임에 포함시키는 것에 대해서 비판을 하곤 했다. 게임 내 주요 캐릭터가 성적소수자이거나 소수인종인 경우에 격렬하게 반발하는 반응도 나오곤 했다. 심지어 게임 주요 캐릭터가 미형이 아니면 ‘또 PC(정치적 올바름) 묻었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게임계는 DEI 문제에 대한 첨예한 전쟁터였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해리 포터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게임 <호그와트 레거시>였다. 해리 포터 원작자인 J. K. 롤링이 트랜스젠더 혐오에 가까운 발언을 쏟아내고 게임의 주요 제작진 중 한 명이 소수자 혐오 발언으로 가득찬 유튜브를 운영해온 것이 밝혀지자 많은 사람들이 게임의 제작사 워너 브라더스를 비판하고 나섰다. 결국 완성된 게임을 보면 주요 NPC는 트랜스젠더거나 동성애자가 많았고 학교 내 캐릭터들도 ‘적절하게’ 인종적 분배가 되있었다. 플레이어 커스터마이제이션에는 트랜스젠더도 있었다. <어쌔신 크리드> 최신작을 끌고 들어오지 않더라도 대작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다. 북미의 경우 게임계에서는 DEI의 위세가 강한 편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주류 계층 모두를 고객으로 끌어들이고 싶기 때문이다. 백인 남성 위주였던 미국의 게이밍 커뮤니티의 외연을 확장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DEI였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임부문 한 임원은 ‘우리가 놓치고 있는 고객층을 끌어들이는 방법’ 중 하나가 DEI 측면의 부각이라고 밝힌 바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취임하면서 DEI 정책 자체가 공격받자 게임계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직장 내 변화 가장 가시적인 변화는 역시 직장 내에서의 변화다. 한 때는 DEI의 전도사처럼 나섰던 테크업계와 게임업계는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블룸버그에 따르면 S&P 지수에 편입돼 있는 기업 100군데 중 DEI 프로그램을 축소한 것은 20%를 넘는다. 메타, 구글, 아마존도 DEI에 소극적으로 변했다. 게임업계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마이크로소프트다. 엑스박스라는 플랫폼은 물론 액티비전블리자드킹의 모회사기도 한 마이크로소프트는 DEI 관련한 팀 자체를 폐지하기도 했다. 당연히 게임업계에서는 이에 대해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게임업계의 일터는 남성중심적이고 여성혐오적인 문화가 있다는 비판을 받아온 바 있어서 더욱 그렇다. 수유실이 없어서 회의실에서 수유를 하고 있는 여직원을 놀리려 남자 직원들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는 에피소드가 법정에서 명시된 블리자드의 케이스가 이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아직까지 현직의 이야기가 기사화 등을 통해서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개발자 커뮤니티 등에서 변화를 느꼈다는 목소리는 조금씩 나오고 있다. 커뮤니티의 변화 게이밍 커뮤니티에서는 그동안 DEI를 공격하는 움직임이나 비판하는 목소리가 꽤 있었지만 트럼프 당선 이후로는 강도가 한층 심해졌다는 인상이 크다. 이미 10여년 전 게이머게이트 사건으로 성차별적인 시각에서 비롯된 괴롭힘 논란이 있었던 것을 상기하면 우려스럽다는 의견이 많다. 최근에 가장 큰 사례는 스윗 베이비 INC 사건이었다. 스윗 베이비 INC는 캐나다에 있는 내러티브 컨설팅 회사다. 말 그대로 게임의 스토리에 대해서 자문을 하는 것이다. 게임 내 이야기 구성과 대사 작성 등을 전문으로 한다. <앨런 웨이크 2>와 <갓오브워 라그나로크> 등에 참여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 해부터 게이밍 커뮤니티 일부에서 스윗 베이비가 게임에 강제로 다양성을 주입한다는 음모론이 확산됐다. <앨런 웨이크 2>에 등장하는 사가 앤더슨이 흑인 여성인 것은 스윗 베이비 때문이라는 루머가 퍼졌다. <앨런 웨이크 2>의 디렉터가 직접 이를 부인했으나 소용 없었고 스윗 베이비가 참여한 게임은 불매하자는 스팀 그룹이 만들어져 가입자가 10만 명을 넘어섰다. 문제는 DEI가 마치 게임업계 전체의 적처럼 공격받는 현상에 대해서 플랫폼은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스팀은 스윗 베이비 안티 그룹에 대해서 활동을 제재하지 않았고 이 그룹을 움직이는 디스코드 서버 또한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스윗 베이비의 CEO 킴 벨에어는 “우리는 게임 속 문제를 상상해 쓰는 작가들일 뿐, 실제 괴롭힘을 막는 전문가는 아닙니다. 하지만 플랫폼은 분명 더 나은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게임 내 변화 일터와 팬 커뮤니티 양 쪽에서 DEI가 거세게 공격받고 있기 때문에 이는 게임 내부의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 특히나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서 미국에서는 이제 성별은 단 두 개라고 못을 박았기 때문에 성소수자들의 피해는 커질 것이다. 게임에서 등장했던 트랜스젠더 캐릭터들은 이제 갈 곳을 잃을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는 과장된 위협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해 공개돼서 파장을 일으켰던 ‘프로젝트 2025’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프로젝트 2025는 보수성향의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이 공개한 문서로 향후 미국 보수정치의 전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문서에서는 공공연하게 젠더나 인종과 관련된 ‘평등정책’을 축소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힌다. 헤리티지 재단 대표 케빈 로버츠는 이미 트랜스젠더의 권리 옹호를 포르노그래피로 규정하고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프로젝트 2025가 그대로 실행된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맥락을 같이 하는 ‘두 개의 성별’ 행정명령을 발표한 마당에 <사이버펑크 2077>과 <발더스 게이트 3>에 트랜스젠더 캐릭터가 있다는 이유로 포르노로 취급될 수 있다는 예상은 웃어넘기기 힘들다. 여기에 플랫폼이 콘텐츠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질 수는 없다는 플랫폼 책임 보호법도 폐지하자는 제안이 있어서 결국 게임사들의 자기검열은 더욱 심해지고 다양성과 관련한 콘텐츠는 보기 힘들어질 수 있다는 예측은 힘을 얻는 중이다. 게임이라는 전장 게임은 이제 어린 세대만 즐기는 문화가 아니고 모든 세대가 즐긴다. 따라서 게임만큼 폭넓은 세대에게 영향을 미치는 매체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업계가 이데올로기의 가장 치열한 전장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보인다. 상업적인 이유로 혹은 문화적 트렌드로 지금까지 DEI가 힘을 발휘했다면 이제는 백래시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신호는 곳곳에서 포착된다. 최소한 트럼프의 정책적 추진력이 약화될 것으로 보이는 2026년 중간선거 전까지는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을 만드는 쪽과 게임을 즐기는 쪽은 어떤 선택을 할까에 대해서 고민은 커져만 갈 것으로 보인다. Tags: DEI, 트럼프, 북미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나성인) 홍영훈 캘리포니아에서 살면서 게임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에 출연하고 매체에 기고를 하며 많은 분들에게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패션부터 게임까지 분야에 상관없이 재밌는 글을 평생 쓰고 싶습니다.

  • 2023 국정감사의 게임 이슈 톺아보기

    지난 10월 한 달 동안 21대 국회의 마지막 국정감사가 진행됐다. 이 기간 동안 국정감사장에서 거론된 게임 관련 이슈를 톺아본다. 공교롭게도 딱 10개 이슈가 나왔는데, 9개는 주무 위원회인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다뤄졌으며 하나는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다뤄졌다. < Back 2023 국정감사의 게임 이슈 톺아보기 15 GG Vol. 23. 12. 10. 지난 10월 한 달 동안 21대 국회의 마지막 국정감사가 진행됐다. 이 기간 동안 국정감사장에서 거론된 게임 관련 이슈를 톺아본다. 공교롭게도 딱 10개 이슈가 나왔는데, 9개는 주무 위원회인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다뤄졌으며 하나는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다뤄졌다. 앞서서 요약하자면 크게 무게감 있는 이슈는 적었다. 아니, 이렇게 서술할 수 없다. 모든 이슈는 중요하다. 특히 게임계 노동 이슈가 그렇다. 펄어비스의 공용 PC - 유형: 노동. 위원: 정의당 류호정 초과근무를 방지하기 위한 PC 오프 제도라는 것을 많은 회사에서 활용한다. 주당 최대 노동시간인 52시간을 채우면 컴퓨터를 더 쓰지 못하게 하는 시스템이다. 검은사막의 개발사 펄어비스 또한 이 제도를 채용하고 있고, 이런 노동 조건 개선의 많은 부분은 게임 노동자 출신인 류호정 의원이 2020년 펄어비스의 부당노동행위를 지적한 것에 힘입은 바가 있다. 반면 금년에 의원이 가져온 제보는 펄어비스에서 초과근무를 우회적으로 하기 위한 꼼수로 공용 PC를 쓴다는 내용이었다. ‘15층에 있는 잠금 제한 없는 PC’의 이미지로 대표되는 이 방법은, 야간 혹은 금요일 이후의 초과근무 상황에서 개인 업무용 PC가 아닌 서버 업데이트용 공용 PC로 이동시켜 노동을 시키는 방법이다. 이 경우는 초과근무 기록이 남지 않기 때문에 초과근무 수당 산정 근거가 아예 없어지므로 ‘공짜 야근’이 되어버린다. 허진영 펄어비스 대표는 자신도 제보를 통해 인지했다고 답변했는데, 즉 자신이 시킨 방법이 아니라는 어필이었고, 관리를 강화했다고 답변을 했다. 하지만 의원은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며 차라리 공용 PC를 다 없애버리는 방안을 제안했다. 유인촌 문화체육부 장관은 이 질의에 대해, 게임과 영상 업계는 집중적으로 일을 하는 특성이 있어서 주 52시간 제한을 지키려면 다른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말을 했다. 다른 계획이라는 것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 언급했던, 크런치 모드 때 몰아서 일하고 그 후에 쉬어서 ‘평균 주 52시간 이하’를 맞추는 방법이 아니길 바란다. * 류호정 의원실이 공개한, 펄어비스가 이미 조치한 노동 여건 개선 사항 * 류호정 의원실이 공개한, 펄어비스 공용PC에 대한 언급 페미니즘 사상검증 - 유형: 노동/평등. 의원: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림버스 컴퍼니를 서비스하는 프로젝트 문에서 터진 사건이 규모를 불려 나가더니 국정감사장에 올라왔다. 남성 캐릭터 싱클레어에는 수영복 일러스트가 있는데 여성 캐릭터 이스마엘은 수영복이 아닌 잠수복이라는 점에 불만을 가진 남성 유저들이 온오프라인 시위에 나섰다. 이들은 해당 일러스트를 작업한 사람이 여성일 것이라 보고 색출을 시작했으나, 남성인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다른 여성 일러스트레이터를 찾았다. 그의 과거 트위터 행적 중에서 현재는 지워진 리트윗 하나를 찾았으니 그것이 페미니즘 지지 트윗의 리트윗이었다. 이 여성이 작업한 일러스트에서 특정 손 모양도 찾아냈는데, 병을 눈 앞으로 올리기 위해 두 손가락으로 집은 모양이었다. 이렇게 비약과 망상에 찬 논리가 완성되어 ‘페미 잘라라’는 시위를 벌인 것이다. 직접 회사에 찾아가는 시위를 맞닥뜨린 프로젝트 문은 7월 25일, 자진 퇴사의 형태로 해당 여성 일러스트레이터를 내보냈다. 여기까지의 과정은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사이버불링과 사상검증. 여기에 지지 여론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날조 정보도 유포되었다. 회사는 사상검증 사유가 아니고, 계약직이라 해고가 아닌 계약 종료이며, 사규에 따른 적법한 절차라는 해명을 내놓았다. 하지만 사건 전개를 보면 누가 보아도 사상을 이유로 자진 퇴사를 권고한 것이며, 이는 사규 이전에 지켜야 하는 사내 노동자 보호 의무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인셀 진상고객 이슈가 노동 이슈로도 확장이 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한국게임소비자협회라는 단체가 조직되었고, 게임업계에 대한 근로감독 청원에 12,745명의 청원인이 모였다. 이 청원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제출되었고, 우원식 의원이 이를 질의한 것이다. 김설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국정감사장에 출석하여 이 사건과 유사하게 게임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사이버불링 사건을 67건 제보 받았다고 증언했다. ‘페미인지 답하라’며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식으로 SNS 계정을 스토킹하면서 인격 모독을 지속적으로 가하거나 하는 것이다. 피해 제보자의 90%가 2~30대 청년이며 88%는 여성이었다. 반면 회사의 보호를 받았다는 경우는 4건에 불과했고, 방치가 50%에, 자발적 퇴사의 형태를 한 사실상의 해고가 41.3%였다. 여기에 업계 내에 팽배한 성희롱 발언, 성차별적 승진 고과와 연봉 체계, 임신 및 출산에 대한 불이익, 면접 과정에서의 페미니즘 사상검증 등의 사례를 증언했다. 업계 상황이 이렇지만 2021년 10월 14일 사이버불링을 포함하도록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이후 현재까지 게임회사가 받은 산업안전보건법 근로감독은 단 1건에 불과하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의 하형소 청장은 그동안의 재해 발생은 주로 제조업과 건설업 중심이었으며, 감정노동 분야에서는 콜센터에 주력했음을 인정했다. 우원식 의원은 특별근로감독을 주문하는 한편 산업안전보건법의 추가 개정 필요를 역설했는데, 특히 제보자 중 11명이 프리랜서 신분이라서 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맹점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국정감사가 끝나고 한 달이 지난 현재, 프로젝트 문 사건과 거의 유사한 형태의 사건이 넥슨에서 일어나고 있다. * 프로젝트 문이 일러스트레이터를 해고한 당일에 외국 유저들이 만들어낸 밈 게임물 등급관리 시스템 정비 필요 - 유형: 행정. 의원: 정의당 류호정 게임물관리위원회는 게임의 등급 심사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정부 기관은 아니지만 정부 업무를 위탁받은 만큼 정보 공개가 기본 사항이고, 그래서 게임물관리위원회에 등급 심사를 넣은 게임에 대한 정보는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다. 원칙이라 함은 정보 공개 유예를 선택할 수 있는 행정 서비스, 블라인드 제도가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런 절차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국내 게임사와는 달리 외국 게임사는 이 제도의 존재를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공식 발매 발표 이전에 등급 분류 사실이 공개된 퀘이크 1, 2 리마스터를 비롯해 사일런트 힐, 콜 오브 듀티, 레드 데드 리뎀션 등의 신작이 미공개 대외비 상태에서 출시 대기 중이었다가, 한국의 게임물관리위원회의 등급 분류 정보 공개를 통해 강제적으로 출시 정보를 공개 당했다. 블라인드 제도가 외국 게임사에게 제대로 안내되지 않고, 이런 강제 정보 공개가 반복이 되면, 한국에서의 등급 분류 신청을 늦게 해서 한국 내의 출시가 늦어지는 결과를 갖고 올 것이 예상된다. 블라인드 제도에 대한 안내를 영어 혹은 다른 언어로도 서비스하면 해결되는, 간단한 행정 절차 정비에 대한 질의다. 그리고 비슷한 정비 소요가 또 있었다. 게임사가 게임의 내용을 수정할 때도 게임 등급 심사를 새로 받아야 한다. 사행성 시스템이나 선정성 수위의 변경 같은 것을 등급에 반영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시행규칙에 관련 기준이 확실히 공지되어 있지 않아서 게임사는 단순 스킬 이펙트 변경, 폰트 변경, 색상 변경 정도의 경미한 수정이 있어도 내용 수정 신고를 하고 있다. 그 결과 게임물관리위원회는 매년 3천 건이 넘는 수정 신고에 대해 일일이 등급 분류를 해야 해서 행정력이 낭비되는 실정이다. 이 또한 시행규칙이나 시행령 정비로 해결이 될 수 있는 문제이며, 설사 법 개정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버그 패치 수준의 경미한 개정 정도가 필요할 것이다. 실제로 현재 규제개혁위원회에서 이 부분을 개선과제로 제시했고, 이상헌 의원 등이 게임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이다. 게임물관리위원회 내의 비위 - 유형: 비위. 의원: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사실 게임물관리위원회의 등급 심사 시스템은 심각한 비위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서 밝혀진 상태다. 게임위는 자체등급분류 통합관리시스템이라는 것을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전산망 구축 사업이 지지부진했다. 1단계 구축의 진도율이 50%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팀장 한 명은 ‘사업비를 집행해야 하니 준공계를 달라’고 했고, 업체는 허위 준공계를 제출했다. 이 허위 준공계를 근거로 해서 사업이 완료되지도 않았는데 사업비가 나갔고, 검수 보고서도 만들어졌고, 관련 정산보고서도 허위로 만들어서 문체부의 내년 보조금도 받았고, 사무국장은 이 과정 모두를 결재했다. 리베이트 의혹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팀장은 현재 조폐공사로 이직했고 사무국장은 정직 처분을 받은 후 게임위를 떠났다. 감사원 감사 결과 이런 정황이 모두 밝혀지자 이 사무국장은 게임위 이름으로 허위 보도자료와 해명자료를 배포했다. 이 자료의 허위성을, 자체등급분류 통합관리시스템의 법적 근거를 만든 사람인 이상헌 의원이 국정감사장에서 언급했고, 해당 자료는 국정감사 도중에 삭제됐다. 그런데 의외의 사실이 여기서 폭로되었다. 사무국장은 7월에 정직 2개월 처분을 받았고 임기가 8월까지였기에 이대로 게임위에서 사라지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정직당한 사람이 회사에 나타나더니 사내 전산망에 접속을 했다. 8월 출근일 22일 중 20일을 출근했고, 광복절도 마찬가지였다. 정직이 되어서 대외비 정보 같은 것에 접근할 수도 없을 터인데 말이다. 김규철 게임위원장은 사무국장이 자기방어를 위해 6년 동안 근무한 데이터를 수집할 것이라고 했고 이를 막을 근거가 없었다는 답변을 했다. 이런 말 같지도 않은 대답에 이상헌 의원은 조직 장악력이 없는 거 아니냐, 즉 ‘사무처장이 활개치고 다니는데 막지 못한 거 아니냐’는 추궁을 했다. 교육용 게임 플랫폼 - 유형: 비위.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윤덕 의원이 콘텐츠진흥원의 비위 사실로 의심되는 부분을 질의했지만 콘텐츠진흥원이 반박을 설득력 있게 해내면서 결론이 나지 못한 이슈도 있다. ‘잇다(It-Da)’라는 교육 콘텐츠 플랫폼에서 구동되는 교육용 게임을 한국콘텐츠진흥원이 58억의 예산으로 개발했다. 김윤덕 의원은 개발된 게임들이 잇다에서 구동되지 않는다고 지적했지만 조현래 콘진원장은 구동된다고 맞섰다. 잇다를 통해서만 3천여 건, 총 25만 건의 접속 건수가 발생했다고 한다. 이 사업으로 개발된 게임은 본래 인문/자연/창의/예체능 4분야로 기획이 되었는데, 예체능 분야의 게임이 불합격되었다. 이 심사 과정의 디테일들이 석연치 않다고 김윤덕 의원이 주장했고, 조현래 원장은 부정했다. 두 차례의 질의 끝에 김윤덕 의원은 ‘우리 보좌관들이 운용이 안 되는 것은 우리가 문제가 있는 것이냐’는 질문으로 후퇴하고 말았다. 게임인재원 - 유형: 사업. 의원: 국민의힘 이용 게임 인력을 양성하는 기관 중에는 2019년에 개원한 게임인재원이 있다. 현재 콘텐츠진흥원장인 조현래 원장이 콘텐츠국장이던 시절 시작되었다. 2년 동안 예산은 30억씩 증액되었고 내년에는 50억 이상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개원 이후 총 365명의 교육생 중 1기의 취업률은 75%, 2기의 취업률은 87%다. 곧 제2캠퍼스가 준공되면 정원도 2배로 확대될 예정이다. 반면 3기 졸업생부터는 13~22%p 가량 취업률 지표가 감소했다. 이용 의원의 추측성 진단은, 교육 커리큘럼을 위탁한 업체가 바뀌어서 아니냐는 것이다. 2020년부터 교육 용역을 따내 내년까지 예정된 현재 업체인 파이어랩스는 이전에는 수주 실적이 0이었다. 즉 게임인재원 용역이 첫 수주 사업인 것이다. 이용 의원은 파이어랩스의 설립자가 콘진원의 노조 지부장 출신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전직자 편의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조현래 원장은 평가위원들의 평가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그럴 리가 없다는 입장이었고, 이용 의원은 종합감사 때 구체적인 자료를 갖다달라고 말했지만 종합감사에서 이 이슈가 다시 다뤄지진 않았다. 게임 교육의 지역 제한 - 유형: 교육.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윤덕 본지의 편집장 이경혁 평론가는 ‘우리아이 게임 사용설명서’라는 교양 예능 프로에 출연하여 총 10회 동안 게임 리터러시 교육을 강연했다. 이런 역할을 하는 직종을 게임물 전문 지도사라고 부르며, 게임물관리위원회에서 양성한다. 이들은 학생, 학교밖 청소년, 학부모, 교원 등을 대상으로 적정등급의 게임물 이용, 불법 게임물 이용 예방 교육 등을 한다. 2018년에 3명을 배출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37명이 양성되었다. (편집자 주: 편집장은 게임물 전문 지도사가 아닙니다.) 김윤덕 의원은 이들이 특정 지역에 편중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수도권에 11명, 부산/경상에 23명, 충청에 3명이고, 강원-호남-제주에는 아무도 없었다. 커리큘럼 개설 또한 편중되었다. 이 강사들을 파견하는 지원사업은 서울/경기/대구/부산에만 존재했고, 학교밖 청소년 대상 강연 또한 수도권/부산/대전에만 있었다. 금년 사업계획서조차 청소년 만8천 명을 교육 대상으로 확장하겠다고 했는데, 서울/경기/부산/대구만 언급되어 있었다. 김윤덕 의원과, 농어촌 대표자라는 정체성을 내세운 이개호 의원은 이런 편중이 동등한 교육 권리라는 헌법 가치와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같은 지역 제한이 등급 분류 모니터링 요원 채용에도 있었다. 채용 요건에는 지역 제한이 없었지만 세부 항목에는 부산과 수도권 오프라인 행사에 참석 가능할 것, 장애인은 부산직업능력개발원을 통해서만 모집, 관리인력 채용은 부산 본사 인근 사무실에서 등등의 제한이 있었다. 김규철 게임물관리위원장은 “우선 변명 같습니다만 예산의 한계 때문에”로 운을 떼었다. 예산이 한정되어 있고 그래서 기존 조직이 있는 지역 위주로만 사업을 하다 보니 강원/호남/제주가 빠졌다는 것이다. 최대한 소외 지역으로 지도사가 갈 수 있도록 현재의 예산 규모에서 예산 구성을 다시 짜겠다는 약속은 나왔다. * 본지 편집장이 고정 출연한 OGN의 ‘우리아이 게임 사용설명서’ 게임 제작 지원 예산 - 유형: 예산. 의원: 정의당 류호정 매년 문화체육부에서 콘텐츠진흥원을 통해 집행하는 예산 중에는 게임 제작 지원 사업이 있다. 금년에는 총 41개 업체가 선정되어 교부금을 받을 예정인데, 2차에 나눠서 지급이 된다. 그리고 2차 지원금인 38억 8천만 원이 한 달 넘게 집행이 지연 되는 중이다. 유인촌 장관은, 이제 막 취임했기 때문인지, 아직 파악을 못했다는 답변을 했다. 한편 유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이상헌, 류호정 의원이 언급했던 ‘게임업계 청년 간담회’에 조현래 콘텐츠진흥원장을 참석시켰는데, 여기서 조현래 원장은 예산을 청구했지만 아직 입금되지 않아서 늦어지고 있다는 말을 했다. 추진사항 점검 - 유형: 행정. 의원: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위원장이기 때문에 심도 깊은 질의를 하기는 어려웠던 이상헌 의원은 26일 종합감사에서 유인촌 장관을 상대로 간단한 추진 사항을 점검하는 시간을 잠깐씩 가졌다. GG 지난 호에서 정리했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 여부 에 대한 연구 용역이 그런 시간에 언급됐다. 통계청 민관협의체가 결론을 내기 위해서 발주한 연구 용역 중 하나가 질적 기준을 만족하지 못했고 그래서 후속 연구 용역이 발주된 상태다. 바로 그 거부된 연구에 대해 이상헌 의원은 ‘게임 중독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연구해 연구 목적을 어겼다면서 질타했다. 게임이용장애 찬성측 이론과 진단도구만 반영했고, 반대측 근거에 대한 검토가 없으며, 핵심 로 데이터(Raw Data)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유인촌 장관이 판교에서 ‘게임업계 청년 간담회’를 연 것에 대해서는, 스타트업의 어려움 중 하나라는 서류작업 간소화도 살짝 당부를 했다. 이런 민원 해결 또한 국정감사의 기능 중 하나다. 좀 더 중요한 점검 사항은 확률형 아이템 규제 시행령이다. 게임산업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내년 3월부터 게임사들은 아이템과 관련된 확률을 상세하고 쉽게 공개하는 것이 의무가 된다. 핵심 내용은 ‘쉽게’에 있다. 이 의무를 감시하는 모니터링단도 설치된다. 답변에서 유인촌 장관은 제작사들과의 의견 교환을 언급했는데, 이는 국내 영세 업체에게 부담이 되는 규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업계의 우려를 반영한 발언이다. 게임산업협회를 째려보기 - 유형: 사업. 의원: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게임산업협회의 강신철 협회장이 국정감사장에 출석했는데, 딱 한 번의 질의에만 출연했다. 이상헌 위원장이 최근의 게임계 산업 이슈에 대해 게임산업협회의 주도적 역할 수행을 주문하는 질의였다. 이상헌 의원이 요구한 쟁점은 네 가지였다. 1) 게임사 간의 소송/고소/고발/저작권 도용을 중재하라. 강신철 협회장은 저작권 존중과 보편적 사용이 가능한 요소 사이에서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게임물의 저작권 개념’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답변을 했다. 2) 신림동 무차별 살인사건의 원인으로 게임을 지적한 검찰에 항의하라. 협회가 직접 소통에 나서지 않은 이유는, 일단 사건의 본질을 흐릴 수 있어서였다고 한다. 또한 게임은 이제 국민의 80% 가량이 즐기는 문화산업이 되었다는, 국민을 신뢰하는 발언으로 답변했다. 3) 게임사 내부 직원의 비위 적발 개선 방안을 마련하라. 이는 카카오게임즈의 오딘 업데이트 계획 유출 사건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강신철 협회장이 할 수 있는 답변은 회원사들과 긴밀히 대화하여 열심히 하겠다는 말 외엔 없다. 4) 확률형 아이템 규제 시행령에 대한 입장을 말하라. 번역하면 개정된 규제에 반항하지 말라는 의미다. 강신철 협회장은 의미를 잘 파악하여 시행령에서 정해진 바에 따른 법의 의무를 충실히 다하고 사회적 소통도 노력할 것이라는 모범 답안을 했다. 여기에 더해 한국 게임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말로 회원사들에 대한 의무 방어를 수행했다. 강신철 협회장이 이상의 답변을 한 후에 덧붙인 말은, 정황상 이상헌 의원과의 약속된 세트 플레이로 보이는데, 사용자와의 소통 문제였다. 게임이 이제 청년기에 접어들었으나 기업과 이용자 간의 대화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강신철 협회장의 문제 의식이었다. 따라서 이제부터 게임산업협회에 질문해야 하는 것은 ‘올바른 대화’를 무엇으로 보느냐 하는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기억의 조작술: 사건의 컨벤션으로부터 벗어나기로서 인디게임

    장르는 게이밍에서 오랜 논쟁의 주제 중 하나다. 디지털게임의 매커닉과 외형은 무궁무진하지만 소설이나 영화, TV쇼와 마찬가지로 어떤 약속된 경로들이나 재현의 양태가 축적되고 있음다. 컨벤션(convention)은 창작자와 텍스트, 그리고 수용자 사이에 형성되는 하나의 묵시적인 관습으로 우리는 무수히 많은 텍스트들이 생산되고 반복적으로 읽히는 과정에서 공통의 컨벤션을 체화한다. 장르가 계약을 통해 창작자-수용자 모두 텍스트의 진행 과정을 사전에 공식화한다면, 컨벤션은 비공식적으로 모두가 따르는 불문율이다. 장르는 헌법처럼 작동하지만 컨벤션은 그 안의 관습법 혹은 윤리처럼 흐른다. 장르는 끌어당기는 반면, 컨벤션은 대류한다. 장르는 포뮬러(정형화된 공식)와 컨벤션을 만들고, 스타일과 결합하는 과정에서 스테레오타입과 클리셰를 생산한다.  < Back 기억의 조작술: 사건의 컨벤션으로부터 벗어나기로서 인디게임 11 GG Vol. 23. 4. 10. 게이밍의 컨벤션 장르는 게이밍에서 오랜 논쟁의 주제 중 하나다. 디지털게임의 매커닉과 외형은 무궁무진하지만 소설이나 영화, TV쇼와 마찬가지로 어떤 약속된 경로들이나 재현의 양태가 축적되고 있음다. 컨벤션(convention)은 창작자와 텍스트, 그리고 수용자 사이에 형성되는 하나의 묵시적인 관습으로 우리는 무수히 많은 텍스트들이 생산되고 반복적으로 읽히는 과정에서 공통의 컨벤션을 체화한다. 장르가 계약을 통해 창작자-수용자 모두 텍스트의 진행 과정을 사전에 공식화한다면, 컨벤션은 비공식적으로 모두가 따르는 불문율이다. 장르는 헌법처럼 작동하지만 컨벤션은 그 안의 관습법 혹은 윤리처럼 흐른다. 장르는 끌어당기는 반면, 컨벤션은 대류한다. 장르는 포뮬러(정형화된 공식)와 컨벤션을 만들고, 스타일과 결합하는 과정에서 스테레오타입과 클리셰를 생산한다. 이러한 과정은 추리물에서 특히 투명하게 나타난다. 화려하고 어두운 대도시, 연쇄 살인사건과 무능한 경찰, 괴팍한 성격에 방대한 지식과 촉을 가진 탐정, 사건의 추적 과정에서 드러나는 구조의 모순과 지적 유희는 관객에게 편안하고 즐거운 긴장을 선사한다. 트렌치코트와 모자를 쓴 인물들의 하드보일드한 묘사와 혈흔이 낭자하는 폭력은 복잡함이 아니라 스타일로서, 이는 느긋하게 목적지까지 타고 가는 교통수단처럼 느끼게 만든다. 망설이며 입고 나온 옷이 튀지 않고 길거리 군중의 패션에 녹아듦을 느낄 때 우리는 안도한다. 사람들은 이 탑승 경험에서 특별한 것들을 기대하게 되는데, 그 집합적인 요구들 속에서 컨벤션이 나온다. 영화와 TV쇼는 모두 편안한 컨벤션을 만들기 위해 공식화된 장치들을 사용한다. 필름누아르 영화에서 총격전이나 살인 장면, 로맨스물에서 주인공들이 사랑에 빠지는 장면 등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고속촬영 연출 등이 대표적인 예다. * 좌측부터 윈스턴 처칠, 필립 말로(빅슬립), 닉 발렌타인(폴아웃4), 릭 데커드(2019블레이드러너). 컨벤션은 무수한 스테레오타입과 스타일들 사이의 점들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지만 공유된 관습의 선분들이다. 검은 양복에 톰슨 기관총을 든 남자가 나타났을 때, 중절모에 트렌치코트를 입은 남자가 담배에 불을 붙일 때 우리는 그 뒤에 일어날 사건들을 기시감처럼 느낀다. 기관총 난사 장면은 교차 편집이나 고속촬영으로 연출되거나, 담배 연기가 자욱한 어둠 속에서 권총이 무심히 발사될 것이다. 그렇다면 게이밍에서 컨벤션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될까? 기존의 루돌로지(ludology)의 논의들은 디지털게임을 텍스트라고 부를 수 있는지부터 의심했다. 이는 서사가 게이밍의 토대가 아니라는 단호한 부정에서 출발한다. 그렇다. 테트리스나 팩맨 같은 게임에서 어떤 서사를 읽을 수 없으며, 때때로 방대한 서사를 갖춘 게임에서도 종종 서사가 부재한 플레이 행위성이 출현한다. 올셋(Espen Aarseth)이 지적하듯이 게이밍은 해석이 아니라 탐색이 근간이 되는 실천이다. 이는 플레이의 행위성이 서사와 플롯의 시학을 읽어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공간을 탐험하고, 오브젝트를 만지면서 변화시키는 조형행위에 훨씬 기대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게이밍에서는 컨벤션이 포뮬라에 앞서고, 조작이 문법에 우선한다. 인터페이스, 매커닉, 조작 디자인이 생각보다 훨씬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경로들을 만들 뿐 아니라 행위성을 창조함으로써 게이밍을 생산한다. 영화나 TV쇼에서 장르가 형성되는 순간은 포뮬러가 우선한다. 탐정이 살인사건을 수사하면서 마주하는 공권력 사각지대와 현실의 모순, 카우보이가 방랑 중에 들린 마을에서 악당들을 혼내준 뒤 석양 너머로 떠나는 구조(포뮬러)는 광활한 황야의 풍광, 12시 정각 고독한 두 남자의 권총결투, 질주하는 열차 위에서의 아찔한 몸싸움, 톰슨 기관총을 난사하는 갱스터들의 폭력(컨벤션) 등을 자아낸다. 반면 게임에서는 이 도식이 변주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실시간 전술 시뮬레이션 게임이라는 공통의 플레이 암묵지가 있고, 플레이를 만들기 위한 요소들(자원, 생산, 유닛)을 덧붙이고, 그 위에 두 진영 간의 전쟁이라던가 외계인-지구인 간의 투쟁 같은 구조가 덧씌워진다. 똑같은 어드벤처 게임이라도 그것이 정지된 평면의 포인트앤클릭으로 이루어지는지 1인칭의 시점에서 공간을 탐험하는 방식인지에 따라 상반된 포뮬러가 형성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흐름에는 정형화된 항로가 따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인디아나 존스〉나 〈원숭이섬의 비밀〉은 포인트앤클릭 어드벤처의 대명사이지만, 〈검은방〉 시리즈처럼 하드보일드하고 어두운 미스터리물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횡스크롤 슈터는 〈던전앤 드래곤〉 이나 〈황금도끼〉, 〈너구리〉, 〈소닉〉, 〈록맨〉 같은 호쾌하고 캐주얼한 스테이지클리어 게임이이나 캐슬바니아 게임에 최적화된 것처럼 여겨지지만 〈반교: 디텐션〉처럼 역사적 트라우마를 다루거나, 〈림보〉가 보여주듯 그로테스크한 기억의 알레고리 공간이 되기도 한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는 화끈한 전쟁의 스펙터클을 선사하지만, 〈스펙옵스: 더 라인〉은 전쟁의 스펙터클을 해체해 전쟁의 모순을 재조립한다. 요컨대 게이밍에서 장르와 컨벤션의 관계는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하는 것이 아닌 상부구조가 토대에 협상을 제안하는 관계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사건의 역사화, 기억의 조작술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고도로 노동 집약적이고 창의의 분업이라는 성격을 띠는 문화산업 자장에서 장르는 익숙한 산책로가 되기도 하지만 종종 뻔한 보물찾기가 되기도 한다. 게이밍은 이런 난점이 특히 두드러지는 분야일 것이다. 수많은 1인칭 슈터 게임, 롤플레잉 게임, 시뮬레이션 게임들이 있지만 우리는 이 다양하게 획일적인 난립 가운데서 어떤 환멸을 느낀다. 체육관에 가서 매일 똑같은 무게로, 똑같은 회수로 정해진 세트만큼 운동하면서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처럼 아주 균질적인 작용 반작용이 유희감각을 소구시킨다. 이 지난한 컨벤션의 루프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다양한 시도들이 지금까지 있어왔지만 중요한 것은 크게 두 가지다. 나는 게이밍의 핵심을 절차적 수사학이나 에르고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조작술’로 보기를, 그리고 확고하기 짝이 없는 컨벤션으로부터 벗어나는 경로로서 ‘인디’의 이념을 다르게 전유하기를 제안한다. 보고스트(Ian Bogost)가 정의하듯 게이밍은 ‘절차적 수사학(procedural rhetoric)’에 크게 기대고 있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인터페이스와 컨트롤러에 연동시킨 자신의 신체를 움직여 게임속의 공간·오브젝트를 조작한다. 플레이어는 탐색하고, 탐험할 뿐 아니라 조형하면서 스케일된 게임 시공간의 점들에 선을 연결해 나간다. 이 프로세스는 과정 추론적이고, 로지컬한 사고를 동반하며, 다분히 공학적이다. 게임은 기본적으로 텍스트이기 이전에 행위성(혹은 텍스트)을 출력하는 무형의 기계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풋이 있고, 아웃풋이 있으며 반드시 피드백을 동반한다. 따라서 인터페이스를 조작해 게임 내 디자인과 조응하는 과정들, 이를 설계하는 방식을 절차적 수사학이라 부른다. 절차적 수사학은 영화에서 몽타주, 소설에서 서술기법과 같은 위상으로 게임만의 독특하게 담화 요소이기도 하다. * 〈소닉〉(좌상), 〈더블드래곤〉(우상), 〈반교:디텐션〉(좌하), 〈림보〉(우하). 인디 게임의 래디컬한 상상력은 사건의 시간으로부터 벗어나 기억의 시간들을 재배치하고자 하는 어셈블리지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동일한 매커닉, 축적된 컨벤션을 전유하면서 기억을 조작하고, 나아가 자율적인 역사 인식의 계기들을 생성하는 ‘기억의 조작술’은 게임이 존재론적 한계(에르고딕 또는 절차적 수사학이라 여겨지던)로부터 벗어나 자율적이고 실천적인 행위성의 순간과 조우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절차적’ 혹은 ‘에르고딕’ 이라는 수사는 다분히 결정론적으로 들린다. 디지털게임이 컴퓨터와 알고리즘의 산물이라고 해서 반드시 계량적인 측면만 그 본질로 정의될 이유는 없다. 역사의 지형은 언제나 불연속적이고 위상학적이다. 마르크스의 오랜 전통이 가르쳐주듯이, 역사는 물질대사의 과정이지 추상이나 관념의 구성물이 아니다. 아주 촘촘히 수학적으로 짜여진 사고야말로 번번히 이데올로기라는 기만적 재현계를 만들어왔음을 우리는 안다. 사회진화론이 제국의 팽창 과정에서 우생학이라는 결과물을 만든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게이밍이 우리 두뇌의 어떤 로지컬한 뉴런들을 자극하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로직이 어떤 역사를 상상하게끔 만드느냐다. 우리는 파블로프의 개나 꼭두각시 인형이 아니다. 디지털 게임이 데이터 처리의 절차들로 이뤄졌다고 해서 역사를 떠올리지 못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이는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무의지적 기억의 의미를 비선형적인 의식 흐름 속에서 발견하는 과정과 연동된다. 절차적 수사학 또는 에르고딕의 개념은 게임이라는 유희공간 안에서 사건을 다루는 기술이라 할 수 있으며, 우리는 산업적 컨벤션으로 벗어나기 위해 사건 너머의 숭고를 다루는 조작술을 필요로 한다. * 〈언폴디드: 동백이야기〉(좌), 〈페치카〉(우) 즉 사건은 역사가 될 필요가 있는데, 이 과정을 나는 ‘인디’ 의 개념으로부터 재전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건의 연속에서 엔딩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닌 사건의 배치 속에서 어떤 역사를 획득하는 것이다. 대만의 반세기 철권통치기를 응시하는 〈반교:디텐션〉, 독립운동가들의 고난과 투쟁을 그리는 〈페치카〉, 제주 4.3 대량학살의 파편들을 퍼즐풀이로 재구성하는 〈언폴디드: 동백이야기〉 등은 대문자 역사를 그린다. 좌우의 공간이동만이 허용되는 이들 게임의 공간을 탐색하면서 플레이어는 지금까지 알았던 과거가 2차원적인 평면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물을 조작하고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스테이지들이 바뀌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인물들의 상념과 의식을 가로지르며 우리는 2차원에 강탈당한 에피스테메의 복잡성을 되돌려 받는다. 여기서 역사는 반드시 대문자 역사일 필요는 없다. 역사는 오랜 시간 잊고 지냈지만 가끔 섬광처럼 떠오르는 얼굴들 속에서 그 윤곽을 드러낸다. 그것은 집합적인 기억일 수도, 개인의 소중한 일상일 수도 있다. 대문자와 소문자 역사 사이에서 기억의 조작술은 파편적인 무의지적 기억들을 별자리로 만든다. 개인적인 것은 한편으로 정치적인 것이며, 중요한 것은 단순히 사건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로 하여금 참여하고, 스스로의 로직 속에서 퍼즐풀이를 하도록 기억의 조작술을 고무하는 것이다. 기억의 조작술은 한계지워진 게임의 절차들과 에르고딕에서 벗어나 역사의 위상학적인 시공간으로 행위자를 승급시킨다. 기억의 조작술은 공허하고 선형적인 컨벤션의 진형을 해체하고 우리를 역사의 물질 대사로 초대하는 게이밍의 강력한 전략이 된다. 우리는 인디 게임의 탈주적이고 실험적인 상상력 속에서 이를 발굴하고, 하나의 숭고로 기록해야 함을 깨닫게 된다. * 잊혀진 과거의 기억들을 재조립하고, 지양된 현재를 환대하는 기억의 조작술. 〈A Memoir Blue〉(좌)는 대사나 이야기 대신 마임과 음악으로만 어머니와의 추억을 연출하며, 〈Lieve Oma〉(우)는 할머니와 함께 숲을 걸으며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만 게임이 진행된다. “가장 개인적인 것(the personal)들이 가장 역사적인 것(the historical)”이다. 방법이자 프레임워크로서의 ‘인디펜던트’ 대다수 게임의 천편일률적인 컨벤션은 사건을 단지 흘러갈 뿐인 연속적인 것으로 제시하며, 그 가운데 불구화된 행위성을 주조한다. 플레이어는 관성적으로 게임을 조작하고 예측 가능한 결말을 본 뒤 그것을 잊어버린다. 사건의 끝은 망각이다. ‘인디’ 는 사건들을 재배치해 우리의 기억을 오래 지속되는 미래로 인도하는 방법 중 하나다. 나는 인디 게임을 비상업적, 소규모 개발이라는 유형학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하나의 방법이자 프레임워크로 보기를 주장한다. 인디펜던트는 단순히 아마추어리즘이나 1인 개발, 크라우드펀딩 등으로만 정의될 수 없다. 대규모 자본으로부터 독립한다는 것은 경제적인 심급을 포함해 창작의 인습으로부터도 탈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스팀, 에픽게임즈 등 메이저 게임 플랫폼들과 대형 개발사들이 인디게임 개발과 판매를 지원하면서 게이밍 생태계에서 인디의 개념은 기술적으로 변해버린 감이 있다. 공고한 사회질서에 도전하는 반문화 정신, 문화 창조의 자율성과 현실 변혁을 촉구하는 메시지, 상업적 관습을 깨트리는 형식파괴 및 새로운 미학을 제시하는 작가주의는 역사의 어느지점에서나 인디펜던트의 덕목이었다. 불행히도 게이밍은 여전히 산업적 이해와 인디 사이의 어느 과도기적 지점에 있다. 물론 경제적 요인은 여기에 큰 영향을 미치기는 한다. 접근성이 뛰어난 유니티와 언리얼엔진, 오픈소스 제작환경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게임 개발은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적어도 현재의 상태를 본다면 아직 인디게임이 까이에 뒤 시네마나 펑크, 미학적 대중주의라는 특이점에 도달하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현재 인디게임의 환경은 사실상 산업예비군이나 스타트업, 혹은 포트폴리오 연습의 장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매년 관성적으로 열리는 인디 게임 전시나 비평은 개발자들로 하여금 산업의 컨벤션을 지양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동조되도록 강요한다. 이 틀을 깨야만 할 때다. ‘인디펜던트’는 자본의 출구전략이나 편리하게 부르는 콜택시가 아니다. 한정된 자원 속에서 경로와 로직 사이에 발걸음들을 만들어내는 인디의 급진적인 노력들을 사려 깊게 관찰하고, 그것들이 온연히 발휘될 수 있도록 고무할 필요가 있다. ‘인디펜던트’는 하나의 이념이고, 망설이는 조작 가운데 기억이 역사가 되는 과정이며, 그 안에서 우리는 다른 삶의 잠재태를 건져 올려 인기척으로 소묘한다. 발터 벤야민이 적었듯이, “인식의 진보는 결을 거슬러 역사를 솔질하는 행위에서부터 출발한다.” 인디 게임의 번득이는 아이디어들을 세계를 인식하는 한 프리즘으로서 주목해야만 하는 이유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디지털 문화연구/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신현우 문화연구자, 문화평론가이며 기술비판이론과 미디어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다. 게이밍, 인공지능, 플랫폼, 블록체인을 둘러싼 문화현상을 연구하며 서울과기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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