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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단하고 행동하는 효율의 <피크민 4>

    프라스카를 포함한 루돌로지스트 관점에서의 분석대로 비디오 게임은 일종의 시뮬레이션이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디지털digital의 시뮬레이션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본질적으로 비디오 게임은 세계를 어느 정도 계산 가능한 것digit으로 치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비디오 게임의 세계는 숫자로 치환된 현실을 가진다. 이것은 디지털 게임에 있어 불변의 조건이다. < Back 판단하고 행동하는 효율의 <피크민 4> 18 GG Vol. 24. 6. 10. 수치적 접근과 감각적 접근 프라스카를 포함한 루돌로지스트 관점에서의 분석대로 비디오 게임은 일종의 시뮬레이션이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디지털digital의 시뮬레이션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본질적으로 비디오 게임은 세계를 어느 정도 계산 가능한 것digit으로 치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비디오 게임의 세계는 숫자로 치환된 현실을 가진다. 이것은 디지털 게임에 있어 불변의 조건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디지털 게임의 총체가 숫자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해 우리가 디지털 게임과 접촉하는 접면surface은 수치적 정보와 감각적 정보의 혼합물이다. 캐릭터는 힘 18과 민첩 14와 지능 8으로 이루어지지만 한편으로는 외형 등의 시각적 정보와 (게임에 따라서는) 목소리 등을 통한 청각적 정보로 이루어지는 감각적 규정도 동시에 가진다.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의 굼바는 한 번의 점프로 죽일 수 있을 정도의 체력, 수치적으로 규정된 속도, 지향성의 운동 알고리즘을 가진 존재이며 동시에 도끼눈을 하고 마리오를 죽이기 위해 덤벼드는 괴물이기도 하다. 이런 조건에서 다음의 질문을 떠올릴 수 있다. 수치가 감각에 복종하는가, 아니면 감각이 수치에 복종하는가. 여기에 명백한 대답은 불가능하다. 차라리 비디오 게임이란 수치와 감각이 일으키는 긴장의 중심에 존재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저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서 하나의 축이 다른 축을 앞지를 수 있다. 요컨대 게이머들 사이에서 유통되는 ‘효율론’의 경우, 전적으로 수치가 감각보다 높은 층위를 차지하는 전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수치가 감각을 완전히 소멸시키지는 않는다.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강캐를 애캐로 삼으면 된다.’는 유쾌한 레토릭이 떠돌아다닌다.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강한 캐릭터가 아닐 때 생기는 안타까움을 역설적으로 논하는 일종의 해학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중요한 건, 결국 ‘강캐’에 대한 메타적 접근(=수치적 접근) 조차도 ‘애캐’에 대한 친밀감의 접근(=감각적 접근)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명규의 서술대로 특정 캐릭터와의 연애를 하기 위해서라면 게임의 재시작조차 불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 감각적 접근이란 말 그대로 ‘감각적’ 접근이다. 플레이어는 어느 때에 대상으로부터 감각적 친밀감을 얻는가? 그것은 감각적으로 접촉할 수 있을 때다. 요컨데 찰리 채플린의 그 명언,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의 작동이 비디오 게임에서도 일부 유효하다는 것이다. 플레이어가 인물에게 접근할 때, 요컨대 그 대상의 모습을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을 때 감각적 인식의 가능성은 오른다. 따라서 게임이 규정하는 고정된 시점을 벗어나 캐릭터를 다양한 방향에서 비추어는 컷씬은 일거에 감각 접근을 수치 접근보다 앞지르게 만드는 효과를 준다. 그 외에도 음성의 삽입을 통한 청각의 접근, 진동 등의 기능을 통한 촉각적 접근은 나와 대상이 연결될 수 있다는 감각적 가능성을 증가시켜 준다. 많이 배제되는 경향이긴 하지만, 비디오 게임에서 촉각은 특별한 위치를 점한다. 비디오 게임을 여타 매체와 차별화시키는 감각이 바로 촉각이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는 (동작 인식 센서를 활용하는 게임이 아닌 이상에야) 결국 컨트롤러를 ‘손으로 잡고’ 버튼을 ‘손가락으로 눌러야’ 대상과 연결된다. 조금 과하게 표현하자면 컨트롤러는 <스타크래프트>나 영화 <아바타>에 등장하는 신경삭Nerve cord [2] 같기도 하다. 나와 게임이 연결되는 접촉의 연결지점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의 손으로부터 뻗어나간 신경삭이 게임 내부의 무엇과 연결되어 있느냐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 요컨대 (대부분의 액션 게임들처럼) 특정한 인간과 연결되어 있는 것인가, 아니면 (대부분의 시뮬레이션 게임들처럼)확인 불가능한 가상의 신적god-like 존재와 연결되어 있는 것인가. * 그림 1 : 코에이의 <삼국지 14> 이에 비추어 보자면 대부분의 시뮬레이션 게임들이 극도의 효율적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배경에는 단순히 인구 혹은 전력戰力 따위로 수치되는 경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플레이어의 인지가 대상(=유닛)과 감각적으로 유리되어 있다는 전제도 함께 작동한다. 특히나 특별히 어떠한 인물이라 특정할 수 없는 매니저 혹은 전략 지도자의 ‘명령’을 전달하기 위한 가상적 부표, 즉 커서는 그 전달 대상과의 촉각적 접촉을 완전히 끊어버린다. 이 때 유닛이란 신경삭으로 연결되지 않은 감각 바깥의 존재들이며 따라서 이들의 생존 혹은 고용 상태 같은 것도 어디까지나 가상적 감각으로 체화된다. 그들과 거리가 멀어질 수록, 요컨대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처럼 병사 1의 존재를 절대 인지할 수 없을 정도의 단절이 발생한다면 결코 생명의 수치로 환원되지 않는다. <삼국지>의 전투 중 부대와 부대의 싸움으로 100의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우리에겐 100명의 부상 혹은 사망으로 인지되지 않는다. <피크민4>와 접촉의 메커니즘 닌텐도의 <피크민 4>는 2024년 TGA에서 최고의 시뮬레이션/전략 게임Best Sim/Strategy Award를 수상했다. <피크민> 시리즈의 장르는 제작사에 의해 AI액션AIアクション [3] 으로 분류되고 있으나, 정확히 액션의 문법을 따르고 있다고 말하기에는 모호한 지점이 있다. 오히려 TGA의 수상이 말해주듯,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공간 내에서 유닛을 ‘생산’하고, 업무적 분류에 따라 ‘명령’하는 실시간 전략RTS:Real Time Strategy에 가까운 문법을 가진다. 다만 목표가 적진의 괴멸이 아닌 물건의 수집이라는 점, 건설의 개념이 없다는 점, 자원 수집과 생산 명령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타의 RTS와는 다른 감각을 줄 뿐이다. 그럼에도 유닛을 어떻게 분리하고 운영할 것인가라는 측면에서 RTS의 전략을 상당히 공유한다. 그런 면에서 <피크민 4>를 RTS로 구분하는 것이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게임이 부분적으로 ‘액션’으로 구분되는 이유는 세계를 비추는 방식이 신적이기보다는 인물 중심적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피크민> 시리즈에는 RTS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커서의 메커니즘이 배제되어 있다. 플레이어는 ‘주인공’으로 규정되는 중요 캐릭터 [4] 를 직접 조작해 유닛인 피크민들에게 명령을 내려야 한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가상적 부표가 아닌 명백히 물리적인 주체와 신경삭으로 연결되는 경험을 거치고, 시뮬레이션 일반과 상이한 감각을 느끼게 된다. 특히 유닛을 운용하는 가장 기초적인 메커니즘이 대상이 되는 피크민을 ‘들어 던지는’, 상당히 밀도 높은 물리적인 접촉 형태를 취한다. * 그림 2 : <피크민> 시리즈에는 언제나 피크민의 손실에 대한 상실의 메시지가 존재한다. <피크민> 시리즈의 독특함은 바로 이 접촉의 메커니즘에서 나온다. 전략적 판단을 전제로 하는 전략 게임의 세계임에도 개별 유닛 하나하나와 직접 접촉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각각의 피크민은 <스타크래프트> 같은 RTS의 유닛 일반과는 전혀 다른 존재감을 갖는다. 이들은 명백히 살아있으며, 자신들만의 생태가 있고, 때로는 죽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명령에 헌신하며 잘못된 판단은 이들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 특히 피크민의 죽음은 시체 위로 승천하는 영혼으로 표현된다. 만화적 유쾌함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고체적’ 성질에서 부유하다 사라져버리는 ‘기체적’ 성질로 전환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표현이기도 하다. <피크민> 시리즈는 RTS로서는 이례적으로 개별적 유닛의 실존을 강력하게 표출한다. 효율과 계획력 * 그림 3 : 피크민은 스스로 놀지 않는다. 오직 플레이어가 그들을 놀리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피크민 4>에는 ‘계획력’이라는 개념이 강조된다. 작품은 계획력을 ‘순서를 생각해서 효율 좋게 작업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게임 내적으로는 피크민의 분산적 운용과 쉼없는 컨트롤을 통한 시간대비의 효율적인 움직임을 총칭하는 단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피크민 4>는 표면적으로 효율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 효율은 전적으로 현재 보편적으로 유통되는 의미, 즉 감각을 앞지르는 수치의 전면화와는 근본을 달리하는 개념이다. <피크민 4>는 효율적인 수치보다는 효율적인 움직임을 강조한다. 앞서 구분했던 대로 수치와 감각의 개념으로 치환해 보자면, <피크민 4>가 강조하는 효율은 감각의 운용에 가깝다. 비록 게임은 몇 종/마리의 피크민과 동행 중인가 하는 수치적 스테이터스를 표시하긴 하지만, 이 수치의 효과는 전적으로 플레이어가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하는가에 따라 극도로 변화한다. 이 변곡이 바로 본작이 추구하는 ‘계획력’이다. 이 감각적 효율 추구는 대상에 대한 전적인 친화를 기반으로 한다. 요컨대 여기에는 덜 효율적인 수치에 대한 배제 또는 제거의 행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피크민 4>의 효율은 오직 하나의 기준을 통해서만 작동한다. 그것은 플레이어의 감각 활용이며, 조금 더 물리적으로 말하자면 쉼없는 판단과 움직임의 동원이다. 이러한 규정에 의해 성패의 거시적 판단이 확고해진다. 요컨대 <피크민> 시리즈에는 ‘유닛이 약하기 때문에’ 실패하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시리즈에서의 실패는 오직 플레이어의 상황과 능력에 대한 오판, 비전략적 혹은 비효율적 움직임 등으로만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실패의 결과는 피크민이라는 생명의 소실로 연결되는 치명적인 감각의 실패를 낳는다. 전략 시뮬레이션이란 결국 매니지먼트의 시뮬레이션이다. 유닛으로 총칭되는 병력과 병기에 대한 관리가 그 규칙의 체계를 구성하는 장르인 것이다. 하지만 때로 비디오 게임의 매니지먼트는 지나치게 감각의 세계를 배제하곤 한다. 실패는 냉엄한 수치의 손실인 것 뿐인가? 혹은 패배의 원인은 수치적 불완전성, ‘더 뛰어나지 못한’ 관리의 대상이 포함되었기 때문인가? <피크민> 시리즈는 이러한 수치 매니지먼트 또는 효율론의 한계 지점을 가로질러 매니지먼트의 가장 기초적인 원리로 되돌아간다. <피크민 4>는 계획력이라는 단어를 경유해, 플레이어로 하여금 매니지먼트의 본질에 대해 설파한다. 스스로 판단하고 직접 행동하라. 바로 이것이 매니지먼트의 효율이며, 그것은 감각의 무게다. [5] * 그림 4 : 계획력이란 순서를 생각해서 효율좋게 작업하는 능력을 말한다. 일상생활에서도 계획력을 발휘하는 습관을 들이면 좋을 것이다. [1] 「게임의 로맨스가 진짜 사랑은 아니지만 중요해, CRPG의 로맨스」 (이명규, GG 16호) [2] 이 두 작품에서 신경삭은 모두 다른 존재와의 정신적 연결을 위한 기관으로 등장한다. 특히 <아바타>에서는 신경 다발을 물리적으로 연결하는 장면이 다수 나온다. [3] 정확히 말하면 전작인 <피크민 3>까지 이러한 장르명으로 규정한다. [4] 전작들인 1편과 2편에는 올리마를 단독으로 조작했으며 3편에서는 알프, 브리트니, 찰리라는 3인 팀을 교체하며 조작할 수 있었다. 4편에서는 플레이어가 직접 제작한 캐릭터를 사용한다. [5] <피크민 4>의 로딩 스크린에 나오는 문구 중에는 일상생활에서도 계획력을 발휘하는 습관을 들여보라는 내용이 있다. 이러한 사유를 현실에까지 연장시키고 싶다는 바람의 투영같기도 하다. Tags: 피크민, 감각, 시뮬레이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평론가) 이선인 만화와 게임, 영화를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합니다. MMORPG를 제외한 <파이널 판타지> 전 시리즈 클리어가 라이프 워크입니다. 스팀덱을 주로 사용합니다.

  • <로블록스>에서 어린이는 어떻게 생활하는가?

    <디지털 시민교육을 위한 어린이 미디어 생활 연구: 로블록스에서 어린이는 어떻게 생활하는가?>는 로블록스에서의 어린의 삶을 이해한 후, 비로소 의미있는 디지털 시민교육이 가능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KATOM) 소속인 교사 및 연구자들은 직접 로블록스 이용자를 대상으로 로블록스 속 어린이의 삶을 질적연구방법론으로 분석하였다. 이 글에서는 위 보고서를 인용해 로블록스에서의 어린이의 삶을 살펴보고자 한다. < Back <로블록스>에서 어린이는 어떻게 생활하는가? 25 GG Vol. 25. 8. 10. 교육의 가장 큰 목적이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면, 디지털 미디어 교육에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어린이의 미디어 속 삶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고 그들의 삶과 문제상황들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초등학생의 미디어 이용 중 가장 주목해야 할 플랫폼은 로블록스이다. 로블록스는 2023년 기준(2023, 한국언론진흥재단) 초등학생의 90%가 이용하는 플랫폼이며 10대에서는 남녀 상관없이 유튜브, 카카오톡에 이어 이용률이 가장 높다. 이용률 면에서도 주목해야 하지만, 로블록스는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 모든 성별이 함께 이용하는 ‘메타버스’ 기반 게임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린이들은 로블록스 안에서 살아간다. <디지털 시민교육을 위한 어린이 미디어 생활 연구: 로블록스에서 어린이는 어떻게 생활하는가?>는 로블록스에서의 어린이의 삶을 이해한 후, 비로소 의미있는 디지털 시민교육이 가능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KATOM) 소속인 교사 및 연구자들은 직접 로블록스 이용자를 대상으로 로블록스 속 어린이의 삶을 질적연구방법론으로 분석하였다. 이 글에서는 위 보고서를 인용해 로블록스에서의 어린이의 삶을 살펴보고자 한다. 어린이들의 온라인 놀이터, 그리고 작은 지구촌 로블록스가 어린이들에게 중요한 플랫폼이 된 것은 팬더믹 시기 이후이다. 이 시기에 전 세계적으로 고립된 어린이들은 로블록스 안에서 만나 놀이를 시작했다. 그리고 팬더믹 시기가 끝났지만 로블록스 공간은 어린이들의 온라인 놀이터로 살아남았다. 일상 속에 정착한 스마트기기 덕분이기도 했지만 사교육으로 부족해진 공동의 놀이 시간, 소음에 대해 늘 조심해야 하는 공동거주공간의 특성, 안전한 놀이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도시공간 등 다양한 요인이 어린이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놀이터를 포기하고 온라인 놀이터를 선택하게 했다. 로블록스는 밤 늦게라도, 잠깐이라도 어린이들이 모여서 놀이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다. 해외로 어학연수를 가거나 멀리 이사를 간 친구, 진학으로 멀어진 친구들과도 어린이들은 로블록스 안에서 만날 수 있다. 어린이들은 로블록스 공간 안에서 친구들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 만으로도 힐링이 된다고 한다. 서희(11, 여)가 그린 로블록스 경험은 놀이공원처럼 표현되었다. 소통과 어울림은 로블록스 경험의 중심에 있다. 어린이들이 로블록스 안에서 만나는 것은 친구나 가족뿐인 것은 아니다. 로블록스는 온라인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장이다. 진희(12, 여)는 로블록스에서 만난 온라인 친구와의 만남이 준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진희는 어린이들이 많이 경험하는 점프맵에서 처음 본 사람들과 함께 게임을 했다.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함께 놀아주고 플레이할 때 기다려 주는 등 배려해 주면서 유대를 쌓았으며 이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많은 어린이들은 로블록스 안에서 친해진 온라인 친구를 여럿 가지고 있다.플레이어들의 다양성은 어린이들에게 국제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완전 핫하게 꾸민 스킨’이나 매너를 잘 지킨다는 이유로 외국인을 선호하는 어린이들도 있다. 특별히 영어를 잘 못해도, 바디랭귀지와 이모트, VR 등을 통해 소통은 충분히 가능하다. 특히 스킨은 로블록스에서의 중요한 비언어적 소통수단이다. 어린이들은 모르는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스킨을 이용해 상대방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자신을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무료스킨만으로 자신을 꾸미다가는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거나 이유없이 욕을 먹을 수도 있다는 불문율도 어린이들 사이에 있다. 여러모로 로블록스에서의 삶 역시 비용이 드는 사회생활인 것이다. 로블록스에서의 부정적 경험들 무료 스킨의 일화에서 드러나듯, 모르는 사람들과의 만남엔 부정적 경험도 있다.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것은 폭력적 이용자들이다. 어린이들은 유독 한국 이용자들이 이런 특성이 많다고 호소한다. 게임을 하다가, 아이템을 거래하다가 이들은 폭력적으로 행동한다. 소통을 시도하다가 잘 안되어서 자리를 피하면 끝까지 쫓아와 욕을 하는 이용자도 있다. 어린이들은 이런 상황들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고 한다. 게임 중 갑자기 욕을 먹은 경험 (김민아, 10, 여) 저학년 어린이들은 이런 일이 있을 때 자리를 피하거나 게임을 중단해 버리지만, 같이 맞서서 욕을 하거나 싸우는 어린이도 적지 않다. 게임 공간 안에서 폭력적 문화가 대물림되는 과정이다. ‘어드민’ 의 괴롭힘은 보다 적극적인 괴롭힘이다. Free Admin 게임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어드민 권한을 가질 수 있는데, 어드민 등급이 로벅스 가격에 의해 결정되다보니 본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높은 등급의 어드민 이용자들이 다른 이용자들을 괴롭히거나 죽이는 명령어를 적용시켜 게임을 못하게 하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재윤(11, 여)은 ‘로블록스에 대한 내 생각’을 마인드맵으로 표현하였는데, ‘맵’ 키워드와 관련하여 경험한 기분나쁜 경험에 대한 생각을 가득 적었다.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점프맵’과 관련하여, ‘어드민이 많다.’, ‘나쁜 어드민’, ‘게임을 못하게 맵을 망가트린다.’ 등의 진술이 반복된다. 고은은 어드민처럼 보이는 사람이 못 가게 하더니 욕을 했고, 쫓아오면서 욕을 하길래 같이 욕을 했더니 그 사람이 신고를 해서 계정이 정지되었다. 이런 일은 종종 있다. 어린이들이 경험하는 또 다른 충격적인 경험은 ‘사기’ 이다. 위의 재윤의 마인드맵에도, 다른 어린이들의 만화에도 사기 경험은 가장 높은 빈도수로 나타난다. ‘입양하세요’ 게임에서 이런 일이 특히 빈번하게 일어난다. 아원(16, 여)은 초등학교때 열심히 키우던 닭이 있었다. 그런데 어떤 이용자가 다가와서 좋은 아이템으로 바꾸어준다고 했다. 그런데 그 이용자는 닭을 받고 사라져버렸다. ‘실감이 안난다.’ ‘현실을 부정한다.’ ‘게임에서 열심히 번 것이어서 주저앉아 운다.’ 사기는 어린이들이 게임 공간에 들인 노력과 마음을 한 순간에 무너트린다. 로벅스가 만드는 삶의 고난 이런 문제들은 오프라인 공간과 마찬가지로 어린이들의 삶의 공간이 무료가 아니라는 지극히 냉정한 현실에 기인한다. 로블록스는 로벅스 경제의 토대 위에 세워져 있고, 무료 포인트나 이벤트 등은 없다. 이상적으로는 이러한 로벅스 경제는 어린이들이 광고 없이 디지털 미디어 공간에서 건전한 경제생활을 연습할 수 있는 경험의 토대가 되겠지만, 이용자 중심의 로벅스 세계, 그리고 어린이들의 게임 머니를 통제하는 양육 관행은 어린이들을 로블록스 세계의 경제적 약자로 만들었다. 어린이들의 로블록스 경험에서는 앞서 언급한 ‘사기’ 외에도 ‘구걸’, ‘기부’. ‘노동’ 등의 키워드가 공통적으로, 그리고 높은 빈도수로 나타난다. 오프라인에서라면 아동권리 보호차원에서라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만, 온라인에서는 그런 보호가 없다. 미디어 기업 대 이용자의 관계가 아닌, 이용자와 이용자간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플리즈 도네이트’ 게임은 기부를 위해 찾는 게임이다. 이곳에서는 기부, 즉 로벅스를 주고받는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진다. 무과금 유저인 어린이들은 게임을 하고, 점프를 하고, 리액션을 하면서 로벅스를 기부받고 남는 로벅스를 기부하기도 한다. 인터뷰에 응한 어린이들은 이것을 ‘노동’이라고 표현했다. 재미있으려고 플레이하는 것이 아니라 로벅스를 얻기 위해 무의미한 플레이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을 하고도 댓가를 받지 못하는 일도 많다. 현수(11, 여)는 이것을 공사장에서 노동을 했는데 월급을 못 받는 것과도 같다고 했다. 심지어 로벅스를 기부해달라고 ‘구걸’을 하는 일도 빈번하다. 기성세대가 듣기에 충격적인 이러한 일화들은 어린이들의 일상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는 2021년 일반논평 제 25호를 통해 디지털 환경에서의 아동권리 또한 오프라인과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는 것을 발표하였으나, 디지털 미디어 환경은 아직 정글에 가깝다. 디지털 시민의식, 그리고 온라인에서의 아동 권리 로블록스 경험 속에 포함된 부정적 경험들에 대해 기성세대들이 가장 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점은 접근을 차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차단은 근본적으로 디지털 미디어에서의 삶을 막을 수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잃는 결과를 가져온다 또한 이것은 어린이들이 미디어 안에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소통과 즐거움의 기회, 그리고 미디어 이용자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는 권리 침해에 해당한다. 다양한 경험과 시행착오 안에서 어린이들은 미디어 정글 안에서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고, 삶의 지식을 얻는다. 연구에 참여한 어린이들은 면담 전에는 노동, 혐오와 차별, 성적 대상화, 상업적 이용, 언어폭력 등 많은 문제들을 권리침해로 인식하지 못했지만 면담과 선생님과의 대화를 거치면서 로블록스에서 만난 위기에 대처하거나, 악성 이용자를 차단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고 말해주었다. 나중에 찾아와서 나쁜 이용자를 차단한 이야기를 해 준 어린이도 있었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디지털 시민교육이 좋은 로블록스 세계를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로블록스는 자신들에게 소중한 공간이니, 서로서로 약속을 잘 지켜서 로블록스를 지켜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어른들의 도움이다. 어른들은 보호자이기도 하지만, 로블록스와 같은 디지털 세계를 구성하는 이용자들이며, 아이들에게는 미디어 안의 강자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민의식이 어린이 청소년 뿐 아니라 모든 미디어 이용자들에게 필요한 중요한 이유이다. 이 연구는 로블록스 본사에 전달되어, 어린이들의 의견들은 일부 새로운 정책에 적용되었다. 교사, 학부모, 어린이를 위한 가이드북 [1] 이 만들어지고, 로블록스의 신고기능을 강화하고, 필터를 없애는 대신 채팅기능을 연령별로 차단하는 등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어린이들의 경험이 지금 이 글처럼 더 많은 이용자들에게 공유되고, 게임 교육에 대한 인식 개선을 이끌어내는 것일 듯 하다. 디지털 시민들의 노력을 통해 더 안전한 어린이들의 놀이터가 되길 기대한다. [1] 로블록스-디지털 시민교육 가이드북은 KATOM 홈페이지( katom.me )에서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 참고문헌 박유신, 김아미, 김세진, 김완수, 김원영, 박소현, 서용리, 양철진, 하윤영, 차은영(2023) 「디지털 시민교육을 위한 어린이 미디어 생활 연구: 로블록스에서 어린이는 어떻게 생활하는가?」, 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 Tags: 미디어리터러시, 교육, 어린이, 로블록스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교사) 박유신 초등학교 교사이며, 미디어와 교육 연구자이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 게임, AI에 이르기까지, 어린이들의 디지털 미디어에서의 삶과 문화를 인정하는 것이 교육의 기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더 알고 싶어하지만 쉽지 않다. 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에서 회장직을 수행중이다.

  • [논문세미나] '스트리트파이터'는 무술martial arts인가?

    그리고 그 운용기술, 다시말해 주어진 텍스트를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관념과 자세에서 존스는 70년대 무술영화 붐과 2000년대 대전격투 게임이 같은 맥락에 선다고 분석한다. 오늘날 현대 격투기에서 사실상 중국 전통무술의 실전성은 파훼되었지만, 7-80년대에 이소룡 영화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동양무술은 북미에서 실제로 무술 도장의 붐을 이끌어냈고 수많은 청년들로 하여금 괴성을 지르며 신체를 움직이는 무술의 동작을 따라하게 만들었으며, 같은 맥락에서 EVO #37 이벤트 또한 동시대의 수용자들로 하여금 디지털화된 무술과 비슷한 무엇을 따라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 Back [논문세미나] '스트리트파이터'는 무술martial arts인가? 13 GG Vol. 23. 8. 10. 크리스 고토 존스 (Chris G. Jones) 는 캐나다 빅토리아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 주전공은 동양철학과 일본불교 , 명상과 종교 계통이다 . 논문 < 스트리트 파이터는 무술 martial art 인가 ?> 이 왜 철학연구라조부터 나왔을지를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 철학자인 그는 ‘ 스트리트 파이터 ’ 로 대표되는 오늘날의 디지털 격투 게임이 플레이되는 과정을 살피며 그 속에 배어 있는 대중문화로서의 오리엔탈리즘이 기술미디어 시대에 어떻게 새롭게 자리잡고 있는지를 추적한다 . 2018 년에 나왔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이 논문을 오늘 소개한다 . From dragon to the Beast 대전격투 게임의 기원을 게임학자들이라면 다른 쪽에서 찾겠지만 , 존스는 대중문화사 속에서 대전격투 게임의 선조로 이소룡 Bruce Lee 과 그의 영화들을 꼽는다 . 그는 이소룡의 영화들 , < 용쟁호투 >, < 사망유희 > 와 같은 그의 대표작들이 유행을 탔던 1970 년대와 2004 년 격투 게임의 한 장면을 대비시키는데 , 바로 EVO #37 의 그 유명한 장면 , 우메하라 다이고의 ‘ 더 비스트 이벤트 ’ 다 . 워낙 전설적인 e 스포츠 명장면으로 회자되는 우메하라 다이고 대 저스틴 웡의 ‘ 스트리트 파이터 3’ 대결은 막판 KO 위기에 놓인 우메하라의 켄이 상대 춘리의 초필살기 연타를 가드하지 않고 ( 가드하면 가드 대미지가 들어와 KO 당한다 ) 하나하나 패리해내며 완벽하게 방어해낸 후 , 점프에 이은 초필살기 반격으로 역 KO 시키며 게임을 뒤집은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 존스는 이 장면을 보며 70 년대 이소룡 영화가 선보였던 무술 붐이 2000 년대에는 대전격투 게임에서 다시 일어나고 있음을 깨닫는다 . 존스는 7-80 년대 서구권에서 일었던 이소룡을 중심으로 한 무술 붐과 마찬가지로 학계는 2000 년대의 이 영상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본다 . 우메하라의 역전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 이상의 리터러시가 필요한데 , 첫째는 ‘ 스트리트 파이터 3’ 의 기본적인 시스템과 규칙에 대한 이해 , 둘째는 이 시스템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이를 받아들여 정확한 움직임을 수행하는 신체의 운동능력이다 . 이를 존스는 각각 객체기술 object skill, 운용기술 locomotive skill 이라고 일컫는데 , 현재의 게임연구분야는 텍스트에 중점을 둔 관계로 주어진 규칙을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운용기술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 그리고 그 운용기술 , 다시말해 주어진 텍스트를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관념과 자세에서 존스는 70 년대 무술영화 붐과 2000 년대 대전격투 게임이 같은 맥락에 선다고 분석한다 . 오늘날 현대 격투기에서 사실상 중국 전통무술의 실전성은 파훼되었지만 , 7-80 년대에 이소룡 영화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동양무술은 북미에서 실제로 무술 도장의 붐을 이끌어냈고 수많은 청년들로 하여금 괴성을 지르며 신체를 움직이는 무술의 동작을 따라하게 만들었으며 , 같은 맥락에서 EVO #37 이벤트 또한 동시대의 수용자들로 하여금 디지털화된 무술과 비슷한 무엇을 따라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 존스가 무술을 이야기할 때 중심에 두는 것은 무술이라는 개념을 다루는 자세와 방식이다 . 존스는 이소룡과 무술영화가 보여주는 체술은 체술의 보여주기에 머무르지 않고 일종의 신비하고 경건한 수련의 자세를 포함한다고 본다 . 이를테면 이소룡이 주요한 장면에서 명상에 가까운 집중을 보여주거나 , 무술영화들이 주인공의 수련을 다룰 때 끊임없는 ( 이른바 ‘ 용맹정진 ’ 으로 대표될 ) 반복숙달이 단순히 육체적 훈련에 머무르지 않고 일종의 정신수양에 가 닿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 존스는 주목한다 . 그리고 이는 오늘날의 디지털 대전격투 게임을 다루는 게이머들과 게이머 커뮤니티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된다 . 게이머 커뮤니티는 일정 수준에 오른 격투 게이머들의 경지를 수련과 정진을 통해 도달할 수 있으며 , 단순히 육체적인 숙달의 문제 뿐 아니라 정신적인 수양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 이를테면 앞서 이야기한 우메하라의 경우 , 4 초 동안 쏟아지는 춘리의 초필살기 13 개의 연타를 한번도 틀리지 않고 정확한 타이밍에 튕겨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눈과 손의 반응속도 뿐 아니라 그런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도 침착과 냉정을 잃지 않는 마음가짐이며 , 이러한 자세가 곧 이소룡이 선보인 그것과 동일하다는 이야기다 . 격투 게임과 테크노-오리엔탈리즘, 오타쿠 무술이라는 주제는 서구에서 다분히 오리엔탈리즘적 관점과 엮여 받아들여져 왔다 . 이소룡은 서구인들에게 백인이 아닌 미국인에 의해 만들어지는 반헤게모니적 남성성으로 인식되었다 . 그가 < 맹룡과강 > 에서 척 노리스와 맨손격투를 벌여 승리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 이소룡의 무술영화는 < 정무문 > 에서 일제 강점기에 놓인 중국의 상황을 다루는 것처럼 민족 , 인종이라는 테마와 떼어놓기 어려운 주제였고 , 이와 같은 맥락은 현재의 대전격투 프로 게임 씬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 일명 ‘ 아시아인의 손 Asian Hands’ 이라는 개념이 그것이다 . 아시아인들이 여러 e 스포츠 종목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고 ( 이는 한국의 ‘ 스타크래프트 ’ 나 ‘ 리그오브레전드 ’ 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같은 맥락에서 서구인들은 과거 이소룡이 그랬던 것처럼 이들 아시안 프로게이머들을 일종의 초인적이고 신비주의적인 , 우리와는 다른 존재라고 받아들인다 . 이는 단순히 서구인들의 시선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 실제 대회에 출전하는 일본 게이머들은 스스로가 ‘ 우리는 일본인이므로 훨씬 잘 해낼 것이다 ’ 라고 인터뷰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 존스는 신비주의적으로만 언급되는 ‘ 아시아인의 손 ’ 을 이해하기 위해서 키지마 kijima 의 오사카 게이머 관찰연구 결과 (2012) 를 살펴본다 . 존스에게 있어 격투게임에서의 일본 우세는 그들이 뭔가 신비하고 영적인 훈련을 거친다기보다는 아케이드 환경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 서구에서 거의 소멸한 아케이드에서의 대전격투는 일본에선 여전히 주요 상업지구의 대형 오락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 ( 다만 이 지점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애매하다 . 아케이드의 소멸은 규모는 다를지라도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반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 그리고 이런 아케이드를 거점으로 삼아 일명 ‘ 무사도 ’ 라고 불리는 특유의 문화로부터 기인하는 도장깨기 dojo-yaburi 가 일본에는 활성화되어 있고 , 이 과정을 통해 일본 게이머들은 끊임없이 강한 상대를 만나며 더욱 수련에 정진할 수 있다는 것이 존스의 분석이다 . 그러나 이런 점보다 대중적으로는 ‘ 신비로운 아시아인들의 놀라운 격투능력 ’ 이 온라인 격투에서도 발휘된다고 이해된다 . 신화적인 무술 담론은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 그리고 무술담론과 현대 격투게임의 이와 같은 융합에는 80 년대 일본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테크노 - 오리엔탈리즘의 오타쿠적 변형과 재수용이 함께 자리한다 . 홍콩과 도쿄 , 상하이의 네온사인 가득한 ‘ 이국적 ’ 야경으로 그려졌던 80 년대의 테크노 - 오리엔탈리즘은 디지털게임과 맞물리면서 오타쿠의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낸다 . 90 년대 이른바 ‘ 쿨 재팬 ’ 의 출현과 함께 일어난 이 변화는 아즈마 히로키의 <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2001) 을 통해 해석의 기초를 얻게 되었다 . 데이터베이스화한 동물 , 슈퍼 정보처리기로서의 오타쿠는 기존의 다른 매체 오타쿠와 달리 게임 오타쿠를 일정 몰입도에 도달하기까지 강박적 헌신과 지속적 연습을 이어간다는 형식으로 차별화시키며 일명 ‘ 야리코미 ’ 와 같은 게임 플레이 스타일을 만들어냈고 , 이러한 게임 오타쿠는 무술 담론과 결합한 대전격투 게임과 만나며 오타쿠적 몰입을 무사도적 수련과 정진으로 이해하는 새로운 대중적 이해를 낳았다고 존스는 이야기한다 . Emperor가 아니라 Demon King인 이상혁의 문제 서구권에서 바라보는 무술 , 혹은 무술의 개념을 가져온 게임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 독자들 입장에서는 흥미로운데 , 무술과 같은 개념은 같은 동아시아권 문화에 있어 우리에겐 좀더 내재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 서구권에서 바라본 것처럼 우리에게 무술은 굉장히 신비로운 것으로는 다가오지 않는다 . 이를테면 한국에서도 격투 게임의 어떤 순간들을 무술 , 아니 좀더 우리 식으로라면 격투게임 고수들의 모임을 일종의 무림武林으로 비유하거나 , 무릎 배재민의 파키스탄 원정을 일종의 폐관수련으로 이해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 분명 존스의 이해와 우리의 이해는 일면 상통하지만 , 과연 우리의 그것이 서구의 것처럼 신비스러운 대상인가를 생각해보면 둘의 차이 또한 명확하다 . 테크노 - 오리엔탈리즘은 디지털게임과 함께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오타쿠 문화와 엮이며 독특한 장면을 자아낸다 . 다만 존스의 의견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 아마도 ‘ 왜 e 스포츠에서 동아시아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는가 ?’ 라는 질문에 대해 존스의 의견은 명확한 단 하나의 답으로는 자리하기 어려울 것이다 . 당장 한국이 우세를 점하는 e 스포츠 종목들을 생각해 본다면 이들이 존스의 개념 안에서 거론되는 오타쿠로 분류될 수 있는지와 같은 쟁점들을 새롭게 마주하게 될 것이다 . 한국에서도 아케이드는 이제 대중적인 문화에서 멀어져가는 추세고 , 오히려 대전격투 게임의 고수들은 네트워크 플레이로 도장을 옮겨 안착한 지 오래다 . PC 방의 존재는 여전히 과거 아케이드와 같은 오프라인 도장 역할을 하고 있지만 , 애초에 ‘ 리그 오브 레전드 ’ 같은 게임은 PC 방의 로컬이 아닌 네트워크상의 5:5 대전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이 또한 명백한 해답이 되기는 어렵다 . 결론을 대신하는 한 가지 힌트라면 , 적어도 우리는 왜 동아시아 선수들 , 좀더 우리 입장으로 좁혀 본다면 왜 한국의 e 스포츠는 그토록 높은 성과를 내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새로운 답변의 접근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 우리는 한국이 e 스포츠의 선두주자라는 것까지만을 이야기하지만 , 한편으로는 세계 최고의 LOL 플레이어인 페이커 이상혁의 별명이 서구권에서 ‘Emperor’ 가 아니라 ‘Demon King’ 이라는 사실에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점을 존스의 글은 돌아보게 한다 . 테크노 오리엔탈리즘과 엮여 돌아가는 오늘날의 e 스포츠 상황을 이해하는 데는 e 스포츠 그 자체 뿐 아니라 , “ 동아시아의 e 스포츠 ” 로 끊임없이 서구에서 타자화되는 경향과 그 결과 또한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 참고문헌 Kijima, Y. (2012). “The Fighting Gamer Otaku Community: What are they ighting about?” In Fandom Unbound: Otaku Culture in a Connected World, eds. Mizuko Ito, Daisuke Okabe, and Izumi Tsuji. Yale University Press, 2012, pp. 249–74.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 현실과 가상의 구분을 없앴던 비범함에 대해서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2024년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로, 노르웨이의 ‘마츠 스틴’라는 게이머의 삶에 주목한다. 작품은 작년 한 해 동안 선댄스 영화제에서의 수상과 더불어 여러 영화제에 이름을 올리며 유명세를 얻었고, 현재는 OTT서비스 ‘넷플릭스’와 계약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다큐멘터리에 접근할 수 있도록 공개되어있다. < Back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 현실과 가상의 구분을 없앴던 비범함에 대해서 23 GG Vol. 25. 4. 10.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2024년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로, 노르웨이의 ‘마츠 스틴’라는 게이머의 삶에 주목한다. 작품은 작년 한 해 동안 선댄스 영화제에서의 수상과 더불어 여러 영화제에 이름을 올리며 유명세를 얻었고, 현재는 OTT서비스 ‘넷플릭스’와 계약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다큐멘터리에 접근할 수 있도록 공개되어있다. 하지만 제목만 봤을 때, 이것이 게임에 관한 다큐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울 것이다. 그동안 게임을 소재로 한 다큐들이 <하이 스코어>(2020), <낫 어 게임>(2020), <프리 투 플레이>(2014), <인디 게임: 더 무비>(2012)처럼 제목에서부터 ‘게임’에 대한 내용임을 알려왔다는 점과 다르게, 이 다큐는 게임 다큐라는 사실보다는 ‘이벨린’이라는 인물에 방점을 찍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벨린은 누구이길래 주목받게 되었는가? 걸을 수 없는 소년에게 쥐어진 게임기 다큐는 1990년대 홈 캠코더로 촬영된 한 소년의 어린 시절 영상으로 시작된다. 이 소년의 이름은 ‘마츠 스틴’. 노르웨이에서 태어나 가족의 사랑 속에서 자라났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의 몸 상태에 이상이 감지된다. 거동할 때마다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의지하거나, 늘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반복된다. 이 의자는 점점 휠체어로 대체되고, 화면 너머로 마츠가 중증 질환을 앓고 있음을 암시한다. 마츠가 앓은 병은 ‘듀센 근이영양증’이라는 희귀 질환이다. 어린 시절 발병해 시간이 지날수록 근육이 점차 소실되는 병으로, 걷거나 음식을 먹는 등 일상적인 신체 활동이 서서히 불가능해진다. 점점 불편해지는 몸은 사회생활을 가로막았고, 대인 관계 또한 큰 장벽에 부딪혔다. 다른 아이들이 운동을 하거나 어울려 놀 때, 마츠는 그들을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곤 했다. 그러나 이 시기의 홈비디오 속에서 유난히 자주 포착되는 물건이 있다. 바로 게임기다. 마츠는 게임보이, 닌텐도64와 같은 콘솔 게임기를 즐겨 사용했다. 일반적으로 아이가 게임에 지나치게 몰두하면 부모가 이를 제지하기 마련이지만, 마츠의 부모는 달랐다. 게임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던 마츠에게, 그가 원하는 만큼 게임을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 가족들과 휴양지 여행을 떠난 어린시절 마츠의 두 손에는 게임 보이가 들려있다.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Official Trailer | Netflix”) 아제로스 대륙을 여행한 마츠 2000년대에 들어서며 블리자드의 온라인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가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켰다. 수많은 사람들은 판타지 세계관 ‘아제로스’ 대륙으로 접속해, 아바타의 몸을 빌려 또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다. 마츠도 이에 동참하여 노트북으로 와우 세계에 접속했고,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한다. 마츠는 <와우> 세계에서 굉장히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가 <와우>를 플레이한 10년 동안 총 플레이 타임은 약 2만 시간 가까이에 달했다. 아제로스의 방대한 대륙을 여행하며 그는 다양한 국적의 유저들과 교류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의 신체는 점점 움직이기 어려워졌고, 게임을 플레이하는 데에도 제약이 따랐다. 처음에는 키보드와 마우스를 사용해 조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마츠는 특수 장비의 도움을 받게 된다. 게임에 필요한 조작키가 원형으로 배치된 이 맞춤형 장치는 마츠를 위해서 특별하게 제작된 것이었고, 이 덕분에 다른 유저들과 함께 게임 플레이를 지속할 수 있었다. * 마츠가 사용하는 컴퓨터 조작 장치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Official Trailer | Netflix”)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알린 마츠의 죽음 듀센병 환자의 평균 수명은 보통 20대에 머무른다. 마츠 역시 병세가 악화된 끝에, 2014년 가족들의 깊은 슬픔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계속 재생되던 홈비디오 테이프는 멈추었고, 가족들은 애통스러운 감정으로 그를 추억한다. 그리고 마츠가 오랜 시간을 보냈던 온라인 세계에도 이 사실을 알리고자, 가족들은 그가 생전에 운영했던 온라인 블로그에 부고 소식을 게시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츠를 추모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메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츠를 ‘이벨린’으로 부르고 있었다. 이벨린이 <와우> 세계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던 인물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에 대한 추모 메시지를 전해온 것이다. 다큐 제목에 등장한 ‘이벨린’은 마츠의 <와우> 캐릭터명이다. 긴 머리를 가진 건장한 남성 도적. 이벨린의 모습은 휠체어 위의 왜소한 현실의 마츠와는 전혀 달랐다. 그러나 마츠는 이벨린으로서, <와우>의 길드 ‘스타라이트’에 오래 몸담으며 수많은 사람들과 폭넓은 관계를 맺었다. 유가족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활발한 사회적 삶이 그 안에 있었다. * 게임에서 다른 유저들과 활발하게 사회생활했던 이벨린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Official Trailer | Netflix”) 현실에서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기 어려웠던 마츠는, 이벨린으로서 연인을 만나 사랑을 경험하기도 했다. ‘루머’라는 캐릭터와 숲속에서 데이트를 하며 첫사랑을 나눴고, 루머의 현실 인물인 ‘리세트’가 가족과 갈등을 겪었을 땐 직접 편지를 써 그녀의 부모와 화해의 길을 터주기도 했다. 또 한 명의 길드원이 자녀와 소통에 어려움을 겪자, 마츠는 그 아이와 함께 게임을 하도록 주선해 관계를 회복하도록 도왔다. 그는 단지 도움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이들을 진심으로 돕고 응원하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마츠 덕분에 삶이 더 나아졌다”고 말했다. 겉으로는 게임만 하며 고립된 삶을 산 듯 보였던 마츠. 그러나 그는 언제나 연결되어 있었다. 이벨린이라는 이름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깊은 삶을 살아냈다. 이러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가족은, 마츠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이전에는 제한된 삶으로 여겼던 그 생애가 사실은 너무도 풍성하고 비범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장례식은 슬픔보다는 뒤늦은 기쁨과 안도 속에서 치러진다. * 홈비디오 속의 마츠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Official Trailer | Netflix”) 채팅으로 기록된 과거의 시간들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이 과거를 다시 그려내는 방법은 매우 독특하다. 일반적인 다큐멘터리가 과거에 기록된 영상이나 사진을 편집하거나, 당시 인물들을 인터뷰를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하는 반면, 이 작품의 핵심 기록물은 다름 아닌 ‘채팅 기록’이다. 마츠는 음성 채팅 없이 텍스트로만 대화를 나눴기 때문에 그가 나눈 모든 의사소통은 대화 로그로서 기록되어 있었다. 일부러 아카이브 하지 않아도, 이미 보존되고 기록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보존된 이벨린의 문장들은 사후에도 그의 삶을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흔적이 되었다. 제작진은 이 채팅 기록을 대역 성우가 낭독하도록 하여 현재 시점에서 재구성했다. 성우들이 읽은 대본은 모두 이벨린이 나눴던 채팅과 동일한 문장이었고, 이 음성은 애니메이션에 더빙되어 영상으로 제작되었다. 재연 애니메이션은 실제 게임 내 캐릭터와 주변 사물, 배경, 다른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표정으로까지 장면 하나하나로 연출되어 게임 속에서 녹화되었다. * 이벨린의 목소리를 맡은 에드 라킨(Ed Larkin)외에도 모든 성우가 장애인이다.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Behind The Scenes | Netflix”) 여기에 제작진은 마츠의 삶을 더욱 면밀하게 재현하기 위해 또 다른 층위를 더했다. 채팅을 읽는 성우들을 모두 장애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한 것이다. 이벨린과 이벨린의 첫사랑 루머, 주변 길드원, 친구들 모두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로 입혀졌다. 루머를 연기한 성우는,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이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가상 캐릭터’가 아닌, 실제 사람이 뒤에 있는 ‘아바타’였기 때문에 깊은 존중감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들이 실제로 이 상황에 어떤 기분을 느꼈을지, 섬세하게 고려하면서 연기해야만 했다고 인터뷰에서 덧붙였다. 연극 대본처럼 남은 채팅 기록 덕분에 게임 속 캐릭터로 과거를 재현하는 이 방식은 게이머의 삶을 다큐로 풀어내는 방식 중에서 매우 신선하고 도전적인 시도로 보인다. 다만 그 과정에서 ‘재현’과 ‘재연’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약간의 아쉬움도 남는다. 다큐로서의 과거를 충실히 복원했다기보다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처럼 감정적으로 과장된 재연이 되는 듯한 느낌이 남기 때문이다. 특히 이벨린이 루머와 숲속 호숫가에서 연애하며 첫키스를 나눴던 사건을 정면 카메라로 촬영하여 보여줄 때는, 마츠의 매우 사적인 기록, 그러니까 원치 않는 사춘기 소년의 일기장을 억지로 들춰보는 듯한 기분을 안겨주기도 했다. 물론 마츠가 살아생전에 이 다큐멘터리 제작에 관여했기 때문에, 이 역시 그가 의도한 연출일 수도 있겠다. * 데이트를 즐기는 이벨린과 그의 첫사랑 루머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Official Trailer | Netflix”) 현실 도피라는 오해 마츠는 매일 아침, 이벨린으로 접속해 아제로스 대륙(게임 속 세계)을 달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현실에선 달릴 수 없었지만, 게임 속에서는 원 없이 달릴 수 있었다. 현실의 제약이 닿지 않는 가상 세계는 마츠에게 해방의 공간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그는 이벨린이라는 존재로 살아가며 자유로운 신체로 움직였고, 장애인이라는 사회적 정체성을 넘어서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능동적인 주체로서 자신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은 자칫 ‘게임은 현실 도피처’라는 식의 해석으로 단순화되기 쉽다. 실제로 마츠는 자신의 블로그에 “게임은 탈출구이고, 모니터는 자유로운 공간으로 향하는 관문”이라고 썼다. 게임을 탈출 혹은 도피의 수단으로 보는 관점은, 현실의 고통과 결핍에서 심리적으로 벗어나기 위한 몰입이나 위안으로만 게임을 설명하곤 한다. 이때 현실은 그대로 남아 있고, 억압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잠시 보류될 뿐이다. 더 나아가 장 보드리야르의 시각에서 보자면, 이러한 가상 세계는 실재를 대체하는 이미지에 불과하며, 우리는 그 안에서 ‘해방의 감정’만을 소비하게 된다. 이 관점에서 보면, 다큐가 게임을 낭만화하고, 단선적인 감동 구조로만 재현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 매일 30분씩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대륙을 뛰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이벨린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Behind The Scenes | Netflix”) 그러나 마츠의 사례는 단순한 현실 도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가상 세계에서 새로운 의미를 창출했고, 사람들과의 대화와 연대를 통해 현실로도 울림을 확장시켰다. 게임 속에서 나눈 말과 관계는 다시 현실에서 목소리가 되었고, 그 메아리는 여전히 강하게 울리고 있었다. 이벨린의 첫사랑 루머의 목소리 역을 맡은 켈시(Kelsey Ellison)는 자신도 장애인으로서 가상 세계로의 탈출이 주는 자유를 공감하는 한편, 마츠가 도피주의(escapism)를 잘 활용했다고 평가했다. 하루 종일 누워 봉사자들의 도움을 받는 마츠를 수동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게 아니라, 적어도 자신이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능동적인 힘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고,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고무시키는 데에 노력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마츠가 단지 억압된 현실의 신체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었다고 해석하는 것은 부족하다. 자유/억압의 이분법적인 규정보다, 완전히 새로운 문법 안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존재했던 인물로 바라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존재의 전환, 존재의 확장으로서 바라봄이 더 정교하고 정당할 것이다. 마츠는 생전 이렇게 말했다. “이벨린은 저의 확장판이에요. 저의 다른 면모이죠” 존재의 확장이라는 비범함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단순한 감동 서사를 넘어, 가상 세계 안에서의 삶이 어떻게 존재를 확장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츠는 게임으로 도피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확장했고, 새로운 문법을 통해 타인과 연결되었다. 가상 세계가 현실의 억압을 완전히 지워주진 않았지만, 그는 그 안에서 한계를 넘는 관계를 만들고, 사회적 의미를 생산하는 능동적인 존재로 살아갔다. 그렇기 때문에 이 다큐가 보여주는 진짜 이벨린의 ‘비범함’이라는 평가는 마츠가 이벨린으로서 보여줬던 활약뿐만이 아니라, 게임이라는 조건 속에서 여전히 현실을 향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보냈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채팅 기록, 함께 시간을 보낸 동료들, 그리고 이 다큐를 본 사람들이 기억하는 ‘이벨린’은 마츠가 단지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현실을 구성했던 하나의 주체였음을 증명한다. * 이벨린이 죽은 이후, 블리자드는 이벨린이 자주 다니던 엘린 숲 한켠에 이벨린을 추모하는 비석을 세웠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 그곳에 모여 그를 다시금 기억했다. 그리고 블리자드는 이벨린의 캐릭터에 관한 유료 아이템 판매하고 그 수익을 듀센 치료를 위해 기부하기도 했다. (출처: 유튜브 영상 “Rest in Peace, ibelin) Tags: 다큐멘터리, WOW, MMORPG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이선 사회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연구합니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결국 인간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 인게임 커뮤니케이션과 현실의 가치: 의 사례

    정확히 똑같은 현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이러한 돌봄의 위기는 유사한 형태로 게임 공간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인터뷰에 참여했던 여성 게이머들 대다수가 여성 게이머에 대한 편견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지원가 역할을 기피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 Back 인게임 커뮤니케이션과 현실의 가치: 의 사례 14 GG Vol. 23. 10. 10. Staying with the Trolls 나의 책 <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와 관련한 여러 반응 중에 다음과 같은 의견이 있었다. 온라인 게임에서 상대방에게 욕설을 하는 것은 ‘현실에서 벗어나 일탈적인 행동을 하는 게임문화의 일환’이며, 그 과정에서 여성 비하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그저 ‘상대의 특징 중 하나를 짚어내는 것’일 뿐이다. 더욱이 게임에서는 여성만 욕을 먹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 같은 비하적인 용어나 욕설이 여성 차별의식의 발로라고 말할 수 없지 않느냐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누군가를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를 지칭하여 멸칭으로 부른다면 그것이 어떻게 차별이 아니라 말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나는 상대방에게 욕설을 함으로써 일탈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발상이 조금 부럽기도 했다. 왜냐하면 멀티플레이 게임의 텍스트/보이스 채팅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욕설은 여성들을 현실의 고민에서 벗어나게 해주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이 처한 사회적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다짜고짜 욕을 하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과연 소통하면서 하나의 팀을 이룰 수 있을지를 회의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고민한다. “나 그냥 이 게임(헬조선)에서 탈주하면 안 될까?” 그렇다고 게임과 소수자를 주제로 다루면서 여성을 차별받는 피해자로만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물론 여성 게이머들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입은 피해나 상처들을 꺼내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문제적인 게임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를 더 이야기해보고 싶다. 이 문제를 회피하고 게임에서 계속 탈주해봤자 내 경쟁전 실력등급만 점점 떨어질 뿐이니까! 차별의 논리들 내가 석사논문을 위해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트롤들에게도 나름의 논리가 있다는 점이었다. 트롤들은 당신을 욕하는 것이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여성성을 내세워 다른 팀원들의 기여에 무임승차하려는 여왕벌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인터뷰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 역시 이와 유사한 논리를 경험했다고 이야기한다. 게임 <오버워치>의 예를 들어보자. 이 게임에서 여성 플레이어들은 “지원가,” “서포터,” 혹은 “힐러”라고 일컬어지는 게임 내 직군을 맡기를 강요당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여성 게이머들은 그러한 지원가 역할을 기피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의 중심에는 트롤들의 논리가 구조화되어 있으며, 다음과 같은 전제와 가치판단들이 중층적으로 엮여 있다. 우선, <오버워치> 게임 커뮤니티에서 공격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공격군에 비해 서포터 역할은 수동적이고 여성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여성 게이머들은 “서포터를 해야 한다,” 혹은 “여성이기 때문에 서포터가 아닌 다른 역할은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압력을 받는다. 하지만 설령 여성이 그러한 압력에 못 이겨 서포터 역할을 한다고 해도 또 다른 편견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서포터라는 역할 자체가 수동적이고, 팀에 기여하는 것이 별로 없는 직업군이기 때문에 여성 게이머는 여전히 다른 팀원들의 성과에 업혀가는 무임 승차자, 민폐녀로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게임공간과 현실은 별개가 아니다 정치 철학자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은 남자를 보조하는 인력으로 취급받거나, 혹은 남성이 바깥일을 할 수 있도록 청소와 빨래를 하고 밥을 짓고 육아를 하는 “돌봄 노동”을 강요당한다고 지적한다. 이런 일들은 자본주의 사회를 유지하는 데에 필수적이지만, 경제적인 이득을 직접 창출해내지는 않기에 하찮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 지점에서 프레이저가 결국 가장 지적하고 싶은 문제가 시작된다. 여성들이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 이러한 돌봄 노동을 거부하기 시작하면서 “돌봄의 위기”가 나타나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드러내며 사회를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프레이저의 진단이었다. 정확히 똑같은 현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이러한 돌봄의 위기는 유사한 형태로 게임 공간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인터뷰에 참여했던 여성 게이머들 대다수가 여성 게이머에 대한 편견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지원가 역할을 기피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버워치>의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지원가를 플레이하는 유저가 부족해 게임 매칭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불평하는 유저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이것은 단순히 지원가를 플레이하는 여성 게이머들을 모욕하지 않음으로써 해결 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치료, 돌봄, 유지와 보수 같은 가치들이 지금의 사회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처럼, 그런 의식이 게임 커뮤니티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원가를 플레이하는 유저들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면 결국에는 게임의 밸런스가 붕괴하여 서포터가 아닌 유저들도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게임과 같은 온라인 스페이스는 현실 사회와 분리된 일탈의 공간이라기보다, 이처럼 현실을 다른 각도에서 보여주는 사회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게임공간에서 나타난 돌봄의 위기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출처: 디씨인사이드 One hour One Life 는 제이슨 로허(Jason Roher)가 제작한 온라인 멀티플레이어 서바이벌 게임이다. 제목이 말해주듯이 플레이어의 캐릭터는 1시간 동안만 살아가는데, 1분이 지날 때마다 나이를 먹고 60분이 지나 60살이 되는 순간 사망한다. 60분이라는 제한된 시간 동안 살아있을 수 있지만, 그 시간 내에 필요한 아이템을 만들어 내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플레이어 캐릭터는 최대한 생존하면서 다음 세대를 위해 마을을 일구어 문명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게임을 하게 된다. 이 게임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게임을 시작한 직후인 초반 3분이다. 게임을 시작하면 플레이어는 아기로서 엄마인 다른 여성 캐릭터의 곁에 스폰(spawn)된다. 이 아기는 3살이 되기 전, 즉 현실 시간으로 3분이 지나기 전까지 걸어 다니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나를 낳은 엄마 역할인 다른 플레이어가 젖을 주지 않으면 굶어죽는다. 채팅 역시 알파벳 한 글자 밖에 칠 수 없기에, 배고픔 상태가 될 때 마다 밥(Food)을 달라는 뜻의 "F"를 쳐서 엄마와 소통해야 한다. 새로운 아기들이 태어나면 엄마들은 그들을 모닥불과 곰 깔개가 깔린 따뜻한 방으로 데려와 옷을 입히고, 음식이 들어있는 가방을 등에 매준다. 이 곳 아기방에는 여자들이 상주하며 서로의 아기를 번갈아 안아주며 공동육아를 하기도 한다. (남자 캐릭터는 아기에게 옷을 입혀줄 수는 있지만 젖을 줄 수는 없다.) 이 모든 과정에서 텍스트 채팅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엄마는 “너는 [이름]이야”라고 말함으로써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줄 수 있다. 갓 태어난 아기들은 처음에는 알파벳 한 글자 밖에 말할 수 없지만, 나이가 들수록 입력할 수 있는 글자가 늘어난다. 스크린샷 출처: https://saveorquit.com/2018/12/27/review-one-hour-one-life/) 에서는 남을 돌보는 행위가 재미의 핵심이 된다. 이 게임에서 느낄 수 있는 성취감은 6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다음 세대를 위해 내가 무엇을 남길 수 있는지에 따라 달려있기 때문이다. 가령, 스웨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토끼 뼈를 구워 만든 바늘, 양털으로 만든 실 등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누군가 사냥을 해야 하고, 농사를 지어야 하고, 양 목장을 관리해야 한다. 사냥을 하려면 누군가가 활을 만들어 주어야 하며, 농사를 지으려고 해도 누군가 우물에서 물을 떠오고 비료를 만들어 놓았어야 한다. 양을 가둘 울타리가 있어야 하고 철을 캐와 가위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노력해 스웨터를 만들더라도, 재화 시스템이나 창고가 없기 때문에 플레이어 캐릭터들은 죽기 전에 옷을 다 벗어서 다음에 태어날 아기들에게 넘겨주고 갈 수밖에 없다. 필요한 아이템을 만들기 위한 과정은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마을에서 그 아이템을 본 적이 있는지, 혹은 만들어 줄 수 있는지를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아야 게임을 진행하기 용이하다. 플레이어들은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이야기하며 서로를 돕는다. 가령, 이 게임의 플레이어로서 나는 파이를 굽거나, 스웨터를 만들거나, 비료를 만드는 법은 알지만, 삽을 만들고 바늘을 만드는 법은 모른다. 일을 하다가 삽이 부러지면 나는 대장장이 일을 하고 있는 다른 플레이어에게 삽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그렇게 짧은 시간이지만 서로 우정을 쌓고, 다른 캐릭터가 노인이 되어 죽기 전에는 서로 “사랑한다(ILY)”고 이야기해 주기도 한다. 남아 있는 문제들 의 사회 속에서 생산성과 돌봄은 서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행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생존과 마을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대체로 많은 플레이어들은 다른 사람들의 역할을 폄하하지 않는다. 서로를 존중하며 남이 불쾌할 만한 말을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실제 우리 사회도 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협업과 돌봄을 바탕으로 작동한다. 아이를 낳고 먹이고, 청소와 요리를 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집을 수리하는 일들은 우리의 생활과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결과적으로 사회를 지탱케 하는 일들이다. 다만 우리 사회는 그것을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해졌지만, 이 게임에서는 그것을 가장 원시적이고 간단한 형태로 가시화 시켜놓았을 뿐이다. 이 글은 멀티 플레이어 게임 <오버워치>에서 여성 차별적인 채팅들이 현실에서의 돌봄에 대한 가치 폄하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게임 채팅에서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차별적 언사들은 반향실(혹은 에코 챔버) 효과를 통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강화되는 측면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현실의 구조와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여성을 혐오하고 육아와 돌봄을 폄하하면 신규 유저가 점점 줄어드는 게임처럼 우리 현실도 태어나는 자 없는 죽음만이 가득한 땅이 될 것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와 같이 돌봄의 가치를 재정의 하는 게임이 혹시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게임이 불합리한 현실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현실을 바꾸는 시발점이 될 수 있을까? Tags: 원아워원라이프, 여성게이머, 상호작용, 프레이저, 오버워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김지윤 연세대학교에서 언론홍보영상학과 인류학을 공부하고,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했다. 부족한 실력으로 게임을 하다가 게임의 신체적 퍼포먼스에 관심을 갖게 되어 게임 연구를 시작했다. 여성 게이머의 게임 플레이 경험을 분석한 석사학위 논문을 써서 2020년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우수 학위논문상을 받았다. 현재 미국 시카고대학 영화·미디어학과 (Cinema and Media Studies) 박사 과정에서 게임문화를 전공하고 있다.

  • 심사위원장 총평

    제 1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의 심사위원장을 맡은 연세대학교의 윤태진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이번 응모작들의 전반적인 수준이 예상보다 훨씬 높았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심사위원들이 기대했던 정도를 훨씬 뛰어넘는 좋은 원고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어서 매우 기뻤습니다. 응모해주신 90여명의 예비 비평가 모두에게 감사와 격려를 전합니다. < Back 심사위원장 총평 07 GG Vol. 22. 8. 10. 심사위원장 심사평 제 1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의 심사위원장을 맡은 연세대학교의 윤태진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이번 응모작들의 전반적인 수준이 예상보다 훨씬 높았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심사위원들이 기대했던 정도를 훨씬 뛰어넘는 좋은 원고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어서 매우 기뻤습니다. 응모해주신 90여명의 예비 비평가 모두에게 감사와 격려를 전합니다. 좋은 평론이란 무엇인가. 좋은 게임 비평문이란 어떤 글을 말하는가. 명문화된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동의하는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심사위원들이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몇 가지, 명쾌하진 않지만 상식적으로 용인 가능한, 그리고 완전치는 않지만 충분히 포괄적인 방향성 정도는 합의할 수 있었습니다. 우선 저자의 독창적인 관점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단순한 경험담이나 감상문과는 달라야 한다. 문학이나 영화 비평의 방법론을 무비판적으로 적용하려는 시도는 높이 평가하기 어렵다. 지나치게 학술논문에 가깝거나 개념 과잉의 글도 좋은 비평문이라 볼 수 없다. 내용만큼이나 문장과 문체의 완성도 및 독이성(讀易性)도 중요한 요건이다. 내용의 확장가능성이나 미래지향적 태도 역시 중요하다. 정도입니다. 아, 게임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열렬한 애정은 말할 나위도 없겠습니다. 이같은 아이디어들을 염두에 두며, 심사위원 다섯의 개별적 평가와 치열한 토론을 통해 아홉편의 당선작을 선정했습니다. 최우수상을 수상한 웜뱃 님의 “게임은 XX다: 동어반복적 회로를 차단하기”는 챗봇 플라밍고와의 대화에서 시작된 발상을 “게임은 지식인가?”라는 질문으로 연결시키고, 이를 다시 재현성의 위기로 풀어낸 다음 “게임은 예술도 지식도 아니”라는 잠정적 결론으로 마무리짓는 독창적이고 탁월한 논리의 흐름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장르의 게임과 사례들을 적절하게 배치하고, 아주 현학적이지도 않지만 아주 가볍지도 않은, 재기가 넘치지만 통찰이 있는 글을 완성했습니다. 제 1회 공모전의 최우수상이라는 상징성 있는 타이틀을 부여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글이라 판정하였고, 심사위원 전원의 동의를 거쳐 수상작으로 선정했습니다. 좋은 글을 쓰신 웜뱃 님에게 감사와 축하말씀 전합니다. 김민호, 김지운, 김도근 님의 응모작 세 편에게는 우수상을 시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김민호 님의 독창성, 김지운 님의 통찰력, 김도근 님의 전문성은 다른 응모작들보다 한 단계 높은, 차별적인 장점이었습니다. 장려상을 수상하게 된 박동수, 김선오, 이선인, 김규리, 김서율 님에게도 큰 축하를 보냅니다. 첫 행사였음에도 이렇게 훌륭한 아홉 편의 수상작을 낼 수 있어서 정말 기쁩니다. 동시에, 이번 수상이 저자들의 단발성 스펙으로 끝나지 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앞으로도 계속 게임에 대한 애정으로 갖고 좋은 글을 써주시기 바랍니다. 아직 척박하기 그지없는 우리나라 게임 평론의 토양을 여러분이 나서서 개척해주시기 바랍니다. 〈게임제너레이션〉도 땅을 개간하고 꽃을 피우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꾸준한 관심과 참여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제 1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심사위원장 윤태진 심사위원 명단 (가나다 순) 이경혁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상우 (게임칼럼니스트) 이정엽 (순천향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윤태진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천정환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세대학교 교수) 윤태진 텔레비전 드라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지금까지 20년 이상 미디어문화현상에 대한 강의와 연구와 집필을 했다. 게임, 웹툰, 한류, 예능 프로그램 등 썼던 글의 소재는 다양하지만 모두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활동들”을 탐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몇 년 전에는 『디지털게임문화연구』라는 작은 책을 낸 적이 있고, 요즘은 《연세게임·이스포츠 연구센터(YEGER)》라는 연구 조직을 운영하며 후배 연구자들과 함께 여러 게임문화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 [인터뷰] 25년간 게임의 지평은 어떻게 바뀌었나? : 게임 역사연구자 나보라, 게임 아카이비스트 오영욱 대담회

    한때 미래 세계를 의미했던 21세기가 들어선 지도 벌써 25년이 지났다. 그 25년 동안 많은 문화적 변화가 야기되었는데, 그중에서도 게임은 급격한 속도로 우리의 일상 안으로 들어왔고 다양한 문화적 유산들을 만들어냈다. 이번 호에서는 게임 역사 연구자인 나보라 박사와 게임 아카이빙을 하고 있는 오영욱 박사를 모시고 그동안 우리의 게임이 얼마나 변했는지에 대해 대담회 형식으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Back [인터뷰] 25년간 게임의 지평은 어떻게 바뀌었나? : 게임 역사연구자 나보라, 게임 아카이비스트 오영욱 대담회 23 GG Vol. 25. 4. 10. 한때 미래 세계를 의미했던 21세기가 들어선 지도 벌써 25년이 지났다. 그 25년 동안 많은 문화적 변화가 야기되었는데, 그중에서도 게임은 급격한 속도로 우리의 일상 안으로 들어왔고 다양한 문화적 유산들을 만들어냈다. 이번 호에서는 게임 역사 연구자인 나보라 박사와 게임 아카이빙을 하고 있는 오영욱 박사를 모시고 그동안 우리의 게임이 얼마나 변했는지에 대해 대담회 형식으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연구자 개인들이 겪은 25년의 세월: 세대 혹은 코호트 이경혁 편집장: 21세기가 시작된 지 벌써 한 쿼터가 지났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게임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이야기하고자 두 분을 모셨는데요. 먼저 조금은 편하게 ‘지난 25년간 내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부터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주제가 너무 무거우니 가볍게 제 이야기를 말씀드리자면, 제가 기억하는 2000년대 초반 게임의 가장 큰 이미지는 댄스 게임이었어요. 99년 6월에 부천역 오락실에 처음 이 등장했는데, 제가 당시 군대를 갔거든요. 딱 두 달 밟아보고 군대를 갔는데 댄스 게임이 굉장히 아른거리더라고요. 이때 흥미로운 점은 ‘게임했던 공간’입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오락실이라는 공간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의미가 조금 달라졌잖아요? 이런 변화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보라 박사: 저는 97년에서 2001년 사이에 미국에 유학을 가 있었는데요. 당시에 제가 느꼈던 것은 게임이 ‘아이들만의 것’에서 ‘성인들의 취미’로 변해간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때 ‘플레이스테이션 2’가 미국에서 인기였는데, 그 이유가 DVD 플레이어 기능도 제공하기 때문이었거든요. 그 듀얼 기능이 먹히면서 보였던 변화상 중에 하나가 TV 메인 광고 시간대인 저녁 7시에 게임 광고가 나왔던 지점이었어요. 그전까지 게임 광고는 어린이 채널이나 아이들이 주로 TV를 보는 시간대에 나왔어요. 그런데 ‘드림캐스트’의 <쉔무>나 ‘플레이스테이션 2’의 <파이널 판타지 7> 광고가 영화처럼 만들어졌고 성인들을 타겟으로 하더라고요. 저는 이때부터 비디오 게임이라는 것이 주류의 성인들도 즐길만한 오락으로 등장했다고 보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한국은 2010년대 들어서서 게임이 성인을 대상으로 포커싱하는 변화가 만들어졌는데, 북미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그런 변화가 있었군요. 당시에 20대를 타게팅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지금 북미 게임 시장은 중년을 타게팅할 수 있겠네요. 오영욱 박사: 저는 2000년에 청주에서 고등학생 시절을 보냈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리듬 게임이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엄청 인기를 끌었거든요. 나 이 나오면서 장판 같은 것을 은박지로 납땜해서 채보를 연습하고, 학교 컴퓨터에 연결해서 야자 시간에 놀고, 그랬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90년대에는 오락실하면 어둑어둑한 분위기가 있었는데, 이런 것들이 확 바뀐 것이 2000년대 초였던 것 같아요. 또 한가지 기억에 남는 경험은 밤새 오락실을 빌리는 문화가 있었다는 점이에요. 당시에 PC통신으로 만난 친구들이랑 같이 다니면서 <이니셜 D>, <태고의 달인> 같은 게임들을 했는데, ‘압구정 조이플라자’같은 곳에서 하루를 대여해서 밤새 대결을 했었어요. 몇만 원 내고 게임기를 빌려서 밤새 돌아가면서 게임했던 문화가 있었던 거죠. 게임하는 공간: 오락실, PC방, 그리고 이경혁 편집장: 확실히 2000년대 초반을 상징했던 게임 중에 리듬 게임이 있었지요. 90년대까지 오락실은 스틱과 버튼 위주의 아케이드 스타일이었다면, 여러 기기들이 만들어진 건데요. 그렇게 보면 2000년대부터는 오락실이 특정 연령이나 특정 성별의 공간이라기보단 누구나 손쉽게 올 수 있는 형태로 대중화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오영욱 박사: 그렇죠. 당시에 신촌을 지나가다 보면, 지금 독수리 다방 건물 1층을 다 리듬게임으로 해놓고 밖에서 볼 수 있는 구조였어요. 그러면 안에서 춤추는 사람들이 보이는 거예요. 그렇게 대중적 공간으로 문화가 변해갔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그러면 오락실이 변모해온 과정을 오늘날 돌아봤을 때, 일종의 대중화나 캐주얼화라고 볼 수도 있는 걸까요? 나보라 박사: 대중화라기보다는 양성화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대중화라고 한다면, 시장의 주류가 되었다는 느낌이 드는데, 사실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문화로 ‘격상’되었다기보다는 공간의 분위기와 이용방식이 바뀌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그렇네요. 사실 붐비기는 예전의 오락실이 더 붐볐거든요. 한편으로는 이러한 변화를 이야기할 때, 공간성의 변화를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요. 아까 오영욱 선생님이 PC 통신에서 만난 사람들과 게임하던 2000년대 초반을 말씀해주셨는데, 당시에는 온라인 문화의 확장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겠죠. 그러나 ‘오프라인에서 모여서 게임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도 구시대 문화가 되어버린 것이 2025년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나보라 박사: 말씀하신 것처럼, 예전에는 오락실이 약속 장소로의 공간이 가지는 의미가 있었어요. 아케이드 오락실을 역사적으로 보면, 원래 영화관 옆에 붙어있던 공간이었잖아요? 미국에서도 그랬고 우리나라에서도 그랬고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기능이 거의 없어진 것 같아요. 오영욱 박사: 일본의 오락실의 경우에는 지금도 여전히 오프라인 중심의 공간이거든요. 확실히 우리의 문화와 다르죠. 그 중심에는 카드 게임기가 있는데, 카드 게임기가 한국에 들어오지 못해서 완전히 다른 형태를 보이는 것 같아요. 재밌는 것은 아케이드 시장을 구축하는 것이 게임기의 순환이라는 점이에요. 일본에서 어떤 아케이드 게임이 유행하면 한 사이클이 돈 뒤에 한국으로 넘어가고, 한국에서 한 사이클이 돌면 동남아로 넘어가고 그런 글로벌 물류 체인 시스템이 아케이드 산업을 지탱하는 점이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바다이야기’ 사태도 있었고 법적인 환경이 제공되지 않아서 카드 게임이 넘어오질 않았어요. 디지털게임 연구 이경혁 편집장: 지금 이야기하신 부분이 한국의 게임 환경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테마일 것 같아요. 2005년에서 2006년 일어났던 바다이야기 사태는 한국 게임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기도 했는데요. 이 사태가 한국 게임 문화에 어떤 영향을 남겼을까요? 오영욱 박사: 산업적인 영역에서는 너무 많은 논의가 있을 것 같고요. 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드려보고 싶어요. 저는 당시에 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였고, 관련 연구를 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요. 바다이야기 사태가 터지면서 게임 연구가 확 줄어들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이경혁 편집장: 나보라 박사님은 당시에도 학계에 계셨는데, 실제로 어땠나요? 나보라 박사: 확실히 바다이야기의 영향이 없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전에는 인문 분야든 이공계든 게임 연구를 전반적으로 지원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이후에는 이공계나 산업쪽으로 지원이 쏠렸어요. 다만 바다이야기 사태가 직접적인 원인인가 라고 묻는다면 명확한 상관관계는 이야기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원래 정부의 연구 지원 풍토가 대체로 산업, 기술 등 실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성과를 선호하기 때문에 인문사회학적 게임 연구가 각광받긴 힘든 분위기였는데, 그런 상황에서 바다이야기 사태가 터진거죠. 이경혁 편집장: 말씀하신 것을 들으니, 인과관계를 딱 잘라서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긴 하네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이전에는 게임 인문 연구를 왜 장려하는 분위기가 있었을까요? 나보라 박사: 이 역시 인과로 이야기하기는 어려운데요.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가 가지는 특수성도 여러 영향 중에 하나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2000년대 초반에 우리나라가 전세계 게임 씬의 주목을 받았잖아요. 세계 최초로 게임 방송 채널이 만들어지고, PC방이 대중문화 공간으로 확산되고 그러니까 외국의 게임 기자나 저널리스트들이 와서 신기해했거든요. 그전까진 항상 서구권을 쫓아가던 입장에서, 정부나 기업을 설득할 때도 중요한 특이점이었던 거죠. 이경혁 편집장: 그런 지점도 중요한 영역이었겠군요. 그러면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지금은 인문학 계열의 게임 연구가 조금 나오고 있나요? 오영욱 박사: 옛날에 비하면 확실히 확 나아졌죠. 지원이나 환경이 좋아졌다고 이야기할 순 없지만, 일단 연구자들이 늘어났고, 관련 논의가 늘어나고 있어요. <제국의 게임> 나왔을 때가 중요한 분기점이었다고 생각을 하고요. 이후로 이경혁 편집장님 책이 나온 것처럼 유의미한 논의들이 나오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종합해 보면 그런 흐름은 있네요. 2000년대 초반에 스타크래프트와 PC방을 필두로 소위 말하는 ‘게임 문화의 붐’이 있었고, 이를 따라서 연구나 비평이라는 흐름도 형성이 되어 2006, 7년까지 흐름이 이어졌다가 모종의 이유로 침작하는 시기를 거치고 2010년 후반부터 다시 논의가 나오고 있다. 나보라 선생님은 당시에도 연구하셨고 지금도 연구하시는 입장에서 게임 연구의 환경은 나아졌다고 볼 수 있을까요? 나보라 박사: 나아졌다고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때는 게임 연구에 대한 소스를 찾을 만한 게 마땅치 않았고, 박상우 선생님 등을 제외하면 나오는 연구라고는 다 영어 연구들인데 이를 접할 수 있는 창구도 많지 않았죠. 그런데 지금은 바로바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 연구자의 풀이 넓어진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나아졌다고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늘 느끼는 것은 결국 구심점의 문제인 것 같아요. 당시에는 박상우 선생님의 ‘게임문화연구회’라는 구심점이 있었고, 그다음엔 성균관대의 ‘게임 인문학’이나 중대의 ‘엘리스 온’, 인문학협동조합 등 구심점이 있었는데, 앞으로는 어떤 구심점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한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그러면 오늘날 어떤 게임 연구가 필요하다고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나보라 박사: 2000년대 초반의 게임 연구는 게임 자체, 그리고 게임 연구 자체의 정체성을 찾는 데 많은 방점이 찍혀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게임이 대중화되었고 여러 가지 매체와 뒤섞이게 되었죠. 그래서 게임만을 이해할 수 있는 이론을 찾아내는 것은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는 것 같아요. 오늘날과 비교하면 가장 큰 차이점은 게임이 더이상 젊지 않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기에 이제는 더 다면적인, 학제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게임 아카이빙 이경혁 편집장: 연구 이야기를 했는데, 이번엔 아카이빙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죠. 오영욱 박사님은 언제부터 아카이빙을 하셨나요? 오영욱 박사: 저는 2000년대 초에는 일종의 취미 생활로 작품을 모으다가, 2006년쯤부터 본격적으로 아카이빙을 하기 시작했어요. 이경혁 편집장: 아카이빙을 꾸준히 하신 분의 입장에서 2000년대 초반과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오영욱 박사: 일단 2000년대 초에는 게임이 아카이브의 대상으로 인식되지 않았어요. 2006년만 하더라도 <컴퓨터 학습>이나 <게임 월드> 같은 잡지들을 권당 몇천 원으로 팔았거든요. 극단적인 예시지만 제가 2008년에 강원도에서 게임 잡지 6박스를 5만 원에 받아왔어요. 사실 이런 흐름은 미국이랑 일본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런데 2010년대 후반부터 게임이 수집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죠. 2013년에 문을 연 넥슨의 ‘컴퓨터 박물관’ 같은 경우가 게임이 수집의 대상이 되기 딱 직전부터 수집품들을 받았던 형태였어요. 그런데 이후로 수집가들이 수집을 하고 재테크 목적이 들어가면서 체감상 2020년쯤부터는 돈 주고 살 수 없는 가격으로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아카이브를 하는 입장에서 옛날 자료를 모으는 건 거의 불가능한 시대가 된 것 같아요. 제 경우에는 원래 잡지나 게임의 내용을 알고 싶어서 샀었거든요. 그런데 가격이 오르고, 한정판이 나오면서 점점 이게 힘들어져요. 일단 실물 패키지라는 것도 이제는 한정판으로 나오는데, 이 게임을 하려면 기기도 사야 하고, 박물관 입장에서 ’직원이 한정판을 줄서서 사야 하나?라고 물으면 어려운 부분들이 있는 거죠. 온라인 미디어 때문에 애매한 영역도 크고요. 인프라와 플랫폼, 그리고 장르 이경혁 편집장: 물성의 변화도 두 시대를 놓고 본다면 너무나 큰 변화죠. 이제는 수집의 용도 외에는 물질 매체의 의미가 사라졌잖아요? 게다가 이런 변화는 단순히 물건을 소유할 수 없다는 문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서버’라는 형태에 게임 소프트웨어가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물성 때문에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기승전결도 사라졌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특히, 요즘 게임에서 엔딩이 없어졌죠. 어떻게 보면 오늘날을 ‘엔딩이 없어진 시대’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오영욱 박사: 이제는 모바일 게임이나 온라인 게임들은 결국 하나의 게임이라기보다, IP라고 봐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이경혁 편집장: 사실은 2000년대 초반에도 엔딩이 없는 온라인 게임들이 있었거든요. <바람의 나라>도 이미 당시에 서비스를 하고 있었고. 재밌는 것은 <스타크래프트>의 사례인데, 판매는 패키지로 했지만 서비스는 엔딩 없이 돌았잖아요? (웃음) 그 결과, 블리자드는 플레이 양에 비해서 돈을 못 벌었죠. 당시에는 ‘패키지를 사면 베틀넷은 평생 무료’ 이게 마케팅 콘셉이었잖아요. 오영욱 박사: 그 이상의 비즈니스 모델을 못 찾은 거죠. 당시에 돈 내고 베틀넷을 하라고 했으면 아무도 안 했을 테니까요. 그때는 그게 그나마 최선이었을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결제 수단 변화도 되게 크네요. 2010년대 스마트폰 대중화 이후에 ‘오픈 카드’가 가능해지면서, 스마트폰에 카드를 오픈해 놓고 클릭 한 번 하면 그냥 들어가는 이 방식이 2000년대 게임과 지금의 게임을 크게 나누는 부분이기도 한 것 같아요. 예전에는 지로가 있었거든요. 나보라 박사: 옛날에 온라인 게임을 하려면 지로로 보냈어야 했죠. 오영욱 박사: 한국에서 온라인 게임이 발전했던 거는 온라인에서 할 수 있는 결제 모듈, 그런 종류의 그런 온라인으로 쓸 수 있는 결제 모듈, ‘다날’ 이런 게 있어서 가능했죠. 미국에서도 2008년에야 ‘마이크로트랜잭션(소액 결제)’이 주목받는 분위기가 나오기 시작했으니까. 그때는 카드 자동결제도 없었고요. 이경혁 편집장: 신용카드의 보편화도 되게 중요한 변화네요. 2001년까지만 해도 신용카드가 그렇게 막 쉽게 발급되지 않는 시절이 있었어요. 오영욱 박사: 결제가 사실 중요한 부분이긴 한데 연구가 잘 안 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종류의 편의성들이 게임의 디자인이라든가 장르적인 부분에 미치는 영향이 분명히 있을 텐데, 논의가 안 된 거죠. 이경혁 편집장: 지금의 게임 장르 유행이 나오기 위해서는 당연히 인프라의 변화가 있는 거고, 이것처럼 게임 밖의 영역이 게임 내부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겠죠. 특히, 요즘같이 인앱 결제를 베이스로 스토리나 메카닉까지 영향이 가는 거면 당연히 결제 수단 연구가 필요해서 저도 결제 관련 연구들을 하고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변화 중에 하나가 요금 종량제와 요금제의 변화이기도 합니다. PC 통신 때만 해도 전화 요금이라는 거는 사용량 베이스로 갔었어요. 돌이켜 보면 지금처럼 인터넷 요금이 초기 전화 요금처럼 누진제로 갔으면 이 상황은 오지 않았겠죠. 오영욱 박사: 예전에는 데이터양으로 요금을 내거나, WAP(Wireless Application Protocol, 무선 어플리케이션 프로토콜) 같은 경우에는 뎁스마다, 명령 하나 당 돈을 냈어요. 이런 상황에서는 게임 개발도, 플레이도 힘들었을 거예요. 나보라 박사: 실제로 그땐 휴대폰에 인터넷 접속하는 버튼 잘못 누르면 막 끄고 그랬죠. (일동 웃음) 오영욱 박사: 진짜 이런 지점은 외부에서 들어와서 생긴 혁명적인 변화였던 것 같습니다. 아이폰 안 들어왔으면 게임계가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어요. 나보라 박사: 아이폰 같은 경우엔 앱 스토어도 게임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요. 게임 산업 이경혁 편집장: 한국의 게임 역사를 이야기하면 MMORPG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한편으로는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고, 많은 변화를 만들기도 했던 한국의 게임 산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예전에는 각광받던 벤처 기업으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대기업들이 되었잖아요? 그 변화 이면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섞여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저는 최근 드라마에 게임사가 배경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서 ‘예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장면’이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2000년대 초까진 게임을 한다거나, 게임 회사에 다니는 것이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영역으로 여겨졌는데, 이제는 양지화가 된 측면이 있어요. 나보라 박사: 양지화의 측면에서는 NC의 야구단 창설이 가지는 문화적 의미가 크긴 했지요. 대중문화에서 굉장히 아이코닉한 순간이었잖아요? 넥슨의 컴퓨터 박물관도 그렇고, 게임계의 위상이나 인식이 바뀐 순간들이 있어요. 오영욱 박사: 이어서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MMO RPG가 제한한 한국 게임 시장의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그동안은 한국 게임이 많이 수출되었고 중국은 <던전 앤 파이터>, 대만은 <라그나로크 온라인> 등 국민 게임이 될 정도로 영향력을 보였는데, 지금은 한계에 부딪힌 느낌이 있어요.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야 하는데, 인도에서 <배틀그라운드>가 성공한 것처럼 다른 가능성을 여는 작업들이 산업적으로나, 경영적으로나 많이 시도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로스트아크> 정도의 새로운 플레이어가 나오긴 했지만,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 어떤 전략과 기획을 가져가야 할지 더 고민이 필요해보여요. 이경혁 편집장: 그런 지점에 있어서는 MMORPG라는 것도 2000년대 초반의 장르는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그러면 지금의 메이저 장르는 뭐가 될까요? 나보라 박사: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네요. 이경혁 편집장: 어떻게 보면, ‘메이저 장르’라는 개념이 옛날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볼 수 있겠네요. 장르 자체가 다변화됐고 수용자층도 확실히 넓은 저변을 갖게 되면서, 한편으로는 시장에 독이고 한편으로는 시장의 약인 그런 포스트모던한 상황으로 변한 것 같기도 하네요. 이 역시 중요한 변화네요. 2000년대에는 올해의 GOTY를 뽑기 쉬웠는데, 이제는 점점 어려워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그리고, 게이머 이경혁 편집장: 마지막으로 이 질문은 꼭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게이머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2000년대 게이머와 2025년의 게이머. 오영욱 박사: 사실 게이머 자체는 그때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고 생각을 해요. 다만, 분화가 생기고 나눠서 싸운다고 할까요? 예를 들어 그런 이야기 있잖아요.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은 일반인이 하기 어려운 게임이니, 일반인한테 추천하지 말아라” 근데 여기서 누가 일반인이냐, 게이머냐고 싸우는 거죠. 저희 어머니는 예전에도 쓰리매치류 게임을 하셨고 지금도 하고 계신데, 이런 분들이 게임을 안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예전에는 지금처럼 갈라서 싸우는 문화는 없었긴 했어요. 나보라 박사: 문화연구 쪽에서는 전형적인 이야기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게임이 하위 문화였는데 지금은 점점 아니게 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전엔 게이머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균질적인 속성을 공유하고 서브 컬처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했는데, 지금 시점에는 이런 게이머들도 존재하지만, 이들 역시 여러 게이머들 중에 하나일 뿐 다양한 게이머들이 나오고 있다. 게임과 관련된 다양한 정체성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죠. 이경혁 편집장: 사실 오늘날에 텔레비전 보는 사람한테 ‘텔레비저너’라고 부르진 않습니다. 그러니까 게이머가 게이머일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고, 지금 게임을 하는 사람을 게이머로 부르는 게 맞는지에 대한 의심이 들어요. 게이머라는 단어의 사회적 용례는 소멸해 가는 게 아닌가? 옛날에는 ‘게임하는 사람’이 게이머였는데, 지금은 ‘“제가 게이머입니다”하는 사람’이 게이머인 거예요. 왜냐하면 게임하는 행위가 너무나 일반화됐기 때문이죠. 나보라 박사: 말씀하시는 부분을 들으며 그런 생각이 드네요. 최근 말씀하신 그 하드코어 게이머들이 업계에서 목소리를 내는 가장 큰 근거가 ‘본인은 돈을 많이 쓰는 소비자다’는 거잖아요. 따라서 ‘소비자인 내가 이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할 권리가 있고 업계는 들어야만 한다’고 주장을 하는데, 이게 20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만들어진 결과라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어요. 본인이 정말 게임을 사랑하고 매니악하게 파고 든다면, 게임 자체에 대해서 더 깊이 있는 논의를 만들거나 ‘게임에 대한 감수성’ 같은 부분으로 문화적인 권위를 내세웠으면 좋았을텐데, 문화적인 소양이나 매체에 대한 이해로 하드코어함이 성장했으면 좋았을 텐데, 여전히 소비자로의 권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쉬운 거죠. 오영욱 박사: 한국 사회 전반적으로 소비자 주의가 팽배하다는 문제가 있죠. 트럭 집회도 그런 지점에서 볼 수 있고요. 이경혁 편집장: 그런 문제점들을 대면하면서, 확실히 오늘날에는 게임하는 사람을 게이머라고 부르는 것이 무용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마치 밥먹는 사람을 ‘밥먹러’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게이밍이 일반 행위가 되면서, ‘행위하는 사람’으로의 의미는 소멸해간 것 같습니다. 긴 시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Tags: 좌담회, 게임역사, 게임연구, 아카이빙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인디게임’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반지하게임즈 이유원 대표

    인디게임의 범주에 관해서는 여러 행위자의 관점과 이해관계가 얽혀있는바, 모두를 만족시킬 온전한 합의점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관념적인 개념어의 범주와 상관없이 지금도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며 인디게임의 가능성을 확장시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 호에서는 ‘반지하게임즈’의 이유원 대표를 만나 그가 정체화하고 있는 인디게임은 어떤 개념이며 지향점은 무엇인지 살피고자 한다. 2021년 9월,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이 직접 반지하게임즈 스튜디오를 찾아갔다. < Back ‘인디게임’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반지하게임즈 이유원 대표 02 GG Vol. 21. 8. 10. * 인터뷰는 반지하게임즈 본사 회의실에서 이뤄졌다. 포털 사이트에 인디게임을 검색하면, 도트 그래픽의 레트로 게임 풍 이미지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이어지는 설명은 재기발랄한 아이디어와 개발자의 열정 등으로 부족한 자금력을 극복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이와 같은 기표들은 인디게임의 다양성을 포괄하기에 부족하다. 이에 오늘날에도 인디게임이 무엇인지, 어디까지가 인디게임인지에 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인디게임의 범주에 관해서는 여러 행위자의 관점과 이해관계가 얽혀있는바, 모두를 만족시킬 온전한 합의점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관념적인 개념어의 범주와 상관없이 지금도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며 인디게임의 가능성을 확장시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 호에서는 ‘반지하게임즈’의 이유원 대표를 만나 그가 정체화하고 있는 인디게임은 어떤 개념이며 지향점은 무엇인지 살피고자 한다. 2021년 9월,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이 직접 반지하게임즈 스튜디오를 찾아갔다. 편집장: ‘반지하게임즈’의 그동안 출시작들을 보면 우리가 주류에서 이야기하는 디지털 게임의 유산을 가져다 쓰기보다는 오프라인이나 레트로 게임의 영향이 훨씬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어떤 게임 경험이 지금의 ‘반지하게임즈’를 만들었다고 보시나요? 이유원 대표: 물론 저도 어릴 적부터 많은 게임을 했지만, 제가 게임을 오래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게임 기획에 있어 제가 영향을 받은 경험들은 게임을 즐겼던 당시보다 좀 나중 이야기인 것 같아요. 나중 돼서 자유로운 창작물이 올라오는 공간에 오래 있기도 했고 보드게임을 접한 것도 되게 큰 영향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제가 만드는 게임 스타일이 그래픽이나 물리 엔진 이런 것들이 들어가서 시너지를 내고 이런 거보다는 규칙이나 이야기 위주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다양한 테마나 규칙이 있는 게 대부분 보드게임 쪽에서 많이 나왔던 것 같아요. 편집장: 그러면 게임을 만드실 때 현실에서도 어떤 현상이 어떤 규칙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시나요? 이유원 대표: 그렇죠. 저희 기획자들이 그런 점에서는 코드가 비슷한데 일상생활을 하다가 “이거 게임으로 만들면 재미있겠다” 이런 얘기가 나오면 게임처럼 보이는 규칙을 찾으려 하고, 실제로 그런 식으로 출발하게 된 것들이 몇 개 있었죠. 〈중고로운 평화나라〉도 그렇고 〈허언증 소개팅!〉도 그렇고. 게임이 될만한 규칙을 현실에서 많이 찾는 것 같아요. 편집장: 게임에 있어서 규칙은 굉장히 중요하죠. 그런데 어떤 게임이 나오면 사람들의 평가에서는 제일 먼저 그래픽 이야기가 나오고, 사운드가 나오고 그러잖아요. 만약에 기회가 되고 자본이 된다면은 어떤 쪽에 좀 힘을 줄 의향이 있으세요? 이유원 대표: 그냥 스타일의 문제인데요. 제가 지금 만든 게임들이 막 자본에 쪼들려서 이런 거밖에 못 만든 것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만약에 100억을 갖고 만든다 해도 화려한 그래픽보다는 ‘이게 어떤 게임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의 규칙을 갖고서 기획을 시작할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사실 MMORPG를 만든다고 하면 그 안에 핵심 규칙이 뭐냐, 이걸로 차별성을 두지는 않잖아요. 〈리니지M〉이나 〈트릭스터M〉이 어떤 규칙이 다른가보다는 메타피쳐나 콘텐츠 정도에서 테마의 차이가 있는 건데, 만약 제가 만든다면 좀 핵심적인 걸 넣고 싶어할 것 같아요. 이게 왜 게임이 되는지를 모두에게 딱 일견에 납득시킬 수 있을 만한 것. 다만 이건 어떤 게 더 좋다, 나쁘다가 아니고 요즘 게임이 워낙 다양하고 산업도 크니까 그냥 스타일이 여러 개인 것 같아요. 저는 좀 더 규칙이 강조된 거를 재미있어 하고 그걸 만드는 걸 좋아해요. 실제로 유저들도 규칙이나 아이디어가 재미있는 것을 더 좋아하는 분들이, 특히 인디 쪽에는 더 계시고요. 편집장: 그런데 사실 규칙에다가 어떤 이야기를 입힌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그러면 게임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규칙과 스토리가 상충할 때, 뭐가 더 우선이라고 생각하세요? 이유원 대표: 저는 규칙이 항상 앞선다고 생각을 하고요. 그 모순을 해결하는 건 결국 경험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제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를 좋아했는데, 〈와우〉를 하면서 재미있던 경험을 문장으로 치환하면 구체적인 수치나 공격력 같은 것들과 상관없이 느낄 수 있는 것이잖아요? 그러니까 복잡한 수치나 그래픽이나 충돌 감지 이런 것들이 아니라 재미있던 경험을 텍스트로 치환하는 것. 그러면 내가 재미있던 스토리를 규칙으로 만들 수 있는거죠. 편집장: 그런데 규칙을 만든다고 해도 게이머나 수용자가 그것을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나요? 가령, ‘내가 이렇게 규칙을 만들면 재미있어하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사람은 그런 반응이 나오지 않고. 그럴 수 있을 것 같은데, 게임 기획자로서 독자나 수용자에게 닿기 어려운 부분들은 있으신가요? 이유원 대표: 그건 분명히 어려운 지점이죠. 그런데 그 지점에 있어서는 제가 밑바닥에서 게임을 만들었던 경험이 좋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만들어서 친구들한테 보여주고, 커뮤니티에서 공유되고 그런 상호작용이 있으니까 수용자 입장에서 창작자를 경험할 수 있더라고요. 그리고 만약에 말씀하신 것처럼 의도했던 인터렉션이 아닌 게 나오면은 오히려 저는 되게 기쁠 것 같아요. 버그나 불쾌감을 주는 게 아니라면요. 왜냐하면 게임이라는 매체 자체가 완전히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유저랑 인터렉션으로 완성이 되는 것이다보니, 그 사람이 어떤 경험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죠. 어쩌면 게임 외적으로 에피소드를 만들 좋은 기회이기도 하고요. 편집장: 인터렉션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는데, ‘반지하게임즈’는 유튜브도 하고 DC 갤러리로도 활발하게 소통을 하고 계시잖아요? 유저와의 소통 같은 것들이 회사 주요 정책 결정 등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편인가요? 이유원 대표: 사실 절대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동기부여의 측면이 있죠. 유저들의 피드백을 통해 기획 방향을 잡는 것도 큰 부분이고요. 유저분들과의 상호작용을 하는 이유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요. 첫 번째는 인디 게임 개발사로서 유저랑 친화적인 태도가 중요하다는 생각이고요. 두 번째는 제 스스로도 좋은 피드백을 받고 좋은 말 듣는 것에서 오는 에너지가 되게 커요. 그래서 인터렉션을 계속 신경 쓰는 것 같아요. 편집장: 그동안 나온 게임들을 전체적으로 보면 ‘반지하게임즈’는 다들 인디 게임으로 분류를 하고 있죠. 대표님도 스스로 인디 게임으로 정체화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 인디 게임이란 건 뭘까요? 이유원 대표: 만들고 싶은 거를 만드는 게 인디 아닐까 싶긴 해요. 〈프로젝트 좀보이드〉 나 〈림월드〉를 보면 느낌이 오잖아요? ‘아! 이거 창작자가 진짜 만들고 싶은 걸 만드는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데. 저도 비슷한 생각이에요. ‘내가 돈 벌려고 만든 거야’ 혹은 ‘내가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어’라고 말하는 것도 물론 인디일 수 있겠지만, 어쨌거나 자기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드는 것이 인디게임이지 않을까 싶어요. 편집장: 요즘 대형 게임사가 산하 스튜디오를 만들기도 하고 투자도 많이 하잖아요. 이제는 그런 곳에 있는 인디 게임 스튜디오도 많이 있지요. 그래서 인디게임의 기준이라는 답이 없는 질문에 또 하나의 갈등이 생긴 것 같아요. 어려운 질문이지만, ‘큰 펀딩을 받아서 나오는 게임이 인디게임이냐?’는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유원 대표: 저는 규모나 상업성이랑은 상관이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저도 당연히 돈이 좋고 돈이 많으면 지금 제가 〈서울 2033〉에서 하고 싶은 것을 10배 속도로 더 빨리 할 수 있겠죠. 그치만 그게 다예요. 돈이 많이 생겨도 이런 느낌으로 생각을 할 것 같지, 돈이 있으니까 이걸로 돈을 더 크게 불릴 수 있으면 좋겠다거나 게임을 머신처럼 생각하거나 그렇게 하진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인디의 기준에서 상업성이나 규모는 상관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해요. 편집장: 다른 인디 게임 스튜디오들은 보통 대형 게임 개발사에서 몇 년 일을 하다가 나오거나 혹은 게임 아카데미 같은 데서 제작법을 먼저 배워서 나온 사람들이 만드는데 ‘반지하게임즈’를 보면 그렇지 않잖아요? 그것은 어떤 차이를 만드나요? 이유원 대표: 네 그렇죠. 저희가 개발 스택이 충분하지 않을 때부터 게임 출시를 하고 그랬으니까 차이가 많아요. 예를 들어 저는 플래시를 만드는데 언어를 다 이해하는 게 아니고 그냥 만드는 방법을 부딪치며 배우다 보니 어떤 식으로 버릇이 들었냐면. 제가 어떤 코드를 인터넷에서 찾거나 발견을 했어요. 그럼 ‘내가 이걸로 무슨 게임을 만들 수 있지?’ 약간 이런 식으로 가는 거예요, 순서가 바뀐 거죠. 만약 개발 역량이 충분했으면은 오히려 너무 방대한 세상에서 뭐를 만들지 고민했을 수도 있는데 오히려 저희는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시작하다 보니 게임을 제안하기도 쉽고 시작부터 재미있었죠. 편집장: 그런 특수성에서 오는 어드벤티지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이유원 대표: 있다고 생각을 해요. 일단 만드는 사람들이 행복하고 동기부여가 잘 되고, 자기가 원하는 거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고 그걸로 만들어지는 거니까. 그리고 유저 만족도도 웬만하면 더 높겠죠. 왜냐하면 우리의 경험 중에 재미있는 거니까 유저들에게도 권할 수 있는 것이구요. 물론 이것은 확률의 문제이기도 하고, 인디 게임을 보호해 주고 그런 분위기도 역할을 하겠지만요. 그래도 ‘10개 출시해서 9개는 플러스고 한 개 마이너스니까 얘네는 쳐내고’하는 식의 운영이 아니다 보니 재미있게 만들 수 있고 재미있는 것을 권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브랜드 이미지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 같아요. 편집장: 이런 ‘반지하게임즈’의 정체성이 시간이 지나면서, 혹은 회사가 커지면서 희석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이 지점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이유원 대표: 네. 일단 조직이랑 매출 규모라는 두 가지 측면 중에서 일단 매출 규모는 사실 항상 걱정을 하긴 해요. ‘우리가 재미있는 것’을 만들어서 사람들도 좋아하고 팬층이 있는 것도 좋은데, 여기서 어떻게 매출을 발생시키지? 그렇다고 NC가 될 수 있을까? (웃음) 그런데 이 점에 대해서는 사실 우리의 아이덴티티나 브랜드 가치를 바꿀 수는 없는 일이라는 걸 다 알고 있어서 크게 걱정은 안 돼요. 우리가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헤쳐나가야 한다는 걸 다 공감하고 있어서요. 그리고 조직의 측면에서는 저희가 지금 팀제로 운영하고 있는데. 규모가 커져도 한 프로젝트에 100명 200명 되는 기성 게임사처럼 되는 건 아닐 거고요. 많아도 5명 이렇게 해서 팀을 여러 개 늘리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요. 저희가 지금까지는 팀에 여러 명이 중복으로 들어가 있으니까 되게 버겁긴 했는데 이제 좀 개발자들 채용을 하면서 팀 두 개가 그나마 안정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됐어요. 여기에서 원래는 bm이나 기획을 다 제가 했었는데 애초에 그게 불가능하기도 하고 성장하는 데 걸림돌이라 생각이 들어서, 오너십이나 자기 창작물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이 기획자 역할을 각 팀에서 하게끔 바꿨어요. 그래서 요즘 고민인 것은 자기 창작물에 애정이 있는 기획자를 뽑는 거예요. 편집장: 그러면 그런 가정을 한번 해보죠. 정말 대박이 나서 회사가 커졌어요. 외부 펀딩이 시작되면서 경영진의 철학이 변할 수 있는데, 이런 걱정은 안 되세요? 이유원 대표: 걱정이 되긴 하는데요. 이게 불행인지 다행인지, 제가 생각하기에 저희 회사는 철학을 바꿔서도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없어요. (웃음) 이게 무슨 말이냐면, 어떤 사람이 “야! 너 마음 독하게 먹으면 돈 벌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아요. 독하게 먹는다고 어떻게 벌어요? 우리 능력에? bm에 대한 노하우가 특화된 것도 아니고 광고를 때려 박는다고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보니까 하던 대로 그냥 재미있는 거 만들어서 적당히 돈 버는 것 말고는 돈 벌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걱정이 안 되는 그런 게 있고요. 그리고 그것도 있긴 해요. 펀딩은 되게 큰 일이고 당연히 이해관계가 늘어나는 거니까 신중해야겠죠. 투자나 펀딩 같은 것은 결혼하는 것과 같아서 모든 면을 그냥 다 이야기 하고 그걸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나자. 이런 식으로 접근을 하고 있어서 지금까지도 펀딩이 잘 안 되고 있죠. (웃음) 그런데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투자 받아가지고 갑자기 우리가 엄청 커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좋은 사람 만나서 파트너십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 게임에 몰입하다보면 광고영상이 기다려진다. 특히 후원자 버전을 구매하고 개발자에게 총을 쏘다보면(?) 개발자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사꾼이 아니라 친근한 이웃처럼 느껴진다. 편집장: 과금 이야기를 해보면 ‘반지하게임즈’의 피드백에서 과금에 대한 칭찬이 많아요. 그걸 느끼세요? 이유원 대표: 네. 힘들긴 한데 사실 가이드라인이기도 해요. 우리 유저가 팬층이고 이걸 진짜 브랜드 이미지로 확보 하려면 우리 어떤 스텝으로 과금을 바꿔야 될까 약간 이런 게 항상 과제로 있는 거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죠. 그런데 인디게임 기획자면 bm 만드는 걸 좀 싫어하지 않나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저는 제가 아직 몰라서 그런 건지 재미있는 영역이라고 생각을 해요. 사람들이 게임을 보면서 되게 현실 같다 이런 얘기를 하는데 사실 bm은 이미 가장 현실에 맞닿아 있는 게임 속 피처잖아요? 그래서 이거를 재미있게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게임 속에서 돈 쓰는 게 재미있는 걸 수도 있잖아요. 상점에서 이것도 골라보고 장바구니에 담고 이런 것처럼. 그래서 이것도 되게 잘하면 잘할 수 있는 영역이겠다 싶더라고요. 편집장: 지금 한국 게임들이 욕을 제일 많이 먹는 게 결제 구조잖아요. 그거랑은 다른 bm을 계속 만들어 가시는 입장에서 한국 bm의 미래는 어떨 것 같습니까? 이유원 대표: 그냥 제 개인적인 생각은 지금 ‘가챠’ 같은 게 가장 핫하다고 한다면 그 이유는 아마 그거 자체가 재미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요. 원초적인 도박 심리 같은 게 있을 수 있고요. ‘가챠’에 대항마로 ‘배틀패스’ 같은 게 언급되지만 사실 그것도 원초적인 거잖아요. 동기 부여 성취 역학 같은 거죠. 그것도 원초적인 본능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결국 bm은 완성형을 향해 점점 성장하고 변화하는 개념이 아닌 것 같아요. 게임을 만들 때 기획하는 것처럼 원초적인 지점들을 잘 결합해서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저희가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만든다 하더라도 그거는 ‘가챠’나 ‘배틀패스’처럼 게임에서 느끼는 성취나 도박 등의 역학이 녹아 있기 때문일 것 같아요. 다만 어떤 방향으로 고민하냐가 다른 것이겠죠. 다른 데에서 bm을 만든다고 하면 ‘가격을 어떻게 할지’ 등의 고민을 하겠지만 저희 게임에서는 ‘이거 사는 경험이 재미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이런 거니까요. 게임 기획이랑 저는 연장선이라고 봐요. 편집장: 본인이 만든 작품에 대해서 문화 콘텐츠라고 스스로 평가한다면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 사회에서 〈서울 2033〉은 어떤 의미였을 것 같아요? 이유원 대표: 기말고사보다 어려운데요? (웃음) 우리 사회에서의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게임을 만들 때, 먼저 스크립트를 짜죠. 보통 메시지도 없고. 쓰고 싶은 대로 피상적으로 쓰는데요. 나중에 같이 일하는 작가분들이나 아니면 유저분들이 다른 작가분들의 글들 사이에서 제 글을 가리키며 ‘이거 이유원이 쓴 거죠?’라고 물어봐요. 그러면 너무 신기한 거죠. 그래서 어떻게 아는지 물어보니까 이유원식 글의 특징이 있대요. 블랙 코미디랑 풍자 좋아하고, 엄청 날 선 것처럼 파격적이고 가차 없이 죽이고 그러지만 그 안에 휴머니즘이 있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 감성이 오롯이 창작물에 들어가서 사람들이랑 인터렉션을 하면서 공감을 받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의미이고,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편집장: 인터뷰를 통해 게임에서 제일 중요한 건 재미라고 생각한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마지막으로 게임의 재미라는 게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이유원 대표: 재미가 왜 재미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데 저는 그 결과를 많이 볼 수 있었던 포지션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만든 게임이지만 난 잘 모르겠는데 애들은 재미있다고 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거 되게 신기한 이상한 경우잖아요. 그럼 왜 재밌지? 그런 결과들을 모아서 보면은 재미의 원리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그걸 제가 완전히 알지는 못하지만. 원리는 너무나도 쉽고 단순한 것들, 가령 도박일 수도 있고 성취감일 수도 있고 이런 사소한 것들이죠. 기획자가 할 일은 이 부품을 어떻게 조합해서 내 테마와 어울리게 하느냐를 고민하는 거라고 생각을 해요. 물론 부품을 더 찾아나갈 수도 있겠죠. ‘게임들을 만들다 보니까 사람들이 이런 거에서는 재미를 느끼네’ 이렇게 알 수도 있고요. 다만 결국 게임에서 추구하는 가치는 이런 재미의 요소들이 더 잘 버무려진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것을 만드는 것이 기획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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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G Vol. 22 게임 안에 재현되는, 동시에 게임과 조응하는 우리의 신체는 디지털게임과 어떻게 관계맺고 있는가? 게임과 신체라는 근본적인 관계에 대한 내재적, 외재적 고찰들을 모아 본다. <시티즌 슬리퍼>: 꿈에서 깨어나지 않기를 인류는 늘 유한성에 저항해 왔다. 이러한 저항은 단지 물리적인 제약을 극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고착화된 이념을 넘어서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유한성에 대한 저항은 어떤 의미인가? 이 글에서는 저마다의 '몸에 새겨진 꿈'으로부터 그 답에 다가서고자 한다. 여기에서 몸은 지극히 사회적이며 개인적인 신체를 뜻한다. 그리고 꿈은 희망과 절망을 의미한다. ‘꿈을 꾸는 것’은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자,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헛된 기대이기 때문이다. Read More Of green gaming and beyond Since 2020, customers buying a new iPhone no longer have a charger included in the box. According to Apple, this omission was aimed at reducing packaging waste as well as e-waste. The company explained that this move means it has to consume fewer raw materials for each iPhone sold, and it also allows for a smaller retail box, which means 70 percent more units can fit on a single shipping pallet, thereby reducing carbon emissions (Calma, 2020). Read More [Editor's View] 연결되고 재현되는 신체, 그리고 비평과 대중 사이를 잇는 가교로서 사람으로 태어난 게이머에게 몸은 필요조건입니다. 게임 소프트웨어는 상호작용을 요구하며, 이에 대해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신체의 기능을 사용해 응답해야 합니다. 사람이 게임 안쪽에 재현되는 경우라면 신체의 중요성은 더 무거워집니다. 게임 속에 그려진 신체는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사람에 의해 조작되는 신체이며, 이 결과물들은 결국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신체를 사고하는 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Read More [북리뷰] 이토록 숭고한 게임 속 괴물들 - 『플레이어 vs. 몬스터』 <다크 소울> 시리즈나 <엘든 링>과 같은 프롬 소프트웨어의 게임에는 어렵다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한다.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죽음을 맞으면 화면에 빨갛게 떠오르는 ‘You Died’는 상징적인 밈으로 통용된다. 보스와의 전투는 게임의 까다로운 난이도를 구현하는 대표적인 축이다. 게임 유튜버들은 보스전을 성취하는 데에 몇 번의 ‘트라이’를 거쳤는지와 같은 극악한 고투를 부각하기도 한다. 한편 보스들의 기괴한 외형은 이러한 플레이를 더욱 각별하게 만든다. 대표적으로 <다크 소울3>의 튜토리얼 보스인 군다는 2페이즈에서 별안간 검은색 고름 덩어리가 되고, <엘든 링>의 멀기트는 꼬리를 몽둥이처럼 휘두르는 패턴 따위로 플레이어를 곤란하게 만든다. Read More [인터뷰] SNS의 규칙을 게임의 메커니즘으로 바꾸는 여정 : <페이크북> 제작사 반지하 게임즈 이유원 대표 SNS가 현대인의 소통창구로 자리 잡은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그러나 교통, 통신의 기술이 해마다 급격하게 발전하고, 문화적 양상은 그보다 더 빠르게 급변하기에 오늘날 SNS의 특징을 언어로 표현하는 작업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최근 SNS 활동을 기반으로 한 게임이 출시되었다. 심지어 게임을 만든 회사가 일상의 규칙성을 게임의 매커니즘으로 녹이는 데 특화된 ‘반지하 게임즈’이다. 그들은 어떤 고민을 통해 SNS의 규칙을 게임화하였을까? GG 2호 이후 오랜만에 반지하 게임즈의 사무실을 다시 찾았다. Read More 게임 역사 초창기의 기록들: 닌텐도 뮤지엄 방문기 2024년 10월 2일, 닌텐도 뮤지엄(Nintendo Museum)이 마침내 문을 열었다. 프로젝트 발표 이후 3년만의 소식이었다. 닌텐도의 역사와 유산을 기념하기 위해 설립된 이 박물관은 일본 교토부 우지시에 자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박물관은 1969년에 세워진 우지 오구라 공장(Uji Ogura Plant)을 개조한 것인데, 이 공장은 닌텐도가 일본 전통 카드 게임인 화투와 서양식 트럼프 카드를 제작하던 시절부터 비디오 게임 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까지 함께한 역사적인 공간이다. 닌텐도의 변천사를 상징하는 장소에서 다시금 과거와 현재를 모아놓은 셈이다. Read More 게임과 시신경제 (Necronomics) 시신경제 (Necronomics)는 아킬레 음벰베 (Achille Mbembe)의 시신정치 (Necropolitics)에서 영감을 받은 개념이다. 시신정치는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의 생명정치 (Biopolitics)가 권력이 생명의 영역을 지배하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지만 정작 동시대의 현실은 죽음을 단지 생명권력 (Biopower)을 위한 수단으로 경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으로서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Read More 게임에서 고통과 피로는 어떻게 사회적 재현이 되어왔는가?: 게임의 스트레스 재현과 스토리지의 관계에 대한 간략한 역사 고통과 피로로서 게임에서 재현한 스트레스는 UI를 통한 연장된 체현을 넘어 시뮬레이션으로 적극 활용된다. 이는 무엇보다 시뮬레이션으로서 높은 품질의 몰입을 제공하는데, 이러한 게임에 대한 감상과 이해는 어떤 세계로 그 시뮬레이션을 이해할 것인가와 같은 문제로 이어진다. Read More 그래서, 제 민첩은 몇 점인가요? RPG의 규칙은 수치의 미학이다. 이 규칙이 고도화될수록, 플레이어들이 교감해야 하는 수치와 수식도 고도화된다. 플레이어들은 더욱 강한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계산한다. 디자이너들이 사용하는 전문적인 개발용 어들을 가져오며, 각종 수치를 분석하고, 차트를 만들고, 성장 공식을 유추한다. 적 또는 다른 플레이어를 압도할 수 있는 더욱 빠르고 효율적인 경로와 해결책을 찾는다.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RPG에서는 플레이어 본인의 신체적 능력도 중요하겠지만, 기본적으로 RPG에서 캐릭터를 강력하게 성장시키는 것은 플레이어의 전략적 사고, 소위 ‘뇌지컬’이다. Read More 그린게이밍의 새로운 지평을 찾아서 2020년 이래 아이폰은 충전기 미포함으로 출시되고 있다. 애플에 따르면 이는 포장 쓰레기와 전자 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조치로서, 판매되는 아이폰 한 대당 소요되는 원자재량 및 포장용 패키지 절감을 통해 운송용 팔레트 한 대당 70% 더 많은 제품을 실을 수 있어 탄소 배출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Calma, 2020). Read More 놀이하는 전정기관에의 상상 - 멀미 너머의 게임 매클루언의 아이디어를 빌리자면, 이 감각기관이 우리에게 잘 인지되지 않는 것은 이 기관은 다른 감각기관들에 비해 그다지 기술에 의해 확장된 시도가 없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지구의 보편중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운 인간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마치 우리를 둘러싼 공기처럼 너무나 보편적인 감각으로 받아들여지기에 ‘특별한’ 감각적 자극을 일으키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Read More 보이는 신체, 보이지 않는 신체 게임과 신체는 불가분의 관계다. 현실세계 외부에 컴퓨터 기술로 별도의 가상세계를 만들고, 플레이어로 하여금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여하게끔 하는 것이 게임 플레이라면, 플레이어의 신체는 게임 플레이를 위한 기본 조건이 된다. 이 때 신체는 가상세계에의 개입을 위해 게임 밖에서 플레이어의 생각과 의지를 전달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Read More 불투명한 인터페이스: 연결과 차단 사이 그렇다면 플레이어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도록 디자인된 ‘작동이 되지 않는’ 인터페이스는 그저 배경으로 남는 것일까? 이 질문에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게임 인터페이스의 분류 방법을 경유할 필요가 있다. Read More 시각장애인에게 지하철역은 미로 던전이다 - <사운드스케이프> 제작사 오프비트 황재진 대표 지난 11월 29일 개최된 ‘버닝비버 2024’는 인디게임 창작자들의 다양한 열정과 실험정신을 드러내기 위해 열린 인디게임 컬처&페스티벌이다. 사흘간 총 83개의 인디게임 부스가 열리고 1만여 명의 관람객이 참여한 이 행사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작품 중 하나는 <사운드스케이프>다. 시각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 이 게임은 전맹 시각장애인의 경험을 구현한 탈출 게임으로, 게임의 독특한 시각화 방식과 그 속에 담긴 사회적 메시지로 인해 호평을 받았다. 그간 유사한 컨셉의 게임이 소수 있었지만 특히 대학생으로 구성된 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이는 더욱 새롭다. Read More 유도된 걷기와 우연한 만남의 장소 – AR 산책 게임의 지금 일종의 ‘비동기 멀티플레이’로서 산책 게임들은 사람들을 게임이 유도하는 특정한 방식으로 움직이게끔 하지만 때로는 상상치 못한 연대를 가능케 한다. <데스 스트랜딩 Death Stranding>에서 누군가 설치해둔 집라인에 마음 깊이 감사하며 ‘따봉’을 눌러본 기억이 있는가. 산책 게임은 각자의 황량한 디지털 디스토피아를 산책하게끔 하지만, 이따금 고개를 돌리면 엄지를 치켜세울 직접 타인을 마주할 수 있게 해준다. Read More 이제부터 나와 랜디 오턴을 한몸으로 간주한다—WWE 비디오 게임을 통해 온몸으로 슈퍼스타 되기 내가 WWE 비디오 게임을 처음 접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취임식 조금 전, 넷플릭스 다큐 시리즈 〈미스터 맥마흔〉이 공개되고 조금 지나서, 그리고 프로레슬링이라는 예술 형식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지 반 년 정도 지나고서였다. ‘홈파티’라고 수식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20대 남성 넷이 모인 자리, 친구의 플레이스테이션 컬렉션에서 내가 선택한 파티 게임이 〈WWE 2K22〉였다 Read More 프레임의 너머를 위한 프레이밍 : 「The Star Named EOS 별을 향한 여정」 C. 티 응위옌은 ‘게임은 여러 행위성 형식을 저장하고 주고받기 위한 하나의 매체’라는 흥미로운 주장을 펼친 바 있다. 게임이란 하나의 도전적 고투를 통해 일시적 몰입을 발생시키는 기입적 매체이며, 그 기입의 중심에는 특정한 행위agency가 있다는 의미이다. 물론 티 응위옌이 다루는 ‘게임’이라는 범주는 비디오 게임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따라서 이 ‘행위’의 범주를 조금 복잡하게 바라볼 필요는 있다. Read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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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G Vol. 11 디지털게임은 소프트웨어와 사람 사이를 매개하는 인터페이스를 언제나 필요로 해 왔다. 조그셔틀과 버튼으로 시작해 조이스틱과 키보드/마우스, 다양한 터치스크린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단순히 사람과 소프트웨어를 매개할 뿐 아니라 게임의 양식에도 큰 영향을 미쳐 온 바 있다. GDC 2023 탐방기: 기술과 트렌드의 변화로부터 일어난 흐름들 길었던 팬데믹의 터널이 끝나고 게임쇼에도 봄이 돌아왔다. 물론 모든 게임쇼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며칠 전 발표되었던 E3 2023의 취소 소식은 게임 업계에 충격을 던져주었다. 그러나 보스턴에서 3월 말에 열린 PAX EAST는 GDC 2023과 비슷한 시기에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B2C 부분에서 흥행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필자 역시 4년 만에 GDC를 찾았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2020년부터 2022년 GDC에 모두 등록했었다. 다만 온라인으로 열렸던 2020년과 2021년에는 참석이 불가능했고, 작년은 패스를 등록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온라인으로 관람할 수밖에 없었다. Read More Why is the Korean Console Market Size so Small? - A Retrospective of Korean Console Games I have a vague memory of a time when I was in upper elementary school, sometime in the early 90's or so, but I can’t recall the exact year. I had gotten a "gaming console". I think I won it in a magazine giveaway. Given the age, I can assume what model it was, but I can only make an assumption. I also do not recall the exact model. Read More [논문세미나] Press X to Wait: The Cultural Politics of Slow Game Time in Red Dead Redemption 2 이번 세미나에서 리뷰할 논문은 지난 2022년 8월 ‘게임 스터디즈(Game Studies)’라는 저널에 게재된 〈Press X to Wait: The Cultural Politics of Slow Game Time in Red Dead Redemption 2〉이다. 번역하면 “X를 눌러 기다리시오: 레드 데드 리뎀션 2에서 느리게 흘러가는 게임 시간의 문화정치” 정도 될 수 있다. 이 논문은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레드 데드 리뎀션 2〉과 시간에 대한 감각을 다룬다. Read More [북리뷰] 게임콘솔 2.0: 현대 게임기의 계보와 궤적을, 사진으로 읽다 어린 시절을 비디오 게임을 벗 삼아 왔기에 게임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그는, 2000년대 중반쯤 위키백과를 뒤적거리다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위키백과 문서에 실린 고전 게임기들의 사진 퀄리티가 너무 조악했다는 점이었다. 지금의 웹도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당시 웹 문서들의 사진자료는 디지털카메라 보급 초기이기도 해서 개인이 형편 되는 대로 찍어 자가 제공한 사진들 일색이었으므로, 그때 눈으로 봐도 거개가 저해상도 저퀄이기 일쑤였다. 물론 하드웨어 제작사가 말끔하게 찍은 공식 사진자료가 있기는 하나, 당연히 제작사에 저작권이 있는데다 언론사 등에나 한정적으로 제공되기에, 공공자료로 개방되어 인용용으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고퀄리티 사진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Read More [인터뷰] DRX 무릎이 말하는 게이머와 조이스틱의 관계 그렇다면 조이스틱에서 발생하는 감각과의 경험을 생생하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 오랜 기간 세계 최정상급으로 활동하고 있는 격투 게임 프로게이머라면, 아주 미묘한 감각과 게임 간의 상호작용을 더 면밀히 이야기해줄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십여 년간 탑 티어를 놓지 않으며 수많은 게임기기를 이용해본 게이머라면, 조이스틱의 변천에 따른 감각적 차이를 잘 설명해주지 않을까? 이러한 기대를 품고 이번호에서 편집장은 글로벌 이스포츠 전문기업 DRX 소속 철권 프로게이머인 '무릎' 배재민 선수를 만나고 왔다. Read More 『중국 학부모』의 과잉 경험과 리얼리즘의 신화 ‘리얼리즘 게임’이라 불리는 『중국 학부모(中国式家长)』는 서민적인(接地气)1) 콘텐츠 덕분에 “매우 현실적”이고 “삶에 근접해 있다”는 등 일관된 평가를 받았다. 이 게임은 현장 조사에서 얻은 실제 경험을 제시함으로써 실제 경험을 과잉 경험으로, ‘현실감’을 ‘현장감’으로, 실제 상황을 ‘공감(感同身受)’으로 대체하며, 궁극적으로 사회구조 문제를 가족윤리 문제로 축소한다. 또, “부모를 용서하라”는 감정주의적 결말이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게임의 기초적인 설정 - 세대속성의 대물림(다음 세대 아이가 윗세대의 우세속성을 물려받는다) - 이 모든 ‘리얼리즘’ 게임에서도 가장 비현실적인 부분이란 점이다. 다시 말해, 이와 같은 게임의 ‘리얼리즘’은 바로 계급 상승의 신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과잉 경험과 그 이면에 깔린 리얼리즘의 신화는 『중국 학부모』로 하여금 진짜 문제를 은폐하는 동시에 폭로자가 되도록 한다. Read More 기억의 조작술: 사건의 컨벤션으로부터 벗어나기로서 인디게임 장르는 게이밍에서 오랜 논쟁의 주제 중 하나다. 디지털게임의 매커닉과 외형은 무궁무진하지만 소설이나 영화, TV쇼와 마찬가지로 어떤 약속된 경로들이나 재현의 양태가 축적되고 있음다. 컨벤션(convention)은 창작자와 텍스트, 그리고 수용자 사이에 형성되는 하나의 묵시적인 관습으로 우리는 무수히 많은 텍스트들이 생산되고 반복적으로 읽히는 과정에서 공통의 컨벤션을 체화한다. 장르가 계약을 통해 창작자-수용자 모두 텍스트의 진행 과정을 사전에 공식화한다면, 컨벤션은 비공식적으로 모두가 따르는 불문율이다. 장르는 헌법처럼 작동하지만 컨벤션은 그 안의 관습법 혹은 윤리처럼 흐른다. 장르는 끌어당기는 반면, 컨벤션은 대류한다. 장르는 포뮬러(정형화된 공식)와 컨벤션을 만들고, 스타일과 결합하는 과정에서 스테레오타입과 클리셰를 생산한다. Read More 낚시스피릿의 별매 낚시 컨트롤러로부터 본 게임 경험의 확장 전세계에서 게임을 하는 입력 인터페이스로 가장 많이 이용 되는 것은 무엇일까. 몇 년 전이라면 자신있게 게임 패드라고 이야기를 하겠지만 지금은 터치 인터페이스 역시 적지 않기 때문에 자신있게 게임 패드라 말할 수 는 없겠다. 다만 터치인터페이스 위에 구현되어있는 가상 패드까지 고려하면 현재에도 게임 입력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입력 인터페이스는 게임 패드일 것이다. 물론 전세계적으로 보았을때의 경향이며, 한국에서는 가정용 게임기보다 개인용 컴퓨터를 통한 게임이 더 익숙하기 때문에 흔히 키마라고 부르는 키보드 마우스 컨트롤을 더 선호하는 경우도 많다. Read More 사라진 컨트롤러 : 가상현실 게임 속의 컨트롤러의 특징들 가상 현실 게임에서 대부분의 경우 플레이어가 사용하는 컨트롤러는 게임 내에서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스팀(Steam)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가상현실 게임인 〈하프라이프: 알릭스 (Half Life: Alyx)〉나 PSVR2의 대표작인 〈호라이즌 콜 오브 더 마운틴 (Horizon Call of the Mountain)〉을 비롯한 다양한 슈팅 및 액션 게임에서도 대부분 손을 보여주는 방식의 디자인을 채택하고 있다. Read More 상상된 공간의 지도화: 가상공간의 전시와 도식화 “지도는 영토보다 흥미롭다.”1) 프랑스 소설가 미셸 우엘백(Michel Houellebecq)의 문장이다. 영토가 위상학적 차원에서 물리적인 땅과 장소를 가리킨다면 지도는 그 땅을 표상하는 이미지다. 지도는 왜 영토보다 흥미로운가?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의 평면으로 기호화 하는 작업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지도는 신체와 물리적인 공간을 서로 마주하게 만드는 일종의 ‘인터페이스’(inter-face)로 기능하며, 현상학적 맥락에서 분리할 수 없는 공간적 경험을 하나의 대상으로 삼게 만드는 매개가 된다. 아마도 우엘백이 말한 ‘흥미’는, 실재 세계를 매핑(mapping)하는 인식론적 태도와 세계를 이미지로 상상하는 형식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Read More 오래된 미래: 1989년에 상상한 미래형 컨트롤러, U-Force와 파워 글러브의 대결 조이스틱과 게이머의 남근선망을 연결 짓는 비평(Pozo, 2015)은 어찌 보면 지나치게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사례를 보면 어떨까. 2009년, “섹스와 테크놀로지”를 테마로 개최된 Arse Electronika 컨퍼런스에서 SF미디어 랩은 실험적인 게임 컨트롤러 하나를 선보였다. “조이딕(Joydick)”으로 명명된 이 게임 컨트롤러는 벨트로 부착시킨 원기둥 물체를 상하좌우로 움직여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도록 해준다. 당시 SF미디어랩의 공동대표였던 노아 와인스타인(Noa Weinstein)이 게시한 유튜브 영상에 의하면, 이러한 조이딕은 “사용자의 페니스를 네 개의 주요 방향 으로 화면의 캐릭터를 움직일 수 있는 조이스틱으로 변환시킨다." Read More 컨트롤러로 인한 게임플레이의 진화 내가 처음 비디오 게임의 존재를 경험한 것은 1985년으로, 당시 업무차 미국에 자주 다녀오던 작은 고모부가 선물로 들고 온 퐁 전용 게임기가 시작이었다. 퐁은 그저 막대 위치를 롤링 스위치로 조절하며 공을 받아내는 단순한 테니스형 대전 게임이었지만, 나에게는 TV에 나오는 화면을 내가 임의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빠져들 만한 경험이었다. Read More 콘솔게임 시장으로 진입하는 한국 게임산업을 바라보며 자주는 아니고 진지하지도 않지만 가끔 닌텐도 스위치 구매를 후회할 때가 있다. 최근 2년 넘게 스위치를 제대로 가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오직 개인적인 게임 취향 탓이다. 무거운 테이스트에 충분한 핍진성을 통해 몰입감이 있는 게임을 선호하는데, 밝은 테이스트에 캐주얼한 게임이 많은 닌텐도가 잘 맞지 않음을 너무 늦게 즉 스위치 구매 후에 깨달았다. Read More 펌프잇업의 플레이 분화에 놓인 '기계'의 의미 앤서니 던에 따르면 전자제품의 사용자 친화적 인터페이스는 사용자들을 제품에 구현된 가치와 개념을 사용자들이 스스로 제품을 계속해서 사용하는 동안 학습시킨다.1) 이것이 전적으로 맞는 전제라고 가정한다면 게임도 마찬가지일까? 게임은 다른 전자제품들과는 다르다. 일반적인 상품은 그것이 완성되거나 완벽하게 조립된 것으로 제시된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로서의 게임은 완성된 상품이기도 하지만 그 소프트웨어가 제공하고자 하는 게임이라는 상품의 형태는 게이머의 ‘수행’이라는 행위에 의해서 각각의 게이머들에게 다른 방식으로 체험된다. 소프트웨어로서는 완성된 상품이기도 하지만, 게이머가 게임을 수행하고 난 뒤에야 ‘게임’ 그 자체는 완성된다. Read More 플레이어의 숙련도가 머물렀던 곳은 어디였을까: 터치스크린 시대의 숙련도 매체라는 말은 A와 B 사이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로서의 의미를 담고 있다. 텔레비전과 영화, 스마트폰을 우리가 매체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들이 각각 생각과 생각, 창작자와 수용자, 혹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도구로 활용된다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게임도 같은 의미에서 매체다. Read More 하이파이러시: 같은 뿌리의 리듬과 액션 사이에서 리듬은 사전적 정의에서 ‘일정한 박자나 규칙에 따라 장단과 강약이 반복될 때의 규칙적인 음의 흐름’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음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것에 있다. 박자에 따라서 음이 일정하게 반복될 때. 음의 덩어리를 리듬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게임에서 리듬 게임이라 부르는 장르 자체는 연주하는 행위. 혹은 건반을 정확한 타이밍에 수행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 리듬 그 자체보다는 음악 연주를 모사하는 것에서 시작하므로 날아오는 노트를 처리하는 형태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Read More 확률형 아이템 확률공개 법제화 : 진정한 이용자 보호를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 지난 대선에서 유력 후보들의 공약이기도 했던, 확률형 아이템 확률공개 법제화가 2023년 2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위 법은 1년 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4년 3월 1일부터 시행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잘 알 것으로 예상되지만, 확률형 아이템은 구입 당시에는 그 종류나 효과가 명확하지 않고, 일정한 행위 (요컨데 뽑기를 한다거나, 특정 장비를 강화를 하는 등의 행위) 를 할때 확률에 따라 그 종류나 효과가 정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Read More

  • 전업 게임평론가의 솔직한 고민

    경험과 지식, 둘 사이의 적절한 균형점을 딱 잘라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둘 모두가 필요한 것이 교양을 딛고 서는 게임평론의 전제가 된다는 생각은 굳건하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대중성은 오히려 게임평론에 필요한 요소 중 이 둘보다 후순위에 선다. 경우에 따라서는 훌륭한 게임 경험과 이를 적절히 일반화하고 풀어내는 지식의 조화만으로도 대중성은 완성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 Back 전업 게임평론가의 솔직한 고민 20 GG Vol. 24. 10. 10. 평론은 애초에 대중적이지 않았다. 게임은 더욱 그럴 것이고. 평론이라는 영역이 대중과 유리되었다는 이야기는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어불성설이다. 어찌보면 평론은 애초에 대중과 가깝게 있었던 적을 손에 꼽기 어렵기 때문이다. 출판이 그나마 활성화되었던 시절의 문학평론, 다양한 분야에 대한 비평이 이루어지던 잡지가 잘 팔리던 시절의 여러 평론 등의 옛날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나마도 평론이 팔리던 시절에도 평론이 대중문화의 일부라고 이야기할 만한 수준의 것은 아니었다. 그나마 대중적인 평론의 시절이라면 아무래도 영화평론의 전성기를 꼽을 것이다. 영화잡지가 지금보다 다채로웠던 시절도 따지고 보면 이 평론이 대중적이었느냐에 대해 할 말이 많겠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대중적이라는 평가로 사람들의 기억에 영화평론이 남는 것은 평론이 대중적이었다기보다는 영화가 대중적이었기 때문으로 보는 편이 낫다. 평론이라는 이름을 단 모든 것들이 애초부터 대중성과 거리가 멀었는데, 디지털게임의 영역이라고 다를 것이 있겠는가? 평론이라는 이름을 단 많은 것들이 점차 사그라들어가고 있는 시점의 측면에서도 디지털게임의 평론이라는 말은 설 자리를 찾기 어렵다. 애초에 대중적이지 않은 글과 말의 방식이 단지 대중적인 매체를 다룬다고 해서 갑자기 흥할 리 없고, 안그래도 죽어가는 판이 단지 매체가 대중적이라는 이유로 갑자기 부흥할 이유도 없다. 여러 모로 게임평론의 생존 조건은, 좋지 않다. 교양으로서의 비평에 필요한 경험과 지식의 균형점 매체에 게임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2014년부터니까, 나는 햇수로 어느새 10년차를 채운 게임평론가가 되었다. 처음에는 농담처럼 시작했던 일은 구르고 굴러 이름 뒤에 다양한 게임 관련 직함이 덧붙었지만, 여전히 나는 내가 하는 일의 방향이나 의미, 가능성에 대해 확신에 찬 이야기를 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이 잡지를 맡은 지도 만 삼 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나는 어떤 말과 글이 디지털게임을 이야기하는 데 필요하다고 쉽사리 선언하지 못한다. 따라서 게임평론이 어떻게 하면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도 나는 선뜻 명쾌한 해답을 내놓을 수 없다. 다만 수 차례 이어진 질문에는 한결같이 “씬”의 형성이라는 이야기를 해 오기는 했다. 이는 솔직히 고백하자면, 현답이라기보다는 일반론을 주워섬기는 수준에 불과하다. 너무나 당연한 말. 읽는 사람이 늘고, 그러면 그 속에서 쓰는 사람도 늘어날 것이라는. 하나마나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이 말은 중요하다. 게임평론, 비평의 쓸모에 대해서는 다른 글 에서 이야기했으니 필요의 당위성을 두 번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지만, 이를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원론 수준의 솔루션을 내지 못한다. 다만 ‘씬의 활성화’라는 원론은 각론에 들어가면 조금 더 다른 이야기를 담기는 한다. 이를 테면, ‘씬’이라는 일종의 구분짓기를 만드는 경계에는 ‘교양’이라는 개념이 들어간다.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과 배경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을 ‘교양’은 비평을 존재하게끔 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이 때의 교양은 고정된 개념으로서의 지식이라기보다는 상호관계적이고 변증법적인 현상으로서의 의미다. 앞선 시대의 지식과 담론이 새로운 매체로 연장되고, 동시대의 경험과 의견이 이와 함께 버무려지면서 나타나는 지금 시대의 지식담론이다. ‘씬’을 만드는 조건에는 단순히 쓰는 사람이라는 존재의 유무 뿐 아니라, 이들이 딛고 있는, 정의하기 어려운 이 교양이라는 조건이 추가된다. 교양이 매우 비정형적이며 유동적인 영역이라는 점은 게임비평의 현실적 존재를 어렵게 만드는 조건이다. 아주 단적인 이유를 먼저 꺼내보자면, 당장 디지털게임이라는 매체를 비평으로 다루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교양을 달성하기 위한 물리적 조건의 문제가 등장한다. 두 시간 내외로 볼 수 있는 영화 한 편이라고 말하면 지나친 단순화일 수 있겠지만, 어쨌든 디지털게임은 다른 매체에 비해 그 매체의 내용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비교불가능한 시간 소모를 요구한다. 스탠드얼론 패키지 하나를 클리어하는 시간을 이야기한다면 이는 매우 작은 단위다. 패치마다 추가되는 요소들이 있고, DLC를 통해 확장되는 이야기가 있으며, 온라인게임의 경우에는 아예 릴리즈 버전마다 게임이 달라지기도 한다. 매체가 시간을 요구하는 조건 자체가 이미 험악한 난이도인데, 제한된 24시간의 하루를 똑같이 갖고 있는 사람에게 교양을 위한 게임플레이와 기타 경험의 축적을 동시에 요구하는 일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불가능한 요구가 될 수 있다. 게임과 학습이라는 두 영역의 교집합을 모두 다룰 수 있을 만큼의 시간적 여유는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결과는 둘의 균형보다는 한쪽으로 더 기울어진 평론의 생산이다. 3년째 비평공모전 심사에 참여하면서 느낀 것이 이 지점이다. 어떤 글은 오직 자신의 게임 경험만을 풀어놓으려 했다. 그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타인과 교감이 불가능할 정도로 오로지 독자적이기만 한 경험은 비평이 아니라 감상에 머물게 된다. 또 어떤 글은 오로지 자신이 배운 일련의 지식체계에만 무게가 실리는 바람에 디지털게임 비평이라기보다는 그저 내가 체득한 지식의 틀을 통해 게임을 보니 이렇다, 라는 적용에 머물기도 한다. 경험과 지식, 둘 사이의 적절한 균형점을 딱 잘라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둘 모두가 필요한 것이 교양을 딛고 서는 게임평론의 전제가 된다는 생각은 굳건하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대중성은 오히려 게임평론에 필요한 요소 중 이 둘보다 후순위에 선다. 경우에 따라서는 훌륭한 게임 경험과 이를 적절히 일반화하고 풀어내는 지식의 조화만으로도 대중성은 완성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시장성의 문제 비평과 평론의 가능성을 고민하는 많은 이들이 놓치는 또 하나의 균형점은 시장성이다. 어떤 이들은 비평이 경제적 문제와 무관한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게임에 대해 말하고 글쓰는 일로 먹고사는 입장에서 이는 다소 아쉬운 소리로 들린다. 결국은 이 일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자리잡기 위해서는 들인 노력과 시간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급받는 노동으로 자리잡아야 하는데, 그러한 부분이 고려되지 않은 말이기 때문이다. 학계와 같은 곳은 역으로 그런 시장논리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논리와 지식의 생산을 위해 일종의 소도와 같은 형태로 연구자를 보호하는 방식이 적용되고 있긴 하지만, 게임비평과 같은 경우는 아직 그와 같은 보호논리 안에 포함되지 못한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더 슬픈 것은 오히려 그 학계라는 곳 또한 평론과 마찬가지로 이미 최초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많이 엇나가 있다는 점이다. 학문의 자유를 보장받기보다는 사업실적으로까지도 평가받는 공간에서 경제적 문제와 무관한 비평의 성립이 가능할까? 때문에 지금의 게임평론가는 작게는 자신이 먹고살 문제에 대한 고민과 해법, 좀더 넓게는 앞서 말한 형이상학적 의미의 “씬”의 형성이 현실에서 어떻게 다른 경제적 주체들과 관계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해법을 가져야 한다는 또 하나의 의무를 등에 지게 된다. 단순히 말과 글을 준비하는 일만으로도 벅찬데, 그러한 결과물이 자본주의 시장에서 어떻게 관계맺는지까지도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 일을 생업으로 가져가는 일이 가능할 것인가? 두 가지의 방법이 현실에 존재한다. 전업이 아닌 부업, 혹은 취미로 게임평론을 수행하는 것이 첫 번째다. (실제로 나도 처음 시작이 그랬다.) 하지만 이는 앞서 이야기한 대로 이미 교양으로서 평론을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가 요구하는 시간을 생업에 나눠 써야 한다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두 번째는 생산물로서의 평론이 경제적 가치로 직결될 수 있는 루트 – 이를테면 최근의 유튜브 운영 – 같은 방식이 실제 존재한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이는 다분히 어려운 문제다. 보다 빠르고 감각적인 매체로서 자리잡아가는 인터넷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교양으로서의 다소 느리고 무거운 감각의 게임평론을 안착시키는 것을 장담하기 어렵다. 극단적으로 수익을 노린다면 보다 자극적인 형태의, 이를테면 강한 어조로 ‘똥겜’을 욕한다던가, 별점을 통해 줄세우기를 한다던가, 혹은 게이머 커뮤니티와 같은 여론의 흐름들이 원하는 방향에 편승한다던가 하는 방식을 수행할 수 있겠지만, 앞서 이야기한 대로 이는 교양으로서의 평론과 지향점이 다르다는 어려움이 따른다. 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어떤 순간이 나타날 수도 있겠고 또 그러한 노력이 없다고 이야기는 것은 아니지만, 감히 이것이 게임평론의 살길이다 라고 자신있게 주장하지는 못하겠다. 다시 일반론으로 현재 전업 게임평론가, 게임연구자로 살아가는 입장에서 고민하는, “게임평론을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가?”는 그래서 다시 교양으로서의 평론이 어떻게 하면 사회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미치며 살아남을 것인가 라는, 게임 자를 뗀 평론의 생존 일반론 편으로 이어진다. 애초에 평론이라는 것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유지 가능하게끔 만들고 그 영향력이 다시금 게임제작자, 이용자들에게 미치게끔 하려는 일은 결국 ‘게임’ + ‘평론’ 이라는 두 개념 중 ‘평론’을 살리는 일에 가깝다. 하지만 특수성으로서의 ‘게임’은 일반론으로서의 ‘평론’을 활성화할 수 있는 열쇠가 되기도 할 것이다. 가장 많은 대중들이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고, 산업적으로 가장 큰 매출의 덩어리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게임’ 이기 때문이다. 가장 대중적인 매체에서 대중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대중적으로 해내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것 같은 이야기이지만, 이것은 비단 게임평론가들 뿐 아니라 평론이라는 것의 사회적 기능을 인지하고 그것에 일련의 의무감을 지닌 모두가 함께 해 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아니 역으로 생각해 보자면, 오히려 ‘게임’ 평론가는 차라리 다른 영역에 비해 조금 더 나은 인프라를 딛고 있는지도 모른다. 평범한 직장인에서 게임연구자, 평론가라는 타이틀을 단 것이 10년 전이었고, 이런저런 활동 끝에 한 가지 해법으로 게임제너레이션이라는 잡지를 시작한 것이 3년 전이었다. 감히, 정말 감히 라는 단어를 붙이지 않을 수 없긴 하지만, 그래도 한 매체의 영향력에 다른 벡터를 부여할 수 있는 평론이라는 힘을 부여하는 데 있어 10년 전 보다는 먼지만큼이나마 나은 디딤돌이 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나온 경과를 뿌듯해하기엔 앞으로 나아갈 길을 가로막은 절벽이 더 높고 두터워 보인다. 현실의 전업 게임평론가는, 보통 이러한 고민을 붙잡고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인터뷰] 척박한 사회에 다정함을 심고 있는 당신을 위해: 인디게임 개발자 somi

    그가 돌아왔다. ‘죄책감 3부작’으로 한국 인디게임씬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던 인디게임 개발자 somi가 <미제사건은 끝내야 하니까>라는 제목의 신작으로 돌아왔다. < Back [인터뷰] 척박한 사회에 다정함을 심고 있는 당신을 위해: 인디게임 개발자 somi 16 GG Vol. 24. 2. 10. 그가 돌아왔다. ‘죄책감 3부작’으로 한국 인디게임씬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던 인디게임 개발자 somi가 <미제사건은 끝내야 하니까>라는 제목의 신작으로 돌아왔다. 2016년도 <레플리카>를 시작으로 <리갈 던전>, <더 웨이크>까지 이어지는 ‘죄책감 3부작’은 그동안 여러 호평과 비평 사이에서 우리에게 많은 고민거리를 안겨주었다. ‘게임과 사회의 관계는 어떻게 맺어질 수 있는가?’부터 시작해서 ‘게임의 완성도와 자본의 상관관계’까지. 물론, 이러한 고민거리에 대한 답은 게이머 각자가 다르게 내릴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완전히 구조화되지 않은 인디게임씬에서 작은 씨앗을 심고 있는 그의 행보는 귀하다. 그래서 더더욱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가려는 somi를 만나고 싶었다. 이경혁 편집장: 사실 ‘죄책감 3부작’이라는 이름 때문에 저는 이 시리즈가 끝났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번 작품도 죄책감을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 작품은 어떻게 분류가 될까요? 죄책감 4부작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somi: 저는 개인적으로 ‘죄책감 3부작’은 3부작으로 마무리를 했고, 이번 게임은 조금 결이 다르다고 생각을 해요. 제가 게임을 대하는 관점이 조금 달랐거든요. ‘죄책감 3부작’을 만들 땐 ‘게임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메시지’를 중점으로 게임을 만들었고, 그걸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에 조금 더 주목했어요. 그리고 게임에서 표현하는 세계도 저나 제 주위의 사람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겪은 일들을 중심으로 구성을 했죠. 그러니까 하나의 사회를 투영하는 창처럼 게임을 만들었던 거예요. 그런데 이번 게임은 완전히 저와 분리된 게임이라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고, 순수하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자 했어요. 그래서 기존의 ‘죄책감 3부작’과는 조금 차이를 두고 있는 작품이라고 저는 스스로 생각하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그래도 게이머들은 ‘죄책감 3부작’과의 연계성을 떠올릴 것 같은데요. 가령, 이번 작품의 주인공이 전경이잖아요. <리갈 던전>의 전경이 나이 든 상태인 거죠? somi: 글쎄요. 그건 뭐 판단하시는 플레이어에게 맡기고요. (웃음) 사실 딱히 그 인물이 나이 들어서 이렇게 되었다고 만들고자 했던 것은 아니에요. 다만, 저는 그냥 제가 만들었던 등장 인물에게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해주고 싶었어요. 제가 만들었지만 굉장히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친구들, 아니면 스스로의 선택이든 플레이어의 선택이든 이를 통해서 악인으로 만들어졌던 인물들. 그런 등장 인물들에게 ‘너도 이런 인생을 다시 살 수 있지 않겠니’라고 새로운 삶을 선물해주고 싶었어요. 서원이도 그렇고, 전경도 그렇고요. 이경혁 편집장: 어떻게 보면 등장 인물에 대한 애정이 좀 묻어나는, 일종의 ‘인물에 대한 스핀오프’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somi: 네. 맞아요. 이경혁 편집장: 그런데 사실 <리갈 던전>은 플레이에 따라서 스토리 진행이 달라지잖아요? 그러면 이른바 전작의 진 엔딩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부분으로 연결되지 않을까요? somi: 사실 <리갈 던전>의 스토리도 플레이하는 방식에 따라 워낙 다른 모습을 가질 수 있으니까, 그중 어떤 엔딩이 지금 작품과 연결성이 있을지, 아니면 연결성이 전혀 없을지 등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이번에 내신 <미제사건은 끝내야 하니까>가 스팀에서 압도적 긍정을 찍고 있는데요. somi: 처음이에요. 그래서 다소 어안이 벙벙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아, 이전 작에서 많이 받으셨을 줄 알았는데, 처음이시군요. 그런데 이렇게 좋은 평가가 이어지는 작품에 대해 앞으로 해외 번역 버전을 늘릴 계획은 없으신가요? somi: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간체), 영어 이렇게 총 4개 국어를 지원하고 있는데요. 다만, 번역에 조금 어려움이 있어요. 이전 <레플리카>의 경우에는 팬 베이스로 번역을 다 열어놨거든요. 그런데 번역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게임이 주는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서 고민이 되긴 해요. 특히 제가 만든 게임은 거의 텍스트 기반이다 보니, 번역 과정이 너무 어렵거든요. <리갈 던전>의 경우에는 일본에서 <그노시아>라는 게임을 만든 Petit Depotto라는 스튜디오가 있는데요. 거기에서 게임을 만드시는 두 분이 <리갈 던전>을 플레이하시고 게임이 너무 좋다며 번역을 해 주시고, 일러스트도 그려주셔서 그 버전으로 재출시가 되었어요. 덕분에 일본에서도 인기를 얻게 되었죠. 이런 좋은 번역가를 만나는 것이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저희 GG의 이전 인터뷰에서, 크레딧에 항상 문학 작품들을 넣으시는 지점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요. 이번 작품은 어떤 문학 작품이 가장 주요한 레퍼런스로 작용했을까요? somi: 사실 거창한 의미를 가지고 레퍼런스를 넣는다고 하기엔 민망하고요. 제가 책을 좋아하다 보니 게임을 만드는 가운데 읽고 있는 책이 있을 건데, 그 책 중에 기억나는 문구를 게임에 넣고 있어요. 그러니 ‘게임을 만드는 중간에 이걸 읽고 있었구나’ 이렇게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웃음) 이번에 레퍼런스에 넣은 작품은 김연수 작가의 <너무나 많은 여름이>라는 소설집인데, 김연수 작가를 제가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요. 거기서 이런 대목이 나와요. “타인에게 이유 없이 다정할 때, 비로소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만들어지고, 삶의 플롯이 바뀔 수 있다.” 이 게임의 기반이 되는 생각과 상통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을 해서, 이 문구를 작가의 말에도 넣고, 크레딧에도 넣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비단 레퍼런스뿐만 아니라, 저는 somi님 작품이 항상 문학적이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한편으로 게임을 지금까지 만들어오신 입장에서 게임과 문학의 관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인디게임을 만들 때, 게임의 스토리를 위해서 문학적 지식이 필요할까요? somi: 게임의 스토리가 가지는 완성도나 참신함을 평가할 때, ‘한 편의 소설을 읽은 것 같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이 표현은 한편으로 게임이라는 장르가 독자적인 예술의 영역으로 아직 인식되지 못했기 때문에 사용되는 표현이라고 생각을 해요. 게임이라는 장르는 스토리와 게임성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장르잖아요? 그런 지점에서는 문학적 지식이나 스토리라는 개념을 별도로 떼어놓기보다, 게임이라는 장르가 가지는 특성들을 최대한 많이 활용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저는 책 읽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지만, 그것만으로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그런데 이번 게임이 1월에 나왔잖아요? somi님 작품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BIC(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 같은 시상식에 출품하기에는 다소 불리할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걸립니다. somi: 제가 게임 개발 외의 현업이 따로 있는데, 최근에 오롯이 게임 개발에 좀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맞아서 그 시기에 맞춰 게임을 만들고자 했어요. 다른 어워드나 게임쇼 일정은 고려하지 않고, 제 일정에 맞췄던 거죠. 이경혁 편집장: 어떻게 보면 전업 개발자가 아니시기에 일어난 일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somi님께서 스스로 생각하시기에 투잡을 유지하는 방식의 장단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somi: 일단 제 개인적으로는 창작의 자유로움이 큽니다. 물론, 절대적 시간이 부족하고, 일상이 빡빡하지요. 그런데 역설적으로 일탈의 창구가 있다는 점이 커요. 가령, 직장에서는 창작 욕구를 발현하기가 어려운 지점들이 있잖아요? 그런 과정에서 저만의 창작 욕구를 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이 큰 장점입니다. 다만, 게임 업계에 완전히 뛰어들지 못한 사람으로서 가지게 되는 스스로의 거리감이나 어려움들이 있어요. 누군가는 생존을 위해 게임을 만드는데, ‘너는 그렇지 않은 지점이 있지 않냐’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지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판매 실적이나 리뷰와 같은 지점에서 자유롭게 제가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드는 환경이 주어지는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말씀하신 지점에서 대형 프로젝트가 아니라, 1인 작가이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어드벤티지도 있을까요? 예를 들어, somi님의 게임을 보면서 스튜디오를 차리고 게임을 만드시면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을지 궁금했는데, somi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somi: 저도 어려울 것 같아요. 단순히 게임 안의 메시지가 강한지 강하지 않은지를 떠나서, 게임의 플롯을 만들고, 게임 메카닉을 짜고, 그 안에 어떤 그래픽 요소를 넣을지, 음악을 어떤 식으로 배치할지 이런 모든 작업이 저의 일관된 의도 하에 진행이 되고 있는데, 대규모 협업을 한다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제가 게임을 만드는 방식이 처음부터 완전한 기획서를 만들어놓고 a부터 z까지 기획해놓은 상태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고, 때로는 부분부분 생각나는 아이디어들을 만들어놓고 그것들을 조합하는 방식을 즐겨 사용해요. 그 안에서 새로운 가지가 나오고, 그 가지에서 다시 또 게임의 형태를 갖춰 나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게임이 만들어지는데, 그런 것들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사실 저는 그래서 외주를 맡기는 것도 엄청 힘들어해요. 지난번에 <리갈 던전>에서 <그노시아>의 그래픽 디자인을 하시는 코토리 씨께서 일러스트를 만들어주셨는데, 캐릭터들이 너무 이쁘고 이를 통해 사람들의 몰입도가 달라졌어요. 그래서 이번에 게임을 만들 땐 등장 인물들에게 얼굴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 픽셀 아티스트분들을 찾아봤는데요. 제가 어떤 방식으로, 어떤 상황에, 어떤 표정을 짓는 일러스트를 넣을지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생각해놓은 게 아니고, 대사를 쓰다 보면 이렇게 한번 그려봤다가 수정했다가 하는 과정이 반복되다 보니 외주를 맡길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결국 또 저 혼자 그리게 된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이번 작품의 경우에는 구성이 치밀하다는 호평이 자자한데요. 이번 작품도 작은 조합들을 배합하시는 방식으로 구성하신건가요? 아니면 전반적인 큰 구성을 먼저 해두신걸까요? somi: 사실 그 방식은 게임을 만들 때마다 다른데요. 어떤 게임은 문장 하나를 가지고 시작했던 경우도 있고, 필요한 문장들을 겹치다 보니까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던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이번 게임은 처음부터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을 해서 만들었어요. 그래서 처음에 플롯부터 짜서 이야기를 시작했죠. 특히, ‘미제사건으로 남겨달라’는 실종 아동 아버지의 대사로 시작하는 것이 최종적으로 이 게임의 감동이나 재미를 더 배가시킬 것이라고 생각하고 만들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독자분들께서 읽으시고, 게임의 마지막이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해하실 것 같은데요. 마지막으로 <미제사건은 끝내야 하니까>에 대해 간단히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somi: 작가의 말에도 적은 내용인데요. 결국 이 게임을 플레이하시는 분들이 최종적으로 가져가시게 될 이야기일 것 같아서 이야기를 드리자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시대가 각자도생, 약육강식의 방식을 강요하고, 당연시하잖아요? 그리고 분노와 혐오를 부추기고 있는데, 그 안에서 하루하루를 견디면서 살아가고 있는 대다수의 선량한 시민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될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연대하고, 소통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여러분들이 틀린 게 아니고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게임이라고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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