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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란으로 656개 검색됨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이도경

    역대 국회 게임 관련 법안 최다 발의·최다 통과 시킨 것이 자부심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자부심은 와우에서 리치왕 하드모드 서버 퍼스트킬 한 것과 카오스 유명 클랜인 RoMg에서 샤먼을 했다는 사실입... 이도경 이도경 역대 국회 게임 관련 법안 최다 발의·최다 통과 시킨 것이 자부심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자부심은 와우에서 리치왕 하드모드 서버 퍼스트킬 한 것과 카오스 유명 클랜인 RoMg에서 샤먼을 했다는 사실입... Read More 버튼 읽기 QUOVADIS, 게임법 - 국회 안에서 바라본 게임법 진행의 경과와 미래 물론 전부개정안의 모든 내용이 정답이라는 것은 아니다. 발의하고 보니 보완해야할 부분들도 여럿 보였다. 특히 국내대리인지정제도는 더욱 강화해서 발의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부개정안에 빠져 있거나 부족한 부분들은 심사 과정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수정될 것이다. 또한 다른 게임법 일부개정안과도 병합심사되어 더 좋은 내용으로 고쳐질 것이다. 이를테면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서는 컴플리트 가챠 규제 법안이나 이용자 권익보호위원회 규정 법안과 함께 병합심사 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느릴지언정 멈추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꾸준히 내딛고 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국민의 꾸준한 관심은 국회를 일하게 한다. 버튼 읽기 Beyond the K-Game 우리의 게임 실력이 가장 빛을 발할 때가 있다. 원코인, 즉 마지막 기회가 주어진 상황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플레이 할때다. 다양한 BM을 도입하고 새로운 시도들을 해야 한다. 다행히 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마일게이트는 인디 게임을 위한 플랫폼을 만들었다. 넥슨은 참신한 도전을 위해 서브 브랜드를 만들었다. 심지어 여기서 만들어진 ‘데이브 더 다이브’는 스팀 인기 순위 1위에도 등극했다. 네오위즈 ‘P의 거짓’은 게임스컴 어워드 3관왕에 올랐다. 하면 된다. ‘Here comes a new challenger’어린 시절 오락실에서 거듭된 패배에 굴하지 않고 다시 동전을 넣던 정신이 필요한 시기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jian deng (邓剑)

    He is a post-doctoral researcher at the Graduate School of Journalism and Communication at Peking University. It deals with digital game culture research as its main interest, and continues to publish columns on games in 闻湃澎. jian deng (邓剑) jian deng (邓剑) He is a post-doctoral researcher at the Graduate School of Journalism and Communication at Peking University. It deals with digital game culture research as its main interest, and continues to publish columns on games in 闻湃澎. Read More 버튼 읽기 8bit era in china This article looks to the 8 bit gaming history in China to illuminate the Chinese gaming industry of today, one that earned 2786.87 billion yuan in 2020 (GPC et al. ) . While becoming the world's largest game market, Chinese gaming industry has also attracted worldwide attention. However, despite our fascination with the great success of the Chinese gaming industry in the 21st century, we should not forget the road ahead. Looking back on the early challenges that China's 8 bit gaming industry ever faced is an essential prerequisite for us to understand the industry’s current success. Therefore, this paper will analyze the Chinese 8 bit game and its history. 버튼 읽기 古典名著邂逅现代科技: 《黑神话:悟空》与中国的3A游戏想象 但就在这“一切朝钱看”的时代与产业环境里,名不见经传的《黑神话:悟空》(흑신화:손오공,后文简称《黑神话》)却在2020年8月20日如电影《大话西游》(대화서유)里“身披金甲圣衣、驾着七彩祥云”的盖世英雄一般横空降世,不仅搅动整个中国游戏业,甚至点燃了社会舆论对中国游戏业的期待。人们在民族主义情绪的激荡下,憧憬着古典文学《西游记》与现代科技虚幻引擎(Unreal Engine)的“邂逅”能第一次铸就伟大的中国3A游戏。

  • <다키스트 던전>을 <다키스트 던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개발진이 어째서 전작과 후속작의 틀을 바꾸고자 했는지. 어떤 요소들이 이 결정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아야만 결정이 왜 내려졌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조금 더 나아가자면, ‘무엇이 다키스트 던전을 각별하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 Back <다키스트 던전>을 <다키스트 던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21 GG Vol. 24. 12. 10. 지난 2021년 10월. 에픽 게임 스토어를 통해서 얼리 액세스를 시작한 ‘다키스트 던전 2’는 전작을 즐겼던 팬들에게는조금 당혹스러운 모습과 같았다.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전작의 연장선에 자리한 작품이었음에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플레이 방식을 채택했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다키스트 던전 2의 플레이는 조금 더 로그라이트에 가깝게 변했으며, 전작의 핵심 시스템이라 할 수 있었던 영지 관리와 같은 매니지먼트 요소를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플레이어들의 기대감을 정면으로 반하는 것임과 동시에, ‘대체 왜 이렇게 바꿨는가?’하는 질문을 낳기에는 충분했다. 사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개발진이 그렇게 만들고 싶어서’라는 문장으로 방향성을 일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문장 만으로 모든 것이 정리되는 것은 아니다. 개발진이 어째서 전작과 후속작의 틀을 바꾸고자 했는지. 어떤 요소들이 이 결정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아야만 결정이 왜 내려졌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조금 더 나아가자면, ‘무엇이 다키스트 던전을 각별하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우선, 전작인 다키스트 던전 1의 플레이를 잠시 떠올려보자. 전작을 떠올렸을 때, 가장 앞에 자리하는 것은 역시나 무척이나 어려운. 난도 있는 게임 플레이가 될 것이다. 다키스트 던전 1은 플레이어의 결정이 무게감을 가지는 타이틀로 설계되어 있다. 한 번의 실수가 파티를 사망으로 인도하며, 여차하면 잘 육성된 파티를 잃고 키보드를 내려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나올 정도였다. 다키스트 던전 1이 가지고 있는 높은 난도는 ‘운’으로 대표되는 확률이 가장 중심에 자리한다. 운에 따라서 플레이는 극단적으로 갈린다. 한 대만 때리면 되는 상황에서 파티가 두 바퀴를 돌 때까지 빚맞춤이 뜬다거나. 어느 순간 갑작스레 데스 블로우를 맞아서 캐릭터가 상태 이상에 빠지는 등의 플레이를 마주한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운은 플레이어 뿐만 아니라 적에게도 적용된다. 적에게 운이 제대로 적용될 때에는 다른 타이틀에서 느끼기 어려운 각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단초로 작동한다. 위기의 상황에서 캐릭터인 영웅이 모든 스트레스와 부정적인 영향을 극복하고 적을 순식간에 제거할 때의 쾌감이 대표적이다. 운은 플레이어에게 있어서 부정적인 것으로도 작동하지만, 한편으로는 플레이에게 잊을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내는 요소임은 분명했다. 개발진이 말하는 ‘도전과 영웅적 승리’라는 지향점이 각별하게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운이라는 것은 플레이어가 실패와 시도를 누적하는 것을 통해서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는 영역으로 다뤄졌다. 던전에서 획득한 재화와 보상들을 이용해 영웅들을 육성하며, 조금 더 나아진 상태에서 다음 던전으로 출발할 수 있는 구조가 대표적이다. 마을 경영 콘텐츠들은 플레이어가 마주하는 ‘운’ 들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는 영역에 두도록 만들었다. 마치 처음에는 20면체 주사위를 굴리다가, 시간이 지나며 16면체로. 그 다음은 8면체로 조금씩 확률을 개선하는 방식이다. 여전히 운이라는 형태에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플레이어가 마주하는 결과물이 조금씩 제어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게임 플레이는 점차 통제 가능한 영역이 늘어나고 궁극적으로는 다키스트 던전 1의 끝에 도달하는 경험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마을 경영은 본질적으로는 타이쿤 장르와 같은 매니지먼트 형태를 가지게 됐다. 세부적인 수치를 조절하고 여분의 자원을 쌓고. 이를 적절하게 분배하는 플레이에 가깝다. 그렇기에 다키스트 던전 1은 후반부로 들어설수록 초반과는 다른 결의 정체성을 보여주게 된다. 통제 가능한 영역이 충분히 늘어나고. 플레이어가 게임 과정에 익숙해졌다면 다키스트 던전 1은 자원을 투입하고 거기서 보상을 얻는 플레이의 반복이다. 운을 어느 정도 감안해 전략을 세울 수 있는 시점부터 영웅과 파티는 하나의 캐릭터가 아니라 인적자원과 같이 다뤄진다. 이 즈음부터 효율적으로 자원을 파밍하고 변수를 교정하며 제어하는 과정은 주력 인적자원이 더 나아가기 위한 자산을 축적하는 과정인 셈이다. 이 즈음부터 플레이어의 선택과 실수. 그리고 변수를 통제하는 과정이 가장 앞에 자리하며 다키스트 던전 1이 추구하던 ‘도전과 영웅적 승리’라는 조금씩 희석된다. 플레이어는 게임에 익숙해져서 긴장감 보다는 일종의 루틴과 같은 게임 플레이를 하게 되며, 반복 플레이를 통한 자산의 누적으로 인하여 초기와 같은 경험이 유지되지는 않는다. 개발사인 레드훅 스튜디오는 다키스트 던전 1의 이와 같은 플레이를 일종의 한계라고 인식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 그리고 플레이 양상이 영향을 미쳤다. 초반부의 플레이가 각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좋았으나, 후반부로 들어설수록 변수가 통제되고 항상 옳은 결정을 내리는 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더불어 양날의 검과 같이 다뤄지는 변수들이 막대한 진입 장벽으로 작동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흥미로운 것은 맞지만, 플레이어 전략에 맞는 플레이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들어갔으며,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은 게임에서 이탈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전반적인 게임 플레이가 엔딩 까지의 플레이 타임을 가늠하기 힘들게 만들었으며, 꽤 많은 플레이어들은 중간 그라인딩 (파밍) 과정을 넘어서지 못한 상태에서 게임을 중단하기도 했다. 도전 과제를 보면, 이러한 양상은 꽤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초반부에서 중반부. 그리고 후반부로 갈수록 하나의 콘텐츠를 달성한 사람의 비율은 극단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전작의 문제점을 인식한 레드훅 스튜디오는 후속작인 다키스트 던전 2를 통해서 또 다른 형태의 모험을 기획하는 결정을 내렸다. 전작의 변수들이 가져다주는 장점과 단점을 답습하지 않고 형태와 플레이 양상을 완전히 바꾸는 결정을 말이다. 그러면서도 앞서 언급한 ‘도전과 영웅적인 승리’라는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방침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영웅적 승리. 즉, 고난을 넘어서는 행위를 어떻게 그리고 있는가. 그리고 플레이어가 이를 어떻게 극복하도록 할 것인가에 가장 많은 고민을 들였다는 점이다. 자연스레 고난을 마주하고 플레이어의 선택이 결과를 낳고. 이를 통해서 고난을 극복하는 플레이가 핵심이다. 따라서 다키스트 던전 2는 플레이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확률을 조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모든 공격은 변수 없이 확정적으로 적중하기 때문에 게임 플레이는 어느 정도는 플레이어가 예상한 형태로 진행된다. 사전에 수립한 전략이 중요하게 다뤄지는 한편, 토큰 시스템과 스킬 업그레이드의 조합을 통해서 플레이어의 전략 / 전술이 전작과 비교해 더 중요하게 다뤄진다. 확률적인 요소는 ‘지옥으로의 로드트립’이라는 컨셉에 맞춰서 조율이 이루어졌다. 다키스트 던전 2의 게임 플레이를 구성하는 변수들은 무작위 생성을 통해서 제공된다. 하나의 ‘런’으로 구성된 플레이가 자리하며, 플레이어들은 마차에 올라타고 무작위로 배치되는 이벤트와 적들을 마주하는 구조를 택했다. 이러한 점에서 보자면, 다키스트 던전 2는 확률과 변수를 다루는 데에 있어서 전작과는 다른 지향점을 가진다. 확률의 범위를 조금씩 좁혀나가는 것. 또는 반복 플레이를 통해서 통제하는 데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수립한 전략과 전술을 이용해 확률과 맞서는 데에 코어 게임 플레이를 집중한다. 다만, 전략과 전술이 수립되고. 육성이 완료된 상태에서는 전투 자체가 루틴을 갖기 마련이다. 토큰 시스템으로 변경이 되면서 전투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도 줄어들었고 스트레스 관리도 사라지며 전투 과정 자체는 어느 정도 고정되는 경향을 보인다. 모든 것이 통제 상황에 놓일 수 있는 것이다. 개발진은 여기서 캐릭터간의 관계를 플레이어가 제대로 통제하기 어려운 것으로 위치시켰다.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장치로 캐릭터 관계를 넣어두면서 전투와 이후의 플레이는 플레이어의 예상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다. 게임 플레이 과정에서 캐릭터들의 관계는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안정적인 상태에서 전투를 벌이기 어려운 고난으로 작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전작의 단점으로 지적되었던 가늠이 안되는 게임 플레이 시간 / 그라인딩 과정은 거리가 그리 길지 않은 ‘런’을 통해서 보완됐다. 전작 대비 한 번의 플레이 시간 자체는 짧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무작위로 구성된 요소들이 고난으로 제시되고 플레이어가 자신의 구상을 통해 극복하는 것이 핵심인 셈이다. 반복 플레이에서 누적되는 요소들은 마을이 아니라 ‘캐릭터’에게 집중한다. 이 또한 개발진의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전작이 대략적인 세계관이나 분위기에만 집중했다면, 후속작에서는 각 캐릭터들을 세부적으로 설정하고 활용한다는 의도이기도 하다. 플레이가 누적되면서 캐릭터의 능력이 강화되는 것과 함께, 캐릭터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제시되는 것이 대표적인 요소다. 전작의 영웅들은 이제 이름으로 불리며, 인적 자원이 아니라 고난을 극복하고 성취하는 히어로에 가깝게 다뤄진다. 런의 반복을 하는 과정에서 캐릭터들은 각자의 이야기와 관계를 플레이어에게 전달하며 캐릭터 자체의 매력과 설득력을 만드는 과정을 거친다. 인적 자원에서 어떠한 기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 되는 과정과 같다. 이렇게 캐릭터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과 여기에 곁들여서 세계를 여행한다는 가치는 다키스트 던전 2의 변화에 영향을 미친 또 다른 지향점 중 하나이기도 하다. 마을 하나에서 이야기가 끝났던 전작과 다르게, 다키스트 던전의 세계를 한층 더 넓게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실제로 얼리 액세스 기간 동안 다키스트 던전 2가 지향했던 변화들은 제대로 적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흥행과는 별개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개발진이 구축했던 플레이들은 각 요소들이 제대로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캐릭터들의 이야기와 함께, 역경을 넘어 승리라는 쾌감을 제공하는 것에는 성공했다는 평가를 내릴 만하다. 결국, 게임 플레이가 바뀌었어도 ‘도전과 영웅적인 승리’라는 가치는 다키스트 던전 2에서도 고스란히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메커닉이나 실제 게임 플레이 양상이 크게 바뀌기는 했지만, 개발진이 제시하고자 했던 가치는 여전하다. 갑작스레 큰 성공을 거둔 인디 타이틀틀이 시리즈로 더 나아가기 위한 발판을 만들었고, 다방면으로 확장될 수 있는 여지를 명확하게 남기고 있다. 그리고 현재. 다키스트 던전 2는 현재 준비 중인 무료 업데이트를 통해서 전작과 비슷하지만 또 다른 결에 자리한 신규 게임 모드 ‘킹덤스’를 준비 중에 있다. 다키스트 던전 2의 원래 모드가 개발진의 의도에 부합하는 것이었다면, 킹덤스의 신규 모드는 전작을 플레이 했던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아들인 결과처럼 보인다. 전작의 영지 관리와 다키스트 던전 2의 플레이가 어느 정도 합쳐진 신규 모드는 다키스트 던전 2와는 다른 또 다른 변화이기도 하다. 2021년 에픽 게임즈에서 얼리 액세스를 출시한 이후 정식 발매까지 3년의 시간이 걸린 만큼, 이제 월드 전반을 더 확장한다는 의도에 맞춰 변화를 가미했다. 그간 쌓아온 것들을 바탕으로 세계와 캐릭터. 그리고 여러 게임 플레이를 동시에 잡겠다는 의도다. 전작의 코어 플레이였던 영지 관리는 그 개념을 변용해 킹덤스에 들어갔으며, 그간 런을 통해 이야기를 쌓은 캐릭터들은 해당 모드에서 전작과 마찬가지로 인적 자원과 같이 다뤄진다. 전작에서 아쉬웠던 점들을 기존 모드의 게임 플레이에서 보충했던 만큼, 이후에는 플레이어의 니즈에 맞춰 관리적인 측면을 늘리겠다는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정식 출시 이후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면, 다키스트 던전 2의 변화는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 다분히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결정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전작의 거대한 진입 장벽이 되었던 변수를 조율하는 한편, 한 번의 플레이 시간을 낮추는 결정. 그리고 형태가 크게 달라졌음에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고난을 극복하며 달성하는 영웅적 승리’를 유지하기 위한 수많은 고민이 들어가 있다. 그렇기에 다키스트 던전 2는 이 영웅적 승리가 게임 세계관 측면에서 보다 설득력을 갖도록 만들기 위한 과정인 것이며, 동시에 영웅적 승리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맛볼 수 있도록 장벽을 낮추기 위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두 작품에서 이 가치는 그대로 계승되어 있다. 단지 형태가 다를 뿐이다. 플레이어가 고난을 마주하고 극복하도록 만드는 게임 디자인 측면에서의 방법론. 고난을 극복하고 영웅적 승리를 달성했을 때의 경험. 이것이 같은 방향에서 자리하고 있기에, 다키스트 던전 2를 후속작이라 말할 수 있는 이유가 될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정필권 농부이자 제빵사이자 바리스타. 현재는 게임 기자로 글을 쓴 지 8년차 입니다. 한정된 시간 안에서 최대한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바라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 [Editor's View] 생존본능에서 장르에 이르기까지의 공포

    공포는 흔히 생존본능에서 만들어졌다고들 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위험한 것들을 피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우리는 위험을 보고 무서움을 느낍니다. 덕분에 살아남아 다양한 기술을 발전시킨 인류는 실존하는 위험으로부터 무서움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분리해내기에 이르렀고, 많은 예술을 통해 분리된 감정은 호러라는 장르를 만들기에 이르렀습니다. < Back [Editor's View] 생존본능에서 장르에 이르기까지의 공포 19 GG Vol. 24. 8. 10. 공포는 흔히 생존본능에서 만들어졌다고들 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위험한 것들을 피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우리는 위험을 보고 무서움을 느낍니다. 덕분에 살아남아 다양한 기술을 발전시킨 인류는 실존하는 위험으로부터 무서움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분리해내기에 이르렀고, 많은 예술을 통해 분리된 감정은 호러라는 장르를 만들기에 이르렀습니다. 디지털게임에 이르면 호러는 한층 더 강력해집니다. 게임은 플레이어를 공포의 현장 한가운데에 밀어넣기 때문에 많은 경우 게임에서의 공포는 관조가 아닌 개입과 참여를 통해 전달됩니다. 무서운 것을 보는 것과, 직접 무서운 일을 일으키거나 맞닥뜨리는 것의 차이는 결코 작지 않을 것입니다. 역대급 폭염이 덮친 2024년 8월 GG의 탐색은 호러를 향합니다. 후발 매체로서 디지털게임은 공포라는 감정을 자신이 매우 잘 다룰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상태에서 많은 기존 매체들의 문법을 학습해 왔고, 게임 특유의 호러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적지 않은 수로 쏟아지는 공포 게임들이 이 실험과정의 활발함을 보여주는 단서들일 것입니다. 한켠에서는 무서워서 공포 게임을 손도 못 대는(저를 포함합니다) 사람부터, 호러 게임을 아무렇지도 않게 늘상 붙잡고 있는 마니아까지의 다양함을 다 담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게임에서의 호러가 어떤 의미인지를 폭염 속에서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이번 19호를 기점으로 GG는 만 3년을 채웠습니다. 게임에 관한,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가 나름의 영역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끊이지 않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놀라곤 합니다. 그러나 아직 한국에서 디지털게임을 무겁게 이야기하는 일은 성에 차는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에 GG는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이 멉니다. 걸어온 길보다 더 머나먼 앞날의 길에도 독자분들과 함께 걸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는 9월 초까지 진행되는 게임비평공모전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펑텐샤오 彭天笑

    펑텐샤오 彭天笑 펑텐샤오 彭天笑 Read More 버튼 읽기 <고룡풍운록>을 통해 보는 무협추리게임 <고룡풍운록>은 무협과 추리를 어떻게 결합시켰을까? 이 무협 추리 게임은 어떤 역사가 누적돼 탄생한 걸까? 어떻게 해서 과거의 토대 위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혁신할 수 있었는가? 이 글은 <고룡풍운록>의 내용, 역사적 맥락, 혁신적인 디자인 및 윤리 개념의 4가지 관점을 통해 독자들에게 이 게임의 핵심을 보여주고자 한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Mạnh Toàn Hồ

    Centre for Interdisciplinary Social Research, Phenikaa University, Ha Noi, Viet Nam Mạnh Toàn Hồ Mạnh Toàn Hồ Centre for Interdisciplinary Social Research, Phenikaa University, Ha Noi, Viet Nam Read More 버튼 읽기 Of green gaming and beyond Since 2020, customers buying a new iPhone no longer have a charger included in the box. According to Apple, this omission was aimed at reducing packaging waste as well as e-waste. The company explained that this move means it has to consume fewer raw materials for each iPhone sold, and it also allows for a smaller retail box, which means 70 percent more units can fit on a single shipping pallet, thereby reducing carbon emissions (Calma, 2020).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이민주

    이민주는 서양화와 미술이론을 전공했다. 글 쓰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꾸린다. 퍼포먼스와 퍼포먼스 도큐멘테이션의 관계를 짚은 《동물성 루프》(공-원, 2019, 공동 기획), 다큐멘터리 이미지의 미학성과 정치성을 조명한 《논캡션 인터뷰》(의외의조합, 2021, 기획),  연극의 형식을 빌어 전시의 사건성을 모색한 《#2》(두산갤러리, 2023, 공동 기획)를 기획했다. 이미지가 만드는 사건과 수행적 성질에 주목하며 비평적 글쓰기를 고민하고,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의 번역 관계를 연구한다. 이민주 이민주 이민주는 서양화와 미술이론을 전공했다. 글 쓰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꾸린다. 퍼포먼스와 퍼포먼스 도큐멘테이션의 관계를 짚은 《동물성 루프》(공-원, 2019, 공동 기획), 다큐멘터리 이미지의 미학성과 정치성을 조명한 《논캡션 인터뷰》(의외의조합, 2021, 기획), 연극의 형식을 빌어 전시의 사건성을 모색한 《#2》(두산갤러리, 2023, 공동 기획)를 기획했다. 이미지가 만드는 사건과 수행적 성질에 주목하며 비평적 글쓰기를 고민하고,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의 번역 관계를 연구한다. Read More 버튼 읽기 [게임과 예술] 로딩중인 세계의 권태와 노동에 관한 소고 상희는 유희와 즐거움의 이미지로서 소비되던 게임의 형식을 빌려 디지털 산업 사회에서 노동하는 신체에 관한 감각을 이야기한다. 나아가 즉각적인 쾌락과 만족, 완전히 개인화된 세계에서 내면적 사유로서 ‘권태’가 가진 정서를 재조명한다. 버튼 읽기 상상된 공간의 지도화: 가상공간의 전시와 도식화 “지도는 영토보다 흥미롭다.”1) 프랑스 소설가 미셸 우엘백(Michel Houellebecq)의 문장이다. 영토가 위상학적 차원에서 물리적인 땅과 장소를 가리킨다면 지도는 그 땅을 표상하는 이미지다. 지도는 왜 영토보다 흥미로운가?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의 평면으로 기호화 하는 작업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지도는 신체와 물리적인 공간을 서로 마주하게 만드는 일종의 ‘인터페이스’(inter-face)로 기능하며, 현상학적 맥락에서 분리할 수 없는 공간적 경험을 하나의 대상으로 삼게 만드는 매개가 된다. 아마도 우엘백이 말한 ‘흥미’는, 실재 세계를 매핑(mapping)하는 인식론적 태도와 세계를 이미지로 상상하는 형식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Phan Quang Anh

    Phan Quang Anh Phan Quang Anh Read More 버튼 읽기 [Paper Seminar] The Legacy Goes On: Wuxia and its impact seen in the gaming landscape of Vietnam Wuxia represents the martial arts and fantasy literary subgenre that dominates East Asian and Southeast Asian cultures (Chen, 2009), especially where Chinese-speaking societies are founded, or the trace of Chinese culture is recorded. The Chinese martial arts and heroics of ancient times take place in wuxia stories that have expanded into various media such as literature and movies and television programming. Wuxia under its local names kiếm hiệp and truyện chưởng has established itself as an important cultural phenomenon in Vietnam. Wuxia fiction introduced in Vietnam during the early 20th century experienced various historical transitions through print media and online gaming until reaching its current state. The current wuxia content in Vietnamese video games will be examined through an investigation of how wuxia originated historically from its literary heritage. This article has the life course approach and concepts like nostalgia and cultural proximity recruited to study the influence of early wuxia experiences on current gaming choices in Vietnam.

  • 게임으로 관객에게 말걸기 -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관람기

    필자는 게임제너레이션으로부터 "북서울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에 대한 게임전문가 관점에서의 리뷰"를 요청받았다. 고백하건대 필자는 게임전문가도, 미술애호가도 아니다. 그러니 여기서 잘못 주름을 잡았다가는 큰 코를 다칠 게 뻔했다. 하지만 북서울미술관은 필자의 집 앞이었던 데다, 고료의 유혹이 상당했다. 그렇게 흔쾌한 척 '퀘스트'를 수락했지만, 이 주제에 적당한 '레벨'인지 자문한다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 Back 게임으로 관객에게 말걸기 -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관람기 12 GG Vol. 23. 6. 10.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야기는 하고 싶어 필자는 게임제너레이션으로부터 "북서울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에 대한 게임전문가 관점에서의 리뷰"를 요청받았다. 고백하건대 필자는 게임전문가도, 미술애호가도 아니다. 그러니 여기서 잘못 주름을 잡았다가는 큰 코를 다칠 게 뻔했다. 하지만 북서울미술관은 필자의 집 앞이었던 데다, 고료의 유혹이 상당했다. 그렇게 흔쾌한 척 '퀘스트'를 수락했지만, 이 주제에 적당한 '레벨'인지 자문한다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북서울미술관 전시실 1, 2에서 진행 중인 특별전시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는 관람객이 플레이어가 되어 전시장 곳곳의 작품들과 상호작용한다는 콘셉트를 가진 기획이다. 작품들은 '게임적' 연출이 되어있어서 관람객의 개입을 유도한다. 여섯 작가(팀)는 곳곳에 '게임적'인 맥락을 삽입해 문제 해결의 재미를 집어넣었다. 여기서 '게임적'은 "플레이어에게 더 많은 상호작용을 요구하는 ‘이머시브 시뮬레이션’ 게임"을 추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팸플릿에서는 이번 전시에 대해 "이머시브 심에서는 플레이어가 환경의 거의 모든 요소와 상호작용한다. 플레이어는 정해진 공략을 반드시 따르지 않더라도 자율성을 갖고 새로운 규칙을 발견하며 독창적인 플레이를 펼칠 수 있다. 시행착오를 통해 숙련도를 쌓으며 게임의 세계관에 더욱 몰입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근데 어쩔 건데? 보라색 장막을 걷고 안으로 들어가면, 오픈 월드에 던져진 듯 아리송하다. 시작하자마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한 바퀴 둘러보고 나가도 자유고, 하나의 전시에 1시간을 쏟아도 자유다. 게임에서도 그렇듯, 높은 자유도는 플레이어에게 '여기서 뭘 어쩌라고'라는 긴장감과 '어디까지 되나 보자'는 해방감을 준다. 필자는 오픈 월드 게임에서 금지된 사랑, 수급(首級) 모으기, 전부 죽이기, NPC의 이상 행동 유발 같은 ‘사문난적’ 플레이를 즐기는 편인데, 무슨 짓거리를 했는지는 뒤에 설명하도록 한다. 윤지원 작가는 〈관객에 대한 절대적인 작용〉이라는 비디오 아트에서 "예이젠시테인이 이야기한 유기성과 파토스를 충족하는 방식으로 제작했다"고 한다. 견문과 학식이 짧기 때문에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이 누군지, 유기성과 파토스란 어떻게 충족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스크린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1) . 그 작품 맞은편의 〈무제(관객에 대한 상대적인 작용)〉에서는 한국이나 홍콩을 촬영한 다섯 푸티지가 재생되고 있다. 두 작품 사이에서 아이들은 모래를 만지며 놀고 있었다. 이곳에서 필자의 '반응'은 이것이었다. ― 하품하기. 모든 '게임적'인 것들이 그러하듯이, 제작자는 플레이어를 완전히 방치하는 않는다. 창작자들은 으레 자신의 메시지를 은근하게 숨겨놓지만, 수용자들이 그 고갱이를 조금씩 맛보고 '얻어가는 게 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팸플릿과 볼펜은 '공략'에 아주 많은 도움이 된다. 지도와 가이드, 카드로 구성된 알찬 전시 팸플릿은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는 전시에서 '이렇게 해보는 건 어때요?'라는 가이드를 제시한다. 플레이어는 가이드를 통해 자신만의 관람 지도를 그리고, '보상'을 획득하기도 한다. 필자는 어디에도 경고 문구가 없었기 때문에 팸플릿과 볼펜을 집에 가져왔는데 분명히 '얻어가는 게 있'었다. 인터넷산악회 팀은 다소 적극적으로 '호보연자 심조불산' 2) 을 주장하고 있다. 플레이어는 손을 뻗어 전시물을 지우거나 Y/N의 대답을 거쳐 뉴스를 접하게 되는 등 플레이를 통해서 산악회가 전하고자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전시실 2에서 모든 비디오 아트를 관람하지는 못했지만, '산'은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한다. 이들은 경전철을 타고 북한산에 가면서 "등산이 피식민의 정체성을 뚫고 한 세기 동안 하나의 문화로 뻗어가는 과정"을 탐구한다. 가리왕산의 원시림이 평창 동계올림픽 알파인 스키 경기 때문에 파괴되는 다큐멘터리도 볼 수 있었다. 배드램(Badlamb)의 〈Gula〉가 배경음악으로 깔리는데, 날카로운 기타 리프와 에디 베더가 연상되는 보컬의 절규와 함께 나무들이 무참하게 잘려 나간다. 여담이지만 이 가리왕산 원시림 문제는 아직 진행형이다. 정선군은 올림픽 이후 가리왕산의 자연생태 복원을 약속했지만, 선수들을 태우던 리프트를 관광용 케이블카로 활용하려 하고 있다. 3) 인터넷산악회는 관람객을 전시장 바깥으로 안내하고 있다. 무슨 이야기냐면, 가서 보면 안다. 은근히 민중가요 권하는 전시? 전시장 한편에 쌓여있는 흑백 A4 유인물은 공식(?) 팸플릿보다 조금 더 노골적이다. 누가 썼는지 모르겠지만, 가이드 이상의 '해법 제시'에 가깝다. 전시장이 어두웠기 때문에 챙겨둔 다음에 집에 돌아와서 읽어봤는데, 전시를 어떻게 보면 좋을지 '선동'한다. 어떤 유인물에서는 "정의감이 불탄다"라며 "조용한 곳에서 혼자 들을 수 있다면" 정윤경의 〈시대〉를 들어보라고 한다. 또 어떤 유인물에서는 북서울미술관이 〈상계동 올림픽〉이 촬영된 곳과 가깝지 않으냐며, 다큐멘터리를 보기를 권하고 있다. "우리는 주체로서 서로를 응시하는 거야"라는 "전시를 애니미즘처럼 보는 방법"도 제시되고 있다. 샘 발로우의 〈이모탈리티〉는 그냥 게임 그 자체다. 인터랙티브 필름으로 플레이어는 수십 년에 걸쳐 기록된 클립을 보면서 주인공에게 일어난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야 한다. 그러나 게임의 분량은 10시간에서 15시간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관람객은 이 게임의 엔딩을 볼 수 없다. 누군가 패드를 잡고 있을 때 나머지 관람객들은 마냥 기다리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것 자체가 '눈치게임'이다. 〈타이틀 매치〉라는 유인물에서는 "게임이라는 것은 블루투스처럼 나와 1:1로 대응한다. 내가 플레이하는 동안 다른 사람은 이용할 수 없다. (중략) 그런 면에 있어 샘의 작업은 충분히 작동한다. 보고 추리하고 상상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이야기"라고 해설한다. 이 글을 쓴 사람은 블루투스의 멀티페어링 기능을 모르고 있나 보다. (농담이다.) 비록 답을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미술관에서 작품 앞에 멈추어서 의도를 추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게임 연구자 제스퍼 율(Jasper Juul)이 내린 게임에 대한 매체적 특성을 미술관과 서울이 동시에 정신을 빼앗아 가는 오늘에 적용해 볼 수 있다. 게임의 정의는 새로운 게임과 플레이어의 등장, 매체적 환경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빠른 속도로 변화 및 갱신된다. 그러나 게임만이 가질 수 있는 매체적 특성은 세 가지로 추릴 수 있다. 첫째 규칙과 장애물이 있을 것, 둘째 특정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절차를 가질 것이다. 셋째 경쟁 과정을 거쳐 반드시 특정 승부로 귀결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미술관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 보상이 있다. 승부로 귀결되지는 않지만 규칙이 있고 장애물이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일종의 제의(ritual)와 습관(habit)으로서 미술관에서도 적절한 멈춤과 플레이가 있다." 4) 아무튼 시간이 많다면, 이들의 관점으로 전시를 톺아보는 것도 좋다. 필자는 등산스틱으로 TV 전원을 켜느라 10분을 헤맸지만. (끝내 영상을 재생하는 데 실패했다.) 풍선을 불어도, 돌탑을 쌓아도. 안타깝게도 필자에게 이번 전시의 의미를 짚어낼 ‘전문가’적 역량은 없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는 어떻게 즐겨도 좋은 전시다. 예쁜 풍선을 불어서 가지고 나갈 수 있다. 돌탑을 쌓으면서 소원을 빌어도 좋다. 망원경을 들고 전시장을 둘러봐도 좋다. 관람 안내문에서 기획팀은 “미술관을 떠날 때 현대미술을 이해할 것이라고 진정으로 믿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필자 같은 사람은 뒤집어 놓은 변기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죽을 때까지 모르겠지만, 모든 미디어가 그러하듯이 현대미술이라는 것도 결국 관람객에게 말을 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는 지도와 활동지, QR코드, 대형 스크린, 엑스박스, 전단지, 모래와 돌멩이 등등을 동원해서 말을 걸고 있다. 일단 게임을 시작하면 상호작용은 시작된다. 오픈 월드에 ‘자유도’는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자유’는 없다.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는 있지만, 칼 존슨(GTA 산 안드레아스)처럼 자동차를 훔칠 수는 없듯이 결국 프로그램의 한계와 제작자의 의도 안에서 기능하고 활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상호’작용을 완성하는 것은 수용자다. ‘모딩’을 통해서 플레이어가 나름의 의미를 완성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기획팀이 걸고 있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어떤 것인지는 플레이어의 플레이에 따라서 결정될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답해보려고 하는가? 그렇다면 7월 9일까지 노원구 북서울미술관으로 가면 된다. 프리 투 플레이로 입장료는 없으며, 부분유료화 BM(비즈니스 모델)은 없다. 월요일은 미술관이 놀기 때문에 관람객이 가서 놀 수 없다. [부록] 필자의 기행 모음 ▲ 스마트폰 배터리가 없어서 지도를 읽는 척하고 잠시 충전했다. ▲ 1층 어디선가 전화가 걸려 오는데, 뭐라는지 듣지 않고 끊어버렸다. ▲ 확인 결과, 발신은 막혀있었다. ▲ 풍선을 불다가 터뜨리고 말았다. 온 전시장에 풍선 터지는 소리가 울렸다. 실수에 가까웠지만 묘한 쾌감이 들었다. ▲ 지우개에다가 낙서를 했다. ▲ ‘전단을 발견한다면 절대 전화하지 마세요’라길래 전화를 걸어봤다. 진짜 있는 번호였다. ▲ 망원경 초점을 전부 풀어버렸다. ▲ 영상이 상영 중인 2층에 이스터 에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계속 걸어 다녔다. ▲ 뒤에 사람이 기다리는 줄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 〈이모탈리티〉를 플레이했다. 5) ▲ 스티커를 이상한 곳에 부착했다. 1)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은 소련의 영화감독으로 〈전함 포템킨〉의 감독으로 유명하다. 그는 〈영화의 구조〉(1939)에서 관객을 '엑스타시'로 이끄는 '파토스'를 창작의 기본이 되는 원리라고 주장한다. 2) 뒤집어서 읽으면 ‘산불조심 자연보호’. 3) 하상윤 (2023. 03. 05.), "원시림 복원 대신 관광용 케이블카... 가리왕산의 비애", 〈한국일보〉 4) 〈왜 악동은, 알고 보면 착한가 ― 미술관과 ‘파라큐레토리얼’〉 작자 미상. 5) 샘 발로우의 〈이모탈리티〉는 스팀에 이미 출시되어있으며 한국어 빌드가 있다. 필자는 그 사실을 알고도 계속 게임패드를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Tags: 북서울미술관, 전시, 미술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김재석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권태현

    글을 쓰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예술계에서 활동하지만 쉽게 예술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것들에 항상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예술 바깥의 것들을 어떻게 예술 안쪽의 대상으로 사유할 수 있을지 탐구한다. 정치적인 것을 감각의 문제로 파악하는 관점에 무게를 두고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7000eichen@gmail.com) 권태현 권태현 글을 쓰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예술계에서 활동하지만 쉽게 예술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것들에 항상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예술 바깥의 것들을 어떻게 예술 안쪽의 대상으로 사유할 수 있을지 탐구한다. 정치적인 것을 감각의 문제로 파악하는 관점에 무게를 두고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7000eichen@gmail.com ) Read More 버튼 읽기 그려진 힘, 그리는 힘, 그림의 힘: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와 이미지, 그리고 리얼리즘 클레르 옵스퀴르〉는 그 제목부터 미술과 연관성이 명확하다. 잘 알려져 있듯 클레르 옵스퀴르(Clair-obscur)는 이탈리아어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를 프랑스어로 번역한 것이다. 키아로스쿠로는 chiaro(밝은)와 oscuro(어두운)의 합성어로 빛과 어둠의 대비를 극적으로 사용하는 미술 기법을 말한다. 이탈리아 맥락에서는 카라바조(Caravaggio, 1571–1610)로 대표되는 바로크 양식의 연출을 꼽을 수 있고, 프랑스어인 클레르 옵스퀴르로 번역해서는 촛불 그림으로 유명한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 1593–1652) 같은 경우를 떠올릴 수 있다. 버튼 읽기 지구를 다시 지구로, 지금을 다시 지금으로 만들기: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를 즐기며 테라포밍(Terraforming)이라는 말을 점점 더 자주 듣게 된다. 특히 최근에는 기이한 행동으로 구설수에 오르는 자본가 일론 머스크(Elon Musk)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가 화성을 테라포밍하는 것을 사업의 최종적인 목표로 여긴다는 이야기가 동시대 자본주의 세계의 신화처럼 전해진다. 테라포밍은 말 그대로 어떤 행성을 ‘지구의 형태로 만드는’ 작업을 말한다. 보통은 지구 바깥의 다른 행성을 지구처럼 만들어 인간이 이주하거나, 식민지로 삼기 위한 계획을 이야기할 때 등장하는 개념이다. 버튼 읽기 게임이 대체 왜 예술이 되어야 할까? 『게임: 행위성의 예술』을 둘러싼 이야기들 C. 티 응우옌의 『게임: 행위성의 예술』은 게임에 대한 미학이자 윤리학이다. 그는 우리가 게임을 단지 이기기 위해서만 플레이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제한된 행위성(agency)의 조건을 게임 플레이를 하는 동안 스스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즐기는 분투형 플레이(striving play)가 가능하다는 점은 그의 이야기의 핵심에 있다. 우리는 게임 디자이너가 만들어 놓은 규칙과 환경, 그리고 행위성이라는 형식 안에서 머리 싸매는 고투(struggle)를 즐기기 위해 게임을 플레이하기도 한다. 버튼 읽기 게임 인터페이스로서의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게임사회》 전시 리뷰 ‘게임은 예술인가?’라는 질문이 다양한 담론장을 떠돌고 있다. 게임과 예술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행정과 법의 영역에서도 게임의 위상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히 오가는 중이다. (물론 예술가, 행정가, 정치인, 사업가, 그리고 게이머 각각의 입장과 목표는 모두 다르겠지만) 이러한 정세에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게임 주제전은 중요한 기점이 될 것이기에 일단 《게임사회》라는 전시는 주목할 만하다.

  • 게임커뮤니티가 걸어온 지난 25년과 오늘

    한 세기를 농구 한 경기로 본다면 이제 1쿼터의 막판이다. 쿼터나 25년이라고 하면 엄청 긴 세월은 아닌 것 같지만 사반세기로 지칭해 세기 개념이 오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묵직함이 있다. 한 쿼터도 긴 시간이고 역사의 한 두께다. < Back 게임커뮤니티가 걸어온 지난 25년과 오늘 23 GG Vol. 25. 4. 10. 한 세기를 농구 한 경기로 본다면 이제 1쿼터의 막판이다. 쿼터나 25년이라고 하면 엄청 긴 세월은 아닌 것 같지만 사반세기로 지칭해 세기 개념이 오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묵직함이 있다. 한 쿼터도 긴 시간이고 역사의 한 두께다. 그리고 사람. 두세 자릿수 이상의 사람들이 공통점을 갖고 모인 커뮤니티는 개체수의 조합으로 나올 수 있는 수만큼의 역사가 만들어진다. 이 역사가 사반세기 쌓이면서 이 또한 방대해진다. 가끔은 역사의 요약을 감히 할 수 있는가 겸허함이 들긴 하지만 그 두껍고 넓은 영토를 정리하는 일은 필요할 것이다. 공동체, 커뮤니티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자 목적은 자기 방위다. 부족과 국가는 구성원들을 굶주림과 죽음에서 보호하는 기능이 최적이다. 종교는 그 기능을 위한 질서화 기능과 내면의 평안 기능을 제공하는 커뮤니티다. 반면 동호회를 비롯한 커뮤니티는 방위 기능이 거의 없고 대신 정보와 정서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기능이 더 중요하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경우엔 물리적 모임이 아니기 때문에 방위 기능은 심리적인 것 외에는 없다시피 하다. 그래서 온라인 커뮤니티의 존재 가치이자 1차적 기능은 정보 제공 기능과 정서적 연대 기능이 된다. 그리고 정서적 연대 또한 정보를 나누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그렇게 느슨한 형태의 부족을 형성한 것이 지난 25년 온라인 커뮤니티의 요약이다. 커뮤니티가 성립하면 그 내부에서는 두 가지의 길항 관계가 형성된다. 첫째는 정보 생산 주체가 누구인가다. 지배자, 엘리트 등의 상부에서 유통하는 경우와 민중, 대중 등의 집단 지성이 유통하는 경우로 나뉜다. 대부분의 커뮤니티에서는 두 가지가 모두 작동한다. 한국의 게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이 현상이 나타났는데, 외국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번역하여 가져오고 직접 생산도 하는 소위 ‘기자’와, 비슷한 일을 하지만 커뮤니티 운영 그룹은 아닌 ‘사용자’의 2중 구조다. 운영 그룹에 속하는 생산자들을 기자로 불렀다는 점에서 이는 이 집단이 언론인가 커뮤니티인가를 가르는 정체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정체성의 측면에서 언론 기능에 치우치기를 선택한 대표적 예시가 디스이즈게임이다. 두 번째 길항 관계는 이 운영권에 있다. 커뮤니티가 존속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지불하는 집단, 국가라면 정부다. 운영 관리를 하는 집단은 내부의 질서도 잡아야 하고 그래서 규칙을 제정하여 강제한다. 이 집행 행위를 운영 집단이 직접 하는가와 사용자의 자율이나 사용자 일부에게 위임하는가의 경우가 있다. ‘운영자’와 ‘알바’의 페어다. 후자의 경우엔 서술의 순서를 뒤집으면 그게 곧 민주주의인데, 현실 정치에서도 질서와 자유는 길항 관계로 국가를 조직해간다. 중요한 것은 한계선의 존재인데, 자유가 선을 넘으면 혼돈이 되고 질서가 선을 넘으면 경직이 된다. 0. 20세기, 최초의 게임 커뮤니티 게임 커뮤니티가 온라인에 자리잡기 이전에도 같은 기능을 하는 커뮤니티 혹은 유사 커뮤니티는 있었다. 게임 잡지다. 90년대의 게임매거진, 게임라인 등의 게임 전문 매거진은 게임 정보를 번역하고 게임을 공략하는 기자와 전문 필진을 고용해 컨텐츠를 만들었다. 독자들은 편집부에 편지를 보내는 형식으로 2차 컨텐츠를 만들고 교류를 했는데 특히 게임라인과 그 후신 게이머즈는 동호회의 창작 합평 같은 분위기의 독자 편지 코너를 갖고 있었다. * 단순한 Q&A 외에도 2차 창작물의 공유, 나아가서는 독자 자신과 담당자의 캐릭터성 만담이 이뤄지기도 하는 대화성 코너였다. 비슷한 시기에 PC통신 서비스가 생기면서 게시판을 기반으로 하는 게임 동호회들이 생겨났고, 이것이 곧바로 꽃핀 인터넷 환경의 웹 게시판으로 옮겨갔다. 정보를 번역/생산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는 동호회는 인터넷 환경이 일반화되면서 디시인사이드의 갤러리로 자리를 옮기거나 플레이포럼, 루리웹 같은 팬 기반의 정보 공유 사이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기본 구조는 다들 비슷했다. 게시판 여럿이 병렬로 모인 게시판 집합체의 성격이었는데 이런 표준의 대표는 디시인사이드였다. * 디시인사이드 중세게임 갤러리, 속칭 중갤의 화면 질서 한계선을 높게 두었고, 생산을 사용자에게 일임했고 관리 또한 사용자 중 일부로 대체했다는 의혹도 있다. 게임뿐 아니라 수많은 관심사의 게시판들이 병렬로 모여 있고, 그 수의 게시판을 관리하려면 새로운 게시판이 생길 때마다 추가 인력이 필요하다. 디시인사이드는 기본적으로 직원이 관리를 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방임 정책이었다. 질서의 한계선이 자율에 가깝다 보니 한계가 매우 느슨한 무제한적 자유가 허용되었다. 반면 소속감은 매우 크다. 맹점은 생산되는 정보도, 정보 생산에 기여하지 않는 사용자도 많아. 큐레이팅 기능이 매우 떨어졌고 정치적 정서는 종종 극단으로 흘러갔다는 점이다. 게임 게시판의 대표격인 중세게임 마이너 갤러리가 그러한데, 이 경우엔 후일 악명 높은 일간베스트의 게임 게시판 사용자들을 흡수하기도 했다. 이러한 디시인사이드의 특징, 병렬화/파편화된 게시판 체제와 높은 자유도는 일간베스트, 인벤 등의 후계 주자들이 참고하는 지점이 되어 디시인사이드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대전제로서 존재한다. 1. 00년대 시작, 웹진과 카페 90년대 후반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시기, 정보화 혁명은 커뮤니티를 촉발시켰다. 정보를 번역하고 생산하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모이면서 커뮤니티 운영이 사업 아이템이 될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 프리챌과 디시인사이드를 필두로 한 웹 커뮤니티 시장이 열렸다. 게임만 다루는 커뮤니티 또한 플레이포럼, 루리웹, 그리고 플레이포럼에서 분화된 인벤 등 여러 플랫폼이 사업체 등록을 하면서 판이 시작되었다. 거의 모든 플랫폼의 구조는 디시인사이드에서 온 병렬형 게시판 구조였고, 정보 생산은 기존 정보 번역/생산을 하던 사람들이 기자 혹은 필진이 되어 웹진의 형태를 취했다. 오프라인의 레거시 매거진과 다른 점은 사용자들이 게시판을 기반으로 정보 생산 기여를 한다는 점이었다. 편지보다 훨씬 실시간 소통이 되는 웹의 특성 덕에 기자/필진 외에도 많은 사람이 이런저런 정보를 제보하고, 플레이포럼과 인벤은 이런 컨텐츠를 큐레이팅해 기사 형태로 업로드되어 사이트 첫화면에 이미지 링크도 되었다. 이들은 인기 게임 별로 별도의 하위 사이트를 개설하고 여기에 관련 게시판을 정리해서 넣어두는, 나무뿌리 형태의 계층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가장 붐비는 곳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다루는 와우플포와 와우인벤이었다. 사이트 첫화면이라는 개념이 없는 구성의 디시인사이드와 루리웹은 게시판 상단에 고정글로 올려두는 방식을 택했고, 이후 추천글 목록이라는 별도의 위젯 시스템으로 발전해갔다. 후발주자인 인벤의 2004년 창립 다음 해에 디스이즈게임이 창립했지만, 시작부터 언론 기능에 치중하며 시작했던지라 커뮤니티 기능은 약했다. 이제 시작한 시장에 파란이 없을 수 없다. 시장 형성 직후인 2002년에 선두 주자였던 프리챌이 유료화라는 무리수를 던졌다가 비참하게 사라졌다. 경쟁자였던 포털 사이트가 이 커뮤니티 수요를 대거 흡수했다. 다음, 뒤이어 네이버가 내놓은 카페라는 이름의 커뮤니티 서비스가 대세가 되었고, 각 게임사는 게임 홈페이지에 커뮤니티 게시판을 열어두거나 아예 포털 카페에 팬 카페를 개설했다. 전자의 의도는 게임을 실행하기 위해 홈페이지에 와야 하는 구조로 만들면서, 커뮤니티 기능 또한 홈페이지에서 소화하는 것이다. 웹진이나 포털의 커뮤니티를 사용하면 데이터 수집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커뮤니티의 트래픽을 감당할 수 있는 규모의 개발사가 이 방법을 썼다. 작은 회사는 다음과 네이버로 갔다. 그래도 게임 커뮤니티의 헤게모니는 웹진과 게시판에 있는 형국이 0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오래 가지는 못했으니, 업계가 너무 빨리 커졌다. 게임의 종류가 많아지고 각 게임의 역사도 깊어지면서, 필요 인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해가 바뀌면 인기 온라인 게임이 대여섯 개씩 새로 출현한다. 업계에 돈이 돌고 시장이 커지면서 스탠드얼론 게임도 대작들이 점점 많아진다. 공략 생산과 정보 큐레이팅에 인력을 추가하는 것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었다. 웹진 모델로는 게임 전반의 정보를 유의미하게 다루기가 어려워져 갔다. 결국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플레이포럼은 탈락했다. * 플레이포럼의 개편 이전 UI 디스이즈게임이 언론 기능을 목표로 삼고, 디시인사이드는 무한 자유의 놀이를 하는 도중, 똑같이 팬 기반의 울티마 온라인 정보 사이트로 출발한 플레이포럼은 실패 사례가 되었다. 트리거가 된 사건은 UI 개편의 실패였지만, 이를 전후하여 시장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징후가 나타났다. 생산과 큐레이팅의 주체를 기자로 고집하면서 생산 주기가 점점 늦어지기 시작했다. 커뮤니티 기능을 과감히 포기한 디스이즈게임이나 처음부터 사용자에게 일임했던 디시인사이드/루리웹과 달리 어느 한쪽을 정하지도 균형점을 찾지도 못하고 개편 실패 이후 2012년 12월 31일 서비스를 종료했다. 플레이포럼의 커뮤니티 기능은 플레이포럼에서 파생되어 나온 후발주자인 인벤이 흡수했다. 2. 10년대의 질서, 게시판의 헤게모니 플레이포럼이 사라지면서 정보 생산의 무게추가 사용자들에게로 옮겨갔다. 기자/필진의 숫자도 사용자에게 밀렸지만, 공략과 분석이 업무이기 때문에 하는 사람들이 들이는 시간은 재미이기 때문에 하는 사람들이 들일 수 있는 시간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인벤, 루리웹, 디시인사이드 등에 이미 모여 있는 사람들이 꾸준히 생산하는 정보의 옥석을 가려내는 큐레이팅 기능이 중요해졌다. 인벤은 발 빠르게 각 게임의 담당 팀을 정보 생산 역할에서 큐레이팅 역할로 변신시키면서 변화에 적응했다. 루리웹과 디시인사이드는 초기부터 이미 직원 및 알바에게 게시판 관리 역할, 즉 게시판 큐레이터를 맡기고 있었다. 이후 인벤은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의 강자, 루리웹은 스탠드얼론 게임 커뮤니티의 강자 역할을 하고 있다. * 와우인벤의 첫화면 플레이포럼에서 분화되어 나온 인벤은 웹진으로 출발했고 현재도 언론 기능의 기본은 유지하고 있다. 사이트 체계부터 UI 구성까지 플레이포럼을 답습하다시피 한 인벤이 살아남은 이유는 적응력이다. 이들은 시시각각 광대해지는 담당 영역을,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빠르게 정보 생산 주체를 기자/필진에서 사용자로 이동시켰다. 이제 기자는 에디터로 변신하여 큐레이션을 담당하게 되었다. 사용자들이 게시판에 자신들의 공략, 분석, 외국 자료의 번역을 올리면 잘 정리된 것을 각 게임 사이트 첫화면에 올려준다. 이전에는 기자/필진들이 작성한 기사의 링크 이미지가 올라가던 자리다. 관리 주체 또한 디시인사이드, 루리웹과 달리 질서 한계선을 더 낮게 그어 제한을 더 두었다. 플레이포럼에서 따온, 회원이 활동량에 따라 아이디의 레벨을 높일 수 있는 구조는 장기간 고정 활동을 장려하고 정도 이상의 일탈을 자제시키는 정책이기도 했다. 또한 인벤은 ‘사건 사고 게시판’이라는 일종의 해방구 공간을 운영했다. 2005년부터 와우인벤을 비롯한 MMORPG 게임 페이지 하위에 개설된 이 게시판은, 게임 내에서 생긴 갈등을 가져와 여론 재판을 받는 재판정이다. 명분은 ‘이러이러한 비매너 유저를 고발한다’고, 따라서 여론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집단 린치나 사이버 불링의 형태도 나타난다. 사건 사고 게시판은 소위 막장 드라마와 같은 길티 플레저이기도 하다. 마음껏 욕해도 되는 수준의 플레이어가 징벌대에 올라오고, 그에게 가학성을 드러낼 수 있고, 가끔은 고발한 사람이 진짜 나쁜놈이었다는 반전도 생기고, 어쩔 때는 고발 당한 플레이어가 억울하다며 등장해 싸우는 등, 온갖 엔터테인먼트가 이 게시판에 있다. 게다가 비난할 대상은 계속 재생산된다. 따라서 해방구가 되는 재판정 혹은 아예 결투장이기도 하다. 또한 합심하여 누군가를 공격하면 그 경험으로 인한 옅은 공동체 의식이 생기게 된다. 여기에 아이디 레벨 제도가 합쳐지면 인벤의 커뮤니티 서비스 전반의 사용량을 어느 정도 보장할 수 있다. * 루리웹의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스 게시판 자유도라는 점에서는 디시인사이드와 같은데, 반면 큐레이팅의 존재와 규칙과 운영은 오히려 인벤에 가까운 것이 루리웹의 특징이다. 루리웹 또한 정보 생산을 사용자들의 게시물에 의존하는데, 이는 인벤과 달리 초기부터 유지한 특징이다. 관리 주체는 운영사와 사용자가 함께 부담하며 이 인력이 큐레이팅도 하는데, 대신 몇몇 붐비는 게시판은 운영사 직할로 관리한다. 큐레이션 능력은 인벤만큼은 아니지만 아예 없는 디시인사이드보다는 나은 정도다. * 블레이드 앤 소울의 자체 커뮤니티 게시판 반면 10여 년의 시간 동안 게임 홈페이지의 자체 게시판은 별 역할이 없었다. 그나마 활성화가 되어도 정보 공유보다는 사용자 결집과 상호작용의 기능 정도만 수행했는데, 그마저도 ‘구 웹진’의 게시판에 빼앗기면서 서서히 도태되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포털로 이동했다. 특히 모바일 게임의 경우엔 이쪽이 더 적합했다. 기술의 발전과 모바일 혁명으로 인해 위젯 기능 적용이 확장되면서, 게임을 실행하고 있는 동시에 옆 위젯으로 잠시 커뮤니티 화면을 불러오는 식의 구현이 가능해졌는데, 포털 대기업의 기술 지원은 이 구현을 용이하게 했다. 그러니 2018년 말, 또 한 번의 파란이 일었다. 게임사가 운영하는 게임 카페에 대해 네이버가 유료화 모델을 시도한 것이다.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으면 카페의 상단 광고에 다른 회사 게임 광고를 노출시킨다는, 감탄이 나오는 전략에 몇몇 회사들은 포털을 탈출했다. 다시 자체 커뮤니티를 시도했고, 역시 이쪽이 회사 입장에서는 데이터 확보가 가장 편한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대세가 된 것은 더욱 혁신적인, 아예 게시판 기반 체제를 버리는 방안이었다. 3. 10년대 후반에서 20년대, 게시판 너머의 채팅방 어차피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은 사용자들이다. 개설과 존속에 드는 비용은 어느 회사인가가 댈 수 있지만 사람들이 모이도록 만드는 것은 비용 이상의 무엇이다. 그리하여 회사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와 별개로 사용자들은 새로운 플랫폼인 메신저에 주목했다. 그리하여 떠오른 커뮤니티 시장의 새 강자는 메신저, 특히 디스코드다. * 디스코드 채팅방에 개설된 아르테일의 채널 (출처: 게임인사이트, “활성화되어 있으나 원하는 정보를 찾기 까다롭다”는 캡션이 있다) 텍스트와 음성 채팅 두 가지를 기반으로 하는 디스코드의 체계는 게시판과는 다른 장단점을 가진다. 게시판은 생산한 정보가 게시글의 형태로 고정되어 후일에도 찾아올 수가 있다. 다만 실시간으로 대화를 주고받기는 힘들다. 채팅방은 그 반대로, 과거의 유용한 정보를 되짚어 찾기는 어렵지만 실시간 교환은 매우 쉽다. 이 장점은 사용자 간에도 작용하지만 제작자와 사용자 사이에도 적용된다. 반면 유저 데이터를 모아야 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웹진과 포털보다 더 어려운 상대였다. 그리하여 현재의 게임 온라인 커뮤니티는 다섯 가지의 흐름으로 요약할 수 있다. 높은 자유도만큼이나 혼란하고 정보량은 적은 디시인사이드의 갤러리, 자유도를 약간 희생했으나 큐레이팅 기능이 있어 진주가 묻혀 있는 루리웹, 언론의 기본 기능을 유지하면서 큐레이팅 기능을 강화해 양질의 정보를 보유한 인벤, 사실상 기능이 없는 채로 구색만 갖춘 것이 대부분인 게임사 자체 커뮤니티, 그리고 게시판을 벗어나 실시간 소통에 특화된 메신저 채팅방. 4. 온라인 부족 사회 모든 커뮤니티는 자체 존속을 위해서 여러 자원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자원은 구성원의 소속감, 즉 충성도다. 그리고 온라인 커뮤니티는 온라인 연결만 보장된다면 물리적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확장성이 높다. 기존의 커뮤니티는 지역에 묶였다. 국가의 정의 중에 영토가 있듯이 말이다. 따라서 공간을 뛰어넘는 커뮤니티의 범람은 인류가 처음 경험해보는 것이다. 그 경험이 25년 남짓 되었다. 그동안 존속한 온라인 커뮤니티는 제각각의 전략으로 구성원의 충성도를 얻었다. 커뮤니티 참여를 일상화시켜 소속감 또한 일상화시키는 방법은 인벤의 레벨제에서도 볼 수 있다. 디시인사이드의 몇몇 갤러리는 자신들만의 말투와 은어를 만들어 일체감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한 커뮤니티가 어느 정도 지속하면 커뮤니티마다의 특성이 생겨나는 것은 민족성의 발명 과정과 거의 유사하다. 장수하는 커뮤니티는 점차 온라인 부족의 색채를 얻게 되었다. 다중 소속도 가능한, 느슨한 형태의 부족인 셈이다. * 온라인 커뮤니티의 시대를 신(新)부족주의로 정의한 미셸 마페졸리의 저서 ‘부족의 시대’ 마페졸리는 이 책에서 신부족주의 행위자는 합리적 성인이 아니라 영원한 아이라고 보고 있다. 커뮤니티 부족들은 인벤의 사사게처럼 내부 갈등도 있지만 부족 간 갈등 내지는 고정관념도 생겨났다. 디시인사이드에는 루리웹을 “씹선비”라 부르며 멸시하는 경우가 있고, 이따금 ‘인벤 놈들은 역시 그 따위’ 식의 폄하도 찾아볼 수 있다. 오경택의 2023년 석사 논문은 게임 커뮤니티의 공정성 담론에 관한 연구인데, 여기서 소개한 정서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온라인 게임의 과금 유도에 지갑을 열어주는 사람은 게이머가 아니라 개돼지라는 정서. 진정성이라는 기준으로 다른 부족을 공격하면서도 동시에 ‘게이머’라는 이상적 주체를 상상하고 있다. 같은 계열의 게시물 중에서 오경택은, ‘진정한 게이머’인 자신과 모바일 게임이나 잠깐 하는 사람이 같은 게이머로 분류되는 것에 대한 불만에도 주목한다. 이는 ‘게이머’라는 대분류에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인데, 부족성을 넘어 민족성 혹은 민족 개념이 싹트는 중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정체성 성립의 과정은 언제나 폭력성을 수반한다. 우리와 타자의 경계를 나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근대의 민족 개념이 분쟁을 매개로 구체화 되었듯이 말이다. 또한 민족 개념이 적용되는 과정에서 수용과 불수용의 충돌 또한 발생한다. 하드코어 게이머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이 있고, 반대에는 선민의식과 계급화를 경계하는 거부감이 있어 이 둘이 부딪힌다. 투쟁의 현장이기도 하니 폭력성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다. 그런 폭력성의 발현 사례를 여럿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와우인벤의 사사게는 내부의 분노를 처리함과 동시에 집단 린치를 스포츠화하여 해소하는 형태다. 디시인사이드는 전통적으로 폭력성 노출을 문제 삼지 않는 갤러리가 많으며 게임 관련 갤러리는 특히 그렇다. 이런 기초 토양 위에 원세훈 치하 국정원의 심리전이 끼어들었다. 이명박 정부의 여론 조작 시도는 뉴스 댓글 몇 개 단 정도에서 끝나지 않고, 이를 바탕으로 여론 흐름을 조작하려 하면서 일베에서 사용된 밈의 재료들과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데까지 이르렀다. 심리학자의 자문까지 받은 이 시도에서 현재의 사회를 괴롭히는 극우화의 물결이 싹텄다고도 볼 수 있다. 때는 마침 게임 커뮤니티에서 정보 생산 주체가 사용자들로 이전되던 2010년 전후다. 새 판이 만들어지는 변화기는 오염 정보가 들어간 게시물, 심리를 건드려 선동하는 댓글이 침투하기 좋다. 15년이 지나는 동안 그 씨앗들이 재생산되고 변이하였다. 그리하여 인터넷 커뮤니티 전반, 특히 남성 게이머가 많은 게임 커뮤니티에는 페미니즘과 진보 정치성에 대해 현실과 다른 인식이 보편화되었다. 영어권 웹도 비슷한 역사를 겪었다. 팬 사이트 기반의 정보 사이트들이 만들어지고, 이들이 적응 또는 도태되고, 합종연횡하고, 서로 싸우고, 게이머 정체성을 놓고 충돌하고, 비평가에 대한 반엘리트주의적 반감을 드러내고, 그러다가 2013년에 게이머 게이트가 터졌다. 이 사건은 게임 언론의 분노를 촉발시켰고, 규모가 제법 커서 주류 언론의 눈길까지 끌고, 급기야는 극우의 숫자에 합류하여 수를 늘려주고, 도널드 트럼프의 초선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까지 커졌다. 이 과정에서 브레이트바트와 같은 대안 우파 언론, 대안 현실을 신봉하는 음모론 극우의 독이 스며들어 판을 키웠다. 그렇다면 거의 비슷한 과정을 밟으면서 탄생한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 특히 게임 커뮤니티의 극우성이 윤석열 당선에 영향을 주었다는 서술은 가능할까? 대통령의 여성가족부 해체 공약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 가설은 반대로 생각해 볼 지점도 갖고 있다. 앞서 주장했듯 게이머 정체성은 일종의 민족 개념으로 정착하는 과정에 있다. 이 과정에서 갈등과 폭력성 표출은 가능한 상황이다. 또한 게임은 승리를 향한 경쟁으로 요약할 수 있다. 과격성 발현은 정서상 자연스러울 수 있다. 물론 이런 해석에는 비현실적인 현실 인식에 대한 설명이 빈약하긴 하다. 게임 커뮤니티가 온라인에서 성립한 지 사반세기다. 그동안 우리는 게임에 관련한 여러 가지 때문에 검색을 해왔다. 수집품의 위치를 모를 때, 데미지 계산식을 근거로 했을 때 어떤 스킬 조합이 좋은지 궁금할 때, 버그가 발생했을 때, 새로운 업데이트에 대한 해석이나 요약이 궁금할 때 등이다. 검색의 결과로 우리는 인벤, 루리웹, 디시인사이드 등의 어느 구석에 있는 게시물에 도착한다. 거기에는 동료 게이머가 알아낸 공략과 분석, 혹은 외국의 어느 사이트나 디스코드 채팅방에서 가져온 정보가 있다. 한편으로는 정보를 올린 사람 혹은 거기에 댓글로 첨언하는 사람이 옆 게시물에서 ‘페미는 정신병’이나 ‘걔들은 전부 빨갱이’라는 식의 극우 정서를 표출하는 것도 볼 수 있다. 유용한 정보에서 한 발짝만 더 들어가면 쉽게 만나는 세상이다. 이미 다양한 형태로 이 극우 정서의 근원을 분석하는 연구가 많다. 그래서 궁금한 것은 다음 사반세기다. 과연 이 느슨한 부족의 크기와 실제 영향력은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중이기 때문이다. 해악은 어떻게 극복하고 효용은 어떻게 유지할지의 답은 게임 커뮤니티의 실제 모습을 찾아내고 다시 찾아내고 또 찾아내는 발굴의 과정에서부터 만들어갈 수 있다. Tags: 커뮤니티, 디시, 루리웹, 펨코, 인벤, 게임웹진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번영과 몰락과 애도의 이야기, <33원정대>

    특히 이야기의 결론부에서 집중적으로 다룬 애도에 관한 고민들은 게임이 딱히 어떤 정답을 내놓는 것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사회적 참사와 그로부터 비롯된 사회적 애도, 그리고 그 애도를 조롱하는 것이 일련의 문화 코드가 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플레이어들에게는 상당히 무겁고 곱씹어볼 만한 주제를 던진다. 살아남은 자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떠난 이들로부터 넘겨받은 그들의 표상들은 남겨진 우리와 어떻게 관계맺으며 가야 할 것인가? < Back 번영과 몰락과 애도의 이야기, <33원정대> 26 GG Vol. 25. 10. 10. ***이 글은 해당 게임의 강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게임을 아직 플레이하지 않으신 분들의 주의를 요합니다.***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이하 <33원정대>)>라는 인상적인 게임의 제목에서 미술이라는 매체를 활용하는 방식을 담은 ‘클레르 옵스퀴르’에 대해서는 이미 GG에서 한 차례 다룬 바 있다. 그러나 부제처럼 따라온 뒷부분의 ’33 원정대’라는 의미는 얼마나 다뤄졌을까? 이 글은 <33원정대> 전반에 담겨 있는 설정과 서사를 되짚으며 게임이 보여주고자 했던 희생과 애도의 메시지를 곱씹어보고자 한다. 벨 에포크: 빛과 어둠의 교차 <33원정대>의 배경이 되는 가상세계 속 도시 뤼미에르는 누가 봐도 프랑스 파리를 모티프로 삼은 도시다.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에펠 탑만으로도 쉽게 알아챌 수 있는 이 도시의 근원은 공간적으로만 프랑스 파리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에펠 탑이 존재하는 파리라는 것은 산업혁명 이후 근대적 도시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19세기 후반 이후의 파리가 이 게임의 기본적 배경이다. * 뤼미에르 세계에는 휘어진 에펠탑이 상징처럼 등장한다. 근대의 기술과 번영을 상징하는 철탑은 시작부터 끝까지 휘어진 채 남아 있다. 이 무렵의 서구 유럽을 가리키는 용어인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는 인류의 문명 번영에 대한 찬사를 담은 말이다. 전에 없었던 막대한 부가 집중되고 기술은 인류의 상상을 넘어서는 생산력을 달성해 냈고, 그 가속도는 앞으로 남은 인류의 미래마저도 온통 장밋빛일 수 밖에 없는 전망을 동시대인들에게 남겼다. 그러나 정작 벨 에포크 이후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에게 이 말은 게임 제목의 ‘클레르 옵스퀴르’처럼 빛과 어둠을 동시에 품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애니메이션 <푸른 바다의 나디아>에서 파리 만국박람회는 미래와 과학에 대한 예찬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1889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는 흑인을 가둬놓고 전시한 인간 동물원이 함께 존재했었다. 서구 유럽이 달성한 막대한 부와 번영은 명백하게 식민지 착취를 통해 이끌어낸 결과물임을 <소공녀>와 같은 소설, <라지의 챔피언>같은 게임들을 보여주고 있다. 산업혁명과 제국주의 시절을 거치며 달성한 서구의 번영은 찬란한 미래가 아닌 두 번의 세계대전이라는 전례없는 암흑기로 이어지며 벨 에포크라는 말에 빛과 어둠의 두 가지 의미를 시간축으로 담아내는 결과를 맞았다. 클레르 옵스퀴르, 명암 대비라는 제목을 단 게임의 배경이 벨 에포크라는 것은 번영과 몰락이 서로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게임의 설정을 드러낸다. 무한히 진보하고 발전할 것이라는 단선적인 시간관이 아니라 번영과 몰락은 순환하며, 하나의 빛이 도리어 그림자를 내포하고 있음을 게임은 드러낸다. 게임 시작부에 펼쳐지는 한때 분명 화려했으나 몰락해버림을 숨기지 않는 도시 뤼미에르에서 열리는 죽음을 기리는 축제 ‘고마주’는 죽음을 축제로 바꿔버리는 행사다. 번영이 몰락을 이끈 벨 에포크와는 반대로 죽음을 축제로 만드는 이 행위는 빛과 어둠이 순서없이 순환하며 공존한다고 인식하는 게임 전반의 뼈대를 이루는 세계 인식이다. * 파멸은 예정되어 있고, 카운트다운은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 벨 에포크를 벨 에포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그 이후 몰락이 이어지며 그 시기가 유일한 정점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원정대, expedition Expedition의 어원은 라틴어 expeditio이며, 이 말에는 군사 원정, 해방, 준비와 같은 의미가 들어 있다. 묶은 발을 풀어 자유롭게 함으로써 원정을 준비한다는 의미의 이 말은 알려지지 않은 세계를 향해 떠나는 도전적인 원정, 혹은 정벌을 위한 군사적인 원정으로 쓰이며, 게임 속에서 원정대는 실제로 어느 정도 탐험적이고 어느 정도 군사적인 의미로 꾸려진다. 어원은 고대 로마에서 비롯되었지만, 오늘날 우리가 쓰는 원정대라는 말의 의미에 가까운 형식은 앞서 언급한 벨 에포크 시대에 확립된 바 있었다. 아마도 가장 유명한 대외 원정이었을 로알 아문센과 로버트 스콧의 남극점 원정은 1차 세계대전 직전인 1910년대에 이루어졌고, 아프리카 대륙 횡단의 주인공인 데이비드 리빙스턴의 원정은 1850년대에 이루어졌다. 대외 원정의 시작점이라 볼 수 있을 지리상의 발견과 대항해시대의 탐험들이 있지만, <33원정대>가 참고한 원정은 보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한다는 점에서 벨 에포크 시대의 원정에 좀더 가까운 형태다. * 오늘의 서구를 만든 것은 원정이었다. 근대적 시계의 발명은 항해를 위해 이루어졌고, 서구 열강은 식민지 개척과 착취를 통해 전례없는 번영을 이뤘다. 클레르 옵스퀴르라는 말이 가진 양면성은 게임 속 원정대의 의미에서도 두드러진다. 스토리를 밀고 나가 보면 이 원정의 의미 또한 결국 양면적이라는 사실을 만나게 된다. 세계는 현실세계가 아닌 한 예술가 집안에 의해 캔버스 안에 창작된 세계였으며,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것 같았던 페인트리스의 행동은 오히려 그림 속 세계인들에게 세계 멸망의 위기를 알리는 경고였음이 드러난다. 자신들이 존재하는 세계의 본질에 한발 더 다가섰지만 그런 발견과는 다르게 세계는 멸망의 위기를 맞으며 원정대는 이를 극복할 수 없다. 00부터 시작해 역순으로 33에 이른 원정대 파견은 모두 실패하고 대원들은 사망했으며, 최장수 인원이 33세가 된 사회는 붕괴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33 그 수많은 원정대 중 왜 게임은 33번 원정대를 이야기의 중심으로 택했을까? 33이라는 숫자는 서구권에서는 꽤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데, 서구 점성술에서 태양과 상승궁의 순환이 맞아떨어지는 시기로 33년을 주기로 삼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널리 알려진 33의 서구적 의미는 예수의 생애다. 예수가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나이를 보통 30세로 추정하며, 이때부터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 약 3년간을 공생애라는 시기로 활동한다. 따라서 33년은 그리스도의 일생을 가리키는 의미를 내포한다. “나 예수 나이가 되었어!”라는 말은 프랑스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관용적 표현으로 성년이 된 시기, 완성 혹은 전환기를 가리키는 의미로도 쓰인다. 33이라는 숫자에 담긴 의미 중 <33원정대>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라는 부분에도 방점을 찍은 듯 싶다. 원정대는 사실상 가망이 없는 이 원정의 결말을 어느정도 예측하고 있으며, 원정을 떠나지 않아도 어차피 고마주의 대상이니 삶에 있어서는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인지를 기반으로 꾸려진다. 벨 에포크의 화려한 전면 장식이 걷혀진 뒤에 몰려온 멸망의 어둠 앞에서 33세, 이제 막 인생의 본격적인 시기를 맞게 된 이들은 화려한 번영이 아니라 몰락의 전조 앞에 서며, 과학과 기술이 만들어낸 원정대라는 방법론을 사용해 화려한 미래를 향한 장밋빛 길이 아닌 딱히 자청한 바 없는 희생을 향한 골고다 언덕길을 오르게 된다. 애도 세계의 진실이 드러나는 게임 중반 이후부터 이야기는 캔버스 속 인물들로부터 캔버스 밖의 실존인물들로 중심을 옮겨가며, 이 때부터 이야기는 세계에서 개인으로 화제를 돌린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애도라는 감정과 행위가 있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애도라는 감정과 행위를 설명하고자 한 프로이트의 개념을 재해석하면서 “성공적인 애도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프로이트는 사랑하던 대상을 상실한 인간이 겪게 되는 일반적인 과정으로 애도를 이해하며, 성공적으로 애도를 끝내기 위해서는 상실된 대상을 향한 집착을 벗어나는, 쉽게 말해 떠난 이를 비로소 가슴에서 떠나보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러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데리다가 말한 ‘성공적 애도는 불가능하다’는 이러한 프로이트의 입장에 대한 재해석이다. 데리다는 애도 과정 속에서 우리는 상실한 타자를 각자의 마음속에 내면화하는데, 이 때 우리는 상실한 대상의 본질 그 자체를 그대로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표상과 해석을 통해 재해석된 형태로 간직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오히려 애도의 과정은 타자로서의 대상이 가지고 있었던 타자성을 잃게 되며, 프로이트가 말한 성공적 애도는 도리어 상실한 대상이 가지고 있는 고유성을 없애버리는 결과일 수 밖에 없으며 결국 성공적인 애도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짧게 정리했지만 결국 프로이트와 데리다가 애도 개념을 두고 보여준 차이는 사랑하던 대상이 떠난 빈 자리와 그 흔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혹은 어떻게 떠나보낼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대목까지 글을 읽은 <33원정대> 플레이어들은 이 논쟁이 실제 게임 안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것이다. 게임 최후반부에 플레이어가 만나게 되는 두 가지 엔딩은 각각 베르소와 마엘의 입장 중 하나를 선택하여 따라가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게임에 등장하는 베르소는 현실에서는 이미 죽은 인물이며, 어머니 알린이 캔버스 속 세계에 죽은 아들의 기억을 담아 창조해 낸 가상 캐릭터다. 캔버스 속 베르소는 자신의 본체가 이미 죽었음을 알고 있으며, 그는 자신과 자신을 포함한 어머니가 그려낸 이 가상 세계가 소멸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좋은 결과일 것이라 믿고 행동해 나간다. 반면 실존했던 베르소의 동생인 마엘은 어머니가 점차 자신이 창조한 캔버스 속 가상세계에 빨려들며 무너져가는 현실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직접 캔버스 안으로 뛰어들었지만, 아직 능력이 약해 캔버스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잃어버린 채 16년을 살아 온 인물이다. 그런 마엘에게 캔버스 속 세계는 가상세계가 아닌 자신이 직접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온 실제 세계였고, 마엘은 베르소가 원하는 캔버스 속 세계의 소멸이 곧 자신에게는 전 세계의 멸망이라며 베르소와 대립한다. * 떠난 이를 어떻게 기억하고 애도할 것인가? <33원정대>의 엔딩은 서로 다른 애도를 향한 선택의 길을 제시하지만, 어느 길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 최종전에서 서로 부딪히는 이 두 결말은 정확히 세상을 떠난 인물인 베르소를 어떻게 애도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상반된 대답이다. 세상을 떠난 베르소의 남겨진 기억은 프로이트적 애도, 상실을 인정하고 슬픔을 받아들이며 이를 가슴에 묻고 남겨진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로 나타난다. 베르소 엔딩을 선택해 진행했을 때 등장하는 실제 죽은 베르소의 묘비 앞에서 슬퍼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 애도의 상징으로 기능하는 묘지와 묘비는 전통적인 애도의 가능성을 드러내는 베르소 엔딩에서 볼 수 있다. 마엘 엔딩은 데리다가 말한 불가능한 애도의 사례를 재현한다. 베르소는 마엘과의 대결에서 패배한 뒤 캔버스 세계에서 자신을 소멸해 달라고 애원하지만 마엘은 이를 거부하고 베르소를 포함한 캔버스 속의 소멸된 모든 사람들을 되살리는 선택을 한다. 그러나 데리다의 말처럼 ‘성공적 애도’는 불가능하다. 결국 캔버스에 남은 베르소는 베르소 그 자신이 아니라 어머니와 마엘의 기억과 표상에 의해 재현된 존재이며, 페인트리스로서 재현된 베르소를 계속 살려낼 수 있는 마엘의 능력 안에서 베르소는 자신의 고유성을 잃고 소멸한다. 애도는 근본적으로 실패하며, 끝없이 지속될 뿐이다. 사랑했던 이를 떠나 보내고 남은 이들의 삶을 완벽히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33원정대>는 굳이 어느 방법이 옳다는 평가를 내리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데리다가 프로이트의 애도 개념을 전유한 것은 애도 그 자체를 보기보다는 애도라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윤리적 긴장을 발견하고자 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데리다에게 애도는 완결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라 끝없이 실패하면서도 지속되는 과정이며, 남은 자가 짊어저야 할 윤리적 숙명을 드러내 보이는 관찰의 대상이었다. 그렇기에 마엘 엔딩도 데리다가 이야기한 진정한 애도를 재현하기보다는 끝없이 자신에게 남은 표상으로 떠난 이를 재현하며 실패를 연속하는 현상으로서의 애도를 그려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두터운 베이스로 쌓아올린 탄탄한 판타지 <33원정대>는 턴 베이스 롤플레잉 게임으로, 제작진도 언급했고 플레이어들도 직관적으로 느끼듯 일본의 턴제 RPG, 특히 <페르소나>시리즈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은 게임이다. 두 게임의 연관점으로 많은 사람들이 턴제 RPG라는 형식, 캐릭터 파티의 구성과 호감도가 전투에 작용하는 방식과 같은 메커닉 요소를 거론하지만, 오히려 <페르소나>로부터 가장 크게 영향받은 부분은 게임 세계의 설정 요소들이다. 멸망을 눈앞에 둔 세계 속에서 청년들이 팀을 이뤄 세계의 멸망에 맞서는 이야기는 <페르소나>가 일본 사회의 여러 맹점들을 게임 속에서 우화로 그려낸 것과 같이 <33원정대>에서도 새롭게 변주되어 그려진다. 서구의 오늘을 만든 근대의 번영 신화와 그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대절멸의 서사, 강력해진 미디어를 통해 더욱 실제같아진 재현된 표상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의 문제, 그리고 떠난 이를 애도하는 개념에 이르기까지 <33원정대>의 판타지 세계는 현실의 문제를 페인터라는 개념을 통해 다시 그려낸 결과물에 가깝다. 특히 이야기의 결론부에서 집중적으로 다룬 애도에 관한 고민들은 게임이 딱히 어떤 정답을 내놓는 것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사회적 참사와 그로부터 비롯된 사회적 애도, 그리고 그 애도를 조롱하는 것이 일련의 문화 코드가 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플레이어들에게는 상당히 무겁고 곱씹어볼 만한 주제를 던진다. 살아남은 자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떠난 이들로부터 넘겨받은 그들의 표상들은 남겨진 우리와 어떻게 관계맺으며 가야 할 것인가? 빛과 어둠, 번영과 몰락, 소멸과 보존이 동전의 양면처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이 관계성 속에서 사고하고 빚어지며 살아가는 사람의 삶을 되새겨볼 수 있는 다양한 계기들이 <33원정대>의 메인 퀘스트와 다양한 서브 스토리에서 툭툭 튀어나온다. 아마도 당분간 ‘교양으로서의 게임’을 이야기한다면, <33원정대>는 두터운 레퍼런스를 기반으로 멋지게 판타지를 구성해 낸 좋은 사례로 꽤 오랫동안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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