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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문세미나] '스트리트파이터'는 무술martial arts인가?

    그리고 그 운용기술, 다시말해 주어진 텍스트를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관념과 자세에서 존스는 70년대 무술영화 붐과 2000년대 대전격투 게임이 같은 맥락에 선다고 분석한다. 오늘날 현대 격투기에서 사실상 중국 전통무술의 실전성은 파훼되었지만, 7-80년대에 이소룡 영화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동양무술은 북미에서 실제로 무술 도장의 붐을 이끌어냈고 수많은 청년들로 하여금 괴성을 지르며 신체를 움직이는 무술의 동작을 따라하게 만들었으며, 같은 맥락에서 EVO #37 이벤트 또한 동시대의 수용자들로 하여금 디지털화된 무술과 비슷한 무엇을 따라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 Back [논문세미나] '스트리트파이터'는 무술martial arts인가? 13 GG Vol. 23. 8. 10. 크리스 고토 존스 (Chris G. Jones) 는 캐나다 빅토리아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 주전공은 동양철학과 일본불교 , 명상과 종교 계통이다 . 논문 < 스트리트 파이터는 무술 martial art 인가 ?> 이 왜 철학연구라조부터 나왔을지를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 철학자인 그는 ‘ 스트리트 파이터 ’ 로 대표되는 오늘날의 디지털 격투 게임이 플레이되는 과정을 살피며 그 속에 배어 있는 대중문화로서의 오리엔탈리즘이 기술미디어 시대에 어떻게 새롭게 자리잡고 있는지를 추적한다 . 2018 년에 나왔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이 논문을 오늘 소개한다 . From dragon to the Beast 대전격투 게임의 기원을 게임학자들이라면 다른 쪽에서 찾겠지만 , 존스는 대중문화사 속에서 대전격투 게임의 선조로 이소룡 Bruce Lee 과 그의 영화들을 꼽는다 . 그는 이소룡의 영화들 , < 용쟁호투 >, < 사망유희 > 와 같은 그의 대표작들이 유행을 탔던 1970 년대와 2004 년 격투 게임의 한 장면을 대비시키는데 , 바로 EVO #37 의 그 유명한 장면 , 우메하라 다이고의 ‘ 더 비스트 이벤트 ’ 다 . 워낙 전설적인 e 스포츠 명장면으로 회자되는 우메하라 다이고 대 저스틴 웡의 ‘ 스트리트 파이터 3’ 대결은 막판 KO 위기에 놓인 우메하라의 켄이 상대 춘리의 초필살기 연타를 가드하지 않고 ( 가드하면 가드 대미지가 들어와 KO 당한다 ) 하나하나 패리해내며 완벽하게 방어해낸 후 , 점프에 이은 초필살기 반격으로 역 KO 시키며 게임을 뒤집은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 존스는 이 장면을 보며 70 년대 이소룡 영화가 선보였던 무술 붐이 2000 년대에는 대전격투 게임에서 다시 일어나고 있음을 깨닫는다 . 존스는 7-80 년대 서구권에서 일었던 이소룡을 중심으로 한 무술 붐과 마찬가지로 학계는 2000 년대의 이 영상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본다 . 우메하라의 역전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 이상의 리터러시가 필요한데 , 첫째는 ‘ 스트리트 파이터 3’ 의 기본적인 시스템과 규칙에 대한 이해 , 둘째는 이 시스템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이를 받아들여 정확한 움직임을 수행하는 신체의 운동능력이다 . 이를 존스는 각각 객체기술 object skill, 운용기술 locomotive skill 이라고 일컫는데 , 현재의 게임연구분야는 텍스트에 중점을 둔 관계로 주어진 규칙을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운용기술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 그리고 그 운용기술 , 다시말해 주어진 텍스트를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관념과 자세에서 존스는 70 년대 무술영화 붐과 2000 년대 대전격투 게임이 같은 맥락에 선다고 분석한다 . 오늘날 현대 격투기에서 사실상 중국 전통무술의 실전성은 파훼되었지만 , 7-80 년대에 이소룡 영화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동양무술은 북미에서 실제로 무술 도장의 붐을 이끌어냈고 수많은 청년들로 하여금 괴성을 지르며 신체를 움직이는 무술의 동작을 따라하게 만들었으며 , 같은 맥락에서 EVO #37 이벤트 또한 동시대의 수용자들로 하여금 디지털화된 무술과 비슷한 무엇을 따라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 존스가 무술을 이야기할 때 중심에 두는 것은 무술이라는 개념을 다루는 자세와 방식이다 . 존스는 이소룡과 무술영화가 보여주는 체술은 체술의 보여주기에 머무르지 않고 일종의 신비하고 경건한 수련의 자세를 포함한다고 본다 . 이를테면 이소룡이 주요한 장면에서 명상에 가까운 집중을 보여주거나 , 무술영화들이 주인공의 수련을 다룰 때 끊임없는 ( 이른바 ‘ 용맹정진 ’ 으로 대표될 ) 반복숙달이 단순히 육체적 훈련에 머무르지 않고 일종의 정신수양에 가 닿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 존스는 주목한다 . 그리고 이는 오늘날의 디지털 대전격투 게임을 다루는 게이머들과 게이머 커뮤니티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된다 . 게이머 커뮤니티는 일정 수준에 오른 격투 게이머들의 경지를 수련과 정진을 통해 도달할 수 있으며 , 단순히 육체적인 숙달의 문제 뿐 아니라 정신적인 수양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 이를테면 앞서 이야기한 우메하라의 경우 , 4 초 동안 쏟아지는 춘리의 초필살기 13 개의 연타를 한번도 틀리지 않고 정확한 타이밍에 튕겨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눈과 손의 반응속도 뿐 아니라 그런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도 침착과 냉정을 잃지 않는 마음가짐이며 , 이러한 자세가 곧 이소룡이 선보인 그것과 동일하다는 이야기다 . 격투 게임과 테크노-오리엔탈리즘, 오타쿠 무술이라는 주제는 서구에서 다분히 오리엔탈리즘적 관점과 엮여 받아들여져 왔다 . 이소룡은 서구인들에게 백인이 아닌 미국인에 의해 만들어지는 반헤게모니적 남성성으로 인식되었다 . 그가 < 맹룡과강 > 에서 척 노리스와 맨손격투를 벌여 승리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 이소룡의 무술영화는 < 정무문 > 에서 일제 강점기에 놓인 중국의 상황을 다루는 것처럼 민족 , 인종이라는 테마와 떼어놓기 어려운 주제였고 , 이와 같은 맥락은 현재의 대전격투 프로 게임 씬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 일명 ‘ 아시아인의 손 Asian Hands’ 이라는 개념이 그것이다 . 아시아인들이 여러 e 스포츠 종목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고 ( 이는 한국의 ‘ 스타크래프트 ’ 나 ‘ 리그오브레전드 ’ 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같은 맥락에서 서구인들은 과거 이소룡이 그랬던 것처럼 이들 아시안 프로게이머들을 일종의 초인적이고 신비주의적인 , 우리와는 다른 존재라고 받아들인다 . 이는 단순히 서구인들의 시선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 실제 대회에 출전하는 일본 게이머들은 스스로가 ‘ 우리는 일본인이므로 훨씬 잘 해낼 것이다 ’ 라고 인터뷰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 존스는 신비주의적으로만 언급되는 ‘ 아시아인의 손 ’ 을 이해하기 위해서 키지마 kijima 의 오사카 게이머 관찰연구 결과 (2012) 를 살펴본다 . 존스에게 있어 격투게임에서의 일본 우세는 그들이 뭔가 신비하고 영적인 훈련을 거친다기보다는 아케이드 환경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 서구에서 거의 소멸한 아케이드에서의 대전격투는 일본에선 여전히 주요 상업지구의 대형 오락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 ( 다만 이 지점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애매하다 . 아케이드의 소멸은 규모는 다를지라도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반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 그리고 이런 아케이드를 거점으로 삼아 일명 ‘ 무사도 ’ 라고 불리는 특유의 문화로부터 기인하는 도장깨기 dojo-yaburi 가 일본에는 활성화되어 있고 , 이 과정을 통해 일본 게이머들은 끊임없이 강한 상대를 만나며 더욱 수련에 정진할 수 있다는 것이 존스의 분석이다 . 그러나 이런 점보다 대중적으로는 ‘ 신비로운 아시아인들의 놀라운 격투능력 ’ 이 온라인 격투에서도 발휘된다고 이해된다 . 신화적인 무술 담론은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 그리고 무술담론과 현대 격투게임의 이와 같은 융합에는 80 년대 일본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테크노 - 오리엔탈리즘의 오타쿠적 변형과 재수용이 함께 자리한다 . 홍콩과 도쿄 , 상하이의 네온사인 가득한 ‘ 이국적 ’ 야경으로 그려졌던 80 년대의 테크노 - 오리엔탈리즘은 디지털게임과 맞물리면서 오타쿠의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낸다 . 90 년대 이른바 ‘ 쿨 재팬 ’ 의 출현과 함께 일어난 이 변화는 아즈마 히로키의 <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2001) 을 통해 해석의 기초를 얻게 되었다 . 데이터베이스화한 동물 , 슈퍼 정보처리기로서의 오타쿠는 기존의 다른 매체 오타쿠와 달리 게임 오타쿠를 일정 몰입도에 도달하기까지 강박적 헌신과 지속적 연습을 이어간다는 형식으로 차별화시키며 일명 ‘ 야리코미 ’ 와 같은 게임 플레이 스타일을 만들어냈고 , 이러한 게임 오타쿠는 무술 담론과 결합한 대전격투 게임과 만나며 오타쿠적 몰입을 무사도적 수련과 정진으로 이해하는 새로운 대중적 이해를 낳았다고 존스는 이야기한다 . Emperor가 아니라 Demon King인 이상혁의 문제 서구권에서 바라보는 무술 , 혹은 무술의 개념을 가져온 게임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 독자들 입장에서는 흥미로운데 , 무술과 같은 개념은 같은 동아시아권 문화에 있어 우리에겐 좀더 내재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 서구권에서 바라본 것처럼 우리에게 무술은 굉장히 신비로운 것으로는 다가오지 않는다 . 이를테면 한국에서도 격투 게임의 어떤 순간들을 무술 , 아니 좀더 우리 식으로라면 격투게임 고수들의 모임을 일종의 무림武林으로 비유하거나 , 무릎 배재민의 파키스탄 원정을 일종의 폐관수련으로 이해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 분명 존스의 이해와 우리의 이해는 일면 상통하지만 , 과연 우리의 그것이 서구의 것처럼 신비스러운 대상인가를 생각해보면 둘의 차이 또한 명확하다 . 테크노 - 오리엔탈리즘은 디지털게임과 함께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오타쿠 문화와 엮이며 독특한 장면을 자아낸다 . 다만 존스의 의견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 아마도 ‘ 왜 e 스포츠에서 동아시아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는가 ?’ 라는 질문에 대해 존스의 의견은 명확한 단 하나의 답으로는 자리하기 어려울 것이다 . 당장 한국이 우세를 점하는 e 스포츠 종목들을 생각해 본다면 이들이 존스의 개념 안에서 거론되는 오타쿠로 분류될 수 있는지와 같은 쟁점들을 새롭게 마주하게 될 것이다 . 한국에서도 아케이드는 이제 대중적인 문화에서 멀어져가는 추세고 , 오히려 대전격투 게임의 고수들은 네트워크 플레이로 도장을 옮겨 안착한 지 오래다 . PC 방의 존재는 여전히 과거 아케이드와 같은 오프라인 도장 역할을 하고 있지만 , 애초에 ‘ 리그 오브 레전드 ’ 같은 게임은 PC 방의 로컬이 아닌 네트워크상의 5:5 대전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이 또한 명백한 해답이 되기는 어렵다 . 결론을 대신하는 한 가지 힌트라면 , 적어도 우리는 왜 동아시아 선수들 , 좀더 우리 입장으로 좁혀 본다면 왜 한국의 e 스포츠는 그토록 높은 성과를 내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새로운 답변의 접근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 우리는 한국이 e 스포츠의 선두주자라는 것까지만을 이야기하지만 , 한편으로는 세계 최고의 LOL 플레이어인 페이커 이상혁의 별명이 서구권에서 ‘Emperor’ 가 아니라 ‘Demon King’ 이라는 사실에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점을 존스의 글은 돌아보게 한다 . 테크노 오리엔탈리즘과 엮여 돌아가는 오늘날의 e 스포츠 상황을 이해하는 데는 e 스포츠 그 자체 뿐 아니라 , “ 동아시아의 e 스포츠 ” 로 끊임없이 서구에서 타자화되는 경향과 그 결과 또한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 참고문헌 Kijima, Y. (2012). “The Fighting Gamer Otaku Community: What are they ighting about?” In Fandom Unbound: Otaku Culture in a Connected World, eds. Mizuko Ito, Daisuke Okabe, and Izumi Tsuji. Yale University Press, 2012, pp. 249–74.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 현실과 가상의 구분을 없앴던 비범함에 대해서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2024년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로, 노르웨이의 ‘마츠 스틴’라는 게이머의 삶에 주목한다. 작품은 작년 한 해 동안 선댄스 영화제에서의 수상과 더불어 여러 영화제에 이름을 올리며 유명세를 얻었고, 현재는 OTT서비스 ‘넷플릭스’와 계약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다큐멘터리에 접근할 수 있도록 공개되어있다. < Back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 현실과 가상의 구분을 없앴던 비범함에 대해서 23 GG Vol. 25. 4. 10.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2024년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로, 노르웨이의 ‘마츠 스틴’라는 게이머의 삶에 주목한다. 작품은 작년 한 해 동안 선댄스 영화제에서의 수상과 더불어 여러 영화제에 이름을 올리며 유명세를 얻었고, 현재는 OTT서비스 ‘넷플릭스’와 계약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다큐멘터리에 접근할 수 있도록 공개되어있다. 하지만 제목만 봤을 때, 이것이 게임에 관한 다큐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울 것이다. 그동안 게임을 소재로 한 다큐들이 <하이 스코어>(2020), <낫 어 게임>(2020), <프리 투 플레이>(2014), <인디 게임: 더 무비>(2012)처럼 제목에서부터 ‘게임’에 대한 내용임을 알려왔다는 점과 다르게, 이 다큐는 게임 다큐라는 사실보다는 ‘이벨린’이라는 인물에 방점을 찍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벨린은 누구이길래 주목받게 되었는가? 걸을 수 없는 소년에게 쥐어진 게임기 다큐는 1990년대 홈 캠코더로 촬영된 한 소년의 어린 시절 영상으로 시작된다. 이 소년의 이름은 ‘마츠 스틴’. 노르웨이에서 태어나 가족의 사랑 속에서 자라났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의 몸 상태에 이상이 감지된다. 거동할 때마다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의지하거나, 늘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반복된다. 이 의자는 점점 휠체어로 대체되고, 화면 너머로 마츠가 중증 질환을 앓고 있음을 암시한다. 마츠가 앓은 병은 ‘듀센 근이영양증’이라는 희귀 질환이다. 어린 시절 발병해 시간이 지날수록 근육이 점차 소실되는 병으로, 걷거나 음식을 먹는 등 일상적인 신체 활동이 서서히 불가능해진다. 점점 불편해지는 몸은 사회생활을 가로막았고, 대인 관계 또한 큰 장벽에 부딪혔다. 다른 아이들이 운동을 하거나 어울려 놀 때, 마츠는 그들을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곤 했다. 그러나 이 시기의 홈비디오 속에서 유난히 자주 포착되는 물건이 있다. 바로 게임기다. 마츠는 게임보이, 닌텐도64와 같은 콘솔 게임기를 즐겨 사용했다. 일반적으로 아이가 게임에 지나치게 몰두하면 부모가 이를 제지하기 마련이지만, 마츠의 부모는 달랐다. 게임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던 마츠에게, 그가 원하는 만큼 게임을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 가족들과 휴양지 여행을 떠난 어린시절 마츠의 두 손에는 게임 보이가 들려있다.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Official Trailer | Netflix”) 아제로스 대륙을 여행한 마츠 2000년대에 들어서며 블리자드의 온라인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가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켰다. 수많은 사람들은 판타지 세계관 ‘아제로스’ 대륙으로 접속해, 아바타의 몸을 빌려 또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다. 마츠도 이에 동참하여 노트북으로 와우 세계에 접속했고,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한다. 마츠는 <와우> 세계에서 굉장히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가 <와우>를 플레이한 10년 동안 총 플레이 타임은 약 2만 시간 가까이에 달했다. 아제로스의 방대한 대륙을 여행하며 그는 다양한 국적의 유저들과 교류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의 신체는 점점 움직이기 어려워졌고, 게임을 플레이하는 데에도 제약이 따랐다. 처음에는 키보드와 마우스를 사용해 조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마츠는 특수 장비의 도움을 받게 된다. 게임에 필요한 조작키가 원형으로 배치된 이 맞춤형 장치는 마츠를 위해서 특별하게 제작된 것이었고, 이 덕분에 다른 유저들과 함께 게임 플레이를 지속할 수 있었다. * 마츠가 사용하는 컴퓨터 조작 장치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Official Trailer | Netflix”)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알린 마츠의 죽음 듀센병 환자의 평균 수명은 보통 20대에 머무른다. 마츠 역시 병세가 악화된 끝에, 2014년 가족들의 깊은 슬픔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계속 재생되던 홈비디오 테이프는 멈추었고, 가족들은 애통스러운 감정으로 그를 추억한다. 그리고 마츠가 오랜 시간을 보냈던 온라인 세계에도 이 사실을 알리고자, 가족들은 그가 생전에 운영했던 온라인 블로그에 부고 소식을 게시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츠를 추모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메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츠를 ‘이벨린’으로 부르고 있었다. 이벨린이 <와우> 세계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던 인물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에 대한 추모 메시지를 전해온 것이다. 다큐 제목에 등장한 ‘이벨린’은 마츠의 <와우> 캐릭터명이다. 긴 머리를 가진 건장한 남성 도적. 이벨린의 모습은 휠체어 위의 왜소한 현실의 마츠와는 전혀 달랐다. 그러나 마츠는 이벨린으로서, <와우>의 길드 ‘스타라이트’에 오래 몸담으며 수많은 사람들과 폭넓은 관계를 맺었다. 유가족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활발한 사회적 삶이 그 안에 있었다. * 게임에서 다른 유저들과 활발하게 사회생활했던 이벨린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Official Trailer | Netflix”) 현실에서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기 어려웠던 마츠는, 이벨린으로서 연인을 만나 사랑을 경험하기도 했다. ‘루머’라는 캐릭터와 숲속에서 데이트를 하며 첫사랑을 나눴고, 루머의 현실 인물인 ‘리세트’가 가족과 갈등을 겪었을 땐 직접 편지를 써 그녀의 부모와 화해의 길을 터주기도 했다. 또 한 명의 길드원이 자녀와 소통에 어려움을 겪자, 마츠는 그 아이와 함께 게임을 하도록 주선해 관계를 회복하도록 도왔다. 그는 단지 도움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이들을 진심으로 돕고 응원하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마츠 덕분에 삶이 더 나아졌다”고 말했다. 겉으로는 게임만 하며 고립된 삶을 산 듯 보였던 마츠. 그러나 그는 언제나 연결되어 있었다. 이벨린이라는 이름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깊은 삶을 살아냈다. 이러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가족은, 마츠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이전에는 제한된 삶으로 여겼던 그 생애가 사실은 너무도 풍성하고 비범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장례식은 슬픔보다는 뒤늦은 기쁨과 안도 속에서 치러진다. * 홈비디오 속의 마츠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Official Trailer | Netflix”) 채팅으로 기록된 과거의 시간들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이 과거를 다시 그려내는 방법은 매우 독특하다. 일반적인 다큐멘터리가 과거에 기록된 영상이나 사진을 편집하거나, 당시 인물들을 인터뷰를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하는 반면, 이 작품의 핵심 기록물은 다름 아닌 ‘채팅 기록’이다. 마츠는 음성 채팅 없이 텍스트로만 대화를 나눴기 때문에 그가 나눈 모든 의사소통은 대화 로그로서 기록되어 있었다. 일부러 아카이브 하지 않아도, 이미 보존되고 기록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보존된 이벨린의 문장들은 사후에도 그의 삶을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흔적이 되었다. 제작진은 이 채팅 기록을 대역 성우가 낭독하도록 하여 현재 시점에서 재구성했다. 성우들이 읽은 대본은 모두 이벨린이 나눴던 채팅과 동일한 문장이었고, 이 음성은 애니메이션에 더빙되어 영상으로 제작되었다. 재연 애니메이션은 실제 게임 내 캐릭터와 주변 사물, 배경, 다른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표정으로까지 장면 하나하나로 연출되어 게임 속에서 녹화되었다. * 이벨린의 목소리를 맡은 에드 라킨(Ed Larkin)외에도 모든 성우가 장애인이다.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Behind The Scenes | Netflix”) 여기에 제작진은 마츠의 삶을 더욱 면밀하게 재현하기 위해 또 다른 층위를 더했다. 채팅을 읽는 성우들을 모두 장애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한 것이다. 이벨린과 이벨린의 첫사랑 루머, 주변 길드원, 친구들 모두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로 입혀졌다. 루머를 연기한 성우는,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이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가상 캐릭터’가 아닌, 실제 사람이 뒤에 있는 ‘아바타’였기 때문에 깊은 존중감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들이 실제로 이 상황에 어떤 기분을 느꼈을지, 섬세하게 고려하면서 연기해야만 했다고 인터뷰에서 덧붙였다. 연극 대본처럼 남은 채팅 기록 덕분에 게임 속 캐릭터로 과거를 재현하는 이 방식은 게이머의 삶을 다큐로 풀어내는 방식 중에서 매우 신선하고 도전적인 시도로 보인다. 다만 그 과정에서 ‘재현’과 ‘재연’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약간의 아쉬움도 남는다. 다큐로서의 과거를 충실히 복원했다기보다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처럼 감정적으로 과장된 재연이 되는 듯한 느낌이 남기 때문이다. 특히 이벨린이 루머와 숲속 호숫가에서 연애하며 첫키스를 나눴던 사건을 정면 카메라로 촬영하여 보여줄 때는, 마츠의 매우 사적인 기록, 그러니까 원치 않는 사춘기 소년의 일기장을 억지로 들춰보는 듯한 기분을 안겨주기도 했다. 물론 마츠가 살아생전에 이 다큐멘터리 제작에 관여했기 때문에, 이 역시 그가 의도한 연출일 수도 있겠다. * 데이트를 즐기는 이벨린과 그의 첫사랑 루머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Official Trailer | Netflix”) 현실 도피라는 오해 마츠는 매일 아침, 이벨린으로 접속해 아제로스 대륙(게임 속 세계)을 달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현실에선 달릴 수 없었지만, 게임 속에서는 원 없이 달릴 수 있었다. 현실의 제약이 닿지 않는 가상 세계는 마츠에게 해방의 공간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그는 이벨린이라는 존재로 살아가며 자유로운 신체로 움직였고, 장애인이라는 사회적 정체성을 넘어서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능동적인 주체로서 자신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은 자칫 ‘게임은 현실 도피처’라는 식의 해석으로 단순화되기 쉽다. 실제로 마츠는 자신의 블로그에 “게임은 탈출구이고, 모니터는 자유로운 공간으로 향하는 관문”이라고 썼다. 게임을 탈출 혹은 도피의 수단으로 보는 관점은, 현실의 고통과 결핍에서 심리적으로 벗어나기 위한 몰입이나 위안으로만 게임을 설명하곤 한다. 이때 현실은 그대로 남아 있고, 억압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잠시 보류될 뿐이다. 더 나아가 장 보드리야르의 시각에서 보자면, 이러한 가상 세계는 실재를 대체하는 이미지에 불과하며, 우리는 그 안에서 ‘해방의 감정’만을 소비하게 된다. 이 관점에서 보면, 다큐가 게임을 낭만화하고, 단선적인 감동 구조로만 재현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 매일 30분씩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대륙을 뛰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이벨린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Behind The Scenes | Netflix”) 그러나 마츠의 사례는 단순한 현실 도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가상 세계에서 새로운 의미를 창출했고, 사람들과의 대화와 연대를 통해 현실로도 울림을 확장시켰다. 게임 속에서 나눈 말과 관계는 다시 현실에서 목소리가 되었고, 그 메아리는 여전히 강하게 울리고 있었다. 이벨린의 첫사랑 루머의 목소리 역을 맡은 켈시(Kelsey Ellison)는 자신도 장애인으로서 가상 세계로의 탈출이 주는 자유를 공감하는 한편, 마츠가 도피주의(escapism)를 잘 활용했다고 평가했다. 하루 종일 누워 봉사자들의 도움을 받는 마츠를 수동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게 아니라, 적어도 자신이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능동적인 힘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고,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고무시키는 데에 노력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마츠가 단지 억압된 현실의 신체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었다고 해석하는 것은 부족하다. 자유/억압의 이분법적인 규정보다, 완전히 새로운 문법 안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존재했던 인물로 바라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존재의 전환, 존재의 확장으로서 바라봄이 더 정교하고 정당할 것이다. 마츠는 생전 이렇게 말했다. “이벨린은 저의 확장판이에요. 저의 다른 면모이죠” 존재의 확장이라는 비범함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단순한 감동 서사를 넘어, 가상 세계 안에서의 삶이 어떻게 존재를 확장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츠는 게임으로 도피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확장했고, 새로운 문법을 통해 타인과 연결되었다. 가상 세계가 현실의 억압을 완전히 지워주진 않았지만, 그는 그 안에서 한계를 넘는 관계를 만들고, 사회적 의미를 생산하는 능동적인 존재로 살아갔다. 그렇기 때문에 이 다큐가 보여주는 진짜 이벨린의 ‘비범함’이라는 평가는 마츠가 이벨린으로서 보여줬던 활약뿐만이 아니라, 게임이라는 조건 속에서 여전히 현실을 향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보냈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채팅 기록, 함께 시간을 보낸 동료들, 그리고 이 다큐를 본 사람들이 기억하는 ‘이벨린’은 마츠가 단지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현실을 구성했던 하나의 주체였음을 증명한다. * 이벨린이 죽은 이후, 블리자드는 이벨린이 자주 다니던 엘린 숲 한켠에 이벨린을 추모하는 비석을 세웠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 그곳에 모여 그를 다시금 기억했다. 그리고 블리자드는 이벨린의 캐릭터에 관한 유료 아이템 판매하고 그 수익을 듀센 치료를 위해 기부하기도 했다. (출처: 유튜브 영상 “Rest in Peace, ibelin) Tags: 다큐멘터리, WOW, MMORPG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이선 사회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연구합니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결국 인간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 인게임 커뮤니케이션과 현실의 가치: 의 사례

    정확히 똑같은 현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이러한 돌봄의 위기는 유사한 형태로 게임 공간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인터뷰에 참여했던 여성 게이머들 대다수가 여성 게이머에 대한 편견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지원가 역할을 기피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 Back 인게임 커뮤니케이션과 현실의 가치: 의 사례 14 GG Vol. 23. 10. 10. Staying with the Trolls 나의 책 <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와 관련한 여러 반응 중에 다음과 같은 의견이 있었다. 온라인 게임에서 상대방에게 욕설을 하는 것은 ‘현실에서 벗어나 일탈적인 행동을 하는 게임문화의 일환’이며, 그 과정에서 여성 비하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그저 ‘상대의 특징 중 하나를 짚어내는 것’일 뿐이다. 더욱이 게임에서는 여성만 욕을 먹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 같은 비하적인 용어나 욕설이 여성 차별의식의 발로라고 말할 수 없지 않느냐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누군가를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를 지칭하여 멸칭으로 부른다면 그것이 어떻게 차별이 아니라 말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나는 상대방에게 욕설을 함으로써 일탈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발상이 조금 부럽기도 했다. 왜냐하면 멀티플레이 게임의 텍스트/보이스 채팅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욕설은 여성들을 현실의 고민에서 벗어나게 해주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이 처한 사회적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다짜고짜 욕을 하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과연 소통하면서 하나의 팀을 이룰 수 있을지를 회의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고민한다. “나 그냥 이 게임(헬조선)에서 탈주하면 안 될까?” 그렇다고 게임과 소수자를 주제로 다루면서 여성을 차별받는 피해자로만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물론 여성 게이머들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입은 피해나 상처들을 꺼내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문제적인 게임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를 더 이야기해보고 싶다. 이 문제를 회피하고 게임에서 계속 탈주해봤자 내 경쟁전 실력등급만 점점 떨어질 뿐이니까! 차별의 논리들 내가 석사논문을 위해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트롤들에게도 나름의 논리가 있다는 점이었다. 트롤들은 당신을 욕하는 것이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여성성을 내세워 다른 팀원들의 기여에 무임승차하려는 여왕벌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인터뷰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 역시 이와 유사한 논리를 경험했다고 이야기한다. 게임 <오버워치>의 예를 들어보자. 이 게임에서 여성 플레이어들은 “지원가,” “서포터,” 혹은 “힐러”라고 일컬어지는 게임 내 직군을 맡기를 강요당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여성 게이머들은 그러한 지원가 역할을 기피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의 중심에는 트롤들의 논리가 구조화되어 있으며, 다음과 같은 전제와 가치판단들이 중층적으로 엮여 있다. 우선, <오버워치> 게임 커뮤니티에서 공격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공격군에 비해 서포터 역할은 수동적이고 여성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여성 게이머들은 “서포터를 해야 한다,” 혹은 “여성이기 때문에 서포터가 아닌 다른 역할은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압력을 받는다. 하지만 설령 여성이 그러한 압력에 못 이겨 서포터 역할을 한다고 해도 또 다른 편견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서포터라는 역할 자체가 수동적이고, 팀에 기여하는 것이 별로 없는 직업군이기 때문에 여성 게이머는 여전히 다른 팀원들의 성과에 업혀가는 무임 승차자, 민폐녀로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게임공간과 현실은 별개가 아니다 정치 철학자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은 남자를 보조하는 인력으로 취급받거나, 혹은 남성이 바깥일을 할 수 있도록 청소와 빨래를 하고 밥을 짓고 육아를 하는 “돌봄 노동”을 강요당한다고 지적한다. 이런 일들은 자본주의 사회를 유지하는 데에 필수적이지만, 경제적인 이득을 직접 창출해내지는 않기에 하찮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 지점에서 프레이저가 결국 가장 지적하고 싶은 문제가 시작된다. 여성들이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 이러한 돌봄 노동을 거부하기 시작하면서 “돌봄의 위기”가 나타나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드러내며 사회를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프레이저의 진단이었다. 정확히 똑같은 현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이러한 돌봄의 위기는 유사한 형태로 게임 공간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인터뷰에 참여했던 여성 게이머들 대다수가 여성 게이머에 대한 편견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지원가 역할을 기피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버워치>의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지원가를 플레이하는 유저가 부족해 게임 매칭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불평하는 유저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이것은 단순히 지원가를 플레이하는 여성 게이머들을 모욕하지 않음으로써 해결 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치료, 돌봄, 유지와 보수 같은 가치들이 지금의 사회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처럼, 그런 의식이 게임 커뮤니티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원가를 플레이하는 유저들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면 결국에는 게임의 밸런스가 붕괴하여 서포터가 아닌 유저들도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게임과 같은 온라인 스페이스는 현실 사회와 분리된 일탈의 공간이라기보다, 이처럼 현실을 다른 각도에서 보여주는 사회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게임공간에서 나타난 돌봄의 위기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출처: 디씨인사이드 One hour One Life 는 제이슨 로허(Jason Roher)가 제작한 온라인 멀티플레이어 서바이벌 게임이다. 제목이 말해주듯이 플레이어의 캐릭터는 1시간 동안만 살아가는데, 1분이 지날 때마다 나이를 먹고 60분이 지나 60살이 되는 순간 사망한다. 60분이라는 제한된 시간 동안 살아있을 수 있지만, 그 시간 내에 필요한 아이템을 만들어 내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플레이어 캐릭터는 최대한 생존하면서 다음 세대를 위해 마을을 일구어 문명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게임을 하게 된다. 이 게임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게임을 시작한 직후인 초반 3분이다. 게임을 시작하면 플레이어는 아기로서 엄마인 다른 여성 캐릭터의 곁에 스폰(spawn)된다. 이 아기는 3살이 되기 전, 즉 현실 시간으로 3분이 지나기 전까지 걸어 다니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나를 낳은 엄마 역할인 다른 플레이어가 젖을 주지 않으면 굶어죽는다. 채팅 역시 알파벳 한 글자 밖에 칠 수 없기에, 배고픔 상태가 될 때 마다 밥(Food)을 달라는 뜻의 "F"를 쳐서 엄마와 소통해야 한다. 새로운 아기들이 태어나면 엄마들은 그들을 모닥불과 곰 깔개가 깔린 따뜻한 방으로 데려와 옷을 입히고, 음식이 들어있는 가방을 등에 매준다. 이 곳 아기방에는 여자들이 상주하며 서로의 아기를 번갈아 안아주며 공동육아를 하기도 한다. (남자 캐릭터는 아기에게 옷을 입혀줄 수는 있지만 젖을 줄 수는 없다.) 이 모든 과정에서 텍스트 채팅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엄마는 “너는 [이름]이야”라고 말함으로써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줄 수 있다. 갓 태어난 아기들은 처음에는 알파벳 한 글자 밖에 말할 수 없지만, 나이가 들수록 입력할 수 있는 글자가 늘어난다. 스크린샷 출처: https://saveorquit.com/2018/12/27/review-one-hour-one-life/) 에서는 남을 돌보는 행위가 재미의 핵심이 된다. 이 게임에서 느낄 수 있는 성취감은 6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다음 세대를 위해 내가 무엇을 남길 수 있는지에 따라 달려있기 때문이다. 가령, 스웨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토끼 뼈를 구워 만든 바늘, 양털으로 만든 실 등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누군가 사냥을 해야 하고, 농사를 지어야 하고, 양 목장을 관리해야 한다. 사냥을 하려면 누군가가 활을 만들어 주어야 하며, 농사를 지으려고 해도 누군가 우물에서 물을 떠오고 비료를 만들어 놓았어야 한다. 양을 가둘 울타리가 있어야 하고 철을 캐와 가위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노력해 스웨터를 만들더라도, 재화 시스템이나 창고가 없기 때문에 플레이어 캐릭터들은 죽기 전에 옷을 다 벗어서 다음에 태어날 아기들에게 넘겨주고 갈 수밖에 없다. 필요한 아이템을 만들기 위한 과정은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마을에서 그 아이템을 본 적이 있는지, 혹은 만들어 줄 수 있는지를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아야 게임을 진행하기 용이하다. 플레이어들은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이야기하며 서로를 돕는다. 가령, 이 게임의 플레이어로서 나는 파이를 굽거나, 스웨터를 만들거나, 비료를 만드는 법은 알지만, 삽을 만들고 바늘을 만드는 법은 모른다. 일을 하다가 삽이 부러지면 나는 대장장이 일을 하고 있는 다른 플레이어에게 삽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그렇게 짧은 시간이지만 서로 우정을 쌓고, 다른 캐릭터가 노인이 되어 죽기 전에는 서로 “사랑한다(ILY)”고 이야기해 주기도 한다. 남아 있는 문제들 의 사회 속에서 생산성과 돌봄은 서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행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생존과 마을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대체로 많은 플레이어들은 다른 사람들의 역할을 폄하하지 않는다. 서로를 존중하며 남이 불쾌할 만한 말을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실제 우리 사회도 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협업과 돌봄을 바탕으로 작동한다. 아이를 낳고 먹이고, 청소와 요리를 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집을 수리하는 일들은 우리의 생활과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결과적으로 사회를 지탱케 하는 일들이다. 다만 우리 사회는 그것을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해졌지만, 이 게임에서는 그것을 가장 원시적이고 간단한 형태로 가시화 시켜놓았을 뿐이다. 이 글은 멀티 플레이어 게임 <오버워치>에서 여성 차별적인 채팅들이 현실에서의 돌봄에 대한 가치 폄하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게임 채팅에서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차별적 언사들은 반향실(혹은 에코 챔버) 효과를 통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강화되는 측면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현실의 구조와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여성을 혐오하고 육아와 돌봄을 폄하하면 신규 유저가 점점 줄어드는 게임처럼 우리 현실도 태어나는 자 없는 죽음만이 가득한 땅이 될 것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와 같이 돌봄의 가치를 재정의 하는 게임이 혹시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게임이 불합리한 현실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현실을 바꾸는 시발점이 될 수 있을까? Tags: 원아워원라이프, 여성게이머, 상호작용, 프레이저, 오버워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김지윤 연세대학교에서 언론홍보영상학과 인류학을 공부하고,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했다. 부족한 실력으로 게임을 하다가 게임의 신체적 퍼포먼스에 관심을 갖게 되어 게임 연구를 시작했다. 여성 게이머의 게임 플레이 경험을 분석한 석사학위 논문을 써서 2020년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우수 학위논문상을 받았다. 현재 미국 시카고대학 영화·미디어학과 (Cinema and Media Studies) 박사 과정에서 게임문화를 전공하고 있다.

  • 심사위원장 총평

    제 1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의 심사위원장을 맡은 연세대학교의 윤태진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이번 응모작들의 전반적인 수준이 예상보다 훨씬 높았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심사위원들이 기대했던 정도를 훨씬 뛰어넘는 좋은 원고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어서 매우 기뻤습니다. 응모해주신 90여명의 예비 비평가 모두에게 감사와 격려를 전합니다. < Back 심사위원장 총평 07 GG Vol. 22. 8. 10. 심사위원장 심사평 제 1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의 심사위원장을 맡은 연세대학교의 윤태진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이번 응모작들의 전반적인 수준이 예상보다 훨씬 높았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심사위원들이 기대했던 정도를 훨씬 뛰어넘는 좋은 원고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어서 매우 기뻤습니다. 응모해주신 90여명의 예비 비평가 모두에게 감사와 격려를 전합니다. 좋은 평론이란 무엇인가. 좋은 게임 비평문이란 어떤 글을 말하는가. 명문화된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동의하는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심사위원들이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몇 가지, 명쾌하진 않지만 상식적으로 용인 가능한, 그리고 완전치는 않지만 충분히 포괄적인 방향성 정도는 합의할 수 있었습니다. 우선 저자의 독창적인 관점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단순한 경험담이나 감상문과는 달라야 한다. 문학이나 영화 비평의 방법론을 무비판적으로 적용하려는 시도는 높이 평가하기 어렵다. 지나치게 학술논문에 가깝거나 개념 과잉의 글도 좋은 비평문이라 볼 수 없다. 내용만큼이나 문장과 문체의 완성도 및 독이성(讀易性)도 중요한 요건이다. 내용의 확장가능성이나 미래지향적 태도 역시 중요하다. 정도입니다. 아, 게임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열렬한 애정은 말할 나위도 없겠습니다. 이같은 아이디어들을 염두에 두며, 심사위원 다섯의 개별적 평가와 치열한 토론을 통해 아홉편의 당선작을 선정했습니다. 최우수상을 수상한 웜뱃 님의 “게임은 XX다: 동어반복적 회로를 차단하기”는 챗봇 플라밍고와의 대화에서 시작된 발상을 “게임은 지식인가?”라는 질문으로 연결시키고, 이를 다시 재현성의 위기로 풀어낸 다음 “게임은 예술도 지식도 아니”라는 잠정적 결론으로 마무리짓는 독창적이고 탁월한 논리의 흐름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장르의 게임과 사례들을 적절하게 배치하고, 아주 현학적이지도 않지만 아주 가볍지도 않은, 재기가 넘치지만 통찰이 있는 글을 완성했습니다. 제 1회 공모전의 최우수상이라는 상징성 있는 타이틀을 부여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글이라 판정하였고, 심사위원 전원의 동의를 거쳐 수상작으로 선정했습니다. 좋은 글을 쓰신 웜뱃 님에게 감사와 축하말씀 전합니다. 김민호, 김지운, 김도근 님의 응모작 세 편에게는 우수상을 시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김민호 님의 독창성, 김지운 님의 통찰력, 김도근 님의 전문성은 다른 응모작들보다 한 단계 높은, 차별적인 장점이었습니다. 장려상을 수상하게 된 박동수, 김선오, 이선인, 김규리, 김서율 님에게도 큰 축하를 보냅니다. 첫 행사였음에도 이렇게 훌륭한 아홉 편의 수상작을 낼 수 있어서 정말 기쁩니다. 동시에, 이번 수상이 저자들의 단발성 스펙으로 끝나지 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앞으로도 계속 게임에 대한 애정으로 갖고 좋은 글을 써주시기 바랍니다. 아직 척박하기 그지없는 우리나라 게임 평론의 토양을 여러분이 나서서 개척해주시기 바랍니다. 〈게임제너레이션〉도 땅을 개간하고 꽃을 피우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꾸준한 관심과 참여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제 1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심사위원장 윤태진 심사위원 명단 (가나다 순) 이경혁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상우 (게임칼럼니스트) 이정엽 (순천향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윤태진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천정환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세대학교 교수) 윤태진 텔레비전 드라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지금까지 20년 이상 미디어문화현상에 대한 강의와 연구와 집필을 했다. 게임, 웹툰, 한류, 예능 프로그램 등 썼던 글의 소재는 다양하지만 모두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활동들”을 탐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몇 년 전에는 『디지털게임문화연구』라는 작은 책을 낸 적이 있고, 요즘은 《연세게임·이스포츠 연구센터(YEGER)》라는 연구 조직을 운영하며 후배 연구자들과 함께 여러 게임문화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 [인터뷰] 25년간 게임의 지평은 어떻게 바뀌었나? : 게임 역사연구자 나보라, 게임 아카이비스트 오영욱 대담회

    한때 미래 세계를 의미했던 21세기가 들어선 지도 벌써 25년이 지났다. 그 25년 동안 많은 문화적 변화가 야기되었는데, 그중에서도 게임은 급격한 속도로 우리의 일상 안으로 들어왔고 다양한 문화적 유산들을 만들어냈다. 이번 호에서는 게임 역사 연구자인 나보라 박사와 게임 아카이빙을 하고 있는 오영욱 박사를 모시고 그동안 우리의 게임이 얼마나 변했는지에 대해 대담회 형식으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Back [인터뷰] 25년간 게임의 지평은 어떻게 바뀌었나? : 게임 역사연구자 나보라, 게임 아카이비스트 오영욱 대담회 23 GG Vol. 25. 4. 10. 한때 미래 세계를 의미했던 21세기가 들어선 지도 벌써 25년이 지났다. 그 25년 동안 많은 문화적 변화가 야기되었는데, 그중에서도 게임은 급격한 속도로 우리의 일상 안으로 들어왔고 다양한 문화적 유산들을 만들어냈다. 이번 호에서는 게임 역사 연구자인 나보라 박사와 게임 아카이빙을 하고 있는 오영욱 박사를 모시고 그동안 우리의 게임이 얼마나 변했는지에 대해 대담회 형식으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연구자 개인들이 겪은 25년의 세월: 세대 혹은 코호트 이경혁 편집장: 21세기가 시작된 지 벌써 한 쿼터가 지났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게임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이야기하고자 두 분을 모셨는데요. 먼저 조금은 편하게 ‘지난 25년간 내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부터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주제가 너무 무거우니 가볍게 제 이야기를 말씀드리자면, 제가 기억하는 2000년대 초반 게임의 가장 큰 이미지는 댄스 게임이었어요. 99년 6월에 부천역 오락실에 처음 이 등장했는데, 제가 당시 군대를 갔거든요. 딱 두 달 밟아보고 군대를 갔는데 댄스 게임이 굉장히 아른거리더라고요. 이때 흥미로운 점은 ‘게임했던 공간’입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오락실이라는 공간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의미가 조금 달라졌잖아요? 이런 변화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보라 박사: 저는 97년에서 2001년 사이에 미국에 유학을 가 있었는데요. 당시에 제가 느꼈던 것은 게임이 ‘아이들만의 것’에서 ‘성인들의 취미’로 변해간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때 ‘플레이스테이션 2’가 미국에서 인기였는데, 그 이유가 DVD 플레이어 기능도 제공하기 때문이었거든요. 그 듀얼 기능이 먹히면서 보였던 변화상 중에 하나가 TV 메인 광고 시간대인 저녁 7시에 게임 광고가 나왔던 지점이었어요. 그전까지 게임 광고는 어린이 채널이나 아이들이 주로 TV를 보는 시간대에 나왔어요. 그런데 ‘드림캐스트’의 <쉔무>나 ‘플레이스테이션 2’의 <파이널 판타지 7> 광고가 영화처럼 만들어졌고 성인들을 타겟으로 하더라고요. 저는 이때부터 비디오 게임이라는 것이 주류의 성인들도 즐길만한 오락으로 등장했다고 보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한국은 2010년대 들어서서 게임이 성인을 대상으로 포커싱하는 변화가 만들어졌는데, 북미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그런 변화가 있었군요. 당시에 20대를 타게팅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지금 북미 게임 시장은 중년을 타게팅할 수 있겠네요. 오영욱 박사: 저는 2000년에 청주에서 고등학생 시절을 보냈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리듬 게임이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엄청 인기를 끌었거든요. 나 이 나오면서 장판 같은 것을 은박지로 납땜해서 채보를 연습하고, 학교 컴퓨터에 연결해서 야자 시간에 놀고, 그랬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90년대에는 오락실하면 어둑어둑한 분위기가 있었는데, 이런 것들이 확 바뀐 것이 2000년대 초였던 것 같아요. 또 한가지 기억에 남는 경험은 밤새 오락실을 빌리는 문화가 있었다는 점이에요. 당시에 PC통신으로 만난 친구들이랑 같이 다니면서 <이니셜 D>, <태고의 달인> 같은 게임들을 했는데, ‘압구정 조이플라자’같은 곳에서 하루를 대여해서 밤새 대결을 했었어요. 몇만 원 내고 게임기를 빌려서 밤새 돌아가면서 게임했던 문화가 있었던 거죠. 게임하는 공간: 오락실, PC방, 그리고 이경혁 편집장: 확실히 2000년대 초반을 상징했던 게임 중에 리듬 게임이 있었지요. 90년대까지 오락실은 스틱과 버튼 위주의 아케이드 스타일이었다면, 여러 기기들이 만들어진 건데요. 그렇게 보면 2000년대부터는 오락실이 특정 연령이나 특정 성별의 공간이라기보단 누구나 손쉽게 올 수 있는 형태로 대중화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오영욱 박사: 그렇죠. 당시에 신촌을 지나가다 보면, 지금 독수리 다방 건물 1층을 다 리듬게임으로 해놓고 밖에서 볼 수 있는 구조였어요. 그러면 안에서 춤추는 사람들이 보이는 거예요. 그렇게 대중적 공간으로 문화가 변해갔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그러면 오락실이 변모해온 과정을 오늘날 돌아봤을 때, 일종의 대중화나 캐주얼화라고 볼 수도 있는 걸까요? 나보라 박사: 대중화라기보다는 양성화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대중화라고 한다면, 시장의 주류가 되었다는 느낌이 드는데, 사실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문화로 ‘격상’되었다기보다는 공간의 분위기와 이용방식이 바뀌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그렇네요. 사실 붐비기는 예전의 오락실이 더 붐볐거든요. 한편으로는 이러한 변화를 이야기할 때, 공간성의 변화를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요. 아까 오영욱 선생님이 PC 통신에서 만난 사람들과 게임하던 2000년대 초반을 말씀해주셨는데, 당시에는 온라인 문화의 확장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겠죠. 그러나 ‘오프라인에서 모여서 게임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도 구시대 문화가 되어버린 것이 2025년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나보라 박사: 말씀하신 것처럼, 예전에는 오락실이 약속 장소로의 공간이 가지는 의미가 있었어요. 아케이드 오락실을 역사적으로 보면, 원래 영화관 옆에 붙어있던 공간이었잖아요? 미국에서도 그랬고 우리나라에서도 그랬고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기능이 거의 없어진 것 같아요. 오영욱 박사: 일본의 오락실의 경우에는 지금도 여전히 오프라인 중심의 공간이거든요. 확실히 우리의 문화와 다르죠. 그 중심에는 카드 게임기가 있는데, 카드 게임기가 한국에 들어오지 못해서 완전히 다른 형태를 보이는 것 같아요. 재밌는 것은 아케이드 시장을 구축하는 것이 게임기의 순환이라는 점이에요. 일본에서 어떤 아케이드 게임이 유행하면 한 사이클이 돈 뒤에 한국으로 넘어가고, 한국에서 한 사이클이 돌면 동남아로 넘어가고 그런 글로벌 물류 체인 시스템이 아케이드 산업을 지탱하는 점이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바다이야기’ 사태도 있었고 법적인 환경이 제공되지 않아서 카드 게임이 넘어오질 않았어요. 디지털게임 연구 이경혁 편집장: 지금 이야기하신 부분이 한국의 게임 환경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테마일 것 같아요. 2005년에서 2006년 일어났던 바다이야기 사태는 한국 게임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기도 했는데요. 이 사태가 한국 게임 문화에 어떤 영향을 남겼을까요? 오영욱 박사: 산업적인 영역에서는 너무 많은 논의가 있을 것 같고요. 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드려보고 싶어요. 저는 당시에 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였고, 관련 연구를 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요. 바다이야기 사태가 터지면서 게임 연구가 확 줄어들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이경혁 편집장: 나보라 박사님은 당시에도 학계에 계셨는데, 실제로 어땠나요? 나보라 박사: 확실히 바다이야기의 영향이 없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전에는 인문 분야든 이공계든 게임 연구를 전반적으로 지원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이후에는 이공계나 산업쪽으로 지원이 쏠렸어요. 다만 바다이야기 사태가 직접적인 원인인가 라고 묻는다면 명확한 상관관계는 이야기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원래 정부의 연구 지원 풍토가 대체로 산업, 기술 등 실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성과를 선호하기 때문에 인문사회학적 게임 연구가 각광받긴 힘든 분위기였는데, 그런 상황에서 바다이야기 사태가 터진거죠. 이경혁 편집장: 말씀하신 것을 들으니, 인과관계를 딱 잘라서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긴 하네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이전에는 게임 인문 연구를 왜 장려하는 분위기가 있었을까요? 나보라 박사: 이 역시 인과로 이야기하기는 어려운데요.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가 가지는 특수성도 여러 영향 중에 하나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2000년대 초반에 우리나라가 전세계 게임 씬의 주목을 받았잖아요. 세계 최초로 게임 방송 채널이 만들어지고, PC방이 대중문화 공간으로 확산되고 그러니까 외국의 게임 기자나 저널리스트들이 와서 신기해했거든요. 그전까진 항상 서구권을 쫓아가던 입장에서, 정부나 기업을 설득할 때도 중요한 특이점이었던 거죠. 이경혁 편집장: 그런 지점도 중요한 영역이었겠군요. 그러면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지금은 인문학 계열의 게임 연구가 조금 나오고 있나요? 오영욱 박사: 옛날에 비하면 확실히 확 나아졌죠. 지원이나 환경이 좋아졌다고 이야기할 순 없지만, 일단 연구자들이 늘어났고, 관련 논의가 늘어나고 있어요. <제국의 게임> 나왔을 때가 중요한 분기점이었다고 생각을 하고요. 이후로 이경혁 편집장님 책이 나온 것처럼 유의미한 논의들이 나오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종합해 보면 그런 흐름은 있네요. 2000년대 초반에 스타크래프트와 PC방을 필두로 소위 말하는 ‘게임 문화의 붐’이 있었고, 이를 따라서 연구나 비평이라는 흐름도 형성이 되어 2006, 7년까지 흐름이 이어졌다가 모종의 이유로 침작하는 시기를 거치고 2010년 후반부터 다시 논의가 나오고 있다. 나보라 선생님은 당시에도 연구하셨고 지금도 연구하시는 입장에서 게임 연구의 환경은 나아졌다고 볼 수 있을까요? 나보라 박사: 나아졌다고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때는 게임 연구에 대한 소스를 찾을 만한 게 마땅치 않았고, 박상우 선생님 등을 제외하면 나오는 연구라고는 다 영어 연구들인데 이를 접할 수 있는 창구도 많지 않았죠. 그런데 지금은 바로바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 연구자의 풀이 넓어진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나아졌다고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늘 느끼는 것은 결국 구심점의 문제인 것 같아요. 당시에는 박상우 선생님의 ‘게임문화연구회’라는 구심점이 있었고, 그다음엔 성균관대의 ‘게임 인문학’이나 중대의 ‘엘리스 온’, 인문학협동조합 등 구심점이 있었는데, 앞으로는 어떤 구심점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한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그러면 오늘날 어떤 게임 연구가 필요하다고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나보라 박사: 2000년대 초반의 게임 연구는 게임 자체, 그리고 게임 연구 자체의 정체성을 찾는 데 많은 방점이 찍혀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게임이 대중화되었고 여러 가지 매체와 뒤섞이게 되었죠. 그래서 게임만을 이해할 수 있는 이론을 찾아내는 것은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는 것 같아요. 오늘날과 비교하면 가장 큰 차이점은 게임이 더이상 젊지 않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기에 이제는 더 다면적인, 학제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게임 아카이빙 이경혁 편집장: 연구 이야기를 했는데, 이번엔 아카이빙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죠. 오영욱 박사님은 언제부터 아카이빙을 하셨나요? 오영욱 박사: 저는 2000년대 초에는 일종의 취미 생활로 작품을 모으다가, 2006년쯤부터 본격적으로 아카이빙을 하기 시작했어요. 이경혁 편집장: 아카이빙을 꾸준히 하신 분의 입장에서 2000년대 초반과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오영욱 박사: 일단 2000년대 초에는 게임이 아카이브의 대상으로 인식되지 않았어요. 2006년만 하더라도 <컴퓨터 학습>이나 <게임 월드> 같은 잡지들을 권당 몇천 원으로 팔았거든요. 극단적인 예시지만 제가 2008년에 강원도에서 게임 잡지 6박스를 5만 원에 받아왔어요. 사실 이런 흐름은 미국이랑 일본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런데 2010년대 후반부터 게임이 수집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죠. 2013년에 문을 연 넥슨의 ‘컴퓨터 박물관’ 같은 경우가 게임이 수집의 대상이 되기 딱 직전부터 수집품들을 받았던 형태였어요. 그런데 이후로 수집가들이 수집을 하고 재테크 목적이 들어가면서 체감상 2020년쯤부터는 돈 주고 살 수 없는 가격으로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아카이브를 하는 입장에서 옛날 자료를 모으는 건 거의 불가능한 시대가 된 것 같아요. 제 경우에는 원래 잡지나 게임의 내용을 알고 싶어서 샀었거든요. 그런데 가격이 오르고, 한정판이 나오면서 점점 이게 힘들어져요. 일단 실물 패키지라는 것도 이제는 한정판으로 나오는데, 이 게임을 하려면 기기도 사야 하고, 박물관 입장에서 ’직원이 한정판을 줄서서 사야 하나?라고 물으면 어려운 부분들이 있는 거죠. 온라인 미디어 때문에 애매한 영역도 크고요. 인프라와 플랫폼, 그리고 장르 이경혁 편집장: 물성의 변화도 두 시대를 놓고 본다면 너무나 큰 변화죠. 이제는 수집의 용도 외에는 물질 매체의 의미가 사라졌잖아요? 게다가 이런 변화는 단순히 물건을 소유할 수 없다는 문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서버’라는 형태에 게임 소프트웨어가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물성 때문에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기승전결도 사라졌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특히, 요즘 게임에서 엔딩이 없어졌죠. 어떻게 보면 오늘날을 ‘엔딩이 없어진 시대’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오영욱 박사: 이제는 모바일 게임이나 온라인 게임들은 결국 하나의 게임이라기보다, IP라고 봐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이경혁 편집장: 사실은 2000년대 초반에도 엔딩이 없는 온라인 게임들이 있었거든요. <바람의 나라>도 이미 당시에 서비스를 하고 있었고. 재밌는 것은 <스타크래프트>의 사례인데, 판매는 패키지로 했지만 서비스는 엔딩 없이 돌았잖아요? (웃음) 그 결과, 블리자드는 플레이 양에 비해서 돈을 못 벌었죠. 당시에는 ‘패키지를 사면 베틀넷은 평생 무료’ 이게 마케팅 콘셉이었잖아요. 오영욱 박사: 그 이상의 비즈니스 모델을 못 찾은 거죠. 당시에 돈 내고 베틀넷을 하라고 했으면 아무도 안 했을 테니까요. 그때는 그게 그나마 최선이었을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결제 수단 변화도 되게 크네요. 2010년대 스마트폰 대중화 이후에 ‘오픈 카드’가 가능해지면서, 스마트폰에 카드를 오픈해 놓고 클릭 한 번 하면 그냥 들어가는 이 방식이 2000년대 게임과 지금의 게임을 크게 나누는 부분이기도 한 것 같아요. 예전에는 지로가 있었거든요. 나보라 박사: 옛날에 온라인 게임을 하려면 지로로 보냈어야 했죠. 오영욱 박사: 한국에서 온라인 게임이 발전했던 거는 온라인에서 할 수 있는 결제 모듈, 그런 종류의 그런 온라인으로 쓸 수 있는 결제 모듈, ‘다날’ 이런 게 있어서 가능했죠. 미국에서도 2008년에야 ‘마이크로트랜잭션(소액 결제)’이 주목받는 분위기가 나오기 시작했으니까. 그때는 카드 자동결제도 없었고요. 이경혁 편집장: 신용카드의 보편화도 되게 중요한 변화네요. 2001년까지만 해도 신용카드가 그렇게 막 쉽게 발급되지 않는 시절이 있었어요. 오영욱 박사: 결제가 사실 중요한 부분이긴 한데 연구가 잘 안 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종류의 편의성들이 게임의 디자인이라든가 장르적인 부분에 미치는 영향이 분명히 있을 텐데, 논의가 안 된 거죠. 이경혁 편집장: 지금의 게임 장르 유행이 나오기 위해서는 당연히 인프라의 변화가 있는 거고, 이것처럼 게임 밖의 영역이 게임 내부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겠죠. 특히, 요즘같이 인앱 결제를 베이스로 스토리나 메카닉까지 영향이 가는 거면 당연히 결제 수단 연구가 필요해서 저도 결제 관련 연구들을 하고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변화 중에 하나가 요금 종량제와 요금제의 변화이기도 합니다. PC 통신 때만 해도 전화 요금이라는 거는 사용량 베이스로 갔었어요. 돌이켜 보면 지금처럼 인터넷 요금이 초기 전화 요금처럼 누진제로 갔으면 이 상황은 오지 않았겠죠. 오영욱 박사: 예전에는 데이터양으로 요금을 내거나, WAP(Wireless Application Protocol, 무선 어플리케이션 프로토콜) 같은 경우에는 뎁스마다, 명령 하나 당 돈을 냈어요. 이런 상황에서는 게임 개발도, 플레이도 힘들었을 거예요. 나보라 박사: 실제로 그땐 휴대폰에 인터넷 접속하는 버튼 잘못 누르면 막 끄고 그랬죠. (일동 웃음) 오영욱 박사: 진짜 이런 지점은 외부에서 들어와서 생긴 혁명적인 변화였던 것 같습니다. 아이폰 안 들어왔으면 게임계가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어요. 나보라 박사: 아이폰 같은 경우엔 앱 스토어도 게임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요. 게임 산업 이경혁 편집장: 한국의 게임 역사를 이야기하면 MMORPG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한편으로는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고, 많은 변화를 만들기도 했던 한국의 게임 산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예전에는 각광받던 벤처 기업으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대기업들이 되었잖아요? 그 변화 이면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섞여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저는 최근 드라마에 게임사가 배경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서 ‘예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장면’이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2000년대 초까진 게임을 한다거나, 게임 회사에 다니는 것이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영역으로 여겨졌는데, 이제는 양지화가 된 측면이 있어요. 나보라 박사: 양지화의 측면에서는 NC의 야구단 창설이 가지는 문화적 의미가 크긴 했지요. 대중문화에서 굉장히 아이코닉한 순간이었잖아요? 넥슨의 컴퓨터 박물관도 그렇고, 게임계의 위상이나 인식이 바뀐 순간들이 있어요. 오영욱 박사: 이어서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MMO RPG가 제한한 한국 게임 시장의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그동안은 한국 게임이 많이 수출되었고 중국은 <던전 앤 파이터>, 대만은 <라그나로크 온라인> 등 국민 게임이 될 정도로 영향력을 보였는데, 지금은 한계에 부딪힌 느낌이 있어요.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야 하는데, 인도에서 <배틀그라운드>가 성공한 것처럼 다른 가능성을 여는 작업들이 산업적으로나, 경영적으로나 많이 시도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로스트아크> 정도의 새로운 플레이어가 나오긴 했지만,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 어떤 전략과 기획을 가져가야 할지 더 고민이 필요해보여요. 이경혁 편집장: 그런 지점에 있어서는 MMORPG라는 것도 2000년대 초반의 장르는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그러면 지금의 메이저 장르는 뭐가 될까요? 나보라 박사: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네요. 이경혁 편집장: 어떻게 보면, ‘메이저 장르’라는 개념이 옛날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볼 수 있겠네요. 장르 자체가 다변화됐고 수용자층도 확실히 넓은 저변을 갖게 되면서, 한편으로는 시장에 독이고 한편으로는 시장의 약인 그런 포스트모던한 상황으로 변한 것 같기도 하네요. 이 역시 중요한 변화네요. 2000년대에는 올해의 GOTY를 뽑기 쉬웠는데, 이제는 점점 어려워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그리고, 게이머 이경혁 편집장: 마지막으로 이 질문은 꼭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게이머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2000년대 게이머와 2025년의 게이머. 오영욱 박사: 사실 게이머 자체는 그때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고 생각을 해요. 다만, 분화가 생기고 나눠서 싸운다고 할까요? 예를 들어 그런 이야기 있잖아요.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은 일반인이 하기 어려운 게임이니, 일반인한테 추천하지 말아라” 근데 여기서 누가 일반인이냐, 게이머냐고 싸우는 거죠. 저희 어머니는 예전에도 쓰리매치류 게임을 하셨고 지금도 하고 계신데, 이런 분들이 게임을 안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예전에는 지금처럼 갈라서 싸우는 문화는 없었긴 했어요. 나보라 박사: 문화연구 쪽에서는 전형적인 이야기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게임이 하위 문화였는데 지금은 점점 아니게 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전엔 게이머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균질적인 속성을 공유하고 서브 컬처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했는데, 지금 시점에는 이런 게이머들도 존재하지만, 이들 역시 여러 게이머들 중에 하나일 뿐 다양한 게이머들이 나오고 있다. 게임과 관련된 다양한 정체성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죠. 이경혁 편집장: 사실 오늘날에 텔레비전 보는 사람한테 ‘텔레비저너’라고 부르진 않습니다. 그러니까 게이머가 게이머일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고, 지금 게임을 하는 사람을 게이머로 부르는 게 맞는지에 대한 의심이 들어요. 게이머라는 단어의 사회적 용례는 소멸해 가는 게 아닌가? 옛날에는 ‘게임하는 사람’이 게이머였는데, 지금은 ‘“제가 게이머입니다”하는 사람’이 게이머인 거예요. 왜냐하면 게임하는 행위가 너무나 일반화됐기 때문이죠. 나보라 박사: 말씀하시는 부분을 들으며 그런 생각이 드네요. 최근 말씀하신 그 하드코어 게이머들이 업계에서 목소리를 내는 가장 큰 근거가 ‘본인은 돈을 많이 쓰는 소비자다’는 거잖아요. 따라서 ‘소비자인 내가 이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할 권리가 있고 업계는 들어야만 한다’고 주장을 하는데, 이게 20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만들어진 결과라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어요. 본인이 정말 게임을 사랑하고 매니악하게 파고 든다면, 게임 자체에 대해서 더 깊이 있는 논의를 만들거나 ‘게임에 대한 감수성’ 같은 부분으로 문화적인 권위를 내세웠으면 좋았을텐데, 문화적인 소양이나 매체에 대한 이해로 하드코어함이 성장했으면 좋았을 텐데, 여전히 소비자로의 권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쉬운 거죠. 오영욱 박사: 한국 사회 전반적으로 소비자 주의가 팽배하다는 문제가 있죠. 트럭 집회도 그런 지점에서 볼 수 있고요. 이경혁 편집장: 그런 문제점들을 대면하면서, 확실히 오늘날에는 게임하는 사람을 게이머라고 부르는 것이 무용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마치 밥먹는 사람을 ‘밥먹러’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게이밍이 일반 행위가 되면서, ‘행위하는 사람’으로의 의미는 소멸해간 것 같습니다. 긴 시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Tags: 좌담회, 게임역사, 게임연구, 아카이빙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인디게임’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반지하게임즈 이유원 대표

    인디게임의 범주에 관해서는 여러 행위자의 관점과 이해관계가 얽혀있는바, 모두를 만족시킬 온전한 합의점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관념적인 개념어의 범주와 상관없이 지금도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며 인디게임의 가능성을 확장시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 호에서는 ‘반지하게임즈’의 이유원 대표를 만나 그가 정체화하고 있는 인디게임은 어떤 개념이며 지향점은 무엇인지 살피고자 한다. 2021년 9월,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이 직접 반지하게임즈 스튜디오를 찾아갔다. < Back ‘인디게임’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반지하게임즈 이유원 대표 02 GG Vol. 21. 8. 10. * 인터뷰는 반지하게임즈 본사 회의실에서 이뤄졌다. 포털 사이트에 인디게임을 검색하면, 도트 그래픽의 레트로 게임 풍 이미지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이어지는 설명은 재기발랄한 아이디어와 개발자의 열정 등으로 부족한 자금력을 극복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이와 같은 기표들은 인디게임의 다양성을 포괄하기에 부족하다. 이에 오늘날에도 인디게임이 무엇인지, 어디까지가 인디게임인지에 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인디게임의 범주에 관해서는 여러 행위자의 관점과 이해관계가 얽혀있는바, 모두를 만족시킬 온전한 합의점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관념적인 개념어의 범주와 상관없이 지금도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며 인디게임의 가능성을 확장시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 호에서는 ‘반지하게임즈’의 이유원 대표를 만나 그가 정체화하고 있는 인디게임은 어떤 개념이며 지향점은 무엇인지 살피고자 한다. 2021년 9월,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이 직접 반지하게임즈 스튜디오를 찾아갔다. 편집장: ‘반지하게임즈’의 그동안 출시작들을 보면 우리가 주류에서 이야기하는 디지털 게임의 유산을 가져다 쓰기보다는 오프라인이나 레트로 게임의 영향이 훨씬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어떤 게임 경험이 지금의 ‘반지하게임즈’를 만들었다고 보시나요? 이유원 대표: 물론 저도 어릴 적부터 많은 게임을 했지만, 제가 게임을 오래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게임 기획에 있어 제가 영향을 받은 경험들은 게임을 즐겼던 당시보다 좀 나중 이야기인 것 같아요. 나중 돼서 자유로운 창작물이 올라오는 공간에 오래 있기도 했고 보드게임을 접한 것도 되게 큰 영향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제가 만드는 게임 스타일이 그래픽이나 물리 엔진 이런 것들이 들어가서 시너지를 내고 이런 거보다는 규칙이나 이야기 위주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다양한 테마나 규칙이 있는 게 대부분 보드게임 쪽에서 많이 나왔던 것 같아요. 편집장: 그러면 게임을 만드실 때 현실에서도 어떤 현상이 어떤 규칙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시나요? 이유원 대표: 그렇죠. 저희 기획자들이 그런 점에서는 코드가 비슷한데 일상생활을 하다가 “이거 게임으로 만들면 재미있겠다” 이런 얘기가 나오면 게임처럼 보이는 규칙을 찾으려 하고, 실제로 그런 식으로 출발하게 된 것들이 몇 개 있었죠. 〈중고로운 평화나라〉도 그렇고 〈허언증 소개팅!〉도 그렇고. 게임이 될만한 규칙을 현실에서 많이 찾는 것 같아요. 편집장: 게임에 있어서 규칙은 굉장히 중요하죠. 그런데 어떤 게임이 나오면 사람들의 평가에서는 제일 먼저 그래픽 이야기가 나오고, 사운드가 나오고 그러잖아요. 만약에 기회가 되고 자본이 된다면은 어떤 쪽에 좀 힘을 줄 의향이 있으세요? 이유원 대표: 그냥 스타일의 문제인데요. 제가 지금 만든 게임들이 막 자본에 쪼들려서 이런 거밖에 못 만든 것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만약에 100억을 갖고 만든다 해도 화려한 그래픽보다는 ‘이게 어떤 게임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의 규칙을 갖고서 기획을 시작할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사실 MMORPG를 만든다고 하면 그 안에 핵심 규칙이 뭐냐, 이걸로 차별성을 두지는 않잖아요. 〈리니지M〉이나 〈트릭스터M〉이 어떤 규칙이 다른가보다는 메타피쳐나 콘텐츠 정도에서 테마의 차이가 있는 건데, 만약 제가 만든다면 좀 핵심적인 걸 넣고 싶어할 것 같아요. 이게 왜 게임이 되는지를 모두에게 딱 일견에 납득시킬 수 있을 만한 것. 다만 이건 어떤 게 더 좋다, 나쁘다가 아니고 요즘 게임이 워낙 다양하고 산업도 크니까 그냥 스타일이 여러 개인 것 같아요. 저는 좀 더 규칙이 강조된 거를 재미있어 하고 그걸 만드는 걸 좋아해요. 실제로 유저들도 규칙이나 아이디어가 재미있는 것을 더 좋아하는 분들이, 특히 인디 쪽에는 더 계시고요. 편집장: 그런데 사실 규칙에다가 어떤 이야기를 입힌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그러면 게임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규칙과 스토리가 상충할 때, 뭐가 더 우선이라고 생각하세요? 이유원 대표: 저는 규칙이 항상 앞선다고 생각을 하고요. 그 모순을 해결하는 건 결국 경험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제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를 좋아했는데, 〈와우〉를 하면서 재미있던 경험을 문장으로 치환하면 구체적인 수치나 공격력 같은 것들과 상관없이 느낄 수 있는 것이잖아요? 그러니까 복잡한 수치나 그래픽이나 충돌 감지 이런 것들이 아니라 재미있던 경험을 텍스트로 치환하는 것. 그러면 내가 재미있던 스토리를 규칙으로 만들 수 있는거죠. 편집장: 그런데 규칙을 만든다고 해도 게이머나 수용자가 그것을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나요? 가령, ‘내가 이렇게 규칙을 만들면 재미있어하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사람은 그런 반응이 나오지 않고. 그럴 수 있을 것 같은데, 게임 기획자로서 독자나 수용자에게 닿기 어려운 부분들은 있으신가요? 이유원 대표: 그건 분명히 어려운 지점이죠. 그런데 그 지점에 있어서는 제가 밑바닥에서 게임을 만들었던 경험이 좋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만들어서 친구들한테 보여주고, 커뮤니티에서 공유되고 그런 상호작용이 있으니까 수용자 입장에서 창작자를 경험할 수 있더라고요. 그리고 만약에 말씀하신 것처럼 의도했던 인터렉션이 아닌 게 나오면은 오히려 저는 되게 기쁠 것 같아요. 버그나 불쾌감을 주는 게 아니라면요. 왜냐하면 게임이라는 매체 자체가 완전히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유저랑 인터렉션으로 완성이 되는 것이다보니, 그 사람이 어떤 경험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죠. 어쩌면 게임 외적으로 에피소드를 만들 좋은 기회이기도 하고요. 편집장: 인터렉션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는데, ‘반지하게임즈’는 유튜브도 하고 DC 갤러리로도 활발하게 소통을 하고 계시잖아요? 유저와의 소통 같은 것들이 회사 주요 정책 결정 등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편인가요? 이유원 대표: 사실 절대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동기부여의 측면이 있죠. 유저들의 피드백을 통해 기획 방향을 잡는 것도 큰 부분이고요. 유저분들과의 상호작용을 하는 이유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요. 첫 번째는 인디 게임 개발사로서 유저랑 친화적인 태도가 중요하다는 생각이고요. 두 번째는 제 스스로도 좋은 피드백을 받고 좋은 말 듣는 것에서 오는 에너지가 되게 커요. 그래서 인터렉션을 계속 신경 쓰는 것 같아요. 편집장: 그동안 나온 게임들을 전체적으로 보면 ‘반지하게임즈’는 다들 인디 게임으로 분류를 하고 있죠. 대표님도 스스로 인디 게임으로 정체화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 인디 게임이란 건 뭘까요? 이유원 대표: 만들고 싶은 거를 만드는 게 인디 아닐까 싶긴 해요. 〈프로젝트 좀보이드〉 나 〈림월드〉를 보면 느낌이 오잖아요? ‘아! 이거 창작자가 진짜 만들고 싶은 걸 만드는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데. 저도 비슷한 생각이에요. ‘내가 돈 벌려고 만든 거야’ 혹은 ‘내가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어’라고 말하는 것도 물론 인디일 수 있겠지만, 어쨌거나 자기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드는 것이 인디게임이지 않을까 싶어요. 편집장: 요즘 대형 게임사가 산하 스튜디오를 만들기도 하고 투자도 많이 하잖아요. 이제는 그런 곳에 있는 인디 게임 스튜디오도 많이 있지요. 그래서 인디게임의 기준이라는 답이 없는 질문에 또 하나의 갈등이 생긴 것 같아요. 어려운 질문이지만, ‘큰 펀딩을 받아서 나오는 게임이 인디게임이냐?’는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유원 대표: 저는 규모나 상업성이랑은 상관이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저도 당연히 돈이 좋고 돈이 많으면 지금 제가 〈서울 2033〉에서 하고 싶은 것을 10배 속도로 더 빨리 할 수 있겠죠. 그치만 그게 다예요. 돈이 많이 생겨도 이런 느낌으로 생각을 할 것 같지, 돈이 있으니까 이걸로 돈을 더 크게 불릴 수 있으면 좋겠다거나 게임을 머신처럼 생각하거나 그렇게 하진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인디의 기준에서 상업성이나 규모는 상관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해요. 편집장: 다른 인디 게임 스튜디오들은 보통 대형 게임 개발사에서 몇 년 일을 하다가 나오거나 혹은 게임 아카데미 같은 데서 제작법을 먼저 배워서 나온 사람들이 만드는데 ‘반지하게임즈’를 보면 그렇지 않잖아요? 그것은 어떤 차이를 만드나요? 이유원 대표: 네 그렇죠. 저희가 개발 스택이 충분하지 않을 때부터 게임 출시를 하고 그랬으니까 차이가 많아요. 예를 들어 저는 플래시를 만드는데 언어를 다 이해하는 게 아니고 그냥 만드는 방법을 부딪치며 배우다 보니 어떤 식으로 버릇이 들었냐면. 제가 어떤 코드를 인터넷에서 찾거나 발견을 했어요. 그럼 ‘내가 이걸로 무슨 게임을 만들 수 있지?’ 약간 이런 식으로 가는 거예요, 순서가 바뀐 거죠. 만약 개발 역량이 충분했으면은 오히려 너무 방대한 세상에서 뭐를 만들지 고민했을 수도 있는데 오히려 저희는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시작하다 보니 게임을 제안하기도 쉽고 시작부터 재미있었죠. 편집장: 그런 특수성에서 오는 어드벤티지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이유원 대표: 있다고 생각을 해요. 일단 만드는 사람들이 행복하고 동기부여가 잘 되고, 자기가 원하는 거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고 그걸로 만들어지는 거니까. 그리고 유저 만족도도 웬만하면 더 높겠죠. 왜냐하면 우리의 경험 중에 재미있는 거니까 유저들에게도 권할 수 있는 것이구요. 물론 이것은 확률의 문제이기도 하고, 인디 게임을 보호해 주고 그런 분위기도 역할을 하겠지만요. 그래도 ‘10개 출시해서 9개는 플러스고 한 개 마이너스니까 얘네는 쳐내고’하는 식의 운영이 아니다 보니 재미있게 만들 수 있고 재미있는 것을 권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브랜드 이미지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 같아요. 편집장: 이런 ‘반지하게임즈’의 정체성이 시간이 지나면서, 혹은 회사가 커지면서 희석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이 지점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이유원 대표: 네. 일단 조직이랑 매출 규모라는 두 가지 측면 중에서 일단 매출 규모는 사실 항상 걱정을 하긴 해요. ‘우리가 재미있는 것’을 만들어서 사람들도 좋아하고 팬층이 있는 것도 좋은데, 여기서 어떻게 매출을 발생시키지? 그렇다고 NC가 될 수 있을까? (웃음) 그런데 이 점에 대해서는 사실 우리의 아이덴티티나 브랜드 가치를 바꿀 수는 없는 일이라는 걸 다 알고 있어서 크게 걱정은 안 돼요. 우리가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헤쳐나가야 한다는 걸 다 공감하고 있어서요. 그리고 조직의 측면에서는 저희가 지금 팀제로 운영하고 있는데. 규모가 커져도 한 프로젝트에 100명 200명 되는 기성 게임사처럼 되는 건 아닐 거고요. 많아도 5명 이렇게 해서 팀을 여러 개 늘리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요. 저희가 지금까지는 팀에 여러 명이 중복으로 들어가 있으니까 되게 버겁긴 했는데 이제 좀 개발자들 채용을 하면서 팀 두 개가 그나마 안정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됐어요. 여기에서 원래는 bm이나 기획을 다 제가 했었는데 애초에 그게 불가능하기도 하고 성장하는 데 걸림돌이라 생각이 들어서, 오너십이나 자기 창작물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이 기획자 역할을 각 팀에서 하게끔 바꿨어요. 그래서 요즘 고민인 것은 자기 창작물에 애정이 있는 기획자를 뽑는 거예요. 편집장: 그러면 그런 가정을 한번 해보죠. 정말 대박이 나서 회사가 커졌어요. 외부 펀딩이 시작되면서 경영진의 철학이 변할 수 있는데, 이런 걱정은 안 되세요? 이유원 대표: 걱정이 되긴 하는데요. 이게 불행인지 다행인지, 제가 생각하기에 저희 회사는 철학을 바꿔서도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없어요. (웃음) 이게 무슨 말이냐면, 어떤 사람이 “야! 너 마음 독하게 먹으면 돈 벌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아요. 독하게 먹는다고 어떻게 벌어요? 우리 능력에? bm에 대한 노하우가 특화된 것도 아니고 광고를 때려 박는다고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보니까 하던 대로 그냥 재미있는 거 만들어서 적당히 돈 버는 것 말고는 돈 벌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걱정이 안 되는 그런 게 있고요. 그리고 그것도 있긴 해요. 펀딩은 되게 큰 일이고 당연히 이해관계가 늘어나는 거니까 신중해야겠죠. 투자나 펀딩 같은 것은 결혼하는 것과 같아서 모든 면을 그냥 다 이야기 하고 그걸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나자. 이런 식으로 접근을 하고 있어서 지금까지도 펀딩이 잘 안 되고 있죠. (웃음) 그런데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투자 받아가지고 갑자기 우리가 엄청 커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좋은 사람 만나서 파트너십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 게임에 몰입하다보면 광고영상이 기다려진다. 특히 후원자 버전을 구매하고 개발자에게 총을 쏘다보면(?) 개발자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사꾼이 아니라 친근한 이웃처럼 느껴진다. 편집장: 과금 이야기를 해보면 ‘반지하게임즈’의 피드백에서 과금에 대한 칭찬이 많아요. 그걸 느끼세요? 이유원 대표: 네. 힘들긴 한데 사실 가이드라인이기도 해요. 우리 유저가 팬층이고 이걸 진짜 브랜드 이미지로 확보 하려면 우리 어떤 스텝으로 과금을 바꿔야 될까 약간 이런 게 항상 과제로 있는 거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죠. 그런데 인디게임 기획자면 bm 만드는 걸 좀 싫어하지 않나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저는 제가 아직 몰라서 그런 건지 재미있는 영역이라고 생각을 해요. 사람들이 게임을 보면서 되게 현실 같다 이런 얘기를 하는데 사실 bm은 이미 가장 현실에 맞닿아 있는 게임 속 피처잖아요? 그래서 이거를 재미있게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게임 속에서 돈 쓰는 게 재미있는 걸 수도 있잖아요. 상점에서 이것도 골라보고 장바구니에 담고 이런 것처럼. 그래서 이것도 되게 잘하면 잘할 수 있는 영역이겠다 싶더라고요. 편집장: 지금 한국 게임들이 욕을 제일 많이 먹는 게 결제 구조잖아요. 그거랑은 다른 bm을 계속 만들어 가시는 입장에서 한국 bm의 미래는 어떨 것 같습니까? 이유원 대표: 그냥 제 개인적인 생각은 지금 ‘가챠’ 같은 게 가장 핫하다고 한다면 그 이유는 아마 그거 자체가 재미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요. 원초적인 도박 심리 같은 게 있을 수 있고요. ‘가챠’에 대항마로 ‘배틀패스’ 같은 게 언급되지만 사실 그것도 원초적인 거잖아요. 동기 부여 성취 역학 같은 거죠. 그것도 원초적인 본능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결국 bm은 완성형을 향해 점점 성장하고 변화하는 개념이 아닌 것 같아요. 게임을 만들 때 기획하는 것처럼 원초적인 지점들을 잘 결합해서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저희가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만든다 하더라도 그거는 ‘가챠’나 ‘배틀패스’처럼 게임에서 느끼는 성취나 도박 등의 역학이 녹아 있기 때문일 것 같아요. 다만 어떤 방향으로 고민하냐가 다른 것이겠죠. 다른 데에서 bm을 만든다고 하면 ‘가격을 어떻게 할지’ 등의 고민을 하겠지만 저희 게임에서는 ‘이거 사는 경험이 재미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이런 거니까요. 게임 기획이랑 저는 연장선이라고 봐요. 편집장: 본인이 만든 작품에 대해서 문화 콘텐츠라고 스스로 평가한다면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 사회에서 〈서울 2033〉은 어떤 의미였을 것 같아요? 이유원 대표: 기말고사보다 어려운데요? (웃음) 우리 사회에서의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게임을 만들 때, 먼저 스크립트를 짜죠. 보통 메시지도 없고. 쓰고 싶은 대로 피상적으로 쓰는데요. 나중에 같이 일하는 작가분들이나 아니면 유저분들이 다른 작가분들의 글들 사이에서 제 글을 가리키며 ‘이거 이유원이 쓴 거죠?’라고 물어봐요. 그러면 너무 신기한 거죠. 그래서 어떻게 아는지 물어보니까 이유원식 글의 특징이 있대요. 블랙 코미디랑 풍자 좋아하고, 엄청 날 선 것처럼 파격적이고 가차 없이 죽이고 그러지만 그 안에 휴머니즘이 있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 감성이 오롯이 창작물에 들어가서 사람들이랑 인터렉션을 하면서 공감을 받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의미이고,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편집장: 인터뷰를 통해 게임에서 제일 중요한 건 재미라고 생각한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마지막으로 게임의 재미라는 게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이유원 대표: 재미가 왜 재미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데 저는 그 결과를 많이 볼 수 있었던 포지션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만든 게임이지만 난 잘 모르겠는데 애들은 재미있다고 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거 되게 신기한 이상한 경우잖아요. 그럼 왜 재밌지? 그런 결과들을 모아서 보면은 재미의 원리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그걸 제가 완전히 알지는 못하지만. 원리는 너무나도 쉽고 단순한 것들, 가령 도박일 수도 있고 성취감일 수도 있고 이런 사소한 것들이죠. 기획자가 할 일은 이 부품을 어떻게 조합해서 내 테마와 어울리게 하느냐를 고민하는 거라고 생각을 해요. 물론 부품을 더 찾아나갈 수도 있겠죠. ‘게임들을 만들다 보니까 사람들이 이런 거에서는 재미를 느끼네’ 이렇게 알 수도 있고요. 다만 결국 게임에서 추구하는 가치는 이런 재미의 요소들이 더 잘 버무려진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것을 만드는 것이 기획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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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G Vol. 22 게임 안에 재현되는, 동시에 게임과 조응하는 우리의 신체는 디지털게임과 어떻게 관계맺고 있는가? 게임과 신체라는 근본적인 관계에 대한 내재적, 외재적 고찰들을 모아 본다. <시티즌 슬리퍼>: 꿈에서 깨어나지 않기를 인류는 늘 유한성에 저항해 왔다. 이러한 저항은 단지 물리적인 제약을 극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고착화된 이념을 넘어서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유한성에 대한 저항은 어떤 의미인가? 이 글에서는 저마다의 '몸에 새겨진 꿈'으로부터 그 답에 다가서고자 한다. 여기에서 몸은 지극히 사회적이며 개인적인 신체를 뜻한다. 그리고 꿈은 희망과 절망을 의미한다. ‘꿈을 꾸는 것’은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자,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헛된 기대이기 때문이다. Read More Of green gaming and beyond Since 2020, customers buying a new iPhone no longer have a charger included in the box. According to Apple, this omission was aimed at reducing packaging waste as well as e-waste. The company explained that this move means it has to consume fewer raw materials for each iPhone sold, and it also allows for a smaller retail box, which means 70 percent more units can fit on a single shipping pallet, thereby reducing carbon emissions (Calma, 2020). Read More [Editor's View] 연결되고 재현되는 신체, 그리고 비평과 대중 사이를 잇는 가교로서 사람으로 태어난 게이머에게 몸은 필요조건입니다. 게임 소프트웨어는 상호작용을 요구하며, 이에 대해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신체의 기능을 사용해 응답해야 합니다. 사람이 게임 안쪽에 재현되는 경우라면 신체의 중요성은 더 무거워집니다. 게임 속에 그려진 신체는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사람에 의해 조작되는 신체이며, 이 결과물들은 결국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신체를 사고하는 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Read More [북리뷰] 이토록 숭고한 게임 속 괴물들 - 『플레이어 vs. 몬스터』 <다크 소울> 시리즈나 <엘든 링>과 같은 프롬 소프트웨어의 게임에는 어렵다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한다.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죽음을 맞으면 화면에 빨갛게 떠오르는 ‘You Died’는 상징적인 밈으로 통용된다. 보스와의 전투는 게임의 까다로운 난이도를 구현하는 대표적인 축이다. 게임 유튜버들은 보스전을 성취하는 데에 몇 번의 ‘트라이’를 거쳤는지와 같은 극악한 고투를 부각하기도 한다. 한편 보스들의 기괴한 외형은 이러한 플레이를 더욱 각별하게 만든다. 대표적으로 <다크 소울3>의 튜토리얼 보스인 군다는 2페이즈에서 별안간 검은색 고름 덩어리가 되고, <엘든 링>의 멀기트는 꼬리를 몽둥이처럼 휘두르는 패턴 따위로 플레이어를 곤란하게 만든다. Read More [인터뷰] SNS의 규칙을 게임의 메커니즘으로 바꾸는 여정 : <페이크북> 제작사 반지하 게임즈 이유원 대표 SNS가 현대인의 소통창구로 자리 잡은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그러나 교통, 통신의 기술이 해마다 급격하게 발전하고, 문화적 양상은 그보다 더 빠르게 급변하기에 오늘날 SNS의 특징을 언어로 표현하는 작업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최근 SNS 활동을 기반으로 한 게임이 출시되었다. 심지어 게임을 만든 회사가 일상의 규칙성을 게임의 매커니즘으로 녹이는 데 특화된 ‘반지하 게임즈’이다. 그들은 어떤 고민을 통해 SNS의 규칙을 게임화하였을까? GG 2호 이후 오랜만에 반지하 게임즈의 사무실을 다시 찾았다. Read More 게임 역사 초창기의 기록들: 닌텐도 뮤지엄 방문기 2024년 10월 2일, 닌텐도 뮤지엄(Nintendo Museum)이 마침내 문을 열었다. 프로젝트 발표 이후 3년만의 소식이었다. 닌텐도의 역사와 유산을 기념하기 위해 설립된 이 박물관은 일본 교토부 우지시에 자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박물관은 1969년에 세워진 우지 오구라 공장(Uji Ogura Plant)을 개조한 것인데, 이 공장은 닌텐도가 일본 전통 카드 게임인 화투와 서양식 트럼프 카드를 제작하던 시절부터 비디오 게임 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까지 함께한 역사적인 공간이다. 닌텐도의 변천사를 상징하는 장소에서 다시금 과거와 현재를 모아놓은 셈이다. Read More 게임과 시신경제 (Necronomics) 시신경제 (Necronomics)는 아킬레 음벰베 (Achille Mbembe)의 시신정치 (Necropolitics)에서 영감을 받은 개념이다. 시신정치는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의 생명정치 (Biopolitics)가 권력이 생명의 영역을 지배하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지만 정작 동시대의 현실은 죽음을 단지 생명권력 (Biopower)을 위한 수단으로 경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으로서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Read More 게임에서 고통과 피로는 어떻게 사회적 재현이 되어왔는가?: 게임의 스트레스 재현과 스토리지의 관계에 대한 간략한 역사 고통과 피로로서 게임에서 재현한 스트레스는 UI를 통한 연장된 체현을 넘어 시뮬레이션으로 적극 활용된다. 이는 무엇보다 시뮬레이션으로서 높은 품질의 몰입을 제공하는데, 이러한 게임에 대한 감상과 이해는 어떤 세계로 그 시뮬레이션을 이해할 것인가와 같은 문제로 이어진다. Read More 그래서, 제 민첩은 몇 점인가요? RPG의 규칙은 수치의 미학이다. 이 규칙이 고도화될수록, 플레이어들이 교감해야 하는 수치와 수식도 고도화된다. 플레이어들은 더욱 강한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계산한다. 디자이너들이 사용하는 전문적인 개발용 어들을 가져오며, 각종 수치를 분석하고, 차트를 만들고, 성장 공식을 유추한다. 적 또는 다른 플레이어를 압도할 수 있는 더욱 빠르고 효율적인 경로와 해결책을 찾는다.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RPG에서는 플레이어 본인의 신체적 능력도 중요하겠지만, 기본적으로 RPG에서 캐릭터를 강력하게 성장시키는 것은 플레이어의 전략적 사고, 소위 ‘뇌지컬’이다. Read More 그린게이밍의 새로운 지평을 찾아서 2020년 이래 아이폰은 충전기 미포함으로 출시되고 있다. 애플에 따르면 이는 포장 쓰레기와 전자 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조치로서, 판매되는 아이폰 한 대당 소요되는 원자재량 및 포장용 패키지 절감을 통해 운송용 팔레트 한 대당 70% 더 많은 제품을 실을 수 있어 탄소 배출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Calma, 2020). Read More 놀이하는 전정기관에의 상상 - 멀미 너머의 게임 매클루언의 아이디어를 빌리자면, 이 감각기관이 우리에게 잘 인지되지 않는 것은 이 기관은 다른 감각기관들에 비해 그다지 기술에 의해 확장된 시도가 없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지구의 보편중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운 인간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마치 우리를 둘러싼 공기처럼 너무나 보편적인 감각으로 받아들여지기에 ‘특별한’ 감각적 자극을 일으키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Read More 보이는 신체, 보이지 않는 신체 게임과 신체는 불가분의 관계다. 현실세계 외부에 컴퓨터 기술로 별도의 가상세계를 만들고, 플레이어로 하여금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여하게끔 하는 것이 게임 플레이라면, 플레이어의 신체는 게임 플레이를 위한 기본 조건이 된다. 이 때 신체는 가상세계에의 개입을 위해 게임 밖에서 플레이어의 생각과 의지를 전달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Read More 불투명한 인터페이스: 연결과 차단 사이 그렇다면 플레이어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도록 디자인된 ‘작동이 되지 않는’ 인터페이스는 그저 배경으로 남는 것일까? 이 질문에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게임 인터페이스의 분류 방법을 경유할 필요가 있다. Read More 시각장애인에게 지하철역은 미로 던전이다 - <사운드스케이프> 제작사 오프비트 황재진 대표 지난 11월 29일 개최된 ‘버닝비버 2024’는 인디게임 창작자들의 다양한 열정과 실험정신을 드러내기 위해 열린 인디게임 컬처&페스티벌이다. 사흘간 총 83개의 인디게임 부스가 열리고 1만여 명의 관람객이 참여한 이 행사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작품 중 하나는 <사운드스케이프>다. 시각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 이 게임은 전맹 시각장애인의 경험을 구현한 탈출 게임으로, 게임의 독특한 시각화 방식과 그 속에 담긴 사회적 메시지로 인해 호평을 받았다. 그간 유사한 컨셉의 게임이 소수 있었지만 특히 대학생으로 구성된 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이는 더욱 새롭다. Read More 유도된 걷기와 우연한 만남의 장소 – AR 산책 게임의 지금 일종의 ‘비동기 멀티플레이’로서 산책 게임들은 사람들을 게임이 유도하는 특정한 방식으로 움직이게끔 하지만 때로는 상상치 못한 연대를 가능케 한다. <데스 스트랜딩 Death Stranding>에서 누군가 설치해둔 집라인에 마음 깊이 감사하며 ‘따봉’을 눌러본 기억이 있는가. 산책 게임은 각자의 황량한 디지털 디스토피아를 산책하게끔 하지만, 이따금 고개를 돌리면 엄지를 치켜세울 직접 타인을 마주할 수 있게 해준다. Read More 이제부터 나와 랜디 오턴을 한몸으로 간주한다—WWE 비디오 게임을 통해 온몸으로 슈퍼스타 되기 내가 WWE 비디오 게임을 처음 접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취임식 조금 전, 넷플릭스 다큐 시리즈 〈미스터 맥마흔〉이 공개되고 조금 지나서, 그리고 프로레슬링이라는 예술 형식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지 반 년 정도 지나고서였다. ‘홈파티’라고 수식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20대 남성 넷이 모인 자리, 친구의 플레이스테이션 컬렉션에서 내가 선택한 파티 게임이 〈WWE 2K22〉였다 Read More 프레임의 너머를 위한 프레이밍 : 「The Star Named EOS 별을 향한 여정」 C. 티 응위옌은 ‘게임은 여러 행위성 형식을 저장하고 주고받기 위한 하나의 매체’라는 흥미로운 주장을 펼친 바 있다. 게임이란 하나의 도전적 고투를 통해 일시적 몰입을 발생시키는 기입적 매체이며, 그 기입의 중심에는 특정한 행위agency가 있다는 의미이다. 물론 티 응위옌이 다루는 ‘게임’이라는 범주는 비디오 게임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따라서 이 ‘행위’의 범주를 조금 복잡하게 바라볼 필요는 있다. Read More

  • [editor's view] 댓글로 사람이 죽는 시대의 커뮤니케이션

    <심 어스>라는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특정 생물군을 지능을 가진 사회적 군집체로 진화시킬 수 있는데, 이들이 기술발전만 급격하게 이루고 철학과 윤리 발전이 늦어지면 결국 핵전쟁으로 멸망하는 경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전쟁까지는 아니지만, 우리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사회에서 댓글로 사람이 죽는 시대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 Back [editor's view] 댓글로 사람이 죽는 시대의 커뮤니케이션 14 GG Vol. 23. 10. 10. 댓글로 사람이 죽는 시대입니다. 90년대 초반, PC통신이 미래의 희망으로 여겨졌던 시대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까요? 직접민주주의가 기술을 딛고 마침내 가능해졌다는 장밋빛 환상, 영화 <접속>으로 대표되는, 선의를 가진 익명의 사람들이 서로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이버스페이스의 도래. 당시의 희망을 함께 나눴던 저로서도 오늘날 구축된 사이버상의 커뮤니케이션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부정적인 측면들을 품고 있습니다. 몇몇 미디어들은 특히 게임 안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을 좀더 문제적으로 바라봅니다. 멀티플레이 게임이 제시하는 상황 자체가 공격적이고, 그렇기에 커뮤니케이션 또한 더욱 공격적이라고요. 그러나 저는 이 주장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습니다. 다른 글에서 이야기했지만, 멀티플레이 게임과 채팅은 사실상 같은 기술적 뿌리를 가지고 있고, 역으로 채팅과 댓글이 있는 모든 곳은 공격적입니다. (GG가 댓글 기능을 구현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14호에서 우리는 인게임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말로 대주제를 설명하고자 했지만, 이 용어는 다소 부적절합니다. 채팅, 이모티콘, 감정표현, 보이스챗은 규칙에 의한 상호작용인 디지털게임에서 규칙 바깥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분명하게 규칙 하에 이루어지는 게임에 영향을 주고, 게임의 승패에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인도 아니고 인이 아닌 것도 아닌 이 애매함은 때로는 가상의 공간에서 벌이는 매직 서클 안에서의 게임이라는 개념을 현실과 강하게 연결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문제적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은 게임이라기보다 오늘날의 랜덤 매칭 멀티플레이가 만드는 익명성에서 기인합니다. 우리는 익명의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때 가져야 할 에티켓을 만드는 일에서 그만 시기를 놓쳐버린 것은 아닐까요? 기술발전은 언제나 우리로 하여금 과거보다 더 나은 삶이 기술에 의해 제시된다고는 하지만, 단지 기술만으로 우리의 미래는 아름답게 채색되기 어렵습니다. <심 어스>라는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특정 생물군을 지능을 가진 사회적 군집체로 진화시킬 수 있는데, 이들이 기술발전만 급격하게 이루고 철학과 윤리 발전이 늦어지면 결국 핵전쟁으로 멸망하는 경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전쟁까지는 아니지만, 우리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사회에서 댓글로 사람이 죽는 시대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게임 안에서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시대가 아닐까 합니다. 이번호도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This is a Title 03 | 게임제너레이션 GG

    < Back This is a Title 03 This is placeholder text. To change this content, double-click on the element and click Change Content. This is placeholder text. To change this content, double-click on the element and click Change Content. Want to view and manage all your collections? Click on the Content Manager button in the Add panel on the left. Here, you can make changes to your content, add new fields, create dynamic pages and more. You can create as many collections as you need. Your collection is already set up for you with fields and content. Add your own, or import content from a CSV file. Add fields for any type of content you want to display, such as rich text, images, videos and more. You can also collect and store information from your site visitors using input elements like custom forms and fields. Be sure to click Sync after making changes in a collection, so visitors can see your newest content on your live site. Preview your site to check that all your elements are displaying content from the right collection fields. Previous Next

  • When games become a new branding battlefield: Nike, Roblox, and the case of Vietnam

    Advergames, a form of digital game designed for commercial purposes, have emerged as a significant trend in modern digital marketing strategies (Hera, 2019). This represents a substantial shift from traditional advertising toward interactive methods of reaching target audiences. Roblox, a platform known for fostering user-generated content (UGC) and interactive engagement, is widely regarded as an ideal environment for implementing advergame strategies (Vayner3, n.d.). < Back When games become a new branding battlefield: Nike, Roblox, and the case of Vietnam 25 GG Vol. 25. 8. 10. Advergames, a form of digital game designed for commercial purposes, have emerged as a significant trend in modern digital marketing strategies (Hera, 2019). This represents a substantial shift from traditional advertising toward interactive methods of reaching target audiences. Roblox , a platform known for fostering user-generated content (UGC) and interactive engagement, is widely regarded as an ideal environment for implementing advergame strategies (Vayner3, n.d.). One notable example is Nikeland , Nike’s successful advergame initiative aimed at enhancing brand awareness (Temperino, 2023). Beyond showcasing products, Nikeland serves as an experimental platform for testing digital strategies and innovations. Following Roblox ’s official partnership with VNG and its launch in Vietnam (Vietnam News, 2024), local brands now have the opportunity to leverage advergames as effective tools to enhance customer interaction and brand awareness, especially among the 13–18 age demographic. This article sheds light on the critical success factors of Nikeland in building brand awareness on Roblox and proposes strategic implications for Vietnamese brands. The Rise of Advergame In 2023, Vietnam ranked among the top five countries with the highest number of mobile game downloads worldwide, marking a significant milestone for the local gaming industry. With a compound annual growth rate (CAGR) of 9.39% (Interesse, 2024), Vietnam’s gamer community is projected to exceed six million individuals between 2025 and 2030. This presents a golden opportunity for brands to harness gamification as an effective marketing channel. According to Nguyen-Masse (2024), in-game marketing has undergone substantial transformations. Rather than relying solely on traditional brand placements, companies are now integrating their products and services directly into virtual environments, positioning games as exclusive platforms for building brand awareness. This shift reflects a broader industry trend—from passive exposure to experiential branding. In particular, advergames , or digital games designed for promotional purposes, are emerging as a prominent trend. Although relatively new to the Vietnamese market, advergames have garnered significant attention, with the global market forecasted to reach USD 12.32 billion by 2028 (AppROI, 2023). Originally introduced in the mid-2000s as tools for entertainment, advergames have rapidly evolved into a strategic marketing instrument in parallel with technological advancements. Early implementations typically involved indie-style games featuring brand mascots or characters to create memorable consumer experiences. For instance, McDonald’s M.C. Kids and Pepsi’s Pepsiman exemplify early efforts to blend entertainment with advertising through consoles and PCs (Gibson & Baird, 2024). By 2020, the rise of Roblox marked a key milestone by offering a user-generated virtual environment in which brands could engage younger audiences—particularly Gen Z and Gen Alpha—through immersive experiences. This illustrates the transition of advergames from basic promotional tools into comprehensive marketing ecosystems (Berezka et al., 2019). Rather than developing standalone games, brands have opted to build within Roblox , leveraging its interactive infrastructure and user base while significantly reducing development costs. Contemporary advergame strategies focus on platform culture and social features to deepen consumer-brand relationships and foster loyalty. Studies show that players notice branded content 100 times more than they do in social media advertisements, with brand recall increasing by approximately 211% compared to television ads (Lee, 2025). These findings underscore the effectiveness of immersive advergame experiences in eliciting deeper emotional engagement, especially among children and adolescents, who prefer interactive activities and are more inclined to engage with digital products, virtual events, and user-generated content over passive media (Program-Ace, n.d.). Alongside the rise of advergames, Game Finance (GameFi) emerged as a notable phenomenon in Vietnam’s gaming sector between 2019 and 2021 (Proelss et al., 2023). GameFi combines decentralized finance (DeFi) with video games, enabling players to earn real income through the ownership and trade of digital assets such as tokens and NFTs. The introduction of CryptoKitties on Ethereum in 2017 marked the beginning of NFT integration in gaming. While earlier forms of monetization existed, such as black-market trading in RuneScape or World of Warcraft —GameFi formalized these mechanisms. Meanwhile, Roblox established a user-generated gaming platform with a virtual currency convertible to real money. However, unlike GameFi’s focus on speculative finance, Roblox emphasizes creative content and community-driven development. The period from 2019 to 2021 saw explosive growth in GameFi, fueled by the rise of DeFi and cryptocurrency. Axie Infinity (2018) epitomized the “play-to-earn” model, achieving notable success in countries like the Philippines and Vietnam. However, this success triggered a wave of imitative GameFi projects, many of which overemphasized financial mechanics—such as staking and token inflation—while neglecting content development. As a result, when the crypto market collapsed in mid-2022, many GameFi tokens lost over 90% of their value, and approximately 93% of projects lasted less than four months (Takahashi, 2024). Nansen Research (2022) reveals that the GameFi sector has been in decline since 2021 and requires significant restructuring to ensure sustainability. Given the volatility that led to GameFi’s downturn, a critical question arises: could advergames face similar risks? GameFi’s reliance on speculative financial instruments makes it inherently unstable (Xu et al., 2024). In contrast, advergames generate value not through user monetization but through marketing investment, making them a more stable and sustainable model—evident in initiatives such as McDonald’s and Nike’s Nikeland . Furthermore, advergames enhance customer engagement and pave the way for innovative interactive advertising (Jami Pour et al., 2023). Ultimately, GameFi and advergames exemplify two contrasting models: one fast-paced and high-risk, the other gradual yet sustainable. GameFi is defined by its alluring financial incentives but often lacks narrative depth, making it vulnerable to market fluctuations. Conversely, advergames, while not generating direct revenue, are deeply embedded in brand strategies and offer long-term sustainability through identity-building and user engagement. As such, advergames represent a more resilient model for sustainable development, fostering meaningful connections between brands and consumers through interactive experiences. Brand Transformation in the Digital Era Advancements in technology have fundamentally reshaped how brands engage with customers, particularly young audiences. According to Zeng et al. (2023), technologies like virtual reality (VR) and augmented reality (AR) are powerful tools for building brand awareness among digitally native consumers who seek personalized, interactive experiences. Within this evolving digital landscape, games are increasingly recognized as effective advertising platforms due to their immersive nature and emotional appeal. Chaney et al. (2018) demonstrate that in-game advertising methods—such as banner ads and product placement—significantly enhance brand recall. Furthermore, the success of such advertising depends largely on user perceptions, including factors like entertainment value, interactivity, personalization, and level of annoyance (Playable Factory, 2023). Engaging, well-designed advergames can foster deeper brand associations and improve conversion rates (Eyice Başev, 2024). Buijsman (2024) reports that the global gaming industry reached $187.7 billion with over 3.4 billion players in 2024, reinforcing games as one of the most effective channels for interactive communication. The integration of VR within platforms such as Roblox enables users to co-create content, enhancing brand involvement. With 60% of its users under 13 (Ramic, n.d.), Roblox allows global brands such as Nike, Gucci, and Unilever to engage younger audiences through virtual worlds, as exemplified by Nike’s innovative Nikeland . Nikeland : Successful Brand Strategy in Roblox Launched in 2021, Nikeland is a virtual environment on Roblox that replicates Nike’s global headquarters. Designed as a dynamic blend of gaming, social interaction, and user personalization, it functions as a digital hub where users can immerse themselves in branded experiences. The initiative has proven remarkably successful, attracting over 21 million visits to Nike’s Roblox store (Sutcliffe, 2022) and positioning itself as a benchmark for effective brand engagement in virtual spaces. One of the primary reasons for Nikeland 's success lies in Nike’s strategic decision to leverage Roblox as a platform. With nearly 98 million daily active users, most of whom are under the age of 18 (Ekhator, 2025), Roblox offers a highly concentrated audience of digital natives. By recreating its headquarters and integrating interactive sports-themed gameplay, Nike constructed a virtual environment that allows users to compete, communicate, and collaborate. This digital recreation not only enhanced brand familiarity but also enabled Nike to execute a gamification strategy that immerses users in brand narratives rather than traditional advertising. Nike’s focus on creative content, rather than short-term promotional tactics, has further elevated Nikeland 's impact. The experience allows users to design their avatars, virtually try on Nike sportswear, and customize athletic playgrounds. High-profile events, such as the NBA All-Star Week featuring LeBron James, garnered widespread attention and reinforced brand visibility across global gamer communities. By embedding elements of entertainment, interactivity, and product trial into the experience, Nike successfully aligned its brand with the digital behavior of younger users. These emotional and memorable interactions are consistent with the principles of the Processing of Commercial Media Content (PCMC) model (Buijzen et al., 2010), which explains how positive engagement enhances both short-term and long-term memory performance, particularly in adolescents. Targeting young users between the ages of 13 and 18, Nike strategically aims to foster early brand relationships that can mature into long-term consumer loyalty. At this developmental stage, individuals are not only forming preferences but also demonstrating peak cognitive abilities related to memory retention and emotional impression. Rather than promoting a passive consumption model, Nikeland empowers users to become co-creators of their brand experience. This participatory dynamic deepens emotional engagement and shifts the brand-consumer relationship from transactional to relational. Importantly, Nikeland is not an isolated marketing campaign, but a key component of Nike’s broader digital strategy. In 2023, Nike allocated more than $4 billion to digital advertising and promotional activities, which contributed to digital sales reaching $13.3 billion, accounting for approximately 26% of the company’s total global revenue (Haleem, 2023; Reid et al., 2024). The company’s consistent branding, paired with strategic flexibility and innovation in digital environments, has created a cohesive brand ecosystem that fosters sustained consumer engagement. Through this long-term investment, Nike has demonstrated how immersive, interactive digital experiences can effectively reinforce brand identity and customer loyalty in a rapidly evolving marketing landscape. Implementations for the Vietnamese Brand’s Strategy Using advergames in brand strategy has been successfully adopted by developed nations. South Korea should be cited as a prime example since this country has been among the biggest gaming markets in East Asia, and a long-standing partner of Vietnam in digital game imports. The country has developed a comprehensive gaming ecosystem, spanning esports, the metaverse, and cross-platform titles, with the industry expected to reach USD 31.6 billion by 2025 (Statista, 2025). Because of this, Roblox decided to join Korea by opening an office in Seoul on July 16, 2021. Roblox Korea was established to support online gaming services and development platforms, which show the potential of this market (Choi, 2021). The platform has grown significantly and gained strong attention from the Korean gaming community, particularly among younger Gen Z and Gen Alpha users. Leading brands like Samsung and Hyundai have recognized the huge potential of the metaverse for reaching future buyers. Hyundai became the first global automotive manufacturer to establish the "Hyundai Mobility Adventure" experience on Roblox for the local market. Beyond product brands, K-pop bands like BLACKPINK have also actively entered the metaverse when YG Entertainment partnered with metaverse studio Karta to create a virtual BLACKPINK experience on Roblox and received supportive investment from the Korean government of about $170 million (Dalugdug, 2023). Furthermore, destination brands such as Busan City Creative Team have used metaverse platforms to promote tourism and culture. The Korean government invested approximately $177.1 million in the metaverse (Kul, 2022), demonstrating institutional commitment to technology that may assume a central role in future digital ecosystems. Similarities between South Korea and Vietnam illustrate the effectiveness of using gaming platforms as marketing channels for brands, and Vietnam can learn from how Korean brands adapt and use them as successful case studies. Vietnam’s gaming industry generated over $500 million in 2024, making it the fifth-largest market in Southeast Asia (Vietnam Plus, 2024). Mobile gaming, in particular, is growing at a rate of 6.5% annually (Statista, 2024). The overlap between Roblox ’s demographic and Vietnam’s young gamers—86% of whom are aged 16–24—presents a favorable opportunity for Roblox ’s local expansion and brand engagement through gamification. The official partnership between VNG and Roblox , launched in May 2024, marks a significant development. By localizing the platform through translation, cultural adaptation, and community-building, VNG plays a pivotal role in Roblox ’s success in Vietnam. This localization paves the way for Vietnamese businesses to create immersive branded experiences, boosting brand recall, consumer sentiment, and purchase intent. Nikeland ’s success demonstrates the immense potential of the metaverse in cultivating brand loyalty. Unlike traditional communication models, metaverse platforms allow consumers to become co-creators of branded experiences, fostering emotional bonds and long-term engagement. Brands targeting the 13–18 age range are especially well-positioned, as this group is at a peak stage for memory retention and impression formation. Vietnam’s rapidly growing gaming ecosystem—ranking third in Southeast Asia for mobile game downloads in Q1/2025 (Pelizzoli, 2024) —makes it an attractive market, especially in contrast to saturated regions like North America (Circana, 2024) and East Asia (Quarneti, 2024), which are experiencing declining revenues and studio downsizing Vietnam’s growth presents opportunities not only for local developers but also for global corporations with established reputations and financial capabilities. Companies from South Korea and Japan, such as CJ, Samsung, Netmarble, and Nexon, have already cultivated strong brand presence in Vietnam. These corporations could replicate Nike’s strategy by creating virtual experiences within platforms like Roblox to reposition their brands and establish loyal communities. This is also a strategic moment for international gaming giants like NCSoft, Netmarble, and Krafton to invest in Vietnam’s burgeoning game development sector (Hoài Phương, 2025). Leveraging local talent and government support, these companies can produce “Made in Vietnam” titles with regional and global reach. Early investment can help secure talent pipelines, ensure product quality, and unlock new partnerships across eSports, metaverse technologies, and multi-platform distribution. Concluding remarks Technologies such as VR, AR, and metaverse platforms are reshaping brand engagement, particularly among youth aged 13–18. These tools enable brands to move beyond traditional models, offering deeply immersive and emotionally resonant experiences. Roblox serves as a prime example, offering an interactive gateway to younger audiences. Nike’s Nikeland illustrates how brands can achieve long-term success through four key strategies: selecting the right platform, developing engaging content, targeting appropriate audiences, and aligning with strategic goals. With Roblox now officially operating in Vietnam, both domestic and international brands have a rare opportunity to engage young consumers meaningfully. However, success requires careful alignment with brand identity, strategic direction, and resource allocation. Vietnam’s expanding gaming market positions it as a vital hub for future digital brand engagement and innovation, especially in Southeast Asia. Brands that act early and invest wisely will be well positioned to lead in this next frontier of marketing. References AppROI. (2023, September 20). Sự phát triển của Advergaming: Liệu có khả t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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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곤잘로 프라스카, 공감과 공환의 매체를 꿈꾸다

    앞으로 소개할 곤잘로 프라스카(Gonzalo Frasaca)는 참으로 특이한 이력을 지닌 사람이다. 게임 개발자이며 사업가이기도 한 그는 게임 규칙과 놀이 행위 자체를 중시하는 ‘게임론’(ludology)의 주요 이론가이다. 게임을 스토리텔링 미디어로 보며 서사로서의 게임 연구를 고수한 ‘서사론’(narratology)에 대립각을 세운 셈이다. ‘놀이냐 서사냐’를 둘러싸고 벌어진 이 논쟁도 이제는 옛일이 되었지만 프라스카는 게임 연구에 나름 중요한 족적을 남겼다. < Back 곤잘로 프라스카, 공감과 공환의 매체를 꿈꾸다 04 GG Vol. 22. 2. 10. 앞으로 소개할 곤잘로 프라스카(Gonzalo Frasaca)는 참으로 특이한 이력을 지닌 사람이다. 게임 개발자이며 사업가이기도 한 그는 게임 규칙과 놀이 행위 자체를 중시하는 ‘게임론’(ludology)의 주요 이론가이다. 게임을 스토리텔링 미디어로 보며 서사로서의 게임 연구를 고수한 ‘서사론’(narratology)에 대립각을 세운 셈이다. ‘놀이냐 서사냐’를 둘러싸고 벌어진 이 논쟁도 이제는 옛일이 되었지만 프라스카는 게임 연구에 나름 중요한 족적을 남겼다. 나아가 우르과이 출신 게임 개발자로서 그는 상업적인 게임과 실험적인 게임들을 넘나들면서 독창적인 게임들을 개발하기도 했다.『억압받는 자들의 비디오게임』이라는 학위논문을 쓰기도 한 그의 관심은 게임을 통해 억압과 폭력, 차별, 전쟁과 같은 사회의 현실 문제와 씨름하는 게임들을 만들어 왔다. 프라스카가 제안하고 실천한 ‘시리어스 게임 serious games’, ‘뉴스게이밍 newsgaming’, ‘교육적 게임 educational games’, ‘다큐게이밍 docugaming’ 같은 프로젝트들은 상업적 성공을 향한 오락 일변도의 주류 게임을 넘어 게임의 사회적 효용성과 실천적 잠재성을 확장하려는 시도들이다. 물론 게임이 교육과 사회적 인식이라는 목적을 강조하다 보면 재미라는 게임의 핵심 요인을 소홀히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나날이 다양해져온 게임의 장르와 콘텐츠, 그리고 게임 테크놀로지와 게이밍 환경의 꾸준한 진화 속에서 프라스카의 제안과 실험은 일정한 시의성을 갖는다. 우리는 누구나 게임을 만들고 누구나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의 민주화’에 값하는 ‘놀이 정보계’(ludic infosphere)의 도래를 맞이하고 있다. 그동안 게임생태계의 발전 과정을 돌아보면 사회적 억압과 차별에 대해 다시 생각하며 토론하고, 나아가 사회 인식과 공감의 상승을 시도하는 프라스카의 꿈은 ‘몽상’만이 아니게 된 것이다. 여전히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게임들만이 주로 기억되고 이야기되는 현실이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의미 있는 문제작들이 발표되고 있기도 하다. ‘재미’와 ‘인식’의 균형을 향해 아직 나아갈 길은 멀지만 말이다. 여기서는 ‘시리어스 게임’, ‘임팩트 게임’의 초기 제안자라 할 만한 프라스카의 게임관과 실험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정치적 에듀테인먼트와 시사 게임 프로젝트 프라스카의 게임 철학은 “비디오게임이 반드시 오락적일 필요는 없다”는 다분히 논쟁적인 선언에서 잘 나타난다. 사실 이러한 진술은 다분히 정치적인 발언이다. 프라스카 역시 게임의 오락성과 재미를 중시하고 그가 만든 게임들 역시 재미적 요소를 강화하고자 노력해왔다. 그렇기에 그의 게임인 는 1천 300만 카피를 팔 수 있었고 “역사상 가장 거대한 성공을 거둔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프라스카의 게임관과 실험은 세계적인 독일 극작가이자 연극이론가이며 실천가였던 브레히트(B. Brecht)와 그를 계승한 실험적 연출가 보알(Augusto Boal)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이들은 재미라는 것이 주류 대중문화와 오락산업의 관행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재미와 오락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며, 굳이 시끌벅적한 스펙터클 속에 순간적 쾌감이 아닌 주변 현실을 돌아보고 인식하는 가운데서도 재미와 오락을 찾을 수 있음을 모색하는 것이다. 브레히트가 말하는 ‘배움의 재미’ 혹은 ‘깨달음의 재미’는 프라스카에게도 이론적ㆍ실천적 화두였던 셈이다. 프라스카에 따르면 비디오게임은 원래 비오락적인 용도로 탄생했다. 군사훈련을 위해 도입된 각종 시뮬레이터들이나 명시적으로 교육적 목표를 표방하는 게임들이 그것을 입증한다. 오래전부터 ‘디지털 에듀테인먼트’(Digital Edutainment)라는 이름으로 불려온 교육용 게임들을 우리도 잘 알고 있다. ‘에듀테인먼트’는 ‘교육’(education)과 ‘오락’(entertainment)를 결합해서 만든 신조어로서 학생들의 참여와 흥미를 유발하는 새로운 교육 방식이나 수단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된 바 있다. 특히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가능해진 학습자의 능동적 상호작용과 참여 가능성은 주입식 교육의 대안으로까지 여겨졌다. 곤잘로 프라스카 역시 학습 플랫폼으로서 디지털 미디어가 갖는 요소들을 인정하며 이러한 장점들을 비디오게임의 사회적 기능전환에 유용한 장치로 활용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는 기존의-대체로 오늘날에도- 비디오게임의 교육적 활용이 순전히 수학이나 과학, 어학 교육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비판한다. 왜냐하면 프라스카의 관심은 유저들이 상호 토론과 공감을 통해 비판적 사고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비디오게임의 디자인에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가장 이상적인 비디오게임의 모델은 다음과 같은 사회심리학자 셰리 터클(Sherry Turkle)의 구상에 기반한 게임이다. “하지만 우리는 제3의 반응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는 더욱 복잡한 사회적 비평을 계발하기 위한 하나의 도전으로서 시뮬레이션의 문화적 파급력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비평이 모든 시뮬레이션들을 일괄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 사이의 차이를 식별할 수는 있다. 이는 모델 고유의 가정들에 대한 플레이어의 도전을 실질적으로 도와주는 시뮬레이션의 발전을 그 목표로 삼을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비평은 시뮬레이션을 의식-상승의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여기서 시뮬레이션은 비디오게임으로 바꾸어 읽어도 무방하다. 하지만 프라스카의 말처럼 그의 실험이 이루어지던 당시는 물론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게임들은 우리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혐의에서 완전 자유롭지는 못하다. 이는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괴물이나 몬스터, 트롤들 일색이거나 인간이 등장하더라도 일상인들과 거리가 먼 캐릭터라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심시티〉나 〈심즈〉 등 현실을 시뮬레이션하는 게임들의 등장하고 멜로, 역사물, 갱스터 등의 장르들로 게임의 소재와 주제가 다양해지면서 상황이 많이 변하기는 했다. 하지만 인간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현실을 재현하는 게임들 다수는 현실의 문제나 모순들을 회피하고 ‘디즈니랜드 같은 방식’으로 삶을 이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프라스카가 보기에 더 심각한 문제는 다수의 게임 연구자들에 의해 게임에 대한 무비판적 동일시를 의미하는 ‘에이전시’(agency)와 ‘몰입’(immersion)이 게임의 바람직한 효과들로 당연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플레이어-주체가 게임 규칙과 그 세계를 자신의 것으로 완벽하게 받아들이는 환경의 창조야말로 게임 개발자의의 미덕이라고 보는 사이 인종/젠더/민족(국민)/종교 등의 차별 의제들은 살며시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프라스카는 주류 게임들이 상업적 성공에 꽂혀 현실의 억압과 차별을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미지 재현과 플레잉 규칙을 통해 차별과 폭력의 구조를 고착화하는 점을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문제는 단순히 게임의 판타지적 설정이 아니라 게임 대상들과 게임 규칙에 담긴 차별과 억압에 대한 무감각 혹은 그에 대한 암묵적 동의이다. 우리는 비디오게임의 플레이가 연극이나 영화의 감상과 분명 다른 경험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게임 플레이어와 비디오게임 캐릭터 사이의 거리는 다른 예술의 수용자-캐릭터 사이보다 훨씬 더 밀접하다. 프라스카의 지적처럼 우리는 게임을 하면서 라라 크로프트가 혹 신장병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마리오가 편집증 증세를 지닌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하지 않는다. 이들 캐릭터나 게임상의 괴물들은 모두 수단이고 커서일 뿐이다. 게임의 캐릭터들은 대체로 평면적 캐릭터로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왜 그 캐릭터가 그런 식으로 행동했을까”가 아니라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슈퍼맨, 스파이더맨, 제임스 본드 등의 영웅이고 싶지만 게임의 경우 그런 욕망을 가질 필요가 없다. 게임에서 우리가 바로 그 영웅들이기 때문이다. 가령 게임에서 마리오는 영웅이 아니다. 내가 바로 영웅이고 마리오는 하나의 커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플레이어에게 자유도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게임의 캐릭터는 플레이어의 행위를 위한 커서가 되고 플레이어는 스스로를 게임의 영웅 혹은 신으로 자각한다. 게임의 자유도와 상호작용성에 따른 게임의 몰입은 게임 이면의 규칙에 묻어나는 차별과 억압의 이데올로기를 ‘자연화’(neutralization)하기 쉽게 만든다. 프라스카는 주류 컴퓨터게임들의 이러한 한계들을 비판하면서 플레이어에게 자신이 당면한 현실을 탐색하게끔 허용하는 캐릭터 중심의 비디오게임, 더 나아가 게임의 행동 규칙을 플레이어 스스로 변경할 수 있는 컴퓨터게임을 구상한다. 이를 위해 그는 아우구스또 보알이 연극을 통해 실험했던 것을 컴퓨터게임으로 전유하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에서 관건은 “재미 경험을 유지하는 가운데서도 이데올로기적 이슈들과 사회적 갈등들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강화하는 비디오게임”의 개발이다. 이러한 인식은 〈9ㆍ12〉나 〈마드리드 Madrid〉와 같은 프라스카 본인의 게임의 개발로도 이어진 바 있다. 하지만 프라스카의 작업에서 더 중요한 것은 게임 창작이 어려운 이들이 기존의 게임들을 비판적으로 ‘재매개’하여 자기 이야기를 만들도록 제안하는 것이다. 특히 그는 대중적으로 크게 인기를 끈 고전 게임들을 활용할 경우 유저들 사이에서 광범위한 참여와 대화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근에야 게임 창작 도구나 제작 엔진의 수준이나 직관성이 크게 향상되고 ‘로블록스’나 ‘디토랜드’ 등과 같은 양질의 플랫폼이 발표되어 프라스카의 실험 제안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무척 커졌다. 프라스카의 실험은 일종의 게임 모드(mod)에 대한 제안으로 볼 수 있는데 그 수준도 비약적으로 향상되기도 했다. 문제는 플레이어-주체들의 의지와 인식에 달린 셈이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게임들이 드문드문 인디 게임씬에서 발표되는 중이다. 게임 유저의 게임 모딩이나 창작의 환경이 지금보다 원활하지 않았던 시절 〈심즈〉를 이용하여 프라스카가 상상한 ‘억압받는 사람들의 비디오게임’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억압받는 자들의 비디오게임’ 프라스카의 ‘억압받는자들의 비디오게임’은 소설이나 영화처럼 억압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억압을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보알의 ‘억압받는 자들의 연극’이 그랬듯이 프라스카의 게임은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차별과 억압들에 대해 ‘쟁점들을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보알의 연극 실험처럼 ‘과정 속의 작업’(work-in-progress)으로서 비판적 사유와 논쟁을 위한 포럼(forum)의 역할만으로도 유의미하기 때문이다. 프라스카의 말처럼 모든 게임들은 늘 제한적이고 이념적으로 편향적일 수 있다. 그리고 게임들은 개발자들도 예견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고 플레이될 수도 있다. 프라스카는 문학이나 영화 못지않게 게임들도 훌륭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는 세리 터클의 주장에 동의한다. 터클에 따르면 게임과 시뮬레이션들에 있어 “시뮬레이션의 기저에 깔린 이데올로기적 가설들에 대한 이해는 정치권력의 핵심 요소이다. 시뮬레이션들에 강요된 왜곡들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더욱 직접적인 경제적ㆍ정치적 피드백과 새로운 종류의 재현, 더욱 많은 정보의 채널들을 요구할 만한 위치에 있다.” 프라스카는 이 정도로 게임 사용자들의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대안적인 게임 창작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개발자들이 한데 힘을 모으고 실천적인 사례들을 창안하고 확산시켜 나갈 것을 촉구한다. 이처럼 프라스카의 ‘억압당하는 자들의 비디오게임’은 브레히트의 영향을 받은 보알의 ‘억압당하는 자들의 연극’ 이념과 테크닉들을 비디오게임으로 전유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관객-배우’가 직접 경험한 억압적 상황을 무대에서 소개하고 그에 대해 배우와 동료 관객들이 참여하여 대안적 해결책들을 연기할 수 있는 것처럼, 이 게임은 플레이어들에게 자신의 게임들을 디자인하도록 허용함으로써 기존 게임의 이데올로기적 가정들에 도전할 수 있는 도구들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물론 당시로서는 주류 게임을 이용하여 그 게임의 이데올로기를 문제 삼는 게임을 디자인한다는 것이 비현실적인 일로 여겨질 수 있었다. 최근에야 소극적이나마 플레이어들 스스로 개작한 모드 게임들을 공유하고 플레이하는 일이 낯설지는 않다. 〈로블록스〉를 통해 게임들을 만들고 그것들을 직접 구매하여 플레이하며 동료 플레이어들 상호 간에 소통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하지만 프라스카는 대략 20여년 전의 기술적 조건과 환경 속에서 난해해 보이는 실험들을 제안한다.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는 그의 작업과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사례이다.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 프라스카의 첫 실험은 게임 역사상 매우 성공했고 중요한 게임이었던 윌 라이트(Will Wright)의 〈심즈〉를 기능전환하는 것이었다. 〈심시티〉의 개발자이기도 한 윌 라이트는 〈심즈〉에서 일상의 삶과 생활을 시뮬레이트함으로써 다양한 인간관계를 경험하도록 해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심(Sim)이라고 불리는 캐릭터를 만들어 삶을 살며 주변을 관찰하고 다양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원래 윌라이트는 이 게임의 아이디어를 버클리 대학 건축학과 교수인 크리스토퍼 알렉산더(Christopher Alexander)의 책『패턴 랭귀지』로부터 얻었다고 한다. 이것은 건축이 인간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256가지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 책이라고 한다. 윌 라이트는 비디오게임을 통해 이러한 다양한 패턴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인간의 생활을 시뮬레이션하는 게임을 만든 것이다. 〈심즈〉에서 우리는 인간관계나 가족관계, 혹은 인간관계가 어떻게 상호반응하는지를 추체험할 수 있다. 플레이어들은 스스로 디자인한 ‘심’들을 통해 인생을 계획하고 인생의 의미를 만들어나간다. 우리가 원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캐릭터들을 보며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끼고 동일시에 가까운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는 게임이 바로 〈심즈〉인 것이다. 플레이어가 ‘스킨 Skin’ 기능을 통해 직접 캐릭터를 디자인할 수 있다는 사실, 벽지나 바닥재 등의 재료들로 집을 꾸미고 가족의 삶을 설계하는 일은 현실에 대한 시뮬레이션의 재미를 만끽하게 해주었다. 그중 단연 즐거운 것은 각종 게임 정보, 각 플레이어들의 캐릭터들과 심들의 삶 등에 대해 공유하고 토론할 수 있는 유저 커뮤니티가 있어 게임을 사회적 활동으로 승화시킬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커뮤니티 기능은 게임에 쉽게 싫증나지 않게 해주고 인간사의 여러 우발적인 사건들을 통해 색다른 재미를 주기도 한다. 회사가 계속해서 확장 팩을 내놓으면서 게임 세계와 행동 영역을 확장해나간 것도 게임의 주요 성공 요인이었다. 프라스카가 〈심즈〉를 시뮬레이션의 기반으로 삼은 것은 이 게임이 플레이어의 게임 변형, 즉 ‘모드’(mod, modification)의 자유를 허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에야 많은 게임들이 플레이어의 플레이 영상이나 그 경험물들을 게임의 일부로 수용하고 그것들을 집단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별로 신선하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심즈〉의 발표 당시 이는 매우 신선한 것이었다. 프라스카는 〈심즈〉의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 기능에 주목한다. 그는 플레이어들이 선호하는 영웅이나 스타, 혹은 자신들처럼 보이도록 캐릭터를 디자인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영감을 받아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를 구상한다. 물론 프라스카의 출발점은 원작 〈심즈〉의 규칙과 메커닉에 내재된 이데올로기에 대한 의문이다. 이 게임은 가족의 삶과 인간을 시뮬레이션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게임 산업에서 분명한 약진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소비주의적 원리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플레이어들의 소유가 늘면 늘수록 친구가 늘어나는 식의 규칙을 내장하고 있는 점은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이 게임은 도시 근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시뮬레이트하면서 전형적인 ‘와스프’(WASP, White Anglo-Saxon Protestant), 즉 백인중상층의 이데올로기를 바탕에 깔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플레이어들에게 캐릭터들의 겉모습만을 바꿀 수 있는 자유만 주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게임 개발자의 설정이나 규칙, 이미지 재현 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어찌해볼 도리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프라스카가 게임 규칙의 전폐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면 게임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심즈〉가 비판적 사유의 촉진을 위한 실험의 마중물이 되기 위해서는 게임 규칙들이 플레이어들의 다양한 접근을 허락하도록 충분히 개방적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는 캐릭터의 겉모습을 바꾸는 식의 변화가 아니라 시뮬레이션 자체의 이데올로기적 가설들에 대한 도전과 변형을 허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플레이어에게 게임의 자질구레한 규칙들을 변형하고 보태고 토론하는 것을 가능하기 위해서는 시중에 발매된 〈심즈〉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특히 캐릭터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규칙들에는 게임 혹은 게임을 만든 개발자의 이데올로기가 반영되기 마련이므로, 이러한 규칙에 대한 변경을 실험하도록 하는 것이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의 목적이다. 우선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외양 skins’ 다운로드 기능에 추가로 다양한 개성의 캐릭터 디자인과 이에 대한 플레이어 상호 공유 시스템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기존의 심즈는 6가지의 행동 스타일 혹은 인물 성향에 따라서만 게임을 진행하도록 제한함으로써 게임의 현실감을 떨어뜨렸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반면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는 동료 플레이어들이 어떤 플레이어가 디자인한 캐릭터들을 비판하고 이에 대해 그들 각각의 대안들을 디자인할 수 있다.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는 플레이어들 서로 서로에게 더욱 현실감 있는 캐릭터로의 개선을 요구하고 토론할 수 있는 ‘디자인 툴’을 제공할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는 보알의 연극 처럼 ‘과정 속의 작업’(work-in-progress)이다. 즉 어떤 억압적 상황에 대해 해답이 될 만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그 상황에 대한 훌륭한 논쟁과 토론을 얻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물론 〈심즈〉에 대한 기능전환이 비디오게임 자체의 위상을 바꾸지는 않는다. 다만 최대의 가능성들을 현실화하기 위해 기존의 캐릭터 커스터마이징보다 더 많은 변형의 자유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프라스카가 아그네스(Agnes)라는 가상의 소녀를 통해 소개하는 사례를 통해 그의 생각을 구체화해보자. 아그네스 Agnes는 지금 한 동안 〈심즈〉를 플레이해오고 있는 중이다. 그녀는 이 게임의 규칙과 기본 메커니즘을 알고 있고 그것을 즐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가족 관계가 보다 현실적이었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는 ‘캐릭터 교환 Character Exchange’ 사이트로 가서 다양한 캐릭터들을 검색한다. 그녀는 흥미 있어 보이는 한 캐릭터를 발견한다. 이것은 ‘데이브의 알콜 중독 어머니 버전 0.9 Dave's Alcholic Mother version 0.9’라고 이름 붙여져 있는데 그 게임을 설계한 플레이어는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이 어머니는 많은 시간을 일로 보내고 집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너무 피곤하다. 여전히 그녀는 저녁을 조리할 것이고 약간의 청소도 할 것이다. 그녀의 가혹한 삶에서 도피하기 위해 어머니는 많은 양의 위스키를 마신다. 그녀는 아이들과 애완동물 때문에 매우 화가 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래서 폭력적이 될 수도 있다.” 아그네스는 이 캐릭터를 시험해볼 생각을 하고 그녀가 이전에 플레이해왔던 집 안으로 그 캐릭터를 다운로드한다. 이 가정은 부부와 세 아이들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로 구성되어 있다. 다운로드 이후 어머니는 ‘데이브의 알콜중독 어머니 버전 0.9’로 대체된다. 이 캐릭터는 흥미롭다. 한동안 그 캐릭터를 가지고 플레이하고 난 후 아그네스는 그 캐릭터가 어느 정도의 피로에 도달하면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가 마시면 마실수록 가족에 대해서는 덜 관심을 가질 것이다. 아그네스는 이 캐릭터가 꽤 잘 묘사되어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녀가 동의할 수 없는 디테일들이 있음을 느낀다. 이를테면 이 캐릭터의 배경은 낮은 교육 수준을 가진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에 덧붙여 이 캐릭터의 직업은 형편없다. 그리고 일들을 더 나쁘게 만들기 위해 ‘알콜 중독 어머니’는 거실의 작은 바에서 계속해서 퍼마신다. 아그네스의 생각에 알콜 중독에 걸린 사람은 빈약한 교육을 받았고 형편없는 직업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아그네스는 일반적으로 알콜 중독자는 집 주위에 술병을 감추지 공개적으로 마시려 하지 않음을 안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 ‘캐릭터 교환’ 사이트로 가서 다른 알콜 중독 어머니를 찾아본다. 그녀는 유망해 보이는 ‘도로시의 알콜 중독 감리교도 어머니 버전 3.2 Dorothy's Alcholic Methodist Mother version 3.2’를 발견한다. 그것을 실험한 후 그녀는 이 캐릭터의 행동이 그녀가 그것에 대해 가졌던 생각보다 훨씬 더 적합함을 깨닫는다. 그녀는 엄마가 감리교도일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이 버전의 디자이너가 고집한 이유에 매료된다. 그 사실은 엄마의 알콜 중독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시 캐릭터 디자이너의 웹 페이지를 체크하고, 이 캐릭터가 감리교도였던 어떤 실제 인물의 실제 이야기에 근거해서 만들어 진 것임을 말해주는 짧은 내러티브를 발견한다. 아그네스는 이 스토리를 흥미롭게 생각하고 알콜 중독의 행동 부분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녀에게 감리교도 부분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캐릭터의 코드를 변경하기 위해 ‘에디터 editor’ 기능을 이용하고 종교와 관련된 언급들을 삭제한다. 그녀는 또한 몇몇 작은 디테일들을 추가한다. 가령 엄마가 어떤 브랜드의 위스키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덧붙이기도 한다. 그런 후 그녀는 그것을 ‘아그네스의 알콜 중독 어머니 1.0-도로시의 알콜 중독 감리교도 어머니 버전 3.0에 의거함 Agnes' Alcholic Mother 1.o-Based on Dorothy's Alcholic Methodist Mother version 3.2’이라는 제목으로 온라인에 탑재하고, 주요 행동 규칙에 대한 짧은 설명을 덧붙인다. 몇 주 후 아그네스는 알콜 중독 어머니의 플레이에 약간 싫증을 느끼고 그녀에게 약간 더 많은 개성을 부여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녀는 엄마가 생태론자 ecologist가 되면 더욱 좋아질 것이라고 판단한다. 아그네스는 ‘피터의 급진 그린피스 활동가 버전 9.1 Peter's Radical Greenpeace activist version 9.1’을 다운로드한다. 그녀는 자신의 알콜 중독 어머니에 약간의 부수적인 변형들과 더불어 피터 버전의 코드를 편집하고 그것을 카피하고 짜깁기한다. 이제 어머니는 식물들을 더욱 조심스럽게 다루고 술에 취했을 때도 고양이를 차거나 하지 않는다. 이렇게 여러 차례 변형을 거친 후 아그네스는 스스로 설계한 게임을 사이트에 탑재한다. 이 게임에 대해 다른 플레이어들의 비평과 토론이 이어지고, 어떤 이들은 이것을 변형하여 새로운 게임을 제작하고 탑재한다. 다른 플레이어도 아그네스나 다른 동료 플레이어들의 게임들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 변형 작업을 반복할 수 있다. 이처럼 누군가의 게임에 대해 크고 작은 규칙들을 변경하고 보태고 토론하는 과정은 보알의 ‘포럼연극’(forum theatre)처럼 어떤 억압적 상황에 대한 참여자들 각자의 생각들을 피력하는 가운데 다양한 대안을 모색하는 공감과 협력의 과정이다. 이는 전설적인 비디오게임 〈스페이스 워〉의 완성을 위해 서로 협력하고 품을 팔던 스티브 러셀(Steve Russell)과 그의 MIT 동료 해커들을 떠올리게 한다. 플레이어들은 크고 작은 정치적ㆍ사회적 억압들을 반영한 새로운 게임들을 디자인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의 게임에 비판적인 자기 의견을 반영하여 규칙이나 설정을 변경할 수도 있다. 어느 누군가의 게임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보태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업그레이드 버전들이 이어진다. 여기서 문제적 상황에 대한 해결책이나 합의 도출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각자의 생각들을 담아 스스로 만들고 보탠 게임들로 어떤 문제들을 공유하고 업그레이드하면서 서로의 생각들을 발전시켜 나가며 인식의 확장과 상승을 경험하는 것이 프라스카의 구상이기 때문이다. 프라스카는 이러한 창작 플랫폼을 ‘메타 시뮬레이션’(meta-simulat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는 적극적이건 소극적이건 다양한 사람들의 다채로운 참여와 소통을 도와주는 게임 창작 시스템을 가리킨다. 하지만 사실은 ‘너 자신의 행동을 디자인해라’라는 기능이 윌라이트의 〈심즈〉 원작 게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원작에서는 다만 캐릭터를 커스터마이징하는 것만 허용할 뿐이기 때문이다. 원래의 〈심즈〉에서는 플레이어들의 행동 폭 역시 무척 제한적인데, 그들 캐릭터는 ‘단정’, ‘사교적’, ‘활동적’, ‘쾌활’, ‘섬세한’이라는 주어진 성격 안에서만 활동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을 시뮬레이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복잡한 결들과 인간관계의 다층적 갈등들을 담아내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프라스카가 보기에도 〈심즈〉는 다른 게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자유도에도 불구하고 규칙의 제한에 갇혀 있는 게임이고, 부자가 더 많은 친구를 갖는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에 포획되어 있는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게임 개발자가 마련해둔 규칙과 행동 패턴에서 드러나는 이데올로기에 딴지를 걸 수 없다. 그래서 프라스카는 〈심즈〉에 캐릭터의 부분적인 변경 이외에 게임 규칙 혹은 행동 규칙의 변경의 자유를 플레이어에게 허용하게 될 때 생길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고 있다. ‘PMO’ 프로젝트: 나의 억압을 플레이하라! ‘억압받는 자들의 비디오게임’의 또 하나의 사례로 프라스카는 ‘나의 억압을 플레이하기’(Play my Oppression, PMO)를 제안한다. 이 프로젝트 역시 보알의 연극 테크닉인 ‘이미지 연극’(Image Theatre)에 바탕을 둔 실험이다. 이미지 연극에서 ‘관객-배우’들은 본인들의 억압적 상황이나 차별적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들이나 다른 사람들의 몸 혹은 간단한 소품들을 ‘빚고’ ‘조각하여’ 하나의 이미지로 표현해 볼 것을 요청받는다. 이 실험에서 ‘관객-배우’들은 절대로 말을 하면 안 된다. 그들은 다른 참가자들의 몸만을 이용하여 어떤 ‘이미지’를 조각해내야 한다. 어떤 이상적인 이미지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반복해서 이미지를 수정하는 ‘이미지 연극’의 작업은 ‘몸으로 하는 포럼연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극의 목표는 우리의 일상적이고 관습적인 행위와 몸짓들을 통해 억압과 차별이 재생산되고 있고 가장 기본적인 육체적 수준에서 우리의 편향적 정체성이 형성되어 왔음을 반성하는 것이다. 다른 인종, 종교, 젠더, 국적 등에 대한 우리의 (무)의식은 몸을 통해 드러난다. 그런데 보알의 ‘이미지 연극’을 통해 참여자들은 뿌리 깊은 차별의 원인이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사회구조와 제도 및 권력에서 비롯된 것임을 몸을 통해 체험하고 사유한다. 프라스카는 보알의 실험을 통해 처음 한 사람이 몸을 통해 제시한 자신의 ‘억압 이미지’에 대해 참여자들이 서로 그 이미지를 수정하며 일종의 ‘대안 이미지’를 형성하는 과정을 거쳐 상호 공감과 이해의 폭을 넓히고 참여자들 스스로 차별과 억압에 대한 인식의 개선을 이루어나가는 점에 주목한다. 프라스카의 말처럼 ‘PMO’ 비디오게임은 몸이 아니라 마우스와 자판, 조이스틱을 가지고 하는 작업이다. 그는 연극에서의 몸이 아니더라도 비디오게임의 특별한 기능을 활용하면 보알의 퍼포먼스와 동일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본다. 그는 다시 〈심즈〉의 ‘포토앨범’ 기능에서 그 해법을 찾는다. 물론 ‘포토앨범’ 기능이 게임 규칙의 설계를 허용하는 것은 아니고 플레이어 자신의 선형적인 내레이션의 창작만 허용한다. 이 기능을 이용하여 플레이어는 게임 플레이의 다양한 순간을 담은 스냅 사진들을 활용하여 그것에 설명을 달고 자기만의 ‘가족앨범’을 설계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스스로 재구성한 이 앨범은 인터넷에 마련된 사이트에 올릴 수 있고 다른 플레이어들과 공유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 기능을 자기만의 스토리를 구성하는 장치로 활용하고 있다. 물론 〈심즈〉를 플레이하는 주된 이유는 그래픽 이미지를 통해 게임 상황을 연출하기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주요한 장면을 캡쳐하고 거기에 주석을 붙임으로써 자기만의 이야기를 창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심즈〉의 디자이너 윌 라이트가 소개한 포토 앨범 중에는 폭력 남편과 살던 여성의 동생이 올린 글이 있었다. 인터넷 심즈 사이트에 올라온 이 콘텐츠에는 언니와 동생의 관계, 언니가 폭력 남편과 결혼하게 된 경위, 남편이 더욱 폭력적으로 되어가면서 파경에 이르게 된 사연 등을 실감나게 보고하고 있다. 물론 허구적일 수도 있는 이 스토리는 무척 현실감이 있는 것이었고 다른 플레이어들과 활발한 토론의 계기를 제공했다. 윌 라이트는 게임의 토론 유발과 공감대 형성 과정에 주목하면서 플레이어들의 스토리텔링 구성 기능을 강화하기도 한 바 있다. 하지만 프라스카가 생각하는 프로젝트의 이행을 위해서는 〈심즈〉의 ‘포토앨범’ 기능이 더욱 확장될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에게 중요한 것은 만화나 영화 같은 정적인 내러티브 시퀀스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플레이어들이 경험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즉 게임을 창조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즈〉의 원래 ‘포토앨범’ 기능에서 플레이어는 어떤 ‘완결적’ 사건을 묘사할 수밖에 없었다. 즉 그가 작성한 스토리는 고정된 것이고 닫힌 결말로 끝나기 때문에 다른 플레이어에 의한 이야기 변경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 스토리를 경험한 다른 플레이어들은 그저 이에 대해 댓글만 올릴 뿐 상황 자체의 변경을 통한 대안 제시로까지 나아가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프라스카는 ‘폭력남편’ 이야기를 올린 플레이어의 진짜 의도가 또 다른(‘대안적인’) 게임의 창조였다는 가정하에서 일종의 기능전환을 시도한다. 만일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다른 플레이어들은 다양한 관점에서 이 사건을 경험하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다른 행동 모델들을 실험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플레이어들은 다양한 인간 관계들과 물질적 상황들을 직접 체험할 수 있고 상호토론을 통해 인간과 현실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으며 자신들이 직면해 있는 억압적 현실에 대한 반성과 사회적 인식의 강화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는 것이 프라스카의 기대이다. ‘나의 억압을 플레이하라’, 즉 ‘PMO’의 실행을 위해서는 우선 한 참여자가 직접 겪거나 경험한 개인적 문제와 고민을 모델화한 게임을 창조할 수 있다. 이후 다른 참여자들은 그것을 플레이해보고 그에 대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으며, 심지어 어떤 플레이어들은 그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개인적 입장을 반영한 새로운 버전의 게임을 창조할 수도 있다. 이 시뮬레이션 게임에 대한 플레이와 토론, 수정은 모두에게 열려 있다. 이 과정에서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는 사회ㆍ정치적 대화의 차원으로까지 발전될 수 있다. 물론 플레이어들 스스로 시뮬레이션 게임을 만드는 것이 어려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많은 게임들이 플레이어의 참여를 위한 다양한 툴과 공간을 제공하고 있고, 그리고 비교적 쉽게 게임을 변경하거나 디자인할 수 있는 방편들이 주어지고 있다. 프라스카 역시 앞으로 컴퓨터게임이 더욱 대중화될수록 ‘시뮬레이션의 처리능력'(simulation literacy) 역시 더욱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실제로 오늘날의 시뮬레이션 창작 환경은 프라스카의 기대와 상상 그 이상으로 진화를 해오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 곤잘로 프라스카가 제시한 사례를 통해 ‘PMO’의 과정을 구체화해보자. 프라스카는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부모나 주변에 ‘커밍아웃’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터(Peter)라는 주인공을 가정하여 샘플 시나리오를 짠다. 일단 게임 커뮤니티에서 피터의 시나리오가 승인되고 나면 그는 이 문제를 토론하려고 하는 방에 게임을 만들어 놓는다. 프라스카는 이를 ‘옵 게임’(op-games, oppressive games), 즉 억압을 시뮬레이션 해놓은 게임으로 부른다. 이 게임에는 피터의 주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극복할 필요가 있는 특수한 문제들이 재현되어 있다. ‘옵-게임들’의 경우에도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보알의 연극처럼 성소수자 피터가 겪을 수 있을 문제들을 시뮬레이션으로 만드는 것이다. 피터의 경우에도 부모에게 자신의 동성애적 취향을 밝히는 데 있어서 겪는 어려움들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든다. 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지는 고전 게임의 레벨 디자인처럼 말이다. 여기서 피터는 자신이 대결해야 할 세 가지 과제, 혹은 꼭 극복해야 할 세 개의 난제를 비디오게임으로 시뮬레이션하고 각각의 게임에 〈모욕〉, 〈나는 누구인가?〉, 〈사회〉라는 제목을 달아주었다. 〈모욕〉은 이상한 놈 취급을 당하는 주인공 피터가 주변 사람들, 특히 학교 친구들에게 어떻게 집단 따돌림과 구타를 당하는지를 보여준다. 피터는 우선 이 문제의 시뮬레이션에 적당한 고전 비디오게임을 선택한다. 피터는 손수 제작한 그래픽을 업로드하거나 이전에 누군가 제작해놓은 것을 수정하여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비디오게임의 기능 향상을 위해 몇몇 기능들을 추가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일단 고전 게임들에 기반하여 다양한 모드들을 창조해보고 그중 피터의 사건을 재현하는 데 유용한 것들을 선별하여 게임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사건에 대해 다른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다양한 가능성들을 체험하도록 하는 것이고 보다 숙련된 플레이어들에게는 피터의 버전을 더욱 정교하게 개선하거나 수정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프라스카의 피터는 다음과 같은 일러스트로서 자신의 첫 번째 게임을 표현한다. 이 일러스트에서 알 수 있듯이 피터는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게임 모딩의 템플릿으로 선택했는데 외계인의 우주선 그래픽을 자신을 괴롭히는 동료 학생들의 모습으로 설정해 놓았다. 하지만 원작 게임에서와는 달리 피터의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총을 발사할 수 없다. 피터가 지금 겪고 있는 곤란은 동료학생들의 집단 이지매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른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스페이스 인베이더〉에서처럼 행동을 통해 사태를 해결해버린다면 다른 플레이어들은 그저 이 게임을 즐기면 그만일 뿐 그 이상의 토론과 작업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피터는 이 시뮬레이션에 첨부해 놓은 ‘디자인 노트’에 이러한 사정을 밝혀 놓았고, 이 문제에 대해 다른 플레이어들은 집단 토론과 참여를 통해 사태에 대한 해결책이나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물론 몇몇 플레이어들은 피터의 게임을 수정하여 다른 버전의 게임을 디자인함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다음 그림은 플레이어들이 제안한 또 다른 해결책을 보여주는 게임 그래픽들이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이 주제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을 촉진할 수 있는 예술작품(가령 노래나 시)을 창조하고 반 아이들과 이를 공유함으로써 진지하게 의견을 나누다보면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하고 있다. 또 다른 플레이어는 귀를 막고 있는 캐릭터를 통해 주변 학생들의 모욕스러운 공격들을 무시해버리라고 제안한다. 피터의 게임들에 대한 이러한 변형은 무척 간단한 것이지만 플레이어의 능력에 따라 다양한 수준의 변형이 가능하다. 플레이어들은 ‘다중 선택’(multiple-choice) 매뉴얼을 활용함으로써 원작 게임의 모든 그래픽을 변경할 수 있고 자신의 사진이나 UCC 그래픽들을 업로드할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탑재된 게임들을 매개로 오고 가는 다양한 의견들은 개인적 수준의 소박한 해결책부터 동성애나 소수자, 왕따 문제 등에 대한 사회ㆍ정치적 구조 분석과 원인 진단에 이르기까지 다양할 수 있을 것이다. 프라스카는 이 과정에 참여하면서 플레이어들의 사회적 인식이 상승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게임의 다음 모형은 대전게임의 고전 〈스트리트 파이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여기서 피터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반영하여 게임을 디자인해 놓았다. 그는 거울에 반사된 자기를 볼 때마다 ‘괴물’을 본다. 내면의 성적 성향과 이성애 중심적인 사회적 시선이 충돌하는 가운데 성적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모습이 기괴한 ‘괴물’의 모습으로 드러난 것이다. ‘디자인 노트’에 피터는 이러한 일이 가끔 일어나는 일이며 그때마다 ‘나는 전혀 다른 두 사람’이라는 분열적 감정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이 게임에서 승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한 사람 두 정체성’이 계속해서 치고 박는 싸움을 벌이는 일이 전부다. 여기서도 플레이어들은 이러한 피터의 문제를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도 궁극적인 해결책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문제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쟁점이기도 하고, 중요한 것은 게임들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해 치열한 토론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해답보다는 좋은 대화가 우리를 성장시키는 법이니 말이다. 마지막 게임인 〈사회〉의 실물 모형은 〈테트리스〉를 바탕으로 만든 게임이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소년과 소년, 소녀와 소녀 커플을 짝지을 수 있다. 만일 플레이어가 소녀-소년 커플로 짝을 지우면 그 커플은 계속 재생산되거나 복제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이 게임에서도 어떤 커플이 가장 이상적인 커플인지를 찾아내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에 대해서는 플레이어들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고 역시 게임의 목표는 엔딩을 맛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제시되는 게임들은 모두 ‘열린 게임’이고 이는 참여자들의 토론과 참여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플레이어는 성적 취향이라는 것이 지니는 다양한 사회적 의미들을 토론할 것이고, 모든 커플의 차이는 그저 차이에 불과한 것일 뿐 차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알지도 모를 일이다. 이른바 ‘정상가족’이라는 사회의 통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일단 세 게임이 모두 온라인에 탑재되고 난 후 모든 참여자들은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가운데 다양한 참여를 할 수 있다. 그저 게임만 플레이해 볼 수도 있고 자신의 게임 소감부터 피터의 상황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해결책들을 댓글의 형태로 올려놓을 수도 있다. 어떤 참여자들은 피터의 세 게임들에 자극을 받아 게임을 모딩함으로써 수정된 버전의 게임을 탑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그림은 〈팩맨〉에 기반하여 다른 플레이어(일명 ‘캐시’)가 디자인한 대안적 게임이다. 물론 ‘포럼’은 피터의 게임들을 중심으로 전개되겠지만 다른 플레이어들의 게임들이 토론의 대상으로 추가되면서 더욱 많은 크고 작은 토론들이 가능할 것이다. 캐시(Cathy)라는 여성은 〈사이먼이 말하기를〉이라는 게임을 이용하여 몬스터 게임을 디자인한다. 이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는 몬스터를 때려잡는 것이 아니라 그의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1등 따라하기〉 놀이처럼 말이다. 플레이어가 그것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그 이미지는 서서히 변할 것이다. 캐시는 예전에 피터와 동일한 경험을 했었고 스스로 감내하고 맞서야 했던 수많은 차별적 상황들을 게임에 담아놓았음을 밝혀둔다. 그리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난 후 그녀는 친구의 도움으로 이 문제에 대처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이를 자기 게임의 테마로 삼았다고 보고한다. 결국 게임의 플레이와 토론 과정을 통해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의 성적 소수자에 대한 연대의 마인드가 중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될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연대의 방안들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이 개진될 수 있을 것이다. 마치며 코로나 19의 상황을 거치며 우리의 삶이 무척이나 각박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중의 억압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종, 젠더, 민족, 종교, 장애 등의 이유로 차별을 당하고 있는 소수자들이 그들이다. 가진 자들과 힘 있는 자들은 이른바 정상과 비정상을 갈라치며 사적인 이익을 얻으려 혈안이 되어 있다. 하지만 역사는 억압과 차별의 철폐를 향한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최근의 경우처럼 퇴행적인 ‘갈라치기’의 흐름이 강고한 모습으로 나타나더라도 우리 사회도 결국에는 동료 시민들과 ‘같이 살며 같이 즐기는’ 공환(共歡, conviviality)의 공동체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물론 이러한 미래는 그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깨어 있는’ 시민들의 공감과 연대, 공동체의 미래를 걱정하는 ‘우리 아무개’들의 협력은 억압과 차별 없는 미래의 필요조건일 것이다. 게임에 앞서 문학과 연극, 영화, 만화 등은 소수자들의 고난과 상처를 감싸 안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오고 있다. 그렇다면 강력한 ‘상호작용’의 매체인 게임은 더욱 효과적으로 우리를 공감과 인식의 장으로 초대하며 연대의 매개자가 되어줄 것인가? 아직은 이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할 만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다른 매체들도 그랬던 것처럼 게임 역시 다양한 사회적 억압과 차별을 주제로 즐기며 배우는 기회들을 보다 많이 제공할 것이다. 이미 의미 있는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보알의 연극에 영감을 받은 곤잘로 프라스카는 비디오게임 역시 억압적 현실을 재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현실을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보알의 연극 테크닉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적극적인 연기자가 되게 함으로써 개인적ㆍ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과 해결책들을 표현하게 한다. 물론 그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는 ‘이상적 결론’이 아니다. 프라스카의 목표는 주류 비디오게임들의 당연시되는 규범들을 해체하고 게임을 사회적 의제(agenda)에 대한 토론의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개개인들에게 벌어지는 다양한 사태들을 게임에 담아내고 그 게임을 같이 플레이하며 토론하고 숙의하며 저마다의 대안들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프라스카의 게임 프로젝트는 구체적 실천의 필수적 전 단계인 반성과 인식의 과정을 의미한다. 개인적ㆍ사회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은 타자에 대한 공감과 현실 인식의 과정으로부터 시작된다. 아직 대세는 아니지만 게임은 그러한 가능성을 충분하게 가지고 있다. 물론 주류 게임산업이 주도하는 현실에서 프라스카의 비전들은 ‘몽상’에 가까운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점점 더 발전하고 있는 게임 창작 환경, 게임의 플레이를 넘어 ‘보기’와 ‘만들기’로 확장되고 있는 ‘게임하기’의 실천들은 게임의 다양성 환경 구축에 유리한 기회를 조성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주류 게임과 ‘다른’ 게임들에 대한 수요도 있다. 필요한 것은 게임 사용자들의 의지이며 전환적 사고이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게임의 다양한 사회적 실천들과 향유를 위한 발판이 되어줄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경상국립대학교 교수) 김겸섭 독일공연예술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마쳤다. 공연예술과 문화연구 관련 공부와 함께 공연 및 축제 연출과 기획일을 하였다. 이후 공연학 공부를 확장하려는 욕심으로 디지털게임 연구를 시작하였다. 『억압받는 사람들의 비디오게임』,『컴퓨터게임의 윤리』를 번역하였고 『모두를 위한 놀이 디지털게임의 재발견』,『노동사회에서 구상하는 놀이의 윤리』를 썼다. 지금은 독일공연예술과 문화콘텐츠 관련 강의와 연구를 하고 있다.

  • 니체, 영원회귀, 아모르 파티, 그리고 ‘데스루프’

    〈데스루프〉 는 과정을 즐기는 게임이다. 지금까지 어떤 선형 구조의 게임들은, 모두 그 과정의 가치가 결과에 종속되어 있었다. 결국 영원회귀가 가지는 긍정성은 결과에 의해 보장된다. 그리고 그 결실을 얻은 과정은 다시금 플레이 할 가치를 빠르게 잃는다. 그러나 〈데스루프〉 는 그 결말에 이르러 진정으로 모든 과정을 긍정해버리면서 다시금 그 루프로 뛰어들게 만든다. 물론 플레이 메카닉이나 콘텐츠 면에서 다시 이 게임의 파괴와 생성을 플레이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게임에서 퇴장한 후에도 이들이 계속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갈 거라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플레이한 과정보다 더 즐거운 유희가 될 거란 것도. 이 부분이 조금은 특별하다. < Back 니체, 영원회귀, 아모르 파티, 그리고 ‘데스루프’ 03 GG Vol. 21. 12. 10. 김연자 말고, 니체의 ‘아모르 파티’ 수년 전, 김연자의 노래 ‘아모르 파티’ 가 인터넷에서 크게 유행을 탄 적이 있었다. 특유의 비트와 김연자의 보컬로 곡 자체도 훌륭하지만 가사도 그렇고 후렴의 막강한 뽕짝 비트가 절묘했다. 사실 일종의 유머로서 소비되기는 했지만, 트로트 답게 좀 쌉쌀한 맛도 있는 노래였다. * 막상 생각해보면 이 노래만큼 아모르 파티를 잘 설명한 것도 없는듯. 이미지 출처 - TV조선 유튜브 채널 그렇다면 바로 이 곡의 제목 ‘아모르 파티(Amor Fati)’ 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말 자체는 라틴어이고, 대충 들으면 어디서 나온 유명한 경구 정도로 생각하겠지만, 이 단어의 출처는 저 멀리 프로이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로 간다. “신은 죽었다.” 는 패기 넘치는 한마디를 꺼냈던 이 철학자는 그 말마따나 인간의 운명을 긍정하고자 몇가지 화두를 세상에 던졌다. 물론 여기서 니체 이론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할 생각은 없다. 분량도 모자라거니와 애초에 필자도 관련 전공 또는 심도 있게 연구한 사람도 아니다. 단지 더할 나위 없이 니체가 어울리는 어떤 게임을 위해서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뿐이다. 니체가 제시한 개념 중 ‘아모르 파티’ 는 니체 사상에서 일종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개념이다. 풀어 쓰자면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운명이란 고대 그리스에서 말하는 신에 의해 정해진 운명과는 정반대로, 인간이 스스로 살아가고 결정하는 운명 그 자체를 말한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흥하거나 망하거나 즐겁거나 괴롭거나 자신의 운명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며 그를 긍정하라는 것. 이처럼 니체의 사상은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신은 죽었다’ 라고 말한 것처럼, 현실의 삶에 대한 긍정을 추구하며, 인간 개인이 그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라는 관점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방법론이 바로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 라고 축약할 수 있다(미리 말했던 것처럼, 매우 간단하게 요약한 해석이다). 영원회귀란 파괴(실패, 좌절, 괴로움 등)와 생성(성공, 성취, 즐거움 등)의 동일한 과정을 무한 반복하여 마침내 긍정의 결론(내 운명-인생을 사랑-긍정하자)에 다다름으로서 마침내는 파괴의 과정 역시 긍정의 질(형식)로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말하는 삶에 대한 긍정이란 이뤄낸 성과, 성공, 원초적인 즐거움과 쾌락 같은 너무나 당연한 긍정의 질을 말하는게 아니다. 삶에서 필연적으로 얻고 겪게 되는 좌절과 실패, 괴로움과 불쾌함까지도 긍정하고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라는 의미다. 이 과정이 바로 영원회귀이며, 그 결과 이르게 되는 것이 아모르 파티이고, 또는 이 둘은 서로의 원인이자 서로의 결론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는 니체의 사상 전체를 상당히 짧고 편의적으로 해석한 것이지만, 큰 맥락은 같다. ‘영원회귀’ 라는 고통과 성취의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면서 마침내 얻어낸 결실은 그 모든 과정을 한순간에 긍정적인 여정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처럼 자신의 의지로 인해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자신의 운명의 결론을 긍정함으로서 그 과정도 값지고 긍정적인 질로 바꾸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인생의 자세가 바로 ‘아모르 파티’ 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자, 그럼 이제 〈데스루프〉 라는 영원회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게임의 기본 모델 ‘영원회귀’ 가 데스루프에서 특별한 이유 〈데스루프〉 는 그 이름에서부터 죽음으로 되풀이되는 루프를 넌지시 언급하고 있다. 흔히 ‘루프물’ 이라고 하는 장르 또는 특성은 여러 매체를 통해 이미 많이 선보여졌다. 수십년 전 TV에서 특선 영화로 보던 ‘사랑의 블랙홀’ 이나 최근으로 보면 영화 ‘엣지 오브 투머로우’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고, 만화나 애니메이션으로는 더더욱 많이 사용된 요소이기도 하다. * 데몬즈 소울 리메이크(Demon’s Souls, 2020). 이쪽 게임 디자인에선 워낙 유명한 소울 시리즈. 당연하게도 이는 게임에서도 흔히 활용되는 소재였다. 아니 오히려, 죽음과 부활로서 플레이어가 성장하는 논리는 플레이의 반복성을 부여해야만 하는 게임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기본 논리다. 여기서 나아가 아주 직접적인 ‘영원회귀’ 적인 과정을 노골적으로 활용하는 게임들은 많다. 오래 전부터 그 예시로 들어왔던 프롬 소프트웨어의 〈다크 소울〉 을 위시한 ‘소울 시리즈’가 그 예다. 참고로 최근에는 한국에서 이름 자체가 ‘영원회귀’ 인 게임도 나왔다. * 이터널 리턴(Eternal Return, 2020). 여기는 이름부터 영원회귀다. 사실 게임 내용은 크게 상관… 없나? 그리고 사실은 ‘소울 시리즈’ 까지 가지 않더라도 게임은 근원적으로 그 구조에서 영원회귀를 기본 구조로 채택하고 있다. 계속해 같은 시도를 하며 죽으면서 경험을 쌓고 강해지고, 마침내 극복해내고 한 번의 성공을 만들어 냄으로서 그전까지의 실패가 모두 이 성공을 위한 과정으로서 빛나게 되는 것. 그러나 〈데스루프〉 가 영원회귀 모델에서 독특한 점은 바로 플레이어의 성장 또는 변화를 직접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플레이어의 스킬 향상이나 명시적인 게임 내 각종 스테이터스, 기능의 향상이 아닌, 정보의 취득으로 표현한다는 부분이다. 보통 이러한 죽음(실패)과 부활(재도전), 그리고 이를 통한 성장을 핵심으로 하는 게임들은 그 성장을 명시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이는 게임 내의 수치나 변화보다는 플레이어 자신의 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장 노골적인 예시인 〈다크 소울〉 시리즈의 경우 거듭되는 싸움을 통해 상대의 패턴을 파악하고, 나 자신의 로직, 나 자신의 조작이 가장 크게 성장에 관여한다. 물론 거기에 최적화된 도구를 다시 고르거나 필요한 만큼의 스테이터스를 향상시키고 돌아오는 등의 선택도 가능하지만, 플레이어 자신이 가장 큰 성장의 매개체라는 점은 〈다크 소울〉 이나 〈몬스터 헌터〉 같은 부류의 게임에서는 당연한 이야기다. * 이 게임의 룰과 목표는 간단하다. 크게 세가지다. 1. 루프를 끊어라. 2. 하루 안에 8개의 타겟을 제거해라. 3. 같은 하루를 반복하며 방법을 찾아내라. 그러나 〈데스루프〉 는 이러한 노골적인 영원회귀의 방법론을 취하면서도 몇몇 부분에서 좀더 다른 방식으로 나아갔다. 게임은 하루의 루프가 반복되며, 하루는 4개의 시간대와 4개의 장소로 구분되고, 각 시간대 별 장소마다 얻을 수 있는 단서가 다르게 고정된다. 즉, 시간이 지나면 얻을 수 없게 되는 정보가 생긴다. 때문에 죽거나 하루를 넘겨 다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해야 놓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새로운 정보를 얻으면 그만큼 다른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고, 또 이것이 게임 내 퀘스트 로그의 변화로 직접 기록된다. 즉, 마치 탐정처럼 어떤 정보를 얻고 실마리에 접근하는 것이 성장이자 게임의 진척도를 상징한다. 플레이어의 자각이 바로 상승을 의미하며, 무력에 의한 극복이라기보다는 무수한 스무고개 끝에 정답을 찾아내는 식이므로 그 스무고개를 확인하기 위한 생성과 파괴가 반복되는 것이다. * 가지런히 정돈된 정보가 계속 쌓이고 중첩되면, 이러한 '정답' 이 나온다. 무엇보다 〈데스루프〉 가 보여주는 영원회귀 구조에서 다른 점은 바로 ‘죽음’ 을 보다 바른 성장을 위해 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게임에서 죽음이란 가급적 피해야만 하는, 어떤 심각한 패널티로서 존재한다. 어찌보면 징벌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데스루프의 죽음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또는 이미 지나친 부분을 다시 보기 위한 일종의 선택지로 기능한다. 마치 영화 ‘엣지 오브 투머로우’ 에서 주인공이 작전을 실행하다가 수틀리면 바로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어 다시 하루를 시작하듯 말이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매우 부정적인 의미이며 패널티였던 죽음이 하나의 선택지이자 상승의 원동력이 되면서, 즉 게임 자체를 직접적으로 죽음과 재탄생의 과정의 일부로 만들어 버리면서 보다 ‘아모르 파티에 가까운 파괴와 재생성으로 한걸음 다가간다. 이는 죽음과 재탄생의 과정이 얼마나 파괴적인가 하는 부분에서의 차이도 크지만, 무엇보다 플레이어가 취하는 모든 행동이 계획적이고 플레이어 주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걸 뜻한다. 예기치 못한 실패로 인해 맞이하는 죽음과 이를 잘근잘근 곱씹는 절치부심의 과정이 아닌, 거시적인 측면에서 세운 계획을 따라 하나하나 자신의 의도에 따라 스스로를 파괴하고 동시에 재생성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때문에 이 게임에서는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모두 계획대로야.” 또는 “이제는 이걸 하면 되겠군.” 하는 식으로, 플레이어가 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크게 달라진다. * 죽이고 죽고 정보를 모으고,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선택과 확인의 연속.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통상적으로 부정적인 질을 지니며 실패의 상징인 ‘죽음’ 은 그 자체로 긍정의 질을 가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게 바로 이 게임이 가장 니체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영원회귀와 아모르 파티의 기본은 행위자의 주체성, 그리고 결과에 대한 긍정과 확신을 통해 모든 과정마저 긍정해버리는 자세다. 즉, 이 게임의 플레이 로직 그 자체다. 긍정의 끝이 아닌, 긍정의 순환을 만드는 끝 게임의 결론은 마치 이런 해석을 부추기기라도 하는듯 크게 두가지 선택 중 하나를 고를 수 있게 되어있다. 섬에 걸려있는 루프를 끝내고 수십년이 지난 세계로 나가거나, 아니면 루프를 유지하고 주인공과 줄리아나의 끝나지 않는 놀이를 계속하는 것. 여기서 대부분은 지금까지 목표로 해왔던 루프의 파괴를 선택하지만, 오히려 어떤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이게 끝인가? 정말로 이걸로 모든 지금까지의 과정이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 되었나? * 영원회귀적 관점을 떠나서도 너무나 훌륭한 게임이니 꼭. 그렇기 때문에 엔딩에 이르러서 이렇게 생각해보게 된다. 죽음과 탄생이 무한히 반복되는 하루를 긍정할 수 있다면? 그것이 줄리아나라는 존재 자체로 인해서 나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유희가 된다면? 이런 가정은 지금까지 루프를 깨기 위해서 달려왔던 플레이어들에게 정반대의 해석을 제시한다. 이 선택은 어쩌면 궁극적으로 아모르 파티를 실현하는 방법이기도 한 셈이다. 지금까지 반복한 루프가 영원히 반복되고 또 되풀이 되겠지만, 더 이상 고통과 결론을 위한 감내의 과정이 아닌 그 자체가 유희가 되어버리니 말이다. * 이 황야마저도, ‘내 행위의 결과’ 이기에 긍정할 수 있다면? 〈데스루프〉 는 과정을 즐기는 게임이다. 지금까지 어떤 선형 구조의 게임들은, 모두 그 과정의 가치가 결과에 종속되어 있었다. 결국 영원회귀가 가지는 긍정성은 결과에 의해 보장된다. 그리고 그 결실을 얻은 과정은 다시금 플레이 할 가치를 빠르게 잃는다. 그러나 〈데스루프〉 는 그 결말에 이르러 진정으로 모든 과정을 긍정해버리면서 다시금 그 루프로 뛰어들게 만든다. 물론 플레이 메카닉이나 콘텐츠 면에서 다시 이 게임의 파괴와 생성을 플레이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게임에서 퇴장한 후에도 이들이 계속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갈 거라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플레이한 과정보다 더 즐거운 유희가 될 거란 것도. 이 부분이 조금은 특별하다. 때문에 그동안의 역경을 모두 감내하고 오히려 루프 안에 갇히기를 선택하는 것이야 말로 ‘몰락하는 자신을 긍정하는 아모르 파티의 정신에 부합하며, 이것이 오히려 진짜로 이 게임에 어울리는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데스루프〉 는 좋은 게임이지만, 그 과정에 비해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들은 지금 다시 생각해본다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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