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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셧다운제부터 게임 사전심의까지 - 21대 국회에서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

    그럼에도 유독 지난 국회에서는 ‘친게임’이라 부를 만한 국회의원이 다수 활동했으며, 유의미한 성과를 기록했다. 게임이라는 의제에 대한 정치권의 높은 관심은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어져 각 정당의 대통령 후보들이 게임 정책을 힘주어 발표하거나, 게임 전문 유튜버, 매체와 인터뷰를 가지기도 했다. < Back 셧다운제부터 게임 사전심의까지 - 21대 국회에서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 17 GG Vol. 24. 4. 10. 이 원고가 나올 무렵이면 22대 국회의원 총선거의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이번 총선이 현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강했다고 이야기했다. 게임기자로 종종 국회에 출입하는 필자는, 이번에 그 ‘중간평가’의 바람이 워낙 강렬했던 탓에 게임 부문이 지난 총선에 비해 빛을 보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업계인과 고관여층이라면 게임과 e스포츠 의제가 복합예술이거나 미래 먹거리거나 무겁게 다루어야 할 과제겠지만, 국회 전체에서 게임이 일개 부문에 불과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유독 지난 국회에서는 ‘친게임’이라 부를 만한 국회의원이 다수 활동했으며, 유의미한 성과를 기록했다. 게임이라는 의제에 대한 정치권의 높은 관심은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어져 각 정당의 대통령 후보들이 게임 정책을 힘주어 발표하거나, 게임 전문 유튜버, 매체와 인터뷰를 가지기도 했다. 앞으로 4년간 활동할 새로운 입법부의 구성을 앞두고, 지난 국회에서 어떤 게임 법안이 입안되었으며 통과되었는지 돌아보려 한다. 국민의 중간평가가 끝났다면, 이제는 게임 생태계가 다시 나름의 바람을 일으켜야 할 일이 아니겠나? * 국회의사당의 전경 (필자 촬영) ① 10년 만의 ‘강제적’ 셧다운제 폐지 2021년 11월11일, 강제적 셧다운제를 폐지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시행 10년 만의 일이다. 18대 국회는 청소년 보호법에 "인터넷게임의 제공자는 16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오전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인터넷게임을 제공하여서는 아니된다"라는 문구를 추가했다. 이유는 "청소년의 수면권과 학습권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제정 당시부터 업계와 게이머의 반대를 받았던 이 법은 시행 이후부터 줄곧 실효성 논란과 청소년 자기결정권 침해 논란이 있었고 21대 국회 들어 인터넷 공간에서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권인숙, 전용기, 류호정, 허은아(가나다순) 의원이 폐지 법안을 제출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게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이른바 '마크 사태'가 터지면서 강제적 셧다운제 폐지에 대한 대중적 논의가 촉발됐다. 2020년 말,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사 계정 인증 절차를 강화하면서 19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마인크래프트>의 접속을 아예 막겠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은 점화됐다. '<마인크래프트>가 성인게임이냐'라는 슬로건은 파급력이 있었고, 같은 해 11월 국회에서 강제적 셧다운제의 전면 폐지가 결정됐다. 한편, 이러한 장면은 정반대의 노선을 걷게 된 중국과 비교효과를 불러왔는데, 2019년 중국 국가신문출판서는 "만 18세 이하의 청소년은 하루에 90분 이상 게임을 할 수 없다"는 규제를 발표했다. 그러나 한국에 셧다운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닌데, 요청에 의해 부모가 자녀의 게임 시간을 차단할 수 있는 '게임시간 선택제'가 남아있다. 친권자가 요청하면, 게임사가 미성년자의 게임 접속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강제적 차단보다는 일면 합리적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국내 법에서 준용하는 실명 인증을 스팀게임과 콘솔게임에 적용하기 어려워 '갈라파고스 법' 문제는 계속되고 있다. 콘솔 3사는 ‘아동 계정’, 가입 제재, 온라인구매 차단 등 자체적인 자녀 보호 정책을 취하고 있으나, 이는 접속 시간을 통제하는 게임시간 선택제와는 무관하게 적용 중이다. 이들 3사는 현행 한국 법의 게임시간 선택제를 제공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일종의 ‘회색지대’가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의 게임이용시간을 감소시키지도 못했으며, 수면 시간을 증가시키지도 못한 강제적 제도의 폐지는 지난 국회가 게임 부문에서 이뤄낸 가장 큰 성과라고 부름 직하다. 지난 선거에서 여야의 전용기 의원, 허은아 전 의원은 입을 모아 자신이 강제적 셧다운제 폐지의 일등공신이라고 언급했다. 실로 자랑할 만한 성과다. 강제적 셧다운제 폐지 법안이 통과된 이후 중독포럼, 중독정신의학회 등의 단체들은 셧다운제 폐지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차기 입법부에서는 ‘게임시간 선택제’와 그 회색지대에 대해서 어떻게 다룰 것인지 두고 볼 만하다. * 셧다운제가 국회에서 논의되던 2011년 진행된 이른바 ‘폭력성 실험’ (출처: MBC) ② 게이머 여망의 실현…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 의무화 2023년 2월 27일,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를 의무로 하는 게임산업법 일부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리고 지난 3월 22일부터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 의무화가 시행 중이다. 새로운 법에 의하면, 사업자는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와 정보에 대해 게임물과 누리집(홈페이지)에 밝혀야 한다. 이용자가 Ctrl+F를 써서 검색할 수 있도록 확률을 공개해야 하며, 확률을 백분율 단위로 일일이 표기해야 한다. 게임을 선전하는 이미지에도 해당 게임이 확률형 아이템을 포함하고 있다고 명시해야만 한다. 이 법을 지키지 않은 사업자는 법에 따라 처벌받게 된다. 이뿐 아니라 새로운 게임산업법은 확률형 아이템 자체를 "게임물 이용자가 직접적·간접적으로 유상으로 구매하는 게임아이템 중 중 구체적 종류, 효과 및 성능 등이 우연적 요소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문체부 장관이 이를 감독하게 했다. 문체부 장관의 시정명령을 어기는 사업자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간 국내 게임사는 자율규제에 따라서 게임의 각종 확률을 밝혀 왔다. 그러나 자율규제는 이미지 형태로 확률표를 공개해 검색을 어렵게 만들거나, 유저가 찾기 어려운 곳에 확률을 내놓거나,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라는 날 선 비판을 겪어왔다. 게임사와 유저의 신뢰관계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면서 21대 국회에서는 여러 차례 확률형 아이템의 정보 공개가 의무화되어야만 한다는 법안이 제출되었다. 실제로 넥슨은 자사 게임 <메이플스토리>를 운영하며 유료로 판매되는 큐브의 확률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거나, 그 확률이 발표 없이 수정했다는 이유로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116억 원을 받았고, 엔씨소프트는 <리니지M>에서 캐릭터의 능력을 업그레이드하는 문양의 달성을 쉽게 하는 시스템을 공개했다가, 다른 유저들의 반발을 사고 그 도입을 취소했다가, 이윽고 롤백에 반대하는 유저들이 전액 환불을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 확률 공개를 실시한 직후에도 문제는 끊기지 않고 있는데, 최근에는 그라비티의 <라그나로크 온라인>의 특정 아이템 획득 확률이 0.8%라고 안내됐지만, 새로운 표기에는 0.1%로 밝혀져 '거짓 확률' 논란에 휩싸이게 됐다. 전술한 바와 같이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자 국회에서도 여러 차례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2020년 12월 15일 발의된 이상헌 의원의 게임산업법 전부개정안을 필두로 논의가 진행되었는데, 이 법안은 의원 발의 형태의 전부개정안이었지만, 실제로는 문체부와의 긴밀한 협의를 거쳐서 설계된 것이었다. 이후 하태경 의원은 '이용자 위원회'의 설치, 유동수 의원은 '컴플리트 가챠 금지' 등의 내용을 담은 법안을 제기하면서 여러 법안이 비교 논의되었고, 최종적으로 오늘날의 확률형 아이템 표시 의무 조항까지만 인정되기에 이르렀다. 법이 비교적 최근 실효성을 가지게 되었고, 유저와 게임사의 관계가 극적으로 변화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지금, 22대 국회 문체위는 게임사들이 새 법을 잘 지키고 있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전망된다. 게임사들은 ‘첫 번째 사례’에 자사 게임이 거론되는 불명예를 피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자사 라이브게임의 확률을 점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 정부는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 의무화를 적극 홍보 중이다. 축적된 분노를 정부가 발 벗고 나서 해결하는 모양새를 취하며 효능감을 전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출처: 문체부) ③ 문화예술이 된 게임, e스포츠는? 2022년 9월 7일, 게임은 '문화예술진흥법'상 '문화예술'의 범주에 포함되었다. 이 법에서 문화예술은 그 정의에서 문학·미술·음악 등 장르를 열거하고 있는데 그 항목에 게임,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이 추가된 것이다. 이 법을 대표발의한 조승래 의원은 "게임이 문화예술로 인정되면 부정적 인식이 개선되고, 게임산업에 활력이 더해지리라 기대한다"며 입법의 취지를 설명했다. 또 지난 국회에서는 게임산업법에 명시된 '중독' 용어가 삭제됐다. 그 대신 '과몰입'이라는 표현만 남게 됐는데, 과몰입·중독 예방에서 전자만 남기게 된 것이다. 의학적으로 '중독'이라는 용어는 내성이나 금단증상을 포함하는데, 게임중독을 여기에 쓰기에는 논란이 있다는 것이 주요 논리였다. WHO가 게임 이용 장애를 질병코드로 등재했는데, 이 질병코드의 국내 적용을 논의하는 것도 다가올 4년간의 과제이다. e스포츠와 관련해서는, 의제의 성격상 입법활동보다는 단기적 이벤트가 많았다. 2020년 7월에는 임요환, 박정석, 강도경 등의 프로게이머 출신 인플루언서들이 국회를 찾아 국회의원들과 <스타크래프트>를 플레이했다. 국회 '문화콘텐츠포럼' 창립총회 행사였는데, 게임 등 문화콘텐츠의 잠재적 가치와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연구조직으로 발족되었으나 토론회 이상의 눈에 띄는 활동을 보여주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1월 최초의 국회의장배 e스포츠 대회가 개최되었으며, 그 종목은 <철권 7>이었다. 2020년 11월, 행정부와 입법부는 부산, 대전, 광주에 이어 지역 e스포츠 경기장을 2곳 더 짓기로 합의하였으나, 그 가동률은 40% 내외로(2023, 한국콘텐츠진흥원) 경기장을 지어도 게임대회를 열 수 있게끔 종목사를 설득하는 시도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강원, 충남, 충북, 전남, 전북 등의 지역에서 지역 e스포츠 경기장 구축을 희망하고 있거나, 실제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양질의 콘텐츠에 대한 고민 없이 사업 유치에 매몰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e스포츠인 LCK에 디도스 공격이 가해지는 등 e스포츠, 인터넷방송에 대한 '연쇄 사이버 테러'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입법부 차원에서의 논의는 미진한 상황이다. 정치권이 디도스 공격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안을 내놓기 쉽지 않겠지만, 그들의 e스포츠에 대한 접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다가올 4년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 현재 한국에는 3개의 지역 e스포츠 경기장이 개관하여 운영 중이다. e스포츠 대회 가동률은 40% 내외로 조사됐다.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④ 게임과 메타버스를 구별 짓는 유일한 나라, 미국보다 앞서 빅테크 제동 건 나라 국회는 가상융합산업 진흥법안(조승래·김영식·허은아 의원 병합안)을 통과시켰다. "가상융합산업의 진흥을 위한 각종 시책의 추진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 "메타버스 산업 기본계획의 수립, 전문인력의 양성, 사업자에 대한 지원, 건전한 메타버스 산업 생태계의 조성 등을 골자로 사업 추진에 필요한 임시 기준을 마련"하는 법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 법은 "메타버스 산업의 발전을 위해 사업자의 조세를 감면"하고,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아울러 "관련 기술 개발을 위한 표준화 사업을 위한 전문 인력 육성, 산업 내의 자율규제" 내용 등이 포함됐다. 한국은 세계에서 최초로 메타버스와 게임을 구분하고, 메타버스의 발전을 국가적으로 지원하는 나라가 됐다. 그간 문체부와 과기부는 게임과 메타버스의 구분을 두고 논의를 진행해 왔는데, 이 법이 새로운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23년 줄곧 계류되던 이 법안은 연초 급물살을 타게 되어 2월 1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수혜 기업으로는 <제페토>는 게임이 아니라고 주장하던 네이버제트 등이 있다. 정부에서 이 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메타버스 지원을 위한 공적 재원이 적잖이 투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21대 국회는 막바지에 이 법을 압도적인 찬성률로 통과시켰다. 여야 의원이 공히 발의한 법안을 반대하기란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국회가 이 법을 통과시킨 데 대한 평가를 독자에게 맡기려 한다. 지난 2021년 8월 31일에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 법안은 구글, 애플 등 앱마켓 사업자가 게임사 등 사업자에게 자사 빌링 시스템을 강제하는 것을 막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리하여 이 법은 '구글갑질방지법'이라는 이름을 득했다. 홍정민, 조승래, 박성중, 양정숙 의원 안이 병합된 것이다. 관련 규제는 한국에서 가장 먼저 시행됐다. 이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에픽게임즈의 팀 스위니 대표는 "한국이 디지털 상거래 독점을 거부한 첫 번째 오픈 플랫폼 국가가 됐다"며 "퍼스널 컴퓨팅 45년 역사에서 중요한 기점이 될 것"이라고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그는 이어서 "이제 전 세계 모든 개발자는 자랑스럽게 '나는 한국인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썼다. 담당 규제 기관은 방송통신위원회가 맡기로 결정되었으나, 방통위는 구글과 애플을 대상으로 사실을 조사하고 과징금을 물릴 수 있다. 구글은 다른 업체의 결제 시스템을 허용하면서도 사실상 인앱결제와 다름없는 최대 26%의 수수료를 받게 하면서 이 법의 시행을 우회했다. 방통위는 지난해 10월 구글과 애플에 680억 원의 과징금 처분을 예고했지만, 우회로 자체는 그대로 유지되면서 실효성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 팀 스위니 에픽게임즈 대표는 이른바 ‘구글갑질방지법’ 통과에 “나는 한국인이다”라며 격하게 환영했지만, 실효성은 기대 미만이라는 것이 현재 중론이다. (출처: 팀 스위니 X) ⑤ 논란의 중심 된 게임위, 사전심의 폐지 여부는 미완의 과제 게임물관리위원회는 지난 국회에서 여러 차례 문제의 중심에 선 기관이다. <블루 아카이브> 등급 조정, 게임물관리시스템(GMS) 구축 사업비 횡령 의혹, 국민감사청구 등 여러 문제에서 게임위는 도마 위에 올랐고, 위원회가 스스로 밝힌 혁신 의지에는 물음표가 따라붙었다. 2022년 10월 29일 이상헌 의원은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게임위의 국민감사청구를 요구하는 서명을 받았고, 여기에 동참한 게이머는 5,489명에 이른다. 감사위 감사 결과, GMS 과업이 완료되지 않았는데도 검수 후 대금 지급 등의 계약 관리 업무를 부당 처리한 것 납품이 확인되지 않은 물품과 용역에 대금을 지급한 것에 대한 비위가 확인됐다. 일각에서는 게임위의 비위행위를 멈출 수 있도록 등급분류 기능을 없애거나, 게임물 사전심의 제도를 폐지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2022년 10월 14일, 게임물 사전심의의무 폐지를 골자로 하는 국회 청원이 발의되어 5만 명의 동의를 넘겼다. 이에 따라서 국회 문체위에서 이 청원을 심사하게 되었는데, 정부와 국회 모두 이 청원을 수용하기에 곤란하다는 의견을 내며 게임물 사전심의에 대한 논의는 정체에 이르게 됐다. 당시 정부는 청원에 "게임물 등급분류제도는 아동 청소년을 유해 콘텐츠로부터 보호하고, 사행성 게임물 유통을 방지하는 등 건전한 게임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답변했고, 국회 문체위에서도 논의의 맥을 바꿀 만한 의견이 제출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지난 국회에서는 게이머의 청원이 사실상 기각되고, 현행 노선이 유지하게 됐다. 다가올 국회에서는 자체등급분류사업자에게 모든 게임의 심의를 맡기자는 주장, 게임위를 문체부 산하에 완벽하게 편입하자는 주장, 등급분류 의무 자체를 폐기하자는 주장, 사감위원회에 일부 권한을 넘기자는 주장 등이 쟁명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 주제에 관해서는 다른 기회에 말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2022년 10월 29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진행된 게임위 감사청구 서명. 이날 5,000명 넘는 게이머들이 감사청구에 서명했다. (출처: 이상헌 의원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김재석 8년 동안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서브컬처 스타트업에서 대외협력을 맡고 있다.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 게이머로서의 경험이 미술의 근간이 될 때, 〈게임사회〉 리뷰

    현대미술을 볼 때마다, 스스로가 현대 미술을 향유하는 이들과 관심이 거의 없는 일반 관객들 사이의 회색분자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딱히 현대미술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도, 어렸을 때부터 향유해온 것도 아니지만 뒤늦게 재미를 붙였고,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그래서 꿈보다 제법 마음에 드는 해몽이 나오면 그걸 감상으로 삼아 마음에 두기. 그게 나름의 현대 미술을 즐기는 방식이었다.   < Back 게이머로서의 경험이 미술의 근간이 될 때, 〈게임사회〉 리뷰 12 GG Vol. 23. 6. 10. 현대미술을 볼 때마다, 스스로가 현대 미술을 향유하는 이들과 관심이 거의 없는 일반 관객들 사이의 회색분자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딱히 현대미술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도, 어렸을 때부터 향유해온 것도 아니지만 뒤늦게 재미를 붙였고,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그래서 꿈보다 제법 마음에 드는 해몽이 나오면 그걸 감상으로 삼아 마음에 두기. 그게 나름의 현대 미술을 즐기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현대 미술을 보기 시작한 때부터 비디오 게임 아트는 항상 있어왔고, 자연스레 관심의 대상이 됐다. 그게 본업과 연결이 되어서일까? 아니면 그저 게임 자체가 흥미로운 소재여서일까? 어쨌거나 ‘미술관에 게임을 집어넣기’ 는 마치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미술관에 적합한 게임이란 무엇인가?” 이라는 질문은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 밖에 없었다. 일단 “굳이 구분지어야 할까?” 같은 번외격 논제는 차치하고 “정말로 게임의 바운더리는 한계가 없어서 미술관에도 적합한, 딱 알맞은 게임의 형태가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하는 질문은 마치 우주를 향한 궁극의 질문처럼 달콤하면서도 답답한 명제였다. 물론, 그동안 게임을 소재로 한 미술 작업은 이미 많았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히토 슈타이얼이나 하룬 파로키 등을 비롯해 국내에서도 김희천, 강정석 등 많은 이들이 이미 비디오 게임, 그리고 게임 플레잉을 가지고 여러 작업을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 거기서 더 나아가는 건 게임 자체의 형태, 게임이라는 미디어 자체를 미술관에 들이려고 하는 시도들이다. 즉 이는 개인이 상호작용하는 예술이 어떻게 전시 예술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근래에는 각종 상용 게임 엔진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지고, 또 게임 플레이 경험을 가진 세대가 작가가 되기 시작하면서 그런 경향이 더 늘어났다고 생각해왔다. 시도는 정말 많았다. 보는 게임을 소재로 한 영상 작업, 아니면 아예 보는 게임의 형태로 실제 플레이 가능한 게임을 피처링 하는 작품, 김희천의 작품처럼 VR을 끼고 가상현실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들, 하물며 아예 게임 엔진으로 제작되어 직접 플레이어가 되어볼 수 있는 작품들까지. 수많은 작품들이 미술관에 적합한 게임을 찾는 과정에서 전시관을 들락거렸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게임사회〉 는 그런 시도의 종합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플레이 가능한 게임, 그리고 게임의 형태를 한 미술 작업, 게임을 소재로 한 영상 작업, 해킹한 게임기 기판으로 실시간으로 작동하는 작품, 또는 게임을 비롯한 서브컬처를 특집처럼 다룬 작품들까지.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에서 위의 그 질문, “미술관에 적합한 게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의 답을 찾았는가 하면, 오히려 그 명제 자체를 뒤집어버리게 됐다. 〈게임사회〉 의 적지 않은 작품들은 그 형식 자체가 ‘비디오 게임’이라는 익숙한 형태를 띄고 있다. 그러나 각 작품을 해석하고 이해하는데에는 그런 ‘게이머로서의 경험’ 또는 기반지식이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는 각 작품의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몇몇 전시 작품들이 ‘게이머적인 경험’ 의 연장선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 컸다. 게이머로서의 경험과 결합하여 이 작품을 이해했을 때 그 깨달음이 매우 특별하게 느껴진 것은 코리 아칸젤의 〈/로데오/ 할리우드 플레이하기〉 였다. 이 작품은 코리 아칸젤이 얼마나 게이머적 경험을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작업이기도 했다. AI툴 또는 자동화 매크로를 통해 양산형 P2W 게임을 플레이하도록 함으로서 비인격적으로 변한 게임을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소모시킴으로서 나오는 해학이 이 작업의 재미였다. 이는 게이머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무분별한 결제유도와 반복적이고 재미없는 플레이로 가득 찬 양산형 모바일 게임에 대한 비판으로서 게이머들에게 매우 천착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또다른 좋은 예는 재키 코놀리의 〈지옥으로의 하강〉 이었다. 이 작품은 두가지의 보편적 경험에 기반하는데 먼저 코로나 판데믹으로 인한 사회봉쇄, 그리고 ‘GTA5’ 라는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게임의 경험이다. 우리가 ‘GTA5’ 를 플레이하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파괴적이고 소모적이다. ‘무엇이든 가능한 오픈월드’ 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며, 좀더 정확히 정의하자면 ‘각종 금기가 해제된 오픈월드’ 라고 할 수 있다. 즉, 가장 먼저 이 게임에서 생각하게 되는 건 살인과 약탈, 방화, 파괴 같은 현실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는 행위들이다. 형식적으로는 그보다 많은 행위가 가능하지만, 금기가 없다는 점 덕분에 자연스럽게 그런 비일상적 일탈로 플레이가 귀결된다. 하지만 〈지옥으로의 하강〉 은 그런 파괴적이고 소모적인 플레이에서 벗어나 그 무대 자체를 보여준다. 얼마나 일상과 닮아있는지, 어떻게 이 세상이 대리세계로 인정받고 있는지를 비춘다. 고속도로 옆 편의점, 발전소 옆 철길, 이곳을 정처없이 걷는 주인공. 마치 플레이어들에게 묻는 것 같다. 당신이 살인과 약탈, 기타 파괴적 플레이로 물들였던 이곳이 사실은 판데믹 같은 우울한 시기에 우리가 조용히 묻어 지낼 수 있는 안식처가 아니었냐고. 개인적으로 가장 나쁜 예는 〈노텔 (서울 에디션)〉 이었다. 전시 작품 중 가장 비디오 게임 그 자체의 형태를 하고 있다. 겉으로 보면 이 작품을 실망스럽다고 한 것이 의외일 수도 있다. 전시된 작품 중 우리가 알고 있는 ‘비디오 게임’ 의 형태와 가장 닮아있는 작품이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오히려 기대치와 작품의 실제가 어긋나는 현상이 발생한다. 〈노텔 (서울 에디션)〉은 말그대로 비디오 게임 컨트롤러를 쥐고 인게임 3D 공간을 탐험하는 작품이다. 비주얼적으로도 훌륭하고, 흔히 미술가들이 만든 게임에서 발생하는 기술적인 문제도 크게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특성 때문에 관객은 이 작품을 그 자체로 게임으로 인식하게 되고, 흔히 알고 있는 게임의 기준으로 이 작품을 보게 된다는 점이다. 결국 그렇게 되면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한계, 즉 어디까지나 공간을 구현하고 그 안에서 이동할 수 있도록 했을 뿐, 그 어떤 상호작용이나 탐험의 목적성이 결여되어 있음이 크게 다가온다. 그러한 이유로 〈노텔 (서울 에디션)〉은 전시장에서 가장 오래 시간을 보낸 작품이기도 했는데, 과연 비 미술인 또는 미술 관객으로서의 경험이 없는 이들, 또는 게이머들이 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리고 작품을 이해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인지 궁금해서였다. 작품은 누군가 플레이하면 그 주변에 둘러앉아 그걸 지켜볼 수 있게 되어 있었고, 많은 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컨트롤러를 이어 받아가며 플레이했다. 하지만 그 반응은 대체로 한결같았다. “그래서 뭐지?”, “왜 아무 것도 없지?” 흥미롭게도 〈노텔 (서울 에디션)〉 그 형태적으로는 가장 게이머적 경험의 연장선에 있었지만 직접 컨트롤러를 쥐고 플레이하며 겪게되는 경험은 ‘게임’ 이라고 하기엔 너무 황량한 것이었다. 굳이 이 작품을 게임의 장르적 해석으로 보자면 어드벤처 게임에 가까울 것이지만, 이 작품은 탐험의 이유와 목적, ‘왜’ 와 ‘무엇’ 이 결여되어 있었다. 물론 현대 미술 시조에서 그런 명확한 목표 지점을 설정하는 건 불필요한 일로, 또 작가가 관객의 이해를 제한하는 행동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결정적으로 이 작품은 ‘게임’ 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면서 동시에 좋은 미술 작업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해졌다. 오히려 정말로 디스토피아의 풍경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비효율적인 장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작업들의 긍정과 부정을 정리해보면, 실상 게임을 미술관에 들여놓는데에 중요한 건 ‘형태’ 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지난해 보았던 이안 쳉의 〈세계건설〉 전시에서도 동일한 느낌을 받았다. 이안 쳉의 〈사절〉 연작은 무한한 길이를 가진 일종의 자동화 시뮬레이션이다. 그러나 ‘무한한 길이’ 라고 되어있었지만 그 무한한 길이는 그 안에서 유의미한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적절히 하이라이트하지 못한다면 순간 만큼의 가치를 가지기 오히려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BOB 이후의 삶: 찰리스 연구〉 는 스크린 뒤에서 PC를 통해 실시간 렌더링으로 보여주는 일종의 게임 라이브 컷씬의 연장선에 있었지만, 정작 그것이 관객에게 보여지는 방식은 폐쇄된 공간 안의 스크린 하나에서 상영되는 것이었기에 오히려 더 넓게 향유되고 더 깊이 플레이될 수 있는 작품이 이 공간에 갇혀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과적으로, 꼭 게임이라는 형태 자체에 집착할 필요는 없고, ‘게임플레이’ 라는 경험을 어떻게 미술관에서 재현하거나 또는 활용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작가와 전시 관계자들이 ‘게이머로서의 경험’ 을 가지고, 이를 ‘게이머’ 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작품을 만들고 구성하는게 더 중요하다는, 어쩌면 너무 정석적이면서도 원점회귀적인 결론에 다다르고 말았다. 또 한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었던 부분은 이전의 어떤 전시들보다도 영유아, 중년층, 20대 남성 같은 기존의 현대 미술 전시의 주 소비층이 아니었던 이들이 많이 보인 전시였다는 점이다. 그만큼 게임이라는 소재 자체가 더 많은 이들을 현대 미술관이라는 장소로 이끌어낸 것만은 분명했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들 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많은 관심이 갔다. 하지만 그 안에서 목격한, 그리고 간단히 이야기 해본 관객들에게서는 확실히 조금은 아쉬운 반응들을 얻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게이머들이 비디오 게임 아트라는 좋은 가교를 두고도 현대 미술로 넘어오기 어렵게 할까. 이번 전시를 통해 가장 크게 느낀, 비디오 게임과 현대 미술의 불협화음은 ‘친절함’, 좀더 포괄적으로 말하면 UI/UX 였다. 일반 관객들의 시선에서 현대미술은 기본적으로 불친절함을 소양으로 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는 어느정도 오해와 편견이라는걸 알고 있다. 단순히 의미파악 자체에 여러모로 복합적인 사유와 다양한 의식의 단계가 필요한 것 자체로 불친절함이라고 부르는 건 다소 부적절한 표현이다. 많은 현대의 명시, 명작 영화들이 이해에 난점이 있다고 해서 ‘불친절’ 하다고 비판받지는 않는 것과 같은 이유다. 그러나 미술관의 미술은 기본적으로 작품 외의 정보 전달을 극히 줄이고 설명이라고 할만한 것은 오직 스테이트먼트 하나만을 남겨 놓는다. 영상 작품들은 이미 상영되고 있고, 관객이 영상의 중간에 들어오게 되면 문맥을 파악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즉 이해를 돕기 위한 도구도 적고, 관람환경도 그렇지 않다. 그래서 어떤 전시 또는 작품을 이해하려면 충분한 시간을 두고 계속 ‘수용’ 하면서, 이를 머리속에서 정제하고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고난한 정신적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비디오 게임이 필수적으로 가져야 하는 UI/UX 의 덕목과 상충되는 면이 있다. 비디오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항상 일련의 튜토리얼이나 툴팁을 통해 게임을 이해하고 ‘이 게임을 플레이 하기 위해 지켜야하는 룰, 그리고 필요한 덕목’ 을 학습받는다. 심지어 명시화된 튜토리얼이 존재하지 않는 게임이라도 그런 학습 곡선을 고려해 게임의 구조를 만들기 마련이다. 그리고나서 플레이어는 비로소 게임을 이해해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현대미술은 바로 이 과정이 결여되어 있다. 수많은 비디오 게임 아트 전시가 시도되어 왔지만 충분히 상호작용성을 바탕으로 한 게임적 경험을 주었다는 생각이 든 전시가 적었던 이유는 바로 이 UI/UX 가 관객과 전시/작품 사이의 게임적 상호작용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모든 것이 가이드라인과 튜토리얼과 툴팁으로 채워져야 한다면 우리가 가지는 이해의 폭은 극도로 좁을 것이고 특정 가치관에 편향된 이해를 다수가 공유하게 되는 다소 위험한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너무 결여된다면 이해 자체를 가로막는 장벽으로 기능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걸 하나의 재미로 여기고 있지만, 더 많은 이들에게 이해받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현대미술이 소수의 향유자들이 아닌 일반 대중으로부터 유리된 이유는 이 부분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슬프게도 일반 대중에게 이제 미술관은 모던한 카메라 세트장처럼 쓰이고 있다. 즉 미술관은 비디오 게임처럼 ‘개인화된 경험’ 을 완전히 얻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환경이자 풍조를 가지고 있다. 이를 이번 전시에서 단적으로 느낀 지점은 바로 각종 ‘불편한’ 컨트롤러와 연결된 게임들을 사람들이 직접 플레이할 때였다. 많은 사람들은 왜 익숙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불편하게 배치된 컨트롤러로 자신에게 이미 익숙한 게임을 플레이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스테이트먼트에는 그 의도가 써있기는 했지만 일목요연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필자가 나름의 해석을 곁들여 “장애인을 위해 만들어진 적응형 컨트롤러 또는 비직관적인 컨트롤러로 게임을 함으로서, 장애인이 일반적인 컨트롤러로 게임을 할 때의 불편함을 비장애인들이 체험한다.” 라는 의도를 덧붙이자 그제서야 이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결국 현대 미술관 내에서 이루어진 정규 전시이기에 기존에 잡혀있는 미술 전시의 틀을 바꿀 수는 없었고, 그것이 더 많은 이해를 원하는 이들에게 장벽처럼 작용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안타까운 점은 분명 게이머로서의 경험이 잘 녹아있는 좋은 작품들이 많았음에도 이를 수용하기 꽤 버거워하는 이들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게임사회〉 전시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게이머적인 경험이 베이스가 되었을 때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는, 특별한 작품이 많았기 때문이다. MOMA 소장 게임 컬렉션은 그냥 평범하게 전시되었다면 오히려 플레이 되기 어려운 환경에 가져다 놓은, 죽은 게임이 되었을테지만 적절한 컨트롤러의 변형으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았다. 앞서 언급한 코리 아칸젤의 작품, 그리고 재키 코놀리의 작품은 그 형태는 분명 평범한 영상 전시의 폼을 하고 있음에도 게이머로서의 경험과 천착되어 새로운 이해의 지평을 열어주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번 전시에서 얻은 또다른 깨달음은 게임은 확실히 사람들을 미술관으로 모을 힘이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다녀갔지만 그동안 지켜 본 비 미술인 관객들의 행태는 딱 둘 중 하나였다. 그냥 슥 보고 지나가거나, 배경으로 두고 사진을 찍을 뿐. 하지만 이번 전시는 사뭇 달랐다. 많은 이들이 직접 게임을 플레이하려고 했고, 작품을 보며 자신의 게임 경험을 떠올려 이야기하고, 직접 작품을 체험하고자 컨트롤러를 움직였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가진 힘, 그리고 동시에 오프라인 공간이라는 한계는 이중적인 면이 있다. 〈게임사회〉 전시 또한 기존의 미술 전시들이 가진 일종의 딜레마를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그 작품의 면면에서 느낀 ‘게이머로서의 경험’ 은 즐거웠다.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더 들러서 마음에 들었던 작품들을 더 느긋하게, 지긋이 관람하고 싶다. Tags: 게임사회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미술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이명규 게임 기자(2014~), 글쓴이(2006~), 게이머(1996~)

  • 심사위원장 총평

    제 2회 게임 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에는 총 51편의 원고가 투고되었다. 작년에 비해 수적으로는 다소 줄어들었으나, 원고의 전반적인 질적 수준과 비평의 주제 및 소재의 다양성 측면에서는 큰 진전이 있었다. < Back 13 GG Vol. 23.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세대학교 교수) 윤태진 텔레비전 드라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지금까지 20년 이상 미디어문화현상에 대한 강의와 연구와 집필을 했다. 게임, 웹툰, 한류, 예능 프로그램 등 썼던 글의 소재는 다양하지만 모두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활동들”을 탐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몇 년 전에는 『디지털게임문화연구』라는 작은 책을 낸 적이 있고, 요즘은 《연세게임·이스포츠 연구센터(YEGER)》라는 연구 조직을 운영하며 후배 연구자들과 함께 여러 게임문화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 불멍을 넘어, 소비자본주의 너머: 게임 〈리틀 인페르노〉 비평(우수상)

    물건을 태워서 종잣돈을 늘리고 새로운 물건을 해금한다. 그리고 일종의 업적이기도 한 특정 물건의 조합을 찾아 태우는 재미는 분명 게임으로서의 즐거움을 플레이어에게 제공한다. 그렇지만 이 게임은 주된 게임성을 경험하게 하는 시스템을 플레이어로 하여금 회의하고 그 밖을 사유하기를 적극적으로 재촉한다. 이러한 점에서 게임 〈리틀 인페르노〉는 전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메세지가 게임적 시스템과 충돌한다. < Back 07 GG Vol. 22.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운 인디음악 씬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예술사회학 연구와 (공연)사진 촬영에 매진중이다. 라캉 정신분석 철학서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영번역을 맡았다.

  • 내 마음의 퍼즐 상자: 〈애니멀 웰〉과 〈리프 이어〉의 세계에 대해

    이 글은 《게임제너레이션》 20호에 실린 「기계장치의 우주: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의 불능감에 대해」의 후속편으로, 지난 글의 결론부에서 언급만 하고 넘어갔던 장르명인 ‘메트로브레이니아(metroidbrainia)’에 대한 논지를 심화해 〈애니멀 웰 (Animal Well, 2024)〉과 〈리프 이어 (Leap Year, 2024)〉를 뜯어보는 것이 목표다. 그러므로 우선 곧장, 메트로브레이니아가 무엇인지를 정리하며 글을 열겠다. < Back 내 마음의 퍼즐 상자: 〈애니멀 웰〉과 〈리프 이어〉의 세계에 대해 24 GG Vol. 25. 6. 10. 다시 들어가며 이 글은 《게임제너레이션》 20호에 실린 「 기계장치의 우주: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의 불능감에 대해 」의 후속편으로, 지난 글의 결론부에서 언급만 하고 넘어갔던 장르명인 ‘메트로브레이니아(metroidbrainia)’에 대한 논지를 심화해 〈애니멀 웰 (Animal Well, 2024)〉과 〈리프 이어 (Leap Year, 2024)〉를 뜯어보는 것이 목표다. 그러므로 우선 곧장, 메트로브레이니아가 무엇인지를 정리하며 글을 열겠다. 지난번에 잠시 언급했듯, 이 단어는 선구적인 《슈퍼 메트로이드 (Super Metroid, 1994)》와 그 영향을 받은 《악마성 드라큘라 X 월하의 야상곡 (Castlevania: Symphony of the Night, 1997)》의 합성어인 ‘메트로배니아(metroidvania)’에 ‘브레인(brain)’을 집어넣은 말장난이다. 일종의 내부자용 농담 같은 이 단어에 대해 게임 저널리스트 케이트 그레이는 「대관절 메트로브레이니아가 뭐야?」라고 물어보는 글 [1] 에서 《메트로이드》가 뭐고 《캐슬배니아》란 또 무엇인지부터 구구절절 설명해야 하는 이런 작명이 “기이할 정도로 도움이 되지 않고, 기계적이고 자기 참조적”이라고 비판한다. 대신에, 그는 자신과 동료가 고안한 ‘지식 노드 퍼즐(knowledge node puzzle)’과 ‘정보 게임(information game)’이라는 훨씬 직관적인 표현을 통해 “정보의 획득이 목표고, 이미 얻은 정보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이를 해내”며 그를 위해 “정보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감춰서, 세계와 그 구조에 대한 플레이어 본인의 이해력을 통해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내는” 유형의 게임들을 묶고자 한다. 이렇게 지식·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레이의 접근에서 흥미로운 점은 그가 이런 유형을 정의 내리며 플레이어의 경험과 그에 딸려 오는 (고고학자나 탐정 같은) 어떠한 기분 또한 중대하게 언급한다는 것이다: “게임은 (마치 역사처럼) 당신보다 앞서서 펼쳐져 있고, 당신은 정말 무엇도 바꿀 수 없을 뿐, 그저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밖에는 없다.” 이런 설명을 지난 글과 연결 짓자면, 〈아우터 와일즈〉와 〈레인 월드〉는 각각 태양계와 생태계의 법칙을 그 임의성까지도 어느 정도 포함해 모의하며 플레이어에게 “우리-없는-세계” [2] 한복판에 떨어진 기분을 제공했을 테다. 비밀스러운 세계와 그 벽들 [3] : 메트로배니아와 메트로브레이니아에 대해 그렇지만, 나는 메트로브레이니아에서 플레이어가 숨겨진 지식·정보를 차근차근 연결 짓고 이해하도록 하는 진행이 중요한 만큼 메트로배니아적인 특성을 아예 무시할 수도 없다고 주장하고 싶다. 그레이의 문장대로 “게임이 거의 마치 당신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당신은 그저 이를 발견했을 뿐”인, 세계에 대한 플레이어의 불능(감)을 고전적인 메트로배니아 장르를 활용하면서도 충분히 추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메트로배니아의 ‘불변하는 매력’이 대관절 무엇인지를 여러 게임 제작자에게 물어보는 인터뷰 [4] 에서, 많은 이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진 맵 속에서 필요한 아이템을 찾거나 역추적을 해야만 극복할 수 있는 방해물로 이뤄진 사이드 스크롤링 액션-어드벤처”의 구조가 특정한 플레이 경험을 생성한다고 밝힌다. 이 경험은 대개 새로운 이동기나 공격기를 얻으며 성장하는 플레이어의 주체적인 행위성과 관련되어 있다. 플레이어가 주어진 세계를 익혀나가고 그에 익숙해지는 분투가 그 세계를 무대 삼은 서사로 이어지는 진행 과정의 등치를 통해 “그저 사건들의 정해진 순서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 그 사건들을 (어떤 경우에는 항상 같은 순서도 아니게) 일으키는 기분”과 “다수의 방식으로 탐험 준비를 마친 거대한 맥락 속에 플레이어가 들어간 인상을 (심지어 그 인상이 거짓일지라도) 선사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상술한 메트로배니아 고전들의 주동 인물이자 플레이어 캐릭터인 사무스와 알루카드부터 플레이어의 숙련에 따라 각종 파워 업을 얻고 장비 세트를 되찾으며 강해지고, 결국엔 제베스 행성에서 마더 브레인을 또 악마성에서 드라큘라를 물리친다. 그러니 아무리 거대한 맵을 헤매거나 크고 작은 전투에서 밀리더라도, 끝에 가면 이들을 제어하는 플레이어가 작중 서사의 중심이 된 기분이 드는 것은 당연할 테다 [5] . 다시 말해, 메트로배니아는 거대하게 연결된 세계를 탐험하며 성장하는 플레이를 작중 서사의 전반적인 진행과 일치시켜, 플레이어가 주어진 사건과 맥락 속에서 인과나 행위력을 출중히 발휘하는 전능(감)을 고양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메트로배니아의 전제에서 출발해, 플레이어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세계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비인격적이고 무심한 우리-없는-세계에 직면하려는 시도” [6] 를 상상해 본다면 어떨까? 이를테면 플레이어가 세계의 구조나 비밀을 알아가는 과정이 그 상위의 맥락이나 사건에 직접적인 인과를 발휘하지 않으면서 등치가 어긋나는 식으로 말이다. (다시 지난 글을 되짚자면, 〈아우터 와일즈〉의 결말은 화로인의 ‘관측’이 가히 우주적인 힘을 발휘하도록 인과를 극적으로 연결 짓는 한편, 〈레인 월드〉의 결말은 슬러그캣의 귀결이 그가 뒤로 한 세계에 큰 인과를 끼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스킬 및 아이템의 해금이나 레벨·파워 업 같은 중대한 게임적 요소를 그보다 덜 게임적일 지식·정보의 획득 및 연결로 치환할 때, 플레이어가 경험하는 진행의 감각은 모호하게 흐트러지면서 전능(감)에 불능(감)이 흘러 들어올 수 있는 여지를 열어놓는다. 그렇다면, 메트로브레이니아를 규칙이 고정된 장르보다는 플레이어가 지식·정보를 매개로 게임 속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으로 이해해 보자. 주어진 지식과 정보를 알맞은 방식으로 연결 짓자 “필연적으로 설명할 수 없고, 측량할 수 없으며, 숨겨지고 은닉된 채 남겨진” [7] 듯한 세계의 비밀이 드러나는 메트로브레이니아적인 작동법은 플레이어의 진행을 쉽게 수량화하거나 가시화할 수 없도록 하며, 세계의 인과가 오로지 플레이어의 행위성에만 연동되지 않는다는 점도 드러낼 수 있다. 따라서 메트로브레이니아 유형의 게임들은 다른 경우들보다 불능(감)이 우선 두드러질 수도 있겠지만, 바로 거기서부터 출발해 플레이어에게 모르는 의미나 숨은 비밀을 알아차릴 때의 짜릿한 전능(감)을 효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 메트로브레이니아를 메트로배니아에서 구분 짓는 특성이 바로 이것이라고 둘 수도 있겠고 말이다. 이와 더불어, 앞서 인용한 메트로배니아의 정의에서 특히나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연속적으로 이어진 맵’이라는 특성이다. 유기적으로 짜여 역추적과 그를 통한 새로운 지역의 개방이 가능한 메트로배니아의 세계가 여타의 2D 플랫포머가 제시하는 세계와 구별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성훈의 논의 [8] 를 빌려오자면, 각 스테이지가 선형적으로 진행되고 스테이지끼리도 선형적으로 연계되곤 하는 2D 플랫포머들은 “이차원적인 움직임으로서의 전진에 대한 비평을 게임 내적인 논리에서 마련한다. 그 비평은 특히 게임이 제공하는 최후의 조우와 최후의 공간을 중첩하는 방식에 따라서 특유의 완결된 형식미를 갖춘다.” 곧 일반적인 2D 플랫포머에서 제시되는 세계란 시작에서 끝으로 향하는 경로 자체로, 그 일직선 구조를 반영하듯 “명쾌하고 명료하며 직선적인 이야기는 한편으로 스테이지 간의 근원적인 단절을 숨기고, 좌우로 길게 봉합된 스테이지의 연쇄를 통과하며 전진하고 있단 환상을 유지한다.” 이러한 2D 플랫포머의 세계에서 일직선 공간의 끄트머리는 ‘최종장’이라 비유되듯 플레이 전반의 마무리와도 자연스레 겹친다. 선형적인 경로의 마지막 칸에 닿으면, 그 세계는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완결이 나는 셈이다. 이에 비해 메트로배니아가 제시하는 세계는 플레이어의 방문 순서가 느슨하게 짜이는 등 다른 2D 플랫포머에 비해 훨씬 비선형적이고, 그런 만큼 주어진 세계의 ‘최종장’이 아니라 중심부에서부터 훨씬 더 멀리 떨어진 ‘변방’을 향해 탐험하며 이동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나가는 플레이를 제공한다. 따라서 플레이어가 주어진 세계의 끄트머리에 닿더라도, 이는 서사 전반의 마무리로 직결되며 플레이의 공간과 시간을 겹치지는 않는다. 이런 특성을 통해 다른 2D 플랫포머에 비해 메트로배니아에서는 세계가 자기 완결적으로 닫혀 있다는 사실을 더욱 실감할 수가 있다. 「 최종장과 변방 」에서 3D 오픈 월드의 세계로 설명하듯, “이곳이 곧 끝이지만, 게임 내적으로 이곳이 곧 끝이라고 선언되어서는 안 된다는 역설. 경계 부근은 열린 세계의 닫힌 지역이라는 점에서 오픈 월드의 모순이 격화되는 장소다.” 이러한 관점에 따라 본론에서는 기본적으론 2D 플랫포머인 〈애니멀 웰〉과 〈리프 이어〉를 중심으로, 퍼즐 상자 같은 세계가 제 비밀을 드러내는 메트로배니아적인 동시에 메트로브레이니아적인 특성을 짚겠다. 닫힌 세계와 그 겹들: 〈애니멀 웰〉에 대해 〈애니멀 웰〉의 1인 제작자 빌리 배쏘(Billy Basso)는 비밀이 겹겹(layer)으로 숨겨져 있다는 단골 문구로 이 게임을 소개하곤 하는데, 이 겹겹의 비밀은 크고 작은 플랫포밍 퍼즐과 얼기설기 엮인 채 가로세로 16칸씩으로 이뤄진 세계의 전반적인 형상과 함께 차차 밝혀지도록 짜여있다. 첫 겹에서는 평범한 2D 플랫포머에 가깝게 진행하며 결말을 보았다면, 두 번째 겹에서는 세계 곳곳에 숨어 있는 듯한 달걀들을 전부 찾아내고, 심지어 그보다도 더 숨겨진 겹을 향해 토끼 굴을 파고 내려가는 식으로. 이 세계를 돌아다니는 자그마한 덩어리인 플레이어 캐릭터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얻은 장난감들을 통해 이 세계에 주어진 다양한 퍼즐 및 겹겹의 비밀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익혀나간다. 〈애니멀 웰〉의 핵심이라 할만한 이 장난감들은 거의 다 둘 이상의 쓰임새를 가지는데, 이는 종종 플레이어가 세계를 좀 더 능숙히 이동하도록 돕는 동시에 각종 지식·정보를 제시하며 전능(감)의 조건들을 짜맞춘다. 이를테면 원반으로 개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한편 원거리에서 날려 레버를 조작하거나 몇 오브젝트를 부술 수도 있고, 심지어는 플레이어 캐릭터가 올라타 방을 가로질러 날아갈 수도 있는 식으로. 이런 유용한 장난감들을 도구 삼아 세계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방식이 늘어날수록, 플레이어가 돌아다닐 수 있는 스테이지의 범위 또한 넓어진다. 중앙에서부터 출발하는 지도를 (첫 번째 겹의 공략 목표인 네 개의 불빛이 위치한) 변방으로 밝혀가면서 이 세계를 구석구석 탐험하는 진행은 방마다 주어진 플랫포밍 퍼즐 외에도 더 큰 규모의 퍼즐로 향하는 단서나 그보다도 훨씬 깊숙하게 숨겨진 비밀의 존재를 알아차려 가는 공략 전반과 자연스레 겹친다. 그렇게 자신이 획득한 지식·정보가 장난감들이 그렇듯 복수의 의미와 용도를 지닌다는 점을 깨달은 플레이어는 단서들을 알맞게 연결하며 이 퍼즐 상자 같은 세계의 조작법을 익히고 그에 익숙해지는 전능감을 얻는다. (배경에 서 있는 동상이나 측면으로 난 동물 머리 같은 시각적 요소에서도 〈슈퍼 메트로이드〉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있듯) 메트로배니아의 기본 공식에 꽤 충실한 만큼, 〈애니멀 웰〉은 관습적인 장르 공식을 뒤틀어 제 나름의 메트로브레이니아적인 특성들을 덧붙이기도 한다. 이를테면 게임의 또 다른 홍보 문구인 ‘전투 없는 메트로배니아’가 지시하듯 플레이어 캐릭터에게 공격기 자체를 제거했다는 점이 그렇다. 플레이어에게 기초적인 행위성과 그에 따른 전능(감)을 부여하곤 하는 전투가 없다는 점에서 〈애니멀 웰〉은 무시무시한 타조나 캥거루 등에 맞서지 못하는 불능(감)을 키우는 편이며, 그외에도 우물 곳곳에 거주하는 수많은 동물이 이 자그마한 덩어리에 종종 호전적이거나 대개 무심하다는 점 또한 다시금 이 세계가 플레이어 당신만을 위한 곳이 아니라는 ‘우리-없는-세계’의 기분을 가중한다. 그러나 〈애니멀 웰〉의 세계는 (〈아우터 와일즈〉의 태양계나 〈레인 월드〉의 생태계가 시험하는 만큼의)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그가 온갖 지식·정보와 비밀을 수집해 해결하도록 만들어진 퍼즐 상자에 가까운 만큼, 여전히 어느 정도는 대개의 게임이 그런 만큼 “우리에-대한-세계” [9] 이기도 하다. 플레이어가 세계에 관한 일정한 지식·정보를 획득하고 이해하면 충분히 퍼즐을 풀고 비밀을 찾을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면 막막하고 이해 불가능하게 느껴지듯이, 메트로브레이니아의 플레이에 잠재된 전능함은 플레이어가 겪는 불능감과 늘 충돌하며 그렇게 플레이어 ‘당신’과 세계 사이에 당연한 듯 싶었던 인과는 어긋난다.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아먹을 때야, 플레이어는 비로소 전능(감)과 행위성을 얻을 수 있고 어쩌면 그제야 세계에 나름의 인과를 발휘할 수도 있다. 바로 이것이 메트로배니아의 불능한 이면을 적극 활용하는 메트로브레이니아의 역설적인 작동법일 테다. 메트로배니아가 생경한 세계에 익숙해지는 플레이어의 행위성을 변방까지 지도를 구석구석 밝히는 탐험이나 플레이어 캐릭터의 인과에 반응하는 서사 등으로 반영해 ‘우리에-대한-세계’를 제작할 때, 메트로브레이니아는 그러한 세계에 대한 지식·정보만을 전략적으로 숨겨 플레이어가 마치 ‘우리-없는-세계’에 떨어진 것만 기분이 들게끔 한다. 앞서 인용한 메트로배니아 인터뷰에서 “제가 플레이 중인 게임의 세계가 제 존재와 무관한 척을 하고 싶었습니다. 마치 제가 이 세계의 손님일 뿐이고, 게임이 제가 발을 딛거나 말거나 계속 거기서 존재하고 있을 것처럼 느껴지도록 하고 싶었어요.”라는 발언을 끌어오자면, 여기서 중요한 건 플레이어에게 실제로 지극히 무심하거나 그와 완전히 무관한 세계를 만드는 게 아니라 그러한 ‘척을 하는’ 것이다. 아무리 화면 밖에서 입력을 집어넣는 당신이 그리 중요치 않다고 떵떵대더라도, 게임은 결국 플레이어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이 묘한 인력 관계 속에서, 〈애니멀 웰〉과 같은 메트로브레이니아 유형의 게임들은 전략적이고 효과적으로 무관하거나 무심한 ‘척’을 하다가 자신의 불능을 받아들이고 이 세계의 지식·정보를 파고드는 플레이어에게 비밀과 전능을 향한 길목을 열어 보인다. 이 넓고 낯선 세계 속 네 귀퉁이에서 얻은 불빛으로 중앙 허브의 기둥들을 밝히자, 우물 속의 우물이 어둑한 아가리를 의미심장하게 벌리는 것처럼. 자그마한 세계와 그 점프들: 〈리프 이어〉에 대해 「기계장치의 우주」를 작성할 때만 하더라도 메트로브레이니아 유형 게임으로 자주 호명되던 〈튜닉 (TUNIC, 2023)〉을 내정하고 있다가, 그보다 덜 알려지고 더 조그만 게임인 다니엘 린센(Daniel Linssen)의 〈리프 이어〉를 선택한 이유는 어느 정도 『폴리곤』에 올라온 글 [10] 때문이다. 이 게임이 “메트로브레이니아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메트로브레이니아”라는 제목을 단 그레이슨 몰리의 리뷰는 자신이 퍼즐 상자를 뜯어 볼 끈기가 없어 〈애니멀 웰〉을 그리 좋아하지 못했던 것에 비해 〈리프 이어〉가 “〈애니멀 웰〉을 알아먹은 사람들이 느낀 기분을 상상하게 해준 작은 모사품”이라고 밝힌다. 이때 그가 말하는 ‘기분’이 앞서 다뤘듯 불능감과 전능감의 오묘한 조합이라 한다면, 〈리프 이어〉는 정말로 그저 가벼운 메트로브레이니아의 경험만을 제공하는 것일까? 〈애니멀 웰〉의 빽빽한 256칸에 비해 〈리프 이어〉는 2024년의 본편과 올 초 발매된 DLC 모두 약간 헐렁한 40~50칸짜리 세계를 제시하기에 상대적으로는 작다고 둘 순 있겠지만, 〈리프 이어〉가 2D 플랫포머의 문법을 통해 제시하는 메트로브레이니아적인 특성과 기분은 〈애니멀 웰〉의 축소판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와 사뭇 다르기도 하다. 〈애니멀 웰〉에 숨겨진 겹겹의 비밀이 배쏘가 공언한 대로 어둑하고 깊숙하게 숨겨진 여러 지식·정보의 배치라면, 〈리프 이어〉에 숨겨진 겹겹의 비밀이란 다름 아니라 플레이어 캐릭터가 이 세계를 돌아다니며 상호작용하는 이동법 자체와 연관되어 있다. 린센이 게임을 ‘서투른(clumsy)’ 플랫포머라고 소개하듯, 플레이어는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자신의 캐릭터가 점프하고 땅바닥에 닿으면 바로 시뻘겋게 바뀌며 죽어버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렇게 플랫포머에서 가장 중요한 움직임일 점프에 굉장한 제약을 걸면서, 〈리프 이어〉는 우선적으론 플레이어의 이동 자체를 퍼즐로 만들어버리는 플랫포머가 된다. 다른 게임이라면 간단한 점프 한 방으로 이동할 수 있을 만한 곳들마저도 이런 규칙의 세계에서는 위험천만할 뿐이며, 이에 따라 게임의 메트로배니아적인 특성은 플레이어 캐릭터가 지금의 점프력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공간들을 여럿 제시하는 데에서 나타난다. 〈리프 이어〉의 겹겹의 비밀은 바로 이러한 제약 덕에 비로소 빛날 수가 있는데, 플레이어 캐릭터가 점프해 떨어지는 높이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세계와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차차 밝혀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저 두세 칸 높이로 떨어져 죽지 않게 주의해야만 했던 점프가, 그보다 더 깊게 너덧 칸 높이로 떨어지면 플레이어 캐릭터를 빨강이 아닌 분홍으로 바꾸며 다시 튕겨 오르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프란 일반적인 메트로배니아에서처럼 플레이어가 진행 과정에서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메트로브레이니아에 가깝게 게임 속에서 언제나 실행할 수 있고 단지 플레이어가 모르고 있었을 뿐인 능력이기도 하다. 이렇게 〈리프 이어〉는 플랫포머로서 플레이의 핵심인 점프를 중심으로 이동 자체를 퍼즐로 만들어 둘을 합쳤을 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된 지식·정보마저도 일종의 비밀로 숨겨두며 여기에 또 다른 겹을 덧붙인다. 까다로운 플랫포밍 자체를 아예 메트로배니아이자 메트로브레이니아적인 경험으로 바꿔버린 셈이다. 〈애니멀 웰〉의 장난감들이 어떠한 의미에서는 파워 업을 위한 아이템으로서 전통적인 메트로배니아의 구성 요소에 더욱 가깝다면, 〈리프 이어〉는 이보다 좀 더 대담하게 그 어떤 아이템도 없이 오로지 플레이어가 이미 ‘파워 업’이 된 점프의 비밀을 언제 알아차리고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시험하도록 이끌며 메트로브레이니아에 훨씬 더 가까워진다. 플레이어가 28개의 달력 조각을 찾으러 조심스레 돌아다니는 이 세계는 화면에 한 칸씩 들어오는 스테이지를 어떠한 유형의 점프로 접근할 수 있는지에 따라 작더라도 꽤 유기적인 플랫포밍으로 짜여있고, 이런 구성은 자연스레 메트로배니아적인 진행처럼 새로운 점프 활용법을 익히기 전까지는 갈 수 없었던 곳들에 도달할 수 있도록 플레이어를 유도한다. 새롭게 알아차린 점프의 비밀을 어떻게 익혀서 적용할 수 있을지를 궁리하며 이 자그마한 세계를 몇 번씩이고 돌고 도는 동안, 플레이어는 자연스레 〈리프 이어〉의 플랫포밍 퍼즐 상자 같은 세계에 익숙해진다. 겹겹의 비밀로 이뤄진 점프에 전능하게 익숙해질수록 그와 상호작용하는 세계 또한 마치 비밀 통로처럼 드러나는 듯한 지름길들 또한, 점프와 마찬가지로 게임에서 가장 처음부터 완결된 상태로 주어져 있었기도 하고 말이다. 다만 자신보다 ‘앞서서 펼쳐진’ 퍼즐 상자 안으로 들어온 플레이어가 이를 풀어내는 방법만 알아차리면 될 뿐. 그런 의미에서 〈리프 이어〉는 〈애니멀 웰〉보다 훨씬 작게 압축된 세계임에도 어쩌면 그보다 능숙하게 메트로배니아의 기본적인 전제와 공식을 메트로브레이니아적으로 변환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떨어지는 높이를 더욱 키워서 점프하면 무엇이 가능할지를 파고들수록, 〈리프 이어〉의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방법은 더욱 뒤집히며, 이곳 또한 마침내 숨겨져 있던 변방을 드러내 보인다. 다시 나가며 그렇다면 이제 두 게임의 마지막 구간들을 얘기해 볼 수 있겠는데, 흥미롭게도 양쪽 모두 주어진 세계의 밖으로 나가버리는 순간을 제공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애니멀 웰〉에서는 두 번째 맨티코어를 타고 (그 자체도 새로운 겹의 퍼즐이긴 한) 공중을 날아다니는 엔딩에서, 〈리프 이어〉에서는 (올 초에 나온 DLC까지 포함해) 외벽이나 외곽이라 부를 수 있을 만한 지역으로 빠져나오는 후반부에서. 이런 공간적인 비약은 게임 내 지도에 표시마저 되지 않은 바깥을 향하는 만큼 플레이어에게 무척 강렬한 감흥을 전달하는 한편, 다시금 메트로배니아에서 종종 실감할 수 있는 ‘자기 완결적으로 닫힌’ 느낌 또한 넘어선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먼저 〈애니멀 웰〉의 자기 완결적으로 닫힌 성질은 플레이어가 상하좌우 중 한 방향으로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반대쪽으로 나오는 순환적이고 폐쇄적인 구조에서 나타난다. 곧 이 세계에서는 아무리 각종 장난감 도구를 활용하며 전능하게 이동하더라도 그저 거대한 퍼즐 상자의 폐쇄적인 안쪽만을 뱅뱅 돌 뿐이지 아예 밖으로 나가는 출구는 없다. 게다가 그 구조가 순환적인 만큼 적어도 경계 너머의 바깥을 암시하기라도 하는 ‘변방’마저도 없다. 그런 만큼 철저하게 닫힌 세계의 바깥으로 나가버리는 결말은 게임에서 가장 깊숙이 숨겨진 비밀까지는 아닐지라도, 플레이어에게 가장 해방적으로 전능한 기분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런 지라 개인적으로는 그 이후에 한두 겹의 비밀이 남아 있더라도 이 엔딩을 〈애니멀 웰〉이 제공하는 일종의 ‘최종장’으로서 의미화할 수 있겠다. 그와 동시에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사항이란, 게임의 거의 모든 퍼즐과 겹겹의 비밀이 ARG에 혈안이 된 플레이어 집단의 협동 덕에 사나흘 만에 거의 다 해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도에는 아무리 애를 쓰더라도 닿을 수 없는 채 새까맣게 남은 영역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게임 내에서 제공되는 도구나 경로, 방법 등으로는 절대 갈 수 없고 오직 치트 키나 개발자 도구로 이동해야지만 확인할 수 있는 이 공간들은 공식적이거나 적법한 플레이에서는 아예 완벽하게 은폐된 ‘비밀’로서 숨어 있다. 그럴싸하게 말이 되지 조차 않는 이 ‘비밀’들은 게임이 제공하는 무대 너머를 어떻게든 엿보려는 이들을 골려 먹기 위한 이스터 에그일까, 아니면 여태까지의 대규모 보물찾기에서마저도 플레이어들이 찾아내지 못한 더욱 깊은 겹으로 향하는 단서인 걸까? 어쩌면 〈애니멀 웰〉의 세계 안팎으로 여전히 숨겨진 채 남아 있는 이런 비밀들은 비디오 게임의 세계가 아무리 전능(감)이 뚜렷한 ‘우리에-대한-세계’처럼 느껴지더라도, 어느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불능(감)이 도사리는 ‘우리-없는-세계’가 언제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편, 〈리프 이어〉의 바깥이란 맵 최하단에 위치해 바닥이 없는 채로 바람이 몰아치는 지역일 테다. 여기서 게임은 다시금 점프의 변주를 통해 플레이어 캐릭터가 이 변방과 상호작용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공한다. 플레이어의 점프가 두세 칸이나 너덧 칸 높이도 심지어 (파란색이 되어 말 그대로 땅을 뚫고 들어가게 해주는) 예닐곱 칸 높이까지도 지나서 떨어지면, 캐릭터가 노란색으로 뒤집히며 바닥이 아닌 천장에 붙어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점프는 곧 〈애니멀 웰〉의 장난감과 유사하게 점프 높이만으로도 세계와 다양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 복수의 용도를 제시하며, 플레이어는 다시금 메트로브레이니아적인 플레이로 익힌 몇 유형의 점프를 다양하게 짜맞추는 플랫포밍을 통해 메트로배니아적인 세계를 이동할 수가 있다. 이렇게 점프 하나에 겹친 다양한 플레이를 반영하듯, 게임은 반전된 상태로 최하단 변방으로 이동했을 때 지도에서 숨겨져 있던 마지막 퍼즐 지역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플레이어가 시작 위치로 되돌아가게끔 이끌며 여태까지 익숙해졌던 자그마한 세계를 반전된 관점으로 제법 낯설게 재맥락화하기까지 한다. 이런 식으로 〈리프 이어〉가 자그마한 세계 속에서의 점프 안에 비밀을 가득 숨겨 넣으며 풍부한 플레이 경험을 만들어 냈다면, 올 초 발매된 DLC인 〈리프 이어: 3월 (Leap Year: March)〉은 본편에서 점프와 얽힌 비밀들을 플레이어가 이미 꿰차고 있다는 전제하에 플랫포밍 자체부터 맵의 유기성과 퍼즐의 유형과 난이도까지 고루 보강된 세계를 제시한다. 이번에는 밖에 위치한 해변에서 시작되는 게임은 본격적인 플레이가 벌어지는 안쪽으로 들어가도록 플레이어를 이끈 뒤 후반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 세계를 뛰어넘도록 한다. 플랫폼을 켰다 끄는 버튼이 새로운 규칙으로 추가되고 뒤집어진 상태로 닿을 수 있는 최하단 변방의 플랫포밍 퍼즐들을 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달력 조각을 전부 얻었을 때 개방되는 세계의 옆구리에서는 플랫포머의 점프 관습을 일찌감치 비튼 〈VVVVVV (2010)〉의 악명 높은 스테이지 (이른바 ‘고통을 즐기는 자’)와 유사한 도약을 선보이기도 한다. 전례 없는 높이로 점프하고 떨어지며 세계의 변방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플레이어 캐릭터는 마침내 빨강에서 분홍, 파랑, 노랑을 지나 초록색이 되며 땅바닥에 닿는데… 그 이후의 마지막 구간은 나마저도 이 글에서만큼은 좀 치사하게 숨겨두고 싶다. 퍼즐 상자 속의 모든 걸 밖으로 꺼내 보일 수는 없는 법이니까. [1] Kate Gray, “What The Heck Is A ‘MetroidBrainia’? Introducing The Newest Genre On The Block”, Nintendo Life, 2022.05.21. [2] 유진 새커, 『이 행성의 먼지 속에서』, 김태한 옮김, 필로소픽, 2022, 13쪽. [3] 이후 소제목들은 한나 렌,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 이영미 옮김, 엘리, 2020의 제목을 변형. [4] Christian Nutt, “The undying allure of the Metroidvania”, Game Designer, 2015.02.13. ( https://www.gamedeveloper.com/design/the-undying-allure-of-the-metroidvania ) [5] 제작자들 또한 이를 인지하듯, 여러 발언에서 행위 주체로서의 플레이어인 ‘당신’을 강조한다: “당신이 이야기고, 당신이 바로 모험입니다. 어디로 갈지를 발견하고 당신이 갇힌 세계의 미스터리를 밝혀내는 건 당신에게 달려 있어요.”, “당신 스스로 자신만의 플레이 방식을 생각하고, 느끼고, 탐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6] 새커, 같은 책, 18쪽. [7] 새커, 같은 책, 15쪽. [8] 성훈, “최종장과 변방_비디오 게임 속 공간적 한계의 실감”, 『게임 제너레이션』 13호, 2023.08.10. (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2783c2df-7cc1-45bf-bbed-4b34c153d7e3 ) [9] 새커, 같은 책, 18쪽. [10] Grayson Morley, “Leap Year is a Metroidbrainia for people who hate Metroidbrainias”, Polygon, 2024.09.21. ( https://www.polygon.com/gaming/453137/leap-year-metroidbrainia-you-jump-you-die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나원영 2016년에 웹진 [weiv]를 통해 대중음악 비평을 시작했고, 2022년 웹진 ma-te-ri-al을 통해 <대체 현실 유령>을 출간했다. 아무래도 작은 게임을 랩톱에서 짧게 하는 편이다. 계속됩니다.

  • [Editor's View] Ways of Seeing

    아이템을 기획하는 내내 편집위원들과 편집장은 보는 게임이라는 개념의 모호함에 대해 토로했다. 어디까지가 게임일 것인가? 어디부터가 게임의 변화인 것인가? 인간의 역사가 늘 그래왔듯이 우리는 동시대에 대해 스스로 답을 내리기는 어렵다. 시대를 이끌어가는 것은 즉시성있는 답변보다 늘 우직하게 본질을 바라보는 질문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보는 게임’의 시대에 감히 어떤 정답을 내리기보다는, 다양한 질문과 사유를 통해 이 시대 게임의 변화를 사유하는 계기로 ‘GG’3호가 자리잡을 수 있었으면 한다. < Back [Editor's View] Ways of Seeing 03 GG Vol. 21. 12. 10. 이제는 고전이 된 존 버거의 ‘본다는 것의 의미Ways of Seeing’라는 책을 기억한다. 본다는 행위는 결코 영원히 고정된 의미로 남아있는 것은 아니며, 시대와 맥락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지며 변화해 왔다. 그리고 그 변화는 심지어 ‘보는 것으로는 완성되지 않는’ 게임이라는 매체에까지도 닥쳐온 듯 하다. 오랫동안 디지털게임은 그 중심에 직접적인 상호작용성이 있다고 이야기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의 현실에서는 이러한 개념만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현상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플레이어의 개입이 줄어든 방치형 게임, 타인의 게임플레이를 보며 즐기는 e스포츠나 게임스트리밍 등은 게임에 대한 관점을 보다 새롭게, 혹은 보다 폭넓게 정립하기를 요구한다. ‘게임제너레이션’ 3호는 바로 그 ‘보는 게임’ 현상에 주목했다. 플레이어의 개입이 줄어든 오늘날의 게임을 게임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부터 이 변화한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게임의 대중화에 대한 해석까지 우리는 적지 않은 과제를 받아안는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다양한 시선의 다채로운 고민을 담고자 했다. ‘보는 게임’에 대한 두 접근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도 사뭇 다른 관점을 취한다. 윤태진과 이상우는 각각 ‘본다’는 행위가 만들어내는 변화와, 그 변화로부터 나타나는 공백에 주목한다. ‘보는 게임’이라는 변화의 중심에 있는 방치형 게임이 만들어내는 플레이를 관찰하는 박이선의 글은 플레이어라는 주체의 위치와 자세를 되묻는다. 홍영훈은 e스포츠팀 속 개인으로서의 게이머라는 존재가 갖는 정체성을 되물으며, 가깝지만 쉽게 접하기 어려운 일본의 게임문화 속 ‘보는 게임’의 의미는 신주형의 추적 끝에 우리 앞에 되살아난다. ‘트렌드’에서는 세 가지 테마를 관찰한다. 2021년 국감에 등장한 게임 접근성 문제는 어느새 대형 게임에서는 조금씩 적용되고 있는 트렌드다. 오랫동안 우리 곁을 맴도는 질문, 왜 한국의 콘솔게임 점유율이 낮은지에 대한 소고는 최근 들어 늘어나기 시작한 한국 게임제작사들의 콘솔 도전과 맞물린다. 인기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가 보여준 전체채팅 금지라는 정책의 도입과 재철회 이슈는 그 원인인 온라인게임 채팅의 문제를 다시금 상기시킨다. 아티클 부문은 ‘보는 게임’의 또다른 반대편인 ‘듣는 게임’에 관한 임태훈의 글로 서두를 연다. 12월 개최되는 실험게임축제 ‘아웃오브인덱스’의 주최자인 박선용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서울 합정역 인근에서 열린 미술전시 ‘로우스코어 걸’은 게임의 방법론을 활용하고자 하는 미술의 도전을 보여주며, ‘메탈기어’ 시리즈와 주인공 스네이크의 통시적 변화를 다룬다. ‘데스루프’ 가 보여주는 회귀와 게임이라는 텍스트 자체가 가지고 있는 회귀성에 대한 영원회귀로의 접근, 실황중계를 통한 간접체험의 시대를 들여다보는 글들이 준비되어 있다. 인터뷰는 e스포츠, 유튜브, 방치형게임을 선택했다. 게임을 통해 교육을 준비하는 젠지 글로벌아카데미, 보는게임 시대의 중심에서 살아가는 게임유튜버 김성회, 대표적 방치형게임으로 거론되는 ‘어비스리움’의 운영진과 이야기를 나누며 오늘날의 보는게임에 관한 이야기를 품고자 애썼다. 아이템을 기획하는 내내 편집위원들과 편집장은 보는 게임이라는 개념의 모호함에 대해 토로했다. 어디까지가 게임일 것인가? 어디부터가 게임의 변화인 것인가? 인간의 역사가 늘 그래왔듯이 우리는 동시대에 대해 스스로 답을 내리기는 어렵다. 시대를 이끌어가는 것은 즉시성있는 답변보다 늘 우직하게 본질을 바라보는 질문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보는 게임’의 시대에 감히 어떤 정답을 내리기보다는, 다양한 질문과 사유를 통해 이 시대 게임의 변화를 사유하는 계기로 ‘GG’3호가 자리잡을 수 있었으면 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혼례-귀신-사랑 : <종이혼례복> 시리즈와 ‘중국식 공포’의 유행

    최근 중국 내 추리 게임에는 ‘중국식 공포’가 유행하고 있다. <페이퍼돌스>(纸人; 리치컬쳐, 2019)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回门; 핀치게임즈, 2021)은 청나라 말기와 중화민국 초기의 오래된 저택에 들어가 결혼과 장례, 장례용 종이인형, 풍수 등 민속을 바탕으로 스릴 넘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 Back 혼례-귀신-사랑 : <종이혼례복> 시리즈와 ‘중국식 공포’의 유행 15 GG Vol. 23. 12. 10. ※ 역자 설명 : 이 글에서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 안 역주로 부기했다. 미주는 필자가 참고한 텍스트 출처이다. 최근 중국 내 추리 게임에는 ‘중국식 공포’가 유행하고 있다. <페이퍼돌스>(纸人; 리치컬쳐, 2019)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回门; 핀치게임즈, 2021)은 청나라 말기와 중화민국 초기의 오래된 저택에 들어가 결혼과 장례, 장례용 종이인형, 풍수 등 민속을 바탕으로 스릴 넘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음양항아리>(阴阳锅; 폴레스타게임즈, 2022)와 <누나의 북>(阿姐鼓; 폴레스타게임즈, 2023)은 지역 특색이 담긴 민간설화를 선정해 플레이어가 탐험할 수 있는 공포 공간을 설정한다. 도시의 기이한 현상과 춘절 [역주: 중국의 설 연휴] 의 귀신을 연결한 <홍콩실록>(港詭實錄; GHOSTPIE, 2020)과 산속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가족 멸종 사건을 조사하는 <파이어워크>(烟火; Shiying Studio, 2020)는 올해 처음 출시되는 게임이다. 세기말의 ‘초자연적 열풍’을 다룬 <삼복>(三伏; Shiying Studio, 2020) 역시 이 카테고리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중국식 공포’는 새로운 하위 장르 또는 미학이 된 듯 하다. 이러한 유형의 게임들에 대한 플레이어들의 높은 평가 중 하나는 의심할 여지없이 “중국인을 겁주는 방법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중국인이다”일 것이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하트비트플러스가 개발한 <종이혼례복> 시리즈는 2021년 첫 출시 이후 <종이혼례복2: 장령촌>(纸嫁衣2奘铃村), <종이혼례복3: 원앙의 빚>(纸嫁衣3鸳鸯债), <종이혼례복4: 붉은실의 엉킴>(纸嫁衣4红丝缠), <지옥의 꿈: 사후세계 극장>(无间梦境:来生戏) 등의 속편을 6개월에 한 게임 간격으로 출시하며 큰 호평을 받고 있다. 이 게임들은 ‘혼제(婚祭)’를 테마로 하는데, 각각 한 커플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종이 신부’가 되는 운명에 맞서 싸우고, 최종적으로 공포를 이겨내 진정한 사랑의 승리를 완성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다섯 게임들은 서로 연결되어 세기에 걸친 스토리 라인을 형성하고 있으며, 전작인 <13호 병동>(13号病院)과 함께 독특한 ‘종이혼례복 유니버스’를 형성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종이혼례복> 시리즈는 성공적인 미니 추리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심플한 UI와 순수한 터치 플레이가 경이로운 걸작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종이혼례복> 케이스를 통해 ‘중국식 공포’의 핵심 요소인 “중국인을 겁주는 방법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중국인”의 핵심이 무엇인가에 대해 논해 보고자 한다. * 다섯 편의 시리즈, '종이 혼례본 유니버스'를 구성하다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공포(Unheimlichkeit) 개념은 독일어 heimlich에서 유래했다. ‘heimlich’는 친숙하고 친밀하다는 뜻인데, 여기에 부정 접두사를 붙인 ‘unheimlich’는 원래 뜻을 분명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heimlich’의 특수한 경우인 ‘익숙했던 것이 갑자기 낯설어지다’는 의미로 해석돼 주체가 순수하게 두려움(fear)이 아닌 오싹(creepiness)한 느낌을 갖게 한다. [1] 따라서 ‘공포’는 통상적인 경험으로는 식별할 수 없는 이상, 기존 질서 내부의 어긋남 [원문의 핵심 개념 错置을 모두 ‘어긋남’으로 번역함] 이다. 예를 들어 공포장르 속에서 살아있지도 죽어있지도 않은 좀비, 조타수도 없이 파도를 헤쳐 나아가는 유령선 등이 그것이다. 영화 <샤이닝>(The Shining)에서 문틈으로 흘러넘치는 핏물, 복도 끝의 쌍둥이 역시 경험이나 질서를 뛰어넘는 어긋남으로 평범해 보이는 산꼭대기 호텔을 공포영화의 명장면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런 의미에서 <종이혼례복>은 ‘공포’라는 개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시각적인 이미지로, ‘인간’이라는 속성을 가진 장례용 종이인형을 소재로 삼는다. 이들은 외모는 비슷하지만 팔다리가 뻣뻣하고 표정이 이상하며, 종종 과장된 얼굴 화장을 한다. 무생물이었던 종이 인형은 어두운 게임 장면에서 번쩍이며 게이머들과 친근한 ‘점프 스케어(jump scare)를 한다. 이를 통해 제작진은 중국식의 특색을 살린 ‘유물(類物)’인 장례용 종이 인형을 세팅했다. 예를 들어 <종이혼례복 1>의 주인공 닝쯔푸(宁子服)가 저승 혼례식(冥婚) 현장에서 발견한 종이 요리는 정상 음식의 외관을 정교하게 모방하면서도 차갑고 무미건조해 화장 [원문에서 烧祭는 종이돈 태우기 같은 풍습보다는 화장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같은 오싹한 연상을 유발한다. * ‘유물’의 종이 묶음 제물 그러나 '공포'의 핵심은 잘못된 시각적 이미지보다는 상식과 이상, 경험과 어긋남의 관계에 있다. 거의 모든 ‘중국식 공포’ 게임에는 현대적 개체의 전근대적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s)’ [ 미셸 푸코가 정의한 개념으로, ‘다른’을 뜻하는 ‘heteros’와 ‘장소’를 의미하는 ‘topos’의 합성어. “사회 안에 존재하면서 유토피아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실제로 현실화된 유토피아인 장소들” ] 에서의 어긋남과 과학 패러다임에서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어긋남이 포함되어 있다. <종이혼례복> 시리즈에서 또 다른 높은 어긋남은 앞의 두 가지의 불안정 구조를 깨뜨린다. 그것은 로맨스 신화와 이성의 어긋남이다. 결혼: 형성되는 건 아무 것도 없고(无物之阵), 망령은 돌아온다 婚:无物之阵,幽灵复返 [루쉰은 자신의 '무물지진(无物之阵)' 개념이 권위주의 통치의 산물이자 민중의 열등감을 드러내는 것이라 여겼다.] <종이혼례복> 시리즈는 현대도시에 살던 주인공들이 갑자기 세상과 단절된 ‘산골마을’로 내동댕이쳐진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곳은 모든 마을 사람들이 ‘혼제’를 신봉하는 장령촌이나 봉건적 가부장이 점거한 말수촌(末水村)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살아남은 이가 아무도 없거나 귀신의 기운이 넘치는 익창진(益昌鎭)이 될 수도 있다. 이곳들은 현대사회와 거리가 멀고 교통이 불편하며 통신신호가 사라지고 역사의 흐름에서 벗어나 고집을 부리며 오래된 신앙과 의식을 이어가는 헤테로토피아이다. 플레이어는 주인공들의 시각을 통해 완전히 낯설기만한 스릴러 놀이터가 아니라 익숙한 듯하지만 마주하기 어려운 ‘무물지진(无物之阵)’—반복적으로 출현하는 죽음의 상징물들(관, 향초, 종이돈 등)]—이 정돈되지 않은 현대 이전의 역사, 틈만 있으면 파고드는 집단적 무의식을 가리킨다. 물론 조작해 현대적 공간을 하루아침에 이화시켜 ‘귀신을 불렀다’는 것이다.동네 입구 조화, 이웃집 할아버지의 혼백이 깃든 아파트, 길가의 장사용품점……현대적 공간을 떠도는 전근대적 자투리 조각은 ‘익숙한 물건의 낯설게 하기’라는 원칙에 더 부합하고, 오싹한 느낌을 더 잘 만들어낸다. 물론 이 게임은 때때로 역으로 작동해 현대성의 공간을 하룻밤 사이에 낯설게 하여(异化) "유령을 초대”한다. 주거단지(小区) 입구의 화단, 이웃의 영혼이 깃든 주거용 건물, 거리의 장례용품 가게 ......등등은 현대성의 공간에 떠다니는 전근대의 잔재이며, 이는 “익숙한 것의 낯설게 하기”의 원칙에 더 부합하고 소름 끼치는 느낌을 줄 가능성이 더 크다. * 모든 이야기의 근원지는 장령촌 <종이혼례복 2: 장령촌>에서는 이러한 무물지진의 구축 과정을 의도적으로 추적한다. 어려서부터 ‘종이 신부’로 발탁된 여주인공 타오멍옌(陶梦嫣)은 ‘혼제’의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홀로 장령촌으로 돌아와 지상의 궁궐에서 마을의 역사를 파헤친다. 이와 동시에 <종이혼례복> 시리즈를 관통하는 세계관은 당나라 현장 스님이 경을 취하여 장령촌을 지나다가 자신이 지은 구장진경(九藏真经) [아홉 편의 숨겨진 불교 경전] 가운데 육장(六藏)이 이교(异教) [주류적인 종교와는 다른 종교] 적인 컬트임을 발견하고, 작별 인사를 하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이를 소각해달라고 당부한다. 마을 사람들은 제멋대로 경전을 남기면서 ‘육장(六藏)’을 ‘육장(六葬)’ [여섯 번의 장례] 으로 왜곡한다. 이에 따라 마을 이장을 종교적인 리더로 삼아 정기적으로 의식을 주관하고 적령기 여성이 사신(适神)에 제사를 지내는 ‘혼제’ 의식이 탄생하게 된다. 희생된 여성에겐 종이로 묶인 제사물품과 같이 ‘종이 신부’란 별명이 붙었는데, 이것이 바로 게임 타이틀 ‘종이혼례복’의 유래다. 흥미롭게도 게임은 ‘육장보살(六葬菩萨)’ [게임 속 캐릭터] 신앙을 현장 취경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억지로 갖다붙인다. 심지어 당나라 적인걸(狄仁杰)이 악신에 제사를 지낸 걸 말끔히 제거했던 기록까지 그럴듯하게 가미하고 있다. 현장법사 캐릭터는 역사적 인물(실존하는 불교의 고승)과 전설적 캐릭터(신마소설의 주인공) [신마소설은 신, 귀신, 요괴 등을 주제로 한 한자문화권 고전 소설을 가리킨다] 의 이중적인 성격을 겸비하고 있기 때문에 출처를 추적하는 데 있어 진짜같기도 하고 가짜같기도 한 효과를 낸다. 당나라 때부터 천여 년간 이어져 온 오랜 관습은, 애써 시간의 깊이를 늘리고 거짓의 숭고함을 만들어, 기나긴 전현대 역사 속에서 공간 내부의 질서—원래 그랬다면 그게 맞는 것이라는—를 구축했다. 번잡한 의식(무엇을 해야 하는지)과 엄혹한 금기(무엇을 해선 안 되는지)가 질서의 하나된 양면을 이루고, 집단적 무의식의 ‘무물지진’을 점차 흔들기 어렵게 만든다. 의심할 여지 없이 철저한 상례로 굳어질 때까지 말이다. 그 사이에 잘못 들어가게 된 개인과 관행 하의 집단은 어긋남과 충돌을 만든다. 닝쯔푸나 양샤오핑 등 질서에 도전하는 외래자, 타오멍옌, 쭈샤오홍(祝小红) 등 반향식의 ‘종이 신부’는 역대 게임 주인공들이 관례에 편입되지 못하고 타자로 전락해 배척당하거나 교살당할 수밖에 없다. ‘중국식 공포’ 게임의 이질적 공간은 미래로 가지 않고 필연적으로 과거로 돌아간다. 주인공들은 에얼리언의 침입이나 터미네이터 사냥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육장보살 역시 크툴루(Cthulhu) 같은 냉혹한 우주의 신이 아니라, 아득한 별빛을 통해 인간의 생사를 굽어본다. ‘중국식 공포’의 귀신들은 제사상 위의 감실 상자[龛笼; 동양 사원에서 신령이나 부처 등의 상을 올려놓은 작은 상자] 안에 반듯하게 앉아, 감도는 향불을 사이에 두고 발원(發願)과 고충(诉苦)을 듣고, 평범한 사람들과 약간의 지전(纸钱)이나 억울하게 뒤집어 쓴 조금의 빚을 시시콜콜하게 따진다. 그렇게 무물지진 안 모든 이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모든 것을 마음에 두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반복적인 우화는 구체적인 서사 차원으로 정착되어 ‘혼제’ 의식의 세 요소인 귀신, 제물을 바치는 사람, 제물의 끌어당김과 격추 등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다. 일반적 격식에 따르면 귀신은 역사를 기원하고 집단적으로 추앙받는 이질적인 힘이며, 제사를 올리는 사람에게 공정한 거래를 약속하는 원칙이며, 제사를 올리는 자는 경전과 악당의 기능을 담당하여 제물을 박해하는 대가로 거래를 성사시킨다. 제사물품인 ‘종이 신부’와 그 애인은 이질적 공간을 벗어나 현대 문명으로 돌아와 자기 구원을 완수해야 한다. 하지만 돌아온 귀신들은 오히려 <종이혼례복>의 이야기가 이러한 격식을 벗어나게 한다. 최고신으로 여겨지는 ‘육장보살’은 “만물이 묻히면 모두 그의 관할이 된다”는 ‘거대한 능력’을 보여주기는커녕, 무물지진을 타파하기로 결심한 주인공들에 의해 여러 차례 목이 비틀어 끊어짐으로서 플레이어들의 입에서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시리즈 전체의 진정한 악역 캐릭터 네모리는 제사물품의 자리를 차지했던 ‘유령’이다. 마을 촌장으로부터 마을에 유해하다는 단언받고, 태어나자마자 버림받은 그녀는 현대 대학교육을 통해 작은 산골마을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었다. 그리곤 다시 돌아와 육장보살 신앙이 지배하는 공간에서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 되었고, 자신을 새로운 귀신으로 만들 때까지 계속해서 새로운 제사물품을 찾으며 의식을 완성해나간다. * 종이혼례복 시리즈의 진정한 악역 녜모리 이는 일찍이 ‘육장보살’ 역시 정전을 장악한 현장법사에 의해 추방되고 관가에 의해 토벌된 ‘유령’이었지만, 암암리에 천 년을 떠도는 악신이 된 것임을 일깨워준다. 그것은 그녀와 같이, 혹은 전현대의 파편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끊임없이 되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무물지진’이 완전히 깨질 때까지 그들은 끊임없이 실패하지만, 영원히 계속해서 그 실패를 반복할 것이다. 귀신: 말로도 안 되고, 배척해서도 안 된다 鬼:不可言说,不可摈弃 우리가 ‘중국식 공포’ 게임의 첫번째 어긋남으로 현대적 개체와 전근대적 이질적 공간의 어긋남을 지목한다면, 중국에서 공포 장르 서사는 전근대적인 문예작품 속에서 대응물을 찾기 힘들다는 역설적인 사실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요재지이>(聊斋志异)[청나라 시대 포송령이 지은 8권 491편의 지괴소설집으로, 신선과 요괴의 이야기를 기술하고 있음] 등의 지괴서사(志怪故事) [위진남북조 시대에 유행한 기괴한 이야기 소설집] 속 꽃요괴는 기본적으로 “깜짝 놀라게 하는” 기능을 갖고 있지 않으며, <서유기> 같은 신마소설 속 삼계 체계 [불교에서 삼계란 윤회의 세계를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으로 구분한 것을 가리킨다] 는 권력사회의 복사판으로, 사람 마음이 귀신보다 무섭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그밖에 신선과 요괴 이야기 등 설화집이나 필담집 역시 보통 현대 독자들에게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을 주진 않는다. 다시 말해 ‘중국식 공포’는 직접적으로 인용할 수 있는 ‘중국식’ 텍스트도 없고, 전현대사의 완벽한 이식도 아니다. ‘공포’는 현대화의 산물이며, 주류이데올로기—어쩌면 ‘과학’—에서 주변화되어 남은 잉여이다. 토마스 쿤(Thomas Samuel Kuhn)은 <과학혁명의 구조> 에서 현대과학의 진로는 본질적으로 낡은 패러다임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하는 혁명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른바 ‘패러다임(paradigm)’은 과학 연구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따르는 어떤 패턴으로, 이 분야의 합리적인 문제(무엇을 연구할 것인가)와 방법(어떻게 연구할 것인가)을 규정하여 법칙, 이론, 기구 등을 포함해 정립한 일관된 과학 전통을 형성한다. 과학이 물질 세계에 대한 수수께끼 풀기 게임이라면, 패러다임은 게임의 규칙과 무엇이 ‘미스터리’가 될 자격이 있는지를 창안한다. 이에 대해 쿤은 ‘상자’라는 비유를 제시한 바 있다. “이런 활동은 패러다임이 제공하는 미리 만들어놓은 경직된 상자에 자연을 처넣으려는 것 같습니다. 기존 과학의 목적은 새로운 유형의 현상을 발견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상자에 채워지지 않은 현상은 종종 완전히 무시되고 새로운 이론을 발명하는 것도 아니며, 다른 사람이 새로운 이론을 발명하는 것도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 하지만 이러한 신앙 패러다임으로 인한 제약은 과학 발전에 꼭 필수적입니다.” [2] 현대 과학은 수백 년의 발전을 거쳐 ‘신화’로 분류되는 다른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새로운 ‘신화’가 됐다. 새로운 신화의 서사 공간이 매우 넓고, 말과 전망이 유달리 아름다워 현대적인 개인이 상자의 사면 장벽을 쉽게 홀시할 수 있다. 하지만 상자 밖의 사물은 여전히 존재하며,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다. 패러다임에 포함될 수 없는 현상은 언어구조에서 '도깨비', '풍습', '전통' 또는 그밖에 다른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것과 가리키는 것 사이의 어긋남에 무관하게 무엇이라 말할 수 없게 만든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정리 또는 판별할 수 없으므로 배제할 수 없다. <종이혼례복4: 붉은실의 엉킴>에서 장천루이의 민속학 전공이라는 배경은 고등교육과 과학은 상자 안의 모든 것을 해결하지만 공포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자조적인 자기 인식이다. * 민속학 연구생 장천루이(张辰瑞)의 자조 하지만 <종이혼례복> 제작진은 그런 자조에 만족하지 않고 상자의 경계를 반복적으로 넘나들었다. 과학적 패러다임과 전근대의 뒤얽힘은 엉뚱한 효과를 낳았다. 화재경보기로 인해 연소된 지전 더미, 복사기로 복사된 부적…… 각종 ‘물리적 귀신 퇴치’ 수단은 플레이어들로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시리즈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인 ‘뒤얽힘’은 음과 양을 통하게 하는 두 개의 매개인 불과 핸드폰이다. 둘은 겉으로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인다. 전자는 제물을 태우는 풍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양에서 음으로 옮겨지는 것은 본질적으로 상징적인 투사이며, 제사물품은 화염 속에서 재로 변하지만 다른 가치 영역에서는 오랫동안 지속된다. <종이혼례복>의 주인공들은 흔한 지전이나 종이인형은 물론, 귀신과 통화할 수 있는 종이로 만든 핸드폰까지 불태운다. 현대 과학기술 장비가 버젓이 제사물품의 대열에 오르자 플레이어들은 “원래 현지에 사업자가 있나? 그럼 누구에게 전화요금을 내야 하지?”라며 경탄을 금치 못했다. 후자는 다음과 같은 설정을 기반으로 육안으로 귀신에 쉽게 속고 무심한 기계만이 위장을 간파할 수 있다. 그 때문에 휴대폰 카메라는 주인공이 귀신을 정확하게 잡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과학기술의 눈으로 상자 밖의 공간을 응시하는 것 역시 일종의 어긋남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익숙한 것의 낯설게 하기”는 오싹함을 유발하지는 않는다. 두 매개 모두 통일된 전제를 숨기고 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바로 현대적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과학은 궁극적으로 불가해한 것을 해명하고 정복하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 음양을 소통하는 두 가지 매개체: 불과 휴대전화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이리저리 뛰어도, <종이혼례복>의 결말은 패러다임 속으로 돌아온다. 헤테로토피아의 모든 요괴들은 진기한 꽃(奇花) 명타란(冥陀兰)이 일으키는 환각이다. ‘작은 산골마을’은 필연적으로 현대 문명에 의해 재발견되고 청산되며 수용된다. 무고한 사람은 구출되고, 악한 자는 법의 처벌을 받게 된다. 주인공들은 탈출에 성공하거나, 일시적으로 (귀신을) 격퇴하지만 실제 ‘공포’—‘중국식 공포’는 결코 핏대를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를 이겨본 적은 없다. 아무리 무서운 괴물이라도 핏대를 세우면 공격할 수 있고 소멸할 수 있는 대상이며 이때 두려움은 화력 부족에서 비롯된다. ‘중국식 공포’는 피와 살이 없는 몸이라 애석하게도 <무간몽경: 내생희>의 마지막 예고편에서 역대 주인공들이 힘을 합쳐 ‘무물지진’이 아닌 악역 녜모리를 물리치려 한다. 상자 안에서 주인공들은 잠시나마 자신이 무적이라고 믿지만, 이중으로 엇갈린 위치는 오직 사랑의 신화에 의해서만 메워지게 된다. 사랑: 로맨스 신화,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다 情:浪漫神话,至死不渝 “사랑이 죽었다”는 요즘, <종이혼례복>의 역대 주인공들은 희귀한 사랑 신화의 독실한 신도들로, 플레이어들은 이들을 ‘로맨티스트 싸움꾼’이라며 농담삼아 부른다. 백중날[음력 7월 15일] 귀신문을 뚫고 아내를 구한 닝쯔푸, “정 때문에 목숨까지 버리는” 량샤오핑(梁少平), ‘원앙 빚(鸳鸯债)’을 대신 갚고 악당과 함께 죽은 왕자오통(王娇彤), 서로를 위해 목숨을 바친 장천루이와 추이완잉(崔婉莺), 그리고 전생과 현생, 재연과 인연을 이어온 쉰위앙펑(荀元丰)과 타오멍옌 등이 그들이다. 여기서 각 커플의 성이나 이름은 모두 고전문학 속 고전적인 애정 텍스트인 <요재지이의 섭소천>(聊斋志异之聂小倩), 양축전설(梁祝故事) [중국 동진시대부터 1,700여 년 동안 민담으로 전해져 온 4대 애정소설 중 하나] , <교홍기>(娇红记) [명나라 맹잔순(孟称舜)이 쓴 희곡] , <서상기>(崔莺莺待月西厢记) [원나라 왕실보(王实甫)가 1295~1307년 무렵에 쓴 허구 잡문] , <요재지이: 소취>(聊斋志异之小翠) [청대 소설가 포송령이 여우 귀신의 이미지를 빌어 쓴 소설] 등에 대응한다. 혼의 이탈과 나비가 되는 것, 치료 등 줄거리 역시 위 고전작품들에 오마주를 뉘앙스가 뚜렷하다. 이 텍스트들의 공통점은 사랑이란 하나하나의 개인이 만들어낸 낭만적 기적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에 있다. “산 자는 죽을 수 있고, 죽은 자는 살 수도 있다”(<모란정 牡丹亭>에서 인용)는 말처럼, 사랑이 깊어지면 인간과 귀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가문의 편견을 산산조각낼 수 있다는 것은 논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개인은 현대 주체의 사유에 가까운 방식으로 봉건적인 예법과 도덕에 선전포고를 한다. 설령 선전포고가 항상 무기력하더라도, 설령 최종 결말은 두 집안의 사회 지위·경제 형편이 걸맞아[门当户对] 함께 살게 되거나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함께 화를 입어[玉石俱焚] 함께 죽는 것으로 끝날지라도, 설령 과도하게 낭만적이어서 실현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전근대적인 배경에서 그들은 여전히 경전 말씀에서 벗어나 도리를 위반하는 해로운 서적으로 폄하받으며, 올바른 사람이라면 읽어선 안 되는 것으로 취급받는다. * 《무간몽경: 내생희》(无间梦境:来生戏)의 주인공 커플 애정 신화의 합법화는 지난 2세기에 걸친 현대화 과정의 산물이기도 하다. “애정 신화는 사실 하나의 배다리처럼 유럽 문화를 현대와 개인으로 건너가 개인주의 담론의 중요한 초석 중 하나가 됐다. 하지만 동시에 애정 신화는 낭만주의의 테마 중 하나로서 시종일관 광기나 비이성/반이성적 함의를 항상 담고 있다. 따라서 일종의 파괴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일대일로 이뤄지는 현대의 배타적 사랑은 ‘개체’와 ‘여성’의 탄생을 전제로 성과 사랑, 육체와 정신의 통합과 순결을 원칙으로 한다. 즉, 약수가 삼천리를 뻗어 흘러도[弱水三千; 아무리 많은 상대가 있어도], 그/그녀가 아니면 안 된다. 녜모리가 쌍둥이 동생 녜모치(聂莫琪)를 훔쳐서 기둥을 바꾼 후, 닝쯔푸는 절대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 했고, 그녀가 아니면 안됐기에 수많은 난관을 거쳐 녜모치의 영혼을 죽음에서 구해야 했다. 량샤오핑의 아무것도 따지지 않는 사랑은 어린 시절부터 장령촌에서 자란 쭈샤오홍을 일깨웠다. 같은 죽음이라고 하더라도 제사물품대 위에 놓인 ‘종이 신부’가 되는 것보다는 족쇄를 풀고 나비가 되어 추락하는 것이 낫다. 낭만 신화가 신화인 이유는 사랑이 이성적 계산의 범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개인이 계급, 이익, 나아가 생사를 초월하도록 재촉한다. 높은 사람은 ‘고귀한 배신’을 결심하고, 낮은 사람은 무릎을 치켜들어 ‘나는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한다’를 단호히 던져버리고, ‘나는 어떻게 하겠다’고 함성을 지른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사랑은 ‘공포’와 같은 구조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것들은 모두 상자 바깥에 있다. 사랑은 <종이혼례복>의 주인공들이 행동하는 최대 동인이다. 게임은 첫 작품에서 ‘순애보에 빠진 싸움꾼’이 약혼녀를 구한다는 단일한 시점에서 남녀 주인공들이 서로를 구한다는 두 가지 시점으로 바뀌어 고정된다. 그리고 오마주를 표하는 고전 텍스트들처럼 두 개체의 기적을 짙게 그려낸다. 과학과 자본이 만연하고 개인의 감정이 함께 시들어가는 시대에 현대 이성에 대한 최고의 어긋남으로 충족되는 사랑의 신화만 남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 안에 담긴 전복적 역량은 무물지진을 돌파하고 우리에게 절대 사로잡히지 말라고 격려한다. 왜냐하면 죽어서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공포’는 싸워서 이길 수 없지만, 진정한 사랑은 결국 충분하다. 죄를 지으면 사랑에 빠지게 되고, 남녀가 치정에 빠지게 한다. ‘중국식 공포’의 핵심적인 어긋남은 현대 개인의 두 눈으로 응시하면서도 직시할 수 없는 전근대적 잔재다. 사후 결혼, 종이인형, 오래된 신앙, 잔혹한 의식, 우매한 마을 사람들…… 죽음의 기호들이 널려 있는 헤테로토피아에서, 집단 무의식이 굳어져 무물지진을 만들고, 과학상자 밖의 침묵은 익숙했던 일상의 흉악한 틈새를 드러내며 '중국인이 중국인을 놀라게 하는' 이기(利器)로 변모한다. <종이혼례복> 플레이어들이 공포게임에서 사랑을 감상하는 데 열중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도 일찍이 낯선 신화로 전락한 지 오래됐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부디 오호(五湖) [오월지방의 호수] 의 밝은 달과 인내심이 원앙의 빚을 갚게 하기를.” [4] [1] 탕메이신(唐梅欣)의 《恐惑概念的演变——从弗洛伊德、海德格尔到拉康 프로이드와 하이데거에서 라캉으로의 공포 개념의 변화》, 2021년 우한대학(武汉大学) 석사학위논문 참고. [2] 토마스 쿤 저, 진우룬(金吾伦)·후신허(胡新和) 역, <과학혁명의 구조>, 베이징대학출판사, 2003년 [3] 다이진화(戴锦华), <电影批评(第二版)>, 베이징대학출판사, 2015년 [4] <종이혼례복 3: 원앙의 빚>의 서문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Researcher) 徐佳(서가) (활동가, 작가) 홍명교 활동가, 작가.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에서 동아시아 국제연대와 사회운동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를 썼고, <신장위구르 디스토피아>와 <아이폰을 위해 죽다>(공역) 등을 번역했다.

  • [북리뷰] 추억의 게임들을 지탱하는 기술들을 찾아서

    책에서 다루는 게임들은 1989년까지이다. 1989년은 일본의 연호가 쇼와에서 헤이세이로 바뀌기도 하기 때문에 일본에서 1989년이란 해는 1990년과 그 이전을 나누기도 하고 1990년대와 그 전을 나누기도 하는 적절한 분기점일수도 있겠다. 당연히 그 이후로도 게임은 개발되고 있고 여전히 개발자들은 하드웨어의 한계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예전보다 하드웨어에 대한 제약이 줄어든 것은 사실지만 렌즈의 왜곡을 이용하여 화면크기에 대한 한계를 극복한 VR헤드셋들이라던가 기기한계를 정해놓고 한계 안에서 게임을 만들려고 시도하는 인디게임들도 존재한다. < Back [북리뷰] 추억의 게임들을 지탱하는 기술들을 찾아서 06 GG Vol. 22. 6. 10. 광속과 인터넷 속도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흥미 있는 글을 좋아하는 분이 계시다면 500마일 문제( https://edykim.com/ko/post/500-mile-email-problem/ )를 들어보셨을 지도 모르겠다. 아직 읽지 못한 분들에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학내 이메일 관리를 하는 직원이 교수에게 500마일(800km) 혹은 그보다 약간 먼거리를 넘어가는 장소에 이메일을 보내면 실패한다는 연락을 받으면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몹시 흥미롭지만 이 곳에 다 소개하기에는 분량이 충분하지 않으니 직접 찾아보시는 것도 좋을 것이다. 다만 미리 결말을 이야기하자면 서버설정에 문제가 생겨서 0.003초 안에 답을 받지 못하면 에러가 나는 상황이었다. 여기서도 좀 더 드라마틱하게 답을 이야기 하자면 광속 * 0.003초 는 899km 이다. 우리는 인터넷이 세계을 연결한다고 생각하고 그 연결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신호는 빛이고 빛의 속도는 분명히 정해져있기도 하다. 현대의 게임들은 대부분 서버와 클라이언트로 이루어져 있는데 회사들마다 약간씩 다르긴 하겠지만 나는 적어도 클라이언트가 서버와 통신을 할때는 기본적으로 500ms 의 지연이 발생한다고 가정하고 설계하는 것이 좋다고 배웠다. 이러한 물리적인 한계는 게임의 기획이나 구현 과정에 영향을 주고, 게임개발자들은 이러한 물리적한계를 속이기위해 여러가지 트릭을 사용하기도 한다. 게임디자인이 이러한 물리적 한계에 영향을 받는 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게임 연구에서 많이 놓치는 부분이기도 했다. 2010년쯤 되서야 MIT 출판사의 플랫폼스터디즈 시리즈 같은데서 이러한 하드웨어의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접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아타리2600을 다룬 “Racing the Beam” 에서는 아타리2600에서 다루는 7개의 게임이 아타리 2600 게임기의 기술적인 한계를 게임이 어떻게 극복해냈는지에 대해 분석하고 다루고 있다. 〈팩맨〉에 등장하는 네가지 유령의 색들이 아타리가 한번에 출력할수 있는 색상의 한계보다 더 많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회한 방법들을 살펴보면 단순히 아타리 2600용 〈팩맨〉을 망겜으로만 치부하기 힘들 수도 있을 것이다. * 아타리 2600의 팩맨 게임 플레이 화면 (옛날) 게임을 지탱하는 기술 추억속 아케이드 게임을 이끌어온 기술의 저자는 마쓰우라 겐이치로와 쓰카사 유키로 이들의 저서 중 “슈팅게임 알고리즘 매니악스”나 “탄막” 같은 게임매니악스 시리즈는 게임개발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고, 언급한 두 책은 슈팅게임에서 등장하는 각종 패턴들을 수식으로 풀어내어서 해당 장르를 개발하는 사람들에게 필수도서로 알려져 있다. 책의 원제를 직역하면 “전설의 아케이드게임을 지탱하는 기술” 로 일본에서는 이미 “~~~를 지탱하는 기술”이라는 기술서적이 상당수 나오기도 했고 국내에도 번역된 책이 많아 익숙한 제목이기도 하다. 이러한 제목들의 책은 서비스나 게임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이해를 돕고 최신 기술을 다룬다면 “추억속 아케이드 게임을 이끌어온 기술”은 과거의 게임과 기술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 일 것이다. 이 책은 1971년부터 1989년까지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주요 게임들을 소개하며 게임이 가진 의미와 게임에서 사용되는 기술을 소개하는 구성으로 아무래도 게임들 역시 최신 게임이 아니다보니 게임에 대한 소개도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고 있기도 하다. 브라운관 TV 같은 옛날 기술을 다루고 있다보니 텔레비전 역시 구현부터 설명하고 있다. 지금은 대부분의 텔레비전이 평면TV로 PDP를 넘어 OLED나 LCD 중심으로 제품들이 전개되고 있지만 여기서는 브라운관의 원리부터 설명하고 있다. 뒤가 불룩한 옛날 TV가 익숙하지 않은 세대라면 이런 브라운관에 대한 설명은 생소할 것이다. CRT라고 부르는 음극선관은 지금은 거의 사용되지 않지만 레트로게임을 즐기려는 사람들이나 예술작품등 일부 특수한 경우에는 계속 사용되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큰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의 튜브가 CRT(Cathode-Ray Tube)의 튜브에서 기원한 텔레비전을 지칭하는 단어라는 사실은 의외로 잘 알려져있지 않다. 브라운관은 화면 뒤에 광선총이 위에서 순차적으로 화면을 한줄씩 쏘면서 화면을 만드는 것이고 책에서는 〈퐁〉부터 브라운관의 원리를 설명한다. 이러한 브라운관의 원리는 이후 등장하는 다양한 게임들에서 그래픽 효과를 나타내기 위한 방법들로 사용되기도 하고 한번에 출력할수 있는 스프라이트의 숫자에 제한이 생기는 등 한계로 작용하기도 한다. 다리우스가 화면을 붙이는 방법 지금의 텔레비전은 베젤이 너무 얇아 거의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브라운관 TV의 실물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들이라면 그 거대함에 놀라고는 한다. 흔히 다라이어스라고 알려진 다리우스는 오락실에서 압도적으로 넓은 화면을 쓰는 것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화면은 모니터 3개를 붙임으로써 가능했는데 화면이 거의 자연스럽게 이어져있다는 것도 놀라운 부분이다. 큰 브라운관 TV로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했냐면 사실은 거울을 이용하여 반사를 시켜 보여주면서 화면을 연결하는 트릭을 사용한 것이다. 언뜻보면 간단한 해결책으로 보이지만 이러한 물리적 제약을 어떻게 해결해나갔는지 보여주는 사례이기도하다. * 다라이어스 캐비넷에서 거울을 이용하여 화면을 반사시키는 기술 (위키피디아) 건 컨트롤러가 화면을 인식하는 방법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오락실의 건 슈팅 게임에 대해서 언급한다. 이미 1984년에 닌텐도 패미콤에서 〈오리사냥〉이 대히트를 쳤고 비단 비디오게임이 아니더라도 총을 이용한 유희는 아케이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놀이이기도 했다. 레트로게임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느정도 알려져있긴 하지만 이러한 브라운관을 사용하는 건컨트롤러는 현대의 브라운관TV가 아닌 텔레비전에서는 동작을 하지 않는다. 건 컨트롤러가 어떻게 총이 화면을 가리키고 있는지를 체크하는 방식이 브라운관 TV의 특성을 사용하기 때문인데 덕분에 현대의 텔레비전에서 이러한 총 형태의 입력을 구현하기 위해 Wii의 센서바가 소개되는 것이 아마 이 책에서 소개하는 가장 최신 기술이 아닐까 싶다. 현실의 게임 개발 책에서는 브라운관 이외에도 게임에 사용된 다양한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다리우스〉에서는 언급한 거울을 이용한 트릭 외에도 연사에 대한 설명이나 마지막에는 트랙볼의 원리를 설명하기도 한다. 언급되는 게임 중에 한국에서 가장 크게 히트한 흔히 갤러그로 알려진 갤러가에 대해서는 멀티코어에 대해 간단하게 언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을 지탱하는 기술"에 대하 책들이 당장 개발에 필요한 지식을 다룬다면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기술은 어떻다고 해야할까. 1989년. 그러니까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게임을 제작하는데는 물리적인 한계가 많았고 이를 극복하는 것이 개발자들의 실력이자 회시의 기술력이었다. 컴퓨터 칩 성능이 2년에 두배씩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을 생각하면 1990년의 성능은 2020년에는 32768배는 좋아졌다. 책에서 가장 처음에 언급하는 1970년과 비교하자면 33554432 배는 좋아졌다. 예전에는 컴퓨터의 시간이 사람의 시간보다 비쌌지만 이제는 아니게 되면서 컴퓨터의 자원을 크게 아껴서 개발하는 것보다는 사람이 좀 더 편하게 개발하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쪽으로 개발 트렌드가 변화하였다. 그러다보니 지금은 대부분 게임엔진을 통해 개발하며 하드웨어의 성능을 극한까지 올려야 하는 경우는 임베디드나 휴대용 게임 같이 아주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그다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 스마트폰 플랫폼마저 요즘은 게임 엔진 제작사가 대응을 해줘서 게임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에서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텔레비전 역시 이제는 LCD가 주류를 차지하며 주사선등 약점을 가지는 CRT모니터의 한계는 게임을 개발하면서 굳이 신경쓸 필요가 없어졌다. 오히려 레트로게임을 당시 화면으로 즐기기 위해 소프트웨어적으로 에뮬레이션을 어떻게 할지 연구가 되고 있다. 이렇다보니 여기에서 소개가 되는 기술들은 대부분 지금은 필요없거나 잊혀진 기술들이다. 지금와서 게임개발자들이 〈퐁〉과 〈컴퓨터스페이스〉 처럼 트랜지스터와 다이오드를 직접 회로로 연결해가면서 게임을 만들지는 않기 때문에 당시의 기술에 대한 이야기는 어쩌면 호사가를 위한 것들일 수도 있다. 선배들을 따라가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물리적 제약을 극복하는 게임디자인들에게 우리는 지금도 영향을 받고 있다. 경로의존성이라는게 있다. 남들이 앞서 간 길을 이미 따라가는 것인데 우리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예라면 두벌식과 QWERTY자판이 있을 것이다. 세벌식이 두벌식보다는 좀 더 좋은 점이 많고, QWERTY 자판의 경우는 드보락이 더 빠르다고 알려져있긴 하지만 대부분이 이미 익숙한 두벌식과 QWERTY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이미 간길을 따라가기 쉬웠던 것 처럼 하드웨어의 한계 위에서 줄타기를 하며 만들어진 첫 번 째 시도들은 이후의 게임들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별 생각없이 사용하고 있는 디자인 문법들의 뿌리를 찾아가면 이러한 시도들의 뒤를 따라가며 자리 잡은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뿌리를 짚어보는 점은 더 새로운 시도나 이제는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고, 우리가 좀 더 게임디자인에 대해 납득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전설이 되지 못한 게임들 다만 아쉬운 점은 이 책의 번역된 제목이 “추억 속 아케이드 게임을 이끌어 온 기술” 인 것처럼 다루는 게임들은 대부분 일본의 아케이드 게임환경에서 익숙한 게임들이 대부분이다. 제목이 전설의 게임에서 추억의 게임으로 바뀐 것도 흥미로운 지점인데 특히 게임이 선정된 기준이 게임에서 새로운 기술을 사용했느냐 아니냐이다 보니 추억 속 아케이드 게임이라고 하기에도 1990년 이전 국내 오락실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게임들이 많은 편이다. 전설이라고 하기에는 국내 인지도가 너무 낮은 게임들이 많아서 선택한 고육지책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그나마 가정용 게임들은 정식루트가 아니더라도 국내에 들어오거나 잡지를 통해 소개되거나 하는 경우도 많지만 중간에 게임소프트와 게임기만 있으면 즐길 수 있는 게임들과는 달리 아케이드 게임들은 따로 표준이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책에서 언급되기도 하지만 같은 기판을 활용하는 게임들이 아닌 한은 게임을 변경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물며 책에서 다루는 게임들의 경우 기술을 사용하기 위한 독특한 접근이 많다보니 그것만을 위해 국내에서 들어오는 경우는 적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90년 이후라면 게임잡지 등을 통해서 이름이라도 들어볼 수 있는 경우가 많겠지만 국내에서 게임전문지가 1990년에 창간된 것을 감안하면 여기 소개되는 게임들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접하게 된 경우가 많지 않을까 짐작된다. 하물며 대부분의 게임에 대한 소개들이 사진이나 실제 스크린샷이 아닌 그림이라는 점은 혹시 봤던 게임이더라도 어떤 게임인지 바로 알아보기 힘들게 만드는 단점도 존재한다. 이러한 그림들은 기술을 설명할 때는 유리하긴 하지만 한국에 일본의 아케이드 게임이 소개되면서 이름이 바뀐 경우도 상당수 존재하기 때문에 다른 문화권에서 게임을 해온 사람들에게는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 추억 속 아케이드 게임을 이끌어온 기술 쇼와시대의 아케이드 게임을 넘어서 책에서 다루는 게임들은 1989년까지이다. 1989년은 일본의 연호가 쇼와에서 헤이세이로 바뀌기도 하기 때문에 일본에서 1989년이란 해는 1990년과 그 이전을 나누기도 하고 1990년대와 그 전을 나누기도 하는 적절한 분기점일수도 있겠다. 당연히 그 이후로도 게임은 개발되고 있고 여전히 개발자들은 하드웨어의 한계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예전보다 하드웨어에 대한 제약이 줄어든 것은 사실지만 렌즈의 왜곡을 이용하여 화면크기에 대한 한계를 극복한 VR헤드셋들이라던가 기기한계를 정해놓고 한계 안에서 게임을 만들려고 시도하는 인디게임들도 존재한다. 여전히 기술과 컨트롤러 등의 물성은 게임 디자인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이런 영향을 탐구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한국의 게임은 미국이나 일본의 상황과는 달리 여전히 게임기보다는 컴퓨터 게임을 중심으로 발전해왔고 컴퓨터는 게임을 하라고 만들어진 시스템이 아니다 보니 이 곳에서 언급되어있는 하드웨어에서 지원해서 쓸 수 있는 상당수 기술들은 컴퓨터에서 사용할 수 없었다. 컴퓨터에서 게임을 개발하는 사람들도 스프라이트라고 부르긴 했지만 컴퓨터에서는 스프라이트를 사용할 수 있는 하드웨어 가속은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id소프트의 〈커맨더킨〉이, 한국에서는 〈리크니스〉등이 컴퓨터의 한계를 극복하고 게임기처럼 부드러운 스크롤을 구현해냈다고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직 우리에게는 탐구해볼만한 환경과 게임들이 많다. 척박한 국내 도서 시장에서 아케이드 게임을 시작으로 가정용 게임과 컴퓨터게임들을 지탱하는 기술들을 보고 싶은 것이 나 뿐만은 아닐 것이라고 믿고 싶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개발자, 연구자) 오영욱 게임애호가, 게임프로그래머, 게임역사 연구가. 한국게임에 관심이 가지다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2006년부터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있다. 〈한국게임의 역사〉, 〈81년생 마리오〉등의 책에 공저로 참여했으며, 〈던전 앤 파이터〉, 〈아크로폴리스〉, 〈포니타운〉, 〈타임라인던전〉 등의 게임에 개발로 참여했다.

  • Apollo Justice: Ace Attorney Trilogy: Courtroom Mystery and the Shadow of Internalized Orientalism

    “Objection!” When I think of Ace Attorney, this line is the first that comes to mind. I started playing the series in 2009, and even now—15 years later—I still find it immensely enjoyable. Whenever the main character, a defense attorney shouts “Objection!”, it still gets my heart racing. Back in 2009, there was no official Korean release, so I purchased and played the English version on my mobile phone. Later, after I got a smartphone and tablet, I bought the apps and played the Japanese version instead. It was not until 2019 that Ace Attorney was officially released in Korean, with a localized compilation of the first three titles. < Back Apollo Justice: Ace Attorney Trilogy: Courtroom Mystery and the Shadow of Internalized Orientalism 29 GG Vol. 26. 4. 10. * This article contains major plot elements and spoilers from the Ace Attorney series. *You can see the original korean version of this article at: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b7bc306f-e358-448e-8828-c2d03bf6edad “Objection!” When I think of Ace Attorney , this line is the first that comes to mind. I started playing the series in 2009, and even now—15 years later—I still find it immensely enjoyable. Whenever the main character, a defense attorney shouts “Objection!”, it still gets my heart racing. Back in 2009, there was no official Korean release, so I purchased and played the English version on my mobile phone. Later, after I got a smartphone and tablet, I bought the apps and played the Japanese version instead. It was not until 2019 that Ace Attorney was officially released in Korean, with a localized compilation of the first three titles. So when I heard earlier this year that a compilation of parts 4, 5, and 6 would be released, I was thrilled with anticipation. I also found myself wondering how the experience of playing Ace Attorney as an adult might differ. Would hearing the lawyer say “No objections!” still make my heart race? * Main Title of Ace Attorney 4–6 The Ace Attorney series is a representative example of the courtroom mystery genre. An article titled “Ace Attorney from a Lawyer’s Perspective” was also featured in Volume 2 of Game Generation . Since the release of its first installment in Japan in 2001, the series has produced a total of eleven titles to date, including spin-offs. Ace Attorney has become both a nostalgic game for fans around the world and a franchise that continually inspires anticipation for its next installment. The series is a text-based adventure game in which the protagonist, a lawyer, must prove the innocence of their client in criminal trials. The gameplay is largely divided into two parts: the investigation part, where evidence and information are gathered for trial, and the trial part, where the attorney negotiates with the defendant, witnesses, and prosecutors. As a first-person visual novel, Ace Attorney has the player take on the role of a defense attorney who effectively acts as a detective, following the progression of each case and uncovering the true culprit. Activities such as interviews and evidence collection take place during the investigation phase, while in the trial phase, the attorney not only defends the client but also, in the course of the trial, plays a decisive role in exposing—and effectively prosecuting—the true culprit. In this process, a mysterious figure appears as an assistant who supports the protagonist’s legal work: the “spirit medium.” Spirit channeling serves as a crucial narrative device that transforms Ace Attorney into a full-fledged courtroom mystery drama. Mystery narratives can generally be divided into two types: “suspense” and “classic (honkaku) mystery.” There is a clear distinction between the two. If suspense is driven by the appeal of a riddle that draws the reader in, then classic mystery places its emphasis on the logical resolution of that riddle. This distinction was articulated by Shu Takumi, the creator of Ace Attorney 1, 2, 3, and 4, during his presentation on the series at the “GAME CREATORS CONFERENCE ’18 (GCC ’18)” held in Osaka in 2018. Describing Ace Attorney as a “classic mystery,” he remarked that “in classic mystery, as long as there are agreed-upon rules and premises between the author and the reader, any element can be employed logically.” One such element is the occult motif of “spirit channeling,” introduced in the early entries of the Ace Attorney series. Among the characters are spirit mediums who can summon the souls of the deceased into the courtroom to testify, while the protagonist, Phoenix Wright, at times seeks guidance from these channeled spirits. In this game, the device of “spirit channeling” functions both as a clue and as an assistant, ultimately contributing to the completion of its mystery narrative. Ace Attorney is a game that closely resembles a mystery narrative with a linear and singular storyline. The presence of spirit mediums in the game can be understood as a device introduced to overcome the “repetition” and “convention” that tend to accumulate in the detective mystery genre as a series continues within such a linear narrative structure. Comparing Ace Attorney to the mystery genre in literature, Yoo (2017) argues that the game, as a medium, transforms narrative into an object of play, creating an experiential space in which readers (players) can become more deeply immersed in the story. Through the game’s narrative and distinctive elements such as “spirit channeling,” the courtroom trials themselves become a form of experience and play. In this way, Ace Attorney is not merely a game about proving a defendant’s innocence in court. Rather, it becomes a kind of mystery-solving game, in which the protagonist, a defense attorney, takes on the role of an investigator by gathering evidence and information, even receiving new clues and guidance from spirit mediums-mysterious figures-and ultimately uncovering the truth of each case while proving the innocence of the wrongly accused. Following the early installments, which were widely well received, the later series— Ace Attorney 4–6—were released in succession while maintaining the same framework of narrative progression. After the departure of the original creator, Shu Takumi, the later titles directed by Takeshi Yamazaki introduced new gameplay systems that, like spirit channeling, function as both “clues” and “assistance.” As devices designed to break the monotony of a repetitive structure, examples include protagonist Apollo Justice’s “Perceive” ability and Athena Cykes’s “Mood Matrix.” These systems are used to prompt defendants or witnesses to provide new testimony. “Perceive” identifies a person’s habits, detecting when they become tense during certain statements and what they may be trying to conceal. The “Mood Matrix,” on the other hand, uncovers contradictions between a person’s testimony and their emotions, drawing out new clues in the process. * “Perceive” in Ace Attorney 4 / “Mood Matrix” in Ace Attorney 5 First introduced in Ace Attorney 6 , the “Divination Séance” is a spiritual ability that recreates and displays the sensory experiences of the deceased during the final moments before death. Unlike earlier devices, which functioned merely as “clues” or forms of “assistance,” this occult element is accepted in court as decisive evidence. This is made possible by the fact that the setting of Ace Attorney 6 is not Japan, as in the previous installments (1–5), but a fictional country known as the Kingdom of Khura’in. The Kingdom of Khura’in is a theocratic state in which only those capable of spirit channeling can become monarch, and where the souls of the dead (=anima) constitute the central object of belief. As a result, the role of spirit mediums differs significantly from that in earlier titles, and the “Divination Séance” occupies a much more central position within courtroom proceedings. Indeed, this device functions as such decisive evidence that it can, on its own, easily lead to a guilty verdict for the defendant. By setting the game in a fictional country rather than a real-world nation like Japan—thereby avoiding the need for strict logical consistency— Ace Attorney 6 introduces a new system infused with occult elements. This both increases the game’s level of difficulty and provides a distinct kind of mystery-driven enjoyment. * The “Divination Séance” in Ace Attorney 6 Why, then, was the setting of Ace Attorney 6 suddenly shifted from Japan to the Kingdom of Khura’in? As Shu Takumi suggested, it was likely to establish a stage in which the new gameplay system devised for mystery—namely, the “Divination Séance”—could be employed logically through the “rules and premises agreed upon between the author and the reader.” In addition to the “Divination Séance,” there is another key setting in Ace Attorney 6 that serves the mystery. In the Kingdom of Khura’in, there exists a law known as the “Defense Culpability Act,” according to which, if a defendant is found guilty, the defense attorney who represented them is subjected to the same punishment. From the perspective of game systems, this can be seen as an element of “game realism” (Azuma, 2012), wherein if the protagonist fails in their defense, they are executed, resulting in a game over. In this sense, the “Defense Culpability Act” functions as a form of penalty that both heightens the player’s immersion and injects tension into what might otherwise become a prolonged narrative. Herein lies the most significant difference—and the most intriguing aspect—between the earlier installments and Ace Attorney 6 . In Ace Attorney 6 , the princess of the Kingdom of Khura’in asserts that the “Divination Séance” alone constitutes truth, and that all defense attorneys who represent criminals are inherently evil. It is none other than a Japanese defense attorney—the protagonist—who ultimately brings enlightenment to this young princess. Moreover, in Khura’in, where defense attorneys have all been executed or have disappeared due to the Defense Culpability Act, it is again a Japanese lawyer who secures the first not-guilty verdict in 23 years. Although there exists a resistance group within Khura’in composed of former lawyers, they prove powerless before the authoritarian regime; in the end, it is the Japanese protagonist who becomes the catalyst for revolution. Unlike the earlier entries, these narrative elements depict Japan (or the Japanese protagonist) as occupying a position of superiority—awakening and guiding another nation. While this differs from conventional forms of Orientalism, it nevertheless seems to reproduce another variant of it. To be sure, the protagonist’s perspective remains empathetic and does not overtly demean other cultures. Yet, with the shift in setting from real-world Japan to the fictional Kingdom of Khura’in, the position of Japan—or the Japanese protagonist—comes to resemble that of Western observers who once gazed upon the “Orient.” The depiction of the Kingdom of Khura’in also appears to reflect an Orientalist gaze through which the West has historically viewed the East. Elements such as the dot on the forehead resembling the Hindu bindi, costume designs, architectural styles in the background, and a language system similar to Sanskrit all suggest that the setting of Khura’in draws heavily from Hindu and Buddhist cultural spheres. In particular, the dragon depicted on the resistance group’s flag bears a striking resemblance to that of Bhutan’s national flag. Indeed, players of Ace Attorney 6 have speculated that the portrayal of Khura’in seems to be influenced by cultures from Himalayan regions such as Bhutan or Tibet. Composed of a hybrid of vaguely defined “Eastern” images, the Kingdom of Khura’in ultimately appears not as a fully realized fictional nation, but as a strange and identity-less construct that serves as the game’s setting. Such a portrayal of Khura’in raises critical concerns about how even within the broader “Eastern” sphere, other Asian cultures can be viewed through an internalized, Western-centric Orientalist lens. Of course, for many players who enjoy Ace Attorney for its gameplay, these concerns may be easily overlooked. However, if this fictional Eastern nation is indeed a reproduction shaped by internalized Western Orientalism, then it remains open to critique and concern—regardless of whether such representation was intentional on the part of the creators. Given the global popularity of Ace Attorney , there is also the risk that it may contribute to the spread of misconceptions and stereotypes about the East. * Screenshots related to the “Kingdom of Khura’in” in Ace Attorney 6 In Orientalism, Said argues that Western biases toward the East have, through numerous texts and institutional authorities, come to acquire the status of objectivity and universality (Said, 1991). Such perceptions do not operate solely within the West’s view of the East, but can also influence how Eastern societies perceive one another. This points to what may be called internalized Orientalism—a mode of consciousness and discourse in which the East differentiates itself internally in oppositional terms. One manifestation of this is Japanese Orientalism, which can be understood as a product of identification and objectification in which Japan, rather than identifying itself as part of Asia, reinforces a self-conscious distinction from other Asian countries through an externalizing gaze (Kang, 1997; Yoon et al., 2006). Having absorbed Western perspectives on Asia and the legacy of Western imperialism, Japan has come to adopt a form of Orientalist viewpoint toward Asia (Chae, 2009). In this context, the appearance of a religious and mystical fictional Eastern nation in a Japanese-produced game—depicted in a quasi-Third World manner, and constructed through a hybridization of diverse Asian cultural elements—produces an unavoidable sense of subtle dissonance. The selective appropriation and recombination of exotic and mystical imagery further reinforces this effect. As a result, Ace Attorney 6 is not entirely free from criticism regarding its reproduction of Orientalist biases and stereotypes. The United States federal government, along with many state governments and institutions, has already begun to avoid the use of the term “Oriental” in official documents. This is because the term has long been criticized for carrying discriminatory connotations that can demean or stereotype Asians. It implies a perspective that reduces Asians to a single homogeneous group and objectifies them as exotic and mysterious others viewed from a Western standpoint. Accordingly, since 2016, the term “Oriental” has been increasingly replaced with “Asian” in U.S. federal statutes and official documents. However, refraining from the use of a particular word does not in itself eliminate Orientalism. Terms such as “Oriental style” continue to be used in everyday contexts, including in the arts, and Orientalist stereotypes remain subtly embedded throughout daily life. Jin (2014), in discussing internalized Orientalism in the East, argues that such frameworks lead Eastern subjects themselves to perceive and imagine themselves within these confines, thereby making it difficult to conceive of an “East” that exists beyond Orientalism. Park (2022), in his discussion of the intersection between Korean mystery and occult genres, notes that shamanistic elements can also contribute to the development of the occult genre through the framework of mystery. He argues that such elements can be renewed in more distinctive ways through interaction with the social environment, local specificity, and the historical conditions of culture that form the backdrop of a genre. If, in Ace Attorney 6 , a system similar to the “Divination Séance” had been implemented—much like in earlier installments—through a Japanese setting and a Japanese spirit medium character, it might have been received not as another form of Orientalism, but rather as a successful expression of supernatural phenomena, shamanistic practice, or local cultural specificity. Mystery games incorporating supernatural or fantastical elements have continued to emerge even after Ace Attorney . Examples include the Danganronpa series, which features class trials within a death game setting; The Stepper Case , a Korean-developed psychic detective adventure game; and Raging Loop , which revolves around a time-loop narrative. These elements can be understood as devices that expand the imaginative scope of the mystery genre—that is, they enable greater narrative ingenuity. The elements of the Kingdom of Khura’in presented in Ace Attorney 6 likewise clearly function as such devices for the “expansion of imagination.” At the same time, however, they carry the risk of being read as manifestations of Japan’s internalized Orientalism. As a game series continues, it becomes increasingly difficult to expand its boundaries and push beyond its limits. Just as a game series ages, so too do its players. The gameplay elements, the expansion of imagination, the underlying ideas, and even the forms of enjoyment must all grow and evolve in accordance with their time. It would be a great shame to bring to an end the courtroom stories of Phoenix Wright, Apollo Justice, and Athena Cykes as they are. As someone who has cherished this series for a long time and hopes it will continue into the future, I found it challenging to engage in a cultural critique of the game. Nevertheless, I hope that as Ace Attorney progresses, it will “turn the tables” on criticisms of repetitive structures and predictable narratives by offering new and inventive courtroom mysteries. To the next turnaround—"No Objection!!!" References Kang. Sang-jung. (1997). Beyond Orientalism. Isan. Kang, Shin-kyu, (2021). 서브컬처 비평 [Subculture Criticism]. Communication Books. Park, In-seong. (2022). [미스터리란 무엇인가] 한국적 장르 서사와 미스터리 ① - 오컬트와 미스터리의 친연성과 교차성 [What Is Mystery? Korean Genre Narratives and Mystery (1): The Affinity and Intersection of the Occult and Mystery.] Gye-gan Misteri, Vol. 75, 270–284. Azuma, Hiroki東浩紀. (2012).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 [The birth of Game-like Realism] (I-Ji, Jang, Trans.). Hyunsilmunhwa. Yoo, Sung-hwan. (2017). “Clashes between Games and Narratives and Efforts to Overcome Them: Experimental Attempts to Self-renew the Game Narrative”. Story & Image Telling, Vol. 14. pp.317-363. Yoon Ji-kwan, Chung Chung-ho, Tae Hea-sook, Sol June-kyu, Sung Eunai, Kim Seong-kon, Lee Kyung-won, Koh Boo-eung, Rhee Suk-koo, Kim Sang-yule, and Oh Gilyoung. (2006). 에드워드 사이드 다시 읽기: 오리엔탈리즘을 넘어 화해와 공존으로 [Re-reading Edward Said: Beyond Orientalism toward Reconciliation and Coexistence]. Chaekse-sang. Jin, Tae-won. (2014). 오리엔탈리즘과 다른 동양은 존재하는가 [Is There an East Beyond Orientalism?] Hankyoreh, Books & Thought. URL: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668719.html Chae, Yu-gyung. (2009). 조선을 향한 일본의 오리엔탈리즘 - 일본근대 미술 속의 조선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Japanese Orientalism toward Joseon: Focusing on the Image of Joseon in Modern Japanese Art].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 [저자 및 역자 프로필] <저자> Mimong Lee (Media Content Researcher) I’ve been playing Nintendo games since I was a child. A few months ago, I purchased a Steam Deck on an installment plan and have been enjoying it extensively. I studied Business Administration at Kyung Hee University and Cultural Mediation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I am currently a Ph.D. candidate at the Graduate School of Core Ethics and Frontier Sciences at Ritsumeikan University in Japan. My research focuses on digital media content and culture, including games and webtoons.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닌텐도 게임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몇 개월 전 스팀덱을 할부로 구매하여 열심히 즐기고 있습니다. 경희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선 문화매개를 전공했고, 현재는 일본의 리츠메이칸 대학교 첨단종합학술연구과 박사과정에 재학중 입니다. 게임과 웹툰 등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와 문화를 연구합니다. <역자> Jisu Kim (Researcher in Cultural Studies) I am interested in a variety of topics concerning culture, knowledge, space, and learning environment. The history of games and the life of gamers are also something that fascinates me.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Researcher in Cultural Studies) Jisu Kim I am interested in a variety of topics concerning culture, knowledge, space, and learning environment. The history of games and the life of gamers are also something that fascinates me. (미디어콘텐츠연구자) 이미몽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닌텐도 게임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몇 개월 전 스팀덱을 할부로 구매하여 열심히 즐기고 있습니다. 경희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선 문화매개를 전공했고, 현재는 일본의 리츠메이칸 대학교 첨단종합학술연구과 박사과정에 재학중 입니다. 게임과 웹툰 등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와 문화를 연구합니다.

  • 방치형RPG 비판 - 동시대 게임의 사회적 상상력의 문제

    2010년대에 ‘방치’는 많은 비디오게임(이하 ‘게임’)의 핵심적인 플레이 방식으로 자리잡았고, 심지어 새로운 장르인 ‘방치형 게임(idle game)’까지 형성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게임 매체로 떠오르면서 방치형 모바일 게임의 성장을 추동했는데, 가령 캐주얼 모바일 게임인 ‘타비카에루(旅かえる)’는 5년 전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방치형 게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 Back 방치형RPG 비판 - 동시대 게임의 사회적 상상력의 문제 17 GG Vol. 24. 4. 10. 방치형 RPG 비판 1) 2010년대에 ‘방치’는 많은 비디오게임(이하 ‘게임’)의 핵심적인 플레이 방식으로 자리잡았고, 심지어 새로운 장르인 ‘방치형 게임(idle game)’까지 형성했다. 2)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게임 매체로 떠오르면서 방치형 모바일 게임의 성장을 추동했는데, 가령 캐주얼 모바일 게임인 ‘타비카에루(旅かえる)’는 5년 전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방치형 게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일본에서 건너온 ‘타비카에루’는 방치형 게임의 ‘이단’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중국 시장은 ‘AFK 아레나(剑与远征)’, ‘마법거울의 전설(魔镜物语)’, ‘아이린 시편(爱琳诗篇)’ 등 ‘맵밀기(推图)’ 3) 를 큰 축으로 하여 수집, 육성, 트래킹, 턴제 자동전투 등 다양한 플레이 방식을 결합한 중국산 방치형RPG게임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게임들의 시청각적 외관은 제각각이지만, 기본적인 로직은 일관성이 있다. 심지어 게임의 전투나 스토리 전개는 알고리즘에 의해 생성되거나 구동된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게임에서 자동으로 생성되는 다양한 유형의 수익을 취하고 관리하기 위해 이따금 게임 속 개체를 클릭하기만 하면 게임을 최대한 즐길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서로 ‘스킨을 교체한다’ 4) 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요컨대 주의를 끌지 못하던 미니게임에서 대중화된 게임 장르로 변모한 이 질적 변화는 게임 역사의 자연적인 진화에 그치지 않으며, 현대 사회를 이해하는 새로운 실마리가 되고 있다. ‘게임’이란 ‘현실’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현실의 문예적인 표상이며, 현실과 대응 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게임이라는 새로운 예술장르의 미디어적인 특성상, 게임성을 커버할 만큼 스토리성이 강한 서사적 게임을 제외하면, 오늘날 RPG를 비롯한 대부분의 게임들은 오츠카 에이지(大冢英志)의 ‘거대 서사’ 5) 형식을 통해 객관적 현실을 명료하게 풀어내지 않는다. 우노 츠네히로(宇野常宽)가 말했듯 ‘거대한 게임’ 6) 의 형태로 주관적 현실을 무의식적으로 투영할 뿐이다. 이에 따라 우노 츠네히로는 21세기 들어 RPG 등 방치형 게임 장르가 전후 일본의 서브컬처 속 ‘고질라 명제(ゴジラの命題) 7) ’, 즉 허구——객관적 현실이 아님——속에서만 파악할 수 있는 주관적 현실을 게임을 통해 써내려왔다고 말한다. 이것은 현대 게임의 사회적 상상력 문제와 연관된다. 여기서 상상력은 게임이 사람들의 보편적인 감각 구조에서 주관적인 사회 현실을 추출하고, 이미지화하는 능력을 뜻한다. 객관적 현실을 발화하는 것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는 오늘날, 게임이라는 새로운 예술이 동시대에 대해 갖는 사명은 자역주의적 방식으로 객관적 현실을 직접 드러내는 게 아닐 것이다. 플레이 방식 등 신체적 감각에 호소하는 혁신적 형태로 주관적 현실을 구성하는 것에 있다. 이 글은 ‘고질라 명제’를 따라 현대 중국의 주관적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단초로서 방치형RPG게임의 사회적 상상력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1. 자동화, 수동성, 자아의 구조 방치형RPG에 대한 산발적 논의에서 저우쓰위(周思妤)는 이런 게임의 핵심 특징은 “게임 스스로 플레이하게 하는 것” 8) , 즉 플레이어가 최대한 플레이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플레이 방식은 게임이라는 새로운 매체에 대한 반역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게임은 촉각 매체 9) 이며, 그 매개적 특수성은 플레이어가 게임 장치와 빈번하고 밀접한 물리적 상호작용(즉, ‘플레이’)을 수행하도록 요구한다. 이를 통해 ‘입력 부족과 출력 과잉’ 10) 이라는 비대칭적 장력 속에서 플레이어의 신체적 경험 이상의 정신적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저우즈창(周志强) 역시 플레이어 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게임의 시간(즉, ‘제3시간’)을 진정한 게임 내러티브의 시간이라고 제시한 바 있다. 11) 한마디로 말해, 게임을 체험하는 정확한 자세는 최대한 많이 할수록 쾌감을 느끼는 것에 있다. 하지만 방치형RPG의 플레이 방식은 이와 반대인데, 최대한 플레이를 하지 않는 원리에 호소하고, 이를 통해 역설적인 플레이 방법론을 구축한다. 이런 방법론은 어떻게 성립될까? 게임 과정의 자동화를 통해서다. 하지만 낮은 수준의 자동화 12) 는 모든 게임의 초석이기 때문에 게임의 자동화를 되풀이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을 거듭하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롤플레잉 게임을 할 때 플레이어가 인터페이스 내 임의의 위치를 클릭하면 아바타(avatar)가 자동으로 그곳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그렇지 않으면 게임 설계가 실패하게 된다. 방치형RPG의 특수성은 자동화가 게임 프로그램의 국부적 자동 연산 및 실행으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 게임의 전반적인 작동 논리를 가리킨다는 것에 있다. 가령 ‘AFK 아레나’는 플레이어가 클릭하는 방식으로 이를 확인하고 추출해야 하는 경우에조차 다양한 자원 혜택을 제공한다. 이는, 표면상 방치형RPG가 수동으로 조작하는 것이지만, 총체적 자동화(이하 ‘자동화’)의 게임 로직이 이러한 조작을 인체공학적으로 편안한 정도에 맞게 압축하고, 플레이어가 손가락을 움직이면 기존의 많은 게임들에서 노동력을 들여야만 가능했던 게임을 클리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방치형RPG은 플레이어가 게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완전히 자동화된 스크립트 프로그램——모태는 반[反]플레이(counter-play)의 특징을 지닌 전자동 게임 ‘프로그레스 퀘스트(Progress Quest)’——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들의 방치형RPG 개입은 이런 게임들이 여전히 일반적 의미의 게임 '촉매'로 인식될 수 있도록 합법성을 제공하고, 게임 배급사들이 게임 내 소비 행위(이하 ‘현질’) 13) 를 유인하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물론 자동화된 게임 로직은 플레이어의 게임 경험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즉, 플레이어는 게임에 참여하지만 알고리즘이 계획한 게임 경로에 따라 손가락을 움직일 뿐 게임 경험의 창조에는 개입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방치형RPG 플레이의 감수성은 능동적인 탐색, 구성 또는 초극이 아니라 항상 수동적이게 된다. 한마디로 플레이어가 게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게임 시스템이 플레이어에게 먹이를 주고, 플레이어는 편안하게 입을 벌리고 게임 시스템의 아낌없는 선물을 웃으며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플레이 경험은 방치형 RPG의 대립자 14) 가 어긋나게 놓인 구조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흔히 게임은 “실패의 예술” 15) 로 여겨지는데, 이는 게이머의 진로를 가로막는 다양한 대립자들, 플레이어의 기본 임무인 눈앞의 끝없는 대립자에 반복적으로 도전해 결국 게임을 클리어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격투기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ストリートファイターベガ)’를 할 때에는 마지막 상대인 베가(ベガ)를 이길 때까지 상대에게 한 번씩 패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플레이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방치형RPG에도 이런 대립이 있는데, 예를 들어 ‘엘피스 전기M: 스피릿 각성(斗罗大陆:武魂觉醒)’에서 ‘시련의 경계’에 도전했다가 전력 부족으로 패배를 당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형의 게임의 차이점은 대립하는 쌍방(즉, 플레이어와 게임)이 만났을 때 서로 어긋나는 상태에 있다는 점이다. 즉, 방치형RPG의 자동화 논리로 인해 막을 수 없는 플레이어는 실제 높은 차원에 배치되고 반대쪽은 낮은 위치에 배치된다. 비록 낮은 단계의 대립자는 일시적으로 플레이어의 전진 속도를 지연시킬 수 있지만, 필연적으로 자동 전진하는 플레이어를 근본적으로 막거나 좌절시킬 수는 없다. 따라서 배칭형RPG와 일반 게임의 기본 차이점은 전자가 이론적으로 반대편을 이길 수 없을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게이머가 근본적인 ’게임불감증(卡关; 게임을 진행할 수 없는 프로세스)’으로 인한 부정적 감정을 겪지 않는다는 것이다. 방치형RPG는 플레이어(이하 ‘방치형 플레이어’)가 게임 속 대립자를 이기기 위해 자신을 고통스럽게 개조할 필요가 없다. 시간함수가 증가해 낮은 단계의 대립자가 상대적으로 약해지기를 기다리거나, 현질로 이를 집어삼켜 소비주의의 쾌감과 만능성을 경험하게 된다. 즉, 플레이어가 반대편에 부딪혔을 때 '절대적 부정'을 느끼지 않고, 기껏해야 연속적인 플레이 경험이 끊기는 등 짧은 불쾌감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게임에서 현질을 하지 않는 대가일 뿐이다. 절대적 부정이 없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플레이어에게 적대적인 액션 포지션이 할당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대결 자체가 더는 가능하지 않다. 그렇기에 방치형RPG는 “실패의 예술”의 반명제가 되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이러한 종류의 게임에서는 대결하는 쌍방의 움직임과 동기가 부족할 수밖에 없으며, 플레이어는 정해진 질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다른 한편, 플레이어는 역동적인 게임 내 역사적 여정을 구축하는 것에 참여할 수 없으며, 그러한 게임 체험은 자기자신과 게임 프로그램 간 상호작용에서 실질적인 발전을 이루지 못하게 한다. 끝없이 공허한 순환 생성에 빠뜨릴 뿐이다. 따라서 방치형RPG는 기존 게임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게임들에도 다양한 전투의 순간이 가득하지만, 그것의 역사적 여정은 다른 게임처럼 플레이어와 게임 간의 총력투쟁의 형태로 깊이 있게 추진되지 않는다. 비록 게임의 수치는 끊임없이 증식하고 비대해지지만(hypertrophy), 게임의 여정은 오히려 미리 설정된 알고리즘의 무성적으로 재생산하는 것에 가깝다. 단적으로 게임은 실시간으로 진행되지만, 유저들의 플레이 경험은 영원히 정체된 윤회 상태로 굳어져 ‘역사’는 끝난다. ‘역사의 종언’이 의미하는 것은 방치형RPG를 외형상 적개심으로 가득 찬 용담호혈(龍潭虎穴) 16) 을 날조할 뿐, 실제로는 한없이 순한 수치의 비경 속에 있다. 따라서 게이머들에게 철저하고 고통스러운 투쟁(清算)의 도전자가 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은밀하게 자신의 안전구역으로 퇴행(regression)하라고 유도하고, 보상이란 형태의 게임 시스템이 주는 긍정적인 경험을 기다리고 즐기게 함을 뜻한다. 또한 방치형RPG의 긍정적 체험은 독특한데, 그것은 전통 비디오 게임에서 이중 부정의 간접 형태가 아니라(가령 코나미 게임 ‘콘트라’는 끊임없이 적을 죽이고 게임 내 모든 부정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무효화한다), 오히려 게임의 알고리즘에 의해 직접적이고 긍정적인 통쾌함의 형태로 아낌없이 주어진다. 예컨대 ‘AFK 아레나’의 플레이어는 ‘키보드에서 손을 빼’ 17) 직접적으로 120분의 AFK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여기서 방치형 플레이어는 진정한 게임의 주체라고 할 수 없다. 이는 부정적 능력만이 진정으로 게이머의 주체적 위치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게임이 주는 긍정적 경험만을 받아들이는 게이머들은 추상적이고 혼란스러우며 개성이 없는 게임의 종속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플레이어와 게임의 대립 구도에서 플레이어의 주체성을 논하는 게 아니다. 게임 이데올로기의 영역에서 플레이어와 자아의 관계를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것이다. 다른 게임들에서 플레이어는 몹을 향한 공격과 동시에 자기 자신에 대한 힘겨루기를 구성한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게임의 쾌락 구조에서 자신을 능동적인(향락적인) 행동 주체로 만든다. 이 행동의 주체는 사고와 신체의 측면에서 자신의 한계에 끊임없이 도전해야만 게임에서 승리(예를 들어, 게임 중의 상대를 이기는 것)할 수 있고, 게임의 쾌락을 향유할 수 있다. 그러나 방치형RPG는 앞서 언급한 이중 부정 구조가 부재하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게임 시스템의 포획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로 인해 자신을 게임 쾌락을 즐기는 능동적 행동 주체로 만들 수 없고, 자아에 대한 최후의 절제를 포기하고 게임 시스템에 자신을 완전히 개방함으로써 적극적 자유를 얻을 수 없게 된다. 한마디로 방치형 플레이어는 게임의 호의를 행복하게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주체적인 자기결정 구조를 상실한다. 그/그녀(플레이어)는 게임과 쾌감에 의해 완전히 지배될 뿐, 그 반대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방치형RPG의 무대에서 서서히 펼쳐지고 있음을 사실을 불현듯 발견하게 된다. 2. 부성의 절대권력 방치형RPG는 게임의 역설을 재구성한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게임 장르처럼) 부정적 매체 18) (혹은 죽음의 매체)가 아니라, 긍정적 매체(혹은 삶의 매체)이다. 게이머들은 주로 게임 속에서 AFK 19) 형식으로 자동으로 생성되는 대량의 자원을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앉아서 즐긴다. 게이머들에게 항상 긍정적인 경험을 주는 이 게임은 지금까지의 게임과는 다른 이념적 전략을 사용하는데, 경계에 있는 상처를 달래는 진혼곡을 부드럽게 읊조리며 ‘알고리즘 모성’이라고 할 수 있는 치유적 환각을 만들어낸다. 알고리즘 모성의 무조건적인 보살핌 아래 플레이어는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도 자동 보상 등 위로의 형태로 긍정적 경험을 즐길 수 있으며, ‘수동적 자동 만족’에 기반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여기서 알고리즘 모성은 플레이어의 본능적인 욕망을 자제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 행복한 유토피아처럼 보인다.이 의심스러운 유토피아에서 플레이어의 욕망과 쾌감 사이의 장력은 긍정적인 경험의 자동 증식으로 인해 크게 붕괴되었지만 쾌감의 대량 증식은 여전히 알고리즘의 모성과 그들이 구축한 세계의 선의에 사로잡혀 매혹된다. 여기서 알고리즘적 모성은 플레이어에게 본능적 욕구를 억제할 필요가 없는 행복한 유토피아를 열어준다. 이 의심스러운 유토피아에서 플레이어의 욕망과 쾌감 사이의 장력은 긍정적인 경험의 자동 증식에 의해 크게 붕괴된다. 하지만 쾌감의 대량 증식은 여전히 플레이어에게 알고리즘의 모성과 그것이 구축한 세계의 선의에 사로잡혀 매혹되게 한다. 이처럼 방치형RPG를 이해하는 열쇠는 그것이 만들어내는 알고리즘의 모성을 이해하는 것에 있다. 그러나 알고리즘의 모성은 게임 역사에서 새로운 현상이며, 이를 논의하기 전에 방치형RPG 속 절대권력이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가졌다는 근거, 즉 게임의 주권적 힘(sovereign power)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게임 내 절대권력은 게임 시스템이 플레이어에 대한 절대적 관할권을 의미하며, 그 물질적 기반은 절차상의 출처(procedural authorship) 20) 이다. 그것의 관찰 가능한 형태(동시에 극치의 형태)는 곧 게임 시스템이 플레이어에 대한 생사여탈 권한을 갖는다. 일반적으로 게임은 부정적 매체이기 때문에, 게임의 절대권력은 게이머들에게 주로 ‘죽음’의 관상을 보여주며, ‘죽음’(즉, 철저한 부정)의 의제를 지향한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게임에서 플레이어의 핵심 관심사는 상대에게 죽임을 당하는 걸 피해 상대를 죽이는 것이다. 이 때문에 ‘죽음’은 새로운 예술로서 게임을 이해하는 학문적 출발점이 됐고, 아즈마 히로키(東浩紀)와 요시다 히로시(吉田寬) 등 일본 학자들은 ‘죽음’을 주제로 ‘게임 리얼리즘(ゲームのリアリズム)’의 가능성을 탐구하기도 했다. 21) 물론 게임 내 모든 죽음을 절대권력의 소행으로 명확히 추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시스템 운영(system operation)과 단위 운영(system operation)에 대한 이언 보고스트(Ian Bogost)의 주장 22) 은 절대권력은 완전하고 선형적이며 정상적인 시스템 운영에서 나타나며 단위 운영의 절대권력은 분리되고(discrete) 불연속적이며 역동적인 단위 및 그 관계에 의해 가려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슈퍼마리오 브라더스’(スーパーマリオブラザーズ)를 플레이할 때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마리오가 땅의 갈라진 틈으로 떨어져 “사망/낙하”한다. 이때 플레이어는 시스템과 직접 대화하는 것이며, 이러한 죽음의 방식에서 게임 시스템/규칙에 해당하는 절대권력의 존재를 분명히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마리오 형제가 굼바(クリボー)와 같은 적을 건드려서 죽으면 플레이어는 단일 작전으로 인식한다. 절대권력의 관할권은 유닛 뒤에 숨겨져 있기 때문에, 차별화된 타자를 이길 수 없다는 우발적 경험이 항상 플레이어의 필연적인 절대권력 인식보다 우선한다. 물론 때때로 시스템 작동과 장치 작동이 임계점까지 당겨지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일부 RPG 게임은 스토리상의 필요에 의해 갑자기 게임 플레이어가 상대 캐릭터에게 패배하도록 강제하지만, 게임 스토리는 종료되지 않고 오히려 계속 진행된다. 플레이어는 이러한 캐릭터와 절대권력의 일시적 중첩 상태를 명확하게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며, 이러한 현상은 종종 게임이 예외상태(또는 플레이어가 ‘무적’ 상태에 진입했음을 뜻함)에 있음을 나타낸다. 절대권력은 플레이어의 게임 경험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한 마리오가 땅의 갈라진 틈에 빠지는 경우처럼) 항상 수동적이고 게임 배경에 숨겨져 있다. 플레이어와 능동적으로 대화하는 일은 거의 없으며, 막 통과하려고 할 때, 즉 게임 보스 23) 의 형태를 취하고 플레이어의 경로를 차단할 때 적극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플레이어에게 절대권력은 언제나 ‘제3자의 심급’ 24) 이란 위치에 놓이게 되며, ‘통제와 자유’ 25) 라는 게임의 절차적 변증법에서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끝판왕을 물리치는 것뿐이다. 푸코와 아감본의 표현 26) 을 빌리자면, 절대권력은 형식적으로 고대 가부장적 권력(patria potestas)에서 유래한다. 따라서 비디오 게임 플레이는 모두 플레이어가 아바타 보스를 찾아 죽일 수 있는 최고의 권한만 갖는 ‘부친 살해’(弑父)의 구조 27) 로 이뤄져 있다. 현실의 외부(동시에 게임의 내부)에 취약하지만 완전히 환상적인 현실을 구축해야만 ‘부친 살해’ 게임을 통해 끝없는 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무의식적으로 게임의 ‘미지’의 결말에 갇히게 된다. 2000년대 중후반에는 이 상황이 흔들렸다. 최근 성공한 인기 게임 장르의 중요한 특징은 게임 속 절대권력이 끊임없이 전면에 등장해 플레이어의 ‘아버지 살해’ 수단과 감각을 파괴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슈팅(逃殺, 도살) 28) 게임은 ‘축권(縮圈)’ 메커니즘을 절대권력의 화신으로 삼아 플레이어와 게임 시스템 사이에 배제적으로 삽입된 도살 관계를 구축한다. 절대권력은 “칼을 든” 죽음 정치의 살벌한 모습으로 게임 전면에 내세워 게이머들을 수색하고, 프로그램화된 레토릭(procedural rhetoric) 29) 의 형태로 게이머들에게 부정적인 칙령을 내린다. 게이머들은 그 권위를 존중하되 피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죽음의 형벌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절대권력은 강력하게 감지되고-떠다니며-편재되는 방식으로 게이머들에게 능동적으로 배출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보이지 않는” 추상의 형상이다. 즉, 죽이거나 도전받지 않으며, 오직 당신의 복종을 요구한다. 이와 같은 모습의 절대권력은 동시대 게임 역사의 상상력이자 사회적 상상력의 전환을 지향한다. 그러니까 관문 마지막마다 숨어 있어 죽여야 하는 특정 보스(그들은 게임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는 메타 스토리와 스토리의 임계점에 있다)가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죽일 수 없는 추상적 존재로 반복된다. 이 때문에 게이머가 보스의 위치를 파악해 죽임으로써 게임 시스템/사회 현실을 초극하는 상징적 질서는 무력화된다. 따라서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게임의 서사층 내에서 자동 증식하는 게이머들 사이의 ‘작은 이야기(小さな物語)’의 싸움에 갇히고, 게임의 메타서사층에 존재하는 게이머와 게임 시스템 간 ‘거대한 이야기’는 돌파하지 못해 비정치적이고 퇴화하는 순환 구조에 빠지게 된다. 이것은 비관적인 사회적 상상력이다. (상호텍스트화된) 게임의 세계를 뒤흔드는 통섭적인 기관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추상화되고 만연해진 부권적 절대권력의 칙령에 게이머들이 끊임없이 에피소드 간 ‘생사’의 윤회에 뛰어오를 수밖에 없음을 암시한다. 서로를 죽고 죽이는 경쟁(즉, 상호경쟁)으로는 총체적 게임/현실 딜레마를 벗어날 해결책과 초월적 쾌감을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역사’는 영원히 공전하는 챗바퀴처럼 “지금-여기”에서 종결될 뿐이다. 3. ‘모성적 디스토피아’ 방치형RPG 역시 이 비관적인 사회적 상상력에 휩싸여 탄생한 게임 장르다. 절대권력은 늘 전면에 나서지만 상징 질서는 전혀 다르다. 그것은 사람을 죽임으로써 사람을 살게 하는 부성적 절대권력이 아니라, 권력기술로 하여금 직접 사람을 살아있게 하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모성적인 빛을 발하는 권력기술로, 그것의 상징물은 죽음의 ‘검’이 아니라, 생명을 키우는 ‘모태’다. 이는 곧 앞서 언급한 절대권력에 관한 논의를 갱신해야, 비로소 방치형RPG라는 새로운 게임 장르와 그 은유적인 사회적 상상력을 이해할 수 있음을 뜻한다. 푸코와 아감벤은 모두 절대권력의 전형적인 특권 중 하나가 생살여탈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푸코의 판옵티콘에 갇힌 죄수들과 아감벤의 수용소에 갇힌 호모사케르는 형벌을 단지 형벌받는 환경——죽음의 위협 속에 던져진다는 뜻——에서 절대권력이 그들에게 휘두르는 다모클레스의 칼을 두려워 하고 있을 뿐이다. 방치형RPG는 완전히 반대다. 그것은 게이머를 긍정적 경험이 생산되고 흐르는 모태(즉, ‘긍정사회’) 30) 에 두고, 그들이 갈망하는 다양한 성장 자원을 자동으로 제공한다. 그들에게 어떠한 부정적인 위협도 가하지 않고, 다만 그/그녀를 정성껏 보살피고 만족시켜 줄 뿐이다. 태아들은 부정적인 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 없이 태내에서 오는 긍정적 경험을 탐욕스럽게 빨아들일 수 있다. 한마디로 방치형RPG는 우노 츠네히로의 이른바 타카하시 루미코(高桥留美子) 31) 식 부권 억압(부정성 체험)이 없는 ‘낙원’, 즉 “물질만 있을 뿐 스토리텔링 32) 은 없”는 욕망의 공간을 만든다. 이 낙원에서 부정적인 감정의 체험은 모두 제거되고, 게이머는 게임에서 실질적인 실패를 겪지 않는다. 기껏해야 욕구 충족의 지연을 직면할 뿐이다. 가령 ‘마법거울의 전설’의 게이머들은 중심 스토리의 자동 전투에 패배한 후 자신의 부정적 감정이 아닌 휴식 중이던 자의식이 ‘실패'라는 우발적 사건에 의해 다시 활성화되는 걸 경험한다. [자의식이] 활성화되면 그들은 두뇌를 조금 사용해 다음을 선택해야 한다. 1) 기존 캐릭터와 소품의 구성 체계를 최적화해 시행착오를 겪고 확실한 자동 전투에 재투자한다; 2) 전쟁 전력을 즉시 높이고 자동 전투를 충족하기 위해 현질을 한다. 3) 현질 충동이 없다면 잠시 서브 스토리로 주의를 돌리고, 시간이 흘러 전투력이 자동으로 증가하면 메인 퀘스트에 계속 도전한다. 무엇을 선택하든 게이머는 게임 프로그램의 대립자를 위해 배척되지 않는다. 오히려 패배를 경험한 취약한 순간에 모성의 절대권력에 안겨 그것과 조화 및 동일화되면서 재기한 후의 필연적 승리를 향해 나아간다. [헤겔식]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으로 이해하면, 방치형RPG에서는 긍정적 경험치가 끊임없이 자동 증가하기 때문에 게임 시스템에 대한 순종은 합리적 플레이 태도가 된다. [이 상황에서] 노예인 게이머는 복종함으로써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므로, 자비로운 주인 편에 서서 더 유순해지고 일방적 상황에 순종적으로 빠져든다. 이 일방향적이고 사유하지 않는(thoughtless) 게이머들은 원인을 건드리지 않고 게임의 '좋은' 사실만 무분별하게 경험한다. 따라서 방치형RPG의 부정성과 비판성, 초월성, 그리고 절대권력은 결코 확립된 적이 없기 때문에, 매직사이클(magic cycle) 33) 이 부여한 반은 자고 반은 깨어 있는 상태에서 게임의 쾌락과 현실에 대한 욕구가 자동 충족되는 방식으로 즐긴다. 분명히도 방치형RPG는 절대권력에 대한 게이머의 경계가 완전히 해제되어 게이머에게 반역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이는 게임이 직면하게 되는 안티게임의 메커니즘을 근절할 뿐만 아니라, 게이머의 안티게임에 대한 의지를 완전히 소모했기 때문이다. 게이머의 모든 욕구를 부드럽게 충족시켜주는 방치형RPG는 게이머와 게임 간의 적대 관계를 시간함수에 따른 희소성과 만족감이라는 비적대적 공식으로 전환해버린다. 그렇기에 게이머의 욕망을 실현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언제 실현될지, 어떻게 하면 그 실현을 가속화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된다. 이는 게이머가 자신에 대한 신뢰와 애착을 형성하고도 다른 게임처럼 안티게임으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방치형 RPG의 장점이다. 누가 자신에게 좋은 일만 해주는 장난기 많은(게임) 어머니를 원망하고 반항하겠는가? 그러나 방치형RPG라고 해서 앞서 말한 잔혹한 슈팅게임의 안티테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양자는 동일한 사회적 상상력이 지배하는 상반된 게임 해결법일 뿐이다. 즉,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다”는 ‘네이쥐안’ 사회——장기간의 고성장 이후 GDP 성장률이 실질적인 둔화기로 접어든 사회경제적 상황——의 가부장적 절대권력(즉, 슈팅게임)에 맞서 강경한 전략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사회적 신뢰가 부족하더라도, 그리고 네이쥐안이 마땅히 벗어나고 비판해야 할 잘못된 사회 상태라고 믿더라도, '게이머'는 개인의 생존을 위해 '결단력' 34) 을 갖고 잔인한 '사회/게임'(즉 신자유주의적 사회 경쟁)에 적극 참여하도록 강요받는다. 하지만 탈출을 택하거나 ‘히키코모리(引きこもり)’를 말할 수 있는 사회적/심리적 공간이 없다. 이와 대조적으로 방치형RPG 속 절대권력은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것은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고, 모성의 우산을 씌워주며, 긍정적인 게임 체험 쪽으로 끊임없이 속삭인다. “얘야, 넌 정말 대단해! 멋져! 내가 해결해줄게...” 다시 말해, 이런 유형의 게임은 게이머를 억압하는 게 아니라 방어하는 전략을 채택한다. 게이머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35) 게임/사회에서 스스로를 완전하게 폐쇄시킬 수 있다. 그러나 우노 츠네히로의 말처럼 이것은 모성의 유토피아보다는 모성의 디스토피아(母性のディストピア)일 수 있다. 후자는 우노 츠네히로가 아즈마 히로키의 미연시 게임 장르에 대한 비평에서 도입한 개념으로, 전후 일본 사회에서 발전한 독특한 서브컬쳐의 상상력을 설명한다. 그는 근대국가를 국가의 ‘아버지’로 의인화하며, 국민의 성숙은 그들이 국가 안에서 가부장제적 아버지 36) 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드래곤 퀘스트(ドラゴンクエスト)’와 ‘젤다의 전설(ゼルダの伝說)’ 등 일본의 국민게임 시리즈에서 주인공들이 공주를 구하는 서사는 얼핏 보면 사랑 이야기지만, 게이머가 공주를 구함으로써 자신의 사회적 성숙(즉, 주인공에서 아버지가 되는 것)을 이뤄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패전국 일본에서 국민을 하나로 묶는 것은 승전국 미국에 의해 실추된 일본 아버지가 아니라, 태내부터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는 섬의 어머니일 수 있다는 역설적인 사회적 상상력을 드러낸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표면적인 게임 내용만 보면 위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공주를 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심층적인 문예 심리를 살펴보면 게이머가 공주의 인정을 받아야만 자신의 성숙을 깨달을 수 있다는 역설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구출된 공주는 대문자 어머니가 되고, 게임을 클리어한 게이머는 아버지가 되지만, 대문자 어머니에 의지해 성숙해지는 왜소한 아버지다. 모성적 디스토피아는 대문자 어머니가 왜소한 아버지를 키운다는 전후 일본의 상상력이다. 지난 10년 동안 우노 츠네히로는 모성적 디스토피아가 전후 일본에 한정된 특수한 상상력에서 인터넷 환경을 중심으로 한 보편적인 현대 사회의 상상력으로 진화했다며 그것의 설명 37) 을 확장해왔다. 인터넷 사회는 자녀(즉, 인터넷 사용자)를 정보 고치(즉, 태아)에 던져 넣고 모든 소음을 제거한 후, 보고 싶고 믿고 싶은 모든 정보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는 구조로 계속 제공하는 사회이다. 그것은 모성적 유토피아에 대한 자기 망상을 부풀린다. 이 같은 논의에서 알 수 있듯이 '모성의 디스토피아'는 발전된 개념이다. 우노 츠네히로의 연구 시야에는 중국 사회나 방치형RPG가 있지 않지만, 모성의 디스토피아의 통치 논리를 반영하고 있다. 문제는 왜 이런 게임을 유토피아가 아닌 모성의 디스토피아라고 생각하느냐는 점이다. 첫째로는 우노 츠네히로의 이른바 ‘모성적 폭력’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방치형RPG에서 모성적 폭력은 배제된 폭력이다. 그것은 게이머를 태아 속에 완전히 가두고, 온정적으로 그를 위해 태아 내의 모든 실질적 대립을 배제한다. 동시에 그것은 게이머의 성장을 촉진하는 부정성과 이질성도 배제한다. 이로 인해 그들을 편안한 자기 망상 속에 끊임없이 팽창시키도록 이끈다. 둘째, 일체화의 폭력, 즉 상술한 배제성으로 인해 게이머는 대립자(가령 방치형RPG의 다양한 몹)에게서 어떤 공고화된 타자성(Andersheit)이나 낯섦(Fremdheit)도 느끼지 않는다. 게임의 모든 것이 자신을 향해 통합(Gleichschaltung)되는 과정 자체에 집중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렇기에 모성적 폭력은 결국 긍정적인 폭력으로 이어진다. 이런 폭력은 게이머를 자신의 반대편으로 배척하지 않고 흡수한다. 과보호하는 방식으로 약화시키고 마비시켜 결국 게이머를 포획한다. 현실과 정반대인 알고리즘의 모성애에 취한 플레이어는 더욱 유순해지고 ‘투지’를 잃게 된다. 한마디로 모성폭력은 어머니의 자궁으로 돌아가는 형태로 자아의 궁극적 성숙을 회피하고 어머니의 자궁에 사는 형태로 순수한 자기 망상의 삶을 살게 한다. 여기서 방치형RPG는 현실의 고민과 고통을 잠시 잊게 하는 소마(soma)를 만든다. 그러나 이 약물은 단순한 쾌감 논리가 아닌 복잡한 보상 메커니즘에 호소하며, 직접적인 욕구 충족 회로가 아닌 현실의 영역에서 게이머의 트라우마를 다룬다. 이는 방치형RPG가 일종의 왜곡된 게임 쾌감을 가져다준다. 그것은 게이머들이 실재계의 상처받은 경험(예를 들어 현실이 허락했음에도 실현되지 않는 개인의 성공)에 다시 끌려들어가는 단순한 쾌감구조가 아니라, 게임은 세계를 상징하는 심벌로 자신을 자동적이고 즉각적으로 치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엄마 뱃속에서 반은 깨어 있고 반은 꿈을 꾸고 있는 플레이어는 여전히 현실의 맥락에 던져진 육체를 갖고 있지만, 현실과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깨어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게이머는 게임이라는 21세기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계를 통한 철저한 사회적 성숙을 새삼 갈망하게 된다. 그 결과, 많은 방치형RPG는 게임 내에서 현실 사회의 상징적 질서를 재구성하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갓스 커넥션은 레벨링, 랭킹, 전투 목록, 길드 전쟁과 같은 사회적 경쟁의 원리를 모방한 게임 내 메커니즘을 설정한다. 이에 따라 적지 않은 방치형RPG가 현실 사회의 상징적 질서를 게임 안에서 재구성했다. 예를 들어 ‘갓니스 커넥트(Goddess Connect)’는 게임 내에서 등급, 순위, 차트, 길드전 등 사회적 경쟁원리를 모방한 메커니즘을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알고리즘의 모성에 대항할 만큼 충분히 높은 가부장제적 권력을 실제 게임에서 소환하는 게 아니다. ‘오래된 게임 세계’의 상징적 질서에 대한 기념비 역할을 하며, 게이머에게 그들의 실재계 외상을 보다 명확하게 표시하게 함으로써, 그들이 효율적으로 자신을 자위할 수 있도록 한다. 우노 츠네히로의 논지로 돌아가 보자. 이러한 메커니즘은 알고리즘적 모성(즉, 대문자 어머니)을 억제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플레이어를 방치형RPG로 끌어들이는 인프라가 되며, 나아가 ‘깨어 있는’ 플레이어가 현실 세계와 대화하기 위해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올 필요가 없도록 하는 모성적 디스토피아의 논리에서 왜소한 아버지를 소환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는 방치형RPG의 꿈 만들기 기능을 강화하고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든다. 4. 게임 자본가의 환상 알고리즘의 모성적 위안 아래에서 플레이어는 방치형RPG를 플레이할 때 항상 편안함을 유지할 수 있으며, 다른 게임에서처럼 과로할 필요가 없다. 앞으로의 계획(프로젝트)과 전반적인 컨트롤을 위해 신체적, 정신적으로 편안한 영역에 있는 한, “근육과 뼈를 다치지 않고”(즉, 가급적 플레이하지 않으며) 가끔씩 명령을 내려 게임의 자동 수익과 최고의 경험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방치형RPG는 완벽한 자아에 대한 신화를 허구화하고, 그러한 자아에 대한 플레이어의 상상과 경험을 충족시키는 꿈나라와 같은 현실 미러링 게임이다. 유희 자본주의(ludocapitalism)의 비판적 틀을 통해 이러한 게임들을 살펴보면, 방치형 플레이어는 여전히도 운영 수준에서 플레이버(playbour)——이러한 유형의 게임은 결국 플레이어를 조작하도록 유도한다——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손쉬운 조작과 자동 증식 혜택은 기존 게임과는 다른 ‘게임 관리자’라는 아이덴티티 이미지를 심어줬다. 루도자본주의의 비판적 틀 안에서 이러한 게임을 계속 살펴보면, 방치형 플레이어는 여전히 운영 수준에서 플레이버로 이해할 수 있지만 - 결국 이러한 게임은 플레이어를 운영하도록 초대한다 - 과도한 노력과 수익의 자동 생성은 이전 게임과는 다른 정체성, 즉 다른 유형의 게임에 비해 '게임 매니저'라는 상상의 정체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운영의 과도한 용이성과 수익의 자동 증식은 이전 게임과는 다른 정체성, 즉 다른 유형의 게임에서 콘텐츠를 제작하는 '블루칼라' 플레이어와 비교하여 '블루칼라'가 아닌 '블루칼라' 플레이어인 '게임 매니저'라는 정체성을 부여한다. 다른 유형의 게임에서 게임 콘텐츠를 제작하는 '블루칼라' 플레이어와 달리, 이들은 단순히 게임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관리한다고 생각하여 스스로를 '화이트칼라' 또는 '골드칼라' 플레이어로 인식하게 됐다. 다른 유형의 게임에서 게임 콘텐츠를 제작하는 '블루칼라' 플레이어와 달리, 단순히 게임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관리한다고 생각하는 '화이트칼라' 또는 '골드칼라' 플레이어로 자신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게임 관리자는 기업가적 주체의 자기 망상이지만, 지난 10년간 국내 주류 게임에 존재했던 자기 망상(예: 멀티플레이 온라인 전략게임의 ‘경제인’과 슈팅게임의 ‘성인’)과는 다르다. 게이머는 한편으로 ‘기업’, 즉 게이머 사이에 존재하는 잔인한 외부 경쟁에 노출되지 않고, 일체의 외부적인 기업 위험으로부터 실질적으로 보호받는다. 대신 게이머는 조직의 내부 업무로 편안하게 돌아가 보람 있는 게임 자산 관리(예: 카드 뽑기, 카드 조합, 캐릭터 업그레이드 등)를 즐기고 조직의 모든 것이 “자신”의 뜻에 따라 운영되도록 하는 높은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38) 다른 한편 보다 중요한 것은 플레이어가 게임 관리자의 이미지에서 신체적, 심리적으로 해방된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즉, 자동화된 게임 로직 덕분에 방치형RPG는 플레이어의 끝없는 자기 착취 39) 를 자동화된 ‘알고리즘 노동’으로 대체하는 데 성공한다. 플레이어는 성가신 게임 조작, 전투 전략, 팀워크 및 기타 사소한 퀴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조직의 미래를 계획하고 이끌며, 자동으로 배가되는 자원을 받고, ‘게임 자본가’에 속하는 행복한 즐거움을 누릴 준비를 하면 될 뿐이다. 뿐만 아니라 게임 콘텐츠 외적인 부분까지 보면 게임 관리자는 게임 인터페이스 내의 가상의 정체성에만 국한되지 않고, 게임과 현실의 상호관계를 관리한다. 방치형RPG의 자동화된 플레이는 플레이어를 게임 시간에 따른 현실의 혼잡함에서 사실상 해방시켜 게임 작업과 현실 업무를 함께 실현하고, 게임 시간을 현실 시스템에 완전하고 매끄럽게 통합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이들 히어로즈(Idle Heroes)’의 많은 게이머들은 직장에서 '낚시'를 하는 동안 게임을 켜고 게임 콘텐츠를 빠르게 관리한 후, 자동으로 게임이 계속되게 한다. 방치형RPG의 인기는 한편으로는 현실 세계의 비합리성의 결과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비합리성에 대한 은유적인 자기 참조가 된다. 게임 관리자라는 상상된 정체성을 인식함으로써, 방치형RPG를 둘러싼 역설, 즉 방치형RPG의 기본 논리가 놀이의 영역에서 "최대한 많이 플레이하라"에서 "플레이하지 않으려 노력하라"로 역설적으로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적게 플레이하라"는 것임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오히려 플레이어가 자신의 정체성을 상상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사회 이데올로기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실제 21세기(즉, 중국에서 그래픽 네트워크 게임이 공식적으로 탄생한 이후) 들어 그것[게이머의 정체성]은 게임 노동자에서 게임 관리자로 변모했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자신을 게임 내 자산 소유자로 간주하고, 자동 증식하는 캐릭터, 장비, 소품, 화폐 등 개인 자산을 관리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산의 포트폴리오와 리스크를 신중하게 최적화하여 게임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동 전투에 참여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자기 착취를 위해 '미친 이성'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주처럼 '제스처'와 '지시'를 통해 '알고리즘 노동자'가 자신의 명령을 자동 수행하도록 감독하고 규제할 필요가 없다. 또한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자기 착취를 위해 '미친 이성'을 고수할 필요가 없으며, 대신 기업주처럼 '제스처'를 취하고 '지시'하며 '알고리즘 작업자'가 자동으로 명령을 수행하도록 감독하고 규제한다. 이러한 게임 경험은 현대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새로운 부유층에게만 허락된 '성공한 사람' 40) 에 대한 상상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방치형RPG의 매니지먼트는 위선적이다. 관리 경로는 이미 정의되어 있고, 게임 프로그램은 플레이어가 실제로 무수히 많은 전략/전술 아이디어에 두뇌를 동원할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이는 분명 게임 알고리즘과 연산에 많은 부담을 주고 게임 디자인에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는 가끔씩 자동 조종으로 실행되는 사업을 점검하고 게임의 정해진 경로를 따르도록 초대될 뿐, 게임의 내부 운영에 실질적으로 관여할 것으로 기대되지 않는다. ‘삼국지(三国志) 시리즈’와 같은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과 비교하면 이러한 장르의 게임은 관리 측면에서 위선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삼국지’에서는 플레이어가 도시의 내정을 관리해야 하며, 뛰어난 선견지명으로 이를 수행하지 않으면 잘못된 관리로 인해 컴퓨터 상대에게 패배할 수밖에 없다. 방치형RPG에선 그런 걱정이 없다. 앞서 언급했듯 알고리즘 모성은 게임의 모든 상대를 다운그레이드하여 플레이어가 잘못된 관리의 결과를 겪을 필요가 없고, 자산 관리의 자동 증식만 즐길 수 있다. 즉, 방치형RPG의 관리자는 매니지먼트의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으며, 이에 수반되는 '관리자의 상상력'은 자산을 소유하고 관리하려는 플레이어의 실제 욕망을 효과적으로 채워준다. 아즈마 히로키가 분석한 미연시 게임과 같은 정체성에 대한 상상은 현실의 압도적인 무력감을 뒤집는 것이기도 하며 41) , 이는 방치형 플레이어에게는 간절히 갈망하지만 현실에서는 항상 부족한 무언가임이 분명하다. 상술한 관리자적 상상의 위선은 또한 "사고"의 정체를 의미한다. 그러나 방치형RPG는 일반적으로 산술적인 텍스트 42) 이기 때문에, 여기서 사고하는 것은 “복잡한 사고의 탐구 활동”이 아닌 플레이어가 알고리즘과 하나가 되려고 노력하는 단순한 ‘계산’으로 축소된다. 가령 게임 내에서 가장 높은 전투력을 달성하기 위해 캐릭터를 조합하는 방법을 계산한다던지 말이다. 하지만 방치형RPG의 자동화 로직으로 인해 플레이어는 더 이상 머리를 굴릴 필요 없이 '관리의 만족'이라는 원칙에 따라 흐름을 따라가기만 하면, 만족스러운 플레이를 할 수 있다. 방치형RPG의 본질적 매력은 플레이어가 과도한 게임 플레이 노동을 피하면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어 거의 제로 비용으로 높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게임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는 또한 모성의 폭력이 다시 폭력화될 가능성을 열어준다. 게임 개발자와 운영자는 수익을 내기 위해 플레이어를 게임에서 '이탈'시켜 선택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방치형RPG가 제공하는 긍정적 경험에 계속 몰입하기 위해서는 돈을 지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잠시 게임을 떠나 알고리즘 모성의 다음 자동 위로를 기다려야 한다. 물론 그 위로의 효과는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위로의 간격은 절대적으로 연장된다. 이는 은밀하지만 강력한 형태의 폭력이며, 강압적으로 연속성을 중단하는 것에 의존한다. 알고리즘 모성의 편안함에 빠져 있는 방치형 플레이어에게, 방해받지 않고 즐기는 긍정적인 경험에서 갑자기 철수하는 것은 부정적이지 않은 부정성으로 간주된다.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비부정적 부정성은 게임 전반에 대한 직접적인 부정보다 더 고통스럽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는 결핍감이 아니라, '얻었지만 또 잃었다'는 상실감을 지향하는 것이 플레이어의 트라우마 위에 소금을 한 움큼 더 뿌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5. 결론 한마디로 방치형RPG게임은 한병철이 말한 ‘권태사회’ 43) 의 상상력이라 할 수 있다. 이때 ‘권태’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그것은 플레이어를 비관적인 자기착취 사회로 몰아넣는다. 따라서 그들은 게임에서 자신을 다른 플레이어와 적극적으로 경쟁하는 순수하게 효율화된 형식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없다. 하지만 거의 비슷한 인기를 구가하는 MMO슈팅게임 게이머들과 달리, 이(방치형RPG) 게이머들은 ‘공포’가 아닌 편안한 ‘퇴화’의 상태에서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 한편으로 그들은 계속해서 참여(어쩌면 자발적으로 벗어날 수 없기에)하고, 게임에서의 다양한 경쟁 메커니즘과 그 이면의 사회적 상상력을 즐긴다(jouissance). 44) 다른 한편에서 이 ‘기계적 육체로서의’ 게이머는 정신적인 소모로 인한 자아 붕괴를 피하기 위해 방치형RPG 같은 자동/수동형 플레이 방식으로 알고리즘 모성에게 자신을 양보하는 걸 선택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게이머는 자신을 관리자로 상상하고 새로운 자아실천에 빠지게 된다. 이런 자아실천이 직면한 것은 매우 판이하면서도 현실 이데올로기가 약속한 긍정적 경험을 게이머에게 끊임없이 전달하며, 모성적 광휘를 발하는 절대권력(즉, 모성적 디스토피아)이다. 이 모성적 절대권력은 한편으론 게이머의 실재적 상처를 치유하고, 다른 한편으론 그들에게 도망칠 수 없는 모성 폭력을 가한다. 나아가 게임 자본주의와 공조해 게이머를 부정적이지 않은 부정성의 위협에 노출시킨다. 이를 통해 방치형RPG는 겉으론 무한히 부드러운 수치 선경이 되지만, 오히려 실제로는 비디오 게임 세대 45) 가 은거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무릉도원이 아니며며, 여전히 초극적인 사회적 상상력을 자동으로 연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1세기라는 게임의 시대에 우리는 진정으로 초월적인 게임 장르를 모색해야 한다. 1) 본문은 중국 국가사회과학기금의 주요 프로젝트인 '가상현실 미디어 스토리텔링 연구'와 상하이 철학사회과학기금 청년 프로젝트인 '융미디어 맥락에서 e스포츠 이미지 구축 및 가치 혁신 연구'의 결과물로, <문예연구 文艺研究>지 2023년 10호에 발표됐다. 2) 영어권에서는 클리커 게임(clicker games) 또는 성장 게임(incremental games)으로 불린다. 3) ‘推图(퉤이투)’에서 ‘图(투)’는 게임 속 ‘맵’을 의미하고, ‘퉤이’는 게임의 주요한 줄거리를 ‘클리어’하는 걸 뜻한다. 즉 ‘맵밀기’는 플레이어가 줄거리를 클리어하기 위해 두뇌를 사용할 필요가 없음을 가리킨다. 4) 여기서 '스킨 교체'는 게임의 핵심 플레이방식을 바꾸지 않고 시청각적인 측면에서 하나의 게임을 새로운 게임으로 포장하는 것을 말한다. 5) 오츠카 에이지, 『物語消費論:ビックリマンの神話学(이야기 소비론)』, 新曜社, 1989년, 10~24페이지. 오츠카 에이지는 서브컬처의 설정과 세계관을 거대한 이야기(大きな物語)라고 부른다. 그러나 일본 학계에서 논의되어 온 '大きな物語'의 개념이 모호하기 때문에 중국어로의 번역은 여전히 의문의 여지가 있다. 저우즈창(周志强)은 이 개념을 서양의 'big story' 이론을 차용하기보다는 'grand narrative'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저우즈창, 『游戏现实主义:“第三时间”与多异性时刻(게임 리얼리즘: 제3의 시간"과 다중 이질성의 순간")』, 南京社会科学, 3호, 2023년 참조). 이 논문에서는 저우즈창의 관점을 채택했다. 6) 일본 서브컬처 연구에서 아즈마 히로키는 오츠카 에이지의 '거대한 이야기'를 '거대한 비이야기(大きな非物語)'로 발전시켰고, 우노 츠네히로는 후자를 '거대 게임(大游戏)'으로 확장시켰다. '거대한 비이야기'는 수많은 작은 이야기(小さな物語) 뒤에 존재하는 스토리텔링이 없는 거대한 정보 모음(즉, '데이터베이스')을 의미한다. 아즈마 히로키, “動動化するポストモダン: オタクから見た日本社会”, Shogun, 2001, 62쪽을 참조하라. “반면 '거대 게임'은 거대한 비이야기의 정적 구조 속에서 작은 이야기들이 상호작용하는 동적 구조를 강조한다” (우노 츠네히로, 『마터니티のディストピアⅠContact』, 하야카와쇼텐, 2019년, 112쪽). 7) 우노 츠네히로, 『母性のディストピアⅠ接触篇("모성의 디스토피아: 접촉편)』,83페이지 8) 저우쓰위, 리용(李勇), 《“让游戏自己玩”:방치형 게임与超级自我(게임 스스로 플레이하게 하라: 방치형 게임과 초자아)》,《南京社会科学(난징사회과학)》, 2023년, 제3기. 9) 中島誠一『触覚メディア——TV ゲームに学べ!次世代メディア成功の鍵はここにあった(촉각 미디어--TV 게임에 배우라! 차세대 미디어 성공의 열쇠는 여기에 있었다)』(株式会社インプレス주식회사 임프레스,1999年)145페이지. 10) ‘입력 결핍’이란 게임 플레이 행위가 게임 화면 외부에서 게임 입력 장치를 조작하는 물리적 행위에 불과하고 그 상징적 의미가 빈곤한 것을 말한다. ‘과잉 산출’은 플레이어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자신의 신체적 행위를 통해 게임 화면 내에서 상징적 의미의 구체적 확장을 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플레이어는 게임의 입력 장치를 조작하여 삼국지 게임 속 조조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조조를 통해 중국 통일의 꿈을 이루고자 한다. 하지만 사실 그/그녀는 단순히 게임의 입력 장치를 조작하고 있을 뿐이다. 마츠모토 켄타로 『ゲームのなームのなかで、人はいかにして「曹操」になるのか: 「體験の創出装置」としてのコンピュータゲーム」 (마츠모토 켄타로, 왕이란, 편역, 『일중문화토라 ナショナルコミュニケション: コンテンツ・メディア・歴歴歴歴部・社会』ナナニーシヤ 출판, 2021) 107페이지를 참조하라. 11) 저우즈창, 상동 12) 레프 마노비치, <뉴미디어의 언어>, 처린(车琳) 옮김, 贵州人民出版社(구이저우인민출판사), 2020년판, 32쪽. 13) [역주] 원문의 ‘커진(氪金)’은 직역하면 ‘크림톤'과 ‘돈'을 뜻하지만, 중국 온라인 게임에서는 현질을 가리킨다. 14) [역주] 원문의 ‘对立面’(대립면/대립자)은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모순의 통일(상호의존과 상호투쟁)을 가리킨다. 15) Jesper Juul, 《失败的艺术:探索电子游戏中的挫败感(실패의 기술: 비디오 게임에서의 좌절 탐구)》,杨子杵、杨建明 옮김, 베이징이공대학출판사, 2019년판, 130페이지. 16 ) [역주] 고사성어 용담호혈은 ‘지세가 매우 험준한 곳’을 뜻한다. 17 ) [역주] 원문의 ‘쾌속괘기(快速挂机)’는 ‘AFK(away from keyboard)’를 지칭한다. 18 ) 姜宇辉(장위후이), 《数字仙境或冷酷尽头:重思电子游戏的时间性(디지털 원더랜드 또는 콜드 엔드: 비디오 게임의 시간성에 대한 재고)》,《文艺研究(문예연구)》, 2021년 제8기. 19 ) 플레이어가 조작하지 않아도 프로그램 스크립트가 자동으로 실행되는 게임을 가리킨다. 20 ) Janet H. Murray(자넷 H. 머레이,), Hamlet on the Holodeck: The Future of Narrative in Cyberspace(햄릿: 사이버 공간에서 내러티브의 미래), New York, London, Toronto, Sydney, Singapore: The Free Press, 1997, p. 143. 21 ) 요시다 히로시, 《游戏中的死亡意味着什么?——再访“游戏现实主义”问题(게임에서의 죽음은 무엇을 의미할까? --'게임 리얼리즘' 문제 재조명")》,《探寻游戏王国里的宝藏:日本游戏批评文选(게임 왕국의 보물 탐험: 일본 게임비평선집)》,邓剑编译(덩지안 편역),上海书店出版社(상하이서점출판사), 2020년판, 237~273쪽. 22 ) Ian Bogost, Unit Operations: An Approach to Videogame Criticism, Cambridge, Massachusetts: The MIT Press, 2006, pp. 3-4. 23 ) 보스는 반드시 특정 캐릭터일 필요는 없으며, 캐릭터가 아닌 상태로 설정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플레이어의 게임 패스 목표를 설정하는 시뮬레이션 건설 게임도 게임 보스로 해석할 수 있다. 24 ) '타자의 계층'이라는 개념은 오사와 마사유키가 '초월적 타자'라고 부르는 것을 언급하며 제안한 개념이다. 오사와 마사유키, "오타쿠 이론: 광신주의, 타자성, 정체성", 덩 지안 편저, 게임 왕국의 보물 탐험: 일본 게임 비평 에세이 선별, 상하이 서점 출판사, 2020년판, 79-116쪽 참조. 오사와는 게임 오타쿠를 포함한 오타쿠의 주체성을 논할 때 지젝의 논지를 인용하여 "개인으로서의 신체를 자기 정체성 있는 주체로 변화시키는 것은 타자"라는 것이 개인의 자아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오자와는 이러한 맥락에서 '타자'를 상상력의 영역에 있는 타자와는 달리 우연적인 '내적 타자'와 상징의 영역에 있는 거대한 타자와는 달리 필연적인 '초월적 타자'로 구분한다.". 인간의 자기 동일화 과정에서 내적 타자는 모방 가능한 이미지로 기능하고, 초월적 타자는 인간의 이상적인 모습을 결정하는 추상적 규범으로 등장하며(예: 푸코의 감옥 속 보이지 않는 감시자에 대한 전경, 오사와 마사유키의 『[増補補][増补], 『허구 시대의 열매』(치쿠마쇼보, 2009, 223-224) 참조) 서로 전제하고 있다. 1-3쪽), 상호 배타적인 전제다. 초기 비디오 게임의 버그가 타자 대리현상의 증상이라는 오사와의 관찰에 착안하여, 최고 권력은 게임 보스를 대리인, 즉 게임 전체를 지배하는 '초월적 타자'(즉, 게임 전체를 지배하는 '제3자')로 등장시킨다고 주장할 수 있다. 게임에서 최고의 권력은 보스로 대표되며, 즉 게임의 전체 영역을 통제하는 '초월적 타자'로서(즉, '제3자의 위계'로 기능하는), 플레이어는 보스를 죽임으로써만 게임의 상징적 질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25 ) 요시다 히로시, 「規則と自由の弁証法としてのゲーム——〈ルールの牢獄〉でいかに自由が可能か?(규칙과 자유의 변증법으로서의 게임--〈규칙의 감옥〉에서 어떻게 자유가 가능한가?)」, 『立命館言語文化研究(리츠메이칸 언어문화연구)』, 26권 제26호, 19-27쪽. 26 ) 미셸 푸코, 『성의 역사 - 제1권 - 인식의 의지』, 셰비핑 옮김, 상하이인민출판사, 2016년판, 113쪽; 아감벤, 『호모사케르: 벌거벗은 삶』, 중앙편집번역출판사, 2016년판, 126쪽. 27 ) 게임 디자인 초기에는 유명한 게임인 제비우스나 후크처럼 '끝'이라는 개념이 없는 반복 게임이 많았다. 이러한 게임에서도 각 레벨이 끝날 무렵에는 흔히 '미니 보스'로 알려진 캐릭터가 해당 레벨의 '아버지'로 등장하곤 했다. 28 ) 서클 수축은 탈출 게임의 핵심 메커니즘으로, 도망치는 플레이어가 결국 정면으로 맞붙게 될 때까지 게임의 위험 구역이 안전 구역을 계속 집어삼키는 논리에 따라 작동한다. 29 ) Ian Bogost, Persuasive Games: The Expressive Power of Videogames, Cambridge, Massachusetts: The MIT Press, 2010, pp. 1-64. 30 ) 한병철, 《권태사회》, 吴琼(우총) 역, 中信出版社(중신출판사), 2019년, 1~14페이지. 31 ) 다카하시 루미코의 유명한 만화 <후쿠신 키드(うる星やつら)>에 등장하는 모성 공간을 가리킨다. 우노 츠네히로, "ゼロ年代の想像力 야근 시대의 상상력"(하야카와 쇼텐, 2011), 242-252쪽 참조. 32 ) 우노 츠네히로, 『若い読者のためのサブカルチャー論講義録(젊은 독자를 위한 서브컬처론 강의록)』, 아사히신문출판사, 2018년, 91쪽. 일본어 ‘物语’는 ‘故事(이야기)’라는 뜻이다. 33 ) Johan H. Huizinga, Homo Ludens: A Study of the Play-Element in Culture, London, Boston and Henley: Routledge & Kegan Paul, 1980, p. 10. 34 ) '결단주의'는 우노 츠네히로가 2000년대 초반 일본 서브컬처 작품의 문학적 상상력의 변화를 분석하면서 제안한 개념이다. 이는 사람들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인가'에 관심을 두지 않는 포스트모더니즘적 가치관을 유지할 수 없으며, 특정 가치에 '근본적인 근거가 부족하다'고 느끼면서도(즉, 히가시 히로키가 말하는 '빅 스토리'를 공유할 충분한 압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선택하거나 선택한다는 전제에서 포스트모던적 상황에 대응하는 태도이다. 사람들은 특정 가치에 "근본적인 근거가 부족하다"고 느끼지만(즉, 히가시 히로키가 큰 이야기를 공유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부족하다), 여전히 자신이 믿는 가치를 선택한다(즉, 자신만의 작은 이야기를 만들고 다른 작은 이야기를 거부하여 미야다이 신지가 '섬 우주'라고 부르는 것을 같은 작은 이야기들 사이에서 형성한다). 한 마디로 결정론은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가치 상대주의가 전면에 등장한 결과로, 결정의 내용과 이유보다 결정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노 츠네히로, "초과근무 시대의 상상력", 185쪽 참조. 35 ) 우노 츠네히로, 『遅いインターネット(느린 인터넷)』, 幻冬舎, 2023年, 178페이지. 36 ) 우노 츠네히로, 『母性のディストピアⅠ接触篇(모성 디스토피아 Ⅰ 접촉편)』, 早川書房, 2019年, 35페이지 37 ) 우노 츠네히로, 『母性のディストピアⅠ接触篇(모성 디스토피아 Ⅰ 접촉편)』, 早川書房, 2019年, 318페이지 38 ) 그렇다고 해서 기업/플레이어 간 경쟁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페이트에서는 랭크전, 길드전 등 경쟁 메커니즘이 여전히 소셜하게 설계되어 있지만 게임의 자동화된 설계로 인해 경쟁의 실패가 외부화되어 플레이어는 실패를 '나' 자체가 아닌 '나' 외부의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즉, 플레이어는 실패를 '나' 자체가 아닌 '나' 외부에 존재하는 자동화된 과정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게임에서의 실패로 인해 심리적으로 파산하는 것은 물론 부정적인 정서적 경험도 발생하지 않는다. 요컨대, 플레이어는 게임/비즈니스 경쟁 과정에서 상당히 안전한 위치에 놓인다. 39 ) 한병철, <에로스의 종말>, 宋娀(송송) 역, 中信出版社(중신출판사), 2019년판, 23페이지. 40 ) 王晓明(왕샤오밍), 《半张脸的神话 반쪽 얼굴의 신화》,广西师范大学出版社2003年版,第27—33页。 41 ) 아즈마 히로키, 《萌的本事,止于无能性——以〈AIR〉为中心 모에의 역량, 무능에서 멈추다 - AIR를 중심으로》,덩지엔 편역, 《探寻游戏王国里的宝藏:日本游戏批评文选 게임 왕국의 보물 탐험: 일본 게임비평 문선》,214페이지. 42 ) 산술 텍스트는 문학적 텍스트와 달리 알고리즘에 의해 내러티브와 경험이 주도되는 텍스트를 말하며, 배경의 숫자 연산이 전경의 게임 내러티브를 주도하는 것이 기본적인 내러티브 기법이다. 43 ) 한병철, <권태사회>, 53~61페이지 44 ) Sean Homer, Jacques Lacan, London and New York: Routledge, 2005, pp. 89. 45 ) 蓝江(란장), 《宁芙化身体与异托邦:电子游戏世代的存在哲学(몸과 헤테로토피아의 님피: 비디오 게임 세대의 실존 철학)》,《文艺研究(문예연구)》, 2021년 제8기.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학자) 덩 젠 , 邓剑 쑤저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부교수. 디지털게임 문화연구를 주 관심사로 다루며, 〈澎湃新闻〉에서 게임에 관한 칼럼 등을 연재하고 있다. (활동가, 작가) 홍명교 활동가, 작가.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에서 동아시아 국제연대와 사회운동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를 썼고, <신장위구르 디스토피아>와 <아이폰을 위해 죽다>(공역) 등을 번역했다.

  •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의 타임라인

    그래서 게임과 중독에 관한 글을 쓸 때 모든 식자들은 엘리트주의적 정서를 느낀다. 이 복잡한 맥락을 나는 잘 정리해서 이해했으니 알려주고 싶다! 실제로 이 글의 서두는 그렇게 쓰여졌고, 완성 후에 후회했다. 그런 정리는 이미 너무 많다. 현재에는 게임 중독, 혹은 게임이용장애에 대해 우리 한국 사회가 어떻게 대응과 준비를 하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 더 가치 있을 것이다. < Back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의 타임라인 14 GG Vol. 23. 10. 10. 게임 중독, 지겨운 단어 2019년 5월 25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제72회 총회에서 국제질병분류(ICD)의 제11차 개정판이 발표했다. 대규모 개정이 28년만이었다. 28년 묵은 업데이트를 한꺼번에 하다 보니 질병 코드가 14000여 개에서 55000여 개로 대폭 늘었다. 이 개정에 게임이용장애가 질병 코드 6C51을 얻어 등재되면서 논의가 폭발했다. 게임에 대한 탄압, 중독 아니고 과몰입, 중독 아니고 이용장애, 게임은 문화, 게임은 산업, 물질 중독이 아닌 행위 중독, 이 모든 담론 속의 맥락이 제각각 근거가 있었다. 인류 사회 전체에서 어지러운 난상 토론이 일어났다. 그나마 최근에야 좀 정리가 되었지만, 여전히 수많은 단어와 개념들이 이리저리 얽힌다. 게임과 폭력, 두 단어가 만났을 때 일어났던 혼란은 게임과 중독, 두 단어가 만났을 때도 그대로 일어났다. 인간은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래서 게임과 중독에 관한 글을 쓸 때 모든 식자들은 엘리트주의적 정서를 느낀다. 이 복잡한 맥락을 나는 잘 정리해서 이해했으니 알려주고 싶다! 실제로 이 글의 서두는 그렇게 쓰여졌고, 완성 후에 후회했다. 그런 정리는 이미 너무 많다. 현재에는 게임 중독, 혹은 게임이용장애에 대해 우리 한국 사회가 어떻게 대응과 준비를 하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 더 가치 있을 것이다. 각계의 입장 의료와 보건 영역에서는 예방과 치료를 위한 사회적 투자를 주문한다. 게임이용장애가 수면장애, 섭식장애와 같은 행위 중독이고, 인류사에서 이를 질병으로 규정한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적용과 관찰이 필요하다는 관점이다. 새로운 중독 개념을 관찰하여 도입하는 과정이라는 인류사적 맥락에서 타당하다. 산업과 문화 영역에서는, 이 두 관점이 상호보완이 되다니 감개무량하지만, 우려에서 반대까지를 표현하고 있다. 예술 분야 혹은 산업 전반에 대한 낙인 효과를 우려하는 관점이다. 훌륭한 아이디어라 해도 현실에 적용될 때는 다운그레이드/침강 현상이 일어났던 역사를 고려할 때 타당하다. 의료 논리와 업계 논리의 타당성이 충돌한다. 행정부 부처 별로도 의견이 충돌한다. 문화 계열은 반대, 보건 계열은 찬성이다. 1차적인 이유는 역시 예산이다. 돈을 받아 집행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자신이 수행하는 임무의 중요성을 우선할 수밖에 없고, 실제로 그런 사업 임무는 제각각 중요할 것이다. 반면 이들에게 돈을 내어주는 입장인 기획재정부는 생각을 알 수가 없다. 정치의 시간 이렇게 논리와 입장이 충돌할 때 정리하는 업무를 인간은 정치라고 부른다. 한국의 정치 또한 다른 모든 나라처럼 질병 코드 등재에 관련된 행정 체계를 만들어 놓았다. WHO에서 개정된 ICD를 반영하라는 ‘권고’를 한국 정부에 보낸다. 권고받은 정보를 한국 행정부처가 검토하여 한국의 질병분류인 KSD에 전체 혹은 일부를 반영한다. 이번의 경우, 새로 늘어난 것만 41000여 개 질병이니 검토 및 분류 작업은 오래 걸릴 것이고, 따라서 최소 2025년의 정기 개정 시기에 반영될 것이거나 그보다 늦어질 수도 있다. 이 절차의 소관 부서는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통계청이다. 반영 이후에는 보건복지부에서 수행하겠지만, ISD의 성격이 수많은 질병을 규정하고 코드화하여 모아놓은 통계 편람이기 때문에, 반영 업무 자체는 통계청이 주관해야 한다. 한국은 2019년 7월 23일에 통계청에 민관 협의체를 만들었다. WHO의 ISD 갱신 2개월 후이니 매우 빠른 편이다. 그런데 이 민관 협의체는 41000여 개 신규 질병 코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게임이용장애, 대중적 용어로는 게임중독 질병 코드 하나만을 다루는 협의체다. 민간위원 14명과 정부위원 8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의료, 게임, 법조, 시민단체, 기타 전문가, 교육부, 과학기술부, 여성가족부, 통계청, 국가조정실, 복지부, 문화체육부의 인물이 모두 들어가 있다. 관련자는 물론 관리자 역할인 국가조정실까지 모두 모인 것이다. 이 22인이 연구와 토론을 통해 결론을 내면, 국가통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서 등재 결정으로 이어진다. 민관협의체의 타임라인 민관협의체는 결정을 내릴 근거를 수집하기 위해 먼저 연구 용역을 3건 발주했다. 연구들은 2019년 12월부터 구체적 단계에 들어갔고, 2년 후에야 완성이 되었다. 이 3건의 연구를 토대로 회의가 연거푸 열렸는데, 2022년 1월 12일의 8차 회의에서 일이 벌어졌다. 올라온 연구 보고서 셋 중에서 하나의 신빙성과 정합성을 일부 민간위원이 문제 삼은 것이다. 해당 보고서는 게임이용장애의 역학조사가 방법론적으로 가능하다는 내용의 ‘게임이용장애 실태조가 기획’ 연구였다. 역학조사를 통해 계량화된 수치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인데, 연구 셋 중에서 유일하게 질병코드 도입 찬성측에 유리한 연구 결과였다. 아무튼 이 연구에서 문제점이 지적되자 후속 보완 연구를 하기로 결정이 났다. 그런데 이후 민관협의체는 8개월 동안 후속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을뿐더러 추가 회의도 열리지 않았다. 정권 교체기였기 때문에 생긴 지연이라는 해석이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졌다. 정지해있던 민관협의체는 2022년 말에 다시 가동되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이상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12월 21일, 통계청은 언론 보도에 대한 반박 보도자료를 냈다. 해당 보도는 사라진 것으로 보여 확인할 수 없지만, 민관협의체 회의에서 통계청 관계자가 ‘한국은 WHO 결정을 그대로 수용해야 해서 게임이용장애는 질병코드에 등재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민관협의체 무용론이 등장한 것이다. 통계청은 민관협의체의 결정은 효력이 있고 한국은 국내표준분류를 만들 때 국내 여건을 감안한다는 내용의 반박을 했지만, 해가 바뀐 4월 4일 국민일보는 여전히 민관협의체 무용론이 존재한다 는 보도를 했다. 8차 회의 이후 아직도 후속 보완 연구가 시작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함께였다. 이에 대해서는 통계청과 국무조정실 양쪽에서 반박 보도자료를 내놨다. 후속 연구는 9차 회의에서 결정된 후 세부계획 수립 중에 있으며 2023년 4월 중에 착수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같은 내용의 반박이 4월 24일 뉴스원의 기사 에 대해서도 나왔다. 즉, 2023년 10월 현재에는 아직 연구가 진행중일 것이다. 통계법 제22조 1항 그렇다면 민관협의체 무용론의 논리적 근거는 무엇일까. 통계법이다. 통계법 제22조는 표준분류 조항이다. 1항에서는 이렇게 서술한다. “통계청장은 통계작성기관이 동일한 기준에 따라 통계를 작성할 수 있도록 국제표준분류를 기준으로 산업, 직업, 질병·사인(死因) 등에 관한 표준분류를 작성·고시하여야 한다.” 국제표준분류, 예를 들어 게임이용장애 질병 코드 등재 사안에서는 WHO의 ICD가 기준이 된다는 의미를 ‘국제표준분류를 따라가라’ 의미로 보면 강제조항이 된다. 반면 ‘참고하라’는 의미로 보면 권고조항이 된다. 언론 보도에 나온 분위기를 보면 민관협의체와 그 주변 분위기는 강제조항 해석이 우세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강제조항 해석이 우세하고 이를 우려하는 분위기라는 의미는 즉, 현재 민관협의체의 분위기는 질병 코드 등재에 부정적인 쪽으로 흐른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런 분위기를 포착한 언론 보도가 나오기 전인 2023년 2월 27일,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통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다. 바로 해당 22조 1항을 고치는 내용이다. 국제표준분류가 기준이 아닌 참고가 되며, 전문가와 이해관계자 등의 의견 수렴을 거쳐 국제표준분류의 반영 여부를 결정하는 절차가 들어가는 개정안이다. 하지만 윤석열 행정부는 이 개정안에 대해 소극적으로 보이지만 반대 입장이다. 한국의 통계 기준이 국제 기준과 지나치게 거리를 두게 되면 국가간의 통계 비교 문제가 생긴다는 우려, 즉 통계 기준의 갈라파고스화를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상헌 의원의 통계법 개정안은 아직 계류 중이며, 21대 국회의 회기 막바지임을 고려하면 이대로 회기 종료가 되어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무용론이 고개를 들었고, 이와 별개로 국무조정실에서 4월 20일, 별도의 연구 용역이 나왔다. ‘게임산업 규제 개선 및 진흥 방안 연구’였는데, 여기에 게임 질병 코드 사안도 들어가 있었다. 통계청 산하 민관협의체에서 결론을 늦게 내고 있으니, 중앙부처 주도로 질병 코드 등재를 강행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이런 해석에 대해서 국무조정실은 곧바로 그런 의도가 아니며, 결정 주체는 통계청의 민관협의체라고 확언을 했다. 국무조정실의 이 발언은 두 가지 의미로 독해가 가능하다. 첫 번째, 민관협의체의 연구 용역과 별도의 계획은 없다. 즉, 민관협의체에게만 권한이 있다. 두 번째, 민관협의체의 결론이 나오지 않았으므로 계획은 없다. 즉, 지지부진해져서 결론이 안 나오면 계획을 세우겠다. 두 번째 해석에는 약간의 비약이 들어가 있으므로 가능성은 낮다. 여기까지가 질병 코드 등재에 관한 타임라인이며, 타임라인은 4월 말로 끊겨 있다. 그로부터 반 년이 지난 2023년 10월 현재, 한국은 아직 민관협의체가 발주한 추가 연구 용역을 기다리고 있다. 현재의 구도 이 사안에 가장 깊게 연관된 플레이어는 국회, 행정부, 산업계, 문화계, 의료계다. 이 중에서 의료 외에는 미지근하거나 방어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질병 코드 등재에 대해 의료계는 찬성, 산업계와 문화계는 반대 입장이다. 행정부는 대체적으로 미지근하다. 언론의 분석에 따르면 부처 간의 찬반 의견이 팽팽한 것이 이유로 보인다. 반면 정치권은 이 사안을 다루는 소수 국회의원들의 주도로 반대쪽으로 기울고 있다. 과방위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은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을 관철시키며 게임 중독 용어를 게임 과몰입으로 대체했다. 통계법 개정안을 발의한 이상헌 의원은, 여당 국민의힘의 하태경 의원과 함께 게임계의 여론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삼으려 노력하는 주요 정치인이다. 그리고 이런 정치인들의 활동을 언론이 보도하는 모습에서는 논조의 변화가 읽힌다. 국회에서 법안이 발의되어 소위원회에 상정이 되면, 이에 대해 국회 내 전문위원들이 검토보고서를 만들게 된다. 그런데 이상헌 의원의 통계법 개정안 발의에 대한 보도에는 김일권 수석전문위원이 검토보고서 넣은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인정할 경우 관련 규제와 낙인효과가 일으킬 악영향에 대해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법률 전문위원의 의견이 기사화에 포함되는 경우는 많지 않은 바, 언론사가 찬반 중 어느 쪽의 의견에 더 손을 들어주고 싶은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WHO가 ISD를 전면 개정한 2019년에는 ‘게임 중독’이 용어로 사용되면서 게임에 부정적인 기사가 많이 생산되었다. 반면 2020년에는 게임의 순기능을 강조하는 담론이 계속 유통되었고, 이런 여론이 조성되면서 2022년의 게임의 문화 예술 지위가 인정된 문화예술진흥법 개정, 2023년의 게임 과몰입 용어를 사용한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한국의 여론이 어느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언론의 태도 변화로 읽어낼 수 있는 셈이다. 대부분의 경우 정책은 여론을 따라가게 마련이다. 따라서 게임이용장애 질병 코드 등재 사안을 다루는 통계청 민관협의체의 절차가 느린 것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찬반 의견이 강력히 부딪히는 가운데, 코드 등재를 하지 않으면서도 그 부작용 방지를 철저하고 확실하게 하기 위한 일처리를 하는 중이라서 느린 것일 수 있다. 혹은 행정부 내에 코드 등재를 하려는 확고한 의지가 있어서 싸우는 중이라서 느린 것일 수도 있다. 지금 서술한 해석에는 약간의 비약과 희망이 들어가 있으며, 실제는 두 가지 해석 사이의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Tags: 게임중독, KCD-11, ICD-11,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보는 게임’ 제작의 현장을 찾아서 - ‘LCK’ 세계화의 주역, 라이엇게임즈 코리아 진예원 프로듀서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압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이스포츠 리그는 라이엇 게임즈의 LCK (League of Legends Champions Korea)일 것이다. LCK는 국내와 해외 등지의 LOL 게이머들과 프로 선수들의 팬덤을 아우르는 최대의 축제이다. 이 축제에서 관객들은 경기를 관전하는 짜릿함과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린다. 이렇게 LCK는 게임이 가져다 주는 재미를 끊임없이 확장해나가고 있다. 특히 지난 2020년 롤드컵 결승은 미국 방송계의 아카데미상이라고 할 수 있는 에미 (Emmy) 상을 거머쥐어 그 저력을 톡톡히 증명해내었다. 이번 기사에서는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에서 LCK 프로듀싱 전반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진예원 PD를 만나 LCK 제작의 비화를 듣는 것은 물론 이스포츠의 전망까지 살펴보도록 할 예정이다. < Back ‘보는 게임’ 제작의 현장을 찾아서 - ‘LCK’ 세계화의 주역, 라이엇게임즈 코리아 진예원 프로듀서 01 GG Vol. 21. 6. 10.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압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이스포츠 리그는 라이엇 게임즈의 LCK (League of Legends Champions Korea)일 것이다. LCK는 국내와 해외 등지의 LOL 게이머들과 프로 선수들의 팬덤을 아우르는 최대의 축제이다. 이 축제에서 관객들은 경기를 관전하는 짜릿함과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린다. 이렇게 LCK는 게임이 가져다 주는 재미를 끊임없이 확장해나가고 있다. 특히 지난 2020년 롤드컵 결승은 미국 방송계의 아카데미상이라고 할 수 있는 에미 (Emmy) 상을 거머쥐어 그 저력을 톡톡히 증명해내었다. 이번 기사에서는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에서 LCK 프로듀싱 전반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진예원 PD를 만나 LCK 제작의 비화를 듣는 것은 물론 이스포츠의 전망까지 살펴보도록 할 예정이다. 편집장: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진예원: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에서 이스포츠 브로드캐스터 및 글로벌 프로듀서를 담당하고 있는 진예원이다. 주요 업무는 LCK 글로벌 영문 방송을 총괄하는 것이다. LCK는 중국어나 영어 이외로도 6개 국어로 진행되고 있다. 각 방송이 원활하게 제작, 상영될 수 있도록 관련 업무를 조율하는 코디네이터 일을 함께 담당하고 있다. 편집장: 현재 이스포츠가 대중문화로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은 무엇인가? 또 이스포츠만의 독특한 특색이라면 어떤 것이 있나? 진예원: 이제 이스포츠는 단순히 게임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종합적인 미디어 엔터테인먼트로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관객층의 변화에서 가장 뚜렷이 읽어낼 수 있다. 과거 롤드컵의 주 시청자는 리그 오브 레전드를 플레이하고 있는 실제 게이머가 많았다. 이 시청자들은 게이머이자 시청자이다. 프로 선수의 수준 높은 게임 플레이를 보면서 열광하는 동시에 프로 선수의 플레이를 자신의 게임에 접목시켜 보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리그 시청에 새로 유입되는 층은 좀 다르다. 이 시청자들은 본인이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지 않고도 리그 자체를 즐겨 보시는 분들이다. 축구를 직접 하지 않아도 월드컵 시청을 즐길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월드 챔피언십 같은 대형 이벤트를 제작할 때는 이 점을 특히 유의한다. 게임 중계라는 기본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스펙터클한 연출을 통해 시각적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한다. 이스포츠의 또 다른 독특한 점이라면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흐려졌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선수분들도 스트리밍과 다큐 제작 등 콘텐츠 생산을 하고 있고 이런 콘텐츠들을 기반으로 2차, 3차 생산을 하는 열정적인 팬분들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여 만들어내는 콘텐츠 또한 이스포츠 콘텐츠의 일부로 포함할 수 있겠다. 편집장: 국내와 해외 방송을 동시에 관리하며 양쪽의 방송 콘텐츠와 팬덤의 반응을 꾸준히 지켜보고 계시다. 국내와 해외 방송에 차이가 있는지? 각 방송에 대한 반응은 다른 편인지? 진예원: 국내 시청자들의 경우 주로 LCK를 시청하기 때문에 LCK 중심의 피드백이 많다. 그런데 해외 시청자들은 LCK뿐만 아니라 여러 리그를 함께 시청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대형 커뮤니티인 레딧(reddit)같은 경우 리그 오브 레전드 커뮤니티에서 모든 리그에 대한 정보며 하이라이트 영상, 게임 분석 등을 전부 수용한다. 팬덤의 성향 또한 차이가 나는 편이다. 국내 팬덤의 경우 자신이 응원하는 특정한 팀이나 선수를 보러 경기를 시청한다. 해외 팬덤은 프로 게임 경기 자체의 수준높은 플레이 자체를 즐기는 경향이 있다. 캐스팅에서도 국내와 해외의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캐스터들은 플레이에서 주목하는 요소가 각각 다르다. 동일한 플레이를 봐도 다른 관점에서 플레이를 보기 때문이다. POG 노트를 할 때 한국과 중국 등 다양한 해설자가 참여하고 있다. 영어 방송 캐스터는 게임 플레이의 흐름에 집중해서 승리로 가는데 실질적인 기여를 한 선수에 주목한다. 반면 국내 캐스터는 슈퍼플레이나 한타 싸움에서의 영웅적인 활약에 좀 더 집중하는 편이다. 또 해외 캐스터분들은 국내 시청자들이 보기에 당연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부분에 코멘트를 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겨울 시즌 게임에서 날이 너무 건조해서 커다란 가습기를 몇 대씩 가동했던 적이 있었다. 국내 팬분들은 ‘큰 가습기를 쓰는구나’, 하고 넘어가는걸 해외 팬분들은 ‘저 증기는 뭐냐’, ‘선수 귀에서 김이 나온다’, 하면서 정말 재밌어하셨다. 이런 한국만의 맥락을 캐스터분들께서 설명해준다. 국내 선수들이 하나같이 이마를 가리는 앞머리 모양을 하고 뿔테안경을 쓰는데, 왜 한국 사람들은 스타일이 비슷한지에 대한 코멘트를 해주시기도 한다. 팬의 입장에서 궁금하고 또 따라해보고 싶은, 그런 흥미로운 문화로서 한국 문화가 자연스럽게 섞여서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이스포츠 종주국이 갖는 장점이 아닐까? 편집장: 이스포츠 방송 제작에 대해 좀 더 묻겠다. 이스포츠에 있어 게임 화면을 구현한다는 것이 게임 종목에 따라 달라지나? 이를테면 리그 오브 레전드와 배틀그라운드를 연출하는 것에 있어서 차이가 있나? 진예원: 리그 오브 레전드의 경우, 초창기와 현재의 관전 모드는 많이 다르다. 초창기 중계가 다양한 카메라 각도를 활용하여 게임을 생동감 있게 보여주었다면 현재 중계는 챔프의 등 뒤에서 게임을 보는 구도를 쓰는 등, 마치 애니메이션 같은 연출을 하고 있다. 배틀그라운드와 같은 FPS 게임은 총과 칼을 쓰는 등 게임의 룰을 몰라도 누구나 상황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을 만큼 직관적이다. 반면 리그 오브 레전드는 다양한 챔프와 스킬, 아이템이라는 요소가 있어 직관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그 요소들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운용하는 과정에서 선수 개인의 게임 플레이 특징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이스포츠로서의 배틀그라운드는 접근성은 좋되 스펙터클은 약한, 넓고 얕은 게임이라 할 수 있겠다. 또 옵저버의 영향도 있겠다. LCK에는 옵저버 팀이 있는데 한 게임을 여럿이서 지켜보며 적절한 화면을 나누는 방식으로 운영 중이다. 옵저버 팀은 준프로급 실력을 갖춘 분들로 구성되어있다. 옵저버 팀은 맵 곳곳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싸움을 추적하고 경기의 큰 흐름에서 승패에 결정적인 기점이 되는 장면을 잡아내야 한다. 이를 해내려면 반드시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한다. LCK 옵저버 팀의 실력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한다. *진PD는 2020 WORLDS FINAL 제작에 참여하며 에미상 스포츠부문을 수상하는 커리어를 쌓기도 했다. 편집장 : 지난 LCK 결승전은 코로나 감염 방지를 위해 무관중으로 진행되었다. LCK의 결승 무대가 중요한 행사인 만큼 제작자로서 많이 허전하지는 않았나? 진예원: 코로나 이후로 대규모 현장 행사에 제약이 걸린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지난 LCK 결승전을 돌이켜보면 오로지 무관중 상황이어서만 할 수 있는 다양한 연출을 새로이 시도해볼 기회가 되었다. 이를테면 AR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하면서 도시에 떠있는 스튜디오에서 경기를 하는 연출을 했다. 가상과 현실이 절묘하게 섞여있는 독특한 연출을 새로 시도해볼 수 있었다. 또 지난 결승에서는 LCK 영어방송 최초로 분석 방송과 프리쇼를 진행하고, 프리쇼에도 조영길 캐스터를 섭외하는 등 콘텐츠를 다양하게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다. 결승 게임이라는 스펙터클을 제공하기는 어려웠지만 보다 풍성해진 콘텐츠 통해 시청자에게 새로운 종류의 만족감을 드릴 수 있었다. 오히려 무관중 상황이었기에 제작 측면에서 다르게 생각하고 시도할 수 있는 부분이 늘어나기도 했던 셈이다. 특히 지난 LCK 결승 오프닝 무대에서는 TFT 모바일 광고였던 ‘두둥등장’ 영상을 방영하기도 했는데, 국내와 해외 안팎으로 많은 분들께서 좋아해주셨다. 편집장: 다음은 조금 씁쓸한 질문일 수도 있겠다. 현재 이스포츠에서 부동의 1위는 LCK지만 그 위상이 예전같지 않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현장에서도 이런 반응을 느끼는지? 진예원: 전반적으로 다른 리그의 퀄리티가 상향평준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LCK의 위상이 예전같지 않다는 평가가 타당한지는 잘 모르겠다. 재작년까지도 그런 위기감이 있었지만 작년 경기때는 LCK만의 위상을 잘 보여주었다. 다른 지역, 특히 중국의 자본력이나 지원에 비하면 우리는 단일 국가 단위이다.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이만한 성과를 거둬나가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편집장: 이스포츠 산업에서는 리그 오브 레전드가 명실상부한 1위이다. 그런데 리그 오브 레전드의 독주도 벌써 10년이 넘어가고 있다. 게임에도 수명이 있다. 이 인기는 얼마나 갈 것이라고 예상하나? 진예원: 참 어려운 문제다. 이스포츠와 게임 업계의 특성상 변화가 빠르고 또 변화의 양상을 예측하기도 어렵다. 모바일 이스포츠도 성장하는 중이고 모바일이 언제 PC를 넘어설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떤 장르의 게임이 언제 개발되는지, 그리고 그 게임이 이스포츠 종목으로 적합한지 여부에 따라서도 이스포츠 시장은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에 대한 위험은 언제나 짊어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리그 오브 레전드 안팎으로 이 게임을 오래 지속하려는 노력들이 끊임없이 있어왔다. 라이엇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게임에 지속적인 리뉴얼을 해나가고 있다. 새로운 챔프들을 업데이트하는가 하면 리그 오브 레전드 세계관에 기반한 여러 파생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만화 등으로 확장을 도모하고 있다. KDA는 리그 오브 레전드 아이피를 확장하여 케이팝과도 연계한 좋은 사례이다. TFT와 같은 전략적 팀전투도 이스포츠화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 바깥을 살펴보면 이스포츠를 기반으로 한 여러 제도들이 해외를 중심으로 생겨나고 있다. 대학에 이스포츠 전공이 생기는가 하면 칼리지 이스포츠의 형태로 지역 리그가 형성되기도 한다. 이러한 기반들이 리그 오브 레전드, 더 나아가 이스포츠의 확고한 자리매김을 도울 원동력이 될 것이다. 편집장: 마지막 질문이다. 조금 뻔한 질문일 수도 있겠다. 이스포츠 문화의 현장에서 이스포츠라는 단어를 어떻게 평가하나? 진예원: 이스포츠만의 독특한 시간 감각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입사 초기에 있었던 일이다. 우리는 오후 2시에 출근을 하는데 캐스터분들이 ‘좋은 아침!’ 이라고 인사를 해주셨다. 아침이 아니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이건 이스포츠식 시간이라면서 다들 밤을 새고 이제 일어나지 않느냐고 말씀하셨다. 또 시간 감각 자체가 무척 빠른 것도 있다. 중계 메인 캐스터들의 일정도 바쁘게 돌아가지만 그 사이 유튜브나 커뮤니티 등지에서 끊임없이 생산되는 콘텐츠를 따라가고 사건사고를 체크하느라 하루가 무척 빠르게 지나간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운 인디음악 씬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예술사회학 연구와 (공연)사진 촬영에 매진중이다. 라캉 정신분석 철학서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영번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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