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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회] <어쌔신크리드: 섀도우스> 야스케 논란을 보는 여러 관점들
2024년 공개된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스>는 시리즈 최초로 일본 전국시대를 무대로 삼으며, 여성 시노비와 흑인 사무라이라는 두 명의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워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작품이 공개된 이후 흑인 사무라이 주인공의 인종과 배경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졌으며, 이는 국내외 커뮤니티에서 역사 고증의 문제를 넘어 서구중심주의나 PC주의 비판 등의 다양한 논쟁으로 확산되었다. 이번호 GG에서는 홍현영 박사, 이정엽 박사, 강신규 박사 세 명의 디지털 게임연구자 및 인문사회 연구자들을 만나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를 둘러싼 여러 층위의 쟁점을 나누고, 오늘날 게임이 재현하는 역사와 정체성의 의미와 딜레마를 검토해 보았다. < Back [대담회] <어쌔신크리드: 섀도우스> 야스케 논란을 보는 여러 관점들 24 GG Vol. 25. 6. 10. 2024년 공개된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스>는 시리즈 최초로 일본 전국시대를 무대로 삼으며, 여성 시노비와 흑인 사무라이라는 두 명의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워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작품이 공개된 이후 흑인 사무라이 주 인공의 인종과 배경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졌으며, 이는 국내외 커뮤니티에서 역사 고증의 문제를 넘어 서구중심주의나 PC주의 비판 등의 다양한 논쟁으로 확산되었다. 이번호 GG에서는 홍현영 박사, 이정엽 박사, 강신규 박사 세 명의 디지털 게임연구자 및 인문사회 연구자들을 만나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를 둘러싼 여러 층위의 쟁점을 나누고, 오늘날 게임이 재현하는 역사와 정체성의 의미와 딜레마를 검토해 보았다. 이경혁 편집장: GG의 이번 호 대담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배경설명을 해 드리자면,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는 17년 정도 된 오래된 프랜차이즈고요. 그간 예루살렘 근방의 어쌔신 집단, 이탈리아 피렌체, 미국 독립 전쟁 등 역사적 배경을 기반으로 하다가 사실상 시리즈 최초로 동아시아를 다룬 게 이번의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스> 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 전국시대 끝 무렵을 다루면서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의 인물이 나오게 됩니다. 이번 작품에는 두 명의 주인공이 있는데, 하나는 ‘후지바야시 나오에’라는 일본 여성 시노비이고 나머지 하나는 ‘야스케’라는 흑인 사무라이입니다. 이 중 후자가 이슈가 되었죠. ‘일본을 다루는 게임인데 일본인이 주인공이 아닌 경우가 어딨냐, 서구인들이 멋대로 만든 것이다’라는 이야기도 있고, 특히 무슨 게임이 나와도 항상 나오는 얘기입니다만, ‘고증이 엉망이다’라는 등의 여러 논란이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흑인의 재현에 관한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스>의 논란이 기존의 논란과는 다른 맥락에서 벌어진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논란에서 어떤 점에 주목을 해야 할지, 그리고 이 논란을 가장 효과적으로 극복하고 다음 게임과 게임 담론을 만들 때 우리가 고려해야 될 건 무엇일지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일단은 다들 관련 이슈를 보시니 어땠는지요? 커뮤니티 반응은 어떠셨을까요? 역사적 인물 ‘야스케’, 고증인가 상상력인가 홍현영 박사: 야스케라고 하는 캐릭터가 실제로 역사적 사료에 잠깐 등장한 내용을 굉장히 부풀려서 만들어낸 캐릭터잖아요. 커뮤니티 몇몇 댓글을 보면 저는 그게 궁금하더라구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무라이의 삶’이 있는것 같은데 그게 뭘까. 사무라이로서 재현되어야 되는 특정한 삶과 자격이 있는데 야스케가 그 자격에 속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또 이런 댓글도 봤습니다. 노부나가가 실제로는 야스케를 일종의 트로피처럼 데리고 다녔을 거다. 인간으로서의 존재라기보다는 과시하기 위한 하나의 사물이나 대상에 가까웠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이런 댓글을 굉장히 확신에 찬 태도로 쓴 사람들이 한국인들이라는 점이 가장 신기하고 흥미롭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경혁 편집장: 일본 현지에서도 흑인 사무라이에 대해서 여러 말이 많았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이정엽 박사: 역사적으로는 야스케가 실제로 사무라이가 아니라고 하는 설도 있지만, 노부나가에게서 정식 사무라이가 될 때 받는 태도(太刀)와 집을 받았고 부하처럼 데리고 다녔다는 설들도 있습니다. 사실 전국시대가 게임뿐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많이 재현되었고, 202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다룬 NHK 대하드라마의 사례처럼 기존의 역사관과 다른 인물상이 재현되기도 했거든요. 저는 콘텐츠 안에서 허용될 수 있는 변용의 범주가 있다고 보고, 그런 점에서 야스케를 무사로 격상을 시켜서 활용할 수는 있다고 봅니다. 어떻게 보면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는 일종의 대체 역사물을 펼쳐왔기 때문에, 이 시리즈에서 그간 정사에 완벽하게 맞게끔 나왔던 주인공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이게 우리나라와 상당히 밀접한 형태의 역사로 다가오고, 특히 일본이 조선을 침공했었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일본 역사와 관련해서는 우리가 상당히 민감히 볼 수밖에 없게 되는 ‘감정적 요인’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제가 처음 <어쌔신 크리드>를 하며 충격받았던 부분은, 야스케가 주인공일 때 플레이어가 ‘일본어를 할 줄 안다’와 ‘침묵’ 사이에서 선택하게 하잖아요. 여기서 전자를 고르면 반 년도 안 되어 오다 노부나가의 곁에서 같이 전투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야스케가 노부나가와의 심리적인 거리를 좁혔음을 보여주는 부분이죠. 그 장면을 보며 ‘이 게임은 이런 형태로 극적인 허용을 최대치로 넓혀 놓고 상상력을 발휘해 들어가는구나’ 싶었고, 그때부터 이 게임에서 고증과 관련된 검증은 내려놓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히려 야스케가 노부나가의 최심복이 되었다고 가정하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내용이 얼마나 흥미로운가의 여부만 초점을 놓고 파악하자는 거죠. 이경혁 편집장: 인정적인 면에 조금 더 주목을 해보죠. 일본인이 아닌 사람이 주인공이라서 문제가 된 거라면, 만약 그 주인공이 흑인이 아니라 백인이었다면 어땠을까요? 홍현영 박사: 방금 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무라이의 상’을 언급한 바 있는데요. 아까 토템이나 트로피 이야기도 그렇고, 흑인 사무라이 비판 담론들에서 야스케는 정말 뭐랄까 ‘인간’으로서의 행위가 가능한 주체로 표현이 되지 않고 있거든요. 일본 전통이나 서브컬처에서 활용되는 사무라이의 전형성이라는게 있다면,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주체로 호명될 수 있는 존재는 흑인이 아니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는 것처럼 보여요. 이경혁 편집장: 생각해 보면 서양인 사무라이 설정도 영화로는 꽤 나왔던 것 같은데, 거진 백인 사무라이였네요. 강신규 박사: <어쌔신 크리드>에서 백인 사무라이가 나왔어도 논란이 되었을 수 있지만, 야스케라는 캐릭터는 어떻게 보면 재현을 두 번 비튼 거죠. 사무라이를 백인도 아니고 심지어 흑인으로 만듦으로써 사람들의 어떤 문화적 고정관념을 굉장히 거슬리게 했기 때문에 더 그런 반응이 나왔던 게 아닌가 싶어요. 아무리 서양 회사에서 만든 게임이라 해도 동양 고유의 사무라이라는 직업을 다룰때는 어떠해야 한다는 생각이 배경에 깔려있는 거고, 흑인이 등장하니 이 불쾌함을 지우기 위해서 ‘원래 역사적으로는 어땠냐’ ‘실제로 이게 가능한 거냐’는 말을 들고 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앞서 선생님들의 말씀과 연결되지만, 저는 여기서 제일 중요한 건 역사 왜곡도 아닌 것 같고, 오히려 일부 게이머들이 욕하는 PC 강요가 좀더 맞아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궁극적으로 흑인 사무라이 논란은 ‘하나의 게임 안에서 다양성과 핍진성을 중심으로 한 재현의 정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한 거죠. 게다가 유비소프트의 그동안의 게임들은 대체로 이래 왔습니다. 오리지널에서도 이집트 사람, 바이킹 등 여러 민족들이 등장해 왔지만, 동아시아적 남성성의 핵심 이미지가 강하게 박혀 있는 사무라이에 흑인 캐릭터가 배치되자 이런 논의가 불거졌던 것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야스케가 화제가 제대로 됐을 거라 생각하고 재현의 정치나 다양성의 정치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효과가 있었을 거라고 봅니다. 이정엽 박사: 사무라이가 실제로 전투했던 방식이 게임 메카닉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살피는 것도 재밌는 부분입니다. 전국시대 전투에서 오다 노부나가의 특징은 부대를 조직적으로 편성하려는 욕망이 강한, 구조주의적인 다이묘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그런 자의 심복들이 게임에서는 ‘암살 닌자’와 ‘무쌍 찍는 흑인 무사’로 재현된다는 것이죠. 잘못하면 조총 한 방 맞고 끝날 수 있는 상황을 매우 판타지적으로 재해석하는 건데요. 사실 <다크 소울>로 대변되는 액션 RPG류가 히트를 치다 보니까, 유비소프트에서도 트렌드에 맞춰야 한다는 어떤 강박이 있었을 것이고 그에 따라 게임의 액션성을 강화하려던 시도가 아니었나 싶어요. 거기에 가장 맞는 형태의 캐릭터를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기존의 잠입액션을 포기할 수 없어서 나오에를 넣었고, 무쌍을 위해 야스케를 넣으면서 양쪽을 다 잡는 일종의 절충안을 넣은 게 아닌가 생각이 들더라고요. 강신규 박사: 결국 이런 인물들에게 서사 권력을 어떤 식으로 나누어 줄지에 대해 이정엽 선생님이 운을 띄워주신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아직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스>를 플레이해보지 못했지만, 말씀을 들어보면 전투 방식부터 해서 현지 언어를 할 수 있느냐 이런 부분들까지, 게임 속 흑인 사무라이의 캐릭터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정할지에 대한 최종의 결정권을 게임 플레이어에게 주는 것 같네요. 말씀하신 대로 유비소프트의 결정 자체가 굉장히 정치적이었다는 생각이 들고, 그쪽에서도 당연히 이런 논란이 없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 보입니다. <어쌔신 크리드>에 드러난 오리엔탈리즘의 문제 이경혁 편집장: 사실 <어쌔신 크리드>는 기존에 암살이 메인인 게임이었잖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암살이 잘 안 나오는데 그 이유는 암살이라는 메카닉 자체가 갖는 일종의 지루함 때문일까 싶거든요. 처음 암살을 해보면 숨는 기분도 들고 굉장히 재미있지만, 규칙에 익숙해진 순간부터는 넘기 힘든 벽이 있습니다. 무쌍은 액션 상황을 칼질 몇 번에 금방 해결할 수 있지만, 암살은 기다려야 하니 게임 플레이 시간도 늘어지죠. 그 때문에 게임 메카닉적인 면에서도 액션을 강렬하게 표현한 캐릭터가 필요했고, 그러다 보니 일본의 무예를 대표하는 두 가지 캐릭터인 시노비와 사무라이를 선택한 게 아닐까 싶어요. 근데 우리의 핵심 주제는 ‘왜 그 사무라이는 흑인이었을까’가 되는거죠. 관련해서 얘기하고 싶은 부분은, <어쌔신 크리드>를 하다 보면 계절이 바뀌는 묘사가 상당히 디테일하다는 점입니다. 그런 걸 보면서 서구에서 일본이라는 동아시아 국가를 특징짓는 요소 중 하나가 극심한 계절변화가 아니었을까 싶더라구요. 다시 말해 이 게임은 기본적으로 ‘서구에서 만들어진 게임’이라는 전제 자체가 매우 명확하고, 오리엔탈리즘 이야기를 안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신규 박사: 그런데, 애초에 게임이라는 무국적인 공간 안에 일본을 구현하는 것도 굉장히 의도적인 것이기에 그 재현은 당연히 실제와 상관이 없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어쨌든 유비소프트에서 만든 그동안의 게임이나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서는 전부 사실성이 중요한 게임은 아니었다고 하셨잖아요. 이경혁 편집장: 그 말도 실은 조금은 모순되는 게,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는 언제나 대체 역사물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역으로 항상 역사가 중요했던 게임이기도 하거든요. 실제로 일어난 역사에 기반해서 만들어졌다는 점도 그렇고, 게임의 주요 홍보 포인트로 ‘플레이어가 현장에 가서 진짜로 전자 관광을 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을 내세우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에는 관광 모드까지 있죠. 이정엽 박사: 동의합니다. 제가 거부감이 조금 들었던 부분은 야스케가 실제로 일본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는데도 오다 노부나가와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눌 정도로 일본어를 너무 잘하고, 일본에 있는 다양한 문화적인 습성들을 굉장히 빠르게 내면화한 캐릭터라는 거였어요. 이때 ‘흑인’이라는 설정은 사실상 스킨 같은 것이고, 실은 서양인들 입장에서 ‘일본의 대체역사 안에서 내가 무사가 된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라는 부분을 빠르게 체험할 수 있게 만들어준 하나의 시뮬레이션이라 생각합니다. 계절 표현이나 게임 구조물들도 꽤 고증이 잘 된 게임이지만 문제는 캐릭터 설정에서 ‘흑인이면 응당 가졌어야 할 이 문화에 대한 낯섦’, ‘일본 문화권과 흑인이 부딪히는 충돌의 지점’들이 충분히 나왔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근데 그 지점이 거의 재현이 안 된거죠. 프란츠 파농이 이미 후기 식민주의의 문제점으로 식민지 본국에서 가진 심상들을 식민 지배를 당하지 않은 세대의 사람들도 내면화하는 것을 지적한 바 있지요. 야스케를 만약 문화적 충돌이나 갈등이 들어가는 캐릭터로 묘사했다면 상당히 설득력과 핍진성 있는 캐릭터로 빠져나갈 수 있었을 텐데요. 이를 삭제한 채로 완벽하게 일본적인 것을 내면화한 흑인 사무라이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일본식 무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니 의문이 드는 거죠. 설정까지는 그런 허용을 할 수 있어도 세부적인 재현에서는 여러 문제가 있고 그게 더욱 우리의 거부감을 증폭시켰던 건 아닌가 싶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앞뒤를 잘라놓고 보면, 야스케는 그냥 검은 피부의 일본인일 뿐인거죠. 홍현영 박사: 저는 오히려 의도적으로 이질적인 흑인 캐릭터를 선택함으로써 외국인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일본에 대한 상을 부각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했는데, 그거는 그냥 유비소프트에 대한 저의 과도한 기대였고(웃음) 전혀 그런 방식으로 나오지 않는군요. 강신규 박사: 그러니까 그 캐릭터가 거기에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맥락이나 복잡할 수 있는 이 사람의 여러 정체성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는 거네요. 이경혁 편집장: 최소한의 서사를 위한 고려는 되어 있지만 정말 스토리텔링에서의 세팅일 뿐이고, 사실 게임에서는 그보다 야스케라는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다른 NPC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봐야 하거든요. 게임 중간에 국숫집 아저씨와 농담을 나누는 부분이나 일본의 다양한 진미를 모으는 서브 퀘스트 같은 게 나오는데, 일본 땅에 온 지 얼마 안 된 낯선 흑인 캐릭터가 능숙하게 농담을 하고 일본의 진미를 다 알아보는 걸 보면 약간 이상하게 느껴지긴 하죠. 이정엽 박사: 지금 시대에는 일본이 굉장히 인기 있는 여행지이기도 하고, 우리 세대에서는 일본 문화에 대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다 한 번씩은 접해봤을 것이기 때문에 서양인의 입장에서 다루기 제일 좋은 지역이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어떻게 보면 자신이 이렇게 ‘약간만 알고 있는 공간’이 이런 형태의 판타지적 허용을 가장 쉽게 설정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이경혁 편집장: 전국시대라는 배경 또한 그렇습니다. 가장 일본에서 유명한 시대기도 하고 이미 역사적으로 서양이 개입한 시대거든요. 그래서 <어쌔신 크리드>가 참 영리한 선택을 했으면서도 한계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게, 결국 서양인이 일본에 들어오는 시대를 선택했잖아요. 물론 역사적 맥락상으로도 예수회가 들어오고 서양인 선교사들을 따라 템플 기사단과 암살단이 들어온다는 선택을 하는게 자연스럽죠. 이미 기존의 프랜차이즈 시리즈에서 암살단의 기원을 서구 역사에 따라가는 것으로 밝혀놨기 때문에, 일본에서 암살단이 자생적으로 나타났다고 쓰면 기존의 설정이 다 붕괴되는 거니까요. 그렇지만 결국 이렇게 왔기에 이 이야기는 ‘일본의 암살단 이야기’가 될 수가 없다고 봅니다. <어쌔신 크리드>라는 프랜차이즈 안에서 이후에 어떤 제3세계를 건드리건, 이 이야기는 반드시 이미 서구의 역사에서 완성된 암살단과 기사단 이야기가 제3세계에 넘어가는 형태로 나갈 수밖에 없게 될 겁니다. 히스토리아 자체가 이미 서구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시리즈가 이야기의 다양성을 만들려면 무대도 바꿔야 되고 이제 계속 다른 세계를 다뤄야 되거든요. 어쩔 수 없이 그 확장의 과정 또한 이미 역사에 존재했던 제국주의적 확장의 과정을 따라갈 수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이정엽 박사: 말씀하신 대로 템플 기사단으로부터 비롯된 형태의 대체 역사가 인류 역사의 여러 단면들을 거쳐 간다는 <어쌔신 크리드> 설정의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부분을 그간 어떤 균열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 대부분의 문명권이 서양의 흐름을 어느 정도 따라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유비소프트의 개발자들이 간과했던 부분들은 ‘서양인 개발자’가 대체역사를 만들었을 때 아시아 유저들이 갖는 문화적 거리감이, 같은 것을 동양인 개발자가 만들 때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적용이 된다는 겁니다. 여전히 역사를 다루는 데 있어 ‘너희가 왜 우리 역사를 다루니’라는 식의 어떤 서로 넘어서는 안 되는 장벽들이 각 문화권 내에 심리적으로 존재하는 부분이 있고 그걸 건드린 거라고 봐요. 이를테면 한국의 개발사가 나오에의 암살물과 야스케의 무쌍물을 만들겠다고 하면 과연 이런 오리엔탈리즘 비판이 나왔을까 싶은 거죠. ‘역사’와 ‘관광’의 모순된 결합 홍현영 박사: 기존의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는 서양 세계 내부 구성원이 등장하는 방식이었거든요. 실은 우리는 우리가 잘 모르는 세계에 대한 재현들이 얼마나 평면적이고 얄팍한 방식인지 포착하기 힘들잖아요. 그런데 이번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역시도 어쩔 수 없이 ‘서양인 관광객’이 가지고 있는 1차원적이고 평면적인 시선에 가깝게 재현된다는 문제가 있지 않나 싶어요. 아까 이야기한 야스케가 오사카의 명물 음식을 먹는 장면은, 과연 관광이랑 무엇이 다를까요? 물론 이 게임에서 전자 관광이 중요한 모티브이기는 하지만, 달리 이야기하면 그 시대가 가진 특수한 맥락이나 다양한 재현 양상들을 보여준다기보다는 전자 관광에서 요구할 만한 부분에 대한 1차적인 충족만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어쌔신 크리드>가 가지고 있던 배치 구조를 그대로 따르는 데 그쳤다고 보입니다. 이경혁 편집장: ‘관광’이란 표현이 그래서 굉장히 핵심 키워드라고 느껴집니다. 태초부터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는 관광이라는 요소가 있었지만, 문제는 이뿐 아니라 이 시리즈가 역사라는 키워드를 또 하나 끌고 간다는 거죠. 하지만 역사는 관광과는 달라요, 같을 수가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동안 ‘역사 관광’이라는 이름으로 둘을 계속 꿰맞추려는 시도를 오랫동안 해 왔어요. 역사를 기반으로 한 투어 프로그램도 굉장히 많잖아요. 저는 그런 역사 관광이라는 말이 갖고 있는 모순을 이 게임이 어느 순간 정확하게 보여준 게 아닌가 싶어요. 이정엽 박사: 저는 조금 더 너그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앞서 말씀드렸습니다만 극적인 허용과 설정 변용을 자국 개발자나 비슷한 형태의 문화권 개발자가 하면 문제가 덜 되는데, 왜 서양 개발자가 하면 큰 반발과 문화적인 배리어가 발생하는지 짚고 싶어요. 예를 들면 조지 루카스가 <스타워즈>에서 사무라이 문화를 재해석하는 형태로 ‘광선검’을 보여주었던 것처럼 은유적인 시도들은 굉장히 많이 있었죠. 그냥 그렇게 바라보듯이 허용을 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문제가 쉬워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이경혁 편집장: 저는 선생님 말씀을 들으며 동의도 되지만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사례를 보면 다르게 생각도 됩니다. 이 드라마를 굉장히 재미있게 봤지만 조금 찜찜하게 느껴졌던 부분은 이 드라마가 구한말 항일의병 독립운동 이야기잖아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독립운동의 주체는 다 외세란 말이죠. 주인공도 미국인이고. 하지만 우리는 별로 그거에 대해서 거부감을 안 느껴요. 결국 <미스터 션샤인>은 한국 제작진이 만들었다는 점에서 달라지는 것 같아요. 만약 똑같은 기획을 간사이에서 제작했다고 생각한다면 얘기는 정말 달랐을 겁니다. 강신규 박사: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 만약 유비소프트가 일본 회사고 야스케가 한국 사람이었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만히 있었을까요? 설령 우리나라에서 만들었다고 해도 논란이 되는 사례들도 있을 겁니다. 저는 <미스터 션샤인> 같은 사례가, 이를테면 누가 만들었느냐도 보여줄 수는 있지만 ‘얼마나 자연스러우냐’가 더 중요한 거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요. 어쨌든 역사를 재현하는 것 자체는 사실 무조건 해석의 산물인데, 그걸 종합적으로 봤을 때는 우리가 말한 모든 걸 다 고려해야 한다는 거죠. 누가 만들었고, 다른 문화에 대해서 어떻게 재현하고 있으며, 그게 얼마나 안에서 잘 녹아 있는지 등등 말입니다. 홍현영 박사: 저는 <미스터 션샤인>이 인물의 정체성을 그렇게 단순화시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어쌔신 크리드>와 같게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일례로 ‘유진 초이’라는 캐릭터는 미국인이 될 수밖에 없는 맥락이 있었어요. 이 사람은 백정 출신으로 기본적으로는 국민으로 호명되지 않는 존재였잖아요. 처음부터 조선인의 바운더리 안에서 튕겨져 나가는 존재였죠. 유일하게 지위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은 다른 국적을 취득하는 것이었고요. 그랬기 때문에 다른 국적을 취득했고 심지어는 국민으로서 한 번도 승인받은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다시 조선에 들어와서 조선인이기를 기대받는 행위를 한다는 것 자체가 갖는 매우 아이러니한 공감대가 있는 거죠. 저는 야스케도 이런 식으로 복합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 그려졌다면 그렇게까지 사람들이 화를 냈을까 싶습니다. 이정엽 박사: 유비소프트에서 <어쌔신 크리드>의 제작처가 몬트리올 스튜디오인데, 몬트리올이 독특한 형태의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는 것도 생각해 볼만 합니다. 몬트리올이 캐나다에 있지만 영어와 불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동시에 다 들어가 있잖아요. 정형화된 어떤 민족성 같은 것들로부터 굉장히 거리가 떨어져 있는 공간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조금만 내려가면 뉴욕 등 여러 민족들이 사는 용광로 같은 도시들이 있기 때문에, 이런 형태의 문화적인 교류나 상상력을 개입시키는 것도 자연스러운 접근이었다고 봅니다. 근데 동아시아인들이 민감하게 느끼고 있는 부분까지는 고려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고요. 글로벌화되었다고 하지만 동아시아는 아직까지 자국 내 문화를 중점적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공간이잖아요. 아마 <어쌔신 크리드>에서 그리스나 이집트 사례를 내부까지 파고 들어가면, 실질적으로 서양 사람의 입장에서도 그 안에 문화권을 정형화시키고 스테레오 타입을 만드는 등 문제적으로 느껴질 구간들이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우리가 포착하지 못했을 뿐이겠지요. 이경혁 편집장: 최소한 일본을 배경으로 만든다고 했으면 일본 쪽의 자문진이 더 두꺼웠어야 한다, 그 정도는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이것은 어떤 제작자가 만들더라도 타자화를 끌고 올 수밖에 없는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필연적으로 관광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어떤 관광객도 주체일 수는 없거든요, 항상 타자인 거고. 홍현영 박사: 그렇죠, 그래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야스케가 아쉽습니다. 관광객의 장점은 사실 그 구역 내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고착화된 통념이나 기대 지평, 사고, 세계관을 오히려 바깥에서 다른 방식으로 느슨하게 사유할 수 있다는 점이거든요. 야스케가 차라리 관광객이었다면 어땠을까요. 게임 시리즈의 정체성과 캐릭터 기대지평의 충돌 이정엽 박사: 사실 <어쌔신 크리드>에서 특이하게 재현되는 부분은 동아시아에서 흑인의 존재를 정말 모르다 보니 야스케를 바라보는 일본인의 반응을 열심히 구현했다는 점이에요. 야스케를 바라보며 눈치 보고 놀라는 일본인의 모습이 많이 나오는데 정작 야스케는 거기에 있어서 특별한 반응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 놀랍죠. 제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야스케에 대한 재현보다는 개발자들이 뭘 그리고 싶었는가입니다. 야스케의 존재를 빨리 서양 유저들에게 내면화시키고 싶었고, 그 때문에 어떤 형태의 통역이 필요한 형태의 존재가 아니게끔 철저하게 서양식으로 캐릭터화된 존재를 만드는 게 목표였던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이 캐릭터가 암살단의 일원이 되어서 기존의 업무들을 수행해야 하는데, 이 문화권에 거부감을 느끼는 캐릭터 존재가 나온다면 전 시리즈의 어떤 통일성에 위배가 되는 부분이기도 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 문화권에서 특이하고 이질적인 형태의 존재를 집어넣었지만, 플레이어가 얘한테는 빨리 동화되어야 하고. 그러나 그 인물이 흑인이라는 형태의 인지는 계속 주어야 하기 때문에, 그곳의 인물들은 야스케를 이상하게 바라보지만 ‘나는 매우 일본화한 캐릭터다’라는 것들을 끊임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홍현영 박사: 달리 말하면, 지금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과 흑인 캐릭터 재현에서 드러나는 기대 지평들이 계속 부딪히는 거네요. 이경혁 편집장: 그렇죠. 아까도 얘기했지만 이 시리즈는 결국 서구의 시리즈인 건데, 동양 얘기를 하려니까 어려워진 것이지요. 그런데 나름 플레이를 해보면, 중간중간의 설정이나 장치를 보면 개발자들이 이 문제를 나름 고민했다는 것도 느껴져요. 제일 대표적인 게 주인공을 듀얼로 설정한 것입니다. 암살의 시노비와 액션의 사무라이를 설정함으로써 젠더나 인종 차원에서 다양성이 고려된 설정 등으로 이야기가 됐을 겁니다. 결국 이 논쟁의 근본적인 문제는, 재현이나 고증 차원의 이야기보다 역사는 서구에 의해 쓰였다는 점을 게임 내 장치로는 미처 넘어서지 못한 게 제일 큰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강신규 박사: 우리가 이 게임에서는 야스케라는 존재를 통해 ‘서구 중심의 동양 재현’이라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을 텐데요. 이런 식의 어떤 경유 지점이나 시그널이 없는 다른 일반적인 게임들에 있어서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지도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또한, 오늘 자리가 만들어진 계기는 사실 플레이어들이 이 이슈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느냐였지요. 한국에 있는 많은 플레이어들이 이 문제를 역사왜곡 뿐 아니라 PC 비판 등의 담론을 통해 접근한다면 이에 대한 논의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도 논의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정엽 박사: 우리가 야스케 얘기는 많이 했지만 시노비인 나오에에 대한 얘기는 별로 안 했던 것 같아요. 실제로 여성 닌자가 존재했었냐는 의문이 있고 일부에서는 여성 닌자가 고위 인사들의 운송이나 특수한 형태의 임무 수행을 위해 있었다고는 하는데요.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스>에서는 여성 닌자를 중점적인 역할로 배분해서 암살과 무쌍을 동시에 할 수 있게끔 캐릭터를 배분했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기존 시리즈에서 ‘에지오’를 중심으로 나왔던 전형적인 캐릭터성을 여기 와서 해체하는 거죠. 다만 앞서 말씀드렸듯 이 게임에서 고증은 더 이상 제 생각에는 중요한 목표가 아니었다라고 보여져요. 이경혁 편집장: 약간 멍에를 쓴 것 같기도 해요. 아까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일까의 문제를 이야기하셨는데, 이 게임의 원래 정체성과 메카닉 자체는 지루해졌고 대중들이 환호하는 쪽으로 가기 시작했더니 다른 문제들이 터지고 좀 이런 문제가 있지 않나 싶어요. 이정엽 박사: 우리가 지금까지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 대해 암살 메카닉과 관광 등을 쭉 얘기해 왔는데, 이제 그 정체성에 있어서 관광은 유지하고 있지만 암살이나 서양 중심에 대한 정체성은 포기한 것 같기도 해요. 시리즈의 변화를 가져오겠다는 식으로 일종의 선언을 한 것으로도 느껴지거든요. 이경혁 편집장: 오히려 그래서 그냥 고증을 떠나 우리는 서양인의 시각에서 하는 게임이라고 세게 밀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이정엽 박사: 그러려면 아예 정말 더 문화적인 은유가 들어갔어야 했는데 매우 리얼하게 묘사해 놓고 ‘우리는 서양 중심적으로 할게’라고 얘기하니까 그 이율배반이 나오는 지점이 있는거죠. <어쌔신 크리드>를 하다 보면 극사실주의적인 묘사를 했기 때문에 정말 그곳 안을 거니는 듯한 느낌이 있잖아요. 굉장히 재현이 잘 되어있고 그걸 관광의 요소로 넣는 게 사실 이 시리즈의 미덕이었는데 그걸 포기할 수는 없었을 테고요. 이경혁 편집장: 관광이라는 게 분명히 장점도 있지만 갖고 있는 한계가 매우 명확한데, 그것이 게임이 되고 특히 역사라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조심스러운 소재와 만났을 때 결국은 충돌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 계속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이정엽 박사: 이를테면 역으로 매우 옥시덴탈리즘적으로 만들어진 게임이 있어요. 여러분들이 잘 아는 <대항해시대>라는 게임입니다. 이 시리즈를 보면 서양 재현에 있어 굉장히 일본적인 시선이 많이 들어가 있고, 일본인 자신들의 문화권을 서양과 비교하고 싶어하는 욕망들이 그 안에 기본적으로 내재해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걸 통해서 일본의 게임 회사들이 자신의 문화를 거울처럼 보여주는 방법론을 그동안 펼쳐왔던 것이구요. 그런데 우리는 그 게임을 플레이할 때 서양이 왜 이렇게 재현되었는지에 있어 상대적으로 덜 민감하다는 거죠. 마찬가지로 서양 문화권 사람들이 이 부분에서 옥시덴탈리즘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걸 게임적인 허용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거든요. 물론 아시아권이 오랜 기간 서구 문명에 의한 피식민 체험을 했기 때문에 이 문제를 다루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양보가 불가능한 지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서양만 동양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동양 또한 서양을 그렇게 포장을 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그렇게 그려왔던 게 게임이라는 것도 사실입니다. 선생님들과 제가 견해가 좀 다를 수는 있겠지만, 이런 형태의 서양이 보여주는 시각 자체를 어느 정도 긍정할 필요도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해당 문화권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않는 이상 그 문화권 사이에서 해석의 문제는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고 그런 형태의 문제 제기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얼마든지 나올 수 있고 충분히 건설적으로 갈 수 있는 문제인데 이것 자체를 그리지 못하게 막는다는 게 잘못된 발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커뮤니티 내 플레이어의 반응들에 대해 이경혁 편집장: 우리가 이 논란을 게임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봤었잖아요, 저는 거기서 흑인이라는 키워드도 꽤 다양한 역할을 했다고 봐요. 게임 커뮤니티에서 논의되는 ‘흑인’은 이 게임에서 단독으로 유래된 맥락은 아니었습니다. 이를테면 <인어공주> 와 같이 그 앞에 있었던 흑인 캐릭터의 맥락들이 있어요.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흑인의 활용에 대해 비판적인 이야기를 오래 해온 커뮤니티의 입장에서 형성된 흑인에 대한 이미지가 있고, 이것이 <어쌔신 크리드> 논쟁에 와서 달라붙은 것은 아닐까 싶거든요. 이정엽 박사: 저는 이 부분에서 개발자와 유저 상호가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을 충분히 보려고 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계속한다는 점을 문제삼고도 싶습니다. 실제로 미국 게임 개발자 사이에서 고집스러운 PC주의적인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컨텐츠가 나올 때, <더 라스트 오브 어스 2>의 사례처럼 이에 대한 백래시도 너무나도 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은 야스케는 역사적인 근거도 있고 어느 정도 개연성이 있게끔 만들어진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작품들에서 유래하는 백래시의 영향을 받아 지나치게 세게 얻어맞고도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충분히 허용할 수 있는 역사적 상상력을 넣어서 나름대로 고증에 성공해서 갔는데도 PC주의로 매도당하는 측면이 있는 거죠. 그런 백래시를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나름대로의 고증을 갖춘 형태의 게임의 근거 자체를 무너뜨리는 건 매우 문제적이라 봅니다. 우리가 역사서를 쓰는 게 아니고 콘텐츠를 재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의견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작품이고 그 안에서의 주관적인 해석은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얼마든지 허용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개발자가 어느 정도 의무감을 가지고 그 안에서 그 세계관이 갖추는 나름대로의 핍진성을 추구해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개발자도 유저도 그 원칙들을 양쪽 다 위배하며 서로 간의 진영 싸움을 오랜 기간 고집스럽게 벌여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실은 ‘자신이 어떻게 재현되는가’의 문제를 정말 중요시하기보다 ‘이 싸움에서 이기고 싶다’라는 것이 모든 양쪽 진영의 목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콘텐츠가 그를 통해서 오히려 더 손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이경혁 편집장: 오늘 나온 이야기를 종합해서 앞에 얘기와 붙여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흑인 사무라이’ 야스케는 그 앞에 흑인 캐릭터 설정에 대한 맥락이 없었다면 생각보다 별 문제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냥 ‘흑인이 온지 얼마 안 됐는데 왜 이렇게 일어를 잘해’라며 웃고 넘어갔을 문제였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결국 이 담론이 커뮤니티에서 나왔다는 것, 그리고 커뮤니티에는 그 앞의 맥락이 있었다는 것이 핵심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야기를 끌면 한도 끝도 없는 주제이긴 하지만, 약속드린 시간이 다 되어 대담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수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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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8 온라인이 보편화되면서 게임 또한 계정 생성과 로그인을 통해서 접근가능한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다. 서버로부터 분리되어 작동하는 오프라인 게임 시대로부터 진화해 온 현대의 게임에서 오프라인 게임은 어떤 유산을 남겼고 어떻게 역사에 남을 것인가? BIC 2022 탐방기 9월 1일부터 9월 4일 까지 부산역 근처 부산항 국제전시 컨벤션센터에서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인디게임 행사가 열렸다. 부산 인디 커넥트 페스티발이다. 올해로 8번째를 맞은 이 행사는 코로나로 인해 2020년 은 완전 비대면으로, 2021년엔 사전선정자만 오프라인으로 참여할수 있게 한정적으로 열렸다. 코로나가 완저히 종식되지는 않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점진적으로 해제되면서 3년만에 완전 오프라인으로 열린 셈이다. Read More Editor's View: 오프라인은 어떤 의미인가? GG 8호가 주목한 주제는 ‘오프라인 게임’입니다. 디지털 네트워크 기술의 발전으로 오늘날의 게임들은 온라인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것을 기본으로 갖추고 있지만, 게임의 역사를 돌아보면 오랫동안 이어져 온 오프라인 기기 기반의 플레이들이 만들어 온 맥락이 온라인 시대에도 여전히 살아숨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Read More [북리뷰] 피, 땀, 리셋 - 리셋 버튼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 세계에서 비디오 게임을 개발하며 살아간다는 것 비디오 게임 제작은 어렵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다양한 규모의 수많은 게임들이 기획되고, 제작되지만 실제 완성되는 것은 극히 미미한 수에 불과하다. 게임이 제작 도중 엎어지는 이유는 수 없이 많다.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로 제작이 중단되는 경우도 있고, 근사한 아이디어를 구현해 봤더니 상상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결과물이 나와서 더 이상 개선을 할 수 없어 개발 중단을 선언하게 되는 경우도 매우 많다. 20년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 경험과 주변의 사례를 지켜본 바를 바탕으로 감히 멋대로 주장하건데, 개발을 시작한 비디오 게임이 단지 완성되어 세상에 공개되는 비율만 따져도 아마도 고작 10% 미만에 불과할 것이다. Read More [인터뷰] e스포츠의 현장감은 어디서 오는가: 라이엇게임즈 함영승 PD 그런데 따지고 보면 뭔가 이상하다. ‘현장 중계를 가서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는 말은,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으로 경기를 보는 것이 아쉽다는 의미인데, 게임의 배경은 이미 온라인 세계가 아니던가? 그러면 e스포츠에서 현장감은 무엇을 의미할까? 팬들이 경기장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소환사의 협곡’으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인데, 대체 팬들은 어떠한 지점에서 현장감을 느끼는 것일까? 전통적인 스포츠에서 이야기하는 현장감과 e스포츠의 현장감은 그 성질이 다를까? 이러한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 이번 호에서는 MBC에서 전통 스포츠를 중계하다가 지금은 LCK 중계를 하고 있는 라이엇게임즈의 함영승 PD를 만나고 왔다. Read More ‘대항해시대 오리진’, 멀티플레이의 계층화와 사이버 농노들 비동기 멀티플레이는 모바일 게임의 시류에서 도드라진 방식이다. 모바일, 그리고 무선 네트워크라는 아직 태동기에 불안정성이 남아있던 플랫폼들은 참여자들이 동시에 접속하지 않으면서도 상호작용할 수 있는 체계를 필요로 했고, 이것은 비동기 멀티플레이라는 방안을 만들어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그러했듯이, 현재 이 방식은 비단 모바일 플랫폼으로만 국한되지 않고 특유의 선택적 연결성 덕분에 많은 게임에서 채용되곤 한다. Read More ‘아카트로닉스’라는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이라는 것이 있다. 호기심의 방은 말 그대로 호기심을 자아내는 진귀하고 이국적인 것들, 때로는 괴이한 것들로 가득찬 공간이었다. 주로 16-17세기 영국에서 개인 컬렉터들에 의해 만들어진 호기심의 방은 박물관의 기원 중 하나라고 여겨지기도 하는데, 이 공간이 단순히 수집품을 모아두는 곳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수집 공간’은 대중에게 공개되어 보여졌다. 당대에 가치있던 고미술품이나 유물, 또는 명망있는 화가의 작품이 아니었더라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형상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Read More 〈포켓몬 고〉는 당신의 시공간에 침투한다 〈포켓몬 고〉는 2016년 글로벌 출시된 증강 현실 모바일 게임이다. 증강 현실이란 더해진 현실이라는 뜻이니, 현실 위에 정보 레이어가 한 겹 더해졌다는 의미다. 일반적인 지리 데이터 위에 포켓몬스터 데이터를 덧씌워보니 게임이 탄생했다. 출시 초기 〈포켓몬 고〉는 플레이어의 GPS를 추적하여 구글 맵 위에 포켓몬들을 등장시키고,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으로만 보여주던 포켓몬스터 트레이너의 삶을 살아보도록 선보였다. Read More 북미의 보드게임: 원조국가의 또다른 면모들 십수년전 미국에 처음 왔을 때 가장 낯설던 단어는 비디오 게임이었다. 한국어를 사용하면서 자라온 나에게는 ‘게임’이라고 하면 컴퓨터나 콘솔을 이용해서 하는 게임을 지칭하는 것이었지만 미국에서는 달랐다. 테이블탑 혹은 보드 게임이라고 불리는 장르가 매우 단단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기에 내가 아는 게임은 반드시 비디오 게임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걸 알게됐다. Read More 사파의 탄생과 몰락 아케이드에서 가동 중인 대전 격투 게임을 가정으로 온라인으로 즐기는 것이 가능했던 최초의 시기는 94년 말 미국에 출시된 메가드라이브 용 X-Band로, 당시로서는 강력한 2,400bps 전송속도의 모뎀을 통해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 2 같은 게임들을 미지의 상대와 가정에서 대전이 가능했다. 그러나 콘솔 능력의 한계로 아케이드 게임 자체를 그대로 옮길 수 없던 시기였으니, 진정한 의미의 (열화 없는) 아케이드 게임을 온전히 집에서 즐기는 환경은 사실상 14.4kbps의 모뎀을 새턴에 연결하여 즐길 수 있었던 96년에 발매된 버추어 파이터 리믹스가 최초라 할 수 있다. Read More 온라인 시대에서 ‘PC방’이 살아가는 법 게임은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우리들과 함께한 놀이 문화로 통한다. 처음에는 간단한 오락이 가능한 값비싼 콘솔기기로 시작해, PC 보급이 본격화됨에 따라 가정 내 기초 게임 환경 구축이 가능해졌고, 지금에 와서는 거리와 관계없이 편하게 온라인으로 게임을 즐기는 시대가 열렸다. Read More 온라인 시대의 살아있는 화석, 보드게임 이야기 1938년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되어 그 존재가 알려진 실러캔스라는 어류 개체가 있다. 실러캔스는 약 3억 7천 5백만년 전 지구상에 출현하여, 약 7천 5백만년 전 절멸했다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실러캔스는 살아있었다. Read More 온라인게임, 멀티플레이, 그리고 경쟁 한때는 ‘온라인 게임’이 곧 새로운 미래가 될 거라 믿던 시기도 있었다. 코로나19라는 이벤트까지 거친 후 지금 돌아보면 어떤가? 부분적으로 온라인 시스템을 수용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게임은 여전히 오프라인이 중심인 느낌이다. Read More 우리의 UX를 찾아서: 오락실 코옵을 추억하다 그 시절 같은 학교 친구들에게는 일종의 의식이 있었다. 무슨 게임을 하든 가장 마지막 코스는 <갈스패닉 S2>로 플레이하기로 한 것이었다. <갈스패닉>이란 쉽게 말해 땅따먹기 게임으로 상하좌우에 대각선까지 8방향으로 기체를 조작해 구역을 확보하면 승리하는 게임이다. 여기까지만 설명하면 거짓말에 가깝다. <갈스패닉>에서는 땅을 따먹으면 그 구역에는 ‘갈’이 등장했고, 특정 퍼센테이지를 완수하면 온전한 일러스트를 볼 수 있었다. 이 게임의 핵심 인기 요인은 일러스트였다. Read More 캣스모폴리틱스(Catsmopolitics): 고양이와 기계가 자본세 지구에 착륙하는 방법 인종차별, 여성혐오, 소수자 차별, 장기화된 실업, 투기와 불평등, 전쟁과 극우정치가 만연한 오늘날 유일하게 아무에게도 미움 받지 않는 존재가 있다면 아마도 고양이일 것이다. 좌파도 우파도, 남성도 여성도, 베이비부머도 청년도, 무슬림도 카톨릭도 고양이를 사랑한다. 사람들은 기꺼이 골목길에 사료와 물그릇을 갖다놓으며, 고양이와의 사랑스런 일상을 촬영해 공유한다. 소셜미디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재는 인간이 아닌 고양이다. Read More 해제: 온라인 시대의 오프라인 게임 폴더와 디렉토리 기반으로 오프라인 PC에서 파일 관리를 하던 세대들은 요즘처럼 클라우드에 파일을 올려두는 방식을 낯설어 한다는 이야기가 기사로 올라오는 시대다. 바야흐로 온라인이 기본이 되는 시대. 과거에는 PC 한 대에서 데이터를 처리하고 네트워크로 파일을 옮기는 일을 부가적으로 생각하던 시대를 넘어 이제는 정보의 존재위치 자체가 관계망 위에 놓이는 것이 기본인 시대가 되었다. Read More 혼자-서 오롯이, 마냥 쓸쓸하지만은 않은 : 싱글 플레이에 던지는 물음 오래전 어느 PC게임 잡지의 칼럼을 인상 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칼럼에서 글쓴이는 재미있게 플레이하던 게임을 끝내는 것이 아쉬워 엔딩을 앞두고 진행을 멈춘 채 머뭇거린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칼럼의 핵심과 거리가 있는 이야기였음에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그 ‘머뭇거림’의 정취가 무엇인지 자못 궁금했기 때문이다. Read More
- 시뮬레이티드 셀프: 놀이하는 인간이 시뮬레이션을 작동시키는 방식에 대하여
세계는 불확정성으로 가득 차 있다. 인간은 생동하는 물리적 실재를 파악할 수 없으며, 단지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가정법에 따른 결과론, 혹은 결정론은 입자들의 불확정한 위치에 선형성을 부여하는 매력적인 시뮬레이션이다. ‘만약 ~라면 어땠을까?’ ‘만약 ~한다면 어떨까?’는 확률의 세계에서 확고한 인과관계를 부여할 뿐 아니라 대안적인 실재를 상상하도록 어떤 유희의 프레임을 제공한다. 만약 조선이 자생적 근대화에 성공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승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와 같은 질문을 통해 우리는 지적인 유희를 즐길 뿐 아니라 구체적인 시뮬레이션 절차들을 상정함으로써 확률의 시공간을 결과의 시공간으로 바꿔놓게 된다. < Back 시뮬레이티드 셀프: 놀이하는 인간이 시뮬레이션을 작동시키는 방식에 대하여 14 GG Vol. 23. 10. 10. 불확정성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현미경 세계는 불확정성으로 가득 차 있다. 인간은 생동하는 물리적 실재를 파악할 수 없으며, 단지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가정법에 따른 결과론, 혹은 결정론은 입자들의 불확정한 위치에 선형성을 부여하는 매력적인 시뮬레이션이다. ‘만약 ~라면 어땠을까?’ ‘만약 ~한다면 어떨까?’는 확률의 세계에서 확고한 인과관계를 부여할 뿐 아니라 대안적인 실재를 상상하도록 어떤 유희의 프레임을 제공한다. 만약 조선이 자생적 근대화에 성공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승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와 같은 질문을 통해 우리는 지적인 유희를 즐길 뿐 아니라 구체적인 시뮬레이션 절차들을 상정함으로써 확률의 시공간을 결과의 시공간으로 바꿔놓게 된다. 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주사위 놀이를 할 뿐 아니라 그것을 즐긴다. 놀이는 언제나 불확정성을 데카르트 좌표계로 옮겨놓는 과정이다. ‘시뮬레이션’은 모의실험인 동시에 유희의 근원이며, 인간은 오래 전부터 시뮬레이션과 유희를 접목시켰다. 가장 오래된 게임인 바둑과 장기는 전쟁에 대한 각기 시뮬레이션이었다. 그러나 전장은 현실과 마찬가지로 불확정성으로 가득하다. 날씨, 사기, 진군 속도, 무기, 영양상태, 파발마의 속도, 말의 종자 등 무수히 많은 변수들이 승패를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최초의 전쟁 시뮬레이션은 전장의 요소들을 극도로 추상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폰은 앞으로만 전진하고, 나이트는 뛰어넘으며, 승패는 킹을 잡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스스로 킹을 쓰러트리는 순간 결정된다. 그러나 놀이하는 인간은 어두운 방 안의 헬륨 풍선의 위치를 찾는 사람처럼 좌표에 도달하기까지의 복잡한 과정을 즐긴다. 시뮬레이션은 추상화 될수록 명료해지지만, 명료함은 복잡성을 제거하므로 역설적이게도 유희를 완성하는 동시에 방해한다. * H.G. 웰스가 1913년에 제작한 워게임 (좌)와 게임즈 워크숍의 워해머 40K(우) 대안적인 현실 또는 디스토피아에 대한 선지자이자 미래의 고고학자이기도 했던 H.G. 웰스가 전쟁 게임에 광적으로 집착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전장의 요소들을 바꿔가며 놀이를 즐기는 워게임 매니아였고, 스스로 워게임 시뮬레이션을 제작했을 정도였다. 게티스버그 전투를 묘사한 웰스의 워게임 <리틀 워즈>는 단순히 모형을 가지고 하는 병정놀이가 아니라 엄격하고 복잡한 규칙에 따라 부대를 이동시키고, 포 구경에 따라 성냥개비 또는 몽당연필을 실제로 발사할 수 있는 장치와 태엽으로 움직이는 기관차 등이 구현된 ‘워게임 시뮬레이션’ 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병정놀이를 빙자한 워게임을 즐기는데, <워해머> 시리즈의 매니아들은 직접 제작하거나 구매한 피규어를 갖고 며칠 내내 광적인 전투를 벌이기도 한다. 문제는 워게임이 시뮬레이션과 놀이 사이에서 교묘히 표류한다는 것이다. 웰스와 같은 편집광은 혼자만의 세계에서 재미있게 게임을 즐길 수 있지만, 모든 놀이는 동료와 상대, 그리고 공동체를 동반한다. 공통으로 적용되는 룰이 없다면 놀이가 될 수 없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시뮬레이션이 명료화되는 과정, 즉 연성화된 규칙과 단순한 절차들의 발명은 시뮬레이션이 놀이로 전화하는 필연적인 의례다. 동료, 또는 상대방과 담소를 나누며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절차는 무엇일까? 순서대로 한 번씩, 한 수씩 주고받는 것이다. 불확정성의 시공간을 일시 정지하고, 그 안에 깊이 들어가 불확정성의 요소들을 조작함으로써 어떤 ‘배치(assemblage)’를 만들어내는 것이 게임의 주된 목표가 된다. 이제 워게임은 역동적인 동시에 정주적인 것이 되었다. 전장에서 정지는 곧 죽음이지만, 워게임에서 정지는 더 복잡한 시뮬레이션을 작동시키기 위한 필수적인 장치다. ‘턴제’가 된 시뮬레이션은, 불확정성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현미경이자 놀이를 구조화하는 프레임이 된다. 시뮬레이션의 재배치: 시뮬라시옹에서 에르고딕으로 * 헥스타일로 명료화된 시뮬레이션의 지도학. 전쟁을 소재로 하는 보드게임을 넘어 문명, 경영, TRPG등 게이밍 전체를 떠받드는 프레임이 된다. 프레임은 단순하면서 단단할 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소재를 버틸 수 있는 강도를 지녀야 한다. 전자게임이 등장하기 전 단계의 보드게임은 워게임 시뮬레이션이 주조했던 추상적 시공간, 즉 타일 중심의 규칙을 연성화해 다방면에 도입했다. 따라서 입자(atom) 세계의 시뮬레이션이 비트(bit) 세계의 시뮬레이션으로 재편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주사위를 인간이 직접 손으로 굴리느냐, 혹은 컴퓨터가 대신 굴려주고 계산해주느냐의 차이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결과 시뮬레이션을 둘러싼 많은 결과들이 이전보다 훨씬 복잡한 방식으로 대두되게 되었다. 시뮬레이션의 가장 큰 장벽인 자연 연산 부문이 기계 연산으로 대체되면서, 워게임의 딜레마였던 복잡성과 명료성이 교집합을 이룰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디지털 게이밍에서는 불확정성과 결정성의 요소들은 하나가 될 수 있다. 확률론적 결정론, 혹은 인과율과 양자얽힘이 공존하는 세계가 곧 디지털 게임의 시뮬레이션이다. *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앤 매직3(좌상), 문명2(우상), 듄2(좌하), 워크래프트2(우하) 시뮬레이션이라는 건축물의 형태가 턴제에서 실시간으로 바뀌어도, 그 프레임인 ‘타일’에 의한 공간직조는 변하지 않는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원본없는 실재, 초월적 실재인 시뮬라시옹이 물자체로 이뤄진 실재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소비자본주의의 풍경을 두고 ‘실재의 폐허’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그 영토에 경계를 긋고 유희의 공간을 창출하는 게이밍의 세계에서 실재의 폐허는 거꾸로 시뮬레이션의 천년왕국이 된다. 시뮬라크르가 더 정교해질수록, 그것들의 어셈블리지가 불확정성과 인과성을 더 광범위하게 포섭할수록 근사한 에르고딕(ergodic)은 골계미를 더해간다. 왜 골계미인가? 동일성의 반복이 아닌 차이의 반복을 통해 프레임의 강도를 더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재와 달리 게이밍에서는 아무리 강도 높은 프레임이라 해도 마음대로 형태를 바꾸거나 심지어 재설계할 수 있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은 파도의 강도를 상상하며 모래성을 쌓는 아이처럼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가동시킨다. 그들은 육면 주사위를 던질 뿐 아니라 즐기며, 평균 3에 수렴할 때까지 반복적으로 던진다. 어제는 중국 문명을, 오늘은 영국 문명을, 내일은 인도 문명을 즐길 것이다. 오전에는 외교를 통한 승리를, 오후에는 전쟁을 통한 승리를 추구할 것이며 똑같이 게임을 즐기는 ‘시뮬레이티드 셀프(simulated self)’ 들과 이런 전략을 토론하고, 공유하고, 경쟁할지도 모른다. 시뮬레이티드 셀프, 혹은 시뮬레이티드 리얼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웰스의 워게임에서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실시간 전술 시뮬레이션에 이르기까지 시뮬레이션은 패러다임 전환이라 부를만한 변화를 겪은 적이 없다. 웰스가 고안해낸 타일과 턴 기반의 규칙들은 불변하기 때문이다. ‘실시간’은 결국 윤곽선을 가린 타일 위에서 동시에 기물을 움직이는 워게임에 다름아니다. 느긋하게 식사하거나 담소를 나눌 턴이 사라졌기 때문에 전장의 안개(fog of war)가 치열함을 더한 새 요소로 가미되었을 뿐이다. 오히려 실시간 전술 게임은 ‘시뮬레이션’이란 관면에서 보면 인지와 반응속도에 더 의존하는 형식이다. 커맨드 앤 컨커, 스타크래프트 등의 게임은 점점 도태되고 즐기는 플레이어도 점점 줄어드는 반면, 턴 기반의 시뮬레이션 게임은 다양한 변주를 통해 재탄생되고 있는 현실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최근의 젊은 게이머들은 치열한 실시간 경쟁과 화려한 그래픽보다 오히려 도트 그래픽으로 잘 짜여진 정적인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예컨대 <데이브 더 다이버>), 턴제 시뮬레이션 방식의 게이밍에서 더 큰 새로움을 만끽한다. * <발더스 게이트3> 와 <재기드 얼라이언스 3>와 같은 전통적인 턴제 시뮬레이션 기반 게임의 선풍적인 인기는 레트로(retro)라기보단 재매개(remediation)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게이밍이 다양한 형식적 실험과 편향을 넘어 고유한 시공간적 프레임을 자아내는 의례로서 시뮬레이션이 대두되고 있다. 요컨대 워게임에 열광했던 웰스나, 전설적인 시리즈, <재기드 얼라이언스> 시리즈, <문명>과 <심시티>를 즐기는 플레이어, 그리고 최근 전대미문의 비평적 성공을 거둔 <발더스 게이트>를 즐기는 플레이어들은 기본적으로 동일한 보드판 위에서 기물을 움직인다 할 수 있으며, 각자의 컨셉과 설정을 구조화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천년왕국은 더욱 진화할 것이다. 아마도 시뮬레이션의 패러다임 전환은 ‘시뮬레이티드 셀프’에서 ‘시뮬레이티드 리얼’로의 이행으로 이뤄질 것인데, 이는 형식이 아닌 기술을 통해서 성취될 가능성이 크다. 생성 인공지능의 도입은 우리가 게임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다양한 비인간 요소들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뿐 아니라(예컨대 NPC, 몬스터등이 생성 인공지능을 탑재해 비인간 인격체가 된다고 생각해보라) 함께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들 속에 인게임-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인공지능이 뒤섞이면 어떻게 될까? 핍진성은 실재에 근접하거나 보드리야르가 우려했던 실재의 폐허로까지 이어질지도 모른다.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고, 우리는 이를 피할 수는 없다. 엔비디아를 위시한 많은 빅테크가 시뮬레이션 내에서의 비인간 행위자의 가능성을 기술적으로 구현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비트의 밀도가 높아지는 것은 그래픽의 평면이 매끄러워 지는 것이 아니라 비인간 행위자들이 매끄러워지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발더스 게이트>의 몬스터와 동료들이 비인간 인격체라면 우리는 어떤 시뮬레이션을 작동시킬수 있을까? 생성 인공지능과 게이밍의 절합을 주의 깊게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의 친애하는 웰스 경은 어쩌면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가서 ‘시뮬레이티드 리얼’을 목격하고 돌아와, 투명인간이 된 채 홀로 워게임을 즐기기로 마음먹었을 수도 있다. 앞으로 게이밍과 시뮬레이션에서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것은 시뮬라크르들을 조작하는 주체가 누가 될 것인지, 주도권을 누가 쥘 것인지를 결정하는 기술미학적 상상력일 것이다. Tags: 에르고딕, 시뮬레이션, 턴제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디지털 문화연구/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신현우 문화연구자, 문화평론가이며 기술비판이론과 미디어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다. 게이밍, 인공지능, 플랫폼, 블록체인을 둘러싼 문화현상을 연구하며 서울과기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한다.
- 피카츄는 나와 함께 잠드는 것이 기대되는 모양입니다....-<포켓몬 GO>와 <포켓몬 슬립>의 현실 침투 작전
왜 포켓몬 컴퍼니는 ‘수면 엔터테인먼트’라는 처음 들어보는 단어의 조합으로 우리의 수면 습관을 관리하고 싶어 하며, 왜 이 수면 측정 앱은 흥행에 성공했는가? < Back 피카츄는 나와 함께 잠드는 것이 기대되는 모양입니다....-<포켓몬 GO>와 <포켓몬 슬립>의 현실 침투 작전 16 GG Vol. 24. 2. 10. 내 포켓몬이 부르니까 자러 가야지 2023년 7월 처음 출시된 포켓몬 컴퍼니의 새로운 모바일 게임 <포켓몬 슬립Pokémon Sleep>은 출시 2개월 만에 전 세계 누적 수면 시간 10만년을 돌파 1) 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포켓몬 컴퍼니는 ‘수면 엔터테인먼트’라는 듣도 보도 못한 장르를 내세우며 이 앱이 게임이라고 주장했다. 게임의 방식은 단순하다. 이용자가 자면, 게임은 이용자의 수면패턴을 분석하고 이에 맞는 포켓몬을 수집한다. 보다시피 이용자가 재미를 느낄 요소라고는 포켓몬밖에 없다. 즉 <포켓몬 슬립>의 흥행은 오로지 ‘포켓몬스터’라는 유명하고 사랑받는 주머니 괴물들의 매력 하나만으로 이루어졌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전 세계 엄청난 열풍을 일으킨 <포켓몬 GO>의 목표 또한 오로지 현실 공간을 무대로 다양한 포켓몬을 포획하는 것이었다. 포켓몬스터라는 IP는 성공적으로 게임 이용자에게 재미를 유도하고 두 게임을 ‘게임’이라고 인식시켰다. 일단 게임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자 두 게임은 IP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IP를 통해 흥행에 성공한 게임은 역으로 자신들의 현실과의 접합을 이용해 포켓몬스터 IP의 해상도를 높여갔다. <포켓몬 슬립>을 살펴보자. <포켓몬 슬립>이 이용자 수면 측정의 개연성으로 채택하는 것은 바로 포켓몬의 잠자는 모습 연구다. 정해진 시각이 되면 이용자의 파트너 포켓몬은 잠자기 약속을 지키라며 이용자에게 알림을 띄운다. 이용자는 파트너 포켓몬과 함께 잠자리에 든다. 다음날 눈을 뜬 이용자를 맞이하는 것은 자신과 비슷한 수면 습관을 가진 새로운 포켓몬들이다. 이를 반복하며 이용자는 포켓몬을 수집하고 연구하며 성장시킨다. 그 과정에서 이용자는 자연스럽게 매일 밤 포켓몬과 함께 잠들고, 포켓몬과 눈 뜨는 일상을 보내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용자는 게임에게 지시받은 대로 매일 포켓몬이라는 생명체를 ‘연구’하게 된다. 포켓몬 연구자가 된 이용자는 포켓몬이라는 가상의 생명체에 대해 현실의 생명체보다 많은 정보를 얻게 된다. 포켓몬이라는 형상은 이용자 속에서 점점 구체화되며, 이용자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매개로 그들과 가장 내밀한 일상을 공유하며 ‘현실을 함께 한다’는 감각을 전달받는다. 구체화된 형상과 실재하는 감각이 심상에서 결합하며 포켓몬이라는 가상의 생명체는 현실 공간에서의 존재감을 획득한다. 포켓몬 컴퍼니의 이 같은 전략은 기존 팬들의 애착을 강화하고 모바일의 접근성을 이용해 새 이용자를 유치한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이러한 전략은 포켓몬스터가 단순히 거대한 IP일뿐만 아니라 꾸준히 콘텐츠의 무한확장 및 구체화를 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포켓몬 컴퍼니는 대내외적으로 포켓몬이라는 생명체를 구체화시키고 그들과 이용자의 거리를 좁히는 방향으로 IP를 개발해왔다. 대표적인 사례인 <포켓몬 GO>는 그저 일부분이다. 현재 포켓몬 게임은 가장 기본이 되는 콘솔 게임이외에도 모바일 게임, 오프라인 카드게임, 아케이드 게임 등 모든 매체를 통해 서비스되고 있다. 어딜 가나 보이는 다양한 상품과의 콜라보 ‘굿즈’까지 포함할시 포켓몬은 체감상 비둘기보다도 자주 목격된다. 포켓몬이라는 허구의 생명체는 여러 매개를 통해 지금도 끈질기게 현실을 침범하고 있는 셈이다. 포켓몬스터 게임 시리즈의 가장 최근작인 <포켓몬스터 스칼렛·바이올렛>의 DLC에서는 이용자가 포켓몬을 씻기고, 먹이는 걸 넘어 포켓몬의 몸으로 행동하고 다른 이용자와 상호작용할 수 있다. <포켓몬 슬립>이 게임이냐? 앞선 일련의 전략들은 현실의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AR 게임 <포켓몬 GO>의 엄청난 흥행과 현실의 생활 습관을 관리하는 <포켓몬 슬립>의 약진이라는 특수한 결과를 탄생시켰다. 왜 ‘특수한’ 결과일까? 평소 우리가 보아온 다른 사례들과 비교하면 쉽게 답을 알 수 있다. 이 대대적인 IP 경쟁력 강화 작업은 포켓몬 컴퍼니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가령 <포켓몬 슬립>은 정말 ‘게임’인가? <듀오링고Duolingo>는 ‘게임하듯 재미있게’ 언어를 배우는 언어학습 앱이지만, 아무도 그것을 게임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아무리 녹색 부엉이가 호들갑을 떨어도 <듀오링고>를 재미있기 때문에 시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반면 <포켓몬 슬립>은 <듀오링고>처럼 수면습관 개선이라는 명백히 실용적인 목적을 가지지만 게임으로 여겨진다. 물론 앞서 말했듯 포켓몬의 존재 덕분이다. ‘포켓몬’에 대한 애정이 사람들을 웬 수면측정 앱으로 이끌었다.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이란 게임이 아닌 분야에 게임적 요소를 적용하여 흥미를 유발하는 것을 뜻하는 단어다. 이 연로한 단어를 모셔온 이유는 이 단어가 근래에는 더 이상 예전만큼 주목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디지털 환경이 인간의 생활을 지배하는 지금, 게임적 메커니즘 또한 인간의 생활 전반에 스며들었다. 사람들은 매일 금융거래 앱에 들어가 출석체크를 하고 포인트를 받으며, 중고거래 앱에서 다양한 미션을 수행하며 자신의 레벨을 올린다. 이것은 달리 말해 이런 세상에서 게임이 ‘게임’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게임적 요소로 치장한 가지각색의 서비스보다 그들이 조금 더 게임 같아야 한다는 뜻이다. 대다수의 게임에게 이것은 고민거리가 아니다. 거의 대부분의 게임은 게임적 요소를 통해 이용자를 유혹해야만 하는 실용적인 목적이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떠한 사명감이나 따내야할 사업 예산이 없는 이상 게임에 실용적인 목적을 넣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다. 게임의 본질, 즉 재미에만 충실하면 당연히 게임은 금융거래 앱이나 중고거래 앱보다 재밌고 게임 같다. 그렇지 않은 게임도 물론 일부 있다. 그에 대해선 유감이다. 이런 현실에 반해 포켓몬 컴퍼니는 실용적인 목적을 역으로 자신들의 IP 강화에 이용하였다. 게임 이용자는 대개 현실을 바라지 않는다 이번에는 훨씬 최신이지만 마찬가지로 근래 관심이 부쩍 시들어버린 단어를 가져와보겠다. 바로 한때 전 세계인을 3차원 가상공간으로 불러 모았던 메타버스(Metaverse)다. 코로나19를 타고 전 세계로 퍼진 메타버스 열풍은 빠르게 퍼진 만큼 빠르게 식었다. 대면 활동이 제한되는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현실의 사회·경제활동이 가능하단 점은 한때 메타버스를 주목해야하는 가장 큰 이유이자 게임과의 차별점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종식되고 현재 남아있는 <로블록스Roblox>나 <제페토ZEPETO> 등의 메타버스 공간을 게임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그들 세계는 현실과 닮아있을지언정 현실 공간과 별개의 규범으로 운영되며, 이용자들은 즐거움을 추구하고, 그들이 즐거운 이유는 그것이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메타버스로 통칭되는 게임의 현재 모습은 현실의 사회·경제활동을 수행하는 것과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메타버스의 대다수 이용자가 어린 연령대라는 사실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로블록스>의 로우 폴리곤 세상은 빈말로도 현실과 닮았다고 할 수 없다. 이용자들은 현실과 다른 다양한 세계를 넘나들며 체험하고 교류하는 것을 주요 즐거움으로 삼는다. <제페토> 역시 마찬가지다. 언론에 <제페토>는 어쨌든 얼굴인식과 AR 기술을 활용한 메타버스로 소개되지만, <제페토>의 아바타는 현실과 거리가 멀다. 더 중요한 사실은 <제페토>를 깊게 즐길수록 아바타가 점점 현실의 모습과 멀어진다는 것이다. 달라진 아바타로 다양한 테마의 배경을 즐기는 것이 <제페토>의 핵심이다. 이 사실은 대부분의 AR 게임이 왜 흥행에 실패하였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해준다. 즐거움을 원하는 게임 이용자는 대개 현실을 바라지 않는다. 반면 포켓몬이 선사하는 이 모든 간접 체험에도 포켓몬은 현실이 아닌 가상의 생명체다. 이용자들은 포켓몬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을 현실에서 보고 싶어 한다. 가상공간에서 굳이 현실의 일을 하는 것은 내키지 않지만, 현실의 일에 가상의 상상력이 끼어드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거의 유일하게 성공한 AR 게임이 <포켓몬 GO>라는 사실은 AR 기술의 한계에도 포켓몬이 그들의 방대한 배경을 통해 이용자들을 감성적으로 매혹하고, 이를 믿어주고 싶은 이용자들이 넘어가준 것에 가깝다. ‘포켓몬’을 가지고 있지 않은 다른 게임이 현실에 발을 들이기 위해서는 현실에 첨가할 매력적인 가상을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는 다른 도구를 찾아야만 할 것이다. 보통은 기술력으로 돌파구를 찾고, 그래서 돈이 많이 든다. 캐릭터는 좋은데 게임성은 별로? <포켓몬 슬립>은 강력하게 형성된 IP에 힘입어 성공한 ‘게임’으로 거듭남과 동시에 그 자체로 이용자들이 ‘포켓몬’에 몰입할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 모바일 게임의 규모를 무시할 수 없는 현재의 게임 지형에서 포켓몬 컴퍼니의 이러한 노력은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더불어 <포켓몬 슬립>의 사례는 매력적인 캐릭터 IP의 영향력이 단순히 뽑기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캐릭터 수집 모바일 게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캐릭터 IP는 게임의 한 구성 요소를 넘어 독자적으로 재미와 아우라를 창출할 수 있는 요소로 등극하였다. 독자성을 가진 IP는 결코 베껴지지 않는단 점에서 그것을 보유한 회사의 가장 강력한 무기로 남는다. 점진적으로 애착 관계를 형성한 이용자에게 캐릭터의 존재는 이미 현실이고, 이는 대체 불가능하다. 다만 캐릭터 IP가 게임 안에서 독자적으로 재미를 창출하는 지위에 놓였다는 이야기는 사실임과 동시에 아이러니한 논란을 동반한다. IP는 게임의 중대한 구성 요소로서 애정을 기반으로 한 재미를 담보하지만, 게임 이용자들이 ‘게임성’이라는 각자 다른 정의를 기준으로 게임을 평가할 때 ‘캐릭터’의 존재는 흔히 논외이기 때문이다. ‘게임성’이라는 모호한 개념은 대개 재미와 비슷한 용도로 사용되지만 캐릭터를 보며 느끼는 재미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실제로 포켓몬스터 게임 시리즈는 신작이 나올 때마다 이용자들 사이에서 격한 ‘게임성’ 논란을 일으켰다. 같은 시기 같은 장르의 다른 게임에 비해 질 낮은 그래픽과 각종 버그 등 기술력이 떨어진다는 지적 또한 매 게임 시리즈마다 있어왔다. <포켓몬스터 스칼렛·바이올렛> 출시 초기에는 게임이 불가능할 정도의 다양한 버그가 문제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용자들이 게임을 할 때 이 모든 요소는 종합적으로 고려되므로, 이런 식의 분리는 무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당연하게도 게임의 모든 요소는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미비한 기술력이나 불합리한 시스템은 게임 진행 및 몰입을 방해해 시리즈 자체의 호감을 하락시키며, 그것은 IP도 마찬가지다. ‘게임성’이라는 합의되지 않은 정의를 합의하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이미 이용자들의 게임 선택 기준에는 IP를 포함한 다양한 요소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포켓몬은 왜 우리의 수면을 책임지려 하나? 왜 포켓몬 컴퍼니는 ‘수면 엔터테인먼트’라는 처음 들어보는 단어의 조합으로 우리의 수면 습관을 관리하고 싶어 하며, 왜 이 수면 측정 앱은 흥행에 성공했는가? ‘포켓몬’이라는 가상의 아이콘은 이용자가 키, 몸무게, 습성, 성격, 먹이와 서식지를 넘어 잠자는 모습까지 연구하게 만들며 구체화된 형상으로 머릿속에 안착하는 것에 성공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들은 점차 거리를 좁히며 치밀하게 이용자의 현실 공간에 침투해 일상 속에 자리 잡았다. 포켓몬에 대한 애정이 게임을 플레이하게 만들고, 게임 플레이는 다시금 이용자의 애정을 강화시켰다. 게임에서 흔히 ‘현실’이라는 요소가 가상의 몰입을 방해하는 것과 정반대되는 구조를 통해 <포켓몬 슬립>이라는 독특한 ‘게임’은 목표를 달성했다. 이것은 현재 게임에서 IP라는 요소가 게임의 궁극적인 목표인 재미를 달성할 수 있는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동시에 이는 오랜 기간 축적된 IP가 어디까지 위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무엇까지 할 수 있을지 질문하게 만든다. 확실한 것은, 포켓몬은 앞으로도 이용자들의 일상을 서슴없이 침략하고 더욱 친근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1) 디스이즈게임, 2023.10.20., 수면 게임 ‘포켓몬 슬립’ 전 세계 누적 수면 시간 10만 년 돌파, https://www.thisisgame.com/webzine/game/nboard/225/?n=179083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대학원생) 손민정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현대문학과 문화를 공부 중입니다. 글과 함께한 만큼 게임과 늘 함께 해왔습니다. 별별 게임 다 합니다.
- What’s fair price for video games?
In Korean gamer communities, there's this saying about playing games from the Steam library: "Back then, we never paid to play the game. Nowadays, we never play despite paying the game." The phrase sarcastically highlights the contrast between the game market back in the 80s-90s, when no one actually paid a fair price for video games with the abundance of pirated and copied games in Korea, compared to now with digital game distribution channels when people do not play the game despite after purchase. < Back What’s fair price for video games? 17 GG Vol. 24. 4. 10. You can see the Korean version of this article at: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34e447be-d2b1-48f0-85e6-eb63ee2f907b In Korean gamer communities, there's this saying about playing games from the Steam library: "Back then, we never paid to play the game. Nowadays, we never play despite paying the game." The phrase sarcastically highlights the contrast between the game market back in the 80s-90s, when no one actually paid a fair price for video games with the abundance of pirated and copied games in Korea, compared to now with digital game distribution channels when people do not play the game despite after purchase. The internet is flooded with countless games available to play at any time. We are living in an era where people can purchase more game easily through online digital game distribution channels than what humans could possibly play in a lifetime. The normalization of digital distribution, like Steam, has certainly contributed to lowering the entry price of a video game. But coming up with a fair amount of price tag in reality is a bit more complex than that, and it is difficult to say whether the game prices have truly become affordable than before. The regular release price of so-called “AAA” game titles has been steadily on the rise, not to mention all those excessive special editions (e.g., deluxe packages, limited editions) that cost well over ₩100k (approximately $80). As such, in some degree games are affordable form of entertainment, but at the same time, they deemed as expensive. To fully comprehend this contradictory situation, we must start asking ourselves: what is actually a fair price for video games? We do know that a considerable amount of manpower and resources go into video game production. So, being able to come up with a mutual range of fair prices would contribute to the industry in terms of securing sufficient profits for the creator and, thus, the necessary funds for the development of a better game. It would also contribute to its users that fair price can contribute to a continuation of a good product that offer enjoyable and enriching virtual experiences. Challenges in Determining Regular Prices of Video GamesHistorical records suggests that the pricing of video games was not never really calculated based on systematic business forecasts but often by arbitrary guesswork. The normative rules of game prices have frequently changed as well. For example, early arcades operated on fixed-price coin-op business model, where the playable time per coin heavily depended on how the player is good at that particular game. Ironically speaking, the more skilled players play longer while spending less, resulting in fewer profits for arcade operators. (This led to instances where skilled arcade-players in Korean arcades were occasionally kicked out from the premises, with a coin refund, to make way for the next player in line.) As such, the cost of complete gameplay experiences varied from person to person, largely contingent on their gaming proficiency. Of course, it not all gamers back then expected to achieve complete gameplay experiences in every arcades. The emergence of console and PC “package” games introduced the concept of fixed prices in the game industry, which meant people could pay the same price regardless of the amount of gameplay hours of each user. Each cartridge, disk, or CD was sold at a fixed price, gradually forming an average price range for games. But with the rise of online digital distribution channels and their mass-scale discount systems, real-time price controls, and game subscription schemes, the range of regular prices for package-type games has begun fluctuating again. Determining the fair price of a game has become even more complicated with the rise of the micro-transactions in games, which has become increasingly prevalent in the online/mobile game era. Now the cost of a game is not only about the gaming proficiency but also the total amount spent in-game. The gameplay experience of a heavy user who spends $1,000 on micro-transactions in a free-to-play game like Uma Musume: Pretty Derby (Cygames, 2021) would vastly differ from that of someone who didn't spend a dime in that game. In such a vastly different player-base, coming up with a mutual ‘fair’ price is certainly not an easy task. What I would like to note here is that the topic of regular price of a game and the appropriate cost (i.e., what is deemed as appropriate amount of money that one can spend in games) are a different thing. Because, to put it simple, the amount of coins that a player bring to arcade shop is not just about how much each session of a gameplay in that particular arcade cost. Rather, it’s about how many sessions of gameplay that the player is going to (or willing to) pay, multiplied by the cost of each gameplay session. As such, answering the question of 'what is a fair price for a game' is not solely about the determining the sales price tag of a game product, but also about finding a mutual balance between producers and consumers – in a way to maintain a sustainable cycle of production, distribution, and consumption. While individual purchasing power is certainly an important indicator to look at, but the primary concern lies here is about how goods (in this case games,) can be fairly exchanged between producers and users. Then another thing that needs to be addressed is the issue of today’s digital game distribution method, specifically, its pluralistic nature of game as both a product and a service. In the arcade era, games were primarily operated as a rental business. Then, gradually, they transitioned into owning the game (or game machines) as goods in the home console and PC game era. However, with the normalization of online/mobile games, there has been a shift back to rental services – games that are channeled through server-based, internet-connected platforms. Therefore, we are now living in an era where games cannot be explained by a single value; rather, they are both products and services that intersect and coexist. So there cannot be a simple answer regarding the fair price of games. And this is not even considering all those numerous discounts deals and subscription services. So it is evidently clear that there is no magic number about ‘what is the fair price’ in a game – we cannot do simple math by ticking checkboxes. One ideal approach is perhaps to first examine the amount of money spent on game production and then propose a range of unit prices that could potentially recoup those production costs for its creators within a reasonable timeframe. Then whether that price range is acceptable are ultimately determined consumers, by finding just the right balance between the market’s natural supply and demand. Clearly, it’s not an easy task. But a tasks that must be done. Why should we talk about the fair price of games? The Korean Consumer Price Index (CPI) is calculated based on the cost of 480 essential goods and services, served as a common indicator to determine South Korea’s regular living cost and inflation rate. Among these, 47 fall under the category of “entertainment and cultural activities”, which include activities such as purchasing musical instruments, computers, film tickets, and books, and the costs of travelling and even repairing digital devices. However, game-related expenditures are not included in Korean CPI. Despite numerous reports about the significant increase in South Koreans' usage of games, and despite all those provocative media coverage of somebody ‘spending tens of thousands of dollars on video games in micro-transaction instead of doing something productive’. Some easily solution is to add already existing collectable data such as PC-bang hourly fees and average of online entertainment purchases. Even if so, there are clear limitations; as they do not fully capture the overall game-related spending patterns of general South Korean players. This call for thorough actions in order for us to truly able to say that games have become one of the mainstream media – regarded as one popular media and enjoyed as any other daily leisure activity. This would include polishing our societal system and facilitating infrastructures to finally acknowledge gaming as an act of leisure and cultural fulfillment in contemporary society, and economic analysis on game-related consumptions. For instance, Korea do have basic reports on how much money people spend on games per month and what the highest and lowest prices are – such as the Game User Census Report conducted annually by the Korean Creative Contents Agency. However, there are still rooms for improvement as those numbers are isolated from the overall economic index, such as other consumable indexes in Korean CPI. While the cost of watching films, television shows, and portable multimedia devices is accepted as a ‘valid’ indicator of the livelihood of South Korean households, the cost of playing games is still missing. Now is the time when we should finally acknowledge the significance of the cost of software that is called video games. And not just the price tag of the game itself but also the significance of games in the overall socioeconomic context. This then leads to my question, “What is the fair price of games?” In this complex, ever-connected era of gameplay, the question shouldn’t be limited to “how much should the game product cost” but rather should target the fundamental question of “what games mean” – the value of game-related consumptions intersect with other means of our entertainment, social, and leisure activities. Instead of fixated by the price tag of a game itself, we should start asking ourselves how the game-related expenditures are compared to other leisure and cultural activities. Why do people choose to spend money on games rather than other means of media? What’s unique about games? It is now time to surface these questions that are currently encapsulated within gamers' communities and web forums, further into mainstream societal discourse. Lastly, perhaps we now need to start asking the very fundamental question of “What is the (means of) fair price of games?” Because, controversial topic such as the toxicity of impulsive or excessive game micro-transactions, or the irony of free-to-play (that, there’s no such thing as free to play anything), eventually leads to the fundamental question; what could account for the price of gameplay? What are the fair means of purchasable in gameplay? What can be quantified and what cannot? And how to measure them? We must realize that we no longer live in the era of a simple supply and demand market that can determine the simple one-for-all price of games. Instead, now is the time to embrace this ever-complicated question even to video games as medium itself.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KyungHyuk Lee He has been close to games since childhood, but it was not until 2015 that he started talking about games in earnest. After living as an ordinary office worker, he entered the life of a full-time game columnist, critic, and researcher through a series of opportunities. Books such as "Game, Another Window to View the World" (2016), "Mario Born in 1981" (2017), "The Theory of Game" (2018), "Wise Media Life" (2019), and "The Birth of Reality" (2022); papers such as "Is purchasing game items part of play?" (2019); "Dakyu Prime" (EBS, 2022), Gamer (KBS), "The Game Law", 2019 BC) and "Economy of Game", etc.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institute 'Dragon Lab'. (Doctoral researcher at Aalto University, Finland) Solip Park Born and raised in Korea and now in Finland, Solip’s current research interest focused on immigrant and expatriates in the video game industry and game development cultures around the world. She is also the author and artist of "Game Expats Story" comic series. www.parksolip.com
- 혼자-서 오롯이, 마냥 쓸쓸하지만은 않은 : 싱글 플레이에 던지는 물음
오래전 어느 PC게임 잡지의 칼럼을 인상 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칼럼에서 글쓴이는 재미있게 플레이하던 게임을 끝내는 것이 아쉬워 엔딩을 앞두고 진행을 멈춘 채 머뭇거린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칼럼의 핵심과 거리가 있는 이야기였음에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그 ‘머뭇거림’의 정취가 무엇인지 자못 궁금했기 때문이다. < Back 혼자-서 오롯이, 마냥 쓸쓸하지만은 않은 : 싱글 플레이에 던지는 물음 08 GG Vol. 22. 10. 10. 오래전 어느 PC게임 잡지의 칼럼을 인상 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칼럼에서 글쓴이는 재미있게 플레이하던 게임을 끝내는 것이 아쉬워 엔딩을 앞두고 진행을 멈춘 채 머뭇거린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칼럼의 핵심과 거리가 있는 이야기였음에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그 ‘머뭇거림’의 정취가 무엇인지 자못 궁금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경험해야 할 다른 게임이 이미 많이 쌓여있고 또 앞으로 더 그럴 것을 생각하면 엔딩을 향해 박차를 가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텐데, 그 발걸음을 붙들고 서성이게 하는 힘의 정체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그 호기심에 대한 답은 찾은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엔딩을 앞두고 일부러 멈춰 서성거린 적은 없지만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경험한 특정한 순간들이 오래도록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코 ico〉에서 게임을 저장하기 위해 ‘요르다’와 함께 처음 소파에 앉았을 때나, 〈Gibbon: Beyond the Trees〉에서 긴팔원숭이가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들어섰을 때가 그랬다. 그 순간들은 게임의 시작부터 끝까지 경험한 일련의 과정들을 떠올리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 해당 게임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인 동시에 게임에서 겪은 바들의 기억을 재구성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칼럼을 쓴 이의 지인이 마침내 머뭇거림을 지나 엔딩으로 향했건 끝내 멈추었건 그에게도 그 게임의 어떤 특정한 순간이 선명하게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그 머뭇거림의 순간을 게임 크리에이터가 의도했을까 하는 새로운 호기심도 생겼다. 게임을 끝내는 걸 아쉬워한다는 것은 그만큼 게이머가 느끼는 만족감이 크다는 뜻이겠지만, 거기서 느낄 보람과 별개로 그 머뭇거림이 크리에이터가 의도한 결과인지는 별개이기 때문이다. 이 호기심은 굳이 선명한 답을 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호기심을 품는 순간, 게임을 만든 이가 어떤 의도를 품었을지 궁금해하면서 딱히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 질문을 ‘혼자’ 던져보는 경험은 중요하다. 게임 플레이 형식을 가리키는 용어인 ‘싱글 플레이’는 한 사람의 게이머가 게임의 시작부터 끝까지 일련의 과정을 혼자 진행하는 것을 의미 한다. 싱글 플레이의 의미는 게임을 만들고 즐기는 방식이 확장되는 변화와 함께 달라져 왔다. 흥미로운 것은 그 변화가 ‘상대적으로’ 이루어져 왔다는 것이다. 싱글 플레이가 게임을 하는 본래의 방식이었다는 점에서 출발하면 간단하다. 메인 메뉴에서 게임을 새로 시작할지 이어서 할지 선택하는 것이 게임 플레이 방식의 전부였던 시기가 있었다. 여럿이 함께하는 ‘코옵 플레이’(Cooperative Play)를 생각하면 싱글 플레이의 의미가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램페이지Rampage〉나 〈황금 도끼Golden Axe〉처럼 여러 명이 동시에 플레이하거나, 〈스코치드 어스Scorched Earth〉처럼 차례를 기다리며 순서대로 플레이하는 등 다른 유형이 이미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들은 게임의 시작부터 끝까지 일련의 과정을, 같은 장소에서 진행한다는 점에서 싱글 플레이에 포함된다. 싱글 플레이의 의미가 상대적으로 변화하는 계기는 네트워크에 있다. 싱글 플레이와 대비되는 용어인 ‘멀티 플레이’가 대표적이다. 같은 장소나 가까운 범위 안에서 유선 통신망으로 기기들을 연결해 여러 명이 함께 플레이하는 ‘랜 플레이’(Local Area Network Play)를 주로 의미하는 ‘멀티 플레이’는 인터넷의 활용이 높아지면서 이제 ‘여럿이 하는 게임’ 정도로 의미가 축소되었다. ‘멀티’가 복수나 다중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표현임을 생각하면 딱히 축소되었다고 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온라인 게임’이 복수와 다중이 성립하기 위해 필요한 ‘연결’을 더 풍부하게 갖춤으로써 ‘멀티 플레이’를 대체하게 되었다. ‘온라인 게임’의 기반이 되는 인터넷은 이제 ‘사회 기반 시설’로 자리 잡았다. 사회와 일상의 많은 영역이 인터넷을 기반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2003년 1월 인터넷 대란이나 2018년 11월 통신망 장애 등으로 인해 겪은 불편을 통해 우리 생활의 많은 방식이 온라인을 토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체감한 바 있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넘어 서버에 접속한 여러 사람이 함께 플레이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온라인 게임 외에도 인터넷은 싱글 플레이에서 다양한 요소들을 ‘연결’한다. 텔테일 게임즈의 〈더 워킹 데드The Walking Dead〉는 에피소드를 마치면 주요 선택지에서 다른 게이머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보여준다. 선택의 순간에 다른 게이머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잠깐 떠올리거나, 다른 게이머들의 선택 결과와 자신의 선택을 비교하면서 게임의 여운을 음미할 수 있도록 하는 이 장치는 게이머가 느끼는 즐거움을 풍부하게 한다.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쌓은 업적을 중심으로 순위를 나타내는 ‘리더 보드’ 역시 다른 게이머의 존재를 의식하게 만드는 장치이다. 이것이 게임 플레이에 얼마나 동기를 부여하느냐는 게이머마다 다르겠지만,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다른 게이머가 있다고 인식함으로써 게이머가 다른 게이머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환기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비슷한 경우를 ‘엑스박스 게임패스’로 대표되는 게임 구독 서비스에서도 찾을 수 있다. 게이머들의 게임 이용 행태를 분석하는 에이전시인 GameDiscoverCo는 2022년에 엑스박스 게임패스 구독자들이 게임을 어떻게 이용했는지에 관한 자료를 발표했다. 1) 이 중 이목을 끈 결과는 게임의 최초 출시일에 공개되는 ‘데이 원’(Day One) 타이틀 이용에 관한 기록이었다. 구독자들의 게임 플레이 기록이 하나의 새로운 차트로 다루어진 셈인데, 개별 게이머들의 게임 플레이 정보가 네트워크를 통해 전달되었기 때문에 만들어질 수 있는 자료였다. 즉, 싱글 플레이를 혼자 플레이하더라도 그 경험 자체가 서버로 전달되면서 게이머는 서로 ‘연결’되는 것이다. 2) 이러한 예들이 싱글 플레이의 의미 중 게임을 플레이하는 인원에 대한 것이라면, 또 다른 부분인 게임을 플레이하는 일련의 과정에 대해서는 DLC(Downloadable Contents)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DLC는 시작부터 결말까지 일련의 과정을 일단락 지은 싱글 플레이 게임에 새로운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다. 콘텐츠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기존 게임의 줄거리에서 갈라지는 ‘외전’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결말이 될 수도 있다. 매체를 통해 게임이 유통되던 시기에는 이러한 콘텐츠가 ‘확장팩’(Expansion Pack)이라는 이름으로 다루어졌다. 그런데 온라인을 통해 확장할 수 있는 콘텐츠의 범위가 스킨, 캐릭터, 아이템부터 새로운 싱글 미션이나 스테이지까지 다양해지면서 ‘DLC’가 ‘확장팩’을 대신하게 되었다. ‘업데이트’라는 관점에서 보면 DLC는 단순히 콘텐츠를 추가하는 것뿐만 아니라 게임의 오류를 수정하는 패치의 기능과 시스템을 변경하는 등의 변화도 포함한다. 이를 통해 일단락 지어진 싱글 플레이 경험이 다시 이어지거나 새로워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만들어졌다. 결말이 존재한다는 것을 싱글 플레이만의 특징으로 꼽기가 애매해진 셈이다. 이처럼 온라인을 중심으로 게임을 만들고 플레이하는 방식이 확장되면서 싱글 플레이의 본래 의미는 달라졌다. 혼자이되 완전한 혼자가 아니고, 결말이 있되 그것이 완전한 끝은 아닌 것이다. 온라인이 다양한 방식과 정도로 접목되면서 본래의 의미에 충실한 싱글 플레이는 줄어들었다. 하지만 새로 하든 이어 하든, 혼자 하든 여럿이 하든 싱글 플레이 게임과 온라인 게임 모두 “룰에 따라 일정한 시공의 한계 속까지 완료하는 자유로운 임의의 행동 또는 활동으로 인간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것이자 문화현상의 한 가지 표현 형태” 3) 라는 점에서 싱글 플레이의 변화는 축소가 아니라 오히려 ‘확산’되었다. 온라인이 다양한 방식과 정도로 사회와 삶 전반에 접목된 것처럼 싱글 플레이는 지금의 게임에 다양한 방식과 정도로 접목된 것이다. 그렇다면 ‘온라인 게임 시대’라 부를 정도로 많은 게이머가 온라인 게임을 플레이하는 4) 현재, 본래 의미의 싱글 플레이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동안 이루어진 싱글 플레이의 변화가 축소가 아닌 확산이라면, ‘머뭇거림’과 ‘의도에 대해 던지는 질문’ 역시 유효할 것이다. 답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질문을 던지는 건 고독하고 쓸쓸한 일이다. 하지만 크리에이터가 만든 세계를 탐색하면서 의도와 까닭을 짐작하는 것, 그리고 실패를 거듭할지라도 자기만의 페이스에 온전히 집중하며 플레이 해나가는 것은 게이머와 게임 크리에이터의 비동시적인 대화인 동시에 게이머가 자기와 마주하는 동시적인 과정이다. 엔딩을 앞두고 플레이를 멈추도록 붙든 것은 어쩌면 게임 크리에이터의 의도가 아닌 게이머 그 자신의 목소리였지도 모른다. 한편, 싱글 플레이를 통해 게이머가 던지는 ‘답을 기대하지 않는 질문’은 영영 어딘가로 흩어지고 마는 걸까. 같은 게임을 두고 뚜렷하게 기억하는 장면이 게이머마다 다를 것이듯, 그 질문 역시 각양각색일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게임 크리에이터의 답을 구하지 않더라도, 게이머들끼리 자신의 질문을 서로에게 건네고 그에 대한 나름의 답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 질문과 답들이 게임의 경험을 풍부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게임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가 나누어질 필요가 있고 더 많은 비평의 장이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1) https://newsletter.gamediscover.co/p/xbox-game-pass-titles-in-2022-whats 2) 이와 관련해서 2013년 Xbox One 출시 당시 마이크로소프트(MS)가 제시했다가 철회한 중고 정책을 생각해볼 수 있다. MS는 중고 거래에 제약을 둘 목적으로 Xbox One을 최소 24시간에 한 번씩 온라인에 연결되도록 강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고 거센 비난에 직면한 후 중고 정책과 온라인 연결 강제에 대한 계획을 모두 철회했다. 이 경험이 MS가 게임패스 서비스를 추진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으나, 당시 온라인 연결을 강제해 확인하고 싶어 했을 게임 이용 정보를 게임패스를 통해 큰 반감 없이 확인할 수 있게 된 결과로 이어진 것은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롭다. 3) 도쿄 지방재판소 1979년 제10867호 손해배상청구사건 판결주문 중 발췌, 〈팩맨의 게임학〉(이와타니 토루 저, 김훈 역, 비즈앤비즈, 2012년) p.53. 4) 한국의 게이머들은 온라인 게임을 확실히 더 많이 플레이하고 있다. 이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해마다 발간하는 〈대한민국 게임백서〉의 ‘국내 게임 플랫폼의 시장 규모 및 점유율’과 〈2021 게임이용자 패널연구(2차년도)〉의 ‘게임이용자 1순위 이용게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사회학자) 강지웅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게이머즈〉를 비롯한 여러 게임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했다. 저서로 〈게임과 문화연구〉(공저), 〈한국 게임의 역사〉(공저)가 있다.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에서 게임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게임이 삶의 수많은 순간을 어루만지는, 우리와 동행하는 문화임을 믿는다.
- 축소 지향 헌터들 연대기:<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어떻게 손 안에 축소되었다가 혼종적으로 변모하려고 하는가
작년에 20주년을 맞이하게 된 캡콤 제작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2000년대 초부터 대두되고 있던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이라는 새로운 형식에 대한 일본 게임계의 대답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게임이 처음 등장했던 2004년 일본 게임업계는 2002년 성공적으로 MMORPG를 콘솔 게임에 이식한 <파이널 판타지 XI>를 제외하면 마땅한 청사진이 없었다. < Back 축소 지향 헌터들 연대기:<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어떻게 손 안에 축소되었다가 혼종적으로 변모하려고 하는가 25 GG Vol. 25. 8. 10. 1. 단기지향적인 헌터 파티: 로컬 멀티플레이 액션 게임으로서 정체성 작년에 20주년을 맞이하게 된 캡콤 제작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2000년대 초부터 대두되고 있던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이라는 새로운 형식에 대한 일본 게임계의 대답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게임이 처음 등장했던 2004년 일본 게임업계는 2002년 성공적으로 MMORPG를 콘솔 게임에 이식한 <파이널 판타지 XI>를 제외하면 마땅한 청사진이 없었다. 가장 큰 문제로는 당시 대세였던 콘솔인 플레이스테이션2 (이하 PS2)의 한계가 있었다. 이론적으로 PS2는 인터넷 대응이 되었지만, 인터넷 보급 문제와 더불어 <파이널 판타지 XI>나 <몬스터 헌터> 시리즈를 제외한 몇몇 게임을 제외하면 사실상 없는 기능이나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인기를 끈 <파이널 판타지 XI>조차도 외장 하드를 달아야 플레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장벽이 좀 있었다. 플레이스테이션이 본격적으로 인터넷 대응이 된 건 사실상 PS3 시절부터다. 콘솔 위주로 흘러갔던 일본 게임업계 입장에서는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 만들기에 상당한 제약이 걸린 셈이다. 그래서인지 2000년대 초 일본 게임계에는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을 오프라인으로 옮겨놓고 상상하게 하는 부류의 유사 온라인 게임이 더러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파이널 판타지 XI>와 엇비슷한 시기에 인기를 끌었던 프랜차이즈 <닷핵> 시리즈가 있다. 이 프랜차이즈는 실제 알맹이는 전형적인 일본 싱글 플레이 RPG 게임이었지만, 일본 게임 유저들에게 온라인 (RPG) 게임이 무엇인지 알려주려고 기획되었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당시 일본 게임업계에서 온라인 멀티플레이라는 개념이 일종의 괴리감이 있었다는 현상인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1999년부터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을 준비해 왔던 캡콤으로서도 MMORPG나 멀티플레이 게임을 내놓는데 조심스러웠다. 캡콤 멀티플레이 게임 프로젝트의 초기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그 점에서 온라인 멀티플레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아예 헌팅 액션 게임이라 불리는 장르로) 토착화되고 발전해 갔는지를 보여주는 게임이다. 기본적으로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삼인칭 액션 게임 기반으로 하되, 규모를 늘린 중후기 일부 토벌 퀘스트를 제외하면 4인 위주의 소규모 파티 경향이 강했던 게임이었다. 정확히는 MMORPG의 보스몹 레이드 개념을 싱글 플레이 기반 액션 어드벤처 게임의 보스전과 합치고 재해석한 후, 플레이어 혼자 또는 소수의 헌터 동료와 우직하게 보스 몬스터를 파고들고 대응해 가며 진행하는 게임이었다. 이렇기에 초창기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그 점에서 시작부터 제법 인기를 얻었지만, 코어한 경향이 강했다. 게임 디자인 자체의 불친절함과 더불어 상술한 온라인 플레이의 한계로 실상 솔로 플레이를 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초기 <몬스터 헌터>는 온라인 플레이를 하기 위해 KDDI 멀티 매칭 BB라는 유료 온라인 서비스에 가입해야 했다. 시리즈가 지향했던 소규모 멀티플레이 환경은 어울리지 않는 거치형 콘솔이라는 옷을 입고 있었던 셈이다. 여기다 명확한 레벨링 시스템 없이 (간단히 말해 헌터 랭킹이 캐릭터 능력치랑 바로 연결되지 않는다) 장비와 전투 숙련도로 플레이어의 실력을 가늠하는 게임 디자인과 더불어 ‘물욕 센서’로 지칭되곤 했던, 2(DOS)부터 도입된 지난한 채집 요소들도 이런 문턱에 한몫했다. 그렇기에 2부터 몬스터 헌터는 반복되는 수렵과 채집으로 장비를 만들고 개별 몬스터 파훼법을 감각으로 익혀야 다음 진행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게임이 되었다. 이를 종합해서 보면 극 초기작들은 입문자에게는 상당한 부담이었다는 건 유추할 수 있다. 1편 프로젝트가 끝날 무렵, 캡콤은 1편을 PSP로 이식하기로 결정한다. 플레이스테이션 포터블 (이하 PSP)이 게임보이 어드밴스드나 원더스완으로 대표되던 휴대용 게임기에 완전히 새로운 판도를 열였기 때문이다. PSP는 비슷한 시기에 발매되었던 닌텐도 DS보다도 전체적인 성능도 훨씬 나았던데다 네트워크 기술이나 지원이 좋았던 편이었기에 <몬스터 헌터> 시리즈로서는 충분히 승산있는 시장이었다. 다만 <몬스터 헌터 포터블> 당시에도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온전한 온라인 게임이라 보긴 힘들었다. <포터블> 시절에도 무선랜 환경은 아직 초창기 단계였기에 지금과 같은 인터넷 환경을 지원하기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이런저런 고려 끝에 포터블 시리즈는 애드 혹이라는 단말기 간 직접 통신을 이용한 소규모 로컬 멀티플레이 시스템만을 공식 지원했고, 온라인 플레이를 하려면 우회적인 편법을 동원해야 했다. 그렇기에 <몬스터 헌터> 제작진이 포터블 시리즈를 발매하면서 처음 노렸던 것은 다소 축소된 PS2 게임을 손에 들고 사람들과 만나 기기들끼리 로컬 멀티플레이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실상 TRPG나 보드게임을 즐기는 방식하고 크게 떨어져 있지 않은 셈이다. 이렇듯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당시 일본 콘솔 온라인 환경의 한계 속에서 처음 등장한 게임이기에, MMORPG와 동떨어진 방향으로 발전해 왔으며 온라인 게임을 추구했음에도, 내실은 로컬 멀티플레이 액션 게임에 가깝게 정립되었다. 심지어 <월드> 이전까지는 싱글 플레이 퀘스트와 멀티플레이 퀘스트가 분리되어 있을 정도로 제작 단계에서부터 싱글 플레이 게임 관점에서 멀티플레이와 온라인을 접근했다는 흔적들을 찾을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가장 크게 주목할 부분이 있다. 바로 이 시리즈가 멀티플레이 유저 간 상호작용에 상당히 제약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몬스터 헌터> 시리즈에는 MMORPG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레이어 간 물물 교환이라는 개념이 없다.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모든 재화나 장비는 플레이어 본인이 직접 채집하거나, 제작해야 하며 플레이어 간에 교환하는 방법은 없다. 전반적으로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멀티플레이 유저들을 NPC 파티원을 대신하는 존재에 가깝게 정립하고 있으며 (물론 여전히 한계가 있는 NPC AI 동료에 비하면 강력하고 유용한 존재이긴 하다), 복잡한 유저 간 관계 구축에는 큰 관심이 없는 게임이다. 어찌 보면 상당히 폐쇄적인 관계라 할 수 있는데 실제로도 <월드> 이전까지는 다른 유저의 퀘스트 난입할 수 없었다. 다른 유저를 만날 수 있는 장소는 필드 이외에는 퀘스트를 수주받고 정비하는 마을 내 한정된 공간 정도였고, 게임 내 길드 설립이나, 대항전 같은 시스템은 당연히 없었다. 모든 파티는 퀘스트를 위해 일시적으로 성립하고 종료 후 해체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나마 <월드>부터 이런 개념들이 조금씩 확장되는 추세다. 전반적으로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플레이하다가 다른 유저를 만난다는 개념 자체가 오랫동안 없었고, 혼자서 즐기거나 (오프라인이든 인터넷 커뮤니티든) 사전에 알게 된 사람들끼리 네트워크로 모여서 레이드를 뛴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렇기에 <몬스터 헌터> 내에서 처음 만난 헌터랑 교류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길드 카드를 서로 확인하고 등록한다는, 지극히 일본 명함 문화를 떠올리게 하는 시스템을 쓰고 있다.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그 점에서 어떤 끊임없이 돌아가는 유저 생태계를 구현한다기보다는, 혼자서 즐기는 싱글 플레이 게임에 멀티플레이 요소를 도입해 일시적으로 모였다 퀘스트 클리어 후 해체하고 초면인 사람은 길드 카드로 교환해 교류를 이어간다는, 단기지향적인 부족/길드적인 감각으로 확장해 온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여러모로 기존 MMORPG나 MMOFPS하고는 완전히 다른 폐쇄적인 경향이 짙었지만, <몬스터 헌터>는 포터블 시리즈를 통해 <퀘이크>로 대표되던 랜파티 게임의 진화를 상징하는 게임 중 하나가 되었다. 다시 말해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정통적인 삼인칭 액션 게임을 휴대용에 맞게 ‘축소’한 후 네트워크 멀티플레이 영역을 기술적 발전과 맞춰 확장해 성공한, 꽤 독특한 방식으로 성공가도를 달려왔던 게임이다. 상술한 단기지향적인 부족/길드적 감각과 연계해 보면 게임 자체의 엔드 콘텐츠 지향적인 요소를 제외한다면 부담 없이 서로 연결하고 끊어질 수 있는 동료 관계를 지향해온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몬스터 헌터> 시리즈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멀티플레이 게임들을 기점으로 랜파티 게임은 단순히 한 장소에 고정된 컴퓨터/콘솔과 인터넷이 아닌, 휴대용 게임기 간의 무선 통신, (나아가 무선랜)을 통해 언제든지 모일 수 있게 변했다. 어찌 보면 2000년대 중후반 이후 흔해진 집 바깥에서 게임기나 스마트폰을 맞대고 대전하거나 파티 플레이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대중적으로 끌어낸 게임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다. 2. 축소 지향에서, 확장 지향으로: <4>와 <월드>의 급변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2편인 DOS 시리즈가 종료될 무렵, 두 가지 방향으로 나눠진다. 우선 스기우라 카즈노리를 주축으로 DOS 디자인을 들고 PC 쪽으로 분가해 본격적인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이 되려고 도전한 <프론티어> 시리즈가 있다. <프론티어>도 설왕설래가 있긴 해도 장기 서비스했을 정도로 성공한 편이지만, 게임계는 본가 쪽에 훨씬 더 주목했다. 왜냐하면 본가 쪽은 상술했던 축소 지향을 심화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나갔기 때문이다. 그래도 <트라이>까지는 선 거치형 콘솔, 후 휴대용 콘솔이라는 원칙을 지켰지만 <몬스터 헌터 4>부터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아예 휴대용 콘솔인 3DS로 이적해 자신을 훨씬 더 축소하기에 이른다. 콘솔 세대가 교체될 무렵, 거치형 콘솔을 버린다는 과감한 선택을 한 셈인데 오히려 이 시기부터 휴대용으로는 최초로 온라인 환경을 공식적으로 대응하는 등 멀티플레이 환경 개선에 주력하는 등 손안에서 즐길 수 있는 소규모 멀티플레이 액션 게임이라는 장점을 극대화하려고 했다. 다만 좋은 변화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몬스터 헌터 4>부터 게임 그래픽이나 기타 요소는 사실상 정체되게 된다. 물론 그대로 사용하지만은 않고, 새 게임이 나올 때마다 새 몬스터와 배경이 추가되고 큼직한 변화가 있긴 했지만, 사실상 이 시절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PS2~Wii 시절 게임 디자인이나 에셋을 대다수 재활용하면서 휴대용 게임기의 성능에 맞춰가는 방식으로 수명을 연장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인기의 큰 원동력인 휴대용 멀티플레이 액션 게임이라는 개념은 잘 지켜냈으니, 대다수의 유저들은 별말 없이 따라왔고 신규 유입도 수월히 이뤄졌다. 하지만 반대로 이걸 ‘우려먹기’나 한계에 갇혔다고 여기는 불만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몬스터 헌터 4>가 이적한 닌텐도 콘솔들은 성능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부류였기에 <몬스터 헌터> 시리즈가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고 있다는 비판 의견도 강해져 갔다. 3DS 후기/말기에 발매된 <몬스터 헌터 크로스> 시리즈는 그 점에서 ‘축소 지향의 헌터’ 시절이 끝났음을 선언하는 시기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크로스>가 발매될 당시 혜성같이 등장한 스마트폰 시장이 점점 몸집을 키워가면서 휴대용 게임기라는 개념 자체가 다시 격변을 겪고 있었다는 점이다. 휴대용 게임기를 샀던 구매층은 대다수 스마트폰 쪽으로 이동했고, 이제 휴대용 게임기는 스마트폰과 차별화를 해야 했다. 닌텐도도 이를 염두에 둬 스마트폰 도입 초창기 발매된 3DS에서 3D 기능을 내세워 차별화를 시도했지만, 콘솔 자체의 성공과 반대로 막상 3D 게임은 정착에 실패했다. 당시 Wii U도 실패한 상태라 닌텐도는 차기작으로는 휴대용/거치용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고, 스위치라는 휴대용과 거치용이 결합한 혼종 콘솔을 내세우게 된다. 즉 중간급 성능의 거치형 콘솔과 휴대용 게임기 콘셉트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성능과 단가 간의 줄타기를 시도했다. 세대 교체된 현시점에서 보자면 닌텐도 스위치는 8세대 콘솔 초창기 사양(PS4/Xbox One)으로, FHD 수준을 온전히 구현할 여력을 실현한 첫 닌텐도 콘솔이자 거치형 게임기와 휴대용 게임기 간의 경계를 무너트린 최초의 콘솔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고사양을 지향하는 플레이스테이션이나 엑스박스 간의 괴리는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지만, 그렇기에 저 둘이나 스마트폰이 갈 수 없었던 영역을 갔다는 점에서 스위치는 게임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콘솔이다. 스팀 덱을 비롯한 혼종적인 핸드헬드 게임용 PC들의 물꼬를 터준 게임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캡콤도 그 혼종적인 가능성을 주목했다. 2017년 닌텐도 스위치 발매가 이뤄졌고, 동시에 <더블 크로스> 스위치판 발매와 거치형 콘솔 복귀작 <몬스터 헌터 월드>가 발표되었다. 이는 <몬스터 헌터> 시리즈를 지배해왔던 축소 지향적인 헤게모니가 완전히 막을 내렸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더블 크로스> 스위치판은 단순히 확장판 이상으로, 스위치의 휴대용/거치용 콘솔 간 혼종적 성향을 따라가겠다는 천명이었다. <몬스터 헌터> 시리즈 제작진이 다시 거치형 콘솔로 돌아가기로 한 것은, 지금까지 휴대용 게임기에 맞춰왔던 <몬스터 헌터> 시리즈의 방향성을 재정립하고 확장하기 위해서라 봐야 한다. 그렇게 <월드>는 새로운 <몬스터 헌터> 청사진을 제시하는 게임이 되었다. 우선 <월드>는 기존의 멀티플레이 환경을 그동안 발전한 인터넷 환경에 맞게 확장했다. <월드>는 상시 온라인 연결을 요구할 정도로 온라인 비중이 높아진 첫 <몬스터 헌터> 시리즈였다. 후술하겠지만 이는 토쿠다 유야가 제작한 몬스터 헌터 시리즈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온라인과 멀티플레이 간의 결합을 고려한 듯한 디자인이 대거 도입되었다. 싱글 플레이와 멀티플레이 퀘스트가 하나로 합쳐졌고, 구조신호라는 개념을 통해 다른 플레이어의 개입을 허용하게 조처했다. 플레이어는 퀘스트를 진행하다가 도무지 어렵겠다 싶으면, 베이스캠프에서 구조신호를 쏴 올릴 수 있다. 이 구조신호는 집회소에 있는 퀘스트 게시판에서 등록되어 다른 헌터들이 확인하고 중도 참여할 수 있다. 한번 퀘스트를 시작하면 타인의 접근이 차단되는, 어떤 소규모 부족 내지는 길드적인 멀티플레이를 지향해왔던 <몬스터 헌터> 시리즈가 처음으로 완라인으로 연결된 타인의 개입을 허락했다는 점에서 꽤 중요한 변화라 할 수 있다. <월드>가 한창 진행되던 시절에 더 큰 결단이 하나 일어났다. 2019년 상술했던 <프론티어> 서비스를 정리한 것이다. 의도는 명확했다. <몬스터 헌터>가 그동안 취해왔던 이원화 멀티플레이 노선을 폐기하고 하나의 게임으로 합치겠다는 의도였다. 실제로 <프론티어> 서비스 종료 당시, DOS 기반 디자인이 2010년대에 들어서서 너무 낡았기에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프론티어>의 서비스 종료는 <더블 크로스> 스위치판과 더불어, DOS 시절 디자인과 노선이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며 <몬스터 헌터> 시리즈가 앞으로 어떤 방향성으로 나아갈지 보여주는 실마리기도 했다. 바로 혼종적인 것들을 배합하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창출하려는 방향성이다. 3. 혼종적 세계화의 성공과 위험: <라이즈>와 <와일즈> 시대의 명암 <월드>를 마무리한 뒤,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라이즈>를 발매해 다시 스위치에서 시작했다. <라이즈>는 <월드>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다소 사양이 떨어지는 스위치로 개발되었기에 기기 특성상 <더블 크로스> 시절의 게임 디자인과 비주얼로 회귀한 구석도 있었지만, 이 회귀엔 의미는 달라졌다. 자신을 정체시키는 방식으로 축소해 왔던 <4>랑 달리, <라이즈>는 <월드>에서 시작된 변화와 풀 스케일적인 게임의 지향성을 고려하면서도, 휴대용 게임기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증명했기 때문이다. 이는 상술했던 닌텐도 스위치의 혼종적인 특성에서 기반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PSP에서 3DS로 넘어가면서, <몬스터 헌터>는 콘텐츠 축소 이상으로 구세대 게임이라는 오명을 쓸 각오하면서 자기의 정체성을 지켜갔다. 하지만 상술했듯이 이런 선택은 정체를 의미했고, 거치형 콘솔과 휴대용 콘솔 간에는 명백한 계급 의식 내지는 상하관계가 당시엔 강하게 있었기에, 시대에 뒤처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스위치는 그 계급 의식을 상당히 없애버렸고 그 결과 <라이즈>는 <월드>보다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구세대 게임이라는 오명을 쓸 정도는 아니었다. 실제로도 <라이즈>는 이후 다른 거치형 콘솔과 PC로도 이식되었다. <라이즈>는 그 점에서 좀 더 고전 <몬스터 헌터>로 회귀하면서도 휴대용과 거치형, 온라인과 오프라인, 싱글 플레이와 멀티플레이 간의 혼종을 염두에 두는 2010년대 후반 이후 <몬스터 헌터> 시리즈의 방향성을 선언하는 포부였다. 이후 다시 거치형 콘솔로만 발매된 <와일즈>가 나왔기에 <라이즈>를 잇는 휴대-거치 혼종적 콘솔 지향 <몬스터 헌터> 게임이 다시 나올지는 조금 기다려야 하겠지만, 적어도 <몬스터 헌터> 시리즈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양방향 노선을 짜고 있다는 것은 명확하다. 간단히 말해 캡콤은 <월드>, <라이즈>와 <와일즈>를 통해 축소 지향 시절 다져놓았던 소규모-단기적 멀티플레이 게임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유행을 쫓아가고 싶어 한다. 그 점에서 <월드>와 <라이즈>는 휴대용 콘솔의 혼종적 변화라는 사건을 두고 이뤄진 변증법적인 관계를 형성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월드>와 <와일즈> 같은 거치용 콘솔 전용 <몬스터 헌터>를 통해 공격적으로 외양을 확장하고, 이때 받은 피드백을 <라이즈> 같은 휴대용 게임기 중심 혼종 지향 <몬스터 헌터>로 적용해 내실을 꾀하는 것이다. 다만 올해 발매된 <와일즈>가 겪고 있는 위기는 캡콤이 새로이 내세우고 있는 지향성이 자칫하면 위험해질 수 있는 방향성이라는 걸 보여주고 있다. 이 문제는 역설적으로 온라인의 비중을 늘려 지금까지 단단하게 유지해 왔던 경계를 무너트리고 공간을 확장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다. 사실 <월드>부터 온라인 서비스로서 정체성을 강화하고 필드 세계를 풍부하게 하려는 토쿠다 유야의 노선과 이에 반발하며 싱글 플레이/소규모 멀티플레이 콘텐츠에도 신경 써 주라고 요구한 유저들 간의 대립이 암암리에 이어왔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몇몇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줄타기에 성공했던 <월드>랑 달리 <와일즈>는 괜찮은 싱글 플레이 콘텐츠와 정반대로 부족한 멀티플레이 엔드 콘텐츠 문제와 더불어 온라인 환경을 강제하는 방향성과 디자인상 여러 문제로 많은 반발을 샀고 대량 유저 이탈로까지 이어졌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와일즈>는 세미 오픈 월드 도입과 더불어 파티원 이외 필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른 헌터들을 볼 수 있는 첫 번째 <몬스터 헌터> 게임이라는 것이다. 설정상으로 <와일즈>의 헌터들은 개척자에 가까운지라 베이스캠프가 집회소 역할을 맡게 되었으며, 필드에서도 파티원 이외 헌터들을 계속 볼 수 있게 되었다. 여기다 기존 퀘스트 수주 시스템에다 자율 탐사 도중 필드에 돌아다니는 몬스터를 공격해 퀘스트를 시작하는 시스템을 추가하면서 수렵을 바로 시작할 수 있도록 변했다. 이렇게 필드에서 몬스터를 공격하면 퀘스트를 발동하면 여러 추가 보상이 주어진다는 이점으로 헌터가 세미 오픈 월드 시스템을 거쳐 가도록 유도하고 있다. <와일즈>에서 확실해진 점이 있다면 토쿠다 유야 체제 <몬스터 헌터>는 시리즈가 암암리에 지켜져 왔던 폐쇄적으로 구분된 공간과 헌터 간 관계망, 퀘스트 구조를 실제 수렵 과정 내지는 온라인 게임처럼 ‘열려있게’ 변하는 방식으로 게임의 외연을 확장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상술한 <프론티어> 서비스 종료와 연계해서 보면, <월드>와 <와일즈>는 여러모로 온라인 (세미) 오픈 월드 헌팅 액션 게임으로서 <몬스터 헌터> 시리즈를 유도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단순히 기종뿐만이 아니라 게임 디자인에서도 혼종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세미 오픈월드적인 시도들에 대한 반응은 그리 좋지 못하며 <와일즈>에 이르면 콘텐츠 강요라는 비난까지 나올 정도로 많은 반발을 사고 있다. 이런 반발은 지금까지 정체성과 신규 요소가 잘 조화되지 못했던 부분도 있다.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퀘스트를 하기 전 거점에서 준비한 뒤 출발하고, 퀘스트 종료 후 거점에서 재정비하는 절차가 강한 게임이다. 그렇기에 거점과 몬스터가 있는 필드 사이의 경계를 흐릿하게 하고 자유롭게 다니게 하는 세미 오픈 월드 구성을 취할 거면 완전히 새로운 방법론을 택해야 했다. 즉 헌터가 거점과 필드 간의 전환을 해야 할 강한 동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와일즈>는 다소 안이한 절충주의를 택했다. 그 결과 세계의 밀도는 높아졌는데, 정작 그 높아진 밀도가 핵심 콘텐츠인 헌팅/채집에 포만감보다 피로감을 더한다는 <월드> 당시의 지적이 오히려 심화하여 나타나게 되었다. 자율 탐사 도중 수렵 퀘스트 돌입 시 추가 보상 역시 일부러 헌터가 세미 오픈 월드 형식을 따라가야 할 강력한 동기 유발이 되지는 못했다는 게 발매 후 중론이다. 결국 <와일즈>의 반쯤 열린 세계는 중간이 희박하고, 그 중간에 들어간 요소들은 헌터 입장에서는 지극히 미시적 것들이라 지금까지의 싱글 플레이 기반으로 칼같이 구분된 공간과 관계망에서 진행되는 부족적이고 단기지향적 멀티플레이에서는 오히려 불편한 요소가 되어버렸다. <월드> 시절부터 거의 반 강제화된 온라인 환경이 정작 여전히 불안정하다는 사실 역시 피로감을 가중하는 결과만 나왔다. 즉 <와일즈>는 시리즈 기준으로 과감하게 세계의 경계를 허물었고 그 지점에서만 한정해서 보면 어느 정도 성취를 거뒀지만, 정작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게임 디자인과는 잘 조화되지 않고 어색하게 동거하는 모양새가 되어 자기 발목을 잡은 셈이다. 이외 <와일즈>가 겪고 있는 다른 문제들도 있으나, 이 글 방향성에서는 다소 일탈하기에 생략한다. <와일즈>가 지금 겪는 진통은 거치형 콘솔 <몬스터 헌터>로 복귀 후 생긴 과도기 현상의 지나친 지속/개악과 더불어 유저들과 개발진의 성향 차와 알력이 맞물려 벌어진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월드> 이후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싱글 플레이 액션 게임을 확장한 소규모 멀티플레이 게임이라는 기존 정체성과 세미 오픈 월드-온라인 게임이라는 새로운 정체성 간의 혼종을 꾀하려 하나, <와일즈>에서는 계산 실패로 걸려 넘어졌고 그 결과 헌터들은 이탈했다. 그렇기에 <와일즈>의 진통은 역설적으로 싱글 플레이와 멀티플레이 간의 경계가 아직도 견고하며, <몬스터 헌터> 시리즈가 <월드>부터 내세우는 기종적, 게임 디자인적 혼종이 여전히 난제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몬스터 헌터> 시리즈가 완전히 끝장났다고 보긴 힘들다. 일단 시리즈 전통으로 확장판을 내놓아 타이틀의 수명을 늘리는 전략이 있었고, 2010년대부터 서비스로서 게임 개념이 강해지면서 당장의 곤란만으로 게임 전체의 수명을 판단하기엔 힘들어졌다. 물론 <와일즈>가 이렇게 되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여기다 <몬스터 헌터> 시리즈엔 <와일즈>가 완전히 망하더라도 혼종적 휴대용 게임기라는 성과를 이어가려는 스위치 2라는 와일드카드가 있다. 지금 당장은 스위치 2로 나올 <몬스터 헌터> 신작이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힘들지만, 적어도 <라이즈>에서 그들은 휴대용 게임기의 새로운 가능성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야심을 보였다. 그렇기에 다시 살짝 축소한 뒤 소규모 멀티플레이의 재미를 내세우는 고전적이지만 시류도 잘 따르는 <라이즈> 스타일의 <몬스터 헌터>로 성난 헌터들을 유혹하려는 건 시간 문제리라 본다. 그렇기에 <몬스터 헌터> 시리즈가 축소 지향 및 휴대용 게임기 지향으로 획득한 정체성은 유령처럼 사라지지 않고 끈질기게 프랜차이즈를 맴돌고 있으며, 캡콤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한동안 계속될 것이다. Tags: 몬스터헌터, 프랜차이즈, 액션롤플레잉, 일본게임, 헌팅액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이이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전문사 졸업 후 영화•게임 비평 기고 활동중. 어드벤처 게임 좋아함. (antistar23@gmail.com )
- Collaborate, Compete, and Broadcast: Gaming’s 21st Century Cultural Shifts from MMOs to Live Streaming and Online Platforms
If you’re a video game enthusiast born after the year 2000, chances are good that you grew up with relatively easy access to video game media. Though gaming still maintains some of its countercultural reputation, it has simultaneously become a facet of mainstream culture, and the sheer volume of player-produced video game content has done a lot of legwork to keep our favorite games alive in our eyes and ears long after we’ve signed off for the night. For even some of the most obscure games, it feels like there is a limitless amount of game content available for players to consume without even needing to play. Video gaming’s cultural spaces now weave in and out of games, online communities, and numerous digital platforms like Steam and Discord. < Back Collaborate, Compete, and Broadcast: Gaming’s 21st Century Cultural Shifts from MMOs to Live Streaming and Online Platforms 23 GG Vol. 25. 4. 10. ***You can see the Korean version of this article at below URL: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caffe7a3-6d3f-40e0-9c16-99fb33d9ee75 The Same as it Never Was If you’re a video game enthusiast born after the year 2000, chances are good that you grew up with relatively easy access to video game media. Though gaming still maintains some of its countercultural reputation, it has simultaneously become a facet of mainstream culture, and the sheer volume of player-produced video game content has done a lot of legwork to keep our favorite games alive in our eyes and ears long after we’ve signed off for the night. For even some of the most obscure games, it feels like there is a limitless amount of game content available for players to consume without even needing to play. Video gaming’s cultural spaces now weave in and out of games, online communities, and numerous digital platforms like Steam and Discord. At the turn of the millennium the situation was very different. As a young Canadian gamer in 1999, I have fond memories of waiting every week for two 30-minute television shows - Video and Arcade Top Ten and The Electric Playground - which were the only consistently available televised media about games in my area. * Canadian video game television show Video and Arcade Top Ten - Credit to videoandarcade YouTube channel. [1] To get our fix of game-related content outside of these programs we’d largely turn to monthly gaming magazines which came in three main varieties: proprietary magazines like Nintendo Power which essentially functioned as long-form commercials for recently released or upcoming products, review magazines like GamePro , or magazines directed at hobbyists looking for the latest hardware or industry details, like Next Generation . So how did we get from a handful of publications and two blink-and-you’ll-miss-them television shows a week that largely served to sell the newest games to players, to a vast repository of video game media that serves as a platform for numerous ongoing debates about various issues across gaming culture? The consumption environment of video games and their cultural spaces didn’t evolve on their own. Games are one facet of what Henry Jenkins dubbed “Convergence Culture” – effectively a whirlpool that unstoppably pulls disparate segments of culture together in new ways as our media technologies develop. [2] Video games are part of a complex media environment that involves film, television, magazines, and most critically, the emergent and novel forms of media content and game design affordances that the internet made possible. The first quarter of the 21st century saw an immense shift in how we experience games together, and the development of video game culture is a byproduct of the convergence era made possible by ‘web 2.0,’ and the democratization of the internet. Players became central figures as culture producers, and took on a more active role in publicly shaping culture through increased connectivity both in and out of game worlds. Consider that the current market leaders for game-related media consumption - Twitch and YouTube - didn’t even exist until 2006; two years after World of Warcraft launched and popularized an already flourishing subculture of online gaming across the globe. It may seem unthinkable now that millions of players could congregate together without myriad videos explaining all the new class changes, metagame concerns, and boss strategies, but at the time players were experimenting with new ways of interacting with each other online, and improvised new ways to communicate complex ideas about how to successfully overcome challenges together, all while learning new social contracts and ways of interacting with fellow players. Players were participating in the construction of a new online society; one where play served as the connective thread that linked disparate people together. At the same time, esports was a novelty with some aspiring gamers and organizers in the West turning to Korea’s impressive StarCraft [3] scene both for inspiration, and to validate burgeoning aspirations that one day the hobby or passion project of gaming could become a profession at the level of play, and not just at the level of game production. These forces collided with legacy media and emergent internet-driven media production – alongside the continuing trend originally propelled by reality television in the late 1990s of ordinary people becoming increasingly worthy of celebrity status in the public eye – to propel us towards a new gaming cultural landscape. MMOs and the New Normal of Connectivity and Sociality Though multiplayer gaming wasn’t a new phenomenon at the turn-of-the-millenium, the MMO boom of the early 2000s was foundational for bringing players together. In the same way that arcades were the central gaming spaces of the 1970s and early 1980s, [4] and home consoles and their respective brand wars were the focus of the 1990s, the 2000s became the era of the MMO. Earlier online multiplayer games like MUDs (Multi-user Dungeons) connected players together through largely text-based RPG systems, and though these proto-MMOs connected hundreds of players, they were still a relatively niche gaming subculture. While games like EverQuest [5] and Ultima Online [6] achieved some popularity in the late 1990s, World of Warcraft [7] brought a new level of popular appeal through its graphical style and smooth, approachable gameplay. Though World of Warcraft built a strong following on its own, the South Park episode “Make Love Not Warcraft” in 2006 put a formerly niche genre into the public sphere in previously unprecedented ways. Not only was this an unparalleled promotional moment for a game of this kind, but it signalled a new kind of cultural presence for the MMO genre that countless companies would strive to achieve through their own massively multiplayer games. * A congregation of players in World of Warcraft await a boat to travel to new lands - Author’s Screenshot. The most important takeaway from WoW ’s success and all the competing MMOs that followed would naturally be that MMOs were the next big thing – but MMOs afforded easier access to large-scale playful connection in a way that only a handful of MUD enthusiasts were able to access before. MMOs put both competitive and collaborative multiplayer opportunities in front of players, and most importantly they served as some of the first points of avatar-based online connectivity in play spaces for an entire generation of players. This kind of playful connectivity was a floodgate that could not be closed, and the DNA of MMO connection worked its way into countless genres as social media and mobile gaming leveraged the appeal of play for their own platforms. We could now join our friends, make new friends, and compare and share ourselves with others. More than ever before, it started to matter what and how our friends were playing, even on social media games like Farmville [8] , or as we chased achievements in our single-player console games. Video Game Broadcasting and Live Streaming as the Next MMO At the same time, in the mid 2000s, most websites were continuing to release short editorials focused on industry issues or technological developments , alongside a steady stream of video game reviews. Nearing the end of the first decade of the 2000s, there was a visible pivot – particularly visible in the creation and development of the website Giant Bomb, following Jeff Gerstman’s departure from Gamespot, which was a more conventional games journalism outlet. Giant Bomb’s content was more focused on discussions between members of the website team as informed players and experienced games journalists, without much of the pretense or artifice of traditional reviews or articles. The visible authenticity of the individuals who were broadcasting together, and the unplanned moments that would arise within segments, became as central to the overall experience of video game media consumption as the game content itself. In each of these cases, community is central to the audience experience. Twitch and similar live streaming sites aren’t the same without an active chat, and YouTube ‘Let’s Plays’ and Giant Bomb videos are a site for comment, discussion, and community. People identify with the personalities on screen and those who make themselves seen as members of these communities. This is often more important than the game that is being played or discussed – but that there is a game at all is an integral glue to that early 2000s connectivity: a society under construction linked together by play. While the MMO boom peaked in North America between 2008 and 2010, players of all kinds still clamored for the kind of communities that MMOs fostered, but now external sites had developed the infrastructure to support a play-based sociality outside of the confines of a fantastically rendered digital world. Celia Pearce wrote about the closure of the game Myst Online: Uru Live [9] and its players as a video game diaspora – as players maintained a strong sense of communal identification among one another even after they migrated to other games like Second Life and There.com . [10] Similarly, Mia Consalvo and Jason Begy found that players of the now defunct game Faunasphere stayed in touch and felt connected to each other as ‘ Faunasphere players,’ finding new games to play together or ways to stay in touch. They noted that players “actively work to form groups and relocate their play activities elsewhere, often investing great energy in the search for a new virtual ‘home.’” [11] This “new virtual home” isn’t necessarily a game even if the content might be play-related. Watching someone else play could be as satisfying as - sometimes more satisfying - than playing a game yourself, especially when this act of spectatorship is undertaken communally with friends and acquaintances from one’s own social network of prior gaming relationships. [12] Not only are viewers invested in the broadcaster’s success in the game they’re playing, but in their meta-success as a streamer trying to establish a career. Instead of trying to help our guildmates by providing them supplies or doing our part in a challenging boss fight, we’re now invested in the success of our favorite streamers. MMOs pulled players into shared social spaces through games, and once a similar playful connectivity was established outside the boundaries of virtual worlds, players and game fans alike were able to chase that connection and sociality without being tethered to a particular game and its digital geography. The growth of live streaming also affected what kinds of games would become popular. The idea of a “streamable” game is just as important as a playable game, and games that are just as fun to watch as they are to play became a key segment of the market. Games like League of Legends , [13] PUBG [14] , and Among Us [15] have tension built into every moment of gameplay through competition, and that tension is what makes experiencing these games vicariously as part of a collective audience their own pivotal gaming experiences. The success of Elden Ring , [16] for example, isn’t something we can attribute solely to the quality of the game, as streamers produce a bounty of viral moments of struggle through each challenging encounter attempted in front of thousands of viewers each, while the audience bonds as we share in our favorite streamer’s failures and (hopefully) eventual success. In a moment of peak convergence, esports and live streaming were perfect partners as Twitch served as a new centralized platform for putting competitive gaming in front of interested players. In my prior work, I note that this connection helped both sectors grow: "Esports grew from having “about 10 tournaments in 2000 to 696 in 2012,” [17] to have an estimated 523 million viewers across the globe. [18] While gaming has had a competitive element for decades, it reached new levels of saturation. Live streaming itself grew substantially during this time, as individual personalities began to broadcast their own gameplay for others, forming participatory audience-communities [19] and parasocial relationships. [20] [21] " The Platform Era and Uncertain Futures Taking a page out of the tech sector playbook, companies with a foothold in online gaming began to operate as ecosystems, such as Valve developing Steam into an all-encompassing market for games and cosmetic goods crossed with a social platform. In my work on toxic game culture, I outline the cultural impact and shape of gaming’s platform era: "Early voice communication software that players used like Ventrilo and Teamspeak were barebones VoiP programs, a far cry from the user-friendly multi-server social media-like hub that Discord has become since its release in 2015. There were fewer channels for players to connect to one-another across games, fewer broadcasters of gaming content circulating ideas about what the culture should look like, and there were also fewer online games overall for players to move between. Now, following in the footsteps of larger media companies like Disney and HBO, video game companies like Valve and Blizzard have become less interested in keeping players within individual games, instead opting to invest players in various games that are housed in their proprietary platforms (Steam for Valve, Battle.net for Blizzard). [22] [23] " Players are now living through the effects of platformization, which are still developing and ongoing. What is clear at this point is that over twenty-five years, players have been pulled much closer together across game, platform, and genre. We have been conditioned to socialize online, but we have done so through a combination of internet culture and a social environment whose very language has developed out of the online gaming lexicon. There has never before been more access to vast libraries of games, and an even greater number of players with whom to share our gaming passions. In many ways the linked networks that run through Twitch, Steam, and Discord, alongside all our favorite games, have connected us in a second-level persistent virtual world. This world is one made up of live streams, YouTube videos, esport team fandoms, and other subcommunities, each with different stakes in what gaming means, and who the cultural space should belong to. Is our current gaming landscape of unprecedented online proximity set to pull us even closer together in even more realistic and immersive environments through VR, or are we primed in what many are calling gaming’s “culture wars,” to be driven apart? As of now there is no clear answer. The only thing that can definitively be said, is that the future of gaming culture is as unpredictable as its past. [1] Videoandarcade YouTube Channel. https://www.youtube.com/watch?v=OWFm2qU0k5o&ab_channel=videoandarcadetop10 (accessed March 26th, 2025). [2] Jenkins, Henry. Convergence Culture: Where Old and New Media Collide. New York: NYU Press, 2006. [3] Jin, Dal Yong. “Historiography of Korean Esports: Perspectives of Spectatorship.” International Journal of Communication 14 (2020): 3727-3745. [4] Kocurek, Carly A. Coin-Operated Americans: Rebooting Boyhood at the Video Game Arcade.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15. [5] Sony, 1999. [6] EA, 1997. [7] Blizzard Entertainment, 2004. [8] Zynga, 2009. [9] Ubisoft, 2003. [10] Pearce, Celia. Communities of Play. Cambridge: The MIT Press, 2009, 7. [11] Consalvo, Mia, and Begy, Jason. Players and their Pets: Gaming Communities from Beta to Sunset.”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15, 91-92. [12] Consalvo, Mia, Marc Lajeunesse, and Andrei Zanescu. Streaming by the Rest of Us: Microstreaming on Twitch. Cambridge: MIT Press, 2025. [13] Riot Games, 2009. [14] Krafton, 2017. [15] Innersloth, 2021. [16] FromSoftware Inc., 2022. [17] Hiltscher, Julia. “A Short History of eSports.” eSports Yearbook 2013/2014 (2014): 9-15. [18] “Esports Ecosystem in 2023: Key Industry Companies, Viewership Growth Trends, and Market Revenue Stats.” Insider Intelligence article. January 1st, 2023. [19] Hamilton, William A., Garretson, Oliver, and Kerne, Andruid. “Streaming on Twitch: Fostering Participatory Communities of Play within Live Mixed Media.” CHI ‘14: Proceedings of the SIGCHI Conference on Human Factors in Computing Systems. April 14th, 2014, 1315-1324. [20] Sherrick, Brett, et al. “How Parasocial Phenomena Contribute to Sense of Community on Twitch.” Journal of Broadcasting and Electronic Media 67, no 1 (2023): 47-67. [21] Lajeunesse, Marc. “Transgressive Positivity in Four Online Multiplayer Games.” PhD Dissertation, Concordia University, 2023. [22] Zanescu, Andrei, Lajeunesse, Marc, and French, Martin. “Gaming DOTA Players: Iterative Platform Design and Capture.” Proceedings of DiGRA 2019. Kyoto, Japan, August 6-10, 2019, 1-3. [23] Lajeunesse, Marc. “Transgressive…”, 2023. Tags: NorthAmerica, MMORPG, Online Game, live streaming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Researcher) Marc Lajeunesse Marc is a PhD candidate in Concordia University's department of communication studies in Montreal, Canada. Marc’s research focuses on toxicity in online games. He is driven to understand toxic phenomena in order to help create more positive conditions within games with the ultimate hope that we can produce more equitable and joyful play experiences for more people. He has published on the Steam marketplace and DOTA 2, and is a co-author of the upcoming Microstreaming on Twitch (under contract with MIT Press).
- [축사] 창간을 축하합니다
이렇듯 게임이 단순한 놀이가 아닌 하나의 산업이자 문화로서 많은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게임의 가능성과 가치를 계속 공유하고 논의해야 합니다. 이번에 창간하는 ‘게임 제너레이션’이 게임의 역사, 게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게임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등을 되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는 담론의 장이 되어주길 바랍니다. 또한 정부와 게임업계, 이용자들이 소통하는 대표 창구로 성장하길 기대합니다. < Back [축사] 창간을 축하합니다 01 GG Vol. 21. 6. 10. 안녕하십니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황희입니다. 게임문화 웹진 ‘게임 제너레이션’의 창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이번 창간을 위해 애쓰신 관계자분들과 함께해주시는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게임은 전 세대를 아우르며 남녀노소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문화입니다. 특히 종합 예술로서 이야기와 캐릭터 디자인, 음악, 프로그래밍 등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 작업이 필요하고 발전 가능성이 무한한 고부가가치 산업입니다. 또한 대한민국은 우리 이스포츠 선수들의 뛰어난 실력과 관객들의 열정을 바탕으로 이스포츠 최강국으로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렇듯 게임이 단순한 놀이가 아닌 하나의 산업이자 문화로서 많은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게임의 가능성과 가치를 계속 공유하고 논의해야 합니다. 이번에 창간하는 ‘게임 제너레이션’이 게임의 역사, 게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게임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등을 되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는 담론의 장이 되어주길 바랍니다. 또한 정부와 게임업계, 이용자들이 소통하는 대표 창구로 성장하길 기대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한국 게임산업의 발전과 한·중·일 이스포츠 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나아가 대한민국이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 문화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창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게임 제너레이션’의 무궁한 발전과 함께 한국 게임문화를 사랑해주시는 모든 분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황희
- ‘보는 게임’ 제작의 현장을 찾아서 - ‘LCK’ 세계화의 주역, 라이엇게임즈 코리아 진예원 프로듀서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압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이스포츠 리그는 라이엇 게임즈의 LCK (League of Legends Champions Korea)일 것이다. LCK는 국내와 해외 등지의 LOL 게이머들과 프로 선수들의 팬덤을 아우르는 최대의 축제이다. 이 축제에서 관객들은 경기를 관전하는 짜릿함과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린다. 이렇게 LCK는 게임이 가져다 주는 재미를 끊임없이 확장해나가고 있다. 특히 지난 2020년 롤드컵 결승은 미국 방송계의 아카데미상이라고 할 수 있는 에미 (Emmy) 상을 거머쥐어 그 저력을 톡톡히 증명해내었다. 이번 기사에서는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에서 LCK 프로듀싱 전반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진예원 PD를 만나 LCK 제작의 비화를 듣는 것은 물론 이스포츠의 전망까지 살펴보도록 할 예정이다. < Back ‘보는 게임’ 제작의 현장을 찾아서 - ‘LCK’ 세계화의 주역, 라이엇게임즈 코리아 진예원 프로듀서 01 GG Vol. 21. 6. 10.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압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이스포츠 리그는 라이엇 게임즈의 LCK (League of Legends Champions Korea)일 것이다. LCK는 국내와 해외 등지의 LOL 게이머들과 프로 선수들의 팬덤을 아우르는 최대의 축제이다. 이 축제에서 관객들은 경기를 관전하는 짜릿함과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린다. 이렇게 LCK는 게임이 가져다 주는 재미를 끊임없이 확장해나가고 있다. 특히 지난 2020년 롤드컵 결승은 미국 방송계의 아카데미상이라고 할 수 있는 에미 (Emmy) 상을 거머쥐어 그 저력을 톡톡히 증명해내었다. 이번 기사에서는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에서 LCK 프로듀싱 전반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진예원 PD를 만나 LCK 제작의 비화를 듣는 것은 물론 이스포츠의 전망까지 살펴보도록 할 예정이다. 편집장: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진예원: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에서 이스포츠 브로드캐스터 및 글로벌 프로듀서를 담당하고 있는 진예원이다. 주요 업무는 LCK 글로벌 영문 방송을 총괄하는 것이다. LCK는 중국어나 영어 이외로도 6개 국어로 진행되고 있다. 각 방송이 원활하게 제작, 상영될 수 있도록 관련 업무를 조율하는 코디네이터 일을 함께 담당하고 있다. 편집장: 현재 이스포츠가 대중문화로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은 무엇인가? 또 이스포츠만의 독특한 특색이라면 어떤 것이 있나? 진예원: 이제 이스포츠는 단순히 게임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종합적인 미디어 엔터테인먼트로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관객층의 변화에서 가장 뚜렷이 읽어낼 수 있다. 과거 롤드컵의 주 시청자는 리그 오브 레전드를 플레이하고 있는 실제 게이머가 많았다. 이 시청자들은 게이머이자 시청자이다. 프로 선수의 수준 높은 게임 플레이를 보면서 열광하는 동시에 프로 선수의 플레이를 자신의 게임에 접목시켜 보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리그 시청에 새로 유입되는 층은 좀 다르다. 이 시청자들은 본인이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지 않고도 리그 자체를 즐겨 보시는 분들이다. 축구를 직접 하지 않아도 월드컵 시청을 즐길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월드 챔피언십 같은 대형 이벤트를 제작할 때는 이 점을 특히 유의한다. 게임 중계라는 기본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스펙터클한 연출을 통해 시각적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한다. 이스포츠의 또 다른 독특한 점이라면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흐려졌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선수분들도 스트리밍과 다큐 제작 등 콘텐츠 생산을 하고 있고 이런 콘텐츠들을 기반으로 2차, 3차 생산을 하는 열정적인 팬분들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여 만들어내는 콘텐츠 또한 이스포츠 콘텐츠의 일부로 포함할 수 있겠다. 편집장: 국내와 해외 방송을 동시에 관리하며 양쪽의 방송 콘텐츠와 팬덤의 반응을 꾸준히 지켜보고 계시다. 국내와 해외 방송에 차이가 있는지? 각 방송에 대한 반응은 다른 편인지? 진예원: 국내 시청자들의 경우 주로 LCK를 시청하기 때문에 LCK 중심의 피드백이 많다. 그런데 해외 시청자들은 LCK뿐만 아니라 여러 리그를 함께 시청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대형 커뮤니티인 레딧(reddit)같은 경우 리그 오브 레전드 커뮤니티에서 모든 리그에 대한 정보며 하이라이트 영상, 게임 분석 등을 전부 수용한다. 팬덤의 성향 또한 차이가 나는 편이다. 국내 팬덤의 경우 자신이 응원하는 특정한 팀이나 선수를 보러 경기를 시청한다. 해외 팬덤은 프로 게임 경기 자체의 수준높은 플레이 자체를 즐기는 경향이 있다. 캐스팅에서도 국내와 해외의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캐스터들은 플레이에서 주목하는 요소가 각각 다르다. 동일한 플레이를 봐도 다른 관점에서 플레이를 보기 때문이다. POG 노트를 할 때 한국과 중국 등 다양한 해설자가 참여하고 있다. 영어 방송 캐스터는 게임 플레이의 흐름에 집중해서 승리로 가는데 실질적인 기여를 한 선수에 주목한다. 반면 국내 캐스터는 슈퍼플레이나 한타 싸움에서의 영웅적인 활약에 좀 더 집중하는 편이다. 또 해외 캐스터분들은 국내 시청자들이 보기에 당연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부분에 코멘트를 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겨울 시즌 게임에서 날이 너무 건조해서 커다란 가습기를 몇 대씩 가동했던 적이 있었다. 국내 팬분들은 ‘큰 가습기를 쓰는구나’, 하고 넘어가는걸 해외 팬분들은 ‘저 증기는 뭐냐’, ‘선수 귀에서 김이 나온다’, 하면서 정말 재밌어하셨다. 이런 한국만의 맥락을 캐스터분들께서 설명해준다. 국내 선수들이 하나같이 이마를 가리는 앞머리 모양을 하고 뿔테안경을 쓰는데, 왜 한국 사람들은 스타일이 비슷한지에 대한 코멘트를 해주시기도 한다. 팬의 입장에서 궁금하고 또 따라해보고 싶은, 그런 흥미로운 문화로서 한국 문화가 자연스럽게 섞여서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이스포츠 종주국이 갖는 장점이 아닐까? 편집장: 이스포츠 방송 제작에 대해 좀 더 묻겠다. 이스포츠에 있어 게임 화면을 구현한다는 것이 게임 종목에 따라 달라지나? 이를테면 리그 오브 레전드와 배틀그라운드를 연출하는 것에 있어서 차이가 있나? 진예원: 리그 오브 레전드의 경우, 초창기와 현재의 관전 모드는 많이 다르다. 초창기 중계가 다양한 카메라 각도를 활용하여 게임을 생동감 있게 보여주었다면 현재 중계는 챔프의 등 뒤에서 게임을 보는 구도를 쓰는 등, 마치 애니메이션 같은 연출을 하고 있다. 배틀그라운드와 같은 FPS 게임은 총과 칼을 쓰는 등 게임의 룰을 몰라도 누구나 상황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을 만큼 직관적이다. 반면 리그 오브 레전드는 다양한 챔프와 스킬, 아이템이라는 요소가 있어 직관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그 요소들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운용하는 과정에서 선수 개인의 게임 플레이 특징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이스포츠로서의 배틀그라운드는 접근성은 좋되 스펙터클은 약한, 넓고 얕은 게임이라 할 수 있겠다. 또 옵저버의 영향도 있겠다. LCK에는 옵저버 팀이 있는데 한 게임을 여럿이서 지켜보며 적절한 화면을 나누는 방식으로 운영 중이다. 옵저버 팀은 준프로급 실력을 갖춘 분들로 구성되어있다. 옵저버 팀은 맵 곳곳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싸움을 추적하고 경기의 큰 흐름에서 승패에 결정적인 기점이 되는 장면을 잡아내야 한다. 이를 해내려면 반드시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한다. LCK 옵저버 팀의 실력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한다. *진PD는 2020 WORLDS FINAL 제작에 참여하며 에미상 스포츠부문을 수상하는 커리어를 쌓기도 했다. 편집장 : 지난 LCK 결승전은 코로나 감염 방지를 위해 무관중으로 진행되었다. LCK의 결승 무대가 중요한 행사인 만큼 제작자로서 많이 허전하지는 않았나? 진예원: 코로나 이후로 대규모 현장 행사에 제약이 걸린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지난 LCK 결승전을 돌이켜보면 오로지 무관중 상황이어서만 할 수 있는 다양한 연출을 새로이 시도해볼 기회가 되었다. 이를테면 AR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하면서 도시에 떠있는 스튜디오에서 경기를 하는 연출을 했다. 가상과 현실이 절묘하게 섞여있는 독특한 연출을 새로 시도해볼 수 있었다. 또 지난 결승에서는 LCK 영어방송 최초로 분석 방송과 프리쇼를 진행하고, 프리쇼에도 조영길 캐스터를 섭외하는 등 콘텐츠를 다양하게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다. 결승 게임이라는 스펙터클을 제공하기는 어려웠지만 보다 풍성해진 콘텐츠 통해 시청자에게 새로운 종류의 만족감을 드릴 수 있었다. 오히려 무관중 상황이었기에 제작 측면에서 다르게 생각하고 시도할 수 있는 부분이 늘어나기도 했던 셈이다. 특히 지난 LCK 결승 오프닝 무대에서는 TFT 모바일 광고였던 ‘두둥등장’ 영상을 방영하기도 했는데, 국내와 해외 안팎으로 많은 분들께서 좋아해주셨다. 편집장: 다음은 조금 씁쓸한 질문일 수도 있겠다. 현재 이스포츠에서 부동의 1위는 LCK지만 그 위상이 예전같지 않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현장에서도 이런 반응을 느끼는지? 진예원: 전반적으로 다른 리그의 퀄리티가 상향평준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LCK의 위상이 예전같지 않다는 평가가 타당한지는 잘 모르겠다. 재작년까지도 그런 위기감이 있었지만 작년 경기때는 LCK만의 위상을 잘 보여주었다. 다른 지역, 특히 중국의 자본력이나 지원에 비하면 우리는 단일 국가 단위이다.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이만한 성과를 거둬나가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편집장: 이스포츠 산업에서는 리그 오브 레전드가 명실상부한 1위이다. 그런데 리그 오브 레전드의 독주도 벌써 10년이 넘어가고 있다. 게임에도 수명이 있다. 이 인기는 얼마나 갈 것이라고 예상하나? 진예원: 참 어려운 문제다. 이스포츠와 게임 업계의 특성상 변화가 빠르고 또 변화의 양상을 예측하기도 어렵다. 모바일 이스포츠도 성장하는 중이고 모바일이 언제 PC를 넘어설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떤 장르의 게임이 언제 개발되는지, 그리고 그 게임이 이스포츠 종목으로 적합한지 여부에 따라서도 이스포츠 시장은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에 대한 위험은 언제나 짊어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리그 오브 레전드 안팎으로 이 게임을 오래 지속하려는 노력들이 끊임없이 있어왔다. 라이엇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게임에 지속적인 리뉴얼을 해나가고 있다. 새로운 챔프들을 업데이트하는가 하면 리그 오브 레전드 세계관에 기반한 여러 파생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만화 등으로 확장을 도모하고 있다. KDA는 리그 오브 레전드 아이피를 확장하여 케이팝과도 연계한 좋은 사례이다. TFT와 같은 전략적 팀전투도 이스포츠화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 바깥을 살펴보면 이스포츠를 기반으로 한 여러 제도들이 해외를 중심으로 생겨나고 있다. 대학에 이스포츠 전공이 생기는가 하면 칼리지 이스포츠의 형태로 지역 리그가 형성되기도 한다. 이러한 기반들이 리그 오브 레전드, 더 나아가 이스포츠의 확고한 자리매김을 도울 원동력이 될 것이다. 편집장: 마지막 질문이다. 조금 뻔한 질문일 수도 있겠다. 이스포츠 문화의 현장에서 이스포츠라는 단어를 어떻게 평가하나? 진예원: 이스포츠만의 독특한 시간 감각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입사 초기에 있었던 일이다. 우리는 오후 2시에 출근을 하는데 캐스터분들이 ‘좋은 아침!’ 이라고 인사를 해주셨다. 아침이 아니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이건 이스포츠식 시간이라면서 다들 밤을 새고 이제 일어나지 않느냐고 말씀하셨다. 또 시간 감각 자체가 무척 빠른 것도 있다. 중계 메인 캐스터들의 일정도 바쁘게 돌아가지만 그 사이 유튜브나 커뮤니티 등지에서 끊임없이 생산되는 콘텐츠를 따라가고 사건사고를 체크하느라 하루가 무척 빠르게 지나간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운 인디음악 씬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예술사회학 연구와 (공연)사진 촬영에 매진중이다. 라캉 정신분석 철학서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영번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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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1 한국에서 문화로서의 게임이라는 말은 다양한 함의를 내포한다. 중독을 유발하므로 규제해야 한다는 규제담론과 산업으로서 진흥되어야 한다는 산업담론 사이에서 갈곳을 잃은 문화담론의 의미를 짚는다. 게임의 문화적 존재론: 천출(賤出), 기술적 총아, 참여문화 이 작품의 결말은 AR 안경을 쓰고 이루어지는 놀이와 장난스러운 일이 등장인물의 연애 관계를 넘어 트라우마를 발생시키고, 이러한 과정에서 이를 사용하는 이들의 생명을 위협하게 되면서 파국을 맞게 된다. 부모들은 AR 안경을 압수해버리려고 하는데, 이 때 주인공인 유코와 그의 친구들은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한 번 그 세계에 몸담아서 그 세계를 알아버렸기 때문에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는 게임의 세계를 이미 경험해버렸기 때문에 이제 게임 이전 시대로 되돌아 갈 수 없다. 그렇다면 게임이 만들어 낸 달콤함과 고통 모두를 인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Read More <용과 같이>, 관광게임 속의 정치적 맥락들 그러나 현실의 우리에게도 용과 같이 시리즈의 주인공 처럼 행동할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휴가를 내서 관광지로 여행을 떠난 경우가 그렇다. 일상으로 돌아가 해결해야 할 여러 복잡한 난제를 머리 속에 넣고 있는 상태에서도 우리는 도쿄 신주쿠, 오사카 도톤보리, 오키나와, 후쿠오카, 삿포로, 나고야, 요코하마 등의 거리를 거닐고 지역 음식 등 문화를 경험하면서 하루종일 즐길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용과 같이 시리즈를 플레이하는 우리는 코로나19 시대에 일본 관광을 즐기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게 이 시리즈가 본질적으로 관광 게임인 이유이다. Read More QUOVADIS, 게임법 - 국회 안에서 바라본 게임법 진행의 경과와 미래 물론 전부개정안의 모든 내용이 정답이라는 것은 아니다. 발의하고 보니 보완해야할 부분들도 여럿 보였다. 특히 국내대리인지정제도는 더욱 강화해서 발의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부개정안에 빠져 있거나 부족한 부분들은 심사 과정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수정될 것이다. 또한 다른 게임법 일부개정안과도 병합심사되어 더 좋은 내용으로 고쳐질 것이다. 이를테면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서는 컴플리트 가챠 규제 법안이나 이용자 권익보호위원회 규정 법안과 함께 병합심사 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느릴지언정 멈추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꾸준히 내딛고 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국민의 꾸준한 관심은 국회를 일하게 한다. Read More [Editor's view] 선언을 넘어선, 실천으로서의 게임문화 매우 급박하게 변하는 것 같지만 그 기저에 흐르는 도도한 맥락을 놓치지 않고자 하는 것이 〈게임 제너레이션〉의 목표다. 첫 호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꾸준히 그리고 우직하게 그 길로 가고자 한다. 동시대의 교양으로서, 혹은 지금 시대의 가장 뜨거운 놀이로서 게임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앞으로 이어질 의 모든 이야기일 것이다. Read More [인터뷰] 북미 게임연구자 Consalvo, 한국과 북미의 게임문화를 말하다 콘살보 교수와의 이번 인터뷰는 게임에 대한 인문사회학적 고찰에 있어 필수적인 게임학의 현재를 진단해보는 한편 북미의 상황에 대해 들어봄으로써 이 시점, 여기에서 고민해볼 만 한 지점들을 모색하고자 기획하였다. 실시간 인터뷰가 어려운 현재 여건상 이 인터뷰는 이메일로 진행되었음을 밝힌다. Read More [창간사] 문화를 향하는 가교의 역할을 기대하며게임문화재단 이사장 적은 인구와 제한된 국토가 우리의 현실이다. 즉 우리의 하드웨어는 매우 초라하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창조하고 혁신할 수 있는 생각이라는 소프트웨어다. 그것도 기발한 생각들이 필요하다. 그 절묘한 연결성들을 만들어 내는 게임에 관해 말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다. 미술이 문화로 자리잡은 건 미술관과 큐레이터 때문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제 게임에도 그 장소와 사람이 필요하다. 가 그 역할을 할 가장 중요한 적임자가 되어 주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Read More [축사] 창간을 축하합니다 이렇듯 게임이 단순한 놀이가 아닌 하나의 산업이자 문화로서 많은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게임의 가능성과 가치를 계속 공유하고 논의해야 합니다. 이번에 창간하는 ‘게임 제너레이션’이 게임의 역사, 게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게임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등을 되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는 담론의 장이 되어주길 바랍니다. 또한 정부와 게임업계, 이용자들이 소통하는 대표 창구로 성장하길 기대합니다. Read More ‘보는 게임’ 제작의 현장을 찾아서 - ‘LCK’ 세계화의 주역, 라이엇게임즈 코리아 진예원 프로듀서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압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이스포츠 리그는 라이엇 게임즈의 LCK (League of Legends Champions Korea)일 것이다. LCK는 국내와 해외 등지의 LOL 게이머들과 프로 선수들의 팬덤을 아우르는 최대의 축제이다. 이 축제에서 관객들은 경기를 관전하는 짜릿함과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린다. 이렇게 LCK는 게임이 가져다 주는 재미를 끊임없이 확장해나가고 있다. 특히 지난 2020년 롤드컵 결승은 미국 방송계의 아카데미상이라고 할 수 있는 에미 (Emmy) 상을 거머쥐어 그 저력을 톡톡히 증명해내었다. 이번 기사에서는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에서 LCK 프로듀싱 전반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진예원 PD를 만나 LCK 제작의 비화를 듣는 것은 물론 이스포츠의 전망까지 살펴보도록 할 예정이다. Read More “개발자는 자기 자신을 향해 끝없이 질문해야 한다” - 죄책감 3부작의 개발자 somi 인터뷰 세계에서 마주하게 되는 죄책감을 느슨한 연결로 풀어낸 SOMI의 ‘죄책감 3부작’이 막을 내렸다. 전의 두 작품이 세상 밖으로 닿는 길을 터주었다면, 2020년 신작 <더 웨이크>는 한 개인의 과거와 깊은 내면으로 안내한다. 암호를 해독하며 엔딩에 이르렀을 때, 눈 앞에 펼쳐진 가장 개인적인 삶은 나를 뒤돌아보게 한다. Read More 〈로블록스〉의 상상된 즐거움 로블록스는 조악함으로 가득하다. 게임에 보이는 텍스트의 한글 번역은 개발자가 어떤 번역기를 사용했는지 궁금해질만큼 기괴하고 오류가 많다. 글로벌 게임의 필수 업무인 현지화 작업은 기대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게임의 3D디자인은 대체로 투박한 로우 폴리곤이다. 그 오브젝트를 감싸는 텍스쳐는 단색이거나 대충 그려진 수준이 허다하다. 외형만 그러한가. 캐릭터가 걸어다니는 애니메이션은 어색하고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 캐릭터의 몸은 게임 도중에 이유없이 뒤틀리고, 기물 사이에 쉽게 낀다. 다른 온라인 게임에서 버그로 리포트되는 것들이 로블록스에서는 일상적이다. 게임이 추구하는 주제들 또한 무겁지 않고 가볍다. 게임 일부를 예로 들면, 보모가 되어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좀비가 나타나는 학교에서 하룻밤을 보내거나, 무서운 돼지 귀신을 피해 도망다니는 것이 게임의 목적이자 전부다. Read More 게이머는 난민이 될 수 있는가? - <로스트아크> 대량이주 사태와 난민의 정체성 2021년은 한국 mmorpg 게이머들에게 대량이주의 해로 기록될 것이다. <메이플 스토리>나 <마비노기>의 경우, 아이템을 강화하는 세공도구 같은 유료아이템의 불투명한 확률 매커니즘이 문제였다. 랜덤이라고 표기되었지만 실은 옵션별 숨어있는 차등확률을 통해 랜덤확률에도 못미치는 효과를 보거나, 응당 적용되어야 할 옵션이 오류로 적용되지 않아 수년동안 0%의 확률로 실패한 뽑기를 유발한 것이 문제였다. Read More 게임문화/비평에 대한 작은 바람 -권력투쟁을 위한 비평의 역할과 책임에 관하여 몇 달 전의 일이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촌 동생이 꽤나 발칙한 사고를 쳤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건의 진상은 이러했다. 요 귀여운 녀석이 게임에 미쳐 부모님 몰래 수십만 원어치의 현질을 했고, 그걸 들켜 죗값을 달게 받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장성한 아들을 둔 우리 엄마는 비슷한 일을 이미 여러 번 겪은 바, 대수롭지 않게 ‘애들 다 그러면서 크는 거지’라며 심심한 위로를 건넸지만 이모는 ‘이노무 시키를 대체 어떻게 해야 하냐’며 발을 동동거렸다. Read More 구독이 세상을, 게임을 바꿀까? - 구독형 결제, 가능성과 한계 그리고 여기 두 개의 질문이 있다. “당신은 지금까지 몇 개의 게임을 플레이해봤습니까?”와 “당신은 지금까지 몇 개의 게임을 소유해봤습니까?”이다. 이 두 질문에 대한 답으로 나온 두 개의 숫자는 상당히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소유하지 않은 게임도 플레이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Read More 리그 오브 레전드의 유동적 원근법에 관한 노트 변화하는 원근법과 그에 맞추어 재편되는 게임 내 공간감, 플레이어의 시각성은 앞으로 우리의 시각 문화에서 더욱 중요한 위상을 차지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시각성은 과연 우리의 눈에 어떤 변화들을 불러들일까? 복수 개의 원근법, 회전하는 원근법이 구성하는 세계는 어떤 풍경일까? 우리의 눈은 그런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까? 더 많고 풍성한 논의가 이 글 위에 쌓여 가기를 기대해 본다. Read More 메타버스, 호흡을 고르고 냉정하게 바라보면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메타버스가 오고 있다”고 발언했다. 에픽게임즈 CEO 팀 스위니도 10억 달러 규모 투자를 유치하고 메타버스를 핵심 비전으로 언급했다. 마크 저커버그는 "향후 5년 후에 페이스북을 메타버스 회사로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펄어비스와 텐센트도 메타버스를 주요 아젠다로 언급했고, 지난 NDC에서도 넥슨 김대훤 부사장이 “더이상 게임 회사, 게임 산업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 제안했다. 다분히 메타버스를 의식한 발언이다. Read More 여름은 언제 시작할까 - 북미 최대의 게임쇼, E3가 맞이한 변화와 도전 미국에는 100일간의 여름(100 days of summer)라는 개념이 있다. 5월의 마지막 월요일에 자리잡고 있는 공휴일인 메모리얼 데이를 여름의 시작으로 본다. 한국으로 치면 현충일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 메모리얼 데이는 가진 의미와는 상관 없이 그렇게 한국의 절기로 치면 입하같은 날이다. 그리고 여름의 끝은 9월의 첫째 월요일인 레이버 데이다. 노동절 연휴가 되면 이제 여름이 끝났음을 실감한다. 대략 이 기간이 100일이기 때문에 이 때를 100일간의 여름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도 소소한 인기를 끈 영화 500일의 썸머 또한 이런 개념에서 제목을 빌려온 것이다. 여름에 특별한 시작과 끝이 있다는 개념. 이 개념에 입각해서 보자면 게이머들에게 여름의 시작과 끝은 뭘까? 게이머들에게 여름의 시작은 E3고 끝은 게임스컴이다. Read More 완벽히 이해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들 - <잇 테이크 투>로 본 게임 플레이어의 조건 2021년 상반기의 최대 화제작이자, 신데렐라를 뽑자면 첫번째로 나올 게임은 바로 <잇 테이크 투> 다. 아직도 영화 <깝스>에서 사타구니에 총을 끼우고 발사하던 장면을 연출한 장본인이라는 사실부터 떠오르는 영화 감독이자, 배우이자, 게임 제작자인 요제프 파레스의 이 최신작은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결과물이다. Read More 즐기는 사람들을 지켜라 - 만화는 어떻게 멸시와 비하를 딛고 일어섰는가 1972년 6월 29일 동아일보에선 “불량만화 화형식”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불량만화는 사회악의 근원이다”라는 플래카드를 앞세운 ‘한국아동도서보급협회’는 서울 남산 야외음악당(서울애니메이션센터가 위치한 자리다!)에서 ‘어린이 악서 추방대회’를 열고 만화책을 모아 불태웠다. 이 단체는 만화를 두고 ‘유소년의 정서발달을 해친다’, ‘제대로 된 지식을 전달하지 못한다’, 그리고 ‘맞춤법과 띄어쓰기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주류의 시선에서, 당시 만화는 ‘악서’였던 셈이다. Read More 한국 게임비평의 궤적과 방향 세계 최초의 게임잡지는 1981년 영국에서 발간된 <컴퓨터와 비디오게임(Computer & Video Games: CVG)>이다. 2004년부터 온라인으로만 발행되다, 2015년에는 온라인사이트까지 폐쇄하고, (www.gamesradar.com )로 리디렉션됐다. Gamesradar+는 여전히 기대작이나 신작 리뷰, 업계동향뿐 아니라 알찬 내용의 작품비평을 제공해 주고 있다. 한국에서 게임잡지가 등장한 것은 그로부터 약 10년 뒤인 1990년대 초반이다. 1980년대 PC 보급시기와 맞물려 닌텐도(Nintendo)의 ‘패미콤(Famicom)’을 국산화한 ‘현대 컴보이’가 소개됐다. 이후 세가(Sega)의 16비트 ‘메가 드라이브(Mega Drive)’를 삼성전자가 국내버전으로 바꾼 ‘수퍼 겜보이’가 발매되고, 콘솔게임에 대한 관심 급증이 게임전문잡지의 탄생을 추동했다. Read More
- 우리의 UX를 찾아서: 오락실 코옵을 추억하다
그 시절 같은 학교 친구들에게는 일종의 의식이 있었다. 무슨 게임을 하든 가장 마지막 코스는 <갈스패닉 S2>로 플레이하기로 한 것이었다. <갈스패닉>이란 쉽게 말해 땅따먹기 게임으로 상하좌우에 대각선까지 8방향으로 기체를 조작해 구역을 확보하면 승리하는 게임이다. 여기까지만 설명하면 거짓말에 가깝다. <갈스패닉>에서는 땅을 따먹으면 그 구역에는 ‘갈’이 등장했고, 특정 퍼센테이지를 완수하면 온전한 일러스트를 볼 수 있었다. 이 게임의 핵심 인기 요인은 일러스트였다. < Back 우리의 UX를 찾아서: 오락실 코옵을 추억하다 08 GG Vol. 22. 10. 10. 매일 저녁 오락실에서는 뜨거운 응원전이 열렸다 그 시절 같은 학교 친구들에게는 일종의 의식이 있었다. 무슨 게임을 하든 가장 마지막 코스는 <갈스패닉 S2>로 플레이하기로 한 것이었다. <갈스패닉>이란 쉽게 말해 땅따먹기 게임으로 상하좌우에 대각선까지 8방향으로 기체를 조작해 구역을 확보하면 승리하는 게임이다. 여기까지만 설명하면 거짓말에 가깝다. <갈스패닉>에서는 땅을 따먹으면 그 구역에는 ‘갈’이 등장했고, 특정 퍼센테이지를 완수하면 온전한 일러스트를 볼 수 있었다. 이 게임의 핵심 인기 요인은 일러스트였다. 그래서 오락실 맨 구석 <갈스패닉 S2> 기기에서는 요구 조건 달성을 위한 협동 플레이가 펼쳐졌다. 그날 마침 잔돈이 가장 많이 남은 친구가 물주가 되고, 무리 중 가장 컨트롤이 좋은 친구가 자리에 착석한다. 날아오는 탄막이나 남은 시간을 일러주는 친구, 다음 패턴이라던가 적 몬스터를 가두는 법을 말해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당시는 핸드폰 카메라로 완성 결과물을 촬영할 수도 없었으므로 눈으로 일러스트를 담아가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친구들은 최선을 다해 이미지를 머릿속에 저장했다. 이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UX)이야말로 필자가 가지고 있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이다. 오락실은 그야말로 협동플레이(Co-Op, 코옵)에 최적화된 공간이었다. 앞서 말한 <갈스패닉>뿐 아니라 여러 게임에서 코옵이 이루어졌다. 여러 사람이 한 공간에 모이는 오락실의 특성상 같이 자리에 앉아서 게임을 하지 않더라도 여럿이 함께 의사소통을 하면서 퍼즐을 풀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UX를 찾아서 돌이켜보면 오락실은 2인용 게임에 특화된 공간이었다. 일반적으로 오락기 하나에 자리는 2개이므로 1p와 2p가 겨루는 게임이 많았지만, 함께 목적 달성을 위해 달리는 게임도 적지 않았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임은 <스노우 브라더스 2>. 설계상 눈, 번개, 물, 바람 등 4종류의 캐릭터를 모두 골라서 플레이할 수 있었지만, 오락실에서는 기판의 한계로 대체로 2p 플레이까지 지원했다. 두 플레이어가 각자 몬스터를 볼로 만들어 가둔 뒤, 타이밍을 맞춰 터뜨리는 재미가 있었다. 아케이드판 <천지를 먹다>나 <닌자 베이스볼 배트맨> 같은 벨트스크롤 액션 게임은 코옵의 진수라고 이를 수 있다. 두 사람이 좁은 기기에 나란히 앉아 어깨를 부딪치며 버튼을 재빨리 눌러가며 게임을 플레이하곤 했다. 서로 체력 회복 아이템을 양보하거나, 서로의 캐릭터에 더 도움이 되는 버프 아이템(또는 무기)을 양보하는 미덕이 작동했다. 미션에 성공할 때 하이 파이브를 하기도 하고, 나는 살았지만 혼자 남아서 플레이하기 싫어 2p를 부활시키기 위해 선뜻 100원을 내기도 했다. 그렇다. 다른 사람의 플레이를 위해서 돈을 내준다는 행위는 오락실에서 대단히 멋진 일이었다. 하던 게임을 뺏어서 하거나, 오락실 근처 으슥한 골목에서 돈을 뺏거나, 딸깍이(또는 딱딱이)를 작동시켜 몰래 크레딧을 추가하는 등 허용되지 않는 행위를 하지 않고서는 오락실에서는 누구나 100원짜리를 기기에 집어넣어야 게임을 할 수 있었다. 이 엄정한 100원의 법칙 속에서 자신의 한 판 크레딧을 나누어주는 호혜는 온라인게임 시대에서는 ‘소매넣기’와 같은 뉴비 도와주기에서 간혹 찾아볼 수 있다. 그마저도 ‘고인물’ 유저가 잉여 자산의 일부를 나눠주는 것으로 그 무게는 다를 것이다. 100원의 행복 농담 조금 섞어서, 누구나 한 판에 100원을 넣어야 한다는 법칙은 곧 P2W(Pay 2 Win)과 연결시킬 수 있다. 특정 게임기에 동전을 많이 넣은 플레이어일수록 숙련도가 올라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PvP를 할 때 그 게임에 투자를 많이 한 사람이 유리한 측면이 크다고 볼 만하다. 그러다 플레이어의 게임 숙련도가 특정 경지를 넘어가면, 동전 한 닢에 결말을 보는 ‘괴수’가 되어 오락실 사장의 눈초리를 받았을 것이다. 100원 하나 넣고 종일 <테크모 월드컵 98>을 플레이하며 다른 사람들을 무찌르는 사람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축구게임은 인기가 높았기 때문에 하려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가 한 쪽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회전율이 지극히 떨어졌다. 결국 그를 제지시킬 수 있었던 건 야간자율학습을 무단으로 결석하고 오락실에 있다는 익명의 제보였다. 그 형보다 한참 어렸던 또래 친구들은 오락실 사장이 직접 그를 신고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필자의 오락실 최애 게임은 사이쿄의 슈팅게임 <텐가이>였다. 필자는 특유의 일본풍 룩앤필과 스릴 넘치는 게임플레이에 푹 빠져들었다. 그래서 절친했던 친구와 종종 <텐가이> 오락기가 있는 옆 동네 오락실까지 걸어가곤 했는데, 그 자체가 요즘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2022년에는 어느 누가 100원 내고 게임 한 판 하겠다고 20분을 걸어갈까? 게임잡지는 있었지만 게임잡지에서 오락실 게임 공략을 찾기는 어려웠던 시절, 오락실까지 걸어가는 20분 내내 친구와 무슨 캐릭터를 고를지, 어떻게 스테이지를 깰지 의논했다. <텐가이>에는 히든 캐릭터 ‘아인’이 있었다. 선택창에서 상상상, 하하하, 상상상상상상상의 커맨드를 입력하면 해금되는데, 작동법을 모르는 사람에게 이런 히든 캐릭터를 골라주는 것도 일종의 협동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킹 오브 파이터즈>(킹오파) 같은 PvP 게임에서도 코옵은 작동했다. <킹오파 97>에서 친구에게 ‘미친 이오리’(정식 명칭은 달밤에 오로치의 피에 미친 이오리)를 골라주는 것처럼 말이다. ‘현피’까지 3m 커플은 오락실에서 <컴온 베이비>나 <다른 그림 찾기>를 많이 플레이했다. 웃음소리와 함께 볼록한 버튼을 연타하는 소리 역시 추억으로 남아있다. <컴온 베이비>야말로 2021년 여러 매체로부터 ‘올해의 게임’에 선정된 <잇 테익스 투>의 프로토타입을 제시한 것이 아닐까 싶다. 2인용 게임이라는 점도 그렇고, 플레이에 과하게 몰두했다가는 관계의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과거 오락실 죽돌이였던 필자는 <컴온 베이비>를 하다가 “왜 봐주지 않느냐”는 말을 꺼내면서 싸우는 커플을 본 적 있다. 사실 커플끼리의 싸움은 대체로 애정의 확인이었기 때문에 귀여운 수준이었던 적이 많다. 대전 격투 게임 중 건장한 남성 둘이 시비가 붙어 오락실 전체의 게임플레이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필자의 동네 오락실에선 <철권 태그 토너먼트> 중 데빌이 자꾸 레이저를 쏘는 탓에 상대방이 “얍삽이 그만 쓰라”며 물리적인 싸움이 벌어진 적 있다. 오락실의 대전 격투 게임에서 서로의 얼굴은 바로 맞은편에 있다. 우리에게 오프라인 코옵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제 우리는 온라인 시대에 살고 있다. 단적으로 게임 곳곳에 삽입된 미니게임들이 오프라인 코옵에 대한 헌사로 여겨지는 <잇 테익스 투>를 플레이하기 위해서도 두 사람이 물리적으로 만날 필요가 없다. 한 사람이 온라인에서 친구초대 버튼을 누르면 같이 게임 세상으로 떠날 수 있다. 이제 우리에게 오프라인 협동 플레이는 어떤 의미가 남아있을까? 물론 닌텐도 스위치에는 훌륭한 파티게임이 많이 남아있으며, 비록 소프트웨어는 없지만 여럿이 방탈출 카페에 가서 퍼즐을 푸는 것도 코옵이라면 코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오프라인 코옵은 이제 주류에서 밀려나 추억의 대상이 된 듯하다. 여러 사람이 한 화면을 보면서 반응하는 경험은 일상이 아닌 특별한 이벤트가 되고 있다. 오락실 오프라인 코옵이 대세였던 시절에는 새로운 정보를 구할 인터넷이 (상대적으로) 귀했고, 집에 게임을 실행할 콘솔이나 PC가 있는 경우도 드물었으며, 당연히 모두의 손에 전화기가 들려있지도 않았다. 플레이 이력을 남길 만한 방법은 순위표에 자신의 이니셜을 남기는 것밖에 없었다. 오프라인 코옵은 한 게임, 한 게임이 귀중했다. 온라인 시대에서는 ‘한 게임’에 대한 접근성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개선됐다. 그리고 이 시대의 어느 한편에는 게임 중 익명성의 장막에 숨어 차마 담기 어려운 욕을 꺼내는 사람들이 보이고 있다. 온라인 랜덤매칭에서 만난 사람들은 때때로 가볍게 욕하고, 가볍게 사라진다. 두 시대를 나란히 경험한 입장에서 ‘오락실 시절이 좋았다’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 옛날 오락실 오프라인 코옵에는 ‘노는 형’들이 자행한 여러 악행들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UX라는 단어를 문자 그대로 사용자의 경험의 총체라고 일컫는다면, 지금까지 살펴본 오락실만의 특수한 환경이야말로 게임 UX의 역사에서 특별한 페이지로 기록될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김재석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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