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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제 민첩은 몇 점인가요?
RPG의 규칙은 수치의 미학이다. 이 규칙이 고도화될수록, 플레이어들이 교감해야 하는 수치와 수식도 고도화된다. 플레이어들은 더욱 강한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계산한다. 디자이너들이 사용하는 전문적인 개발용 어들을 가져오며, 각종 수치를 분석하고, 차트를 만들고, 성장 공식을 유추한다. 적 또는 다른 플레이어를 압도할 수 있는 더욱 빠르고 효율적인 경로와 해결책을 찾는다.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RPG에서는 플레이어 본인의 신체적 능력도 중요하겠지만, 기본적으로 RPG에서 캐릭터를 강력하게 성장시키는 것은 플레이어의 전략적 사고, 소위 ‘뇌지컬’이다. < Back 그래서, 제 민첩은 몇 점인가요? 22 GG Vol. 25. 2. 10. 민망한 말이지만, 난 내 캐릭터들에게 그리 좋은 부모는 아니다. 한 명 잘 키워보려면 따져야 할 게 뭐 이리 많은지. 어떤 스킬을 획득해야 하고, 어디에 비용을 투자해야 하고, 어떤 무기를 쥐어줘야 하고, 그 무기는 어떻게 갈고닦아야 하고... 불과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이 정도로 골치 아프진 않았던 것 같다. 내가 과거에 취했던 방법은, 최대한 많은 자원을 모아서 최대한 많은 옵션을 획득하는 것이었다. 레벨을 끝까지 올리고, 스킬 트리에서 가능한 모든 스킬을 획득하고, 가진 장비를 모두 강화했다. 그러나 현시대의 ‘캐릭터 육성’ 시스템은 내 무식한 방법론으로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고도화되었다. 급기야 <원신Genshin Impact> 같은 수집형 RPG에 이르러, 나는 내 손에 있는 모든 캐릭터를 키울 수 있는 자원 분배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결국 목적은 하나다. 강한 캐릭터를 만드는 것. 게임 속에서 나를 대신할 이 캐릭터가 강력하고 유능하며 뛰어나길 바란다. 앞을 가로막는 모든 난관을 헤쳐나가 보상을 얻길 바란다. 다른 플레이어를 짓밟을 수 있길 바란다. 궁극적으로는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능감을 추구한다. 강한 공격력, 화려한 스킬, 다양한 장비들을 통해 강화할 수 있는 신체적 능력들로 이 가상의 세계를 제약 없이 마음껏 누비는 것, 이는 현실에서의 내가 쉽게 얻을 수 없는 효능감이다. 검 하나를 제대로 쥐기까지도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을 필요로 할뿐더러, 그렇게 연습한다고 해도 검에서 불을 뿜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렇게 나는 손쉽게 영웅이 되고, 악당이 되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초인이 된다. 현실에서는 매일 아침 침대에 누워 체육관에 가야 할지 고민하는 나지만, 가상의 세계에서는 끊임없이 더욱 큰 강함을 추구하며 부단히 내 몸을 단련하는 것을 일상처럼 여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현실에서 내 몸을 단련하는 것과는 원리와 방법부터 다르다. RPG에서 강한 캐릭터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나와의 싸움이 아니라, 기나긴 숫자와의 싸움이 아니겠는가. 맥락을 가진 수치들의 집합 RPG의 규칙은 수치의 미학이다. 비디오 게임뿐 아니라, 종이와 펜으로 즐기는 TRPG도 마찬가지다. 게임을 시작할 때부터,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은 수치로 표현된다. 단순히 힘이 센 캐릭터, 튼튼한 캐릭터, 민첩한 캐릭터라는 수사가 아니라, 정확한 수치로 나타내는 게 먼저다. <크툴루의 부름Call of Cthulhu>에서는 체력, 근력, 그 밖의 무기 사용 능력 등을 수치화하며,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Vampire: the Masquerade> 같은 작품에서는 더 나아가 플레이어가 사용할 수 있는 초자연적 능력의 종류 및 등급까지 수치화한다. 신체적 능력이 수치화되고 나면, 이때부터 게임과 플레이어의 모든 상호작용은 수치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 적과 공방을 주고받은 결과, 어떠한 행위를 수행할 수 있는지의 여부, 현재 나의 상태 등이 끊임없이 기록되고 계산되며 게임이 진행된다. 내가 얼마나 유능한지, 또는 무능한지, 내가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는 결산된 수치를 통해 확인된다. 캐릭터의 성장 역시 수치화되어 기록된다. 한 턴이 끝날 때마다 해당 턴의 활동 내역을 반영해 기존의 수치가 재조정되거나, 일정 수치 이상의 경험치를 달성하고 레벨이 한 단계 오를 때마다 기존의 수치에 투자할 수 있는 자원이 주어진다. 특히 대부분의 비디오 게임에서는 조건을 달성할 때마다 자원을 공급하는 방법으로 성장을 제어한다. 자원은 유한하기에, 플레이어는 이를 캐릭터의 어떤 측면을 성장시키는 데에 활용할지 고민한다. 과거의 나처럼 최대한 많은 자원을 확보해서 모든 옵션을 획득할 수도 있지만, 당연히 이 방법은 쉽지도 않으며,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스킬 트리의 몇 가지 경로 중 하나만 선택하는 것이 강제된다면, 이제 나는 내 캐릭터의 진로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신체적 능력을 보강해 주는 장비의 능력 역시 수치로 표기된다. 장비는 각자가 또 다른 캐릭터다.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능력, 이에 기반한 상호작용, 그리고 자원을 투입한 성장. 여기에 대부분의 게임에서는 장비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한다. 지금 획득하는, 기본 수치가 높지 않은 장비에 자원을 투자해서 성장시킬 것인지, 후에 획득할, 기본 수치가 높은 장비에 사용하기 위해 절약할 것인지. RPG 플레이어는 캐릭터의 신체적 조건을 살피기 위해 명확한 수치와 교감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비단 신체적 조건뿐 아니라 정신적, 기타 다양한 능력적 조건들까지 캐릭터가 가진 모든 조건들은 수치 정보로 관리된다. 그러니까 이러한 수치들과, 수치들의 증감을 관리하는 수식만 제공된다면 RPG를 설계하고 플레이할 수 있다. RPG 캐릭터의 신체라는 것은, 이 수치들 중 일부에 ‘힘’, ‘민첩’, ‘체력’ 등의 서사적 맥락을 갖춘 단어와, 개연성을 갖춘 수식을 부여함으로써 형성된다. 플레이어들은 각 수치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이해하고 활용하기 위해, 현실에서 개념을 가져온다. 이 수치들은 크게 2가지로 구분된다. 캐릭터에 언제나 동반되는 내재적 수치, 활성화 상태에서만 동반되는 외재적 수치. 플레이어들은 전자를 캐릭터의 몸과 연관 짓고, 후자를 캐릭터가 선택해 사용하는 도구와 연관 짓는다. 각 수치에 이러한 맥락을 부여하는 것이 게임 디자이너들의 일이며, 이를 설득력 있게 해내기 위해서는 신체 능력에 대한 본능적인 이해에 기인할 수밖에 없다. A가 상승하면 B도 상승할 수 있다. 이 수치들 간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현실 감각에 기반한 맥락이다. A와 B를 각각 근력과 공격력, 또는 기력과 이동속도라고 생각하면, 이 수치들의 관계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A와 B의 자리에 지구력과 적 시야가 들어가진 않는다. 현실 감각에 기반한 연관성을 도출할 수 없는 관계는 파악할 수도, 받아들여질 수도 없다. 플레이어가 캐릭터를 통해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시작 단계인, 캐릭터와의 동기화조차 어려워진다. 수치의 증감과 자원의 순환 개별적인 수치들에 맥락을 부여하고 설득력 있는 상관관계를 설정하면, 이제 게임 속 캐릭터는 또 다른 나로 인식되며, 게임 속에서 사용되는 개념들은 이를 파악할 수 있는 비슷한 속성의 현실적 개념들로 치환되고, 게임은 또 다른 현실로 재구성된다. 이러한 설계와 과정들은 RPG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적지 않은 세월 동안 고도화되어, 이제는 어느 정도 공식처럼 자리 잡은 구조가 있다. 대표적 RPG 중 하나인 <사이버펑크 2077Cyberpunk 2077(2020)>의 성장 시스템도 이를 보여준다. 앞서 말했던 내재적, 외재적 수치를 각각 신체와 장비라는 범주로 치환해 설명해 볼 때, <사이버펑크 2077> 속 캐릭터의 신체를 형성하는 다양한 수치(우리가 흔히 스탯Stat이라 칭하는)들은 이 2가지 수치의 복잡한 결합 끝에 도출된다. * <사이버펑크 2077>의 신체는 경험치를 축적해 얻은 포인트의 투자로 강화된다. <사이버펑크 2077> 속 캐릭터의 신체는 크게 ‘특성’이라 불리는, 5가지 영역의 수치에 기반한다. [신체, 반사 신경, 테크 능력, 냉정, 지능]이라 명명된 영역은 각각 [체력, 치명타 확률, 방어력, 치명타 피해량, 램]이라 명명된 수치에 영향을 준다. 각 특성의 하위에는 많은 ‘특전’들이 서로 얽혀있다. 우리가 흔히 스킬이라 부르는, 캐릭터가 플레이 중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들이다. 신체 능력 자체를 강화해 주거나 독특한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이 특전들은 종종 상호 간 선후행 등의 상관관계로 얽혀있다. 이 내재적 수치들을 향상시킬 수 있는 자원은 플레이 중 캐릭터의 행위에 대한 보상으로 축적된다. 이른바 ‘경험치’다. 경험치가 축적되면 레벨이 오르고, 포인트를 획득한다. 플레이어는 이 포인트를 원하는 특성과 특전에 투자해 캐릭터를 강화한다. 이 자원은 철저히 무형으로, 외부 환경과의 거래와 양도가 불가능하며, 캐릭터 내부에서 발원해 캐릭터 내부로 환원된다. 이는 장기적으로 캐릭터가 어떤 강점과 약점을 가지고, 어떤 전투 스타일을 가진 용병으로 성장할지, 그러니까 캐릭터의 장래에 영향을 미친다. * 신체 수치에 영향을 주는 장비는 무기와 사이버웨어를 포함한다. 캐릭터가 사용하는 장비는 성장에 있어서 캐릭터와 유사한 방식을 가진다. 능력을 나타내는 초기 수치가 있고, 이는 장비의 성격, 또는 이젠 상식처럼 자리 잡은, ‘색’의 문법으로 나타나는 장비의 등급에 따라 달라진다. 각 장비마다 허용되는 개수의 부속품과 부품을 장착해 수치를 추가적으로 조정한다. 마치 캐릭터와 장비의 관계처럼, 이 역시 각자 다른 수치를 가진 부속품을 선택해 장착함으로써 해당 수치를 일시적으로 활성화한다. 외재적 수치의 성장에 투입되는 자원은 형태를 가진다. 업그레이드용 부품, 그리고 돈. 플레이어는 이를 다양한 장소에서 줍거나, 의뢰비 또는 해킹을 통한 전산 조작으로 계좌에 입금되는 액수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자원들은 성장 외에도 다양한 목적과 방법으로 쓰일 수 있으며, 철저히 캐릭터 외부의 환경에서 순환한다. 장비에 얼마의 자원을 투자해 얼마나 개량을 했던, 해당 장비를 사용하지 않으면 이 수치들은 캐릭터와 게임 플레이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육성되는 내면, 개조되는 외면 RPG 플레이어가 캐릭터를 통해 효능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캐릭터의 몸과 나의 몸을 동일시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캐릭터의 몸(수치)을 둘러싼 맥락들이 현실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어야 한다. 이제 다양한 내재적, 외재적 수치를 마련했고, 현실적인 맥락도 갖췄다. 그렇다면 이 요소들이 어떻게 플레이어에게 효능감을 줄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제 막 게임을 시작한 내가 막강한 존재고, 게임에 존재하는 모든 적을 손쉽게 물리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를 지루하다고 표현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모든 과정이 너무나 쉬워서 오히려 어떠한 효능감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나와 대등한, 또는 나보다 강력한 존재가 나를 막아서고, 그래서 목표를 이루는 것에 이전엔 느끼지 못했던 어려움이 생긴다면, 우리는 이 어려움을 넘어서기 위한 조치들을 취한다. 그리고 마침내 문제를 해결했을 때, 우리는 우리의 능력에 대해 만족과 자부심을 느낀다. 우리는 이를 ‘성장’이라고 부른다.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내가 되는 것, 앞으로 맞닥뜨릴 더 큰 난관들을 준비하는 것이다. RPG의 성장 역시 현실적인 맥락을 가진다. 근력을 많이 사용하면 근력이 증가하고, 무기에 업그레이드 부품을 투입하면 성능이 증가한다는 것은 우리의 현실 감각으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RPG의 캐릭터 성장에서 더욱 중요한 부분은, 캐릭터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 특정 스킬 분야의 성장은 해당 스킬 분야의 투자로 환원된다. <사이버펑크 2077>에서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시스템이 ‘스킬’이다. 스킬은 [솔로, 엔지니어, 시노비, 넷러너, 헤드헌터]의 5가지 분야를 가지며, 각 분야에서 제시하는 특정 행위를 통해 획득하는 경험치를 체크한다. 그렇게 각 분야에서 일정 레벨을 달성할 때마다 캐릭터를 강화할 수 있는 보상을 제공하는데, 이 역시 각 분야와 관련된 능력을 강화하는 방향성을 가진 보상이다. 내 캐릭터가 넷러너 분야의 경험치를 많이 획득해 레벨을 올리면, 그로부터 얻는 보상을 통해 넷러너로서의 조예가 깊어진다. RPG가 플레이어들에게 묻는 기본적인 질문 중 하나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이다. 그리 거창하게 생각할 질문은 아니다. 글의 서두에서 말했던 내 성장 방식은 내 캐릭터가 무엇이든 잘 하는 만능이 되길 바라는 욕망에서 비롯되었겠지만, 실제로 플레이를 하다 보면 선호하는 전투 방식과 무기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렇게 플레이 스타일이 자리 잡고 나면, 플레이어는 더욱 뛰어난 암살자나 격투가가 되기 위해 우선순위를 매기고 자원을 투자한다. 같은 RPG를 플레이하더라도 각 플레이어가 만들어내는 캐릭터들은 각자의 욕망만큼이나 다채롭다. 여기에 내가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느끼는 시스템이 있다. RPG가 플레이어에게 제안하는 성장 방식은 보통 플레이어가 가진 욕망을 캐릭터에게 투사함으로써 관념적인 인간을 만들어내는 방향에 가깝다. 앞서 말했듯이, RPG 캐릭터의 몸은 맥락을 가진 수치들의 집합으로 구축된다. 플레이어들은 이 가상의 몸에 근육과 장기, 뼈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사이버펑크2077>은 여기에 ‘사이버웨어’라는 맥락을 제공한다. * 사이버웨어 시스템은 관념적인 신체를 실재적인 신체로 상상하게끔 한다. 사이버웨어는 엄연히 장비, 그것도 다른 RPG에서 흔히 퍽, 부적 등의 개념으로 쓰이는 부가적 강화 장비다. 무기처럼 들고 휘두를 수 없고, 방어구(<사이버펑크 2077>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처럼 전투의 충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해 주지도 않으며, 장착 시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대신 몇 가지 내재적, 외재적 수치를 조정할 수 있는 옵션을 제공한다. <사이버펑크2077>에서는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강해지고 싶다면 몸을 개조하라.’ 플레이어는 캐릭터의 골격, 신경계, 순환계, 외피 등 다양한 부위에 사이버웨어를 장착한다. 각 부위에 장착할 수 있는 사이버웨어는 해당 부위의 특성과 연결된다. 이로써 캐릭터가 단순히 수치로만 이루어진 관념적 존재가 아니라, 실제로 각 부위가 기능하고 피가 순환하는 신체를 갖고 있다는 생각을 가능하게 한다. 플레이어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캐릭터를 강화하기 위해 현실 감각을 기반으로 어떤 신체 부위에 어떤 사이버웨어를 장착해 어떻게 ‘개조’해야 할지 구상한다. 이 개조를 몸이 어느 정도까지 견딜 수 있는지 ‘사이버웨어 용량’도 고려하면서. 사이버웨어와 같은 맥락의 성장 시스템은 고전적인 방어구 시스템의 연장으로 보인다. 하지만 몸 위에 덧입으면서 추가적이고 일시적인 신체 기능 조정의 효과를 가지는 방어구 시스템의 개념에 비하면, 사이버웨어는 동일한 기능을 가졌음에도 보다 직관적으로 신체를 강화해 준다는 맥락을 제공한다. 한편에서는 끊임없이 경험치를 쌓고 포인트를 얻어 무형의 신체적 역량을 전문화하는 동시에, 다른 편에서는 실체를 가진 몸에 사이버웨어를 박아 넣는 신체 개조가 이루어진다. 분석하고, 전략을 짜고, 실행할 것 게임 인생의 어느 순간 나는 더 이상 RPG를 플레이하면서 예전처럼 최대한의 자원을 모아 모든 옵션을 획득하는 성장 방식을 취할 수 없었다. 내 캐릭터가 더욱 강하고, 빠르고, 유능해지길 원했지만, 이를 위해서는 우선순위를 매기고, 무언가를 선택하고, 무언가를 포기해야 했다. 이는 단순히 내가 가지고 싶은 스킬을 획득하고, 좋아 보이는 장비를 캐릭터의 손에 들려주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에겐 전략이 필요했다. <아노 1800Anno 1800>이나 <파이어엠블렘: 풍화설월Fire Emblem: Three Houses>을 플레이할 때의 내가 필요했다. RPG의 규칙은 수치의 미학이다. 이 규칙이 고도화될수록, 플레이어들이 교감해야 하는 수치와 수식도 고도화된다. 플레이어들은 더욱 강한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계산한다. 디자이너들이 사용하는 전문적인 개발용 어들을 가져오며, 각종 수치를 분석하고, 차트를 만들고, 성장 공식을 유추한다. 적 또는 다른 플레이어를 압도할 수 있는 더욱 빠르고 효율적인 경로와 해결책을 찾는다.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RPG에서는 플레이어 본인의 신체적 능력도 중요하겠지만, 기본적으로 RPG에서 캐릭터를 강력하게 성장시키는 것은 플레이어의 전략적 사고, 소위 ‘뇌지컬’이다. 그러니까, 이건 사실 경영에 가깝다. 수치로 구성된 가상의 몸에 대한 보고서를 실시간으로 받아보며,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뺄지, 가용 자원이 얼마나 되며 이를 어디에 우선적으로 투자해야 흑자를 볼 수 있을지 계산한다. 플레이어는 정서적으로 이 몸과 동기화된 주체이면서도, 이 몸 자체는 플레이어가 실험대에 올려놓고 조목조목 뜯어봐야 하는 타자화된 객체다. 이 구조 안에서 몸이라는 것은 현실에서처럼 수양의 대상이 아닌 경영의 대상이 된다. * 캐릭터의 몸을 구성하는 모든 수치는 한 페이지로 요약된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러한 신체 경영의 개념이 점차 현실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RPG가 구사했던 신체 능력의 수치화는 현실의 모방에서 시작되었다. 사람의 몸과 관련된,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들을 여러 요소로 규정해 수치화함으로써 게임의 규칙을 만들었다. 솔직히, 끝내주게 편리하고 매력적인 개념 아닌가. 인간을 구성하는 모호한 개념들을 객관적인 수치로 가시화할 수 있다니. 타인과의 우열을 명확히 가릴 수 있을 뿐 아니라, 강력한 몸을 얻기 위한 전략까지 제공받을 수 있다니. 그렇다 보니, 이제 사람들은 현실에서도 인간을 수치화하길 원한다. 인간의 체력, 지구력, 민첩성 등을 수치로 계산해 분석함으로써 인간을 파악할 수 있길 희망한다. 실제로 스포츠 현장에서는 선수의 신체 능력을 계량화하여 경기력 증진을 위한 자료로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으니, 이 제공하는 맥락과 현실이 그리 다르진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개념을 현실에 완벽히 적용할 수 있다고 여기진 않으리라 나는 믿는다. 현실을 매혹하는 몸의 수치화 우리는 우리의 몸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우리의 신체 기능과 능력을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해 완벽히 파악이 끝난 상태인가? 수천 년에 걸친 의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파킨슨병을 초래하는 명확한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스포츠계에서는 해당 종목에서 요구되는 능력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기에 이러한 계량화가 가능하겠지만, 우리가 우리의 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우리가 자의적으로 규정한 요소에 자의적으로 계산한 수치를 넣어 서로를 비교하고 있다는 것 정도다. 이를 반대로 보면, 여전히 우리가 파악하지 못하고 수치화되지 않은 요소들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먼저 규정되고 수치화된 요소가 있다는 것은, 해당 사회에서 그 요소를 다른 요소보다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으며, 그 요소를 특정 방식으로 수치화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 판단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게임에서 어떤 요소를 규정하고 수치로써 다룰 것인지는, 디자이너가 그 게임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규칙에 따라 결정된다. 현실에서 어떤 요소를 규정하고 수치로써 다룰 것인지는, 현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규칙에 따라 결정된다. 현실에서는 때로 약자가 강자를 이기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를 ‘기적’, 또는 ‘절실함’ 같은 단어로 표현하곤 하지만, 사실은 그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져 그간 규정되고 수치화되지 않은 신체적 요소와, 우리가 주목하지 않은 상관관계가 작동한 결과일 수도 있다. 자신의 몸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인간이 편의상 판단한 규칙을 현실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성은 수집형 RPG의 규칙으로도 확대된다. <원신>의 기본 멤버들에게 열심히 경험치 아이템을 먹이는 나를 보며 어떤 사람들은 ‘더 좋은 애들이 많은데 왜 아직도 걔네를 키워요?’라고 묻는다. 수집형 RPG에서 캐릭터는 장비의 일종이다. 등급이 나뉘어있고, 기본 능력과 성장의 한계에도 차이가 있으며, 필요에 따라 바꿔 끼울 수 있다. 현실에서는 수많은 요건들로 복잡하게 구성될 태생적 차이를 별의 개수나 색으로 간단하고 명쾌하게 알아볼 수 있다. 나에게 필요할지, 버려야 할지가 한눈에 보인다. 엄연히 장비화되었지만 캐릭터의 역할도 하는지라, 현실의 사람에게도 이렇게 명확한 규칙을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유혹이 생기기도 한다. 사람의 등급을 매긴다는, 인간의 오랜 본능과도 맞닿아있으니. 온갖 요소들을 구구절절 늘어놓고 계산하기에 앞서, 사람 자체를 단순하게 등급화해 우열을 가리는 것이 훨씬 편리하긴 하다. 그러나 역시, 이러한 기준을 만드는 우리의 판단을 신뢰할 수 있는가, 신뢰할 수 없는 판단 기준을 통해 산출된 등급에 따라 사람을 대우하는 것은 적절한가에 대한 문제가 남아있다. 현실을 모방하기 위해 구성된 수치의 묶음으로 RPG 캐릭터를 구현했지만, 역설적으로 이제 우리는 실체를 가진 우리의 몸을 수치로 채우고 있다. 과학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객관과 논리의 가치에 열광하며, 모든 것을 측정해 가시화한다. 그러나 그렇게 재구성된 우리의 몸은 정말로 본래의 우리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는가? RPG 캐릭터의 몸을 단련하는 전략적 뇌지컬만으로, 현실 세계의 몸에서도 성장을 통한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가? RPG의 수치를 읽어나가는 눈으로 현실을 읽어나가는 것은 가능한가? 이 수치들의 조합은... 무궁합니다. 객관적 수치로 이루어진 RPG 캐릭터의 몸은 현실 속 인간의 몸에 비해 훨씬 단순하고, 공정하며, 신뢰할 수 있다. 자원을 투자한 만큼 성장할 수 있으며, 대체로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다. 플레이어가 수치를 읽어나가는 충분한 감각만 있다면, 어떤 상태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눈에 보인다. 현실에서는 가능성이지만, RPG에서는 확신이다. 때문에 가장 효율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왕도가 존재한다. 추천 트리, 빌드, 다양한 비법서들이 개발되어 공유된다. 얼마나 빨리 캐릭터를 성장시켜 게임을 끝내는지 경쟁한다. 늘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현대 한국인들에게 RPG는 자신이 얼마나 전략적이며 유능한지 부단히 경쟁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준다. 전략성이 곧 캐릭터의 신체적 강력함으로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다만 가끔은, 정해진 길로만 가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가 RPG의 재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인생에 정해진 길이 있다는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삶에서도 효율을 운운하며 우리를 제약하는데, 게임 속에서 펼쳐진 새로운 인생에서까지 늘 효율을 따질 필요는 없지 않은가. 가끔은 캐릭터를 경영하며 스킬 포인트를 어떻게 확보해 투자하는 것이 가성비가 좋을지 궁리하는 내게 묻는다. 게임 속에서까지 정답을 찾느라, 쓸데없는 재미를 추구하는 게이머의 사명을 멀리하고 있지는 않은지.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이머) 박해인 게임에서 삶의 영감을 탐색하는 게이머. 게임의 의도와 컨셉을 전달하는 방식들을 분석하는 데에 관심이 많습니다.
- 부분유료결제는 영원할 것인가?
이처럼 2022년의 연말을 맞는 지금 게임 비즈니스 모델은 더 이상 게임 플레이의 외부에 존재하는 거래 행위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다. 이제 게임 비즈니스 모델은 게임 플레이와 밸런스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게임 산업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사업적인 요소가 되어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을 만드는 회사와 개발자의 입장은 늘 조심스럽다. 유저들의 눈치를 보는 것은 당연하며, 어떤 비즈니스 모델이 트렌드를 선도하는지 관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 Back 부분유료결제는 영원할 것인가? 09 GG Vol. 22. 12. 10. ! Widget Didn’t Load Check your internet and refresh this page. If that doesn’t work, contact us.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교수) 이정엽 순천향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게임 스토리텔링과 게임 디자인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인디게임 페스티벌인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 창설을 주도하고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인디게임 행사인 Independent Games Festival(IGF)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저서로 『디지털 스토리텔링』(공저, 2003), 『디지털 게임, 상상력의 새로운 영토』(2005), 『인디게임』(2015), 『이야기, 트랜스포머가 되다』(공저, 2015), 『81년생 마리오』(공저, 2017), 『게임의 이론』(공저, 2019), 『게임은 게임이다: 게임X생태계』(공저, 2021) 등이 있다.
- 레트로를 다시 소환하는 인디게임의 방식들
이런 점에서 레트로 장르를 계승하는 인디 게임들이 평론가와 대중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자명하다. 올드 게이머와 뉴 게이머를 이어주는 인디 게임들을 통해 세대를 아우르는 팬덤은 게이머의 확장된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올드 게이머에겐 추억을, 뉴 게이머에겐 신선함을 말이다. 어찌 보면 레트로 게임, 장르라는 말이 어색하게 들린다. 누군가에겐 레트로일 수 있지만, 다른 이들에겐 새로운 게이밍일 수 있다. 인디 개발자들의 레트로 장르 경의와 찬사는 게임 과거 게이밍과 현대 게이밍을 이어주는 가교를 만들어 주고 있다. < Back 레트로를 다시 소환하는 인디게임의 방식들 02 GG Vol. 21. 8. 10. 개인적인 이야기로 운을 띄우자면 어릴 적 게임보이 어드밴스로 〈포켓몬스터 실버〉를 처음 접했을 때 컬러 도트 그래픽으로 서로를 마주보며 배틀하던 포켓몬들, 사각 타일의 마을에서 움직이는 2등신 도트의 주인공 캐릭터를 움직이던 경험은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다. 당시 시리즈의 8비트 OST는 게임을 더욱 즐겁게 해준 일등공신이었다. 휴대용 게임기는 필자를 새로운 취미의 영역으로 이끌었다. 게임보이, 닌텐도DS, 닌텐도 3DS를 거쳐 닌텐도 스위치까지 가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GBA 도트 그래픽 기반의 〈젤다의 전설: 이상한 나무열매 - 대지의 장〉과 같은 탑다운 어드벤처와 횡스크롤 슈팅 게임 〈다라이어스 R〉 처럼 2차원 평면 구조의 게임들만 접해 온 어중간한 게이머의 눈에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3차원 오픈월드 기반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은 발전한 게임기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고, 기술의 위력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다크소울〉을 휴대용 게임기로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라도 했을까. 고품질 텍스처들은 생동감을 강조해주었고, 수려한 파티클 이펙트와 사운드는 캐주얼과 코어 게이머를 아울렀다. 돌이켜보면 시대의 흐름이었다. 컴퓨팅 능력은 끊임없이 발전했고, 경쟁적 기술 사회에 발맞춰 게임 성능도 점점 좋아졌다. 보다 높은 퀄리티의 현실 같은 그래픽에 기반한 게임 경험에의 요구는 당연했다. 게임은 상품이었고, 소비자의 욕구를 만족시켜야 하는 산업이었다. 게임사들이 주도하던 게임 시장은 거대자본이 들어오면서 더욱 기술발전에 가까워져 갔다. 물론 단순히 2차원에서 3차원으로의 그래픽 변화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높아진 메모리 용량으로 더 많은 게임 시스템을 처리할 수 있었다. 기술의 발전 속에서 다양한 장르들이 이를 통해 분화하고 깊어졌다. 각각의 게임 시리즈는 다채롭게 진화하며 게이머를 사로잡아 왔다. 발전하는 거치형 콘솔과 PC를 만나면서 재현된 게임 속 세계는 현실과 견주는 것에 모자람이 없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게임을 고르는 것에 고해상도의 현실적인 그래픽, 뛰어난 상호작용성을 가진 게임 시스템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며 동시에 대다수의 게이머들에게 안정적인 게임 경험을 선사한다. 그렇기에 다수의 메이저 게임사들은 보장된 수익을 올리기 위해 이러한 기술발전의 결과들을 새로운 게임 개발에 지속적으로 가져온다. 기술의 발전으로 나날이 '고퀄'화되는 게임을 이야기했지만, 정작 올해 접한 게임 중 가장 즐거웠던 게임을 꼽자면 〈오모리(OMORI)〉와 〈이온 퓨리(Ion Fury)〉다. 메이저 게임사들이 만들어 낸 AAA급 퀄리티의 게임들이 아닌, 개인 또는 작은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진 오히려 초기 기술에 가까운 시각적 재현을 보여주는 게임들이다. 〈오모리〉는 2020년 12월 출시한 레트로 스타일의 탑다운 어드벤처 RPG 게임으로, ‘OMOCAT’이라는 일본계 미국인 만화가가 동명의 인디 게임회사에서 킥스타터 펀딩을 통해 개발한 게임이다. 게임 툴 ‘RPG 쯔꾸르(RPG 만들기, RPG Maker)’를 통해 개발된 게임은 전형적인 레트로 형식의 2D 도트 그래픽이며, 시나리오는 닌텐도의 〈마더〉 시리즈에서 볼 수 있는 분위기를 풍긴다. 〈이온 퓨리〉는 2018년 2월 스팀 얼리 엑세스를 통해 2019년 8월 정식 발매한 ‘보이드포인트(Voidpoint)’라는 인디 게임회사에서 개발된 올드 스쿨 FPS 게임으로, 배급사인 ‘3D렐름(3D Realms)’의 1990년대 FPS 게임 엔진인 ‘빌드 엔진’으로 개발해 고전 〈듀크 뉴켐 3D〉과 같이 90년대 FPS 문법을 활용한 게임 시스템과 2D 캐릭터와 3D 배경 디자인으로 경쾌한 슈팅 액션을 엿볼 수 있다. * 〈오모리〉 스크린샷. 출처: 스팀 공식 페이지. 게임 장르를 설명하는 고전, 레트로, 클래식, 올드 스쿨 등 단어들은 최근 인디 개발자들이 자신의 게임을 설명하는데 사용되곤 한다. 게임 장르에서 경계를 나누어 구식과 신식을 나누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몇 가지 특징과 스타일을 통해 레트로라는 이름의 장르화를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인데, 예를 들면 올드 스쿨 FPS, cCRPG(Classic Computer RPG), 고전 JRPG, 고전 2D 플랫포머 등을 거론해볼 수 있을 것이다. 레트로 장르라고 부를 수 있을, 기술이 지금보다 낮은 단계에 있을 때 구현된 특유의 스타일을 동시대 인디 게임들이 다시 가져오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스팀'과 같은 플랫폼의 등장은 인디 게임 시장과 가능성을 확장했고, 인디 개발자들로 하여금 시장에 구애받지 않을 수 있는 개성있는 장르의 게임 개발을 가능케 했다. 2010년대 이후 시작된 스마트폰 기반의 모바일 게임 시장 확대 또한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같은 개방적 게임 플랫폼, '구글 인디 게임 페스티벌'과 같은 지원정책 등에 힘입어 인디 게임의 개발과 유통에 새 루트를 만들며 인디 게임 생태계를 재편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인디 게임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함을 강조하기 위해, 인디의 자율성을 적극 활용한다. 시장의 대세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환경은 다양한 장르의 활용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레트로 문법의 차용이 어색하지 않은 개발 환경이 되었다. 레트로 장르를 인디 게임들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이유는 여러가지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현실적인 이유를 꼽자면 개발 관점에서 필요한 (자본이 크게 드는)기술에 대한 요구치가 높지 않다는 점일 것이다. 기술적 한계로 오브젝트를 지금보다 더 강하게 추상화했다는 점은 그래픽 리소스와 같은 측면에서 오늘날에도 가장 저렴하게 구현해볼 수 있는 개발방법론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미 앞서 출시된 과거의 게임들을 레퍼런스 삼아 개발하는 과정의 용이성 또한 장점으로 거론될 것이다. 이런 장점들을 토대로 레트로 게임에 대한 오마주, 창조적 모방, 벤치마킹 등을 통해 현대의 인디 게임들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리소스 상황에서도 충분한 창의적 결과물을 낼 수 있는 환경을 맞게 되었다. 그렇게 레트로 게임들이 만들어낸 결과물들은 오늘날의 인디 개발자들을 통해 레트로 장르 자체의 재현(Representation)으로 나타난다. 레트로 게임들이 예전 모습 그대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근원적인 측면에서 게임 장르에 대한 재현의 양상으로 드러난다는 이야기다. 이는 단순히 레트로 장르에 대한 모방으로서의 재현이 아니며, 레트로 장르가 현대적 상황과 감각에 맞도록 각 개발자들의 관점과 역량에 의해 재구성된 결과물이다. 레트로 장르를 답습하는 것이 아닌, 지속적인 변주와 재해석을 통해 레트로 게임들의 의미는 현대에서도 다시금 받아들여질 수 있게 된다. 인디 올드 스쿨 FPS 퍼블리셔인 ‘뉴블러드 인터렉티브(New Blood Intertactive)’는 인터뷰에서 자신들을 통해 재현된 올드 스쿨 FPS 장르가 사라졌다가 부활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존재했지만 누군가 새로이 원하게 되어 다시 등장한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레트로 장르는 사라지거나 단절되는 것이 아니고 역사 속에서 순환적으로 재현되고 있다. 현대 인디게임에서의 레트로 재현이 장르적 융합과 변주를 통해 재해석되는 과정과 결과는 2018년 출시한 리듬 게임 〈올드 스쿨 뮤지컬〉의 사례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게임은 레트로 게임 장르들에 대한 패러디와 오마주를 통한 장르적 융합의 한 사례다. 8비트 칩튠 사운드와 레트로 장르의 게임 플레이를 BGA(BackGround Animation)로 재현하여 리듬 게임 장르와 결합한 〈올드 스쿨 뮤지컬〉 의 메인 디렉터인 프랑수아 베르트랑(Francois Bertrand)은 이전 기획작인 〈8Bit The Musical〉이 자신이 좋아하던 리듬 게임을 통해 레트로 게이밍에 대한 러브레터가 되기를 바랬다고 회고한다. 비디오 게임을 통해 힘든 어린 시절을 버틸 수 있게 해준 레트로 게임들에 대한 감사와 추억이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 속에서 우리는 레트로 장르에 대해 인디 게임 개발자이 갖는 자신들의 과거 게임 경험이 주었던 즐거움과 추억이 게임 개발의 주요한 동기로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이 또한 레트로 장르가 인디 개발자들에 의해 다시금 활용되는 이유다. * 〈올드 스쿨 뮤지컬〉. 이미지출처: 스팀 공식 페이지. 이러한 점들을 돌이켜보면 인디게임에서 레트로 장르를 활용하는 사례들을 우리는 레트로 장르의 현대적 계승으로 불러볼 수 있을 것이다. 완결된 게임 시리즈, 다양한 이유로 후속 작품이 더 이상 나오지 않거나 오랜 기간 개발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시리즈들을 인디 게임 씬(Scene)에서 장르 혹은 게임 디자인을 가져와 계승하는 경우가 종종 존재한다. 계승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인디게임 개발자들이 가진 경험과 시각 - 고전 게임의 계승을 시도하는 이유가 자신들이 가졌던 게임 경험에 대한 추억과 헌정이라는 점에서 - 에 의해 융합과 변주를 거친 재해석의 결과물로서 의미지어진다. 인디 게임들이 ‘정신적 계승작’, ‘정신적 후속작’과 같은 대담한 표현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레트로 장르에 대한 실천적 계승이라고 볼 수 있다. 레트로 장르의 계승은 인디 게임의 장르를 풍부하게 함과 동시에 고전 명작을 다시 현대로 불러오고 장르의 대중화를 장려한다. 물론 이는 전체 게임 생태계에서 보자면 비약적인 해석일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디 개발자들의 작업이 단순히 낡은 것으로 치부될 수 있는 게임디자인과 장르를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다양한 시도를 해왔고, 이를 통해 올드 게이머와 뉴 게이머에게 각각 추억과 새로움을 선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메트로배니아(Metroidvania)’ 장르는 이러한 레트로 - 인디 트렌드의 수혜자이자 결과물이다. 인디 게임의 저변이 상대적으로 늘어나면서 고전 게임의 규칙은 동시대의 보편 장르로도 의미지어지기 시작하며 캐주얼 게이머들의 입에까지 오르는 상황을 맞았다. 해당 장르의 원류인 〈메트로이드〉 2D 시리즈와 〈캐슬배니아〉 시리즈는 메이저 게임 시장의 주류 장르들이 교체되는 시대적 유행에서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메트로배니아는 현재 AAA급 게임들에 비하면 꽤나 단순한 구조의 게임 디자인과 2D 횡스크롤이라는 특징에서 낡아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충실히 이 장르를 현대적으로 계승한 〈액시옴 버지(Axiom Verge)〉, 〈할로우 나이트〉, 〈데드 셀〉 등과 같은 인디 게임들이 성공적인 결과물을 이끌어냄으로써, 2010년대 이후 메트로배니아는 여전히 유효한 장르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들은 과거 메트로배니아 팬덤과 현재의 새롭게 진입한 게이머 모두에게 레트로 장르가 가지고 있던 규칙을 다듬고, 새로운 해석과 재현의 문법과 결합시키며 장르를 일신했다. * 19년만에 〈메트로이드〉 시리즈 정식 후속작이 나온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레트로 장르에 대한 현대적 계승은 비판적 수용을 통한 계승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조건적인 수용으로서의 장르적 재현은 찾아볼 수 없다. 분명한 점은 레트로 장르는 시초(Beginning)와도 같은 오래된 문법이라는 점으로, 어떤 식으로 든 동시대에 대중적으로 의미지어지기 위해서는 결국 현재 인디 개발자의 관점을 통해 새롭게 다듬어져야 하는 부분이 있다. 비판적인 접근을 통해 과거 장르가 가진 오늘날에는 불필요한 낡은 지점들을 걷어내고, 새로운 현대적 문법을 통한 변주나 타 장르와의 융합이 필연적으로 나타난다. 이런 측면을 두드러지게 표현한 작품이 〈디스코 엘리시움〉일 것이다. 게임의 외형은 cCRPG의 기본적인 게임 디자인을 통해 나타나지만, 마냥 cCRPG의 클래식을 답습하고 있지는 않다. 고전적인 불편한 요소들을 버리고 편의성을 현대적으로 수정했지만, cCRPG의 비선형적인 레벨 디자인은 훌륭하게 재현했다. 이뿐 아니라 cCRPG의 강점인 내러티브 경험을 위해 다시 레트로 장르인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스타일이 플레이 내러티브에 결합했다. 이러한 요소들의 누적은 〈디스코 엘리시움〉이 가지고 있는 레트로로서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에서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편의성을 구현해냈다. * 〈액시옴 버지(Axiom Verge)〉와 〈디스코 엘리시움〉. 인디게임이 다루는 레트로 게임의 가장 큰 의미는 앞서도 언급한 바처럼 고전을 활용한 융합과 계승을 통해 장르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순환시킨다는 점이다. 인디 게임 시장이 커짐에 따라 각각 게임들의 유사성을 피하기는 정말 어려워졌다. 이러한 이유로 인디 게임 개발자들은 레트로 장르를 계승하여 돌파를 꾀했다. 레트로 장르는 게임 장르의 시작과도 같다. 게임들이 정말 재밌다고 느낄 수 있는 것에는 장르의 즐거움 또한 클 것이다. 그러므로 게임 본연의 재미 같은 원초적인 레트로 장르들이 현대에도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레트로 장르를 계승하는 인디 게임들이 평론가와 대중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자명하다. 올드 게이머와 뉴 게이머를 이어주는 인디 게임들을 통해 세대를 아우르는 팬덤은 게이머의 확장된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올드 게이머에겐 추억을, 뉴 게이머에겐 신선함을 말이다. 어찌 보면 레트로 게임, 장르라는 말이 어색하게 들린다. 누군가에겐 레트로일 수 있지만, 다른 이들에겐 새로운 게이밍일 수 있다. 인디 개발자들의 레트로 장르 경의와 찬사는 게임 과거 게이밍과 현대 게이밍을 이어주는 가교를 만들어 주고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수진 게임연구에 발을 들인 대학원생입니다. 지금은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첨단종합학술연구과에서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최근엔 게임을 매개로 한 다양한 게임 경험과 일본 내 서브컬처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글 쓰는 건 여전히 어렵습니다.
- [공모전] 오디오 로그의 문학적 요소와 방법론
1993년 [시스템 쇼크]라는 비디오 게임이 발매되었다. 호러 성향의 던전 크롤러와 FPS 액션 간의 결합한 이 게임은 여러 지점에서 게임 서사 전달 방식에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했다. 바로 ‘오디오 로그’ 칭하는 음성 기록물이었다. 비디오 게임에 등장하는 오디오 로그는 기본적으로 필드 내 아이템으로 배치되어 있다. 오디오 로그가 있는 장소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실시간으로 기록하고, 이전에 있었던 사건을 회고하는 내용들로 이뤄져 있다. 플레이어가 오디오 로그를 읽기 시작하면 화면 좌측 아래엔 오디오 로그를 남긴 주인의 이미지가 뜨고, 중앙 아래에는 내용 텍스트가 뜬다. 스피커에서는 주인이 내용을 낭독하는 음성이 흘러나온다. < Back [공모전] 오디오 로그의 문학적 요소와 방법론 13 GG Vol. 23. 8. 10. 1993년 [시스템 쇼크]라는 비디오 게임이 발매되었다. 호러 성향의 던전 크롤러와 FPS 액션 간의 결합한 이 게임은 여러 지점에서 게임 서사 전달 방식에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했다. 바로 ‘오디오 로그’ 칭하는 음성 기록물이었다. 비디오 게임에 등장하는 오디오 로그는 기본적으로 필드 내 아이템으로 배치되어 있다. 오디오 로그가 있는 장소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실시간으로 기록하고, 이전에 있었던 사건을 회고하는 내용들로 이뤄져 있다. 플레이어가 오디오 로그를 읽기 시작하면 화면 좌측 아래엔 오디오 로그를 남긴 주인의 이미지가 뜨고, 중앙 아래에는 내용 텍스트가 뜬다. 스피커에서는 주인이 내용을 낭독하는 음성이 흘러나온다. 이 도구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시스템 쇼크]는 소통이 가능한 NPC를 제거하고, 괴물들로만 게임 내 공간을 채웠다. 그렇기에 오디오 로그의 존재는, 플레이어가 접할 수 있는 유일한 (그러나 일방적인) 목소리며 동시에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한 실마리인 셈이다. 이런 접근은 서사를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기존 문학이나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비선형적인 ‘텔링’이기도 했다. 그 점에서 [시스템 쇼크]는 현재진행형으로 사건을 진술하는 목소리를 사후적인 시점에서 접하게 하는 스토리텔링과 공간 연출을 개척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시스템 쇼크]의 오디오 로그 개념이 시집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진 않다. [시스템 쇼크] 제작자 중 한 명이었던 오스틴 그로스먼에 따르면, 오디오 로그라는 디자인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바로 시인 에드거 리 매스터즈의 [스푼리버 시선집]이라고 한다. 1) 윤석임의 [소도시(小都市) 삶의 우울한 초상(肖像) :에드거 리 매스터즈의 『스푼리버 시선집』 논문] 2) 에 따르면 [스푼리버 시선집]은 “스푼리버라는 가상의 마을을 창조하고 그 마을의 묘지에 묻힌 250여 명의 죽은 자들이 자신의 과거를 들려주는 내용의 연작 시집이다. 매스터즈는 자유시 묘비문 형식과 극적 독백을 이용하여 그곳에서 발생한 다양한 부패상, 실망감, 수많은 실패 경험, 위선과 정신적 타락을 예시하는 숨겨진 비밀들을 드러”낸다. 해당 논문에 따르면 에드거 리 매스터즈가 [스푼리버 시선집]을 쓰게 된 계기로는 자연주의적 통찰력과 사실주의적 묘사로 당대 미국 소도시의 낭만주의를 비판하면서, “마을로부터의 반항” 운동을 주창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연하겠지만 비디오 게임의 오디오 로그가 이런 매스터즈의 구체적인 소도시 ‘낭만주의’를 담아내고 있지는 않다. 그로스먼이 주목했던 지점은 묘비문이라는 사후적인 기록 형식과 극적 독백을 통한 비밀고백이라는 형식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그로스먼 역시 자기 아이디어 역시 “사람들의 일련의 짧은 연설을 종합해, 한 장소의 역사를 알려준다”로 정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스템 쇼크]에서 인간 NPC가 6개월이라는 시간 속에 전부 사망했기 때문에-쇼단이나 에드워드 디에고 같은 현재 시점으로 살아있는 반동 캐릭터의 오디오 로그도 있기는 하다.-작중 등장하는 대다수의 오디오 로그는 시청각적으로 확장된 묘비와 유언과도 같다. 다만 이 묘비는 한자리에만 머물지 않고, 여러 장소에 나뉘어 배치되어 있다는 점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오디오 로그 주인의 최후 행적을 보여준다. 오디오 로그의 텍스트를 작성하는 단계에서 그로스먼과 각본진은 [스푼리버 시선집]의 문학적 요소로 호명된 ‘극적 독백’을 변용해 도입한다. ‘극적 독백’은 빅토리아 여왕 시절 영국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이 자신의 시를 통해 완성한, 시적 화자를 활용한 문학 기법이다. 이 기법에서 화자는 시인이 아닌 극 중 등장인물로 등장하여 중대한 순간에 특정한 상황 속에서 시 전체를 이야기한다. 화자는 시 속에서 다른 사람들 혹은 청자와 이야기를 나누지만, 시를 읽는 독자는 화자의 말(문장)을 통해서만 다른 이들이 어떤 행동을 했는가를 알게 되거나 실마리를 파악하게 된다. 그리고 화자가 말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선택하는 단어나 문장을 통해 (일종의 통제원리) 화자의 기질과 성격을 알게 된다. 극적 독백 개념을 활용해 [시스템 쇼크] 내 오디오 로그의 형식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시스템 쇼크] 속 오디오 로그 대다수는 쇼단의 습격과 시타델의 붕괴라는 위급한 상황에 부닥친 사람들을 화자로 삼는다. 그들은 눈앞에 없는 가상의 청자를 상대로 자신이 겪고 있는 상황과 감정,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얘기하거나, 누군가와 얘기를 나눈다. 이런 발언들 속에서 청자인 플레이어는, 화자가 녹음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선택한 단어와 문장 (즉 통제원리) 속에서 성격과 녹음되고 있을 당시의 상황을 알아낼 수 있다. 다만 문학적 효과를 노리는 시의 극적 독백 개념과 달리, 그로스먼이 고안한 오디오 로그는 좀 더 실용적이고 구체적으로 목적으로 극적 독백을 활용한다. 사후 시점 고백을 기본으로 느슨하게 구성된 소도시 공동체의 면면을 보여주는 [스푼 리버 시선집]과 달리 오디오 로그는 생전 고백을 기본으로 거대한 사건 속에서 개인이 어떤 행적을 보였는지 보여준다. 즉 [스푼 리버 시선집]의 극적 독백은, 실재하는 공동체와 그 속에 속한 개인이라는 관계를 다룬다면 오디오 로그의 극적 독백은 플레이어가 진행하는 거시적인 서사와 미시적인 (작은 단위의 서브 플롯들로 구성된) NPC의 서사 간의 관계와 파급을 분절적이고 비선형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여기다 게임 플레이를 풀어나가는 힌트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몇몇 오디오 로그는 퍼즐 풀이에 대한 단서나 답, 적이나 보스에 대한 대처법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오디오 로그는 특정 상황에 대한 진술이나 특정한 무언가에 대한 안내서처럼 텍스트를 구성하기에, 주인공이 아닌 살아있는 다른 인물이 발견했더라도 어색하지 않게 청자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시스템 쇼크]가 굳이 1인칭 과묵한 주인공을 택한 이유도 플레이어를 청자로 삼아 오디오 로그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또한 텍스트가 기본 매개체인 시와 달리, 오디오 로그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음향을 기본 매개체로 하고 있다. 텍스트 없이도 오디오 로그는 성립할 수 있지만, 오디오가 없으면 오디오 로그는 성립할 수 없다. 그렇기에 오디오 로그가 빌린 화술에서 녹음된 목소리 질감은 화자의 어휘 다음으로 청자가 알아차릴 수 있는, 또 다른 무의식적인 통제원리 요소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시스템 쇼크]의 피해자가 남기는 오디오 로그와 쇼단 같은 악당이 남기는 오디오 로그에서, 화자의 목소리 (연기)는 현격히 차이를 보인다. 피해자 대다수의 오디오 로그에서 목소리는 슬픔과 분노, 체념의 감정과 질감이 일관되게 담겨 있다. 반대로 악당 화자의 오디오 로그는 이들에 비해 ‘개성’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제일 흥미로운 예시가 본작의 AI 악당 쇼단일 것이다. 이 캐릭터의 목소리와 화자로서 오디오 로그는 일반적인 피해자 화자와는 명백히 다르다. 악당으로서 본색을 드러내기 전인 극 초반부까지는 쇼단은 일반적인 AI 목소리의 무기질성을 ‘흉내’ 낸다. 플레이어가 메디컬 레벨에서 나왔을 때 쇼단은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것처럼 배경이 되는 시타델의 각 층을 설명한다. 하지만 이때 플레이어는 오프닝 컷신에서 쇼단의 윤리 모듈이 제거되었다는 걸 알고 있으며 결정적으로 뮤턴트를 처리하고 나온 상태라, 쇼단의 무기질적인 목소리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본색을 드러내고 난 뒤, 쇼단은 무기질성을 완전히 버리고 차가운 비인간성과 위압적인 오만함을 섞어서 성격과 개성을 드러낸다. 쇼단의 오디오 로그 내용 역시, 자신의 ‘자칭 신’에 기반한 오만함을 과시하는 내용으로 담고 있다. 종종 쇼단은 자신의 청자를 휘하의 적이나 주인공 등으로 구체적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게임의 진행이나 향후 전개에 대한 힌트를 주기도 한다. 오디오 로그만의 또 다른 개성으로는 비선형적인 접근성이 있다. 시집은 기본적으로 서적 구성을 띄고 있으며 서적은 저자가 의도한 내용대로 선형적으로 읽어나가게 된다. 반대로 오디오 로그의 배치는 플레이어가 비선형적으로 접하게 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예를 들어 1층에서 발견한 오디오 로그가 2층에서 발견한 같은 화자의 오디오 로그보다 후에 녹음된 것일 수도 있다. 또 같은 레벨에 A와 B, C라는 오디오 로그가 있으면 진행 방식에 따라 A-B-C 식으로 획득할 수 있지만, 진행에 따라서는 C-B-A 또는 B-A-C 순으로도 획득할 수 있다. 물론 비일관성으로만 흐르면 혼란을 일으키기 때문에, 내용이나 획득 순서에서도 어느 정도 선형성을 유지하긴 하지만, 오디오 로그의 구성이나 접하는 방식이 무조건 선형적이지 않다는 점은 서적이나 영화와는 차별화되는, 게임만이 가능한 구성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비선형적인 구성 때문에, 오디오 로그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장르는 제작자가 설계한 높은 자유도의 세계를 플레이어가 창발적인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게임 장르를 일컫는, 이머시브 심이다. 언급한 [시스템 쇼크]도 이 장르에 속해 있고, 이 장르의 대표작인 [바이오쇼크]는 오디오 로그 개념을 적극적으로 퍼트린 게임으로 손꼽힌다. 왜 세계와의 접촉과 활용을 중시하는 이머시브 심 장르는, 오디오 로그를 적극적으로 택했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이머시브 심을 설명하는 ‘환경적 스토리텔링’이라는 개념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또 다른 유명 이머시브 심 게임인 [디스아너드]를 제작한 하비 스미스는 환경적 스토리텔링이라는 개념을 제창한 바 있다. ‘환경적 스토리텔링’은 이머시브 심 장르의 핵심적인 어법 중 하나이라 할 수 있는데, 컷신이나 이벤트가 아닌, 게임 내에 있는 배경이나 환경을 통해 게임 속 상황과 서사를 간접적으로 제시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게 만드는 연출을 의미한다. 이때 스토리텔링을 하는 ‘환경’은 기본적으로 ‘이미지’ 중심이다. 무너진 건물, 처형당한 시체, 특정한 이념을 설파하는 현수막이나 포스터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환경은 기본적으로 시선의 주체가 아닌 객체이다. 이렇게만 시선의 객체로만 스토리텔링을 하려면, 이머시브 심이 내세우는 환경/공간과의 창발적 활용이 어려워진다. 우에다 후미토의 게임들처럼 아예 환경에서 설명과 활용을 모두 배제하는 방법도 있으나, 플레이어 대다수는 이렇게 배제하는 것을 방법을 모호하고 불친절하게 여긴다. 그렇기에 대다수의 비디오 게임, 특히 이머시브 심 게임은 환경 이미지를 방해하지 않을 적절한 ‘설명’이 요구된다. 오디오 로그는, 그 점에서 합리적인 비용으로 설명을 제공해줄 도구다. 이는 텍스트 로그나 비디오 로그랑 비교해보면 잘 알 수 있다. 텍스트 로그는 자원이나 비용적인 측면에서 가장 적게 들지만 매우 단순한 형태와 상호 작용으로 인해 자칫하면 지루해질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비디오 로그 같은 경우, 가장 풍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지만 과도해지면 환경적 스토리텔링을 해칠 정도로 설명적으로 될 수 있다. 여기다 로그를 구성하는 영상을 게임 내 이벤트 컷 신이나, 영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점에서 텍스트나 오디오 로그에 비해 많은 품이 든다. 오디오 로그는 이 둘의 중간 지점에서 지나치게 설명적이지 않으면서도, 텍스트와 오디오, 화자를 드러내는 이미지의 결합으로 적당한 자원을 소비하면서도 풍부한 설명을 제공할 수 있다. 그 점에서 오디오 로그는 음향 영역에서 서사 전달의 채널을 다채롭게 하는 도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디오 로그는, 작위성의 함정에 빠질 수도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위기 상황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비밀을 누군가가 알아주길 바라듯이 고백해 녹음 장치라는 물질적 증거이자 아이템으로 남겨놓는, NPC 화자들의 존재는 플롯 이해과 진행을 위한 고백이라는 인위성에 빠지기 쉽다. 그렇기에 오디오 로그 디자인이 성공하려면 정보 전달에 있어서 특정한 요구 조건을 충족해야 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로 녹음의 작위성을 억제하도록 화자의 녹음 시점을 조율해야 한다. 두 번째로 화자가 고백하려는 사실과 증언에 관한 당위성과 개연성을, 화자의 배경과 설정을 통해 청자가 납득해야 한다. [시스템 쇼크]의 후속작 [시스템 쇼크 2]의 오디오 로그를 활용한 중요 반전은 그 점에서 설득력 있고 창의적인 오디오 로그 구성을 통한 비디오 게임 스토리텔링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오디오 로그 속에서 플레이어에게 지시하는 연구원 재니스 플리토가 사실은 쇼단이었다는 반전인데, 이 반전을 위해 제작진은 오디오 로그의 텍스트/목소리가 전달하는 태도와 내용, 시점에서 화자의 정체와 신빙성에 대한 섬세한 복선을 깔아두고, 게임 내 이벤트와의 연계로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쇼단이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한 이 반전은 [바이오쇼크]나 [데드 스페이스] 같은 게임들에서도 차용될 정도로, 유명한 반전이기도 하다. 오디오 로그는 앞으로도 비디오 게임에서 적극적으로 차용될 디자인이다. 죽거나 여기 없는 NPC들을 화자로 삼아 극적 독백으로 거시적인 상황에 얽힌 미시적인 감정과 정보를 서술하며, 이를 비선형적으로 구성해 환경적 스토리텔링의 일환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게임 디자이너가 플레이어의 이해에 필요하다고 여겨 배치하는 작위성이 잘 드러날 수도 있기에, 서사 속 상황과 캐릭터의 심리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필요한 도구기도 하다. 오디오 로그의 창의적인 활용 역시 오디오 로그의 문학적인 요소 및 구성, 게임 내 배치 및 거시적인 서사와의 연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1) https://web.archive.org/web/20110720003321/http://gambit.mit.edu/updates/2011/02/looking_glass_studios_intervie.php 2) 윤석임. (2014). 소도시(小都市) 삶의 우울한 초상(肖像) :에드거 리 매스터즈의 『스푼리버 시선집』. 국제언어문학, 30, 447-466.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이이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전문사 졸업 후 영화•게임 비평 기고 활동중. 어드벤처 게임 좋아함. (antistar23@gmail.com )
- 노년게이머에에게 경외와 동료애를 - 그레이게이머 연구의 필요성에 대하여
<리그 오브 레전드>가 처음 들어와 국내에서 조금씩 바람을 일으키던, 아직 프로씬은 만들어지기 전이었던 그 시절 전국구 고수로 이름을 떨치던 사람 중에는 ‘황충아리’라는 게이머가 있었다. 챔피언 ‘아리’ 장인으로 유명한 그였지만 ‘아리장인’ 보다 그는 ‘황충아리’로 더 이름을 떨쳤는데, 이유는 그가 노장 게이머였기 때문이었다. ‘삼국지연의’에서 노장 캐릭터로 유명한 황충의 이름이 그에게 붙었지만, 그의 당시 나이는 겨우 30대 중반이었다. < Back 노년게이머에에게 경외와 동료애를 - 그레이게이머 연구의 필요성에 대하여 02 GG Vol. 21. 8. 10. 나이들면 게임하기 어려운가? <리그 오브 레전드>가 처음 들어와 국내에서 조금씩 바람을 일으키던, 아직 프로씬은 만들어지기 전이었던 그 시절 전국구 고수로 이름을 떨치던 사람 중에는 ‘황충아리’라는 게이머가 있었다. 챔피언 ‘아리’ 장인으로 유명한 그였지만 ‘아리장인’ 보다 그는 ‘황충아리’로 더 이름을 떨쳤는데, 이유는 그가 노장 게이머였기 때문이었다. ‘삼국지연의’에서 노장 캐릭터로 유명한 황충의 이름이 그에게 붙었지만, 그의 당시 나이는 겨우 30대 중반이었다. 일반적인 사회문화에서라면 창창한 나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시원치 않을 30대 중반이 ‘황충’이라는 별명을 달고 살게 되는 곳이 게임공간이다. 이는 편견이나 농담이 아니라 일정 부분 사실에 가깝다.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임요환 선수가 갓 제대했을 즈음 이야기한 목표가 ‘30대에도 프로게이머로 살아남겠다’ 였고, 수많은 프로게이머들이 20대 중반만 지나도 신체적인 한계를 느낀다며 은퇴를 선언하는 경우를 우리는 심심치 않게 보곤 한다. 이렇게 보면 게임이라는 매체는 확실히 젊은이들의 공간인 것 같다. 그러나 또 고개를 돌려 보면 꼭 피지컬만이 게임의 전부는 아니라는 점도 생각해봐야 한다. <심시티>를 하는 데 동체시력과 반사신경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아니 심지어 신체적인 반응능력이 정말 좋아야 하는 <철권> 의 영원한 황제 ‘무릎’ 배재민 선수는 2021년 기준으로 36세고, <스트리트 파이터>로 EVO 2003에서 전설적인 명경기를 만들어냈던 우메하라 다이고는 올해 나이로 마흔을 넘겼지만 여전히 현역 게이머로 활동중이다. 격투 게임과 RTS 같은 장르 안에서의 피지컬 문제를 일일이 따지기는 어렵겠지만, 디지털게임이 상당부분 신체적인 능력치를 요구하는 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모든 게이머가 나이가 들었다고 게임으로부터 멀어진다고만 보기도 어렵다. 그레이게이머의 두 가지 의미 전자오락이라는 이름으로 디지털게임 문화가 한국에 처음 등장한 1970년대 말로부터 계산해보면 어느새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80년대 오락실에서 동전 하나로 몇 시간을 쓸 수 있을지를 고민하던 꼬마 아이들은 이제 중장년의 나이가 되었고, 20대에 담배연기 자욱한 오락실 안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갤러그>로 시간을 때우던 청년들은 어느새 노년의 초입에 접어들었다. 1980년대 오락실에 앉아있던 20세 청년인 1960년생은 올해부터 60세를 넘기며 인구통계학적으로 노년의 범주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반세기라는 시간의 흐름은 한동안 우리에게 일종의 고정관념이었던 어떤 부분에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게임은 애들이나 하는 무언가라고 생각했던 순간은 어느새 훌쩍 지나가버렸다. 노년 세대라면 그저 ‘하여간 요즘 것들은 게임 같은거나 하고’라고만 영원히 말할 것 같았지만, 이제는 <테트리스>와 <팩맨>, <갤러그>를 즐기던 오락실 세대가 노년의 범주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중장년을 생각한다면 이 변화는 좀더 성큼 우리에게 다가온다.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가 출시되었을 때 아이들에게 빌드오더를 가르치는 부모와, 과거의 추억으로 <리니지>에서 혈맹 뛰던 이야기를 나누는 4-50대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만나보는 시대를 맞았다. 그레이게이머greygamer라는 말의 첫 번째 의미는 그렇게 게임과 함께 나이를 먹어 온, 좀더 경의를 붙여 표현하자면 ‘인류 최초의 디지털게임 세대’라고 일컬을 수 있는 어떤 세대를 담는다. 초창기 디지털게임의 역사를 문헌이 아니라 자신의 플레이로 겪은 노년 세대의 등장은 노년층을 이른바 ‘겜알못’으로 부를 수 있는 시기가 끝나감을 보여주는 단서다. 그리고 이는 게이머라는 구분이 더 이상 특정 연령, 특정 세대만의 경험을 기준으로 한 구분이 아니라 전연령대에 걸친 보편적인 경험이면서도 동시에 시대별로 그 양상을 매우 뚜렷한 차이로 갖게 되는 어떤 문화 전반을 통한 구분으로 옮겨가게 만드는 흐름이다. 그레이게이머라는 말이 가진 첫 번째 의미가 이른바 레트로 세대를 가리키는 과거 경험을 향했다면, 두 번째 의미는 디지털 네트워크와 모바일 시대가 열어낸 새로운 환경으로부터 보편화를 시작한 게임저변의 확장으로부터 만들어진 또다른 변화를 향한다. 지하철 안을 둘러보면 이제 쉽게 스마트폰을 꺼내 게임을 하고 있는 노년층을 발견할 수 있는 시대다. 게임하는 노년의 배경은 반드시 유년기의 게임경험을 전제로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뒤늦게 잡아보게 된, 이제는 시대의 필수품이 된 스마트폰으로부터 손쉬운 게임으로의 접근성을 얻게 된 이들 또한 게이머의 이름을 달 수 있게 되었고, 그로부터 두 번째 의미로서의 그레이게이머가 출현한다. 2020년에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게임문화연구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직접 심층인터뷰를 통해 만난 노년층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노년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정착하기 시작한 디지털게임 문화의 일면을 보여준 바 있었다. 은퇴한 노년 여성이 주시청자를 이루는 평일 저녁의 지상파 텔레비전 일일연속극 시청은 이제 게임플레이와 섞이기 시작했다. 인터뷰 대상자는 텔레비전을 켜 놓고 TV는 귀로만 들으며 스마트폰으로 간단한 퍼즐 게임을 즐기곤 했다. 어차피 드라마의 진행은 큰 줄기를 벗어나지 않으니 귀로 상황만 들으며 게임에 집중하다가, 드라마에서 중요한 장면이 나오면(대부분의 드라마는 이런 순간에 시청자로 하여금 집중을 유도하기 위해 별도의 음악을 깔거나 배우의 대사톤이 높아지는 등의 포인트를 만들곤 한다) 비로소 눈을 스마트폰에서 텔레비전으로 옮기는 식이었다. 그레이게이머의 존재는 그래서 유년기의 경험을 가진 1세대 게이머로서, 동시대의 게이머로서 나타난다.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산업적으로나 유의미할 수 밖에 없는 이들의 존재는 그러나 현재의 게임담론 하에서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의 게이머들보다 더 치열하게 게임했을 그 세대는 정말 이제는 게임과 담쌓고 지내는 것일까? 백발이 성성한 사람이니 당연히 게임을 모를 것이라고 전제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정말 제대로 된 판단인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게이머라는 집단을 너무 좁게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노년 게이밍에 대한 이해는 아직까지 부족하다 노년 게이머의 양적, 질적 증대가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에 대한 인식, 그리고 산업과 제도의 변화는 아직까지 잘 나타나지 않는 편이지만, 서구권에서는 2010년대부터 게이머 노년화에 관한 주목들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게임은 젊은 사람들만의 매체라는, 그래서 노년층은 아예 거론되지 않는 고정관념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는 연구(Facer & Whitton, 2010), 실제로 늘어나고 있는 노년 게이머에 비해 그에 대한 사회적 관심, 산업과 제도의 변화는 크게 뒤쳐지고 있다는 지적(Quandt & Grueninger, 2009)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들 연구 또한 결국 서구권에서도 노년 게이머가 잘 조명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점에서 한국이나 서구권 모두 상황은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일부 연구들은 노년 게이밍이라는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는 실제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들과도 유사한데, 이를테면 노년의 게임하는 이유를 치매예방과 같은 신체노화에 대한 기능적 대안으로만 바라보거나(Schutter & Brown), 자녀세대와의 교감만을 위한 용도로 활용된다고 보거나(Pearce, Lee) 하는 기능주의적 접근들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다. 이는 단지 비노년이 노년의 게이밍을 ‘두뇌 트레이닝’의 일환으로 인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노년층 스스로도 ‘늙지 않으려면 고스톱이라도 쳐야지’라고 마음먹는 모습까지를 포함한다. 그러나 이런 기능주의적인 접근만이 실제로 노년층의 게임하는 이유를 다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한국에서도 노년 게이밍에 대한 접근은 주로 기능주의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치매예방을 위한 게임개발과 플레이, 독거노인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게임과 같은 방식은 그러나 한편으로는 게이머라는 큰 범주로부터 노년 게이머를 매우 타자화된 대상으로 분리시켜버리는 시선으로 굳어질 수 있는 우려를 내포한다. 나이가 들어 예전만큼의 반응속도를 낼 수 없어 <다크소울>이 어렵다 할지라도 그가 여전히 <저니>를 하고 있다면,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을 클리어하고 감상에 젖어 있다면, 혹은 과거 동네 오락실에서 <갤러그> 하이스코어 1위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본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굳이 우리는 특정 기능의 향상을 위해서만 게임을 만지는 사람으로 분류해야 하는 것인가? 경의와 동료애를 동시에 품을 수 있는 노년 게이머에의 이해를 위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이라는 매체는 보거나 듣는 것만으로도 가능한 수용양식을 넘어 반응이라는 행위를 요구하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기에 분명한 접근에의 장벽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사실이다. 2012년에 <리그 오브 레전드>를 곧잘 하던 나는 이제는 방송경기의 리플레이를 봐도 한타싸움이 어떻게 마무리되는지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신체나이에 직면했다. 그러나 그런 장벽에도 불구하고 모든 게임이 반드시 높은 반사신경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진정한 의미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게이머들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음을 생각할 때가 되었다. 아니 다른 의미로라면 오히려 과거 레트로 게임 시절에는 동네 오락실을 휘어잡았을지도 모를, 왕년의 용사들에 대한 경의를 가져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플레이를 통해 완성되는 디지털게임의 경험은 단지 특정한 프로그램을 보존한다고 해서 후대에 그 경험이 온전하게 복원되는 것은 아님을 우리는 여러 고전게임의 리마스터를 통해 겪은 바 있다. 그런 경험을 가진 이들과 함께 그들의 게임경험을 이야기하고, 그 시절의 게임과 플레이어에 일련의 존경을 표하는 것이 ‘치매예방 게임’을 하는 세대로 바라보는 것보다 오히려 노년 게이머를 제대로 이해하는 방식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같은 시대에 살면서 같은 게임을 하고 있는, 인종과 성별로의 구분과 마찬가지로 나이를 통해 누군가를 대상화하려는 어떤 흐름을 넘어서서 게이머로서의 동료애를 품을 수 있는 대상으로 그레이게이머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날 노년층 게이머에 대한 이해와 그로부터 시작될 변화들을 미리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게이머라면 함께 플레이할 노년 게이머를 이해해야 하고, 게임사라면 늘어나는 노년 게이머들에게 필요한 게임과 인터페이스를 고민해야 하며, 정부와 공공단체라면 변화하는 게임문화 향유층에 필요한 제도와 인프라를 생각해야 할 시기다. 최초의 레트로 게임을 경험한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일 것이다. 디지털게임이 본격적으로 대중문화의 범주에 들어가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제 이 매체가 보편적인 모두에게 다가갈 수 있는 매체가 되었다는 의미다. 이 보편성에는 인종과 젠더, 계급과 장애유무 뿐 아니라 연령대라는 요소도 넘어설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보편 대중문화로 외연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노년 게이머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필요한 이유다. * 기네스북 공인 세계 최고령 비디오게임 유튜버 하마코 모리. 2019년 89세로 등재되었다. https://www.guinnessworldrecords.com/world-records/457124-oldest-videogames-youtuber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게임적 리얼리즘과 리얼리즘적 ‘게임’ - 상징계·상상계·실제계의 진실
게임적 리얼리즘의 비밀이 바로 여기 있다. 현실의 논리를 ‘게임 플레이’로 ‘번역’해 이데올로기적 설득에서 현실의 핵심을 빼앗는다는 게임적 리얼리즘의 비밀은 비디오 게임의 검열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드러난다. < Back 게임적 리얼리즘과 리얼리즘적 ‘게임’ - 상징계·상상계·실제계의 진실 16 GG Vol. 24. 2. 10. 游戏现实主义与现实主义的“游戏”——象征界真实、想象界真实与实在界真实 1) 2) 일본 연구자 아즈마 히로키(東浩紀)가 제시한 ‘게임적 리얼리즘’이란 명제 3) 는 리얼리즘이 역사 단계별로 변모해온 각기 다른 ‘이념’임을 보여준다. 또한 이것은 가상현실 시대의 리얼리즘을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사유의 경로를 제시한다. 사실 리얼리즘은 단순히 글쓰기 방법만이 아니라, 지식 시스템과 인지 패러다임의 ‘문체/형식’(스타일)이었다. 현대 과학의 발전은 ‘뉴리얼’ 4) 을 탄생시켰고, 사람들은 과학적 이해를 통해 인간과 세계, 인간과 사물의 관계를 새롭게 보게 됐으며, 이는 자연주의적 리얼리즘을 갖게 됐다. 영화, 텔레비전 등 전자매체의 부상은 예술이미지의 생산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는데, 현실의 사물이나 캐릭터의 '반영'이 아닌, 현실 이미지를 접목·변형하거나, 아예 현실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 스스로 이미지 체계를 만드는 애니메이션 이미지가 점점 더 많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이는 아즈마 히로키가 오스카 히데시(大塚英志)에 논하며 제시했던 애니메이션 리얼리즘의 상상력 환경의 역할을 보여주는데, 캐릭터 생산을 중심으로 애니메이션 제작이 이뤄지면서 자연주의적 리얼리즘의 ‘생활 논리'를 넘어 애니메이션적인 행동 논리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상현실은 ‘전파'라는 명제의 핵심 의미를 전복시켰다. 그것은 가상현실 속에서 정보가 발신되는 시각, 즉 신체가 정보를 감지하는 시각이며, ‘전파'와 ‘매체'는 모두 사라진 것만 같다. 가상현실은 전통적 문예의 존재 형태를 깨부수고 ‘독자와 관객' 등 개념이 해소됐으며, ‘플레이어'라는 개념은 새로운 예술학 및 미학적 소비의 범주가 됐다. 자연주의적 리얼리즘은 인식론에 호소해 진실을 드러내고, 애니메이션 리얼리즘은 상상계에 호소해 진실을 드러낸다. 가상현실은 ‘신체의 직접적 현실'이다. 자연주의적 리얼리즘과 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은 독자와 관객으로 하여금 문예작품 바깥에 머물게 하며, ‘마음의 눈'을 통해 심미적 활동을 완성케 한다. 가상현실은 오히려 사람들의 신체를 작품 속의 캐릭터와 함께 위치짓게 하며, 함께 행동하고 목소리 내고 느낀다. 사람들이 가상현실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게임 인생을 경험하는 것과 같다. 게임의 경험을 통해 또 다른 현실을 만드는 것을 ‘게임 리얼리즘’이라고 한다면, ‘플레이어’를 중심으로 하는 게임 리얼리즘도 존재하게 된다. 간단히 말해, 가상현실 시대에 ‘게임적 태도(游戏态)’의 삶은 실제 삶의 경험을 제공하며, 게임 리얼리즘은 리얼리즘의 게임 규칙을 뒤집었다. 그것은 리얼리즘의 ‘분석가적 해설’을 소멸시켜 플레이어가 실제 세계로 나아갈 길을 열어주었는데, 그 길에서 게임 리얼리즘은 가상시대의 새로운 주체인 플레이어를 실재계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상징계/역사적 진실'과 ‘상상계/이데올로기적 진실' 자연주의적 리얼리즘은 곧 일종의 상징계의 진실이다. 바꿔 말하면 그것은 사람들의 생활 경험을 그것에 내포된 역사적인 언설의 서열에 포함시킨다. 장셴량(张贤亮)의 1984년작 소설 <가로수(绿化树)>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던 장용린(章永璘)은 문득 마잉화(马缨花)에게서 받은 찐빵을 발견한다.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먹지 않은지 어느덧 4년이 지났다. 그래봐야 통틀어 25년 밖에 살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 찐빵은 마치 창밖에 흩날리는 눈송이같아서 입 속에 넣자마자 녹아버렸다. 발효되지 않은 밀꽃 향기가 났고, 여름날의 햇살, 고원의 황홀한 흙냄새, 수확기의 땀, 모든 음식 본연의 향기를 머금고 있었다…… 갑자기 나는 위쪽에서 아주 선명한 지문 자묵을 발견해냈다! 그것은 겉이 하얀 찐빵의 껍질에 찍혀 있어 매우 선명했고, 크기를 보니 가운데손가락 지문이란 점을 알 수 있었다. 지문의 무늬를 보면 그것은 ‘키’가 아닌 ‘그물’처럼 빙글빙글 돌아있었고, 안쪽은 작고 바깥쪽을 향해 점차 커졌다. 마치 봄날의 호수에서 작은 물고기가 파문을 일으키는 것만 같았다. 물결은 점점 출렁거리고, 또 출렁거렸다…… 뚝, 나의 맑은 눈물 한방울이 손에 든 찐빵 위로 떨어졌다. 5)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먹지 않은지 어느덧 4년이 지난” 사람이 찐빵을 본 한 장면에서 저자의 펜은 먹을것에 대한 동물의 생리적 반응은 보이지 않고, 시적인 감정을 폭발시킨다. “마치 창밖에 흩날리는 눈송이같아서”, “발효되지 않은 밀꽃 향기”, “여름날의 햇살”; 그리고 지문 모양이 마치 “봄날의 호수에서 작은 물고기가 파문을 일으키는 것만 같았다. 물결은 점점 출렁거리고, 또 출렁거렸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 대목을 프로이트식으로 분석한다면, ‘굶주림’이라는 트라우마에 대한 화자의 집착과 ‘굶주림’이라는 고통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곧바로 느낄 수 있다. 다시 말해 장셴량은 ‘고난’의 경험을 ‘고난의 여정’으로 보고자 하며, 인생의 또 다른 고도의 도달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겪는 시련으로 인식한다. 그 때문에 소설 속 “장용린의 굶주림”은 보통 사람의 배고픔이 아니라, 역사적인 운명인식이 넘치는 ‘배고픔’이 된다. 이 지식인의 운명에 대해 마잉화는 이렇게 비탄한다. “그녀(마잉화)는 아마 그 눈물을 봤을 것이다. 그녀는 웃지도 않았고, 나를 보지도 않았다. 바위 위에 돌아누워선 아이를 껴안고 길게 탄식했다. ‘하… 이런 벌이라니…’” 6) 주인공에 닥친 이 굶주림은 실제 생활에서 많은 이들이 겪는 ‘굶주림’과는 판이하게 다른 정치적 함의를 갖는다. 한 지식인이 ‘문화혁명’ 과정에서 맞닥뜨린 부당 대우에 대해 보통 사람들은 동정하고, 다같이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굶주림=고통’이라는 등식은 굶주림이라는 생활 경험에 대한 자연주의적 리얼리즘의 의미를 ‘굶주림의 역사 진실은 곧 고통받는 것’이라는 의미로 완성한다. 바꿔 말하면‘고통받는’ 굶주림만이 진정한 굶주림, 그러니까 역사적으로 반성하고 기억할 만한 굶주림이야말로 진정한 굶주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흥미로운 예시는 중편소설 <투즈챵의 개인적 슬픔>(2013)이다. 시골에서 온 주인공은 근면성실하게 고생길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부딪히며 살아간다. 하지만 대학원 진학을 위해 공부하던 중 아버지가 자살하게 되고, 높은 곳으로 나아가던 운명과 단절하게 된다. 일을 해도 얼마 되지 않는 월급은 그의 생계를 곤두박질치게 했다. 사장은 도주하고, 어머니는 폐암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만다. 소설은 이 실패한 청년의 일생을 그리며 한 사람이 마주칠 수 있는 고난을 하나의 몸에 집중시킨다. ‘개인’에게 씌인 이 우연적인 슬픔은 역사적 진실이 아니기 때문에 ‘진실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 소설은 리얼리즘적이지만, 자연주의적 리얼리즘과는 거리가 멀다. 분명 자연주의적 리얼리즘이 만들고자 하는 것은 상징계 질서에 부합하는 현실이며, 특정한 서사 규범과 가치의 소구를 드러내는 역사적 진실이다. 자연주의적 리얼리즘에게 관건은 ‘삶에 부합하는 논리인가’가 아니라, 역사적 시각을 통해 서술하는 ‘현실적 진실’이다. 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은 새로운 현실 구축의 방식과 캐릭터 행동 논리를 구현한다. 데즈카 오사무(手冢治虫)의 <우주소년 아톰>(1952년)과 완라이밍(万籁鸣)의 <대료천궁(大闹天宫)>(1964년)은 유명세를 탔지만 확실히 <미키 마우스와 도널드 덕>(1924년 월트 디즈니)이나 <톰과 제리>(1961년 진 디치Gene Deitch / 1965년 조셉 바버라)와는 행동 논리가 다르다. 앞의 두 작품은 애니메이션 작품이지만 자연주의적 리얼리즘의 행동 논리를 따르고 있으며, 내러티브 사건의 인과나 캐릭터 행동 모두 인간의 행동을 모방하며, 그것이 담는 주제의 내용도 현실 사회 정치에 대한 표현이나 비유에 가깝다. 반면 뒤의 두 작품의 캐릭터인 도널드 덕이나 고양이 톰은 절벽에서 탈출하고나서 공중 위에 떠 계쏙 달려가다가 자신이 하늘 위에 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후에야 바닥으로 추락한다. 거실에 사는 고양이(인간의 현실 논리 세계)는 구석에 사는 쥐(애니메이션적 현실 세계)에 이리저리 쫓기고, 짓밟히거나 망치질 당하면 ‘죽음’ 이후에도 갑자기 살아나 재빨리 움직여 복수한다. 여기서 에니메이션적 리얼리즘은 애니메이션 작품 속의 리얼리즘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그것은 리얼리즘의 새로운 형식 이념을 지칭하는데, 인류의 생활 양식은 더 이상 이러한 작품의 직접적인 기의가 아닌 숨겨져 있는 그 ‘궁극의 기의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각기 다른 캐릭터에 대한 생동감 있는 행동, 재미나 창의성이 있는 제작은 이러한 작품들의 심미적 소비의 중요한 요소가 됐다. 또, 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은 점차 상상계의 현실을 드러낼 수 있고, 작품이 창조하는 세계를 초현실(하이퍼리얼hyper-real), 충동, 욕망의 진실 속에 고정시킬 수 있다. 자연주의적 리얼리즘은 상징계 현실을 형상화함으로써 심도 깊은 역사적 진실을 추구하게 된다. “가장 맛있는 햄버거는 포스터 속에 있다”는 말처럼, 포스터 속 햄버거는 색깔과 광택도 충만하고 모양도 완벽한,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햄버거이다. 그것은 일종의 ‘햄버거의 초현실’을 가리킨다. ‘햄버거’라는 음식의 개념에 따라, 포스터 속 햄버거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음식의 본질적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상징계의 법칙에 따라 기호가 설정되는 게 아니라 기호 그 자체로 자유롭게 표현될 때, 자신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충동과 욕망이 다양한 캐릭터들이 행동하는 장면에서 ‘본연의 모습’을 드러낼 때, 그것이 바로 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의 ‘진실’이라 할 수 있다. <너의 이름은>(2016년 신카이 마코토)에서 ‘혜성이 지구로 충돌한다’는 공포는 재난 정치의 상징계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것은 영혼과 공간·신분과 신체를 넘나드는 소년소녀의 사랑이 충동과 욕망의 방면에서 ‘사랑 본연의 진실’을 드러낸다. 이와 같은 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 작품에서의 사랑만큼 사랑 같은 것이 또 있을까? 삶의 현실에서 ‘사랑’은 호명의 매력이 있는 것으로 표현되며, 언제나 여러 어려움에 부딪히기도 한다.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의 체취가 사랑의 신화를 깨뜨리는 무기가 되며, 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에서 이런 현실 논리는 모두 그대로 방치되고 사랑의 ‘초현실’ 표정, 소위 ‘순수한 사랑’이 생생하고도 눈부시게 빛난다. <너의 이름은>에서 영혼의 부르짖음은 간명하다. ‘삶의 논리’인지 아닌지를 따지지 않아도 될 만큼 심플하다. 게다가 남자 주인공은 신비로운 연관이 있어보이는 여자를 위해 운석이 떨어지기 전 시공간을 바꾸며 미친듯 움직인다. 이와 같은 격정적 사랑은 상상계로부터의 환상이 오히려 세계의 순수한 진리일 수도 있다는 이치를 적절하게 해설한다. 그러니 사랑에 대해 환상을 품은 여자들이 남자친구와 함께 이 영화를 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제 남자친구가 어찌 이런 ‘진정한 사랑’에 어울리겠는가? 분명히도 자연주의적 리얼리즘은 역사적 진실을 드러내는 데 주력하고, 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은 무의식적으로 이념적 진실을 폭로한다(어쩌면 그 진실엔, 찢김과 패러독스가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디지털 기술 시대에 게임적 리얼리즘의 진실성은 어디에 있는가? 게임적 리얼리즘의 사건적 진실 ‘게임적 리얼리즘’이라는 개념이 단순히 게임 안의 리얼리즘이나 게임이 어떻게 현실에 도달하는가라는 명제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아즈마 히로키가 캐묻고 싶었던 것은 비교적 간결한 문제였는데, 소설은 게임처럼 설정됨으로써 새로운 리얼리즘 특색을 띠게 되는가이다. “아즈마 히로키가 뜻하고자 했던 ‘게임 경험의 소설화’는 비디오 게임을 주체로 삼아 게임 서사를 하나의 새로운 형식이자 새로운 시대의 ‘리얼리즘’으로 간주하고, 이 새로운 형식의 리얼리즘이 어떻게 문학예술이론에 의해 설명될 수 있을지 탐구하는 것에 있었다.” 7) 따라서 게임적 리얼리즘이란 개념은 게임 서사 역시 현실에 대한 서사라는 명제를 낳는다. 최소한 우리는 두 형태의 게임 서사를 볼 수 있다. 첫번째는 ‘게임’을 일종의 서사 논리로 소설을 구성하는 것이다. 몹을 때려 업그레이드하는 것과 수련에서 환생을 통한 역습과 판타지 횡단까지, 인터넷 문학의 서사 메커니즘은 비디오 게임의 모듈식 조합 방식을 채택한다. 또한 “인터넷 문학의 뿌리로 자주 거론되는 <바람직한 이야기>(뤄션罗森, 1997년), 원작이 일본의 비디오게임인 <귀축왕 란스>(1996년) 등 동호인소설들이 있다. 인터넷 소설 초기 유행했던 서양 판타지 설정은 데스크톱 롤플레잉 게임 <던전 앤 드래곤 Dungeons & Dragons>(1974년)의 중요한 영향을 받았다. 2004년경 큰 인기를 얻은 ‘온라인게임 소설’은 실존 혹은 허구적인 온라인게임 세계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공간으로, 이후 게임 시스템을 해체한 판타지나 수선문(修仙文)이 탄생케 하는 길을 닦았다. 인터넷 문학에서 각양각색의 판타지세계의 등장은 디지털 게임으로 인한 ‘평행 시공간’의 느낌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인터넷 문학에서 ‘모에포인트(萌点)’가 두드러진 ‘캐릭터 설정된’ 역할도 직간접적으로 일본계 롤플레잉 게임과 문자 어드벤처 게임의 영향을 받았다….” 8) 이와 같은 서사 속에서 삶의 논리에 의해 창조된 스토리텔링은 게임의 논리에 의해 만들어진 스토리텔링 설정으로 대체되고, 플롯의 흐름은 모듈화된 조합에 위치지어지게 된다. 이른바 ‘의견이 맞지 않으면 온 가족을 죽인다(一言不合、杀你全家)’는 인터넷소설의 관습은 단지 비교적 실용적인 모듈조합 방식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게임적인 조합 방식 배후에 숨겨진 것은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조우이다. 이러한 조우는 현실 맥락에서, 즉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스러운 조우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밖에 없는 현실적 태도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것이 게임적 서사 속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일 필요 없는 사건으로 만들고, 합당하고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던 현실을 고통스러운 조우에 놓인 사건적 우화로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수많은 게임 내러티브가 만들어내는 ‘통쾌함(爽)’은 결국 현실 생활의 ‘불편함(不爽)’으로 귀결된다. 다만 현실 생활에서는 이런 불편함이 인과관계까지 부착되어 존재 이휴가 있는 무언가처럼 변화한다. 게임적 내러티브는 고통스러운 조우의 사건적 특성을 회복하는데, 그것은 어떠한 고통도 현실 질서의 의도치 않은 단절이며, 기존의 현실 이성이 내러티브를 합리화할 수 없다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데릴사위물(赘婿文)이나 환생물(重生文), 역습물(逆袭文)에서 ‘의견이 맞지 않으면 온 가족을 죽인다’는 갈등요소는 자신을 괴롭히거나 모욕하는 사람에게 복수하는 주인공의 ‘통쾌한’ 형식을 보여주며, 실생활에서 괴롭힘이나 모욕의 내재적 논리도 ‘노출’한다. 즉, 어느 순간이든 보통 사람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그들을 괴롭히는 이들이 남을 괴롭히는 힘이나 위치를 파악하는 것에 불과하다. 여기서는 타인을 모욕하는 행위에 대한 어떠한 합법적 변호도 의의를 상실한다. ‘괴롭힘 당하는 것의 고통’은 환원 혹은 해석이 불가능한 사건적 진실이라 할 수 있다. 9) 게임 내러티브의 두번째 형식은 바로 가상현실 자체의 서사, 즉 게임 자체가 서사인 것에 있다. 이는 가상현실 시대에 비디오 게임 서사 행위에 집중된다. 디지털 게임은 특정한 서사의 틀을 빌려 전개되는데, 이는 자연주의적 리얼리즘 서사와 유사하며, 이따금 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 서사를 채택하기도 함으로써 디지털 게임 서사의 내용 차원을 구성한다. 비디오 게임 스토리텔링에는 게임 내 자신의 행동을 통해 스토리를 생성한다는 또 다른 서사적 측면이 있다. 이것은 비디오 게임 서사의 행동 측면이다. 한편으로 비디오 게임은 스토리를 채용해 게임성을 구성하고, 다른 한편으로 플레이어는 이러한 게임성을 빌려 비디오 게임 스토리텔링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사용해 자기만의 내러티브 흐름을 생성한다. 즉, 각양각색의 논리적 스토리들을 스스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불가지성으로 바꾸고, 스스로를 완전히 사건화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전형적인 게임적 리얼리즘은 플레이어를 진정한 주인공으로 만들고, 플레이어의 성격과 감정, 능력까지 끄집어내 전혀 다른 인생 경험을 구축케 한다. 여기서 비디오 게임은 ‘조우’를 진실로 만들지, 조우한 이야기 자체를 진실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조우’는 플레이어가 비디오 게임에서 조우하는 임무나 이야기가 아니라, 플레이어와 비디오 게임 자체의 ‘조우’이다. 즉 플레이는 곧 사건적인 조우다. 비디오 게임, 특히 가상현실 시대의 비디오 게임은 플레이어가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해주며, 마치 캐릭터가 자기 자신인 것처럼 행동한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적 리얼리즘은 자아(주체)를 플레이어로 정립시킬 때이며, 플레이어가 자아를 주체의 사회적 위치에서 벗어나도록 만든다. 더는 동일성 캐릭터인 자아를 추구하지 않는 순간이 되면 플레이어들은 모순투성이인 자아 캐릭터를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게 된다. 게임 <디스코 엘리시움 Disco Elysium>(2019, ZA/UM)에서 플레이어가 콘트롤하는 게임 속 주인공은 게임 전개 과정에서 다양한 철학사상과 정치적 주장을 접하는데, 이러한 관념들은 게임의 ‘사유’시스템을 구성한다. 플레이어가 주인공에게 ‘아이템’을 장착해 다른 사유를 할 수 있게 되면 새로운 능력이나 수치를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플레이어가 주인공의 장비창에 “해석하기 어려운 페미니즘 아젠다”라는 사유를 추가하면 주인공이 남성 캐릭터들에 대항할 때 ‘강한 승부욕’ 스킬값이 2포인트 상승해 수치적 측면에서 주인공이 ‘페미니스트’로 묘사된다. 하지만 게임의 목표는 끊임없이 변화하기에 ‘장비’를 갖춰야 한다는 ‘사유’ 역시 그에 따라 변화할 필요가 있다. 가령 덩치 큰 남자를 쓰러뜨리려면 ‘건장한 체격’ 스킬을 보강해야 하고, 영리하기 짝이 없는 장사꾼을 설득하려면 ‘권모술수’를 터득해야 한다. 10) 간단히 말해 사유의 ‘장비화’는 주인공을 어떤 관념을 가진 특정한 ○○주의자가 아니라, 여러가지 생각들 사이를 오고가는 ‘산보자’로 만든다. <디스코 엘리시움>의 이야기에서 어떠한 ‘주의’도 이 이야기 속 문제를 해결하는 약이 되지는 못한다. 모든 ‘주의’들은 나름의 합리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상적인 능력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게임 시스템은 주인공을 불안정한 ‘사상 도둑’으로 만들고, 지속적으로 다른 사유 관념을 수용케 하지만, 그것들 중 어떤 것도 신앙으로 삼지는 않는다. 게임의 스토리는 플레이어를 아무 해결책도 없는 실제 세계의 심연으로 내던지고, 플레이어가 본래 갖고 있던 완전하고 통일된 문화적·정치적 정체성을 산산조각냈다. <디스코 엘리시움>의 도우반(豆瓣) 페이지를 보면 아래 세 종류의 리뷰를 볼 수 있다. “(이 게임을) 처음 시작했을 땐 <군중심리>(1895년)나 <죽도록 즐기기>(1985년), <1984>, <백년 동안의 고독>, <황금시대(黄金时代)>를 읽는줄 알았음. 30분 동안 플레이하다보니, 내가 플레이한 게 <공산당선언>, <순수이성비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전쟁과 평화>, <레미제라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걸 깨달았다. (도우요우63235291, 2000년 3월 20일)” “단순한 게임이 아님. 나는 자유주의의 번화와 억압, 코뮤니즘의 격앙과 광기, 민족주의의 단결과 차별, 모더니즘의 광기와 미망, 이상주의의 위대함과 허망함, 휴머니즘의 인자함과 실패를 승인하게 됨. 도덕주의자가 되거나, 세계에서 가장 우스꽝스러운 중도파가 되기도 하며, 마조프주의 사회경제학에 정통한 고뮤니즘의 별, 천리안을 가진 세계의 거성, 법률의 화신, 신자유주의 구역의 나그네, 세계의 종말을 알리는 제8봉인자, 전통주의자 미친개, 논박할 수 없는 페미니스트, 초췌한 꼬라지의 민족주의자가 되기도 함…. 킴 키츠라기 경위는 만나본 형사들 중 최고지만, 나는 여전히 그녀를 붙잡지 못했다. 나는 무식하고 비참하며, 정말 충격받았다. 나는 선을 분명히 긋지도 못하고, 혼란스럽고, 변덕스러운 망령이었다….” (Paze, 2022년 9월 22일) “내 머리와 의식, 거울, 내가 만진 모든 것이 시인이나 철학자같다. 말하는 것은 모두 문체가 가지런하고, 밤에 잠을 자면 머리 속에서 글쓰기 세미나를 여는 것만 같다. 나는 입만 열면 온통 헛소리뿐인데, 게임 내내 ‘나는 누구지?’, ‘어디로 가야하지?’, ‘뭘 믿어야 하지?’, ‘어떤 가치관을 가져야 하지?’ 등을 고뇌한다. 게임을 처음 시작했을 땐 제작자들의 정치적 입장, 내게 어떤 정치적 입장을 원하는지 존재하지 않는다고 추측했고, 거의 모든 관점을 내가 가진 정치 스펙트럼에 따라 밟았다. 한데 빌딩이 기울어갈 때 어떤 이론도 고집하지 않자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당신은 인간의 편만 들 수 있다. 게임 엔딩 후 돌이켜보면 나를 감동시킨 거의 모든 사람과 사건들은 정치와 무관하게 살아있는 사람과 생명, 바닷바람, 형편이 어려워지는 기계 속에서 따스함을 가져다주고 서로 돕는 선량함이었다. 나는 술과 담배를 피우는 걸 좋아한 탐정이었다. ‘당신은 내가 마주친 가장 아름다운 생물입니다.’” (덜익은 서핑보드, 2020년 3월 19일) 11) 분명 완벽하게 통일된 자아는 자아에 대한 하나의 설정(주체화)에 불과하다. 게임적 리얼리즘은 ‘자아 캐릭터’의 완벽히 통일된 판타지적 속성을 드러내는데, 이때 자아 캐릭터의 통일은 삶의 과정을 덮는 무질서한 사건의 진상에 불과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디오 게임이 뭘 했는지(전형적 리얼리즘과 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의 논리)가 아니라, 이 행동을 ‘플레이’하는 비논리성에 있다. 즉 플레이는 플레이 그 자체이며, 확실성을 추구하지 않은 채로 그것의 의미 규정에서 벗어나게 된다. 게임적 리얼리즘은 진정으로 서사 텍스트의 수용자인 전통적 내러티브에서 추상화된 캐릭터의 사건적인 실제 면모를 회복한다. 게임적 리얼리즘 바깥에서도 ‘나’는 ‘사람’에 대한 서사의 다양한 이야기들에 속해 있으며, 게임적 리얼리즘에서 ‘플레이어’는 다양한 사건들에 의해 흩어지는 ‘나’의 증상으로 돌아간다. 즉 ‘나’란 ‘나의 동일성이라는 가상’을 증명하기 위한 용어에 불과한 것이다. 간단히 말해 자연주의적 리얼리즘은 언제나 모든 걸 안다는 방식으로 통제력 있는 ‘주체적 자신감’을 창출한다. 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은 이러한 자신감이 증폭된 후의 ‘순수한 자아’를 부각시킨다. 게임적 리얼리즘은 오히려 ‘플레이어’로 하여금 사람과 사람의 근본적 함의를 회복케 한다. ‘나’의 조우야말로 개개인의 생존적 진실이며, 그 조우에 대한 과잉적 해석(상징계의 진실)이나 순수한 이념화(상상계의 진실)가 아니다. 리얼리즘적 ‘게임’ 상징계의 진실과 상상계의 진실에서 실재계의 진실까지, 우리는 리얼리즘 스타일 이념의 세 가지 요소를 얻을 수 있다. 첫째, 리얼리즘은 삶에 대한 반영이며, 현실 생활의 내적 논리와 역사적 진리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둘째, 리얼리즘은 현실에 대한 반응이며, 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은 상품 물신성(commodity fetishism)의 환각으로 세계의 본질을 표현한다. 셋째, 리얼리즘은 진실의 게임에 통달했고, 게임적 리얼리즘은 인간 삶의 원천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둔 채로 세계의 다이성을 드러냈다. 그것은 마치 ‘다의성의 다의성(multitudes of multitudes)’을 보여준다. 12) 리얼리즘은 ‘반영’으로서 과학주의의 인문정신을 확립했다. 냉정하고 객관적인 묘사는 인류세계의 진실성을 드러내는 효과적 수단이었다. 냉정하고 객관적인 생활존중의 태도를 채택해야만 진정한 생활 상황이 비로소 인식되고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루쉰(鲁迅)과 마오둔(茅盾)은 리얼리즘적 태도를 견지했는데, 그렇게 해야만 실생활의 파괴와 쇠퇴가 반영될 수 있고, 사람들의 구원의식이 활성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응’으로서의 리얼리즘은 현실 사회의 생존 상황에 대한 간여이자 개입이며, 그것은 특정한 이념이나 정신을 서사의 의미 프레임으로 삼아 현실 상황을 재구성하거나 각색한다.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 저명한 유화 작품 <건초 마차>(1820-21년작)는 농촌에 대한 부정할 수 없는 긍정적 관점을 제공한다…. 농촌은 조화, 아름다움, 안정, 전통, 평화, 순결, 미덕의 관점에서 특징지어진다. 왜 이런 의미들이 이 그림이나 다른 유사한 유화 작품들 속의 시골에 붙게 됐을까? 1980년 존 배럴(Jon Barrel)이 스스로에게 설정한 과업은 18~19세기 영국의 풍경화(부유층을 위해 생산되는 저작들)에서 작동하는 이데올로기를 밝히는 것이었는데, 여기서 그는 도래하는 자본주의 농업과 그것이 내포하는 계급투쟁의 배경에서 이데올로기를 설명하고자 했다….” 13) 자본주의의 잔혹한 약탈과 농촌의 아름다운 풍경화 사이에서 <건초 마차>는 리얼리즘적인 ‘반응성’ 관계를 구축한다. ‘게임’으로서 리얼리즘은 ‘진정한 면모’를 보여주는데, 결국 리얼리즘은 인류의 생존에 관한 진실한 상황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게임적 리얼리즘은 사람들을 ‘실재계의 위치’에 놓으며, ‘플레이어’는 ‘인생을 희롱함’을 통해 오히려 인생의 실재계적 진실을 직시하게 된다. 이때 우리는 한 번의 ‘게임’을 통해 세상의 변동을 쫓고 우연히 모여 특정한 질서를 끊고 한 번의 ‘플레이’를 완성하게 된다. ‘플레이’는 바로 인류 생존의 실재계적 진실’ 이며, 인류의 사회생활을 형이상학적 차원에서 해부해 다양한 ‘문화 해결’행동을 일종의 ‘게임 행위’로 바뀔 수 있다. 게임적 리얼리즘은 리얼리즘의 새로운 게임 방식을 구현한다. 이때 리얼리즘의 스타일 이념에는 폭로와 비판의 구원적 정치뿐 아니라, 인간으로 돌아가 향락에 젖는 쾌감 정치도 있다. 리얼리즘은 리얼리즘의 세 가지 면모, ‘진실’을 이해하는 세 가지 재밌는 방식을 구현하는데, 과학주의가 주도하는 리얼리즘은 상상력이 대폭발하는 스타일 기호학 방식을 추구한다. 게임적 리얼리즘은 게임을 통해 현실을 관촬하고 이해하는 것이며, 이러한 설정은 가상현실 세계가 사람들의 현실 세계의 현실 세계의 법칙이 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2016년 슬라보예 지젝은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 고>를 언급한 바 있다. (任天堂、宝可梦公司、Niantic Labs) “플레이어는 핸드폰에 있는 전세계 위성위치확인장치 및 카메라로 포착, 전투 및 가상 포켓몬(Pokemon)을 훈련합니다. 이러한 요정은 화면에 나타나는 방식은 마치 플레이어와 실제 세계의 같은 장소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습니다: 플레이어가 실제 세계 내에서 이동할 때, 그들의 게임 캐릭터를 대표하여 동시에 게임 맵에서 이동……우리는 전광판이라는 환상적인 틀을 통해 현실을 보고 현실과 현실의 교감, 상호작용을 하는데, 이 중개 틀은 가상 요소를 이용하여 현실을 증강시킵니다.이러한 가상 요소는 게임에 참여하고 싶은 우리의 욕구를 지탱하고 현실에서 그들을 찾도록 촉진하며, 이러한 환상적 틀이 없으면 우리는 현실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14) 지젝이 설명하고 싶은 것은 게임 방식과 현대 이데올로기 구축 방식의 일치에 있다. 지젝의 서술에서 사람들은 <포켓몬 고>라는 게임을 사용하는데, 이는 허구적 틀에 따라 자신의 현실을 지배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포켓몬 고>는 “비록 자신을 새롭고 최신 과학기술에 기반을 둔 어떤 것으로 제시하지만 실제로는 낡은 이데올로기 메커니즘에 의지하고 있다. 이데올로기는 환상을 증폭시키는 실천이다.” 15) 여기서 지젝은 가상현실과 이데올로기가 공유하는 허구성을 보면서도 가상현실과 이데올로기 사이의 정치적 기능의 차이를 간과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이데올로기는 현실에 동의하도록 '설득'하는 방식이지만 가상현실은 단순히 현실에 대한 '확대'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리셋'이다. 현실에서 의미가 없는 곳에서 의미를 창조하는 것이 바로 포켓몬을 찾는 논리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젝이 옳은데, 우리에게 “포켓몬은 판타지의 기본 구조에 직면케 하고, 현실을 하나의 의미 있는 세계로 바꾸는 환상적인 기능을 요구한다.” 16) 게임적 리얼리즘의 비밀이 바로 여기 있다. 현실의 논리를 ‘게임 플레이’로 ‘번역’해 이데올로기적 설득에서 현실의 핵심을 빼앗는다는 게임적 리얼리즘의 비밀은 비디오 게임의 검열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드러난다. 17) 자연주의적 리얼리즘이 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을 통해 게임적 리얼리즘을 만났을 때 이데올로기적 역설이 나타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로 리얼리즘은 정신분석가와 같은 ‘사설(辞说)’을 갖고 있으며, 자신만만하게 현실의 증상을 건전한 이성으로 전환한다. 또 다른 한편 게임적 리얼리즘은 리얼리즘의 들뢰즈식 역설을 드러낸다. 이때 정신분석가는 건전한 이성이 존재한다는 점을 광적으로 믿기 때문에, 증상은 정신분석가 자신에게 나타날 수도 있다. 1) 국가사회과학기금의 주요 프로젝트인 “가상현실 미디어 스토리텔링 연구”(21&ZD327)이다. 이 기사는 <탐구와 논쟁(探索与争鸣)> 2023년 11호에 게재되었다. 2) 실재계는 질서의 법칙에서 벗어나 기호화되지 않는 사건을 뜻하며, 본문에서도 '사건적 진실'이라는 표현을 쓴다. 3) 아즈마 히로키,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 ゲーム的リアリズムの誕生~動物化するポストモダン2>, 황진롱(黄锦荣) 번역, 홍콩 당산출판사(唐山出版社), 2015년 9월, 제43~57호, 135페이지 4) 버트런드 러셀은 현실 세계가 17세기부터 시작됐다고 말한다.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오, 마지막으로 뉴턴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대한 일련의 새로운 가설은 전통적인 '유기적 세계의 이미지'와는 다른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냈다. 새로운 세계의 이미지에서 만유인력의 가설은 '신이 없는 세상은 저절로 돌아갈 수 있다'는 현실을 확립한다. 뉴턴은 신의 존재를 제거하지는 못했지만, '현실 세계' 차원에서 자동적으로 존재하는 질서적 세계의 이미지를 확립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야기가 저절로 일어나는 것처럼 가장하는 방식인 '리얼리즘'의 문체적 이념을 이해했다. 뉴턴의 만유인력의 신세계 그림과 논리적으로 통일된 것이다. 저우즈창(周志强), <敢于面对自己不懂的“生活”——现实主义的文体哲学与典型论的哲学基础>, 《중국 문예평론》, 2021년 제8호 참고. 5) 장셴량, <장셴량 소설 자선집>, 션린, 리장출판사(漓江出版社), 1995년 8월, 185페이지 6) 장셴량, <장셴량 소설 자선집>, 션린, 리장출판사(漓江出版社), 1995년 8월, 185페이지 7) 콩더강, <대다수(大多数)와 ‘게임적 리얼리즘’ : 비디오 게임의 계층간 서사적 시도와 초월향상>, <중국도서평론> 2023년 11호 8) 왕위수(王玉玊), <온라인 문학의 ‘게임화’ 방향과 그 ‘네트워크적’ 성격 : (디지털) 인공 환경과 온라인 문학의 자아실현>, 문학(文学), 2023년 제1기 9) '중생일대효룡'이라는 '무뇌상쾌문'을 예로 들어보자: 강지호라는 사람이 갑자기 2000년으로 환생했다. 이 '환생'의 스토리 역시 장르소설의 줄거리처럼 실생활에서 능욕의 경지에 빠진 약자들이 합리적인 조건에서 능욕자들을 능욕할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기괴한 쾌감에 의해 움직인다. 이 인물의 형성은 도덕적인 이상적 인격에 대한 추구에서 비롯된다기보다는, '부'와 인연이 없는 대다수의 소인물들의 내면의 '무능하고 분노'에서 비롯된다. 수없이 많은 혐오를 겪으면서 형성된 '사회적 열등감'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10) 승부욕', ''권모술수', '현혹'등은 모두 ''디스코 엘리시움'안에서 활용되는 스탯 명이다. 11) https://www.douban.com/game/26935092/comments 12) 슬라보예 지젝 저, 주우(朱羽) 옮김, <뇌 속에 헤겔을 연결하라>, 시베이대학출판부, 2023년 10월, 17페이지 13) Elaine Baldwin 저, 타오둥펑 옮김, <文化研究导论 Introducing Cultural Studies>, 고등교육출판사, 1991년작/1994년 번역, 153-154페이지. 14) 슬라보예 지젝: 《가면과 진실: 라캉의 7교시》, 탕젠 옮김, 구이린, 광시사범대학 출판부 2022년.제IV-V페이지. 15) 슬라보예 지젝: <가면과 진실: 라캉의 7교시>, 탕젠 옮김, 구이린, 광시사범대학 출판부, 2022년, VI 페이지. 16) 슬라보예 지젝: <가면과 진실: 라캉의 7교시>, 탕젠 옮김, 구이린, 광시사범대학 출판부, 2022년, VI 페이지. 17) 미국, 일본, 독일 등에서는 비교적 엄격한 게임 검열을 하고 있는데, 유명한 검열 기관으로는 ESRB, CERO, USK 등이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난카이대학 문학원 교수) 저우즈창, 周志强 (활동가, 작가) 홍명교 활동가, 작가.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에서 동아시아 국제연대와 사회운동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를 썼고, <신장위구르 디스토피아>와 <아이폰을 위해 죽다>(공역) 등을 번역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Jisu Kim
I am interested in a variety of topics concerning culture, knowledge, space, and learning environment. The history of games and the life of gamers are also something that fascinates me. Jisu Kim Jisu Kim I am interested in a variety of topics concerning culture, knowledge, space, and learning environment. The history of games and the life of gamers are also something that fascinates me. Read More 버튼 읽기 [Interview] The Story of Digital Game Diversity & Accessibility and Making Books About it – Kyung-jin Lee, Diversity & Inclusion Director at Smilegate In August 2024, Smilegate – one of the best-known South Korean game developers & publishers, published two books aimed at game developers, focusing on game accessibility and diversity. The first book, “게임 접근성 개념과 사례 (Concepts and Cases of Game Accessibility)”, explores the concept and current state of accessibility and diversity in South Korean games and case studies. It also delves deep into design approaches to ensure all players can fully enjoy games without restrictions. Smilegate’s second book, “콘텐츠 다양성 개념과 사례(Concepts and Cases of Content Diversity)”, introduces the idea of "cultural diversity" and examines how it has been implemented in South Korean media and games.
- 게임제너레이션::필자::김지수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지수 김지수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Read More 버튼 읽기 [인터뷰] 시뮬레이션이라는 말에 대한 동시대의 감각들 - GG필진 대담회 이번 GG의 대담에서는 게임연구자 김규리, 평론가 이선인, 그리고 이경혁 편집장이 함께 시뮬레이션 장르의 확장과 변주 과정을 짚으며, 쉽사리 정의하기 어려운 시뮬레이션의 다층적 의미를 통해 우리가 게임 비평자로서 도달해야 할 질문은 무엇인지 탐색해 본다. 버튼 읽기 [논문세미나] 여성 게이머들은 어떤 편견 속에서 플레이하며 어떻게 대처하는가?: 필리핀 AOS 게임 <모바일 레전드>를 사례로 <모바일 레전드>를 가장 많이 플레이하는 국가는 필리핀으로, 필리핀에서만 1억 명 이상이 등록되어 있으며 월별 접속인원은 2천 5백만 명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바일 레전드>의 필리핀 e-스포츠 리그에서 여성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으며, 게임의 이용자가 많아지면서 여성 게이머에 대한 젠더 고정관념과 편견의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여성의 온라인 게임 경험이 남성과는 상당히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버튼 읽기 [Interview] A journey towards the next step of Korean game research, Prof. Tae-jin Yoon, the president of DiGRA-K In March 2024, the South Korean regional chapter of the Digital Games Research Association (DiGRA) was established. DiGRA is one of the world's largest international associations for academics and professionals who research digital games and associated phenomena. Its Korean chapter, named “DiGRA-K”, is now the latest new regional hub followed by the ones in Europe, Asia, and North and South America. DiGRA-K aims to promote an interdisciplinary approach to game research, strengthen connections with industry and academia, and support the next generation through international collaborations. Notably, DiGRA-K aims to overcome the gap between academic disciplines in Korea when it comes to research games, while seeking to encompass both industry practitioners and academia. 버튼 읽기 [대담회] 게임비평의 오늘,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 왔고 어디로 향해야 할까? 이번 대담에서는 창설에 기여했으며 초창기부터 공모전을 지켜보거나 심사위원 활동에 부분적으로 참여했던 연구자 및 평론가들이 모여, 가 만들고자 했던 게임 비평 및 담론 장의 성격과 현재까지의 성과와 이력을 진단하고, 앞으로의 게임 비평 씬에서의 후속세대 양성에 대한 고민과 계획을 함께 짚어보았다. 버튼 읽기 [인터뷰] 쥐와 함께 6년을 살아 온 인디게임사, <카셀게임즈> 황성진 대표 올해로 창립 6년 차를 맞은 카셀게임즈의 황성진 대표를 만나, 그의 창작 철학과 개발 과정에 대한 고민, 인디게임사 운영의 현실, 그리고 다음 프로젝트를 향한 구상까지 진솔하게 들어보았다. 버튼 읽기 [대담회] <어쌔신크리드: 섀도우스> 야스케 논란을 보는 여러 관점들 2024년 공개된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스>는 시리즈 최초로 일본 전국시대를 무대로 삼으며, 여성 시노비와 흑인 사무라이라는 두 명의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워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작품이 공개된 이후 흑인 사무라이 주인공의 인종과 배경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졌으며, 이는 국내외 커뮤니티에서 역사 고증의 문제를 넘어 서구중심주의나 PC주의 비판 등의 다양한 논쟁으로 확산되었다. 이번호 GG에서는 홍현영 박사, 이정엽 박사, 강신규 박사 세 명의 디지털 게임연구자 및 인문사회 연구자들을 만나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를 둘러싼 여러 층위의 쟁점을 나누고, 오늘날 게임이 재현하는 역사와 정체성의 의미와 딜레마를 검토해 보았다. 버튼 읽기 [인터뷰] 근대에서 현대로의 궤적을 따르다, <더 파이어 노바디 스타티드> 아로코트 개발자 작년 8월 열린 부산인디게임페스티벌(BIC)에 출품된 <더 파이어 노바디 스타티드(The Fire Nobody Started)는 흔히 접할 수 있는 게임들과는 다른 내러티브와 아트의 독창성을 자랑하는 게임이다.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형식의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는 각각 특정 시대로 대변되는 기차 칸들을 오가며 유럽 근세사의 질곡을 체험하게 된다. 산업혁명기부터 베트남 전쟁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사회의 다양한 굵직한 사건들을 다루는 이 게임에는 인류로부터 비롯되는 발전과 폭력이라는 양가적 주제가 녹아나 있다. 버튼 읽기 시각장애인에게 지하철역은 미로 던전이다 - <사운드스케이프> 제작사 오프비트 황재진 대표 지난 11월 29일 개최된 ‘버닝비버 2024’는 인디게임 창작자들의 다양한 열정과 실험정신을 드러내기 위해 열린 인디게임 컬처&페스티벌이다. 사흘간 총 83개의 인디게임 부스가 열리고 1만여 명의 관람객이 참여한 이 행사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작품 중 하나는 <사운드스케이프>다. 시각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 이 게임은 전맹 시각장애인의 경험을 구현한 탈출 게임으로, 게임의 독특한 시각화 방식과 그 속에 담긴 사회적 메시지로 인해 호평을 받았다. 그간 유사한 컨셉의 게임이 소수 있었지만 특히 대학생으로 구성된 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이는 더욱 새롭다. 버튼 읽기 [인터뷰] 게임연구학회의 새로운 도전, DiGRA-K 윤태진 학회장 024년 3월, 세계 최대 게임 연구 단체인 '디그라(DiGRA; Digital Games Research Association)'의 한국지회(디그라 한국학회)가 설립되었다. 디그라 한국학회는 영미권과 유럽, 남미 등에 이어 18번째로 설립된 지회로서, 게임 연구의 학제적 접근과 현장과의 연결성을 지향하고 후속세대 지원, 국제교류 및 협력연구 등의 활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분과를 뛰어넘는 학술교류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상대적으로 미진했던 국내 게임 연구 분야에 있어, 다양한 업계 현장과 학계를 포괄하고자 하는 새로운 형태의 학회가 만들어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버튼 읽기 [인터뷰] 디지털게임 다양성/접근성 가이드북 제작, 스마일게이트 D&I실 이경진 실장 "이런 사람도 게이머고 저런 사람도 게이머고, 아직 게임을 하지 않은 사람들도 게이머가 될 수 있다라고 확장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우리가 대중 문화로서의 게임의 위상을 스스로 높이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에버랜드에서도 ‘게임문화축제’라고 해서 게임 IP를 가지고 행사를 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게임이 굉장히 대중적인 매체가 되어서 놀이공원에 아이들하고 함께 가서 즐길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된 거잖아요. 그렇다면 게이머라고 했을 때도 게이머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는 게 앞으로 수익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마인드셋이라고 생각해요." 버튼 읽기 [인터뷰] TRPG로 미술하기: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제작자 인터뷰 지난 6월과 7월, 전시장 ‘팩션’에서는 TRPG(Tabletop Role Playing Game)라는 게임의 형식과 관객 참여형 예술을 결합한 전시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노스탤지어의 벌레들>이 열렸다. 전시장을 활용해 약 한시간 반 동안 진행되는 퍼포먼스에서, 작가는 TRPG 게임 마스터가 되고 게임의 참여자인 관객들은 재난이 닥친 고향에 돌아왔다는 설정의 캐릭터가 되어 함께 이야기를 구성한다. 버튼 읽기 [인터뷰] 공동연구처럼 돌아가는 스피드런의 세계, 스피드런 유튜버 천제누구 생산을 위해 기획된 방법론인 효율은 오늘날 디지털 게임에서 주요한 플레이 방법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효율적인 플레이를 위한 전략이 동원되고, 최고의 효율을 달성하는 것이 플레이의 미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러한 효율적 플레이의 정점에, 최단시간 내 게임 클리어를 목적으로 하는 스피드런(speedrun)이 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윤수빈
2007년부터 시작된 포켓몬스터 시리즈와의 인연으로 게이머가 되었으나, 2023년에 결별을 선언하였다. 그래도 여전히 포켓몬 게임 시리즈의 출력 텍스트인 "햇살이 강해졌다!"가 삶의 모토. 좋아하는 게임이 생기면 동인지를 만드는 삶을 살아왔지만, 2024년부터는 게임 비평이라는 새로운 감상의 언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종종 '룬츠'라는 닉네임으로 2차 창작을 쓰고 그린다. 윤수빈 윤수빈 2007년부터 시작된 포켓몬스터 시리즈와의 인연으로 게이머가 되었으나, 2023년에 결별을 선언하였다. 그래도 여전히 포켓몬 게임 시리즈의 출력 텍스트인 "햇살이 강해졌다!"가 삶의 모토. 좋아하는 게임이 생기면 동인지를 만드는 삶을 살아왔지만, 2024년부터는 게임 비평이라는 새로운 감상의 언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종종 '룬츠'라는 닉네임으로 2차 창작을 쓰고 그린다. Read More 버튼 읽기 『아이프리버스』와 『비밀의 아이프리』, “프리파라 아저씨”: 무엇이 ‘비밀’인가? 체크 남방을 입은 덩치 산만한 남자가 자기 몸뚱이만 한 알록달록한 보라색 아케이드 게임기 앞에 앉아 있고, 그 뒤에서 작은 여자아이가 차례를 기다리는 사진이 밈처럼 퍼진 적이 있다. 그 게임의 이름은 『프리파라』다. 모두가 사진을 찍혀 밈이 되어 인터넷 세상을 부유하지는 않지만, 많은 수의 프리파라 “프리파라 아저씨”들이 있었고, 프리파라의 시대 당시 10대 중반이었던 나에게 프리파라의 모든 것을 가르쳐준 것도 프리파라 아저씨(들)이었다. 버튼 읽기 이제부터 나와 랜디 오턴을 한몸으로 간주한다—WWE 비디오 게임을 통해 온몸으로 슈퍼스타 되기 내가 WWE 비디오 게임을 처음 접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취임식 조금 전, 넷플릭스 다큐 시리즈 〈미스터 맥마흔〉이 공개되고 조금 지나서, 그리고 프로레슬링이라는 예술 형식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지 반 년 정도 지나고서였다. ‘홈파티’라고 수식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20대 남성 넷이 모인 자리, 친구의 플레이스테이션 컬렉션에서 내가 선택한 파티 게임이 〈WWE 2K22〉였다 버튼 읽기 [공모전수상작] 〈Ib〉: 미술관이라는 공포 체험 2022년은 〈Ib〉의 공개로부터 10주년이 되는 해였다. 제작자kouri는 스팀을 통해 기존 〈Ib〉에 새로운 기능이나 디테일을 더한 리메이크판을 공개했다. 이듬해 2023년에는 닌텐도 Switch 용 〈Ib〉의 발매 소식이 공개되었고, 게임 홍보를 목적으로 게임의 전시를 재현한 ‘게르테나전’이 도쿄 시부야에서 열리기도 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만 또안 호
만 또안 호 만 또안 호 Read More 버튼 읽기 그린게이밍의 새로운 지평을 찾아서 2020년 이래 아이폰은 충전기 미포함으로 출시되고 있다. 애플에 따르면 이는 포장 쓰레기와 전자 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조치로서, 판매되는 아이폰 한 대당 소요되는 원자재량 및 포장용 패키지 절감을 통해 운송용 팔레트 한 대당 70% 더 많은 제품을 실을 수 있어 탄소 배출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Calma, 2020).
- 박물관/미술관 속의 게임들과 그 역사
최근 들어 미술관에 게임이 전시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게임사회” 전시나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의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와 같이 게임을 소재로 한 전시가 늘고 있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전시되는 유물들은 단순히 그 오브제의 집합 형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각각의 작품들이 연계되어 만드는 다양한 맥락을 통해 그 작품의 의미는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 Back 박물관/미술관 속의 게임들과 그 역사 12 GG Vol. 23. 6. 10. 최근 들어 미술관에 게임이 전시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게임사회” 전시나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의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와 같이 게임을 소재로 한 전시가 늘고 있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전시되는 유물들은 단순히 그 오브제의 집합 형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각각의 작품들이 연계되어 만드는 다양한 맥락을 통해 그 작품의 의미는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게임이 미술관에 전시되었다는 사실의 이면에는 우리 사회에서 게임을 바라보는 시각이 재편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기술적인 차원에서 볼 때 게임은 종래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채우고 있는 유물이나 회화 등의 작품과 비교할 때 동적일뿐더러 상호작용적으로 작동된다. 어렸을 때부터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로 무장한 젊은 세대에게 이러한 동적인 행위성 덕분에 많은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다소 수동적이었던 기존의 작품 관람 패턴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게임이 게임만을 소재로 한 박물관을 갖게 되고, 다른 미술관에서 당당하게 전시를 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이 글에서는 이처럼 게임이 독자적인 박물관을 가지게 되고, 사회적인 편견을 넘어 미술관에 전시되게 된 역사를 국내외를 막론하고 그 사례를 소개하려고 한다. 박물관에 전시된 최초의 게임들 * MoMI에서 최초로 박물관에 전시된 아케이드 게임들 비디오 게임이 본격적으로 산업의 태동을 맞이한 시점을 1972년 아타리의 〈퐁〉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1989년에 이르러서야 게임은 처음으로 박물관에 전시될 기회를 갖게 된다. 미국 뉴욕의 Museum of the Moving Image (MoMI)는 “Hot Circuits: A Video Arcade”라는 이름의 전시에서 아케이드 게임들을 전시했다. 이 박물관의 창립 이사였던 로셸 슬로빈(Rochelle Slovin)은 비디오 게임이 학술적으로 가치가 있고 물리적으로 보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컴퓨터 스페이스(1971)〉나 〈퐁(1972)〉 같은 초기 아케이드 게임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아스테로이드〉, 〈스페이스 인베이더〉, 〈슈퍼 브레이크 아웃〉, 〈트론〉 등 14종의 아케이드 게임이 전시되었다. MoMI의 이 초기 전시들은 이 박물관이 수집하고 있는 ‘동영상(moving image)’라는 개념에 부합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단순히 움직이는 영상 이상의 인터랙션을 안겨주었기에 이러한 게임들을 전시할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본질적으로 게임은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운 좋게 게임에 호의적인 큐레이터를 만나 전시하게 된 새로운 매체 정도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위의 사진처럼 MoMI의 전시는 단순히 기존에 존재하던 아케이드 게임을 그대로 수집하여 가져온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집된 게임의 예술적인 특질을 추출하기는 쉽지 않다. 실제 해당 게임을 만든 개발자들에게도 본인들이 예술적인 작품을 만든다는 작가적 정체성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로셸 슬로빈은 이러한 아케이드 게임들의 기술적인 특징이나 게임이 소비되는 사회적인 맥락이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는 이 전시에 관한 에세이에서 “비디오 게임을 평가한다는 것은 TV과 영화, 그리고 현재의 뉴미디어를 지배하는 비디오-컴퓨터의 혼합 사이에서 구미디어와 뉴미디어 사이의 첫 번째 연결 고리를 만드는 중요한 단계”라고 썼다.1) 그는 1989년의 전시 이후 20년이 지난 2009년의 시점에서 당시의 전시들이 “많은 사람들이 무시하는 것처럼 하나의 트렌드나 유행이 아니라 오히려 중요한 무언가의 시작”이었으며, “비디오 게임이 전 세대의 젊은 미국인들을 컴퓨터에 적응시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평가했다. 특히 그는 당대의 아케이드 게임이 가진 기술적인 시각화가 다른 매체와 다른 비디오 게임 고유의 독자적인 미학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초기 비디오 게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게임이 컴퓨터의 사고방식을 구현했다는 것이다. 이는 부분적으로 게임이 탄도학이나 군사 시뮬레이션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초기 형태의 컴퓨터와 칩은 힘과 벡터라는 순수한 수학만을 다루도록 설계되었다. 그들이 비디오 게임으로 재현되었을 때, 여기에는 순수한 수학의 강한 흔적이 여전히 존재했다. 이는 시각적 엔터테인먼트의 독특한 순간이었다. 기술이 게임의 원동력이자 콘텐츠가 되었다. 이것은 내가 본 것처럼 기술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내용과 기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주기 위한 의미였기 때문에 이것은 박물관에 유용한 오리엔테이션이었다. 비디오 게임은 물리 법칙을 거의 감각적으로 시각화하고 느끼는 방식을 혁신 했다. 힘과 벡터 같은 물리적 법칙을 수학 공식을 통해 기술적으로 시각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초기의 비디오 게임은 박물관에 전시될만한 맥락을 처음으로 획득하게 된 것이다. 특히 젋은 미국인들이 컴퓨터를 사용하는 방식을 게임이 적응시키고 있다는 사회적인 맥락이 형성되었다는 점을 그는 주목했던 것이다. 이는 이 때를 즈음하여 게임이 단순히 아케이드만을 통해 소비되지 않고, 가정용 게임기나 개인용 컴퓨터를 통해 다양한 플랫폼으로 소비되고 있음에 착안하여, 초기의 아케이드 게임이 가질 희소성과 보존 가치에 주목했다. 이 때부터 MoMI는 초기 아케이드 게임뿐만 아니라 랄프 베어로부터 기증받은 인류 최초의 가정용 게임 콘솔인 마그나복스 오디세이의 프로토타입 버전인 ‘브라운 박스’ 등도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는 현재에도 MoMI의 주요 컬렉션을 이루고 있다. 미디어 아트 옆에 놓인 게임 MoMI의 이 전시 이후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비디오 게임의 박물관과 미술관 전시는 본격화되기 시작한다. 1998년 미국 미네소타 주에 위치한 워커 아트 센터(Walker Art Center)에서 열린 “Beyond Interface” 전시나 2000년 UC 얼바인 대학에서 열린 “Shift-Ctrl”전, 2001년 뉴욕 Museum of Modern Art (MoMA)에서 열린 “010101: Art for our Times”, 그리고 같은 2001년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열린 “Bitstreams”전이 그것이다. 이 당시 전시의 특징은 게임을 독자적으로 전시하기보다 게임과 디지털 미디어아트를 동일선 상에 놓고 병렬적인 차원에서 이들의 유사성을 더듬어 나가는 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 휘트니 미술관 Bitstreams에 전시된 제레미 블레이크의 미디어 아트 Station to Station (2001)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이르면 게임은 미국과 유럽, 일본과 한국을 위시한 동아시아에서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나름의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을 당시였다. 〈스타크래프트〉를 위시하여 e스포츠의 가능성이 시작되었고, 3D 그래픽 카드의 출시를 통해 게임의 시각적인 표현력도 우수해지던 때였다. 물론 막 시작된 3D 그래픽의 표현 수준은 아직 언캐니 밸리의 위험한 구간을 통과하기 어렵던 때였지만, 도트나 벡터 그래픽을 바탕으로 한 2D 그래픽의 표현 수준은 슈퍼패미컴이나 PC엔진과 같은 4세대 가정용 콘솔에서 절정에 이르러 하나의 스타일을 확립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미 그 이전부터 몇몇 작가들은 컴퓨터 그래픽과 인터랙션을 하나의 표현 도구로 삼고 이를 통해 뉴미디어 아트를 선보이고 있었다. 이 당시 미술관에 전시된 게임은 독자적인 전시로 구성하기는 어렵지만, 디지털 아트라는 범주를 새롭게 설정하면서 그 맥락에 묻어가면서 전시 맥락을 획득한 경우라 볼 수 있다. 도구로서의 디지털은 쉬운 복제와 편집 가능성을 바탕으로 기존 작품의 권위를 쉽게 패러디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 당시에 나왔던 리디아 와초프스카의 〈브레이크 아웃〉 패러디는 기존의 비디오 게임 매커닉을 패러디하여 디지털 아트가 재구성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 Lidia Wachowska, Breakout Animation Steal, 2002. 문제는 이처럼 게임이 디지털 아트와 더불어서 미술관에 점차 전시되면서 ‘예술 게임(art game)’과 ‘예술적 형식으로서의 게임(games as a art form)’이 구분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예술가나 미디어아트 작가들이 게임적 요소를 하나의 도구로 삼아 예술가적 자의식을 가지고 제작한 예술 게임과 상업적 게임 중 예술성이 뛰어난 게임인 ‘예술적 형식으로서의 게임’은 지향하는 바가 분명히 다르다. 전자의 경우 2000년대 전후를 위시하여 지속적으로 미디어 아트 포맷 형태로 미술관에 숱하게 전시되었으나, 예술적 형식으로서의 게임은 상업적 속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기도 하거니와 이를 제작한 개발자의 예술적 자의식이 없거나 크게 도드라지지 않기 때문에 미술관에 전시되기 위해서는 별도의 다른 맥락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이란 게임이 소비되는 사회적인 맥락에 있어서 흔히 게임의 본질적인 매체 효과로 간주되는 ‘재미’를 넘어 게임이 영감(inspiration)을 줄 수 있는 미학적 자질을 획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석파정 서울미술관, “안봐도사는데지장없는전시” (2019) 2019년 석파정 서울미술관에서 열렸던 “안봐도사는데지장없는전시”는 게임만을 다룬 것은 아니었지만, 작품 중 여러 예술적 형식으로서의 게임을 전시한 사례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호주의 게임 개발사 Mountains에서 개발하고 안나푸르나 인터랙티브에서 퍼블리싱한 모바일 게임 〈플로렌스(Florence)〉의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운 이 전시는 게임이 우리 사회 속에 어느새 미적 감각을 전달해줄 수 있는 주요 매체로 자리매김했음을 일깨워준다. 독자적인 게임 박물관을 향하여 필자 역시 2010년 서울대학교 미술관에서 열린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전시를 기획하면서 게임을 미술관에 넣어보려 노력한 적이 있다. 놀공발전소와 함께 준비했던 이 전시에서 우리는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출시된 주요 게임 콘솔과 애플 II, MSX 등 한국에서 주요한 의미를 가진 개인용 컴퓨터들을 플레이 가능한 형태로 비치했고, 그 중 예술적으로 의미있다고 생각되는 다양한 게임들을 게임 역사 순서대로 전시한 바 있다. 물론 이 때에도 게임만으로 미술관 전시를 진행하는 것에 대한 미술관 내외의 반감이 상당하여 상당수의 전시를 디지털 중심의 미디어 아트로 채워야 했었다. 때문에 필자는 전시 시작 입구 쪽에 백남준의 〈TV 촛불〉을 초를 켠 채로 세워놓았다. 백남준의 〈TV 촛불〉은 TV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 게임이든 미디어아트이든 그 뿌리는 같으며, 이를 어떻게 채울지가 더 중요하다는 선불교 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으로 나에게는 다가왔던 것이다. 이 작품의 선정은 미디어아트 없이는 게임만의 독자적인 미술관 전시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편견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었던 일종의 소극적 저항이었던 셈이다. * 백남준, TV 촛불 이는 현재 제주도에 위치한 넥슨 컴퓨터 박물관이 오픈 수장고를 통해 선보이고 있는 방식과 유사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폭넓은 게임 콜렉션을 자랑하는 미국 뉴욕 주 로체스터에 위치한 The Strong Museum이나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Computerspielmuseum도 기본적으로는 이러한 오픈 수장고 형식을 채택하고 있다. 물론 이 박물관들은 모두 전시된 게임 이상의 수많은 콜렉션을 보유하고 있고, The Strong Museum만 게임업계나 학계 관계자들에게 폐가식 형태로 이를 공개하고 있다. The Strong Museum 내에 위치한 International Center for the History of Electronic Games는 게임 그 자체를 수집, 보존, 전시하는 것을 넘어 실제 게임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를 최대한 존중하여 보관하고자 하는 곳이다. * 〈페르시아의 왕자〉 디렉터인 조던 메크너의 스토리보드와 모션 캡쳐 노트 필자가 이 박물관의 센터를 방문했을 때 놀런 부슈넬, 윌 라이트, 조던 메크너, 시드 마이어 등 유명 게임 개발자들의 다양한 게임 메커닉 스케치와 아타리 2600 등과 같은 올드 게임 콘솔의 디자인 설계도 등을 열람할 수 있었으며, 이를 분류하는 체계 역시 이미 규정이 확립되어 있었다. 게임을 보존해야 할 미디어로 간주하고 이를 철저하게 시행하고 있는 사회적 인식이 확립되어 있다는 점에서 The Strong Museum의 사례는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인식하게 해준다. 1) Rochelle Slovin, “Hot Circuits: Reflection on the first museum retrospective of the video arcade game”, 2009. http://www.movingimagesource.us/articles/hot-circuits-20090115 Tags: 아카이빙, 박물관, 전시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교수) 이정엽 순천향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게임 스토리텔링과 게임 디자인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인디게임 페스티벌인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 창설을 주도하고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인디게임 행사인 Independent Games Festival(IGF)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저서로 『디지털 스토리텔링』(공저, 2003), 『디지털 게임, 상상력의 새로운 영토』(2005), 『인디게임』(2015), 『이야기, 트랜스포머가 되다』(공저, 2015), 『81년생 마리오』(공저, 2017), 『게임의 이론』(공저, 2019), 『게임은 게임이다: 게임X생태계』(공저, 2021) 등이 있다.
- 분투형 게임과 전쟁: 행위성의 뒤집힌 거울상
이와 같은 현상은 지난 세기 걸프전 이후 더욱 가속화된 ‘전쟁의 게임화’에 관한 분석에서 거울상을 발견한다. 게임의 한 장면처럼 보도되는 폭격의 현장에서부터 게이미피케이션을 통한 병사 훈련, 그리고 드론을 동원한 전쟁에 이르기까지. 게임이 전쟁을 재현(mimesis)할 때, 전쟁은 게임을 모사(mimesis)한다. < Back 분투형 게임과 전쟁: 행위성의 뒤집힌 거울상 25 GG Vol. 25. 8. 10. 블리자드 사(社)는 전쟁을 사랑했다 아니, 이름부터 ‘워’ 크래프트(Warcraft)였으니까. <워크래프트>는 한때는 게이머들에게 숭앙의 대상이었던 블리자드 사의 실시간 전략(Real-Time Strategy, RTS) 게임이자,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 인간과 오크 사이의 전쟁을 그린 <워크래프트> 친구 집에서 처음 접하고 머릿속에서 도무지 떠나지 않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플레이하다가 밤을 새운 게 아니다. 머릿속에서 게임 플레이를 회상하고 상상하고 시뮬레이션하다가 불현듯 아침을 맞았다. 우주 전쟁, 그러니까 <스타크래프트(Starcraft)>가 출시되었을 때, 또 그랬다. 블리자드는 악마와도 싸운다. 액션 롤플레잉 게임 <디아블로(Diablo)>는 주인공이 겪는 고투의 후경에 성전(聖戰)을 배치한다. 한국의 올드 게이머들로서는 KOEI를 빠뜨릴 수 없다. KOEI의 <삼국지 2(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Ⅱ)>는 워크래프트보다도 먼저 심취했던 게임이었다. 삼국지가 소재인 게임에서 무얼 하겠는가? 전쟁이지. 조부모님 댁에 있는 삼촌의 컴퓨터에 설치해 두고, 몰래 밤새워 플레이하곤 했다. 몰래는 무슨 몰래. 연로한 분들의 이마에 주름을 늘게 하는, 앞날이 걱정되는 손자가 되었다. 심지어 ‘대항해시대 2’의 해전조차 좋았다. 그때는. <콜 오브 듀티(Call of Duty)>, <배틀필드(Battlefield)>, <메달 오브 아너(Medal of Honor)>, <월드 오브 탱크(World of Tanks)>, <월드 오브 워쉽(World of Warships)>, ,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Company of Heroes)>, <토탈 워(Total War)> 등등. 연극, 영화, 드라마, 소설 등 다른 매체들도 전쟁과 전투를 소재로 삼는다. 그런데 게임계에는, 정말 많다. 왜 그렇게 전쟁을 재현하는 데 진심이냐고 게임 개발자들에게 묻는 건 아예 당위적이기까지 하다. 대체 게임과 전쟁 사이에 어떤 접점이 있길래. 이런 마당에 전쟁을 재현하는 게임에 대한 윤리적, 정치적 분석이 게임 연구의 한 흐름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건 짝사랑이 아니었음을 이와 같은 현상은 지난 세기 걸프전 이후 더욱 가속화된 ‘전쟁의 게임화’에 관한 분석에서 거울상을 발견한다. 게임의 한 장면처럼 보도되는 폭격의 현장에서부터 게이미피케이션을 통한 병사 훈련, 그리고 드론을 동원한 전쟁에 이르기까지. 게임이 전쟁을 재현(mimesis)할 때, 전쟁은 게임을 모사(mimesis)한다. * 게임과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였던 걸프 전쟁 당시 바그다드 공습 보도 화면 * 서로 거의 흡사한 실제 전투기에서의 폭격 화면과 게임 화면 그런데 정말 게임이 전쟁을 재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전쟁 역시 게임을 모사한다면, 분석은 게임을 전쟁의 재현물로 보는 것에 국한할 수 없다. 양자의 접점은 어느 한쪽의 일방적 접근을 통해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은 서로를 향해 점근(漸近)한다. 게임과 전쟁이 집결하는 공간의 성격은 하나로 귀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곳은 싸우는 공간이다. 물론 조용한 전쟁이 존재하는 것만큼이나 ‘싸움’의 범주 바깥에 자리한 게임들도 많다. 하지만 다툼, 쟁투, 분투, 고투가 게임과 전쟁 양쪽 모두에서 대주주의 지위를 점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 점에 있어서 게임과 전쟁을 일방적 관계가 아닌 상호-참조적 관계를 맺고 있다. 분투형 플레이와 목표의 지위 게임과 전쟁이 분기를 이루는 것처럼 보이는 지점은 그 싸움의 목표다. 전쟁의 목적이나 목표는, 당신이 이데올로기 비판을 수행하거나 배면의 진의를 의심하는 이가 아니라면,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명확하다. 모든 위정자는 그들의 전쟁의 목표와 이유를 다중에게 선명히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그 목표는 실질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게임에서는 그게 좀 어려운 경우가 있다. 친구와 <스트리트 파이터(Street Fighter)>를 함께 플레이한다고 해보자. 달뜬 얼굴로 내 캐릭터를 두들겨 패는 친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왜 이렇게까지 때리는 거야?”라고 묻는 것이다. 속 깊고 다정하며 사회적 지능 뛰어난 우리의 실제 친구는 내가 기분이 상했다고 생각하고 장난스러운 위로와 함께 기분을 풀어주려 할 테지만, 반사실적 가정을 이어가 보자. * 대전 격투 게임의 플레이 과정은 정말 분투 그 자체다. 가상의 이 친구는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래야 이기지.”라고 답할 것이다. 친구와 즐겁게 게임을 하다 패색이 짙다는 이유로 기분이 상한 우리는, 행위의 근본적 성격을 묻는 것으로 옹색함을 감출 수 있다. 친구에게 진지한 탐구자의 얼굴을 하고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이기려는 거야?”라고 묻도록 하자. 아니, 정말로, 그들은 왜 그렇게까지 할까? 격투 게임에서 승리하면 하늘에서 뭐라도 떨어지나? 뭔가 이득을 얻는 것도 아닐 텐데 내 친구는 대체 무엇을 위해 내 캐릭터를 그렇게 열심히 때릴까. 철학자 C. 티 응우옌 (C. Thi Nguyen)은, 게임 외적 보상이 관건이 아니라면, 그 목적이 둘로 나뉜다고 본다. 하나는 승리다. 승리하고 성취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며 그것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다. 내 친구는 나의 캐릭터를 두들겨 패고 나를 이겼다는 사실에서 행복감을 느낀다. 다른 목적도 있다. 바로 ‘싸움 그 자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철학자 버나드 슈츠(Bernard Suits)는 그의 저서 The Grasshopper: Games, Life and Utopia 에서 게임 플레이를 “불필요한 장애물을 극복하려는 자발적인 시도”로 정의한다. 골프를 생각해 보자. 골프 공을 홀에 넣는 것이 관건이라면 우리는 그냥 손으로 공을 들고 홀에 넣으면 된다. 하지만 우리는 굳이 클럽이라는 비효율적인 도구를 사용해 온갖 규칙 속에서 공을 치려 애쓴다. 어째서일까? 슈츠에 따르면, 바로 그 ‘비효율성’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고투와 분투의 과정 자체가 게임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목표 달성이라는 결과보다, 그 과정의 고군분투가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이때 장애물 너머에 있는 목표는 사실 무의미하다. 그것은 장애물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즐기기 위해 가정된 목표에 불과하다. 고투하는 그 과정을 위해 마련된 가상의 목표와 비효율적인 도구, 각종 규칙은 게임을 벗어나기만 하면 실제로는 불필요한 장애물이다. 그것은 고투 자체를 즐긴다는 목적에 의해서 의미와 필요를 획득한다. 성취, 보상, 승리보다는 그 싸우는 과정 자체가 즐거움과 의미의 원천이다. 응우옌은 이러한 슈츠의 게임 이론을 수용한다. 응우옌에 의하면, 유희를 위한 일시적 목표를 상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분투하는 과정을 즐기는 것은 게임에 존재하는 고유한 플레이 방식 중 하나다. 그리고 이러한 유형의 게임 플레이를 ‘분투형 플레이(striving play)’라고 응우옌은 명명한다. 분투형 플레이를 즐기는 게이머들은 승리에 뒤따르는 외적 보상이나 게임에서의 승리보다 분투, 고투, 싸움 그 자체를 즐긴다. 따라서 이제 우리의 친구는 다음과 같이 답할 수 있다. “친구야, 내가 너를 그저 이겨 먹으려는 게 아니야. 승리라는 일시적 목표를 수용함으로써 너와 겨루는 과정 자체를 즐기려는 거야.” 게임과 전쟁의 분기(였던 것) 어색하게 문어체로 말하면서도 어딘가 포용력 있어 보이는 이 친구의 풍모와 달리, 응우옌의 이론은 모든 게임을 아우르는 포괄적, 일반적 설명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게임이라는 매체에서 유독 고유하게 나타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에 대해 논할 뿐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목적, 목표, 성취, 결과보다는 과정과 수행 중심적 참여를 가능케 하는 매체적 특성에서 발생한다. 이때 중요한 점은, 게임이 이러한 매체로서 기능할 때 그것이 전쟁과 확실하게 분기한다는 점이다. 특히 이 목표의 차원에서 그러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실제 전쟁과 전투에선 실질적 목표를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그저 분투를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주조된 일회적 목표 따위가 아니다. 저기 어딘가에 실제로 방공 포대가 존재하고 이라크의 대통령인 사담 후세인이 존재하며 그를 호위하고 있는 적군이 존재한다. 그것이야말로 실질적이고 명확한 목표다. 그것들은 미군의 전쟁 수행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형편 좋게 마련된 도구가 아니다. 분투형 플레이를 가능케 하는 게임 내에 설정된 목표는, 전쟁의 그것과 명확하게 구별된다. 군인들에게 주어지는 실제 전쟁의 목표와 달리, 분투형 게임의 목표는 본질적으로 불필요한 것이자 언제든 폐기할 수 있는 것이며 일회적인 것이면서 가상의 것이다. 전쟁의 목표가 전쟁 중의 행위를 성립시키기 위해 마련된 도구가 아닌 것에 비하여, 분투형 게임의 목표는 처음부터 끝까지 게임 내의 행위성을 조형하기 위해 마련된 도구의 일환이다. 그렇기에 그 게임의 행위성을 버리는 순간, 분투를 즐기려는 ‘유희적 태도’를 버리는 순간, 게임의 목표는 의미를 상실한다. 양자의 차이는 목표를 달성하고 마주하는 순간 더욱 돌출한다. 분투형 게임의 경우, 목표의 달성은 유희의 종식을 의미한다. 분투형 플레이를 성립시키는 것에서 의미를 부여받았던 목표였기에, 분투형 플레이가 중단되는 순간 그 목표는 의미를 상실한다. 논리적 귀결일 뿐이다. 성취 지향적 플레이의 경우라면 다르겠지만, 분투형 플레이에서는 목표가 달성되는 순간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건 어떤 현재성이 아니라 지난 분투 과정을 곱씹을 시간이다. 달성되는 순간 그것은 투명해진다. *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한 장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씬 레드 라인’ 같은 영화는 서로의 목표물이 되는 병사들이 얼마나 적나라하고 구체적인 존재인지 보여준다. 전쟁에서 달성된 목표는 더 붉다. 화염의 붉음이든 선혈의 붉음이든, 전쟁에서 달성된 목표는 진하고 구체적인 감각적 결과물을 행위자의 눈과 손 앞에 차려 놓는다. 목표가 달성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접근한 이가 마주하는 결과물의 감각적 구체성은 전혀 가볍지 않다. 쉽게 윤리적 무게로 치환되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그간의 분투 과정을 반추하고 곱씹을 여유 같은 것은 주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행위가 초래한 결과물이 어떠한 것인지, 그것이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그리고 이러한 결과일 것이라고 정말 인지하고 각오하고는 있었는지, 그 결과물은 빨갛고 무겁고 구체적인 모습으로 물어온다. 그리고 이제 이 분기가 사라지는 것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행위성의 정제, 예술, 그리고 정교한 야만 이러한 게임과 전쟁의 분기점은 현대의 전쟁이 게임의 면모를 닮아감에 따라 희미해진다. 이는 단순히 전쟁에서 수행되는 행위성이 게임에서의 그것과 유사하다든가, 아니면 유사한 인터페이스와 조작을 통해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행위가 수행된다는 점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태는 목표의 추상화와 그로 인한 행위성의 부각에 있다. 응우옌은 그의 저서 『게임: 행위성의 예술』에서 게임을 Art of Agency, 즉 행위성의 예술이라고 명명한다. 게임에는 유희적 목표, 전-유희적 목표, 유희적 태도, 규칙, 불필요한 장애물 등이 다양하게 배치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게임에서 특정한 행위성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분투형 플레이는 바로 이 행위성을 경험하는 최적의 플레이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게임은 이 행위성의 구현에서 미적 가치를 창출함으로써 행위성을 소재로 삼는 예술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게 응우옌의 주장이다. 게임이 목표와 성취로부터 해방되고 분투 행위에서 의의를 발견함으로써 그것은 행위성의 예술이 된다. 목표로부터 해방된 게임이 예술의 가능성을 획득하는 것에 비하여, 전쟁에서는 다른 양상이 관찰된다. 전쟁이 게임의 수행성을 닮아가는 것은 여러 방식으로 나타나지만, 그 행위성이 목표와 유리되는 것을 빠뜨릴 수 없다. 전투기 조종사는 목표 대상을 육안으로 관찰하지도 않은 채, 레이더를 보고 버튼을 눌러 미사일을 발사한다. 목표 대상의 구체적이고 적나라한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드론 전쟁은 더욱 노골적이다. 드론 조종사는 게임 컨트롤러와 유사한 장비로 ‘스크린 속’ 목표를 제거한다. 자폭형 드론이 목표에 적중하는 순간, 공포와 고통에 비명을 질렀을 법한 적군 병사는 스크린에서 사라진다. 이러한 방식의 전쟁을 수행하는 자는 목표에 접근할 기회로부터 면제되거나, 또는 그것을 박탈당한다. 면제와 박탈 사이의 모호성 속에서 그에게 주어지는 것은 ‘정밀 타격률’, ‘효율적 자원 운용’과 같은 데이터다. 즉, 그의 행위성에 대한 반추를 수치화하고 정돈한 것들이다. 그렇게 본디 구체적인 목표물들은 추상화된다. 그것은 모니터 안의 영상, 명멸하는 신호, 수치화된 데이터 등으로 추상화된다. 목표물이 추상화되는 곳에서 전쟁 수행자에게 더 분명하게 남는 것은 그의 행위성이다. 비로소 전쟁의 수행자는 데이터들을 바탕으로 분투와 전투에서 성립하는 행위성을 더욱 정교하게, 합리적으로 다듬어 간다. 그들은 마치 ‘분투형 플레이어’와 흡사한 조건에 놓이게 된다. 더 나아가, 이때 사상되는 것은 전쟁 목표물의 빨갛고, 무겁고, 뜨끈하고도 축축한 구체성이다. 죽음, 파괴, 트라우마는 스크린 속 데이터나 수리에 담기지 못하는 구체적이고 참혹한 현실이다. 그리고 앞서 지적했듯이 이러한 구체성은 전쟁 행위의 당사자에게서 여하한 윤리적 무게로 치환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면제인지 박탈인지 모를 공백의 정체가 확연해진다. 목표물과 거리가 멀어지는 현대의 전쟁 수행자는 이 피 튀기는 사후 정산서로부터 눈을 돌릴 수 있게 된다. 그들에게선 목표를 달성하고 결과를 야기한 행위자로서의 윤리적 ‘책임’은 증발하고 행위성의 정교한 도야만이 남는다. 그것은 정교하고도 섬세한 야만이다. * 드론 공격을 성공시키고 환호하는 병사의 모습 분투형 게임과 전쟁: 행위성의 뒤집힌 거울상 지금까지의 논의는 게임과 전쟁이 거울상의 관계에 놓여있음을 보여준다. 게임과 전쟁은 행위성의 뒤집힌 거울상으로서 서로를 비춘다. 분투형 게임에서는 실제로는 무의미한, 무가치한 목표를 설정한다. 그리고는 그것을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처럼 일회적인 가장과 유희적 태도를 취한다. 이를 통해 분투에서 즐거움을 느끼게 하거나 행위성을 조형한다. 목표가 일회적, 유희적 대상으로 왜소화되었기에 오히려 게임은 행위성의 예술적 가능성을 표현하는 매체가 될 수 있었다. 현대의 전쟁에서는, 무의미한 것이 유희적 태도를 통해 의미를 일시적으로 획득하는 것과 정반대의 사태가 벌어진다. 전장에 선 군인들은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는 척 가장하지 않는 것에 그칠 수 없다. 생사가 오고 가는 현장에서 그들의 목표를 진정으로 추구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이한다. 목표를 달성한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 역시 적나라한 구체성이었다. 하지만 현대의 전쟁에서 목표물은 굳이 접근하고 목격하고 손에 쥘 필요가 없는 것으로 유리되고 추상화된다. 그 목표가 무엇인지 알 수 없거나 상관없게 되어버림으로써, 분투형 게임에서와 마찬가지로, 군인들에게도 점차 분투와 행위성만이 남는다. ‘목표’와 ‘결과’와 ‘책임’이 휘발되어 가는 이러한 사태는, 예술적 가능성을 마련했던 분투형 게임에 대하여, 실로 행위성의 뒤집힌 거울상으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Tags: 응우옌, 행위성, 전쟁, 예술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철학연구자) 최건 철학연구자로서의 정체성과 게임애호가 및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강의, 강연, 연구, 저술, 번역 활동에 임해왔으며, 현재는 인하대 등에서 학생들과 사유를 공유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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