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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치형게임, 누가 어떤 마음으로 운영할까? 〈어비스리움〉운영진 인터뷰
스마트폰이 상용화되면서 일상의 많은 것이 컴팩트해졌다. 손안의 기기는 지갑이 되기도 하고 영화를 찍는 촬영 장비가 되기도 한다. 게임 또한 스마트폰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다양한 갈래를 보이고 있는데, 방치형 게임이 그중 하나다. ‘지금부터 당신의 수족관이 시작됩니다.’라는 말과 함께 시작되는 〈어비스리움〉은 외로운 산호석이 친구를 찾아 힐링한다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아무것도 없던 산호석 주변에 각종 물고기와 산호가 늘어나는 모습은 한 사람의 사회적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느낌마저 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유저가 힘들여 움직이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 Back 방치형게임, 누가 어떤 마음으로 운영할까? 〈어비스리움〉운영진 인터뷰 03 GG Vol. 21. 12. 10. 스마트폰이 상용화되면서 일상의 많은 것이 컴팩트해졌다. 손안의 기기는 지갑이 되기도 하고 영화를 찍는 촬영 장비가 되기도 한다. 게임 또한 스마트폰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다양한 갈래를 보이고 있는데, 방치형 게임이 그중 하나다. ‘지금부터 당신의 수족관이 시작됩니다.’라는 말과 함께 시작되는 〈어비스리움〉은 외로운 산호석이 친구를 찾아 힐링한다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아무것도 없던 산호석 주변에 각종 물고기와 산호가 늘어나는 모습은 한 사람의 사회적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느낌마저 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유저가 힘들여 움직이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방치형 힐링 게임’이라는 타이틀로 세상에 나온 〈어비스리움〉. 〈어비스리움〉이 외로운 산호석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플레로게임즈의 최덕수 팀장, 장연정 사원과 이야기해보았다. Q. 〈어비스리움〉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나마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어비스리움〉은 올해 7월에 5주년을 맞은 게임입니다. 현재 시장에서 ‘힐링게임’이라는 키워드로 불리고 있고요. 성장 압박을 심하게 받지 않고 원할 때 켜두기만 해도 힐링 되는 형태의 게임이라고 많이들 얘기합니다. 서비스하는 입장에서는 힐링을 강요하기보다는 예쁘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게임이 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Q. ‘방치형 힐링 게임’이라는 게 나름 선구적인 포지션입니다. 회사나 직원의 관점에서 장기적으로 발전 가능하다는 확신이 있었는지요. A. 네. 회사 차원에서는 〈어비스리움〉을 하나의 IP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핀오프 작품도 이미 두 개 낸 상태고요. 앞으로도 내놓을 수 있을 거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 세계관을 확장해나갈 가능성을 계속해서 살피는 중이에요. Q. 콘텐츠로써의 게임은 이용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가 가장 중요할 것 같습니다. 5년 동안 고객들에게서 받은 피드백 중 기억에 남는 게 있을까요? A. SNS에 스크린샷 찍은 걸 포스팅해 주는 유저들이 종종 있어요. 하나같이 저희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예뻐서 항상 감탄하면서 보고 있습니다. 〈어비스리움〉 물고기 도감을 운영하는 유저들도 있는데 그 포스팅도 즐겁게 보고 있고요. 또, 대부분의 게임사가 그렇지만 저희는 매달 업데이트를 하거든요. 이 업데이트를 진행했을 때 꼭 예상을 뛰어넘는 유저들이 있어요. 한 달 치 콘텐츠를 준비했는데 세 시간 만에 완료한다던가.(웃음) 피드백이라고 말하기 어려울진 모르겠지만 유저들의 이런 플레이를 기쁘게 지켜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Q. 이번 호의 테마는 ‘보는 게임’입니다. 그 ‘보는 게임’ 안에서도 ‘방치형 게임’을 찾아오게 됐는데요, 〈어비스리움〉을 운영하시는 입장에서 ‘방치형 게임’은 뭐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A. 사실 〈어비스리움〉을 ‘유저들이 방치하도록 만들어야지’ 하고 운영하는 건 아닙니다. 물론 보는 즐거움을 위해 위젯처럼 시계가 나온다거나 하는 식으로 더 보기 좋게 만드는 건 있는데요, 따지고 보면 방치형 게임 전반의 플레이 스타일인 것 같아요. 우선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하나의 콘텐츠를 길게 늘여놓은 걸 ‘방치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장 폭 자체가 크진 않은데 숫자를 길게 늘여놓고 일종의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거죠. 그게 방치 게임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게임성이라고 봅니다. 별개로 〈어비스리움〉은 단순 방치에서 그치지 않는 형태의 콘텐츠들도 추가하는 중이에요. 그래서 방치형 게임 그 자체를 즐기는 유저들과 업데이트하고 세 시간 이내에 완수하는 유저들 모두에게 선택지를 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Q. ‘방치형 게임’이라는 단어를 사람마다 다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 같긴 합니다. 사실 ‘방치형 게임’은 소위 ‘진정한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로부터 공격받는 포지션이기도 하죠. ‘방치형 게임은 진정한 게임이 아니다’라는 의견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그들이 말하는 ‘진정한 게임’이라는 건 대부분 콘솔게임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그런 입장이거든요. 모순적이죠.(웃음) 이건 제 개인적인 경험인데, 굉장히 조작감이 많은 게임이 있었어요. 그런데 리텐션의 측면이라든가 매출 지표적인 측면에서 성적이 좋지는 않았어요. 고정 유저층이 있긴 했지만, 지금 모바일 게임에 요구되는 목소리는 그런 게 아닌 것 같았습니다. 조작하는 맛이 있는 게임을 바라는 유저와 아닌 걸 선호하는 유저가 양립하는 건 맞지만요. Q. 그럼 ‘진정한 게임’이라는 건 비판적인 목소리 크기 차원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네요. 그렇잖아도 저는 그게 항상 궁금했거든요. 왜 아직도 커뮤니티는 콘솔 쪽만 활발하고 모바일 게임 쪽은 아닌가. 혹시 이거에 관해 의견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A. 제가 게임 서비스하면서 그런 목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게임 조작하는 건 재밌는데 너무 피곤해.’ 그래서 원래 의도는 아니었지만, 오토 기능이나 한 번에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계속 넣을 수밖에 없었어요. 커뮤니티에서 의견이 잘 나오지 않는 건 그런 유저 경향도 다소 반영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Q. 그럼 질문을 확장해보죠. 예쁜 물고기들이 오가는 수족관을 디지털 액자처럼 보여줄 수 있는 뭔가가 있다고 상상해볼게요. 그러면 그것과 〈어비스리움〉은 어떤 차이를 갖고 있을까요? A. 내 폰 안에 들어있는 내 어비스리움은 내 고유의 아이디가 박혀있는 뭔가로 인지되는 것 같다고 생각해요. 유튜브 같은 데서 캡처된 캐릭터를 보여주는 것과 내 수조 안에 무언가를 넣는 건 또 다른 측면이거든요. 그래서 디지털 액자보다는 어비스리움 쪽이 ‘내 소유’라는 인식이 강하지 않나 싶어요. ‘이 게임 안에 들어가 있는 이 수조는 온전한 내 거다.’라는 전제가 깔리는 거죠. Q. 지금 말씀에서 어떤 힌트를 얻은 느낌이네요. ‘방치형’이라는 장르 안에는 ‘소유’라는 개념이 대단히 크게 들어가는 거 같습니다. A. 맞습니다. 그리고 방치형 게임이 예전에는 ‘스트레스 없는 빠른 성장’으로 많이 나왔는데 요즘 나오는 것들을 보면 주로 달고 있는 부제가 ‘키우기’예요. 그런 부분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걸 키운다.’라는 열망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남들이 보면 다 똑같은 캐릭터고 성장하는 폭도 같지만 다른 사람이 만렙을 찍은 것과 내가 찍은 건 다르니까요. Q. 말씀해주시는 중간에 ‘키우기’라는 키워드가 나왔어요. 어떻게 보면 게임 역사 속에서 ‘키우기’라는 건 전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무언가였죠. 그런데 ‘전투가 빠진 성장’이라고 하면 그게 무슨 재미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A. 전투를 통해 얻게 되는 건 결국 경험치라는 수치잖아요? 그 수치로 캐릭터 레벨업을 시키고 다른 무언가를 계속 달성해나가는 거고요. 저희 게임 같은 경우에는 전투는 빠졌지만 산호석이라는 캐릭터를 성장시킵니다. 그리고 이 산호석이 성장하면 ‘생명력’을 계속 뱉어내는데, 이 생명력은 RPG로 비유하자면 경험치나 재화랑 마찬가지예요. 그런 맥락에서 생명력은 곧 전투의 결과물과 같으니, 그게 ‘보는 게임’ 나름의 재미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성장’이라는 것도 파고들면 어려운 개념이죠. 많은 사람이 빠른 성장을 원하지만 정말로 빠르게 성장하면 할 게 없어지는 상황이 초래되기도 하고요. ‘어디서 어디까지가 적절한 성장인가’가 늘 애매한 것 같습니다. 실제 운영하시는 입장에서는 성장 밸런스를 어떻게 맞추려고 하시나요? A. 일단 성장이라는 것 자체가 PC 온라인 게임 시절이랑 많이 달라진 것 같긴 합니다. 예전에는 이렇게 극단적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게임이 없었거든요. 처음 자동 전투가 들어왔을 때도 ‘이게 무슨 재미야’라는 의견이 주류였는데 지금은 그걸 다 하고 있죠. 그래서 저희도 이 부분이 항상 숙제처럼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이게 단순히 저희 게임만의 문제도 아니고 또 모바일 게임만의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람마다 추구하는 재미 영역이 다르니까 느긋하게 방치형으로 즐기는 유저도, 업데이트 몇 시간 만에 확 크는 유저도 있는 거겠죠. 그 사이를 찾아서 모든 유저들이 업데이트 텀 동안 즐길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긴 한데, 유저들의 성향이 극단을 달리는 현상 자체는 어쩔 수 없는 추세 같습니다. Q.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볼게요. 〈어비스리움〉의 물고기들을 눌러보면 응원의 메시지가 나옵니다. 테이블 위 화초처럼 볼 수 있으면서도 응원의 메시지가 나오는, 이런 것들이 〈어비스리움〉이 추구하는 ‘힐링’이 아닐까 싶은데 혹시 ‘힐링’ 이외에도 특별히 전하고자 하는 게 있으신지요. A. 〈어비스리움〉 시리즈의 모든 스토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키워드가 우정과 애정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방치형이기에 힐링이다.’라는 걸 넘어서, 게임의 키워드 자체를 유저들에게 전달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푸시 메시지에서도 응원의 의미를 담으려 노력하고 있고요. Q. 듣다 보니 같은 힐링 계열이지만 게임과는 또 다른 영역인 명상 앱도 생각이 나네요. 〈어비스리움〉이 명상 앱과는 어떤 차이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A. 유저들이 게임을 즐겁게 플레이하는 것뿐만 아니라, 캐릭터들이 던지는 메시지를 통해서 어떤 위로 같은 걸 받길 원하고 있어요. 메시지를 작성하는 저희도 스스로를 위로하는 측면이 없잖아 있고요. ‘위로’라는 부분에서 어느 정도 차이를 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Q. 그러면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서, 아까 〈어비스리움〉이 디지털 액자 같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캔버스로 보면 또 어떤 시각일까요? 그러니까 미술 작품으로 이해해보면 어떠냐는 거죠. A. 이 게임이 미술 작품으로서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한다는 고민은 한 적이 없어 잘 모르겠습니다. ‘동세대에 같은 감성을 공유하는 제작진들이 스스로가 감동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구조다’ 정도로 답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작품적인 걸로 보자고 하면 너무 거창한 느낌이라. 그래도 굳이 이야기해보자면, ‘그냥 내 감정에 공감해주길 바라.’라고 무겁지 않은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해요. 커뮤니티에 글을 쓰는 것처럼요. 예술도 여러 종류 있겠지만, ‘미술’이라는 단어에 깔린 거창한 것들과는 확실히 거리가 느껴지긴 합니다. 물론 그런 식으로 해석 가능한 측면도 있겠지만 의도 자체는 동세대의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동세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게임인 게 크고요. 그렇게 해서 녹여낸 감성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거라 믿고 있습니다. Q. 〈어비스리움〉이 작품을 만드는 도구가 되는 거로 생각해보시는 건 어떠신지요. A. 그런 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샌드박스 같은 느낌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내가 힐링 받을 수 있는 물고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물고기를 꺼내놓고 그 풍경을 즐기는 걸 그런 식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Q. 그런 힐링을 ‘내가’ 이뤄냈다고 하는 게 핵심이 되는 것 같습니다. 미술을 할 줄 모르더라도 어느 정도 원하는 느낌을 낼 수 있고,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즐거움이 SNS 사진 공유를 하게 만드는 바탕이 되는 것 같고요. A. 네. 저희가 따로 안내는 안 했는데요, 사실 동일한 종류의 작은 물고기를 여러 마리 생성해두면 무리 지어 움직입니다. 그 풍경을 보면서 신기하다, 재밌다 하는 유저들도 많거든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도 그런 데서 나오는 게 아닐까 합니다. 이런 부분을 확장해서 보자면 말씀 해주신 거랑 같은 거죠. Q. 그런 물고기에 대해 다루려면 모든 제작진이 어류 도감 같은 레퍼런스를 많이 보시겠네요. A. 많이들 보고 있긴 합니다. 최근에는 범위를 넓혀서 포유류까지 보고 있습니다. Q. 도감 말고도 따로 특별히 참고한다거나 영감을 받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A. 저희가 매 업데이트 때마다 테마를 다르게 합니다. 그런데 이런 업데이트 콘텐츠를 꾸릴 때마다 참고할만한 데이터가 너무 없다는 것에 부딪히곤 해요. 업데이트가 잦은 편이다 보니 더 그렇죠. 그래서 어류 자체에만 집중하지 않고 매달 눈에 띄는 예쁜 거, 지금 트렌드가 되는 어류, 포유류, 새 같이 여러 가지를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방치형 게임’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짧게 짧게 플레이되던 기존의 게임들과는 다르게 느릿한 시간 속에서 느껴지는 안온한 감각도 있는 것 같고요. A. 키우기 게임의 경우에는 만렙이 되면 환생하거나 옷을 갈아입히는 것처럼 다음 단계로 넘어가잖아요? 그게 일반 RPG에서는 전투 한 번 끝난 거랑 마찬가지거든요. 다른 게임은 그런 식으로 하루면 끝날 걸 방치형은 며칠 더 늘여놨으니 기술적으로 방치될 수밖에 없죠. 그래도 그렇게 방치함으로써 느껴지는 어떤 편안함이 분명 존재하는듯합니다. 맞는 말씀 같아요. Q. 어떻게 보면 이 이야기는 현대인의 시간관, 놀이, 여가와 엮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방치 게임이 다른 놀이, 다른 게임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을 오히려 없애는 경향이 있지 않나 우려도 드네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저 게임을 플레이한다고 해서 방치형 게임을 하지 않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서로 다른 형태의 놀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제 경우에도 다른 게임을 하고 있어도 옆에서는 방치형 게임이 계속 돌아가고 있거든요. 다른 게임 하다가 죽으면 어비스리움 한 번 보고.(웃음) 그래서 이 둘은 완전한 별개의 놀이가 아닐까 합니다. 사람들한테 ‘너 온라인 게이머니, 모바일 게이머니, 콘솔 게이머니.’ 이런 식으로 물어본다면 적어도 두 개 이상은 말하지 않을까 싶고요. Q. 제가 모바일 게임 관련 인터뷰하면서 흥미롭게 본 게 있는데, 드라마를 보면서 게임을 병행하는 경우가 대다수더라고요. 드라마 시청 시간을 침범하지 않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바일 게임, 방치형 게임은 굉장히 안정적인 게임이 되는 것 같습니다. A. 아까도 한 이야기지만, 모바일 게임에 관해서 ‘무슨 게임 하는데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요.’라는 말을 종종 듣곤 합니다. 이게 다르게 표현하자면 ‘모바일 게임에 이 정도로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 ‘이 정도로 조작하고 싶지 않다.’일 수도 있거든요. 그 방면에서 방치형 게임이 요구하는 것과 패키지 게임이 요구하는 건 다를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모바일 게임에서 패키지 게임 같은 게임성을 요구하는 이들은 방치형 게임을 하지 않겠죠. 그 때문에 안정적이라는 인상이 드는 게 아닐까 싶어요. Q. 그럼 이제 마지막 질문을 던지면서 마무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어떤 게임을 만들고 싶으십니까. A. 장연정 사원: 〈어비스리움〉은 시간을 쪼개 짬짬이 플레이해 주시는 분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짧은 시간 안에서도 힐링이 될 수 있는 게임을 계속 만들어가고 싶고요. 〈어비스리움〉이 일상 속 작은 휴식 같은 게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최덕수 팀장: 개인적으로는 지금 〈어비스리움〉 시스템이 조금 복잡하지 않나 싶습니다. 구체화가 되어있는 건 아니지만 우선 고령자가 봤을 때 글자가 잘 보이도록 만들고 싶고요.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고 심플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만져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다흰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관해 관심 갖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모 온라인 게임에 복귀했습니다.
- 꿈으로서의 '쿠소게'
"패미컴을 통해 초능력을 개발한다"라는 테마로 개발된 게임이 있었다. 1980년대 당시 일본의 초능력 붐 속에서 초능력자로 알려졌던 키요타 마스아키(清田益章; 통칭, 에스퍼 키요타)씨가 감수한 〈마인드시커〉라는 작품이다. 플레이 과정에서 조언자 격으로 등장하는 키요타씨의 지시를 받아 가며 게임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구성된 이 작품의 핵심 컨셉은 "실제로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였다. < Back 꿈으로서의 '쿠소게' 05 GG Vol. 22. 4. 10. * 이 글의 일본어 원문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pageNum=1&match=id:108 초능력개발게임 〈마인드시커〉 "패미컴을 통해 초능력을 개발한다"라는 테마로 개발된 게임이 있었다. 1980년대 당시 일본의 초능력 붐 속에서 초능력자로 알려졌던 키요타 마스아키(清田益章; 통칭, 에스퍼 키요타)씨가 감수한 〈마인드시커〉라는 작품이다. 플레이 과정에서 조언자 격으로 등장하는 키요타씨의 지시를 받아 가며 게임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구성된 이 작품의 핵심 컨셉은 "실제로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였다. 필자도 이 게임을 옛날에 실제로 해본 적이 있다. 그렇지만 애초에 게임이 요구하는 과제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그럼, 우선 투시를 해 봅시다"라든지, "예지를 해 봅시다"라는 식의 과제가 차례차례 나온다. 유감스럽게도 희미한 초능력조차도 간직하지 않고 있던(?) 필자에게는 초기 과제부터 이미 달성하기 곤란했다. 결과적으로 초능력 따위는 얻지 못했다. 〈마인드시커〉는 제대로 클리어할 수 없고, 제대로 즐기기도 어렵고, (아마도) 초능력을 개발하는 것조차도 할 수 없는 게임이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어느 것 하나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어느 것 하나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에는 특기할 만한 것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건 제작자와 플레이어의 게임에 대한 '꿈'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너무나 직접적인 꿈의 존재 방식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는 의미에 관해 이 작품만큼 쉽게 알 수 있는 작품은 드물다. 이 글에서는 이 '꿈'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꿈의 장치로서의 컴퓨터 게임 〈마인드시커〉가 개발됐을 당시, 컴퓨터 게임이라는 문화가 한 때 맡고 있던 재미의 일부는 이런 것이었다. 즉, 사람들의 무한한 꿈을 실현시켜주는 기계라는 것이었다. 컴퓨터 속 캐릭터와 대전할 수 있다라거나 등장인물과 대화할 수 있다, 혹은 모니터를 향해 총을 쏘면 반응한다, 목소리를 입력하는 것이 가능하다와 같은 방식들. 지금은 당연히 여겨지는 이러한 것들은 1980년대에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급속도로 일상에 나타난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존재 방식이었다. '컴퓨터가 진화하면 게임으로 뭐든지 할 수 있게 된다'라는 무책임한 꿈을 많은 아이들이 믿었고, 게임 제작자는 그 꿈을 점점 현실에 구현해 나갔다. 이것이 1980년대의 패미컴이 히트하면서 게임이라는 미디어 자체가 많은 사람들의 끝없는 꿈을 어떤 의미론 무책임하게 맡아버릴 수 있던 시대의 풍경이었다. 물론 테크놀로지가 사람들의 '꿈'을 무책임하게 짊어진다는 구도 그 자체는 컴퓨터 또는 게임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사토 토시키(佐藤俊樹)는 정보사회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정보사회론 담론이 여러 번 동일한 꿈을 반복해 왔다는 것을 1996년에 지적한다(『노이만의 꿈, 근대의 욕망』 1996, 고단샤선서 메치에). 1970년대에도 꿈은 이야기되고, 1980년대에도 꿈은 이야기되고, 반복적으로, 반복적으로 '정보기술이 사회를 바꾼다'는 '신화'가 이야기되어 왔다고 한다. 사토는 도서관 안에 쌓여 있는 정보사회론을 논의하는 구도가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랐다고 한다. '컴퓨터가 어떻게 사회를 바꿔가는가'라는 담론이 성인이 사회에서 꾸는 꿈을 끝없이 확대시키는 장치였다면, 1980년대의 컴퓨터 게임은 아이가 놀이에 꾸는 꿈을 끝없이 확대시키는 장치였다고 해도 좋다. 1980년대 세계는 그 꿈의 소박함이라는 점에서 2022년 현재와 동떨어진 면이 있다. 물론 2022년 현재에서도 사람들은 AI에 과잉된 꿈을 걸고 좀 더 본격적인 VR 게임의 실현을 고대하고 있다. 그러나 1980년대 꾸었던 꿈과는 아무래도 그 성격이 다르다. 누가 1980년대의 '쿠소게'의 담당자였는가? 무엇이 다른 것인가 하면, 터무니없는 꿈의 담당자가 도대체 누구였는가 하는 것이다. 1980년대의 전설적인 '쿠소게'를 만드는 것은 갓 올라온 신입이나 타업계의 아마추어에 한정되지 않았다. '쿠소게'의 담당자는 종종 게임업계의 중심 인물이었다. 〈마인드시커〉의 개발 프로듀서는 그 〈팩맨〉의 친부모라고 할 수 있을 이와타니 토오루(岩谷徹)가 담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개발의 중심에 있던 스즈키 코지(鈴木浩司)는 그 후 1997년에 RPG의 존재 방식에 큰 파장을 던진 의 개발에 관여하여, 요즘 말하는 인디게임 문화의 선구자가 되는 작품에 큰 기여를 한 인물이기도 하다. 게임업계의 핵심 인물이 '쿠소게'에 관여하는 구도는 드물지 않다. 미국의 가정용 게임기 시장의 붕괴(이른바 '아타리 쇼크')로 이어지는 원인의 일부가 된 '전설의 쿠소게'로서 이야기되는 』(Atrari 2600, 1982)의 개발 담당자 하워드 스콧 워쇼(Howard Scott Warshaw)도 당시 아타리 사의 스타 개발자였다. Atari 2600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는 〈야스 리벤지(Yar’s Revenge)〉라는 타이틀의 개발자이다. 하워드 스콧 워쇼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힘껏 도맡아 를 만들었다. 참고로 일본의 1980년대의 대표적인 '쿠소게'인 〈타케시의 도전장〉은 요즘 말하는 오픈월드의 실현을 꿈꾸다 화려하게 실패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건 게임업계 내부가 아니라 탤런트인 비트 타케시가 한 소박한 아이디어였다. 그들은 컴퓨터 게임에서 사람들이 꾸고 있던 '꿈'을 떠맡고, 그리고 실패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너무나도 어처구니없고 미숙하고 조잡한 것이었다. 그리고 시대의 총아들이 어이없는 실패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은 게임업계 전체가 젊은 시대 특유의 특권을 부여받은 상황이라는 배경으로부터도 가능한 이야기일 것이다. 어이없는 꿈을 가지고, 그것에 무모하게 도전하는 것이 허락되었던 것이다. 최종적으로 완성된 작품을 보면 이들의 시도와 결과는 불행한 프로젝트로 귀결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 2022년에서 보면 업계의 톱스타가 끔찍하게 어이없는 기획에 어이없는 예산을 들이며 어이없는 열정을 쏟는 것은 거의 볼 수 없는 풍경이 되었다. 물론 당치 않는 기획으로 흥행을 노리거나, 혹은 실패하는 프로젝트 자체는 지금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러한 기획에 톱 크리에이터가 처음부터 달라붙어서 거액의 예산이 들어간다는 것 자체는 게임개발 과정에서 리스크에 대한 인지가 과거보다 크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오늘날의 대규모 개발 프로세스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반복하지만 1980년대 '쿠소게'가 가진 '어리석음'은 개발자들의 무능함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미숙하고 유능한 사람들이 꿈을 쏟아붓은 프로젝트에 전력으로 임했던 흔적이 1980년대의 '쿠소게'이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장치로서의 '쿠소게' 이토록 소박한 욕망의 발로를 통해, 대작을 만들려는 의지가 이제는 오히려 눈부시기까지 하다. '초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게임' 등과 같이 어처구니없는 것에도 정도가 있고, 1980년대에 대규모 오픈월드 게임을 만드는 것과 같은 야망도 너무나 무리였다. 이후 컴퓨터 게임이라는 세계 속에 떠도는 '꿈'을 맡는 하나의 절정으로 태어난 작품은 1999년 〈쉔무〉』(DC, 1999)였을 것이다. 〈쉔무〉는 또 하나의 현실 세계를 게임 속에 구현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것 중 하나를 우직하게 실현하고자 했던 작품 중 하나다. 이 작품이 남긴 것은 적자뿐 아니라, 실패라고도 성공이라고도 말하기 어려운 강렬한 인상이었다. 지금의 오픈월드라고 불리는 작품의 상당수는 직간접적으로든 〈쉔무〉의 시행착오의 결과를 반영하여 만들어졌다. 컴퓨터에 사람들이 꾸는 '꿈'은 대부분 무책임한 것이다. 그건 종종 어리석거나 사기꾼의 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러한 어리석음은 종종 우스꽝스러운 것이 되기도 하고, 완성된 결과물이 웃음을 자아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람들이 무엇인가에 웃을 때는 어떤 인식의 틀을 외부에서 메타시점으로 세우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꿈은 그 내부에 깔려 있을 때에 귀중하고, 그 외부에 나오면 때때로 웃음을 자아낸다. '꿈'을 꾼다는 것은 그 의미에서 우스꽝스럽다는 것이 숙명이라고 해도 좋다. 게임업계가 성숙해질수록, 웃어넘겨질수록, 어리석은 작품을 만드는 것은 최고의 톱 크리에이터의 일로서는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 결과 1990년대 후반이 되면서 보다 작은 게임 개발사가 과감한 '쿠소게'도, 단순히 개발력 부족에 의한 '쿠소게'도 그 양쪽 모두를 담당하게 되었다. 현대에는 광대하게 펼쳐진 인디게임 시장이 그 주력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는 웃을 만큼 어리석은 것을 만드는 것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새로운 것을 보고 싶어 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욕망과 웃을 만큼 어리석은 작품을 만들어 버리는 것은 표리일체 현상이다. 〈마인드시커〉를 켜고 오랜만에 놀다 보니 거기에 묻어 있는 우스운 듯한 바보스러움을 만나게 된다. 확실히 게임 자체는 바보같다. 그러나 이 게임은 동시에 빛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그 바보스러움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를 배후에서 느끼기 때문이다. 꿈을 꾸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아이 같은 설렘이 이 작품의 뒷면에 가로놓여 있다.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야말로 세계의 다양함과 풍요로움의 본연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이노우에 아키토, 井上明人 게임 연구자. 현재 리츠메이칸 대학 교수. 국제 대학 GLOCOM 조교, 칸사이 대학 특임준교수등을 거쳐 현재에 이른다. '게임이란 무엇인가'라고 하는 물음을 중심으로 하면서, 게임의 아카이브나, 게임을 응용한 사회적 과제의 해결에 관련되는 프로젝트 등에도 임하고 있다. (게임문화연구자) 박수진 게임연구에 발을 들인 대학원생입니다. 지금은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첨단종합학술연구과에서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최근엔 게임을 매개로 한 다양한 게임 경험과 일 본 내 서브컬처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글 쓰는 건 여전히 어렵습니다.
- 게임비평의 쓸모
게임 비평 역시 앞서 언급한 시의성이나 대규모 자본과의 관련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글의 형식은 게임 비평일 수밖에 없다. 자기 스스로에 대해 자문하지 않는 존재는 점차 자기 합리화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으며, 이는 현재 한국 게임이 처해 있는 다양한 위기들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 Back 20 GG Vol. 24.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eong Yeop Lee Professor in the Department of Culture & Contents at Soonchunhyang University. Researches game storytelling and game design as central concerns, and led the founding of the Busan Indie Connect Festival—a leading indie game festival—where serves as head of the jury. Also a juror for the Independent Games Festival (IGF), one of the most prestigious indie game events internationally. Books include Digital Storytelling (co-authored, 2003), Digital Games: A New Territory of Imagination (2005), Indie Games (2015), Stories Become Transformers (co-authored, 2015), Mario, Born in '81 (co-authored, 2017), The Theory of Games (co-authored, 2019), and Games Are Games: Game × Ecosystem (co-authored, 2021).
- 산업의 트리플A, 이용자의 트리플A
한 때 트리플A가 상징했던 것들을 더욱 소중히 간직하기 위해서, 그 이상의 신성함을 게임에서 꿈꿔보자. 하나의 통일된 지향을 추구하기 보다는, 여러 방향의 주변화된 상상력이 각자의 방식으로 누적될 때 인류에게 진정으로 울림을 주는 더욱 경이로운 경험을 우리는 협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이 지닌 무한한 잠재력을 통해 가능한 것의 경계를 계속 확장하고, 그 진화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달려있다. < Back 산업의 트리플A, 이용자의 트리플A 10 GG Vol. 23. 2. 10. 트리플A(AAA)에 관하여 얼마전 게임과학연구원에서 20대 연구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트리플A라는 단어가 더 이상 보편적으로 쓰이지 않는 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몇일 후, 이경혁 편집장에게서 트리플A 개념에 대한 원고 제안 전화를 받았다. 연달아 찾아온 우연이 운명같이 느껴진 걸까, 덥석 퀘스트를 수락하고 나서야 미련하게 후회가 밀려왔다. 고민의 끝에 나는 트리플A에 대해서, 나와 그 단어의 아주 사적인 관계를 벗어나 그에 대해 고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우선 고백부터 하고 싶다. 지금 하려는 트리플A의 이야기는 어떠한 학술적인 개념에 대한 분석이기 보다는, 오롯이 나의 존재-제약적 위치성(positionality)에 기반한 개인적인 심중소회라는 점을 말이다. 한때 나라는 개인의 삶에 의미를 지녔던 ‘존재’로서 그 용어가 퇴색되거나 희미해 져가는 과정을 이해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중 이자, 또 그 과정속에서 의미를 찾아보려는 노력에 대한 글이다. 트리플A가 상징했던 것들 2010년 경만 해도, 게임 산업의 일원들은 누구나 트리플A를 꿈꿨다. 적어도 내가 만난 이들은 그랬다. 조금 과장하자면, 당시 "AAA"라는 레이블은 탁월함과 위신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많은 개발자들은 명성을 얻을 게임을 만들기를 열망했다. 당시 말단 주임이었던 나는, 그저 AAA 개발에 참여한다는 사실만으로 괜스레 혼자 자긍심에 벅차오르곤 했다. 게임의 세계에서 트리플A는 1990년 대 후반, 야심 찬 생산 가치를 지닌 게임의 유형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 사용되었다. 당시 주요개발자들에게 트리플A는 가능한 한계를 확장하고, 훌륭한 게임은 어떤 것인지 정의하는 것을 칭했다. 실제 당시의 트리플A 게임들은 대체로 주요 스튜디오의 대표 타이틀로, 뛰어난 기술 활용을 바탕으로 그래픽, 사운드, 플레이어 경험 측면에서 매번 업계 표준의 진화를 쉼없이 이끌었다. PC게이머로서 나의 게임 경험은 플로피디스크와 비트 그래픽과 함께 시작되었는데, 도스화면에서부터 광케이블 인터넷까지 지나오는 동안 나에게 게임의 지속적인 변태(metamorphosis)를 지켜보는 일은 큰 즐거움이었다. 기술적 발전과 더불어 진화하는 게임의 세계와 경험은 늘 기대 이상이었다. 잔디 잎이 한 올 한 올 바람에 실랑이는 넓은 들판에 서서 노을이 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감성에 잠긴 때, 오픈월드를 산책자처럼 거닐 때 슬며시 다가와 말을 걸던 NPC AI가 더 이상 사물처럼 느끼지 않아졌을 때, 그리고 수천명의 사람들과 물러설 수 없는 전투를 벌이던 중 그 부하를 버텨내는 서버의 안전성을 새삼 인지했을 때, 매 순간이 ChatGPT를 만나던 순간만큼 경이로웠다. 그래서 늘 궁금했다. 이 디지털 게임이라는 것의 한계라는 것이 있을까? 앞으로 얼마나 더 대단한 경험을 하고, 또 함께 게임을 하는 사람들과 즐거울 수 있을까? 그리고, 절실히 바랬다. 누구나 열망해왔지만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그런 경험을 만드는 여정에 동참할 수 있기를. 어쩌면 잊혀지고 변질되고 있는 이름 라떼 감상이 조금 길었는데 현재 시점으로 복귀해보자. 트위터 투표를 진행해봤다. “당신의 경험에 기반했을 때, 트리플A라는 용어가 최고 품질 게임 프로덕션의 의미로 여전히 자주 사용되나요?”라는 질문에 57.1%만이 ‘그렇다’, 그리고 18.6%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70여명의 소규모의 샘플임에도 나의 트위터 친구들이 대부분 게임, 이스포츠 관련 종사자, 연구자, 혹은 열정적인 게이머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적잖이 놀라웠다. 그리고 여전히 주변에서 용어 자체는 쓰이지만, 품질 보다는 개발비 규모의 표현이라도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친절한 댓글을 보았다. 이 어설픈 사전조사는 트리플A라는 용어는 보편적이지 않고, 트리플A 레이블은 ‘훌륭한 게임’ 즉 예술적 또는 기술적 성과보다는 높은 제작 예산과 마케팅 비용을 들여 얻는 상업적 성공과 산업 가시성의 수준을 나타낼 때 더 자주 사용된다는 결론을 지었다. 게임의 세계에서 트리플A의 개념이 인식되는 방식은 수년간 역동적인 변화를 거치면서 추억속의 소중한 의미는 퇴색되었나 보다. 안타까움과 함께 궁금해진다. 이 개념적 변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 트리플A의 기원과 변천: 산업의 트리플A, 게이머의 트리플A 사실 AAA라는 용어의 기원을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원래 AAA는 가장 높은 기준의 신용도를 보이는 채권에 부여되는 등급으로, 가장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낮은 채권을 의미했다. 어떤 이유에서 인지, 90년대말 미국의 게임쇼에서 일부 개발사들이 사용하면서 게임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 용어가 게임을 수식하게 되었을 때, 그 관계로부터 중의적인 의미가 발생하게 되었다. 하나는 기원의 의미 그대로의 경제적 측면에서 ‘높은 신용’이다. 즉, 개발사나 투자자들에게 그들의 재무 목표 달성을 위해 가장 안전한 투자 및 사업 기회를 의미했다. 그와 동시에 게이머들에게도 트리플A는 높은 게임퀄리티에 대한 ‘신뢰’의 약속을 의미했다. 일례로 전설적인 게임디자이너 시드마이어(Sid Meyer)는 ‘승인 표시(Seal of approval)’를 비디오 게임 역사 상 가장 주요한 혁신 3가지 중의 하나로 꼽은 적이 있다(Arendt, 2000). 패키지 박스에 ‘시드마이어’의 이름이나 닌텐도의 ‘품질보증표시(Seal of Quality)’가 있을 때, 게이머들은 특정 수준 이상의 게임 경험을 보장받는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이러한 관행이 대충 만들어서 쉽게 돈을 벌기 위한 ‘셔블웨어(Shovelware)’ 게임으로부터 게이머들을 보장하는 게임 퀄리티’의 기준을 설정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고 보았다. 한국이 온라인 게임의 제국으로 불리던 시절(Jin, 2010) NCSOFT에서도 게임이 출시되기 위해서는 ‘NC Quality’의 높은 벽을 넘어야했다. * 시드마이어의 <문명>(1991) 시작화면과 닌텐도의 품질보증표시 즉, 트리플A는 경제적 가치와 게임적 가치를 모두 지닌 게임, 그래서 모든 이해관계자가 신뢰할 수 있는 게임을 의미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이 나아가야할 방향의 이정표를 제시하는 기준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용어가 지닌 경제적 가치와 게임적 가치의 균형 상태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경계선은 전자의 방향으로 점점 기울어갔다. 경제적 ‘생산가치’로서 트리플A는 초기에는 흥행이 보장된 ‘상품’을 그 자체만을 의미했으나, 게임이 비즈니스 모델이 확장팩을 비롯한 여러 방식으로 다각화 되는 과정에서 한 게임의 지속가능한 자산화(assetization) 역량까지 표현하게 되었다(Bernevega & Gekker, 2021). 이 과정에서 AAA+나 AAAA와 같은 변형된 용어도 등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인디 게임이 더욱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그 반대 극부에서 기존 흥행 사례를 따라 표준화된 개발 방식을 통해 만들어지는 위험도 낮은 게임개발시스템(Folléa, 2020)이나, 그로 인해 극도로 동질화 되어버린 게임 산업을 의미하기도 한다(Keogh, 2015). 마치 영화계의 ‘블록버스터’라는 용어가 진부해진 헐리우드식 흥행 공식에 갇혀버린 상업 영화를 의미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어쨌든 오늘날, 트리플A라는 용어는 반쪽짜리 지향으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의미변화로 인해 트리플A라는 존재는 ‘훌륭한 게임’이라는 지향으로서 신성한 상징성, 즉 이정표적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상징적 빈곤의 극복을 위하여 그렇다면 트리플A가 한때 지니던 상징적 기능의 상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개인적으로는 그 상징적 빈곤은 현 시대의 인류가 게임에 대해 지닌 사회적, 공동체적 상상력의 빈곤이 아닐까 생각한다. 게임산업의 규모는 점차 방대해지고 있지만, 게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방향감각을 상실한 혼미한 상태에 처해있다. 나아가 게임에 대한 인식론적 간극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의 빈곤이 아닐까 생각한다.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지만, 많은 경우에 그들이 말하는 ‘게임’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게임연구자로서 참 부끄러운 일이지만, 현행법의 ‘게임물’의 정의를 수없이 읽었지만 여전히 아리송하다. 게임의 ‘등급’을 제시하는 사람들, 개발하는 사람들, 그리고 플레이 하는 사람들 사이의 인식론적 간극과 그로 인한 갈등은 점점 심화된다. 이 빈곤의 시대에, 여전히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일이지만, 오히려 그 원래부터 그 실체가 모호했던 트리플A라는 존재의 쇠퇴 과정을 적극적으로 환영하고 싶다. 왜냐하면, 여전히 트리플A는 그 개념의 상징적 몰락, 즉 어떠한 ‘신비로움’이 탈착되는 과정을 통해서 여전히 미래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이정표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먼저, 트리플A의 의미변화는 경제적 가치가 게임적(미학적, 기술적, 플레이경험적) 가치와 분리될 수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가시적으로 드러낸다. 이를 통해 우리는 게임에 대한 ‘(오락)상품’ 혹은 ‘엔터테인먼트 서비스’ 관점을 벗어나 그 매체적 잠재력에 대해 본질적으로 차원에서 고민해 볼 수 있는 틈을 얻는다. 지금까지 게임은 좁은 의미에서 여가를 위한 문화(엔터테인먼트)산업으로 기존 사회의 존재하는 것들 중에 가장 비슷한 개념들에 빗대어 표현되어왔다. 이러한 규범적, 인식론적 경계는 게임을 고정관념 속에 가둬왔다. 트리플A의 상징적 몰락은 이 틀을 인식함을 통해 약화시킬 수 있는 계기, 즉 사회가 게임을 인식하는 방식을 변혁할 수 있는 계기를 시사한다. 게임이라는 고유한 예술 혹은 기술 형식에 깃든 가치들은 그 고정관념 속에서는 도무지 드러나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우리는 ‘트리플A’ 혹은 그 이름이 상징했던 것에 대한 재정의 혹은 대안의 탐색을 추구할 수 있다. 이것은 생산자-소비자의 이분법적 경계를 넘어서, 게임에 대한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추구할 수 있는 미래 게임에 대한 사회적 상상력을 다시 모색하는 것이다. 게임의 가치가 예산이나 생산 가치가 아니라 플레이어에게 제공하는 경험과 감정에 있다는 것을 되새기자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트리플A의 쇠퇴는 게임이 더 이상 하위문화가 아니라 보편적 지위를 획득하였다는 점도 나타낸다는 점에서 또 한번 우리에게 어떠한 인식적 프레임을 부여한다. 최근 게임과학연구에서 ‘포스트게이머 전회’ 담론은 게이머라는 집단이 기존의 ‘젊은 백인 남성’의 하위문화적 스테레오타입에서 각각의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발현되는 다양한 인간-게임의 관계에 따라 다원화된 여러 집단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을 논의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트리플A는 당대의 상황속에서 비교적 동질성을 지닌 초기 게임 커뮤니티는 ‘훌륭한 게임’을 유사하게 상상할 수 있었다는 점과, 동시에 다원화된 현 시대의 여러 ‘게이머 유형’들에게는 공통된 이정표가 존재하기 어렵다는 점도 드러낸다. 그렇다면, 환하게 빛나던 트리플A는 양초처럼 녹아내려 초라해짐으로써 우리에게 새로운 빛의 설계를 구체화하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아닐까. 예를 들어, 포괄성과 접근성과 같은 새로운 유형의 플레이어 중심 가치를 반영하거나 새로운 기술적 발전에 걸맞은 더 실험적이고 더 야심 찬 열망과 이상을 반영한 이정표 말이다. 그리고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경제적 생산 가치와의 협상에 있어, 더욱 윤리적이거나 지속가능한 방식에 대한 사회적 상상력을 구축할 시점이라는 것을 인식하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트리플A를 기리며 게임에 대한 경제적 가치와 게임적 가치의 경계가 재협상되는 과정에서 정든 이름은 서서히 잊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대변하던 가치들과 의미변화 과정은 게임이라는 존재와 그 가치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그만의 프레임을 우리에게 남긴다. 그리고 그에 따르면, 게임의 가치는 게이머와 개발자, 혹은 그 사이의 모호한 정체성의 여러 이해관계자의 모두의 변화하는 우선순위와 욕구를 반영하여 계속해서 변화하고 진화하는 역동적인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는 이제 인간-기술의 본질적인 관계성이 재고되는 패러다임의 전회기에 서있다. 지난 몇 십 년에 걸친 디지털 시대가 디지털 기술을 기존 사회의 경제적 효율성의 논리속에서 활용하던 시기라면, 이제 우리 일상을 구성하던 대부분의 ‘물질적인 것’들이 디지털로 구현된 포스트디지털 시대는 미래의 규범들이 새롭게 쓰일 수 있다. 그리고 한 때 ‘쓸모없는 것’이었던 게임은 그 모든 가능성들의 테스트베드이다. 이스포츠나 디스코드의 예시에서 드러나듯, 게임과 관련 문화는 그 자체로 머무르지 않고 외부의 것들 것 혼성적으로 결합하면서, 기존 사회의 규범들을 무력화시키거나 변형시키고 있다. 한 때 트리플A가 상징했던 것들을 더욱 소중히 간직하기 위해서, 그 이상의 신성함을 게임에서 꿈꿔보자. 하나의 통일된 지향을 추구하기 보다는, 여러 방향의 주변화된 상상력이 각자의 방식으로 누적될 때 인류에게 진정으로 울림을 주는 더욱 경이로운 경험을 우리는 협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이 지닌 무한한 잠재력을 통해 가능한 것의 경계를 계속 확장하고, 그 진화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달려있다. 참고문헌 Arendt, S. (2000, March 4). Civilization Creator Lists Three Most Important Innovations in Gaming | WIRED. Wired. https://www.wired.com/2008/03/sid-meier-names/ Bernevega, A., & Gekker, A. (2021). The Industry of Landlords: Exploring the Assetization of the Triple-A Game. Https://Doi.Org/10.1177/15554120211014151, 17(1), 47–69. https://doi.org/10.1177/15554120211014151 Folléa, C. (2020). Experiencing, Experimenting with, and Performing Visual Narratives. Http://Journals.Openedition.Org/Inmedia, 8.1. https://doi.org/10.4000/INMEDIA.2031 Jin, D. Y. (2010). Korea’s online gaming empire. MIT Press. https://mitpress.mit.edu/books/koreas-online-gaming-empire Keogh, B. (2015). Between triple-a, indie, casual, and diy: Sites of tension in the videogames cultural industries. In K. Oakley & J. O’Connor (Eds.), The Routledge Companion to the Cultural Industries (1st ed., pp. 152–162). Routledge. https://doi.org/10.4324/9781315725437-21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Ph.D. 게임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 University of Jyväskylä 박사후연구원) 진예원 게임·이스포츠를 통해 기술-인간(문화)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관심이 많다. 게임과학연구의 글로벌, 다학제간, 오픈사이언스 접근을 지지한다. DiGRA 한국 지부의 창립 멤버이고, 현재 Esports Research Network Board Member, 한국e스포츠학회 이사, APRU Games and Esports Research Working Group member로 활동하고 있다. 한동안 NCSOFT와 RiotGames Korea에서 근무했다. 저서로는 (2021, 챕터공저), ‘이스포츠의 기술성 분석을 통해본 포스트디지털 문화연구’(2022, 박사논문), ‘게이밍 경험에서의 일상과 게임 세계의 개념적 혼성’(2018, 논문) 등이 있다.
- <다키스트 던전>을 <다키스트 던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개발진이 어째서 전작과 후속작의 틀을 바꾸고자 했는지. 어떤 요소들이 이 결정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아야만 결정이 왜 내려졌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조금 더 나아가자면, ‘무엇이 다키스트 던전을 각별하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 Back 21 GG Vol. 24.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Pilkwon Jeong A farmer, a baker, and a barista. Currently in an eighth year of writing as a game journalist. Striving to experience and witness as much as possible within the limited time given.
- 온라인 시대에서 ‘PC방’이 살아가는 법
게임은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우리들과 함께한 놀이 문화로 통한다. 처음에는 간단한 오락이 가능한 값비싼 콘솔기기로 시작해, PC 보급이 본격화됨에 따라 가정 내 기초 게임 환경 구축이 가능해졌고, 지금에 와서는 거리와 관계없이 편하게 온라인으로 게임을 즐기는 시대가 열렸다. < Back 온라인 시대에서 ‘PC방’이 살아가는 법 08 GG Vol. 22. 10. 10. 게임은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우리들과 함께한 놀이 문화로 통한다. 처음에는 간단한 오락이 가능한 값비싼 콘솔기기로 시작해, PC 보급이 본격화됨에 따라 가정 내 기초 게임 환경 구축이 가능해졌고, 지금에 와서는 거리와 관계없이 편하게 온라인으로 게임을 즐기는 시대가 열렸다. * 우리가 접하는 '게임'의 모습은 계속 달라져왔다. 이런 게임의 변천사를 논하는데 있어서, 특히 국내에 한정해서 본다면 ‘PC방’은 빠질 수 없는 주제 중 하나다. 이르게 본다면 그 태동이 이루어진 1990년대부터, 가장 활발했던 2000년대까지, 한국 게이머에게 있어서 PC방은 누구나 한번쯤 거쳐간 중요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게이머라면, 누구나 ‘PC방’에 대한 기억이 있다. 그 당시 수많은 게이머들이 모이는 장소라는 것은, 사실상 게임 트렌드를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수많은 게임사들이 자사 게임의 인기를 확인하기 위해 PC방 순위를 확인했으며, 프로모션 역시 가장 먼저 PC방으로 향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PC방은 여전히 존재는 하지만, 그 위세가 이전과 같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는 온라인 시대가 대두되면서 단순히 PC방이 쇠락한 것일까? 아니면 오프라인상에서 게임을 즐기는 문화에 변화가 생긴 것일까? 이번 칼럼을 통해, 지금 PC방이 점한 위치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PC방은 어떻게 변해왔을까? 앞서도 말했지만, 우리 곁에 ‘PC방’은 나름 오랜 시간 함께해왔다. 물론, 그 시작점은 어디까지나 외국의 ‘인터넷 카페’처럼 게임을 제공하기 위한 공간보다는 PC를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지만, 국내에 한정해서는 이 PC방은 그야말로 게임 하나만을 위한 시설로 자리잡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부분이 가장 잘 드러나는 시점이 PC방의 ‘황금기’로 통하는 2000년대 초다. 수많은 사람들이 PC방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이미지를 형성한 시점으로, 이 시점에 이미 주요 가정에는 PC 보급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상태였지만, 그래도 별다른 방해 없이 친구들과 편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점과 다양한 PC방 혜택 제공 등이 맞물리면서 큰 인기를 누렸다. *이 시절의 분위기란… 아마 PC방이라는 단어를 듣고 친구들과 컵라면과 오다리를 먹으면서 게임을 즐기던 모습이 떠오른다면, 분명 이 당시에 PC방을 진하게 체험해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학생들로부터 큰 인기를 누리는 만큼, PC방에 대한 학부모 사이 경각심도 상당했다. 애당초 아직 게임을 즐기는 것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고, 동시에 PC방도 아직 간접 흡연 같은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았기에 점차 여러 규제들이 적용되던 시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결국 이때 축적된 부정적인 이미지들이 나중에 PC방이 크게 달라진 후에도 걸림돌처럼 작용하기도 했다. 황금기가 끝난 이후에도, 한동안 PC방은 e스포츠와 같은 게임 문화를 등에 업고 인기 시설로 군림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분위기마저도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PC방의 쇠퇴에 대해서는 매번 업계에서도 다양한 주장이 나오지만, 가장 많이 꼽는 것이 바로 ‘필요성’의 감소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게임을 위해 가정 내 고사양 PC를 구매하는 일이 일반화됐으며, 게임에 대한 인식도 개선되면서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많이 사라졌다. 아울러,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디스코드’와 ‘스카이프’ 같은 음성 채팅 프로그램이 떠오르면서 오프라인 모임을 고집할 이유마저도 없어졌다. 사실 그간 게임을 하면서 부족하게 느꼈던 부분들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마당에, 게이머들 입장에서 더 이상 PC방을 선택할 이유들이 많이 사라졌다고도 할 수 있다. * 손님들의 게임 환경이 PC방을 뛰어넘은 셈이다. 이런 부분을 PC방 업계에서도 큰 위기로 인지하고, 이후에 크게 변한 모습이 우리가 현재 접하는 PC방 모습에 해당한다. 그저 게임 하나만을 보고 가던 시설은 복합 놀이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한 상태며, 더 많은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 시설의 청결함과 다채로운 서비스를 내세우고 있다. 새롭게 달라진 PC방은 게임을 즐기는 손님의 편의를 높이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높은 고사양 PC와 주변기기는 기본이고, 보다 넓어진 좌석, 스마트폰 충전기 완비, 수준 높은 먹거리 판매, 그리고 특정 손님들 취향을 겨냥한 커플석, 단체석, 스트리머석 같은 좌석들도 존재한다. * PC방도 젊은 손님을 잡기 위해,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를 서비스의 발전을 반증하는 것처럼, 현 PC방의 매출에서 먹거리 매출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죽하면, 일부 PC방은 준수한 먹거리의 맛과 24시간 영업을 강점으로 내걸고, 배달앱까지 진출한 상태다. 주변 매장과의 경쟁이 점화될 수 있는 요금을 건드리는 대신에, 대부분 다른 서비스에서 활로를 찾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다양한 업체와의 협력도 지금의 PC방을 논하는데 있어서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하드웨어 브랜드, e스포츠 구단과 협력하여 이에 특화된 PC방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조금 더 다양한 취향을 가진 손님을 만족시키고, 단골로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아끼지 않고 있다. * 먹거리도, 볼거리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지금의 PC방이 보여주는 모습은 우리가 자주 접했던 동네 PC방 시절과는 크게 다르다. 오히려 그 형태는 하나의 기업체에 가까운 편이며, 보다 철저하고 확실한 기획을 바탕으로 움직인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아직 마무리 단계가 아닌 한창에 해당한다. 늘어난 선택지 속 ‘PC방’의 입지 위의 이야기만 들어보면, 지금의 PC방은 이전보다 훨씬 시설 면에서, 서비스 면에서 앞선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제 자연스럽게 손님이 늘어나는 일만 남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 좋은 시설이 해답은 아니다. 일단 소위 ‘황금기’로 통하던 시절과 지금 현재의 게임 문화 차이를 비교해보자. 일단 앞서도 살짝 언급했지만, 과거에는 사실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았다. 애당초 집에서 게임을 즐기면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고, 값비싼 콘솔은 아예 논외였다. 그런 의미에서, PC방은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편한 마음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게임을 위해 최적화된 PC 사양, 남들 눈치는 크게 보지 않아도 되는 환경, 아울러 일부 게임의 월 정액제를 대신하는 가맹 PC방만의 혜택도 있어서 그야말로 게임을 위한 아지트로 거듭났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시기에는 근처 PC방에 우연히 들렀다가 가까운 친구를 만날 확률이 높을 정도로, PC방은 만남의 장으로써 역할도 톡톡히 수행했다. 자연히 친구들이 많이 가는 PC방은 집결의 장소가 됐고, 이런 부분에서는 한 시절을 풍미한 다른 오프라인 게임 문화 ‘오락실’의 입지를 계승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게임은 이제 가장 보편적인 놀이 문화로 자리잡았으며, 이를 위한 고사양 PC도 집에 대부분 갖추고 있다. 아울러, 굳이 PC가 아니더라 모바일, 콘솔과 같은 다른 플랫폼 선택지도 다양하게 준비된 상태다. 이런 시점에 PC방으로 향하는 사람은 극히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점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손님 연령대의 변화다. 지난 2021년에 공개된 엔미디어플랫폼 통계에 따르면, 여전히 PC방 이용자 수는 고등학생(17세~20세)과 대학생(21세~25세)이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매출 관점에서 본다면 사회초년생(26세~30세)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태다. 더욱이 이들의 이용 요금이 먹거리보다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보면, 간접적으로 PC방을 진득하게 이용하는 손님 태반이 연령대가 높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 엔디미어플랫폼 PC방 이용 유저 평균 사용 금액(시간) 현장 의견도 크게 다르진 않다. 이전과 달리 연령대가 높은 손님들이 예전처럼 단골로 자리잡는 경우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두고, PC방 업주들은 결국 과거 PC방을 경험해본 세대들이 PC방을 주로 이용하는 것이고, 보다 다양한 것을 접하고 있는 지금의 세대들에게는 PC방이 오프라인 게임 문화로써 그다지 큰 인상을 남기지 못한 것 같다고 보고 있다. 그 말처럼, 지금의 세대들에게는 굳이 게임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엔터테인먼트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널려있다. 오프라인 게임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굳이 장소가 PC방으로 한정되지 않고, e스포츠 대회 관람, 게임 행사 등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 그게 꼭 PC방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이다. 이전처럼 PC방이 더 이상 ‘필요’에 의해 가는 장소가 아닌 시점에, 현 PC방 업계가 보다 다양한 서비스를 품기 위해 다변화의 과정을 겪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대로, 지금 국내 게이머들 입장에서 오프라인상으로 게임을 즐기는데 있어서,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이전과 같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한정된 시기도 아니거니와, 게임을 즐기는 것 자체를 비판하는 시기도 아니기에 사실상 이전처럼 PC방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는 힘든 상태다. 어떤 의미로, 우리가 기억하던 PC방에서 함께 놀면서, 그야말로 랜파티가 수시로 일어나던 시절의 이야기는 이제 정말 ‘추억’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 PC방이 아니더라도, 오프라인 문화는 번성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프라인 게임 문화가 이전에 비해 쇠퇴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게임이 대표적인 취미로 자리잡으면서, 달리 PC방이 아니더라도 게임을 즐기는 방법은 e스포츠 대회, 코스프레, 오프라인 행사, 팝업스토어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아울러, PC방도 이런 분위기에 밀려나지 않고, 그 나름대로 지속 발전해나가면서 게임을 즐기기 위한 건전한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아무리 그대로 이전과 같지는 않다고 보는 시선들도 있지만, 그만큼 이러한 PC방을 즐기는 방식이 계속 변화하는 시점이기에 아직 온전히 바뀐 인식이 자리잡지 못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 마찬가지로 PC방도 그에 걸맞은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온라인 시대에 접어들면서 게임업계에서는 PC방과 같은 오프라인 문화를 이제는 쇠퇴했다고 보고 다소 외면하는 시선도 있지만, 그 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양한 기회와 가능성이 산재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게임을 즐기는 문화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이 부분 역시 간과해서는 안될 것으로 생각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PNN 취재 기자) 이찬중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즐기는 것과 더불어, 지금의 PC방 모습을 다각도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 우크라이나 사태의 de jure와 de facto
러시아 안에서 차르가 된 푸틴은 그렇게 러시아 바깥까지 제패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부디 그런 장면은 역사 다큐멘터리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만 보면 좋겠다. 현실에서는 진짜로 사람이 죽고 다치기 때문이다. < Back 우크라이나 사태의 de jure와 de facto 06 GG Vol. 22. 6. 10. 역사가 매력적인 게임 소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시드 마이어의 〈문명〉, 크리에이티브 어셈블리의 〈토탈 워〉, 지금은 엑스박스 게임 스튜디오가 배급하는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모두 우리 인류의 역사에서 빚을 진 게임이다. 코에이의 에리카와 요이치(가명 시부사와 코우)는 〈삼국지〉, 〈대항해시대〉, 〈신장의 야망〉 등 동서의 역사를 시뮬레이션으로 만들었다. 동명의 전략 시뮬레이션으로 대표되는 '대전략'(Grand Strategy) 부류의 게임들은 보다 넓은 시점에서 역사 속 국가들을 조망한다. 이런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주로 유라시아 대륙, 또는 아메리카까지 포함한 '전 지구' 위에서 한 국가를 선택하여 플레이한다. 플레이어는 그 나라를 경영하며 내정을 살피고 다른 국가들과 외교적, 군사적인 행동을 펼쳐나가며 특정한 목표를 이뤄나가게 된다. 2020년 출시된 〈크루세이더 킹즈 3〉는 대전략 장르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게임은 전략 시뮬레이션 전통의 국가 경영, 내정, 건설, 전쟁 등의 기능이 충실하게 반영된 가운데, 가문의 계보를 이어가는 재미도 준다. 플레이어가 선택한 가문의 '막장 드라마' 급의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최근 종영한 사극 〈태종 이방원〉의 캐치프레이즈에서 표현을 빌려오자면, 〈크루세이더 킹즈 3〉는 국(國)과 가(家)가 두루 담겨있는 게임이다. 이렇게 오늘날 〈크루세이더 킹즈 3〉의 스팀 평가는 '매우 긍정적', 메타크리틱 점수 91점을 기록하며 선전 중이다. 이번 글에서는 〈크루세이더 킹즈 3〉와 우리 현실 세계에서 발생 중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1000여년 전 중세 봉건사회와 오늘날을 일 대 일로 비교하는 것에는 분명 무리가 있다. 예를 들어 2022년에는 국가지도자의 2세끼리 결혼을 시키지 않으며, 만에 하나 결혼을 한다고 해서 동맹이 형성되지는 않으며, 지도자의 자리도 (북한이나 가봉 같은 나라들을 빼고는) 세습되지 않는다. 게임 전문지에서 일하는 기자로서 게임을 현실에 빗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필자 개인의 지정학에 대한 이해 또한 부박한 수준이다. 하지만 주로 논하려는 〈크루세이더 킹즈 3〉가 어떻게 국경이 만들어지고, 유지되며, 뒤바뀌는지(국경을 ‘되찾기’ 위한 액션에 나서는지) 잘 풀어낸 게임이므로 조심스럽게 글을 써보려 한다. 두 개의 권역이 충돌할 때 전쟁은 시작된다 〈크루세이더 킹즈〉(이하 크킹) 시리즈에서는 역사적으로 아일랜드가 게임 학습의 ‘스타팅 포인트’로 제시된다. 〈크킹 3〉에서도 마찬가지. 플레이어는 랭커스터, 얼스터에서 활동하던 공작들을 복속시키고 아일랜드 왕국을 선포한다. 그 다음,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대치 중인 브리튼 섬으로 넘어가 접수가 완료되면, 플레이어는 브리튼 제국의 황제에 오르게 된다. 정복전쟁이 완료된 후에는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이 플레이어를 기다리고 있다. 아일랜드에서 게임을 시작한다고 가정했을 때,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물리력으로 아일랜드 다른 지역 공작들을 자기 밑으로 끌어들이기는 쉽지 않다. 전쟁에는 언제나 명분이 필요하며, 그 명분을 만들어나가는 활동이 〈크킹3〉 플레이에서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한다. 명분을 충족하기 위한 일차적인 조건으로는 ‘권역의 불일치’가 있다. 〈크킹3〉에는 규범 권역(de jure)과 실질 권역(de facto)이 있다. 규범 권역이란, 어떤 공작에게 이 지역부터 이 지역까지, 어떤 왕에겐 이 공국들을 아우른다는 일종의 관습적 권역이다. 신조어 ‘국룰’이 실제로 ‘국가의 룰’은 아니지만, ‘그 정도로 통용된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처럼 ‘jure’를 이해하면 될 듯하다. 그러나 게임 속 유럽에서 국경은 칼로 딱 자르듯이 나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공작의 나라(공국)이 내 공국 영토를 침범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렇게 실제 지도 위에 그어진 지역을 실질 권역이라고 부른다. 규범 권역과 실질 권역이 일치하지 않을 때, 플레이어는 전쟁의 명분을 얻게 된다. 이 권역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사실상 〈크킹3〉의 플레이가 불가능하다. 왜 나의 봉토에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인지, 왜 내 땅을 침범하고 있는지 같은 것들이 전쟁의 일차적인 명분이 된다. 해당 국가가 다른 종교를 채택했다면, ‘성전’을 벌일 수 있다. 중세 사회에서 성전이야말로 전쟁을 선포할 가장 좋은 구실이며, 바티칸의 교황은 틈만 나면 근동(Near East) 사회에 십자군을 보내려 든다. 게임의 권역들은 만고불변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게 되고, 이 변화는 플레이어의 유불리에 작용하게 된다. ‘이 규범 권역은 우리 왕국의 것’이라고 유럽 국가들 사이에 널리 인정받을 수 있고, 플레이어의 폭정으로 인해 봉토를 받은 공작들이 독립을 선언한다면 결과적으로 규범 권역은 줄어든다. 그러나 게임을 하면서 규범 권역이 바뀌는 것을 보려면, 브리튼 왕국이 프랑스의 노르망디 공작령을 지배하는 것으로 이해되려면 100여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의 제(諸) 세력들은 호시탐탐 플레이어가 빼앗아간 고토(古土)를 수복하려 들 것이다. 이때, 플레이어에게는 여러 옵션이 있다. 교황의 든든한 지지를 뒤에 업고 적들을 이단으로 꾀어내던가, 일부 프랑스 공작들을 자신의 말을 잘 듣도록 만들던가, 규범 권역으로 돌아가 집안 살림이나 잘 신경쓰거나, 공국이 감히 설칠 수 없도록 더 강력한 제국을 선포하거나… 그리고 〈크킹3〉가 어려운 까닭은 그 작전이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후계자가 갑자기 죽어버리거나, 왕이 며느리로부터 대시를 받거나, 합스부르크에 시집보내려던 딸이 매독에 걸리면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다. ‘국’에 지나치게 신경쓴 나머지 ‘가’에 소홀하게 되면, 플레이어가 선택할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 〈크킹3〉의 규범 권역과 실질 권역은, 실제 역사가 보여준 모습을 훌륭하게 게임으로 빚어냈다. 역사에서도 규범 권역과 실질 권역이 불일치할 때 전쟁은 벌어졌다. 유대인들에게 이스라엘은 마땅히 되찾아야 할 땅이었으나, 팔레스타인 아랍인에게는 대대로 뿌리내리고 살던 터전이었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알라의 뜻을 받아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자신들이 이끌어야 하는 땅이라고 주장하며 성전을 선포한 조직이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ISIS다. 전쟁은 어떻게 끝나는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규범 권역과 실질 권역 이야기로 풀어볼 수 있다. 이러고 싶지 않지만, 악마의 변호인이 되어보자는 심산으로 러시아의 입장에서 두 권역 이야기를 해보자. ―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규범 권역을 침범하고 있다. 우리는 소련 시절 우크라이나인들의 자치를 보장해주었으며, 오랜 기간 물적·인적 교류를 맺어왔다. 그런데 ‘키예프’ 루스 한 뿌리였던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어 금지 법안을 발의하는 등 우크라이나 내 인구 17% 비중을 차지하는 러시아인들을 박해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실질 권역과 국경을 그대로 유지한 채 역내 안보에 위협이 되는 국제 기구에 가입하려 들고 있다. 우선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탄압 선봉엔 ‘네오나치’ 세력들이 있으므로, 이들을 축출하기 위한 ‘일부 군사작전’을 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아마도 우크라이나는 이렇게 답변할 것이다. 물론 다음과 같이 쓴다고 해서 필자가 ‘천사의 변호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규범, 실질 권역을 모두 침범하고 있다. 1991년 우크라이나는 공식적으로 소비에트연방으로부터 독립했으며, 별개의 주권을 가지게 되었음에도 역내 평화를 위해 가지고 있던 핵탄두를 하나도 남김 없이 모두 소련으로 보내주었다. 오늘날 우리는 유럽이고자 하는 욕망이 크고, (근시일 내 불가능하겠지만) 그를 위한 조약 기구에도 합류하고 싶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인은 차별받지 않고 공존하고 있으며 독립을 선포한 두 곳의 공화국 역시 모두 러시아의 공작에 의한 것이다. 무엇보다 현재 러시아군은 ‘키이우’를 비롯한 전국에 포격과 비인도적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있으므로 방어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양측이 서로 평행선에 가까운 주장을 하고 있으므로, 그 조율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크킹3〉에서는 전쟁을 끝내는 4가지 조건이 있다. ― (a) 승전은 전쟁에서 상대를 압도한 것이 확인될 때 플레이어가 자신이 내건 명분이 맞다며 ‘요구압박’을 하고, 열세에 놓인 상대방이 이를 승인하면서 이루어진다. 게임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다. (b-1) 무조건 평화는 상대방에게 지금까지의 전쟁을 ‘없었던 일로 하지 않을래’라고 묻는 것으로 개전의 명분에 따라서 다른 조건의 협상을 벌이게 된다. 주로 전쟁 중에 나라에 변고가 생겼을 때 사용하는 커맨드다. (b-2) 기독교 국가로 플레이하는 경우, 전쟁이 끝나기 전에 교황이 성전을 선포해도 전쟁은 없었던 일이 된다. (b)의 결과는, 개전 이전 상태(Status Quo Ante Bellum)다. (c) 패전은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상대방이 이 전쟁이 끝났다고 선언하고, 플레이어는 그 사실을 무조건 인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때 플레이어는 잘못된 전쟁을 선포했음을 인정하는 배당금을 상대에게 보내야 하며 휘하의 신하들은 왕을 불신하게 된다. (b-2)를 빼고 보자면, (a), (b), (c)를 단순히 승무패로 나눌 수 있을 듯하며 현실에서 벌어지는 충돌의 결과 또한 승무패로 분류할 만하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는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러시아로부터 군대를 모두 물려내고 나토를 가입하고, 푸틴으로부터 배상금까지 얻어낸다면 (a), 러시아와 협상 테이블에서 어디까지가 ‘개전 이전 상태’인지를 합의한다면 (b), 나라의 운명을 러시아에게로 맡기기로 한다면 (c)가 될 것이다. 동맹은 동맹국의 전쟁에 참가하는 것이 의무이며, 〈크킹3〉에서도 마찬가지다. 전쟁 중인 동맹국에 파병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으면 플레이어의 위신이 훼손될 수 있다. 게임에서 선전을 포고할 때 쓰이는 자원이 바로 위신이므로, 한동안 전쟁 명분을 잃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늘날 현실에서도 국제사회에서 동맹은 매우 중요한데, 벨라루스 또한 러시아와 함께 ‘군사작전’에 나섰다. 두 나라가 동맹을 맺고 있는지 주종 관계를 맺고 있는지는 사람에 따라 의견이 갈릴 듯하다. 반면에 미국과 유럽은 우크라이나가 동맹국이 아니기 때문에 무기를 보내고 경제제재를 가하지만, 직접적인 액션은 취하지 않고 있다. 이런 와중에 나토의 또다른 핵심 축인 독일은 패전 이후 처음으로 재무장을 선언했다. 새로운 국경을 만들겠다는 욕망은 게임에서나 〈크킹3〉으로 현대 사회의 국가 관계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결정적 이유는 제국주의와 냉전이 세계지도에 한 일을 중세 배경 게임에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시대를 플레이하고 싶다면 같은 개발사(패러독스 인터랙티브)의 〈빅토리아〉를 찾으면 된다.) 아프리카의 ‘자로 잰 듯한’ 국경은 실제로 자로 잰 것이며, 이후 숱한 아프리카의 민족 분쟁이 그 줄긋기의 영향을 받았다. 아프리카의 숱한 민족분쟁에 관해서 〈르몽드 세계사〉는 “아프리카는 종족 자체가 사회를 구성하고 나아가 국가를 만들기도 한다 (중략) 중앙집권 정부를 중심으로 하는 서구식 모델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설명한다. 태국의 라마 5세는 ‘국가의 지도’를 편찬해 국민성을 만들려고 했지만, 국가의 가장자리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국가에 행정력이 전파되기 전까지 국가가 뭔지 관심이 없었다. 태국 정부는 냉전 시대에서야 산악지대를 넘나드는 공산주의자들에 맞서기 위해 주민들을 명부에 등록했다. 국경은 산맥과 강줄기에 따라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통치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원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듯하다. 러시아는 제국 때나 소련 때나 지금에나 부동항을 면한 흑해 연안의 도시들을 노리고 있다. 푸틴의 도박은 수많은 명분들로 포장되어있지만, 어찌 보면 본질은 러시아식 부동항 공략의 재현이다. 더 멀리 나갈 수 있는 새로운 국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러시아 안에서 차르가 된 푸틴은 그렇게 러시아 바깥까지 제패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부디 그런 장면은 역사 다큐멘터리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만 보면 좋겠다. 현실에서는 진짜로 사람이 죽고 다치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부, 「르몽드 세계사」, 권지현 옮김, 휴머니스트, 2008 통차이 위니짜꾼 , 「지도에서 태어난 태국 – 국가의 지리체 역사」, 이상국 옮김, 진인진, 2019 CK3 Wiki, “Titles”, (2022-05-27) Steam, “Crusader Kings III”, (2022-05-27) Wikipedia, "Grand strategy wargame", (2022-05-27)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김재석 8년 동안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서브컬처 스타트업에서 대외협력을 맡고 있다.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 모든이에게 게임을! 국립재활원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 인터뷰
그 중에서도 국립재활원 재활연구소 자립생활지원기술연구팀은 보조기기의 국산화를 위해 2020년부터 노인·장애인 보조기기연구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해당 사업은 경제적 가치 부문과 사회적 가치 부문으로 나뉜다. 전자가 개인이 부담하기에 지나치게 비싼 해외 보조기기를 국내에서 연구개발하고 상용화하는 프로젝트라면, 후자는 장애인과 노인에게 꼭 필요한 보조기기 수요를 공모를 통해 파악하여 수요자와 함께 개발하고 오픈소스로 공유하는 프로젝트이다. < Back 04 GG Vol. 22.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iwoon Kim Driven by an interest in the indie music scene, devoted to research in the sociology of art and to (concert) photography. Took on the English translation of The Woman Does Not Exist, a book on Lacanian psychoanalytic philosophy.
- 윤석열 정부의 게임 정책을 예견해 보다
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당선자가 윤석열 후보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고백하건대, 미래가 어떻게 될지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다. 공약을 열심히 들여다보면 집권 후 방향성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지만, 어느 정도일 뿐이다. 다이나믹 코리아는 본게임 이전, 프리게임 때부터 치열하고 예측 불가능이다. < Back 윤석열 정부의 게임 정책을 예견해 보다 05 GG Vol. 22. 4. 10. 0) 프리게임 : 다이나믹 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당선자가 윤석열 후보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고백하건대, 미래가 어떻게 될지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다. 공약을 열심히 들여다보면 집권 후 방향성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지만, 어느 정도일 뿐이다. 다이나믹 코리아는 본게임 이전, 프리게임 때부터 치열하고 예측 불가능이다. 때문에 게임 공약들이 폐기 혹은 수정의 대상이 될지, 그대로 정책으로 연결될지는 예측할 수가 없다. 공약에 대한 깊은 분석과 비평도 어렵다. 분석만으로 예측하기가 어려우니 연관된 ‘사람’을 함께 보자. 해당 공약과 정책을 누가 만들고 동력을 제공하는지를 함께 본다면 불확실성이 조금은 줄어들 것이다. 1) 본게임 맵 : 질병코드와 셧다운제 게임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기반은 당선인 자신이 갖고 있는 게임에 대한 태도다. 게임 장르를 어떤 성격으로 바라보는지는 곧 게임의 맵과 같다. 맵에 가득한 안개를 걷어내기 위해 제일 처음 만나볼 발언은 후보 시절 인벤닷컴과의 인터뷰다. 인터뷰어인 이두현 기자가 인터뷰 말미에 게임 중독의 질병코드화에 대해 물었을 때의 답변이다. “게임을 포함한 모든 문화콘텐츠들은 상품이기도 하지만 사용자들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진흥과 규제를 적절하게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중략) 청소년들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으므로 부모님들에게 게임에 관한 정확한 이해와 접근 방향, 게임을 즐기는 자녀와의 관계 설정 등을 도울 수 있는 ‘교육과 이해의 과정’ 제공 등도 필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호의적으로 해석하면, 질병코드화 인정이라기보다는 건강한 게임 이용을 교육하자는 태도이다. 또한 너무 짧은 답변이기에 태도 전반을 도출해내기엔 부족하다. 다만 “게임을 포함한 모든 문화콘텐츠”의 부정적 측면을 지적하면서 “정신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을 들었다는 점에 추측해볼 여지가 있긴 하다. 거칠게 바꿔보면 ‘이런 거 보고 자라서 뭐 되려고 그래?’라는 문장이며, 등급제도의 기반 논리이기도 하다. 딱히 문제가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이 지점에서 선을 잘못 넘어가면 사전검열제도의 기반 논리로 둔갑한다는 점은 늘 염두에 둬야 한다. 반면 호의적으로 해석하지 않을 경우엔 이 발언이 질병코드화를 긍정하는 쪽으로 읽힐 수가 있는데, 마침 당시 윤석열 캠프에 있었던 두 사람 때문에 우려가 증폭됐다. 여성특보로 있었던 손인춘 전 의원은 셧다운제 확장을 발의한 이력이 있고, 아동폭력예방특보로 있었던 신의진 전 의원은 게임 중독을 강력히 주장한 악명이 있다. 증폭된 우려에 오래 쌓인 분노가 첨가되면서 후보에게 ‘질병코드화 긍정이냐 부정이냐’ 하는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여론이 만들어졌다. 기실 그 사이의 회색지대 선택지가 여럿 존재하긴 하지만, 대선과 같은 뜨거운 전장에서 던져지는 정치적 질문이라면 그런 영역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결국 후보는 10여 일 후에 게임을 질병으로 보지 않는다고 진화를 시도해야 했다. 그리고 이 시점부터 윤석열 캠프에서 게임 공약을 얘기할 때 앞으로 나서는 인사가 게임특위위원장으로 막 임명된 하태경 의원으로 바뀌었다. 비약과 가정을 많이 섞어서 추측한다면 게임 공약에 영향력을 주는 인사가 손인춘/신의진에서 하태경으로 바뀐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리하여 현재는 손인춘/신의진의 이름을 인수위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추측에 힘을 실어주는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담당자가 여럿 바뀌는 캠프 내 혼란상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손인춘/신의진의 유산인 셧다운제에 대한 캠프의 태도는 어떨까. 현재 셧다운제는 청소년이 이용시간을 자율 선택하는 것으로 바뀌면서 강제성이 사라져 사실상 폐지된 상태다. 캠프가 게임 분야를 하태경 체제로 정리하면서 제일 처음 정리해서 낸 공약은 셧다운제 이슈와 연결되어 있는 공약인, 전체 이용가 게임의 본인인증 면제다. 게임의 본인인증 제도가 도입된 배경 논리는 게임 과몰입과 중독을 예방하기 위한 규제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를 전체이용가 게임에 한해서라도 해제하는 방향은 손인춘/신의진의 자장에서 국민의힘이 빠져나오고 있다는 정황일 수 있다. 다만 함정이 있으니, 이 공약은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서에 없다. 2) 공약 주무기 – 2Big : 확률형 아이템, e스포츠 지역연고제 그럼 이제 후보 시절 공약서에 있는 공약을 살펴보자. 게임 공약은 340쪽이 넘는 공약서 기준으로 한 페이지에 불과하다. 캠프는 그 한 페이지에서 4개 항목을 짚었는데, 2가지 큰 항목과 2가지 작은 항목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항목에서 하태경 의원의 흔적이 보인다. - 1Big: 확률형 아이템 공약서 252페이지는 게임 공약이고, 이 페이지의 제목은 이렇다. “게임산업의 불공정 문제를 해소하고 e스포츠를 대한민국 미래산업으로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초점이 불공정에 맞춰져 있다. 누구에 대한 불공정일까? 공약 내용에 따르면 게이머들이 겪는 불공정이다. 윤석열 당선인의 게임 공약 첫 번째 큰 줄기는 확률형 아이템 규제다. 아이템 확률 조작은 이미 국정감사에도 진출한 이슈다. 국회에서 실제 확률을 소비자에게 공개하라고 한 후에도 같은 문제가 발생해 자율 규제에 대한 회의론이 짙어졌다. 그래서 윤석열 캠프는 아예 게임이용자권익보호기구를 일정 규모 이상 게임사마다 설치하게 하고, 이용자가 직접 확률형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하겠다고 한다. 이슈 선정은 좋지만 불안감은 존재한다. 당선인 자신이 인터뷰 당시에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공개를 ‘영업비밀 공개’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업으로서 수용하기 어려운 영업비밀 공개 의무화 등의 강력한 규제도 무조건 능사가 아닙니다.” 감시 기구를 만드는 것은 좋은데 그게 꼭 게임사 내에 만드는 형태여야만 했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또한 다중뽑기 같은 일부 형태는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징벌하는 형식의 규제 대신, 정보 공개와 감시 정도를 선호하는 우파 색채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 공약은 하태경 의원이 대표로 발의해 계류중인 게임산업법 개정안의 내용이기도 하다. 하태경 의원실은 이 개정안을 확률조작 국민감시법이라고 명명했다. 게임물이용자권익보호위원회라는 기구를 문체부 내에 만들어서 컨트롤 타워로 삼고, 게임사 내에는 이용자위원회를 두는 방안이다. 윤석열 공약과 거의 동일하니 하태경 발의안이 공약으로 들어온 것이라 봐도 좋을 것이다. 반면 경쟁 상대였던 이재명 캠프의 관련 공약은 조금 더 단호했다.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의 기능을 확대하는 정도로 규제를 갈음하지만, 동시에 컴플리트 가챠 등의 다중뽑기는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공약이었다. 즉 현재 규제를 강화하면서 금지 지역을 설정하는, 경쟁자의 공약에 비하면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은 어느 정도 게임사의 입장을 반영한 정책이다. 다르게는 자율 규제에 한 발을 담그고 있는 정책이라고 서술할 수도 있다. 아마 이 공약이 정책으로 실현되면, 몇몇 게임사는 사내의 보호기구를 무력화할 방안을 연구할 것이고 정부의 보호위원회는 이를 막으려 들면서 정책 전선이 만들어질 것이다. 즉 이런 전선이 안 만들어지면 이 제도가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기능을 제대로 할 경우에도 대기업의 회피 기동을 잡아내지 못하면 중소기업 차별 이슈가 불거질 수 있다. 사내의 소비자보호기구를 만들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야 할 것이고, 이들은 대기업처럼 무력화 시도를 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런 경우 중소기업이 할 말은 ‘왜 쟤들은 피해갈 수 있는데 우리는 안 되느냐’ 하는 볼멘소리다. 이 부분들이 향후 이 제도 시행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 2Big: e스포츠 지역연고제 e스포츠 지역 연고제가 두 번째 큰 공약이다. e스포츠 구단을 지역 사회에 뿌리내리게 하겠다는 포부가 돋보인다. 지역 사회마다 PC방이 있으니 이 네트워크를 이용해 아마추어 리그를 만들고, 이 리그를 프로 구단의 유망주 풀로 활용한다. 당연히 동네 PC방에서 게임 좀 하는 유소년들은 유소년 클럽 시스템으로 들어갈 수 있다. 유소년 클럽 – 아마추어 리그 – 프로 리그의 단계적 시스템이다. 이런 시스템이면 클럽이나 구단에서 선수들을 상대로 게임 교육을 할 때 게임 리터러시 교육을 할 수 있다. 이 커리큘럼을 통해 중독 혹은 온건한 용어를 써서 과몰입을 줄일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다. 지도자 또한 자격증을 신설해 체계적 배출이 가능하게 한다. 단계적 리그 체계는 모든 프로 스포츠의 꿈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그 꿈을 완벽하게 이룬 프로 스포츠는 야구 외에는 없다시피 하다. 야구조차도 그나마 완전히 이룬 상태는 아니며, 다른 3대 구기 종목은 아직 벽을 넘지 못하고 청소년 엘리트 체육 시스템에 기대어 버티는 중이다. 과연 e스포츠는 그 벽을 제대로 넘어갈 수 있을까? 이 공약 또한 하태경 의원이 추진 중인 정책이다. 대선 직전이던 지난 2월 8일, 하태경 의원실은 김승수/허은아 의원실과 함께 지역연고제 도입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 패널에는 샌드박스게이밍의 정인모 이사, 크래프톤 e스포츠팀의 김우진 팀장, 인벤의 이두현 기자, 전 프로게이머이자 국민의힘 청년 보좌역인 한우성 등이 참여했다. 지역 연고제 관철을 위한 성격인지라 긍정적인 입장 위주로 진행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두현 기자의 토론 내용은 부정적인 시각이 묻어난다. 이두현 기자는 e스포츠 산업의 특성이 팬 위주이기 때문에, 지역으로 인위적 재편을 시도하는 것은 산업을 망칠 우려가 있다는 논지를 폈다. 이두현 기자는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의 주장을 인용하기도 했다. 정인모 이사의 경우엔 지역연고제가 정착된 중국의 예를 들며 성공 가능성을 피력했는데, 이상헌 의원의 주장에 따르면 지역연고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인구가 필요하기에 중국에서 성공한 것이다. 각 지역에 지어진 경기장을 채울 수 있는 관객의 수가 담보되어야 하는데 한국은 그만큼의 인구가 되지 않는다. 또한 e스포츠는 팀 위주의 팬심이 아닌 선수 위주의 팬심으로 돌아가는 리그다. 선수가 구단을 이적하면 그 팬은 기존 구단에 남지 않고 선수와 함께 이동한다. 게다가 e스포츠는 오프라인 직관만이 가지는 메리트가 상대적으로 적다. 경기장의 물리적 위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니 지역연고제가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콘텐츠진흥원이 작년 12월에 발표한 ‘2021 e스포츠 정책연구’에서도 부정적인 연구 결과가 있다. 중국처럼 산업 초기에 지역연고제 기반으로 디자인이 되었다면 팬 문화가 그에 따라 만들어질 수 있지만, 한국은 이미 e스포츠 산업이 원숙기에 들어선 후라서 지역연고제를 강행하면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연구 결과다. 오히려 공약 내용에 있는 유소년 클럽과 아마추어 리그 확충은 지역연고제의 결과나 과정이 아니라 전제 조건에 더 가깝다. 이토록 다양한 형태의 비판 논거와 반대 연구가 존재하는 이유는 지역연고제가 스타 프로리그 시절부터 20년 동안 제시된 정책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제시된 만큼 오랫동안 논의가 되어 왔고, 적합하지 않거나 너무 어렵기 때문에 추진되지 못한 정책이다. 그럼 윤석열 캠프와 하태경 의원은 이렇게 오래된 주장을 왜 정책으로 내건 것일까? 추측해볼 단서는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e스포츠 구단을 유치해 지역연고제 구단을 만들면 운영 자본이 필요하다. 한국의 프로 스포츠 리그는 이렇게 필요한 자본을 대기업 자본에서 가져오는 것에 익숙하다. 그리고 스포츠 구단을 설립/운영하는 기업은 그 비용의 10%만큼 세금 감면 혹은 공제를 받는다. 작년 12월에는 이 조세특례 종목에 e스포츠가 추가되었다. 또한 윤석열 캠프의 공약에는 체육진흥투표권, 즉 스포츠토토에 e스포츠 종목을 추가해 자금을 끌어오겠다는 청사진이 있다. 사실 이 이슈 역시 작년 초에 이상헌 의원과 국민체육진흥공단이 합동으로 논의를 시작한 주제다. 그리하여 e스포츠 지역연고제 공약은 부자 구단주들과 토토의 자본을 리그로 끌어오겠다는 내용으로 치환할 수 있다. 다만 진정으로 지역연고제가 e스포츠의 미래라고 믿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런 사람이 지켜봐야 할 지표는 부산 리브샌드박스다. 게임 구단 최초로 지방자치단체와 연고 협약을 맺어 연고제를 실험하는 구단이다. 구단 프론트 인력을 지역에서 채용하고, 지역 경기장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으며, 지역 내 아카데미를 만들어 인력 풀을 만들어가려는 중이다. 2) 공약 보조무기 - 2Small : 소액 사기 전담기구, 장애인 접근성 오프닝 공약과 2가지 큰 공약 줄기 사이에는 2가지 작은 공약도 있다. 디테일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생활밀착형이 될 수 있겠다. 작은 공약 첫째, 게임 내의 소액 사기를 전담하는 수사기구를 설치한다. 너무 작은 사안이긴 하지만, 캠프가 유권자의 적절한 목소리를 수신한 사안이다. 디테일한 공약의 크기만큼이나 잘 다뤄지지 않은 공약인데, 이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는 궁금하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예로 들면 몇백 몇천 골드 수준의 사기 피해를 당한 유저는 이를 구제 받으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피해를 산정하기 위해 유저간 거래 시세를 적용할까 아니면 해당 골드를 입수하기 위해 들어간 유저의 시간을 적용할까? 또한 소액 사건의 수사를 맡는 경찰은 사건이 접수되면 사이버수사국 요원으로 배정을 할까 혹은 전담기구 내에 전담 요원을 만들어서 배정할까? 후자라면 신규 채용 필요가 생기지만, 윤석열 당선인은 공무원 감축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검사는 이 사건을 어떤 형태로 기소할 것이며, 동시에 판결을 맡을 판사의 업무량 상승은 고려가 될까? 아직은 알 수 없다. 작은 공약 둘째, 장애인의 게임에 대한 접근성을 향상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게임접근성진흥위원회’를 설치한다. 대선 기간 동안 언론은 이 공약에 아무런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는데, 이 공약 역시 하태경 의원실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작년 4월 20일에 발의된 게임산업법 개정안에는 하태경 의원, 그리고 국민의힘 비례대표로서 장애인을 대표하는 김예지 의원, 진보의 정의당 류호정 의원 등이 참여한 법안으로 현재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은 정부에게 장애인의 게임 접근성 향상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도록 의무를 지우는 내용이다. 이런 내용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21세기 초입부터 제기가 되었고, 2004년에는 국제게임개발자협회(International Game Developers Association, IGDA)가 개념화하여 게임 개발 지침을 만들면서 조류(wave)가 시작되었다. 이후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접근성 지침, 장애인 플레이어 환경 가이드와 같은 가이드라인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런 조류에 맞춰가는 법안인 것이며 공약으로 바뀌자 해당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권고를 내리는 기구로 위원회가 만들어지는 내용이 된 것이다. 장애인 게임 접근성에 관해서 잘 정리된 정보는 게임제너레이션 3호에 강신규 연구자의 글( 링크 )에 있으며, 장애인 게임 유저로서 강신혜 작가가 쓴 글( 링크 )은 게임제너레이션의 4호에 실려 있다. 이 분야를 연구자와 당사자가 쓴 저 두 편의 글보다 잘 설명할 자신이 없다. 이 공약에서 핵심이 될 부분은 게임접근성진흥위원회가 내릴 권고의 무게다. 현재 독립적 지위를 가진 위원회로서 권고의 무게가 가장 무거운 위원회는 국가인권위원회다. 하지만 그런 인권위 권고조차 정부 부처나 기업이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권고는 법적 강제성이 약하기 때문에 불수용 결정이라는 제도적 출동 사례가 생기는 것이다. 과연 게임접근성진흥위원회의 권고는 어느 정도의 권위를 지니게 될까? 3) 중요 NPC : 하태경 의원 윤석열 당선인의 게임 공약을 분석하기 위해 처음에 살펴봤던 것은 인벤닷컴과의 인터뷰였다. 하지만 서면으로 이루어진 이 인터뷰는 당선인의 실제 답변일 가능성이 별로 없다. 게임 공약을 정리해서 처음 발표하던 1월 12일, 윤석열 후보는 자신이 직접 인터뷰한 것이 아니고 선대위 내부에서 답변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 시기는 하태경 의원이 선대위 내에서 게임특위위원장이 되는 시기외 맞물린다. 12일의 공약 발표에서도 공약에 대한 질의 응답은 윤석열 후보 자신보다 하태경/원희룡 두 사람이 더 많이 했다. 따라서 향후 윤석열 정부의 게임 정책의 핵심은 하태경 의원이 될 것으로 예상해도 무방할 것이다. 하태경 의원은 현재 인수위에서 맡은 직책이 없다. 현직 국회의원이라 행정부 인수위에 들어가지 않았나 생각할 수는 있지만, 한국 정치에서 그런 이유의 인선은 없었다. 당장 배준영 의원은 인수위에서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에 들어가 있고, 추경호 의원은 기획조정분과의 간사로 들어가 있다. 이번 인수위 인선은 유독 문화체육 분야가 약하다고 평가받고 있는데, 특히 게임 분야는 한 명도 없다. 하태경 의원이 인수위 인선에서 빠졌다는 것은 당선인이 게임 공약의 우선순위를 앞에 놓고 있지 않다는 의미다. 공약 사항 외에 놓친 것을 찾아보기 위해 다시 인벤닷컴 인터뷰로 돌아가 보자. 인터뷰어인 이두현 기자는 국회에서 계류 중인 게임산업법 전부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질문했다. 이에 대한 당시 답변은 원칙적 찬성이었으나, 정작 법안 내용을 캠프가 모르고 있었다. “개정안 내용의 골자는 게임의 사행성과 사용자들의 게임중독에 관한 규제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다만, 앞서 말씀드린 대로 그동안 우리나라 온라인게임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고 수많은 일자리와 혁신도 주도했던 만큼 업계의 애로 사항도 충분히 감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우리 국민의힘은 온라인게임 본인인증 절차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이 대표 발의해 아직 계류 중인 게임산업법 전부개정안은 사행성/게임중독 규제에 대한 내용과는 맥락이 완전히 다르다. 이 전부개정안의 내용 중에서 중요한 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게임배급업을 명확히 규정하고 관련 요소의 법적 정의를 해서 구역을 명확히 구분한다. 2. 중소게임사에 문체부가 예산 지원을 할 법적 근거를 만든다. 3. 비영리 인디 게임에 등급 분류를 면제시켜 주고, 패치가 등급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경우 새로 등급 분류를 면제시켜 주는 등 등급분류제의 많은 부분을 손질한다. 이 내용 중 일부는 다른 개정안 통과로 인해 이루어졌다. 4. 등급 표시 외에도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정보 등을 명시하도록 의무화한다. 5. 국내 업장이 없는 외국 회사가 국내에서 게임 사업을 할 때 국내 대리인 지정, 지사 설립이나 운영대리회사 지정을 하게 만들어서 수익 일부가 국내 경제권에 남도록 한다. 이번 회기의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회기 시작 후 2년 동안, 게임산업법 관련한 입법 활동으로 등급분류제와 확률형 아이템 규제를 손질하는 작업을 주로 하는 중이다. 그런 활동 사이사이로 셧다운제 내용 완전 삭제, 장애인 접근성 등의 내용이 있다. 이상헌 의원의 전부개정안은 현재 문체위의 메인 퀘스트 중간 종합판이라 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위의 입법 활동 중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인데도, 이 내용을 캠프가 혹은 하태경 의원이 몰랐다는 것은 의아한 부분이다. 하태경 의원이 이 전부개정안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은 핑계가 되지 않는다. 인벤닷컴 인터뷰에서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P2E 게임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다. “국민 여론에서 사행성 논란이 있다면 건전한 놀이문화가 되기도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따라서 국민 대다수가 이해한다면 P2E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에서 최소한의 고려를 해 볼 수는 있겠지만, 환전성이 가능한 게임에 대해서는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됩니다. 사행성 논란이 없어져야 해당 시장도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부분은 지난 2월 28일에 내려진 사법부 결정과 궤가 같다. 환전을 하는 게임에 대해 이뤄진 헌법소원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환전업을 금지한 게임산업법의 해당 조항이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유저 간의 게임머니 거래는 묵인할 수 있지만, 게임사가 게임머니를 현금으로 환전해주는 형태는 불법이 맞다는 확언이었다. 이는 한국 P2E 게임의 선택지를 극도로 좁게 하는 판결이며, 1월 초에 나온 캠프의 태도와 부합하는 판결이다. 다시 0) 애프터게임 : out of focus 윤석열 당선인의 게임 공약은 전체적으로 봤을 때 장단점이 매우 뚜렷하다. 대부분은 결을 잘 잡았지만 의구심이 드는 지점의 공백이 너무 크다. 과연 당선인이 이 공약들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장담하기 어렵다. 반면 공약 작성 당사자로 보이는 하태경 의원을 중심으로 봤을 때, 국회와 연계하여 정책 전개를 해나갈 전망은 희망적이다. 그래도 여전히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 이유는, 정황상 게임 정책의 국정과제 우선순위가 매우 뒤쪽일 것 같기 때문이다. 어차피 국회와의 연계가 필요한데, 그 하태경 의원은 다른 문체위 의원들이 집중하는 초점에서 반쯤 벗어나 있다. 낙제점은 아니지만 미싱 링크가 볼수록 크게 보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How do children live in the world of ?
I consider the most important goal of education to be helping solve real-world problems. Then, how does that apply to digital media education? We must first listen carefully to children’s actual experiences, try to understand the stories of their world, before hastily deciding on pedagogical implications. From that notion, the platform that we need to pay the most attention in recent days, in the context of digital media and children’s lives, is probably . < Back 27 GG Vol. 25.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ushin Park An elementary school teacher and a researcher of media and education. Holding to the belief that recognizing children's lives and culture within digital media—from comics and animation to games and AI—is the foundation of education, wants to understand more, though it's no easy task. Currently serves as president of the National Media Literacy Teachers Association.
- 상상된 공간의 지도화: 가상공간의 전시와 도식화
“지도는 영토보다 흥미롭다.”1) 프랑스 소설가 미셸 우엘백(Michel Houellebecq)의 문장이다. 영토가 위상학적 차원에서 물리적인 땅과 장소를 가리킨다면 지도는 그 땅을 표상하는 이미지다. 지도는 왜 영토보다 흥미로운가?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의 평면으로 기호화 하는 작업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지도는 신체와 물리적인 공간을 서로 마주하게 만드는 일종의 ‘인터페이스’(inter-face)로 기능하며, 현상학적 맥락에서 분리할 수 없는 공간적 경험을 하나의 대상으로 삼게 만드는 매개가 된다. 아마도 우엘백이 말한 ‘흥미’는, 실재 세계를 매핑(mapping)하는 인식론적 태도와 세계를 이미지로 상상하는 형식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Back 상상된 공간의 지도화: 가상공간의 전시와 도식화 11 GG Vol. 23. 4. 10. “지도는 영토보다 흥미롭다.” 1) 프랑스 소설가 미셸 우엘백(Michel Houellebecq)의 문장이다. 영토가 위상학적 차원에서 물리적인 땅과 장소를 가리킨다면 지도는 그 땅을 표상하는 이미지다. 지도는 왜 영토보다 흥미로운가?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의 평면으로 기호화 하는 작업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지도는 신체와 물리적인 공간을 서로 마주하게 만드는 일종의 ‘인터페이스’(inter-face)로 기능하며, 현상학적 맥락에서 분리할 수 없는 공간적 경험을 하나의 대상으로 삼게 만드는 매개가 된다. 아마도 우엘백이 말한 ‘흥미’는, 실재 세계를 매핑(mapping)하는 인식론적 태도와 세계를 이미지로 상상하는 형식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항상 지도를 만든다. 그것은 미지의 세계를 발굴하는 모험적 가능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지배와 통치의 욕망이 투사된 이미지다. 게임에서 지도는 게임의 배경과 레벨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도, 즉 맵(map)은 플레이어의 무대가 되며 스토리 전개를 구성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게임맵은 플레이어의 행위와 게임 시스템 사이의 인터페이스로서 작동하며 플레이어의 움직임을 안내하는 이미지다. 미술의 영역에서도 맵은 전시의 맥락에서 중요한 위상을 가진다. ‘전시 도면’으로 불리는 미술에서의 맵은 공간에서 목적지를 찾거나, 단순히 관객에게 동선을 안내하는 기능 역할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전시 이전부터 이후를 관장하는 시공간적 설계이며 공간과 작품의 관계, 그리고 작품을 향한 관객의 운동성까지 설정하는 또 다른 인터페이스다. 2) 인터페이스는 사전적 정의에서 ‘서로 다른 두 시스템을 접속’하게 하는 장치를 말한다. 상호작용을 기본 조건으로 하며 이질적인 대상을 어떻게 만나게 할 것인지에 관여하는 것이다. 사이를 매개하는 표면인 인터페이스 개념을 두고 던져야 할 질문은 다음과 같다. 인터페이스는 무엇과 무엇 사이에 놓여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그것들을 연결하는가? 게임에서 인터페이스는 인간의 행위를 소프트웨어와 연결시키는 과정에서 작동된다. 정보의 송수신을 넘어서 상호적으로 반응하는 체계를 드러내는 조건인 것이다. 오늘날 게임은 콘솔게임 같이 컴퓨터 모니터 시스템을 넘어 3차원의 가상현실, 증강현실, 혼합현실 등 메타버스의 세계에서 구성되고 있다. 그리고 메타버스는 게임뿐 아니라 미술 영역까지 깊숙하게 진입하는 중이다. 메타버스의 경제 안에서 현실과 가상이 경계 없이 혼합되고 있다면 우리는 두 장소가 어떤 방식으로 겹쳐지고 있는지 짚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글은 공간과 인간의 행위가 어떤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는지 살피기 위해 게임의 문법을 빌려오는 당대 미술의 형식을 살펴본다. 특히 공간이 하나의 이미지로서 작동하는 메타버스 전시에서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의 이미지로 펼쳐낸 지도/도면 이미지를 어떻게 그릴 수 있을지 상상해본다. 지도가 일종의 접속면으로서 공간과 신체 행위를 매개하는 대상물이 된다면, 게임에서 공간은 어떤 방식으로 플레이어의 경험을 유도하는가? 게임과 미술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우리의 관심을 방향 짓고 경험을 구조화 하기 위해 규칙들을 사용한다. 게임의 디자이너는 특정 종류의 규정적 활동을 조형하고 안정화된 경험에 관한 규정을 세운다. 3) 이 규정은 게임 맵을 통해 구성되곤 하는데, 특히 2000년대 이후 어드벤처(adventure)류 게임은 하나의 스토리를 기반으로 주인공이 겪는 모험을 구성해왔다. 주인공은 몇몇 한정된 장소들을 돌아다니거나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챌린지를 넘어서는 방식으로 게임을 진행한다. 이때 게임맵은 게임의 배경을 설명하는 주요한 이미지로서 주인공의 모험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요한 역할을 하곤 했다. 한편, 오늘의 대다수 게임 공간은 3차원의 이미지로 나타나는 추세다. 현실의 모습을 본 따오거나, 도시의 랜드 마크, 도로 등 풍경을 그대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플레이어의 경험을 사실적이고 정교하게 설계하는 것이다. 과거 게임맵이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길을 잃지 않도록 주인공의 여정을 기록하고 안내하는 기능을 했다면, 오늘날 3D 애니메이션으로 시뮬레이션 된 게임은 게임의 공간을 단번에 파악 수 있는 맵을 제공하기보다 플레이어가 직접 공간을 탐색하면서 방향과 장소를 찾도록 설정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당대 게임맵은 플레이어가 공간을 스스로 탐험하면서 게임의 단계를 파악하게끔 유도한다. 이러한 방식은 게임 플레이어에게 게임의 목표 설정과 스테이지를 직접 설정할 수 있도록 방향키를 건네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게임이 ‘의사소통의 기술’이라고 할 때, 게임의 형식은 모종의 규칙과 규정을 필수조건으로 둔다. 4) 플레이는 행위성의 양상 및 활동의 형식을 서로 상호 참조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구조화 되는 것이다. 즉 마치 빽빽한 나무 사이로 길을 잃게 만드는 숲처럼, 게임은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운 낯선 공간을 구축하지만, 게임의 정해진 규칙과 방향성은 결코 플레이어를 방황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물론 룰을 따를지 말지는 플레이어의 몫으로 남겨둔다. 하지만 게임은 질서화 된 공간이 안내하는 특정 서사를 통해 플레이어의 몰입을 유도한다. 그곳에서 설명되지 않는 공간은 없다. 버그가 아닌 이상. 미술에서 지도에 준할만한 것은 전시 도면이다. 게임맵이 플레이어에게 따라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다면, 전시 도면은 구체적이거나 단일한 지시성을 드러내지 않는다. 도면은 마치 여러 악보를 한데 모아 전체 곡의 구성을 파악할 수 있게끔 그려놓은 스코어(score)처럼 기능한다. 5) 말하자면 그것은, 개별 작품의 위치로부터 전시라는 하나의 풍경을 상상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이미지다. 하지만 2차원으로 펼쳐진 전시 공간에 개별 좌표를 기입해두는 방식의 전시 도면은 ‘대상 중심적’(object-centered)이었던 전통적인 예술 작품 형식에 적합하다. 특히 전시 도면이 단순히 작품의 위치를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면, 인터랙티브 아트(Interactive art), VR 등 관객의 포지션이 중요한 작품을 하나의 좌표값으로 환원하기는 까다로워 보인다. 관객의 참여까지 작품의 일부로 확장한 까닭에 작품의 공간적인 범위와 기준이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기술 기반의 작품이 예술의 큰 조류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다양한 입력 센서와 인터페이스의 발전에 따라 작품은 더 이상 완결된 형태로 관객에게 다가서지 않으며,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와 개입을 유도하기 시작했다. 작품의 의미 생산과 ‘출력’값은 관객의 ‘입력’으로부터 산출되는 것이다. 관객의 움직임이라는 물리적인 행위는 카메라 기술과 이미지 처리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컴퓨터 시스템과 상호 작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예술의 형식은 게임의 덕목을 닮아있다.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어떤 경험(gamer experience)을 부여하느냐에 집중하는 것처럼 인터랙티브 형식의 작품 역시 관객과 어떻게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내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터랙티브 아트는 전시라는 특수한 맥락 안에서 관객의 물리적 경험을 현상학적 차원에서 다루기보다 단편적인 행위만을 포착하고 투사하는 방식으로 반복되곤 한다. 이러한 반복은 작품에 대한 이미지적인 경험이라기보다 이미지 출력을 바라보게 하는 체험 수준에 머문다. 경험에 대한 예술의 갈망은 이후 여러 인터페이스의 발달과 함께 VR 기술을 예술의 형식으로 확장시키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이용한 상호작용과 달리 VR 기술은 현상학적인 차원에서 관객의 공간적 경험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작품과 물리적 행위의 상호성을 구성한다. HMD(Head Mount Display)를 착용한 관객은 자신의 신체로 실제 공간을 수행하는 동시에 이미지가 구축해놓은 가상공간을 활보한다. 3D 컴퓨팅 기술의 발전과 HMD의 상용화 및 보급으로 더욱 정교화 되고 있는 VR 경험은 가상공간에서 작품에 관한 몰입적 환경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새로운 기술 경험에 대한 가능성이 아니라, 관객이 공간과 관계 맺는 방식이다. 역사적으로 미술은 관객이 작품으로부터 거리를 어떻게 유지하는지를 탐구해왔다.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 어떤 형식이건 간에 전시라는 특수한 시공간에 작품을 위치시키는 것은 관념적 이미지를 어떻게 물질적인 차원에서 다룰 것인지에 관한 실험이다. 하지만 VR 기술이 작품의 형식으로 도입되면서 전시는 물리적인 공간에 가상의 이미지 공간을 겹쳐놓기 시작한다. 공간을 그려낸 전시 도면이 포착하지 못한 또 다른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공간 안에 중층된 새공간. VR 작품을 표기하고 있는 도면은 실상 작품의 위치를 알리는 것이 아니라 작품으로 진입하는 장치 혹은 출발점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관객은 물리적인 공간과 이미지 공간 사이를 거닐며 자신의 행위를 기입한다. 이러한 형식은, 게임 디자이너가 어떻게 인간 경험의 일부를 공간에 기입하고 기록할 것인지 고민하는 지점에서 게임의 방법론과 닮아있다. 6) 특수한 물리적 행위가 어떻게 게임의 특정 규칙 및 목표와 상호작용하는지 질문하면서 공간을 디자인하는 게임의 특징과 유사한 것이다. 이때 특정한 서사를 기반으로 구체적인 목표가 설정되는 게임 형식과 달리 VR 작품으로 기획된 전시 형식은 관객으로 하여금 따라갈 서사를 제공하지 않는다. 이미지 혹은 작품을 파편적으로 흩뿌리며 관객으로 하여금 새로운 서사를 조합하고 구축하기를 제안한다. 이쯤에서 작년 하반기에 개최된 《닷과 대쉬의 모험》(2022, 엘리펀트스페이스)을 살펴보자. ‘버추얼 멀티플레이’라는 수식을 단 전시는 ‘규칙’과 ‘플레이’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가상현실에서 예술 작품을 경험하도록 기획되었다. 버추얼 소셜 플랫폼 ‘Figro’와 물리적인 공간에서 두 달간 진행된 전시는 어드벤처류 게임의 구성을 따라간다. “가상현실의 접속자는 단순 이용자를 넘어 미래의 현실을 탐색하는 탐험자로서 다양한 관계 맺음을 시도”한다는 기조를 내세웠다. 7) 네트워크로 연결된 현실에서 작품을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는 것이다. 전시는 2인이 참여하는 구성이며, 플랫폼에는 세 개의 작품이 있다는 안내원의 설명과 함께 시작한다. HMD를 착용하고 플랫폼에 들어서면 푸른 초원이 보인다. 저 멀리 작품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빛이 있다. 소목장세미의 〈환대의 재개장〉, 이해강의 〈느영나영〉, 임영주의 〈빙〉. 총 3인의 작가의 작업이 숲 속의 오두막처럼 위치한다. 이들은 하나의 메타버스에서 각자의 시나리오를 구축하고 있는데, 관객은 HMD 기기를 착용한 채 작품의 서사를 따라간다. 작품이 개별적으로 서사를 구축하는 한편, 전시에서 규칙과 서사를 발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전시가 개별 작품의 나열이 아라 작품 간의 충돌로 인해 발생한 하나의 사건이라 할 때, ‘모험’을 표방하는 전시는 관객/플레이어로 하여금 어떤 방식으로 챌린지를 던져주는가? 개별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서, 전시가 가공한 세계에서 사건의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작품은 지도에 없는 섬처럼 표류하며, 그사이를 오가는 관객의 어지러운 방황이 시작된다. 전시에서 지도, 즉 전시 도면이 공간 속에서 관객의 포지션을 이해하게 하는 일종의 인터페이스라고 한다면, 메타버스 전시에서 도면은 어떤 방식으로 그려져야 할까? 아니, 애초에 이미지로 표현된 공간을 설명하는 또 다른 이미지가 필요한 걸까? 이 질문은 우리가 가닿을 수 없는 공간을 표기해야 한다는 지배 욕망에 기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메타버스라는 가상의 세계에서 관객의 자리와 위상에 관한 물음이다. 메타버스는 단순히 기술적으로 구현된 가상세계가 아니다. 이 세계는 디지털 디스플레이 안에서 시간과 공간의 개념적 확장을 실험한다. 메타버스를 정처 없이 배회하는 관객을 위해 지도가 필요하다면, 메타버스 공간은 어떤 방식으로 이미지화 되어야 하는가? 밀도 높은 이미지, 점점 더 리얼해지는 이미지가 공간에 자꾸만 레이어를 쌓고 있다. 이 중층의 이미지들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이미지를 공간화 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공간이 이미지화 되는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말하자면 공간을 무한하게 확장하기에 앞서 우리가 그곳을 상상하는 방식을 살펴볼 때다. 무섭게 선명해지는 이미지, 증식하는 레이어, 시뮬레이션 되는 세계. 다시 우엘백의 문장으로 돌아가 본다. “지도는 영토보다 흥미롭다.” 지도가 실재하는 영토에 관한 상상으로부터 그려진 이미지라면, 우리를 흥분시키는 것은 언제나 현실 혹은 실재 자체가 아니라 그로부터 상상된 세계다. 1) 미셸 우엘백, 『지도와 영토』(서울: 문학동네, 2011), 270쪽. 2) 현시원은 당대 미술에서 단순히 정보적인 수단으로서 인식되어오던 전시 도면에 새로운 위상을 부여한다. 오늘의 전시 도면이 일종의 드로잉/이미지와 스코어로서 전시에 대한 사고와 실현을 매개하는 독립적인 형식임을 주장하고 있다. 더 자세한 연구 내용은 다음을 참고할 것. 현시원, “전시 만들기와 기록으로서의 ‘전시 도면’ 연구 -큐레이터의 실험적 실천으로서의 전시 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22. 3) C. 티 응우옌, 이동휘 번역 『게임: 행위성의 예술』(서울: 워크룸, 2022), 190-191쪽 4) C. 티 응우옌, 이동휘 번역, 위의 책, 190쪽 5) 현시원, 위 논문, 135쪽. 6) C. 티 응우옌, 이동휘 번역, 위의 책, 36쪽 7) 뉴스와이어, “버추얼 멀티플레이 전시 ‘닷과 대쉬의 모험’, 온·오프라인 동시 개최”(2022. 10. 19.), https://www.newswire.co.kr/newsRead.php?no=953653 (최근접속일: 2023. 3. 25.)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술비평) 이민주 이민주는 서양화와 미술이론을 전공했다. 글 쓰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꾸린다. 퍼포먼스와 퍼포먼스 도큐멘테이션의 관계를 짚은 《동물성 루프》(공-원, 2019, 공동 기획), 다큐멘터리 이미지의 미학성과 정치성을 조명한 《논캡션 인터뷰》(의외의조합, 2021, 기획), 연극의 형식을 빌어 전시의 사건성을 모색한 《#2》(두산갤러리, 2023, 공동 기획)를 기획했다. 이미지가 만드는 사건과 수행적 성질에 주목하며 비평적 글쓰기를 고민하고,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의 번역 관계를 연구한다.
- “진보가 게임을 망친다?” <데스티니2>의 부침을 따라서
흔히 재난에 “‘별 혹은 행성의 불길한 국면’이라는 첫 번째 정의와 ‘갑작스럽거나 커다란 불행’이라는 두 번째 정의가 함께 관계”해 왔을 때, 일반적으로 <데스티니2>에서 묘사되는 재난은 전자의 의미를 조명하는 쪽에 가깝다. < Back 14 GG Vol. 23. 10. 10. Tags: 데스티니, 재난서사, 포스트아포칼립스, 디스토피아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yuri Kim Interested in the ways games let us experience stories. After poking around here and there, lately played Marath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