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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이머는 난민이 될 수 있는가? - <로스트아크> 대량이주 사태와 난민의 정체성
2021년은 한국 mmorpg 게이머들에게 대량이주의 해로 기록될 것이다. <메이플 스토리>나 <마비노기>의 경우, 아이템을 강화하는 세공도구 같은 유료아이템의 불투명한 확률 매커니즘이 문제였다. 랜덤이라고 표기되었지만 실은 옵션별 숨어있는 차등확률을 통해 랜덤확률에도 못미치는 효과를 보거나, 응당 적용되어야 할 옵션이 오류로 적용되지 않아 수년동안 0%의 확률로 실패한 뽑기를 유발한 것이 문제였다. < Back 게이머는 난민이 될 수 있는가? - <로스트아크> 대량이주 사태와 난민의 정체성 01 GG Vol. 21. 6. 10. 2021년은 한국 mmorpg 게이머들에게 대량이주의 해로 기록될 것이다. <메이플 스토리>나 <마비노기>의 경우, 아이템을 강화하는 세공도구 같은 유료아이템의 불투명한 확률 매커니즘이 문제였다. 랜덤이라고 표기되었지만 실은 옵션별 숨어있는 차등확률을 통해 랜덤확률에도 못미치는 효과를 보거나, 응당 적용되어야 할 옵션이 오류로 적용되지 않아 수년동안 0%의 확률로 실패한 뽑기를 유발한 것이 문제였다. 확률 매커니즘을 공개하고,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문제발견이 빨랐거나 유저들이 기망당했다고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유저들은 손해를 입었다고 생각해 게임사에 시정과 해명을 요구해 개발사와 각각 간담회를 열었다. 하지만 만족할만한 답변이나 조치를 받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게이머들은 대체재가 될만한 게임으로 <로스트 아크>를 지목해 올해 3월 한달동안 대량이주를 이어갔다. 한편 <리니지M>의 유저들은 핵과금 유저와 중저과금 유저들의 경쟁구도를 만들어 과금을 부추기는 게임구조를 숨기고, 유저들간의 반목처럼 보이도록 일관한 개발사에 화가 나 있었다. 이들은 과거 <리니지2>의 혈맹 간 계급투쟁이었던 <바츠 해방전쟁>을 패러디 해 <개돼지해방전쟁>으로 자신들의 저항적 행동을 명명하고 항의성 차원에서 <로스트 아크>나 <검은 사막>으로 이주해 나갔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각기 메난민(메이플스토리 난민), 마난민(마비노기 난민) 등으로 불리우며 '난민'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게임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 게임이주 운동은 제품향상이나 서비스개선을 요구하는 소비자운동의 연장선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민'이라는 명명에는 몇 가지 중요한 함의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메난민, 마난민에 비해 린난민(리니지M)보다는 린저씨가 더 자주 사용되는데, 그 이유는 리니지M 유저의 경우 난민이 겪을 고단함이나 소수자, 약자의 입장이 없을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들은 돈많은 침략자처럼 묘사되는 경향을 보였다. 여기서 대중들이 생각하는 리니지M의 게임적 정체성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다. 플레이를 숙련하기 앞서 상세한 전략을 세워 각종 아이템을 맞추고, 한정 아바타를 과감히 구입하는 플레이 습관으로 <로스트 아크>의 경제를 인플레이션 시킬 수 있다는 공포를 로아 유저들은 느꼈다고 한다. '난민'이라는 명명에는 다음과 같은 무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첫째, 이주자들은 그 스스로 하나의 가상적 종족성을 가진 존재로서, 새로운 게임환경에 적응을 해야 하는 고단함을 '난민'으로 표현하고 있다. 둘째, 이주자들이 본래 활동하던 게임공간을 가상의 고향땅으로 간주하고, 혹시라도 고향땅의 문제가 해결되면 돌아갈 준비가 되어있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난민'으로 지칭한다. 셋째, 이주 대상이 된 게임의 올드 유저들은 특정한 게임성으로 훈련된 뉴비들이 와서 자신들이 형성한 게임성을 오염시키고 변형할 지 모른다는 공포를 드러내는 단어로 '난민'이라는 명칭을 쓴다. 이 경우 '난민'은 멸칭에 가깝다. mmorpg의 게임공간은 단지 놀이적 재미만을 얻는 곳이 아니라 현실과는 또 다른 인격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곳으로 유저로 하여금 다른 어떤 장르보다 오랜 시간을 가상적 환경에서 보내며 사회적 관계를 이루도록 만든다. 그들이 특정 게임에서 형성한 게임적 습관은 제시된 게임룰을 개량하도록 개발사에 요구하고 유저들과 암묵적으로 합의해 얻은 사회적 결과다. 그들이 자신의 게임에 불만이 있다해도 바로 탈주할 수 없는 이유는, 게임공간이 여전히 유저들의 역사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적 공간에서는 매일 같이 전쟁이 벌어지고, 강제될 수밖에 없는 협력의 업무들이 있다. 물론 이들은 재미를 위해 디자인되었고, 노력이 필요하다 한들 현실의 노동에 비하면 가볍게 즐길 만하다. 적게 노력하면서 손쉽게 소속감을 얻을 수 있다. 게이머가 자신의 자부심을 특정한 게임종족으로 표출하거나 게임성을 유지하려는 욕망은 정체성의 불안과 연관을 맺는다. 현실 속의 모호함을 가상 속의 명확함으로 돌파하려는 것이다. 게임공간과 게이머의 관계는 단순한 상품과 소비자의 관계가 아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만 운영체제 안드로이드에서 iOS로 이주했다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반면 메난민, 마난민 등으로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난민'이라는 표현은 게임이라는 플랫폼이 오늘날 새로운 가상적 정체성을 발명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특정한 게임의 문화는 특정 집단의 민속적인 기록으로서 가치를 갖는다고도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들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인터넷과 게임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공간이다. 가상 민족지학(virtual ethnography)은 인터넷 공간 속의 다양한 매개를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집단과 문화적 기록에 대한 학문적 접근을 뜻하는 신조어로 점차 그 실체가 입증되어가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3월말 도입된 <로스트 아크>의 염색시스템을 소위 마난민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해 기존에 없는 새로운 플레이를 선보였다는 점이다. 그들은 아바타의 신체와 의상의 색을 바꾸는 꾸미기 플레이를 <마비노기>시절부터 익혀왔는데, 그 수준이 일반적인 갈색이나 노란색의 구분이 아니라 선호하는 색을 다크초코(#29141A)와 바나나(#FFE062)로 세분화하고, 해당 색의 색상코드(HEX)까지 암기하는 경지에 이른 자들이었다. 당연히 마난민들의 아바타 꾸미기 실력은 장인급이었고, 이들은 황금비율의 색배합을 담은 문건과 노하우를 공유하거나 다양한 예시를 보여주어 지금까지의 <로스트 아크>에서는 보지 못한 캐릭터들을 게임 내 전시하였다. 이는 염색 시스템을 이용해 꾸미기 플레이로 빠져들 가능성을 열어준 적극적인 게이밍으로 평가받을만 하다. 이 점에서 '난민'은 단순히 유입된 신규유저가 아니라 적극적인 혼종 플레이의 유발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기존에 <로스트 아크>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잠재적 플레이를 극대화시켜, 해당 게임의 게임성을 풍부하게 만든다. 그들은 이주하기 전 게임의 게임성을 새로운 게임공간 안에 이식시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마 자신들도 온전히 과거의 플레이를 모두 구현할 수 없으므로 자연스럽게 변형 굴절되면서 <로스트 아크>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중일 것이다. 다시 말해 기존 게임성을 변형시키면서 그 안으로 동화되고 있는 것이다. 인류학자 아르준 아파두라이(Arjun Appadurai)는 현대인들이 단지 이동상의 초국적 경험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미디어에 노출되면서 이미 가상적인 초국성을 띤다고 지적한다. 현실의 민족적 정체성이라는 것이 사라지고 제멋대로 파편적으로 구성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김치를 먹으면서 유럽인의 정체성을 내재화하기도 하고, '한국적인'이라는 수식어는 점점 모호해져서 실상은 글로벌 코드에 가까운 보편성에 이르렀음을 확인하기도 한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이 임시적이라는 것을 안다. 동시에 서로 다른 정체성이 중층으로 겹쳐서 나타날 수도 있음을 이해하고 있다. 게임 속 난민이 보여준 혼종적 플레이는 인터넷 공간이 가속화하고 권유하는 혼종적 정체성의 작은 판본이다. 무엇보다 디지털공간은 현실보다 매끄럽고 장애물이 적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재난이나 박해로 인한 강제적 이주의 의미가 강한 '난민'보다 본래적으로 흩어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의 존재라는 점에서 '디아스포라'를 강조해 새로운 조어를 선택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이른바 사이버 디아스포라(Cyber Diasporas)라는 개념이다. 사이버 디아스포라의 주인공인 우리들은 정체성이 모호하거나 없는 자들이 아니라 이 곳 저 곳을 매끄럽게 여행하며, 다종의 정체성을 획득하고 혼용하는 존재들이다. 지난 3월 20일 공연한 다원예술작품 <에란겔: 다크투어>에서는 배틀로얄 게임 <배틀그라운드>의 커스텀 게임을 이용해 게임공간을 기존 플레이 방식과 다르게 전유하는 실험을 했다. 사전에 신청한 일반관람객들을 에란겔 섬 세 곳(스쿨, 갓카, 밀타파워)을 지정해 모이게 하고, 그들이 그 안에서 다양한 형식의 게임비평을 듣게 해 교감하는 것이 전반부의 내용이었다. 그 중 스쿨에서 열린 권보연(게임씽킹 디자이너)-장병호(문화연구자)의 스크립트의 한 대목을 소개해본다. "플레이어란 현실과 가상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플레이하고 접속하면서 자기존재를 증명해요. 나는 그것을 착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도 배틀그라운드가 전쟁게임이고 내가 살아남으려면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놀이를 해야한다는 것은 알고 왔어요. 하지만 내가 동숲러 '뽀'로서 이곳에 왔다는 사실은 내가 누군가를 죽이러 선택해 온 것이 아니라는 뜻이예요. 나는 이 곳 배틀그라운드에 내가 좋아하는 것이 많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여기 와보고 싶었죠. 아름다운 자연, 멋진 건물, 신기한 아이템. 그리고 귀여운 춤도 마음껏 출 수 있다고요. 배틀그라운드에서는 총에 맞아 죽는 것만 빼면 내가 동물의 숲에서부터 좋아했던 것들을 다 할 수 있고 즐길 수 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NZUGs-uYmMA ‹에란겔: 다크 투어› #2 .이주민(권보연)/삼선동 주민(장병호) (c)가상정거장) 연사들은 <동물의 숲>의 유저였지만 <배틀그라운드> 에란겔 섬에 자기 발로 왔다고 말한다. 동시에 이 곳의 룰을 이해하고 존중하지만 한편 다르게 사용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그들은 에란겔 섬을 마치 동물의 숲처럼 뛰어다니고, 탐색하는 게임공간으로 만들자고 제의한다. 이 뻔뻔함은 이들이 쫓겨온 난민보다는 자발적 디아스포라처럼 보이게 한다. 약간의 풍자적 유머를 담은 이 씬은 우리 시대의 게이머가 보다 더 적극적인 디아스포라로 전향되었을 때, 오히려 게임공간이 더 많은 가능성으로 해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2021년 대한민국의 게임 난민들은 스스로 자신이 거주한 게임공간에 이의를 제기하고 뛰쳐나왔다. 그리고 이주해 온 땅에 기꺼이 스며들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필자는 게이머가 게임성을 바꾸는 혁명적인 사건의 시작으로 이 사태가 기록되길 바래본다. 이러한 경험이 중요한 이유는 단지 조금 더 공정하게 게임의 룰을 바꾸는 것 뿐 아니라 자신이 가담하고 있는 세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시뮬레이션으로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길어내는 공간이 게임이라면 이 공간에서부터 개길 수 있어야 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오영진 2015년부터 한양대학교 에리카 교과목 [소프트웨어와 인문비평]을 개발하고 [기계비평]의 기획자로 활동해 왔다. 컴퓨터게임과 웹툰, 소셜 네트워크 등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문화의 미학과 정치성을 연구하고 있다. 시리아난민을 소재로 한 웹반응형 인터랙티브 스토리 〈햇살 아래서〉(2018)의 공동개발자이다. 가상세계에서 비극적 사건의 장소를 체험하는 다크투어리즘 〈에란겔: 다크투어〉(2021.03.20-21)와 학술대회 [SF와 지정학적 미학] 연계 메타버스 〈끝나지 않는 항해〉(2012.06~19)를 연출했다.
- 마블 스파이더맨 2, 코믹스의 그늘을 벗어나 자신의 서사를 하는 방법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답할 수 있는 방법은 너무나 많다. 그건 방법론도 다양해서 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제대로 된 독자를 설정하지 못하면 어떤 좋은 이야기라도 먹히지 않을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스티븐 킹은 이야기를 쓰기 전에 가상의 독자를 설정하기를 당부했다. 그리고 매번 그의 가상의 독자 역할을 맡아준건 그의 부인, 태비사 킹이었다. 비록 그런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떤 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달할 것인가, 하는 고민은 좋은 이야기에서는 필수적인 고민이다. < Back 마블 스파이더맨 2, 코믹스의 그늘을 벗어나 자신의 서사를 하는 방법 15 GG Vol. 23. 12. 10. 요즈음의 콘텐츠는 독립적이지 않다 . 모든 콘텐츠는 유기적이고 , 서로 다른 매체 , 서로 다른 차원에서 가지를 치고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낸다 . 하나의 기원에서 출발하더라도 어느 순간 돌아보면 수많은 매체에서 저마다 다른 과실을 맺어내는 미디어 프랜차이즈는 모든 창작물이 지향하는 바가 되었다 . 비디오 게임과 관련된 수많은 프랜차이즈들도 여러 방면으로 확장을 시도해왔다 . 영화에서 시작해 이미 코믹스 , 소설 , 애니메이션이 계속 쏟아져 나온 ‘ 스타워즈 ’ 는 게임 쪽에서도 루카스아츠의 작품들을 위시해 꽤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 ‘ 헤일로 ’ 는 반대로 게임에서 영상물 , 소설 , 코믹스로 뻗어나간 사례다 . 이런 흐름은 슈퍼히어로 파생 작품들도 시작지점만 다를 뿐 유사하다 . 하지만 슈퍼히어로 창작물들은 어떤 면에서 다른 작품들과 큰 차이를 보이는데 , 바로 캐넌 , 정사의 기준이 매우 느슨하다는 점이다 . 미국의 코믹스는 하나의 정사가 아니라 , 수많은 비사들의 집합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 제작사 , 제작자 쪽에서 캐넌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 코믹스는 개별 이슈가 서로 다른 설정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하나의 공인된 정사를 중심으로 돌아가기보다는 수많은 비사 중에서 인기가 많고 , 가장 퀄리티가 좋은 것들이 선택을 받아 이어나가는 식의 구조를 띈다 . 때문에 유독 코믹스 기반의 파생 작품들은 독자적인 서사를 만드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는 했다 . 코믹스의 감각을 그대로 이어가던 많은 창작물들이 혹평을 받고나서야 사람들은 ‘ 코믹스는 생각보다 대중적이지 않다 ’ 는 사실을 깨달았다 . 원작 코믹스 팬들의 기준으로 만들게 되면 , 지나치게 유치하거나 아무리 원작 설정이라지만 선을 넘는게 있었던 것 . 슈퍼히어로 기반의 최고의 프랜차이즈였던 MCU 가 최근 부진한 이유도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여기서도 찾을 수 있다 . 스칼렛 위치를 위시한 캐릭터들의 코스튬이 점점 원작을 닮아가고 , 설정만 믿고 배경서사를 생략하거나 , 인물 간의 관계를 대충 그리거나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 . 그러다보니 중심 서사도 재미가 없어지고 , 또는 관객이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 특히 멀티버스의 적극적인 채용은 그런 이른바 ‘ 뇌절 ’ 의 끝으로 가 , 모든 이슈와 관련 설정을 다른 차원의 이야기 , 그저 멀티버스라는 식으로 사건의 근원과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서 더더욱 성의없는 이야기처럼 보이게 했다 . * 스파이더 토템 , 마스터 위버 , 스파이더 마더 … 문자 그대로 우주로 뻗어나가는 설정 그렇다면 ‘ 마블 스파이더맨 2’ 게임은 어떨까 . 우선 , 스파이더맨은 원작 코믹스에서는 그야말로 뇌절 설정의 상징이다 . 스파이더 토템 같은 설정이 바로 그러한데 스파이더맨과 같은 거미류 슈퍼히어로의 숫자가 늘어다나보니 추가된 설정으로 , 그냥 유전자 변이 거미에게 물려 생긴 슈퍼히어로가 갑자기 우주적이고 신화적인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다 . 거기에 스파이더맨은 복식만 수십가지에 이르고 ,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 스파이더 센스에 대한 묘사도 작품마다 제각각이곤 한다 . 이는 기본적으로 미국 코믹스가 각 작가에 의해서 뇌절에 뇌절에 뇌절을 반복하여 마구잡이로 확장한 뒤에 , 이 중에 괜찮은 걸 타이인 이벤트로 정리하면서 채택하는 식으로 전체 흐름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 그러니 기본적으로 굉장히 난잡하고 , 온갖 좋은 , 그리고 나쁜 설정이 난립하면서 그 안에서도 어떤 설정은 버려지고 어떤 건 정사로 채택된다 . 물론 코믹스 팬들에게는 이것이 재미요소였고 , 다른 것보다 훨씬 짦은 코믹스의 소비 사이클에서는 괜찮은 방법이기도 했다 . 그러나 , 게임이나 영화처럼 제작 기간이 길고 한 작품의 서사 단위가 긴 매체에서는 이런 방식을 채택할 수 없었다 . 때문에 게임이나 영화는 그 자체로 일종의 총집편처럼 , 작품이 어떤 설정을 채택하고 있고 , 또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정리가 되어 있어야 했다 . 인섬니악의 비디오 게임 ‘ 마블 스파이더맨 ’ 시리즈는 그 정리의 시작을 빌런과 주인공 , 스파이더맨의 관계 정리에서부터 시작한다 . ‘ 스파이더맨 ’ 에게는 정말이지 수많은 빌런이 있다 . 단일 히어로로서는 가장 많은 빌런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 그와중에 극적인 서사를 위해서 스파이더맨이 어떤 빌런을 만나게 될지를 미리 정리해두는건 매우 중요했다 . 그래서 1 편에서는 시작과 동시에 스파이더맨이 이미 히어로 활동을 한지 꽤 시간이 지났고 , 수많은 잡다한 빌런들을 이미 다 정리했다는 걸 단 번에 보여준다 . 스콜피온 , 라이노 , 벌쳐 같은 단일로서는 큰 비중을 가지기 어려운 빌런들은 이미 스파이더맨을 만나 싸웠고 , 감옥에 가있다 . 그런데 그 와중에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인물인 옥타비우스 박사가 서사의 중심으로 초반부터 등장한다 . 여기서 대강의 합의가 이루어진다 . 이 작품의 스파이더맨은 여러 잡다한 빌런들은 이미 다 처리했지만 , ‘ 닥터 옥토퍼스 ’ 나 ‘ 그린 고블린 ’ 은 아직 만나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 그리고 서사가 옥타비우스 박사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이상 , 우리는 이 작품에서 이 빌런과 대적하게 될 것임을 직감한다 .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여러 다른 설정들도 빠르게 정리하기 시작한다 . 아직 스파이더맨이 되기 전인 마일즈 모랄레스는 피터 파커의 그 유명한 각성의 과정 , 본작에서는 이미 과거의 일이라고 스킵한 그 과정을 대신 되풀이하고 보여주며 , 이 작품의 후반이나 또는 다음 작품에서 그가 두번째 스파이더맨이 될거라고 넌지시 일러준다 . 히로인은 그웬 스테이시가 아니라 MJ 라는 것 , 이번 스파이더맨이 가진 기술적 역량들 , 그리고 멀티버스 따위는 없다는 것 , 그의 경제적 상태 등등 수많은걸 빠르게 정리한다 . 우리는 이미 ‘ 스파이더맨 ’ 이라는 캐릭터를 알고 있다 . 이는 코믹스보다는 대중 서사인 영화의 덕택이 더 클 것이다 . 그래서 이미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부분은 게임에서는 빠르게 생략되거나 암시되며 , 그 이상의 부분들은 명시적으로 정리된다 . 그래서 모든 독자들 , 스파이더맨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코믹스팬부터 스파이더맨이라고는 영화 밖에 보지 않은 이들까지 모든 독자를 동일한 출발선에 위치시킨다 . 이는 이 게임을 구성하는 수많은 장점 중에 정말 일부분이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부분일 수도 있다 . 그러나 , 서사가 이 게임에서 정말 중요한 위치이고 그 서사라는게 원작과 수많은 변형이 이미 있어왔던 이야기의 반복이라는 점에서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 즉 , 이 게임은 ‘ 무엇인가 ?’ 뿐만 아니라 ‘ 무엇이 아닌가 ?’ 도 동시에 이야기해야 한다 . 이 스파이더맨은 멀티버스도 아니고 , 등장하지 않을 빌런은 누구이며 , 우리가 아는 스파이더맨 서사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같은걸 계속 전해야 한다 . ‘ 마블 스파이더맨 2’ 는 이런 부분이 더더욱 중요했다 . 2 편이 제대로 가속을 받아 서사를 진행시키려면 1 편에서의 이런 정지작업이 필수였고 , 그 다음을 보여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 그 때문에 2 편에서는 새로운 인물들 , 그리고 이전에 등장했지만 아직 서사적인 쓰임이 다하지 않은 인물들 , 그리고 이제는 이야기 전면에 나서야 하는 기존의 인물들 등 수많은 인물들이 다시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 오스본 부자가 전면에 나섰고 , 베놈이라는 새로운 빌런을 위해 필요한 부가 인물들도 등장한다 . 그리고 동시에 기존의 빌런들이 퇴장하기 시작한다 . 벌쳐 , 스콜피온 같은 부가 빌런들은 확정적인 죽음을 통해 서사에서 사라진다 . 이런 과정을 통해 , ‘ 이미 익숙한 이야기 ’ 인 스파이더맨은 ‘ 새로운 이야기 ’ 로서의 당위성을 얻게 된다 . 원래 우리가 알고 있는 인물 간의 관계 , 설정 장치 , 서사의 흐름들을 어떤 것은 지키고 어떤 것은 어기면서 , 전체 총합은 크게 변하지 않음에도 굉장히 새로운 이야기를 접하는 것 같은 감각을 만들어 낸다 . * 어쩌면 이런 부분이 좀더 설득력을 줄 수도 있겠다 원작이 있는 작품들에게 원작은 좋은 참고가 되기도 하지만 , 많은 경우에는 독이 된다 . 이유는 근본적으로 원작과 파생작들은 대체로 차원 자체가 다른 ( 말그대로 과학적인 의미의 ‘ 차원 ’ 도 )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아무리 1 대 1 로 대응하여 옮기더라도 본질적으로 차이가 생길 수 밖에 없고 , 또 여러가지 사정으로 그 1 대 1 이식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결국 스핀오프나 파생작품들은 원전의 요소들을 취사선택할 수 밖에 없으며 , 이 취사선택이 어떻게 되느냐가 항상 논쟁거리가 되곤 한다 . 특히나 코믹스에서 온갖 설정을 쏟아내는 슈퍼히어로물은 이 문제가 더욱 심하다 . 간단하게는 코스튬의 재현에서부터 멀리가면 빌런의 선택 , 캐릭터에 걸친 부가 서사들의 선택까지 모든게 선택의 문제가 된다 . 가령 스파이더맨의 경우에는 뇌절 그 자체인 설정들과 절대 빼놓아서는 안되는 설정들이 많이 있다 . 벤 삼촌의 죽음은 스파이더맨을 구성하는데 빠져서는 안되는 사건이다 . 반대로 스파이더 토템 같은 설정이나 , 많은 이들이 고평가하는 이슈인 ‘ 슈피리어 스파이더맨 ’( 닥터 오토퍼스의 정신이 스파이더맨의 육체에 깃들어 히어로가 되는 이야기 ) 의 경우에도 자칫하면 설정이 과한 , 표현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 ‘ 마블 스파이더맨 ’ 시리즈는 여기서 재미있는 선택을 한다 . 먼저 벤 삼촌의 죽음 같은 , 영웅을 형성하는 서사를 모두 본편에서 빼버렸다 . 설정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 이미 작품 상에서는 오래전 지나간 일이며 구체적으로 언급되거나 묘사되기보다는 플레이어 , 스파이더맨의 팬들이 ‘ 당연히 그런 사건이 있었겠지 ’ 라고 추측하고 넘어가게 만든다 . 대신에 이런 시련을 본편에서 겪는 건 2 대 스파이더맨인 마일즈 모랄레스다 . 이는 매우 영리한 선택이다 .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되풀이하는 건 항상 구태의연하고 지루할 위험이 있다 . 그게 비록 필수적인 부분이라 하더라도 , 서사를 정직하게 항상 모든 사건의 발단에서 시작하는 건 좋은 수가 아니다 . 모든 서사는 시작부터 독자를 강력하게 흡인할 의무가 있으며 , 이야기의 시작지점은 이야기의 마무리와의 간극을 고려해 정해져야 한다 . 동시에 비극의 과정을 마일즈 모랄레스에게로 옮겨 , 플레이어들에게 쉽게 인정받기 어려운 2 대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본작에 녹이고 , 감정적인 이입을 만들어 낸다 . 그리고 결정적인 부분은 , 원작의 설정을 차용하되 그 주도권은 확실하게 본작에 있고 , 원작의 설정을 가져오는데에 1 대 1 로 매칭하지 않고 적절히 변용한다는 점이다 . 이는 마치 기표와 기의의 상관관계 같다 . 예를 들어 ‘ 베놈 ’, ‘ 카니지 ’, ‘ 스크림 ’ 같은 주요한 이름들은 모두 등장하지만 , 그 기표 아래에 본질들은 원작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 . 카니지의 정체인 클리터스 캐서디는 광신도 컬트의 수장으로서 새로운 캐릭터성을 부여 받아 뉴욕 전체를 흔들 가능성이 있는 세력을 이끌어 DLC 의 리딩 빌런이 될만한 포스를 풍긴다 . 반면에 스크림은 단편적인 등장이지만 MJ 의 속내를 피터 파커에게 비춰주고 , 둘의 화해와 결합을 더 단단하게 하는 기폭제로서 작용한다 . * 본작의 베놈은 그 정체가 코믹스와 다르지만 ,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또한 심비오트를 활용하는데 있어 베놈 , 카니지 , 안티베놈 , 스크림을 넘어서서 2 세대니 뭐니하는 설정으로 양산되던 것들을 모두 쳐내고 유명한 심비오트까지만 딱 사용한 것도 적절한 원전의 채용이라고 볼 수 있겠다 . 이렇게 원작 설정에 휘둘리지 않으며 그 설정을 본작이 우위를 가지고 취사선택하고 있다는 점 , 또한 설정에 과도하게 매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매우 훌륭하다 . MCU 는 오히려 그런 설정 자체에 휘말려 , 수많은 등장인물을 그대로 등장시키면서 적절한 번안을 하지 못해 영화 내에서 캐릭터 활용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점이 역력하다 . ‘ 이터널스 ’ 에서 청각장애인으로 번안하여 꽤 깊이있는 캐릭터를 보여준 마카리를 제외하면 이렇다할 특색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실크의 경우 , 원작에서는 지나치게 피터 파커에 의존하는 캐릭터성을 가지고 있었던걸 의식하듯 마일즈 모랄레스와의 다른 접점을 가지고 등장한다 . 또한 확실하지는 않지만 , 중간에 등장한 헤일리의 주변인물과 동일하다면 ( 비슷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 실크 , 신디 문도 원작과 다른 독자적인 캐릭터 서사의 길을 걷는 듯 보인다 . 이런 과정을 통해 , 우리가 그 탄생부터 성장 과정까지 모두 알고 있는 슈퍼히어로가 또 한 번 새로운 이야기로서 매력을 품게되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다 . 무엇보다도 원전의 설정을 있는 그대로 모두 써야 한다는 강박 아래 미리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는 설정 덩어리가 아니라 , 쳐낼 것은 쳐내고 핵심만을 남김으로서 가지각색인 플레이어들의 사전 지식 정도와 무관하게 ( 물론 스파이더맨이라는 존재 자체는 알고 있어야 하지만 ) 대다수의 플레이어가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다는게 중요하다 .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영화 시리즈 까지만 챙겨봤어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이야기들이다 . ‘ 마블 스파이더맨 2’ 의 서사는 단순히 본작 , 아니 조금 더 나가서 1 편에서 시작된게 아니다 . 이 게임은 플레이어들을 수십년 동안 여러 차원을 통해 이어진 스파이더버스에 플레이어들을 중간 난입시켜야 하는 게임이다 . 동시에 이미 지난 수많은 스파이더맨 이야기를 겪은 이들에게도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여야 했다 . 이 두가지를 모두 잡는건 성공보다 실패가 가까운 일이지만 , 인섬니악은 그걸 해냈고 , 그래서 올해 최고의 게임을 논하는데 한자리를 꿰차기 부족하지 않다 . ‘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 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답할 수 있는 방법은 너무나 많다 . 그건 방법론도 다양해서 이기도 하지만 , 무엇보다 제대로 된 독자를 설정하지 못하면 어떤 좋은 이야기라도 먹히지 않을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 스티븐 킹은 이야기를 쓰기 전에 가상의 독자를 설정하기를 당부했다 . 그리고 매번 그의 가상의 독자 역할을 맡아준건 그의 부인 , 태비사 킹이었다 . 비록 그런 정도는 아니더라도 , 어떤 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달할 것인가 , 하는 고민은 좋은 이야기에서는 필수적인 고민이다 . 훌륭한 독자설정 , 그리고 이들을 휘어잡기 위한 폭넓으면서 절제된 이야기 . ‘ 마블 스파이더맨 2’ 은 올해 최고의 서사 중 하나다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이명규 게임 기자(2014~), 글쓴이(2006~), 게이머(1996~)
- 제4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 발표
제 4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에 응모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공모전의 당선작과 수상자를 아래와 같이 공지합니다. < Back 제4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 발표 25 GG Vol. 25. 9. 22. 제 4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에 응모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공모전의 당선작과 수상자를 아래와 같이 공지합니다. 당선작: 게임은 어떻게 우리를 소외시키는가 - 류호준 서브컬처 모바일 게임 비평을 위한 시론 - 캐릭터 뽑기가 갖는 의의란 - 강현 당선작은 오는 10월 10일 오픈할 게임제너레이션 26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심사위원장의 심사평도 26호에 동시 게재될 예정입니다. 응모해주신 많은 분들께 다시한번 감사드리며, 수상자분들께 축하를 전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게임비평공모전, 공모전, 수상작발표, 공지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그려진 힘, 그리는 힘, 그림의 힘: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와 이미지, 그리고 리얼리즘
클레르 옵스퀴르〉는 그 제목부터 미술과 연관성이 명확하다. 잘 알려져 있듯 클레르 옵스퀴르(Clair-obscur)는 이탈리아어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를 프랑스어로 번역한 것이다. 키아로스쿠로는 chiaro(밝은)와 oscuro(어두운)의 합성어로 빛과 어둠의 대비를 극적으로 사용하는 미술 기법을 말한다. 이탈리아 맥락에서는 카라바조(Caravaggio, 1571–1610)로 대표되는 바로크 양식의 연출을 꼽을 수 있고, 프랑스어인 클레르 옵스퀴르로 번역해서는 촛불 그림으로 유명한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 1593–1652) 같은 경우를 떠올릴 수 있다. < Back 그려진 힘, 그리는 힘, 그림의 힘: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와 이미지, 그리고 리얼리즘 24 GG Vol. 25. 6. 10. *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이하 〈클레르 옵스퀴르〉) 스포일러 주의 “현실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 〈클레르 옵스퀴르〉 르누아르, 베르소의 대사 그려진 힘 게임 〈클레르 옵스퀴르〉는 그 제목부터 미술과 연관성이 명확하다. 잘 알려져 있듯 클레르 옵스퀴르(Clair-obscur)는 이탈리아어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를 프랑스어로 번역한 것이다. 키아로스쿠로는 chiaro(밝은)와 oscuro(어두운)의 합성어로 빛과 어둠의 대비를 극적으로 사용하는 미술 기법을 말한다. 이탈리아 맥락에서는 카라바조(Caravaggio, 1571–1610)로 대표되는 바로크 양식의 연출을 꼽을 수 있고, 프랑스어인 클레르 옵스퀴르로 번역해서는 촛불 그림으로 유명한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 1593–1652) 같은 경우를 떠올릴 수 있다. 클레르 옵스퀴르는 독특한 기법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밝음과 어두움의 대비는 모든 재현적 이미지에서 항상 중요한 문제다. 밝음과 어두움을 통해서 배경과 형상은 분간되고, 빛과 어둠의 균형과 불균형은 매번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세계의 모습을 드러낸다. 더 나아가 완전히 상반된 것처럼 보이는 빛과 어둠의 존재가 서로 얽혀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빛을 통해서 어둠을, 어둠을 통해서 빛을 감각한다. 이러한 문제는 〈클레르 옵스퀴르〉를 관통하는 주제와도 연결된다. 삶과 죽음, 현실과 가상, 과거와 현재, 진짜와 가짜, 그리는 이와 그려진 것, 그림 밖과 그림 속 등등 서로 전혀 다른 것들 사이에서. * Caravaggio, David with the Head of Goliath, 1610. * Georges de La Tour, Magdalene with the Smoking Flame, c. 1640. 〈클레르 옵스퀴르〉에서 플레이어가 탐험하게 되는 세계는 그림 속이다. [1] 플레이어는 게임의 중반 이후인 2막을 끝내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되고, 그때까지의 스토리는 반전을 중심으로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돌이켜보면 일반적인 판타지 세계관에서 마나에 해당하는 마법적 에너지를 크로마(Chroma, 색채)라고 부르는 등 곳곳에서 여기가 그림 속이라는 세계관 설정이 드러난다. 캐릭터 설정은 이러한 세계관 문제와 연결해서 생각해 볼 지점이 특히나 많은데, 르누아르는 당연히 그 유명한 화가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1841–1919)를 연상시키고, 페인트리스이자 르누아르의 아내, 베르소의 어머니인 알린은 실제 르누아르의 모델이었던 알린(Aline Charigot, 1859–1915)과 또 다른 화가인 알린(Aline Réveillaud de Lens, 1881–1925)이 겹쳐 보인다. 초반부 주인공 역할을 하는 귀스타브 역시, 게임 속에서도 중요한 건축물로 등장하는 에펠탑을 건축한 에펠(Gustave Eiffel, 1832-1923)과 이 글의 맥락에서 중요한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가 겹쳐 읽히는 캐릭터다. 연상되는 인물들 모두 게임 속 설정과 같은 19세기 프랑스의 벨 에포크 시대의 예술가들이라는 점은 이러한 접근에 개연성을 확보해 주기도 한다. 주인공 중 한 명인 마엘은 이 세계가 그림 속이라는 것을 깨달은 뒤, 각성하여 엄청난 힘을 얻는다. [2] 플레이어는 마엘을 통해 게임 초반부에 원정을 떠나게 한 원인인 고마주(Gommage, 프랑스어로 ‘지우다’는 뜻)를 직접 사용할 수도 있게 된다. 그의 아버지인 르누아르처럼 캔버스 세계에서 존재를 지워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각성 이후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기술인 스탕달은 너무 높은 버그성 데미지 때문에 결국 핫픽스로 너프까지 당했다. 그 기술은 작가 스탕달(Stendhal, 1783-1842)의 이름에서 따온 것일 텐데, 스탕달의 문학 작품보다는 이른바 스탕달 신드롬이라고 불리는 현상과 더욱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스탕달은 『로마, 나폴리, 피렌체』에서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성당을 방문했을 때, 그 숭고한 아름다움에 푹 빠져 심장이 마구 뛰고 결국에는 생명이 고갈되는 것 같은 엄청난 황홀경에 빠졌던 경험을 묘사한다. 그 이야기에서 비롯하여 뛰어난 예술 작품의 영향으로 심신에 충격을 받는 것을 스탕달 신드롬이라고 부른다. 예술 작품 때문에 실신하는 현상을 뜻하는 그 기술의 이름을 생각하면, 스탕달이 긴급 너프를 당할 정도로 높은 데미지 계수를 가지고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지금껏 모험한 세계가 모두 그림 속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뒤, 얻는 픽토스의 이름이 ‘그려진 힘’(painted power)이라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그전까지 최대 데미지의 상한선이었던 9999를 돌파할 수 있게 해주는 핵심 중의 핵심 아이템으로, 이 아이템을 얻은 이전과 이후의 게임 경험은 말 그대로 차원이 달라진다. 단지 스토리의 맥락뿐 아니라, 플레이어의 게임적 경험에서도 각성과 한계 돌파를 직접 체감할 수 있게 해주는 탁월한 장치인 것이다. 여기에서 또 중요한 논점은 이 세계가 단지 그림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후, 허무주의로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림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 각성을 하게 되는 서사 구조에 있다. 물론 이 세계는 아들 베르소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데상드르 가족이 그림 속으로 현실 도피하여 만들어진 곳이지만, 점점 현실을 자각하며 회복하는 단선적인 서사를 그리지 않고, 오히려 캔버스 속 세계에서 만난, 사실 한낱 그림에 불과한 친구들에게 입체적인 서사를 부여한다. 귀스타브, 루네, 시엘과 같은 그림 속 동료들 모두 각각 고유의 이야기를 가지고 플레이어와 복잡한 관계를 맺는다. 데상드르 가족이 키우던 개가 의인화된 캐릭터 모노코, 현실에선 잘 때 안고 자는 인형인 에스키에도 그림 속 세상에선 주체성을 가진 인물이 된다. 최종적으로 엔딩 분기점은 그림 속에 남을 것인지, 현실로 돌아갈 것인지를 플레이어가 선택하게 만든다. 캔버스 속 가짜 친구들과 현실의 진짜 가족들 사이의 선택이지만,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선택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플레이어가 세계관에 몰입하여 그림 속 가짜 친구들과 진짜 관계를 맺게 되는 문제도 있지만, 필자가 중요하게 짚어내는 부분은 게임의 서사와 플레이의 경험이 겹쳐지며 드러나는 두 층위의 그림이다. 게임 속 세계가 단지 그림일 뿐이었다는 층위,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플레이어가 보고 있는 모니터 속 그림일 뿐이라는, 게임 그 자체의 층위. 여기에서 실제로 스탕달 신드롬을 겪는 것은 우리 플레이어라는 말이다. 〈클레르 옵스퀴르〉를 통해서 근본적으로 데이터 쪼가리와 픽셀에 불과한 이 그림들에 대해 생각한다. 아니 그림이, 게임이 대체 무엇이길래? 그리는 힘 엔딩 분기점은 마엘을 선택하여 그림 속 세계에 머물 것인지, 베르소를 선택하여 캔버스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갈 것인지를 플레이어에게 묻는다. 만약, 마엘을 선택하여 그림 속 동료들과 모험을 계속하기를 선택한다면, ‘그리는 삶’이라는 제목의 에필로그가 이어진다. [3] 그림 속 세상에서 페인트리스의 힘을 각성한 마엘은 죽은 동료들을 모두 살려낸다. 베르소가 연주를 준비하고 있는 콘서트장에 친구들이 하나 둘 모이고 이제 연주가 막 시작되는 순간, 화면은 마엘의 얼굴을 클로즈업 하여 담는다. 친구들이 모두 모였지만 전혀 기뻐 보이지 않는 공허한 표정의 얼굴이다. 심지어 마엘의 얼굴은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하고, 곧이어 암전. 이 게임의 세계관에서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 중 현실과 연동된 존재들은 모두 얼굴이 깨져 있다. 페인트리스(알린), 큐레이터(르누아르), 소년(베르소), 그리고 에필로그의 마엘까지. 얼굴 없는 존재는 곧, 거울을 볼 수 없는 존재이다. 돌이켜보면 플레이어는 게임 곳곳에서 거울을 마주하지만, 기술적인 문제인지 거울은 그 어떤 이미지도 반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거울은 계속해서 등장한다. 이곳이 그려진 그림이라는 것을 가장 명확하게 알려주는 장치인 알리시아의 편지에도 이 세상은 “거울에 비친 모습”이라고 쓰여 있다. 세계 곳곳에는 거울이 비밀 통로로 등장하고, 캔버스의 프레임과 거울의 프레임이 구분되지 않게 그려진다. 게임 속 세계에서 캔버스와 거울은 겹쳐 있다. 마침 위에서 언급했던 스탕달의 소설 『적과 흑』에는 예술 작업이 “길 위를 따라다니는 거울”이라고 쓰는 구절이 나온다. [4] 거울은 세계와 예술 작업의 관계를 드러내는 비유이자 장치이다. 거울과 그림은 모두 세계를 반영한다. 게임 속 르누아르도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며 “현실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고 말하는데, 흥미롭게도 이러한 관점은 귀스타브 쿠르베의 리얼리즘을 연상시킨다. 쿠르베는 “회화란 본질적으로 구체적인 예술이며, 실재하고 존재하는 사물들의 재현 외에는 아무것도 표현할 수 없다.”라며 세계와 그림의 관계를 극단적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5] 물론 쿠르베의 말은 역사화나 종교화와 비교하여 현실을 담아내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리얼리즘의 관점에서 나온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리얼리즘이라는 문제는 지금 맥락에서 한번 더 생각해 볼 점이 있다. 리얼리즘이라는 태도로 만들어내는 것은 언제나 가짜, 픽션, 매개, 그리고 그림이라는 점이다. 가짜에 진짜를 담으려는 시도 자체가 리얼리즘인 것일까. 아무리 리얼리즘을 강조해도 세계는 그대로 담기지 않는다. 예술적 매개를 통해 우리가 볼 수 있게 되는 것은 오히려 우리의 현실 세계가 어떻게 매개되어 있는지이다. 현실에서 맨눈으로 볼 수 없던 이데올로기적 장막이 그림에서는 거두어지는 경우가 있다. 쿠르베는 그 이전엔 결코 그림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았던 노동자들을 그렸다. 현실에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재현되지는 않았던 존재들이 그림 속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우리는 그림을 통해 현실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 Gustave Courbet, The Stone Breakers, 1849. 마엘 엔딩의 에필로그 ‘그려진 삶’은 마치 배드 엔딩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림 속에 남기를 택했기 때문에 플레이어와 동료들은 엔딩 이후에도 세계를 계속 탐험할 수 있다. 플레이어는 이른바 엔드 게임 콘텐츠라고 할 수 있는 클레아와의 전투, 0원정대의 일원인 시몽과의 전투 등 다양한 모험을 통해 이 캔버스 세계 곳곳에 숨겨진 이야기를 더 발견한다. 세계관 전체에서 가장 강력한 적인 시몽을 만나기 위해 ‘뤼미에르의 밑그림’에 들어가면, 현실의 르누아르와 연결된 얼굴 없는 빛바랜 남자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그는 “창조에는 행동의 의지가 필요하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날 움직인다”고 말한다. 물론 그는 그림 속에 매몰된 알린을 비판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림을 그리는 실천 자체의 힘에 대해 이야기 한다. 현실 도피도 현실 반영도 아닌, 현실 속 존재에게 힘을 주는 실천으로서의 그리기. 그림의 힘 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의 『자연사』에는 그림의 기원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해진다. 부타데스라는 어떤 도공의 딸이 사랑하던 사람과 떨어지게 되어 등불에 비친 실루엣을 따라 벽에 그림을 남겼다는 것이다. 그 흔적이 최초의 그림이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이 전설은 그림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부재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림과 현실이 맺는 관계, 그리고 실천으로서의 애도. 게임 속 페인트리스가 했던 일도 정확히 같은 것이다. 이미지는 가짜이지만, 우리를 움직인다. 바르트는 “죽음은 사진의 본질(eïdos)”이라고 쓰면서 우리를 찌르는 이미지들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6] 픽션이라는 관점에서도 다시 생각해 볼 것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픽션은 실재와 대비되는 허구의 것을 의미하지만, 자크 랑시에르는 픽션(fiction)의 어원인 라틴어 fingere의 뜻이 “-인 체하다”가 아니라 “벼려 만들다”라는 점을 짚어내면서 다른 사유의 경로를 열어낸다. 그런 의미에서 픽션은 사건과 형태, 기호의 체계를 구축하고 재조직하는 것이다. 픽션은 상상적 세계의 발명이 아니다. 오히려 주체, 사물, 상황이 공통 세계에 공존하는 것으로서 지각될 수 있는 틀, 사건이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사고되고 연결될 수 있는 틀을 조직하는 것이다. 랑시에르는 실재와 픽션 사이의 유사성이나 진위를 문제 삼지 않고, 심지어 예술의 바깥으로서의 실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하기도 한다. “실재는 늘 픽션의 대상이다. 즉, 볼 수 있는 것, 말할 수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이 맺어지는 공간을 구축하는 행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7] 픽션이라는 문제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 픽션이 구축해 낸 실재라는 대상이 아니라, 구축하는 작업의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랑시에르는 실재를 가장하지 않고 실재를 대상으로 삼는 바로 이 픽션의 작업이 예술과 정치를 매개한다고 주장한다. [8] 다시 게임 담론으로 돌아와서 필자는 여기에서 “안에 사람들이 있잖아!”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발견한다. 게임이 온라인으로 실제 다른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지 않더라도, 모니터 안의 그림들이 정말로 그저 데이터 쪼가리, 픽셀일 뿐이더라도 우리는 그것과 진짜 관계를 맺는다. 그림들은 우리를 웃기고, 울리고, 찌르고, 무엇보다도 변화시킨다. 〈클레르 옵스퀴르〉의 엔딩 분기점은 마치 〈매트릭스〉의 빨간약과 파란약을 연상시키는 것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다른 점이 많다. 〈매트릭스〉에서는 빨간약을 먹고 현실을 자각하는 것이 각성이고, 파란약을 먹고 가상의 세계에 머무는 것이 우매한 상태로 남는 것이지만, 〈클레르 옵스퀴르〉에서는 이 세계가 가상임을 알면서도 각성된 상태로 이곳에 머무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 〈클레르 옵스퀴르〉 ‘그리는 삶’ 에필로그 마지막 장면. 여기에서 깨어 있는 상태로 가상에 머무는 존재는 사실 플레이어 그 자체가 아닐까. 마엘 엔딩 에필로그의 마지막 장면, 마엘의 얼굴이 화면 가득 담기는 상태에서 엔딩 크레딧으로 넘어가며 화면은 온통 검은색이 된다. 그 순간, 검은 화면이 블랙미러가 되면서 플레이어는 자신의 얼굴을 마주한다. 취해 있으면서 동시에 깨어 있는 존재, 몰입과 각성 사이에 놓인 존재인 플레이어. 플레이어는 진짜를 통해서 가짜를, 가짜를 통해서 진짜를 사유한다. 매개된 현실을 통해 우리는 현실의 세계를 비추어 본다. 리얼리즘의 근본적인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클레르 옵스퀴르〉의 세계관에서 페인터들은 마치 마법적 능력을 지닌 사람들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것은 가상의 설정이 아니라, 실제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상상을 형식으로 매개하는 일. 그 일은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게임이라는 매개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플레이어들을 생각한다. 그림의 힘, 픽션의 힘, 게임의 힘, 그리고 플레이어의 역능. [1] 정확히 이야기하면, 플레이할 수 있는 캐릭터 중 하나인 베르소가 어릴 적 그린 캔버스 속 세계. 현실의 베르소가 죽은 뒤, 그의 어머니인 알린과 아버지인 르누아르, 그리고 누이인 클레아가 덧칠을 하고, 또 그림을 지우면서 형성된 세계가 플레이어가 탐험하고 있는 곳이다. [2] 베르소의 동생인 마엘도 이 세계를 그린 데상드르 가족의 일원으로 크로마를 다루어 그림 속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마엘의 그림 바깥 세계 본명은 알리시아. [3] 반대로 그림에서 벗어나길 원하는 베르소를 선택할 경우, 에필로그의 제목은 ‘사랑하는 삶’이다. [4] 스탕달, 『적과 흑』 2권, 문학동네, 213쪽. [5] Letters of Gustave Courbet, edited and translated by Petra ten-Doesschate Chu,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2, pp. 203-206. [6] 롤랑 바르트, 『카메라 루시다』, 조광희 옮김, 열화당, 1997, 22쪽. [7] 자크 랑시에르, 『해방된 관객』, 양창렬 옮김, 현실문화, 2016, 107쪽. [8] 이나라, 「픽션의 작업: 랑시에르의 예술의 정치」, 『현대미술학회지』, 2018, 78쪽.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큐레이터, 미술비평가) 권태현 글을 쓰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예술계에서 활동하지만 쉽게 예술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것들에 항상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예술 바깥의 것들을 어떻게 예술 안쪽의 대상으로 사유할 수 있을지 탐구한다. 정치적인 것을 감각의 문제로 파악하는 관점에 무게를 두고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7000eichen@gmail.com )
- <로블록스>에서 어린이는 어떻게 생활하는가?
<디지털 시민교육을 위한 어린이 미디어 생활 연구: 로블록스에서 어린이는 어떻게 생활하는가?>는 로블록스에서의 어린의 삶을 이해한 후, 비로소 의미있는 디지털 시민교육이 가능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KATOM) 소속인 교사 및 연구자들은 직접 로블록스 이용자를 대상으로 로블록스 속 어린이의 삶을 질적연구방법론으로 분석하였다. 이 글에서는 위 보고서를 인용해 로블록스에서의 어린이의 삶을 살펴보고자 한다. < Back <로블록스>에서 어린이는 어떻게 생활하는가? 25 GG Vol. 25. 8. 10. 교육의 가장 큰 목적이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면, 디지털 미디어 교육에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어린이의 미디어 속 삶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고 그들의 삶과 문제상황들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초등학생의 미디어 이용 중 가장 주목해야 할 플랫폼은 로블록스이다. 로블록스는 2023년 기준(2023, 한국언론진흥재단) 초등학생의 90%가 이용하는 플랫폼이며 10대에서는 남녀 상관없이 유튜브, 카카오톡에 이어 이용률이 가장 높다. 이용률 면에서도 주목해야 하지만, 로블록스는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 모든 성별이 함께 이용하는 ‘메타버스’ 기반 게임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린이들은 로블록스 안에서 살아간다. <디지털 시민교육을 위한 어린이 미디어 생활 연구: 로블록스에서 어린이는 어떻게 생활하는가?>는 로블록스에서의 어린이의 삶을 이해한 후, 비로소 의미있는 디지털 시민교육이 가능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KATOM) 소속인 교사 및 연구자들은 직접 로블록스 이용자를 대상으로 로블록스 속 어린이의 삶을 질적연구방법론으로 분석하였다. 이 글에서는 위 보고서를 인용해 로블록스에서의 어린이의 삶을 살펴보고자 한다. 어린이들의 온라인 놀이터, 그리고 작은 지구촌 로블록스가 어린이들에게 중요한 플랫폼이 된 것은 팬더믹 시기 이후이다. 이 시기에 전 세계적으로 고립된 어린이들은 로블록스 안에서 만나 놀이를 시작했다. 그리고 팬더믹 시기가 끝났지만 로블록스 공간은 어린이들의 온라인 놀이터로 살아남았다. 일상 속에 정착한 스마트기기 덕분이기도 했지만 사교육으로 부족해진 공동의 놀이 시간, 소음에 대해 늘 조심해야 하는 공동거주공간의 특성, 안전한 놀이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도시공간 등 다양한 요인이 어린이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놀이터를 포기하고 온라인 놀이터를 선택하게 했다. 로블록스는 밤 늦게라도, 잠깐이라도 어린이들이 모여서 놀이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다. 해외로 어학연수를 가거나 멀리 이사를 간 친구, 진학으로 멀어진 친구들과도 어린이들은 로블록스 안에서 만날 수 있다. 어린이들은 로블록스 공간 안에서 친구들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 만으로도 힐링이 된다고 한다. 서희(11, 여)가 그린 로블록스 경험은 놀이공원처럼 표현되었다. 소통과 어울림은 로블록스 경험의 중심에 있다. 어린이들이 로블록스 안에서 만나는 것은 친구나 가족뿐인 것은 아니다. 로블록스는 온라인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장이다. 진희(12, 여)는 로블록스에서 만난 온라인 친구와의 만남이 준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진희는 어린이들이 많이 경험하는 점프맵에서 처음 본 사람들과 함께 게임을 했다.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함께 놀아주고 플레이할 때 기다려 주는 등 배려해 주면서 유대를 쌓았으며 이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많은 어린이들은 로블록스 안에서 친해진 온라인 친구를 여럿 가지고 있다.플레이어들의 다양성은 어린이들에게 국제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완전 핫하게 꾸민 스킨’이나 매너를 잘 지킨다는 이유로 외국인을 선호하는 어린이들도 있다. 특별히 영어를 잘 못해도, 바디랭귀지와 이모트, VR 등을 통해 소통은 충분히 가능하다. 특히 스킨은 로블록스에서의 중요한 비언어적 소통수단이다. 어린이들은 모르는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스킨을 이용해 상대방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자신을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무료스킨만으로 자신을 꾸미다가는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거나 이유없이 욕을 먹을 수도 있다는 불문율도 어린이들 사이에 있다. 여러모로 로블록스에서의 삶 역시 비용이 드는 사회생활인 것이다. 로블록스에서의 부정적 경험들 무료 스킨의 일화에서 드러나듯, 모르는 사람들과의 만남엔 부정적 경험도 있다.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것은 폭력적 이용자들이다. 어린이들은 유독 한국 이용자들이 이런 특성이 많다고 호소한다. 게임을 하다가, 아이템을 거래하다가 이들은 폭력적으로 행동한다. 소통을 시도하다가 잘 안되어서 자리를 피하면 끝까지 쫓아와 욕을 하는 이용자도 있다. 어린이들은 이런 상황들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고 한다. 게임 중 갑자기 욕을 먹은 경험 (김민아, 10, 여) 저학년 어린이들은 이런 일이 있을 때 자리를 피하거나 게임을 중단해 버리지만, 같이 맞서서 욕을 하거나 싸우는 어린이도 적지 않다. 게임 공간 안에서 폭력적 문화가 대물림되는 과정이다. ‘어드민’ 의 괴롭힘은 보다 적극적인 괴롭힘이다. Free Admin 게임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어드민 권한을 가질 수 있는데, 어드민 등급이 로벅스 가격에 의해 결정되다보니 본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높은 등급의 어드민 이용자들이 다른 이용자들을 괴롭히거나 죽이는 명령어를 적용시켜 게임을 못하게 하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재윤(11, 여)은 ‘로블록스에 대한 내 생각’을 마인드맵으로 표현하였는데, ‘맵’ 키워드와 관련하여 경험한 기분나쁜 경험에 대한 생각을 가득 적었다.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점프맵’과 관련하여, ‘어드민이 많다.’, ‘나쁜 어드민’, ‘게임을 못하게 맵을 망가트린다.’ 등의 진술이 반복된다. 고은은 어드민처럼 보이는 사람이 못 가게 하더니 욕을 했고, 쫓아오면서 욕을 하길래 같이 욕을 했더니 그 사람이 신고를 해서 계정이 정지되었다. 이런 일은 종종 있다. 어린이들이 경험하는 또 다른 충격적인 경험은 ‘사기’ 이다. 위의 재윤의 마인드맵에도, 다른 어린이들의 만화에도 사기 경험은 가장 높은 빈도수로 나타난다. ‘입양하세요’ 게임에서 이런 일이 특히 빈번하게 일어난다. 아원(16, 여)은 초등학교때 열심히 키우던 닭이 있었다. 그런데 어떤 이용자가 다가와서 좋은 아이템으로 바꾸어준다고 했다. 그런데 그 이용자는 닭을 받고 사라져버렸다. ‘실감이 안난다.’ ‘현실을 부정한다.’ ‘게임에서 열심히 번 것이어서 주저앉아 운다.’ 사기는 어린이들이 게임 공간에 들인 노력과 마음을 한 순간에 무너트린다. 로벅스가 만드는 삶의 고난 이런 문제들은 오프라인 공간과 마찬가지로 어린이들의 삶의 공간이 무료가 아니라는 지극히 냉정한 현실에 기인한다. 로블록스는 로벅스 경제의 토대 위에 세워져 있고, 무료 포인트나 이벤트 등은 없다. 이상적으로는 이러한 로벅스 경제는 어린이들이 광고 없이 디지털 미디어 공간에서 건전한 경제생활을 연습할 수 있는 경험의 토대가 되겠지만, 이용자 중심의 로벅스 세계, 그리고 어린이들의 게임 머니를 통제하는 양육 관행은 어린이들을 로블록스 세계의 경제적 약자로 만들었다. 어린이들의 로블록스 경험에서는 앞서 언급한 ‘사기’ 외에도 ‘구걸’, ‘기부’. ‘노동’ 등의 키워드가 공통적으로, 그리고 높은 빈도수로 나타난다. 오프라인에서라면 아동권리 보호차원에서라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만, 온라인에서는 그런 보호가 없다. 미디어 기업 대 이용자의 관계가 아닌, 이용자와 이용자간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플리즈 도네이트’ 게임은 기부를 위해 찾는 게임이다. 이곳에서는 기부, 즉 로벅스를 주고받는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진다. 무과금 유저인 어린이들은 게임을 하고, 점프를 하고, 리액션을 하면서 로벅스를 기부받고 남는 로벅스를 기부하기도 한다. 인터뷰에 응한 어린이들은 이것을 ‘노동’이라고 표현했다. 재미있으려고 플레이하는 것이 아니라 로벅스를 얻기 위해 무의미한 플레이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을 하고도 댓가를 받지 못하는 일도 많다. 현수(11, 여)는 이것을 공사장에서 노동을 했는데 월급을 못 받는 것과도 같다고 했다. 심지어 로벅스를 기부해달라고 ‘구걸’을 하는 일도 빈번하다. 기성세대가 듣기에 충격적인 이러한 일화들은 어린이들의 일상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는 2021년 일반논평 제 25호를 통해 디지털 환경에서의 아동권리 또한 오프라인과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는 것을 발표하였으나, 디지털 미디어 환경은 아직 정글에 가깝다. 디지털 시민의식, 그리고 온라인에서의 아동 권리 로블록스 경험 속에 포함된 부정적 경험들에 대해 기성세대들이 가장 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점은 접근을 차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차단은 근본적으로 디지털 미디어에서의 삶을 막을 수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잃는 결과를 가져온다. 또한 이것은 어린이들이 미디어 안에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소통과 즐거움의 기회, 그리고 미디어 이용자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는 권리 침해에 해당한다. 다양한 경험과 시행착오 안에서 어린이들은 미디어 정글 안에서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고, 삶의 지식을 얻는다. 연구에 참여한 어린이들은 면담 전에는 노동, 혐오와 차별, 성적 대상화, 상업적 이용, 언어폭력 등 많은 문제들을 권리침해로 인식하지 못했지만 면담과 선생님과의 대화를 거치면서 로블록스에서 만난 위기에 대처하거나, 악성 이용자를 차단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고 말해주었다. 나중에 찾아와서 나쁜 이용자를 차단한 이야기를 해 준 어린이도 있었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디지털 시민교육이 좋은 로블록스 세계를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로블록스는 자신들에게 소중한 공간이니, 서로서로 약속을 잘 지켜서 로블록스를 지켜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어른들의 도움이다. 어른들은 보호자이기도 하지만, 로블록스와 같은 디지털 세계를 구성하는 이용자들이며, 아이들에게는 미디어 안의 강자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민의식이 어린이 청소년 뿐 아니라 모든 미디어 이용자들에게 필요한 중요한 이유이다. 이 연구는 로블록스 본사에 전달되어, 어린이들의 의견들은 일부 새로운 정책에 적용되었다. 교사, 학부모, 어린이를 위한 가이드북 [1] 이 만들어지고, 로블록스의 신고기능을 강화하고, 필터를 없애는 대신 채팅기능을 연령별로 차단하는 등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어린이들의 경험이 지금 이 글처럼 더 많은 이용자들에게 공유되고, 게임 교육에 대한 인식 개선을 이끌어내는 것일 듯 하다. 디지털 시민들의 노력을 통해 더 안전한 어린이들의 놀이터가 되길 기대한다. [1] 로블록스-디지털 시민교육 가이드북은 KATOM 홈페이지( katom.me )에서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 참고문헌 박유신, 김아미, 김세진, 김완수, 김원영, 박소현, 서용리, 양철진, 하윤영, 차은영(2023) 「디지털 시민교육을 위한 어린이 미디어 생활 연구: 로블록스에서 어린이는 어떻게 생활하는가?」, 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 Tags: 미디어리터러시, 교육, 어린이, 로블록스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교사) 박유신 초등학교 교사이며, 미디어와 교육 연구자이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 게임, AI에 이르기까지, 어린이들의 디지털 미디어에서의 삶과 문화를 인정하는 것이 교육의 기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더 알고 싶어하지만 쉽지 않다. 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에서 회장직을 수행중이다.
- 일상시뮬레이션, 현실을 편집하는 꿈을 꾸다 - <심즈> 시리즈를 중심으로
<심즈>는 특정 대상의 생활을 시뮬레이션하는 소위 ‘라이프 시뮬레이션(Life Simulation)’ 비디오 게임 중에서도 대명사 격에 위치한 시리즈다. 현대적인 직업을 갖고, 퇴근 후 집안일을 하며, 때에 맞춰 공과금을 내야 하는 생활을 다루는 <심즈> 시리즈는 “가장 말도 안 되는 판타지”를 실현하는 비디오 게임으로 예화 되기에는 부적절해 보인다. <심즈> 시리즈의 디자이너 윌 라이트(Will Wright)는 최초에 <심즈>를 구상했을 때 이 게임이 제공할 수 있는 즐거움을 회사에 설득하기가 어려웠다고 회고한다. < Back 일상시뮬레이션, 현실을 편집하는 꿈을 꾸다 - <심즈> 시리즈를 중심으로 20 GG Vol. 24. 10. 10. "Video games are great. They let you try out your craziest fantasies. For example, on The Sims, you can have a job and a house." "비디오 게임은 위대하다. 게임은 당신이 가진 것 중 가장 정신 나간 공상까지 이뤄준다. 예를 들어 <심즈The Sims>에서, 당신은 직업과 집을 가질 수 있다." -인터넷 상에서 발견한 익명의 농담 * 심즈3(The Sims™ 3) 스팀 소개 이미지, EA 제공 <심즈>는 특정 대상의 생활을 시뮬레이션하는 소위 ‘라이프 시뮬레이션(Life Simulation)’ 비디오 게임 중에서도 대명사 격에 위치한 시리즈다. 현대적인 직업을 갖고, 퇴근 후 집안일을 하며, 때에 맞춰 공과금을 내야 하는 생활을 다루는 <심즈> 시리즈는 “가장 말도 안 되는 판타지”를 실현하는 비디오 게임으로 예화 되기에는 부적절해 보인다. <심즈> 시리즈의 디자이너 윌 라이트(Will Wright)는 최초에 <심즈>를 구상했을 때 이 게임이 제공할 수 있는 즐거움을 회사에 설득하기가 어려웠다고 회고한다. “쓰레기를 치우고 화장실을 청소하는 게임”의 기획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세계를 구하거나 제트기를 조종하는” 게임들과 비교하면 <심즈>에 흥미로운 요소가 없다고 생각했다(Barnes). “가장 정신 나간 공상”이라고 일컬어진 대목은 물론 “쓰레기를 치우고 화장실을 청소하는” 부분은 아닐 것이다. 그 공상은 <심즈>에서 플레이어가 서는 출발선과 관련을 맺는다. <심즈>를 최초로 시작할 때, 플레이어는 ‘심’이라고 불리는 아바타를 하나 혹은 여럿 만들어낸다. 심의 성격과 취향, 생김새를 빚어낸 플레이어는 주어진 초기 예산을 바탕으로 그의 심들에게 거주지를 지정한다. 자신의 거주지를 거점으로 심들은 <심즈>의 가상 세계에 진입하고 직업을 구해 본격적으로 생계와 살림을 꾸려 나간다. 심의 생계와 살림은 ‘허기’, ‘용변’, ‘재미’, ‘수면’, ‘위생’과 ‘사교’로 대표되는 그들의 여섯 가지 욕구를 충족하거나 억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플레이어는 단순히 즉각적인 욕구를 충족하기를 넘어서 다종다양한 야망을 이룰 수 있도록 심의 일상을 구조화해 나갈 수 있다. 『커밍 업 쇼트』에서 제니퍼 M. 실바(Jennifer M. Silva)는 포스트산업 노동 계급의 세대가 “성인이 되는 경험”을 “블루 칼라 일자리가 아니라 그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생겨난 유동성과 유연성”으로서 정의하는 보편적인 경향을 확인한다(실바 54-55). <심즈> 시리즈는 아메리칸 드림과 미국 중산층 교외의 삶을 테마로 삼아 출발했다. “당신은 직업과 집을 가질 수 있다”로 끝나는 펀치라인은 플레이어의 심에게 주어지는 출발점 자체가 “가장 정신 나간 공상”의 영역에 속하게 된 유동성과 유연성의 시대를 가리키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당신’의 현실에서 불가능한 바를 게임 속에서 이룬다는 대리 충족의 논리는 우리가 라이프 시뮬레이션, 혹은 생활 시뮬레이션을 유희적으로 즐길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도 깔끔한 설명을 내놓는 것처럼 보인다. 도대체 왜 우리가 가상 세계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화장실을 청소하기를 감수하는가? 그게 더 나은 삶, 더 좋은 삶의 가능성이 확정적으로 열려 있는, 개연성 있는 허구적 세계 안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더 좋은 삶’에 대한 정의는 물론 개인화되고 다양화될 수 있겠다. 하지만 어떠한 정의에서나 “쓰레기를 치우고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이 그 좋은 삶의 가능성을 유지하는 목적 지향적인 행동으로 의미 지어지고, 반복할 만한 가치와 쾌감을 띄는 것은 동일할 것이다. ‘진짜 현실과는 다르게’ 말이다. 이는 아바타와 플레이어 사이의 강한 동일성을 근거로 손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제공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설명은 생활 시뮬레이션의 다양한 플레이 양상 중 한 가지 버전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여러 생활 시뮬레이션 중에서도 적어도 <심즈>는 아바타와 플레이어 사이의 강력한 동일시를 가능하게 만드는 장치들이 강제력을 갖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아바타를 가상 세계의 중심에 두고서 등 뒤를 바라보는 시점으로, 혹은 아바타의 1인칭 시점으로 주변을 관망하도록 강제 받지 않는다. 하나의 아바타만 조작하는 플레이가 장려되는 것도 아니다. <심즈 4>에서 플레이어는 자신의 시점에 일치된 카메라로 심들이 자리한 공간을 원형 극장처럼 360도 돌려가며 관망할 수 있다. 플레이어는 정밀 카메라를 조작하는 듯한 감각으로 한 아바타의 움직임을 쫓거나 상을 확대하거나 축소할 수도 있고, 하나의 심, 하나의 가정만을 조작하지 않고 다른 동네에 사는 여러 가정을 돌아가며 조작할 수도 있다. 거주지만이 아니라 심들이 방문할 수 있는 술집, 클럽, 헬스장을 지을 수 있고, 심의 생활을 플레이하는 도중 잠시 시간을 정지시키고 인테리어를 바꿀 수도 있다. 이러한 가단성은 ‘놀이터’, ‘모래사장’ 혹은 ‘장난감’으로 시뮬레이션 게임을 다루는 논리를 뒷받침한다. ‘놀이터’의 은유는 게임 연구가 곤살로 프라스카(Gonzalo Frasca)의 논의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다. 시뮬레이션의 교육적이고 윤리적인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던 프라스카는 카이와와 피아제의 개념을 참조하며 “루두스”와 “파이디아”의 이원론을 비디오 게임에 도입한 걸로 잘 알려져 있다. 루두스적인 게임이 승리와 패배를 결정하는 규칙들을 가지며 “체스보드”, “운동장”, “축구장”과 같은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게임이라면, 파이디아적인 게임은 승리와 패배를 결정하는 규칙들을 갖지 않으며, 전통적으로 “놀이터”에서 펼쳐지는 역할극과 같은 놀이 행위다(프라스카 11). 그는 ‘루두스’의 위상이 프로그래밍되어 있지 않고 “파이디아”의 위상이 최종 심급이며, “괴물과 트롤”이 아니라 “우리와 매우 친숙한 실제 사람”을, 그리고 그들이 삶을 관리해가는 체계를 모델화했다는 점에서 <심즈>가 “사회적, 정치적, 철학적 이슈들”을 다루기에 적합한 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프라스카, 46). 프라스카는 “루두스”의 차원이 존재하지 않는 “파이디아”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의 동기, 이 특정한 유형의 게임을 함으로부터 얻어지는 쾌와 재미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는 크게 관심이 없었던 걸로 보인다. 하지만 플레이어의 조작을 촉구하고 전제하는 매체의 잠재력을 논의할 때, 게임 디자인에 호응하거나 그것을 ‘오용’하는 조작의 동인, 곧 관습적 경로를 따라가면서 변주하는 쾌감을 살피지 않는 건 반쪽짜리 논의가 될 테다. ‘놀이터’의 은유를 통해 말하자면, 젠더화된 소꿉놀이, 아름다운 모래성을 짓고 파괴하는 손짓, 이파리와 자갈 따위를 배치해 개미의 진로를 방해하는 감각 등이 어떻게 서로를 보완하거나 강화하며 재미를 만들어내는지 질문하는 게 역시 필요한 것이다. 오히려 프라스카가 시뮬레이션의 급진적 가능성이 충분히 개화되지 못한 형태로서, 혹은 보편화될 수 없는 형태로서 평가했던 플레이 유형들로부터 우리는 <심즈> 시리즈와 같은 생활 시뮬레이션이 선사하는 재미에 대한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표적으로 <심즈>의 ‘포토앨범’ 기능에 대한 프라스카의 언급을 살펴보자. 심들의 생에서 특별한 순간들을 스냅사진으로 찍을 수 있도록 하는 이 기능을 플레이어는 디자인된 의도를 넘어서 “그들의 심들이 주연하는 스토리들을 창조”하려고 활용한다(프라스카, 228). 플레이어들은 “이미지로 표현되어 있는 어떤 상황을 창조하기 위해” 게임을 플레이하고 “텍스트적인 주석”을 덧붙이는 등의 편집을 가미함으로써 “스토리보드”를 구성하고 이를 온라인상에서 공유한다(프라스카 ,81). 심들의 자율성으로 인해서, 가족 앨범 스토리의 시퀀스에 추가할 만한 제대로 된 스냅사진을 찍는 건 많은 시간과 정성이 소요될 수 있는 작업이다. 하지만 <심즈>의 많은 플레이어들은 이러한 시간과 정성을 감수하고 스냅사진 기능을 활용해 대체로 “통속적이거나 멜로드라마적”인 “선형적인 내레이션”을 만들어냈다(프라스카, 81). 게임이 고정된 내러티브로 환원되는 걸 경계했던 프라스카는 “만화를 창조하기 위해 시뮬레이션을 활용하는 것은 사진을 찍기 위해 무비카메라를 활용하는 것과 같다”고 평하며 좀 더 친숙한 영상과 애니메이션의 문법적 관습에 기댄 이러한 실천들이 시뮬레이션이란 매체의 가능성이 완벽하게 표현된 형태는 아니라고 본다(Frasca 82). 하지만 프라스카의 이러한 부인 속에서 플레이어들이 많은 불편을 감수하고서도 ‘포토앨범’ 기능을 활용하는 강력한 동인이 시뮬레이션된 세계로부터 선형적인 이야기를 함축한 시퀀스를 발생시키고자 하는 욕구이며 “사진을 찍기 위해서 무비카메라를 활용”하는 비효율적인 행위에서 오는 쾌락임이 드러난다. 프라스카의 논의는 주로 심즈 프랜차이즈의 첫 판본을 다루고 있다. 시리즈는 UI와 그래픽, AI의 정교함 상에서 기술적으로 발전했고, ‘포토 앨범’의 기능 역시 정교화되었다. ‘심즈 일지’로 불리는 스토리텔링 형태도 이에 발맞춰 복잡성을 획득했다. 게임 내에서 제공하는 스크린샷 기능, 모더(modder)들이 배포하는 특수한 조명 효과, 포토샵 보정 기능 등을 활용하여, 플레이어들은 심들의 반복되면서도 변화하는 일상을 기록하고 그것을 시퀀스를 가지도록 배치한다. ‘일지’라는 규정은 개인화된 경험에 방점을 찍는다. 하지만 대체로 ‘심즈 일지’는 ‘나’를 주어로 하지 않고 심에게 부여된 가상의 이름을 주어로, 즉 3인칭으로 서술된다. 플레이어들은 아바타에 동일시되기보다는 카메라의 줌인과 줌아웃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카메라 감독과 같은 위치에 선다. ‘심즈 일지’의 제작 과정은 특정 시퀀스나 내러티브를 환기하는 요소들을 정교하게 배치하고 주변 환경을 조성하며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갖고서 움직이는 심들을 수고스럽게 조작함으로써 이뤄진다. 하지만 ‘심즈 일지’를 만드는 유저들은 이러한 조작 과정을 최종적인 내러티브 산물로부터 세심하게 삭제한다. <심즈 4>의 경우 ‘심즈 일지’를 더욱 손쉽게 만들 수 있도록 게임 내에 스크린샷과 녹화 기능을 단축키로 제공한다. 플레이어는 심들을 기동하고 조작하는 버튼 인터페이스와 ‘욕구’와 관련된 UI를 편리하게 배제한 채로 스크린샷을 저장할 수 있다. 저장된 스크린샷의 개연성 있는 배치와 텍스트 주석을 통해서 ‘일지’는 심들에게 개인화된 역사성을 부여한다는 환상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환상을 지탱하는 강력한 근거인 기록물은 버튼을 누른 뒤 다시 하위 버튼을 누르는 식의 마우스 연타, 특정 행동을 보기 위해 필요한 시간의 계측, 원하는 상황을 연출해 내도록 돕는 모드의 다운로드 등 게임 내외적으로 이뤄지는 복잡한 조작을 거쳐 연출되지만, 이러한 조작 절차는 자주 비가시화된다. ‘심즈 일지’로부터 우리는 자신의 시뮬레이션에 대한 조작 과정이 전면화되기를 원치 않는 플레이어들의 소망을 읽을 수 있다. 인터페이스를 배제하는 스크린샷의 기능은 ‘포토앨범’ 스토리텔링에 이미 잠재되어 있던 수요에 게임 디자인이 반응한 결과다. 게임사에서 새로운 DLC를 예고할 때 보이는 티저 이미지 등에서도 역시 조작 인터페이스는 드러나지 않게 처리된다. <심즈> 시리즈의 트레일러들은 마우스와 키보드 클릭이 필요치 않은, 일일 연속극의 예고편을 차라리 연상시킨다. ‘심즈 일지’를 작성하는 플레이어에게 있어서, 상호작용하며 시뮬레이션을 조정해 나가는 차원의 인터페이스는 기록 과정에서 전면화되지 않기를 넘어서 은폐되어야 한다. 시뮬레이션된 세계가 띄는 허구적인 리얼리티는, 이 시뮬레이션의 전제 조건들과 설정들을 조작하는 인터페이스의 은폐를 통해서 추체험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XC94CHpni1Y * The Sims 4 그로잉 투게더: 공식 게임플레이 트레일러, The Sims 제공 은폐를 실천하는 다양한 전략들 중 흥미로웠던 심즈 일지의 양태는 심들이 하는 대화를 상상적으로 구성하고 스크린샷의 하단에 ‘자막’을 달아서 표시하는 형식이다. 심들은 옹알이처럼 들리기도 하는 “심리시(Simlish)”라는 가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걸로 가정되어 있는데, 자막 형식의 사용은 마치 실재하는 언어를 플레이어의 모국어로 번역해낸 것과 같은 효과를 준다. 이 같은 편집은 현실과 가상 사이의 경계를 없는 체하는 기만과는 다르다. 오히려 자신만의 개성을 담은 은폐의 전략들을 활용하면서, 플레이어는 ‘현실’에 대한 편집자이자 촬영 감독의 자의식을 표현해낸다. 게임 커뮤니티와 게임 내 상호작용을 포괄하여, 게임 내외적으로 일어나는 이러한 자의식의 표현이 <심즈> 시리즈가 전하는 쾌의 중핵을 이룬다. 앞서 언급한 ‘모더’들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 <심즈> 시리즈는 모딩 커뮤니티와 함께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프랜차이즈다. 나는 <심즈 4>를 정확히 밝히기 민망스러울 정도로 긴 시간 동안 플레이했는데, 이는 <심즈 4>가 시리즈 중 가장 진보했거나 흥미로운 판본이기 때문은 아니다. 심즈 유저들과 모더의 커뮤니티가 현시점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성화되어 있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타냐 시보넨(Tanja Sihvonen)의 정의를 빌려오자면, 모딩(Modding)은 “공식적으로 발매된 컴퓨터 게임, 그 게임의 그래픽과 소리, 캐릭터를 사용자 정의 콘텐츠를 통해서 확장하고 변경하는 다양한 방식”을 가리키는데, 이는 “새로운 게임 메카닉, 새로운 게임 플레이 레벨”을 창조하는 것까지 의미할 수 있다(Sihvonen 6). 모더들은 게임 플레이 상의 편의성과 상호작용의 가능성을 증대하기 위하여 게임의 전제들을 뒤바꾸기도 하고, 심의 외양과 건축물을 꾸밀 수 있는 사용자 정의 콘텐츠(custom contents)를 창조한다. <심즈>의 모더 역시 모드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코딩 절차나 포토샵, 블랜더와 같은 툴의 사용을 전면화하기보다는 허구적 리얼리티의 편집자로서 자의식을 표현하는 다양한 전략들을 취한다. 그 전략들이 자주 분업화되고 전문화된 현대적 직업의 제스처를 취함으로써 표현된다는 건 특기할 만하다. 가령 게임 속 심에게 입힐 수 있는 새로운 복장들을 만들어내는 모더들은 심들의 옷을 갈아 끼우는 게임 플레이 기본 화면을 통해 자신의 옷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보단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입은 심을 촬영하고 편집해서 모델 화보와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 공유 페이지의 전면에 내세우는 게 일반적이다. Sentate와 같은 모더들은 그가 제작한 의상 모델링을 걸치고서 <심즈 4> 내에서 워킹을 하는 심 모델들이 출연하는 패션쇼 영상을 만들기도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0LzV7vMvQuU * Sentate Haute Couture 2022 Collection (Sims 4 CC), Sentate 제공 케이팝 아이돌과 한국의 예능인을 닮은 심을 창조하는 유튜버 심즈 아무나AMUNA 역시 그가 세심한 조작을 통해서 빚어낸 심을 ‘출연’시켜 뮤직비디오나 한국 예능의 문법을 패러디한 영상들을 만들어낸다. 한편, <심즈> 시리즈에서 깔끔하게 지워지거나 코믹하게 그려질 따름인 폭력과 비극적인 사고를 구현하는데 관심이 있는 모드 “Life is Tragedy”의 경우 과잉의 부정적 감정 표현을 선보이는 막장 멜로드라마의 제스처들과 컬트 영화의 황당무계한 폭력들을 함께 빌려온다. 모더의 홈페이지는 자신의 모드로 <심즈> 상에서 연출할 수 있게 되는 장면들을 슬래셔와 코미디에 각각 반 발자국씩 걸쳐 있는, B급 영화의 포스터를 연상시키는 섬네일을 통해 예고한다. <심즈> 시리즈의 모더와 플레이어 모두 다양한 층위에서 시뮬레이션의 전제들을 조작하고 변경하며 상상적으로 현실을 구성하는 이들이란 점에서 시뮬레이터로 느슨하게 묶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시뮬레이터가 화려하게 인테리어한 건축물을 만들고 그것을 다른 플레이어의 심이 생활해갈 수 있는 환경으로서 공유한다면, 또 다른 이는 하이틴 드라마나 컬트 무비의 PD이자 촬영 감독이 되고, 패션 디자이너와 뮤직비디오 촬영 감독으로서 의식을 표현하기도 한다. 시뮬레이터의 무궁무진하면서도 일관성 있는 자기표현은 <심즈> 시리즈의 폭넓은 자유도나 소위 ‘현실’과의 근접성을 뒷받침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시뮬레이터의 자기 상은 매스미디어의 문법들, 그 심상들과 함축을 조립하고 편집하는 소위 ‘창작자’의 분업화되고 전문화된 자의식을 대체로 참조한다. ‘자기 브랜딩’의 영역을 유희화하는 수준에까지 말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심즈> 시리즈가 무한한 자유도를 보장한다기보다는, 그것에 함축된 통속성, 현대적 분업과 ‘창조적’ 생활의 맥락이 시뮬레이터의 즐거움을 장르화하고 구체화하는 차원을 확인할 수 있다. 게임 텍스트, 게임의 이데올로기적 함축과 인터페이스와의 관계, 그리고 그 게임에 지배적인 장르들이 교차하여, 시뮬레이터의 자의식과 그것을 표현하는 즐거움이 띌 수 있는 형상들을 빚어낸다. 라이프 시뮬레이션 게임을 플레이하며 그 제반 조건을 변화시키고 조작하며 편집적인 현실을 생성하는 과정은 시뮬레이터 자신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이는 시뮬레이터의 자기 표현 과정 역시 게임적인 쾌가 펼쳐지는 장소이며, 게임 디자인과 플레이가 상호 개입하며 기틀을 잡아가는 구조물로서 식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참고 문헌 곤살로 프라스카.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비디오게임, 김경섭 역, 커뮤니케이션북스, 2008 제니퍼 M. 실바. 커밍 업 쇼트 : 불확실한 시대 성인이 되지 못하는 청년들 이야기, 문현아, 박준규 역, 리시올, 2020 Barnes, Adam. “The Sims Turns 20: Creator Will Wright Reflects on the Battle He Waged to Get One of the Best Games of All Time Made.” Gamesradar , GamesRadar+, 4 Feb. 2020, www.gamesradar.com/the-making-of-the-sims/ . Sihvonen, Tanja. Players Unleashed ! Modding the Sims and the Culture of Gaming . Amsterdam University Press, 2009.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성훈 문학을 전공했다. 게임과 만화를 좋아한다. <심즈 4>는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 게임인데 1500시간 정도 했고 그게 수치스러운지 웃긴 건지 헷갈린다. 뚜이부치란 필명으로도 활동한다.
- [북리뷰] 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질문은 왜 중요한가?
이 책은 ‘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에서 출발하여 게이머, 게임 캐릭터, 게임 산업 관련 종사자 앞에 ‘여성’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때 마주할 수밖에 없는 어려움과 불편함, 그리고 이런 문제들이 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해서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단순히 ‘이런 사례가 있고 그래서 나쁘다’는 식의 단편적인 나열이 아니라 앞서 밝힌 문제들이 어디에서부터 기인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면서 과연 지금까지 여성을 위한, 여성을 그린, 여성에 의한 게임이 존재하였는가에 대한 질문도 함께 던지고 있다. < Back [북리뷰] 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질문은 왜 중요한가? 13 GG Vol. 23. 8. 10. 이 책은 ‘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에서 출발하여 게이머, 게임 캐릭터, 게임 산업 관련 종사자 앞에 ‘여성’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때 마주할 수밖에 없는 어려움과 불편함, 그리고 이런 문제들이 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해서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단순히 ‘이런 사례가 있고 그래서 나쁘다’는 식의 단편적인 나열이 아니라 앞서 밝힌 문제들이 어디에서부터 기인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면서 과연 지금까지 여성을 위한, 여성을 그린, 여성에 의한 게임이 존재하였는가에 대한 질문도 함께 던지고 있다. ‘게임하는 여성’, ‘게임 속 여성’, ‘게임을 만드는 여성’ 들은 게임과 관련된 다 영역에서 눈에 띄는 양적 증가세를 보여 주었다. 그런데도 지금껏 주목받지 못했던 것 역시 사실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접근하기 위해 BJ갓건배와 클러저스 사건, 여성 게이머에 대한 비하적인 표현으로 시작한 ‘혜지’부터 게임 커뮤니티에 만연한 트롤링 문제, 게구리 선수의 실력 인증 논쟁, 게이머게이트 등 이 사회를 시끄럽게 뒤흔든 게임과 관련된 사건들을 사례로 들고 있다. 또한 이러한 사건들이 단순히 게임을 매개로 한 성별 간의 갈등에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지적한다. 그들이 설 자리는 어디인가?-‘초대받지 않은 침입자’ 이 책에서는 여성 게이머들에 대한 이야기를 메건 콘디스의 연구를 중심으로 ‘섹시한 보조’, ‘어리바리한 초보’, ‘게임 덕후인 척하는 거짓말쟁이’라는 세 가지 타입으로 분류하여 다루고 있다. 여성 게이머들은 이러한 전형적 이미지로 인해 게임 내에서 주로 ‘보조’일 (간주할) 뿐이다. 또한 진정한 게임을 즐기기 보다는 캐주얼 게임과 같은 ‘가짜 게임’을 주로 플레이하는 존재로, 종종 게임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받게 된다. 최상위급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게임을 능숙하게 플레이하는 여성 게이머는 과도한 동경과 추앙의 대상으로 포장되기도 하며 (‘여왕벌’), ‘그럴 수가 없다. 분명 무엇인가 꼼수를 사용했을 것이다.’라는 시선도 받게 된다. 이에 따라 여성 게이머들은 자신을 감추거나 ‘진짜 게이머’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게임을 플레이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여성 게이머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증명하고 인증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여성 게이머들이 자신들을 위한 영역이 아닌 곳에 불쑥 들어온 ‘초대받지 않은 침입자’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텔레비전의 광고에서 조차 이러한 이미지는 달라지지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이 책에서는 게임 이용 조사 결과나 자료 등을 바탕으로 실제로 여성 게이머의 비율은 남성과 큰 차이가 없다는 재미있는 통계를 제시한다. 더불어 ‘진짜’ 게임이 아니라고 폄하되는 캐주얼 게임을 즐기는 인구가 더 많으며 이와 같은 경향은 성별과 연령에 상관없이 존재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러한 여성 게이머에 대한 시선이 비단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들은 ‘초대받지 않은 침입자’라는 라벨링으로 인해 여성 프로 게이머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 또한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미 다양한 스포츠 분야에서 성별에 따른 능력 및 실력 차이에 대한 견고한 신화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여성 게이머가 남성 게이머에 비해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다. 이는 게임을 논의할 때 기존의 신체적 혹은 물리적인 차이뿐만 아니라 특정 성 역할에 대한 편견과 인식이 우리 사회에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 책을 통해 저자들은 다수가 아닌 소수의 게이머들(혹은 소수로 폄하되고 있는 게이머들)에 대한 편견이 우리 사회 전반에 여전히 존재하기에, 이러한 편견과 차별 어린 시선이 여성 게이머들의 게임 즐기기와 경험을 어떤 식으로 방해하고 있으며 게임 커뮤니티 형성에 어떠한 걸림돌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진짜 게임’도 아니다-‘진짜’를 찾아라. 여성 게이머들은 종종 게임 커뮤니티에서 ‘진짜 게이머’가 아니라는 편견을 마주하게 된다는 사실은 앞서 살펴보았다. 저자들이 밝힌 바와 같이 남성 게이머들이 주로 플레이한다고 알려진 하드코어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열정적이고 진정한 게이머로서 인식되며, 여성 게이머들이 관심을 가지고 즐기는 것에 대한 의구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거대해졌다. 여성 게이머들은 주로 ‘진짜 게임’이 아닌 ‘가짜 게임’을 좋아한다는 인식과 ‘진짜 게임’ 혹은 ‘진짜 게이머’에 대한 신념은 현재 우리의 게임 문화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저자들은 하드코어-캐주얼 게임이 명확히 정의된 것이 아니라는 예스파 율의 지적을 인용하며 “하드코어- 캐주얼 구분은 애초부터 명확하게 고정된 것도 아니지만, 현실에서의 반복적 용어 사용은 어느새 이 구분을 남성적-여성적 구조로 전이시켰다.”(71쪽) 고 지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식의 ‘진짜-가짜’, ‘남성-여성’과 같이 단순하게 이분화한 논쟁은 무의미하다고도 주장한다. 오히려 여성 게이머의 증가와 같은 이러한 일련의 변화가 게임도 게이머도 다양화되고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여는 현상으로 보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이 책에서 그리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진짜 게임’, ‘가짜 게임’을 논의하기에 앞서 ‘총을 쏠 수 있는지’를 묻는 불편한 환경 속에서 ‘진짜’ 게임을 즐길 수 있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이다. 다양한 장르와 플레이 스타일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며 그 세계의 주류를 구성하고 있더라도 잘못된 관념이라면 언젠가는 깨고 반드시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하여 재현하는가. 이 책에서는 게임 속 여성 캐릭터에 대한 잘못된 재현 방식과 편파적인 역할 배분, 그리고 라라 크로프트의 재현을 둘러싼 계속되었던 논쟁을 들어 게임 속 여성 캐릭터의 문제를 조명하고 있다. 저자들은 지금까지 여성 캐릭터 재현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이유 중 하나로 게임에서는 때때로 인간의 모습을 하지 않는 캐릭터가 등장하며 남녀 구분이 어려운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초기의 픽셀 중심 그래픽과 비교하여 게임 그래픽 영역에서는 기술적으로 엄청난 발전이 이루어져 왔으며, 게임 캐릭터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도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 기존과는 다른 여성 캐릭터의 등장은 분명히 주목할 만한 새로운 흐름이다. 그런데도 이 책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여전히 게임 속 여성 캐릭터들은 쉽게 성적 대상화가 되거나 폭력, 착취를 받는 형태로 재현되곤 한다. 특히 저자들은 무분별한 재현의 양적 증가는 오히려 기존의 잘못된 고정적 이미지를 고착시키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여성 재현 문제는 게임이 가지는 플레이라는 상호작용적 특성이 있기 때문에 단순한 시각적 이미지 재현 이상의 복잡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는 저자들이 설명한 것과 같이 “게임의 메카닉적인 요소와도 깊은 관련을 맺는다는 점”(132쪽) 을 인지해야 하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새로운 흐름을 ‘바로 지금’, 주의 깊게 살펴보는 작업이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게임은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다양한 상호작용을 만들고 그 사회의 문화와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는 동시에 새로운 가치를 모색하는 데에 중요한 미디어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고장난 파이프라인’이 아니다. 저자들은 게임 산업에서의 여성 노동자들이 대부분 핵심적인 업무와는 관련이 적은 일을 하는 이들로 인식되고 있다고 언급한다. 이러한 현상은 여성 게이머들 혹은 게임 내에 재현되는 여성 캐릭터들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여성 게임 개발자들이 경험하는 차별 사례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여성 게임 노동자들이 커리어를 이어 나가기 위해 겪는 어려움을 ‘고장 난 파이프라인’으로 비유하여, 이러한 문제들이 구조적인 성격을 띠고 있음을 지적한다. 저자들은 “성평등 의식이 높다고 평가받는 스웨덴에서조차 여성 게임 제작 노동자의 능력이 과소평가된다는 비판과 반성이 있었다. “게임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만이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와 “여성은 진짜 게이머가 될 수 없다.”는 믿음이 결합해 남성 중심의 노동 문화를 형성했다는 것이다.”(211쪽)라는 설명을 통해 게임 산업 전체에 퍼져 있는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차별, 능력에 대한 불신, 선입견 등의 문제들은 전 세계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게임 산업 여성 노동자들과 관련된 사례들은 분명 게임 업계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특정 성별의 노동자들이 다수인 직업군에서도 그와 비슷한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이렇게 게임 산업 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면서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한 고찰을 함께 담으려고 시도한다. 이러한 노력이 게임 산업에 만연한 불평등과 편견을 조금씩 줄이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게임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게이머는 총을 쏴야만 하는가?-그 무엇도 강요하지 않는 게임 나라로 오세요. ‘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이 책의 타이틀이자 저자들의 중요한 고찰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게임은 아이들을 ‘게임뇌’로 만들며 중독시키는 유치하고 저급한 문화로 여겨져 왔다. 또한 전자 오락실, PC방으로 대표되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장소도 젊은 세대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유해한 기피의 대상이었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은 이 책의 주요 대상인 ‘게임하는 여성’, ‘게임 속 여성’, ‘게임을 만드는 여성’들을 향한 차별과 유사한 모습을 하고있다. 저자들은 약 290쪽에 걸쳐 이러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해체하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여성 게이머, 여성 캐릭터, 여성 게임 산업 노동자와 이들을 둘러싼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분석함으로써 지금까지 비주류로 소외되었던 이들을 포함하여 "즐거운 게임을 모두가 즐겁게 하기 위한"(280쪽) 다양성을 존중하고 포용할 수 있는 게임 문화 형성에 대한 논의로 확장하고자 한다. 상식적이지 않은 차별과 편견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자연스럽게 수용되고 당연시되어 가는 과정에 대한 비판적이고 성찰적인 의문과 논의가 게임 문화의 포용성을 높이며 게임 산업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저자들이 “게임이 가장 대중적이고 가장 보편적인 일상적 여가·오락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 이미 도래했거나.”(269쪽)라고 언급한 것처럼 게임은 이제 더 이상 특정 성별이나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진짜 게이머’와 ‘가짜 게이머’에 대한 논쟁 역시 게임 문화 속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과도기적인 현상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진정한 게이머’, ‘진짜’의 기준을 게임을 즐기는 방식이나 애정의 정도로 증명하는 것은 불필요한 것처럼 생각된다. ‘진짜’를 위해 혹은 ‘가짜’라는 비난을 피하려고 방아쇠를 당기거나 칼을 휘둘러 지금 플레이하고 있는 게임이 ‘진짜’ 게임인지, 게임에 대한 본인의 애정이 ‘찐’인지 아닌지를 물건의 진위를 감정받는 것처럼 증명할 필요는 없다. 여성 게이머라고 해서 특정 장르의 게임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총을 쏘는 것을 즐기는 게이머가 있다면 수집하고 레시피를 조합하여 음료를 만들거나 상자에서 꺼낸 물건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행위를 무한반복 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으로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들을 누가 ‘진짜’ 게이머가 아니라고 그들이 플레이하는 것이 ‘진짜 게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많은 이들이 자신의 취향과 관심사를 자유롭게 표현하며, 이를 반영한 각기 다른 장르와 주제, 캐릭터를 다루는 게임을 접함으로써 비선형적인 경험을 확장할 수 있는 게임 문화를 위해 나아갈 시기라고 이 책은 우리 사회를 향해 이야기하고 있다. 모두가 총을 쏠 수 있지만 모두가 쏠 필요는 없으며 굳이 쏠 수 있는지 혹은 잘 쏘는지에 대한 증명이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환경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그런 사회로, 더는 강요하고 차별하는 사회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메시지를 전하는『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는 당장 완전한 해결책을 제안하지는 않지만 새로운 게임 문화를 위한 논의의 출발점을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큰 의의를 가진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리츠메이칸대학 기누가사 종합 연구 기구 전문 연구원) 신주형 주로 시리어스 게임과 시리어스 게임을 플레이하는 장소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리츠메이칸대학 게임 연구 센터 (RCGS)의 게임 아카이빙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 보다 책임감 있는 재현을 실천하는 게임을 향해
어떤 매체에 대한 담론은 해당 매체가 겨냥하는 수용자 또는 이용자가 어떤 존재이며 그들이 매체와 맺는 관계에는 어떤 의도들이 담겨있는 것인지에 대한 여러가지를 드러낸다. 북미와 유럽의 게임 관련 공공 담론에 있어 오랫동안 게임은 - 거칠게 말해 - 번쩍이는 컴퓨터 화면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빠져들 수 있는 오락에 하릴 없이 시간을 소비하는 십대 소년들을 위한 것으로서 인식되어왔다. < Back 보다 책임감 있는 재현을 실천하는 게임을 향해 04 GG Vol. 22. 2. 10. - You can see the english version in this URL: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pageNum=1&match=id:86 어떤 매체에 대한 담론은 해당 매체가 겨냥하는 수용자 또는 이용자가 어떤 존재이며 그들이 매체와 맺는 관계에는 어떤 의도들이 담겨있는 것인지에 대한 여러가지를 드러낸다. 북미와 유럽의 게임 관련 공공 담론에 있어 오랫동안 게임은 - 거칠게 말해 - 번쩍이는 컴퓨터 화면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빠져들 수 있는 오락에 하릴 없이 시간을 소비하는 십대 소년들을 위한 것으로서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이 정형화 되어있는 게이머에 대한 인식에 의문을 표하면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는 실제 사람들의 다양성에 대한 탐색을 시작했다. 여기에는 부모의 스마트폰으로 처음 게임을 접하게 된 유아들, 〈워드퓨드(Wordfeud)〉 같은 게임에 빠진 은퇴한 여성, 손주와 〈카운터 스트라이크〉 게임을 함께 하는 할머니 게이머 등이 포함된다. 또한 〈포트나이트〉를 배회하며 함께 어울리는 것을 즐기는 게이 게이머나 잠든 아기 옆에서 닌텐도 스위치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젊은 엄마도 포함될 수 있다. 게임 문화의 규범 비평 디지털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당연히 - 정형화된 유형의 플레이어들이 아니라 - 나름의 개별적인 방식으로 게임을 경험하는 실제 플레이어들이다. 지난 십 년간 게임 저널리스트, 문화 비평가, 학자들은 주류 게임 내 젠더와 인종, 장애, 나이, 신체에 대한 재현의 문제에 대해 논의해왔다. 이러한 논의가 밀도 있게 시작된 것은 북미였지만, 이제는 유럽에서도 규범 비평(norm critique)이라는 이름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게임 내 재현에 대한 논의는 기본적으로 3가지로 나뉜다. 첫째, 게임이 사람들의 다양한 정체성 또는 정체성의 여러 측면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둘째, 게임의 이용자층에서 주변화되어있는 사람들에 대한 재현이 어떠한가, 셋째, 게임 업계 내 주변화된 사람들이 어떠한 양상으로 나타나며 그들의 업무 환경은 어떠한가. 이 세 가지 요소는 공공 담론상에서 상호적으로 얽혀서 나타나곤 한다. 예를 들어 어떤 게임에서 여성이 부정적으로 재현될 경우 여성 플레이어들이 그 게임으로부터 등을 돌릴 것이라고 여겨지며, 게임 업계 내 주변화된 사람들의 양상이 개선되면 게임 내에서도 그러한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개선될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이 어느 정도 사실일지라도, 현실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점을 게임학자들은 지적한다. 진지한 주제를 다루는 게임들 게임에서 여성 캐릭터가 수적으로 적고, 그 역할과 기능에 있어서 한정되는 등 오랫동안 불균형이 존속되어왔으며, 여성 캐릭터들의 외모가 시각적으로 성적인 매력이 지나치게 부각되어왔음은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1983-2014년 사이에 출시된 5백편이 넘는 게임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90년대 후반에 정점을 찍은 여성 신체의 성적 대상화는 2006년 이후부터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감소 추세는 업계 전반적으로 자신들이 만들고 있는 게임이 진지한 주제에 대한 자각을 일깨울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인지하면서 시작된 느린 변화를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예를 들어 2017년 〈헬블레이드: 세누아의 희생(Hellblade: Senua’s Sacrifice)〉를 출시한 영국의 게임사 닌자씨어리(Ninja Theory)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타밈 안토니아데스(Tameem Antoniades)는 인터뷰를 통해 이 게임이 단순한 오락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정신병으로 인한 고통이 어떠한 경험인지 플레이어들이 진정으로 느낄 수 있도록 노력했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2018년 덴마크에서 인디게임 데모로 출시된 〈포가튼(Forgotten)〉은 알츠하이머로 인한 고통이 어떠한지를 표현했다. 이 게임은 현재 오토스코피아 인터랙티브(Autoscopia Interactive)에서 개발 중이다. 유럽의 인디게임 업계 또한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되고 주변화된 인물들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게임개발사 픽셀 헌트(The Pixel Hunt)가 개발한 〈Bury me, My love〉는 유럽을 횡단해서 프랑스 파리까지 이동하는 한 시리아 난민의 이야기를 다룬다. 2021년 가을에는 영국의 AAA 게임사 플레이그라운드 게임즈(Playground Games)가 인기 레이싱 게임 〈포르자 호라이즌(Forza Horizon)〉의 다섯번째 판을 내놓으면서, 게임 내에서 의수나 의족을 찬 캐릭터를 생성하는 것과 성 중립적인 대명사를 선택하는 것이 가능해졌음을 주류 언론의 헤드라인을 통해 알렸다. 많은 논쟁이 게임 캐릭터에 대한 재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가운데, 포용적인 게임 디자인이 이 특정한 문제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부상하고 있는 인디게임 산업은 AAA 산업의 잘 다듬어진 모델 너머에 존재하는 경험들을 전달하고자 하는 게임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러한 게임들은 또한 컴퓨터 앞에서 오랜 시간을 꼼짝 않고 앉아 있을 수 없는 플레이어들에 맞는 플레이 모드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러한 양상은 IO인터랙티브(IO Interactive) 같은 소수의 거대 스튜디오를 제외하고 대부분 소규모의 인디 게임 개발자들로 구성되어있는 덴마크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 〈포가튼(Forgotten)〉은 알츠하이머를 앓는 경험을 전달하고자 하는 짧은 게임이다. 기억 상실과 왜곡의 감각을 주기 위해서 게임 캐릭터들의 얼굴이 흐려져 있다. 플레이어층의 확장 이처럼 느리게나마 진행되고 있는 변화상은 플레이어층의 다양화라는 두번째 문제로 부분적으로 설명 가능하다. 게임산업은 새로운 수용자층을 찾아내기 위해 다양한 플레이어들에 호소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게임 내 주변화된 정체성에 대한 재현과 플레이어층의 다양성 간에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없으며, LGBTQ 등 주변화된 집단의 사람들은 게임 내 LGBTQ 캐릭터가 부정적으로 재현될지라도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주류 매체조차 게임 내 주변화된 사람들에 대한 문제적 재현에 관심을 가지면서, 게임사들이 그와 같은 부정적인 정형화를 반복 재생산하는 것은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그와 같은 공공 담론 그 자체가 게임업계로 하여금 강력한 구매력을 지닌 집단을 겨냥하여 새로운 이용자층으로 포섭하도록 장려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게임 내 주변화된 정체성에 대한 부정적 묘사의 문제는 상황의 한 단면을 설명하는데 그칠 뿐이다. 많은 주변화된 집단들은 여전히 괴롭힘과 차별, 폭력을 경험하고 있는데, 특히 온라인 게임을 플레이할 때 심각하게 나타난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플레이어의 주변화 문제를 다루는 유럽 내 담론이 주로 (젊은) 여성 플레이어의 경험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종이나 사회·경제적으로 주변화된 사람 등 여타의 주변화된 집단의 상황은 여전히 공공 담론에서 배제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주변화된 정체성을 지닌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들을 존중하면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음에도, 게임 업계가 여전히 그러한 집단이 지닌 플레이어로서의 가능성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대를 통한 노동 조건의 개선 지난 수년 간 게임 업계 내 주변화된 사람들의 문제는 상당한 주목을 받아왔다. 업계 내 주변화된 노동자들, 특히 여성 노동자들이 #1ReasonWhy 해쉬태그를 통해 업계 내 차별과 성차별주의, 괴롭힘에 대해 알리기 시작하면서 십년 전부터 주목 받아온 이 문제는, 지난 몇년 동안 유럽의 AAA 업체 내 유해 업무 문화나 성적 부정행위 문제들이 드러나면서 다시 헤드라인에 오르기 시작했다. 북유럽에서는 아직 이와 유사한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여러 매체에서 폭력이나 가해 행위의 몇 가지 사례를 다룬 바 있다. 노동조합은 명백히 이와 같은 문제에 대처하는 기관으로서 주변화된 노동자들을 위한 환경의 개선에 힘쓰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강력한 노동조합의 전통을 지닌 스칸디나비아 반도임에도 이 권역 내 게임 업계의 노동자 조합은 아직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은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에 따라 주변화된 인물에 대한 책임감 있는 게임 내 재현이나 남성 게이머라는 정형화된 규범의 바깥에 놓인 플레이어들을 포용할 수 있는 문화의 조성 등과 같은 다양한 논의들이 벌어지고 있는 공공 담론의 다른 한편에서는 업계 내 조직의 변화를 요청하는 목소리도 여전히 울려퍼지고 있는 상황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이다 요르겐센 이다 요르겐센은 덴마크의 코펜하겐 IT 대학(IT University of Copenhagen)에서 게임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주로 젠더 재현, 게임 문화, 매체로서의 게임 등과 관련된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는 서던 덴마크 대학(the University of Southern Denmark)에서 박사후 과정 중에 있다.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USA in Fallout, USA today
We once thought that the era of Donald Trump had come to an end, but it appears it hasn't. While Trump may have lost the election, his supporters' enthusiasm remains robust. What fuels this enduring energy? Moreover, is the driving force behind Trump's rise aligned with traditional 'American' values or does it run counter to them? It's worth recalling that Trump's campaign slogan was 'Make America Great Again'. Yet, years later, when President Joe Biden won the election after a vigorous anti-Trump campaign, he declared his presidential message as 'America is back.' So, which vision truly represents 'America' – Trump's or Biden's? < Back USA in Fallout, USA today 14 GG Vol. 23. 10. 10. We once thought that the era of Donald Trump had come to an end, but it appears it hasn't. While Trump may have lost the election, his supporters' enthusiasm remains robust. What fuels this enduring energy? Moreover, is the driving force behind Trump's rise aligned with traditional 'American' values or does it run counter to them? It's worth recalling that Trump's campaign slogan was 'Make America Great Again'. Yet, years later, when President Joe Biden won the election after a vigorous anti-Trump campaign, he declared his presidential message as 'America is back.' So, which vision truly represents 'America' – Trump's or Biden's? The Fallout game series also raises questions about 'what is the USA', although it's unclear whether this was the developers' precise intention. Let's consider the New California Republic (NCR) as an example, the epicentre of the Fallout world. NCR is a nation rebuilt by the power of its people from the ashes of destruction and appears to serves as a metaphor for how Americans perceive their nation's founding narrative – the USA that was built by the people, on the lands that European settlers deemed as 'uninhabited'. Furthermore, NCR represents a highly advanced civilisation with a touch of snobbism and expansionism, yet an attempt to avoid excessive conflicts with the outside world. This mirrors the historical fact that the USA, while aspiring to become a global power/player, maintained an isolationist foreign policy for a significant period before World War II. The protagonists in the Fallout series are typically residents of the vaults . For instance, in Fallout 1 and Fallout 2 , the protagonists have close ties to and support the NCR or its preceeding entities. These protagonists emerge from the vault that preserves remnants of the 'old world' and in the game, for the first time, encounter the 'new world' outside in a state of ruin. This reminds me of historical events when the European settlers from the 'civilised' world initially set foot in the 'barbaric' new world in ruin, seeking to establish colonies. As its name suggests, the New California Republic (NCR) establishes itself in the west, pushing into the wasteland, which notably evokes memories of the 'Western frontier'. America's westward expansion was driven by heightened nationalism under the leadership of Andrew Jackson and, in the process, resulted in significant conflicts and the destruction of native peoples and their cultures. This parallels the situations that gamers encounter through the various factions' conflict for control of the Hoover Dam in Fallout: New Vegas . Caesar’s Legion, an antagonistic faction in Fallout: New Vegas , consistently asserts authoritarian control over its territory. This reflects how colonist might have appeared from the perspective of indigenous people during the westward expansion. Historical accounts reveal that Native Americans resisted this expansion by forming alliances with or receiving military support from, British or French troops stationed in the region. In the context of the modern-day United States, Caesar’s Legion seems to draw inspiration from extremist groups like the Islamic State (IS) – also known as the Islamic State of Iraq and Syria (ISIS). However, it's a well-known fact that modern Islamic extremists have their roots in military groups formed during the Cold War, in response to the imperialistic expansion of both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This parallel is mirrored in the game Fallout , where Caesar, the leader of Caesar’s Legion, was formerly associated with the 'Followers of the Apocalypse', a humanitarian and intellectual medical group. In a way, Caesar’s Legion can be seen as an anti-civilisational phenomenon born out of the frustrations with a failing civilisation. When players confront Caesar’s Legion in the game, they are also confronted with the historical ironies that the USA faces in its own history. The Enclave, a villainous group that appears in both Fallout 2 and Fallout 3 , serves as a significant element prompting questions about the ‘truly American'. To settlers, the Enclave represents an 'old world' power aiming to dominate the wasteland by controlling knowledge and employing force, with their actual power centre concealed in a distant location. This scenario bears resemblance to how historical Great Britain might have been perceived by the colonists in America across the Atlantic before the American Revolutionary War. Interestingly, the vault residents, despite sharing similar cultural and societal norms, opt to coexist with the wasteland and resist the Enclave. This mirrors the stance of the colonial intellectual class that led the War of Independence against Britain. Yet, there’s one crucial factor that I must point out. Historically, the dominant conflict within American political society during westward expansion revolved around the clash between the ‘old world’ and the ‘new world’, with the old world associated with power, knowledge, and the clerical system. For instance, America's evangelical church, which gained popularity during the Great Awakening, found itself in conflict with the established colonial clergy and intellectual elite. The evangelical doctrine of the time, which permitted ordinary worshipers to serve as preachers, obviously challenged the traditional churches of the 'old world'. From the evangelical perspective, these established churches were perceived as mere institutions that monopolised knowledge, power, and divinity. Coming from this historical trace, Richard Hofstadter once noted that American anti-intellectualism can trace its roots to a deep-seated antipathy toward knowledge and power, creating a point of convergence between anti-intellectualism and democracy. Within this context, we can interpret the vault residents as symbolic representations of colonial elites who have a favourable disposition towards the wasteland but can never truly become a part of the wasteland. This dynamic helps explain the ambivalent feelings that Fallout players have towards the Brotherhood of Steel (Brotherhood), another faction aiming to monopolise intellectual and military resources in the post-apocalyptic new world. From the perspective of the wasteland's inhabitants, the Brotherhood appears as nothing more than elite exploiters who make oaths of 'good faith', reminiscent of how settler communities may have perceived colonial intellectuals and clergy that misuse power. This narrative framework forces the players, empathising with the vault residents, to feel both sympathetic and rebellious against the Brotherhood. Fallout 4 sought to encapsulate these recurrent historical themes within the USA more condensedly and comprehensively. The game leveraged the spatial characteristics of the game’s New England region as a narrative instrument to reincarnate the early US history. The game's protagonist, who retains memories of the era preceding the Great War (translator's note: a fictional conflict in the Fallout series, posited to have occurred between the USA and China, culminating in a nuclear apocalypse), also serves as a bridge for players to engage with the game's narrative and the history. In Fallout 4 , players can construct and establish settlements, akin to the initial settlers who migrated to the American continent. Here, the Commonwealth Minutemen, one of the in-game factions that the protagonist first encounters in the game, play a pivotal role in bridging the historical context. Within this framework, the history of the US is portrayed as having begun sometime when patriots organised a militia for the nation’s independence. It is this thematic backdrop that explains the game design elements of small-scale city-building simulations in Fallout 4 . Moreover, in Fallout 4 , the Institute (translator’s note: one of the factions in Fallout 4) appears to allude to a period in history marked by the confluence of anti-intellectualism and anti-communism, known as McCarthyism in the US. The game's aesthetics are notably influenced by the country's post-war culture of the 1950s – the very essence of the Fallout universe aesthetics – which vividly encapsulates the era of McCarthyism. US scholars have attributed that rise of McCarthyism in the US to a series of political events, including the Soviet Union's successful nuclear test, China's expansion of communism, and the stalemate situation of the Korean War. These incidents compelled Americans to perceive a formidable ‘outside threats’ beyond their reach, subsequently prompting the US populace to embrace McCarthyism as a means of countering this perceived menace from within. In essence, McCarthyism aligns with a recurring historical pattern in the US, characterised by public apprehension in the face of power struggles, conflicts between old-world and new-world elites, and tensions involving intellectuals. This explains the in-game characters' reactions to the Institute in Fallout 4 . For example, we can observe the hostile responses of Fallout 4 characters toward "synths", the artificial humanoids produced by the Institute. They exhibit a deep-seated fear of synths, often calling them the 'boogeyman', and engage in witch hunts to locate and expose these synths. This behaviour fundamentally mirrors the way McCarthyism indiscriminately labelled intellectuals, government officials, and artists as 'communists' without any substantiated rationale. Another intriguing aspect of the story is the presence of a counteracting faction in the game, an underground movement that defines synths as oppressed beings and strives to liberate sentient synths from their creators. This faction, known as The Railroad, strikingly resembles a historical phenomenon, a covert network called the Underground Railroad, which aided the escape of black slaves from the South to free states in the North. By contextualising the game's narrative within the historical backdrop of the US, the synths first mirror the unjustly accused victims who were branded as 'communists' during McCarthyism. Simultaneously, they symbolise the oppressed history of ethnic minorities facing racial discrimination. The plot takes an intriguing turn as it becomes clear that the Institute's objective, mobilising synths, was ultimately aimed at the reconstruction of the world. It's worth revisiting that the Institute bears resemblances to communism in the historical context of McCarthyism. Throughout history communism underwent significant trial and error, resulting in substantial civilian casualties. However, even if one is compelled to acknowledge that communism represented an effort to address prevailing issues, the question arises: What might occur if the US were to embrace certain elements of communist ideology in the present day? Or, what if the US society were to recognise the social and economic value of immigrants (the synths) as an essential component for global stability? Furthermore, these same questions can be posed from an entirely opposite perspective, considering the metaphorical resemblance of synths to both 'communists' and 'slaves'. For instance, if we were to perceive the rise of Trumpism and the Bush administration's invasion of Iraq as attempts to resolve inherent prevailing issues in America, and strive for a better world, where do we go from there? Fallout: New Vegas and Fallout 4 give players multiple decision-making scenarios in this ‘where do we go from there?’ situation. Players can either opt to align themselves with a particular faction introduced in the storyline, aiming to undermine or annihilate their adversaries, or they can forge their own group. The commonly perceived 'true ending' of the game unfolds when the protagonist embarks on a journey, envisioning a new future shaped by human hands. Nevertheless, whether this path truly represents the best choice among the available options remains a matter of uncertainty. But regardless of the option the player decides to choose, the game's outcome often serves as a reflection of certain episodes from US history, as previously discussed. The ongoing political struggle in the US, exemplified by the conflict between the Trump and Biden administrations, therefore, can be seen as another iteration of the US’s historical pattern. Biden brings Trump, and Trump brings Biden – a cycle of perpetual conflict. The fictional world of Fallout emerges as a consequence of ‘resetting’ these recurring conflicts followed by the massive destruction. Yet, the humanity still hurtling down to the path of self-destruction through warfare. However, even within what may appear to be an endless cycle, one can choose to explore uncharted territories, akin to the Yes Men in Fallout: New Vegas or the Commonwealth Minutemen in Fallout 4 . Just as the American Revolutionary War once emerged, all these elements contribute to the complex tapestry of the US as what it is. Perhaps it is the reminiscent of Fallout 's timeless slogan, "War never changes". Tags: fallout3, projectpurity, GECK, fukushima, radioactive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Columnist) Minha Kim Kim is known for his activities as a critical expert on current affairs in various press media. But he is also an active gamer who never let go of games. Some of his publications includes 『a cynical society』, 『Otaku Loved Lenin』, as well as a co-author of 『Now, Here, Far-Rightism』, 『right-wing discontent』, 『Twitter, that 140-character egalitarianism』. His latest publication is 『Democracy where you vote because you don't like that side』. (Doctoral researcher at Aalto University, Finland) Solip Park Born and raised in Korea and now in Finland, Solip’s current research interest focused on immigrant and expatriates in the video game industry and game development cultures around the world. She is also the author and artist of "Game Expats Story" comic series. www.parksolip.com
- <시티즌 슬리퍼>: 꿈에서 깨어나지 않기를
인류는 늘 유한성에 저항해 왔다. 이러한 저항은 단지 물리적인 제약을 극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고착화된 이념을 넘어서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유한성에 대한 저항은 어떤 의미인가? 이 글에서는 저마다의 '몸에 새겨진 꿈'으로부터 그 답에 다가서고자 한다. 여기에서 몸은 지극히 사회적이며 개인적인 신체를 뜻한다. 그리고 꿈은 희망과 절망을 의미한다. ‘꿈을 꾸는 것’은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자,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헛된 기대이기 때문이다. < Back <시티즌 슬리퍼>: 꿈에서 깨어나지 않기를 22 GG Vol. 25. 2. 10. ※ 스포일러가 간접적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 슬리퍼(Sleeper) [1] 인류는 늘 유한성에 저항해 왔다. 이러한 저항은 단지 물리적인 제약을 극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고착화된 이념을 넘어서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유한성에 대한 저항은 어떤 의미인가? 이 글에서는 저마다의 '몸에 새겨진 꿈'으로부터 그 답에 다가서고자 한다. 여기에서 몸은 지극히 사회적이며 개인적인 신체를 뜻한다. 그리고 꿈은 희망과 절망을 의미한다. ‘꿈을 꾸는 것’은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자,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헛된 기대이기 때문이다. 이 둘은 자신의 꼬리를 물고 놓지 않는 우로보로스처럼 서로 맞물려 있다. 그러므로 몸에 새겨진 꿈이란, '나'에게 얽매여 있는 내외부적 요인으로부터 자유를 꿈꾸는 여러 주체들의 염원이다. 신체와 사회라는 이중벽 모든 생명은 신체를 갖고 살아가는 한 여러 한계를 지닌다. 인간 또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을 비롯해 사회에 종속된다는 점에서 복합적인 제약을 지닌다. 사적인 영역에서 일어난 일들도 결국 '나'를 제외한 세계에 연루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먼 미래에, 나의 신체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이러한 상상은 사실 공상 과학 영화나 문학, 그리고 게임에서 자주 다루어져 왔다. 주로 인간의 신체를 영구적으로 개조하거나 안드로이드에 의식을 이식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는 단지 기술 발전에 대한 인류의 환상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서, 인간의 신체에 내재한 사회적 의미를 재고하게 한다. 새로운 신체를 획득하는 것에 대한 상상은 나와 세계 사이의 관계를 조망하고, 나아가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어떤 조건들에 대한 사유로 이어진다. 즉 한정된 신체를 넘어선다는 것은 그저 강력한 힘이나 영생을 얻고자 하는 일만을 지시하진 않는다. 게임 개발사 점프 오버 디 에이지(Jump Over the Age)의 <시티즌 슬리퍼(Citizen Sleeper)>(2022)는 앞서 서술한 논의를 아우르는 게임이다. 이 게임은 자신의 신체와 출신지를 떠나 눈(eye)이라는 도시에 이제 막 도착한 '슬리퍼'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슬리퍼는 인간의 의식과 로봇의 몸을 가진 존재다. 그런데 눈의 시민은 대다수가 인간으로 이루어져 있어 슬리퍼는 철저히 외부인으로 취급된다. 그는 자유와 행복을 찾아 이곳으로 도망쳐 왔지만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그럼에도 '내일'이라는 꿈을 간직한 채 삶을 꾸려 나가는 것이 그의 목표다. 이 게임은 플레이어가 슬리퍼라는 '주체'를 경험할 수 있도록 TRPG(Tabletop Role-Playing Game) 기반의 내러티브적 설정을 활용한다. 즉 시스템의 불가변성과 플레이어의 자율성을 동시에 수용함으로써, 견고하고 거대한 사회에 맞서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이 게임의 시스템은 현대 사회에 내재한 이데올로기를 투사하기도 한다. 플레이어는 신체와 사회로 쌓아 올려진 이중벽을 마주한 채 슬리퍼로서의 꿈을 지켜내야 한다. 시스템 사이를 떠도는 ‘나’ TRPG 시스템은 가상 세계에서 통용되는 공동의 규칙을 갖는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그 범위 안에서 행동을 수행해야 한다. <시티즌 슬리퍼>의 주요 규칙은 다음과 같다. 우선 사이클마다 무작위로 주사위가 부여되며, 그 값은 슬리퍼의 컨디션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슬리퍼의 몸 상태가 나쁘면 주사위의 개수가 줄어들고 행동 성공률이 낮아진다. 주사위는 돈을 벌고, 노동을 하고, 사람을 사귀는 등 행동하는 데에 쓰인다. 반복이 불가능하거나 연한이 정해진 행동이 있다. 주사위를 모두 소진하면 더 이상 행동을 수행할 수 없으며 사이클을 종료해야 한다. 방금 살펴본 것들은 플레이어가 개입할 수 없는 부분으로 제한적이다. 또한 게임의 시스템은 내러티브 안에서 심리적인 제약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과거 노예 로봇이었던 슬리퍼는 눈에서 사회적 약자에 속한다. 이는 에피소드 초반부터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플레이어는 매사에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데 여러 번 고민한다. 간혹 도와주는 사람이 등장하지만, 눈의 사회는 그들의 호의를 의심하게 만든다. 게다가 슬리퍼의 몸체는 의도적 구식화를 겪고 있다. 일정 기간 내에 제조사에서 판매하는 전용 영양제를 투여하지 않으면 기력을 잃게 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곳에서는 쉽게 구할 수가 없다. 이로써 슬리퍼의 컨디션은 급격히 나빠지고 행동 성공률도 낮아지게 된다. 눈의 사회는 슬리퍼의 주체성을 서서히 마비시킨다. 앞서 살펴본 두 요소는 슬리퍼의 행동에 제약을 준다. 그러나 플레이어는 이 모든 과정 사이에 자신의 관점을 투영함으로써 자율성을 획득할 수 있다. 우선 <시티즌 슬리퍼>는 본격적으로 게임을 시작하기에 앞서 각각의 캐릭터가 가진 능력과 성격을 간략하게 설명한다. 한눈에 이해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정보다. 그러므로 플레이어는 자신을 중심으로 캐릭터를 바라보게 된다. 즉 플레이어의 내면이 캐릭터의 자아에 투사되는 것이다 [2] . 그리고 이는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 플레이어이자 캐릭터인 '나'를 통해 슬리퍼의 주체성으로 발현된다. 또한 눈이라는 낯선 사회로의 진입은 플레이어와 슬리퍼에게 동등하게 주어진다. 예측 불가능한 삶에 갑작스럽게 불시착한 그들은 서로 결속을 다진다. 그뿐만 아니라 플레이어는 게임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상황에 즉각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 에피소드는 주로 등장인물 간의 대화로 진행되는데, 이때 플레이어는 슬리퍼의 태도와 행동을 직접 선택할 수 있다. 심지어 주어진 임무를 모두 수행하지 않아도 된다. 초반에는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그러나 이곳에 점차 적응하면서 진취적인 태도로 나서게 된다. 이처럼 <시티즌 슬리퍼>의 시스템은 플레이어의 행동에 일정 부분 제약을 주지만, 결정적인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플레이어에게 거부와 순응, 저항의 강도, 가치의 추구 등에 대한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슬리퍼로서의 꿈을 지켜 나갈 수 있도록 한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삶의 주도권은 자꾸만 사회로 되돌아가려 한다. 슬리퍼라는 존재가 가진 근원적인 한계일까? 이곳에서는 '내일'을 맞이할 권리가 이상하리만치 멀게 느껴진다. 슬리퍼, 꿈의 의미 <시티즌 슬리퍼>는 개인이 대항할 수 없는 사회의 불가변성을 시스템의 중심에 두었다. 그리고 신체가 가진 제약도 결국 그로부터 비롯됨을 플레이어 스스로 인지해 나가도록 했다. 이 게임에서의 자율성은 슬리퍼의 행동에 대한 결정권을 넘어, 사회에 내재한 비판 거리를 취할 수 있는 권한으로 확장된다. 특히 에피소드마다 제공되는 시적인 글은 슬리퍼에 대한 이해를 도모할 뿐만 아니라, 그 존재가 함축하는 의미를 다각도로 바라보게 한다. 이 글의 마지막 장에서는 처음에 제시한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서, 인류가 한정된 신체로부터의 해방을 염원해 온 이유에 조금이나마 다가서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게임을 플레이하며 발견한 '슬리퍼'와 '꿈'에 담긴 의미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슬리퍼는 인간의 신체로부터 벗어난 존재다. 즉 과거에 지니고 있던 어떤 제약에서 이미 벗어나 있다. 그럼에도 슬리퍼는 신체와 사회라는 이중벽에 또다시 직면했다. 슬리퍼의 본체인 인간은 떠나온 곳 어딘가에 여전히 잠들어 있다. 즉 슬리퍼는 살아 움직이는 누군가의 꿈인 것이다. 또한 슬리퍼에게는 인간이었던 시절의 기억이 데이터화되어 부분적으로만 남아 있다. 이는 대체로 무더움, 차가움, 쓰라림, 딱딱함 등 '로봇의 몸으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감각'에 대한 것들이다. 슬리퍼는 몸에 대한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 날 때마다 감각과 사고 사이에 지연을 느껴 혼란스러워한다.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몸에 대한 감각은 슬리퍼의 기억 안에 정보로만 남아 있다. 그렇다면 슬리퍼는 인간인가, 로봇인가? 사실 이 중에서 하나를 택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슬리퍼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눈의 사회, 그리고 타인의 시선이기 때문이다. 물론 플레이어에게는 이에 대항할 권리가 주어졌다. 그러나 이 또한 슬리퍼에 내재한 꿈으로 흡수되고야 말았다. 결국 한정된 신체로부터의 해방은 '나'를 규정하는 사회, 그리고 이를 지탱하는 집단적 이념에 균열을 내는 일이다. 즉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을 스스로 확립하고 지켜내기 위한 예사로운 투쟁이다. 사실 슬리퍼의 꿈은 정말 사소했다. 그는 단지 살고 싶었다. <시티즌 슬리퍼>의 결말은 그 꿈이 희망이었는가 절망이었는가를 가리키지 않는다. 그저 '내일을 꿈꿀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는 메시지가 암시적으로 드러날 뿐이다. 슬리퍼는 모순된 존재다. 누군가의 이루어진 꿈이 다시 꾸는 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꿈의 속성은 본래 모순으로 이루어져 있다. 희망과 절망, 현실과 이상, 기대와 좌절,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의 꼬리를 물고 돌고 도는 것이 바로 꿈의 의미다. 저마다의 몸에 새겨진 꿈은 이 궤도를 따라 생겨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꿈에서 깨어나지 않아도 된다. [1] 이미지 출처: https://www.pointnthink.fr/en/interview-gareth-damian-martin-2/ [2] 이승제, 정의준, 김정애, “ 청소년 대상 TRPG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위한 콘텐츠 개발연구 -청소년의 정서적 외로움 문제 해결을 중심으로- ”, 겨레어문학 제73집, 2024, p.61-62.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큐레이터) 박정서 미술이론을 공부하고 시각예술 분야에서 전시, 비평, 워크숍을 한다. (비)과학에 관심을 두고 뉴미디어 아트와 비디오게임을 탐구한다. 최근 참여한 프로젝트로는 연구 <기이한 게임과 으스스한 게임>(2024, 서울문화재단 RE:SEARCH), 전시 (2024, WWW SPACE), 워크숍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게임 비평>(2024, 아트코리아랩 아트랩클럽), 전시•워크숍 (2024, 하자센터 미디어아트 작업장) 등이 있다.
- [Editor's View] 생존본능에서 장르에 이르기까지의 공포
공포는 흔히 생존본능에서 만들어졌다고들 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위험한 것들을 피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우리는 위험을 보고 무서움을 느낍니다. 덕분에 살아남아 다양한 기술을 발전시킨 인류는 실존하는 위험으로부터 무서움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분리해내기에 이르렀고, 많은 예술을 통해 분리된 감정은 호러라는 장르를 만들기에 이르렀습니다. < Back [Editor's View] 생존본능에서 장르에 이르기까지의 공포 19 GG Vol. 24. 8. 10. 공포는 흔히 생존본능에서 만들어졌다고들 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위험한 것들을 피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우리는 위험을 보고 무서움을 느낍니다. 덕분에 살아남아 다양한 기술을 발전시킨 인류는 실존하는 위험으로부터 무서움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분리해내기에 이르렀고, 많은 예술을 통해 분리된 감정은 호러라는 장르를 만들기에 이르렀습니다. 디지털게임에 이르면 호러는 한층 더 강력해집니다. 게임은 플레이어를 공포의 현장 한가운데에 밀어넣기 때문에 많은 경우 게임에서의 공포는 관조가 아닌 개입과 참여를 통해 전달됩니다. 무서운 것을 보는 것과, 직접 무서운 일을 일으키거나 맞닥뜨리는 것의 차이는 결코 작지 않을 것입니다. 역대급 폭염이 덮친 2024년 8월 GG의 탐색은 호러를 향합니다. 후발 매체로서 디지털게임은 공포라는 감정을 자신이 매우 잘 다룰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상태에서 많은 기존 매체들의 문법을 학습해 왔고, 게임 특유의 호러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적지 않은 수로 쏟아지는 공포 게임들이 이 실험과정의 활발함을 보여주는 단서들일 것입니다. 한켠에서는 무서워서 공포 게임을 손도 못 대는(저를 포함합니다) 사람부터, 호러 게임을 아무렇지도 않게 늘상 붙잡고 있는 마니아까지의 다양함을 다 담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게임에서의 호러가 어떤 의미인지를 폭염 속에서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이번 19호를 기점으로 GG는 만 3년을 채웠습니다. 게임에 관한,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가 나름의 영역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끊이지 않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놀라곤 합니다. 그러나 아직 한국에서 디지털게임을 무겁게 이야기하는 일은 성에 차는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에 GG는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이 멉니다. 걸어온 길보다 더 머나먼 앞날의 길에도 독자분들과 함께 걸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는 9월 초까지 진행되는 게임비평공모전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인터뷰] 디지털게임 다양성/접근성 가이드북 제작, 스마일게이트 D&I실 이경진 실장
"이런 사람도 게이머고 저런 사람도 게이머고, 아직 게임을 하지 않은 사람들도 게이머가 될 수 있다라고 확장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우리가 대중 문화로서의 게임의 위상을 스스로 높이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에버랜드에서도 ‘게임문화축제’라고 해서 게임 IP를 가지고 행사를 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게임이 굉장히 대중적인 매체가 되어서 놀이공원에 아이들하고 함께 가서 즐길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된 거잖아요. 그렇다면 게이머라고 했을 때도 게이머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는 게 앞으로 수익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마인드셋이라고 생각해요." < Back [인터뷰] 디지털게임 다양성/접근성 가이드북 제작, 스마일게이트 D&I실 이경진 실장 20 GG Vol. 24. 10. 10. 지난 2024년 8월, <스마일게이트>는 창작자를 대상으로 게임 접근성과 콘텐츠 다양성을 주제로 한 레퍼런스북 두 권을 출간했다. <게임 접근성 개념과 사례>에서는 장애를 포함하여 다양한 조건에 처해 있는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제한 없이 즐길 수 있도록 고안된 ‘게임 접근성’에 관한 개념과 현황, 사례를 담고 있다. <콘텐츠 다양성 개념과 사례>는 ‘문화다양성’ 개념을 소개하고, 미디어와 게임 속에서 문화다양성이 구현된 사례를 다루고 있다. GG는 이번 호 인터뷰에서 스마일게이트 이경진 실장을 만나 기업이 D&I(Diversity & Inclusion)를 강조하는 맥락을 살피고, 문화로서의 디지털 게임을 만들어가는 데 있어 접근성과 다양성이라는 가치가 사회적, 상업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들어보았다. 이경혁 편집장: 이 인터뷰를 기획하게 된 것은, 한국의 게임사들이 접근성과 다양성이라는 주제 내에서 이런 모습들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좀 더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목적에서 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선제적으로 (접근성/다양성 책자라는) 결과물을 내신 거잖아요. 항상 첫 발을 내딛는 게 저는 쉽지 않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국내에 참고할 만한 사례가 많았던 것도 아닐 테고, 제로베이스에서 처음 이 작업을 하실 때 겪었던 어려웠던 점이나 생각나는 점이 있으신가요? 이경진 실장: 입사를 하고 6개월 정도 있다가 미국의 GDC(Game Developers Conference, 게임 개발자 회의)에 처음 갔어요. 전 세계의 개발자들 수만 명이 모여 컨퍼런스를 여는데, 당장 수익 증진에는 거리가 먼 주제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그거를 저희 같은 부서에서 하는 게 아니라 개발자들이 나와서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노하우를 공유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특히 접근성 같은 경우에는, 게임이 대중적인 여가 매체로서 확산되어 가고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게임을 만드는 데 있어 과연 다양한 배경을 가진 플레이어들을 직접 만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사람들이 원하는 걸 어떻게 청취하고 있는가’를 보았을 때 상당히 부족한 부분이 많더라고요. 우선적으로 장애를 가진 플레이어들이 그랬는데, GDC의 게임 접근성을 발표하는 스피커 분들은 실제로 장애를 가지고 있는 당사자들이었어요. 그리고 회사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고용하거나 커뮤니티를 연계해서 장애 당사자들의 피드백을 청취하는 채널이 있더라고요. 근데 우리는 회사에는 그게 부족하니까, ‘이 일은 우리가 해야 되는 일이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해야 될까를 고민하다가 직접 사용자를 고용하는 게 가장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장애인 게임 테스터 고용과 관련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실제로 고용 기회가 많았었나요? 이경진 실장: 오히려 그 지점에서 (직접 사용자를 고용할) 기회가 많았어요. 예를 들어, 저희 접근성 테스터 중 선천적으로 청각장애가 있는 분이 계신데, 그 분은 여섯 살 때까지 말을 못하다가 보청기를 사용하면서 말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경우였어요. 이 친구에겐 게임이 친구였고 삶 그 자체였더라구요. 비장애인들은 게임 업계에 종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게 많잖아요. 이렇게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제) 장애인의 비율만큼이라도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 기회가 더 있어야 되는 게 상식적이지 않나 싶었어요. 일례로 (보수적으로) 인구의 5%가 장애인이라고 계산했을 때 그 비율만큼의 우리 게임에 연결된 직업도 있어야 하고 그걸 원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해서 직업 공고를 낸 거죠. 이 기회에 고용을 통해 제대로 된 직업을 만들어서 (장애인 게임인력을) 전문적으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처음 시작할 때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저희의 의도나 배경을 자세히 설명했고 고용공단에서도 이걸 굉장히 의미 있게 받아들였어요. 왜냐하면 장애인 전형으로 나오는 일반 직업들은 거의 ‘네일 아트’라든지 ‘세차’라든지, 특정 산업에서 만들어내는 생산품과는 거리가 먼 서비스 관련 직업들이 많았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고용공단에서) 이거는 새로운 케이스고, 한국 게임 업계에서 적어도 이 판교 지역에서는 더 퍼져나갔으면 좋겠다고 해서 지원을 정말 많이 해주셨어요. 덕분에 저희 공고에도 막판에 지원자가 많이 들어왔어요. 면접을 보게 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로 게임을 꼽고 그걸 직업으로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었구나. 근데 그동안 기회가 없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제가 아까 말씀드린 청각장애인 테스터 친구를 오늘 만났는데 문득 이런 얘기를 하더라구요. 자기는 이 직업이 아니었으면 자기가 좋아하는 게임으로 깊게 고민을 하고 일로서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걸 생각조차 못했을 것 같다고. 이경혁 편집장: 접근성과 다양성 문제를 세팅하는 과정에 있어, 말씀하신 것처럼 회사에서는 의무적으로 해야 되는 부분도 있을 거고 사회 환원의 목적도 있지만 동시에 그냥 비즈니스의 확장이라 볼 수도 있잖아요. 조금 어려운 질문일수도 있겠습니다만, 회사 입장에서도 여러 목적이 있었을 텐데, 혹 시장적인 목적과 윤리나 도덕적 목적 두 가지로 이원화를 한다면 어느 쪽이 더 비중이 크다고 보세요? 이경진 실장: 굉장히 좋은 질문을 해주셨어요. 그런데 저도 처음에 이 가설을 가슴에 품었을 때는 사회적인 가치 추구라는 목적에 무난하게 부합하는 일이라고만 생각을 했었어요. 근데 (테스터들이) 게임을 사랑하는 유저이기도 하기 때문에, 게임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살펴보며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자에게 피드백과 리포트를 주는데, 거기서 도움이 된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어요. 결국에는 접근성 테스터들이 게임 콘텐츠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봅니다. 게임을 한 손으로 플레이하는 사람, 발가락으로 플레이하는 사람, 눈으로만 플레이하는 사람 등 신체적 조건이 굉장히 다양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을 직접 만나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아야 디테일한 문제를 잡아갈 수 있고, 결국은 접근성이라는 게 출발은 ‘소수’에서 시작하지만 그게 도착하는 곳은 ‘다수’이거든요. 그래서 ‘접근성이란 결국은 다수를 위한 품질 향상에 기여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해요. 품질 향상은 더 많은 유저들을 끌어올 수 있는 디딤돌이 되는 거고요. 이경혁 편집장: 접근성과 관련된 업무는 게임 개발보다는 테스터 쪽에 주로 방점이 찍히는 것이지요? 이경진 실장: 맞아요. 게임 내 문제를 발견하는 데 방점이 있어요. 계속 여러 게임을 테스트하면서 접근성의 맥락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발견하고, 그 문제가 강하게 보이면 보고하고요. 그리고 다른 유사한 장르 게임을 많이 플레이 하다 보니 ‘이 장르의 어떤 게임은 어떤 요소로 색각이상자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데 이 게임은 그걸 못하고 있다’ 라는 식으로 피드백하기도 해요. 그리고 청각장애 같은 경우에는 청각적 요소를 시각화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모든 소리를 시각적인 정보로 표현해 놓으면 게임을 하는 데 장애가 대부분 없어지거든요. UX/UI 디자인적으로 청각 정보를 어떻게 시각화한 여러 레퍼런스 (사례) 들은 게임 디자인시 도움이 많이 되는 부분이죠. 이경혁 편집장: 사실 그런 부분은 어떤 특정 장애의 문제가 아니라, 지하철에서 소리를 꺼놓고 게임할 때 발견할 수 있는 문제점 쪽으로도 확장될 수 있는 것 같구요. 제가 자주 하는 얘기가 ‘저상버스가 들어오면 우리 엄마 무릎이 편하다’거든요. 말씀하신 것처럼 접근성이 모두를 위한 보편성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아까 말씀주셨듯 테스터 쪽에는 소위 말하는 당사자성을 가진 테스터들이 들어오면서 이런 접근성의 문제를 보기 시작하신 거네요. 그러면 개발 부서에서는 접근성 테스터들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뭔가 변화했다라는 느낌을 받으셨을까요? 이경진 실장: 저도 사실 그게 가장 걱정됐었어요. 개발 부서의 경우 제한된 인력과 시간 때문에 (접근성 문제가) 우선순위에 밀릴 수도 있고, 개발하는 단계에서 사실은 버그 하나 더 잡는 게 맞다고 생각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처음에 이 얘기를 꺼내기가 힘들었는데, 지금은 접근성 문제가 어느 정도 인지가 된 것 같아요. 신작 개발하시는 부서에서, 우리 게임이 글로벌 유저한테 다가가려면 접근성 문제 파악이 필요할 것 같아서 접근성 리뷰를 요청드리고 싶다고 얘기를 하셨어요. 글로벌 서비스 개발 조직에 있는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면 ‘접근성 문제 때문에 우리 이거 몇 번이나 뒤집었다’ 이런 얘기들도 하고, 그래서 이제는 산업에서도 진짜 필요성을 느끼는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이런 문화가 아예 없었다가 어느 정도 정착되었다라고 했을 때,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까요? 이경진 실장: 우리가 테스터를 1월에 뽑아서 처음 접근성 리뷰 공유회를 연 게 6월이었거든요. 당시 개발자들도 많이 오셨는데, 한 팀장님께서 자기가 십수 년 동안 게임 개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이 관점에서 생각을 해보지 못했는데, 오늘 이런 관점의 필요성을 너무 느꼈고 앞으로 개발할 때 고려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대요. 개발자에게 직접 실제 적용에 대한 피드백을 듣기까지 1년 반 정도 걸렸네요. 접근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잡는데 걸린 시간인 것 같아요. 개발팀 미팅 단계에서 누군가 ‘우리 이거 접근성 측면에서 괜찮을까요’라고 말할 수 있거나, 전체 게임 개발을 리드하시는 분이 ‘이거 접근성도 고려해 보세요’라고 언급하는 단계까지요. 이경혁 편집장: 1년 반 정도 작업한 결과 그래도 이제는 성과가 나는 것 같다는 것이군요. 예상하신 만큼의 시간인가요? 저는 이 인터뷰를 다른 게임사의 관련 부서들이 좀 고려했으면 싶어서요. 선행 부서가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를 알면 대략의 가이드라인을 가져가기 쉽지 않을까, 그런 느낌으로 여쭤보는 거거든요. 이경진 실장: 저는 솔직히 생각보다 조금 빨랐어요. 아무래도 <스마일게이트> 구성원들에 이 문제에 관심도가 높으신 분들이 꽤 있어서인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또 궁금한 게, 얼마 전에 접근성 기기 전시회도 여셨지만 사실 <스마일게이트>가 하드웨어를 제작하는 회사는 또 아니지 않습니까? 근데 많은 경우에 접근성은 하드웨어 문제에 부딪히는 경우도 있잖아요. 접근성을 담당하시는 부서 입장에서 생각하시는 ‘여기까지는 가야 한다’는 수준이 있을 텐데, 소프트웨어 쪽이다 보니 우리 회사의 영역이 아닌 부분도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혹시 그런 케이스도 많이 겪어보시나요? 이경진 실장: 저희는 지금 저희가 통제 가능한 부분들에 집중을 하고 있다 보니 직접적으로 그런 상황을 겪지는 않았는데요. 그런데 보조기기가 시중에 나와 있는 곳들이 꽤 있어요. 경기도 재활공학센터와 저희가 더 긴밀하게 소통을 하고 있어 접근성 보조기기 전시도 가능했었던 거구요. 그리고 보조기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직접 더 많이 만나야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더 찾아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원데이 패널 프로그램을 통해 게임 유저들 중 보조기기 사용하시는 분들을 초청해서 만나려고 하고 있는데 아직은 이 풀(pool)이 너무 적은 상황이에요. 이경혁 편집장: 게임 회사가 아무리 스스로 접근성을 더 갖추고 싶다 하더라도 그런 기기 인프라가 없다면 어쩔 수 없는 영역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한편으로 지금 하시는 작업이 어떻게 보면 사내에서 소위 말하는 프로세스를 바꾸는 작업 이상으로 대외적으로 협업 혹은 협력을 만들어가는 과정일거고, 그런 차원에서 중요하지 않나 싶어서요. 이경진 실장: 맞아요. 접근성에 대한 저변확대를 위해 중요하다고 봐요. 그래서 저희가 경기도재활공학센터와 지금 논의하고 있는 건, 현재 센터에 장애인 유저가 대략 1천 명 정도 이용하시는 센터에 50평 정도의 공간이 있거든요. 거기에 이 책 수익금을 활용해서 컴퓨터 및 보조기기를 셋업하고, 장애인 유저들이 항시 플레이 할 수 있는 ‘게임 플레이 랩’, ‘게임 리빙룸’ 개념으로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굉장히 재밌는 얘기를 해 주셨는데요, 책을 팔아서 수익이 나셨다고 하셨습니다. 요즘 책 팔아서 수익 내기가 쉽지가 않거든요. 근데 그래도 좀 유의미한 판매가 난 것 같습니다. 이경진 실장: 수익 자체는 일단 저희가 수익을 바랐던 게 아니어서 특별히 기대하지는 않았어요. 책을 내려고 했었던 거는 사실 뭔가를 처음 할 때는 언어가 없잖아요. 이걸 뭐라고 명명을 하고 이런 콘셉트 자체를 뭐라고 명료하게 표현을 해야 될지를 모르는데, 그걸 언어로 표현을 해 놓으면 이 가치가 좀 더 확산되고 이게 뭔지를 모르는 사람들한테 우선 인식하는데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어떻게 보면 첫 발자국을 찍는다는 차원에서 책을 낸 것이었어요. 최대한 우리가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언어를 만들고, 그 다음에 더 노력을 해서 또 버전업을 해내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내게 된 거죠. 이경혁 편집장: 이번에 내신 책도 약간 연작의 일환이라 보면 될까요? 혹 그렇다면 3권과 4권에 대해서 플랜을 듣고 싶은데요. 이경진 실장: 네, 이번 책을 보시면 시리즈 개념으로 넘버링이 되어 있거든요. 3권, 4권에 대한 플랜은 아직 구체적으로 나와 있는 건 없지만, 저희가 했었던 것들이 좀 쌓이면 저희들의 내부적인 사례를 좀 더 많이 얘기 해볼까 합니다. 게임 접근성 단행본의 3챕터에 저희 사례가 좀 들어가 있거든요. 앞으로도 저희의 행보에 대한 기록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어요. 책 말고도 교육 영상을 만든 게 있어요. <다양한 플레이어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방식, 포용적 게임 디자인> 인데요. 이건 게임에 국한해서 게임 개발자들을 위해서 만든 영상으로 된 교육 콘텐츠에요. 현재는 사내에서 교육 영상을 확산하는 단계에 있고, 앞으로는 대학 및 산업 기관을 중심으로 미래의 게임 창작자들을 대상으로 확산시키려는 계획이에요, 필요성에 공감하는 기관들과 업무 협약을 맺어서 저희가 무료로 콘텐츠를 공급하고 대학에서 실습 등을 통해 이런 것들을 다뤄주는 형태를 생각하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이건 좀 사적인 질문일 수도 있는데, 다양성과 포용성 관련하여 교육할 수 있는 역량이 지금 준비가 되어 있는 상황일까요? 이경진 실장: 다양성, 포용성 문제가 사실 전통적인 패러다임의 결은 아니잖아요. 이 주제로 커리큘럼을 다루고 실습을 연계하고자 하는 국내 교육기관(대학) 이나 학회와의 협력을 생각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학회에서 <포용적 게임 디자인> 교육 콘텐츠를 토론을 위한 기초 지식으로 활용하고 해외 연사들을 초대하여 컨퍼런스를 여는 것은 가능할 것 같아요. 이 작업을 처음 할 때 미국의 비영리 게임접근성 교육기관인 <에이블게이머즈>의 전문가들, 그리고 인클루시브 게임 디자인 관련된 해외 전문가들과 협업을 했었는데 그런 분들을 초청해서 전문 포럼을 여는 거죠. 이렇게 학회나 콘텐츠 산업 쪽과 같이 만들어 나가는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저는 계속 이 작업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결국 이거는 하나의 회사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번에 접근성 전시 때도 놀랐던 게, 소위 말하는 범-회사에서 담당자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오시기도 하셨잖아요. 그러한 움직임이 지금은 좀 어떤가요? 이경진 실장: 해외의 경우 페어 플레이 얼라이언스(Fair Play Alliance) 같이 게임사들과 플레이어들이 같이 모여서 우리가 게임 산업과 플레이어들을 더 많이 늘리기 위해 어떻게 같이 서로 돕고 시장 자체를 키울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같이 하거든요. 한국에서도 서로 활발히 소통하며 교류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이경혁 편집장: 저도 전문 프로그래머는 아니지만, 사실 많은 IT들이 어떤 표준을 세팅하는 과정을 보면 보통 국제포럼을 통해 하나의 기술을 어떻게 표준으로 받아들일 것인지를 공동으로 발의하고 통과시키는 과정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접근성 쪽이 그런 국제적 협업 과정이 되게 필요하다고 보는데요. 미국 같은 경우도 미국에서 쓰는 접근성 가이드가 있고 그것을 보편화하려고 노력하지만, 희한하게 그런 것들이 국제적인 협업으로는 잘 안 나온다는 이상한 느낌이 있지요. 다른 IT 기술 표준들은 그렇게 작동을 하는데 왜 접근성 문제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경진 실장: 저도 그 생각을 되게 많이 했는데요. 일단 북미 차원에서는 이 흐름을 주도하고 협력하는 모습들이 보이는데 유독 아시아 시장과는 커넥션이 되게 약해요. 아시아 게임 시장이 굉장히 급속도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커넥션이 많이 약해서, 근데 이제는 좀 달라지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저희가 게임 접근성을 다루고 있어서 그런지 사내에서 관심 있는 개발자들이 예전보다는 좀 많아졌다는 걸 느껴요. 프론트엔드 개발자인데 이런 가치에 자기가 공감을 해서 더 공부하고 싶다던지, 개인적으로 관심을 알려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사실 그런 분들 한두 분씩 보면서 이걸 멈추지 않고 꾸준히 해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죠. 이경혁 편집장: 회사가 이 정도의 의지를 갖고 이만큼 추진을 한 거고, 성과도 난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공공은 어떤가 궁금해요. 지금 공공과 협업을 많이 하시는 것 같은데, 사실 정부에서 좀더 관심을 갖고 뭔가 더 지원하면 정부의 입장에서도 성과일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이경진 실장: 접근성 문제와 관련된 노력을 보인 게임사 대상 세액 공제 지원 정책 필요성에 대한 컨퍼런스가 지난달에 열렸었어요. 게임 접근성은 다른 콘텐츠에 비해 기술적 의존도와 난이도가 높아, 민간 업계의 주도적인 참여 없이는 공공 영역에서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고 추진하는 움직임이에요. 게임 접근성 필요성에 대한 담론은 이미 많이 이루어졌다고 보고, 공공 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다루는 움직임이라 이제는 속도가 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희는 공공에서도 실제 기업들을 움직여야 된다는 걸 인지를 하셨구나 싶어 반가웠어요. 민간을 움직이지 않으면 이게 안 되는 거라는 거를 인지를 하고, 민간을 어떻게 움직이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구나라고 느꼈었거든요. 이경혁 편집장: 저는 앞으로 각 게임사에 접근성과 다양성 관련 부서들이 더 생길 수 있을거라고 전망하고 있는데요. 사내에서 개별적으로 움직여 만드는 경우도 있겠지만, 한국 안에서 일종의 연합체 같은 형태로 나타나는 게 유의미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가끔 그런 협회들이 무의미하게 공회전하는 경우도 있다 보니 이런 질문을 드리게 됩니다. 특히 회사 단위를 넘어 좀 초월적인 협력이 필요할 때 동력을 만들 수 있는 외부 기관의 존재 필요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이경진 실장 :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보태면 좋긴 한데, 거기서 빠지면 안 되는 그룹이 개발자라고 생각해요. 실제 소비자에게 닿을 수 있는, 그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협력의 주축이 돼야 한다고 봐요. 실리콘밸리를 보면 개발자들이 자발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꺼내고 다양한 배경의 전문가들과 논의하면서 혁신이 만들어지잖아요. 그런 식으로, 저희도 접근성이라는 문제의식을 가진 개발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이 문제에 대해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확산시킨다면 공회전 가능성이 좀더 낮지 않을까 생각이 들고요. 저희의 경우 아까 말씀드린 사내 접근성 공유회를 주축으로 해서, 접근성 문제에 대해서 얘기하고 같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내 전문가들이 모이는 커뮤니티 형태로 점점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에요. 이경혁 편집장: 어떻게 보면 당사자성을 가진 사람의 게임 개발이라는 게 더 늘어나는 게 최적이겠죠. 그런데 장애를 가진 사람이 게임 개발을 하는 것 또한 그것도 일종의 학습 루트가 필요한 과정인데, 거기에 접근하는 것만 해도 사실은 지금 문제잖아요. 장애가 있지만 게임 개발을 하고 싶고 뭔가를 배우고 싶은데, 거기서만 나올 수 있는 접근성의 문제도 저는 클 거라고 생각해요. 이경진 실장: 맞아요. 당사자성이 있는 개발자들이 더 많아지는 게 저희가 보고 싶은 그림이기도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게임 접근성 테스터라는 직무 타이틀을 만들었지만, 이 일을 하다가 기획을 하고 싶거나 코딩을 배워서 개발 직무를 하고 싶다면 할 수 있게끔 지원하는게 맞다고 생각해요. 장애에 구애 없이 모두가 성장하는 문화가 정착되면 그간 한 번도 협업하지 않았던 유형의 사람들과 협업이 늘어나게 되고 이건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는 자원이 될 수 있어요.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오버랩 되어야 다름이 교차하는 시점에서 혁신이라는 게 일어나고 문제가 발견이 되거든요. 그 교차점까지 데려다 주는 게 저희의 역할인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자꾸 제가 초회사적인 기구의 필요성을 생각하는 게 그 지점이거든요. 결국 개발자 양성을 어떤 특정 회사만이 해결할 문제는 아닌데 그거를 (기업) 밖에서 누가 추진할 수 있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좀 들어서요. 예를 들어 각종 게임 교육 기관들이 있는데 거기에 일정 수준의 장애인 TO를 만든다거나, 아니면 교육 환경 분야에서 애초에 접근성 문제가 해결된 개발 환경을 구축하고 거기에 적응할 수 있는 사람들을 채용하는 등의 방안은 제가 알기로는 아직 그렇게 준비가 안 된 걸로 알고 있어서요.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이 문제의 판을 좀 더 키우려면 협의체가 필요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경진 실장 : 그것도 이 토양을 만드는 데 한 몫할 수 있겠죠. 저희는 사실 그래서 접근성 문제에 그간 관심이 없었는데 듣고 보니 필요하더라, 그러고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작은 것이지만 이거더라, 하고 느끼는 사람이 늘어나도록 노력하는게 목표입니다. 접근성 측면에서 한번 더 고민을 해봐야 되겠다라는 인식이 생기고, 개발 미팅에서도 이 언어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나와주겠죠. 그리고 사실 한국에서는 이 (접근성 문제를 수용하는) 속도가 어떻게 보면 되게 빠를 거라고도 생각하는데요, (해외에서 이슈가 되는 문제를) 따라잡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우수한 점이 있으니까 시동만 걸리면 우리가 정말 잘할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해요. 이경혁 편집장: 저는 매번 실장님 하시는 거 보고 뿌듯한 것도 있고, 한편으론 이걸 하면서 얼마나 고생이실까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그 중의 한 부분이 다양성 부분에 있어요. '접근성'하고 '다양성'은 또 조금 온도가 다르거든요. 다양성을 다루는 데 있어서 한국의 현장에서 느끼는 온도에 대해서 해주실 말씀이 있으세요? 이경진 실장: 네, 접근성과 다양성은 많이 다르죠. 우선, 접근성에 비해 다양성을 해석하는 관점은 다양합니다. 그래서 일단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대해서 매우 존중하고, 다양한 해석은 본인의 경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떤 경험을 했느냐가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결정한다고 봐요. 사실 어려운 얘기긴 한데, 너무 사상적인 내용이 주입이 되어서 실패한 게임들이 있잖아요. 게임이 재미가 본질이여야 하는데, 그 부분이 약한데 개연성이 부족한 채로 사회적 메시지를 강하게 넣으면 이슈로 번지는 케이스가 많았어요. 그래서 다양성과 게임의 성공여부는 연관성은 있지만 인과성으로 보긴 어려워요. 게임의 본질인 재미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으니까요. 거기서 좀 더 그 재미라는 요소를 한 유형으로 환원하지 말고, 즉 주류 플레이어들에게만 집중하지 말고,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있다는 거를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다양성을 다룰 때에는 글로벌 협업이든 당사자 협업이든 당사자성이 있는 사람들, 전문가들이랑 직접 협업을 하는 게 되게 중요하고 이게 약했을 때는 역효과가 있다고 봐요. 이경혁 편집장: 저희 GG에도 가끔 캐나다 연구자들이 기고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한국에 <스마일게이트> 하면 뭐가 떠오르냐 물어보니 보통 소위 말하는 'K-게임'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구요. 어떻게 보면 현재 서비스되는 게임들이 지금 로컬라이제이션이 얼마나 되고 있는지의 문제도 저는 산업적 의미에서의 다양성 문제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이번 접근성과 다양성 작업을 하시면서 사실 그런 부분에서 좀 실무적인 문제들도 많이 보시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이경진 실장: 일단 게임을 만들고 원 빌드로 글로벌하게 배포하면 효율성 측면에서 좋긴 해요. 대부분은 유니버셜하게 통용되긴 하지만 지역별로 특정 문화권의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요소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그런 부분들을 저희 책에 담기도 했고, 그래서 그렇게 특정 사람들이 불편해할 수 있는 요소들은 꼭 로컬라이제이션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피해야 할 것도 있지만 오히려 역으로 이용해서 마케팅 요소로 활용하는 부분들도 있어요.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 지역에서 선호하고 공감하는 요소를 활용하는 거죠. 이걸 잘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많이 내고 검증하는 절차가 꼭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 점에서 글로벌 프랜차이즈가 있는 회사 같은 경우 굉장히 유리하죠. 예를 들어 게임에서 일본 캐릭터를 묘사한다면 일본 오피스에 있는 동료들한테 의견을 구하면 되고, 한국 캐릭터를 구현한다면 한국에 연결해서 그 자원을 활용하면 되니까. 국내 인력 중심으로 운영하는 회사 같은 경우에 글로벌한 다양성 협업을 위한 내부 자원의 활용 면에서 글로벌 회사에 비해서 불리할 수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이제부터가 조금 어려운 이야기가 될 수 있겠는데요, 사실 지역에 대한 다양성은 쉽지만 오히려 젠더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 복잡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얘기는 좀 해봐야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젠더 문제에 대한 내외부의 반응은 어떤가요? 이경진 실장: 직접적으로 그 문제를 언급하는 사람들은 없지만, 인터넷 게시판에서 분쟁이나 토론이 나오는 등 시행착오를 겪기는 했어요. 지금에 와서는 담담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게, 다양성과 관련된 담론과 언어들을 얘기했을 때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분명히 극단적으로 싫어하거나 고개를 젓는 사람들도 있더라는 거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 양 극단을 제가 보는 것은 다양성 문제에 있어 어느 정도의 밸런스를 조정해야 되는지를 배우는 데 굉장히 큰 학습이었다고 생각해요. 이경혁 편집장: 사실 이것도 결국 스펙트럼의 문제라 할 수 있겠는데, 이런 반응이 양쪽에서 동시에 나오는 상황이었다는 거죠. 이경진 실장: 그렇지만 저는 정말 극단적으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도 서로에 대해서 더 알아보는 합리적인 대화가 가능하다는 걸 좀 느꼈거든요. 사실 우리가 단순하게 구체성이 없이 서로 싫어하는 게 많았었기 때문에 한번 얘기를 해보자. 뭐가 싫으냐 이게 싫다. 그럼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같이 따져보면서 얘기를 해보니까 대화가 되더라는 거죠.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서 저는 균형을 잡는 게 굉장히 어렵지만 되게 필요하고 노력을 해야 되는 부분이라는 걸 많이 느꼈어요. 이경혁 편집장: 그게 근데 너무 힘들잖아요. 모든 일 중에 제일 힘든 게 그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심지어 내가 어떤 노력을 한다 해도 그 결과가 이렇게 즉각적으로 돌아오는 것도 아닌 거라고 생각을 해서요. 이경진 실장: 그래서 저도 처음에는 저와 생각이 많이 다른 게이머들을 만날 때 무서웠지만, 그렇기 때문에 많이 만나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얘기를 해봤어요. 실제로 만나니 너무 흥미로운 대화를 했던 기억이 있고요, 그렇게 만나고 그렇게 교차점을 만들어내는 게 필요하구나. 그리고 웬만하면 좀더 실질적인 것을 가지고 얘기를 하려고 해요. 단순히 떠도는 관념적인 것들에서 벗어나서 뭐라도 책이라도 하나 만들고 게임이라도 하나 만들고, 실체가 있는 걸로 만들어서 대화를 하려고 하죠. 제 경우 예전에 일했던 산업하고도 환경이 다르다 보니 되게 조심하고 한마디라도 더 물어보게 되고 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그런 상황을 보니 어떻게든 더 많은 게임사들이 이 얘기를 같이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사실 또 게이머 정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보니, 남들이 게이머를 획일적으로 보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또 기분이 나빴던 사람이기도 하거든요. 사실 게이머들도 (다양성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스테레오 타입에 갇혀 있는 거고, 사실 저는 이 다양성 얘기가 게이머의 다양성 문제로도 갈 수밖에 없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이경진 실장: 제가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지금 말씀해 주셨어요. 이런 사람도 게이머고 저런 사람도 게이머고, 아직 게임을 하지 않은 사람들도 게이머가 될 수 있다라고 확장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우리가 대중 문화로서의 게임의 위상을 스스로 높이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에버랜드에서도 ‘게임문화축제’라고 해서 게임 IP를 가지고 행사를 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게임이 굉장히 대중적인 매체가 되어서 놀이공원에 아이들하고 함께 가서 즐길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된 거잖아요. 그렇다면 게이머라고 했을 때도 게이머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는 게 앞으로 수익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마인드셋이라고 생각해요. 이경혁 편집장: 게임이니까 할 수 있는 다양성이 오히려 더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면 영화가 못하는 다양성이 있을 거고, 근데 그런 것들이 어떻게 하면 게임사가 사람들로 하여금 이 다양성이 얼마나 매력적인가를 만들어내는 것도 게임 디자인의 굉장히 중요한 목표가 아닐까 싶고. 그래서 저는 다양성을 윤리로 보지 않으려 합니다. 이경진 실장: 맞아요. 규범적으로 바라보면 안 된다고 봐요. 하나의 바램이 있다면, 다양성을 얘기했을 때 ‘이거 PC 주입 아니야’라고 리액션이 나오는 사람이 적어지는 것(웃음). 나중에는 다양성의 가치는 이러이러한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자신의 관점에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발더스 게이트 3>을 보면 자유도가 엄청 높잖아요. 처음 설정 단계부터 민감한 부위에 대한 노출 여부, 외형에 대한 다양성 및 접근성에 대한 옵션들이 고도화 되어 있어요. 어떻게 보면 다양한 사람들이 원하는 취향의 폭을 최대한으로 구현을 해놨는데 게임에 이런 자유도가 있어서 좋다라는 평이 더 많았거든요. 다양성 이슈에서는 사실 그런 방향을 좀 더 추구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합니다. 사람마다 좋아하고 공감을 일으키는 아이템을 구매하는 욕구가 다 다르듯이, 게임 내 디자인적 요소들도 다양하게 표현하는 거죠. 창작의 자유와 다양성을 연결 시키면, 기업에서도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전략적으로 활용해서 성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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