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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아블로〉 시리즈의 역사로 바라보는 블리자드의 변화
2021년 2월 20일에 시작된 블리즈컨라인(BLIZZConline)의 분위기는 어수선하기만 했다. 2005년 10월 처음 개최된 블리즈컨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이하 블리자드)가 자신들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는 팬들을 위한 축제로써 기획되었다. 하지만 지난 몇년간의 블리즈컨의 분위기는 분명 예전과 달랐다. 제작자와 게임 팬의 화합의 장이었던 블리즈컨이 끝나면 항상 팬들의 열화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지만, 최근 들어 함성은 잦아들고 작은 수근거림이 더 많이 들리기 시작했다. < Back 〈디아블로〉 시리즈의 역사로 바라보는 블리자드의 변화 02 GG Vol. 21. 8. 10. 2021년 2월 20일에 시작된 블리즈컨라인(BLIZZConline)의 분위기는 어수선하기만 했다. 2005년 10월 처음 개최된 블리즈컨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이하 블리자드)가 자신들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는 팬들을 위한 축제로써 기획되었다. 하지만 지난 몇년간의 블리즈컨의 분위기는 분명 예전과 달랐다. 제작자와 게임 팬의 화합의 장이었던 블리즈컨이 끝나면 항상 팬들의 열화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지만, 최근 들어 함성은 잦아들고 작은 수근거림이 더 많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을 그저 지나가는 해프닝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직전 년도에 발매되었던 〈워크래프트 III: 리포지드〉는 그간 ‘블리자드 = 게임 제작의 명가’라는 평판에 물음표를 던져 주기 충분했고, 때문에 이런 어수선함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이런 전후 사정으로 코로나 시대에 열린 온라인 블리즈컨인 2021년 블리즈컨라인에 팬들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행사에서는 기존 발표 신작( 〈오버워치 2〉, 〈디아블로 IV〉)에 대한 개발 중간 보고 형태의 정보가 있었고, 블리자드가 제작했던 초창기 인기작(〈락앤롤 레이싱〉, 〈길 잃은 바이킹〉, 〈블랙쏜〉)의 리메이크 버전에 대한 내용이 공개되었다. 그리고 오래된 블리자드 팬들을 들뜨게 만드는 소식이 전해졌다. 바로 〈디아블로 II〉의 리마스터 버전인 〈디아블로 II: 레저렉션〉이 올해 발매 된다는 이야기였다. 국내에서도 유명한 기업인이자 요리 연구가(이자 열성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플레이어)인 백종원씨가 〈디아블로 II: 레저렉션〉의 최초공개 트레일러에 남긴 댓글은 순식간에 이슈화가 되면서 이 게임의 무게감을 증명했다. *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NzG-4gDDazg 블리자드의 대표 IP 중 하나인 〈디아블로〉 시리즈의 첫 작품은 1996년 12월 31일 세상에 선보였다. 블리자드의 초기 협력사이자 합병 이후 블리자드 노스로 이름이 바뀐 콘도르에서 처음 제안했던 〈디아블로〉의 형태는 턴 방식의 로그라이크 게임이었다. 하지만 3 시간 동안 제작한 실시간 형태의 프로토타이핑을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만드는 것으로 변경되었고, 우리가 익히 아는 실시간 핵 앤 슬래시 형태의 액션 롤플레잉 게임인 〈디아블로〉가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다. 출시 당시 다른 게임과 완전히 차별화되는 게임성과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 블리자드 최초로 도입된 베틀넷 시스템을 통한 협동 및 대결 플레이 같은 특별한 장점들은 〈디아블로〉를 그해 최고의 게임의 반열에 오르게 만든다. 북미 출시 이후 국내에서도 PC 통신 게임 동호회를 중심으로 게임에 대한 기대감이 점차 높아지고 있었으나, 당시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운영하던 게임물 심의 장벽에 가로막혀 꽤 오랜 기간 동안 국내 정식 발매가 되지 않는 일이 있기도 했다. 당시 〈디아블로〉 1의 국내 유통사였던 SKC는 몇 차례의 발매 연기 속에 일부 영상 장면 등을 삭제한 검열판으로 심의를 통과하여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으로 게임을 발매하였다. * 출처: 컴퓨터 게이밍 월드 1997년 2월호 102 페이지. 〈 디아블로 〉는 잘해야 10만 부 팔릴 것이라 예상한 제작진의 기대를 가뿐하게 넘어 발매 첫 해 100만 부, 이듬해에는 전세계 200만 부 판매를 달성한다. 자연스럽게 후속편에 대한 이야기가 제작진 사이에서 논의되었다. 그리고 〈디아블로 1〉의 출시부터 3년이 지난 2000년 6월 29일 시리즈의 후속편인 〈디아블로 II〉가 발매되었다. 국내에서 〈디아블로〉는 게임 매니아들끼리 만 회자되는, 잘 만든 게임에 불과했다. 하지만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방안 중 하나로 추진되었던 IT 인프라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와, 이를 통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와 PC 방의 급격한 확산. 그리고 이러한 환경에 힘입어 그저 그런 컴퓨터 게임이 아닌 대한민국 대중 문화의 위치를 차지한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의 엄청난 성공으로 인해, 다음 작품으로 내 놓은 〈디아블로 II〉는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게임이 되어있었다. 이러한 관심을 입증하듯, 〈디아블로 II〉는 15만 부의 선주문을 받은 상태로 북미와 거의 동시 발매가 이루어졌다(당시 해외 게임이 국내 동시 발매하는 사례는 매우 드물었다). 하지만 이러한 초기의 관심과 달리, 새로운 대한민국의 전통 놀이로 취급되던 〈스타크래프트〉에 비해 〈디아블로 II〉의 인기는 금세 시들해 졌다(어디까지나 〈스타크래프트〉에 비교해서일 뿐이지만). 국내에서만 약 300만 부를 팔아 치운 〈디아블로 II〉는 운영 문제와 함께 경쟁작이라 할 수 있는 국산 대작 MMORPG 게임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하는 사람만 하는’ 게임이 되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디아블로 II〉는 서비스 중이며 PC 방 점유율 순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 디아블로 II 〉 이후 블리자드는 〈워크래프트〉 IP에 기반을 둔 게임에 거의 모든 역량을 집중한다. 새로운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워크래프트 III: 혼돈의 지배〉와 확장팩인 '얼어붙은 왕좌'가 각각 2002년과 2003년 출시되었다. 여기에 더해 2004년 11월 23일 서비스를 시작한 MMORPG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2021년 현재까지 총 8개의 확장팩을 출시하며 지금까지도 많은 유저를 보유하고 있는 블리자드의 대표 게임이 되었다. 이렇게 제작사로부터 외면 받은 줄 알았던 〈디아블로〉 시리즈에 대한 새로운 소식이 들려온 것은 2008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월드 와이드 인비테이셔널에서였다. 〈디아블로 3〉는 〈스타크래프트 II〉와 더불어 전세계 블리자드 팬들의 초 기대작이 되었다.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서울 왕십리역에서 진행된 전야제 행사에서 〈디아블로 3〉의 한정판을 구매하기 위해 전날 새벽부터 수천명의 사람들이 몰려들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많은 인원을 예상 못한 행사 주최측의 준비 미비로 그야말로 디아블로가 재림한 듯한 혼돈이 연출되었다. 각종 온라인 쇼핑몰에서의 소장판 판매도 판매 시작부터 쇼핑몰 서버가 다운되는 등의 혼란이 발생했다. 대한민국에서의 〈디아블로 3〉 한정판 대란은 또 다른 양상을 보이기도 했는데, 한정판을 사들여 웃돈을 더 받고 다른 사람에게 판매하는 사람들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디아블로〉 시리즈에 등장하는 종족인 네팔렘을 차용하여 만들어진 ‘되팔렘’이라는 단어는 인터넷 게시판 뿐만 아니라 이후 기성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쓰이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혼란상은 이후 벌어진 쓰나미 같은 사태에 비하면 그저 지나가는 가랑비에 불과했다. 2012년 5월 15일, 〈디아블로 3〉를 구매한 게이머들은 게임을 실행하기 위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아이콘을 클릭했다. 하지만 그들을 반기는 건 Error 37 이라는 메시지 창 뿐이었고 정작 게임은 실행조차 되지 않았다. 사유는 이랬다. 불법 복제를 막고 경매장 등의 기능을 위해 야심 차게 도입했던 서버 인증 시스템이 몰려드는 사용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현상이 계속 발생한 것. 이 문제는 게임 발매 후 한 달이 다 되도록 해결이 되질 못했고, 결국 국내 지사인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코리아는 게임 환불을 결정한다. * Error 37, 서버 롤백, 계정 오류 같은 기술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경매장 시스템, 게임의 난이도 배치와 말도 안되는 아이템 드랍 시스템 등으로 인해 초창기 게임의 평가는 계속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리자드는 특유의 뚝심으로 게임의 문제점을 하나 하나 개선해 나가고, 핵심 기능 중 하나였던 경매장 시스템을 날려버리는 특단의 결정을 내리면서까지 결국 죽은 게임을 살려내는데 성공한다. 2015년 8월까지 전 세계적으로 3천만 부가 판매되는 기록을 달성하였다. 전작과 12년의 갭이 있었던 〈디아블로 3〉와 달리, 다음 후속작은 비교적 빠른(?) 6년만에 발표되었다. 2018년 11월 최초 공개된 〈디아블로 이모탈〉은 디아블로 시리즈 최초의 모바일 게임이란 점, 그리고 그리고 게이머들에게 반발이 심한 극단적인 부분 유료화 정책으로 유명한 중국 게임 개발사와의 협업으로 개발 중이라는 점 때문에 팬들의 많은 우려를 샀다. 다행이 얼마 전 진행된 알파 테스트에서 우려는 어느정도 씻겨진 상태이지만, 블리자드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비단 팬들 만이 아니었다. 블리자드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를 우려했을까? 새로운 차기작인 〈디아블로 IV〉의 제작을 공개하였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 출처: 〈디아블로 IV〉 공식 시네마틱 영상 | 세 명이 오리라 2021년 현재 〈디아블로 〉시리즈는 한 편이 신규 발매되었으며, 두 편의 신작이 개발 중에 있다. 과연 이 시리즈의 미래는 계속될 수 있을까? 블리자드는 신규 IP 제작에 매우 신중한 행보를 보여왔다. 회사의 대표 IP 인 〈워크래프트〉와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는 모두 20세기인 말인 1990년대 처음 대중에 선보였고, 21세기 들어 완전한 오리지널 신규 IP는 오버워치 하나에 불과하다. * 출처: 블리자드 홈페이지 . 이는 블리자드의 개발 스타일과 큰 연관이 있다. 블리자드의 개발자들은 혁신적이고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낸 다기 보다는 기존의 게임 메커니즘을 철저하게 분해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이를 자신들이 충분히 만족할 때까지 다듬고 또 다듬는 방식으로 결과물을 만들었다. 여기에 시리즈를 계속해 가면서 자기 자신을 복제, 발전해 왔던 것. 이것이 블리자드의 스타일이다. 때문에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로부터 시작해 〈디아블로 II: 레저렉션〉으로 끝나는 블리자드의 클래식 프로젝트는 그간 블리자드가 보여줘 왔던 행보와 비슷하면서도 매우 동떨어져 있다. 이들의 장기는 기존의 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닌 기존 것에서 한 발 더 발전시켜 나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클래식 프로젝트는 찬란했던 시대의 흑백 사진을 컬러로 바꾸는데 급급하다는 인상이다. 블리자드의 얼음 폭풍이 점차 잠잠해지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비단 회사를 둘러싼 온갖 구설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실리콘 앤 시냅스라는 이름으로 1991년부터 시작된 블리자드는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했다. 블리자드의 미래를 함부로 예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의 색을 점차 잃어가는 게임 제작사를 바라보는 오래된 팬들의 마음은 어쩌면 안타까움 그 이상이 아닐까?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 개발자) 임현호 과거의 게임 개발 영웅들의 모험담을 쫓으며 게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게임 개발자. 매우 긴 기간 동안 대표, 기획자, 인디 게임 개발자, 프로젝트 매니저 등의 여러 타이틀을 달고 살았으나 게이머이자 게임 개발자로 불리길 희망하는 소시민.
- [Interview] Bringing the sense of presence into esports – what and how: Yeong-seung Ham, Program Director at Riot Games.
The feeling of being part of the crowd is a powerful experience. In traditional sports, this empowering moment is known as "hyeonjang-gam," which can be translated as the "feeling of presence." Despite technological advancements and high-speed internet that allow us to watch sports matches remotely from home, many fans still choose to visit the on-site venue to immerse themselves in the passion, sweat, tears, cheers, and chanting that cannot be fully transmitted through a screen. Some become fans of a sports team after experiencing an engaging moment at the stadium, chanting alongside a group of people. Even in esports, numerous fans have missed spectating digital game matches at physical on-site stadiums during the Covid-19 pandemic. < Back [Interview] Bringing the sense of presence into esports – what and how: Yeong-seung Ham, Program Director at Riot Games. 13 GG Vol. 23. 8. 10. Translator’s note: The original title of this article is "Where Does the Hyeonjang-gam (현장감) Come From in Esports?" Hyeonjang-gam is a compound word in Korean, combining 'site (현장)' and 'feeling/sense (-감)'. It primarily refers to the immersive experience or the feeling of being fully engaged and present in a specific physical space, commonly observed in sports, concerts, events, and esports. It encompasses the physical presence and the ability to perceive the atmosphere and energy of a particular environment. To ensure clarity in this English translation, the term "Hyeonjang-gam" has been interpreted as "the feeling of presence.” Editor’s note: The feeling of being part of the crowd is a powerful experience. In traditional sports, this empowering moment is known as "hyeonjang-gam," which can be translated as the "feeling of presence." Despite technological advancements and high-speed internet that allow us to watch sports matches remotely from home, many fans still choose to visit the on-site venue to immerse themselves in the passion, sweat, tears, cheers, and chanting that cannot be fully transmitted through a screen. Some become fans of a sports team after experiencing an engaging moment at the stadium, chanting alongside a group of people. Even in esports, numerous fans have missed spectating digital game matches at physical on-site stadiums during the Covid-19 pandemic. This situation is somewhat ironic when you think about it. When we say, "It doesn't feel real when watching an esports match at home" or "I wish I could watch the match at a real stadium," it implies that we are not fully satisfied with esports existing in the virtual world, despite the inherent online nature of the games themselves. So, let's delve deeper into what is the "feeling of presence" in esports—the feeling, the sensation, the bonding, and the moments of realism that exist in the physical world. When there's no physical Summoner's Rift (a map in League of Legends) at the esports stadium, what else creates that sense of authenticity and engagement for esports fans on-site? What are the similarities between the feeling of presence in traditional sports and esports? To gain insights, let's turn to Yeong-seung Ham, Program Director at Riot Games, who has extensive experience in broadcasting production from conventional sports scenes at MBC (Munhwa Broadcasting Corporation), one of the leading South Korean television and radio broadcasters, and currently leads the broadcasting at LCK (League of Legends Champions Korea). Interviewer, Do-won Seo: Hello! Please give our readers a brief introduction of yourself. Yeong-seung Ham, Program Director at Riot Games: Hello, my name is Yeong-seung Ham, and I am in charge of the broadcasting division at Riot Games. I have been working there for roughly four and a half years now. Previously, I used to work at MBC in their sports broadcasting division where I was involved in various sports programs and content. Seo: What were your most memorable experiences when you used to broadcast (conventional) sports during your time at MBC? Were you involved in many types of sports or just one particular? Ham: I had the opportunity to handle basketball programs at the 2014 Asian Games, which were held in Incheon, South Korea. One of the most memorable moments was witnessing the Korean men's basketball team win the gold medal, marking the first victory since the 2002 Asian Games. It was definitely a significant highlight in my sports broadcasting career. The PyeongChang 2018 Winter Olympics Games were also truly mesmerizing. I was also once involved in motor racing broadcasting, which is considered a niche sports genre in Korea. Due to its limited recognition among the general public, we had to put in extra effort to produce various side-content such as documentaries and entertainment programs about motor racing, in order to build up the storyline for those races. Seo: Then you moved to the esports scene. What makes esports broadcasting unique compared to transmitting (conventional) sports matches? Ham: I believe esports broadcasting is perhaps the most real-time and responsive genre of broadcasting. The level of active engagement and feedback from esports viewers surpasses that of any other broadcasting shows in Korea. And that's where its beauty lies. We can quickly identify what we may have missed during the transmission, or what the esports viewers might have overlooked in the match. This allows us to iterate and address any issues promptly. Of course, there are certain aspects that cannot be immediately corrected. For example, when we released the first (LCK) opening video, if fans claim that it looks bad, there's very little we can do about it. Scheduling with the teams is not always flexible, as we have only a few days set aside for recording sessions. Even if we realize that the video didn't fully meet the fans' expectations, we still have to proceed with it until the next season. We have also received criticism regarding our recent (LCK) visual graphics, such as "there's too much purple." So, yeah, we hope to make improvements in the next season, and that's the mindset we have. If there's something we can fix immediately, we do so as soon as possible. This is where esports differs the most from regular sports broadcasting. Seo: But I do remember that during basketball broadcasting on major Korean TV channels they often displayed text messages from viewers while the match was live. How does receiving feedback through this type of viewer participation system differ between conventional sports and esports? Ham: Yes, that reminds me of when I used to lead the broadcasting of Major League Baseball on MBC regularly on weekends. That was the time when some of the most well-known Korean baseball players, such as Hyun-jin Ryu, Shin-soo Choo, Byung-ho Park, Hyun-soo Kim, Seung-hwan Oh, and Jeong-ho Kang, were active in the US Major League. We broadcast their matches simultaneously in real-time. It wasn't just core baseball fans who were watching, but also many Korean baseball fans who specifically wanted to see those Korean players in action instead of watching an entire 9-inning match on television. However, due to limited channels, it was not possible to show all the Korean players' matches at the same time on separate channels. So we conducted an experiment where we dedicated one program solely to Korean players. It was similar to broadcasting the Olympic Games, where we focus on specific matches among the many sports events happening simultaneously during the Olympics when Korean players were performing. So we received every feeds of the baseball matches involving Major League teams with Korean players and selectively aired them when the Korean players were at bat or pitching. Even when Byung-ho Park was sent down to the minor leagues, we captured the Minor League's online live stream (as those matches were not televised) and included it in our Korean-player-specific baseball program. And during that time, MBC had a TV show called "My Little Television," which took inspiration from real-time streaming services like Twitch. It was sensational all across Korea at the time. So, we decided to take inspiration from it and introduce a real-time chat system to our live sports broadcasts. This allowed viewers to see how people were reacting to the match and find out what they liked or didn't like about the program. But, I think the major difference between the esports and conventional sports scenes is that the latter is often player(/athlete)-centric. Fans focus on an athlete's performance, cheering for their impressive plays and such. In esports, they not only discuss an athlete's performance but also talk about the game itself. When you think about baseball or football, people don't usually talk about the game mechanics. But in the case of League of Legends (LoL), the entire sports genre per-se is developed by a single company. So, let's say there's a bug in the game or a certain champion in LoL is considered OP (overpowered). Then fans might start trolling the game and Riot Games on live-chat. In this situation, we find ourselves in an ironic position. We are not just random TV staff broadcasting sports matches; we are part of the company that developed and operates the game, as we are affiliated with Riot Korea. So if there's something wrong with the game then fans may direct their frustration towards our company. If there is a conflict with a referee's decision that is also the responsibility of Riot Korea. If we, the production team made a mistake during live stream then it also becomes the company's problem. This adds a layer of complexity that I have to endure in a more active manner. I am aware that we are not perfect and have sometimes disappointed our esports audience. But I also want to address that even the most well-prepared cable channels have made mistakes in their early days of operation, and eventually settle down and learn from their mistakes. We are also collecting our viewers' valuable opinions and gradually expand our workforce and improve our infrastructure. We sincerely hope for our fans' continuous support and feedback as we move forward. Seo: I'd like to ask about the on-site venues of esports. We now have physical esports stadiums despite the game happening virtually online. From a production standpoint, how would you compare the esports on-site scene with other conventional sports? Ham: There are similarities in terms of the vibrant atmosphere and the feeling of presence that you experience in a particular physical setting. Even though the game is happening virtually online, you can witness the professional esports athletes in action right before your eyes. Moreover, in LCK, we have an open stage where audiences can hear the urgent communication between players, such as "go here" or "attack now," unlike the closed-booth stage. I think the major difference between esports and conventional sports lies in the audio experience at the venue. In esports venues, the audience can hear the live voices of casters and commentators. If you imagine attending a baseball or football stadium, you'll hear various sounds made by athletes and the cheering of fans, but the voices of casters and commentators are typically muted in the physical venue and only televised. In esports, the game itself is online, but it is displayed on a large physical screen with the echoes of casters and commentators resonating throughout the physical venue. This creates a more spectacular atmosphere for on-site esports spectating compared to physical conventional sports. And to further enhance fan engagement during the match, we even incorporate audiovisual elements into the scene. For example, when a team defeats one of the elemental drakes (NPCs in LoL that provide buffs), we illuminate the audience with lights that match the drake’s color. If a team defeats Baron Nashor, we then also switch the lights to the corresponding color. These added elements make the overall experience more immersive, more lively for fans. But I think it all comes down to the role of casters and commentators. They are the most distinctive features of esports, enhancing fan engagement and adding excitement throughout the show. Unlike baseball, football, or basketball casters, esports casters are able to maintain high tension throughout the program, injecting bursts of energy into every solo-kill and team fight, as if there were home runs happening every minute. They truly play multiple roles in creating an unforgettable experience. Seo: So the exciting voices of casters and commentators broadcasted on-site are major factors that enhance the feeling of presence in esports. Then what about the players on the stage? What if there’s no players on the stage? Would the fans still enjoys the feeling of presence there? Ham: I believe we're already making progress in that aspect. As you may be aware, CGV Cinema (one of the largest multiplex cinema theater and IMAX franchises in South Korea) recently screened the LCK summer finals. With 90% of the tickets sold, approximately 8,000 fans watched the LCK finals in movie theaters nationwide. [One of the posters of LCK Summer Finals 2022 in CGV theater. Fans had the opportunity to watch the final match on August 28, 2022, starting from 13:40, at one of the 32 CGV cinema theaters nationwide. The ticket price was 20,000 KRW (approximately 15 USD).] Seo: Yes, I was also there, and I was truly amazed. Ham: Exactly. Apparently a lot of people are enjoying esports in this way. Even though the esports players were not physically present at CGV, fans were still able to connect through the spectacularity of the big screen, the immersive sound, and the shared experience of cheering with fellow audience members. I'm not aware of any other sports genre (in Korea), where fans actively participate in these kinds of "viewing parties" as much as they do in esports. During the recent LCK playoffs, there were many fans who couldn't enter the stadium because the tickets were sold out. But there were still fans gathered around here at LoL Park (League of Legends Park, an esports stadium in Seoul run by Riot Games), using this physical space as a communal gathering place for people who love LoL and LCK to come together and enjoy the event. Because you could hear chants and cheers emanating from the inside even outside the stadium. That's why people showed up, even without tickets, to watch the match together on small screens in the lobby area, where we also broadcast LCK matches. I was pleasantly surprised to see so many people gathered in those areas outside the stadium, spectating and cheering together. Seo: That sounds like a mix between attending a live sports event and watching sports at a bar. Would you say it's similar to the sports bar culture where people gather in pubs to watch the Premier League together? Ham: Or the street gatherings of fans during the World Cup. Because it is obviously more fun watching sports together. Sometimes I think, "Wouldn't it be amazing if the LoL esports scene becomes more developed, and we can have a massive fan gathering during the LoL finals at a place like Gwanghwamun Square?" (One of the largest public squares in Seoul.) After attending the LCS (League of Legends Championship) finals, one thing that left a lasting impression on me was that their LoL matches took place at an American football stadium. The one I saw was NRG Stadium, a large stadium in Houston with a retractable dome structure. Only half of the stadium was covered by the dome where they had sort of like a fan festival event setup. There was also a sponsor zone and various events inside. Even though the area under the dome was quite dark due to the lack of natural light, people were there from morning to evening, immersing themselves in the esports culture. It strongly reminded me of what we, as Riot Games, are striving for - why we develop and provide live services for the game LoL, organize esports events, and create additional content like Arcane. It's because we want to create meaningful experiences for our users, even in the offline world, through the game. So at that LCS finals, fans were enjoying the event together, cheer for their favorite players and teams, while having fun with various activities on a physical setting, which creates a deeper sense of belonging and solidarity with the "League of Legends" culture. This later became our inspiration for the “Fan Festa” that we recently did in Gangneung (in Korea) in August 2022. We thought, "How about a one-day event with a festival-like atmosphere?" and that's how it became a reality. Of course, there's always some risk in trying something new. Two of our project leads for Fan Festa were worried so much, saying ‘what if people don’t show up?’ They even joked about the potential scenario of only the two of them standing in a massive stadium, imagining how awkward it would be. Fortunately, that didn't happen. We had nearly 7,000 people attend our Fan Festa. It was a valuable learning experience for us, as we ventured into organizing not just broadcasting programs but also other forms of cultural events and festivals. I believe such endeavors are what bridges the gap between the online and offline worlds, even though the game is an online medium. It’s the physical setting that fosters a sense of closeness among people. Seo: That’s true. While we refer to it as e(lectronic)-sports, there has always been a consensus that the final matches, the grand finals, should take place in a physical venue. As you mentioned, this might be because of the feeling of closeness and bonding that arises when tens of thousands of fans come together to cheer. Despite the era of constant online connectivity, there are still many things that cannot be achieved in the virtual world. Let's delve deeper into this topic. You first discussed the important role of casters and commentators, and then the importance of on-site engagement of fans that creates a lively atmosphere and a sense of bonding. Is there anything else you would like to add? Ham: I want to add about the interactions with the players (esports athletes). During the Covid-19 pandemic, we fully online streamed all our matches. Although it went reasonably well, there was always something missing. And it wasn't just the staff and the fans who felt that way; the players felt it too. Several esports athletes expressed how much they missed playing at the on-site venue. They shared sentiments like, 'I want to play at LoL Park again,' 'I want to compete in a place with an audience,' 'I want to feel the enthusiasm and vibrant energy of the crowd.' This is because, even though players are mostly isolated from what the crowd is saying during gameplay, they can still hear or feel the eruption of cheers when they achieve something remarkable. They also feel the crowd's presence. That resonance, that energy, fuels their adrenaline. For instance, FPS games like Valorant are a good example because the game has immediate feedback. When a player gets a kill, the crowd's cheers erupt instantly. I think this also leads FPS players to have more pronounced reactions compared to other more subtle game genres. And it's this immediate burst of energy that prompts fans to start chanting. Seo: Oh, so the player's performance not only generates further engagement from fans – such as chanting – but it also elicits reactions from the players themselves. Sounds like a feedback effect in the physical venue. That's a good point. Ham: Yes, exactly. And there’s the moment when players enter — the awe-inspiring moment when they come onto the stage. I know what that feels like too. I've attended many on-site matches as a fan myself, and the energy that emanates from a packed crowd is completely different from being in an empty venue. It can make your heart race even if you're just standing still. Such energy is what brings the joy of spectating sports. So it's not just about players and audiences physically being in the same space; it's more about how they interact, how players and audiences engage with each other. That's what makes the scene livelier and more exciting. For example, many people missed the chanting of "1-2-3, OOO fighting!" (Translator’s note: A Korean esports fan chanting culture where fans chant in an organized manner with '1-2-3, (player or team's name) fighting' at the beginning of a match to cheer for their favorite player/team.) We even pre-recorded that chant, along with a bunch of Riot Game staff, production teams, and agency people, "1-2-3, XXX fighting!" and "1-2-3, YYY fighting!", and played it at the beginning of the match when the entire audience seating was empty due to the pandemic. Some fans said that was cringy but there were still others who said, 'Yeah, I missed that.' In a way, we all wanted to experience the thrill of being part of a large audience, that sense of solidarity with the culture we love. There's also this unique fan meeting culture in esports, where players come to the front of the stage to say hi to the fans before the game starts. And after the game ends, there's always a brief fan meeting, similar to K-Pop fandom. Conventional sports may have moments where fans can take pictures or get autographs near the exit after a game, but I've never seen this type of dedicated fan meeting procedure as normalized as in esports. I think that's also unique to esports. Seo: You mentioned the engagement between players and audiences, which reminds me of what happens when a pause occurs in esports. In other sports, for example, when a rainstorm temporarily pauses a match, the atmosphere cools down. But in the LCK broadcast, there were many moments when casters and commentators interacted with the audiences during the pause situation. Ham: I feel really bad about the frequent pauses that happened during this LCK season, especially as they often occurred due to technical game issues. In the case of interactions during a pause situation, yes, the casters and commentators play a big role. We monitor the viewers' reactions in real-time, and the casters are able to respond to them during the pause. For example, Caster Seong (Seung-heon Seong, one of the LCK casters) and commentators seem to feel an obligation to shake up the mood again during the pause situation. I can see that this could be a psychological burden for casters and commentators. But we work hard to check the fans' real-time comments and respond as energetically as possible during those awkward pause moments. Thanks to the efforts of many people, we also have content around us that we can utilize, such as pointing the camera to cheer signs (cheer placards) from fans or videos that we can play during long pauses. Seo: It's difficult to define the essence of "hyeonjang-gam (feeling of presence)," but I think we are getting closer to understanding it. Now, for the last and final question. As an esports content creator, how do you feel about the empty moment after the stage? Ham: During the pandemic, it was only us, the staff, at the site. The players were playing games at their facility, while the audiences were all watching the match from home. It was just us on the empty and hollow stage. We felt somewhat depressed and down during that time. Every day when we commuted to work, being the only ones maintaining the scene, we couldn't shake off this feeling of emptiness in our minds. We felt like janitors taking care of a forgotten building. I still feel that way when I see an empty stage, after the game is over. It’s sort of similar to the feeling of seeing an empty theater after a performance. You know, there's a subtle excitement around the stadium before the show, like when you go to the cinema and waiting for the movie to start while munching on freshly cooked popcorn. Such excitement from the audience is what makes us, the production staff, feel excited too. We sense it. And the players feel it too. And then the game ends, after the fan meeting, suddenly the buzz stops. The lively energy just disappears. So I would say that LoL Park after the match is pretty scary, like a ghost town (laughs). [The empty LoL Park after the LCK season. Like Ham said, it feels empty and lonely without the audience and players.] Seo: Okay, then one extra question, which could be a difficult one. How do you see yourself? Are you a broadcasting production manager? Or do you see yourself as an esports event manager? Because you are involved in both the broadcasting (streaming) and on-site aspects of LCK. Ham: I would say my job is more involved in the broadcasting side of things. So, production. Seo: But you also mentioned a lot about fan engagement on-site, the atmosphere, and the feeling of excitement in the physical venues of esports, which, as you said, is something unique compared to the conventional sports scene. Ham: Perhaps that's the main reason why I decided to move here and join the esports scene, choosing a career in esports broadcasting. We (Riot Games) have a stadium, a physical space. And that's a big deal. Since we have a physical venue, we can experience things live on-site while also broadcasting and streaming, closely monitoring what is happening inside the stadium. In the past, with conventional sports, we would travel around South Korea with a broadcast truck, capturing footage of every single match across the country, but it never felt like the show was ‘ours’. Those stadiums were not ours; we were just there capturing the footage. But here, with LoL Park, it is us who must prepare everything. It's like how we say it in Korean, "we have to set our own food table". We have to brainstorm how we can better convey the story to our audience, design events to engage with our fans, work closely together with other teams – such as event teams, league management teams, game product teams, etc. In a sense, we are like the KBO (baseball league in South Korea), a sports cable channel, and Olympic baseball stadium operation in one set. We are a combination of these three. That's why I moved to the esports scene and still remain here, as there's no other scene in sports where I can be involved in such a comprehensive experience. Seo: It was insightful to hear your role as a program director in broadcasting division while also being closely on-site. Thank you for sharing your precious time for the interview.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Media Culture Researcher Dowon Seo I study culture for the fun of life. I have curiousity in all sorts of things like games, religion, and films. (Doctoral researcher at Aalto University, Finland) Solip Park Born and raised in Korea and now in Finland, Solip’s current research interest focused on immigrant and expatriates in the video game industry and game development cultures around the world. She is also the author and artist of "Game Expats Story" comic series. www.parksolip.com
- 물류는 게임 속에 어떻게 재현되는가
물류 전문기자로 살아온 것이 어언 10여년. 필자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으니 “물류는 어디에든 있다”이다. 물류(物類)란 그 단어가 품은 의미처럼 ‘만물의 이동’이다. 우리가 물류라고 굳이 인식하진 않겠지만, 매일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 오늘 입고 신은 옷가지와 신발, 식당에서 사용한 식기와 반찬 종지까지 모든 것에는 물류가 따라왔다. < Back 물류는 게임 속에 어떻게 재현되는가 18 GG Vol. 24. 6. 10. 물류 전문기자로 살아온 것이 어언 10여년. 필자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으니 “물류는 어디에든 있다”이다. 물류(物類)란 그 단어가 품은 의미처럼 ‘만물의 이동’이다. 우리가 물류라고 굳이 인식하진 않겠지만, 매일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 오늘 입고 신은 옷가지와 신발, 식당에서 사용한 식기와 반찬 종지까지 모든 것에는 물류가 따라왔다. 그리고 물류는 많은 경우 효율을 목표한다. 역시나 인식하진 않았겠지만, 이미 우리는 자연스럽게 생활 속 물류 효율을 높이고자 노력한 경험이 있다. 예컨대 늦잠으로 지각 위기에 처한 어느 날 지하철, 버스, 택시, 전동킥보드, 도보 등 각종 이동수단을 조합하여 회사까지 이동하는 최단경로, 최단시간을 구해본 기억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 물류가 추구하는 ‘최적화’다. 혼자만 이동하는 것은 그나마 쉬워 보일 수 있겠다. 하지만 수천~수만명에 달하는 직장인들의 주거지부터 회사까지 특정 시간의 출근 이동을 ‘최단 시간’을 목표로 최적화하고자 한다면 어떨까. 여기에 5000원 이하의 금액을 사용해야 한다는 ‘제약’이 걸려있다면 어떨까. 갑작스러운 폭우와 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이 겹쳐버렸다면 어떨까. 최단 시간을 산출하기 위해 고려할 변수는 말 그대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개인의 경험으로 최적화할 수 있는 범위를 아득히 넘어선다. 흔히 우리는 화물을 나르는 택배기사, 창고 노동자의 집품과 포장 업무와 같이 눈에 보이는 단순 반복 노동만을 ‘물류’라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제 각 기업 물류 관리자들이 하는 일은 노동집약적인 물적 이동(물론 이들도 급하면 단순 반복 노동 현장에 투입된다.)이 아니다. 각자의 제약조건 속에서 비용 절감이나 일정 % 이상의 당일 출고율과 같은 서비스 지표 달성을 목표로 모든 물류를 최적화하는 것이 이들의 일이다. ‘물류’는 가상 세계에도 존재할 수 있나 모든 이동의 맥락에 ‘물류’가 녹아있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가상 세계인 게임 속에서도 물류는 존재한다. 그리고 게임 속 물류에서도 우리는 알게 모르게 효율을 추구하고 있다. 예컨대 <마비노기>에서 이동수단인 ‘말’을 구매하여 탑승한다면, 말이 없을 때보다 빠른 속도로 필드를 이동하는 것이 가능하다. 나와 동승자의 시간의 효율을 높일 수 있고, 그 자체로 과시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말은 멋있으니까. 다른 예로 <디아블로>의 인벤토리와 창고는 그 자체로 최적화의 도구다. 한정된 공간이라는 제약 속에서 가치 있는 것을 추려서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되니 말이다. 공간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 가치 없는 것은 과감히 버리고, 가치 있는 것을 남기는 선택의 연속을 강요받는데, 현실 세계의 물류에서도 이와 유사한 맥락은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게임 속 물류가 추구하는 효율화의 방향은 현실 속 물류가 추구하는 방향과는 꽤나 다르다. 그 이유는 게임은 기본적으로 현실과 연동되지 않은 가상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현실의 물류는 실체의 이동을 다루지만, 게임의 물류는 가상의 데이터 패킷의 이동을 다룬다. 따라서 게임 속에서 보관하거나 이동시킨 재화는 게임 안에 남아있을 뿐 현실의 가치로 연결되지 못한다. (메타버스 시대(?)가 왔다지만, 아직 가상의 물류를 완연하게 현실의 움직임으로 구현한 사례는 많지 않다. 산업용 디지털 트윈이 어느 정도 그 역할을 할 뿐.) 이러한 차이점으로 인해 게임 속 물류는 현실 속 물류가 추구하는 ‘비용 절감’이라던가 ‘생산성 향상’과 같은 목표를 추구하기 어렵다. 대신 전혀 다른 목표를 추구하는 형태로 진화했다. 그것은 애초에 우리가 게임을 하는 이유인 ‘재미’에서 찾을 수 있다. 게임 속 물류 또한 플레이어의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갖은 예외를 허용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해도 과언 아니다. 몇 가지 예시를 들어본다. 데스 스트랜딩과 유로트럭 : 재미가 ‘목적’인 경우 코지마 히데오의 <데스 스트랜딩>은 세간에 ‘택배 게임’이라 알려졌으며, 이는 어느 정도 틀린 말이 아니다. 초자연적인 재난으로 멸망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묵시록 세계관의 미래에서 ‘전설의 배달부’라는 별명을 가진 주인공이 겪는 일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의 주 내용은 특정 출발지부터 목적지까지 다양한 물성의 화물을 가능한 빠르고, 안전하고 확실하게 운송하는 것이다. 물류학 교과서에 나오는 현실 물류의 목적인 3S(Speedy, Safety, Surely)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데스 스트랜딩>이 정말로 현실 세계 택배기사의 하루하루를 다룬 게임이었다면 재밌었을까. 여러 주거단지를 돌면서 하루에만 300여개에 달하는 박스를 묘기처럼 배송하는 현실 택배 업무를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한 게임을 한다면 처음에는 재밌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일이 매일매일 똑같은 곳에서, 거의 동일한 업무로, 오랜 시간 반복되면 어떨까. 더군다나 현실 속 물류는 물량을 나른 만큼 ‘돈’이라도 주는데, 게임 속 물류는 실체적인 보상은 아무 것도 없다. 당연히 플레이어는 금방 싫증을 내게 될 것이다. 여기서 진짜 화물운송 하는 시뮬레이션인데 ‘힐링 게임’으로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던 <유로트럭 시뮬레이터>를 꺼내면서 반박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이건 진짜 현실 세계 화물운송 트럭커의 일상을 다룬 게임이 맞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로트럭 시뮬레이터>에서도 재미를 위한 많은 예외조건들이 설정돼있다. 먼저 유로트럭 플레이어들은 현실 세계 트럭커처럼 ‘삶’의 압박을 느끼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스스로 일거리를 선택할 수 있고, 심지어 일을 전혀 하지 않고 유럽 도시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유랑을 떠나는 선택을 해도 괜찮다. 처음에는 트럭커로 시작할지언정, 성장 과정을 거치며 거대한 운송회사를 경영하는 재미 또한 느낄 수 있다. 또 사고에 대한 위협에서도 자유롭다. 장시간 휴식을 취하지 않고 운전을 계속 하면, 화면이 블랙아웃 되는 졸음운전까지 구현된 <유로트럭 시뮬레이터>지만, 졸음운전의 결과가 ‘죽음’이라는 결과로 이어지진 않는다. 심지어 고속도로에서 시속 150km로 달리다가 5중 추돌 사고가 나더라도 <유로트럭 시뮬레이터> 세계관에서는 그대로 업무 재개가 가능하다. 벌금과 수리비만 좀 차감될 뿐이다. 물론 어느 순간이 되면 운행 과정에서 차감된 예산으로 인해 파산을 걱정하는 단계가 올 수 있지만, 알게 뭐람. 다시 시작을 누르면 그만이다. <데스 스트랜딩>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건 ‘택배도’ 하는 게임이지, 택배만 하는 게임이 아니다. 처음에는 인편으로 배송 업무를 하다가 점차 바이크 등 운송수단을 활용할 수 있고 드론, 로봇 등 대신 물류를 시킬 수단들도 추가된다. 심지어 택배기사의 역할을 뛰어넘어서, 도시와 도시를 잇는 도로나 집라인 인프라를 설치하는 등 건설 시뮬레이션과 같은 재미 또한 느낄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게임 내 ‘물류 효율’을 높이는 수단이 되는데, 점점 택배왕이 돼가는 캐릭터를 보면서 MMORPG에서 레벨업을 하고 강해지는 내 캐릭터를 보는 것과 비슷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더군다나 어느 단계에 도달하면 이후 택배를 할지 안 할지 결정하는 것은 순전히 플레이어의 의지다. 광활하게 펼쳐진 <데스 스트랜딩>의 오픈월드는 그야말로 다채로운 재미를 준다. 묵시록 세계관의 북미 대륙을 유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그 와중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장치들을 체험할 수 있다. 택배화물을 노리는 사이버펑크 도적단(뮬)과 초반에는 공격할 수단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초자연적인 존재(BT)들이 필드를 돌아다님은 물론이고, 피부에 직접 닿으면 급격하게 노화돼 죽음에까지 이르는 비(타임폴)가 내리기도 한다. 사실 이런 것들은 현실 물류에서는 당장 내일 물류 업무를 그만둬야 하는 대재앙이지만, 게임 속에서는 그저 극복해야 할 대상이자 재미 요소다. 게임 시작 시점에는 대항할 수단조차 마땅치 않았던 적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쉽게 소탕할 수 있는 대상이 되며, 더 나아가선 택배랑 상관없이 액션 게임처럼 게임을 즐기는 것도 플레이어의 자유가 된다. <올팜>과 <치킨 키우기> : 재미가 ‘수단’인 경우 앞서 설명했던 게임 속 물류가 그 자체로 게임을 하는 이유가 되는 ‘재미’를 만드는 장치 중 하나로 기능했다면, 게임 속 물류를 재미와는 별개의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례 또한 존재한다. 앞서 완연한 메타버스 따위는 없다고 했지만, 여기서는 게임 속 물류가 현실 가치와 일부나마 결합되는 사례들이 나타난다. 어느 순간 국내 이커머스 업계에서 유행하고 있는 ‘앱테크 게임(앱을 통해 재테크가 가능한 게임)’이라 불리는 이들이 대표적인 예다. 올웨이즈의 <올팜>을 시작으로, 컬리의 <마이컬리팜>, 오늘의집의 <오늘의 가든>, 두잇의 <치킨 키우기>, 11번가의 <11키티즈>, 이마트의 <이마트팜> 등 종류도 다양하다. 앱테크 게임은 하나 같이 식물이든, 동물이든, 치킨이든 무언가를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이들을 목표한 수준까지 성장시킨다면, 이에 대한 보상으로 현실 세계의 무엇인가를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올팜>의 경우 나무를 다 키우면 고구마 등 현실 세계의 작물을 택배로 받을 수 있다. <치킨 키우기>에서 병아리를 다 키우면 교촌치킨 허니콤보 한 세트를 배달 주문할 수 있다. 게임에서의 노력이 진짜 현실 세계 물류와 연결돼 플레이어에게 ‘실물 상품’ 보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앱테크 게임은 일반적인 게임과는 운영 목표가 다르다. 사실 게임이 재미를 추구하는 이유는, ‘재미’라는 가치가 수익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게임이 재밌어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더 많은 사람이 게임을 구매하여 실질적인 판매 매출이 늘어난다. 게임을 무료 배포하더라도 게임 내 성장재화 및 꾸미기 아이템 매출과 연결시킬 수 있다. 즉 재미는 트래픽을 만들고, 트래픽은 게임사의 매출과 연결되는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앞서 예시로 언급한 앱테크 게임들은 모두 ‘무료’로 플레이할 수 있으며, 성장재화 또한 유료로 판매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아무리 많은 플레이어가 게임을 하더라도 게임을 통해서 개발사가 얻는 수익은 0에 수렴한다. 오히려 목표를 달성한 플레이어에 대한 보상 지급으로 비용을 게임 운영사가 감당하기 때문에, ‘적자’를 가속화시킬 수 있는 위기 요인이 된다. 이커머스 기업들이 이 공짜 게임들을 운영하는 이유를 일반적인 게임의 문법에서 찾으면 그야말로 답이 안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그럼에도 유행처럼 앱테크 게임이 번지는 이유는 분명히 존재한다. 앱테크 게임의 보상비용은 이커머스 기업들이 고객 획득을 위해 통상 투하하던 ‘마케팅 비용’을 대체한다. 인스타그램, 네이버, 카카오 등지에 광고하는 데 사용했던 비용을 자체 앱 서비스에 투하함으로 오히려 더 높은 고객의 가입 전환, 구매 전환 효과를 노리고자 한 것이다. 실제로 앱테크 게임 플레이어는 성장 재화를 확보하기 위해서 기업이 유도하는 다양한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단순한 게임내 액션만으로 빠른 성장을 만드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인데, 따라서 친구를 커머스 앱에 초대하거나, 특정 상품 페이지를 몇 초 이상 보거나, 아니면 실제 상품을 구매하는 등의 미션을 게임 내 성장을 위해 자발적으로 수행하게 된다. 이는 게임이 그 자체로 고객의 정량화된 행동을 유도하는 강력한 ‘퍼포먼스 마케팅’ 도구가 됐다는 걸 의미한다. 이커머스 기업은 이를 통해 쇼핑앱 방문과 체류 시간을 늘리고 실제 상품 판매량을 늘리거나, 여기 광고 등 판매자 대상 B2B 수익모델을 결합시켜서 게임 운영과 보상에 사용한 비용 이상의 매출을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앱테크 게임에서 실물 보상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물류’는 더 큰 목표인 매출 창출을 위한 수단인 것이다. 그 자체로 재미를 주기 위한 목적은 전혀 없으며, 오히려 보상을 지급받은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여기 물류가 따라왔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항해시대>와 홍해 해적 :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면 정리하자면 게임 속 물류는 현실 속 물류와 마찬가지로 ‘효율’을 추구하나, 그 목적은 전혀 다르다. 먼저 게임 속 물류는 매출 증대를 위해 ‘재미’를 추구하지만, 현실 속 물류는 오히려 ‘안정성’을 추구한다. 그것이 비용을 절감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등 물류 수익성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게임 속 물류는 재미를 위해서 최대한 매일매일 다양한 사건이 일어나면 좋다. 예컨대 <대항해시대>에서 플레이어의 미션을 가로막는 해적은 성장 재화를 모아 동료를 모으고, 선단을 강화하여 언젠가 무찌를 수 있는 대상이다. 심지어 게임의 핵심 콘텐츠인 무역은 내팽개치고, 플레이어 스스로가 해적이 돼서 전혀 다른 형태의 재미를 추구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 세계의 해적은 어떠한가. 바로 지금 이집트 수에즈운하를 지나는 핵심 항로인 ‘홍해’를 지나는 민간 선박들에 예멘 반군의 미사일 공격이 날아오고 있다. 기업은 이러한 위기를 감수하고 기존 홍해 항로를 통과하거나, 위기를 회피하는 대신 훨씬 더 높은 비용을 감수하고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을 우회하는 항로를 택하는 두 개의 선택지 중 하나를 강요받는다. <대항해시대>처럼 민간 물류회사가 국가도 어쩌지 못하는 반군을 토벌하거나, 역으로 해적왕이 되는 선택지로 가는 건 도저히 현실적이지 않다는 건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다음으로 재미를 충성고객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앱테크 게임에 있어서도 현실 세계의 물류 효율과는 다른 맥락은 관측된다. 앱테크 게임에서 물류는 고객 행동을 유도하는 보상 장치다. 재미를 목적으로 게임을 하는데 겸사 실물 상품도 보상으로 주니 좋다고 생각하는 사용자들이 앱테크 게임을 플레이한다. 하지만 현실 세계의 물류는 ‘삶’의 문제이고, 같은 관점에서 앱테크 게임의 보상은 터무니없는 수준이다. <올팜>에서 고구마 한 박스를 선물 받으려면 몇 달 넘게 게임을 플레이해야 하는데, 이게 우리의 본업이라고 생각하면 과연 용납이 되나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현실 세계의 물류는 자유롭게 언제든 안하면 그만인 게임이 아니라, 당장 내일의 삶을 위해 오늘 나가야 하는 ‘일자리’인 것이다. 요컨대 게임 속 물류가 우리에게 재미있게 다가왔던 이유는 그것이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게임이 현실이 되는 순간, 그 재미는 희석될 가능성이 높다. 생각해보자. 리세마라를 돌리면서 ID를 팔아먹는 유통업자들은 좋은 캐릭터를 얻기 위해 무의미하게 게임을 반복하면서 과연 즐거웠을까. 어쩌면 게임 속 물류의 즐거움은 그것이 물류라고 느껴지지 않을 때에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Tags: 유통, 최적화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커넥터스 대표) 엄지용 버티컬 콘텐츠로 아름답게 돈 벌기에 관심 많은 야생의 콘텐츠 잡부. 여러 버티컬 미디어에서 콘텐츠 창작자 및 커뮤니티 기획자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2021년 9월부터 유통물류 콘텐츠 기반 비즈니스 멤버십이자 커뮤니티 ‘커넥터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 현실과 가상의 구분을 없앴던 비범함에 대해서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2024년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로, 노르웨이의 ‘마츠 스틴’라는 게이머의 삶에 주목한다. 작품은 작년 한 해 동안 선댄스 영화제에서의 수상과 더불어 여러 영화제에 이름을 올리며 유명세를 얻었고, 현재는 OTT서비스 ‘넷플릭스’와 계약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다큐멘터리에 접근할 수 있도록 공개되어있다. < Back 23 GG Vol. 25. 4. 10. Tags: 다큐멘터리, WOW, MMORPG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Leesun Park Studies games from a social perspective. Believes that games, as a tool, ultimately offer a way to explore what it means to be human. These days, mainly writing.
- 구독 서비스의 대두 앞에서 떠올리는 생각들
구독 서비스의 미래는 예단하기 어렵지만, 과거 부분유료결제와 확률형아이템이라는 결제방식의 변화가 가져온 게임 내부까지의 변화를 겪으며 우리는 다음에 올 결제양식의 변화에 대해서는 그저 시장의 흐름에 맡기기만 하는 것이 최선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노동과 생산의 영역에서 가격의 결정이 그저 시장의 힘에 의해서만 이루어짐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은 오늘날 최저임금제와 같은 여러 보완책들을 이끌어낸 바 있다. 아주 같은 맥락은 아니겠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소비와 이용의 차원으로 들어온 여가의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는 일련의 ‘여가의 정치경제학’과 같은 생각을 떠올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 Back 구독 서비스의 대두 앞에서 떠올리는 생각들 09 GG Vol. 22. 12. 10. 구독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책이나 신문, 잡지 따위를 구입하여 읽음’이다. 애초에 단어 자체에 購讀, 읽을 ‘독’자가 들어가는 상황이니 당연한 말이겠지만, 최근에 이 단어는 읽는다는 행위를 떠나 다른 쪽에 주안점을 찍고 있음을 우리는 보고 있다. 지금의 구독은 개별 단위의 구매가 아닌, 정기적으로 일정 수량 이상의 상품 혹은 서비스를 결제하여 사용하는 일을 가리킨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정작 단어의 출전에 가까웠던 신문과 잡지의 구독은 이제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지만, 확장된 의미의 구독은 신문, 잡지를 넘어선 온라인 미디어의 구독에 머물지 않고 이제는 신선식품이나 생필품의 정기배송까지도 묶어 부를 수 있는 말이 되어가고 있다. 그 와중에 게임 또한 구독이라는 이름으로 묶이기 시작했다. 플레이스테이션, XBOX같은 전통적인 콘솔 플랫폼 뿐 아니라 게임 구독 서비스는 애플 아케이드나 구글과 같은 스마트폰 기반의 범용 플랫폼에서도, 심지어 넷플릭스 같은 비게임 플랫폼에서도 출시하는 보편적인 흐름이 되었다. 디지털게임은 상품으로서의 속성을 강하게 띠고 있는 매체고, 구독과 같은 결제방식에서의 중대한 변화는 당연히 게임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밖에 없다. 변화는 함부로 예측하기 어렵겠지만, 조금씩 다가오고 있는 새로운 결제방식에 대한 고민들을 시작해 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1. 구독 방식은 일정한 지분을 가진 결제방식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인가? 적어도 유통사나 플랫폼 입장에서는 구독 서비스에 거는 희망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로 하여금 정기 번들링의 형태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더 많은 게임을 제공한다는 슬로건 안에는 불확실한 매출 볼륨을 정기적이고 고정적인 형태로 바꿈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구독 서비스의 확대가 개별 소프트웨어 판매와 상충하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특히 플랫폼 단위의 구독 서비스는 소비자의 결제를 플랫폼 단위에서 배타적으로 자사의 고정적 현금흐름으로 묶어낸다는 점에서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는 선택일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유통사가 제시하는 이득을 확인하기 어렵지 않다. 정기결제를 통해 출시되는 더 많은 게임들을 폭넓게 만나볼 수 있는 방식은 특히 다양한 게임들을 이른바 ‘찍먹’하고자 하는 게이머 입장에선 갈수록 개별가격대가 만만치 않게 올라가는 개별구매에 비해 효율적일 수 있다. 다만 이는 개별 게이머들의 성향에 의해 크게 호오를 탈 수 있는데, 이를테면 게임 하나에 집중하는 스타일의 게이머들에게는 별다른 메리트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용자들이 호/오라는 두 개의 입장으로 갈리는 상황에서 개별 판매와 구독이 동시에 존재하는 플랫폼 스토어는 그래서 한편으로는 소비자에 대한 세부 분류를 강화하는 가격 마케팅의 일환으로 판매정책이 세밀해지는 효과를 얻는다. 그 결과가 소비자로 하여금 어떤 게임을 선택하기 쉽게 하고, 또 제작자로 하여금 어떤 게임을 더 많이 / 더 오래 만들도록 하는지를 떠나서라면, 구독 서비스의 도입과 보편화는 게임결제양식의 한 축으로 나름의 자리를 구축할 수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2. 구독 서비스를 통해 게임제작자들은 기존보다 나은 개발환경을 얻게 될 것인가? 다만 제작자 입장에서라면 이야기는 조금 더 무거워질 수 있다. 당장 구독 서비스는 현재 한국에서 게임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결제방식인 부분유료결제 방식과 크게 상충하기 때문이다. 이미 게임 내에서 별도의 월정액 결제방식 등을 도입하고 있지만, 플랫폼 단위의 ‘구독’은 정기결제라는 방식보다는 이용자로 하여금 게임 선택의 폭 자체를 키워버리는 효과를 낳는다는 점이 핵심이기에 방식만 같을 뿐 다른 의미를 가진 개념이 된다. 게임을 선택한 뒤 그 게임에 정기결제를 넣는 방식은 일종의 매몰비용을 지속적으로 누적시키면서 이용자를 특정 타이틀에 고정시키는 효과를 낳지만, 정기결제가 먼저 이루어진 뒤에 서로 다른 게임제작사의 게임을 취사선택하는 방식은 정기결제로 만들어지는 이윤을 게임사가 아닌 플랫폼에 집중시킨다는 측면에서 부분유료결제와는 다른 효과를 낳는다. 적어도 부분유료결제로 운영되는 게임들이 구독 서비스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일은 보기 어려울 것이다. 제작자의 입장은 단지 부분유료결제라는 기존의 방식 하나에만 영향을 주는 것으로 국한되지는 않는다. 앱스토어 등을 통해 타이틀 판매 단위로 플랫폼으로부터 수익을 정산받는 개별판매에서도 수익구조의 변화에 따라 개발사들의 제작방식 또한 달라질 거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카테고리 내에서 다운로드/스트리밍되는 횟수나 총 플레잉타임을 기준으로 수익을 배분하는 방식이라면 구독서비스에 들어가는 게임들의 경우에는 카테고리 내에서 최초 선택될 수 있는 게임규칙이 무엇인가에 대한 심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아직 속단하기 이르지만, 적어도 이런 변화가 머지않아 여러 게임들에 나타날 것이라는 예상은 가능할 것이다. 대규모 부분유료결제가 아니더라도 소소한 인앱결제가 도입된 게임들의 경우에는 구독 서비스 안에서 비즈니스모델에 대한 재검토도 이루어질 것이다. 이용자가 사실상 무료라고 여기고 접근한 게임 안에서 추가적인 결제를 요구하는 순간을 맞을 때, 그는 기존의 다른 방식 – 그것이 free-to-play이건, 개별판매 방식이건간에 – 에 비해 더 쉽게 지갑을 열 것인가, 아니면 빠르게 다른 게임으로 갈아탈 것인가? 이런 고민들 또한 머지않아 게임규칙 안에 녹아들 것이고, 그 결과 또한 금새 시장에 출력될 것이다. 3. 구독 서비스는 게임플랫폼이라는 독자적인 양식에 변화를 일으킬 것인가? 주문형 비디오 플랫폼으로 구독결제 방식의 대명사가 되기도 한 플랫폼인 넷플릭스가 게임 구독 서비스에 도전한다는 소식은 여러모로 흥미로운데, ‘구독’이라는 개념을 게임과 TV라는 매체보다 더 상위에 있는 개념으로 이해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좀 뭉뚱그려보자면, 영상물을 시청하는 것과 게임을 선택해 플레이하는 것은 결국 정기결제를 통해 제공받는(큐레이션을 포함한) 범주 안에서 동일한 소비행위로 볼 수 있다는 결론이다. 이 지점에 대해서는 그러나 통일된 의견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영상물 시리즈나 영화 한 편을 지속적으로 반복해 시청하는 경우와 게임 하나를 붙잡고 업적 100%를 찍는 일을 같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적어도 게임에 비해서는 서로 다른 콘텐츠라도 비슷한 시청시간으로 구성되는 영화, 드라마에 비해 게임은 소비시간 측면에서도 게임마다 큰 진폭을 보인다. 이런 차이는 정말 ‘구독’이라는 결제방식 안에서 하나로 불릴 수 있는 만큼의 차이일까? 만약 충분히 구독이라는 이름으로 게임이 다른 매체와 묶일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때부터는 게임전용 플랫폼이라는 특수성이 보편성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이를테면 역으로 플레이스테이션 스토어 안에서 영상물 시리즈를 구독하거나 하는 일은 왜 또 불가능할 것인가? (한편으로는 컨트롤러라는 부가 인터페이스가 이미 마련되어 있는 게임플랫폼이 되려 범용성 측면에서도 나을 수도 있겠다.) 결국 여가시간의 활용이라는 공통의 시장을 두고 영상과 게임이라는 두 플랫폼이 격돌할 가능성이 앞선 가정으로부터 나오는 환경을 고려해볼 수 있게 된다. 방향은 예단하기 어렵지만, ‘여가의 정치경제학’을 고민해 볼 필요도 있다 부분유료결제라는, 한때는 뭐 이런게 있나 싶었던 결제방식이 보편화한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 방식의 도입은 모바일 디바이스와 같은 흐름을 타고 한편으로는 게임 대중화의 길을 트기도 했지만 동시에 pay-to-win이라는 지금까지도 많은 게이머들의 뒷목을 붙잡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음을 우리는 지난 몇 년간 경험해온 바 있다. 구독 서비스의 미래는 예단하기 어렵지만, 과거 부분유료결제와 확률형아이템이라는 결제방식의 변화가 가져온 게임 내부까지의 변화를 겪으며 우리는 다음에 올 결제양식의 변화에 대해서는 그저 시장의 흐름에 맡기기만 하는 것이 최선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노동과 생산의 영역에서 가격의 결정이 그저 시장의 힘에 의해서만 이루어짐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은 오늘날 최저임금제와 같은 여러 보완책들을 이끌어낸 바 있다. 아주 같은 맥락은 아니겠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소비와 이용의 차원으로 들어온 여가의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는 일련의 ‘여가의 정치경제학’과 같은 생각을 떠올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자각몽으로서 게임(우수상)
비디오 게임의 모순적인 표현을 지적하는 말로 ‘루도내러티브 부조화’(Ludonarrative dissonance)라는 개념이 쓰이곤 한다. 이는 게임 디자이너 클린트 호킹이 〈바이오쇼크〉를 비평하며 제시한 용어로, 말 그대로 게임 플레이(ludo)와 게임의 스토리(narrative) 사이의 부조화를 의미한다. 그는 〈바이오쇼크〉에서 플레이를 통해 경험하는 규칙이 게임 속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의 내용과 상충하고, 게임의 진행에 따라 강제되는 선택이 전자에서 제시된 딜레마를 소거한다는 모순이 있음을 지적한다. < Back 07 GG Vol. 22.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geun Kim Part of a generation that grew up alongside digital media, with a particular interest in digital games.
- [북리뷰] 『유령』: 소설이 탈북민과 게임을 재현하는 방식에 대하여
두 영상이 유튜브 이용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하다. ‘탈북자’가 가상의 ‘평양’이지만 ‘김일성 동상’을 향해 총을 쏜다. 이때 시청자들이 호응하는 것은 게임 플레이 그 자체보다는 김일성 동상을 보자마자 총을 쏘는 탈북자의 모습이다. < Back 04 GG Vol. 22.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echan Lee Completed doctoral coursework in the Department of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Graduate School of Sungkyunkwan University. Claims to be a researcher not of North Korean literature but of Chosŏn literature—yet has become a devotee of the non-mainstream rather than the mainstream: the popular, the pulp, the genre, and everything else of that kind.
- [논문세미나] Horror Video Games and the “Active-Passive” Debate 호러 비디오 게임과 “능-수동” 토론 / 데이비드 크리스토퍼 & 에이단 로이즐러
결론적으로 저자들은 위의 작품들을 루돌로지적 상호작용성으로 명명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루돌로지적 행위성을 강조하는 이분법으로는 위 작품들이 발휘하는 특유의 효과를 온전히 담아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모든 호러 게임을 루돌로지적 상호작용성의 원리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 Back 19 GG Vol. 24.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yuri Kim Interested in the ways games let us experience stories. After poking around here and there, lately played Marathon.
- [북리뷰] 『유령』: 소설이 탈북민과 게임을 재현하는 방식에 대하여
두 영상이 유튜브 이용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하다. ‘탈북자’가 가상의 ‘평양’이지만 ‘김일성 동상’을 향해 총을 쏜다. 이때 시청자들이 호응하는 것은 게임 플레이 그 자체보다는 김일성 동상을 보자마자 총을 쏘는 탈북자의 모습이다. < Back [북리뷰] 『유령』: 소설이 탈북민과 게임을 재현하는 방식에 대하여 04 GG Vol. 22. 2. 10. 소설 『유령』을 말하기에 앞서 2020년 초 유튜브 채널 〈CLAB〉에 영상 두 편이 올라왔다.1) 영상은 〈배틀필드4〉를 플레이하는 남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FPS 게임의 왕좌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임이 〈배틀필드〉 시리즈이긴 하지만 〈배틀필드4〉의 경우 2020년을 기준으로 무려 출시 7주년이 되어가는 게임이었다. 그런데도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남녀의 영상은 (이 글을 쓰는 지금 기준으로) 두 편 합쳐서 약 658,000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두 영상이 유튜브 이용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하다. ‘탈북자’가 가상의 ‘평양’이지만 ‘김일성 동상’을 향해 총을 쏜다. 이때 시청자들이 호응하는 것은 게임 플레이 그 자체보다는 김일성 동상을 보자마자 총을 쏘는 탈북자의 모습이다. 그리고 2021년에는 ‘북한 인민’을 흉내 내는 스트리머와 실제 ‘탈북자’가 함께 〈배틀그라운드〉를 플레이하는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다.2) 세 편으로 구성된 이 시리즈 역시 약 86만 조회수를 달성했다. 이 영상은 사전에 기획된 것으로, 〈조충현〉 채널에서는 커뮤니티 공지를 통해 사전에 탈북자를 모집했다. “배틀그라운드 및 다른 여러 가지 게임들 탈북민스쿼드를 계획 중에 있습니다. 실제 새터민분들 중 배그 및 롤을 해보신 적이 있는 분들은 전자우편함으로 날래 보내주심 감사하겠슴다”라는 내용의 익살맞은 공지에서 운영자가 예로 들고 있는 게임은 “〈배틀그라운드〉, 〈롤〉, 〈카트라이더〉 등”이다.3) 그렇게 성사된 〈배틀그라운드〉 플레이 영상은 〈배틀필드4〉 영상보다 더 단순했다. ‘대한민국 코미디언’이 ‘탈북자’와 ‘문화어’를 쓰며 게임을 한다. 시청자들은 아슬아슬한 〈배틀그라운드〉 플레이 상황보다 코미디언 스트리머 ‘복남 동지’와 탈북자 게스트 ‘억철 동지’의 입담에 열광한다. 〈CLAB〉와 〈조충현〉 채널에 올라온 영상 모두 탈북자의 게임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두 채널의 영상을 보는 시청자들은 탈북자가 보여주는 게임 플레이에 큰 관심이 없다. 시청자들이 호응하는 것은 탈북자들의 입담과 그들이 보여주는 과감함이다. 여타 게임 스트리머들의 영상을 보는 시청자들이 스트리머의 게임 실력과 센스에 따라 영상 시청을 결정한다면, 탈북자들의 게임 플레이 영상에서 중요한 것은 게임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그들이 게임에 투영하는 경험인지도 모른다. 통일부가 집계한 국내 정착 탈북자의 수는 33,815명이다.4)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탈북자는 여전히 새롭고 낯선 존재이다. TV 미디어를 통해 노출되는 탈북자는 경직되어 있거나 작위적이다. 유튜브 영상 속 탈북자는 북한 출신이지만 ‘우리’와 비슷한 존재로 다가온다. 오히려 ‘진짜 북한 사람’이 맞는지 의심받는 ‘진짜 탈북자’가 되기까지 한다. 우선 『유령』을 의심하자, 그러니까 과연 분단과 탈북자란 강희진의 장편소설 『유령』은 오래된 소설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벌써 낡아버린 소설일 수도 있다. 2011년 〈제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으로 출간된 『유령』은 “탈북자들의 소외를 리니지 게임과 연결시켜 서술한 점이 신선하고 흥미롭다”는 평가를 받음과 동시에 “분단 상황과 가상현실 문제를 뒤섞고 가로지르며 역동적인 탈주를 보인” 것으로 이목을 끌었다.5) 심사위원이기도 했던 우찬제는 「분단 환경과 경계선의 상상력」을 통해 강희진의 첫 장편소설이 “탈북할 수밖에 없었던 북한의 정치적 경제적 사정, 탈북 이후 남한의 경제적 문화적 사정 등을 실감 있게 기술”하는 동시에 “단순한 탈북자들의 생리를 그린 것이 아니라 21세기 세계의 문제의식을 독특하게 구성해 놓고 있다”고 평한다.6) 즉 강희진의 『유령』은 2011년이라는 상황 속에서 새롭고 독창적인 ‘분단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비슷하게 고인환은 「탈북 디아스포라 문학의 새로운 양상 연구」를 통해 이응준의 ????국가의 사생활????과 강희진의 『유령』을 동시에 호명한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가상의 디스토피아 현실’을 그린다는 점일 것이다. 차이점은 ????국가의 사생활????이 가까운 미래의 통일된 상황을 상상한다면 『유령』은 2010년의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는 정도이다. 고인환이 『유령』에 주목하는 것은 “탈북자들의 삶에 무관심한 우리 사회의 냉혹함은 물론, 그들에 대한 “지나친 감정 몰입”으로 객관적 거리감을 유지하지 못하는 일방적 태도 또한 경계하고 있는” 작가의 태도이다.7) 고인환에 따르면 ““객관화된 대상”으로서의 탈북자는 ‘공감의 부재’와 “지나친 감정 몰입”을 창조적으로 지양(止揚)하는 과정에서 온전히 형상화될 수 있을 것”이고, 강희진은 『유령』을 통해 그것을 적절히 보여줬다.8) 이와 더불어 이경재는 “이주노동자나 결혼이민자 혹은 탈북자들을 무시와 모멸의 대상으로만 삼는 한국인의 식민주의적 (무)의식을 날카롭게 고발”하는 것으로 평가한다.9) 나아가 소설 속 “주인공의 부적응과 소외, 그리고 정체성의 혼란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탈북자들 모두에게 해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분석한다.10) 이것은 “이주민들이 한국 사회에서 배제되어 ‘벌거벗은 자’가 되어가는 현실을 재현하는 데 집중하는 소설”의 하나라는 입장이다.11) 재차 강조해야 할 점은 이 소설이 2011년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이다. 2011년. 남북관계가 다시 냉각기에 접어들었던 바로 그 무렵, 대한민국 공해에서 군함이 격침당하고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이후 처음으로 대한민국 영토가 적의 포탄에 유린당한 직후의 언저리, 그리하여 반공의 기치가 다시 하늘 높이 휘날리던 바로 그 시절, 그럼에도 2천 명 넘는 탈북자가 해마다 한국으로 유입되고 있던 상황. 아주 잠깐 탈북자 현황을 알아보자, 『유령』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2010년을 기준으로 한국으로 입국한 탈북자는 2만 명에 가까웠다. 2만 명의 탈북자가 의미하는 것은 2만 가지 이상의 사연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가운데 ‘탈북자’이자 ‘청년’이며 ‘게임중독자’로 묘사되는 『유령』의 주인공은 과연 ‘탈북자’를, ‘탈북 청년’을 대표하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인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한국문학에 없던 존재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인물을 상징적인 존재로 위치시킴으로써 생겨난 문제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 반공의 기치가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가뜩이나 차별받던 탈북자들은 무시와 멸시의 존재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그나마 동정과 긍휼의 대상으로 상상되던 탈북자들이 이제는 간첩은 아닌지 의심해야 하는 대상으로, 사회의 골칫거리로 떠오른 것이다. 항상 겪어야 하는 간첩 의혹, 눈치를 봐야 하는 정착 지원 제도. 다수의 시선은 언제나 소수를 불안과 공포로 내몰 뿐이다. 다수는 소수의 존재가 성가신 정도(불편도 아니다)에 그치겠지만, 소수에겐 무엇 하나 사소할 수 없는 법이다. 2022년 현재 상황에서 이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오히려 간단하다. ‘탈북자’가 주인공인 이 소설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냉정한가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져야 하는 까닭이다. 나아가 ‘탈북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소설을 과연 분단문학 혹은 디아스포라 문학이나 다문화 문학으로 규정할 수 있는지 다시 물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탈북자를 끊임없이 ‘탈북자’라는 따옴표 속에 가둠으로써 생기는 왜곡과 굴절의 문제이며, 탈북자라는 지칭을 통해 그들을 계속해서 대한민국의 외부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계속 의심하자 『유령』을, ‘탈북자’가 아닌 ‘탈북자 됨’에 대하여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탈북자에 대한 시선 중에 하나가 ‘미리 맞이한 통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그 표현은 좌절되고 실패하였음을 누구나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유령』이 결코 그러한 현실에 대한 ‘고발’이 아니라는 점이다. 2011년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유령』이 묘사하고 있는 탈북자-북조선의 모습은 현실과 괴리가 있다. 오히려 『유령』이 그리고 있는 탈북자-북조선은 대한민국이 상상하는 ‘탈북자 됨’ 또는 ‘북조선 됨’의 재생산은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내가 갈 곳은 방송국이 아니라 리니지 세계다. 이번에 그 속으로 들어가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다. 귀환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바깥 세계로 나온다면 영원히 폐인으로 살아야할지 모른다. 한 달이고, 두 달이고, 1년이고, 2년이고 머물 것이다. 내게 리니지는 환상이 아니다. 그곳은 현실이다(325쪽). 위 인용은 『유령』의 결말 부분이다. 소설 속 주인공의 문제는 무엇하나 해결된 것이 없다. 그나마 ‘개명 신청’이 받아들여진 것이 주인공 ‘나’가 해결한 유일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소외와 차별, 무시와 멸시, 좌절과 낙담 속에서 ‘탈북자’인 주인공의 도피처는 온라인 게임 〈리니지2〉이다. 게임 속 주인공의 아바타-캐릭터 ‘쿠사나기’는 영웅이다. 혈맹의 군주인 동시에 혁명의 선봉에 섰던 전사이다. 다만 소설의 도입에서 ‘나’가 스스로 되뇌이듯 “육이오 전쟁 이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틀어 한반도에서 일어난 가장 위대한 혁명이었던 바츠 해방전쟁에 참여한 전사였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영웅에게도 현실은 냉혹한 법이다.”(11쪽) 현실이 아닌 가상, 현실보다 더 냉혹한 세계에서야 탈북자는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증명한다. 더욱이 ‘나’의 주변에 있는 탈북자들은 하나같이 고난과 고통 속에 살아간다. 노숙자이거나, 룸싸롱 접대부거나, 대딸방 핸플녀거나, 고아거나, 과부거나,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살거나, 마약에 찌들거나. 북조선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가와 상관없이 남한에서 살아가는 인생은 기구하기만 하다. 『유령』 속 탈북자는 그래서 ‘유령’이 된다. 그리고 『유령』을 읽는 독자들은 ‘탈북자 됨’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요즘은 탈북자에게 주는 정착금이 얼마 되지 않아 환상은 더 빨리 깨진다. 탈북자들이 컴퓨터 게임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169쪽). 작가는 『유령』 속의 인물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틈틈이 현실에 대한 ‘고발’도 멈추지 않는다. 문제는 그 고발의 잘못됨이다. 2010년을 기준으로 2만 명, 2022년을 기준으로 3만 명의 탈북자 가운데 몇이나 컴퓨터 게임 속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는지 의심해야 한다. 마치 지원금이 줄어서 탈북자가 힘들어졌다는 진술을 의심해야 한다. 돈이 없어서 현실을 피해 가상 세계로 뛰어든다는 시선을 의심하고 타파해야 한다. 하지만 독자는 『유령』을 읽는 동안 그러한 의심으로부터 차단된다. 작가는 그만큼 단호하고 당당하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 늘 당하는 배신, 게임 속에서는 그런 일이 없으리라 믿었다”(52쪽)는 주인공의 목소리는 의심하지 말자. 다만 게임이라고 다를 게 없다는 것을 탈북자인 주인공은 몰랐을 것이다. 엄연히 말하자면 게임과 현실은 다르다. 하지만 게임이라고 현실과 다르지 않다. 그러한 게임과 현실의 경계에 대하여 한 선학은 다음 인용의 멋진 문장을 새겨놓았다. 어쩌면 한국 사회의 온라인 게임 열풍은 현실과 게임 사이의 이질감이 적다는 점에서 비록되는 것이 아닐까? 온라인 게임의 사건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에서 발생한다. 허구의 캐릭터들은 가상의 육체와 현실의 영혼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 속 모든 현상은 사회를 투영한다. 하지만 게임은 현실의 의미망 속에서 만들어지는 동시에 현실의 의미망을 끊임없이 벗어난다. 그것이야말로 게임이 가진 탈주의 힘이다. 12) ‘게임’을 대하는 『유령』의 태도, 무엇이 그렇게 문제 이 소설의 또 다른 문제는 결코 게임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소설 시작부터 “온라인 게임을 정신없이 하다가 영양실조로 죽은 사람도 있다”(10쪽)고 적는다. 주인공을 상담하는 의사는 “이런 식으로 살다간 위험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16쪽)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온라인 게임 속으로 들어가 폐인이 되는 데는 이틀이면 충분하지만 폐인을 탈출하는 데는 한 달 이상이 걸린다”(117쪽)고 고백한다. “게임은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언제든지 벗어날 수 있지만 결코 빠져나올 수 없다. 공포에 대한 갈망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게임은 진짜 공포다.”(236~237쪽) 결국 “게임이, 그놈의 게임이 재밌지도, 자신에게 맞지도 않는데도 계속해 그것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동안 들인 시간과 돈, 공들여 온몸을 바쳐 쌓아올린 레벨 때문이다.”(280쪽) 하지만 정말 그럴까? 결국 유저는 언젠가 게임을 떠난다. ‘못 떠나는’ 유저는 없다. 안 떠날 뿐이다. “유저가 어떤 게임을 떠나는 것은 게임이 지겨워지는 순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13) 이것은 게임에 대한 무례이다. “산업적 담론에서 게임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첨단 IT 산업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문화적 담론에서는 사람들을 중독시키는 마약으로 묘사된다.”14) 강희진의 소설 『유령』은 게임을 ‘마약’으로 치부한다. 그렇다보니 〈리니지2〉만의 사건이 아닌 현실에서도 이목을 사로잡인 ‘바츠 해방전쟁’ 역시도 『유령』에선 도구적으로 소모될 뿐이다. (진짜 의미가 조금씩 밝혀지고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독재에 맞선 민중의 봉기, 독재를 물러나게 한 성공한 혁명, 혁명 뒤에 인간이 그렇듯 욕망에 점철되어 내분을 맞은 집단, 독재자의 귀환과 혁명 세력의 몰락. 그 자체로 소설이 될 수 있는 ‘바츠 해방전쟁’은 실제 ‘붉은혁명’이라는 혈맹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탈북자 중심의 혈맹 ‘뫼비우스의 띠’가 만들어지고, 〈적기가〉를 무르는 내복단이 등장하고, 해방전쟁이 혁명전쟁으로 묘사되면서 현실에선 낙오자일 뿐인 탈북자가 최전선에서 무기를 휘두르는 용맹한 전사가 되는 무대로 된다. 이때의 문제는 실제 벌어졌던 〈리니지2〉의 ‘바츠 해방전쟁’의 진의는 사라지고 ‘탈북자의 영웅 신화’로써 각색된 ‘바츠 해방전쟁’만 전면에 남는다는 점이다. 아래 인용에서 보여주는 ‘바츠 해방전쟁’이 벌어지던 즈음에 대한 상황을 기억해야 한다. 〈리니지2〉의 스토리 세계에는 현실 역사의 ‘민중 계층’에 비유될 수 있는 계층이 존재한다. 통계 자료를 보면 40레벨 이하의 캐릭터들로 규정되는 이 민중계층은 2003년 11월 25일 현재 전체 〈리니지2〉 플레이어의 85.9%를 차지한다. 한편 55레벨에서 75레벨 사이의 캐릭터이면서 지배혈맹에 소속되어 있는, 현실 역사의 ‘군사 귀족 계층’에 비유될 수 있는 계층 역시 뚜렷이 존재한다. 높은 레벨이 되어 세력이 있는 혈맹에 들어가면 멋진 무기에 좋은 옷을 입고, 아름다운 성에서 살며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낮은 레벨의 군소 혈맹원들은 수시로 공격당해 죽고 들판에서 혈맹 모임을 가진다. 사냥터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없기 때문에 레벨을 높일 수 있는 기회도 적다. 이러한 계층 분화는 레벨 차이에 따른 이해관계의 상충을 가져와 혈맹 전쟁의 확산을 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하략)15) 하고 싶었던 『유령』에 대한 이야기, 탈북자와 게임(하기) 앞에서부터 조금씩 해왔던 이야기지만 소설 『유령』에서 ‘탈북자’가 〈리니지2〉라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현실에서 겪는 좌절을 가상의 게임 세계에서는 겪지 않아도 된다. 현실에서 주인공 ‘나’는 무시와 멸시의 존재지만 〈리니지2〉의 혈맹 군주인 ‘쿠사나기’는 존경과 경외의 대상이다. “현실에서 죽었다가 깨어나도 맛볼 수 없는 것이 있다. 게임의 세계에서만 펼쳐지는 낯설고 특별한 체험이다.”(53쪽) 여기서 말하는 ‘특별한 체험’이란 단순히 가상의 게임 세계에서 겪는 이벤트 그 이상일 것이다. 현실과 달리 게임 속 세계에선 ‘힘’이 곧 ‘권력’이다. 자신을 탈북자가 아니라 조선족이라 속여야 할 만큼 탈북자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졌다. 탈북자가 온라인 게임 속의 영웅처럼 취급받던 시절도 있긴 했지만 그것은 이미 오래전이다(58쪽). 탈북자들이 목숨을 걸고 체제를 탈출하여 대한민국을 찾아오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들은 낙오와 좌절, 무시와 멸시, 천대와 모욕을 위해 “북한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남쪽으로 온 것이 아니다.”(164쪽) 하지만 자유를 찾아, 진정한 낙원을 찾아 대한민국을 찾은 탈북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순전히 자본주의일 뿐이다. “그래서 가끔 자신도 탈북자라면 좋겠다는 황당한 소리를”(167쪽) 실없이 듣고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에서 태어나 자본주의에서 성장하여 자본주의 속에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탈북자는 ‘치트(Cheat)’일 뿐이다. 그래서 한국인은 탈북자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탈북자를 극도로 경계하거나, 탈북자를 혐오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태어나면서부터 겪어야 했던 경쟁에서 자유로운 존재. 학력도 주거도 쟁취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학력을 위해 돈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현실은 어쩌면 오히려 한국인이 갖는 낙심의 근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소설 속 탈북자들은 현실의 삶과 다르게 영웅이 될 수 있는 〈리니지2〉로 모여드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탈북자임을 숨겨야 하고, 탈북자임이 드러나는 순간 온갖 모욕을 견뎌야 한다. 그렇지만 게임에서는 탈북자임을 굳이 숨길 이유도 없고, 탈북자임이 드러나도 모욕을 각오할 필요가 없다. 게임 속 가상의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힘’과 ‘권력’, 즉 레벨이다. 하지만 집단에서 벗어나 ‘솔플(solo play)’을 즐기는 유저의 상황은 좀 다르다. 저는 탈북 노숙자 한 사람의 주민번호를 빌려 아이디를 등록하고 본격적인 사냥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리니지에서 제가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다른 인물들을 죽일 때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리니지 안에서 칼을 마구 휘둘렀습니다. 어떤 날은 밤새도록 잠도 자지 않고 사냥을 다니며 닥치는 대로 죽이고 피를 보았습니다. 때로는 제가 희생될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더 짜릿한 쾌감을 느꼈습니다(318쪽). 소설 속 중년 여성 탈북자(‘정주 아줌마’)에게 〈리니지2〉는 어떤 도피의 공간이기보다 본능적인 유희의 공간이었다. 다만 ‘정주 아줌마’가 즐기는 게임의 방식, 〈리니지2〉를 플레이하는 태도는 상당히 위험천만하다. 현실 세계에서 게임에 들이미는 ‘악’의 잣대에 가장 부합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주 아줌마’야 말로 『유령』 속 어떤 탈북자들보다 게임에 충실한 인물일 것이다. 아니, 게임의 정해진 규칙마저 뛰어넘는 존재다. “RPG의 스토리텔링은 플레이어의 모험이 단순한 성장과 이동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교묘하게 감춘다. 이야기는 캐릭터의 성장을 위한 표지판이다. 그리고 이 길을 벗어난 플레이어는 성장이 제대로 되지 않는, 일종의 성장통을 겪게 된다.”16) 하지만 ‘정주 아줌마’는 스토리텔링을 벗어나고도 카타르시스를 느낄 뿐이다. ‘게임하기(gaming/playing)’를 통해 오히려 게임을 초월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석연찮은 『유령』, 의심의 끈을 끝까지 소설 속 탈북자에 대한 묘사에 수시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소설의 편의를 위해 설정된 탈북자들의 출신 배경을 곧이곧대로 믿어선 안 된다. 그렇다고 소설에 장치된 인물의 설정을 모두 거짓이라 여길 필요도 없다. 교묘한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독자는 극심한 스트레스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을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탈북자라고 해서 무엇인가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더 중요한 것은 ‘북한 출신’이라는 이상한 표현이다. 황해도, 평안도, 강원도, 함경도, 자강도, 양강도 (여기에 더하자면 평양직할시) 출신이 있을 뿐이다. 그래도 『유령』 속 탈북자들은 출신이 명확하다. 무산, 정주, 평양. 하지만 각각의 출신 배경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는 무책임하다. 소설을 읽는 내내 경험해야 하는 불편함은 탈북자의 탈북자 됨이 끊임없이 강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탈북자는 성공해선 안 되고, 성공의 기회도 잡아선 안 되고, 중독의 삶을 살아야 하며, 소외된 채로 몸부림치거나 체념해야 하며, 남성은 폭력과 무기력의 양극단 중에 하나를, 여성은 성적 대상화의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 운명이고 숙명이며 주어진 생인 것처럼 묘사한다. 『유령』은 게임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부정한다. 주인공 ‘나’를 제외한 소설 속 모든 인물이 현실과 게임을 구분한다. ‘나’와 함께 〈리니지2〉에서 혈맹 활동을 했던 다른 탈북자들도 게임과 현실은 별개의 삶이라는 걸 안다. 주인공보다 더 극심한 삶을 사는 인물들조차 소설에서 제시하는 최후의 선택지가 게임 속은 아니다. 더 나락으로 떨어지더라도, 혹은 더 이상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발버둥을 치는 것이다. 그럼에도 주인공에게 “리니지는 환상이 아니다. 그곳은 현실이다.”(325쪽) 소외된 존재들의 사연을 드러내기 위한 소설로 생각한다면 『유령』은 썩 나쁘지 않은 작품이다. 하지만 소외된 존재들을 또 다른 틀로 가둔다는 점에서 『유령』은 썩 좋은 소설이라고 보기 어렵다. 탈북자가 등장하고, 탈북자 청년이 고뇌한다. 하지만 그것은 분단 현실이 아닌 자본주의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탈북자를 다문화의 범주로 넣는 순간 탈북자는 대한민국 국민이 될 수 없다. 그저 영원히 이방인으로 존재할 뿐이다. 탈북 이전의 삶까지만 디아스포라이다. 탈북으로 인하여 고향을 떠났기 때문에 이산(離散)이라 생각하는 것은 디아스포라에 대한 무책임이다. 2022년 『유령』을 읽어야 하는 독자가 있다면 이런 잔소리를 남기고 싶다. 끊임없이 의심하라. 소설 속 탈북자의 정체를 의심하고,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게임에 대해 의심하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학연구자) 이예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북한문학이 아닌 조선문학 연구자를 표방하지만, 주류문학 말고 비주류로 일컬어지는 대중‧통속‧장르 및 기타 등등 애호가가 되었다.
- What’s fair price for video games?
In Korean gamer communities, there's this saying about playing games from the Steam library: "Back then, we never paid to play the game. Nowadays, we never play despite paying the game." The phrase sarcastically highlights the contrast between the game market back in the 80s-90s, when no one actually paid a fair price for video games with the abundance of pirated and copied games in Korea, compared to now with digital game distribution channels when people do not play the game despite after purchase. < Back 17 GG Vol. 24.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 [인터뷰] TRPG로 미술하기: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제작자 인터뷰
지난 6월과 7월, 전시장 ‘팩션’에서는 TRPG(Tabletop Role Playing Game)라는 게임의 형식과 관객 참여형 예술을 결합한 전시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노스탤지어의 벌레들>이 열렸다. 전시장을 활용해 약 한시간 반 동안 진행되는 퍼포먼스에서, 작가는 TRPG 게임 마스터가 되고 게임의 참여자인 관객들은 재난이 닥친 고향에 돌아왔다는 설정의 캐릭터가 되어 함께 이야기를 구성한다. < Back [인터뷰] TRPG로 미술하기: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제작자 인터뷰 19 GG Vol. 24. 8. 10.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게임 사회> 전시가 보여주듯, 현재 예술 장 내에서는 ‘전시로서의 게임’이라는 새로운 실험들이 다양한 기획을 통해 펼쳐지고 있다. 지난 6월과 7월, 전시장 ‘팩션’에서는 TRPG(Tabletop Role Playing Game)라는 게임의 형식과 관객 참여형 예술을 결합한 전시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노스탤지어의 벌레들>이 열렸다. 전시장을 활용해 약 한시간 반 동안 진행되는 퍼포먼스에서, 작가는 TRPG 게임 마스터가 되고 게임의 참여자인 관객들은 재난이 닥친 고향에 돌아왔다는 설정의 캐릭터가 되어 함께 이야기를 구성한다. 모든 플레이어들의 활동은 전시장 벽에 설치된 지도(게임 맵)를 통해 기록된다. 전시 초기에 텅 비어있었던 지도는 게임의 참여자이자 전시의 또다른 생산자인 관객들의 경험들로 채워지고, 이후 회차를 플레이하는 새로운 관객들에게 다시 영향을 주었다. GG에서는 이와 같은 기획을 꾸린 작가 상희와 성훈을 만나 ‘대화형 게임’이라는 전시의 기획의도와 진행과정, 의미에 대해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경혁 편집장 :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우선 작가님들 본인에 대한 소개를 해주시고요, 전시 제목과 전시의 의의를 간단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상희: 저는 상희라는 이름으로 작업하는 미디어 아티스트입니다. 2023년에 만들었던 <원룸바벨>이라는 VR 작업을 계기로, 게임 형식을 차용하는 작업을 계속해서 만들었습니다.. 게임의 디자인적 요소를 작업에서 활용할 때 제가 만들려는 이야기나 전하고 싶은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가상의 내러티브를 경험적으로 이해하는 데 있어서 게임같은 매체가 없다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제 작업에서도 그런 식으로 관객들에게 경험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성훈: 저는 성훈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면서, 상희님 작업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역시 게임의 시나리오를 맡았습니다. 게임 속에 나타나는 공간의 특수성에 특히 관심을 두고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상희: 본 전시의 제목은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이며,구요. 지금 전시장에 설치되어 있고 여러분이 보고 계시는 이 거대한 지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만나게 되는 이벤트를 저희가 ‘조우’라고 지칭하는데, 그 조우들의 결과가 (지도에) 계속해서 축적되고 기록되는 형식이어서 그걸 전시의 메인 이름으로 하게 됐어요. 전시를 준비할 때 기획자들과 논의하면서 ‘지도’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지도에서 대화가 일어나는 과정이나 이야기가 기록된다는 것이 제일 중요했기 때문에 전시회의 메인 제목이 되었고, 부제인 ‘노스탤지어의 벌레들’은 이 지도를 무대로 사용해서 플레이하게 되는 대화형 게임의 이름입니다. 성훈 작가님과 저, 김지연 디자이너가 함께 만든 게임이고요. TRPG의 형식을 차용해서 만든 게임이라 디지털적인 요소가 부재한 ‘오프라인 보드게임’을 지향했습니다. 퍼포머와 대화를 하면서 플레이하게 되는 게임입니다. 이경혁 편집장: 어떻게 보면 ‘노스탤지어의 벌레들’은 전시에서 사용하는 게임의 이름인 거고, 이 전시 자체는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군요. 제가 첫 회차에 플레이어로 참여를 하고, 지금 두 번째 방문을 하면서 비교해 보니 흥미로웠던 게 지도의 변화였습니다. 제가 처음 왔을 때는 이쪽(벽면)이 썰렁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상희: 맞아요. 그때만 해도 게임을 끝까지 가신 분들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경혁님과 일행분들이 바다로 처음으로 탈출하셨었죠. 이경혁 편집장: 그런 걸 보면 결국 이 전시가 끝나고 가장 강렬하게 남는 건 이 지도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지도와 관련된 이야기는 조금 뒤에 하기로 하고요, 우선 이 게임의 배경이 일종의 재난 상황에 처한 지방 도시에서, 흰개미라는 인간 외적 존재와의 만남과 분투를 테마로 하고 있는데요. 게임의 장르적 특성을 논의하기에 앞서 이런 배경 상황을 구성하셨던 맥락이 궁금합니다. 상희: 우선, 일단은 저희 둘 다 같은 부산 출신인데요. 그러다 보니 작업을 할 때 항상 관심이 가는 주제가 ‘고향'과 고향을 떠나와서 다른 도시에서 살게 되는 사람들의 정서였어요. 제가 작업했던 <원룸바벨>도 서울 원룸에서 살고 있는 2-30대 청년들의 공간과 정서를 VR로 번안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런 얘기들이 계속 주제로 선택되는 것 같아요. 또 한편으로는 성훈 작가가 게임의 배경으로 지방 소도시와 벌레라는 주제를 선택했던 맥락도 있었어요. 성훈: 얼마 전에도 러브버그나 빈대가 서울에 등장했다는 뉴스들이 막 나왔다가 사라진 일이 있었잖아요. 도시 공간에서 벌레들이 철저히 방역의 대상으로 나타나고, ‘도시’와 ‘벌레’가 서로 적대적으로 묘사되는 방식에 흥미가 있었어요. 도시 공간에 빈대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21세기 서울에서 이게 말이 되냐, 서울이 빈대가 나오는 도시로 전락했다는 식의 반응들이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빈대를 모두 무서워했죠. 관련해서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던 르포 기사가 있는데요. 그 기사의 핵심은 빈대가 쪽방촌 등 주거 환경이 열악한 지역에 예전부터 항상 있었다는 점이에요. 빈대가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라, 도시 빈민의 공간에 항상 공존하고 있었는데 도시의 주요 거리에 출몰하면서 갑자기 조명을 받게 되었다는 얘기였어요. 그런 반응을 보면서, 도시와 벌레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사실 이 게임에 나오는 벌레들은 (인간 플레이어들에게) 적대적이지 않았나요? 상희: 맞아요. 물론 게임 속에서는 기존의 문명을 완전히 파괴하고 소진시키며, 그 폐허 속에 자신들의 도시를 세우지만, 한편으로는 흰개미라는 종 자체가 공생을 추구하기에 자신들이 만든 도시 안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을 공격하지는 않아요.. 자신의 집이 그들의 집이기도 함을 받아들인다면, 살게 내버려 둡니다. 성훈: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레이 전개에 따라 흰개미는 어떤 플레이어들을 다른 존재로 바꿔놓을 수도 있습니다. 이 다름이 부정적인지 긍정적인지의 판단은 생각하기에 달린 것 같아요. 인간에게 이질적인 어떤 생물에게 우리가 보기에 인간적인 방식으로 행동해주기를, 인간적인 방식으로 호의를 표현해주기를 요구할 수는 없지요. 그들은 자기들만의 어떤 논리가 있고, 인간들은 그게 우리한테 호의적이냐 아니면 적대적이냐 이런 종류의 판단 기준들을 각자 제멋대로 갖고 있을 뿐인거고요. 그래서 퍼포먼스를 계속하면서 인간의 이해 범주를 넘어선 일들이 다른 생물 종에 의해 일어날 때 어떤 식으로 사람들이 반응할지 이런 것들을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전시와 게임의 형식과 장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TRPG를 이용한 대화형 게임’이라는 형식을 구상하셨는데요, 원래부터 TRPG를 플레이하신 경험이 있었나요? 상희: TRPG 자체는 작년 초쯤에 시작했어요. 저도 보드게임을 많이 하니까 그런 게임이 있다는 거는 알고 있었는데, 작년에 <발더스 게이트 3>을 길게 플레이하면서 DND(던전 앤 드래곤) 장르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발더스 게이트>가 특히 TRPG 시스템의 UI 구현이 잘 되어 있고, 저에게는 저희가 지금 즐기고 있는 RPG 같은 게임들이 어떤 역사 속에서 발전해 왔는지를 알게 된 게임이었어요. TRPG도 원래는 RPG라고 불리다가 디지털 RPG 게임들이 등장하면서 앞에 T가 붙었다고 하더라고요. 제일 초창기의 게임들을 찾아보고 싶었고, ‘초기의 RPG'로서 어떤 근원적인 경험이 있을 것 같아서 그때 리서치 개념으로 TRPG 플레이를 시작했어요. TRPG 자체는 숙련도가 요구된다는 점에서 사실 진입하기가 되게 어려운 장르였어요. 처음에는 (TRPG 커뮤니티에) 가서 ‘저희 좀 시켜주십시오’ 했어요. 사실 이분들도 넓은 아량으로 해주시는 거거든요, 왜냐면 저희가 초보라서 못 하고 저희랑 하면 재미없기 때문인데(웃음). 다행히 저희가 갔던 커뮤니티는 소위 뉴비들을 끌어주는 분위기가 있었고. 커뮤니티 자체가 포용적인 분위기여서 좋다고 느껴졌어요. ‘대화’를 하는 게임이다 보니 그런 (포용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모이는 걸까 싶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사실 <발더스 게이트> 이후로 TRPG 커뮤니티들에 굉장히 많은 유입이 있었죠. 그래서 그렇다면 원조는 뭘까 하고 궁금해지기 시작하신 거네요.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의 출발이 된 게임이 <발더스 게이트>였다면 ‘나레이터’의 존재도 꽤 큰 역할을 했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다른 게임과 달리 <발더스 게이트>에서는 계속 나레이터가 나오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실제로 전시에서 나레이터 역할을 하시잖아요? 그 역할을 TRPG를 특별히 오래 해오신 게 아니라면 사실 하기가 쉽진 않았을 텐데, 그걸 하면서 어떠셨어요? 상희: 저는 일단 제 자신이 부끄러움이 많은 타입이라서. 근데 사실 마스터가 부끄러움이 많으면 안 되고 뻔뻔해야 되고, 거의 <발더스 게이트>의 나레이터 같은 연극적인 태도가 있어야 하거든요. 그렇게 해야 참여자들이 따라오고 몰입을 해요. 저희 전시에서 주요 타겟으로 삼고 전달 방식을 고민했던 관객들은 TRPG를 처음 해보거나 이러한 형식 자체에 익숙하지 않은 미술 전시를 보러 오는 일반 관객들이었어요. 왜냐하면 이런 류의 게임에 익숙하신 분들은 금방 잘 따라와 주실 테니까요. 이런 작업에 익숙치 않은 일반 관객분들과 함께 하려면 저희의 역량이 또 되게 중요했어요. 저희가 잘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시거든요. 그래서 테스팅 플레이를 하면서 많이 연습했고, 성훈 작가가 진짜 잘 하셔서 제가 이 분을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저 같은 경우는 대사를 말하고 뒤에서 묘사하는 방식의 관찰을 하는 편인데, 성훈 작가는 굉장히 캐릭터처럼 연기도 하고 말을 하더라고요. 제가 플레이어로 참여했을 때 훨씬 경험이 좋았어요. 재밌고 잘 따라가게 되고, 저도 이런 식으로 배워서 시도해 보고. 성훈: 연기를 하지 않고 오히려 플레이어들의 이야기를 더 끌어내려고 하는 스타일의 마스터도 있어요. 그런 마스터 개개인의 특성이 달라진다는 것도 TRPG의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이 전시회 같은 경우에는 한 사람이 마스터를 고정으로 쭉 이어나가셨던 건가요? 상희: 저랑 (성훈 작가가) 번갈아서 마스터를 했어요. 중간중간 지도가 변화하는 과정도 메모로 업데이트 하고, 저희가 대개 플레이할 때 둘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되는지 서로 체크했구요. 이경혁 편집장: 말씀하셨던 것처럼 사실 이 전시에 오시는 분들 중에 TRPG를 처음 해보는 사람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분들은 이 문법 자체를 모르셨을 것 같아요. 상희: 네, TRPG에 관심이 있어서 오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과연 TRPG라는 게 뭔지 궁금해서 오신 분들도 많았어요. 그런데 저희가 보여드리고 싶었던 건, 이게 ‘TRPG 전시’가 아니잖아요. TRPG를 차용한 ‘대화형 게임’이라는 걸 플레이하며 ‘대화형 지도’를 만들어 나가는 거니까. 일반 관객들에게 경험되었을 때도 저는 이게 분명히 재밌는 형식이 될 거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한편으로는 ‘이게 그래서 진짜 재밌을까, 사람들이 이걸 금방 캐치해서 따라올 수 있을까’, 이런 걱정도 컸었는데요. 생각보다 정말 다들 재밌게 하셨어요. 이런 대화라는 형식 자체가 정말 직관적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디지털 게임은 항상 어떤 조작을 익혀야 하는 일종의 ‘배리어’가 느껴지는 형식이잖아요. 이번 전시는 같이 천천히 얘기하면서 만들어 나가는 성격이다 보니 곧잘 잘 하셨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전시를 진행하면서 들어오는 사람들도 너무 제각각이었을 것 같은데요. 퍼포먼스를 같이 한 관객 중에 기억에 남는 관객이 좀 있으셨나요? 상희: 최근에 플레이하셔서 기억이 나는 분이 있는데요. 지금 보시는 지도에 있는 이 표시는 이전 회차 플레이어를 뜻하거든요. 이 사람이 마지막에 (플레이가) 끝나면 이런 마크를 남기면서 마지막 말을 남기고, 여기에 이 사람의 유해와 같은 육체를 확인할 수 있게 되는데. 다음 회차 플레이어가 이걸 확인하면 저희가 알려 드려요. 이 사람은 지금 이런 상태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가지고 갈 수 있다고 했는데 아무도 그렇게 하신 분이 없었어요. 그런데 어떤 분이 ‘저 이 사람 머리를 잘라갈게요’ 하시는 거예요(웃음). 실제 시체가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누군가의 시신(이라는 설정)이니까 사람들이 일단 그대로 두거나 건드리더라도 조심스럽게 하는데, 그분은 도시에 이 사람을 아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하니까 잘라간다고 하셨어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 결정이 굉장히 재미있는 전개였어요. 그리고 성훈 작가가 이 전시의 전체적인 스토리라인과 세계관을 구축했는데요, 게임 내 NPC들 중에 같이 데리고 도시를 나가거나 고립 상태에서 구출할 수 있는 NPC들도 있거든요. 예를 들면 지금 (지도의 동쪽) 연립주택에 아이 NPC가 있는데, 이게 이 쪽(서쪽)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에 머무는 엄마의 아들이에요. 여기서 만나면 우리 아들을 구해 와달라고 부탁을 하거든요. 근데 아무도 저 퀘스트를 수행하지 않으시더라구요. 아이를 데리고 왔던 길로 돌아가야 하는데 돌아가지 않거나, 돌아 가다가 게임 오버가 되기도 하구요. 그런데 언젠가 소방관으로 플레이하셨던 분이 그 아이 NPC와 같이 탈출했던 게 기억에 남았어요. 다들 저 아이는 못 나가겠다고 반 포기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구해주시더라고요. 그 아이를 구하려면 소지품 란을 아이가 가지고 있는 공룡 인형으로 가득 채워야 해서, 자기 물건과 장비를 다 버려야 되는데 그래도 그 패널티를 안고 가시는 게 좋았어요. 이경혁 편집장: 살다 보면 참 커뮤니케이션이 원하는 대로 안 될 때도 많잖아요. 전시에서 관객들과 서로 커뮤니케이션과 관련한 난점들은 없으셨나요? 상희: 이 퍼포먼스에 오시는 분들 자체가 어느 정도 이 게임을 하고 싶어하거나 관심이 있는 분들이다 보니까, 그래도 적극적으로 개입과 참여를 하려고 하시는 편이에요. 성훈: 어떤 분들의 경우 캐릭터가 독특하신 경우도 있었어요. 자체적인 캐릭터가 사람들과 만나기를 피하고 굉장히 과묵하다는 설정이었거든요. 이 세계는 사람들과 많이 만나고, 어떤 이벤트를 적극적으로 겪으면서 더 재미를 찾아갈 수 있는 구조인데, 그분은 '은신 플레이'처럼 게임 진행을 하셨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우리가 마스터로서 어떤 방식으로 재미를 제공을 해야 되는지, 그 분의 이야기를 어떻게 끌어낼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저도 이 전시에 참여해서 세 명이서 팀 플레이를 했었잖아요? 그때 약간 짜증 났던 건(웃음), 우리 멤버가 클리어를 목적으로 하려고 (게임 내 상호작용을) 전부 피하는 거에요. 그때 저희가 한 명이 플레이를 하고 한 명이 조수고, 저는 ‘마음의 목소리’를 담당하는 구조였죠. 상호작용을 안 하려고 할 때마다 저는 ‘앉아봐’, ‘그 상자 제발 열어봐’ ‘말좀 걸어봐’ 그랬던 기억이 나는데(웃음). 근데 그걸 보면서 저는, 만약에 어떤 사람들이라면 전시의 본래 목적과는 다르게, 일종의 하이스코어 경쟁처럼 게임을 최단 시간으로 돌파하려고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런 경우는 다행히 안 겪으신 것 같아요. 상희: 네, 맞아요. 그리고 게임 관련 설명과 안내를 드릴 때, 이 게임이 승리라던가 패배라는 목표가 있는 게 아니라, 참여자와 마스터 둘이 되게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씀을 드리니까 다들 게임 내에서 자기 캐릭터만의 얘기를 구축하려고 하셨던 것 같아요. 아까 편집장님 팀의 멤버 분도, ‘살아나갈 것이다’라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집념’이라는 캐릭터를 갖추신 거죠. *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에서 전시 참여자이자 게임의 플레이어들이 채워나갔던 지도. 회차가 반복될수록 지도의 내용은 풍부해지고 이후 회차의 플레이에 영향을 준다. 이경혁 편집장: 그런 걸 보면 게임 기획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준비해야 하는 거네요. 1시간 반의 플레이로는 사실 지도의 모든 영역을 다 볼 수는 없고, 플레이가 계속 누적되다 보면 사람들이 지도 안에서 절대 안 가는 어떤 영역이 생기게 될 텐데요. 기획자 입장에선 정말 정성을 다해 준비한 거라 조바심이 나실 것 같기도 해요. 상희: 맞아요. 전시 처음에 지도가 많이 안 밝혀졌을 때는 끝까지 못 가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지만, 오픈 월드 류의 게임을 할 때 그동안 가보지 못한 영역, 지도 상에서 안개 혹은 어둠으로 표현되는 영역을 빛으로 밝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분들이 ‘여기 아무도 안 갔네요’, 하면서 가시기도 하고, 결국에는 그런 식으로 맵이 다 밝혀졌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결국 이 지도 데이터의 누적이라는 게, 그냥 지도에만 추가되는 게 아니라 다음 번 플레이에도 영향을 주는 형태인 것이고. 앞선 세계의 변화가 뒷 세계의 사람에게도 영향을 주는 형태로 설계가 되는거네요. 상희: 맞아요. 예를 들어서 아까 말씀드린 퀘스트에서 아들을 구하게 되면 패스트푸드점의 엄마가 같이 도시를 떠나가게 되는데, 그 이후에 이곳에 온 사람은 이 엄마가 남기고 간 쪽지만 읽을 수 있는 거예요. ‘아이를 구해줘서 고마워요. 혹시 못 보셨을까 봐 여기 쪽지를 두고 갑니다.' 이렇게요. 그리고 이 엄마의 아이가 원래는 강박이 있는 아이여서 재료별로 햄버거를 계속 분류하고 있었는데, (이후 회차에서는) 분류하던 흔적만 남아 있고 그걸 했던 사람이 누구였고 이걸 왜 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게 되는 거죠. 이경혁 편집장: 그러면 혹시 관객 중에 2회차 플레이를 해본 분들은 좀 있으신가요? 상희: 있긴 있었지만 전부 테스트 플레이(참여자)였구요. 다만 저희가 한 이틀 정도는 오픈 세션이란 걸 열어서 아예 플레이를 공개적으로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거든요. 그때 관람객 한 분이 두 회차를 연달아 보고 가셨어요. 두 번을 관람하니까, 이를테면 (첫 회차에) 어느 길이 무너졌는데, 그 다음 회차에 같은 길목에 도착한 사람은 그 무너진 길을 파헤쳐서 건너가야 되는 이런 연속된 사건들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 부분이 좋았다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이경혁 편집장: 그걸 기록하는 것도 두 분이 굉장히 노고를 들이셨을 것 같은데요. 상희: 게임상의 큰 변화는 지도상의 기호로 계속 표시를 하기 때문에 기억하기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희 책상에 지도를 붙인 판넬이 있어요., 지금까지의 정보를 기록하고 새로운 변화를 써놓는 (마스터 전용) 판넬입니다.. 거기에 기억해야 되는 정보들, 예를 들면 특정 물건 3개를 요구하는데 그 3개를 다 갖다 줘야 떠나는 어떤 NPC의 경우에,. 누가 무엇을 주었다, 이런 식으로 업데이트해 놓고. 쪽지나 포스트잇 같은 걸로 표시하기도 해요. 이경혁 편집장: 보통은 작가가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면 이렇게 손을 뗄 수가 있는데, 이거는 (지속적으로 참여해야 된다는 점에서) 작가가 일종의 오브제가 아닌가 싶네요. 상희: 그렇죠. 작가도 자꾸 작업에 참여해야 되고, 전시기간에 계속 상주하게 되고요. 근데 그런 작업이 저한테는 계속 관객들과 참여적으로 연계된다는 점에서 재미있는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저는 이 작품의 의미를 생각할 때 이런 점을 흥미롭게 짚어볼 것 같아요. ‘전시를 시작할 때와 전시를 닫고 나서 작가에게는 무엇이 변했을까’ 그게 굉장히 궁금하거든요. 아직 완전히 전시가 닫힌 것은 아니지만, 막바지에 달하고 있는 입장에서 작가님 스스로가 자신을 성찰했을 때, 무엇이 변화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상희: 일단 저에게 있어선 관객들과의 관계가 많이 변화했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저는 기존에 해온 작업들도 인터렉티브한 성격이 있다보니, 관객들이 와서 직접 플레이하셔야 하는 작업들이 많아요. 전시장에는 언제나 제가 있었어요. 제가 (프로그램) 개발을 했다 보니까, 갑자기 오류가 나면 고쳐드리거나 플레이 방식에 대해 안내를 드려야 하다보니 전시장에 있게 되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관객분들이 전시를 끝내고 나서 감상을 나눠주는 걸 어려워하시는 편이에요. 전시장이란 공간 자체가 그런 걸 어렵게 만들다 보니 당연하긴 해요. (작가와 관객 사이의) 어떤 권위적인 분위기가 있고. 제가 궁금하다고 해서 직접 물어볼 수도 없는 거죠. ‘어떠셨어요?’ 하면 ‘아, 재밌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이러고 바로 도망치듯 하시고(웃음). 그런게 항상 저도 아쉽고, 관객들도 당시 말을 못해서 아쉬우신 게 있을 것 같고요. 그런데 이 작업을 하면서 제일 좋았던 건, 1시간 반 동안 계속 플레이를 하면서 (관객과) 단독적으로 관계를 맺잖아요. 그 안에서 생성되는 라포(rapport)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게임이 끝나고 나면 너무 자연스럽게 이게 어땠는지 감상을 남기시는 거예요. 어떤 게 재밌었는지에 대해서도 서로 얘기를 하고. 그리고 마지막에 여기 섹션(전시장 한 쪽의 공간)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나서 관객들끼리 소회를 공유하는 목적으로 만들어둔 거거든요. 이 공간의 모티브가 된 게, TRPG 하시는 분들이 게임이 끝나고 나면 그 게임이 어땠다고 합평회처럼 얘기를 하세요. 그런 문화가 매우 좋았어서 저희도 전시에 도입했어요. 관객분들이랑 더욱 깊게 관계 맺는 형식이다 보니 저에게도 굉장히 큰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어떻게 보면 이 전시가, 메인 게임의 앞에 프리(pre-) 단계가 있고 포스트(post-) 단계가 있는 것 같아요. 프리 단계에서는 게임 참여자들에게 전날 설문을 한번 하시잖아요. 이렇게 전시 앞뒤로 프리 단계와 포스트 단계를 두고 보면, 작가 입장에서는 관객 개개인을 좀 더 보게 되지 않습니까? 어떤가요? 관객분들의 전시 관람 전과 관람 후의 변화 같은 것도 좀 느끼시는지요? 상희: 일단 관람 전에는 (게임을 플레이할) 사람들의 플레이 성향을 알고 싶어서 설문을 조사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게임 내 어떤 캐릭터가 어울릴지를 골라드리는 것이고. 그래서 그런 질문에 답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실제로 이 ‘고향’이라는 곳에 돌아와서 플레이하게 되는지를 지켜보는 과정이 즐거웠고. 그 사람들 개개인이 가지고 있던 감정들이 (플레이를 하면서) 카타르시스가 되어서 다 풀리고, 후반부에는 또 같이 정리하면서 얘기하는 과정들이 좋았던 것 같아요. * 게임에 참여하는 플레이어들은 사전 설문을 통해 캐릭터를 구성하고, 플레이 종료 후에는 각자의 개인적 경험과 소회를 집단적 궤적으로 모아 나간다. 이경혁 편집장: 사실 어떻게 보면 장르적으로는 굉장히 큰 도전을 하신 것 같아요. 말씀하신 대로 이 전시의 게임이 TRPG를 베이스로 했지만, TRPG를 하려면 아까 말씀하셨듯 보통 TRPG 카페를 가잖아요. 실제 작업을 준비하시면서, TRPG를 모티브로 했지만 이게 ‘퍼포먼스’로서 나오기 위해서는 어떤 특징이 있어야 된다라는 생각을 아마 하셨을 것 같은데. 무엇을 더 강조하려고 하셨을까요? 상희: 우선은 현실적인 완결성이 중요했어요.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만들다가도, 1시간 반의 러닝타임이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 무조건 끝나야 되는 형식을 만들고자 했고요. 그리고 퍼포먼스 형식이니까 플레이함에 있어서 ‘룰’을 최소화하고자 했어요. 룰이 너무 많아서 생길 이해의 어려움을 줄였고, 룰에 대해서도 실제로 설명을 많이 안 드립니다. 참여자들이 행동을 하나씩 할 때마다 조금씩 알려드려요. 어떤 분께서 ‘저 이렇게 하고 싶어요’, 행동을 제안하시면 그것을 주사위를 굴려서 확인해 봅시다 라고 하면서, 점진적으로 계속 룰을 알려드리고 있어요. 그렇게 해도 다 알려드릴 수 있는 룰이어서. 원래 보드게임들은 룰 설명만 1시간 하고 난 뒤 플레이를 시작하는 느낌이잖아요. 이 전시에서는 그런 게 없이, 어떤 장벽 없이 관객들이 바로 플레이할 수 있는 그런 직관적인 플레이를 만들려고 신경을 썼습니다. 성훈: 저는 이 전시를 퍼포먼스 차원에서도 얘기해보고 싶은데요. 공연예술의 경우 똑같은 공연을 10번씩 보러 가는 문화도 있잖아요.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항상 매번 공연이 다 조금씩 다르다라는 얘기를 듣는데. 그런 것처럼 이 전시도 어떤 의미에서 ‘공연’이라고 할까요? 이 전시가 그 공연의 매번 다른 특성을 극대화한 걸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매번 갈 때마다 실제 인간이 진행하고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용이) 조금씩 다르고. 절대 같은 이야기가 나올 수가 없고, 매번 지도가 바뀌어 나가고 예전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고, 스티커이기 때문에 뗄 수가 없잖아요. 그런 형식에서 퍼포먼스적 측면이 접목되었다고 생각해요 이경혁 편집장: TRPG라는 것을 상징하는 게 일종의 ‘룰 북’이기도 하잖아요. 룰 북의 두께만 봐도 이걸 언제 읽나 고민이 되긴 하더라구요. 상희: 맞아요. 저희 게임도 일종의 가제본처럼 룰 북을 만든 게 있거든요. 내용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도 이 정도 두께가 금방 나오니까, 말씀하신 것처럼 장벽이 좀 있는 것 같아요. 룰 북은 일단 가제로 만든 거고요, 저희가 좀더 정리해서 아예 보드게임으로 출시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이 전시의 지도 형식 자체도 보드게임에서 착용을 했거든요. '레거시 보드게임'이라고 해서 한 번만 플레이하는 보드게임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마이 시티> 같은 게임의 경우 플레이어별로 맵을 밟으면 그걸 스티커를 붙이면서 계속 변형시키는 형식이거든요. 많은 레거시 보드게임이 그런 일회적 형식을 따릅니다. 이 작업도 결국에 맵을 변형시켜서 똑같은 게임 플레이의 반복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거잖아요. 근데 한편으로는 그게 참여한 플레이어와 저희만 알 수 있는 경험이라는 점에서 플레이어들에게 특별한 경험이기도 해요. 이 맵을 보면 '아, 이때 내가 이렇게 해서 맵을 바꿨었지', 이런 이야기가 담겨 있고. 그런 형식을 따와서 뭔가를 붙이면서 계속 흔적을 남기는 형태로 이 전시를 만들고 싶었는데요. 정말 보드게임을 출시하면 그런 레거시 보드게임의 형태로 출간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 이경혁 편집장: 이 전시는 굳이 미술과 음악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해 본다면, 음악에 가깝지 않나 싶은데요. 고정된 악보가 있고, 매번 연주마다 애드립과 카덴차가 나오는 거죠. 심지어 플레이리스트는 이미 정해져 있고. 그러니까 이건 그냥 콘서트라고 불러야 되는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있었습니다. 아까 듣다가 생각난 질문인데요, 원래 (작가님이) 디지털 개발을 하셨었지요. 첫 작품도 디지털로 시작을 하셨는데, 언-디지털로 넘어온 작품을 택하시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아까 간단하게는 TRPG에 관심이 생겼다고 해주셨는데요. 실제로 게임을 만들어보면, 같은 게임 제작 방법론이라고는 하지만 어딘가부터는 서로 완전히 다른 부분들도 있잖아요. 상희: 처음에 했던 디지털 작업들은 3D 그래픽을 기반으로 하고, 게임 엔진을 사용해서 만들어야 하는 작업이잖아요. 이걸 만들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요새 대형 제작사에서 나오는 게임들을 보면, 그래픽이 나날이 발전되는 정도가 차원을 달리 하잖아요. 현실과 차이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지고 정교해지고, 엄청 많은 자본을 투여해서 만들어지는 형식이지요. 그런 그래픽들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한 동시에, 한편으로는 그런 그래픽들이 공허하다는 감각도 있었어요. 거기에 어떤 이야기들이 더 있을 수 있을까 고민도 들었고요. 저희도 게임을 만들다 보면 어떤 그래픽적인 스펙타클에 게임을 조응하게끔 만들어야 하고, 화려하게 만들어야 된다는 압박이 있기도 한데요. 그런데 그게 제가 하고 싶은 작업의 형식은 아니었어요. 반면, TRPG라는 장르는 뭔가 그래픽적인 게 거의 없는 상태에서 그냥 이야기를 만들면서 플레이하는 형식이라는 점이 재밌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 전시를 담당했던 김지연 디자이너와 초기에 같이 작업을 하면서 플레이 테스팅을 정말 많이 했어요. 이 작업에서 저에게 제일 중요했던 건 지도였기 때문에, 저는 초기엔 일종의 게임 월드처럼 지도를 자세한 형식으로 만들고 싶어했어요. 그때 김지연 디자이너가 되게 중요한 지점을 짚어줬던 게, ‘지도는 오히려 훨씬 더 단순해야 된다’는 거였어요. 요소가 많이 없어야 된다. 왜냐하면 TRPG를 플레이할 때 우리가 어떤 시각적인 게 많이 없어야 상상을 더 할 수 있고 그게 더 재미있기 때문에.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서, 김지연 디자이너가 시각화를 해줘서 만든 게 지금 개미굴 같은 이 지도의 형식이에요. 그래서 게임이 어떤 시각적인 요소를 완전히 제외하더라도 참여자의 상상력을 이용한다면 오히려 더 재밌게 플레이할 수 있구나 싶었어요. 예전에 김지연 디자이너가 토크 때 ‘우리의 최고의 GPU는 인간의 뇌다’라는 얘기를 했었는데요. 결국에 저희가 상상했을 때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고 얘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에서는 시각적인 부분은 오히려 (과거로) 회귀해서 굉장히 아날로그적인 작업을 하려고 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 작가님들이 이 작업을 준비하시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뭘까를 생각해 봤는데요. 시간적인 제약도 있고, 공간적인 제약도 있죠. 제가 궁금해지는 건 굉장히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이러한 전시도 공짜는 아니에요. 이 작업의 물리적 베이스, 다시 말해 소요 비용이나, 펀딩이나 후원이 어떻게 들어왔었는지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상희: 우선, 지금 이 공간은 <팩션>이라는 전시공간이고 이 전시는 여기서 열린 공모를 통해 지원을 받았어요. 그리고 저는 여기서 제일 큰 비용이 뭐였냐 하면 결국 ‘저희’였다고 생각하거든요(웃음). 저희의 몸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걸 때우는 방식이었고. 그래서 (전시 공간은) 무조건 집에서 가까워야 되고, 자주 와서 이곳을 계속 보수할 수 있고, 공간을 관리하고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여야 해서 이곳 삼선동에서 전시를 하기로 결정했구요. 비용 같은 경우에는 다 자비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원래 펀딩을 받으려고 했지만, 제가 다른 작업 펀딩을 받고 싶은 게 있어서 그걸 먼저 냈었고. 이 전시는 저희 생각으로는 기획이 대박이기 때문에 무엇을 내도 다 뽑힐 것이라 기대를 했지만(웃음) 제작비를 따오겠다 했는데 못 딴 거죠. 그래서 저희 돈으로 했는데 또 생각보다 비용이 엄청나게 많이 들지는 않았어요. 저희가 다 직접 만들고 한 게 있어서. 이경혁 편집장: 저는 당연히 이 전시도 다른 곳에서 펀딩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상희: 그렇죠, 그래서 저희는 후속 지원을 고려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저희의 기획이 이런 형식을 잘 이해하시는 분들께는 신선하고 재밌게 느껴졌겠지만, 한편으로 펀딩을 해 주시는 분들이나 지원 프로그램 심사위원들에게는, 특히 TRPG 자체를 모르는 상황에서는 ‘그래픽이 없는데 대화로 게임을 한다고? 도대체 무슨 소리지?’ 이렇게 난해하게 들리셨을 것 같기도 했어요. 그래서 오히려 저는 지금처럼 (전시를 통해) 결과가 완전히 다 나왔고 우리 기획이 어떤 건지 정확히 알 수 있는 자료들이 마련된 상태에서, 후속 지원을 요청하거나 이 전시를 완전히 대중적인 퍼블리시를 할 수 있는 포맷으로 지원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해요. 지금은 미술 전시회 형식으로만 하고 있는데, 저희가 추후 하고 싶은 건 아예 ‘게임’으로 출시하는 것이에요. 일례로 여기 붙어 있는 지도도 보드게임 컴포넌트처럼 다 들어 있는 것이고. 이 보드게임 패키지를 사시면 플레이를 어디서든 직접 할 수 있게 되고 그때는 어떤 물리적인 제약도 거의 없어지는 거죠. 엄청 긴 세션을 하셔도 되는 것이고, 각자의 플레이 방식대로 맞춰서 게임하실 수 있게 될 거에요. 다른 한편으로는 기획이 맞는다면 지역에 가서 일종의 팝업으로 해볼 생각도 했었어요. 이 게임이 설치형이잖아요, 그리고 광주라든가 부산에서는 요새 그런 형식의 전시를 많이 하니까. 그렇게 팝업을 통해 지방에서 TRPG 하시는 분들과 협업해서, 계속해서 더 큰 지도를 설치하고 채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봤어요. 성훈: 전시에 와주셨던 큐레이터 중 한 분이 재밌는 얘기를 해 주셨는데요. 이 게임이 한국의 지방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굉장히 지역적인 맥락을 가지고 오려고 하니까, 차라리 실제로 어떤 도시에 가서 그 도시의 랜드마크 등을 반영해서 만들어도 재미있겠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실제 매핑을 통해 굉장히 퍼블릭한 게임으로 만드는 거죠. 이경혁 편집장: 물리적 제약이 워낙 지금 크게 느껴지다 보니까 계속 이 게임의 물리적 제약을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은 뭘까를 생각을 하는데 그중에 가장 큰 부분이 펀딩인 것 같네요. 제일 좋은 것은 지자체의 예산을 가져오는 것 같은데요(웃음). 혹시, 미술계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상희: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고, 아무래도 완전히 모르는 이야기이다 보니 신선하다는 반응도 많았어요. 게임 디자인이라는 형식이나 게임 메카닉을 갖고 와서 기획한다는 것을 재밌어 하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고. 그리고 이 전시가 또 주목을 받는 게, 결국에는 지금의 어떤 (예술 관련) 이론이나 담론이 게임과 연관되어 있는 게 너무 많기 때문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행위성 같은 개념들은 굉장히 게임적이거든요, 한편으로 게임에 익숙한 사람들한테는 굉장히 당연한 얘기죠. 그런 것들이 미술적인 개념들과 이렇게 영합하면서 시너지가 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경혁 편집장: 최근 들어 확실히 미술계에서 게임을 베이스로 작업하는 경우가 정말 많아졌다고 느낍니다. 주변에 미술하는 분들이 게임 갖고 작업하시는 걸 보면 좀 어떠세요? 본인의 세대 근처에서, ‘게임’을 미술의 주요 소재로 쓰겠다라는 경향이 좀 있다고 느끼시는지요? 상희: 네, 그런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저희는 PC통신이 당연한 시대였고 초등학생 때부터 컴퓨터가 집에 있는 세대여서 디지털 게임을 많이 하기도 하고. 어떤 정서라든가 감성이 게임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세대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다른 한편으로는 사실 기존에도 게임을 주제로 하는 작가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주목받기 시작한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싶어요. ‘게임을 사용한 작업이 예술의 형식이구나’(라는 인식이 생겼다). 그 전에 작업했던 사람들은 게임 제작자라는 인식이 좀 강했는데 최근에 ‘아트 게임’이라는 용어도 나오면서, 이게 예술 작업으로 보이게 된 건 최근의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경혁 편집장: 이제 (전시가) 거의 마무리가 됐지 않습니까? 전시가 끝나고 나면 지도는 향후에 어떻게 될까요? 상희: 일단 전시가 끝나고 나면 이 지도 자체는 철거를 잘 해서 손상 없이 떼갈 예정이고요. 그 전에 확대 촬영이라고 해서 사진이나 그림을 스캐너에 넣는 것처럼 촬영하는 기법이 있는데, 그걸로 지도 자체의 아카이빙을 잘 하려고 해요. 그때 (경혁님이) 오셨을 때도 이 게임이 되게 오프라인한 경험인데, 이걸 어떻게 디지털로 남길 것이고 이후 사람들이 여기에 어떻게 접근해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될 것 같다는 말씀을 해 주신 기억이 나요. 저희도 그래서 이 지도를 웹에 아카이빙하거나 이후에 이 게임을 어떤 식으로 퍼블리시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갖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사이즈를 보면 기존의 도록이나 영인본처럼 남길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은 들어요. 마지막으로, 이 기획 이후에 후속작처럼 기획하고 싶은 게임의 형태는 어떤 것일지 궁금합니다. 상희: <언-리얼리스트의 유럽>이라고 11월에 작업하려는 작품이 있어요. 유가가 더 비싸지고 환경세 등이 부과되는 근미래에 일반인이 해외여행을 가는 게 불가능해졌다는 설정이에요. 실제로도 그런 일들이 점점 일어나고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이제는 메타버스로 유럽 여행을 해야 되는 거죠. 그 여행을 실제로 VR 같은 기계, 실제 VR은 아니지만 VR이라 부르는 오락실 기계 같은 것에 앉아서 플레이하게 되는 형식의 게임인데요. 그래픽적 요소가 많이 없고 플레이어가 뭔가 계속 머릿속으로 생각하게 하면서 참여하는 그런 형식의 게임을 상상하고 있어요. 이번 작업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게 최소한의 그래픽을 가지고 (참여자들의)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어서 후속작에서도 그런 견지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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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넷마블 게임 박물관이 정식으로 일반 공개를 시작했다. 넷마블 게임 박물관은 아직 정확하게 공지는 되지 않았지만 현재(2025년)기준으로 한국에서 최초로 정부에 등록된 게임을 테마로 한 박물관이 될 가능성이 높다.(국내에서 이름에 컴퓨터가 들어간 등록박물관은 2023년 기준으로 넥슨 컴퓨터 박물관이 유일하다.) < Back 23 GG Vol. 25. 4. 10. Tags: 넷마블, 아카이빙, 박물관, 학예연구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oungWook Oh Game enthusiast, game programmer, and historian of games. A growing interest in Korean games turned into a hobby of collecting and organizing materials, and has been steadily gathering and archiving them since 2006. Co-authored books including The History of Korean Games and Mario, Born in '81, and contributed as a developer to games such as Dungeon & Fighter, Acropolis, Pony Town, and Timeline Dung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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