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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심사평 - AI시대의 게임비평을 목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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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6. 10. 10.

어느덧 5년차를 맞이한 게임비평공모전에는 역대 가장 많은 편수인 123편이 접수되었습니다. 거의 한 달에 가까운 시간동안 100편이 넘는 글을 읽고 또 평가해야 하는 입장을 5년째 지속하다보니 느껴지는 것들을 심사평을 통해 담아내 보고자 합니다.



AI시대의 공모전이란


2026년 공모전에서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AI시대의 대두였습니다. 작년의 응모작이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올해는 AI에 기대어 작성한 글들이 크게 늘었습니다. 저는 AI라는 도구가 글을 쓰고 생각을 다듬는 데 꽤 유용한 도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이를 활용하는 방법 측면에서 많은 응모작들이 조금은 비효율적인 방법을 택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심사 과정에서 여러 번의 필터링을 거치고 나면, 본인이 전혀 다듬지 않은 AI가 고스란히 토해낸 글들은 자연스럽게 걸러집니다. AI가 썼다는 이유로 걸러내지는 않았지만 순수하게 글에 담긴 필력 자체만을 보고 평가해도 AI스러운 글들은 주저앉습니다. 100편이 넘는 글을 읽다보면 특유의 산만함과 주제없음, 매크로처럼 쓰는 문장습관과 논지 구조가 점차 눈에 들어옵니다.


내년에는 또 어떨는지 알 수 없지만, 현재까지는 좋은 글을 AI혼자 100% 쓸 수는 없습니다. 저는 응모작 수가 크게 늘어난 배경에는 한편으로 글쓰기를 수월하게 만드는 AI의 대두가 작용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결과물은 응모를 가능하게 하는 수준에 머물 뿐 당선권을 만들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다른 글 기반의 공모전들도 비슷한 상황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AI가 글쓰기의 많은 부분을 보조해낼 수 있다면, 더욱 중요해지는 것은 시선과 아이디어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날카로운 관찰과 풍부한 해석을 스스로 해낼 수 있다면 이 새로운 도구는 그 관찰의 결과를 훌륭하게 다듬어줄 수는 있겠지요. 다만 AI에 전적으로 의존한 글들은 비평과 같은 글쓰기의 본질이 글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 자체를 타인에게 전달하는 데 있다는 점을 간과한다고 느껴졌습니다.



전체적인 아쉬움들


그런 의미에서 응모작 전반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수상이 어려운 사유로는 일반적인 통념을 다시 진술하고 있다는 주제의 진부함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아주 쉽게 이야기해보면, 이미 게시판이나 미디어에서 한참 다뤄진 바 있는 이야기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주제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물론 남들 다 하는 이야기라고만 치부하는 것은 언제나 조심스럽습니다. 같은 결론이라도 다른 과정을 밟는다면 그것으로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글들은 그 일반적인 통념의 테두리를 날렵하게 벗어나지 못한 채 되새김질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는 어느 정도, 글을 쓰는 과정에서 기존의 담론들을 참고하지 않았다는 점과 상통합니다. 이미 남들이 다 한 이야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누가 먼저 그 이야기를 했는지를 검토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만약 내가 발견한 무언가가 이미 기존에 논의된 거라면, 그를 딛고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찾은 것이기도 합니다만, 그런 다른 이야기들로부터 스스로를 차단한 뒤 자신의 세계 안에서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은 글을 읽는 타인을 설득하기에 좋은 방식은 아닙니다. 마찬가지 관점에서 마땅한 근거 없이 ‘요즘 게이머들은 이렇다’고 선언하는 것 또한 독자 입장에서 쉽게 글의 논지를 따라가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빽빽한 각주와 참고문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나의 글이 담론장 전체에서 위치하게 될 관계는 생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하나 볼 수 있었던 경향성은 빈약한 결론입니다. 기존 공모전에서도 없지 않았던 현상이지만 5회에서는 유독 두드러진 부분입니다. 발견과 전개는 좋았는데, 이를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이 이상하게도 그저 ‘게임이라는 건 이래야 한다’와 같은 훈화에 머무르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좋은 분석을 따라가다가 갑자기 ‘그러니까 나만의 선택을 해라’로 글이 닫히면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습니다. 적지 않은 수상후보군의 글이 이 지점에서 미끄러지곤 했습니다.


어떤 류의 글들은 결론을 잡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본론의 논지가 매우 탁월하다면 결론을 평이하게 가도 무방할 수 있겠습니다만, 무리하게 결론을 어떤 식으로든 지으려다보면 뜬금없는 선언이나 훈화가 달라붙을 수 있고, 이는 본론의 명석함을 흐려버릴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의외로 제출한 원고 자체의 레이아웃에 신경을 전혀 쓰지 않은 응모작들이 적지 않았다는 점을 추가합니다. 물론 최종 레이아웃은 웹진에서 수정하니 문제가 크게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읽는 이를 고려한다면 최소한의 레이아웃은 맞추는 것이 독자로서의 심사위원에게도 어필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예쁘게 문서를 꾸미자는 것이 아니라, 그냥 AI가 출력한 그 특유의 형태를 고스란히 남겨버려 가독성을 떨어뜨릴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수상작과 수상후보작들


세 편의 수상작들은 그런 점에서 각자의 독창적인 위치를 잘 드러냈습니다. 박신영의 <시야 바깥에 거주하는 법>은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에서 나타나는 APM과 동체시력으로 상징되는 인터페이스와의 관계 속도를 프로게이머라는 특수성에 비추면서 새로운 독해로 읽어낸 점이 돋보였습니다. 스미 가즈오의 운게(스미 가즈오는 일본인으로, ‘운게’는 일본어의 한국 번역 표현입니다) 에 관한 글은 운이라는 요소를 고유한 쾌락의 원천으로 세우면서 기존의 논의에 새 관점을 추가했습니다. 이주원의 <악마를 속이는 군주>는 통념으로 다뤄진 세이브 로드라는 개념에서 출발하지만 통념으로 설명되지 않는 지점을 향해 나아갔고, 절차적 수사학이라는 개념을 단순 장식이 아닌 전개의 중심에 안착시키면서 참신한 고찰에 도달합니다.


<하데스>를 다룬 여러 글들 중 심사 현장에서는 <신의 이름으로, 증강의 이름으로>가 자주 거론되었습니다. 하데스와 증바람을 하나의 장치로 겹치면서 리롤이라는 개념을 책임 전가장치로 읽은 것은 흥미로운 발견이었지만, 후반부의 사회론이 다소 급박스럽고 기시감을 주는 형태였음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페르소나 3 리로드>와 <12분>의 시간구조를 대비시킨 <나는 왜 알아요?>도 심사과정에서 주목받았으나, 개인적 성찰의 틀에 너무 머물러버렸다는 평가가 있었습니다.


<폭격기는 뚫고 지나간다>는 하드코어한 워게임을 파고들며 게임 규칙으로부터 전략폭격론이라는 현실의 군사이론까지를 연계시키는 대담함으로 후보작으로 거론되었지만, 역사와 게임 파트 간의 불균형, 전략폭격론의 문제가 게임으로부터 완전히 새롭게 발견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점 등에서 아쉬움을 남깁니다. 모딩의 사례를 추적한 <당신의 게임은 재미있습니다만>은 풍부한 관찰사례로 주목받았지만 그 관찰들이 어떠한 명제로 수렴하지는 못하고 결론부에 흩어지는 느낌으로 남았습니다.


협동 공포 게임 속에서 나타나는 불협화음을 관찰한 <공포를 찍어 올리는 사람들>은 좋은 발견을 이끌었으나 충분한 납득이 심사위원 사이에서 합의되기 어려웠습니다. <자비가 칼이 될 때>는 편의성을 위한 기능이 로그라이크의 본질을 해체하는 과정을 추적하여 주목받았지만, 글의 설명이 다소 거칠다는 작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기타 많은 글들이 최종 수상작 선정 과정에서 거론되었으나 일일이 다 언급드리지 못하는 점은 저로서도 아쉽습니다.



나가며


많은 응모로 저 뿐 아니라 심사위원분들 또한 오랜 시간 고생한 심사였습니다. 매년 심사를 맡아보면서 느끼는 바이지만, 항상 적지 않은 분들이 디지털게임에 대한 비평을 하고자 한다는 큰 요구가 있음을 실감합니다.


GG 편집장이라는, 그 요구가 어느 정도 구체화되는 일의 실무를 맡고 있는 입장에서 매번의 공모전 심사는 그 책임감을 다시 일깨우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참여해 주신 모든 응모자분들께 감사드리며, 수상하지 못한 글들 또한 쉽게 폄하받기 어려운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다시한번 공모전을 향한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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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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