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벌의 생명선_2인용 로컬 협동게임 속 목숨의 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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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5. 6. 10.
이혼을 결정한 부부 코디와 메이의 영혼은 부모의 이혼을 막고 싶은 딸 로즈가 빈 소원 때문에 조그마한 목각 인형에 씌게 된다. 자기들 나름의 추론을 거쳐서, 인형으로 전락한 부부는 딸의 눈물이 저주를 풀게 해주리라고 판단한다. 두 사람은 세계에 육박하게 거대해진 아이의 놀이방을 헤매면서, 로즈가 가장 좋아하는 코끼리 인형 큐티를 찾는다. 큐티를 망가뜨리면 속상한 아이가 눈물을 흘리게 되리라 믿으면서 말이다. 부부는 미로를 헤매고 퍼즐을 풀고 미친 청소기와 싸우는 우여곡절 끝에 장난감 왕국의 여왕 큐티와 마주하게 된다. 자기를 해치려 들자, 큐티는 자신의 운명에서 도망치려는 헛된 발버둥을 치면서 넝마가 되어간다. 마침내 부부는 무력화된 인형을 절벽으로 끌고 가고, 합심해서 무저갱만큼 깊은 놀이방 바닥에 밀어 넣는다.
이 처형을 진행하기 위해서, 게임은 언제나 그래왔듯 두 사람분의 협동을 요구한다. 게임 디자이너 요제프 파레스(Josef Fares)가 설립한 헤이즐라이트 스튜디오의 <잇 테이크 투It Takes Two>는 2인용 로컬 협동게임이다.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은 함께 게임을 할 플레이어를 자동으로 배정해 주지만, 로컬 협동게임은 자동 배정 기능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게임을 진행하기 위해 시작부터 두 사람의 플레이어가 필요하다. 따라서 2인용 로컬 협동게임은 친구나 연인,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으로서 기획된다. <잇 테이크 투>의 주인공들이 서로에게 시큰둥한 부부인 것도, 어쩐지 불쾌하게 친근한 부부 상담가처럼 구는 하킴 박사가 여정의 안내자인 것도 기획에 어울리는 설정인 셈이다. 두 플레이어 모두 카메라를 자기 뜻대로 조작할 수 있도록 게임 화면은 자주 두 개로 분할된다. 가능한 이동의 양상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3D 공간상에서 주목해야 할 퍼즐 요소 역시 다르게 주어진다. 두 플레이어는 자기 몫의 퍼즐을 풀기 위해 선제 되어야 할 행위를 요청하고 정보를 공유한다. 긴밀하고 상보적인 공조를 통해서만 그들은 닫힌 문을 열고 장애물을 뚫을 수 있다.
큐티를 처형장으로 끌고 가는 시퀀스 역시 이 공조로부터 예외가 아니다. 큐티는 마분지 로켓을 타고 도망치려다 추락하고 속절없이 인형 뽑기 통에 갇힌다. 화면은 분할되지 않고, 시네마틱으로부터 플레이 화면으로 분절 없이 자연스럽게 전환된다. 본래 두 손으로 조작하도록 만들어진 인형 뽑기 집게의 계기판은 플레이어의 아바타에 비해 너무 거대하다. 코디는 조이스틱을 조작하고, 메이는 방향키를 그 위에서 풀쩍풀쩍 점프하면서 버튼을 짓눌러야 한다. 큐티는 정형행동을 하는 동물처럼 빙글빙글 돌며 집게를 피하려 하고, 공황에 빠져 흐느낀다. 간신히 큐티를 집어 올리는 데 성공하면, 큐티의 다리는 인형 배출구에 걸려 버린다. 각자의 아바타가 큐티의 팔을 한 짝씩 쥔 상황에서, 플레이어들은 버튼을 연타해서 큐티를 잡아당긴다. 억지로 당겨진 인형의 한쪽 다리가 뜯겨 나간다. 발버둥 치는 큐티를 놓치지 않고 어떻게든 끌고 가기 위한 조작이 계속 진행된다. 큐티는 친구 로즈한테 도움을 요청하며 울부짖고, 기어서라도 탈주하려 몸부림치다 귀까지 잃는다. 코디와 메이는 플레이어의 조작에 인도되어 느릿느릿 지지부진하게 코디를 절벽으로 끌고 간다. 주인공들에 비하면 거대하지만 무력하고 취약한 코디의 몸은 공격성이 배제된 밀가루 포대와 같다. 코디와 메이는 몸서리치며 외친다. "이 일이 다 끝나면 우리는 상담을 받아야 해." 그들은 어쨌거나 함께 그 일을 해낸다.
부부는 영영 목각 인형으로 살 수는 없지 않냐는 합리적인 이유로 살해를 감행한다. 전문가와의 사후적인 상담을 통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처치하는 걸 고려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장난감과 레고 블록과 타일이 널브러진 세계에서, 플레이어 역시 "살아있고 소리 지르는" 생명을 죽이는 느린 협업을, 일치된 버튼 연타와 섬세한 조작을 강제 받는다. 이야기는 이후 당면한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는 데 급급하지 말고, 진정으로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이해해야 한다는 교훈으로 나아가긴 한다. 그렇지만 포로를 처형하는 과정을 연상시키는 충격은 교과서적인 메시지로 무마되기에는 지나치게 강렬하다. 자기 잇속만 따지는 어른들의 공모로서 협동의 기제가 나타나는 이 시퀀스는 속도감 있는 전환과 유쾌한 게임성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잇 테이크 투>에서 돌출적일 정도로 느리게, 긴 시간을 들여 전개된다. 그런데 게임의 줄거리는 마치 그 일이 일어난 적 없었다는 식으로 흘러간다. 결말부에서 주인공 부부는 여태까지의 반목이 없었다는 듯이 급작스럽게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를 도모한다. 그들은 로즈와 다시 화목한 가족으로 돌아간다. 식상한 결말이라면 식상한 결말일 것이다. 그런데 플레이어의 의식 속에선 절박하고 동물적인 생존의 갈구가 모두 실패하고 공포와 고통 속에서 떨다가 추락하는 봉제 인형 스너프가 여전히 어른거린다.
새된 어린아이 목소리로 말하는 유아적인 인형을 처분하기 위해 일치단결하는 시퀀스는 필요 이상으로 불쾌하고 잔혹한 농담으로 의도된 것만 같다.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가족적인 게임을 기대한 사람들에게서 평을 깎아 먹는 요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불쾌함까지 포함해서, <잇 테이크 투>의 농담은 게임 내의 협동 행위에 대해 흔히 이뤄지는 가치 평가에 대한 유의미한 재고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협동'은 게임이 폭력과 반사회성을 부추긴다는 혐의에 저항하며 게임을 변호하는 대항 무기로서 기능해 온 키워드다.
비디오 게임의 심리적 효과를 공정하게 다루려 노력하는 문헌들 다수가 게임이나 게임의 표면적 폭력성이 문제가 아니라 경쟁적 환경이 문제일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의견을 개진한다. 대표적으로 데이비드 이월슨 등이 진행한 연구는 피실험자에게 <헤일로Halo>와 같은 폭력적인 게임들을 경쟁적으로, 혹은 협동적으로 플레이하게 만든 결과, 협동적으로 플레이한 경우 오히려 사회적 의사소통이 활발해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힌다.[1] 최근의 연구는 게임 내외로 이뤄지는 협동적인 상호작용을 일면적으로 긍정하기를 넘어서, 그것이 동질적이고 유독한 게임 커뮤니티를 형성할 때 발생하는 문제 역시 활발히 다룬다. 그렇지만 사회성의 함양과 관련하여 논의되는 '협동'은 대체로 팀플레이를 요구하는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의 협동인 경우가 잦다. 그건 온라인 멀티플레이가 친분이 배제된 낯선 사람들이 임시로 팀을 이뤘을 때 목표 달성을 위한 의사소통을 어떻게 행하는지 살피는데 더 용이한 게임 문법을 갖추고 있고, 동시대의 게이머에게 온라인 멀티플레이 환경이 더 익숙하고 보편적이기 때문일 테다.
이런 멀티플레이 협동 게임의 재미는 현실과 다른 환경에서 새로운 사회적인 관계를 꾸리는 재미와 맞닿아 있지만, 2인용 로컬 협동 게임은 그 조건상 완전히 다른 제반에서 재미가 작동한다. 요제프 파레스는 2인용 로컬 협동 게임을 제작하는 의도가 "함께 스토리 경험을 공유하는 것"과 만난다는 걸 밝힌 바 있다.[2]
2인용 로컬 협동 게임이 가진 계보와 환경은 소위 "스토리 경험의 공유"에 방점이 찍힌다는 점에서 멀티플레이 상의 협동과 궤를 달리한다. 이 2인용 협동 비디오 게임의 역사는 이 인용 조종간을 갖춘 형태가 대부분인 아케이드 게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우리의 UX를 찾아서: 오락실 코옵을 추억하다"는 "서로의 캐릭터에 더 도움이 되는 버프 아이템(또는 무기)를 양보하는 미덕"과 "나는 살아남았지만 혼자 남아서 플레이하기 싫어 2p를 부활시키기 위해 선뜻 100원을 내"는 실천들이 뒤얽힌 아케이드 오락실을 회상한다.[3] 서로의 생명을 100원짜리 동전을 대신 지불해 기꺼이 상대의 목숨을 연장하는 협력의 동인은 기기가 변화하며 새로운 경향성을 띠게 된다. 콘솔로 옮겨간 2인용 협동 플레이는 필수가 아닌 선택 사항으로 제공되는 사례가 많다. 본래 싱글 플레이에 기반을 둔 게임에 두 사람이 함께 플레이할 수 있도록 아바타를 추가하는 식이다.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의 마리오와 루이지, <별의 커비 디스커버리>의 커비와 웨이들 디, <컵헤드>의 컵헤드와 머그맨, <컬트 오브 더 램>의 어린 양과 검은 염소가 대표적인 쌍일 테다.
2p 아바타는 자주 오리지널 주인공의 혈육이거나 절친한 친구이거나 상대의 보색을 띤 분신으로 설정된다. 두 캐릭터의 역할이 주인공과 보조자로 분명히 나뉠 수도 있고, 싱글 플레이 주인공과 복제 수준으로 유사한 능력과 기술을 공유하기도 한다. 이때 두 번째 플레이어, 2p의 경험은 조작 실력과 게임에 대한 이해도 등이 상대적으로 적은 플레이어 역시 아우를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놀이터가 아닌 비디오 게임에서 '깍두기'를 들이는 것과 유사하다. 2p 플레이는 필수로 강제되지 않는다. 그건 게임을 함께 경험하고 싶은 아이, 가족, 친구, 연인, 동생을 포함하기 위한 기능이다. 로컬 2인용 협동의 선택지는 그저 게임을 '시청'하는 게 아쉽고, 조작하고 놀고 고투하며 밀고 나가는 게임 경험을 공유하고 싶은 소망에 대한 응답으로 작동한다.
그로부터 2인용 협동 게임의 보편적인 생존 양상이 나타난다. 한 플레이어가 게임 오버를 맞이해도, 다른 플레이어가 살아남았다면 플레이는 계속된다. 마치 아케이드 게임에서 2p 플레이어를 위해 동전을 넣으면 계속 함께 플레이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두 사람이 동시에 게임 오버를 맞지 않는 이상 게임 오버를 맞은 이도 금방 부활할 수 있다. 시간적인 지연을 두거나 다음 스테이지까지 조작을 할 수 없는 식의 일시적인 페널티를 받을 뿐이다. 게임의 난이도에 따라서 페널티의 수준은 달라지지만, 2p 옵션에서 동반자로 인해 겪는 불편이나 다툼의 여지가 최소화된다는 점은 공통된다. 함께 게임을 하는 상대를 탓하며 얼굴을 붉히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2인용 협력 플레이에서, 두 사람의 플레이어는 서로에게 있어 여벌의 체력, 생명, 하트이며 게임 오버를 막는 보증이다. 그들은 분명 분리된 캐릭터를 조종한다. 그렇지만 플레이어는 두 개의 심장을 가진 듯이, 죽은 이후에도 상대를 통해 게임이 지속될 수 있음을 안다. 더불어 그 지속 가능성을 전략적으로 염두에 두고 협상한다. 나는 너보다 체력이 많이 달아서 금방 죽을 테니까, 더 공격적으로 근접전을 벌이거나 방어적으로 보조하겠다는 식으로 말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별의 커비 디스커버리>의 커비와 웨이들 디는 아이템을 먹어 획득할 수 있는 추가 '하트'를 뽀뽀로 상대에게 나눠 줄 수도 있다. 물론 여기서 주고받아지고 타협이 이뤄지는 건 생명이 아닌 생명의 은유고, 그 생명의 은유는 계속해서 가상의 시공간을 전개해 가고, 게임을 진행하고, 역경을 돌파하기 위해 필요한 권한 자체다. 두 플레이어에게 주어진 생명이 편리하게 유연한 공유물이란 점에서, 2p 협동 플레이는 연대책임을 강제하고 그 강제가 재미의 일부가 되는 멀티플레이 게임들의 방식과 대척점에 있다. 연대책임 멀티플레이의 가혹한 판본 중 하나인 <체인드 투게더Chained Together>와 대조해 본다면 차이는 더욱 극명하게 다가올 것이다.
다만 2p 협동 플레이의 선택이 극적으로 난도를 낮추거나 쾌적하기만 한 플레이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싱글 플레이를 위해 구성된 화면이기에 상대 아바타의 활달한 움직임 자체가 나의 이동과 조작에 가야 할 시선을 분산시키고 산만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헷갈리지 않게끔 두 캐릭터가 완전히 구별되는 색깔을 키 컬러로 가짐에도 불구하고 혼선은 일어난다. <컵헤드>와 같이 난전이 벌어지는 고난도 게임에선 협동플레이가 싱글 플레이보다 더 어렵다고 여겨진다. 2P의 선택지를 제공하는 비디오 게임이 대체로 횡 스크롤 혹은 탑다운 뷰 게임에 기반을 두는 시리즈인 까닭도 카메라의 주도권과 초점을 누가 가져가야 하냐는 문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이다. <커비 디스커버리>는 카메라가 세 축으로 모두 움직일 수 있는 3D 환경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커비를 조작하는 이가 카메라의 조작 능력을 가지고, 플레이 영역에서 웨이들디가 벗어나면 자동으로 커비 곁에 소환되게 했다. 두 플레이어가 같은 화면을 바라보게 끔 하는 보이지 않는 불편한 강제력이 작동하고 있음을 플레이어는 실감할 수밖에 없다.
<잇 테이크 투>와 마찬가지로, <웨이 아웃Way Out>, <스플릿 픽션Split Fiction>에서도 헤이즐라이트 스튜디오의 게임들은 분할 화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카메라의 주도권 문제를 해결한다. 이것은 이인 협력 플레이가 선택지이기를 넘어서, 시작부터 이인 협력 플레이를 위해 디자인된 구성이기에 가능하다. 두 게임에서 분할 화면이 줄곧 유지되는 건 아니다. 횡 스크롤과 탑다운 뷰를 동원해 2인용 협동 플레이에 친숙한 다종의 게임 문법을 참조하기도 한다.
그렇게 3D 공간 상의 퍼즐, 파쿠르, MMOPRG, 레이싱의 동사들이 대거 공존하는 협력 게임이 된다. 게임 오버의 기준은 위에서 소개한 2인 협력 플레이와 마찬가지로 두 플레이어의 아바타가 동시에 죽는 것이다. 다른 플레이어가 생존해 있다면, 내가 아무리 기가 막힌 실수를 해서 아바타를 죽이기를 반복하더라도 게임 오버는 일어나지 않는다. 매분 매초가 아슬아슬한 생존의 기로로 화하는 액션 시퀀스에선, 죽은 이가 부활하는 데 약간의 '쿨타임'이 요구된다. 남은 이는 그 쿨타임 시간 동안 홀로 살아남아서 게임 오버를 막을 수 있다. 사실 게임 오버 자체도 크나큰 실패로 의미화되진 않는다. 짧은 간격으로 이뤄지는 자동 저장이 플레이어를 게임 오버 거의 직전의 순간으로 되돌려 놓는다. 설령 둘이 나란히 죽는다 해도 다시 새로운 방식의 협동을 빠르게 시도해 볼 수 있다. 가상의 시공간을 전개해 가고 게임을 진행하고 역경을 돌파하기 위해서 필요한 권한, 정체되지 않고 움직여 가는 이야기의 생명은 이런 죽음과 부활의, 정지와 재생의 재빠른 교대를 통해서 힘을 얻는다.
그런데 이 교대는 서로가 생명선 손금의 연장이 되어주는 협력 플레이의 플레이어성 역시 변화시킨다. 어쩐지 일론 머스크를 닮은 사악한 출판사 사장이 불공정 계약으로 작가들의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뽑아내 XR로 재구성하겠다는 괴상한 계획을 펼친다는 배경에서 시작하는 <스플릿 픽션>를 살펴보자. 이 계획에 걸려든 상극의 성격, 상극의 취향인 두 여자 주인공 미오와 조이는 각자가 만든 픽션 속 사이버펑크 세계관과 판타지풍의 세계관을 함께 오가며 미래형 사무라이가 되거나 톨킨 풍의 판타지 마법사로 활약한다. 게임적인 숏폼의 릴레이를 구성하려는 듯이 카메라, 화면 분할, 조작 방식, 액션 양상은 쉴 새 없이 변화한다.
두 플레이어의 아바타는 단순히 시각적 일관성이나 유사성에 일치되지 않고, 협력의 두 축을 이루는 매개체로서, 위아래로 흔들어 움직일 수 있는 시소의 양 끝으로 인식된다. 우화를 연상케 하는 시퀀스 하나가 이것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조이가 어린 시절에 쓴 동화 속 세계에 미오와 조이는 귀여운 돼지가 된 채로 떨어진다. 한 돼지는 마법 방귀로 멀리 날아갈 수 있고, 다른 돼지는 목에 달린 스프링을 사용해 높이 튀어 오를 수 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는 마법 돼지 농장의 마법 돼지를 조작하며, 플레이어는 협력해서 퍼즐을 풀어나가야 한다. 집채만 한 거대 돼지나 날개 달린 돼지에 슬슬 익숙해지고 이 세계도 썩 나쁘지 않고 유쾌하단 걸 받아들일 무렵이면, 미오와 조이는 퍼즐 풀이 끝에 도착한 종착지에서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간다. 그 미끄럼틀은 사실 도축 공장의 기계로 이어진다. 두 돼지는 이제 식탁 위의 소시지가 되고, 불판 위를 구른 후 서로에게 케첩과 마요네즈를 칠해줘야만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다. "그래, 우리 자신을 굽지 않을 이유가 없지!" 플레이어의 조작을 통해 접시 위에 올라간 두 사람은 마침내 인간에게 먹힌다.
너는 나의 게임플레이를 지속하도록 해줄 지렛대이며 여벌의 심장이다. 나는 너의 게임플레이를 지속하도록 해줄 지렛대이며 여벌의 심장이다. "두 사람이 드는(It takes two)" 일이란 건, 두 사람이면 족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잇 테이크 투>에서, 갚아야 할 대출금과 이혼 문제와 독박 육아 및 출퇴근으로 닳을 대로 닳은 부부 코디와 메이는 토이 스토리를 연상시키는 동적인 무생물의 세계,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어린 딸의 환상 세계를 돌파해 간다.
<스플릿 픽션>에서 출판 계약이 절실한 무명작가 미오와 조이는 자신들의 머릿속에 잠들어 있거나 폐기된 픽션의 세계를 돌파해 간다. 너와 나는 동격이지만, 그 외의 여타 존재자는 너와 나만큼 동격으로 부상하거나 하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와 나는 모든 걸 함께 감수할 수 있다. 우리의 놀이를 지키기 위해 희생 제의의 공범이 될 수도 있고, 우리의 놀이를 지속하기 위해 도축되고 먹히도록 서로를 부추길 수도 있다. 우리는 그로서 그토록 함께한다. 2인용 로컬 협력 게임의 상호 의존은 로맨틱하면서도 섬뜩해질 수 있는 폐쇄성을, 개인화되기보다 공모됨으로써 드러나는 폭력성을 도주로 없이 경험하는 환경을 이루기도 하는 것이다.
인형 살해와 돼지 자살을 다루는 두 개의 농담은 2p 로컬 게임의 협력 방식에 함축될 수 있는 폐쇄성과 폭력성을 까뒤집어 보인다. 이 분절적인 농담들은 협동 플레이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목숨' 개념을 통해 공동체에 대한 편안한 긍정으로 이어지기 쉬운 협동 개념이 그보다 복잡함을 드러내고 있다. 2인용 로컬 협동게임이 같은 화면을 바라보고 함께 떠들면서 게임을 하는 친근한 두 플레이어를 전제한 로컬 환경에서 대체로 진행됨을 고려해 상상하자. 전략적인 협력을 도모하던 대화가 끊긴다. 어색한 정적이 끼어든다. 황망한 웃음을 터뜨릴 수도 있다. 서로를 바라보면서 '어... 이게 대체 뭐지?' 하고 물어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이 이미 받아들이고 익숙해진 협동의 조작은 진행될 것이다. 게임의 진행을 위해 두 사람이 함께 필수적으로 겪고 공유해야 하는 "스토리 경험"이란 그러한 불편한 침묵과 괴리를 함께 감내하는 차원까지 이를 수 있는 것이다.
[1] Ewoldsen D, Eno C, Okdie BM, Velez J, Guadagno R, et al. (2012) Effect of playing violent video games cooperatively or competitively on subsequent cooperative behavior. Cyberpsychology, Behavior and Social Networking 15: 277–280
[2] Regan, T., & Fares, J. (2025, February 18). ‘No micro transactions, no bullshit’: Josef Fares on Split Fiction and the joy of co-op video games. Tom Regan. The Guardian. Retrieved May 30, 2025, from https://www.theguardian.com/games/2025/feb/18/josef-fares-interview-split-fiction-coop-video-games.
[3] 우리의 UX를 찾아서: 오락실 코옵을 추억하다. 게임제너레이션 GG. (2022, October 10).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14df370d-2dfd-4c3f-b711-79e58f3b5cc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