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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란으로 1346개 검색됨

  • '포터블'과 '모바일': 주머니 속 게임의 사반세기 변천사

    '포터블'과 '모바일'이라는 두 개념의 차이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둘 다 휴대가 가능하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 문화적 의미와 게임 경험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2005-2011년 사이 닌텐도 DS 시리즈와 소니 PSP 시리즈가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과 병행하여 존재했던 시기에 주목하여 이 두 개념을 생산적으로 구분해서 사용하자고 제안한 연구도 있다(McCrea, 2011). < Back 23 GG Vol. 25. 4. 10. Tags: 모바일, 닌텐도, 포터블, UMPC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Mimong Lee From childhood to now, always in the company of Nintendo games. A few months ago, bought a Steam Deck on installment and has been enjoying it to the fullest. Studied business administration at Kyung Hee University and cultural mediation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Yonsei University, and is currently a doctoral student in the Graduate School of Core Ethics and Frontier Sciences at Ritsumeikan University in Japan. Researches digital media content and culture, including games and webtoons.

  • [논문세미나] 데이터가 만든 신화: ‘동남아 성장 신화’를 주도하는 게임 시장 분석 보고서 비판

    그러나 동남아시아 시장의 전망에는 비판도 따른다. 게임 시장 전망을 내놓는 글로벌 데이터 분석 기업들이 사실은 시장 담론을 주도한다는 것이다. 홍콩과학기술대학교 웡(K.T. Wong) 교수는 2022년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며, 뉴주(Newzoo)와 같은 글로벌 데이터 분석 기업이 만들어낸 “동남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게임 시장”의 서사가 이 지역의 복잡성을 무시하고 자본주의적 시각으로만 구성된 분석이라고 지적한다. < Back 26 GG Vol. 25.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Leesun Park Studies games from a social perspective. Believes that games, as a tool, ultimately offer a way to explore what it means to be human. These days, mainly writing.

  • 제5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안내

    게임제너레이션은 한국 디지털게임 비평의 활성화와 신진작가 발굴을 위해 매년 게임비평공모전을 진행해 오고 있으며, 2026년의 공모전을 다음과 같이 진행하고자 합니다. 관심있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기다리겠습니다. < Back Announcement: The 5th GameGeneration Game Criticism Contest 31 GG Vol. 26. 6. 10. GameGeneration holds an annual Game Criticism Contest to invigorate the criticism of digital games in Korea and to discover new writers, and we are pleased to announce the 2026 contest as follows. We look forward to the participation of all who are interested. ■ Format and How to Enter Topic | Criticism of a digital game (subtopic open; see existing GG articles and past winning entries for reference) File format | Submit as a word-processor file (HWP, DOC, etc.). Include the title and author's name in the filename. Length | Approximately 4,000–8,000 characters (no more than 5 images). How to submit | Send to the contest email ( ggcriticcomp@gmail.com ). ■ Awards Around 4 winning entries will be selected and awarded. Prize and certificate: 1.2 million KRW per entry (pre-tax, manuscript fee included). The award ceremony is scheduled to take place at G-STAR 2026 (Busan, expected November). Winning entries will be published in GG issue 32 (October 2026). ■ Schedule Fri, Sep 11, 2026 — Submission deadline (by 23:59 KST) Fri, Oct 2, 2026 — Judging completed and results announced Thu, Oct 10, 2026 — Winning entries published in GG Nov 2026 — Award ceremony held during G-STAR (details to be announced separately once confirmed) ■ Notes Submitted manuscripts will not be returned. Upon publication in GG, winning entries are treated the same as GG articles: they are reproduced under GG and may not be contributed to other outlets. Entries are limited to one work per person; submitting more than one may result in a penalty. Past winners of the GG contest are excluded from selection. All entries undergo a plagiarism check; if plagiarism is found, the award may be revoked even after selection. For other inquiries, please write to the official contest email ( ggcriticcomp@gmail.com ). ■ Organized by Game Culture Foundation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게임은 XX다: 동어반복적 회로를 차단하기(최우수상)

    “장르에 무관하게 예술 작품은 환언하기가 불가능하다. (중략) 지식은 언제나 위로 환언하기 혹은 아래로 환언하기에 해당하지만, 예술은 소크라테스적 철학과 마찬가지로 지식의 일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 Back 07 GG Vol. 22.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Wombat A freelancer who does odd jobs of all kinds. Interested, fittingly, in all kinds of odds and ends. With games, the interest runs especially deep.

  • 동시대 JRPG의 얼굴들 – 야쿠자, 왕자, 그리고 이방인

    <33원정대>는 두 현실 사이에 중재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둘 중 하나의 편을 택해야 하며, 선택은 곧 다른 하나의 세계와 가능성을 돌이킬 수 없이 폐기하는 행위로 기능한다. 각자에게 할당된 엔딩 이후 캔버스 속 세계의 운명은 정리되어 치워지고, 주인공들에게서 이전의 모험을 반복하거나 지속할 동기나 가능성은 사라진다. < Back 동시대 JRPG의 얼굴들 – 야쿠자, 왕자, 그리고 이방인 25 GG Vol. 25. 8. 10. 파이널 판타지 XV의 개발 총괄 하지메 타바타와 샌드폴 인터랙티브의 게임 <클레르 옵스퀴르 : 33원정대(이하 33원정대)>의 감독 기욤 브로체의 대담에서, 타바타는 <33원정대>를 "일본인의 입맛에 맞춘 프랑스 식사"로 비유한다. 기욤 브로체 역시 <33원정대>가 JRPG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그에 고유한 "느낌"을 전달하고자 했음을 여러 번 밝힌다. JRPG가 일본 롤플레잉 게임(Japanese Role-playing Game)의 약어임을 떠올리면, 프랑스 JRPG란 표현은 형용모순처럼 들리기도 한다. [1] 하지만 JRPG는 공간적이고 지리적인 분화를 암시하면서도 한 세대의 유년기 게임 경험을 함축하는 장르로서 종종 호소력을 갖기 때문에 반드시 일본에서 생산될 필요는 없다고 자주 주장된다. J.D 맬린딘의 「카트리지 속의 유령: 향수와 JRPG 장르의 구축」은 게임 커뮤니티의 담화를 분석하며, "JRPG라는 이름의 “일본” 요소는 단순한 지리적 표시가 아니라,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적 환경 속에서 정체성과 기억이 어떻게 협상되는지를 보여주는 요소로 기능"함을 보인다 [2 ]고 지적했다. 게임 유저들이 콘솔 기기로부터 PC로 게임 기기가 옮겨가는 기술적 전환을 경험하며, 사후적으로 콘솔 중심의 RPG 게임, 주로 일본 발의 시리즈가 주류를 이뤘던 시대의 게임을 JRPG로 프레이밍했다. 그리고 이러한 프레이밍과 협상, 항목화의 절차를 추동하는 정서적 축은 노스탤지어다. "이전에 나왔던 게임과 같은 느낌을 선사해야 한다"거나, "JRPG를 플레이하게 되면, 즉각적으로 그것이 JRPG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식의 발화에 J.D 맬린딘은 주목한다. JRPG가 기술적으로 지체되고, 과거를 반복하고, 특정 세대의 향수에 호소하는 죽은 장르란 비판 역시 그것이 노스탤지어에 기대어 있다는 암묵적인 합의에서 출발하지 않던가? 동시에 저자는 플레이어들이 오로지 새롭고 참신한 감정을 얻기 위해서만 게임을 한다는 전제를 지나치게 협소한 시각으로 의심하며 어쩌면 "같은 느낌"을 반복하는 것, 과거의 게임에서 느꼈다고 생각한 감정을 다시 얻기 위해 JRPG를 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제언한다. JRPG라는 장르명을 사용하는 게임 커뮤니티 언중의 담화를 분석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카트리지 속의 유령: 향수와 JRPG 장르의 구축」은 이 반복되는 "같은 느낌"을 구성하는 반복의 구조를 깊이 다루지는 않는다. 물론 우리는 '왕도'라 일컬어지는 일직선적인 내러티브, 홀로 나아가기 보다 동료 및 파티와의 우정을 쌓아가며 강해지는 주인공, 각자 역할이 분할된 3-4인 파티 단위의 턴제 전투, 시네마틱 컷신의 삽입을 흔히 그 "느낌"의 근거로 떠올릴 수 있다. 위의 대담에서 <폴아웃> 같은 영미권의 고전 RPG와 비교하며, 기욤 브로체는 일상성을 함축한 대화, 진지함과의 적절한 거리, 마치 연속적인 컷신처럼 구성되는 턴제 전투를 JRPG의 특징으로 꼽기도 한다. 반복되어야 할 "같은 느낌"이란 일관성을 배제하고 이야기될 수 없을 터, 이 일관성을 영이의 『게임 코러스』는 ‘일관된 목소리,’ ‘믿을 수 있는 목소리’임을 약속하며 디오니소스적 근원과의 합일로 초대하는 UI의 역할과 연결한다. [3] 특징적인 UI의 반복적 배치는 일관성의 경험을 형성하면서 동시에, 과거의 순간과 우연적으로 결부되어 버리며 어떠한 시간적인 반복의 느낌을 자아낸다. 물론 어떤 장르가 되었든 그 애호가들에게는 향수로 가득한 반복과 재확인의 열망이 있을 터다. JRPG는 그 일관성의 약속이 더 강력한 구속력을, 자주 퇴행적이고 관습적이란 오명을 쓰는 그러한 구속력을 띄고 나타나는 듯 보인다. 2. 위의 논의를 바탕으로, 나는 <33원정대>를 비롯한 최근의 JRPG, 혹은 JRPG의 영향을 받은 게임들이 JRPG 특유의 "느낌"을 반복하려는 주인공들을 등장시키고 있음에 주목하려 한다. 마치 플레이어블 캐릭터(PC) 혹은 주인공이 JRPG 플레이어가 지닌 노스탤지어를 공유하거나 이해하는 양, 그들의 이야기는 게임적 환상의 반복 혹은 연장을 향한 소망으로 얼룩져 있곤 한다. JRPG를 재생산하고 반복하려는 소망을 품은 캐릭터를 내세움으로써, 한 게임이 여전히 JRPG가 되어야 할 필연성이 부연되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용과 같이 7의 스팀 소개 이미지 가령 가장 노골적인 예시로, <용과 같이 7>의 주인공 이치반을 살펴보자. 본래 실시간 격투 게임의 동사들을 더 많이 빌려 오던 <용과 같이> 시리즈는 <용과 같이 7>에서 JRPG의 특징으로 꼽히곤 하는 턴제 전투로 전환하며 매너리즘을 쇄신하려 시도한다. <용과 같이 7>의 주인공 이치반은 타인의 죗값을 대신 치르러 십 수년의 청춘을 감방에서 보내며 세속 사회와 오랜 세월 단절된 인물이다. 장래 희망이 용사였다고 천진난만하게 밝히는 그는 어릴 적 플레이했던 <드래곤 퀘스트>의 세계관에 여전히 몰두해 있다. 아니, 몰두하기를 넘어서 이치반의 세계는 곧 전 야쿠자와 한구레와 양아치들이 몬스터 대신 들끓는 요코하마의 뒷골목을 배경으로 한 드래곤 퀘스트와 다름이 없다. 실시간 격투 위주의 샌드박스 게임이었던 용과 같이 시리즈가 턴제 RPG로 전환하는 개연성은 주인공 이치반의 시대 착오적인 환상을 경유하여 설명된다. 커뮤니티 기능과 소위 '레벨업 노가다'를 가능케 하는 던전, 캐릭터의 '직업'을 결정하는 시스템이 새로이 시리즈에 출현한다. 이치반과 친구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으로는 도적, 마법사, 검사 대신 노숙자, 프리터, 캬바걸, 호스트가 있다. 명랑 만화의 주인공처럼 지칠 줄 모르는 이치반은 거의 미치광이에 가까운 낙관과 의협심을 유지하며, 밑바닥 출신 동료들로 이뤄진 파티와 우정을 뽐내는 필살기를 써가며 용사의 역경을 돌파해 간다. 폭도법으로 몰락하고 변이한 야쿠자 세계와 동시대 일본의 도시 생태는 그가 어린 시절에 경험한 게임적인 구조, JRPG의 장르적인 느낌으로써 여과되고, 재해석된다. 한편 <메타포: 리판타지오>의 주인공은 애초부터 모험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소망에서 출발한 존재다. 왕의 핏줄을 이어받았지만 핍박 받는 소수종족으로서 무력하게 숨어 지내야 했던 왕자는 어떠한 종족 차별도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를 그린 서적을 탐독하곤 했다. 그러한 세계를 정말로 만들기 위해 동료들과 힘을 합치는 모험, 그 모험을 능히 해낼 수 있는 강인함에 대한 소망이 투사되어 만들어진 왕자의 분신이 곧 <메타포>의 주인공이다. 왕자의 분신이면서 꿈 속의 존재인 그는 익명의 인물로 출발하지만, 유토피아를 현실로 번안하려는 용사의 여정을 따라가 온갖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그들의 연대 속에서 되고 싶었던 존재가 되고 만다. 최종 보스는 특이하게도 우리가 익히 아는 현대 일본이 진짜 현실 세계이며 그들의 판타지 세계는 거짓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데, 주인공이 최종 보스의 설득에 넘어가 버리면 평소의 ‘FANTASY IS DEAD’란 게임 오버 메시지의 변주로 ‘FANTASY IS ONLY FICTION’이란 문구가 뜬다. 게임 오버 메시지를 통해 <메타포>는 환상을 "단지 픽션"에 머물지 않게 하는 어떤 힘을 믿어야 함을 역설한다. 여기서 장르는 기능적 UI로 설명되고 규명될 뿐만 아니라, 주인공이 타인과 연결되는 방법론적 틀을 제시한다. 최근의 성공적인 JRPG 풍 타이틀이 내세우는 주인공들은 ‘이’ 현실이 가능한 현실의 전부라는 식의 현실주의와 대립각을 세우고, 현실주의를 타파하는 연대로 향해 가는 과정에서 JRPG의 서사 구조를 긍정적인 자기 설명의 형태로 사용한다. 삶과 예술의 영역을 가리지 않는 정동적 기대의 공간으로 규정되는 로렌 벌렌트의 '장르' 개념을 빌리자면, 허구적 인물에게 있어 JRPG의 세계관이 현실을 견딜 만하게 해주는 하나의 장르로 출현하는 것이다. 3. <33원정대> 1막의 파티원들 <33원정대>의 접근법은 위의 게임들과 엇나가게 포개어진다는 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33원정대> 역시 애착을 투여한 환상을 반복하려는 소망이 캐릭터의 내러티브의 차원에서 표현한다. 그런데 위의 두 게임과 달리, <33원정대>에선 그 소망이 명명백백히 식별되는 원톱 주인공에게 덧씌워진 소망이 아니다. <33원정대>에서 플레이어가 조작하게 되는 '아바타'와 주인공의 일치와 불일치, 교체와 혼선이 이뤄지는 기제를 먼저 짚고자 한다. 메인 플레이 내에서, 플레이어는 아무 파티원이나 골라잡아 파티의 대표자로 조작할 수 있다. 하지만 야영지와 같이 휴식과 일상적 대화가 이뤄지는 장소에선 하나의 캐릭터, 1막, 2막, 3막의 주인공으로 대두되는 캐릭터만을 활용하여 대화해야 한다. JRPG의 문법에서 주인공은 플레이어에 의해 조작되고 움직일 수 있는 아바타로의 속성만이 아니라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인연의 중심 축으로서 성격을 띈다. 더불어, 성별화된 각본을 따르는 장르에 익숙한 기대에 따라서, 우리는 '히로인들'과의 관계에서 구심점 역할을 하는 구스타브가 주인공이라고 쉬이 짐작한다. 주인공으로서 구스타브는 사랑하는 옛 연인을 고마주로 잃고 인생의 마지막 해인 33살을 맞아 33원정대에 합류한다. 수평선 너머에 웅크린 마녀 페인트리스는 매년 인류의 수명을 줄여서 쓰고, 그 수명을 넘긴 인간은 소멸하게 만든다. 이 소멸이 곧 '고마주'고, 고마주를 앞둔 사람들을 모아 원정대를 매해 꾸려왔으나 페인트리스의 토벌은 이뤄지지 않는다. 노인도 중년도 단 한 명도 눈에 띄지 않는 역전된 고령화 도시 뤼미에르에서 인류는 느릿느릿 다가오는 멸망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 수긍에 저항하려 한 33원정대는 페인트리스의 영역에 상륙하자마자 수수께끼의 노인과 괴물들에 의해 거진 몰살당한다. 그렇지만 그와 누이처럼 자란 마엘과 남아 있는 생존자 루네, 시엘이 구스타브와 다시 여정을 함께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페인트리스에게 차근차근 다가선다. 구스타브는 그 자신의 유약함을 떨쳐 내고 세계를 구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는다. 하지만 구스타브는 다시금 원정대의 길을 막아선 노인에 의해 끔찍하게 살해당한다. 마엘 역시 죽게 되기 전에 낯선 남자가 막아선다. 어떤 논리로 그게 가능한지는 몰라도, 베르소는 구스타브의 인벤토리에 있던 아이템과 경험치까지 계승한다. 고마주가 시작되고 최초에 보내진 원정대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신원을 밝힌 베르소는 그를 포함한 옛 원정대원 중 일부가 마녀로부터 불멸을 얻었음을 밝힌다. 불멸을 고집하는 이들은 원정대로서 본분을 잊고 페인트리스를 지키려 한다. 그 자신은 이기적인 불멸에 회의를 느껴서 마녀를 토벌하려는 원정대원들에게 여러 번 협력해왔다. 적어도 베르소의 주장은 그러하다. 말그대로 플레이어 앞에 튀어나온 이방인인 베르소가 죽은 구스타브를 대신해 2막의 주인공 자리를 꿰찬다. 다만 시네마틱 컷신 상에서 중심에 놓이는 종류의 주인공은 2막의 베르소도 살해당한 1막의 구스타브도 아니다. 시네마틱 컷신은 플레이어의 조작을 배제한 채로, 급변하는 상황을 보여주거나 일방적인 내러티브의 강제력이 작동해야 하는 순간에 곧잘 끼어드는 게임적 장치다. 컷신이 초점을 맞추는 드라마는 원정대의 막내 마엘의 것이다. 고향인 뤼미에르에서 마음 둘 곳을 찾을 수 없어 어린 나이에 원정대에 합류한 마엘은 마녀와 괴물들의 땅에 와서 어떤 친숙함을 감지한다. 그 친숙함이 그녀를 혼란스럽게 하고 한편으로 겁에 질리게 한다. 마엘과 분신처럼 닮아 있으나 얼굴 반쪽이 일그러진 소녀가 원한에 찬 유령처럼 그녀 주변을 떠돈다. 가족과 같던 구스타브 마저 잃은 상황에서, 마엘은 반복되는 악몽 속에서 세계를 멸망으로 몰고 가는 저주와 그녀가 관련되어 있다는 불길한 암시를 읽는다. 한편 베르소는 수수께끼와 불안으로 가득 찬 컷신 중심에 놓인 마엘을 곁눈질하며 침묵하는 얼굴로 나타난다. 베르소를 조작해야 하는 플레이어조차 그가 마엘에 대한 모종의 계획을 품고 진실을 감추며 술수를 부리는 모략가임을 짐작할 뿐, 어떤 꿍꿍이를 품었는지 실마리를 짚어낼 수 없다. 진실에 근접해 있으면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기를 택하는 인물을 조작하는 건 플레이어와 플레이어블 캐릭터 사이의 동일시를 원하는 쪽에선 곤혹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이야기의 중추는 마엘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읽히니 혼란은 배가된다. 뻐꾸기 새끼처럼 원정대에 비집고 들어온 베르소는 여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들과 관계를 쌓는 과정이 JRPG 상에서 '인연', '커뮤니티', '코옵'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온 시스템을 통해서 시작되고, 플레이어는 장르의 문법에 따라 관계망의 중심에 자리한 베르소를 새로운 주인공으로 어색하게, 또 간신히 식별할 수 있게 된다. 인연 레벨을 올리는 과정에서, 베르소는 구스타브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진 마엘에게 그 대신 오빠 노릇을 해주려 들고, 시엘과 르네같은 성인 여성들과는 친구가 되어가는 단계인지 연인 이전 단계인지 모호한 대화를 나눈다. 시네마틱 컷신과 메인 플레이, 인연 레벨 세 가지 차원 상의 플레이는 밀도가 다르기 때문인지 헛도는 태엽 바퀴처럼 영 맞아떨어지지 않는 인상을 준다. 티격태격하거나 추궁하거나 농담하는 식의 평범한 대화의 일상성 마저도 한편으로 가장된 것으로서,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게 다가온다. 원정대는 여러 모로 믿기 어렵지만 적어도 페인트리스 공략법은 정통한 듯한 베르소의 안내를 따라간다. 정체가 규명되지 않은 마엘의 신비한 힘 덕분에 길을 막아서는 노인의 불사 역시 해제하고 죽일 수 있게 된다. 그들은 구스타브의 복수를 해내고 마침내 마녀 페인트리스까지 무찌르는데 성공한다. 루네와 시엘, 마엘은 그들이 이제 함께 늙어가는 미래를 손에 쥐었음을 감격하며, 그 많은 시간을 무엇을 하며 보내야 할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고 기뻐한다. 대륙에 돌아간 그들을 사람들은 영웅으로 떠받들며 환대한다. 이 축제의 장에서 플레이어들은 비로소 그들의 주인공이 숨기고 있던 바를 비로소 알게 된다. 베르소는 페인트리스가 멸망을 부르는 게 아니라 멸망을 지연하고 인간들에게 경고하고 있음을 숨겼고, 마녀가 진정 멸망을 부르는 존재를 봉인 중이었단 걸 알리지 않았다. 그렇게 인류는 축제 속에서 멸망한다. 알리시아란 부제가 붙은 에필로그를 통해서 페인트리스와 마엘의 비밀이 밝혀지는데, 그 비밀은 규모 면에서는 하잘 것 없게 느껴진다. 마엘은 '알리시아'로 자신을 부르며 신경질적으로 재촉하는 목소리에 깨어난다. 그녀가 깨어난 저택은 플레이어들에게 아주 친숙한 장소다. 던전 도처에 '어디로든 문'을 연상시키는 입구가 있어 원정대원들이 드나드는 셸터로 기능해 온 수수께끼의 저택과 동일한 외양이다. 플레이어는 이제 알리시아로 불리는 마엘만을 조작하는데, 알리시아는 화상으로 얼굴 반쪽이 얽어지고 성대 역시 불타 말 한 마디 제대로 내뱉을 수 없다. 화마에 휩싸였던 저택 곳곳은 보수공사 중이다. 장남 베르소는 알리시아를 구하고서 화재 속에서 죽었다. 어머니 알린은 실의에 빠졌고 세상 일을 등졌다. 알린은 유년 시절 아들이 그렸던 동화 풍의 캔버스에 들어가서, 현실과 달리 영원한 생을 누리는 가짜 도플갱어 가족을 그려내고 그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계를 돌보며 페인트리스로서 머문다. 캔버스에의 접속이 페인터의 육체를 소진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아내까지 잃을까 두려워하는 르누아르는 알린의 뒤를 따라가 캔버스 속 세계를 강제로 지워버리고자 한다. 두 페인터의 힘겨루기가 절멸을 향해 엄습해 오던 고마주의 정체다. 부부의 일은 가상 세계를 디자인하고 개발하거나 삭제하는 게임 디자인에 가까워 보이기에, 페인터의 비유는 한편으로 잘 맞아떨어지지 않게 들린다. 한편, 부부 싸움의 교착 상태에서 첫째 딸 클레아는 부모가 팽개치고 간 가문의 일과 화재를 일으킨 정적과의 싸움을 처리하고 있다. 클레아는 의기소침한 여동생을 돌보는 일을 내놓고 마뜩치 않아 하고, 어머니를 되찾아오려는 아버지의 일이나 도우라고 알리시아의 등을 떠민다. 하지만 페인터로서의 재능 혹은 힘이 부족했던 알리시아는 그대로 그려진 세계에 휩쓸려 어머니의 피조물 중 하나로 마엘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모두가 고마주로 소멸한 뒤, 마엘은 알리시아로서의 기억을 되찾는다. 베르소의 정체도 밝혀진다. 그는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페인트리스가 그려낸 불멸의 도플갱어였다. 그는 비록 그려진 존재지만, 본래 베르소가 지닌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어머니를 현실로 돌려보내고 자신 또한 안식을 얻고자 원정대원들을 속이고 배신해왔다. 백 년 가까이 지속된 부부 싸움에서 마침내 승리한 르누아르는 아내가 다시 유혹에 빠지지 못하도록 그려진 세계와 그려진 베르소를 지워 없애려 하지만, 알리시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마엘은 페인터의 능력을 각성하고 아버지에게 저항한다. 그 능력으로 루네와 시엘을 되살리고, 아버지에 맞서 어머니 페인트리스의 자리를 계승하려는 게 3막의 줄거리다. 마엘은 본래 절도 있는 펜싱 스타일의 전투 애니메이션을 갖고 있었는데, 알리시아의 기억을 되찾고 나선 마녀 페인트리스처럼 허공을 날아다니는 비현실적인 움직임이 특징적인 스킬을 주력으로 활약하게 된다. 마엘의 필살기 중 하나는 아예 이름이 “고마주”다. 캐릭터를 육성한 방식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 이 국면부터 플레이어들은 마엘 외의 캐릭터는 주력 공격보다는 보조로 활용하게 된다. 게임의 메인 콘텐츠인 전투 상에서 마엘은 이제 완벽한 주인공이다. 극적이고 시각적인 변신을 거친 마엘은 강력하고 힘겨웠던 적에게 천문학적인 데미지를 입히며 전투를 비교도 안 될 만큼 수월하게 바꿔놓는다. 강력한 미소녀 마법 검사를 조작하는 만족감은 한편으로 플레이어로 하여금 마엘의 캐릭터와 선택을 경험적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마엘은 알리시아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마엘은 플레이어가 그러한 것처럼, 바로 이것을, 이 순간을, 승리와 진전을 반복하고 세계를 구하는 역할을 맡고 싶을 것이다. 마엘은 아버지를 설득할 때 마음을 정리하고 모두와 이별할 수 있는 시간을 조금 구하고 있을 뿐이라고, 자신은 어머니와 다르며 돌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깊은 내심으로는 캔버스 안에서 죽을 때까지 머무를 작정이다. 실상 막간의 기능에 가까웠던 에필로그에서, 소위 '현실' 세계의 알리시아에게 허락된 상호작용은 화마의 상흔이 곳곳에 새겨진 저택 내를 빙글빙글 오르내리면서 자신 때문에 가족의 평온이 불가역적으로 파괴되었음을 되새기는 독백을 묵언으로 되풀이하는 것뿐이다. 저택에서 유일하게 대화가 가능한 인물인 언니 클레아는 알리시아와 마주하는 게 성가시고 짜증스러운 티를 숨기지 않으며 자신은 동생을 위해 죽는 불가해한 짓은 하지 않을 거라고 비아냥거린다. 마엘이 돌아가야 하는 삶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목격한 다음, 플레이어는 제작진이 공들인 게 분명한 마엘의 멋진 애니메이션으로 전투를 채우며 기이한 쾌감과 간극을 느낀다. 이 간극이 결국 마엘로 하여금 호소하게 만드는 것일 테다. 밖에서 그녀는 그저 간신히, 존재만 하고 있다고. 인연 레벨 올리기로 대표되는 JRPG 동료 시스템의 함의는 캐릭터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유대감에 대한 수량적 표현이며, 이러한 동료와의 상호작용을 게임적으로 장려하기 위하여 게임 플레이를 더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보상을 제공한다. 실제로 <33원정대> 역시 인연 레벨을 올림에 따라 동료가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필살기를 제공한다. 그런데 이 인연 맺기의 중심에 위치한 베르소는 '만렙'으로 수치화된 유대감과 상호 이해의 맥락 자체는 전혀 중요치 않았다는 듯이, 마지막에 이르러서 다시금 마엘, 시엘, 루네, 모두를 배신한다. 누구와 연인이 되거나 어떠한 선택지를 고르거나 인연을 어느 수치까지 달성하거나 따위의 조건 달성도 전혀 영향을 줄 수 없다. 동료들과 가장 내밀한 유대의 순간을 겪는다 한들, 그는 자신의 현실이 지속 불가능하고 애초에 존재해선 안 되는 현실임을, 고작 한 가족의 비극을 종식하기 위하여 모두가 희생되어야 함을 고집한다. 베르소는 이미 구스타브를 살릴 수 있었으나 죽도록 내버려둔 바 있는데, 구스타브의 주인공으로서 자리, 마엘 곁에서 모두의 신뢰를 얻고 페인트리스로 향하는 틀린 길을 제시할 수 있는 그 자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인연은 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자원으로 동원된다. 이 인연 시스템은 게임 플레이 내에서 언제나 자원으로 기능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단지” 자원이었단 건 상당히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JRPG의 인터페이스가 오랜 역사성과 완고함을 내포하고 있는 만큼, 그 기반이 시험 당하는 순간은 더욱 낯설고 이질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다. <33원정대>는 어머니의 외연도 한계도 모르는 애도 하에서, 어른이 되기도 전에 늙어버린 자식들이 엇비슷한 운명을 공유하는 서로를 결국에 참지 못하는 이야기다. 마엘과 베르소의 마지막 대결은 가짜가 진짜를 변호하고, 진짜가 가짜를 변호하는 역설이기 보다 상호 양립할 수 없는 두 정서적 현실의 충돌이다. 전자는 마치 여생을 보낼 완벽한 요양원을 찾은 것처럼, 장르가 허락한 역할놀이를 반복하며 자신이 죽을 때까지 존재할 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기대하고, 후자는 연명치료의 중단을 외치는 대신 껍데기만 남은 역할 놀이의 반복이 종결되기를 원한다. 두 사람은 모두 최종장에서 비등하게 중심 서사를 이끄는 인물이지만, 각자 상이한 플레이 차원을 차지한 주인공으로서 비대칭적이다. 마엘의 플레이가 반복과 변주의 쾌, 현실과 비현실의 구분을 무력하게 만드는 향락적 차원에 해당한다면, 베르소의 플레이는 관계의 관리와 비밀의 통제, 이야기 자체의 종결을 지향하는 통제적 차원에 해당한다. 이런 대조 속에서 <33원정대>는 JRPG를 반복하고자 하는 정서적 기대와 인물 내부의 이야기 및 전체적인 세계관 사이에 긴장을 유발한다. 플레이어는 최후의 순간에 베르소와 마엘 둘 중의 한 사람의 편을 들기를 택해야 한다. 베르소는 그가 가짜임을 실감케 하는 원본의 기억에 의해서, 마엘은 죄책감과 고독으로 인해서 자신이 연원한 곳에 편안히 소속될 수 없는 이들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현실을 받아들이기를 종용하면서 모순적이게도 자신의 현실은 조용히 인생에서 사라져 주기를 바란다. 그들은 닮아 있지만 결코 상대가 소망하는 바를 용납치 못한다. <33원정대>는 결국 이전의 두 게임과 달리 ‘이’ 현실이 가능한 현실의 전부라는 식의 현실주의에 저항하는 이야기이기 보다는, 두 개의 현실주의 사이에 팽팽한 적대를 그리는 이야기다. <33원정대>는 두 현실 사이에 중재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둘 중 하나의 편을 택해야 하며, 선택은 곧 다른 하나의 세계와 가능성을 돌이킬 수 없이 폐기하는 행위로 기능한다. 각자에게 할당된 엔딩 이후 캔버스 속 세계의 운명은 정리되어 치워지고, 주인공들에게서 이전의 모험을 반복하거나 지속할 동기나 가능성은 사라진다. 엔딩 직전으로 돌아가지만, 엔딩의 촉매인 최종 보스가 사라져 있는 결말 이후의 플레이는 플레이어들이 남은 콘텐츠를 마저 즐기라고 남겨둔 여지에 지나지 않는다. 다회차도 썩 내키지 않는다. 세계를 구하는 용사의 여정, 마녀의 손에서 아이들을 구출하는 사명과 함께 늙어가리라는 희망 모두 최초의 순간부터 불가능하단 걸 알면서 그 모든 시간을 다시 쏟을 수 있을까? 결국 <33원정대>는 한 번 엔딩을 보고 나선 게임 내에서 “같은 느낌”에의 재방문은 불가능하다. “같은 느낌”에 근접한 무언가를 느끼기도 어렵다. 본 게임 자체가 그 자신의 장례를 치르는 과정으로 게임 플레이를 전환해내고 있다고 봐야 할 지도 모르겠다. [1] https://news.denfaminicogamer.jp/interview/250415a/2 [2] Mallindine, J. D., 2016. Ghost in the Cartridge: Nostalgia and the Construction of the JRPG Genre. gamevironments 5, 80-103. Available at http://www.gamevironments.uni-bremen.de . [3] 영이, 게임 코러스, 워크룸프레스, 2025, 24-26. Tags: 프랑스게임, JRPG, 턴제, 애도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성훈 문학을 전공했다. 게임과 만화를 좋아한다. <심즈 4>는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 게임인데 1500시간 정도 했고 그게 수치스러운지 웃긴 건지 헷갈린다. 뚜이부치란 필명으로도 활동한다.

  • [Editor's View] 21세기 1쿼터를 마무리하며

    나이든 게이머들에겐 섬뜩하게 들릴 수 있지만, 2000년대가 시작된 것도 올해로 벌써 25년, 한 쿼터가 지났습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옛 말을 되새겨보면, 우리네 강산은 벌써 두 번 하고도 반은 변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온라인 대중화에 힘입어 디지털게임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던 시점도 아마 그와 비슷한 만큼의 시간을 겪어왔을 것입니다. < Back 23 GG Vol. 25.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게이머는 난민이 될 수 있는가? - <로스트아크> 대량이주 사태와 난민의 정체성

    2021년은 한국 mmorpg 게이머들에게 대량이주의 해로 기록될 것이다. <메이플 스토리>나 <마비노기>의 경우, 아이템을 강화하는 세공도구 같은 유료아이템의 불투명한 확률 매커니즘이 문제였다. 랜덤이라고 표기되었지만 실은 옵션별 숨어있는 차등확률을 통해 랜덤확률에도 못미치는 효과를 보거나, 응당 적용되어야 할 옵션이 오류로 적용되지 않아 수년동안 0%의 확률로 실패한 뽑기를 유발한 것이 문제였다. < Back 게이머는 난민이 될 수 있는가? - <로스트아크> 대량이주 사태와 난민의 정체성 01 GG Vol. 21. 6. 10. 2021년은 한국 mmorpg 게이머들에게 대량이주의 해로 기록될 것이다. <메이플 스토리>나 <마비노기>의 경우, 아이템을 강화하는 세공도구 같은 유료아이템의 불투명한 확률 매커니즘이 문제였다. 랜덤이라고 표기되었지만 실은 옵션별 숨어있는 차등확률을 통해 랜덤확률에도 못미치는 효과를 보거나, 응당 적용되어야 할 옵션이 오류로 적용되지 않아 수년동안 0%의 확률로 실패한 뽑기를 유발한 것이 문제였다. 확률 매커니즘을 공개하고,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문제발견이 빨랐거나 유저들이 기망당했다고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유저들은 손해를 입었다고 생각해 게임사에 시정과 해명을 요구해 개발사와 각각 간담회를 열었다. 하지만 만족할만한 답변이나 조치를 받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게이머들은 대체재가 될만한 게임으로 <로스트 아크>를 지목해 올해 3월 한달동안 대량이주를 이어갔다. 한편 <리니지M>의 유저들은 핵과금 유저와 중저과금 유저들의 경쟁구도를 만들어 과금을 부추기는 게임구조를 숨기고, 유저들간의 반목처럼 보이도록 일관한 개발사에 화가 나 있었다. 이들은 과거 <리니지2>의 혈맹 간 계급투쟁이었던 <바츠 해방전쟁>을 패러디 해 <개돼지해방전쟁>으로 자신들의 저항적 행동을 명명하고 항의성 차원에서 <로스트 아크>나 <검은 사막>으로 이주해 나갔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각기 메난민(메이플스토리 난민), 마난민(마비노기 난민) 등으로 불리우며 '난민'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게임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 게임이주 운동은 제품향상이나 서비스개선을 요구하는 소비자운동의 연장선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민'이라는 명명에는 몇 가지 중요한 함의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메난민, 마난민에 비해 린난민(리니지M)보다는 린저씨가 더 자주 사용되는데, 그 이유는 리니지M 유저의 경우 난민이 겪을 고단함이나 소수자, 약자의 입장이 없을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들은 돈많은 침략자처럼 묘사되는 경향을 보였다. 여기서 대중들이 생각하는 리니지M의 게임적 정체성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다. 플레이를 숙련하기 앞서 상세한 전략을 세워 각종 아이템을 맞추고, 한정 아바타를 과감히 구입하는 플레이 습관으로 <로스트 아크>의 경제를 인플레이션 시킬 수 있다는 공포를 로아 유저들은 느꼈다고 한다. '난민'이라는 명명에는 다음과 같은 무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첫째, 이주자들은 그 스스로 하나의 가상적 종족성을 가진 존재로서, 새로운 게임환경에 적응을 해야 하는 고단함을 '난민'으로 표현하고 있다. 둘째, 이주자들이 본래 활동하던 게임공간을 가상의 고향땅으로 간주하고, 혹시라도 고향땅의 문제가 해결되면 돌아갈 준비가 되어있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난민'으로 지칭한다. 셋째, 이주 대상이 된 게임의 올드 유저들은 특정한 게임성으로 훈련된 뉴비들이 와서 자신들이 형성한 게임성을 오염시키고 변형할 지 모른다는 공포를 드러내는 단어로 '난민'이라는 명칭을 쓴다. 이 경우 '난민'은 멸칭에 가깝다. mmorpg의 게임공간은 단지 놀이적 재미만을 얻는 곳이 아니라 현실과는 또 다른 인격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곳으로 유저로 하여금 다른 어떤 장르보다 오랜 시간을 가상적 환경에서 보내며 사회적 관계를 이루도록 만든다. 그들이 특정 게임에서 형성한 게임적 습관은 제시된 게임룰을 개량하도록 개발사에 요구하고 유저들과 암묵적으로 합의해 얻은 사회적 결과다. 그들이 자신의 게임에 불만이 있다해도 바로 탈주할 수 없는 이유는, 게임공간이 여전히 유저들의 역사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적 공간에서는 매일 같이 전쟁이 벌어지고, 강제될 수밖에 없는 협력의 업무들이 있다. 물론 이들은 재미를 위해 디자인되었고, 노력이 필요하다 한들 현실의 노동에 비하면 가볍게 즐길 만하다. 적게 노력하면서 손쉽게 소속감을 얻을 수 있다. 게이머가 자신의 자부심을 특정한 게임종족으로 표출하거나 게임성을 유지하려는 욕망은 정체성의 불안과 연관을 맺는다. 현실 속의 모호함을 가상 속의 명확함으로 돌파하려는 것이다. 게임공간과 게이머의 관계는 단순한 상품과 소비자의 관계가 아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만 운영체제 안드로이드에서 iOS로 이주했다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반면 메난민, 마난민 등으로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난민'이라는 표현은 게임이라는 플랫폼이 오늘날 새로운 가상적 정체성을 발명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특정한 게임의 문화는 특정 집단의 민속적인 기록으로서 가치를 갖는다고도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들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인터넷과 게임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공간이다. 가상 민족지학(virtual ethnography)은 인터넷 공간 속의 다양한 매개를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집단과 문화적 기록에 대한 학문적 접근을 뜻하는 신조어로 점차 그 실체가 입증되어가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3월말 도입된 <로스트 아크>의 염색시스템을 소위 마난민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해 기존에 없는 새로운 플레이를 선보였다는 점이다. 그들은 아바타의 신체와 의상의 색을 바꾸는 꾸미기 플레이를 <마비노기>시절부터 익혀왔는데, 그 수준이 일반적인 갈색이나 노란색의 구분이 아니라 선호하는 색을 다크초코(#29141A)와 바나나(#FFE062)로 세분화하고, 해당 색의 색상코드(HEX)까지 암기하는 경지에 이른 자들이었다. 당연히 마난민들의 아바타 꾸미기 실력은 장인급이었고, 이들은 황금비율의 색배합을 담은 문건과 노하우를 공유하거나 다양한 예시를 보여주어 지금까지의 <로스트 아크>에서는 보지 못한 캐릭터들을 게임 내 전시하였다. 이는 염색 시스템을 이용해 꾸미기 플레이로 빠져들 가능성을 열어준 적극적인 게이밍으로 평가받을만 하다. 이 점에서 '난민'은 단순히 유입된 신규유저가 아니라 적극적인 혼종 플레이의 유발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기존에 <로스트 아크>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잠재적 플레이를 극대화시켜, 해당 게임의 게임성을 풍부하게 만든다. 그들은 이주하기 전 게임의 게임성을 새로운 게임공간 안에 이식시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마 자신들도 온전히 과거의 플레이를 모두 구현할 수 없으므로 자연스럽게 변형 굴절되면서 <로스트 아크>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중일 것이다. 다시 말해 기존 게임성을 변형시키면서 그 안으로 동화되고 있는 것이다. 인류학자 아르준 아파두라이(Arjun Appadurai)는 현대인들이 단지 이동상의 초국적 경험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미디어에 노출되면서 이미 가상적인 초국성을 띤다고 지적한다. 현실의 민족적 정체성이라는 것이 사라지고 제멋대로 파편적으로 구성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김치를 먹으면서 유럽인의 정체성을 내재화하기도 하고, '한국적인'이라는 수식어는 점점 모호해져서 실상은 글로벌 코드에 가까운 보편성에 이르렀음을 확인하기도 한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이 임시적이라는 것을 안다. 동시에 서로 다른 정체성이 중층으로 겹쳐서 나타날 수도 있음을 이해하고 있다. 게임 속 난민이 보여준 혼종적 플레이는 인터넷 공간이 가속화하고 권유하는 혼종적 정체성의 작은 판본이다. 무엇보다 디지털공간은 현실보다 매끄럽고 장애물이 적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재난이나 박해로 인한 강제적 이주의 의미가 강한 '난민'보다 본래적으로 흩어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의 존재라는 점에서 '디아스포라'를 강조해 새로운 조어를 선택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이른바 사이버 디아스포라(Cyber Diasporas)라는 개념이다. 사이버 디아스포라의 주인공인 우리들은 정체성이 모호하거나 없는 자들이 아니라 이 곳 저 곳을 매끄럽게 여행하며, 다종의 정체성을 획득하고 혼용하는 존재들이다. 지난 3월 20일 공연한 다원예술작품 <에란겔: 다크투어>에서는 배틀로얄 게임 <배틀그라운드>의 커스텀 게임을 이용해 게임공간을 기존 플레이 방식과 다르게 전유하는 실험을 했다. 사전에 신청한 일반관람객들을 에란겔 섬 세 곳(스쿨, 갓카, 밀타파워)을 지정해 모이게 하고, 그들이 그 안에서 다양한 형식의 게임비평을 듣게 해 교감하는 것이 전반부의 내용이었다. 그 중 스쿨에서 열린 권보연(게임씽킹 디자이너)-장병호(문화연구자)의 스크립트의 한 대목을 소개해본다. "플레이어란 현실과 가상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플레이하고 접속하면서 자기존재를 증명해요. 나는 그것을 착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도 배틀그라운드가 전쟁게임이고 내가 살아남으려면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놀이를 해야한다는 것은 알고 왔어요. 하지만 내가 동숲러 '뽀'로서 이곳에 왔다는 사실은 내가 누군가를 죽이러 선택해 온 것이 아니라는 뜻이예요. 나는 이 곳 배틀그라운드에 내가 좋아하는 것이 많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여기 와보고 싶었죠. 아름다운 자연, 멋진 건물, 신기한 아이템. 그리고 귀여운 춤도 마음껏 출 수 있다고요. 배틀그라운드에서는 총에 맞아 죽는 것만 빼면 내가 동물의 숲에서부터 좋아했던 것들을 다 할 수 있고 즐길 수 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NZUGs-uYmMA ‹에란겔: 다크 투어› #2 .이주민(권보연)/삼선동 주민(장병호) (c)가상정거장) 연사들은 <동물의 숲>의 유저였지만 <배틀그라운드> 에란겔 섬에 자기 발로 왔다고 말한다. 동시에 이 곳의 룰을 이해하고 존중하지만 한편 다르게 사용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그들은 에란겔 섬을 마치 동물의 숲처럼 뛰어다니고, 탐색하는 게임공간으로 만들자고 제의한다. 이 뻔뻔함은 이들이 쫓겨온 난민보다는 자발적 디아스포라처럼 보이게 한다. 약간의 풍자적 유머를 담은 이 씬은 우리 시대의 게이머가 보다 더 적극적인 디아스포라로 전향되었을 때, 오히려 게임공간이 더 많은 가능성으로 해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2021년 대한민국의 게임 난민들은 스스로 자신이 거주한 게임공간에 이의를 제기하고 뛰쳐나왔다. 그리고 이주해 온 땅에 기꺼이 스며들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필자는 게이머가 게임성을 바꾸는 혁명적인 사건의 시작으로 이 사태가 기록되길 바래본다. 이러한 경험이 중요한 이유는 단지 조금 더 공정하게 게임의 룰을 바꾸는 것 뿐 아니라 자신이 가담하고 있는 세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시뮬레이션으로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길어내는 공간이 게임이라면 이 공간에서부터 개길 수 있어야 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오영진 2015년부터 한양대학교 에리카 교과목 [소프트웨어와 인문비평]을 개발하고 [기계비평]의 기획자로 활동해 왔다. 컴퓨터게임과 웹툰, 소셜 네트워크 등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문화의 미학과 정치성을 연구하고 있다. 시리아난민을 소재로 한 웹반응형 인터랙티브 스토리 〈햇살 아래서〉(2018)의 공동개발자이다. 가상세계에서 비극적 사건의 장소를 체험하는 다크투어리즘 〈에란겔: 다크투어〉(2021.03.20-21)와 학술대회 [SF와 지정학적 미학] 연계 메타버스 〈끝나지 않는 항해〉(2012.06~19)를 연출했다.

  • 제약과 위계, 설계와 창출: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어떻게 플레이어를 운영으로 유도하는가

    운영 시뮬레이션 장르는 일견 무한한 자유 내지는 전능성을 보장하는 듯하면서도, 이걸 제약하는 방식으로 플레이어를 궁극적으로 세계의 설계와 창출이라는 거대한 목표로 유도할지 궁리하는 장르라 할 수 있다. < Back 제약과 위계, 설계와 창출: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어떻게 플레이어를 운영으로 유도하는가 27 GG Vol. 25. 12. 10. 기본적으로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시설의 설치와 건설, 관리를 중심으로 거시적인 운영과 통제를 이뤄가는 장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다면, 개인 가게 운영 같은 예외적인 소재를 빼면 대다수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전능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출발한다는 점에 있다. 플레이어는 삼인칭 전지적 시점 아래 놓인 텅 빈 (또는 개발되지 않은) 공간에 건설 내지는 설치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 즉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전지적 시점에서 전능성을 플레이어에게 부여하는 것으로, 게임의 전제를 성립한다. 이 시점의 주체를 설명하기 위해 게임은 종종 플레이어를 보통 지도자나 경영자로 칭하곤 한다. 하지만, 이 전능은 어느 정도 기만적이다.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의 전지전능은 자유를 만끽하라고 부여하는 게 아니라, 설계와 창출이라는 과정과 목표를 달성하라고 부여하기 때문이다. 샌드박스 모드가 아닌 이상,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들은 일정한 서사와 목표를 부여한다. 그 다음 자본과 자원의 제약을 부여하고 게임이 다루는 ‘공간’을 효율적으로 설계해 운영하길 원한다. 이런 제약과 종속, 창출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이 어떻게 무한한 자유에 목적과 형식을 부여해 난관을 설정하고 궁극적으로는 세계의 설계와 창출을 유도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숲과 나무, 두 시점 축 간의 제약과 쾌감 우선 운영 시뮬레이션의 시점을 짚어야 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일인칭 시점보다 삼인칭 시점으로 특정 공간 속 거대한 ‘흐름’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숲과 나무의 비유를 빌리자면, 나무를 상세히 배치해 숲으로 만들 능력을 요구하는 장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개별 나무를 보고 만질 수 있는 미시적인 시점이나 순간은 제한되는 데다 게임 디자인의 핵심에서도 벗어나 있다. 간단히 말해 이용객 (이 글에서 이용객은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 전반에 등장하는 손님이나 거주민을 총칭한다)을 통해 일인칭 시점으로 자신이 설계한 공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체험’하는 건 가능하지만 - <심시티>나 <시티즈> 시리즈 같은 게임처럼 일인칭으로 체감하기엔 복잡한 소재적 한계로 (예를 들어 무수한 데이터를 연산 처리해야 하는 도시 운영) 일인칭 시점이 제한되는 경우도 있긴 하다. - 세계를 설계, 나아가 운영하려면 시점의 주체가 보이지 않는, 전지전능한 삼인칭 조감 시점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렇기에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일인칭 시점을 제공하는 이용객은 플레이어와 무관한 NPC이다. 다시 말해 플레이어가 이용객 시점으로 들어간다 하더라도, 그들은 플레이어의 주체성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용객은 게임 내 인공지능이 조합한 취향과 생각, 욕구 수치에 맞춰 플레이어가 설계한 공간에 속해, 거대한 흐름의 일부로서 움직일 뿐이다. 장르 자체가 인간으로서는 게임 진행을 할 수 없고, 신이 되길 요구한다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대신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이용객은 주체보다는, 객체이자 게임 내 평가 체계의 일부에 가깝다. NPC 인공지능인 ‘이용객’은 플레이어가 설계한 공간과 시설을 이용하고, 감상을 남긴다. 이 감상은 곧 평가 데이터로서 치환된 후 누적되어 총체적인 세계에 대한 평갓값으로 제시된다. 그렇기에 플레이어는 이 이용객이 어떻게 행동할지 전혀 개입할 수 없지만, 그들이 남기는 감상과 이런 감상이 뭉쳐 만들어지는 빅 데이터 표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신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는 이용객을 위시해‘빙의’하듯이 시선을 빌어 자신이 설계해 운영하는 공간 속 흐름에 합류해 감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감상하는 공간은 결국 플레이어 자신이 만든 세계이기 때문에 이런 감상과 미적인 만족감엔 궁극적으로는 자기애적인 성향도 띄게 된다. 관련 팬 커뮤니티에서 이뤄지는 소통 역시 이런 두 시선 축의 교차에 기반하고 있다. 자신이 만들어낸 공간의 아름다움을 (물론 이 아름다움엔 단순히 숭고미 이외에도, ‘홀로코스트 타이쿤’으로 대표되는 골계미 역시 포함된다) 삼인칭 조감 시점과 일인칭 관찰자 시점을 오가는 다양한 카메라-눈으로 영상과 스크린숏으로 포착한 후, 공유하는 방식으로 다른 팬들과 소통한다. 인정 욕구와 승인, 성취감이 거시와 미시 두 시선 축을 오가면서 이뤄진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전지전능하며 거시적인 삼인칭 조감 시점을 기본으로 플레이어가 세계를 구축하도록 한 뒤, 세계가 작동하는 모습을 삼인칭 조감 시점과 동시에 수동적이며 미시적인 일인칭 이용객 시점으로도 볼 수 있게 한다. 이런 교차 속에서 게임은 빅 데이터로서 축적된 이용객의 감상/민원 표본을 수치로 치환해 플레이어가 운영하고 있는 세계에 대한 평가로 제시한다. 플레이어는 이 수치를 확인하면서 향후 운영을 어떻게 할지 판단하고 선택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이 삼인칭과 일인칭 시점을 교차할 수 있도록 하면서 거시적 감각과 미시적 감각을 동시에 제공해, 플레이어가 설계한 세계를 체험케 하면서 (어느 정도 자기애적 성향도 있는) 미적 쾌감을 누리도록 한다. 시설의 위계와 조합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이 가장 먼저 플레이어에게 설치하길 요구하는 건 바로 도로나 철도 같은 ‘접근 수단’이다. ‘심시티’나 ‘타이쿤’ 류 게임을 플레이하면 알 수 있지만, ‘접근 수단’을 건설하지 않으면 플레이어가 운영하는 공간은 작동하지 않는다. 이 접근성은 시설과 손님 간의 관계일 수도 있으며 (놀이공원 운영 시뮬레이션), 도시 내 다양한 개발 구역과 시설일 수도 있으며 (도시 운영 시뮬레이션), 도시 내부 및 도시/국가 간 교통 체계일 수도 있다. (교통 운영 시뮬레이션) 이렇게 시설에 접근할 수단이 마련되고 나면,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시설 설계와 관리 단계로 넘어간다. 이 단계에서 게임은 설치할 수 있는 시설에 위계질서를 부여한다. 놀이공원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이런 장르 내 시설 간 위계질서가 상징적이고 명징하게 드러내는 하위 장르일 것이다. 이 하위 장르를 대표하는 놀이기구로는 회전목마와 롤러코스터가 있다. 전자는 저자극 놀이기구를 대표하며 후자는 고자극 놀이기구로 대표한다. 하지만 이런 대표성과 별개로 게임 내 위계 차는 명확하다. 애당초 이 장르는 아예 ‘롤러코스터’를 게임 제목에 넣는 경향도 있기에 (<‘롤러코스터’ 타이쿤>, <플래닛 ‘코스터’>) 롤러코스터는 게임의 간판격이며 동시에 상당한 숙련 난이도를 요구하며 플레이어를 유혹한다. 반대로 회전목마는 롤러코스터보다 설치 비용도 저렴하고 간편하지만, 동시에 종합적인 수치 역시 롤러코스터보다 낮다. 장르 팬들 역시 아무리 회전목마를 선호하더라도 그것을 게임의 핵심으로까지 여기지 않는다. 설치 난도 면에서도 둘은 명백히 차이가 있다. 회전목마는 설치한 후 접근 수단을 깔아두는 것만으로도, 작동하며 즐거움 수치 역시 대체로 낮은 변화폭 속에서 균일하게 유지된다. 하지만 롤러코스터는 트랙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즐거움 수치가 천차만별로 변하기에 훨씬 더 공을 들이고 테스트로 확인해봐야 한다. 그렇기에 회전목마, 나아가 낮은 수치의 저자극 놀이기구들은 일종의 상징물이자 시나리오 초반 기반을 다지는 역할을 하지만, 가동 이후 운영에서는 유지 보수 이외엔 비중이 줄어들며, 플레이어 역시 롤러코스터 설계나 총체적인 운영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즉 운영 시뮬레이션 장르 내에서 ‘시설’은 게임으로서 현실의 시설 특성을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수치화해 위계를 부여하고 그 위계에 맞춰 설치하고 운영하길 요구한다. 물론 이 위계질서가 일방적인 상하 관계로만 단정 짓기엔 어렵다. 이런 일방적인 상하 관계를 지양하고 특색의 강조, 상성과 조화로 상승 효과를 내려는 시도 역시 장르의 중요한 어법이기 때문이다. 다시 놀이공원 운영 시뮬레이션 장르로 돌아가 보자. 롤러코스터는 훨씬 설치하는 과정이 복잡하고 놀이공원의 꽃으로 고수익을 보장하긴 하지만, 모든 이용객이 롤러코스터를 좋아한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 심지어 롤러코스터 속에서도 다양한 종류가 있으며, 격렬도나 흥미 수치를 무조건 높게 나오게 설계한다고 해서 높은 인기로 직결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회전목마로 대표되는 저자극 놀이기구도 시간이 지날수록 비중이 줄어들긴 하지만, 수요가 아예 사라지진 않는다. 이런 복잡한 위계질서를 잘 보여주는 놀이기구가 있다면 바로 운송 시설이 있다. 운송 시설은 여러모로 롤러코스터와 대조되는 놀이기구다. 기본적으로 운송 시설/기구는 열차나 모노레일 등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롤러코스터처럼 ‘트랙’ 기반으로 설계된다. 하지만 총체적인 즐거움 수치 면에서는 롤러코스터보다는 확실히 밑에 있으며, 이 시설만으로는 정상적인 놀이공원 운영을 할 수 없다. 그 점에서 운송 시설/기구는 롤러코스터처럼 트랙 기반 놀이기구임에도 명백히 회전목마처럼 저자극 놀이기구에 속한다. 그렇다고 운송 시설을 잉여적이고 쓸모없는 놀이기구라 판단하기엔 성급하다. 분명한 역할이 부여되어 있기 떄문이다. 운송 기구는 탑승하는 이용객의 에너지 감소 수치를 절감하거나 멀리 떨어진 다른 구역으로 수송할 수 있다는 점에서 롤러코스터가 할 수 없는 걸 수행할 수 있다. 어떤 지점에서는 놀이기구이면서도 접근 수단에 가까운 양태를 띄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운송 시설의 이런 복합적인 면모는 상성 등 복잡한 개별 요소들이 얽혀 있으며, 어떤 소수 의견과 즐거움 이외의 수치들이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의 변수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대로 이점이 아닌 약점이나 제약으로 이런 위계질서에 복잡함을 부여하기도 한다. 이런 약점 위주로 변수를 구성하는 디자인은 놀이공원 운영보다는 도시 운영 시뮬레이션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디자인이다. 그렇기에 게임 속 시설들 역시, 이 시설이 과연 지금 플레이어가 운영하는 도시와 걸맞은지를 판단하도록 요구하는 약점/제약이 많다. 혐오 시설 및 환경 판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오염 등급이라던가 특정 조건 (강가에만 설치할 수 있다던가)을 만족해야 설치할 수 있는 시설들이 대표적이다. 전반적으로 도시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놀이공원 시뮬레이션 게임보다도 세계=도시 규모의 변화에 따라, 시설 활용도 역시 극적으로 변화하는 경향이 있어, 시설 확충이나 교체를 요구하는 경향이 짙다. 여기다 환경, 복지, 세금, 인프라 등 이용객 행복도 수치에 관여하는 변수가 많기에, 이 변수들 역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규모의 비례에 따라 시뮬레이션 난이도가 올라가는 장르적 경향이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대신 도시 운영 시뮬레이션에서 시설 설치는 큼직한 인프라 위주로 이뤄지는 경향이 크다. 예를 들어 실제 도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주거, 상업, 산업, 사무 같은 경우 접근 수단 (대표적으로 도로)을 깐 후 밀도별 구역 타일으로 배치하면 자동적으로 개발된다. 이는 <트랜스포트 타이쿤>이나 같은 교통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지만 (특히 후자 같은 경우 일본만의 특수성 때문에 하위 장르 간의 혼종적인 경향성도 띈다.), 좀 더 다루는 범위가 폭넓은 도시 운영 시뮬레이션에서 잘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도시 운영 시뮬레이션 같은 경우, 지형과 기후 같은 플레이어가 통제할 수 없는 상수나 돌발 별수가 자주 발생하기에 플레이어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다층적으로 판단하고 보완할 능력이 필요하다. 즉 운영 시뮬레이션 장르에서 시설 간 관계는 일정한 위계가 있되 어떤 스펙트럼에 따라 위계와 활용 방식이 정해지며, 이 스펙트럼의 기준이 어떻게 구성되는가에 따라 전체적인 게임 방향성이 결정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는 스펙트럼의 폭이 얼마나 넓으냐부터 시작해 스펙트럼 내 요소들이 어떤 위계를 띄느냐, 요소들의 조합이 어떤 효과를 내느냐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무한한(듯한) 자유를 길들여 경제 논리에 종속시키기 운영 시뮬레이션 장르는 일견 무한한 자유 내지는 전능성을 보장하는 듯하면서도, 이걸 제약하는 방식으로 플레이어를 궁극적으로 세계의 설계와 창출이라는 거대한 목표로 유도할지 궁리하는 장르라 할 수 있다. 이 제약은 시점의 제약부터 시작해 (‘만들어낸 세계를 미적으로 만끽하고 싶으면 전지전능한 삼인칭 조감 시점으로 돌아가서 설계해야만 한다’), 시설의 상성과 조합까지 (‘시설은 스펙트럼에 기반한 일정한 위계와 상성 관계가 있으며, 접근 수단과 함께 효율적으로 설계 및 베치해 이용객을 만족시켜야 한다.’) 곳곳에 퍼져있다. 물론 샌드박스처럼 제약 일부를 풀어주는 모드도 제공하지만, 그럼에도 큰 목표는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기에 샌드박스 모드를 플레이할 때도 플레이어는 제약에 맞춰서 세계를 가꿔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특정한 세계 속 요소들이 어떻게 맞물려 들어가는지를 플레이어가 파악하고 따라주길 요청한다. 플레이어가 이런 요소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비효율적으로 운영할 경우, 게임은 플레이어가 설계와 창출에 실패했다고 판정한다. 반대로 제대로 파악해 창출이라는 목표에 도달했을 때 게임은 (자기애적 성향도 일부 포함한) 미적인 쾌감을 안기는 방식으로 보상을 준다.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그 점에서 직접적인 자본 활용 이 외에도 자유를 제약하면서 어떤 창출 체계에 플레이어가 포섭되어 설계하길 요청하고, 상응하는 대가를 보상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경제의 논리와 미학에 충실한 장르라 할 수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이이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전문사 졸업 후 영화•게임 비평 기고 활동중. 어드벤처 게임 좋아함. (antistar23@gmail.com )

  • 플레이시간의 자본주의적 상품관계 - 탕진의 재미와 축적의 재미

    온라인게임 시대가 만들어낸 이 변화는 놀이 역사에서 보기 드문 전환을 만들어냈다. 노는 일이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무언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놀이의 본질은 일종의 무용함, 생산의 시간에 맞선 시간 탕진의 즐거움에 가까웠지만,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는 그 무용함의 효용마저도 상품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이기도 하다. < Back 플레이시간의 자본주의적 상품관계 - 탕진의 재미와 축적의 재미 21 GG Vol. 24. 12. 10. 놀이로서의 디지털게임: 생존, 노동, 여가의 세 분류 안에서 디지털게임을 플레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즐거움을 찾기 위한 유희, 놀이로서의 게임 플레이 행위 안에 디지털게임 플레이가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놀이는 근본적으로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행위라고 이야기하는데, 이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다는 말에는 한 가지 중요한 전제가 숨어 있다.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무언가를 특정한 행위에 들임에도 불구하고 딱히 행위의 결과로서 무언가 (경제적으로) 유의미한 산출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말을 다시 새겨보면, 결국 놀이를 정의하는 데 있어 전제되는 것은 놀이하는 사람이 무언가를 놀이 행위에 투여하고 있다는 사실임을 알 수 있다. 이 때 투여되는 것은 다름아닌 시간이다. 물리학적인 시간일 수도 있고, 혹은 인간의 24시간 일상이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가능성의 범주일 수도 있다. 생명유지를 위해 필수로 써야 하는 먹고 마시고 잠자는 시간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생산에 투여하는 노동시간이 아닌 제 3의 시간 사용으로 우리는 예술, 문화, 놀이와 같은 영역에 시간을 쓴다. 인간의 시간을 아주 크게 세 덩이로 나눈다면, 생존 – 노동 – 여가라는 세 가지 분류를 적용해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매체와 비슷하면서도 독특한 상품으로 자리잡은 디지털게임 디지털게임 플레이를 포함한 놀이와 여가 전반은 기본적으로 시간을 소비하지만, 기존의 놀이, 여가와 달리 디지털게임에서는 많은 경우 시간과 함께 돈을 써야 한다는 전제가 덧붙는다. 최초의 디지털게임을 이야기할 때 수많은 초창기 프로토타입 중에서도 <퐁>이 거론되는 이유는 이 게임이 본격적인 상업적 게임이고, 그 상업성을 딛고 생산과 유통 양 측면에서 유의미한 대중화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디지털게임의 대중화는 디지털게임의 상업적 성공을 딛고서야 가능한 부분이다. 물론 여러 놀이 중 시간과 돈을 함께 써야만 하는 것이 오직 디지털게임만의 특징은 아니며, 이는 상업성에 기반한 현대의 많은 대중문화들이 공통적으로 딛고 있는 전제다. 놀이문화 전체를 큰 역사적 범주에서 본다면, 시간을 쓴다는 공통전제 안에서 우리는 경제적 소비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놀이가 등장하는, 이른바 자본주의적 여가의 시대를 놀이의 두 번째 시대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돈과 시간을 함께 쓰는 자본주의 시대 놀이로서 디지털게임은 그러나 다른 대중문화의 놀이와 매체 자체의 특성을 통해 차별화되는데, 바로 돈과 시간이 독특하게 어우러지며 서로 등가교환할 수 있는 위치에 선다는 점에서다. 구매나 대여를 통해 접하는 책이나 영화, 광고시청과 같은 간접적 방식의 돈/시간 소비를 활용하는 텔레비전이나 신문 같은 매체에서는 금액을 지불한 만큼의 향유시간을 구매한다고 볼 수 있는 패턴이 나타나지만, 디지털게임에서는 그와 더불어 경우에 따라서는 놀이시간 자체를 현금지불을 통해 대체할 수 있는 방안도 제시되기 때문이다. 아케이드 시절의 디지털게임: 숙련도와 현금의 교환관계 디지털게임에서의 시간/돈 소비는 초창기에는 극장에서의 영화 상영과 유사한 맥락으로 나타났다. <퐁>은 공공장소에 설치된 게임기에 동전을 투입하고 일정한 플레이 기회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는데, 이는 공공 기기에 대해 일련의 임대료를 지불하고 사용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가깝게는 그 이전의 놀이기구들이었던 핀볼이나 주크박스와, 조금 더 멀고 넓게는 공공장소의 기기 대여라는 의미에서 영화 상영의 방식과 유사했다. 초창기 아케이드를 중심으로 시작된 디지털게임 문화는 한국의 경우 21세기 전까지 이어진 오락실 문화를 중심으로 디지털게임의 일반적인 소비방식을 돈과 시간을 결합해 사용하는 형태로 대중 및 소비자들에게 인식시켰다. 그런데 다른 매체와 달랐던 점은, 이러한 지불방식은 디지털게임에서는 소비자/이용자의 숙련도에 따라 1코인당 플레잉타임이 가변적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는 이른바 가성비, 일정한 금액을 투여한 뒤 얼마만큼의 시간동안 기기를 점유해 플레이할 수 있느냐가 다른 매체와 달리 플레이어의 숙련도에 의해 좌우되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이 때 돈과 시간의 관계는 매우 독특하게 결합했다. 기계에 코인을 넣는 일은 일정한 기회를 대여하는 방식이었지만, 그 기회의 시간은 숙련도에 의해 좌우되었다. 그리고 숙련도를 키우는 길은 개인차를 떠나 더 많은 동전을 투입하여 실력을 쌓는 길이었다. 개인차가 있다고는 하지만 대체로 많은 돈을 지불하고 오랫동안 기계를 점유할수록 1코인당 점유시간은 늘어나는 구조라는 것이다. 책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읽는다고 책값에 변동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물론 만화대여점 같은 경우 시간 단위로 이용하게 되는데, 이런 경우는 매체의 유통채널이라기보다는 공간대여로서의 의미가 더 크니 예외로 두자) 게임의 경우에는 효율적인 플레이를 숙달할수록 1코인의 가치가 올라가는 구조였다. 게임에서 시간과 돈이 엮이는 독특한 형태는 이미 아케이드 시절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온라인시대의 현질은 시간과 돈을 맞교환하는 과정이다 1970년대 말부터 이뤄진 가정용 콘솔과 PC의 보급을 통해 디지털게임의 소비는 공공기기 대여에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를 직접 구매해 소유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게임기기를 개인이 소유하게 되면서부터는 다시금 다른 매체와 유사한 형태로 돈과 시간의 문제가 얽힌다. 한 번의 구매로 영원히 소유하는 게임에서 플레이어의 숙련도는 더 이상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른바 스탠드얼론 패키지라는 형태로 콘솔, PC를 중심으로 게임의 구매가 이루어지던 시절의 시간 / 돈 관계는 온라인게임으로 디지털게임의 중심이 옮겨오면서부터 다시금 큰 변화를 맞이한다. 소프트웨어가 서버상에 위치하게 되고, 사용자는 소프트웨어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소프트웨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구매 혹은 대여하게 되면서 게임에서의 시간 / 돈 관계는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냈다. 가장 대표적인 시간 / 돈 관계의 변화는 아이템의 현금 구매가 가능해졌다는 사실이다. 게임이 만든 가상공간 안에서만 도구적으로 유의미한 물질로서 인식되는 아이템은 대체로 게임 안에서의 플레이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며, 이 때의 플레이는 상당부분 시간의 소모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를테면 일정 수준 이상의 공격력을 가진 검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평균적으로 들여야 하는 사냥, 혹은 레벨업에의 시간 소비가 필수적이다. 그런 게임 아이템을 현금으로 구매 가능하게 만들 경우, 게임 플레이에 들어가는 시간은 현금으로 교환가능한 가치로서 다시금 의미지어진다. 기존에는 직접적 교환이 불가능했던 플레이 시간이 현금과 등가교환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게임사가 직접 아이템 – 현금의 교환 창구를 만들기 전부터도 시작된 바 있었다. 200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서버상에서 작동하는 온라인 MMORPG가 대세가 된 이후, 이용자들은 스스로 특정한 아이템을 현금을 대가로 거래하는 사례들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른바 ‘쌀먹’이라 불렸던, 게임 아이템을 팔아 현금을 확보하는 사례들은 게임에서의 시간 / 돈 관계가 변화했음을 드러내는 중요한 사례였다. 자동사냥과 아이템거래: 숙련도를 벗어난 새로운 유희적 시간의 의미 이후 2010년대 들어 스마트폰의 대중화가 이뤄지면서 상호 교환이 가능해진 플레이시간과 현금의 관계는 보다 본격화되는데, 여기에는 터치스크린 인터페이스라는 한계도 일정부분 영향력을 발휘했다. 과거의 스틱, 키보드/마우스처럼 세밀한 컨트롤을 구사하기 어려워진 터치스크린 환경에서 플레이어의 숙련도는 과거만큼의 의미를 플레이 안에서 갖추기 어려워졌고, 이에 따라 플레이의 결과물은 개인의 숙련도보다 한 플레이어가 얼마나 오랫동안의 시간을 사용해 서버에 접속해 활동했느냐의 질문에 가까워졌다. 이 변화의 끝에는 자동사냥이 서있다. 굳이 플레이를 ‘직접’ 하지 않아도, 단지 서버에 접속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시말해 플레이어가 자신의 숙련도를 활용해 개입하는 전통적 의미의 플레이를 하지 않아도 단지 서버에 접속한 시간만을 인증해주면 게임 플레이가 자동으로 이루어진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접속 플레이의 효율을 올려줄 수 있는 권한, 이를테면 자동사냥 효율 부스트라던가, 애초에 자동사냥 자체의 접근을 가능케 해주는 아이템들이 현금으로 구매가능한 대상이 되면서 게임플레이에서의 돈과 시간은 완벽히 상호 교환이 가능한 형태로 안착하기 시작했다. 탕진의 재미와 축적의 재미가 혼용되는 시대 온라인게임 시대가 만들어낸 이 변화는 놀이 역사에서 보기 드문 전환을 만들어냈다. 노는 일이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무언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놀이의 본질은 일종의 무용함, 생산의 시간에 맞선 시간 탕진의 즐거움에 가까웠지만,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는 그 무용함의 효용마저도 상품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이기도 하다. 정말 그 무용함은 돈으로 살 수 있는가? 내가 생산하지 않는 시간에 만들어냈던 즐거움, 난해한 퍼즐을 돌파하는 과정과 그 결과에서 얻을 수 있었던 희열과, 생산하지 않는 활동임에도 충분한 성취감을 만들어냈던 수많은 가상세계에서의 모험들은 정말 돈으로 사서 대체할 수 있는 무엇이었는가? 라는 질문을 끝없이 스스로에게 던지다보면, 혹여 이 돈으로 산 즐거움은 과거 시간의 탕진을 통해 얻었던 즐거움과는 다른 무엇은 아닌지에 대한 의심이 올라온다. 오히려 이 즐거움은 탕진의 즐거움이 아니라, 축적의 즐거움이다. 서버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나의 플레이 시간 기록이 현실의 재화와 교환가능한, 혹은 교환되지 않더라도 가상의 그 무언가가 축적되어 가고 있음을 확인할 때의 즐거움. 사실 우리가 눙쳐서 게임의 재미라고 부르는 효용의 순간은 적어도 시간이 돈과 교환되기 시작한 온라인게임 이후에는 본질적으로 다른 두 가지의 재미가 섞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Levelling Up: An Overview of Malaysian Video Game Culture

    One late afternoon in a quaint village. Rembo the rooster crowed loudly, adding to the countryside ambiance. You, your identical twin, and some friends from kindergarten were spinning tops in the yard. Just another joyful day of playing freely. < Back 26 GG Vol. 25.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 [인터뷰] 근대에서 현대로의 궤적을 따르다, <더 파이어 노바디 스타티드> 아로코트 개발자

    작년 8월 열린 부산인디게임페스티벌(BIC)에 출품된 <더 파이어 노바디 스타티드(The Fire Nobody Started)는 흔히 접할 수 있는 게임들과는 다른 내러티브와 아트의 독창성을 자랑하는 게임이다.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형식의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는 각각 특정 시대로 대변되는 기차 칸들을 오가며 유럽 근세사의 질곡을 체험하게 된다. 산업혁명기부터 베트남 전쟁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사회의 다양한 굵직한 사건들을 다루는 이 게임에는 인류로부터 비롯되는 발전과 폭력이라는 양가적 주제가 녹아나 있다. < Back [인터뷰] 근대에서 현대로의 궤적을 따르다, <더 파이어 노바디 스타티드> 아로코트 개발자 23 GG Vol. 25. 4. 10. 작년 8월 열린 부산인디게임페스티벌(BIC)에 출품된 <더 파이어 노바디 스타티드(The Fire Nobody Started)는 흔히 접할 수 있는 게임들과는 다른 내러티브와 아트의 독창성을 자랑하는 게임이다.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형식의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는 각각 특정 시대로 대변되는 기차 칸들을 오가며 유럽 근세사의 질곡을 체험하게 된다. 산업혁명기부터 베트남 전쟁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사회의 다양한 굵직한 사건들을 다루는 이 게임에는 인류로부터 비롯되는 발전과 폭력이라는 양가적 주제가 녹아나 있다. GG에서는 <더 파이어 노바디 스타티드(이하 <더 파이어>)>를 제작한 ‘팀 스핏파이어’의 개발자 아로코트를 만나 서양 근세사라는 게임의 테마와 작가로서 개발자가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들을 들어보고자 했다. 이경혁 편집장: GG의 인터뷰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더 파이어>를 만드시게 된 계기를 여쭙고 싶습니다. 아로코트: 원래 이 게임은 무한히 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모티프였지만 아무래도 게임의 배경으로 쓰기에는 좁은 감이 있어 기차로 바꾸었어요. 어딘가를 향해서 끝없이 질주하는데 어딘가로 향하는지는 모르는 기차 안에서 대화하는 게임을 만들고 싶어서 친구랑 이야기를 했어요. 메타 판타지 느낌으로 우로보로스처럼 세상 밖을 도는 열차로서 다양한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임을 할까, 아니면 좀더 현실에 가까운 얘기를 할까 하다가 친구가 아무래도 기차라면 산업혁명이 떠오르니 산업혁명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를 하자고 제안했어요. 그렇게 친구와 얘기하며 한 2시간 만에 스토리 개요가 짜인 거죠. 이경혁 편집장: 기차로 시작할 수 있는 여러 맥락 중에 산업 혁명이라는 주제를 타고 가셨다는 거죠. 말씀하신 개발 동기로서의 기차가 이 콘텐츠의 외피라면 이 게임의 알맹이 자체는 근대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혹시 관련 전공자이신지도 궁금했습니다. 아로코트: 사실 저는 컴퓨터공학이 전공이라 역사 쪽 전공자는 전혀 아니에요. 다만 평소에 그 친구나 저희 아버지와 관련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그러면서 뭔가 제 안에서 관련 지식이나 고찰이 쌓여 갔던 거죠. 그렇게 쌓여왔던 것들이 그 날의 대화로 일종의 촉매가 되어서 게임으로서 형태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이경혁 편집장: <더 파이어>에서 하고 싶으셨던 이야기 자체는 그림이나 소설이나 시 같은 문학의 방식, 혹은 영화로도 만들어볼 수 있었을 텐데 여러 방식 중 게임을 고르셨습니다. 이 작품이 혹시 아로코트님께 첫 작품이신지요? 아로코트: 대중에 제 이름을 공개한 게임으로는 <더 파이어>가 처음입니다. 저는 정말 그냥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게임으로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어떤 사람은 영화로 만들고 어떤 사람은 소설을 쓰듯이 저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그게 게임의 형식으로 구체화되는 거죠. 이경혁 편집장: 첫 게임의 주제로 서구 근대사를 다루게 된 이유가 있으셨을까요? 게임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메세지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아로코트: 사실 대중에게 공개하는 첫 게임이긴 하지만, 제가 이제껏 기획해 왔던 게임의 성격이 굉장히 개인적인 수준에서의 심리적 고찰에 가까웠다 보니 <더 파이어>가 특이한 사례긴 해요. 학생 시절까지는 정말 저에 대해서만 집중했는데, 어른 되고 나서 보니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 조금 더 눈길이 가더라고요. 물론 다른 사람보다는 서구 근대사에 대한 관심이 좀더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에 아버지가 이런 얘기를 해주신 적이 있어요. '세상에서 모두를 만족시키는 선택이나 정책은 없다. 내가 무언가를 선택을 하면 누군가는 이득을 보고 또 누군가는 어떻게든 고통을 받는다. 그렇게 보면 인간이 사회를 만들고 선택을 해야 되는 사회구조 자체가 원죄처럼 느껴진다'. 그게 굉장히 뇌리에 남았어요. 사회 구조 자체가 아무에게도 상처 입히지 않거나 피해 주지 않는 삶을 만들 수 없게 한다. 자본주의 사회구조 속에서 어떤 행위 자체는 필연적으로 또 어떠한 착취로 이어지는 것 같다. 근데 그런 걸 인식을 해봐야 이 세상은 너무 거대하고 저는 너무나도 작잖아요. 제가 그렇다고 혁명을 할 인물상인가 하면 그렇지 않고. 그래서 저는 게임을 통해 어떤 대답 대신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을 하고자 했어요. 이 세상의 구조와 그 안에서 맞닥뜨리는 부조리들이 우리에게 주어진 질문이라면, 사실 해답은 개개인의 삶과 경험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절대로 하나로 정해질 수는 없고 개별적인 것이겠죠. 하지만 각자의 해답에 대해서 서로 논의하고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해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모두 한번 이 질문을 생각해 보자라는 느낌으로, 어떻게 보면 그게 이 게임을 만들게 된 동기인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저는 <더 파이어>에 실제로 사용된 문구나 글을 보면 피상적인 인용이 아니고 레퍼런스를 참조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어 마르크시즘에 대한 언설들도 나오는데 그것도 나름의 공부를 하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혹시 이 주제와 관련해 책이나 자료 같은 소위 말한 레퍼런스로 볼 만한 것들이 있으셨을까요? 아로코트: 사실 처음부터 특정한 레퍼런스를 잡고 진행했다기보다는 작업을 하면서 참고한 것들이 많다 보니 딱 어느 것이 레퍼런스라고 짚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마르크시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기본 지식이 있었긴 했지만 추가로 정보가 필요하면 그때그때 여러 가지 문헌들을 찾아봤어요.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에서 관련된 사항들을 읽고 가져올 수 있는 정보를 메모해두기도 했구요. 이경혁 편집장: 제작 과정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더 파이어>의 마지막 크레딧에 한 명이 더 들어가 있는 걸 보긴 했는데, 완전히 혼자 게임을 제작하신 것인지요? 전공은 개발자신데 그림도 그렇고 사실 글 쓰는 것도 굉장히 힘드셨을 것 같아요. 아로코트: 마지막 크레딧에 나온 분은 아까 말씀드렸던 제 친구입니다. 게임 자체는 사실상 1인 개발로 이루어졌지만, 내용적인 부분에서는 친구가 초반에 등장하는 1차 세계대전 시기까지의 고증 작업을 도와주었어요. 예를 들어 챕터 3에서는 막스 베버의 책을 어떤 노동자가 읽었다는 설정을 만들었다가 고증을 통해 그걸 수정한다던지. 챕터 5에서 대공황 시대에 나오는 볼스테드 법의 허점에 대해 알려준다던지. 고증이 세게 들어간 부분은 제 친구가 써준 것도 있고, 그걸 기반으로 제가 다듬은 것도 있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거의 다 제가 썼어요. 이경혁 편집장: 게임의 전체 플레이 타임이 1시간 정도로 그렇게 길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위 말하는 기존의 게임 팬들 사이에서 '이건 게임이 아니야'라는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되는데, 만약 이런 질문이 나오면 어떻게 답을 하시겠어요? 아로코트: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 같아요. 이건 사실 게임의 정의에 대한 문제이긴 한데, 흔히 게임도 예술이다라는 얘기를 하잖아요. 무엇이 게임이라는 매체를 예술로 만드는가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대중들이 그 매체를 예술로서 다룰 수 있어야 하고 가장 단순하게는 다른 예술들이 할 수 있는 걸 이 매체도 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게임이 예술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 안에서 정말 다양한 시도를 할 수도 있고 다른 매체들이 다룰 수 있는 주제를 게임도 다룰 수 있다고 생각을 해서요. 이 게임이 인기가 없을 거라는 건 짐작했어도 스스로 이 게임은 게임이 아니다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네요. 이경혁 편집장: 인디게임의 1인 개발자로서 BIC(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에 참석하시게 된 계기와 현장 부스의 분위기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아로코트: BIC는 처음에 게임 만들 때, 되든 안 되든 게임쇼 같은 데 작품을 내고 싶다는 제 로망이 있어서 직접 참여하게 됐어요. 현장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런 전시가 처음이었고 실은 돈이 없어서 장비도 못 빌렸거든요. 개발하던 걸 그대로 갖고 가서 동생 노트북과 제 노트북으로 전시를 했는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고 저는 그 정도면 만족이라고 생각해요. 또 현장에서는 그런 한계도 있었어요. 데모판 플레이 타임이 아무리 짧게 잡아도 한 10-15분은 걸리는데 저는 한 30분 정도로 상정했었으니까 게임쇼 내내 <더 파이어>를 돌린다고 해도 직접 경험시켜 드리는 데는 한계가 있더라구요. 이경혁 편집장: 저도 뒤쪽에서 봤습니다. 게임쇼의 안타까운 점이기도 하죠. <더 파이어>도 그렇지만 플레이타임이 긴 게임들은 사실상 거기서 시연이 어렵다 보니까요. 아로코트: 아무래도 게임 쇼에서는 뭔가 짧고 메커니즘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종류의 게임이 부스로서 사람들에게 강점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좀 많이 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국내에서 <더 파이어>와 비슷한 시도를 하는 분으로 저는 소미(SOMI) 님이 생각나기도 했어요. 혹시 소미님 작품은 플레이 해보셨을까요? 아로코트: 네, 소미님은 항상 존경하는 분이에요. 스토리랑 게임의 시스템을 잘 맞물리게 하는 방법을 잘 아시는 것 같고 사실 그게 그분의 강점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사실 그래서 저도 원래는 어느 정도 게임에 퍼즐 요소를 넣어서 인물들의 이야기가 퍼즐로 표현이 되었으면 했는데, 프로그래밍을 그렇게 잘 못했던 건 아쉬운 점이에요. 이경혁 편집장: <더 파이어> 중간에 알파벳 맞추기라던가 퍼즐을 시도하시는 것도 느껴졌는데 확실히 게임에서 퍼즐 요소가 적긴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로코트: 원래는 시대별로 보드 게임을 반영해서 첫 번째 챕터에서는 틱택토, 두 번째 챕터는 체스 이런 식으로 반영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제 경우에는 아트까지 다 담당을 하다 보니 무엇 하나는 포기를 해야만 했었어요. 아트는 약간 (이 게임의) 정체성 같은 거라서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림과 퍼즐 사이에서 퍼즐을 포기했던 거죠. 그래서 팀원을 되게 절실하게 원하긴 했어요. 저 스스로도 개인적으로 개발 쪽으로는 욕심이 많이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사소하게 작동하는 메카닉 하나도 굉장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여된다는 걸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그러고 보니 <더 파이어>에서는 아트도 상당히 눈에 띄는데요. 아트에 비중을 많이 두고 싶으셨던 이유와 구성하기까지의 과정들이 궁금합니다. 아로코트: 전공자도 아니고 그림은 초등학생 때 이후로 배운 적은 없었지만, 게임과 관련된 퍼즐 요소에는 확신이 없어도 아트는 이걸 해내면 정말 대단할 것 같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원래는 <더 파이어>에서 아트를 칸마다 다양화할 생각이 없었는데, 아까 저를 어드바이스해준 친구와 얘기하면서 시대에 맞춰 아트를 각자 그리자는 얘기가 나와서 하게 됐어요. 결국 제가 제 무덤을 팠던 거지만요(웃음). 이경혁 편집장: 각 시대별로 예술 사조를 다 맞추신 거잖아요. 마지막엔 팝아트랑 컨템포러리까지 가셨던 것 같아요. 아로코트: 실은 후반으로 갈수록 각 시대에 아트 스타일이 명확하게 들어맞지는 않아요. 예를 들면 1950년대 매카시즘이 나오는 시대의 아트 스타일로 바우하우스를 선택했는데 사실 바우하우스는 1930년대거든요. 점차 사조들이 갈래가 다양해지기도 하고, 그보다 후반으로 가면 저작권 문제도 있습니다. 이전 시대까지는 각자 모티프로 삼은 작가들이 있었어요. 첫 챕터인 산업혁명 시대 같은 경우에는 신문에 나오는 단색 리소그래피 판화를 택했고, 두 번째 챕터에서는 구스타프 클림트, 세 번째 챕터에서는 툴루즈 로트랙, 네 번째 챕터에서는 몽고메리 플래그 이런 식으로 명확한 작가들을 정했어요. 그런데 후반부로 가니 그렇게 하면 법적인 문제에 걸릴 가능성이 있어 그보다는 시대별 분위기에 맞춰서 선정하고자 했어요. 개인적인 느낌인데 그래서 후반으로 갈수록 제 취향이나 경향성이 조금 더 많이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이경혁 편집장: 콘텐츠에 대한 질문으로 저는 이 얘기를 꼭 여쭤봐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제작자이자 창작자로서 인류의 근대라는 걸 어떻게 보시나요? 아로코트: 저희가 <더 파이어>를 만들 때 명확하게 합의하고 넘어간 게 있었어요. 우리가 볼 때 인류의 근대는 실패의 역사다. 지금도 보세요, 이 게임을 완성할 때까지만 해도 세상이 이렇게 돌아갈 줄은 몰랐지만 계엄령도 내려지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지금보다 조금 더 이전 시대 사람들은 그래도 자신만의 이상이나 최선을 상상하고 꿈꾸지 않았나 싶거든요. 근데 지금의 세상은 더 이상 최선을 생각할 겨를이 없이, 최악과 차악 사이에서 최악을 고르지 않기 위해서 애쓰고 있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작품에서 불이라는 모티브를 많이 사용하셨지요. 처음에는 남포등에 성냥으로 불을 붙이고, 그것이 나중에는 원자폭탄이 되고 최종에는 불이 타오르는 쪽으로 계속 걸어가면서, 마지막쯤에 ‘우리가 불이다’ 라는 선언을 하는 모습도 나오고요. 하지만 기술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도 사실이라는 이야기도 살짝 나오잖아요. 그래서 저는 <더 파이어>에서 불이 갖는 의미의 이중성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게 아닌가 했어요. 아로코트: 맞아요, 이중적이에요. ‘우리가 불이다’는 아까 말씀드린 인류의 사회와 구조 자체가 원죄라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피우지 않은 불에 의해서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세상을 잘 살펴봤을 때 고통받고 있는 우리도 이 부조리의 일부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게임 후반부로 갔을 때 그렇게 산발적으로 그려놓은 불이라는 이미지와 상징을 하나하나 다 끌어모아서 하나로 통합하지는 않았어요. 이 게임을 대답이 아니라 질문으로 만들고자 했기 때문에, 그 상징들을 보면서 플레이어가 그 상징들과 제가 대략적으로 잡아놓은 형태를 보면서 플레이어가 불꽃이란 무언가에 대해서 스스로 결론을 내렸으면 했어요. 이경혁 편집장: 산업혁명이나 원자 폭탄 등으로부터 출발해 세계 대전과 베트남 전쟁 등의 서사를 보면, 물질적으로 생명이 죽어나가는 순간들을 포착하시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완전히 근현대까지는 안 오셨고 사실상 베트남 전쟁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로코트: 사실 후반에 소련 붕괴나 911, 서브프라임 사태 이런 것들이 짧게 짧게 지나가잖아요. 원래는 그 사이에 이라크 전쟁을 넣어서 그 문제를 부각하려 했어요. 그랬지만 저한테도 두려움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웃음)... 저는 그래서 사실 계엄령이 내려왔을 때 정말 무서웠거든요. 이성적으로는 게임 창작자로서 역사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할 수 있어야 하고, 이게 정치 사회적으로 짚고 넘어갈 만한 이야기인 것도 맞는데 왜 이런 부분에서 두려워해야 되나 생각하며 현타도 많이 오더라구요. 이경혁 편집장: <더 파이어>가 언어를 그래도 꽤 많이 지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번역은 어떻게 처리하셨을까요? 아로코트: 번역의 경우 제 친구가 영어 부분을 해줬고, 그걸 기반으로 BIC에서 마사케이라는 분을 만나서 그분이 일본어 번역해 주셨고 나머지는 itch.io (해외 인디게임 커뮤니티)에서 번역 자원봉사자 분들을 구해서 했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역시 개발자들은 itch.io에서 시작하시는군요. 게임의 판매수익은 얼마 정도 될까요? 그동안 들어간 공수가 있으니, 그와 대비해서 이 정도는 회수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기대가 있으셨을 것 같아요. 이런 물질적 기반이나 상업적 성과가 창작자가 다음 작품으로 가는 데 또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해서 여쭤봤습니다. 아로코트: 저는 이 게임에 정말 (상업적으로)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모르겠습니다. 돈을 벌면 좋으니까 최대한 게임을 알리기는 하는데, 이성적으로 따져보면 이 게임이 해외에서도 되게 마이너한 분야이고 얼마만큼의 수요를 낼지 장담할 수 없는데 한국에서는 어떻겠어요.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시장의 크기가 있다 보니 그만큼 마이너 장르도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걸 많이 느껴요. 그래도 그런 것 치고는 제 기대보다는 잘 됐다의 느낌이구요. 하지만 조금 더 잘 됐으면 좋겠다고 항상 느끼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더 파이어>의 경우 국내보다도 해외 쪽 반응이 좀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해외 반응들은 좀 보신 게 있으세요? 아로코트: <더 파이어>도 사실 국내보다는 해외 쪽에서 뭔가 조금 이제 힘을 낼 수 있는 작품 같은데, 해외 반응을 살피기 전에 게임이 애초에 해외로 잘 퍼져 나가야 되는데 그러기가 사실 쉽지는 않아요. 인디 게임 홍보에 가장 난점이고 가장 필요한 부분이 네트워크인 것 같아요. 제가 그렇게 사회적인 인간이 아니기도 하지만 예전에 학생일 때는 그런 걸 모르고 살았다가 이제야 그것들을 체감하기 시작하니까, 이걸 앞으로 어떻게 홍보를 하고 알릴지가 정말 힘들더라구요. 우선은 비트 서밋(일본 국제 인디게임 페스티벌)에 내보긴 했습니다. 아무래도 <더 파이어>가 아트라는 명확한 장점이 있으니까 이걸로 어떤 수상을 하면 관심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요. 이경혁 편집장: 개발자 본인에 대해 좀더 이야기를 다가가 보면, 게이머로서는 또 어떤 분이신가 궁금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인상이 깊었던 게임들을 두세개 정도 꼽아주시면 어떤 건가요? 아로코트: 쯔꾸르 게임 중에서 08년도에 나온 <오프>라는 RPG 게임이 있어요. 서양권에서는 많이 유명한 메타픽션 게임의 계보에 있는데. <오프>는 RPG 쯔꾸르라고 하면 보통 생각하는 일반적인 이미지를 전혀 따르지 않는 게임이었어요. 이렇게 게임을 만들어도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저에게 있어 게임이란 시스템 이전에 이야기가 먼저 존재하고 게임은 그 이야기를 표현하는 수단인데요. 쯔꾸르 게임들, 특히 <헬로우 샤를로테>라는 게임을 하면서 그런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에반게리온 같은 느낌의 우울증 걸린 게임인데(웃음). 제가 고등학생 때 정말 힘들었고, 저한테 학교라는 공간은 단 한 번도 좋게 기억된 적이 없었는데 <헬로우 샤를로테>가 그러한 감성들을 정말 명확하게 풀어낸 거예요. 게임을 하면서 개발자가 겪었을 그 고통들이 정말 생생하게 느껴졌어요. 그 게임을 통해 저도 제가 가지고 있는 이 기억들을 언젠가 게임으로 다시 풀어내고 싶다, 자기 표현 욕구의 수단으로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외에는 <이브>나 <마녀의 집> <원샷> 같은 이야기를 표현하는 게임과 메타적인 연출들을 많이 좋아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기획부터 완성까지 여러 고충이 있었습니다만, 결국 스스로 이 게임을 만들 때 재미있으셨을까요? 아로코트: 정말 솔직히 난점이 많았죠. 특히 아트 스타일을 만들 때는 진짜 미치는 줄 알았어요(웃음). 고쳐도 별로고 안 고쳐도 별로고, 진짜 내가 처음에 기대했던 거랑 너무 다르고. 그런데 재미있었냐라고 묻는다면 정말 재미있어요. 하는 시간만 놓고 봤을 때는 사실 힘들고 고민도 많이 해야 되고 특히 저는 주변에 아무도 없이 그냥 집에서 이것만 개발했거든요. 속으로는 내가 이렇게 시대별로 고생을 해봐야 누가 알아줄 거라는 보상도 확신도 없었어요. 그런데도 그게 재밌었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개발자로서 아로코트님의 향후 진로나 창업에 대한 생각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아로코트: 언젠가는 회사를 세워서 제가 생각한 이야기들을 더 만들고 싶은 게 목표고, 제가 생각하는 것들을 일종의 IP나 프랜차이즈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해요. 제가 원하는 게임을 만드는 것 외에도 어느 정도 수익성이 나는 그런 것들을 많이 고려하지만 특별히 현실에 타협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제 게임 스타일이 이런 걸로 고정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제 개발 능력의 모자람이기도 해서(웃음) 지금은 저보다 훨씬 더 능력이 있으신 분들과 협업을 할 기회가 생겼는데, 앞으로는 그럴 수 있다면 훨씬 더 적극적이고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고 싶어요. 이경혁 편집장: 마지막으로 후속작 계획을 좀 들을 수 있을까요? 간단한 컨셉트 같은 걸 공개해 주실 수 있으면 그것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로코트: 후속작으로는 지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어요. <더 파이어>를 보고 같이 작업하자고 연락 주신 분들이 계셔서 그분들과 하는게 있고 개인적으로도 기획 중인 게임들이 있습니다. 먼저 팀으로 제작중인 게임으로 한국 도깨비가 등장하는 뱀서가 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제작하는 스토리 게임 중에서는 우선 브로맨스 요소가 들어간 대화 형식의 게임을 만들고 있구요. 도시에서 괴물을 키우는 텍스트 어드벤처 계열 게임도 기획 중인데, 사이키델릭한 심리적 요소를 많이 곁들인 게임으로 계획하고 있어요. Tags: 근대, 인디게임, 역사, 1인개발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수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인터뷰] 북미 게임연구자 Consalvo, 한국과 북미의 게임문화를 말하다

    콘살보 교수와의 이번 인터뷰는 게임에 대한 인문사회학적 고찰에 있어 필수적인 게임학의 현재를 진단해보는 한편 북미의 상황에 대해 들어봄으로써 이 시점, 여기에서 고민해볼 만 한 지점들을 모색하고자 기획하였다. 실시간 인터뷰가 어려운 현재 여건상 이 인터뷰는 이메일로 진행되었음을 밝힌다.  < Back 01 GG Vol. 21.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Bora Na A game researcher. Game-playing goes back quite a long way, but the first encounter with game studies came by chance, through a game course taken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Since graduating, has carried out research and writing centered on game history and culture, here and there. Contributed to The History of Games, The Theory of Games, and Mario, Born in '81, among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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