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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란으로 1280개 검색됨

  • 아포칼립스의 거울: 불완전한 정보는 어떻게 인간을 심판자로 만드는가?

    태양 폭발로 문명이 무너진 세계, 플레이어는 매일 밤 TV 앞에 앉아 정부가 배포하는 식별 가이드를 시청한다. 지하에서 올라와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쓴 ‘방문자’를 색출하라는 임무다. 뉴스는 완벽하게 고른 흰 치아, 털 없는 매끈한 겨드랑이, 빛에 민감해서 충혈된 눈 등을 방문자의 징후라고 보도한다. 위생 관리가 불가능한 아포칼립스 상황에서 청결함은 역설적으로 괴물의 증거가 된다. 이 플레이어에게 건네는 첫 번째 질문이다. < Back 28 GG Vol. 26. 2. 10. Tags: 포스트휴먼, 인본주의, AI, 인공지능, 비인간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yunyoung Hong Entered the world of games thanks to ads pitching the Famicom as a must-have for the happy household. A steady devotee of Just Dance. Co-wrote Mario, Born in '81, The Theory of Games, and Media and Gender, among others.

  • 동시대 JRPG의 얼굴들 – 야쿠자, 왕자, 그리고 이방인

    <33원정대>는 두 현실 사이에 중재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둘 중 하나의 편을 택해야 하며, 선택은 곧 다른 하나의 세계와 가능성을 돌이킬 수 없이 폐기하는 행위로 기능한다. 각자에게 할당된 엔딩 이후 캔버스 속 세계의 운명은 정리되어 치워지고, 주인공들에게서 이전의 모험을 반복하거나 지속할 동기나 가능성은 사라진다. < Back 25 GG Vol. 25. 8. 10. Tags: 프랑스게임, JRPG, 턴제, 애도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ungHoon Majored in literature. Loves games and comics. The Sims 4 isn't really a favorite, yet has logged some 1,500 hours in it—unsure whether that's a source of shame or just funny. Also goes by the pen name Ttuibuchi.

  • [Interview] Bringing the sense of presence into esports – what and how: Yeong-seung Ham, Program Director at Riot Games.

    The feeling of being part of the crowd is a powerful experience. In traditional sports, this empowering moment is known as "hyeonjang-gam," which can be translated as the "feeling of presence." Despite technological advancements and high-speed internet that allow us to watch sports matches remotely from home, many fans still choose to visit the on-site venue to immerse themselves in the passion, sweat, tears, cheers, and chanting that cannot be fully transmitted through a screen. Some become fans of a sports team after experiencing an engaging moment at the stadium, chanting alongside a group of people. Even in esports, numerous fans have missed spectating digital game matches at physical on-site stadiums during the Covid-19 pandemic. < Back 13 GG Vol. 23.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 <발리언트 하츠>, 전쟁은 이기는 것이 아니다.

    작품이 1차 세계대전이라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 전쟁의 경험을 표현하기 위해 던졌을 질문들처럼, 게임은 여전히 전쟁이라는 경험을 향해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들을 가지고 있는 매체다. < Back <발리언트 하츠>, 전쟁은 이기는 것이 아니다. 25 GG Vol. 25. 8. 10. 전쟁은 분명 가장 문명화된 야만이 아니겠는가. 이 막대한 규모의 전방위적 파괴 행위는 실상 비이성적이고 원초적인 욕망에서 기인하지만, 누구보다 절실하게 이성과 논리를 동원하는 영역이다. 파괴의 명분을 만들고 설득해야 하며, 더욱 강력한 파괴를 위한 기술을 개발해야 하고, 효과적인 파괴를 위한 전략과 전술을 연구해야 하는 모든 과정에서, 인류를 다른 동물과 구분한다는 이성과 논리는 줄곧 다른 동물과 다를 바 없는 원초적 욕망의 시중을 들어왔다. 때문에 전술가들은 으레 전쟁을 냉정하고 계산적인 영역이라 여겨왔지만, 오랜 세월 동안 인류가 이러한 비문명적인 파괴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해 애쓰며 이성과 논리라는 포장지를 사용해왔다는 역설은 전쟁을 흥미롭게 만드는 부분 중 하나다. 이러한 전쟁과 게임이 손을 잡은 것은 오래된 일이다. 처음부터 이성과 논리라는 포장지를 사용하기 위해 게임을 필요로 했던 것은 전쟁이었다. 인류는 테이블 위 게임판이 실제 전쟁의 현실을 대신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게임에는 논리적인 규칙이 있고, 이성적인 전략을 만들 수 있으며, 승리 또는 패배라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으니. 전쟁은 게임의 결과를 현실에도 적용할 수 있길 바랐고, 게임은 지금까지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전략성이라는 영역의 유구한 전통을 얻었다. 그렇기에, 전쟁과 게임은 분명 교감하는 부분이 많을 수 있고, 전쟁을 다루는 게임이 전략성을 물심양면 활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거대한 지도 위에서 펼쳐지는 군사 전략 장르뿐 아니라, 개인의 눈으로 전장을 바라보는 FPS 장르 역시 플레이어가 전략성을 발휘할 것을 적극적으로 요구한다. 수치상으로 죽지 않을 만큼의 피해를 입고, 적 유닛을 제거하고, 효율적인 동선을 구상할 것. 이를 통해 달성되는 목표는 대개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또는 그렇게 믿으며 해당 임무를 플레이하는 것)이다. 묘사되는 상황이 아무리 혼란스럽고 격렬하더라도, 그 안에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행하는 행위는 꽤나 냉정하고 계산적이며, 이를 얼마나 잘 수행하는지에 따라 플레이어가 얼마나 유능하게 목표를 달성하는지 평가된다. 그렇다면 전쟁과 게임이 서로를 활용하는 이 고전적인 교감을 벗어났을 때, 전쟁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어떤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까? 목적: 어떻게 끌어들일까? 아무 OTT 플랫폼에 접속해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차례로 검색해 보자. 2차 세계대전이 전쟁 콘텐츠의 클래식, 대명사로 자리 잡은 반면, 1차 세계대전은 몇몇 명작을 남긴 사례를 제외하면 2차 세계대전만큼 많은 콘텐츠를 찾아보긴 힘들다. 서구 유럽을 벗어난 문화권에서는 2차 세계대전에 비해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는 측면도 있지만, 콘텐츠로써도 2차 세계대전이 가진 비교적 편리한 이점이 있다. 명확한 악역과, 이에 근거한 명쾌한 당위성. 추축국으로 상징되는, 파시즘이라는 명확한 악당이 있는 2차 대전에 비해 1차 대전은 그 증오의 대상이 명확하지 않다. 각자의 민족과 국가를 수호한다는 당시의 명분은 자국민들에게 전쟁 참여를 독려할 수는 있었을지 몰라도, 한 세기가 지난 현대의 대중들에게 호소력을 갖진 못한다. 그러나 콘텐츠의 관객들에겐, 특히나 직접 행동해야 하는 플레이어들에게는 행동의 명확한 목적과 명분이 필요하다. <발리언트 하츠 Valiant Hearts>시리즈는 두 편에 걸쳐 1차 세계대전의 현장과 여기에 참여하는 병사들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플레이어에게 연합국 또는 동맹국 편에 서서 싸울 것을 주문하지 않는다. 대신 목적성이 결집된 하나의 구체적인 대상을 게임 초반에 제시하며 플레이어들에게 동기를 부여한다. 본 도르프는 독일군 지휘관이라는 위치 때문이 아닌, 그 인간 자체로 주인공들의 표적이 된다. 미국인인 프레디가 프랑스 군에 자원한 이유는 폭격으로 아내를 죽인 본 도르프에 대한 복수를 위해서다. 프랑스 병사인 에밀이 본 도르프를 추적하는 이유는 독일군에서 복무하는 사위 칼을 찾기 위함이며, 벨기에 출신 수의대생이었던 안나는 본 도르프에게 납치된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이들의 여정에 합류한다. 일종의 욕받이를 설정한다는,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방식으로 <발리언트 하츠>는 사실상 첫 시리즈 대부분의 분량 동안 플레이의 동력을 제공한다. 챕터가 끝날 때마다 본 도르프와 보스전을 치르기도 하고, 때로는 이리저리 먼 길을 돌아가면서도 본 도르프의 행방을 알아내고 그를 추격한다는 굵직한 목표가 내내 유지된다. 이는 플레이어들에게 자연스럽게 본 도르프에 대한 승리, 플레이어의 성향에 따라 더 나아가서는 그에 대한 승리를 곧 독일군 전체에 대한 상징적인 승리로 확장하는 대략적인 승리의 이미지를 그릴 수 있게 만든다. 역설적이게도, 이 과정에서 때로는 ‘대체로’ 아군인 프랑스군이 방해가 되기도 하고, ‘대체로’ 적군인 독일군이 친구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본 도르프가 필요한 이유는, 주인공들의 싸움이 전쟁 자체와 언제나 교묘하게 어긋나있는 상황에서, 플레이어에게 이 싸움에 참여할 다른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서다. 전장이라는 배경에서, 한 독일군 지휘관이 개인적 복수의 대상이라는 주요 적으로 설정되면서, 주인공들이 1차 대전 초기의 주요 전투와 사건들을 경험하고, 플레이어 역시 이 경험에 집중할 충분한 정당성을 제공한다. 그러나 마침내 본 도르프를 제거한다고 해서 주인공들의 영광스러운 승리로 게임이 끝나진 않으며, 종전까지는 2년이 남았고, 본 도르프를 추격한다는 희열이 무마해왔던 1차 대전의 민낯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본 도르프가 1편의 중후반에서 제거되지만, 전쟁의 진행에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 수단: 사람을 죽이지 않는 전쟁 게임 게임이 시작되고 첫 전투인 크루스네스에서, 에밀은 다른 병사들과 달리 소총이 아닌 부대 깃발을 들고 전선을 달린다. 프레디는 와이어 커터를 든 공병, 안나는 의료진, 칼은 탈영병, 조지는 사진작가, 제임스는 분대원들과 클라리넷을 연주하고, 에른스트는 잠수함 승조원으로 징집된 뱃사람이다. <발리언트 하츠>는 이런 주인공들의 시선에서 전쟁을 경험한다. 개인의 관점에서 전쟁의 경험이 서술될 때면, 플레이어는 이를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경험하곤 한다. 하나는 전투원 등의 입장에서 실제 전투에 참여하거나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는 경우, 다른 하나는 민간인 등의 입장에서 전쟁에 영향을 미치진 못함에도 전쟁의 영향을 받는 삶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경우다. 위에서 언급한 7명의 주인공들은 분명한 전자에 속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공통적으로 결코 하지 않는 행위가 전투, 구체적으로는 살상이다. 사람을 죽이지 않는 전쟁 게임은 가능한가. 교육적인 목적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게임은 혼란스러운 전장의 한복판에서도 플레이어가 누군가를 죽이도록 두지 않는다. 플레이어가 격추하는 전투기는 천천히 지상으로 불시착하고, 기관총 포대 안에 수류탄을 던지면 적은 포대를 버리고 빠져나간다. 총기를 가진 캐릭터는 칼과 제임스뿐이지만, 그마저도 사용하는 일은 없다. 플레이어 캐릭터가 직간접적으로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는 경우는 시리즈에서 두 차례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바쿠아에서 수많은 독일군을 참호에 생매장하는 일에 기여했음을 깨달은 에밀은 수치심에 그간 받은 훈장들을 전부 불태우는 것으로 묘사되며, 니벨 공세에서 무리한 진격을 강요하던 지휘관을 의도치 않게 죽음에 이르게 한 후에는 항명으로 사형을 선고받는다. 사지가 잘린 시신들이 산처럼 쌓여있는 슈맹 데 담과 뫼즈-아르곤 공세에서도, 작품은 이 전쟁 게임에서 전투원으로 참여하는 플레이어의 살상 행위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겠다는 집요함을 고수한다. 앞서 말했듯 전쟁 게임과 전략성의 오랜 결부는 대개 플레이어에게 효과적인 승리라는 목표를 제안한다. 그리고 많은 경우 그 수와 등장 동선이 정해져 있는 적의 패턴을 파악해 처치하는 경험이 이 효과적인 승리에 반영된다. <발리언트 하츠>에는 이 핵심적인 경험이 빠져있다. 대신 플레이어가 적의 포격과 기관총탄이 빗발치는 참호에서 수행하는 대부분의 경험은 퍼즐을 풀고 함정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험이 향하는 목적은 대개 전투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전투를 무사히 통과해 생존, 그리고 탈출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플레이에서는 전선에서 공격을 피해 목표를 달성하는 행위를 목적으로 한다. 이 시리즈의 주인공들은 불가피하게 전쟁에 휘말린 민간인들이 아니다. 다들 나름의 이유로, 자의가 되었든 타의가 되었든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병사들, 전쟁을 수행하는 당사자들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적과의 교전이라는 역할을 기대받고 있는 이들의 목적, 그러니까 플레이어의 목적은 또다시 이 전쟁의 목적과는 교묘하게 어긋나있다. 결국, 이 전쟁을 벗어나는 데에 있다. 생존이라는 승리 플레르에서 프레디에 의해 마침내 패배했을 때, 본 도르프는(역시나 죽지 않고) 패전의 과오를 물어 ‘죽음보다 치욕스러운’ 경질을 당하며 전장에서 물러난다. 그러나 그는 히틀러처럼 이 싸움의 궁극적인 보스가 아니다. 그가 없다고 전쟁이, 독일군의 진격이 멈추진 않는다. 에밀의 손에 죽었던 무책임한 프랑스군 지휘관 역시 궁극적인 보스가 아니다. 에른스트에게 제임스가 탄 함선을 격침하라고 지시했던 잠수함 함장도, 조지가 추격했던 독일군 스파이도 궁극적인 보스가 아니다. 이 작품에서 7명의 인물들이 맞서 싸우는 궁극적인 보스는 내내 전쟁 그 자체다. 작품은 처음부터 자국 대중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한 참전국들의 목적-승전이라는 목표를 플레이어들이 따르게 할 의도가 없었고, 때문에 본 도르프라는 마중물을 마련했다. 그리고 이 미묘한 불합치가 이르는 최종 승리의 모습은, 전쟁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전쟁에 대한 승리다. 1편에서는 아들이 아프다는 소식에 집요하게 탈영을 시도하던 칼이 마침내 생 미엘로 돌아가 가족과 무사히 재회하는 모습이 승리다. 2편에서는 당연히, 안나가 여전히 전투가 벌어지는 전선을 뚫고 달려가 탑 위의 종을 울리며 전쟁이 끝났음을 모두에게 알리는 모습이 승리다. 연합국의 승리가 아니라, 종전이 이루어졌다는 소식이, 그 소식이 들려올 때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이 작품에서 그리는 승리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들은 반인륜적 악과 맞서 싸운다는 명분을 표명할 수 있었지만, 1차 세계대전의 연합국들 사이에서 강조되던 것은 보다 민족적이고 국가적인 단위의 문제였다. 민족이라는 개념을 기반으로 막 형성되기 시작한 ‘국민’이라는 정서는 이 전쟁에서 민족의 자존심과 국가 수호를 위해 적에 맞선다는 목표의식을 만들었다. 그러나 결국 이 작품에서 민족과 국가를 수호한 공을 인정받아 수차례 훈장을 받고, 전쟁으로부터도 승리한 주인공들을 패배하게 하는 것은 바로 그 국가, 공동체, 내집단이다. 작품은 자국인 프랑스 군사 법정에서 사형당한 에밀의 묘비, 종전 후 뉴욕에 돌아왔다가 인종차별주의자들의 공격으로 사망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프레디의 묘비 앞에서 마무리되며, 이것이 우리가 기려야 할 전쟁의 비극과 희생을 상징하는 장면이 된다. 전쟁을 위해 줄곧 강조되어왔던 국가와 민족의 가치가, 목숨을 걸고 이를 수호해왔던 두 사람을 배반한다.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1차 세계 대전은 이 두 장면에 담긴다. 작품의 프랑스어 원제인 의 ‘inconnu’가 담고 있는 뜻을 곱씹어 볼 만하다. 무명, 또는 낯선, 외부인. 프레디의 안나의 마지막 플레이어블 레벨은 전선이 아닌 뉴욕의 길 한복판이다. 전쟁 게임이 그리는 전선 풍경, 그 가능성 전쟁을 다루는 게임, 혹은 게임이 전쟁을 다루곤 한다는 속성은 종종 비난의 대상이 된다. 플레이어가 직간접적으로 살상을 수행한다는 측면과 그 비주얼은 미디어에서 폭력적인 게이머의 이미지를 소비할 때 애용되고는 한다. 때로는 전쟁의 잔혹성을 폭력적인 오락으로 소비한다고 평가받으며, 때로는 현실을 지나치게 극화하고 가벼운 놀이로 전락시킨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원거리 포격 정도를 넘어 초장거리에서의 원격 정밀 타격이 가능해진 현대전의 양상은 ‘비디오 게임처럼 사람을 죽인다’는 비유로 모두를 섬찟하게 한다. 그러나 사실 매체로서의 게임은 전쟁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플레이어가 직접 참여해 경험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매체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수만 명의 목숨을 손에 쥔 지휘관이 될 수도 있고, 직접 전장에 나서는 병사가 될 수도 있고, 원치 않은 전쟁을 견디기 위해 분투하는 평범한 시민이 될 수도 있다. 전쟁과 게임의 오랜 연결고리였던 전략성은, 특히나 지금과 같은 때에는, 전쟁의 경험을 그저 평면적이고 단순한 놀이로 치환하는 수단으로 쓰이진 않는다. 시인들이 아름다운 단어들로 인류 문명들의 위대한 전쟁에 찬사를 보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한 세기 전 일어난 1차 세계대전은 많은 시인들의 생각을 바꾸었다. 윌프레드 오언이 아름다운 단어들로 엮어낸 전쟁의 야만은 이후 수많은 분야의 작품들이 전쟁의 의미를 되묻도록 만들었고, 게임 역시 다르지 않다. <발리언트 하츠>는 전쟁 게임의 전략성을 적에 대한 승리가 아닌 전쟁에 대한 승리라는 목표를 향해 겨누며, 이를 위해 함정을 돌파하고 동료들을 돕는 행위를 수행하게 만든다. 총을 겨눌 대상이 적 병사들이 아님을 알기에, 누군가를 죽이는 행위를 지시하지 않는다. 작품은 캐릭터의 공적과 무훈보다는 개인적인 감정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작품이 1차 세계대전이라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 전쟁의 경험을 표현하기 위해 던졌을 질문들처럼, 게임은 여전히 전쟁이라는 경험을 향해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들을 가지고 있는 매체다. 이는 <21 Days>에서 이주 난민으로 생존해야 하는 21일이 될 수도 있고, <배틀필드 1 Battlefield 1>의 첫 챕터에서 플레이어 사망 시마다 병사의 이름과 생몰연도가 출력되며 다른 병사의 시점으로 넘어가는 연출일 수도 있고, <발리언트 하츠>에서 점점 사람이 줄어드는 제임스의 합주 풍경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전략성이라는 영역을 매개로 가장 전쟁과 닮아있던 게임이라는 매체가 다양한 요소들을 활용해 플레이어에게 제안할 수 있는 풍부한 경험이야말로, 비이성과 욕망을 감싸는 이성과 논리의 포장지를 벗겨낼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Tags: 1차세계대전, 어드벤처, 반전운동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이머) 박해인 게임에서 삶의 영감을 탐색하는 게이머. 게임의 의도와 컨셉을 전달하는 방식들을 분석하는 데에 관심이 많습니다.

  • 리듬 게임, 가장 빈곤해서 가장 자유로운(우수상)

    거듭 말하자면 리듬 게임은 빈곤한 장르다. 그러나 그 빈곤함은 게임 일반에 공통된 특정한 요소를 급진적으로 밀어붙임으로써 세공된 빈곤함이다. 가위바위보를 할 때조차도 우리는 상대와 ‘동시’에 손을 내밀어야 하고, “안 내면 술래”다. 동궤에서 리듬 게임은 유한하고 폐쇄적인 장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유한성과 폐쇄성 덕분에 우리는 극도의 해방감을 체험하게 된다. < Back 07 GG Vol. 22.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Minho Kim Received a master's degree with a thesis on Descartes' The Passions of the Soul, and is currently writing a doctoral dissertation on the development of Derrida's thought. Interested in philosophical criticism of media and culture.

  • 수퍼히어로물의 다음 세대를 건져올린 <디스패치>

    가장 미국적인 문학 장르인 수퍼히어로는 경이(amazing)적 판타지의 장르다. 주인공 히어로와 빌런이 사용하는 초능력이라는 경이 요소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때문에 판타지이며 개연성 대신 핍진성만이 작동하는 장르다. 이 장르는 만화와 라디오 드라마를 거쳐 영상 영화를 지나 게임까지 와 있다. < Back 수퍼히어로물의 다음 세대를 건져올린 <디스패치> 28 GG Vol. 26. 2. 10. 디스패치의 수퍼히어로적 이분법 가장 미국적인 문학 장르인 수퍼히어로는 경이(amazing)적 판타지의 장르다. 주인공 히어로와 빌런이 사용하는 초능력이라는 경이 요소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때문에 판타지이며 개연성 대신 핍진성만이 작동하는 장르다. 이 장르는 만화와 라디오 드라마를 거쳐 영상 영화를 지나 게임까지 와 있다. 애드혹 스튜디오의 2025년작 디스패치(Dispatch)는 수퍼히어로 문학에서 찾기 어려운 약간 독특한 구도를 내세운다. 수퍼히어로 문학을 게임이 풀어낼 때는 전투라는 요소에 초점을 맞춰 히어로 체험을 메인 컨텐츠로 삼는다. 아캄 시리즈는 배트맨의 전투와 수사를 체험한다는 컨셉이고, 마블 스파이더맨 시리즈 역시 스파이더맨의 전투와 웹 스윙을 체험하는 것이 게임의 핵심이다. 반면 디스패치의 히어로 전투는 시네마틱 씬의 중간에 QTE(Quick Time Events)를 입력하는 정도이며 이는 게임의 강점인 체험 컨텐츠라기엔 무리가 있다. 디스패치, 파견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이 게임의 주인공은 히어로가 아니라 히어로를 보조하는 동료다. 히어로의 동료는 보통 조수 혹은 사이드킥(sidekick)으로 불린다. 디스패치의 주인공은 방금 일시 은퇴를 한 히어로지만 다른 히어로의 사이드킥이라기보다는 히어로들에게 임무 정보를 제공하여 임무 지역으로 보내는 임무를 맡은 사람이다.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스파이더맨의 친구 네드 리즈는 이 오퍼레이터 역할을 의자에 앉은 자, Guys in the chair라고 표현했다. 그 말 그대로 주인공 로버트는 책상에서 네트워크 단말기 앞에 앉아 헤드셋을 쓰고 있다. 게임의 주 컨텐츠는 로버트가 들여다보는 화면 안에서만 이루어진다. 메카맨이라는 이름으로 3대째 히어로를 하던 로버트는 메카맨 수트의 파괴로 인해 일시 은퇴하게 된다. 그는 스카웃 제의를 받아 SDN(Superhero Dispatch Network)이라는 회사에 취직해 디스패치 업무를 맡게 된다. 이 회사는 구독제 서비스를 제공한다. 구독 회원들은 앱을 통해 목격 사실을 제보하거나 의뢰를 하고, 회사는 소속 히어로를 현장에 투입하는 일종의 용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히어로 팀에게 임무 위치와 임무 내용을 설명하고 돌발 상황 발생시 추가 정보를 찾아 제공하는 업무를 로버트가 속한 디스패치 부서의 인원들이 맡는다. 그리하여 게임은 두 가지 축으로 돌아간다. 일과를 시작하면 로버트의 단말기 화면에 떠있는 지도 위에 의뢰 핀이 뜬다. 제한 시간 내에 해당 의뢰에서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는 조합으로 팀의 히어로 하나 이상을 선정해 파견(dispatch)한다. 파견된 히어로들이 해당 의뢰를 처리하고 복귀해 한숨 돌리는 동안에도 다른 의뢰가 뜨고, 각각의 제한 시간 내에 의뢰 접수를 하여 성공할 수 있도록 시간 분배와 캐릭터 조합을 행한다. 의뢰 성공의 보상으로 히어로가 성장 기회를 얻으면 그 성장 방향도 결정한다. 이 일과가 게임의 한 축이다. 다른 한 축은 일과 업무가 끝나고 내일 업무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시간에 벌어지는 QTE와 선택지다. 오프듀티 시간에 파괴된 메카맨 수트의 복구 같은 개인사, 담당하는 팀원들을 비롯한 회사 동료들과의 인간 관계가 여기서 진행된다. 이 두 축으로 이루어진 게임 플레이가 하루하루 쌓이면서 선택지에 의한 서사 분기도 이루어진다. 연애는 블론드 블레이저와 인비저갤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동시에 히어로로서는 낙제점인 인비저갤을 어떻게 성장시켜 히어로로 육성하는가 하는 멘토링 임무가 깔려 있다. 그러면서 로버트의 인간상을 고전적이고 윤리적인 ‘트루 히어로’로 할 것인가, 반대로 정의를 위해서는 윤리를 구부릴 수 있는 ‘안티 히어로’로 할 것인가의 선택지도 계속 주어진다. 이는 최후의 결전 후에 메인빌런 슈라우드의 생사를 결정하는 선택이 된다. 플레이 컨텐츠 두 가지, 연애 선택지 두 가지, 멘토링 성공의 이지선다, 윤리 선택지 두 가지, 세상을 선악의 둘 – 영웅과 악당으로 나누는, 물론 중간지대는 인정하지만, 수퍼히어로 장르의 세계관적 특성이 게임 플레이와 서사에도 적용되어 있다. 그리고 본작 디스패치의 특성은 그렇게 나뉜 두 영역을 대표하는 히어로와 빌런 중에서는 주인공이 없다는 점이다. 로버트는 히어로였으나 본작에서는 히어로를 보조하는 ‘의자에 앉은 사람’ 역할을 수행한다. 여타의 수퍼히어로 서사에서는 주변 인물이었던 포지션의 시야가 중심 서사로 이동했다. 이는 수퍼히어로 장르가 꾸준히 발전시킨 현실성 강화 흐름의 한 형태인 동시에, 수퍼히어로 서사의 다음 돌파구를 찾는 시도 중 하나일 수 있다. 현실성을 찾는 수퍼히어로 1939년 수퍼맨이 탄생하면서 수퍼히어로 장르의 신드롬이 일어났다. 초능력을 가진 강력한 영웅이 자신을 상징하는 코스튬을 입고 범죄와 사고를 수습하며 사람들을 돕는다는 서사 장르였다. 당대의 최신 장르로 시작한 만화에서 시작해 라디오 드라마와 영화로 옮겨갔다. 장르의 특징이 서사의 구조에 있다 보니, 그 서사를 살려줄 수 있는 수많은 장르와 결합하면서 혼종 장르가 되었다. 수퍼맨은 SF의 요소를 가져왔고, 배트맨은 탐정 활극의 서사 요소가 들어왔다. 네이머와 원더우먼은 신화에서 가져온 소재였고, 캡틴 아메리카는 전쟁물과 첩보물의 문법을 일부 차용했다. 흥행 면에서 최고 기록을 올린 캡틴 마블 – 현재 명칭 샤잠은 아동 만화의 성격을 표방했고, 코믹 만화의 요소를 본격적으로 가져온 플라스틱맨 같은 예까지 등장하면서, 수퍼히어로 장르는 만화라는 신생 장르를 대표하는 하위 장르로 성장했다. 온갖 장르를 흡수하던 이 황금기를 음역하여 골든에이지라 부른다. 골든에이지는 2차대전의 종전 이후 급격히 사그라들었다. 명확한 선악 대비 구도로 서술할 수 있었던 전쟁에 수퍼히어로 장르가 프로파간다로서 복무한 직후, 만화의 버블 또한 함께 꺼지면서 몰락한 것이다. 하지만 60년대가 되면서 재부흥 시기가 도래했고, 이 두 번째 황금기를 골든 에이지에 이어지는 실버 에이지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도 타 장르의 성과를 차용하는 잡탕 장르로서의 성격이 보였다. 플래시는 물리학의 시간과 속도 개념을 대중 문학의 형태로 번역하면서 SF 수퍼히어로의 계보를 이었고, 리뉴얼된 그린랜턴은 아예 스페이스 오페라의 세계에 수퍼히어로를 넣는 작업이었다. 아이언맨은 역사 속 철가면의 이미지에 과학기술의 외피를 넣은 시도였고, 닥터 스트레인지는 당대 호러 영화의 형식과 사이키델릭 음악의 분위기를 만화에서 접목하는 시도인 동시에 신화 요소 위에 오컬트의 요소가 덧씌워지는 시도이기도 했다. 그리고 60년대의 기술입국 분위기와 포스트모더니즘 분위기의 당대성은 실버 에이지의 수퍼히어로들의 설정을 조금은 더 현실적이게 만들었다. 전 지구의 소리를 다 들을 수 있고 주먹질로 행성을 부술 수 있으면서도 도덕적으로 완벽한 인물인 수퍼맨과, 신체 능력도 직업적 소양도 윤리철학의 관념도 모두 매우 모범적인 완벽한 인물인 캡틴 아메리카의 예시는 골든 에이지 시절의 수퍼히어로에 신화의 성격이 있음을 암시하는 증거다. 실버 에이지부터는 전능한 신과 같은 영웅보다는 제한된 초능력 혹은 인간적 약점이 있어 현실 세계에 접점을 갖는 히어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현실성의 닻’이라고 부르기를 주창하는 이 흐름을 주도한 사람이 스탠 리다. 수퍼히어로의 서사와 설정이 심화 발전되면서, 이 현실성의 닻은 점점 커져 갔다. 70년대부터는 사람들이 비평적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는데, 그 질문은 이랬다. ‘현실이라면, 이런 히어로의 주변 사람들은 빌런에 의해 안전을 위협받을 것이다. 그럼 과연 히어로가 그 모든 주변인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을까?’ 73년에 그 대답이 나왔다. 스파이더맨의 연인 그웬 스테이시가 빌런 그린 고블린의 공격에 의해 사망했다. 사상 최초로 수퍼히어로 장르에서 주요 인물이 죽었고, 이 사건의 충격은 새로운 시대인 브론즈 에이지를 낳았다. * 이 상징적 장면은 영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에서도 동일하게 재현되었다. 시장 상황으로 서술하면 일종의 연착륙, 즉 골든 에이지의 급격한 몰락과는 대비되는, 일종의 성숙기인 이 브론즈 에이지의 특징은 실버 에이지 시대가 던진 화두인 ‘현실감 있는 세계 구축’을 본격적으로 시도했다는 점이다. 점점 동화적인 분위기가 줄어들었고, 등장인물들의 인격적 결점이 부각되었으며, 등장인물의 죽음이나 파멸 같은 소재가 점점 잦아졌다. 사회 이슈를 직접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 또한 이 시기의 특징이다. 1971년의 ‘Snowbirds Don’t Fly’는 그린 랜턴과 그린 애로우 두 사람이 마약 범람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는 내용이다. 같은 해의 스파이더맨에서는 해리 오스본이 마약 중독으로 고통 받는 장면을 내보냈다. 이 두 만화는 검열 코드를 이겨내는 사례로도 많이 인용되지만, 동시에 수퍼히어로 만화가 사회 문제를 반영할 만큼 현실적으로 성숙해졌다는 증거로도 인용된다. 이런 조류가 더 많이 반영되는 동시에 다양성의 가지로 뻗어나간 현재를 일반적으로는 모던 에이지라고 부른다. 명확한 시기 정의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신호탄은 1986년의 ‘왓치멘’으로 꼽는 것이 중론이다. 모순 투성이의 사회에서 히어로는 딱히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증상을 억누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서사적 상상력이다. 그래서 별칭으로는 다크 에이지, 암흑기라고도 부른다. 또한 현대에 들어서면서 영상화의 시도가 늘어났다. 그리하여 현대 영화 장르에서 수퍼히어로를 정착시킨 1989년의 배트맨 영화 또한 어두운 도시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히어로 서사를 사용했다. 탐정 활극 소설이 배트맨의 모태였고 이후 역사가 진행되면서 탐정 느와르 또한 배트맨 서사에 들어왔는데, 그 어두운 테이스트가 그대로 영상으로 이어진 것이다. 더욱더 어두워야 하니 인물의 죽음이나 파멸을 통해 독자에게 충격을 전달하는 기법 또한 이어졌다. 1999년이 되면 작가 게일 시몬은 그웬 스테이시의 죽음 이후 히어로 주변인물의 죽음과 파멸이 지나치게 자주 사용되며 동시에 주로 여성 인물에게 가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성 히어로의 동기 부여나 각성을 위해 여성 인물이 희생되는 이 현상은, 1994년 그린 랜턴의 이야기에서 주인공 카일 레이너의 여자친구가 토막 나 냉장고에 들어가있었던 장면에서 따와 ‘냉장고 속 여자(Women in Refrigerators)’로 명명되었고 곧 프리징(fridging)이라는 약어도 등장했다. 현실감을 높이기 위한 시도 중의 부작용이었다. 현실감을 높이기 위한 시도는 영상화에선 핵심이었다. 몇십 년 전에 디자인된 코스튬은 영상으로 만들어놓으면 촌스럽거나 현실감이 없었다. 때문에 배트맨이건 엑스멘이건 모든 히어로의 영상화 과정에서 코스튬 디자인의 현대화는 필수 작업이 되었다. 미국적 핍진성 추구의 보수성 역사의 흐름은 계속해서 핍진성의 강화, 즉 현실감 강화였다. 그리고 그 첨단에서 디스패치는 기업이라는 조직을 상상한다. 히어로가 일상의 일부가 될 정도의 세계라면 히어로의 활동을 통해 가치 창출과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생길 수 있다. 어벤져스, 저스티스 리그와 같은 히어로 집단이 법인이 된 세상이다. 이 상상력은 새롭지 않지만, 디스패치는 새롭게 만들었다. 한 발 더 나아가 기업이 조직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히어로가 아닌 히어로의 활동을 뒷받침하는 ‘의자에 앉은 자’의 시점으로 게임을 조직한 것이다. 그리하여 디스패치에는 그간 수퍼히어로 장르가 수집해 온 타 장르의 요소가 모두 자본주의적 기업의 아래에 모였다. 메카맨을 비롯한 테크놀로지 계통이 대표하는 SF, 말레볼라가 대표하는 신화와 오컬트 같은 다양한 요소 말이다. 이것 또한 지극히 미국적이다. 다종다양한 인종과 문화와 종교가 모여 있지만 완전히 섞여 온전한 하나가 되지는 않는, 샐러드 보울로서의 미국인 동시에 자본주의적 가치를 추구하는 조직이 이를 모아놓은 것 또한 미국의 모습이다. 동시에 등장인물들이 주고 받는 블랙 유머는 탐정 느와르의 흔적임과 동시에 농담을 중요시하는 미국 문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로버트가 담당하는 Z팀의 성격 또한 매우 자본주의에 포섭되어 있다. 갱생 전향한 전직 빌런들로 이루어진 이 팀의 실적은 매우 낮다. 로버트가 채용되면서 받아든 가장 중요한 임무는 실적 꼴찌인 인비저갤을 온전한 히어로로 키워내는 것인 동시에 Z팀을 회사가 해산하지 않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 멤버 한 명을 해고해야 하기도 한다. 이는 수퍼히어로 장르 자체가 가지는 한계 혹은 보수성을 연상시킨다. 수퍼히어로에는 혁명의 서사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수퍼히어로는 중국 문학의 협객처럼, 공권력이 무력한 자리에서 정의를 행하는 존재다. 혁명 서사로 이어질 법도 한데, 그보다는 현재의 사고와 범죄를 처리하는 서사에 집중한다. 간간이 사회 변혁에 개입하기도 하는 무협 서사와는 달리 수퍼히어로 서사에는 기본 구도를 흔드는 식의 혁명성이 없다. 언제나 사고와 범죄가 있고 도움을 기다리는 무력한 대중이 있는 세계를 상정하고 있는 장르이기 때문에 나오는 보수성이다. 그리하여 디스패치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인 회사, SDN은 물리법칙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Z팀 멤버들이 왜 빌런에서 갱생하여 히어로가 됐는지 그 동기도 다뤄지지 않는다. 전향한 것은 한 것이고, 회사에 들어왔으니 해고되지 않고 성장해야 하며, 해고되면 원한을 갖게 된다. 범죄의 근원을 찾지 않는 수퍼히어로처럼, 디스패치의 회사는 의심의 대상이 아니다. 개헌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미국다운 상상력의 한계이기도 하다. 시선 이동의 가치 한계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넘어가더라도, 시선을 옮긴 것은 중요한 시도다. 모던 에이지의 수퍼히어로 장르는 현재 답보 상태에 있다. 온갖 장르에서 가져온 요소를 엮고 섞어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고, 더 많은 서사를 위해 평행 우주를 만들어냈지만, 이 확장된 세계는 확장성의 맹점으로 인해 진입 장벽이 되어버리는 모순을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만화에서 발생한 양날의 검은 이제 영상에서도 발생했다. 어벤져스 다음 영화를 온전히 이해하고 즐기기 위해서 봐야 하는 이전의 영화와 드라마가 너무 많아지고, 그 각각의 작품이 서로 너무 많은 예고 장면을 보여주면 관객들이 피로해졌다. 서사의 클리셰는 훨씬 오래 전부터 고민의 대상이었는데, 수용자가 장르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하자 클리셰의 부정적 측면이 더욱 크게 다가오게 되는 악순환이 만들어졌다. 수퍼히어로 게임이 맞닥뜨린 벽은 조금 다르다. 게임은 포맷의 획일성 하나만을 고민하는 중이다. 수퍼히어로를 소재로 한 게임이라면 가장 먼저 착안하게 되는 것이 수퍼히어로 체험이다. 당연히 수퍼히어로를 직접 조작하는 것, 즉 전투 위주의 게임 플레이가 주축이 된다. 그리하여 주류는 액션 어드벤처 장르가 되었다. 배트맨, 스파이더맨, 어벤져스 모두가 같은 장르로 만들어졌다. 수집 배틀 장르는 꾸준히 시도되었지만 액션 어드벤처처럼 주류가 되지 못했다. 가장 먼저 시도된 장르인 격투 게임은 장르 자체가 매니아화 되면서 주류에서 밀려났다. 마블 미드나잇 선즈는 전투 위주의 장르이지만 턴제 전략을 기본 시스템으로 하면서 특색을 보였지만 흥행에서 아쉬운 성적을 내면서 다른 시도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본작 디스패치의 이전 세대인 텔테일 배트맨 시리즈 또한 클래식한 어드벤처 장르를 시도했지만 평이한 스토리와 선택지의 무의미함이 발목을 잡았다. 반면 디스패치는 텔테일 배트맨 시리즈의 미흡한 점을 보완한 동시에 아예 히어로를 주인공에서 내려버리는 발상까지 보여주면서 흥행 성적도 올렸다. 액션 장르 외의 어드벤처 형식으로도 충분히 수퍼히어로 게임을 만들 수 있음을 알린 동시에, 서사의 시점을 히어로가 아닌 주변인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다른 형태의 서사를 조직할 수 있음도 증명했다. 배트맨의 집사 알프레드로서 플레이하는 게임도 가능할 수 있다. 혹은 SDN의 CEO가 되어 경영 시뮬레이션을 플레이하는 것도 상상할 수 있다. 게다가 상상을 조금 더 해보면, 현재 답보 상태인 만화와 영상에 건네는 힌트가 될 수도 있다. 최소한 클리셰 변형의 시도 중 하나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조금 더 상상을 넓혀서 비약의 영역으로 간다면, 수퍼히어로 장르 전체가 변화하는 단초일 수도 있다. 모던 에이지의 시작은 정의에 따라 다르지만 80년대의 어느 시점 혹은 90녀대의 어느 시점이다. 이미 30에서 40년 가량 지나왔으니 다음 시대를 그려볼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 그렇다면 어두운 현실 반영으로 시작해 다양한 플랫폼과 형태로 뻗어나간 이 시대의 다음을 어떤 형태로 상상할까가 과제가 된다. 영웅 서사에서 영웅이 아닌 주변인의 시점으로 옮겨간 이 시도는 다음 시대로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이 가장 첨단의 미디어인 게임에서 제시되었다고 해석하면 첨단성에 대한 찬사로도 보일 것이다. 이 장르의 한 팬으로서는 충분히 기대하고 싶다. Tags: 히어로물, 코믹스, 골든에이지, 북미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대담회] 같이 논다는 것의 의미: 골목에서 온라인까지

    우리는 이제 코옵을 장르로서 바라볼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장르로서 코옵의 핵심적 특성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코옵의 핵심 특성이 협업이라면, 협업과 경쟁은 완벽히 구분되는 것일까? 오프라인 코옵과 온라인 시대 코옵의 차이는 무엇일까? 혹 모든 게임 플레이 자체를 기본적으로 코옵이라고 불러야만 하는 건 아닐까? < Back 28 GG Vol. 26. 2. 10. Tags: 코옵, 이경혁, 나보라, 이정엽, 이선인, 헤이즈라이트, 잇테익스투, 웨이아웃, 스플릿픽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isu Kim Studies a range of fields—culture and knowledge, space, and the academic field. Also interested in the history of games and the lives of gamers.

  • 프레임의 너머를 위한 프레이밍 : 「The Star Named EOS 별을 향한 여정」

    C. 티 응위옌은 ‘게임은 여러 행위성 형식을 저장하고 주고받기 위한 하나의 매체’라는 흥미로운 주장을 펼친 바 있다. 게임이란 하나의 도전적 고투를 통해 일시적 몰입을 발생시키는 기입적 매체이며, 그 기입의 중심에는 특정한 행위agency가 있다는 의미이다. 물론 티 응위옌이 다루는 ‘게임’이라는 범주는 비디오 게임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따라서 이 ‘행위’의 범주를 조금 복잡하게 바라볼 필요는 있다. < Back 프레임의 너머를 위한 프레이밍 : 「The Star Named EOS 별을 향한 여정」 22 GG Vol. 25. 2. 10. C. 티 응위옌은 ‘게임은 여러 행위성 형식을 저장하고 주고받기 위한 하나의 매체’라는 흥미로운 주장을 펼친 바 있다. 게임이란 하나의 도전적 고투를 통해 일시적 몰입을 발생시키는 기입적 매체이며, 그 기입의 중심에는 특정한 행위agency가 있다는 의미이다. 물론 티 응위옌이 다루는 ‘게임’이라는 범주는 비디오 게임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따라서 이 ‘행위’의 범주를 조금 복잡하게 바라볼 필요는 있다. 요컨대 프라스카의 주장대로 비디오 게임은 현실에 대한 해석체를 매개로 하는 2차성을 지닌다. 따라서 ‘현실’의 게임 [1] 과 달리, 비디오 게임에서의 행위는 어느 정도 중첩된 경향을 가진다. 이를테면 스포츠인 ‘양궁’에서 활을 쏘는 것은 물리적인 행위일테지만, 「마리오와 소닉 올림픽」 시리즈의 양궁에서는 게임적 메커니즘을 위해 해석된 행위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이렇듯 비디오 게임이 저장하는 ‘행위’는 2차적 매개의 결과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적 거리감을 전제할 때, ‘창작의 행위들’은 대개 게임 메커니즘에 안치시키기에 곤란한 경향을 지닌다. 말하자면 2차적 매개가 가지는 표현의 유사성을 발생시킬 수는 있겠으나, 원본과의 괴리를 지우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이를테면, 「파이널 판타지 6」에 등장하는 캐릭터 ‘리름’의 ‘그리다’ [2] 의 작동 원리는 ‘싸우다’와 별 차이가 없다. 그저 전투 중 해당 이름을 가진 커맨드를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이 때, 우리는 ‘싸우다’가 그 원본성에 해당하는 공격적 행동과 상당히 밀접하다고 느끼는 데에 반해 ‘그리다’에서는 그러한 작동이 정지한다. 물론 이 커맨드의 목적이 적을 공격한다는, 즉 그림 그리기의 본래 목적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영향을 주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QTE의 방식으로 그래피티를 그리는 「젯 셋 라디오」의 경우는 어떠한가? 물론 앞선 리름의 사례보다야 조금 더 ‘그림을 그리는’ 감각을 주기는 한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인식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몇 번의 간단한 조작을 통해 복잡한 결과물이 순식간에 생성되는 이 현상이 현실의 복잡한 ‘그리기’로 즉각 치환되지는 않는다. 이런 면은 흥미로운데, 본 게임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버튼을 눌러 점프 후 난간을 타고 그라이딩’ 역시도 현실에 비해 꽤나 단조로운 조작을 요하나 그래피티 그리기 만큼이나 멀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여기에는 분명 ‘창작 행위’라는 것에 대한 우리의 근원적 인식이 작동한다. 창작의 행위에는 창작자의 자의적 목적성과 행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기를 휘두르거나 점프해 난간을 타고드는 행위들과는 다른 층위를 이룬다. 예를 들어, 무기를 휘두르는 행위는 명백한 목적(적들을 쓰러뜨림)과 행위의 효율성이 전제되어 있다. 따라서 버튼을 눌러 해당 행위가 작동할 때, 우리는 그것이 더 의도적이고 자유로울 것이라는 기대를 갖지 않는다. 그에 반해 창작의 행위에는 창작자(를 조작하는 나)의 자의적 목적성과 그것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더 넓은 범주의 자유가 포함되어야 한다. 따라서 고정된 무브셋moveset으로 재현된 ‘그리기’는 우리의 현실과 지나치게 거리가 있다. 원본의 감각을 시뮬레이트하기에는 너무 먼 곳에 위치한 셈이다. 하지만 여기엔 딜레마가 있다. 비디오 게임이 창작자의 자의적 목적성과 행위의 자유를 담지하는 경우,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메커니즘과 분리되어 작용되곤 한다. 즉, 루두스rudus가 아니라 파이디아paidea의 형국을 띄는 것이다. 가난한 예술가의 삶을 따라가는 게임 「파스파투」의 경우가 그렇다. 물론 게임을 진행하기 위해 플레이어는 계속 그림을 그려야 하지만, ‘무엇을 그렸나’가 게임의 진행에 크게 영향을 주지 못한다. 이 게임에서 복잡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규칙이 규정하는 목적과 무관하다. 이는 플레이어의 자의적 목적을 위한 행위로 명백히 파이디아적이다. 무엇을 그려도 상관없다면 이것은 그저 창작의 툴로 전용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이는 자유로운 건축(또는 조형)을 지원하는 「마인 크래프트」 역시 마찬가지다. 1x1x1의 입방체를 이용해 효율적인 보관 체계만을 이루던, 실제 사이즈의 건담을 만들던, 프로그래밍을 통해 작동하는 계산기를 만들던 그것은 게임이 제공하는 목적 지향의 수행과는 무관하다.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킹덤」에서 걸어다니는 거대로봇을 만들 수야 있겠지만, RTS에서 건물 배치를 ‘예쁘게’ 배치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들 모두 게임의 목적과 크게 조응하지 않는 그저 플레이어의 자의적 욕망에 의한 생산물일 뿐이다. 거칠게 정리한다면, 게임이라는 툴로 만들어진 독립적이고 아름다운 창작물이다. 따라서 비디오 게임, 특히 내러티브 비디오 게임에서 창작의 행위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조금은 복잡한 세팅을 전제한다. 플레이어는 의도와 행위에 어느정도 자의성을 가지고 있되, 그 결과물 중 특별한 형태가 목적을 위해 선별되어야 한다. 루카스 아츠의 「룸」이나 닌텐도의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에서의 연주 메커니즘 또는 「포켓몬 스냅」 시리즈의 촬영 메커니즘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물론 이들 역시 고정적인 대상, 특정한 마법의 주문이나 피사체로 수렴되어 버리는 만큼 기능적인 인상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한다. * 「룸」은 특별한 음계의 조합을 통해 마법을 시전한다. 「Behind the Frame : 가장 아름다운 경치」 「The Star Named EOS 별을 쫓는 여정」은 실버 라이닝 스튜디오Silver Lining Studio의 전작 「Behind the Frame : 가장 아름다운 경치」(이하 BTF)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특정한 창작 행위를 서사 추동의 기본으로 삼고 있는 것에 더해, 방탈출의 메커니즘을 이러한 창작을 위한 중간 단계로 제시한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실버 라이닝 스튜디오의 디렉터 윌슨 옌Wilson Yen은 PocketGamers.biz와의 인터뷰에서 본 게임의 특징 중 하나를 ‘페인팅 메커니즘’을 든다. [3] 그만큼 ‘그리기’의 행위를 강조한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플레이어는 특정 챕터를 클리어하기 위해 그림을 완성해야 하나, 챕터의 시작 시에는 물감의 종류가 부족한 상태다. 물감의 수색이 방탈출의 메커니즘으로 이어지며, 이 과정에 마주하 시각적 정보들이 서사의 빈 부분을 보충하는 식이다. 퍼즐을 풀고 물감을 획득하면 캔버스에 앉아 물감을 직접 발라 그림을 완성해야 한다. 여기서 이 게임의 특징이 발생한다. 플레이어는 이미 스케치가 되어 있는 캔버스에 물감을 직접 찍어 ‘발라야’하는 것이다. PC라면 마우스 포인터로, 콘솔이라면 아날로그 스틱으로, 모바일이라면 터치를 이용해 내부에 색을 채워넣어야 한다. 「BTF」는 이 ‘칠하기’의 과정을 적극적인 태도로 다룬다. 즉 퍼즐이 완료되고 물감이 수집되는 순간에 자동으로(또는 컷씬을 통해) 완성되거나, 포인트 앤 클릭이나 QTE 같은 매개적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직접, 규정된 만큼의 면을, 자신의 손으로 채워넣어야 하는 것이다. 이 명확한 선택은 「BTF」라는 게임의 서사를 온건히 체감하기 위해선 ‘창작의 행위’ 역시 감각적으로 체감해야 한다는 전제로부터 결정된 것으로 여겨진다. 즉 ‘그리기의 행위’는 게임 디자이너가 의식적으로 배치한 중요한 메커니즘인 것이다. 「BTF」는 ‘창작의 행위’를 그 감각의 핵심에 둔다 할 수 있다. 플레이어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퍼즐을 거치고, 스케치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는 캔버스에 포인터를 세심히 점점 채워나간다. 이 과정은 퍼즐을 해결하며 마주했던 방의 풍경들, 사진이나 그림 또는 텍스트 정보들을 다시금 상기하고 정리하는 것을 돕는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게임의 ‘프레임 뒤에Behind the Frame’있는 진실을 탐구할 수 있다. 그리고 완성된 그림이 그러한 진실의 편린과 맞닿아 하나의 서사적 세트를 이룬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흥미로워야 할 과정에는 약간의 어긋남이 있다. 이 ‘창작의 행위’는 시뮬레이트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 쉽게 말해 「BTF」의 페인팅 메커니즘은 그저 ‘색을 찍어 바르는’ 것에 국한된다. 특정한 위치에 올바른 색을 적당히 발라만 놓으면 ‘완성된’ 그림으로 즉시 치환된다. 플레이어는 명암이나 텍스쳐를 위해 물감을 덧대 바를 필요도 없고, 심지어는 제시된 면을 가득 채울 필요도 없다. 따라서 ‘플레이어가 그린 그림’과 ‘서사의 추동을 위해 필요한 그림’은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전자는 그저 후자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흉내내기’에 가깝다. * 「Behind the Frame : 가장 아름다운 경치」는 플레이어의 불완전한 그리기를 완벽한 그리기로 순식간에 바꿔친다. 이 불일치는 「BTF」가 요구하는 과정상의 몰입을 일정량 끊어버린다. 내가 ‘적당히’ 바른 물감이 그럴싸한 그림으로 변화하는 순간, 플레이어는 게임이 제시하는 서사적 추동으로부터 튕겨져 나온다. ‘내가 그린 그림’이 진실의 편린에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미리 그려둔 그림’이 진실의 편린으로 제시된다. 플레이어인 자신은 필요의 과정으로 그것을 (적당히 닮은 정도로) 제시한 것 뿐이다. 물론 비디오 게임의 서사가 모두 경험적 몰입의 과정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러한 작동을 위해 삽입된 페인팅 메커니즘이 그 목적을 배신한다면 조금 다른 문제가 된다. 「The Star Named EOS : 별을 쫓는 여정」 「The Star Named EOS : 별을 쫓는 여정」(이하 EOS)에서 창작의 행위는 그림 그리기가 아닌 사진찍기다. 이런 메커니즘의 선택 대해 프로듀서인 웨이첸 린의 인터뷰가 있다. “(실버 라이닝 스튜디오의) 게임 프로듀서 제레미(창)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사진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된 사진을 받는 순간이 ‘추억’과 ‘인화’를 연결시켜 주었다는 말을 따라, 우리 프로젝트 테마의 중심도 사진이 되었습니다.[Silver Lining Studio] game producer Jeremy [Chang] was deeply influenced by her grandfather during her childhood, sparking a strong interest in photography. (...) The moment of developing film and receiving the printed photos connected 'memories' with 'photographic prints' for her, becoming the theme of our project centered around photography.” [4] 사실상 창작의 행위가 추억과 연결된다는 지점에서 전작인 「BTF」와 연결된다. 따라서 그것이 담지하고 있는 서사의 형태나 퍼즐의 경향을 제외하면 「EOS」는 「BTF」와 동일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저 물감 찾기가 사진의 피사체 찾기로 변경된 것 뿐인데, 어차피 ‘창작물의 완성을 위한 재료 수색’이라는 사실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EOS」가 플레이어로 하여금 사진을 직접 찍도록 만드는 것은 「BTF」에서의 ‘그리기’와 동일한 목적-퍼즐의 과정에서 획득한 서사의 편린들을 묶어 하나의 진실로 재구성하기 위해 부여되는 여유의 시간-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 「The Star Named EOS : 별을 쫓는 여정」에서 플레이어는 어머니의 행적을 쫓으며 어머니의 사진과 유사한 대상을 찍어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두 작품간에는 다른 체감이 존재한다. 「EOS」의 ‘사진 찍기’ 역시 그 자체로 기억의 원본은 되지 않는다. 이 게임에서 사진을 찍는 행위는 그 자체가 원본이 되기 보다는 이미 원본으로 제시되는 ‘어머니의 사진’의 재현물이다. 주인공은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어머니가 찍은 사진과 ‘거의 유사한’ 사진을 찍으려 한다. 따라서 결과물은 원본이 되는 ‘어머니의 사진’과 그 재현물인 ‘주인공(과 플레이어)의 사진’으로 양분된다. 그럼에도 이 체감은 전적으로 「BTF」의 그것과는 달리 작동하는데, 「EOS」에서는 주인공과 플레이어의 재현물이 분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핵심은 분리가 발생하는 위치다. 「BTF」에서는 플레이어의 그림과 주인공의 그림이 분리되며, 따라서 게임의 내부에 존치되는 것은 주인공의 그림으로 한정된다. 플레이어의 그림은 게임의 내부에 머무르지 않는 일시적인 환영이자 ‘흉내’였을 뿐이다. 그에 반해 「EOS」의 사진은 게임의 내부에 머무르며 그것이 ‘재현’의 위치에서 서사를 추동하는 장치가 된다. 특히 「EOS」의 ‘앨범’은 이 차이를 더욱 명확하게 만든다. 플레이어는 챕터의 클리어를 위한 사진이 뿐만 아니라 스테이지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자유롭게 찍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게임 내부의 앨범에 남는다. 이를 통해 진행을 위한 정확한 재현물과 플레이어의 자의적/자유로운 창작물이 공존한다. 그리고 이것이 「EOS」는 「BTF」가 머뭇거렸던 지점을 뛰어넘도록 돕는다. 이 선택을 통해 창작의 행위를 게임의 메커니즘과 조금 더 확고히 조응시키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 플레이어는 자유로이 사진을 찍을 수 있고, 그 결과물은 온건히 앨범에 남는다. 부자유의 가능성 실버 라이닝 스튜디오의 이 두 게임의 목적은 서사의 내부로 플레이어를 끌어들여 ‘자신의 현실처럼’ 체험시키는 것이다 [5] . 이 때 창작의 행위는 서사의 이면에 있는 진실을 인식하기 위한 핵심적 행위로 작동한다. 이러한 전제를 위해 게임 메커니즘은 플레이어/캐릭터 간 행위가 분리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창작의 행위’가 내러티브 비디오 게임의 내부에서 온건히 기능하기 위해서는 플레이어 자신의 ‘창작 행위’가 서사의 추동에 영향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자의적이고 자유로운 창작 행위가 반복할 수 있다면 ‘창작의 행위’에 대한 체감의 정도는 증가한다. 흥미로운 것은 「BTF」와 「EOS」 간의 결과적인 차이를 유발한 것은 그 자유로움이 아니라 제약이라는 점에 있다. 결국 「EOS」가 「BTF」의 한계를 돌파한 결정적 요인은 ‘회화’의 방식을 ‘사진’의 방식으로 전환한 부분에 있다. 이 때 플레이어의 조작계를 통해 상대적으로 ‘다양한 것’을 산출할 수 있는 그리기의 행위는 오히려 내적 추동을 위한 ‘정확한 상’으로부터 상당히 동떨어진 방향으로 이끌기 쉽다. 「BTF」는 이러한 미끄러짐을 ‘자동적 원본 제시’라는 방식으로 돌파하려 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분리라는 한계지점을 낳은 셈이다. 「EOS」가 채택한 사진이라는 방식은 (게임이 재현현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회화의 행위성에 비해 가능성의 폭은 적을지라도, 그것이 필요로 하는 최종적인 상에는 언제나 근접한 결과를 낼 수 밖에 없다. 어쩌면 비디오 게임이 서사 추동의 메커니즘으로 담지할 수 있는 창작의 행위는 이러한 고리로부터 완전히 이탈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루두스의 게임은 ’완전히 개방된’ 자유로운 창작이라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모든 논의를 언제나의 그 테마, 비디오 게임에서의 자유라는 것과 연결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완전한 자유가 그럴싸한 아름다움을 만들어주는가, 아니면 제시된 한계가 ‘통합적인 상으로의’ 아름다움을 만들어주는가? 완전한 창작의 행위를 담지하는 루두스는 기술적 한계지점인가, 아니면 불필요의 영역인가? 실버 라이닝 스튜디오의 게임들은 어쩌면 의도치 않게 이러한 질문의 대답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1] 이를테면 스포츠, 도박, 테이블 게임 등. [2] 「파이널 판타지 6」의 캐릭터 중 하나인 ‘리름’의 특수 커맨드. 전투 중 적 캐릭터의 모습을 그려서 해당 캐릭터가 가진 능력을 하나 발동시킬 수 있다. [3] “비하인드 더 프레임의 독특한 두 가지 요소는 페인팅 메커니즘과 2D 360도 파노라마입니다. 전자를 통해 플레이어는 주인공의 모든 작품을 직접 칠하게 됩니다.Two things we found that make Behind the Frame unique are the painting mechanism and the 2D 360-degree panorama. In the former, we let the players paint whatever the main character paints.” ( https://www.pocketgamer.biz/importance-storytelling-silver-lining-studio/ ) [4] gameradar.com ‘The Star Named EOS is a beautiful, deliberate puzzle game where most everything is "a meaningful clue"’ ( https://www.gamesradar.com/games/puzzle/the-star-named-eos-is-a-beautiful-deliberate-puzzle-game-where-most-everything-is-a-meaningful-clue/ ) [5] 실제로 윌슨 옌은 그러한 목적이 있다는 의미의 이야기를 한 바가 있다. “이 모든 결정은 플레이어가 마치 스토리를 체험하는 것처럼 몰입감 있는 게임 경험을 제공하려는 매우 단순한 이유에 기반했습니다.We made all these decisions based on a very simple reason, to provide an even more immersive gaming experience as if the players live the story.” ( https://www.pocketgamer.biz/importance-storytelling-silver-lining-studio/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평론가) 이선인 만화와 게임, 영화를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합니다. MMORPG를 제외한 <파이널 판타지> 전 시리즈 클리어가 라이프 워크입니다. 스팀덱을 주로 사용합니다.

  • 미연시는 시뮬레이션의 꿈을 꾸는가

    그리고, 1992년 <동급생>(同級生, elf, 1992)이 출시되었다. < Back 미연시는 시뮬레이션의 꿈을 꾸는가 27 GG Vol. 25. 12. 10.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이라는 단어의 조합 ‘미연시’라는 단어가 있다.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이란 게임 장르를 지칭하는 단어로 이 장르는 코어한 팬층이 존재하며 지금도 계속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게임의 “장르”가 대부분 그렇듯이 이 미연시 역시 엄밀하게 구분되어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많은 사람들이 게임의 장르를 구체적으로 분류하려고 시도를 했으며 대부분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는데, 비슷한 상황으로 “미연시”라는 장르에 대해서도 이 장르에 대해서 들었을 때 떠올리는 게임들이 각기 다를 가능성이 높다. 제작자가 “이것은 미연시입니다.” 라고 하면 미연시이고 아니다 라고 하면 미연시가 아니다 라는 무난한 결론을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먼저 미연시 라는 단어가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통용하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일본에선 이런 단어를 안쓰나요? 라는 의문점이 떠오를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일본에서는 연애시뮬레이션(恋愛シミュレーションゲーム) 이란 단어를 먼저 사용하였었으며 우리가 흔히 미연시라고 통칭하는 장르의 게임의 역사가 깊은 만큼 다양한 게임이 나왔기 때문에 요즘은 연애시뮬레이션보다는 해당 장르에서 발전된 다른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그 단어 역시 어덜트 게임(アダルトゲーム), 에로 게임(エロゲ), 걸 게임(ギャルゲー), 미소녀 게임(美少女ゲーム), 비주얼 노벨(ビジュアルノベル), 노벨 게임(ノベルゲーム)등 해당 장르를 포함하거나 가리키는 단어들이 엄밀하게 구분되지 않고 사용된다. 근래에 커지고 있는 영어권 시장에서는 Dating Sim 이란 장르가 우리가 부르는 미소녀 연애시뮬레이션에 가장 가까운 것을 가리키는 단어가 될 것이다. 물론 이런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한국에서 부르는 “미소녀”와는 거리가 있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다시 미연시라는 장르로 돌아와 국내에서는 이러한 연애 이야기를 다루는 게임들을 미연시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분류는 장르적 구분이 엄밀하지 않다. 시뮬레이션이란 이름으로 캐릭터의 전투와 육성 시스템을 넣었지만 그 수준이 장식인 정도의 게임도 있을 수 있고, 야한 장면이 존재하는 게임이지만 그냥 야겜이라고 부르기 민망해서 미연시라고 부르는 게임들도 존재한다. 아니면 그냥 야한 장면이 없는 연애를 다룬 게임을 미연시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연시라고 부르는 게임에서 ‘미소녀’와 ‘연애’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시뮬레이션’은 미연시의 어떤 부분에서 찾아 볼 수 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한 손쉬운 방식이라면 역시 그 뿌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미연시의 뿌리를 국내에서 찾아보자면 국산 PC 게임에서는 <캠퍼스러브스토리>(남일소프트, 1997), <부킹맨>(FEW, 1997), <스카드젬>(아트림미디어, 2001)등이 나올테고 온라인게임으로 넘어가면 NPC와 쌓아가는 시스템이나 호감도가 존재하는 현재의 캐릭터 뽑기 게임들도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연애 대상으로서의 ‘미소녀’라는 단어를 제외한 연애 시뮬레이션으로 가면 <구운몽-어느 소녀의 사랑이야기>(네오앨리스, 2014)이나 <수상한 메신저>(체리츠, 2016)등을 언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근래에는 한동안 기세가 죽었다고 여겨지던 비주얼노벨 장르의 게임들이 주문형 게임 플랫폼을 중심으로 외산과 국산을 가리지 않고 활발하게 출시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사실 국내에서 국산 게임으로 미연시의 계보를 그리기는 힘든 부분이 있다. 꾸준히 한 장르를 제작하는 크리에이터가 드물고, 각각의 게임들이 국내의 다른 게임의 영향보다는 외산 게임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장르에 한해서라면 그 뿌리를 일본으로 찾아가는 것이 맞다. 연애시뮬레이션의 뿌리 뿐만 아니라 일본의 성인게임은 서브컬쳐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여러 가지 문화코드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성인용 게임 안에 등장한 캐릭터의 원형이나 스토리텔링 방법론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거리가 많겠지만 지면이 부족할 가능성이 높고, 필자 역시 성인용 게임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정리는 다른 지면, 다른 분에게 맡기고자 한다. 우선은 연애시뮬레이션이 시뮬레이션을 다루는 형식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해보자. 미연시라는 장르의 탄생 장르란 이름의 미연시 탄생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일반적으로는 해당 장르명을 전면에 내세운 대표 사례들인 <두근두근 메모리얼>(ときめきメモリアル, KONAMI, 1994) 이나 동시기에 나온 <안젤리크>(アンジェリーク, KOEI, 1994) 정도를 이야기하겠지만, 이 두 게임 역시 일반적인 연애 시뮬레이션으로 인식되는 게임들의 역사의 흐름에서 앞부분이 아니라 중간에 위치해 있다. 그렇다 보니 연애를 주요 소재로 삼는 게임을 찾아보려면 좀더 앞의 역사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 보통 일본 게임사를 살피는 시도는 가정용 콘솔 게임을 중심에 두곤 하는데, 지금까지도 시장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콘솔시장에 중심을 두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연애 게임의 계보를 살피려면 PC게임의 역사를 함께 확인해 봐야 한다. 8 0~90년대의 일본 개인용 컴퓨터 환경은 다른 나라의 개인용 컴퓨터 환경과는 크게 달랐다. 개인용 컴퓨터는 기본적으로 업무를 하기 위한 장비이고, 영어로는 일본어 업무를 처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로 개인용 컴퓨터 환경이 인해 일본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국제규격으로 표준 언어 코드 체계가 통일이 되기 전까지는 독자적인 언어코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일본의 개인용 컴퓨터 환경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환경이 아니라 일본어 표시를 지원하는 독자규격 PC와 운영체제 소프트웨어가 갈라파고스처럼 독자적인 생태계를 형성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PC-88 / PC-98 이었다. 하지만 전세계에서 그랬듯이 개인용 컴퓨터로 업무만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개인용 컴퓨터로도 게임을 즐겼으며, 가정용 게임기처럼 개발킷이 따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컴퓨터 그 자체로도 소프트웨어 개발이 가능 했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게임을 만들 수 있었다. 이런 PC환경에서 만들어져 인기를 끈 게임들이 가정용 게임기로 이식되곤 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게임을 만들어 출시 할 수 있었던 점이다. 가정용 게임기 시장은 플랫폼 홀더가 게임의 출시를 강하게 관리했기 때문에, 게임을 자유롭게 출시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개인용 컴퓨터 시장은 게임의 출시에 허락이 필요하지 않았는데 (물론 이후 심의단체가 생겨나면서 지금 시점에서 보기에 무모할 정도의 소재를 다룬 게임들은 안 나오게 된다.) 이러한 특징은 가정용 게임기에서는 다루기 힘든 소재의 게임들이 PC 게임 시장에 출시될 수 있게 만들었다. 성인 게임 등장 성인용 게임은 간단한 규칙에 야한 그림만 붙이면 만 있으면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인식이 있어 초기 게임 개발사들의 적잖은 시도들이 있었다. 그런 흐름 중에는 술자리에서 문란하게 노는 문화들을 컴퓨터 게임으로 옮기는 경우도 있었다. 일본에는 “야구권(野球拳)”이라는 놀이가 있는데, 단순한 가위바위보를 통해 진 사람이 걸치고 있는 옷을 하나씩 벗는 일종의 술자리 벌칙 게임이었다. 최초의 성인용 게임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주로 언급되는 것이 이 '야구권'을 컴퓨터용으로 옮긴 <허드슨의 야구권>(野球拳, HUDSON) , 1981(추정))이다. 허드슨은 2012년에 코나미에 인수되기 전까지도 유명한 게임 회사 중 하나였는데, <허드슨의 야구권>은 텍스트를 이용한 이른바 아스키 아트(ASCII Art)라고 부르는 트릭으로 여성을 화면에 그린 뒤, 가위바위보 게임에서 이기면 텍스트로 만들어진 야한 그림을 볼 수 있는 게임이었다. 동 시기에 나온 코에이의 <나이트라이프>(ナイトライフ, KOEI, 1982)가 최초의 성인용 게임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는데, <나이트라이프>는 게임이라기보다는 성행위의 체위를 알려주는 일종의 교양 소프트웨어였기 때문에 게임으로 보기 힘들다는 의견도 있다. 개발사 이름이 익숙하실 텐데 '그 코에이인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삼국무쌍> 등으로 유명한'그' 코에이가 맞다. 초창기의 이러한 시도들 이후 PC게임 소프트웨어 시장에는 성인용 소프트웨어가 무수히 쏟아졌다. 야한 장면을 모아놓은 사진집 소프트웨어나 간단한 퍼즐 게임을 풀면 야한 사진을 볼 수 있는 게임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초기 게임들이 단순한 포르노에 가까운 사진집들이었다면, 이후에는 좀더 스토리텔링에 무게를 둔 성인용 어드벤처 게임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일본의 어드벤처는 미국의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와는 다른 형태로 발전했는데, 미국 어드벤처 게임들이 포인트 앤 클릭, 텍스트 직접 입력 인터페이스 중심의 게임이었다면 일본의 어드벤처 게임들은 화면 안에 캐릭터가 나오고 선택지가 등장하는 형태로 발전한다. 성인용 게임을 분류하는 사람들이 일컫는 '코에이 성인용 게임 3부작'이 있는데, 앞서 언급한 <나이트라이프>와 함께 <단지처의 유혹>(団地妻の誘惑, KOEI, 1983), <네덜란드 아내는 전기 뱀장어의 꿈을 꾸는가>(オランダ妻は電気ウナギの夢を見るか?, KOEI, 1984)에 이르러서는 좀 더 게임스러워지고 설정도 복잡해 진다. <단지처의 유혹>은 주인공이 여성과 관계를 가지는 보상이 주어지는 형태이긴 했으나, 장면 자체는 자체 규제를 거쳐 직접적으로 행위가 묘사되지는 않았다. 게임 화면은 당시 유행하던 3D 던전 게임의 인터페이스에 기반했다. * <단지처의 유혹> 플레이 장면 1980년대의 성인용 게임은 야한 이미지를 보상의 개념으로 제공하는 게임들이 많았으며, 이야기가 중심이고 야한 이미지는 덤인 정도의 어드벤처 게임, 혹은 성인용 비디오를 컴퓨터로 옮긴 시도들이 상당수 존재했다. 어드벤처 게임들은 선택지를 통해 플레이어가 게임을 진행하는 형식이었고, 이런 형태의 진행은 게임의 시나리오에 플레이어가 개입하여 결과가 바뀌긴 했지만 이러한 게임들을 시뮬레이션으로 인식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성인용 게임 중에 본격적으로 시뮬레이션으로 인식하게 되는 게임들은 이후에 등장한다. 연애를 시뮬레이션하다 연애시뮬레이션의 초기 형태를 띤 게임으로 <도쿄 난파 스트리트>(TOKYOナンパストリート, ENIX, 1985) 가 주로 언급되는데 이 게임 제목에 등장하는 난파(ナンパ)라는 단어는 남성이 여성에게 교제 혹은 성행위를 목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뜻하며 헌팅이라는 표현으로 번역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단어라 부가 설명을 덧붙이자면 일반적으로 호쾌한 혹은 불량스러운 남성을 지칭하는 일본의 표현인 경파(硬派 – 코우하로 발음)와 그 반대편에 있는 여성을 밝히는 남성을 지칭하는 연파(軟派 – 난파로 발음)라는 단어가 존재했는데 여기서 난파라는 단어가 여성을 꼬시는 행위 자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변했다고 인식하고 있다 . 요즘으로 치자면 “여미새”정도로 번역할 수 있지 않을까. (경파에 대한 용례는 가까운 예로 인기있는 고전게임 시리즈인 <열혈경파 쿠니오군> 시리즈를 떠올릴 수도 있다. 난파는 후술할 동급생의 실행 파일명이기도 하다.) '여성을 꼬셔서 에로틱한 상황을 연출해 야한 이미지를 본다' 라는 게임이 기존에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일정 금액을 가지고 특정 장소로 이동하여 캐릭터를 만나 이야기 속에서 선택지를 골라 데이트 중 여성의 호감도를 얻고 야한 상황을 연출하는 것에 이어 결혼까지 가는 흐름은 이후 나오는 연애시뮬레이션 게임 구조의 기초가 여기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의 개발사 에닉스 역시 일본 게임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친숙한 이름인데, 스퀘어를 합병하여 스퀘어 에닉스로 사명을 바꾼 그 에닉스이며, 개발협력에는 호리이 유지가 올라가 있기도 하다. * <도쿄 난파 스트리트> 플레이 장면 성인용 게임들은 이후에도 활발히 나왔는데, 그다지 의미 없는 선택지들과 수위 높은 야한 장면이 연출되는 단순한 어드벤처 게임부터 나름 미스테리처럼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만 야한 장면이 존재하는 이야기 중심의 어드벤처 게임들이 있었다. 이런 어드벤처 장르의 게임 외에도 퍼즐게임이나 테이블 게임에서 승리하면 상대방 여성이 옷을 벗는 연출로 야한 장면을 “보상”의 감각으로 제공하는 게임들이 꾸준히 나왔는데, 점차 RPG나 시뮬레이션 같이 굳이 야한 장면이 필요 없는 장르의 게임에서도 미소녀와 성인용 이미지를 추가한 다양한 장르의 성인용 게임들이 나오는 흐름을 맞는다. 성인용이 아니더라도 미소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다양한 장르의 게임들도 나타났다. 인기있던 성인용 게임들이 이미지의 수위를 낮춰 가정용 게임으로 이식되는 경우들도 존재했다. 이 무렵의 게임 중 특히 주목할 부분은 육성 시뮬레이션 장르의 게임들이다. 장르의 시발점이자 대표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1991년 작 <프린세스 메이커>(プリンセスメーカー, Gainax, 1991)는 어린 고아를 딸로 삼아 10년간 키우는 게임으로 어떻게 육성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파라미터가 변동하며 이를 통해 다양한 엔딩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인기를 끌었다. <프린세스 메이커>의 개발자인 아카이 타카미는 게임 개발 회고에서 자신은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서 전투보다 부하 육성이 더 좋았었고 이것으로 게임을 만들고자 했는데, 사내에서 여성의 일생을 다루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어 딸을 키우는 게임을 만들게 되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프린세스 메이커>의 특징은 파라미터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직업을 가지게 되는 직업 엔딩과 별개로 게임의 진행과 능력치에 따라 바뀌는 결혼 엔딩이 따로 존재했다는 점이다. 연애에 대한 시뮬레이션이라 부르기는 어렵지만 플레이의 결과로 만들어진 수치에 따라 연애의 결과가 나온다는 점은 주목해볼 만 하다. 국내에도 소개되었던 뒤이어 나온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 <탄생>(誕生 〜Debut〜, Headroom/NEC Avenue, 1993) 이나 <졸업>(卒業, Headroom/Japan Home Video, 1992) 같은 게임들은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의 숫자가 늘었다. <프린세스메이커>와 <탄생>, <졸업> 모두 직접적인 성 묘사가 없었지만 플레이어와의 결혼과 같은 엔딩이 존재하는 것처럼 여성 캐릭터 - 플레이어 관계에 대한 묘사가 연애 혹은 유사 연애로 들어가고 있어 이후 미소녀 게임들에 영향을 준 바 있다. 그리고, 1992년 <동급생>(同級生, elf, 1992)이 출시되었다. * <동급생> 커버 이미지 연애 어드벤처로 분류되어 있는 게임이긴 하지만 연애시뮬레이션으로 분류되기도 하는 이 게임의 인기와 영향력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졸업>과 <탄생>의 원화를 담당했던 타케이 마사키가 디자인한 캐릭터들은 지금까지의 게임과 달리 다양한 구도와 맥락의 이벤트 씬 을 추가해 캐릭터의 설득력을 늘려 나갔고, 게임의 시스템 역시 매우 높은 자유도를 갖도록 디자인되었다. 고정된 이벤트들이긴 하지만 플레이어는 2D로 이루어진 도시의 지도에서 자신의 시간과 자금을 관리하며 여성과 이벤트를 진행하고 최종적으로 야한 이미지를 볼 수 있었으며, 반대로 매일 방에서 침대를 클릭하면서 잠만 자면서 아무것도 안하고 게임의 엔딩을 보는 것도 가능할 정도로 자유도가 높은 게임이었다. 이렇다 보니 한정된 시간과 자금으로 최대한 많은 여자와 관계를 맺는 파고드는 공략을 하는 이용자도 존재했다. * <두근두근 메모리얼> PC엔진 버전의 커버 초반에 이야기했듯이 1994년엔 본격적으로 연애시뮬레이션이란 장르를 표방한 <두근두근 메모리얼>이 등장했다. 성인용 게임이 아니라 전연령으로 발매되었으며 PC용이 아니라 가정용 게임기인 PC엔진용으로 출시되었다. <두근두근 메모리얼>은 이후 다른 게임기로 이식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 게임의 장르명은 연애시뮬레이션이긴 했지만 개발자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여성과의 연애보다는 학창생활을 시뮬레이션하는 것에 가까웠다. 게임의 목표가 게임안에 등장하는 다양한 여성중 한 명을 선택해 연애를 하는 것이었지만 그를 위해 본인의 파라미터를 성장시켜야 하는 육성시뮬레이션적인 요소가 강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 게임은 대 히트를 쳤고, 등장하는 히로인 캐릭터들 역시 크게 인기를 끌며 100만단위의 판매량을 달성했다. 이전의 미소녀를 대상으로 한 연애 게임들이 PC 시장을 중심으로 판매되어 큰 히트작으로 알려지더라도 판매량이 10만단위였던것을 생각하면 이 수치는 굉장히 큰 수치였으며 100만단위의 판매량을 만들어낸 연애를 소재로 한 첫번째 게임이 되었다. 이후 연애를 그리지 않더라도 이러한 시뮬레이션 장르에 미소녀가 나오는 다양한 게임들이 가정용 게임기로 출시되는 계기가 되었다. *< 안젤리크> 패키지 아트 미소녀란 이름을 앞에 붙일 수는 없지만 1994년 코에이에서는 여성 플레이어를 대상으로 한 연애시뮬레이션 게임이 나왔다. <안젤리크> 역시 스스로를 연애시뮬레이션으로 분류하였으며, <두근두근 메모리얼>과는 달리 <안젤리크>는 배경을 판타지로 옮기고 주인공 여성 캐릭터는 여왕후보로 다른 후보와 경쟁하며 수호성들의 도움을 받아 행성을 육성해서 여왕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당시 개발 상황에 관한 인터뷰를 들여다보면 시나리오만으로는 게임성이 충분하지 않아 여왕 후보 2명을 두어 경쟁시키고, 수호성과 협력하여 행성을 발전시킨다는 건설운영 시뮬레이션 시스템을 추가해 완성된 형태가 되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안젤리크>가 가진 연애시뮬레이션으로서의 성격은 연애 자체를 시뮬레이션했다기 보다는 연애 요소를 가진 시뮬레이션 게임이란 의미에 가까웠을 수도 있겠다. 시뮬레이션에서 이야기로 <두근두근 메모리얼> 이후 다양한 육성 시뮬레이션이 미소녀를 다루며 많은 게임이 나왔지만 전반적으로는 성인용 게임보다는 미소녀를 다룬 다양한 게임이 더 주목받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Leaf”사의 게임들이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전의 어드벤처 게임들이 캐릭터와 배경, 스탯이 보이는 3D 던전 게임 느낌의 게임화면을 바탕으로 작은 대사창에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형태였다면, Leaf의 <시즈쿠>(雫, Leaf, 1996), <키즈아토>(痕, Leaf, 1996)는 성인용 게임에서도 캐릭터와 스토리에 비중을 좀 더 주며 화면의 전체를 덮는 형태의 이야기를 전달하게 된다. 이러한 움직임은 이러한 미연시 장르의 게임이 본격적으로 읽는 게임으로 변화함을 보이는 상징적인 변화이기도 하다. * 좌 , 대사창 중심의 게임 진행과 우 의 화면을 덮는 게임 진행 한편 트루 엔딩이란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인데, 단순히 히로인을 선택해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으로 끝이 아닌, 개발자가 제시한 진정한 결말이라는 것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후 스토리에 중심을 둬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Key사의 <카논>(Kanon, Key, 1999)이나 <클라나드>(CLANNAD, Key, 2004), 등이 등장하고 연애를 다루지는 않지만 <슈타인즈게이트>(STEINS;GATE, 5pb, 2009)에서는 트루엔딩에 도달하기 위한 반복 플레이를 루프라는 형태로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이처럼 미연시에서는 게임 속 여성 캐릭터와 자신과의 이야기를 즐기는 것이 아닌 게임 안에서 전체 캐릭터의 이야기를 모두 본 후 전체 이야기의 진정한 결말에 도달하는 형태의 어드벤처가 일반적인 형태가 되어갔다. <선택지의 선택사>에서 저자 시모쿠라 바이오는 로컬 플래그와 글로벌 플래그라는 개념을 이야기한다. 선택지 기반 어드벤처 게임들은 선택지에 따라 플래그라 부르는 게임 시나리오의 조건 스위치를 켜고 끄는데, 로컬 플래그가 한 시나리오 안에서만 동작하고 그 밖에서는 동작하지 않는 플래그라면 글로벌 플래그는 게임 전체에서도 관리되는 조건을 가리킨다. 이를 통해 어드벤처 게임들은 트루 엔딩같은 개념이나 엔딩을 봐야 열리는 다른 시나리오를 다루는 플래그를 글로벌 플래그로 분리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플래그는 <당신과 그녀와 그녀의 사랑>(君と彼女と彼女の恋。, Nitroplus, 2013)이나 <두근두근 문예부>(Doki Doki Literature Club!, Team Salvato, 2017) 처럼 메타픽션을 연출하려면 반드시 필요하며, 미소녀 연애시뮬레이션 게임이 선택지를 통한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작가가 제시하는 엔딩이 중심이 되고 플레이어는 캐릭터를 좋아하는 형태로만 남게 되는 시스템을 만든다. 결국 미연시의 “시뮬레이션”부분은 각 게임들은 시뮬레이션이란 단어를 자의적으로 다뤄왔다고 밖에 할 수 없겠다. 그 시뮬레이션은 학창 시뮬레이션일 수도, 전략 시뮬레이션일수도, 육성 시뮬레이션의 그것이었을 수도 있었지만 그 게임 안에 연애는 존재하였고, 이러한 연애요소들은 지금도 캐릭터 게임에서 유사한 시스템으로 제공되고 있다. 하지만 시뮬레이션에 대해 이렇게 접근해 볼 수도 있다. 미연시 시스템을 플레이어 캐릭터의 스탯 달성 여부로 연애 성공을 판단하는 방식과, 플레이어의 선택을 플래그로 관리하는 방식으로 나누는 것이다. 이 중 스탯을 관리해서 연애를 달성하는 게임만이 엄밀하게 연애를 시뮬레이션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키메키 메모리얼>이 등장한 이후 30년동안 한국에서 게임 안의 캐릭터와의 연애를 그린 게임들을 미연시라고 불렀던 이유는 그것이 캐릭터의 수치를 성장시키는 것이든, 시나리오 라이터가 준비한 이벤트를 보며 선택을 하는 것이든 본인이 선택한 선택지를 통해 캐릭터와의 연애가 진행되는 상황을 시뮬레이션으로 받아들였던 시기가 존재하였었던 것이 아닌가 라고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서 연애시뮬레이션이란 장르는 플레이어가 캐릭터와 유사 연애를 즐기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게 되었다. 현대의 미연시에서 플레이어들은 시나리오 라이터가 제시하는 트루 엔딩까지, 게임이 준비한 모든 이야기를 읽어 나간다. 그리고 게임이 끝난 뒤에는 게임 바깥에서 캐릭터를 소비한다. 결국 시뮬레이션이란 단어는 흔적기관으로만 남아 이 장르를 지키고 있는 것 아닐까.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개발자, 연구자) 오영욱 게임애호가, 게임프로그래머, 게임역사 연구가. 한국게임에 관심이 가지다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2006년부터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있다. 〈한국게임의 역사〉, 〈81년생 마리오〉등의 책에 공저로 참여했으며, 〈던전 앤 파이터〉, 〈아크로폴리스〉, 〈포니타운〉, 〈타임라인던전〉 등의 게임에 개발로 참여했다.

  • 남성향 연애 게임에서의 '사랑'

    사랑을 게임 속에 재현해보고자 처음 시도됐던 남성향 연애 게임은 사랑 그 자체보다도 점차 게이머의 즐거움을 유발할 수 있도록 ‘게임성’에 집중하고자 했고, 이는 어느 정도 연애 게임의 진화된 모습으로 정착될 수 있었다. < Back 남성향 연애 게임에서의 '사랑' 16 GG Vol. 24. 2. 10. 디지털 게임에서 사랑을 가장 중심으로 삼는 장르는 역시 연애 게임일 것이다. 2018년도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실시된 닛케이 신문과의 연계 워크숍에서 대학생들이 연애 게임에 대한 조사 1) 를 실시한 바 있다 . 이 조사에 응답한 사람의 52%가 연애 게임을 해봤다고 진술했다. 절반이 넘는 수치이다. 조사를 주도한 학생들은 응답 결과와 함께 응답자들의 짧은 인터뷰, 연애 게임 시나리오 라이터의 의견을 종합해, 연애 게임의 인기 요인을 ‘게임에서만 가능한 연애’와 ‘스토리나 캐릭터에 매력을 느낀다’로 보았다. 이들은 ‘연애 게임의 고유성’을 통해 연애의 이상을 더 가깝게 느끼게 해주고, 연애의 형태가 이로부터 진화하고 있다고 결론짓는다. 이들은 단순히 연애나 사랑을 경험하거나 더 잘하기 위해 연애 게임을 즐기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셈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게임 속 연애를 현실 연애의 간접 경험이 아닌, 게임 플레이 그 자체로 본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연애 게임은 연애와 사랑을 어떻게 다루고 있기에 이러한 해석을 할 수 있었을까? 앞서, 연애 게임이라는 장르를 정의하는 것은 꽤나 난제다. 큰 하위 장르로는 크게 연애 어드벤처와 연애 시뮬레이션이 있다. 우선, 연애 어드벤처는 연애를 테마로 한 텍스트 어드벤처다. 1980~90년대 텍스트 어드벤처의 유행 속에서 연애를 소재로 만들어진 게임들을 가리킨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장르적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원조 격으론 엘프(elf)의 1992년 작품 <동급생(同級生)>이 있다. 시나리오 속 선택지를 통해 자신만의 연애 스토리를 달성해가는 연애 어드벤처 방식은 오늘날의 연애 게임에서도 가장 많이 시도된다. 연애 시뮬레이션은 코나미의 1994년 작품인 남성향 연애 시뮬레이션 <도키메키 메모리얼(ときめきメモリアル)>를 시작으로 시작으로 발전해왔다 2) . 해당 작품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능력치를 통한 호감도 시스템은 롤플레잉이나 육성 시뮬레이션에서 채용하던 캐릭터 육성 시스템을 연애에 맞게 바꾼 형태였다. 한국에서도 이 게임을 통해 속칭 ‘미연시(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3) 라는 용어가 널리 퍼졌다. 이러한 점에서 실질적인 ‘연애 시뮬레이션’은 주인공이나 주변 캐릭터의 육성, 성장과 같은 관리 요소와 텍스트 어드벤처 요소를 결합해 연애에 도달할 수 있도록 시뮬레이션 하는 장르를 의미한다. 간략하게 소개했지만, 연애 게임의 계보나 장르적 특성을 정리하는 것은 여러 논의를 통해야 하는 복잡한 작업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그 시초인 연애 어드벤처와 연애 시뮬레이션을 아우르는 남성향 연애 게임에서 연애와 사랑이라는 소재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에 집중하고자 한다. 연애 게임에서 흥미로운 점은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연애 게임의 시작이 ‘남성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연애 게임은 단순히 남성 게이머만의 장르는 아니기도 하다. 여성 게이머를 타겟으로 한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그 시장은 지금에 와서 남성향과 견줄 만하다. 그렇다면 남성향 연애 게임은 여성향과는 무엇이 다를까? 기본적인 게임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연애를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 여러 요소를 육성하며 플레이하거나, 텍스트 어드벤처 형태로 주어진 선택지를 골라가며 자신만의 연애를 달성하는 방식이다. 남성향이나 여성향 모두 같은 구조, 형태로 디자인된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가장 큰 차이점은 남성향의 경우 일반적으로 게이머가 남성 주인공 캐릭터가 되어 여러 여성 캐릭터 중 한 명을 선택해 연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이다. 여성향은 대체로 반대 구도를 채택한다. 등장 인물이나 인간관계 구도 외에도 세세하게는 게임이 채택하고 있는 세계관이나 설정 등 소재에서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다만, 두 성향의 차이로 제시된 소재나 설정에서 한 가지 오해하기 쉬운 것은 흔히 판타지 세계관이나 요소 등이 남성향에 치우친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여성향의 경우에도 연애 시뮬레이션 장르 시초인 <안젤리크> 역시 이른바 정통 판타지를 채택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판타지라는 설정이 남성향의 고유한 특징이라고 보기엔 어렵다. 그러나 판타지를 ‘가상, 상상’이라는 의미로 볼 때, 남성향은 더욱 게임적인 판타지를 띠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같은 스포츠 중심의 현대풍 판타지 세계관인 작품이라고 해도 남성향인 <푸른 저편의 포리듬(蒼の彼方のフォーリズム)>과 여성향인 <프린스 오브 스트라이드(プリンスオブストライド)>는 판타지의 '농도'가 다르다. <프린스 오브 스트라이드>는 계주를 소재로 한 가상의 스포츠 ‘스트라이드’를 중심으로 한다. 스트라이드는 현실에서도 접할 수 있는 계주와 골자는 같다. 그에 반해, <푸른 저편의 포리듬>은 하늘을 날 수 있는 ‘안티 그래비티 슈즈’를 중심으로 한 ‘플라잉 서커스’라는 가상의 스포츠를 중심으로 한다. 전제부터 현실에서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는 설정과 세계관이다. 흔히 우리가 “게임이니까 그럴 수 있지”라고 말할 수 있는 소재이다. 물론 이런 경향이 일반화될 수는 없지만, 남성향의 취향을 반영하는 극적인 설정이나 테마가 적극적으로 채택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아마 남성향이 갖는 특징 중 하나인 강조된 가상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푸른 저편의 포리듬> 4) <프린스 오브 스트라이드> 5) 연애 게임의 서사는 연애의 달성, 즉, 사랑의 결실이라는 단순 명쾌한 목표를 제시한다. 연애 어드벤처 또한 시뮬레이션 요소만 없을 뿐, 오히려 이런 시나리오는 더욱 강조된다. 그런데 재밌는 건 의외로 남성향 연애 게임의 경우, 게임을 끝낸 후 보편적인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러한 감상은 연애 게임에 대한 게이머들의 리뷰를 봐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게임들이 감동적이고, 로맨틱한 사랑의 쟁취를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엔딩에 이르기까지 충분히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연애 게임의 대단원이 주는 것은 ‘즐거움’이다. 어째서 적극적으로 사랑을 테마로 하는 게임을 하는 데도 이런 느낌을 받는 것일까? 이는 앞서 언급한 남성향의 가상성에서부터 유추할 수 있다. 작품들의 플롯을 보고, 플레이하기 시작하면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어떤 스토리일까?’, ‘어떤 캐릭터가 있고, 누구를 공략할까?’일 것이다. 그 이유는 게이머가 스토리를 이해하고 진행하기 위해 제시된 설정과 조건들, 각각 캐릭터가 지니고 있는 특징들을 익히는 과정에서 드라마틱하게 ‘비현실’적인 정보들을 접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들을 통해 게이머는 게임임을 인식하게 된다. 앞으로 겪게 될 사랑과 연애는 점차 현실적이지 않게 된다. 게이머 자신이 온전히 게임 속 주인공을 연기할 순 있지만, 현실에서 느끼는 사랑과는 멀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이 ‘게임적 인식 프레임’을 형성한다(井上, 2007). 게임 시작 지점에서 조금 더 진행을 하게 되면, 여성 캐릭터와의 여러 이벤트가 발생한다. 자신의 캐릭터를 육성하면서 발생한 이벤트일 수도 있고, 게이머 자신이 고른 선택지를 통해 유도된 것일 수도 있다. 이벤트는 시나리오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그러나 게이머는 앞서 형성된 게임적 인식 프레임을 통해,이 플레이가 현실의 연애가 아닌 ‘공략’을 위한 플레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여기서 게이머는 이벤트를 위해 자신만의 ‘공략 루트’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연애 게임의 ‘즐거움’임을 인지한다(江, 2019). 이 과정에서 시나리오는 게이머가 게임에 몰입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게임 플레이 그 자체의 결과가 되기도 한다. 게이머 자신이 게임에서 사랑과 연애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과는 달리, 주어진 게임의 목표를 달성하여 얻게 된 것이 시나리오다. 즉, 게이머는 자신의 플레이 결과로써 시나리오를 접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게임이 주는 사랑과 연애의 경험은 온전히 게임 속에서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여성향도 똑같은 거 아닌가?’ 그러나 여기서 다른 점은 여성향 연애 게임이 ‘캐릭터의 감정 서사’와 이른바 ‘노벨 게임화’를 중심으로 발전하는 궤적을 꼽을 수 있다(小出·尾鼻, 2018). 즉, 여성향 게임이 제공하는 주요한 플레이의 강조점이 서사 전달이라는 것이다. 더 좋은 시나리오를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과 연애라는 서사를 온전히 전달하는 것이 여성향 게임의 목표에 가깝다. 다시 남성향으로 돌아가보자. 지금의 남성향이 추구하는 시나리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성장이다. 청춘의 우정에서 사랑으로, 미흡하던 모습에서 되고 싶은 자신으로 점차 발전해 나가는 스토리이다. 이는 마치 롤플레잉 게임의 주인공 서사처럼 점차 영웅이 되어가는 모습을 그리는 것과 같다. 게임이 제공하는 선택지는 단순히 상대방의 호감을 사기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이 되고 싶었던 모습으로의 변화를 가능케 한다. 이 결과, 게임의 엔딩은 '완벽한 자신'과 '사랑의 결실'이라는 두 가지 값으로 수렴한다. 남성향 연애 게임의 이러한 서사를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게이머의 게임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이다. 강조된 판타지적 소재와 세계관, 캐릭터와의 갈등 구조, 역경의 극복 등은 이러한 시나리오를 보다 게임적으로 강조하는 요소가 된다. 시뮬레이션 플레이만 해도 일련의 텍스트로 정리되진 않지만, 게이머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시나리오 라이팅이기도 하다. 게임 디자인도 게이머의 적극적인 플레이를 상정한다. 즉, 남성향 연애 게임은 사랑의 획득 방식을 게임적으로 제공한다. 이를 위해 개발자들은 초창기 연애 시뮬레이션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게임성’을 다시금 불러온다. 어떻게 하면 더 재밌게 사랑이라는 요소를 게임 플레이로 치환할 수 있을 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 점차 게이머의 적극적인 게임 플레이를 강조하는 작품들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썸썸 편의점>과 같은 경영 시뮬레이션이 접목되어 있는 게임이나, DLSITE나 스팀의 일본 인디 연애 게임에서 연애 시뮬레이션에 RPG나 ‘서바이버즈 라이크’ 등을 접목하여 게임성에 더욱 집중하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호감도를 얻게 되거나, 필요한 능력치나 아이템 등을 얻게 되기도 한다. 혹은 이러한 파트 이후 여러 이벤트들을 발생시키면서 다시 연애 어드벤처로 유도하는 방식 등을 교차적으로 활용한다. 테일즈샵의 <썸썸 편의점> 경영 파트(출처:스토브 인디) 남성향 연애 게임에서 연애와 사랑은 독특한 위치에 있다. 분명하게 연애의 경험을 표방하고 있지만, 이를 다루는 방식은 매우 게임적이다. 사랑은 그러한 연애를 서포트하기 위한 순간순간의 파라미터처럼 작동한다. 즉, 남성향 연애 게임에서 연애와 사랑은 게임 플레이이자 게임의 목표, 목적이 된다. 특히 사랑은 단순히 좋아한다는 감정이나 개념으로써 작동하는 것이 아닌, 게임의 공략 대상이 된다. 사랑은 남성향 연애 게임에서 ‘게임성’에 직결되는 요소이다. 게이머는 수치화 혹은 가시화된 사랑을 자기 캐릭터의 연애에 어떻게 반영할 수 있을 지 고민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사랑은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이러한 플레이를 통해 게이머는 게임의 즐거움을 얻게 된다. 즐거움의 원천은 분명하게 사랑과 연애이지만, 그 표현의 방식은 매우 게임적으로 설계된다. 남성향 연애 게임이 중시하고 있는 사랑의 표현은 단순히 감정의 재현이 아닌, 어떻게 사랑을 게임 디자인적으로 재미있게 제시할 수 있을 지에 대한 노력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성향 연애 게임을 하면서 여러 사랑의 감정과 경험을 겪으면서도, 결과적으로 ‘재밌었다’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게 된다. 남성향 연애 게임의 시나리오나 디자인이 사랑의 본질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남성향 연애 게임은 복잡하면서도 단순할 수 있는 감정을 게임에 녹여내는 것에 집중하면서, 우리가 다른 장르에서 즐겨왔던 분위기를 제약된 연애 게임 구성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남성향적 테이스트가 시나리오 구조나 게임 디자인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연애와 사랑이라는 요소를 통해, 게임의 즐거움을 주는 방식이야 말로 남성향 연애 게임이 제공하는 사랑의 표현이다. 남성향 연애 게임은 게임 그 자체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게이머를 위한 또 다른 즐거움을 제공하는 장르인 셈이다. 오히려 사랑이라는 테마를 가장 게임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게임에 대한 사랑을 대표하는 장르일 수도 있다. 이를 위해 남성향 연애 게임은 적극적으로 가상성을 강조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여러 장르의 게임을 혼종적으로 채택하기도 한다. 가끔 게임의 엔딩은 엉뚱하게 판타지 요소에 매몰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또한 남성향 연애 게임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남성향 연애 게임의 인기가 점차 식어가던 시장 상황에서, 이러한 시도들은 인디 개발자들과 새로운 남성 게이머층을 끌어들이도록 기여하고 있다. 한국의 1인 인디 개발사 ‘스튜디오 사이’의 ‘액션RPG 연애 시뮬레이션’ <이터나이츠>와 같은 게임들처럼 말이다. <이터나이츠>(출처:스팀 상점 페이지) 필자의 생각이 연애 게임 전반에 보편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성향 또한 남성향에 관해 서술한 내용과 같은 방식으로 게임이 흘러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게임 속에 재현해보고자 처음 시도됐던 남성향 연애 게임은 사랑 그 자체보다도 점차 게이머의 즐거움을 유발할 수 있도록 ‘게임성’에 집중하고자 했고, 이는 어느 정도 연애 게임의 진화된 모습으로 정착될 수 있었다. 나아가 이러한 노력은 다시금 게임에서 ‘사랑’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남성향 연애 게임의 사랑은 게임 그 자체에 대한 애정 어린 표현은 아닐까? 참고문헌 井上明人(2007)「ゲームという認識の枠組み-日本の先行研究を中心に-」『デジタルゲーム学研究』第1巻1号、46-53p 江葉航(2019)「ビジュアルノベルにおける構造とそのリアリティー : ゲームデザインとゲームプレイをめぐって」『Core Ethics』第15号、35-46p 小出治都子、尾鼻崇(2018)「「乙女ゲーム」の歴史的研究 : キャラクター分析を中心に」『大阪樟蔭女子大学研究紀要』第8号、69-74p 1) https://www.nikkei.com/article/DGXMZO38898390T11C18A2000000/ 2) 여성향 연애 시뮬레이션인 코에이의 개발부서인 ‘루비파티’의 <안젤리크(アンジェリーク)> 또한 1994년 발매되었지만, <도키메키 메모리얼>이 발매 시기가 빨랐다. 3) 그러나 ‘미연시’는 이 게임에서 비롯된 준말이지만, 지금에 와서는 연애 시뮬레이션과 비주얼 노벨 형식의 연애 어드벤처를 모두 칭한다. 이는 연애 게임 시장의 주류가 점차 연애 어드벤처 장르로 치우치는 경향에서 비롯되었다. 4) https://aokana.sprite.net/ 5) http://posweb.jp/pos/game/index.html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수진 게임연구에 발을 들인 대학원생입니다. 지금은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첨단종합학술연구과에서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최근엔 게임을 매개로 한 다양한 게임 경험과 일본 내 서브컬처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글 쓰는 건 여전히 어렵습니다.

  • 서구의 관점에서 본 〈로스트 아크〉와 한국 게임

    3일간의 얼리 억세스 기간이 지난 2022년 2월 11일 〈로스트 아크〉가 서구의 백만명이 넘는 플레이어들을 대상으로 출시되었다. 한국의 개발사 스마일게이트(Smilegate)가 제작하고 서구의 아마존 게임 스튜디오(Amazon Game Studios)가 배급을 맡은 〈로스트아크〉는 서구 게이머들의 한국 게임에 대한 인식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지난 20여년 간 몇몇 한국산 게임이 서구 시장에서 성공을 거뒀음에도, 게임 분야에서 뚜렷한 일본산 게임에 대한 인식과는 달리, '한국 게임'에 대한 개념은 아직 서구권 게이머들 사이에서 명확하게 형성되어 있지 않다. 서구권에서의 성공을 도모하기 위한 게임의 운영관리 방침, 유명 콘텐츠 제작자들의 참여, 그리고 한국의 〈로스트 아크〉 커뮤니티의 역할 등을 통해 〈로스트 아크〉는 한국의 게임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서구 게이머들의 기대를 형성할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 놓여있다. < Back 05 GG Vol. 22.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Researcher) Marc Lajeunesse Marc is a PhD candidate in Concordia University's department of communication studies in Montreal, Canada. Marc’s research focuses on toxicity in online games. He is driven to understand toxic phenomena in order to help create more positive conditions within games with the ultimate hope that we can produce more equitable and joyful play experiences for more people. He has published on the Steam marketplace and DOTA 2, and is a co-author of the upcoming Microstreaming on Twitch (under contract with MIT Press). (Game Researcher) Cortney Blamey Courtney is a Communication PhD student and game designer at Concordia University, Montreal, Canada. Her doctoral research concentrates on the process of meaning-making in games tackling serious themes and exploring this relationship between player and designer in her own critical game design process. Her previous research unpacked Blizzard’s approach to community moderation in Overwatch by investigating both developer and community inputs on forums. She is a member of the mLab, a space dedicated to developing innovative methods for studying games and game players and TAG (Technoculture Arts and Games).

  • 전업 게임평론가의 솔직한 고민

    경험과 지식, 둘 사이의 적절한 균형점을 딱 잘라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둘 모두가 필요한 것이 교양을 딛고 서는 게임평론의 전제가 된다는 생각은 굳건하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대중성은 오히려 게임평론에 필요한 요소 중 이 둘보다 후순위에 선다. 경우에 따라서는 훌륭한 게임 경험과 이를 적절히 일반화하고 풀어내는 지식의 조화만으로도 대중성은 완성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 Back 20 GG Vol. 24.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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