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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동아시아 인디게임 답사기: bitsummit 그리고 G-eight

    제일 더운 7월에 개최하기로 마음먹은 듯한 일본의 인디 게임 행사 “BitSummit”과, 버닝 비버와 마찬가지로 작년으로 2회차를 맞이한, 그리고 날짜도 거의 비슷하게 12월 초에 개최하지만 훨씬 따뜻한 대만 타이베이의 “G-Eight”이 오늘 답사기의 주인공들이다. < Back 2023 동아시아 인디게임 답사기: bitsummit 그리고 G-eight 16 GG Vol. 24. 2. 10. 벌써 한 달이 넘게 과거가 되어버린 2023 년 , 일로 , 그리고 취미로 여러 게임 행사에 참여해 볼 수 있었다 . 방문한 일곱 개의 게임 쇼 중 인디게임을 메인으로 하는 게임 쇼는 네 개 , 그중 국내에서 개최한 행사는 두 개였다 . 이 둘은 벌서 8 년째 개최한 부산 인디 커넥트 페스티벌 ( 이하 BIC) 과 , 스마일게이트가 주관하는 , 작년으로 2 회차를 맞이한 인디 행사 Burning Beaver( 이하 버닝 비버 ) 이다 . 둘 다 굉장히 특색 있고 매력적인 게임 쇼이니 , 시간이 있으신 분들은 꼭 방문하길 바란다 . BIC 는 주로 8~9 월에 , 버닝 비버는 12 월 첫 주에 개최한다 . 이렇게 BIC 와 버닝 비버에 이야기를 간략히 넘어간 이유는 , 오늘의 주인공은 다른 두 인디 게임 쇼이기 때문이다 . ‘ 엥 ? 왜 게임 쇼가 교토에 ?!’ 할지 모르는 , 이젠 제일 더운 7 월에 개최하기로 마음먹은 듯한 일본의 인디 게임 행사 “BitSummit” 과 , 버닝 비버와 마찬가지로 작년으로 2 회차를 맞이한 , 그리고 날짜도 거의 비슷하게 12 월 초에 개최하지만 훨씬 따뜻한 대만 타이베이의 “G-Eight” 이 오늘 답사기의 주인공들이다 . 이 자리를 빌려 , ‘ 게임 ’ 이 아니라 ‘ 게임 쇼 ’ 를 주인공으로 하여 두 행사를 방문한 경험과 인상 깊었던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 * 사진자료 1, 2 K- 게임 쇼는 잠시 바이바이 ! 하지만 꼭 방문해 보시길 ! 교토에 게임쇼 ? BitSummit! 부끄러운 일이지만 , 방문하기 전까지 교토에 게임 쇼가 있는 줄 몰랐다 . 교토라는 도시는일본의 문화유산을 구경하기 위해 방문하는 장소라 생각했었다 . 그렇기에 게임 쇼를 , 그것도 헤이안 신궁 바로 앞의 ‘ 미야코 멧세 전시장을 이용해 행사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꽤 놀라웠다 . 게다가 심지어 날짜는 여름 축제 기온마츠리와 정확히 겹치는 날짜였고 , 기온은 40 도에 육박했으니까 . * 사진자료 3, 4 헤이안 신궁으로 향하는 길 , 행사장은 실내라 다행입니다 . 다행히도 행사장 안은 쾌적했다 . 공간이 다소 협소한 편이기에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섰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덥거나 불쾌한 느낌은 없었다 . 부스들이라 부르기엔 다소 작은 사이즈의 책상이 자신들이 만든 게임을 어필하듯 꾸며져 빈틈없이 들어서 있었음에도 사람끼리 부딪힐지언정 축축하거나 한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으니까 . 밖이 더운 만큼 냉방에 신경을 쓴 것 같았다 . 또한 , 비록 개별 팀에 할당된 공간은 작을지라도 그걸 꾸미는 역량은 전적으로 팀들의 자율에 맡긴 부분이 놀라웠다 . 간단하게 아트북이나 브로마이드를 세워놓은 팀들도 있었지만 , 이런 걸 둬도 되나 ? 싶을 정도로 커다란 인형이나 , 책상 뒤편에 직접 프레임을 세워 배너를 달아놓은 팀도 많았다 . 할당된 공간과 위치에 맞춰 각자 다른 방식으로 공들여 꾸며놓은 모습들에 꽤나 눈이 즐거웠다 . * 사진자료 5, 6. 책상 뒤에 프레임을 설치한 부스와 모서리 위치라는 장점을 이용해 인형을 세운 부스 . 효과는 뛰어났다 ! 공간 자체가 넓지 않았기 때문에 꽉 찬 느낌이 드는 행사였지만 , 그로 인해 발생한 문제들도 많았다 . 일부 게임은 독특한 컨트롤러를 지원하는 방식이었지만 ( 예를 들어 콜라병을 흔드는 방식으로 로켓을 쏘아 올린다던가 ), 그 자리를 마련하기가 힘들어 한 명 한 명 교대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밀려나고 , 줄을 설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다 . 그렇다면 , 게임도 많지 않고 장소도 협소하며 바깥은 엄청나게 더운 BitSummit 최대의 매력은 무엇인가 ? 그건 바로 협소함에서 발생하는 떠들썩함과 놀라울 정도로 높은 비율의 외국인 , 그리고 본 행사 이후의 비공식적이지만 전통적으로 일어나는 가모 강 변의 네트워킹이다 . 장소가 좁다는 것은 몇 번 강조하였으니 외국인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 개인적으로 여러 인디게임 쇼를 다녀보았지만 , 경험한 바로는 BitSummit 은 가장 글로벌한 행사였다 . 부스 자체를 소형화한 것은 혼자 먼 길 오는 외국인을 배려한 것이 아닐까 ? 싶을 정도로 말이다 . 타국에서 외국인들끼리 모여있다 보면 제법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 부스 손님을 맞이하다가도 , 눈 마주친 다른 부스의 개발자와 스몰토크를 하게 되고 , 개발 관련 고충을 토로하다 보면 어느새 행사가 끝나있다 . 하루가 짧을 정도로 . 그리고 그 짧게 느껴지는 하루를 보완하는 행사는 , 지나가던 말을 따르자면 비공식 전통행사 , 가모 강 변 네트워킹으로 보완된다 . * 사진자료 7, 8. 가모 강 변에 모인 업계인들 . 광기의 기사 서임식 . 왜 비공식 전통행사인가 ? 그것은 딱히 누가 가자 ! 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 그냥 맥주 한 캔 들고 서 있다 보면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 7 월의 교토 날씨는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밤에도 기온이 30 도를 넘나들고는 하는데 , BitSummit 이 진행되는 2023 년의 7 월 중순 역시 마찬가지였다 . 그러니 비교적 시원한 강변으로 약속이라도 한 듯 모이는 것이 아닐까 ? 중요한 점은 , 이젠 알아서 발생하는 이 모임이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고 , 그곳에서 어슬렁거리다 보면 정말 별의별 사람들 다 만나게 된다는 점이다 . 1 인 개발자 , 소규모 개발팀 , 대형 퍼블리셔 , 꿈을 이룬 사람 , 꿈을 꾸는 사람 , 가릴 것 없이 말이다 . 자신의 성향이 I 라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길 바란다 . 필자와 가모 강 변에서 술 마시고 친구가 된 사람 넷 중 셋은 INFP 였다 . 이 공간에서는 게임이라는 공통된 관심사가 있기 때문에 ,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 . 그러니 게임 개발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 그리고 그 꿈이 나만의 게임을 만드는 것이라면 , 꼭 한번 참여해 보길 바란다 . BitSummit 장점 : 남녀노소 동서 구분 없는 다양함 , 활기찬 애프터 네트워킹 . BitSummit 단점 : 다소 협소한 공간 , 더운 날씨 . 어 , 잠깐 ! 이런 것도 전시해요 ? G-Eight BitSummit 이 끝나고 꽤 시간이 흘러 , 12 월 , 한국의 혹독한 추위 속에 불타는 비버를 구경하고 한 주가 지난 후 G-Eight 을 구경하기 위해 대만으로 향했다 . G-Eight 을 알게 된 경위도 사실 우연이었는데 , 앞서 이야기한 BitSummit 에서 “ 서브노티카 ” 개발자님이 찾아와 알려주었고 , 신청 , 참여하게 된 것이다 . 누군가는 필연이라 하겠지만 , 만약 게임 개발 꿈나무분들이 계신다면 많은 행사에 참여하고 많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시길 바란다 . 우연이든 필연이든 경험의 기회는 어디서 찾아올지 모르는 법이니까 . 다시 G-Eight 으로 돌아가자면 , G-Eight 은 버닝 비버와 마찬가지로 작년으로 2 년 차를 맞이한 행사이다 . 아마 2019-2021 판데믹 직후인 2022 년에 둘 다 시작된 데는 분명 이유가 있으리라 . 빠르게 G-Eight 의 매력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 행사 공간에 주목하고 싶다 . 게임 행사장은 주로 별로 놀랍지 않게 검거나 짙은 색상의 부스로 꾸며진 경우가 많다 . 꼭 그렇지만은 않지만 , 게임을 하기 편안한 무드라는게 있기 때문인지 밝은 조명과 대비되는 어두운 부스 , 어딘가 사이버 펑키 한 LED 들로 장식되어 있기 마련이다 . 하지만 G-Eight 은 정 반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밝고 , 개별 부스들의 사이 공간이 넓으며 , 이는 핸드폰을 보며 걸어도 사람과 부딪히지 않을 정도였다 . * 사진자료 9, 10 부스 배치가 이렇게 널찍해도 되요 ? 줄도 편하게 서겠네 ! 대부분의 게임 행사 혹은 인디 게임 행사는 필연적으로 줄을 서서 플레이를 하기 마련인데 , 대기업 부스들을 제외한 부스들은 관람객분들이 줄을 서기 위해 통행로를 점유하는 현상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 사실 기업 부스들의 경우에도 , 마련된 공간에 비해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복도를 차지하게 되는데 , 구경 온 사람들 입장인건 매한가지이니 이해가 되면서도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 하지만 G-Eight 은 부스와 맞은편 부스 사이게 공간을 충분히 두어 이런 불편함을 상당히 해소해 주었다 . 부스들 역시 공간이 여유로우니 꽤 놀라운 것들을 시도해 보는 팀들이 있었는데 , 가령 한 협동 게임은 방석을 두어 집에서처럼 편안히 게임을 할 수 있게 배려 해주고 있었다 . * 사진자료 11, 12. 공간 활용의 훌륭한 예시 . 거실과 같은 편안함이거나 , 층간 소음 신경 안 쓰고 뛸 수 있게 해 주거나 .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마저 하자면 , 행사장 외부 공간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 이는 대부분의 컨벤션 센터들이 넓은 공간을 차지하기 때문에 외진 곳에 자리 잡아 생기는 문제인데 , 게임 행사에 가면 주로 먹을 곳이 주변에 없거나 , 아니면 나가서 잠깐 쉬다 올 만한 곳이 별로 없기 마련이다 . 게임 행사는 걷고 , 줄 서고 , 게임하고 , 또 걷고의 반복이라 몹시 많은 체력이 소모되는데 , 심지어 나가도 밥을 먹을 곳이 없거나 , 푸드트럭을 이용해 서서 먹어야 하는 경우가 잦다 . 하지만 G-Eight 은 타이페이 엑스포 공원에서 행사를 진행하기에 외부에 시민들을 위한 시설이 상시 개방되어있다 . 사실 게임 행사장 밖으로 나가면 바로 공원이라 , 아이들과 산책하는 부부 , 장 보러 온 어르신들 , 춤 연습을 하는 청년들 , 곳곳에서 버스킹을 하는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도 가득하다 . 심지어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쑹산 국제공항이 있어 , 착륙을 위해 낮게 비행하는 항공기를 촬영하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 사회와 동떨어진 공간에서의 축제가 아니라 , 일상에 녹아있는 행사인 것이다 . 이건 그리고 관람객들에게도 굉장한 편의성으로 다가온다 . 행사장 밖에 나가면 휑한 광장이 있는 게 아니라 , 대만의 일상이 존재하니까 . * 사진자료 13, 14. 방문했을 때는 농산물 시장이 열려있었다 . 그리고 푸드코트 역시 훌륭함 . 잠깐 그렇게 허기를 채우고 나서 행사장으로 돌아가면 , G-Eight 만의 독특한 요소들이 눈에 띄게 된다 . 특히 자세히 살펴보면 PC 게임이 아닌 보드게임을 전시하고 판매하고 있는 팀이나 , 아예 사람들이 모여 ‘ 매직 더 개더링 ’ 을 플레이하는 구역 , 그리고 방문객들이 토큰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인기투표를 할 수 있는 돼지 저금통 등 , 독특한 매력을 가진 구역이 많다 . 사실상 여러 취향이 복합적으로 얽힌 놀이터에 가까운 느낌인데 , 이게 행사장 곳곳을 여러 번 돌아다니게 하는 매력이 있다 . 특히 저금통이 꽤 참신하게 느껴졌는데 , 일부로 반투명한 돼지 저금통을 사용하여 어떤 게임에 토큰이 얼마나 쌓여있나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게 해 두었다 .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관람객들은 토큰을 확인하고 해당 게임을 찾아가게 되는데 , 사실상 실시간 인기투표이자 실시간 추천 시스템을 아날로그 방식으로 구현해 둔 셈이다 .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 * 사진자료 15, 16, 매직 더 개더링을 플레이하는 사람들, 그리고 최고의 시스템, 돼지 저금통. 이에 더해 , 사실 행사장을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가장 눈에 띈 것은 다름 아닌 ‘ 사진촬영금지구역 ’ 이다 . 해당 구역을 마주한 후 주변을 살펴보면 , 마스코트 캐릭터 역시 다른 게임 행사의 마스코트들과 사뭇 다름을 알 수 있다 . BIC 의 스키복 펭귄이나 , Burning Beaver 의 불꽃머리 안경 비버와는 달리 , 뿔 달린 마족과 요정의 하프 같은 여성 캐릭터니까 . 이 캐릭터가 마스코트로써 다양한 곳에서 부각되지는 않는데 , 딱 세 곳 확인한 것이 방문 인증샷을 남길 수 있는 포토존과 공식 굿즈샵 , 그리고 사진촬영 금지 안내판이었다 . 두 번이나 썼지만 , 이 게임 행사장에는 사진촬영 금지구역이 있다 . 간혹 한국 게임 행사에서도 잔인함을 이유로 성인 이용 등급을 받은 개별 부스가 검은 천으로 덮여있어 연령 확인을 하고 입장하고는 하는데 , 그것과는 달리 정확하게 선정성을 이유로 특별 마련된 구간이었다 . 생각해 보면 행사 주관 업체 중 한 곳이 Mango Party 라는 퍼블리셔인데 , 최근 한국에서 유명해진 해당 퍼블리셔의 게임으로는 ‘ 여닌자 타락시키기 ’ 와 ‘ 관리인의 엿보기 ’ 가 있다 . 그러니 굉장히 이색적이고 특이한 공간이 생길 수 밖에 . 정말 인상 깊었던 것은 , 안에서 , 그리고 해당 구역 출입구 앞에서 성인 용품을 판매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 이게 가능하단 말인가 ? * 사진자료 17, 18. 바로 그 사진촬영 금지 구역 , 그리고 그 앞의 유명 성인 용품 부스 . 정리하자면 , G-Eight 은 굉장히 개성 있는 행사이다 . 행사장은 온 가족이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은 밝은 분위기이고 , 각 부스들은 각자 전시하는 게임의 매력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꾸며져 있다 . 행사장 외부의 공간 역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활용하는 공간이기에 게임 쇼 외에 즐길 거리 역시 많이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 관람하느라 지친 심신의 휴식을 취하기에도 좋다 . 메인 행사존에서는 저스트 댄스 대회를 하기도 하고 , 인터뷰존을 통해 유튜브 라이브로 개발진과의 실시간 토크를 생중계하기도 한다 . 그러는 중 한 편에는 성인용 게임만을 위한 공간과 성인 용품 판매점 역시 자리하고 있다 . 어딘가 혼란스럽긴 하지만 , 컨텐츠는 분명 다양하다 . 물론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 아직 신생 게임 행사이기에 로컬적인 색채가 굉장히 강하다 . BitSummit 에 이어 G-Eight 에서 만난 대만 친구는 ‘ 대체 이 행사를 어떻게 알고 찾아왔냐 ?’ 라고 물어볼 정도였으니까 . 부스를 세운 대부분의 개발자들 역시 영어를 매우 어려워하는데 , 사실 이는 어느 정도 예상해야 할 부분이다 . 외국인이 한국 인디게임 쇼에 와도 마찬가지니까 . 읽을 수 없더라도 어렸을 적 일본어로 포켓몬을 하던 추억을 더듬으며 게임을 하면 , 언어가 다르다고 게임을 못할 것도 없다 . 헤매면 최대한의 영어로 열심히 설명해 준다 . 추가적으로 , 애프터행사가 다소 약하다 . 이는 BitSummit 이 특출나게 강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 G-Eight 이 게임 행사치고는 특이하게 오전 11 시부터 저녁 7 시라는 느지막한 스케줄을 가지고 있음을 감안하면 더 아쉬운 부분이다 . 바로 앞에 굉장히 여유로운 공간이 있는 만큼 , 다 같이 맥주 한 잔 들고 커뮤니케이션을 할 시간이 있다면 더욱 즐겁지 않을까 ? 개별로 친해진 사람들끼리 따로 한잔 하러 가거나 , 특정 퍼블리셔가 주관하는 행사는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말이다 . 하지만 이는 다시 한번 , BitSummit 이 특이한 부분임에 유의하자 . 상기 두 요인은 관람객이라면 무관한 요소들이나 , 인디게임 개발자의 입장에서 아쉬움을 논해보았다 . * 사진자료 19, 20. 이런 공간을 두고 없어서 아쉬운 애프터 파티와 다음날의 CWT. 게임과 애니는 뗄 수 없건만 이렇게 분산되다니!. 마지막으로 , 이건 일장일단이 있는 부분인데 , Comic World Taipei( 이하 CWT) 와 날짜가 겹쳤던 문제도 있다 . 게임 행사와 애니메이션 행사를 같은 날 같은 도시에서 열다니 , 대체 무슨 생각인가 ? 하면서도 , 한국에서 역시 작년 버닝비버가 Anime x Game Festival 과 같은 날짜에 열렸으니 할 말은 없다 . 더 많은 사람들이 게임 쇼를 찾아왔으면 하는 마음에서 단점으로 꼽았지만 , 덕분에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었고 , 다른 날에는 CWT 를 구경하러 갈 수 있었으니 . BitSummit 장점 : 놀이터같이 다양한 행사장 , 다른 게임 쇼에서 보지 못한 광경 . BitSummit 단점 : 해외 게임팀이 거의 없음 , 아직 아쉬운 네트워킹 파티 . 맺으며 . 관람객 입장에서 BitSummit 과 G-Eight 은 정말 즐거운 행사였다 . 평소 시장에서 찾지 못했던 독특한 게임을 체험해 볼 기회이기도 했지만 , 둘 다 일상에 접해있는 장소에서 행사가 진행된 영향도 컸다고 본다 . 게임 쇼를 보다가 , 관광을 하다가 , 타국의 일상에 잠시 녹아있을 수 있었다 . 일로 떠난 것이라도 여행의 감각이 없는 것이 아니었으니 , 정말 만족스러웠다 . 개발자 입장에서 , 인디게임 쇼는 개발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게임을 선보일 기회이지만 , 다른 개발자들과 직접 만나 소통할 기회이기도 하다 . 최근에는 메이저 게임 쇼에서 역시 인디게임존을 따로 만들어 행사를 진행하고 , 인디게임 참여사만을 위한 애프터파티를 준비해 네트워킹 기회를 마련해 준다 . 인디 개발자들이 제일 만들기 힘든 기회를 게임 쇼를 통해 제공하고 , 더 좋은 게임들이 만들어질 확률을 늘리는 셈이다 . 그런 부분에서는 BitSummit 은 최고였고 , G-Eight 은 살짝 아쉬웠다 . 매년 많은 게임쇼가 열린다 . 인디 게임쇼는 어쩔 수 없이 메이저 게임쇼에 비해 방문 인원이 적은 편이다 . 더군다나 해외에 나간다 하면 , 인디게임쇼를 즐기기위해 출국장을 밟는 사람은 더욱 없으리라 . 하지만 BitSummit 은 교토의 축제 기간에 , 그리고 G-Eight 는 한국은 한창 춥고 대만은 따뜻한 12 월에 열린다 . 전략적으로 관광 시즌에 열리는 셈이다 . 그러니 이 글을 읽은 여러분도 , 올해에는 해외 인디 게임 쇼를 구경 가보시는 건 어떻겠는가 ? 겸사겸사 관광 계획도 잡으면서 말이다 . 혹은 관람객이 아니라 , 개발자로써 행사에 참가해 그 어떤 티켓보다 빠르게 입장할 수 있는 패스를 받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 물론 , 더 좋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기획자) 임윤혁 육각형 캐릭터를 좋아해서 현실을 그렇게 사는지, 현실이 그래서 육각형 캐릭터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는 (구)이과생, (구)경제학도, (현)게임기획자. 즐기며 때떄로 배우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 저자성이란 농담? :『코지마 히데오의 게임론』을 읽으며

    브라이언 히카리 하츠하임의 『코지마 히데오의 게임론』은 코지마 히데오가 감독하거나 제작 과정에 참여한 게임을 다양한 매체 이론을 따라 살펴본다. 반전, 반핵의 주제 의식을 일관적으로 지켜나가는 스토리텔러이자 ‘모든 것을 감독하는 책임자’, 게임 업계의 유명 인사 등으로 읽혀 온, 혹은 그렇게 읽히고자 유도해 온 코지마의 행적 역시 집중적으로 비춘다. 하츠하임은 주로 코지마의 인터뷰와 서적, 그가 출연한 다큐멘터리와 출시 당시의 리뷰를 제시하며 그가 자신의 의도를 어떻게 관철하려고 했으며 제작 과정에 어떤 식으로 개입했는지를 도해한다. < Back 저자성이란 농담? :『코지마 히데오의 게임론』을 읽으며 30 GG Vol. 26. 6. 10. 브라이언 히카리 하츠하임의 『코지마 히데오의 게임론』은 코지마 히데오가 감독하거나 제작 과정에 참여한 게임을 다양한 매체 이론을 따라 살펴본다. 반전, 반핵의 주제 의식을 일관적으로 지켜나가는 스토리텔러이자 ‘모든 것을 감독하는 책임자’, 게임 업계의 유명 인사 등으로 읽혀 온, 혹은 그렇게 읽히고자 유도해 온 코지마의 행적 역시 집중적으로 비춘다. 하츠하임은 주로 코지마의 인터뷰와 서적, 그가 출연한 다큐멘터리와 출시 당시의 리뷰를 제시하며 그가 자신의 의도를 어떻게 관철하려고 했으며 제작 과정에 어떤 식으로 개입했는지를 도해한다. 서적의 제목에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듯이, 하츠하임은 게임 디자이너를 게임 속 “작가 의식”의 출처로 읽고자 하는 의도성 짙은 기획을 갖고 있다. 나는 <데스 스트랜딩>을 통해 코지마 게임을 접한, 비교적 오래되지 않은 팬이었고, 대규모 공동 작업이 이뤄지는 상업 게임에서 게임 디자이너의 권한이 작동하는 방식에 직접적인 경험이 없기에 이 기획이 어떤 식으로 풀려나올지 호기심을 갖고 책을 접했다. 80년대부터 2020년대에 이르기까지 코지마 게임을 시계열로 살피기 때문에, 이 책을 읽어 나감으로써 콘솔 장치의 역사와 더불어 코지마의 공동 작업에 대한 통제력이 어떻게 확대되는지 그 과정 역시 살필 수 있다. 하츠하임은 공동 작업에 대한 코지마의 통제력이 어떻게 작가 의식과 연계되는지 보이는 이론으로서 특히 1960년대 카이에 뒤 시네마를 필두로 한 작가주의 영화 비평 흐름을 직접적으로 인용하며 자신의 기획에 토대로 삼는다. 영화 비평의 특정 흐름을 참고해 게임을 논하는 구도에 의문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는 코지마 자신이 영화로부터 강한 영감을 받는다거나 게임 내 시네마틱 컷씬의 활용이 특징적이라는 이유보다는 게임 산업 내의 제작 관행을 영화 제작과 비교하기 위함이다. 저자의 정리에 따르면, 작가주의 이론의 기여자들은 할리우드 시스템 내 영화 제작 관행에 맞서는 “상업 영화의 반체제성, 특이성”이 일관된 시각적 스타일과 내적 의미를 형성하는 감독으로부터 기원한다고 보았다. 영화 이론으로부터 차용해 게임을 설명하는 도약은 게임과 영화 모두 대규모 공동 작업으로 진행되면서 제작자를 익명화하고 상품성을 지향하는 압력을 받는 매체였다는 공통점에 근거한다. 비밀의 방에 “이스터에그”로 숨겨져 있는 게임 디자이너의 이름은 옛 비디오 게임 업계와 영화 업계에서 크리에이터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던 관습을 의미심장한 방식으로 되새기게 만든다. 하츠하임은 작가주의로 일컬어진 비평적 흐름이 “감독의 주체성을 과도하게 중시하며 제작의 특정 문맥과 창작 프로세스에 관여하는 다른 수많은 사람들을 경시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는 한계를 밝히지만, 여전히 그 저자성이 공동 작업 상에 나타나는 비관습성을 지목하고 식별하는 데 유효하고 전략적인 도구라고 본다 (하츠하임 25-26). 이와 더불어 저자가 활용하는 ‘파열disruption’의 개념은 영화 비평의 언어보다는 메리 플래너건의 비판적 플레이(Critical Play) 개념을 가져온 것으로, 체제를 전복하거나 약체화하는 경향성이 있는 게임 디자인의 혁신과 그로부터 이어지는 장르의 발명을 포괄한다. 저자의 접근법은 “현 상황을 개혁하려는 게임, 예술적인 게임, 그리고 그들이 일으키는 비판적 자아 성찰에 대해서만, 즉 상업 게임에 대해 강한 반발과 비판적인 입장을 지닌 게임에만” 적용되는 경향이 있는 ‘비판적 플레이’의 개념이 “상업 게임” 그 자체, 혹은 상업 게임 업계에서 일하는 게임 디자이너에게 역시 적용될 수 있도록 확대한다는 목표를 띠고 있다 (하츠하임 31). 코지마 히데오가 기획으로서 참여한 <스내처>, <폴리스너츠>와 <메탈 기어> 시리즈의 제작 과정, 반응, 장르적 문법의 재발명, 시스템과 스토리라인 분석을 통해서 저자는 코지마 게임 디자인을 크게 네 가지 요소로 정리하고, 이 요소들로 “기존 게임의 관습”에 파열을 일으키는 코지마 게임의 비판적 플레이를 특징 짓는다. “선형적 서사에 픽션과 현실 세계의 요소”를 혼합함으로써 현대에 대한 장르적 우화를 만들어내고, 애니메이션, 실사 영화나 모션 그래픽과 같은 시청각 지향 미디어의 “재매개화”를 시도한다. “창발적인 플레이”의 축이 되는 “규칙화된 시스템”을 만들고, 마지막으로 “메타적인 목적을 위한 공간”의 삽입을 시도한다 (하츠하임 73). 저자는 여기서 작가로서 게임 디자이너가 갖는 사회적 의식의 표현과 플레이의 경계선을 재정의하고자 하는 형식적 메커니즘의 창조라는 두 가지 방향성을 확인한다. 형식적 관습성을 해체하고 그와 단절하는 방향성에서 어떠한 반체제적 고집을 발견하려는 태도는 소위 “프로그래시브한 텍스트”를 고전적 텍스트의 반대 항에서 규정해 온 담론 속에서 비평가가 의지할 자리였던 저자성을 게임으로 번안해 보려 한 시도이기도 하다. 상업적 제약과 질료 내에서 비판적, 실험적 작업을 하는 주체, 영화감독의 자리로서 게임 디자이너를 둘 수 있다면, 그 실험적 작업의 속성 역시 게임 디자이너에 귀속된 일관성으로서 규명될 수 있으리란 믿음이다. 하츠하임은 바바라 클링거(Barbara Klinger)가 “이데올로기 면에서만이 아니라 동시대의 영화 형식과 구조 내에 단절을 추구하는 진보적인 비평가들의 말에 의해 형성”된 걸로 지목한 “프로그래시브한 영화 장르”란 표현을 빌려와 “프로그래시브한 게임 디자인”이란 개념을 형성한다. 이를 진보적인 게임 디자인, 변혁적인 게임 디자인으로 봐도 이해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하츠하임 28). 『코지마 히데오의 게임론』은 코지마 히데오의 게임 내 시스템과 그 게임을 생산하는 데 있어서 필요했던 제반 조건, 제작사 및 플레이어의 수용 양상을 살펴보면서 저자가 정의한 프로그래시브한 게임 디자인의 여러 양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한 가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대목은 “프로그래시브한 영화 장르”란 표현이 클링거의 원전 「‘시네마/이념/비평’ 재방문: 변혁적 텍스트Cinema/Ideology/Criticism’ Revisited: The Progressive Text」에서 사용된 맥락이다. 클링거는 변혁적 텍스트에 반대항으로 존재하는 “고전적 텍스트”란 사실 “고전적 텍스트 시스템”으로 불리는 게 알맞다고 본다. 클링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시스템은 “불균형(과잉, 차이)과 균형(견제, 반복)의 불안정한 조합으로부터” 생산되는 것이다. 장르는 “변주와 규제의 유희 위에서 번성하는” 시스템의 “긴박한 순열”이자 “규칙화된 다양성”의 제공자이다. 단절이 아닌 변주의 경제를 선보이는 장르는 “과잉의 (규제된) 형식들과 그 과정의 (규제된) 전시 형식들”을 허용하며 자기 안에 과잉을 길들이고 포위한다 (Klinger 43). 고전적 텍스트 시스템의 “긴박한 순열”로서 장르를 설명하고자 클링거가 파열, 단절, 분절과 같은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훨씬 더 연속적인 “변주variety”를 제안하는 까닭은 규범화의 강력한 힘을 눙치지 않기 위함이다. 클링거는 기존 규범으로부터 단절을 구성하는 듯한 기표를 전복성의 측면에서 지나치게 강조하는 독해가 “심지어 가장 전면화되고, 변혁적이고 변형된 경향들에까지 규범적 기능을 협상해 내는” 체제의 수단을 과소평가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진보성과 변혁성이 텍스트 내부에 고립된 기표로 결정된다는 관점과 그러한 관점을 강화할 수 있는 독해를 향한 애착 앞에서 클링거는 비판적 거리감을 지키고자 한다. “프로그래시브한 영화 장르”를 형성하는 비평 관점이 텍스트 내 기표의 변혁성만으로 분절되고 파열될 수 있는 ‘고전적 텍스트’라는 상대 항을 전제함을 지적하고, 이로써 그는 고전적, 규범적인 것으로 지목된 항이 그토록 균질하고 동종적인 대상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코지마 히데오의 게임론』에서 “프로그래시브한 게임 디자인”의 분석 틀을 빌려 올 때, 이 태초의 호명에 잠재된 비판적 함의는 아쉽게도 깊이 다루지 않는다. 물론 저자는 일방적이거나 고정되지 않는, 언제나 플레이어와 수용 환경, 기술적 조건을 매개하는 인터랙티브 미디어로서 게임의 역량을 검토한다. 당대에 코지마 게임이 수용된 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아카이브 자료에 힘입어, 텍스트의 내적 의미와 형식적 분절에 고립된 분석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어떻게 자신의 행위를 유도하는 시스템 상의 개성 및 기술적 제반 조건과 상호작용을 행하며 의미를 형성해 나가는지 살펴 나간다. 다만, 코지마가 상업 비디오 게임 업계의 확립된 수법으로부터 분기해 나가면서 일관된 작가적 주제를 표현하고, 작가적 주제가 이러한 창발적 분기를 만들어 나간다는 분석 구도 하에서, 변혁이란 그 반대 항의 획일화된 ‘본질’을 가정하는 수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아래와 같은 대목이 그 예시가 될 것이다. 격파나 승리로 스코어를 쌓아나가는 것이 좋은 것으로 여겨졌던 게이밍 문화에서 비폭력적인 선택지 검토를 장려하는 시스템은 특히 획기적인 발명이지만, 동시에 전쟁 게임의 로직, 그것이 본질적으로 품고 있는 인명 경시, 어려운 목표의 해결책으로서 무력 충돌을 긍정하는 입장 에 의문을 제시함으로써 도덕적인 설명으로도 기능한다. 현실 세계와 마찬가지로, 외교나 비폭력은 달성하기 어렵지만, 인간(과 플레이어)의 목숨, 그리고 사회 질서 면에서 훨씬 커다란 대가를 얻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하츠하임 88) 더 나아가 변혁이나 이탈로 나타났던 개성들조차 상업 논리나 장르적 관성으로 흡수될 수 있다면, ‘변혁적’ 장르 독해에 대한 주의는 다시 한번 들를 필요가 있을 터다. 특히 영화에 비해 동시대의 게임 수용, 창작, 반응 커뮤니티는 보편적인 정전화, 고전화를 추동하는 제도적 동력은 불분명해 보이게 만들면서 거의 동시다발적인 상호 참조를 촉발하는 측면을 갖기 때문에 ‘기존 게임’과 ‘변혁적 게임’의 구분과 그 구분에 근거한 ‘저자성’ 식별이란 더욱 복잡미묘한 문제가 된다. 하지만 나는 게임에서 저자성이란 개념 일체를 폐기하는 편이 낫다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라, 위계화를 기반으로 성립되는 게 아닌 종류의 저자성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이에 임가영의 「게임과 작가」를 참조하고 싶은데, 본 글 역시 게임 디자이너가 게임 플레이가 아닌 게임을 만들기에 생기는 작가의 “물러남”, “플레이어들의 소비자 중심주의, 그리고 게임을 산업 및 기술적 생산물이자 단순한 오락거리로 보는 통념”으로 인해서 저자성이 줄곧 취약한 자리에 놓여 있음을 주목한다. 그렇게 “취약하고 의존적인 존재로서 작가를 다시 발견”하고 플레이어와 작가의 “대화”가 되는 자리로 게임을 돌려놓으며 작가와 플레이어가 맺는 관계를 재발견하기를 바란다. 그의 글은 작가를 ‘행위적 거리’ 속으로 물러나 “몸을 숨기고” 있다가 플레이어를 “맞이하러 나서는” 목소리에서 발견한다. 이 물러남과 맞이함의 제스처가 플레이어에게 “직접적인 목소리”로 말을 거는 작가를 구성하는 장면이 내게는 사랑스럽고 또 중요하게 다가왔다. 이는 엔터테인먼트와 서비스에 뿌리를 두라는 훈계와 그 뿌리로 인해 해롭다는 오명 사이에 포획된 매체에서, 오히려 상품 이상 혹은 상품 미만이고자 하는 아집, 이렇게 되어야만 했다는 식의 대책 없는 필연성을 더욱 강렬하게 감각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본 서적이 꾸준히 다루는 ‘파라텍스트paratext’의 과잉에 대해서 언급하며 이 글을 마무리 짓고 싶다. 코지마 게임에서 파라텍스트란 당대의 기술적 가능성과 메모리 제한, 패키징 관행, 그리고 콘솔과 입력장치와 같은 물리적 인터페이스 기능들을 경유해 나타나는데, 저자는 제라르 주네트와 조나단 그레이를 인용하며 파라텍스트의 정의와 기능을 설명한다. 문학이론가인 제라르 주네트는 파라텍스트를 텍스트와 그것을 구성하는 것들 사이에 있는 문지방이라 정의했다. 여기에는 표지, 타이틀, 주석 등 형식적인 틀 외에도 신문의 평론이나 잡지 인터뷰 등 설명적인 틀도 포함된다. 조나단 그레이는 이것을 영화나 TV 등의 미디어에도 적용해, 장난감, 게임, 스핀오프, 소설, 웹사이트 등의 파라텍스트가 ‘최초의 인터랙션 후에 텍스트에 영향을 미치거나, 방향을 전환하게 만들기도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하츠하임 91-92) 조나단 그레이의 말은 서사 외부의 물질이 서사 내부로 흘러넘치는 상황과 상호작용성 사이의 깊은 연계를 암시하고 있다. 파라텍스트의 범람을 두고 저자는 <메탈기어 솔리드 2>에서 게임의 물리적인 패키지가 세계관에 대한 다양한 설정 자료를 포함할 뿐만 아니라, 게임 플레이에도 영향을 미침을 언급한다. 게임 플레이 내에서 게임 설명서에 기재된 해독표를 사용하라고 지시하는 장면, 무전에서 맞출 주파수를 “게임 소프트웨어 패키지 뒷면의 사진”에서 찾으라고 언급하는 등의 상호작용 등이 그 예이다 (하츠하임 93). 이는 물리적인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보드게임에서도 예상치 못한 발견의 국면에서 자주 활용되는 전략이기도 하다. <스내처>에서 피해자의 시신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집을 찾아라!’는 메모 역시 흥미롭다. 이는 “피해자의 집 그 자체” 혹은 “피해자의 집의 다이닝 룸에 있는 ‘집 모형’을 조사하라는 의미”처럼 읽히지만 실은 키보드의 ‘홈Home’키를 눌러 암호를 해독할 수 있다는 말 그대로의 해답이다 (149). 이같은 파라텍스트의 묘사를 통해서 책은 그 당시의 게임 기기를 쓰거나 패키징을 접해보지 않고 에뮬레이션이나 리메이크 판 등을 통해서 대부분의 코지마 게임에 접근하게 된 나에게는 이해할 수 없거나 그 맥락이 빠져 있던 농담을 복구해 주었다. 플레이 외부의 플레이어를 매개하고 초대하면서 플레이 영역을 확장하는 게임 디자인의 측면에서, “사람을 웃게 만들어주는 매체가 영화라면, 게임은 자신의 행위가 웃음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코지마의 말을 저자는 인용한다. “플레이어를 그 자신의 행위로 웃게 만들기“는 플레이어가 ”관객임과 동시에 연기자“란 걸 일깨운다 (하츠하임 148). 하츠하임은 이 겹쳐짐이 일상생활 속에서 플레이어의 행위를 촉구하는 소격 효과의 확장으로 이어진다고 본다. 나는 여기서 “그 자신의 행위로 웃게” 될 때의 순전하고 승화되지 않는 실소, 피치 못한 슬랩스틱 코미디언 되기의 층위를 추가하고 싶다. 이때 플레이어는 작가주의적 피규어, 그러니까 이데올로기적 산물로부터 비판적 거리를 두게끔 게임의 총체와 스타일을 고안하는 통제력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저자성을 물리적으로 먼저 마주한다. 어떠한 의미도 없이 돌연 가설무대의 바닥과 코를 박고 인사하게 만드는 짓궂은 돌부리, 돌출된 문지방과 같은 것으로서 말이다. 무엇이 게임 플레이 외부에 있고, 무엇이 가상의 의미 연쇄와 무관하고 유관한 것인지 구분 일체가 갑자기 시덥잖아지나 싶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몰입적인 게임 플레이로 돌아가게끔 한다. 이는 자기성찰로 포섭되는 “메타”가 아니라 금방 몸을 일으켜 다시 연기로 돌아가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치미를 뚝 떼는 시트콤의 계기를 선명하게 내보인다. 허술한 종이 상자를 거꾸로 뒤집어쓰고 중무장한 군인들 사이를 뻔뻔하게 가로지르거나 플레이어가 주권을 쥔 카메라로 고간을 확대하면 화면을 향해 주먹질하기 시작하는 우리의 주인공들. 통용되는 농담의 펀치라인이나 밈적 기호로 이 커뮤니티를 떠돌면서 출몰하는 코지마의 얼굴이 표시하는 저자성이란 아무래도 내게 이런 종류인 것 같다. 참고문헌 하츠하임, 브라이언 히카리. 『코지마 히데오의 게임론』. 문성호 역, AK커뮤니케이션즈, 2026. 임가영. 「게임과 작가」. 『문장웹진』, 2026년 5월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광장, https://munjang.or.kr/board.es?mid=a20105000000&bid=0005&list_no=110333&act=view . Klinger, Barbara. "'Cinema/Ideology/Criticism' Revisited: The Progressive Text." Screen, vol. 25, no. 1, 1984, pp. 30-44.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성훈 문학을 전공했다. 게임과 만화를 좋아한다. <심즈 4>는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 게임인데 1500시간 정도 했고 그게 수치스러운지 웃긴 건지 헷갈린다. 뚜이부치란 필명으로도 활동한다.

  • 게임 노동자들은 왜 노조를 만드는가? - 북미 게임 산업의 노동운동단체 GWU Montréal 인터뷰

    그런데 민주노총 같은 거대한 노동총연맹이나 기업별 노동조합이 아닌, 제 3자로서 게임 업계만을 지원하는 단체가 활동하고 있는 사실이 다소 의외였다. 새로운 층위를 보여주는 듯한 모습 같아서, 흥미로운 마음을 가지고 포스터에 적힌 링크를 통해 참여 의사를 전달했다. < Back 26 GG Vol. 25.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Leesun Park Studies games from a social perspective. Believes that games, as a tool, ultimately offer a way to explore what it means to be human. These days, mainly writing.

  • [대담회] <어쌔신크리드: 섀도우스> 야스케 논란을 보는 여러 관점들

    2024년 공개된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스>는 시리즈 최초로 일본 전국시대를 무대로 삼으며, 여성 시노비와 흑인 사무라이라는 두 명의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워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작품이 공개된 이후 흑인 사무라이 주인공의 인종과 배경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졌으며, 이는 국내외 커뮤니티에서 역사 고증의 문제를 넘어 서구중심주의나 PC주의 비판 등의 다양한 논쟁으로 확산되었다. 이번호 GG에서는 홍현영 박사, 이정엽 박사, 강신규 박사 세 명의 디지털 게임연구자 및 인문사회 연구자들을 만나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를 둘러싼 여러 층위의 쟁점을 나누고, 오늘날 게임이 재현하는 역사와 정체성의 의미와 딜레마를 검토해 보았다. < Back 24 GG Vol. 25.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isu Kim Studies a range of fields—culture and knowledge, space, and the academic field. Also interested in the history of games and the lives of gamers.

  • 당신의 기억을 <언패킹>: 정리 게임이 기억을 다루는 방법

    기억은 세부 사항이 완전히 보존된 텍스트의 형태가 아닌 부분적인 이미지의 집합으로 우리에게 떠오른다. 이때 사물은 기억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자신과 관련된 이미지를 무분별하게 소환한다. < Back 당신의 기억을 <언패킹>: 정리 게임이 기억을 다루는 방법 31 GG Vol. 26. 8. 10. * <언패킹> 시작 화면 당신이 불의의 사고로 기억을 잃었다고 가정해 보자. 기억을 되살리고 자신을 알기 위해선 우선 과거의 당신이 남긴 기록을 참고해야 할 것이다. 일기부터 사진, SNS 게시물과 메신저의 대화 내역까지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숱한 기록을 남기며 살아간다. 그리고 기록은 선별된 기억이다. 어떠한 사실을 후일에 남길 목적으로 작성되는 ‘기록’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남긴 흔적과는 다르다. 이를테면 발 안쪽에 무게를 실어 걷는 버릇 때문에 안쪽만 닳은 신발 밑창은 기록이 아닌 흔적이다. 만들어질 때부터 의도와 해석이 개입되는 기록과 달리 흔적은 의도 바깥의 영역에서 생겨나고, 해석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흔적은 기록에 비해 태생적으로 소박하다. 그러나 때로 흔적은 기록보다 더 충실하게 그 주인을 설명해 준다. 기록은 자신을 속이기 위해 쓰일 수 있지만 물성을 갖춘 흔적은 정직하다. 그러니 기억을 잃은 사람이 자신을 알아가는 데 있어 가장 확실한 단서는 일기나 SNS가 아니라 자신이 쓰던 방의 물건들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소유하기로 처음 선택할 때는 필요와 취향이라는 의도가 개입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사물 자체가 우리의 흔적이 되기도 한다. 최초의 의도를 벗어나 사물과 주인의 관계가 계속해서 재설정되기 때문이다. 흔적은 주인과 사물의 관계에서 태어나 사물에 내재되고 세월에 의해 변화한다. 덕분에 흔적에는 기록에는 없는 자생력이 깃든다. 벤야민이 자신의 서재를 정리하며 쓴 에세이 ‘나의 서재를 정리하다: 수집에 대한 이야기’에서 말했듯이, “사물이 수집가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수집가 자체가 사물 속에 거주한다. [1] ” 대부분의 시간 우리의 인식에서 벗어나 있는 이 생기는 우리가 사물과 관계맺는 방식을 의식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할 때 예고 없이 분출된다. 사물과의 관계를 재정의한다는 것은 그것의 가치를 다시 판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물건을 버릴 것인가, 계속 가지고 있을 것인가? 손이 닿고 시야에 들어오는 곳에 둘 것인가, 구석에 넣어둘 것인가? 판단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우리는 다시 질문한다. 나는 여전히 이 물건이 필요한가? 얼마나 오래 가지고 있었나? 이전엔 어떻게 사용했나? 이 물건을 언제, 어떻게 소유하게 되었나? 흔적을 살피며 우리는 무의식의 영역에 있던 기억을 소환한다. 이삿짐을 정리하거나 대청소를 하다 보면 물건에 얽힌 추억을 들여다보다 정리는 뒷전이 되곤 하듯이. 2021년 출시된 정리 게임 <언패킹>은 바로 그런 순간들을 모아 한 사람의 삶을 구성한다. * 스테이지를 완료할 때마다 앨범에 사진이 쌓인다. 정리란 흐트러지거나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는 것을 질서 있는 상태가 되게 하는 일이다. 인간은 이 행위에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넘어 쾌감을 얻도록 진화했다. 사실 정리만큼 놀이의 형식에 들어맞는 일도 없다. ‘호모 루덴스’의 개념을 주창한 하위징아에 따르면 놀이는 자유롭게 받아들여졌으되 엄격히 적용되는 규칙을 따르며 몰입을 통한 즐거움을 수반하는 일이다. 다만 실생활에서의 정리는 유희를 위해 하는 행동이 아닌 노동이기에 놀이가 아닌 일상생활의 범주에 들어간다. 그럼에도 정리와 놀이는 각자의 긴 역사 속에서 복수의 속성을 공유해왔으니, ‘정리 게임’이라는 게임 장르의 출현도 자연스럽다. 스팀에서 ‘정리(Organizing)’ 태그로 분류된 게임들을 살펴보면 주로 ‘퍼즐’, ‘릴랙싱’ 태그가 함께 붙어있다. , , 등이 대표적이다. 즉 게임으로서의 ‘정리’는 정답이 정해진 퍼즐을 푸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게 하되, 점수 경쟁이나 과하게 복잡한 규칙 없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행위로 여겨진다. <언패킹>도 마찬가지로 퍼즐 게임으로 분류된다. 이사 간 집에 짐을 풀어 제자리를 찾아 정리하는 것이 게임 플레이의 전부다. 모든 물건의 자리가 정확히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플레이어의 재량을 발휘해 취향껏 인테리어를 꾸밀 수도 있지만, 쓰임새에 따라 물건이 있어야 할 알맞은 공간은 지정되어 있어 최소한의 규칙은 따르며 진행해야 한다. 스테이지가 진행될수록 이삿짐은 점점 늘어나고 이사를 가는 집도 커져 정리가 한층 복잡해진다. 그러나 <언패킹>은 정리를 퍼즐과 꾸미기 이상의 행위로 설계했다. <언패킹>에서 정리라는 플레이는 사물이라는 흔적을 매개로 기억과 정체성을 구성하는 일이다. <언패킹>은 사물을 통해 유년기부터 가정을 이루기까지 한 사람의 인생을 이야기한다. 처음으로 생긴 자기 방에서 시작해 대학 자취방, 사회초년생 생활, 애인과의 첫 동거, 이별 후 본가로의 귀환, 새 사랑과의 만남과 독립 등 삶의 주요 국면마다 주인공은 이사를 가게 된다.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정보는 몇 년도에 이사를 하게 되었는지와 소지품의 변화뿐이다. 정리를 완료한 후 사진을 찍으면 이사를 마친 주인공의 소회가 제시되지만, 새로운 집에 대한 평가나 이사 당일의 감정 표현 정도로 주인공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없다. * 박스에서 랜덤으로 나온 이삿짐들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채 널려 있다.(직접 캡처) 플레이어는 이삿짐을 꾸리는 과정에는 관여할 수 없다.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면 처음 보는 집에 이삿짐 박스가 잔뜩 쌓여 있고, 플레이어는 기억을 잃은 사람처럼 짐을 풀어야 한다. 1997년부터 2018년까지 20년에 걸친 시간 동안 소지품은 남아 있거나, 사라졌거나, 새롭게 추가된다. 플레이어는 이 흔적을 통해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추측하게 된다. 2010년, 주인공은 애인의 집으로 들어가 첫 동거를 하게 된다. 애인의 물건들 사이를 비집고 주인공의 짐을 밀어 넣다 보면 자연히 취향의 차이가 들어온다. 그는 취미로 기타를 연주하고, 직접 커피를 내려 마신다. 2012년, 이별 후 주인공은 본가로 돌아간다. 사진 속 전 애인의 얼굴에 압정을 꽂아 놓은 것으로 보아 끝이 좋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를 통해 시작한 우쿨렐레 연주와 드립커피는 주인공의 취미와 취향으로 남았다. 2010년 스테이지 이후로 우쿨렐레와 악보집, 커피용품이 계속 등장한다는 것만으로 플레이어는 주인공의 삶을 짐작할 수 있다. * 주인공의 취향이 드러나는 거실(직접 캡처) 첫 스테이지부터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물건들을 들여다보자. 그녀는 그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사용하던 미술용품 브랜드를 프로 작가가 될 때까지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취향이 확고하고 그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 재봉이 뜯어질 때까지 들고 다닌 돼지 인형에서도 그 고집이 엿보인다. 돼지 인형은 어릴 때부터 그녀의 모델이었고, 작가가 된 그녀가 출판한 동화책의 주인공이 된다. 인형 외에도 한 번 애정을 준 물건은 쉽게 놓지 못해 어렸을 때 사용한 연습장과 가장 좋아하는 책 시리즈는 어느 집의 책장이든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매번 늘어나는 비디오게임과 보드게임은 그녀의 가장 오래된 취미다. 좋아하는 물건을 살 때는 꼭 종류별로 모으는 수집가의 성향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주인공의 삶을 상상하는 일은 퍼즐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다.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기 위한 조건은 물건을 제자리에 놓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플레이어는 불가항력적으로 추론에 참여하게 된다. 박스에 어떤 물건이 들어있는지, 어떤 순서로 물건이 나오는지 알 수 없어서 플레이어는 짐 하나를 꺼낼 때마다 유심히 그 물건을 들여다보고 평가해야 한다. 이때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물건을 기억하게 되고 반복적으로 등장하거나 새로 생긴 물건을 알아보게 된다. 스토리를 추론해 정답을 맞히거나 핵심 단서를 수집하게 하는 등, 이 과정을 적극적인 플레이 요소로 지정할 방법은 많다. 많은 정리·퍼즐 게임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내러티브적 요소를 구현한다.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는 콘셉트인 의 경우 정리 과정에서 모은 단서로 회고록을 복원하게 하고, 는 NPC와의 대화와 ‘이상현상’이라는 미스터리 요소를 도입해 스토리를 인식하게 한다. 게임에서 정리라는 퍼즐이 내러티브와 결합하며 사물은 해석의 대상이 되고, 정리는 이를 들여다보는 행위가 된다. * 의 회고록 정리 화면 ⓒSecret Mode 여기서 <언패킹>이 여타의 정리 게임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드러난다. 현실에서의 정리와 게임에서의 정리 사이에는 자발성의 유무 이외의 목적 차이가 있다. 내러티브의 발견이 게임의 명시적인 목적으로 제시될 경우 사물의 위치는 해석 대상을 넘어 단서 혹은 증거로 구체화한다. 이때 역설적으로 사물은 그것이 담고 있는 기억, 의미와 분리된다. 내러티브의 구성을 최우선 목적으로 둔 플레이어는 전체 이야기를 짜맞추는 데 들어맞는 의미만을 부분적으로 탈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 속 인간의 삶에는 대주제나 기승전결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의 정리에서도 각 물건에 담긴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지만 이를 하나의 서사로 묶는 것은 불가능하며, 우리는 산개한 기억을 더듬어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이『물질과 기억』(1896)에서 주장했듯 기억은 세부 사항이 완전히 보존된 텍스트의 형태가 아닌 부분적인 이미지의 집합으로 우리에게 떠오른다. 이때 사물은 기억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자신과 관련된 이미지를 무분별하게 소환한다. 정리의 과정에서 마주치는 기억은 이처럼 예고 없이 우리 앞에 나타난다. <언패킹>이 제시하는 플레이는 정리와 기억이 연결되는 현실의 메커니즘을 구현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정리 게임에서 물건의 주인은 늘 가상의 인물이자 타인이다. 플레이어에게는 자신이 정리해야 할 물건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럼에도 플레이어는 주인공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듯이, 혹은 잃었던 기억을 찾아가듯이 어렴풋하게나마 주인공의 자아를 구성할 수 있다. 어떠한 명시적 내러티브 없이 사물의 자리를 찾아주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할 수 있다. 기억은 우리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관계맺은 사물 속에서도 거주하기 때문이다. 다시 벤야민의 상념을 빌려본다. “기억된 것, 생각된 것, 의식된 것, 이 모두는 자기 자산의 초석이 되고, 액자, 주각, 자물쇠가 된다. 시대, 주변 경관, 수공 작업, 이전의 소유주 — 소유주의 이러한 물건은 저마다 진정한 수집가에게 한데 모아져 하나의 마법적 백과사전이 되고, 그 총체가 소유주 대상물의 운명이 된다 [2] .” 그렇다면 <언패킹>에서 플레이어의 정리는 주인공에 대해 쓴 백과사전을 훑어보는 일이다. 백과사전을 읽는다고 세계를 완벽하게 알게 되는 것이 아니듯, 정리가 끝난 뒤에도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모든 것은 짐작될 뿐이다. 이 느슨한 이해의 방식은 앞서 언급한 <언패킹>의 유연한 규칙에도 반영되어 있다. 자리가 명확하게 정해져 있는 물건은 없다. 그래서 현실의 우리도 정리를 한다. 제자리를 찾는 일에는 정답이 없어서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물건의 자리도, 나 자신의 자리도. 넘치는 물건과 함께 떠오르는 기억을 정리하다 보면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1] 발터 벤야민, 『라디오와 매체』, 고지현 역, 현실문화, 2021, 239. [2] 발터 벤야민, 앞의 책, 2021, 227. Tags: 기억, 언패킹, 정리 게임, 코지 게임, 사물과 기억, 발터 벤야민, Unpacking Game, Cozy Games, Environmental Storytelling, Memory in Game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에디터) 박유진 시사 유튜브·팟캐스트를 만드는 직장인이자 평범한 게이머. 시사를 녹여낸 게임 이야기를 전하는 일에 종종 함께합니다.

  • DejaVu Sans The NFT Games Dream – is it yet another tulip mania or path to our future?

    Constraints can become stepping stones to innovation. The disproportionate market attention towards integrating blockchain technology into games is perhaps stemming from people’s desire to overcome the current constraints. Here, the idea of combining blockchains and games can be examined from two perspectives: First, exploring the intention behind advocating for this change, and second, discussing why such a change is deemed necessary at this time. Combining the findings from these two would allow us to acquire a comprehensive view of this matter and thus enable critical reflections on what the innovation could bring to our future. < Back DejaVu Sans The NFT Games Dream – is it yet another tulip mania or path to our future? 15 GG Vol. 23. 12. 10. Are NFTs for now or for the future? Constraints can become stepping stones to innovation. The disproportionate market attention towards integrating blockchain technology into games is perhaps stemming from people’s desire to overcome the current constraints. Here, the idea of combining blockchains and games can be examined from two perspectives: First, exploring the intention behind advocating for this change, and second, discussing why such a change is deemed necessary at this time. Combining the findings from these two would allow us to acquire a comprehensive view of this matter and thus enable critical reflections on what the innovation could bring to our future. Notably, a significant portion of the ongoing discourse about integrating a blockchain into games is concentrating on optimistic views toward the future. Discussions about related topics like Play-to-Earn (P2E) and Non-Fungible Tokens (NFTs) are also revolving around on the view towards the future rather than present; on what could happen, and should happen according to the previous attempts. Here, we cannot get away from the feeling that something is not right – something is off. Of course, one could still argue that these messy attempts and discourse are stepping stones towards the next paradigm shift and that we must first prioritise broader and newer attempts rather than hindering innovation with over-verification. Coming from this context, this article aims to delve into the issue of NFTs in games, exploring both the social and technical contexts. First, we take a look at the context of non-fungibility and decentralisation and the game industry’s vision towards its future, along with its remaining technical challenges. From there we look more in-depth at where these endeavours might leave their mark on games. Contexts of Non-Fungibility In recent days in South Korea, the term Non-Fungible Tokens (NFTs) is most commonly used in discussions regarding virtual assets, emphasising their potential value deriving from unique ownership attribution over notions about their technological aspects. Meaning, rather than delving into the technical feasibility of obtaining this non-fungibility status, the discourse surrounding NFTs tends to focus more on how much value can be derived from those assets and how to leverage it. Under current South Korean law, it is not possible to introduce NFTs into games, including its live operation services. There are many restrictions and thus a considerable amount of time would be needed before any NFT games can be fully in operation at a viable commercial level in this country. But the potential gain could be high: If NFT games can somehow reach the mainstream market, they could quickly become the most accessible medium for trading cryptocurrencies, using already existing in-game markets – without making much of an early investment in facilitating entirely new channels. Not to mention, South Korean game players are already accustomed to taking financial burden while playing games. Active players are more likely to become devoted fans of the game, and for them, paying to access the blockchain currency may be perceived as an acceptable range of costs. Here it’s worth closely looking at the case of the game “CryptoKitties” (Dapper Labs, 2017) a prime example of games and blockchain integration. The in-game transactions of “CryptoKitties” occur through trading with the virtual currency Ethereum, providing opportunities to trade more exotic digitally-generated cats at higher monetary values. So, what makes this game ‘fun’? Do players find it ‘fun’ when they successfully create exotic digital cats, or does the enjoyment come from engaging in monetary trading as the prices of digital cats might increase? While the game’s primary game design mechanic revolves around collecting and breeding cute digital cats, “CryptoKitties” trade mechanisms combined with real-world monetary values (i.e., currency that can be used even outside the game) make it hard for us to articulate what the particular design elements are that truly resonate with a feeling of ‘fun’ of players. Let’s consider a hypothetical situation where someone has successfully generated an exotic, high-valued cat in the game. If one considers acquiring a unique cat in the “CryptoKitties” through collecting and breeding as ‘fun’: Does that feeling stem from the self-satisfaction of acquiring a rare item (in this case, an exotic digital cat), or does that come from the optimistic expectations of being able to trade it for a higher amount of money? Perhaps it could be a bit of both. Even if the player has no intention of trading that digital cat, just having an expensive object may already give the person a prestigious and satisfying feeling. This somewhat resembles other game business models already common in some South Korean MMO games – and potentially online games from other regions. Then the question is, why NFTs? What makes incorporating NFTs into the game differerent from other conventional game design and business mechanics? In the next chapter, let’s examine the benefits of NFTs from the perspectives of game companies and gamers. Contrasting views towards Non-Fungibility At the current state, one of the primary issues is that game companies have yet to clearly define how the introduction of NFTs can make more ‘fun’ to the game, and what exact innovative changes they envision for their game’s live service. For example, the game “Nine Chronicles” (Planetarium, 2020) demonstrates the notion of decentralisation by going open-source as a blockchain game. But most blockchain game projects do not seem to provide a solid answer on why they need to choose blockchain technology in particular, and rather adopt blockchain first and then find its reasoning as they run. Furthermore, one of the most widely accepted business models among these blockchain-backed games is the pre-sales scheme, selling items early in advance, which is not entirely something new (from the consumer’s standpoint) but more of a replication of existing business models but with added blockchain hype. This inconsistency leads to worrying public views on game companies’ intentions regarding NFTs, which question the corporate vision as the attempt to introduce cryptocurrency into game services while evading state regulations. From the consumer’s standpoint, the company seems to be attempting to profit from the player-to-player item trades through NFTs. (Translator’s note: South Korean game law prevents game companies from directly facilitating player-to-player item trades if it involves purchasing or selling virtual items with real-world money, KRW. Instead, various third-party currency exchange agencies, apart from the game service providers, can mediate the exchange of virtual items with real money, subject to a certain amount of transaction fees.) Many blockchain game proposals from some major South Korean game companies aim to gain control over direct real-world item trade; Proposing to install virtual item trade through company-issued cryptocurrencies, which is a clear indication of the corporation’s attempt to evade government’s regulations. While game companies’ vision toward NFTs is still fixated on product value, for players, the future it presents has somewhat conflicting implications. Some players may view NFTs as a channel for game items as monetary investments, while others see them as collectibles that could last even after the termination of the game’s service. Considering that all online game services’ assets and efforts that gamers accumulate over time could vanish once the game service ends, without any reliable method to possess such intangible values made in games, NFTs can perhaps provide players a permanent ownership of the things that they have achieved in games. Here, NFTs can be interpreted as a token through which players could feel personally connected with the games that they love. Perhaps the NFTs could be perceived as a medium through which players can express their attachment towards the game — a non-fungible token that signifies their devotion as a fan of the game. For these individuals, NFTs are no longer just about the technical wonder but rather a tool for the meaning-making journey of their gameplay. For instance, online game players are aware that the online game service will eventually end. Despite knowing this potential future, they remain devoted to their current satisfactions with the game, accumulating virtual assets that may one day no longer be available. Perhaps NFTs can resolve this uncertainty (the risk) that players must endure, by becoming a proof of record of in-game items that can last indefinitely. A token with which they can enshrine their love towards the game that can safely be stored without the risk of losing it. Contexts of decentralisation What the blockchain currently guarantees in terms of non-fungibility is the data. While attempts to enhance technologies such as proof-of-work (PoW) and hardware storage capacities are in progress, uploading the entire game system to run on the blockchain is still challenging. Let’s consider a hypothetical scenario where the game system remains outside the blockchain, perhaps locally or internally within the game company’s server, while the game state (data) is kept on the blockchain. In this setup, even if the game company is no longer able to manage the game services — terminating its live operation — the records of the items still exist on the blockchain to prove who owns that particular item. However, without the game system to actually run or operate that specific item this is just a data record, which diminishes its non-fungibility – and thus, become basically worthless. While the game company could add more data, but this could significantly decrease the amount of data that can be stored in the blockchain, leading to higher costs. Higher production costs may result in slower updates , and keeping track of all gamers’ play data on the blockchain could burden computational power, potentially hindering seamless gameplay. Recent new methods proposed to improve blockchain usage (e.g., power consumption, transaction costs, and transaction times) contradict the goal of decentralisation for efficiency in proof delegation. Furthermore, most current blockchain transactions are mediated through trading platforms, which deviates from decentralisation in the first place. Another important note here is that if the game company intends to establish a genuinely centralised way to control its game service and trades, a blockchain is perhaps, unnecessary. As even with the conventional techniques already in use in current game technologies, the company could still choose and guarantee the value of their gamers’ data (and their item’s value) – and perhaps be able to do so more efficiently in terms of speed and cost than using a blockchain. Therefore, game corporations must truthfully reveal their intentions and reasoning for adding blockchains in games despite the corresponding complexity and cost risks. Without such justification, their proposals can only be seen, from the players’ standpoint, as a deceptive corporate manoeuvre – promising non-valuable values in an attempt to evade the law. What we find fascinating in attempts to decentralise games is not to facilitate a central server to operate and manage the game but rather to have it open by envisioning a pivotal shift in the relationship between game companies and users – a relationship that has historically been one-sided and hierarchical. In decentralised games, the relationship between game companies and gamers can take on a more flat and open structure. This collective relationship could also influence how in-game interactions and business models are designed, potentially addressing or altering the stress on gameplay (as recently highlighted in South Korean gaming culture) caused by game designs that favour competition and a win-or-lose mentality. Finding somewhere in between What NFTs could bring to games? In this chapter, we explore intriguing attempts to mediate, compromise, negotiate, and introduce new models that could inspire further innovations. Technical enhancements could one day be able to solve blockchain-related issues. In particular, blockchain has been a significant concern because of its high power consumption due to proof-of-work (PoW). Therefore, newer technologies that do not rely on PoW are being introduced. While it is unlikely that existing blockchains already in operation will alter or adopt these new methods, it could potentially offer further future technical alternatives to issues related to non-fungibility and decentralisation that may arise. In contrast, the game corporations’ attempts to leverage blockchain technology to free themselves from laws and social responsibilities cannot be achieved solely through technical solutions. First, let’s acknowledge that the idea (or attempt) of connecting in-game currency with real-world currency without violating the law is not particularly new; perhaps there’s a good reason for that. The issue is more fundamentally interconnected with the world, and thus, no particular technology—let alone blockchain—can be a magic wand. We believe that even if the use of blockchain becomes more common than ever before, for instance in the banking system, the practices are likely to be somewhere between convention and innovation – a fusion of blockchain technology with the existing banking system. As such, the compatibility between virtual assets and real currency should be mediated, perhaps within the scope that satisfies the existing laws of our society. Implications could also involve using blockchain technology to enhance communication between game companies and players. One such inspiration is the game “EVE Online” and its annual event, ‘Eve Fan Fest,’ which any EVE Online player can sign up for and participate in. Among the many side events in Eve Fan Fest, one we would like to point out is the ‘Player Presentation,’ which offers a 40-minute presentation or a roundtable discussion to pre-registered players. The game operates a single shared universe (global region server) for players worldwide, eliciting user participation both in and outside gameplay: At the event, EVE Online players from various factions gather for discussions and negotiations regarding faction relationships and agreements. Perhaps we could use the blockchain to create and enable various forums like Eve Fan Fest, where South Korean game devs and players can join and engage together. Company representatives can listen to players’ opinions and reflect those ideas into the game’s service, enabling a feedback loop with real in-game implications. Such attempts can perhaps prevent potential conflicts or issues that may stagnate if the company solely dictates decision-making by dismissing the power of collecting intelligence from players. Instead, the blockchain could contribute to recording and tracing player’s ideas and opinions efficiently, supporting the enhancement of fairness and transparency in player communication and game company service decisions. In addition, if the game service continues for a long time, it can serve as an archive of accumulated communication between game developers and players. The blockchain may help regain the trust between South Korean players and game developers, which has reached a dangerously precarious state in recent years. Perhaps loot box probability disclosure, mandated by law in Korea from March 2024, can be verifiably realised by archiving all records of randomised items created in the game on the blockchain. Players may be able to further verify whether the game’s system is operating as the game company intends. At the time of writing, it seems evident that many in South Korean game companies and developers are concerned about what this new law could bring to the industry and how to even comply with this upcoming regulation. Perhaps with blockchain’s potential for transparency and decentralisation, the disclosure of loot box probabilities in South Korea is not far from reality. Of course, we cannot emphasise enough how a careful implementation of new technology, like blockchain, should be based on a comprehensive understanding of the real world and our real problems. Lastly, we again ask: So what do game companies hope to achieve through NFTs? Is the phenomenon of NFT games a futuristic indicator towards our near future, or are they just a mere reflection of the pending issues of our current reality? Attempts are being made to identify the nature of this phenomenon and clarify our understanding of the blockchain game discourse. Finding the right pathway cannot be achieved unless one can figure out one’s location, calculated based on observing the terrain relative to the starting point where one began one’s journey. As such, we must concentrate on navigating through our future discourse while carefully traversing our current and upcoming terrain of topics and never stop asking the very fundamental starting question: “What is fun in games—and can a game still be called a game when its purpose is something other than the pursuit of fun?”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ctoral researcher at Aalto University, Finland) Solip Park Born and raised in Korea and now in Finland, Solip’s current research interest focused on immigrant and expatriates in the video game industry and game development cultures around the world. She is also the author and artist of "Game Expats Story" comic series. www.parksolip.com (게임개발자, 연구자) 오영욱 게임애호가, 게임프로그래머, 게임역사 연구가. 한국게임에 관심이 가지다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2006년부터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있다. 〈한국게임의 역사〉, 〈81년생 마리오〉등의 책에 공저로 참여했으며, 〈던전 앤 파이터〉, 〈아크로폴리스〉, 〈포니타운〉, 〈타임라인던전〉 등의 게임에 개발로 참여했다.

  • 거대전쟁기계와 게이밍, 전 지구적 지각의 병참학 - 세계체제 자본주의 게임공간의 알레고리

    이 냉혹한 전지구 권력의 게임공간 안에서 플레이어들은 힘의 수직적 전달자, 말 그대로 행위의 주체가 아닌 논 플레이어블 캐릭터(None Playable Character)가 된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 전쟁은 이제 단순히 TV나 소셜미디어에서 흘러나오는 스펙타클이 아닌, 실존의 위협이라는 사실이 인지되어야 한다. “전쟁, 전쟁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 Back 거대전쟁기계와 게이밍, 전 지구적 지각의 병참학 - 세계체제 자본주의 게임공간의 알레고리 25 GG Vol. 25. 8. 10. 시뮬레이션, 지각의 재목적화 혹은 전술화 먼 미래, 22세기 말 우주로 진출한 인류는 태양계 외곽에서 외계 종족 ‘버거’와 조우한다. 버거는 인간을 적으로 간주하고 두 차례 지구를 침공하지만 지구 함대는 가까스로 막아내고 3차 전쟁을 준비한다. 지구인들은 뛰어난 상황 판단, 전술 지휘 능력을 지닌 아이들을 선발해 게임으로 그들을 훈련시킨다. 이 게임은 각각 ‘마인드 게임’, ‘배틀 게임’, ‘함대 지휘 시뮬레이션’ 세 가지로 이뤄져 있다. ‘마인드 게임’은 심리 분석용 롤플레잉 게임, ‘배틀 게임’은 무중력 공간에서 펼쳐지는 분대 단위 전투 게임이며, ‘함대 지휘 시뮬레이션’은 대규모 함대를 통제해 싸우는 지휘 게임이다. ‘엔더 위긴’은 특출난 재능을 지닌 유망주로, 유년 학교에서 사령관 학교까지 승승장구하며 성장한다. 엔더는 졸업 시험으로 전 인류 군대를 이끌고 버거의 모행성을 침공하는 함대 결전 시나리오를 플레이하는데, 엄청난 아군 희생, 비인간적이고 극단적인 전략 운용 끝에 가까스로 버거 종족을 멸망시키는 데 성공한다. 게임이 끝나나자 그를 지도하던 선생들은 엔더를 추켜세우며 환호한다. “자네가 해냈어. 자네가 인류를 구원한 거야. 이건 게임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었다네, 엔더.” 망연자실한 엔더는 그제야 자신이 희생시킨 동료들, 폐허, 버거 종족 멸망이 모두 자기 손에서 벌어진 진짜였음을 깨닫는다. * 올슨 스콧 카드, 『엔더의 게임』(1985). 영화 <엔더의 게임>(2013). 올슨 스콧 카드의 SF소설 <엔더의 게임>의 스토리다. 이 작품은 <스타워즈>, <스타트렉>, 은하영웅전설>, <듄> 등 전쟁을 소재로 한 유명 스페이스 오페라물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게임을 소재로 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소설이 다루는 전쟁 게임 덕분에, 다른 작품들에 비해 훨씬 현실적으로 전쟁의 본질을 보여준다. 왜 그럴까? 프랑스의 기술철학자 폴 비릴리오(Paul Virilio)에 따르면, 전쟁의 핵심은 적의 인구와 영토를 파괴하는 물리력이 아니라 적의 ‘지각’을 지배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전쟁은 마술적 스펙타클로부터 분리될 수 없으며, 스펙타클을 생산하는 것이 전쟁의 목표다. 적을 무찌르는 것은 곧 적의 지각을 사로잡는 것이고, 죽음 이전에 죽음의 공포를 적에게 심어주는 것이다…무기의 힘은 야만적인 물리력이 아닌 영적인 힘이다.” [1] 그렇다면 공포와 흥분, 무력감과 엔돌핀, 도파민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길들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무엇이 될까? 흥분과 공포를 대리 체험하고 뇌리에서 구조화하도록 만들어주는 ‘시뮬레이션’은 게임을 만들고, 플레이할 때 가장 활성화된다. 두뇌의 시뮬레이션 기능은 인간 진화의 핵심으로 단순히 시청각적 감각의 모방을 넘어 지각의 체계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인간은 어릴 때부터 본능적으로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상황의 서사를 시뮬레이션한 뒤 스스로 모방·학습해 나간다.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들은 예술의 본질이 모방이라고 했지만, 모방의 진정으로 구조적이고 구성적인 측면은 놀이에 있음을 우린 유년 시절 즐겼던 수많은 게임으로부터 배웠다. 경찰과 도둑놀이, 술래잡기에서 사냥감을 쫓거나 혹은 포식자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체득했으며, 장난감 총칼을 든 전투에서는 폭력의 위험성과 쾌감을 동시에 느꼈다. 게임, 특히 폭력이나 전쟁을 소재로 한 게임은 이 감각을 체험하는 가장 가깝고도 단순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게임이 아이를 폭력적으로 만든다’는 말이 진공에서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그것은 특정한 방식으로 우리의 지각을 바꿔놓기 때문이다. 이라크전쟁 미 해병대의 잔혹한 현실을 풍자한 전쟁드라마 <제너레이션 킬>에는 게임광 출신 병사 ‘트롬블리 일병’이 등장한다. 그는 전투에서 자신이 즐겼던 FPS 게임의 효과음을 입으로 내며 사격하고, 적군을 사살할 때마다 킬 카운트를 확인한다. “전쟁은 왜 이리 지루하죠? 게임은 화려하고 실감나던데.” 마인드게임, 배틀 게임, 지휘 시뮬레이션 폴 비릴리오는 인류 전쟁 역사의 본질이 ‘지각의 병참학’ 이었다고 정의한다. 전쟁은 점점 물리적인 공간이라기보다는 ‘지각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다시 말해 물리적인 힘이 직접 교차하는 성격은 사라지고 은폐와 드러내기, 즉 ‘보기’에 대한 테크닉의 장으로 바뀌어가는 중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은 현대전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최첨단 대공 레이더는 드론을 포착하지 못했고, 수십억짜리 주력전차들은 마트에서나 파는 상용 드론에 무력화됐다. 군함 한 척 없는 우크라이나 해군은 해상 드론으로 러시아 해군 기함 모스크바함을 격침했다. 트위터X에는 양측이 올린 전투드론 영상으로 도배되어 있는데, 보병의 개인화기로는 드론을 잡는 게 불가능하다. ‘보는 순간 교전한다’가 아니라 ‘보는 순간 모든 건 끝났다’가 이 전쟁이 자아내는 냉혹한 현실이다. 현대 전쟁은 동호인들이 즐기던 값싼 취미에 의해 공간의 소멸을 야기하고 있으며, <콜 오브 듀티> 나 <메달 오브 아너>의 흥분 넘치는 ‘택티컬’은 전쟁의 도파민을 가장 장벽 없이 즐길 수 있는 밀리테인먼트로 기능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게임이 <엔더의 게임>에서 주인공이 마지막에 느낀 절망감을 반영하는가? ‘마인드 게임’에 해당하는 심리분석 및 RPG게임, ‘배틀 게임’에 해당하는 피지컬 중심의 전술 게임(FPS), 함대 지휘 시뮬레이션(실시간 및 턴제 전략 시뮬레이션)은 놀라울 정도로 전쟁의 심연에 가까이 있다. 전쟁-게임-기술의 삼체문제가 향하는 지점은 더 많은 살상, 더 효율적인 응시, 유기체적 지각에 대한 무기체적 지각의 승리에 있다. 우리는 <에이스 컴뱃> 같이 화려한 현대 전투기 도그파이팅을 소재로 한 슈팅 게임에서 인간 인지와 감각의 승리를 자처하지만, 붉은 남작의 시대와 같은 낭만 넘치는 기사도 이야기는 전쟁기술과 게임기술의 결합 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능동 위상 배열 레이더(은폐를 드러내는 장치), 장거리 공대공 미사일(물리력 투사), 조기 경보 시스템(전장 조망 체계), 네트워크전 시스템(데이터 공유), 그리고 조종사에 주어지는 HMD(헬멧 마운트 디스플레이)와 키네틱 조작장치의 조합으로 구성되는 BVR(Beyond Vision Range) 전투는 밀리테인먼트에서 순수 인간 육체의 지각 능력이 얼마나 비루한지를 보여준다. 러-우 전쟁에 참전했던 서방의 한 용병은 전쟁 내내 어디서 날아오는지 모르는 자주포 포격음과 폭발소리, 드론의 비행 소리만 들었고, 육안으로 적을 볼 기회는 거의 없었다고 증언한다. “그들을 눈으로 본다는 건 곧 내가 죽는다는 걸 의미합니다.” * 17세기 천체 망원경의 출현은 전쟁 기계와 정찰 기계를 합치시켰다. 광학장치로 조망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시야가 미치지 않는 곳까지 전투가 확장되고, 현실적인 것과 가상적인 것은 뒤섞인다. 20세기 초 카메라와 항공기, 인공위성과 레이더는 H.G.웰스가 자신이 직접 제작한 전쟁게임 <리틀 워즈>의 현실-가상 복합 조망체계를 실현시켰다. 현대의 정찰드론과 VR기술의 결합은 시야가 미치지 않는 곳에 물리력을 투사할 뿐 아니라 ‘본다는 것’의 의미를 바꾸고, 배틀 게임-지휘 시뮬레이션의 가상적 지각을 실제 전장에 위상학적으로 정렬시킨다. 개입할 수 없는 플레이어, 그리고 전쟁이라는 게임 공간 ‘게임을 즐기면 폭력에 둔감해지고 야만성에 휩싸인다’는 비판은 정말 1차원적인 발상이다. <콜 오브 듀티>, <스타크래프트>, <하츠 오브 아이언>이나 시리즈를 즐긴다고 플레이어가 야만 전사가 되지는 않는다. 이런 주장은 ‘게임은 질병이다’라는 허무맹랑한 거짓말과 더불어 종교 근본주의자, 전미 총기협회 관계자가 즐겨 쓰는 조삼모사 수사학에 불과하다. 총기 난사 사고의 근본적인 문제는 총을 둘러싼 삶의 규범(예컨대 미국 수정헌법 2조)에 있지 시리즈에 있지 않다. 한편 게임을 사랑하고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게이머들, 게임 산업 관계자들, 의료 전문가 집단은 게임과 폭력이 아무 상관없으며 산업에 해가 되는 규제를 모두 풀어야 한다거나 ‘자유’ 라는 측면에서 검열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소모적인 갑론을박 속에서 두 가지가 뒤로 밀려나게 되는데, 하나는 전쟁-폭력-게임을 둘러싼 전 지구의 지정학적 갈등에 대한 구조적 비판이 사라진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기와 게임을 결합하는 군산복합 기술체계의 실체가 가려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투의 폭력이 아닌 전쟁의 폭력이 무엇인지 아는 문제, 전쟁-게임을 매개하는 기술을 이해하는 문제가 시급하게 요청되는 바이다. 상황주의 예술가이자 좌파 정보기술 비평가인 맥켄지 와크(Mckenzie Wark)는 자신의 책 『게이머 이론』에서 이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낸다. 게임은 단순히 군사 기술을 민간에 옮겨온 것이거나 병사를 훈련시키는 장치가 아니라, 인터페이스와 컨트롤러를 조작해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고 반응하는 능력(capability)의 총체라는 것이다 [2] . 문제는 VR기기를 쓰고 전투 중인 드론 조종사가 전쟁의 정치경제적 맥락에 개입할 수 없는 것처럼, 인터페이스를 조작하는 게이머들 또한 그러하다는 것이다. 군인들처럼 게이머들 또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임무를 완수하는 것만 요구될 뿐이다. 무기에 복잡하게 연동되어있는 인터페이스, 통제장치의 코드(전쟁의 정치적 목적)는 감춰져 있고, 전쟁 폭력은 추상화된다. <제너레이션 킬>에서 트롬블리 일병이 왜 전쟁을 지루해 했는지 이제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게임에서는 ‘임무 완료’ 와 임무 소요시간, 성과 등이나마 보여주지만 현실에서 전투의 결과는 모호하기 짝이 없다. 적군을 몇 명 죽여서 어떤 정치적 승리를 거뒀는지, 그 영향력이 무엇이었는지 일개 병사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군인은 끊임없이 고통(agony)에 시달린다. 자신의 행위가 만들어낸 결과가 도대체 뭔지 파악할 길이 없어서이다. 와크에 따르면, 전 지구적 군산복합체를 중심으로 펼쳐진 세계체제 공간은 이제 게임공간(Gamespace)이 되어간다. 지정학, 전쟁, 국제정치, 산업과 노동 모두 게임 인터페이스-컨트롤러의 코드를 닮아가지만, 게임의 규칙은 불공정하고 깨져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게임의 규칙이 공정하다고 믿고 이 게임의 알레고리(Allegory)를 수행하지만, 현실이라는 게임공간에는 정당한 보상도 공정한 규칙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게임간이란 곧 자본주의 불평등의 게임이며, 알레고리는 지배 권력이 예외상태로 배제된 자들을 추방하는 알고리즘이라 할 수 있다 [3] . 거대전쟁기계(Mega War Machine)의 전달자로서 플레이어 이런 관점에서 보면, <콜 오브 듀티>와 <배틀필드> 등 전쟁 스펙타클 게임류는 다른 문제, 전쟁을 둘러싼 국제정치의 복잡한 지형들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보여주는 문제로 비판받는다고 할 수 있다. 이 게임을 즐긴 사람들, 그러니까 프라이스 대위를 존경하거나 멋있다고 느끼는 플레이어들 중 중동의 복잡한 정세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이 게임들은 시아파와 수니파, 대영제국 시절의 식민주의와 이스라엘의 극단적인 시오니즘, 그리고 ISIS의 창궐과 아프가니스탄의 부족주의, 쿠르드족 민병대 등이 왜 각자의 이해관계로 전쟁에 얽히는지에 대해 지나친 일반화를 통해 말초적 재미로 소구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페르시아인과 아랍인들의 차이조차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프라이스 대위가 전쟁을 통해 도대체 무슨 값(price)를 받아내려는지도 알 길이 없다. 플레이어가 이른바 ‘택티컬’한 흥분 속에서 얻는 가짜 교훈이란 이슬람교가 극단적인 테러리즘 종교라는 일차원적 믿음과 허구헌날 클리셰로 등장하는 러시아 갱단의 무기 탈취 및 지구 멸망 시나리오 등이다. 다이어-위데포드와 드 퓨터의 명저, 『제국의 게임』은 이런 관점에서 게임이 MIME-NET(Military, Industry, Media, Entertainment Network)이라고 일부라고 비판한다. 비디오게임은 한 마디로 ‘제국’의 가상 이데올로기적 장치이다. 그것은 군사적인 해결책을 정상인 것처럼 포장하고, 지정학적 갈등을 단순한 선과 악의 대결로 그리며, 게이머들을 가상의 군인으로 훈련시킨다 [4] . * 당신은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하는가? 전설적인 델타포스와 네이비 씰 대원이 되어 적진에서 ‘택티컬’한 교전을 하길 갈망하는가? 2004년 그런 확신을 안고 미군이 이라크를 점령했지만, 이라크에 대량 살상무기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 국제사회로부터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을 향한 ‘택티컬한’ 침략이 하마스의 인질극에서 비롯됐다고 보는가? 실상은 20여년 가까이 이어진 봉쇄로 가자지구 인구 대부분이 굶어죽는 비참한 현실이다.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자신의 선조들이 아우슈비츠에서 당한 인종청소와 똑같은 전쟁범죄를 재현하는 시오니스트들의 추악한 형용모순이다. 이스라엘인들이 가자지구에서 행하는 ‘전술’이란 굶주린 사람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하고, 병원과 구호트럭을 폭격하는 학살행위 등이다. 불평등이라는 룰이 적용된 이 세계체제 게임공간에서, <콜 오브 듀티>를 즐기는 것의 의미와 <디스 워 오브 마인>이 생산하는 전쟁의 구조적 폭력 비판은 동시에 상기되어야 한다. 이 게임의 플레이어는 군 통수권자들이지 당신이 아니다. 당신은 플레이어가 아니라 그저 폭격으로부터 살아남고자 발버둥 쳐야만 하는 NPC(None Playable Character)에 불과할 따름이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전쟁을 찬미하고 미국 중심 국제 질서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는 게임 말고도 영화, 드라마, 다방면에 널려 있다. 그렇지 않은 매체를 찾기가 힘들 정도다. 그러나 ‘세계 체제 게임공간’ 에 접속해 최신 전쟁무기를 휘두르는 플레이어의 감각은 이데올로기 너머의 문제로, 기술체계와 지각의 병참학에 깊이 연루되어 있다. 오래 전 기술문명사학자인 루이스 멈포드는 기술의 본질이 단일한 대상이나 혹은 용도 변경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라, 거대기계(Megamachine)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거대기계란 물리적 강제력과 물리학, 수학, 천문학 등 과학적 지식, 그리고 관료제의 권위가 결합한 사회적 기계로, 인간 자체를 부품으로 삼아 구축된 사회조직의 총체이다 [5] . 고대 이집트 시대 피라미드에서부터 현대 증기기관까지, 인류의 기술 문명은 대량 살상 능력과 대량 생산 노동력, 사회 지배 이데올로기를 결합한 기술 체계의 앙상블로 진화해 왔다. 현대의 거대기계는 더 파괴적인 원자력과 미디어 재현 기술을 흡수하며 ‘권력의 펜타곤’으로 진화한다. 여기에는 기업의 경제력, 군사력, 그리고 대중매체까지 포함되며, 레짐의 유지와 권력 증식만을 목표로 움직이는 반 유기적 시스템(anti-organic system) 안에서 인간은 부품 그 자체로 전락한다 [6] . 게임산업과 군산복합체, 그리고 전쟁과 세계체제 빅테크-자본주의 권력은 이미 유기적으로 결합한 거대 전쟁기계(Mega Warmachine)이 된 것은 아닐까? 자폭드론은 VR과 조이패드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드론에 탑재된 전장AI는 피터 틸, 일론 머스크 같은 빅테크 기술 영주들이 정부와 동맹을 맺고 발달시킨 안면인식, 스타링크, 범죄자 식별 알고리즘을 망라하는 AI와 거대 언어모델을 동반한다. 이를 처리하기 위한 컴퓨터 연산 장치를 공급하는 업자는 엔비디아와 AMD 등 게임계 핵심적인 하드웨어 업체들이다. 이 냉혹한 전지구 권력의 게임공간 안에서 플레이어들은 힘의 수직적 전달자, 말 그대로 행위의 주체가 아닌 논 플레이어블 캐릭터(None Playable Character)가 된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 전쟁은 이제 단순히 TV나 소셜미디어에서 흘러나오는 스펙타클이 아닌, 실존의 위협이라는 사실이 인지되어야 한다. “전쟁, 전쟁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1] 폴 비릴리오, 『전쟁과 영화』. 권혜원 역, 한나래, 2004. [2] Wark, Mckenzie. 2007. Gamer Theory. Havard University Press. [3] Ibid. [4] 닉 다이어-위데포드, 그릭 드 퓨터, 『제국의 게임』. 남청수 역, 갈무리, 2015. [5]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1』. 유명기 역, 아카넷, 2013. [6]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2』. 김종달 역, 경북대학교 출판부, 2012. Tags: 전쟁기계, 이데올로기, 국제정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디지털 문화연구/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신현우 문화연구자, 문화평론가이며 기술비판이론과 미디어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다. 게이밍, 인공지능, 플랫폼, 블록체인을 둘러싼 문화현상을 연구하며 서울과기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한다.

  • 게임적 리얼리즘: "제3의 시간"과 다이성(多异性)의 순간

    리얼리즘의 탄생은 근대 이래 과학주의의 확산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하지만 오늘날 디지털 문화의 다양성, 사회적 상호작용의 게임화는 리얼리즘과 과학주의 간 긴밀한 관계를 위협하고 있고, 이로 인해 우리는 리얼리즘이란 것에 대해 다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아즈마 히로키(東浩紀)의 ‘게임적 리얼리즘(ゲーム的リアリズム)’ 이론은 그 안에 이론적 균열과 논리적 모순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로하여금 리얼리즘 내러티브라는 문제와 침묵하는 독자를 자율적인 행위자로 바꾸는 게이머 문제를 사고하도록 해주었다. < Back 게임적 리얼리즘: "제3의 시간"과 다이성(多异性)의 순간 12 GG Vol. 23. 6. 10. 게임적 리얼리즘: "제3의 시간"과 다이성(多异性) [1] 의 순간 游戏性现实主义:“第三时间”与多异性时刻 [2] 리얼리즘의 탄생은 근대 이래 과학주의의 확산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하지만 오늘날 디지털 문화의 다양성, 사회적 상호작용의 게임화는 리얼리즘과 과학주의 간 긴밀한 관계를 위협하고 있고, 이로 인해 우리는 리얼리즘이란 것에 대해 다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아즈마 히로키(東浩紀)의 ‘게임적 리얼리즘(ゲーム的リアリズム)’ 이론은 그 안에 이론적 균열과 논리적 모순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로하여금 리얼리즘 내러티브라는 문제와 침묵하는 독자를 자율적인 행위자로 바꾸는 게이머 문제를 사고하도록 해주었다. 디지털 게임 속에서 리얼리즘적인 스토리 시간과 내러티브적 시간이 주도권을 잃어버리고, 읽는 시간 즉 ‘제3의 시간’, ‘노는’ 시간이 구해진 것이다. 실제 세계로부터의 신체적인 충동이 게임 행동의 핵심으로 전환되고, 리얼리즘 내러티브의 정신적 이끔이 게임적 리얼리즘의 감각적 이끔으로 대체된다. 행동을 주도하는 의미생성 방식이 그 핵심이 되는 것이다. 게이머는 더 이상 세계의 사물 뒤에 숨겨진 깊은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 사람들의 육체가 존재하는 방식처럼 세계의 사물 자체에 놓이게 됐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리얼리즘 비디오게임의 디자인, 소비, 상벌, 인식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일종의 파노라마적인 지식의 환각을 제공하고, 다른 한편으로 게이머는 신체의 감각에 빠져 파노라마 지식 환각의 의미를 조각화, 껍데기화하는 것에 전념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비디오 게임 내러티브에서 게이머의 행동 중 어느 것도 상징적인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되며, 불안정한 ‘다이성’을 나타나게 된다. 이제 가상현실은 메타스페이스에 도달하였고, 이곳에서 인간은 자유롭게 ‘게임적 방식’으로 개인의 일상 경험에 몰입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경험은 이제 거짓이나 상상이 아니라, ‘리얼’이다. 즉, 인류의 지식에서 배제됐던 ‘게임’은 “자유의지”(Immanuel Kant), “심리상태의 경계”(Friedrich von Schiller), 혹은 “정력의 과잉”(Herbert Spencer)의 게임이 되고, 메타버스 시대에 새로운 지적 경험의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즉 “게임을 통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 “게임 자체가 지식”이 됐음을 가리킨다. 이에 따라 메타버스는 일상의 잉여로서의 ‘놀이’가 아니라, 삶 그 자체로 인류 일상의 이념을 변화시켰다. 세 가지 리얼리즘과 게임적 리얼리즘의 ‘캐릭터 독립(角色独立)’ 게임적 리얼리즘은 일본 연구자 아즈마 히로키가 창안한 개념이다. 아즈마 히로키는 이 개념의 정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지만, 그의 글이나 오오츠카 에이지(大冢英志)와의 대담을 통해 이 개념의 의미를 추론할 수 있다.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 : 동물화된 포스트모던>에서 아즈마 히로키는 세 가지 리얼리즘을 언급했다. 그는 오오츠카 에이지의 연구가 자연주의 리얼리즘과 만화·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이라는 두 가지 리얼리즘을 도출했다고 봤다. 자연주의 리얼리즘이 꼭 에밀 졸라(Émile Zola)로 대표되는 자연주의 유파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며, 일본에서 라이트노벨이 등장하기 전에 존재했던 순수문학의 한 형태로서 ‘사소설(私小說)’을 지칭한다. 오오츠카 에이지에 따르면 사소설은 모두 상대적으로 안정적 발화 주체인 ‘나’를 갖고 있으며, ‘나’가 스토리의 논리와 구조에 따라 발화하는 소설이라고 언급한다. 한편 만화·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은 일본에서 새롭게 등장한 라이트노벨을 지향하는데, 이러한 종류의 소설에는 등장인물이나 캐릭터, 스토리, 플롯을 통제할 수 있는 안정적인 발화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라이트노벨의) 작가는 캐릭터 자체에 얽매이는데, 오타쿠들이 애정하는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책 속의 ‘2차원’ 캐릭터 자체가 이야기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라이트노벨은 사소설이 한 명의 ‘나’로 소설을 통제한다는 의식을 바꿔버렸다. 아즈마 히로키는 오오츠카 에이지의 두 가지 리얼리즘 구분으로 충분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자연주의 리얼리즘이든 만화·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이든 작금의 현실을 완전히 드러내기에는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아즈마 히로키는 이 새로운 리얼리즘을 ‘게임적 리얼리즘’이라고 부르면서 세 가지 리얼리즘의 분류를 완성했다. 그렇다면 게임적 리얼리즘이란 무엇인가? 아즈마 히로키에 따르면 게임적 리얼리즘과 만화·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은 모두 ‘캐릭터’가 핵심이지만, 게임적 리얼리즘의 경우 캐릭터의 메타서사 기능(메타적 스토리성)에 기초한다. 게임적 리얼리즘의 핵심포인트는 여전히 “캐릭터 독립”이라는 것이다. 즉, 이야기(故事)는 플롯(情节)이나 현실 때문에 설정되는 게 아니라, 어떤 캐릭터를 위해서 설정되는 것이다. 독자들이 그 이야기를 읽는 이유는 그 이야기가 담고 있는 감동적인 순간 때문이 아니라, 이야기 속 캐릭터의 삶과 상태를 느끼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캐릭터 독립이란 사실 캐릭터가 게임적으로 존재함을 가리키며, 이는 게이머나 독자가 자유롭게 캐릭터를 이용한 결과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아즈마 히로키가 말하는 ‘메타서사’를 구성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적인 게임 행위로부터 비롯된다. 곧 소위 게임적 리얼리즘이란 신체와 캐릭터 사이의 경계를 제거하고, 게이머/독자를 텍스트의 일원으로 만드는 방식——게이머/독자의 캐릭터화——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캐릭터’ 독립의 관점으로부터 설정되는 게임적 리얼리즘에서 중요한 측면을 망각하는데, 공교롭게도 ‘캐릭터 독립’은 독자가 읽고 소비할 수 있는 권력을 행사하는 결과라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독자가 캐릭터에 대해 특별한 애착을 갖기 때문에 스토리 설정의 내적인 동력이 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독자가 원하는대로 캐릭터를 위한 스토리를 설정할 수 있기 때문에 독자는 침묵하는 독서인이 아니라 ‘게임을 열독하는’ “게이머”가 된다. 따라서 ‘캐릭터 독립’은 읽는 행위의 문제를 지향하는데, 독자들이 이와 같은 캐릭터 독립을 원하기 때문에 캐릭터는 독립할 것이란 점이다. 게임적 리얼리즘의 텍스트에서 독자의 의지는 얼마든지 이야기의 의지(그것이 존재한다면)를 바꿀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적 리얼리즘은 사람과 캐릭터가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며, 즉 독자(게이머)가 캐릭터 속으로 완전히 녹아드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모습은 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에서도 발생했지만, 가상현실 시대에는 더욱 전형적으로 변화했다. 가상현실 서사 [3] 에서는 인간과 캐릭터의 구별이 모호해졌다. 그들의 삶의 경계는 점차 통합되며, 이와 같은 인간과 머신의 공생은 새로운 캐릭터 의식을 낳았다. 근대 이후 과학적 진실에 대한 요구가 자연주의적 리얼리즘을, 내러티브 속 캐릭터의 ‘재생’에 대한 포스트모던 사회의 요구가 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을, 가상현실 시대에 인간과 가상 캐릭터의 일체화가 게임적 리얼리즘을 만들어낸 것이다. 게임적 리얼리즘은 일종의 새로운 현실 경험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제 사람들은 가상의 형식으로 실제의 신체적/정신적 경험을 창조하기 때문에 가상세계의 경험은 실제 생활 경험의 일부분이 될 수 있다. 게임적 리얼리즘의 뿌리는 바로 ‘게이머’ 자체다. 게이머는 캐릭터가 담고 있는 의미를 잠재적으로 구성하고, 실제 텍스트 활용의 과정에서 이와 같은 텍스트 활용 과정을 게임적 리얼리즘의 핵심으로 만들어버린다. 바로 여기서 게임적 리얼리즘은 단순히 장르(genre)나 형식(style)이 아니라, 가상현실 자체를 지향하는데, 이때 ‘게임적 리얼리즘’은 가상현실의 철학 이념과 스토리텔링의 규칙을 의미하게 된다. 여기서 ‘캐릭터 독립’이란 곧 읽는 행위의 문제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캐릭터 독립은 왜 발생할까? 그것은 독자가 이와 같은 독립을 원하기 때문이다. 아즈마 히로키는 오타쿠의 2차원적 내러티브에서 캐릭터가 꼭 이야기에 속하는 것은 아니며, 자율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와 동시에 그는 이야기가 결말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 역시 아니라는 점, 즉 라이트노벨에서는 캐릭터의 성격이 플롯에 우선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따라서 라이트노벨은 사소설과는 다르다. 사소설이 작가 중심적이라면, 라이트노벨은 독자 중심적이다. 캐릭터에 대한 독자들의 활용(물론 완전히 자유로운 활용은 아니다)은 캐릭터에게 자율적인 생명을 불어넣으며, 모든 캐릭터들은 각기 다른 사람들이 중복해서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자신을 바꾼다. “제3의 시간” : 사람의 게임, 게임을 즐기는 사람에서 게이머로 나아가 게임적 리얼리즘은 캐릭터의 독립을 통해 그동안 매체에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던 독서 행위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사실 가상현실 시대의 비디오 게임 서사는 언제나 행동 주도로 이뤄지며, 인간과 캐릭터와의 간극이 가상현실 서사 속에서 사라지게 만든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메타버스적 ‘게임형태’는 인류 생존의 선형적 역사를 폭발시켜 현재진행형으로 변화시켰다. 전통적인 사실주의 서사는 이야기 발생 시간과 서사가 차지하는 시간으로 이뤄져 있다. 이것이 서사의 첫 번째 시간(이야기 시간)과 두 번째 시간(서사 시간)을 형성한다. 서사 시간은 문학의 핵심이며, 그것은 이야기 시간이 작품에 나타나는 방식을 제어한다. 상대적으로 리얼리즘 텍스트는 스토리텔링 시간과 스토리텔링 시간의 조화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는 반면, 모더니즘 텍스트는 오히려 서사 시간과 균형을 맞추는 데 더 많이 사용된다. 따라서 다니엘 벨(Daniel Bell) [4] 은 모더니즘의 특징은 현장성(거리의 소멸, eclipse of distance), 즉 독자로하여금 이야기꾼의 말버릇이나 말투가 독자에게 들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전통 소설들은 대체로 이야기 시간과 서사 시간의 조합이다. 하지만 전통 서사에서 읽는 시간——이를 ‘제3의 시간’이라고 하자——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며, 사람들은 ‘제3의 시간’을 ‘제로 시간’ [5] 으로 가정한다. 그러나 반대로 게임적 리얼리즘은 ‘제3의 시간’을 위주로 하여 텍스트의 사용 활동(제1의 시간)과 텍스트의 서사 행동(제2의 시간)이 함께 새로운 ‘게임 행위’(제3의시간)를 구성한다. ‘제3의 시간’ 안에서 신체의 충동이 게임행위의 핵심으로 변화하고, 게임적 리얼리즘의 ‘주인공’이 ‘캐릭터’에서 ‘플레이어’로 바뀐다. 서사자로부터 ‘서사’의 핵심적 지위는 플레이어의 ‘플레이’로 바뀌게 된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세계의 사물 뒤에 숨겨진 깊은 의미를 탐구하지 않으며, 실제 삶에서 사람들의 신체가 존재하는 방식처럼 세계의 사물 자체에 놓이게 된다. 전통적인 텍스트에서 독자의 존재는 텍스트 입장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볼프강 이저(Wolfgang Iser)는 어떠한 이야기든 이상화된 암묵적 독자를 설정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암시적 독자(Der implizierte Leser)’ [6] 라는 관점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암시적 독자는 휴머니즘의 주체론적 환상을 더 많이 보여준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텍스트를 읽는 과정을 탐색했다. 그는 텍스트에 대해 “to be or to have”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 위에 ‘쓰기 가능한 텍스트(writerly text)’의 범주를 제시했다. 하지만 ‘쓰기 가능한 텍스트’는 텍스트 의미의 틈새를 통해 구축되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읽기 행위에서 구현되는 것이 아니다. 바르트는 읽기를 일종의 성적 활동으로 간주하고, 그것의 은밀성만 강조했을 뿐 텍스트 읽기 자체에 주체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미학과 독자반응이론, 버밍엄 학파의 암호에 대한 강조를 수용하는 것은 사실 “텍스트 의미의 실현”이나 “텍스트에 대한 독자의 태도”에 중점을 두는 것이며, 제3의 시간이 서사 측면에서 제1의 시간이나 제2의 시간을 주도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독자, 관중 등은 ‘플레이어’와 같지 않다. 전자(독자)는 텍스트 뒤에만 나타날 수 있고, 후자(관중)는 텍스트 서사의 새로운 행동을 발현한다. 우리가 오직 게임적 리얼리즘 텍스트, 특히 비디오게임 텍스트 속으로 들어갈 때에만, ‘제3의 시간’은 완전히 구원될 수 있다. 내가 보기에 인류의 게임 발전은 세 가지 형태를 거쳤다. 최초는 낮에 사냥하고 밤에 사냥을 모방하는 ‘인간의 놀이’ 형태로 출현했다. 다음으로는 ‘놀이하는 인간’이 나타났는데, 프리드리히 폰 실러는 이를 두고 이질적 산업화 세계에서 게임을 통해 규율과 이질성에 저항하는 것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여기서 놀이란 곧 목적 없는 합목적성, 불규칙한 규율성, 자유의 상징(놀이 충동)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인간의 놀이’나 ‘놀이하는 인간’을 연구하지 않는다. ‘플레이어의 게임’, 즉 ‘플레이’를 핵심으로 하는 게임을 연구한다. 플레이란 텍스트를 즐기는 것이자 사용하는 것인데, 이는 곧 ‘제3의 시간’의 중심화를 형성한다. 이때 ‘플레이어’는 더 이상 텍스트 밖의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서사적 행동 속의 캐릭터라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전통 서사와 게임 서사는 매우 다르며, 후자는 전통 서사에 없는 ‘제3의 시간’ 서사를 만든다. 전통 서사는 독자들이 서사 시간을 통해 이야기 시간에 몰입하게 하고, 자신의 현실 시간을 잊게 한다. 따라서 전통 서사의 이야기 시간과 서사 시간이 긴밀하게 결합되어 이야기의 폐쇄성을 형성하고, 일단 이야기가 끝나면 모든 것이 끝나고 독자의 읽는 시간은 껍데기가 된다. ‘독자’는 설정적인 캐릭터가 되고, 읽기란 개인의 생생한 삶의 경험을 착취하는 과정이 된다. 말하자면 전통 서사는 텍스트의 독서자/사용자를 구조적으로 배척한다. 게임 서사는 이와 반대인데, 그것의 심오함은 ‘제3의 시간’이 이야기 시간을 빌어 서사 시간을 소멸시켜버린다는 데 있다. 사람들이 완전히 현실로 돌아오게 하거나, 혹은 현실의 시간이 거대한 작용을 하도록 하는 것인데, 게임은 이야기 시간과 서사 시간이 끝날 때에야 비로소 진짜 시작된다. 가상현실 시대, 게임의 ‘제3의 시간’은 더욱 풍부하고 생동감 있게 변화했다. 첫째, 그것은 서사가 단순한 인과적 사슬을 따라가게 하지 않고, 대신 이야기에 몰입한 ‘행동자’에게 이야기가 벌어지는 공간적 상황을 느끼게 함으로써 이야기의 시간적 논리를 공간적 논리로 대체시킨다. 전통적인 이야기에서 인간과 이야기는 표현하고 표현되는 관계인 반면, 가상현실의 이야기 속에서 인간과 이야기는 함께 행동하는 관계가 된다. 즉 사람들이 이야기를 구동하며, 이야기가 사람을 인도하지 않는다. 둘째, 플레이어가 위탁한 ‘아바타’의 함의는 은유가 아니며, 유일무이한 개인의 완전한 대표 그 자체다. 따라서 게임 서사의 이야기는 ‘과거의 시간’을 다루지 않으며, 일종의 ‘현재진행형’이다. 플롯이 아니라 게임 캐릭터의 행동을 이끌어냄으로써 보다 넓은 상상력과 다양한 형태의 캐릭터 인생을 갖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게임 서사의 핵심은 게임 텍스트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게임을 진행하고 어떻게 게임 속에서 게임을 완성하느냐에 딸려 있다. 간단히 말해 오직 게임의 행동만이 독립적인 인간의 자유로운 태도를 설정——즉, 놀이가 인간의 모든 것을 구성한다——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인물의 운명은 더 이상 미리 짜여지지 않고 ‘사건화’된다. 여기서 가상현실 서사는 개개인이 자신만의 ‘작은 이야기’를 생성하고, 각각의 ‘작은 이야기’는 모두 결론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침잠하는 사건이며, 영원히 ‘진행중’인 사건이란 점이 ‘제3의 시간’의 핵심이 된다. 그러니까 제3의 시간이란 영원히 일어나는 이야기를 가정한 시간이다. 분명히도 ‘제3의 시간’은 우리가 게임의 철학적 함의를 새로이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게임은 인간의 이성적 생활의 ‘평안함’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 끼워져 있는 의제이다. 게임이야말로 상징계와 상상계에 의해 완전히 정복될 수 없는 진실의 일부를 폭로한다. 보다 흥미로운 것은 게임이 철학적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이라는 사실이다. 19세기 이래 인류의 이성주의에 대한 강한 공감과 자제, 자율, 자각을 둘러싼 초자아적인 욕망은 게임의 사회정치적 함의를 배양해왔다. ‘게임’은 ‘게임 플레이를 하는 사람’의 통제력을 부각시킴으로써 이성주의 시대에 잠재된 ‘비인간화의 충동’, 즉 이질적인 노동규율에 완전히 편입되는 것을 거부하려는 무의식적인 충동을 드러낸다. 여기서 ‘비인간화’란 인간의 탈인간화가 아니라, 사회 내에서 규정되는 방식보다 자신의 신체적 경험을 따르는 ‘인간화’, 즉 ‘비사회적 인간화’를 가리킨다. 전통적인 철학, 사회학, 인류학 연구 시야에서 ‘게임’을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여전히 ‘면대면’의 인간 활동이며, 오늘날까지도 ‘게임’은 가상현실의 이야기 공간이다. 전통적 문화비평, 또는 미학 연구자의 관점에서 게임은 ‘서사’의 어떤 도움으로 껍데기를 구축하는 쾌감적 행동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게임은 일종의 ‘서사’로서 이야기의 시간적 단서들을 수정하고, 플레이어들의 게임 활동 중 ‘사건적 행동’의 문을 열어준다. 문화연구에서 ‘게임’(아케이드, 휘파람 부는 소년, 해변의 서퍼 등)은 청년 저항성의 표징이지만, 게임의 주이상스(jouissance) [7] 를 보지 못하는 것은 그 자체로 불확실성에 대한 미련(결국 저항은 확실성을 내포한 행위이므로)이다. 문화연구에서 말하는 저항이란 어디까지나 확정적인 행위인데, 게임은 소환되지 않은 신체와 평화롭게 공존하는 경험이다. ‘ 다이성’의 순간과 플레이어로서의 나 제3의 시간에서 이야기는 이미 발생한 일(과거)에서 발생하고 있는 과정(현재진행)으로 바뀐다. 즉, 가상현실의 새로운 의미 표현의 물꼬를 튼 것(다의성, multi-paradox)이다. 이와 같은 다이성 속에서 ‘플레이어’가 함유하고 있는 뜻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 내가 보기에 메타버스로 대표되는 가상현실 시대에 게임적 리얼리즘의 ‘제3의 시간’은 다이성의 순간을 창조할 수 있다. 즉 여기서 다양한 가능성과 다양한 불가능성이 충돌의 순간을 교차하게 된다. ‘다이성’은 각종 모순과 역설의 동시발생을 강조하는데, 그것은 고정적 의미, 즉 역사적으로 안정적이고 통일적인 이해, 혹은 미리 결정된 플롯화 서사가 아니다. 일이 어떻게 발생할지 모르고 심지어 보고 싶지 않은 일이 발생하거나, 일어나길 바라는 일이 영원히 일어나지 않기도 한다. 전통 서사에서 이야기의 결말(이야기의 끝)과 엔딩(서사의 완료)은 따로 존재한다. 게다가 결과는 이미 일어났지만 엔딩이 여전히 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엔딩과 결말의 분립은 독자의 ‘제3의 시간’을 ‘규칙화’, ‘권력화’, ‘질서화’하겠다는 전통 서사의 야망을 보여준다. 비디오 게임 서사와 전통적인 서사는 정반대인데, 게임 중의 서사 시간과 ‘제3의 시간’은 교묘하게 접목되고 스토리텔링의 시간은 여기에서 보류된다. 따라서 많은 슈팅 게임들이 반전과 평화를 말하지만 서사 시간과 ‘제3의 시간’은 이야기 시간을 빼앗고 침잠하여, 플레이어들을 끊임없이 ‘제3의 시간’의 살육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엔딩이 일어나는 순간은 바로 ‘제3의 시간’의 반복적인 중첩이 이뤄지는 순간이며, 스토리에서 사망한 플레이어가 계속해서 플레이해야 게임의 의의가 진정으로 풀리게 된다. 2차 세계대전을 다룬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하츠 오브 아이언 4(Hearts of Iron IV)’는 “1936~49년 간 세계 어느 나라든 정치·경제·첩보·외교·전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쟁 기간의 판도를 확장할 수 있도록” 하는데, 많은 플레이어들은 히틀러를 선택해 전 세계를 점령하는 걸 선택한다……. 확실히 그것은 서사 시간과 스토리텔링 시간이 ‘제3의 시간’을 규율하는 게 아니라, ‘제3의 시간’이 독보적 시간이 됐음을 가리킨다. 중요한 것은 스토리가 어디에서 끝나느냐가 아니라, 플레이어가 어디에서 다시 시작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로 인해 플레이어의 선택권은 ‘제3의 시간’이 되며, 그것은 플레이어가 게임의 스토리를 끊임없이 반복하며 자신의 쾌락을 구축하는 것으로 구현된다. 다시 말해, 게임 스토리의 시간과 서사 시간 사이의 모든 의미는 ‘제3의 시간’을 활성화하는 것에 있다. 그렇기에 플레이는 ‘제3의 시간’을 진정으로 텍스트 주도의 시간으로 만들고, 플레이어는 다이성의 주체, 즉 홑따옴표만 있는 “‘나”가 되는 것이다. 홑따옴표 ‘나는 처음엔 실제 사람이지만, 그 후에는 게임 속 캐릭터이다. 다시 말해 ‘나는 ‘나와 캐릭터’의 융합체이며, 이는 플레이어의 정의를 구성한다. 즉 ‘나는 ‘제3의 시간’을 게임 속으로 갖고 들어가, 모종의 캐릭터와 융합된다. 이것이 바로 ‘게임 텍스트’를 전통 서사 텍스트와 다르게 만드는 부분이다. 전통적인 서사 텍스트는 작품을 시작하는 첫 글자부터 끝맺는 마지막 글자까지를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고, 책의 앞표지부터 마지막까지의 전체 내용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게임 텍스트는 소위 ‘과학 텍스트(算学文本)’ 즉 기술적 인터페이스 텍스트일 뿐만 아니라, 플레이어 캐릭터 텍스트 즉 ‘나의 텍스트’라는 두 번째 측면의 텍스트이기도 하다. 물론 게임 텍스트는 게임 제작사가 생산해낸 일부이며, 플레이어와 더불어 플레이를 할 때 ‘제3의 시간’을 가지고 게임 속으로 들어가 캐릭터가 융합된 부분의 모음이다. 다시 말해 게임 텍스트는 동적 텍스트, 즉 플레이의 과정으로서의 텍스트인 것이다. 그럼 플레이어는 무엇일까? 내가 보기에 플레이어는 하나의 ‘잉여인(空余人)’ [8] 이다. ‘플레이어’는 게임 진행 중에 역설적인 경험을 분출해냄으로써 일종의 ‘잉여인’의 얼굴을 보여준다. 조르지오 아감벤(Giorgio Agamben)은 <벌거벗음(Nudities)>의 ‘페르소나 없는 정체성’이라는 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개체가 순수하게 생물적인 비사회적 신분으로 귀결될 때, 그것은 각종 가면을 쓰고 인터넷상에서 제2, 제3의 삶을 살 수 있는 능력도 부여받는다.” 여기서 ‘나’는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의 남아있는 부호로서의 신체인 플레이어 ‘나의 쾌락은 시비의 의의가 지배한다. 또 다른 텍스트를 맞닥뜨리면 ‘나는 곧 다른 얼굴이 될 수도 있다. 보다 흥미로운 것은 플레이어가 여전히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말하는 ‘이드(id)’, 즉 한 사람 마음 속 욕망의 쾌감을 깊숙이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태도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스나이퍼 엘리트(Sniper Elit)>에서 모든 플레이어는 살인자이지만 동시에 플레이어이기도 하다. 한데 게임은 이미 알고 있는 비밀을 모르는 척하는 방식일 뿐이다. 살인은 게임을 방불케 하지만 저격하는 쾌락으로 가득 차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통해 살인이라는 고통스러운 일과 즐겁게 지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좀 더 깊이 분석해보면, ‘플레이어’가 또 하나의 “역사적 현실의 국외자”라는 것을 우리가 깨닫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한편으로는 플레이어는 그 안에서 플레이의 가치를 점수나 장비, 등급을 통과해 창조하려고 노력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가치의 표지물이 무의미한 행동(플레이)의 내적 뒷받침일 뿐, 플레이어의 플레이는 그런 가치를 위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강렬한 ‘씽킹 프롬 씽커(Thinking from Thinker)’를 보여준다. 그것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행동으로 허무에 대항하는 것이고,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아즈마 히로키의 게임적 리얼리즘이라는 개념은 다음의 측면에서 철저하게 개조됐다. 게임적 리얼리즘의 캐릭터 독립으로부터 독자의 욕구가 게임적 리얼리즘에 대한 환원적이고 규정적인 성질을 도출하고, 이를 통해 비디오 게이머들이 서사의 시간에 대항하는 이와 같은 행동을 ‘제3의 시간’이란 개념으로 보여줬다. 이 지점에서 플레이 행동은 해방됐으며, 게임적 리얼리즘은 일종의 불안정한 자아를 지향하고, 케릭터와 안정적 세계 사이에 항구적인 모순과 대립을 지향하게 됐다. 한 사람이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을 때, 그의 심리 상태는 안정적이고 합리적이지만, 게임을 플레이하는 순간, 게임 속의 불안정한 ‘나로 변모할 수 있다. 그것은 살인의 쾌락, 돌격하는 용감함, 숨겨놓은 비열함, 죽은 동료들 가운데에서도 홀로 살아남았다는 기쁜, 그리고 전우를 구해냈다는 신성함 등을 아우른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과정에서 다이성의 자아가 이렇게 터무니없이 강림해오는 것이다. 바깥 세계에는 안정성에 대한 갈망이 있지만, 게임의 ‘제3의 시간’은 불안정성에 대한 갈망으로 구축되어 게임의 현실적인 역설을 형성한다. 게임 규칙에 대한 준수와 세계의 결핍을 플레이할 가능성에 대한 싫증 역시 역설적이다. ‘게임적 리얼리즘의 순간’은 바로 ‘다이성’의 순간이다. 이 세계는 플레이할 만한 것들이 결핍되어 있고,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규정된 동작을 따라야 하며, 이는 곧 ‘플레이’에 대한 주도적인 욕망을 품게 한다. 하지만 게임은 플레이할 수 있고, 규정적인 것에 대한 파괴이며, 동시에 규정성을 내재하고 있기도 하다. 여기서 여러 역설들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게임적 리얼리즘은 역설적인 현실을 지향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플레이어’의 얼굴은 ‘다이성’의 형태를 띠게 된다. 그것은 플레이어로서 규칙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자유롭게 플레이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한다. 그것은 ‘현실’을 이미지의 세계로 분해하고, 이미지 차원에서 주변을 맴도는 것을 지향한다. 또한 그것은 물질적인 원칙을 게임의 정신 활동 속에 포함시킨다. ‘타자와 나’를 수면 위로 부상시키고, 주체의 안정적인 함의를 제거하여 게임적 리얼리즘 속에서 생명력있고 불확실한 상태에 있는 ‘어떤 것’으로 변화시킨다. 플레이어의 이와 같은 불안정성 때문에 게임산업은 비로소 천편일률적 충돌을 극복할 수 있었으며, 동시에 그것은 ‘비인간/폐인’이라는 의식을 고수하면서 인간의 역사적 활동에 대해 ‘현장에 내가 없는 척’ 가장하는 태도를 취해 가상현실 경험과 에고의 장벽에 빠져들게 한다. 디지털 세계의 파괴자로서 그것은 파괴력의 위대함을 부각시키고, 역사적 현실세계의 유령으로써 어둠 속에서 흔들리며 떨어질 것 같은(摇摇欲坠) 등불로 남겨져 있다. 그것은 침묵하고 있지만, 게임은 시끄럽게 울리기도 한다. 게임 세계가 닫히는 순간 그것은 크게 소리를 낸다. *본문출처 : 《난징사회과학(南京社会科学)》 2023년 제3기에 실린 본문은 1만3천 자로 이를 축약하였음. [1] 역주 : 원문의 ‘多异性’은 저자가 창안한 학술 어휘로 보인다. 영어로 하면 multi-difference 정도의 뜻을 갖는데, 이러한 의미를 정확하게 지시하는 한국어 어휘가 없어 한자 독음 그대로 직역했다. [2] 国家社科基金重大项目“虚拟现实媒介叙事研究”(21&ZD327) [3] 역주 : 국내에서 아즈마 히로키의 개념을 소개하는 텍스트들은 ‘작은 이야기’와 ‘커다란 이야기(거대서사)’로 구분하고 있는데, 이 글에서는 이를 각각 ‘故事’와 ‘叙事’로 구별하고 있다. 여기서는 원문의 故事는 ‘이야기’로, 叙事는 ‘서사’로 번역하였다. [4] 역주 : 다니엘 벨은 미국의 사회학자로, 《이데올로기의 종언(The End of Ideology)》(1960년)을 통해 포스트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이야기했고, 《탈산업사회의 도래(The Coming of the Post-Industrial Society)》(1973년)를 통해 '제조업 경제'에서 '과학기술에 기반한 경제'로의 전환을 전망했다.(위키피디아 참고) [5] 역주 : 이탈리아 작가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가 창안한 ‘ti con zero’를 지칭한다. 그의 단편소설집 <티 제로(ti con zero)>(1967) 속 단편들은 수학과 시적 상상력이 혼합된 시공간과 우주의 진화를 다룬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Le città invisibili)>(1972)은 기존 이야기들의 시간중심 서사를 무너뜨리고, 공간 중심의 서사를 펼친다. 독자들에게 일정한 권한을 주되, 그 안에서 여러 의미를 갖는 내용을 담아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한다.(위키피디아, amazon.com 등 참고) [6] 역주 : 볼프강 이저는 독일의 문학 연구자이자 비평가로, 독자반응비평 이론을 연구했다. 이저에 따르면, 구조화된 행위로서의 독자의 역할은 독자가 텍스트 구조를 상상 속으로 수렴하게 하여 텍스트 구조를 충족시키는 방법을 보여준다. 독자가 읽기 과정에 참여할 때 텍스트 구조가 연결되고 살아나며, 독자는 역사적 현실과 자신의 경험, 독자로서의 역할 수용 사이의 긴장 속에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7] 역주 : 저자는 라캉 이론을 통해 게임적 쾌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라캉에 따르면 주이상스는 강렬한 성적 쾌락인 동시에 쾌락원리 및 언어상징 너머의 전복(顚覆) 충동이다. 주이상스는 현실원칙을 파괴하기 때문에 결국 고통이 된다. 이때 주체는 분열적 상황에 빠지고, 대타자를 파괴하려는 강렬한 욕망을 포기하지 못한다. [8] 역주 : 원문의 空余(공여)는 ‘남아돌다’를 뜻한다. 여기서는 空余人을 ‘잉여인’으로 번역했다. Tags: 번역 예술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난카이대학 문학원 교수) 저우즈창, 周志强 (활동가, 작가) 홍명교 활동가, 작가.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에서 동아시아 국제연대와 사회운동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를 썼고, <신장위구르 디스토피아>와 <아이폰을 위해 죽다>(공역) 등을 번역했다.

  • Why is the Korean Console Market Size so Small? - A Retrospective of Korean Console Games

    I have a vague memory of a time when I was in upper elementary school, sometime in the early 90's or so, but I can’t recall the exact year. I had gotten a "gaming console". I think I won it in a magazine giveaway. Given the age, I can assume what model it was, but I can only make an assumption. I also do not recall the exact model.  < Back Why is the Korean Console Market Size so Small? - A Retrospective of Korean Console Games 11 GG Vol. 23. 4. 10. You can see the Korean version of this article at this URL: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match=id:58 I have a vague memory of a time when I was in upper elementary school, sometime in the early 90's or so, but I can’t recall the exact year. I had gotten a "gaming console". I think I won it in a magazine giveaway. Given the age, I can assume what model it was, but I can only make an assumption. I also do not recall the exact model. The reason my memory is so fuzzy is simple: I only played with that console a handful of times. The ROM packs had either a single collection of games or none at all, so the minigames on the internal ROM were all there was. The reason, of course, was my parents. I wasn't kept from playing it, but buying a new ROM pack was out of the question, and the very act of connecting it to the TV at home was frowned upon. I had no concept of what a cable was, or why there were so many wires, and I needed an adult to show me how to connect all the right wires, but my parents actively refused to take on that role. To play the console I had to go over to a friend's house, and while their parents would help me connect everything, I wouldn’t say that they looked comfortable doing it. With no games to play and nowhere to play them, the first game console of my life naturally disappeared into a closet and was completely forgotten. I imagine that the gamers who grew up in the '80s and '90s probably shared a similar experience. As a result, console games only make up a small percentage of the South Korean gaming market today. According to the 2020 White Paper on Korean Games, the percentage is 4.5%, but 1.4% of this is taken up by arcade games, which virtually barely remain in existence. This is a far cry from North America's 38.4%, Europe's 37.5%, and South America's 19.1%, as well as the 2022 global ratio of 25.2%. In Asia, console games accounted for a mere 8.7% of the market, in large part likely due to South Korea's small console market. PC and mobile games, on the other hand, account for 25.7% and 54.1% in Asia, respectively, a stark contrast to the rest of the world. * 2020 White Paper on Korean Games, p. 668 The reason for this can be traced back to its humble beginnings in the 80s and 90s. It's a sad story of a market that started small and never experienced the momentum of hegemony experienced by arcades and PC and mobile. Let's go back to those sad days for a moment. The first game console that was sold in South Korea was the Otron TV Sports. It was a console with built-in games, just like the American "Pong" console, and was initially priced at 29,500 won, and later reduced to 198,000 won. In comparison, in 1977, the average monthly salary of a worker was 69,000 won. It was a price that was far from market formation or popularization, so it didn’t mean much apart from the fact that it was the first of its kind. Due to the price, console gaming in Korea never really took off in the era of the family Pong and Atari, and in the '80s, Nintendo was brought to the forefront. However, the idea of Nintendo being imported into South Korea, a country with strong anti-Japanese sentiment at the time, was out of the question. Instead, PC games on the 8-bit MSX platform were imported in the early 80s as a substitute. Even then, they were a luxury, and as of 1982, less than a thousand units were imported into Korea. By the late 80s, South Korea had succeeded in hosting the Asian Games and the Olympics, and the pride from those achievements were through the roof. Naturally, the anti-Japanese sentiment had subsided somewhat, and with Daewoo Electronics releasing its own console called the Zemmix in 1985, much of the unfamiliarity with the new culture that was gaming had dissipated. Still, public sentiment made it difficult for Japanese companies to set up local subsidiaries, so domestic corporations imported consoles under different names. Only then did relevant gaming consoles begin emerging. Samsung imported and marketed the SEGA Master System under the name “Game Boy” which became a hit. Hyundai then imported Nintendo's NES, the North American version of the Nintendo Entertainment System, and released it as the “Hyundai Comboy”. Thus, the pioneering of the Zemmix, Game Boy, and Combo formed the market. However, this market was not large-scale enough to be called a mass market. While it was a huge success, and was well-known enough for the masses to be aware of its existence, it was a market centered around enthusiasts. This much was evident based on the individual price of each console. * Daewoo’s Zemmix advertisement, priced at 70,000 KRW. (approx. 53 USD today) * Samsung’s Game Boy advertisement, priced at 119,000 KRW. (approx. 91 USD today) * Hyundai’s Comboy advertisement, priced at 139,000 KRW. (approx. 106 USD today) * The prices of console game titles in the latter half of 1992. Therefore, the cost of console games also had to be accounted for on top of the cost of the gaming console itself. With the year 1990 as the standard, these were times when the starting salaries for secondary school teachers and businessmen for large companies were less than 600,000 won. The wealth gap grew from this point on, making it a bit difficult to use 1.5 million won as the benchmark for the average monthly wage of the working class. Nevertheless, unlike with the Otron from a decade earlier, these prices were ‘a bit overwhelming but still manageable.’ In addition, the hegemony of the gaming market was slowly but surely shifting from arcades to PCs. The PC was actually a competitor to the gaming console, despite costing anywhere from 1 million KRW up to 2 million KRW at the time. In fact, they were actually holding their own weight in the competition against gaming consoles priced under 200,000 won. PCs held the advantage with the context that they were ‘preparing for the technological future’ and could be used in various ways for ‘education.’ Unlike the multifunctional PCs, consoles only offered the gaming feature, rendering even the relatively lower cost to be pointless. Furthermore, the biggest difference between consoles and PCs was the space that they took up. In general, a console belonged in the living room, and a PC in the bedroom. Gaming consoles require to be connected to a TV. The TV is a family-shared media, and so belongs in the living room. Usage of the living room TV was determined by the parents, so the children had to fight for the right to play their console games in the living room. In addition, students of that time had to study late in the night, and thus were often unable to spend time in the living room at all. On the off chance that they could, it was difficult to negotiate for TV time in the living room when their parents had just gotten home from work. But with a PC, the space becomes the room, and you don't have to contend with the usage of the living room. Once you were done studying at night, or if your parents were watching TV, you could just head into your own room. The fact that copying and distributing game software was much easier than copying console ROM packs probably also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the spread of PC gaming. In the narrative of the transition from playing games in arcades to playing games at home, North America and Europe were different. The distribution rate of the PC was much faster than it was in Korea, so the perception that PCs were multifunctional rather than just used for gaming was already widespread. Essentially, the PC was already a part of the parents’ generation. Their children did not have after-school study programs nor late-night studying, and the parents already had the PC as one of their leisurely options, meaning they could afford to cede some of the power of the living room to their children. Plus, parents became cognizant of the role that consoles played as caretakers. They figured, if they gathered a few of the neighborhood kids in the living room, ordered them a pizza and gave them the game console, they could sneak out for a night at the movies downtown. Korean parents, on the other hand, had their grandparents, other parents, or late-night studying to be the caretaker, and so had no reason to give console games a glance. However, this is less the case in Europe than in North America, which can be explained by the average living space. In North America, where the residential space is much larger, having a console in the living room was no problem; but in Europe, you had to consider it first before making that change. Eastern Europe, in particular, is a former communist region with a high threshold for importing game consoles, a product of the capitalist camp. It also had a smaller living space than the rest of Europe did, which is why it has the lowest console market share. The only exception to this interpretation is the United Kingdom, where English is the native language and so is less mentally distant in regard to American culture. * While from 2014, this data helps us gather that the average residential space in North America and Australia is greater than that of Europe (especially in Russia, the eastern part of Europe.) In 1990, South Korea had an average of 62.94 square feet of living space per household, similar to Denmark in this graph, but for the cultural reasons mentioned above, they did not take advantage of this space. Therefore, we can say that North America and Western Europe saw a shift in gaming hegemony from arcades to consoles to PCs, while Korea and Eastern Europe went straight from arcades to PCs. Given the status of gaming arcades in these countries, we can summarize the narrative in terms of space. In North America and Western Europe, it's downtown to the living room, then the living room to the personal room. In Korea and Eastern Europe, it’s straight from neighborhoods to personal rooms. The narrative of these spaces is now shifting to being ‘directly in your hands’ with the concept of ‘mobile’ platforms, but the context of these spaces goes beyond that. Whether it's a glitzy downtown gaming center in North America and Europe or a dingy neighborhood arcade in Korea, arcades are public spaces built for gaming, so they naturally build a sense of community. Think of all the times you went to your local arcade to watch your friends play and play against other players from other neighborhoods. We could describe arcades as being "socially-friendly gaming spaces". When this gaming space transitions into the private space of the living room, the social aspect fades, but it doesn't disappear. Someone can watch you play games, you can converse with someone while playing, and/or you can play together, all in the living room. Console gaming is a solitary medium, but it's also a great offline social medium. When the gaming space shifted to the personal room, the social aspect became much less important. The room is a strictly private space, which is why it's possible for Korean parents to have their kids playing PC games while the parents can watch TV. The word PC stands for personal computer, after all. So, before the advent of online gaming, gaming in Korea was a one-person media, back when "playing games together" meant each person held a joystick/pad at a separate arcade/console cabinet. You could describe this as both offline anti-socialization + online socialization. The antisocial nature of PC gaming has been brought down to console levels due to the proliferation of the internet. In the case of internet cafes, it was like reverting the room’s space back to an arcade, and the “arcadeification” of StarCraft was an especially huge historical pivot in Korea. It was socially offline when you went to play StarCraft at an internet cafe with a group of friends, but it could also be done online as well. In other words, Korea’s internet cafe culture has diluted the offline, antisocial nature of PC games, but has also developed the social, online nature due to the expansion of infrastructure, and the result is no more than a reinforcement: You do not have to meet people in-person to play MMORPGs together. And so, society’s perception of games changes. In North America and Europe, where the market share is close to 40%, the offline-social view of gaming is still somewhat alive, such as when you invite friends over to play Halo. The fact that one of the slang terms for video games in American English is “nintendo games” is a testament to Nintendo's historical influence, but it also indirectly demonstrates that the social aspect of consoles is deeply woven into the perception of gaming in English-speaking societies. In Korea, on the other hand, after exiting the arcade, you go straight to your room. The perception of offline socialization is almost non-existent. Two characters that illustrate a stark difference are Thor and Koo Kyung. In the movie, Avengers: Endgame, Thor is presented as a gaming addict who plays Fortnite together in the living room with his friends. On the other hand, Koo Kyung, the main character in the Korean drama Inspector Koo, is a gaming addict, but plays MMORPGs alone in her own home. She interacts with her guildmates through the game, but is a reclusive loner otherwise in the world outside. The difference between Thor’s living room and Fortnite, and Koo Kyung’s own room and MMO role-playing game, is the distinct characteristic of Korean gaming – the lack of consoles. * Thor has become disconnected from society, but he still plays his games together with his friends. This can be seen as a remnant of the faintly offline social nature of consoles. * Koo Kyung has also become distanced from society, but unlike Thor, only she exists in her offline space. This can be seen as society’s perception of online, socially-oriented PC games. This historical context, or difference in experience, is where the difference between the social perception from outside of gaming and the gaming that consumers experience looking out from the inside comes from. The number of Korean console games being extremely low does not simply and one-dimensionally mean that fewer games are made for this platform, but also that fewer games that can be used for offline socialization are produced and consumed. Another way to put it is that games made or distributed in South Korea are made with online socialization as the primary, or even sole assumption. And now, we approach the year of 2022. The hegemony of gaming has progressed in the order of arcade, console, then PC, and is currently transitioning into mobile platforms. The offline space for mobile is incredibly narrow because that space is in the palm of your hand, and it's more offline-antisocial than PCs are. Looking at this transition, you can imagine a graph where offline socialization continues to fade and online socialization grows in importance. So, are the weight of the times shifting to be completely online-social? This is a memory from a few years ago. One of my exes was hooked on the augmented reality game, Pokémon GO. They had to meet up with people in order to capture and trade for more Pokémon, and would even occasionally meet up with people from the community near their house to move in groups together around the neighborhood. This was the point where online socialization became offline socialization. Despite having the “look and feel” of a traditional online game, Pokémon GO was bringing people together to play, leaving plenty of room for interpretation as a mobile arcade or mobile internet cafe on the streets. Looking back, I remember seeing celebrities traveling from city to city to play Pokémon GO, with fans chasing them along the way. This was one of the marketing points of the Nintendo Switch. It's a console that's both stationary and portable, so two players who meet offline can play together by connecting their consoles. This proves that the mobile platform actually hides an aspect of offline-socialization. It's a paradox that makes it the first platform to facilitate offline contact because it's portable. It's phenomenally convenient compared to lugging a game console or PC to a friend's house to play together offline. Throw in the possibility of augmented reality (AR) games, and the social aspect of mobile gaming has the potential to guarantee a solid place in society. But can the offline-social aspect of Korean games, which has been missing since the arcade era due to the absence of console games, make a dramatic comeback? Can something beyond the social activities that Pokemon GO fostered be created? That answer lies in the imagination of developers and how users utilize it.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Translator) Esther Yum

  • 감염, AI, 그리고 <발더스 게이트>

    적어도 분명한 것은, 앞에서도 강조한 것처럼 이제 인류는 이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다루든 피할 수 없는 위협으로 다루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가끔은 망상하듯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가령 고타쉬는 현실의 누구인가? 우리 곁의 ‘황제’는 누구 혹은 어떤 것이며, 어떤 모습으로 당신을 현혹하고 있는가? < Back 15 GG Vol. 23.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aeSeok Kim Kim is known for his activities as a critical expert on current affairs in various press media. But he is also an active gamer who never let go of games. Some of his publications includes 『a cynical society』, 『Otaku Loved Lenin』, as well as a co-author of 『Now, Here, Far-Rightism』, 『right-wing discontent』, 『Twitter, that 140-character egalitarianism』. His latest publication is 『Democracy where you vote because you don't like that side』.

  • 게임백서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들과 알려주지 않는 것들

    2023년 1월 2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이하 ‘백서’ 혹은 ‘게임백서’)〉를 발행했다. 백서는 연 1회 발행되며, 1년 간의 국내 게임산업 현황(산업, 수출입, 제작 및 배급업체, 종사자, e스포츠 등), 게임이용 동향(플랫폼별 이용, 게임에 대한 인식 및 태도 등), 해외 게임산업 현황(플랫폼별·국가별) 등을 다룬다. 국내외 산업규모, 이용행태를 파악하고 경제적 가치를 분석해 정책수립이나 연구조사를 위한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백서 발행의 목적이다. < Back 게임백서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들과 알려주지 않는 것들 10 GG Vol. 23. 2. 10. 2023년 1월 2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이하 ‘백서’ 혹은 ‘게임백서’)〉를 발행했다. 백서는 연 1회 발행되며, 1년 간의 국내 게임산업 현황(산업, 수출입, 제작 및 배급업체, 종사자, e스포츠 등), 게임이용 동향(플랫폼별 이용, 게임에 대한 인식 및 태도 등), 해외 게임산업 현황(플랫폼별·국가별) 등을 다룬다. 국내외 산업규모, 이용행태를 파악하고 경제적 가치를 분석해 정책수립이나 연구조사를 위한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백서 발행의 목적이다. 게임에 대한 다른 광범위한 조사가 거의 없는 데다, 다른 콘텐츠들과의 비교 속에서 이뤄지는 조사인 만큼 그 데이터가 갖는 의미는 크다. 게임에 대한 백서가 나오는 것처럼, 다른 콘텐츠산업들에 대해서도 백서가 나온다. 그 백서들의 발행주체인 한국콘텐츠진흥원은 한국표준산업분류체계와 콘텐츠산업 특수분류체계, 그리고 문화산업진흥기본법과 콘텐츠산업기본법 내 분류체계를 결합해 콘텐츠산업을 11개로 분류한다. 이를 콘텐츠산업 통계조사 특수분류체계라 하는데, 여기에는 게임 외에도 출판, 만화, 음악, 영화, 애니메이션, 방송, 광고, 캐릭터, 지식정보, 콘텐츠 솔루션이 포함된다. 분류된 11개 콘텐츠산업 조사에는 동일하거나 유사한 항목(예를 들어, 산업규모, 수출입규모, 관련업체 수, 종사자 수 등)을 적용한다. 이를 통해 전체 콘텐츠산업에서 개별 콘텐츠산업이 갖는 위상을 점검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단순 수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개별 콘텐츠산업의 양상과 관련 이슈, 트렌드들에 대해서는 질적 분석을 통해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게임백서는 게임산업과 이용에 관한 한 해 동안의 양적·질적 데이터가 모두 포함돼 있는 백과사전과도 같은 존재라 하겠다. 이 글은 이번 게임백서에서 주목할 만한 데이터들과 놓치면 안 될 흐름들을 잡아 소개한다. 물론 단순히 내용을 정리해 옮기기만 할 것이라면, 조사 요약본이나 관련 기사들을 참고하는 것이 낫다. 여기서는 그 데이터와 흐름들에 약간의 해석을 덧붙이고, 말미에 백서에 대한 간단한 제언까지를 추가하려 한다. 이를 통해 한 해 동안의 게임산업과 이용을 둘러싼 양상, 이슈, 트렌드들을 살피고, 그것들이 갖는 의미, 앞으로 백서가 나아갈 방향을 점검해본다. 한국의 게임시장 규모: 20조원 돌파, 크지 않은 성장률, 플랫폼별 고른 성장 2021년 한국 게임시장 규모는 20조 9,913억 원으로, 20조원을 돌파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는 전년(18조 8,855억 원) 대비 11.2%나 증가한 수치로, 같은 기간 한국 경제성장률(4.1%)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이로써 콘텐츠산업 통계조사 특수분류체계에 따른 총 11개 콘텐츠산업(게임, 출판, 만화, 음악, 영화, 애니메이션, 방송, 광고, 캐릭터, 지식정보, 콘텐츠솔루션) 중 게임이 방송, 출판, 지식정보에 이어 4번째로 20조원 규모를 기록하게 되었다. 게임백서에서는 게임 플랫폼을 게임이 구동되는 하드웨어 형태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하면서 아케이드게임, 콘솔게임, PC게임, 모바일게임의 네 가지로 구분하는데, 이 플랫폼별 이슈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모바일 게임시장의 안정화 다. 모바일 게임시장 규모는 갈수록 팽창해왔고, 한국 전체 게임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지도 오래됐다. 다만 2019년 49.7%에서 2020년 57.4%로 7.7%나 증가했던 것과는 달리, 2021년은 57.9%로 적어도 전년과 비교했을 때 아주 크게 늘지는 않았다. 물론 모바일 게임시장 비중의 확장세 둔화가 2022년에도 계속될지 다시 반등에 오를지는 확실히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다른 플랫폼들의 비중이 전년 대비 크게 바뀌지 않았음을 감안했을 때 당분간 아주 큰 폭으로 비중이 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비중이 크게 늘지 않았다 해서 모바일 게임시장이 성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매출액 12조 1,483억 원으로 전년(10조 8,311억 원) 대비 12.2% 성장률을 기록했다. 둘째, 아케이드와 PC 게임시장이 크게 성장한 반면, 2년 연속 가장 크게 성장했던 콘솔 게임시장은 마이너스 성장 했다. 아케이드 게임시장은 전년 대비 20.3% 성장해 2,733억 원 규모를, PC 게임시장은 15.0% 성장해 5조 6,373억 원 규모를 나타냈다. 하지만 2019년 전년 대비 31.4%, 2020년 57.3% 성장했던 콘솔 게임시장은 1조 520억 원 규모로, 전년(1조 925억 원) 대비 –3.7%의 성장률을 보였다. 아케이드 게임시장의 약진은 코로나19로 인해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던 해당 게임시장이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에 따라 회복세에 접어든 것으로 풀이된다. PC 게임시장의 성장에는 넥슨 〈서든어택〉, 스마일게이트 〈로스트아크〉, 엠게임 〈열혈강호 온라인〉 등과 같은 인기게임들의 매출 증가가 한몫했다. 반대로 콘솔 게임시장의 마이너스 성장에는 시장 파급력을 일으키는 게임이 적었던 탓이 컸다.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플레이 공간이 집 밖으로 확장되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타 콘텐츠 분야에서 흥행작이 연이어 등장하는 등 가정 내 게임 플레이 증가에 긍정적이지 못한 요인들이 꽤 있었음에도 PC게임은 선방했지만 콘솔게임은 그러지 못했다. 셋째,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큰 폭의 하락을 보여왔던 PC방 및 아케이드 게임장 매출액이 소폭이라곤 해도 증가 했다. PC방 매출은 2019년 2조 409억 원에서 2020년 1조 7,970억 원으로 큰 역성장(-11.9%)을 기록했고, 아케이드 게임장은 2019년 703억 원에서 2020년 365억 원으로 시장이 거의 반토막(-48.1%) 났었다. 물론 코로나19 외에 PC 게임시장의 성장 정체와 모바일게임으로의 이용 집중, 가정에서 플레이되는 콘솔게임의 인기 폭증 등도 오프라인 유통업소의 쇠락과 무관하지 않았다. 하지만 야외 활동 본격화, 정부의 아케이드 게임산업 활성화 정책, 그리고 PC 및 아케이드 게임시장의 성장 등에 힘입어 게임 유통시장 매출은 반등했다. 종합적으로, 2021년 한국 게임시장은 지난 3년을 비추어봤을 때 크게 팽창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2018년 성장률 8.7%, 2019년 9.0%, 2020년 21.3%, 2021년 11.2%), 플랫폼별로 비교적 균형 있게 성장했다 볼 수 있다. 그동안 ① 크게 성장하는 플랫폼시장(모바일게임, 콘솔게임), ② 성장이 정체된 플랫폼시장(PC게임, 아케이드게임), ③ 크게 역성장하는 유통시장(아케이드게임장, PC방)의 양상으로 전개돼던 흐름이, ① 안정적으로 성장한 플랫폼시장(모바일게임), ② 성장세가 둔화된 플랫폼시장(콘솔게임), ③ 하락세 혹은 보합세에서 다시 성장세로 전환된 플랫폼시장(PC게임, 아케이드게임) 및 유통시장(아케이드게임장, PC방)의 양상으로 전환된 것이다. * 그림 1. 한국 게임시장의 규모 및 성장률(2012~2021년). (단위: 억 원, %).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2023).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 26쪽. * 표 1. 한국 게임시장의 플랫폼별 매출액(2020~2024년). (단위: 억 원, %).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2023).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 28쪽. 2022년에도 한국 게임시장은 2021년 대비 8.5% 성장해 22조 7,723억 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반적인 성장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칠 많은 요소들이 있겠으나, 무엇보다 가장 큰 것은 코로나19의 영향 감소다. 실외 활동이 다시 본격화됨에 따라 아케이드게임, PC방과 아케이드게임장 등의 이용 활성화가 예상된다. 대신 같은 이유로 PC와 콘솔게임 이용은 전보다 어느 정도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모바일 게임시장의 경우 꾸준히 성장하겠지만, 시장 안정세에 따라 성장세는 둔화될 확률이 높다. 그리고 매출액 성장과는 또 다른 맥락에서, 인건비, 개발비, 간접비 등 제반비용의 상승으로 인해 실제 한국 게임업계의 영업이익은 조금씩 감소할 듯하다. 세계 게임시장 내 한국의 위상: 세계 4위, 미국·중국·일본이 전체 시장의 절반 차지 2021년 기준 세계 게임시장 규모는 2020년 대비 8.7% 증가한 2,197억 5,800만 달러였다. 특히 모바일과 PC게임이 각각 11.1% 증가하여 전체 게임산업의 성장을 견인했다. 아케이드게임은 10.5%, 콘솔게임은 2.2% 성장했다. 콘솔게임을 제외하면 모든 플랫폼이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한 셈이다. 2016년 이후 세계 게임시장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해온 모바일게임은 2021년에도 1,002억 3,400만 달러 규모로, 점유율 45.6%를 기록했다. 그 뒤는 콘솔게임(551억 4,000만, 25.1%), PC게임(372억 4,300만 달러, 점유율 16.9%), 아케이드게임(271억 4,200만 달러, 12.4%) 순이다. *표 2. 세계 게임시장의 플랫폼별 매출액(2019~2024년). (단위: 백만 달러, %) 주 1) 2018년부터 기존 온라인게임과 PC패키지게임을 PC게임으로 통합하여 통계산출 2) PC 게임시장 규모는 가입비, 아이템 구매가 포함된 수치이며, 한국의 경우 PC방 매출액은 미포함 3) 아케이드 게임시장 규모는 아케이드게임기 판매액과 게임장 운영수익을 합한 규모 4) 모바일게임의 경우 휴대폰과 태블릿 기반 게임이 포함 5) 콘솔 게임시장 규모는 Console 및 Portable console game 매출액을 합한 것이며, 유럽 시장 산정 시 동유럽/아프리카/중동시장까지 포함 6) 콘솔게임의 경우, 게임기 매출을 포함하고 있는 국내 기준과 동일하게 맞추기 위해서 각 권역별로 게임기 매출을 포함 7) PwC 등 통계 발표기관에서 과거 시장규모 데이터를 변경한 경우, 백서에서 해당 변경사항을 반영해 과거 통계치를 수정 8) 환율적용 기준: 외환은행에서 발표하는 연평균환율(매매기준율 최초) 적용 * 출처: PwC(2022); Enterbrain(2022); JOGA(2022); iResearch(2022); Play meter(2016); NPD(2022) 2021년 세계 게임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7.6%로 나타났다. 2019년 점유율이 6.2% 6.2%, 2020년이 6.9%였음을 감안하면 예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비중이 아주 조금씩 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순위도 2020년 5위에서 4위로 한 순위 올라간 후 마찬가지로 유지했다. 2020년 0.8% 차이였던 5위 영국과의 거리도 1.4%로 조금 더 벌렸다. 앞으로 한국은 5위부터 7위까지를 차지하고 있는 영국, 독일, 프랑스 등과는 비슷한 선상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확률이 높아 보인다. 반면, Top3가 차지하는 비중은 세계 게임시장 전체의 50%가 넘으며, 3위인 일본과 4위인 한국 간 규모차이도 커(10.3% vs. 7.6%), 당분간 한국이 3위권 안에 진입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동아시아 3개국이 전세계 게임시장의 1/3이 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 표 3. 세계 게임 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과 위상(2021년). (단위: 백만 달러, %). 출처: PWC(2022), Enterbrain(2022), JOGA(2022), iResearch(2022), Playmeter(2016), NPD(2022); 한국콘텐츠진흥원 (2023).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 88쪽에서 재인용. 한국게임 수출·입 규모: 수출 5.8%, 수입 15.3% 증가, 아케이드 게임 수출·입 급증 2021년 한국게임 수출액은 86억 7,287만 달러(약 9조 9,254억 원, * 한국은행 2021년 연평균 매매기준율 적용)로 집계됐다. 전년(81억 9,356만 달러)과 비교했을 때 5.8% 증가한 수치다. 2017년 증가율 80.7%를 기록한 이후 2018년 8.2%, 2019년 3.8%로 수출성장세가 둔화되다가, 2020년만 23.1%로 반짝 높은 수치를 보이고 다시 이전 증가율 수준으로 돌아온 셈이다. 플랫폼별로는 역시 모바일게임의 수출규모가 53억 3,030만 달러로 가장 컸고, PC게임이 31억 4,562만 달러로 그 뒤를 이었다. 콘솔게임 수출규모는 1억 5,674만 달러, 아케이드게임 수출규모는 4,021만 달러로 나타났다. 전체 수출규모 성장을 견인한 것은 모바일게임으로 전년대비 4.8%의 성장률을 보였고, 아케이드게임의 경우 15.9%, PC게임의 경우 8.3%로 모바일게임보다 높은 성장률을 보이긴 했으나 수출액 자체가 많지는 않았다. 한편, PC게임 수출규모만이 전년 대비 8.2%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표 4. 한국 게임 수출·입 현황(2015~2021년). (단위: 천 달러, %).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2023).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 29쪽의 표를 재구성. 수입은 전년대비 15.3% 증가한 3억 1,233만 달러(약 3,574억 원)를 기록했다. 2017년 이후 계속 감소해왔던 수입 증가율이 4년 만에 반등한 것이다. 수출액보다 수입액 증가율이 높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2015년부터 지난 6년 간 수입액 증가율이 수출액보다 높았던 건 2018년뿐이었다. 다른 모든 플랫폼의 수입액 규모에서 증가세가 나타나는 가운데(아케이드게임 264.1%, 콘솔게임 47.6%, 모바일게임 18.5%), PC게임만이 23.8% 감소했다. 물론 아케이드게임 수입액 증가율이 세 자릿수이긴 하나, 액수로 환산했을 때 그 규모가 크지는 않다. * 표 5. 한국 게임 플랫폼별 수출·입 규모 비교(2020년 vs. 2021년). (단위: 천 달러, %).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2022).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84쪽의 그림을 재구성. 게임 이용현황: 전체의 74.4%가 이용, 이용률 3.1% 증가, 모바일게임 이용률이 최고 만 10~65세의 일반인(n=6,000)을 대상으로 2021년 6월 이후 게임 이용여부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4.4%가 게임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임을 이용한 경험이 있는 사람(n=4,462)들에게 있어 이용률이 가장 높은 플랫폼은 모바일게임(84.2%)이었다. PC게임은 54.2%, 콘솔게임은 17.9%, 아케이드게임은 9.4%였다. 또, 게임 이용경험이 있는 응답자(n=4,462) 중 99.0%가 평소에 인터넷을 이용한다고 응답했다. 업무/학업 외 목적으로 인터넷에 접속할 때 사용하는 기기를 조사한 결과, 스마트폰이 90.4%, 데스크톱 PC가 59.4%, 노트북/넷북이 54.3%, 태블릿PC가 35.9%였다. PC방 이용현황에 대한 조사결과는 다음과 같다. 게임 이용자들(n=4,462)의 11.4%가 평균 주 1회 이상 PC방을 이용하고 있었다. 성별로는 여성보다 남성이, 연령별로는 20대가 이용률이 가장 높았다. PC방에서 게임을 한다고 응답한 사람(n=1,868)에게 PC방에서 게임하는 이유를 질문했을 때, ‘친구/동료와 어울리기 위해’(1순위: 35.0%, 1+2순위: 57.3%)와 ‘PC 사양(성능)이 좋아서’(1순위: 26.7%, 1+2순위: 51.9%)를 꼽은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특히, 10대와 20대에서 ‘친구/동료와 어울리기 위해’를 응답한 비율이 높았다. 게임업계 종사자 인식: 코로나19 이후 사업체 규모별 격차 심화 게임업계 종사자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직업 만족도, 국내 게임산업에 대한 기대 및 전망, 게임에 대한 인식이나 태도 측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코로나19 이후 전반적으로 임금・보수 상승, 비대면 회의 증가, 온라인 협업툴 사용의 증가, 구직 또는 경력 유지・발전 기회의 증가 등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기할 점은, 이러한 긍정적 변화가 주로 100인 이상 사업체 종사자들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5인 미만 사업체 소속 종사자들의 경우 게임에 대한 인식이나 태도에 있어서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노동환경과 관련해서도 일거리와 사업기회가 크게 축소되면서 임금과 보수, 업무강도, 고용안정성, 경력 발전기회 등 전반적인 요소에 대해 마찬가지로 부정적 영향을 받았다. 사업체 대상 조사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유지됐다. 회사규모가 커질수록 매출과 인력고용, 투자 및 자금조달, 신규사업 기회, 해외진출 및 유통 기회 등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파악됐다. 그에 비해 규모가 작은 회사들은 사업기회가 오히려 축소된 경향이 강했다. 코로나19 이후 산업 양극화가 더욱 노골적으로 심해진 셈이다. 관련해 백서에서는 게임업계 노동환경 이슈에 대한 지속적인 조사·분석과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점, 종사자들 스스로가 인식하는 개인 역량수준이 매우 낮고 교육훈련 기회가 부족하므로 개선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점, 중소규모 업체들의 사업환경 개선 및 역량 강화를 통해 생태계 균형 발전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 등을 시사점으로 꼽았다. 백서가 앞으로 더 널리 활용되기 위해 고려할 지점들 이상에서 백서의 주요 데이터들, 그리고 놓치면 안 될 흐름들을 살펴보았다. 백서가 게임에 대한 국내 유일, 최대규모의 조사인 만큼 방대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음엔 틀림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백서가 갖고 있는 아쉬운 점, 그리고 백서가 나가야 할 방향을 간단하게 짚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태생적인 요소이긴 하나 2021년도 데이터를 기준으로 한 백서를 2023년 초에 내서 활용하게 하는 것이 갖는 한계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데이터를 (그것도 다른 콘텐츠산업들과 함께) 추출해 다듬고 모으는 작업, 이슈 및 트렌드를 정리하고 그것들을 풀어 쓸 필자를 찾아 원고를 받고 책으로 묶는 작업이 갖는 노력을 부정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럼에도 여러 여건들을 차치하고 오직 활용도 제고라는 측면에서만 보자면, 차년도 중반 정도에는 발행해 독자들로 하여금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물론 매출, 수출, 종사자 등의 양적규모에 대해서는 백서가 아닌 〈반기별 콘텐츠 산업 동향분석 보고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게끔 되어 있지만 말이다. 둘째, 게임 ‘문화’에 대해 다시 다루는 것이다. 2017년까지의 백서에서는 게임 문화를 다뤘다. 국내외 e스포츠 동향을 정리하고, 게임이 우리 사회·문화에서 갖는 의미를 돌아보며, 인디게임과 같이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아왔던 분야를 발굴했다. 문화만이 아니다. 게임산업의 비즈니스 모델과 기술 개발 동향을 살피고, 게임정책과 지원사업에 대해서도 논의를 펼쳤다. 하지만 상·하 두 권으로 발행되던 백서가 2018년부터 한 권으로 통합되면서 문화, 사업, 기술, 정책 등에 대한 논의가 다른 챕터로 녹아들거나 삭제됐다. 문화에 대한 논의는 생략되거나 축소될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 확대해야 한다. 2022년 9월 문화예술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게임도 문화예술진흥법 상 문화예술의 범위에 편입됐다. 물론 법적으로 문화예술이어야만 게임이 진정한 문화예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게임은 애초부터 영상, 미술, 음악, 서사 등이 융합된 종합적인 문화예술이었다. 당연히 그랬던 것이 이제 법적으로까지 인정받은 것일 뿐이다. 법안 통과로 게임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이 개선될 여지가 크고, 게임산업 육성을 위한 공적지원 역시 더욱 확대될 수 있다. 그동안 한국에서 게임산업은 긍정적이지 못한 인식으로 인해 지원이나 육성보다는 규제의 대상으로 비춰져 온 측면이 크다. 당연히 기존 문화예술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게임의 산업적 측면만이 아닌, 문화적 측면에 대한 공적 차원의 관심이 더욱 요청된다. 백서에 문화 챕터 하나를 추가하는 일이 유일한 해결책은 아닐 터다. 그럼에도 백서를 통해 한 해 간의 게임문화를 정리하는 일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백서가, 그리고 게임이 다가간다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덧붙여, 기존에 포함됐던 e스포츠 동향, 게임의 사회·문화적 의미, 인디게임 등의 발굴뿐 아니라, 게임에 대한 주목할 만한 연구성과들이나 출판물들, 관련 저널 및 잡지 현황, 비평 장의 흐름 등이 추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강신규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게임, 방송, 만화, 팬덤 등 미디어/문화에 대해 연구한다. 저서로 <흔들리는 팬덤: 놀이에서 노동으로, 현실에서 가상으로>(2024), <서브컬처 비평>(2020), <아이피, 모든 이야기의 시작>(2021, 공저),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2020, 공저), <게임의 이론: 놀이에서 디지털게임까지>(2019, 공저) 등이, 논문으로 ‘<체인소 맨>의 한국적 수용과 문화적 증폭’(2026), ‘극사실주의의 게임적 재구성: <나는 SOLO>의 상호/텍스트성과 수용구조’(2026), ‘이기지 않아도 재미있다: 부모-자녀 게임 플레이의 사회성과 행위성, 그리고 분투형 플레이’(2024), ‘커뮤니케이션을 소비하는 팬덤: 아이돌 팬 플랫폼과 팬덤의 재구성’(2022) 등이 있다.

  • 〈디아블로〉 시리즈의 역사로 바라보는 블리자드의 변화

    2021년 2월 20일에 시작된 블리즈컨라인(BLIZZConline)의 분위기는 어수선하기만 했다. 2005년 10월 처음 개최된 블리즈컨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이하 블리자드)가 자신들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는 팬들을 위한 축제로써 기획되었다. 하지만 지난 몇년간의 블리즈컨의 분위기는 분명 예전과 달랐다. 제작자와 게임 팬의 화합의 장이었던 블리즈컨이 끝나면 항상 팬들의 열화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지만, 최근 들어 함성은 잦아들고 작은 수근거림이 더 많이 들리기 시작했다. < Back 〈디아블로〉 시리즈의 역사로 바라보는 블리자드의 변화 02 GG Vol. 21. 8. 10. 2021년 2월 20일에 시작된 블리즈컨라인(BLIZZConline)의 분위기는 어수선하기만 했다. 2005년 10월 처음 개최된 블리즈컨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이하 블리자드)가 자신들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는 팬들을 위한 축제로써 기획되었다. 하지만 지난 몇년간의 블리즈컨의 분위기는 분명 예전과 달랐다. 제작자와 게임 팬의 화합의 장이었던 블리즈컨이 끝나면 항상 팬들의 열화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지만, 최근 들어 함성은 잦아들고 작은 수근거림이 더 많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을 그저 지나가는 해프닝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직전 년도에 발매되었던 〈워크래프트 III: 리포지드〉는 그간 ‘블리자드 = 게임 제작의 명가’라는 평판에 물음표를 던져 주기 충분했고, 때문에 이런 어수선함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이런 전후 사정으로 코로나 시대에 열린 온라인 블리즈컨인 2021년 블리즈컨라인에 팬들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행사에서는 기존 발표 신작( 〈오버워치 2〉, 〈디아블로 IV〉)에 대한 개발 중간 보고 형태의 정보가 있었고, 블리자드가 제작했던 초창기 인기작(〈락앤롤 레이싱〉, 〈길 잃은 바이킹〉, 〈블랙쏜〉)의 리메이크 버전에 대한 내용이 공개되었다. 그리고 오래된 블리자드 팬들을 들뜨게 만드는 소식이 전해졌다. 바로 〈디아블로 II〉의 리마스터 버전인 〈디아블로 II: 레저렉션〉이 올해 발매 된다는 이야기였다. 국내에서도 유명한 기업인이자 요리 연구가(이자 열성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플레이어)인 백종원씨가 〈디아블로 II: 레저렉션〉의 최초공개 트레일러에 남긴 댓글은 순식간에 이슈화가 되면서 이 게임의 무게감을 증명했다. *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NzG-4gDDazg 블리자드의 대표 IP 중 하나인 〈디아블로〉 시리즈의 첫 작품은 1996년 12월 31일 세상에 선보였다. 블리자드의 초기 협력사이자 합병 이후 블리자드 노스로 이름이 바뀐 콘도르에서 처음 제안했던 〈디아블로〉의 형태는 턴 방식의 로그라이크 게임이었다. 하지만 3 시간 동안 제작한 실시간 형태의 프로토타이핑을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만드는 것으로 변경되었고, 우리가 익히 아는 실시간 핵 앤 슬래시 형태의 액션 롤플레잉 게임인 〈디아블로〉가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다. 출시 당시 다른 게임과 완전히 차별화되는 게임성과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 블리자드 최초로 도입된 베틀넷 시스템을 통한 협동 및 대결 플레이 같은 특별한 장점들은 〈디아블로〉를 그해 최고의 게임의 반열에 오르게 만든다. 북미 출시 이후 국내에서도 PC 통신 게임 동호회를 중심으로 게임에 대한 기대감이 점차 높아지고 있었으나, 당시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운영하던 게임물 심의 장벽에 가로막혀 꽤 오랜 기간 동안 국내 정식 발매가 되지 않는 일이 있기도 했다. 당시 〈디아블로〉 1의 국내 유통사였던 SKC는 몇 차례의 발매 연기 속에 일부 영상 장면 등을 삭제한 검열판으로 심의를 통과하여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으로 게임을 발매하였다. * 출처: 컴퓨터 게이밍 월드 1997년 2월호 102 페이지. 〈 디아블로 〉는 잘해야 10만 부 팔릴 것이라 예상한 제작진의 기대를 가뿐하게 넘어 발매 첫 해 100만 부, 이듬해에는 전세계 200만 부 판매를 달성한다. 자연스럽게 후속편에 대한 이야기가 제작진 사이에서 논의되었다. 그리고 〈디아블로 1〉의 출시부터 3년이 지난 2000년 6월 29일 시리즈의 후속편인 〈디아블로 II〉가 발매되었다. 국내에서 〈디아블로〉는 게임 매니아들끼리 만 회자되는, 잘 만든 게임에 불과했다. 하지만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방안 중 하나로 추진되었던 IT 인프라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와, 이를 통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와 PC 방의 급격한 확산. 그리고 이러한 환경에 힘입어 그저 그런 컴퓨터 게임이 아닌 대한민국 대중 문화의 위치를 차지한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의 엄청난 성공으로 인해, 다음 작품으로 내 놓은 〈디아블로 II〉는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게임이 되어있었다. 이러한 관심을 입증하듯, 〈디아블로 II〉는 15만 부의 선주문을 받은 상태로 북미와 거의 동시 발매가 이루어졌다(당시 해외 게임이 국내 동시 발매하는 사례는 매우 드물었다). 하지만 이러한 초기의 관심과 달리, 새로운 대한민국의 전통 놀이로 취급되던 〈스타크래프트〉에 비해 〈디아블로 II〉의 인기는 금세 시들해 졌다(어디까지나 〈스타크래프트〉에 비교해서일 뿐이지만). 국내에서만 약 300만 부를 팔아 치운 〈디아블로 II〉는 운영 문제와 함께 경쟁작이라 할 수 있는 국산 대작 MMORPG 게임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하는 사람만 하는’ 게임이 되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디아블로 II〉는 서비스 중이며 PC 방 점유율 순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 디아블로 II 〉 이후 블리자드는 〈워크래프트〉 IP에 기반을 둔 게임에 거의 모든 역량을 집중한다. 새로운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워크래프트 III: 혼돈의 지배〉와 확장팩인 '얼어붙은 왕좌'가 각각 2002년과 2003년 출시되었다. 여기에 더해 2004년 11월 23일 서비스를 시작한 MMORPG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2021년 현재까지 총 8개의 확장팩을 출시하며 지금까지도 많은 유저를 보유하고 있는 블리자드의 대표 게임이 되었다. 이렇게 제작사로부터 외면 받은 줄 알았던 〈디아블로〉 시리즈에 대한 새로운 소식이 들려온 것은 2008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월드 와이드 인비테이셔널에서였다. 〈디아블로 3〉는 〈스타크래프트 II〉와 더불어 전세계 블리자드 팬들의 초 기대작이 되었다.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서울 왕십리역에서 진행된 전야제 행사에서 〈디아블로 3〉의 한정판을 구매하기 위해 전날 새벽부터 수천명의 사람들이 몰려들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많은 인원을 예상 못한 행사 주최측의 준비 미비로 그야말로 디아블로가 재림한 듯한 혼돈이 연출되었다. 각종 온라인 쇼핑몰에서의 소장판 판매도 판매 시작부터 쇼핑몰 서버가 다운되는 등의 혼란이 발생했다. 대한민국에서의 〈디아블로 3〉 한정판 대란은 또 다른 양상을 보이기도 했는데, 한정판을 사들여 웃돈을 더 받고 다른 사람에게 판매하는 사람들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디아블로〉 시리즈에 등장하는 종족인 네팔렘을 차용하여 만들어진 ‘되팔렘’이라는 단어는 인터넷 게시판 뿐만 아니라 이후 기성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쓰이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혼란상은 이후 벌어진 쓰나미 같은 사태에 비하면 그저 지나가는 가랑비에 불과했다. 2012년 5월 15일, 〈디아블로 3〉를 구매한 게이머들은 게임을 실행하기 위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아이콘을 클릭했다. 하지만 그들을 반기는 건 Error 37 이라는 메시지 창 뿐이었고 정작 게임은 실행조차 되지 않았다. 사유는 이랬다. 불법 복제를 막고 경매장 등의 기능을 위해 야심 차게 도입했던 서버 인증 시스템이 몰려드는 사용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현상이 계속 발생한 것. 이 문제는 게임 발매 후 한 달이 다 되도록 해결이 되질 못했고, 결국 국내 지사인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코리아는 게임 환불을 결정한다. * Error 37, 서버 롤백, 계정 오류 같은 기술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경매장 시스템, 게임의 난이도 배치와 말도 안되는 아이템 드랍 시스템 등으로 인해 초창기 게임의 평가는 계속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리자드는 특유의 뚝심으로 게임의 문제점을 하나 하나 개선해 나가고, 핵심 기능 중 하나였던 경매장 시스템을 날려버리는 특단의 결정을 내리면서까지 결국 죽은 게임을 살려내는데 성공한다. 2015년 8월까지 전 세계적으로 3천만 부가 판매되는 기록을 달성하였다. 전작과 12년의 갭이 있었던 〈디아블로 3〉와 달리, 다음 후속작은 비교적 빠른(?) 6년만에 발표되었다. 2018년 11월 최초 공개된 〈디아블로 이모탈〉은 디아블로 시리즈 최초의 모바일 게임이란 점, 그리고 그리고 게이머들에게 반발이 심한 극단적인 부분 유료화 정책으로 유명한 중국 게임 개발사와의 협업으로 개발 중이라는 점 때문에 팬들의 많은 우려를 샀다. 다행이 얼마 전 진행된 알파 테스트에서 우려는 어느정도 씻겨진 상태이지만, 블리자드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비단 팬들 만이 아니었다. 블리자드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를 우려했을까? 새로운 차기작인 〈디아블로 IV〉의 제작을 공개하였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 출처: 〈디아블로 IV〉 공식 시네마틱 영상 | 세 명이 오리라 2021년 현재 〈디아블로 〉시리즈는 한 편이 신규 발매되었으며, 두 편의 신작이 개발 중에 있다. 과연 이 시리즈의 미래는 계속될 수 있을까? 블리자드는 신규 IP 제작에 매우 신중한 행보를 보여왔다. 회사의 대표 IP 인 〈워크래프트〉와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는 모두 20세기인 말인 1990년대 처음 대중에 선보였고, 21세기 들어 완전한 오리지널 신규 IP는 오버워치 하나에 불과하다. * 출처: 블리자드 홈페이지 . 이는 블리자드의 개발 스타일과 큰 연관이 있다. 블리자드의 개발자들은 혁신적이고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낸 다기 보다는 기존의 게임 메커니즘을 철저하게 분해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이를 자신들이 충분히 만족할 때까지 다듬고 또 다듬는 방식으로 결과물을 만들었다. 여기에 시리즈를 계속해 가면서 자기 자신을 복제, 발전해 왔던 것. 이것이 블리자드의 스타일이다. 때문에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로부터 시작해 〈디아블로 II: 레저렉션〉으로 끝나는 블리자드의 클래식 프로젝트는 그간 블리자드가 보여줘 왔던 행보와 비슷하면서도 매우 동떨어져 있다. 이들의 장기는 기존의 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닌 기존 것에서 한 발 더 발전시켜 나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클래식 프로젝트는 찬란했던 시대의 흑백 사진을 컬러로 바꾸는데 급급하다는 인상이다. 블리자드의 얼음 폭풍이 점차 잠잠해지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비단 회사를 둘러싼 온갖 구설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실리콘 앤 시냅스라는 이름으로 1991년부터 시작된 블리자드는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했다. 블리자드의 미래를 함부로 예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의 색을 점차 잃어가는 게임 제작사를 바라보는 오래된 팬들의 마음은 어쩌면 안타까움 그 이상이 아닐까?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 개발자) 임현호 과거의 게임 개발 영웅들의 모험담을 쫓으며 게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게임 개발자. 매우 긴 기간 동안 대표, 기획자, 인디 게임 개발자, 프로젝트 매니저 등의 여러 타이틀을 달고 살았으나 게이머이자 게임 개발자로 불리길 희망하는 소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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