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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에 재현된 농업의 유형들과 재현의 의미에 대하여
디지털게임이 농업을 다루는 일은 보기 드물지 않다. 적지 않은 게임들이 본격적으로 농업의 과정을 재현함으로써 그 속에서 재미를 만들려고 하고, 농업 자체의 재현이 아닐지라도 농업이라는 개념 속에 우리에게 익숙한 어떤 과정을 게임 규칙 안에 편입시키는 시도를 많은 게임사들이 이어 온 바 있다. 다만 이 때 ‘농업’, ‘농사’라는 것은 무엇인지를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되물어보면, 같은 농업이라는 단어와 개념을 사람들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고 살펴보며 의미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Back 게임에 재현된 농업의 유형들과 재현의 의미에 대하여 30 GG Vol. 26. 6. 10. 이 글은 논문 [(이경혁, 2026), <농업은 게임에서 어떻게 상상되는가: 디지털게임 속 농업 재현의 유형과 사회문화적 의미>, 농촌사회, vol. 36(1), 349-407] 을 기반으로 다듬어진 글입니다. 논문 원문은 KCI링크( 바로가기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PC 앞 도시 게이머들에게 농업은 어떻게 다가오는가 2020년에는 게임 분야에서 꽤나 흥미로운 사건이 한국과 일본에서 비슷한 시기에 벌어졌는데, 게임 한 편이 두 나라의 농촌진흥청 웹사이트를 마비시킨 일이었다. 동아시아의 주요 식량작물인 벼농사를 꽤나 디테일하게 녹여낸 플랫포머 액션 게임 <천수의 사쿠나히메> 플레이어들은 게임에서 사실상 캐릭터의 성장을 책임지는 벼농사의 디테일을 알기 위해 온갖 농사 관련 정보를 찾아다녔고, 가상의 논을 향한 이 열망은 각 서버들을 뻗게 만들며 뉴스 면을 장식했다. 디지털게임이 농업을 다루는 일은 보기 드물지 않다. 적지 않은 게임들이 본격적으로 농업의 과정을 재현함으로써 그 속에서 재미를 만들려고 하고, 농업 자체의 재현이 아닐지라도 농업이라는 개념 속에 우리에게 익숙한 어떤 과정을 게임 규칙 안에 편입시키는 시도를 많은 게임사들이 이어 온 바 있다. 다만 이 때 ‘농업’, ‘농사’라는 것은 무엇인지를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되물어보면, 같은 농업이라는 단어와 개념을 사람들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고 살펴보며 의미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정을 다루는 매체로서 디지털게임이 농업을 재현한다는 것은 비농업인구가 훨씬 많은 현대 사회에서 농업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살피고자 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다룬 농업과 농촌의 이야기가 무엇을 함의하는지를 살피는 연구가 존재하는 것과 달리, 게임에서 농사가 다뤄지는 방식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살피는 연구는 없던 상황이다. 이 글은 그 의문에서 출발한 논문, <농업은 게임에서 어떻게 상상되는가: 디지털게임 속 농업 재현의 유형과 사회적 의미>(농촌사회학회, 36호 1권)에서 다뤄진 내용을 정리한 글이다. 논문은 2000년대 이후 디지털게임 속에서 나타난 농업 재현을 크게 다섯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각각의 유형들이 오늘날의 농업과 농촌을 어떤 방식으로 재현하는지를 분석하고자 했다. 게임 속에 재현되는 농업, 농촌에 관한 다섯 가지 유형은 각각 목가적 생활양식, 산업적 경영체계, 생존을 위한 재생산장치, 성장 보조 시스템, 주기 순환의 시간장치로 나타나며, 각각의 유형들은 서로 다른 관점에서 농업과 농촌이라는 관념을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목가적 농업, 산업적 농업, 생존의 농업 첫 번째 유형인 목가적 생활양식으로서의 농업은 <스타듀 밸리>로 대표되는, 이른바 ‘힐링’의 요소가 강하게 결합된 농업과 농촌을 재현하는 유형이다. 도시에서의 틀에 박힌 삶에 염증을 느낀 주인공이 시골로 이주해 농장을 재건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는 <스타듀 밸리>에서 농업은 그저 작물을 생산하는 것으로만 그려지기보다는 농촌이라는 생활공간과 그 안에서 엮이는 인적 네트워크를 포괄하는 총체적 관계로서 나타난다. 농업이라는 말에 담긴 이른바 ‘농촌성’이 <스타듀 밸리>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재현되는 농업과 농촌의 특성이다. <목장이야기> 등에서부터 이어져 내려 온 농촌성 재현을 중심에 둔 게임들은 농업을 목가적 생활양식의 일환으로 보고자 한다. 경쟁과 위험, 시장과 생산보다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안정과 회복, 그리고 정착의 감각이다. 농업과 농촌을 이처럼 정서적으로 안정된 관계의 공간으로 그리는 것은 ‘이상적 농촌성Rural idyll’이라는 개념으로 이미 다른 매체에서도 나타난 바 있는데, 앞서 이야기한 <리틀 포레스트>나 <전원일기> 등이 농촌을 도시와 대비되는 ‘인간미 넘치는 공간’으로 묘사하는 것들이 대표적이다. 목가적 생활양식으로 농업을 다루는 이러한 게임들은 그 숫자가 많지는 않더라도 사실상 농업 게임을 대표하는 유형으로 꼽히는데, 농업과 농촌을 이처럼 낭만적인 공간으로 그리는 것에 대한 위험성은 이미 다른 매체들에서도 지적된 바 있는 패턴이다. 농촌사회학자 리-앤 서덜랜드는 컴퓨터 앞에서 게임을 통해서만 농업을 접하는 도시 생활자들이 갖게 되는 농업과 농촌에 대한 이미지를 ‘책상 앞 농촌desk-chair countryside’라고 개념화한 바 있는데, 이는 직접 농촌에서 농업을 영유하며 살거나 영화나 소설처럼 누군가 만든 농촌의 이미지를 바라보는 것과는 다른 제 3의 방식으로 농촌과 농업을 이해하는 것임을 지적한 바 있다. 두 번째 유형은 산업적 경영체계로서의 농업이다. <파밍 시뮬레이터>로 대표되는 이 유형은 앞선 유형과는 달리 농업에서 낭만성과 인간관계를 제거한 채 오로지 작물의 생산과 유통, 판매라는 시장 체제 안에서의 농업만을 다루는 유형이다. 이 유형의 게임들은 작물을 먹거리로 보기보다는 공장에서 생산해 시장에 내다 파는 공산품과 마찬가지로 상품commodities의 일환으로 보며, 그 생산과정 또한 자연과의 교감이 아니라 현대화된 장비와 시스템을 통해 대량으로 생산이 이뤄지는 장면을 재현하고자 한다. 농업에 대한 이미지를 둘로 나눈다면, 앞선 유형이 ‘농촌에서의 농업’에 가깝고 이 유형이 ‘영농법인의 농업’에 가까울 것이다. 후술할 다른 유형들과도 가장 구분되는 산업적 경영체계로서의 농업 게임들이 갖는 특징은 오로지 상품 관계로만 농업과 그 산물을 바라본다는 점이다. <파밍 시뮬레이터>는 농업의 생산물을 플레이어가 직접 먹거나 요리하지 않으며, 밀과 옥수수는 오직 판매를 통해 현금화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가치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소규모 가족농이나 마을 단위의 협업을 통해 이뤄지는 한국의 농업보다는 대규모 농지에서 기계화된 농업을 돌리는 북미와 같은 공간에서의 농업에 대한 재현으로 볼 수 있는 유형이다. 세 번째 유형은 아마도 여러 게임 속에 가장 보편적으로 녹아들어 있을 생존을 위한 재생산장치로서의 농업이다.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규칙을 전제한 뒤, 생존을 위한 식량 확보의 일환으로 농업은 서바이벌 규칙을 가진 게임 안에 편입된다. 이름부터가 이 개념을 상징하는 게임인 <굶지마!>가 대표적인데, 처음 게임 시작 부분에서는 채집과 사냥으로 이뤄지던 식량 조달은 이후 농업을 본격화하고 대량생산체제에 편입시킴으로써 구성원의 생존을 안정화하는 방향으로 변화한다. 최종 단계에서는 결국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추게 되는 것이 이 유형의 농업 게임들이지만, 앞선 산업적 경영체계로서의 농업을 다룬 게임들과는 달리 이 대량생산은 대부분 ‘구성원의 생존’을 위한 장치로 기능한다.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점차 생산량을 늘려야 하는 대부분의 생존 및 운영시뮬레이션 게임들에서 식량은 부가적으로는 거래 요소이지만 기본적으로는 ‘먹기 위한’ 용도로 활용된다. 먹지 않으면 죽는 게임에서 먹거리를 생산하는, 살기 위한 먹거리 창출이라는 농업의 원시적이고 근본적인 목표가 이러한 유형의 게임 속에서 재현된다. 성장 보조, 혹은 시간장치로서의 농업 네 번째 유형은 성장 보조 시스템으로서의 농업이 다뤄지는 게임들이다. <천수의 사쿠나히메> 와 같은 게임은 먹지 않는다고 굶어 죽는 규칙을 넣지는 않지만, 게임 캐릭터의 능력치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식량을 생산하고 먹어야 한다. 이는 하드코어한 생존 룰이 적용되지 않는 여러 롤플레잉 게임에서도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유형으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같은 게임들에서 식량이 일종의 버프로 기능하는 점과 맞물린다. 네 번째 유형은 농업과 먹거리가 갖는 ‘식약동원食藥同原’의 개념 하에 이루어진다. 먹음으로써 몸과 정신이 강해진다는 이 개념은 ‘먹지 않으면 죽는다’ 개념을 밑바탕에 깐 뒤에 이루어지는 두 번째 레이어에 가깝다. 먹음으로써 강해지고, 그 강함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먹을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가 네 번째 유형이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초창기에 버프용 약초를 구하기 위해 리젠되는 지역을 돌던 행위를 ‘무 농사’라고 불렀던 것이 이 맥락과 상통한다. 마지막 다섯 번째 유형은 사실 농업 재현인지 의문일 수 있을 유형으로, 주기 순환의 시간장치로서의 농업이다. 2010년대 서구권을 휩쓸었던 <팜빌>과, 그와 유사한 여러 소셜 네트워크 게임들에서 나타났던 농업을 돌이켜보면 알기 쉽다. 이런 게임들에 등장하는 농업은 작물의 생산과 수확이라는 농업의 뼈대를 갖추고 있지만, 그 구조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 플랫폼이 설계한 재방문 주기, 다시말해 리텐션 구조에 농업의 외피를 씌운 것에 가깝다. 비슷한 소셜 게임들이 모두 특정한 무언가를 만들거나 건설하는 명령을 내린 뒤 몇 시간, 며칠 뒤에 완성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고, 그 중 하나로 농업의 파종 – 수확 순환 개념이 들어간 것이다. 이렇게 재현되는 농업은 게이머들로부터 농업이 일정한 시간을 기다려야 수확이 가능한 산업이라는 인식을 받음으로써 가능해진다. 씨를 뿌린 뒤 기다렸다 거둔다는 순환의 구조는 게이머들이 플랫폼으로부터 제공받고자 하는 보상을 자연스럽게 기다릴 수 있게 만들어주는 설득력의 요소로 작용한다. 앞서 이야기한 여러 농촌과 농업의 이미지는 이 유형에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애초에 이 유형이 유독 모바일, 온라인 기반으로 이용자의 재방문 주기를 설계하는 경우에만 나타난다는 것이 중요한 증거다. 게임으로 농업을 이해한다는 말의 깊은 의미를 곱씹으며 게임이 농업을 다룬다는 말은 이처럼 결코 하나의 방식으로 일반화하기 어렵다. 다섯 가지 유형은 모두 농업을 재현하고 있지만, 살펴본 것처럼 이 농업이라는 개념 자체가 각각의 사람들에게 서로 다르게 이해되며, 어떤 관계망 속에서 농업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게임 속에서 재현되는 농업은 그 의미부터 구조까지 모두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유형을 가로지르는 공통점이 있다면 아마도 현실의 농업이 가지고 있는 고단함 자체는 배제되거나 순화된다는 점일 것이다. 일전의 GG 글에서도 지적된 바 있듯이, 놀이로 기획된 디지털게임의 재현에서 농업의 고단함은 굳이 그려지지 않는다. 현실 농사에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부채, 가격 폭락에 따른 대손실, 고된 노동과 자연재해 등은 복구 가능한 수준으로 그려지곤 한다. 농업의 어려움에 대해 목가적 유형은 공동체의 온기로 덮어내고, 생존형은 전략적으로 관리 가능한 위기로 그려내며, 시간장치형은 예측 가능한 타이머로 풀어낸다. 당연하게도 매체로서의 게임이 농업의 모든 면을 담아내야만 한다는 주장은 아니다. 애초에 규칙과 반복을 통해 의미를 생산하는 디지털게임에서 그려내는 농업과 농촌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그 자체를 문제삼을 수는 없다. 다만 문제는 갈수록 현실의 농업으로부터 거리가 멀어지는 도시거주자 중심의 현대 대중문화 속에서 때로는 낭만화되고 때로는 산업화된 농업의 시스템만을 재현된 매체 안에서 보는 것이 가질 수 있는 매체론적인 문제에 있다. <리틀 포레스트>에 대한 여러 문제제기들이 지적한 것처럼, 우리는 실제로 경험하지 못한 농업과 농촌이라는 개념에 대해 단지 매체의 재현된 결과만으로 과도하게 손쉬운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게임 속 농업을 두고 따져야 할 것은 '얼마나 정확하냐'가 아닐지도 모른다. 더 중요한 건 무엇이 거듭 선택되고 무엇이 거듭 빠지는가, 그리고 그 선택의 패턴이 우리가 농업을 상상하는 방식을 어느 쪽으로 끌고 가는가에 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농업 게임의 재미나 가치를 부정하려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게임 속 농사가 누군가 정성껏 고르고 배열한 한 편의 재현물이라는 사실을 아는 플레이어는 그 경험이 주는 즐거움을 누리면서도 그것이 현실의 농사와 어디서 만나고 어디서 갈라지는지를 함께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농촌진흥청 서버를 마비시켰던 그 엉뚱한 호기심이야말로 농업이 뭔지 모르는 도시민들에게 ‘농업이란 무엇인가’를 한번 더 상기하게 해 준 좋은 기회가 아니었던가.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최적화하는 재미, 최적화된 세상 - 자동화 시뮬레이션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이 결국 최적화와 효율을 위함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최적화 게임’은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가 산업 자본주의의 최적화를 이뤄온 과정을 따라간다. 물론, 최적화의 재미를 느끼는 게임에서 최적화의 행위를 성찰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현실을 반영하는 시뮬레이션 장르에서 비가시화된 존재들이, 자본주의로 최적화된 우리 사회의 비가시화된 영역을 생각해보게 한다면 그것 또한 게임이 줄 수 있는 의미이지 않을까? < Back 최적화하는 재미, 최적화된 세상 - 자동화 시뮬레이션 27 GG Vol. 25. 12. 10. 대학을 다닐 때, 책을 읽다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교수님에게 질문한 적이 있었다. 질문의 내용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내 후두부를 강력하게 두드렸던 당시 교수님의 답변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당시 교수님은 “학문을 한다는 것은 집 정리를 하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했다. 집에 큰 가구가 새로 생긴다면 기존의 가구들을 재배치해야 하는 것처럼, 책을 읽을 때 단순히 새로운 지식을 머릿속에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기존 지식들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나의 편향과 신념, 습관, 체계들이 무너지고 새로 쌓이는 경험을 하는 것. 그것이 학문의 의미이자 재미라고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당시 교수님의 이야기는 내게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우습게도 내가 이때의 대화를 가장 많이 떠올리는 순간은 자동화 게임을 할 때이다. 자동화 게임을 즐겨본 유저라면, 자기 기지를 제 손으로 부숴보지 않은 유저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만약 한 번도 손보지 않고 엔딩을 향해 달려갔다면, 그것은 다른 의미로 존경의 대상이 되어 마땅하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그전까지의 내 기지가 아무리 완벽했어도 재구성과 재배치의 작업이 필요하다. 단순히 새로운 기계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최적의 동선과 최적의 환경, 최적의 효율을 위해 다시 기지의 모든 곳을 다듬어야 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급박한 상황이라면 임시적으로나마 비효율적인 기지를 만들어놓을 수 있겠지만, 게임 플레이 시간이 쌓일수록 게이머의 다음 과제는 효율적인 기지 구성을 향해 나아간다. <끝없는 재구축의 과정> 자동화 게임? 최적화 게임! 흥미로운 점은 자신이 애써 만들어놓은 기지를 부수고 새로 구축하는 과정이 마냥 괴롭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물론, 자동화 게임을 하면서 머리를 쥐어뜯었던 수많은 순간들이 위의 문장을 반박하려 들 것이다. 그렇다면 게임의 장르를 바꿔보자. 만약 RPG를 하는데 10시간 가까이 레이드한 보스몹을 결국 잡지 못하거나, 겨우 잡은 보상을 잃어버린다면 그 상실감은 얼마나 클 것인가? 혹은 지금까지 모은 재화들을 해킹당한다고 생각해보자. 그 허탈함과 분노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반면, 자동화 게임에서는 수십 시간씩 공을 들여 만든 기지여도 효율적이지 않으면 자기 손으로 부수고 새로 짓게 된다. 심지어 부수고 새로 지을 각이 보이지 않으면 산뜻하게 지금 기지를 버리고 새로 시작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때 ‘지금까지 쏟은 시간을 버린 것과 같은 기분’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과제를 마주하면서 이걸 해결하고 더 좋은 기지를 만들 수 있다는 설레임이 동반되기도 한다. 이처럼 자동화 게임에서는 결과물이 중요하지 않다. 자동화 게임의 재미는 마치 레고처럼 창의성을 발휘해서 자신의 기지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 다만, 레고와 다른 점은 창의성을 발휘하는 목적이 주관적 심미성이나 상상력의 영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뚜렷하고 명확한 효율성 자체에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자동화 게임의 게이머들은 게임을 하다가 노트를 펴서 수치를 계산하는 수학자가 되기도 하고, 게임 내 기술이 어디까지 실현될 수 있는지 실험하는 과학자가 되기도 한다. 가족 구성원이 이 광경을 본다면 아마 ‘대체 그 게임은 무슨 재미로 하는 거야?’라고 물을 만큼 겉으로 보기에는 노동의 과정과 다를 것이 없지만, 직장에서는 오롯이 추구할 수 없는 최적화 과정 자체에서 이 게임의 재미가 나온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자동화 게임의 목적은 자동화에 있지 않다. 완전히 자동화된 환경을 만들어서 바라본다면 뿌듯한 감정을 느끼겠지만, 그것이 뿌듯한 이유는 최적화를 향한 나의 노력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최적화 게임’이 게이머들에게 재미를 줄 수 있는 것은 변수의 계산 가능성 덕분이다.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문제들은 변화무쌍하고 다층적이며 예측불가능하다. 그러나 게임에서는 수치적으로 변수가 제공되어 계산 가능하고, 통제 가능하며, 잘 만든 ‘최적화 게임’들은 게이머에게 단계적으로 새로운 환경과 과제들을 제시한다. <산소미포함(Oxygen Not Included, 이하 산미포)>을 즐긴 게이머라면 누구나 산소 부족-식량 부족-전기 부족-물 부족-자원 고갈의 어려움을 순차적으로 겪을 것이다.(물론, 중간중간 앞 단계의 과제들이 다시금 찾아온다) <팩토리오(Factorio)>와 <새티스팩토리(Satisfactory)>에서는 필요한 광물이 순차적으로 늘어난다. 게이머들은 이러한 변수 앞에서 자원을 활용하고 환경을 구축하며 최적화하는 즐거움을 누린다. 다시 돌아보는 막스 베버의 통찰 그런데 시야를 넓혀보면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모든 게임이 현실을 반영하는 시뮬레이션이라지만, 자동화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는 특히나 현실과의 유사성이 높은데도 게임을 하면서 현실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변수의 성격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다. 게다가 공장이라는 공간적 배경도 게이머의 경험에 따라 거리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생산과정에서 유통과정까지 효율을 추구하는 게임의 구조가 현실과 흡사함에도 관련 논의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커뮤니티를 둘러봐도 ‘현실에서 효율을 추구하지 않는 자신이 왜 게임에서 효율을 좇는지’ 궁금해할 뿐이다. 이에 대해서는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라는 답글이 달리곤 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한국인의 특성’처럼 부정할 수도 없지만 논의에 도움도 되지 않는 하나 마나 한 이야기이다. 자동화 시뮬레이션과 현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소비와 욕망이 직접적인 변수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RPG뿐만 아니라 <데이브 더 다이버>나 <문명>처럼 파편적으로라도 경제 시스템을 구현한 게임과 비교했을 때, 복잡다단하고 가변적인 욕망의 소유자는 물론이고, 정해진 확률에 따라 거래를 하려는 소비자도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산미포>의 복제체(Duplicant)들은 생명 유지에 필요한 최소치만을 요구할 뿐이고, 문화적, 정신적 요구치인 사기와 스트레스 역시 소비 과정 없이 최소치의 수치만 충족시키면 되며, <팩토리오>와 <새티스팩토리>의 플레이어는 다른 인간 자체를 만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동화 시뮬레이션의 생산물은 교환가치를 가진 ‘재화’가 아니라 다음 단계를 위한 ‘재료’로 인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화 시뮬레이션에서 구현되는 세상은 현실의 산업 자본주의와 흡사한 형태로 발전한다. 이러한 점은 ‘소비의 욕망 구조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던 막스 베버의 통찰을 되돌아보게 한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자본주의의 기원을 생산 과정에서 찾았다. 베버에 따르면, 종교 개혁 이전에는 개개인의 구원 여부를 개인의 외부, 즉 교회와 종교 권력이 확정시켜주었지만, 종교개혁 이후의 청교도인들은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스스로 증명해야 했다. 이러한 차이는 일상생활에서의 차이로 이어졌다. 과거에는 종교 의례를 충실히 참여하는 것으로 충분했지만, 청교도인들에게 일상은 신이 자신에게 요구한 삶의 태도를 증명하는 자리였던 것이다. 이에 청교도인들은 세속적 직업 수행을 신의 소명으로 여기며, 스스로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얻기 위해서 더 효율적이고 능동적으로 노동에 임했다. 이때의 자본주의 정신은 합리적 계산과 체계적인 노동, 절제된 생활, 이윤의 재투자 등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축적된 자본은 또다른 생산을 만들면서 자본주의를 만들었다. 소비와 욕망의 매커니즘이 구현되지 않는 세상은 베버가 말한 자본주의의 확장 과정을 잘 보여준다. 게임 내 재료가 쌓이면, 이는 바로 다음 생산 활동을 위해 투입된다. 많이 사용되는 재료는 더 넉넉하게 쌓으려고 하지만, 이 역시 교환가치가 아닌 사용가치로 인한 축적이다. 그렇게 공장은 더 효율적으로, 더 많은 물품을 만들 수 있게끔 점점 확장된다. 그 자체로 목적성을 가지는 생산 과정은 베버의 말처럼 다른 생산으로 이어지며 산업 자본주의의 형태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또 하나의 변수. 물류 산업 자본주의가 확장되는 또 하나의 변수는 물류 시스템이다. 자동화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물류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면, 게임의 중반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형태가 컨베이어 벨트가 되었건, 기차가 되었건, 드론이 되었건 생산 과정을 효율적으로 최적화하려면 물류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특히, 자동화 시뮬레이션의 고급 기술들은 여러 자원들을 대량으로 요구하기에 자원을 한 곳으로 모아야 한다. 생산품 역시 필요한 것으로 보내야 한다. 따라서 효율에 대한 추구와 산업의 발전은 물류 시스템의 탄생을 낳는다. 이러한 맥락에서의 물류 시스템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영역이고 산업 발전의 산물일 뿐이다. 실제로 게임을 하면서 물류 시스템을 가장 중요한 변수로 먼저 떠올릴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크 레빈슨의 통찰은 이러한 생각을 뒤집는다. 레빈슨은 <더 박스: 컨테이너는 어떻게 세계 경제를 바꾸었는가>에서 물류 시스템의 발전이 산업을 어떻게 바꾸는가를 역설한다. 컨테이너가 사용되기 이전에는 모든 항구에서 짐을 일일이 손으로 싣고 내려야 했다. 도난이나 파손의 위험도 높았지만, 무엇보다 운송비가 막대하게 들어갔다. 그러나 컨테이너가 표준화되자 운송비가 줄어들면서 공장들은 항구 근처에 위치하지 않아도 되게 바뀌었으며, 원재료부터 완제품까지 만들던 공정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국제적인 분업이 가능해진 것이다. 게다가 운송 속도가 빨라지면서 기업들은 재고를 쌓아두지 않게 되었으며, 필요한만큼 만들어 필요한 곳에 파는 Just-in-Time 생산이 가능해졌다. 레빈슨은 이로 인해 분업화와 같은 기업 구조의 변화는 물론이고, 세계화와 노동 시장, 도시의 구조까지 바뀌었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자동화 시뮬레이션을 생각해본다면, 물류 시스템은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개념만이 아니라, 필요를 만들어내는 개념이기도 하다. <새티스팩토리>에서 운송 수단이 발달하면, 그전까지는 멀어서 염두에 두지 않던 효율성 좋은 자원을 사용하게 되고 기지가 확장된다. 자원에 여유가 생기면서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더 많은 기기들을 만든다. <산미포>에서 기존에는 어쩔 수 없이 복제체가 직접 움직여야 했던 지점도 자동화되며 최적화의 대상과 방식이 변한다. 분업도 더욱 활발해지면서 결과적으로 만들어내는 생산물이 늘어난다. 물류 시스템의 발전이 산업 자본주의의 확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존재가 비가시화된 세상에서 현실의 비가시화된 존재를 상상하기 그런데 이처럼 현실에서의 욕망과 탐욕 없이, 생산이 생산을 낳고 물류가 필요를 낳는 세상에서도 착취와 소외의 흔적은 발견된다. 공장의 최적화를 위해서는 변수 없이 돌아가는 부품만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다수의 자동화 게임들은 착취의 현장을 직접적으로 그리지 않고자 한다. <팩토리오>와 <새티스팩토리>는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하기에, 공장 내부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움직이며 0.01초 단위로 작업을 규제받는 현실의 노동자가 나오진 않는다. <산미포>는 등장하는 노동자를 인간이 아닌 복제체로 정의한다. 의도적인지는 알 수 없지만, 판단력이 제거된 복제체들의 움직임은 게이머의 죄의식을 희석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설정 위에서 최적화를 위한 플레이는 자본주의의 생산 모델 발전 경향을 답습하는 경향을 보인다. <여유가 생기면 복지를 신경쓰기 시작한다> 게임의 초기 단계에서는 효율을 높이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다. 그래도 게임 시스템이 시간과 능력, 생산량들을 표준화해놓기 때문에, 게이머들은 분업과 세분화 작업을 통해 노동의 효율을 극대화시키는 테일러주의적 운영 방식을 보인다. 그러다 초기 생산물이 쌓이면, 대량 생산 시스템을 갖추고 컨베이어 벨트를 사용하는 포드주의로 발전한다. <산미포>에서 노동자의 식당이나 수세식 화장실을 갖추는 것도 부분적으로나마 복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포드주의와 맞닿는다. 이후 생산과 물류 시스템이 정착하고 당장 생존에 여유가 생기면 환경을 바꾸거나 주변을 꾸미기 시작한다. 낭비를 최소화하는 작업을 할 여유가 생기면서 근로만족도와 스트레스도 챙긴다. 팀워크와 자발성을 게임에서 구현할 수는 없지만, 생산성과 복지를 결합한다는 측면에서는 도요타주의적 운영 방식을 보인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이 결국 최적화와 효율을 위함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최적화 게임’은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가 산업 자본주의의 최적화를 이뤄온 과정을 따라간다. 물론, 최적화의 재미를 느끼는 게임에서 최적화의 행위를 성찰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현실을 반영하는 시뮬레이션 장르에서 비가시화된 존재들이, 자본주의로 최적화된 우리 사회의 비가시화된 영역을 생각해보게 한다면 그것 또한 게임이 줄 수 있는 의미이지 않을까?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북유럽 레트로: 핀란드의 레트로게임 문화
핀란드에서 컴퓨터게임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이 1970년대부터 였고 80년대부터는 상업화 되었으니 그 역사는 꽤 긴 편이다. 최초의 e스포츠 토너먼트 - 당시에는 “이스포츠”가 아니라 “핀란드 컴퓨터게임 챔피언십”이라 불렸다 - 가 1983년에 이미 개최되었으며, 90년대 초반에 이르면 게임플레이가 청소년들의 주요 여가활동으로 자리잡는다. < Back 북유럽 레트로: 핀란드의 레트로게임 문화 02 GG Vol. 21. 8. 10. - 편집자 주: 이 글은 해외에서 투고한 원고를 번역한 글입니다. 원문은 아래에 병기하였습니다. 핀란드에서 컴퓨터게임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이 1970년대부터 였고 80년대부터는 상업화 되었으니 그 역사는 꽤 긴 편이다. 최초의 e스포츠 토너먼트 - 당시에는 “이스포츠”가 아니라 “핀란드 컴퓨터게임 챔피언십”이라 불렸다 - 가 1983년에 이미 개최되었으며, 90년대 초반에 이르면 게임플레이가 청소년들의 주요 여가활동으로 자리잡는다.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은 코모도어64(Commodore 64)로, 1980년대의 인기가 1990년대에도 이어지면서 그 이름이 사실상 핀란드의 게임세대와 동의어가 될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는데, 당시 코모도어 64는 다른 유형의 디지털 플레이와 프로그래밍으로 연결되는 일종의 관문과 같은 것이었다. 동아시아의 경제 위기가 1997년 한국을 크게 덮쳤던 것처럼, 핀란드도 1990년에서 1993년 사이에 심각한 경제적 불황을 겪었다. 이후 컴퓨터와 고급 (가정용) 테크놀로지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투자가 이어지는데, 노키아 휴대폰이 부상하는 게 바로 이 시기다. 가정용 컴퓨터 또한 널리 보급되었는데, 핀란드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집에서 자신의 PC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지극히 낮은 인구 밀도 때문일 것이다(핀란드 인구는 5백만명이지만 지리적 크기는 한반도의 3배 이상이다). 이와 같은 문화적 맥락을 통해 알 수 있는 핀란드 레트로게임문화의 지역적 특색은 다음과 같이 크게 3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핀란드의 오랜 게임 개발의 역사 그리고 PC 중심적 플레이의 역사로 인해 상대적으로 많은 수의 지역 취미가들이 게임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게임과 컴퓨터들을 수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핀란드의 지리적 특성상 공간적 구조가 상대적으로 넓은데, 이는 사람들이 과거의 테크놀로지를 수집, 저장하는 것을 가능케 해준다. 이와 같은 게임플레이의 기억에 대한 아카이빙과 수집, 그리고 (물리적, 가상적) 공유는 핀란드의 레트로게임 문화에 있어 핵심적인 측면 중 하나다. 둘째, 핀란드의 컴퓨터게임 개발 및 플레이의 역사에 주된 영향을 끼친 플랫폼은 PC지만, 1990년대 및 2000년대 초반에 청소년기를 보낸 많은 사람들이 PC로 넘어가기 전(핀란드의 인구가 적기 때문에 PC 인터페이스는 결코 핀란드어로 번역되지 않는다. 그래서 PC를 사용하려면 먼저 영어에 능숙해져야 한다) 보다 어렸을 적에 콘솔을 소유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1980년대 후반 이래 거의 모든 콘솔들이 핀란드에 출시되었고, 오늘날 많은 성인들은 자신이 성장기에 플레이했던 콘솔을 가지고 레트로 게임을 즐기면서 어린 시절의 경험을 재현하기를 즐긴다. 셋째, 가정용 컴퓨터(와 콘솔)이 2000년대 초반 노키아의 모바일 테크놀로지 붐과 함께 갈수록 많은 인기를 모으면서, 핀란드의 아케이드 게임 문화가 거의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게임 아케이드는 핀란드의 도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오락 문화였지만 사람들이 가정 내 게임 인프라에 보다 많이 투자하고 옮겨가면서 아케이드 게임을 향한 관심이 떨어졌고 업계의 수익성은 크게 하락했다. 오늘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예전의 아케이드 경험을 되살릴 수 있는 레트로 게임공간으로서 게임 아케이드를 방문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을 돌이켜볼 때, 핀란드의 레트로 게임문화가 여러 시대를 횡단하며 등장했던 특정 콘솔들과 다양한 개인용 컴퓨터 등 넓은 범주를 아우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양한 레트로게임 집단과 기업가들, 심지어는 박물관마저도 레트로 게임과 하드웨어를 중심으로 구축되고 있다. 레트로 게이머를 다루는 특집기사들, 레트로 게임을 수용하면서 즐기는 집단이나 그것을 통해 수익을 추구하는 집단을 소셜미디어에서 마주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다음은 “핀란드의 레트로게임 문화에 있어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세 집단의 답변을 통해 그 역사를 구체적으로 이해해보고자 한다. 먼저 템페레에 위치한 핀란드 게임박물관에서 일하는 니클라스 닐룬드(Niklas Nylund) 박사에게 그 질문을 던졌다. 이 박물관은 템페레시와 루프리키 매체 박물관(Media Museum Rupriikki), 사설 게임 박물관 펠리코네주니트(game collective Pelikonepeijoonit), 그리고 템페레 대학이 핀란드 게임문화의 발전상을 보여주기 위해 설립되었다. 2017년 개관한 이 박물관은 10만 유로를 크라우드 펀딩으로 기부한 핀란드 게임열정가들에 힘 입어 게임 역사를 위한 공공의 아카이브 시설로 구축되었다. 이 곳은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공간으로 지역주민과 방문객들 모두 게임문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닐룬드 박사에 따르면 핀란드 레트로게임에 있어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개방성과 협업, 그리고 민주적 의사 결정에 있어 타인에 대한 존중이다. 소규모 국가인 핀란드 특유의 대화하는 문화를 통해 상위 문화 유산 기관들이 처음부터 레트로 게이머들과 대화하면서 그들로부터 배우고자 했다는 것이다(레트로 게이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닐룬드는 게임 보존에 관심이 있는 단체들이 핀란드 게임박물관 설립과 같은 프로젝트와 “게임 보존을 위한 토론회”를 함께 한 경험이 긍정적이었다고 덧붙였다. 두번째 응답은 투르쿠 대학 ANC(Academic Nintendo Club)의 회장인 이에로 피칼라(Eero Pihkala)로부터 얻을 수 있었다. ANC는 1980년대의 콘솔부터 e스포츠에 이르는 다양한 레트로 게임 여가활동을 제공하는 단체다. 이러한 유형의 클럽은 - 학술적이든 비학술적이든 - 핀란드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특정한 콘솔이나 컴퓨터에서부터 특정 장르에 이르기까지 그 전문성과 형태에 있어 다양하다. ANC를 대표하는 피칼라는 “핀란드 레트로게임 문화에 있어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서로 상이한 여러 세대들이 - 최신 AAA 게임 시장을 추종하는 대신 - 동등하게 게임을 향유한다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게임문화의 역사를 보존하고 그 역사 내의 다양성의 유산을 찬양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들은 또한 레트로 게임이 “유동적인 개념”이긴 하지만 핀란드인들에게 있어서는 MS-DOS와 PC 기반의 게임 활동이 핵심적이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는 1990년대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대개 일본산) 아케이드 게임의 수집으로 잘 알려져 있는 헬싱키 소재의 아케이드 홀 스고이(Sugoi)의 소유주인 마르쿠스 아우티오(Markus Autio)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핀란드의 레트로게임 문화는 노스탤지어에 관한 것이다. 사람들은 어렸을 때나 청소년기에 접했던 게임을 다시 접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러한 게임이 반드시 직접 플레이했던 것일 필요도 없다. 그저 쇼핑센터의 어두컴컴한 구석에서 보았던 게임에 대해 남은 인상일 뿐이어도 상관 없다. 또는 당시 비디오게임 잡지에서 읽었던 게임일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레트로 게임문화에 있어 핵심은 어떤 식으로든 그 게임에 친근감을 느낌으로써 노스탤지어적인 흥미를 일으키는 것”이다. 동일한 연장선에서 노스탤지어적 아케이드들이 현재 핀란드의 도시 풍경에 되돌아오면서 취미가들을 위한 (종종 사교를 위한) 레트로 게임용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핀란드 레트로 게임문화의 세 가지 특성에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독특한 특성을 추가할 수 있겠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핀란드에서는 PC용 DIY 게임(대개 MS-DOS용 게임) 만들기 붐이 일었는데, 이러한 게임들은 대개 블랙코메디 등 풍자적이고 패러디 같은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게임들은 대체로 비영리적이었고 그 개발자들도 대개 익명으로 남아있다. 그들의 셰어웨어식 유통은 디스크 교환이나 게시판 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그러한 활동들은 핀란드 게임 역사의 작은 부분을 형성하고 있는데, 레트로 게이머들이 그러한 게임들의 플레이를 실시간 방송으로 내보내거나 온라인 비디오를 만들어 소환하고 있다. 이러한 게임 가운데 다수는 의도적으로 도발적이거나 공격적인 콘텐츠를 담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존재를 거부하는 것보다는 그와 같은 레트로 게임 활동을 알리는 것이 그 발생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며, 그것들이 후기의 문화적 발전에 끼친 영향 또한 밝혀줄 수 있을 것이다. Retrogaming in Finland Finland has a long and established history of computer game development, starting from the late 1970s and commercializing in the 1980s. The first esports tournament – which was not called “esport” at the time but “Finnish Computer Game Championships” – was held already in 1983, and gaming quickly evolved into one of the key leisure activities of adolescents by the early 1990s. The Commodore 64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this development, as its popularity in the 1980s and still in the 1990s became synonymous with the Finnish gaming generation as a gateway to other types of digital play and programming. Just as the Asian financial crisis hit Korea in 1997, Finland suffered a deep financial depression between 1990 and 1993, which was soon followed by further interest and investing in computers and high-class (home) technology, especially with the rise of Nokia mobile phones. Unlike in many other countries, home computers became standard household products across the population and people still play mostly at home with their own PCs – perhaps due to the scarce density of the population (Finland has only 5M people but is geographically more than three times larger than Korea). This cultural context has marked the Finnish retrogaming scene with local characteristics, which can be divided into three distinct domains. First, due to the long history of Finnish game making and PC driven play, a relatively large number of the local hobbyists are curious about game history and many people have personal game and computer collections. The geographic nature of Finland supports relatively spacious architecture, thus allowing people to store legacy technologies. This archiving, collecting, and sharing (physical and digital) gaming memories is one of the key aspects of Finnish retrogaming. Second, despite the PC having had a major impact on the history of Finnish computer game development and play, many adolescents of the 1990s and early 2000s had game consoles in their childhood years before moving to use PCs (PC interfaces were never translated to Finnish due to the small population so using one required fluent in English). Almost all international consoles have been released in Finland since the late 1980s and today many adults like to revisit their childhood by retrogaming with the consoles that formed a part of their childhood. Third, due to the increasing boom of home computers (and consoles) in the early 2000s with the Nokia mobile technology boom, the Finnish arcade gaming culture vanished almost entirely. Until the late 1990s, gaming arcades were still a common particle of Finnish cities and entertainment culture, but as people moved to invest (even) more on their home gaming infrastructures, the interest toward arcade games dropped and the business became unprofitable. Today, many people visit arcades as retro game spaces to relive former arcade experiences. Reflecting upon this historical background, retrogaming in Finland ranges from specific consoles to various personal computers across different decades. There are different active retrogaming groups, entrepreneurs and even museums set around retrogaming and hardware. It is not uncommon to stumble upon a news feature about retro gamers or various social media groups embracing or seeking to profit from retro games. Below, we elaborate on this history via three parties from whom we asked one simple question: What is the most distinct feature of Finnish retrogaming? Our first response comes from PhD Niklas Nylund who works for the Finnish Game Museum in the city of Tampere. The Finnish Game Museum is a collaboration between the city of Tampere, Media Museum Rupriikki, game collective Pelikonepeijoonit and the University of Tampere set to represent Finnish gaming culture and how it has developed over the years. The Museum was opened in 2017 and was crowdfunded by Finnish gaming enthusiasts who donated 100,000€ to establish a public archive of game history. It is a meeting place for the past and the present, offering low-threshold participation in gaming culture for both locals and visitors. According to Nylund, the most distinct feature of Finnish retrogaming is its openness, collaboration, and respect for other people in democratic decision making. Finland is a small country, and its conversation culture is open to an extent that high cultural heritage institutions were from the start interested in having a dialogue with retro gamers and learning from them (and vice versa). Nylund adds that experiences have been positive with parties interested in preserving games through projects such as the Finnish game museum and having a shared “round table of game preserving.” Our second response is credited to Eero Pihkala, the president of Academic Nintendo Club (ANC) in Turku University. ANC is a hobby group offering free-time retrogaming activities around old and new games ranging from the 1980s consoles to retro esports. These kinds of clubs, academic and non-academic, are common in Finland and differ in format as well as specialization from specific consoles and computers to genre-based groups. According to Pihkala, representing ANC, “the most distinct feature of Finnish retrogaming is appreciating games equally from all different generations. That’s how we can preserve the history of gaming culture(s) and celebrate the legacy of diversity in it as opposed to chasing the latest trends in the AAA-market.” They also add that retrogaming is a “fluid concept,” but for the Finns the MS-DOS and PC-based gaming activities form its core. Finally, we talked to Markus Autio who is the owner of Sugoi, an arcade hall in Helsinki known for its collection of (primarily Japanese) arcade games from the 1990s to this day. In Autio’s view, “Finnish retrogaming is about nostalgia. People love to revisit games that they knew as kids or teens. And it doesn't even have to be a game they remember playing, but maybe something they just saw in some darkened corner of a mall, having left a lasting impression. Or maybe they read about it in a videogame magazine at the time. The key of this retrogaming is to be familiar with the game in one way or another, which sparks nostalgic interest.” Along these lines, nostalgic arcades are currently making a small comeback to the Finnish cityscapes and provide a space for (often social) retro game sessions for more and less active hobbyists. In addition to the above three domains of retrogaming, one more unique feature can be noted as an endnote. From the 1980s to late 1990s, a wave of DIY-games for the PCs (usually MS-DOS) emerged in Finland, often representing satiric and parodic themes with dark humor. These games were primarily nonprofit, and the designers were standardly left anonymous. Their shareware distribution occurred via traded disks and early bulletin board systems, ultimately forming a small piece of Finnish gaming history that retro gamers summon by playing them in live-streams and creating online videos of them. Many of these games include content that is intentionally provocative or hostile; however, instead of refusing to acknowledge their existence, informed retrogaming activities can help understanding their historical context of emergence and to shed further light on their influences on later cultural developments. Ville Malinen is a PhD Candidate at University of Jyväskylä. His research is focused on the historical development of F1 racing and motor esports. He has written several journalistic articles about gaming in Finnish magazines and newspapers, and is interested in the philosophical issues arising from simulation games. Veli-Matti Karhulahti is Senior Researcher at University of Jyväskylä and holds Adjunct Professorship in University of Turku. His research tackles gaming, play, and technology use in many ways, and he is the author of the book Esport Play: Anticipation, Attachment, and Addiction in Psycholudic Development (Bloomsbury, 202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유베스퀼라대학, 연구자) 벨리 마띠 카훌라티 유베스퀼라 대학교의 시니어 연구자이자 투르투 대학(University of Turku)에서 겸임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게임과 플레이, 그리고 테크놀로지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으며 최근 〈Esports Play: Anticipation, Attachment, and Addiction in Psycholudic Development(Bloomsbury, 2020〉 를 저술했다.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미연시는 시뮬레이션의 꿈을 꾸는가
그리고, 1992년 <동급생>(同級生, elf, 1992)이 출시되었다. < Back 27 GG Vol. 25.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oungWook Oh Game enthusiast, game programmer, and historian of games. A growing interest in Korean games turned into a hobby of collecting and organizing materials, and has been steadily gathering and archiving them since 2006. Co-authored books including The History of Korean Games and Mario, Born in '81, and contributed as a developer to games such as Dungeon & Fighter, Acropolis, Pony Town, and Timeline Dungeon.
- 확률형 부분유료결제 앞에서의 EA가 마주한 고민
포인트를 구매할 수 없으면, 얼티메이트 팀을 구성할 수 없으므로 한국 시장에 은 핵심 요소가 사실상 탈거된 상태로 시장에 출시되었다. EA는 얼티밋 에디션과 FC 포인트 판매 제외의 이유에 관해 "국내법 변경으로 인해 한국에서 FC 포인트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다. 한국 유저들이 7월 17일부터 선수팩, 드래프트, 소모품, 진화에 사용하는 FC 포인트를 구매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소개했다. 국가의 규제와 게임사의 사업 전략이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다. < Back 확률형 부분유료결제 앞에서의 EA가 마주한 고민 26 GG Vol. 25. 10. 10. 2025년 7월, 일렉트로닉 아츠(이하 EA)는 (옛 FIFA, 이하 FC 26) 의 국내 판매 구조에서 확률형 과금 요소를 사실상 제외하는 결정을 내렸다. 한국 이용자는 선수 카드 뽑기 등 확률형 아이템 구매에 쓰이는 FC 포인트를 결제할 수 없다. 이뿐 아니라 마이크로트랜잭션(소액결제) 혜택이 포함된 얼티밋 에디션도 구매할 수 없게 막혔다. 아예 과금 축이 제거된 채 게임이 나오게 된 것이다. 옛 FIFA, 현 FC 시리즈는 명실상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포츠게임 프랜차이즈다. 수십 년간 축구 팬들에게 사랑받아온 게임 시리즈가 한국에서는 이례적인 형태로 출시되는 것이다. 단적으로 게임의 얼티밋 에디션 구매가 막힌 것은 전쟁 중인 러시아와 한국뿐이다. 벨기에와 한국에서만 FC 포인트를 추가로 결제할 수 없다. 이 FC 포인트로 유료재화화로 선수 카드를 뽑는 팩을 구매할 때 주로 이용된다. 현재 'FC' 시리즈의 엔드 콘텐츠는 나만의 '궁극의 팀'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선수 카드를 뽑아 스쿼드를 맞추고, 다른 플레이어와의 대전에서 승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포인트를 구매할 수 없으면, 얼티메이트 팀을 구성할 수 없으므로 한국 시장에 은 핵심 요소가 사실상 탈거된 상태로 시장에 출시되었다. EA는 얼티밋 에디션과 FC 포인트 판매 제외의 이유에 관해 "국내법 변경으로 인해 한국에서 FC 포인트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다. 한국 유저들이 7월 17일부터 선수팩, 드래프트, 소모품, 진화에 사용하는 FC 포인트를 구매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1] 라고 소개했다. 국가의 규제와 게임사의 사업 전략이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다. [사진 1] 한국 출시 버전에서 얼티밋 버전은 제외된 모습 (스팀 상점 페이지). 한국 출시판에서는 FC 포인트의 판매도 제외되었다. 이 글에 주의를 기울일 독자라면 "국내법 변경"의 개요를 익히 알겠지만, 맥락을 되짚기 위해서 그 맥락을 짧게 톺아보자. 2024년 3월 개정된 게임산업법은 아이템 종류와 등급, 획득 확률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규정했다. 이뿐 아니라 2025년 1월 추가 개정을 통해 표시의무 위반 시 손해배상 특례와 입증책임 전환이 도입되었다. 이 조항은 6개월의 기간을 거쳐 지난 8월 1일 최종적으로 시행 중이다. 새로운 게임산업법은 공개된 수치와 실제 게임 로그 간 차이가 확인될 경우 징벌적 배상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게임사가 확률 정보를 누락하거나 거짓으로 표시해서 피해가 생기면 최대 3배의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다. 게임사는 이 과정에 고의나 과실이 없음을 스스로 입증하는 자료까지 만들어 소명해야 한다. EA가 아니라 그 어떤 게임사라 하더라도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의 '첫 사례'에 자기 이름을 남기고 싶지 않았을 터. EA는 패키지게임이 유행하던 1998년, 한국에 EA코리아의 형태로 일찌감치 진출을 했다. <에이펙스 레전드>는 물론 의 서비스를 EA가 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책임 또한 EA코리아가 지게 되는 구조다. 한국에 지사가 없거나, 미래의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서 대리인 정도만 두고 있는 기업들과는 상황이 다른 셈이다. [사진 2] 테헤란로에 위치한 EA 코리아 사무실. 일찍이 한국에 진출해 경영활동을 하고 있어 이들은 국내 법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다. (출처: EA 코리아) 더구나 EA가 한국에서만 각 카드 패키지에서 선수의 등장 확률을 공개해버린다면, 북미와 유럽의 플레이어들은 한국에서 발표된 장표를 참고해서 각 선수의 등장 확률을 모두 알아볼 수 있게 될 것이다. <페르소나 3 리로드>나 <앨런 웨이크 2> 사례처럼 과거 게임물관리위원회의 등급분류 결과 발표가 글로벌 게임 시장에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되었던 것과 유사하다. (지금은 이러한 문제를 막기 위해서 '블라인드 심의' 제도가 따로 운영 중이다.) 의 얼티메이트 팀은 글로벌 동일 서비스로 운영되기 때문에, EA는 이 확률을 일종의 '영업 기밀'로 보아 한국에서 극단적인 수를 내린 것이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1%라고 표기가 되었는데, 실제로 을 많이 플레이하는 유럽 권역에서 그 확률을 검증하려고 시도할 경우에도 EA에게는 관리 문제가 생길 것이다. 이러한 위험 사항등을 고려해 결론적으로 EA는 확률형 BM을 에서 사실상 제거했다. 흥미로운 지점은 넥슨이 서비스하는 은 이미 한국 법에 따라서 아이템과 카드 등장 확률을 공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단일 서비스 형태로 운영되는 에서는 해당 리스크가 치명적이지만, 한국에서만 주로 서비스되는 에서는 규제 환경에 따른 준비와 실행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팬들은 에 대해서 곧잘 '유통기한 1년의 게임'이라고 부르곤 한다. 1년마다 'FIFA', 'FC' 신작이 발매되기 때문에 얼티메이트 팀을 즐기기 위해서 새 풀 프라이스 게임을 구매해야 하는 상황을 자조적으로 비유한 것이다. 새 게임이 나오면 지난 편에서의 얼티메이트 팀 스쿼드 가치는 (유저들이 떠나간) 과거작에만 머무르게 된다. 차라리 수년 간의 라이브 서비스를 보증하는 F2P 부분유료화 게임 사례가 더 건강하게 느껴질 수준이다. [사진 3] 은 ‘FC 27’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그간의 역사에 따르면 말이다. 물론 은 '유통기한'이 지나도 스팀 등의 플랫폼에서 할인가로 판매된다. 그것을 플레이한다고 해서 배탈이 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추가적인 BM이 빠진 상태로 출시된 이번 작에는 한국어 인터페이스와 자막이 추가됐으며, 전문 해설위원과 캐스터의 해설까지 실려있다. EA코리아 입장에서는 법이 바뀌었지만, 이 1년짜리 게임에 나름의 투자를 감행한 셈이다. '유통기한 1년의 게임'이라고 했지만, 'FC' 과거작은 게이머의 기기에서 계속 소비되고 있다. 를 이 나온 지금 플레이해도 어떤 문제는 없다. 다만 EA는 계속해서 '이제 새 게임이 나왔으니 그것을 사보지 않으련' 하는 광고 팝업이 노출될 뿐이다. 결국 이번 케이스는 세계 최대급 퍼블리셔가 한국에서만 확률형 과금을 접었다는 상징성을 갖는다. 이는 확률 공개를 단순히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공개 수준과 검증 방식, 그리고 법적 책임 설계라는 차원으로 논의를 끌어올렸다. EA의 선택은 확률 공개 규제가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 실제 산업 전략을 바꾸는 강력한 제도적 압력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며, 토론은 이제 “확률 공개가 부분유료화 문제의 핵심인가, 혹은 더 큰 구조적 논의의 한 축인가”라는 질문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EA는 미국, 중국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단일 마켓인 한국 시장에서 게임의 핵심 BM을 제거시켰다. 세계 최대 스포츠 게임 프랜차이즈가 한국 시장에만 ‘반쪽짜리’ 형태로 들어오게 된 것은, 한국의 확률형 아이템 규제의 효력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효력'으로 소비자들은 진정 그들의 권익을 보호받게 되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은 보다 발전된 엔진과 메카닉을 자랑하고 있고, 때문에 EA의 시리즈를 넥슨의 온라인게임보다 선호하는 계층도 (소수에 이르지만) 분명 존재한다. 이번 조치로 법적 리스크는 사라졌지만, 국내 게이머는 글로벌 서비스와 유리된 경험을 유료로 경험해야만 하는 환경이 형성됐다. 지금의 확률 공개 제도의 핵심 목적은 소비자 보호였다. 하지만 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확률 공개냐 아니냐'의 이분법으로는 또렷이 설명할 수 없는 음영지대가 발생했음을 볼 수 있다. 새로운 규제는 변화를 만들어냈다. 에서도 0.0000000067465506%의 확률이 공개되었지만 ([AG][NO.7 포함] 멀티 클래스 최종 OVR 116+ 선수팩 (3~7강)의 호날두 7강 카드) 정작 소비자들은 투명해졌다고 느낄 수 있을까?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규제는 소비자 보호와 건전한 시장 질서를 위한 전가의 보도처럼 여겨졌지만, 정작 확률형 아이템을 제공하는 게임의 구조적 문제 (파워 인플레이션과 지속적인 과금 유도, 소비자가 느끼는 심리적 매몰비용, 서비스 종료 등으로 인한 지속 가능성 여부 불투명)는 온전하지 않으냐는 것이다. 원고를 탈고하는 지금, EA는 스스로 상장폐지를 결정했다. 사우디 국부 펀드는 사모펀드와 함께 약 77조 2,600억 원(550억 달러)의 현금을 들여 EA를 인수하고, 회사를 비상장 회사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EA는 나스닥 상장사가 가지는 사회적·법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EA의 비상장화가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지면 관계상 다음 시간에 풀어보도록 하겠다. [사진 4] 넥슨 의 한 선수팩 확률표 (출처: 넥슨) [1] [게임메카] 확률 공개 때문? 'EA FC 26' 한국에 유료 재화 안 판다 / 2025.07.17., 김미희 기자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김재석 8년 동안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서브컬처 스타트업에서 대외협력을 맡고 있다.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 인벤토리 시스템은 어떻게 효율을 재미로 연결시켰는가?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라면 누구나 꽉찬 인벤토리에 스트레스를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2023년 대흥행을 이루었던 <발더스게이트3>에서는 아이템의 무게가 발목을 붙잡는다. 일반적으로 처음 게임을 시작한 플레이어는 어떤 아이템이 좋은 아이템이고, 어떤 아이템이 ‘잡템’인지 알 수 없어서 보부상처럼 모든 아이템을 들고 다닌다. 그러다 걸음걸이가 무거워지면 아이템 정리를 해야 하는데, 이때 무엇을 들고 다닐 것이고 무엇을 버리는 것이 효율적인지에 관한 고민이 시작된다. 그래서 유튜브나 커뮤니티에는 ‘발더스게이트 인벤토리 관리 꿀팁’ 글들이 무수히 올라와 있다. < Back 인벤토리 시스템은 어떻게 효율을 재미로 연결시켰는가? 18 GG Vol. 24. 6. 10.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라면 누구나 꽉찬 인벤토리에 스트레스를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2023년 대흥행을 이루었던 <발더스게이트3>에서는 아이템의 무게가 발목을 붙잡는다. 일반적으로 처음 게임을 시작한 플레이어는 어떤 아이템이 좋은 아이템이고, 어떤 아이템이 ‘잡템’인지 알 수 없어서 보부상처럼 모든 아이템을 들고 다닌다. 그러다 걸음걸이가 무거워지면 아이템 정리를 해야 하는데, 이때 무엇을 들고 다닐 것이고 무엇을 버리는 것이 효율적인지에 관한 고민이 시작된다. 그래서 유튜브나 커뮤니티에는 ‘발더스게이트 인벤토리 관리 꿀팁’ 글들이 무수히 올라와 있다. 한편, <마비노기>나 <디아블로2>에서는 아이템의 부피가 플레이어의 고민을 유발한다. 성능이 좋지만 부피가 큰 아이템이 떨어졌을 때, 플레이어는 가치가 낮은 아이템을 순차적으로 버리면서 인벤토리의 공간을 마련하고자 애쓴다. 그리고 버린 아이템보다 얻은 아이템의 가치가 월등히 높다는 확신이 들면, 득템의 기쁨과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 각각 무게와 부피로 제한을 두는 <발더스게이트 3>와 <디아블로2>의 인벤토리 시스템 그런데 사실 정말로 효율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게 하려면, 인벤토리에 제한을 두지 않으면 된다. 게임사가 인벤토리를 디자인할 때, 무게나 개수, 부피의 제한을 두지 않으면 게이머들은 더 빠르게 사냥을 할 수 있다. 게다가 아이템을 인벤토리에 넣는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 획득하자마자 강해지는 방식을 사용하면 더 직관적이고 더 빠른 플레이가 가능하다. 실제로 이러한 방식을 사용한 게임들도 다수 존재한다. 가령, <하데스>와 같은 로그라이크의 경우에는 인벤토리 창이 따로 없고, 자신이 획득한 기능을 확인할 수 있는 창만 제공한다. 그렇다면 게임사는 왜 인벤토리에 제한을 두어서 게이머들을 괴롭히는 것일까? 인벤토리 시스템은 게이머들에게 스트레스만 안겨주는 개념인가? 효율성을 고민하며 아이템을 먹게 만드는 비효율적 시스템은 누굴 위한 것인가? 이러한 지점에서 인벤토리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재미가 무엇인지 보다 근본적인 차원의 질문을 던져보자. 인벤토리의 한계는 리얼리티의 재현인가? 인벤토리 시스템은 디지털 게임에서 유구한 역사를 가진 전통이다. 초창기 게임 역사에서 자주 이름을 <던전앤드레곤> 시리즈와 <로그>, <울티마> 시리즈는 텍스트로 플레이어가 획득한 아이템을 보여주며 해당 아이템을 활용하여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시스템을 만들었고, 그중에서도 <던전 앤 드래곤> 시리즈가 확립한 초창기 CRPG의 인벤토리 시스템은 이후 게임 계보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인벤토리 시스템은 플레이어가 획득한 아이템을 텍스트로 읽으며 상상해야 했기에 직관적이지 못했다. 이에 <던전 마스터>는 선형적인 텍스트 인벤토리시스템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고, 결국 오늘날까지도 활용되는 그리드 인벤토리나 퀵바 등의 형식을 도입할 수 있었다. 아이템을 넣을 수 있는 칸을 제공하고, 거기에 아이템의 아이콘을 넣거나 빼는 그리드 인벤토리 시스템은 캐릭터와 세계의 분리감을 줄이고, 게임의 몰입도를 높였다는 평을 받았다. 그리고 이후의 게임 그래픽 디자이너들도 그리드 인벤토리 시스템이 만들어낸 토대 위에서 직관성과 상호작용성, 편의성 등을 고려하며 인벤토리 시스템을 발전시켰다. * 텍스트로 구현되는 <로그>의 인벤토리 시스템과 <던전 마스터>의 그리드 인벤토리 시스템 이러한 맥락에서 인벤토리 시스템의 발달 과정을 리얼리티의 재현이라는 기준으로 바라보는 관점도 존재한다. 그리드 인벤토리 시스템이 게임 세계와 플레이어의 간극을 좁혔던 것처럼, 기술 발달로 인해 더욱 현실적으로 게임을 만들 수 있었고 앞으로도 더욱 현실성 높은 게임 구현이 가능하다는 시각이다. 물론, 이러한 예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게임임에도 총기의 기능 고장을 구현해서 군필자들에게 PTSD를 불러오는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의 경우에는 인벤토리 시스템도 최대한 현실적으로 구현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이제는 기술이 발달했음에도 여전히 많은 게임들은 게임의 재미를 위해서 인벤토리의 물리적, 현실적 한계들을 무시한다.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의 경우에도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게임에 도입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성이 게임의 몰입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성을 기준으로 인벤토리 시스템의 발달 과정을 선형적으로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다. 중요한 것은 게임의 재미이다. 획득하는 즐거움 그렇다면 게임의 즐거움이라는 차원에서 인벤토리 시스템을 살펴보자. 기본적으로 게임에서 아이템을 획득할 때, 우리는 어떤 재미를 느끼는가? 내 캐릭터가 강해졌다는 느낌, 앞으로 해당 아이템을 활용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 게임 내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는 자유. 이러한 재미들을 직접적으로 느끼기 위해서는 단순히 게임 내 시스템에서 대미지의 수치만 올라가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가시적으로 내가 얻은 아이템의 가치를 보여줄 때, 이러한 재미는 배가된다. <던전 마스터>가 <로그>의 텍스트 아이템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이유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게임은 플레이어가 아이템을 보고 그 가치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아이템을 다자인하고 기능을 가시화해왔다. 그러나 아이템 획득의 기쁨은 늘 일시적이다. 캐릭터 성장에 따른 상황이 함께 주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일직선으로 게임이 진행되는 아케이드 게임이나 로그 라이크의 경우에는 이런 재미가 반감될 가능성이 비교적 적다. <메탈슬러그> 시리즈를 할 때, 핸드건을 쓰다가 헤비머신건을 먹거나, 헤비머신건을 쓰다가 로켓 런처를 먹으면 성장의 기쁨이 느껴지고, 죽거나 탄환이 떨어지면 다시 아이템 획득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RPG의 경우에는 자신이 강해진 만큼 대적자도 강해지거나, 해당 아이템을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져야 아이템 획득이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이 무한히 확장될 수 없기에, 아이템 획득의 재미는 서서히 줄어들게 된다. 게임을 만드는 입장에서도 이러한 점이 고민이었을 것이다. 특히, 초창기 CRPG의 경우에는 게임에 넣을 수 있는 데이터 양에 제한이 있었다. 이에 현실성보다는 현실적 이유로 게임 세상을 넓게 구축할 수 없었고, ‘득템의 기쁨’을 유지하기 위한 여러 가지 장치들을 마련했다. 가령, <던전 앤 드래곤> 시리즈는 아이템의 특성을 다양하게 만들고 장착할 수 있는 아이템의 한계를 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한계는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어떤 아이템을 어떻게 활용할 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하고, 효율을 좇게 만들었다. 최적화하는 즐거움 일상의 노동 과정에서 늘 효율을 좇아야 하는 오늘날, 게이머는 게임에서까지 효율을 추구해야 하는가? 효율을 좇는 것이 어떻게 재미를 줄 수 있단 말인가? 이때 흥미로운 참고점이 있다. 바로 레고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릴 적에 레고를 조립하며 즐거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완성품을 팔지 않고 조립 전 모습을 판매하는 레고라는 상품은 상당히 비효율적인 상품이다. 물론, 레고의 조립이 꼭 완성품을 지향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그 과정에서 창의력이 발휘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10,000 피스 퍼즐은 어떠한가? 어떠한 창의력도 발동될 수 없게끔 모든 피스의 위치에 정답이 존재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퍼즐을 맞추며 재미를 느끼는 것일까? 극도로 비효율적인 상품이 팔리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게이머들이 인벤토리 시스템에서 효율을 추구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재미와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이 존재한다. 자신의 캐릭터를 효율적으로 구축하는 재미, 즉 최적화하는 재미이다. 게이머들은 현재 많은 게임들이 활용하고 있는 인벤토리 시스템에서 아이템을 어떻게 정리하고 활용할지에 관한 재미를 발굴했다. 앞서 언급했던 아이템 선택의 사례, 버린 아이템보다 획득한 아이템의 가치가 높다는 확신에서 오는 즐거움 역시 이러한 재미의 일환이다. 이 과정은 마치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최적화된 ‘결과’가 아닌 ‘과정’ 자체에서 즐거움을 선사한다. 덱빌딩 게임은 이런 재미를 극대화한 장르이다.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는 시간보다 덱을 구성하고 최적화시키는 시간이 길지만, 플레이어들은 고민 끝에 자신이 의도한 결괏값이 나왔을 때 성취감을 느낀다. 자동사냥 게임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플레이 자체의 시간은 거의 없지만, 게임에서 얻은 아이템들을 정리하고 활용하게 만드는 과정 자체가 게임의 즐거움이 된다. 자동사냥 게임이 무슨 게임이냐고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직장에서 자동사냥을 돌려놓고 퇴근길에 체크하는 과정에서 소유하는 즐거움과 최적화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효율을 좇게 만드는 비효율적 게임 시스템은 게이머에게 불편함만을 주지 않는다. 게이머는 최적화하는 과정에서 능동적으로 재미를 찾고, 유희하고 있다. 참고문헌 CRPG Book Project. URL: https://crpgbook.wordpress.com/ Bateman, C. & Zagal, J. P. (2017). Game Design Lineages: Minecraft’s Inventory. MuBmann, M., Truman, S., Mammen, S. (2021). Game-Ready Inventory Systems for Virtual Reality. Tags: 인벤토리, 롤플레잉, 아이템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인터뷰] AI로 새로운 게임성을 만든다는 것: <마법소녀 카와이 러블리 즈큥도큥 바큥부큥 루루핑>의 이가빈 PD,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의 한규선 PD
크래프톤의 스튜디오 중 하나인 렐루게임즈는 딥러닝 기술을 게임과 접목시켜 새로운 경험들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여러 시도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음성 역할 시뮬레이터와 프리폼 채팅 어드벤처라는 독특한 게임 장르를 만들어냈다. 이번 호에서는 평단과 게임사의 관점뿐 아니라, 유저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는 <마법소녀 카와이 러블리 즈큥도큥 바큥부큥 루루핑>(이하<즈큥도큥>)의 이가빈 PD와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이하<스모킹건>)의 한규선 PD를 만나, AI 기술의 가능성과 현시점에서의 한계를 짚어보고, 새로운 게임성이 만들어진 과정에 대해 들어보았다. < Back 19 GG Vol. 24.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won Seo Studies culture in pursuit of a more interesting life. Curious about a wide range of cultural domains, including games, religion, and film.
- [인터뷰] 디지털게임 다양성/접근성 가이드북 제작, 스마일게이트 D&I실 이경진 실장
"이런 사람도 게이머고 저런 사람도 게이머고, 아직 게임을 하지 않은 사람들도 게이머가 될 수 있다라고 확장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우리가 대중 문화로서의 게임의 위상을 스스로 높이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에버랜드에서도 ‘게임문화축제’라고 해서 게임 IP를 가지고 행사를 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게임이 굉장히 대중적인 매체가 되어서 놀이공원에 아이들하고 함께 가서 즐길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된 거잖아요. 그렇다면 게이머라고 했을 때도 게이머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는 게 앞으로 수익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마인드셋이라고 생각해요." < Back 20 GG Vol. 24.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isu Kim Studies a range of fields—culture and knowledge, space, and the academic field. Also interested in the history of games and the lives of gamers.
- 축소 지향 헌터들 연대기:<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어떻게 손 안에 축소되었다가 혼종적으로 변모하려고 하는가
작년에 20주년을 맞이하게 된 캡콤 제작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2000년대 초부터 대두되고 있던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이라는 새로운 형식에 대한 일본 게임계의 대답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게임이 처음 등장했던 2004년 일본 게임업계는 2002년 성공적으로 MMORPG를 콘솔 게임에 이식한 <파이널 판타지 XI>를 제외하면 마땅한 청사진이 없었다. < Back 축소 지향 헌터들 연대기:<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어떻게 손 안에 축소되었다가 혼종적으로 변모하려고 하는가 25 GG Vol. 25. 8. 10. 1. 단기지향적인 헌터 파티: 로컬 멀티플레이 액션 게임으로서 정체성 작년에 20주년을 맞이하게 된 캡콤 제작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2000년대 초부터 대두되고 있던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이라는 새로운 형식에 대한 일본 게임계의 대답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게임이 처음 등장했던 2004년 일본 게임업계는 2002년 성공적으로 MMORPG를 콘솔 게임에 이식한 <파이널 판타지 XI>를 제외하면 마땅한 청사진이 없었다. 가장 큰 문제로는 당시 대세였던 콘솔인 플레이스테이션2 (이하 PS2)의 한계가 있었다. 이론적으로 PS2는 인터넷 대응이 되었지만, 인터넷 보급 문제와 더불어 <파이널 판타지 XI>나 <몬스터 헌터> 시리즈를 제외한 몇몇 게임을 제외하면 사실상 없는 기능이나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인기를 끈 <파이널 판타지 XI>조차도 외장 하드를 달아야 플레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장벽이 좀 있었다. 플레이스테이션이 본격적으로 인터넷 대응이 된 건 사실상 PS3 시절부터다. 콘솔 위주로 흘러갔던 일본 게임업계 입장에서는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 만들기에 상당한 제약이 걸린 셈이다. 그래서인지 2000년대 초 일본 게임계에는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을 오프라인으로 옮겨놓고 상상하게 하는 부류의 유사 온라인 게임이 더러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파이널 판타지 XI>와 엇비슷한 시기에 인기를 끌었던 프랜차이즈 <닷핵> 시리즈가 있다. 이 프랜차이즈는 실제 알맹이는 전형적인 일본 싱글 플레이 RPG 게임이었지만, 일본 게임 유저들에게 온라인 (RPG) 게임이 무엇인지 알려주려고 기획되었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당시 일본 게임업계에서 온라인 멀티플레이라는 개념이 일종의 괴리감이 있었다는 현상인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1999년부터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을 준비해 왔던 캡콤으로서도 MMORPG나 멀티플레이 게임을 내놓는데 조심스러웠다. 캡콤 멀티플레이 게임 프로젝트의 초기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그 점에서 온라인 멀티플레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아예 헌팅 액션 게임이라 불리는 장르로) 토착화되고 발전해 갔는지를 보여주는 게임이다. 기본적으로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삼인칭 액션 게임 기반으로 하되, 규모를 늘린 중후기 일부 토벌 퀘스트를 제외하면 4인 위주의 소규모 파티 경향이 강했던 게임이었다. 정확히는 MMORPG의 보스몹 레이드 개념을 싱글 플레이 기반 액션 어드벤처 게임의 보스전과 합치고 재해석한 후, 플레이어 혼자 또는 소수의 헌터 동료와 우직하게 보스 몬스터를 파고들고 대응해 가며 진행하는 게임이었다. 이렇기에 초창기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그 점에서 시작부터 제법 인기를 얻었지만, 코어한 경향이 강했다. 게임 디자인 자체의 불친절함과 더불어 상술한 온라인 플레이의 한계로 실상 솔로 플레이를 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초기 <몬스터 헌터>는 온라인 플레이를 하기 위해 KDDI 멀티 매칭 BB라는 유료 온라인 서비스에 가입해야 했다. 시리즈가 지향했던 소규모 멀티플레이 환경은 어울리지 않는 거치형 콘솔이라는 옷을 입고 있었던 셈이다. 여기다 명확한 레벨링 시스템 없이 (간단히 말해 헌터 랭킹이 캐릭터 능력치랑 바로 연결되지 않는다) 장비와 전투 숙련도로 플레이어의 실력을 가늠하는 게임 디자인과 더불어 ‘물욕 센서’로 지칭되곤 했던, 2(DOS)부터 도입된 지난한 채집 요소들도 이런 문턱에 한몫했다. 그렇기에 2부터 몬스터 헌터는 반복되는 수렵과 채집으로 장비를 만들고 개별 몬스터 파훼법을 감각으로 익혀야 다음 진행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게임이 되었다. 이를 종합해서 보면 극 초기작들은 입문자에게는 상당한 부담이었다는 건 유추할 수 있다. 1편 프로젝트가 끝날 무렵, 캡콤은 1편을 PSP로 이식하기로 결정한다. 플레이스테이션 포터블 (이하 PSP)이 게임보이 어드밴스드나 원더스완으로 대표되던 휴대용 게임기에 완전히 새로운 판도를 열였기 때문이다. PSP는 비슷한 시기에 발매되었던 닌텐도 DS보다도 전체적인 성능도 훨씬 나았던데다 네트워크 기술이나 지원이 좋았던 편이었기에 <몬스터 헌터> 시리즈로서는 충분히 승산있는 시장이었다. 다만 <몬스터 헌터 포터블> 당시에도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온전한 온라인 게임이라 보긴 힘들었다. <포터블> 시절에도 무선랜 환경은 아직 초창기 단계였기에 지금과 같은 인터넷 환경을 지원하기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이런저런 고려 끝에 포터블 시리즈는 애드 혹이라는 단말기 간 직접 통신을 이용한 소규모 로컬 멀티플레이 시스템만을 공식 지원했고, 온라인 플레이를 하려면 우회적인 편법을 동원해야 했다. 그렇기에 <몬스터 헌터> 제작진이 포터블 시리즈를 발매하면서 처음 노렸던 것은 다소 축소된 PS2 게임을 손에 들고 사람들과 만나 기기들끼리 로컬 멀티플레이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실상 TRPG나 보드게임을 즐기는 방식하고 크게 떨어져 있지 않은 셈이다. 이렇듯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당시 일본 콘솔 온라인 환경의 한계 속에서 처음 등장한 게임이기에, MMORPG와 동떨어진 방향으로 발전해 왔으며 온라인 게임을 추구했음에도, 내실은 로컬 멀티플레이 액션 게임에 가깝게 정립되었다. 심지어 <월드> 이전까지는 싱글 플레이 퀘스트와 멀티플레이 퀘스트가 분리되어 있을 정도로 제작 단계에서부터 싱글 플레이 게임 관점에서 멀티플레이와 온라인을 접근했다는 흔적들을 찾을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가장 크게 주목할 부분이 있다. 바로 이 시리즈가 멀티플레이 유저 간 상호작용에 상당히 제약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몬스터 헌터> 시리즈에는 MMORPG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레이어 간 물물 교환이라는 개념이 없다.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모든 재화나 장비는 플레이어 본인이 직접 채집하거나, 제작해야 하며 플레이어 간에 교환하는 방법은 없다. 전반적으로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멀티플레이 유저들을 NPC 파티원을 대신하는 존재에 가깝게 정립하고 있으며 (물론 여전히 한계가 있는 NPC AI 동료에 비하면 강력하고 유용한 존재이긴 하다), 복잡한 유저 간 관계 구축에는 큰 관심이 없는 게임이다. 어찌 보면 상당히 폐쇄적인 관계라 할 수 있는데 실제로도 <월드> 이전까지는 다른 유저의 퀘스트 난입할 수 없었다. 다른 유저를 만날 수 있는 장소는 필드 이외에는 퀘스트를 수주받고 정비하는 마을 내 한정된 공간 정도였고, 게임 내 길드 설립이나, 대항전 같은 시스템은 당연히 없었다. 모든 파티는 퀘스트를 위해 일시적으로 성립하고 종료 후 해체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나마 <월드>부터 이런 개념들이 조금씩 확장되는 추세다. 전반적으로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플레이하다가 다른 유저를 만난다는 개념 자체가 오랫동안 없었고, 혼자서 즐기거나 (오프라인이든 인터넷 커뮤니티든) 사전에 알게 된 사람들끼리 네트워크로 모여서 레이드를 뛴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렇기에 <몬스터 헌터> 내에서 처음 만난 헌터랑 교류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길드 카드를 서로 확인하고 등록한다는, 지극히 일본 명함 문화를 떠올리게 하는 시스템을 쓰고 있다.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그 점에서 어떤 끊임없이 돌아가는 유저 생태계를 구현한다기보다는, 혼자서 즐기는 싱글 플레이 게임에 멀티플레이 요소를 도입해 일시적으로 모였다 퀘스트 클리어 후 해체하고 초면인 사람은 길드 카드로 교환해 교류를 이어간다는, 단기지향적인 부족/길드적인 감각으로 확장해 온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여러모로 기존 MMORPG나 MMOFPS하고는 완전히 다른 폐쇄적인 경향이 짙었지만, <몬스터 헌터>는 포터블 시리즈를 통해 <퀘이크>로 대표되던 랜파티 게임의 진화를 상징하는 게임 중 하나가 되었다. 다시 말해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정통적인 삼인칭 액션 게임을 휴대용에 맞게 ‘축소’한 후 네트워크 멀티플레이 영역을 기술적 발전과 맞춰 확장해 성공한, 꽤 독특한 방식으로 성공가도를 달려왔던 게임이다. 상술한 단기지향적인 부족/길드적 감각과 연계해 보면 게임 자체의 엔드 콘텐츠 지향적인 요소를 제외한다면 부담 없이 서로 연결하고 끊어질 수 있는 동료 관계를 지향해온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몬스터 헌터> 시리즈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멀티플레이 게임들을 기점으로 랜파티 게임은 단순히 한 장소에 고정된 컴퓨터/콘솔과 인터넷이 아닌, 휴대용 게임기 간의 무선 통신, (나아가 무선랜)을 통해 언제든지 모일 수 있게 변했다. 어찌 보면 2000년대 중후반 이후 흔해진 집 바깥에서 게임기나 스마트폰을 맞대고 대전하거나 파티 플레이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대중적으로 끌어낸 게임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다. 2. 축소 지향에서, 확장 지향으로: <4>와 <월드>의 급변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2편인 DOS 시리즈가 종료될 무렵, 두 가지 방향으로 나눠진다. 우선 스기우라 카즈노리를 주축으로 DOS 디자인을 들고 PC 쪽으로 분가해 본격적인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이 되려고 도전한 <프론티어> 시리즈가 있다. <프론티어>도 설왕설래가 있긴 해도 장기 서비스했을 정도로 성공한 편이지만, 게임계는 본가 쪽에 훨씬 더 주목했다. 왜냐하면 본가 쪽은 상술했던 축소 지향을 심화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나갔기 때문이다. 그래도 <트라이>까지는 선 거치형 콘솔, 후 휴대용 콘솔이라는 원칙을 지켰지만 <몬스터 헌터 4>부터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아예 휴대용 콘솔인 3DS로 이적해 자신을 훨씬 더 축소하기에 이른다. 콘솔 세대가 교체될 무렵, 거치형 콘솔을 버린다는 과감한 선택을 한 셈인데 오히려 이 시기부터 휴대용으로는 최초로 온라인 환경을 공식적으로 대응하는 등 멀티플레이 환경 개선에 주력하는 등 손안에서 즐길 수 있는 소규모 멀티플레이 액션 게임이라는 장점을 극대화하려고 했다. 다만 좋은 변화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몬스터 헌터 4>부터 게임 그래픽이나 기타 요소는 사실상 정체되게 된다. 물론 그대로 사용하지만은 않고, 새 게임이 나올 때마다 새 몬스터와 배경이 추가되고 큼직한 변화가 있긴 했지만, 사실상 이 시절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PS2~Wii 시절 게임 디자인이나 에셋을 대다수 재활용하면서 휴대용 게임기의 성능에 맞춰가는 방식으로 수명을 연장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인기의 큰 원동력인 휴대용 멀티플레이 액션 게임이라는 개념은 잘 지켜냈으니, 대다수의 유저들은 별말 없이 따라왔고 신규 유입도 수월히 이뤄졌다. 하지만 반대로 이걸 ‘우려먹기’나 한계에 갇혔다고 여기는 불만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몬스터 헌터 4>가 이적한 닌텐도 콘솔들은 성능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부류였기에 <몬스터 헌터> 시리즈가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고 있다는 비판 의견도 강해져 갔다. 3DS 후기/말기에 발매된 <몬스터 헌터 크로스> 시리즈는 그 점에서 ‘축소 지향의 헌터’ 시절이 끝났음을 선언하는 시기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크로스>가 발매될 당시 혜성같이 등장한 스마트폰 시장이 점점 몸집을 키워가면서 휴대용 게임기라는 개념 자체가 다시 격변을 겪고 있었다는 점이다. 휴대용 게임기를 샀던 구매층은 대다수 스마트폰 쪽으로 이동했고, 이제 휴대용 게임기는 스마트폰과 차별화를 해야 했다. 닌텐도도 이를 염두에 둬 스마트폰 도입 초창기 발매된 3DS에서 3D 기능을 내세워 차별화를 시도했지만, 콘솔 자체의 성공과 반대로 막상 3D 게임은 정착에 실패했다. 당시 Wii U도 실패한 상태라 닌텐도는 차기작으로는 휴대용/거치용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고, 스위치라는 휴대용과 거치용이 결합한 혼종 콘솔을 내세우게 된다. 즉 중간급 성능의 거치형 콘솔과 휴대용 게임기 콘셉트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성능과 단가 간의 줄타기를 시도했다. 세대 교체된 현시점에서 보자면 닌텐도 스위치는 8세대 콘솔 초창기 사양(PS4/Xbox One)으로, FHD 수준을 온전히 구현할 여력을 실현한 첫 닌텐도 콘솔이자 거치형 게임기와 휴대용 게임기 간의 경계를 무너트린 최초의 콘솔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고사양을 지향하는 플레이스테이션이나 엑스박스 간의 괴리는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지만, 그렇기에 저 둘이나 스마트폰이 갈 수 없었던 영역을 갔다는 점에서 스위치는 게임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콘솔이다. 스팀 덱을 비롯한 혼종적인 핸드헬드 게임용 PC들의 물꼬를 터준 게임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캡콤도 그 혼종적인 가능성을 주목했다. 2017년 닌텐도 스위치 발매가 이뤄졌고, 동시에 <더블 크로스> 스위치판 발매와 거치형 콘솔 복귀작 <몬스터 헌터 월드>가 발표되었다. 이는 <몬스터 헌터> 시리즈를 지배해왔던 축소 지향적인 헤게모니가 완전히 막을 내렸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더블 크로스> 스위치판은 단순히 확장판 이상으로, 스위치의 휴대용/거치용 콘솔 간 혼종적 성향을 따라가겠다는 천명이었다. <몬스터 헌터> 시리즈 제작진이 다시 거치형 콘솔로 돌아가기로 한 것은, 지금까지 휴대용 게임기에 맞춰왔던 <몬스터 헌터> 시리즈의 방향성을 재정립하고 확장하기 위해서라 봐야 한다. 그렇게 <월드>는 새로운 <몬스터 헌터> 청사진을 제시하는 게임이 되었다. 우선 <월드>는 기존의 멀티플레이 환경을 그동안 발전한 인터넷 환경에 맞게 확장했다. <월드>는 상시 온라인 연결을 요구할 정도로 온라인 비중이 높아진 첫 <몬스터 헌터> 시리즈였다. 후술하겠지만 이는 토쿠다 유야가 제작한 몬스터 헌터 시리즈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온라인과 멀티플레이 간의 결합을 고려한 듯한 디자인이 대거 도입되었다. 싱글 플레이와 멀티플레이 퀘스트가 하나로 합쳐졌고, 구조신호라는 개념을 통해 다른 플레이어의 개입을 허용하게 조처했다. 플레이어는 퀘스트를 진행하다가 도무지 어렵겠다 싶으면, 베이스캠프에서 구조신호를 쏴 올릴 수 있다. 이 구조신호는 집회소에 있는 퀘스트 게시판에서 등록되어 다른 헌터들이 확인하고 중도 참여할 수 있다. 한번 퀘스트를 시작하면 타인의 접근이 차단되는, 어떤 소규모 부족 내지는 길드적인 멀티플레이를 지향해왔던 <몬스터 헌터> 시리즈가 처음으로 완라인으로 연결된 타인의 개입을 허락했다는 점에서 꽤 중요한 변화라 할 수 있다. <월드>가 한창 진행되던 시절에 더 큰 결단이 하나 일어났다. 2019년 상술했던 <프론티어> 서비스를 정리한 것이다. 의도는 명확했다. <몬스터 헌터>가 그동안 취해왔던 이원화 멀티플레이 노선을 폐기하고 하나의 게임으로 합치겠다는 의도였다. 실제로 <프론티어> 서비스 종료 당시, DOS 기반 디자인이 2010년대에 들어서서 너무 낡았기에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프론티어>의 서비스 종료는 <더블 크로스> 스위치판과 더불어, DOS 시절 디자인과 노선이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며 <몬스터 헌터> 시리즈가 앞으로 어떤 방향성으로 나아갈지 보여주는 실마리기도 했다. 바로 혼종적인 것들을 배합하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창출하려는 방향성이다. 3. 혼종적 세계화의 성공과 위험: <라이즈>와 <와일즈> 시대의 명암 <월드>를 마무리한 뒤,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라이즈>를 발매해 다시 스위치에서 시작했다. <라이즈>는 <월드>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다소 사양이 떨어지는 스위치로 개발되었기에 기기 특성상 <더블 크로스> 시절의 게임 디자인과 비주얼로 회귀한 구석도 있었지만, 이 회귀엔 의미는 달라졌다. 자신을 정체시키는 방식으로 축소해 왔던 <4>랑 달리, <라이즈>는 <월드>에서 시작된 변화와 풀 스케일적인 게임의 지향성을 고려하면서도, 휴대용 게임기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증명했기 때문이다. 이는 상술했던 닌텐도 스위치의 혼종적인 특성에서 기반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PSP에서 3DS로 넘어가면서, <몬스터 헌터>는 콘텐츠 축소 이상으로 구세대 게임이라는 오명을 쓸 각오하면서 자기의 정체성을 지켜갔다. 하지만 상술했듯이 이런 선택은 정체를 의미했고, 거치형 콘솔과 휴대용 콘솔 간에는 명백한 계급 의식 내지는 상하관계가 당시엔 강하게 있었기에, 시대에 뒤처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스위치는 그 계급 의식을 상당히 없애버렸고 그 결과 <라이즈>는 <월드>보다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구세대 게임이라는 오명을 쓸 정도는 아니었다. 실제로도 <라이즈>는 이후 다른 거치형 콘솔과 PC로도 이식되었다. <라이즈>는 그 점에서 좀 더 고전 <몬스터 헌터>로 회귀하면서도 휴대용과 거치형, 온라인과 오프라인, 싱글 플레이와 멀티플레이 간의 혼종을 염두에 두는 2010년대 후반 이후 <몬스터 헌터> 시리즈의 방향성을 선언하는 포부였다. 이후 다시 거치형 콘솔로만 발매된 <와일즈>가 나왔기에 <라이즈>를 잇는 휴대-거치 혼종적 콘솔 지향 <몬스터 헌터> 게임이 다시 나올지는 조금 기다려야 하겠지만, 적어도 <몬스터 헌터> 시리즈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양방향 노선을 짜고 있다는 것은 명확하다. 간단히 말해 캡콤은 <월드>, <라이즈>와 <와일즈>를 통해 축소 지향 시절 다져놓았던 소규모-단기적 멀티플레이 게임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유행을 쫓아가고 싶어 한다. 그 점에서 <월드>와 <라이즈>는 휴대용 콘솔의 혼종적 변화라는 사건을 두고 이뤄진 변증법적인 관계를 형성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월드>와 <와일즈> 같은 거치용 콘솔 전용 <몬스터 헌터>를 통해 공격적으로 외양을 확장하고, 이때 받은 피드백을 <라이즈> 같은 휴대용 게임기 중심 혼종 지향 <몬스터 헌터>로 적용해 내실을 꾀하는 것이다. 다만 올해 발매된 <와일즈>가 겪고 있는 위기는 캡콤이 새로이 내세우고 있는 지향성이 자칫하면 위험해질 수 있는 방향성이라는 걸 보여주고 있다. 이 문제는 역설적으로 온라인의 비중을 늘려 지금까지 단단하게 유지해 왔던 경계를 무너트리고 공간을 확장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다. 사실 <월드>부터 온라인 서비스로서 정체성을 강화하고 필드 세계를 풍부하게 하려는 토쿠다 유야의 노선과 이에 반발하며 싱글 플레이/소규모 멀티플레이 콘텐츠에도 신경 써 주라고 요구한 유저들 간의 대립이 암암리에 이어왔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몇몇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줄타기에 성공했던 <월드>랑 달리 <와일즈>는 괜찮은 싱글 플레이 콘텐츠와 정반대로 부족한 멀티플레이 엔드 콘텐츠 문제와 더불어 온라인 환경을 강제하는 방향성과 디자인상 여러 문제로 많은 반발을 샀고 대량 유저 이탈로까지 이어졌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와일즈>는 세미 오픈 월드 도입과 더불어 파티원 이외 필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른 헌터들을 볼 수 있는 첫 번째 <몬스터 헌터> 게임이라는 것이다. 설정상으로 <와일즈>의 헌터들은 개척자에 가까운지라 베이스캠프가 집회소 역할을 맡게 되었으며, 필드에서도 파티원 이외 헌터들을 계속 볼 수 있게 되었다. 여기다 기존 퀘스트 수주 시스템에다 자율 탐사 도중 필드에 돌아다니는 몬스터를 공격해 퀘스트를 시작하는 시스템을 추가하면서 수렵을 바로 시작할 수 있도록 변했다. 이렇게 필드에서 몬스터를 공격하면 퀘스트를 발동하면 여러 추가 보상이 주어진다는 이점으로 헌터가 세미 오픈 월드 시스템을 거쳐 가도록 유도하고 있다. <와일즈>에서 확실해진 점이 있다면 토쿠다 유야 체제 <몬스터 헌터>는 시리즈가 암암리에 지켜져 왔던 폐쇄적으로 구분된 공간과 헌터 간 관계망, 퀘스트 구조를 실제 수렵 과정 내지는 온라인 게임처럼 ‘열려있게’ 변하는 방식으로 게임의 외연을 확장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상술한 <프론티어> 서비스 종료와 연계해서 보면, <월드>와 <와일즈>는 여러모로 온라인 (세미) 오픈 월드 헌팅 액션 게임으로서 <몬스터 헌터> 시리즈를 유도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단순히 기종뿐만이 아니라 게임 디자인에서도 혼종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세미 오픈월드적인 시도들에 대한 반응은 그리 좋지 못하며 <와일즈>에 이르면 콘텐츠 강요라는 비난까지 나올 정도로 많은 반발을 사고 있다. 이런 반발은 지금까지 정체성과 신규 요소가 잘 조화되지 못했던 부분도 있다.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퀘스트를 하기 전 거점에서 준비한 뒤 출발하고, 퀘스트 종료 후 거점에서 재정비하는 절차가 강한 게임이다. 그렇기에 거점과 몬스터가 있는 필드 사이의 경계를 흐릿하게 하고 자유롭게 다니게 하는 세미 오픈 월드 구성을 취할 거면 완전히 새로운 방법론을 택해야 했다. 즉 헌터가 거점과 필드 간의 전환을 해야 할 강한 동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와일즈>는 다소 안이한 절충주의를 택했다. 그 결과 세계의 밀도는 높아졌는데, 정작 그 높아진 밀도가 핵심 콘텐츠인 헌팅/채집에 포만감보다 피로감을 더한다는 <월드> 당시의 지적이 오히려 심화하여 나타나게 되었다. 자율 탐사 도중 수렵 퀘스트 돌입 시 추가 보상 역시 일부러 헌터가 세미 오픈 월드 형식을 따라가야 할 강력한 동기 유발이 되지는 못했다는 게 발매 후 중론이다. 결국 <와일즈>의 반쯤 열린 세계는 중간이 희박하고, 그 중간에 들어간 요소들은 헌터 입장에서는 지극히 미시적 것들이라 지금까지의 싱글 플레이 기반으로 칼같이 구분된 공간과 관계망에서 진행되는 부족적이고 단기지향적 멀티플레이에서는 오히려 불편한 요소가 되어버렸다. <월드> 시절부터 거의 반 강제화된 온라인 환경이 정작 여전히 불안정하다는 사실 역시 피로감을 가중하는 결과만 나왔다. 즉 <와일즈>는 시리즈 기준으로 과감하게 세계의 경계를 허물었고 그 지점에서만 한정해서 보면 어느 정도 성취를 거뒀지만, 정작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게임 디자인과는 잘 조화되지 않고 어색하게 동거하는 모양새가 되어 자기 발목을 잡은 셈이다. 이외 <와일즈>가 겪고 있는 다른 문제들도 있으나, 이 글 방향성에서는 다소 일탈하기에 생략한다. <와일즈>가 지금 겪는 진통은 거치형 콘솔 <몬스터 헌터>로 복귀 후 생긴 과도기 현상의 지나친 지속/개악과 더불어 유저들과 개발진의 성향 차와 알력이 맞물려 벌어진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월드> 이후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싱글 플레이 액션 게임을 확장한 소규모 멀티플레이 게임이라는 기존 정체성과 세미 오픈 월드-온라인 게임이라는 새로운 정체성 간의 혼종을 꾀하려 하나, <와일즈>에서는 계산 실패로 걸려 넘어졌고 그 결과 헌터들은 이탈했다. 그렇기에 <와일즈>의 진통은 역설적으로 싱글 플레이와 멀티플레이 간의 경계가 아직도 견고하며, <몬스터 헌터> 시리즈가 <월드>부터 내세우는 기종적, 게임 디자인적 혼종이 여전히 난제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몬스터 헌터> 시리즈가 완전히 끝장났다고 보긴 힘들다. 일단 시리즈 전통으로 확장판을 내놓아 타이틀의 수명을 늘리는 전략이 있었고, 2010년대부터 서비스로서 게임 개념이 강해지면서 당장의 곤란만으로 게임 전체의 수명을 판단하기엔 힘들어졌다. 물론 <와일즈>가 이렇게 되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여기다 <몬스터 헌터> 시리즈엔 <와일즈>가 완전히 망하더라도 혼종적 휴대용 게임기라는 성과를 이어가려는 스위치 2라는 와일드카드가 있다. 지금 당장은 스위치 2로 나올 <몬스터 헌터> 신작이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힘들지만, 적어도 <라이즈>에서 그들은 휴대용 게임기의 새로운 가능성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야심을 보였다. 그렇기에 다시 살짝 축소한 뒤 소규모 멀티플레이의 재미를 내세우는 고전적이지만 시류도 잘 따르는 <라이즈> 스타일의 <몬스터 헌터>로 성난 헌터들을 유혹하려는 건 시간 문제리라 본다. 그렇기에 <몬스터 헌터> 시리즈가 축소 지향 및 휴대용 게임기 지향으로 획득한 정체성은 유령처럼 사라지지 않고 끈질기게 프랜차이즈를 맴돌고 있으며, 캡콤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한동안 계속될 것이다. Tags: 몬스터헌터, 프랜차이즈, 액션롤플레잉, 일본게임, 헌팅액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이이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전문사 졸업 후 영화•게임 비평 기고 활동중. 어드벤처 게임 좋아함. (antistar23@gmail.com )
- [공모전수상작] 〈Ib〉: 미술관이라는 공포 체험
2022년은 〈Ib〉의 공개로부터 10주년이 되는 해였다. 제작자kouri는 스팀을 통해 기존 〈Ib〉에 새로운 기능이나 디테일을 더한 리메이크판을 공개했다. 이듬해 2023년에는 닌텐도 Switch 용 〈Ib〉의 발매 소식이 공개되었고, 게임 홍보를 목적으로 게임의 전시를 재현한 ‘게르테나전’이 도쿄 시부야에서 열리기도 했다. < Back 20 GG Vol. 24.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ubin Yoon Became a gamer through a bond with the Pokémon series that began in 2007, though in 2023 declared a breakup with it. Even so, the line of output text from the Pokémon games—"The sunlight turned harsh!"—remains a life motto. Has lived a life of making fanzines whenever a new favorite game comes along, but since 2024 has taken up game criticism as a new language for appreciation. Sometimes writes and draws fan works under the handle "Runts."
- [인터뷰] 북미 게임연구자 Consalvo, 한국과 북미의 게임문화를 말하다
콘살보 교수와의 이번 인터뷰는 게임에 대한 인문사회학적 고찰에 있어 필수적인 게임학의 현재를 진단해보는 한편 북미의 상황에 대해 들어봄으로써 이 시점, 여기에서 고민해볼 만 한 지점들을 모색하고자 기획하였다. 실시간 인터뷰가 어려운 현재 여건상 이 인터뷰는 이메일로 진행되었음을 밝힌다. < Back 01 GG Vol. 21.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Bora Na A game researcher. Game-playing goes back quite a long way, but the first encounter with game studies came by chance, through a game course taken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Since graduating, has carried out research and writing centered on game history and culture, here and there. Contributed to The History of Games, The Theory of Games, and Mario, Born in '81, among others.
- 탈출 없는 삶에서 의미를 만드는 게임적 방법
〈하데스 Hades〉는 혹평이 거의 없는 좋은 게임의 정석 같은 게임이다. 2020년 하반기 최고작으로 뽑히며 더 게임 어워드(The Game Awards, TGA) 올해의 게임 노미네이트, 각본상, 인디 게임상, 액션 게임상을 수상했고, 메타크리틱 게임 리뷰에서 93점의 높은 점수를, 현재 스팀에서도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SF 문학상인 네뷸러상과 휴고상까지 수상하니, 국내의 한 게임 비평지에서는 “하데스는 깔 게 없다”고 평하기도 했다. 여기에 이렇게 길게 수상 목록과 긍정적인 평가를 굳이 덧붙이는 이유는 〈하데스〉가 보편적으로 잘 만든 게임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 Back 탈출 없는 삶에서 의미를 만드는 게임적 방법 10 GG Vol. 23. 2. 10. 〈하데스 Hades〉는 혹평이 거의 없는 좋은 게임의 정석 같은 게임이다. 2020년 하반기 최고작으로 뽑히며 더 게임 어워드(The Game Awards, TGA) 올해의 게임 노미네이트, 각본상, 인디 게임상, 액션 게임상을 수상했고, 메타크리틱 게임 리뷰에서 93점의 높은 점수를, 현재 스팀에서도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SF 문학상인 네뷸러상과 휴고상까지 수상하니, 국내의 한 게임 비평지에서는 “하데스는 깔 게 없다”고 평하기도 했다. 여기에 이렇게 길게 수상 목록과 긍정적인 평가를 굳이 덧붙이는 이유는 〈하데스〉가 보편적으로 잘 만든 게임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이미 좋은 평이 많은 〈하데스〉의 리뷰를 쓰기로 결심한 이유는 ‘죽음’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사 때문이었다. 가깝고 먼 이들을 전례 없이 자주 떠나보낸 2022년이었고, 스스로는 잦은 자살 충동과 싸워야 하는 시기를 겪었다. 그러면서 연구자로서 ‘죽음’의 여러 사회적 논쟁을 다뤄보고 싶어졌고, 최근엔 그 준비를 하는 시기였다. 그 이름이 〈하데스〉인 만큼, 많은 리뷰에서 이 게임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죽음’을 다룬다. 이후 서술하겠지만 〈하데스〉는 로그라이크에서의 퍼머넌트 데스(Permanent Death) , 재시작 구조로서 죽음을 영리하게 사용했고, 그것이 게임의 큰 축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필자가 이 글을 쓰기 위해 〈하데스〉를 다시 플레이했을 때 발견한 것은 이 게임에서 ‘죽음’은 별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으며 -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개의치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 오히려 ‘살아있음/삶’ 그리하여 계속 진행되는 ‘이야기’가 그 중심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춰 왜 〈하데스〉가 좋은 게임이 되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우선 게임이어야 한다 아직 〈하데스〉를 플레이하지 않았고, 이후에 플레이하고자 하는 독자는 이 리뷰를 읽는 것을 잠시 뒤로 미뤄주길 부탁드린다. 이렇게 당부하는 이유는 이 게임의 첫 번째 경험만큼은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 첫 번째 플레이 시작 장면 * 첫 번째 플레이 직후, 히프노스, 하데스와 자그레우스 대화 장면 좋은 게임이기 위해서는 우선 ‘게임’이어야 한다. 〈하데스〉를 좋은 게임으로 만든 첫 번째 요소는 군더더기 없는 게임 구조이다. 가장 첫 플레이는 튜토리얼의 역할을 하는데 ‘몬스터를 죽인다 - 방을 넘어간다 - 죽으면 집으로 돌아온다’라는 게임 전체 구조를 바로 경험하게 한다. “잘 있어요. 아버지.” 한 마디 남기고 어떠한 가이드도 없이 바로 시작점에 선 플레이어는 버튼을 눌러 칼을 휘두르고, 앞에 있는 몬스터를 죽이고, 방을 넘어간다. 얼마나 멀리 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최종 보스인 하데스를 만나기 전에 죽게 되고, 기가 죽은 채로 집에 돌아오는 자그레우스를 보게 된다. 반드시 경험할 수밖에 없는 첫 번째 죽음으로 이 게임에 대한 장르적, 방법적 이해를 모두 얻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듣게 되는 아버지의 잔소리를 통해 최대한 덜 죽어야겠다는 동기부여와 앞으로 진행될 이야기에 대한 힌트 그리고 그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선 탈출을 반복해야 한다는 서사적 이해까지 자연스럽게 획득한다. 그다음은 반복되는 플레이를 다채롭게 만드는 방법이다. 로그라이크의 장르적 특성을 따르기 때문에 최대한 지루하지 않게 게임적 요소를 배치하는 것이 흥행의 관건이었을 것이다. 로그라이크 게임은 한번 죽으면 쌓은 경험치가 모두 사라지기 때문에 호불호가 강하다. 그러나 〈하데스〉는 로그라이크의 조건 중 맵의 랜덤 생성만 유지하고 나머지는 유연하게 사용한다. 한번 죽더라도 획득한 경험치나 아이템이 전부 사라지지 않고, 획득한 어둠, 타탄의 피 등은 남아 있어서 무기를 업그레이드하거나 스킬을 강화할 수 있는 것이다. * 심지어 낚시로 얻은 물고기도 집으로 가져와 교환할 수 있다. 플레이가 익숙하지 않은 유저를 위해선 ‘신(God) 모드’라는 친절한 배려도 있다. 신 모드는 일종의 초보자 모드로 20%의 데미지 감소가 적용되고 죽을 때마다 2%씩 증가한다. 한번 죽을 때마다 캐릭터가 강해진다는 설정이다. 캐릭터 레벨이 없는 대신 죽음의 횟수로 플레이어의 실력을 보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게임 외적인 조건인 유저의 실력으로 인한 경험 차이를 만들지 않으면서, 반복되는 지루한 죽음으로 게임 플레이를 포기하지 않도록 만든다. 그 외에도 〈하데스〉에는 사용할 수 있는 6개의 무기와 무기마다 4개의 양상이 있다. 무기에 따라 플레이 경험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플레이의 흥미를 지속시킨다. 또 게임의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는 여러 형벌 규약 으로 게임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며 비교적 짧은 러닝 타임을 보완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반복 플레이를 다시 도전하게 만드는 유인책이다. 플레이어가 엔딩까지 보도록 하는 목표 의식을 어떻게 만드는가? 이 게임을 1회차 이상 플레이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이야기를 더 읽기 위해 책장을 더 넘기겠다는 것과 동일하다. 위에 서술한 게임적 요소도 반복 플레이를 지치지 않게 하지만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데스를 죽이고 지상으로 탈출해 페르세포네를 만나야 한다. 그리고 1번만 탈출해서는 전체의 이야기를 알 수 없고, 엔딩을 보기 위해선 최소 10번의 탈출이 요구된다. 또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올림포스의 신뿐만 아니라 메가이라, 카론, 타나토스, 아킬레우스, 시시포스, 에우리디케 등 여러 인물을 만나고 이들과의 이야기를 진전시키기 위해서 탈출을 반복할 필요를 자발적으로 느낀다. 반전된 죽음의 의미 이야기가 중요한 유인책이라는 것은 앞서 이 게임에서 “죽음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 맥락과 연결된다. 일반적으로 로그라이크에서 말하는 퍼머넌트 데스는 선택으로 인한 결과를 번복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를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매 순간 신중한 판단으로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 중요한 선택 직전 저장&불러오기를 통해 결과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다른 장르의 게임과 달리 로그라이크에서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마주해야 한다. 따라서 극도의 긴장감과 책임감이 이 장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로그라이크에선 빠른 판단과 반사 신경이 요구되는 플레이보단 턴제 형식으로 적절한 행동을 하도록 장려하기도 한다. 한 번의 죽음으로 너무 많은 것을 잃어야 하는 플레이어가 스트레스로 게임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인 것이다. * 집으로 돌아온 페르세포네와의 대화 그러나 〈하데스〉에서 자그레우스는 반드시 죽는다. 플레이 중간에 만나는 보스에 의해 죽을 수도 있고, 아버지 하데스를 만나 처참히 죽을 수도 있다. 무사히 탈출했어도 스틱스강에 붙잡혀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서 일반적인 로그라이크에서 경험하는 강한 긴장감은 느슨해진다. 지하의 신인 하데스에게 죽음이 그렇게 나쁜 것만이겠는가? 그래서 〈하데스〉에서 죽음의 의미는 모든 것을 잃는 실수가 아니라 필수적인 조건이다. 죽어야 집으로 돌아오고, 그래야 그 과정에서 만났던 인물과 관계를 전진시킬 수 있다. 페르세포네를 만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더라도 자그레우스에게 죽음은 출생의 비밀을 찾아가는 여정이고 또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과정, 헤어진 연인을 연결하고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는 시도이다. 그 모든 문제를 겪고 나서 마침내 죽음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오기 위한 의미로 바뀐다. 우리는 시시포스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 * 시시포스의 친구, 돌덩이 이것만으로도 〈하데스〉는 좋은 게임이다. 잘 만든 구조, 플레이의 재미, 기존 장르의 특성을 살짝 비트는 전개 방식 말이다. 그러나 충분하진 않다. 나는 〈하데스〉가 삶에 대한 철학적 문제를 ‘이야기’로 풀었고, 더 나아가 게임의 방식으로 전유했기 때문에 좋은 평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그레우스는 어떤 행동을 해도 탈출할 수 없다. 모든 무기를 해금해도 하데스의 식당에 우수 직원으로 뽑히더라도 결국 ‘죽는다’. 아무리 애를 써도 죽는다는 것은 게임 밖, 플레이어의 운명이기도 하다. 그래서 알베르 카뮈는 생을 “힘들게 살 가치가 없다”고 삶의 부조리를 고백하기도 한다. 삶은 무의미한 작업의 반복이라는 부조리를 폭로한 것이다. “모든 인간의 소통은 죽음에 이르는 한 인생의 무의미함과 고독을 잊어버림으로써 인생을 살 만하게 만들려는 의도에서 일어난다.” 지금은 저명한 커뮤니케이션 학자로 불리는 한 철학자의 말이다. 생의 허무와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어렵기 때문에 인간(종)은 역경을 극복한 이야기를 사랑하여, 역사 동안 말과 글로 모자라 게임으로도 전하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카뮈는 삶을 시시포스의 형벌에 비유하지만, 다시 바위를 굴려 올릴 수 있음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인간을 상상한다. 〈하데스〉에선 허무의 극복을 게임적 방법으로 해결한다. 태어난 곳을 바꿀 수 없는 자그레우스가 어떻게 가족의 화합과 스스로의 사랑을 획득하는지가 〈하데스〉가 말하는 이야기의 주제이다. 또 탈출할 수 없도록 발목을 잡는 운명을 놀이와 유희로 전복하는 것이 〈하데스〉가 전하는 게임의 본질이다. 플레이어는 죽음을 반복하며 이를 체득한다. 철학자의 말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방식이 아닌, 나의 시간과 경험으로 온전히 습득하는 것이다. 삶과 같은 총체적 경험, 그렇기에 〈하데스〉는 ‘좋은 게임’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획자) 최선주 선주는 기술과 인간 사이의 관계와 그로 인한 사회적 현상에 주목하며 활동해왔다. 새로운 기술이 예술 개념을 어떻게 바꾸는지 관심을 두고 인공지능 창작물의 예술적 가능성에 대한 논문을 작성하였으며 미디어의 이면을 탐색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는 코리아나미술관 *c-lab 큐레이터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아이돌로직 신드롬』(2021, 공저), 『특이점의 예술』(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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