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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벤토리 시스템은 어떻게 효율을 재미로 연결시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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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4. 6. 10.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라면 누구나 꽉찬 인벤토리에 스트레스를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2023년 대흥행을 이루었던 <발더스게이트3>에서는 아이템의 무게가 발목을 붙잡는다. 일반적으로 처음 게임을 시작한 플레이어는 어떤 아이템이 좋은 아이템이고, 어떤 아이템이 ‘잡템’인지 알 수 없어서 보부상처럼 모든 아이템을 들고 다닌다. 그러다 걸음걸이가 무거워지면 아이템 정리를 해야 하는데, 이때 무엇을 들고 다닐 것이고 무엇을 버리는 것이 효율적인지에 관한 고민이 시작된다. 그래서 유튜브나 커뮤니티에는 ‘발더스게이트 인벤토리 관리 꿀팁’ 글들이 무수히 올라와 있다.


한편, <마비노기>나 <디아블로2>에서는 아이템의 부피가 플레이어의 고민을 유발한다. 성능이 좋지만 부피가 큰 아이템이 떨어졌을 때, 플레이어는 가치가 낮은 아이템을 순차적으로 버리면서 인벤토리의 공간을 마련하고자 애쓴다. 그리고 버린 아이템보다 얻은 아이템의 가치가 월등히 높다는 확신이 들면, 득템의 기쁨과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 각각 무게와 부피로 제한을 두는 <발더스게이트 3>와 <디아블로2>의 인벤토리 시스템

그런데 사실 정말로 효율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게 하려면, 인벤토리에 제한을 두지 않으면 된다. 게임사가 인벤토리를 디자인할 때, 무게나 개수, 부피의 제한을 두지 않으면 게이머들은 더 빠르게 사냥을 할 수 있다. 게다가 아이템을 인벤토리에 넣는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 획득하자마자 강해지는 방식을 사용하면 더 직관적이고 더 빠른 플레이가 가능하다. 실제로 이러한 방식을 사용한 게임들도 다수 존재한다. 가령, <하데스>와 같은 로그라이크의 경우에는 인벤토리 창이 따로 없고, 자신이 획득한 기능을 확인할 수 있는 창만 제공한다. 그렇다면 게임사는 왜 인벤토리에 제한을 두어서 게이머들을 괴롭히는 것일까? 인벤토리 시스템은 게이머들에게 스트레스만 안겨주는 개념인가? 효율성을 고민하며 아이템을 먹게 만드는 비효율적 시스템은 누굴 위한 것인가? 이러한 지점에서 인벤토리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재미가 무엇인지 보다 근본적인 차원의 질문을 던져보자.


     

인벤토리의 한계는 리얼리티의 재현인가?


인벤토리 시스템은 디지털 게임에서 유구한 역사를 가진 전통이다. 초창기 게임 역사에서 자주 이름을 <던전앤드레곤> 시리즈와 <로그>, <울티마> 시리즈는 텍스트로 플레이어가 획득한 아이템을 보여주며 해당 아이템을 활용하여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시스템을 만들었고, 그중에서도 <던전 앤 드래곤> 시리즈가 확립한 초창기 CRPG의 인벤토리 시스템은 이후 게임 계보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인벤토리 시스템은 플레이어가 획득한 아이템을 텍스트로 읽으며 상상해야 했기에 직관적이지 못했다. 이에 <던전 마스터>는 선형적인 텍스트 인벤토리시스템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고, 결국 오늘날까지도 활용되는 그리드 인벤토리나 퀵바 등의 형식을 도입할 수 있었다.  아이템을 넣을 수 있는 칸을 제공하고, 거기에 아이템의 아이콘을 넣거나 빼는 그리드 인벤토리 시스템은 캐릭터와 세계의 분리감을 줄이고, 게임의 몰입도를 높였다는 평을 받았다. 그리고 이후의 게임 그래픽 디자이너들도 그리드 인벤토리 시스템이 만들어낸 토대 위에서 직관성과 상호작용성, 편의성 등을 고려하며 인벤토리 시스템을 발전시켰다.


* 텍스트로 구현되는 <로그>의 인벤토리 시스템과 <던전 마스터>의 그리드 인벤토리 시스템

이러한 맥락에서 인벤토리 시스템의 발달 과정을 리얼리티의 재현이라는 기준으로 바라보는 관점도 존재한다. 그리드 인벤토리 시스템이 게임 세계와 플레이어의 간극을 좁혔던 것처럼, 기술 발달로 인해 더욱 현실적으로 게임을 만들 수 있었고 앞으로도 더욱 현실성 높은 게임 구현이 가능하다는 시각이다.


물론, 이러한 예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게임임에도 총기의 기능 고장을 구현해서 군필자들에게 PTSD를 불러오는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의 경우에는 인벤토리 시스템도 최대한 현실적으로 구현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이제는 기술이 발달했음에도 여전히 많은 게임들은 게임의 재미를 위해서 인벤토리의 물리적, 현실적 한계들을 무시한다.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의 경우에도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게임에 도입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성이 게임의 몰입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성을 기준으로 인벤토리 시스템의 발달 과정을 선형적으로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다. 중요한 것은 게임의 재미이다.

     


획득하는 즐거움


그렇다면 게임의 즐거움이라는 차원에서 인벤토리 시스템을 살펴보자. 기본적으로 게임에서 아이템을 획득할 때, 우리는 어떤 재미를 느끼는가? 내 캐릭터가 강해졌다는 느낌, 앞으로 해당 아이템을 활용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 게임 내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는 자유. 이러한 재미들을 직접적으로 느끼기 위해서는 단순히 게임 내 시스템에서 대미지의 수치만 올라가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가시적으로 내가 얻은 아이템의 가치를 보여줄 때, 이러한 재미는 배가된다. <던전 마스터>가 <로그>의 텍스트 아이템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이유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게임은 플레이어가 아이템을 보고 그 가치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아이템을 다자인하고 기능을 가시화해왔다.


그러나 아이템 획득의 기쁨은 늘 일시적이다. 캐릭터 성장에 따른 상황이 함께 주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일직선으로 게임이 진행되는 아케이드 게임이나 로그 라이크의 경우에는 이런 재미가 반감될 가능성이 비교적 적다. <메탈슬러그> 시리즈를 할 때, 핸드건을 쓰다가 헤비머신건을 먹거나, 헤비머신건을 쓰다가 로켓 런처를 먹으면 성장의 기쁨이 느껴지고, 죽거나 탄환이 떨어지면 다시 아이템 획득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RPG의 경우에는 자신이 강해진 만큼 대적자도 강해지거나, 해당 아이템을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져야 아이템 획득이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이 무한히 확장될 수 없기에, 아이템 획득의 재미는 서서히 줄어들게 된다.


게임을 만드는 입장에서도 이러한 점이 고민이었을 것이다. 특히, 초창기 CRPG의 경우에는 게임에 넣을 수 있는 데이터 양에 제한이 있었다. 이에 현실성보다는 현실적 이유로 게임 세상을 넓게 구축할 수 없었고, ‘득템의 기쁨’을 유지하기 위한 여러 가지 장치들을 마련했다. 가령, <던전 앤 드래곤> 시리즈는 아이템의 특성을 다양하게 만들고 장착할 수 있는 아이템의 한계를 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한계는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어떤 아이템을 어떻게 활용할 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하고, 효율을 좇게 만들었다.

     


최적화하는 즐거움


일상의 노동 과정에서 늘 효율을 좇아야 하는 오늘날, 게이머는 게임에서까지 효율을 추구해야 하는가? 효율을 좇는 것이 어떻게 재미를 줄 수 있단 말인가? 이때 흥미로운 참고점이 있다. 바로 레고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릴 적에 레고를 조립하며 즐거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완성품을 팔지 않고 조립 전 모습을 판매하는 레고라는 상품은 상당히 비효율적인 상품이다. 물론, 레고의 조립이 꼭 완성품을 지향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그 과정에서 창의력이 발휘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10,000 피스 퍼즐은 어떠한가? 어떠한 창의력도 발동될 수 없게끔 모든 피스의 위치에 정답이 존재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퍼즐을 맞추며 재미를 느끼는 것일까? 극도로 비효율적인 상품이 팔리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게이머들이 인벤토리 시스템에서 효율을 추구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재미와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이 존재한다. 자신의 캐릭터를 효율적으로 구축하는 재미, 즉 최적화하는 재미이다. 게이머들은 현재 많은 게임들이 활용하고 있는 인벤토리 시스템에서 아이템을 어떻게 정리하고 활용할지에 관한 재미를 발굴했다. 앞서 언급했던 아이템 선택의 사례, 버린 아이템보다 획득한 아이템의 가치가 높다는 확신에서 오는 즐거움 역시 이러한 재미의 일환이다.


이 과정은 마치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최적화된 ‘결과’가 아닌 ‘과정’ 자체에서 즐거움을 선사한다. 덱빌딩 게임은 이런 재미를 극대화한 장르이다.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는 시간보다 덱을 구성하고 최적화시키는 시간이 길지만, 플레이어들은 고민 끝에 자신이 의도한 결괏값이 나왔을 때 성취감을 느낀다. 자동사냥 게임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플레이 자체의 시간은 거의 없지만, 게임에서 얻은 아이템들을 정리하고 활용하게 만드는 과정 자체가 게임의 즐거움이 된다. 자동사냥 게임이 무슨 게임이냐고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직장에서 자동사냥을 돌려놓고 퇴근길에 체크하는 과정에서 소유하는 즐거움과 최적화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효율을 좇게 만드는 비효율적 게임 시스템은 게이머에게 불편함만을 주지 않는다. 게이머는 최적화하는 과정에서 능동적으로 재미를 찾고, 유희하고 있다.




참고문헌

CRPG Book Project. URL: https://crpgbook.wordpress.com/

 Bateman, C. & Zagal, J. P. (2017). Game Design Lineages: Minecraft’s Inventory.

 MuBmann, M., Truman, S., Mammen, S. (2021). Game-Ready Inventory Systems for Virtual Reality.



Tags:

인벤토리, 롤플레잉, 아이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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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문화연구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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