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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 재현된 농업의 유형들과 재현의 의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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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6. 6. 10.

이 글은 논문 [(이경혁, 2026), <농업은 게임에서 어떻게 상상되는가: 디지털게임 속 농업 재현의 유형과 사회문화적 의미>, 농촌사회, vol. 36(1), 349-407] 을 기반으로 다듬어진 글입니다. 논문 원문은 KCI링크(바로가기)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PC 앞 도시 게이머들에게 농업은 어떻게 다가오는가


2020년에는 게임 분야에서 꽤나 흥미로운 사건이 한국과 일본에서 비슷한 시기에 벌어졌는데, 게임 한 편이 두 나라의 농촌진흥청 웹사이트를 마비시킨 일이었다. 동아시아의 주요 식량작물인 벼농사를 꽤나 디테일하게 녹여낸 플랫포머 액션 게임 <천수의 사쿠나히메> 플레이어들은 게임에서 사실상 캐릭터의 성장을 책임지는 벼농사의 디테일을 알기 위해 온갖 농사 관련 정보를 찾아다녔고, 가상의 논을 향한 이 열망은 각 서버들을 뻗게 만들며 뉴스 면을 장식했다.


디지털게임이 농업을 다루는 일은 보기 드물지 않다. 적지 않은 게임들이 본격적으로 농업의 과정을 재현함으로써 그 속에서 재미를 만들려고 하고, 농업 자체의 재현이 아닐지라도 농업이라는 개념 속에 우리에게 익숙한 어떤 과정을 게임 규칙 안에 편입시키는 시도를 많은 게임사들이 이어 온 바 있다. 다만 이 때 ‘농업’, ‘농사’라는 것은 무엇인지를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되물어보면, 같은 농업이라는 단어와 개념을 사람들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고 살펴보며 의미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정을 다루는 매체로서 디지털게임이 농업을 재현한다는 것은 비농업인구가 훨씬 많은 현대 사회에서 농업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살피고자 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다룬 농업과 농촌의 이야기가 무엇을 함의하는지를 살피는 연구가 존재하는 것과 달리, 게임에서 농사가 다뤄지는 방식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살피는 연구는 없던 상황이다.


이 글은 그 의문에서 출발한 논문, <농업은 게임에서 어떻게 상상되는가: 디지털게임 속 농업 재현의 유형과 사회적 의미>(농촌사회학회, 36호 1권)에서 다뤄진 내용을 정리한 글이다. 논문은 2000년대 이후 디지털게임 속에서 나타난 농업 재현을 크게 다섯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각각의 유형들이 오늘날의 농업과 농촌을 어떤 방식으로 재현하는지를 분석하고자 했다. 게임 속에 재현되는 농업, 농촌에 관한 다섯 가지 유형은 각각 목가적 생활양식, 산업적 경영체계, 생존을 위한 재생산장치, 성장 보조 시스템, 주기 순환의 시간장치로 나타나며, 각각의 유형들은 서로 다른 관점에서 농업과 농촌이라는 관념을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목가적 농업, 산업적 농업, 생존의 농업


첫 번째 유형인 목가적 생활양식으로서의 농업은 <스타듀 밸리>로 대표되는, 이른바 ‘힐링’의 요소가 강하게 결합된 농업과 농촌을 재현하는 유형이다. 도시에서의 틀에 박힌 삶에 염증을 느낀 주인공이 시골로 이주해 농장을 재건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는 <스타듀 밸리>에서 농업은 그저 작물을 생산하는 것으로만 그려지기보다는 농촌이라는 생활공간과 그 안에서 엮이는 인적 네트워크를 포괄하는 총체적 관계로서 나타난다. 농업이라는 말에 담긴 이른바 ‘농촌성’이 <스타듀 밸리>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재현되는 농업과 농촌의 특성이다.



<목장이야기> 등에서부터 이어져 내려 온 농촌성 재현을 중심에 둔 게임들은 농업을 목가적 생활양식의 일환으로 보고자 한다. 경쟁과 위험, 시장과 생산보다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안정과 회복, 그리고 정착의 감각이다. 농업과 농촌을 이처럼 정서적으로 안정된 관계의 공간으로 그리는 것은 ‘이상적 농촌성Rural idyll’이라는 개념으로 이미 다른 매체에서도 나타난 바 있는데, 앞서 이야기한 <리틀 포레스트>나 <전원일기> 등이 농촌을 도시와 대비되는 ‘인간미 넘치는 공간’으로 묘사하는 것들이 대표적이다.


목가적 생활양식으로 농업을 다루는 이러한 게임들은 그 숫자가 많지는 않더라도 사실상 농업 게임을 대표하는 유형으로 꼽히는데, 농업과 농촌을 이처럼 낭만적인 공간으로 그리는 것에 대한 위험성은 이미 다른 매체들에서도 지적된 바 있는 패턴이다. 농촌사회학자 리-앤 서덜랜드는 컴퓨터 앞에서 게임을 통해서만 농업을 접하는 도시 생활자들이 갖게 되는 농업과 농촌에 대한 이미지를 ‘책상 앞 농촌desk-chair countryside’라고 개념화한 바 있는데, 이는 직접 농촌에서 농업을 영유하며 살거나 영화나 소설처럼 누군가 만든 농촌의 이미지를 바라보는 것과는 다른 제 3의 방식으로 농촌과 농업을 이해하는 것임을 지적한 바 있다.


두 번째 유형은 산업적 경영체계로서의 농업이다. <파밍 시뮬레이터>로 대표되는 이 유형은 앞선 유형과는 달리 농업에서 낭만성과 인간관계를 제거한 채 오로지 작물의 생산과 유통, 판매라는 시장 체제 안에서의 농업만을 다루는 유형이다. 이 유형의 게임들은 작물을 먹거리로 보기보다는 공장에서 생산해 시장에 내다 파는 공산품과 마찬가지로 상품commodities의 일환으로 보며, 그 생산과정 또한 자연과의 교감이 아니라 현대화된 장비와 시스템을 통해 대량으로 생산이 이뤄지는 장면을 재현하고자 한다. 농업에 대한 이미지를 둘로 나눈다면, 앞선 유형이 ‘농촌에서의 농업’에 가깝고 이 유형이 ‘영농법인의 농업’에 가까울 것이다.



후술할 다른 유형들과도 가장 구분되는 산업적 경영체계로서의 농업 게임들이 갖는 특징은 오로지 상품 관계로만 농업과 그 산물을 바라본다는 점이다. <파밍 시뮬레이터>는 농업의 생산물을 플레이어가 직접 먹거나 요리하지 않으며, 밀과 옥수수는 오직 판매를 통해 현금화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가치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소규모 가족농이나 마을 단위의 협업을 통해 이뤄지는 한국의 농업보다는 대규모 농지에서 기계화된 농업을 돌리는 북미와 같은 공간에서의 농업에 대한 재현으로 볼 수 있는 유형이다.


세 번째 유형은 아마도 여러 게임 속에 가장 보편적으로 녹아들어 있을 생존을 위한 재생산장치로서의 농업이다.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규칙을 전제한 뒤, 생존을 위한 식량 확보의 일환으로 농업은 서바이벌 규칙을 가진 게임 안에 편입된다. 이름부터가 이 개념을 상징하는 게임인 <굶지마!>가 대표적인데, 처음 게임 시작 부분에서는 채집과 사냥으로 이뤄지던 식량 조달은 이후 농업을 본격화하고 대량생산체제에 편입시킴으로써 구성원의 생존을 안정화하는 방향으로 변화한다.



최종 단계에서는 결국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추게 되는 것이 이 유형의 농업 게임들이지만, 앞선 산업적 경영체계로서의 농업을 다룬 게임들과는 달리 이 대량생산은 대부분 ‘구성원의 생존’을 위한 장치로 기능한다.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점차 생산량을 늘려야 하는 대부분의 생존 및 운영시뮬레이션 게임들에서 식량은 부가적으로는 거래 요소이지만 기본적으로는 ‘먹기 위한’ 용도로 활용된다. 먹지 않으면 죽는 게임에서 먹거리를 생산하는, 살기 위한 먹거리 창출이라는 농업의 원시적이고 근본적인 목표가 이러한 유형의 게임 속에서 재현된다.



성장 보조, 혹은 시간장치로서의 농업


네 번째 유형은 성장 보조 시스템으로서의 농업이 다뤄지는 게임들이다. <천수의 사쿠나히메> 와 같은 게임은 먹지 않는다고 굶어 죽는 규칙을 넣지는 않지만, 게임 캐릭터의 능력치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식량을 생산하고 먹어야 한다. 이는 하드코어한 생존 룰이 적용되지 않는 여러 롤플레잉 게임에서도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유형으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같은 게임들에서 식량이 일종의 버프로 기능하는 점과 맞물린다.

네 번째 유형은 농업과 먹거리가 갖는 ‘식약동원食藥同原’의 개념 하에 이루어진다. 먹음으로써 몸과 정신이 강해진다는 이 개념은 ‘먹지 않으면 죽는다’ 개념을 밑바탕에 깐 뒤에 이루어지는 두 번째 레이어에 가깝다. 먹음으로써 강해지고, 그 강함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먹을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가 네 번째 유형이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초창기에 버프용 약초를 구하기 위해 리젠되는 지역을 돌던 행위를 ‘무 농사’라고 불렀던 것이 이 맥락과 상통한다.



마지막 다섯 번째 유형은 사실 농업 재현인지 의문일 수 있을 유형으로, 주기 순환의 시간장치로서의 농업이다. 2010년대 서구권을 휩쓸었던 <팜빌>과, 그와 유사한 여러 소셜 네트워크 게임들에서 나타났던 농업을 돌이켜보면 알기 쉽다.


이런 게임들에 등장하는 농업은 작물의 생산과 수확이라는 농업의 뼈대를 갖추고 있지만, 그 구조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 플랫폼이 설계한 재방문 주기, 다시말해 리텐션 구조에 농업의 외피를 씌운 것에 가깝다. 비슷한 소셜 게임들이 모두 특정한 무언가를 만들거나 건설하는 명령을 내린 뒤 몇 시간, 며칠 뒤에 완성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고, 그 중 하나로 농업의 파종 – 수확 순환 개념이 들어간 것이다.


이렇게 재현되는 농업은 게이머들로부터 농업이 일정한 시간을 기다려야 수확이 가능한 산업이라는 인식을 받음으로써 가능해진다. 씨를 뿌린 뒤 기다렸다 거둔다는 순환의 구조는 게이머들이 플랫폼으로부터 제공받고자 하는 보상을 자연스럽게 기다릴 수 있게 만들어주는 설득력의 요소로 작용한다. 앞서 이야기한 여러 농촌과 농업의 이미지는 이 유형에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애초에 이 유형이 유독 모바일, 온라인 기반으로 이용자의 재방문 주기를 설계하는 경우에만 나타난다는 것이 중요한 증거다.



게임으로 농업을 이해한다는 말의 깊은 의미를 곱씹으며


게임이 농업을 다룬다는 말은 이처럼 결코 하나의 방식으로 일반화하기 어렵다. 다섯 가지 유형은 모두 농업을 재현하고 있지만, 살펴본 것처럼 이 농업이라는 개념 자체가 각각의 사람들에게 서로 다르게 이해되며, 어떤 관계망 속에서 농업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게임 속에서 재현되는 농업은 그 의미부터 구조까지 모두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유형을 가로지르는 공통점이 있다면 아마도 현실의 농업이 가지고 있는 고단함 자체는 배제되거나 순화된다는 점일 것이다. 일전의 GG 글에서도 지적된 바 있듯이, 놀이로 기획된 디지털게임의 재현에서 농업의 고단함은 굳이 그려지지 않는다. 현실 농사에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부채, 가격 폭락에 따른 대손실, 고된 노동과 자연재해 등은 복구 가능한 수준으로 그려지곤 한다. 농업의 어려움에 대해 목가적 유형은 공동체의 온기로 덮어내고, 생존형은 전략적으로 관리 가능한 위기로 그려내며, 시간장치형은 예측 가능한 타이머로 풀어낸다.


당연하게도 매체로서의 게임이 농업의 모든 면을 담아내야만 한다는 주장은 아니다. 애초에 규칙과 반복을 통해 의미를 생산하는 디지털게임에서 그려내는 농업과 농촌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그 자체를 문제삼을 수는 없다. 다만 문제는 갈수록 현실의 농업으로부터 거리가 멀어지는 도시거주자 중심의 현대 대중문화 속에서 때로는 낭만화되고 때로는 산업화된 농업의 시스템만을 재현된 매체 안에서 보는 것이 가질 수 있는 매체론적인 문제에 있다. <리틀 포레스트>에 대한 여러 문제제기들이 지적한 것처럼, 우리는 실제로 경험하지 못한 농업과 농촌이라는 개념에 대해 단지 매체의 재현된 결과만으로 과도하게 손쉬운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게임 속 농업을 두고 따져야 할 것은 '얼마나 정확하냐'가 아닐지도 모른다. 더 중요한 건 무엇이 거듭 선택되고 무엇이 거듭 빠지는가, 그리고 그 선택의 패턴이 우리가 농업을 상상하는 방식을 어느 쪽으로 끌고 가는가에 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농업 게임의 재미나 가치를 부정하려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게임 속 농사가 누군가 정성껏 고르고 배열한 한 편의 재현물이라는 사실을 아는 플레이어는 그 경험이 주는 즐거움을 누리면서도 그것이 현실의 농사와 어디서 만나고 어디서 갈라지는지를 함께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농촌진흥청 서버를 마비시켰던 그 엉뚱한 호기심이야말로 농업이 뭔지 모르는 도시민들에게 ‘농업이란 무엇인가’를 한번 더 상기하게 해 준 좋은 기회가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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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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