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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문화의 변화 위에서 게임의 미래를 묻다: GXG2025 컨퍼런스 GG 세션, <시각예술콘텐츠의 오늘과 미래>
<시각예술콘텐츠의 오늘과 미래>라는 제목은 게임 행사에서 게임 비평 잡지가 기획한 자리의 이름이라고 보기에 너무나 방대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문화로서의 게임을 이해하려면 현실의 대중문화를 만들어내는 매체들과 게임이 어떻게 협응하는지, 또 대중문화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살펴야 한다. < Back 대중문화의 변화 위에서 게임의 미래를 묻다: GXG2025 컨퍼런스 GG 세션, <시각예술콘텐츠의 오늘과 미래> 26 GG Vol. 25. 10. 10. 9월 19, 20일. 판교에서 열렸던 GXG2025 (Game culture X Generation 2025) 행사가 비가 오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게임, 문화로 즐기다’는 슬로건을 가지고 있던 해당 행사에서 GG 역시 하나의 세션을 기획하였는데, 영화, 웹툰, 미술, 게임의 종사자 및 관련자를 모시고 대중문화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물론, <시각예술콘텐츠의 오늘과 미래>라는 제목은 게임 행사에서 게임 비평 잡지가 기획한 자리의 이름이라고 보기에 너무나 방대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문화로서의 게임을 이해하려면 현실의 대중문화를 만들어내는 매체들과 게임이 어떻게 협응하는지, 또 대중문화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살펴야 한다. 게다가 실재 대담회는 이러한 의의나 제목의 무게보다 훨씬 더 가볍고 재미있게, 그럼에도 핵심적인 요인들을 짚어가며 이루어졌다. 대중문화의 변화 지난 23호에서 GG는 ‘21세기가 들어선 이후 게임의 사반세기사’를 다룬 적이 있다. 그렇다면 다른 대중 매체들은 해당 기간에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2002년부터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출발! 비디오 여행>의 김경식, 2008년부터 웹툰 연재를 했던 <닥터 프로스트>의 이종범, 미술을 강의하고 연구하며 전시를 만드는 큐레이터 권태현, 그리고 GG의 편집장인 이경혁은 각자의 삶에서 자신이 몸담고 있는 대중매체 영역의 변화를 체감했던 사람들이었기에 해당 질문에 관한 ‘썰’들이 풀어져 나왔다. 공통적으로 대두된 변화는 공간의 변화이다. 이제는 극장에, 만화방에, 오락실에 가지 않더라도 대중문화를 향유할 수 있다. 과거에는 약속을 잡더라도 ‘극장 앞에서’ 만나고, 여가 생활을 누리려면 특정 공간에 가는 행동 패턴이 익숙했지만, 지금은 문화활동을 위해 어딘가를 가는 행위가 오히려 특별함을 담게 되었다. 두 번째 변화는 제작자와 수용자라는 고전적인 미디어 이분법에서 ‘창작자로서의 수용자성’을 갖고 있는 형태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해서 오늘날엔 셀 수 없이 많은 문화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그 배경에는 누구나 쉽게 문화콘텐츠를 만들게 될 수 있었던 기술적, 문화적 변화가 존재한다. 다만, 중요한 점은 일편 뻔해 보이는 이런 변화들이 아니다. 발표자들은 이러한 변화들 위에서 매체성 자체가 변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극장에 사람들이 가지 않기에 이른바 ‘영화의 위기’ 담론이 대두되었지만, 넷플릭스와 유튜브의 영상들이 각광받는 현상은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갖게 한다. 영화 감독에 의해 만들어지고 영화계에서 상을 받는 영화만이 영화가 아니라는 시각이 생기는 것이다. 웹툰은 더하다. 이종범 작가는 웹툰의 탄생을 이야기하면서, 마치 연극과 영화가 같은 매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제는 없듯이, 웹툰은 만화와 별개의 매체로 만들어졌다고 이야기했다. 과거에는 만화 잡지의 제한된 지면을 두고 만화가들이 경쟁해야 했다면, 웹툰은 열린 공간을 두고 사람들에 의해 선택받게 했다는 점에서 다른 성격을 보인다. 특히, 도전 만화나 공모전을 통해 독자들이 선택하게끔 한 문화는 웹툰의 시장 중심적 성격을 강화시켰다. 이종범 작가는 “시장이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은 시장이 좋아하는 쪽으로 쏠릴 수도 있다는 의미”라며, 오늘날 인기 웹툰에 비슷한 소재가 넘쳐나는 현상은 시장에 따라 움직이는 신생 예술 형식의 일반적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미술계는 비슷한 형식의 변화 위에서 또 다른 방식의 차이점이 만들어졌다. 권태현 작가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파인아트(Fine Art)는 아방가르드이며, 백만 명이 만 원씩 내는 시장 구조가 아니라 100억을 쓰는 한 사람에 의해 시장이 형성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21세기 이후 점점 대중들의 관심이 쏟아지면서, 최근에는 주말마다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시립미술관에 사람이 줄을 서는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비록 파인아트 관계자들도 ‘대중과의 괴리’를 고민했었지만, 그들 역시 지금의 변화를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의 현상은 미술의 내용이 변화해서 만들어졌다기보다, ‘소셜미디어의 영향력 증대’나 ‘참여문화의 중요성 대두’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권태현 작가는 “미술계도 이러한 변화를 인지하면서 전시를 기획할 때 핸드폰으로 전시가 어떻게 보이는지 고려하기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이경혁 편집장이 언급한 게임계의 변화도 흥미롭다. 과거에는 부모님들이 아이들의 게임 중독을 걱정했는데, 요즘에는 ‘쇼츠를 보지 말고 차라리 게임을 했으면 좋겠다’는 고민을 한다는 것이다. 이는 게임 세대가 나이를 먹음을 의미한다. 과거의 부모님 세대는 게임을 모르는 세대였기에 게임을 하는 아이들을 걱정했는데, 그 아이들이 커서 부모가 된 세대는 게임을 예전처럼 위험하게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아이들은 게임 세대가 아니게 되었다. 이경혁 편집장은 실제로 <하얀마음 백구>와 같은 어린이용 게임이 나오지 않는다며, 게이머의 연령대가 높아졌음을 지적했다. 변화된 환경에서의 대중매체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는 근본적으로 인터넷과 디지털 미디어의 발달이 깔려있다. 그러면 오늘날의 환경에서 대중매체는 어떠한 고민을 하고 있는가? 먼저,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지금의 디지털 환경에서 기준으로 삼을 보편감각이 무엇인지에 관한 고민이 나왔다. 미술 작품을 만들 때도 3D 툴이 사용되고, 웹툰의 배경은 AI가 그리며, 프로그래밍 개념 없이도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시대이기에 오늘날에는 ‘디지털’이나 ‘인터넷’이라는 단어가 특별하지 않게 되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인터넷 환경이 기성 미디어와 다르게 검열이 없고 자유롭고 해방적인 공간으로 인식되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의미 부여가 없어졌으며 일상적인 공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구든 만들 수 있다는 말은 누구든 영향력을 선점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게이트 키핑’ 역할을 하던 의사결정권자가 없어진 이후 이 영향력은 시장의 선택을 긴급하게 따라간다. 가령, 웹소설 사이트의 경우, 누군가의 이혼 기사가 뜨면 다음 날 랭킹에 ‘이혼한 뒤 OO했다’, ‘OO하고 이혼했다’ 등의 제목이 올라오고, 관세 전쟁 기사가 뜨면 ‘전생했더니 트럼프가 된 건에 대하여’ 등의 제목이 올라온다고 한다. 이에 이종범 작가는 “디지털 리터러시를 비롯해서 직업 윤리, 창작 윤리 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는 고민을 이야기했다. 수용자의 관점에서는 콘텐츠 수용의 다양성에 관한 이야기가 언급되었다. 영화계는 처음에 쇼츠로 영화 홍보가 되기 시작했을 때 이를 반겼다고 한다. 그러나 쇼츠의 영상이 미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보지 않게 만들면서 업계는 유튜브를 단속하기 시작했다. 개그맨 김경식은 <출발! 비디오 여행>과 같은 영상들이 영화의 희노애락을 담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시청 방식의 변화가 시대적 변화일 것이라 이야기했다. 게임 역시 마찬가지이다. 기존에는 ‘게임 플레이’라는 것이 컴퓨터나 플스 앞에 앉아서 직접 게임을 하는 것이었지만, 유튜브 게임 스트리밍이 나오면서 직접 게임을 하지 않아도 해당 게임을 했다고 인식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러한 행위를 두고 실제로 게임을 한 것인지 아닌지 싸움이 발생하지만, 이경혁 편집장은 이 싸움 자체를 주목했다. 이러한 싸움이 생긴다는 사실 자체가, 게임을 즐긴다는 방식에 다양성이 생겼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대중매체가 발전하면서 변한 것은 환경이나 매체의 속성만이 아니다. 얼핏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던 것 같은 각 매체의 경계는 이미 흐려졌고, 이제는 서로의 영향을 쉽게 주고 받는다. 게임 엔진을 통해 미술과 웹툰을 만들기도 하고, 최근에는 국내에서 머시니마 영화제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콘텐츠 자체로 보아도 <나 혼자만 레벨업>처럼, 웹소설이 웹툰이 되고, 웹툰이 드라마가 되며, 게임이 되는 시대이다. 현업에 있는 발표자들 역시 이를 당연한 시대의 변화로 인식하고 있었다. 서사성만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체험을 전유시킬 수 있기에, 예술 형식과 예술 형식 사이를 오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오히려 세계를 시각적으로 구조화하는 방식이 바뀌는 조건에 대해 성찰하는 것이 지금 동시대의 미디어 환경에서 중요한 국면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 앞에서 게임은 어떤 대중매체가 될 것이며, 어떤 대중문화를 만들 것인가? 게임 엔진이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구현할 수 있는 드림 엔진이 된 오늘날, 게임이 이끌어갈 한국 대중문화의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나아갈 것인가? 정답은 없지만, 깊은 고민에 다가갈 수 있는 대담회였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저자성이란 농담? :『코지마 히데오의 게임론』을 읽으며
브라이언 히카리 하츠하임의 『코지마 히데오의 게임론』은 코지마 히데오가 감독하거나 제작 과정에 참여한 게임을 다양한 매체 이론을 따라 살펴본다. 반전, 반핵의 주제 의식을 일관적으로 지켜나가는 스토리텔러이자 ‘모든 것을 감독하는 책임자’, 게임 업계의 유명 인사 등으로 읽혀 온, 혹은 그렇게 읽히고자 유도해 온 코지마의 행적 역시 집중적으로 비춘다. 하츠하임은 주로 코지마의 인터뷰와 서적, 그가 출연한 다큐멘터리와 출시 당시의 리뷰를 제시하며 그가 자신의 의도를 어떻게 관철하려고 했으며 제작 과정에 어떤 식으로 개입했는지를 도해한다. < Back Authorship as a Joke? Reading Bryan Hikari Hartzheim's Hideo Kojima: Progressive Game Design from Metal Gear to Death Stranding 30 GG Vol. 26. 6. 10. Bryan Hikari Hartzheim's Hideo Kojima: Progressive Game Design from Metal Gear to Death Stranding examines the games Hideo Kojima directed or took part in producing, following a range of media theories. It also trains an intensive light on the trajectory of Kojima—who has been read, or has induced himself to be read, as a storyteller who consistently holds to anti-war, anti-nuclear thematic concerns, as "the one responsible for directing everything," and as a celebrity of the game industry. Hartzheim mainly presents Kojima's interviews and books, the documentaries he appeared in, and reviews from the time of release, diagramming how Kojima sought to push through his intentions and in what ways he intervened in the production process. As one can guess without difficulty from the book's title, Hartzheim has a pointedly intentional design: to read the game designer as the source of the "authorship" within a game. I was a relatively recent fan, having come to Kojima's games through Death Stranding , and because I have no direct experience of how a game designer's authority operates in a commercial game produced through large-scale collaboration, I approached the book curious about how this design would unspool. Because it surveys Kojima's games chronologically, from the 1980s through the 2020s, reading it through also lets one trace the history of console hardware alongside the process by which Kojima's control over collaborative work expanded. As a theory for showing how Kojima's control over collaboration links to authorship, Hartzheim directly cites and grounds his design in the current of auteurist film criticism led, above all, by Cahiers du cinéma in the 1960s. A question is bound to arise about a setup that discusses games by reference to a particular current of film criticism; but this is less because Kojima himself draws strong inspiration from film, or because the use of cinematic cutscenes within his games is distinctive, than in order to compare production practices within the game industry with film production. By the author's account, contributors to auteur theory held that the "dissidence and singularity of commercial film," set against film-production practices within the Hollywood system, originate from a director who forms a consistent visual style and inner meaning. The leap of borrowing from film theory to explain games rests on the commonality that both games and film were media carried out as large-scale collaborations, under pressure to anonymize the producer and to orient toward marketability. The game designer's name, hidden as an "Easter egg" in a secret room, makes one recall in a suggestive way the old convention, in both the video game and film industries, of not foregrounding the creator's name. Hartzheim discloses the limitation that the critical current called auteurism "has been criticized for overvaluing the director's subjectivity and slighting the many other people involved in the particular context of production and the creative process," but he still regards that authorship as a valid and strategic tool for pinpointing and identifying the unconventionality that appears in collaborative work (Hartzheim 25–26). Along with this, the concept of "disruption" the author employs is drawn not from the language of film criticism but from Mary Flanagan's concept of Critical Play, encompassing innovations in game design that tend to subvert or weaken the system, and the invention of genre that follows from them. The author's approach carries the aim of expanding the concept of "critical play"—which tends to apply only to "games that seek to reform the present situation, artistic games, and the critical self-reflection they provoke; that is, only to games that hold a strong oppositional and critical stance toward commercial games"—so that it can apply as well to "commercial games" themselves, or to game designers working in the commercial game industry (Hartzheim 31). Through analysis of the production process, reception, reinvention of genre grammar, systems, and storylines of Snatcher , Policenauts , and the Metal Gear series, in which Kojima took part as planner, the author organizes Kojima's game design into four broad elements, and with these characterizes the critical play of Kojima's games that causes "disruption" to "the conventions of existing games." By mixing "elements of fiction and the real world into a linear narrative," they create a generic fable about the contemporary, and attempt a "remediation" of audiovisually oriented media such as animation, live-action film, or motion graphics. They build a "ruled system" that becomes the axis of "emergent play," and finally attempt the insertion of a "space for metafictional purposes" (Hartzheim 73). Here the author identifies two directions: the expression of the social consciousness the game designer holds as an author, and the creation of a formal mechanism that seeks to redefine the boundaries of play. The attitude of trying to discover a kind of dissident insistence in the direction of dismantling and breaking with formal conventionality is also an attempt to transpose into games the authorship that had been the critic's place to lean on, within a discourse that has defined the so-called "progressive text" as the opposite term to the classical text. It is a belief that if the game designer can be placed in the seat of the film director—a subject doing critical, experimental work within commercial constraints and material—then the properties of that experimental work, too, can be identified as a consistency attributed to the game designer. Hartzheim borrows the expression "progressive film genre"—which Barbara Klinger pinpointed as "formed not only on the ideological plane but by the words of progressive critics seeking rupture within the film form and structure of the time"—to form the concept of "progressive game design." Reading this as progressive game design, transformative game design, will pose no great difficulty for understanding (Hartzheim 28). Hideo Kojima: Progressive Game Design lays out, clearly and in order, the various modes of the progressive game design the author has defined, examining the systems within Kojima's games, the conditions that were necessary to produce those games, and the patterns of reception by studios and players. One passage not sufficiently explained is the context in which the expression "progressive film genre" was used in Klinger's original article, "'Cinema/Ideology/Criticism' Revisited: The Progressive Text." Klinger holds that the "classical text" that exists as the opposite term to the progressive text is in fact more aptly called the "classical text system." In Klinger's words, this system is produced "from an unstable combination of imbalance (excess, difference) and balance (containment, repetition)." Genre is a "tense permutation" of the system "that thrives on a play of variation and regulation," and a provider of "regulated variety." Presenting an economy of variation rather than rupture, genre permits "the (regulated) forms of excess and the (regulated) forms of display of that process," domesticating and besieging excess within itself (Klinger 43). The reason Klinger, in explaining genre as the "tense permutation" of the classical text system, proposes a far more continuous "variety" rather than dramatic events like disruption, rupture, and articulation is so as not to soft-pedal the powerful force of normalization. Klinger warns that a reading that overemphasizes, on the side of subversiveness, signifiers that seem to constitute a rupture from existing norms can result in underestimating the system's means of "negotiating a normalizing function even onto the most foregrounded, progressive, and deviant tendencies." In the face of the view that progressiveness and transformativity are determined as signifiers isolated within the text, and of an attachment to readings that can reinforce such a view, Klinger seeks to keep a critical distance. She points out that the critical perspective forming the "progressive film genre" presupposes a counterpart called the "classical text," one that can be articulated and ruptured by the transformativity of intratextual signifiers alone—and by this she poses the question of whether the term designated as classical and normative is really so homogeneous and uniform an object. When Hideo Kojima: Progressive Game Design borrows the analytical frame of "progressive game design," it regrettably does not deal deeply with the critical implication latent in this primal naming. The author does, of course, examine games' capacity as an interactive medium that is never one-directional or fixed and always mediates player, reception environment, and technical conditions. Aided by archival materials that let one confirm how Kojima's games were received in their day, he examines not an analysis isolated in the text's inner meaning and formal articulation, but how the player forms meaning by interacting with the personality of the system that induces their action and with the technical conditions. That said, under an analytical setup in which Kojima expresses consistent authorial themes as he diverges from the established methods of the commercial video game industry, and in which those authorial themes generate this emergent divergence, "transformation" risks degenerating into a rhetoric that assumes a uniform "essence" in its opposite term. A passage like the following could serve as an example. In a gaming culture where building up a score through takedowns or victory was held to be good, a system that encourages weighing nonviolent options is an especially groundbreaking invention, but at the same time it also functions as a moral account, by raising questions about the logic of the war game—the contempt for human life it essentially harbors, and the stance of affirming armed conflict as the solution to a difficult objective. As in the real world, diplomacy or nonviolence is hard to achieve, but it holds the possibility of a far greater payoff in terms of human (and player) lives and of social order. (Hartzheim 88) Furthermore, if even the singularities that appeared as transformation or departure can be absorbed into commercial logic or generic inertia, then caution toward a "transformative" generic reading needs to be revisited once more. In particular, compared with film, the contemporary community of game reception, creation, and response tends to make the institutional engines driving universal canonization and classicization look unclear, while triggering almost simultaneous mutual reference; and so the distinction between "existing games" and "transformative games," and the identification of "authorship" grounded on that distinction, becomes an even more complex and subtle problem. But I am not trying to argue that it is better to discard the entire concept of authorship in games; I want to say that a kind of authorship is needed—one not established on the basis of hierarchization. Here I would like to refer to Im Ga-young's "Games and the Author," which likewise notes that authorship has been kept in a perpetually precarious place owing to the "withdrawal" of the author that arises because the game designer makes a game rather than gameplay, and owing to "players' consumer-centrism, and the common notion that sees the game as an industrial and technical product and a mere amusement." It hopes to "rediscover the author as a precarious and dependent being" in just this way, and to return the game to a place that becomes a "dialogue" between player and author, rediscovering the relationship the author forms with the player. Her essay finds the author in a voice that, having withdrawn into "agential distance" and "hidden itself," "steps out to greet" the player. The scene in which this gesture of withdrawal and welcome constitutes an author who addresses the player in a "direct voice" came to me as lovely and as important. This is probably because, in a medium captured between the admonition to root itself in entertainment and service and the stigma of being harmful because of that very root, I could feel all the more intensely the obstinacy of wanting to be more than, or less than, a commodity—the helpless necessity of an "it had to be this way." In this connection, I would like to close this piece by mentioning the excess of "paratext" that this book deals with throughout. In Kojima's games, the paratext appears by way of the technical possibilities and memory limits of the day, packaging practices, and the functions of physical interfaces such as the console and input device; the author explains the definition and function of paratext by citing Gérard Genette and Jonathan Gray. The literary theorist Gérard Genette defined the paratext as the threshold between a text and the things that constitute it. This includes not only formal frames such as the cover, title, and notes, but also explanatory frames such as newspaper reviews and magazine interviews. Jonathan Gray applied this to media like film and television as well, saying there are cases in which paratexts such as toys, games, spin-offs, novels, and websites "come to influence the text after the first interaction, or even redirect it." (Hartzheim 91–92) Jonathan Gray's words hint at a deep linkage between interactivity and the situation in which matter external to the narrative overflows into the narrative's interior. On the flooding of paratext, the author notes that in Metal Gear Solid 2 the game's physical package not only contains various setting materials about the world but also affects gameplay. Examples are the scene that, within gameplay, instructs you to use the decoding table printed in the game manual, and an interaction that mentions finding the frequency to tune the codec to in "the photograph on the back of the game software package" (Hartzheim 93). This is also a strategy frequently used in board games—which actively make use of physical elements—at moments of unexpected discovery. The "Find the home!" note one can find on the victim's body in Snatcher is also intriguing. This reads as if it means "the victim's house itself," or "examine the 'house model' in the dining room of the victim's house"—but in fact it is a literal answer: that you can press the "Home" key on the keyboard to decode the cipher (149). Through such depictions of paratext, the book restored, for me—someone who came to most of Kojima's games through emulation or remake editions, without using the game hardware of the time or encountering its packaging—jokes that I could not understand or whose context had dropped out. On the side of a game design that mediates and invites the player outside of play while expanding the play domain, the author cites Kojima's words: "If film is a medium that makes a person laugh, then in a game one's own action must be what leads to laughter." "Making the player laugh through their own action" reminds us that the player is "at once spectator and performer" (Hartzheim 148). Hartzheim sees this overlap as leading to an extension of the distancing effect that prompts the player's action within everyday life. Here I would like to add the layer of the sheer, unsublimated snigger when one is made "to laugh through one's own action," of an unavoidable becoming-slapstick-comedian. At this point the player physically encounters, first, a different kind of authorship—not the control that devises the totality and style of a game so as to put a critical distance between the player and an auteurist figure, that is, an ideological product. Something more like a mischievous stub of rock, a protruding threshold, that makes you suddenly plant your nose into the floor of the makeshift stage, bowing for no meaning whatsoever. The whole distinction between what lies outside gameplay and what is irrelevant or relevant to the virtual chain of meaning suddenly seems to turn trivial—and then, as if nothing had happened, it sends you back to immersive gameplay. This vividly reveals not a "meta" subsumed into self-reflection, but the occasion of the sitcom: getting right back up, returning to the act, playing innocent as though nothing had happened. Our protagonists, who brazenly cross between heavily armed soldiers with a flimsy cardboard box upside-down over their heads, or who start throwing punches at the screen when the player, sovereign over the camera, zooms in on their crotch. The authorship marked by Kojima's face, which haunts and drifts through this community as the punchline of a circulating joke or as a memetic sign, seems to me, after all, to be of this kind. References Hartzheim, Bryan Hikari. Hideo Kojima: Progressive Game Design from Metal Gear to Death Stranding. [Korean translation: Kojima Hideo-ui Geim-ron, trans. Mun Seong-ho, AK Communications, 2026.] Im Ga-young. "Games and the Author." Munjang Webzine, May 2026, Korea Arts Council Literature Platform, https://munjang.or.kr/board.es?mid=a20105000000&bid=0005&list_no=110333&act=view . Klinger, Barbara. "'Cinema/Ideology/Criticism' Revisited: The Progressive Text." Screen, vol. 25, no. 1, 1984, pp. 30–44.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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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연적으로 실패하지만 계속되는 것,
선택을 위해 제시되는 두 개의 분기점은 결국 실패하지 않는 삶, 매끈한 하나의 서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선택은 불가피하다. 오히려 굴절된 한 분면만을 인식할 수밖에 없다는 인간의 근본적인 한계가 그 선택이 충실한 것임을 간절하게 희구하게 만드는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 Back 21 GG Vol. 24.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yunyoung Hong Entered the world of games thanks to ads pitching the Famicom as a must-have for the happy household. A steady devotee of Just Dance. Co-wrote Mario, Born in '81, The Theory of Games, and Media and Gender, among others.
- 〈포켓몬 고〉는 당신의 시공간에 침투한다
〈포켓몬 고〉는 2016년 글로벌 출시된 증강 현실 모바일 게임이다. 증강 현실이란 더해진 현실이라는 뜻이니, 현실 위에 정보 레이어가 한 겹 더해졌다는 의미다. 일반적인 지리 데이터 위에 포켓몬스터 데이터를 덧씌워보니 게임이 탄생했다. 출시 초기 〈포켓몬 고〉는 플레이어의 GPS를 추적하여 구글 맵 위에 포켓몬들을 등장시키고,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으로만 보여주던 포켓몬스터 트레이너의 삶을 살아보도록 선보였다. < Back 08 GG Vol. 22.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Leesun Park Studies games from a social perspective. Believes that games, as a tool, ultimately offer a way to explore what it means to be human. These days, mainly writing.
- [Interview] Bringing the sense of presence into esports – what and how: Yeong-seung Ham, Program Director at Riot Games.
The feeling of being part of the crowd is a powerful experience. In traditional sports, this empowering moment is known as "hyeonjang-gam," which can be translated as the "feeling of presence." Despite technological advancements and high-speed internet that allow us to watch sports matches remotely from home, many fans still choose to visit the on-site venue to immerse themselves in the passion, sweat, tears, cheers, and chanting that cannot be fully transmitted through a screen. Some become fans of a sports team after experiencing an engaging moment at the stadium, chanting alongside a group of people. Even in esports, numerous fans have missed spectating digital game matches at physical on-site stadiums during the Covid-19 pandemic. < Back 13 GG Vol. 23.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 2023 동아시아 인디게임 답사기: bitsummit 그리고 G-eight
제일 더운 7월에 개최하기로 마음먹은 듯한 일본의 인디 게임 행사 “BitSummit”과, 버닝 비버와 마찬가지로 작년으로 2회차를 맞이한, 그리고 날짜도 거의 비슷하게 12월 초에 개최하지만 훨씬 따뜻한 대만 타이베이의 “G-Eight”이 오늘 답사기의 주인공들이다. < Back 2023 동아시아 인디게임 답사기: bitsummit 그리고 G-eight 16 GG Vol. 24. 2. 10. 벌써 한 달이 넘게 과거가 되어버린 2023 년 , 일로 , 그리고 취미로 여러 게임 행사에 참여해 볼 수 있었다 . 방문한 일곱 개의 게임 쇼 중 인디게임을 메인으로 하는 게임 쇼는 네 개 , 그중 국내에서 개최한 행사는 두 개였다 . 이 둘은 벌서 8 년째 개최한 부산 인디 커넥트 페스티벌 ( 이하 BIC) 과 , 스마일게이트가 주관하는 , 작년으로 2 회차를 맞이한 인디 행사 Burning Beaver( 이하 버닝 비버 ) 이다 . 둘 다 굉장히 특색 있고 매력적인 게임 쇼이니 , 시간이 있으신 분들은 꼭 방문하길 바란다 . BIC 는 주로 8~9 월에 , 버닝 비버는 12 월 첫 주에 개최한다 . 이렇게 BIC 와 버닝 비버에 이야기를 간략히 넘어간 이유는 , 오늘의 주인공은 다른 두 인디 게임 쇼이기 때문이다 . ‘ 엥 ? 왜 게임 쇼가 교토에 ?!’ 할지 모르는 , 이젠 제일 더운 7 월에 개최하기로 마음먹은 듯한 일본의 인디 게임 행사 “BitSummit” 과 , 버닝 비버와 마찬가지로 작년으로 2 회차를 맞이한 , 그리고 날짜도 거의 비슷하게 12 월 초에 개최하지만 훨씬 따뜻한 대만 타이베이의 “G-Eight” 이 오늘 답사기의 주인공들이다 . 이 자리를 빌려 , ‘ 게임 ’ 이 아니라 ‘ 게임 쇼 ’ 를 주인공으로 하여 두 행사를 방문한 경험과 인상 깊었던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 * 사진자료 1, 2 K- 게임 쇼는 잠시 바이바이 ! 하지만 꼭 방문해 보시길 ! 교토에 게임쇼 ? BitSummit! 부끄러운 일이지만 , 방문하기 전까지 교토에 게임 쇼가 있는 줄 몰랐다 . 교토라는 도시는일본의 문화유산을 구경하기 위해 방문하는 장소라 생각했었다 . 그렇기에 게임 쇼를 , 그것도 헤이안 신궁 바로 앞의 ‘ 미야코 멧세 전시장을 이용해 행사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꽤 놀라웠다 . 게다가 심지어 날짜는 여름 축제 기온마츠리와 정확히 겹치는 날짜였고 , 기온은 40 도에 육박했으니까 . * 사진자료 3, 4 헤이안 신궁으로 향하는 길 , 행사장은 실내라 다행입니다 . 다행히도 행사장 안은 쾌적했다 . 공간이 다소 협소한 편이기에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섰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덥거나 불쾌한 느낌은 없었다 . 부스들이라 부르기엔 다소 작은 사이즈의 책상이 자신들이 만든 게임을 어필하듯 꾸며져 빈틈없이 들어서 있었음에도 사람끼리 부딪힐지언정 축축하거나 한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으니까 . 밖이 더운 만큼 냉방에 신경을 쓴 것 같았다 . 또한 , 비록 개별 팀에 할당된 공간은 작을지라도 그걸 꾸미는 역량은 전적으로 팀들의 자율에 맡긴 부분이 놀라웠다 . 간단하게 아트북이나 브로마이드를 세워놓은 팀들도 있었지만 , 이런 걸 둬도 되나 ? 싶을 정도로 커다란 인형이나 , 책상 뒤편에 직접 프레임을 세워 배너를 달아놓은 팀도 많았다 . 할당된 공간과 위치에 맞춰 각자 다른 방식으로 공들여 꾸며놓은 모습들에 꽤나 눈이 즐거웠다 . * 사진자료 5, 6. 책상 뒤에 프레임을 설치한 부스와 모서리 위치라는 장점을 이용해 인형을 세운 부스 . 효과는 뛰어났다 ! 공간 자체가 넓지 않았기 때문에 꽉 찬 느낌이 드는 행사였지만 , 그로 인해 발생한 문제들도 많았다 . 일부 게임은 독특한 컨트롤러를 지원하는 방식이었지만 ( 예를 들어 콜라병을 흔드는 방식으로 로켓을 쏘아 올린다던가 ), 그 자리를 마련하기가 힘들어 한 명 한 명 교대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밀려나고 , 줄을 설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다 . 그렇다면 , 게임도 많지 않고 장소도 협소하며 바깥은 엄청나게 더운 BitSummit 최대의 매력은 무엇인가 ? 그건 바로 협소함에서 발생하는 떠들썩함과 놀라울 정도로 높은 비율의 외국인 , 그리고 본 행사 이후의 비공식적이지만 전통적으로 일어나는 가모 강 변의 네트워킹이다 . 장소가 좁다는 것은 몇 번 강조하였으니 외국인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 개인적으로 여러 인디게임 쇼를 다녀보았지만 , 경험한 바로는 BitSummit 은 가장 글로벌한 행사였다 . 부스 자체를 소형화한 것은 혼자 먼 길 오는 외국인을 배려한 것이 아닐까 ? 싶을 정도로 말이다 . 타국에서 외국인들끼리 모여있다 보면 제법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 부스 손님을 맞이하다가도 , 눈 마주친 다른 부스의 개발자와 스몰토크를 하게 되고 , 개발 관련 고충을 토로하다 보면 어느새 행사가 끝나있다 . 하루가 짧을 정도로 . 그리고 그 짧게 느껴지는 하루를 보완하는 행사는 , 지나가던 말을 따르자면 비공식 전통행사 , 가모 강 변 네트워킹으로 보완된다 . * 사진자료 7, 8. 가모 강 변에 모인 업계인들 . 광기의 기사 서임식 . 왜 비공식 전통행사인가 ? 그것은 딱히 누가 가자 ! 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 그냥 맥주 한 캔 들고 서 있다 보면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 7 월의 교토 날씨는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밤에도 기온이 30 도를 넘나들고는 하는데 , BitSummit 이 진행되는 2023 년의 7 월 중순 역시 마찬가지였다 . 그러니 비교적 시원한 강변으로 약속이라도 한 듯 모이는 것이 아닐까 ? 중요한 점은 , 이젠 알아서 발생하는 이 모임이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고 , 그곳에서 어슬렁거리다 보면 정말 별의별 사람들 다 만나게 된다는 점이다 . 1 인 개발자 , 소규모 개발팀 , 대형 퍼블리셔 , 꿈을 이룬 사람 , 꿈을 꾸는 사람 , 가릴 것 없이 말이다 . 자신의 성향이 I 라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길 바란다 . 필자와 가모 강 변에서 술 마시고 친구가 된 사람 넷 중 셋은 INFP 였다 . 이 공간에서는 게임이라는 공통된 관심사가 있기 때문에 ,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 . 그러니 게임 개발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 그리고 그 꿈이 나만의 게임을 만드는 것이라면 , 꼭 한번 참여해 보길 바란다 . BitSummit 장점 : 남녀노소 동서 구분 없는 다양함 , 활기찬 애프터 네트워킹 . BitSummit 단점 : 다소 협소한 공간 , 더운 날씨 . 어 , 잠깐 ! 이런 것도 전시해요 ? G-Eight BitSummit 이 끝나고 꽤 시간이 흘러 , 12 월 , 한국의 혹독한 추위 속에 불타는 비버를 구경하고 한 주가 지난 후 G-Eight 을 구경하기 위해 대만으로 향했다 . G-Eight 을 알게 된 경위도 사실 우연이었는데 , 앞서 이야기한 BitSummit 에서 “ 서브노티카 ” 개발자님이 찾아와 알려주었고 , 신청 , 참여하게 된 것이다 . 누군가는 필연이라 하겠지만 , 만약 게임 개발 꿈나무분들이 계신다면 많은 행사에 참여하고 많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시길 바란다 . 우연이든 필연이든 경험의 기회는 어디서 찾아올지 모르는 법이니까 . 다시 G-Eight 으로 돌아가자면 , G-Eight 은 버닝 비버와 마찬가지로 작년으로 2 년 차를 맞이한 행사이다 . 아마 2019-2021 판데믹 직후인 2022 년에 둘 다 시작된 데는 분명 이유가 있으리라 . 빠르게 G-Eight 의 매력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 행사 공간에 주목하고 싶다 . 게임 행사장은 주로 별로 놀랍지 않게 검거나 짙은 색상의 부스로 꾸며진 경우가 많다 . 꼭 그렇지만은 않지만 , 게임을 하기 편안한 무드라는게 있기 때문인지 밝은 조명과 대비되는 어두운 부스 , 어딘가 사이버 펑키 한 LED 들로 장식되어 있기 마련이다 . 하지만 G-Eight 은 정 반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밝고 , 개별 부스들의 사이 공간이 넓으며 , 이는 핸드폰을 보며 걸어도 사람과 부딪히지 않을 정도였다 . * 사진자료 9, 10 부스 배치가 이렇게 널찍해도 되요 ? 줄도 편하게 서겠네 ! 대부분의 게임 행사 혹은 인디 게임 행사는 필연적으로 줄을 서서 플레이를 하기 마련인데 , 대기업 부스들을 제외한 부스들은 관람객분들이 줄을 서기 위해 통행로를 점유하는 현상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 사실 기업 부스들의 경우에도 , 마련된 공간에 비해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복도를 차지하게 되는데 , 구경 온 사람들 입장인건 매한가지이니 이해가 되면서도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 하지만 G-Eight 은 부스와 맞은편 부스 사이게 공간을 충분히 두어 이런 불편함을 상당히 해소해 주었다 . 부스들 역시 공간이 여유로우니 꽤 놀라운 것들을 시도해 보는 팀들이 있었는데 , 가령 한 협동 게임은 방석을 두어 집에서처럼 편안히 게임을 할 수 있게 배려 해주고 있었다 . * 사진자료 11, 12. 공간 활용의 훌륭한 예시 . 거실과 같은 편안함이거나 , 층간 소음 신경 안 쓰고 뛸 수 있게 해 주거나 .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마저 하자면 , 행사장 외부 공간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 이는 대부분의 컨벤션 센터들이 넓은 공간을 차지하기 때문에 외진 곳에 자리 잡아 생기는 문제인데 , 게임 행사에 가면 주로 먹을 곳이 주변에 없거나 , 아니면 나가서 잠깐 쉬다 올 만한 곳이 별로 없기 마련이다 . 게임 행사는 걷고 , 줄 서고 , 게임하고 , 또 걷고의 반복이라 몹시 많은 체력이 소모되는데 , 심지어 나가도 밥을 먹을 곳이 없거나 , 푸드트럭을 이용해 서서 먹어야 하는 경우가 잦다 . 하지만 G-Eight 은 타이페이 엑스포 공원에서 행사를 진행하기에 외부에 시민들을 위한 시설이 상시 개방되어있다 . 사실 게임 행사장 밖으로 나가면 바로 공원이라 , 아이들과 산책하는 부부 , 장 보러 온 어르신들 , 춤 연습을 하는 청년들 , 곳곳에서 버스킹을 하는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도 가득하다 . 심지어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쑹산 국제공항이 있어 , 착륙을 위해 낮게 비행하는 항공기를 촬영하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 사회와 동떨어진 공간에서의 축제가 아니라 , 일상에 녹아있는 행사인 것이다 . 이건 그리고 관람객들에게도 굉장한 편의성으로 다가온다 . 행사장 밖에 나가면 휑한 광장이 있는 게 아니라 , 대만의 일상이 존재하니까 . * 사진자료 13, 14. 방문했을 때는 농산물 시장이 열려있었다 . 그리고 푸드코트 역시 훌륭함 . 잠깐 그렇게 허기를 채우고 나서 행사장으로 돌아가면 , G-Eight 만의 독특한 요소들이 눈에 띄게 된다 . 특히 자세히 살펴보면 PC 게임이 아닌 보드게임을 전시하고 판매하고 있는 팀이나 , 아예 사람들이 모여 ‘ 매직 더 개더링 ’ 을 플레이하는 구역 , 그리고 방문객들이 토큰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인기투표를 할 수 있는 돼지 저금통 등 , 독특한 매력을 가진 구역이 많다 . 사실상 여러 취향이 복합적으로 얽힌 놀이터에 가까운 느낌인데 , 이게 행사장 곳곳을 여러 번 돌아다니게 하는 매력이 있다 . 특히 저금통이 꽤 참신하게 느껴졌는데 , 일부로 반투명한 돼지 저금통을 사용하여 어떤 게임에 토큰이 얼마나 쌓여있나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게 해 두었다 .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관람객들은 토큰을 확인하고 해당 게임을 찾아가게 되는데 , 사실상 실시간 인기투표이자 실시간 추천 시스템을 아날로그 방식으로 구현해 둔 셈이다 .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 * 사진자료 15, 16, 매직 더 개더링을 플레이하는 사람들, 그리고 최고의 시스템, 돼지 저금통. 이에 더해 , 사실 행사장을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가장 눈에 띈 것은 다름 아닌 ‘ 사진촬영금지구역 ’ 이다 . 해당 구역을 마주한 후 주변을 살펴보면 , 마스코트 캐릭터 역시 다른 게임 행사의 마스코트들과 사뭇 다름을 알 수 있다 . BIC 의 스키복 펭귄이나 , Burning Beaver 의 불꽃머리 안경 비버와는 달리 , 뿔 달린 마족과 요정의 하프 같은 여성 캐릭터니까 . 이 캐릭터가 마스코트로써 다양한 곳에서 부각되지는 않는데 , 딱 세 곳 확인한 것이 방문 인증샷을 남길 수 있는 포토존과 공식 굿즈샵 , 그리고 사진촬영 금지 안내판이었다 . 두 번이나 썼지만 , 이 게임 행사장에는 사진촬영 금지구역이 있다 . 간혹 한국 게임 행사에서도 잔인함을 이유로 성인 이용 등급을 받은 개별 부스가 검은 천으로 덮여있어 연령 확인을 하고 입장하고는 하는데 , 그것과는 달리 정확하게 선정성을 이유로 특별 마련된 구간이었다 . 생각해 보면 행사 주관 업체 중 한 곳이 Mango Party 라는 퍼블리셔인데 , 최근 한국에서 유명해진 해당 퍼블리셔의 게임으로는 ‘ 여닌자 타락시키기 ’ 와 ‘ 관리인의 엿보기 ’ 가 있다 . 그러니 굉장히 이색적이고 특이한 공간이 생길 수 밖에 . 정말 인상 깊었던 것은 , 안에서 , 그리고 해당 구역 출입구 앞에서 성인 용품을 판매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 이게 가능하단 말인가 ? * 사진자료 17, 18. 바로 그 사진촬영 금지 구역 , 그리고 그 앞의 유명 성인 용품 부스 . 정리하자면 , G-Eight 은 굉장히 개성 있는 행사이다 . 행사장은 온 가족이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은 밝은 분위기이고 , 각 부스들은 각자 전시하는 게임의 매력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꾸며져 있다 . 행사장 외부의 공간 역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활용하는 공간이기에 게임 쇼 외에 즐길 거리 역시 많이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 관람하느라 지친 심신의 휴식을 취하기에도 좋다 . 메인 행사존에서는 저스트 댄스 대회를 하기도 하고 , 인터뷰존을 통해 유튜브 라이브로 개발진과의 실시간 토크를 생중계하기도 한다 . 그러는 중 한 편에는 성인용 게임만을 위한 공간과 성인 용품 판매점 역시 자리하고 있다 . 어딘가 혼란스럽긴 하지만 , 컨텐츠는 분명 다양하다 . 물론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 아직 신생 게임 행사이기에 로컬적인 색채가 굉장히 강하다 . BitSummit 에 이어 G-Eight 에서 만난 대만 친구는 ‘ 대체 이 행사를 어떻게 알고 찾아왔냐 ?’ 라고 물어볼 정도였으니까 . 부스를 세운 대부분의 개발자들 역시 영어를 매우 어려워하는데 , 사실 이는 어느 정도 예상해야 할 부분이다 . 외국인이 한국 인디게임 쇼에 와도 마찬가지니까 . 읽을 수 없더라도 어렸을 적 일본어로 포켓몬을 하던 추억을 더듬으며 게임을 하면 , 언어가 다르다고 게임을 못할 것도 없다 . 헤매면 최대한의 영어로 열심히 설명해 준다 . 추가적으로 , 애프터행사가 다소 약하다 . 이는 BitSummit 이 특출나게 강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 G-Eight 이 게임 행사치고는 특이하게 오전 11 시부터 저녁 7 시라는 느지막한 스케줄을 가지고 있음을 감안하면 더 아쉬운 부분이다 . 바로 앞에 굉장히 여유로운 공간이 있는 만큼 , 다 같이 맥주 한 잔 들고 커뮤니케이션을 할 시간이 있다면 더욱 즐겁지 않을까 ? 개별로 친해진 사람들끼리 따로 한잔 하러 가거나 , 특정 퍼블리셔가 주관하는 행사는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말이다 . 하지만 이는 다시 한번 , BitSummit 이 특이한 부분임에 유의하자 . 상기 두 요인은 관람객이라면 무관한 요소들이나 , 인디게임 개발자의 입장에서 아쉬움을 논해보았다 . * 사진자료 19, 20. 이런 공간을 두고 없어서 아쉬운 애프터 파티와 다음날의 CWT. 게임과 애니는 뗄 수 없건만 이렇게 분산되다니!. 마지막으로 , 이건 일장일단이 있는 부분인데 , Comic World Taipei( 이하 CWT) 와 날짜가 겹쳤던 문제도 있다 . 게임 행사와 애니메이션 행사를 같은 날 같은 도시에서 열다니 , 대체 무슨 생각인가 ? 하면서도 , 한국에서 역시 작년 버닝비버가 Anime x Game Festival 과 같은 날짜에 열렸으니 할 말은 없다 . 더 많은 사람들이 게임 쇼를 찾아왔으면 하는 마음에서 단점으로 꼽았지만 , 덕분에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었고 , 다른 날에는 CWT 를 구경하러 갈 수 있었으니 . BitSummit 장점 : 놀이터같이 다양한 행사장 , 다른 게임 쇼에서 보지 못한 광경 . BitSummit 단점 : 해외 게임팀이 거의 없음 , 아직 아쉬운 네트워킹 파티 . 맺으며 . 관람객 입장에서 BitSummit 과 G-Eight 은 정말 즐거운 행사였다 . 평소 시장에서 찾지 못했던 독특한 게임을 체험해 볼 기회이기도 했지만 , 둘 다 일상에 접해있는 장소에서 행사가 진행된 영향도 컸다고 본다 . 게임 쇼를 보다가 , 관광을 하다가 , 타국의 일상에 잠시 녹아있을 수 있었다 . 일로 떠난 것이라도 여행의 감각이 없는 것이 아니었으니 , 정말 만족스러웠다 . 개발자 입장에서 , 인디게임 쇼는 개발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게임을 선보일 기회이지만 , 다른 개발자들과 직접 만나 소통할 기회이기도 하다 . 최근에는 메이저 게임 쇼에서 역시 인디게임존을 따로 만들어 행사를 진행하고 , 인디게임 참여사만을 위한 애프터파티를 준비해 네트워킹 기회를 마련해 준다 . 인디 개발자들이 제일 만들기 힘든 기회를 게임 쇼를 통해 제공하고 , 더 좋은 게임들이 만들어질 확률을 늘리는 셈이다 . 그런 부분에서는 BitSummit 은 최고였고 , G-Eight 은 살짝 아쉬웠다 . 매년 많은 게임쇼가 열린다 . 인디 게임쇼는 어쩔 수 없이 메이저 게임쇼에 비해 방문 인원이 적은 편이다 . 더군다나 해외에 나간다 하면 , 인디게임쇼를 즐기기위해 출국장을 밟는 사람은 더욱 없으리라 . 하지만 BitSummit 은 교토의 축제 기간에 , 그리고 G-Eight 는 한국은 한창 춥고 대만은 따뜻한 12 월에 열린다 . 전략적으로 관광 시즌에 열리는 셈이다 . 그러니 이 글을 읽은 여러분도 , 올해에는 해외 인디 게임 쇼를 구경 가보시는 건 어떻겠는가 ? 겸사겸사 관광 계획도 잡으면서 말이다 . 혹은 관람객이 아니라 , 개발자로써 행사에 참가해 그 어떤 티켓보다 빠르게 입장할 수 있는 패스를 받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 물론 , 더 좋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기획자) 임윤혁 육각형 캐릭터를 좋아해서 현실을 그렇게 사는지, 현실이 그래서 육각형 캐릭터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는 (구)이과생, (구)경제학도, (현)게임기획자. 즐기며 때떄로 배우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 제5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자 발표
제5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에는 총 123편의 응모작이 접수되었습니다. 최종 심사를 거쳐 3편의 작품을 이번 공모전의 당선자로 선정해 아래와 같이 공지합니다. < Back 31 GG Vol. 26. 10. 2.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니체, 영원회귀, 아모르 파티, 그리고 ‘데스루프’
〈데스루프〉 는 과정을 즐기는 게임이다. 지금까지 어떤 선형 구조의 게임들은, 모두 그 과정의 가치가 결과에 종속되어 있었다. 결국 영원회귀가 가지는 긍정성은 결과에 의해 보장된다. 그리고 그 결실을 얻은 과정은 다시금 플레이 할 가치를 빠르게 잃는다. 그러나 〈데스루프〉 는 그 결말에 이르러 진정으로 모든 과정을 긍정해버리면서 다시금 그 루프로 뛰어들게 만든다. 물론 플레이 메카닉이나 콘텐츠 면에서 다시 이 게임의 파괴와 생성을 플레이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게임에서 퇴장한 후에도 이들이 계속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갈 거라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플레이한 과정보다 더 즐거운 유희가 될 거란 것도. 이 부분이 조금은 특별하다. < Back 03 GG Vol. 21.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MyungKyu Lee Game journalist (2014–), writer (2006–), gamer (1996–).
- BIC 2022 탐방기
9월 1일부터 9월 4일 까지 부산역 근처 부산항 국제전시 컨벤션센터에서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인디게임 행사가 열렸다. 부산 인디 커넥트 페스티발이다. 올해로 8번째를 맞은 이 행사는 코로나로 인해 2020년 은 완전 비대면으로, 2021년엔 사전선정자만 오프라인으로 참여할수 있게 한정적으로 열렸다. 코로나가 완저히 종식되지는 않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점진적으로 해제되면서 3년만에 완전 오프라인으로 열린 셈이다. < Back BIC 2022 탐방기 08 GG Vol. 22. 10. 10. 부산인디커넥트 페스티발이 오프라인으로 돌아왔다. 9월 1일부터 9월 4일 까지 부산역 근처 부산항 국제전시 컨벤션센터에서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인디게임 행사가 열렸다. 부산 인디 커넥트 페스티발이다. 올해로 8번째를 맞은 이 행사는 코로나로 인해 2020년 은 완전 비대면으로, 2021년엔 사전선정자만 오프라인으로 참여할수 있게 한정적으로 열렸다. 코로나가 완저히 종식되지는 않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점진적으로 해제되면서 3년만에 완전 오프라인으로 열린 셈이다. 판데믹 이전에 마지막으로 열렸던 2019년 행사는 부산항 국제전시 컨벤션센터로 옮겨서 시작한 첫번째 행사였다. 이전에는 부산 영화의 전당 야외에서 행사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장소로 옮긴 BIC페스티발은 전자기기가 중심이 되는 게임 시연 행사가 야외에서 진행되면서 생기는 많은 문제점이 해소되면서 앞으로의 발전이 기대되는 상황이었지만 2020년 12월부터 코로나가 전세계에 유행할지 누가 알았을까. 부산항 이전의 행사에는 참여를 한적이 없어 2015년의 부산 문화 콘텐츠 컴플렉스의 좁지만 뜨거운 분위기나 2018년 까지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야외에서 벌어지는 날씨와의 전쟁 같았던 행사는 전해듣기만 했었고 2019년의 컨퍼런스와 함께 진행된 행사를 보면서 미리 올껄! 이란 후회와 함께 좀 더 자주 찾아올 결심을 했었더란다. 결국은 3년만에 행사를 찾아오게 되었다. 첫인상이라면 역시 어떻게 도착하는가 일텐데 부산항 국제 컨벤션센터는 부산역이랑 가깝지만 그 사이에 큰 도로가 있고 도보가 정비되어있지 않아 짧은 직선 거리에도 불구하고 교통이 편하다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2022년에는 부산역에서 부산항까지 구름다리가 생겨서 매우 쾌적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마지막 부산항과 구름다리의 연결 부분이 공사중이라 구름다리만으로는 행사장에 도착할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보로 10분이면 행사장에 도착할수 있다는 점은 큰 약점이 해결된 느낌을 주었다. * 아스티 호텔 27층에서 찍은 부산역과 부산항을 연결해주는 구름다리 행사장 구성도 변화가 있었다. 2019년 행사에서는 전시공간 두개중 한 공간만 사용하고 나머지 공간은 컨퍼런스로만 사용했기 때문에 좀 더 밀도가 높고 좁은 분위기였지만 이번엔 컨퍼런스는 중앙의 트인 공간에서 진행하고 양 쪽 홀을 모두 전시에 사용하면서 상대적으로 쾌적한 관람이 가능했다. 관람자수는 2019년에 비해 더 많았지만 인구밀도는 상대적으로 낮게 느껴지기도 했다. 한편 이런 행사장의 분리는 행사장이 복도와 공간이 분리되어있어 미처 문을 놓친 경우 행사장이 두개라는 것을 인지 못했던 경우도 있어 앞으로는 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 BIC 페스티벌 행사장. 가장 사람이 많은 토요일 오후 행사장의 분위기는 BIC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새로울게 없겠지만 지스타같은 다른 대형 게임행사와는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대형 행사가 게임을 보여준다에 가깝다면 BIC 페스티벌이 주는 행사의 경험은 좀 더 체험에 가깝다. 대형 게임행사에서는 대형 부스에서 도우미들이 몇십대가 늘어져있는 체험 공간에서 같은 게임을 AAA 신작을 해보고 큰 화면으로 게임 트레일러를 구경하는 곳이라면 BIC에서는 작은 부스에서 대부분 게임들을 플레이 하며 게임 플레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게임을 도와주는 도우미 대신 개발자들이 매의 눈으로 플레이하는 관람객들을 살펴보며 게임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다른 사람들이 플레이하면서 어떤 문제들이 발생한는지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가끔은 부담스러울 때가 있을 정도이다. B2B관이 아니면 외국인을 찾아보기 힘든 다른 행사와도 분위기가 좀 다르다. 눈에 확 띄는 외국인들도 있지만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온 개발자들도 자연스럽게 행사장에서 영어로 게임을 권하는 것도 BIC만의 독특한 분위기다. 로컬 행사이지만 글로벌 행사인 것이다. * 많은 부스에서 개발자가 직접 게임에 대해 설명해준다. 사진은 천궁 부스. 당신이 개발자라면 인디게임을 만들때 애로사항에 대해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을 꼽는다. 주류 게임과 벗어나서 자신만의 게임을 만드는 것은 힘드고 외로운 일이다. 그래서 다른 인디게임 개발자들과 만나서 자신들의 게임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은 매우 소중하다. 그런 점에서 BIC는 그러한 개발자들에게는 매우 소중하고 필요한 행사다. 하물며 한국 밖의 개발자들과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는 드물 수밖에 없다. 자신들의 게임을 보여주고 상대방의 게임을 보면서 의견을 주고 받을수 있는 자리가 드물다보니 개발자들의 파티 참여도도 높은 편이다. 비즈니스 데이 첫째 날은 행사장의 분위기가 뭔가 맞지 않았는지 지속되지 않았지만 둘째 날의 인디라 파티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개발자들이 뜨거운 분위기로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코로나 이후 이정도 규모의 개발자가 모였던 것은 처음이 아니었을까. 인디 게임 개발자에게 BIC는 아무래도 놓칠수 없는 자리가 될 것이다. * 인디라 행사 당신이 개발자의 팬이라면. 코로나가 전세계를 뒤덮기 직전에도 오프라인 게임 행사에 대해서 비관적인 의견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지금도 그렇다. 코로나 덕분에 취소되는 행사들에 대해서 “명예로운 죽음”이다. 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을 정도이다. 코로나로 인해 진행되지 못하던 행사들이 다시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면서 그동안 못한 외부활동에 대해 복수하려듯이 몰려나오는 관객들 덕분에 당분간은 오프라인 행사의 시대가 끝났다는 이야기는 들어가겠지만 여전히 대형 게임사들이 자체 행사를 준비하고 신작 공개들이 꼭 게임쇼에서만 진행되지 않으면서 게임쇼의 새로운 매력을 개발하지 못하는 이상 이러한 흐름은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인디게임 행사는 그 분위기가 좀 다르다. 게임회사와 이용자간의 상호신뢰는 무너진 지 오래고 열성 팬을 가지고 있는 게임회사들은 굳이 다른 팬들까지 신경을 써야하는 게임쇼보다는 단독행사를 통해 팬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굳이 행사장에서 까지 트럭을 보고 싶지 않은 회사들은 앞으로는 참가 여부에 대해 고민해야 할지도 모른다. 인디게임을 둘러싼 분위기는 AAA게임과는 사뭇 다르다. 인디게임의 수익모델이 대형 게임사의 약탈적이라고 부를수 있는 부분유료화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개발사와 직접 부대끼는 작은 규모의 팬덤 덕분일 수도 있다. 좋아하는 개발자를 직접 만나서 게임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기회가 흔하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면 어떤 개발자의 팬이고 그 개발자가 자신의 게임을 들고 BIC에 참여한다면 놓칠수 없는 기회가 될 것이다. 게다가 오면 다른 인디게임들도 많다. 새로운 게임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큐레이팅된 게임들을 오프라인으로 볼 수 있는 장소는 그만큼 좋아하는 게임을 새로 만날 기회를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오프라인 행사가 가지고 있는 장점은 다른 것도 있다. 게임에서 특히 눈을 끌었던 〈MORSE〉는 키보드나 게임패드로도 진행에 무리가 없지만 실제 모스 부호 송신기로 게임을 즐기는건 국내에선 BIC 외에선 힘들었을 것이다. 터틀크림의 〈RP7〉도 마찬가지다. 직접 만든 7개의 스틱이 달린 컨트롤러는 역시 행사장 외에서는 체험할 수 없는 독특한 경험이다. 이 경험들은 아마도 실제 게임을 구매해도 개인적으로는 하기 힘들 다는 점에서 오프라인의 경험이 특히 아쉬워진다. * 좌: MORSE와 함께 전시된 모스 송신기 우: RP7 전용 컨트롤러 로컬의 글로벌 행사 BIC 참여작들은 더 이상 국내에 한정되어있지 않다. BIC 수상작들이 도쿄 게임쇼의 센스 오브 원더 나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을만큼 BIC의 문을 두드리는 해외 인디게임들도 많아졌다. 이번 BIC의 특징으로 PC게임의 강세를 꼽는 사람들도 있다. 도쿄 게임쇼에서도 비슷한 평가가 있었는데 스팀에서 도쿄 게임쇼 페이지가 생겨나기도 했다. 스팀에서는 게임 행사들이 있을 때 행사 참여작들만 모아서 보여주는 특설 페이지들을 만들어주기도 하는데, 최근엔 독일 게임스컴이나 일본 도쿄게임쇼 페이지가 있었다. 이번 BIC 참여작들 중에서도 스팀에 이미 판매중인 게임들이 상당수 전시되어있어서 스팀에 BIC 특집 페이지가 있었어도 좋았을텐데 아쉬움이 있지만 몇 년 안으로는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든다. 한국에는 다 비슷비슷한 게임만 있다고 외치는 사람들도 이곳에 오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모두들 생존을 위해 글로벌로 나가야 한다고 외치지만 로컬이란 지지대가 있느냐 없느냐는 주어지는 기회의 숫자의 차이를 만들 것이다. BIC를 지지대 삼아 다른 나라의 인디게임 행사를 참여하는 게임도 나올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성장하는 게임개발자들도 생겨날 수 있다. BIC는 한국에선 부분유료화 모바일 게임만 살아남을수 있다는 편향된 시장에서 새로운 시도로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에게 버틸 수 있고 더 새로운 시장으로 나갈 수 있는 항구가 될 수 있는 행사가 아닐까 싶다. 이런 행사가 항구에서 열리는 것도 재미난 우연일 것이다. BIC페스티벌 2022는 행사에 대한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드는 행사였고 꼭 필요하고 한 번쯤은 와봐야 하는 행사가 아닐까 싶다. 누구나 여기서 자신이 좋아할 수 있는 게임을 발견하길 희망한다. ** 이 글의 필자는 BIC 컨퍼런스 강연자로, 행사진행간 숙박지원을 받았음을 알립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개발자, 연구자) 오영욱 게임애호가, 게임프로그래머, 게임역사 연구가. 한국게임에 관심이 가지다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2006년부터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있다. 〈한국게임의 역사〉, 〈81년생 마리오〉등의 책에 공저로 참여했으며, 〈던전 앤 파이터〉, 〈아크로폴리스〉, 〈포니타운〉, 〈타임라인던전〉 등의 게임에 개발로 참여했다.
- 독점 게임의 새 지형도: 많이 목마른 소니, 아직 배고픈 MS
2D 횡스크롤 플랫폼 게임의 역사에 기념비적인 족적을 남긴 '록맨' 시리즈. 보스의 무기를 빼앗아 쓴다는 기믹과 대단히 어려운 난이도, 그리고 귀엽고 다부진 주인공 록맨으로 출시와 함께 게임 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캡콤은 1987년부터 30년 넘는 세월 동안 이 프랜차이즈를 이끌고 있다. < Back 09 GG Vol. 22.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aeseok Kim Worked for eight years as a reporter at ThisIsGame. Now handles external relations at a subculture startup. Loves editors and the power of cheat codes.
- [논문세미나] Press X to Wait: The Cultural Politics of Slow Game Time in Red Dead Redemption 2
이번 세미나에서 리뷰할 논문은 지난 2022년 8월 ‘게임 스터디즈(Game Studies)’라는 저널에 게재된 〈Press X to Wait: The Cultural Politics of Slow Game Time in Red Dead Redemption 2〉이다. 번역하면 “X를 눌러 기다리시오: 레드 데드 리뎀션 2에서 느리게 흘러가는 게임 시간의 문화정치” 정도 될 수 있다. 이 논문은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레드 데드 리뎀션 2〉과 시간에 대한 감각을 다룬다. < Back 11 GG Vol. 23.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Leesun Park Studies games from a social perspective. Believes that games, as a tool, ultimately offer a way to explore what it means to be human. These days, mainly writing.
- [북리뷰] 『유령』: 소설이 탈북민과 게임을 재현하는 방식에 대하여
두 영상이 유튜브 이용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하다. ‘탈북자’가 가상의 ‘평양’이지만 ‘김일성 동상’을 향해 총을 쏜다. 이때 시청자들이 호응하는 것은 게임 플레이 그 자체보다는 김일성 동상을 보자마자 총을 쏘는 탈북자의 모습이다. < Back [북리뷰] 『유령』: 소설이 탈북민과 게임을 재현하는 방식에 대하여 04 GG Vol. 22. 2. 10. 소설 『유령』을 말하기에 앞서 2020년 초 유튜브 채널 〈CLAB〉에 영상 두 편이 올라왔다.1) 영상은 〈배틀필드4〉를 플레이하는 남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FPS 게임의 왕좌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임이 〈배틀필드〉 시리즈이긴 하지만 〈배틀필드4〉의 경우 2020년을 기준으로 무려 출시 7주년이 되어가는 게임이었다. 그런데도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남녀의 영상은 (이 글을 쓰는 지금 기준으로) 두 편 합쳐서 약 658,000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두 영상이 유튜브 이용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하다. ‘탈북자’가 가상의 ‘평양’이지만 ‘김일성 동상’을 향해 총을 쏜다. 이때 시청자들이 호응하는 것은 게임 플레이 그 자체보다는 김일성 동상을 보자마자 총을 쏘는 탈북자의 모습이다. 그리고 2021년에는 ‘북한 인민’을 흉내 내는 스트리머와 실제 ‘탈북자’가 함께 〈배틀그라운드〉를 플레이하는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다.2) 세 편으로 구성된 이 시리즈 역시 약 86만 조회수를 달성했다. 이 영상은 사전에 기획된 것으로, 〈조충현〉 채널에서는 커뮤니티 공지를 통해 사전에 탈북자를 모집했다. “배틀그라운드 및 다른 여러 가지 게임들 탈북민스쿼드를 계획 중에 있습니다. 실제 새터민분들 중 배그 및 롤을 해보신 적이 있는 분들은 전자우편함으로 날래 보내주심 감사하겠슴다”라는 내용의 익살맞은 공지에서 운영자가 예로 들고 있는 게임은 “〈배틀그라운드〉, 〈롤〉, 〈카트라이더〉 등”이다.3) 그렇게 성사된 〈배틀그라운드〉 플레이 영상은 〈배틀필드4〉 영상보다 더 단순했다. ‘대한민국 코미디언’이 ‘탈북자’와 ‘문화어’를 쓰며 게임을 한다. 시청자들은 아슬아슬한 〈배틀그라운드〉 플레이 상황보다 코미디언 스트리머 ‘복남 동지’와 탈북자 게스트 ‘억철 동지’의 입담에 열광한다. 〈CLAB〉와 〈조충현〉 채널에 올라온 영상 모두 탈북자의 게임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두 채널의 영상을 보는 시청자들은 탈북자가 보여주는 게임 플레이에 큰 관심이 없다. 시청자들이 호응하는 것은 탈북자들의 입담과 그들이 보여주는 과감함이다. 여타 게임 스트리머들의 영상을 보는 시청자들이 스트리머의 게임 실력과 센스에 따라 영상 시청을 결정한다면, 탈북자들의 게임 플레이 영상에서 중요한 것은 게임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그들이 게임에 투영하는 경험인지도 모른다. 통일부가 집계한 국내 정착 탈북자의 수는 33,815명이다.4)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탈북자는 여전히 새롭고 낯선 존재이다. TV 미디어를 통해 노출되는 탈북자는 경직되어 있거나 작위적이다. 유튜브 영상 속 탈북자는 북한 출신이지만 ‘우리’와 비슷한 존재로 다가온다. 오히려 ‘진짜 북한 사람’이 맞는지 의심받는 ‘진짜 탈북자’가 되기까지 한다. 우선 『유령』을 의심하자, 그러니까 과연 분단과 탈북자란 강희진의 장편소설 『유령』은 오래된 소설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벌써 낡아버린 소설일 수도 있다. 2011년 〈제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으로 출간된 『유령』은 “탈북자들의 소외를 리니지 게임과 연결시켜 서술한 점이 신선하고 흥미롭다”는 평가를 받음과 동시에 “분단 상황과 가상현실 문제를 뒤섞고 가로지르며 역동적인 탈주를 보인” 것으로 이목을 끌었다.5) 심사위원이기도 했던 우찬제는 「분단 환경과 경계선의 상상력」을 통해 강희진의 첫 장편소설이 “탈북할 수밖에 없었던 북한의 정치적 경제적 사정, 탈북 이후 남한의 경제적 문화적 사정 등을 실감 있게 기술”하는 동시에 “단순한 탈북자들의 생리를 그린 것이 아니라 21세기 세계의 문제의식을 독특하게 구성해 놓고 있다”고 평한다.6) 즉 강희진의 『유령』은 2011년이라는 상황 속에서 새롭고 독창적인 ‘분단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비슷하게 고인환은 「탈북 디아스포라 문학의 새로운 양상 연구」를 통해 이응준의 ????국가의 사생활????과 강희진의 『유령』을 동시에 호명한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가상의 디스토피아 현실’을 그린다는 점일 것이다. 차이점은 ????국가의 사생활????이 가까운 미래의 통일된 상황을 상상한다면 『유령』은 2010년의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는 정도이다. 고인환이 『유령』에 주목하는 것은 “탈북자들의 삶에 무관심한 우리 사회의 냉혹함은 물론, 그들에 대한 “지나친 감정 몰입”으로 객관적 거리감을 유지하지 못하는 일방적 태도 또한 경계하고 있는” 작가의 태도이다.7) 고인환에 따르면 ““객관화된 대상”으로서의 탈북자는 ‘공감의 부재’와 “지나친 감정 몰입”을 창조적으로 지양(止揚)하는 과정에서 온전히 형상화될 수 있을 것”이고, 강희진은 『유령』을 통해 그것을 적절히 보여줬다.8) 이와 더불어 이경재는 “이주노동자나 결혼이민자 혹은 탈북자들을 무시와 모멸의 대상으로만 삼는 한국인의 식민주의적 (무)의식을 날카롭게 고발”하는 것으로 평가한다.9) 나아가 소설 속 “주인공의 부적응과 소외, 그리고 정체성의 혼란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탈북자들 모두에게 해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분석한다.10) 이것은 “이주민들이 한국 사회에서 배제되어 ‘벌거벗은 자’가 되어가는 현실을 재현하는 데 집중하는 소설”의 하나라는 입장이다.11) 재차 강조해야 할 점은 이 소설이 2011년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이다. 2011년. 남북관계가 다시 냉각기에 접어들었던 바로 그 무렵, 대한민국 공해에서 군함이 격침당하고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이후 처음으로 대한민국 영토가 적의 포탄에 유린당한 직후의 언저리, 그리하여 반공의 기치가 다시 하늘 높이 휘날리던 바로 그 시절, 그럼에도 2천 명 넘는 탈북자가 해마다 한국으로 유입되고 있던 상황. 아주 잠깐 탈북자 현황을 알아보자, 『유령』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2010년을 기준으로 한국으로 입국한 탈북자는 2만 명에 가까웠다. 2만 명의 탈북자가 의미하는 것은 2만 가지 이상의 사연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가운데 ‘탈북자’이자 ‘청년’이며 ‘게임중독자’로 묘사되는 『유령』의 주인공은 과연 ‘탈북자’를, ‘탈북 청년’을 대표하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인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한국문학에 없던 존재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인물을 상징적인 존재로 위치시킴으로써 생겨난 문제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 반공의 기치가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가뜩이나 차별받던 탈북자들은 무시와 멸시의 존재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그나마 동정과 긍휼의 대상으로 상상되던 탈북자들이 이제는 간첩은 아닌지 의심해야 하는 대상으로, 사회의 골칫거리로 떠오른 것이다. 항상 겪어야 하는 간첩 의혹, 눈치를 봐야 하는 정착 지원 제도. 다수의 시선은 언제나 소수를 불안과 공포로 내몰 뿐이다. 다수는 소수의 존재가 성가신 정도(불편도 아니다)에 그치겠지만, 소수에겐 무엇 하나 사소할 수 없는 법이다. 2022년 현재 상황에서 이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오히려 간단하다. ‘탈북자’가 주인공인 이 소설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냉정한가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져야 하는 까닭이다. 나아가 ‘탈북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소설을 과연 분단문학 혹은 디아스포라 문학이나 다문화 문학으로 규정할 수 있는지 다시 물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탈북자를 끊임없이 ‘탈북자’라는 따옴표 속에 가둠으로써 생기는 왜곡과 굴절의 문제이며, 탈북자라는 지칭을 통해 그들을 계속해서 대한민국의 외부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계속 의심하자 『유령』을, ‘탈북자’가 아닌 ‘탈북자 됨’에 대하여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탈북자에 대한 시선 중에 하나가 ‘미리 맞이한 통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그 표현은 좌절되고 실패하였음을 누구나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유령』이 결코 그러한 현실에 대한 ‘고발’이 아니라는 점이다. 2011년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유령』이 묘사하고 있는 탈북자-북조선의 모습은 현실과 괴리가 있다. 오히려 『유령』이 그리고 있는 탈북자-북조선은 대한민국이 상상하는 ‘탈북자 됨’ 또는 ‘북조선 됨’의 재생산은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내가 갈 곳은 방송국이 아니라 리니지 세계다. 이번에 그 속으로 들어가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다. 귀환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바깥 세계로 나온다면 영원히 폐인으로 살아야할지 모른다. 한 달이고, 두 달이고, 1년이고, 2년이고 머물 것이다. 내게 리니지는 환상이 아니다. 그곳은 현실이다(325쪽). 위 인용은 『유령』의 결말 부분이다. 소설 속 주인공의 문제는 무엇하나 해결된 것이 없다. 그나마 ‘개명 신청’이 받아들여진 것이 주인공 ‘나’가 해결한 유일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소외와 차별, 무시와 멸시, 좌절과 낙담 속에서 ‘탈북자’인 주인공의 도피처는 온라인 게임 〈리니지2〉이다. 게임 속 주인공의 아바타-캐릭터 ‘쿠사나기’는 영웅이다. 혈맹의 군주인 동시에 혁명의 선봉에 섰던 전사이다. 다만 소설의 도입에서 ‘나’가 스스로 되뇌이듯 “육이오 전쟁 이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틀어 한반도에서 일어난 가장 위대한 혁명이었던 바츠 해방전쟁에 참여한 전사였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영웅에게도 현실은 냉혹한 법이다.”(11쪽) 현실이 아닌 가상, 현실보다 더 냉혹한 세계에서야 탈북자는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증명한다. 더욱이 ‘나’의 주변에 있는 탈북자들은 하나같이 고난과 고통 속에 살아간다. 노숙자이거나, 룸싸롱 접대부거나, 대딸방 핸플녀거나, 고아거나, 과부거나,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살거나, 마약에 찌들거나. 북조선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가와 상관없이 남한에서 살아가는 인생은 기구하기만 하다. 『유령』 속 탈북자는 그래서 ‘유령’이 된다. 그리고 『유령』을 읽는 독자들은 ‘탈북자 됨’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요즘은 탈북자에게 주는 정착금이 얼마 되지 않아 환상은 더 빨리 깨진다. 탈북자들이 컴퓨터 게임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169쪽). 작가는 『유령』 속의 인물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틈틈이 현실에 대한 ‘고발’도 멈추지 않는다. 문제는 그 고발의 잘못됨이다. 2010년을 기준으로 2만 명, 2022년을 기준으로 3만 명의 탈북자 가운데 몇이나 컴퓨터 게임 속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는지 의심해야 한다. 마치 지원금이 줄어서 탈북자가 힘들어졌다는 진술을 의심해야 한다. 돈이 없어서 현실을 피해 가상 세계로 뛰어든다는 시선을 의심하고 타파해야 한다. 하지만 독자는 『유령』을 읽는 동안 그러한 의심으로부터 차단된다. 작가는 그만큼 단호하고 당당하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 늘 당하는 배신, 게임 속에서는 그런 일이 없으리라 믿었다”(52쪽)는 주인공의 목소리는 의심하지 말자. 다만 게임이라고 다를 게 없다는 것을 탈북자인 주인공은 몰랐을 것이다. 엄연히 말하자면 게임과 현실은 다르다. 하지만 게임이라고 현실과 다르지 않다. 그러한 게임과 현실의 경계에 대하여 한 선학은 다음 인용의 멋진 문장을 새겨놓았다. 어쩌면 한국 사회의 온라인 게임 열풍은 현실과 게임 사이의 이질감이 적다는 점에서 비록되는 것이 아닐까? 온라인 게임의 사건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에서 발생한다. 허구의 캐릭터들은 가상의 육체와 현실의 영혼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 속 모든 현상은 사회를 투영한다. 하지만 게임은 현실의 의미망 속에서 만들어지는 동시에 현실의 의미망을 끊임없이 벗어난다. 그것이야말로 게임이 가진 탈주의 힘이다. 12) ‘게임’을 대하는 『유령』의 태도, 무엇이 그렇게 문제 이 소설의 또 다른 문제는 결코 게임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소설 시작부터 “온라인 게임을 정신없이 하다가 영양실조로 죽은 사람도 있다”(10쪽)고 적는다. 주인공을 상담하는 의사는 “이런 식으로 살다간 위험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16쪽)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온라인 게임 속으로 들어가 폐인이 되는 데는 이틀이면 충분하지만 폐인을 탈출하는 데는 한 달 이상이 걸린다”(117쪽)고 고백한다. “게임은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언제든지 벗어날 수 있지만 결코 빠져나올 수 없다. 공포에 대한 갈망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게임은 진짜 공포다.”(236~237쪽) 결국 “게임이, 그놈의 게임이 재밌지도, 자신에게 맞지도 않는데도 계속해 그것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동안 들인 시간과 돈, 공들여 온몸을 바쳐 쌓아올린 레벨 때문이다.”(280쪽) 하지만 정말 그럴까? 결국 유저는 언젠가 게임을 떠난다. ‘못 떠나는’ 유저는 없다. 안 떠날 뿐이다. “유저가 어떤 게임을 떠나는 것은 게임이 지겨워지는 순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13) 이것은 게임에 대한 무례이다. “산업적 담론에서 게임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첨단 IT 산업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문화적 담론에서는 사람들을 중독시키는 마약으로 묘사된다.”14) 강희진의 소설 『유령』은 게임을 ‘마약’으로 치부한다. 그렇다보니 〈리니지2〉만의 사건이 아닌 현실에서도 이목을 사로잡인 ‘바츠 해방전쟁’ 역시도 『유령』에선 도구적으로 소모될 뿐이다. (진짜 의미가 조금씩 밝혀지고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독재에 맞선 민중의 봉기, 독재를 물러나게 한 성공한 혁명, 혁명 뒤에 인간이 그렇듯 욕망에 점철되어 내분을 맞은 집단, 독재자의 귀환과 혁명 세력의 몰락. 그 자체로 소설이 될 수 있는 ‘바츠 해방전쟁’은 실제 ‘붉은혁명’이라는 혈맹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탈북자 중심의 혈맹 ‘뫼비우스의 띠’가 만들어지고, 〈적기가〉를 무르는 내복단이 등장하고, 해방전쟁이 혁명전쟁으로 묘사되면서 현실에선 낙오자일 뿐인 탈북자가 최전선에서 무기를 휘두르는 용맹한 전사가 되는 무대로 된다. 이때의 문제는 실제 벌어졌던 〈리니지2〉의 ‘바츠 해방전쟁’의 진의는 사라지고 ‘탈북자의 영웅 신화’로써 각색된 ‘바츠 해방전쟁’만 전면에 남는다는 점이다. 아래 인용에서 보여주는 ‘바츠 해방전쟁’이 벌어지던 즈음에 대한 상황을 기억해야 한다. 〈리니지2〉의 스토리 세계에는 현실 역사의 ‘민중 계층’에 비유될 수 있는 계층이 존재한다. 통계 자료를 보면 40레벨 이하의 캐릭터들로 규정되는 이 민중계층은 2003년 11월 25일 현재 전체 〈리니지2〉 플레이어의 85.9%를 차지한다. 한편 55레벨에서 75레벨 사이의 캐릭터이면서 지배혈맹에 소속되어 있는, 현실 역사의 ‘군사 귀족 계층’에 비유될 수 있는 계층 역시 뚜렷이 존재한다. 높은 레벨이 되어 세력이 있는 혈맹에 들어가면 멋진 무기에 좋은 옷을 입고, 아름다운 성에서 살며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낮은 레벨의 군소 혈맹원들은 수시로 공격당해 죽고 들판에서 혈맹 모임을 가진다. 사냥터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없기 때문에 레벨을 높일 수 있는 기회도 적다. 이러한 계층 분화는 레벨 차이에 따른 이해관계의 상충을 가져와 혈맹 전쟁의 확산을 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하략)15) 하고 싶었던 『유령』에 대한 이야기, 탈북자와 게임(하기) 앞에서부터 조금씩 해왔던 이야기지만 소설 『유령』에서 ‘탈북자’가 〈리니지2〉라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현실에서 겪는 좌절을 가상의 게임 세계에서는 겪지 않아도 된다. 현실에서 주인공 ‘나’는 무시와 멸시의 존재지만 〈리니지2〉의 혈맹 군주인 ‘쿠사나기’는 존경과 경외의 대상이다. “현실에서 죽었다가 깨어나도 맛볼 수 없는 것이 있다. 게임의 세계에서만 펼쳐지는 낯설고 특별한 체험이다.”(53쪽) 여기서 말하는 ‘특별한 체험’이란 단순히 가상의 게임 세계에서 겪는 이벤트 그 이상일 것이다. 현실과 달리 게임 속 세계에선 ‘힘’이 곧 ‘권력’이다. 자신을 탈북자가 아니라 조선족이라 속여야 할 만큼 탈북자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졌다. 탈북자가 온라인 게임 속의 영웅처럼 취급받던 시절도 있긴 했지만 그것은 이미 오래전이다(58쪽). 탈북자들이 목숨을 걸고 체제를 탈출하여 대한민국을 찾아오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들은 낙오와 좌절, 무시와 멸시, 천대와 모욕을 위해 “북한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남쪽으로 온 것이 아니다.”(164쪽) 하지만 자유를 찾아, 진정한 낙원을 찾아 대한민국을 찾은 탈북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순전히 자본주의일 뿐이다. “그래서 가끔 자신도 탈북자라면 좋겠다는 황당한 소리를”(167쪽) 실없이 듣고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에서 태어나 자본주의에서 성장하여 자본주의 속에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탈북자는 ‘치트(Cheat)’일 뿐이다. 그래서 한국인은 탈북자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탈북자를 극도로 경계하거나, 탈북자를 혐오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태어나면서부터 겪어야 했던 경쟁에서 자유로운 존재. 학력도 주거도 쟁취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학력을 위해 돈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현실은 어쩌면 오히려 한국인이 갖는 낙심의 근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소설 속 탈북자들은 현실의 삶과 다르게 영웅이 될 수 있는 〈리니지2〉로 모여드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탈북자임을 숨겨야 하고, 탈북자임이 드러나는 순간 온갖 모욕을 견뎌야 한다. 그렇지만 게임에서는 탈북자임을 굳이 숨길 이유도 없고, 탈북자임이 드러나도 모욕을 각오할 필요가 없다. 게임 속 가상의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힘’과 ‘권력’, 즉 레벨이다. 하지만 집단에서 벗어나 ‘솔플(solo play)’을 즐기는 유저의 상황은 좀 다르다. 저는 탈북 노숙자 한 사람의 주민번호를 빌려 아이디를 등록하고 본격적인 사냥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리니지에서 제가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다른 인물들을 죽일 때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리니지 안에서 칼을 마구 휘둘렀습니다. 어떤 날은 밤새도록 잠도 자지 않고 사냥을 다니며 닥치는 대로 죽이고 피를 보았습니다. 때로는 제가 희생될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더 짜릿한 쾌감을 느꼈습니다(318쪽). 소설 속 중년 여성 탈북자(‘정주 아줌마’)에게 〈리니지2〉는 어떤 도피의 공간이기보다 본능적인 유희의 공간이었다. 다만 ‘정주 아줌마’가 즐기는 게임의 방식, 〈리니지2〉를 플레이하는 태도는 상당히 위험천만하다. 현실 세계에서 게임에 들이미는 ‘악’의 잣대에 가장 부합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주 아줌마’야 말로 『유령』 속 어떤 탈북자들보다 게임에 충실한 인물일 것이다. 아니, 게임의 정해진 규칙마저 뛰어넘는 존재다. “RPG의 스토리텔링은 플레이어의 모험이 단순한 성장과 이동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교묘하게 감춘다. 이야기는 캐릭터의 성장을 위한 표지판이다. 그리고 이 길을 벗어난 플레이어는 성장이 제대로 되지 않는, 일종의 성장통을 겪게 된다.”16) 하지만 ‘정주 아줌마’는 스토리텔링을 벗어나고도 카타르시스를 느낄 뿐이다. ‘게임하기(gaming/playing)’를 통해 오히려 게임을 초월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석연찮은 『유령』, 의심의 끈을 끝까지 소설 속 탈북자에 대한 묘사에 수시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소설의 편의를 위해 설정된 탈북자들의 출신 배경을 곧이곧대로 믿어선 안 된다. 그렇다고 소설에 장치된 인물의 설정을 모두 거짓이라 여길 필요도 없다. 교묘한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독자는 극심한 스트레스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을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탈북자라고 해서 무엇인가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더 중요한 것은 ‘북한 출신’이라는 이상한 표현이다. 황해도, 평안도, 강원도, 함경도, 자강도, 양강도 (여기에 더하자면 평양직할시) 출신이 있을 뿐이다. 그래도 『유령』 속 탈북자들은 출신이 명확하다. 무산, 정주, 평양. 하지만 각각의 출신 배경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는 무책임하다. 소설을 읽는 내내 경험해야 하는 불편함은 탈북자의 탈북자 됨이 끊임없이 강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탈북자는 성공해선 안 되고, 성공의 기회도 잡아선 안 되고, 중독의 삶을 살아야 하며, 소외된 채로 몸부림치거나 체념해야 하며, 남성은 폭력과 무기력의 양극단 중에 하나를, 여성은 성적 대상화의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 운명이고 숙명이며 주어진 생인 것처럼 묘사한다. 『유령』은 게임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부정한다. 주인공 ‘나’를 제외한 소설 속 모든 인물이 현실과 게임을 구분한다. ‘나’와 함께 〈리니지2〉에서 혈맹 활동을 했던 다른 탈북자들도 게임과 현실은 별개의 삶이라는 걸 안다. 주인공보다 더 극심한 삶을 사는 인물들조차 소설에서 제시하는 최후의 선택지가 게임 속은 아니다. 더 나락으로 떨어지더라도, 혹은 더 이상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발버둥을 치는 것이다. 그럼에도 주인공에게 “리니지는 환상이 아니다. 그곳은 현실이다.”(325쪽) 소외된 존재들의 사연을 드러내기 위한 소설로 생각한다면 『유령』은 썩 나쁘지 않은 작품이다. 하지만 소외된 존재들을 또 다른 틀로 가둔다는 점에서 『유령』은 썩 좋은 소설이라고 보기 어렵다. 탈북자가 등장하고, 탈북자 청년이 고뇌한다. 하지만 그것은 분단 현실이 아닌 자본주의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탈북자를 다문화의 범주로 넣는 순간 탈북자는 대한민국 국민이 될 수 없다. 그저 영원히 이방인으로 존재할 뿐이다. 탈북 이전의 삶까지만 디아스포라이다. 탈북으로 인하여 고향을 떠났기 때문에 이산(離散)이라 생각하는 것은 디아스포라에 대한 무책임이다. 2022년 『유령』을 읽어야 하는 독자가 있다면 이런 잔소리를 남기고 싶다. 끊임없이 의심하라. 소설 속 탈북자의 정체를 의심하고,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게임에 대해 의심하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학연구자) 이예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북한문학이 아닌 조선문학 연구자를 표방하지만, 주류문학 말고 비주류로 일컬어지는 대중‧통속‧장르 및 기타 등등 애호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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