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의 변화 위에서 게임의 미래를 묻다: GXG2025 컨퍼런스 GG 세션, <시각예술콘텐츠의 오늘과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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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5. 10. 10.

9월 19, 20일. 판교에서 열렸던 GXG2025 (Game culture X Generation 2025) 행사가 비가 오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게임, 문화로 즐기다’는 슬로건을 가지고 있던 해당 행사에서 GG 역시 하나의 세션을 기획하였는데, 영화, 웹툰, 미술, 게임의 종사자 및 관련자를 모시고 대중문화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물론, <시각예술콘텐츠의 오늘과 미래>라는 제목은 게임 행사에서 게임 비평 잡지가 기획한 자리의 이름이라고 보기에 너무나 방대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문화로서의 게임을 이해하려면 현실의 대중문화를 만들어내는 매체들과 게임이 어떻게 협응하는지, 또 대중문화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살펴야 한다. 게다가 실재 대담회는 이러한 의의나 제목의 무게보다 훨씬 더 가볍고 재미있게, 그럼에도 핵심적인 요인들을 짚어가며 이루어졌다.
대중문화의 변화
지난 23호에서 GG는 ‘21세기가 들어선 이후 게임의 사반세기사’를 다룬 적이 있다. 그렇다면 다른 대중 매체들은 해당 기간에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2002년부터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출발! 비디오 여행>의 김경식, 2008년부터 웹툰 연재를 했던 <닥터 프로스트>의 이종범, 미술을 강의하고 연구하며 전시를 만드는 큐레이터 권태현, 그리고 GG의 편집장인 이경혁은 각자의 삶에서 자신이 몸담고 있는 대중매체 영역의 변화를 체감했던 사람들이었기에 해당 질문에 관한 ‘썰’들이 풀어져 나왔다.
공통적으로 대두된 변화는 공간의 변화이다. 이제는 극장에, 만화방에, 오락실에 가지 않더라도 대중문화를 향유할 수 있다. 과거에는 약속을 잡더라도 ‘극장 앞에서’ 만나고, 여가 생활을 누리려면 특정 공간에 가는 행동 패턴이 익숙했지만, 지금은 문화활동을 위해 어딘가를 가는 행위가 오히려 특별함을 담게 되었다. 두 번째 변화는 제작자와 수용자라는 고전적인 미디어 이분법에서 ‘창작자로서의 수용자성’을 갖고 있는 형태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해서 오늘날엔 셀 수 없이 많은 문화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그 배경에는 누구나 쉽게 문화콘텐츠를 만들게 될 수 있었던 기술적, 문화적 변화가 존재한다.
다만, 중요한 점은 일편 뻔해 보이는 이런 변화들이 아니다. 발표자들은 이러한 변화들 위에서 매체성 자체가 변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극장에 사람들이 가지 않기에 이른바 ‘영화의 위기’ 담론이 대두되었지만, 넷플릭스와 유튜브의 영상들이 각광받는 현상은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갖게 한다. 영화 감독에 의해 만들어지고 영화계에서 상을 받는 영화만이 영화가 아니라는 시각이 생기는 것이다. 웹툰은 더하다. 이종범 작가는 웹툰의 탄생을 이야기하면서, 마치 연극과 영화가 같은 매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제는 없듯이, 웹툰은 만화와 별개의 매체로 만들어졌다고 이야기했다. 과거에는 만화 잡지의 제한된 지면을 두고 만화가들이 경쟁해야 했다면, 웹툰은 열린 공간을 두고 사람들에 의해 선택받게 했다는 점에서 다른 성격을 보인다. 특히, 도전 만화나 공모전을 통해 독자들이 선택하게끔 한 문화는 웹툰의 시장 중심적 성격을 강화시켰다. 이종범 작가는 “시장이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은 시장이 좋아하는 쪽으로 쏠릴 수도 있다는 의미”라며, 오늘날 인기 웹툰에 비슷한 소재가 넘쳐나는 현상은 시장에 따라 움직이는 신생 예술 형식의 일반적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미술계는 비슷한 형식의 변화 위에서 또 다른 방식의 차이점이 만들어졌다. 권태현 작가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파인아트(Fine Art)는 아방가르드이며, 백만 명이 만 원씩 내는 시장 구조가 아니라 100억을 쓰는 한 사람에 의해 시장이 형성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21세기 이후 점점 대중들의 관심이 쏟아지면서, 최근에는 주말마다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시립미술관에 사람이 줄을 서는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비록 파인아트 관계자들도 ‘대중과의 괴리’를 고민했었지만, 그들 역시 지금의 변화를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의 현상은 미술의 내용이 변화해서 만들어졌다기보다, ‘소셜미디어의 영향력 증대’나 ‘참여문화의 중요성 대두’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권태현 작가는 “미술계도 이러한 변화를 인지하면서 전시를 기획할 때 핸드폰으로 전시가 어떻게 보이는지 고려하기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이경혁 편집장이 언급한 게임계의 변화도 흥미롭다. 과거에는 부모님들이 아이들의 게임 중독을 걱정했는데, 요즘에는 ‘쇼츠를 보지 말고 차라리 게임을 했으면 좋겠다’는 고민을 한다는 것이다. 이는 게임 세대가 나이를 먹음을 의미한다. 과거의 부모님 세대는 게임을 모르는 세대였기에 게임을 하는 아이들을 걱정했는데, 그 아이들이 커서 부모가 된 세대는 게임을 예전처럼 위험하게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아이들은 게임 세대가 아니게 되었다. 이경혁 편집장은 실제로 <하얀마음 백구>와 같은 어린이용 게임이 나오지 않는다며, 게이머의 연령대가 높아졌음을 지적했다.
변화된 환경에서의 대중매체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는 근본적으로 인터넷과 디지털 미디어의 발달이 깔려있다. 그러면 오늘날의 환경에서 대중매체는 어떠한 고민을 하고 있는가? 먼저,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지금의 디지털 환경에서 기준으로 삼을 보편감각이 무엇인지에 관한 고민이 나왔다. 미술 작품을 만들 때도 3D 툴이 사용되고, 웹툰의 배경은 AI가 그리며, 프로그래밍 개념 없이도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시대이기에 오늘날에는 ‘디지털’이나 ‘인터넷’이라는 단어가 특별하지 않게 되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인터넷 환경이 기성 미디어와 다르게 검열이 없고 자유롭고 해방적인 공간으로 인식되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의미 부여가 없어졌으며 일상적인 공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구든 만들 수 있다는 말은 누구든 영향력을 선점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게이트 키핑’ 역할을 하던 의사결정권자가 없어진 이후 이 영향력은 시장의 선택을 긴급하게 따라간다. 가령, 웹소설 사이트의 경우, 누군가의 이혼 기사가 뜨면 다음 날 랭킹에 ‘이혼한 뒤 OO했다’, ‘OO하고 이혼했다’ 등의 제목이 올라오고, 관세 전쟁 기사가 뜨면 ‘전생했더니 트럼프가 된 건에 대하여’ 등의 제목이 올라온다고 한다. 이에 이종범 작가는 “디지털 리터러시를 비롯해서 직업 윤리, 창작 윤리 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는 고민을 이야기했다.
수용자의 관점에서는 콘텐츠 수용의 다양성에 관한 이야기가 언급되었다. 영화계는 처음에 쇼츠로 영화 홍보가 되기 시작했을 때 이를 반겼다고 한다. 그러나 쇼츠의 영상이 미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보지 않게 만들면서 업계는 유튜브를 단속하기 시작했다. 개그맨 김경식은 <출발! 비디오 여행>과 같은 영상들이 영화의 희노애락을 담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시청 방식의 변화가 시대적 변화일 것이라 이야기했다. 게임 역시 마찬가지이다. 기존에는 ‘게임 플레이’라는 것이 컴퓨터나 플스 앞에 앉아서 직접 게임을 하는 것이었지만, 유튜브 게임 스트리밍이 나오면서 직접 게임을 하지 않아도 해당 게임을 했다고 인식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러한 행위를 두고 실제로 게임을 한 것인지 아닌지 싸움이 발생하지만, 이경혁 편집장은 이 싸움 자체를 주목했다. 이러한 싸움이 생긴다는 사실 자체가, 게임을 즐긴다는 방식에 다양성이 생겼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대중매체가 발전하면서 변한 것은 환경이나 매체의 속성만이 아니다. 얼핏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던 것 같은 각 매체의 경계는 이미 흐려졌고, 이제는 서로의 영향을 쉽게 주고 받는다. 게임 엔진을 통해 미술과 웹툰을 만들기도 하고, 최근에는 국내에서 머시니마 영화제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콘텐츠 자체로 보아도 <나 혼자만 레벨업>처럼, 웹소설이 웹툰이 되고, 웹툰이 드라마가 되며, 게임이 되는 시대이다. 현업에 있는 발표자들 역시 이를 당연한 시대의 변화로 인식하고 있었다. 서사성만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체험을 전유시킬 수 있기에, 예술 형식과 예술 형식 사이를 오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오히려 세계를 시각적으로 구조화하는 방식이 바뀌는 조건에 대해 성찰하는 것이 지금 동시대의 미디어 환경에서 중요한 국면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 앞에서 게임은 어떤 대중매체가 될 것이며, 어떤 대중문화를 만들 것인가? 게임 엔진이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구현할 수 있는 드림 엔진이 된 오늘날, 게임이 이끌어갈 한국 대중문화의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나아갈 것인가? 정답은 없지만, 깊은 고민에 다가갈 수 있는 대담회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