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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세미나] 베트남 게임 환경과 무협문학의 관계
고대 중국을 배경으로 한 무술과 영웅담은 문학, 영화, 텔레비전 등 다양한 미디어로 확장되는 무협 이야기를 이루는 근간이 된다. 베트남 현지어로 키엠히엡(kiếm hiệp), 트루옌쯔엉(truyện chưởng)으로 불리는 무협물은 베트남에서 중요한 문화현상으로 자리잡았다. 20세기 초 베트남에 처음 소개된 무협소설은 인쇄매체와 온라인게임을 통해 다양한 역사적 변천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는데, 우리는 이 글에서 오늘날의 베트남 디지털게임이 다루는 무협 콘텐츠가 어떠한 배경 속에서 무협문학으로부터의 유산을 이어받고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나는 초창기의 무협물에 관한 경험이 베트남의 동시대 게임에 미친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생애사적 접근법과 문화적 근접성의 개념을 활용해 연구를 진행했고, 그 결과를 간단하게 정리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 Back [논문세미나] 베트남 게임 환경과 무협문학의 관계 23 GG Vol. 25. 4. 10. 무협물은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문화에 크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판타지 문학의 하위 장르다. 특히 중국 문화권 혹은 중국 문화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Chen, 2009)을 대표하는 장르로 이야기된다. 고대 중국을 배경으로 한 무술과 영웅담은 문학, 영화, 텔레비전 등 다양한 미디어로 확장되는 무협 이야기를 이루는 근간이 된다. 베트남 현지어로 키엠히엡(kiếm hiệp), 트루옌쯔엉(truyện chưởng)으로 불리는 무협물은 베트남에서 중요한 문화현상으로 자리잡았다. 20세기 초 베트남에 처음 소개된 무협소설은 인쇄매체와 온라인게임을 통해 다양한 역사적 변천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는데, 우리는 이 글에서 오늘날의 베트남 디지털게임이 다루는 무협 콘텐츠가 어떠한 배경 속에서 무협문학으로부터의 유산을 이어받고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나는 초창기의 무협물에 관한 경험이 베트남의 동시대 게임에 미친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생애사적 접근법과 문화적 근접성의 개념을 활용해 연구를 진행했고, 그 결과를 간단하게 정리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베트남 무협의 초창기 영향력 베트남 무협 소설의 뿌리는 처음 베트남 독자들이 중국 무협소설을 경험한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 작품들은 무술 소재에 유교적 이상, 역사 소설을 결합한 전통적Oldschool(Hamm, 2005) 중국 무협문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아온 편이었다. 베트남 작가들은 무협물을 베트남 현지 상황에 맞게 각색하기 시작했고, 종종 베트남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룩밧( lục bát) [1] 구절과 같은 베트남 문학의 형식을 사용하기도 했다. 초창기 베트남의 무협물들은 중국 무협의 전통으로부터 강하게 영향을 받았지만, 동시에 로맨스 서사와 같은 프랑스 문학의 요소로부터도 영향받은 바 있어 중국 작품에 비해 보다 말랑말랑한 구성을 가지고 있었다(Phan. 1998). 그러나 1954년 베트남이 남북으로 분단된 이후 정치적 변화를 겪으며 북베트남에서 무협물은 탄압받게 된다. 북베트남 공산정부는 무협물을 체제전복의 도구이자 자본주의적 퇴폐의 상징으로 간주했고, 동시에 이를 해로운 외세의 영향이라고 보았다(Linh 외, 1977).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협물은 남베트남에서 여전히 번성했으며, 특히 홍콩과 대만에서 진용(김용), 량유성, 우롱성, 니광, 구롱과 같은 새로운 유형의 무협작가들이 등장하면서 베트남 대중문화의 한 축을 차지하기 시작했다(Vu, 2015). 베트남 무협물은 1975년 사이공(현 호치민)에서 북베트남이 승리를 거둔 이후 정부 당국으로부터의 지속적인 적대감에 직면했다. 북베트남 당국이 무협 서적을 전면 금지한 이후, 북베트남 사람들은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 무협 서적을 돌려 읽기 시작했다. 출판 및 유통이 금지되어 불법으로 수입될 수 밖에 없었던 사본들이 시장 전체로 조용히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무협물의 매력은 오히려 더 커져갔다(응우엔 통, 2018). 베트남 정부는 1990년대 경제개혁과 미국의 금수조치가 종료되면서부터 무협물 제작과 유통에 대한 접근방식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무협 관련 자료들은 국영 출판사에서 제작하는 합법적 번역출판물들을 통해 다시금 공개적인 자리에서의 대중적 인기를 구가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 인터넷이 등장하면서부터는 디지털 자료, 영화 콘텐츠, 게임 등을 통해 무협물을 접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들도 나타나게 되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온라인게임에서의 무협 인터넷 기술이 베트남에서 본격화하면서부터는 온라인 게임 플랫폼을 통해 무협물은 다시한번 부각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 온라인게임 Võ Lâm Truyền Kỳ(The Swordsman )와 Cửu Long Tranh Bá(9Dragons ) 가 베트남 전역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플레이어들은 김용과 구룡의 작품에 등장했던 무술의 테마와 영웅들의 컨셉을 가져온 이 게임을 통해 무협의 무한한 세계를 경험했다. 무협 온라인 게임은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무협소설(Ge, 2017)에 묘사된 복잡한 세계를 탐험하는 무협무술가 당사자로서의 이야기를 경험하게끔 함으로써 개별 플레이어들의 협력이 가능한 장을 조성했다. * 2000년대 베트남 무협 온라인게임 Võ Lâm Truyền Kỳ 베트남에서의 온라인 무협 게임 붐의 배경에는 플레이어들의 향수가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쳤다. 1980년대, 1990년대에 태어난 이들 무협 게임 플레이어들은 어린 시절부터 소설과 TV 프로그램, 영화 등을 통해 무협물에 익숙한 세대였기 때문이었다. 무협 게임 플레이는 이들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어린 시절 경험했던 무협물의 이야기와 캐릭터에 대해 가진 환상과 정서적 유대감을 다시금 일깨우며 유지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Chan, 2006). 이러한 현상은 생애 초기의 경험이 이후의 행동과 선호도를 형성한다는 인생과정 이론과 일치한다. 베트남 게이머들의 경우, 무협물에 대한 노출이 게임 취향을 형성하는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베트남 – 중국 사이의 영토 분쟁으로 인해 반중 감정이 고조되는 상황에서도 베트남 게이머들은 정치적 갈등과 문화적 감상을 구분했고, 무협물을 비롯한 중국 미디어 콘텐츠들을 계속 수용하고 있었다. 향수는 베트남 전역에서 무협 게임의 인기를 유지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무협 관련 콘텐츠들은 베트남과 중국 사이에 존재하는 수천년 이상 이어진 문화적 연관성을 토대로 베트남 플레이어들을 매료시킨다. 양국 간의 역사적 연결은 양국 정부가 중국 미디어 콘텐츠를 베트남 이용자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함과 동시에 문학 및 게임 등에서의 무협 소재를 베트남 이용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유지하는 가교로서 작용한다(Yoo et al, 2014). 베트남과 중국 사이의 영유권 분쟁으로 인한 정치적 긴장은 베트남 게이머들이 중국산 무협 게임 플레이를 즐기는 것을 막지는 못했는데, 이는 베트남 게이머들이 정치적 문제와 문화적 소비행동을 분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Kinh Hoa, 2018). 외국 미디어의 수용에 영향을 미치는 두 문화 간의 유사성 정도를 의미하는 문화적 근접성 개념 또한 베트남에서의 무협 게임 인기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개념이다. 문화적 근접성은 베트남 시장에서 무협 게임의 수용을 촉진했으며, 플레이어는 충성심과 명예, 무술 철학과 같은 무협을 통해 공유된 문화적 주제와 가치를 반영하는 게임에 더욱 강한 유대감을 느꼈다(Straubhaar, 1991). 베트남 무협 게임 시장은 아시아 게임사들의 효과적인 홍보 전략을 통한 지속적인 사업전략적 선택 덕에 갈수록 번창하는 중이다. 게임 프랜차이즈로서의 무협물이 가진 인기에 힘입어 베트남 게임 개발사들은 무협을 주제로 한 게임들을 자사의 주요 제품 라인으로 채택하게 되었다. 이들 업체는 보다 저렴한 라이선스 비용으로 이미 무협 게임을 좋아하는 베트남 이용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중국으로부터 무협 게임 수입에 많은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게임사가 무협물을 테마로 선택하는 주요한 이유로 이들 무협물이 베트남 플레이어들의 문화적 선호도를 충분히 충족하고 있고, 무협물 콘텐츠에 대한 기존의 시장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MIC, 2019a). 이는 통계상으로도 드러난다. 베트남 정보통신부(MIC, 2019a)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8년 사이에 308개의 온라인 게임이 PC 혹은 모바일 플랫폼을 통해 베트남 시장에 진출했으며, 이들 중 95%는 무협물 혹은 무협 컨셉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2019년 상반기에 수입된 게임 중에서는 90%가 무협 컨셉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MIC, 2019b). 베트남 문화부 웹사이트에 게시된 최신 보고서(MIC, 2024)에서도 무협 게임의 수입 우세가 뚜렷하게 기록되는 것으로 볼 때 무협물의 강세는 여전히 지속되는 중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와 같은 인기 MOBA게임이 무협게임의 소비자층을 줄이지 않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 한데, 다른 장르의 유행에도 불구하고 무협게임의 팬층 자체는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맥락에서의 베트남 무협물 무협물은 베트남에서 큰 성공을 거둔 반면, 서구 시장에서는 그다지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중국 철학, 무술과 같은 소재들이 강조된 무협물 속의 문화적, 서사적 뉘앙스가 관련 배경지식이 없는 서양인들에게는 생소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무협물 서사는 중국 문화의 깊은 곳까지를 파고들기 때문에 서구권 수용자들에게 무협은 이해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Frisch, 2018). 실제로 무협물을 영어로 번역할 때 서양 언어에는 각각의 무협 개념에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용어가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 또한 무협물이 서구권에 알려지기에 어려운 또다른 요소로 작용한다(Earnshaw, 2018). 그 결과 무협 기반 게임은 베트남을 비롯한 동아시아, 동남아시아에서 보여준 성공과 달리 서구권에서는 상대적으로 틈새 시장에 머무는 형태가 되었다. 서양과 동양의 게임문화 간 차이는 무협 게임의 차별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서양 게임들은 종종 군사화된 남성성, 전략 기반의 전쟁, 식민지 서사를 강조하는 반면, 동아시아 게임에서는 판타지와 신화, 무술적 전통이 우선시되기 때문이다. 시적 기교에 가까운 무술의 기교나 무협물에서 활용하는 역사적 우화와 같은 간접적 뉘앙스들은 서구 이용자들의 무협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요소다. 무협 서사가 가진 복잡성과 어려움은 무협 게임에도 영향을 미쳐, 서구권을 포함한 글로벌로의 진출이 제한되며 무협 게임은 주로 동아시아 특유의 문화현상으로서의 위상이 강화되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에서의 무협 게임은 문학과 영화 등을 통해 다양하게 각색된 장르를 기반으로 이루어진 친화도 덕분에 게임업계에서는 지속적인 활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베트남의 게임산업 발전에 대한 열망 또한 무협물의 영향을 받았다. 투언 티엔 키엠(Thuận Thiên Kiếm) [2] 과 같은 베트남산 무협 게임을 제작하려는 시도는 국가의 역사와 신화를 게임 서사에 통합하려는 열망을 반영한다. 하지만 높은 제작비용, 각종 규제, 수입 게임과의 경쟁과 같은 문제는 베트남 내부에서 개발하는 무협 기반 게임들의 성공을 가로막고 있다. 그 결과, 베트남 게임업체들은 독창적인 게임 개발보다는 외산(중국산) 게임의 현지화에 보다 집중하였고, 이로 인해 무협물의 상당 부분은 중국산 무협 게임이 차지하게 되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중국과 베트남 도서 시장에는 셴샤(판타지), 옌칭(로맨스), 보이러브, 툼레이더와 같은 새로운 장르들이 등장하면서 무협소설의 출판량과 독자가 감소하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무협소설이라는 장르 자체는 여전히 베트남 그리고 세계적인 규모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는 중이다. 고품질 게임을 만들 수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고자 한 중국 게임 스튜디오들의 노력 덕택에 무협물 게임은 전 세계, 그리고 특히 베트남에서 무협의 본질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으로 보인다. <나라카: 블레이드포인트>는 무협에서 영감을 얻은 블록버스터 게임을 개발하려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웠고, <검은 신화: 오공>은 그러한 열망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24엔터테인먼트의 게임개발자들은 배틀로얄 규칙에 양식화된 무술전투 메커니즘을 결합하여 <나라카: 블레이드포인트>를 제작했다. 2021년에 출시된 이 게임은 가 성공적으로 수행해 낸 서바이벌 개념을 따라가는 대담한 시도였다. <나라카>는 무협물이 가진 개방형의 미학을 속도감 넘치는 경쟁모드로 전환하면서 무협 게임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바 있다. 멀티플레이어 기반의 온라인게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 속에서 <나라카>는 중력을 거스르는 이동기술, 마샬 ‘아츠’ 로서의 검술, 신화적 요소와 같은 무협 게임의 기본적인 특징을 고스란히 유지했다. 중국과 서구시장 모두에서 이뤄낸 <나라카>의 성과는 무협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게임이 전통적 문화적 기반과 함께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증명한다(Obedkov, 2024) 한편 <검은신화: 오공>은 매혹적인 그래픽 속에서 중국 고전 <서유기>를 재해석해낸 신화적 이미지가 훌륭하게 연출되며 큰 인기를 모았다. <서유기>의 여정을 따라가는 주인공 캐릭터는 봉술이라는 무술의 전문가로 묘사되면서 무협 요소를 크게 차용했다. <오공>의 개발자들은 언리얼 5를 사용하면서 강한 몰입감과 영화적 영상연출을 동시에 일궈냈고, 이러한 접근방식은 무협 미디어가 발전하는 기술을 통해 어떻게 무협물의 국제화를 달성하고 기존의 수용자층을 넘어서는 범주 확장을 이뤄내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도 무협물 본연의 스토리텔링을 유지함으로써 <서유기>에 익숙한 이용자 뿐 아니라 서구권의 수많은 초심자들까지도 플레이어 풀에 끌어들이는지를 보여주었다(Meng, 2025). 결론 베트남 무협의 역사는 문학과 기술미디어, 디지털 엔터테인먼트가 갖는 복잡한 관계를 잘 보여준다. 인쇄소설에서 시작된 무협은 온라인게임의 디지털 전환에 이르기까지 베트남 문화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유지해 왔다. 향수와 문화적 근접성은 중국발 무협 게임이 베트남에서 지속적인 인기를 가져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으며, 많은 플레이어들은 무협물을 일찌감치 다른 미디어를 통해 접해 왔다는 배경 속에 무협 장르를 게임을 통해서도 지속적으로 즐길 수 있었다. 베트남에서 무협 게임이 달성한 성공은 이 장르의 지속적인 매력을 인식한 베트남 게임사들의 비즈니스 전략에 힘입은 바 또한 크다. 다른 게임장르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무협 장르는 베트남 게임산업에서 여전히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유산은 베트남에서 무협소설이 문화적 중요성을 유지함과 동시에 변화하는 미디어 형식에 적응할 수 있을 만큼의 지속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을 입증하는 증거다. <나라카: 블레이드포인트> 와 <검은신화: 오공>의 성공은 무협 장르가 전세계 게임업계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는 장르이며, 게임만 잘 나온다면 동서양의 문화적 경계도 모호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이 게임들은 현대적인 게임 플레이로부터의 요구에 적응하면서 전통적인 장르가 현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무협 장르의 지속가능성을 증명한다. 참고문헌 Chan,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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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ffects of television viewing, cultural proximity, and ethnocentrism on country image . Social Behavior and Personality, 42 (1), 89–96. https://doi.org/10.2224/sbp.2014.42.1.89 [1] 역자 주: 六八. 6음절 연과 8음절 연을 연이어 사용하는 베트남의 시 형태. 중국 고전문학에서 중간중간 분위기 전환을 위해 시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장면을 베트남 현지 분위기로 맞출 때 사용했음을 나타낸다. [2] 번역자 주: 順天劍, 순천검. 명나라와 싸워 베트남을 명의 지배로부터 독립시킨 Lê Lợi 왕이 가졌다고 알려진 전설의 검이다. Tags: 베트남, 무협, 온라인게임, MMORPG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베트남 국립대학교 학제 간 과학 및 예술 학교) 판꽝안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그려진 힘, 그리는 힘, 그림의 힘: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와 이미지, 그리고 리얼리즘
클레르 옵스퀴르〉는 그 제목부터 미술과 연관성이 명확하다. 잘 알려져 있듯 클레르 옵스퀴르(Clair-obscur)는 이탈리아어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를 프랑스어로 번역한 것이다. 키아로스쿠로는 chiaro(밝은)와 oscuro(어두운)의 합성어로 빛과 어둠의 대비를 극적으로 사용하는 미술 기법을 말한다. 이탈리아 맥락에서는 카라바조(Caravaggio, 1571–1610)로 대표되는 바로크 양식의 연출을 꼽을 수 있고, 프랑스어인 클레르 옵스퀴르로 번역해서는 촛불 그림으로 유명한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 1593–1652) 같은 경우를 떠올릴 수 있다. < Back 24 GG Vol. 25.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Taehyun Kwon Writes and plans a range of projects. Works in the art world, yet is always more drawn to things not readily regarded as art. Explores how things outside art might be thought through as objects within it. Continues researching with weight placed on a perspective that grasps the political as a matter of the sensory. (7000eichen@gmail.com )
- 눈 먼 돈 사냥: 멈춰버린 메타버스와 살아있는 메타버스 진흥법
그 시절의 보도자료 중 대부분은 메타버스-NFT&P2E 소식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모든 기업이 '메타버스'를 선언했다. 게임사는 물론이고 통신사, 제조사, 심지어 은행까지 너도나도 메타버스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그들의 보도자료는 놀랍도록 비슷했다. 실체가 모호한 가상공간 그림 몇 장에 'MOU 체결', '생태계 확장', '미래 선도' 같은 단어들이 버무려져 있었다. 블록체인 기술은 메타버스를 완성할 열쇠처럼 여겨졌다. < Back 눈 먼 돈 사냥: 멈춰버린 메타버스와 살아있는 메타버스 진흥법 25 GG Vol. 25. 8. 10. 지금으로부터 대략 5년 전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자. 코로나19 팬데믹 탓에 모두가 집 밖을 나가기 꺼리던 시절, 필자가 재직 중인 회사에서도 유례없는 재택근무를 실시했다. 콩나물시루처럼 사람으로 가득 찬 출근길 지하철을 탈 수 없다니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하릴없이 침대에 누워 보도자료를 읽던 때였다. 필자는 또렷이 기억한다. 잠옷 바지에 와이셔츠를 챙겨 입고 화상인터뷰를 했던 나날들을. 공교롭게도 그 시절에는 읽을 만한 보도자료가 그리 많지 않았다. 야외활동 대신 집에서 게임을 즐기라는 세계보건기구의 조언 덕인지 게임 유저는 날로 늘어갔고 매출도 잘 나왔지만, 모두가 원격으로 일을 해야 하는 시기여서 정작 다룰 만한 신작 소식은 드물었다. 여러 주요 기업들은 개발자들에게 파격적인 연봉 인상을 제안하면서 화제가 됐고, '단군 이래 최대 연봉 인상 직종'이라는 농담까지 돌았다. 그 시절의 보도자료 중 대부분은 메타버스-NFT&P2E 소식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모든 기업이 '메타버스'를 선언했다. 게임사는 물론이고 통신사, 제조사, 심지어 은행까지 너도나도 메타버스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그들의 보도자료는 놀랍도록 비슷했다. 실체가 모호한 가상공간 그림 몇 장에 'MOU 체결', '생태계 확장', '미래 선도' 같은 단어들이 버무려져 있었다. 블록체인 기술은 메타버스를 완성할 열쇠처럼 여겨졌다. 과문한 필자의 눈에는 대단히 기이한 광경이었다. 수십 년간 'MMORPG' 또는 '가상세계' 내지는 그냥 '게임'이라고 불러온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메타버스'라는 이름표를 달고 미래를 구원할 신개념으로 등장한 것이다. 필자와 비슷한 공감대를 가진 이들이 결코 적지 않았으나, 이 광풍은 수년간 꺼질 줄 몰랐다. 돌이켜보면 좋지 않은 어감의 게임 대신에 '메타버스'라는 비전을 판매하는 것이 더 쉽고 빠르게 투자를 유치하는 길이었다. 그리고 이 소란스러운 시장의 움직임을, 정치권에서는 '새로운 기회'의 신호로 읽었다. 기업들이 열광하고 언론이 떠드는 이 '메타버스'라는 것을 국가적 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조급증이 퍼져 나갔다. 2025년, 지금 미디어에서 메타버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극히 줄어들었다. 그때 메타버스가 온다던 분들은 지금 인공지능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당혹스럽다. 물론 인공지능과 메타버스의 결합을 추구할 수 있을 일이지만, 이렇게도 하나의 개념이 반짝였다가 수그러들 수 있는 것인지. 하지만 지금부터 필자가 하려는 이야기는 제법 씁쓸하다. 기술 유행어에 편승한 보여주기식 정책이 어떻게 산업 생태계를 왜곡하고 '눈먼 돈'의 향연을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소극이자 비극이다. 메타버스의 홍보에는 이런 이미지가 왕왕 쓰였다. (출처: 블록체인어스) # 눈 먼 돈 사냥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기왕 과거로 온 김에 시계를 조금만 더 돌려보자. '4차 산업혁명'이라는 유행어가 널리 유포되던 2016년 10월, 정부는 VR을 '9대 국가전략 프로젝트' 중 하나로 선정하며 본격적인 육성에 나섰다. 2020년까지 VR 전문기업 50개 육성, 1조 원 규모의 신시장 창출과 같은 구체적인 목표가 제시됐다. 언론은 연일 VR이 게임과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국방, 의료,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쏟아냈다. 이에 발맞춰 과기정통부와 문체부는 수천억 원의 R&D 및 콘텐츠 제작 지원 예산을 편성했다. 전국의 지자체들은 앞다퉈 VR 체험관을 구축하며 미래 산업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듯한 모양새를 취했다. 예산 편성 소식에 전국의 연구자들과 기업도 발빠르게 반응했다. '다누리 엔진'도 그중 하나였다. 2015년부터 7년간, 357억 원의 세금이 투입된 국책 사업이다. 국산 VR 엔진과 저작도구를 개발해 외산 기술에 대한 종속을 끊고, 'K-VR' 생태계를 자립시키겠다는 것을 목표로 사업을 벌여왔다. 그러나 오늘날 이 VR 엔진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며, 실제로 현장에서 사용하는 사람도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 6월,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의 감사 결과로 이 모든 것은 사기극이었음이 드러났다. 감사를 해봤더니 연구를 주관하는 기관이었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실제로 엔진을 개발하지 않았다. 이들이 일을 맡긴 민간 기업이 가지고 있던 외산 엔진(아마 두 엔진 중 하나일 것이다)의 소스코드를 거의 그대로 복사해 '다누리'라는 이름만 붙여놓고는 "자체 개발한 국산 엔진"이라며 허위로 보고했다. 이뿐 아니라 이 엔진은 실사용이 불가능한 미완성 상태였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책임연구원은 자신의 제자가 창업한 업체에 7억 원 규모의 용역을 몰아주고, 공동연구기관으로부터 1천만 원의 현금을 받는 등 개인 비리까지 저지른 정황이 포착됐다. 국산화라는 대의명분 아래, 기술 사기와 부패가 공공연하게 벌어진 것이다. 이 '다누리 엔진' 사건은 뒤늦게 알려져 충격을 주었으나 어떻게 보면 수면 위로 드러난 하나의 관행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서 특별하거나 일회적인 일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모습은 필자가 반복적으로 목격해 온, 기술 유행을 좇는 '눈먼 예산'이 만들어내는 왜곡된 산업 생태계의 단면에 불과하다. 팬데믹 시절, 필자가 메일로 받은 무수히 많은 보도자료는 대체로 그 유행을 만들어내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었다. 눈 먼 돈 사냥 생태계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필자가 지켜본 바에 따르면 ‘눈먼 돈 사냥’에는 일종의 패턴이 있다. — 과제가 뜰 수 있도록 외곽에서 부채질을 한다. VR나 메타버스는 거기에 동원된 중요한 개념어였다. 공무원들이 설득되고 정부 과제 공고가 뜬다. 이때 일을 쉽게 만들기 위해 산학협력단 또는 컨소시엄을 조직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사업계획서에는 온갖 유행어가 삽입된다. 때로는 내부자의 비호 아래 기술도 경험도 없는 업체가 수억 원의 용역을 수주하기도 한다. 이렇게 선정된 기업들은 단기 결과물 납품에만 집중할 뿐, 지속적인 서비스 운영이나 고도화에는 관심이 없다. 만들어서 납품하면 시쳇말로 ‘땡’이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인력은 흩어지고, 결과물은 방치된다. 전국적으로, 장기적으로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 지금부터 하나씩 그 예를 불러드리겠다. 오세훈 시장이 65억 원을 투입하고도 하루 이용자 수백 명을 넘기지 못한 채 사라진 <메타버스 서울>, 10억 원을 들여 만들었으나 조악한 품질로 외면받은 <잼버리 메타버스>와 새만금의 실물 체험관, 통영 VR존, 광주 VR/AR 제작거점센터, <메타버스 대구>, <부산 메타버스>, <전주·익산 도서관 메타버스>, <강원 청소년 동계올림픽 메타버스>, 이밖에 셀 수 없이 많은 각종 VR, 메타버스 제작 지도 자격증과 '가상현실 콘텐츠 제작지원' 사업들… 정부의 VR 사업 진흥 정책으로 본격화된 업계의 관행은 코로나19라는 새로운 흐름을 타고 메타버스라는 유행을 만나게 됐다. 수십억 규모의 메타버스 지원 사업이 전국적으로 진행되었다. 팬데믹이 끝난 지금도 활발하게 서비스되는 메타버스는 사실상 없다. 돈만 쓰고 활용도가 지극히 낮은 결과물만 남게 된 것이다. 소프트웨어로 제작된 프로젝트는 소리 소문없이 사라져 이제 그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다누리 엔진이라는 것이 있었다. 2016년 정부는 VR을 미래 먹거리로 제시했지만,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다누리 엔진은 특별한 먹거리를 만들어주지 못했다. (출처: 다누리 엔진) # 후일담이 되었어야 할 이야기 ‘가상현실’을 만들려는 움직임도 이제는 잠잠해졌다. 우리는 일상을 회복했고, 메타버스는 빠르게 잊혀져 갔다. 팬데믹도, 메타버스 유행도 끝났지만, 지금은 법이 남게 됐다. 후일담으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른바 '메타버스 진흥법'이 통과되어 법전에 명문화됐다. 미증유의 아이러니다. 2024년 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같은 달 8월 시행을 시작한 가상융합산업 진흥법은 전 세계 최초의 메타버스 진흥 법률이다. 과기정통부 장관으로 하여금 3년마다 '가상융합산업 진흥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관련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전담 기관을 지정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또한, '우선 허용, 사후 규제' 원칙을 적용해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에 대해 법령이 없거나 불분명할 경우, 일단 허용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나중에 규제하는 원칙을 명문화했다. 또 정부 주도의 직접 규제보다는 민간 중심 자율규제를 지원하는 체계를 구성했다. 이 법은 논의 단계에서부터 현행 '게임산업법'과의 중복 및 충돌 문제를 안고 있었다. 문체부는 메타버스 안에 게임이 있다면 당연히 게임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펼쳤다. <제페토>와 <이프랜드> 등의 메타버스가 등급분류를 피하게 되고, P2E의 뒷문을 열어버리면 또 다른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네이버제트를 포함한 업계와 과기부는 메타버스를 게임과 다른 새로운 산업으로 보고, 게임법의 엄격한 규제를 피하려 했다. 결국 접점은 '메타버스 안에 게임이 있다면 게임법의 적용을 받는다'라는 애매한 지점에 형성되었고, 혼란이 해결되기 전에 네이버제트를 제외한 다수의 사업자들이 메타버스에서 한 발 빼면서 지금의 애매한 형국이 나타나게 됐다. 업계는 메타버스가 무엇인지 설명하다가, 자신이 설명하려던 사업을 접어버렸고, 법은 남아서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꼴이 되었다. 과기부 장관의 기본계획 정도가 거의 유일한 쟁점인데, 정부가 의지가 있다면 전문인력 양성과 연구 개발 기반 조성을 위한 국책사업을 펼칠 수 있다. 그동안 필자는 이 국책사업이라는 것이 어떻게 진행됐는지에 관해서 길게 설명해드렸다. 여기서는 그만 이야기하겠다. 지난 상반기, 서울회생법원은 메타버스 플랫폼 개발사 컬러버스에 파산을 선고했다. 컬러버스는 카카오가 주도하던 프로젝트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사라졌다. SKT의 <이프렌드>도 조용히 모습을 감추었다. 국내 주요 게임사들의 여러 메타버스 프로젝트도 거의 빛을 보지 못했다. 미래를 예견하기는 어려운 일이나, 지금까지의 메타버스는 명백히 실패했다. 과거를 점검하고 미래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포스트모템이나 백서라도 잘 남아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업자들은 그런 일도 하지 않았다. 공공의 지원사업은 물론이요 사기업의 메타버스가 얼마나 근시안적인 프로젝트였는지 보여주는 방증이다. 하긴 페이스북도 메타로 사명을 바꾸었으니 국내 기업만 탓할 일은 아니다. 혹자는 생성형 인공지능과 메타버스의 조합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 예견했으나 그 물꼬도 좀처럼 트이지 않고 있다. 화려한 구호와 넘치는 지원사업 대신에 냉철한 평가와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 모두가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한국형 인공지능을 다누리 엔진처럼 만들 수는 없을 일 아닌가. 정부가 추진 중인 가상융합세계 분야 규제 개선방안 도출 과정표. 과기정통부는 아직 이 계획에 대해 입장을 업데이트하지 않고 있다. (출처: 과기정통부) Tags: 게임산업, 정책, 공공기관, 메타버스, 산업진흥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김재석 8년 동안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서브컬처 스타트업에서 대외협력을 맡고 있다.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 게임커뮤니티가 걸어온 지난 25년과 오늘
한 세기를 농구 한 경기로 본다면 이제 1쿼터의 막판이다. 쿼터나 25년이라고 하면 엄청 긴 세월은 아닌 것 같지만 사반세기로 지칭해 세기 개념이 오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묵직함이 있다. 한 쿼터도 긴 시간이고 역사의 한 두께다. < Back 게임커뮤니티가 걸어온 지난 25년과 오늘 23 GG Vol. 25. 4. 10. 한 세기를 농구 한 경기로 본다면 이제 1쿼터의 막판이다. 쿼터나 25년이라고 하면 엄청 긴 세월은 아닌 것 같지만 사반세기로 지칭해 세기 개념이 오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묵직함이 있다. 한 쿼터도 긴 시간이고 역사의 한 두께다. 그리고 사람. 두세 자릿수 이상의 사람들이 공통점을 갖고 모인 커뮤니티는 개체수의 조합으로 나올 수 있는 수만큼의 역사가 만들어진다. 이 역사가 사반세기 쌓이면서 이 또한 방대해진다. 가끔은 역사의 요약을 감히 할 수 있는가 겸허함이 들긴 하지만 그 두껍고 넓은 영토를 정리하는 일은 필요할 것이다. 공동체, 커뮤니티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자 목적은 자기 방위다. 부족과 국가는 구성원들을 굶주림과 죽음에서 보호하는 기능이 최적이다. 종교는 그 기능을 위한 질서화 기능과 내면의 평안 기능을 제공하는 커뮤니티다. 반면 동호회를 비롯한 커뮤니티는 방위 기능이 거의 없고 대신 정보와 정서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기능이 더 중요하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경우엔 물리적 모임이 아니기 때문에 방위 기능은 심리적인 것 외에는 없다시피 하다. 그래서 온라인 커뮤니티의 존재 가치이자 1차적 기능은 정보 제공 기능과 정서적 연대 기능이 된다. 그리고 정서적 연대 또한 정보를 나누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그렇게 느슨한 형태의 부족을 형성한 것이 지난 25년 온라인 커뮤니티의 요약이다. 커뮤니티가 성립하면 그 내부에서는 두 가지의 길항 관계가 형성된다. 첫째는 정보 생산 주체가 누구인가다. 지배자, 엘리트 등의 상부에서 유통하는 경우와 민중, 대중 등의 집단 지성이 유통하는 경우로 나뉜다. 대부분의 커뮤니티에서는 두 가지가 모두 작동한다. 한국의 게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이 현상이 나타났는데, 외국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번역하여 가져오고 직접 생산도 하는 소위 ‘기자’와, 비슷한 일을 하지만 커뮤니티 운영 그룹은 아닌 ‘사용자’의 2중 구조다. 운영 그룹에 속하는 생산자들을 기자로 불렀다는 점에서 이는 이 집단이 언론인가 커뮤니티인가를 가르는 정체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정체성의 측면에서 언론 기능에 치우치기를 선택한 대표적 예시가 디스이즈게임이다. 두 번째 길항 관계는 이 운영권에 있다. 커뮤니티가 존속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지불하는 집단, 국가라면 정부다. 운영 관리를 하는 집단은 내부의 질서도 잡아야 하고 그래서 규칙을 제정하여 강제한다. 이 집행 행위를 운영 집단이 직접 하는가와 사용자의 자율이나 사용자 일부에게 위임하는가의 경우가 있다. ‘운영자’와 ‘알바’의 페어다. 후자의 경우엔 서술의 순서를 뒤집으면 그게 곧 민주주의인데, 현실 정치에서도 질서와 자유는 길항 관계로 국가를 조직해간다. 중요한 것은 한계선의 존재인데, 자유가 선을 넘으면 혼돈이 되고 질서가 선을 넘으면 경직이 된다. 0. 20세기, 최초의 게임 커뮤니티 게임 커뮤니티가 온라인에 자리잡기 이전에도 같은 기능을 하는 커뮤니티 혹은 유사 커뮤니티는 있었다. 게임 잡지다. 90년대의 게임매거진, 게임라인 등의 게임 전문 매거진은 게임 정보를 번역하고 게임을 공략하는 기자와 전문 필진을 고용해 컨텐츠를 만들었다. 독자들은 편집부에 편지를 보내는 형식으로 2차 컨텐츠를 만들고 교류를 했는데 특히 게임라인과 그 후신 게이머즈는 동호회의 창작 합평 같은 분위기의 독자 편지 코너를 갖고 있었다. * 단순한 Q&A 외에도 2차 창작물의 공유, 나아가서는 독자 자신과 담당자의 캐릭터성 만담이 이뤄지기도 하는 대화성 코너였다. 비슷한 시기에 PC통신 서비스가 생기면서 게시판을 기반으로 하는 게임 동호회들이 생겨났고, 이것이 곧바로 꽃핀 인터넷 환경의 웹 게시판으로 옮겨갔다. 정보를 번역/생산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는 동호회는 인터넷 환경이 일반화되면서 디시인사이드의 갤러리로 자리를 옮기거나 플레이포럼, 루리웹 같은 팬 기반의 정보 공유 사이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기본 구조는 다들 비슷했다. 게시판 여럿이 병렬로 모인 게시판 집합체의 성격이었는데 이런 표준의 대표는 디시인사이드였다. * 디시인사이드 중세게임 갤러리, 속칭 중갤의 화면 질서 한계선을 높게 두었고, 생산을 사용자에게 일임했고 관리 또한 사용자 중 일부로 대체했다는 의혹도 있다. 게임뿐 아니라 수많은 관심사의 게시판들이 병렬로 모여 있고, 그 수의 게시판을 관리하려면 새로운 게시판이 생길 때마다 추가 인력이 필요하다. 디시인사이드는 기본적으로 직원이 관리를 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방임 정책이었다. 질서의 한계선이 자율에 가깝다 보니 한계가 매우 느슨한 무제한적 자유가 허용되었다. 반면 소속감은 매우 크다. 맹점은 생산되는 정보도, 정보 생산에 기여하지 않는 사용자도 많아. 큐레이팅 기능이 매우 떨어졌고 정치적 정서는 종종 극단으로 흘러갔다는 점이다. 게임 게시판의 대표격인 중세게임 마이너 갤러리가 그러한데, 이 경우엔 후일 악명 높은 일간베스트의 게임 게시판 사용자들을 흡수하기도 했다. 이러한 디시인사이드의 특징, 병렬화/파편화된 게시판 체제와 높은 자유도는 일간베스트, 인벤 등의 후계 주자들이 참고하는 지점이 되어 디시인사이드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대전제로서 존재한다. 1. 00년대 시작, 웹진과 카페 90년대 후반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시기, 정보화 혁명은 커뮤니티를 촉발시켰다. 정보를 번역하고 생산하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모이면서 커뮤니티 운영이 사업 아이템이 될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 프리챌과 디시인사이드를 필두로 한 웹 커뮤니티 시장이 열렸다. 게임만 다루는 커뮤니티 또한 플레이포럼, 루리웹, 그리고 플레이포럼에서 분화된 인벤 등 여러 플랫폼이 사업체 등록을 하면서 판이 시작되었다. 거의 모든 플랫폼의 구조는 디시인사이드에서 온 병렬형 게시판 구조였고, 정보 생산은 기존 정보 번역/생산을 하던 사람들이 기자 혹은 필진이 되어 웹진의 형태를 취했다. 오프라인의 레거시 매거진과 다른 점은 사용자들이 게시판을 기반으로 정보 생산 기여를 한다는 점이었다. 편지보다 훨씬 실시간 소통이 되는 웹의 특성 덕에 기자/필진 외에도 많은 사람이 이런저런 정보를 제보하고, 플레이포럼과 인벤은 이런 컨텐츠를 큐레이팅해 기사 형태로 업로드되어 사이트 첫화면에 이미지 링크도 되었다. 이들은 인기 게임 별로 별도의 하위 사이트를 개설하고 여기에 관련 게시판을 정리해서 넣어두는, 나무뿌리 형태의 계층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가장 붐비는 곳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다루는 와우플포와 와우인벤이었다. 사이트 첫화면이라는 개념이 없는 구성의 디시인사이드와 루리웹은 게시판 상단에 고정글로 올려두는 방식을 택했고, 이후 추천글 목록이라는 별도의 위젯 시스템으로 발전해갔다. 후발주자인 인벤의 2004년 창립 다음 해에 디스이즈게임이 창립했지만, 시작부터 언론 기능에 치중하며 시작했던지라 커뮤니티 기능은 약했다. 이제 시작한 시장에 파란이 없을 수 없다. 시장 형성 직후인 2002년에 선두 주자였던 프리챌이 유료화라는 무리수를 던졌다가 비참하게 사라졌다. 경쟁자였던 포털 사이트가 이 커뮤니티 수요를 대거 흡수했다. 다음, 뒤이어 네이버가 내놓은 카페라는 이름의 커뮤니티 서비스가 대세가 되었고, 각 게임사는 게임 홈페이지에 커뮤니티 게시판을 열어두거나 아예 포털 카페에 팬 카페를 개설했다. 전자의 의도는 게임을 실행하기 위해 홈페이지에 와야 하는 구조로 만들면서, 커뮤니티 기능 또한 홈페이지에서 소화하는 것이다. 웹진이나 포털의 커뮤니티를 사용하면 데이터 수집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커뮤니티의 트래픽을 감당할 수 있는 규모의 개발사가 이 방법을 썼다. 작은 회사는 다음과 네이버로 갔다. 그래도 게임 커뮤니티의 헤게모니는 웹진과 게시판에 있는 형국이 0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오래 가지는 못했으니, 업계가 너무 빨리 커졌다. 게임의 종류가 많아지고 각 게임의 역사도 깊어지면서, 필요 인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해가 바뀌면 인기 온라인 게임이 대여섯 개씩 새로 출현한다. 업계에 돈이 돌고 시장이 커지면서 스탠드얼론 게임도 대작들이 점점 많아진다. 공략 생산과 정보 큐레이팅에 인력을 추가하는 것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었다. 웹진 모델로는 게임 전반의 정보를 유의미하게 다루기가 어려워져 갔다. 결국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플레이포럼은 탈락했다. * 플레이포럼의 개편 이전 UI 디스이즈게임이 언론 기능을 목표로 삼고, 디시인사이드는 무한 자유의 놀이를 하는 도중, 똑같이 팬 기반의 울티마 온라인 정보 사이트로 출발한 플레이포럼은 실패 사례가 되었다. 트리거가 된 사건은 UI 개편의 실패였지만, 이를 전후하여 시장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징후가 나타났다. 생산과 큐레이팅의 주체를 기자로 고집하면서 생산 주기가 점점 늦어지기 시작했다. 커뮤니티 기능을 과감히 포기한 디스이즈게임이나 처음부터 사용자에게 일임했던 디시인사이드/루리웹과 달리 어느 한쪽을 정하지도 균형점을 찾지도 못하고 개편 실패 이후 2012년 12월 31일 서비스를 종료했다. 플레이포럼의 커뮤니티 기능은 플레이포럼에서 파생되어 나온 후발주자인 인벤이 흡수했다. 2. 10년대의 질서, 게시판의 헤게모니 플레이포럼이 사라지면서 정보 생산의 무게추가 사용자들에게로 옮겨갔다. 기자/필진의 숫자도 사용자에게 밀렸지만, 공략과 분석이 업무이기 때문에 하는 사람들이 들이는 시간은 재미이기 때문에 하는 사람들이 들일 수 있는 시간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인벤, 루리웹, 디시인사이드 등에 이미 모여 있는 사람들이 꾸준히 생산하는 정보의 옥석을 가려내는 큐레이팅 기능이 중요해졌다. 인벤은 발 빠르게 각 게임의 담당 팀을 정보 생산 역할에서 큐레이팅 역할로 변신시키면서 변화에 적응했다. 루리웹과 디시인사이드는 초기부터 이미 직원 및 알바에게 게시판 관리 역할, 즉 게시판 큐레이터를 맡기고 있었다. 이후 인벤은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의 강자, 루리웹은 스탠드얼론 게임 커뮤니티의 강자 역할을 하고 있다. * 와우인벤의 첫화면 플레이포럼에서 분화되어 나온 인벤은 웹진으로 출발했고 현재도 언론 기능의 기본은 유지하고 있다. 사이트 체계부터 UI 구성까지 플레이포럼을 답습하다시피 한 인벤이 살아남은 이유는 적응력이다. 이들은 시시각각 광대해지는 담당 영역을,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빠르게 정보 생산 주체를 기자/필진에서 사용자로 이동시켰다. 이제 기자는 에디터로 변신하여 큐레이션을 담당하게 되었다. 사용자들이 게시판에 자신들의 공략, 분석, 외국 자료의 번역을 올리면 잘 정리된 것을 각 게임 사이트 첫화면에 올려준다. 이전에는 기자/필진들이 작성한 기사의 링크 이미지가 올라가던 자리다. 관리 주체 또한 디시인사이드, 루리웹과 달리 질서 한계선을 더 낮게 그어 제한을 더 두었다. 플레이포럼에서 따온, 회원이 활동량에 따라 아이디의 레벨을 높일 수 있는 구조는 장기간 고정 활동을 장려하고 정도 이상의 일탈을 자제시키는 정책이기도 했다. 또한 인벤은 ‘사건 사고 게시판’이라는 일종의 해방구 공간을 운영했다. 2005년부터 와우인벤을 비롯한 MMORPG 게임 페이지 하위에 개설된 이 게시판은, 게임 내에서 생긴 갈등을 가져와 여론 재판을 받는 재판정이다. 명분은 ‘이러이러한 비매너 유저를 고발한다’고, 따라서 여론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집단 린치나 사이버 불링의 형태도 나타난다. 사건 사고 게시판은 소위 막장 드라마와 같은 길티 플레저이기도 하다. 마음껏 욕해도 되는 수준의 플레이어가 징벌대에 올라오고, 그에게 가학성을 드러낼 수 있고, 가끔은 고발한 사람이 진짜 나쁜놈이었다는 반전도 생기고, 어쩔 때는 고발 당한 플레이어가 억울하다며 등장해 싸우는 등, 온갖 엔터테인먼트가 이 게시판에 있다. 게다가 비난할 대상은 계속 재생산된다. 따라서 해방구가 되는 재판정 혹은 아예 결투장이기도 하다. 또한 합심하여 누군가를 공격하면 그 경험으로 인한 옅은 공동체 의식이 생기게 된다. 여기에 아이디 레벨 제도가 합쳐지면 인벤의 커뮤니티 서비스 전반의 사용량을 어느 정도 보장할 수 있다. * 루리웹의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스 게시판 자유도라는 점에서는 디시인사이드와 같은데, 반면 큐레이팅의 존재와 규칙과 운영은 오히려 인벤에 가까운 것이 루리웹의 특징이다. 루리웹 또한 정보 생산을 사용자들의 게시물에 의존하는데, 이는 인벤과 달리 초기부터 유지한 특징이다. 관리 주체는 운영사와 사용자가 함께 부담하며 이 인력이 큐레이팅도 하는데, 대신 몇몇 붐비는 게시판은 운영사 직할로 관리한다. 큐레이션 능력은 인벤만큼은 아니지만 아예 없는 디시인사이드보다는 나은 정도다. * 블레이드 앤 소울의 자체 커뮤니티 게시판 반면 10여 년의 시간 동안 게임 홈페이지의 자체 게시판은 별 역할이 없었다. 그나마 활성화가 되어도 정보 공유보다는 사용자 결집과 상호작용의 기능 정도만 수행했는데, 그마저도 ‘구 웹진’의 게시판에 빼앗기면서 서서히 도태되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포털로 이동했다. 특히 모바일 게임의 경우엔 이쪽이 더 적합했다. 기술의 발전과 모바일 혁명으로 인해 위젯 기능 적용이 확장되면서, 게임을 실행하고 있는 동시에 옆 위젯으로 잠시 커뮤니티 화면을 불러오는 식의 구현이 가능해졌는데, 포털 대기업의 기술 지원은 이 구현을 용이하게 했다. 그러니 2018년 말, 또 한 번의 파란이 일었다. 게임사가 운영하는 게임 카페에 대해 네이버가 유료화 모델을 시도한 것이다.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으면 카페의 상단 광고에 다른 회사 게임 광고를 노출시킨다는, 감탄이 나오는 전략에 몇몇 회사들은 포털을 탈출했다. 다시 자체 커뮤니티를 시도했고, 역시 이쪽이 회사 입장에서는 데이터 확보가 가장 편한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대세가 된 것은 더욱 혁신적인, 아예 게시판 기반 체제를 버리는 방안이었다. 3. 10년대 후반에서 20년대, 게시판 너머의 채팅방 어차피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은 사용자들이다. 개설과 존속에 드는 비용은 어느 회사인가가 댈 수 있지만 사람들이 모이도록 만드는 것은 비용 이상의 무엇이다. 그리하여 회사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와 별개로 사용자들은 새로운 플랫폼인 메신저에 주목했다. 그리하여 떠오른 커뮤니티 시장의 새 강자는 메신저, 특히 디스코드다. * 디스코드 채팅방에 개설된 아르테일의 채널 (출처: 게임인사이트, “활성화되어 있으나 원하는 정보를 찾기 까다롭다”는 캡션이 있다) 텍스트와 음성 채팅 두 가지를 기반으로 하는 디스코드의 체계는 게시판과는 다른 장단점을 가진다. 게시판은 생산한 정보가 게시글의 형태로 고정되어 후일에도 찾아올 수가 있다. 다만 실시간으로 대화를 주고받기는 힘들다. 채팅방은 그 반대로, 과거의 유용한 정보를 되짚어 찾기는 어렵지만 실시간 교환은 매우 쉽다. 이 장점은 사용자 간에도 작용하지만 제작자와 사용자 사이에도 적용된다. 반면 유저 데이터를 모아야 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웹진과 포털보다 더 어려운 상대였다. 그리하여 현재의 게임 온라인 커뮤니티는 다섯 가지의 흐름으로 요약할 수 있다. 높은 자유도만큼이나 혼란하고 정보량은 적은 디시인사이드의 갤러리, 자유도를 약간 희생했으나 큐레이팅 기능이 있어 진주가 묻혀 있는 루리웹, 언론의 기본 기능을 유지하면서 큐레이팅 기능을 강화해 양질의 정보를 보유한 인벤, 사실상 기능이 없는 채로 구색만 갖춘 것이 대부분인 게임사 자체 커뮤니티, 그리고 게시판을 벗어나 실시간 소통에 특화된 메신저 채팅방. 4. 온라인 부족 사회 모든 커뮤니티는 자체 존속을 위해서 여러 자원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자원은 구성원의 소속감, 즉 충성도다. 그리고 온라인 커뮤니티는 온라인 연결만 보장된다면 물리적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확장성이 높다. 기존의 커뮤니티는 지역에 묶였다. 국가의 정의 중에 영토가 있듯이 말이다. 따라서 공간을 뛰어넘는 커뮤니티의 범람은 인류가 처음 경험해보는 것이다. 그 경험이 25년 남짓 되었다. 그동안 존속한 온라인 커뮤니티는 제각각의 전략으로 구성원의 충성도를 얻었다. 커뮤니티 참여를 일상화시켜 소속감 또한 일상화시키는 방법은 인벤의 레벨제에서도 볼 수 있다. 디시인사이드의 몇몇 갤러리는 자신들만의 말투와 은어를 만들어 일체감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한 커뮤니티가 어느 정도 지속하면 커뮤니티마다의 특성이 생겨나는 것은 민족성의 발명 과정과 거의 유사하다. 장수하는 커뮤니티는 점차 온라인 부족의 색채를 얻게 되었다. 다중 소속도 가능한, 느슨한 형태의 부족인 셈이다. * 온라인 커뮤니티의 시대를 신(新)부족주의로 정의한 미셸 마페졸리의 저서 ‘부족의 시대’ 마페졸리는 이 책에서 신부족주의 행위자는 합리적 성인이 아니라 영원한 아이라고 보고 있다. 커뮤니티 부족들은 인벤의 사사게처럼 내부 갈등도 있지만 부족 간 갈등 내지는 고정관념도 생겨났다. 디시인사이드에는 루리웹을 “씹선비”라 부르며 멸시하는 경우가 있고, 이따금 ‘인벤 놈들은 역시 그 따위’ 식의 폄하도 찾아볼 수 있다. 오경택의 2023년 석사 논문은 게임 커뮤니티의 공정성 담론에 관한 연구인데, 여기서 소개한 정서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온라인 게임의 과금 유도에 지갑을 열어주는 사람은 게이머가 아니라 개돼지라는 정서. 진정성이라는 기준으로 다른 부족을 공격하면서도 동시에 ‘게이머’라는 이상적 주체를 상상하고 있다. 같은 계열의 게시물 중에서 오경택은, ‘진정한 게이머’인 자신과 모바일 게임이나 잠깐 하는 사람이 같은 게이머로 분류되는 것에 대한 불만에도 주목한다. 이는 ‘게이머’라는 대분류에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인데, 부족성을 넘어 민족성 혹은 민족 개념이 싹트는 중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정체성 성립의 과정은 언제나 폭력성을 수반한다. 우리와 타자의 경계를 나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근대의 민족 개념이 분쟁을 매개로 구체화 되었듯이 말이다. 또한 민족 개념이 적용되는 과정에서 수용과 불수용의 충돌 또한 발생한다. 하드코어 게이머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이 있고, 반대에는 선민의식과 계급화를 경계하는 거부감이 있어 이 둘이 부딪힌다. 투쟁의 현장이기도 하니 폭력성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다. 그런 폭력성의 발현 사례를 여럿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와우인벤의 사사게는 내부의 분노를 처리함과 동시에 집단 린치를 스포츠화하여 해소하는 형태다. 디시인사이드는 전통적으로 폭력성 노출을 문제 삼지 않는 갤러리가 많으며 게임 관련 갤러리는 특히 그렇다. 이런 기초 토양 위에 원세훈 치하 국정원의 심리전이 끼어들었다. 이명박 정부의 여론 조작 시도는 뉴스 댓글 몇 개 단 정도에서 끝나지 않고, 이를 바탕으로 여론 흐름을 조작하려 하면서 일베에서 사용된 밈의 재료들과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데까지 이르렀다. 심리학자의 자문까지 받은 이 시도에서 현재의 사회를 괴롭히는 극우화의 물결이 싹텄다고도 볼 수 있다. 때는 마침 게임 커뮤니티에서 정보 생산 주체가 사용자들로 이전되던 2010년 전후다. 새 판이 만들어지는 변화기는 오염 정보가 들어간 게시물, 심리를 건드려 선동하는 댓글이 침투하기 좋다. 15년이 지나는 동안 그 씨앗들이 재생산되고 변이하였다. 그리하여 인터넷 커뮤니티 전반, 특히 남성 게이머가 많은 게임 커뮤니티에는 페미니즘과 진보 정치성에 대해 현실과 다른 인식이 보편화되었다. 영어권 웹도 비슷한 역사를 겪었다. 팬 사이트 기반의 정보 사이트들이 만들어지고, 이들이 적응 또는 도태되고, 합종연횡하고, 서로 싸우고, 게이머 정체성을 놓고 충돌하고, 비평가에 대한 반엘리트주의적 반감을 드러내고, 그러다가 2013년에 게이머 게이트가 터졌다. 이 사건은 게임 언론의 분노를 촉발시켰고, 규모가 제법 커서 주류 언론의 눈길까지 끌고, 급기야는 극우의 숫자에 합류하여 수를 늘려주고, 도널드 트럼프의 초선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까지 커졌다. 이 과정에서 브레이트바트와 같은 대안 우파 언론, 대안 현실을 신봉하는 음모론 극우의 독이 스며들어 판을 키웠다. 그렇다면 거의 비슷한 과정을 밟으면서 탄생한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 특히 게임 커뮤니티의 극우성이 윤석열 당선에 영향을 주었다는 서술은 가능할까? 대통령의 여성가족부 해체 공약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 가설은 반대로 생각해 볼 지점도 갖고 있다. 앞서 주장했듯 게이머 정체성은 일종의 민족 개념으로 정착하는 과정에 있다. 이 과정에서 갈등과 폭력성 표출은 가능한 상황이다. 또한 게임은 승리를 향한 경쟁으로 요약할 수 있다. 과격성 발현은 정서상 자연스러울 수 있다. 물론 이런 해석에는 비현실적인 현실 인식에 대한 설명이 빈약하긴 하다. 게임 커뮤니티가 온라인에서 성립한 지 사반세기다. 그동안 우리는 게임에 관련한 여러 가지 때문에 검색을 해왔다. 수집품의 위치를 모를 때, 데미지 계산식을 근거로 했을 때 어떤 스킬 조합이 좋은지 궁금할 때, 버그가 발생했을 때, 새로운 업데이트에 대한 해석이나 요약이 궁금할 때 등이다. 검색의 결과로 우리는 인벤, 루리웹, 디시인사이드 등의 어느 구석에 있는 게시물에 도착한다. 거기에는 동료 게이머가 알아낸 공략과 분석, 혹은 외국의 어느 사이트나 디스코드 채팅방에서 가져온 정보가 있다. 한편으로는 정보를 올린 사람 혹은 거기에 댓글로 첨언하는 사람이 옆 게시물에서 ‘페미는 정신병’이나 ‘걔들은 전부 빨갱이’라는 식의 극우 정서를 표출하는 것도 볼 수 있다. 유용한 정보에서 한 발짝만 더 들어가면 쉽게 만나는 세상이다. 이미 다양한 형태로 이 극우 정서의 근원을 분석하는 연구가 많다. 그래서 궁금한 것은 다음 사반세기다. 과연 이 느슨한 부족의 크기와 실제 영향력은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중이기 때문이다. 해악은 어떻게 극복하고 효용은 어떻게 유지할지의 답은 게임 커뮤니티의 실제 모습을 찾아내고 다시 찾아내고 또 찾아내는 발굴의 과정에서부터 만들어갈 수 있다. Tags: 커뮤니티, 디시, 루리웹, 펨코, 인벤, 게임웹진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간접경험으로서의 보는게임 -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및 호러 게임 실황 플레이를 중심으로
보는 게임이란 무엇인가? 대다수는 'e-스포츠'와 '실황 플레이'를 예시로 들 것이고 실제로 이 두 개념이 본격적으로 대두면서 보는 게임이라는 개념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다만 2021년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에서 기고된 이경혁의 『보는 게임과 Z세대』라는 글에서는 보는 게임의 역사에 대해서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오락실에서 게임을 구경하는 것과 PC방 문화를 보는 게임의 기원을 삼은 것이다. 후자 같은 경우 PC방이라는 한국적인 현상임을 감안해야 되겠지만, '보는 게임' 자체는 한국뿐만이 아닌 세계적인 현상임을 염두에 두면 흥미로운 지적이라 할 수 있다. 이경혁의 글은 그 점에서 '보는 게임'이 관람을 통해 얻는 만족감이라는 오래된 인류의 유흥거리와 맞닿아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 Back 간접경험으로서의 보는게임 -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및 호러 게임 실황 플레이를 중심으로 03 GG Vol. 21. 12. 10. 보는 게임이란 무엇인가? 대다수는 'e-스포츠'와 '실황 플레이'를 예시로 들 것이고 실제로 이 두 개념이 본격적으로 대두면서 보는 게임이라는 개념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다만 2021년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에서 기고된 이경혁의 『보는 게임과 Z세대』라는 글에서는 보는 게임의 역사에 대해서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오락실에서 게임을 구경하는 것과 PC방 문화를 보는 게임의 기원을 삼은 것이다. 후자 같은 경우 PC방이라는 한국적인 현상임을 감안해야 되겠지만, '보는 게임' 자체는 한국뿐만이 아닌 세계적인 현상임을 염두에 두면 흥미로운 지적이라 할 수 있다. 이경혁의 글은 그 점에서 '보는 게임'이 관람을 통해 얻는 만족감이라는 오래된 인류의 유흥거리와 맞닿아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물론 실제적인 태동을 짚어야 한다면, 인터넷 방송의 역사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인터넷 방송은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음악 라디오 개념에서 출발한다. 이 당시 영상 압축과 인터넷 환경은 영상을 촬영하고 재생하기엔 부족함이 많았다. 그러다가 2005년 유튜브, 아프리카TV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w플레이어나 다음팟TV 같은 사이트가 생기면서 영상 재생/공유 사이트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한다. 현 시점에서 대세라 할 수 있는 라이브 스트리밍이 등장하기까지는 좀 더 기다려야 했지만, 이런 영상 재생/공유 사이트가 활성화되면서 '보는 게임' 문화가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윤현정의 논문 『MCN 게이밍 콘텐츠의 스토리텔링 연구』 및 논문에서 인용한 Smith, T. 외의 논문 『Live-streaming changes the (video) game』를 참조하자면 게임 영상 콘텐츠는 경쟁이 존재하는 ‘e-스포츠’ 유형과 빠른 정복을 도전하는 '스피드 러닝', 그리고 스트리머가 게임 플레이에 서사적 코멘터리를 덧붙이는 'Let's play'로 분류할 수 있다. (p.28) 이 중에서 주목할 분류는 'Let's Play'로 지칭되는, 게임 플레이에 서사적 코멘터리를 붙이는 실황 플레이 영상이다. 현재 '보는 게임' 영상 중에서 유저 창작이 활발한 영상도 실황 플레이 영상이다. 'e-스포츠'와 '스피드 러닝'은 특수한 기술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기에 문턱이 높지만, 실황 플레이 영상은 비교적 문턱이 낮기 때문이다. 왜 실황 플레이 영상이 '보는 게임' 문화에서도 큰 인기를 얻게 되었을까? 초창기 영상 사이트에서 실황 플레이 영상은, 실용적인 용도가 강했다. 그 이유를 찾으려면 게임 공략에 있어서 영상의 힘이 강력하며, 게임 커뮤니티 문화랑 밀접하게 발전해왔다는 점을 지적해야 되겠다. 실황 플레이 영상이 대두되기 전, 게임 공략은 글과 스크린 샷으로 설명하는 게 대다수였다. 영어 위키피디아 'Video game walkthrough' 항목에 따르면, 200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플레이어를 위한 게임 공략은 핫라인 통화를 통한 1대 1 전화 상담이나 텍스트 공유가 대다수였다고 밝히고 있다. 사실 꽤 오랫동안 게임 캡처, 특히 영상 캡처는 쉬운 일이 아니었고 특수 기기를 통해 게임 회사가 만든 공식 공략 영상이나 게임 언론 같은 곳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게임 유저들은 제임스 롤프가 AVGN 33화 '닌텐도 파워' 편에서 회고했듯이 카메라를 플래시 쓰지 않고 위치도 TV에 맞춰야 하는 불편한 상황에서 화면을 촬영해야 했다. 이렇게 촬영한 사진을 디지털 스캔하고 인터넷 공유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대다수 게임 유저들은 전문가들이 만든 공식 공략집이나 잡지를 통해서만 게임 스크린샷이나 영상을 접할 수 있었다. 그나마 1996년 '캠퍼의 일기 Diary of a Camper'라는 〈퀘이크〉 리플레이 영상을 통해 머시니마 개념이 등장하면서 유저들끼리 게임 영상을 공유한다는 문화가 등장했지만, 이 역시 게임 내 리플레이 파일을 등록해 재생하는 쪽에 가까웠다. 이런 사례를 통해 알 수 있지만 PC 게임은 물론이거니와 콘솔 게임에서 게임 스크린샷이나 영상을 공유하는 게 얼마나 어려웠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비디오 파일로 유저들끼리 공유되는 공략 영상은 2005년 Something Awful라는 북미권 인터넷 코미디 포럼에서 활동하던 사람들로부터 비롯되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PC를 활용한 비디오 캡처 난이도가 대폭 낮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를 기점으로 고전 게임을 중심으로 비디오 영상이 제작되었다. 최초의 유저 게임 공략 영상 역시 같은 포럼에서 마이클 "슬로비프" 소이어가 제작한, 〈The Immortal〉이라는 1990년 DOS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와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도 니코니코 동화라는 영상 공유 사이트에서 hacci 같은 초기 스트리머가 등장해 실황 플레이 영상을 올리면서, '보는 게임'의 시작을 알렸다. 이런 '보는 게임' 문화 및 실황 플레이 영상이 폭발적으로 확장된 계기는, 2014년 PS4 셰어 버튼으로 시작한 콘솔 자체 공유 기능을 통해서였다. PS4 이전까지는 콘솔 게임은 기본적으로 영상 공유를 하기 쉽지 않았다. 콘솔 자체 캡처를 지원하지 않아서 캡처 보드를 필수로 했기 때문이다. PS4 셰어 버튼은 이런 캡처 보드 없이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게임 플레이를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XBOX와 닌텐도 스위치 역시 셰어 버튼 기능을 도입하면서 8세대 콘솔은 '보는 게임'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세월이 지나 실황 플레이 영상이 발전하면서, 영상의 경향도 조금씩 달라져 갔다. 초기 실황 플레이 영상은 공략이라는 개념에 충실한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목소리가 없거나 플레이어 '목소리'가 게임의 상황을 반영해 코멘트하는 케이스가 많았다. 게임 플레이 영상 역시 편집이 많이 개입해, 실수나 늘어지는 분량을 잘라내 속도감 있게 진행하는 경향이 있다. 화면에 뜬 실시간 채팅방도 그리 흔하지 않았기에 스트리머와 시청자 간의 소통은 댓글 란에서 사후적으로 이뤄지고, 밈보다는 영상 자체를 얘기하는 경향이 컸다. 그러다가 스트리밍 환경이 개선되자, 실시간으로 진행하면서 채팅으로 소통하는 부류의 실황 플레이 영상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런 실황을 진행하는 스트리머는 게임 플레이 그 자체보다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플레이어가 겪는 고충이나 유머를 즐기는 버라이어티적인 성향을 드러내고 있었다. 동시에 사후적인 게임 플레이가 아닌, 실시간 방송과 채팅을 통해 시청자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면 게임 플레이하는 경향도 생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형성된 '보는 게임' 현상에 따르는 실황 플레이 영상과 팬덤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실황 플레이 영상의 특성은, 스트리머라는 대리자를 통해 간접 체험이 이뤄진다는 점에 있다. 기본적으로 실황 플레이 영상은 스트리머가 플레이하는 영상을 시청하는 걸 전제로 하고 있다. 게임 플레이를 하는 것은 스트리머기에 자연스럽게 시청자의 경험은 간접 경험이 된다. 그 점에서 스트리머의 존재는 매개체에 가깝다. 서사 역시 직접 경험보다는, 관람에 가까운 형태로 변모하게 되었다. 이런 변모 때문에 게임에 대한 접근성 문턱 역시 낮춰지게 되었다. 또한 게임을 플레이하는 스트리머의 개성이 상당히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다. 같은 게임이더라도, 스트리머의 성향에 따라 영상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게임 때문에 보는 것이 아니라, 스트리머 때문에 게임을 보는 부류도 있을 정도다. 스트리머의 방송 스타일은 개별차가 있긴 하지만, 게임 내용에 대한 반응을 적극적으로 이끌어내는 경향이 크다. 그렇기에 '보는 게임' 현상을 따라 인기를 얻고 있는 게임 스트리머는, 다양한 게임을 다루면서도 자신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게임을 선호한다. 그렇다면 실황 플레이 영상에서 인기를 얻는 게임은 어떤 부류일까? 스트리머의 트위치 방송 관련해 통계를 내는 사이트인 트위치 트래커에서 시청자 선호에 기반한 게임 인기 순위를 보면 https://twitchtracker.com/statistics/games ) 2021년 11월 기준으로 〈리그 오브 레전드〉, 〈GTA 5〉, 〈카운터 스트라이크〉, 〈콜 오브 듀티〉, 〈에이펙스 레전드〉, 〈발로란트〉, 〈마인크래프트〉, 〈포트나이트〉,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가 상위권에 올라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인기 순위 절반 정도는 메타데이터가 없는 미등록 상태이기에, 순위권에 들었다는 뜻은 고정 시청자를 확보했다고 보는게 좋을 것이다. 이 중 주목해야할 게임은 〈GTA 5〉와 〈마인크래프트〉,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일 것이다. 이 두 게임은 언급한 게임들과 달리 E-스포츠라는 틀에 속하는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GTA 5〉와 〈마인크래프트〉는 오픈 월드 게임 장르이며, 플레이어의 창발적인 플레이가 방송의 주목적이 되는 경향이 있다. 한편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는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게임은 오픈 월드 게임이 아니라, 살인마와 생존자 간의 대결을 다루는 호러 멀티플레이 게임이다. 하지만 다른 멀티플레이 게임과 달리, E-스포츠형으로 실력을 겨루는 게임이 아닌, 생존 및 협력 플레이가 중심이 되고 있다. 사실 이 게임은 발매 초창기인 2016년에는 평단에서 그리 환영받지 못했으며 게임 시스템이나 밸런스에서 많은 지적을 받았다. 전문가 평점 분포도를 보여주는 메타크리틱 및 오픈크리틱에서도 6-70대의 평균적인 평가를 받았다.〈GTA 5〉나 〈마인크래프트〉처럼 평단과 게임 유저에게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게임이라고 보기 힘들 것이다. *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 발매 이후 트위치 평균 그래프 (2011.11 기준, https://twitchtracker.com/games/491487 ) 하지만 발매 후 5년이 지난 2021년 11월,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는 위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순위권에서 사라지지 않고 트위치 게임 채널 내에서 상승세를 타고 있다. 그렇다면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는 어떻게 해서 스테디셀러에 들어가게 된 것일까? 우선 공략이나 분석을 제외한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 실황 플레이 영상은 긴박한 생존 대결보다는 생존/협력 플레이 도중 일어나는 유머러스한 촌극이 중심이 되고 있다. 이런 영상들은 자막이나 채팅을 활용해 코믹한 예능 분위기를 강조하고, 공포 게임와 거리가 먼 썸네일로 시청자를 유도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한국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 팬덤에서 공유되고 있는 은어 및 별명은, 해당 게임의 팬덤이 어떻게 실황 플레이 영상을 소비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커뮤니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 은어와 별명은 게임 내 상황과 캐릭터를 희화화 하는 용도로 인터넷 유행과 결합해 쓰이고 있다. 이런 희화화는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를 플레이하는 스트리머와 시청자들이 게임을 예능처럼 즐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의 이런 경향은, 게임 서사의 간접 체험 및 경험 공유이라는 지점에서 생각할 만한 여지를 남긴다.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의 공식적인 장르는 생존 호러다. 게임 제작자의 의도와 게임 향유층의 방향이 다소 상충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충되는 상황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실황 플레이 영상에서 게임 플레이 나아가 서사를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 재고할 필요가 있다. 사실 전반적인 실황 플레이 영상 트렌드를 분석해보면,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에서 호러 게임이 인기가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퓨디파이 같은 유명 유튜버들이 인기를 얻은 계기 역시, 〈암네시아: 더 다크 디센트〉 같은 호러 게임 실황 플레이를 통해서였다. 또한 슈퍼매시브 게임의 PS4 〈언틸 던〉 같은 경우엔, 8세대 콘솔 초창기에 시네마틱 어드벤처 게임과 호러 장르의 조합으로 실황계에서 큰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이런 호러 게임 실황 플레이 대다수는 게임의 질과 상관없이 스트리머가 얼마나 게임에 반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경향이 크다. 호러 게임 하는 스트리머 대다수는 과장되게 놀라거나 반대로 무덤덤하게 딴죽을 거는 경향을 보이며, 시청자 반응 역시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 사례처럼) '축제'처럼 즐기는 쪽에 가깝다. 깜짝 놀라는 장면에서 놀라는 코멘트조차 진심으로 두려워하기 보다는, '정말 놀랐다'는 식으로 공유에 가깝게 표출된다. 왜 호러 게임 실황 플레이 영상에서 축제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일까? 이는 호러 영상물의 특수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영화관에 가서 호러 영화를 보게 되면, 주변에 놀라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만 무서워하게 되는게 아니구나'하는 공감대를 느끼고 동조하게 되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두려움을 공유하면서 안도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런 감정의 동조화를 파악해 관객과 상영 공간 자체를 '축제'화한 시도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195~60년대 미국 저예산 호러 영화 제작자로 유명했던 윌리엄 캐슬이 있다. 당시 미국은 심야 영화와 드라이브인 시어터를 통해, 영화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체험하는 새로운 유형의 관객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캐슬은 이런 관객들을 보면서, 어떤 감정의 동조화와 유희적인 성향이 있다는 걸 간파했다. 캐슬은 영화는 물론이고 영화관에 장치를 도입해 유원지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주력했는데, 그 점에서 심야 영화와 드라이브인 시어터로 대표되는 컬트 영화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물론 실황 플레이 영상을 보는 시청자들이 만들어내는 반응과 캐슬이 추구했던 '유원지' 연출, 나아가 컬트 영화 문화랑 완전히 같다고는 보기 힘들다. 윌리엄 캐슬이 만든 영화는 유원지 구성 요소를 차용해 관객이 직접 체험하는 쪽에 가까웠고, 실황 플레이는 스트리머가 제시하는 플레이 영상을 통한 간접 체험에 가깝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체험과 유희화를 공유하고 만끽할 느슨한 '공간'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컬트 영화에겐 심야 상영이나 자동차 영화관 같은 공간이 있다면, 게임 실황 플레이 영상엔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채팅창이나 영상 댓글란이 있다. 물론 스트리머들에겐 좀 더 진지한 팬 사이트가 있긴 하지만 이런 채팅창이나 댓글란은 즉각적인 반응이 가능하기에, 유동적인 공동체가 형성되는 경향을 보인다. 어떤 지점에서는 컬트 영화보다도 더욱 거리낌없는 구석도 있는데 이런 채팅창이나 댓글란은 기본적으로 '익명'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호러 게임 실황 플레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호러 게임 실황 플레이까지는 아니더라도, 유명 스트리머들의 실황 플레이 영상에서는 서사의 간접 체험과 경험 공유를 통해 만들어지는 컬트 내지는 고유한 문화가 형성되는 현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대전 격투 게임을 주로 하는 케인이라는 스트리머 팬들이 쓰는 밈이 대표적인데, 이들은 스트리머가 자주 쓰는 말이나 인터넷 유행어를 접목시켜 커뮤니티만의 고유한 하위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이렇게 형성된 하위 문화는 위키백과나 케인 관련 커뮤니티에서 유통되어, 케인 팬들 간의 결속력을 강화한다. 또한 '보는 게임' 문화가 게임 문화의 문턱을 영화 감상과 비슷한 수준으로 낮추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는 게임' 문화 도래 이전 게임 문화는 게임을 직접 플레이한다는 전제를 내세우고 있었고, 그 전제가 어느 정도 문턱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보는 게임' 문화, 정확히는 실황 플레이 영상은 이런 문턱을 낮추고 영상으로 제시되는 간접 체험만으로도 게임 요소를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실제로 '보는 게임'과 실황 플레이 영상을 다룬 정서현과 박주현의 논문 『1인 미디어 게임방송 이용 동기 및 이용 특성에 관한 탐색적 연구: 인터넷 게임방송 이용자 심층 인터뷰를 중심으로』에서도 실황 플레이를 보게 되는 계기로 게임 정보 획득, 대리만족, 단발적 재미 추구를 언급했다고 밝히고 있다. (p.23) 게임 정보 획득과 대리만족을 거치고 난 뒤, 채팅방에 있는 다른 시청자들과 공감대 형성을 위한 경험 공유를 하는 것이다. 이런 흐름에서 보자면 '보는 게임' 시대에서 게임 서사는 직접 경험을 넘어서 간접 경험을 기반으로 소통의 재료로 쓰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서사를 체험하지만 체험에서 머물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결과 실제로 게임 서사가 의도하는 방향은 상대적으로 약해졌다. 서사가 유도하는 반응과 반대의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런 체험을 공유하고 밈이나 유머로 승화하면서 즐기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서사의 원래 의도에서 이탈함과 동시에 발생하는 희화화와 축제적인 상황은 컬트 영화의 반응과 유사한데, 이런 유사성이 발생한 이유로는 느슨한 관람 공동체로써 공유할 만한 '공간'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컬트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모이는 관객과 특정 스트리머의 실황 플레이를 보기 위해 채팅방 및 댓글에 모이는 시청자는 느슨한 공동체적인 공간 속에서 경험, 나아가 유희와 코드를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보는 게임' 문화의 대두는 현 시점에서 비디오 게임의 소비 양태의 다양화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본 글은 그 중에서도 플레이나 서사를 즐기는 방식이 간접 경험에 기반하며, '댓글'이나 '채팅방'을 통해 같이 경험을 공유하고 축제화 된다는 지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런 현상은 컬트 영화 상영이나 심야 영화에서 볼 수 있는 현상과 유사하면서도, 동시에 고유한 차별점을 두고 있다. 향후 '보는 게임' 문화와 서사 체험, 경험 공유 비평 및 연구에 있어서 시청자/수용자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참조 문헌 및 사이트 Video game walkthrough – Wikipedia 중 History 단락, https://en.wikipedia.org/wiki/Video_game_walkthrough AVGN 33화 '닌텐도 파워' 이경혁, 『보는 게임과 Z세대』, http://kofice.or.kr/b20industry/b20_industry_03_view.asp?seq=8042&page=1 (2021) 윤현정, 'MCN 게이밍 콘텐츠의 스토리텔링 연구' 및 Smith, T. 외의 논문 'Live-streaming changes the (video) game' (2016) 정서현과 박주현, 『1인 미디어 게임방송 이용 동기 및 이용 특성에 관한 탐색적 연구: 인터넷 게임방송 이용자 심층 인터뷰를 중심으로』 (2019) https://twitchtracker.com/statistics/games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이이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전문사 졸업 후 영화•게임 비평 기고 활동중. 어드벤처 게임 좋아함. (antistar23@gmail.com )
- 오류는 최소로, 이해랑 오해는 풍부할 수 있도록 – 게임 번역의 역할
주로 원문의 의미를 제대로 담지 못한 번역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는 ― 게임 몰입을 방해받았다는 ― 표현이 주를 이루지만, 넓은 범위에서 이 불만 토로는 게임에서 공통된 경험을 했다는 동질감을 확인하고, 나아가 게임에 대한 정보와 의견을 공유하고 개진하는 유희와 교류 행위로 확장된다. < Back 오류는 최소로, 이해랑 오해는 풍부할 수 있도록 – 게임 번역의 역할 29 GG Vol. 26. 4. 10. 모든 번역은 어렵다. 아무리 인공지능 도구를 활용해 다른 언어를 대하는 부담이 줄어든 시대가 되었다고 해도 그렇다. 번역은 글자의 뜻을 그대로 옮기는 것만이 아니라 그 뜻의 주위와 너머를 두루 살펴 옮기려는 언어에 알맞은 자리를 만드는 것까지 포함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고스러운 일이기에 번역은 원래(그래서 앞으로도) 어렵다. 번역가 홍한별은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에서 번역의 수고로움을 “이쪽을 붙들면 저쪽을 놓치고, 저쪽을 잡으면 이쪽이 사라지는 단어를, 의미를 고정하는 순간 무수한 틈이 생겨버리는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라고 짚는다 [1] . ‘번역의 투명함’을 통해 번역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번역은 투명해야 한다는데, 마치 우리말로 쓰인 것처럼 잘 읽히는 것도 투명한 번역이고, 매끄럽지 않더라도 번역된 표현임이 명확하게 드러나서 번역 너머의 원문을 들여다보게 하는 것도 투명한 번역이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생각해보면, ‘발 번역’이나 ‘초월 번역’이라고 하는 표현은 되도록 신중하게 쓰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번역의 ‘어떤’ 투명함을 선택하느냐는 번역가에게도 그러하겠지만 선호라는 측면에서 수용자에게도 상관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게임 번역’에 대해 회자되는 대표적인 사례 몇 가지가 있다. ‘왈도체’로 불리는 〈마이트 앤 매직 6〉(Might and Magic Ⅵ)의 “힘세고 강한 아침”이나, 〈어쌔신 크리드 3〉(Assassin’S Creed Ⅲ)의 “불이야!”가 오역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사례라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의 아이템 ‘서리한’(frostmourne)이나 〈오버 워치〉의 캐릭터 ‘맥크리’의 대사 “석양이 진다”는 좋은 번역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사례다 [2] . 오역은 분명 문제다. 몰입을 방해할 수 있고 원문의 본래 의도를 오해하게 만들 수 있다. 특히 게임에서 세계관에 적극 뛰어드는 걸 방해하거나 엉뚱한 플레이를 하게 만들어 게임 플레이 경험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힘세고 강한 아침”이나 “불이야!”를 앞서 언급한 ‘번역의 투명함’에 비추어 보거나 번역의 좋고나쁨을 이야기하는 사례로 다루기엔 아쉽다. 두 사례 모두 번역가의 고민과 선택을 거친 의도된 결과라기보다는 제한적인 작업 환경으로 인해 빚어진 사고에 가깝다는 것이 공식·비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을 감안한다면, 검수 절차가 충분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해프닝으로 양해하면 더 좋을 일이기 때문이다 [3] . 그보다 이 사례들을 게이머들 간의 게임 플레이 경험 공유와 표현의 맥락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주로 원문의 의미를 제대로 담지 못한 번역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는 ― 게임 몰입을 방해받았다는 ― 표현이 주를 이루지만, 넓은 범위에서 이 불만 토로는 게임에서 공통된 경험을 했다는 동질감을 확인하고, 나아가 게임에 대한 정보와 의견을 공유하고 개진하는 유희와 교류 행위로 확장된다.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의 게임 번역 관련 게시물을 대상으로 게임 번역에 대한 게이머들의 반응을 분석한 김홍균과 김순영 [4] 은 플레이와 스토리 이해에 필요한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때, 오탈자, 맞춤법 오류, 번역어 불일치 등 번역문의 전반적인 완성도가 낮을 때 게이머들이 게임 번역에 불만을 느꼈으며, 상대적으로 우리말에 원문 그대로 옮길 표현이 마땅치 않아 의역을 하거나, 원문에는 없지만 게임 플레이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추가로 제공하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반응했음을 제시했다. 번역에 대한 문제 제기나 호응은 게임 제작자 측에 피드백으로 작용해서 오류를 정정하거나 게임의 요소로 반영되어 활용되기도 한다 [5] . 앞서 언급한 ‘번역의 투명함’에 비추어 볼 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게임 플레이를 돕는 번역은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읽히는 전자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게임에서 매끄럽지 않아 원문을 보이게 하는 후자의 투명함은 무엇일까. (비판 혹은 비난을 감수하고)원문의 문화적 맥락에만 충실하게 번역해 해석의 제한이나 오류가 발생할 여지를 두는 것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번역의 투명함이 꼭 옮겨진 결과로만 비춰질까? 매끄럽지 않아 원문을 보이게 하는 투명함이 옮겨지는 과정에서 발휘될 수는 없는 걸까? 게임 번역 팀 ‘팀 왈도’(Team Waldo)의 〈드래곤 에이지 인퀴지션〉(Dragon Age: Inquisition) 번역 작업을 참여관찰하고 번역 프로젝트 참가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유저 게임 번역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연구한 박수진 [6] 과 번역 프로젝트 참가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스타필드〉(Starfield) 번역 작업을 주요 사례로 팀 왈도의 번역 작업을 연구한 이현표 [7] 는 게임 번역 작업에서 번역의 투명함이 드러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두 연구에서 확인할 수 있는 팀 왈도 게임 번역 작업의 특징은 자발적인 참여, 참여자들 간의 토론과 투표를 통해 최적의 번역어를 찾고 이를 작업에 반역하는 협업, 번역 결과물에 대한 피드백 수집과 반영이다. 번역의 투명함은 최적의 번역어를 찾는 협업 과정에서 주로 발휘된다. 게임에서 반복적으로 다루어지거나 플레이 경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단어나 표현에 대해 자율적으로 논의하고 필요에 따라 투표로 결정해 작업에 적용한다. 시간을 들여 절차를 이어가는 과정이기에 이는 분명 수고로운 작업이다 [8] . 이 작업에서 투명함을 발휘되게 하는 것은 번역을 활용해 게임을 플레이할 다른 게이머가 자신이 느낀 재미를 잘 경험하기를 바라는 동료의식이다. 두 연구는 번역 프로젝트의 참가자들이 공통적으로 자신이 게임에서 경험한 즐거움을 더 많은 사람이 경험하기를 바라는 문화 매개자로서의 동기가 크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는 ‘유저 한국어 패치 [9] ’ 작업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초창기부터 정품으로 구매해 패치를 사용할 것을 독려하고 [10] , 많은 공을 들였기에 애정이 있을 것임에도 번역 결과물의 유효기간을 게임 제작자 측이 공식적으로 언어를 지원하기 전까지로 두고, 실제로 이를 실천하는 맥락과도 연결된다. 더 나은 게임 생태계를 만들자는 이러한 게이머들의 우정과 환대는 게임의 재미와 경험을 옮겨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보다 잘 경험하도록 이끌고 밀어준다. 게임 플레이를 돕는 정확한 정보 전달을 추구하고, 번역에 대한 평가를 게임 플레이의 일환으로 다루며, 주관적인 만족이 주된 보상일지라도 수고로운 번역 작업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모두 게임을 잘 경험하도록 돕는 일이다. 이것을 게임 번역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는 없다. ‘미국 드라마’ 열풍을 이끌었던 미드족 [11] 의 자막 제작은 게임 팬 번역과 유사하게 이루어졌고, 출판 분야에서 산업과 문화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번역에 대한 토론과 시도 역시 작품을 잘 경험하는 것에 연관된다. 오히려 다른 매체와 비교해 게임 번역이 갖는 차이는 번역이 닿지 않는 영역이 분명하게 있다는 점이다. 게임 번역은 게임의 세계관과 게임에서 해야 하는 역할을 이해하고 파악하도록 돕는다. 그러나 그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부딪칠지는 게이머의 선택에 달려있다. 게이머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과정에서 게이머는 제작자의 제안 또는 요구를 수행하거나 거부한다. 그리고 게임에 대한 게이머의 이해와 오해 모두 게임을 플레이한 경험으로서 받아들여진다. 이를 고려하면 게임 번역은 제작자와 수용자의 의도가 조응하거나 충돌하는 과정이 잘 이루어지도록 하는 토대이기도 하다. 하여 게임 번역은 ‘이쪽을 잡으면 저쪽이 사라지는’, ‘고정하면 틈이 생기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는 딜레마는 동일해도 그 너머에 대한 기약의 범위가 넓다. “힘 세고 강한 아침”과 “불이야!”가 플레이를 방해할 수 있지만(강조하지만 오역은 문제다 분명히), 게임에서 정의와 자유, 현실과 환상을 마주하며 경험하고 고민하는 경험은 게이머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비어있는/쓰이지 않은/채워지게 될 경험이 더욱 다양하게 이야기될수록 게임 번역이 더 나아질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이 기약을 여백이라고 불러야 할까 희망이라고 불러야 할까 아님 다르게 불러야 할까.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이 더욱 더 많아질수록 무어라 부를지도 점차 선명해질 것이다 [12] . [1] 홍한별,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 위고, 2025년. [2] 게임에서 번역이 헤아리는 자리에 대한 기초적인 논의는 이경혁(2018)의 “게임 번역, 왈도체와 단순 현지화를 넘어서”를 참조. https://www.newstopkorea.com/news/articleView.html?idxno=713 [3] 게임 번역 전문가들은 좋은 번역이 이루어지려면 충분한 일정이나 절차 못지 않게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거나 개발진과의 충분한 의사소통 등 게임에 대한 정보에 더 많이 접근하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 두 인터뷰를 참조. “어쩌다 ‘발번역’이 나오는 걸까?” https://www.inven.co.kr/webzine/news/?news=283861 , “라이엇게임즈 현지화 팀이 말하는 ‘좋은 번역’이란?” https://www.gameinsigh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220 [4] 김홍균·김순영(2023). “국내 게임 이용자들의 게임 번역 평가 사례 연구—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게시된 게임 번역 관련 이용자 게시글을 사례로.” 『번역학연구』 24(4), 91-128. [5] 〈하스스톤〉(Hearthstone)의 캐릭터 ‘데스윙’의 대사 “나는 힘 그 자체다”를 “나는 임금 잡채다”로 들었다는 디시인사이드 하스스톤 갤러리의 글(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hearthstone&no=827575) 이 화제가 되었고, 게임 제작사인 블리자드는 게임 내 업적을 새로 추가하면서 ‘임금 잡채’를 업적 이름으로 사용했다. [6] 박수진(2021). “게임 팬 번역가들은 어떻게 번역하는가? - ‘드래곤 에이지 인퀴지션(Dragon Age: Inquisition)’의 현지화 사례를 통해 -.” 『한국게임학회 논문지』 21(5), 115-132. [7] 이현표(2025). “디지털 환경에서의 게임 유저 번역과 수용 : 팀 왈도 사례 연구.” 『통역과 번역』 27(1), 131-160. [8] 번역어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을 때 토론 과정에서 해당 텍스트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처럼 이 과정에서 번역 작업 참여자들의 이해도 깊어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맥락들이 기록되고 공유된다면 거기서 출발하는 이야기들도 많아질 것이라 기대한다. [9] 게임에서 한국어로 번역되는 작업을 주로 ‘한글화’로 팬 번역 작업의 결과물을 ‘유저 한글 패치’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번역은 문자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옮기는 것이므로 ‘한국어화’가 바른 표현이다. 이를 적용하면 ‘한글판’, ‘유저 한글 패치’ 대신 ‘한국어판’, ‘유저 한국어 패치’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다. 2010년, 한국 게임 잡지 《게이머즈》의 조기현 기자가 바로잡기를 제안한 이래 더디지만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https://x.com/kinophio/status/15316181741?s=46 [10] ‘유저 한국어 패치’는 한국어를 지원하지 않는 게임을 더 많은 게이머들이 플레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특히 스팀을 중심으로 인디 게임이 많이 알려지는 기회가 되었다. 패치를 배포하는 게이머들은 정품 게임을 구매해서 패치를 활용할 것을 적극 강조했고, 실질적으로 한국어로 플레이할 수 있는 인디 게임의 판매량이 높아지는 결과로 이어져 세계 인디 게임 개발자들이 한국 게임 시장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도록 도왔다. https://www.thisisgame.com/articles/73396 [11] 미드 동호회 ‘자막팀’이 자막을 제작하는 협업 방식은 게임 번역 작업과 큰틀에서 유사하다. 특히 더 나은 번역을 위해 잘 할 수 있는 역할을 자발적으로 맡는 호혜적 참여를 주목할 만하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entertainment/196544.html [12] 게임을 포함해 한국어로 제작된 문화콘텐츠가 외국어로 옮겨지는 사례가 늘면서 그동안 다른 언어를 한국어로 옮기면서 고민했던 번역의 투명함을 반대 방향으로 살피는 기회도 많아질 것이다. 이에 대한 성찰과 토론이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사회학자) 강지웅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게이머즈〉를 비롯한 여러 게임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했다. 저서로 〈게임과 문화연구〉(공저), 〈한국 게임의 역사〉(공저)가 있다.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에서 게임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게임이 삶의 수많은 순간을 어루만지는, 우리와 동행하는 문화임을 믿는다.
- 엘든 링: 황금 나무가 솟은 정원
게임을 하다 보면 어떤 순간에 도달한다. 완성한 지도에서 더 이상 가지 않은 장소는 없으며, 무한한 탐험을 약속하던 세계는 더 이상 광야가 아니다. 그때 〈엘든 링〉은 그림 같은 정원에 가까워진다. 자연물과 폐허를 포함한 정원은 “열정적인 기억, 회한, 달콤한 멜랑콜리를 더 잘 자극할 목적으로 새로이 부재를 만들어낸다.”16) 설령 엔딩이 일종의 종말을 선언한 이후에도, 플레이어들은 불완전한 총체성을 해소할 길 없이 꿈꾸며 정원을 헤맨다. < Back 엘든 링: 황금 나무가 솟은 정원 10 GG Vol. 23. 2. 10. 조지 R. 마틴을 협업자로 병기한 첫 트레일러가 공개되며 기대를 모았던 〈엘든 링〉은 메타크리틱 97점을 기록하며 출발했다. 2022년 11월 15일을 기준으로 1,700만 장 이상이 판매되며 화제 되었고, 2022년의 최다 GOTY수상작으로 꼽혔다. 1) 〈엘든 링〉이 매끄럽게 GOTY의 궤도에 안착했는지 확언하기는 어려우나, 적어도 GOTY로 꼽은 언론들은 그에 호의적으로 일단락하는 듯하다. 디지털트렌드는 “프롬 소프트웨어의 어려운 게임을 처음 접하는 사람도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하며 탐험할 수 있다”며 2) , 폴리곤은 “섬세한 게임 디자인이 별도의 첨언 없이도 즐거운 탐험을 경험하게 해준다”고 3) 서술한다. 한편 이러한 코멘트는 〈엘든 링〉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일련의 토론을 환기한다. 이전 작과 매우 흡사한 스타일로 출시된 〈엘든 링〉에게 과연 신작으로서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대표적일 것이다. 조지 R. 마틴이 골격을 짰다는 〈엘든 링〉의 설정은 〈다크 소울〉 시리즈나 〈블러드본〉과 확연히 다르지만, 그러한 작품들의 연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태껏 스튜디오가 쌓아 올린 역량을 총합하여 게임을 제작했다는 디렉터 인터뷰는 이를 솔직하게 드러낸다. 4) 조언이나 혈흔과 같은 온라인 플레이 요소부터 시작해, 게임을 규정하는 근본적인 메커닉까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요컨대 “도처에 치명적인 함정을 배치하고 죽으면 여태껏 모은 자원을 잃는다는 페널티를 부과하며, 맵 탐색의 종착지에 보스전을 지정”하는 기획은 “세계를 근본적으로 추동하는 원리의 타락, 등장인물의 유산과 역사” 등의 요소와 맞물리며 특유의 효과를 자아낸다. 〈데몬즈 소울〉에서 유래한 스타일은 ‘소울본’ 게임의 문법을 확정한 것처럼 보인다. 5) 기존 다크 소울 시리즈는 엄격한 구성을 취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한정된 공간 내에 밀집한 함정을 파훼하며 길을 찾아야 한다는 과제가 플레이어에게 주어진다. 무사히 다음 세이브 지점으로 도달하는 과정에서 숱한 죽음을 겪으며 일종의 모범 답안을 찾아 나가야 하는 셈이다. 맵의 특정한 요소들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조율하며 일정한 질서를 형성한다. 잠긴 문과 같은 장치는 별도의 동선을 요구하며, 위험한 구간을 생략할 수 있게 해주는 숏컷은 맵의 구조를 상기시킨다. 반면에 〈엘든 링〉은 단선적인 길을 우회할 수 있는 선택지를 여러 갈래로 제공한다. 그러나 〈엘든 링〉이 오픈 월드라는 사실은 이전 작과의 차이를 직관적으로 부각한다. 오픈 월드는 열려 있다는 의미의 ‘오픈(open)’과 게임 공간을 의미하는 ‘월드(world)’의 합성어로, 플레이 과정에 있어 고정된 순서가 존재하지 않아 공간 이동에 대한 제한이 없는 게임의 형식을 일컫는 용어다. 6) 초반에 배치된 보스인 트리 가드는 이를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일반적으로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에서 보스전을 치르는 때는 맵 탐색을 완수했을 때이다. 보스전을 무사히 클리어하면 세이브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으며, 다음 맵으로 넘어가는 관문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림그레이브 초입에 튀어나온 트리 가드의 존재는 난데없다는 인상을 안긴다. 더불어 트리 가드를 처치하면 획득할 수 있는 아이템인 황금 할버드는 까다로울 만큼 높은 근력 수치를 요구한다. 이제 막 게임을 시작한 플레이어가 실제로 활용하기까지 시차가 발생한다. 따라서 트리 가드 보스전에서 승리의 보상은 서버에 저장되지 않는 플레이어 고유의 경험을 강조하며, 정서 패턴을 구축한다. 설령 보스를 쓰러뜨리지 않더라도 엘레의 교회에서 세이브 포인트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전 작에서 학습한 메커닉과 배치되기도 한다. 물론 〈엘든 링〉에서 등장하는 모든 보스가 트리 가드처럼 새로운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프롬 소프트웨어는 기존의 문법을 연장하여 보스를 활용한다. 림그레이브에서 호수의 리에니에로 넘어가는 길목에는 접목의 고드릭이 놓여 있고, 도읍 로데일에 들어서려면 최소한 두 명의 데미갓을 제패해야 한다. 동선을 제한하는 조건을 둠으로써 플레이어의 행로를 조절하는 것이다. 이는 플레이어에게 시기에 따라 제한된 정보를 제공하여 광범위한 정보나 상황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유도하는 활성 제약이기도 하다. 7) 그러나 다양한 우회로가 존재하는 한, 이러한 조건은 이전만큼의 당위성을 갖지 못한다. 플레이어는 반드시 고드릭 보스전을 거치지 않더라도 스톰 빌 성벽의 외곽을 통해 호수의 리에니에로 진출할 수 있으며, 아예 림그레이브 남부에서 함정 포탈을 타고서 도읍 로데일로 이동하는 것도 가능하다. NPC들은 우회로의 존재를 넌지시 알려주기도 한다. 이는 단선의 우회라는 방식을 학습하게 하며, 우회로의 존재는 필드가 품은 넓은 역량을 상상하게끔 유도한다. 그 외에도 간편해진 시스템은 그 자체로 풍부한 선택지를 확보한다. 〈엘든 링〉에서는 지도를 통해 축복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으며, 기동성이 뛰어난 영마를 쉽게 소환하고 해제하여 공간을 용이하게 정복한다. 위의 언론들에서 일컫던 ‘다양한 전술’에 기여하는 셈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자유도’라는 표현으로 압축되는, 게이머들이 오픈 월드라는 수사에 기대하는 가치를 고려해보았을 때 〈엘든 링〉이 이를 충족하는지 확언하기는 조금 어렵다. (비록 자유도라는 용어는 명확하게 정의된 바 없이 맥락마다 다른 의미를 갖지만) 놀이는 본질적으로 교란이며, 무언가의 정상적 상태를 교란하기 때문에 자유에 대한 기대는 근본적이다. 마인 크래프트와 같은 샌드박스 형 게임이 아니더라도, 플레이어는 그가 선택한 행위에 관해서 게임이 유의미한 피드백을 되돌려 주기를 원한다. 유원지로서 기대되는 오픈 월드는 다양한 행위를 수행하는 포괄적인 장이다. 그렇게 플레이어가 속한 세계에 대한 이해를 확충하게끔 해준다. 그러나 〈엘든 링〉에서 플레이어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그다지 넓지 않다. 플레이어가 게임에 개입하는 방식이 비/적대로 간소화되기 때문이다. 대면하는 거의 모든 것은 전투 가능한 상태이다. 언제든 죽음으로 정복될 여지를 가진다. 접촉 메커니즘은 적대와 평화를 가르는 한 번의 칼질로 규명된다. 그런 점에서 〈엘든 링〉에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포함해 게임 세계에 놓인 구조물이 단순하다는 지적 역시 유효하다. NPC들은 원자화된 개인의 이합집산에 불과하며, 대사의 자막은 썰렁하기 그지없다. 이는 “실존적 복잡성에서 잠시 피난하여 적절한 행위를 산출하는 행위적 유형을 체득하게 한다”는 티 응우옌의 게임에 관한 정의를 떠올리게 한다. 8) 최종 보스전은 〈엘든 링〉의 성격을 함축적으로 구현한다. 라다곤의 육체는 녹아내려 한 자루의 칼로 빚어진다. 뒤이어 등장한 엘데의 짐승은 생명체라기보다 관념에 가까워 보이며, 이를 무엇인가로 확정해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보스전이라는 형태를 통해 플레이어의 이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상호작용하게 된다. 그렇게 플레이어는 때리고 구르고 피하는 일련의 행위로 그를 해석한다. 세계성을 구축하려는 게임들은 플레이어가 그 스스로 인식하는 범위 이상으로 넓은 세계가 펼쳐져 있다는 인상을 받길 바란다, 〈엘든 링〉의 메커니즘은 그러한 역량을 소거할 위험을 안긴다. 다크 소울 1에서는 게임 플레이의 장과 주변의 플레이 불가능한 공간을 흩뜨리는 방식으로 공간감을 높였다. 9) 플레이어는 숏컷을 뚫고, 현재 상호작용 불가능한 문 너머에서 반짝이는 아이템을 보며 공간에 관한 상상을 확장할 수 있다. 그 배후로 늘어진 배경 이미지는 비록 탐험 불가능한 영역일지라도 공간에 대한 경험을 통합해준다. 대신에 〈엘든 링〉은 풍경을 활용함으로써 플레이어가 탐구할 여백을 확보한다. NME는 〈엘든 링〉을 GOTY로 선정하며 풍경의 매력을 언급한다. 10) 확실히 풍경은 섬세한 오브젝트나 아름다운 색채 등을 통해 심미적 경험을 안긴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NME는 스톰 빌 성, 레아 루카리아와 같은 레거시 던전의 전체 윤곽이 포괄되는 시야로 이를 언급하고 있다. 공기원근법은 이전 작에 비해 약화하여 멀리 떨어진 대상을 눈앞으로 가져온다. 그렇게 풍경은 단순히 보고 읽는 배경이 아니라 실제로 플레이어가 횡단하며 상호작용하는 주된 장이라는 점에서 각별하게 다가오며, 경험을 정교하게 부연하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11) 〈엘든 링〉에서 튜토리얼을 마치면 어두운 지하에서 승강기를 타고 올라와 림그레이브에 들어서게 된다. 위로 상승하는 동선은 널찍이 펼쳐진 바깥의 필드 중앙에 우뚝 선 황금 나무와 일치한다. 찬란하게 빛나는 나무는 틈새의 땅에서 살아가는 한갓 미물과 대비를 이룬다. 나무 아래 나열된 신수탑은 한눈에 포착된다. 주요 보스를 격파하고 방문하는 장소인 신수탑은 앞으로 진행할 여정을 집약적으로 제시한다. 그렇게 풍경은 플레이어가 사건을 겪고 맥락을 형성하게 될, 의미로 가득 찬 공간이 된다. 한편 필드에 늘어선 폐허는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며 플레이어의 경험을 입체적으로 부연한다. H. 루에젠과 푹스는 폐허의 재현이라는 관점에서 언리얼 엔진 5 공개 영상을 독해한다. 그에 따르면 포토리얼리즘의 사실적 구현이 몰두하는 주요한 부분은 어떻게 더 사실적으로 몰락과 폐허를 그려낼 것인가의 문제다. 12) 폐허는 과거에 존재했던 거대한 무언가의 일부면서 동시에 그 단절을 드러낸다. 유적석이나 신전석과 같은 재료는 한때 거기에 파편이 아닌 총체가 남아 있음을 주지시킨다. 설령 소멸이나 죽음이라 할지라도. 13) 이 때 게임이 플레이어의 내면에 불러일으키는 감상은 경외심과 공포를 함께 아우르는 낭만주의적 정서인 숭고와 닮았다. 지각과 감성의 한계를 넘어선 것을 표상하면서 숭고는 생겨난다. 벨라는 게임에서 “닫힌 가능성의 광대한 공간을 드러냄으로써” 유희적 숭고가 작동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14) 이는 로어에서도 유사하게 발견 가능하다. 아이템 로어는 플레이어에게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황금시대를 부분적으로 상상하게 한다. 〈엘든 링〉에서는 몹이나 지역에 관한 이해를 도와줄 별도의 코덱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도감이나 백과사전 따위를 기대하기 어렵다. 대상과 관련한 이야깃거리는 장비 아이템의 설명란에 짤막하게 붙어 있을 따름이다. 수많은 아이템에 산개된 정보를 일일이 재조합해야 한다. NPC의 대사나 비석과 같이 특정한 국면에서 상호작용 가능한 정보는 플레이어가 별도로 스크린샷을 찍어두어야만 저장할 수 있다. 불친절한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사실상 정보의 폐허이기도 하다.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 특유의 불분명한 스토리텔링은 그러한 로어를 짜 맞춰 ‘프롬뇌’를 굴리며 이야기를 추론하는 집단적 움직임을 활성화했다. 부재하려는 것을 되살리려는 고고학적 시도인 셈이다. 고고학자 빌 팔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Archaeology Tube가 Video Game Archaeology 카테고리를 통해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을 그러한 시선으로 다루는 게 대표적이다. 15) 수직 요소를 적극적으로 가시화하는 〈엘든 링〉은 미스터리의 탐구를 종용하는 듯하다. 게임에서는 지도 후면을 통해 지하를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지상의 이미지가 겹치며 선명하게 드러나는 지저는 그 자체로 비밀을 품은 땅이다. 추레한 몰골의 고드윈이나 드넓게 펼쳐진 붉은 부패의 늪은 미스터리의 탐구를 흥미롭게 만든다. 이처럼 〈엘든 링〉은 가지 않은 장소에 대한 환상을 유지함으로써 유지되는 플레이 동기를 지속한다. 그 세계는 적대의 원리에 의해 고독하고 적의에 차 있으나 동시에 그 특유의 부동성으로 기억과 경험을 수용해준다. 게임을 하다 보면 어떤 순간에 도달한다. 완성한 지도에서 더 이상 가지 않은 장소는 없으며, 무한한 탐험을 약속하던 세계는 더 이상 광야가 아니다. 그때 〈엘든 링〉은 그림 같은 정원에 가까워진다. 자연물과 폐허를 포함한 정원은 “열정적인 기억, 회한, 달콤한 멜랑콜리를 더 잘 자극할 목적으로 새로이 부재를 만들어낸다.” 16) 설령 엔딩이 일종의 종말을 선언한 이후에도, 플레이어들은 불완전한 총체성을 해소할 길 없이 꿈꾸며 정원을 헤맨다. 1) Statistia, “Lifetime unit sales generated by Elden Ring worldwide as of November 2022”, https://www.statista.com/statistics/1300663/elden-ring-sales-worldwide/ 2) Mike Mahardy and Polygon Staff, “The 50 best video games of 2022”, 2022.12.06., https://www.polygon.com/what-to-play/22956981/best-games-2022-list 3) Giovanni Colantonio and Tomas Franzese, “The 10 best video games of 2022”, 2022.12.05., https://www.digitaltrends.com/gaming/best-video-games-2022-top-10/ 4) “Elden Ring is based on a culmination of everything we've done with the Dark Souls series and with our games thus far.” Will Nelson, “‘Elden Ring’ is the “culmination” of FromSoftware’s games says Miyazaki“, 2021.12.30., https://www.gamesradar.com/elden-ring-fromsoftware-hidetaka-miyazaki-interview/ 참고. 5) Florence Smith Nicholas and Michael Cook, The Dark Souls of Archaeology: Recording Elden Ring. 2022. In Proceedings of the 17th International Conference on the Foundations of Digital Games. 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 1p. 6) 김정선, 오픈월드 게임의 레벨디자인 및 시스템 요소 연구 : ‘젤다의 전설 : 야생의 숨결’을 중심으로, 2019 한국게임학회 추계학술발표대회, 2019, vol.20(3), 300쪽. 7) 윗글, 301쪽. 8) C. 티 응우옌, 게임: 행위성의 예술, 이동휘 역, 서울: 워크룸프레스, (2022), 86쪽. 9) Daniel Vella, No mastery without mystery: Dark Souls and the ludic sublime, Game Studies, 2015. vol.15(1). 10) “Best Bit: The way Elden Ring uses stunning vistas to show your objectives: Stormveil looming over Limgrave, the reveal of Liurnia and Raya Lucaria afterwards, the descent to Siofra River, the dragon in Leyndell…”, NME, “The 20 best games of 2022”, 2022.12.06., https://www.nme.com/features/gaming-features/the-20-best-games-of-2022-3360445 11) Paul Martin, The pastoral and the sublime in Elder Scrolls IV: Oblivion, Game Studies, 2011, vol.11(3). 12) Eduardo H Luersen, Mathias Fuchs, Ruins of Excess: Computer Games Images and the Rendering of Technological Obsolescence, Games and Culture, 2021. vol. 16(8), 1091p. 13) 장 스타로뱅스키, 자유의 발명/이성의 상징, 이충훈 역, 파주: 문학동네, (2018) 202쪽. 14) Daniel Vella, No mastery without mystery: Dark Souls and the ludic sublime, Game Studies, 2015. vol.15(1) 15) Archaeology Tube, An Archaeologist Plays Elden Ring (FIRST IMPRESSIONS), 2022.02.27., https://www.youtube.com/watch?v=Imtkh8B3U2Q 16) . 장 스타로뱅스키, 224쪽.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김규리 게임이 이야기를 경험시키는 방식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것저것 기웃거리다가 최근에는 <마라톤>을 플레이했습니다.
- [북리뷰] 이토록 숭고한 게임 속 괴물들 - 『플레이어 vs. 몬스터』
<다크 소울> 시리즈나 <엘든 링>과 같은 프롬 소프트웨어의 게임에는 어렵다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한다.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죽음을 맞으면 화면에 빨갛게 떠오르는 ‘You Died’는 상징적인 밈으로 통용된다. 보스와의 전투는 게임의 까다로운 난이도를 구현하는 대표적인 축이다. 게임 유튜버들은 보스전을 성취하는 데에 몇 번의 ‘트라이’를 거쳤는지와 같은 극악한 고투를 부각하기도 한다. 한편 보스들의 기괴한 외형은 이러한 플레이를 더욱 각별하게 만든다. 대표적으로 <다크 소울3>의 튜토리얼 보스인 군다는 2페이즈에서 별안간 검은색 고름 덩어리가 되고, <엘든 링>의 멀기트는 꼬리를 몽둥이처럼 휘두르는 패턴 따위로 플레이어를 곤란하게 만든다. < Back [북리뷰] 이토록 숭고한 게임 속 괴물들 - 『플레이어 vs. 몬스터』 22 GG Vol. 25. 2. 10. <다크 소울> 시리즈나 <엘든 링>과 같은 프롬 소프트웨어의 게임에는 어렵다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한다.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죽음을 맞으면 화면에 빨갛게 떠오르는 ‘You Died’는 상징적인 밈으로 통용된다. 보스와의 전투는 게임의 까다로운 난이도를 구현하는 대표적인 축이다. 게임 유튜버들은 보스전을 성취하는 데에 몇 번의 ‘트라이’를 거쳤는지와 같은 극악한 고투를 부각하기도 한다. 한편 보스들의 기괴한 외형은 이러한 플레이를 더욱 각별하게 만든다. 대표적으로 <다크 소울3>의 튜토리얼 보스인 군다는 2페이즈에서 별안간 검은색 고름 덩어리가 되고, <엘든 링>의 멀기트는 꼬리를 몽둥이처럼 휘두르는 패턴 따위로 플레이어를 곤란하게 만든다. 기이한 점은, 이렇게 적들을 마주하다 보면 어느 순간 묘한 매료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플레이어 vs. 몬스터』의 저자인 야로슬라브 슈벨흐는 <블러드본>의 이브리에타스가 품은 괴물적인 아름다움에 사로잡힌 경험을 서술한다. 그는 이 경이로운 생명체를 계속 바라보고 싶었기에 결국 싸움을 택하지 않았다. 그의 일화를 읽는데 문득 <다크 소울3>에서 미디르를 잡은 후, 묘한 허탈감에 시달리며 소사한 시체만 가득 쌓인 폐허를 한참 동안 서성이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처럼 게임에서의 괴물은 격퇴해야 할 목표로 상정되어 있으면서도 호승심을 초과하는 괴상야릇한 매력을 발산한다. 그렇다면 게임은 괴물을 어떻게 빚어내고 제시할까? 이 책에서 슈벨흐는 <스페이스 인베이더(1978)>부터 <컨트롤(2019)>까지 게임을 역사적으로 아우르며 괴물의 존재론을 탐구한다. 숭고하지 않은 괴물 많은 문화에서는 저마다의 괴물을 이야기한다. 일본에서는 각종 요괴담이 돌고, 톨킨은 <반지의 제왕>에서는 스마우그가, <헤일로>에서는 외계인이. 이렇듯 널뛰는 괴물을 한데 모아 이 책에서는 범박하게 “현대 과학의 시각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는 모든 생명체”로 범위를 한정 짓는다. 전통적으로 괴물은 바람직하지 않은 속성을 지닌 것으로 묘사된다. 기형적인 외모를 지녔거나 부덕한 내면을 가진 괴물은 규범을 위반하는 존재다. 이를테면 중세 유럽의 사람들은 얼굴이 가슴으로 함몰된 형태의 블렘미아이Blemmyae라는 괴물이 아프리카에서 산다고 상상했다. 중세인에게 정상적인 인간이란 온전한 머리를 통해 사물을 이해하는 존재이자 “전지전능한 창조주의 육체적 거울상”이었기 때문에 머리가 없는 블렘미아이는 육체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열등한 생물이었다 [1] . 이런 괴물들은 이성이 그려내는 세계의 너머를 자극하기에 공포스럽다. 성서 속 리바이어던처럼 창조주의 질서 안에 놓이되 동시에 그 권위를 위협하기도 하며, 부패한 고름이나 혈액과 같이 원래는 온전했‘던’ 육신에서부터 튀어나와 혐오를 불러일으키기도 해, 그 결과로 온갖 범주를 뒤섞어놓으며 인지적 혼란을 빚어내는 것이다. 슈벨흐는 괴물이 감상자에게 불러일으키는 특유의 감정을 숭고로 설명한다. 숭고함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은 “우리의 표현 능력에 적합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고, 상상력에 폭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칸트는 이와 같은 숭고가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큰 것, 혹은 엄청난 위력을 지닌 것으로부터 유래한다고 설명한다. 무한성(무형식)을 지닌 대상에서 발견되는 숭고는 인간 상상력과 지성의 한계 너머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우리를 매료시킨다는 것이다 [2] . 한편 슈벨흐는 인간 주체가 자신의 지식 구조에 괴물을 포함하려는 노력을 지속해 왔다고 말한다. 인간은 언제나 미지의 영역을 정복하려 해왔다. 지도를 그리며 잘 모르는 세계의 지형을 정교화하고, 백과사전을 편찬해 인간 아닌 종을 서술하려는 시도가 대표적이다. 신비한 힘을 지녔던 괴물 역시도 점차 인간의 체계 안에 편성된다. 정리 작업의 최종적인 목표는 괴물을 지식화하여 관리하고 이용하는 것이다. 그 결과로 슈벨흐는 괴물이 적이나 놀잇감의 형태로 단순화된다고 바라본다. 이누이트족의 투필라크는 그러한 설명과 걸맞은 사례이다. 본디 투필라크는 주술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비밀스럽게 제작되는 복수귀였으나, 그린란드가 유럽에 복속된 이후 이누이트 문화의 이국성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관광 기념품이 되었다. 괴물이 품은 고유한 아우라가 파괴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숭고를 완전히 상실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괴물이 지닌 특별한 맥락은 계속 갱신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의미가 부연 되기 때문이다. 좀비 모티프가 끝없이 진화하듯, 그들은 유순하게 길든 자리에서 심연을 응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게임에서 괴물은 어떻게 그려지는가? 그에 앞서 슈벨흐는 비디오 게임이 놓인 역사적 맥락을 짚는다. 비디오 게임은 냉전이라는 특수한 지정학적 사고에 얽매여 있던 시기에 태동한 미디어이다. 정부나 군을 통해 직접적으로 제공받은 하드웨어나 컴퓨팅 프로젝트에 관한 후원은 비디오 게임의 토대를 이루었다. FPS 장르에 이르는 기술사적 계보를 추적한 김영대의 글은 흥미로운 사례이다. 그에 따르면 미군에서 폭격기 조종사를 양성하기 위해 개발되었던 시뮬레이션 시스템은 이미지를 빠르게 렌더링함으로써 실시간성을 만들어냈고, 이는 <스페이심>과 같은 비디오 게임의 전투에 영향을 미쳤다 [3] . 이처럼 비디오 게임은 냉전의 문화적 요인에 긴박 되어 있다. 과학사학자 폴 에드워즈는 냉전의 세계관을 ‘폐쇄 세계closed world’로 설명한다. “모든 사고와 언어 그리고 행동이 궁극적으로 중심 갈등을 향하는 꼼짝 없이 자기 참조적인 공간”이라는 것이다. 특히나 발전된 컴퓨터 기술은 중앙에서 실시간으로 군사 통제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가상의 기획을 현실로 옮길 수 있었다. 그렇게 전산화된 세계는 하나의 형이상학적이고도 폐쇄적인 체계로 맺어졌다. “모든 요소가 통합되고 적절한 가중치가 부여되었다는 믿음 하에 계속해서 시나리오를 실행하고 또 실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델링과 시뮬레이션에 전적으로 적합”했다 [4] . 즉 적대적 존재를 시뮬레이션의 세계에서 빚어내 입력에 따른 결과를 연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디오 게임의 괴물은 바로 그러한 시뮬레이션 안에 놓여 있다. 기호로 모델링된 괴물은 곧 조작 가능한 정의에 의해 좌우된다. 본래 냉전 시기 군사 이데올로기가 시뮬레이션의 발달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바-적과 나를 일관적인 시스템 안에 체계적으로 편성한 후, 행동과 미래를 예측하는 전략의 수립-가 비디오 게임 안에서 실현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비디오 게임 속의 괴물이 “연산적이고(computational) 상품화된 타자성”을 지니며, 이로 인해 “분명 위협적인 존재이나 토벌 가능한 모순”으로 이해된다고 설명한다. 이 관점에서 그는 게임의 폭력성을 문제화할 때 살해 애니메이션이나 혈흔의 표현과 같이 피상적인 차원에서 다루기보다는, 그렇게 되도록 결정하고 배치하는 디지털적 권력을 문제 삼길 제안한다. 책의 2장과 3장에서는 게임 속 괴물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빚어지는지에 관한 사례가 부연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던전 앤 드래곤>은 연산 가능한 괴물을 폭발적으로 확산하는 데에 기여한 타이틀이다. PvE(Player Vs. Environment)를 “인간 심판이나 컴퓨터 소프트웨어 등의 제삼자가 일련의 장애물과 적을 제어하는 동안 플레이어가 시뮬레이션 환경에서 캐릭터를 조작해 그와 대결하는 게임 플레이 상황”으로 정의한다면, <던전 앤 드래곤>이 PvE의 형식과 함께 만연해졌음을 이해할 수 있다. ‘던전’이라는 어휘로 매혹적인 모험을 형상화하는 이 프랜차이즈는 톨킨식 장르 문학이 대중화됨에 따라 큰 인기를 누렸다. 톨킨은 허구의 세계인 아르다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계보나 언어와 같은 설정을 섬세하게 써 내려갔는데, 일종의 백과사전 집필로도 표현할 수 있는 톨킨의 작업은 이후 RPG 게임에서 시나리오를 짜는 데에 큰 영향을 끼쳤다. <던전 앤 드래곤>은 바로 그러한 이질적 존재들, 백과사전 항목에 등재된 사우론과 프로도에게 각종 ‘능력치’를 부여했다. 그런 면에서 <던전 앤 드래곤>은 컴퓨터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계산적(computational) 게임이었다. 온갖 종류의 이종들은 정확한 통계에서 비롯된 능력치를 부여받아 “하나의 수학 규칙 매트릭스에 맞게” 배치되었고, 주사위를 랜덤하게 굴렸을 때의 수치와 고정 능력치를 조합하여 게임 이벤트가 진전되었다. 그 결과 “이미지, 문화, 통계를 결합해 괴물을 만들어내는 공식”이 게임계에 자리 잡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괴물들은 게임 플레이의 흐름을 형성하는 중책을 맡는다. “적절한 대응을 요구하는 일련의 명확한 목표가 앞에 있을 때 몰입할 가능성이 높다” [5] 고 칙센트미하이가 이야기하고 있을 때, 일정 수준 내에서 까다로운 괴물과 전투를 치르고 그에 대해 보상을 얻는 일련의 과정은 플레이어를 충분히 몰입시킨다. 따라서 난관을 어떻게 수용 가능한 수준으로 형상화할 것인가가 디자인의 주요한 화두가 된다. <갓 오브 워>의 전투 디자이너인 데니 예는 괴물을 통해서 플레이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끔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적이 가하는 공격은 일정한 패턴 속에서 이루어지며, 이를 충분히 관찰한 후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미리 예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릴 수 있어야” 하는 괴물은 사용자의 경험이라는 요소를 우선시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현대의 비디오 게임 속 괴물은 실용적인 방식으로 이해된다. 디자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실루엣 테스트는 괴물이 실용성과 미학성을 충족했는지 판별하기 위한 절차이다. 비교적 낯선 대상의 외형을 플레이어가 쉽게 판별하고, 다른 것들과 차별화해 구분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괴물은 외형적으로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키면서도 그로 인해서 만족스러운 사용자 경험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 미학적 측면에서 리얼리즘은 비디오 게임의 괴물과 관련이 깊다. 환상 속의 존재를 그럴듯하게 제시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현실의 요소를 동원하기에 이른다. 슈벨흐는 리얼리즘을 두고 ‘현실적’이라는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채택하는 일련의 미적이고 기술적인 관습들이라고 간략히 요약하는데, 특히나 비디오 게임에서 괴물을 디자인하는 데에 지배적인 것은 해부학적 리얼리즘이다. 이러한 경향은 비단 비디오 게임에서만 두드러지는 것은 아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래리 해리하우젠과 같은 예술가들은 자신의 창작 노트에서 상상 속 동물을 ‘자연스럽게’ 형상화할 수 있게 실존하는 동물의 생체적 지식을 기입하기도 했다. 그러한 인식은 비디오 게임 제작에서의 폴리곤 메쉬나 모션 캡쳐 등의 방식으로 계승되고 있다. 특히 비디오 게임에서의 시청각적 표현은 3D 그래픽으로 전환하며 초기 영화에서의 괴수 표현이 그러했듯 미니어처를 제작하는 형식으로 이해되었다. 타냐 크르지윈스카는 더 큰 그래픽 리소스가 아티스트들에게 “더욱 환상적인 개체를 만들 수 있을 자유”를 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도 했으나, 현실의 AAA게임에서 포토리얼리즘이라는 규범이 맹위를 떨치는 한, 괴물을 주변 환경에 걸맞게 높은 수준의 디테일로 모델링한다는 해부학적 개연성의 틀에 맞춘 재현이 지배적인 관습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요컨대 비디오 게임이 창조한 괴물은 기능적으로나 외형적으로나 “객관화되고 관리 가능한 존재”로 표현된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포스트휴먼이 괴물에게서 숭고를 느끼는 법 슈벨흐는 비디오 게임에서 괴물을 조형하는 방식이 <스페이스 인베이더> 이후로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고 서술한다. 기존의 PvE 도식을 고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시점에서 이와 같은 답보 상태는 문제적일 수밖에 없다. 인간 주체에 대한 확고한 믿음은 글로벌 금융 위기나 기후 재앙, 판데믹과 같은 사건을 겪으며 뒤흔들렸다. 전반적으로 현재 만연한 위기와 이에 대한 지적 대응은 무언가를 괴물 같은 타자로 식별하고 해석할 수 있는 관찰자의 특권을 불안정하게 만든 것이다. 이런 시대 속에서 인간은 짓쳐 드는 위험으로부터 거리를 둔 채 패턴을 예측할 도피처도 없고, 그럴 만한 시간조차 없다. 더군다나 인간이 가상의 적을 효과적으로 적대하기 위해 고안한 테크놀로지는 버그나 데몬 같이 초자연적인 생명체처럼 움직이며 인간 제어를 무시하기도 한다. 버그는 컴퓨터의 오류를 의미하는 어휘로만 한정되지 않으며 ‘자그마한 오류’를 푸념하는 토마스 에디슨의 편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지난한 역사를 지닌다. 기계 상의 오류를 살아있는 생명체로 일컫는 방식의 수사는 이들을 괴물의 한 종류로 볼 가능성을 확보한다. 결론적으로 슈벨흐는 숭고 개념을 재검토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사실 숭고를 이야기한 칸트에 따르면 위력을 지닌 무엇이 발하는 숭고는 “그 위력이 우리에게 강제력(실제의 위협)을 발휘하지 못할 때” 느낄 수 있다. 폭풍우에 실제로 휩쓸리는 동안은 오직 공포를 느낄 뿐이다. 진정 숭고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산장과 같은 안전한 곳으로 피신한 후에 대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제야 인간은 “감성의 한계를 넘어선 ‘거대한’ 것을 표상할 수 있으며, 상상력의 확장 가능성을 느끼며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7] . 그러나 임박한 재앙은 쉬이 파악될 수 없고, 안전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슈벨흐는 숭고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되, “헤아릴 수 없고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타자성이라는 의미에서의 괴물”은 여전히 유효한 프레임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 출처: E nvironmental_Pea791. “If the game was 3D, I think the enemies would look like this.”. Reddit. 책의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해부학적 개연성에 지배되지 않은 비디오 게임 속 괴물의 사례를 탐구한다. <언더 테일>과 같이 연민을 유발하며 인간의 거리 두기를 위협하는 괴물, 목적 없이 등장하며 파괴 불가능한 성질을 지닌 <컨트롤>의 아스트랄 스파이크, 다른 개체와 두뇌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군체처럼 기능하는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의 쥐, 게임 코드나 인터페이스를 장악하는 <메탈 기어 솔리드>의 사이코 맨티스와 같은 사례는 기존의 PvE 도식이 전제하던 교전 개념을 유쾌하게 폐기한다. 이와 같은 존재를 감각하는 과정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탐구하는 비판적 사유로서의 포스트휴먼 개념을 환기해 볼 수 있다. 포스트휴먼은 인간과 인간 아닌 것 사이를 엄격하게 나누는 이분법을 해체하려는 기획이다. 포스트휴먼의 사유에 의하면 인간을 인간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것은 인간 고유의 특별함 때문이 아니다. 다른 것들과 상호작용하는 네트워크 안에 놓인 어떠한 위치가 그를 개인으로 배치할 뿐이다 [8] . 마찬가지로 슈벨흐가 열거한 사례는 인간 플레이어가 본래 누리던 우월한 지위를 해체하고, 게임이 할당한 디지털적 권력이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지 감각할 수 있게 한다. 책을 따라서 이와 같은 예시를 읽다 보면, 이토록이나 다양한 괴물들이 PvE의 규범을 해체하고 있다는 사실에 희열을 느낄지도 모른다. 비디오 게임 속의 괴물 즉 기이한 이들과의 뒤얽힘 속에서 플레이어는 환경(Environment)과 오직 적대하기만 하는 인간이 아닌, 그 안에서 함께하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1] 잭 하트넬. 장성주 역. 『중세 시대의 몸』. (2023). 서울: 시공사. 50쪽. [2] 김예경. (2018). 『프랑켄슈타인』, 숭고와 그로테스크. 우리어문연구,(62), 405-407쪽. [3] 김영대. (2019). 던전의 전투기들: FPS의 짧은 기술사. 문화연구, 7(1), 165-168. [4] 앙투안 부스케. 최석현 역. (2022). 미국 전쟁 기계의 사이버네틱스화: 냉전기 과학과 컴퓨터. 아카루트. 7-8쪽. [5]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이희재 역. 『몰입의 즐거움』. (2009). 서울: 해냄출판사. 45쪽. [6] Denny Yeh. Fighting a God: Behind the Scenes of God of War’s First Boss Battle. 2018.08.16.등록. 2025.01.24.접속. Playstation.Blog . https://blog.playstation.com/2018/08/16/fighting-a-god-behind-the-scenes-of-god-of-wars-first-boss-battle/ [7] 김예경. (2018). 『프랑켄슈타인』, 숭고와 그로테스크. 우리어문연구,(62), 408쪽. [8] 박준영. (2023). 『신유물론, 물질의 존재론과 정치학』. 서울: 그린비. 119-124쪽.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김규리 게임이 이야기를 경험시키는 방식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것저것 기웃거리다가 최근에는 <마라톤>을 플레이했습니다.
- 게임을 연구한다는 것 - 『크리티컬 워드 - 게임 스터디즈』가 던지는 질문들
북유럽에서는 디자인 학부가, 북미에서는 영화학과가, 일본에서는 사회과학이나 이공계가 게임 연구를 주도하는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그들은 문제가 아니라 가능성으로 본다. 이 책은 단순한 게임 연구의 용어사전이 아니다. 여기에는 일본 게임 연구 공동체가 지난 20년 동안 축적해온 고민이 농축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학문적 경계 위에 서 있는 한국 게임 연구자들 역시 공유하는 고민이기도 하다. < Back 27 GG Vol. 25.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Mimong Lee From childhood to now, always in the company of Nintendo games. A few months ago, bought a Steam Deck on installment and has been enjoying it to the fullest. Studied business administration at Kyung Hee University and cultural mediation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Yonsei University, and is currently a doctoral student in the Graduate School of Core Ethics and Frontier Sciences at Ritsumeikan University in Japan. Researches digital media content and culture, including games and webtoons.
- 코스믹 호러의 게임적 변용
이토 준지풍의 그림체와 크툴루 세계관이 결합된 <공포의 세계>의 장점 역시 동일하다. 그로테스크하고 이질적으로 변화한 마을 구성원들을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다는 소름 돋는 경험이야말로 등대에 강림할 고대신보다 공포스러운 일이다. 내가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확신은 일상의 궤도에서 이상 징후와 균열을 발견할 때 불안으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 Back 코스믹 호러의 게임적 변용 19 GG Vol. 24. 8. 10.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인간의 감정은 공포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것이 바로 미지에 대한 공포이다. - H.P. 러브크래프트, 공포 문학의 매혹 중 코스믹 호러(cosmic horror)라는 특수한 조건에서만 실현 가능한 장르를 게임을 통해 재현하는 일은 그 목적이 플레이어에게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이라면 성공하기 쉽지 않다. 코스믹 호러는 단어 그대로 인간의 사유와 이성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한 거대한 존재를 마주쳤을 때 경험하게 되는 우주적 공포를 의미한다. 오랜 기간을 통해 축적해 온 문명을 포함한 인간적 가치가 통용되지 않는 불가해한 공포를 목도하는 상황과 그에 대한 매혹은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대변하는 특징이다. 그리고 러브크래프트적 세계관은 그가 활동했던 시대보다는 오히려 지금에 와서 적극적으로 향유되고 차용하고 있다. “거기서 크툰을?”이라는 밈으로 기억하는 이가 적지 않을 <하스스톤>의 고대신의 저주 덱만 하더라도 러브크래프트 세계관의 고대신 중 하나인 크툴루 이미지를 빌려온 대표적인 사례다. 크툰(C'Thun)이라는 이름조차 크툴루(Cthulhu)를 연상케 하는 의도적인 작명이다. 게임을 비롯한 서브 컬쳐에서 크툴루가 코스믹 호러를 대표하는 표상이자 오마쥬로 손쉽게 활용되는 이유는 러브크래프트의 작업물 중 드물게 크툴루 만이 소설에서 비교적 뚜렷하게 외양이 묘사되어 있고 작가의 스케치도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시각화할 수 있는 뚜렷한 이미지가 존재한다는 점은 공포를 야기하는 데는 장애물로 작용하기도 한다. 러브크래프트 세계관의 크리쳐를 충실하게 재현하고자 했던 나 <콜 오브 크툴루>와 같은 게임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었던 요인 중 하나는 시각적 재현을 통해서는 공포를 전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그래픽 해상도나 디자인, 크리쳐의 거대함을 체감할 수 있는 상대적 크기의 구현에 대한 문제만은 아니다. 오히려 분명하게 가시화된 것일수록 공포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러브크래프트는 기이한 이야기가 예술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정밀하게 사건을 묘사하려는 노력이 아니라 분위기의 조성을 제안한 바 있다. 코스믹 호러를 경험하게 되는 소설적 사건은 그 자체가 비현실적이며 허구적인 것이기에 정밀한 묘사를 통해 리얼리티를 획득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인간의 기분을 명확하게 상징화하는 것이야말로 묘사보다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할 영역이다. 공포, 그것도 특정한 맥락의 사건을 통해 야기되는 감정의 결을 상징화하는 작업은 시각을 중점적으로 매개하는 매체가 좀처럼 도전하기 어려운 영역이기도 하다.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대상의 모호함, 불분명함에서 오는 상상이 야기하는 불안감이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공포 영화는 본질적으로 시각 중심적 매체라는 영화의 장점 일부를 포기하고 카메라의 시야를 제한하고 대상을 어둡고 흐릿한 배경을 통해 부각하는 전략을 취한다. 아울러 관객이 사건을 목도하는 전후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동시에 감상의 가이드라인으로써 소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러나 게임은 플레이어의 행위성을 사건 전개의 중심축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영화와 같은 시각 매체 감상자가 경험하는 무력감, 일방향적인 위치에서 수행되는 관음에서 비롯된 공포를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은 쉽지 않다. 글의 마중물로 활용한 인용문과 같이 공포는 대상을 온전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불안감에서 기원하는 감정이다. 그리고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속에서 앎으로 포섭할 수 없는 존재를 목도한 이들은 필연적으로 광기에 사로잡힌다. 다만 서술자는 광인으로 대변되는 낯선 타자를 목격할 때 경악하거나, 서서히 잠식되는 광기로 인해 미지의 대상에 매혹되며 변화하는 자신의 내면을 진술하는가로 나뉠 뿐이다. 최소한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서 이 둘은 선행과 후행의 문제일 뿐 어느 쪽을 배제하거나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소설 <벽 속의 쥐>의 모티브를 공유하고 있는 <다키스트 던전>은 고대신의 유적을 저택에 은닉하고 있는 전대 가주의 편지로 시작된다. 지하의 유적을 탐사하며 결국 고대신의 제물로 후손을 끌어들인 선조의 목적을 저지하더라도 탐사대의 파멸은 불가피하다. 광기에 잠식된 이들은 결코 이전과 동일한 내면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다키스트 던전>은 후손의 자살을 암시하는 장면과 새로운 희생양이 될 또 다른 후손을 초대하는 편지로 끝을 맺는다. 이와 같은 서사는 한낱 인간으로서는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거대한 악의로부터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상기하는 러브크래프트적 세계관을 잘 보여줬다. 그러나 그보다 흥미로운 지점은 <다키스트 던전>이 광기를 하나의 변수이자 수치화할 수 있는 요소로 디자인한 게임이라는 점이다. 공포가 대응할 수 없는 미지에서 창출되는 감정이라면 공포 게임의 행위성은 그를 위배하는 방식으로, 달리 말하면 미지를 해소하고 장악하는 방식으로 디자인된다. 이 모순적인 결합방식을 시도한 결과물 중 눈여겨볼 만한 대표적인 게임은 크툴루 세계관을 기반으로 추리와 코스믹 호러의 공존을 시도한 <셜록 홈즈: 디 어웨이큰드>이다. 추리는 과학을 포함한 근대적 지식을 동원해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을 지향하는 행위다. 이 경우 만약 이성이 미지를 해체하는 유용하고 적확한 도구라면 해소될 수 있는 공포는 하나의 소재로 활용될 뿐이다. 그러나 <셜록 홈즈: 디 어웨이큰드>의 서사는 이성과 공포의 대결에서 공포에 손을 들어줬다. 홈즈는 어머니를 파멸로 이끈 광기가 자신에게도 유전될 것을 염려하면서도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괴이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광기에 접근한다. 그리고 광기에 매혹된 자신이 근대적 이성으로 무장한 이전의 ‘나’는 같은 인간일 수 없음을 인정하게 된다. 이성은 미지의 사건을 해결하기에 충분한 도구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질서와 법칙으로 무장한 자신의 세계가 확신을 가질 수 없는 불안한 외피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할 때 홈즈는 이전과는 다른 내면을 가진 인간이 된다. 심지어 고대신을 소환하고자 하는 이교도의 제의를 저지한 후일담에서 짐작할 수 있듯 홈즈의 정신은 그의 정체성이 붕괴되었던 상황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것은 게임을 통해 재현된 캐릭터의 내면일 뿐이며 플레이어의 영역에서 꼼꼼하게 단서를 모아가며 추리하는 플레이 경험은 이 게임이 ‘호러’ ‘어드벤처’라는 장르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전자의 수식어가 약소하다는 인상을 준다. 그렇다면 차라리 행위성을 제한하는 동시에 특정 행위성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광기를 활용하는 것은 어떨까. <다키스트 던전>이 광기를 활용하는 방식이 바로 그런 형태다. 플레이어는 지속적으로 특정 확률로 이상상태를 겪는 캐릭터들을 컨트롤하며 자신의 의지를 온전히 관철할 수 없는 세계를 인식한다. 물론 이것은 공포를 직접적으로 창출하기보다는 긴장감을 통해 몰입감을 고조시키는 효과이기는 하다. 그러나 공포를 해소하는 어드벤처식 게임 장르를 대신해 제안할 수 있는 하나의 예시로 고려될 수는 있을 것이다. <드렛지> 역시 광기를 게임적 요소로 활용한다. <드렛지>는 확률의 결과물만 보여주는 <다키스트 던전>보다 광기에 노출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재현한다. 게임 초반 여러 섬을 돌아다니며 새롭게 마을에 정착하고자 하는 낚시꾼의 일과 사이에는 간헐적이지만 지속적으로 이질감이 불거져 나온다. 심해에서 건져 올린 것 같은 기괴한 생김새의 어종, 이방인인 주인공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응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의미심장한 대사, 낮과는 전혀 다른 위협이 도사린 밤바다의 풍경은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러나 정작 크툴루의 오마쥬인 것이 분명한 고대신은 게임의 마지막 장면에서야 매우 짧게 모습을 드러낸다. 구체적으로 재현되면 될수록, 즉 대상을 명확하게 인지할수록 공포와는 거리가 멀어진다는 측면에서 이와 같은 전략은 유의미하다. 오히려 <드렛지>는 미지의 존재가 응시하는 시선을 화면 상단이나 심해의 충혈된 눈으로 표현하거나 광기에 잠식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점차 붉게 번져가는 파라미터 등의 인터페이스로 재현한다. 불분명하고 암시적인 분위기가 캐릭터의 불안을 야기하고 공포라는 감정을 창출하는 것이다. 광인은 타자의 모습으로 재현되기 쉽다. 그러나 <드렛지>는 분열된 자아를 통해 이성의 영역에서는 확신할 수 없는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투신하는 인간의 모습과 미지에 공포를 느끼는 인간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줬다. 희생된 아내를 부활시키기 위한 수집가의 광기는 설사 그것이 고대신을 소환해 마을이 소멸하는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멈추지 않는다. 다섯 가지의 물건을 모아달라는 의뢰를 수락한 어부는 결국 이것이 스스로 초래한 비극의 후일담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광기는 자신의 다른 얼굴이었던 셈이다. 코스믹 호러는 이제까지 믿어왔던 판단 능력에 대한 의심이자 철학의 붕괴, 신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된 공포다. 정상성, 실재성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공포는 지극히 인간적인 발명이다. 오직 인간만이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토대, 근거가 전면적으로 붕괴될 지도 모른다는 상상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매력적인 발상이 게임에 이식되는 과정에서 플레이가 경험하는 공포란 오히려 사소한 사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이토 준지풍의 그림체와 크툴루 세계관이 결합된 <공포의 세계>의 장점 역시 동일하다. 그로테스크하고 이질적으로 변화한 마을 구성원들을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다는 소름 돋는 경험이야말로 등대에 강림할 고대신보다 공포스러운 일이다. 내가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확신은 일상의 궤도에서 이상 징후와 균열을 발견할 때 불안으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성균관대학교 강사) 홍현영 패미콤을 화목한 가족 구성원의 필수품으로 광고한 덕분에 게임의 세계에 입문했다. <저스트댄서> 꾸준러. 『81년생 마리오』, 『게임의 이론』, 『미디어와 젠더』 등을 함께 썼다.
- 인벤토리 시스템은 어떻게 효율을 재미로 연결시켰는가?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라면 누구나 꽉찬 인벤토리에 스트레스를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2023년 대흥행을 이루었던 <발더스게이트3>에서는 아이템의 무게가 발목을 붙잡는다. 일반적으로 처음 게임을 시작한 플레이어는 어떤 아이템이 좋은 아이템이고, 어떤 아이템이 ‘잡템’인지 알 수 없어서 보부상처럼 모든 아이템을 들고 다닌다. 그러다 걸음걸이가 무거워지면 아이템 정리를 해야 하는데, 이때 무엇을 들고 다닐 것이고 무엇을 버리는 것이 효율적인지에 관한 고민이 시작된다. 그래서 유튜브나 커뮤니티에는 ‘발더스게이트 인벤토리 관리 꿀팁’ 글들이 무수히 올라와 있다. < Back 18 GG Vol. 24. 6. 10. Tags: 인벤토리, 롤플레잉, 아이템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won Seo Studies culture in pursuit of a more interesting life. Curious about a wide range of cultural domains, including games, religion, and film.
- [대담회] <어쌔신크리드: 섀도우스> 야스케 논란을 보는 여러 관점들
2024년 공개된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스>는 시리즈 최초로 일본 전국시대를 무대로 삼으며, 여성 시노비와 흑인 사무라이라는 두 명의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워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작품이 공개된 이후 흑인 사무라이 주인공의 인종과 배경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졌으며, 이는 국내외 커뮤니티에서 역사 고증의 문제를 넘어 서구중심주의나 PC주의 비판 등의 다양한 논쟁으로 확산되었다. 이번호 GG에서는 홍현영 박사, 이정엽 박사, 강신규 박사 세 명의 디지털 게임연구자 및 인문사회 연구자들을 만나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를 둘러싼 여러 층위의 쟁점을 나누고, 오늘날 게임이 재현하는 역사와 정체성의 의미와 딜레마를 검토해 보았다. < Back [대담회] <어쌔신크리드: 섀도우스> 야스케 논란을 보는 여러 관점들 24 GG Vol. 25. 6. 10. 2024년 공개된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스>는 시리즈 최초로 일본 전국시대를 무대로 삼으며, 여성 시노비와 흑인 사무라이라는 두 명의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워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작품이 공개된 이후 흑인 사무라이 주 인공의 인종과 배경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졌으며, 이는 국내외 커뮤니티에서 역사 고증의 문제를 넘어 서구중심주의나 PC주의 비판 등의 다양한 논쟁으로 확산되었다. 이번호 GG에서는 홍현영 박사, 이정엽 박사, 강신규 박사 세 명의 디지털 게임연구자 및 인문사회 연구자들을 만나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를 둘러싼 여러 층위의 쟁점을 나누고, 오늘날 게임이 재현하는 역사와 정체성의 의미와 딜레마를 검토해 보았다. 이경혁 편집장: GG의 이번 호 대담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배경설명을 해 드리자면,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는 17년 정도 된 오래된 프랜차이즈고요. 그간 예루살렘 근방의 어쌔신 집단, 이탈리아 피렌체, 미국 독립 전쟁 등 역사적 배경을 기반으로 하다가 사실상 시리즈 최초로 동아시아를 다룬 게 이번의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스> 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 전국시대 끝 무렵을 다루면서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의 인물이 나오게 됩니다. 이번 작품에는 두 명의 주인공이 있는데, 하나는 ‘후지바야시 나오에’라는 일본 여성 시노비이고 나머지 하나는 ‘야스케’라는 흑인 사무라이입니다. 이 중 후자가 이슈가 되었죠. ‘일본을 다루는 게임인데 일본인이 주인공이 아닌 경우가 어딨냐, 서구인들이 멋대로 만든 것이다’라는 이야기도 있고, 특히 무슨 게임이 나와도 항상 나오는 얘기입니다만, ‘고증이 엉망이다’라는 등의 여러 논란이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흑인의 재현에 관한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스>의 논란이 기존의 논란과는 다른 맥락에서 벌어진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논란에서 어떤 점에 주목을 해야 할지, 그리고 이 논란을 가장 효과적으로 극복하고 다음 게임과 게임 담론을 만들 때 우리가 고려해야 될 건 무엇일지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일단은 다들 관련 이슈를 보시니 어땠는지요? 커뮤니티 반응은 어떠셨을까요? 역사적 인물 ‘야스케’, 고증인가 상상력인가 홍현영 박사: 야스케라고 하는 캐릭터가 실제로 역사적 사료에 잠깐 등장한 내용을 굉장히 부풀려서 만들어낸 캐릭터잖아요. 커뮤니티 몇몇 댓글을 보면 저는 그게 궁금하더라구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무라이의 삶’이 있는것 같은데 그게 뭘까. 사무라이로서 재현되어야 되는 특정한 삶과 자격이 있는데 야스케가 그 자격에 속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또 이런 댓글도 봤습니다. 노부나가가 실제로는 야스케를 일종의 트로피처럼 데리고 다녔을 거다. 인간으로서의 존재라기보다는 과시하기 위한 하나의 사물이나 대상에 가까웠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이런 댓글을 굉장히 확신에 찬 태도로 쓴 사람들이 한국인들이라는 점이 가장 신기하고 흥미롭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경혁 편집장: 일본 현지에서도 흑인 사무라이에 대해서 여러 말이 많았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이정엽 박사: 역사적으로는 야스케가 실제로 사무라이가 아니라고 하는 설도 있지만, 노부나가에게서 정식 사무라이가 될 때 받는 태도(太刀)와 집을 받았고 부하처럼 데리고 다녔다는 설들도 있습니다. 사실 전국시대가 게임뿐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많이 재현되었고, 202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다룬 NHK 대하드라마의 사례처럼 기존의 역사관과 다른 인물상이 재현되기도 했거든요. 저는 콘텐츠 안에서 허용될 수 있는 변용의 범주가 있다고 보고, 그런 점에서 야스케를 무사로 격상을 시켜서 활용할 수는 있다고 봅니다. 어떻게 보면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는 일종의 대체 역사물을 펼쳐왔기 때문에, 이 시리즈에서 그간 정사에 완벽하게 맞게끔 나왔던 주인공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이게 우리나라와 상당히 밀접한 형태의 역사로 다가오고, 특히 일본이 조선을 침공했었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일본 역사와 관련해서는 우리가 상당히 민감히 볼 수밖에 없게 되는 ‘감정적 요인’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제가 처음 <어쌔신 크리드>를 하며 충격받았던 부분은, 야스케가 주인공일 때 플레이어가 ‘일본어를 할 줄 안다’와 ‘침묵’ 사이에서 선택하게 하잖아요. 여기서 전자를 고르면 반 년도 안 되어 오다 노부나가의 곁에서 같이 전투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야스케가 노부나가와의 심리적인 거리를 좁혔음을 보여주는 부분이죠. 그 장면을 보며 ‘이 게임은 이런 형태로 극적인 허용을 최대치로 넓혀 놓고 상상력을 발휘해 들어가는구나’ 싶었고, 그때부터 이 게임에서 고증과 관련된 검증은 내려놓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히려 야스케가 노부나가의 최심복이 되었다고 가정하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내용이 얼마나 흥미로운가의 여부만 초점을 놓고 파악하자는 거죠. 이경혁 편집장: 인정적인 면에 조금 더 주목을 해보죠. 일본인이 아닌 사람이 주인공이라서 문제가 된 거라면, 만약 그 주인공이 흑인이 아니라 백인이었다면 어땠을까요? 홍현영 박사: 방금 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무라이의 상’을 언급한 바 있는데요. 아까 토템이나 트로피 이야기도 그렇고, 흑인 사무라이 비판 담론들에서 야스케는 정말 뭐랄까 ‘인간’으로서의 행위가 가능한 주체로 표현이 되지 않고 있거든요. 일본 전통이나 서브컬처에서 활용되는 사무라이의 전형성이라는게 있다면,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주체로 호명될 수 있는 존재는 흑인이 아니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는 것처럼 보여요. 이경혁 편집장: 생각해 보면 서양인 사무라이 설정도 영화로는 꽤 나왔던 것 같은데, 거진 백인 사무라이였네요. 강신규 박사: <어쌔신 크리드>에서 백인 사무라이가 나왔어도 논란이 되었을 수 있지만, 야스케라는 캐릭터는 어떻게 보면 재현을 두 번 비튼 거죠. 사무라이를 백인도 아니고 심지어 흑인으로 만듦으로써 사람들의 어떤 문화적 고정관념을 굉장히 거슬리게 했기 때문에 더 그런 반응이 나왔던 게 아닌가 싶어요. 아무리 서양 회사에서 만든 게임이라 해도 동양 고유의 사무라이라는 직업을 다룰때는 어떠해야 한다는 생각이 배경에 깔려있는 거고, 흑인이 등장하니 이 불쾌함을 지우기 위해서 ‘원래 역사적으로는 어땠냐’ ‘실제로 이게 가능한 거냐’는 말을 들고 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앞서 선생님들의 말씀과 연결되지만, 저는 여기서 제일 중요한 건 역사 왜곡도 아닌 것 같고, 오히려 일부 게이머들이 욕하는 PC 강요가 좀더 맞아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궁극적으로 흑인 사무라이 논란은 ‘하나의 게임 안에서 다양성과 핍진성을 중심으로 한 재현의 정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한 거죠. 게다가 유비소프트의 그동안의 게임들은 대체로 이래 왔습니다. 오리지널에서도 이집트 사람, 바이킹 등 여러 민족들이 등장해 왔지만, 동아시아적 남성성의 핵심 이미지가 강하게 박혀 있는 사무라이에 흑인 캐릭터가 배치되자 이런 논의가 불거졌던 것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야스케가 화제가 제대로 됐을 거라 생각하고 재현의 정치나 다양성의 정치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효과가 있었을 거라고 봅니다. 이정엽 박사: 사무라이가 실제로 전투했던 방식이 게임 메카닉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살피는 것도 재밌는 부분입니다. 전국시대 전투에서 오다 노부나가의 특징은 부대를 조직적으로 편성하려는 욕망이 강한, 구조주의적인 다이묘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그런 자의 심복들이 게임에서는 ‘암살 닌자’와 ‘무쌍 찍는 흑인 무사’로 재현된다는 것이죠. 잘못하면 조총 한 방 맞고 끝날 수 있는 상황을 매우 판타지적으로 재해석하는 건데요. 사실 <다크 소울>로 대변되는 액션 RPG류가 히트를 치다 보니까, 유비소프트에서도 트렌드에 맞춰야 한다는 어떤 강박이 있었을 것이고 그에 따라 게임의 액션성을 강화하려던 시도가 아니었나 싶어요. 거기에 가장 맞는 형태의 캐릭터를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기존의 잠입액션을 포기할 수 없어서 나오에를 넣었고, 무쌍을 위해 야스케를 넣으면서 양쪽을 다 잡는 일종의 절충안을 넣은 게 아닌가 생각이 들더라고요. 강신규 박사: 결국 이런 인물들에게 서사 권력을 어떤 식으로 나누어 줄지에 대해 이정엽 선생님이 운을 띄워주신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아직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스>를 플레이해보지 못했지만, 말씀을 들어보면 전투 방식부터 해서 현지 언어를 할 수 있느냐 이런 부분들까지, 게임 속 흑인 사무라이의 캐릭터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정할지에 대한 최종의 결정권을 게임 플레이어에게 주는 것 같네요. 말씀하신 대로 유비소프트의 결정 자체가 굉장히 정치적이었다는 생각이 들고, 그쪽에서도 당연히 이런 논란이 없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 보입니다. <어쌔신 크리드>에 드러난 오리엔탈리즘의 문제 이경혁 편집장: 사실 <어쌔신 크리드>는 기존에 암살이 메인인 게임이었잖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암살이 잘 안 나오는데 그 이유는 암살이라는 메카닉 자체가 갖는 일종의 지루함 때문일까 싶거든요. 처음 암살을 해보면 숨는 기분도 들고 굉장히 재미있지만, 규칙에 익숙해진 순간부터는 넘기 힘든 벽이 있습니다. 무쌍은 액션 상황을 칼질 몇 번에 금방 해결할 수 있지만, 암살은 기다려야 하니 게임 플레이 시간도 늘어지죠. 그 때문에 게임 메카닉적인 면에서도 액션을 강렬하게 표현한 캐릭터가 필요했고, 그러다 보니 일본의 무예를 대표하는 두 가지 캐릭터인 시노비와 사무라이를 선택한 게 아닐까 싶어요. 근데 우리의 핵심 주제는 ‘왜 그 사무라이는 흑인이었을까’가 되는거죠. 관련해서 얘기하고 싶은 부분은, <어쌔신 크리드>를 하다 보면 계절이 바뀌는 묘사가 상당히 디테일하다는 점입니다. 그런 걸 보면서 서구에서 일본이라는 동아시아 국가를 특징짓는 요소 중 하나가 극심한 계절변화가 아니었을까 싶더라구요. 다시 말해 이 게임은 기본적으로 ‘서구에서 만들어진 게임’이라는 전제 자체가 매우 명확하고, 오리엔탈리즘 이야기를 안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신규 박사: 그런데, 애초에 게임이라는 무국적인 공간 안에 일본을 구현하는 것도 굉장히 의도적인 것이기에 그 재현은 당연히 실제와 상관이 없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어쨌든 유비소프트에서 만든 그동안의 게임이나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서는 전부 사실성이 중요한 게임은 아니었다고 하셨잖아요. 이경혁 편집장: 그 말도 실은 조금은 모순되는 게,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는 언제나 대체 역사물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역으로 항상 역사가 중요했던 게임이기도 하거든요. 실제로 일어난 역사에 기반해서 만들어졌다는 점도 그렇고, 게임의 주요 홍보 포인트로 ‘플레이어가 현장에 가서 진짜로 전자 관광을 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을 내세우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에는 관광 모드까지 있죠. 이정엽 박사: 동의합니다. 제가 거부감이 조금 들었던 부분은 야스케가 실제로 일본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는데도 오다 노부나가와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눌 정도로 일본어를 너무 잘하고, 일본에 있는 다양한 문화적인 습성들을 굉장히 빠르게 내면화한 캐릭터라는 거였어요. 이때 ‘흑인’이라는 설정은 사실상 스킨 같은 것이고, 실은 서양인들 입장에서 ‘일본의 대체역사 안에서 내가 무사가 된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라는 부분을 빠르게 체험할 수 있게 만들어준 하나의 시뮬레이션이라 생각합니다. 계절 표현이나 게임 구조물들도 꽤 고증이 잘 된 게임이지만 문제는 캐릭터 설정에서 ‘흑인이면 응당 가졌어야 할 이 문화에 대한 낯섦’, ‘일본 문화권과 흑인이 부딪히는 충돌의 지점’들이 충분히 나왔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근데 그 지점이 거의 재현이 안 된거죠. 프란츠 파농이 이미 후기 식민주의의 문제점으로 식민지 본국에서 가진 심상들을 식민 지배를 당하지 않은 세대의 사람들도 내면화하는 것을 지적한 바 있지요. 야스케를 만약 문화적 충돌이나 갈등이 들어가는 캐릭터로 묘사했다면 상당히 설득력과 핍진성 있는 캐릭터로 빠져나갈 수 있었을 텐데요. 이를 삭제한 채로 완벽하게 일본적인 것을 내면화한 흑인 사무라이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일본식 무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니 의문이 드는 거죠. 설정까지는 그런 허용을 할 수 있어도 세부적인 재현에서는 여러 문제가 있고 그게 더욱 우리의 거부감을 증폭시켰던 건 아닌가 싶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앞뒤를 잘라놓고 보면, 야스케는 그냥 검은 피부의 일본인일 뿐인거죠. 홍현영 박사: 저는 오히려 의도적으로 이질적인 흑인 캐릭터를 선택함으로써 외국인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일본에 대한 상을 부각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했는데, 그거는 그냥 유비소프트에 대한 저의 과도한 기대였고(웃음) 전혀 그런 방식으로 나오지 않는군요. 강신규 박사: 그러니까 그 캐릭터가 거기에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맥락이나 복잡할 수 있는 이 사람의 여러 정체성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는 거네요. 이경혁 편집장: 최소한의 서사를 위한 고려는 되어 있지만 정말 스토리텔링에서의 세팅일 뿐이고, 사실 게임에서는 그보다 야스케라는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다른 NPC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봐야 하거든요. 게임 중간에 국숫집 아저씨와 농담을 나누는 부분이나 일본의 다양한 진미를 모으는 서브 퀘스트 같은 게 나오는데, 일본 땅에 온 지 얼마 안 된 낯선 흑인 캐릭터가 능숙하게 농담을 하고 일본의 진미를 다 알아보는 걸 보면 약간 이상하게 느껴지긴 하죠. 이정엽 박사: 지금 시대에는 일본이 굉장히 인기 있는 여행지이기도 하고, 우리 세대에서는 일본 문화에 대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다 한 번씩은 접해봤을 것이기 때문에 서양인의 입장에서 다루기 제일 좋은 지역이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어떻게 보면 자신이 이렇게 ‘약간만 알고 있는 공간’이 이런 형태의 판타지적 허용을 가장 쉽게 설정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이경혁 편집장: 전국시대라는 배경 또한 그렇습니다. 가장 일본에서 유명한 시대기도 하고 이미 역사적으로 서양이 개입한 시대거든요. 그래서 <어쌔신 크리드>가 참 영리한 선택을 했으면서도 한계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게, 결국 서양인이 일본에 들어오는 시대를 선택했잖아요. 물론 역사적 맥락상으로도 예수회가 들어오고 서양인 선교사들을 따라 템플 기사단과 암살단이 들어온다는 선택을 하는게 자연스럽죠. 이미 기존의 프랜차이즈 시리즈에서 암살단의 기원을 서구 역사에 따라가는 것으로 밝혀놨기 때문에, 일본에서 암살단이 자생적으로 나타났다고 쓰면 기존의 설정이 다 붕괴되는 거니까요. 그렇지만 결국 이렇게 왔기에 이 이야기는 ‘일본의 암살단 이야기’가 될 수가 없다고 봅니다. <어쌔신 크리드>라는 프랜차이즈 안에서 이후에 어떤 제3세계를 건드리건, 이 이야기는 반드시 이미 서구의 역사에서 완성된 암살단과 기사단 이야기가 제3세계에 넘어가는 형태로 나갈 수밖에 없게 될 겁니다. 히스토리아 자체가 이미 서구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시리즈가 이야기의 다양성을 만들려면 무대도 바꿔야 되고 이제 계속 다른 세계를 다뤄야 되거든요. 어쩔 수 없이 그 확장의 과정 또한 이미 역사에 존재했던 제국주의적 확장의 과정을 따라갈 수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이정엽 박사: 말씀하신 대로 템플 기사단으로부터 비롯된 형태의 대체 역사가 인류 역사의 여러 단면들을 거쳐 간다는 <어쌔신 크리드> 설정의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부분을 그간 어떤 균열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 대부분의 문명권이 서양의 흐름을 어느 정도 따라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유비소프트의 개발자들이 간과했던 부분들은 ‘서양인 개발자’가 대체역사를 만들었을 때 아시아 유저들이 갖는 문화적 거리감이, 같은 것을 동양인 개발자가 만들 때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적용이 된다는 겁니다. 여전히 역사를 다루는 데 있어 ‘너희가 왜 우리 역사를 다루니’라는 식의 어떤 서로 넘어서는 안 되는 장벽들이 각 문화권 내에 심리적으로 존재하는 부분이 있고 그걸 건드린 거라고 봐요. 이를테면 한국의 개발사가 나오에의 암살물과 야스케의 무쌍물을 만들겠다고 하면 과연 이런 오리엔탈리즘 비판이 나왔을까 싶은 거죠. ‘역사’와 ‘관광’의 모순된 결합 홍현영 박사: 기존의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는 서양 세계 내부 구성원이 등장하는 방식이었거든요. 실은 우리는 우리가 잘 모르는 세계에 대한 재현들이 얼마나 평면적이고 얄팍한 방식인지 포착하기 힘들잖아요. 그런데 이번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역시도 어쩔 수 없이 ‘서양인 관광객’이 가지고 있는 1차원적이고 평면적인 시선에 가깝게 재현된다는 문제가 있지 않나 싶어요. 아까 이야기한 야스케가 오사카의 명물 음식을 먹는 장면은, 과연 관광이랑 무엇이 다를까요? 물론 이 게임에서 전자 관광이 중요한 모티브이기는 하지만, 달리 이야기하면 그 시대가 가진 특수한 맥락이나 다양한 재현 양상들을 보여준다기보다는 전자 관광에서 요구할 만한 부분에 대한 1차적인 충족만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어쌔신 크리드>가 가지고 있던 배치 구조를 그대로 따르는 데 그쳤다고 보입니다. 이경혁 편집장: ‘관광’이란 표현이 그래서 굉장히 핵심 키워드라고 느껴집니다. 태초부터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는 관광이라는 요소가 있었지만, 문제는 이뿐 아니라 이 시리즈가 역사라는 키워드를 또 하나 끌고 간다는 거죠. 하지만 역사는 관광과는 달라요, 같을 수가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동안 ‘역사 관광’이라는 이름으로 둘을 계속 꿰맞추려는 시도를 오랫동안 해 왔어요. 역사를 기반으로 한 투어 프로그램도 굉장히 많잖아요. 저는 그런 역사 관광이라는 말이 갖고 있는 모순을 이 게임이 어느 순간 정확하게 보여준 게 아닌가 싶어요. 이정엽 박사: 저는 조금 더 너그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앞서 말씀드렸습니다만 극적인 허용과 설정 변용을 자국 개발자나 비슷한 형태의 문화권 개발자가 하면 문제가 덜 되는데, 왜 서양 개발자가 하면 큰 반발과 문화적인 배리어가 발생하는지 짚고 싶어요. 예를 들면 조지 루카스가 <스타워즈>에서 사무라이 문화를 재해석하는 형태로 ‘광선검’을 보여주었던 것처럼 은유적인 시도들은 굉장히 많이 있었죠. 그냥 그렇게 바라보듯이 허용을 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문제가 쉬워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이경혁 편집장: 저는 선생님 말씀을 들으며 동의도 되지만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사례를 보면 다르게 생각도 됩니다. 이 드라마를 굉장히 재미있게 봤지만 조금 찜찜하게 느껴졌던 부분은 이 드라마가 구한말 항일의병 독립운동 이야기잖아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독립운동의 주체는 다 외세란 말이죠. 주인공도 미국인이고. 하지만 우리는 별로 그거에 대해서 거부감을 안 느껴요. 결국 <미스터 션샤인>은 한국 제작진이 만들었다는 점에서 달라지는 것 같아요. 만약 똑같은 기획을 간사이에서 제작했다고 생각한다면 얘기는 정말 달랐을 겁니다. 강신규 박사: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 만약 유비소프트가 일본 회사고 야스케가 한국 사람이었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만히 있었을까요? 설령 우리나라에서 만들었다고 해도 논란이 되는 사례들도 있을 겁니다. 저는 <미스터 션샤인> 같은 사례가, 이를테면 누가 만들었느냐도 보여줄 수는 있지만 ‘얼마나 자연스러우냐’가 더 중요한 거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요. 어쨌든 역사를 재현하는 것 자체는 사실 무조건 해석의 산물인데, 그걸 종합적으로 봤을 때는 우리가 말한 모든 걸 다 고려해야 한다는 거죠. 누가 만들었고, 다른 문화에 대해서 어떻게 재현하고 있으며, 그게 얼마나 안에서 잘 녹아 있는지 등등 말입니다. 홍현영 박사: 저는 <미스터 션샤인>이 인물의 정체성을 그렇게 단순화시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어쌔신 크리드>와 같게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일례로 ‘유진 초이’라는 캐릭터는 미국인이 될 수밖에 없는 맥락이 있었어요. 이 사람은 백정 출신으로 기본적으로는 국민으로 호명되지 않는 존재였잖아요. 처음부터 조선인의 바운더리 안에서 튕겨져 나가는 존재였죠. 유일하게 지위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은 다른 국적을 취득하는 것이었고요. 그랬기 때문에 다른 국적을 취득했고 심지어는 국민으로서 한 번도 승인받은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다시 조선에 들어와서 조선인이기를 기대받는 행위를 한다는 것 자체가 갖는 매우 아이러니한 공감대가 있는 거죠. 저는 야스케도 이런 식으로 복합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 그려졌다면 그렇게까지 사람들이 화를 냈을까 싶습니다. 이정엽 박사: 유비소프트에서 <어쌔신 크리드>의 제작처가 몬트리올 스튜디오인데, 몬트리올이 독특한 형태의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는 것도 생각해 볼만 합니다. 몬트리올이 캐나다에 있지만 영어와 불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동시에 다 들어가 있잖아요. 정형화된 어떤 민족성 같은 것들로부터 굉장히 거리가 떨어져 있는 공간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조금만 내려가면 뉴욕 등 여러 민족들이 사는 용광로 같은 도시들이 있기 때문에, 이런 형태의 문화적인 교류나 상상력을 개입시키는 것도 자연스러운 접근이었다고 봅니다. 근데 동아시아인들이 민감하게 느끼고 있는 부분까지는 고려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고요. 글로벌화되었다고 하지만 동아시아는 아직까지 자국 내 문화를 중점적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공간이잖아요. 아마 <어쌔신 크리드>에서 그리스나 이집트 사례를 내부까지 파고 들어가면, 실질적으로 서양 사람의 입장에서도 그 안에 문화권을 정형화시키고 스테레오 타입을 만드는 등 문제적으로 느껴질 구간들이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우리가 포착하지 못했을 뿐이겠지요. 이경혁 편집장: 최소한 일본을 배경으로 만든다고 했으면 일본 쪽의 자문진이 더 두꺼웠어야 한다, 그 정도는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이것은 어떤 제작자가 만들더라도 타자화를 끌고 올 수밖에 없는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필연적으로 관광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어떤 관광객도 주체일 수는 없거든요, 항상 타자인 거고. 홍현영 박사: 그렇죠, 그래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야스케가 아쉽습니다. 관광객의 장점은 사실 그 구역 내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고착화된 통념이나 기대 지평, 사고, 세계관을 오히려 바깥에서 다른 방식으로 느슨하게 사유할 수 있다는 점이거든요. 야스케가 차라리 관광객이었다면 어땠을까요. 게임 시리즈의 정체성과 캐릭터 기대지평의 충돌 이정엽 박사: 사실 <어쌔신 크리드>에서 특이하게 재현되는 부분은 동아시아에서 흑인의 존재를 정말 모르다 보니 야스케를 바라보는 일본인의 반응을 열심히 구현했다는 점이에요. 야스케를 바라보며 눈치 보고 놀라는 일본인의 모습이 많이 나오는데 정작 야스케는 거기에 있어서 특별한 반응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 놀랍죠. 제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야스케에 대한 재현보다는 개발자들이 뭘 그리고 싶었는가입니다. 야스케의 존재를 빨리 서양 유저들에게 내면화시키고 싶었고, 그 때문에 어떤 형태의 통역이 필요한 형태의 존재가 아니게끔 철저하게 서양식으로 캐릭터화된 존재를 만드는 게 목표였던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이 캐릭터가 암살단의 일원이 되어서 기존의 업무들을 수행해야 하는데, 이 문화권에 거부감을 느끼는 캐릭터 존재가 나온다면 전 시리즈의 어떤 통일성에 위배가 되는 부분이기도 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 문화권에서 특이하고 이질적인 형태의 존재를 집어넣었지만, 플레이어가 얘한테는 빨리 동화되어야 하고. 그러나 그 인물이 흑인이라는 형태의 인지는 계속 주어야 하기 때문에, 그곳의 인물들은 야스케를 이상하게 바라보지만 ‘나는 매우 일본화한 캐릭터다’라는 것들을 끊임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홍현영 박사: 달리 말하면, 지금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과 흑인 캐릭터 재현에서 드러나는 기대 지평들이 계속 부딪히는 거네요. 이경혁 편집장: 그렇죠. 아까도 얘기했지만 이 시리즈는 결국 서구의 시리즈인 건데, 동양 얘기를 하려니까 어려워진 것이지요. 그런데 나름 플레이를 해보면, 중간중간의 설정이나 장치를 보면 개발자들이 이 문제를 나름 고민했다는 것도 느껴져요. 제일 대표적인 게 주인공을 듀얼로 설정한 것입니다. 암살의 시노비와 액션의 사무라이를 설정함으로써 젠더나 인종 차원에서 다양성이 고려된 설정 등으로 이야기가 됐을 겁니다. 결국 이 논쟁의 근본적인 문제는, 재현이나 고증 차원의 이야기보다 역사는 서구에 의해 쓰였다는 점을 게임 내 장치로는 미처 넘어서지 못한 게 제일 큰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강신규 박사: 우리가 이 게임에서는 야스케라는 존재를 통해 ‘서구 중심의 동양 재현’이라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을 텐데요. 이런 식의 어떤 경유 지점이나 시그널이 없는 다른 일반적인 게임들에 있어서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지도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또한, 오늘 자리가 만들어진 계기는 사실 플레이어들이 이 이슈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느냐였지요. 한국에 있는 많은 플레이어들이 이 문제를 역사왜곡 뿐 아니라 PC 비판 등의 담론을 통해 접근한다면 이에 대한 논의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도 논의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정엽 박사: 우리가 야스케 얘기는 많이 했지만 시노비인 나오에에 대한 얘기는 별로 안 했던 것 같아요. 실제로 여성 닌자가 존재했었냐는 의문이 있고 일부에서는 여성 닌자가 고위 인사들의 운송이나 특수한 형태의 임무 수행을 위해 있었다고는 하는데요.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스>에서는 여성 닌자를 중점적인 역할로 배분해서 암살과 무쌍을 동시에 할 수 있게끔 캐릭터를 배분했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기존 시리즈에서 ‘에지오’를 중심으로 나왔던 전형적인 캐릭터성을 여기 와서 해체하는 거죠. 다만 앞서 말씀드렸듯 이 게임에서 고증은 더 이상 제 생각에는 중요한 목표가 아니었다라고 보여져요. 이경혁 편집장: 약간 멍에를 쓴 것 같기도 해요. 아까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일까의 문제를 이야기하셨는데, 이 게임의 원래 정체성과 메카닉 자체는 지루해졌고 대중들이 환호하는 쪽으로 가기 시작했더니 다른 문제들이 터지고 좀 이런 문제가 있지 않나 싶어요. 이정엽 박사: 우리가 지금까지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 대해 암살 메카닉과 관광 등을 쭉 얘기해 왔는데, 이제 그 정체성에 있어서 관광은 유지하고 있지만 암살이나 서양 중심에 대한 정체성은 포기한 것 같기도 해요. 시리즈의 변화를 가져오겠다는 식으로 일종의 선언을 한 것으로도 느껴지거든요. 이경혁 편집장: 오히려 그래서 그냥 고증을 떠나 우리는 서양인의 시각에서 하는 게임이라고 세게 밀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이정엽 박사: 그러려면 아예 정말 더 문화적인 은유가 들어갔어야 했는데 매우 리얼하게 묘사해 놓고 ‘우리는 서양 중심적으로 할게’라고 얘기하니까 그 이율배반이 나오는 지점이 있는거죠. <어쌔신 크리드>를 하다 보면 극사실주의적인 묘사를 했기 때문에 정말 그곳 안을 거니는 듯한 느낌이 있잖아요. 굉장히 재현이 잘 되어있고 그걸 관광의 요소로 넣는 게 사실 이 시리즈의 미덕이었는데 그걸 포기할 수는 없었을 테고요. 이경혁 편집장: 관광이라는 게 분명히 장점도 있지만 갖고 있는 한계가 매우 명확한데, 그것이 게임이 되고 특히 역사라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조심스러운 소재와 만났을 때 결국은 충돌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 계속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이정엽 박사: 이를테면 역으로 매우 옥시덴탈리즘적으로 만들어진 게임이 있어요. 여러분들이 잘 아는 <대항해시대>라는 게임입니다. 이 시리즈를 보면 서양 재현에 있어 굉장히 일본적인 시선이 많이 들어가 있고, 일본인 자신들의 문화권을 서양과 비교하고 싶어하는 욕망들이 그 안에 기본적으로 내재해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걸 통해서 일본의 게임 회사들이 자신의 문화를 거울처럼 보여주는 방법론을 그동안 펼쳐왔던 것이구요. 그런데 우리는 그 게임을 플레이할 때 서양이 왜 이렇게 재현되었는지에 있어 상대적으로 덜 민감하다는 거죠. 마찬가지로 서양 문화권 사람들이 이 부분에서 옥시덴탈리즘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걸 게임적인 허용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거든요. 물론 아시아권이 오랜 기간 서구 문명에 의한 피식민 체험을 했기 때문에 이 문제를 다루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양보가 불가능한 지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서양만 동양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동양 또한 서양을 그렇게 포장을 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그렇게 그려왔던 게 게임이라는 것도 사실입니다. 선생님들과 제가 견해가 좀 다를 수는 있겠지만, 이런 형태의 서양이 보여주는 시각 자체를 어느 정도 긍정할 필요도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해당 문화권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않는 이상 그 문화권 사이에서 해석의 문제는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고 그런 형태의 문제 제기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얼마든지 나올 수 있고 충분히 건설적으로 갈 수 있는 문제인데 이것 자체를 그리지 못하게 막는다는 게 잘못된 발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커뮤니티 내 플레이어의 반응들에 대해 이경혁 편집장: 우리가 이 논란을 게임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봤었잖아요, 저는 거기서 흑인이라는 키워드도 꽤 다양한 역할을 했다고 봐요. 게임 커뮤니티에서 논의되는 ‘흑인’은 이 게임에서 단독으로 유래된 맥락은 아니었습니다. 이를테면 <인어공주> 와 같이 그 앞에 있었던 흑인 캐릭터의 맥락들이 있어요.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흑인의 활용에 대해 비판적인 이야기를 오래 해온 커뮤니티의 입장에서 형성된 흑인에 대한 이미지가 있고, 이것이 <어쌔신 크리드> 논쟁에 와서 달라붙은 것은 아닐까 싶거든요. 이정엽 박사: 저는 이 부분에서 개발자와 유저 상호가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을 충분히 보려고 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계속한다는 점을 문제삼고도 싶습니다. 실제로 미국 게임 개발자 사이에서 고집스러운 PC주의적인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컨텐츠가 나올 때, <더 라스트 오브 어스 2>의 사례처럼 이에 대한 백래시도 너무나도 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은 야스케는 역사적인 근거도 있고 어느 정도 개연성이 있게끔 만들어진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작품들에서 유래하는 백래시의 영향을 받아 지나치게 세게 얻어맞고도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충분히 허용할 수 있는 역사적 상상력을 넣어서 나름대로 고증에 성공해서 갔는데도 PC주의로 매도당하는 측면이 있는 거죠. 그런 백래시를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나름대로의 고증을 갖춘 형태의 게임의 근거 자체를 무너뜨리는 건 매우 문제적이라 봅니다. 우리가 역사서를 쓰는 게 아니고 콘텐츠를 재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의견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작품이고 그 안에서의 주관적인 해석은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얼마든지 허용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개발자가 어느 정도 의무감을 가지고 그 안에서 그 세계관이 갖추는 나름대로의 핍진성을 추구해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개발자도 유저도 그 원칙들을 양쪽 다 위배하며 서로 간의 진영 싸움을 오랜 기간 고집스럽게 벌여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실은 ‘자신이 어떻게 재현되는가’의 문제를 정말 중요시하기보다 ‘이 싸움에서 이기고 싶다’라는 것이 모든 양쪽 진영의 목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콘텐츠가 그를 통해서 오히려 더 손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이경혁 편집장: 오늘 나온 이야기를 종합해서 앞에 얘기와 붙여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흑인 사무라이’ 야스케는 그 앞에 흑인 캐릭터 설정에 대한 맥락이 없었다면 생각보다 별 문제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냥 ‘흑인이 온지 얼마 안 됐는데 왜 이렇게 일어를 잘해’라며 웃고 넘어갔을 문제였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결국 이 담론이 커뮤니티에서 나왔다는 것, 그리고 커뮤니티에는 그 앞의 맥락이 있었다는 것이 핵심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야기를 끌면 한도 끝도 없는 주제이긴 하지만, 약속드린 시간이 다 되어 대담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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