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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우스코어 걸: (Not Really) Full Game Walkthrough
게임의 현실성에서 빠져나와, 잠시 현실의 게임성을 생각해보자. 세계가 0과 1의 현실로 재구성되고 있다 해도, 거기서의 ‘룰즈 오브 플레이’와 그에 따른 난관이 본질상 그대로라면 세계는 언제까지나 익숙한 현실일 뿐이다. 불균등하고 블록화된 구조로 작동하는 접속가능성(connectivity)이라든지, 메타버스와 관련해 각종 투기가 당연하다는 듯 횡행하는 상황 등을 둘러보면, 과거의 기술 물신적 낙관과는 다르게 가상 인프라의 역능 역시도 딱히 평평해지지 않는 세계의 현실에 귀속되어 있는 것 같다. < Back 로우스코어 걸: (Not Really) Full Game Walkthrough 03 GG Vol. 21. 12. 10. 게임의 현실성에서 빠져나와, 잠시 현실의 게임성을 생각해보자. 세계가 0과 1의 현실로 재구성되고 있다 해도, 거기서의 ‘룰즈 오브 플레이’와 그에 따른 난관이 본질상 그대로라면 세계는 언제까지나 익숙한 현실일 뿐이다. 불균등하고 블록화된 구조로 작동하는 접속가능성(connectivity)이라든지, 메타버스와 관련해 각종 투기가 당연하다는 듯 횡행하는 상황 등을 둘러보면, 과거의 기술 물신적 낙관과는 다르게 가상 인프라의 역능 역시도 딱히 평평해지지 않는 세계의 현실에 귀속되어 있는 것 같다. * 《MODS》 (사진: 박승만) 공적 기금에 의지할 기회를 얻어서야 겨우 전시를 만들 수 있는 기획자 입장에서, 그럴 때마다 필자가 처한 상황도 그 현실의 일부임을 새삼스레 실감하게 된다. 동료 기획자들과 각자의 게이머적 시선으로 게임을 시각 예술의 문제와 교직해보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MODS》 1) (합정지구, 2021)에 참여하면서, 우리 팀은 가상성과 링크된 레토릭으로서의 게임보다는 ‘경기’로서의 게임을 경유하는 프로젝트를 구상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기획된 게 바로 〈로우스코어 걸 Low Score Girls〉이다. 제목의 참조 대상은 다름아닌 〈하이스코어 걸 ハイスコアガール〉로, 이 만화의 주된 내러티브 공간인 아케이드 센터는 경기로서의 고전적 성격에 방점이 찍힌 장르의 게임이 주로 서비스되는 곳이다. 〈로우스코어 걸〉은 시각 예술과 연계된 이런저런 현실적 ‘난관’들에 대응하는 참여 작가들을, 그런 게임 안에서 경기의 논리를 배반하며 임의의 트랙을 질주하는 게이머들처럼 가시화하려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Pww-fmkGuk ‘설정된 경로를 주파하는’ 게임 경험의 압축적이고 간명한 구조 때문인지, 레이싱은 과거 아케이드 게임 업계가 새로운 재현 기술을 우선적으로 시도해볼 수 있었던 주된 대상이었다. 세가(Sega)가 자랑했던 전설적 크리에이터 스즈키 유(鈴木裕)의 원근법적 집착으로 1985년 등장한 〈행온 Hang-On〉은 최초의 ‘체감형’ 레이싱 게임으로, 이 게임의 플레이어는 스프라이트 확대/축소 기능으로 구현된 유사 3D 서킷을 바이크 형태의 컨트롤러에 올라타 공략하게 된다. * 김예슬, 〈Skid〉 (사진: 박승만) https://www.youtube.com/watch?v=g7nIjDF4TTA * 〈Skid〉에 사용된 영상 김예슬의 〈Skid〉는 그런 식의 ‘체감’이 여과하는 모든 현실에 대한 기념비로, 스턴트 바이크 라이딩을 촬영한 라이브 푸티지와 CBR250을 커스터마이즈한 실제 스턴트 바이크가 활용됐다. 다리 밑이나 공터, 또는 공사 중인 고속도로 현장과 같은 곳을 물색해 이루어지는, ‘공도’ 밖의 장소에서야 구성 가능한 게임인 스턴트 라이딩. 스턴트 동작에 적합하도록 개조된 탓에 번호판이 부여될 수 없는 바이크는, 신체를 운반하는 수단이라기보다 차라리 신체의 연장에 해당하는 무엇처럼 다가온다. 일정한 물리적 위험이 담보된 채 스턴트 동작을 실연하는 순간의 자족적 열락과 같은 건 과연 ‘체감형’ 게임으로 재현될 수 있을까? 더불어, 시선을 과거로 돌려, ‘스포츠’로서의 바이크 너머 과거로 밀려난 오랜 ‘폭주’의 역사에 대해, 재현의 윤리는 무엇을 할 수 있었고, 할 수 없었을까? 영상과 격절돼 단상 위로 미끄러진 ‘실물’ CBR250은, 열화된 현실인 게임과 열화된 게임인 현실 사이에서 진동하며 그런 부류의 질문들을 환기한다. * 김효재, 〈파쿠르 Parkour〉 (사진: 박승만) 김효재의 영상 설치 작업인 〈파쿠르 Parkour〉는 사이버스페이스가 아예 세계의 필요충분조건이 된 사변적 지평에서의 프리러닝을 다룬다. 1인칭 액션 게임 〈미러스 엣지 Mirror’s Edge〉의 소재였던 스포츠 파쿠르(Parkour)의 명칭은 ‘여정(journey)’을 뜻하는 프랑스어 ‘parcours’에서 파생된 것으로, 그렇듯 파쿠르는 규칙에 따른 순위를 다루는 ‘경기’가 아니라, 신체 능력만으로 지형지물에 자유로이 호응해 달려가며 이루어지는 구도적 수행이다. 파쿠르에 임하는 동안의 여정에서 느낄 수 있는 위험과 두려움이란 수행자에게 있어 자기 한계의 인식이기도 하지만, 그건 육체로부터의 예비된 자유를 지시하는 감각이기도 하다. 〈파쿠르 Parkour〉의 화자는 타율적 스틱과 버튼으로 매개되어야만 했던 현재적이고 실존적인 의미에서의 ‘몸’이 완전히 불식된 세계를 살아가는 신인류로서, 현재의 파쿠르적 실천을 자신과 자신의 세계에 실현된 가능성의 잠재태로서 소환한다. 모든 게 데이터로 환원되어 연결된 세계. 그래서 ‘에어플레인 모드’에서조차 그 무엇과도 데이터 전이를 일으킬 수 있는 세계. 그곳에서 ‘몸’은 특정한 정체성의 고정적 준거가 아니라 유동적 연결망 내에서의 노드(node)에 가까운 잠정적 윤곽일 뿐이며, 의식의 흐름과 파쿠르적 몸짓은 같은 것이 돼 그 자체로 〈파쿠르 Parkour〉의 이미지 시퀀스를 형성하면서,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어트랙션 데모를 보여준다. * 문주혜, 〈Dragon and Ten of Swords (사진: 박승만) 문주혜의 〈Dragon and Ten of Swords〉에서 미리 추상화/모듈화된 오브젝트의 집적으로 2D 횡스크롤 슈팅 게임의 보스처럼 보이는 용, 그리고 레이어의 질서를 넘어 근경에서부터 원경의 용의 몸을 베어내고 있는 듯한, 구상적 형태를 취하되 장식적 어조로 반복되는 검들의 조합은 지난 두 번의 개인전에 걸쳐 시도했던 상이한 작업 방식이 종합된 결과다. 작법을 변주하는 가운데 문주혜는 일관되게 전통적 재료인 장지를 사용하면서, 그 특유의 ‘스며드는’ 물질성을 통해 자신이 플레이하던 게임에서 채집했거나 참조한 이미지를 ‘봉인’해왔다. 크리스 고토-존스(Chris Goto-Jones)의 논의 2) 에서와 같이 게이머를 전통적 의미에서의 ‘무사’로 바라볼 수 있다면, 게이머의 의경(意景)이 표현된 회화는 일종의 사인화(士人畵)라 할 수 있을까? 문주혜의 작업을 두고 관성적으로 ‘동양화’라는 표현을 쓰는 부주의는 그런 농담 같은 지점에서야 그나마 허락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것이 동양화라는 개념에 이제 어떤 의미론적 ‘규칙’이 관여해야 하는지에 대한 수행적 접근이라면, 그런 이야기를 굳이 농담처럼 들어야 할 이유는 없다. 맥락화와 역사화를 위한 동일성의 도식을 애써 추출해내려는 시선을 억제하고, 제도화된 개념인 ‘동양화’를 김효재의 〈파쿠르 Parkour〉가 ‘몸’을 인식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바라볼 때의 가능한 운동성은 무엇일까? 〈로우스코어 걸〉의 후속 프로젝트는 바로 그 지점을 재차 게임과 결부시키며 출발하는데, 이에 대해선 〈로우스코어 걸〉의 공동 기획자 홍성화에 의해 추후의 지면에서 소개될 예정이다. 《MODS》의 다른 프로젝트들이 기획자가 작가에 가까운 롤을 수행한 결과물을 선보이거나(TTT, 파핑파핑 리얼리티), 팀업된 기획자와 작가 각각의 결과물이 같은 층위에서 작동하게끔 하면서(Sync) 어느 정도씩은 거리를 뒀던 전시로서의 전형성을, 〈로우스코어 걸〉은 일반화된 양상의 기획전 형식을 취해 오히려 최대한 가져가고자 했다. 여기엔 두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로 〈로우스코어 걸〉은 《MODS》가 필연적으로 의탁할 수밖에 없는 ‘전시’란 형식을, ‘작가’, ‘공중(public)’, ‘예술’, 그리고 ‘예술계’와 같은 것들을 성립시키는 회로로부터 출력된 ‘게임’의 일부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볼 때 나머지 세 프로젝트가 그 시스템에 기판의 규격이 허용하는 어떤 외부 장치 같은 게 결합된 결과에 해당한다면, 〈로우스코어 걸〉은 순정 상태에 가까운 그 게임을 김예슬, 김효재, 문주혜 세 작가가 플레이하는 방식을 익숙한 ‘게임’의 장르적 이미지를 맥거핀 삼아 드러내고 싶었다는 게 두 번째 이유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종합하자면 우린 〈로우스코어 걸〉이, 《MODS》에 빌트인(built-in)된 뭔가를 합정지구 1층에 선행 적시해두는 기획전이자 일종의 해체적 아케이드 센터로 보이길 의도했다고 할 수 있다. 코인 투입구 없이, 아무런 조작계 없이, 워크스루(walkthrough) 영상이나 마찬가지인 ‘보는 게임’임을 견지하면서, 그리고 나아가 ‘기판과 게이머의 단절’에 ‘플레이와 구경꾼의 단절’이 친화적으로 중첩되는 장일 수 있길 바라면서 말이다. 전시와 관객 사이를 상호적이게 하는 충분히 투명하고 반질반질한 어떤 접면이 있어서 거기서부터 현실을 초과한 무언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식의 향긋한 모델은 늘 의심스럽기에. ‘전시’와 ‘관객’이라는 조건부터가 이미 현실의 회로에 의한 구성물이기에. 1) https://www.artbava.com/exhibit/mods/ 2) Chris Goto-Jones, “Is Street Fighter a Martial Art? Virtual Ninja Theory, Ideology, and the Intentional Self-Transformation of Fighting-Gamers.” Japan Review 29 (2016): 171-208.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술기획자) 김세인 큐레이터 게임 동호회 ‘Mods’ 멤버. 레거시로서의 미술, 또는 서브컬처로서의 미술에 대해 가끔씩 생각하며, 가끔씩 전시를 기획한다.
- 확률형 아이템 확률공개 법제화 : 진정한 이용자 보호를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
지난 대선에서 유력 후보들의 공약이기도 했던, 확률형 아이템 확률공개 법제화가 2023년 2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위 법은 1년 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4년 3월 1일부터 시행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잘 알 것으로 예상되지만, 확률형 아이템은 구입 당시에는 그 종류나 효과가 명확하지 않고, 일정한 행위 (요컨데 뽑기를 한다거나, 특정 장비를 강화를 하는 등의 행위) 를 할때 확률에 따라 그 종류나 효과가 정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 Back 확률형 아이템 확률공개 법제화 : 진정한 이용자 보호를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 11 GG Vol. 23. 4. 10. 지난 대선에서 유력 후보들의 공약이기도 했던, 확률형 아이템 확률공개 법제화가 2023년 2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위 법은 1년 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4년 3월 1일부터 시행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잘 알 것으로 예상되지만, 확률형 아이템은 구입 당시에는 그 종류나 효과가 명확하지 않고, 일정한 행위 (요컨데 뽑기를 한다거나, 특정 장비를 강화를 하는 등의 행위) 를 할때 확률에 따라 그 종류나 효과가 정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확률형 아이템은 온라인 게임이 정액제에서 부분 유료화 모델로 이동하기 시작할 때 등장하였고, 현재 다수의 부분 유료화 게임이 채택하고 있는 수익구조에 해당하기도 한다. 확률형 아이템은 확률을 통해 최종 결과물을 획득하므로, 특정 플레이어가 원하는 아이템을 바로 획득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용자는 특정 아이템(보통 희귀한 아이템)을 획득하기 위해 유료로 확률형 아이템을 여러 번 구입해야 할 수 있다. 이러한 로직상 확률형 아이템은 과소비와 사행심을 불러일으킨다는 비판이 있어왔다. 특히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공개가 전혀 되지 않을 경우, 합리적으로 원하는 아이템을 획득할 때 까지의 비용을 예측할 수 없어 과소비를 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이에 해외에서는 확률형 아이템을 도박의 일종으로 보아 아예 판매를 금지하거나(네덜란드 등), 청소년에게 팔지 못하게 하는 경우(독일 등)으로 규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1.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의 역사 및 한계 이러한 비판을 고려하여 한국 게임산업계는 2015년부터 자율규제를 통해 확률형 아이템 확률공개를 수행해왔다. 2015년의 자율규제는 청소년 이용가능 게임에 대해 단순히 등급별 확률공개를 하는 단순한 수준이었다면 2021년 12월부터 시행중인 자율규제는 모든 등급 게임에 대해 개별 아이템에 대한 확률공개를 넘어, 강화, 합성 등 유료 요소가 있는 다양한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 확률공개를 할 것을 요구하였다. 또한 우리나라의 자율규제는 단순히 사업자에게 자율규제를 준수할 것을 요청하는 것을 넘어 최초부터 게임물이 확률공개를 수행하고 있는지 모니터링을 수행했으며, 특히 2018년 부터는 협회가 아닌 독립적인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를 통해 상위권 게임에 대해 확률공개가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매월 모니터링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고 있다. 이러한 자율규제가 어느정도 안착되어 확률공개가 높은 수준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국내게임의 경우 90%이상이 자율규제에 따라 단순한 캡슐형(뽑기형) 확률형 아이템 뿐만이 아니라, 강화, 합성 확률까지 모두 공개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율규제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도 많았다. 특히 게임 이용자는 크게 두 가지를 자율규제의 한계로 지적하였다. 우선은 ‘공개 된 확률을 믿을 수 있는가?’ 에 대한 비판이었고, 두 번째는 ‘확률을 공개하지 않을 경우 실질적으로 강제할 방법이 있는가?’ 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 두 가지 쟁점 모두가 자율규제의 한계에 해당하는 사안이다. 이러한 비판이 이용자가 법제화에 찬성하게 하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우선, 두번째 확률 공개 강제 수단과 관련하여 자율규제는 3달 연속 확률공개를 하지 않을 때, 게임물과 제작사 유통사 정보를 언론을 통해 공개하는 방식으로 자율규제 준수율을 유지해왔다. 이는 이용자에게 확률공개하고 있지 않는 게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장기적으로 확률을 공개하지 않는 게임사 및 게임에 대한 평판을 낮춰 확률공개를 준수하도록 간접적으로 강제하는 방식이다. 실제 국내 개발, 유통사에게는 이것이 이용자의 여론 등에 영향을 주어 패널티로 동작했다. 이에 국내 게임사를 대상으로는 높은 자율규제 준수율을 기록할 수 있었다. 다만, 해외 게임회사, 특히 국내 매출 비중이 높지 않은 게임회사에게는 이러한 자율규제의 패널티가 실제적으로 큰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확률 공개의 정확성 역시 기존 자율규제에서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다. 우선, 확률 공개의 정확성을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부터가 문제가 된다. 확률공개의 정확성을 검증하려면 모니터링 단계에서 실제로 확률형 아이템을 구입해서 결과물을 확인하거나, 사업자의 협력을 통해 로그 등을 활용하여 실제확률과 공시된 확률의 차이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게임이 하나의 확률형 아이템을 파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하고, 또한 하나의 확률형 아이템에서 많게는 수백 가지의 최종 아이템을 뽑을 수 있는데 이를 민간에서 일일이 모니터링하고 확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더 나아가 실제로 아이템을 뽑은 기록, 상품별 판매량 등은 사업자의 핵심 영업비밀로 이를 공개하는 회사는 없으므로 이 역시 불가능하다. 다만, 확률을 거짓 공시하는 것은 ‘표시광고법’ 혹은 ‘전자상거래법’ 상 거짓 · 과장 · 기만적 방법으로 소비자를 유인하는 불법 행위를 구성한다. 필요시 공정거래위원회와 같은 조사 권한을 가진 정부기관에서 조사 등을 통해 확률의 적정성을 현재도 판단할 수 있다. 이번 2월 27일에 통과된 게임산업법 개정안 역시 확률공개의 미기재 뿐만 아니라 확률정보의 오표시도 시정명령과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이를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시행령에 모두 위임하고 있다. 이용자들의 요청을 고려하면 확률 정보의 정확성을 판단할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 확률형 아이템 확률규제 법제화 이후 고려사항 확률형 아이템의 모니터링을 맡아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살펴보면 확률형 아이템 역시 지난 몇 년간 다양한 변화를 겪고 있다. 초기에는 캐릭터 뽑기, 아이템 뽑기와 같은 단순 뽑기형, 즉 캡슐형 아이템이 다수였다. 그 이후 유료로 강화 재료를 사서 확률적으로 유상 혹은 무료로 획득한 아이템을 강화하는 유료 확률형 강화 콘텐츠가 등장하고, 유상 혹은 일부 유상으로 획득한 아이템 등을 이용해 새로운 아이템을 얻는 유료 확률형 합성 콘텐츠가 등장했다. 하지만, 특히 최근에는 이러한 틀로는 명확히 정의되지 않는 다양한 방식의 유료 콘텐츠가 개발되고 또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확률형 아이템의 경계를 명확히 하기 어려운 경우가 점차 많아지고 있다. 개정된 게임산업법은 제2조(정의) 제11호에서 “확률형 아이템”이란 직ㆍ간접적으로 게임이용자가 유상으로 구매하는 게임아이템(유상으로 구매한 게임아이템과 무상으로 구매한 게임아이템을 결합하는 경우도 포함하며, 무상으로 구매한 게임아이템 간 결합은 제외한다) 중 구체적 종류, 효과 및 성능 등이 우연적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말한다. ”고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정의에도 공개대상이 되는 “확률형 아이템”의 범위를 확정하기는 쉽지 않다. 우선 ‘유상으로 구매한 게임아이템’ 이 무엇인가에 대한 판단과, ‘우연적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상으로 구매한 게임아이템은 유상 재화(요컨대 “다이아”) 로 구매한 확률형 아이템이 포함되는가? 혹은 직접 현금을 주고 산 패키지만 포함이 되는 것인가? 혹은 유상으로 구매한 다이아를 일정한 과정을 거쳐 다른 재화로 변경할 경우 해당 재화도 유상 재화로 보아야 하는가? 와 같은 부분이다. 유상의 범위를 지나치게 넓힐 경우. 단순히 기회 제공형 유료 아이템의 결과물도 대상으로 볼 우려가 있다. 반대로 지나치게 유상의 범위를 좁힌다면, 실제 현금을 주고 산 경우를 제외한 유상 재화로 산 아이템 역시 유료가 아니라고 판단할 것이다. 다만 실제 게임 내에서는 유료와 무료가 다양하게 섞여 있어 게임을 실제 일일이 확인하고 판단하기 전까지는 유료성을 판단하기 쉽지 않다. 특히 최근 MMORPG 등 일부 게임은 재화의 종류를 다양하게 마련하는 경우가 많다. 원칙적으로 다수는 게임플레이에서 활동을 통해 재화를 얻을 수 있지만, 유상 재화로 구입이 가능한 경우도 많아 유상의 범위를 확정하기가 쉽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한 우연적 요소가 언제 결정되는지에 대한 판단도 쉽지 않다. 과거 뽑기형 아이템의 경우에는 구매하자마자 바로 우연적 요소에 의해 최종 아이템이 확정된다. 최근에 제작된 일부 게임은 단순히 바로 우연적 요소에 의해 최종 아이템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유료로 특정 버프(Buff)등을 얻어 특정 던전 등을 플레이하고 그 결과로 아이템 등을 얻게 설계되어 있는 경우, 특정 몹을 소환하는 아이템을 유상 판매하는 경우 등 다양한 변형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게임은 확률형 공개의 대상으로 볼 것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앞으로도 게임의 특성을 고려한 새로운 확률형 아이템 혹은 유사 확률형 아이템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랜덤성이 과소비 등을 지나치게 부추기지 않으면 일정부분 랜덤이 주는 재미를 통해 이용자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법적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이러한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면 법적 규제의 취지를 몰각할 수 있다. 기존 자율규제는 GSOK 하의 ‘자율규제평가위원회’의 논의를 통해 새로운 유형을 빠르게 규제안으로 도입해왔다. 다만 이는 엄격한 법적 절차에 따르지 않는 자율규제이기 때문에 가능한 측면이 있다. 행정 처분과 처벌이 가능한 법적 제재는 명확성이 중요 원칙이므로 새로운 양상에 빠르게 대응하기 어려운 단점은 분명히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법적 규제를 회피하려는 새로운 방식의 아이템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에 대해 정부, 이용자와 업계가 최대한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 3. 마치며 확률형 아이템 확률공개의 법제화를 규정한 게임산업법은 그간 자율규제를 운영해 오고 다양한 기준을 내부적으로 만들어 온 게임정책자율기구 입장에서 자율규제의 장점이 잘 전달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운 측면이 있다. 법적 규제가 내년 3월부터 시행됨에도, 우선 자율규제는 법적 규제가 시행되기 전까지 기존 규칙에 맞춰 모니터링 등을 수행하여 지속적으로 이용자의 알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자율규제로 진행되는 확률형 아이템 확률공개가 법제화로 진행되게 된 것에 대해 그간 자율규제를 수행해 온 기구 입장에서는 일견 아쉬운 부분이 있다. 그러나, 법제화가 된 만큼 법제화로 오히려 후퇴하는 결과로 나타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해당 법안은 다수의 이용자의 강한 요청에 의해 만들어진 만큼, 그간 자율규제에서 수행하지 못한 영역에 대한 부분도 수행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 자율규제는 현재 PC 및 모바일 상위 100개의 게임에 대해서만 모니터링을 진행하지만, 공적규제는 다수의 게임물로 그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고, 모든 이용자들이 요청하는 확률 정확성에 대한 부분도 판단할 방안을 마련하고 수행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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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염, AI, 그리고 <발더스 게이트>
적어도 분명한 것은, 앞에서도 강조한 것처럼 이제 인류는 이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다루든 피할 수 없는 위협으로 다루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가끔은 망상하듯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가령 고타쉬는 현실의 누구인가? 우리 곁의 ‘황제’는 누구 혹은 어떤 것이며, 어떤 모습으로 당신을 현혹하고 있는가? < Back 감염, AI, 그리고 <발더스 게이트> 15 GG Vol. 23. 12. 10. 올해는 <발더스 게이트 3>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랜만에 돌아온 CRPG의 부활과 같은 분위기에 많은 올드 게이머들이 환호했다. 전투 시스템 등에서는 <발더스 게이트>의 이전 시리즈작보다는 라리안 스튜디오의 전작 <디비니티: 오리지널 씬 2>을 떠올리게 만들긴 하지만, 뭐 어떤가.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가 정식 넘버링을 달고 돌아왔으면 그만이다. 열정적인 일부 게이머들이 자체 한글화에 나서 많은 한국 유저들도 불완전한 한글 상태에서나마 게임을 즐길 수 있었고, 결국 공식 한국어 지원 소식이 전해지는 데에 이르렀다. 굉장한 일이다. <발더스 게이트 3>는 게이머가 경험할 수 있는 것으로만 따지자면 거의 모든 것을 갖춘 게임이다. CRPG 장르의 팬들이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다양한 문제 해결 방식의 구현은 기본이다. 이게 아름다운 그래픽과 성우들의 열연으로 장식돼있다. 불행한 흡혈귀부터 전작에 등장했던 미니어쳐 거대 우주 햄스터의 절친까지, 흥미로운 동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그들 각자의 스토리를 함께 경험하는 것은, 물론 스토리상 다소 빈 구멍이 있는 듯 느껴지는 대목도 있지만, 어찌됐든 요즘 말로 ‘뽕이 차오르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는 D&D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기에 현실 세계와의 접점이 거의 없어보이지만, 그럼에도 창작과 그것을 비평하는 방법론의 차원에서 보면 현실과의 접점에 주목하면서 작품의 이해를 넓히는 방식이 유효할 때도 있다. 소위 외재적 비평이라는 것인데, 게임의 훌륭한 점을 나열하거나 기대에 못 미쳤던 점을 짚어내는 것보다도 이런 방법을 택하는 게 이번에도 좋을 것 같다. 다만, 이런 방식의 접근은 ‘작품을 경험하고 나서 이런 면도 생각해보자’는 차원이지 ‘작자의 의도는 실은 이거였다’는 식의 퀴즈풀이를 하자는 게 아니라는 점을 먼저 강조하는 바다. <발더스 게이트>의 첫 작품은 1998년에 나왔고 2편의 마지막 확장팩이 나온 것은 2001년이다. 중간의 리메이크판 등을 빼면 22년만(얼리억세스를 포함한다면 19년만)에 정식 후속작이 등장한 셈이다. 그 20여년의 세월은 작품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들 사이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가? <발더스 게이트 3>의 흥미로운 점은 서사의 중심에 일리시드가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과 동료들은 일리시드 올챙이에 감염됐으며 이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모험을 시작한다. 이게 계기이며 명분이다. 일리시드 올챙이에 감염되지 않았다면 모험은 시작되지 않았을 거고, 동료들이 서로 만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감염’인가? 만일 작품이 2019년 이전에 나왔다면 우리가 받는 인상은 이후와 달랐을 거다. 그러나 이 작품은 2019년 이후에 나왔으므로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을 겪은 입장에서 ’감염’에 대한 느낌은 각별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일리시드 올챙이는 호흡기 질환이 아니고 비말 혹은 에어로졸 입자에 의해 전파되지 않으며, 어찌됐건 전염되지 않는다. 일리시드 올챙이 감염은 오직 마인드 플레이어가 인위적으로 올챙이를 집어 넣을 때만 일어난다. 게다가 주인공들이 겪고 있는 일은 보통의 일리시드 올챙이 감염이 아닌 네더릴 마법에 의해 조작된 감염이다. 이런 면에서는 오히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발원지 논란, 중국 기원론 등을 둘러싼 논란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중국의 네더릴 마법에 의해 조작이 된 것일까? 그런데 이런 것보다는 코로나19와 인류의 미래에 관한 담론과 연관지어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가령 코로나19가 등장한 초창기 식자들은 인류가 더 이상 지금까지 살던 대로 살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앞다투어 강조했다. 마스크 착용과 재택근무는 일상이 될 거고, 팬데믹은 주기적으로 찾아올 것이며, 자유무역과 세계화는 퇴조가 불가피해 고립주의와 자국우선주의의 시대가 다시 도래한다는 거였다. 세계가 어디로 갈지 모르는 불확실성의 시대 속에 먼저 희생되는 것은 취약계층일테니 사회구조를 지금과 같은 경쟁위주로 유지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을 내놓는 학자들도 있었다. 이런 논의를 일리시드화와 연관지어 생각해보자. <발더스 게이트 3>의 중반부에 정체를 드러내는 ‘황제’는 자신이 일리시드화 됐다는 걸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캐릭터이다. 주인공들에 음모에 맞설 수 있는 여러 기회를 제공하는 인물인 ‘황제’는 후반부에 가서는 문제 해결을 위해 주인공이나 주요 동료들의 반(半)일리시드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외양의 변화만 일부 감수하면 특별한 이득을 여러가지로 얻게 돼 다양한 측면에서 유리해진다는 것이다. 주인공들은 최종전 직전의 선택에서 ’황제’와 결별할 수 있지만 이 경우 주인공과 새롭게 우군으로 합류하는 기스양키 오르페우스를 포함한 누군가가 일리시드화 되는 일을 감수해야 한다. 작중 인물들이 반복 강조하듯 일리시드화는 불가역적 변화이며 ‘나’를 잃고 완전히 다른 존재로 거듭나는 일이다. 일리시드화로 가장 많은 개인적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동료인 칼라크는 일리시드 상태에서도 앞으로의 희망을 얘기하지만, 성우의 연기는 이전과는 완전히 딴판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즉 ‘감염’은 어떤 불가피한 변화를 야기하는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리는 것이다. <발더스 게이트 3>의 주인공들은 대체적으로 ‘감염’으로 인한 변화에 적응하거나 그것을 수용하기 보다는 ‘감염’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추구했고 그것을 쟁취했다. 그것은 현실의 우리도 마찬가지다. 물론 ‘감염’으로 인한 생채기를 치유하고 거기에 대응하는 것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게임의 안과 밖, 양쪽 모두가 그렇다. 이게 최선의 선택인지에 대한 의문은 다소 남아있다. 그러나 또 부정할 수 없는 것은, 변한 것은 있다는 것이다. 이전으로 돌아갔다고는 하지만 ‘감염’을 겪으면서 <발더스 게이트 3>의 주인공들은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거나, 자신을 억압하는 것을 넘어서는 등 한 단계 더 성장했다. 그렇게 성장한 주인공 혹은 그들의 서사를 이어받는 누군가는 ‘감염’보다 더 어려운 시험을 견디면서 또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 나갈 거고, 그들과 모험을 함께하는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될 거다. 그게 아마 앞으로 또 언젠가 나올 <발더스 게이트 4>가 현실과 관계맺는 방식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발더스 게이트 3> 서사의 중심에 일리시드가 위치하면서 연상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모티프는 인공지능과 관련한 것이다. 일리시드는 일종의 군체를 이루고 있으며 이들 집단의식의 중심에 있는 것은 엘더브레인이다. 엘더브레인은 경향적으로 자신의 제국 건설과 이를 위한 정복 사업을 위해 움직인다. 3명의 악신으로부터 선택된 자들은 네더스톤으로 엘더브레인을 조종해 일리시드를 지배할 수 있게 됐고, 이를 통해 각자의 목적을 이루려 한다. 이 구조는 일견 컴퓨터 운영체제에서 익숙한 권한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네더스톤으로 엘더브레인을 통제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루트 권한을 탈취한 것이다. 주인공들은 악신으로부터 선택된 자들에게 네더스톤을 빼앗아 권한을 다시 탈취해 엘더브레인의 통제권을 취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즉, 이 이야기의 기본 구도는 루트 권한을 누가 갖느냐의 싸움이다. 그런데 마지막에 가서 밝혀지는 것은 엘더브레인은 이미 네더스톤의 수신기 역할을 하는 카서스 왕관을 장악해 네더브레인으로 진화한 상태이며, 주인공들이 3악신의 선택된 자들로부터 네더스톤을 탈취하는 것도 네더브레인이 만든 ’위대한 설계’의 일부일 뿐이라는 점이다. 이를 앞서 권한 구조에 비유한다면, 루트 권한을 탈취당한 시스템이 자기가 알아서 루트 권한 수복을 위한 계획을 실행했다는 얘기가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인공지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이야기 주제가 자연스럽게 인공지능으로 넘어갈 수 있다면, 그건 우리가 현실에서 이미 관련된 일을 보고 들었기 때문이다. 가령 최근의 오픈AI 사태는 어떤가? CEO인 샘 올트먼이 쫓겨났다가 복귀하는 과정은 인공지능이 우리 삶을 지배하는 디스토피아가 더 가까이 다가온 세상을 경험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보도에 의하면 이 갈등의 핵심은 일반인공지능의 개발 속도를 둘러싼 이견이라고 하는데, 물론 보도되지 않은 여러 맥락이 더 있겠지만 이런 주제를 현실의 사건을 다룬 뉴스에서 보는 세상이 벌써 왔다는 사실에 대해선 놀라움을 표할 수밖에 없게 된다. 물론 일반인공지능이란 무엇이고 그게 무엇을 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엄밀한 차원에서 각자 제각각의 정의를 내놓고 있는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인공지능-디스토피아가 당장 눈 앞에 도래한 상황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그것을 둘러싼 인간 사이의 갈등은 현재진행형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이 사람이 지시하지 않은 일을 스스로 판단해 이행한 결과로 인류가 위기에 빠지는 사건은 아직도 아주 먼 미래에나 일어날 일일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걸 걱정하는 일은 현재의 일이 된 것이다. <발더스 게이트 3>의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는 이 문제에 대한 영감은 어떻게 보면 단순하다. 해결책은 역시나 ‘황제’가 제시하는데, 앞서 언급한 일리시드화가 그것이다. 네더브레인은 일리시드이므로 능력이 모자라는 인간으로 대항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일리시드에는 일리시드로 대항해야 한다. 인공지능에 비유해 말하면 문제적 인공지능에 대항하는 ‘우리 편’ 인공지능을 활용해 문제적 인공지능의 권한 탈취 시도를 무력화시켜야 한다는 거다. ‘황제’는 그 자신을 네더브레인에 대항하는 일리시드, 즉 ‘우리 편’의 인공지능으로서 네더스톤 즉 루트권한의 양도를 요구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발더스 게이트 3> 속 이야기 내내 ‘황제’를 바라보며 주인공들이 느끼는 의구심 그 자체이다. ‘황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일리시드인 ‘황제’를 과연 믿을 수 있는가? ‘우리 편’ 인공지능은 언제까지 인간의 편인가? ‘우리 편’ 인공지능은 과연 문제적 인공지능으로 진화하는 일이 없는가? <발더스 게이트 3>는 적어도 이 의구심에 대해선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황제’는 주인공들이 편들어 주지 않으면 상대방에 붙고, 편들어 주면 배신하지 않는다. 결국 주인공 일행의 선택과 책임의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현실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현실의 인공지능을 둘러싼 갈등은 단순히 권한의 문제가 아닌 복잡한 정치사회적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주제는 <발더스 게이트 3>가 아닌 다른 게임으로 논하면 더 분명해질 것이다. 그건 다음 기회에 해보기로 하겠다. 적어도 분명한 것은, 앞에서도 강조한 것처럼 이제 인류는 이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다루든 피할 수 없는 위협으로 다루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가끔은 망상하듯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가령 고타쉬는 현실의 누구인가? 우리 곁의 ‘황제’는 누구 혹은 어떤 것이며, 어떤 모습으로 당신을 현혹하고 있는가?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시사평론가) 김민하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시사평론가로 활동하지만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게이머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냉소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돼지의 왕』이 있고,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우파의 불만』, 『트위터, 그 140자 평등주의』 등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최근작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있다.
- ‘병’의 은유 : 요코오 타로의 질병 서사
<니어> 시리즈와 <드래그 온 드라군> 시리즈에서 질병은 반복해서 절망의 폐쇄회로를 다룬다. 세계멸망의 꽃이 나타나 드래그 온 드라군 월드에 레드아이가 퍼지고, 카임은 레드 드래곤과 계약을 맺어 2003년 도쿄 신주쿠에 이르기까지 결전을 벌이며, 레드 드래곤의 몸속에 마소가 확산되어 니어 월드에 전파되고, 인간이 만든 로봇들은 마소를 다른 세계로 돌려보내 세계멸망의 꽃은 Zero의 눈에 탄생하게 된다. < Back ‘병’의 은유 : 요코오 타로의 질병 서사 14 GG Vol. 23. 10. 10. 원문제목: “病”之隐喻:横尾太郎作品中的疾病叙事 “질병 자체가 불러일으키는 것은 완전하게 오래된 두려움이다. 미스테리한 것으로 취급되고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하는 모든 질병은 실제 전염성이 없더라도 윤리적으로는 전염성이 있다고 느끼게 만들 수 있다.” - 수전 손택 “질병은 생명의 그늘이다.” 인류 역사는 수많은 질병들과의 투쟁을 동반해왔다. 질병과의 싸움에서 승리했을 땐 잠시나마 안정을 얻었지만, “보편적인 즐거움은 항상 위협받”는데, 곧바로 다시 새로운 질병이 다가와 고통받기 때문이다. 오랜 역사에서 질병은 생리적인 질병 이외의 색채를 부여받았는데, 수전 손택은 암에 걸린 후 집필한 <은유로서의 질병>을 통해 질병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은유(가령 폐결핵으로 대표되는 낭만, 암에 부여된 게으름 등)를 밝히고자 시도했다. 그 책에서 손택은 “질병은 은유가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가장 진실한 방법으로 질병을 다루려면 질병을 은유적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에 될 수 있는 한 물들어서는 안 되며, 그런 사고방식에 저항해야 한다” [1] 고 말했다. 이와 달리 요코오 타로의 작품에서 질병은 완전히 은유적인 것이며, 은유적 색채를 제거하고 질병 자체에 환원할 필요가 없다. 요코오 타로의 이야기에서 ‘병’은 완전히 허구적인 병이며, 은유물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질병’이라는 요소는 요코오 타로가 주도해 만든 <드래그 온 드라군(Drakengard)>, <니어 레플리칸트(NieR Replicant)>, <드래그 온 드라군 3>, 그리고 <니어: 오토마타> 등 네 작품을 관통한다. 이 게임들에서 ‘질병’은 서사 속 갈등의 진원지로, 대립하는 진영의 행동에 동기를 부여한다. 그것들은 손택이 언급한 낭만화되거나 불명예스러운 생리학적 질병도 아니고, 푸코가 상상했던 병원체 및 숙주도 아니다. 요코오 타로 작품 속의 ‘질병’이란 인류사회로부터 고유한 요소들——통상 우리에겐 익숙하고, 요코오 본인은 상당히 싫어하는——을 추출해내고, 이러한 요소들을 능동적이고 은유적으로 재창조한 산물이다. 가령 <드래그 온 드라군>에서부터 <니어 레플리칸트>까지 4편의 게임들이 요코오 타로의 가치관 변화를 반영한다고 본다면, ‘질병’에 대한 표현은 이러한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스크린 앞에 앉은 플레이어에게 전달하는 방식 중 하나다. <드래그 온 드라군> : 홍안증후군(이하 ‘레드아이’)[2]과 백염화증후군 “약 10여 년 전, <드래그 온 드라군>을 만들 때부터 ‘살육’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거든요. 당시 인기 게임들을 참고하면서 ‘100명의 적 격파!’, ‘100명의 적군 병사들을 박살냈다’ 등 긍지넘치는 어투에 주목했습니다. 얼마 후 차분히 생각해보니 자랑스럽다는 어투로 ‘100명 살해’같은 얘기를 하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누군가 실제로 100명을 죽였다면 그건 이미 ‘변태적인 살인자’라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드래그 온 드라군>을 만들 때, 저는 캐릭터들을 좀 더 광인처럼 설정했고, 왜곡된 세계를 만들었습니다. 모두가 잘못되고 정의롭지 못한, 왜곡된 세계 속 비뚤어진 인류의 이야기를 한 것이죠.” - <드래그 온 드라군 3> 발매 전 인터뷰 <드래그 온 드라군>은 요코오 타로가 주도해 만든 세계관을 가진 첫 작품이자, 이 시리즈 중 가장 컬트적이고,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 게임에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질병은 바로 ‘레드아이’(인터넷상에서는 적동[赤瞳]으로 번역되기도 한다)은 주인공인 카임의 부모에 대한 피해로 직결된다. 후속작에서 ‘레드아이’는 니어 월드에서의 인류 멸종, <드래그 온 드라군 3> 속 세계멸망의 꽃 및 우타히메 [3] 의 출현과 관련되어, ‘레드아이’와 그 유인책인 ‘마소(魔素)’는 일련의 세계관을 관통하는 핵심이 됐다. <드래그 온 드라군>이라는 게임 자체로 돌아가보면, 요코오 타로는 주요 캐릭터들을 만들 때 ‘잔(残)’과 ‘질(疾)’이라는 두 요소를 각각의 캐릭터 설정에 삽입해 <드래그 온 드라군>이라는 “모두가 병든” 세계를 만들어냈다. 주인공 팀원들은 에너지를 얻기 위해 용과 정령 등 생물들과 계약을 맺고, 목소리나 시력, 생육, 성장의 제한으로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 인터뷰에서 요코오 타로는 자신이 왜 이 게임에서 ‘결핍’이 있는 캐릭터를 고집했는지 이야기했다. 시장에서 주류를 차지하는 게임의 플레이 방식은 ‘살해’라는 패턴을 피하기 어렵고, 이를 현실로 옮긴 ‘살인’은 비정상적이고 불법적이다. 요코오는 이것이 비록 허구일지라도, 주인공에게 조금이라도 살육의 합리성을 부여하기 위해 그것들을 정신적 또는 육체적으로 ‘장애를 가진’ 개체로 설정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왜곡된 세계의 정의롭지 못한 집단”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요코오 타로는 자신이 <드래그 온 드라군>의 세계를 “어두운 세계”라고 여기지 않으며, 이 세계를 만들면서 현실에서 영감——광적이고 편집증적인 인간들은 여러 이유로 서로를 도살한다——을 얻었다고 말한다. * 레드 드래곤과의 계약은 카임[4]에게 힘을 주지만, 그의 목소리를 앗아간다. 요코오 타로는 게임에서 주인공 카임을 벙어리로 만들고자 했다. 요코오 타로의 초기 작품들은 너무 난해해 게이머들을 고통스럽게 했다. 주인공은 항상 시련을 겪으면서도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한다. 그의 이야기는 일본식 영웅 서사시로 시작해 예상 밖의 방식으로 끝난다. <드래그 온 드라군>을 만들던 때의 요코오 타로는 중2병이 짙게 배어 있어 인류사회의 어두운 흐름에 대한 어렴풋한 인식과 본능적인 반감을 갖고 있었다. 그 때문에 게이머와 “서로 상처를 주는” 태도로 서사를 쓴 것이다. <드래그 온 드라군>이라는 게임만 놓고 보면, 홍안증후군의 존재는 전쟁을 유발하는 모든 요소들을 하나로 모은 과장된 묘사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것의 E 엔딩은 <니어>과 <드래그 온 드라군>의 세계관을 이어가며, 니어 월드에 인류 멸망을 불러올 백염화증후군을 불러왔다. 마소를 지닌 레드 드래곤과 마더 엔젤은 니어 월드의 인류와 기묘한 관계를 형성한다. <드래그 온 드라군> 세계 속의 인격화된 신에게는 중립도 사랑도 존재하지 않으며, 하지만 제국군과 연합군의 충돌을 일으켜 세계를 멸망시켜왔다. 신주쿠 상공에 강림한 레드 드래곤은 “이것이 신의 세계입니다”라고 소리지르고, 작가와 창작된 허구 세계 둘의 관계를 밝혀낸다. * <드래그 온 드라군> E 엔딩 속 도쿄 신주쿠의 ‘거인’ 게임에서 백염화증후군은 적은 분량만 나타나는데, 주로 2003년 이후 니어 세계 인류의 운명을 배경으로 한다. 다른 세계(드래그 온 드라군 월드)에서 온 마소에 감염된 인간은 광포한 괴물 ‘군단’으로 변하거나, 그대로 백염(흰색소금)과 같은 물질로 부숴져버렸다. 마소는 바이러스처럼 빠르게 퍼지고, 인간들이 마소에 맞설 때 거두는 짧은 승리는 새로운 재앙의 시작이 된다. (핵무기를 이용해 신주쿠의 모든 군단을 박멸하고, 군단을 이끄는 레드아이를 죽임으로써 마소는 더 확산된다.) * <니어: 레플리칸트>의 서장, 여름날의 도쿄에 내리는 하얀 눈 같은 물질은 백염증에 걸려 죽은 인간의 파편이다. <니어: 레플리칸트> : 붕괴체와 검은 병의 사회적 은유 “아마 여러분은 저의 게임에서 미치광이 캐릭터들을 만날 수 있을 텐데, 여기엔 이유가 있습니다. 수백에서 수천 명을 죽인 사람이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남자가 애인과 포옹하고 키스하는 것을 해피엔딩이라고 부르는 것은 제가 보기엔 어두침침한 광기입니다.” - 2014년 게임 개발자대회에서 요코오 타로의 강연 중 9/11 테러는 ‘사람은 왜 악행을 저지르는가’에 대한 요코오 타로의 인식을 바꿔놨다. <드래그 온 드라군>을 만들던 시기에 요코오 타로는 살육과 광기를 하나로 연결해 인간 간 폭력을 악한 인성의 탓으로 돌렸다. 9/11사건과 그후 세계적 범위 안에서 나타나는 충돌과 대립은 폭력에 대한 그의 인식을 바꿔놨다. 실제 살인자는 미치광이나 악마가 될 필요가 없고, 자신이 정의를 대변한다고 굳게 믿는 평범한 사람이며, 스스로 정의의 동반자라고 생각하면 쉽게 학살의 칼을 휘두른다. 다원적 정의를 긍정하는 것은 통일신앙의 붕괴를 의미하며, 요코오 타로가 위치한 일본의 문화적 배경은 그가 북아메리카의 동료들보다 빠르게 비이원론적 대립의 정의관을 받아들이게 했다. 그것은 곧 정의와 악의 싸움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정의 사이의 내전을 가리킨다. 우노 츠네히로(宇野常寛) [5] 는 < 리틀피플의 시대(リトル・ピープルの時代)> 에서 조지 오웰의 <1984>에 묘사된 '빅 브라더(big brother)'적 유일신앙이 1960년대 '정치의 계절’의 종언과 함께 말로를 걷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 사회는 포스트모던 개념을 빠르게 소화해 수용(일본에서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는 학술용어가 아니라, 베스트셀러에서 흔히 쓰이는 단어다)했고, 통일적이고 온 국민이 희생할 만한 거창한 이상은 이미 무너져 버리고, 각기 다른 집단 간의 줄다리기만이 남았다. 이와 같은 생각에 기초할 때 <니어: 레플리칸트>의 적군과 아군 쌍방은 광적이고 편집증적인 정신장애인이 아니라, 제각각 대립적 입장에 있는 '정의로운 사람'이다. 그리고 그것은 ‘니어’이라는 이름의 연원인 동족상잔을 끄집어낸다. 니어(Nier)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일본어와 발음이 같은 영어 단어 'near'에서 따온 것으로, 적과 아군이 서로 비슷하다는 뜻을 갖는다. “동족상잔”이라는 주제는 <니어> 시리즈를 관통하는데, 레플리칸트와 마소, 기계생명체 [6] 와 요르하부대 [7] , 적대적인 쌍방은 모두 같은 근원을 갖는 산물이지만 게임 내내 자멸한다. <니어: 레플리칸트>에서 붕괴체와 검은 병은 동일한 병변이 각기 다른 숙주의 일체양면에 나타나는 질병으로, 둘은 모두 백염화증후군으로부터 스스로를 구하려는 인류의 수단——게슈탈트 계획——에서 비롯됐다. 본래 “게슈탈트(gestalt)” [8] 는 심리학 용어로, “완형(完形)”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게슈탈트학파는 “1 더하기 1은 2보다 크다”, 즉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크다고 주장한다. <니어: 레플리칸트>에 대입된 이야기 속에서 ‘게슈탈트 계획’이라는 명명은 일말의 아이러니를 안고 있는데——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지만, 인간 생명의 존재는 영혼과 육체의 직접적인 결합만은 아닐 것이다. 인간은 마소를 연구해 마법을 배운 후, 백염화된 육체에서 영혼을 구하기 위해 게슈탈트 계획을 가동해 마법으로 영혼을 육체로부터 떼어내고, 백염증이 완전히 사라져 만들어진 ‘인공생명’의 체내로 돌아갈 계획이다. “게슈탈트”라는 이름은 계획 실패의 필연성을 예고하고 있다. 육체와 영혼을 떨어뜨려 놓는 행위는 새로운 질병의 출현을 초래하는데, 그것은 곧 붕괴와 검은 병이다. 육체를 잃어버린 영혼은 곧 무너지기 시작해 점차 이성을 잃은 붕괴체가 되고, 영혼이 무너지거나 죽을 때마다 그것에 대응하는 ‘인공생명’ 레플리칸트도 검은 병에 걸린다. 검은 글자는 점차 온몸에 가득 채워지고, 레플리칸트는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 육체를 갈망하는 영혼과 자의식이 생겨난 레플리칸트는 근원을 같이 하지만, 서로 대립하는 둘은 생존을 위해 서로를 죽인다. 이야기 속 레플리칸트들은 자신들을 진정한 인간으로 착각하고, 몸을 되찾길 원하는 인간의 영혼을 “마물”이라고 부른다. 레플리칸트 니어는 마을과 여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끊임없이 마물을 죽이고, 점차 많은 마을 사람들이 검은 병에 걸려 죽어가는 것을 안타까워 한다. 하지만 자신이 마물을 죽였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행위는 검은 병의 확산을 가속화할 뿐이다. * 레플리칸트와 마물의 직접적인 충돌은 서로 상반된 요구와 소통할 수 없는 언어에서 비롯되지만, 왜 마물의 언어를 알아듣는 카이네와 온전한 인간이었던 에밀[9]은 마물을 죽이는 게 인류를 멸망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리라는 사실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을까? 에밀과 카이네의 캐릭터 설정은 <드래그 온 드라군>의 ‘에너지’에 대한 이해를 계승한다. 과학기술 실험은 에밀에게 마법의 눈을 안겨주었고, 이로 인해 그는 어둠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에밀이 석화 마법을 제대로 장악하게 되는 것은 다시 시력을 회복한 뒤다. 누나와 하나로 합쳐 그가 마법을 완전하게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했는데, 이에 대한 대가는 인간의 모습을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카이네는 습격 중에 신체 반쪽이 파손된 후 마물에 붙어다니게 되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힘을 얻지만, 마물의 완전한 통제를 계속해서 억제해야 한다. 이야기에 빙의된 카이네는 마물의 언어를 이해하고, 전투 중 마물의 말에 여러 차례 동요와 고통을 느낀다. 에밀 역시 누나와 합체한 후 인간의 게슈탈트화 전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이것들 중 어느 것도 그들이 마물을 계속 죽이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로하여금 행동하게 한 것은 레플리칸트 니어에 대한 감정과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입장에 근거한 행동인데, 현실에서 같은 언어를 말하는 사람은 서로를 적대시할 수 있듯, 카이네와 에밀, 그리고 백의 서의 인간에 대해 생산하는 엇갈림은 말이 통한다고 해서 없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붕괴와 검은 병의 한계로 동류상잔은 반드시 둘 모두가 패배하는 결과로 끝나게 된다. 요코오 타로의 반전평화 사상은 여기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다. 각자 정의로운 사명을 지닌 투쟁은 양측을 모두 파멸로 몰아넣고, 이때 의문을 제기해야 하는 것이 바로 ‘투쟁’이라는 갈등 해결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니어: 레플리칸트>의 내러티브는 우리에게 이상적인 답을 주지 못하며, 어쩌면 절벽의 마을 사람들이 마물과의 공생을 선택해 윈윈을 가져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모든 가능성은 무모한 레플리칸트 니어와 복수에 집착하는 카이네의 칼에 사라지고만다. <드래그 온 드라군 3> : ‘병’의 원흉 “테러와 불평등으로 인한 약탈은 여전하고, 다양한 형태의 경쟁도 볼 수 있죠. 단체들 간의 경쟁은 학생들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고요.” - 요코오 타로 프리퀄이라 할 수 있는 <드래그 온 드라군 3>는 1~2탄에서 어지간히도 날아다니게 하던 여러 엔딩의 세계관을 수습하고, 이 시리즈의 세계관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두 작품에서 ‘홍안병’과 ‘마소’가 연결되며, ‘마소’에 보다 강한 은유가 부여된다. <드래그 온 드라군>의 E 엔딩은 니어 월드와 드래그 온 드라군 월드를 창세신(저자)이 존재하는 세계 vs. 창작된 허구의 내러티브로 정의한다. 그리고 허구적인 레드 드래군과 모천사가 ‘현실’로 넘어와, 죽음에 이르는 바이러스(마소)를 그들의 세계 내에 퍼뜨린다. 니어 월드의 인류는 마법을 연마해 마소를 다시 다른 세계로 돌려보내고, 마소는 다른 세계(드래그 온 드라군 월드)에 모여 세계멸망의 꽃으로 이 게임의 주인공 제로(Zero)의 눈 속에 기생하게 된다. * 요코오 타로는 고도로 장르화된 게임 산업과 전투 살육 게임의 패러다임을 수차례 거부해왔지만, 그의 창작에 폭력은 항상 맴돌았다. 프로젝트 자금의 30퍼센트 가까이가 투입된다는 소문이 돌았던 <드래그 온 드라군 3>의 CG는 폭력미학을 연출해내며, 작은 공방 페이지 투어에 상시적인 소재를 제공한다. 모든 질병의 원흉——마소는 대체 무엇인가? 제작진이 공식 제시한 연표에서 두 세계는 서기 856년 대재앙이 ‘교회도시’를 탄생시키기 전까지 같은 역사의 거울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허공에 나타난 도시는 드래그 온 드라군 월드에 마법과 괴물을 가져다주었고, 적지 않은 카오쥐당(考据党) [10] 유저들도 니어 월드에서 인류가 보낸 마소로 인해 대재앙이 일어났다. 여기서 교회도시는 바로 핵폭발 이후의 신주쿠일 것이다. 두 세계의 관계 속으로 다시 돌아가서, 마소의 하나로 엮는 것은 세 작품을 폐쇄 고리로 만들어버린다. ‘현실’ 세계는 허구의 세계를 이용해 자기 딜레마를 해소하고, ‘현실’에 의해 변화된 허구적 세계는 세계멸망의 위협을 준비한다. 세계멸망을 위협하는 격투에서 허구는 ‘현실’로 넘어오게 되면 ‘현실’의 딜레마를 일으킬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소위 ‘마소’는 추상적 사물의 은유라고 볼 수밖에 없다. 마소가 유발하는 모든 질병들——레드아이(인간이 미쳐가는 괴물로 변한다)와 백염화증후군(인간 공격을 거부하는 병을 앓다가 백염화되어 사망한다) 같은——은 의심할 바 없이 인간사회 규칙의 부정적 요소들을 상징하며, 요코오 타로의 인터뷰를 통해 이를 생각해보면 폭력과 살육, 악의적 경쟁, ‘타인을 짓밟고 이겨야 한다’는 정글의 법칙에 따른 사고로 귀납된다. 두 세계 간 마소의 흐름은 인간이 만든 허구적 이야기가 현실을 변화시키는 것을 은유하며, ‘현실’ 세계와 허구 세계는 서로를 독살하고, 허구 세계의 멸망 위기는 ‘현실’ 세계를 전염시키는 병적 원인으로 전환된다. 요코오 타로는 자기 작품을 통해 정글의 법칙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인데——니어 월드의 과학기술은 로봇까지 만들어 시간여행을 할 정도로 발전했지만, 여전히 많은 시공간에서 인류를 구할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는 두 세계의 모든 생명체들을 부정하는 행동으로, “적을 쓰러뜨리는” 간명하고도 난폭한 방법은 아무리 반복하더라도 인류의 멸종을 피할 수가 없다. <니어: 오토마타> : 인간에게 처방을 내리려 하다 영화감독 봉준호는 자본주의 지배하는 인간사회가 어떻게 붕괴를 피할 수 있을 것인지를 탐색해왔다. 요코오 타로의 게임들 역시 시종일관 인간이 왜 서로에게 해를 가해야 하느냐, 그리고 왜 그것에 익숙해지고 있는가에 대한 많은 질문들을 담고 있다. <니어: 오토마타>는 인류가 멸종한다는 전제 하에 인간 문명의 인조인간과 기계생명체의 이야기를 연설을 통해 계승하고 학습하며, 인간의 ‘육체’를 벗어난 뒤 남은 어떤 정신을 ‘인간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 사유한다. <니어: 오토마타>의 내러티브에서 인간의 영혼과 육체는 이미 절멸해버렸지만, 질병의 은유는 여전히 남아있는데, 게임 속에서 기계가 만든 인조인간조차 ‘병’을 앓는 숙명을 피하기 어렵다. 벙커 기지에 숨은 논리 바이러스는 요코오 타로의 작품에서 현실적으로 추적 가능한 유일한 ‘바이러스’로, 본래는 컴퓨터 시스템을 공격하는 데 활용된다. 이 내러티브 속 논리 바이러스와 그것이 일으키는 질병은 고도의 은유를 담고 있는데, 그것은 병에 걸린 인조인간과 기계생명체에 나타나는 증상들——레드아이의 광폭과 검은 책——은 모두 시리즈의 전작에서 추적 가능하다. 이는 그것이 원래 갖고 있던 은유의 재창조이며, 요코오 타로 자신에 대한 오마주이다. * 붉을 빛을 발하는 레드아이를 제외하면, 이브의 검은 문양은 <드래그 온 드라군> 속 천사교회의 휘장과 높이가 비슷한 것처럼 여겨진다. ‘레드아이’는 기계생명체의 정상 상태이며, 요르하형 인조인간의 ‘병에 걸린 상태’이다. 요르하형 인조인간과 기계생명체의 핵심은 모두 ‘블랙박스’인데, 이는 질병과 건강, 각성과 광기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검은 병 역시 상징적 수법으로 돌아왔는데, 가령 아담의 영혼을 잃은 이브는 정신이 붕괴되고 그의 몸에는 검은 글자가 자라난다. <니어: 오토마타>에서 검은 병에 해당하는 병의 원인들을 돌이켜보면 영혼체의 붕괴에 있는데, 기계생명체로서 이브는 복제체만 걸리는 검은 병의 증상을 보인다. 기계생명체인 그는 지구에 도착해 인류가 남겨놓은 역사와 문화를 끊임없이 학습하는데, 이때 이브의 ‘병’이라는 상징성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아담의 죽음은 이브가 인류로부터 ‘인간성’을 학습한 부분을 가져가버린 것이다. 2B [11] 를 죽인 원흉인 논리 바이러스의 전염 방식은 미스테리다. 게이머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2B가 왜 9S의 백신에도 불구하고 재발했느냐는 온라인상의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2B가 벙커에서나 추적 과정에서 탈출할 때 논리 바이러스 감염 여부와 무관하게 그녀의 죽음은 9S와 A2 간의 갈등을 촉발하는 계기로 이미 규정되어 있다. 2B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발작을 일으켜 폐허가 된 상점 앞에 쓰러진다. 그곳은 9S와 “기계생명체를 없애고 나면,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쇼핑도 하자. 네 티셔츠를 골라줄 거야”라고 희망과 행복의 약속을 했던 그 지점이기도 하다. 2B의 죽음과 이후 A2와 9S의 추락은 모두 “평화를 위해 모든 적을 소멸시킨다”는 논리가 불합리하고 아무 결과도 만들 수 없는 것임을 암시한다. 전투를 위해 싸우다가 죽은 요르하부대 인조인간들은 해피엔딩을 맞을 수 없으며, 그저 보조기이자 플레이어가 생사의 순환을 깨뜨릴 때까지 오르내리는 작전을 반복할 수 있을 뿐이다. <니어: 오토마타>에 이르기까지 요코오 타로는 반전과 반폭력에 대해더욱 깊이 사유하고 설명해왔다. 그것은 전쟁의 후과를 반성하는 게 아니라, 폭력을 갈등 해결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논리이다. 그는 종으로서의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부터 인간 간 상호공격 행위에서 비롯된 ‘악의’ 자체로 화살을 돌렸고, 더 나아가 자기 희생과 상호원자라는 화해의 가능성까지 제시한다. * E 엔딩 직전의 탄막전. 게이머와 제작진의 전투에는 다른 게이머들의 지원이 필요하다. <니어> 시리즈와 <드래그 온 드라군> 시리즈에서 질병은 반복해서 절망의 폐쇄회로를 다룬다. 세계멸망의 꽃이 나타나 드래그 온 드라군 월드에 레드아이가 퍼지고, 카임은 레드 드래곤과 계약을 맺어 2003년 도쿄 신주쿠에 이르기까지 결전을 벌이며, 레드 드래곤의 몸속에 마소가 확산되어 니어 월드에 전파되고, 인간이 만든 로봇들은 마소를 다른 세계로 돌려보내 세계멸망의 꽃은 Zero의 눈에 탄생하게 된다. 요코오 타로의 내러티브 속에서 ‘질병’은 구원도 회복도 불가능하며,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돌파하는 ‘윤회’에 가깝다. 질병은 서로 다른 시공간을 연결하는 고리가 되어 현실의 어떤 절실한 고통을 지향하지 않고, 은유적인 색채를 짙게 감싸고 있다. 두 세계에서 레드아이와 백염화증후군은 하나같이 “하늘에서 내려온” 마소에서 비롯되는데, 붕괴와 검은 병 역시 대립하는 진영들 간 화해를 이루지 않는 한 치유가 불가능한 병이다. 이야기 속에서 모래의 나라의 전임 국왕은 죽을 때까지 검은 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탐색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요코오 타로는 <니어: 레플리칸트>에서 화해 가능성을 거부하고 모든 결말을 동족상잔으로 이끌어 양쪽 모두를 절멸시켰다. 리메이크판에선 니어와 카이네를 좋아하는 게이머들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해피엔딩’을 만들었지만, 복제체와 인간의 영혼 모두 파멸을 피하지는 못한다. 한데 나이를 먹으면서 요코오 타로 역시 마음이 약해졌는지, 아니면 코카콜라가 진행한 ‘스몰 월드 머신(Small World Machine)’ 이벤트가 그를 감동시켰는지 모르겠지만, <니어: 오토마타>에서는 그나마 따뜻한 가능성을 남겨놓았다. 바로 일면식도 없는 게이머들이 서로 돕고 자발적으로 저장 파일을 희생해, E 엔딩에서 주인공 세 명이 모두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 요코오 타로는 자신의 강연들에서 코카콜라가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에서 개최한 ‘스몰 월드 머신(Small World Machine)’ 이벤트를 언급한 바 있다. 이 이벤트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민들이 함께 협력해 작은 게임을 완성하고, 게임에 성공하게 되면 참가자들에게 콜라 캔을 지급한다. 요코오 타로는 입장과 가치관이 다르다는 이유로 적대하게 된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는 것이 해결의 시작이라고 여긴다. 중2 때(14세)나 지천명(50세)에 이른 지금 [12] 이나 질병이라는 은유는 요코오 타로 게임 세계에 가득 차 있다. 그 증상들 배후에 있는 병변은 하나같이 살육과 폭력, 약탈, 경쟁 등 ‘악의’를 낳는 행동을 가리킨다. 현대 사회에서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네이쥐안(内卷) [13] 과 세계 곳곳의 국지전들은 예술 창작자들을 괴롭게 하는 토픽이다. 거대서사를 향한 믿음은 산산조각이 났고, 어떠한 이념도 우리를 곤경에서 벗어나게 하지는 못한 것처럼 보인다. 만화가 후지모토 타츠키(藤本树) [14] 는 <체인소맨>에서 덴지의 답을 “그녀를 많이 안아줘”라고 했듯, 요코오 타로의 질병 치유 시도 역시 개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즉, 당신의 파일을 희생해 처방이 불가능한 플레이러를 구출하거나, 카이네가 다시 태어난 니어를 껴안고 죽음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1] 수전 손택 저·이재원 역, 『은유로서의 질병』, 이후, 2002년 [2] 드래그 온 드라군 유니버스에서 홍안증후군, 즉 레드아이(赤目の病)는 [3] ‘드래그 온 드라군’ 서사 속 암흑의 시대에 강림한 여신들은 노래를 불러 마력을 발휘했고, 이를 통해 황폐한 대지에 평화를 안겨다 줬다. [4] [나무위키 ‘니어 레플리칸트/등장인물’] 절벽 마을에서 만나게 되는 입이 험한 속옷 차림의 소녀. 할머니를 죽인 마물에게 복수하려 한다. 니어와 처음 만났을 때는 싸움을 벌이지만 곧 동료가 된다. [5] 일본의 평론가로, 비평지 ‘PLANETS’ 편집장이다. 주요 저서로는 『제로년대의 상상력』『리틀피플의 시대』『모성의 디스토피아』등이 있다. [6] 먼 미래에 지구를 침략한 이성인(외계인)들이 보낸 병기 [7] 인류가 지구를 탈환하기 위해 조직한 신형 안드로이드 전투용 보병 [8] 백염화증후군에 맞서기 위해 신체와 영혼을 나누는 기술 [9] 남쪽 평원의 저택에서 집사와 살고 있는 소년. 눈으로 본 상대를 돌로 만드는 힘이 있지만, 이를 통제하지 못해 붕대로 눈을 감고 있다. [10] 중국 대륙 인터넷 유행어로, 소설이나 영상물, 그밖에 콘텐츠를 시청 또는 소비할 때 해당 동영상이나 작품에 등장하거나 작품과 관련된 내용을 찾기 위해 정보를 검색하고 조사하는 것(디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11] [나무위키 “2B(니어 시리즈)”] 3인의 플레이어블 캐릭터 중 하나이며 (1회차의) 주인공. [12] 요코오 타로는 1970년생으로 현재 53세이다. [13] ‘네이쥐안(内卷)’이란 클리포드 기어츠가 인도네시아 사회를 참여 관찰한 뒤 내놓은 저서 『농업의 내향적 정교화 Agricultural Involution』에서 제기된 involution 개념에서 유래한다. 프래신짓트 두아라(Prasenjit Duara)는 『Culture, Power, and the State: Rural Society in North China, 1900-1942』에서 근대 중국 역사의 바퀴가 안으로퇴행(involution)했다고 묘사한 바 있다. 즉, 한 사회나 조직이 급진적인 발전이나 점진적인 성장 없이 행하는 단순한 자기반복을 의미한다. 한데 2021년 인류학자 샹뱌오(项飙)가 펑파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개념을 다시 언급하면서 지식사회의 쟁점이 됐다. 극심한 경쟁 속에서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내몰린 사람들의 삶을 묘사한다. 질적 성장 없는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내부 경쟁. 이로 인한 노동자계급, 청년들의 집단적인 번아웃 현상.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을 가리킨다. [14] 일본의 유명 만화가로, 2013년 데뷔 이후 계속해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소년 점프+에서 《체인소 맨》을 연재중이다. Tags: 드래그온드라군, 니어오토마타, 질병서사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Researcher) 张成(장청) 화동사범대학(华东师范大学) 철학과 박사후연구원. (활동가, 작가) 홍명교 활동가, 작가.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에서 동아시아 국제연대와 사회운동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를 썼고, <신장위구르 디스토피아>와 <아이폰을 위해 죽다>(공역) 등을 번역했다.
- <원신>의 동남아시아 소프트 파워 효과 평가
2023년 11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애니메 페스티벌 아시아(AFA)에서 miHoYo는 컨벤션 센터 입구, 즉 전시장 최고의 자리를 차지했다. 덕분에 팬들이 굿즈를 사기 위해 부스로 몰려들면서 3일 내내 통로가 막힐 지경이었다. 부스에는 miHoYo의 글로벌 흥행작이자 2020년 출시 이후 회사를 세계 무대에 올려놓은 게임, 《원신》의 포토존과 캐릭터 상품이 가득했다. < Back <원신>의 동남아시아 소프트 파워 효과 평가 29 GG Vol. 26. 4. 10. 2023년 11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애니메 페스티벌 아시아(AFA)에서 miHoYo는 컨벤션 센터 입구, 즉 전시장 최고의 자리를 차지했다. 덕분에 팬들이 굿즈를 사기 위해 부스로 몰려들면서 3일 내내 통로가 막힐 지경이었다. 부스에는 miHoYo의 글로벌 흥행작이자 2020년 출시 이후 회사를 세계 무대에 올려놓은 게임, 《원신》의 포토존과 캐릭터 상품이 가득했다. 최근 몇 년 사이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miHoYo 관련 행사가 눈에 띄게 늘었다. 사운드트랙 콘서트, 싱가포르 버블티 체인 LiHoTEA·디스커버리 채널 동남아시아 지사·도미노 피자 등과의 콜라보레이션이 잇따랐으며(Yan, 2023; Genshin.Global , 2022; Lojo, 2024), 2023년에는 연간 플래그십 이벤트 '호요 페스트(HoYoFest)'를 동남아시아 6개국에서 동시 개최해 《원신》을 포함한 자사 게임 라인업을 한자리에 선보였다. miHoYo의 이 같은 확장세는 《원신》의 글로벌 흥행에 힘입은 바 크다. 2021년 3월, 출시 6개월도 채 안 되어 누적 플레이어 지출액 10억 달러를 돌파하며 구글 플레이와 앱 스토어 양대 마켓에서 최단 기간 해당 기록을 세웠다(Chapple, 2021). 같은 해, 게임 업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더 게임 어워즈(TGA)에서 최우수 모바일 게임상을 수상하며 중국 게임 최초라는 기록도 남겼다(Bankhurst, 2021). miHoYo는 급격히 팽창한 해외 사업을 관리하기 위해 2022년 싱가포르에 글로벌 자회사 코그노스피어(Cognosphere)를 설립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원신》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이 게임이 중국의 소프트 파워 원천이 될 수 있는지에 관한 논의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Song, 2023; Li and Li, 2023). 소프트 파워란 한 나라의 문화, 정치적 가치관, 외교 정책을 통해 축적되어 타국의 인식과 관계에 바람직한 영향을 미치는 힘을 가리킨다(Nye, 2004). 소프트 파워는 국가 기관이 의도적으로 조성하기도 하지만, 국가의 개입 없이 독자적으로 형성되는 경우도 있다. miHoYo는 그런 의미에서 중국의 소프트 파워 형성에 기여한 비국가 행위자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중국 내에서 《원신》은 어떻게 평가받는가 중국 국내에서 《원신》은 국가적 자부심의 원천으로 여겨진다. 판 옌천(Fan Yanchen, 2024)은 이 게임의 해외 진출 성과를 분석한 글에서, "중국 게임이 '수출'에서 '세계화'로 나아가는 현 시점에서 《원신》은 단순한 오락거리를 넘어 중국의 이야기를 세계에 전하는 훌륭한 매개체"라고 언급했다. 이는 중국 당국이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중국의 이야기를 잘 전하라(讲好中国故事)'는 기조와도 맥을 같이한다(Liu, 2018). 송 탕(Song Tang, 2023)의 글에서는 중국 네티즌들이 해외 플레이어들의 반응을 중국어로 번역해 국내에 퍼뜨리는 현상도 확인된다. 그들에게 이는 게임의 글로벌 흥행이 곧 중국 문화의 영향력이 확산되고 있다는 증거다. 게임의 높은 완성도는 중국이 '낙후되어 있다'는 편견을 깨고, 오히려 '고도로 근대화된' 나라의 이미지를 심어주며 "문화 강국으로 도약하는 중국"이라는 집단적 비전에 기여한다고 평가된다. 중국의 문화적 이미지 제고에 《원신》이 기여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중국 정부도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miHoYo는 2021년과 2022년 국가 문화수출 중점 기업으로 선정되었으며(Ministry of Commerce, 2021), 이후 miHoYo가 개발한 신작들도 베이징의 지지를 받았다(Cao, 2023).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 담론은 서구권과 중국 내 관객의 반응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송(Song, 2023)은 중국 팬들이 만든 영상을 분석하면서, 어느 크리에이터가 《원신》 덕분에 미국인들이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을 이해하게 됐다고 주장했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서구의 시선을 특별히 의식하는 이 경향은 《원신》의 '중국성(Chineseness)'을 둘러싼 또 다른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리와 리(Li and Li, 2023)는 《원신》에 대한 네티즌들의 엇갈린 의견과 무관하게, 서구 소비자의 반응에 유독 무게를 두는 태도가 "외국인, 특히 선진국의 서구 소비자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중국 플레이어들의 불안"을 드러낸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해외 반응을 향한 중국 네티즌의 시선은 정작 동아시아나 동남아시아로는 잘 향하지 않는다.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의 반응이 주목받지 못하고 서구 반응에만 관심이 쏠리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 교육, 음식,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경우 대중문화 등 다른 중국 콘텐츠가 해당 지역에서 이미 충분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미-중 경쟁으로 인해 서구권, 특히 코로나19 이후 반중 감정이 고조되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2022년 기준 세계 3위 매출국인 미국에서(Chapple, 2022) 게임이 열광적으로 수용되는 현상은, 변화하는 서구의 대중(對中) 감정을 보여주는 징표로 읽힐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나라들, 특히 동남아시아의 반응을 간과할 수는 없다. '2024 동남아시아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미-중 경쟁 구도에서 전략적 파트너로 중국을 선택하겠다는 응답자 비율이 50.5%로 미국(49.5%)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전년도 조사에서 중국을 선택한 비율이 38.9%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눈에 띄는 변화다(Seah et al., 2024). 중국의 인기가 예상치 못하게 급상승하고 있는 만큼, 《원신》과 같은 중국 문화 콘텐츠가 동남아시아 대중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필자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플레이어 264명을 대상으로 게임에 대한 인상과 중국 문화 인식에 미친 영향을 설문 조사했다. 《원신》이 최고 인기를 누리던 시기, 이 게임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에서 매출 1위를 기록했고,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서는 2위였다(Bashir, 2022). 플레이어 수가 많은 이들 5개국을 조사 대상으로 삼는 것이 자연스러웠으나, 결과의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화교 커뮤니티가 강하게 자리 잡은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핵심 비교 국가로 선정했다. 인도네시아 역시 화교 인구가 상당한 만큼 비교 대상에 포함했다. 반면 필리핀과 베트남은 상대적으로 화교 비중이 낮아 인구 구성의 맥락이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제외했다. 동남아시아의 《원신》 수용 태도 2024년 2월 1일부터 20일까지 진행된 이번 조사 결과, 동남아시아에서 이 게임의 소프트 파워 효과는 두 가지 이유로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첫째, 이 지역 플레이어들은 이미 주변의 화교 이웃 및 친구들을 통해 중국 문화에 충분히 노출되어 있어, 게임이 추가로 미칠 수 있는 영향이 제한된다. 둘째, 플레이어들은 《원신》을 순수하게 '중국적인' 게임이 아닌 글로벌 게임으로 인식하며, 이는 소프트 파워로서의 잠재력을 희석시킨다. 응답자 구성은 인도네시아 37%, 말레이시아 33%, 싱가포르 30%였다. 긍정적이되 제한적인 효과 설문 결과에 따르면, 싱가포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에서 《원신》의 소프트 파워 효과는 긍정적이지만 제한적이다(그림 1 참조). * 그림 1: 다음 항목에 대해 어느 정도 동의하십니까? 대다수 응답자는 중국 문화 전반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다만 게임 플레이 이후 중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응답자(35.5%)가 그렇지 않다는 응답자(18.2%)보다 많았다. 이는 《원신》이 동남아시아에서 제한적이지만 긍정적인 소프트 파워 효과를 내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게임이 현지 관객에게 전반적으로 중립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신》을 플레이한 후 중국적 미감이 반영된 제품을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항목에서 응답자들은 자신의 견해를 직접 서술했다. 이 항목에서 중립 응답을 선택한 이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첫 번째 집단은 게임을 문화 전달의 중요한 매개체로 보지 않는 플레이어들로, 문화적 가치를 위해 게임을 찾는 습관 자체가 없었다. 두 번째 집단은 이미 일상에서 중국 문화에 충분히 노출되어 있는 동남아시아 화교 인구로, 게임의 소프트 파워 효과가 상당 부분 무뎌진 경우다. 첫 번째 집단에 속하는 플레이어들은 게임이 재미있으면 그만이라는 입장이었다. 게임이 담고 있는 문화적 함의는 부차적인 문제로, 중국에 대한 인식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답했다. 두 번째 집단은 화교 참가자이거나 중국인 친구를 둔 비화교 참가자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이미 중국 문화에 익숙한 만큼, 《원신》이 자신의 인식에 특별히 큰 영향을 미쳤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동남아시아에 뿌리내린 중국 문화가 《원신》의 소프트 파워 효과를 제한하는 가운데서도, 이 게임이 지역 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드러났다. "동의" 및 "강하게 동의" 응답자 중에서는 화교보다 비화교 응답자의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이는 《원신》이 비화교 플레이어에게 상대적으로 더 큰 영향을 미쳤음을 시사한다(그림 2.1, 2.2, 2.3 참조). * 그림 2.1 "《원신》을 플레이한 후 중국 문화에 대해 더 궁금해졌다" * 그림 2.2 "앞으로 몇 년 안에 《원신》의 배경이 된 중국 실제 장소를 방문하고 싶다" * 그림 2.3 "《원신》을 플레이한 후 중국적 미감이 반영된 제품을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중국이 만든 글로벌 게임 《원신》이 중국 문화에 대한 인식에 미친 영향을 평가하는 것과 더불어, 설문은 응답자들이 이 게임을 얼마나 '글로벌 게임'으로 인식하는지도 살펴보았다(그림 3 참조). * 그림 3: 《원신》은 글로벌 게임이다 결과에 따르면 51.9%가 "강하게 동의", 38.6%가 "동의"했다. "비동의"와 "강하게 비동의"는 각각 0.16%에 그쳤으며, 8%는 "중립"을 선택했다. 압도적 공감대의 배경으로는 ①다양한 문화를 소개한다는 점, ②전 세계적으로 서비스된다는 점, ③세계 각지의 플레이어들이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이 꼽혔다. 이어서 응답자들에게 《원신》을 '중국 콘텐츠'로 인식하는지 물었다(그림 4 참조). * 그림 4: 《원신》을 중국 콘텐츠로 인식합니까? 응답자의 85%가 "그렇다"고 답했고, 15%는 "아니다"라고 했다. "그렇다"고 답한 응답자 중 다수는 개발사가 중국 기업이라는 사실을 근거로 게임의 중국적 기원을 분명히 인정했다. 일부는 게임 내에서 '중국성'이 두드러지게 강조된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반면 "아니다"라고 답한 소수는 일본 애니메이션 화풍의 도입을 핵심 이유로 지목했는데, 이는 《원신》의 중국성을 둘러싼 현재 진행형의 논쟁을 반영한다. 두 질문을 나란히 놓고 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드러난다. 플레이어들은 이 게임을 중국적(로컬)인 동시에 글로벌한 것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는 고(Goh, 2015)가 제시한 '세계화된 다문화주의(worlding multiculturalism)'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기업(miHoYo 같은)이 낯설고 새로운 것(전통 중국 문화와 미감)에 로컬(동남아시아)하고 친숙한(일본 애니메이션 화풍) 요소를 접목해, 소비자가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문화 상품을 빚어내는 방식이다(Otmazgin and Ben-Ari, 2015). 개발진은 중국 문화의 미감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로컬과 글로벌 양쪽에 두루 소구하는 게임을 만들어냄으로써, 의도치 않게 '세계화된 다문화주의'의 역학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활용한 셈이다. 이 지역 플레이어들이 《원신》을 중국적이면서도 글로벌한 게임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러한 맥락에서 자연스러운 결과다. 결론 설문 결과를 종합하면, 《원신》은 세계적 인기를 지닌 문화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중국의 역량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개선하는 데 분명한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그것이 나이(Nye)가 개념화한 소프트 파워에 걸맞은 정치적 파급력으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응답자들이 《원신》을 중국 게임인 동시에 글로벌 게임으로 바라본다는 사실은, 이 게임의 소프트 파워 효과가 동남아시아에서 궁극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음을 드러낸다. 게임의 글로벌한 성격이 그 안에 담긴 '중국성'을 압도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한, 소프트 파워로서의 잠재력은 희석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은 SOJOURN: Journal of Social Issues in Southeast Asia Vol.39, No. 3 (2024년 11월)에 게재된 "Assessing Genshin's Soft Power Impact on Southeast Asia"의 축약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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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논문세미나] Breaking Barriers –The Emergence of a Video Game Culture and Industry in the Arab World
세계 각국을 먼나라 이웃나라로 나눌 때, 아랍 국가들은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먼 나라다. 아랍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데 아랍의 게임에 대하여 아는 것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막상 아랍의 게임에 대하여 찾고자 결심한다면 우리는 의외로 많은 정보들과 마주할 수 있다. 급성장하는 아랍의 게임시장이 가진 매력적인 자본과 가능성에 전 세계의 게임사들이 눈독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한국도 포함이다. < Back [논문세미나] Breaking Barriers –The Emergence of a Video Game Culture and Industry in the Arab World 24 GG Vol. 25. 6. 10. 세계 각국을 먼나라 이웃나라로 나눌 때, 아랍 국가들은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먼 나라다. 아랍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데 아랍의 게임에 대하여 아는 것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막상 아랍의 게임에 대하여 찾고자 결심한다면 우리는 의외로 많은 정보들과 마주할 수 있다. 급성장하는 아랍의 게임시장이 가진 매력적인 자본과 가능성에 전 세계의 게임사들이 눈독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한국도 포함이다. 2023년 기준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인터넷 보급률은 100% [1] 이며, 중동 인구의 약 52.9%가 콘텐츠 적극 소비 계층인 30세 이하 [2] 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비전 2030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대대적인 자본을 투자해 게임 및 이스포츠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3] .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Riyadh Season, 아랍에미리트에서는 이스포츠 페스티벌 등 전 지구적 게임 행사도 활발하다. 이 먹음직스러운 수출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국내 다양한 언론 및 기관이 아랍 게임 시장에 관한 분석을 내놨다. 그러나 그 너머를 목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장 분석 보고서는 많고 많지만, 그것으로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아랍의 단편이다. 이번 논문 세미나에서는 「장벽 허물기 -아랍 세계의 비디오 게임 문화와 산업의 등장(Breaking Barriers –The Emergence of a Video Game Culture and Industry in the Arab World)」을 다룬다. 이는 2023년에 출간된 『Handbook of Media and Culture in the Middle East』의 일부분이다. 이 책의 저자 Vít Šisler, Lars de Wildt, Samer Abbas는 2005년부터 2020년까지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UAE, 카타르 등의 아랍 지역 현장 조사, 40명 이상의 아랍 게임 개발자 인터뷰, 게임 분석 및 기존 연구의 메타분석을 진행했다. 저자들은 서구권의 주류 게임이 아랍인 또는 무슬림 표상을 어떻게 구성하는지에 대해 연구해왔다. 논문은 게임 환경과 비판적 트랜스문화주의 개념을 채택해 아랍 세계의 비디오 게임 소비의 역사와 현재를 개괄한다. 논문은 서구권에서 바라보는 구멍 난 아랍 게임 문화 형상의 간극을 메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논문은 아랍의 게임 현장이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의 문화적 혼종성, 시각적 표현의 진정성 강조, 종교 및 문화적 문제에 대한 민감성이라는 특징을 가진 것으로 봤다. 저자들은 논문을 통해 정치·경제·종교·문화적 흐름이 지역의 게이머·개발자·기관의 게임 매체 활용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보고 이를 글로벌 문화 생산 및 초국적 소비자 문화라는 맥락과 연결했다. 아랍 게임 시장의 현재 해상도를 높이기 위해 먼저 현재의 아랍 게임 시장에 대해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겠다. 중동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게임 시장 중 하나다. 그것은 젊고 빠르게 성장하는 활동적인 게이머 인구, 높은 스마트폰 및 인터넷 보급률, 지역 및 글로벌 게임 퍼블리셔의 현지화된 콘텐츠 공급(The National 2020)에 힘입은 결과이다. 2021년 기준 아랍에서는 사우디, UAE, 이집트가 상위 게임 시장으로 꼽히며, 사우디는 약 8억3700만 달러로 전 세계에서 19번째로 큰 게임 시장으로 꼽혔다(Tashkandi 2021). 올해 발간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연구 [4] 에 따르면 중동 게이머는 국제 평균 이상으로 모바일게임 플레이를 선호하며, 배틀로얄, 슈팅, 스포츠 등 단기 집중형 장르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연구에 나타난 사우디와 UAE 게이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44.2%가 모바일게임을 이용한다고 답했고, 하루 평균 이용시간 또한 모바일게임이 3.73시간으로 가장 높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접근해보면 이해가 빠르다. 2022년 12월 기준 아랍 지역에서 인기 있는 안드로이드 무료 게임은 피파 모바일, 틱택토, 싸커 슈퍼 스타, 루도 클럽 등의 스포츠, 퍼즐, 보드게임 장르 게임이었다. iOS 기준으로는 배틀그라운드 모바일과 서브웨이 서퍼가 인기를 끌었다. 유료 게임으로는 마인크래프트가 가장 인기가 많았고, 가장 수익을 많이 내는 게임으로는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이 있었다. MENA [5] 지역에서 유명한 이스포츠 게임으로는 ‘DOTA2’, ‘포트나이트’, ‘FIFA’ 등이 있다 [6] . 아랍 세계의 게임 연구 동향 비디오 게임 분야의 아랍에 관한 연구는 주로 서구권 개발자의 아랍 재현 방식 연구와 아랍에서의 게임 제작(및 그 자체 재현) 연구로 나눌 수 있다. 재현에 관한 연구는 주로 미국이 주도한 ‘테러와의 전쟁’ 시기부터 시작되었으며, 인기 비디오 게임에서 악당이 일반적으로 중동 테러리스트로 묘사되는 방식과 아랍 문화 정체성에 대한 기타 환원적이고 오리엔탈리즘적인 재현을 조사한다(Marashi 2001; Reichmuth and Werning 2006; Keogh 2021). 두 번째 연구 흐름은 아랍에서 제작된 비디오 게임과 그 속의 아랍인과 무슬림 자기재현을 연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Galloway 2004; Machin and Suleiman 2006; Tawil-Souri 2007). 이 논문의 저자들이 위치하는 곳도 이 지점이다. 또한 다른 연구자들의 중동 지역 게이머들의 소셜 미디어 참여 연구(AI-Rawi and Consalvo 2019)는 아랍 게이머의 공동의 정체성이 아랍어와 아랍 게임의 공유 소비를 통해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아랍 세계 비디오 게임의 역사 시작: 해외 게임 소비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미국·유럽·일본과 마찬가지로 아랍 세계에 게임이 전파됐다. 초창기 아랍에서는 주로 미국, 유럽, 그리고 일본 등의 해외 게임을 소비했다. 국산 게임 제작보다 선행된 해외 수입품의 유입은 아랍 지역의 국내 비디오 게임 산업과 그 결과물을 형성하는 ‘벤처와 관객의 기대치’를 설정했다(Wolf 2015,6). 불법 복제 게임, 소위 ‘해적판’ 게임은 아랍 세계에 비디오 게임이 확산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이 지역의 불법 복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대부분의 아랍 도시에서 해외 게임의 사본을 2~3달러에서 구입할 수 있었으며, 출시 직후의 게임 구매도 가능했다(Šisler 2013). 광범위한 불법 복제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다. 현지 생산자와 수입업자들은 값싼 해적판 제품과 국내 시장에서 경쟁하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경쟁에서 밀려났다(Wolf 2015,7). 반면 불법 복제는 글로벌 불평등에 대한 전술적 대응으로서 다양한 계층의 게이머가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민주화 효과를 제공하기도 했다. 지역의 높은 불법 복제 수준은 게임 산업 관행에 영향을 미쳐 회사들이 월정액 구독과 회사 서버 액세스가 필요한 온라인 게임 제작으로 전환하도록 만들었다(Wolf 2015, 7). 비디오 게임에 대한 접근은 사이버카페(PC방)를 통해 더욱 용이해졌다. 이는 특히 이집트, 알제리, 요르단처럼 인터넷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발전 속도가 느린 국가의 청소년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지 게임 프로덕션의 등장 1981년, 아랍어 친화적 인터페이스를 갖춘 비디오 게임기에 관한 수요로 알-알라미예가 사크르라는 아랍어 가정용 컴퓨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일본의 MSX를 기반으로 제작돼 아랍 전역의 중산층 가정에서 인기를 얻었다(Kasmiya 2015, 30). 알-알라미예는 일부 게임을 아랍어로 현지화했고, 퀴즈 게임 로드 투 마카(Road to Makkah)와 같은 간단한 아랍어 게임을 자체적으로 개발했다(Abbas 2019). 이는 1990년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0년, 시리아 의대생 무하마드 함자가 제작한 ‘돌 던지기(The Stone Throwers)’는 초기 아랍 비디오 게임 제작에 중요한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이 게임은 알 아크사 인티파다 [7] 를 다룬 단순한 게임으로, 플레이어는 이스라엘 군인으로부터 알 아크사 모스크를 지키는 팔레스타인인의 역할을 맡게 된다(Šisler 2018). 이 게임의 뒤를 이어 아랍의 문화를 더 밀접하게 반영한 다른 게임들이 개발됐다(Šisler 2008). 이 게임들은 서구권 비디오 게임에서 아랍인을 테러리스트와 종교적 근본주의자로 묘사하는 헤게모니적 왜곡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대항 담론’(Lefebvre 1991)으로 간주할 수 있다(Šisler 2018). 이러한 게임은 성격에 따라 크게 저항, 교육, 문화적 대화로 분류할 수 있다. 저항 게임은 일반적으로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에서 이스라엘과의 실제 분쟁을 바탕으로 한 1인칭 슈팅 게임이다. 대표적인 예로 레바논 헤즈볼라 운동(대표작: Special Force 1,2), 시리아 회사인 다르 알 피크르와 아프 카르 미디어(대표작: Under Ash, Under Siege), 요르단 스튜디오 투라스(대표작: Jenin: The Road of Heroes)가 있다. 이 게임들은 아랍 청소년들에게 자신만의 영웅을 제공하고 아랍인의 관점에서 분쟁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Šisler 2018). 초기의 교육용 게임은 이슬람의 기본 교리나 문명에 대해 가르치거나 가족적 가치를 홍보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서구와의 문화적 대화를 위한 도구로 개발된 초기 게임에는 2005년 시리아 회사 아프 카르 미디어가 만든 전략 게임 ‘쿠라이쉬(quraish)’가 있다. 이 게임은 이슬람의 기원과 확산을 다루며 이교도 베두인, 무슬림 아랍인, 조로아스터교 페르시아인 등 다양한 관점에서 플레이할 수 있으며 아랍어와 영어로 제공됐다(Šisler 2018). 쿠라이쉬의 개발자 중 한 명인 라드완 카스미야는 후에 빈센트 고섭과 함께 팔라펠 게임즈를 설립했다. 중동과 중국에 사무실을 둔 이 회사는 첫 번째 게임 ‘나이츠 오브 글로리(Knights of Glory)’(2011)로 100만 명 이상의 유저를 확보했다. 이집트에서는 많은 인디 개발자들이 문화나 정치를 주제로 한 게임을 퍼블리싱하려고 했다. 예를 들어 네잘 엔터테인먼트는 아랍 스타일 농장 게임 ‘알마디나(Elmadinah)’(2013)로 100만 달러 이상 투자를 유치했다. 이 회사의 전작 ‘크라우즈 보트(Crowds Vote)’(2012)는 2012년 이집트 혁명을 소재로 했다(Kasmiya 2015). 문화적 진정성과 현지화 초기 아랍 비디오 게임 디자이너들은 지역의 전통·역사·종교에 관한 ‘진정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게임의 기본 구조가 외국의 것이기 때문에 아랍 세계의 초기 게임 제작에 나타난 것은 혼종성과 문화 간 교류였다(Šisler 2018). 해외 게임사에게 현지화는 수익을 위해 필요한 선택이 됐다. 독일의 브라우저 기반 전략 게임 ‘트래비안(Travian)’은 통신사 결제와 선불카드 결제를 이용할 수 있는 최초의 아랍어 멀티 플레이어 게임이었다. 2009년 전성기 시절, 아랍어 버전 트래비안은 트래비안 전 세계 유저 1/5를 차지하며 매달 150만~3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Abbas 2019). 트래비안의 성공은 아랍 세계가 다른 유럽 브라우저 게임에 눈을 돌리게 했고, 아랍 지역 게임 회사에 투자가 유치되는 계기가 됐다. 다운로드가 필요 없고 저사양 PC를 지원하는 브라우저 게임은 쉽게 게임을 이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현지화된 무료 게임은 스마트폰과 SNS를 통해 더욱 확산됐다. 그 결과 서구의 여러 회사가 아랍에 지사를 설립하고 아랍 시장을 겨냥한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Campbell 2013). 현지화는 번역 이상으로 현지의 문화·종교·정치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아랍을 대상으로 한 현지화는 노골적인 성 묘사와 폭력, 종교 비판, 음주 등을 피할 필요가 있다. 가령 트래비안은 양조장 건물을 찻집으로 대체했다. 초기에는 대부분의 아랍 국가에 별도의 규제가 없었으나, 사우디와 UAE에서 성적인 표현과 아랍 문화에 대한 오해를 가진 몇몇 게임이 금지되면서 국가 미디어 정책에 규제 조치가 생기기 시작했다(Šisler 2018). 아랍 게임의 최신 트렌드 최근 아랍의 게임 현장에서는 다양한 이슈가 벌어지고 있다. 게임 산업의 잠재력을 알아본 정부의 투자 지원과 새로운 규제, 세계화를 통한 초국가적 네트워크 교류, 아랍의 관점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여전한 대표성 및 정치적 문제, (모바일) 캐주얼 게임의 유행, 아랍적인 게임을 위한 모딩 및 커뮤니티 번역이 바로 그것이다. 대표성 및 정치 문제와 같은 몇몇 이슈를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하나씩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정부 지원 및 규제 2016년 사우디아라비아 시청각미디어위원회는 현지 및 수입 게임에 대해 지역 최초의 공식 연령 등급 콘텐츠를 도입했다. 금지 콘텐츠에는 누드, 노골적인 성행위, 동성애, 종교 비판,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 등이 포함된다. 2018년에는 UAE도 국가미디어위원회(NMC)를 통해 유사한 등급 시스템을 도입했다. 세계화와 초국가적 네트워크 * 라미 이스마일의 isthatarabic 홈페이지 내용 아랍계 개발자들은 글로벌 게임 제작에서 아랍 및 이슬람 문화에 대한 기존의 도식화 및 왜곡된 표현에 대해 더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18년 오사마 도리아스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연례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GDC)에서 ‘비디오 게임에서 무슬림 표현을 위한 방법 가이드’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진행했다. 네덜란드계 이집트인 게임 디자이너 라미 이스마일은 게임 회사들이 아랍 문자를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문제에 맞서기 위해 웹사이트 https://isthatarabic.com 을 개설했다. 아랍계 게이머의 소셜 네트워크는 영어와 함께 아랍어를 사용하고, 지리적 근접성, 역사 및 종교를 공유한다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구축된다. 아랍 개발자 네트워크는 점점 더 공식화되고 국제화돼 지역 전체를 위한 소셜 네트워킹 이벤트와 플랫폼이 생겨나고 있다(Šisler 2018). 대표적인 예로 아랍에서 가장 큰 연례 게임 개발 행사 ‘게임 잔가(Game Zanga)’는 참가자들이 72시간 동안 주어진 주제에 관한 게임을 제작한다. 이집트 혁명이 정점에 달했던 2012년의 주제는 ‘자유’였다. 대표성 및 정치 * 게임 ‘리일라와 전쟁의 그림자’ 첫 화면. 글로벌 산업이 대부분 북미에서 주도된 결과 현대의 국제 분쟁은 거의 기본적으로 미국 관점에서 표현된다. 가령 2023년 출시된 게임 ‘식스 데이즈 인 팔루자(Six Days in Fallujah)’는 2004년 이라크 전쟁 제2차 팔루자 전투에 참전한 미 해병대 분대의 시점에서 다큐멘터리적인 리얼리즘으로 전개된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반면 아랍의 관점이 우세한 경우, 논란의 여지가 있거나 중립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쉽게 버려지기도 한다. 2016년 팔레스타인 디자이너 라시드 아부 에이데가 제작한 ‘리일라와 전쟁의 그림자(Liyla and the Shadows of War)’는 팔레스타인의 관점에서 전쟁의 민간인 희생을 탐구하는 게임이다. 이 게임은 애플 온라인 스토어 판매를 거부당하다가 이후 전 세계 게임 개발 커뮤니티의 대규모 항의(Batchelor 2017)가 있은 후에야 판매 허가를 받았다. 캐주얼 게임 사실 아랍 게임사에게 대표성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수익을 내 생존하는 것이다. 아랍 게임사들은 이를 위해 캐주얼 게임과 모바일 게임 개발을 택했다. 현재는 인기 있는 모바일 게임 중 아랍 세계에서 제작됐거나 아랍 친화적인 게임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모딩 및 커뮤니티 번역 게임 커뮤니티 전체에 존재하는 모딩 및 커뮤니티 번역의 전통은 아랍권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2013년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 아랍어 번역본이 3년간의 작업 끝에 아랍 팬 번역가에 의해 출시됐다(Johnson 2013). 마치며: 아랍 게임 문화의 성장 가능성 게임 산업은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대표적으로 유니티 같은 게임 디자인 툴의 대중화, 스팀 같은 유통 플랫폼을 통한 글로벌 시장으로의 접근성 향상은 개발 및 퍼블리싱 비용을 낮춰 경제적으로 취약한 지역의 개발자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아랍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한 스튜디오는 여전히 드물다. 정치적 불안정, 경제적 불확실성, 외국인 투자 부족, 분열된 게임 커뮤니티, 노하우 부족, 게임 개발 교육 부족 등 여러 가지 정치 및 경제적 문제가 산재해있기 때문이다. 아랍 세계에서 게임 산업은 30년 동안 존재해왔다. 그럼에도 네덜란드계 이집트인 게임 개발자 라미 이스마일에 따르면, 아랍 게임 개발 커뮤니티는 그가 제안한 지역 게임 개발 커뮤니티 6단계 중 초기 단계에 머물러있다. 그에 따르면 첫 번째 단계에서는 아마추어가 거의 없는 지역에서 지식 공유 커뮤니티가 생겨나고, 그 다음에는 국제적으로 지식이 교환되지만 여전히 ‘서구에서 크게 성공하는 것’이 목표가 된다(Ismail 2015). 그러나 이제까지 살펴봤듯, 성장의 여지는 존재한다. 저자는 글을 마무리하며 아랍 게임 문화가 성장하고, 혼종화되고, 문화 간 교류에 접어들고 있다는 특징 이상으로 아랍에 고유한 플레이어 문화를 가진 신흥 소비자층이 나타났단 점에 주목한다. 게임 문화와 산업은 이들이 함께하는 참여형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성장한다. 저자들은 이들을 더욱 확장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해외 문화 소비로 시작해 점차 자체 게임 시장을 형성하게 된 한국의 입장에서 아랍 게임 문화의 성장 과정은 크게 낯설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아랍 게임 산업의 성장 가능성이 의심되지는 않는다. 이제 한국인 게이머로서 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랍 게임의 경제적 측면 그 이상을 지켜보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거대한 초국가적 게임 커뮤니티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논문의 표현을 빌려와 다시 한 번 말하자면, 게임 문화와 산업은 구성원이 함께하는 참여형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성장한다. [1] World Bank, 2024.12.16., World Development Indicators [2] EBS, 2021, ‘닫혀 있던’ 사우디에 무슨 일이?...아라비아의 변화 어디까지 [3] Mastercard Newsroom, 2023, Transforming Saudi Arabia’s esports and gaming landscape [4] 전종섭(한국콘텐츠진흥원), 2025.01.07., 신규 게임시장의 기회: 중동의 한국게임 소비행태 분석 [5] Middle East and North Africa의 약자. 아랍, 중동, MENA 지역의 개념적 정의와 범주는 모두 다르지만 여러 자료를 가져오는 과정에서 혼용해 사용했다. 엄밀히 말해 아랍은 아랍어를 사용하는 아랍 연맹 22개국을 의미하며, 중동은 아랍 국가들이 위치한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아랍어 사용국 외에 이란, 튀르키예 등을 포함한다. 이 글에서는 가급적 원 자료 표기를 따르되 필자의 표현은 아랍으로 통일했다. [6] 해당 단락은 한국콘텐츠진흥원 UAE 비즈니스센터, 2023.06.30., ‘중동 콘텐츠 산업 동향’을 참고했다. [7] ‘인티파다’란 아랍어로 봉기를 뜻하는 용어로, 이스라엘 점령에 반대하는 팔레스타인인의 주요 봉기를 뜻한다. 제1차 인티파다는 1987~1993년, 제2차 인티파다는 2000~2005년까지 이어졌다. 알 아크사 인티파다는 제2차 인티파다의 다른 이름으로, 이슬람교도들에게 3번째로 성스러운 장소인 ‘알 아크사 모스크’의 이름을 따 명명됐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대학원생) 손민정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현대문학과 문화를 공부 중입니다. 글과 함께한 만큼 게임과 늘 함께 해왔습니다. 별별 게임 다 합니다.
- 모험가들은 다시 고향을 찾을 수 있을까? : 게임과 노스탤지어
2015년 9월 1일 게임 개발자 론 길버트(Ron Gilbert)는 자신의 블로그에 ‘Happy Birthday Monkey Island(원숭이 섬 생일 축하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다. 그가 1990년에 개발한 어드벤처 게임 〈원숭이 섬의 비밀〉의 25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글이었다. 그는 글의 마지막에서 〈원숭이 섬의 비밀〉을 함께 만들었던 당시의 팀과 ‘이 게임이 25년간 살아 있을 수 있게 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 후, 오래전에 받은 한 통의 팬레터 사진1)을 첨부한다. 당시 12살이라고 밝히고 있는 크레이그 톰슨(Craig Thompson)이 그에게 보낸 것이다. < Back 02 GG Vol. 21.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arim Lee Researches and writes about memory, story, and image. Interested in moving-image work where public and private memory intersect. Drawn to things that rest on the boundary—beings that cannot settle and drift instead. These days, comes to think that approaching haltingly, and walking while looking back, may be the method of both writing and living.
- 2023년, 되새기고 싶은 게임들
쏟아지는 게임들을 개인이 매년 다 챙겨 플레이해 볼 수는 없다. 그래도 직업이 직업인지라 꾸준히 신작들을 좇는 과정에서 느꼈던 올해의 여러 게임들을 간략히 정리해보면서 한 해의 게임들이 남긴 의미들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GG는 딱히 평점을 매기거나 개별 타이틀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웹진은 아니지만, 한 해의 마무리로서의 의미 정도는 만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 Back 15 GG Vol. 23.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그들만의 게임 바깥에서 서성거리기 : 다크소울3과 ‘프롬갤’의 ‘요르시카 살해 전통’ (장려상)
다크소울3은 나의 첫 패키지 게임이었다. 유튜브를 돌아다니다 이 게임을 소개하는 영상을 우연히 접했다. 고딕 건물이 빛바랜 색감과 얽혀드는 게임 속 광경이 매력적이었고, 그렇게 난생처음으로 스팀 게임이라는 걸 구매해 봤다. 무턱대고 시작한 게임은 참 까다로웠다. 알고 보니 다크소울은 어려운 난이도로 이름이 높은 타이틀이었다. 이 게임의 디자인은 다양한 함정이나 어려운 전투를 활용해 플레이어에게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부각한다.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죽고 화면에 떠오르는 'You Died' 문구는 일종의 밈이 될 정도였다. < Back 07 GG Vol. 22.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yuri Kim Interested in the ways games let us experience stories. After poking around here and there, lately played Marathon.
- 자각몽으로서 게임(우수상)
비디오 게임의 모순적인 표현을 지적하는 말로 ‘루도내러티브 부조화’(Ludonarrative dissonance)라는 개념이 쓰이곤 한다. 이는 게임 디자이너 클린트 호킹이 〈바이오쇼크〉를 비평하며 제시한 용어로, 말 그대로 게임 플레이(ludo)와 게임의 스토리(narrative) 사이의 부조화를 의미한다. 그는 〈바이오쇼크〉에서 플레이를 통해 경험하는 규칙이 게임 속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의 내용과 상충하고, 게임의 진행에 따라 강제되는 선택이 전자에서 제시된 딜레마를 소거한다는 모순이 있음을 지적한다. < Back 자각몽으로서 게임(우수상) 07 GG Vol. 22. 8. 10. 루도내러티브 부조화 비디오 게임의 모순적인 표현을 지적하는 말로 ‘루도내러티브 부조화’(Ludonarrative dissonance)라는 개념이 쓰이곤 한다. 이는 게임 디자이너 클린트 호킹이 〈바이오쇼크〉를 비평하며 제시한 용어로, 말 그대로 게임 플레이(ludo)와 게임의 스토리(narrative) 사이의 부조화를 의미한다. 그는 〈바이오쇼크〉에서 플레이를 통해 경험하는 규칙이 게임 속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의 내용과 상충하고, 게임의 진행에 따라 강제되는 선택이 전자에서 제시된 딜레마를 소거한다는 모순이 있음을 지적한다. 물론 이 ‘이야기 구조’와 ‘플레이 구조’의 대립 관계는 초기 게임학 연구의 내러톨로지와 루돌로지의 구분에서 유래하지만, ‘루돌로지스트에 속한 쪽’의 주역이었던 에스펜 올셋(Espen Aarseth, 2014)이 회상한 바에 의하면 당시 ‘내러톨로지스트’들이 게임에 서사학을 부적절하게 적용한 것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루돌로지스트’라는 자리가 주어졌을 뿐이었다. 덧붙여 그는 이 루돌로지스트들은 현재 모두 게임에 대해 서사학 이론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밝히며 루돌로지와 내러톨로지 대조의 오해를 지적한다. 이렇듯 게임 연구 방법론의 이원화는 다소 인위적인 구분에 기인하지만, 주류 비디오 게임(특히 대량의 자본이 투입된 소위 ‘AAA 게임’)의 방향성이 발전된 기술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스펙타클한 장면 연출을 위시하여 기존 영화적·문학적 서사를 게임 환경에서 재현하는 데 힘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따라 ‘루도내러티브 부조화’도 2년 전 논쟁적이었던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거론되어 왔다. 현대의 게임들은 이러한 단절을 의식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절충하는 방식을 써오면서, ‘영화 같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과 ‘플레이 같은 영화’를 보는 것 사이에서 전통적 서사 구조에 대해 여전히 양가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박인성, 2020). 여기선 이런 배경에서 대두된 몰입환경의 변화에 주목하면서, 원론적인 관점에서 기존 논의를 되짚어가며 디지털 게임에 대한 이해를 재고해보고자 한다. 이야기로 환원하기 단지 산만하고 무의미한 서술이 아니라 표현력을 가진 하나의 이야기가 되기 위해선 그 구성요소를 온전히 통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야기 속에 바깥의 행위자, 즉 플레이어가 참여하는 환경에서 이를 행하는 건 상당히 까다로운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플레이어는 이야기의 의미 구조하에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한 변수이고, 이야기의 청자가 단지 자신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수용할 때와 달리 이들은 이야기의 과정과 내용 자체에 직접 개입하기 때문이다. 이 플레이어의 존재가 게임이 기존의 수용적인 예술 매체와는 다른 속성을 가지게 한다. 게임은 그 안에 영상이든 음악이든 텍스트든 다른 예술 형식을 적극적으로 담아낼 수 있지만, 그 표현 방식을 모방하기보다는 그것들을 데이터로써 포함할 뿐이다. 예스퍼 율(Jesper Juul, 2001)의 지적처럼 내러티브의 시간과 이야기되는 시간 간에는 시간적 거리가 존재하는 반면, 상호작용은 항상 현재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서술과 상호작용이 동시에 일어날 수 없다. 때문에 이야기로서 서술되기 위해선 플레이어의 상호작용과 분리되고 그 영향력 바깥에 있을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게임 스토리텔링은 플레이어의 입력이 허용되지 않는 컷신 속에서나, 시간적·공간적으로 동떨어져 독립적으로 존재해왔다. 이들은 그 자체로 게임 플레이를 형성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맥락을 제시하면서 현재 나의 행동을 유도하는 역할을 해왔다. * 〈오브라 딘 호의 귀환〉에서 플레이어는 특수한 시계를 이용하여 과거의 한 시점으로 이동하지만 단지 관찰하고 정황을 추측하는 해석적인 접근만이 가능하다. 한편 비디오 게임이 스포츠나 보드게임 등과 달리 내러티브 요소를 적극적으로 포함하는 게 가능한 것은 디지털 매체로서 가지는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에릭 짐머만(Eric Zimmerman)과 케이티 세일런(Katie Salen)의 저서 〈Rules of Play〉에선 디지털 게임의 특징 중 하나로 ‘복잡한 시스템의 자동화’를 제시한다. 보드게임을 할 때는 이해한 룰에 따라 말을 손으로 움직이고 상호작용 결과를 직접 계산해야 했던 과정을 디지털 게임상에선 구현된 AI, 캐릭터가 움직이는 모습, 그래픽 엔진 등의 모든 자동화된 절차로 대신할 수 있다. 컴퓨터의 계산 능력이 비-디지털 게임에서 손수 수행하기엔 너무 복잡한 수준의 상호작용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로부터 단지 귀찮은 과정을 생략하는 것 이상으로 디지털 게임은 가상의 공간과 캐릭터를 구체화하여 동적인 허구 세계를 그려낼 수 있게 되었다. 플레이어의 존재는 이렇게 시스템이 자동화됨에 따라 축소된다기보다는 각 게임의 설정에 따라 그 역할이 바뀔 뿐이다. 최근 모바일 시장에서 지배적인 ‘방치형 게임’이라 하더라도 시뮬레이션을 재생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재화를 소비하고 캐릭터나 아이템의 조합을 적절하게 구성하는 식의 운영을 요구하며 다른 조건과 방식의 플레이를 제공하고 있다. 1) 게임을 할 때 플레이어는 이러한 자동화된 구성요소 사이에서 입력을 요구받고 자동적인 절차를 거쳐 출력을 되돌려 받는다. 이 작용과 반작용의 결과로 새로운 조건들이 만들어지고, 이에 다시 대응하는 과정이 연속된다. 게임 플레이를 이렇게 단순화했을 때 이 ‘모델’로부터 플레이어는 사건을 경험한다. 이 과정은 게임을 하는 동안 반복되지만, 플레이어가 스토리라고 인식하는 것은 그 모든 시간이 아니라 그것이 의미 구조 안에서 (상정된 것이든 시스템에 의해 발생한 것이든) ‘이상적인 시퀀스’를 그려낼 때이다. 바꾸어 말하면 사건은 게임에서 항상 일어나지만, 이야기는 이를 사후적으로 의미화하고 재조합할 때만 존재한다. 따라서 게임 내부에 고정된 이야기를 조합하여 연속된 하나로 이은 것이 그 게임의 스토리라는 것도 지나치게 좁은 해석이고, 반대로 게임 플레이 전체를 두고 ‘내가 만들어가는 이야기’라던가 ‘각본 없는 드라마’ 혹은 ‘플레이어 스토리’나 ‘창발적 내러티브’라고 이르는 것 2) 도 가능성을 두고 말하는 비유일 뿐이다. 게임은 그 자체로 내러티브인 것이 아니라 ‘내러티브로 제시될 수 있는 것’에 가깝다. 3) 시스템으로 환원하기 한편으로 게임연구 초기엔 게임에 대한 텍스트적 해석에 반대하고 (‘학문적 식민지화’를 경계하며) 게임 매체의 독립성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게임 내 기존 이론으로 해석하기 쉬운 요소들(텍스트, 이미지, 내러티브 등)이 도외시되기도 했다. 올셋(2004)은 한 에세이에서 체스 말이 어떤 모양을 가지든 체스를 이해하는 것과 관련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라라 크로프트의 외모는 몸이 다르게 보인다고 다른 식으로 플레이하게 되지 않기 때문에” 플레이어와 무관하다고 말한다. 이런 논지는 현재까지 몇몇 비평과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지속되어, 이들은 ‘진정한 게임’을 찾기 위해 ‘가장 게임다운 것’ 혹은 모호하기 그지없는 ‘게임성’을 추려내는 과정에서 항상 룰과 상호작용을 발견하고, 거기에 더해진 스토리와 이미지, 음악은 부차적이고 메커니즘을 보조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한다. 물론 상부 구조인 이야기로 환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위 요소로 환원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호모 루덴스〉에서 하위징아(Huizinga, 1949/2010)는 놀이가 ‘외양의 실현’으로서 상상력을 질서화하는 과정이라 설명했다. 디지털 게임이 놀이의 시뮬레이션적 본질을 가지고서 ‘복잡한 시스템의 자동화’를 통해 허구세계를 다른 차원에서 구현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 ‘모방 행위’라는 의미를 고려했을 때, 게임이 그려내는 픽션은 단지 뼈대인 룰을 이해하기 위해 덧붙여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재현하는 데 있어 생생함을 더하고 그 일부로서 참여하기 위해 질서가 부여된 것으로 보는 게 적절하지 않을까? 율(Juul, 2005)이 설명한 것처럼 픽션과 룰은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규칙에 묘사 대상의 성질이 개입되고 또 반대로 구조가 표현 방식을 지정하는 식으로 이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경쟁하고 상호 보완하는 관계이다. 또한 디지털 게임은 시스템 자체의 의미가 아니라 플레이어가 맥락에 의해 경험하는 하나의 과정에 의해 이해되어야 한다. 앞서 기계적 관점에서 단순화시킨 디지털 게임의 플레이 과정을 돌이켜 봤을 때, 룰을 먼저 이해하고 진행하는 다른 놀이 형식과 달리 디지털 게임에서 프로그램이 절차를 처리하는 과정은 숨겨진다. 플레이어는 모니터와 스피커를 통해 출력된 것만을 감각할 수 있기에 작동 방식을 직접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그 기능을 알게 된다. 4) 일반적으로 가이드북이나 게임 내의 튜토리얼을 통해 기본적인 조작법을 익히고 게임을 진행하면서 메커니즘을 숙지할 순 있지만, 게임 시스템을 완전히 알고 행동할 수는 없다. 다니엘 벨라(Daniel Vella, 2015)는 이런 성질 때문에 게임의 본질로서 시스템에 대한 탐구는, 시스템이 의미하는 방식을 주장하기 위해선 전체 시스템에 대한 지식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현상을 경험하고 이를 해석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게임은 처음부터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고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세계를 그리는 대신 오히려 의도적으로 작동방식을 숨기고 플레이하면서 발견하고 추론하도록 한다. 게임 속 세계를 탐험하는 행위도 근본적으로 이런 ‘미스터리’의 존재에 의해 가능한 것이다. 폴 마틴(Paul Martin, 2011)은 〈엘더스크롤 4: 오블리비언〉의 풍경이 무한한 가능성을 드러내고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바깥인 전체를 그리면서 ‘게임적 숭고’(Ludic sublime)를 제시한다고 하였다. *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오픈월드의 풍경에 외부는 없다. “세계는 눈이 볼 수 있는 데까지 뻗어나간다.”(Martin, 2011) 플레이어가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 숭고함은 약화된다. 게임에 익숙해짐에 따라 시스템을 내면화시키고 전체 세계에 대해 어느 정도 상을 그릴 수 있게 되면, 점차 게임의 세계는 가능성의 공간에서 질서정연한 우주로 변화하면서 이에 따라 플레이도 “좌절과 발견 사이의 팽팽한 기브앤테이크에서 생산적인 놀이를 위한 일상화된 운동”에 가까워진다(Welsh, 2020). 그럼에도 벨라(Vella, 2015)는 게임에 웬만큼 숙련된 상태라 하더라도 여전히 새로움을 발견할 여지는 있으며 5) , ‘블랙박스’라는 특성상 시스템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그 불가능하다는 성질이 게임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이라 주장한다. 이미지와 몰입 서술한 대로 플레이어는 시스템에 직접 접근하는 대신 이미지, 인터페이스를 통해 메커니즘을 해석하며 이를 통해 상호작용한다. 디지털 게임의 이미지는 단지 표면적인 기호가 아니라 시스템의 인터페이스가 되고, 지표로서 룰과 상호작용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현재 포토리얼리즘을 추구하는 3D 그래픽 엔진의 사실적 재현 수준은, 게이머들이 이런 정교한 그래픽으로 그려진 신작 오픈월드 게임에 대해 막연한 기대감(특히 ‘자유도’에 대해)을 가지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그 외적 사실성만큼의 실제적인 시스템을 구현하는 건 현실의 물리법칙에 점근하는 수준의 정교함이 요구되는 일이기에, 게임들은 재현의 한계에 도전하는 대신 플레이에 적합한 방식으로 추상화되고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상호작용에 제한을 두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이러한 ‘제약으로서 룰’은 유저 인터페이스를 통해 가시화되면서, 게임 이미지는 그림과 액자의 관계와 같은 이중적인 구조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구성이 미디어의 존재를 수시로 각성시키기 때문에 시각적 리얼리즘이 그리는 환영에 온전히 빠져들 수 없게 한다. 영화와 같은 스펙타클함을 추구하는 게임은 유저 인터페이스를 숨기고 심리스 스타일을 사용하면서 플레이어가 게임 세계에 온전히 몰입하기를 바라지만, 비현실적인 규칙의 존재가 인공적인 시스템의 존재를 상기시키고, 유저 인터페이스(하드웨어 인터페이스도 물론이고)에 의해 플레이어는 허구 세계와 늘 일정한 거리감을 가지게 된다. 비디오 게임은 연극을 볼 때와 마찬가지로, 그 내부 세계의 환영은 투명하게 노출된다기보다는 거리를 유지하면서 적극적인 연상을 통해 상상된다. 초기 비디오 게임 그래픽의 투박함은 기술적 한계에 의한 것이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추상적인 기호로서 이해되어 그 비현실성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6) 점 두 개와 선 하나로 사람의 얼굴을 연상할 수 있는 것처럼, 재현이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한 의미가 제시될 수 있다면 환영은 만들어진다. * 〈젤다의 전설 꿈꾸는 섬〉(2019). 여타 리마스터·리메이크 작품과 다르게 〈꿈꾸는 섬〉의 리메이크된 그래픽은 플라스틱 미니어처처럼 그려진다. 닌텐도는 여전히 추상성을 유지하는 방향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비디오 게임의 몰입 환경에 대해 고규흔(2004)은 다음과 같이 비유했다. “아무런 계기판 없이 하늘을 날고 있는 행글라이더의 라이더가 자신이 대기 안에 존재함으로써 온몸으로 바람의 방향과 속도를 경험하고 상황을 판단하여 기체를 조종한다면, 계기판 앞에 앉은 파일럿은 자신의 대기에 존재하면서도 환경에 대한 정보를 몇 가지의 패턴으로 나누고 객관화시킨다. 풍속과 고도, 현재의 운항 속도, 시야 거리 등등의 수치화된 정보를 기준으로, 행글라이더의 기수와는 달리 현 상황에 대해 객관적 방식으로 각성하는 것이다.” 그는 “고전적 리얼리즘에서의 관객”이 행글라이더의 기수라면, 게임 플레이어는 환영과 동화되지 않는 파일럿의 태도와 같다고 한다. 자각몽으로서 게임 *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 〈Don’t Look Back〉 델 토로 감독의 영화 〈판의 미로〉의 주인공 오필리아에게는 다른 불행한 인물들과 달리 따로 판타지 세계가 주어진다. 오필리아는 요정에 이끌려 목신 판으로부터 임무를 부여받고 과제를 수행한다. 이와 유사한 알레고리를 가진 게임 〈Don’t Look Back〉에서는 그림과 같은 장면으로 게임이 시작된다. 불행해 보이는 그에게도 역시 판타지 세계로서 지옥이 주어진다. 우리는 그를 조종하여 장애물을 통과하고 괴물들을 격파하며 거침없이 나아가 지하세계의 신, 하데스까지 물리친 후에 그는 아내의 영혼과 만난다. 이제 ‘규칙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만 이동하여 다시 이승으로 올라오는 것이 목표가 된다. 그 결과가 〈판의 미로〉에서는 사실관계가 모호하게 그려지지만 여기서는 보다 명확하다. 남자가 처음 떠난 자리로 돌아올 때, 이 과정을 함께한 플레이어의 기대를 완전히 배반하고 ‘게임적 존재’들은 그대로 소멸한다. 〈판의 미로〉에서 오필리아에게 혼란스러운 현실과 대조적으로 판타지 세계에선 절대적인 규칙이 제시되고, 이에 따라 고난을 극복한다. 이 짧은 게임 안에서도 플레이어는 오르페우스 신화를 상상하는 남자로서 게임을 하고, 목적을 달성하곤 합당한 보상을 기대하게 된다. 두 작품이 판타지를 체현하는 방식은 게임 플레이와 맞닿아있다. 이들이 진행하는 게임은 규칙을 두고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긴장 속에서 문제를 극복하는 놀이이면서, 공상만이 아닌 구체적이고 생생한 모습으로 제시되는 공간이다. 상상된 시스템 속에서 꿈을 꾸고 있지만 일상적 현실을 자각한 채로 정교하게 욕망을 만족시킨다. 만들어진 새로운 세계로서, 게임은 일방적으로 재생되는 꿈도, 잠깐 빠져드는 백일몽도 아닌 자각몽으로 경험된다. 1) 다만 그 자동화의 대상이 기존 액션 RPG 장르에서 핵심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에 ‘자동 사냥’을 제공하는 RPG 게임들은 게임 커뮤니티 등지로부터 ‘이것은 게임이 아니다’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2) Soler-Adillon(2019)이 지적한 바대로 시스템의 자기조직화가 행위자의 인지와 직접 관련되는 것은 아니다. “Importantly, they do so while responding to this sense-making process itself. However ... it is problematic to associate self-organization to processes in which the agents generating the phenomenon are aware of it” (Soler-Adillon, 2019) 3) 다만 게임이 기존 내러티브 구조를 따르는 대신 “더 큰 내러티브 경제에 기여”하는 매체라는 관점도 있다.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 2004)는 〈스타워즈〉 시리즈와 1983년 아타리에서 출시한, 영화의 한 장면을 시뮬레이팅하는 동명의 비디오 게임이 영화에서처럼 전체적인 플롯을 그려내지 못한다는 주장을 두고, 게임을 하며 환경적 세부 사항을 직접 경험하는 과정을 통해 다른 미디어와 결합하여 더 큰 단위에서 풍부한 내러티브를 구성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현대의 주류 온라인 게임에도 무리 없이 적용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 자세히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4) 워게임 디자이너 제임스 더니건(James F. Dunnigan, 2000)은 이를 컴퓨터 게임의 경험을 축소시키는 ‘블랙박스 신드롬’(Black box syndrome)이라 불렀다. 그는 내부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워게임의 핵심 요소라고 주장했다. 5) 일례로 1994년 출시된 〈둠 2 : 헬 온 어스〉의 한 숨겨진 구역은 출시 후 24년이 지난 2018년까지 접근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유튜버 Zero Master가 특수한 방법을 써서 정상적으로 진입하는 방법을 찾아내어 이에 게임 개발자 존 로메로(John Romero)가 직접 트위터에 축하 메시지를 남긴 적이 있다. romero. (2018,09,01). CONGRATS, Zero Master! Finally, after 24 years! "To win the game you must get 100% on level 15 by John Romero." Great trick getting to that secret! 6) 이런 점에서 현대 인디 게임에서 흔히 표방하는 로우폴리곤이나 픽셀 그래픽이 활용된 레트로 스타일은 단지 노스탤지어만이 아닌 게임적 이미지의 물성에 관한 해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Hocking, C. (2009). “Ludonarrative dissonance in Bioshock: The problem of what the game is about.” In D. Davidson (Ed.), Well played 1.0: Video games, value and meaning. ETCPress. Aarseth, Espen (2014) “Ludology,” in The Routledge Companion to Video Game Studies edited by Mark J.P. Wolf and Bernard Perron. 박인성 (2020). “2010년대 비디오 게임에서 나타나는 서사와 플레이의 결합 방식 연구 - AAA급 게임의 심리스(Seamless) 스타일을 중심으로.” 한국근대문학연구, 21(1), 83-111. Juul, Jesper (2001). “Games telling stories? - A brief note on games and narratives.” Game Studies, Vol. 1 Issue 1, July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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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 Jose: Writers Club Press, 2000) Welsh, Timothy (2020). “(Re)Mastering Dark Souls.” Game Studies, Volume 20, Issue 4 Martin, Paul (2011). “The Pastoral and the Sublime in Elder Scrolls IV: Oblivion.” Game Studies, Volume 11, issue 3 Vella, Daniel. (2015). “No Mastery without Mystery: Dark Souls and the Ludic Sublime.” Game Studies, Volume 15, Issue 1 고규흔 (2004). 비디오 게임에 대한 스펙터클적 관점에서 계약의 관점으로 이동. 한국게임학회 논문지,4(3),29-42.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학생) 김도근 디지털 미디어와 같이 자란 세대로 특히 디지털 게임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QUOVADIS, 게임법 - 국회 안에서 바라본 게임법 진행의 경과와 미래
물론 전부개정안의 모든 내용이 정답이라는 것은 아니다. 발의하고 보니 보완해야할 부분들도 여럿 보였다. 특히 국내대리인지정제도는 더욱 강화해서 발의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부개정안에 빠져 있거나 부족한 부분들은 심사 과정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수정될 것이다. 또한 다른 게임법 일부개정안과도 병합심사되어 더 좋은 내용으로 고쳐질 것이다. 이를테면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서는 컴플리트 가챠 규제 법안이나 이용자 권익보호위원회 규정 법안과 함께 병합심사 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느릴지언정 멈추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꾸준히 내딛고 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국민의 꾸준한 관심은 국회를 일하게 한다. < Back QUOVADIS, 게임법 - 국회 안에서 바라본 게임법 진행의 경과와 미래 01 GG Vol. 21. 6. 10. 게임법 이야기를 시간의 흐름대로 쓰다가 순서를 거꾸로 뒤집었다. 아무래도 현재 게임법이 어떤 단계에 있는지,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시리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다. 법안이 발의되고 본회의를 통과하기까지의 과정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발의-상임위원회 심사-법제사법위원회 심사-본회의 심사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중, 전부개정안은 상임위원회 심사단계에 있다. 상임위원회 심사는 다시 전체회의 상정-법안심사소위원회 심사-전체회의 의결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전부개정안은 상정 단계를 지나 법안소위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발의된 지 벌써 반년이 지났는데 왜 아직도 심사가 되지 않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공청회 순번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여‧야 문체위 소관 법안에 대한 이견으로 심사 속도가 더딘 것이다. 공청회부터 설명해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법안의 종류부터 설명해야 한다. 법안은 크게 제정법안, 전부개정안, 일부개정안으로 구분된다. 제정법안은 말 그대로 여태껏 없었던 새로운 법을 만드는 것이다. 전부개정안은 기존에 있던 법이지만 어떠한 이유로 법의 체계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싹 바꾼 형태다. 마지막으로 일부개정안은 어떤 법의 몇몇 조항만 개정하여 발의한 유형이다. 게다가 제정법안과 전부개정안을 대상으로는 한 가지 절차가 더 필요하다. 국회법상 공청회를 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일부개정안에 비해 전부개정안과 제정법안을 심사할 때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전문가들을 진술인으로 불러 이 법안에 대한 의견을 듣는다. 이를 통해 법안을 심사할 때 참고하게 된다. 공청회는 상임위 교섭단체 간사간 협의에 따라 생략이 가능하다. 공청회를 생략하면 법안 심사에 걸리는 시간이 단축될 수 있지만, 반면 심사가 부실해질 수 있고 법사위에서 공청회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류될 우려도 있다. 그렇기 때문인지, 21대 상반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여‧야 간사는 발의된 모든 문체위 소관 제정법안과 전부개정안을 대상으로 공청회를 실시하고, 그 순서는 발의순으로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게임법 공청회는 15번째 순서다. 한참 오래 걸릴 것처럼 보이지만, 여차저차 공청회가 계속 열렸다. 이제 게임법 앞에 놓인 공청회는 불과 네다섯개 정도다. 여‧야 정쟁을 설명하자니 국회의 구성원으로서 부끄러운 마음이 먼저 든다. 하지만 숨기지 않고 세세하게 얘기하겠다.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법안심사소위원회는 문화 및 예술 분야의 법안을 심사하는 1소위원회와 관광‧체육 분야의 법안을 심사하는 2소위원회로 나뉘어 있다. 2소위원회는 꽤 잘 진행되어 왔다. 문제는 1소위다. 일단 문체위 소관으로 발의되는 법안 중 1소위 소관의 법안 수가 2소위 법안보다 많다. 그리고 지금까지 여야간 이견이 컸던 법안들은 거의 다 1소위 법안들이었다. 법안을 심사하다가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 정회를 한다. 정회하고 간사간 협상을 시도하는 것인데, 타결이 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다. 후자의 경우엔 머리가 아파진다. 정회 시간이 한도 끝도 없이 길어지거나, 산회하고 다음 회의 전까지 협의를 이어가기로 하고 회의가 끝나게 된다. 심할 때는 법안소위가 아예 열리지 못하는 회기도 왕왕 있다. 이 경우, 해당 쟁점 법안 뒤에 심사를 기다리던 나머지 법안들까지 심사가 밀리게 된다. 앞서 말한대로 쟁점법안들은 거의 1소위 법안인데, 가뜩이나 법안 수도 많은데 병목현상까지 생기면서 심사 속도가 느려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럴 때면 게임법이 2소위 소관이었으면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러다 아예 심사도 못하고 전부개정안이 폐기되는거 아니냔 불안이 엄습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된다. 이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은 법안은 ‘언제’심사될 지의 문제일 뿐, 심사 자체는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전부개정안을 제외하고서도 확률형 아이템 관련 법안이 이미 3건이나 발의되어 있고, 발의 절차에 있는 법안이 2건 더 있다. 이처럼 특정 사안에 대해 여러 건이 발의 되어 있는 법안은 심사되지 않을 가능성이 낮다. 국회에서 일한 지 10년 차다. 그동안 적지 않은 수의 법안을 만들어 왔다. 국민에게 칭찬을 받을 때도, 반박할 수 없는 비판을 들을 때도 있었다. 정말 좋은 내용의 법안인데 생각하지도 못한 말도 안되는 이유로 임기 만료 폐기될 때도, 일사천리로 통과될 때도 있었다. 법안 하나하나가 모두 내 자식 같고,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법안을 만드는 정책보좌진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때문에, 어떤 법안에 가장 애정이 깊은지 물어보면 답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어떤 법안을 추진할 때 가장 힘들었나 물어보면 1초의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다. 게임법 전부개정안이다. 게임법처럼 이해관계자가 많고, 첨예한 법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게임법이 게임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이 유독 크기도 하다. 역사에 비해 발전 속도가 빠른 산업일수록 이런 경향이 큰데, 게임산업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래서 게임법 조항 하나만 개정돼도 파급력이 클 때가 많다. 조항 하나에도 이런데, 수십 개의 조항이 새로 쓰여지는 제정법안이나 전부개정안은 말할 것도 없다. 조항만 많은 것이 아니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라는 이름 아래 한데 묶여있는 게임의 종류들도 많다. 몇 가지만 꼽아보자. 온라인 pc게임, 모바일 게임, 아케이드 게임, 웹보드 게임, 콘솔 게임, 교육용 게임, VR 게임, 여기에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블록체인 게임까지. 종류는 여러 가지인데 법은 하나다. 물론 게임법 내에서 몇 가지 구분을 둔다고는 하지만, 게임 저마다의 특징을 모두 반영하기란 불가능하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 한국게임산업협회, 게임문화재단, 모바일게임협회, 한국게임개발자협회, 한국게임학회 등등… 게임 종류별, 직업별 의견을 내는 목소리들도, 추구하는 바도 각양각색이다. 목적 자체가 이윤추구인 게임사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법 하나에 이 모든 내용을 담으면서도 모두가 만족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기 때문에 게임법 전부개정안을 우리 의원실에서 발의하기 내키지 않았다. 나도 사람인데, 이처럼 이해관계가 첨예한 문제에 발을 담그고 싶지 않았다. 심사 과정 내내 가시밭길을 맨발로 걸어야 할 것이 뻔해 보였다. “욕먹기 싫은건 당연하다. 이해한다. 하지만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다. 국민이 그 노력을 몰라줘도, 언론에 기사가 많이 나오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쉽고 편한 길만 가려고 하지 마라. 나는 그렇게 정치를 배우지 않았다.”이 문제로 이상헌 의원님께 보고드렸더니 하신 말씀이다. 결국 우리 의원실에서 게임법 전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발의하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확률형 아이템 이슈는 언론에 많이 다뤄져서 내용을 알고 계신 분들도 많다. 확률형 아이템 이슈를 두고 게임업계와 논쟁하는 동안, 많이 괴로웠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교묘하게 법안과 나를 헐뜯었다. 추측성 음모론도 있었다. 친하게 지내던 게임업계인이나 기자들 여러명과 서먹해지기도 했다. 전부개정안의 다른 조항과 연관된 다른 이해당사자들은 내 뒤를 밟는다던지, 면전에서 몸 조심하라는 협박까지도 했다. 그래도 앞을 보고 걸어가야 한다. 전부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 이상헌 의원님 말씀대로 힘들어도 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산고(産苦)가 크지만, 통과되고 나면 이용자 권익보호가 보다 강화될 수 있고 게임업계도 한층 성숙해질 것이라 믿는다. 물론 전부개정안의 모든 내용이 정답이라는 것은 아니다. 발의하고 보니 보완해야할 부분들도 여럿 보였다. 특히 국내대리인지정제도는 더욱 강화해서 발의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부개정안에 빠져 있거나 부족한 부분들은 심사 과정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수정될 것이다. 또한 다른 게임법 일부개정안과도 병합심사되어 더 좋은 내용으로 고쳐질 것이다. 이를테면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서는 컴플리트 가챠 규제 법안이나 이용자 권익보호위원회 규정 법안과 함께 병합심사 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느릴지언정 멈추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꾸준히 내딛고 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국민의 꾸준한 관심은 국회를 일하게 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국회 보좌관) 이도경 역대 국회 게임 관련 법안 최다 발의·최다 통과 시킨 것이 자부심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자부심은 와우에서 리치왕 하드모드 서버 퍼스트킬 한 것과 카오스 유명 클랜인 RoMg에서 샤먼을 했다는 사실입...
- 라이브 서비스 전쟁 · 역사 기계 - <폭스홀>과 <헬다이버즈 2>
<폭스홀>은 극단적으로 상세화된 활동적 측면으로, <헬다이버즈 2>는 운영진의 적극적 개입과 플레이어 활동 반영 등의 실시간 소통의 방식으로 각각 전쟁 앞 개인의 감각을 생산해 플레이어들에게 역사를 체험하게 만든다 할 수 있다. < Back 라이브 서비스 전쟁 · 역사 기계 - <폭스홀>과 <헬다이버즈 2> 25 GG Vol. 25. 8. 10. 게임에서 전쟁은 주제로, 소재로, 또 하나의 주된 장르로 그 태동부터 아주 오랜 시간 다뤄져 왔다. RPG, RTS, FPS, TPS 등 형태를 가리지 않고 전쟁이라는 하나의 커다란 현상의 부분적 측면들을 다뤄 왔으며 MMO 장르에서 플레이어들이 형성한 길드, 혹은 클랜 간의 전쟁은 그 자체로 인류 역사에서 일어난 여러 전쟁들을 짧은 기간 안에 축소판으로 시뮬레이션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 출현한 라이브 서비스 (Live Service) 형식으로 운영되는 멀티플레이 전쟁 게임들은 종래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쟁을 다룬다. 여기서 전쟁의 라이브 서비스 측면은 교전 대상을 정하고 선전포고를 하는 등의 구조적이고 정치적 측면을 게임의 개발진이나 운영자가 대신 전담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선 2003년 <플래닛사이드>에서 2012년 <플래닛사이드 2>로 이어지는 전신이 존재하긴 했었지만 2022년에 발매된 <폭스홀>과 2024년에 발매된 <헬다이버즈 2>는 각각 PVP와 PVE의 형식으로 서로 다른 분야에 주안점을 두며 이전보다 훨씬 본격적인 차원에서 전쟁을 구현한다. “지속적 세계 전쟁” - <폭스홀> <폭스홀>에서 플레이어는 조감도로 비치는 화면 아래 놓인 아주 작은 군인 한 명을 조종한다. 서버에 접속하자마자 성별과 피부색 등을 선택할 수 있지만 어차피 군모와 군복으로 전부 가려진 아주 작은 신체들은 시각적으로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이와 별개로 선택해 참여할 수 있는 콜로니얼 (Colonials)이라는 연방국과 워든 (Wardens)이라는 제국의 서로 국경을 맞댄 진영들은 각각 녹색과 청색의 대표색 말고도 장비 및 기반 시설, 시작 구역의 지형 등 적잖은 차이를 지닌다. 그러나 이 차이 또한 어느 한쪽이 유리하게 설정되어 있지는 않고 예를 들어 워든의 무기는 성능이 다소 우월한 대신 생산 비용이 비싼 등 접근 방식에 차이를 줄 뿐이다. 여기서 눈치챘겠지만 <폭스홀>은 무기 생산은 물론이고 자원 채취까지, 즉 군사 활동의 모든 물리적 측면을 플레이어들이 직접 운영해야 하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그러나 기존의 RTS 게임과는 달리 한 진영의 전체 유닛들을 한 명의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광활한 전장에서 플레이어는 그저 단 하나의 유닛만을 조종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동 및 행동 속도, 소지 물품의 무게, 조준 시간 등 각 유닛의 역량은 너무 한정되어 있는 나머지 직접적인 전투에 참여하고 있는 플레이어는 해당 싸움 속에서도 영웅적 활약은커녕 아주 작은 총알받이 하나의 역할 이상을 수행할 수 없다. 그러니 게임 내 병과 간 수행 가능한 작업을 구분 짓는 시스템상 제한이 따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보병이 의무병의 치료를 돕는 것도, 의무병이 보급병의 병참을 돕는 것도 순수하게 ‘여력’ 상 불가능하다. 군장 무게상 치료에 필요한 구급상자를 보병이 소지하고 있을 일이 없을 뿐 아니라 만에 하나 구급상자가 근처에 떨어져 있었다 하더라도 총을 내려놓고 그것을 주워 착용한 뒤 그 안에 붕대를 채워 넣는 데 걸릴 시간이면 이미 총알에 맞아 죽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병참은 트럭과 같은 이송 장치를 모는 것이 아니면 물자를 들고 옮기는 건커녕 기지에서 하나하나 꺼내는 데만도 시간이 적잖이 걸리며 심지어 창고에서 물자를 꺼내는 시간과 기지에서 꺼내는 시간은 천지차이이다. 또 병참 안에서도 물자 이동과 군수품 생산, 그리고 자원 생산 사이의 역할이 전부 하나하나 나뉘어 있으며 역시 여기도 시스템상에 제한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업무 수행 역량의 한계 때문에 자연스레 플레이어들이 특정 역할을 전담하게 되는 것이다. <폭스홀>에서 각각의 플레이어는 하나의 분야 속 하나의 아주 작은 역할을 수행하며 하나의 커다란 전쟁을, 현실 시간으로 짧게는 10일에서 길게는 50일까지도 걸리는 전쟁을 영원히 반복해서 작동시킨다. <폭스홀>이 자신을 “지속적 세계 전쟁 (Persistent World Warfare)”이라고 소개하는 것도 과장은 아니다. 하나의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한번 선택한 진영은 바꿀 수 없으며 전체 지도는 게임 내 실제 축척으로 한 변의 길이가 1km인 육각형으로 구획된 43개의 지역들이 모여 이루어져 있다. 즉 대략 111.7km²의 전체 넓이를 가진 거대한 (프랑스의 수도 파리시 전역이 105.4km²) 전장에서 평균 3,000명가량의 플레이어가 한꺼번에 싸우려면 이 게임의 진정한 주인공은 결국 병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보급 활동은 앞서 설명했듯 단계적으로 각 활동이 절차적으로 세세하게 나뉘어 있는 이 게임의 특성상 게임의 기제로는 다소 터무니없는 시간을 소모하는데, 예를 들어 경기관총 100개와 그 탄창 120개가 각각 생산 시간이 1시간씩 걸린다. 그리고 재고를 확인하고 15상자에서 60상자 사이의 물품을 적재한 뒤 차량을 주유하며 전방에서 후방으로 이동하는 데 도로 상황과 차량의 종류 등 변수에 따라 짧게는 15분에서 길게는 20분까지 걸린다. 지금 여기에 물자 생산에 필요한 자원 채취 및 정제 시간, 생산 기반 시설 건설, 시설 작동을 위한 연료 보급 등을 위한 시간은 생략되어 있다. 그리고 이렇게 열심히 달렸는데 전방 근처에서 적군 파르티잔에게 습격당하는 일이 허다하다. 이 모든 군사 활동을 하나하나 전부 한 명 한 명의 플레이어들이 수행해야 하니 한 번에 기여할 수 있는 범위는 당연히 한정된다. 활동 종류에 시스템상 제약이 존재하지도 않고 채팅은 존재하지만 지휘 체계가 있는 것은 아니고, 계급은 있지만 별도로 권위가 부여되는 것은 아니니 플레이어들은 자주적으로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역할을 맡는다. 전방 재고를 확인하여 어떤 부족한 물자를 채워 놓을지도 보급병이 알아서 선택해야 하고 자원을 채취하다가도 채팅에서 전방 보병들이 무기 부족을 외치면 급하게 트럭을 돌리는 일도 생긴다. 물론 자유도의 부작용으로 같은 물자를 동시에 여러 명이 배달해 잉여분이 쌓이는 경우나 보병보다 위생병이 몰리는 경우도 자주 있다. <폭스홀>에선 오인 사격도 가능하고 이처럼 활동에 제약이 없다 보니 아군 방해의 걱정이 있을 수 있지만 다행히도 신고 및 정지 시스템은 존재하며 나아가 한 번에 행위할 수 있는 역량이 제한되어 있는 점이 여기에도 적용되어 애초에 마음먹고 방해 공작을 벌이는 것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다.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대규모 전쟁 활동을 시뮬레이션하는 이 게임의 면모가 가장 여실히 기록된 일화는 2022년 초창기 물류 노조 파업 사건이다. 게임 내 물류 부서에 노조가 결성되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지만 파업까지 벌이는 건 전례를 찾기 힘든 사건일 터이다. 실제로 해당 파업은 기사화 [1] 도 되었고 노조 자체적으로 만든 웹사이트에 아카이브도 되어 있는데 당시 물류 운영의 불합리한 환경에 제기한 열한 가지 문제는 다음과 같다. 1. 공공 재고 및 정제소 적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림. 2. 게임 초반 부품 확보가 과하게 어렵고 경쟁적이며 비건강함. 3. 공장 주문 유지 시간이 너무 짧음. 4. 생산 건물들에 연대 차원의 대기열이 필요함. 5. 컨테이너들이 물류 작업의 폐쇄회로 운영을 불가능케 함. 6. 전방과 후방 사이에 물류 시설 부족. 7. 물량을 쉽게 합칠 수 없기 때문에 재고 안에서 재료 포장을 푸는 것이 극단적으로 느림. 8. 화물선 전체 양의 폐품을 기본 자재로 가공할 수 없음. 9. 비축 재고 내 상자 양 제한이 너무 적음. 10. 전쟁 첫날부터 눈보라가 오는 것은 말이 안 됨. 11. 맵 상에 끼인 차량 강제 이동 명령어를 한 전쟁에 세 번까지 밖에 사용 못하는 건 너무 적음 [2] . 이 파업은 49일간 진행되어 결국 개발진이 위 요구 사항들을 업데이트에 반영하기로 하며 막을 내렸다. “모든 일이 정사” - <헬다이버즈 2> <폭스홀>이 미국과 유럽의 1 · 2차 세계 대전을 섞어 가상의 배경에서 재현하고 있다면 <헬다이버즈 2>는 미래 세계의 우주 전쟁을 구현한다. <헬다이버즈 2>는 4인분대로 작전에 배치되는 3인칭 협동 PVE 슈터로, <폭스홀>과 마찬가지로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헬다이버”의 체형 및 목소리를 정할 수 있지만 헬멧과 방어구에 가려 그 안의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 헬다이버들은 궤도에 정박한 구축함에서 외계생물과 로봇 군단 등 다양한 적 세력 한복판으로 강하정을 타고 직접 투하되어 구축함의 지원을 받으며 싸운다. 여기서 한복판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셀 수 없이 많고 또 하나하나가 플레이어와 비슷하거나 더 강한 전투력을 지닌 적들 사이에 둘러싸이게 된다는 뜻인데 그렇다고 플레이어가 강력한 보호 장비나 압도적 화력을 소지한 채 지상에 내려가는 것도 아니다. 플레이어는 그저 평범한 한 인간으로 로봇의 총탄이나 외계 생명의 발톱 등에 한두 방 맞으면 단숨에 몸이 토막 나며 죽는다. 그나마 플레이어가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부분은 AI 지능에 비해 조준과 반응 속도, 판단력 등이 나은 점, 그리고 구축함의 궤도 공격 지원이지만 궤도 공격의 경우 피아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므로 마찬가지로 플레이어는 고폭탄이나 레이저에 무수히 육편이 된다. 또 플레이어의 공격 또한 <폭스홀>처럼 오인 사격이 가능해 같은 분대원 간에도 많은 사망 요인을 낳는다. 군장의 무게로 인해 아주 낮은 높이에서 떨어져도 낙사하고 헤엄을 칠 수 없어 얕은 물에서 익사하는 것에 이르면 어이없어 말조차 나오지 않는다. 이렇게 플레이어가 끊임없이 죽으며 다시 투입되는 과정은 게임 내 허용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설정상 정말로 한명 한명의 병사가 일일이 죽으며 증원되는 것이다. 즉, <헬다이버즈 2>는 플레이어가 복무하게 되는 인류 세력이 “슈퍼지구”라는 황당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군국주의 파시즘에 대한 노골적인 풍자를 게임플레이 장치로 구성한 작품이다. 생명 경시를 넘어 병사 하나하나를 말 그대로 총알로 써 가며 외계 세력을 선제 침공하는 슈퍼지구는 적반하장으로 자신들이 침략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선전하고 적들더러 “전체주의” “계급사회” “외계인 혐오주의” “팽창주의” “폭정”로 자신들이 현재 하고 있는 모든 행위를 역으로 뒤집어씌워 모함한다. 작중 외계 세력은 크게 세 가지인데 ‘테르미니드’는 신체에서 연료를 추출할 수 있다는 이유로 슈퍼지구가 공격하고 있는 곤충 형태의 외계 생물들이다. ‘오토마톤’은 A부터 F까지 등급으로 시민권을 나누고 A와 B등급 시민마저도 공휴일에 최대 1시간의 휴식 시간만을 가질 수 있으며 “아이를 가질 가능성이 있는 행위”를 위해선 허가증을 작성 후 제출해야 하는 극단적인 전체 · 감시사회에 반기를 든 분리세력으로 패권국에 저항하기 위해 신체를 개조한 기계 세력이다. 특히 일루미닛이란 고등 외계 종족의 경우에 슈퍼지구는 그들이 대량살상병기를 가지고 있다는 명분을 들며 침략했는데, 이는 미국의 2003년 이라크, 2025년 이란 침공을 직접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슈퍼지구가 내세우는 “통제민주주의” 이데올로기까지 <헬다이버즈 2>는 해당 게임이 현실 미국에 대한 풍자임을 숨기지 않는데, 통제민주주의 아래 시민들은 컴퓨터가 정해준 결과를 투표할 뿐이지만 이 ‘민주주의’에 대한 광적인 충성심으로 헬다이버는 전투 내내 “ 민주주의 맛 좀 봐라!”, “ 번영 을 위하여!”, “이 다친 팔로는 자유 를 전파할 수 없어” 등 세뇌의 표제어들이 담긴 함성을 질러댄다. 튜토리얼 지역에서부터 플레이어는 석판으로 세워진 고용 계약서 주변 15미터 이내에 1초만 서 있어도 서명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정작 3.3번 항목에 따르면 해당 계약서를 직접 읽는 것은 계약 위반에 해당한다. 이러한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심각한 파시즘에 대한 묘사의 끝은 바로 운영자들이 “진리부”를 통해 게임 내외로 내리는 공지다. 새로운 적을 먼저 업데이트해놓고 공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플레이어들이 발견하면 이 진리부는 “거짓말”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플레이어들이 테르미니드 중 날아다니는 개체들이 등장한 것을 발견하자 진리부는 “벌레는 날 수 없으며 벌레 동조자들의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얼마 후 같은 진리부가 “언제나 날아다니는 벌레의 가능성을 믿어왔다”라며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꿨던 것과 같은 일은 예삿일이다. 게임 외적 공지마저 이러한 설정에 이입하며 “인류부는 전투 이동 안전 지침에 대한 개정안을 발표하여 헬다이버가 강하 중 스스로 각성제를 투여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이는 이전에는 “가위를 들고 달리는 행위”와 “실제 수류탄으로 저글링하는 행위”와 동일한 위험 구역으로 분류되었던 행위입니다”, “우리의 혁신적인 군사 연구팀이 더 날카로운 깃대를 개발한 덕분에 깃발은 이제 적들에게 직접 자랑스럽게 꽂을 수 있습니다. 죽어있든지 살아있든지 말이죠. 이것으로 적들의 피로만 갈증을 채울 수 있는 슈퍼지구의 영원한 색깔이 바래지 않도록 보장할 수 있었습니다. 완전한 민주주의”와 같은 식으로 패치 내용을 알린다. 난이도와 같은 플레이 시스템 차원에서도 일루미닛은 느린 발사 속도로 거의 정확하게 플레이어를 사격하는 것에 반해 오토마톤은 빠른 발사 속도를 가지고 있지만 사격 정확도가 떨어지는 것에 대해서도 “오토마톤의 상황 인식 프로토콜” 성능 때문이라고 서술하는 등 설정을 확장시키는 동시에 풍자적으로 이입하는 설명을 멈추지 않는다. <헬다이버즈 2>에서 라이브 서비스 전쟁 게임으로서의 측면이 빛나는 지점은 바로 이 운영자의 개입이다. 플레이어가 배치될 수 있는 행성은 시시각각 변하는데, 바로 은하계의 전황이 플레이어의 참여에 따라 실시간으로 요동치기 때문이다. 운영자는 앞서 말한 진리부의 입을 빌어 슈퍼지구, 그리고 교전 중의 세 세력이 각각 어떻게 움직이는지 주기적으로 알리며 은하계 지도 상황을 변경한다. 이는 새로운 전쟁 이벤트 (제트팩 오토마톤 등장, 블랙홀 출현, 일루미닛의 슈퍼지구 본성 침공 등)나 임무 (“두마 티어” 행성 확보, 샘플 22,000,000개 수집, 테르미니드 1,500,000,000마리 처치 등)를 소개하며 또 이 이벤트들에 대한 플레이어들의 참여를 집계하고 다시 참여 통계를 반영해 임무 성공 혹은 실패 등 향후 이벤트 전개를 정하는 피드백 고리를 형성한다. 이는 플레이어들에게 계속해서 다른 환경의 맵을 경험할 기회를 만드는 설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개개인이 스스로 하나의 커다란 전쟁에 참여하고 있다는 감각을 제공한다. 특히 운영진은 플레이어 커뮤니티 내에서 공유되는 경험을 게임 내 공식 설정으로 만들기까지 하는데, 절망적인 난이도로 악명 높았던 전장 “말레벨론 크릭” 행성에서 전사한 이들을 위한 추모일을 지정했던 것이나, “마르파르크” 행성에서 플레이어들이 사용할 수 있는 신무기 재료를 구하는 임무와 “버넌 웰스” 행성에서 아동 중환자 병원 생존자를 구출하는 임무가 사실상 둘 중 하나만 성공할 수 있는 작전으로 동시에 주어졌을 때 플레이어들이 후자의 행성으로 집결하자 실제로 개발진이 아이들의 감사 편지를 그려 공식 계정에 올리고 세이브더칠드런 재단에 기부를 했던 일처럼 그 범위가 역시나 게임 안팎으로 활개 친다. 그리고 당연히 성공뿐 아니라 실패 시에도 방어 대상이었던 행성이 영영 파괴되어 잔해만 남는 등 그 영향이 뚜렷하게 궤적을 남긴다. 이러한 운영 방식에 대해 커뮤니티 내에서 <헬다이버즈 2>의 플레이어들은 파시즘에 대한 풍자로 유명한 또 다른 게임 시리즈 <워해머 40K>에서 “(수없이 많은 매체상으로 묘사되는) 모든 것이 정사”라는 표현이 널리 사용되는 것을 빌려와 “(게임 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정사”라는 의미로 살짝 비틀어 쓴다. 전쟁이라는 역사 기계 앞 개인의 참전 <폭스홀>와 <헬다이버즈 2>는 둘 모두 각각 제목 그대로 참호전의 참혹함과 전장의 지옥을 그리는 데 주력한다. <폭스홀>에선 전쟁 한번에 평균 3백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헬다이버즈 2>에선 출시 이후 1년간 총 28억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의 커다란 전쟁에서 혼자선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개 병사이자, 광막한 죽음 앞에 선 자그마한 개인에 불과한 경험을 선사하는 것은 현실에서 한 인간 앞에 ‘참전’이라는 행위가 가지는 규모를 짐작게 하는 것이다. 어쨌든 슈터, 즉 액션 장르인 <헬다이버즈 2>에서 그래도 하나의 ‘전투’에선 목숨을 희생하며 혹은 특출나게 뛰어난 실력으로 중요한 목표를 개인이 달성하는 업적이 가능하지만 그래봤자 그 업적은 전체 은하 전쟁 차원에선 미미한 숫자로 실제 구축함 귀환 후 화면에 뜨는 기여도 수치는 0.0015% 정도에 불과하다. PVP임에도 지휘 체계가 없는 <폭스홀>과, 적진과 아군 작전을 전부를 운영자가 대신 움직이는 <헬다이버즈 2> 모두 위계가 없기 때문에 플레이어의 영향력은 아무리 게임을 오래 해도 다른 모든 플레이어들보다 유달리 커지지 않는다. 이것이 <폭스홀> 말마따나 ‘지속적’인 전쟁 경험을 제공하는 비결이리라. 러시아의 무정부주의자이자 사회지리학자였던 레프 메치니코프 (Lev Mechnikov)는 고대 중국의 거대 건축물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양자강의 운하와 황하의 제방들은 십중팔구 수세대에 걸친 정교하게 조직된 공동작업의 소산이다. (...) 이러한 노동은 시간이 지나야만 바로 그 결실을 보게 된다. 그래서 그러한 노동의 계획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이해되지 않은 채 그대로 수행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3] . 즉, 자신이 당장 운송한 물자가 정확히 전쟁에 어떻게 사용될지를 알지 못하면서도 몇 시간 째 배달하는 콜로니얼의 트럭 운전수나 진리부의 공지만 믿고 오토마톤 공장 습격 작전에 뛰어드는 헬다이버는 마치 기계 속 하나의 부품과 같다. 발터 벤야민 (Walter Benjamin)은 실제로 산업사회의 기계 속 노동자는 도박사와도 같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벤야민은 프랑스의 사상가 알랭 (Alain)이 “도박이라는 개념이 지니는 독특한 면은 어떠한 게임도 이전에 이루어진 게임과는 무관하다는 점이다. 도박에 있어서는 어느 편도 확실한 입장에 있지 않다. 이전에 이겨서 벌었던 것들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포착한 것을 변주해 “기계노동자의 기계조작이 먼저번의 기계조작의 동작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이유는 바로 그 동작이 먼저번의 동작을 그대로 반복하기 때문이다. 도박에 있어 한탕이 그때마다 이전의 한탕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계조작의 동작도 매순간마다 그 이전의 동작과 차단된 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임금노동자의 작업은 노름꾼의 작업과 그 나름대로 짝을 이루게 된다”라는 고찰을 생산한다. 즉 마치 로그라이트 장르처럼 느껴지는 이 공통 구도상에서 노동자와 도박사 모두에게 “양자의 작업은 하나같이 일의 내용과는 무관하다 [4] .”라고 썼다. 콜로니얼의 트럭 운전수와 헬다이버 모두 다음 날, 혹은 며칠이 더 지나서야 그나마 지도상에서 전선이 살짝 전진한 것을 보며 희미하게 자신 행위의 사소한 영향력을 가늠이나 할 수 있을 따름이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다시 임하는 같은 작업이 또 다시 어떤 결실로 맺어질지는 정확하게도 구체적으로도 알지 못하면서도 전장으로 향한다. 벤야민은 이처럼 과거 · 미래와 분리된 시간을 통해 관망하는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데, 그에 따르면 어떠한 사실도 그것이 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해서 역사적 사건이 되는 법은 없다. 원인으로서의 사실은, 수천 년이라는 시간에 의해 그 사실과는 동떨어져 있을 수도 있는 사건들을 통해서 추후에 역사적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전제에서 출발하는 역사가는 사건들의 계기를 마치 염주를 하나 하나 세듯 차례차례로 이야기하는 것을 중지하고 그 대신 그가 살고 있는 자신의 시대가 지나간 어느 특정한 시대와 관련을 맺게 되는 상황의 배치로 파악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메시아적 시간의 단편들로 점철된 <현재시간>으로서의 현재라는 개념을 정립하게 되는 것이다 [5] . <폭스홀>과 <헬다이버즈 2>가 형식적 측면에서 전쟁, 그리고 역사적 시간과 관계하고 있다면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 (Obsidian Entertainment)의 게임들은 주제적 측면에서 이러한 역사 앞 한 개인의 인식이라는 문제를 연속적으로 다루어 왔는데, <스타워즈: 구 공화국의 기사단 2>의 ‘크레이아’에서 <폴아웃: 뉴 베가스>의 ‘율리시스’로 이어지는 인물상은 인과를 알 수 없는 운명의 의지 앞에 너무나도 왜소한 인간의 주체성을 회복하려는 시도에 투신하는 초인의 꿈을 꾼다. 특히 두 작품 모두의 서사 전체에서 전쟁은 지배적인 이야기꾼이고 두 인물은 국가 사이에 흐르는 그 거대한 힘의 충돌 앞에 개인이 역사와 어떻게 관계할 수 있는지 고뇌하는 것이다. 벤야민의 역사관은 옵시디언이 포착한 전쟁 앞에서 문자 그대로의 현상이 되는데 그들에게 전쟁은 역사를 쓰는 것도, 지우는 것도 가능한 그 무엇보다 “현재시간” 속의 것인 사건이다. 마찬가지로 그 성격상 필연적으로 전쟁은 개인이 역사와 관계하도록 강제하고, 그 개인들은 또 반동 인물로서 주인공에게 파편인 동시의 영원인 역사를 잇고 전해 나간다. 전쟁과 역사에 대해 이와 같이 주제적 측면에서 사유하는 시도는 그야말로 태초부터 형식을 가리지 않고 모든 예술 분야에서 이루어져 왔지만 형식적 측면에서 그 자체를 체화하고 시뮬레이션하는 사례는 오직 게임에서만 발생해 왔다. 임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는 그 원리를 인간 본질에서 찾은 바 있는데, " 국가들의 역사를 한낱 우리에게 많은 부분이 숨겨져 있는 인간성의 내적 소질의 현상으로 본다면, 국가들의 목적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의 목적인 목적들에 따르는 자연의 모종의 기계적인 보행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각각의 국가는 정복하기를 희망하는 이웃 나라가 있는 한, 그 나라를 정복함으로써 자기를 확대하고, 하나의 보편왕국을, 즉 그 안에서 일체의 자유와 그리고 그것과 함께하는 덕, 취미, 학문이 소멸할 수밖에는 없는 하나의 체제를 향해 애쓴다. 그러나 이 괴물은, 모든 이웃 나라들을 삼켜버린 다음에, 결국은 저절로 해체되어 봉기와 분열에 의해 많은 작은 국가들로 쪼개진다. 이 작은 국가들은 하나의 국가연합을 향해 노력하는 대신에, 다시금 그들 각각이 전쟁을 정말로 끊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똑같은 놀이 를 시작한다 [6] . " 다시 말해 칸트는 국가를 인간 본성의 표현으로 본다면 궁극적으로 전쟁 또한 그 성질에 내재된 하나의 치명적인 “악”이며, 심지어 그 자체로서 목적성을 가지는 자기 완성적 · 순환적 “놀이”이기까지 하다고 말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폭스홀>은 극단적으로 상세화된 활동적 측면으로, <헬다이버즈 2>는 운영진의 적극적 개입과 플레이어 활동 반영 등의 실시간 소통의 방식으로 각각 전쟁 앞 개인의 감각을 생산해 플레이어들에게 역사를 체험하게 만든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특히나 플레이어들에게 위계에 대한 접근을 제공하지 않고 또 개인으로서의 플레이어들이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을 제공함으로써 오히려 체감되는 전쟁의 크기를 키우고, 역설적으로 하나의 역사에 참여했다는 생생한 실감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게임은 ‘악의 반영’으로서 놀이에 대한 놀이를 이루고 궁극적으로 인간 행위의 본질에 대한 섬광을 계속해서 비춰 나간다. [1] https://www.nme.com/news/gaming-news/foxhole-logistics-union-ends-49-day-strike-after-demands-met-3173270 [2] https://logiunion.com/archive/openletter/ [3] 발터 벤야민,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서울, 민음사, 1983), 76쪽. [4] 위의 책, 145쪽. [5] 위의 책, 355쪽. [6] 임마누엘 칸트,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파주: 아카넷, 2015), B30=VI34. Tags: 온라인게임, 라이브서비스, 전쟁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영이 폭력과 고통, 분열의 상관관계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쓴다. 『정서 지도 그리기』, 『밑 빠진 독(毒)에 물 붓기』, 『월간 종이』 등을 제작하고 연극 <오페라 샬로트로니크>, <벼개가 된 사나히> 드라마터지를 맡았다. 『호르몬 일지』와 『게임 코러스』를 썼고, 『미친, 사랑의 노래』를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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