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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란으로 1277개 검색됨
- 호러를 즐기는 보통의 방식
사실 호러 게임은 꽤 마이너한 장르에 속한다. 물론 좀비물의 성격을 차용한 <더 라스트 오브 어스>처럼 장르적 요소를 가져오거나,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나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처럼 본격적으로 호러 게임을 표방하는 AAA 게임이 없던 것은 아니다. < Back 19 GG Vol. 24.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ngsoo Park Majored in art studies as an undergraduate and is currently studying media cultural studies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Yonsei University. Writes primarily about film, while keeping a curious eye on visual culture broadly—art, games, and broadcasting among them. Also a film critic, host of the podcast Café Critique, and an organizer of community film screenings.
- [논문세미나] 미국에서의 비디오게임 비평에 대한 개론 - 2017 (원제: Videogame Criticism and Games in the Twenty-First Century)
이번 논문 세미나는 비평 공모전 특집에 맞춰, 시카고 대학 영화 및 미디어학과와 영문학과 연구 교수인 패트릭 자고다(Patrick Jagoda)가 2017년에 쓴 "비디오게임 비평과 21세기 게임"을 다루고 있다. 자고다는 시카고 대학에서 웨스턴 게임 랩(Weston Game Lab)과 미디어 아츠 앤 디자인(Media Arts and Design, MADD) 학부 프로그램의 책임자로서, 시카고 대학을 북미 게임 연구의 중심지로 자리 잡게 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 Back [논문세미나] 미국에서의 비디오게임 비평에 대한 개론 - 2017 (원제: Videogame Criticism and Games in the Twenty-First Century) 20 GG Vol. 24. 10. 10. 이번 논문 세미나는 비평 공모전 특집에 맞춰, 시카고 대학 영화 및 미디어학과와 영문학과 연구 교수인 패트릭 자고다(Patrick Jagoda)가 2017년에 쓴 "비디오게임 비평과 21세기 게임"을 다루고 있다. 자고다는 시카고 대학에서 웨스턴 게임 랩(Weston Game Lab)과 미디어 아츠 앤 디자인(Media Arts and Design, MADD) 학부 프로그램의 책임자로서, 시카고 대학을 북미 게임 연구의 중심지로 자리 잡게 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자고다에 따르면, 2017년에 '게임이 예술이다'라는 주장은 이미 너무도 자명해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식상한 주제다. 그래서 그는 게임 비평의 필요성을 이론적으로 논증하기보다는, 2017년 당시 미국에서 존재했던 다양한 실험적 게임과 그 비평 흐름을 추적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중요한 사건들과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게임들을 기록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에 따라 나도 자고다가 언급한 게임들과 비평적 작업을 최대한 빠짐없이 정리하는 방향을 택했다. 수많은 설명을 듣는 것보다, 여기에 언급된 게임들을 직접 찾아 살펴보는 것이 게이머와 게임 비평가들에게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물론, 미국의 게임이나 비평을 이상적인 모델로 삼을 필요는 없다. 또한 이 글은 7년 전에 쓰여진 것이므로, 최신 경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 게임 비평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이 글이 실린 게임 제너레이션 20호를 참고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게임계의 변화 자고다는 2007년을 인디 게임, 아트 게임, 시리어스 게임, DIY 게임 제작, 캐주얼 게임과 같은 다양한 게임들이 눈에 띄게 성장한 시점으로 평가한다. 동시에, "게이미피케이션"이라는 게임적 사고방식이 사회적 도구로서 확장된 중요한 시기로 진단한다. 그가 언급하는 주요 흐름은 다음과 같다: 캐주얼 게임: 2006년 닌텐도 Wii를 시작으로 대중을 겨냥한 게임들이 더욱 활발히 제작되기 시작했다. [예: 위 스포츠 ( Wii Sports , 2006), 타운으로 놀러가요 동물의 숲 ( Animal Crossing: City Folk, 2008)] 작가주의적 게임 디자이너들의 등장: 2007년에서 2009년 사이, 조나단 블로우(Jonathan Blow), 메리 플라나간(Mary Flanagan), 제이슨 로흐러(Jason Rohrer)와 같은 디자이너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예: 페세지 ( Passage, 2007), 브레이드 ( Braid, 2008), 플라워 ( Flower, 2009)] 주류 게임사의 변화: 같은 시기, 더욱 복잡한 내러티브와 다층적인 캐릭터를 도입한 게임들이 출시되었다. [예: 바이오쇼크 ( BioShock , 2007), 매스 이펙트 ( Mass Effect , 2007), 폴아웃 3 (Fallout 3 , 2008)] 예술적 기반: 게임에 대한 예술적 논의가 활발해졌고, 예술 분야에서 정부의 지원도 확대되었다. [예: 스미소니언 비디오 게임 전시회, MoMA의 비디오 게임 컬렉션] 기술 발전: Unity, Twine과 같은 제작 도구와 Steam, PlayStation Network, Xbox Live 같은 온라인 배포 플랫폼이 확산되었다. 제도적 발전: 독립 및 아트 게임 컨퍼런스들이 성장했다. [예: Indiecade, Games for Change Festival, Independent Games Festival] 이와 같은 다양한 발전은 문학 비평의 방법론 역사와 유사한 흐름을 반영하면서, 게임 비평 분야에도 지속적인 변화와 성장을 가져왔다. 예를 들면: 역사적 연구: 켄트의 2001년 연구 (Kent, Steven L. The Ultimate History of Video Games: From Pong to Pokémon and Beyond: the Story Behind the Craze That Touched Our Lives and Changed the World. Roseville, CA: Prima Pub, 2001.) 형식주의적 연구: 머레이의 1997년 연구 ( Murray, Janet. Hamlet on the Holodeck: The Future of Narrative in Cyberspace. New York: Free P, 1997.) 현상학적 연구: 수드노의 1983년 연구 (Sudnow, David. Pilgrim in the Microworld. New York: Warner Books, 1983.) 플레이어와 게임 캐릭터와의 동일시: 쇼의 2014년 연구 (Shaw, Adrienne. Gaming at the Edge: Sexuality and Gender at the Margins of Gamer Culture. Minneapolis: U of Minnesota P, 2014.) 놀이와 미학 이론: 업튼의 2015년 연구 (Upton, Brian. The Aesthetic of Play. Cambridge, MA: MIT P, 2015.) 게임에서의 감정에 대한 역할: 이스비스터의 2016년 연구 (Isbister, Katherine. How Games Move Us: Emotion by Design. Cambridge, MA: MIT P, 2016.) 네트워크 비디오 게임에서의 정동: 자고다의 2016년 연구 (Jagoda, Patrick. Network Aesthetics. Chicago: U of Chicago P, 2016.) 디자인과 비평의 교차점 : 슈리에의 2016년 연구 (Schrier, Karen. Knowledge Games: How Playing Games Can Solve Problems, Create Insight, and Make Change. Baltimore: Johns Hopkins UP, 2016.) 게임이란 무엇인가? 자고다는 비디오 게임이 PC, 콘솔, 모바일, AR 등 여러 플랫폼과 장르에서 계속 성장하고 변화하면서, 무엇을 비디오 게임이라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해졌다고 지적한다. 단적인 예로, 크리스틴 러브(Christine Love)의 아날로그 ( Analogue: A Hate Story , 2012)를 들 수 있다. 이 게임에 대한 대중적 반응을 보면, 과거 체스나 바둑과 같은 추상 전략 게임에만 국한되었던 '게임'이라는 범주가, 이제는 멀티미디어와 트랜스미디어 작품에까지 마케팅 용어로 확장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디오 게임의 정의에 대한 이러한 모호함은 아날로그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으나, 조이 퀸(Zoe Quinn)이 패트릭 린제이(Patrick Lindsey)와 아이작 생클러(Isaac Schankler)와 협업하여 만든 디프레션 퀘스트 ( Depression Quest, 2013)에서는 큰 논란을 일으켰다. 형식과 장르의 관점에서 디프레션 퀘스트 는 대화형 내러티브와 롤플레잉 게임의 융합으로 볼 수 있다. 이 게임은 주로 텍스트 기반의 내러티브로 구성되어 있지만, 게임적 요소인 의사 결정과 정기적인 피드백 시스템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프레션 퀘스트 를 비난하는 이들이 자주 제기했던 불만 중 하나는 이 게임이 '게임이 아니다'라는 주장이었다. 디프레션 퀘스트 를 둘러싼 논쟁은 결국 ‘진정한 게이머’와 비디오 게임의 정의를 누가 소유할 것인가에 대한 싸움이었다. 자고다는 디프레션 퀘스트 가 게임이 아니라는 비판이 형식주의적 논의를 방패로 삼아, 게이머 문화의 경계를 고착화하고 외부인의 침범으로부터 방어하려는 보수적 문화적 충동을 은폐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외부인'에는 PC주의를 대표하는 여성과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비디오 게임의 주류적 예시와 깔끔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는 진지한 예술적 게임이나 DIY 게임 제작자들도 포함된다. 실제로, 이러한 실험적 형식에 자주 사용된 트와인(Twine) 엔진을 활용한 디자이너들 중 다수는 백인, 남성, 이성애자 엔지니어가 아닌, 조이 퀸(Zoe Quinn), 안나 앤트로피(Anna Anthropy), 메릿 코파스(Merritt Kopas), 폴펜틴(Porpentine)과 같은 퀴어 및 트랜스 여성들이었다. 게임이라는 범주를 넘어 게임의 정의가 확장되면서, 오락적 기능보다는 교육적 효과를 강조하는 새로운 유형의 게임이 등장하거나, 게임의 기능을 다른 분야에 적용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리어스 게임 시리어스 게임은 1970년 클라크 앱트(Clark Abt)가 제안한 개념으로, "분명하고 신중하게 고안된 교육적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오락을 주 목적으로 하지 않는" 게임을 뜻한다. 2004년에는 사회적 참여를 장려하는 게임의 제작과 배포를 지원하는 게임즈 포 체인지 (Games for Change) 재단이 설립되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시리어스 게임들이 등장했다. 다르푸르 이즈 다잉 ( Darfur Is Dying , 2006): 액션과 경영 시뮬레이션을 결합해, 다르푸르 전쟁과 난민 위기를 다루는 게임. 맥도날드 비디오게임 ( McDonald's Videogame , 2006)과 오일 갓 ( Oil God , 2006): 기업의 탐욕을 패러디한 시뮬레이션 게임. 카트 라이프 ( Cart Life , 2011)와 스펜트 ( SPENT , 2011): 미국의 저취업과 빈곤 문제를 다룬 게임. 페이트 오브 더 월드 ( Fate of the World , 2011)와 바이오하모니어스 ( Bioharmonious , 2013): 기후 변화와 환경 균형 문제를 다룬다. 게이미피케이션: 전통적으로 게임이 아닌 활동에 게임 메커니즘을 사용하여 소비자 행동, 직원 교육, 건강 및 운동 습관, 교육 및 기타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비디오 게임 형태의 매체가 일상 생활의 다양한 측면으로 스며들어 학습을 장려함 [예: 칸 아카데미 (Khan Academy, 2006), F-12 (2013, DirecTV의 직원 교육 게임)] 전문가와 아마추어 모두의 기여를 요청하여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고자 하는 시도들 [예: 폴딧 ( Foldit , 2008), EteRNA (2010)] 개인적인 서사, 혹은 특정 인물의 전기를 다루는 게임들: 메리 플래너건(Mary Flanagan)의 도메스틱 (domestic , 2003): 인칭 슈팅 엔진을 사용하여 어린 시절의 집 화재에 대한 기억을 되새긴다. 안나 앤트로피(Anna Anthropy)의 오마이갓 아 유 올라이트? ( ohmygod are you alright? , 2015): 차에 치인 경험으로 시작하여, 적절한 재정적 자원이 없는 트랜스 여성으로서 병원과 의료를 탐색하는 어려움을 탐구한다. 피터 브린슨(Peter Brinson)과 쿠로쉬 발라네자드(Kurosh ValaNejad)의 더 캣 앤 더 쿠 ( The Cat and the Coup, 2011): 민주적 수단으로 선출된 최초의 이란 총리 모하마드 모사데그를 무너뜨리기 위한 1953년 CIA 쿠데타를 다룬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한다. 아트 게임과 게임 아트: “아트 게임” 은 제이슨 로흐러(Jason Rohrer)가 2005년에 제안한 개념으로, 매체의 고유한 속성을 사용하여 예술적, 철학적 문제를 탐구하는 게임을 말한다. [예: 조나단 블로우(Jonathan Blow)의 브레이드 ( Braid , 2008)] 반대로, "게임 아트" 는 존 샤프(John Sharp)가 제시한 용어로, 게임을 이용해 만든 예술 작품을 의미하며, 게임에서 "예술"로 초점을 옮긴다. [예: 코리 아칸젤(Cory Arcangel)의 슈퍼 마리오 클라우즈 ( Super Mario Clouds , 2002)] 게임 비평의 경향 비디오 게임은 이제 단순한 오락을 넘어, 일상 생활의 일부이자, 대중 매체로서 사회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개인적이거나 예술적인 의미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러한 비디오 게임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반영하기 위해, 비디오 게임 비평은 다양한 학제 간 방법을 통해 접근하고 있다. 주요 경향을 살펴보면... 게임 미학과 형태 존 샤프의 2015년 연구 (Sharp, John. Works of Game: On the Aesthetics of Games and Art. Cambridge, MA: MIT P, 2015.) 샤프는 사물이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를 암시하는 특성을 설명하는 제임스 깁슨의 "어포던스" 개념을 활용한다. 샤프는 조디(Jodi)의 SOD (2002)와 브렌다 로메로(Brenda Romero)의 씨오칸 레앗 ( Sîochân Leat, 2009) 같은 아방가르드 게임에서 개념적, 형식적, 경험적 어포던스를 분석하며, 그래픽, 서사, 메커닉, 규칙에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분석은 형식주의적이지만, 게임 공동체에 대한 이해도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 샤프는 게임 공동체가 체스를 하나의 게임으로 보는 반면, 예술 공동체는 체스를 예술적 표현의 재료로 보는 관점을 대조하며, 미술사와 시각 디자인의 전통에 기반하여 분석한다. 비디오 게임의 문화와 역사 칼리 코큐렉의 2015년 연구 (Kocurek, Carly A. Coin-Operated Americans: Rebooting Boyhood at the Video Game Arcade. Minneapolis: U of Minnesota P, 2015.) 코큐렉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초 비디오 게임과 오락실이 미국 남성성을 어떻게 형성했는지 탐구한다. 코큐렉은 이러한 게임들이 젊은 남성들에게 컴퓨터 중심의 화이트칼라 서비스 경제와 규제가 완화된 시장에서 노동자이자 투자자로서의 역할을 준비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그녀의 연구는 미국학과 문화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게임 자체보다는 오락실 공간, 사진, 기타 역사적 문서에 초점을 맞춘다. 이같은 연구는 게임 문화 연구라는 성장하는 학문 분야에 속하며, 비슷하게는 Twitch TV에서 특정 플레이어를 시청하는 커뮤니티와 e스포츠 관객들에 대한 연구도 유망한 연구 분야라고 할 수 있다. 디자인 문학 비평과 창작 글쓰기 사이에 큰 격차가 있는 영문학과 같은 학문 분과와 달리, 게임 연구는 이론과 실천을 자주 통합한다. 케이티 살렌(Katie Salen)과 에릭 짐머만(Eric Zimmerman)의 2003년 저서는 형식적인 이론과 실용적인 디자인 조언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Salen, Katie and Eric Zimmerman. Rules of Play: Game Design Fundamentals. Cambridge, MA: MIT P, 2003.) 슈라이어(Schrier, Karen)의 2016년 저서도 학문 분과 간의 경계를 넘는다. 슈라이어는 심리학, 교육학, 비판 이론,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식을 끌어와, 현실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임을 효과적으로 디자인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Schrier, Karen. Knowledge Games: How Playing Games Can Solve Problems, Create Insight, and Make Change. Baltimore: Johns Hopkins UP, 2016.) 기타 철학과 비판 이론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비디오 게임을 사용하는 연구 맥켄지 워크의 2007년 저서 (Wark, McKenzie. Gamer Theory. Cambridge, Mass: Harvard UP, 2007.) 디지털 게임의 소프트웨어와 플랫폼을 탐구하는 연구 몬포트의 2009년 저서 (Montfort, Nick and Ian Bogost. Racing the Beam: The Atari Video Computer System. Cambridge, MA: MIT P, 2009) 실제 플레이어의 행동을 민족지학적, 질적 방법론을 통해 연구 쇼의 2014년 연구 (Shaw, Adrienne. Gaming at the Edge: Sexuality and Gender at the Margins of Gamer Culture. Minneapolis: U of Minnesota P, 2014) 나아가, 21세기 초반 게임 연구에 중요한 기여자 중 일부인 이안 보고스트(Ian Bogost)와 메리 플래나간(Mary Flanagan)은 게임의 형식, 문화, 역사에 주목하면서도 성공적인 게임 디자이너로서의 경력을 쌓아가고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김지윤 연세대학교에서 언론홍보영상학과 인류학을 공부하고,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했다. 부족한 실력으로 게임을 하다가 게임의 신체적 퍼포먼스에 관심을 갖게 되어 게임 연구를 시작했다. 여성 게이머의 게임 플레이 경험을 분석한 석사학위 논문을 써서 2020년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우수 학위논문상을 받았다. 현재 미국 시카고대학 영화·미디어학과 (Cinema and Media Studies) 박사 과정에서 게임문화를 전공하고 있다.
- : 공포의 세계에서 배회한다는 것
선형적 서사에 있어 반복은 매혹의 대상이 아니다. 그 세계에서 무한한 반복이란 오직 탈출해야 할 환경에 불과하다. 이야기들은 그 사실을 붙잡고는 ‘사실 진짜 생은 반복의 바깥에 있어’라고 끝없이 주장한다. <팜 스프링스>가 흥미로웠던 것은 두 주인공이 일시적으로나마 반복에 매혹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결국 탈출의 의지가 발생하고, 두 사람은 또다시 ‘진짜 삶’과 마주하기 위해 바깥으로 탈출한다. < Back : 공포의 세계에서 배회한다는 것 15 GG Vol. 23. 12. 10. "에너지 상자에 갇힌 거예요. 3.2초 만에 상자에서 탈출하면 타임 루프에서 나갈 수 있어요." (...) "현실 세계로 뭐하러 돌아가요? 죽음과 가난과 괴로움 가득한 세상인데. 그나마 여기에선 함께할 수 있잖아요." (...) "여긴 진짜가 아니에요. 여기서 하는 모든 건 의미가 없다고요." <팜 스프링스>(맥스 바바코우, 2020) 선형적 서사에 있어 반복은 매혹의 대상이 아니다. 그 세계에서 무한한 반복이란 오직 탈출해야 할 환경에 불과하다. 이야기들은 그 사실을 붙잡고는 ‘사실 진짜 생은 반복의 바깥에 있어’라고 끝없이 주장한다. <팜 스프링스>가 흥미로웠던 것은 두 주인공이 일시적으로나마 반복에 매혹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결국 탈출의 의지가 발생하고, 두 사람은 또다시 ‘진짜 삶’과 마주하기 위해 바깥으로 탈출한다. 이러한 사실은 명백히 운명적이다. 말하자면 선형 서사는 언젠가 종말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무한한 반복은 불가능하다. 예외적인 상황이라고 해봐야 작품 외적인 활동, 관람자가 다시 읽기 혹은 되감기-다시 재생을 시도할 때 정도다. 로라 멀비는 영화에서의 이러한 지향이 영화의 운명임을 논한 적이 있다. 장 뤽 고다르의 1963년 작 <작은 병정>에 나온 대사(“영화는 1초에 24번의 진실이다.”)를 뒤집은 제목의 저서 『1초에 24번의 죽음』에서, 멀비는 서사 영화는 암전이라는 죽음을 향해 달려 나간다고 저술한다. “서사의 정지, 비유기체적인 형태로 돌아가는 비유로서의 죽음은 마치 스틸 프레임과 죽음의 결합이 이야기의 죽음으로 용해되는 것처럼 (...) 영화로 확장된다.”(『1초에 24번의 죽음』, 로라 멀비, 현실문화, 2007) 필름이 모두 돌아가면 그곳에 도사리는 것은 아무것도 투사되지 않는 검은 장막이다. 여기에 도사리는 것은 죽음의 이미지뿐이다. 이때 매체 그 자체뿐만 아니라 그것이 담지하는 서사 역시 죽음과 마주한다. 아니 오히려, 이것은 서사를 다루기 때문에 그 활동이 정지한다 봐도 무관하다. 서사는 시작하는 곳과 멈춰 서는 곳을 결정하는 지시로서의 제약이다. 더 이상 세계가 변혁할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서사의 운동은 끝난다. 그것이 행복한 결말이든 불행한 결말이든 그것은 서사의 죽음이나 다름없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논의를 그대로 비디오 게임에 적용할 수 없다. 게임은 반복의 매혹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초기의 아케이드 비디오 게임에 있어서 ‘결말’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무한히 루프 하는 게임들(이를테면 타이토의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목표는 그 안에서 무한히 생존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며 따라서 비디오 게임에서의 ‘끝’은 ‘죽음’과 현상적으로 연결되었다. 이것은 지시적 죽음이 아니라 진짜 의미에서의, 세계 내부에서의 죽음을 뜻한다. GAME OVER는 멀비가 지정한 의미에서 암전-죽음과 연결된다. 하지만 비디오 게임이 지시된 ‘끝’을 담지하면서부터 상황은 변모한다. 여기서 끝은 두 단위로 분화된다. 하나는 GAME OVER로 표상되는 죽음의 끝=암전, 그리고 또 하나는 CLEAR로 표상되는 완결화된 끝이다. 때로 (특히 고전적 아케이드 게임들은) CLEAR를 GAME OVER라는 기표로 표기하긴 하지만, 그 누구도 양자를 동일한 결말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때 CLEAR가 GAME OVER와 대비되는 존재라고 한다면 이것은 명백히 암전에 대비되는 존재로서 ‘표백’에 위치한다. (‘깨끗이 한다’는 의미의 CLEAR와 표백은 마치 운명 된 짝처럼 들어맞기까지 한다.) 표백의 결말은 엄밀히 말해 서사와 등치되지 않으며, 정확히는 게임이 추구하는 목표(objective)와 결부한다. 하지만 서사는 목표를 지시하기 가장 적합한 형식이다. 이를테면 캡콤의 <파이널 파이트>는 범죄조직 매드 기어가 시장의 딸을 납치했다는 컷씬으로부터 시작되고, 인질이었던 제시카가 연인 코디와 함께 떠나는 컷씬으로 종결된다. <파이널 파이트>를 플레이하는 동안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인질 제시카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매드 기어의 야욕을 꺾는다면 게임이 전제하는 목표를 해결했다는 사실과 함께 목표와 연결되는 서사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이 인지는 정확히 이 게임이 여기서 ‘끝’났다는 사실을 이해시킨다. 여기서 더는 새로운 것이 없다. 물론 플레이어에 따라서는 다른 캐릭터를 사용하거나 혹은 조금 색다른 플레이 방식을 시험해 보거나 아니면 다른 친구와 함께 해보기 위해 반복해서 게임을 플레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플레이어에게 한 번 표백의 결말(=CLEAR)이 찾아왔다는 사실은 지울 수 없다. 이 사실은 코디가 제시카와 함께 돌아가는 장면을 본 그때에 명백해진 것이다. 브라이언 업튼은 게임의 플레이어를 세 가지 분류(목표 중심적 플레이, 일관 중심적 플레이, 종결 중심적 플레이)로 나눈다. 이때 종결 중심적 플레이를 ‘서사주의적 의제’로 분류하며 이들의 목표란 ‘향후의 행동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지는 지점에 이르는’ 것이라 말한다. (『플레이의 미학』, 브라이언 업튼, 에이콘, 2019) 비디오 게임이 고도화되고 다수의 서사적 매개를 담지하게 되면서 일관 중심적 플레이는 대체로 표백의 결말(=CLEAR)을 향한 목표의식과 등치되었다. 이것은 표층적 단위에서의 하나의 끝, 더 플레이한다고 해도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에서의 ‘표백’적 목표 지정이다. 물론 한 번의 CLEAR로 서사의 진위를 모두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고, 촘촘한 변곡점들 탓에 다른 방향의 서사를 즐기기 위해 루프를 감행하는 경우도 충분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들 모두 완전히 표백시키기 위한 반복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따라서 서사가 있는 비디오 게임 플레이를 암전과 표백이라는 관점에 놓고 정리한다면, 플레이어가 상정하는 완전한 표백을 위해 수없는 암전을 거쳐 가는 구조가 된다. 이때 암전은 부정적이며 불완전한 결말로서의 장애가 된다. 좀 더 명백히 하자면 표백은 매혹하지만, 암전은 매혹하지 않는다. 설령 몇 번의 루프를 더 반복하고자 하는 플레이어라고 하더라도 그가 원하는 것은 추가적인 표백일 뿐 추가적인 암전은 아니다. 이러한 게임 언어에서 암전을 향하는 충동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로그라이크 : 암전 충동과 표백 충동의 충돌 지점 다만 로그라이크(혹은 로그라이트)는 이 두 개의 충동이 다른 상관관계를 보인다. 이 장르는 절차적 생성, 캐릭터의 영구적 죽음이라는 두 기조를 통해 수많은 플레이를 생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는 매회의 플레이에서 마주하게 되는 장애와 다뤄야 하는 기술이 일정량 상이해진다는 것을 뜻한다. 말하자면 플레이어가 한 번의 암전을 경험한 뒤, 다시 게임의 내부에 들어가면 직전의 암전과 차이 있는 경험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 물론 이전의 경험으로부터 학습한 지식은 의미 있게 작동하지만 때로는 그러한 것들로는 돌파하기 난해한 국면이나 상황과도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한 번의 표백에 아무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로그라이크는 자신이 무한히 다른 가면을 쓸 수 있다는 사실로 플레이어를 유혹하기 때문이다. 로그라이크에서의 모든 플레이는 업튼이 규정하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뛰어드는 ‘눈먼 점프’와 같으며, 플레이어들은 ‘눈먼 점프’의 연속이기 때문에 즐긴다. 따라서 로그라이크는 암전의 충동을 가지는 장르다. 이 장르가 매혹의 무기로 휘두르는 무한성이란 캐릭터가 죽음을 맛봐야 작동시킬 수 있다. 플레이어는 로그라이크의 적극적 참여자가 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죽음을 스스로 즐겨야만 한다. 캐릭터의 영구적 죽음이라는 고통을 감내하며 획득해 낸 지식을 시험하기 위해, 또다시 ‘죽을 수도 있는’ 세계로 직접 뛰어드는 것이다. 특히나 이러한 암전의 지식을 수치화시키는 로그라이트는 더욱더 죽음에 능동성을 준다. 플레이어에게는 임시적 강화와 영구적 강화라는 두 개의 트랙이 존재한다. 한 번의 플레이에서 경험한 임시적 강화는 죽음과 함께 모조리 사라지지만, 그 플레이의 결과물은 영구적 강화의 재료가 된다. 이때 영구적 강화의 재료를 획득하는 방법은 캐릭터가 ‘죽는 것’이다. (혹은 게임에 따라서는 지정된 시간 동안 무사히 생존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만 이러한 형식의 대표 격인 <뱀파이어 서바이버즈>를 떠올려 보자. 이 게임은 지정된 시간 동안 살아남더라도 결국 사신 형태의 캐릭터가 나타나 캐릭터를 죽여버리고, GAME OVER의 결말을 남긴다. 이후 등장한 <뱀파이어 서바이버즈>의 유사 게임들은 대체로 이런 경우의 죽는 결말을 제거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로그라이크는 언제 ‘표백’되는가? 그저 암전의 충동으로 가득 찬 게임이라면 플레이어가 이 루프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불가능한가? 그런데 공교롭게도, 로그라이크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로그>에도 공식적으로는 엔딩이 존재한다. 지하 22층 이하의 층에서 “Amulet of Yendor”를 습득한 뒤 다시 지상층으로 올라오면 화면에 성공을 축하하는 텍스트가 출력된다. 게임이 표백 상태에 도달한 것이다. 물론 플레이어가 다시금 지하 던전에 내려가겠다 마음먹는 순간 이전과는 다른 구조의 던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플레이어가 <로그>에서 ‘표백의 결말’에 도달했다는 사실은 변화하지 않는다. 어떤 이에게는 이 표백의 경험이 게임의 종료 시점일 수 있다. 한편, 그러한 플레이어에게는 이전까지 경험했던 암전은 매혹의 대상임과 동시에 장애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설령 암전의 충동을 느끼는 플레이어에게도 그 충동을 유지하기 위한 장기적인 동력이 필요했을 수 있다. 표백의 충동은 이러한 장기적인 동력에 영향을 준다. 하지만 그러한 플레이어들은 표백의 충동을 해결한 뒤에도 암전의 충동을 느끼며 다시 뛰어들 수 있다. 로그라이크 내부에서 표백과 암전은 서로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지만, 하나의 충동이 다른 충동을 소멸시키지는 않는다. 두 충동은 생생한 형태로 그곳에 자리 잡고 있다. 로그라이크와 서사의 문제 따라서 로그라이크에는 두 개의 결말 충동(암전과 표백)이 충돌하는 장르다. 플레이어들은 경험과 지식의 양을 늘리기 위해, 또한 그렇게 습득한 경험과 지식을 다시 활용하기 위해 끝없는 죽음(=암전)을 바란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게임들과 마찬가지로 어디까지나 완결(=표백)에 이르기 위한 과정과도 같다. 이때, 앞서 말했듯이 표백을 지향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서사주의적 의제’에 해당한다. <로그>의 케이스도 게임이 제공하는 서사적 완결과도 일치한다. 하지만 암전 충동이 끝없이 들끓는 로그라이크에서 서사를 선형적으로 진행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로그라이크는 순환의 바깥으로 나가기를 일정량 거부시키는 장르이지 않은가. 로그라이크에서의 체험은 결코 선형적인 감각으로 치환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시작된 뒤, 끝이 나기 전까지 같은 자리를 뱅글뱅글 돌아간다. 결국 이것을 하나의 거대한 완결 서사로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순환 그 자체를 선형적 서사의 내부에 집어넣을 수밖에 없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암전의 보상물로서 표백으로의 진행을 꾸준히 제공하는 <하데스>일 것이다. 이 게임에서는 표백에의 충동은 보상으로만 존재하기에 암전의 충동을 건드리는 일은 없다. 따라서 양자는 서로를 위배하지 않은 채 점진적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또는 이나 <서울 2033>처럼 암전에의 도전이 서사 형식의 텍스트로 진행되는 방식이 있다. 이들은 로그라이크 게임들이 매번의 플레이에서 던지는 장애물과 도전을 서술의 방식으로 치환한다. 상황이 텍스트로 주어지고, 플레이어는 자신에게 부여된 선택지를 탐색하고 결정함으로 그 결과를 확인한다. 다만 이러한 방식이 하나의 선형적 서사를 완전히 이룰 수 있는지는 의문이 따른다. 모든 파편화된 상황들은 그저 단기적인 판단능력을 요하는 인카운터에 지나지 않는다. 개별의 상황 내에서는 특정한 인과가 발생하지만, 상황과 상황 사이에서의 인과는 작동하지 않는다. 선형 서사라는 것은 거시적 관점에서의 구조화된 모델을 뜻한다. 게임을 플레이한 뒤 서사를 인식한다는 것은, 자신의 플레이 경험 내에서 하나의 서사 모델로 응축할 수 있는 경험들을 선별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개별의 경험들은 그것이 선형적으로 나열될 수 있는 일종의 연결점(nod)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그것이 바로 고전적 의미에서의 플롯이 된다. 이나 <서울 2033> 등의 파편화된 텍스트들은 하나의 모델로 응축되지 않을뿐더러, 동일한 이벤트가 반복되면 서사적 가치도 상실한다. 플레이어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담지하는 서술된 내용이 아니라 개별의 선택지가 가져다주는 혜택 혹은 페널티다. 물론 이 작품들에 있어서 이런 구성이 특별히 문제시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로그라이크의 순환 구조 내 장애물들을 의도해서 텍스트 적 형식으로 치환해 놓은 것뿐, 하나의 거시적이고 강렬히 직조된 드라마를 전달하기 위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로그라이크의 양립되는 결말 충동을 기반으로, 경험 내부에 고전적 서사를 집어넣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증명할 뿐이다. 또 다른 예시로서는 비주얼 노벨 로그라이크를 표방하는 <노베나 디아볼로스>가 있다. 악마에 의해 단절된 마을에 고립된 주인공은 다섯 명의 여성 중에서 누가 악마인지를 밝혀낸 뒤, 인간인 캐릭터와 함께 마을을 빠져나와야 한다. 매 플레이마다 누가 인간 캐릭터인지 무작위로 설정되며, 그들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는 사건 현장 기록 역시 무작위로 배치된다. 이는 표백 충동의 내부에 변수를 작동시킨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도전이지만, 한 번의 플레이를 끝낸 뒤에는 서사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사건이 표백화되어 버린다는 약점이 있다. 이를테면 마을로 진입하는 장면, 각 인물과 조우하는 장면, 악마에게서 현 상황을 설명받는 장면 들은 두 번 이상 조우할 가치를 느끼기 어려운 요소들이다. 결국 플레이어가 원하는 것은 ‘특정 인물이 인간일 때 서사가 어떻게 변화하는가’에 국한되며 이는 명백히 암전 충동을 배제한다. 따라서 게임은 플레이어의 표백 충동을 돕기 위해 거시 서사만을 확인시키는 ‘엔딩 모드’를 탑재해 이러한 충동을 제어한다. 하지만 그 순간 <노베나 디아볼로스>는 로그라이크가 가지는 양립된 충동 개념에서 크게 벗어난다. ‘공포의 세계’에서 배회한다는 것 폴란드의 pantastaz가 제작한 는 2020년에 얼리 억세스를 시작해, 2023년 10월에 정식 출시 되었다. 일본의 공포 만화가 이토 준지의 아트와 러브크래프티안적 세계관, 20세기 후반 일본의 도시 전설적 서사를 규합해 2-bit 레트로 스타일이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구축한 본 게임은 그 분위기만으로도 상당히 많은 관심을 받았다. 스팀의 소개 페이지에는 ‘괴물과의 턴제 전투, 가차 없는 선택으로 만들어지는 지옥 같은 로그라이트 RPG’라고 소개된 만큼 본 작품의 장르를 로그라이트로 규정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말하자면 역시 표백과 암전의 두 충동 사이에서 진동하는 게임이라는 의미다. 2023년 11월 기준 게임의 평가는 7,599개의 평가를 통해 매우 긍정적으로 표시되고 있지만, 평가의 면면을 살펴보면 게임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부정적 평가를 남기고 이탈한 플레이어들을 꽤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UI의 불친절함이나 지나치게 부적절한 난이도를 지적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게임이 예상과는 다르다는 지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특히 게임이 제공하는 이야기들이 지나치게 편린적이라 하나로 응축되지 않는다는 평가들은 매우 흥미로운 측면이 있다. 의 메커니즘은 기본적으로 테이블 탑 보드게임 <아컴 호러>의 디지털 스탠드 얼론 버전에 가깝다. 이를테면 행동에 따른 강제 이벤트, 능력치를 기반으로 하는 성공과 실패의 체크, 한 번의 게임 플레이에 배정되는 초월적 신의 존재, 캐릭터의 자원으로 양분되는 체력과 이성의 존재가 그러하다. 하지만 사실상 로그라이트 장르로서의 진행 양상은 큰 틀에서 을 연상시킨다. 플레이어는 랜덤하게 배정되는 5개의 ‘미스터리’를 돌파하여 마을 등대를 열 열쇠를 모아야 한다. 최종적으로는 등대에 들어가 사악한 존재의 부활을 막는 것이 목적이다. 이 최종적으로 엔딩을 보기 위해 총 8개의 ‘섹터’를 진행해야 하는 것과 5개의 ‘미스터리’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은 게임 진행의 절차성에서 연결된다. 개별의 미스테리(=섹터)에서는 진행을 위해 맵이 제공되며, 플레이어는 맵에서 자신의 다음 이동 경로를 눌러 행동을 수행한다. 특별한 능력이 있는 장소(=상점 등)에서 필요한 행동을 할 수도 있고, 장소를 탐색해 벌어지는 이벤트를 해치우고 미스터리의 마무리를 향해 나아갈 수도 있다. 무엇을 하든 사악한 존재의 부활을 알리는 ‘파멸’ 게이지가 상승하며 이 게이지가 100%가 된다면 게임은 실패한다. (이는 의 추격과 유사한 메커니즘이다.)다만 의 섹터와 의 미스터리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섹터는 아무것도 제약하지 않는 공간이다. 물론 해당 공간에 대한 기초적인 규정은 존재하며, 그 규정을 통해 등장하는 이벤트의 속성이 달라지긴 하지만 각 섹터 간의 개념적 차이는 없다. 섹터는 플레이어가 활약할 수 있는 ‘너른 공간’이며, 그 공간을 한 번 거쳐 갔다고 해서 무엇인가 ‘표백’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의 미스터리는 명백히 서사적인 개념이다. 미스터리는 도입의 서사, 진행을 위해 거쳐야 하는 장소들의 순서, 그리고 플레이어의 행동에 따라 달라지는 몇 가지 엔딩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미스터리는 공간화된 개념이 아니다. 전적으로 선형적 서사의 개념이며 이는 곧 ‘표백’이 가능하다는 의미가 된다. 물론 동일한 미스터리라고 해도 반복해서 도전할 때의 양상은 달라진다. 미스터리를 진행하기 위해 선택하는 ‘탐색’ 행동은 무작위적인 사건들을 가지고 오며, 이나 <서울 2033>과 마찬가지로 선택과 판정을 통해 결과가 도출된다. 하지만 앞서 이 두 게임의 형식을 통해 이야기한 바 이러한 인카운터 이벤트들은 하나의 노드로 연결되는 선형적 경험이 아니다. 따라서 이는 미스터리의 시작과 끝을 규정하는 인트로와 엔딩의 늘어선 노드의 배열에 들어가지 않는다. 말하자면 여기서 미스터리를 하나의 응축된 서사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무작위 인카운터들은 모두 탈각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문제는 미스터리는 어디까지나 표백의 대상이라는 점이다. 미스터리는 통상 2~4개의 엔딩을 가지고 있으며 대체로는 A 엔딩이 가장 이상적인(그러나 모든 것이 깔끔하게 해결되지는 않는) 결말이다. 플레이어가 한 번 A 엔딩으로의 길을(혹은 플레이어에 따라 해당 미스터리의 모든 엔딩을) 확인한다면, 해당 미스터리를 통섭하는 선형적 서사를 향한 욕망을 잃어버리고 만다. 즉 그 시점에서, 미스터리는 이미 ‘표백’되어 버린 셈이다. 플레이어가 이미 특정한 엔딩을 향하는 방법을 완전히 체득하고 나면 더 이상 이 미스터리는 매혹의 힘을 드러내지 않는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는 미스터리가 기초적으로 품고 있는 서사적 개념 보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무작위적 인카운터가 더 중요해진다. 그렇다, 오히려 암전의 충동이 더 강력해지는 것이다. 를 플레이할 수록, 무엇인가 잃어버리는 감각과 마주한다. 강력한 아트의 힘과 모호함으로 사람을 빨아들이는 미스터리들의 내용이 존재하지만, 게임의 플레이가 반복을 이룰 때마다 매혹의 힘을 점차 잃어만 간다. 그런데 애초에 본래의 미스터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본질이 감추어져 있는 일종의 퍼즐이며 그 매혹은 진위를 알고 싶다는 호기심에서 나온다. 미스터리는 가장 강력히 표백의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개념이며 따라서 표백에 의해 가장 빠르게 힘을 잃어버린다. 미스터리야말로 구조화된 서사의 형태를 가장 강력히 요구하는 포맷이다. 따라서 우리는 무한히 미스터리에 붙잡혀 있을 수 없다. 무한히 마주쳐야 하는 암전의 충동 앞에서 미스터리는 쉽사리 힘을 잃는다. 는 스스로가 가진 메커니즘으로 인해 가장 강력한 매혹의 힘을 퇴진시켜 버리고 마는 기이한 게임이다. 물론 공포의 매혹과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불안을 하나로 규합하는 것은 매우 훌륭한 실험이다. 하지만 빠져나올 수 없다는 불안은,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희망이 전제되었을 때 더 강력히 기능한다. 에 무엇인가 부재한 게 있다면 바로 그 희망인지도 모른다. 미스터리들이 너무나 빠르게 표백되어 버린 세계에서 하염없이 헤매는 것은 오히려 불안하지 않다. 어쩌면 그 세계에 영원히 반복하길 바랐던 기대의 작용이, 오히려 이 ‘공포의 세계’로부터 쉽사리 빠져나오게 만든 것은 아닐까.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평론가) 이선인 만화와 게임, 영화를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합니다. MMORPG를 제외한 <파이널 판타지> 전 시리즈 클리어가 라이프 워크입니다. 스팀덱을 주로 사용합니다.
- 번영과 몰락과 애도의 이야기, <33원정대>
특히 이야기의 결론부에서 집중적으로 다룬 애도에 관한 고민들은 게임이 딱히 어떤 정답을 내놓는 것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사회적 참사와 그로부터 비롯된 사회적 애도, 그리고 그 애도를 조롱하는 것이 일련의 문화 코드가 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플레이어들에게는 상당히 무겁고 곱씹어볼 만한 주제를 던진다. 살아남은 자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떠난 이들로부터 넘겨받은 그들의 표상들은 남겨진 우리와 어떻게 관계맺으며 가야 할 것인가? < Back 번영과 몰락과 애도의 이야기, <33원정대> 26 GG Vol. 25. 10. 10. ***이 글은 해당 게임의 강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게임을 아직 플레이하지 않으신 분들의 주의를 요합니다.***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이하 <33원정대>)>라는 인상적인 게임의 제목에서 미술이라는 매체를 활용하는 방식을 담은 ‘클레르 옵스퀴르’에 대해서는 이미 GG에서 한 차례 다룬 바 있다. 그러나 부제처럼 따라온 뒷부분의 ’33 원정대’라는 의미는 얼마나 다뤄졌을까? 이 글은 <33원정대> 전반에 담겨 있는 설정과 서사를 되짚으며 게임이 보여주고자 했던 희생과 애도의 메시지를 곱씹어보고자 한다. 벨 에포크: 빛과 어둠의 교차 <33원정대>의 배경이 되는 가상세계 속 도시 뤼미에르는 누가 봐도 프랑스 파리를 모티프로 삼은 도시다.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에펠 탑만으로도 쉽게 알아챌 수 있는 이 도시의 근원은 공간적으로만 프랑스 파리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에펠 탑이 존재하는 파리라는 것은 산업혁명 이후 근대적 도시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19세기 후반 이후의 파리가 이 게임의 기본적 배경이다. * 뤼미에르 세계에는 휘어진 에펠탑이 상징처럼 등장한다. 근대의 기술과 번영을 상징하는 철탑은 시작부터 끝까지 휘어진 채 남아 있다. 이 무렵의 서구 유럽을 가리키는 용어인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는 인류의 문명 번영에 대한 찬사를 담은 말이다. 전에 없었던 막대한 부가 집중되고 기술은 인류의 상상을 넘어서는 생산력을 달성해 냈고, 그 가속도는 앞으로 남은 인류의 미래마저도 온통 장밋빛일 수 밖에 없는 전망을 동시대인들에게 남겼다. 그러나 정작 벨 에포크 이후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에게 이 말은 게임 제목의 ‘클레르 옵스퀴르’처럼 빛과 어둠을 동시에 품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애니메이션 <푸른 바다의 나디아>에서 파리 만국박람회는 미래와 과학에 대한 예찬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1889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는 흑인을 가둬놓고 전시한 인간 동물원이 함께 존재했었다. 서구 유럽이 달성한 막대한 부와 번영은 명백하게 식민지 착취를 통해 이끌어낸 결과물임을 <소공녀>와 같은 소설, <라지의 챔피언>같은 게임들을 보여주고 있다. 산업혁명과 제국주의 시절을 거치며 달성한 서구의 번영은 찬란한 미래가 아닌 두 번의 세계대전이라는 전례없는 암흑기로 이어지며 벨 에포크라는 말에 빛과 어둠의 두 가지 의미를 시간축으로 담아내는 결과를 맞았다. 클레르 옵스퀴르, 명암 대비라는 제목을 단 게임의 배경이 벨 에포크라는 것은 번영과 몰락이 서로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게임의 설정을 드러낸다. 무한히 진보하고 발전할 것이라는 단선적인 시간관이 아니라 번영과 몰락은 순환하며, 하나의 빛이 도리어 그림자를 내포하고 있음을 게임은 드러낸다. 게임 시작부에 펼쳐지는 한때 분명 화려했으나 몰락해버림을 숨기지 않는 도시 뤼미에르에서 열리는 죽음을 기리는 축제 ‘고마주’는 죽음을 축제로 바꿔버리는 행사다. 번영이 몰락을 이끈 벨 에포크와는 반대로 죽음을 축제로 만드는 이 행위는 빛과 어둠이 순서없이 순환하며 공존한다고 인식하는 게임 전반의 뼈대를 이루는 세계 인식이다. * 파멸은 예정되어 있고, 카운트다운은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 벨 에포크를 벨 에포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그 이후 몰락이 이어지며 그 시기가 유일한 정점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원정대, expedition Expedition의 어원은 라틴어 expeditio이며, 이 말에는 군사 원정, 해방, 준비와 같은 의미가 들어 있다. 묶은 발을 풀어 자유롭게 함으로써 원정을 준비한다는 의미의 이 말은 알려지지 않은 세계를 향해 떠나는 도전적인 원정, 혹은 정벌을 위한 군사적인 원정으로 쓰이며, 게임 속에서 원정대는 실제로 어느 정도 탐험적이고 어느 정도 군사적인 의미로 꾸려진다. 어원은 고대 로마에서 비롯되었지만, 오늘날 우리가 쓰는 원정대라는 말의 의미에 가까운 형식은 앞서 언급한 벨 에포크 시대에 확립된 바 있었다. 아마도 가장 유명한 대외 원정이었을 로알 아문센과 로버트 스콧의 남극점 원정은 1차 세계대전 직전인 1910년대에 이루어졌고, 아프리카 대륙 횡단의 주인공인 데이비드 리빙스턴의 원정은 1850년대에 이루어졌다. 대외 원정의 시작점이라 볼 수 있을 지리상의 발견과 대항해시대의 탐험들이 있지만, <33원정대>가 참고한 원정은 보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한다는 점에서 벨 에포크 시대의 원정에 좀더 가까운 형태다. * 오늘의 서구를 만든 것은 원정이었다. 근대적 시계의 발명은 항해를 위해 이루어졌고, 서구 열강은 식민지 개척과 착취를 통해 전례없는 번영을 이뤘다. 클레르 옵스퀴르라는 말이 가진 양면성은 게임 속 원정대의 의미에서도 두드러진다. 스토리를 밀고 나가 보면 이 원정의 의미 또한 결국 양면적이라는 사실을 만나게 된다. 세계는 현실세계가 아닌 한 예술가 집안에 의해 캔버스 안에 창작된 세계였으며,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것 같았던 페인트리스의 행동은 오히려 그림 속 세계인들에게 세계 멸망의 위기를 알리는 경고였음이 드러난다. 자신들이 존재하는 세계의 본질에 한발 더 다가섰지만 그런 발견과는 다르게 세계는 멸망의 위기를 맞으며 원정대는 이를 극복할 수 없다. 00부터 시작해 역순으로 33에 이른 원정대 파견은 모두 실패하고 대원들은 사망했으며, 최장수 인원이 33세가 된 사회는 붕괴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33 그 수많은 원정대 중 왜 게임은 33번 원정대를 이야기의 중심으로 택했을까? 33이라는 숫자는 서구권에서는 꽤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데, 서구 점성술에서 태양과 상승궁의 순환이 맞아떨어지는 시기로 33년을 주기로 삼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널리 알려진 33의 서구적 의미는 예수의 생애다. 예수가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나이를 보통 30세로 추정하며, 이때부터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 약 3년간을 공생애라는 시기로 활동한다. 따라서 33년은 그리스도의 일생을 가리키는 의미를 내포한다. “나 예수 나이가 되었어!”라는 말은 프랑스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관용적 표현으로 성년이 된 시기, 완성 혹은 전환기를 가리키는 의미로도 쓰인다. 33이라는 숫자에 담긴 의미 중 <33원정대>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라는 부분에도 방점을 찍은 듯 싶다. 원정대는 사실상 가망이 없는 이 원정의 결말을 어느정도 예측하고 있으며, 원정을 떠나지 않아도 어차피 고마주의 대상이니 삶에 있어서는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인지를 기반으로 꾸려진다. 벨 에포크의 화려한 전면 장식이 걷혀진 뒤에 몰려온 멸망의 어둠 앞에서 33세, 이제 막 인생의 본격적인 시기를 맞게 된 이들은 화려한 번영이 아니라 몰락의 전조 앞에 서며, 과학과 기술이 만들어낸 원정대라는 방법론을 사용해 화려한 미래를 향한 장밋빛 길이 아닌 딱히 자청한 바 없는 희생을 향한 골고다 언덕길을 오르게 된다. 애도 세계의 진실이 드러나는 게임 중반 이후부터 이야기는 캔버스 속 인물들로부터 캔버스 밖의 실존인물들로 중심을 옮겨가며, 이 때부터 이야기는 세계에서 개인으로 화제를 돌린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애도라는 감정과 행위가 있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애도라는 감정과 행위를 설명하고자 한 프로이트의 개념을 재해석하면서 “성공적인 애도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프로이트는 사랑하던 대상을 상실한 인간이 겪게 되는 일반적인 과정으로 애도를 이해하며, 성공적으로 애도를 끝내기 위해서는 상실된 대상을 향한 집착을 벗어나는, 쉽게 말해 떠난 이를 비로소 가슴에서 떠나보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러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데리다가 말한 ‘성공적 애도는 불가능하다’는 이러한 프로이트의 입장에 대한 재해석이다. 데리다는 애도 과정 속에서 우리는 상실한 타자를 각자의 마음속에 내면화하는데, 이 때 우리는 상실한 대상의 본질 그 자체를 그대로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표상과 해석을 통해 재해석된 형태로 간직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오히려 애도의 과정은 타자로서의 대상이 가지고 있었던 타자성을 잃게 되며, 프로이트가 말한 성공적 애도는 도리어 상실한 대상이 가지고 있는 고유성을 없애버리는 결과일 수 밖에 없으며 결국 성공적인 애도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짧게 정리했지만 결국 프로이트와 데리다가 애도 개념을 두고 보여준 차이는 사랑하던 대상이 떠난 빈 자리와 그 흔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혹은 어떻게 떠나보낼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대목까지 글을 읽은 <33원정대> 플레이어들은 이 논쟁이 실제 게임 안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것이다. 게임 최후반부에 플레이어가 만나게 되는 두 가지 엔딩은 각각 베르소와 마엘의 입장 중 하나를 선택하여 따라가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게임에 등장하는 베르소는 현실에서는 이미 죽은 인물이며, 어머니 알린이 캔버스 속 세계에 죽은 아들의 기억을 담아 창조해 낸 가상 캐릭터다. 캔버스 속 베르소는 자신의 본체가 이미 죽었음을 알고 있으며, 그는 자신과 자신을 포함한 어머니가 그려낸 이 가상 세계가 소멸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좋은 결과일 것이라 믿고 행동해 나간다. 반면 실존했던 베르소의 동생인 마엘은 어머니가 점차 자신이 창조한 캔버스 속 가상세계에 빨려들며 무너져가는 현실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직접 캔버스 안으로 뛰어들었지만, 아직 능력이 약해 캔버스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잃어버린 채 16년을 살아 온 인물이다. 그런 마엘에게 캔버스 속 세계는 가상세계가 아닌 자신이 직접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온 실제 세계였고, 마엘은 베르소가 원하는 캔버스 속 세계의 소멸이 곧 자신에게는 전 세계의 멸망이라며 베르소와 대립한다. * 떠난 이를 어떻게 기억하고 애도할 것인가? <33원정대>의 엔딩은 서로 다른 애도를 향한 선택의 길을 제시하지만, 어느 길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 최종전에서 서로 부딪히는 이 두 결말은 정확히 세상을 떠난 인물인 베르소를 어떻게 애도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상반된 대답이다. 세상을 떠난 베르소의 남겨진 기억은 프로이트적 애도, 상실을 인정하고 슬픔을 받아들이며 이를 가슴에 묻고 남겨진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로 나타난다. 베르소 엔딩을 선택해 진행했을 때 등장하는 실제 죽은 베르소의 묘비 앞에서 슬퍼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 애도의 상징으로 기능하는 묘지와 묘비는 전통적인 애도의 가능성을 드러내는 베르소 엔딩에서 볼 수 있다. 마엘 엔딩은 데리다가 말한 불가능한 애도의 사례를 재현한다. 베르소는 마엘과의 대결에서 패배한 뒤 캔버스 세계에서 자신을 소멸해 달라고 애원하지만 마엘은 이를 거부하고 베르소를 포함한 캔버스 속의 소멸된 모든 사람들을 되살리는 선택을 한다. 그러나 데리다의 말처럼 ‘성공적 애도’는 불가능하다. 결국 캔버스에 남은 베르소는 베르소 그 자신이 아니라 어머니와 마엘의 기억과 표상에 의해 재현된 존재이며, 페인트리스로서 재현된 베르소를 계속 살려낼 수 있는 마엘의 능력 안에서 베르소는 자신의 고유성을 잃고 소멸한다. 애도는 근본적으로 실패하며, 끝없이 지속될 뿐이다. 사랑했던 이를 떠나 보내고 남은 이들의 삶을 완벽히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33원정대>는 굳이 어느 방법이 옳다는 평가를 내리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데리다가 프로이트의 애도 개념을 전유한 것은 애도 그 자체를 보기보다는 애도라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윤리적 긴장을 발견하고자 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데리다에게 애도는 완결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라 끝없이 실패하면서도 지속되는 과정이며, 남은 자가 짊어저야 할 윤리적 숙명을 드러내 보이는 관찰의 대상이었다. 그렇기에 마엘 엔딩도 데리다가 이야기한 진정한 애도를 재현하기보다는 끝없이 자신에게 남은 표상으로 떠난 이를 재현하며 실패를 연속하는 현상으로서의 애도를 그려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두터운 베이스로 쌓아올린 탄탄한 판타지 <33원정대>는 턴 베이스 롤플레잉 게임으로, 제작진도 언급했고 플레이어들도 직관적으로 느끼듯 일본의 턴제 RPG, 특히 <페르소나>시리즈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은 게임이다. 두 게임의 연관점으로 많은 사람들이 턴제 RPG라는 형식, 캐릭터 파티의 구성과 호감도가 전투에 작용하는 방식과 같은 메커닉 요소를 거론하지만, 오히려 <페르소나>로부터 가장 크게 영향받은 부분은 게임 세계의 설정 요소들이다. 멸망을 눈앞에 둔 세계 속에서 청년들이 팀을 이뤄 세계의 멸망에 맞서는 이야기는 <페르소나>가 일본 사회의 여러 맹점들을 게임 속에서 우화로 그려낸 것과 같이 <33원정대>에서도 새롭게 변주되어 그려진다. 서구의 오늘을 만든 근대의 번영 신화와 그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대절멸의 서사, 강력해진 미디어를 통해 더욱 실제같아진 재현된 표상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의 문제, 그리고 떠난 이를 애도하는 개념에 이르기까지 <33원정대>의 판타지 세계는 현실의 문제를 페인터라는 개념을 통해 다시 그려낸 결과물에 가깝다. 특히 이야기의 결론부에서 집중적으로 다룬 애도에 관한 고민들은 게임이 딱히 어떤 정답을 내놓는 것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사회적 참사와 그로부터 비롯된 사회적 애도, 그리고 그 애도를 조롱하는 것이 일련의 문화 코드가 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플레이어들에게는 상당히 무겁고 곱씹어볼 만한 주제를 던진다. 살아남은 자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떠난 이들로부터 넘겨받은 그들의 표상들은 남겨진 우리와 어떻게 관계맺으며 가야 할 것인가? 빛과 어둠, 번영과 몰락, 소멸과 보존이 동전의 양면처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이 관계성 속에서 사고하고 빚어지며 살아가는 사람의 삶을 되새겨볼 수 있는 다양한 계기들이 <33원정대>의 메인 퀘스트와 다양한 서브 스토리에서 툭툭 튀어나온다. 아마도 당분간 ‘교양으로서의 게임’을 이야기한다면, <33원정대>는 두터운 레퍼런스를 기반으로 멋지게 판타지를 구성해 낸 좋은 사례로 꽤 오랫동안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editor's View] 전쟁과 게임의 오랜 연에 관하여
디지털게임의 연원을 찾을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전쟁입니다. 놀이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디지털이라는 급격환 전환을 가능케 한 계기는 2차 세계대전이 부스트한 연산기계의 발전이었고, 생산과 효율을 위해 탄생한 연산기계는 놀이라는 우회로로 경로를 틀며 오늘날의 디지털게임을 탄생시켰습니다. < Back 25 GG Vol. 25.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BIC 2022 탐방기
9월 1일부터 9월 4일 까지 부산역 근처 부산항 국제전시 컨벤션센터에서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인디게임 행사가 열렸다. 부산 인디 커넥트 페스티발이다. 올해로 8번째를 맞은 이 행사는 코로나로 인해 2020년 은 완전 비대면으로, 2021년엔 사전선정자만 오프라인으로 참여할수 있게 한정적으로 열렸다. 코로나가 완저히 종식되지는 않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점진적으로 해제되면서 3년만에 완전 오프라인으로 열린 셈이다. < Back BIC 2022 탐방기 08 GG Vol. 22. 10. 10. 부산인디커넥트 페스티발이 오프라인으로 돌아왔다. 9월 1일부터 9월 4일 까지 부산역 근처 부산항 국제전시 컨벤션센터에서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인디게임 행사가 열렸다. 부산 인디 커넥트 페스티발이다. 올해로 8번째를 맞은 이 행사는 코로나로 인해 2020년 은 완전 비대면으로, 2021년엔 사전선정자만 오프라인으로 참여할수 있게 한정적으로 열렸다. 코로나가 완저히 종식되지는 않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점진적으로 해제되면서 3년만에 완전 오프라인으로 열린 셈이다. 판데믹 이전에 마지막으로 열렸던 2019년 행사는 부산항 국제전시 컨벤션센터로 옮겨서 시작한 첫번째 행사였다. 이전에는 부산 영화의 전당 야외에서 행사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장소로 옮긴 BIC페스티발은 전자기기가 중심이 되는 게임 시연 행사가 야외에서 진행되면서 생기는 많은 문제점이 해소되면서 앞으로의 발전이 기대되는 상황이었지만 2020년 12월부터 코로나가 전세계에 유행할지 누가 알았을까. 부산항 이전의 행사에는 참여를 한적이 없어 2015년의 부산 문화 콘텐츠 컴플렉스의 좁지만 뜨거운 분위기나 2018년 까지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야외에서 벌어지는 날씨와의 전쟁 같았던 행사는 전해듣기만 했었고 2019년의 컨퍼런스와 함께 진행된 행사를 보면서 미리 올껄! 이란 후회와 함께 좀 더 자주 찾아올 결심을 했었더란다. 결국은 3년만에 행사를 찾아오게 되었다. 첫인상이라면 역시 어떻게 도착하는가 일텐데 부산항 국제 컨벤션센터는 부산역이랑 가깝지만 그 사이에 큰 도로가 있고 도보가 정비되어있지 않아 짧은 직선 거리에도 불구하고 교통이 편하다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2022년에는 부산역에서 부산항까지 구름다리가 생겨서 매우 쾌적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마지막 부산항과 구름다리의 연결 부분이 공사중이라 구름다리만으로는 행사장에 도착할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보로 10분이면 행사장에 도착할수 있다는 점은 큰 약점이 해결된 느낌을 주었다. * 아스티 호텔 27층에서 찍은 부산역과 부산항을 연결해주는 구름다리 행사장 구성도 변화가 있었다. 2019년 행사에서는 전시공간 두개중 한 공간만 사용하고 나머지 공간은 컨퍼런스로만 사용했기 때문에 좀 더 밀도가 높고 좁은 분위기였지만 이번엔 컨퍼런스는 중앙의 트인 공간에서 진행하고 양 쪽 홀을 모두 전시에 사용하면서 상대적으로 쾌적한 관람이 가능했다. 관람자수는 2019년에 비해 더 많았지만 인구밀도는 상대적으로 낮게 느껴지기도 했다. 한편 이런 행사장의 분리는 행사장이 복도와 공간이 분리되어있어 미처 문을 놓친 경우 행사장이 두개라는 것을 인지 못했던 경우도 있어 앞으로는 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 BIC 페스티벌 행사장. 가장 사람이 많은 토요일 오후 행사장의 분위기는 BIC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새로울게 없겠지만 지스타같은 다른 대형 게임행사와는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대형 행사가 게임을 보여준다에 가깝다면 BIC 페스티벌이 주는 행사의 경험은 좀 더 체험에 가깝다. 대형 게임행사에서는 대형 부스에서 도우미들이 몇십대가 늘어져있는 체험 공간에서 같은 게임을 AAA 신작을 해보고 큰 화면으로 게임 트레일러를 구경하는 곳이라면 BIC에서는 작은 부스에서 대부분 게임들을 플레이 하며 게임 플레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게임을 도와주는 도우미 대신 개발자들이 매의 눈으로 플레이하는 관람객들을 살펴보며 게임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다른 사람들이 플레이하면서 어떤 문제들이 발생한는지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가끔은 부담스러울 때가 있을 정도이다. B2B관이 아니면 외국인을 찾아보기 힘든 다른 행사와도 분위기가 좀 다르다. 눈에 확 띄는 외국인들도 있지만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온 개발자들도 자연스럽게 행사장에서 영어로 게임을 권하는 것도 BIC만의 독특한 분위기다. 로컬 행사이지만 글로벌 행사인 것이다. * 많은 부스에서 개발자가 직접 게임에 대해 설명해준다. 사진은 천궁 부스. 당신이 개발자라면 인디게임을 만들때 애로사항에 대해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을 꼽는다. 주류 게임과 벗어나서 자신만의 게임을 만드는 것은 힘드고 외로운 일이다. 그래서 다른 인디게임 개발자들과 만나서 자신들의 게임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은 매우 소중하다. 그런 점에서 BIC는 그러한 개발자들에게는 매우 소중하고 필요한 행사다. 하물며 한국 밖의 개발자들과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는 드물 수밖에 없다. 자신들의 게임을 보여주고 상대방의 게임을 보면서 의견을 주고 받을수 있는 자리가 드물다보니 개발자들의 파티 참여도도 높은 편이다. 비즈니스 데이 첫째 날은 행사장의 분위기가 뭔가 맞지 않았는지 지속되지 않았지만 둘째 날의 인디라 파티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개발자들이 뜨거운 분위기로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코로나 이후 이정도 규모의 개발자가 모였던 것은 처음이 아니었을까. 인디 게임 개발자에게 BIC는 아무래도 놓칠수 없는 자리가 될 것이다. * 인디라 행사 당신이 개발자의 팬이라면. 코로나가 전세계를 뒤덮기 직전에도 오프라인 게임 행사에 대해서 비관적인 의견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지금도 그렇다. 코로나 덕분에 취소되는 행사들에 대해서 “명예로운 죽음”이다. 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을 정도이다. 코로나로 인해 진행되지 못하던 행사들이 다시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면서 그동안 못한 외부활동에 대해 복수하려듯이 몰려나오는 관객들 덕분에 당분간은 오프라인 행사의 시대가 끝났다는 이야기는 들어가겠지만 여전히 대형 게임사들이 자체 행사를 준비하고 신작 공개들이 꼭 게임쇼에서만 진행되지 않으면서 게임쇼의 새로운 매력을 개발하지 못하는 이상 이러한 흐름은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인디게임 행사는 그 분위기가 좀 다르다. 게임회사와 이용자간의 상호신뢰는 무너진 지 오래고 열성 팬을 가지고 있는 게임회사들은 굳이 다른 팬들까지 신경을 써야하는 게임쇼보다는 단독행사를 통해 팬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굳이 행사장에서 까지 트럭을 보고 싶지 않은 회사들은 앞으로는 참가 여부에 대해 고민해야 할지도 모른다. 인디게임을 둘러싼 분위기는 AAA게임과는 사뭇 다르다. 인디게임의 수익모델이 대형 게임사의 약탈적이라고 부를수 있는 부분유료화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개발사와 직접 부대끼는 작은 규모의 팬덤 덕분일 수도 있다. 좋아하는 개발자를 직접 만나서 게임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기회가 흔하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면 어떤 개발자의 팬이고 그 개발자가 자신의 게임을 들고 BIC에 참여한다면 놓칠수 없는 기회가 될 것이다. 게다가 오면 다른 인디게임들도 많다. 새로운 게임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큐레이팅된 게임들을 오프라인으로 볼 수 있는 장소는 그만큼 좋아하는 게임을 새로 만날 기회를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오프라인 행사가 가지고 있는 장점은 다른 것도 있다. 게임에서 특히 눈을 끌었던 〈MORSE〉는 키보드나 게임패드로도 진행에 무리가 없지만 실제 모스 부호 송신기로 게임을 즐기는건 국내에선 BIC 외에선 힘들었을 것이다. 터틀크림의 〈RP7〉도 마찬가지다. 직접 만든 7개의 스틱이 달린 컨트롤러는 역시 행사장 외에서는 체험할 수 없는 독특한 경험이다. 이 경험들은 아마도 실제 게임을 구매해도 개인적으로는 하기 힘들 다는 점에서 오프라인의 경험이 특히 아쉬워진다. * 좌: MORSE와 함께 전시된 모스 송신기 우: RP7 전용 컨트롤러 로컬의 글로벌 행사 BIC 참여작들은 더 이상 국내에 한정되어있지 않다. BIC 수상작들이 도쿄 게임쇼의 센스 오브 원더 나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을만큼 BIC의 문을 두드리는 해외 인디게임들도 많아졌다. 이번 BIC의 특징으로 PC게임의 강세를 꼽는 사람들도 있다. 도쿄 게임쇼에서도 비슷한 평가가 있었는데 스팀에서 도쿄 게임쇼 페이지가 생겨나기도 했다. 스팀에서는 게임 행사들이 있을 때 행사 참여작들만 모아서 보여주는 특설 페이지들을 만들어주기도 하는데, 최근엔 독일 게임스컴이나 일본 도쿄게임쇼 페이지가 있었다. 이번 BIC 참여작들 중에서도 스팀에 이미 판매중인 게임들이 상당수 전시되어있어서 스팀에 BIC 특집 페이지가 있었어도 좋았을텐데 아쉬움이 있지만 몇 년 안으로는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든다. 한국에는 다 비슷비슷한 게임만 있다고 외치는 사람들도 이곳에 오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모두들 생존을 위해 글로벌로 나가야 한다고 외치지만 로컬이란 지지대가 있느냐 없느냐는 주어지는 기회의 숫자의 차이를 만들 것이다. BIC를 지지대 삼아 다른 나라의 인디게임 행사를 참여하는 게임도 나올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성장하는 게임개발자들도 생겨날 수 있다. BIC는 한국에선 부분유료화 모바일 게임만 살아남을수 있다는 편향된 시장에서 새로운 시도로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에게 버틸 수 있고 더 새로운 시장으로 나갈 수 있는 항구가 될 수 있는 행사가 아닐까 싶다. 이런 행사가 항구에서 열리는 것도 재미난 우연일 것이다. BIC페스티벌 2022는 행사에 대한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드는 행사였고 꼭 필요하고 한 번쯤은 와봐야 하는 행사가 아닐까 싶다. 누구나 여기서 자신이 좋아할 수 있는 게임을 발견하길 희망한다. ** 이 글의 필자는 BIC 컨퍼런스 강연자로, 행사진행간 숙박지원을 받았음을 알립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개발자, 연구자) 오영욱 게임애호가, 게임프로그래머, 게임역사 연구가. 한국게임에 관심이 가지다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2006년부터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있다. 〈한국게임의 역사〉, 〈81년생 마리오〉등의 책에 공저로 참여했으며, 〈던전 앤 파이터〉, 〈아크로폴리스〉, 〈포니타운〉, 〈타임라인던전〉 등의 게임에 개발로 참여했다.
- 변해가는 게임의 위상, 다큐의 관점도 변한다 - 〈하이스코어〉리뷰
2000년대 중반 이래 게임을 다루는 다큐 프로그램들이 간간이 등장해온 가운데 넷플릭스가 서비스 중인 〈하이스코어〉는 가장 최근에 출시된 게임 역사 다큐 프로그램이다. 큰 틀에서 볼 때 게임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주요 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게임 역사를 다룬 저술이나 다큐 프로그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그러한 가운데서도 이전까지 다뤄지지 않았던 부분들을 발굴한 점이 눈에 띈다. < Back 03 GG Vol. 21.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Bora Na A game researcher. Game-playing goes back quite a long way, but the first encounter with game studies came by chance, through a game course taken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Since graduating, has carried out research and writing centered on game history and culture, here and there. Contributed to The History of Games, The Theory of Games, and Mario, Born in '81, among others.
- 농사 게임은 왜 힐링이 되었는가: 픽셀 농사와 진짜 밭 사이에서
평화로운 게임과 다르게, 현실은 훨씬 가혹했다. 노루망을 치지 않아서 상추 밭은 송두리째 사라져버렸다. 현실에서는 야생동물, 폭염, 장마, 해충 등 통제 불가능한 변수가 언제든 침입한다. 각종 병충해도 단 몇 주 사이에 농사를 완전히 무너뜨린다. 너무 덥거나 습하면 작물이 빠르게 상하고, 한 번의 폭우로 뿌리가 썩어버리기도 한다. 농부는 이러한 피해 요소들을 ‘기본값’으로 가정하고, 당연한듯이 울타리와 농약, 비료, 배수로 등 가능한 모든 대비책을 동원하여 농사를 유지하는 자세가 필수적이다. < Back 27 GG Vol. 25.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Leesun Park Studies games from a social perspective. Believes that games, as a tool, ultimately offer a way to explore what it means to be human. These days, mainly writing.
- [논문세미나] 데이터가 만든 신화: ‘동남아 성장 신화’를 주도하는 게임 시장 분석 보고서 비판
그러나 동남아시아 시장의 전망에는 비판도 따른다. 게임 시장 전망을 내놓는 글로벌 데이터 분석 기업들이 사실은 시장 담론을 주도한다는 것이다. 홍콩과학기술대학교 웡(K.T. Wong) 교수는 2022년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며, 뉴주(Newzoo)와 같은 글로벌 데이터 분석 기업이 만들어낸 “동남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게임 시장”의 서사가 이 지역의 복잡성을 무시하고 자본주의적 시각으로만 구성된 분석이라고 지적한다. < Back [논문세미나] 데이터가 만든 신화: ‘동남아 성장 신화’를 주도하는 게임 시장 분석 보고서 비판 26 GG Vol. 25. 10. 10. *논문 원문은 아래 링크에서 읽을 수 있다. The Data-Driven Myth and the Deceptive Futurity of “the World’s Fastest Growing Games Region”: Selling the Southeast Asian Games Market via Game Analytics (2022) https://journals.sagepub.com/doi/10.1177/15554120221077731#fig1-15554120221077731 게임 업계 종사자라면 한 번쯤 동남아시아 시장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동남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게임 시장”이라는 말이 업계 곳곳을 떠돌고 있다. 수년 전 중국이 신흥 게임 시장으로 주목을 받았을 때, 많은 게임 퍼블리셔들은 중국 시장을 선망했고 실제로 큰 수익을 거두기도 했다. 이제 그 뒤를 잇는 차세대 성장지로 동남아시아가 호명되고 있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싱가포르, 캄보디아, 미얀마, 브루나이, 라오스, 동티모르. 이 11개의 국가에는 게임 업계에 ‘제 2의 노다지’를 약속하는 미래의 잠재 고객들이 있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동남아시아 시장의 전망에는 비판도 따른다. 게임 시장 전망을 내놓는 글로벌 데이터 분석 기업들이 사실은 시장 담론을 주도한다는 것이다. 홍콩과학기술대학교 웡(K.T. Wong) 교수는 2022년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며, 뉴주(Newzoo)와 같은 글로벌 데이터 분석 기업이 만들어낸 “동남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게임 시장”의 서사가 이 지역의 복잡성을 무시하고 자본주의적 시각으로만 구성된 분석이라고 지적한다. 이 글에서는 웡 교수의 논문 내용을 요약 전달하고, 우리가 믿어온 동남아시아 시장의 성장 서사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살펴본다. 글로벌 데이터 분석 기업 ‘뉴주(Newzoo)’ 로고 업계 담론을 움직이는 거대한 영향력, 뉴주(Newzoo) 뉴주는 세계에서 널리 인용되는 글로벌 데이터 기업 중 하나다. 게임과 디지털 기기 사용 관련한 다양한 분석을 내놓으며, 미래 시장을 예측하고 정기 현황을 결산하는 보고서를 발간한다. 뉴주의 보고서는 시장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다. 무수한 기사로 인용되고, 정부 정책을 결정하는 보고서에 참고되며, 무엇보다 게임 업계인들 사이에 널리 공유되어 주요 의사 결정과 투자의 흐름에 관여하고 있다. 뉴주가 데이터 분석 보고서를 유통하는 방식에는 크게 무료와 유료로 나뉜다. 유료의 경우, ‘2025년 글로벌 모바일 게임 시장 전망’과 같은 심층 보고서를 판매하는 형태로, 단독 상품 하나에 약 5,000달러에 판매된다. 하지만 실제로 더 큰 파급력을 지닌 것은 무료 버전의 보고서다. 무료로 제공되는 보고서는 유료의 일부분을 제공하는 라이트 버전이다. 누구든 다운로드할 수 있기에 출시 직후 언론에 빠르게 인용된다. 더 깊은 분석이 담겨 있는 버전보다, 라이트 버전이 더 큰 영향력을 가지는 셈이다. 뉴주가 무료 보고서에서 “동남아시아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라고 하면, 이는 곧 업계와 대중이 공유하는 ‘사실’처럼 자리 잡는다. 사람들은 세상을 뉴주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웡 교수의 비판 지점은 단순히 이 분석이 참인지 거짓인지에 있지 않다. 뉴주가 담론에 권위 있는 기업으로서 미래를 ‘만들어내는’ 힘을 갖고 있다는 점에 있다. 뉴주의 2015년 동남아시아 게임 시장 보고서 자본주의적 시간성으로 본 동남아시아 뉴주는 네덜란드 기업이다. 이들이 쓴 동남아 시장 보고서 서론 부분을 보면, 대상 독자가 누구인지 힌트가 있다. 지난 번 중국 시장 보고서가 반응이 좋았다며, 다음 먹거리가 뭔지 기다렸을 독자를 위해 새로운 것을 준비했다는 투다. 이들의 독자는 주로 북미와 유럽의 서구권이고, 일본과 한국의 동북아시아권까지도 포함된다. 뉴주의 보고서가 그려내는 동남아시아의 이미지는 단순한 숫자와 그래프 같지만, 그 밑에는 특정한 시간관이 숨어 있다. 동남아시아는 아직 덜 발전했지만 곧 따라올 시장으로 묘사된다. 아직 개발 ‘중’인 개발도상국(developing country)으로서, 곧 선진국이 위치한 현재에 도달할 것이라는 직선적 시간관이다. 웡 교수는 이러한 시간관을 ‘자본주의적 시간성’으로 판단한다. 우리 모두 현재에 살고 있음에도, 보고서 속 동남아시아는 다른 시간대로서 구분하는 것이다. 특정 지역이 아직 뒤처져있는 과거로 비춰지는 과정에서 지역의 역사적 맥락, 인종 및 언어와 같은 복잡성은 사라지고, 11개 국가는 외부인이 이해하기 쉬운 ‘단일 시장’으로 뭉뚱그려진다. 이런 시선은 낯설지 않다. 16세기부터 서구가 동남아시아를 바라보던 틀과 닮아 있다.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 서구 열강에게 동남아시아는 자본을 창출하는 식민지였다. 기나긴 역사 끝에 탈식민 과정을 거쳐 자생력을 회복했음에도, 오늘날 이 지역은 다시금 외국 자본의 기회의 땅으로 호명된다. 실제로 외국인 투자를 환영하는 정책적 기조와 디지털 불법 복제 방지 운동, 중산층 소비력 증가가 보이면서 이곳은 게임 신흥 시장으로서 외국의 입맛을 당기고 있다. 과거의 그림자가 현재에도 반복적으로 드리우는 것이다. ‘신화’라는 이름의 성장 서사 웡 교수는 이 지점에서 ‘신화(myth)’가 발생한다고 본다. 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가 말한 신화 개념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해하는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신화란 어떤 의미를 사회 속에서 ‘당연한 것’처럼 굳어지는 체계다. 우리가 접하는 광고, 기사 같은 것들의 텍스트와 이미지가 사회적으로 재구성되어 본래의 역사적 맥락을 잃고 새로운 개념으로서 자연스러운 사실처럼 보이게 하는 체계가 바로 신화다. 여기서 허구냐 사실이냐의 문제는 핵심이 아니다. 바르트는 자신의 저작 <신화론>에서 프랑스 국기에 경례하는 흑인 병사의 이미지를 신화의 예로 든다. 이 이미지는 “프랑스 제국은 인종에 상관없이 위대하다”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달하나, 그 이면에 프랑스의 알제리 식민 지배 역사, 군국주의, 국가주의의 복잡한 맥락을 지우고 있다. 뉴주의 동남아시아 게임 시장 보고서는 데이터 분석을 전달하고 동시에, 성장 신화를 생산한다. “동남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게임 시장”이라는 문장도 신화와 같다. 동남아시아는 끝없는 성장의 보고라는 자연스러운 이미지로 둔갑한다. 내재하는 식민지 역사, 문화적 다양성, 불평등, 계급 같은 복잡성은 지워지고 ‘성장’만이 유일한 진실처럼 제시된다. 동남아 시장 신화를 구성하는 장치 웡 교수는 뉴주 보고서가 만들어내는 동남아시아 시장 신화를 구성하는 몇 가지 장치를 짚어낸다. 분석 대상이 된 뉴주의 보고서는 2015년, 2017년에 발행된 동남아시아 게임 시장 관련 문서 3종이다. 1)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소비자 뉴주가 동남아시아 성장 신화에 핵심적으로 등장시키는 데이터는 플레이어가 ‘될 수 있는’ 사람들(players-yet-to-be)의 수치이다. 이 수치는 인구 수에서 게임 이용자 수를 뺀 값으로 정의된다. 예를 들어 인구 수가 100명이고 게임 이용자 수가 30명이면, 나머지 70명은 아직 게임을 하지 않지만 앞으로 플레이어가 ‘될 수 있는’ 사람들로서 희망적인 수치인 것이다. 사실 이 데이터는 실재하는 데이터라고 볼 수는 없다. 다만 보고서 속에서만큼은 이미 숫자로 살아 움직인다. 웡 교수는 이를 “보고서 속에서만 존재하는 상상의 소비자”라고 부른다. 뉴주가 파는 것은 결국 미래의 수익이 될 수도 있는 전망 그 자체다. 2) 임의적 단일화와 선택적 분할 뉴주가 제시하는 전세계 게임 시장 분석 도표에서 국가별 이용자 데이터는 미국, 중국, 인도처럼 국가 단위별로 나뉘어져있다. 하지만 동남아시아는 11개 국가가 속했음에도 ‘동남아시아’로 묶여 1개로 산정된다. 필요에 따라 묶어지고, 또 나누어진다. 동남아시아 11개국 중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 싱가포르는 묶어져 ’Big 6’라는 이름으로 강조된다. Big 6는 동남아시아 내 핵심 시장이다. 반면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동티모르, 브루나이의 나머지 국가는 기타(Other)로 묶인다. 이 국가들은 도표에서 잿빛의 어두운 색깔로 칠해지며, Big 6의 밝은 색과는 비교되며 사실상 존재가 지워진다. 뉴주의 임의적 지역 통합 및 분할이 문제적인 이유에 대해 웡 교수는 말레이시아의 중국인 게임 이용자 사례를 든다. 역사적으로 한족의 유입이 있었던 말레이시아는 인구의 30%가 중국계로 구성되어있다. 이들은 경제 활동에 능한 사업가라는 스테레오타입을 형성했고, 식민지 지배층과 말레이인 사이에 위치하여 오랫동안 사회적 불평등을 발생시켜왔다. 현대에 이르러 말레이시아 내 중국계는 말레이인보다 상대적으로 게임을 많이 즐긴다. 말레이시아 게임 시장에서도 매출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일부 게임 퍼블리셔는 말레이시아에 중국어로 게임을 서비스하기도 한다. 그러나 뉴주의 그 어떤 보고서도 이러한 복잡성은 명시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말레이시아가 “모바일 게임(매출 기준) 상위 10위에 중국 게임 타이틀의 비중이 가장 높은 국가”라는 점을 강조는 하지만 그 이면의 배경은 방 안의 코끼리처럼 무시되고 있다. 보고서에 등장한 ‘Big 6’ 도표 3) 끝없는 성장을 보장하는 수치 뉴주의 동남아시아 보고서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장치는 연평균 성장률(CAGR)이다. CAGR은 특정 기간 동안 매년 일정한 비율로 성장했다고 가정하는 계산식이다. 5년 동안 시장 규모가 두 배로 커졌다면, CAGR은 매년 몇 퍼센트씩 성장해야 2배가 되는가를 수치로 보여준다. 실제 세계는 경기 변동, 규제, 사회적 사건 등으로 요동치지만 CAGR은 불확실성을 모두 지워버리고 깔끔한 직선적 상승 곡선만 남긴다. 보고서를 읽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동남아시아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시장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국내총생산(GDP) 지표 역시 마찬가지다. GDP는 자본주의 발전 정도를 숫자로 서열화하는 지표다. 개발도상국의 GDP가 빠르게 오르는 이유는 따라잡아야 할 간극이 크기 때문인데, 보고서는 이를 근거로 “동남아시아 시장이 두 배 성장했다”는 헤드라인을 뽑는다. ‘GDP 상승 = 발전 = 미래 = 희망’이라는 등식이 자동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 수치들이 현재의 성장만 강조하며 과거와 미래를 지운다는 점이다. 수치를 언급할 때 과거 식민 경험이나 사회적 불평등, 미래의 성장 둔화 가능성은 드러나지 않는다. 오직 현재의 그래프만이 남아서 마치 미래가 이미 보장된 듯한 착각을 준다. CAGR과 GDP는 신화를 만들어내는 담론적 장치이다. 우리가 읽어야 할 데이터 너머의 맥락 다시 한번 말하지만, 웡 교수의 비판은 뉴주의 보고서의 진위 여부가 아니다. 보고서가 전달하는 것은 데이터 분석이자, 데이터 기반 신화이다. 이 신화는 동남아시아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복잡한 맥락들을 새롭고 깔끔한 의미로 구성하고, 원래 그래왔던 것처럼 자연화한다. 동남아시아는 실제로 잠재력이 큰 시장이다. 하지만 그 잠재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끝없는 성장의 신화만 좇는다면, 투자와 전략은 번번이 현실과 충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임 업계가 진정으로 자본주의적 성공을 원한다면 숫자의 화려한 곡선 너머에 가려진 역사적 맥락과 사회적 조건을 함께 읽어야 한다. 데이터는 객관적 진실처럼 보이지만, 그 해석과 표현 방식은 특정한 이해관계와 시선을 반영한다. 숫자가 어디서 왔고 어떤 관점을 담고 있는지 묻는 일은 절대 외면되어서는 안 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이선 사회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연구합니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결국 인간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 가지고 나올 수 있는가? 소유하는 슈터, 익스트랙션 슈터
가상공간이 현실의 반영이라거나, 현실의 불안이 게임으로 흘러들어온다는 식의 분석은 이미 오래된 틀이다. 익스트랙션 슈터가 보여주는 것은 그보다 좀 더 급진적인 무언가에 가깝다. 가상공간이 현실로부터 독립적인 삶의 층위로 자리잡았다는 것. 그 안에서 세워진 자아가 독자적인 소유를 갖고, 그 소유의 상실이 독립적인 감각으로 작동한다는 것. 이것은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진다는 말과는 다르다. < Back 가지고 나올 수 있는가? 소유하는 슈터, 익스트랙션 슈터 29 GG Vol. 26. 4. 10. 카지노에 처음 발을 들인 사람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게임의 규칙 아닌 칩의 의미와 활용이다. 현금을 칩으로 바꾸는 순간 돈은 돈이기를 잠시 멈추고 특정한 촉감과 무게, 색깔을 가진 플라스틱 조각이 된다. 현금이 다른 법칙의 교환도구로 넘어가는 이 교환 속에서 칩이라는 매개를 통해 인간은 상실의 감각을 유예한다. 카지노 게임에서 잃는 것은 현금이지만, 슬롯이 알리는 실패 결과에도 우리는 돈을 잃었다는 생각에는 잠시 가 닿지 못한다. 잃어도 잃은 것 같지 않은, 그 유예의 틈새에 카지노가 존재한다. 익스트랙션 슈터라는 장르가 점점 외형을 갖춰 나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카지노에 입장해 현금을 칩으로 바꾸는 그 순간이 떠올랐다. 이 장르를 단순히 새로운 슈팅 게임의 변종으로만 분류하는 것은 카지노를 그저 간단한 규칙의 놀이시설만으로 보는 것만큼 무언가를 놓치는 일이다. 2025년 엠바크 스튜디오가 정식 발매한 <아크레이더스>가 발매 2주 만에 400만 장을 넘기며 주목받은 것은 단순히 게임이 잘 만들어졌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익스트랙션 슈터라는 이 장르는 슈팅 게임이 지금껏 다루지 않았던 어떤 감각을 건드렸고, <아크레이더스>는 그 장르의 가장 흥행한 대표작으로서 이해된다. <아크레이더스>의 성공 이후 쏟아지기 시작한 이 장르 자체는 왜 유행했는지에 대한 질문은 그래서 게임 타이틀 하나가 아니라 장르에 물어야 할 질문이 되며, 나는 그 답의 일환으로 카지노의 칩을 떠올렸다. 승리의 의미는 어떻게 희미해져가는가 슈팅 게임의 역사를 거칠게 세 세대로 나눠보면 이야기가 좀 선명해진다. <카운터스트라이크>나 <레인보우식스> 같은 1세대 팀 기반 슈터에서 승리의 기대값은 대략 50%였다. 나와 동수의 적이 있고, 우리는 같은 조건을 동등하게 부여받은 적과 마주해 싸운다. 이 방식의 게임 규칙에서 재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승리’다. 팀 구성 수, 전장 지형의 유불리, 들고 있는 무기와 장비는 양 팀 모두에게 동일하게 영향을 주도록 세팅된다. 심지어 팀 매칭마저도 누적된 각 플레이어들의 승리 횟수와 랭킹값을 통해 가급적 모든 매칭의 기대승률이 50%에 수렴하게 세팅된 것이 팀 기반 슈터의 핵심에 자리한다.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는 것은 결국 그 동일한 조건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 플레이어의 ‘실력’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곧 실력이 발휘된 결과로서의 승리만이 게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재미라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슈터 장르에서 배틀로얄이 등장하고 인기를 끌면서부터는 50%라는 기대승률의 대전제가 급격히 무너진다. 100명이 뛰어내려 한 명만 살아남는 <배틀그라운드>에서 승리의 기대값은 1%다. 100명의 참가자들이 모두를 상대로 전투를 벌여 살아남은 마지막 한 명만이 Winner Winner Chicken Dinner를 먹기 때문이다. 2인 팀이면 50팀의 서바이벌이니 2%, 4인 팀이면 25팀의 경쟁으로 기대승률은 4%까지 올라가겠지만 여전히 팀 기반 슈터의 기대승률 50%에 비하면 크게 낮은 수치다. 승리가 가장 중요한 재미라고 팀 슈터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이는 기대승률이 50%일 때의 이야기일 뿐이다. 배틀로얄 슈터의 기대승률은 한참 낮은 편이지만, 흥미롭게도 배틀로얄에서는 승리만이 유일한 재미가 되지 않는다. 모든 플레이는 언제나 99명이 지는 구조지만 승리하지 못한 99명 누구도 져서 재미없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 배틀로얄 슈터다. 승리 자체의 재미는 구조적으로 없어지기보다는 오히려 강화되었다. 1%의 확률을 뚫고 따내는 승리는 50%에서 가져오는 것보다 훨씬 더 격렬한 성취감을 일깨워낸다. 다만 그 1%에 도달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 문제가 되는데, 패배의 연속이 될 99% 확률의 경험자들에게 패배로 가는 과정은 ‘승리하지 못한 경험’으로만 남는 것은 아니다. 파밍하고 교전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움이 되었고, 팀원과 나누는 보이스채팅이 승리 갈망의 빈자리를 채웠다. 반드시 ‘치킨을 먹지’ 않아도 즐거운, 연패에 빠지면 화도 났던 팀 기반 슈터의 50% 승률과 달리 99%, 다시말해 게임을 하면 사실상 승리할 기대값이 없다는 환경에서는 그저 전투의 과정 자체가 재미가 되었다는 뜻이다. 배틀로얄은 승리보다 과정을 파는 장르였던 셈이다. 익스트랙션 슈터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이 장르에서 이제 승리는 단일한 기준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아크레이더스>나 이 장르를 처음 정립한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에서 게임의 대규칙은 적을 전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아 탈출하는 것이다. 제한 시간 안에 스폰된 오픈월드에서 탈출구를 찾아 살아 돌아오면 된다. 싸워도 되고, 숨어도 된다. 필드의 적을 다 죽여도 시간 안에 탈출하지 못하면 게임오버다. 그리고 이 탈출 성공 여부가 기본적이고 작은 성공의 기준이라면, 거기에 더해지는 또 하나의 승리 비슷한 조건은 ‘무엇을 가지고 나왔느냐’다. 가상공간에 세워진 또 다른 나 팀 배틀, 배틀로얄과 같은 기존의 대전형 슈터와 익스트랙션 슈터를 가르는 결정적 차이는 이 아이템의 획득과 보전, 처리 방식에 있다. 팀 배틀과 배틀로얄은 제로베이스로 앞선 판에서 얻은 것은 다음 판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각 세션에서 획득한 아이템은 다음 세션이 시작될 때 리셋되며, 획득한 세션에서만 유의미하다. 사실 이러한 방식은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이래로 이어져 온 꽤나 유서깊은 방식이기도 했는데, 이유는 이 방식이 깔끔하고 공정하고 명료했기 때문이었다. 획득한 어드밴티지가 누적된다는 것은 게임을 오래 플레이한 사람일수록 더 많은 기득권을 출발의 베이스로 삼게 되지만, 기존의 대전형 게임들은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새로운 배틀 세션에 영향을 주는 것은 오직 플레이어의 손과 뇌에 쌓인 경험과 숙련도 뿐이었다. 익스트랙션 슈터는 대전 게임의 역사에 자리한 이 오래된 원칙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필드에서 파밍한 부품들은 귀환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경험치가 쌓이고 레벨이 오르며, 이는 게임 안에서 유의미한 어드밴티지로 작동한다. 이동속도가 빨라지고, 생존력이 높아진다. 오랜 시간 파밍을 거쳐 조립한 하이엔드 무기는 다음 세션의 전투력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단지 획득을 통한 성장만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익스트랙션 슈터 플레이어의 가장 큰 고민은 이번 세션에 어떤 아이템을 들고나갈 것이냐이다. 생존에 실패하면 지금 들고 나간 아이템은 고스란히 날아가기 때문이다. 획득과 망실이라는 성장과 역성장의 흐름은 레버리지를 타고 게임의 긴장감을 새롭게 일궈낸다. 그리고, 이는 사실 대전 게임의 오래된 맥락의 규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롤플레잉, MMORPG의 규칙으로부터 넘어온 것에 가깝다. 싱글플레이 롤플레잉 게임에서 아이템은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소유할 수 있는 무언가로 간주된다. 온라인 기반으로 펼쳐지는 MMORPG라면 아이템의 소유는 한 세션이지만 사실상 이 게임의 시작과 끝을 모두 포괄하는, 서버가 유지되는 한 영속적인 소유로 인정된다. 이와 반대로 팀 배틀, 배틀로얄 시절의 아이템은 계정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회성 세션에서 일회성으로 임대하는 개념에 가깝다. 소유란 무엇일까? 마르크스는 소유를 단순히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발생하는 사회적 관계로 정의한 바 있다. 이 개념을 빌려오면, 배틀로얄의 아이템은 소유가 아니다. 한 세션 안에서 일시적으로 점유하다 반납하는 대여에 가깝다. 반면 익스트랙션 슈터에서 아이템은 게임 규칙이라는 사회적 관계 안에서 진짜 소유의 형태를 획득하기 시작한다. 누적되고, 이월되고, 나의 다음 판을 바꾼다. MMORPG를 통해 구성된 온라인 기반의 사이버 커뮤니티가 가상공간에 발생하고 그 안에서 아이템의 소유가 만들어진 것처럼, 슈터에도 소유와 이를 통한 누적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 누적이 만들어내는 것이 단순한 캐릭터 수치가 아니라는 점이다. 파밍의 역사, 레벨업의 흔적, 조립해 온 장비들이 쌓이면서 게임 안에 나와는 구별되는 또 다른 자아가 생겨난다. 현실의 내가 아니라, 가상공간 안에서 시간을 들여 세워온 나. 그 가상의 자아는 가상공간 안에서 유의미한 자신만의 소유물을 가짐으로써 형성된다. 현실이 아닌 곳에서 발생하는 불안 가상공간에 형성된 자아와 그 소유는 나에게 얼마나 실재하는가? 풀 장비를 세팅하고 들어갔다가 탈출에 실패해 모두 잃었을 때의 허탈감을 경험한 플레이어라면 이 질문에 대해 꽤나 실재하는 소유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이른바 ‘빤스’라고 통칭되는, 탈출과 생존에 실패했을 때도 회수할 수 있는 안전 포켓이 익스트랙션 슈터에서 작동하고 있는 이유도 그 상실의 허탈감을 방어하기 위한 장치로서의 기능일 것이다. 비록 가상공간에서만 유의미한 아이템일지라도 이를 쌓아올리는 과정과 리스크를 생각해 본다면 소유를 잃을 때의 허탈감은 마냥 아무 일 없듯이 넘겨버릴 수 있는 것이라고만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가상공간에 쌓아올린 무언가를 잃을 수 있다는 이 불안은 그러나 현실로부터 투영된 것이 아니다. 취업이 불안해서, 관계가 불안해서 게임 안의 소유를 잃는 것이 두렵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불안은 가상공간 안에서 자생한다. 게임이 만든 규칙이 가상 자아의 소유에 실재성을 부여하고, 그 실재성이 독립적인 상실의 감각을 만들어낸다. 이 소유의 개념으로 다시 슈터 장르의 변화를 살펴보면 패배의 리스크가 변화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1세대 팀 배틀에서 리스크는 팀이 분산해 가졌다. 지는 것은 나만이 아니었고, 다음 판의 나는 이번 판의 실패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웠다. 배틀로얄도 크게 다르지 않다. 100명이 죽고 1명이 남는 구조지만, 누구도 다음 판을 빈손으로 시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평등하다. 리스크는 철저히 그 세션 안에서만 존재한다. 익스트랙션 슈터는 소유라는 개념을 추가하며 이 구조를 뒤집는다. 소유의 개념이 슈터에 덧붙으며 리스크는 온전히 개인의 누적 위에 얹힌다. 탈출에 실패하면 내가 오랜 시간 쌓아온 것이 사라진다. 팀이 나눠 지는 것도 아니고, 다음 판의 제로베이스로 리셋되는 것도 아니다. 그 손실은 오로지 나의 것이다. 앞선 장르들이 리스크를 세션 안에 가두어 두었다면, 익스트랙션 슈터는 리스크를 플레이어의 시간 전체 위에 펼쳐놓는다. 이것이 이 장르가 슈팅 게임의 역사 안에서 만들어낸 가장 근본적인 변화일지도 모른다. 포획을 알면서도 들어가는 이유 라이브서비스로 돌아가는 익스트랙션 슈터에서 소유 기반으로 장르의 중심이 변화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라이브서비스의 본질은 플레이어의 시간을 포획하는 것이고, 그 포획이 곧 수익이다. 파밍의 누적, 레벨업의 쾌감, 하이엔드 장비를 향한 욕망. 이것들은 플레이어를 다음 세션으로, 또 다음 세션으로 끌어들이는 설계다. 익스트랙션 슈터는 MMORPG에서 익숙하게 제련된 이 포획 메커니즘을 슈터라는 장르 안에 특히 정교하게 구현한 장르이기도 하다. 슈터 장르의 역사에서 소유는 언제나 주변부의 개념이었다. 무기는 세션 안에서 잠깐 쓰는 도구였고, 캐릭터는 다음 판이면 리셋되었다. 그런데 익스트랙션 슈터는 이 장르에 처음으로 소유를 중심에 놓는다. 파밍한 부품이 남고, 레벨업의 결과가 이월되고, 장비의 손실이 실재하는 감각으로 남는다. 이것은 단순한 시스템 변화가 아니다. 소유라는 개념이 슈터 장르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게임을 바라보는 틀 자체가 달라진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가 인간의 삶에 가져온 변화를 진단하면서 소유 지향적 존재 방식이 결국 불안을 내면화한다고 보았다. 가진 것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소유에 늘 따라붙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익스트랙션 슈터를 보면 앞선 슈터 장르들과의 차이점을 읽을 수 있다. 배틀로얄의 핵심 쾌감이 승자독식,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다는 외부적 승인에 있었다면, 익스트랙션 슈터의 쾌감은 훨씬 내부로 파고든다. 내가 목표한 장비를 가지고 나왔느냐, 내가 설정한 기준을 내가 달성했느냐라는 기준으로 게임은 방향을 틀며, 승리의 기준이 타인과의 비교에서 떨어져 나와 개인의 소유 감각 안으로 들어온다. 프롬이 경고한 불안을 감수하면서도 이 장르를 선택하는 플레이어들은 어쩌면 그 불안마저 자신의 것으로 갖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가지고 나올 수 있느냐 처음의 카지노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칩의 역할은 상실의 감각을 유예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익스트랙션 슈터는 그 반대의 방향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게임은 오히려 상실의 감각을 매우 선명하게 만들어낸다. 풀 장비를 잃는 순간의 허탈감은 유예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정확히 이 게임의 핵심 재미다. 가상공간이 현실의 반영이라거나, 현실의 불안이 게임으로 흘러들어온다는 식의 분석은 이미 오래된 틀이다. 익스트랙션 슈터가 보여주는 것은 그보다 좀 더 급진적인 무언가에 가깝다. 가상공간이 현실로부터 독립적인 삶의 층위로 자리잡았다는 것. 그 안에서 세워진 자아가 독자적인 소유를 갖고, 그 소유의 상실이 독립적인 감각으로 작동한다는 것. 이것은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진다는 말과는 다르다. 경계는 여전히 있다. 다만 그 경계 너머에 이제 또 하나의 실재가 생겨나고 있다는 말에 가깝다. <아크레이더스>를 포함한 익스트랙션 슈터 장르의 부상을 그래서 나는 단순한 게임 트렌드로 읽지 않는다. 이 장르의 핵심 질문, 가지고 나올 수 있느냐는 질문은 슈팅 게임의 역사 안에서 한 번도 중심에 놓인 적 없었던 것이다. 그 질문이 지금 이 시대에 가장 주목받는 장르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동시대 게이머들이 위험과 성취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이전 세대와 분명히 달라졌다는 징후로 읽힌다. 그 변화가 정확히 어디서 왔는지는 아직 모호하다. 하지만 그 모호함 자체를 여전히 즐기면서 다음 세션을 준비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이 장르의 가장 솔직한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인게임 커뮤니케이션과 현실의 가치: 의 사례
정확히 똑같은 현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이러한 돌봄의 위기는 유사한 형태로 게임 공간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인터뷰에 참여했던 여성 게이머들 대다수가 여성 게이머에 대한 편견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지원가 역할을 기피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 Back 14 GG Vol. 23. 10. 10. Tags: 원아워원라이프, 여성게이머, 상호작용, 프레이저, 오버워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iyoon Kim Studied communication and anthropology at Yonsei University, and majored in media cultural studies at its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fter playing games with no great skill, grew interested in the bodily performance of gameplay and took up game research. Wrote a master's thesis analyzing the gameplay experiences of women gamers, which received the 2020 Outstanding Thesis Award from the Korean Women's Communication Association. Currently a doctoral student in Cinema and Media Studies at the University of Chicago in the United States, specializing in game culture.
- [공모전] 모바일 리듬 게임에서 ‘엄지러’를 선택하기-‘프로젝트 세카이 컬러풀 스테이지! feat.하츠네 미쿠’를 중심으로
‘엄지족’이라는 신조어가 있었다. 2000년대 폭발적으로 보급된 스마트폰이 사회 전 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을 때였다. 엄지를 이용해 스마트폰의 화면을 누르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청년을 일컬어 ‘엄지족’이라 불렀다. M으로 시작하는 것에 착안해 이들 세대를 모바일 세대, M 세대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무도 그런 말을 쓰지 않는다. 모두가 ‘엄지족’이자 모바일 세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 Back [공모전] 모바일 리듬 게임에서 ‘엄지러’를 선택하기-‘프로젝트 세카이 컬러풀 스테이지! feat.하츠네 미쿠’를 중심으로 13 GG Vol. 23. 8. 10. ‘엄지러’는 선택을 해야 한다 ‘엄지족’이라는 신조어가 있었다. 2000년대 폭발적으로 보급된 스마트폰이 사회 전 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을 때였다. 엄지를 이용해 스마트폰의 화면을 누르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청년을 일컬어 ‘엄지족’이라 불렀다. M으로 시작하는 것에 착안해 이들 세대를 모바일 세대, M 세대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무도 그런 말을 쓰지 않는다. 모두가 ‘엄지족’이자 모바일 세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바일 리듬 게임의 세계에서 ‘엄지족’, 다른 말로 ‘엄지러’는 여전히 실존한다. 스마트폰 리듬 게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00년대 후반 이후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모두가 ‘엄지러’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모바일 리듬 게임의 세계에서 ‘엄지러’의 위치는 다소 미묘하다. 노트를 정확한 타이밍에 터치해야 하는 일반적인 포맷의 모바일 리듬 게임을 상상했을 때, 분명히 모바일 리듬 게임의 유저 대다수는 엄지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엄지러’다. 그러나 노트가 더 많이, 빨리 등장하며 고난도의 플레이가 요구될수록 뚱뚱한 엄지 두 개만을 움직이는 플레이는 명확한 한계를 가진다. 이론상 발로도 플레이할 수 있는 <지오메트리 대시Geometry Dash>나 엄지가 누비기 비교적 수월한 세로형 인터페이스의 <피아노 타일 2Piano Tiles 2>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기에 모바일 리듬 게임의 ‘엄지러’는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한계가 있음을 알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엄지로 플레이하거나, 지금부터라도 낮은 레벨부터 다른 손가락을 사용하는 연습을 하며 플레이 스타일을 ‘교정’하는 방법이다. 전자를 선택한 이용자라도 이걸 엄지로 하라고 만든 것이 맞는지 의심되는 곡을 만나면 다시 갈등을 시작한다. 이 필연적인 고민은 하나의 의문을 낳는다. 리듬 게임의 ‘엄지러’는 바뀌어야만 하는가? 인터페이스의 전환과 ‘엄지러’의 탄생 ‘엄지러’는 원래 리듬 게임에 존재하지 않는 계층이었다. 리듬 게임은 이전까지 감각적인 콘트롤러를 탑재한 아케이드 기기를 무기로 이용자를 매혹시켰다. 이용자는 강렬한 음악이 귓가를 때리는 오락실에서 버튼을 누르고, 돌리고, 발판을 밟고, 북을 치고, 기타를 치는 식으로 리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2000년대부터 오락실이 쇠퇴함에 따라 온라인과 콘솔, 모바일 등 각각의 형태를 기반으로 리듬 게임이 분화되었다. 모바일 리듬 게임으로 넘어오며 리듬 게임은 기존의 무기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각양각색의 감각적인 콘트롤러 대신 게임사가 활용할 수 있는 것은 피처폰의 조악한 버튼, 조금 더 나아가서는 스마트폰의 작은 터치스크린뿐이었다. 이 터치스크린 속에서 특정한 버튼을 누르면 여전히 소프트웨어는 우리의 입력에 반응하지만, 과거와 같이 게임 소프트웨어 바깥에서 주어지는 ‘눌렸음’의 촉각적 신호는 사라진다.1) 이 물리적 제약은 감각적인 콘트롤러를 내세웠던 리듬 게임에 엄청난 도전이었다. 대신 스마트폰은 리듬 게임에게 휴대성과 대중성을 가져다주었다. 게임사는 모바일 환경에 맞춰 ‘엄지족’이 엄지로 간편하게 플레이할 수 있게끔 리듬 게임을 설계했고, ‘엄지족’은 엄지로 플레이를 했다. ‘엄지러’의 탄생이었다. 2000년대 후반부터 리듬스타 등의 피처폰 모바일 리듬 게임이 인기를 끌었으며, 2010년부터는 고사양의 스마트폰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아이폰, 안드로이드와 같은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한 리듬 게임들이 개발되었다.2) 형태의 전환은 새로운 규범을 만들었다. 스마트폰으로 리듬 게임을 한다는 것은 게임사가 더는 이용자가 리듬 게임을 하는 방법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케이드 리듬 게임을 플레이할 때는 정해진 장소로 가 정해진 콘트롤러를 정해진 방식으로 조작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모바일 리듬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용자들에게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그들은 불특정한 장소에서 불특정한 기기를 불특정한 방식으로 조작한다. 이용자는 카페에서 태블릿을 눕혀놓고 모든 손가락을 활용해 게임을 플레이할 수도 있고, 핸드폰을 들고 집에 누워서 엄지로 플레이할 수도 있으며 최신형 접히는 핸드폰을 산 것을 후회하며 접히지 않도록 조심하며 검지로 플레이할 수도 있다. 이 새롭고 다양한 사용자 경험 위에서 이전과 다른 플레이 문화가 축적됐다. 인터페이스의 전환이 새로운 장르적 전통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바일 리듬 게임에게 ‘어느 정도 엄지 플레이를 가능하게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은 필수적인 동시에 중요하다. 이 질문에 어떤 답을 내리느냐에 따라 해당 리듬 게임의 방향성이 결정된다. 캐릭터 IP를 내세운 대중적인 모바일 리듬 게임인 처럼 이론상 엄지로만 플레이 가능한 게임이 있는 한편, 아예 어려운 리듬 게임을 테마로 한 <다이나믹스Dynamix>처럼 엄지 플레이가 거의 불가능한 게임도 있다. <칼파KALPA>처럼 엄지 플레이 난이도와 다지 플레이 난이도를 이원화하는 선택을 하거나, 특정 레벨 이상부터 다지 플레이를 필수로 만드는 등의 절충안을 내놓은 경우도 존재한다. “모든 곡은 두 손가락으로 풀 콤보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중 ‘프로젝트 세카이 컬러풀 스테이지! feat.하츠네미쿠’(이하 프로세카) 또한 이론상 엄지로만 플레이가 가능한 모바일 리듬 게임이었다. 주식회사 세가와 컬러풀 파레트, 크립톤 퓨처 미디어가 공동 개발한 프로세카는 보컬로이드 IP를 이용한 캐릭터 수집 요소를 결합해 만든 대표적인 모바일 리듬 게임 중 하나다. 이 리듬 게임이 호명된 이유는 이 게임이 더 이상 엄지로만 플레이 가능한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 서버에서 개최된 창작 콘테스트 ‘초고난이도 프로세카 ULTIMATE’의 당선작 3곡이 게임 내 최고 레벨을 경신하는 37레벨로 수록되며 이 명제가 깨진 것이다. 이는 게임의 프로듀서인 콘도 유이치로의 “모든 곡은 두 손가락으로 풀 콤보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는 과거 발언을 번복하는 문제로써 이용자들 사이에 논란이 되었다. 이에 게임사는 37레벨은 번외 레벨로 예외적인 경우이며, 이하의 레벨에서는 앞서 말한 원칙을 지키겠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사실 프로세카가 이론상으로 엄지로만 플레이가 가능했을 때에도 높은 난이도의 곡들은 거의 엄지로 플레이하기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실제로 프로세카에는 엄지만 사용하여 올 퍼펙트를 달성한 것이 확인되지 않은 곡이 다수 존재하며, 같은 난이도의 곡이라도 엄지로 플레이할 때 압도적으로 어려운 곡도 존재한다. 높은 난이도의 곡을 엄지로 플레이하는 이용자가 있더라도 그것은 극히 소수일 뿐이다. 그리고 가능과 불가능의 영역을 넘어, 여러 손가락으로 플레이하는 것은 엄지로만 플레이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그런데 왜 ‘엄지러’는 그렇게 하지 않는가? 물론 여러 손가락을 사용하려면 태블릿과 같은 일정 크기 이상의 터치스크린을 눕혀야 한다는 제약이 존재한다. 하지만 높은 난이도의 곡을 시도할 정도로 열성적인 이용자가 단지 그것 때문에 엄지를 고수한다는 점은 이상하다. 더 이상한 점은 여러 손가락으로 플레이하는 이용자조차 37레벨 곡 업데이트에 대하여 ‘엄지 배려’를 하라고 목소리를 낸다는 점이다. 높은 난이도의 곡 플레이가 가능한 ‘엄지러’는 원래도 거의 없었는데, 그들은 무엇을 위해 이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는가? ‘엄지러’라는 전통 이 모든 반응은 ‘엄지 플레이’와 ‘다지 플레이’의 구분이 단순한 플레이 방식의 차이 그 이상을 함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만약 이 구분이 단순한 플레이 방식의 차이였다면 엄지로 32레벨까지 클리어하고 막히면 33레벨부터는 다지로 플레이 해 클리어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용자들은 33레벨 ‘엄지’ 클리어와 33레벨 ‘다지’ 클리어를 다른 것으로 구분한다. 게임 내적 시스템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클리어하든 아무 구분 없이 표기되는 데도 말이다. 이용자들은 대신 게임 외적으로 엄지로 특정 레벨까지 클리어 한 사실을 자랑한다거나, 엄지로 특정 곡을 클리어 한 영상을 공유하며 그들만의 전통을 축적한다. ‘엄지러’를 기준으로 한 비공식 곡 난이도 표를 만들고, ‘다지러’가 엄지로 어디까지 플레이가 가능한지 도전하기도 한다. 이렇게 축적된 전통 위에서 ‘엄지러’의 높은 난이도 도전은 몇몇 이용자의 기행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런 모습은 플레이 방식의 차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여러 직업이 있는 RPG 게임에서 상이한 난이도의 직업 루트를 선택하는 것과 더욱 유사해 보인다. 하나의 직업으로 최종 보스를 처치했다는 사실이 인정받으면서도 그것이 곧 다른 직업의 성취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다른 매체와 구분되는 게임의 특징을 논할 때 공통적으로 거론되는 점이 바로 게임과 이용자 간의 상호작용으로 생성되는 새로운 맥락과 이용자의 창조성이다. 이경혁3)은 게임 매체의 수용이 일종의 창조 행위라는 것을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로 오락실의 <펌프 잇 업> 고수가 펼치는 두 발 외의 몸을 사용하는 펌프 퍼포먼스를 들었다. 이런 예시는 개별 이용자의 창조적 수용을 보여준다. ‘엄지러’의 전통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게임사를 포함한 모바일 리듬 게임이라는 장르의 구성원은 모두 이 암묵적인 장르적 전통을 공유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게임 외적으로 구축된 전통은 개별적인 창조적 행위가 아닌 인터페이스의 특징에서 촉발되어 장르의 구성원이 새롭게 창조한 ‘규범’에 가깝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앞선 프로세카 같은 리듬 게임은 특히 게임 내적 시스템의 영향으로 다른 모바일 리듬 게임보다 ‘엄지러’의 규범이 강하게 작용한다. 실제로 엄지 플레이를 염두에 두고 설계된 것뿐만 아니라, 대중성을 위해 양적 랭킹 시스템을 도입하였기 때문이다. 프로세카에는 일정 기간 동안의 플레이 횟수에 따른 양적 랭크인 이벤트 랭킹과 실력을 겨루는 질적 랭크인 랭크 매치가 동시에 존재한다. 그리고 양적으로 순위를 매길 때 더 유리한 플레이 방법은 당연히 엄지를 이용한 플레이다. 이러한 이원화는 엄지 플레이에 확실한 효용을 부여함으로써 엄지 플레이의 지위를 보장한다. ‘엄지러’를 선택하기 단순한 플레이 방식 이상의 ‘엄지러’ 전통을 고려했을 때, 프로듀서의 발언을 차치하고서라도 이론상 엄지로만 칠 수 없는 곡의 등장이 강한 논란을 불러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RPG 게임의 비유를 다시 가져오면,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지 여부와 별개로 하나의 직업 루트에만 번외 콘텐츠가 개방된 셈이니 말이다. 혹여 ‘다지러’로 전직하더라도, 모바일 리듬 게임을 하는 한 ‘엄지러’의 전통은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있다. 다시 질문해보자. 리듬 게임의 ‘엄지러’는 바뀌어야만 하는가? 무의미한 질문이다. 바꾼다 해도 내가 선택해 키운 ‘엄지러’는 사라지지 않으니까. 1) 이경혁 (2023.04.05.), 플레이어의 숙련도가 머물렀던 곳은 어디였을까: 터치스크린 시대의 숙련도, <게임제너레이션>, URL: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152d8082-f4a1-486d-875d-a05088a28625 2) 강현구 (2019), 스마트폰을 위한 리듬게임 User Interface Design 연구, 석사학위,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3) 이경혁 (2019), <(놀이에서 디지털 게임까지) 게임의 이론>, 문화과학사.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대학원생) 손민정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현대문학과 문화를 공부 중입니다. 글과 함께한 만큼 게임과 늘 함께 해왔습니다. 별별 게임 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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