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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세미나] 여성 게이머들은 어떤 편견 속에서 플레이하며 어떻게 대처하는가?: 필리핀 AOS 게임 <모바일 레전드>를 사례로
<모바일 레전드>를 가장 많이 플레이하는 국가는 필리핀으로, 필리핀에서만 1억 명 이상이 등록되어 있으며 월별 접속인원은 2천 5백만 명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바일 레전드>의 필리핀 e-스포츠 리그에서 여성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으며, 게임의 이용자가 많아지면서 여성 게이머에 대한 젠더 고정관념과 편견의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여성의 온라인 게임 경험이 남성과는 상당히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 Back [논문세미나] 여성 게이머들은 어떤 편견 속에서 플레이하며 어떻게 대처하는가?: 필리핀 AOS 게임 <모바일 레전드>를 사례로 27 GG Vol. 25. 12. 10. TEXT: Amestoso, P. P., Colima, B. K. V., Damasin, A. D., De Cadiz, V. Y. E., Iglesias, M. A., & Nacionales, J. P. (2023). Exploring Gender Stereotypes among Filipina Gamers of Mobile Legends: A Phenomenological Study. Journal of Education and Social Studies, 4(3), 466-478. 들어가며 게임 산업의 규모가 전세계적으로 확대되면서 우리는 여러 통계조사 결과에서 여성 게이머들의 비율이 이전보다 크게 늘어났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여성들이 차별적 시선과 젠더 폭력의 위험 속에서 게이밍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은 여성에 대해 깊이 뿌리박혀 있는 도덕적 기준과 편견이 작동한 결과이자, 여성의 발전을 억압하는 혐오적 시선뿐 아니라 역사적인 젠더 권력의 불평등성까지 정당화하고 유지해 왔다. 특히 게임 세계에서는 여성의 게임 능력을 남성과 비교하는 커다란 장벽이 항상 존재하며, 이곳은 모든 기술산업 분야 중 가장 젠더 불균형이 심각한 곳으로도 지적된다. 게임 제작사 경영진 중 여성의 비율은 현저히 낮고 e-스포츠 선수들 중에서도 여성은 5%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모바일 레전드> 필리핀 게이머들의 젠더 고정관념 탐색하기(Exploring Gender Stereotypes among Filipina Gamers of Mobile Legends: A Phenomenological Study)’라는 이름의 이 연구는 게임 세계의 젠더 고정관념이 필리핀 여성 게이머에게 미치는 영향을 다루고 있다. <모바일 레전드: 뱅뱅(Mobile Legends: Bang Bang)>은 동남아 지역을 중심으로 국가, 인종, 젠더를 막론하고 많은 유저들이 플레이하는 유명한 AOS 온라인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영웅 10명 중 한 명을 고를 수 있으며 5명이 한 팀이 되어 적군에 맞서 타워를 수성한다. 휴대폰 전용으로 서비스됨으로써 이 게임은 PC 이용자 기반 게임보다 높은 접근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모바일 레전드>를 가장 많이 플레이하는 국가는 필리핀으로, 필리핀에서만 1억 명 이상이 등록되어 있으며 월별 접속인원은 2천 5백만 명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바일 레전드>의 필리핀 e-스포츠 리그에서 여성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으며, 게임의 이용자가 많아지면서 여성 게이머에 대한 젠더 고정관념과 편견의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여성의 온라인 게임 경험이 남성과는 상당히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필리핀의 디지털 산업과 e-스포츠 산업이 확장되는 시점에서, 여성 게이머에 대한 젠더 고정관념을 주목하는 것은 게이머에 대한 중립적 인식을 유지하고 온라인 플레이어의 다양성을 확대하는 데 있어 여전히 필요한 과제다. 젠더 고정관념과 사회적 역할 이론 젠더 고정관념(gender stereotype)은 ‘여성과 남성 모두가 각각 지녔거나, 지녀야 하거나 실제로 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특성, 특징, 역할에 대한 기대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재현이자 선입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현재 여성이 전세계 게이밍 인구의 절반을 차지함에도, 남성에 비해 짧은 시간 위주의 캐주얼 게임을 주로 한다는 인식이 이에 해당한다. 특히 온라인 게임은 남녀 모두에게 열려 있음에도 기존의 젠더 고정관념과 인식을 악화시키는 매개로 지적되어 왔다. 남성 게이머들이 공격적이고 지배적인 존재로 묘사되며 우월하게 여겨지는 한편, 여성 게이머는 순응적이거나 남성에 의존하는 모습으로 규정되며 일반적으로 낮은 위치에 놓이기 때문이다. 한편, 젠더 고정관념에 입각한 태도는 여성 게이머에게 가해지는 원치 않은 위협, 모욕적 태도, 괴롭힘이나 희롱으로도 나타난다. 이는 e-스포츠 분야의 여성들에게 차별이자 동시에 점점 더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자리한다. ‘사회적 역할 이론(Social Role Theory)’에 따르면, 개인의 행위와 태도, 목표는 그들의 젠더에 상응하는 사회적 역할에 큰 영향을 받는다. 즉 사회적 규범과 기대가 남성과 여성에게 서로 다른 역할을 정의하기에, 문화적 규범과 믿음에 기반해 공고해지는 젠더 고정관념은 개인의 행위와 관점, 욕망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젠더의 역할을 구성하는 사회적 기준이 어떻게 개인 고유의 역량과 태도, 커리어 경로에 영향을 주는지를 주목한다는 점에서 이는 본 연구의 핵심적인 이론적 관점이다. 특히, 사회적 역할 이론은 사회적 역할에 변화가 일어날 경우 인식과 행동에도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젠더 고정관념을 분석한다는 것은 모든 젠더의 플레이어가 임파워링할 수 있는 포용성을 구축하고 다양하고 환대적인 게임 커뮤니티를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연구문제와 방법 이 연구는 1) <모바일 레전드>를 플레이하는 여성 필리핀 게이머는 어떠한 젠더 고정관념을 경험하고, 2) 이들은 자신의 젠더와 관련한 고정관념을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대응하는가? 라는 두 가지 연구문제에서 출발한다. 이를 위해 <모바일 레전드> 플레이 경험이 있는 다양한 연령대의 필리핀 여성 게이머 16명을 대상으로 반구조화된 인터뷰를 시행했다. 인터뷰는 주로 페이스북 메신저, 구글 미트와 같은 비대면 SNS 플랫폼에서 진행되었으며, 위의 두 가지 연구문제에서 유래한 개방형 질문으로 구성하였다. 필리핀 게이머들의 실제 경험을 탐구하기 위해 연구는 기본적으로 해석학적 현상학(hermeneutic phenomenology)에 입각한 질적 방법을 사용했다. 인터뷰에서 수집된 자료는 표로 정리되고 코딩되었으며, 특정한 패턴이나 주제를 식별하기 위해 주제 분석(thematic analysis)을 수행했다. 대주제와 하위주제간의 식별을 위한 자료로 살다냐(Saldaña, 2021)의 코딩 기법을 활용하여 분석에 있어 보다 체계적이고 엄격한 접근을 시도하고자 했다. * 게임 일러스트, 출처 – https://www.ign.com * 게임 플레이 장면, 출처 - 구글 플레이스토어 <모바일 레전드> 여성 게이머들에 대한 젠더 고정관념 먼저 <모바일 레전드>를 플레이하는 여성 게이머가 대부분 경험하는 고정관념은 ‘내려치기(downgrading)’였다. 최선을 다해 게임을 하더라도 이들은 대부분 환영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으며 부정적 피드백을 받았는데, 이는 여성 게이머가 실력과 역량 면에서 남성보다 약하고 무능하다는 젠더 고정관념에 기반한다.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음에도 <모바일 레전드>가 남성, 그 중에서도 소년들만의 게임으로만 여겨지는 인식은 실제 존재하는 여성 게이머에 대한 배타적 인식과 낙인을 강화했다. 이들은 플레이 도중 남성들에게 게임을 접으라는 이야기를 듣는 등 여러 형태의 사이버 폭력을 겪었고, 그 결과 대다수가 남성이나 성 중립적으로 보이기 위해 자신의 프로필을 숨기거나 음성 마이크 사용을 망설이기도 했다. 다음으로, <모바일 레전드>의 여성 게이머들은 실력이 약하다는 고정관념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게임에서 항상 서포터를 하는 역할로만 낙인지워지기도 한다. 실력자가 아니라는 편견 때문에 여성 게이머들은 게임에서 실수하기를 두려워했는데, 혹여 게임이 잘 풀리지 않을 경우에는 언제나 ‘지원 영웅이나 하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는 ‘기술 게이밍의 시대’라는 결과에 젠더 고정관념이 위협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며, 온라인 게임 내 여성들이 실제 게임 경험에서 이 위협에 직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남초 게임인 <모바일 레전드>를 여성이 플레이한다는 이유 자체만으로 여성 게이머들은 ‘바이섹슈얼’이나 ‘레즈비언’이라는 취급을 받기도 했다. 오직 (시스젠더) 남성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것을 여성이 하는 상황이 펼쳐졌을 때, 그들은 젠더 규범의 바깥이라는 비정상적 영역에 속한 사람들로 낙인찍히게 되는 것이다. 젠더 고정관념에 대한 <모바일 레전드> 여성 게이머들의 대응 그렇다면, 상기한 이러한 젠더 고정관념에 대해 <모바일 레전드> 필리핀 여성 게이머들은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었을까? 우선 가능한 대응 메커니즘 중 하나로 ‘무시(ignoring)’가 있다. 내가 게임을 하고 싶고 그동안 이 게임을 잘 즐겨 왔기 때문에, 또 그들이 내게 개인적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 내버려 두자고 마음 속에 새기며 다음 게임을 잘 준비하는 것이다. 즉 여성 게이머들은 주어진 젠더 고정관념을 적극적으로 무시하는 것이 이를 다룰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믿고 있었다. 가끔, 자신의 실수에 유독 끔찍하게 반응하는 남성 게이머에 맞서 이들은 차분히 대응하며 다음 전략을 준비하기도 한다. 무시와 비슷한 또 다른 대처법으로는 ‘보복(retaliate)’도 있다. 자기에게 악담이 온다면 똑같은 형태로 돌려주고, 누군가가 폭력적 언행을 한다면 신고하고 그 사람을 차단하는 것이다. 부정적인 젠더 고정관념에 맞서는 또 하나의 방법은 게임에 더더욱 헌신하고 게임을 즐기는 것이다. 남성뿐 아니라 여성도 탁월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그들의 능력을 증명하겠다는 목표로 게임에 집중하는 여성들도 있었다. 자신들에 대한 괴롭힘이나 부정적 평가를 피하고, 젠더 폭력이라는 두려움에 맞서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는 것이다. <모바일 레전드>에서는 분명히 프로 게이머에 준할 만한 실력을 가진 여성 게이머들도 존재했는데, 이들은 곧 프로로 평가받지 못하는 다른 여성 게이머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싸우는 이들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모바일 레전드> 게임 시간을 줄이고 운동이나 야외활동이나 학업에 시간을 더 들이는 사례도 있었다. 정리하며 ‘<모바일 레전드> 필리핀 게이머들의 젠더 고정관념 탐색하기’는 <리그 오브 레전드>와 비슷한 형태의 휴대폰 전용 AOS 게임에서 여성 게이머들이 겪는 위기와 대응 방식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질적 접근법을 택하고 있으면서도 분석 내용이 표면적인 수준에 그친다는 점은 큰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여성 게이머들이 온라인 게임의 남성지배적 문화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이들이 취하는 소극적이거나 적극적인 서로 다른 방식의 전략들이 각자 어떤 맥락에서 발생했으며 어떤 효과를 가질 수 있는지의 문제는 심층적으로 다루어지지 못했다. 다만 이 연구의 주요 함의 중 하나는 ‘다양성과 포용성’의 문제를 마주한 게임의 시대에도 여전히 남성 게이머의 전유물로 인식되는 장르적 영역이 존재하며, 여전히 여러 연령과 젠더의 플레이어들이 접속하고 있는 모바일/온라인 게임 분야에서도 젠더 차별과 고정관념이 공고히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질적 소비자로서의 비중을 높여 가고 있음에도 여성 게이머들이 겪는 불변의 게임문화를 구성하는 핵심 논리는 무엇인지, 게임 산업분야는 이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해법을 찾아 나가야 하는지, 좀더 문화적이고 실질적인 연구들이 더 많이 수행되어야 하는 시점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수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레벨 업: 말레이시아 비디오 게임 문화 개관
분명히 는 말레이시아산 게임의 잠재력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구조적 문제에 얽매여 있기도 하다. 이 사례가 더 넓은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해하려면, 말레이시아 게임 산업 전반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 Back 레벨 업: 말레이시아 비디오 게임 문화 개관 26 GG Vol. 25. 10. 10. *** 이 글의 영문 버전은 아래 URL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4f5bf4be-c2c0-4cfe-afa8-85a124a83a98 어느 아담한 시골 마을의 늦은 오후. 수탉 렘보가 크게 울어 시골 분위기를 한층 더한다. 당신과 똑같이 생긴 쌍둥이, 그리고 유치원 시절부터 함께한 친구들이 마당에서 팽이를 돌리고 있었다. 자유롭고 즐거운 하루가 또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렘보는 오후 산책길에서 소동을 벌이고 있었다. 빙수 장수에게 간식을 달라 떼를 쓰고, 숨바꼭질하던 아이들을 고자질하며, 집안일을 하는 사람들을 놀려댔다. 그러다 마침내 천적인 마을 고양이를 만나게 되었다. 이제 렘보는 장터와 빨랫줄 사이를 가로지르며 고양이에게 쫓기다가 숲 속으로 도망쳐 버린다. 이제 당신과 쌍둥이가 렘보를 잡아 마을 어른에게 데려다 주어야 한다. 이 사건들은 어드벤처 비디오 게임 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게임은 레스 코파케 프로덕션과 스트림라인 스튜디오가 협력하여 개발했으며, 사랑받는 말레이시아 애니메이션 시리즈 을 각색한 것이다. 게임은 장난기 가득한 일상 속 모험에 휘말린 두 어린 쌍둥이 형제가 가족, 우정, 공동체를 배워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이 작품은 어린 시절과 더 단순했던 시절의 본질을 포착한다. 소란스러운 닭을 쫓는 것은 첫 번째 퀘스트일 뿐, 플레이어에게는 더 많은 탐험이 기다리고 있다. 2025년 7월 출시 행사에서 말레이시아의 디지털 장관인 고빈드 싱 데오는 이 게임이 “혁신성과 문화적 풍요로움을 구현함으로써 말레이시아 게임을 돋보기에 했다”라고 말했다(BERNAMA, 2025a). 이 게임은 플레이어가 동남아시아, 특히 말레이시아의 캄퐁 (시골 마을)에서 성장하는 경험으로 플레이어들을 초대한다. 퀘스트, 상호작용, 환경은 농촌 생활과 지역 유산의 매력을 반영하며, 게임을 즐거우면서도 동시에 교육적으로 만든다. 플레이어는 아늑한 목조 가옥, 분주한 야시장, 고즈넉한 논밭, 반딧불이가 빛나는 저녁 풍경 같은 무대를 체험할 수 있다. 메인 캠페인 외에도 낚시, 농사, 곤충잡기, 요리, 자전거 타기, RC카 경주 같은 미니 활동들이 준비되어 있다. 또한 이 게임은 애니메이션 원작의 따뜻하고 가족 친화적인 성격을 유지하며, 전투, 유료 결제, 실패 조건이 없는 오프라인 전용 게임이다. 이미지 출처: 스팀 안타깝게도, 큰 예산과 상당한 마케팅, 기존 팬층의 뒷받침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평가는 전반적으로 미지근했다. 디지털 플랫폼 스팀에서는 ‘대체로 부정적’ 평가를 받았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유명 게임 웹사이트 카쿠초푸레이(Kakuchopurei)는 어설픈 조작감, 버그 투성이의 상태, 의미 있는 진행의 부재, 그리고 개발사를 둘러싼 노동 논란을 비판했다(Toyad, 2025). 온라인 공간 전반에서도 플레이어들은 RM180(미화 약 43달러)에 달하는 가격을 “제공되는 내용에 비해 너무 비싸다”고 보았으며, AAA 게임과 비교해 합리적 가성비가 아니라고 평가했다(Ralph, 2025). 애니메이션이 큰 인기를 끌었던 인도네시아에서도 유사한 비판이 현지 언론 Tempo 를 통해 보도되었다(M. Faiz Zaki, 2025). 소셜 미디어 보이콧과 홍보 위기 속에서도 개발팀은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패치와 수정을 내놓고 있다. 분명히 는 말레이시아산 게임의 잠재력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구조적 문제에 얽매여 있기도 하다. 이 사례가 더 넓은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해하려면, 말레이시아 게임 산업 전반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말레이시아 비디오 게임 산업의 성장 말레이시아는 동남아시아 지역에 위치한 다문화 국가로, 2025년 7월 31일 기준 인구는 3,420만 명이다(말레이시아 통계청, 2025). 게임 산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2024년에는 6억 4,900만 달러의 매출이 예상되고, 연평균 7.55%의 성장률로 2027년에는 8억 700만 달러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BERNAMA, 2024). 이러한 전망은 기술력 부족, 기업 수 제한, 보조금 규모 축소, 인재 풀 협소 등으로 막 시작 단계였던 과거 보고서와 뚜렷이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Chong, 2004). 말레이시아가 본격적으로 게임 개발에 뛰어든 것은 1990년대였다. 모션 픽셀(Motion Pixel) 스튜디오는 루카스아츠의 글로벌 릴리즈 작품인 개발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담당한 바 있었다(Chong, 2004, p. 20). 2000년대에는 말레이시아의 주요 기업들이 글로벌 타이틀, 특히 MMORPG를 말레이시아 시장용으로 라이선스 받아 현지화하는 사업에 다수 착수한 바 있었다. 최근 말레이시아에는 게임 스튜디오 수가 급증했으며, 이들 대부분은 해외 유명 스튜디오들을 위한 게임 아트 아웃소싱 및 공동 개발 서비스를 제공한다. 대표적인 예로 패션 리퍼블릭(<디아블로 IV>, <언차티드 4>, <다크 소울 3>), 스트림라인 스튜디오(<스트리트 파이터 V>, <파이널 판타지 XV>), 레몬 스카이 스튜디오(<마블 스파이더맨>, <라스트 오브 어스 2>, <워크래프트 III: 리포지드>) 등이 있다. 이와 별도로, 말레이시아 스튜디오들은 자체 게임도 개발했다. 대표적인 3개 타이틀은 , , 로, 이들은 말레이시아가 글로벌 비디오 게임 산업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위상을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Wong, 2024). 2023년, 말레이시아 디지털 크리에이티브 부문 산업은 53억 링깃(약 12억 5천만 달러)의 수익을 기록했으며, 이 중 수출은 8억 링깃에 달했다(BERNAMA, 2025a). 다양한 정책적 지원에 힘입어, 정부는 MDEC(말레이시아 디지털 경제공사)을 통해 2030년까지 말레이시아를 애니메이션과 게임의 지역·글로벌 허브로 육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BERNAMA, 2025a). MDEC은 현지 게임 개발 지원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플레이스테이션 스튜디오 말레이시아와 협력을 강화했다(BERNAMA, 2025b). 이미지 출처: 스팀 MDEC은 매년 이라는 동남아시아 게임 개발자 회의를 주최하여 역내외 전문가들을 끌어모은다. 행사 주요 내용에는 콘퍼런스, 비즈니스 네트워킹 프로그램, 전시회, 피칭, SEA 게임 어워드, 마스터클래스 워크숍이 포함된다. 또한 스팀에서 MDEC은 말레이시아산 게임을 전시할 뿐 아니라, 동남아시아에서 개발된 뛰어난 IP들을 글로벌 관객에게 소개한다. MDEC의 지원 덕분에 말레이시아의 게임 산업은 계속해서 확장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게임 개발 인력을 유지하고 육성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더 많은 산업적 차원에서의 노력이 필요하다. 말레이시아에서 인재 유지에 영향을 주는 주요 문제는 커리어 성장이 쉽게 이루어지기 어려운 기업 환경이 거론되고 있으며, 이 때문에 많은 인재들이 싱가포르, 미국, 유럽과 같은 고임금 시장으로 떠나고 있다(MDEC, 2024, p. 69). 말레이시아에서 제작된 게임들의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풍부한 문화적 요소를 포함해 지역 정체성에 대한 인식을 환기시킨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된 외에도 토닥 스튜디오의 야심찬 MOBA 게임 를 꼽을 수 있다. 이 게임은 고대 및 신화적 동남아시아, 즉 누산타라(Nusantara) 문화를 영감으로 삼아 개발되었으며, 최근 지역 플레이어들을 대상으로 오픈 베타를 시작했다(Kalita, 2025). 이와 유사한 주제는 최근 인디 게임 개발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개발자들은 자신들이 성장해 온 배경인 말레이시아 문화를 어린 시절 추억의 향수와 결합했다(Chandy, 2024b). 어떤 개발자는 한국 MMORPG <란 온라인>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Chandy, 2024a). 말레이시아 비디오 게이머들의 경향 비디오 게임은 단순한 여가 활동일 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에서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해 가고 있다. 2022년 조사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통신멀티미디어위원회(MCMC)는 인터넷 이용자의 35.7%가 온라인 게임에 참여한다고 분석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봉쇄 기간에 많은 사람들이 집에 머물렀던 2020년(42.8%)보다 감소한 수치였다(MCMC, 2022, p. 97). 온라인 게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는 오락, 스트레스 해소, 사회적 상호작용, 수익 창출, 현실 도피 등이 있다(Yunus et al., 2021). 2020년 말레이시아 게이머들로부터 발생한 수익은 약 27억 링깃(5억 7천만 달러)으로, 2019년 25억 링깃(5억 2천7백만 달러)에서 증가했다(Hassan, 2021). 많은 게이머들은 매달 200링깃(약 48달러) 이상을 파워업, 외형 아이템, 특별 캐릭터 구매에 기꺼이 지출한다고 보고되었으며, 이로 인해 말레이시아는 동남아시아에서 지출이 가장 높은 시장 중 하나가 되었다(Hassan, 2021). 플랫폼 측면에서, 휴대전화의 접근성과 저렴한 데이터 요금은 말레이시아인들로 하여금 모바일 게임을 선호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수요와 수익에서 PC 게임을 앞질렀다(Lai, 2020). 말레이시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대표적인 타이틀로는 과 <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이 있으며, 이는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영상 스트리밍과 함께 성장하며 상호작용적 관람 문화의 성장을 이끌었다. e스포츠의 인기가 증가하고 있음을 인식한 MOONTON 게임즈는 최근 말레이시아 e스포츠 연맹(MESF)과 공식 파트너십을 체결하여 체계적인 게임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선수를 훈련하며, 다가오는 동남아시아(SEA) 게임에서 금메달 획득 가능성을 높이고자 하고 있다(Salim, 2025). 또한 말레이시아는 장애인을 포함하는 포괄적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Yeoh, 2021). 더 넓은 게임 환경 속에서, 말레이시아 게이머들이 자신의 플레이에 문화적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며 창의적 주체성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주목할 만한 사례로는 에서 말레이풍 결혼 행렬을 재현한 것(Zikri, 2020), <심즈 4>에서 목재 기둥과 라탄 가구로 된 전통 가옥을 건축한 것(Ashaari, 2020), <마인크래프트 > 에서 말레이시아의 랜드마크인 페트로나스 트윈타워를 축소 재현한 것(Tan, 2020), 그리고 <로블록스>에서 왕궁의 총리 취임식을 시뮬레이션한 것(As, 2025) 등이 있다. 또한 게이머들은 닌텐도의 <모여봐요: 동물의 숲 > 을 활용해 코로나19 봉쇄 기간 동안 의미 부여, 사회적 교류, 생산적 활동을 이어갔다(Tengku Sabri et al., 2024a, 2025a, 2025b). 게이머들은 개인 페이지와 게임 커뮤니티를 통해 자신들의 창작물을 공유한다. 이러한 창의적 노력의 사례들은 말레이시아인들이 단순한 수동적 게이머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게임 플레이 속에 구현하는 능동적 생산자임을 보여주었다. 비디오 게임을 둘러싼 말레이시아의 사회적 긴장 말레이시아 게임 산업과 문화가 빠르게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비디오 게임에 대한 수용은 도전 과제 없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비디오 게임이 말레이시아 대중에게 소개되었을 때, 사회적 불안과 긴장이 함께 뒤따랐다. 2000년대 초반, 오락실은 청소년의 무단 결석, 비행, 폭력적 행동을 부추긴다는 비난을 받았다. 또한 도박및 자금 세탁과 연관이 있다는 의혹을 받으며 정책에 의한 규제와 폐쇄를 겪기도 했다(Yoong, 2001). 같은 시기, 사이버카페(역자주: PC방)는 점점 인기를 얻었지만, 당국과 부모들에게는 해로운 생활 방식을 조장하는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불법 도박, 음란물, 사이버 범죄와 같은 우려가 제기되면서 이러한 카페들은 사회적으로 나쁜 평판을 얻게 되었다(Lee, 2014). 모바일 및 온라인 게임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종교적·문화적 우려도 제기되었다. 2016년에는 <포켓몬 GO>가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으며, 일부 종교 당국은 해당 게임에 대해 경고를 내리고 금지를 요구하기도 했다(Malay Mail, 2016). 최근에는 기도실에서 <모바일 레전드> 대회가 열리면서 논란이 일었고, 비판자들은 성스러운 공간을 모독했다고 주장했다(Fong, 2025). 결론 말레이시아 비디오 게임 산업과 문화는 개발사 수의 증가, 투자 확대, 인프라 강화에 힘입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의 사례가 보여주듯, 여전히 개선해야 할 많은 부분이 남아 있다. 인력 유지, 품질 보증, 공정한 가격 책정과 같은 구조적 문제가 주요 과제로 남아 있다. 기술적·경제적 측면을 넘어, 말레이시아의 비디오 게임 문화는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 의해서도 형성된다. 산업과 게이머들을 함께 살펴보면, 말레이시아인들이 어떻게 일상 속에서 게임의 기회와 긴장을 헤쳐 나가는지를 알 수 있다(Tengku Sabri et al., 2024b). 산업의 미래 성장은 기술 혁신과 정부 지원뿐 아니라, 더 넓은 문화적·사회적 차원을 얼마나 잘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 말레이시아의 게이머, 개발자, 제도 모두가 활기차고 포용적인 게임 문화를 향해 함께 ‘레벨 업’해 가고 있다. 참고문헌 As,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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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 Tengku Intan Maimunah Tengku Intan Maimunah is a PhD student at the Department of Media and Communication Studies, Universiti Malaya, Malaysia. Her research explores video game paratexts, focusing on the creative works and practices that players build around their favourite titles. Her gaming journey began on a Windows 98 PC and continues today on a Steam Deck. Outside of gaming, she edits and publishes books on visual arts. She credits her brother for the first step into the world of video games, her father for the love of stories, and her mother for the eye to see beauty in everything.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오웰> - ‘감시자본주의' 시대의 정치 불안
많은 누리꾼들은 검색엔진에서 막 검색한 키워드가 곧바로 온라인 쇼핑몰의 추천상품이 되고, 방금 전 친구들과 나눈 잡담의 소재가 갑자기 모바일 웹브라우저에 광고로 뜨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려깊은’ 서비스는 사람들이 상념과 공포에 빠뜨리고 그 때문에 지난 몇 년 동안 인터넷상의 개인정보 보호 및 데이터 수집은 주목할 만한 이슈였다. < Back <오웰> - ‘감시자본주의' 시대의 정치 불안 18 GG Vol. 24. 6. 10. 원문: 《奥威尔》:“监视资本主义”时代的政治焦虑. https://www.thepaper.cn/newsDetail_forward_16494534 많은 누리꾼들은 검색엔진에서 막 검색한 키워드가 곧바로 온라인 쇼핑몰의 추천상품이 되고, 방금 전 친구들과 나눈 잡담의 소재가 갑자기 모바일 웹브라우저에 광고로 뜨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려깊은’ 서비스는 사람들이 상념과 공포에 빠뜨리고 그 때문에 지난 몇 년 동안 인터넷상의 개인정보 보호 및 데이터 수집은 주목할 만한 이슈였다. 2020년 9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딜레마(The Social Dilemma)>가 온라인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은 다방면으로 확산됐다. 주로 자본주의의 이윤 지향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 이 영화는 윤리적 감시와 도덕적 성찰이 부족한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만들어내는 혼란을 드러낸다. 이러한 플랫폼에서 일했던 여러 내부자들은 여러 유명 사이트가 사용자 데이터를 수집하고 알고리즘을 사용하여 지속적으로 특정 주제로 시청자를 유도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으며, 사람들이 플랫폼용 콘텐츠를 제작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한다고 설명한다. 자본 지향에 대한 성찰은 사회적 반응의 한 단면일 뿐이다. 소셜미디어가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차지하고 많은 사람들이 정보를 이해하고 의견을 발표하고 소통하는 중요한 장소가 되면서, 정보의 정확성과 이견의 포용성 등에 대한 관심은 ‘감시자본주의’에 휘말려 정치적 불안감을 형성한다. 이에 따라 사이버 세계에서의 권위적 경향은 촉각을 곤두세우는 대상이 됐으며, 근래에는 반복적으로 논란거리로 부각되기도 했다. 2016년 10월 게임 개발사 오스모틱 스튜디오(Osmotic Studios)에 의해 <오웰: 당신의 눈을 떠라>라는 디스토피아 게임이 출시됐다. 2018년 2월, 속편 <오웰: 무지가 힘이다>가 발행됐다. ‘오웰’이라는 감시체제가 작동하는 방식을 묘사함으로써 디지털 생활에 잠재된 엄청난 위험을 보여주려는 두 게임의 시도는 게임 제작자들이 인터넷 시대의 정치적 위기를 어떻게 이해하고 특성화하는지에 대한 훌륭한 관점을 제공한다. 특성화된 사회 통제 : 자유국가의 감시계획 이 게임의 내러티브는 ‘더 네이션(The Nation)’이라는 가상 국가에서 일어난다. 불안한 이웃나라 정세와 국내 안보에 대한 우려 때문에 '오웰'이라는 극비 감시 프로그램을 실행하기로 한 것이다. 정보당국은 해외 지원자들을 조사요원으로 모집해 정보부서 직원의 지도 아래 정부 내 인사들이 열람할 수 없도록 돼 있는 자국민 파일을 감시하고, 사람들의 전자기기를 해킹해 반사회적 인물이나 테러리스트의 혐의가 있는지 검사하도록 한다. 플레이어는 조사관으로서 오웰 시스템을 직접 조작해 각종 혹은 공개적이거나 은밀한 정보 채널을 빌려 이른바 ‘위험 인물'의 사생활 깊숙이 침투할 수 있다. 게임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자유광장 폭발 사건에서 시작된다. [사건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당국은 폐쇄회로 영상을 보면서 경찰 습격으로 형사사건에 휘말린 젊은 여성이 폭발장치 설치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의심한다. 수사관들은 곧 그녀의 가족 정보, 소셜미디어 계정을 수집하여 그녀가 폭발 사건에 관여했는지 여부를 확인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하지만 수사가 진행될수록 플레이어들은 용의자를 특정할 근거가 의심스럽다는 점을 알 수 있게 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감정적으로 흘러가는 논쟁, 인터넷 친구나 커뮤니티의 정치적 경향이 기록되며, 이는 사회적으로 위험한 인물이라는 낙인으로 활용될 수 있다. 소셜미디어 및 언론 등의 의심스러운 증거를 통해 조사관은 특정 개인의 다양한 네트워크 흔적과 사적인 채팅 및 전화통화 녹음 내용까지 계속 모니터링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다. 에피소드2가 시작되면 회색 영역을 넘나드는 수사 임무 뒤에 있는 권위주의적 권력의 추진력은 더욱 적나라해진다. 같은 시간대에 반정부 블로그 ‘피플스 보이스(People's Voice)’의 라반 바르트(Raban Vhart ) 편집장은 주류 언론을 비판해 두터운 팬을 얻고 있다. 그가 유력지 ‘내셔널 비홀더(The National Beholder)’를 거듭 비난하자 오웰의 수뇌부는 그의 가족까지 수사 대상에 올리기로 하고 바르트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려 한다. 정부 관료는 앞 에피소드에서처럼 조사원의 유죄추정만 시사하는 게 아니라, 조사원에게 직접 위법 증거를 찾아내 체포영장을 발부하도록 한다. * 게임 속 ‘더네이션’에서 가장 권위 있는 뉴스 사이트 ‘내셔널 비홀더’ 흔히 디스토피아 게임의 배경 묘사에서는 권력당국의 사회적 통제 수단을 경계가 모호하고 제지하기 어려운 정치폭력으로 묘사한다. 같은 장르의 게임, 예를 들어 2016년 발매된 <비홀더(Beholder)>의 경우에도 주인공은 도시 세입자를 감시하는 건물 관리로 설정되어 있다. 이는 권력을 아래를 향해 무한정 뻗어나가는 공포정치의 풍경으로 연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체주의적 상상과 비교했을 때 <오웰>은 국가권력의 구현에 대해 훨씬 더 복잡하며, 당대 미디어 권력의 작동 논리에 가깝다. 게임 속에서 수사관들은 ‘내셔널 비홀더’ 뉴스 업데이트를 통해 주류 언론의 홍보 동향을 파악할 수 있다. 이 유력 언론은 국경 충돌과 테러 사건을 대량으로 보도하고, 헤드라인 뉴스를 통해 ‘더네이션’ 범죄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희소식을 플레이어에게 전달한다. 이들은 게임 배경에 대한 설명을 통해 왜 ‘오웰’ 시스템이 개인의 사생활 침해에 대해 대중의 항의를 받지 않을 수 있었는지 교묘하게 해석한다. 1978년 출간된 <위기 관리: 노상강도, 국가, 법과 질서(Policing the Crisis: Mugging, the State and Law and Order)> 책에서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을 비롯한 버밍엄학파 저자들은 전통적인 자유주의 국가들이 권위주의적 통제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영국에서는 언론 보도로 인한 작은 강도 사건이 대규모의 도덕적·법적 공황 상태로 이어지면서 사회가 갑자기 질서를 잃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는 다양한 운동이나 소수민족에 대한 우려와 적개심을 불러일으켰고, 법의 엄격한 집행과 사회거버넌스 정책을 촉구했다. 그러나 홀의 입장에서 볼 때 범죄가 핵심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도덕적 해이 때문도, 사회질서의 혼란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우선하는 것은 미디어[로 인한] 사태라는 점이다. 그것은 영국 정부 당국이 뉴스 보도에 대해 의도적인 영향을 직접적으로 가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복지국가가 쇠퇴하면서 자본주의[신자유주의] 정권에 대한 대중의 동의가 약해지면서 정치운동이 빈발했고, 자본에 대한 정부의 통제력이 부족해져 뉴스 주도권에서 상업매체의 방해를 받았다. 사회적 위기가 심화되는 가운데 긴박한 정세하 다시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사회 통제권을 되찾아야 한다. 미디어 사태로 인한 사회적 공황은 일석이조의 훌륭한 방안이 될 수 있다. 경찰과 법원 시스템, 주류 언론의 범죄 문제 집중으로 가뜩이나 불안한 사회가 갑자기 부정적인 감정의 분출구를 찾게 되기 때문이다. 이후의 결과는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폭력이 예상되는 소외계층에 대한 공포 때문에 정부의 엄격한 사회적 통제를 묵인하게 됐고, 영국 정부 역시 공포에 떠밀려 모인 여론을 바탕으로 언론 통제권을 더 확장했다. 1991년 필립 슐레진저(Philip Schlesinger)가 집필한 에서도 저자는 테러로 분류되는 대형 사건들이 언론 통제의 중요한 동력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사건들에서 영국 정부 당국은 언론 보도의 정치적 경향과 내용을 합법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당국이 테러에 대한 해석권을 장악하고 이성적이고 의도적인 납치사건을 비논리적인 테러로 해석하는 데 직접적인 기여를 한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역설적으로 정부가 언론 통제를 강화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앞서 게임 속 ‘더네이션’의 사회 상황을 살펴본 결과, 게임 제작자들이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자유주의 국가들이 사회적 위기에 직면했을 때 나타나는 사회적 통제의 문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웰>에서 ‘더네이션’이 위치한 지역은 불안정하다. 이웃나라 ‘파게스(Parges)’에서 오랜 내란이 이어지고 있어 ‘더네이션’은 군대를 파병해 지역 안보를 유지해야 한다. 이 때문에 ‘더네이션’이 더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적 갈등이 첨예하다. ‘파게스’로부터 대량의 난민이 유입되고, 퇴역 군인들이 취업난을 겪으며, 자국의 지식인들은 정부에 대해 불만을 갖는다. 이런 상황에서 ‘오웰’의 시스템은 주류 언론의 여론에 부응해 사회 통제라는 비장의 수단이 된다. 게임은 시스템 조사관의 관점에서 정보 부서, 반론 단체 및 일반 네티즌을 포함한 다양한 집단들에 대한 관점과 감정을 반영하며, 이러한 정보는 또한 현대 사회의 위기에 대한 게임 제작자의 개인적 이해를 반영한다. 인터넷 생태계 묘사하기 : 복잡한 개인, 모호한 국가 1. 이견집단의 내재적 긴장감 <오웰>은 디스토피아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캐릭터를 지나치게 편평하게 선악을 구분하지 않는다. 특히 반체제 인사들의 경우에도 인물군상을 차별적으로 형상화하지 않는다. 제작자들은 저항하는 사람들의 정의만 부각시키기보다는 사회적 환경과 다양한 인물들과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더네이션’의 사회 위기와 권력 통제는 신분 간 격차가 큰 시민들에게 각기 다른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그들은 자성적인 능력을 발휘해 사회적 위기에 대처한다. 에피소드1에서 정부 정보당국은 ‘생각(The Thought)’이라는 엉성한 인터넷 동호회에 초점을 맞춰 폭발사건의 진범을 찾으려 한다. 수사관들이 이들을 감시하는 과정에서 플레이어들은 좌편향의 이 집단이 사회 환경에 대한 불만을 공유하면서도 전혀 다른 행동 이념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생각’의 창시자 에이브러햄 골드펠스(Abraham Goldfels)는 당국의 미디어 거버넌스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었고, 청년들을 조직해 미디어 윤리에 대해 토론하는 데 열정적이었다. 정부가 오웰 시스템의 윤리계획에 참여해달라고 제안했을 때 그는 개방적 자세로 이에 참여했지만, 조사원으로서 도저히 임무를 중립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퇴했다. ‘생각’의 동인이었던 해리슨 오도넬(Harrison O'Donnell)은 ‘생각’의 블로그에 여러 차례 글을 올리기도 했지만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다가 주류 언론 ‘내셔널 비홀더’의 칼럼니스트로 변신했고,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펑크 신분을 감추려 애쓴다. 취업난과 정신질환, 폭력적 저항이 많은 편집증적 사고를 지닌 퇴역 군인 니나 마테르노바(Nina Maternova)는 끝까지 반발을 제기하고 정치문제에 대한 민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최선의 방법으로 자유광장에서 폭탄을 터뜨린다. 에피소드2에서 반체제 인사들의 모습은 더 어두워진다. ‘피플스보이스’ 편집장 라반 바르트는 ‘파게스’ 난민으로서 ‘파게스’의 국가적 재난과 개인적 불행은 ‘더네이션’에 의해 의도된 설계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의 가족과 추종자들은 그의 음모론에 대한 집착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 게임 속 ‘피플스보이스’ 편집장 라반 바르트는 “국가기관에 맞선 전쟁을 시작한다”는 글을 게시한다 서로 다른 사회적 위치에 서 있고, 다른 배경과 경력을 가진 반체제 인사들은 단순히 사회적 사명감에 의해 소환되는 단순한 저항자가 아니다. 정치이념의 성숙도에도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에이브러햄 골드펠스는 오랫동안 사회비판적 활동을 해온 지식인으로서 당국의 정책에 대해 보다 인내하며 체제 내 개혁의 가능성을 믿었던 반면, 다른 반체제 인사들은 안정적인 정치적 입장가 부재했다. 해리슨 오도넬의 정치적 태도는 급진적인 듯하면서도, 좌절할 때는 현실에 쉽게 고개를 숙인다. 니나와 바르트의 과격 행동은 ‘더네이션’에 대한 위화감과 관련이 깊지만, 그 배후의 가치에 대한 고민은 얕다. 이처럼 내부적 긴장감이 넘치는 인물군상을 부각해 보면, 정부 당국의 미디어 거버넌스 논리를 게임 안에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정보 교류가 빈번한 인터넷 시대에 사회 상황에 대한 여러 집단들의 능동적 반응은 편리한 미디어 조건으로 인해 더 쉽게 발견되고, 관심받고 인식되며, 더 큰 사회적 영향을 미친다. 급진적인 반대 의견과 행동이 확산될 가능성을 예상하는 것 외에도, 권력자들은 더 엄격한 사회적 통제를 고려해야 할 ‘강제’를 받을 수 있다.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사회적 리스크 때문에 오웰식의 시스템이 게임에 등장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반체제 인사들의 복잡성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단순히 정치적 압박의 저항자로만 보는 것은 정부와 민중 간 미묘한 관계를 적절하게 묘사하기 어렵게 만들고, 국가기구에 대한 게임의 주장을 너무 가볍게 보이게 할 수 있다. 2. 전능한 정부의 이미지 안타깝게도 <오웰>은 반체제 인사에 대한 묘사만큼 국가기관에 대한 묘사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은 것처럼 보인다. 이런 점으로 인해 게임 내 당국에 대한 부정적 여론과 사회 통제 수단 간 관계는 효과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에피소드2에서 ‘피플스보이스’의 조직자 라반 바르트는 ‘더네이션’이 ‘파게스’ 정국에 개입해 현지 내란을 일으켰으리라는 음모론에 사로잡혀 있다. 나아가 그는 ‘더네이션’ 정부가 ‘피플스보이스’에 대한 보복으로 자유광장 폭발 사건을 일으켰고, 자기 아내를 살해했다고 믿고 있다. 오랜 정신적 편집증 때문에 그는 ‘더네이션’ 정부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다. 처음에 수사관들의 시각에서 보면 라반 바르트의 정부 고발은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 그는 파게스에 있는 학교에서 우발적인 폭탄테러를 당했고, 그의 아내는 감시받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의도치 않게 폭발 사건에 연루된다. 하지만 수사가 진척될수록 게임 제작자들은 역설적으로 바르트의 입에서 나오는 음모론을 따라가도록 구현한다. 그것은 즉, 정부가 조직적으로 바르트를 도발하여 그가 편집장이란 직위를 통해 파게스 선거에 간접 개입하도록 했고, 이로 인해 바르트가 받는 항간의 소문들은 모두 오웰 시스템이 주관하는 통제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게임 속 ‘더네이션’ 정부의 모습은 너무 전능한 나머지 현실성이 떨어진다. 이 게임은 정보의 홍수가 쏟아지는 인터넷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디스토피아 게임의 진부한 클리셰를 벗어나지 않는다. 국가기관은 급변하는 여론 동향과 민중의 반응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미디어에 대한 권력구조의 상실과 관련한 제작자들의 우려를 투영한 측면이 크다. 인터넷의 힘은 실재한다. 하지만 일상에서 우리는 인터넷이 겉보기에는 더 큰 자유를 가져다주었지만 이로 인한 개인의 사생활 손실과 사회적 통제 강화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것을 크게 느끼고 있다. 기술과 권력의 불균형에 직면하여 제작자들은 미디어가 사람들의 생각을 표현하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고 믿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믿음이 없기에 <오웰> 역시 권력의 자리에 대해 인식하거나 이입하지 않는다. 또, 끊임없이 확장되는 권력의 미디어 권력,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를 주저하지 않는 미디어 거버넌스의 논리가 부분적으로는 온라인 여론의 복잡성과 실제 영향력에 대한 통제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한다. 현실에 대해 편향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에피소드2는 국가기관의 형성에 대해 전체주의화되기 시작한다. 오웰 시스템은 더 이상 수사관의 판단에 의존하지 않고, 정보 당국의 리더가 직접 수사에 개입해 바르트의 ‘흑색선전’을 찾아내 ‘피플스보이스’의 명성을 떨어뜨리고, 바르트 가족의 메신저 계정을 해킹해 이들을 체포할 수 있는 불법 증거를 찾도록 독려한다. * 에피소드2의 ‘인플루언서’ 메커니즘엔 댓글러 활용 여론공세로 비판여론 공격하기 기능이 있다 물론 이러한 전체주의적 상상력이 결코 목적 없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필립 슐레진저는 정치폭력에 대해 설명하면서, 막스 베버(Max Weber)와 기든스(Anthony Giddens)를 인용해 자유주의 국가에서 전체주의적 성향은 당국이 정치상황이 급박하다고 생각하고 민중들이 이를 묵인할 때 어떤 국민국가도 도덕적 전체주의를 피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역설적인 점은 미디어에 대한 강력한 통제를 통해 사회 정세의 긴장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이 당국에 의해 장악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3. 수사관 모델: 윤리적 계획은 가능한가? <오웰> 플레이의 핵심인 수사관 모델은 이런 현실적 우려에 대한 활로를 모색해보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 그것은 즉 사회적 통제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실제 범죄를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권익을 보호하고 권력의 침투를 피할 수 있는 거버넌스 방법이 있는지 여부이다. 정부 지도자는 ‘더네이션’ 시민들의 사생활 정보에 직접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수사관들은 특정 사건이나 집단을 중심으로 조사할 수밖에 없지만, 수사 대상자의 위협성 여부를 판단할 때는 결정적인 의견을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윤리적 비전이 개인에 대한 정치 폭력의 침해를 해결하지 못할 것임을 행간에서 암시하기도 한다. <오웰>의 두 에피소드 모두 수사관들이 개인의 정치적 성향과 취향, 사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정보를 정보당국에 제공하는데, 게임 내러티브의 전개는 복수의 엔딩으로 이어지도록 설정됐다. 반체제 인사들이 오웰의 감시 계획을 폭로했는지, 아니면 오웰 시스템이 사회적 위기를 통제했는지 여부는 수사관의 도덕적 선택에 크게 의존한다. 동시에 권력구조는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지도자가 수사관에게 내리는 대부분의 명령은 수사관이 피의자를 유죄로 판단하도록 강제하거나 유도할 의향을 갖고 있다. 에피소드1에서 플레이어는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하지만 폭발사건에 연루된 ‘생각’의 멤버 카산드라와 니나는 체포된다. 이와 비교했을 때 게임의 엔딩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생각’의 멤버들이 오웰 시스템의 위험성을 대중에게 알리는 데 성공해 당국이 계획을 취소하더라도 시스템의 계획은 여전히 암암리에 진행된다. ‘더네이션’의 승인으로 수사관이 된 시민은 위험 인사로 기록 및 저장된다.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가 헤게모니를 다투는 과정에서 갖는 관성 때문에 공식 통제를 받는 오웰 시스템이 중립적 성격의 매개체 기술로 사용될 가능성은 없다. <오웰>의 정치적 불안 결국 오웰의 서사는 스스로가 설정한 딜레마에 빠진다. 이 게임은 ‘더네이션’ 당국의 상징에 대해 제작자들이 온라인 매체에 대해 비관적인 시각을 갖고 있음을 내비친다. 권력과 과학기술의 우위를 쥐고 있는 권력자를 상대로 권위주의적 성향의 사회통제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오웰>에는 권위 있는 언론과 일반 대중, 반체제 인사들 간의 상호작용이 매우 단순하게 표현된다. 당국은 유력 매체에 공개된 정보를 통해 항상 사람들의 감정을 조작하고 적시에 반체제 인사들을 격분시켜 그들이 예정된 계획에 복무하도록 한다. 이 게임의 제작자들이 정치적 힘의 복잡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은 비관적 미래상에 더 공감하고 있다. ‘한쪽으로 치우쳐진’ 인터넷 세계 권력구조 현상에서 취약계층의 저항은 항상 존재할 수 있지만, 강자가 항상 국민의 동의와 묵인을 얻는다면 권력은 계속 확장될 것이다. <오웰>의 게임 상징은 이런 관점의 ‘자기실현’이다. 한편으로 게임 속 네티즌의 이미지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완전히 통제되는 감정적 집단으로 축소되고, 반체제 인사들은 대중들로부터 공감받지 못하는 외톨이로 묘사된다. 다른 한편, 인터넷 디스토피아에 대한 제작자의 과도한 관심은 인터넷 밖 현실의 표현 공간을 밀어낸다. 사람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표현을 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사회적 상황에 대한 판단이 결여되어 있는 ‘오합지졸’인 것은 아니다. 인터넷 세계에서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냉정한 관점이 어쩌면 진짜 이견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이러한 온건한 견해가 일상에서는 더 큰 목소리를 내고 주류가 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기술과 권력의 결합이 <오웰>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매우 긴밀하더라도, 우리는 인터넷 세계가 오늘날 정치 지형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각종 뉴스와 인기검색어, 상업광고가 전방위적으로 다루는 인터넷 세계는 결국 사람들의 실생활, 실제의 사회적 감정이나 견고한 관점을 대체할 수 없다. 그러나 <오웰>에서 표현된 상징들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진정한 정치적 불안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인터넷 세계에 ‘이용자’로 진입할 수 있는 기술적 역량이 부족한 현대인들의 경우에는 정치적 다툼의 공간은 급속하게 축소되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이 헤드라인 뉴스와 감정적인 관점에 의해 빈번하게 끌올되는 지금의 상황에서 이념을 확고하게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견고한 관점을 형성해 주류와 경쟁할 가능성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대다수 사람들은 점차 인터넷에 의존해 정보를 얻고, 자신의 인식을 구축하거나 소통하고, 심지어 생계를 유지한다. 인터넷 세계의 이질적인 권력구조는 긴장감 넘치는 국가-개인 관계를 대체하는 압도적인 ‘현실’로 인식되고 있다. <오웰>의 엔딩은 이런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디스토피아적 세계 속에서 사람들은 그것이 딜레마에 대한 해결책이 아닐지라도, 권력에 맞선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런 ‘현실’과 조심스레 거리를 두어야 할지도 모른다. 비관적인 인터넷 풍경의 배후에 여전히 남아 있는 가능성의 사회를 봐야 할 것이다. 통제 불능의 폭력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통해 꿈꾸는 방향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정치가 작동할 수 있는 논리를 보다 정교하게 이해해야 한다. Tags: 빅브라더, 파놉티콘, 전체주의, 감시, 혁명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량청린 梁成林 (활동가, 작가) 홍명교 활동가, 작가.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에서 동아시아 국제연대와 사회운동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를 썼고, <신장위구르 디스토피아>와 <아이폰을 위해 죽다>(공역) 등을 번역했다.
- 플레이시간의 자본주의적 상품관계 - 탕진의 재미와 축적의 재미
온라인게임 시대가 만들어낸 이 변화는 놀이 역사에서 보기 드문 전환을 만들어냈다. 노는 일이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무언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놀이의 본질은 일종의 무용함, 생산의 시간에 맞선 시간 탕진의 즐거움에 가까웠지만,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는 그 무용함의 효용마저도 상품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이기도 하다. < Back 플레이시간의 자본주의적 상품관계 - 탕진의 재미와 축적의 재미 21 GG Vol. 24. 12. 10. 놀이로서의 디지털게임: 생존, 노동, 여가의 세 분류 안에서 디지털게임을 플레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즐거움을 찾기 위한 유희, 놀이로서의 게임 플레이 행위 안에 디지털게임 플레이가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놀이는 근본적으로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행위라고 이야기하는데, 이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다는 말에는 한 가지 중요한 전제가 숨어 있다.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무언가를 특정한 행위에 들임에도 불구하고 딱히 행위의 결과로서 무언가 (경제적으로) 유의미한 산출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말을 다시 새겨보면, 결국 놀이를 정의하는 데 있어 전제되는 것은 놀이하는 사람이 무언가를 놀이 행위에 투여하고 있다는 사실임을 알 수 있다. 이 때 투여되는 것은 다름아닌 시간이다. 물리학적인 시간일 수도 있고, 혹은 인간의 24시간 일상이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가능성의 범주일 수도 있다. 생명유지를 위해 필수로 써야 하는 먹고 마시고 잠자는 시간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생산에 투여하는 노동시간이 아닌 제 3의 시간 사용으로 우리는 예술, 문화, 놀이와 같은 영역에 시간을 쓴다. 인간의 시간을 아주 크게 세 덩이로 나눈다면, 생존 – 노동 – 여가라는 세 가지 분류를 적용해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매체와 비슷하면서도 독특한 상품으로 자리잡은 디지털게임 디지털게임 플레이를 포함한 놀이와 여가 전반은 기본적으로 시간을 소비하지만, 기존의 놀이, 여가와 달리 디지털게임에서는 많은 경우 시간과 함께 돈을 써야 한다는 전제가 덧붙는다. 최초의 디지털게임을 이야기할 때 수많은 초창기 프로토타입 중에서도 <퐁>이 거론되는 이유는 이 게임이 본격적인 상업적 게임이고, 그 상업성을 딛고 생산과 유통 양 측면에서 유의미한 대중화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디지털게임의 대중화는 디지털게임의 상업적 성공을 딛고서야 가능한 부분이다. 물론 여러 놀이 중 시간과 돈을 함께 써야만 하는 것이 오직 디지털게임만의 특징은 아니며, 이는 상업성에 기반한 현대의 많은 대중문화들이 공통적으로 딛고 있는 전제다. 놀이문화 전체를 큰 역사적 범주에서 본다면, 시간을 쓴다는 공통전제 안에서 우리는 경제적 소비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놀이가 등장하는, 이른바 자본주의적 여가의 시대를 놀이의 두 번째 시대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돈과 시간을 함께 쓰는 자본주의 시대 놀이로서 디지털게임은 그러나 다른 대중문화의 놀이와 매체 자체의 특성을 통해 차별화되는데, 바로 돈과 시간이 독특하게 어우러지며 서로 등가교환할 수 있는 위치에 선다는 점에서다. 구매나 대여를 통해 접하는 책이나 영화, 광고시청과 같은 간접적 방식의 돈/시간 소비를 활용하는 텔레비전이나 신문 같은 매체에서는 금액을 지불한 만큼의 향유시간을 구매한다고 볼 수 있는 패턴이 나타나지만, 디지털게임에서는 그와 더불어 경우에 따라서는 놀이시간 자체를 현금지불을 통해 대체할 수 있는 방안도 제시되기 때문이다. 아케이드 시절의 디지털게임: 숙련도와 현금의 교환관계 디지털게임에서의 시간/돈 소비는 초창기에는 극장에서의 영화 상영과 유사한 맥락으로 나타났다. <퐁>은 공공장소에 설치된 게임기에 동전을 투입하고 일정한 플레이 기회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는데, 이는 공공 기기에 대해 일련의 임대료를 지불하고 사용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가깝게는 그 이전의 놀이기구들이었던 핀볼이나 주크박스와, 조금 더 멀고 넓게는 공공장소의 기기 대여라는 의미에서 영화 상영의 방식과 유사했다. 초창기 아케이드를 중심으로 시작된 디지털게임 문화는 한국의 경우 21세기 전까지 이어진 오락실 문화를 중심으로 디지털게임의 일반적인 소비방식을 돈과 시간을 결합해 사용하는 형태로 대중 및 소비자들에게 인식시켰다. 그런데 다른 매체와 달랐던 점은, 이러한 지불방식은 디지털게임에서는 소비자/이용자의 숙련도에 따라 1코인당 플레잉타임이 가변적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는 이른바 가성비, 일정한 금액을 투여한 뒤 얼마만큼의 시간동안 기기를 점유해 플레이할 수 있느냐가 다른 매체와 달리 플레이어의 숙련도에 의해 좌우되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이 때 돈과 시간의 관계는 매우 독특하게 결합했다. 기계에 코인을 넣는 일은 일정한 기회를 대여하는 방식이었지만, 그 기회의 시간은 숙련도에 의해 좌우되었다. 그리고 숙련도를 키우는 길은 개인차를 떠나 더 많은 동전을 투입하여 실력을 쌓는 길이었다. 개인차가 있다고는 하지만 대체로 많은 돈을 지불하고 오랫동안 기계를 점유할수록 1코인당 점유시간은 늘어나는 구조라는 것이다. 책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읽는다고 책값에 변동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물론 만화대여점 같은 경우 시간 단위로 이용하게 되는데, 이런 경우는 매체의 유통채널이라기보다는 공간대여로서의 의미가 더 크니 예외로 두자) 게임의 경우에는 효율적인 플레이를 숙달할수록 1코인의 가치가 올라가는 구조였다. 게임에서 시간과 돈이 엮이는 독특한 형태는 이미 아케이드 시절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온라인시대의 현질은 시간과 돈을 맞교환하는 과정이다 1970년대 말부터 이뤄진 가정용 콘솔과 PC의 보급을 통해 디지털게임의 소비는 공공기기 대여에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를 직접 구매해 소유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게임기기를 개인이 소유하게 되면서부터는 다시금 다른 매체와 유사한 형태로 돈과 시간의 문제가 얽힌다. 한 번의 구매로 영원히 소유하는 게임에서 플레이어의 숙련도는 더 이상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른바 스탠드얼론 패키지라는 형태로 콘솔, PC를 중심으로 게임의 구매가 이루어지던 시절의 시간 / 돈 관계는 온라인게임으로 디지털게임의 중심이 옮겨오면서부터 다시금 큰 변화를 맞이한다. 소프트웨어가 서버상에 위치하게 되고, 사용자는 소프트웨어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소프트웨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구매 혹은 대여하게 되면서 게임에서의 시간 / 돈 관계는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냈다. 가장 대표적인 시간 / 돈 관계의 변화는 아이템의 현금 구매가 가능해졌다는 사실이다. 게임이 만든 가상공간 안에서만 도구적으로 유의미한 물질로서 인식되는 아이템은 대체로 게임 안에서의 플레이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며, 이 때의 플레이는 상당부분 시간의 소모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를테면 일정 수준 이상의 공격력을 가진 검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평균적으로 들여야 하는 사냥, 혹은 레벨업에의 시간 소비가 필수적이다. 그런 게임 아이템을 현금으로 구매 가능하게 만들 경우, 게임 플레이에 들어가는 시간은 현금으로 교환가능한 가치로서 다시금 의미지어진다. 기존에는 직접적 교환이 불가능했던 플레이 시간이 현금과 등가교환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게임사가 직접 아이템 – 현금의 교환 창구를 만들기 전부터도 시작된 바 있었다. 200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서버상에서 작동하는 온라인 MMORPG가 대세가 된 이후, 이용자들은 스스로 특정한 아이템을 현금을 대가로 거래하는 사례들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른바 ‘쌀먹’이라 불렸던, 게임 아이템을 팔아 현금을 확보하는 사례들은 게임에서의 시간 / 돈 관계가 변화했음을 드러내는 중요한 사례였다. 자동사냥과 아이템거래: 숙련도를 벗어난 새로운 유희적 시간의 의미 이후 2010년대 들어 스마트폰의 대중화가 이뤄지면서 상호 교환이 가능해진 플레이시간과 현금의 관계는 보다 본격화되는데, 여기에는 터치스크린 인터페이스라는 한계도 일정부분 영향력을 발휘했다. 과거의 스틱, 키보드/마우스처럼 세밀한 컨트롤을 구사하기 어려워진 터치스크린 환경에서 플레이어의 숙련도는 과거만큼의 의미를 플레이 안에서 갖추기 어려워졌고, 이에 따라 플레이의 결과물은 개인의 숙련도보다 한 플레이어가 얼마나 오랫동안의 시간을 사용해 서버에 접속해 활동했느냐의 질문에 가까워졌다. 이 변화의 끝에는 자동사냥이 서있다. 굳이 플레이를 ‘직접’ 하지 않아도, 단지 서버에 접속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시말해 플레이어가 자신의 숙련도를 활용해 개입하는 전통적 의미의 플레이를 하지 않아도 단지 서버에 접속한 시간만을 인증해주면 게임 플레이가 자동으로 이루어진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접속 플레이의 효율을 올려줄 수 있는 권한, 이를테면 자동사냥 효율 부스트라던가, 애초에 자동사냥 자체의 접근을 가능케 해주는 아이템들이 현금으로 구매가능한 대상이 되면서 게임플레이에서의 돈과 시간은 완벽히 상호 교환이 가능한 형태로 안착하기 시작했다. 탕진의 재미와 축적의 재미가 혼용되는 시대 온라인게임 시대가 만들어낸 이 변화는 놀이 역사에서 보기 드문 전환을 만들어냈다. 노는 일이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무언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놀이의 본질은 일종의 무용함, 생산의 시간에 맞선 시간 탕진의 즐거움에 가까웠지만,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는 그 무용함의 효용마저도 상품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이기도 하다. 정말 그 무용함은 돈으로 살 수 있는가? 내가 생산하지 않는 시간에 만들어냈던 즐거움, 난해한 퍼즐을 돌파하는 과정과 그 결과에서 얻을 수 있었던 희열과, 생산하지 않는 활동임에도 충분한 성취감을 만들어냈던 수많은 가상세계에서의 모험들은 정말 돈으로 사서 대체할 수 있는 무엇이었는가? 라는 질문을 끝없이 스스로에게 던지다보면, 혹여 이 돈으로 산 즐거움은 과거 시간의 탕진을 통해 얻었던 즐거움과는 다른 무엇은 아닌지에 대한 의심이 올라온다. 오히려 이 즐거움은 탕진의 즐거움이 아니라, 축적의 즐거움이다. 서버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나의 플레이 시간 기록이 현실의 재화와 교환가능한, 혹은 교환되지 않더라도 가상의 그 무언가가 축적되어 가고 있음을 확인할 때의 즐거움. 사실 우리가 눙쳐서 게임의 재미라고 부르는 효용의 순간은 적어도 시간이 돈과 교환되기 시작한 온라인게임 이후에는 본질적으로 다른 두 가지의 재미가 섞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Editor's View] 무던히도 게임이 많았던 2023년을 마무리하며
2년 반동안 GG의 글들을 눈여겨 봐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내년 2월, GG는 여전히 디지털게임과 우리라는 주제를 들고 변함없이 돌아오겠습니다. 차분함과 평온함이 가득한 연말연시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 Back [Editor's View] 무던히도 게임이 많았던 2023년을 마무리하며 15 GG Vol. 23. 12. 10. 2023년은 특히 작년인 2022년과 비교해 본다면 굵직하고 유의미한 게임들이 무더기로 쏟아진 한 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나면서 게임은 시들해지겠지 싶었지만 오히려 쏟아지는 게임 덕분에 누군가에겐 밖에 나가기가 힘든 한 해였을 수 있을 것입니다. 워낙 대작들도 많았고, 작지만 의미가 묵직한 게임들도 많았습니다. 아마 올해 이루어질 여러 게임 어워드는 어느 해보다도 치열할 것이고, 비록 수상에 이르지 못하고 후보로만 머무르는 게임조차도 다른 해였다면 GOTY급의 위상을 차지할 수도 있었을 수많은 게임들이 2023년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GG는 그동안 GG를 거쳐간 여러 필자분들에게 당신들에게 있어 2023년을 기억할 만한 게임은 무엇이었는지를 물었고, 그 답변을 글로 받아보았습니다. 이 중에는 올해 여러 어워드를 휩쓸 대중적인 게임도 있고, 혹은 정말 소수의 마니아들만 만져볼 법 했던 게임들도 있습니다. 게이머 개개인에게는 모두에게 각자의 GOTY가 있을 것이지만, 비좁은 지면에서 그 모든 걸 다루기는 어렵기에 우리는 우리 각자에게 2023년의 게임이 무엇이었는지를 스스로 물어보는 선에서 그치게 되었습니다. 2021년 6월에 첫 선을 보였으니 이제 GG의 나이는 두돌 반, 곧 햇수로는 4년차를 맞이합니다. GG는 특정한 게임 타이틀을 두고 평점을 매기지는 않습니다만, 내년부터는 여건이 된다면 GG의 입장에서 한 해를 정리하는 GGG(Game Generation GOTY)를 손대볼 의향도 있습니다. 2023년 12월호는 그 작업의 얼리 억세스라고 봐주셔도 좋겠습니다. 2년 반동안 GG의 글들을 눈여겨 봐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내년 2월, GG는 여전히 디지털게임과 우리라는 주제를 들고 변함없이 돌아오겠습니다. 차분함과 평온함이 가득한 연말연시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수퍼히어로물의 다음 세대를 건져올린 <디스패치>
가장 미국적인 문학 장르인 수퍼히어로는 경이(amazing)적 판타지의 장르다. 주인공 히어로와 빌런이 사용하는 초능력이라는 경이 요소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때문에 판타지이며 개연성 대신 핍진성만이 작동하는 장르다. 이 장르는 만화와 라디오 드라마를 거쳐 영상 영화를 지나 게임까지 와 있다. < Back 수퍼히어로물의 다음 세대를 건져올린 <디스패치> 28 GG Vol. 26. 2. 10. 디스패치의 수퍼히어로적 이분법 가장 미국적인 문학 장르인 수퍼히어로는 경이(amazing)적 판타지의 장르다. 주인공 히어로와 빌런이 사용하는 초능력이라는 경이 요소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때문에 판타지이며 개연성 대신 핍진성만이 작동하는 장르다. 이 장르는 만화와 라디오 드라마를 거쳐 영상 영화를 지나 게임까지 와 있다. 애드혹 스튜디오의 2025년작 디스패치(Dispatch)는 수퍼히어로 문학에서 찾기 어려운 약간 독특한 구도를 내세운다. 수퍼히어로 문학을 게임이 풀어낼 때는 전투라는 요소에 초점을 맞춰 히어로 체험을 메인 컨텐츠로 삼는다. 아캄 시리즈는 배트맨의 전투와 수사를 체험한다는 컨셉이고, 마블 스파이더맨 시리즈 역시 스파이더맨의 전투와 웹 스윙을 체험하는 것이 게임의 핵심이다. 반면 디스패치의 히어로 전투는 시네마틱 씬의 중간에 QTE(Quick Time Events)를 입력하는 정도이며 이는 게임의 강점인 체험 컨텐츠라기엔 무리가 있다. 디스패치, 파견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이 게임의 주인공은 히어로가 아니라 히어로를 보조하는 동료다. 히어로의 동료는 보통 조수 혹은 사이드킥(sidekick)으로 불린다. 디스패치의 주인공은 방금 일시 은퇴를 한 히어로지만 다른 히어로의 사이드킥이라기보다는 히어로들에게 임무 정보를 제공하여 임무 지역으로 보내는 임무를 맡은 사람이다.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스파이더맨의 친구 네드 리즈는 이 오퍼레이터 역할을 의자에 앉은 자, Guys in the chair라고 표현했다. 그 말 그대로 주인공 로버트는 책상에서 네트워크 단말기 앞에 앉아 헤드셋을 쓰고 있다. 게임의 주 컨텐츠는 로버트가 들여다보는 화면 안에서만 이루어진다. 메카맨이라는 이름으로 3대째 히어로를 하던 로버트는 메카맨 수트의 파괴로 인해 일시 은퇴하게 된다. 그는 스카웃 제의를 받아 SDN(Superhero Dispatch Network)이라는 회사에 취직해 디스패치 업무를 맡게 된다. 이 회사는 구독제 서비스를 제공한다. 구독 회원들은 앱을 통해 목격 사실을 제보하거나 의뢰를 하고, 회사는 소속 히어로를 현장에 투입하는 일종의 용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히어로 팀에게 임무 위치와 임무 내용을 설명하고 돌발 상황 발생시 추가 정보를 찾아 제공하는 업무를 로버트가 속한 디스패치 부서의 인원들이 맡는다. 그리하여 게임은 두 가지 축으로 돌아간다. 일과를 시작하면 로버트의 단말기 화면에 떠있는 지도 위에 의뢰 핀이 뜬다. 제한 시간 내에 해당 의뢰에서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는 조합으로 팀의 히어로 하나 이상을 선정해 파견(dispatch)한다. 파견된 히어로들이 해당 의뢰를 처리하고 복귀해 한숨 돌리는 동안에도 다른 의뢰가 뜨고, 각각의 제한 시간 내에 의뢰 접수를 하여 성공할 수 있도록 시간 분배와 캐릭터 조합을 행한다. 의뢰 성공의 보상으로 히어로가 성장 기회를 얻으면 그 성장 방향도 결정한다. 이 일과가 게임의 한 축이다. 다른 한 축은 일과 업무가 끝나고 내일 업무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시간에 벌어지는 QTE와 선택지다. 오프듀티 시간에 파괴된 메카맨 수트의 복구 같은 개인사, 담당하는 팀원들을 비롯한 회사 동료들과의 인간 관계가 여기서 진행된다. 이 두 축으로 이루어진 게임 플레이가 하루하루 쌓이면서 선택지에 의한 서사 분기도 이루어진다. 연애는 블론드 블레이저와 인비저갤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동시에 히어로로서는 낙제점인 인비저갤을 어떻게 성장시켜 히어로로 육성하는가 하는 멘토링 임무가 깔려 있다. 그러면서 로버트의 인간상을 고전적이고 윤리적인 ‘트루 히어로’로 할 것인가, 반대로 정의를 위해서는 윤리를 구부릴 수 있는 ‘안티 히어로’로 할 것인가의 선택지도 계속 주어진다. 이는 최후의 결전 후에 메인빌런 슈라우드의 생사를 결정하는 선택이 된다. 플레이 컨텐츠 두 가지, 연애 선택지 두 가지, 멘토링 성공의 이지선다, 윤리 선택지 두 가지, 세상을 선악의 둘 – 영웅과 악당으로 나누는, 물론 중간지대는 인정하지만, 수퍼히어로 장르의 세계관적 특성이 게임 플레이와 서사에도 적용되어 있다. 그리고 본작 디스패치의 특성은 그렇게 나뉜 두 영역을 대표하는 히어로와 빌런 중에서는 주인공이 없다는 점이다. 로버트는 히어로였으나 본작에서는 히어로를 보조하는 ‘의자에 앉은 사람’ 역할을 수행한다. 여타의 수퍼히어로 서사에서는 주변 인물이었던 포지션의 시야가 중심 서사로 이동했다. 이는 수퍼히어로 장르가 꾸준히 발전시킨 현실성 강화 흐름의 한 형태인 동시에, 수퍼히어로 서사의 다음 돌파구를 찾는 시도 중 하나일 수 있다. 현실성을 찾는 수퍼히어로 1939년 수퍼맨이 탄생하면서 수퍼히어로 장르의 신드롬이 일어났다. 초능력을 가진 강력한 영웅이 자신을 상징하는 코스튬을 입고 범죄와 사고를 수습하며 사람들을 돕는다는 서사 장르였다. 당대의 최신 장르로 시작한 만화에서 시작해 라디오 드라마와 영화로 옮겨갔다. 장르의 특징이 서사의 구조에 있다 보니, 그 서사를 살려줄 수 있는 수많은 장르와 결합하면서 혼종 장르가 되었다. 수퍼맨은 SF의 요소를 가져왔고, 배트맨은 탐정 활극의 서사 요소가 들어왔다. 네이머와 원더우먼은 신화에서 가져온 소재였고, 캡틴 아메리카는 전쟁물과 첩보물의 문법을 일부 차용했다. 흥행 면에서 최고 기록을 올린 캡틴 마블 – 현재 명칭 샤잠은 아동 만화의 성격을 표방했고, 코믹 만화의 요소를 본격적으로 가져온 플라스틱맨 같은 예까지 등장하면서, 수퍼히어로 장르는 만화라는 신생 장르를 대표하는 하위 장르로 성장했다. 온갖 장르를 흡수하던 이 황금기를 음역하여 골든에이지라 부른다. 골든에이지는 2차대전의 종전 이후 급격히 사그라들었다. 명확한 선악 대비 구도로 서술할 수 있었던 전쟁에 수퍼히어로 장르가 프로파간다로서 복무한 직후, 만화의 버블 또한 함께 꺼지면서 몰락한 것이다. 하지만 60년대가 되면서 재부흥 시기가 도래했고, 이 두 번째 황금기를 골든 에이지에 이어지는 실버 에이지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도 타 장르의 성과를 차용하는 잡탕 장르로서의 성격이 보였다. 플래시는 물리학의 시간과 속도 개념을 대중 문학의 형태로 번역하면서 SF 수퍼히어로의 계보를 이었고, 리뉴얼된 그린랜턴은 아예 스페이스 오페라의 세계에 수퍼히어로를 넣는 작업이었다. 아이언맨은 역사 속 철가면의 이미지에 과학기술의 외피를 넣은 시도였고, 닥터 스트레인지는 당대 호러 영화의 형식과 사이키델릭 음악의 분위기를 만화에서 접목하는 시도인 동시에 신화 요소 위에 오컬트의 요소가 덧씌워지는 시도이기도 했다. 그리고 60년대의 기술입국 분위기와 포스트모더니즘 분위기의 당대성은 실버 에이지의 수퍼히어로들의 설정을 조금은 더 현실적이게 만들었다. 전 지구의 소리를 다 들을 수 있고 주먹질로 행성을 부술 수 있으면서도 도덕적으로 완벽한 인물인 수퍼맨과, 신체 능력도 직업적 소양도 윤리철학의 관념도 모두 매우 모범적인 완벽한 인물인 캡틴 아메리카의 예시는 골든 에이지 시절의 수퍼히어로에 신화의 성격이 있음을 암시하는 증거다. 실버 에이지부터는 전능한 신과 같은 영웅보다는 제한된 초능력 혹은 인간적 약점이 있어 현실 세계에 접점을 갖는 히어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현실성의 닻’이라고 부르기를 주창하는 이 흐름을 주도한 사람이 스탠 리다. 수퍼히어로의 서사와 설정이 심화 발전되면서, 이 현실성의 닻은 점점 커져 갔다. 70년대부터는 사람들이 비평적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는데, 그 질문은 이랬다. ‘현실이라면, 이런 히어로의 주변 사람들은 빌런에 의해 안전을 위협받을 것이다. 그럼 과연 히어로가 그 모든 주변인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을까?’ 73년에 그 대답이 나왔다. 스파이더맨의 연인 그웬 스테이시가 빌런 그린 고블린의 공격에 의해 사망했다. 사상 최초로 수퍼히어로 장르에서 주요 인물이 죽었고, 이 사건의 충격은 새로운 시대인 브론즈 에이지를 낳았다. * 이 상징적 장면은 영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에서도 동일하게 재현되었다. 시장 상황으로 서술하면 일종의 연착륙, 즉 골든 에이지의 급격한 몰락과는 대비되는, 일종의 성숙기인 이 브론즈 에이지의 특징은 실버 에이지 시대가 던진 화두인 ‘현실감 있는 세계 구축’을 본격적으로 시도했다는 점이다. 점점 동화적인 분위기가 줄어들었고, 등장인물들의 인격적 결점이 부각되었으며, 등장인물의 죽음이나 파멸 같은 소재가 점점 잦아졌다. 사회 이슈를 직접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 또한 이 시기의 특징이다. 1971년의 ‘Snowbirds Don’t Fly’는 그린 랜턴과 그린 애로우 두 사람이 마약 범람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는 내용이다. 같은 해의 스파이더맨에서는 해리 오스본이 마약 중독으로 고통 받는 장면을 내보냈다. 이 두 만화는 검열 코드를 이겨내는 사례로도 많이 인용되지만, 동시에 수퍼히어로 만화가 사회 문제를 반영할 만큼 현실적으로 성숙해졌다는 증거로도 인용된다. 이런 조류가 더 많이 반영되는 동시에 다양성의 가지로 뻗어나간 현재를 일반적으로는 모던 에이지라고 부른다. 명확한 시기 정의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신호탄은 1986년의 ‘왓치멘’으로 꼽는 것이 중론이다. 모순 투성이의 사회에서 히어로는 딱히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증상을 억누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서사적 상상력이다. 그래서 별칭으로는 다크 에이지, 암흑기라고도 부른다. 또한 현대에 들어서면서 영상화의 시도가 늘어났다. 그리하여 현대 영화 장르에서 수퍼히어로를 정착시킨 1989년의 배트맨 영화 또한 어두운 도시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히어로 서사를 사용했다. 탐정 활극 소설이 배트맨의 모태였고 이후 역사가 진행되면서 탐정 느와르 또한 배트맨 서사에 들어왔는데, 그 어두운 테이스트가 그대로 영상으로 이어진 것이다. 더욱더 어두워야 하니 인물의 죽음이나 파멸을 통해 독자에게 충격을 전달하는 기법 또한 이어졌다. 1999년이 되면 작가 게일 시몬은 그웬 스테이시의 죽음 이후 히어로 주변인물의 죽음과 파멸이 지나치게 자주 사용되며 동시에 주로 여성 인물에게 가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성 히어로의 동기 부여나 각성을 위해 여성 인물이 희생되는 이 현상은, 1994년 그린 랜턴의 이야기에서 주인공 카일 레이너의 여자친구가 토막 나 냉장고에 들어가있었던 장면에서 따와 ‘냉장고 속 여자(Women in Refrigerators)’로 명명되었고 곧 프리징(fridging)이라는 약어도 등장했다. 현실감을 높이기 위한 시도 중의 부작용이었다. 현실감을 높이기 위한 시도는 영상화에선 핵심이었다. 몇십 년 전에 디자인된 코스튬은 영상으로 만들어놓으면 촌스럽거나 현실감이 없었다. 때문에 배트맨이건 엑스멘이건 모든 히어로의 영상화 과정에서 코스튬 디자인의 현대화는 필수 작업이 되었다. 미국적 핍진성 추구의 보수성 역사의 흐름은 계속해서 핍진성의 강화, 즉 현실감 강화였다. 그리고 그 첨단에서 디스패치는 기업이라는 조직을 상상한다. 히어로가 일상의 일부가 될 정도의 세계라면 히어로의 활동을 통해 가치 창출과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생길 수 있다. 어벤져스, 저스티스 리그와 같은 히어로 집단이 법인이 된 세상이다. 이 상상력은 새롭지 않지만, 디스패치는 새롭게 만들었다. 한 발 더 나아가 기업이 조직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히어로가 아닌 히어로의 활동을 뒷받침하는 ‘의자에 앉은 자’의 시점으로 게임을 조직한 것이다. 그리하여 디스패치에는 그간 수퍼히어로 장르가 수집해 온 타 장르의 요소가 모두 자본주의적 기업의 아래에 모였다. 메카맨을 비롯한 테크놀로지 계통이 대표하는 SF, 말레볼라가 대표하는 신화와 오컬트 같은 다양한 요소 말이다. 이것 또한 지극히 미국적이다. 다종다양한 인종과 문화와 종교가 모여 있지만 완전히 섞여 온전한 하나가 되지는 않는, 샐러드 보울로서의 미국인 동시에 자본주의적 가치를 추구하는 조직이 이를 모아놓은 것 또한 미국의 모습이다. 동시에 등장인물들이 주고 받는 블랙 유머는 탐정 느와르의 흔적임과 동시에 농담을 중요시하는 미국 문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로버트가 담당하는 Z팀의 성격 또한 매우 자본주의에 포섭되어 있다. 갱생 전향한 전직 빌런들로 이루어진 이 팀의 실적은 매우 낮다. 로버트가 채용되면서 받아든 가장 중요한 임무는 실적 꼴찌인 인비저갤을 온전한 히어로로 키워내는 것인 동시에 Z팀을 회사가 해산하지 않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 멤버 한 명을 해고해야 하기도 한다. 이는 수퍼히어로 장르 자체가 가지는 한계 혹은 보수성을 연상시킨다. 수퍼히어로에는 혁명의 서사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수퍼히어로는 중국 문학의 협객처럼, 공권력이 무력한 자리에서 정의를 행하는 존재다. 혁명 서사로 이어질 법도 한데, 그보다는 현재의 사고와 범죄를 처리하는 서사에 집중한다. 간간이 사회 변혁에 개입하기도 하는 무협 서사와는 달리 수퍼히어로 서사에는 기본 구도를 흔드는 식의 혁명성이 없다. 언제나 사고와 범죄가 있고 도움을 기다리는 무력한 대중이 있는 세계를 상정하고 있는 장르이기 때문에 나오는 보수성이다. 그리하여 디스패치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인 회사, SDN은 물리법칙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Z팀 멤버들이 왜 빌런에서 갱생하여 히어로가 됐는지 그 동기도 다뤄지지 않는다. 전향한 것은 한 것이고, 회사에 들어왔으니 해고되지 않고 성장해야 하며, 해고되면 원한을 갖게 된다. 범죄의 근원을 찾지 않는 수퍼히어로처럼, 디스패치의 회사는 의심의 대상이 아니다. 개헌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미국다운 상상력의 한계이기도 하다. 시선 이동의 가치 한계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넘어가더라도, 시선을 옮긴 것은 중요한 시도다. 모던 에이지의 수퍼히어로 장르는 현재 답보 상태에 있다. 온갖 장르에서 가져온 요소를 엮고 섞어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고, 더 많은 서사를 위해 평행 우주를 만들어냈지만, 이 확장된 세계는 확장성의 맹점으로 인해 진입 장벽이 되어버리는 모순을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만화에서 발생한 양날의 검은 이제 영상에서도 발생했다. 어벤져스 다음 영화를 온전히 이해하고 즐기기 위해서 봐야 하는 이전의 영화와 드라마가 너무 많아지고, 그 각각의 작품이 서로 너무 많은 예고 장면을 보여주면 관객들이 피로해졌다. 서사의 클리셰는 훨씬 오래 전부터 고민의 대상이었는데, 수용자가 장르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하자 클리셰의 부정적 측면이 더욱 크게 다가오게 되는 악순환이 만들어졌다. 수퍼히어로 게임이 맞닥뜨린 벽은 조금 다르다. 게임은 포맷의 획일성 하나만을 고민하는 중이다. 수퍼히어로를 소재로 한 게임이라면 가장 먼저 착안하게 되는 것이 수퍼히어로 체험이다. 당연히 수퍼히어로를 직접 조작하는 것, 즉 전투 위주의 게임 플레이가 주축이 된다. 그리하여 주류는 액션 어드벤처 장르가 되었다. 배트맨, 스파이더맨, 어벤져스 모두가 같은 장르로 만들어졌다. 수집 배틀 장르는 꾸준히 시도되었지만 액션 어드벤처처럼 주류가 되지 못했다. 가장 먼저 시도된 장르인 격투 게임은 장르 자체가 매니아화 되면서 주류에서 밀려났다. 마블 미드나잇 선즈는 전투 위주의 장르이지만 턴제 전략을 기본 시스템으로 하면서 특색을 보였지만 흥행에서 아쉬운 성적을 내면서 다른 시도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본작 디스패치의 이전 세대인 텔테일 배트맨 시리즈 또한 클래식한 어드벤처 장르를 시도했지만 평이한 스토리와 선택지의 무의미함이 발목을 잡았다. 반면 디스패치는 텔테일 배트맨 시리즈의 미흡한 점을 보완한 동시에 아예 히어로를 주인공에서 내려버리는 발상까지 보여주면서 흥행 성적도 올렸다. 액션 장르 외의 어드벤처 형식으로도 충분히 수퍼히어로 게임을 만들 수 있음을 알린 동시에, 서사의 시점을 히어로가 아닌 주변인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다른 형태의 서사를 조직할 수 있음도 증명했다. 배트맨의 집사 알프레드로서 플레이하는 게임도 가능할 수 있다. 혹은 SDN의 CEO가 되어 경영 시뮬레이션을 플레이하는 것도 상상할 수 있다. 게다가 상상을 조금 더 해보면, 현재 답보 상태인 만화와 영상에 건네는 힌트가 될 수도 있다. 최소한 클리셰 변형의 시도 중 하나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조금 더 상상을 넓혀서 비약의 영역으로 간다면, 수퍼히어로 장르 전체가 변화하는 단초일 수도 있다. 모던 에이지의 시작은 정의에 따라 다르지만 80년대의 어느 시점 혹은 90녀대의 어느 시점이다. 이미 30에서 40년 가량 지나왔으니 다음 시대를 그려볼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 그렇다면 어두운 현실 반영으로 시작해 다양한 플랫폼과 형태로 뻗어나간 이 시대의 다음을 어떤 형태로 상상할까가 과제가 된다. 영웅 서사에서 영웅이 아닌 주변인의 시점으로 옮겨간 이 시도는 다음 시대로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이 가장 첨단의 미디어인 게임에서 제시되었다고 해석하면 첨단성에 대한 찬사로도 보일 것이다. 이 장르의 한 팬으로서는 충분히 기대하고 싶다. Tags: 히어로물, 코믹스, 골든에이지, 북미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AAA의 한계를 뒤로 하는 북미 게임업계의 뉴미들
지난해 11월, 워너 브라더스 게임즈는 수년간 공들여 개발한 <수어사이드 스쿼드: 킬 더 저스티스 리그>에 오프라인 모드를 추가한다는 내용을 조용히 발표했다. 겉으로는 유저 편의를 위한 업데이트처럼 보였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이를 사실상의 서비스 종료 예고로 받아들였다. < Back 28 GG Vol. 26.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ounghoon Hong Lives in California and works in the game industry. Aims to offer insight to as many people as possible through podcast appearances and contributions to various outlets. Hopes to spend a lifetime writing engaging pieces across every field, from fashion to games.
- 도시 밖도 자본의 바깥은 아니다 - 〈동물의 숲〉과 자본주의
‘문명 6’에 등장하는 ‘쇼핑몰’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상업지구가 아닌 주거지역에 지을 수 있는 건물로 등장한다. 건물의 효과 또한 쇼핑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과 조금 다른데, 단순히 상업수익이 나는 곳이 아니라 거주민의 쾌적도와 지역의 관광을 크게 올려주는 효과가 핵심이다. 우리의 여가는 시스템 밖을 꿈꾸지만, 그 밖을 향하는 경로까지도 자본주의 시스템은 상품화한다. 설령 무인도에서의 고요한 삶을 꿈꾸더라도 그조차도 Inc. 가 붙은 기업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숲〉의 설정은 애초에 그런 삶을 생각하며 게임 시스템에 접속하게 되는 시대에 대한 거친 스케치로도 읽힌다. < Back 04 GG Vol. 22.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규모의 문화상품 - 블록버스터 영화와 트리플A 게임
약간의 오해를 감수하고 말해보자면, 어느 순간부터 게임 시장은 트리플A 게임과 인디게임으로 양분되어 있다. 이는 트리플A 게임과 종종 비교되곤 하는 영화의 블록버스터 개념과도 차이를 보인다. 소위 상업영화라 불리는 범주 속에 블록버스터가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상업영화가 블록버스터는 아니다. 중저예산의 로맨스, 코미디, 호러 영화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으며, 이 영화들은 예술영화나 독립영화 등 비상업적 영역에 속해 있지 않다. 다만 대규모의 자본이 투입되어 제작, 유통, 홍보되는 영화가 아닌 작은 규모의 상업영화일 뿐이다. 게임은 그 반대의 위치에 놓인다. 영화는 소수의 블록버스터를 ‘텐트폴 영화’라 부르며 그에 속하지 않는 다수의 저예산 상업영화, 독립영화, 예술영화 등으로 구성된 시장을 지닌다. 게임도 몇몇 트리플A 게임이 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스트레이〉(2022), 〈잇 테이크 투〉(2021)와 같은 인디게임들이 흥행을 기록하고 〈뱀파이어 서바이버즈〉(2022)처럼 유행을 선도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게임은 트리플A 게임이든 인디게임이든 상업성을 우선적으로 추구한다. “비상업적 게임”이라는 어색한 어감의 단어조합은 극소수의 예술적 게임, 혹은 전시나 공공성을 위해 만들어진 몇몇 게임만이 속해 있을 뿐이다. < Back 10 GG Vol. 23.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ngsoo Park Majored in art studies as an undergraduate and is currently studying media cultural studies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Yonsei University. Writes primarily about film, while keeping a curious eye on visual culture broadly—art, games, and broadcasting among them. Also a film critic, host of the podcast Café Critique, and an organizer of community film screenings.
- [논문세미나] Horror Video Games and the “Active-Passive” Debate 호러 비디오 게임과 “능-수동” 토론 / 데이비드 크리스토퍼 & 에이단 로이즐러
결론적으로 저자들은 위의 작품들을 루돌로지적 상호작용성으로 명명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루돌로지적 행위성을 강조하는 이분법으로는 위 작품들이 발휘하는 특유의 효과를 온전히 담아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모든 호러 게임을 루돌로지적 상호작용성의 원리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 Back [논문세미나] Horror Video Games and the “Active-Passive” Debate 호러 비디오 게임과 “능-수동” 토론 / 데이비드 크리스토퍼 & 에이단 로이즐러 19 GG Vol. 24. 8. 10. 시각문화 연구자인 버나드 페론은 2009년 『Horror Video Games: Essays on the Fusion of Fear and Play』라는 책을 출간한다. <바이오 하자드>나 <암네시아> 시리즈와 같은 호러 게임이 향유층을 탄탄히 다져가며 인기를 끌고 있지만 정작 학계에서는 호러 비디오 게임에 대한 논의가 소외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작업이었다. 현장 종사자와 연구자를 아우르는 다양한 필자가 호러라는 장르와 게임의 접합에 관한 아이디어를 개진했다. 페론은 영화와 게임을 비교하며 생존 호러 게임이 어떻게 특유의 공포를 전달하는지 설명한다. 영화 관객은 화면을 통해서 주어지는 감각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네스틱’ 주체다. 관객의 몸은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몸이 겪고 있는 황홀한 감각을 느끼고자 한다. 생존 호러 게임도 그와 비슷한 메커니즘으로 공포를 전달할 수 있다. 플레이어의 몸 역시 영화 관객과 마찬가지로 “화면 속 신체의 감정이나 감각을 무의식적으로 모방”한다 [1] . 그런데 게임의 경우에는 매체 고유의 ‘루돌로지적’ 메커니즘이 플레이어와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융합을 촉진한다는 것이 페론의 주장이다. 게임에서는 플레이어의 입력이 캐릭터의 표현으로 게임 내부 공간에 매핑되고, 그렇게 구현된 효과는 곧 플레이어의 의도, 지각, 행동이 융합된 결과물이다. 요컨대 플레이어가 주관적으로 느끼기에 ‘살아있는 몸’을 만듦으로써 공포를 더욱 생생하게 전달한다는 것이다. 책의 다른 저자들 역시 유사한 전제를 공유하고 있다. 2009년에 출간된 책이 위 같은 방식으로 호러 게임을 설명한다면, 과연 10여 년이 지난 현시점에선 어떤 방식의 해설이 가능할까? 또, 페론의 책에서 주요하게 다루던 호러 게임은 주로 생존 호러에 치중해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분명 <사일런트 힐>과 같은 게임들은 호러 게임의 대표격으로 인용되지만, ‘호러’를 보다 다양하게 구성할 수는 없을까? 여기서 다루는 데이비드 크리스토퍼와 에이단 로이즐러의 글은 『Horror Video Games: Essays on the Fusion of Fear and Play』의 가정들을 해부한다. 그 가정이란 초기의 루돌로지가 취하던 순진한 이분법-능동적인 게임 플레이 vs. 수동적인 영화 관람-이다. 두 저자는 다양한 이론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며 호러와 미디어가 결합하는 미묘한 방식을, 더 나아가 게임과 호러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확장하고자 한다. (*논의에 앞서서 호러라는 주요 개념에 대해 정리하고자 한다. 이 글에서 논하는 호러 개념은 예술평론가인 노엘 캐럴의 정의를 잇는다. 노엘 캐럴은 호러가 “괴물이 등장하는 허구적 서사”로, “이때의 괴물은 그 잠재적인 위협과 불순함으로 감상자에게 공포감과 혐오감, 불안감이 복잡하게 뒤얽힌 감정적 반응(이 반응은 대개 괴물과 마주하는 작품의 중심인물이 드러내는 감정적 반응이기도 하다)을 끌어낼” 수 있다고 설명한다 [2] . 장르로서의 호러는 관객들이 호러라고 직관적으로 인식하게끔 하는 일련의 미학적, 내러티브적 관습으로 구축된다. 시각적으로는 기괴하거나, 혐오스러운 체액이 떨어지는 등의 모습으로 구현되며, 내러티브적으로는 주인공들이 몸을 숨긴 안전지대를 서서히 좁히는 방식으로 장르 문법을 따르곤 한다. 두려움은 바로 그런 종류의 호러에 노출되었을 때 일어나는 수용자의 심리적이고 본능적인 반응이다.) ‘능동 대 수동’의 오류 화면 속의 인물이 좁고 캄캄한 공간에 떨어졌다고 가정해 보자. 이 화면이 영화라면 관객은 인물의 움직임을 조용히 지켜보며 불안한 감정을 공유할 것이다. 게임이라면 플레이어는 컨트롤러를 쥐고 캐릭터를 직접 조작할 것이다. 캐릭터가 처한 상황에 공감하며 더 깊은 동일시를 느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즉 호러 영화를 시청하는 관객은 화면 내에서 벌어지는 행위에 영향을 미칠 수 없고 수동성으로 말미암아 호러의 효과를 경험하지만, 게임은 인물을 직접 조종하며 디제시스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호러에 몰입할 수 있다. 이것이 『Horror Video Games: Essays on the Fusion of Fear and Play』에서 다양한 저자들이 공유하는 전제다. 그러나 크리스토퍼와 로이즐러는 이러한 방식의 가정이 ‘루돌로지적 불안(ludic anxiety)’을 드러낸다고 바라본다. 루돌로지적 불안이란 스카이 라렐 앤더슨이 정의한 개념이다. 앤더슨은 흔히 내러톨로지 vs. 루돌로지로 요약되던 게임학의 흐름이 어떤 궤적으로 진행되었는지 요약하는 과정에서 초기의 게임학자들이 “게임과 다른 미디어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드러내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이들은 게임을 “프로세스, 시스템, 또는 행위에 의존하는 매체로 구성”하며, “게임의 특성에 대한 결론을 일반화”하려 했다. 루돌로지적 특질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게임학 이론을 정립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긍정적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디어의 특질이 다양한 설명을 압축해버릴 수도 있다 [3] . ‘어떻게 게임이 기술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가’에 담론의 초점이 쏠려버리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게임은 그 자체로 능동적이라는 명제가 자연화된다. (여기서 더 나아간다면 어떤 매체가 더 ‘무서운지’ 겨루는 논의로 이어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크리스토퍼와 로이즐러는 아만다 코트의 『Gaming Sexism』를 든다. 코트는 자신의 책에서 게임 문화에 광범위하게 퍼진 남성 중심적 헤게모니를 분석하고 있지만, 정작 그 분석의 언어가 또 다른 헤게모니에 굴절되어 있다. 아케이드 게임 문화를 다룬 장에서 코트는 여성이 주로 남성을 응원하거나 관전하는 롤에 국한되어 있었다고 설명함으로써 어떻게 여성들이 게임 플레이에서 소외되었는지 서술한다. 하지만 관전을 온전히 수동적이라고 구분 지을 수 있을까? “게임을 직접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거나 즐거운 경험이라 하더라도, 남이 게임하는 모습을 보는 것 역시 충분히 흥미롭고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일”로 긍정할 수 있지 않을까? [4] 게임을 보는 사람 또한 플레이어의 긴장감과 흥분을 함께 공유하고, 놀이의 매직 서클 안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와 로이즐러는 코트가 게임 플레이를 능동적이고 관전을 수동적인 것으로 나누어 관전의 메커니즘에 관해 유의미한 고찰을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또한 게임 플레이의 능동성을 핵심 주장으로 삼아 호러의 효과를 설명하려 경우, 곤혹스러운 모순이 발생하기도 한다. <암네시아>의 개발자 토마스 그립은 게임의 ‘재미’에 너무 몰두할 경우, 호러의 아우라가 파괴된다고 이야기하는 반면, <더 서퍼링>의 리처드 라우스 3세는 플레이어가 게임 세계에 완전히 몰입하면 공포가 훨씬 더 강렬해진다고 말한다. 두 상반된 의견은 행위성을 호러와 직결하는 아이디어를 정밀하게 해부해야 할 필요성을 드러낸다. 이어지는 장에서 저자들은 호러 미디어와 수용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상호작용을 두 가지로 구분하여 논의를 정교화하고자 한다. 이는 각각 ‘참여의 호러(participation)’와 ‘전송의 호러(transportation)’다. 참여의 호러 이 장에서 다루는 ‘참여’는 자넷 머레이가 고안한 ‘에이전시(agency)’ 개념과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 에이전시란 “참여자가 의미 있는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고, 또 그 자신이 내린 결정과 선택의 결과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만족스러운 능력”을 의미한다 [5] . 플레이어와 생리적으로 연결된 캐릭터가 맞는 죽음은 이전에 그가 취했을 선택의 결과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더욱 각별해진다. 플레이어는 무언가 선택함으로써 주체성을 행사하고, 캐릭터의 죽음을 통해 주체성의 상실을 경험하는 것이다. 특히 호러 게임의 상황이라면 플레이어는 불안감이나 압박을 느끼며 주체성을 상실하는 과정에서 공포를 생생히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에이전시가 두려움의 절대적인 기제는 아니다. 사실 호러 장르를 표방하는 다수의 게임이 시각적 요소에 더 의존한다. 저자들은 예시로 <마리오 게임>을 든다. 화면 속의 마리오는 데미지를 입기도 하고, 체력을 다 소진하면 죽음을 맞는다. 마리오를 조작하는 플레이어는 줄어드는 생명을 보며 게임 오버의 불안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마리오 게임>이 호러가 되기는 어렵다. 즉 호러가 되기 위해서는 괴물에게 쫓기는 등, 불안하고 기괴한 경험이 동반되는 맥락을 필요로 한다. 또한 플레이어가 게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사실 그 자체로 인해 호러의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 게임에 적응한다는 것은 게임이 유희적으로 제시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고와 행동을 자동화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플레이어가 언제까지고 괴물과 어둠을 무서워할까? 더군다나 일반적으로 게임은 실패해도 괜찮고 고통스럽지도 않고 불쾌하지도 않은 안전한 공간으로 체험된다. 이곳에서의 불쾌란 그다지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도 있다. 설령 괴물에게 살해당하더라도 재시작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블 캐릭터에게 제공되는 무제한 ‘생명’ 같은 안전장치는 공포의 경험을 퇴색시킨다. 분명 플레이어는 게임에 성공적으로 적응했지만, 그 결과로 본래 호러가 성취하려던 효과는 상실한 셈이다. 결국 호러 게임의 가장 큰 한계는 게임 플레이의 메커니즘 그 자체가 된다. 이 지점에서 많은 호러 게임 기획자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영구적인 죽음이 불가능해지거나 무의미해지면서 죽음에 대한 불안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일반적으로 영화에서는 캐릭터의 죽음이 절대적인 상실이나 단절로 그려지지만, 부활은 오히려 내러티브의 설득력을 떨어뜨린다는 특성과 대비된다. 이 지점에서 공감의 문제가 대두된다. 플레이어가 게임의 루돌로지적 목표에 매몰됨에 따라 화면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처한 상황에 공감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는 어떻게 자신이 조작하는 플레이어블 캐릭터에게 공감할 수 있을까? 페트리 란코스키는 플레이어가 플레이어블 캐릭터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목표적 참여(goal-related engagement)’와 ‘공감적 참여(empathic engagement)’를 분류한다 [6] . 목표적 참여란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준, 근본적으로 플레이어 자신의 경험이다. 반면에 공감적 참여는 캐릭터의 행동에 반응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게임 디자이너들은 내러티브 상의 목표와 게임에서의 목표를 일치시켜 두 참여의 방식을 조화하고자 한다. 그러나 전술한 이야기는 그러한 조합이 까다롭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란코스키는 특히 플레이어가 의사를 결정하거나 전투를 벌이는 등 인지 능력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 플레이어블 캐릭터에 대한 공감이 어려워지며, 게임 플레이의 흐름은 전적으로 목표 중심적으로 배열된다고 설명한다. 이 맥락에서 플레이어가 플레이어블 캐릭터와 감정적 동일시를 효과적으로 이룰 수 있기에 공포를 더욱 크게 느낀다는 주장은 반박된다. 그러나 참여는 여전히 매력적으로 호러를 이끌어낸다. 크리스토퍼와 로이즐러는 플레이어블 캐릭터 헤더 메이슨을 주인공으로 하는 <사일런트 힐 3>의 사례를 든다. 작중에서 플레이어-헤더는 악몽과 같은 비현실적인 세계에서 괴물들을 죽이게 된다. 한 NPC는 헤더가 죽인 것은 괴물이 아니라 사람이었다고 이야기하자 헤더는 경악하는데, 그 반응을 본 NPC는 농담이라며 재빠르게 둘러댄다. NPC의 대사의 진위를 가릴 수 없다는 점에서 과연 정당하게 괴물을 살해해온 것인지 확신하기 어렵다. 헤더가 저지른 살인에 참여해온 플레이어는 이 순간 섬뜩함을 느낀다. 전송의 호러 원문에서 크리스토퍼와 로이즐러는 그린과 브록의 ‘전송(transportation)’ 개념을 빌려 호러가 미치는 심리적 영향을 해설하려 한다. 전송은 “내러티브의 설득적 효과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수용자들이 소설이나 영화와 같은 내러티브에 노출되면 전송이라고 하는 과정을 통해 현실세계에서 내러티브로 묘사된 세계로의 심리적 이동을 경험”한다고 하여, 몰입과 같은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다 [7] . 정의가 드러내듯, 전송의 호러는 심리적 영역에서 논의된다. 그런데 이 장에서 저자들은 화면 바깥의 현실에서 게임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전송을 묘사함으로써 호러 게임이 어떻게 특유의 효과를 자아내는지, 그리하여 루돌로지적 상호작용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설명하고 있다. 사례로 언급되는 게임은 2002년에 출시된 닌텐도의 <이터널 다크니스>와 2017년에 출시된 <두근두근 문예부!>다. <이터널 다크니스>는 정신력 수치(sanity meter)을 도입해 효과적으로 연출한 작품으로 비평가들의 호의적인 반응을 이끈 바 있다. 이 게임에서는 정신력의 상태가 어떠한가에 따라 40가지 효과와 이벤트를 겪을 수 있다. 저자는 가장 인상적인 효과로 게임 볼륨이 갑자기 줄어들거나 소거 되는 현상을 꼽는다. 이러한 연출은 게임 소프트웨어가 스피커라는 외부 하드웨어로 뻗어 나가 간섭한 것처럼 느끼게 하여 현실과 게임의 경계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작품을 경유하며 호러의 전송을 겪은 플레이어의 심리, 그리고 게임 속 화면에서 현실로 뻗어 나가는 전송이 일치하는 셈이다. 흔히 제4의 벽으로 요약되는 수용자와 텍스트 사이의 벽을 허무는 시도는 이와 같은 메커니즘을 통해 의도한 바를 성취한다. 정신력 수치 메커니즘은 이후 게임 개발자들이 루돌로지적 메커니즘으로 채택하게 되었다. <두근두근 문예부!>는 이런 종류의 심리적 공포를 성공적으로 구현한 사례로 일컬어진다.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을 표방하며 출시된 이 게임은 남성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문예부 동아리에 들어가 다수의 소녀 캐릭터와 교분을 나누며 연애 대상을 공략하는 척한다. 그러나 작중의 인물 ’모니카‘는 게임 시스템에 접근해 미연시의 틀을 기괴하게 왜곡한다. 모니카가 게임 내 저장이나 설정과 같은 소프트웨어 권한을 통제하는 이상, 종내에 플레이어는 모니카의 파일을 삭제해 상황을 모면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 점에서 <두근두근 문예부!>는 플레이어가 심리적으로 화면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고차원의 호러를 빚어내는 작품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들은 위의 작품들을 루돌로지적 상호작용성으로 명명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루돌로지적 행위성을 강조하는 이분법으로는 위 작품들이 발휘하는 특유의 효과를 온전히 담아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모든 호러 게임을 루돌로지적 상호작용성의 원리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참여의 호러와 전송의 호러를 나누어 살펴보긴 했으나, 두 속성을 배타적이라고 단언하기 역시 어렵다. 원문은 페론의 글을 보완해서 독해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사실 페론의 에세이는 생존 호러가 발하는 액션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쫓고 쫓기는 공포스러운 상황 속에서 컨트롤러의 키네틱은 액션의 에이전시를 반영한다. 하지만 비주얼 노벨인 <두근두근 문예부!>는 그와 같은 조작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충분히 괴기스럽고 끔찍한 연출을 빚어낼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하게 조합 가능한 호러의 원리를 적용해보며, 새롭게 놀라고 떨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1] Bernard Perron(2009), 『Horror Video Games: Essays on the Fusion of Fear and Play』,, MIT Press, 124p. [2] 이해완(2017), 『노엘 캐럴』, 커뮤니케이션북스, 77쪽. [3] Sky LaRell Andersoon(2013), “Start, Select, Continue: The Ludic Anxiety in Video Game Scholarship”, The Review of Communication 13(4), 291p. [4] 강신규·원용진·채다희(2019). 메타/게임(meta/game)으로서의 ‘게임 보기’: 전자오락 구경부터 인터넷 게임방송 시청까지, 한국방송학보 33(1), 7쪽. [5] 자넷 머레이, 한용환·변지연 역(2001),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147쪽. [6] Petri Lankoski(2011), “Player Character Engagement in Computer Games”, Games and Culture 6(4), 291-311p. [7] 황유리·정세훈(2014),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의 설득적 효과: 애드무비(ad movie)를 중심으로, 광고학연구 25(6), 87쪽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김규리 게임이 이야기를 경험시키는 방식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것저것 기웃거리다가 최근에는 <마라톤>을 플레이했습니다.
- [북리뷰] 추억의 게임들을 지탱하는 기술들을 찾아서
책에서 다루는 게임들은 1989년까지이다. 1989년은 일본의 연호가 쇼와에서 헤이세이로 바뀌기도 하기 때문에 일본에서 1989년이란 해는 1990년과 그 이전을 나누기도 하고 1990년대와 그 전을 나누기도 하는 적절한 분기점일수도 있겠다. 당연히 그 이후로도 게임은 개발되고 있고 여전히 개발자들은 하드웨어의 한계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예전보다 하드웨어에 대한 제약이 줄어든 것은 사실지만 렌즈의 왜곡을 이용하여 화면크기에 대한 한계를 극복한 VR헤드셋들이라던가 기기한계를 정해놓고 한계 안에서 게임을 만들려고 시도하는 인디게임들도 존재한다. < Back 06 GG Vol. 22.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oungWook Oh Game enthusiast, game programmer, and historian of games. A growing interest in Korean games turned into a hobby of collecting and organizing materials, and has been steadily gathering and archiving them since 2006. Co-authored books including The History of Korean Games and Mario, Born in '81, and contributed as a developer to games such as Dungeon & Fighter, Acropolis, Pony Town, and Timeline Dungeon.
- 게임백서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들과 알려주지 않는 것들
2023년 1월 2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이하 ‘백서’ 혹은 ‘게임백서’)〉를 발행했다. 백서는 연 1회 발행되며, 1년 간의 국내 게임산업 현황(산업, 수출입, 제작 및 배급업체, 종사자, e스포츠 등), 게임이용 동향(플랫폼별 이용, 게임에 대한 인식 및 태도 등), 해외 게임산업 현황(플랫폼별·국가별) 등을 다룬다. 국내외 산업규모, 이용행태를 파악하고 경제적 가치를 분석해 정책수립이나 연구조사를 위한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백서 발행의 목적이다. < Back 10 GG Vol. 23.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hinKyu Kang Editorial board member of Culture/Science, a journal specializing in cultural theory. Researches media and culture, including games, broadcasting, comics, and fandom. Books include Fandom in Flux: From Play to Labor, From the Real to the Virtual (2024), Subculture Criticism (2020), IP: The Beginning of Every Story (2021, co-authored), Third Life: New Lifestyles in the Age of Technological Revolution (2020, co-authored), and The Theory of Games: From Play to Digital Games (2019, co-authored). Papers include "Fun Without Winning: Sociality, Agency, and Striving Play in Parent-Child Game Play" (2024), "Fandom That Consumes Communication: Idol Fan Platforms and the Reconfiguration of Fandom" (2022), "How Does 'In-Game Spending' Become Play?: Focusing on In-Depth Interviews with Whale Game Players" (2022, co-authored), and "Gamifying Broadcasting: From Producerly Text to Playerly Text"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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